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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기기의 종류

옛날, 스마트폰이 없고 지금 같은 초고속 무선 인터넷이란 게 없고 컴퓨터가 고화질 고음질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거뜬히 처리할 정도로 성능이 좋지 못하던 시절에는(대략 20세기 말, 1990년대까지)..
우리에게 음성과 동영상 정보를 제공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아날로그 기술 기반이었다.

매체 재생(!!)이라는 건 (1) 방송국의 전파를 받아서 재생하는 기능, 그리고 (2) 테이프에 저장된 것을 재생하는 기능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라디오의 경우, 한 기기가 둘을 모두 수행해서 '오디오'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 같다.

그러나 영상 쪽은 텔레비전은 전파 수신 기능만 있고, VCR 또는 VTR이 기존의 텔레비전과 단자를 연결해서 재생 영상을 보여주는 형태로 성격이 나뉘어 있었다.
텔레비전과 VCR의 기능이 일체형으로 통합된 물건도 나오긴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가성비가 안 맞고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비디오의 신호를 받기 위해서는 텔레비전의 채널을 꼭 4번으로 맞추곤 했다.
그리고 VCR도 텔레비전 방송 녹화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는 TV로 신호를 보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 역시 TV의 신호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VCR을 켜고 TV 채널을 4로 맞추면, 재생 중일 때는 비디오 테이프의 영상이 나오고, 그렇지 않을 때는 VCR이 받고 있는 TV 채널의 영상이 나오곤 했다.

과거에 있었던 오디오/비디오 기기의 차이를 이렇게 생각해 보니 흥미롭다.
텔레비전은 제작의 난이도와 브라운관의 부피 문제 때문에 휴대용 형태로 만드는 건 영 무리였으며, 일부 나온 제품도 그냥 흑백이었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그 반면, 라디오는 기계 구조가 더 단순하고 사람도 눈을 안 쓰고 귀로 듣기만 하면 되니, portability(휴대성)이 근본적으로 더 뛰어났다. 그래서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초소형 라디오는 옛날부터 있었다. 트랜지스터가 괜히 발명된 게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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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도 호락호락 쉽게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우리나라 금성사가 1960년대에 최초로 만들어 낸 국산 라디오만 봐도, 기능은 참 단순 단출한 게 부피는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라디오 말고 음반을 재생하는 휴대용 전자기기는 SONY의 그 이름도 유명한 '워크맨'이 발명되기 전에는 없었던 것 같다. 워크맨 또는 '마이마이'라는 상표명이 거의 보통명사처럼 돼 버렸다.
LP 레코드는 그 육중한 지름부터가 호주머니 휴대와는 담을 싼 형태이고.. 카세트 테이프가 최초로 '밖에서 걸어가면서 음반을 듣는' 시대를 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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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1) 휴대용 초소형 오디오는 스피커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이어폰을 꽂아야만 청취 가능하다. 똑같이 휴대용이어도 아까 그 소형 라디오는 허접하게나마 자체 스피커로 소리가 나오기는 하는 반면, 워크맨 부류는 무조건 이어폰으로만 소리가 나온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전원도 건전지만 사용 가능하다. 나중에는 전용 충전지를 쓰는 것도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AC 전원 대신 전지만 지원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1980년대에 오디오 CD가 나오면서 그쪽은 동그란 휴대용/미니 CD 플레이어가 별도로 담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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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는 디지털 매체인 덕분에 음질이 매우 좋다. 곡의 탐색 방식도 무식한 되감기/감기가 아니라 아주 간지 나 보이고..
게다가 번쩍거리는 디스크의 외형은 뭔가 21세기 하이 테크놀러지의 포스가 느껴지니.. 모든 것이 신기한 물건이었다. 사실, 테이프는 디지털 음원 매체에 비해 다음과 같은 점이 몹시 불편했다.

  • 무음 구간에서도 테이프의 재생 주행만으로 듣기 싫은 '쓰으으읍' 소리, 일명 hissing noise가 남. 테이프를 듣다가 CD를 들으니 이 노이즈가 없는 것만으로도 완전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 기계마다 재생 속도가 불균일한 편이어서 pitch가 왜곡됨. 느린 것보다는 빠른 게 많아서 원래 속도보다 거의 2~3% 가까이 빠르게 재생하는 물건도 있어서 아주 불쾌했다. 참고로 재생 속도가 6% 정도 더 빠르거나 느려지면 조가 한 반음만치 완전히 내려가거나 올라가 버린다.
  • 앞뒤로 감고 테이프 방향 바꿔 끼우는 게 몹시 불편함. 컴퓨터 주기억장치의 명칭이 왜 random access를 그리도 강조하는 형태로 지어졌는지(RAM)가 이해된다.
  • 늘어나고 씹히는 현상은 정확하게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발생하는지 잘 모르겠다. 본체 안에서 곱게 돌아가기만 해야 할 테이프가 밖으로 줄줄 새어나와 있는 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다만, 같은 음반이라도 CD는 단가가 테이프보다 1.5~2배가량 더 비쌌으며, 재생기도 더 비쌌다. 녹음도 가능하지 않고.. 그러니 테이프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고 별도의 고유 영역을 갖게 되었다.

워크맨 내지 마이마이보다 더 큰 체급의 오디오는 영어로 일명 (2) boombox(붐박스)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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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피커는 일체형으로 1개 또는 2개인데, 1보다는 스테레오 채널을 지원하는 2가 더 일반적이다. 그리고 원한다면 이어폰 연결도 물론 가능하다.
  • 테이프 데크도 역시 1개 또는 2개인데, 이건 2보다는 1이 더 일반적이다. 2는 테이프끼리 녹음, 즉 복제를 지원하는 버전이다. 물론 1개짜리도 라디오 방송 녹음 정도는 할 수 있게 빨간 녹음 버튼이 있다.
  • 좀 고급형은 꼭대기의 뚜껑을 열어서 CD를 집어넣을 수도 있다.
  • 전원은 건전지와 AC 전원을 모두 지원하는 게 보통이다.
  • 어떤 물건은 통상적인 AM/FM 라디오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채널의 음성 신호를 수신하는 기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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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붐박스는 걸어 다니면서 청취하는 것보다는.. 들고 다니다가 실내에서든 야외에서든 사용할 때는 내려놓고 사용하는 형태에 가깝다. 들고 다니기 편하라고 위에는 손잡이가 필수적으로 달려 있다.
옛날엔 각진 직사각형 모양이 주류였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동글동글해졌다. 아래의 금성 TSR-581은 옛날에 우리집에도  있었다. 완전 추억 돋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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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TSR-581처럼.. 좀 고급인 제품은 현재 출력되는 소리의 음량을 게이지 형태로 표시하는 기능이 있었다. 그것도 양 채널별로 말이다.
주파수 대역별로 음량을 다 표시하려면 저런 1차원 선이 아니라 2차원 평면에서 스펙트로그램을 그려야 할 것이고, 그걸 디지털 신호를 대상으로 구현하려면 푸리에 변환이 필요할 것이다..;;

음파를 단순 파형 이상의 온갖 현란한 애니메이션으로 표시하는 기능이 바로 컴퓨터용 mp3 재생기들이 지원하는 시각화 기능이다. 그럼 아날로그에서는 그런 기능을 어떻게 구현했을까?

오디오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큰 체급은 휴대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 대신 다양한 기능과 극한의 음질만을 추구한 (3) hi-fi / 미니 컴포넌트, 혹은 일명 전축(전기 축음기??) 등으로 불리는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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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조건 AC 전원 기반이며 손잡이 따위는 없다.
  • 좌우로 거대한 고출력 스피커가 별도의 파트로 구비되어 있다.
  • 음파의 주파수대별로 음량을 조절하는 이퀼라이저가 있다.
  • 공간 제약이 없으니 옛날 물건 중에는 꼭대기에 LP용 턴테이블을 갖춘 경우도 있다..;;

먼 옛날에 본인의 집에는 산요-한일 전자에서 제조한 전축이 있었다. 테이프끼리 녹음은 2배속으로 할 수 있으며, 무선 마이크가 있어서 FM 98MHz로 맞춘 뒤에 주변 소리를 테이프에다 녹음도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본인이 접했던 붐박스급 오디오 중에서는 저런 걸 지원하는 물건을 못 봤으니, 전축이 오디오로서의 기능이 가장 뛰어났던 셈이다.

옛날에는 '인켈'이 전축 제조사로서 CF도 많이 내보내고 무척 잘 나갔었는데 요즘은 어찌 됐나 모르겠다.
사실, 일본이 아날로그 기반의 전자 기기의 압도적인 명품 명가였고, 이 점에서는 굳이 라디오나 TV뿐만 아니라 코닥 같은 필름 카메라 제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그 지위가 많이 흔들리게 되었다. 심지어 디지털 기술을 취급하는 MP3 플레이어 제조사들조차도(아이리버, 코원..)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됐으니, 기술 발전이라는 건 정말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노릇이며 이 바닥에 종사하는 기업 경영자들은 어깨가 더욱 무거울 듯하다.

요즘 오디오는 구닥다리 테이프 데크는 빠지고(어쩌면 CD 데크도!) USB 꽂아서 MP3/WMA를 틀어 주고, 그냥 스마트폰보다 더 음질 좋은 스피커를 제공하는 것에만 의미를 둬야 할 듯하다. 하긴, 요즘은 블루투스 덕분에 스피커 단독으로도 장사가 얼마든지 된다. 스피커가 출력할 음원은 주변의 스마트폰에서 무선으로 공급해 주고 말이다.

지금도 중· 고등학교 영어 듣기 평가는 EBS 라디오로 진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대 전자 기술의 총아인 스마트폰이 아날로그 라디오의 기능마저 흡수하는 건 기술적으로야 일도 아닐 텐데.. 인터넷 데이터 장사 밑천을 날리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제공되지 않는 것이지 싶다. 카카오톡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기존 SNS 장사를 망친다고 통신사와 앱 개발사 간에 마찰이 있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오디오 얘기만 늘어놓았는데 이렇게 장문이 한 편 써 졌다.
하나만 얘기를 더 늘어놓자면, 자동차에 장착되는 카오디오는 붐박스라기보다는 전축의 영역에 가까운 물건으로 보인다. 쉽게 붙였다 뗐다 하지 않으며, 자동차 내부는 4채널 서라운드 입체 음향을 제공하기에 최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동차에 장착되는 음향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고급이며, 카오디오는 더위와 추위와 온갖 혹독한 진동에도 견딜 수 있게 꽤 튼튼하게 만들어진다. 과거엔 고급 승용차에 장착되는 카오디오는 위 아래 두 단으로 구성돼 있어서 상단은 카세트 데크와 오디오 조작 버튼이 있고, 하단에는 이퀼라이저 게이지들만 놓여 있기도 했다. 아래의 대우 임페리얼처럼 말이다. (우측 하단을 주목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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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디오는 운전자의 편의를 위해 테이프의 한쪽 면이 다 되었을 때 갈아 끼우지 앉아도 역방향으로 곧장 재생하는 기능이 있으며, 라디오도 일일이 주파수 다이얼을 돌릴 필요 없이 방송이 존재하는 주파수를 자동으로 탐색하는 기능이 있다. 이것은 본인이 자동차 밖의 다른 오디오 기기에서 본 적이 없는 기능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16 08:33 2019/02/1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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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5년 동안 설 명절에 고향에 가서 이렇게 지냈다.

  • 2014년: 동방, 모량, 나원, 불국사, 건천 등 여기 일대의 간이역들을 일일이 답사했다.
  • 2016년: 오랜만에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분황사, 포석정 등을 (다시) 구경했다.
  • 2018년: 중앙선 구 선로 이설 흔적과, 옛 서경주 역 폐건물 주변을 답사했다.

참고로 2015년 설에는 동남아 여행을 갔다. 2017년에는 가족과 함께 강화도 정도만 다녀오고 막 멀리 나가지 않았다.
그 뒤 본인은 올해 설 연휴에는.. 고향에서 그야말로 산과 함께 보냈다! 2016~17년 사이에 서울· 수도권 근교의 산을 오르다가 활동이 좀 뜸해졌는데, 그 다음으로 오랜만에 고향의 산들을 답사했다.

서울-수도권에서는 북한산· 도봉산 일대만 국립공원인 반면, 이 동네는 영락없는 동네 뒷산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듣보잡 언덕도 온통 국립공원인 게 인상적이었다. 경주 둘레길.. 그런 브랜드 따위 없고, 그냥 간지 나는 '국립공원' 타이틀이 깡패다.

1. 경주 남산 (금오봉, 468m)

남산은 기슭에 삼릉과 포석정이 있고, 그 외에도 산 속 곳곳에 불상과 탑, 절터가 수십 군데 이상 놓여 있다. 막 높은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네 뒷산 언덕 급의 만만한 산도 아니다.

등산로가 사방으로 굉장히 많이 있다. 그러니 동서 횡단 정도는 해야 하겠지만 본인은 차를 가져온 관계로 그러지 못했다. 산의 서쪽 삼불사 방면에서 올라서 바둑바위를 거쳐 금오봉 정상까지 오른 뒤, 하산은 삼릉 방면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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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오른 뒤부터는 하늘과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나타났다. 남산은 불상과 탑의 재료를 조달하기에 충분할 정도인 돌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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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아래 주변은 교외이다 보니 온통 논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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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길을 계속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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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사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가족과 같이 올랐고 눈과 빙판도 있어서 진행이 더뎠던 것을 감안하고도 이 정도가 걸렸다.
정상은 그냥 공터였으며, 표지석과 길 안내 표지판 말고 다른 벤치나 헬리페드 같은 인공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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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 방면 등산로는 삼불사 방면 등산로보다 길이 더 넓고, 주변에 문화재들도 훨씬 더 많이 있었다. 여러 불상들이 있었으며 심지어 머리가 날아가고 없는 부처 좌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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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을 마치고 삼릉숲 구간에 들어오니 여기는 온통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라 왕릉은 후대의 조선 왕릉과 달리 무덤 주변에 무슨 기와집 건물이나 시뻘건 입구 문 같은 게 없다.

2. 큰갓산, 송화산 (옥녀봉, 276m)

다음으로 동국 대학교 경주 캠퍼스와 주변의 석장동을 ㄷ자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그 산'을 드디어 올랐다. 성남시 금곡동을 감싸고 있는 태봉산과 크기와 형태가 얼추 비슷하다.
동국대 부속 유치원 근처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는 등산과 하산 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차를 가져가지 않고 버스를 타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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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은 정말 바위라고는 없이 이런 흙길에다 가끔씩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 그리고 가파른 계단만이 쭈욱 이어졌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면 동국대 기숙사 쪽으로 내려가면서 산이 끝나 버린다. 그러지 말고 큰갓산 방면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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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운동 기구와 평상도 나타났는데, 평상 위에다 돗자리 깔고 텐트 치고 누워서 한숨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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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국립공원 '화랑 지구'라는 곳에 진입했다. 아마 큰갓산은 아니고 송화산만 국립공원인 듯했다.
여기 일대는 산의 높이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여러 산봉우리를 올랐다가 내리기를 반복해야 해서 움직이기 힘들었다. 다만, 능선으로 피해 가는 산책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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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 마을이라고 뭘 열심히 만들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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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은 끝에, 송화산의 정상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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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유신 장군 묘도 여기에서 굉장히 가까이 있다던데.. 본인은 여래사 방면으로 하산했다.
여기는 공교롭게도 작년에 중앙선 폐터널을 답사했던 곳과 동일한 지점이었다. 그때는 요런 등산로가 있다는 것을 발견까지는 했지만, 더 올라가면 뭐가 나오는지는 모르는 채로 돌아갔는데 그 의문을 드디어 풀게 됐다.

3. 선도산 (390m)

선도산은 송화산의 남쪽에 있는 산으로, 남동쪽 기슭에 무열왕릉을 비롯해 왕릉이 몇 개 더 있다. 다만, 무열왕릉만 뭔가 울타리가 쳐져 있으며, 나머지 왕릉은 단촐한 형태여서 등산로에서 쉽게 접근 가능하다.
왕릉 주변에는 서당 같은 한옥 건물들이 잔뜩 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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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지금까지 국사 시간에 말로만 들었던 진흥왕의 무덤이라고 한다. 바로 옆에는 진지왕의 무덤도 있다.
등산로는 처음에는 왕릉답게 소나무 숲길로 시작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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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내부에서 길을 잘못(?) 선택했는지 어쨌는지..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인 등산로 대신, 이렇게 하늘이 뻥 뚫려 있고 자동차나 ATV 정도는 지나갈 수 있을 법한 비포장 흙길이 나와 버렸다. 본인은 이 길을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인터넷 지도로 로드뷰를 보면, 초록색 선이 그어진 정규 등산로 말고, 오른쪽에 그래도 희미하게 길 같은 흰 선이 그어진 게 보일 것이다. 그 길을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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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길도 끝까지 가니까 다행히 정상으로 도달하긴 했다. 이건 정상 부근에 있는 '경주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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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을 지나서 정상 마지막 200m 동안은 길이 좁고 가파르고 험해졌는데, 거기를 오르니 이렇게 돌무더기가 두어 개 놓여 있고.. 공터라기보다는 그냥 길목에 가까운 산 정상이 나타났다.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번에도 차 때문에 산을 반대편까지 횡단하지는 못하고 왔던 길로 그대로 내려왔다.

4. 소금강산 (176m)

소금강산은 경주시에서 동해남부선 철길 건너편의 용강동에 있는 자그마한 산이다. 기슭에 근화여중· 여고가 있고, 백률사라는 절이 있다. 높이는 낮지만 세로로 길쭉한 편이며, 동쪽으로 더 크고 높은 산맥이 있다. 그 크고 높은 산맥이 북한산에다 비유한다면 저 소금강산은 북악산뻘 되는 것 같다.

소금강산을 제대로 경함하려면 산을 남북으로 끝까지 종단해야겠지만.. 시간 관계상 그리하지 못하고 일단 백률사에서 산 정상까지 오르는 걸로 마쳤다. 워낙 낮으니 이 산은 정상에도 산불 감시 초소와 운동 기구만 있을 뿐, 다른 거창한 표지석 같은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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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경주에서 등산을 할 일이 있으면 남산의 다른 등산로와 봉우리(특히 고위봉)부터 시작해 그 이름도 유명한 토함산, 그리고 현곡과 건천 방면의 구미산까지.. 갈 데가 많다.
이상이다. 설 연휴 동안 등산만 한 건 아니고 다른 경주 관광을 한 것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사진과 자료가 정리되면 소개하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13 08:36 2019/02/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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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통신 기술이 옛날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정도로 눈부시게, 폭발적으로 발달했다.
전화기만 해도 처음 발명됐던 시절엔 가히 혁신 혁명이었는데 오늘날은 무전기를 넘어 휴대전화와 인터넷까지 일상이 됐으며, 무선 인터넷이 10~15년 전의 유선 인터넷보다 더 빠른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작은 기기로 글과 음성은 말할 것도 없고, 고화질 사진과 동영상을 아날로그도 아닌 디지털 형태로 지구 반대편으로 즉시, 당연한 듯이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런 기술이 없던 옛날에는.. 국가 차원에서 긴급한 상황을 빨리 알리기 위해 봉화와 파발이 쓰였다. 봉화는 전파 속도가 비교적 빠른 대신, 전할 수 있는 게 불/연기의 on/off 정도이니 정보량으로 치면 겨우 두어 비트 남짓한 정말 최소한의 상태밖에 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봉화가 빨라 봤자.. 조선 시대 기준으로 제일 이상적인 상황과 근무 조건을 가정했을 때, 부산에 적이 침입했다는 소식이 봉화들을 거쳐서 400km가 넘게 떨어진 한양의 조정까지 전해지는 데 대략 두세 시간 정도 걸렸을 거라고 그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휴대폰 기지국도 없고 전화선도 없던 시절엔 이런 식으로 위급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파발은 사람이 말 타고 현장까지 물리적으로 달려가서 문서를 전하는 것이니 정보량은 많지만 속도가 거북이 수준일 수밖에 없다. 길목에는 지친 말을 교체해서 바꿔 타는 곳이 일정 간격으로 갖춰져 있었다.

이런 봉화와 파발은 내륙에서의 통신 수단이다.
교통과 통신의 관계를 생각해 봤을 때, 파발마는 통신을 위한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선박 같은 업계에는 '교통수단 간의 통신'도 필요하며, 이와 관련된 표준 규격이 오래 전부터 제정되고 쓰여 왔다. 전파를 이용한 통신 기술이 발명되기 전부터 말이다.

철도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한 폐색 구간에 둘 이상의 열차가 절대로 동시에 진입하지 않게 하기 위한 통신· 안전 장비가 도입되었다.
선박이야 조향이 가능하므로 철도 같은 그런 경로상의 제약은 없다. 하지만 걔네들은 인간이 환경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망망대해를 돌아다닌다! 바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을지 알 수 없고 무슨 정체불명의 괴선박 유령선과 마주칠지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철도와는 사정이 다르다.

비행기의 경우, 위급한 상황에서 비상 착륙은 어느 나라에서든 인도적인 차원에서 무조건 허용하게 되어 있다. 굳이 기체의 이상이 아니라 기내에 응급 환자라도 발생하면 아까운 연료를 버리기까지 하면서 착륙하게 된다.
그것처럼 망망대해에서 조난 신호를 보낸 선박이 있으면 신호를 받은 근처의 다른 선박이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달려가서 구해 주도록 국제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

이건 의무이기 때문에, 정당한 사유 없이 고의로 그 요청을 외면한 선박은 나중에 처벌 받는다. 어떤 경우건 일단 사람 목숨은 구하고 나서 그 다음에 구조자들이 자기 일을 못 해서 손해 본 비용을 관계자나 보험사를 상대로 청구하든가 말든가 한다.
꼭 조난 말고도.. 거대한 선박들이 나눌 만한 질문· 응답 내지 주변에 전파하는 자기 상태 정보는 패턴이 뻔히 정해져 있다.

  • 본선은 후진 중이다.
  • 본선 주변에 사람이 바다에 빠져 있다, 또는 잠수부가 작업 중이다. 그러니 주의하라.
  • 본선은 지금 통제가 안 되고 있으니 접근하지 말라.
  • 당신 즉시 정지하라.
  • 도와달라, 도선사를 보내 달라 등등..

여객기에는 자신이 테러리스트에게 장악당해 있음을 외부에 알리는 불빛 표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택시도 지붕의 택시등이 평소와 달리 뻘겋게 번쩍거리는 건 기사가 택시 강도를 만났다거나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리는 표식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상태를 비언어적인 간편한 수단을 동원하여 잘 보이고 잘 들리게 표현하고, 때로는 간단한 임의의 written language까지 전하는 체계가 선박 쪽은 일찍부터 훨씬 더 정교하게 발달했다. 뭔가 수화 같은 느낌이 드는데.. 선박의 항해사 내지 조타수라면 이 규약은 당연히 달달 외워서 골수에 박혀 있어야 할 것이다.

1. 가장 먼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신호기(signal flag)라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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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깃발들은 무슨 국기가 아니라 A~Z까지 알파벳을 의미한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백지에다 커다랗게 알파벳을 그려 넣고 펄럭일 법도 해 보이는데, 누가 왜 언제 무슨 계기로 이런 도안을 따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가독성· 시안성 면에서 장점이 있으니까 만든 게 아닐까?

알파벳 26자 말고 숫자와 특수 용도 깃발도 더 있어서 신호기 한 세트는 총 40종류의 깃발로 구성된다. 그리고 모든 신호기 도안은 빨노파+흑백 이렇게 5종류의 색만 써서 그려져 있다. 딱 삼원색+무채색.. 한국어에서 용언이 존재하는 기본색들로만 그려졌다는 뜻이다.
아래의 퇴역 군함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깃발들은 만국기가 아니라 다 신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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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깃발들은 알파벳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단독 또는 두 종류가 결합되어서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A는 "본선 주변에서 잠수부가 작업 중이니 천천히 통과하라"이고, B는 "위험물 운반/하역 중"이다. 예/아니요는 Y/N이 아니라 C/N이다.

이런 것들이 규약이 다 정해져 있다.
또한, 알파벳을 "에이 비 씨"(영국/미국)나 "아 베 체"(독일) 같은 특정 언어대로 읽는 게 아니라 "알파, 브라보, 찰리, ..." 식으로 더 튀게 읽는다. '델타'(D)처럼 비슷한 그리스 문자의 독음에서 따 온 것도 있지만 모든 글자가 그런 건 물론 아니다. 에코(E)는 국내에서도 2와 E를 구분하기 위해서 쓰인다. 유니코드 코드값 같은 16진수를 다룬다거나 자연상수가 등장할 때 말이다.

한국어만 해도 굳이 2와 e가 아니어도 숫자 '삼'과 '사' 같은 건 헷갈리기 쉽다. 그래서 주유소 같은 데서는 '잉이삽산' 식으로 받침 발음을 왜곡해서 clearify하지 않던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알파벳의 발음도 '엠'과 '엔' 같은 건 시끄러운 곳에서 청각적으로 명확한 분간이 어렵다. 거기에다 언어 중립성 같은 문제가 있기도 해서 저런 국제 명칭이 따로 제정된 듯하다.
한자에는 숫자의 변조를 막기 위해서 갖은자라는 게 존재하는데, 글자 언어가 아닌 말소리 언어에서는 발음의 혼동을 막기 위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는 게 흥미롭다.

2. 그리고 다음으로 수기 신호(flag semaphore)가 있다.

이건 동일한 도안인 깃발이 두 개 있고 그걸 사람이 양팔로, 마치 시계의 시침과 분침처럼 각각 어느 각도로 들고 어떻게 흔드느냐에 따라 표현하는 글자가 달라지는 체계이다. 수기용 깃발은 바다에서는 빨강+노랑, 육지에서는 하양+파랑으로 정해져 있지만, 사실 깃발 자체보다는 사람의 팔이 변별 요소 역할을 한다. 깃발은 신호수의 팔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더 분명히 드러내 주는 역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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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신호는 깃발 두 개만 있으면 되니 전용 신호기보다는 준비물이 단순하다. 하지만 표현 가능한 정보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숫자의 신호와 알파벳의 신호가 동일하다. 그래서 이 신호가 문자인지 숫자인지를 나타내는 수기를 먼저 보여준 뒤 다음 글자가 이어진다.

3. 끝으로, 발광 신호와 모스 부호가 있다.

'신호기'라고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무슨 철도 신호기 같은 물건이 떠오른다만.. 저기서 기는 당연히 旗(banner)이지, 機가 아니다. 그리고 신호기건 수기건 다 깜깜한 밤이나 짙은 안개처럼 시야가 제한된 곳에서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때는 커다란 헤드라이트 같은 조명을 상대방 선박에게 비추고 이걸 주기적으로 깜빡여서 신호를 보낸다. 저런 A~Z, 0~9 같은 숫자를 그 이름도 유명한 모스 부호계로 인코딩 하고, 깜빡이는 시간 간격으로 돈(점)/쓰(선)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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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부호는 잘 알다시피 전신을 보낼 때 사용되지만, 가까이 있는 선박끼리는 저렇게 눈에 보이는 빛의 형태로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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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부호와 점자는 무슨 관계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난 모스 부호는 뭔가 허프만 트라이(trie)처럼 여러 글자들을 쭉 늘어놓아도 모호성이 없는 binary 부호 체계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살펴보니 그렇지 않더라. 글자 경계 구분을 따로 해 줘야 한다. 가령, 돈만 4개 늘어놓으면 H가 되기 때문에 E(1개), I(2개), S(3개)는 사이에 구분자를 넣어 줘야 표현 가능하다.

옛날에 울펜슈타인 3D 게임에서도 어떤 레벨의 BGM에는 '띠디디.. 띠 띠디..' 이렇게 히틀러를 제거하라는 지령의 모스 부호가 비프음 형태로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월남전 때 베트콩에게 포로로 붙잡혔던 어느 미군이 말은 위에서 억지로 시킨 대로 하지만, 눈을 깜빡이는 걸로 torture(놈들이 포로들에게 고문을..)이라는 단어의 모스 부호를 표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정도면 교묘하게 숨겨진 모스 부호는 추리 소설에서 다잉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고 문제의 해결 단서까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재래식 우체통 편지도 간신히 오늘 내일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마당에 전보 서비스가 아직도 있긴 한가 보다. 본인은 지난 2000년, 정보 올림피아드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교회 어르신에게서 축전을 받았던 게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보라는 걸 접한 경험이었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유한한 개수의 문자를 어디서나 편리하게 주고받을 수 있게 부호화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는데 동양의 한자라는 문자는 이런 실용성과는 너무 안 어울려 보이는 게 사실이다.

끝으로, 본인이 갑자기 이런 재래식 선박 신호 체계를 찾아 본 이유를 얘기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 6· 25 개전 초기의 대한해협 해전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 "J.F (너의 국기를 게양하라.)"
  • "N.H.I.J.P.O (너의 국적을 제시하라.)"
  • "I.J.G (언제 어디를 출항하였는가?)"
  • "L.D.O (목적항구가 어디인가?)"
  • "K (정지하라)"
  • "O.L (정지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이런 것들.

관련 이야기들을 찾아보면 그 당시 우리나라 해군이 북괴 선박에게 실시했던 구체적인 검문 절차를 알 수 있다. 그땐 날이 저물어 있었기 때문에 수기 다음으로는 발광 신호로 저 글자들을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 알파벳 이니셜들이 의미하는 게 뭔지 궁금해졌다. 저 이니셜들은 대한해협 해전 이야기 말고 다른 어떤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재 사용되는 신호용 알파벳과 의미들은 1969년에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제정된 거라고 한다. 그러니 6· 25 전쟁 당시와는 체계가 다르다.
그럼 옛날 신호 체계는 어떠했는지 검색을 해 보면.. International Code of Signals 1931년판이라는 게 나온다. 하지만 너무 옛날 책이어서 그런지 인터넷 상으로 내용을 열람할 수는 없어 보인다. 천하의 구글도 이 책을 스캔 뜨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 이니셜들이 정말로 그때 국제적으로 통용되었던 신호가 맞는지는 본인은 아직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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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9/02/10 08:33 2019/02/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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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음악 관련 에피소드

1. 로베르트 슈만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라고 19세기를 살았던 독일의 음악가가 있다.
이공계 석박사급 전문가 중에도 취미로 하는 음악이 연주건 작곡이건 (준)프로급인 괴수가 일부 있긴 하다만.. 슈만은 그렇지 않고 순수 문과.. 즉, 문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감성파 쪽 천재였다.

그는 20대 초반 나이 때 피아노에 완전 미쳐 있었는데.. 욕심을 내서 연습을 너무 무리해서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원래 지망했던 피아니스트의 길을 갈 수 없게 됐다. 결국 작곡, 지휘, 교육에다 문학 기질을 살린 음악 평론 분야로 전업했다.

나 초등학교 시절에 봤던 피아노 교본 앞부분에 슈만의 초상화와 함께 일대기 소개가 있었다. 다른 부분은 다 잊어버렸지만 “지나친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쳐..”라는 문구는 지금까지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지나치다’라는 국어 용언의 형용사 용법을 이때 거의 처음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excessive.. 동사는 그냥 pass by일 테고)

이게 단순히 손과 손가락이 쥐가 나거나 삐거나 피 좀 흘린 정도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부러지거나 영구적으로 마비되기라도 한 듯한 모양이다. 맨손으로 피아노를 죽어라고 치기만 했다고 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피아노가 자체가 손을 으스러뜨릴 수 있는 무슨 공작 기계이기라도 하지 않은 이상 말이다.

아, 생각해 보니 피아노 뚜껑을 덮다가 손가락이 끼이고 깔려서 다칠 수는 있겠다. ㅡ,.ㅡ;; 하지만 슈만이 그런 사고를 당한 건 물론 아니었다. 원하는 손가락 움직임을 강제로 구현하려고 손가락에 특이한 기구를 끼우고 평범하지 않은 상태로 연습하다가 탈이 난 것이었다. 1832년의 일이다.

장애가 생긴 부위는 오른손 약지였다. 참고로 안 중근 의사는 맹세를 할 때 왼손 약지의 첫 마디를 끊었다.
넷째 손가락이 손가락들 중에 그나마 가장 덜 중요한 부위라고는 하지만, 악기를 연주할 때는 안 쓰이는 손가락 부위가 없을 것이고, 아무 손가락이라도 그렇게 결손이 있으면 군대도 현역으로 안/못 간다.

그래도 얼마나 피아노에 미쳤으면 연습을 저런 식으로까지.. 하는 생각이 들고 그 열정 하나는 존경스럽다.
하농 교본만 봐도.. 끝에 보면 “피아니스트로서 손의 감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이 60곡 전곡을 치라는 주문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닐 것입니다” 이런 문구와 함께 끝났었다. 물론 프로 전공자 한정이겠지만 말이다.;;

이 슈만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연애에도 불같이 미쳤었다. 인생 한번 참 정열적이다.
자기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스승의 어린 딸.. 정확히는 자기보다 9살 어린 10대 아가씨(클라라)에게 완전 꽂혀 버렸으며, 그쪽의 마음도 얻었다! 그래서 없으면 서로 못 사는 사이가 됐다.

그 스승이라는 양반은 당연히 노발대발했다. 아무리 자기 제자라지만, 가난하고 미래 불투명하고 손도 다친 9살 연상의 작곡가 아저씨한테 내 딸 절대 못 준다고 맞섰고 치열하게 민사 소송까지 갔다. 허나, 결국 스승이 졌다.

둘은 1840년에 결혼해서 그래도 금슬 좋게 자녀도 여섯 명이나 낳고 잘 살았다. 부인은 남편이 못 이룬 피아니스트의 길을 계속 갔고 말이다. 이 정도면 뭐 승리한 인생 아니겠나.; (스승과도 나중에 화해했다고 함)
뭐, 빌 게이츠도 9살 연하의 자사 여직원과 결혼했다지만, 슈만은 빌 같은 처지가 아니었지...ㄲㄲ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철덕 작곡가로 유명했던 안톤 드보르작(1841-1904)도 슬하에 딸을 뒀으며, 자신의 어느 제자(요제프 수크)로부터 “스승님의 딸을 제게 주십시오!”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유럽 그 시절의 음악계엔 저런 관행이 드물지 않았던가 보다.

그 제자는 자신의 스승 겸 미래의 장인의 취향을 잘 알았기 때문에, 자기가 여기 올 때 무슨무슨 번호의 열차를 탔고 열차의 움직임이 이랬다고 의기양양하게 보고를 했는데.. 드보르작은 표정이 썩으면서 그 시간대에 그 열차가 다닐 수 없다고 거짓말을 알아챘던가, 아니면 네가 차량 번호와 운행 스케줄 번호를 헷갈렸다고 쿠사리-_-를 먹였다고 한다. 그래도 결혼을 허락은 해 줬다.;;

2. 괴음악 "검은/우울한 일요일"

본인은 먼 옛날 중딩 시절에, 표지부터가 악마의 얼굴 모양으로 뭉게뭉게 치솟고 있는 화재 현장 연기 사진인..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도시전설 괴담 모음집 책을 본 적이 있었다.
"링컨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의 공통점"부터 시작해, 요런 얘기가 그 책에 있었다.

"검은 일요일"이라고.. 프랑스의 루란스 차르스라는 사람이 1932년에 작곡한 음악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암울하고 구슬픈 곡이었는지, 이걸 듣고서 유럽과 미국에서 1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극도의 멘탈붕괴를 체험하고 연달아 자살했다고 한다. 유서에다간 문제의 곡을 당당히 언급하면서 말이다.

"이 곡을 들으니 삶의 의욕이 송두리째 사라지네요. 찢어지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서 저는 이 생을 마감하렵니다. ㅠㅠㅠ 이게 다 검은 일요일 때문입니다. 제 장례식 때 이 곡을 연주해 주세요~" (헐, 조문객들까지 자살하게 만들려고?? =_=;;)
세계의 날고 기는 음악가와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이 이 곡에 무슨 마가 끼였는지를 학문적으로 분석하려 시도했지만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곡과 작곡자의 정체에 대해서 오늘날 검증 가능한 건 물론 하나도 없다. 결정적으로 그 곡은 세계 각국의 방송국에서 연주 금지 처분을 받고, 1945년경에 전세계에서 악보가 회수되고 폐기· 소실됨으로써 이제 더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ㅡ,.ㅡ;;

그나마 저 이야기에 근접한 진실, 팩트는 이렇다.
1933년에 헝가리의 '셰레시 레죄'라는 사람이 우울한 단조풍으로 가사 없는 피아노 연주곡을 하나 작곡했다. 그 뒤 1935년에 다른 사람이 멜로디에 걸맞은 우울한 다른 가사와 제목을 붙여서 Gloomy Sunday라는 노래가 완성됐다.

지금은 저 곡을 유튜브에서 곧장 검색해서 들을 수 있다. (☞ 링크 46초 이후부터 곡이 시작됨) 주선율이 도도도~ b미미미 솔솔솔 도도도~ 로 시작하며, 다시 말하지만 장송곡 같은 우울하고 구슬픈 느낌이긴 하다. "봄봄봄봄(도 미 솔 도) 봄이 왔어요"(이 정선, 봄)와는 정반대 심상이다.
하지만 이 정도 곡을 멀쩡한 일반인이 듣는 것만으로 멘탈이 붕괴해서 머리를 쥐어뜯고 무슨 마 8:32의 돼지처럼 뛰쳐나가 자살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프랑스 사람이 작곡한 검은 일요일(??)은 헝가리 사람이 작곡한 우울한 일요일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저 실존하는 곡조차도 대외적으로는 "Hungarian Suicide Song"이라는 섬뜩한 별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저 곡이 발표되었던 당시에 헝가리 내부에서, 저 곡 듣고서 자살한 게 아닌가 의심되는 사람이 10여 명 정도 있기는 했다고 한다. 그래서 헝가리에서 이 곡이 금지곡으로 찍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곡이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증명되고 검증된 바가 물론 없다. 안 그래도 극심한 가난과 질병, 인생 실패 등을 비관해서 자살할까 말까 고민 중이던 몇몇 소수의 사람이 왕창 우울한 곡을 듣고는 이판사판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권총 헤드샷을 날렸을 수는 있겠다. 루머도 아무 근거 없이 생기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별 상관 없는 얘기이다만.. 1932(33)~45년 사이이면 공교롭게도 전쟁광으로 흑화하던 일본, 나치 독일, 루스벨트 대통령의 집권과 거의 일치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사람을 100수십 명씩이나 연쇄자살로 내몬 악마의 음악이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지만, 단 한 명이라도 사람을 골수 중증 철덕으로 개조시킨 마법 마성의 음악은 지구상에 분명 존재하며, 그 증인 당사자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음악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에는 음악 자체뿐만 아니라 음악이 연주되던 당시의 분위기와 맥락, 청취자의 심리도 기여하는 게 매우 크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07 19:29 2019/02/0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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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대화 수단

한국어는 체언보다 용언을 좋아하는 언어이고, 수식도 형용사보다 부사 위주로 하는 걸 좋아하는 언어이다. 어색한 번역투라는 건 대체로 영어의 문장 구조를 따라 체언의 주변에다 자꾸 무리해서 수식어를 붙이다 보니 생긴다.
간단한 예로 "많은 사람이 있다" vs "사람이 많이 있다"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된다. 더구나 한국어에 more, no 같은 단어는 부사(더)나 형용사(없다)로만 있지, 영어와 대등한 관형사 같은 품사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어가 얼마나 동사를 좋아하면.. '모르다'조차도 동사 한 단어로 딱 존재한다.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모르다'와 동일한 의미의 타동사가 존재하는 언어는 내가 아는 언어 중에는 모국어인 한국어가 유일하다.

영어(do not know)· 독일어(kennen nicht)· 중국어(不知)는 물론이요, 한국어와 그나마 구조적으로 비슷하다는 일본어도 '知らない'(알지 않는다)로 우회해서 표현하고.. 그렇지 않은가? 동사 한 단어로 존재하는 게 편할 때도 물론 있다. "난 그런 거 몰라요~ 난 모른다! / 전쟁을 모르는 세대"처럼..
'모르다'는 '없다, 아니다'와 더불어 '너무, 전혀' 같은 부정 담당 부사가 직통으로 붙을 수 있는 소수의 용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렇듯, 한국어는 부사와 서술어를 좋아하는 언어여서 그런지 체언인 명사의 쓰임이 까다롭지 않고 아주 단순하다. 그냥 그 명칭 자체만 들었으면 장땡이지 그게 단수냐 복수냐, 아무 물건이냐 그 특정 물건이냐(부정관사 정관사) 같은 건 별로 엄밀하게 따지지 않는다.
이건 존재에 대한 인지 방식 자체가 한국어 사고방식과 영어 같은 서양 언어의 사고방식은 서로 매우 다르다는 걸 시사한다. 솔직히 어떤 개체의 개수가 0(없음)이냐 1(유니크)이냐 다수(* 양산형)냐 하는 것은 차이가 꽤 크긴 하다.

영어를 기준으로 고유명사는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기도 하니, 이건 외국어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생소한 단어이더라도 딱히 번역을 할 필요 없고 음역만 하면 된다는 게 시각적으로 보장된다. 무척 편리하다.

다만, 표기를 넘어 언어 차원에서 명사의 종류를 매번 꼬박꼬박 구분해하는 게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다. 그게 더 복잡하고 피곤하고 헷갈리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명사가 일반-보통명사냐 고유명사냐 하는 기준은 굉장히 주관적이며, 우리 생각만치 절대불변으로 딱딱 떨어지지 않는다.

고유명사라도 너무 흔해지고 의미가 확장되면 보통명사로 바뀌기도 한다.  영어도 특이한 문맥에서는 고유명사 앞에서 부정관사(!!)를 잘만 붙여 쓰고 심지어 복수형도 만든다.
가령, 자동차 이름인 쏘나타, 그랜저, 아반떼 같은 것은 명백히 첫 글자를 대문자로 적는 고유명사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차가 아니며, 같은 종류의 차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그랜저 네 대, 쏘나타 다섯 대"랑 "사과 네 개, 귤 다섯 개"에서 각 명칭들이 서로 완전히 다르게 취급되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아울러, 한국어는 명사에 성 구분도 없다. 유럽 언어에 존재하는 성 구분은 동양 철학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음양설의 서양 버전이 아닌가 싶다. 국가나 선박을 she로 가리키는 거, 혹은 성경에서 지혜까지 she로 가리키는 것은 동양권 언어의 화자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고 곧이곧대로 번역하기도 난감해 보인다.

그 대신 한국어가 상당히 꼼꼼하게 구분하는 건 사람이냐 물건이냐, 혹은 생물이냐 무생물이냐 하는 것이다. 솔직히 한국인은 마우스라는 컴퓨터 장치를 발명했어도 거기에다가 생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었을 것이며, 크레인이라는 기계를 발명했어도 거기에다가 학이나 두루미라는 이름을 선뜻 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예로, 영어의 명사화 접미사 -er, -or는 그 동작을 담당하는 사람이나 물건, 추상명사를 아무 구분 없이 모두 가리킬 수 있는 굉장히 요긴한 형태소이다. speaker는 기계 스피커도 되고 연설자도 되며, printer는 기계 프린터도 되고 옛날 인쇄공도 된다.

하지만 이는 한국어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한국어에서는 물건일 때는 -개, -기 등으로, 사람일 때는 -꾼, -장이/쟁이, -자, -사 따위로 꼭 구분해서 번역돼야 한다. 포괄적인 대명사 one의 번역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인해 좀 난감해진다.
이게 불편해서 그런지 저 영어 접미사가 인터넷 통신체 위주로 국어에 이미 많이 유입된 것도 현실이다. 악플러, 갤러, 불편러 등~

둠 코믹스에서 "아 전기톱! 훌륭한 대화수단이지!"가 원문으로 the great communicator인데.. 이게 원전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별칭이었다고 한다. '위대한 소통가'라고.. 이건 정치인으로서 정말 영광스러운 타이틀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커뮤니케이터'가 사람도 가리키고 물건 도구도 가리킬 수 있으니 저런 패러디가 가능하다.

Allow me to communicate to you my desire to have your guns!
너희 총을 원한다는 갈망을 담소 나누고 싶구나!
C'mere boys, I got somethin' to say!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저 만화에서 둠가이는 말 대신 주먹... 아니, 말 대신 전기톱으로 좀비맨들을 썰어 버리는 게 담소이고 의사소통이다. ㅡ,.ㅡ;; 뭐, 현실에서도 좋은 말이 안 통하고 꼭 폭력을 동원하고 힘으로 찍어눌러야 말귀 알아듣고 버로우 타는 부류들도 없지는 않다.

국민이나 의회와 그렇게도 소통을 잘 했다던 레이건 대통령도 공산주의자 같은 악의 무리와는 일체의 대화도, 타협도 없었다.
그는 굉장히 독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고 사상 건전하고 성경관 쪽으로도 당장 기억은 안 나지만 명언을 남겼던 사람이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때는 소련을 맹비난하면서 악의 제국 드립까지 구사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든다.

좌파들은 그걸 '포용정책'이라고 부르더군요.
우리가 적을 적대시하지 않기만 하면, 그 잔인한 독재자가 반인륜적 범죄를 멈추고 평화를 사랑할 거라고 말입니다.
그들을 반대하는 사람은 다 전쟁광이고 말이죠.
... 전쟁만은 피하기 위해 우리의 자유를 팔아넘기는 것은 전체주의의 내리막길로 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적에 대한 순진한 포용 정책이나 대책 없이 희망적인 사고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배신하는 짓이고, 우리의 자유를 탕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폭탄이 무섭다고 우리의 안전과 자유를 팔아넘기는 비윤리적인 짓을 저지를 순 없습니다.
그건 공산국가의 철의 장막 뒤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자유에 대한 희망을 버리세요. 우린 우리가 무사하기 위해서라면 당신들의 지배자와도 타협할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험보다 치욕을 택하는 나라는 지배당하기 딱 좋은 마음 상태이며, 지배 당해야 마땅하다"


1964년 10월 27일, 월남전이 진행 중이고 일본에서는 신칸센이 갓 개통했던 시절에 했던 A time for choosing이라는 연설에다가 1982년 6월 8일자 대국민 담화가 섞여 있긴 한데.. 완전 아멘 사이다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청와대에 서식하고 있는 누가 보기에는 완전 자기 저격이고, 엄청 거슬리고 불편한 내용이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05 08:33 2019/02/0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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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 노트북과 새 폰

본인은 2010년대 초중반까지 노트북은 맥북을, 폰은 삼성 안드로이드 폰을 사용해 왔다. 그랬는데 노트북은 이제 성능이 너무 뒤쳐졌으며 배터리 용량도 너무 감소했다.

그리고 폰도 하필 약정이 끝날 무렵부터 배터리가 급격히 빨리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그로부터 몇 달 되지 않아 걸핏하면 툭툭 꺼지기 시작했다. 폰이 꺼지지 않도록 잘 간수하는(?) 게 마치 옛날에 집안 불씨가 안 꺼지게 간수하는 것 같은 일이 됐다. 서비스센터를 방문해 보니 배터리나 전원 단자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메인보드의 문제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2019년 초의 비슷한 시기에 전화기와 노트북을 모두 교체하게 됐다. 폰은 고맙게도 남아도는 준중고 기기를 그냥 주신 분이 직장에 계셔서 본인은 신규 개통도, 번호 이동도 아닌 기기 변경이란 걸 했다. 그리고 졸지에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폰 유저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 반면, 노트북은 맥OS를 굳이 더 쓸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오랜만에 국산 일반 Windows 기계로 복귀했다. 예전과 반대로 전화기를 애플 것으로 쓰게 된 셈이다.

내가 원하는 노트북 컴터는..
굳이 그렇게 무리하게 얇거나 가볍지는 않아도 된다. 화면 해상도도 그냥 Full HD 1920*1080 급이면 넉넉하고 충분하다. 굳이 2000 안 넘어가도 된다.

또한, 요즘은 무선 인터넷 인프라가 워낙 널리 깔렸으니 광학 드라이브나 유선 랜 단자쯤은 본체에 안 달려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은 지경이 된 거 같다.

다만, 램은 8기가가 뭐야 8기가.. 장난하나? 안 그래도 추후 확장하기도 어려운 주제에..
뭐, 저걸로도 Windows 10 깔고 작업 자체는 가능하다. 하지만 개발툴, 가상 머신, 5개 이상 탭을 열어 놓은 크롬 브라우저, 문서 작업을 위한 오피스 등등을 한꺼번에 너끈히 구동하면서 5년 정도 버티려면 요즘은 정말 못 해도 12기가 이상은 달아야 된다.

(메모리가 부족해서 프로그램을 그렇게 많이 한꺼번에 돌리지 못하면? 고성능 CPU라든가, 요즘 놋붉들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큼직한 화면이 별 의미가 없다. 그 넓은 화면에다가 여러 프로그램들을 도배하려 해도 메모리에서 결국 병목이 걸린다!)

Windows 7 이래로 10까지 Windows의 최소/권장 사양의 메모리 용량이 계속 똑같이 1GB/2GB(64비트 기준)인 건.. 개인적으로 좀 사기극이고 허위 과장 광고라고 생각한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그리고.. 본인은 아재 사고방식이어서 그런지, SSD를 영 미덥지 않게 생각해 왔다. 빠른 건 좋지만 용량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 SSD의 가격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 떨어지고 512GB급 물건도 나오다니 기술의 발달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기계식과 전자식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SSD가 아니면 이 정도 성능과 용량을 자랑하는 노트북 컴이 이렇게 조용하고 가볍고 빠르게 돌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2. 새 컴파일러

컴퓨터를 새로 세팅하면서 Visual C++도 드디어 최신 버전을 깔아 봤다.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IDE, 플랫폼 SDK, 그리고 컴파일러 툴킷이 서로 완전히 분리되고 제각기 따로 노는 게 가능해진 것은 매우 바람직한 변화이다. 그리고 IntelliSense DB를 저장하는 방식이 예전의 MS SQL Server Compact Edition (*.sdf)에서 SQLite (*.vc.db)로 바뀌어 있더라.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소스를 빌드해 보니 다음 사항들만 '경고'로 걸리고 나머지는 문제 없이 컴파일 된다.

(1) GetVersionEx 함수를 사용하는 부분이 deprecated로 처리됐다. Windows 8.1 내지 10부터는 운영체제의 세부 버전을 체크하는 방식이 이 함수를 사용하지 않는 다른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만, 옛 함수가 strcpy 내지 gets처럼 보안 위험 때문에 deprecated 된 건 아니다.

(2) C++에서는 포인터를 정수형으로 typecast 하기 위해서 잘 알다시피 reinterpret_cast 연산자를 사용하는데, 포인터형보다 작은 크기인 char, short, UINT(64비트 환경 한정)로 바꾼다면 언제나 경고가 뜨게 됐다. 이건 static_cast로 형변환을 한 단계 더 거쳐야 된다.

(3) delay-load 콜백 함수의 포인터를 보관하는 전역변수가 보안 강화를 위해 const 형태로 바뀌었다. 이 변수는 이제 실행 도중에 값이 변경될 수 없으며, 우리 코드에서 이 변수를 정의하면서 단 한 번 주소를 지정해 줄 수만 있다.
const PfnDliHook __pfnDliNotifyHook2 = _DelayDLLNotifyHook;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변수는 실행 파일의 read-only 영역에 보관되기 때문에 const_cast 같은 연산자를 이용해서 값을 강제로 변경하려 하면.. 그냥 crash가 발생하게 된다.

1은 그냥 어쩔 수 없고, 2는 경고가 안 뜨도록 코드를 고치고, 3은 조치를 취했다.

3.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선 사항

이렇게 개인용 컴퓨터가 바뀌고 개발 환경이 바뀌자,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 고칠 점이 몇 가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요런 것들을 반영하면 또 0.01 정도 버전 숫자를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1) 이제 Windows 10이 세상을 평정했으니.. About 대화상자에 표시되는 운영체제 버전 정보에서도 10일 때는 년/월 형태의 세부 버전 번호(1709, 1809 같은)가 나타나게 했다. 아래 그림의 위/아래가 before과 after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입력 패드는 지금 떠 있는 도구들을 모두 닫으면 프로그램을 곧장 종료하게 하는 /S 옵션이란 게 있는데.. 이게 프로그램 내부 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언제부턴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게 된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다음 버전에서는 고쳐질 예정이다.

(3) 글꼴을 본뜰 때 CJK 확장 한자 B뿐만 아니라 그 뒤의 C, D도 추가로 본뜨게 했다. 지난번 emoji에 이어서 글꼴 본뜨기 스크립트가 또 바뀌었다.

이쪽 SIP(보충 한자 평면) 한자들은 글자 수가 너무 많은데 일상생활에서 별로 쓰이지 않는 것들이고, BMP(기본 다국어 평면)보다 지원 시기가 훨씬 더 늦은 점으로 인해.. 지원하는 글꼴들도 통상적인 BMP 영역 한자용 글꼴과는 달리 비트맵 글립이 들어있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16픽셀 글꼴은 썩 보기 좋지 않으며, 24픽셀은 돼야 볼 만하다.

(4) Vista 이래로 줄곧 그랬는지 아니면 8/10에서 보안이 강화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UAC를 켜 놓은 상태에서 ProgramData 디렉터리에는 새로운 파일을 생성할 수는 있지만 프로그램이 설치해 놓은 파일을 사용자가 임의로 고치는 건 안 되는가 보다.

본인은 거기에 있는 파일은 사용자가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글꼴 본뜨기 스크립트 같은 일부 파일은 사용자가 곧장 열어서 사용할 수 있게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데이터 파일을 운용하는 방식을 바꾸든가 해야 할 것 같다. 비슷한 문제를 날개셋 타자연습의 연습글 목록 xml에서 이미 한번 겪은 바 있다.

(5) 지금까지 사용자에게서 옛한글 관련 동작 때문에 예기치 않은 오동작 의심 증세 문의를 많이 받았다. 옛한글은 일상생활에서는 안 쓰이다시피하니.. 다음 버전에서는 프로그램을 기본 설치했을 때 '세벌식 옛한글'을 아예 빼 버릴까도 고민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한글 표현 옵션 탭에서도 한양 PUA 내지 유니코드 1.1 레거시는 더 꽁꽁 숨겨 놓고 접근하기 어렵게 할 계획이다. 이제 쓰일 일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6) 그리고 좀 더 유의미한 변화로.. 휠 내지 노트북 터치패드를 아주 미세하게 굴렸을 때의 스크롤 동작을 개선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항목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4. 세밀하게 움직이는 휠

마우스 휠이란 게 PC에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다. 휠이 도는 단위는 기본적으로 칸 단위로 구획이 나뉘어 있으며, 한 칸 돌 때마다 WHEEL_DELTA (120)이라는 값이 전달된다. 120이라는 값은 약수가 많아서(2*2*2*3*5) 다양하게 쪼개기 편한 수라는 이유로 선택된 것이다.

마소에서는 지금은 마우스 휠이 칸이라는 덩어리 단위로 돌아가지만, 미래에 연속된 단위로 아주 부드럽고 세밀하게 돌아가는 휠도 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단순히 움직인 칸 수가 아니라 거기에 delta를 곱한 값을 되돌리게 여유를 두고 메시지를 설계했다.

저게 1990년대 중후반의 일이다. 하지만 본인은 부드럽게 세밀하게 돌아가는 마우스 휠은 아직까지 구경하지 못했다. 그 대신 그 동작은 노트북의 터치패드/트랙패드가 물려받았다. 처음에는 손가락의 궤적을 따라 마우스 포인터를 옮기는 기능밖에 없었지만 나중에는 패드의 오른쪽 끝을 수직으로 문지른다거나, 아무 곳이나 두 손가락으로 수직으로 문지르는 것을 스크롤로 따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 스크롤 요청을 하는 방식이 예전에는 그 윈도우에 대해서 SetScrollInfo/Pos 함수를 호출하고 WM_H/VSCROLL 메시지를 생성하는 것이었다. 화면 캡처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스크롤 캡처 기능이 어떻게 구현됐겠는지를 생각하면 된다.

그랬는데 요즘은 WM_MOUSEWHEEL을 보내는 게 대세이다. 터치패드의 종류에 따라 동작이 케바케이긴 하지만, 이때 옛날 동작과의 호환을 유지하기 위해 WHEEL_DELTA의 배수 단위로 스크롤 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문지른 속도에 따라 그 이하의 값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2010년대부터는.. 스크롤 하다가 손을 급격하게 확 떼면 스크롤도 마치 관성을 받은 듯이 한동안 지속되다가 멈추는 동작까지도 구현돼 있다.

스크롤 요청을 받은 윈도우가 그림이나 웹페이지처럼 원래 픽셀 수준의 부드러운 스크롤을 지원하고 있다면 WHEEL_DELTA로부터 산출한 비율만치 자연스럽게 스크롤을 하면 된다.
하지만 픽셀이 아닌 글자 줄 수 단위로 이산적이고 각진(?) 스크롤을 지원하는 윈도우는 사정이 다르다. 너무 작은 delta 값은 나눗셈 과정에서 아예 0으로 버려지고 없어져서 스크롤이 전혀 처리되지 않을 수 있다. 내부적으로 델타 값을 보관하고 있다가 그 합이 양수나 음수로 WHEEL_DELTA의 배수가 됐을 때 줄을 옮기도록 다소 번거로운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동일한 각속도로 굴렸어도 120 단위만 지원하는 휠을 굴렸을 때와, 그 이상 정밀한 휠을 굴렸을 때 들어오는 delta값의 규모가 서로 같지 않다. 휠의 종류를 얻을 수 있는 API는 내가 알기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종류는 WM_MOUSEWHEEL 메시지 때 날아오는 값들을 보며 얼추 짐작을 해야 한다. (120보다 작은 값이 들어오질 않는가?)

Windows의 리스트 박스에서 마우스 휠을 굴려 보면, 처음에는 목록이 한 줄 정도는 픽셀 단위로 답답하게 굼뜨면서 스크롤 되다가 그 뒤 나중에는 줄 단위로 비교적 빠르게 스크롤 되는 걸 볼 수 있다. 이게.. 휠의 종류와 동작 방식을 감지하는, 한번 "간보는" 동작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서 이런 정밀한 휠을 지원하도록 조치가 취해진 곳은 날개셋의 고유한 에디트 컨트롤, 문자표 리스트, 그리고 편집기의 화면 인쇄(300% 이상의 배율로 확대했을 때)창이다. 사실, 내 것이 아닌 어떤 노트북 PC에서 날개셋 편집기에서 휠 스크롤이 잘 안 된다는 걸 오래 전부터 어렴풋이 경험하긴 했는데 그 당시에는 그다지 문제 의식을 못 느끼고 넘어갔던 것 같다.

처음에는 휠을 굴렸을 때 키보드 포커스를 받고 있는 창이 스크롤 됐지만 Windows 8인가 10부터는 마우스 포인터가 놓여 있는 창이 스크롤 된다. 그리고 저렇게 정밀한 휠이 도입되고, 세로 스크롤뿐만 아니라 가로 휠 스크롤 메시지도 도입되니.. 휠도 마치 고해상도 dpi만큼이나 지금까지 은근히 많이 변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02 08:32 2019/02/0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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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적 제재와 무장

공동주택에서의 3대 민폐는 담배, 애완동물, 층· 벽간 소음이지 싶다. 그야말로 후각· 촉각· 청각이 골고루 다 분포해 있구나! 또한, 상황이 좀 더 열악한 곳에서는 주차 시비까지 추가해서 4대가 될 수도 있겠다. 이것 때문에 살인 사건도 이미 몇 건 난 적이 있다.

주거용 건물은 계단 통로가 담배 냄새가 안 나는 곳을 별로 못 봤고, 요즘은 예전보다 개도 주변에서 부쩍 눈에 띈다. 먹고 살기 빠듯하고 힘들다면서 애완동물 키울 여력은 있는가 보다. 도시는 시골과 달리 동물에 친화적인 곳이 아니긴 하다.

다음으로 소음 문제의 경우, 찾아가서 항의하는 건 씨알도 안 통하니 당하는 쪽에서도 벽이나 천장을 같이 쿵쿵 치는 걸로 응사하는 편인데.. 인터넷을 뒤져 보니 단돈 몇 천원 짜리 고무 망치가 그렇게도 즉효약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 대표적인 사례: 슈랄라 월드)

잘 쳐 주면 건물 자체는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쿵쿵~ 웅웅~ 깊은 진동을 전해서 가해자를 놀라게 하고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고 한다. 본인은 딱히 소음 피해를 겪은 적이 없고 저런 물건을 써 보지도 않아서 잘 모르겠다.

뭐랄까, 지금 같은 법치 의식이나 국가 정체성, 인권 의식이 형성되기 전에,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엄격하게 생기기 전엔... 서양에서는 민간인의 무장과 사적 제재라고 해야 하나, 그런 관념이 지금보다 훨씬 더 관대했다.

그러니 '사략선'이라는.. 한중일 문화에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국가 공인 해적이 있었다. 전시에 민간인이 적국 선박을 터는 것을 합법으로 허용하는 면허 말이다.
그리고 '결투'도 있었다. 결투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누구든 월급 주는 주인님을 위해 깃발 바꿔 달고 싸우는 '용병'은 요즘으로 치면 PMC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국군 상비군이 있는 일반적인 나라에서는 흔하지 않다. 아 하긴, 프랑스에는 아직 외인부대가 있던가?

또한 민간인이 스스로 무장하고 자기 마을을 지키는 '자경단'은.. 용어를 저렇게 쓰면 어감이 굉장히 부정적이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조선과 구한말의 '의병'하고 별 차이 없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건 아주 성경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에스더기도 유대인 학살 명령이 공식적으로 철회되는 게 아니라, "너희들도 자경단 꾸려서 침략자에 맞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켜라. 아무도 안 말린다"가 추가되는 걸로 끝나니 말이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1992년의 미국 LA 폭동 때도 평소에 총을 구입해 놓고 대비를 했던 한인들은 자경단을 꾸린 덕분에 자기 가게를 안 털리고 지켜내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 남성들의 이런 저력(...)은 5· 18 광주 북한군 개입설을 부정하는 근거로도 활용된다.
서슬 퍼런 반공 군사 정권 하에서 교련에다 군생활도 무려 3년씩이나 의무적으로 했던 사람들이 진지 구축이나 총질쯤은 껌이며, 탱크 조종 보직이었던 사람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없을 리가 없다. 그 정도 군사 행동은 굳이 북괴 공작원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수많은 청년들의 자유를 제약하고 희생하며 돌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징병제의 위력을 만만하게 여기지 마시라.

무기고 위치 정도는 그렇게 비밀도 아니며, 평소에 잡범 범죄자에 의해 종종 털리기도 했었다. 그럭저럭 민주화가 된 1990년대의 LA에서도 저랬는데 하물며 전투력이 그때보다 더했을 1980년대의 광주를 동일한 잣대로 생각해 보면 본인으로서는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소말리아 같은 막장인 나라 말고, 엄연한 잘사는 선진국 중에서 민간인이 버젓이 총을 소지하는 나라는 미국 말고 더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화력이 너무 강한 군인 소총이나, 은닉하기 쉬운 권총은 여전히 규제가 걸려 있지만, 샷건 정도는 시골로 갈수록 뭔가 생활 필수품인 것 같다.

2. 경찰 비슷한 것들

경찰은 군대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며, 정부에서 세금을 써서 유지시킨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공권력의 존재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기관이 바로 경찰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군· 경의 역할을 민간이 대체하는 것을 매우 경계하며 금기시한다. 그래서 사적 제재를 전면 금지하고 정당방위도 매우 보수적이고 제한적으로만 인정한다. 나쁜놈이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정말 제일 소극적인 제압만 한 뒤 바로 경찰에 넘기기만 해야 한다. 놈이 흉기를 들고 설치고 있으면 흉기를 재주껏 빼앗아서 버리기만 해야지, 그걸로 내가 반격 역관광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니 자경단이나 민병대· 의병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사설 탐정도 국내에서는 전면금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민간인의 경찰 위장· 사칭은 죄질이 매우 나쁜 범죄이다. 일반인은 평시에 전투복뿐만 아니라 경찰복을 입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수갑 같은 경찰 전용 장비 역시 소지하거나 휴대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찰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보조 내지 대행하는 민간인 조직이 아주 없는 게 아니다.
자율방범대(치안)라든가 모범운전자(교통 정리)가 그 예이다. 이런 사람들은 경찰과 어떤 관계를 맺고 보수를 어느 정도 받는지, 직무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까지 권한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이 사람들이 진짜 경찰처럼 누구를 체포한다거나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딱지를 발급하지는 못한다.

은행이나 병원 같은 곳에 있는 청원경찰은 정식 경찰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 사설 경비원도 아닌 중간 위치 같다. 철도 경찰이나 해경은 일반적으로 아는 그런 경찰과는 다른 경찰일 테고..
그나저나 옛날에 미국에서 큰 모자 쓰고 말 타고 돌아다니던 '보안관'은 경찰하고는 어떤 관계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3. 사립 사관학교

본인은 먼 옛날에 사탄의 인형 시리즈를 1편부터 3편까지 영화관..은 아니고 TV와 비디오로 봤다. 1편은 진짜 공포 장르였지만 2편과 3편은 호러 코미디에 가깝다. 주인공 앤디가 처키의 정체를 완전히 알게 되면서 동심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가 됐고, 또 나이를 먹고 성장도 했기 때문에 1편과 같은 의미의 약자의 위치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3편의 경우, 애가 군사 학교에 입교하게 된다. 이름하여 Kent Military School. 그런데 나이가 들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군사 학교라는 건 도대체 정체가 뭔가? 국· 공립인가, 아니면 설마 사립인가? 한국에는 이런 교육기관은 없는 것 같은데..

병을 양성하는 곳인가, 간부를 양성하는 곳인가? 그냥 신병 훈련소라고 보기에는 내부 시설이 꽤 좋고.. 하지만 학생들의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하고 무슨 웨스트포인트 급의 정식 사관학교도 아닌 것 같다. 앤디처럼 불우하게 자란 애가 그런 정예 장교 양성 시설에 호락호락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죽은 아버지가 무슨 명예 훈장의 수훈자이기라도 하지 않다면 말이다.
그리고 계급의 번역이 제대로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도들 군기를 잡는 훈육대장이야 해야 하나.. 그런 사람이 무려 대령인 건 하는 일에 비해 계급이 너무 높은 것 같다.

검색을 해 보니 미국에는 이런 군사 학교가 몇 군데 있다고 한다. 나라에서 인가한 정식 사관학교와의 차이는 (1) 일단, '사립'이다. 자연히 학비는 전면 무료가 아니며, 여기를 졸업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미군 간부로 임관한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여기는 (2) 애초에 대학교에 준하는 고등 교육기관이 아니라 중· 고등학교에 대응하는 중등 교육기관이다. 여기를 졸업한 애들은 소수의 군대 체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냥 일반 대학교로 진학한다.

즉, 여기는 무슨 정식 사관학교도 아니고 해병대 캠프나 스파르타 식 명문대 학원도 아니지만.. 사관학교의 커리큘럼을 따 와서 일상생활에서 애들을 합숙시키고 군복(정복, 예복, 전투복 등..) 입히고 군대식으로 절도 있게 키우는 학교이다. 한국의 장성들이 자기 자녀는 저기로 유학 보내서 키우기도 한댄다. 중딩 고딩들한테 설마 진짜 사관학교처럼 공수 훈련까지 시키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총 잡고 페인트탄 워 게임 정도는 한다.

사탄의 인형 3의 배경인 '켄트(Kent) 군사 학교'는 '켐퍼(Kemper) 군사 학교'라고 미국에 실제로 있었던 사립 사관학교이다. 1800년대부터 있었던 학교이다 보니 캠퍼스가 굉장히 고풍스러우며, 사탄의 인형 말고 몇몇 다른 영화들의 촬영지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 학교는 쟁쟁한 졸업생 동문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점점 경영난을 겪었으며(신입생의 감소로 인해), 2002년에는 폐교하고 말았다. 국영 사관학교라면 이렇게 망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옛 캠퍼스 부지와 건물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4. 군대의 진급

우리나라의 현행 군대 계급 체계에서 다음과 같이 임관 내지 진급하는 건 흔치 않은 경우이다.

  • 준위로: 부사관에서 상사를 능가하는 만렙 계급은 일단 원사이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간 준위는 단순히 원사의 상위 레벨이 아닌 좀 특이한 계급이다. 부사관의 만렙으로서 자기 분야의 최고 전문가 스페셜리스트이면서, 한편으로 그 바닥에서 장교 같은 명령권도 있는 '준사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떤 준사관 계열은 아예 군필만 한 민간인이 곧장 들어오기도 한다.
  • 임관이 아니라 특진해서 소위로: 병장이 진급해서 자연스럽게 부사관인 하사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병이나 부사관이 자기 계열에서 진급만 한다고 해서 장교 계급을 받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역사상 죽어서 소위 계급이 상징적으로 추서된 건 지뢰 밟고 죽은 군견이 유일하다.
  • 대장에서 원수로: 원수는 포스타 중에서도 그야말로 나라를 구한 불멸의 성웅이나 받을 법한.. 상징적인 종신 계급이다. 통상적인 진급이나 전사자 특진만으로는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 과학 분야 노벨 상 수상자가 없는 것만큼이나 원수 계급을 받은 군인도 현재까지 없다. 그나마 제일 근접해 있는 백 선엽 대장마저도 못 받은 계급을 감당할 만한 용자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전쟁터에서 혼자서 적군을 수십 명 때려잡고 아군을 수십 명 구했다면 그건 병이나 부사관이 무공 훈장과 포상금을 잔뜩 받을 일이다. 계급 자체는 그런 병/부사관 수준에서 1~2단계 정도 특진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에 반해 포스타가 원수가 되려면..?? 가히 전군과 국가에 영향을 끼칠 만한 넘사벽급의 '통솔' 업적이 있어야 한다.

  • 사령관의 천재적인 지휘 하에 전군이 힘을 합쳐서 돼지 목을 따는 데 성공하고 북진 멸공 통일을 이룬다거나,
  •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했는데 한국군이 무슨 지구를 구하는 데 국제적인 기여를 했거나,
  • 국군의 규모가 지금보다 몇 배 이상 더 커져서 포스타마저 수십 명으로 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오성장군이 배출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1/31 08:34 2019/01/3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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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굴러다니는 글들 중,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필력이 정말 존경스러운 작품을 두 편 소개하고자 한다. 뭐, 내가 알게 됐을 정도면 알려진 지 이미 수 년이 지났고 네티즌들 사이에 퍼질 대로 퍼졌겠지만 말이다.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지만 팩트가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글, 비유와 패러디와 개드립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창의적인 글이 좋다. 본인은 Doom 코믹스 대사라든가 작은 하마 이야기 스타일의 개그 코드를 아주 좋아한다.
도대체 무슨 약을 빨아야 저런 필력이 나올 수 있을까? 나도 이런 스타일과 내용의 글을 쓰고 싶다.

1. 부산 운전 후기 (☞ 링크)

일단 닥치고 읽어 보시길.. 생각 같아서는 이런 주옥 같은 명문은 날개셋 타자연습의 연습글에도 당장 집어넣고 싶을 정도이다. 주요 감상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 야수의 심장을 쏘는 유신의 심정 → 이거 나름 롸임 있는데?? ㅋㅋ
  • 전쟁 이후로 갈아엎은 적이 있나 싶은 X같이 열악한 도로망, 쓸데없이 높은 인구 밀도, 붇싼싸나이 특유의 허세
  • 부산시에서 차량을 등록할 땐 깜빡이를 뜯어내야만 등록 허가가 난다. 이 씨X새X들은 절대로 깜빡이를 키지 않는다.
  • "어 점마 점마 머고? 부싼싸람 아이네!"
  • 수시로 차창을 내리고 옆 차량과 가정사를 물어보는 시끌벅적한 동네
  • 선 끼어들기, 후 깜빡이는 필수. 이때 뒤에서는 힘찬 크락션 소리가 너의 차선 변경을 축하해 줄 것이다. ㅍㅎㅎㅎㅎㅎ
  • 아니면 니가 끼어들 차로의 반대 방향으로 깜박이를 키는 것도 좋다.
  • 아이가 타고 있어요 → 이런 차들은 자기 애새끼가 진짜 불에 활활 타고 있는지 운전을 상당히 X같이 한다.
  • 뭔 동네에 유전이라도 터졌는지, 급제동 급발진을 X나게 습관적으로 하면서 길바닥에 기름을 쳐 뿌리는 걸 보면..
  • 부산에 진입하기 전에 대물 한도를 10억으로 늘리고 과감하게 운전하자. 이 동네에선 잃을 게 많은 놈들이 브레이크를 밟는 법이다.
  • 승객을 인질로 삼고 폭주하는 저 운전사는 도대체 버스 기사인지, 아니면 저승의 뱃사공인지 헷갈린다.
  • 근처 차량의 지붕에 뭐가 달려 있다(택시등ㅋㅋㅋㅋㅋㅋ) 싶으면 무조건 피해라. 아니면 니가 그 안에 타든지.
  • 도로를 달리는 건가, 요단 강 래프팅을 하는 건가?
  • 연비 절감을 위한 자구책인지.. (배기가스 절감이나 연료 소모 절감이 아님. ㅍㅎㅎㅎㅎㅎㅎ)
  • "뭐고, 붇싼 택시 처음 타능교? 내가 이래봬도 중앙동 넘버 쓰리라 안 카나. 남바 완, 투는 다 사고로 디져뿟다 아이가"

아.. 정말 빵터지는 한편으로 나도 어서 부산 가서 운전 좀 하고 싶어진다. ㅋㅋㅋㅋㅋㅋㅋ
아니면 내가 직접 차를 몰지 않더라도, 그 악명 높은 총알택시를 타고 궁극의 과속과 가속도 변화와 스릴을 경험하고 싶다. 나도 과격 격렬한 건 다 좋아하기 때문이다.

말을 이렇게 하지만 본인은 평소에 택시를 타면 뒷좌석에서도 안전벨트를 꼬박꼬박 맨다.
그리고 차를 몰 때는 늘 (1) 1/2 mv^2이라는 물리 감각, (2) 풀 악셀을 밟을 때마다 기름값 몇십 원이 깨진다는 경제 관념, (3) 그리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는 언제 무엇이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겁대가리라는 삼요소를 늘 숙지하고 명심하고 있다.

부산은 6· 25 때도 북괴에 점령당한 적이 없으며, 따라서 전쟁 때문에 길거리가 대판 파괴되어 리셋 재건된 역사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의 선형에도 옛날 스타일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더 좁고 꼬불꼬불하고 오거리 육거리가 많은 것 같다. 거기에다 저기는 서울이나 대구만 한 분지도 없고 산이 많으니.. 구조적으로 자동차 운전에 친화적이지 않은 지형이 형성된 게 아닐까?

부산 도로의 특징에 대해 그나마 점잖게 써 놓은 곳은 다음과 같다. (☞ 링크 1, 링크 2)
롤러코스터 같은 산복도로가 많다, 오거리· 육거리가 많다, 고가도로가 많다 등..
고가도로가 많으면 그 아래는 기둥 때문에 길 모양이 꽤 복잡해지긴 한다. =_=;;;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부산 사투리를 빼놓을 수 없다.
부산 사투리라는 걸 최초로 전국적으로 퍼뜨린 매체는 20여 년 전에 나온 영화 <친구>임이 틀림없다. "-예 (하고 있지예, 그런데예)", "아잉교, 아이다" 등..
경상도 사투리라는 게 곧 부산 사투리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영화 <아저씨>에서는 오 명규 사장과 일부 형사, 그리고 <범죄도시>에서도 마 동석 말고 다른 동료 형사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게 클리셰처럼 됐다. ("뭐 보노 X꺄, 상X 터쟈뿔라 마~" ㄲㄲㄲ)

사투리계의 또 다른 계보는 물론 전라도다. "아따 거시기하네, 시방 겁나게 웃겼당께로~" 이런 거.. =_=;; 경상도와는 어휘와 억양이 미묘하게 다르다.
그 밖에 평양 사투리도 있다. "고조, ~했지비, 내레" 이런 말투가 쓰이는데, 자연스럽게 구사하려면 이것뿐만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그 억양을 북한 방송 보면서 익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어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도 필요하다.

부산은 나름 우리나라 제2위의 대도시인데 서울과 다른 고유한 언어와 교통(!) 문화를 잘 간직하고 사람들이 다이내믹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ㅎㅎ

2. 장애인 (☞ 링크)

이 글은 휠체어를 타는 실제 장애인이 썼다. 부산 운전만치 '웃긴 요소'는 별로 없지만 그럭저럭 재미있고 진지하게 읽을 만하다.

휠체어의 회전 반경과 후방 시야

  • X발 니들 중에 휠체어로 회전반경 20cm 이하로 만들 수 있는 X끼 있으면 나와서 내 욕해도 됨. 세상 어느 휠체어가 제자리 회전이 되냐?
  • 휠체어 뒤로는 제발 바짝 서 있지 좀 마라. 휠체어엔 백미러가 안 달려 있다. 뒤로 목을 돌려 확인할 정도로 목이 잘 돌아가면 병신이라고 불리지도 않아~ 이 X신들아. 아니면 휠체어에 백미러 달아 주든가.

휠체어 탑승자의 높이 접근성

  •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라고 분명 마크 달려 있는데 130cm 위에 버튼 달아 놓은 건축 시공사 새X들 전부 대가리에 마대질 할 줄 알아라 씨X, 개놈들 다 총살시켜야 돼~
  • 팔이 어깨보다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정도면 병신이라고 불리지도 않어. 그런 X나 당연한 게 안 되니까 병신인 거다.

휠체어 탑승자의 접근성과 이동권

  • 대학교 수업 들으면서 "휠체어가 고장 나서 지각/결석합니다"라는 멘트 한번 상상해 봤냐? "비 와서/눈 와서 수업 못 나갑니다"는 어때?
  • 차라리 아파서 결석이면 덜 억울해. 진단서 끊어 가면 인정받으니까.. 하지만 휠체어 수리는 영수증 제시한다고 인정될 사항이 아니지, X발
  • 전동 휠체어를 들고 계단을 오를 땐 무조건 6명 이상 모여라. 니들 허리 생각해서 하는 소리다.
  • 휠체어 전체를 덮는 비옷? 있기야 하지, 그런데 그걸 혼자 쓰고 벗을 수 있을 정도면 병신이라고 안 한다는 거 이제 식상하지?
  • 지하철 1, 4, 7, 10째 칸에 있는 빈 공간에 주저앉아 있지 좀 마라. 나 없을 땐 몰라도, 타면 알아서 좀 비켜라 병신들아, 진짜 병신 만들어 놓기 전에.

휠체어 도로 주행의 애로사항

  • 전동 휠체어는 굴러다니는 것 자체로 모든 면에서 위법임. 기름 넣고 굴러가는 자동차도 아니고(차도 X), 완전 보행자나 그에 준하는 물건도 아니고(차라리 수동 휠체어는 법적 보행자로 인정이지만 전동은..), 그렇다고 자전거도 아니고(자전거 전용 도로도 X).
  • 휠체어는 인도로 가라고 하는 놈들 다 휠체어에 태워서 인도 드라이브 한번 시켜 줘야 됨. 인도가 얼마나 익스트림 한지 니들 모르지?

본인도 휠체어는 지게차나 바퀴 달린 의자처럼 제자리 회전이 당연히 가능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아니었구나.

장애인은 안 그래도 몸이 불편한 데다가 수도 적다. 사회에서 완전 약자 중의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권이고 복지고 없고, 사실 사지 멀쩡한 사람들도 자기 입에 풀칠하느라 바쁘던 전근대 시절에는.. 장애인의 삶은 막장 시궁창 그 자체였다. 말 그대로 병신이라고 불리면서 완전 천대와 무시, 멸시, 차별, 박해를 받으며 거지로 살아야 했다.

사회가 이런 사람들을 같이 수용하고 먹여 살릴 수가 없었다. 꾀병 부리는 거랑, 진짜 장애가 있는 것을 일일이 분간할 여력도 없었고 말이다. 오죽했으면 나치 독일은 유대인이 아닌 자국민이라도 이런 장애인은 몰래 죽여 버렸을 정도이다.

하지만 장애인은 사고로 인한 후천적 장애가 훨씬 더 많다. 마치 낙태 사유가 강간으로 인한 것보다 피임 실패가 훨씬 더 많은 것처럼 말이다. 누구든지 재수가 더럽게 없으면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 무슨 동성애자 인권 따위가 아니라 장애인 인권과 접근성 문제는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주제인 것 같다. 더구나 다른 장애인도 아니고 상이 군경까지 그 따구로 대했다가는 아무도 국가를 위해 기꺼이 죽거나 다치려 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1/28 08:35 2019/01/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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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월 중순의 어느 날, 본인은 인터넷 SNS를 통해 알게 된 어느 지인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러 그 지인이 다니는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제네바 개혁 교회'라고 장로교 계열인데, 기성 주류 교단보다 더 근본주의랄까, 옛날 스타일을 추구하고 교리에 따른 분리를 더 엄격하게 시행하는 곳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인은 요즘 같은 세상에 근본주의라고 하면 일부 침례교 교파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저런 곳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니 신기했다.
본인이 다니는 교회도 비성경적인 은사주의를 거부하고 종교 일치 운동 거부하고 동성애 합법화 반대하는 등.. 대세를 따르지 않고 근본주의를 따르는 면모가 있다. 하지만 그걸 '남자는 무조건 정장, 여자는 무조건 긴 치마' 식으로 율법적으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특히 신기한 건 '칼빈주의'였다.
본인은 루터, 칼빈이라든가 예정론이라는 학설을 태어나서 처음 들은 곳이 교회가 아니었다. 그 대신, 아동용 세계사 만화와 중학교(세계사, 윤리)에서 최초로 접했다. 본인은 어린 시절에 장로교가 아니라 감리교 계열에 속하는 성결교를 다녀서 그런 사람을 교회에서 못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루터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사뿐만 아니라 작곡까지 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칼빈은 이에 질세라 시편 찬송가라는 걸 만들었나 보다. 전 악보를 통틀어서 4분음표와 2분음표밖에 없고 뭔가 종잡을 수 없는 조와 음계로 시편을 1편부터 150편까지 몽땅 노래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글쎄, 시편에는 저주도 쓰여 있는데 그런 가사까지 곡으로 옮겼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장로교 내지 개혁 교회 쪽에서는 일명 TULIP이라고 요약되는 5대 강령을 가히 신앙의 핵심· 진수로 떠받들고 있었다. 성결교에 성결 중생 신유 재림(무순)이라는 4대 강령이 있는 것과 비교된다.
종교 개혁자들이 그 서슬 퍼런 교황과 맞장 뜨고 양심의 자유와 성경적 진리를 추구한 것, 엄격 진지 근엄하고 청빈 검소 고결하게 산 것은 분명 훌륭한 일이다. 성경을 독일어로 직접 번역한 루터야 말할 것도 없고, 칼빈도 제네바에서 올바른 성경이 안심하고 번역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놓은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다만, 인간이 자기 스스로 죄를 인지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능력마저 상실했을 정도로 타락했다거나, 하나님이 답정너 선택하고 '예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거나, 선물을 받으려고 단순히 손을 뻗는 동작조차도 선물에 대한 값을 치르는 행위이고 자기 의라고 우기는 주장들은 좀 말장난 궤변처럼 들린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이 킹왕짱 절대적이라 해도.. 그 끔찍한 죄악이 인간의 자유 의지 책임으로 귀착되지 않는 한낱 역할극에 불과한 건 절대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씁 어쩔 수 없지" 그냥 허락하시는 뜻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칼빈 신학이 실제로 무어라 가르치는지를 내가 직접 배운 게 아니니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주위로부터 들리는 말에 따르면 칼빈주의 내지 예정론이 그런 걸 가르치는 것으로 보인다.

칼빈· 루터와 달리,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요한) 웨슬리는 세계사· 윤리 시간에 다뤄질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다. 이쪽은 반대로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면서 칼빈주의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존 웨슬리의 동생인 찰스 웨슬리는 O Horrible Decree라는 제목으로 TULIP 강령을 신랄하게 디스하고 극딜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뭐 그것까지는 좋은데.. 거기는 반대로 반쯤 행위로 구원 유지, 구원의 상실을 가르치는 것으로 본인은 들었다.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지 모르지만, 본인은 그게 어찌 보면 칼빈주의보다 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기본 중의 기본인 구원관이 정확하게 정립돼 있지 못하니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식으로 아주 이상한 낭설도 교회에 잔뜩 퍼진 게 아닐까?

이런 식으로.. 본인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모두 진리도 있고 오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 개혁자들도 다 교리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고, 신학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만.. 뭔가 다른 교파에 속한 교회, 그것도 주류 대형 교회가 아니라 마이너한 성향의 교회에 가 보는 건 꽤 신기한 경험이었다.

2.
그나저나 이 교회는 송파구 문정동에 소재해 있고, 교회 근처에는 길 옆으로 문정 근린 공원이라는 도심 속 녹지가 쭉 들어서 있었다.
이 정도로 작지 않은 폭의 공간에 건물 대신 풀밭과 벤치, 주차장이 1km가 넘게 이어지는 건.. 평범한 계획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지형이 아니다.
풍납동의 풍납토성 구간이야 유적 발굴 명목으로 개발이 봉인되고 풀밭과 언덕이 길게 이어져 있긴 하지만, 문정 공원은 그런 케이스도 아닌 것 같다.

이건 90% 이상의 확률로 폐선 철도 부지일 거라고 감이 어렴풋이 왔다. 내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는 철령께서 내게 계시를 주셨다.
실제로 홍대 일대에는 당인리선 폐선 부지를 따라 어중간한 주차 공간과 건물, 골목이 길게 나 있다. 신촌에도 골목길이 과거 경성 순환 철도의 선형대로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철길이 없어지더라도 철길을 따라 형성된 건물들의 선형이 쉽게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의 구시가지가 아니라 동남부 외곽에 웬 철도가 있었다가 폐선된 적은 없다. 저 공간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저건 근처의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비슷한 선형으로 수도권 남부 순환 철도를 미래에 '만들려고' 국가에서 1980년대에 확보해 놨던 부지였다. 단선 전철로 여객보다는 화물 수송을 염두에 뒀으며, 의왕에 있는 컨테이너 화물 기지에 이르기까지 선로를 이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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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경부선 의왕(위의 그림에서는 '부곡')에서 분기하는 오봉 화물 기지에서 시작해서 무려 중앙선 도농까지였다.
북쪽의 교외선(능곡-의정부)과 연결하면 진짜로 그럴싸한 순환선 철도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계획은 여러 난항에 부딪혔다. 서울 외곽에 자리잡은 군부대 등 보안 시설들과 마찰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여기 일대에 분당선과 서울 지하철 8호선 같은 여객 철도가 지하로 건설하려는 대체 계획이 잡히면서.. 지상 화물 철도의 건설 계획은 1993년에 완전히 나가리 났다.
그 뒤로 이 부지는 미개발 상태로 오랫동안 놀면서 주차장 정도로나 쓰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에 여기가 문정 근린 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렇게만 알면 끝인데.. 본인은 그 공원의 일부 구간에 만들다가 말았던 철길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정보를 뒤늦게 입수했다. 그래서 즉시 차를 끌고 달려가서 공원을 또 답사했다. 그리고 거기가 바로 공교롭게도 딱 제네바 개혁 교회 근처였다. 2km에 달하는 전체 공원 구간을 다 돌아다녀 봤는데, 레일이 있는 곳은 유일하게 저기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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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남부 순환 철도라는 게 이게 무슨 구 수인선 같은 역사 유물도 아닌데, 철길을 공원에다 일부러 깔았을 리는 없을 테고.. 저건 그 시절에 만들다가 말았던 폐선 흔적이 틀림없을 것이다.
간격은 표준궤가 맞는데 궤조가 유난히도 작고 가녀린 것 같다. 공원의 그 어느 표지판이나 구조물에도 여기가 철도 노반이었음을 암시하는 문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상에, 철도 불모지인 서울의 동남부에서 고가나 지하가 아닌 평지에 깔린 레일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완전 좋다. ^_^ 뭐, 철길의 길이는 100미터가 채 될까 말까이니 너무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 게 좋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도 있는 게 어디냐.
계획 당시에 땅이 얼마나 놀고 있었으면 평지에다가 대놓고 철길을 놓을 생각을 했을까? 외곽순환 고속도로와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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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도 중간에 요렇게 교차로를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다.

서울 서부 외곽의 오류동에는.. 경인선에서 분기하는 경기화학선의 폐선 잔해가 건물 뒤로 지나가는 게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동부 외곽에는 지금까지 어렴풋이 말로만 들었던 남부 순환 철도의 흔적이 철덕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강동구에 있는 한영 중· 고등학교와 인근의 큰길인 동남로 사이에 있는 큰 공간도.. 그 시절에 확보해 뒀던 철길 노반의 흔적이다. (☞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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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다. 모처럼 철도와 기독교· 성경을 융합한 글이 하나 완성됐다. ^__^
보라매 공원은 원래 공군 사관학교의 부지였고, 여의도 공원은 원래 여의도 공항 활주로 내지 여의도 광장의 부지였다.
또한, 강북 구도심에는 용산선 철길이 있어서 거의 폐선 상태였는데, 2010년대에 싹 걷히고 지하의 경의선· 공항 철도로 형태가 바뀌었다. 그리고 거기도 지상 구간은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식으로 대도시의 도심에 놓여 있는 공원은 제각기 사연과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제네바 개혁 교회는 이렇게 만들려다가 만 철도 폐선 부지를 활용한 공원의 근처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성도들이 쉬는 시간에 밖에서 교제하기 좋겠다.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근처에는 큰 도로의 중앙에 무슨 계기로 조성된 '거리 공원'이란 게 있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9/01/25 08:32 2019/01/2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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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발전 이야기

과거에 이따금씩 발전 시설이나 원자력에 대한 글을 몇 번 썼지만,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만 전문적으로 글을 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수력이야 그 정의상 지형을 많이 타고 아무 곳에나 못 만들겠지만, 화력은 연료와 엔진만 있으면 어디서나 발전기를 돌릴 수 있으니 장소와 지형 제약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물론 화력이라도 엄청 거대한 놈은 연료와 냉각수 조달이 원활한 곳, 보안 걱정 없는 곳, 빵빵하게 돌려도 주민들 항의 민원이 안 들어올 외곽에 건설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화력은 규모를 줄여서 도시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 열병합 난방 시설과 연계한 형태로도 만들 수 있다. 메탄 가스를 활용할 목적으로 쓰레기장 주변에 이런 발전소가 돌아가기도 한다.

또한 울릉도· 백령도 같은 오지 도서 지역에도 그런 소형 화력 발전소가 있다. 전깃줄을 본토에서 바다 건너 거기까지 연결하는 건 어려우니 말이다.
이런 영세한 발전소들은 메이저급 대형 발전소에 비해 배기가스· 매연을 정화하는 시설이 부실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어디 언론에서 고발한 적이 있다.

원자력 발전도 물을 끓여서 증기 터빈을 돌리고 그걸로 교류 발전기를 돌린다. 이 원리는 화력과 본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 다만, 원자력은 열을 생성하는 방식이 화력과는 넘사벽급으로 더 고차원적이고 에너지가 풍부한 대신, 훨씬 더 위험하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니 원자력은 화력처럼 여느 공장 짓듯이 아무렇게나 여기 저기 많이 만들 수 없다. 한번 만들고 나면 수십 년 뒤에 원자로를 해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철통같이 잘 관리하겠다는 심정으로, 정말 엄격한 입지 조건을 따져서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핵분열 방식보다 더 고차원적인 핵융합 방식의 발전은.. 마치 바퀴식 고속철 vs 자기부상 고속철만큼이나 아직까지 떡밥이다.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실용화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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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가 원래 다 민간 지도에서 표시하지 않는 보안 시설이지만, 원전은 위로 비행기의 비행조차 금지할 정도로 보안이 더 삼엄하다. 원자로의 겉벽은 어지간한 댐 급으로 콘크리트를 왕창 쏟아부어서.. 비행기가 쳐박고 어지간한 폭탄이 떨어져도 끄떡없게 만들어진다고 들었다.

원전은 미래의 해체 비용까지 생각하면 마냥 싼 게 아니겠지만.. 어쨌든 당장 핵분열이 시작되어 제대로 돌아갈 때는 화력보다 훨씬 더 많은 열량이 저렴하게 뿜어져 나온다. 한번 시작된 반응을 마음대로 멈췄다가 재개할 수도 있지 않으니 전기는 밤낮 구분 없이 24시간 쭈욱 생산된다.

철도만 해도 비싼 돈 들여 고속철이 개통하고 나면 노선이 전부 KTX 위주로 개편되고, 나머지 느린 열차들은 KTX 연계 지선 위주로 운영된다.
그것처럼 국가에서 전력을 관리할 때도 평소에 저렴한 원전을 상시 가동하고, 이것만으로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전력 소모가 늘면 용량과 생산 원가가 모두 열세인 화력을 추가로 가동하게 된다. 즉, 전력 부하가 커질수록 더 비싼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에휴.. 나도 공돌이 공부 더 열심히 해서 우주로 나간다거나, 아니면 이런 신비로운 업종의 종사자가 됐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만..
대한민국에는 원자력 발전소의 군집 내지 본부가 총 네 군데 있다. 아래의 그림은 한 2년 반쯤 전 기준의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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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리(1978)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이다. 그 시기가 1978년 봄이니 박통 집권의 말기이며, 호남선 대전-이리간 복선 개통과도 시기적으로 비슷하다. 착공은 1971년부터 했으니 만드는 데 7년이나 걸렸다.

얘가 있는 곳은 부산 기장군의 최북단과 울산 울주군의 최남단 사이에 있는.. 행정구역상 기장군 '고리'(古) 전체이다.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답게 북괴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후방인 동시에 나름 부산이라는 대도시와 가장 가까운 곳에 지어진 셈이다. 여기가 원전 부지로 지정되면서, 이 동네에 원래 살던 주민들은 모두 당연히 딴 데로 이주하게 됐다.
이렇듯, 이 발전소의 명칭의 근거는 그냥 지명이다. ring 같은 다른 이상한 근거가 절대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상의 이유와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를 조달하는 문제로 인해, 바닷가에 만들어지는 것이 관례이다. 한반도에서는 바람이 서에서 동으로 분다는 특성상, 서해안 대신 동해안의 바닷가가 선택되었다. 근처의 임랑 해수욕장에서 고리 원전을 멀리서나마 구경할 수 있다.

원전이 대도시와 너무 가까운 것은 좀 찝찝하고 문제의 여지가 있지만, 그 덕분에 여기는 직원들의 근무 선호도가 가장 높다. 그리고 근처에 '신고리'라는 이름으로 원전이 더 지어져서 발전 용량이 압도적으로 증가했으며, 한수원의 직원 연수 시설과 심지어 원자력 대학원대학교까지 다 여기 일대에 건립되었다. 여기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원전 허브처럼 돼 가는 느낌이다.

대전에 있는 원자력 연구원이 핵물리학을 전반적으로 연구한다면, 저기는 원자력 발전에 더 특화돼 있다.
신고리 원전이 너무 거대해진 관계로, 앞으로 더 만들어지는 신고리 원자로 3호기부터는 '고리'가 아닌 '새울'이라는 새로운 원자력 본부의 명의로 관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 가동 원자로인 고리 1호기는 잘 알다시피 설계 수명을 넘겨서 가동을 중단했으며,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해체될 예정이다. 뭔가 몇십 년을 뛰었던 전동차나 여객기가 퇴역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화력 발전에는 이런 거창한 프로세스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용광로만 해도 한번 쇳물이 흐르기 시작했으면 그야말로 무조건 365일 가동해야 한다던데(쇳물이 중간에 굳어 버리면 용광로 전체가 망가지고 못 쓰게 됨)... 원자로는 더 위험하고 까다로운 물건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2. 월성(1983)

고리 다음으로 5공 시절에 가동을 시작한 제2의 원자력 발전소는 '월성'이다. 물론 얘도 건설은 이전 정권 때부터 몇 년째 하다가 저때에야 결실을 거뒀다.
있는 곳은 고리보다 더 북쪽으로.. 경주의 남동쪽 끝의 나아리와 봉길리 사이이다. 지명을 딴 해수욕장도 있으며, 우리나라 역사상 보기 드문 해중왕릉인 신라 문무대왕릉도 여기 근처에 있다.

발전소의 이름이 월성인 이유는 여기의 옛 지명이 월성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신라의 도읍에 속하는 좁디좁은 시내만이 경주시이고, 나머지 외곽의 넓은 시골 마을들은 다 경주군(1995 이전)이었다. 그게 더 옛날에는 이름도 경주군이 아니라 월성군(1989 이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경주/월성'은..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행정구역 영역이 바뀐 '김포/서울'과는 관계가 좀 다르다. 김포 공항조차도 굳이 이름을 바꾸지 않고 있는데(뭐 국제적인 인지도와 관성 문제 때문이지만), 원전의 이름을 뭔 남사스럽게 최신 지명에 맞춰 업데이트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도 경주는 시내와 바다 근처는 거리가 상당히 멀고 산으로 가로막혀 있기도 한지라, 생활권이 서로 굉장히 다르다. 경주도 포항처럼 바다와 접하고 있고 해수욕장과 항구도 있는 시라고 하면 누가 선뜻 실감하겠는가? 행정구역이 다르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것만치 월성 원자력 발전소도 서류상의 행정구역으로만 경주 소재일 뿐,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경주 생활권에 있는 건 아니다.

여기도 2010년대에 와서 신형 원자로를 추가로 만들었으며, 1983년부터 가동했던 원조 1호기는 이미 퇴역했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라고 다 같은 발전소는 아닌지라, 월성의 원자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가압중수로 방식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가압경수로) 잘은 모르겠지만, 얘는 핵무기 개발과 연계하기 더 쉬운 구조여서 국제적으로 더 민감하다고 그런다. 우주 탐사 로켓이 장거리 미사일로 형태가 고스란히 바뀔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3. 영광-한빛(1986)

얘는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들 중 이례적으로, 유일하게 서해안에 있는 물건이다.
황해라고도 불리는 서해는 물이 얕고 탁해서 해수욕장으로서의 입지가 동해 및 남해보다 못하다. 그런데 그 단점은 다량의 냉각수를 필요로 하는 원전의 입지 조건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전남 영광군의 북부에는 바닷가가 내륙의 산으로 가로막히기도 하고 서해안의 지리· 지형적인 단점이 그나마 적게 작용하는 곳도 있는가 보다. 그래서 거기에 원전이 하나 더 지어졌다.
영광은 광주와 가까우며, 이 발전소가 있는 곳은 위도가 부산 고리와 비슷하다. 얘 혼자 다른 원전들과 달리 낙동강 오리알처럼 따로 떨어져 있다.

본인은 타지 사람으로서 '영광'이라 하면 정말.. (1) 영광 굴비랑, (2) 옛날에 야망이 너무 충만했던 그 조직폭력배 집단, 그리고 (3) 원자력 발전소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자신이 원자력 발전소와 엮이는 것이 싫었는지.. 2013년부로 발전소의 이름을 '한빛'으로 바꿔 버렸다. 지명과 무관한 원전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됐다. 하지만 '광/빛'을 생각하면 개연성이 전혀 없는 명칭은 아니어 보인다.

4. 울진-한울(1988)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원전 군집 중에서는 제일 나중에 생겼으며, 위도가 제일 높은 북쪽에 있기도 하다. 강원도에 근접한 경북 동북부 끝.. 말만 들어도 전라남도 섬 만만찮은 오지 같지 않은가?
여기는 직원들로서는 기피 1순위인 근무지이다. 오죽했으면 "울진에서 10년간 근무"를 조건으로 거는 특채도 있다고 들었다. 무슨 사관 생도의 군 의무 복무도 아니고 말이다.

여기도 영광과 같은 시기(2013)에 '한울'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울진은 이 발전소 덕분에 오지치고는 세수입 많고 재정이 넉넉하고 학교나 공공기관들의 시설이 좋다고 들었는데 왜 굳이 발전소 이름에서 자기 지명을 빼려 하는지 모르겠다.

이상이다.

이런 식이면 강원도에도 원전이 있을 법한데 그렇지 않다. 지형적인 입지는 나쁘지 않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북괴와 가까워져서 안보 측면에서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동쪽으로 갈수록 고위도 영토를 많이 수복했기 때문에 강원도 남부의 삼척 정도에는 장기적으로 원전의 건설이 계획돼 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강원도가 아니라 울진보다 남쪽의 오지인 영덕에 새 원전이 이미 건설 중이긴 하다. 동해도 서해도 아닌 남해안 쪽은 만들 만한 곳이 없나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이 승만 할배 때부터 원자력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비록 할배는 문과 출신이고 군 경력도 없는 사람이지만,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던 일본을 닥버 시키고 우리나라를 해방시켜 준 무서운 폭탄이 원자력 기반이라는 것에 큰 감명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6·25 전쟁 이후, 1956년에 미국과 원자력 협정을 맺고 서울대와 한양대 등의 공대에 원자력 공학과를 신설했으며, 58년에는 원자력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렇게 차근차근 씨를 뿌린 것이 결실을 맺은 덕분에 20여 년 뒤에 한반도엔 원자력 발전소가 돌아가게 됐다. 원자력 발전소가 없이 화력만으로는 지금 같은 전철, 서버, 에어컨, 휴대폰 충전 같은 폭발적인 전기 소모 수요를 지금 같은 생산 원가로 결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은 이런 이유로 인해 예나 지금이나 원자력 발전의 적극 찬성론자이며, 되도 않은 탈원전 구도가 어떻고 하는 소리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당장 현실에서 이것만 한 대안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가 났을 때의 여파가 너무 크고 평소에도 방사성 폐기물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등 문제는 있지만.. 그것까지 일일이 다 따지려면 자동차나 비행기도 무서워서 타지 말아야 할 것이고, 그냥 현대 문명의 이기를 다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어디 한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에서 냉장고· 에어컨조차 없이 잘만 살아 봤으면 싶다.

원자력을 없애고 그 대신 더 더티한(미세먼지!!) 화력을 늘리는 것은 바보 병신짓이 따로 없고, 또 이 좁은 땅에서 무슨 태양광? 풍력? 이건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
환경 운동한다는 놈들이 정말 환경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99%가 그냥 진영 논리 정치꾼일 뿐이라는 것은 이미 다 밝혀진 사실이다. 이런 인간들이 원자력 발전을 꼭 '핵 발전'이라고 부르면서 원전을 반대하는 것에 본인은 더욱 공감해 줄 수 없다.

또한, 핵무기 개발을 그렇게도 오랫동안 열심히 해 온 북괴가 정작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아무도 못 들어 봤을 것이다.
쟤들도 60년대부터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원자력 연구를 하긴 했다. 다만, 그 유명한 '영변 원자력 연구소'는 바닷가가 아닌 평안북도 소재이고, 그 자체는 원자력 발전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남한의 원자력 연구원과 비슷한 시설이다. 함경북도에 있는 핵실험장 역시 원자력 발전과는 아무 관계 없는 시설이다.

저 짓을 하고 있으니 북한은 평양 말고는 밤에 불빛 하나 안 비치는 암흑천지이고 주민들은 도탄에 빠져 있다. 어디 누가 누구 탓을 하나 모르겠다(미국 탓? 경제 제재? 트럼프가 한반도에 긴장과 전쟁 조장?? -_-;; X랄..).
그러면서 그 부족한 전기는 김씨 일가 우상화 시설에다 최우선으로 공급하고, 대외적으로 전기가 부족하다며 남한 삥이나 뜯는 것이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북괴의 추악한 민낯이다. 이래도 도대체 언제까지 민족뽕 평화뽕 통일뽕이라는 저주받을 마약에 취해 있을 텐가?

참고로 국내의 경우, 개인이 '원자력 안전 위원회'의 허가와 승인 없이 싸제 원자로를 구축하고 방사성 원소를 건드리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도대체 그런 짓을 누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mad scientist 성향이 있어서 위험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금지다.
저건 개인이 싸제 총기나 폭발물을 만든다거나 무단으로 북한과 내통을 시도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위험한 짓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은 이런 짓을 다 관련법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1/22 08:34 2019/01/2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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