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 교육

1. 경제 원리

이 한국.. 아니 옛날 조선의 밥상머리 경제 교육이라는 건 이런 식이었다.
애가 밥을 남기거나 밥알 하나라도 흘리고 칠칠맞게 굴면 "쌀알 한 톨 생산하기 위해서 농부가 얼마나 땀흘리고 고생하고 노력하는데, 니는 음식 귀한 줄 모르냐~ 어쩌구저쩌구 -_- ㄲㄲㄲㄲㄲㄲㄲ" 이렇게 갈군다.

그러다가 현대에 와서는 농부 얘기는 예전보다 줄었다. 이번엔 밥 못 먹고 굶주리는 소말리아 애들이 어떻고 하는 식으로 선비질 꼰대질의 레퍼토리가 달라지는 편이다. 정~~~말 고지식하기 그지없다.

아 물론 음식은 귀한 것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하고, 허투루 낭비하고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 자체는 맞다.
게다가 우리나라도 반세기 남짓 전까지만 해도 전쟁 폐허 속에서 못살고 굶주리던 시절이 있었으니, 비극적인 역사를 더욱 잊지 말아야 한다.

근데 말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고작 저게 전부라면...??
쌀알 한 톨 생산하는 것조차 그렇게 힘들어 갖고는 너무 겁나고 무서워서 밥 한 끼 제대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농사를 짓는 게 그렇게 힘들고 고생스러우니, 현실에서는 한번 농사를 지을 때 최대한 대규모로 짓는다. 쌀을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왕창 많이 생산해서 쌀알 한 톨당 들어가는 고생을 1/n로 분산시킨다.

애들한테 음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얘기를 넘어, 저런 경제 원리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왕창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거대 자본 인프라가 필요하고, 또 인간의 노력을 줄이려면 기계도 필요하고 과학기술도 필요하다는 것..
그렇게 빈부격차와 편차가 어느 정도 있어야 다같이 발전하고 파이가 커질 수 있고.. 부와 세금은 모두 낙수효과가 존재하는 개념이라는 것.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운송하고 유통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는 거..
아껴 쓰고 저축하는 것뿐만 아니라 투자도 필요하다는 거.
국가간의 통상에서도 수입 없이 수출만 잔뜩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거. 디플레가 인플레보다 안 좋다는 거(물가가 내려가는데도?).

공교육이 이런 관념을 애들한테 일깨워 줘야 하리라 여겨진다.
투기꾼 속물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되도 않은 얼치기 지상락원 공동분배 이딴 것에 현혹되고 선동되지 않기 위해서다!
공교육에서 무슨 성경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즉 만족하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 이런 신앙 교리를 가르칠 수는 없을 테니, 최소한 worst로 가지는 않게 애들을 이끌어야 한다.

2. 정치인--후보건, 당선자 현직이건 불문--이 뿌리는 돈의 맹점

요즘은 정치판에 복지 포퓰리즘이 하도 유행이고 대세이다.
뭐,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재벌들 왕창 쥐어짜고 세금 왕창 걷어서 전국민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현금 1억씩 팍팍 뿌려 줄 수는 있다. 거짓말은 안 한다고 치자.

근데 누구나 1억씩 갖고 있으면 점심밥 한 끼 값도 1만을 넘어 10만이건 100만이건 반드시 오르게 된다.
왜냐고? 1억씩 갖고 있는데 예전처럼 7000원짜리 된장찌개, 8000원짜리 제육볶음만 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모두 다 쏘고기 등심이나 마구로 뱃살을 먹으려 들면 값이 과연 어찌 될까?
결국은 각 개인이 가진 부의 실질적인 수준은 지금과 비슷하게 도로아미타불 평준화되게 돼 있다. 돈의 가치만 더 떨어질 뿐.

이런 부작용은 그 어떤 복지 포퓰리즘 신봉자들도 절대로 얘기해 주지 않을 것이다.
물가는 식품이건 석유건 부동산이건, 본질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원자재의 값이 내려가야만 잡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지는 것뿐이다! 이것이 진리이다.
그걸 지금까지 상당 부분 가능하게 한 일등공신이 바로 과학기술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예전부터 꾸준히 해 온 말이 하나 더 있다.
우리나라는 개인 사재를 털어서 뿌리는 건 1950년대 자유당 시절 부정선거의 사례도 있고 해서 아주 강경하게 금지하고 단속하고 있다. 뇌물이니 불법 향응이니, 선거법 위반이니 하는 죄목을 씌운다.
시골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마을 잔치에 초대받아 가서 밥 한 끼 얻어먹고 싸구려 경품을 받았던 농부 할배까지 불러다 족칠 정도로 처절하게 응징한다.

근데, 자기 사재가 아니라 세금 풀어서 비슷한 짓을(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하면 이건 복지가 된다.
이 딜레마를 시스템적으로 분간해서 해소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정치판에 만연한 망국적인 모랄 해저드를 결코 근절할 수 없어진다. 정치판의 수준이 싹 다 하향평준화 타락하고 나라의 미래가 없어진다.

제아무리 우파 정당이라고 해도 표 얻으려고 대세를 따라 퍼주네 뭐네 헛소리를 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거 갖고 SNS에서 백 날 실망이네, 우리나라에 진정한 시장 경제 보수 우파가 없네 한탄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시스템이 이미 요따구가 됐는걸 니가 출마했다고 달리 처신할 수 있겠나?

학교에서 중등 과학 시간엔 열역학 이론을 동원해서 영구기관이란 건 존재 불가능하다는 걸 가르친다.
그것처럼 사회· 경제· 윤리 시간엔 비슷하게 다같이 공평한 부자인 세상이라든가 공산주의의 이상향 따위는 절대 존재 불가능하다는 걸 세뇌에 가깝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또한, 소말리아에서 애들이 굶주리는 게 당연히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잘못 때문인 건 아니다. 우리가 걔네들한테 괜히 '미안해하면서' 밥을 먹을 필요는 없다. -_-;; 이건 서울대나 의대에 합격한 애들이 자기 때문에 떨어졌을 이름 모를 경쟁자에게 '미안해하면서'(!!?) 다닐 필요는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지금 온갖 과학기술을 동원해서 자연을 쥐어짜고 착취해서 식량 생산 자체는 모든 사람이 먹을 만치 풍족하게 하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근데 그게 분배가 안 되어서 소말리아 애들이 굶주리고 있으니, 탐욕스러운 다국적 기업 농장을 조져서 강제 분배해야 된다..??

이게 바로 사악한 공산주의가 교묘하게 친 함정이고 삼천포 결론인 것이다.
그 다국적 기업 농장들이 자기 이윤과 탐욕을 추구하기 위해 열나게 농산물을 생산하고 품종개량을 하고 밖으로 수출하지 않았으면 소말리아가 아닌 다른 굶지 않는 나라 국민들도 지금 같은 가격으로 밥을 먹는 게 과연 가능할까?? 분배할 거리가 생기기라도 할까?

그 함정에 속지 않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생산성의 일을 했는데도 잘사는 나라에서 받는 급여의 가치와 못사는 나라에서 받는 급여의 가치가 왜 이리 차이가 나는가? 어째서 미국의 하루 생활비로 소말리아에서는 한 달을 사는 걸까? 못사는 나라 사람들은 개 취급을 받는 한이 있어도 왜 기를 쓰고 잘사는 나라로 들어가려 하는가?" 이 원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굶주리는 소말리아 애들을 구제하는 건 그 동네의 정치적 상황까지 감안해서 다른 관점에서 본질을 파헤쳐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기껏 도와줘 봤자 성금이나 구호물자가 굶주리는 애들한테 애초에 가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열악한 도로로 세월아 네월아 실어 나르는 도중에 다 상하고 썩거나, 아니면 그냥 횡령되고 빼돌려짐)
이건 북한을 도와주는 문제에 대해서도 99% 이상 그대로 동일하게 적용 가능한 원리라 하겠다.

그나저나, 가정이 거짓인 명제는 무슨 결론이 나오든 무조건 참이라는 것은.. 듣보잡 군소후보의 공약집이 딱 정확한 예시인 것 같다. 허 경영처럼 말이다.
당선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 자기가 만약 당선된다면 전국민에게 1억씩을 뿌리든 10억을 뿌리든 얼마를 뿌리겠다고 말해도 알 게 뭔가?? 거짓말은 안 하는 거다.

그래도 3억인지 5억인지 출마 공탁금만은 전적으로 자기 사재여야만 되는가 보다. 세상엔 도대체 뭔 밑천으로 대선에 군소후보로라도 출마하는지 모를 사람도 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27 08:35 2022/02/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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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인은 이 달 초에 호박 실내 농사 후기를 블로그에다 올렸었다. 그 이후로도 호박 덩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이 정도까지 커졌다. 흙이 부족하고 뿌리를 충분히 깊게 내리지 못했을 텐데 잘 자라 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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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사진에는 덩굴이 오른쪽 끝까지 뻗은 상태였다. 허나 그 덩굴은 더 길어져서 오른쪽 끝에서 방향을 돌려서 왼쪽 끝까지 돌아왔고, 거기서 또 방향을 돌려서 오른쪽을 향해 중앙 정도까지 갔다. ㄷㄷㄷㄷ

야외의 텃밭 흙바닥에다 덩굴을 넓게 늘어놓으며 키우면 이런 복잡한 줄과 받침대가 없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비좁은 실내에서 창가의 햇볕을 최대한 쬐어 주는 모양을 만들다 보니, 덩굴을 받치는 구조물도 덕지덕지 필요해진 것이다. ㄲㄲㄲ
호박의 주거 형태가 단독 주택 대신 아파트로 바뀐 것 같다. 면적을 줄이는 대신, 높이를 키웠으니 말이다.

2.
그리고.. 이 호박 덩굴은 몸집만 커진 게 아니라 암꽃도 폈다. 첫 수꽃이 핀 뒤 2주 이상이 지나서야 첫 암꽃이 폈다.
수꽃은 네댓 그루 남짓한 덩굴에서 매일 서너 송이씩 꾸준히 펴서 지금까지 수십 송이가 피고 졌다.
그러나 같은 덩굴들에서 약 3주 동안 암꽃이 핀 건 딱 일곱 송이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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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꽃이 피기 전 / 폈을 때의 모습)

동그란 씨방이 달린 암꽃 봉오리 자체는 이보다 더 많이 맺혔다. 그러나 그것들이 전부 꽃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영양이 부족한지 중간에 시들어 떨어진 것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기 직전의 노란 꽃봉오리까지 생겼는데 그 상태로 차마 피지는 못하고 떨어지는 놈도 있었다.
호박의 입장에서 암꽃은 수꽃에 비해 영양 소모가 많고 피우기가 무척 어렵다는 걸 근처에서 직접 보며 확인할 수 있었다.

3.
실내에는 꿀벌이 날아오지 않으니, 본인은 주변 다른 덩굴의 수꽃을 잘라서 거기 수술을 암술에다가 직접 꽂아서 비벼 주는.. 일명 '인공수분'이라는 걸 최초로 시행해 봤다. 붓이고 뭐고 없어도 되고, 그냥 수술 작대기 직통이 제일 속 편했다. 암술을 꽃가루로 범벅을 만들어 줬다.
수꽃 하나만으로 암꽃 무려 세 송이를 수분시킬 수 있다고는 한다만, 현실에서 수술이 암술보다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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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죽은 줄 알았던 씨방은 아주 서서히 부풀고 커지면서 본격 열매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3~4일 정도는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
내가 중매를 서 줬던 암꽃 수꽃이 이렇게 맺어졌다니.. 무슨 로켓 쏴서 인공위성을 궤도에 드디어 안착시킨 것 같은 느낌이었다. ㅠㅠㅠ

수분이 성공하고 나면 씨방이 부풀 뿐만 아니라 내 경험상, 무게도 확실히 달라진다.
암꽃 시절에는 위로 빳빳하게 솟아 있던 씨방이 며칠 뒤에 꽃은 시들고 그 대신 씨방이 부풀어서 아래로 축 쳐진 걸 보면.. 참 감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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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간격으로 동일 사과와 동일 호박을 거의 동일한 구도로 크기 비교..)
저 호박은 덩치가 더욱 커져서 자두, 방울토마토, 양파를 넘어 사과의 크기까지 추월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적-록.. 뭔가 어울리는 보색 배합인걸?
식물이 열매를 뭔가 3D 프린팅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초록색 줄기는 단자· 케이블이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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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아이는 인공수분 후에도 며칠째 크기나 색깔이 변함없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길이 없었는데..
정체는 단호박이었으며, 수분의 성공이 최종 확인되었다. 야호~!
위와 아래의 사진 네 장은 개화일 기준으로 각각 D-3, -1, +3, +5일 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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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박은 씨방이 무슨 완두콩 같은 매끈한 초록색 구슬 모양이어서 일반 호박의 씨방보다 더 예뻤다.
수분 후에는 세로로 줄무늬가 생기고 더 납작해지고, 색깔도 더 짙어지면서 우리가 아는 단호박 모양이 되어 갔다.
나로서는 줄무늬가 정상적인 생장인지, 아니면 시들어서 쭈글쪼글해지는 징조인지를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수술 꽃가루가 단호박/일반호박을 가리지 않고 아무 암꽃과 호환은 되는 듯하다.
열매가 생성되는 단자의 모양도 일반호박이랑 단호박은 좀 차이가 있다(꼭지 부분ㄲㄲㄲㄲ).

5.
이런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게 많았다.
가장 먼저, 호박 열매는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조건들이 다 맞아떨어져야 생긴다는 것, 호박 덩굴은 한둘, 두세 그루만 있어서는 안 되고, 네댓 이상은 한꺼번에 같이 키워야 암꽃이 하나 폈을 때 수분 타이밍을 맞출 수 있는 수꽃이 상시 존재하겠다는 것 말이다.

게다가 이들 꽃의 유통기한은 새벽부터 오전까지 겨우 몇 시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그 뒤엔 꽃이 바로 져 버리며, 암술· 수술의 생식 능력이 상실된다.
암꽃이 피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수분을 해 준다고 해서 100%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본인의 경우, 암꽃 7송이 중에서 확실하게 성공한 것 셋, 실패한 것 셋,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는 것 하나로 결과가 나뉘었다.

도대체 이 꽃가루라는 게 뭐길래..? 무슨 금가루마냥 극미량의 이 가루의 정체가 뭐길래 암술에 묻었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씨방이 큼직한 호박으로 자라느냐, 아니면 그냥 시들어 떨어질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걸까??
지금까지 야외에서 저절로 맺혔던 호박 열매들은 전부 꿀벌이 알음알음 찾아와서 수분을 해 줬기 때문에 맺힌 것이야 그럼? 우와~

하긴 학창 시절에 <생명 영원한 신비> 다큐에서도 충매화라는 건 식물이 번식을 위해서 동물(곤충)과의 윈윈 공생을 선택한 정말 대단하고 놀라운 사례라고 극찬했던 걸 본 게 생각난다. 물론 성향이 성향이다 보니, 창조된 거라고 안 하고 그렇게 똑똑하게 진화한 거라고 얘기하지만.. ㅋㅋㅋ

6.
이렇게 수분 성공한 열매가 생긴 뒤부터는.. 호박이 자라는 방식이 좀 달라지는 것 같다.
줄기가 뻗어가고 잎이 자라는 게 둔화되고, 새순과 기존 암꽃조차 누렇게 시드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뒤에 추가로 꽃이 핀 암꽃은 씨방도 예전의 암꽃보다 더 작더라. 영양이 열매 쪽으로 많이 가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심증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거라고 한다.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자라는 게 아니었네~~
식물은 자기 자신의 잎과 줄기 위주로 자라는 영양성장, 그리고 꽃과 열매 위주로 자라는 생식생장이라는 두 모드가 존재한다. 오.. 나름 state machine이었던 것이군.

한창 자라야 할 때 온도 수분 영양 상태가 부실하면 생존의 위기를 느낀 식물체는 영양성장을 포기하고 무리해서라도 꽃과 열매를 많이 맺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것만 올인하다가 식물 자체도 더 일찍 시들고 죽는다.
반대로 초기에 거름과 물을 지나치게 많이 주면(특히 질소 비료) 식물 자신의 영양생식만 엄청 벌어지면서 꽃은 안 피고 열매는 금방 낙과한다고 한다.

확실히 우리 호박도.. 한창 영양성장을 하다가 생식성장으로 모드가 바뀌긴 한 것 같다.
열매를 많이 보고 싶으면 호박을 심은 초기에 어미순인지 아들순인지 뭔지를 많이 잘라 주라고 그러던데..
본인의 경우는 아무 조치 없이 그냥 방치했다.
그렇게 방치해도 내가 느끼기에는 암꽃도 생길 때가 되니 생기고, 이 정도 열매가 맺히기는 한다. 야외도 아닌 실내에서 뭘 더 바라겠는가.

그리고 열매가 맺히고 있는 덩굴에서는 다른 암꽃이 피더라도 씨방이 예전보다 작게 달리며, 낙과 확률도 더 높아진다.
열매를 만드는 건 영양 부담이 굉장히 크니 광합성을 위한 물과 햇볕, 그리고 비료로 인과 마그네슘 같은 무기물 영양분 공급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댄다.

역시 큼직한 늙은 호박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구나.;; 농사도 알면 알수록 공부해야 할 게 정말 많다.
도난 걱정, 추위 걱정 없는 실내에서 최선을 다해 호박을 가꿔서 덩굴은 자연사할 때까지, 열매는 누렇게 익을 때까지 원없이 놔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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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붕이나 담벼락에 호박 덩굴이 놓여 있는 모습이 참 정겨워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24 08:35 2022/02/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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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연초 근황

지난달 말쯤부터는 캠핑, 호박, 코로나19 얘기와 함께 개인 근황을 전하는 게 패턴이 된 듯하다. 이번에도 같은 패턴으로 최신 소식을 알리고자 한다.
그런데 쓰다 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다. 그래서 호박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다른 소식들부터 먼저 전하도록 하겠다.

1. 건강

바야흐로 2022년, 본인도 나이가 벌써 4학년이 임박했다.;;
4학년 진입을 앞두고 20년 전과 지금의 건강 상태를 비교해 보면 대략 이런 것 같다.

  • 구내염(입술), 편도선염(목), 몸살감기 같은 자잘한 잔병치레가 없어졌다. 환절기 감기?? 마지막으로 걸린 때가 몇 년 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 실수로 입 안을 깨물어 버리면 옛날 같았으면 상처가 곧장 구내염으로 도져서 한두 주 고생했을 텐데.. 요즘은 그 정도 실수를 한 뒤에도 양치 하고 한숨 자고 나면 의외로 그대로 낫기도 한다.
  • 체열은 확실히 후끈후끈하다. 침낭과 담요 덮고 -10도인 밖에서 아주 따스하게 잘 자고 있다. 잠뿐만 아니라 식욕도 아직까지는 아주 왕성하다.

다만..

  • 예전에 비해 몸이 무겁다는 게 느껴지고 유연성이 더 떨어졌다. 절대적으로 체중이 더 늘기도 했지만, 뭔가 똑같이 엉덩방아 찧거나 삐끗 하더라도 대미지를 예전보다 더 크게 입겠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 특별히 수분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어도 동일한 컨디션 때 소변 색깔이 더 진해져 있다.
  • 다쳤을 때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딱지 하나 뜯어서 피 약간 났다 하면 휴지 한 조각을 시뻘겋게 다 적실 정도로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출혈이 겨우 멎는다.
  • 머리를 감으면 빠지는 머리카락이 예전보다 더 많아진 것 같다. 난 평생 내 사전에 불면과 탈모는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설마...?
  • 글쎄, 계단을 후다닥 뛰어 내려가거나 스틱 없이 산 내려가는 게 아직까지는 아무 불편 없고 가능하다. 근데 지금 이러면 늙어서 관절이 다 나간다는 말이 있어서 좀 자제하는 중. 사실인가염?
  • 이제 학창 시절처럼 밤새워 가며 무슨 공부나 작업은 절대 못 한다. 자는 시간을 줄일 수 없다.

이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발 속도도 느려진다. 시간과 체력은 부족한데 작업해야 하는 것도 점점 어려운 부분밖에 안 남으니까..;;
2년마다 버전이 1.0씩 올라가는 것도 이젠 나가리다~~ 건강 관리 해야겠다..

2. 캠핑

-10도짜리 새벽 한파는 신이 인간에게 내려주신 매우 고맙고 귀중한 선물이다. 이걸 헛되이 낭비하여 날려 버리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2월이면 이제 이런 추위를 즐길 수 있는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본인은 어김없이 텐트 들고 바깥 아지트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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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겨우 -5도밖에 안 되면 귀찮아서 안 나가고 그냥 집에서 잘 생각이었는데, -10 부근까지 내려간대서 일부러 나갔다. ^^

텐트를 친 직후에는 주변이 너무 따뜻해서 정말로 -10도가 맞는지 의구심과 자괴감이 들 정도인데.. 누워서 가만히 있으니까 슬금슬금 추워진다.
마치 침몰하는 배에 바닷물이 스며들듯이 냉기가 곳곳에서 새어 들어온다. 손은 완전 따뜻한 상태인데 전화기나 컴퓨터를 만져 보면 어째 이렇게 차가운지 놀란다.

결국은 준비해 간 담요 두 장, 여름 침낭과 겨울 침낭을 총동원해서 얼굴까지 덮고, 늙은 호박도 다 덮어 준다. 이제야 열평형이 이뤄져서 덥지도 춥지도 않은 채로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잠들 수 있다. 아무리 오래 있어도 냉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햐~ 요 맛에 밖에서 잔다니까.?? 이거 정말 중독성 있다.

그런데.. 이 겨울에 상도덕을 모르는 몰지각한 캠핑족이 여전히 있는가 보다. (☞ 뉴스 링크)
강변의 널찍한 공원에서 캠핑카도 아니고 텐트를 쳐서 아예 살림살이를 차렸다. -_-;; LPG 까스통에다 애완견 집까지..

이런 사람들 때문에 본인처럼 밤에만 잠깐 텐트 치고 자고 아침에 사라지는 텐트족도 같이 욕 먹는다.
공공장소에 장기간 무단 방치된 자동차나 텐트에 대해서는 더 강력하게 행정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우한 폐렴 시국

코로나19가 퍼지는 속도가 참 가관이다. 매일 전국에서 수백~수천을 찍더니 기어이 만 단위가 돼 버렸고, 이제는 10만으로 넘어가네 마네 한다. 이제는 본인의 주변에도 SNS 지인, 직장 동료 중에 확진자가 나오는 지경이 됐다.
예전에 나랏님이 했던 우려대로라면.. 기존 방역 체계는 진작에 다 붕괴된 거다. 어설픈 방역이나 거리두기 따위로 예방하고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여기서 미묘한 점은.. 저 수만 명에 달하는 확진자들이 다 무슨 좀비 바이러스 에볼라 에이즈 같은 죽을병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미크론은 병세가 예전보다 '가늘고 길게' 가는 형태로 바뀐 변이이다. 거의 계절 인플루엔자처럼 되긴 했는데.. 그렇다고 단순 감기 수준의 만만한 병인 건 아니어 보인다. 직접 걸려 보거나-_- 걸린 사람을 곁에서 구경해 본 적도 없으면서 과소평가를 하지는 말아야겠지만.. 경증과 중증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본인은 도 넘는 수준의 백신 음모론자가 아니다. 이렇게 높은 접종률 덕분에 바이러스의 위력이 좀 너프되긴 했을 가능성은 일단 인정한다.
하지만 유의미한 확률· 빈도로 부작용도 발생한 것은 별개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이 지경까지 간 이상, 이제는 말이다..

어디서 확진자 좀 나왔다고 해서 2년 전 버르장머리처럼 동선 추적하면서 역학조사네 뭐네, "교회 발, 학원 발, 어디어디 발 코로나" 이 X랄 마녀사냥하고,
백신 미접종/불완전 접종자를 무슨 잠재적 보균자, 페스트 보균자나 나병 환자 취급하는 짓거리는 제발 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이건 이제 정말 아닌 것 같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이제는..
"마스크만 잘 쓰고 다니십쇼~ 백신은 고령자 위중증자 위주로만 맞으시고 더 강요 안 합니다.
그러다 증상 있으면 걸리신 분만 그냥 혼자 집에서 푹 쉬십쇼.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과도한 차별과 불이익은 그만~~ (혐오범죄-_-)"
이런 홍보 캠페인이나 하는 게 순리이지 않을까?

사실은 이제 무슨 운동경기 스코어 중계하듯이 확진자 수 보도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결핵이나 독감 감염자 수를 일일이 중계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4.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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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지난 2월 4일에 송 현 선생님(1947-2022)께서 별세하셨다는 것이 장례가 다 끝난 뒤에야 유족을 통해서 차츰 알려졌다.
본인은 공교롭게도 선생님을 지난 설 연휴를 앞두고 1월 중순쯤에 인사차 뵈었다. 그러고 저녁도 같이 먹은 뒤에 헤어졌었는데.. 그게 선생님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본인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이 쟁쟁해 보이셨고, 책을 쓸 것이 한 트럭인 상태이셨다.
자신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니 1분 1초가 아깝게 일생을 책과 기록으로 남기는 중이라고 하셨는데, 아아 이렇게 가 버리시다니..

고인은 대한민국이 1960년대 말, 한글 기계식 타자기의 표준 글쇠배열이 네벌식으로 졸속으로 제정됐던 시절에 공 병우 박사와 함께 온몸으로 반대하고 투쟁했다.
더 나은 세벌식이 민간에 이미 보급돼 있는데, 글자 모양이 좀 덜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소탐대실인 방식을 굳이 또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세벌식은 타자 행동이 매우 효율적이며 타자기와 컴퓨터가 동일한 방식으로 치는 것도 가능하다. 나머지 다른 방식들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첫단추를 잘못 끼우니 5공 시절에는 컴퓨터용 두벌식 자판이 또 만들어져야 하게 됐다. 컴퓨터에서 굳이 복잡한 네벌식 배열을 쓸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타자기는 컴퓨터용 두벌식의 변종으로, 받침은 매번 shift를 눌러 놓고 쳐야 하는 이상한 괴작으로 바뀌어 버렸다.
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삽질 때문에 세금이 낭비되고 후손들은 컴퓨터에서도 한글을 입력할 때 shift를 매번 누르지 않는 대신, 도깨비불 현상을 당연한 듯 일상적으로 보고 지내게 된 것이다.

물론 모바일에서는 세벌식이 컴퓨터/타자기에서만치 우위를 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기는 애초에 타자를 오래 길게 하지 않는 환경이며, 도깨비불 현상 존재 여부라는 본질적인 차이는 어느 기기에서나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
송 선생님은 공 병우 박사님을 제일 가까이에서 모셨던 역사 증인이고, 들어 볼 옛날 이야기와 회고들이 무궁무진한 분이셨는데.. 더 자주 뵙고 이것들을 전수받지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고인께 삼가 조의를 표한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다음 버전(아마 올해 상반기 중? 버전 10.5 정도?)은..
도움말의 ‘감사의 글’란에 공 병우 박사에 이어 송 현 선생님에 대한 추모 문구도 추가로 들어갈 예정이다.

아울러, 본인의 신앙과 관련이 있다면 있는 인물..
말씀 보존 학회의 설립자인 이 송오 목사도 비슷한 시기인 1월 28일에 소천했다.
단, 본인은 KJV 유일주의나 세대적 진리 같은 신학 노선이 약간 비슷하지, 이분과 개인적인 인연은 전무하다. 진영도 한킹이 아닌 흠정역 쪽을 선택했었고 말이다.

우리나라의 KJV 진영의 수장들도 앞으로 이런 식으로 한 분씩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송오 목사는 이 바닥에서 공과 과가 명확하게 갈리는 분이었다. 성경 번역하고 교회 세우고 성경적인 교리를 세우는 등의 기여를 분명 했다. 그러나 초창기 1990년대에 기성 교계를 상대로 조금만 더 처신을 잘했으면.. 국내의 KJV 진영이 지금보다 훨씬 더 단합하고 커졌을 것이며, 타 교계로부터 이단 소리도 훨씬 덜 듣고 자기들 뜻을 더 널리 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점이 개인적으로 못내 아쉽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21 08:35 2022/02/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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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한 동물들 -- 조류 위주

생물 중에는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현재는 멸종해서 없어진 품종이 있다.
무슨 고생대의 아노말로카리스나 중생대의 공룡, 신생대의 매머드처럼 너무 옛날 생물 말고, 인류와도 공존하던 중에 멸종한 놈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신대륙에서 날지 못하는 조류(새)의 멸종 사례들이 굉장히 인상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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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아: 타조보다도 덩치가 더 큰 새였으며, 유럽 백인들이 멸종시킨 건 아니라는 것(마오리 원주민들이 훨씬 더 전인 16세기쯤에 멸종시킴..??), 무슨 봉황 정도로 까마득한 판타지 같은 새가 아니면서 문명인이 실물을 본 적이 없다는 것 때문에 심상이 무척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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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도: 날지 못하고 알도 하나씩밖에 못 낳는 주제에 습성도 인간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순진했다. 이 때문에 백인 개척자들의 남획과 생태계 교란, 서식지 파괴의 직격타를 받아 18세기(1700년대) 말쯤에 싹 멸종했다. 이때는 안타깝지만 지금 같은 자연 보호 동물 보호 같은 관념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뱃사람은 특히 더욱 억세고 험악한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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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큰바다쇠오리: 시꺼먼 색깔에 눈 주위에 허연 무늬가 있는 건 범고래를 닮았는데.. 도도와 비슷한 처지로 인해 19세기인 1840년대에 사실상 멸종했다.
원래 '펭귄'이라는 단어는 얘를 가리키는 단어였는데 정작 얘는 멸종해 버리고, 비슷하게 생긴 다른 개체가 남극에서 발견되면서 쟤들이 '펭귄'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았다. 개인적으로 제일 불쌍하고 안타까운 멸종 사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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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행비둘기: 얘는 위의 새들과는 달리 비행 가능한 놈이다. 한때 북미 대륙에서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을 정도로 엄청난 개체수를 자랑했고 돌멩이를 아무 데나 던져도 잡을 수 있던 녀석들이지만.. 이를 능가하는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기어이 멸종하고 말았다. 소수가 된 뒤부터는 번식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물원에서 마지막 개체가 번식에 실패하고 죽었기 때문에 정확한 멸종 일시와(1914년 9월 1일) 박제 기록이 전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19 08:34 2022/02/1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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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비보호 신호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는 자동차 도로가 한 지점에서 평면 교차하면 거기는 대체로 신호등에 의한 시분할 통제가 시행된다(로터리가 아닌 이상..). 그런 곳에서 자동차가 아무 때나 아무 방향으로 진행하면 서로 부딪히는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곳마다 모든 진행 방향을 몽땅 신호등으로 도배하는 건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적신호에서는 서고 청신호에서는 가니까 단순하고 속은 편하지만, 지나가는 차가 없는데도 무작정 강제로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상황별로 '재량껏, 자율적으로 알아서 조심해서 지나가라' 같은 시스템이 시행되는 경우도 있다.

1. 좌회전

자신과 반대편이 모두 직진 신호를 받아서 상· 하행 제 갈 길을 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없으면 눈치껏 반대편 차로를 밟으면서 좌회전하는 걸 허용한다.
이건 상시 유턴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개념이다. 조건부 유턴은 보통 적신호나 보행자 신호 때만 유턴이 허용되는 형태인 반면, 상시 유턴은 직진일 때도 반대편에 차가 없으면 유턴 허용이기 때문이다.

비보호 좌회전은 사고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서 해야 한다. 비보호 좌회전에 대해서 rule of thumb 급의 철칙이 있는데, 바로 “At your own risk”, 그리고 “너의 존재감을 반대편 차에게 절대로 드러내지 말라”이다.
비보호 좌회전하는 차는 알아서 조용히,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세우기는커녕 브레이크를 밟는 일조차 만들지 말고 존재감 없이 쓰윽 좌회전해서 사라져야 된다! 반대편 차로는 현재 직진 ‘청신호’라는 걸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운전자가 굉장히 빠지기 쉬운 착각이 하나 있다. 바로 “앞차가 이미 비보호 좌회전 중이니 나도 바싹 뒤따라가면 되겠지. 그러면 마주오는 차는 알아서 속도를 줄이겠지”이다.

반대편의 1차로에서 그 비보호 좌회전 앞차를 본 반대편 차는 물론 속도를 줄일 것이다. 그러나 도로의 폭이 편도 2차로 이상이라면, 그 옆의 n차로에서 그 앞차를 따라가던 뒷차는 시야가 가려져서 당신을 못 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미 뒤따라 좌회전 중인 당신과 충돌하게 된다.
앞차는 무단횡단자 때문에 속도를 줄였는데 옆 차로에 있던 당신은 앞차 때문에 그걸 못 보고 무단횡단자와 충돌.. 딱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차로가 많은 큰길일수록 비보호 좌회전은 위험성이 커진다. 차량의 통과 속도와 교통량이 매우 높은 확률로 덩달아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대편의 모든 차로에 대해 충분한 시야가 확보되지 않고 달려오는 차가 전혀 없다는 확신이 없다면, 섣불리 비보호 좌회전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걸 왜 운전 면허 교육 때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지 모르겠다. 생각 같아서는 비보호 좌회전 요령은 운전 면허 도로 주행 시험 때 FM대로 직접 실습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아니면 최소한 필기 시험 문제로라도 내든가..
"뒷차 따라 나도 들이대면서 비보호 좌회전한다"가 오답이 되게 말이다.

그~~저 닥치고 비현실적인 멈춤, 서행만 조선 유교 꼰대마냥 세뇌시키고. 노란불 딜레마 때문에 운 나빠서 시험 떨어지는 애들이나 만들어서 돈 시간 낭비시키니.. 면허 시험 체계가 혼란스럽고 미개하기 그지없다.

한 문철 변호사는 비보호 좌회전이 만악의 근원이니 좀 없애라는 소신인 모양이다. 아니면 사고 나면 옛날처럼 다시 12대 중과실 신호위반으로 되돌리기라도 하라고..
하긴, 평생 교통사고 분석만 업으로 삼으면서 이 바닥은 이골이 났을 텐데, 저런 애매한 시스템 때문에 사고가 한두 건 난 게 아니었지 싶다. 어지간한 드라마/영화에 나오는 뻔~한 주인공 사망 플래그 클리셰 급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현실적으로 비보호를 싸그리 다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등신같은 과속 단속 카메라 만들 예산으로, 애매한 비보호 교차로에 안전한 감응식 신호기나 더 장착했으면 좋겠다. 좌회전 자리에서 차가 대기하고 있으면 알아서 안전한 좌회전 청신호를 주는 거 말이다. (반대편 차로는 물론 적신호)

그리고 기왕 시내 교차로에서 속도와 신호 단속을 동시에 한다면.. 교차로 통과 결심 지점 표시 같은 거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
“이 지점을 시속 50/60으로 지났다면, 신호등이 노란불이 되더라도 고민 말고 직진해서 교차로를 통과하세요” 이런 표식 말이다. 이보다 느린 상태이거나 이 지점을 아직 못 지났다면 브레이크 밟고 서는 거다.
요즘 전국의 고속도로/고속화도로에는 진출 방향을 헷갈리지 말라고 분홍색/초록색 색깔띠가 곳곳에 깔렸는데(10여 년 전부터) 교차로 통과 결심 지점 표시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2. 우회전

우측통행 기준으로 우회전은 도로에 끼치는 여파가 가장 작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 구조가 아주 특이한 삼거리 같은 예외적인 곳이 아닌 한, 우회전 신호가 별도로 있지는 않다.

직진 청신호이고 우회전 쪽 횡단보도가 적신호라면 우회전은 제일 속 편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나머지 상황에서는 우회전을 비보호로 재량껏 할 수 있다. 즉, 이때는 좀 조심하면서 해야 한다.

비보호 우회전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직진 청신호에다 우회전 쪽 "횡단보도가 청신호"인 때이다. 이때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없을 때에만 눈치껏 우회전을 할 수 있다. 요 근래에는 횡단보도 내부뿐만 아니라 길가에서 횡단을 위해 대기 중인 사람이 보이기만 해도 차가 서야 하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
즉, 비보호 좌회전은 차와 차의 충돌의 위험이 있다면, 비보호 우회전은 차와 보행자의 충돌 위험이 있다.

직진이 적신호일 때도 비보호 우회전이 가능하다. 물론, 직진 쪽 횡단보도가 청신호가 아닐 때에 한해서다. 그때는 우회전 차량이라도 당연히 무조건 서야 한다.

다음으로, 서로 좌회전 신호만 받은 상태라면, 내가 우회전하는 방향으로 맞은편 차로의 좌회전 차량도 같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럴 때는 우회전 차량은 좌회전 차량에게 방해 민폐를 끼치지 않고 슬금슬금 해야 한다. 우회전은 비보호이지만 좌회전은 정식 신호이기 때문이다.
어디 비보호 우회전하는 차가 건방지게 크게 꺾어서 1차로로 쓰윽 들어가는지? 그러지 말아야 한다. 비보호 우회전은 비보호 좌회전만치 위험한 상황은 아니니 일탈이 좀 묵인되는 것일 뿐이다.

3. 직진/기타

교차로에서 직진이 금지되어 있는 곳은 대체로 고가나 지하도 같은 입체교차 경로가 따로 있어서 “직진은 저기로 하셈~! 여기서는 직진 금지” 형태이다.
그런 금지 말고 직진에 대해서 정규 청/적이 아닌 신호가 존재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OX/XO, OXO/XOX 형태로 교차하는 황색 불빛: 교차로는 아니지만 커브나 빙판이 있으니 너무 과속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권고 사항이다.

(2) 황색/적색 점멸: 적/청 정규 신호를 적용하기에는 교통량이 굉장히 적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약간 작은 길에서는 평소에 정규 신호가 사용되다가도 0시 이후의 심야· 새벽 시간대에는 교차로나 횡단보도에서 이런 형태의 비보호 신호가 시행되는 경우가 있다.

황색 점멸의 경우, 옆에서 갑자기 뭐가 튀어나오더라도 부딪히지 않고 즉시 정지 가능할 정도로 충분히 천천히 통과한다(진행 방향 무관). 요즘 운전자들을 속천불 나게 하는 어린이 보호 구역 시속 30 단속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황색이 아닌 적색 점멸이라면 아예 일시정지까지 해서 주위를 살핀 뒤에 지나가야 한다. 큰길과 작은길이 만나는 곳에서는 큰길은 황색 점멸이고 작은길은 적색 점멸이 되곤 한다.

(3) 무신호: 좁은 골목길에서 신호가 없고 시야도 확보되지 않은 교차로를 지난다면, 반드시 일시정지를 해서 주위를 살핀 뒤에 가야 된다. 즉, 적색 점멸에 준하는 상태로 통과하는 게 안전하다. 그리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왕이니 비보호 우회전 횡단보도를 생각하면서 통과하도록 한다.

이상이다.
점멸 신호 교차로에서 서행(황색) 또는 일시정지(적색)를 하지 않아서 사고가 크게 나면.. 이건 엄연히 12대 중과실 신호위반으로 간주된다.
그것처럼 비보호 좌회전 사고도 예전에 그러던 것처럼 신호위반으로 처리해서 가해 차량에게 책임과 경각심을 더 부과하는 게 이치에 맞으리라 여겨진다. 피해 차량의 입장에서는 멀쩡한 청신호 진행 중에 정말 날벼락을 맞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16 19:35 2022/02/1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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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기드(rugged) 모델

자동차, 노트북 컴퓨터, 스마트폰 같은 기계들에는 일반 사용자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러기드(rugged) 모델/에디션'이라는 게 있다.
요즘은 기계들이 내부 구조가 상상을 초월하게 복잡하고 정밀해지면서 성능 자체는 매우 향상됐지만.. 그 대신 열악한 환경에서 험하게 다뤘을 때의 신뢰성이 야금야금 감소하고 유리몸처럼 되어 왔다. "무식하게 튼튼하다, 30년이 넘게 아무 고장 없이 잘 돌아간다, 그나마 고장 난 거 같을 때는 툭 쳐 주면 다시 돌아온다" 같은 면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 군인 같은 사람들은 가혹한 환경에서도 통신이나 정보 처리를 위해 각종 전자기기들을 휴대하고 사용해야 한다.
전자기기들은 통상적인 실내보다 더 강한 진동이나 낙하 충격, 굉장한 고온· 저온, 막장 수준으로 높거나 낮은 습도, 혹은 짙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야외에서 사용하는 것을 가정한다.
그리고 자동차의 경우, 막 침수된다거나 엔진 오일을 굉장히 오랫동안 교환하지 않는 것, 부득이한 상황에서 연료를 질이 좀 안 좋은 걸 넣는 걸 생각해 보자.

요즘 자동차는 온통 컴퓨터 기반의 전자 장비로 가득하기 때문에, 같은 수준으로 침수되더라도 대미지가 30~40년 전의 자동차보다 훨씬 더 심하다.
또한, 요즘 자동차들은 옛날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연료를 다루고 배기가스를 정화하기 때문에 연료에 불순물이 들어있을 때의 배탈도 훨씬 더 심하게 난다. 단순히 매연 좀 나고 엔진 출력이 떨어지거나 시동 몇 번 꺼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그 정도면 엔진이 이미 비가역적인 대미지를 입어서 망가진다.

사실은 자동차 안에 탑재된 카오디오나 내비 등의 기기는 처음부터 '러기드' 속성을 어느 정도 지닌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주행하느라 쿵쿵 강한 진동이 수시로 전해지는 차량 안에서 테이프도 아니고 CD를 꽉 잡고 안정적으로 재생하는 건 일반 보급형 CDP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차내 온도가 60~70도까지 올라가더라도 고장 나지 않게 회로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드디스크는 헤드가 디스크로부터 나노미터 급으로 위에 떠서 돌아다닌다는데.. 이런 초정밀한 기기는 진동에는 완전 쥐약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일반적인 놋붉이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배터리들은.. 본인의 경험상 -15도 정도의 저온에도 맥을 못추는 연약한 물건이다. 이런 식으로 어려운 요인들이 많다.

그래서.. 같은 물건이라도 온갖 가혹 환경까지 고려해서 만들어진 군용품은 민간용보다 더 두툼하고 충격이나 진동에 강하게 만들어지며, 사실 외형부터가 무슨 갑옷이라도 입은 듯 아주 투박하게 생겼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 보면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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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군알못 민간인 중에도 일부러 이런 러기드 스타일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도 일부 있긴 하다..
러기드 노트북은 가방도 가죽이 아니라 딱딱한 재질이며.. 러기드 폰은 방수 방진까지 갖춘 경우도 있다. 오오~

그 대신, 이런 러기드 내지 군용 모델은 민간용 모델보다 성능이 더 떨어지거나 가격이 훨씬 더 비싸다. 성능에다가 극한의 신뢰성까지 함께 달성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람이 야전에서 다루는 군용 수준을 넘어서 전투기나 우주 탐사선의 안에 들어가는 컴퓨터는 겨우 외장· 케이블 정도가 아니라 CPU와 마더보드부터가 특수하게 설계된 전용 부품, 심지어 전용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돌아가는 컴퓨터는 진공 상태에서의 고온· 저온에 잘 버티고, 방사능이나 우주선 태양풍 같은 것에도 삐끗 하지 않고 잘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얘들 역시 굉장히 고가인 반면, 속도와 메모리 양 같은 성능은 굉~~장히 뒤떨어져 있다. 우리나라 전기 기관차 안에 아직 386/486 컴터가 현역이네, Windows 2000이 돌아가네 하는 얘기와도 급이 다르다.

다음으로 자동차를 살펴보면.. 일명 두돈반이라고 불리는 K-511 트럭 말이다.
민간용 트럭이 바퀴 크기와 축 수가 저 정도이면 가히 10톤은 넘게 실을 수 있는 덤프트럭 덩치이다. 그런데 왜 제원상의 적재량이 꼴랑 2.5톤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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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이유가 있더라. 완전 비포장 야전 험지 오르막 기준으로 2.5톤이고, 평지 공도에서는 4.5톤 이상이라고 한다.
평지 공도에서도 톤수가 여전히 낮은 건 군용차 자체에 탑재된 장갑 쇳덩어리, 쉽게 말해 러기드 오버헤드 때문일 테고.. 하긴, 승용차만 해도 VIP용 방탄차는 총탄과 폭탄을 방어하는 두툼한 장갑 때문에 동급의 민수용 차보다 훨씬 더 무겁다.

보아하니 군대에서 운용하는 차량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 민간 차량과 완전히 똑같은데 번호판만 군대 소속 번호판
  • 군대에서만 쓰이는 표준 차량 (레토나, 두돈반 따위)
  • 장갑차, 탱크, 자주포 따위.. 건설 현장에다 비유하자면 차량보다는 건설기계에 더 가까운 물건들.

끝으로, '러기드' 하니까 말인데..
교회 댕기는 사람한테는 이 단어가 비교적 친숙할 것이다.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라는 찬송가의 가사에 나오는 "험한 십자가"가 영어로 다 old rugged cross이다. 십자가의 목재 재질이 낡고 거칠다는 뜻인데, rugged를 '험한'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14 08:36 2022/02/1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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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타 소행성의 충돌

우리가 사는 지구에 있었던 다음 굵직한 사건들을 생각해 보자.

  • 천문: 40억 년 이상 전, 달의 생성
  • 지질: 약 6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기의 대멸종 (K-Pg 멸종, 쉽게 말해 공룡 멸종)
  • 역사: 서기 1908년, 의문의 퉁구스카 대폭발

이들은 발생 시기와 규모가 서로 order of magnitude 급으로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발생 원인은 모두.. "소행성과의 충돌"이 가장 유력한 정설로 여겨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단순 돌덩어리급을 넘어선 꽤 큰놈으로 말이다.

달이야 다른 별개의 천체가 우연히 지구로 끌려온 거라는 부부설이 유력했고, 공룡 멸종은 화산 폭발 같은 다른 이변의 가능성도 제기됐었다. 퉁구스카는 아예 외계인이나 혜성 충돌설까지 제기됐던 이변이고..
하지만, 여러 가설들 중 어느 것도 다른 가설들을 확실하게 부정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설득력이 높지 못했다. 그러니 모든 후보들이 제각각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었다.

허나, 20세기 후반 이래로 현재는 지질 관찰을 통해 세 경우 모두 소행성 충돌설이 힘을 얻게 됐다. 소행성의 충돌을 가정해야만 설명 가능한 증거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런 증거 중에는 굉장히 가까운 2010년대에 와서야 발견된 것도 있다고 한다.

1. 달

달은 지구의 크기에 비해 이례적으로 굉장히 크고 무거운 위성이다. 이렇게 부담스럽고 버거운 천체가 처음엔 따로 놀다가 나중에 지구의 중력에 쓱 끌려와서 위성이 되기란 굉장히 어렵다. 부부설· 형제설 따위는 이런 점에서 설득력을 잃게 됐다. 달은 화성의 포보스· 데이모스 같은 돌덩어리와는 성격과 위상이 근본적으로 다른 물건임이 주지의 사실이다~!

더구나 아폴로 미션 때 얻어진 월석을 분석해 보니, 얘들도 지구 지각의 성분과 굉장히 비슷했다고 한다. 그런 성분에다가 충돌로 인한 고열 때문에 변성된 흔적만 있을 뿐..!!
여러 정황상 달은 기존 지구의 성분이 떨어져 나가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입증됐다.

그래서 현재는 '가이아'도 아니고 '테이아(Theia)'라는.. 화성과 얼추 비슷한 질량/무게의 소행성이 지구와 정면은 아니고 비스듬한 각도로 충돌했다는 가설이 그럭저럭 인정받고 있다.
그런 거대한 천체와 부딪혔으니 지구도 맨틀까지 드러날 정도로 충돌 지점이 깊게 파이고, 충돌 파편은 우주까지 치솟을 정도로 난리가 났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자전 주기와 자전축까지 달라지게 됐다.

그 파편이 지구를 돌다가 차차 뭉쳐서 달이 되었을 거라는 게 이 시나리오이다. big bang이 아니라 big splash..
심지어는 이때 달이 2개 생겼다가 달끼리도 비스듬하게 충돌했다~! 현재의 달 뒷면의 울퉁불퉁한 표면이 그때의 충돌 흔적과 관계가 있을 거라고 한다.

2. 중생대 말 대멸종

평균 지름이 최소 10km 이상인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 이로 인해 충격파는 말할 것도 없고 어지간한 화산 폭발 이상의 먼지가 지구 전체를 덮으면서 기후가 바뀌었으며, 이를 못 버틴 육상 동물들 상당수가 멸종해 버렸다고 여겨진다. 중생대 백악기와 신생대 팔레오기 사이의 지층에 이상할 정도로 이리듐이 많이 분포하며, 이는 강한 충격 때문에 암석이 순식간에 녹은 흔적이라는 것이 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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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설도 거의 1980년대부터 떡밥으로 던져지긴 해 왔지만, "그렇다면 그 소행성은 정확하게 지구 어디에 떨어졌을까? 그 흔적을 지금 찾을 수 있을까?"에 오랫동안 말문이 막혀 있었다.
그러다가 멕시코, 아이티 같은 나라가 접해 있는 카리브 해 일대의 유카탄 반도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발견되었고, 이건 단순 화산 활동이 아니라 외계 천체와의 충돌에 의한 흔적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소행성이 깔끔하게 넓은 태평양· 대서양 바다 중심부에 떨어졌으면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하고 해양 동물들이 몰살을 면치 못했겠지만 하늘이 먼지로 뒤덮이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소행성이 땅을 건드리는 바람에 간발의 차이로 여파가 더 커졌다.

달이 "처음부터 따로 생성됐다가 끌려왔느냐, 아니면 지구의 부위가 떨어져 나갔느냐"가 핵심 논점이라면, 이 대멸종은 "지구 내부의 화성이냐, 지구 외부로부터의 소행성 충돌이냐"가 논점이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대멸종뿐만 아니라 빙하기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원리나 원인이 현재까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전부 다 화산재인지 먼지인지가 하늘을 덮어서 햇볕이 못 들어왔기 때문인지..?? 그것밖에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3. 퉁구스카 대폭발

얘는 위의 두 사건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근현대에 벌어진 사건이다. 애초에 인간의 목격담 증언까지 존재한다~! 하늘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떨어지다가 공중 폭발을 일으킨 게 빼박 명백했지만.. 그 당시에는 사건을 분석할 기술과 여력이 인류에게 부족했다.
더구나 관할 국가이던 제정 러시아도 상황이 메롱이었기 때문에 자기 영토 안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건의 기괴함이 좀 더 과장 포장되었고, 음모론과 미스터리의 영역에 잠시 들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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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매우 매우 다행스럽게도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시베리아 깊은 숲 오지에서 발생했다. 덕분에 2150㎢ 면적에서 아름드리 나무가 8천만 그루 가까이 쓰러지고, 15km 남짓 떨어진 곳의 순록 1500여 마리가 열기에 폐사하고, 진동 때문에 수백 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열차가 뒤집히고 집 유리창이 깨진 와중에도.. 사상자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고 인명 피해가 전무했다.

퉁구스카 대폭발이 소행성과의 충돌이라고 깔끔하게 결론이 신속하게 나지 못했던 건 역시 증거 수집 능력 부족 때문이었다. 뭔가가 떨어지거나 폭발했으면 폭심지에 구덩이 크레이터가 생겨야 하고 운석 파편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소행성이 아니라 혜성이나 소형 블랙홀이 떨어졌다느니, 그냥 지표면의 메탄 가스가 대규모로 폭발했다느니.. 외계인이 탄 UFO가 폭발했다느니.. 의식의 흐름에 따라 온갖 희한한 떡밥들이 무려 1970년대까지도 던져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름 30~40m가량의 소행성이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서 떨어지다가 대기와의 마찰열로 인해 공중 폭발한 것으로 결론이 났으며, 파편도 발견되었다.
중생대 대멸종을 야기한 소행성에 비해서는 넘사벽 급으로 작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폭발 위력은 히로시마 원폭의 최소 수백 배는 됐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런 게 대도시 한복판에 떨어졌으면.. 그야말로 도시나 국가가 깡그리 삭제되는 피바다 참극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상이다.
지질 차원에서의 대재앙이 화산이나 지진이라면, 천문 차원에서의 재앙은 태양풍이나 소행성 충돌 같은 부류이지 싶다. 각각 무슨 내란과 외환 정도에 대응하는 듯하다. 앞으로 지구와 소행성이 또 충돌할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원자력 사고에 대해 1~7인지 8인지 등급을 매기듯이, 천문학계에서도 '지구 접근 천체'들을 예의주시하면서 이들의 위험성을 나름 여러 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그 중 유명한 척도는 '토리노 척도'라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11 08:35 2022/02/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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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 서울 지방 검찰청 검사인데, 니 통장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정황이 포착됐으니 혐의를 피하려면 어쩌구저쩌구..

이건 단순 스팸 전화를 넘어서 보이스피싱 범죄일 텐데..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런 전화를 직접 받아서 상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없기를 앙망한다. =_=
말만 들어 보면 그래도 대놓고 남의 계좌로 송금하는 건 아니고, 자기 계좌 개설해서 그리로 돈을 옮겨 놓기만 하는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사기를 쳐서 궁극적으로 남의 돈을 뺏는지 원리를 잘 모르겠다. 궁금하긴 하지만 꼭 알고 싶지는 않음. ㄲㄲㄲ

2. 허 경영 전화

난 지금까지 서너 번 정도 받았다. 주말에도 오더라.. 그래도 받는 사람이 짜증 내는 줄은 아는지, 선은 안 넘기고 딱 15초만 얘기하고 알아서 끊더군.
또한, 날 찍어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투표만 독려하는 내용이다. 그러니 선거법 위반도 아니고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근데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병원 응급실에도 이런 전화가 가서 민폐 끼치고 욕 먹는 건 실드 칠 길이 없다.

3. 여론 조사, 설문 전화

어지간히 한가하면 응해 주고 싶지만, 평일 일과 시간에 그런 한가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딴 일에 전화기 붙들고 몇 분씩 시간 뺏겨 줄 사람이 세상이 얼마나 있을까..?? 은퇴해서 시간 많은 노인이나 애 다 키운 주부가 아닌 이상 말이다.

4. 은행 영업 전화

유효기간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신용카드를 딴 걸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전화. 무슨 금융 상품 가입 권유하는 전화.
제일 최근에는 웬 치과 보험 가입 권유도 하더이다. 하긴, 무슨 마케팅 정보 이용에 동의를 했기 때문에 이런 전화가 오는 거다.;; 귀찮..
은행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돌아가면서 이런 것도 하고 영업 실적 쌓아야 하는 건가?

5. 보험료 돌려준다

요 근래에 등장한 새로운 소재의 듣보잡 전화다.
"여기는 보험감독원(???!!)인데, 니가 가입돼 있는 보험들을 조사해서 보험료를 필요 이상으로 잘못 낸 걸 무료로 찾아서 돌려드리겠다. 건강보험료를 환급해 주겠다..;;" 이런 식인데..
돈 돌려주는 척하다가 결국은 다른 돈 드는 거 가입 권유와 영업질이 나오게 돼 있다. 엮여서 좋을 것 없다.

6. 님하가 모 통신사 우수고객으로 선정돼서 보답으로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무료로 교환해 주겠..

내 경험상, 이거야말로 지난 10여 년 동안 뒈지지도 않고 유구한 역사, 압도적인 빈도와 다양한 번호를 자랑하며 지속되어 온 스팸 전화의 끝판왕이다. 02, 031, 032, 070, 심지어 054, 06x 등... 이런 전화질을 하는 애들은 도대체 어느 조직에 소속됐고 정체가 도대체 뭘까..?

이건 합법적인 텔레마케팅이며, 검사 사칭이나 다단계 피라미드 급의 해로운 놈들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 진짜로 공짜가 있을 리가 있나.. 결국은 폰 값은 다달이 할부로 다 갚게 돼 있다. 매장 가서 사은품 받으면서 사는 것에 비해 실제로 저렴한 건 절대로 없다. 진짜로 폰을 바꿀 일이 생겼더라도 쟤네들 말에 끌려가서 좋을 건 없다고 한다.

이거 말고 또 있을까?
1만이 불법인 막장 범죄이고 나머지 2~6은 일단은 합법이다.
그리고 2와 3은 그냥 녹음된 음성의 자동 발신인 반면, 나머지는 사람의 직접 통화라는 차이가 있다.
아, 이것도 바리에이션이 있어서 6 스마트폰 교환 권유의 경우 처음엔 녹음된 멘트로 시작해서 "상담원 연결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 주세용" 이러는 게 옛날에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다 처음부터 직접 통화인 편이다. ㄲㄲㄲ

사람에 따라서는 다짜고짜 대출 권유하는 전화, 심지어 물 좋은 장소라면서 오피스텔 투자 권유하는 전화까지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스팸 전화인지 그냥 잘못 걸린 전화인지 분간이 어려울 것 같다.
요즘은 유튜브나 각종 시사 다큐, 뉴스에서 PD 내지 기자가 "이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 봤습니다. / '도를 아십니까'에 실제로 따라 가 봤습니다" 별별 잉여스러운 것들을 실험하고, 심지어 전화 발신자를 엿먹이거나 역관광· 농락한 결과가 올라오곤 한다. 광고 전화에 대해서도 그런 예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스팸 메일을 눈에 잘 안 띄는 것 같다. 메일 서비스 차원에서 스팸 메일을 자동으로 거르는 기술이 머신러닝 기반으로 굉장히 발전했으며, 또 광고주들도 법 무서운 줄은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요즘 세상에 아직도 스팸 메일 보내는 놈들은 야동· 도박 사이트 같은 암흑 세계 종사자밖에 없지 싶다. 그 반면, 스팸 전화는 장르가 그 정도로 음란하거나 퇴폐적이지 않고, 다른 쪽으로 세분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09 08:35 2022/02/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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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호박 먹고 호박 가꾼 소감

1. 호박 예찬

하루는 인터넷을 돌아댕기다가 '농민 신문'의 재작년 가을 보도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했다.

“호박은 버릴 게 없어요. 넓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작물이죠. 생긴 것도 푸근하니, 방에 놓으면 복이 온다고도 하잖아요.” (☞ 링크)


우왓~~~ 이 사람은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데, (귀농해서 모친과 같이 호박 농사를..)
호박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정말 100% 정확하게 그대로 사이다처럼 잘 대변해 줬다~!!!! ^__^

"넓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작물.
외형부터가 푸근하고 복스럽게 생겼다."


아아~ 나도 딱 저게 딱 느껴져서 그게 좋아서 진작부터 방에다 호박을 놔 두고 지내 왔다구!
밖에서 텐트 치고 잘 때도 늙은 호박을 갖고 나가고, 운전할 때도 차에 싣고 다니고..
동승자 없는 단독 운행일 때는 조수석에다 호박을 얹어놓고 다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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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의 그림은 사진이 아니라 정물화임..!! 출처는 여기..)

재배가 까다롭지 않고, 어지간한 악조건 속에서도 덩굴을 미친 듯이 길게 뻗으면서 알아서 잘 자라고,
큼직한 열매뿐만 아니라 잎과 씨도 먹고 꽃도 먹고 심지어 꼭지조차 물에 달여서 마실 게 있다.
동글동글하고 큼직하고 무거운 늙은 호박은 그냥 서늘한 상온에 놔두기만 해도 엄청 오래 보관 가능하고..

다른 어떤 채소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감성이 호박에는 있더라~~!
다른 사람의 글을 또 소개하도록 하겠다. ♥♥

어릴 적 호박에 대한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맘때면 농촌에 무성하게 자란 호박 줄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옥토는 다른 농작물에게 다 뺏기고 농사짓기 어려운 밭두렁, 가장자리 자투리땅, 담장 밑 또는 비탈진 언덕이나 버려진 땅이 호박 차지다.

우거진 풀잎 속 호박 줄기는 언제 보아도 기세가 당당하다. 호박잎 속에 감추어져 노랗게 핀 아침 호박꽃은 더없이 청초하다. 꽃 중에 꽃으로 꼽히는 장미꽃처럼 화려하거나 향기롭지 않지만 장미에 돋친 가시가 없다. 피었다 지면 그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참 좋은 선물을 안겨준다. 호박꽃은 농민과 가장 친근한 꽃이다.

(...)
호박은 무더운 여름철 가뭄에 강하며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라는 무공해 식품이다. '늙은 호박은 가을 보약’이라는 말도 있다. 그야말로 호박은 만병통치 건강식품이다. 이렇게 좋은 호박을 온 국민이 많이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호박을 돼지, 메주와 함께 못난이의 대명사처럼 여기다니 호박은 억울하다. 못생긴 것에 비유하거나 부정적으로 쓰이는 속담도 많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호박꽃도 꽃이냐?’ 호박이 수박보다 훨씬 사람에게 이롭다. 호박꽃에는 장미꽃에 있는 가시도 없는데 말이다.

허나 호박은 못난 게 아니다. 최대의 행운을 의미하는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 '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 돌고 돌아……’ 하며 노래 '물레방아 인생’에서 모나지 않고 원만함을 이르기도 한다. 호박은 결코 못난 게 아니다. (☞ 링크)


2. 호박 구매

본인은 이번 겨울 동안 늙은 호박을 꾸준히 많이 사 먹었다. 호박 한 통을 죽 쒀서는 혼자서 다 먹는 데 거의 1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리곤 했다.

자그마한 단호박이나 애호박과 달리, 늙은 호박은 너무 크고 무겁고 양이 많은 데다, 먹을 수 있는 부위만 추출하는 작업도 만만찮다. 그래서 어지간한 마트 레벨에서는 구할 수도 없고 재래시장이나 인터넷 주문에 의존해야 하더라.
수박조차 축소판인 애플수박이라는 개량종이 나오는 와중에, 늙은 호박은 도시 1인 가구와는 안 어울리는 면모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늙은 호박은 딱히 수입산이 존재하지도 않는 같다. (단호박은 겨울에 남반구 지역 수입산이 있음는데 말이다)

하지만 호박이라는 고유한 상징성과 정통성에 가장 충실한 매력적인 아이는 뭐니뭐니해도 이런 맷돌호박의 늙은 형태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본인은 얘를 애용했다.
그 중에는 지름이 32.5cm에 달하고, 무게는 거의 6.5kg에 육박하는 엄청 큰 놈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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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본인이 실물을 직접 보고 만진 적 있는 역대 호박 중에서 제일 크고 무거운 놈이었다. 작년에 텃밭에서 재배해서 수확한 호박도 제일 큰 게 30cm에 근접하는 길이에 4kg대가 한계였지, 저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얘는 외형도 아주 납작하고 주름이 쭈글쭈글한 전형적인 한국형 맷돌호박.
허연 가루에 흙까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게, 호박계의 최고 짬밥을 자랑하는 백전노장처럼 생겨 있었다.
이런 게 정통 늙은 호박이 아니겠나? 내 마음에 아주 들었다. 흐뭇흐뭇~~~~^^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호박을 왜 못생김의 상징이라고 여기는지 좀 알 것 같았다. 누렇고 납작하고 쭈글쭈글하니까..;;
딱~ 시골 할아버지 같은 심상이 느껴져서 그런 걸까..?? 에휴~ 그걸 못생긴 게 아니라 아까 예찬 글에 나온 것처럼 푸근함, 복스러움으로 풀이해야 할 텐데 말이다. ^^

본인은 이 호박을 최하 한 달 이상, 이번 겨울 내내 장난감으로 삼아서 머리맡에 두면서 갖고 놀고 싶었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에 호박을 놔뒀던 자리를 보니 주변이 누가 무슨 오줌이라도 싼 것처럼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뿔싸.. 호박이 바닥이 살짝 금이 가고 갈라져서 내용물이 새기 시작한 것이다.

헐~ 내가 호박을 받자마자 호박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자가 젖어 있지는 않았고 호박이 처음부터 저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배송 과정에서 충격을 좀 받았나?
이 때문에 이 호박은 오래 놔두지 못하고 받자마자 곧장 분해해서 죽을 쑤어서 먹어야 했다. 그래도 내부 상태는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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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와 은화 --- 단호박과 일반 호박. ^^
이렇게 씨앗 숫자가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게 세포 분열의 위력이구나.
동화에서는 호박으로 마차를 만들어서 타고 다니고, 케이크를 잘랐더니 금화가 쏟아져나온다.
그러니 호박을 잘랐더니 금화가 쏟아져나오는 상상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에 봤던 계몽사 세계 명작 동화의 유명 삽화가 떠올랐다. ^__^

3. 호박 재배

오징어 게임의 오 일남 영감이 게임을 관람만 하니 재미가 없어서 게임에 직접 참가도 했듯..
본인도 호박을 사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재배를 시도해 봤다.
작년에 텃밭에서 한번 해 본 뒤, 올겨울엔 내년 4월까지 기다리기가 지루하니 실내에서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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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열매만 매력적인 게 아니다. 호박잎의 가장자리는 프랙탈 무늬를 연상케 한다.
호박 줄기는 털이 북실북실한 게 무슨 동물 같으며, 동글동글 덩굴손은 뭔가 동화 속 마법 같은 느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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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러 덩굴 중 한 놈이 정말 미친 듯이, 독보적으로 무섭게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공중에 매달린 위쪽이 햇볕을 잘 받아서 그런지 잎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커지고 그야말로 살판 났다. 마치 신나서 날뛰기라도 하는 것 같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도 끝이 아니어서 왼쪽으로 한번 더 꺾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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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로부터 약 20일 전(3주)까지만 해도 그냥 막대기 하나를 타고 오를 정도였는데 말이다.
그놈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저렇게 됐다는 거다. 동일한 빨간 막대기를 견줘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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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전, 약 40일 전에는 막대기조차 필요하지 않은 평범한 상태였었다~!
그랬는데 이제 덩굴의 길이는 2미터는 확실하게 넘었고, 쫙 펼쳐 놓으면 2미터 중후반 정도는 되지 싶다. 더구나 가냘프던 줄기가 언제 이렇게 굵어지고 털도 났는지..??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초기에 어디 어디 순을 잘라 주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100% 자연 방치한 상태이다. 몹시 기쁜 한편으로 우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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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동에서도 계속해서 새순이 돋아나고 있고..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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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잎이 무성하고 수꽃만 여러 송이 피더니, 드디어 씨방 달린 암꽃도 슬슬 맺히기 시작했다. 제일 큰 씨방은 이제 쌀알과 콩알 크기 정도는 넘어섰다.
지름이 1cm가 채 안 되는(아마 4~5mm??) 동글동글한 씨방이 자라고 또 자라서 저런 거대한 호박이 된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수꽃과 암꽃이 동시에 펴서 인공수분을 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도둑 걱정 없는 실내에서 사과나 배 크기의 애호박을.. 더 나아가 주름진 늙은 호박까지 구경하고 싶다. ^^

자료를 찾아보니 호박은 저온 단일(短日).. 기온이 적당히 낮고 선선하고, 밤에 광공해 없이 어둠이 좀 길게 지속돼야 암꽃이 많이 맺힌다고 한다.
아~~ 작년에 한창 쌀쌀해지고 호박 농사 시즌의 끝이 임박했던 10월 중· 하순에 그 희귀하다는 암꽃들이 갑자기 잔뜩 많이 폈던 게 이런 특성 때문이었구나! 이제 납득이 된다.

호박은 기온이 낮아지면 암꽃이 더 잘 맺히는데, 사람은 날씨가 추워지면 예전보다 소변이 잦아지는 것 같다. -_-;;
본인의 오랜 경험상, 겨울에 야외에서 텐트 치고 자면 생리 현상 때문에 중간에 깨는 빈도가 그냥 집에서 잘 때보다 훨씬 더 높아지더라. (추워서 깨는 게 아니며, 실제로 이뇨 호르몬의 분비가 달라진다고 함) 거 참 흥미로운 상관관계인 것 같다.

4. 영단어 window의 의미

끝으로, 호박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주제이다만..
window라는 단어는 창문, 창구, 더 나아가 컴퓨터 화면의 GUI 요소를 가리키는 쉬운 단어이다.
그런데 얘는 의외로 '기회, 여유 시한' 같은 뜻도 있다. 호박 농사와 관련된 영어 자료를 읽다가 이런 용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Both male and female flowers open at dawn and close by the end of the day. The WINDOW for pollination is short!
(호박은 수꽃과 암꽃이 모두 새벽에 펴서 저녁에 집니다. 수분 가능한 시간대가 그리 길지 않아요~!)


공교롭게도 영화 테이큰 1 대사 중에도 window의 이런 용례를 발견할 수 있다.

Based on the way these groups operate, our analyst says you have a 96-hour WINDOW from the time she was grabbed.
To what?
To never finding her.
(놈들이 활동하는 패턴대로라면 걔가 납치당한 이후로 골든타임은 딱 96시간이야.
그 뒤엔?
영영 못 찾아.)


buy가 '사다, 구입하다'에서 확장되어 거의 agree, accept의 뜻이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I don't buy that..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어를 학습하는 외국인 화자들은 입김을 후후 불고 악기를 부는 blow라는 뜻을 가진 동사에 웬 뜬금없이 '죄를 자백하다'라는 뜻이 동음이의어도 아니고 다의어 수준에서 들어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식의 의미 확장이 한국어나 영어 등 어느 언어에나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 출처의 자료는 단위도 변환하면서 읽어야 하는 게 기분이 참 묘했다. 호박 덩굴은 극단적으로 길게 자라면 무려 30피트(거의 9미터)까지 뻗을 수도 있댄다. 하긴, 여객기의 비행 고도는 거의 한계까지 올라가면 3만 피트를 넘긴다고 하니까..
항공이 아닌 우주까지 가야 킬로미터 같은 SI 단위가 통용되기 시작한다. 인공위성의 고도 같은 것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06 08:35 2022/02/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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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은 미국-일본이건(태평양 전선), 영국/소련-독일이건(서부 전선) 각색해서 영화 만들 것들이 차고 넘치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 두 영화를 주목하며 독자 여러분께도 추천하고자 한다.

(1) 핵소 고지 Hacksaw Ridge (멜 깁슨 감독, 2016) -- 데스몬드 도스(1919-2006)의 일대기
(2) 언브로큰 Unbroken (안젤리나 졸리 감독, 2014) -- 루이스 잠페리니(1917-2014)의 일대기


보다시피 이 두 실존 인물은 거의 동갑내기였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적병이나 적함· 적기를 공격해서 무력화시키는 통상적 무공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초인적인 행적을 남기고 영웅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영화도 나름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그리고 유명한 배우 출신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 나름 기독교 색채를 집어넣었다는 것, 평이 꽤 좋다는 것이 일치한다.

1.
핵소 고지는.. 주인공이 제칠일안식교 신자였다. 무정부 반전 평화주의자는 아니어서 진주만의 복수를 하고 싶고 군 복무는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집총은 거부하는 좀 이상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항명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됐지만.. 여차여차 해서 의무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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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45년, 오키나와 상륙 전투에서 총 대신 구급상자를 들고 위험한 적진을 종횡무진하면서, 수십여 명의 부상병들을 혼자 구출해 냈다. 그들은 구출되지 못했으면 다들 그대로 죽거나 적의 포로가 됐을 것이다.
의무병은 전장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라 119 구급대원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보직인지는 2002년 제2 연평해전 때 박 동혁 병장이 다쳤던 걸 생각해 보시라.

이 공로 덕분에 그는 순식간에 영웅이 됐다. 동료와 상관들이 다 너를 얕잡아 봐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죄를 했다. 나중에는.. 레알인지 각색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네 소대는 왜 아직 진격하지 않는 거냐? / 아, 도스 이병의 기도가 아직 안 끝났지 말입니다." 이렇게 신앙까지 당당히 인정받는 지경이 됐다.
이 영화에서는 일본군 측 인물이 뭔가 말을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더라.

2.
다음으로 언브로큰은.. 주인공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던 육상 선수 출신이었다. (흠 육상 선수라니 뭔가 에릭 리들 같은 느낌이..)
그는 그 다음 1940년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하려 했지만 이제는 올림픽 경기 대신 전쟁터에 나가게 됐다. 게다가 올림픽 개최 예정국이 아예 적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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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폭격기 승무원으로 복무했는데.. 하루는 격추를 당한 것도 아니고 정비 불량으로 인해 기체가 태평양 망망대해에 추락했다. 구명보트에서 무려 7주를 근성으로 버티다가 구조됐지만, 운 나쁘게도 아군이 아니라 일본군에게 구조되어서 포로로 전락했다.

그는 일본 해군 수용소에서 2년 넘게 고생했다. 일본한테도 얼굴이 알려진 유명한 운동 선수여서 더 고생했다. 특히 수용소의 간수 일본군이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아주 가혹하게 대했다.

하이라이트 장면은.. 주인공이 혹독한 노동에 기진맥진했던 상태에서 무거운 통나무를 들고 땡볕에 서 있는 가혹행위까지 감당해 낸 것이다. (통나무를 떨어뜨리면 총살이라고 위협..) 주인공은 그 상태로 무려 40분 가까이 초인적인 힘으로 버티면서 간수를 노려보며 압도해 버렸다. 주 기철 목사 전기 영화라면.. 솟은 못 위를 맨발로 걸은 일화가 이 장면에 대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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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쟁이 끝난 덕분에 주인공은 해방되고 무사히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해서 심신의 장애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적국인 일본을 용서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일본에서 나가노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1998년엔 노구를 이끌고 일본을 방문도 했었다. 그러나 예전에 그를 학대했던 간수 등 일본군 출신 인물들은 짱박혀 숨어서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천조국은 "미드웨이" 같은 전투 분야에서도 짱이고, 저런 휴먼 드라마 분야에서도 그냥 짱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03 19:33 2022/02/0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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