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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여행은 정말 재미있다. 이착륙 할 때가 제일 재미있다. 엔진 소리의 음높이가 팍 치솟고 '쿠르르릉!'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전속력으로 달음박질을 하더니, 이내 주변의 중력 가속도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비행기는 하늘에 붕 떠 있다. 이게 이륙이다.
한편 착륙은? 점점 고도가 낮아지더니 '쾅쾅!'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이내 랜딩 기어 바퀴에 의존하여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고, 엔진이 역회전하여 제동 거는 바람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앞쪽이 아닌 뒤쪽부터 착지한다. 뒤쪽에 바퀴도 더 많이 달려 있다.

조종사에게는 이착륙이 제일 힘든 고비이지만 그건 그 사람들 사정이고, 승객에게는 이때가 제일 재미있는 순간이다. 비행기도 열차만큼이나 운전 시스템이 어지간한 건 다 자동화가 돼 있지만, 이착륙만큼은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 좁은 활주로 위치에 딱 맞게 착지하는 건 정지선을 딱 맞춰 지하철 전동차를 세우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또한, 그 집채만 한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로 뜰 수 있는지 선풍기 위의 종이를 비롯해 소위 '베르누이의 법칙'을 설명한다는 여러 예제를 봐도 본인은 이해가 잘 안 되고 실감이 안 간다.

비행기는 최대한 높은 고도로 올라가서 난다. 비록 올라가는 과정이 힘들지만, 높은 곳일수록 대기가 옅고 공기 저항이 작아져서 연료 소모가 줄고 동력 효율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가 너무 옅어서 비행기를 띄워 주는 매개체인 유체 자체가 부족할 지경이어도 안 되기 때문에, 어차피 한없이 높이 올라가지는 못한다. 열기구나 풍선은 터지기 때문에 한없이 못 올라가듯이 말이다.

장거리 여객기의 순항 고도는 3만 피트가 넘으며, km로 환산하면 약 10km 남짓이다. 지구의 대류권과 성층권 사이의 경계쯤이 되는데, 여기가 가격 대 성능비가 가장 뛰어나서 순항하기 좋은 고도라고 한다. 사실 2차 세계 대전 때 미군이 일본에 원자 폭탄을 투하할 때도 거의 9~10km에 달하는 여객기 순항 고도에서.. 이 정도로 굉장히 높은 곳에서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떨어지던 폭탄은 지상으로부터 약 500m에 달한 지점에서 터졌다.)
우리가 지상에서 전방 10km에 아무것도 없는 탁 트인 공간을 볼 일은 거의 없다. 아쉬운 대로 비슷한 체험을 하는 건 등산을 했을 때 정도나? 그러나 비행기 안에서는 나보다 거의 10km 밑으로 성냥갑보다도 작은 집과 도로, 심지어 구름과 바다와 산까지 볼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지구 과학 수업 시간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대류권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지지만 성층권에서는 올라갈수록 다시 기온이 올라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상 100km 정도 고도만 돼도 이미 중간권을 지나 열권이다. 참고로 국제 우주 정거장이 있는 곳은 지상으로부터 약 400km 남짓. 즉, 서울-부산 거리 정도만 위로 올라가도 이미 지구가 확실히 둥글다는 게 느껴지며 우주가 코앞에 있다. 로켓은 비행기와는 달리, 지구 중력을 벗어나기 위해서 닥치고 오로지 위로 전속력으로 치솟기만 하라고 만들어진 물건인데, 그 정도 높이까지 발사체를 띄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로 호가 실패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기상 현상이 없을 것 같은 그 높은 상공에 공기의 급속한 흐름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 사실이다. 일명 제트 기류(jet stream)이다. 이걸 잘 타는 비행기는 바람을 타고 마치 무빙워크 위로 걷듯이 손쉽게 비행이 가능하다. 제트 기류는 발견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이걸 이용하느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딱 같은 위도를 유지하면서 일본을 거쳐서 태평양을 수평으로 횡단하지만,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는 북쪽으로 빙 돌아 알래스카를 거쳐서 오는 것이다. 알래스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세상에 그래도 러시아 동쪽 맨 끝과 알래스카 사이 경계가 그나마 인간이 사는 이어진 영토가 제일 없는 곳이다 보니, 거기가 지구상에서 날짜를 끊는 경계선으로 설정된 것도 참 흥미로운 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또 든다. 순항 중인 비행기 안에서, 순항 중인 다른 비행기(특히 마주 오는)를 창문 밖을 통해 볼 일이 있을까?
승객은 그런 걸 보기가 좀체 어려울 것이고, 아주 운 좋을 때나 우리 비행기의 밑으로 나는 비행기를 하얀 점으로 아주 잠깐 볼 것이다. 그러나 정면이 보이는 조종석에서는 그런 것 목격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거미줄처럼 이으면서 하늘을 누비는 여객기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들도 아무 길이나 직선 거리를 찾아 다니는 게 아니라 경제성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최적화 항로만 몰아서 다니기 때문에 서로 마주칠 가능성이 은근히 높다. 게다가 국제법상 여객기들은 어느 때라도 인근의 공항에 n시간 안으로 즉시 비상 착륙 가능한 항로만 골라서 날아야 하기 때문에, 육지로부터 완전 멀리 떨어진 태평양 허허벌판 같은 곳은 지나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아무 장애물이 없고 가시거리가 굉장히 긴 조종석에서는 하늘 저 편에 무슨 하얀 점처럼 보이는 게 맞은편 여객기이다. 물론 상행(한국->미국)과 하행(미국->한국)별로 날 수 있는 고도도 다 수백 m 이상 차이가 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 점은 그냥 순식간에 커지다가 쌩~ 하고 없어져 버린다. 나도 900km이고 저쪽도 900km이면 상대 속도는 무려 시속 1800km이며, 1초에 500미터가 넘게 나아가는 속도이다. 아찔하다.

고속도로에서도 자동차끼리 안전 거리가 최하 100미터인데, 자동차의 10배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비행기는 서로 100~200m끼리만 근접해도 실제로 부딪쳐서 인명/재산 피해가 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near miss라는 사고로 처리된다. 사고라는 말은 이 사건이 사고 일지에 기록되고 원인 책임 규명 조사와 관련 책임자 징계가 뒤따른다는 뜻이다.

영화나 CF를 보면 구름 위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멋진 동영상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은 CG가 아닌 이상, 당연한 말이지만.. 비행기를 촬영하는 또 다른 특수 비행기를 띄워서 거기서 촬영한 것이다. 흠좀무..;; 두 비행기끼리는 최소 수 km는 떨어져 있고 고도의 기술로 zoom 해서 그런 걸 촬영한 거라고 보면 된다. 하긴 요즘은 전투기 공중 급유까지 하는 세상인데 뭘 못 하겠는가.
다만 비행기는 뒤쪽으로 엄청난 후폭풍을 남기면서 움직인다는 특성상, 뒷모습을 가까이에서 찍는 것은 여러 모로 위험하고 무리라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21 09:08 2010/07/2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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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 -- 버스 괴담

※ 버스에서 안 내려서 살아난 경우

-- 여고생 봉고차 납치 괴담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어느 여고생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도중에 탄 어떤 할머니가 그 여고생이 앉은 자리 앞에 와서 서 있었다. 친절한 여고생이 할머니 앉으시라고 자리를 양보하려 하자, 할머니는 몇 번이나 괜찮다면서 사양한다. 거듭된 권유에도 괜찮다는 반응에 여고생은 머쓱해 하다가 자리에 그냥 앉아 있었다.

몇 정거장이 지나고 한참 있다가 갑자기 그 할머니가 여고생에게 노인이 바로 앞에 있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앉아 있다는 둥, 버르장머리 없는 년이라는 둥, 돌연 막말을 퍼부어 대며, 여고생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주위 승객들이 모두 쳐다보기 시작하고 여고생이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할머니 제가 아까 앉으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욕을 한다. 그 할머니가 버스에서 내리면서 "너 따라와 이년아" 라고 말하면서 여고생에게 버스에서 내릴 것을 종용했다. 억울함을 느낀 여고생이 시비를 가리려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자, 잠자코 있던 버스 기사가 조용히 뒷문을 닫으면서 "학생, 가지 말고 그냥 있어"라고 말한다.

버스 기사의 백밀러에는 아까부터 따라오던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고, 그 할머니는 버스에서 내려서 그 봉고차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ㅎㄷㄷㄷㄷ;;

※ 버스에서 내려서 살아난 경우

-- 본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 설정이 앞의 괴담보다는 좀 현실성이 떨어진다. 치안이 불안정하고 사람들도 이기적-_-인 중국 대륙 같은 곳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이다.

첩첩산중 오지를 운행하는 시골 버스를 한 젊은 여성 기사가 운전하고 있었다(위험하게도). 시간도 밤이었던 듯? 그런데 치한들이 탑승하여 운전사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다른 승객도 적은 편은 아니었으나, 못 본 척 아무도 운전사 아가씨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보다못한 어느 중년 신사가 혼자 나서서 치한들을 저지하려 나섰지만 주변에 거드는 사람이 없었고, 그는 한주먹에 나가떨어졌다.
그러니 승객들은 더욱 겁을 먹었으며, 치한들은 더욱 대담해져서 아예 차를 세우고 운전사를 끌고 나가 밖에서 그녀를 욕보이고 말았다. 흠좀무..;; 도대체 그 동안 다른 승객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잠시 후 치한과 운전사는 다시 차에 올라탔는데.. 운전사는 갑자기 다른 승객도 아니고 아까 그 중년 신사를 가리키며 차에서 내리라고 말했다. 당신 같은 무능한 남자는 버스에 탈 자격이 없다고 모욕까지 주면서 말이다. 영문을 모르는 중년 신사는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주변 승객들은 그저 ㅋㄷㅋㄷ거릴 뿐이었고, 아예 신사의 짐까지 창밖으로 던지면서 그를 차에서 강제로 쫓아내 버렸다. 버스는 다시 출발.

그 뒤의 스토리는 뻔하다.
그 여성 운전사는 자기를 구해 주려 한 중년 신사를 내려 보낸 후, 이를 악물고 악셀을 밟아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버스채로 절벽으로 추락해 버렸다. 나쁜 치한과 더 나쁜 승객들을 포함한 전원 사망.
중년 신사는 이 사고 소식을 며칠 후 신문으로 접하고는 슬피 울었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20 08:50 2010/07/2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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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폐쇄적인 파일 포맷 정책 때문에 욕 많이 얻어먹고 있던 한컴에서 최근에, 한 지난달 말부터 꽤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아래아한글의 파일 포맷(.hwp)을 드디어 정식 공개한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한컴도 먹고 살아야지, 그런 회사에게서 MS나 구글 정도의 대인배 기질을 바라는 것도 세상 물정 모르는 개념 없는 소리이긴 하다.)
워디안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사용되어 오고 있는 소위 5.0 포맷과, 지금은 이미 완전 역사 속의 유물이 되어 버린 과거의 97 방식(3.0 포맷) 이렇게 둘을 공개했다.

본인이 아래아한글에 대해서 무척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는 면모는, 지금의 파일 포맷이 미래 확장성을 대비해서 정말 대인배스럽게 잘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아래아한글 2010 정도면  MS 따라 hwpx-_- 같은 새로운 파일 포맷을 도입해도 이상할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10년 전 포맷 그대로이다. 이 정도면 과거 MS 워드가 97부터 2003버전까지 사용한 구식 doc/xls/ppt 포맷의 짬밥을 훨씬 능가한다.

그 10년 동안 아래아한글엔 세로쓰기를 비롯해 문서의 기본 골격을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기능들이 상당수 추가되고, 무엇보다도 문자 인코딩이 마구 바뀌어 왔다. 유니코드 surrogate가 지원되기 시작한 게 2004부터이고, 아랍/히브리 complex script가 지원되기 시작한 게 2005부터이다. surrogate 지원 전에는 Yi 문자 같은 영역에다가 아래아한글 특수문자를 제멋대로 집어넣기도 했다.

특히 문제는 한자. 아래아한글이 과거의 한컴 2바이트 코드에서 자체 제공하던 제 2수준 한자 중에는 유니코드 BMP 영역의 한중일 통합 한자에 존재하지 않는 녀석이 극소수 있었다. 그건 처음엔 사용자 정의 영역으로 가 있었는데 일부는 나중에 surrogate에 있는 유니코드 “한중일 통합 한자 확장 B/C”에서 정식 추가되기도 했다. 흠좀무..;; 끝으로, 2010 버전부터는 옛한글도 과거 10년간 이용해 비표준 한양 PUA를 버리고 드디어 유니코드 5.2 표준으로 돌아갔다!

이 정도면 문자 인코딩도 버전 관리를 해야 할 지경이지 않은지? 또한 이제 워디안 시절의 10년 전 파일 포맷은 효율이 상당히 떨어졌으며, 굳이 하위 호환성을 지키려 애쓰는 것도 무의미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뭐, 비록 워디안은 너무 불안정해서 사용자들로부터 완전히 발렸지만, 2002는 아직도 관공서 같은 곳에서 쓰는 사람이 있지 싶다-_-. 특히 2002 SE는 윈도우 운영체제로 치면 마치 98 SE 같은 안정화 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아래아한글은 같은 문서를 저장해도 파일 크기가 은근히 굉장히 커져 왔다. 가령, 과거 아래아한글 2002에서 작성한 hwp 파일을 2007에서 열어서 아무 수정 없이 그냥 다시 저장만 해도, 파일 크기가 꽤 커진다. 특히 더 옛날의 97 방식 hwp와 비교해 보면, 지금 hwp 파일은 진짜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기가 더 커졌으며, MS 워드의 doc나 docx와 비교해도 마찬가지이다.
아무 서식이나 고급 기능을 안 쓰고 글만 빽빽한 문서를 작성했는데도 파일 크기가 너무 커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압축을 물론 했는데도 그 정도.

사실 이건 MS 오피스 제품도 마찬가지여서 똑같은 doc/xls/ppt도 2003에서 작업한 파일을 2007에서 불러와서(물론 호환성 모드) 다시 저장하면 크기가 꽤 커진다. 2003에서는 인식되거나 사용되지 않는 여러 메타 정보가 추가되어서 그런 것 같다.
그나저나 참고로, 2007 방식이라고 해도 암호가 걸린 문서 파일은 xml+zip 압축 포맷이 아니며, 과거 2003 같은 복합 바이너리 포맷으로 저장된다.

본인은 아래아한글을 버릴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다.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MS 워드의 기괴한 동작 방식, 그리고 손에 너무 익어 버린 단축키, 그리고 과거의 수많은 hwp 문서와 절대로 버릴 수 없는 hft 글꼴들 때문에 아래아한글은 탄탄한 기득권을 갖추고 있다. 또한 한컴도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이라는 것 역시 모르는 바 아니다. 앞으로도 너무 심한 병크만 터뜨리지 말고 아래아한글을 잘 유지 보수해 줬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19 09:03 2010/07/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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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두르고 있는 띠 문제

아는 분들은 이미 다 알 만도 한 문제이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가 편의상 반지름이 대략 6400km 정도 되는 완전한 구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이 지구의 적도 부분을 띠로 둘러서 꽉 조인 매듭을 만들었다고 치자. 그러면 이 띠의 길이는 원의 둘레에 해당하므로, 반지름에다 2π를 곱한 약 4만 km 정도의 길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원둘레에 딱 맞던 이 띠의 길이를, 사람 키보다 약간 큰 정도인 2m만치 더 늘렸다. 다시 말하자면 4만 km에 달하는 띠의 길이를 겨우 2m 더 늘린 것이다. 띠는 이제 원둘레보다 눈꼽만치 더 길어졌고 헐렁해졌다. 그래서 띠를 지표면으로부터 모든 구간을 균일하게 띄워서 다시 빳빳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띠는 지표면으로부터 얼마나 떠 있을까? 띠가 더 길어진 게 티가 나긴 할까?

이 문제의 답을 감으로 당장 떠올린 것과,
연필을 들고 수학 공식을 세워서 푼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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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다시피, 띠를 겨우 2m 확장했을 뿐이지만 그 넓은 지구의 지표면으로부터 띠는 무려(?) 30cm가량은 지표면으로부터 균일하게 떠 있게 된다.
그리고 이 30cm라는 수치는 행성의 반지름과는 전혀 관계없다. 지구가 아니라 목성의 적도를 두르고 있는 띠라 하더라도, 띠를 2m 확장했다면 띠의 반지름은 지표면으로부터 무조건 30cm씩 더 올라가게 된다. 그러므로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고 띠의 길이가 4만 km라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킨 것은 훼이크요 낚시 교란 작전일 뿐이었다.

지표면에서 30cm 뜬 것 자체도 반지름이 이미 수천 km에 달하는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새 발의 피, 손톱의 때도 안 되는 보잘것없는 변화량이다. 그러나 우주의 관점에서 본 변화와 지표면에서 본 상대적인 변화의 폭은 서로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직관은 그런 것을 혼동하기 쉽다. 이 문제는, 마치 인간의 눈이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생각 역시 편견과 실수에 빠지기 쉬움을 보이는 좋은 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인간 두뇌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수학이라는 사고 체계가 발달한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17 17:13 2010/07/1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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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잡설

1. 오늘날 철도가 도로 교통에 비해 본질적으로 우월한 점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만약 버스도 철도처럼 자신만의 전용 도로를 확보하고 완벽한 정시성을 갖춘다면 철도가 도로 교통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고 볼 수 있게 될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다 보면, 결국 21세기에 장거리 간선 교통수단으로서 철도가 차별화를 이루고 살 길이란 오로지 고속철(동력원은 전기)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버스가 전용 도로 등 다른 건 다 따라하더라도, 육안과 핸들로 조향하는 육상 교통수단이 시속 300으로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2.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스마트폰(과 그와 같은 부류의 초소형 컴퓨터 기기)은 걸어 다니면서 문자 입력이 가능하다는 게 큰 장점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그리고 긋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정확한 행동이 필요한 게 아니라, 특정 버튼 지점을 꾹 누르는 ‘순간’에 입력이 성립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나 자동차 내부처럼 주변이 막 흔들리는 곳에서도 글자 입력을 정확하게 할 수 있으며, 이런 엄청난 장점은 심지어 기계식 타자기도 갖고 있다.
그러나 노트북과 타자기는 길거리에서 걸어 다니면서 쓸 수 있을 정도로 작지는 않으므로 앞의 문맥에서는 스마트폰만이 조건을 만족하는 셈. 비록 컴퓨터 키보드보다는 버튼 수가 적고 입력 속도가 훨씬 더 느리지만, 나름 요긴한 점이 있다.

3. 앞바퀴와 뒷바퀴의 크기가 완전히 같아지는 트럭은 2.5톤 규모부터인가? 평소에 눈썰미 있게 보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궁금하다. 소형인 1톤 트럭은 당연히 앞바퀴가 뒷바퀴보다 훨씬 더 크다. 언제부터 크기가 같아지는지... 아시는 분은 답변 부탁.
우리나라는 그러고 보니 엔진룸이 운전석 앞에 있는 트럭이 없다. 미국에서는 아주 쉽게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승용차급 크기인 400~700kg급 픽업도 옛날에는 포니 개조 차량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수요가 없어서 그런지 사라진 지 오래. 피아노 한 대 정도 싣는 용도로는 딱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4. 살인· 강간처럼 사람을 물리적으로 해치는 흉악 범죄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가 이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적· 반역 행위도 아닌데 굉장히 무겁게 처벌하는 범죄가 있다. 바로 위조지폐이다. 위조지폐는 특정 범죄 가중 처벌법이 적용되어 사형, 무기 혹은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으며, 이는 살인과 동일한 형량이다! 장난 전화만큼이나 장난으로라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위조지폐는 한 나라의 경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어지럽히는 매우 중대한 범죄이다. 그리고 이거 잡아내는 기술도 굉장히 발달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 바로 잡힌다.
한국에서는 서 태석 씨가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위폐 감별사로 유명하다. 마치 과거 철도청 시절 열차 시각표 작성의 달인 김 영근 씨처럼, 학벌 없이 장인 정신과 근성만으로 자기 분야의 프로가 된 존경스러운 분이다.

5.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민간인용 지도에 표기가 일부러 금지되어 있는 아이템은 청와대, 발전소, 군부대, 교도소 말고 더 있나? 청와대야 뭐 전국에서 유일한 장소이고 워낙 유명하다 보니 위치를 모르는 사람이야 없지만, 가끔은 이런 비밀스러운 조직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고 거기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업무 분위기는 어떨까 궁금해진다. 나라에서 보유하고 있는 금, 외화, 석유 같은 것도 관리하는 비밀 장소가 따로 있을 것이다.
수능 출제가 이뤄지는 장소, 대학에서 학생들의 학적 정보가 저장된 서버가 있는 위치,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특실 두 칸은 국가 귀빈용으로 따로 떼어 놓았다는 KTX 모 편성, 그리고 국가 정보원 직원(자기네들끼리 자기 소속을 회사라고 은어로 일컬음)의 생활 같은 것 말이다. ^^

6. 우리 교회에는 생선을 정말 충격과 공포스럽게 드시는 분이 계신다. 생선을 한번 들면, 머리부터 시작해서 꼬리지느러미까지 순서대로 입안으로 들어가는데, 머리와 내장, 등뼈까지 다 먹어 치워서 폐기물이 “하나도 안 남는다고 한다.” 세상에!
하긴, 인간의 위는 생선뼈 정도는 다 소화해 낼 정도로 굉장히 튼튼하다고 한다. 오히려 너무 맵고 짠 음식에 약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딱딱하고 날카롭고 목에 걸리기 쉬운 뼈를 어떻게 다 먹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16 09:05 2010/07/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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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 종교) 이야기

1. 대학 특색

올해 상반기에 대학원을 한번 준비해 보고서야,
대학들도 다 똑같은 대학이 아니며, 간판이라는 게 학부뿐만이 아니라 대학원 세계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또한 단순히 인지도 서열뿐만이 아니라, 캠퍼스 면적부터 시작해서 지원되는 학과 내지 강세인 학과도 학교마다 다 다르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한양대나 인하대 하면 공대, 홍익대 하면 미대 같은 식으로. 옛날처럼 수능 점수에 맞춰 자동으로 학교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이제야 진짜로 내 면학 계획에 부합하는 학교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반대로 서울대와 연세대엔 일어일문학과가 없으며 연세대엔 미대도 없다는 사실에 깜놀.

내가 가는 학교는 간판 자체는 국내에서 상당한 인지도와 역사, 전통을 자랑하지만 각 과에 대해서는 학교 간판에 '비해' 의외로 인지도가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 공대는 잘 알다시피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에 밀려서 상당히 약한 듯. 학부는 여길 나왔더라도 대학원까지 거길 가는 사람은 못 봤다. 하지만 난 공돌이 공부를 계속하는 게 아니니 상관없음. (그럴 거면 애초에 학부 모교 대학원을 지원했어야지!)

이곳은 그 대신 국어학 쪽이 서울대와 더불어 양대 산맥이며 최 현배 박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어?) 곳이다. 다른 학교는 비교 문학, 한국학, 문화 컨텐츠 같은 협동 과정은 있어도, 딱 여기처럼 자체 국어사전 연구소를 위시로 하여 국어학+전산학 협동 과정을 개설한 곳은 없었다. 사실, 이런 학제간 연구를 국내에서 제일 먼저 시도한 곳임. 과가 이보다 더 맞는 곳이 없으니 결국 서울대 같은 다른 학교는 더 미련을 둘 필요도 없이 여기에만 지원했다.

그래서 결론은, 본인은 지금 학교에 잘 지원해서 잘 합격했다는 말이 되겠다. 이제서야 지방 소재 단과 대학이 아닌, 인서울 종합 대학에서 제 2의 학생 인생을 시작하겠다. ㅎㅎ

2. 고학력 실업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대학원으로 체제 전환을 하기로 했다. 히드라 럴커를 운용하다가 뒤늦게 스파이어를 올리는 기분이다. 이제야 교수가 얼마나 위대하신-_- 자리인지를 느끼게 됐으며, 누가 박사라고 하면 출신 학교와 학위 취득 나이 같은 프로필을 더욱 유심하게 보는 버릇이 생겼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박사라고 해서 다 같은 박사가 아니다. 국내 지방대 인문계 박사부터 시작해서 골수 유학파 20대 박사도 있고... 40대가 넘어서까지 거의 10년째 시간 강사 보따리장수 신세인 박사가 있는가 하면, 공대에는 무려 30대 초반에 본격 교수가 되어 자기 랩 동기들을 떡실신시킨 유학파 박사도 있다. 아놔...;

나는 이제 대학원에 가면 저 두 극단의 중간에 가까운 길을 갈 듯하다. (전자에 더 가까울지도ㅜㅜ) 일찌감치 대학원을 간 주변 동기들은 이제 박사까지 따고 나올 때가 됐는데 본인은 이제 들어간다. 학사 취득과 석사 취득 사이에 7~8년 정도 긴 간극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간에 군 복무와 직장 생활을 좀 한 경우이며, 본인도 딱 거기에 속한다.

이 승만도 36세인가 그 무렵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지금 시작해도 저 사람보다는 늦지 않을 거다. 할 일 없어서 가방끈이나 늘리러 진학한 건 절대 아니고, 논문 쓸 건 다 생각해 놨다. 이제 특정 플랫폼에 종속적인 노가다 코딩은 밑의 후임에게 맡기고, 나는 더 고차원적인 걸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3. 종교 특색

연세대: 대표적인 장로교 계통
동국대: 불교
서강대: 천주교
원광대: 원불교
우리나라 국군이 인정하는 4대 종교별 대표 학교이다. ㄲㄲ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류를 꼽자면,
해당 종교에 속하는 사립 대학교에 자기가 제 발로 가 놓고는, 거기서 부과하는 채플이나 종교 의식이 ‘종교의 자유 침해’라면서 딴지 거는 애들.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종교별로 다양한 건학 이념도 존재하며, 그 학교에 간 학생이라면 일단 그걸 존중은 해 줘야 하지 않는가? 자기가 거기에 신념상 동의는 안 하더라도 말이다!

동의할 수도, 존중할 수도 없다면, 그럼 그 학교엔 애초에 가지 말아야 한다. 본인은 동국대나 서강대 같은 학교는 안 갔을 것이다. KJV 믿는 지역 교회가 주변에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런 오지에 있는 학교조차 꺼려지는 마당에, 하물며 건학 이념이 대놓고 타 종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학교엘 가겠는가?

오히려 기독교 학교라고 불리는 학교들조차도 내가 보기에는 지금은 완전히 세속화할 대로 세속화해서 진짜 성경대로 믿는 교리는 거의 찾을 수 없으며 껍데기만 남았다. 그러면서 불신자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만 심어 주고 있다.

포항에 있는 한동대는 대표적인 기독교 사학이란 걸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연세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종교 성향이 더 노골적이다.
그런데 몇 년 전(한 2007년?)엔 여기에 어느 무슬림 학생이 갑툭튀 유학 왔다. 물론, 입학 전에 한동대의 종교적 이념에 동의한다는 각서도 다 쓰고 말이다. 공부 잘하고 아주 똑똑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이 친구... 한동대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이슬람을 포교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개독들처럼 빨간 조끼와 붉은 십자가의 이슬람 버전으로? 아니, 천만의 말씀이다. 아주 정중하고 다소곳하고 예의 바르게(이슬람의 극단적인 두 얼굴을 명심하라), 교칙 전혀 안 어기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무려 성경을 펴서 논리정연하게 이슬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교내 기도실에서는 혼자 메카를 향해 알라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포교는 “봐라, 성경에 이런 구절도 있는데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일 수 있느냐? 예수는 하나님의 대언자일 뿐이지 삼위일체는 잘못됐다.” 아마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안티질을 한 것도 아니다. 아니 그랬는데, 룸메이트를 포함한 상당수의 주변 학생들이 그 포교에 넘어가서 신앙 정체성을 잃고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교수들조차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 그 기독교 학교에 들어간 그 많은 학생들이 이슬람 학생 겨우 한 명을 신앙 논리로 못 이긴 것이다. (마 17:17 같은 주님의 탄식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래 놓고 백 날 음주가무만 금지하고 종교 생활만 율법적으로 강요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금연 금주 금녀는 종교색이 전혀 없는 사관학교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규칙이다.

주님께서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것처럼(눅 16:8), 저 이슬람 학생도 지옥 자식으로서는 임무를 정말 잘 수행했다. 작정하고 타 종교인을 계몽(?)할 목적으로 나와 종교가 다른 학교에 일부러 들어갔다면, 차라리 저 이슬람 학생처럼 행동해라! 합법적으로 노력해서 당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괜히 종교의 자유 운운하면서 인권위 진정 내지 1인 시위, 소송 따위나 하지 말고 말이다. 또한 반대로, 허접한 한국 기독교회와 교인들도 반성해야 할 게 무진장 많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대학+종교 얘기하다 말이 엄청 길어졌다.
끝으로 한 마디. 전라남도에 있는 대불대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달리 불교 계열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기독교 계열이라고 한다. 정말 충공그깽.

Posted by 사무엘

2010/07/15 08:24 2010/07/1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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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ndelete (노턴 유틸리티의 unerase)

그렇다. 도스 시절에는 지금처럼 휴지통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FAT 파일 시스템에서 파일 삭제는 파일 이름의 첫 글자만 ?로 바꿔서 지워진 것처럼 속이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런 파일을 찾아내어 첫 글자를 지정해 주면 지워진 파일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100% 완전히 복구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본디 파일이 있던 위치에 다른 파일이 덮어써지면 파일이 소실되거나 심지어 다른 파일 내용과 충돌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이건 또한 보안상으로도 굉장한 허점을 남기는 위험한 일이며, 옛날 도스 시절에 운영체제나 파일 시스템이 지금보다 훨씬 더 단순할 때나 통용되던 편법에 불과했다.

2. sort (노턴 유틸리티의 ds)

요즘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탐색기나 여타 파일 관리 유틸리티들은 파일 목록을 보기 좋게 잘 정렬해서 보여주지만 DIR을 쳐서 나타나는 파일 목록은 그렇지 않았다. 말 그대로 디스크에 저장된 순서대로 저장된 파일 목록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래서 디스크에 보관되는 파일 목록 자체를 ABC 순으로 정렬해서 재기록해 주는 별도의 유틸리티가 있었다. 그것도 하위 디렉토리들까지 재귀적으로 알아서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윈도우 NT 계열이 사용하는 NTFS 파일 시스템은 자체적으로 파일 목록을 알아서 ABC 순으로 무조건 정렬해 놓으므로 그런 유틸리티가 무의미하고 불필요해졌다. 내부적으로 단순 연결 리스트가 아니라 tree 같은 자료 구조를 쓰는 듯하다. 과거의 윈도우 9x와 윈도우 NT는 아무 디렉터리에서나 DIR만 쳐 봐도 결과가 차이가 났던 것이다.

지금도 FAT32를 쓰는 플래시메모리를 꽂아서 DIR를 해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하드디스크는 파일 목록이 ABC 순으로 출력되는 반면, 플래시메모리는 그렇지 않다.

3. 디스크 검사 (노턴 유틸리티의 NDD)

요즘 애들은 디스크 드라이브가 A부터 시작을 안 하고 왜 C부터 시작하는지 이유를 모를 것이다. 옛날 A와 B를 차지하고 있던 플로피디스크는 용량 적고 느린 건 둘째치고라도 물리적인 에러가 정말 잘 났다. 이 디스크 에러 내지 데이터 에러는 도스가 간단히 에러 메시지만 뱉고 끝내는 게 아니라 꼭 A중단, R재시도, I무시 같은 더 끈질긴(?) 인터페이스로 대응했기 때문에 더욱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그 시절에 디스크 검사 유틸리티는 필수였다. 물리적인 에러가 난 부위는 bad sector로 처리하여, 거기를 건드리다가 운영체제가 에러 메시지를 뱉는 일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 줘야 했다.

과거에 하드디스크 용량이 한 수백 MB대일 때까지는 하드디스크도 NDD를 돌려볼 만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디스크 검사라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에러가 거의 없어지기도 했고, 또 디스크 용량도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4. 디스크 조각 모음 (노턴 유틸리티의 SPEEDISK)

오늘날 존재하는 디스크의 모든 파일 시스템들은 어떤 형태로든 정기적인 조각 모음(defragmentation) 작업이 필요하다. 데이터베이스 파일도 그렇고, 가상 머신 이미지 파일도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조각 모음은 과거 도스 시절만의 잔재는 아니며, 윈도우 XP까지도 별도의 시스템유틸리티가 존재했다.

비스타부터는 idle time 때 조각 모음을 운영체제가 알아서 지능적으로 찔끔찔금 하는 형태로 바뀌어, 덕분에 사용자가 이런 걸 신경쓸 필요가 사실상 없어졌다. 지금은 옛날 같은 방식으로 조각 모음을 하기에는 하드디스크 용량이 커져도 너무 커졌고, 또 SSD 같은 디스크는 아예 내부 특성상 전통적인 의미의 조각 모음을 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기도 하다. 세상이 그만치 많이 변했다.

윈도우 95를 설치해 놓고 도스용으로 만들어진 디스크 조각 모음을 실행하면 긴 파일 이름이 싹 다 날아가고 대략 패닉이 벌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상태에서 undelete라든가 디렉터리 정렬 같은 저수준 작업을 시도하면 emm386 같은  메모리 드라이버가 에러를 내면서 컴퓨터가 그냥 다운되어 버리기도 했다. 오늘날은 과거 노턴 유틸리티의 DISKEDIT 같은 무식한 저수준 유틸리티가 돌아가는 건 절대 권력 운영체제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도스와 윈도우 9x 시절의 잔재라 할 수 있는 FAT 파일 시스템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FAT12: MS 도스 초창기에 도입. 플로피디스크용이며, 인식 가능한 하드디스크 용량은 최대 32MB.
FAT16: MS 도스 4.0(무려 1988년)에서 도입. 디스크 용량의 이론적 한계치가 2GB로 증가

FAT32: 윈도우 95 OSR2에서 도입(1996년). 최대 용량이 테라바이트급으로 늘긴 했으나, 파일 하나의 최대 크기는 여전히 4GB 제약을 받으며 디스크 용량이 수십, 수백 GB에 육박하면 슬슬 불안정해진다. NTFS로 갈아타는 게 낫다.
exFAT: 윈도우 비스타 SP1에서 도입(2008년). 플래시메모리 구조에 최적화되었고 파일 1개의 4GB 제약도 없어졌다고 함.

Posted by 사무엘

2010/07/14 11:09 2010/07/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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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막장 성경 만화

김 성모 + 개그 만화 일화 + 이 말년 스타일의 성경 만화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1.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니 이는 그가 말하기를, 내가 창으로 다윗을 쳐서 벽에 박으리라, 하였기 때문이더라.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삼상 18:11)

2. 온 도시가 격동하고 백성이 다 같이 달려들어 바울을 붙잡아 성전 밖으로 끌어내매 문들이 곧 닫히더라. (행 21:30)

전자는 사울 왕이 다윗을 너무 시샘하여 죽이려 하는 장면이며,
후자는 바울이 광분한 동족 유대인들에게 붙들려 가 구타당하는 장면이다.
이때 이런 대사가 하나 들어가면 정말 빵터지지 않을까?

“마침 시간도 인간이 가장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잔인해질 수 있는 저녁 8시. 누굴 끝장내도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을 것 같아!”

그리고 보너스.

3. 그가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를 높여 이르되, 이런 놈은 이 땅에서 없애 버리라. 그를 살려 두는 것은 마땅하지 아니하다, 하며 (행 22:22)

이건 "네놈을 살려 두긴 쌀이 아까워!" 로 받아쳐 주자. ㅋㅋㅋ

4. 날이 새매 유대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함께 단결하고 자신을 속박하여 저주 아래 두고 자기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말하더라.  (행 23:12)

이들은 웬지 이런 피켓을 들고서 농성을 할 것 같다.
“바울을 죽입시다 바울은 나의 원수”

5. 다윗이 이 말들을 마음속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 앞에서 자기 행동을 바꾸고 그들의 손 안에서 미친 체하며 바깥문의 문짝들에 휘갈겨 쓰고 침을 수염에 흘리매 (삼상 21:12-13)

이건 영락없이 개그 만화 일화에서 바쇼 씨가 독버섯 먹고 발작을 하는 장면이다. (3기 9화) ㅋㅋㅋㅋ 다음 14~15절은 아기스 왕 대신 후류 군으로 바꿔서 읽어보기 바란다.

6.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큰 존귀에 이르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리니 그러므로 원하건대 와서 나를 위해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매 (민 22:17)

민수기 22~23장을 읽어보면, 장소 세팅하고서 발람이 웬지 축시의 참배를 거행하는 것 같다. “한겨울에도 귀마개 쓰고 축시”
마치 개그만화에서 스토리가 잘 풀리지 않고 자꾸 꼬이고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것처럼, 성경에서 발락이 발람에 저주를 요청하지만 저주가 잘 내려지지 않는 것도 똑같다. "죄송합니다. 기분상으로는 분명 저주하는 느낌이었습니다만." ㅋㅋ

7.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그것을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사람들에게 주어 그들이 먹게 하라, 하매 솥에서 해를 일으키는 것이 없어지니라. (왕하 4:41)

독초가 들어간 국을 해독하는 방법으로는, “가루를 사용하며 그것을 솥에 던지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ㄲㄲㄲㄲ

8. 비록 무화과나무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올리브나무에 수고의 열매가 없고 밭이 먹을 것을 내지 아니하며 우리에서 양 떼가 끊어지고 외양간에 소 떼가 없을지라도 (합 3:17)

하박국의 유명한 찬송시는
“비록 코트 안에 마물이 살고 있고, 배구에 걸었던 청춘이 모두 맛이 갔으며 믿을 만한 동료들이 눈이 죽었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주를 기뻐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리로다” 정도로 패러디 가능하지 않을까? 성경 원전하고 대조해 보면 분위기가 묘하게 비슷함을 알 수 있다!

9.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날짐승과 들짐승에게 주리라, 하니 (삼상 17:44)

골리앗이 다윗에게 한 이 공갈은 김 성모 식 언어로는 “뼈와 살을 분리해 주겠다” 정도로 번역 가능하겠다.

10.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그러하리라, 하니라. (삼상 22:16)

사울 왕이 자기 멋대로 제사장들을 누명을 씌워 학살하는 장면인데... 앞부분 문맥을 읽어보면 영락없이 아래의 대사가 떠오르게 된다.
“좋다! 솔직하게 말했으니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될까요?”
“죽을 것이다!”

11. 나발이 다윗의 종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다윗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 각각 자기 주인에게서 도망치는 종들이 많도다. (삼상 25:10)

뭥미, 듣보잡, 갑툭튀 같은 말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성경을 찾아보면 ‘이새의 아들’은 다윗을 굉장히 경멸조로 얕잡아 부르는 표현이다.

12. 평안히 가라 (Go in peace)

성경에 여러 번 나오는 표현인데, 본인은 김 성모 만화에서 “안녕히 가라”라고 막장 반말 자막이 떠 있는 동서울 톨게이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ㅋㅋㅋㅋ

13. 왕이 내게 이르되, 네가 병들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네 얼굴에 슬픈 기색이 있느냐? 이것은 분명히 마음의 슬픔이로다, 하므로 그때에 내가 매우 심히 두려워하며 (느 2:2)

문맥을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이렇다. 그때는 왕 앞에서 신하가 감히 인상 쓰고 있는 건 굉장한 결례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는데, 이방인 왕의 포도즙 시종장이던 느헤미야가 자기 동족과 관련된 슬픈 소식을 듣고서 슬픔에 잠겼고 그 감정을 왕이 간파를 한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 딱 개그만화일화 대사가 생각나지 않는가?

"포도즙 마실까보냐! 뭣보다 왜 이렇게 유감스러운 표정의 시종장이냐! 이 포도즙 마시는 사람 얼굴이 기분 나뻐!"

14. 성경은 성경이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다고 증언하지만, 개그 만화에서는 우사미가 영감을 받아 범인을 잡아낸다. "앗! 사도 바울이 펜을 든 순간, 그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이것은 곧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뜻이다!"

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여자의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발꿈치를 내어 주고 목을 딴다고라... 김 성모 만화 대사에서 자주 발견되는 패턴이다.
"가랑비는 맞는다.. 하지만, 폭풍은 내 것이야!"
"한 대 맞고 두 대 친다"
"내 옆구리를 주고 네 목을 가져가는 전략일 뿐이야!" / "내가 십자가에 달린 것은 부활할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하나님도 이런 전략을 구사하셨단 말인가. ㄲㄲㄲㄲ (그렇다고 해서 으윽~ '옆구리를 너무 깊이 찔렸어' 같은 건 없다. ㅜ.ㅜ)

16. 내가 너희에게도 전해 준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신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으사 ... (고전 11:23)

고린도전서 자체가 육신적으로 옥신각신 티격태격하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책망 내용이다. "우리 이런 일로 싸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으시기 전날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세요."
아주 경건하고 숙연한 분위기인데 예수님을 졸지에 저팔계로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 어떡해, 분위기와 대사 패턴이 너무 잘 들어맞는데. 이거 고인드립인가? ㄲㄲㄲㄲ

이 외에도 ‘근성’, “세상이 대충 망한 뒤에”, “안 돼! / 돼!”, “리듬과 파워! 그리고 집중력!”(성경에도 은근히 배틀 씬 많다) 등, 여러 대사가 응용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가령, 아브넬의 부하와 요압의 부하들이 배틀 아레나를 하는 장면에서(삼하 2:14) "나의 40단 컴보는 자비심이 없지", "네놈의 공격 패턴 강약약", "풋 사과", "내 공격을 막는 데 애로사항이 꽃필 것이다!" 같은 대사가 나올 수 있으며,
요압이 자기 정적들을 교활하게 죽이는 장면에서는 "발차기의 모든 것을 보여 주마" 하면서 훼이크로 주먹질을 하는 장면이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

저런 만화를 잘 아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 크리스천인 경우는 거-_-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성경을 이 정도로 아는 크리스천 중에서 저런 만화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전혀에 가깝게 없을 것이다. 어? 그럼 난? ㅋㅋㅋㅋㅋ

* 참고로 성경이 말하는 지옥은 영원한 고통의 장소이지, 아버지와 함께 럭키짱 만화책이나 실컷 볼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니다. ㅠ.ㅠ
한번 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거기는 무슨 군대처럼
고참도 없고 말년 같은 개념도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13 12:20 2010/07/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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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의 발음

본인은 ‘효과’(effect)를 ‘효꽈’가 아닌 글자 그대로 발음하는 것을 반대한다. TV에서 방송인들이 애써 ‘효과적으로’--아나운서랍시고 교육을 그렇게 받았을 테니--라고 말하는 걸 듣노라면 너무 어색하다.

마치 ‘김밥’하고 비슷한 예인 것 같다.
저걸 글자 그대로 발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부 한결같이 ‘김빱’이라고 읽는다.
왜냐고 물으면 답이 없다. ‘비빔밥’, ‘볶음밥’, ‘곰국’, ‘짜장밥’ 같은 비슷한 예와 비교해 봐도 본인의 국어 실력으로는 원칙 내지 알고리즘을 못 찾겠다.

원칙을 못 찾겠다는 말은, “이렇게 발음해야 한다”라든가 “저렇게 발음해서는 안 된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뜻. 이렇게 그냥 정하기 나름인 규칙에 대해서는 그냥 둘 다 허용하거나, 많이 쓰이는 편을 들어 주는 게 맞다. 마치 ‘짜장면’처럼 말이다.

그럼, ‘효과’라는 단어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말에서 ‘과’가 ‘꽈’로 변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소리나는 경우는 가장 먼저 and를 뜻하는 조사일 때이다. 이때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절대로 경음화하지 않는다. 무성음 받침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일어나는 경음화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한자어의 경우, 먹는 음식을 뜻하는 果 내지 菓(과자)일 때도 변하지 않는다. 수정과, 한과, 유과 등.
그 반면, 부서나 학문 단위를 뜻하는 科나 課는 반드시 변한다. 심지어 단독으로 등장할 때도 경음화한다. 대학교 용어인 ‘과대’(과 대표), ‘과사’(학과 사무실)에서 과는 100% 꽈로 바뀐단 말이다.

또한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라 일의 결과를 뜻하는 비유적 의미의 果도 경음화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결과라는 단어 자체는 ‘결꽈’가 되지 않지만 성과는 ‘성꽈’로 바뀐다. 본인은 효과가 ‘효꽈’로 바뀌는 것도 성과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며, 동음이의어 식별을 위해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무리하게 글자 그대로 읽는 걸 반대한다.

본인이 논리 전개 과정에서 넘겨 짚은 게 있으면, 국어 고수들로부터 지적를 환영하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12 17:53 2010/07/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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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낚시 영단어

- infinite
수학에서 유한, 무한 같은 건 서로 중요하게 구분되는 개념이다.
본인의 대학 시절엔 infinite를 일일이 '인 파이나이트'라고 읽으시던 이산수학 교수님 강의를 재미있게 들은 기억이 있다. 일본식 발음 같은 느낌이 들었다. energy -> 에네르기, berserk ->  베르세르크처럼. ^^;;;
finite(유한한)는 '파이나이트'이다. 하지만 반의어인 infinite(무한한)는 '인피니트'이다. 접두사 in-의 영향을 받아 장모음 i(아이)가 단모음 i(이)로 축약되기 때문이다.
 
- anxiety
마치 Y가 반자음도 되고 일반 모음도 되는 것처럼, 영어 알파벳에서 X는 카멜레온 같은 면모가 있는 글자이다.
대부분, 특히 음절의 끝에서는 box처럼 [ks](크쓰)로 소리나는 반면
아주 제한적으로 [z] 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다. xylophone 처럼 이런 예는 굉장히 드물다.
 
그래서 아주 웃긴 단어가 있다. anxious(불안해하는)는 '앵크셔스'[ks]이다. 그러나 명사형인 anxiety는 '앵자이어티'[z]가 된다!
본인의 고등학교 시절에, 영어 시간에 실수를 한번 저질러서 "환상의 본토 발음 앵크셔티"가 별명이 되어 버린 친구가 있었다.
 
- sword
옛날에 영화 제목으로 '스워드'가 당당하게 진열된 적이 있었다.
비슷한 철자인 sworm은 '스웜'이다. 그러나 sword는 '스워드'가 전혀 아니며, '소오드'에 가깝다. W는 전혀 발음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무시하고 sord를 읽듯이 읽어야 한다.
 
그러나 어찌하리, 한글로 표기하면 '소드'보다 '스워드'가 훨씬 더 간지(?)가 나 보이는 것을!
게다가 우리는 영어 발음을 한글로 적을 때 장모음 내지 모음 R(혀 굴리는) 표기도 귀찮아서 다 생략하고 지내기 때문에, '소드'라고만 적으면 꼭 sod 같은 단모음 단어처럼 뉘앙스가 아주 가벼워 보이게 된다.
 
이 외에, 같은 단어가 명사일 때와 동사일 때 발음과 심지어 강세 위치가 싹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 present 프"레"즌트, 프리"젠"
- object "아"브직트, 오브"젝"
 
이건 마치 한국어에서 이런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type
- 타입: 유형, 스타일
- 타이프: 인쇄 활자 관련 (타이프라이터)
 
dot
- 도트: 말 그대로 점 내지 픽셀. (도트 프린터, 도트 노가다)
- 닷: 인터넷 관련-_-;; (닷넷, 닷컴기업)
 
그러고 보니..
do, come, go, have
영어의 근간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필수 기초 동사들이... 3인칭 단수 변형이나 과거/과거분사가 다 제각기 굉장히 불규칙스럽다는 것도 꽤 흥미로운 사실이다.
 
do는 O 주제에 O 소리가 전혀 나지 않고, does, done 같은 변형에서만 O 소리가 실현된다. do에서 유래된 유닉스 명령어인 sudo는 영락없이 '수도'처럼 보인다.
have는 '헤이브'가 아니며, come도 철자로부터 느껴지는 뉘앙스와는 전혀 다른 단모음 소리 때문에, 본인은 어렸을 때 현재진행형을 comming으로 자주 잘못 적기도 했다. 현재형과 과거분사가 일치하는 A-B-A형 불규칙.
 
현대 영어의 3인칭 단수형인 comes는 '컴즈'이고 음절이 추가되지 않는 반면, 킹 제임스 성경의 3인칭 단수형인 cometh는 '커메쓰'라고 음절이 추가되어 발음된다.
do는 더욱 흥미로워서 킹 제임스 성경에는 doth와 doeth가 모두 존재한다. 전자의 발음은 '더쓰'이지만, 후자는 모음이 추가되어 '두이쓰'가 된다. 즉, 현대 영어의 does  '더즈'와 더 비슷하게 발음되는 단어는 doeth가 아닌 doth인 것이다.

그래도 영어 정도의 불규칙과 굴절은 다른 유럽 언어에 비하면 양반이라 함. 프랑스나 독일어는...;; 그나마 영어가 세계 국제어가 된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영어는 국제어로서 손색이 없는 풍부한 어휘, 그리고 매우 작은 문자 집합(A~Z까지 겨우 26자)가 큰 장점이다. 영어의 지위는, 20세기가 다 돼서야 주시경 같은 학자에 의해서 맞춤법이 정립되고 국어사전이란 게 최초로 출간된 지 한 세기도 안 된 한국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어는 언문일치에 관한 한은 답이 없는 언어이다. 알파벳이 나름 소리글자라지만 모음이 너무 부족하고, 또 알파벳만 쓸 뿐 표기가 제각각인 언어로부터 어휘가 워낙 많이 유입되다 보니, 철자하고 발음과의 일치는 애시당초 글러먹고 언문일치는 안드로메다로 갔다. 그렇게 언문 불일치로 인한 연상 거부가 너무 심해서 난독증이라는 일종의 지적 장애 환자까지 있다고 들었다. (독해력이 딸리는 인터넷 전투종족인 게시판 트롤의 난독증과는 다른 개념 ^^;;)

Posted by 사무엘

2010/07/12 08:21 2010/07/1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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