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에 대해서

1. 우한 폐렴

우한 폐렴이라고 불리는 코로나19 얘는.. 아직도 꾸준히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극소수의 위· 중증 사례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늘고 긴 계절 감기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 같다.
세계는 그럭저럭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그나마 제일 가볍고 부담이 적은 방역 조치인 마스크 착용만은 남겨 놓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마스크에 집착하는 경향이 세계 평균보다 유난히 더 심하다.

직업적으로 어쩔 수 없이 방문자나 손님에게 마스크를 강요해야 하는 종업원이나 공무원, 버스 기사 말고 일반인들 중에서는 내 경험상 남자보다 여자가 더 집착이 심하다.
봉변당할까 봐 담배 피우는 양아치들한테 훈계도 무서워서 못 하는 세상에.. 마스크 갖고 이간질 지적질과 이로 인한 분쟁은 여전히 굉장히 쉽게 잘 벌어지는 듯하다.

진짜로 괴질이 무서워서는 절대 아니고.. 그냥 "나도 불편하게 쓰고 있는데 남이 안 쓰고 있는 꼴 배아파서 못 봐 주는 것"에 가깝다. 그러면 법적 의무가 아닌 곳에서는 너도 다같이 최대한 벗고 지내면 되지, 남을 그렇게 시샘하고 배아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쟤네들 때문에 우한 괴질 확산" 미개한 마녀사냥 관행 따위 없어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사람들 의식 수준이 그때에서 멈춰 있는 걸까?
오죽했으면 "신천지 출입 금지 -- 우한 괴질 감염 원인 제공 시 민 형사 소송 걸겠음" 이런 경고문을 아직까지 써 붙여 놓은 교회도 있다.

대면도 아니고 카메라/스피커를 통해 마스크 지적질을 당해 보면 짜증이 두 배 세 배로 치솟는다.
하루는 본인은 차를 몰고 버거킹 드라이브쓰루 입구에 들어가서 햄버거를 주문했다. 그런데 직원이 마스크 써 달라고 요구를 하길래 어이가 달아나고 기분이 확~ 잡쳤었다. 허얼...

그대는 뇌가 있고 생각은 좀 하고 사시는가?
그대와 내가 지금 실내에서 대면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대는 카메라로 내 얼굴을 보고 있고, 내 비말은 그대에게 퍼뜨리고 싶어도 퍼뜨릴 수가 없구만..
내 차에서 내가 마스크 안 쓴다고 내가 그대나 다른 손님한테 우한 폐렴이 퍼지겠나, 아니면 내가 반대로 감염되겠나..??

이건 도대체 뭔 정신나간 유체이탈 방역 시책이란 말인가? 윗대가리들이 알바 교육을 그렇게 시키더냐? 이런 말까지 나왔지만 겨우 이런 일로 애매한 사람과 싸우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참았다.
심지어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 부스 안에서도 마스크 안 쓰고 있다가 스피커를 통해 한소리 듣기도 했다. 도대체 어느 할일 없는 공무원이 일요일 저녁에 이런 거 감시나 하고 있었던 거야..??

마스크 쓰라는 '정중한' 요구에 별 진상 행패 부리는 미친 손놈들이야 법의 철퇴로 참교육 시켜 줘야겠지만,
고압적으로 갑질 오지랖 부리듯이 융통성 없는 무리한 마스크 요구.. 이것도 심각하게 문제가 있긴 한 것 같다. 이거 무슨 '문법 나치'도 아니고 말을 새로 만들고 싶다. '마스크 나치'라고.

생각이라는 걸 너무 안 하고 타성에 다들 길들여져 버린 건 아닌지..??
반경 3~5m 주위에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도 그 불편한 마스크를 잘도 쓰고 다니는 분들이 많다. 실외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폐지된 지가 언젠데..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착용 요구 정도는..
운전 중에 웬 되도 않은 어린이 보호 구역 30km 제한이나 구간 단속만치 나를 빡돌게 만들지는 않는다.
마스크 쓰는 것쯤이야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니까.. 그냥 영혼 없이 "에잉, 그래 더러워서 마스크 쓰고 만다, 이제 됐냐 이놈야?" 이렇게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저놈의 속도 단속은 내 인생과 내 시간과 차의 연료에 직접적으로 심각한 대미지를 끼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의 조선인들은 창씨개명을 안 하면 취업이나 배급 따위에 큰 불이익을 받았고, 정상적인 사회 활동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2021년, 거리 두기로도 모자라서 백신패스까지 있던 시절엔 우한 괴질 백신을 안 맞으면 커피 한 잔 마시러 들어가기도 어렵고 정상적인 사회 활동이 거의 불가능했다.

조직에 취업해야 하는 회사원, 특히 의료인이나 공무원들은 백신 접종이 일제 말기의 창씨개명 신사참배만큼이나 사실상 반강제 필수였다. 그런데 백신을 3차까지 맞고도 우한 괴질에 두 번, 세 번이나 또 걸린 사람이 전국에 수백 명이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정말 로또 급의 확률을 뚫은 것 같다.;;

그 반면, 어디 취업할 필요가 없는 개원 의사들 중에 백신의 효용을 의심하는 몇몇 분들은 어디 눈치 살필 데가 없으니 안 맞고 존버 했다. 백신도 안 맞고 괴질에 걸리지도 않고 2020~2021년을 넘긴 사람들이 진정한 승리자이지 싶다.

마치 공 병우 박사가 1940년대에 창씨개명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자가 사망신고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분은 한국인 안과 의사/의학박사 1호로 경성 종로 한복판에서 개인 병원 개원을 했다. 일자리를 알아볼 필요 따위 전혀 없고, 자기 병원에서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는 일만 남았으니 그렇게 배짱을 부릴 수 있었을 것이다.

* 참고로, 지역 감정을 없애기 위해서 '우한 폐렴' 대신 중립적인 '코로나19' 이 제안에 대해서는.. 나는 예전에 언론에서 버젓이 써먹었던 '대구 발 코로나'라는 카운터로 대응하고자 한다. 아주 위선적인 수작이다.

2. 자폐

TV 드라마에는 무슨 서번트 증후군 같은 자폐 천재 기믹이 좀 있는가 보다.
지난 2013년에는 주인공이 그런 기질이 있는 남자 '의사'로 나오는 <굿 닥터>라는 드라마가 방영됐는데.. 그로부터 9년 뒤엔 주인공이 비슷한 기질의 여자 '변호사'로 나오는 <이상한 변호사 우 영우>가 방영됐었다. =_=;;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우 영우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절에 친형이 중증 자폐였던 어떤 사람이 디씨 갤러리에다 체험담을 올렸었다. (☞ 링크)

  • 우 영우는 그냥 사회성 없는 천재일 뿐, 자폐가 절대 아님.
  • 현실의 자폐는 99%가 지적장애+의사소통불가 이건 패시브로 갖고 있음. TV나 유튜브에 나와서 '자폐인도 할 수 있다'고 인터뷰하는 애들은 그냥 자폐 상위 0.1%라고 보면 된다.
  • 자폐 1급 태어나면 집안 풍비박산 난다고? 개구라. 풍비박산 정도가 아니라 기둥뿌리가 가루가 된다.
  • 물건 들고 난리치고 부수고 으에엑 크에엑 키에엥 소리 지르는 거? 그건 레벨 1임. 식칼 들고 난리 친 적도 있어서 그때 집에서 칼을 못 쓰고 플라스틱 빵칼을 썼다.
  • 뉴스에 나오는 장애인 시설 구타 학대? 다 이해할 수 있음.

헐..
2차 대전이나 6· 25에 실제로 참전했던 용사 할아버지가 어설픈 전쟁 영화 보고는 코웃음 치면서 "그 영화? 그건 그냥 애들 장난이지.. 사람이 포탄을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그냥 형체가 없어져 버리고 나뭇가지에 내장이랑 살점이 덕지덕지 걸려 있어.." 이렇게 증언하는 것처럼 들린다.

저 글에서는 그 형이 하루는 후다닥 밖으로 내달리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트럭에 치여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그 날 병원 응급실에서 눈물 흘리면서 운 사람은 가해 차량 운전사밖에 없었다고 한다.
글쓴이는 가해자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제야 해방됐다, "저놈 잘 죽었다"에 가까운 안도감이 들어서..;; 스스로도 소름 끼칠 정도였다고....;;

노인은 중증 치매, 아이는 중증 자폐... 이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질병이다.
이렇게 대응시키니까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와 닿는다. ㅠㅠㅠㅠㅠ
나치 독일이 T4 작전(장애인 학살) 벌이면서 이런 애들을 청소해 버리자고 그랬으면..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일고의 가치 없이 "뭔 개소리야" 이러면서 알량한 인권 드립을 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중증 치매만 해도 가족 간병인/보호자가 참다못해 환자를 살해해 버리고는 자기도 같이 자살하거나 당당히 경찰에 자수하고 교도소로 가는 사례가 부지기수인 인간성 파탄 질병이 아니던가?
인간에게 이런 질병이 존재하는 한, 안락사 논란은 정말 끊이질 않을 것 같다.

이건 뭐 부정한 영· 마귀 들린 것도 아니고 뭘까..?? 뇌가 생물학적으로 맛이 가 버린 건 성경이 말하는 영적 세계하고 전혀 무관한 영역인 걸까?
성경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불치병인 하반신/전신마비를 고치고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살리시는 기적이 나오는데.. 중증 자폐나 치매를 고쳤다는 얘기는 어째 없는지 궁금하다..;; 육(외형상의 장애, 질병)이나 영(마귀 들림) 말고 혼을 고친 것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28 19:37 2022/09/2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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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네로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는 세계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긴 폭군이었으며, 특히 마가 씌인 듯한 잔인한 기독교 박해로 인해 교회사의 관점에서는 더욱 악평을 받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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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발 노안인 인상에 걸맞지 않게, 나이가 아주 젊었다.
겨우 30 초반의 나이에 부하들의 신임을 잃고 폐위당한 뒤,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참고로 조선에서 손꼽히는 폭군이었던 연산군도 겨우 20대 때 흥청망청 놀면서 나라를 말아먹은 뒤, 30이 될까말까인 나이에 죽었다.

네로에게 흔히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로마 대화재 배후설이다.
부하들을 시켜 시내를 일부러 불질러 놓고는 불 구경 하면서 띵까띵까 악기 연주하고 시를 지었다..???
(꼴도 보기 싫던 낡고 흉측한 건물들이 다 사라지니 속이 다 시원하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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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9 11 테러 자작극설 음모론이라든가, "할배가 일부러 다리를 폭파하고 먼저 튀었다", "빵이 없다고? 그럼 과자/고기를 쳐먹으면 되지"(마리 앙투아네트) 급의 악성 루머로 여겨진다. 정황상 네로가 그 정도까지 악마 싸이코패스는 아니었다.

그는 불 구경은커녕, 외지로 휴가를 가 있었다. 그 와중에 화재 소식을 듣고는 기겁하여 전차를 몰고 수십 km를 달려서 현장에 헐레벌떡 돌아왔다.
황제가 직접 발로 뛰며 화재 진압을 지휘하고, 자기 사재를 털어서 구호 물자를 마련하고, 심지어 궁궐의 일부를 개방해서 이재민들 임시 거처도 마련했다.
재난에 정말 최선을 다해 대처했다는 건 제아무리 네로를 싫어하고 혹평하는 역사가라도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네로가 선정을 베푼 건 거기까지가 끝이었던 것 같다.
화재 발원지에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다른 건물을 올리려 해서 "이거 너무 노골적인데? 혹시 저 건물 올리려고 일부러 불지른 거 아냐?" 의혹을 본격적으로 살 짓을 하긴 했다. 그리고 무리한 토목 공사 때문에 나라 경제를 말아먹기도 했다.

그리고 자기 평판이 깎이고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것 같자, 그는 그제서야 예수쟁이들에게 방화범 누명을 씌워서 화풀이를 시작했다. 이건 명백한 팩트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집단이란 게 등장한 지 30년 남짓밖에 안 됐던 시절인데.. 이때 이들의 대외 이미지는 막 나쁜놈 사회악이라기보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 아싸 정도였다.

남들 다 믿는 걸 로마 잡신들을 섬기지 않고, 국가 공권력 자체는 인정하는 것 같지만 황제를 신성시하지 않고 웬 듣보잡 예수라는 교주가 부활했다며 설치고 다닌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얘기를 나눠보면 천성은 착하고 성품도 훌륭해 보이고.. 쟤들이 도대체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신비로운 부류였다.

그랬는데 민심이 흉흉할 때 과거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이나 '중세 유럽 페스트 창궐 후의 종교 재판'처럼 누구 아싸 한 놈 희생양 삼아 조져야겠다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그리고 이때는 크리스천들이 걸려들었다. "이게 다 저 예수 믿는 이상한 놈들 때문이다. / 저놈들은 이번 화재 피해를 별로 입지 않았다 / 사실 쟤들이 방화범이다 / 쟤들은 로마 제국의 반역자다" 이런 식으로..

네로는 이 사람들을 그냥 곱게 죽인 게 아니라 동물 가죽을 뒤집어씌우고 나서 맹수들에게 던져넣기, 십자가형, 길거리 인간 횃불(= 화형-_-) 급으로 정말 가학적이고 잔혹하게 죽였다.
어떤 방식이건, 이런 잔인한 양민 학살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이어지자 다른 비기독교인들조차 "쟤들이 아무리 나쁜놈들이라지만 이건 너무했다, 선 넘었다"라고 이의 제기를 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게다가 이때는 거짓으로 신자 행세를 하다가 조직을 밀고하는 가짜 끄나풀 간첩 배신자까지 들끓었다. 그러니 이때는 어중이떠중이 다 교회로 전도 초청 따위는 꿈도 꿀 수 없고, 진짜 신자 형제를 가려내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사람 마음속을 알 수가 없으니 신뢰할 만한 이웃 교회 지도자의 추천과 보증이 아주 중요한 변별 요인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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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바로 이때 네로를 대면한 뒤, 참수형을 당해 순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AD 67년경. 신약 성경 데모데후서는 이런 배경에서 기록되었다.

(죄수를 사형에 처하라는 어명까지 악기를 띵띵 연주하면서 내리는 개싸이코패스 네로의 기백.ㄲㄲㄲㄲㄲㄲㄲ
저 아저씨가 현대인이었으면 락 같은 데에 심취해서 아마 일본 환타 CF에 나오는 DJ 선생이나 가죽점퍼(록커) 선생처럼 코스프레를 했지 싶다. ㅋㅋㅋㅋㅋㅋㅋ)

바울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와 같이 어째 로마 시민이었다.
로마 시민은 (1) 범죄 혐의가 있더라도 채찍질 같은 고문을 동반한 심문을 받지 않으며, (2) 반역죄가 아닌 한 사형을 당하지도 않을 정도로 엄청난 특권층이었다.
그리고 로마 시민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로마로 가서 지역구가 아닌 전국구 재판을 청구할 권리까지 있었는가 보다.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로마 행을 고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소원대로 로마에 가서 사도행전 28장 이후의 연대기부터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복음을 널리 전했다. 최신 학문 유행 문화의 원산지였고 지금으로 치면 뉴욕이나 도쿄와도 같은 대도시였던 로마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그리고 로마 정부로부터도 예수 믿고 전하는 것에 대해서 처음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로마 대화재 사건을 계기로 다시 체포되었으며, 이때는 결국 반역죄로 사형을 당하게 됐다. 네로가 바울을 어떻게든 죽여 없애 버리려고 안달이 났기 때문이다. (3) 하지만 그는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이때도 십자가형 같은 잔인한 형벌을 받지 않고 곱게(?) 참수만 당했다.

참고로, 네로 시절엔 아직 콜로세움 경기장은 없었다. 그건 AD 80년 이후에나 등장했기 때문이다. 네로 때의 순교랑, 원형 경기장에서 양민들이 맨손 무방비로 굶주린 사자 떼와 맞닥뜨리는 장면을 동시에 떠올릴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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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의 입장에서 네로에 의한 박해는 정말 엄청나고 혹독한 환란이었다. 베드로전서 역시 제일 가깝게는 이런 시국을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저 네로놈이 적그리스도이고, 이 순간만 잘 넘기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거라고 생각했다.

뭐, 예수님이 곧장 다시 오시지는 않았고 로마 제국에 의한 기독교 박해는 그 뒤로도 수백 년 동안 잊을 만하면 간헐적으로 또 계속되었다.
이게 횟수를 따져 보니 총 열 번이었다. (☞ 관련 링크) 계 2:10에서 말하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하리라'가 이 로마 제국의 박해를 의미한다고 분석하는 해석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네로의 깽판 자체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 황제 역시 AD 68년에 쿠데타로 인해 황제 자리에서 쫓겨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세상 역사에서 네로는 처음엔 통치를 잘 하다가 말년에 궁예처럼 흑화해서 광기어린 실책을 저지른 폭군이다. 히틀러처럼 그냥 예술만 했으면 좋았을 걸 괜히 정치를 하다가 돌아 버린 사람 정도?
뭐, 폭군으로서는 평범한(?) 범주에 들지, 무슨 공산주의나 파시즘이 가미됐던 20세기 최악의 싸이코패스들.. 히틀러, 김 일성, 폴 포트, 이디 아민 정도까지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죽은 뒤의 장례도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고 지워 버리는 정도는 아니라, 평범한 왕보다만 약간 덜 예우하는 수준으로 그쳤다고 한다.

물론 아무리 실드를 친다 해도 폭군은 폭군이며,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 박해의 첫 포문을 열었던 악역이 네로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기독교인들만 왜 그리 잔인하게 죽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26 08:35 2022/09/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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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자동차 주차와 관련해서 다음 사항들은 오해와 분쟁이 벌어지지 않게 적절한 법과 관행이 마련되고 정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1.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장기 주차

한적하고 공간 넉넉한 임시 주차장 휴게소 같은 데서는 도입을 검토할 법도 하지 않을까? 장기 주차가 등록된 차량은 그 기간 동안 고속도로 내부에서 24시간 이상 체류 가능하다.

동일한 목적지로 가는 개별 운전자들이 여기에다 자기 차를 세워 놓고, 대표의 다른 차로 합류하는 거다. 즉, 이건 고속버스 환승이나 대중교통 환승의 자가용 버전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수요가 장기 주차 시스템을 유지 보수할 만치 많지 않다면 굳이 이런 걸 만들 필요가 없겠지만 말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와 휴게소들은 대부분 중간 회차 같은 기동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졌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ㅡ,.ㅡ;;

2. 주차장에서 아직 오지 않은 차를 위해 일행이 자리를 미리 찜해 놓기

일단, 관리자가 없는 무료 주차장 내지, 아파트 입주민처럼 주차장의 아무 자리나 동등하게 이용할 권한이 있는 사람끼리는 저런 관행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냥 먼저 차 끌고 자리 댄 놈이 임자여야 한다.
이건 지정 좌석이 없는 시내버스나 지하철 같은 곳에서 지금 없는 사람의 자리를 맡아 놓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동일 것이다. 혹은, 한 명만 줄 서서 기다리다가 중간에 갑자기 자기 일행을 잔뜩 끼어들이는 소극적인 새치기에다가도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주차한 순간부터 시간에 비례해서 요금이 부과되는 유료 주차장이고 자리가 부족하다면? 먼저 온 일행이 차 번호를 말하고 주차 공간을 선점하는 시스템 정도는 도입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 경우, 실제 차가 아직 안 들어와서 일행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안도 주차 시간에 포함되어 요금이 좀 더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일행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거나, 올 거라는 차가 일정 시한까지 오지 않으면 그 자리는 그냥 다른 차에게 넘어간다. 그리고 노쇼에 대해서는 보증금을 낸 것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의 페널티를 받게 된다.

이것도 이런 복잡한 시스템을 굳이 개발해야 할 정도로 발생하는 빈도가 높지 않다면.. 이 역시 내 상상 잉여 뇌피셜만으로 끝날 수 있다. 어떤 경우건 ‘주차 자리 선점 금지’만으로 깔끔하게 끝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ㄲㄲ

3. 장애인, 여성 주차 등

지하철 안에는 객차의 양 끝에 노약자석이 있으며, 시내버스 안에는 앞쪽에 역시 노약자석 내지 휠체어석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건물 주차장에는 건물과 가까운 쪽에 장애인 주차칸이라는 게 법적 의무 차원에서 반드시 만들어져 있다.
장애인의 인권을 배려하려는 차원에서인지.. 장애인 주차 위반은 여느 평범한(?) 불법 주차보다 과태료가 굉장히 세다.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의 위반에 맞먹는다.

원래는 부정 주차보다 불법 주차가 죄질이 더 나쁘고 과태료가 더 비싼 것이 인지상정이다. 전자는 단순히 "차를 댈 수 있는 곳이지만 그게 니 차는 아님" 수준인 반면, 후자는 "공공의 안전을 위해 아무도 주차해서는 안 됨. 버스 정류장이나 횡단보도, 교차로, 소화전 근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주차 위반에 대한 처벌은 부정을 넘어 불법으로 보는 수준이다. 그만치 강경하다.

뭐, 그에 대해서 나 역시 큰 이의는 없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인권의 척도가 진정한 선진국의 척도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각종 관공서나 마트에서 장애인 자리는 10여 군데가 텅~~ 비어서 썰렁한데 다른 사람들은 주차 자리를 못 찾아서 뺑뺑이 치는 걸 보노라면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상시 무조건 비워야 하는 자리는 일부만 놔 두고, 나머지는 약간 유도리를 둔다. 진짜로 몸 불편한 장애인 탑승 차량이 들어온 경우, "나중에라도 전화 오면 군소리 없이 15분 안으로 달려와서 차 빼는 조건으로 주차. 불응 시 주차료 가중 부과" 이렇게라도 하면 안 될까? 물론 장애인 탑승 차량도 자리 좀 확보해 달라고 마트에다가 미리 연락을 하고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개인적으로는 여성 전용칸은 법적 강제력도 없고 도대체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지하철에도 임산부 배려석이라고 앉을지 말지 고민되는 굉장히 어정쩡한 좌석이 몇 곳 표시돼 있는데, 그와 똑같은 모양새이다.

이것도 굳이 시행을 할 거면 평소에 무조건 비워둘 정도까지는 아니고, 실제 해당자가 왔을 때만 비켜 주는 형태가 됐으면 좋겠다.
진짜로 평소에 늘 비워져 있는 건 고속도로의 1차로(추월 차로)여야 하는데, 이건 또 안 비워져 있다. -_- 이러니 대한민국의 교통 문화가 노답인 것이다. 뭐, 쌍팔년도 시절에 비해서야 많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끝으로, 경차 전용 주차칸도 말이다. 자그마한 경차 전용 주차칸은 그거 혜택을 입는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되며, 그거 갖고 경차 구매 동기를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는 난 좀 회의적이다.;; 없는 자투리 공간의 틈새를 경차 전용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멀쩡한 구간을 일부러 좁혀서 경차 전용으로 만드는 짓은 자제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통신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했으니 주차와 관련된 시스템도 이런 식으로 좀 더 스마트해졌으면 좋겠다. 횡단보도는 보행자 작동식, 교차로는 감흥 신호를 더 늘리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24 08:35 2022/09/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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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성경 이야기들 -- 下

7. 부분적인 순종

  • 아브라함: 혼자만 나온 게 아니라 사고뭉치 룻도 같이 데리고 와서 쓸데없이 전쟁에도 연루되고 두고두고 고생했다.
  • 출 3~4에서 모세: 혼자서는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고 뒤로 빼서 결국 형 아론까지 붙긴 했지만.. 그게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 베드로는 영혼 없이 "네에~ (참 잘도 잡히겠네요.) 그래도 일단 님하 말대로 그물을 하나 던져는 보겠습니다": 그 뒤 그물이 찢어지고 배가 뒤집힐 뻔함.
  • 아말렉을 몽땅 다 진멸하지 않고 살진 짐승을 '선의로' 살려서 데리고 온 사울: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울러, 출5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 주라는 명령을 전하기는 했지만 너무 쫄아서 선포와 경고가 아니라 애원, 타협, 협상하는 말투가 돼 버렸다.

말 안 들으면 니들이 재앙 당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재앙 당한다.. 노예가 줄어들면 너희들도 좋을 거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물 잔뜩 탔다.
그러니 파라오의 반응은? 더욱 기고만장해서 꿈쩍도 안 하고 "이것들 너무 편하게 해 줬더니  안 되겠어? 앞으로는 일을 더 시키겠다"로 맞받아친 것이다.

부분적인 순종, 불완전한 순종은 대놓고 불순종보다는 낫다. 그러나 그 역시 100점짜리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다는 걸 성경은 거듭 가르쳐 주는 듯하다. 꼭 사울처럼 마음 상태가 처음부터 글러먹은 게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건 크리스천이 복음을 전할 때도 염두에 둬야 할 원칙인 것 같다.
죄, 심판, 복음 얘기를 제대로 안 하면서 "예수 믿어서 나쁠 거 없다, 손해볼 것 없다~ 너한테도 좋다" 이런 걸 너무 강조하는 건.. 듣는 사람의 기분도 못 잡으면서 잃어버려진 혼을 제대로 구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건 그냥 종교 영업 행위나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다.

8. 게으르다, 목이 뻣뻣하다

출애굽기에서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 보고 '게으르다' (idle)라고 평했고, (5:17 노예 시절)
하나님은 '목이 뻣뻣하다~~~~' (stiffnecked) 라고 평하시었다. (32:9 금송아지 사건)

파라오야.. 좀 편하게 대해 줬더니 노예 주제에 뱃대지 불러서 헬렐레 빠져 가지고 힘들다고 징징댄다고.. 먹고 살 만하니까 그 다음으로 신이나 찾아 댕기고 종교 활동이나 쳐 한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하나님은.. 10대 재앙과 홍해 기적까지 베풀면서 가련한 이 군상들을 비참한 노예 신세에서 구출해 줬는데..
광야 생활이 쪼~금 힘든 거 갖고 금세 불평 불만 터뜨리고, 심지어 도로 이집트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고 정말 마음이 완악하고 바른 믿음이 없다고 그걸 질타하셨다.

지극히 세속적인 관점 vs 지극히 영적인 관점.
같은 인간 집단을 보는 관점이 서로 극과 극으로 정말 다르다. =_=;;

9. 에스더기: 왕권의 상징

세상에서 보안을 상징하는 물건은 열쇠요,(허가되지 않은 사람이 물건이나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은 도장(이 명령이나 메시지가 진짜 당사자 본인의 것)인 것 같다. 유언 같은 건 주작되지 않고 진짜 당사자가 살아 생전에 정신이 멀쩡할 때 자의로 남긴 게 맞음을 입증하는 체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재산 상속이나 어느 조직의 후계자와 관련된 분쟁이 어찌나 많은지!!)

인감은 도장을 지문처럼 활용할 수 있게 등록해 놓은 체계이다.
동양은 모르겠다만, 서양에서는 왕이 끼는 반지가 옥새를 겸하게 만들어져 있었던 것 같다. 성경에서도 에 3:12.. 성경 전체에서 가장 긴 절이라고 일컬어지는 구절이 이에 대해서 언급한다.

에스더기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것과 '주, 하나님, 여호와' 같은 단어가 본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이색적인데, 유난히 왕의 권위와 관련된 언급이 많은 것 같다. 전 8:4 "왕의 말씀이 있는 곳에 권능이 있나니...", 더 나아가 마 8:9(권위 아래에 있는 사람)의 제일 실질적인 사례가 이 책인 것이다. 하필 그 권능을 이용해서 license to kill the Jews가 전파됐으니 문제지..

왕이 내린 명령이 옥새로 날인되고, 그게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파발들을 통해 방방곡곡으로 전파된다. 한번 내린 어명은 워낙 최고존엄급 절대 권위가 있기 때문에 왕 자신이라도 쉽게 식언· 번복할 수 없다. 그 대신 그걸 다른 명령을 추가로 내려서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에스더 같은 이질적인 책이 어째 성경에 포함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현대의 암호학은 수학 이론과 컴퓨터의 계산빨을 이용해서 디지털 세계에서 보안과 권위/권한이라는 분야를 모두 담당하는 도구인 셈이다.

10. 혼전 임신에 대한 화형 응징

옛날에 신라의 김 유신은 여동생 문희를 혼전임신 죄목으로 불태워 죽이려 했고, 이거 보고는 김 춘추가 그녀와 일종의 shotgun marriage를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건 창세기 38장에서 야곱의 아들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혼외임신 죄목으로 불태워 죽이려 한 것과(창 38:24-25)... 심상이 아주아주 아주 비슷하게 느껴진다. =_=

물론 서로 완전히 같은 상황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본인이 김 유신 장군 묘를 종종 구경하면서 동시에 교회도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ㅋㅋㅋㅋ

한반도는 역사를 통틀어서 화형이란 게 없다시피했다.
신라가 존재하던 시절에 내가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화형이라는 단어를 본 건 박 제상이 일본에서 고문 당하다가 화형 당해 순국했다는 얘기밖에 없다. (왜놈들이야말로 그때부터 왕창 잔혹.. -_-)

성경도 마찬가지다. 목을 조르거나 짜르거나 그냥 몸통에다가 칼을 쑤셔넣어서 죽이는 건 자주 나오지만, 홀랑 불태우는 거.. 특히 초자연적인 불 말고 저런 식의 화형은 등장이 역시 거의 없다. 그런데 대놓고 let her be burned는 이례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것도 둘 다 아녀자를.. 부정한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이러니..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는 마리아도 예수님을 초자연적으로 수태했던 당시에 처신을 잘못했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겠다. 나름 약혼남이 자기 아이가 아닌 아기를 속도위반 임신으로 잘 덮어 준 셈이다.

11. 빤스런(..)

그리고 성경에는 나름 빤스런이라는 것도 나온다.
아니, 빤스 정도가 아니라 몸에 걸치고 있던 걸 홀랑 버리고(붙잡히니까) 발가벗은 채로 줄행랑을 쳤다고 나온다. 도마뱀이 자기 꼬리 끊고 도망치듯이 말이다.

  • 막 14:51-52 예수님이 배반당하고 붙잡히시던 당시에, 성경에 이런 민망한 장면이 왜 기록됐을까, 이 청년은 누구일까 참 궁금해진다.
  • 행 19:15-16 그 유명한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에 대해서도 들어서 아는데, 닌 도대체 누구냐?" 역관광 장면이다.;;
  • 그리고 암 2:16도 이런 빤스런 장면을 언급한 예언이다.

12. 양비론

"진실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함께 모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님을 대적하며" (행 4:27)

본인은 오래 전부터 다른 주제는 몰라도 인간이 구원받아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에는 좌우 구분이 없고 정말 피장파장이라는 말을 해 왔다. 서민이건 기득권 정치· 종교 지도자건, 심지어 외세건 똑같이 말이다. 진정한 양비론이다.

빌라도는 그냥 세속적이고 보신주의적인 정치인이었을 뿐, 사도신경에까지 거론될 정도로 독보적인 악역은 아니었다.
진리가 무엇인지 죄와 심판은 무엇인지 같은 건 관심 없고, 그저 유대인의 왕을 참칭하는 내란 수괴 정치범만 아니라면 누가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국내 교회들이 한때는 "예배 때 사도신경 암송 안 하는 교회는 이단" 이러는 편이었지 싶은데.. 그래도 세월이 흘러서 요즘은 사도신경을 절대시하는 비중이 예전에 비해 줄어든 듯하다.

여담으로, 기독교라고 불리는 여러 교파들 중엔 가톨릭이나 개신교 말고 어디어디 지역 '정교회'라는 게 있다. 여기는 하나님 예수님 이러기는 하지만 교리 바리에이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
세계 지리에서 중부·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종교는 상당수가 가톨릭도 이슬람도 아닌 기독교라고 분류돼 있다. 그러나 그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신교 같은 기독교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 중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분명 사도행전 8장에 뿌리를 둔 역사적인 교회이지만.. 에녹서 같은 위경도 같이 정경으로 인정하고, 특히 빌라도와 그의 아내까지.. 부부를 반쯤 선한 인물, 성인으로 취급한다. 예수님을 처형하는 것을 꺼렸을 뿐만 아니라(롯???) 훗날 회개하고 크리스천이 됐고 순교까지 했다고 말이다.;; 역사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21 08:35 2022/09/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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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성경 이야기들 -- 上

1. 창세기와 계시록의 2 6 7 패턴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를 보면, 둘째 날에만 유일하게 '보기 좋았다'라는 말이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여섯째 날은 그냥 보기 좋은 게 아니라 '매우 보기 좋았다'라고 끝난다.
마지막 일곱째 날은 하나님도 쉬시고 아무 코멘트 없이, 그 날을 복 주셨다고만 나온다.

이와 비슷한 패턴이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 얘기에서도 발견되는 것 같다.
각 교회별로 격려와 질타(책망)가 하나씩 있는 구조인데, 2타인 서머나 교회와 6타 필라델피아 교회는 책망이 없다.
2타는 책망이 없이 격려와 행동강령 당부만 있지만, 6타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인 칭찬과 긍정적인 약속이 추가로 들어있다.
그러다가 다음 마지막 7타 라오디케아는 제일 부정적인 책망만 가득하고 심지어 약 처방이 있다.

창세기 1장의 6일이 문자적인 6일이듯, 계시록 20장의 1천 년도 문자적인 1천 년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복음서의 엄청난 표현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 중에는.. 선뜻 실감이 가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일이 지금 당장 이뤄질 거라는 식으로 과장 막말(?)처럼 보이는 워딩이 생각보다 많다.
정말 액면 그대로 사실일까? 지금이 아니면 정확하게 어느 문맥에서 성립한다는 걸까? 이러니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1) 나(예수님)와 복음을 위하여 집· 토지(부동산!!)나 가족 인척 관계(형제 자매 부모 아내 자녀)까지 희생하고 버린 자는.. "지금 이 시대"에 그 재산과 인맥을 백 배나 받되 핍박과 함께 받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으리라. (막 10:29-30)
==>> 나중에, 죽은 뒤에 보상 받는다는 말이야 종교적으로 그리 어려운 약속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받는다고 했다. 이게 뭘 의미할까..??

(2) 죽음을 맛보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마 16:28, 막 9:1, 눅 9:27)
==>>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바로 영접해서 지금처럼 초림과 재림의 구분이 생기지 않았다면 저 때 진짜로 저 일이 이뤄졌지 싶다.

(3) 이 세대가 가기 전에 다 이루리라. (마 24:34)
==>> 참고로 앞의 마 23:36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라는 심판 선포는 뜬구름 잡는 먼 미래가 아니라 현재, contemporary한 문맥이다. generation 세대를 쓸데없이 길게 늘어뜨리는 말장난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다음은 시기보다는 그냥 규모의 엄청남을 뜻한다.

(4) ... 만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심지어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들을 담지 못할 줄로 나는 생각하노라. (요 21:25)
==>> 이 지구가 얼마나 넓은데.. 예수님이 하나님이고, 단순 공생애 사역이 아니라 창조주로서 지질학 천문학 역사까지 몽땅 다 망라해야 이 말이 문자적으로 성립할 것 같다.

(5)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들어서 저리로 옮길 것이요.. (마 17:20)
==>> 믿음이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의 이론적인 상한이 이 정도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6) 들의 백합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 ... 솔로몬도 이것들 중 하나와 같이 차려입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마 6:28-30)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금과 은으로 떡칠을 했던 솔로몬의 부귀영화가 야생 들풀 짜끄레기보다도 못했다니..?? 이 말은 정말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곱씹어야 할 것 같다.

자연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하나님이 각 개체들 차원에서 다 알고 모니터링 컨트롤을 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러니 성경에는 신이 인간의 세포 분열(= 머리카락 수)을 모조리 파악하고(마 10:30), 일개 어류가 동전을 삼킨 것까지 안다는 묘사가 존재하는 것이다(마 17:27).

3. 인칭과 인용 방식

성경에서 다니엘서 4장은 1인칭과 3인칭이 뒤섞인 굉장히 독특한 시점으로 서술되었다.
처음엔 느부갓네살 왕이 내리는 조서 내용 그 자체인 듯이 시작하다가, 그 다음에는 느부갓네살 기준인 "내가 이러쿵저러쿵 하던 중에 이런 꿈을 꿨거든? 그러니 다니엘아, 해석 좀 해 보삼~~"이라고 텍스트 전체가 1인칭 시점으로 문장이 전개된다.
그 뒤, 다니엘의 답변부터가 "다니엘이 말하기를..." 이런 식의 평범한 3인칭 시점이다.

내가 알기로 다니엘서는 성경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원문의 언어도 100% 히브리어가 아니다. 중간에 아람 어인지 뭔지가 껴서 바뀐다. 12개의 챕터 중 전반부는 재미있는 기적 스토리, 후반부는 어려운 예언으로 구획 구분이 잘 된 편인데.. 그래도 바빌론 포로기라는 격변의 시기에 기록돼서 그런지 집필 논조가 일관돼 있지 않다.
사실, 스토리가 다루고 있는 시간 간극도 꽤 큰 편이다. 맨 처음에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안 먹은 건 다니엘의 유년기 시절이지만, 마지막에 사자굴에 쳐넣어졌다가 나온 건.. 그야말로 늙어 죽기 직전의 말년이다.

다음으로, 사도행전 1:4는 간접 인용과 직접 인용이 뒤섞인 구절이다.
언뜻 보기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라는 당부는 간접이고, "그 약속에 대해서는 니들도 내게서(예수님) 이미 들어서 잘 알지?"라는 확인은 직접인 것 같다. (KJV, NASV)
하지만 인용 방식이 바뀌는 게 뭔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한 성경 역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까지 몽땅 직접 인용에다 포함시키곤 한다. (개역, NIV 등)

성경 중에는 직접 인용에 대해 따옴표가 쳐져 있거나, 심지어 예수님 말씀의 직접 인용을 빨간색 글자로 표시한 책이 있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편집조차도 하려면 결국 답이 100%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고 모호한 행 1:4 같은 구절에서 막히게 된다.

4. 영적 존재에 대해서

수백 년 전 옛날의 신자들은 꼭 천당 지옥이 아니더라도 성경이 묘사하는 영적 세계, 영적 존재에 대한 동경, 환상이 오늘날의 신자보다 훨~씬 더 강했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첫째, 그 재료 귀하고 인건비 많이 들던 시절에 성경책 하나에도 뭔 삽화와 무늬가 그렇게 많이 들어갔는지..?? 1611년 KJV 원판 책만 봐도 그렇다. 천사 그림, 스랍, 그룹(세라핌 케루빔) 그림 따위 말이다. 그러니 안 그래도 비싼 책이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 ㄲㄲㄲㄲ

둘째, 그 사고방식이 옛날 찬송가 가사에도 투영돼 있다.
20세기에 나온 CCM이나 캐롤 가사 중에 천사가 주어로 나오는 “천사 찬송하기를 / 천사 화답하도다” 이런 걸 보신 분이 있는가? 전혀 없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And can it be라는 찰스 웨슬리의 구원 찬송도 여러 절 중에 2절, “세라핌조차 감격에 못 이겨 주의 깊은 사랑을 노래하도다” 이런 초월적인 내용이 있다.. 이건 영 실감이 안 가서 요즘 찬양집에서는 생략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어로 번역도 절대 되지 않았다. 저 가사는 무려 1738년작이었다.

5. 성경의 논리 전개 방식

  • "... 이런 사람은 불신자만도 못한 인간" (딤전 5:8)
  • "(니들이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세리조차도 그 정도는 할 줄 안다" (마 5:46,47)
  • "그건 마귀들도 믿는 사항이다" (약 2:19)

성경엔 이런 식으로 대적이나 불신자의 존재를 의식한 영적 하한 '마지노 선'을 설정한 논리 전개가 종종 나온다.
"병시나 산소, 문과 출신인 나도 알고 있음"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일이다.

  • 선행으로 구원을 얻는 게 아닌 것만큼이나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 마음 생각만으로 죄를 지을 수 있는 것만큼이나(탐욕 등) 마음 생각만으로 구원받을 수도 있다
  • 예수님은 보이는 병을 고치는 것과 동급으로 보이지 않는 죄를 사할 수도 있다 (마 9:5,6)
  • 평생 나쁜짓 하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구원받는 사람이 있는 것과 동급으로, 반대편 극단에는 평생 가난하고 호구 같이 불쌍하게 살았는데, 복음은 거부하고 지옥 가는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람도 있을 수 있... 아니, 적지 않다.

이렇듯, 성경은 비유 내지 비례식을 동원한 논리 전개도 많이 나온다. 신앙 생활 원리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죽어라고 말 안 듣던 네놈들이 하물며 내가 죽은 뒤엔 얼마나 더 깽판 칠까..? (신 31:27)
  • 죄인인 너희도 자식 새끼 잘 챙겨줄 줄은 아는데 하물며 하늘의 아버지는 너희를 얼마나 더 잘 챙겨 주시겠는가? (마 7:11, 눅 11:13)
  • 동적 바인딩으로 생성된 이방인 교회가 이 정도로 잘됐으면 하물며 정적 바인딩인 유대인들이 회복되면 얼마나 더 잘되겠는가? (롬 11:12,24)

특히 "A:B인데 하물며 C:D는 어떻겠는가?" 요런 패턴 말이다. 로마서에 많이 나온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18 08:35 2022/09/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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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교회와 작은 교회

1. 작은 교회: 회중 찬송

본인은 하루는 창립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서울 교외의 자그마한 교회에 초대받아 가서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여기는 인원이 30~40명 될까말까한 정도였는데.. 우와~ 본인이 2000년대부터 거쳤던 교회들 중에서 인원수 대비 찬송 부르는 소리가 제일 크고 우렁찼었다.
그러니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여긴 너무 작아서 성가대가 따로 있지도 않은 곳인데..!!

분위기가 좋으니 나는 오랫동안 봉인됐던 옛날 버릇이 저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1절만 익숙한 멜로디 파트로 부른 뒤, 2절부터 n절까지는 테너 파트로 선로를 갈아타서 화음을 넣었다. 멜로디는 남들이 충분히 크게 잘 부르고 있으니까..
즉석 화음을 도대체 얼마 만에 넣어 보는지? ^^

이전에 다녔던 교회에서는 내가 직접 강단에 서서 찬양 인도를 했다. 내 마음대로 화음을 넣을 수 없고 언제나 주선율 파트만 불러야 했다.
그 반면, 대형 교회는.. 찬송가 책 따위 없고 가사만 대형 스크린에다 띄워 준다. 게다가 찬양팀의 악기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니, 개인의 화음 따위는 반대편 극단의 이유로 인해 아오안이고 묻혀 버린다.

내가 화음을 넣자 뒷자리의 어떤 자매님도 테너 파트를 부르기 시작해서 저절로 2성부가 형성됐다.
이런 분위기가 참 정겹고 좋았다. 여기 목사님도 아주 흡족한 표정이셨다.
심지어 내가 강단에서 직접 찬양 인도를 했던 이전 교회도 내 경험상 이 정도로 훈훈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회중 찬송이 일상적으로 박력이 있는 곳이야말로 작지만 강하고 본질에 충실한 교회이지 싶다. 제식 군기가 확 잡혀 있는 사기 충만한 군대와 같은 느낌이랄까..

요즘은 옛날 같은 무지막지한 거리 두기나 백신 패스 따위가 없어지고 실내 마스크 외에는 일상에 아무런 제약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교회는 한번 무너졌던 주일학교와 성가대 인프라가 다시 회복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2. 큰 교회: 찬양

물론, 대형 교회는 교회 음악/찬양 인프라가 아무래도 작은 교회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 목사 1명이 아는 찬양의 범위와, 전문 음악 사역자가 아는 찬양의 범위가 어찌 쨉이 되겠는가..;;
청년부 예배 때는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생소한 신세대 곡들을 불러 댄다. 요즘은 CCM이라는 바닥을 누가 주도하고 있고 누가 신곡을 만들고 번역하는지..?? 본인은 HTML 지식과 CCM 배경 지식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서 멈춰 있어서 그게 궁금하다. -_-;;

대형 교회는 예배를 연령대별로 다양한 시간대에 나눠서 시행하는 게 가능하다. =_=;; 이게 바람직한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오전 9~11시 사이엔 여기도 의외로 클래식한 찬송가와 1980~90년대 비교적 오래된 CCM을 부르는 편이더라.

한번은 여친 교회의 오전 예배에서 최 덕신의 "세상의 유혹 시험이 내게 몰려 올 때에.."(주를 찬양)와 "마음이 어둡고 괴로울 때"(기도)가 흘러나와서 굉장히 반가웠었다. 이런 곡을 내가 공예배 때 소리 내어 부른 건 아마 평생 처음이거나 최소한 21세기 이래로는 처음이지 싶다.

본인은 이걸 중3이나 고1 사이에 다녔던 교회의 중고등부 선생님에게서 맨 처음으로 소개받았고, 그 뒤에 최 덕신/주찬양 음반을 통해서 음원도 접했다. 그야말로 마르고 닳도록 들었기 때문에 머릿속에 반주와 전체 가사가 자동 완성된다.
다행히 교회에서도 3절에서 조가 올라가는 것까지 음반과 똑같이 부르더라. 나도 신바람 나서 힘차게 같이 불렀다.

다만, 일반 기성교회에서는 반대로 내가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즐겨 부르는 곡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가령, 론 해밀턴 아저씨 곡들 대부분이라든가(“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 Rejoice in the Lord” 정도만이 고작?)
Wonderful grace of Jesus(놀라운 주의 은혜)라든가 And can it be that I should gain 같은 곡은 모르는 건지..? 이런 건 침례교에서만 알려져 있는 건가 싶다.

그리고 회중 찬양 대신 성가대만 지나치게 현란 화려하고, 심지어 불신자 음악인을 섭외해서 성가대를 운영하는 건 아무래도 본질을 벗어난 처사이고 잘못된 것 같다. 예배가 겉만 번드르한 공연, 쇼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3. 큰 교회: 주차 요원

자기 땅과 건물이 있는 큰 교회는 필연적으로 방문하는 성도들의 주차 문제를 자체적으로 신경 쓰게 된다.
그런데.. 교회 입구에서 주차 안내 및 차량 통제 봉사를 하는 분은 정말 엄청난 인내와 섬김과 헌신을 실천하는 것 같다. 이건 예배당 청소와 대등한 레벨이지 싶다.
혼자 교회에 남들보다 훨씬 일찍 와서 밖에서 재미없고 골치아픈 궂은일을 해야 하고 예배 시간도 앞부분을 일부 깨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거 무슨 백화점이나 마트 주차장에서 최저 시급 받으면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회를 섬긴 것을 주님께서 기억해서 남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보상해 주신다~~ 라는 관념이 없이는 이런 일을 오래 지속적으로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는 여친이 다니는 모 대형 교회의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중이었는데.. 주차 안내 요원이 각 차들을 “여기서 방향 바꿔서 후진으로 들어오셔서 저 XXXX 차 앞에 세워 주세요” 이런 식으로 일일이 통제하고 있었다.
본인은 후딱 차를 돌려서 그 말대로 잽싸게 주차를 한 뒤, 안내 요원에게도 수고 많고 고맙다고 축복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안내 요원은 뜻밖에도 내게도 운전 잘한다고.. 말귀를 바로 알아듣고 그 공간에서 바로 차를 쏙 신속하게 잘 집어넣어 주시니, 통제하기 편해서 좋았다고 칭찬을 했다. ㅠㅠㅠ
여성 운전자는 그렇게 말하면 제대로 못 알아듣고, 좁은 공간에서 여러 차들이 엉켜서 애먹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이다. 아~ 이런 것도 주차 안내 요원의 고충이겠구나 싶었다.

주차 요원 말고도, 큰 교회는 예배 마치고 나서 사람들이 예배당을 빠져나갈 때, 장로급 어르신들이 출입문이나 계단 한켠에 미리 줄지어 서서 사람들에게 매번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게 있다. 이것도 깨알같은 수고가 필요한 섬김일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16 08:35 2022/09/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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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문제

본인 주변의 사람들의 가족 계획을 살펴보면 다음 다섯 카테고리 중 하나로 딱 떨어지는 것 같다. (1) 미혼이고 평생 독신 / (2) 결혼만 한 뒤 애는 없이 딩크 / (3) 자녀 1명 / (4) 자녀 2명 / (5) 자녀 3명
이거 무슨 -∞, 0, 1, 2, 3 같은 느낌인데.. 이혼· 사별했다거나, 자녀를 4명 이상 낳았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가장 많은 건 (3)번, 자녀1이다.

모두가 잘 아시다시피,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다른 나라들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극심한 저출산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합계 출산율이 몇 년 전에는 1.0 밑으로 내려갔고 0.9, 0.8을 거쳐서 지난 2022년 2사분기에는 0.75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급기야는 2021년을 기점으로 나라의 인구가 진짜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출산은 없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사망이 그렇게도 많았다고 한다.
어느 지역은 상조업자들이 주문이 폭주해서 장례 하나 치르려면 몇 주를 대기해야 할 지경이 됐다나 어쨌다나..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나라가 전체 인구가 줄어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지경이 됐다.;;

지난 2020년 말이 건국 이래로 역사상 인구가 "제일" 많았던 최정점이었다. 대략 5184만이었다. 5200만의 코앞까지 갔는데.. 5200을 넘기지는 못하고 이제 감소하는 거다.
지금은 아주 서~~~서히 감소이지만, 그 뒤로 몇십 년 뒤엔 수습 불가능한 급격한 감소가 예상된다. 이민을 왕창 받아들인다거나, 한국으로 귀화하는 외국인이 폭증하는 그런 이변이 없는 한 말이다.

해방 이후로 남한 한정 2천만 남짓하던 인구가 거의 15년 주기로 1천만 명씩 증가해 왔는데, 1980년대 4천만에서 5천만이 되는 데는 30여 년이나 걸렸다.
2012년 6월에 5천만을 넘고 나서는 국내 등록 자동차 수 2천만 대 돌파가 2014년 말, 세계 이산화탄소 농도 400ppm 돌파가 2013~14년 사이.. 이런 기록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2012년 이후로 10년이 채 되지 않아 인구 증가가 완전히 끝났다. 지금 이 나라는 성장 동력이 멈췄고 미래가 없고 아주 서~~서히 죽어 가고 있는 거다.;;

서울 인구는 지난 2016년에 이미 1천만 아래로 내려갔는데.. 남한 전체 인구는 10~20년쯤 뒤에 "5천만대 붕괴, 4천만대로 원상복귀" 이런 게 분명 대대적으로 보도될 것이다.
인도가 중국의 인구를 추월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비슷한 시기에 다른 방면의 인구 기록을 찍는 중이다. 그러니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 여러분들은 역사적인 지금 이 순간을 잘 기억해 두시길 바란다.

나도 아직 여친만 있는 미혼인 주제에 더 할 말은 없다만, 도대체 뭐가 어디부터 잘못되고 틀어졌는지 갈피를 못 잡겠다. 너무 비싼 집값? 온통 싱글 비혼을 조장하는 분위기? 극심한 남녀 갈등? 비현실적으로 너무 높아진 눈높이? 이거 전부 다??

글쎄, 지금으로부터 50년쯤 전엔 울나라가 컬러 텔레비전조차 미풍양속을 해치고 빈부격차 불평등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면서 나랏님이 수입이나 생산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나 소나 혼자 유유자적하고 덕질 여행 여가를 즐기고 워라벨 즐기고, 돈 모아서 외국여행 가고 옷 사고 차 사는 거 보여주는 유튜브가 넘쳐난다. 드라마는 온통 상위 1% 이내의 연예인 재벌가 갑부들 전문직들의 일상밖에 안 나온다.
굳이 생생하게 보여줄 필요가 없는 영상 같은데 올컬러 디지털 4K 화질로 보여준다.;;

어째 이렇게 극과극일 수가 있을까..??
옛날에 도대체 돈 들여서 가족계획 같은 걸 왜 했나 모르겠다.. 했더라도 늦어도 박통 시절이 끝이다. 1980년대 5공 시절 초기에 즉시 완전히 폐지했어야 했다.

그 와중에 이렇게 남녀들 눈을 비현실적으로 높여 놓고 쓸데없는 남녀 갈등만 실컷 조장하고..
결혼과 출산, 육아를 사회적 예우가 없이 오로지 희생에 의무만 있는 개 호구 바보 병신 머저리 똘추짓, 남과 상대 비교 스트레스 유발자로 만들어 놓으면.. 출산율은 수직으로 곤두박질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전쟁 폐허, 가난과 굶주림, 북괴의 안보 위협, 인구 대비 교통사고 사상자 1위, 쓰레기 배출 1위 등등 온갖 위험요소나 불명예들을 잘 극복해 왔는데 과연 저출산 1위까지도 극복해 낼까...?? 하~ 모르겠다. 이건 저런 것들하고는 성격이 좀 다른 문제여서 말이지..?
심지어는 1940년대에 대다수의 조선인들이 이제 자기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과 동급으로, 저출산 문제는 해결 불가능이고 이제 다 끝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오존층 파괴니 석유 고갈이니, 3차 세계 대전이니 온갖 극단적으로 비관적인 전망 관측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호락호락 적중하지도 않았었다. 벌써부터 심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에 나라에서도 도저히 못 버텨서 언젠가는 지하철 노인 무임 폐지, 징벌적 독신세(!!), 현대판 고려장 등..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막장 정책이 나오고 기존 복지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뒤엎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최소한 교권 붕괴를 견디다 못해 학교에서 무슨 배틀로얄이 시행될 가능성보다는 훨씬 더 현실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애를 낳고 싶게 만드는 당근 정책보다는 애 안 낳는 사람을 조지는 채찍 정책이 만들기가 더 쉬우니 말이다. -_-;;
그러니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너무 놀라지는 않게 대비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도 많이 다산(!!)한다는 무슬림 가정이 과연 우리나라 같은 집값과 물가에서도 왕창 숫자를 늘릴 수 있을까..??

뭐, 지금과 반대로 무작정 많이 낳던 옛날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게..
그때는 여성 인권이나 장애인 인권이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헬이었다. 여자가 애 못 낳는 건 이혼 사유였고 독신자나 이혼 돌싱인은 완전 사회적 죄인 취급이었다.
인간이 어떤 사회 문제를 해결하면 완전히 깔끔하게 해결하기보다는 반대편 극단의 또 다른 문제 부작용을 남기는 식인 경우도 많다. 사형 제도 폐지가 과거의 사형 제도 오남용과 동급으로 나쁘듯이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14 08:36 2022/09/1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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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이 키우는 호박

누가 자기 집에다가 이렇게 호박을 키우고 있는 걸 우연히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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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하늘을 향해서 줌까지 당기면서 찍다 보니 역시 폰 카메라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화질은 메롱이지만 호박은 대롱대롱.
저렇게 호박을 잘 키운 사람이 부럽다. 구경하는 사람까지 힐링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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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3월 말쯤에, 얼어 죽지 말라고 아직 비닐에 싸여 있던 그 가녀린 호박 모종은..
이제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호박 덩굴로 변모해서 주변 흙과 담장을 몽땅 뒤덮어 버렸다. 아아~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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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까지 일반 호박이건 단호박이건, 탁구공이나 구슬처럼 생긴 동글동글한 씨방 정도만 봐 왔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 훨씬 더 납작하고 쭈글쭈글한 그 '정통 늙은 호박'은 씨방부터가 저렇게 납작하고 쭈글쭈글 주름이 져 있는가 보다.
이런 건 남이 키우는 호박을 통해서 접하게 됐다. ㄷㄷㄷㄷ

2. 내가 키운 애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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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집 건물 근처의 화단에서 몰래 키운 호박으로, 생후 10일 남짓일 때의 모습이다.
모처럼 화단에서 암꽃이 폈는데, 그 당시엔 하필 주변에 수꽃이 핀 게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아까 저 남이 가꿔 놓은 호박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큼직한 수꽃을 긴급 수송한 뒤, 인공수분을 시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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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암술은 표면이 매끈한데, 암술이 누런 가루가 덕지덕지 묻은 수술처럼 보일 정도로 수술을 비벼서 꽃가루 범벅을 만들어 줬다. 그래서 수분이 성공하고 열매가 맺힌 것이다.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귤 크기를 넘어가고, 사과 내지 배와 비슷한 크기가 됐다.
바닥이 흙바닥에 직접 닿지 말라고 아래에다가는 스티로폼 그물을 깔아 줬다.
위에다가는 여기에 호박 열매가 맺히고 있는 걸 숨기기 위해 다른 호박잎을 덮어 줬다.
그게 마치 요를 깔고 이불을 덮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 자라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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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키우던 장소의 사정으로 인해.. 생후 2주 남짓 만에 따게 됐다.
생후 2주짜리 애호박과, 예전에 본인이 득템한 생후 2개월짜리 자가재배 늙은 호박을 나란히 늘어놓아 보았다. 자르니 내부 단면이 서로 이렇게 차이가 난다.
둘을 나란히 도축해서 각각 조림과 죽을 만들어 먹었다. 겉은 단단하고 속은 신선하고 상태가 아주 좋았다.

사실, 저 늙은 호박은 따고 나서도 거의 3주를 놔 두면서 애지중지 갖고 놀았다. 교회에 갈 때도 가져갔다. 너무 만져서 표면이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였다.;;
그래도 쟤를 한없이 놔둘 수는 없고 떠나보낼 때가 됐으니 이렇게 처분을 하게 됐다. 사실 더 오래 놔둬도 됐을 것 같지만.. ^^

사람이 겉에서 호박 뿌리에다가 물과 비료를 주고 잎에다가 햇볕을 마음껏 쬐어 주고, 암꽃에다 꽃가루를 묻혀 주면.. 호박은 열매를 맺어서 사람이 먹을 수 있고 재귀적으로 자가생산까지(=씨) 가능한 신비로운 물건을 3D 프린팅해 준다~!!
아담한 싸이즈이지만 과육 두툼하고 씨앗도 있고 늙은 호박으로서 갖출 건 다 갖춰져 있었다. 호박죽 딱 두 그릇 분량이 나왔다.

3. 이상한 호박

요즘 비 한번 줄기차게 많이 내리는구나~
근데 세상에 이런 꽃도 피네.. 호박꽃의 플러그가 이렇게 생겼을 수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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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이 일반적인 수꽃처럼 하나가 아니라, 암꽃처럼 여러 갈래이다. 그리고 꽃가루가 묻은 짹과 그렇지 않은 짹이 저렇게 섞여 있다.
이 사진에서는 안 보이지만, 뒷부분에 씨방이 전혀 없기 때문에 얘는 전체적으로는 암꽃이 아니라 수꽃이긴 하다.
혹시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게이의 꽃 버전인 건가?? =_=;;

참고로 햇볕 내지 영양이 부족하고 땅이 안 좋아서 제대로 못 자란 호박에서는.. 꽃가루가 없다시피해서 고자나 마찬가지인 수꽃이 피기도 했었다.
식물에도 동물과 얼추 비슷하게 이런 성 관련 속성이 존재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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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한 뿌리에서 암꽃 수꽃이 저렇게 따로 핀다마는,
은행나무는 아주 이례적으로 자웅이주라고 하지?? 아예 뿌리 차원에서 암놈 숫놈이 따로 있는..
그래서 열매 악취가 안 나려면 암나무 숫나무를 가까이 섞어서 심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어린 묘목 상태일 때는 성별 구분이 의외로 어렵다고 그런다.

4. 소생하는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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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박 덩굴은 한때 꽃까지 여러 송이 피울 정도로 한동안 잘 자라고 있었으나, 어느날 밑동만 남고 줄기가 몽땅 잘려 버리는 테러를 당했다. 살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져서 혼자서만 측은히 여기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 일이 벌어지고 열흘 남짓 지나니 그 짤막한 밑동에서도 아주 자그마한 초록색 새 생명의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우와.. +_+

굵직한 밑동과 뿌리가 죽지 않으니 이렇게 살아나기도 하는가 보다. 가슴이 다 뭉클했다.
다만, 충분히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 비를 너무 많이 맞거나, 침수돼서 흙탕물에 파묻히면 밑동이 연해지면서 말라 죽기도 하더라. 호박이 천하무적은 당연히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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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지난 6월 말, 강가 둑에 심겼다가 폭우 침수 때문에 진흙을 잔뜩 뒤집어썼지만.. 그 와중에도 곳곳에서 새순을 만들어 내며 살려고 몸부림쳤던 호박의 흔적이다. 이 진흙은 물만 끼얹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어서 않아서 일일이 다 씻어낼 수도 없다. 흙투성이가 된 잎들은 그냥 서서히 말라죽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이 호박은 며칠 뒤 더 심한 폭우가 쏟아지면서 전부 물에 휩쓸려 내려가 버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여기는 다시 잡초들로 뒤덮이고 언제 홍수가 있었냐는 듯이 녹색 천지로 바뀌었으니 야생 자연이라는 건 참 오묘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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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박도 저 폭우 때 침수 피해를 입어서 잎과 줄기의 상당수가 흙에 파묻혔다. 하지만 심긴 지점이 강에서 상대적으로 멀고 높았던 덕분에 완전히 죽지는 않고, 최소한의 덩굴과 잎 몇 포기만 겨우 건졌는데..
그로부터 한 달 남짓 만에 얘는 덩굴 전체를 카메라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왕창 성장하고 부활 소생에 성공했다.

5. 내가 구매한 호박

우리나라는 8월 중순쯤이면 국내 재배된 늙은 호박이 처음으로 수확되고 시장에 나오는가 보다. 단호박도 아니고 늙은 호박을 딱히 수입해 온다는 얘기는 없으니까..

(1) "노지에서 재배한 늙은 호박이 첫 출하됐다. 서울 가락시장에는 전남지방에서 생산된 늙은 호박이 가을을 알리는 듯 출하돼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호박죽 호박떡 호박진액을 만드는 늙은 호박의 가격은 2000원부터 1만원까지다."
-- 2001년 8월 10일 (☞ 보도 자료)

(2) "경남 하동군은 고품질 맷돌호박이 본격 출하하기 시작했다고 9일 밝혔다.
‘늙은 호박’으로도 불리는 맷돌호박은 지난 8일 첫 수확을 시작으로 10월까지 수확이 이어질 예정으로 올해 하동군에서는 70여 농가가 330여t을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 2019년 8월 9일 (보도 자료)


그래서 본인은 8월 중순쯤 가락시장을 다시 찾아가서.. 꿀단지처럼 생긴 늙은 호박 두 덩이를 득템했다. 하나 무게가 거의 4kg에 달한다. ㄷㄷㄷ
가을 내내 집과 차와 텐트에 비치해서 갖고 놀다가 도축해서 죽 쑤어 먹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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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이니 해남이니 강진이니.. 남부 지방이 햇볕이 많이 내리쬐어서 그런지 호박이 많이 생산되는가 보다.

호박은.. 꼬불꼬불 덩굴도 예쁘고, 꽃도 예쁘고.. 동그란 씨방도 예쁘고,
푸르딩딩 동글동글 애호박도 예쁘고, 쭈글쭈글 납작한 누런 늙은 버전은 더 예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평범한 공 모양이기만 했으면 내가 호박에 결코 이 정도로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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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참외 모양의 애호박도 있지만 말이다. 이건 시장에서 사온 것..ㄲㄲㄲㄲㄲㄲ)
그런즉 애호박, 단호박, 늙은 호박은 언제까지나 인간과 함께 있을 것이로되, 그 중에 제일은 늙은 호박이니라.

Posted by 사무엘

2022/09/11 08:36 2022/09/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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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찬양 중에는 가사가 "주께 영광, 거룩하신 주".. 이런 관점인 것도 있고, "평안, 평화, 평강"이 주제인 것도 있다. 그리고 '사랑'은 뭐.. 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런 키워드 중 grace '은혜'는 어떨까..??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1. 신 상우 <하나님의 은혜>(1998)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

얘는 이 분야에서 가장 독보적인 곡일 것이다. 발표된 지 20년이 넘은 유명한 곡이니 나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성악가 박 종호가 부른 음반 음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참고로 이거 작사· 작곡자는 오랫동안 암 투병을 하다가 지난 2017년에 이미 소천했다고 한다.

2. 조 성은 <은혜 아니면>(2009) "어둠 속 헤매이던 내 영혼 갈길 몰라 방황할 때에 ...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

신 상우 이후로 21세기엔 이런 은혜 성가가 만들어졌다.
내 개인적으로는 교회에서의 장년부 특송을 통해 2010년대 말쯤에 접했다.

3. 소 진영(마커스워십) <오직 예수 뿐이네>(2016)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

난 HTML과 CCM 지식은 1990년대 말에서 사실상 멈춰 있다.;;
사람들이 테이프나 CD 같은 음반을 구매하지 않게 됐고, 옛날 1990년대에 CCM계에서 한가닥 하던 뮤지선들은 이제 다들 목사나 교수로 신분이 업글됐다.
이 와중에 세상 음악 말고 요즘 CCM계는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요즘도 "경배와 찬양" 시리즈가 진행되고 있는지, 기존곡 컴필레이션이나 리메이크 말고 신곡 앨범을 발표하는 사람이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이 와중에 2010년대부터는 마커스워십이라는 게 그렇게도 뜨는가 보다.;;; 일단 저런 곡이 있다는 걸 체크해 뒀다. 외국곡 번역이 아니라 스스로 곡을 만들기도 하는가 보다.

난 한 치의 예외 없이 무조건 옛날 찬송가가 더 낫다고 꼰대처럼 고집하고, 요즘 CCM은 질이 낮아지고 가사가 깊이가 없어지고 가요 같아지고 있다고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전반적인 추세는.. 몇백 년 전 클래식 찬송가는 "거룩 거룩 거룩, 영광을 주께 돌려드리세, 만물은 다 찬양하여라, 천사 화답하여라" 이런 관점이 많았던 반면, 요즘 CCM은 "나 주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예배하기 원합니다, 성령님이여 오소서" 이런 거 위주로 가사를 쓰는 관점과 스타일이 달라졌다는 것 자체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겠는지는 각자 판단해 보시라.

그리고 젊은 사람 MZ세대라고 해서 마커스워십 부류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차이가 있겠지만.. 가사가 너무 자조적인 신세 한탄 일색이라는 비판도 있고.. 또 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노란리본충이라는 비판도 있더라.

뭐, 그런 걸로 트집 잡자면 끝이 없고 이 글이 그런 걸 따지는 게 목적은 아니니 그런 얘기를 더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찬양 사역자가 좌독인 건 참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부흥 부흥 이러다가 2000년대 이후 좀 이상해진 사람처럼 말이다.

4. 손 경민 <은혜>(2020) "내가 누려 왔던 모든 것들이 ...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이건 아예 코로나 시국 때 발표된 완전 따끈한 최신곡이구나.. 여친 교회에서 맨 처음에 특송으로 들었다가 요즘은 회중 찬송으로도 종종 불러 봤다.
이렇듯, 은혜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 생각보다 다양한 신곡이 발표되었음을 알 수 있다. 킹 제임스 진영 교회에서는 거의 접하지 못하거나 한 5년~10년은 더 지나야 접했지 싶다.

한번은 여친 교회에서 주일 예배 때 설교 주제가 '은혜'였던 적이 있었다. 곁들여진 찬송은 당연히 저런 곡들 위주였다.
기성 교회 대형 교회에서 “킹 제임스 이외의 다른 성서에서는 이 구절이 변개되고 삭제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는 천년왕국 때 이뤄지고, 지금 우리에게는 영적인 교훈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강해를 기대할 수는 없으니 아쉽다.

그 대신.. 목사가 목사이다 보니 예화의 스펙트럼이 상상을 초월하게 넓더라. 일례로 은혜를 주제로 한 설교에서 시인 피 천득의 생애가 알 게 뭐냐..;; 그리고 이게 원래 그리스어로 무슨무슨 뜻이고 이런이런 깊은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라는 원어 인용이 잦다.

나 같았으면 은혜와 긍휼의 차이, 은혜와 믿음의 관계, 은혜와 평강의 관계.. 성경에서 이런 용어가 등장하는 용례 위주로 썰을 풀거나 이런 설교 강해를 기대했을 텐데, 이 바닥은 성경 개념을 접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대형 교회는 찬양이 정말 다양하게 선곡되고, 어린애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잘 돼 있고 사람들 사교의 폭이 넓고 인력풀이 쟁쟁한 것 하나는 부러워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09 08:34 2022/09/0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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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에 대한 여러 생각

1. 자유

(1) 자유는 정치적인 것, 영적· 종교적인 것(성경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등 영역이 문맥에 따라 다를지언정, 기본적으로 좋은 것이고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다. 인간이 짐승처럼 먹고 자고 싸고 번식만 하면서 그저 오늘만 사는 동물이 아닌 한 말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빈말이 결코 아니다. freedom과 liberty의 차이는 마치 love와 charity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2) 그러나 좋은, 선한, 진짜 자유가 있는 한편으로 악한, 가짜 자유도 있다. 가령, 죄로부터의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죄를 마음껏 짓는 자유,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는 나쁜 것이다. 자유라는 건 오· 남용되기 쉬우며, 나쁜 자유를 저지하느라 좋은 자유까지 같이 박탈당하곤 한다.

(3) 6· 25 전쟁에서 남한 대한민국 편을 든 사람들은 단순히 자기 나라, 자기 민족, 자기 가족만 지키려고 싸운 게 아니었다. 바로 북괴라는 악한 공산주의 독재 체제에 맞서 싸운 것이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것이다. 즉, 남한은 북한보다 도덕· 윤리적으로 더 우위에 있었고 선의 편, 정의의 편에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학교 교과서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슬쩍 빼서 '자유 민주주의'를 그냥 '민주주의'로 바꾸는 식의 불순한 수작을 용납해서는 결코 안 된다.

(5) 단, 이 모든 정황에도 불구하고 이 좋은 '자유'라는 단어의 뒤에 뭔가 붙어서 '자유당', '자유주의' 이러면 안 좋은 뜻이 된다는 게 안타까운 점이다. 마치 '권위(주의)'처럼 말이다. '자유주의'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질서까지 몽땅 제멋대로 무시하고 선 넘는 방종 뉘앙스가 짙고, '자유당'이야 뭐.. 우리나라 초창기에 너무 악행을 많이 저질러서 말이다.
안 좋은 선례가 남으니 훗날 진짜 리버럴한 정당까지 이름을 '자유당'이라고 짓기가 난감해져 있다. 원조 자유당은 리버럴 쪽 성향이 절대로 아니었다.

2. 위인전

위인전이라는 게..
과거에, 애들을 위한 읽을거리 자체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뭔가 "너도 이런 사람의 삶을 본받아라 배워라" 바른생활 어린이 육성 차원에서 읽히는 게 많이 권장되었다.
오죽했으면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공익광고에도 맑고 고운 심성을 가꿀 수 있는 건전(!!) 영상물의 예시로 위인전이 당당히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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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즘은 사람에 대한 평가 스타일 자체가 마냥 일방적으로 신격화하고 미화하고 띄워주는 게 아니다. "다 똑같은 인간이고 입체적인 면모가 있다" 쪽으로 가는 편이니, 위인전이라는 장르의 약발이 예전만 하지 않다. 그냥 인명사전, 평전이나 읽고 말지.

특히 위인으로 여겨졌던 사람이 실제 업적은 그 정도로 위대한 게 아니었다는 게 알려지기도 하고.. 심지어 추악하고 이중적인 면모, 위선적인 행적 같은 게 훗날 까발려지기도 한다. 그러면 위인전을 읽었던 아이가 커서 배신감과 동심파괴를 경험하게 된다.
노구치 히데요는 말할 것도 없으며, 자기 가정부를 착취했던 마르크스, 자기 애는 고아원에 보내 버린 교육학자 루소, 간디의 사생활.. 이런 건 아주 간단한 예일 뿐이다.

그러면 오늘날 위인전 장르는 아무 쓸모가 없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20세기 후반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전에,

  • 교통 통신 의료 따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불편했고 스마트폰이고 인터넷이고 행정 전산 시스템이 없었던 시절,
  • 사회 보장 복지 제도가 없던 시절,
  •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까딱 잘못하면 쫄딱 망해서 알거지가 돼서 길거리에 떠돌 수 있던 시절,
  • 세계가 지금처럼 긴밀히 협력하는 게 아니라 군비 경쟁을 하고 대판 싸우던 시절,
  • 인종 차별이 있고 여성· 장애인 인권이 개막장이던 시절,
  • 법보다 주먹이 우선인 정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심했던 험악한 시절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그런 시절에도 어떤 사람은 정말 눈물나게 노오오력해서 뭔가를 이뤄 냈다는 것, 그 자체는 과장 미화가 1도 들어가지 않은 팩트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후세가 깨달음과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아니며, 지금이 그 시절에 비해 모든 여건이 무조건 절대적으로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때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원천 봉쇄되고 통하지 않는 유도리 꼼수도 많다. (행정 전산화, 각종 안전 시설 강화 등..)
그래서 그때와 지금의 공통점과 차이점, 본질은 동일한 채 형태만 바뀐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의 고뇌를 우리도 느껴 볼 수 있다.

예전에도 몇 번 했던 말이지만, 박 정희가 그 시절에 만주 군관학교에 들어가서 교사에서 군인으로 신분을 업글한 건 요즘으로 치면 그냥 국립대 공대 나와서 대기업 연구소 들어갔는데, 영 마음에 안 들어서 때려치우고 의전이나 로스쿨에 다시 들어간 것과 거의 똑같다.. 이런 정도로 transform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작정 신격화하거나 일방적으로 개새끼로 비하가 가능한 극단적인 인물은 세상에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안목이 있어야 지금 사회에 대한 쓸데없는 불만이나 피해의식도 없어질 수 있고, 이상한 정치 선동에도 넘어가지 않고 평정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우수한 영상 매체인 비디오를 바르게 선택, 활용하여 맑고 고운 심성을 가꾸도록 우리 모두가 바른 길잡이가 되어야겠습니다.
한 편의 비디오,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비디오가 아니라 유튜브겠지.. 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

3. 협업과 분업, 전문화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이런 초딩 바른생활스러운 문구가 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워낙 복잡다단하고 한 명이 어떤 프로젝트나 시스템에 대한 큰 그림부터 시작해서 미주알고주알 현업 실무 디테일 내지 기계 나사 구조 하나까지 다 이해하는 게 불가능한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데서는 분업이란 게 큰 힘을 발휘하곤 한다.
심지어는 이런 일화도 전해진다. 누구 질문이나 인터뷰에 답을 한 것 같은데..

저는 남들이 선망하는 그 NASA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입니다만..
달로 최단거리로 가는 그 정교한 궤도를 어떻게 계산해서 구하는지,
허공에 발사된 로켓이 얼마나 많은 부품들로 이뤄졌고 도대체 어떻게 제 방향을 찾아서 날아가는지,
무게와 공간 배분을 어떻게 최적으로 뽑아서 달 탐사선을 만들었는지
그런 건 솔직히 저도 하나도 모릅니다. 제가 보기에도 신기해 죽겠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제가 NASA에서 일하는 한,
제가 맡은 전자식 컴퓨터 패널 안의 부품들의 불량 때문에 아폴로 계획이 실패하고 인간이 달에 못 가게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 <우리는 달에 가기로 했다>, 리처드 와이즈먼, 2020 중의 문구를 각색

NASA 공돌이라고 해서 전부 다 천체 궤도역학과 로켓공학의 전문가는 아니다~~ 이런 얘기인데,
뭐, "컴공 평점 4 출신이더라도 PC 조립 따위는 못 할 수 있고 인텔 AMD CPU 덕후인 것도 아니다"하고는 좀 다른 관점의 얘기인 듯하다. ^^

옛날에 "논리야 놀자" 시리즈 책에도 비슷한 비유 일화가 있었다.
장사 안 되어 파리 날리는 어느 중국집에서.. 궁여지책으로 다른 떼돈 버는 유명한 중국집에서 근무하던 아무 요리사 한 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청난 거액 연봉에다 파격적인 조건을 동원해서 간신히 스카웃해 왔다.
근데 그 요리사가 출근해서는 일을 하질 않아서 지배인이 질책을 하는데.. 그 요리사 왈, "저는 전 직장에서 파만 썰었는데요..?? 파를 써는 속도와 모양은 세계 기네스북 급이지만 다른 요리는 잘..??" 이었대나..

글쎄, 아무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데려 왔다지만 기본적인 면접도 없이 "너무 아무것도 안 묻고" 사람을 뽑은 것 같다.;;
실제 중국집 요리사 업계가 저 정도로 극단적으로 분업화돼 있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어떤 엘리트 집단에서 아무나 한 명 데려 오면 아무거나 왕창 잘하고 우리 업무에 도움이 되겠지" 이런 생각은 틀릴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라 하겠다.

이런 기질은 과학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군대에서도 아주 강조한다.
Starship troopers에서는 프로파간다 선전 영상물에서 정보 병과, 보병, 항공기 조종 같은 병과가 나오면서 군대에서 각자 맡은 임무만 잘 수행하면 "승리는 언제나 우리의 것" 이러고 있고..

심지어 태평양 전쟁 시절에 그 유명했던 윌리엄 홀시 장군의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표지판에도 아래를 보면.. "우리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수행해서 저 쪽발이 원숭이들을 다 박멸해 버리자~ 씨를 말리자~!" 이런 요지의 섬뜩한 문구가 있었다.
"You will help kill the yellow bastards if you do your jobs well" ㄲㄲㄲㄲㄲ

"남일에 오지랖 부릴 필요 없고, 굳이 신이 하는 일의 내부 디테일을 다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냥 하라는 것만 잘 순종하고 믿어라. 큰 일 바라지 마고 그냥 니 여건에서 니가 할 수 있는 일에나 최선을 다해라"
어찌 보면 이건 신앙 생활에도 통용되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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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당심이 궁금하다면 내가 만든 제품을 써 보아라
그래서 이런 자매품도 있다. (북괴 어느 동네 공장 안에 걸려 있는 선전문구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2/09/06 08:36 2022/09/0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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