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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교체 & 전화번호 변경 외

지난 9월 13일, 본인은 손전화를 교체함과 동시에 전화번호도 드디어 010 기반으로 바꿨다.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인터넷, 카메라 등 될 건 다 되는 햅틱 급의 터치폰이 본인의 제 4대 손전화로 취임했다. (참고로 노트북도 현 기종이 제 4대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2001년 초에 처음으로 개인용 휴대전화를 접한 이래로, 지금까지 폰을 총 세 번 바꿨다는 뜻이다.

본인은 전화번호는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내고 아는 사이인 사람에게만 공개하지, 홈페이지 같은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알리지 않음을 밝힌다. 불특정 다수에게는 메일 주소만 공개하며, 이 블로그에서도 전화번호 자체는 공개하지 않고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사실만 알리는 것이다. 혹시 본인의 지인이면서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문자 연락을 받지 못한 분이 있다면 본인에게 알려 주기 바란다.

1990년대에는 PC의 발전 속도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XT/286급 컴퓨터가 무려 윈도우 98/2000을 돌리는 성능으로 발전하면서 20세기가 끝났다. 우유, 라면 값이나 버스 요금, 공중전화 요금 따위는 20년 전에 비해 지금이 3배 이상 올랐고 심지어 자동차 가격도 인플레의 영향을 받았지만, 컴퓨터의 가격만은 보편적인 생필품 물가를 역행해도 한참 역행해 왔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2000년대에는 전화기가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다. 전국민이 손전화를 소지하면서 삐삐는 마치 인터넷 앞에서 PC 통신이 도태하듯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공중전화도 마치 우체통만큼이나 아주 없앨 수는 없지만,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가 됐다. 자동차용 고급 액세서리이던 카폰도 닥버하게 됐다.

단색 액정 화면은 컬러로 바뀌고 단색 멜로디는 애드립 멜로디를 거쳐 자연적인 사운드로 바뀌었다. 전화기에 웬 카메라 기능이 추가되고 영상 통화가 가능해지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졌다. 비트맵 글꼴도 윤곽선 글꼴로 바뀌었다. 나중에는 아예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설치할 수 있는 스마트폰까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존재하던 각종 개인용 정보 열람/처리 기기의 기능을 흡수하게 되었다.
(관련 글: http://moogi.new21.org/tc/208 )

본인은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의 싸움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좀 더 지켜본 뒤에 다음 전화기는 스마트폰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_-;;

초대 손전화 시절에 본인의 번호는 017이었다. 그러던 것이 대학 시절에 제 2대 손전화를 도입하면서 번호를 016 기반으로 바꿨고, 이 번호를 2003년부터 2010년까지 거의 7년 반 동안 사용했다. 그러니 본인이 애착이 갈 만도 하지 않은지? 2대와 3대 전화기는 한글 입력이 모두 나랏글 방식이었기 때문에 본인은 7년이 넘게 사용한 나랏글 방식에 아주 능숙하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본인은 전임인 3대 전화기(LG 싸이언)를 거의 집착에 가까운 수준으로 오래 썼다. 2004년 말부터 지금까지 거의 5년 9개월을 사용했다. 2년을 채 못 쓰고 분실한 2대 전화기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왜냐하면 본인은 손전화로는 오로지 통화와 문자밖에 안 쓰고 부가적으로 알람이나 주소록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능이 복잡한 전화기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정보 처리 기능은 늘 들고 다니는 노트북을 이용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 구닥다리 전화기는, 자동차로 치면 마치 아직까지 포니나 스텔라 같은 차를 몰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쟤 전산학 전공한 친구 맞어?” 경악이 나오기에 충분할 정도. 요즘 IT계에서는 안드로이드나 아이폰 개발자가 없어서 일손이 부족해 난리라는데, 본인은 그런 것과는 전혀에 가깝게 관계가 없는 삶을 살아 왔다.

그러다가 결국은 전화기를 바꾸게 됐다. 그건 전적으로 전임 전화기가 낡고 고장이 나서 전화기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못 하고, 수리를 받아도 별 진전이 없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자연사인 셈이며, 정말로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바꾼 것이었다. ^^;;

언제부턴가 갑자기 전화 연결이 잘 안 되고, 통화 중에 전화가 끊어지고, 문자도 받는 건 잘 되는데 보내는 게 되지 않았다. 툭하면 ‘통화권 이탈’ 에러가 났다. 나 혼자 불편한 건 상관이 없는데, 이 때문에 본인에게 연락을 하는 다른 사람이 불편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단호하게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10년 가깝게 폴더를 펼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가 버튼 누르기, 화면 길게 누르기(터치폰을 activate하는 방식) 동작을 하는 것이라든가..
예전 폰으로는 꽤 금방 꺼냈던 기능을 지금 폰으로는 몇 차례 터치를 더 해야 되는 것에 대해서 좀더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마치 도스용 아래아한글의 달인이던 사람이 윈도우용 아래아한글이나 MS 워드의 각종 마우스 동작에 적응하는 과정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문자 메시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본문부터 먼저 입력하고 나서 수신자 번호를 입력받는 것이 심리적으로 무척 안정감을 줘서 좋다. (예전 폰은 수신자 번호 다음에 본문 순서여서 불편했음)

드디어 개인용 기계에서 천지인 입력 방식을 쓰게 됐는데... 모음을 분해하는 과정이 좀 복잡한 것, 그리고 음절 모호성 때문에 자음 연속 입력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게 무척 불편하긴 하다.
하지만 나랏글도 일부 자음은 가획이 만만찮게 복잡하고, 그런 게 천지인에서는 반대로 편하게 되는 것도 있으니 일장일단이 있는 듯하다. 게다가 나랏글은 * #까지 12키를 모두 사용하지만, 천지인은 10개만으로 문자를 입력하고 * #키는 문장 부호 입력용으로 쓴다는 특징도 있다.

전화기를 개통해서 나오니까 꼭 자가용을 한 대 뽑아서 몰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교통 수단 대신 통신 수단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다음은 관련 잡설들이다.

1. 본인 전화기의 컬러링이나 벨소리는 Looking for You, Oh Glory Korail 같은 걸로 했으면 좋겠다. ㅋㅋㅋ

2. 본인은 무선 인터넷이란 걸 접한 게 2003년에 학교 안에서였다. 그러던 게 불과 몇 년 사이에 무선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보급되고 대중화했으며, 성능마저도 과거의 어지간한 유선 인터넷 회선의 속도를 따라잡았다. 손전화와 무선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대학 캠퍼스 생활은 과연 어땠을까 상상이 안 된다.

3. 본인은 01x 번호에다가 3G 전화 서비스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아직까지 기계 대체나 번호 변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있는 2G 전화만으로 만족하고 잘만 쓰려는 사람들이다. 단지, 개인의 선택권인 번호나 제멋대로 바꾸지 말고 이미 있는 서비스나 잘 제공해 줬으면 좋겠다.
사실상 4천만 명이 넘는 전국민이 손전화에 가입해 있는데 010 번호+겨우 8자리는 공간이 많이 모자라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4. 오늘날 지메일은 구글이 2006년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로, 웹메일 서비스의 지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메일에 익숙한 사람은 다른 포털 사이트 메일은 너무 불편해서 못 쓴다는데, 본인은 10년도 더 전에 가입한 드림위즈 메일 계정을 아직까지 사용 중이다.
뭐, 본인도 지메일 계정이 없는 건 물론 아니다. 그 당시에 지메일은 초대장을 퍼뜨리는 방식으로 자기네 서비스를 홍보하고 사용자를 끌어모았던 걸로 기억한다. 한 사람당 기가바이트 급의 계정 용량을 준다고 했고 지금은 그 용량이 더욱 커져 있기도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22 09:09 2010/09/2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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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기능을 하는 프로그램이 여러 CPU 아키텍처로 포팅된 실행 파일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x86 아키텍처용 EXE는 크기가 가장 작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작은 편이다.
이보다 코드 사이즈가 더 작게 컴파일되는 아키텍처는 본인이 보기엔 찾기가 어렵다.
EXE 파일의 기계어 코드 부분을 헥사 에디터로 들여다봐도 코드 바이트가 좀 조밀조밀 있는 편이다. 그 반면 IA64나 MIPS 같은 아키텍처 EXE의 기계어 코드를 들여다보면, 4~8바이트 단위로 패턴이 느껴진다.

물론 인텔 아키텍처도 그나마 32비트와 64비트로 가면서 인스트럭션의 평균적인 크기가 길어져 오긴 했다. 그런데 초기의 16비트 명령 체계는 정말 아담했으며, 어셈블리 튜닝을 쓰면 오늘날의 컴퓨터 아키텍처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작은 크기의 프로그램으로 온갖 큼직한 기능을 넣을 수 있었다. ^^;;
인텔 아키텍처는 하위 호환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으니, 옛날에 정한 1바이트짜리 코드 바이트가 다 선점되었으면 32비트나 64비트 때 추가된 명령은 탈출문자 접두사를 붙여서 5바이트~6바이트... 이런 식으로... 근본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컴퓨터 아키텍처에 대해서 배운 전산 전공자라면, CISC 방식과 RISC 방식의 차이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봤을 것이며, 오늘날엔 이런 식의 단편적인 구분이 별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옛날은 메모리가 아주 귀한 자원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인텔 x86은 코드를 적재하는 데 필요한 기억장소의 크기를 최대한 아끼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기계어 코드의 크기가 1바이트부터 시작해 아주 가변적이고, 각 명령 하나하나에 꽤 함축적으로 많은 뜻을 포함시킬 수 있다.

많은 뜻이라 함은, 명령을 내릴 때 상대 주소라든가 절대 주소라든가 실제 상수 같은 개념을 한 인스트럭션에다가 바로 표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아키텍처라면 임시값을 또 레지스터에다 먼저 저장하고 전처리를 해서 여러 인스트럭션을 거쳐 표현해야 할 명령을, 한 인스트럭션만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CISC 방식이라고 하며, 앞의 C는 complex를 뜻한다. 인텔 x86은 CISC 방식 아키텍처의 대표적인 예이다.

CISC 방식는 상술했듯이 코드 길이가 짧아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를 하드웨어적으로 해석하는 회로가 필연적으로 복잡해지고 만들기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는 전력 소모의 증가로까지 이어진다. CPU에서 실제로 명령을 실행하는 부분이 아니라 이게 무슨 명령인지 파악하는 부분부터가 오버헤드가 커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CISC 방식은 근본적으로 임베디드나 모바일 환경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오늘날 전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는 스마트폰에서는 ARM이라는 RISC (Reduced) 방식 아키텍처가 쓰이고 있다. ARM이 스마트폰 세계에서 거의 인텔 x86 같은 본좌 인지도를 차지한 것이다.

RISC는 설계 철학이 CISC와는 반대이다. 인스트럭션의 크기는 기계가 한 번에 인식하는 machine word 크기와 일대일 대응하거나 최소한 배수 단위이다. 인스트럭션을 fetch, decode하고 의미를 파악하는 절차가 아주 간편하다. 최소 의미 단위가 작은 대신에 임시 작업용으로 범용 레지스터를 CISC 방식 CPU보다 꽤 많이 준다.

이런 CPU는 심지어 구조체 멤버를 인식하는 단위에도 제약이 있다. 포인터의 오프셋이 machine word의 배수 단위로 딱 떨어지지 않고 사이에 걸쳐 있는데 그 주소를 참조시키면 CPU가 에러를 일으킨다. 성능과 효율을 위해, 이런 복잡한 상황은 과감하게 처리를 거부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인텔 x86은 그렇지 않다. 명령어의 실행부터가 워낙 지저분한 바이트 단위 fetching에 익숙한지라, 오프셋이 저런 경우에도 한 사이클만에 참조를 못 하더라도 여러 사이클로 나눠서 사용자가 원하는 데이터를 얻어 준다.

RISC 아키텍처에서 돌아가는 실행 파일을 들여다보면 기계어 코드가 진짜로 4바이트나 8바이트 패턴으로 쫘르륵 나열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코드를 컴파일한 실행 파일 크기가 x86 같은 아키텍처의 것보다 더 크고, 실행 파일의 압축률도 더욱 높다(듬성듬성하다는 뜻). 다만 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 드는 CPU 명령 수가 증가하고 그럴 수록 side effect라든가 복잡도도 더 증가하는 만큼, RISC 아키텍처 코드를 컴파일러가 최적화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렇듯, 컴퓨터 아키텍처에서 CISC냐 RISC냐 하는 케케묵은 논쟁은 자동차로 치면 전륜 구동이냐 후륜 구동이냐, 철도 차량으로 치면 동력 분산식이냐 동력 집중식이냐 하는 차원의 재미있는 주제이다. 요즘은 x86 같은 CISC 방식 CPU도 내부적으로는 복잡하고 함축적인 명령을 다시 RISC 식 명령으로 나눠서 파이프라인을 수행함으로써 RISC의 장점을 취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
어느 기계에서나 이식 가능한 평범한 C/C++ 코드는 자연어로 치면 "나는 철수입니다" 같은 평이한 문장에다 대응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도저히 포팅이 불가능한 인라인 어셈블리 코드는, 자연어로 치면 특정 언어의 음운 특성이나 특정 문화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문자 그대로 번역할 수도 없는 함축적인 유머나 언어 유희에다 비유할 수 있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20 09:16 2010/09/2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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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환승 통로

청량리 역 민간 역사가 완공되면서 중앙선 청량리 역과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 사이에도 드디어 환승 통로가 생겼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지로4가가 연속으로 2· 5호선 환승이 가능한 것처럼 청량리-회기도 연속으로 1호선과 중앙선끼리 환승이 가능한 구간이 되었다. 하지만 환승 거리가 그렇게 짧지는 않다.

이는 여러 가지 패턴을 떠올리게 만든다.
위상 면에서 이 두 노선은 서울 지하철 1호선과 서울-천안 급행 전동차 사이의 환승과 비슷하다. (비록 경의선 내지 공항 철도와 서울 지하철과의 환승은.. 답이 없지만 말이다 -_-)
하지만 상업 시설과 전철역이 연결되었다는 점에서는 야탑 역과 성남 터미널 사이의 지하 통로와도 비슷하다.

본인 기억이 맞다면, 지하철 청량리 역은 한동안 칙칙하고 무서운 분위기 나는 역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 천장은 왜 깔끔하게 덮어 놓질 않고 각종 시설물들을 흉측하게 노출해 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 2008년에 본인이 미국에 가서 LA 국제 공항에 들어섰을 때에도, 낡고 음침한 통로를 보자마자 머리에 곧바로 떠오른 게 1호선 청량리 역 승강장이었다. 일반열차와 광역전철을 취급하는 청량리 역이 환골탈태를 한 것만큼이나 지하철 역도 덩달아 쇄신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앞으로 4호선 신용산과 용산 역이 그렇게 환승역으로 통합될 날은 올 수 있을까?
비슷한 예로 신분당선의 역이 3호선 신사와 7호선 논현 역 사이에 종축으로 놓인다면 세 역이 한 노선의 환승역으로 통합될 가능성도 점칠 수 있겠다.

이 청량리 역과 가장 비슷한 형태의 변화를 겪기로 현재 예정되어 있는 역은 노량진 역임을 알아 두자.
민자 역사가 완공되고 나면 1호선과 9호선 역 사이의 실내 환승 통로도 개통할 것이기 때문이다.
1호선 노량진 역은 민자 역사가 조만간 생길 거라면서 역명판조차 가장 늦게까지 새 걸로 교체하지 않고 있었는데 역명판은 결국 공사되었고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18 09:54 2010/09/1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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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코레일이 아주 이색적인 열차를 주말에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일반열차도 아니라 일반 통근형 전동차이고, 운임도 전철 체계 그대로이다.

이름하여 '용문 급행'.
토요일과 일요일에 2왕복으로 운행하는데, 운행 계통은 병점 발(경부선)과 동인천 발(경인선) 둘로 나뉜다.
토요일에는 경부선, 경인선의 순으로 운행하고 일요일 아침에는 순서를 바꿔서 경인선, 경부선의 순으로 운행한다.
운행 컨셉은 연인-_-들 데이트 코스 내지, 주말 운동과 중앙선 일대의 관광이다.

주말에 혼자 지하철 타고 노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 타라고 딱 예비된 열차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난 9월 11일, 모든 일정을 제쳐 놓고 당장 시승하러 나갔다.

아침 10시 반에 신길 역에서.. 드디어 용문 급행 전동차를 만났다. 열차를 기다리는 기분은 마치 데이트 상대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코레일이 중앙선과 경부/경인선을 직통 운행하는 전동차를 굴리기 시작했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ㅋㅋ 이제 구로-영등포 구간엔 4량짜리 광명 셔틀 전동차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8량짜리 용문 급행 전동차도 다니게 되겠다.

열차는 텅 비다시피했기 때문에 긴 시트에 그대로 누워 버렸는데, 이런 만행을 본인은 지금까지 공기 수송의 본좌급인 광명 셔틀 전동차에서밖에 저질러 보지 못했다. ^^;;; 뭐, 특이한 공기 수송 열차 하면 과거에 경의선 새마을호(일명 임진강 라이너)도 한 위치 차지했지만 말이다.

용문 급행 전동차의 모든 안내방송은 기관사가 육성으로 직접 하고 있었다. 이 열차는 서울 역 방면으로 가지 않고 심지어 용산 역에도 정차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려는 승객은 노량진 역에서 다 내리라고 기관사가 몇 번이고 방송을 해 댔다.

"우리 열차는 용산까지 가지 못하는 열차입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오늘도 함정에 빠지셨습니다." ㄲㄲㄲ

한강 철교를 건넌 후 열차는 선로를 바꾸어, 경부선 하행 방면에서 경원선으로 들어가는 삼각선으로 진입했다. 오오옷! 여기는 일반적으로 승객이 구경할 수 없는 경로이다. (중앙선 전동차가 용산 역에서 이촌 역 사이를 드나드는 길은 경부선 "상행" ↔ 경원선 삼각선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용문 급행은 빨리 가는 급행이 아니라는 것. 단순히 정차역을 줄여서 열차를 탄 사람들이 좀더 쾌적하게 여행을 즐기게 하는 것만이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열차는 이촌에서 무려 청량리 역까지 무정차이고, 그 뒤에는 덕소까지 통과하여 팔당까지 무정차라는 어마어마한 괴력에도 불구하고 표정 속도는 완행 전동차와 별 차이가 없다. 서울에서 양평까지 그 긴 거리를 가는 동안에, 우리 열차가 앞서 가는 중앙선 전동차를 추월하는 모습을 보질 못했다.

그래도 청량리-팔당까지 2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롱시트가 달린 전철이 그토록 오래 무정차로 달리는 건 공항 철도 이외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경원선 용산-청량리 구간을 무정차로 질주한 건 지난 2009년 말, 서울-청량리 경유 아우라지 행 열차를 아침 일찍 탔을 때 이후로 이번이 처음이다.

경인· 경부선 이외에 현재 경의· 경원· 중앙· 안산선에서 출근 시간대에 제한적으로 운행하고 있는 정규 급행 전동차는 서울로 가는 상행 방면만 있지 하행은 없으며, 주말에는 운행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용문 급행은 주말에만 하루 2회 운행하고 게다가 서로 다른 정규 운행 계통을 직결 운행까지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참신한 시도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으로 주말에 지하철이나 전동차 운행은 감소하는 반면, 일반열차의 운행은 증가한다. 각 열차의 보편적인 이용 패턴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량진 바로 다음 역인 이촌 역에서 승객이 많이 탔으나, 이 열차는 옥수나 왕십리 등에 정차하지 않고 바로 청량리까지 간다는 말에 상당수의 승객들이 질겁을 하고 도로 내렸다. 용문 급행에 대한 홍보가 시민들에게 여전히 부족한 건 사실이다.
관광과 데이트 컨셉으로 운행한다는 전동차가 정작 왜 양 끝칸에 자전거 거치대가 없냐는 질타도 있었다고 하는데, 본인이 보기에도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오랜만에 중앙선 열차를 타 보니, 한창 공사 중인 상봉 역 승강장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망우 같은 인근역과 거리가 굉장히 가까운 게 딱 티가 난지라, 마치 1호선의 동대문-동묘앞처럼 중앙선의 표정 속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경춘선이 선로 용량과 평면교차 지장 문제 때문에 청량리가 아닌 여기서 시종착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이 또한 문제이다.
아울러, 아신과 양평 사이에 '오빈'이라는 역이 건설 중인 것도 처음 봤다.

지금까지 한 긴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 용문 급행은
첫째, 출퇴근이 아닌 여가 컨셉의 급행이라는 것,
둘째, 두 개의 정규 운행 계통을 직통하여 운행한다는 것,
그리고 셋째, 일반열차가 아닌 기존 전동차 운행 계통을 따른다는 것
에서
무척 이색적인 열차이다. 전에도 가끔 있던 경인선-경원선 직통 부정기 관광 열차 무궁화호 같은 것과도 급이 다르다.

독자 여러분도 주말에 꼭 시승해 보기 바란다.
그나저나, 경인-경부 하행(상행이 아닌) 삼각선을 이용한 직통 열차나 전동차가 다니는 날은 과연 올지 궁금하다.
하지만 경인선은 서울 방면 전동차만 굴려도 수요보다 공급이 미치도록 부족하니 원. ^^;;

Posted by 사무엘

2010/09/16 18:51 2010/09/1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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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덕 수련을 위한 동영상과 책

※ 코레일 사가 -- Oh Glory Korail 뮤직비디오

철덕에 갓 입문했다면, 닥치고 이것부터 먼저 바이블로 삼고 달달 외우기 바란다.
오늘날 코레일이 철도를 통해 추구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가 가사에 담겨 있다.
본인은 이거 가사도 다 외웠고, 피아노로 악보 없이 반주도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 영상은 옛날에 새마을호에 영상 서비스가 있던 시절, 코모넷에서 제작한 뮤직비디오를 떠올려서 애틋함을 더한다.

※ 현대화되는 한국 철도

과거 철도청이 1990년대 중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동영상인데, 이거 정말 물건이다.
온라인 상에서 철덕으로 맹위를 떨치고 계신 말짱황 님께서 귀한 자료를 입수하여 올려 주셨다.
처음에 Q마크 철도청 CI와 함께 대우 중공업 새마을호가 쫙 달리는 오프닝 화면은 정말 장엄함과 감동과 심지어 오르가즘(?)마저 선사한다. 음악까지 얼마나 아름다운가!
현재 서울 지하철 4호선에서 고음의 알스톰 구동음과 함께 달리는 서울 메트로 전동차도 대우 중공업의 작품이다.

※ 더 큰 세상을 향해

“설레는 만남이 있기에, 이루어야 할 꿈이 있기에 늘 깨어 준비하는 사람들...”로 시작하는 동영상으로, KTX 개통을 얼마 안 남기고 2002~03년경에 철도청이 제작했다. 도입부부터가 사람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지금은 인터넷 어디에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본인은 옛날에 동대구 역 공식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이 파일을 입수하여 소장 중이다.

※ 한국 철도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삼성 경제 연구소, 2001)

철도에 대해 일종의 인문학 개론서 스타일로 쓴 책으로, 10여 명에 달하는 철도 전문가가 글을 공동 집필했다. 책이 잘 팔리지 않았는지 꽤 오래 전부터 절판되어서 지금은 구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본인은 무려 2005년 말에 서울의 어느 대형 서점에 딱 하나 재고가 있는 걸 발견하여 그때 이 책을 입수했는데, 그때에도 이미 이 책은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져 있었다.

※ 과학 기술로 달리는 철도 (한국 철도 기술 연구원, 2007)

올컬러에 알록달록 노란 표지이며 삽화도 많다. 좀 애들 보는 그림책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내용도 너무 유치하기만 한 건 아니다. 철도가 운영되고 유지 보수되는 방식,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에 대해서도 철덕 입문자가 보기에 여러 유익한 내용이 많으며, 매니아라도 소장할 가치는 있다.

※ What's 기차 철도 속이 보인다 (골든벨, 2010)

최근에 대학원 수업 교재를 구입하면서 같이 지른 책이다. 철도에 대해서 차량, 운전, 시설 등 분야별로 위의 <과학 기술로...>보다 훨씬 더 디테일하게 설명을 잘 해 놓았다. 올컬러이고 그림· 사진과 도표도 많다. 증기 기관차부터 전동차까지, VVVF, 심지어 지하철이 건설되는 방식 지하철 승강장의 구조까지 다 나온다.
단, 일본에서 출간된 철도 서적을 편역한 컨텐츠에다가 우리나라 철도의 실정을 약간씩만 덧붙인 형태이기 때문에, 구성이 좀 조잡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래서 책 표지에는 나름 KTX 산천 사진도 있지만, 실제 본문 중엔 우리나라 철도나 지하철 사진은 잘 없고 일본 협궤 지하철과 신칸센 위주이다.

역시 이런 매니아적인 책이 순수하게 국내에서 발간된 것이길 바란 건 좀 무리였다.
일본은 뭔가 과학이나 공학 쪽으로 교양서적이 굉장히 발달해 있는 게 부럽다. 철도 분야의 책만 보고 느낀 건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15 10:26 2010/09/1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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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아한글이 윈도우 비스타부터 키매크로를 지원 안(못) 하는 이유는?
(관련 글: 아래아한글의 키매크로 )
이것과 관련하여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글을 남긴다. 본인은 한컴에 입사한 개발자도 아니고 아래아한글의 소스 코드를 본 적도 없지만, 본인이 보기에 이것 때문이 거의 확실하다.

윈도우 훅 중 WH_JOURNALRECORD와 WH_JOURNALPLAYBACK 훅이 비스타에서부터는 보안 강화를 이유로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MSDN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저건 완전 키매크로를 구현하라고 만든 훅이다.
(관련 글: 훅킹 프로그래밍 )
실패 사유를 나타내는 에러 코드는 5(access denied)가 들어온다.
심지어는 프로그램을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해도 차단은 풀리지 않는다. 이건 좀 너무 심하지 않았나?

물론, 키매크로를 구현하는 방법이 저 훅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다른 키보드/마우스 훅을 사용하여 동일 기능을 우회 구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래저래 개발자에게는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 하나 더 생긴 게 틀림없다.

참고로 이렇게 차단을 하는 주체는 사용자 계정 컨트롤(UAC)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끄면 비스타도 XP와 완전히 동일하게 동작은 한다. 하지만 보안상으로는 위험하기 때문에 개발자가 사용자에게 UAC를 끌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UAC는 안전을 위해 프로세스 간 의사소통을 하는 메커니즘에도 상당한 제약을 부과했다. 단적인 예로, 권한이 낮은 프로그램이 권한이 높은 프로그램에게 임의의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5.3부터 입력 패드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윈도우 IME 훅킹을 통해, 정식 외부 모듈이 아니면서도 외부 모듈의 동작을 흉내 내어 주는 프로그램인데, 이 프로그램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관리자 모드로 실행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입력 패드보다 권한이 높은 프로그램(관리자 권한으로 실행된)에다가는 글자 입력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UAC 하에서도 예외적으로 실행 중인 모든 프로세스의 윈도우에다가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고 심지어 봉인된 WH_JOURNAL* 훅까지 구사할 수 있는 만능 권한 등급이 없는 건 아니다. MS에서는 대표적인 예 중 하나로 장애인의 UI 접근성 개선을 위해 쓰이는 프로그램에게나 그런 만능 권한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화면 키보드 같은 프로그램이야 권한을 초월하여 아무 프로그램에게나 문자 입력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운영체제 로그인 UI에도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ID/패스워드 입력할 때)

단지 그 권한을 얻기가 더럽게 까다로워서 문제이다. 만능 권한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사용자의 컴퓨터에 반드시 관리자 권한으로 정식으로 설치되어 EXE 파일이 Program Files 같은 특정 경로에만 존재해야 한다. 잘 알다시피 UAC 하에서는 평소에는 Program Files 디렉터리 밑에다가 파일을 만들지도 못한다.

또한, 결정적으로 EXE 내부에 디지털 서명이 되어 있어야 한다. 과거에 마치 ActiveX를 배포할 때 안전한 코드 인증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이거 서명을 받으려면 $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사업자 등록 번호가 있어야 한다. 즉, 듣보잡 개인 개발자는 서명을 받지도 못한다는 뜻.
따지고 보면 <날개셋> 입력 패드도 일종의 화면 키보드처럼 UI 접근성 개선 프로그램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저런 권한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러지는 못하고 있고 그저 사용자가 알아서 충분히 높은 권한을 줘서 프로그램을 실행해 주길 바랄 뿐이다.

이래저래 보안이 안전을 빌미로 세상을 많이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관련 글: 프로그램의 권한 )

Posted by 사무엘

2010/09/13 18:34 2010/09/1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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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상상: 철도 가이드

나의 골수 철도 덕후 기질을 잘 아는 어느 목사님이 이런 제안을 하셨다.
철도 가이드를 해 보라고 말이다. 코레일 사장한테 이런 사업 아이템 어떻냐고 각서도 보내 보란다. ㅋㅋㅋ

흔히 무슨 관광을 가면 여행 가이드가 있다.
가이드는 관광객에게 유명한 관광지를 안내하면서 여기 유래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이게 왜 역사적인 장소인지를 잘 설명해 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행지가 아니라 기차 안에서 철도 그 자체에 대해서 나불나불 설명을 해 주는 가이드가 어떻냐는 것이다.

경부선 새마을호 기준.
- 여러분이 타고 계신 이 열차는 새마을호로, 새마을호라는 명칭은 1974년에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그 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호화로운 열차는 관광호라고 불렸어요.
- 지금과 같은 열차는 1987년에 대우 중공업에서 최초로 6량짜리로 생성했는데, 엔진은 독일제이고 n마력이다가 훗날 8편성으로 증편되면서 엔진 출력도 1920마력으로 향상되었습니다.
- 현재 우리는 한강 철교를 건너고 있습니다. 한강 철교는 1910년, 경부선이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주권을 빼앗길 무렵에 처음으로 지어졌는데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한강 교량입니다. 경부선이 구로-서울 구간이 3복선인 관계로 한강 교량에도 6가닥의 선로가 있는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교량은 현재 급행 전동차가 사용하고 있으며, KTX나 새마을호 같은 일반열차가 사용하는 교량은 1944년에 건설되었습니다.

- 경부선이 처음 건설되던 당시에 서울 역과 부산 역은 각각 서대문 역과 초량 역으로 불렸지요. 노량진 역과 영등포 역은 경인선 철도가 건설된 1899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유서 깊은 역입니다.
- 구로 역은 경인선과 경부선이 분기하는 관계로 신호장으로 존재하던 역이었으나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면서 전철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승강장이 9개나 존재하며 우리나라 전철역 중에서 구조가 가장 복잡한 역입니다.
- 지금 달리고 있는 구로-수원 구간은 1981년에 2복선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쌍섬식 승강장이 그 흔적이죠. 그 전에 서울 지하철과 직결 운행을 하던 서울-수원 전철은 일반열차와 동일한 선로에서 일반열차를 피해서 운행하는 관계로 선로 용량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처음엔 40분에 한 대 정도로, 지금의 천안 급행 정도밖에 편성을 못 했지요.
- 드디어 석수 역부터가 서울을 벗어나 안양입니다. 여기서 경부선의 선형은 국도 1호선과 비슷합니다.

- 시흥 역 이남에서는 경부선 기존선과 KTX 고속신선이 분기합니다. 아, 정확히 말하면 고속선 연결선이죠. 서울로 올라오는 상행 일반열차는 여기서 KTX가 먼저 지나가 주길 기다렸다가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하행 일반열차가 영등포 역에서 KTX를 먼저 보내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KTX도 영등포 역을 정차한다면 이런 일은 없어도 됩니다.
- 수원 역이 지금은 이렇게 생겼지만 옛날에는 평면교차 지장이 있어서 상황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 여기가 경부선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터널입니다.
- 성환-평택 사이가 경부선에서 10km에 가깝게 역이 없는 구간이며, 사실 일반열차도 시속 140에 가깝게 가장 빨리 주행하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 잠시 후 대전 일대가 선로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대전 조차장도 있고 KTX 고속신선과 기존 경부선이 합류하는 한편으로 호남선과 경부선이 입체 교차로 갈라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 당장 떠오르는 레퍼토리만 적어도 저 정도인데, 정말 재미있겠다. ㅋㅋㅋㅋ
저 목사님 왈,
“형제는 저 방면으로 워낙 지식이 뛰어나니, 피곤하게 직접 그렇게 가이드 일을 할 필요도 없이, 다른 가이드들을 ‘양성’하고 ‘지도’하는 일만 하면 됨.
철도는 분명 건전한 취미이니, 그걸로 혼자 음지에서 오덕질만 하지 말고 뭔가 남에게 유익을 끼치고 후학을 양성하는 생산적인 일을 해 보셈.”

철도 쪽으로 안정된 부업이 생기면..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다.
이미 회사 사람들도 내 철덕 기질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철도 쪽으로 취업해 버렸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이 수긍할 것이다. -_-;;; 더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았다는데 어떡하겠는가?
기껏 잘 키워 놨더니 조금 연봉 더 준다고 동일 업종의 경쟁사에 넙죽 들어가는 것도 전혀 아니고... 업종을 완전히 바꾸는 건데 이건 윤리적으로 문제될 것도 없다.

하지만 과연 저 철도 가이드 일이 수익이 있을까?
저런 가이드 설명을 재미있게 들어 줄 관광객은 과연? ㅋㅋㅋ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09/12 11:04 2010/09/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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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중구, 용산구: 서울 시청, 청계천, 명동, 서울 역, 남산과 남산 타워가 떠오르는 곳으로, 가히 서울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종로구까지 포함해서 서울 도심은 지하철 1~5호선이 한데 거미줄처럼 만나고 얽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종로구: 역시 역사가 가장 길고 가장 서울스러운 곳이다. 국도 6호선의 일부인 종로 n가, 경복궁, 청와대, 정부 종합 청사, 각종 국가 대사관 등. 그렇지만 평창동, 부암동 등 북쪽으로 도저히 서울 같아 보이지 않은 산기슭 외곽 지대도 행정 구역상으로는 종로구이다. ^^

※ 1 (의정부, 양주, 포천)

노원구, 도봉구: 서울 북부의 베드타운이라는 것밖에 기억이.. -_-

강북구, 성북구: 역시 집이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정보 없음. ㄲㄲ 성북구에는 상당한 부촌도 있다고 하던데.

※ 2 (구리, 남양주)

동대문구: 서울 도심과 가깝고 천호대로와 청량리 역 등 교통도 꽤 괜찮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은근히 후져 있고 딱히 명소가 생각나지 않는다. 뭐 이제 전농 지구 같은 곳은 재개발이 된다고 하니까 기대해 본다.

광진구: 한강 근처인 남쪽의 건대입구-강변 구간 말고는 그렇게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곳. 그나마 지하철 7호선 덕분에 교통이 편리해졌다. 워커힐과 구리로 가는 길이 여기에 있다.

중랑구: 광진구보다도 더욱 존재감 없다. 여기도 서울 인증? 강변북로, 지하철 7호선과 6호선, 그리고 중앙선이 이곳을 통과한다.

성동구: 한양대 말고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 3 (하남, 광주)

송파구: 서울 올림픽과 관련하여 매우 유명한 곳이고 몽촌 토성과 올림픽 공원도 있는 곳이다. 잠실 역은 이제는 롯데 역으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강동구: 지하철 5호선이 개통하기 전엔 과연 서울이라 불릴 수 있는 곳이었을까 싶다.

※ 4 (성남, 용인)

서초구: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서울에서 존재를 가장 먼저 인식한 곳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들의 영원한 친-_-구인 EBS, 한국 교육 개발원(탐구생활 등)이 이곳에 입주해 있어서
둘째, 자동차로 서울로 입성하는 주 관문이 경부 고속도로이고 각종 나들목(양재 IC, 반포 IC 등)이 여기 일대에 있으므로

강남구: 197, 80년대에 서울시의 적극적인 육성 정책 덕분에 이곳은 사대문 안 서울 도심을 능가하는 금싸라기 부도심 땅으로 변모했다. 한밭에 불과하던 대전이 경부선 철도 덕분에 팔자 폈다면, 서울 강남을 발전시킨 건 단연 지하철 2호선일 것이다.
강남구는 지하철 2, 3, 7, 9호선에 분당선까지 가로/세로 바둑판 형태로 지나며, 역 수가 이미 20개가 넘는다. 테헤란 밸리 같은 업무 지구도 있고 타워팰리스 같은 부촌도 있지만, 3호선 종점 근처의 외곽(일원, 수서 같은)은 그저 아파트만 잔뜩 있는 베드타운이기도 하며, 역세권에서 한참 벗어난 남쪽에는 심지어 그린벨트 마을도 있고 판자촌도 있다. 서울 강남구의 모습은 이처럼 다채롭다. 이 일대에는 대학이 없으며 철도를 이용하기도 난감하다.

※ 5 (안양, 과천, 의왕, 안산, 군포, 수원)

동작구: 국립 현충원, 중앙대, 숭실대.. 끗. 9호선 개통 덕을 좀 봤다. 그러고 보니 노량진도 동작구 소속인데 동작구 같지가 않고 영등포구인 것 같다. 노량진은 1호선이 철도를 담당하고 9호선이 고속버스 터미널과 공항을 양 옆으로 연결하는 덕분에 교통이 굉장히 편하다.

관악구: 서울대, 신림동 고시촌, 난곡동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 그렇게 잘 산다는 느낌은 안 드는 곳이다.

금천구: 인접 구들과는 죄다 산으로 가로막혀 있으니 과연 여기가 서울이 맞나 싶다. 경부선 철도와 비행기(김포 공항에 착륙 예정인)를 모두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좀 시끄러울 것 같다.

※ 6 (인천, 부천, 김포, 광명, 시흥)

영등포구: 여의도(메이저 방송국, 63빌딩, 순복음 교회)와, 철도 영등포 역 덕분에 인지도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시가지여서 좀 도로가 좁고 오거리 육거리에 꼬질꼬질하다는 느낌도 든다.

구로구: 경인선으로 서울과 부천을 연결하는 경계에 있는 곳이다. 구로 역 말고는 그렇게 존재감 없음.

강서구: 김포 공항과 마곡 지구가 있는 곳. 지하철 5호선과 9호선(특히 염창동 일대)이 생명선이다.

양천구: 2호선 까치산 지선과, 부촌인 목동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는 좁은 곳

※ 7 (파주, 고양)

마포구, 서대문구: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서강대 등 걸출한 2호선 라인 대학들이 입주해 있는 곳이다. 월드컵 경기장도 이 일대. 종로 쪽만큼이나 전통적인 서울 냄새가 난다.

은평구: 서울 서북부의 베드타운. 지하철 6호선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은평 뉴타운 떡밥은 어찌 되었는지?

눈치 챈 분도 있겠지만, 번호는 해당 권역에 대응하는 서울 시내버스의 번호를 의미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10 12:32 2010/09/1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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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제임스 맥콜리 James D. McCawley (1938~1999)
는 시카고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였다.
흔히 언어학자 하면 노암 촘스키가 본좌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맥콜리는 그 촘스키의 제자이며 스승 만만찮은 덕후 천재 언어학자였다. 박사 학위를 주고받은 촘스키와 맥콜리의 나이 차는 겨우 10살에 불과했다.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학창 시절에 여러 학년을 월반한 끝에 만 16세의 나이로 시카고 대학에 진학했다. 아는 분도 있겠지만 시카고 대학은 과거에 석유왕 록펠러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자선 사업 차원에서 설립한 학교로, 미국에서 인문· 사회 계열이 강세인 상당한 명문 사학이다.
맥콜리는 어릴 적부터 수학, 논리학, 언어학 이런 쪽으로 완전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으며, 덕분에 나중에 대학원은 촘스키가 있는 MIT로 가게 된다.

그 후 그는 1964년,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로 모교인 시카고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생성 문법(generative grammar)의 확립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이 천재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은 게 있었으니 바로 한글이었다. 한글이 얼마나 대단한지가 그 좋은 머리로 바로 실감이 갔던 모양이다.

대충 영어를 해석하자면, “한글은 킹왕짱이고 세계의 문자들 중에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정교한 음소문자가 1440년대에 발명됐다는 건 정말 놀라운 언어학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정도.

그래서 그는 한글 덕후가 됐다.
동영상에서 1분 10초 이후부터가 유명한 대사이다. “전세계 언어학계는 이 한글의 창제일을 마땅히 경축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매해 10월 9일엔 내 강의를 쉬고 동료 교수와 학생들을 우리집에 초청하여 한글날 잔치를 벌여 왔다.” (정작 한글을 쓰는 나라에서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 버렸는데 말이다! ㄲㄲㄲㄲ)

참고로 저 인터뷰는 1995~1996년에 행해졌다. 그러니 저분의 한글날 잔치도 대략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얘기.
지난 1996년, 국어 정보학회에서는 한일 은행(지금 우리 은행의 전신)의 후원으로 한글 반포 550주년을 기념하여(since 1446) <세계로 한글로>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한글 관련 논술 공모를 했다. 인터뷰 동영상은 거기에 나오는 영상의 일부이다.

그 당시 국어 정보학회 회장이던 한양대 국문과 서 정수 교수가 직접 미국까지 날아가서 맥콜리 교수와 저렇게 인터뷰를 했다. 서 교수님 모습은 저기 화면에도 잠깐 나온다. 지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맥콜리 교수 관련 한글날 루머(?)는 루머가 아니라 사실이며, 그 정확한 출처가 바로 저 영상물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아, 그리고 본인은 그 당시 저 한글 논술에서 중등부 격려상을 받았다. 그때 이미 세벌식이 어떻고 조합형이 어떻고 하는 허접 논설문을 썼던 것이다... ㅋㅋㅋ 지금 본인은 그 당시 저 다큐멘터리의 연출 감독을 맡은 분하고도 잘 아는 사이이다.

맥콜리 교수와 덩달아 나오는 대표적인 한글 예찬론자 외국 석학으로 영국의 제프리 샘슨 교수가 있다. 한글이 ‘자질문자’라고 칭송한 바 있다.

맥콜리 교수는 그 후 1999년 4월, 환갑을 갓 넘긴 나이에 돌연사로 생을 마감했다. 스승인 촘스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울러 서 정수 교수도 이미 2007년에 고인이 되었다. 그런데 국문학과 교수이고 한양대 인문대 학장을 역임한 이분도 실은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이라는 충공깽 이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 후 대학원을 연세대 국문과로 가셨으니 어? 지금 본인의 진로와 비슷하나?? ㄲㄲ

한글이 지금과 같은 형태 그대로 무슨 IPA를 대체할 만한 음성 부호라거나, 로마자를 대체 가능한 만능 도깨비 방망이 문자라는 말은 아니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이네 하는 식의 부정확하고 안일하고 막연한 찬사도 피해야 한다.
한글이 무슨 쇼비니즘의 표상이 돼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한글은 객관적으로 얼마나 대단하고 고마운 문자인지 모른다. 우리는 한글에 대해 자부심을 품을 권리가 있으며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것도 머리가 어지간히 좋지 않아서는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을 못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09 09:03 2010/09/0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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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운영체제에는 MDI (Multiple Document Interface)라는 규격이 존재하여, 한 응용 프로그램이 메모리가 허용하는 한 여러 파일 내지 문서를 한꺼번에 다루는 걸 수월하게 해 줬다. MDI 프로그램에는 '창'이라는 메뉴가 존재한다.
과거에 도스용 아래아한글이 기껏해야 겨우 두 개의 문서만 동시에 열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이건 아주 획기적인 개념이 아닐 수 없었다. MDI는 무려 윈도우 3.x는 말할 것도 없고 원래 2.x 때부터 존재한 개념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만의 작업 문서라는 개념이 있고(스프레드 시트, 그래픽, 워드 프로세서 등등), 좀 규모가 있다 싶은 업무용 프로그램이라면 예외 없이 MDI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본인이 개발한 <날개셋> 편집기 프로그램도 1.0 시절부터 MDI였다. ^^
프로그램 자체를 중복 실행하지 않고 한 프로그램 안에서 여러 문서를 동시에 열 수 있는 것은 작업 생산성 면에서 매우 바람직하고 시스템 자원 사용 효율면에서도 좋기 때문이다. (한 번에 소스 코드를 하나만 열 수 있는 에디터로 대규모 프로그래밍 작업을 해 보면 어떨까? -_-)

물론, 윈도우 운영체제가 제공하는 액세서리 프로그램들은 그 정도의 근성은 없는 그냥 말 그대로 액세서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MDI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워드패드나 그림판처럼 말이다.
하지만 과거 윈도우 3.x 시절에는 운영체제(?)의 쉘이요 간판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관리자'가 딱 MDI 프로그램이었다.

이 MDI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도 많았다. 그 자체가 사실 등장한 지 20년 가까이 된 너무 구닥다리 인터페이스이도 하고.. 특히 Aero가 적용된 윈도우 비스타에서도 MDI 창들은 여전히 전혀 세련되지 못한 밋밋한 모양이다.
그래서 요즘은 프로그램 안에 또 여러 창이 타일처럼 더덕더덕 겹쳐 있는 모습 자체를 안 보이려고 하는 게 대세이다. 그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는 건 탭 인터페이스이다.

이런 추세는 MS의 주력 상품인 오피스에서도 바로 나타났다. 그것도 꽤 오래 전부터 말이다.
워드의 경우, 아예 10년 전 오피스 2000부터 MDI 방식을 버렸다. 그냥 모든 문서마다 응용 프로그램 프레임이 따로따로 붙어서 '창' 메뉴만 있을 뿐 SDI 프로그램을 여러 개 실행한 것처럼 동작한다.
마치 윈도우용 아래아한글처럼 말이다. 특이하게도 오피스 제품들 중, 워드만 유일하게 그렇게 따로 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엑셀은 그래도 좀 전통적인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MDI스러운 메뉴를 볼 수 있으며, 여러 문서 창들을 응용 프로그램 창 내부에다가 덕지덕지 배열할 수 있다. 엑셀은 표 형태로 된 각종 수치와 데이터를 처리하는 프로그램이지 않던가? 당연히 그런 식으로 한 화면에서 여러 파일을 대조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파워포인트는 성격이 좀 다르다. 큼직한 화면 전체에다가 슬라이드 그림을 놓고, 그 곁엔 다른 슬라이드들 썸네일과 슬라이드 노트를 작성하는 공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화면이 많이 필요하다.
즉,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의 작업 화면은 엑셀 워크시트와 같은 MDI 식 덕지덕지 타일 배열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래서 파워포인트는 워드가 아닌 MDI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MDI 메뉴를 갖추고 있지 않으며, 문서 창은 언제나 최대화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동작한다. 굳이 최대화 상태를 해제려면 계단식 배열 같은 별도의 명령을 직접 내려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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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인 엑세스는 한 프로그램이 한 데이터베이스만 열 수 있고, 그 데이터베이스 안에 있는 각종 테이블, 쿼리, 모듈 등을 MDI 형태로 여럿 열어볼 수 있는 형태이다. 이런 점에서는 엑셀처럼 매우 MDI스러운 UI를 유지하고 있는 셈인데, UI 기반이 엑셀과는 다르다 보니 각 창에 대한 시스템 메뉴도 갖추고 있고, MDI 배경색이 엑셀이나 파워포인트의 배경색보다는 짙다. 또한 View 탭이 따로 없으며, 창과 관련된 메뉴가 Home 탭에 같이 들어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듯, MS 오피스의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2007부터 리본 UI가 첫 적용된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액세스의 UI 형태는 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참고로,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는 워드처럼 매 문서창이 완전히 제각각 따로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 문서마다 운영체제의 작업 표시줄(Taskbar)에 제목이 마치 별개의 프로그램처럼 추가된다. 이 역시 2000부터 그렇게 되었는데, 무척 특이한 점이 아닐 수 없다.

MDI에 대해 끝으로 생각해 볼 점은, 웹브라우저나 파일 관리 유틸리티가 MDI 형태로 개발되고 있지 않다는 것.
이들은 분명 한 프로그램이 여러 창을 취급할 수는 있어야 하지만, 문서라는 개념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이 독특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07 14:43 2010/09/0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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