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대학원에서의 첫 학기가 끝났다.
수련의 결과가 어떤 그레이드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_-, 어쨌든 리포트까지 다 제출하고 드디어 방학이 시작됐다.
그리고 종강과 성탄 연휴 기념으로, 올해도 작년과 동일한 지인하고 같이 철도 여행을 떠났다.
첫 코스는 경춘선. 수도권 전철로 개통한 경춘선이 첫 주말을 맞이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에 앞서
경춘선에 대한 미주알고주알 역사적 배경 설명을 다 늘어놓아야만 직성이 풀리겠다. (그래서 여행 카테고리로 넣으려던 글이 결국 철도 분석글이 되어 버렸다. ㄲㄲㄲ)
경부선 개통 1905년 -> 수도권 전철화(당시는 수원까지만) 1974년.
경춘선 개통 1939년 -> 수도권 전철화 2010년.
우연의 일치일까? 둘 사이에는 거의 똑같이 70년간의 간격이 있었다.
서울-춘천은 85~90km대로, 서울에서 평택 내지 천안까지의 거리와 얼추 비슷하다.
경춘선의 수도권 전철화가 갖는 큰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서울을 경유하는 “기존” 국철들 중에서 가장 늦게 수도권 전철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2005년의 중앙선을 시작으로 회송 열차 트래픽 때문에 금기의 벽에 머물러 있던 경의선이 2009년에 수도권 전철로 바뀐 지 1년 반 만의 일이다.
둘째, 경춘선은 일반열차가 여전히 다닐 필요가 있는 장거리 간선인 경부선이나 중앙선 같은 노선이 아니다. 또한 안보상의 이유 때문에 최북단에 여전히 비전철 구간을 남겨 놓아야 하는 경의선이나 경원선 같은 노선도 아니다. 전구간이 수도권 전철로 바뀌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경인선과 비슷한데, 통근형 디젤 동차가 아니라 번듯한 무궁화호급 열차를 완전히 대체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경춘선의 변신은 특이하다.
셋째, 수도권 전철이 충청남도(경부· 장항선으로 가는 1호선 천안· 신창 노선)뿐만이 아니라 드디어 강원도에까지 손길을 뻗치게 됐다는 점!
무려 천안과 춘천까지 전철이 개통했다면, 중앙선도 좀 더 욕심을 내서 양평에 이어 원주까지 전철이 다니게 되면 어떨까 싶다.
이런 특성들에 대해서는 조만간 일명 ‘광역전철 총정리’라고 체계적으로 글을 다시 쓸 작정이다.
2. 경춘선의 역사
경춘선은 통근형 열차를 투입하기에는 좀 운행 시간이 길고--그렇잖아도 선형이 안 좋고 열차 주행 속도도 느린데!--, 그렇다고 해서 본격적인 장거리 주행형 열차를 투입하기에는 아까운 규모였다. 새마을호가 운행되는 최단거리 노선이 장항선이라면, 무궁화호가 운행되는 최단거리 노선은 경춘선.
그래서 2000년대 초까지 경춘선에는 통일호와 무궁화호가 섞여서 운행되었다. 편도 배차 간격은 40분~1시간꼴로, 단선에서는 이게 거의 한계에 가까운 배차였고 이런 열악한 사정은 역시 단선이던 장항선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에는 10분 이상씩 지연은 예사였다고 한다.
이것은 본인이 2004년 초에 마지막으로 경춘선 통일호를 타면서 남긴 사진이다. 통일호는 인테리어가 이렇게 생긴 열차였다. 좌석을 더 기울일 수 없고, 문도 자동문이 아니고, 화장실 오물은 정화조에 담기는 게 아니라 바로 밖으로 배출되었으며, 아마 차륜에다 체인을 감아서 발전기를 돌렸을 희대의 노후화 객차.1)그래도 미치도록 싼 운임이 메리트였다. 경춘선에서 그 당시의 통일호 운임과 지금의 전철 운임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텐데 말이다.
2004년, KTX가 개통하면서 동시에 구형 통일호 객차는 모두 퇴역하였으며, 경춘선의 모든 열차는 무궁화호로 승격되었다. 이는 당장 경춘선 이용객의 금전적 부담 증가로 이어졌기 때문에 당시엔 반발이 거세었다.
경춘선뿐만이 아니라 다른 간선에서도 간간히 운행하던 통일호 역시 모두 폐지되었고, 여기에는 그 유명한 청량리-부전 완행 통일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후 2004년 12월, 철도청의 공사화를 앞두고 웬일로 경춘선 신남 역이 김유정 역으로 개명. 공항 이름에도 인명이 붙은 사례가 없는 대한민국에서,2) 철도역에 사상 처음으로 인명이 등재되었다.3) 본인, 그 당시는 전철역 노선도를 암기하다가 상록수(안산선!)를 다시 읽던 터라, 철도가 나의 문학적 감수성까지 더욱 키워 주는 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던 중이었다.
2005년 10월, 경춘선 복선 전철 공사 때문에 춘천 역이 완전히 폐쇄되고 경춘선은 약 5년간 종착역이 남춘천 역이 되었다. 그런데 춘천 역 자체가 시내와의 접근성이 꽤 떨어지고 인근에 군부대까지 있어서, 폐쇄의 여파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2010년 12월이 돼서야 경춘선은 복선 전철로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다. 이로써 성북 역은 과거에 용산-덕소 중앙선 전철이 개통하면서 경원선 경유 용산 행 전동차 노선을 빼앗겼고, 경춘선 전철이 개통하면서 경춘선 무궁화호 노선도 빼앗겼다. 그래서 순수하게 수도권 전철 1호선만 취급하는 역으로 역할이 줄어들게 됐다.
육군 사관학교와 가장 가까운 역인 경춘선 화랑대 역도 역사 속으로 빠이빠이. 하지만 역 건물 자체는 철거하지 않고 보존한다고 함.
3. 리모델링된 경춘선의 특징
경춘선 전철의 운행 계통은 상봉-춘천으로, 중앙선 상봉 역에서 출발하여 인근의 망우 역에서부터 분기한다. 예전에도 몇 차례 언급했지만, 상봉-망우의 위상은 마치 경의선 DMC-수색의 그것과 아주 비슷하다. 노선의 실질적인 시작 지점은 후자이지만, 기존 서울 지하철과의 환승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더 가까운 전자에 역을 또 만든 것이다. DMC는 6호선, 상봉은 7호선.
편리한 기존 청량리나 성북 역에서 경춘선을 이용하지 못하고 중랑구의 듣보잡 역까지 가야 하는 게 불편해진 점이긴 하나, 강남으로 통하는 7호선이 중앙과 경춘이라는 무려 두 개의 국철 노선과 환승역으로 연결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다. 아울러, 마치 7호선이 경인선과 만나러 천왕을 넘어 온수까지 연장되었던 것처럼, 6호선도 질세라 경춘선을 만나러 봉화산을 넘어 더욱 연장되는 수순을 밟는 중이다.
한 승강장에서 중앙선과 경춘선을 모두 타는 건 없다. 이미 상봉에서부터 중앙선과 경춘선 승강장은 갈라져 있고 둘은 별도의 선로에서 따로 다닌다. 망우 역은 부지가 대단히 넓은데, 두 노선 승강장 사이의 거리는 망우에서는 더욱 벌어진다. 입체교차 설비가 없고 만들 공간도 없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편리한 환승 구조라든가 용산-경춘선 직결 운행이 “지금은 곤란하다.” 수준이다. 금정과 구로, 천안 역 주변의 매우 크고 아름다운 입체교차 고가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상봉 역에서 인근의 망우 역을 훤히 볼 수 있다. 중앙선과 경춘선은 애초에 상봉에서 부터 이미 별개의 선로로 운행을 시작한다.
경춘선의 노선은 중앙선에서 뻗어가는 선형인 만큼 경의· 중앙선과 동일한 옥색으로 지정되어 있다. 같은 색의 두 노선이 Y자로 분기하여 오른쪽으로 분기하는 형태이다 보니, 바로 아래에 자주색으로 동일한 토폴로지로 그려져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나중에 경의선과 경원선이 연결되어 직결 운행을 시작하고 경춘선까지 직결이 시행되고 거기에다 분당선이 왕십리 역까지 올라온다면...?? 이렇게 연결된 광역전철의 네트워크 효과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런데, 경의· 중앙선을 다니는 여타 코레일 전동차들이 그냥 은색 깡통에 자석(red & blue) 모양의 띠 도색인 반면, 경춘선 전동차는 웬일로 독창적인 흰 바탕에 파란 띠 도색을 하고 있다.
시골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경춘선이 이렇게 변했다는 게 믿어지는가?경춘선은 이래뵈어도 서울-평택, 서울-천안에 비견될 정도로 길며, 용문까지 연장된 중앙선의 수도권 전철 구간보다도 더 길다. 그래서 주말에도 상· 하행 공히 상시 급행이 운행되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좌석형 특급 열차의 투입도 계획되어 있다. 출퇴근 시간대에 상행만 제한적으로 급행을 운행하는 여타 신흥(?) 노선들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2복선 선로에서 10분 간격으로 급행을 운행해 주는 '미친' 경인선에 비할 바는 못 된다는 뜻이다. ^^;;
또한 경춘선은 그 길이에 '비해서'는 아직 역 수가 적은 편이고 완행도 역간 주행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는 것도 알아 두자.
경춘선 전동차의 배차 간격은 중앙선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길어서 N/H 기준 15~20분에 한 대꼴이다. 급행은 1시간에 한 대이므로 경부선 천안 급행과 비슷한 위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주말에 평일보다 열차 운행이 뜸해지는 여타 전철과는 달리, 경춘선만은 일반열차들처럼 주말에 예외적으로 집중 증차를 해야 할 것이다. 본인의 일행이 간 토요일 낮에는 미칠 듯한 인파 때문에 고생 제대로 했으며, 춘천에서는 먼 거리를 반드시 앉아서 가려고 자리 쟁탈전이 벌어졌다. 중간역에서는 승하차 인원이 미미했으며 거의 다 남춘천 아니면 춘천에서 내렸다. 이것이 개통 첫 주만의 일시적인 현상인지는 아닌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가감속력 좋은 전동차가 꼬불꼬불한 단선이 아니라 매끈한 복선으로 달리니, 예전보다 정차를 더 하고도 시간은 훨씬 더 단축되는 건 당연한 이치. 덜컹거림이 없는 장대 레일의 승차감도 정말 좋았고, 게다가 운임이 더 싸진 건 덤이다. 전철은 여러 모로 남양주와 춘천 사는 사람들에게 호재임이 틀림없다.
경의· 중앙선 전동차는 LCD 모니터가 출입문 쪽에 붙어 있는 반면, 경춘선 전동차는 모니터가 마치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처럼 천장에 달려 있다. 경춘선도 8량인 건 동일하나, 승강장은 10량 기준으로 건설됐던 걸로 기억한다.
4. 역 이모저모
강 따라 평지를 꼬불꼬불 다니기만 하던 경춘선도 이제 고가와 터널이 굉장히 많아졌다.
역은 기존역 근처에 전철 승강장(=고상홈)이 새로 건설된 것도 있고, 다른 곳으로 이설된 것도 있다. 예전에는 없는 부역명이 뭐가 이리도 덕지덕지 붙은 역이 많다. 우리가 달리는 고가 밑으로 가끔씩 구 경춘선이 꼬불꼬불 지나가는 걸 보기도 했다. 마치 KTX로 대구-대전 구간을 타면서 밑으로 구 경부선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평내호평: 경춘선이 이렇게 전철로 정식 개통하기 한참 전인 무려 2006년부터 신선 구간 중에는 가장 먼저 개통해서 무궁화호로 영업을 미리 시작했다. 이때가 장항선도 한창 리모델링되던 시절이었는데, 아직 복선 전철화는 안 하고 복선 노반만 만들어 둔 모양이다.
강촌: 경춘선에서 가장 상징성이 큰 역으로 가평과 더불어 젊은 시절 MT 코스의 추억이 깃든 곳이나.. 이 역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설되었다. 그런데 이설된 곳은 산과 언덕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 그래서 강촌이 아니라 산촌이 됐다.
김유정: 역명판이 코레일체가 아닌 궁서체로 되어 있다!
춘천: 드디어 유리궁전으로 변신. 그런데 역 주변은 닭갈비집 몇 곳 말고는 정말로 황량하고 갈 데가 없다. 차라리 시내로 가려면 남춘천 역이 더 나을 듯. 역 주변엔 전철 개통 기념으로 세워진 듯한 이런 조형물이 있었다. 아 그리고 강원도 홍보 테마 누리로 열차가 세워져 있었다.
Notes:
1) 과거에 정선선 비둘기호 열차를 보면, 편성이 기관차+객차 각각 하나씩인데, 발전차가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_- 당연히 이런 자체 발전은 전력 생산량이 크게 부족하며 냉방기 같은 건 돌리지도 못한다.
2) 그 반면 외국은 드골 공항, 케네디 공항 등..;;
3) 참고로 진해선의 신창원 역은 인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____________^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