피보나치 수열의 일반항 구하기

피보나치 수열이란 첫 두 항 F(1)와 F(2)의 값이 1이고, 그 다음부터는 n>=3인 자연수에 대해 F(n) = F(n-1)+F(n-2)이라고 재귀적으로 정의되는 수열이다.
1, 1, 2, 3, 5, 8, 13, 21, 34 …와 같은 순으로 숫자가 나열되며, 수가 커질수록 인접한 두 항의 비율은 황금비 (1+sqrt(5))/2로 수렴한다. 즉, 얘는 1 2 4 8 같은 등비수열과 동일한 형태는 아니지만, 수가 증가하는 정도가 등비수열과 동급이다.

그런데 다른 F 값에 의존하지 않고 F(n)의 값을 곧바로 구할 수는 없을까? 다시 말해 F(n)의 일반항을 구할 수는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0이 아닌 아무 a,b,c와 초기값 F(1), F(2)에 대해서 a*F(n+2) + b*F(n+1) + c*F(n) = 0꼴의 점화식 자체의 일반항을 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저런 점화식의 일반항은 X^n ± Y^n 의 형태로 귀착된다(X, Y는 임의의 상수). 피보나치 수열은 저기서 a=1이고 b=c=-1, F(1)=F(2)=1인 경우일 뿐이다.

이 점화식을 푸는 것의 핵심은 점화식을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기존 a, b, c 계수를 각각 1, -(p+q), p*q라는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a는 a, b, c를 똑같이 a로 나눠 주면 1로 바꿀 수 있고, b와 c는 합이 -b이고 곱이 c인 p, q라는 또 다른 숫자쌍을 구해서 바꾸면 된다. 이런 식으로 일반성을 유지하면서 계수의 형태를 치환하는 건 3차나 4차 같은 대수방정식을 풀 때도 볼 수 있는 테크닉이다.

계수의 형태를 저렇게 바꿈으로써 우리는 동일한 점화식을 F(n+2) - p*F(n+1) = q*( F(n+1) - p*F(n) )이라고.. 우리가 처리하기 더 유리한 단순한 형태로 변형할 수 있다. 어떤 점에서 더 유리한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p와 q 둘 중 하나가 0이면 F(n)은 그냥 평범한 등비수열이 되겠지만, 단서가 더 추가됨으로써 변형이 가해진 좀 더 복잡한 수열을 만들 수 있다.

가령, F(1)=F(2)=1이면서 p=2, q=-1이면 이 수열은 1 1 3 5 11 21 43 ... 즉, 앞의 수의 2배에다가 1을 더하거나 뺀 형태가 되며,
p=3, q=-2이면 1 1 7 13 55 133 463 1261 ... 앞의 수의 3배에다가 각각 4, -8, 16, -32를 더한.. 기묘한 수열이 만들어진다.

이런 유형의 수열을 저 점화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보나치 수열은 p+q=1, pq=-1인 경우이다.
(그러고 보니 다른 수학 교재에서는 이때 p, q 대신 알파와 베타를 쓰는 편이더라만.. 그건 그냥 기분과 취향 문제이니 이 글에서는 계속해서 p, q를 쓰도록 하겠다.)

F(n+2) - p*F(n+1) = q*( F(n+1) - p*F(n) ) 이라는 식을 잘 살펴보면.. 그 정의상 초기항인 F(2) - p*F(1)에다가 q를 곱해 주는 것만으로 F의 등급을 쭉쭉 올릴 수 있다. 무슨 얘기냐 하면, n>=1에 대해서 F(n+2) - p*F(n+1) = q^n * (F(2) - p*F(1))이라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특성 때문에 점화식을 이런 형태로 바꾼 것이다.

저렇게 하면 식의 우변이 p, q, F(1), F(2)라는 상수 형태로 완전히 바뀐다. 아, 우변이 F(n)에 대한 의존도만 없어졌지 n에 대한 지수함수이기 때문에 완전한 상수는 아니다. 완전한 상수라면 이 형태만으로 문제가 다 풀렸을 것이다.
이 상태에서 식을 더 단순화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활용하는 특성은 바로.. p, q의 값이 서로 뒤바뀌어도 생성되는 순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덧셈과 곱셈은 교환 법칙이 성립하는 연산이다. 그러니 p, q의 등장 순서를 뒤바꿔도 합 -b와 곱 c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위의 점화식을 F(n+2) - q*F(n+1) = p*( F(n+1) - q*F(n) ) 이라고 바꿔 줘도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다.

기하학적으로 생각하자면 저건 쌍곡선(곱이 같음 = 반비례)과 직선(합이 같음 = 정비례)의 교점을 구하는 것과 같다. 그 직선이 쌍곡선의 점근선 중 하나와 수직-평행 관계가 아닌 한, 교점은 “둘” 존재하게 될 것이다.

대수적으로 생각한다면야 저건 평범한 이차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다. -(p+q)와 p*q는 이차방정식 (x-p)(x-q)와 정확하게 대응한다. (x-p)(x-q)를 하든 (x-q)(x-p)를 하든 식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너무 당연한 얘기이다.

F(n+2) - p*F(n+1) = q^n *( F(2) - p*F(1) )
F(n+2) - q*F(n+1) = p^n *( F(2) - q*F(1) )

그래서 위의 등식에서 아래의 등식을 그대로 빼 버리면.. F(n-2)가 없어지고 등식 전체에서 F(n+1) 하나만 남게 된다.
F(n+1)의 앞에 붙은 q-p라는 계수로 양변을 나누고, n을 n-1로 치환하면 일반항 유도가 완료된다. 대략

F(n) = ( (q*F(1) - F(2))*p^(n-1) - (p*F(1) - F(2))*q^(n-1) ) / (q-p)

라는 비교적 깔끔한 식이 나온다. 이 정도는 심하게 복잡하지는 않으니 이미지 대신 그냥 문자 형태로 때웠다. ㄲㄲ
양변을 덧셈이 아니라 뺄셈을 했기 때문에 F(1)과 F(2)의 부호가 반대로 바뀌었다.

피보나치 수열의 일반항은 저기에서 F(1)=F(2)=1, 그리고 p와 q에다가는 x^2 - x - 1 = 0의 근인 (1+sqrt(5))/2와 (1-sqrt(5))/2를 각각 대입하기만 하면 구할 수 있다.
번거로운 계산이 많긴 하지만 F(n) = (p^n - q^n)/(p-q)의 형태가 된다. 형태가 꽤 복잡해 보이는데, 그래도 n에다가 자연수를 대입해 보면 근호(루트)는 거짓말처럼 없어져서 최종 결과값이 자연수로만 딱딱 떨어진다.
분자의 거듭제곱은 그렇다 쳐도 분모는 p-q는 sqrt(5)로 깔끔하게 나오기 때문에 표기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상이다. 글을 쭉 쓰면서 본인도 이 분야에 대한 공부를 확실하게 다시 할 수 있었다.
메이플이나 매스매티카 같은 수학 패키지에는 점화식을 푸는 명령이 물론 존재한다.
F(x+2) - (p+q)*F(x+1) + p*q*F(x) = 0의 일반항은 단순무식 F(x+2) + b*F(x+1) + c*F(x) = 0 보다 훨씬 더 간단하게 나오는 걸 알 수 있다. 후자는 내부적으로 sqrt(b^2-4*c) 같은 근의 공식이 잔뜩 섞여서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끝으로 생각할 점은..
피보나치 수열 정도는 이전 항의 이전 항.. 즉 2단계까지 역참조하는 점화식인데, 그 단계가 3단계 정도로만 올라가도 식의 복잡도는 상상 이상으로 치솟을 거라는 점이다. 특성 방정식은 2차가 아니라 3차가 될 것이고, 변수들을 연립해 주는 식도 2차가 아닌 3차가 될 것이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일반항을 구하는 게 도저히 가능하지 않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30 19:33 2020/12/3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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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비행기 수준은 아니지만 지면이나 수면을 약간 떠서 다니는 교통수단이 있다.

1. 지면에서는 자기 부상 열차가 대표적인 예이다. 얘는 분명 육상의 궤도 교통수단이고 차량을 열차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도의 범주에 드는 물건이 아니다. 당장 차량의 밑에 바퀴가 달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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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전자기력의 힘으로 아주 미세하게나마(수 cm 남짓) 위로 떠서 달리니 구름 마찰력 따위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조용하고 진동 없고 주행 속도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198, 90년대의 공상 과학 매체에서 진작부터 미래의 교통수단이라고 주목 받아 왔다.

하지만 기존 철도와 전혀 호환되지 않는 새로운 선로, 그것도 첨단 기술의 집약체여서 건설비도 엄청 많이 깨지는 시설을 수백 km씩 새로 건설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2020년 현재까지도 자기 부상 열차는 장거리 고속 간선이 아니라 단거리 중저속 도시철도 경전철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국내의 경우 대전 엑스포 공원과 인천 공항의 자기 부상 열차가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에는 상하이 시내와 푸동 국제 공항을 잇는 공항 철도가 어째 자기 부상 고속철 형태이다.

다음으로 일본의 츄오 신칸센이 2020년 현재 세계 최초의 유일한 장거리 간선 + 초전도 기반의 자기 부상 열차를 표방하며 건설 중이다. 시속 200km짜리 고속철에 이어 시속 600짜리 자기 부상까지 세계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은 놀라운 일이겠지만, 요즘 세계의 경제 시국을 감안하면 저건 경제 대국 일본의 입장에서도 꽤 버거운 과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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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부상 열차의 동력원은 linear motor라고 부르는 선형 전동기이다. 하지만 얘 자체는 부상식이 아닌 철차륜 접지식 철도에도 적용 가능하다. 용인 경전철이 ‘선형 전동기’라는 말을 국내에 거의 처음으로 선보인 사례이다.

요즘 자동차가 휘발유에서 전기 같은 대체 에너지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면, 철도는 전철은 진작부터 따 놓은 당상이니, 다음으로 기존 열차의 틀을 깨고 공기 저항이나 구름 마찰력을 차원이 다른 방법으로 극복해서 초고속을 실현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철도가 아음속기의 속도를 따라잡을 때쯤이면 비행기는 초음속기가 다시 실용화되지 않을지?

2. 다음으로 수면에서는.. 위그선과 수중익선, 공기부양정(호버크래프트)이 있다.

(1) 먼저 위그선은 생긴 것부터가 날개가 달린 게 경비행기 내지 헬리콥터.. 어쨌든 비행기를 짬뽕한 것처럼 생겼으며, 수면 위를 수~수십 m 정도 뜰 수 있다. 덕분에 속도도 시속 수백 km에 달하고 매우 빠르다. 배멀미가 없는 것은 덤.. 그 대신 얘는 평범한 배를 운전하는 감과 노하우만으로는 제대로 조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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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좀 더 발전시켜서 아예 비행정이나 수상기를 만들면 되지 이런 어중간한 물건은 왜 만들까? 위그선은 비행기와의 차이가 무엇일까?
위그선은 아무래도 완전한 비행기보다는 연비가 훨씬 더 좋으며, 조종 난이도도 비행기만치 높지는 않다. 그러면서 비행기의 장점을 바다 위에서 저렴하게 얻을 수 있다. 참고로 위그선은 초저공 비행 중에 날개가 공기를 아래로 누르면서 발생하는 '지면 효과'로부터 생성된 양력을 활용해서 뜬다.

다만, 위그선은 굉장히 빠르게 날아가는 도중에 아래의 파도에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양력 비행이란 건 어떤 형태로든 밀도가 낮은 공기 중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 특화돼 있기 때문에 공기보다 훨씬 무거운 물이 기체에 부딪혀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금세 자세가 흐트러지고 속력을 잃고 양력도 잃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상황이 발생한다.

위그선은 선박의 경제성과 비행기의 속도를 적당히 절충한 교통수단으로서 나쁘지 않지만.. 전문적인 선박이나 비행기의 틈새를 뚫고 독자적인 시장을 확보할 만치 획기적으로 뛰어난 물건은 아니어서 그냥 마이너한 특수 목적 교통수단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 이걸 타고 굳이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건널 필요는 없으니까.. 단지 포항이나 울진에서 울릉도 정도를 갈 때, 인천이나 안산에서 백령도 연평도 정도를 빨리 가고 싶을 때 비싼 헬기를 띄우느니 이런 물건이 가성비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위그선은 비행기와 선박 사이의 정체성이 무척 모호한 물건인데,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물론 선박이다. 법적으로 수면 위에서 고도 150m 이하로만 떠 다니는 것들은 다 선박이고 그 이상부터가 비행기라고 한다. 비행기가 이륙을 성공한 것으로 간주되는 최소 높이가 35피트(약 10.7m), 국내에서 사전 신고 없이 경량 드론을 띄울 수 있는 최대 고도가 150m이다가 최근에 최대 300m로 완화됐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기체 반경 600m 이내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 높이에서 추가적으로 이 높이까지)

(2) 다음으로 수중익선은 선체 아래에 U자 모양의 둥그런 '날개'가 달렸다. 주행을 시작하면 이게 물 속에서 양력을 받아서 선체를 위로 수 m 남짓 띄운다. 양력을 공기 중에서 얻는 게 아님을 유의할 것. 날개(수중익) 부위는 여전히 물에 잠겨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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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배도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물은 공기보다 밀도가 워낙 압도적으로 더 높기 때문에 비행기처럼 크게 돌출되지도 않은 저 작은 날개만으로도 그 무거운 선체를 띄울 수 있다고 한다.
수중익선은 모든 부위가 공중에 뜨는 위그선보다야 느리다. 하지만 위그선보다 더 대형화가 가능하고, 같은 출력으로 일반 선박보다 더 빠르고 편안한(= 배멀미 없는) 운항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수중익선은 저렇게 떴을 때는 물이 양력의 매체 역할만 하지 스크루를 돌려서 동력을 전하는 매체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워터제트 엔진을 따로 장착해서 물을 뒤로 뿜어서 나아간다.

(3) 끝으로, 공기부양정은 마치 호치키스처럼 본명보다도 호버크래프트라는 제조사의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데..
얘는 날개가 없고 딱히 항공역학적인 디자인이 아니다. 하체가 공기 쿠션으로 둘러져 있고, 그 공간에다 압축 공기를 불어넣어서 그 공기의 압력으로 뜬다. (양력이 아니라 추력...) 딱 자기 부상 열차가 뜨는 만치만(cm 단위..) 간신히 뜨기 때문에 공중부양(?)을 한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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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얘는 위그선보다야 훨씬 더 크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과 짐을 실을 수 있으며, 물 없는 바닥 위에서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다. 일반 선박들은 바닥이 지면과 닿으면 곧바로 긁히고 좌초하는 반면, 얘는 그런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중부양정은 험한 지형의 바닷가에 상륙 작전을 펼치는 군사 용도로 매우 적합하다. 물의 저항을 덜 받는 덕분에 일반 선박보다 훨씬 더 빠를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내륙 깊숙히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속도는 비행기만치 빠르지는 못해도 승용차 정도는 나온다.

공기부양정은 일반 선박처럼 물에 잠긴 형태의 스크루가 달려 있지 않으며, 옛날 증기선 같은 외륜도 없다. 뒤에 달린 프로펠러가 선체 상부의 공기를 뒤로 내뿜어서 나아간다는 게 특징이다. 물이 아니라 공기를 뒤로 밀어낸다.
사실, 비행기도 프로펠러를 뒤에다 장착해서 추진하고 뜨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단지, 이륙하면서 기수가 위로 들릴 때 뒤의 프로펠러가 땅에 닿을 위험이 크기 때문에 안 할 뿐...

모든 교통수단은 이것저것 겸용으로 만들면 효율이 매우 떨어지고 생산 비용도 비싸진다. 공기부양정 역시 예외가 아닌지라 일반 선박보다 수송량 대비 매우 비싸고 연비도 낮고 엔진 소리가 시끄럽다. 그렇기 때문에 잠수함처럼 민간이 아닌 군용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28 08:35 2020/12/28 08:35

육상 경주

‘달리기’라는 동작으로 대표되는 육상 경주는 공이나 다른 도구 같은 게 일체 필요하지 않고 그냥 몸으로 달리기만 하면 되는 매우 단순하고 원초적인 스포츠이다.
성경에 등장하며(전 9:11) 심지어 신앙 생활에 직접 비유되기도 한 유일한 스포츠이다(고전 9:24, 히 12:1).

이 바닥은 축구처럼 태생적인 피지컬에 의존하는 면모가 강하다. 특히 순발력이 생명인 단거리로 갈수록 말이다.
그만큼 선수의 은퇴 연령도 낮은 편이다. 그리고 농구와 더불어 왠지 흑형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100 내지 200m짜리 단거리에서는 크라우칭(엎드린) 자세로 출발을 하며, 뒷바람이 2m/s 이상으로 불 때 수립된 기록은 인정되지 않는다. 일반 여객기가 제트 기류를 탄 덕분에 잠시 음속을 넘은 것 갖고 초음속 비행이라고 인정되는 게 아니듯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은 굉장한 고지대에서 열렸는데, 이것조차도 육상의 기록에 영향을 끼쳤다. 공기 저항이 작아져서 단거리에서는 호재였지만 장거리에서는 산소 부족 때문에 악재였다고 한다.

400m 이상 장거리 내지 마라톤으로 가면 지구력이 중요하지 스타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선수들이 그냥 선 채로 떼거지로(?) 설렁설렁 출발한다. 특히 마라톤은 길이가 너무 길고 개최지마다 코스의 지형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대회의 기록을 비교하는 게 원래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비교하자면 마라톤 세계 기록은 2시간 1분~2분대로 좁혀졌고 2시간대가 간당간당하다.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는 공식 기록이 2018년 2시간 1분 39초였는데(독일 베를린 마라톤),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2019년 1시간 59분 40초를 수립했다고 한다.
참고로 마라톤 코스는 높이 변화가 1km당 1m를 넘지 않는 평지여야 한다는 조건이 국제 육상 연맹에 의해 규정돼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생 동갑내기 마라토너인 황 영조와 이 봉주 이후로 21세기부터는 토종 육상의 명맥이 끊긴 상황이다. 그런데 어째 공교롭게도 옛날 손 기정과 남 승룡도 1912년생 동갑이다.

얼마나 재능이 뛰어나고 거기에다 살인적인 노력이 더해졌으면.. 일제조차도 내키지는 않지만 자국민 대신 조선인을 국대로 선발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이들이 어째 그 어렵고 힘든 마라톤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나란히 따 버렸을까? 너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손 기정은 나름 히틀러를 가까이에서 대면하고 악수도 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 참고: 단거리 세계 기록

마라톤의 반대편 극단이라 할 수 있는 100미터와 200미터 달리기의 세계 최고 기록은.. 2010년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육상의 천재.. 자메이카 출신의 ‘우사인 볼트’(1986-)가 수립한 9.58초(2009)와 19.19초(2009)이다.

그럼 남자가 아닌 여자는..?
역시 흑인이지만 국적은 미국 토박이인 ‘플로렌스 조이너’(1959-1998)가 수립한 10.49초(1988)와 21.34초(1988)이다.
이 사람의 100m 신기록은 미국 내부의 올림픽 국대 선발전에서 나왔으며, 200m 신기록은 서울 올림픽에서 나왔다.

먼저 남자 얘기부터 하자면, 우사인 볼트는 뭐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세나 식사나 의상을 별로 튜닝 하지도 않고 설렁설렁 대충 뛰어도 금메달에 신기록이 그냥 제조되어 나왔다. 이건 다른 선수들이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격차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거 약의 힘이 아닌지 수상하다고 심판진이 눈에 불을 켜고 소변 검사 피 검사 별별 검사를 다 했지만.. 우사인 볼트에게서는 그 어떤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남자쪽과 달리.. 여자 쪽은 비록 공식적으로 약물이 적발되지는 않았지만 약의 힘이 아니었나 의심을 받고 있다.
일단 기록이 30년이 넘게 깨지지 못했으며, 시간이 무려 서울 올림픽 시절에서 멈춰 있다.

저 선수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정도까지 활동할 법도 했지만 88년을 끝으로 석연찮게 은퇴했으며, 40을 못 넘긴 젊은 나이에 석연찮은 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도 약물 후유증 때문이 아니었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 때 짙은 화장과 치장을 하고 나온 건 약물로 인한 신체 변화를 감추려는 게 아니었나 싶고.. 그 당시 같이 뛰었던 외국의 경쟁자 선수들은 이 정도면 쟤는 약을 빤 게 틀림없다고 증언했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호르몬의 왜곡으로 인해 수염이 나려는 것까지 감지됐다는데..;;

그런데 우리나라는 서울 올림픽 당시, 남자 육상에서 벤 존슨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복용을 적발해서 크게 한 건 터뜨렸던 반면, 여자 육상 쪽은 별 말 없이 넘어갔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26 08:33 2020/12/2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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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전벨트가 없다~!

정말 압도적인 차이점이다. 더 나아가 열차에는 구토 봉투, 산소 마스크, 구명조끼 등 그 어떤 비상용 장비도 비치돼 있지 않다.

2.
일반실 좌석은 복도의 입석 승객이 잡으라고 모서리 부분이 약간 패여서 손잡이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버스의 경우, 시내버스만이 그렇게 돼 있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광역/시외 이상급의 버스는 입석과 승차 정원 초과가 아예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에 그런 거 없다.
여객기는.. 승무원들조차 무조건 착석해야 하는 이· 착륙이라는 위험한 절차가 있는 이상, 아무리 단거리 저가 항공이라 해도 입석은 전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반면 열차는 버스보다 더 안전하고 더 대량 수송 지향적이기 때문에, 입석형 통근형이 아닌 좌석형 장거리 간선 차량에도 입석 손잡이가 갖춰져 있다.
심지어 시속 200~300으로 달리는 고속열차도.. 좌석에 안전벨트가 없는 걸로도 모자라 입석 승객용 손잡이까지 있는 건 철도만의 고유한 특징이 아닐 수 없다.

애초에 '고속'의 정의가 자동차 도로는 시속 100 이상이 기준이지만, 철도는 시속 200 이상이 기준이다. 또한 철도는 승객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입자에서도 자동차처럼 2시간마다 휴식 같은 제약에서도 당연히 열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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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일본 신칸센의 좌석이다. 창문은 마치 여객기처럼 작지만 좌석에 잡다한 안전벨트 따위가 없으며, 좌석 등받이의 양 끝 모서리에 동그란 돌기 같은 게 있다(입석 승객용 손잡이). 버스나 여객기의 좌석은 이런 형태가 절대로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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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철도 차량의 경우, 무궁화호는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아주 큼직한 손잡이가 있었고, 새마을호는 고급 열차를 표방하다 보니 손잡이가 아예 없었다. KTX도 원칙은 입석을 안 받는 것을 표방했기 때문에 손잡이가 없다.
그나마 ITX-새마을은 큼직한 손잡이까지는 아니고 신칸센처럼 자그마한 돌기 정도로 타협했다.

3.
앞뒤 좌석을 서로 마주보게 회전시킬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 일행끼리 마주보면서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세상에 얼마 없다. 자동차의 경우 일반 버스에서는 안 되고 일명 '봉고' 승합차 정도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걔네들도 등받이를 앞뒤로 미는 것까지만 가능하지, 열차의 좌석처럼 좌석을 통째로 뱅그르르 회전시키는 것은 안 된다. 뱅그르르 회전이 가능한 건 진짜 철도 차량 객차의 좌석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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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좌석 2개를 통째로 회전시킬 공간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열차 객실의 좌석은 앞뒤로도 충분한 간격이 필요하다. KTX는 이런 회전이 가능하지 않고 순방향과 역방향 배치가 고정돼 있어서 초기에 논란이 있었다.

참고로, 철도 차량 중에도 옛 통일호 객차는 봉고차처럼 등받이를 앞뒤로 미는 것만으로 좌석의 방향을 조절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런 좌석은 등받이의 앞뒤 구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고급화에 한계가 있다. 등받이 뒤에 컵 받침대, 개인 모니터, 쓰레기 담는 그물 등등.. 아무것도 장착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좌석은 최하급 열차 내지 봉고차에만 머물렀던 것이다.

4.
객실과 분리된 짐칸 공간이 따로 있지는 않다.
고속버스는 객실 아래에 짐칸이 있으며 여객기는 아예 부치는 수화물이라는 개념이 따로 있다. 그래서 선반에 올리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한 캐리어 같은 건 거기에다 싣거나 보내면 된다.

하지만 철도는 운행 중에 정차가 잦다는 특성상, 객실과 분리된 짐칸이라는 걸 운용하기는 어렵다. 객실 밖의 공간에 짐칸을 둔 열차도 있긴 하지만, 이 공간은 운행 중에 아무 승객이나 자유롭게 접근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도난· 분실의 위험이 약간이나마 더 높다.

5.
주행 중에 객실이 24시간 내내 가장 밝다. 이 역시 운행 중 정차가 잦다는 특성 때문에 존재하는 특징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열차는 승차감이 좋은 것과 별개로, 밤에 탑승 중에 잠을 자는 용도로는 버스나 여객기에 비해 불리한 면모가 있다. 전용 침대차가 아닌 이상 말이다.

* 보너스: 철도 차량의 운전석 창문 밖엔 백미러가 있는가?

자동차야 후진 또는 주행 중 차선 변경을 안전하기 하기 위해 후방 시야를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운전석 창문 밖에 툭 튀어나온 백미러라는 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물론 이건 주행 중에 차량의 공기 저항을 늘리는 부작용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이것도 다 카메라 화면으로 대체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거울보다야 콩알만 한 렌즈만 노출시키는 게 공기 저항 부담이 덜할 테니까 말이다.

버스나 트럭 같은 큰 차는 운전석의 바로 전방 아래쪽도 사각지대이기 때문에 거기를 비추는 거울도 같이 달려 있다. 자그마한 거울로 최대한 넓은 영역을 비추기 위해서 거울의 표면은 볼록하게 만들어져 있다.
이런 게 달려 있어도 차량 주변의 사각지대를 모두 없앨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각지대 교통사고를 예방하려면 시동이 걸려 있는 대형 차량의 주변에는 차든 보행자든 너무 가까이 얼쩡거리지 않는 게 좋다.

공기 저항에 목숨 걸어야 하는 비행기는 아무래도 백미러 따위와 접점이 없는 교통수단일 것이다. 그럼 철도 차량은..?
여객열차라면 출발 전에 승객이 모두 타거나 내렸는지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저런 거울이 있으면 좋을 때가 있다.
하지만 자동차만치 절실하게 필요하지는 않다. 열차는 역에 정차하는 지점이 늘 일정하기 때문에 그냥 역 승강장의 앞쪽에다가 기관사가 볼 수 있는 커다란 거울을 비치하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날 철도 차량들은 길쭉한 백미러가 기관실의 양 끝에 있는 편이었다. 기관차라든가 CDC, NDC, 심지어 새마을호 디젤 동차에도 있었다.
하지만 KTX를 비롯해 2000년대 이후에 생산된 전동차와 기관차는 그렇게 돌출된 백미러가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얘들이야말로 거울 대신 측면· 후방 카메라 영상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23 19:34 2020/12/2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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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 고속도로 개통

지난 11월경엔 서울 서쪽에 서울-문산 고속도로(17)가 개통했다. 17이라는 번호 자체는 평택-화성, 수원-광명이라는 여러 고속도로들에 의해 쪼개진 형태로 부여되어 있었는데 그 번호를 쟤가 최북단에서 또 계승한 것이다.
이로써 동쪽의 구리-포천(29)에 이어 서울 한강 이북의 동서 양 끝에 종축 고속도로가 나란히 생겼다. 얘를 이용하면.. 강을 따라 빙 우회가 심한 편인 자유로보다 더 짧고 곧은 경로로 서울에서 파주까지 갈 수 있다.

이 고속도로는 타 고속도로와 연결이 안 돼 있고 거리도 아주 짧은 주제에 통행료 징수 방식이 전구간 폐쇄식이다. (각 IC별로 톨게이트) 그런데 중간에 개방식 고속도로인 수도권 1순환 고속도로(100)와 모든 방면으로 교차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분기점의 남북으로 요금 정산을 하는 고양JC남, 고양JC북이라는 톨게이트가 둘이나 불가피하게 놓였다.
여기는 임진강 임진각이 얼마 안 남았고 북쪽으로는 더 가지도 못하는데, 그냥 개방식 톨게이트나 하나 놓고 말지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동쪽의 29는 100과 만나지만 분기점 없이 지나치기 때문에 이런 고민이 없다. 갈매동구릉 톨게이트 이북부터는 몽땅 폐쇄식이며, 그 이남은 당장 북부 간선과 연계하기 위해 개방식 내지 무료 구간으로 바뀐다. 물론 한강 건너고 남한산성을 지하로 통과하는 구간까지 개통하고 나면 남쪽부터는 다시 폐쇄식으로 바뀔 것이다.

버스 안내양이 없어졌고 여객기 항공기관사가 없어졌으며, 지하철역 단순 개표/매표 요원이 없어진 것처럼 톨게이트 매표 요원은 10~20년 안으로는 없어지지 싶다.
더 장기적으로는 개방식도 사실상 폐쇄식으로 바뀌어서 구분이 없어지고, 민자/국영이 스마트하게 통합된 통행료 과금 시스템이 적용될 것이다. 과거에 볼록 튀어나와 있던 톨게이트 부근의 넓은 부지는 공원이나 휴게소 따위로 바뀌고 말이다.
시스템이 하도 복잡하니 이제는 하이패스 없이는 진짜로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01년부터 시행된 고속도로 번호도 처음 제정됐던 20년 전에는 10 20 30, 15 25 35.. 일관성 있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지선 고속도로들이 미로처럼 거미줄처럼 하도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숫자들 역시 점점 더 알아보기 힘들고 복잡해지는 중이다.;;

비슷한 시기에 횡축인 울산-함양 고속도로도 1단계 구간이 개통했다는 것도 참고로 알아 두자. 얘는 완전히 새로운 구간과 선형이다 보니 14라는 새 번호를 받았다.

2. 박물관 전시

(1) 저 고속도로들 개통과 비슷한 시기에 인천 시립 박물관엔(송도 역에서 약 1km 거리) 수인선 협궤 객차 1량이 전시됐다.
이건 서울 부암동에 있는 목인(전통 목각인형) 박물관을 운영하던 관장 어르신이.. 수인선이 폐선되던 당시에 철도청으로부터 사비로 구매해서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수인선 전철 개통을 계기로 이분이 생각이 바뀌었는지 이 차량을 인천시에 기증을 했다고 한다.

뭐, 수인선 협궤 객차는 의왕의 철도 박물관에도 하나 있긴 하다만.. 차량을 볼 수 있는 곳이 더 생겼다니 일면 반가운 일이다.
인천 시립 박물관 근처엔 인천 상륙 작전 기념관도 있다. 재작년의 인천 여행 때 못 들렀던 곳인데 나중에 둘 다 들러 봐야겠다.

(2) 우리나라에 이 종원 씨라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국 최고의 버스 덕후 전문가가 있다.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다.
아직 나이 30도 안 된 1996년생이.. 직접 타 본 적도 없었을 80년대 전방엔진 버스들의 계보, 안내양이 있던 시절, 천장에 에어컨이 아닌 선풍기가 달렸던 버스 분위기 등등을 다 꿰뚫고 있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분은 우리나라에서 진작에 폐차되고 미얀마로 수출됐던 1981년식 새한-대우 BF101 초기형 버스를 국내로 도로 역수입해서 1980년대 모습으로 복원하는 정말 놀라운 기행을 사비와 펀딩만으로 벌이기도 했다.
포니나 브리사 같은 작은 승용차도 아니고.. 그 큰 버스를 어떻게 저렇게 가져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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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스는 내년에 개관 예정이라는 안산 산업 역사 박물관(고잔 역에서 약 800m 거리)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특이한 취미와 취향으로 한 가지에 빠져서 미친 사람들이 이렇게 세상을 윤택하고 다채롭게 바꾼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현장 영상을 유튜브가 아직 완전 까마득한 불모지이던 2008년에 올려 놓은 덕분에.. 저걸 직접 들어 본 적도 없었을 꿈나무 후세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ㅎㅎ

3. 다마스와 라보의 단종

우리나라의 유일한 경상용차인(= 경차 혜택을 받는 승합차/트럭) 다마스와 라보가 2021년, 드디어 단종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첫 생산된 지 거의 30년 만의 일이다. 사실은 제조사에서 진작부터 단종시키지 못해서 안달이던 상태였는데 이제야 완전히 숨통이 끊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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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와 라보의 중간에 속하는 물건은 다마스 밴이지 싶다. 출입문과 천장이 달린 외형은 기존 다마스와 동일하지만, 운전석 뒤엔 좌석이 아니라 화물 적재 공간만 있으니까.. 뭔가 탑차와 비슷한 위상이 된다.)

얘들은 길이와 폭뿐만 아니라 폭도 겨우 1400mm로, 철도 궤간 사이에 양 바퀴를 쏙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자동차 전용 도로까지 달릴 수 있는 네 발 달린 자동차 중에 제일 저렴한 차로, 2020년 물가로도 신차 가격이 아직 1000만원을 넘지 않는 유일한 물건이다.

얘들은 워낙 저렴한 가격과 유지비, 압도적인 경제성 덕분에 서민 소상공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대신 얘들은 서민형 생계형이라는 실드와 원가 절감이라는 명목 하에, 일반적인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입각한 자동차 기술 발전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성능, 안전성, 편의성이 잔혹에 가까운 수준으로 희생됐다.

(1) 편의성이야 뭐 자동 변속기, 파워 스티어링, 파워 윈도, ABS, 에어백 전부 없음. 이 2020년대에 아직도 창문 개폐용 닭다리 크랭크를 볼 수 있는 극소수의 차다.
여름에 에어컨조차 옵션이다. 에어컨을 틀면 안 그래도 배기량과 성능 부족한 차가 성능이 얼마나 더 떨어질까? 천장 뚜껑 달린 오토바이가 따로 없다.

(2) 우리나라의 경차 배기량 한계가 2008년부터 1000cc로 상향됐음에도 불구하고 얘들은 여전히 옛날 기준인 800cc에 맞춰져 있다.
어차피 디젤도 아닌데 큰 의미는 없겠지만, 배기가스 환경 기준 열외.
차 엔진을 뭔가 개량을 하려면 저걸 통과해야 하는데 다마스/라보는 그 정도 기술 개발을 해 봤자 투자 비용을 회수하고 이익을 낼 수 없었다. 그러니 그냥 산소 호흡기 꽂은 채로 옛날 기술 원형대로만 계속 찍어내서 생산하는 거다.

(3) 그리고 안전성 검증을 위한 충돌 테스트도 열외..
소형 트럭은 그렇잖아도 앞에 엔진룸이 없어서 충돌 사고 때 승용차보다 더 위험한데.. 더욱 얇은 철판 두께로 원가 절감과 실내 공간 최대화를 실현한 얘들은 충돌 테스트가 무의미한지라 열외돼 왔다.
마치 시내버스는 안전벨트 장착이 열외되고, 예체능 계열이나 신학 대학들은 일반적인 졸업생 취업률에 입각한 대학 경쟁력 평가에서 열외됐듯이 말이다.

한국GM 입장에서는 다마스와 라보는 처음부터 자기들이 만들지도 않았고 너무 저렴해서 딱히 이윤도 안 남는데, 국민 정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혼을 담지 않고 좀비처럼, 대중교통 적자 노선 지원하듯이, Windows XP와 IE6 지원하듯이 생산하는 사생아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쟤들은 경차라는 장르 하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이나 메리트를 확보할 기회조차 단 1도 얻지 못했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과는 완전 극단적인 반대편에 선 물건이라 하겠다.

트럭인 라보는 승용차 기반의 소형 상용차이던 포니 픽업, 엑셀 밴의 역할을 대체했다고 볼 수 있다.
승합차인 다마스의 경쟁 차종으로는 '타우너'가 있었지만 얘는 이미 2000년대 초에 단종되고 사라졌다.
이 바닥의 맥이 완전히 끊어지는 건 더 먼 옛날의 생계형 경상용차이던 '삼륜차'의 단종과 비슷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처럼 시장이 갈라파고스화될 정도로 자국 경차만 너무 많이 만들어지는 것까지는 안 바라지만.. 그래도 다마스와 라보 같은 장르의 차들도.. 비록 차값이 좀 더 오를지언정,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연명하다가 단종되는 것보다는 더 나은 미래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21 08:35 2020/12/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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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용 코딩용 글꼴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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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urier, Courier New

고정폭 타자기 스타일 서체의 원조이다. 16비트 시절부터 정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지금은 그만큼 너무 낡은 구닥다리가 되기도 했다. 그 시절에 나온 프로그램 개발툴의 에디터들은 기본 폰트가 전부 Courier 계열이었다.

Courier는 비트맵 글꼴이고, New 버전은 트루타입 글꼴로 Windows 3.1부터 도입됐다. 동일한 크기에서 두 폰트는 모양이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 작은 크기에서도 New 버전은 또 전용 비트맵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모양이 아주 균형잡힌 편인데, 그건 비트맵이 아니라 힌팅의 결과이다.

2. Fixedsys

Courier는 알파벳/숫자가 정사각형에 가까운 납작한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꼴의 metric 기준으로 한글이나 한자를 찍으면 그런 글자는 가로로 너무 납작해진다.
그 반면 Fixedsys는 한글· 한자 같은 전각문자가 정사각형이고 영문은 반각 비율로 찍힌다. 다시 말해 얘는 전각문자와 같이 잘 어울리는 코딩용 비트맵 글꼴이다.

Visual C++ 4~6의 경우, 영문 Windows에서 설치하면 텍스트 에디터의 기본 글꼴이 Courier로 잡혔으며(New가 아님), 그리고 대화상자의 글꼴이 MS Sans Serif로 지정됐다.
그러나 한중일 Windows에서 설치하면 텍스트 에디터의 기본 글꼴이 Fixedsys가 됐고, 대화상자의 글꼴은 큼직한 System으로 지정됐다.

이것은 Windows 3.x 시절에 영문판은 프로그램 그룹의 텍스트가 System보다 더 작은 MS Sans Serif였지만 한중일에서는 동일하게 큼직한 System으로 지정됐던 관행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재래식 Windows GDI 말고 WPF나 DirectWrite 같은 최신 UI/그래픽 엔진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에서는 트루타입 글꼴 말고 Courier이나 Fixedsys 같은 비트맵 전용 글꼴은 이제 사용하지도 못한다. (가령, Visual Studio 2010 이상)

3. 돋움체

2000년대 이후에 나온 Visual Studio들은 한국어판을 설치하면 텍스트 에디터의 기본 글꼴이 이걸로 설정된다. 이 전통이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뭐, 얘는 무난하긴 하지만 너무 개성이 없고 밋밋하다는 게 흠인 듯..

4. Lucida Console

한 Windows 2000쯤부터 추가된 것 같다. 납작한 Courier New의 대체제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5. Lucida Sans Typewriter

Lucida Console보다 세로로 더 길쭉해서 한글· 한자와 잘 어울린다. 전반적인 모양도 미려하면서 너무 튀지도 않고, 비트맵이건 ClearType이건 어느 힌팅에도 잘 맞고.. 개인적으로 이 폰트를 굉장히 좋아한다. 거의 15년이 넘게 Visual Studio의 텍스트 글꼴로 사용하고 있다.
단, 얘는 Windows에 기본 내장돼 있지 않다. MS Office를 설치해야 한다.

6. Consolas

Windows Vista에서 처음 도입된 깔끔한 글꼴이다. 얘는 힌팅이 오로지 ClearType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저게 없는 환경에서는 글자가 작은 크기에서 흐릿하게 뭉개지고 별로 보기 좋지 않다.
Lucida Sans Typewriter보다 납작하지만 그래도 Lucida Console보다는 길쭉하다.

7. Cascadia Mono/Code

언제부턴가 Windows 10에 요런 폰트가 추가돼 있더라. MS Office 번들은 아닌 듯..
모양을 튀게 만들려고 노력한 티는 나지만 개인적으로는 Lucida나 Consolas의 아성을 넘을 퀄리티는 아닌 것 같다. 9포인트는 너무 작고, 10포인트는 너무 큰 것도 아쉬운 점임.
다만, 꽤 다양한 굵기 바리에이션이 제공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여담

  • 요즘 코딩용 글꼴은 Courier 시절 같은 타자기 스타일을 탈피하여 불변폭이면서도 필기체 같은 느낌을 넣고, 한편으로 1 l I 같은 글자는 더 확실하게 구분 가능하도록 OCR용 폰트 같은 변화도 주는 것 같다.
  • '궁서체'도 한글은 좀 뜬금없지만 영문· 숫자는 의외로 타자기 자형과 비슷해서 코딩용 폰트로 쓸 만하다..;;
  • 그리고 맥OS에 있는 Monaco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Windows 동네에서는 쉽게 구경할 수 없는 듯..

Posted by 사무엘

2020/12/19 08:33 2020/12/1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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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여 년쯤 전엔 당시 우리나라 국방부 장관이었던 분이 간담회를 하던 중에 “(...) 지금 아프리카를 보세요. 거기는 그냥 밀림 자연뿐이고 무식한 흑인들이나 뛰어다니는 곳입니다”라는 말을 내뱉는 바람에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다.
아 물론, 저 사람은 군인과 공직자로서는 아주 유능하고 훌륭하고 청렴하기까지 한 분이었다. 그리고 저게 솔직히 말하면 우리 같은 사람이 흔히 갖기 쉬운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기도 하다.

심지어 소싯절에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해서 1950년대에 노벨 상까지 받았던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도.. 2007년경엔 “흑인은 유전자 차원에서 백인보다 지능이 떨어짐” 이런 말을 버젓이 해서 세계적으로 물의를 빚었으며, 늘그막의 이미지를 다 구긴 바 있다.

지능까지는 모르겠지만 아프리카 흑인들이 예나 지금이나 처지가 대체로 기구한 건 사실이어 보인다. 노예로 유난히 많이 팔려간 내력이 있으며, 2차 대전 이후에 그나마 유럽 강대국들로부터 해방되고 독립한 뒤에도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내전 벌이면서 여전히 못 사는 경우가 많다.

저 동네는 딱히 이슬람· 공산주의· 파시즘 따위가 적극 유입되지 않았는데도 과거에 이디 아민 같은 미친 독재자가 떡하니 나왔다. 쟤가 무슨 폴 포트나 히틀러나 김 일성, 마오처럼 무슨 이념에 사로잡혀서 맛이 가서 똘끼 학살극을 벌인 것 같지는 않다.

소말리아니 르완다니 하는 곳이야 오늘날까지도 상황이 어떤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다. 모잠비크와 짐바브웨는 완전히 경제 파탄 상태이며, 지금 우간다는 대통령이 동성애 반대하는 기독교인이라고는 하지만 뭔가 다른 방면으로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사실, 아프리카 국가들은 토속 신앙을 제외하면 이슬람이나 가톨릭이 아니라 의외로 기독교가 강세이다. 정확히 무슨 교파인지는 모르겠지만..)

19~20세기에는 유럽인들이 제국주의 기류에 편승해서 흑인을 미개하고 열등한 인종으로 취급하고 식민지 착취를 자행하긴 했다. 유럽에서 한편으로는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고 학교와 병원을 세웠으면서, 한편으로는 정치인· 기업인과 군인들이 저런 짓을 한 게 참 아이러니이다. 인간이 하는 일이 100% 다 선하거나 100% 다 악한 건 아니었을 테니..
그 중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는 고무 채취 할당량을 못 채우면 콩고 원주민들의 손목을 자르는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다. 손목 다음엔 당연히 목을 쳤으며, 급기야는 마을 주민을 몽땅 몰살했다.

영국 같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조차 그건 너무하다고 국제적으로 규탄하고 뜯어말렸을 정도였다. 도둑질 하다가 잡힌 죄인의 손목을 자르는 것쯤은 아주 양반으로 보일 지경이니... 벨기에나 일본처럼 제국주의 대열에 뒤늦게 뛰어든 나라들이 식민 통치 노하우가 없기도 하고 의욕만 넘쳐서 피지배 주민들을 더 잔혹하게 다스린 편이었다.

다만, 유럽 백인들이 처음부터 아프리카에서 저런 깽판을 쳤던 것은 아니다. 저건 항생제와 기관총이 발명된 뒤부터 가능해진 일이다.
그 전 18~19세기의 흑인 노예는 나름 거래를 해서 ‘사 온’ 것이었다. 그때는 총칼을 앞세워서 아프리카 땅 자체를 식민지화한 게 아니라, 노예를 사서 아프리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 노예들은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무슨 테이큰 찍듯이 악마 백인들에게 납치 인신매매 당해서 노예로 팔린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본토에서도 이미 노예 신세이다가 유럽인에게 팔렸을 뿐이다. 마치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켰지만.. 쟤들도 주변의 이웃 부족들을 식민지로 부려먹고 심지어 인신공양까지 시켜 온 것처럼 말이다. 오로지 유럽 백인 한 놈만 절대악인 게 아니다.

아프리카 대륙 내부의 흑인 부족들끼리도 아웅다웅 싸움이 있었으며, 진 부족은 이긴 부족의 노예로 전락했다. 이긴 부족은 그 노예를 유럽의 무역상들에게 팔고 백인들로부터 총이나 다른 물건을 샀다. 노예들은 유럽으로도 팔려가고 미국으로도 끌려갔다.

물론 처음부터 신분이 그랬다고 해서 유럽 백인이 노예들에게 저지른 가혹한 인권 유린이 정당화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 노예들을 배에다가 싣고 수송한 방식부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끔찍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의 작사자 존 뉴턴이 바로 이런 노예 무역선의 선장으로 재직하다가 본업을 때려치우고 노예 제도 반대  소신을 지닌 성공회 성직자로 전향했다. 저 찬송시가 써진 게 1770년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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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나치 유대인 수용소 vs 노예선)

한편, 조선은 흑인이 아니라 자국민 노비가 말기로 갈수록 좀 많아졌던 것 같다.;; 도대체 그냥 쌍놈 천민이랑 노비의 경계와 차이는 무엇인지, 단순 종이나 머슴은 무엇인지 이 시점에서 용어를 좀 정리하고 싶어진다.
뭐, 이웃 일본도 근대화 이전에 영주나 무사 같은 높으신 분들 말고 쌍것들의 생활이 참혹한 것은 변함없었다. 세금 부담이 너무 심해서 오죽했으면 낳았던 아이를 도로 죽여 버릴 정도였다(마비키).

훗날 일제가 조선의 주권을 빼앗은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물론 나쁜짓이었지만, 최소한 일제가 고종 휘하에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던 조선인들의 평안과 안녕을 파괴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더 빼앗을 평안과 안녕 자체가 별로 없던 지경이었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그리고 현대로 와서 일본군 위안부의 경우.. 일본놈들이 알바니아 트로포야 출신의 마르코라도 된 듯이 여자들을 마구잡이로 일방적으로 강제 납치한 게 아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당장 조선인들끼리도 여자 인권은 가히 헬이었으며, 같은 동족 포주가 그 소녀들에게 일자리니 학업이니 알선해 주겠다고 꼬드기면서 사람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 놓곤 했다. 서양의 흑인 노예 무역이 돌아간 것과 비슷하게 돌아갔다는 뜻이다.

이 쯤에서 본질적인 의문을 하나 던져 본다. 인류 역사상 노예라는 건 어쩌다가 왜 존재하게 된 것일까?
단순히 사회 조직에서 하는 일의 지위가 갑이 아니라 을인 것만으로 노예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노예는 거주지 이동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가 현저히 침해받고 사생활과 사유 재산이 심각하게 제약받으며, 인생의 대부분을 남이 시키는 일만(그것도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 위주로) 해야 하면서 시세 대비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보수를 받는 비참한 사람을 일컫는다.

게다가 자기 신분이 자녀에게 세습까지 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다. 이런...

그 반면, 오늘날은 세상에 그 어떤 막장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그 일을 언제라도 때려치우고 나갈 수는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금지돼 있고 목숨을 걸고 탈출해야 할 정도라면 노예 지수는 수직 상승한다. 북한 주민들이 비참한 노예 상태에 있으며 해방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기본적인 자유마저 박탈당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목숨 부지하기 위해 다른 인간에게 무조건적으로 굴종하게 된 것은 먼 옛날부터 있었던 일이다. 학교 안에 불량 학생 양아치와 호구 뺭셔틀이 있는 것만큼이나..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또한, 지금처럼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물자가 풍부해지고 선조들의 많은 시행착오 역사 자료가 쌓이기 전.. 옛날엔 집안을 다 말아먹는 사고를 쳐서 나가 죽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답이 없을 때.. "목숨만은 살려 준다. 하지만 너는 이제 평생 내 밑에서 일하며 죄값을 갚아라" 이것만으로도 주종 관계는 아주 간단하게 형성됐다. 전쟁에서 졌다거나, 실수로 불을 내서 마을 전체를 태워먹었거나..

예수님이 사시던 로마 제국 시절에야 당연히 노예가 있었다. 일부 용감한 노예가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다 붙잡히고 주동자는 예수님처럼 십자가형을 당해 죽었다. 먼 옛날에 한국사에서도 '만적의 난'이라는 미수 사건이 있었고 말이다.
중세 봉건 시절에는 '농노'라고 전통적인 노예보다는 약간 권한이 생겼지만, 여전히 지주에게 속박된 반쯤 노예이면서 국가에 대한 의무도 져야 하는 이상한 중간 신분도 있었다.

물론 세상일이 무작정 노예만 총칼로 위협하면서 억지로 갈아넣는다고 다 이뤄지는 건 아니다. 벤허 시절의 갤리선 노 젓기는 일자무식 노예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어렵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전문적인 자유민 노꾼이 담당했다고 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도 노예가 아니라 자유 평민이 고대치고는 꽤 후한 보수와 권한을 약속받고서 참여한 거라고 한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집트에 노예 운용이 아예 없었다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피라미드가 다 지어졌으니 피라미드의 내부 구조를 아는 너희 일꾼들은 이제 죽어 줘야겠다" 괴담도 내가 알기로 괴담이 아니라 사실이었다고 함)

노예· 죄수를 무작정 선원이나 군인이나 공작원으로 양성하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로 인해 영화적 과장이 아주 많이 들어가며 현실성이 별로 없다. 우리야 조선의 청년들을 강제 징용한 일제를 나쁜놈이라고 욕하겠지만, 놈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상황이 다급해도 조선인들에게 안심하고 믿고 총을 쥐어 주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백인들이 신대륙 식민지를 개척하고 거기 원주민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만든 것은 앞서 언급했던 아프리카 개척보다 훨씬 전의 일이다. 그때는 기관총이 아닌 대포와 화승총만으로 원주민들의 냉병기를 꺾었던 때였다.
아프리카는 뭐랄까 유라시아 같은 구대륙도 아니고, 아메리카나 오세아니아 같은 신대륙도 아니면서 딱히 세계사에 등장하는 일도 별로 없고 존재감이 참 거시기하다.

어디까지가 단순한 종이다가 어디부터가 노비, 노예의 범주에 드는지는 판단 기준이 다소 주관적인 구석이 있다.
다만, 성경은 고대 사회에 존재하는 종(servant)이라는 신분 자체는 인정한다. slave 노예가 아니라 servant이다. 넓게 보면 현대 사회에서 월급 받는 피고용자 직원도 종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신약에서 말하는 "너희 주인에게 순종하라" 하는 문맥에서 말이다. 노예는 계 18:13 같은 데서나 극히 드물게 등장한다.

아프리카부터 시작해서 노예라는 주제로 여러 시대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다루게 됐다.
사람의 신분과 계층의 차이는 결국 죄 때문에(일진 양아치), 혹은 반대로 죄를 방지하고 막기 위해(공권력), 또 죄값을 갚기 위해 같은 여러 이유 때문에 존재하게 됐다. 물론 그 지위를 이용해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유린하는 경우도 당연히 왕창 많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렇게 인간 사회에서 보편적인 현상을 근거로 인종의 우열을 논한다거나, 한쪽만 절대적인 선 내지 절대적인 악이라고 몰아세우는 건 부질없는 짓이라 하겠다. 현대 사회는 과거의 선조들이 겪은 시행착오들을 많이 개선해서 사회 구조와 삶의 양상을 많이 바꿔 놓긴 했지만, 양상만 바뀌었지 또 다른 형태의 노예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 갈다.
그리고 글을 맺으면서 생각해 봐도 아프리카는 그 잠재성에 비해 상황이 너무 안습한 지경인 건 틀림없다. =_=;;

Posted by 사무엘

2020/12/16 08:35 2020/12/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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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6호선 역촌 역의 4번 출구로 나가면 ‘은평 평화 공원’이라는 자그마한 공원이 있다. 지하철역 출구에 곧바로 자그마한 도시공원이 꾸며져 있는 건 대전 서대전네거리역과 비슷한 느낌이다.
저기는 2010년부터 공원으로 개장했고 그 전엔 그냥 평범한 건물 부지였던 것 같다만.. 은평구에서 무슨 생각으로 공원을 만들었나 모르겠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아무튼, 은평 평화 공원의 한쪽 구석에는 윌리엄 해밀턴 쇼(1922-1950).. 라는 6 25 참전용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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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단한 집안에 너무 존경스럽고 대단한 분이었다.
일단 부모가 한국에 온 감리교 선교사였고, 저 사람을 평양에서 낳았다.
그는 한국에서 자라서 대학교까지 들어갔는데 2차 세계대전 땐 해군 장교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그 뒤에 한국에서 또 6· 25 사변이 터지자 대학원 박사 학업까지 미루면서 해병대 장교로 참전했다.

1950년 9월 22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서울 수복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분은 녹번동.. 바로 이 일대에서 전투를 수행하다가 적으로부터 저격을 당해 전사했다고 한다. 김 재현 기관사(1923 ~ 1950. 7. 20. 대전)와 비슷한 연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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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그리고 저 사람(아들)까지 모두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혀 있다. 호머 헐버트처럼 말이다.

“내 친구 나라 한국이 위기에 처했는데 같이 도와주지 않고 나중에 전쟁이 끝났을 때 슬그머니 선교사로 들어가는 것은 제 양심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성경도 ‘사람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요 15:13)? 공부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같이 적힌 약력과 소개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런 사람이 소개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은평 평화 공원은 찾아가 볼 가치가 충분하다. 우연인지 뭣 때문인지, 은평은 이름을 구성하는 한자부터가 grace & peace 굉장히 성경적인 심상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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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은 천수를 누렸으면 하버드에서 한국학 전문 연구자의 커리어를 쌓았을 것이고, 아마 그 당시 하버드에서 한국학을 개척하고 있었던 서 두수 교수(서 남표 카이스트 전 총장의 부친!) 같은 분과도 인연이 분명 생겼지 싶다. 이를 생각하면 더욱 아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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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 완용..????)

위의 저 말은 두고두고 기억되고 영원히 감사와 존경과 칭송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적이 핵이나 미사일 얘기를 할수록 우리는 더욱 강하게 평화를 외쳐야 한다.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평화를 외치는 사람만이 더 정의롭고 정당할 수 있다”


잠깐 욕 좀 퍼부어야겠으니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이런 하드코어 빨갱이 씨발새끼의 저주받을 암 유발 망언은 두고두고 박제되어서 영원무궁토록 규탄과 개쌍욕을 쳐먹었으면 좋겠다. 저런 새끼는 애국시민과 자유를 되찾은 동족 북한 주민들의 분노의 돌탕질에 맞아 대가리가 깨져 뒈지기를 개인적으로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만약 이 땅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해서 저런 놈이 천수를 누리고 편하게 죽고 무덤까지 만들어진다면.. 묘비에다가는 저 말이라도 꼭 새겨 넣어 줬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말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빨갱이가 아닌 다른 사유로는 결코 욕설을 노출하지 않는다. 뭐 독도는 일본땅? 저런 진짜 개씹창 망언부터 참교육 시켜 주고 난 다음에 대응해도 전혀 문제될 것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14 08:35 2020/12/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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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근황과 잡설

1. 올해 결산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우한 폐렴의 창궐 때문에 교회 예배가 중단· 축소되고 올림픽이 연기됐으며, 미세먼지가 없는데도 전국민이 무조건 마스크를 쓰고 다니게 됐다. 오죽했으면 거리 설교를 하고 전도지를 뿌릴 때도 마스크를 같이 나눠줄 정도였다. 한편으로 백 선엽 장군과 이 건희 회장의 부고가 전해지기도 했다.

대면 예배가 없는 동안 본인은 올해는 여행을 좀 더 많이 다닐 수 있었다. 블로그에 대대적으로 사진을 올리며 소개한 바와 같이 총 세 번 다녀왔다.

  • 춘계: 동부 남양주 지역 답사. 운길산 등산
  • 하계: 무려 3박 4일 동안 중부와 영남 지방 종합 답사.
  • 추계: 수인선, 서해선, 항동 철길을 두루 살펴본 경기도 서부 철도 종합 답사

2. 텐트 야영

본인은 저렇게 작정하고 여행을 떠나지 않을 때도, 심지어 직장 출근을 하는 평일에도 밤에는 대부분 집 있고 차 있고 노트북 있는 노숙자로 지낸다. ㅎㅎ
좋은 날씨에 야영을 하지 않는 건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아무 야외 오지라도 이 작은 텐트만 펼치면 포근하고 따뜻하고 아늑한 개인 공간 밀실이 만들어진다는 게 내게는 소확행으로 느껴진다.
남들은 캠핑을 가서 또 노는 활동을 하지만, 본인은 캠핑을 간 것 자체가 유흥이다.

내가 밖에서 못 자는 조건은 딱 둘: (1) 열대야 무더위, 그리고 (2) 나쁨 이상 수준의 미세먼지이다. 폭설 폭우 혹한은 정반대 완전 땡큐 조건이다.
침낭을 두 겹으로 걸치니 바닥의 냉기도 거의 느껴지지 않고 발도 안 시렵고 정말 따뜻했다.
핵심은 따로 난방을 전혀 가동하지 않고 밖에서 쾌적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 반면, 내게 집 건물이란..

  • 전기, 가스, 수돗물, 와이파이의 보급처
  • 용변, 샤워, 빨래 공간
  • 주민 등록을 위한 법적 주소 제공지

정도의 의미만을 지니는 듯하다. 딱히 몸 누이고 쉬는 공간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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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울에서 기슭까지 주차 걱정 없이 차로 접근 가능하고, 적당히 으슥하고 각종 법에 대놓고 저촉되지 않는 좋은 산은 매우 드물다.
언제 산에서 멧돼지라도 좀 만났으면 좋겠다. 그럼 반갑게 인사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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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왕숙천 강변이다. 여기도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이 당시엔 아침에 일어나 보니 텐트에 이슬뿐만 아니라 서리까지 내려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 나 같은 텐트족이 한 명 더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밤새도록 낚시를 하다가 잠드신 듯하다. ㅎㅎ

개인적인 로망은.. 강변이 아니라 강 하중도에서 숙박해 보는 것이다.
내가 어촌에서 살았으면 어선 한 척 장만해서 배에서 자거나, 아니면 남해안이면 매일 무인도에 가서 텐트 치고 자고 오지 싶다.
아니면 북한산이나 북악산 중턱에서 김 신조 코스프레를 해 봤으면 싶다. 텐트 다음으로는 비트를 파고 자는 것도 흥미진진할 것이다.

3. 북악산 개방

북악산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훑을 때 대략 "일반 구역 - 북악스카이웨이와 팔각정(자동차 지향) - 철조망 - 한양도성 구간과 정상(보행자) - 철조망 - 청와대"의 형태로 구간이 나뉜다.
그래서 남쪽의 청와대는 철조망에 사실상 이중으로 둘러져 있으며, 한양도성 구간은 남북 양쪽으로부터 격리돼 있다. 여기에 들어가려면 해가 떠 있는 동안 안내소 세 곳(창의문/말바위/숙정문) 중 하나를 반드시 거쳐서 이름과 연락처 까고 명찰 목걸이를 받아야 했다.

1968년 1· 21 김 신조 사태의 트라우마 때문에 청와대 주변 산들은 오랫동안 몽땅 락이 걸렸었다.
그러다가 1993년 김 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무궁화 동산과 인왕산이 개방됐다. 단, 월요일은 입산 금지이고, 주요 포토 라인엔 군경 감시요원이 배치되어 등산객이 청와대 방향으로 사진을 찍는 걸 막았다.

2000년대(07~09)에 와서는 인왕산에 이어 북악산도 북악스카이웨이뿐만 아니라 청와대에 가까이 있는 한양도성 구간이 해금되고 일반 구역에 있는 “김 신조 루트”와  우이령길까지 개방됐다. 비슷한 타이밍에 전국의 국립공원들이 무료화되기도 했다.
단, 북악산의 한양도성 구간은 아침과 낮 시간대에만 명찰 목걸이를 받아서 드나들 수 있다는 제약이 걸렸다. 인근의 북한산은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등산로를 벗어나서는 안 되고 아무데서나 야영을 하면 안 된다는 제약이 있지만, 북악산은 그런 것과 무관하게 그냥 보안 때문에 저런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그러다가 지금 대령통의 집권기인 2018~19년쯤엔 인왕산에 있던 감시요원들이 없어졌다. 그리고 북악산의 목걸이는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개인 정보까지 수집하지는 않고 그냥 드나드는 인원 집계만 하는 출입 태그로 바뀌었다.

이런 단계를 거쳐 지난 2020년 11월부터는.. 산중턱의 북악스카이웨이에서 한양도성 청운대 - 곡장 사이를 오가는 등산로가 추가로 개방됐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실상 단절돼 있던 두 영역에 대한 이질감이 크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한양도성 쪽의 등산로도 성 안쪽과 바깥쪽(북쪽) 양쪽으로 뚫리게 되었다. 등산과 캠핑을 좋아하는 본인 같은 사람에게는 이건 분명 호재이다.

다만, 한양도성과 이들 등산로는 출입증 명찰이 필요한 구역인 건 변함없기 때문에, 청운대와 곡장이라는 안내소가 추가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작은 북악산에 존재하는 안내소는 무려 5개로 늘었다. 이게 국립공원 산으로 치면 출입구에 존재하는 탐방 지원 센터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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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대 안내소는 북악스카이웨이 쪽에 마련돼 있고, 주변에 주차 공간도 좀 있다. 바로 옆에는 군부대가 있으며 원래는 이 안내소가 있던 곳도 군부대 부지였다. 그래서 옛날 로드뷰에서는 이 지점이 온통 흐리게 표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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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곡장 안내소는 한양도성 쪽에 가까이 있으며, 북악스카이웨이 쪽에서는 아주 자그마한 철제 출입문하고만 연계된다. 곡장 안내소로 가는 출입문에서 북악 팔각정까지의 거리는 5~600m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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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대 안내소에서 한양도성까지는 굉장히 가까워서 거의 10분 남짓 계단을 오르면 도달한다. 그렇잖아도 여기는 한양도성과 북악 스카이웨이가 굉장히 가까이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중간에 과거의 군견 훈련장이었다는 부지도 지나게 되는데, 이는 마치 우이령길에서 과거의 유격장 부지를 지나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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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 시장의 자살 사건 이후로 몇 달 만에 북악산이 또 언론에 오르내리게 됐다.
이번 등산로 개방 덕분에 차로 북악산의 백운대 정상까지 가는 게 아주 수월해졌다. 창의문 안내소에서부터 근성으로 한양도성 계단을 오르던 시절과 비교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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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대 안내소에서 출발해서 한양도성 - 곡장 - 곡장 안내소를 찍고 다시 청운대 안내소로 돌아오는 데 3~4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말 무난한 산책이었다. 산 속 나뭇잎들은 단풍이 들어서 울긋불긋하고 경치가 좋았다.
이 정도면 별도의 여행/등산 카테고리의 글로 올릴 분량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근황/잡설 글에다가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관심 있으신 분은 여기 등산 및 산책하러 가 보시기 바란다.

4. 병맛 개그

본인은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이라든가 쿵 퓨리(..;;)같은 B급 병맛 개그를 꽤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은 국내 유튜버들도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패러디와 오마주로 병맛 똘끼 개그물을 많이 만들고 있어서 볼거리들이 넘쳐난다. 정말 천재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그 중에 본인이 주목하는 유튜버는 ‘장삐쭈’와 ‘총몇명’이다.
장삐쭈는 원전에서 소리를 날려 버리고 더빙을 웃기게 하는 반면, 총몇명은 원전에서 영상을 자체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만들고 소리는 남겨 놓는다는 차이가 있다. 접근 방식이 서로 정반대라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총몇명은.. “아버지 뭐 하시노? / 콘덴싱 만들어요! 국가 대표 보일러 경동.. /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이게 정말 인간의 의식의 흐름이라는 게 어느 약 빤 지경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걸작이었다. ㅠㅠㅠ

장삐쭈는.. 여러 주옥 같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일본의 60년대 흑백 애니메이션인 에이트맨을 마개조한 봉팔맨 시리즈를 보고는 그 병맛스러움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 버렸다..;;
“나를 이길 자 그 무엇인가, 자동차보다 빠르고 기차보다 더 빠른 우리의 친구 봉팔맨”은 머릿속에서 자꾸 자동 재생될 지경이다.

제작자 양반은 나이도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던데 도대체 어디서 이런 덕력을 갖췄길래 무슨 1963년작 애니까지 찾아 갖고 이딴 더빙을 만드냔 말이다.. ㅡ,.ㅡ;; (에이트맨)
이 정도의 천재성이라면 전업 유튜브질만으로도 먹고 살 자격이 있어 보인다.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11 08:32 2020/12/1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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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시발이었을까

이 블로그에서 몇 번 다룬 적도 있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자국 생산 자동차 '시발'을 생각해 보자.
아무리 좋은 뜻을 담았다고 해도 그렇지, 자동차 이름을 왜 비속어가 연상되는 '시발'이라고 지었을까 지금 우리로서는 궁금증이 들 것이다. 마치 극악의 저출산 때문에 고민인 지금의 관점으로는 과거에 정반대로 "아들 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 구호가 나오던 배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과도 비슷하다.

저 시절을 직접 겪은 옛날 분의 증언에 따르면.. 시발 자동차가 다니던 195, 60년대에도 한국어에 C-bal이라는 욕설 자체는 멀쩡히 존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의 언어 습관은 여러 정황상 말소리보다 한자 뜻을 훨씬 더 중요하게 따졌던 것 같다. 始發이라는.. 요즘으로 치면 '오리진, 제네시스'나 마찬가지인 좋은 뜻만 가졌으면 됐지, 굳이 "C-bal이 연상되는데?"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마치 성에 대한 금기만큼이나 금기시됐던 것 같다. 천한 욕설은 공식적으로는 한국어에 존재하는 걸로 간주되지도 않는 어휘였다.

물론 공개 석상 말고 사석에서는 그런 고매하신 선비질 따위 없었다. 그러니 비단 시발 자동차 말고도, 한자로 뜻은 괜찮지만 소리가 이상해서 어린 시절에 흑역사급 별명을 달고 다녔던 사람이 많았다. 인명 외의 분야를 봐도 야동 초등학교도 있었고, 죽음(대나무 그늘) 마을도 있었다.

야동 초등학교의 경우, 인터넷으로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개명을 해 버린....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고(단, 시골에 학생 수가 너무 적어져서 폐교 위기라고 함)... 후자의 경우 본인이 아주 어리던 시절에 TV를 통해서 봤는데, 노인들이 시골길에서 차에 치여 세상 하직하는 일이 잦아지자 불길하다면서 뒤늦게 개명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야동 초등학교야.. 학교 이름을 짓던 시절에는 야동이라는 것 자체가 지금처럼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C-bal과는 상황이 좀 다르긴 하다.. ^^)

생각을 해 보라. '죽음'(竹陰)은 멀쩡하게 지명으로 썼으면서, 순우리말과 아무 관계 없는 한자 (중국어)와 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다른 멀쩡한 숫자 4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기피했던 것이 한국의 언어 문화였다.
개인적으로 이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말과 소리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문자이지, 말이 문자에 끌려가서 꼭 뭘 봐야만 뜻이 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이 아니다.

한글로만 쓰니까 뜻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네 하는 면모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자면 말이 그 따위로 돼 버린 게 문제가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서유럽· 미국 같은 나라는 표음문자 알파벳만 갖고도 넘사벽 급의 학문이고 사상이고 철학이고 과학 기술을 이룩했지 않은가?

본인 역시 그런 맥락에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한글 전용 지지 소신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옥편 뒤지면서 듣보잡 벽자를 찾아내서 이 소리는 이런 뜻이라고 갖다붙이는 짓 대신, 온통 영어 외래어를 갖다붙이는 게 유행이 돼 있다. 어느 게 절대적으로 더 바람직한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자가 차라리 전자보다는 더 나은 것 같다. 듣는 것만으로 뜻이 변별은 되니까 말이다..

2. and는 접속부사인가

그럼 다음으로 잠시 한국어와 영어를 좀 비교해 보겠다.
한국어에는 체언을 잇는 '과/와' 접속조사, 용언(=구, 절 모두)을 잇는 '며/고' 연결어미, 그리고 문장을 잇는 접속부사(그리고)가 전부 따로 논다. 그러나 영어는 전부 간단하게 접속사 and 하나로 끝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and는 접속부사로 취급되지 않았는가 보다. but, then, however, moreover, meanwhile 등은 명백히 영어의 접속부사이지만 and는 X and Y로만 쓰는 것을 정석으로 쳤던 듯하다. 프로그래밍 언어로 치면 말 그대로 이항 연산자. ㄲㄲㄲ and는 or과 같은 급이지, but과 호응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먼 옛날에 MS Word의 스펠링+문법 검사기도 문장을 And로 시작하면 틀렸다고 지적하던 게 내 10대 시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대신 "콤마+소문자 and"로 문장을 길게 이어야 했다. 왜 반드시 저래야만 하는지를 본인은 그 당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성경만 해도 And로 시작하는 문장이 부지기수이고, 특히 옛날 고전 텍스트인 KJV는 훨씬 더 많이 쓰였다. And 금기가 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글쎄, 이런 게 아닐까? 원래 '보다'는 조사이기 때문에 "A보다 B가 더 낫다" 형태로만 쓰는 게 맞는데.. 요즘은 그게 부사처럼 쓰여서 건방지게 앞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옛날에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하던 분들이 저건 잘못됐다고 번역투와 더불어서 왕창 지적했었다.
나도 굳이 '더'가 멀쩡히 있는데 '보다'를 일부러 바꿔서 쓸 필요는 느끼지 않기 때문에 자제하고 지낸다.
대문자 And가 한국어로 치면 저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이 문득 든다.

한편, 뉴스 앵커 멘트에서 종종 쓰이듯이 "김 씨는 그러나 사실을 부인했습니다"처럼 접속부사가 문장 맨 앞이 아니라 주어와 도치(?)되는 것도 문법에 어긋난다고 얘기가 많다.
나 역시 어감상 어색해서 개인적으로는 저렇게 안 쓴다. 하지만 저걸 비문으로까지 간주하는 건.. 좀 문법 나치스러운 발상 같다. 영어로도 Mr Kim, however, denied the fact 처럼 콤마와 함께 접속부사를 중간에 잘만 집어넣는걸...

3. 동작상(動作相)

언어에는 제각기 동작상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있어서 한국어로는 ‘죽었다’ 하나뿐이지만 영어로는 you died와 you are dead가 더 세분화돼 있다. (그리고 보통 전자보다는 후자로 번역되는 일이 더 많음)

‘죽다/죽었다’뿐만 아니라 한국어의 용언 중에는 ‘맞다’처럼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굉장히 헷갈리고 동사 과거 시제가 사실상 현재 시제의 형용사처럼 돼 버린 물건이 좀 있다.
‘미치다’, ‘틀리다’도 생각해 보자. You are crazy/wrong이 “너 미쳤다/틀렸다”이지 않은가? “미친다/틀린다”는 동작상이 꼬여서 용례가 겉돌고 있으며, 그 와중에 ‘틀리다’는 ‘다르다’의 영역을 야금야금 침범하는 중이다. 총체적인 무질서인 것 같다.

여담이지만 영어 have는 동명사 내지 현재진행형인 having이 존재한다. 하지만 단순히 ‘가지다, 소유하다, 내게 있다’라는 1차 의미일 때는 현재진행형 시제를 사용할 수 없다는 독특한 규칙을 초등학교 영어 수준에서 배우게 된다. have가 현재진행형인 것은 좋은 시간을 보낸다거나 경험하는 등, 2차 파생 의미일 때에만 가능하다.

이런 것도 동작상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용례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원래 원칙은 저렇지만 관계대명사 앞에서는 "~를 가진"이라는 뜻으로도 is having에서 is가 생략된 꼴이 잘만 쓰인다.;;;.

4.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난해함

  • -ㄹ수록: 의존명사 '수'(할 수 있다)를 떠올려서 그런지 '그럴 수록'처럼 띄어 쓰는 경우가 주변에서 많이 보인다. '-수록'은 뭐 다른 형태로 활용되는 게 전무하며 그 자체로 연결어미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붙이는 게 맞다. '그럴수록'
  • -ㄹ지: 역시 어미인데.. 문제는 얘는 좀 명사화 접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할지 말지가 문제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역시 '지'를 의존명사처럼 인지하고 띄어 쓰려는 경향이 있다. 진짜 의존명사인 '줄'도 같이 떠올리는 것 같다. (너 그럴 줄은 몰랐다)
  • -ㄹ까 봐: 얘는 '할까 보다'라고 분할이 가능하기 때문에 '봐' 앞을 띄운다. "네가 사고라도 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도 다른 띄어쓰기에 비해서는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한 띄어쓰기에 가깝다.
  • - 왜냐하면: 단독으로 부사이다. '왜냐 하면'이라고 띄울 필요가 없다.
  • - 못하다: "저는 그 일을 못 합니다" / "그렇게 되지는 못합니다"
    '못'은 부사이고 '못하다'는 동사, 형용사, 보조용언이 다 되는 정신나간(?) 단어이다.

영어 정서법에 비해 우리말의 한글 맞춤법이 더럽게 복잡하고 띄어쓰기가 어려운 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현실이다. 왜 그럴까? 이를 원론적으로 따져보면 이렇다.

일단 (1-1) 한국어가 언어 구조적으로 어미 접사가 어간 뒤에 덕지덕지 복잡하게 붙는 걸 좋아하는 교착어이고 애매한 품사통용어가 많기 때문이다.
이 한 글자짜리 형태소를 접사나 어근이라고 보면 붙이고, 고유한 부사나 명사라고 보면 띄운다. 그런데 그 기준과 경계가 엿장수 마음대로가 되기 십상이다..;;.

가령, 본인은 내 개인 블로그 한정으로 성과 이름도 띄어 쓰고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띄어쓰기를 더 하면 더 하지 결코 덜 하지는 않지만.. '전세계'에서 '전'과 '세계'를 띄어야 하는 건 개인적으로 좀 납득이 안 된다. 全 정도면 그냥 접두사로 보거나, 쟤만이라도 거의 한 단어로 굳은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1-2) 게다가 띄어쓰기 말고 사이시옷도 말이다. 왜 '물고기'는 '꼬기'이고 '불고기'는 '고기'인가,
'볶음밥'은 '밥'이고 '비빔밥'은 '빱'인가,
그럼 '김밥'은 밥인가 빱인가 이런 거는.. 정말 랜덤이고 개연성이 없다. 규칙을 찾을 수 없다. 한국어가 원래 그런 언어다.

그리고 (2-1) 문자 차원에서는 역설적으로 모아쓰기 때문이다.
글자가 단독으로도 적당히 음절 경계 변별이 뛰어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띄어쓰기를 안 해도 알아보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띄어쓰기를 전혀 안 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한 단어로 붙여 쓰는 예외를 정하는 게 난감하고 띄어쓰기 규칙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2-2) 사이시옷은 말부터가 제멋대로인데 그건 음절 단위로 딱딱 떨어지지 않는 초분별 요소에 속하며 한글이라는 체계 하에서 표현하기가 몹시 난감하다. 사이시옷 규정이 캐 더럽고 구린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한자어의 경우 "숫자 횟수 곳간" 등의 몇 개만 예외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그냥 표기하지 않기로 정해 버렸다.

알파벳 같은 풀어쓰기형 문자를 썼으면 띄어쓰기는 약간이나마 더 쉬워졌을 수 있다. 체언과 조사도 띄우고 좀 헷갈린다 싶은 건 몽땅 띄우고, 좀 아쉬운 건 하이픈으로 연결하고.. 사이시옷이나 축약은 ' 점 하나 찍어서 해결해 버리면 된다.

다시 말해 모아쓴 한글의 덩어리 단위가 '초분절적 변별요소'까지 포함한 한국어의 형태소· 음운 단위보다 크기 때문에 이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글의 큰 장점인 동시에 그로 인해 얻는 부작용인 셈인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여담이지만, 영어권에서는 심지어 숫자와 단위 사이도 꼬박꼬박 띄운다. 100MB, 50kg라고 안 하고, 우리로서는 어색하게 느껴지겠지만 100 MB, 50 kg라고 쓴다는 것이다.
숫자와 알파벳 이렇게 문자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에 붙여도 전혀 모호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는 단어와 띄어쓰기에 대한 인식이 서양 언어 문화권과 동양의 그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08 08:35 2020/12/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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