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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안의 마을들

우리나라 영토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다. 휴전선이라고도 불리는 군사분계선이 중앙에 있고, 거기 곁을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 구역이 감싸고 있다. 여기 주변은 위험하기 때문에 비행 금지 구역임은 물론, 지리 정보가 민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다. 여기서 민간 지도란, 자동차 내비게이션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전자는 원칙적으로 군인과 민간인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고 가끔 GP를 지키는 소수의 군인들만이 경찰처럼 둔갑해서 몰래 들어간다. 그 반면, 후자는 민간인만 출입 금지이다. 거기에 조상 대대로 밭이나 묘소를 소유하고 있던 사람이 농사나 성묘 같은 정당한 볼일이 있을 때만 인근 군부대의 허가를 받고 낮 시간대에 한해 드나들 수 있다.

그럼 전국의 모든 민통선 안(= 민통선 이북)은 밤엔 군인을 제외하면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암흑 지대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거기에 주민이 상주하는 마을도 있기 때문이다.

그 원조 1호는 판문점에서 제일 가까이 있고 휴전 직후부터 조성됐던 대성동 마을이다. 이 마을은 처음부터 이 근처에 존재했던 마을이며, 6· 25 정전(휴전) 협정에 따라 존재를 인정받고 보장받았다.
여기는 휴전 회담이 진행된 판문점의 근처인 덕분에, 1951년 하반기부터는 전쟁의 포화에 휘말릴 일이 없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 대신 여기는 우리나라가 땅을 수복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방어하기 불리한 곳을 포기하게 됐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해주 반도와 개성 시내를 내어주고 북한이 서울과 더 가까워졌다.

사실 대성동 마을 일대는 민통선과 남방한계선의 구분도 아직 없어서 코앞이 군사분계선이며, 강원도 전방에다 비유하자면 아예 비무장지대 안이나 마찬가지이다. GOP도 아니고 GP가 있을 곳에 민간인 마을이 있다는 뜻이다. 그만치 엄청나게 위험하고 거주민들의 행동과 이동에 제약이 크다.

한때 우리나라 대성동과 건너편 북한의 기정동에서 국기 높이 달기 병림픽(?)을 벌인 적이 있었고, 그게 초등인가 중인가 도덕/윤리의 마지막 단원 북한 통일 문제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나중엔 남한이 그냥 gg 치고 손 떼서 북괴의 160m짜리 깃대가 한동안 세계에서 제일 높은 깃대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는데.. 구체적으로 몇 년대에 벌어진 일인지는 아무리 찾아 봐도 정확한 기록이 나오는 게 없다. 팩트 확인이 잘 안 된다.

나중에는 저기 말고도 통일촌, 해마루촌, 횡산리 등 민통선 안 마을들이 몇 곳 더 조성됐다. 아래 그림을 보시라.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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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민통선 마을은 출입이 까다롭긴 하지만, 대성동만치 군사분계선과 북한이 코앞이고 위험하고 유엔군의 통제를 받을 정도로 수위가 높은 곳은 아니다. 그림에서도 대성동은 다른 마을들과는 성격이 다름을 언급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통일촌이나 해마루촌은 파주의 도라 전망대 및 제3 땅굴 임진각 안보 관광 패키지에도 포함돼 있어서 일반인이 비교적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대성동을 아무 연고 없는 일반인이 단순 호기심 차원에서 관광..??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쪽의 관광 난이도는 판문점의 관광 난이도와 대등하다.

이런 마을들은 전쟁 때 원주민들이 다 피난 가면서 폐허가 되고, 그 상태로 민통선 구역으로 봉인됐다가 뒤늦게 마을로 재건되었다. 사람을 받아들일 거면, 밭은 몰라도 주택이 있는 곳은 그냥 민통선에서 해제해 주지 싶은 생각도 든다만.. 지형상의 한계나 군사 관리의 편의성 때문에 그리 하지 않은 것 같다.

철원에 이런 마을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저기가 넓은 평야를 낀 천혜의 곡창 지대이기 때문이다. 6 25 때 우리나라가 수복해 냈고 김일성이 빼앗긴 걸 통탄했을 정도인 금싸라기 땅이다. 그 유명한 민통선 안 메기 매운탕 식당인 '전선 휴게소'도 이 지대(정연리-유곡리) 사이에 있다.

그 반면, 철원보다 더 동쪽부터는 산세가 더욱 험해지고 지형이 너무 메롱이 되는 관계로, 민통선 마을 같은 게 없으며 거주민도 없다. 가령, 동쪽 끝의 고성군 수동면 같은 곳은 마을이 산과 휴전선으로 완전히 고립되게 생겼으니 주민들이 모두 이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거기는 주민이 전무하여 사문화된 행정구역으로 전락했다.

그림에 표시된 마을들 중에서 마현1리는 혼자 조성 시기가 1959년인 게 이색적이다. 얘는 바로 그 시기에 나라의 동남부 지방을 깡그리 삭제해 버린 태풍 ‘사라’의 피해 이재민들이 이주해서 개척한 마을이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이냐 하면 부산이 아니라 무려 울진이다. 1963년 이전엔 울진이 경북이 아니라 강원도 소속이었던 관계로, 강원도 도지사가 이재민들에게 이 참에 정부 지원금도 받아서 같은 강원도인 철원으로 이주를 주선했다..;;

그렇게 66세대 359명의 주민들이 군용 트럭 23대를 나눠 타고 저 마을로 가는 데만 3박 4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 시절에 울진에서 철원까지 가는 경로에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도로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한동안 군용 텐트에서 살면서 근성으로 황무지를 일궈서 밭을 만들었다. 여기가 한때 격전지였던 관계로 땅 조금 파면 탄피들이 무슨 광물처럼 튀어나왔나 보다. 그걸 주워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그랬는데 이듬해 봄엔 이 승만 정권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마을에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했던 강원도 도지사와 철원 군수는 모두 교체됐다. 이 사람들이 마현1리에 정착한 때가 1960년 4월 7일이니 4 19 의거로부터 겨우 두 주 전... 말 다 했다. =_=;;
그리고 기껏 고생해서 밭을 일궈 놨더니 여기에 진짜 원래부터 살았던 원주민이 찾아와서 땅 내놓으라면서 소송을 걸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자금이 부족한 입주민은 여기서도 소작농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 마현1리 이주민촌은 30년전 경상도지방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 사라호 (59년9월17일)에 가옥과 전담을 모두 떠내려보낸 경북 울진군 일대의 농민 66가구가 정든 고향을 등지고 새 삶을 시작한 곳이다.
(...)
조국강토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동족상잔의 흔적만을 안은채 갈가리 찢겨버려져 있던 민통선 안쪽 황무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기름진 철원 평야의 한 부분이었지만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우거진 잡초더미와 6·25가 남겨준 온갖 잔재들만 눈앞에 가득할 뿐이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국군과 인민군의 훈련 포성에 몸을 떨며 군용 천막을 치고 개간의 삽질을 시작했다.
부르튼 손으로 잡목과 온갖 무기 파편·돌등을 제거하고 우거진 싸리숲을 없애기 위해 몸에는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곳곳에 처박혀있는 불발포탄의 위험 속에서도 『이 땅을 일구어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개척의 삽질은 끝없이 이어졌다.
눈앞의 황무지가 옥탑으로 변할 생각을 하며1인당 2·5홉씩의 배급잡곡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 출처)


이때 선조들이 얼마나 고생했으면.. 그로부터 30여 년 뒤인 1989년, 마현리 주민의 세대가 바뀔 즈음에 건립된 입주기념비에는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조국강산의 가장 중심된 이 농토가 누구의 피땀으로 가꾸어졌는가를…. 괭이와 호미로 6·25 동란 이후 버려진 황무지를 옥토로 가꾼 개척 정신의 빛나는 업적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라는.. 정말 피를 토하는 듯한 비장하고 처절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핵심은 대성동 말고도 민통선 안에 자리잡은 민간인 마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중에서도 마현리 주민들은 실제 이곳 출신이 아니며 오히려 진짜 여기 원주민들과 분쟁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더 관심 있으신 분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기존 보도 자료들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 링크 1, 링크 2, 링크 3, 링크 4)

그리고 요즘은 마현리는 주변의 밭은 몰라도 마을 자체는 민통선 안이 아닌 것 같다. 국도 5호선에서 멀쩡히 진입할 수 있고 마을 내부도 버젓이 로드뷰가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의 이길리에 소재한 마을은 민통선 안이다. 72~73년에 조성된 민통선 마을들, 특히 이름이 대놓고 통일촌이라고 지어진 저 마을은 임진각이 건립되면서 같이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해마루촌은 시기가 시기인 만큼 김 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 내지 경의선 연결과 같은 맥락에서 조성된 실향민 마을이다. 상공에서 보면 마을 도로가 높은음자리표 모양으로 꼬불꼬불하게 만들어져 있는 걸로 유명하다.

끝으로, 철원도 아니고 서쪽 끝도 아닌 중간(연천)에 마을이 딱 하나 있는 게 연천의 횡산리이다. 시기도 혼자 1977년으로 따로 떨어져 있는데.. 얘는 임진강과 군사분계선의 선형이 굉장히 교묘하게 꼬이는 곳에 있어서 뭔가 섬 같은 느낌이 들며, 제2의 대성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는 특별한 사연 없이 원래 여기서 살던 사람들이 나중에 민통선 마을이 조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되돌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정확하게는 1977년, 1985년 두 차례에 걸쳐서이다.

이상이다.
대성동 마을의 주민이 납세와 병역의 의무가 면제된다는 건 이제 다들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나무위키에는 거기뿐만 아니라 저런 다른 민통선 마을 거주민에게도 같은 혜택이 적용된다고 쓰여 있는데.. 실제로 그러한지 법적 근거를 잘 모르겠다.

병역법이나 병역법 시행령 등 관련 법을 아무리 찾아봐도 장애인이나 탈북자가 면제이지, 저 지역 출신에 대한 언급은 딱히 안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육지 말고 바다 쪽 민통선도 생각해 봐야 한다. 교동도는 통제가 아주 느슨하긴 하지만 그래도 민통선에 속한 곳이며, 백령도나 연평도 같은 서해5도도 개념적으로 대성동 및 타 민통선 마을에 준하는 특이한 오지이다. 그러니 면제 혜택을 주려면 그쪽과의 형평성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저 정도로 특이하게 사는 극소수의 사람들한테, 부정 수급의 가능성도 전무한 혜택을 주는 것 자체야 형평성 불만이 제기될 여지가 없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민통선 마을들과 대성동을 완전히 같은 급에 두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지난 2019년경엔 대성동 마을 토박이인 어느 친자매(유 수빈· 유 정빈)가 대학 졸업 후에 무려 여군 장교를 같이 나란히 지원해서 매스컴을 탔다. (☞ 관련 링크)
남자였어도 합법적으로 군대를 안 갈 수 있는 신분인데 여자가 그것도 언니와 동생 둘 다 군대 쪽으로 진로를 정했다니 매우 특이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어릴 때부터 맨날 군인들을 보고 살았는데 자기도 그런 군인처럼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세상엔 이런 일도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5/09 08:33 2021/05/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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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일반 공도에서 주변 민폐를 끼치면서 차나 오토바이로 과속· 폭주를 즐기는 양아치한테 일반인들이 흔히 하는 핀잔 중 하나는 "그렇게 폭주가 좋으면 그런 짓은 서킷에나 가서 해라"이다.

본인도 나름 성질이 급하고 운전대를 잡으면 과속을 즐기며, 난폭운전은 직접 하는 것과 남의 차에 탑승하는 걸 다 좋아하는 취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짓을 주변 차에다가 피해를 주면서까지 하지는 말아야 한다. 차가 없고 시야가 확보돼 있는 한적한 고속도로에서야 150~200km/h까지도 밟지만, 엄폐물이 많고 당장 앞과 옆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좁은 골목길에서는 시속 20도 안 밟으면서 천천히 가는 게 베스트 드라이버의 덕목이라 하겠다.

그건 그렇고 본인은 이 시점에서 의문이 들었다. 그 말로만 듣던 서킷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더 나아가 Formula 1처럼 지금까지 말로만 들어 온 자동차 경주라는 업계의 사정은 어떠할까..?

1. 도로 시설

서킷은 통제된 환경에서 프로 선수들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차를 위험하게 다루면서 극한의 속도 경쟁을 하는 곳이다. 공도가 전혀 아니며, 통상적인 도로교통법이나 자동차 보험 등에서 완전히 열외되어 있다. 일반인이 차를 슬금슬금 몰다가 실수해서, 혹은 극소수의 술 먹은 미치광이가 난입해서 사고가 나는 곳이 아니다.
이는 군인이 전투 중에 적군을 사살하는 건 살인죄가 전혀 아니며, 반대로 자기가 전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통상적인 민간 생명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것과 같다. 위험도와 사고 발생 형태가 규모와 차원 면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발명된 이래로 자동차 경주라는 건 경마의 업그레이드 버전 차원에서 옳다구나 거의 곧장 존재해 왔다. 물론 이건 말 그대로 기름을 길바닥에다 뿌리는 짓이며, 장비값, 기름값, 보험료, 선수 인건비 등 돈이 굉장히 많이 깨지는 비싼 스포츠이다.
하지만 자동차 경주는 나름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기 제품의 기술력을 뽐내는 중요한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이벤트가 하나쯤 있는 것은 자동차 산업의 관점에서 이해타산이 맞고도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 경주 대회는 망할 일이 없으며, 기업 후원을 통해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다. 아니, 그저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 아니라 올림픽이나 축구 월드컵에 맞먹는 팬을 보유하고 있고 장사가 잘 된다. 물론 경주용 자동차들의 표면과 레이서들의 옷은 온~~통 스폰서의 광고들로 덕지덕지 도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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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0여 년 전에 전라남도 영암에서 F1 서킷을 건설하고 경기를 유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를 진행해 보니 수지가 맞지 않고 적자만 쌓인지라, 몇 년 못 가 중단됐다.
우리나라는 세계 선진국들의 평균 추세에 비해 경주처럼 자동차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영 발달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니 모터쇼도 자동차가 아니라 반쯤 레이싱걸 모델 전시장처럼 됐고 말이다..;;

2. 레이서

레이싱에서는 머신(자동차)뿐만 아니라 레이서, 즉 사람의 역량도 매우 중요하다. 사고가 나지 않을 만치만 차의 성능을 극한까지 짜내면서 최대의 급가속 급선회 기동을 적절한 타이밍 때 수시로 구사해야 한다. 그리고 전투기 조종사만큼이나 사방에서 발생하는 가속도를 잘 견뎌야 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도 몸 쓰는 게 아니라 기계를 조종한다고 해서 심신 단련을 안 하는 게 절대 아니다. 여느 운동 선수나 정예 군인에 준하는 수준으로 한다.
키와 체중은 일정 수준 이하여야 하며 높은 시력도 타고나야 한다. 말 타는 기수도 아니고 몇백 마력의 출력을 자랑하는 자동차를 모는데 체중이 10kg 가까이 더 나가 봤자 무슨 차이가 있겠는지 이해는 안 되지만.. 그 바닥 사정이 그러하다.

오죽했으면 세계적으로 봤을 때, 각 스포츠 분야의 1인자들 중에서 연봉과 사회적 지위가 제일 높은 사람은 무슨 축구나 농구 스타가 아니라 특급 카레이서이다~! 물론 여기에는 위험 수당도 있고, 타 스포츠와 달리 자동차 산업으로부터의 자본 투입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3. 차량

그럼 서킷을 달리는 차들은 어떤 형태일까?
레이싱의 성격에 따라서는 일반 양산차를 쓰기도 하고 그보다 더 뛰어난 스포츠카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속도가 생명인 경주용 차들은 공도를 달리는 평범한 차들과는 지향하는 특성이 다소 차이가 있다.

  • 무게 최소화: 일반 양산차로 경주를 한다면, 불필요한 좌석이나 편의장치를 몽땅 떼어내는 정도의 개조가 무조건 필수이다.
  • 접지력 최대화: 그래서 스포츠카들은 조금만 툭 튀어나온 과속방지턱도 제대로 지나기 어려울 정도로 바닥이 낮다(무게중심이 아래에 있어야..). 그리고 주름이 하나도 없는 타이어를 장착한다. 주름 없는 타이어는 접지력은 좋지만 도로가 조금이라도 젖으면 미끄러져서 위험하다. 공도에서는 이런 타이어를 장착하고 주행할 수 없다.
  • 공기 저항 최소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니 자동차 경주에서는 양산차도 아니고 부가티· 포르셰 같은 차도 아니라, 큼직한 바퀴가 네 짝 달리긴 했는데 굉장히 특이하게 생겼고 한 명만 탈 수 있는.. 그 경주 전용 자동차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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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들은 그야말로 배기량이 제한된 엔진의 힘을 이용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일 먼저 결승선에 도달하는 것만을 목표로 아주 특수하게 커스텀 제작된 물건이다.
부가티· 포르셰 같은 차는 성능에다가 일반인 운전자의 편의성까지 생각한 자동차이지만, F1용 머신은.. 오로지 성능 지향이다.

그런데 F1 경주라고 해서 무슨 부가티· 포르셰 급의 8기통 이상 6000~8000cc짜리 엔진이 장착된 차량이 달리는 게 절대 아니다.
이런 경주에서 엔진에 아무 제한을 걸지 않으면 온갖 기상천외한 짓거리를 한 머신이 등장해서 사고의 위험이 커지며, 자동차 제작 비용이 너무 치솟아서 경기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게 된다. 거기에다 아무리 속도만을 즐긴다고 해도 배기가스 환경 문제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격투기에 체중에 따른 체급 구분과 제한이 있는 것처럼 자동차 경주에는 엔진의 배기량 제한이 있는데.. 이게 낮아지고 낮아지기를 반복한 끝에 2014년부터는 F1 기준으로 겨우 1600cc라고 한다..;; 헐~~ 쏘나타보다도 작은 아반떼 배기량인데..

요즘 F1 차량은 그 배기량만으로 1000마력이 넘는 출력을 내고 2~3초대의 사기적인 제로백을 자랑한다. 즉, 튀어나가는 성능은 당연히 부가티· 포르셰에 뒤지지 않는다.
차 무게를 600kg대까지로 후려치고, 엔진 내구성도 후려치고.. 차량을 그야말로 경주를 위해 몇 시간 동안만 돌아가는 사실상의 일회용품 수준으로 쥐어짠 덕분이다.

컴퓨터계는 해커들이 겨우 100KB짜리 압축된 실행 파일로 거의 5분, 10분짜리 3차원 그래픽 데모를 선보이는 미친 최적화를 하기도 하는데, F1 머신에는 그런 식의 마개조가 일상이다.

그 대신 이런 F1 머신 같은 차들은 시동 걸고 운전하는 방식이 일반 차들과는 완전히 다르며, 사실 일반 공도를 제대로 주행하지도 못한다. 일반 자동차들은 동력원이 전기로 바뀌고 자율 주행 기술이 도입되고 있으니 경주용 자동차와는 개발 방향이 더욱 달라지고 이질화되고 있다. 스포츠 사격과 군대 저격수의 사격이 성격이 서로 다른 것처럼 말이다.

※ 그 밖에

(1) 지금까지 주로 F1을 기준으로 얘기했지만.. 이것보다 더 작은 체급으로 '카트'를 이용한 레이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넥슨의 캐주얼 게임인 카트라이더의 인지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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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너무 작기 때문에 아무래도 큰 엔진을 얹어서 막 빠르게 달리지는 못한다. 그래도 바닥에 주저앉다시피해서 달리기 때문에 체감 속도는 굉장히 높게 느껴진다.
F1 프로 레이서들도 어린 시절에 카트부터 먼저 시작한 경우가 많다. 카트는 아무래도 양발을 한데 모을 수 없으니 브레이크는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왼발로 밟게 된다.

(2) 비포장 도로를 주행하는 오프로드 레이싱이라는 것도 있다. 얘들은 아무래도 속도에만 최적화된 타 레이싱과 같은 속도를 느낄 수는 없지만, 또 다른 방면으로 스릴과 박진감을 선사한다.
여기를 달리는 차들은 아주 큼직한 타이어를 장착하고 차체가 높은 게 특징이다. F1 머신과는 디자인이 정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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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에 Ivan "Ironman" Stewart's Super Off Road, 일명 방구차라는 게임이 바로 오프로드 레이싱을 다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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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자동차 경주 게임이지만 화면 스크롤이 없다~! 한 화면에서 모든 경주가 행해진다. 스크롤도 없고 콩알만 한 자동차 스프라이트로 무슨 박진감을 표현하겠나 싶지만 평면에서 나름 복잡한 지형과 입체적인 자동차의 움직임을 그 시절 하드웨어로 표현하는 것은 딱 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 보인다. 방향과 각도별 스프라이트 로직 설계를 어떻게 했을까? 나보고 저것과 똑같은 게임을 만들라고 하면 못 하거나 엄청 고생하지 싶다.

우리 주인공은 빨간 차인데, 노랑과 파랑은 제끼고 회색 차가 유난히 잘한다. 쟤만 따돌리면 된다.
이 게임의 별명이 '방구차'인 이유는.. Nitro라는 아이템을 먹어서 그걸 터뜨리면 마치 스타크래프트 마린이 스팀팩을 쓰듯이 일시적으로 차의 추진력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3) 사회 각지에서 금녀의 벽이 허물어진 지 오래이지만, 교통수단을 다루는 분야는 여성의 진출이 더딘 편이다.
옆의 레이서들에게 양산 씌워 주거나 자동차 옆에서 포즈만 취하고 있는 레이싱걸 병풍 말고.. 현업 여성 카레이서도 있다. '권 봄이'라는 사람이 지난 2010년대 동안 꽤 유명했는데 요즘은 뭘 하고 지내나 모르겠다.

또한, 여성 오토바이 라이더들도 모임이 있을 정도이며, (☞ 링크)
20대 여성 고속버스 기사 (☞ 링크),
20대 여성 트레일러 기사 (☞ 링크),
도 있다~!
한때는 " '이 운전사는 저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 '이 아이는 제 자식입니다' 그럼 저 버스 기사의 정체는?" (아이의 어머니)
이게 "논리야 XXX" 시리즈 책에 실려 있을 정도로.. 짙은 선입견 때문에 일반인이 답을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퀴즈였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4/27 08:36 2021/04/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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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일제가 조선의 주권을 빼앗고 저지른 만행 중에서 물자나 노동력을 저렴하게 착취한 것, 사람을 차별 대우한 것, 독립 운동을 탄압한 것 자체는 아무래도 식민 통치를 하고 식민지에서 뽕을 뽑으려는 주체로서 당연히 할 만한 짓을 한 것이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생학과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그 시절에 일제만의 독보적인 악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조선에서의 양반 쌍놈 차별이라든가 기존 탐관오리들의 악행도 같이 비교한다면 상대적인 수위가 더욱 낮아진다.

그 반면, 일제 말기의 태평양 전쟁 관련 뻘짓과 악행은 성격이 좀 다르며 별개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1) 일반적인 차별과 착취, 그리고 (2) 전쟁 준비에 속하지 않으면서 일제가 특별히 큰 죄악을 저지른 것, 정당하지 않은 명분으로 조선 민간인을 싹 학살한 만행을 추려내면 제암리 학살이라든가 관동 대지진 학살 정도가 남는다. 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위안부보다도 관동 대지진 학살이 죄질이 더 나쁘다고 본다.

뭐, 일제도 한 마을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싸이코패스마냥 몰살시키고 마을을 지도에서 지워 버린 건 아니었다.
3· 1 운동 만세 시위를 진압하던 헌병인가 누군가 한두 명이 성난 군중에게 구타 당해 죽었다. 그러자 일제는 범인이 저 마을 사람 중에 있다는 명목으로 보복을 저렇게 저지른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처음엔 태극기만 들고 평화롭게 함성 지르며 행진하던 시위대가 격분· 흥분한 건 일본 헌병들이 실탄을 발사하고 피를 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유 관순 같은 시위대 리더들이 우리까지 폭력으로 나서면 안 된다고.. 그랬다가는 더 큰 보복을 당하고 만세 시위가 더 큰 참극으로 바뀐다고 군중을 말렸지만 혼란스러운 와중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결과는 잘 알다시피.. 처음에 일부 헌병 주재소가 박살나고 유치장 수용자들이 풀려나긴 했지만, 일본 쪽의 추가 지원 병력이 도착한 뒤부터는 시위대는 공중분해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헌병들도 흥분해서 다 죽이거나 잡아 가두고, 마을 집까지 불지르게 되었다.

이때는 오늘날 민주 국가의 경찰처럼 폴리스라인 치고 공포탄 경고 사격부터 몇 발 한 뒤에 암염탄이니 테이저건이니 발사하는 신사적인 매뉴얼이 없었다. 일제 저놈의 입장에서도 남의 나라 식민 통치라는 건 처음 해 보고, 반항하는 애들에 대해서는 그냥 닥치고 총칼로 위협하고 고문하고 죽여서 제압한다는 매뉴얼밖에 없었다.
(하물며 우리나라조차도 해방 이후에 4 19 같은 시위를 진압할 때 잘 알다시피 경찰이 대놓고 시위대에게 총질을 할 정도였다. 그때는 보고 배우고 행한 관행이 그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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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제암리 학살은 이런 배경에서 벌어졌다.
석 호필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가 제암리 학살 현장의 참상을 촬영하고 세계에 타전해 줬다.

우리 선조들은 민족 자결주의 하나만 달랑 믿고 무슨 "꿈은 이루어진다"마냥 "대한 독립 만세"를 열심히 외치면 진짜 일제가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냉정한 현실에 비춰 본다면야 3· 1 운동은 그냥 숱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만 야기한 순진해 빠진 망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런 희생을 치른 덕분에 조선은 일본과 다른 민족이며 일제의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 하나는 세계에 확실하게 전하고 일제의 입장을 굉장히 난처하게 만들 수 있었다. 전술의 패배 대신 전략의 승리를 얻은 건지..?

강대국이 식민 통치를 하는 것 자체는 합법이고 관행이던 제국주의 시절에도 "당신 일본은 식민지를 얼마나 개판으로 관리했으면 10년을 못 채우고 저런 대규모 항쟁이 전국에서 벌어졌냐? 그리고 그걸 또 그 따구 방식으로 겨우 진압했냐?"라는 질타가 들어왔을 정도였다. 그러니 조선 총독도 본토로부터 당연히 내리갈굼을 먹었다. -_-;;

그래도 3· 1 운동 같은 발악이 있었던 덕분인지 일본 내부에도 조선의 식민 통치를 반대하고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는 소수의 일본인이 생겨났으며, 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자국의 만행을 사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거 마치 임진왜란 시절에 조선으로 귀순한 왜군 장수를 보는 듯한 느낌인데.. 이런 사람들이 제일 최근에 대대적으로 매스컴을 탄 건 2년 전, 2019년 2월경이다.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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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과거 침탈을 깊이 사죄합니다.
'이젠 됐어요'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계속 사죄하겠습니다."

"주여, 식민 통치 시절 일본 관헌들에 의해 가장 험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 이곳 제암 교회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3·1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고문하고, 학살하고 교회를 불태웠습니다.
일본 정치인들은 한 번도 사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쁜 짓을 했으면 사과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주여, 우리 일본인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지금 최악의 한일 관계가 호전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이룰 수 없습니다. (저희 사죄는) 작은 일이지만 주께서 저희를 사용해 주시고, 인도해 주소서. 아멘."


우와, 읽는 내가 눈물이 나려 한다. (반어법이 아님!)
저 사람들이 다른 사회· 정치 쪽으로 다른 이상한 운동에 연루돼 있지 않고, 신학 노선이 그리 이상한 곳도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난 저 사죄가 진심 레알임을 인정한다.

정치인들의 정식 사죄?? 바라지도 않는다. 사실 외교적으로는 우리나라는 이미 일본의 까임권을 다 써 버린 지 오래다. 그걸 아직도 우려먹는 게 비정상이고, 외교 신뢰를 깎아먹는 바보짓이다. (이제 더 논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퉁쳤잖아! 그런데 이거 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말이 달라지니..)

정치인이 아니면 민간에서라도.. 저렇게 자기 나라 참전 때문에 남북 분단을 영구히 고착시켜 버린 것을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하는 대륙 사람이나 조선족이 어디 있나? 비열한 전쟁과 테러 공작에 대해서 진심으로 유감스러워하고 화해하고 싶어 하는 동족이 이북에 어디 있긴 하냐?
이러니 내가 종북이 친일보다 더 나쁘다고 논리적으로 정정당당하게 주장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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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대표 기도를 한 '오야마 레이지'(尾山令仁)라는 목사는 나이가 이미 90을 넘은 고령인데..
행적이 정말 엄청난 분이더라. 제암리 학살에 대한 사죄와 추모를 50년 이상 전부터, 1965년 한일 수교가 최초로 이뤄졌던 시절부터 일평생을 바쳐 해 왔다!
1969년 4월 15일, 인류가 아직 달에도 가기 전이었던 시절의 중앙일보 보도를 보자. (☞ 링크)

오야마 이마히도(미산금인).. 저 사람 맞다. 령을 금이라고 표기한 건 종이 신문 OCR의 한자 판독 오류일 테고..
그는 진작부터 하나님께 나아오기 전에 니 형제와 화해부터 먼저 하라(마 5:23-24)는 말씀으로부터 깊은 부담을 느꼈고, 60년대부터 "일본은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기억하기 전에 제암리부터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 링크)

"제암 교회 방화 사건 속죄 실행 위원회"라는 걸 만들어서 자국에서 성금을 1천만 원(50년 전 물가.. 책 한 권 가격이 백원대 단위이던 시절)을 모아서.. 제암리 교회를 재건하고 주민 의료 진료소까지 만들려고 했다...;;

감리교 교단에서는 이를 환영하고 동의했으나(오리지널 제암리 교회도 감리교였음).. 문제는 민심이었다.
제암리 학살 피해자 유족들은 "왜놈들의 더러운 돈으로 교회를 세우는 건 순국선열에 대한 모독이다. 죽어도 결사 반대!!" 이렇게 나오면서 성금 따위 한 푼도 안 받으려 했으며, 오야마 씨를 만나 주지도 않았다.

1960년대의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반공과 반일이 가히 하늘을 찌를 기세였던 시절이다. 일가족이 몰살당했던 유족들의 저 까칠한 반응에 대해서도 후손인 우리 세대가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야마 목사는 저런 냉대조차도 담담히 감내하면서 몇십 년을 한결같이.. 2019년까지도 "일본의 과거 침탈을 깊이 사죄합니다. 주여, 우리 일본인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래 왔던 것이다. 한국, 일본 모두로부터 그다지 지지나 환영받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이 정도면 대인배만으로는 표현이 부족하고.. 예수쟁이로서 좀 거시기한 표현이긴 하지만.. 가히 보살 급이지 않은가..??
이 뿐만이 아니다. 쟤들은 무려 2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의사자 이 수현 씨를 아직도 기억하면서 매년 추모식을 연다.

JR 서일본(☞ 링크)은 2005년 후쿠치야마 선 탈선 사고에 대한 사죄와 반성 문구를 자사 홈페이지에다가 15년째.. 지금까지도 사실상 영구 박제 수준으로 걸어 놓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일본인의 근성에 참으로 놀라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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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마 이마히도 목사도 신학을 한 구체적인 배경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인으로서 꼭 기억할 만한 양심적이고 훌륭한 일본인이라 하겠다. 얼마 안 있으면 소천해서 근황을 못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럼 제암리 학살과 관련하여 다른 이야기 하나만 더 꺼내고 글을 맺겠다.
미국 독립 전쟁을 배경으로 20년 전 옛날 영화 '패트리어트'에서는 영국군 레드 코트들을 개 싸이코 악마 병신으로 묘사하기 위해, 어디서 본 건 있는지 제암리 학살 사건을 오마주 한 듯한 장면이 들어갔다.
니들이 식민지군 반역자들을 숨기고 있다는 죄목으로 주민들을 예배당 안에 한데 모아 놓고 문을 못질 하고 건물을 불지른 것.

하지만 영국군이 그런 잔학한 짓까지 실제로 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영국은 이 장면에서 언짢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심지어 제암리 학살조차도 여자, 아이들까지 다 예배당에다 가두고 문에 못질을 한 건 아니었다고 사료가 정정되고 있다. 키가 일정 수준 이상인 15세 이상 남자만 죽였다고.. 뭐 그것도 비무장 양민에 대한 반인륜적인 학살인 건 변하지 않지만 말이다.

심지어 그때 불타는 예배당 안에서 어떤 여인이 "제발 우리 아이만은 살려 주오"라고 담요에 둘러싸인 아기를 밖으로 내밀었는데 헌병들이 칼질을 했던가 총질을 했던가.. 그런 얘기까지 전해지는데.. 그것도 일단은 현실성을 의심해야 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1/04/24 08:35 2021/04/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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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크 밸브

요즘은 트럭이나 버스가 아닌 승용차 차급에서 수동 변속기라는 게 사실상 전멸했다 보니, 어지간한 일반인 운전자들은 면허를 딴 뒤부터 클러치 페달이라는 걸 밟은 경험이나 기억이 전혀에 가깝게 없다.

오르막을 출발할 때의 떨림 찾기, 반클러치, 시동 꺼뜨림, 반대로 배터리가 나갔을 때 밀어서 시동 걸기.. 이런 것들을 모르는 사람이 주류가 되고 있다. 그러니 수동 차량은 대리 운전을 시키거나 중고로 파는 게 갈수록 난감해져 간다.
그래도 수동 변속기는 대형 상용차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멸종할 일은 없다. 쟤도 마치 에어 브레이크만큼이나 대형차만의 전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운전과 관련하여 지금은 완전히 멸종했고 수동 변속기보다도 더 하드코어한 과거 유물은.. 초크 밸브이지 싶다.
연료 분사가 지금처럼 전자화· 자동화되기 전, 원시적인 카뷰레터(기화기)가 쓰이던 시절엔 연료 분사량을 조절하는 악셀 페달과는 별개로 공기 주입량을 조절하는 밸브도 운전석에서 수동 조작 가능한 기기 형태로 존재했다.

엔진의 출력이라는 함수값은 단순한 1변수이지만, 내연기관은 연료뿐만 아니라 공기까지 감안해서 동작하는 2변수 함수이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공중에서 선회를 위해서 자동차처럼 단순히 핸들을 꺾는 게 아니라 pitch와 roll이라는 2축, 2변수를 조절하는 것처럼 말이다.

추운 겨울에 디젤 엔진에다 시동을 걸 때는 초크 밸브를 이용해서 공기를 더 불어넣어 줘야 했다. 그리고 반대로, 공기를 수동으로 차단하지 않으면..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지만, 키를 뽑는다고 해서 엔진 시동이 즉각 꺼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가파른 내리막에서 저단+높은 rpm 상태로 엔진 브레이크가 걸렸을 때 연료 공급이 차단되는 fuel cut도 없고.. 이 정도로 공기 공급과 연료 공급이 서로 맞물려서 효율적으로 통제되지 않으니 엔진 출력 대비 불완전 연소 매연과 그을음(특히 디젤)이 심하며 연비도 요즘 자동차보다 훨씬 더 나빴다.

초크 밸브까지 적절히 활용해야 하던 포니 같은 승용차는 운전하는 난이도와 느낌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치면 암울하던 16비트 시절에 HMODULE과 HINSTANCE라든가 원거리 근거리 포인터 구분 등.. 지금은 신경쓸 필요가 없는 별 복잡한 요소들을 구분하고 따로 취급해야 했던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런 번거로운 기기는 전자식 연료 분사 기술이 도입되면서, 아니 그 전에 카뷰레터 자체도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1980년대 중후반에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에서 버스 안내양이나 항공 기관사와 시기가 비슷하다.
그래도 이 정도로 옛날 차는 요즘 차에 비해 침수(!!)나 저질 연료에 강하고 엔진음이 더 터프하고 웅장(?)하고, 악셀을 밟았을 때 밟은 대로 튀어나가는 반응성 하나는 좋았다고 한다.

2. 휠

옛날에는 자동차 타이어에 장착된 휠이라는 게 완전히 희거나 검은 표면이 있고, 중심부와 가장자리에 동그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마치 사람 얼굴처럼 보였다. 중심부의 동그란 원은 입, 휠너트는 콧구멍, 휠너트 주변의 돌출된 부위는 뽈살(!!), 그리고 제일 바깥쪽에 숭숭 난 동그라미들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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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식으로 말이다.
그에 비해 요즘 승용차들의 휠은 굵직한 스포크 몇 개가 전부이고 나머지 부위는 다 뚫려 있어서 안쪽의 디스크 브레이크 패드가 다 보일 정도이다. 그리고 옛날 휠에 달리, 은색의 반들반들한 광택이 난다.
옛날 방식의 전통적인 휠은 트럭· 버스 같은 상용차에서나 볼 수 있다.

난 이게 단순히 디자인 트렌드의 차이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재질부터가 다르다. 옛날 휠은 철제(스틸)인 반면, 나머지 더 뽀대나는 휠은 알루미늄 재질이다.
옛날에는 외곽의 '눈' 부위가 저렇게 아주 납작해서 눈을 흐리멍덩하게 떴다거나 우는 듯한 모습인 것도 있었지만, 원래는 모든 구멍을 그냥 원 모양으로만 뚫은 게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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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떤 자동차에서 아무 옵션도 장착하지 않은 제일 저렴한 사양에 최하위 모델은 휠이 요런 모양이었다. 아니면 같은 차종이라도 자가용 말고 택시의 휠 역시 요런 편... ^^
조금 상위 모델로 가면 저기에다가 껍데기 하나 씌워 주는 게 관행이었다. 스틸 휠의 단조롭고 추레한 외형에 좀 변화를 주도록 말이다. 옛날엔 고속버스 타이어 휠에 반들반들한 휠캡이 따로 달렸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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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요즘은 "철제 휠 + 휠캡 껍데기" 관행이 사라지고 알루미늄 휠이 대세가 된 듯하다.
그렇다고 가느다란 스포크가 수십 개씩 박힌 건 내구성이 약해서 그런지 자전거나 리어카 타이어의 휠에서나 볼 수 있고..
이런 것도 변화라면 변화라고 하겠다.

3. 엔진음과 동력원

(1) 요즘은 길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에서도 일반적인 부르릉이 아니라 전기 기관차 같은 조용한 웨에엥~ 전자음이 많이 들리기 시작해서 기분이 묘하다. 소형차에서 카르릉~ 디젤 엔진 소리가 나는 것 이상으로 이색적이다. 하이브리드, 배터리 전기, 수소 연료전지 같은 변종들이 갈수록 늘고 있긴 하다. 전기차는 내연 기관 같은 냉각 계통이 필요하지 않으니, 이런 차는 앞에 라디에이터 그릴도 없다.

(2) 그리고 요즘은 쬐끄만 소형 스쿠터(발을 한데 모을 수 있는..)들도 예전 같은 하이톤 앵앵앵 대신, 일반 오토바이와 동일한 부르릉 털털털 소리가 난다. 신기하지 않은가? 이제 이륜차도 내연기관형은 다들 2행정이 아닌 4행정 엔진을 쓰기 때문이다. 아니면 덩치 작은 놈은 아예 전기 모터로 바뀌고 말이다.

2행정은 구조가 간단하고 배기량 대비 더 큰 출력이 나지만, 엔진 내구도와 환경면에서 4행정보다 불리하다. 이제 소형 2행정 엔진은 교통수단이 아니라 제초· 제설 장비 정도에서나 볼 수 있다. 휴대용 엔진 발전기조차도 휘발유, 디젤, 터빈 등 다양한 엔진이 쓰이지만 2행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3) 하지만 군용차라든가 대형 버스나 트레일러는 저런 트렌드를 다 씹어먹고 여전히 디젤이 본좌다. 제아무리 깨끗하고 다재다능한 전기 에너지라 해도, 말통에다가 석유 담듯이 많은 양을 화학적으로 곱게 축적하는 효율은 인류의 과학 기술로는 아직 메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기 에너지는 실시간으로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하는 형태를 벗어나지 못해 있으며, 그나마 연료 전지는 배터리와 엔진의 중간 위상인 타협안이다. 현대차에서 열심히 연구· 노력한 덕분에 수소 연료전지 정도가 승용차 레벨을 벗어나 대형차 버전까지 만들어져 있다.

(4) 그리고 EQ900, 롤스로이스 같은 초호화 기함급 승용차들도 역시.. 하이브리드고 디젤이고 전기고 다 필요 없고, 안정성이 검증된 땡 휘발유 다기통 대용량 엔진이 사용되는 중이다. 부유하고 높으신 분들이야 길바닥에 돈을 줄줄 흘리고 다녀도 걱정할 게 없기도 하니.. 디젤과는 반대편 극단에 속한 분야라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04/08 19:33 2021/04/0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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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용어 분석

1. for one's sake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성경의 맨 처음 책인 창세기에서는 주요 성경 용어들이 약간 뜬금없는 문맥에서 최초로 등장하곤 한다.
창세기에 존재하는 KJV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replenish,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같은 게 있는데,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아이템은 저런 것들보다는 훨씬 덜 유명해 보인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에게 내리시는 징벌이 창 3:17에 기록돼 있다. “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그런데 다른 모든 성경들은 because of you인 반면, 킹 제임스 성경은 유일하게 for thy sake라고 쓰여 있다.

똑같이 인과관계를 나타내더라도 for one's sake는 굉장히 긍정적인 심상이다. because of가 중립적이거나 약간 미묘하게 부정적인 심상인 반면, 쟤는 ‘누구 덕분에,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배려해서· 감안해서’라는 심상이 담겨 있다.
까놓고 말해 18장에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50명, 40명~10명이라도 있으면 걔네들을 생각해서라도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for their sakes라는 표현이 쓰였다.

게다가 replenish가 창 1:28뿐만 아니라 노아의 홍수 이후인 9:1에서 또 나오는 것처럼, for one's sake는 역시 근처인 8:21에서 거의 동일한 문맥을 배경으로 한 번 더 등장하기도 한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또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물론 둘 다 우리말로는 because of와 마찬가지로 '-로 인하여'라고 번역해도 별 무리는 없다.
하지만 KJV도 because of가 엄청나게 많이 쓰이는데 굳이 이걸 놔두고 for one's sake가 따로 쓰였다는 것은.. 땅에 내려진 원초적인 심판과 저주조차도 그저 사람들을 엿먹이고 불편하게 하는 목적이 아니라 그 인간의 처지에 대한 하나님의 다른 뜻과 배려가 담겨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당장 이해는 잘 안 되지만 말이다.

사실은 굳이 sake까지 안 쓰더라도 영어는 전치사 for이 단독으로 ‘위하여’(좋은 목적 one's sake) 내지 ‘인하여’(이유, 인과관계 because of)라는 뜻을 모두 지니는 구석이 있다. 이 용법을 생각하게 하는 대표적인 찬송가는 바로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이다.

영어로는 Jesus died for me와 Jesus died for my sins가 모두 성립한다. 그런데 저 찬송가 후렴의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는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죄 자체는 뭔가 ‘위해서 죽어야’ 할 가치가 있는 좋은 대상은 전혀 아니지 않은가?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서 죽는다면 모를까..?

이건 희소병을 희귀병이라고 잘못 표기한 것과 비슷한 오류로 보인다! 그래서 어떤 찬송가 책에서는 후렴 가사를 “나의 죄 인하여”라고 수정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차이점 같다.
예전에도 글로 쓴 적이 있지만, 영어의 sake는 behalf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제한적인 특정 문맥과 용법에서만 쓰인다. 한국어 문법 체계로 치면 '의존명사'와 매우 비슷한 물건이라 하겠다.

2.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

창세기 6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체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이다. 이건 대다수의 기성 교회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해석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사람처럼 생기긴 했지만 생물학적으로 사람과 동일하지는 않은 천사가 인간 여성과 결합함으로써 초인적인 괴수· 거인 잡종이 태어났다. 창 6:4에 나오는 네피림..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간단하게 거인이라고 번역한 이놈은 말 그대로 로버트 워들로를 능가하는 거인이었다. (20세기 초, 키가 272cm까지 갔던 관측 이래 인류 최장신 미국인)

신 3:11에 따르면, 바산의 왕 '옥'도 침대의 길이가 9큐빗.. 약 4.5미터.. 거의 아반떼 승용차와 비슷한 길이였다고 나온다. 인간의 침대가 말이다. 그리고 골리앗의 키가 6큐빗 플러스 알파다(삼상 17:4). 거의 3미터 이상..
그러니 창세기 6장의 거인도 무슨 영적 거장이니, 카인의 후예 따위로 이상하게 갖다붙일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생물학적 거인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성경을 성경으로 푸는 바람직한 해석이다.

로버트 워들로는 성장판이 정신줄 놓는 병에 걸려서 키만 비정상적으로 커졌던 것이다. 발이 자기 체구와 체중을 감당하지 못해서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정도였으며, 나중에는 발목 부상으로 인한 패혈증 때문에 20대 초반의 나이로 죽었다.

그러나 골리앗은.. 지팡이는 개뿔.. 그 키에다가 무거운 갑옷 입고 창을 들고, 전투력도 인간 흉기 급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교단 교파에서도 골리앗이 무슨 영적 거장이었다니 장수였다느니 헛소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다윗은 짱돌이 아니라 영적인 돌로 신학 논쟁과 키배로 골리앗을 '영적으로' 제압했게?

이런 괴수들은 다 인간의 정상적인 평범한 유전자로부터 나온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적으로도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 또는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는 보편적인 심상을 갖지만, 구약에서 창세기와 욥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라는 용례가 명백히 존재한다. (욥 1:6, 38:7 등)

본인은 '하나님의 아들들' 그리고 "being old and full of days"라는 표현의 유사성을 근거로 욥기의 저자 자체가 모세일 것이라고도 추측을 한다만, 이건 뭐 논쟁할 정도로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3. 창세기 나머지

(1) 포도주 wine
잘 알다시피 9장에서 노아가 만취해서 곤드레만드레가 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전에도 한번 얘기했었지만.. 본인은 교리적인 근거(가나의 혼인 잔치, 빵과 잔 만찬 따위)가 있는 곳이 아니라면 wine은 “즙 < 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최초의 언급 법칙을 감안했을 때 말이다.

특히 마 11:19, 눅 7:34처럼 명백히 부정적인 음해 문맥에서까지 무알코올 포도즙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식탐 다음에 술주정이 따르는 것은 신 21:20 (부모가 막장 패륜 자식을 고발해서 죽여버리기~!! ㄷㄷ)과 대조해 봐도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성경이라 해도 문맥상 필요하다면 술도 나오고, 심지어 “There is no God”이라는 불신자 말 인용도 나오는 법이다.

(2) 누룩 없는 빵(unleavened bread 무교병)
19장에서 롯이 소돔에서 천사들을 잔치까지 베풀면서 대접하는데, 잘 부풀어오른 부드럽고 맛있는 빵이 아니라 저런 빵이 등장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율법 유월절하고 아무 관계 없는 상황인데 이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잠시 후에 소돔 불벼락을 앞두고 쟤들도 마치 이집트를 탈출하듯이 이 집을 허겁지겁 빨리 탈출해야 했던 건 사실이지만, 롯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혹시 손님으로 가장했던 천사들이 "누룩 없는 빵으로 플리즈~~" 라고 커스텀 주문을 했던 것은 아닐까?
본인은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관련 강해나 주석을 아직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했다.

(3) 사랑
성경에서 최초로 이 단어가 등장하는 곳이 바로 22장, 하나님이 아브라함더러 아들 이삭을 번제 헌물로 바치라고 명랑하는 문맥이다.
모세오경 중에서는 마지막 책 신명기가 사랑이라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고, 특히 “{주} 네/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유일하게 나온다.

(4) 묵상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바라보니, 보라, 낙타들이 오더라." (창 24:63)
여호수아기나 시편을 보면 “주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한다/하라”처럼 묵상의 대상이 같이 언급되는 반면.. 창 24:63에서는 목적어가 생략된 채 꽤 뜬금없이 이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다.
그러니 세상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읽으면, 이삭이 들판에서 눈을 감고 가부좌 틀고서 엄근진한 자세로 참선, 요가, 단월드 기수련, 파륜궁, 관심법(!!) 시전을 하는 장면이 떠오르기 쉽다.. ㅡ,.ㅡ;; 골수 예수쟁이인 나조차도 이 정도 선입견과 편견은 생겨 있다.

핵심은.. 묵상은 명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런 구절을 읽으면서 시 119:15 “내가 주의 훈계들을 묵상하고 주의 길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내지, 찬송가 가사로도 있는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시 19:14)가 연결돼야 하는데..
온갖 잡다한 다른 유사품이 떠오르는 게 바로 마구니들이다.. 진짜 마구니는 법봉으로 대가리 깨뜨린다고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옛날의 천조국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성경을 읽은 덕분에 ?Z라는 단어를 보고 욥의 고향 우스 UZ를 먼저 떠올렸었다.
하지만 현대의 어린이들은 오즈의 마법사 OZ를 먼저 떠올린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뭐, 요즘은 오즈조차도 해리 포터에게 밀려서 한물 간 지가 오래이지만 말이다.

이런 것 말고도, 세상 매체(영화, 게임, 드라마 따위)들을 접하던 사고방식으로 성경을 읽다 보면..

4. 유령

  • 그때에 내 얼굴 앞으로 한 영이 지나가므로 내 살의 털이 곤두섰느니라. (욥 4:15)
  • 제자들이 그분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불안해하여 이르기를, 영이다, 하고 두려워서 소리 지르거늘 (마 14:26)

성경에도 딱~ Ghostbusters 풍의 공포 영화를 떠올릴 만한 정면이 이렇게 존재한다. 성경이 말하는 혼과 영이 각각 귀신과 유령으로 바뀌는 것이다. 심지어 번역 자체도 그런 스타일로 돼 있다(KJV 제외).

한 30년쯤 전엔 고스트버스터스가 “유령 대소동”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용 TV 만화영화로도 방영됐었다. “유령이 나타났다, 잔꾀와 속임수로 사람들 괴롭히는 유령이다~ㅎ”라는 주제가는
“뱀이다 뱀이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뱀이다~ㅎ” 트로트 “참아 주세요”와 굉장히 비슷한 풍이었다.. ㅠㅠㅠ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영에는 원래 호러 요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한 영이 나아와 {주}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그를 설득하겠나이다, 하거늘 (왕상 22:21)
  •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 24:39)

요 4:24를 “하나님은 유령이시니...”라고 번역하는 게 말이 되겠는가?
ghost도 마찬가지. 성령님 the Holy Ghost 아니면 숨지다 give up the ghost라는 두 용례로만 쓰였다.

여담이지만, 본인의 어린 시절에 학원인가 학교에서 이름이 '혜령'인 여자애가 있었는데.. 별 상관도 없는 유령이라는 별명으로 짓궂은 남자애들로부터 놀림 받곤 했다.
본인의 이름 별명 중 하나이던 묵사발, 도루묵 따위보다는 훨씬 더 점잖아 보이는데 유령이 뭐가 그리 대수였나 모르겠다. 뭐 여자여서 유령이라는 말에 더 민감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러고 보니 귀신은 긴 생머리에 소복 입은 하얀 처자가 떠오르는 동양 스타일에 가깝고, 유령은 얼굴 찌그러뜨리고 해파리처럼 흐물흐물 거리는 게 서양 스타일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저승사자(!!)만 해도 동양은 검은 옷 검은 갓 차림의 아재이고, 서양은 낫 들고 있는 해골 아저씨이듯이.. 아이고, 갑자기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은 얘기가 많이 튀어나왔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1/03/25 08:34 2021/03/2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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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에 인간이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직접 다녀오는 정말 초유의 이벤트가 벌어졌을 때, 정말 세계가 열광했다.
우리나라는 1969년 7월 21일 월요일, 아폴로 11호 달 착륙일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지구 반대편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전쟁 중이었는데, 저거 중계방송을 다같이 시청하려고 잠시 휴전을 했을 정도였다.

그 시절 수많은 꼬꼬마들이 저 광경을 보면서 나도 공부 열심히 해서 공무원이나 연예인이 아니라 위대한 과학자/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장래희망을 굳혔다.
그리고 2000년쯤이면 인간이 화성에도 가고 달에 식민지 하나 정도 건설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우주를 배경으로 다리 달린 로봇이 나오는 수많은 SF물들이 만들어졌다.
그런 작품에서는 비행기처럼 날개 달리고 항공역학적으로 아주 새끈하게 만들어진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비행체들이 우주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외계인 군단을 때려잡았다. (그에 비해 실제 아폴로 우주선 LM 달 착륙선의 모양은... ㄲㄲㄲㄲㄲ)

허나, 실제로 2020년이 돼 보니 현재 인간의 우주 진출 현황은 어찌 됐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에서 묘사됐던 2001년과, 실제 2001년의 차이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난 수십 년 동안 천문학도 발전하고 항공우주 기계공학 기술도 눈부시게 더 발전했지만.. 그것과 유인 달 탐사 내지 우주 식민지 개발은 별개의 문제였다. 우주 개발은 전쟁이나 결혼 생활만큼이나 매체(게임, 영화..)와 현실과의 괴리가 매우 매우 큰 분야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식의 설레발이 세상뿐만 아니라 기독교계에도 미래 예언과 관련하여 많이 있었음을 나는 신자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적용을 넓게 영적으로 하는 방법론이 가장 건전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지지한다.
6일이나 7년이나 1000년 같은 기간을 특별한 다른 단서가 없는 한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 당장 이해가 안 되고 실감이 안 가는 부분이 있어도.. 판단을 보류하고 가만히 묻어 둘지언정, 말을 제멋대로 바꾸고 뜯어고치지 않는다.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고, 유대인과 교회를 구분하고,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을 구분하고, 영과 혼을 가능한 한 구분하고, '채우다'와 '다시 채우다'를 구분하고.. 그러니 세대주의에 대해서도 태생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대외적으로 평이 안 좋은가 했더니.. 시한부 종말론과 얽혀서 오해를 살 짓을 한 게 있긴 했다.

인류의 시작과 과거 역사가 4천 년쯤 전으로 굉장히 구체적인 값이 나오니, 인류의 종말 시기도 지금쯤이면 굉장히 가까워진다.
물론 세대주의 자체가 어디 악성 이단 사이비처럼 몇 월 며칠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니 “직장 그만두고 산속에 들어가고 재산 다 교회에 갖다바쳐라” 같은 미친 짓을 권장하고 조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런 움직임이 발생할 빌미는 제공했으며, 결정적으로 종말의 징조, 조짐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불발한 설레발을 너무 많이 쳤었다.

  • 이스라엘 건국
  • 유럽 연합 결성
  • 20세기의 아주 카리스마 넘치던 모 교황과 세계적인 에큐메니즘 운동, 세기말 Y2K 문제
  • 그러면서 세계 단일 정부 단일 종교 떡밥..

이런 거 말이다.

아, 20세기 중반부터 일어난 저런 사건들이 과거에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격변인 건 사실이다.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에 비견될 만도 하다.
그리고 세상은 갈수록 악해지고 빗장 풀리고 타락하고 심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큰 그림’ 역시 사실이다. 뭔가 성경적으로 의미 부여를 하고 싶은 그 심정은 이해가 된다. 전부 비유 묵시라고 헛소리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갖다붙이고 적용하려고 노력해 보는 게 차라리 더 나은 자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 국제 정세나 과학 기술은 아주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요소이다. 언제라도 “아니었나 보네, 아님 말고”를 시전하면서 버릴 수 있게,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서 아주 가볍고 얕게 참고만 하고 있어야 하는 사항이다. 성경에는 인류의 역사와 관련하여 철기 시대, 불의 발견, 바퀴의 발명조차도 나와 있지 않다는 걸 생각하자.

아예 초대 교회 사람들부터가 “이때쯤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지..” 생각하다가 죽었고, 중세 때 스코틀랜드 교회 사람들은 저 교황이 '그' 적그리스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교황이 소속된 집단이 몇백 년 뒤에는 개신교를 상대로 에큐메니즘 운동을 주관하는 날이 올 거라고 그 옛날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 있었을까?

컴퓨터만 해도.. 오늘날 같은 극도의 정보화 시대가 순기능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지금 전자, 컴공, 언어 처리, 바이오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이공계들이 추구하는 상당수의 목표는 인간을 닮고 인간처럼 생각하면서 인간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할 줄 아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걸 만들기 위한 밑천인 실제 인간 군상들의 동선과 행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기반도 다~~ 갖춰져 있다. 이게 마냥 좋은 의도로만 쓰일 거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최소한 1980년대에 우려했던 것처럼 금수저들만 비싼 컴퓨터를 마음껏 쓰면서 정보와 기술을 독점하고 대중을 통제하는 무식한 사회 같은 건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그 시절 음모론자들은 블랙박스와 CCTV 덕분에 질서와 치안이 상상을 초월하게 개선되는 것, 그리고 오픈소스 진영이 등장해서 정말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양의 정보와 기술들이 무료로 풀릴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성경에서 용이 불을 뿜는 게 미래에 등장하는 탱크나 미사일을 의미하는 거라고 이상하게 갖다붙이는 사람도 있고,
한술 더 떠서 미래엔 석유가 고갈되어서 사람들이 성경의 묘사대로 문자 그대로 다시 말 타고 냉병기를 들고 싸우게 될 거라고.. 아인슈타인이 3차 세계대전 이후 다음 전쟁의 양상을 예측했던 것과 같은 추측을 하는 사람도 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후자조차도 100% 장담은 하기 어렵다. 2010년대부터 셰일 가스가 재발굴되어 지금처럼 다시 기름값이 팍 내려가고 석유 고갈 예상 시기가 한참 늦춰질 거라는 점까지 예상한 사람은 내가 못 봤다.

그러니.. 성경으로 미래 전망은 함부로 설레발 치지 말고 영원까지 길게 보는 안목을 갖고, 한낱 국제 정세나 일개 과학 기술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불가지론에 가까운 냉정한 자세로 판단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성경은 거의 1900년 전의 요한계시록 기록 시점부터 "내(예수)가 속히 오리라(come quickly)"라고 약속해 놓았다. 도대체 어느 기준으로 '속히'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세상 정세와는 아무 상관 없이 “예수님이 지금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겠구나”, 핵무기고 스마트폰이고 구글이고 중공 폐렴이고 전부 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 그땐 그랬지” 이렇게 회상할 각오를 하고..
따분하고 재미없어 보이지만 그냥 원론적인 지침에 충실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최후 승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신의 존재 여부야 불가지론의 대상이 아니지만, 종말 내지 예수님 재림 시기는 인간들 입장에서는 불가지론인 게 맞다고 성경에서 대놓고 쓰여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으로 살지 않고 어설픈 사회 정세 음모론에다가 믿음의 근간을 두면.. 그 음모론이나 예상이 빗나갔을 때 다른 성경의 건전한 가르침까지 같은 급으로 매도되고 부정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초신자가 실족하고 믿음이 파괴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지금은 무려 2020년이다. 이제는 근미래에 대해서 과거에 전망했던 것, 그리고 빗나간 예언들에 대한 경험과 데이터도 그럭저럭 쌓이고 있는 중이다. 다미선교회 병크, Y2K 설레발, 2012년 종말 떡밥.. 전부 도대체 몇 년 전의 해프닝이 되고 있나? 이 와중에 아직 바코드, 베리칩 음모론 믿는 사람은 좀 없어야 하지 않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에서 묘사된 실제 대환란기는 언제쯤 어떤 형태로 실현될지 개인적으로는 노무노무 궁금해 죽겠다. 정말 흥미진진한 사건이 될 것이다.

1940년대 말, 우리나라의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조선이 해방될지 몰랐으니까~!!”라고 변명하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는 “예수님이 그렇게 꿈에도 상상 못 하던 시기에 덥석 오실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요)!! / 내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죽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ㅠㅠㅠ” 이렇게 변명하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분명 엄청나게 많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천국 가면.. 모인 사람들끼리 아마,

  • "라떼는 말이야 성경 몰래 베껴가면서 읽다가 걸리면 화형이었어"
  • "라떼는 말이야 영어 성경이 200종류가 넘게 나왔고 역본 내용의 차이 갖고 키배가 벌어졌어"
  • "흥, 나는 그 세상에서 살아 본 적도 없이 바로 왔거든?" (☜ 이 케이스가 아마 제일 많을 것임..)
  • "웃기시네. 니들이 공중으로 번개같이 들려 올라가는 그 느낌을 알아?"

서로 출신과 배경 갖고 약간의 알력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성품이 변화된 뒤이기 때문에 선 넘는 진흙탕 싸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21/03/10 19:35 2021/03/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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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특히 20세기 중반 이전)와 오늘날 사람들의 평균적인 가치관, 윤리관은 서로 적지 않게 달라 보인다.
뭐,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거나 도둑질과 살인이 나쁘다는 것 정도야 예나 지금이나 불변이겠지만,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처럼 어정쩡한 문제.. 예를 들어 사형 제도나 동성애 같은 것은 종교관이 개입하지 않은 상대주의 다원주의만 갖고는 확고한 답이 나오기 어렵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체면, 위신, 위계 질서, 명예를 따지는 성향이 더 컸으며 "안 되면 되게 하라, 이기든가 죽어라" 근성과 의지드립을 더 강조하는 편이었다.
그 반면 오늘날은 그때보다 실리, 인권을 더 따지는 편이다. "이길 수 없으면 살아서 돌아오기라도 해서 후일을 기약하자" 같은 관점이다. 그리고 집단보다 개인의 개성을 훨씬 더 존중해 주게 됐다. 두 관점은 서로 장단점이 있다.

먼저 옛날 얘기부터.. 옛날에는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이 전반적으로 지금 같은 인권 의식, 복지, 자비심 넘치는 정신꽈 상담과 체계적인 아동 교육 같은 게 없었다. 진짜 아픈 것과 꾀병 부리는 걸 일일이 분간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조직에서나 똥군기와 꼰대질, 까라면 까, "지금 이 정도 난관도 못 견디면 밖에 나가서 어떻게 버티려고?", "정신상태 개조엔 몽둥이가 약", 군대식 전체주의 사고방식이 횡행했었다. 학교에서는 뻑하면 연좌제 단체기합이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없는 시절만큼이나 CCTV와 유전자 감식이 없던 시절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때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황 증거 앞에서 뻑뻑 우기는 질 나쁜 범죄자한테 물과 전기를 동반한 물리 치료까지 해 줘야 했다.

정신병원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더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자살...? "무슨무슨 죄를 속죄합니다.. 책임을 집니다 ㅠㅠ"라든가,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써서 "난 절대 결백합니다! 억울합니다!" 이런 호소라도 동반하는 게 아닌 이상, 단순 처지 비관 자살은 지금보다 훨씬 더 금기시되었고 불명예 치욕적인 짓으로 간주됐었다.

꼭 군대· 경찰이 아니어도 의대나 사법연수원 같은 어디 좁은 바닥 전문직 엘리트 코스라면 뭐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물며 군대에다 엘리트 집단을 합쳐 놓은 사관학교에서는.. 전투 중 전사나 사고로 순직도 아니고, 선배들한테 맞아 죽은 생도도 있었다. 맥아더가 당장 19세기 말에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다니던 시절에 비슷한 일이 주변에 있었던 건 유명한 일화이다.

기독교/성경적 세계관이 딱히 존재하지 않던 일본에서는 그게 특유의 사무라이(?)/신토 문화와 결합해서 더 심해지고 이상하게 변질됐다. 그리고 그걸 우리나라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본은 그래도 전후에 GHQ로부터 참교육 받으면서 군국주의물을 쫙 빼냈지만, 한국은 상황이 반대.. 6· 25 사변을 계기로 오히려 상시 징병제가 시행되었고, 덤으로 군사 정권을 겪으면서 군대 문화가 더 깊게 파고들게 됐다. 국력의 차이가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와 "군대에 안 가면 안 되는 나라"의 차이를 만든 거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런 풍토가 나라 안보를 지키고 고효율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하고 기적을 만들어 낸 것도 있다. 그리고 옛날 세대도 악마나 짐승이나 괴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 만큼, 그때는 오히려 지금 찾아보기 힘든 정보화· 전산화 이전 시대 특유의 인심이나 유도리, 상도덕(!!)과 명예 규율이 있었다. 일찍부터 철 들어서 어느 환경에서나 적응 잘하고 잘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즉, 다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겠지만... 하지만 폭력이 지금보다 더 용인되고 남과 다름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 받고 골병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평소에는 할배나 박통에 대해서 많이 긍정적으로 말하지만, 저런 부작용에 대해서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인 평이 긍정적인 이유는 그때는 의식 수준이 다 그랬고 다른 대안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 지옥 같은 여건에서 그래도 전반적으로 선하고 좋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90년대부터 소위 좌파 민주화 바람이라는 게.. 그렇게 너무 경직됐던 옛날 군사 문화를 청산· 완화하고 약한 사람들 인권을 돌보는 것이었으면 나도 계속 지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20년 겪어 보니 저것들은 역기능이 순기능을 넘어선 지 오래다. 숨겨진 억울한 죽음을 조명하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역사를 왜곡하고 아예 아군과 적군에 대한 인식을 뒤바꾼다거나.. 교권을 완전히 박살 낸다거나, 범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인권만 금이야 옥이야 챙긴다거나..

결정적으로 남한의 군사 정권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억압 폭력 비민주적인 이북 동네는 전~혀 비판하지 않고 저놈들도 실컷 퍼주면 착해질 거라고 우기는데, 내가 저런 놈들을 도대체 어떻게 지지해 줄 수 있겠는가? 이건 도저히 좌우 균형 따위로 퉁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체벌이나 사형 제도 같은 검증되고 성경적인 근거까지 있는 필요악을 없애는 실험은 조별 과제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하는 것과 동급으로 무조건 실패하게 돼 있다. 인류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과학이고 진리이다.
"난 사형 반대 소신이지만 저놈은 인간도 아닌 짐승이니 상관없다" 이런 말장난 따위 하지 말고, 그냥 인간 사회는 사형 제도 없이는 못 돌아간다고 인정하는 게 옳은 판단이다.

그러니 오늘날의 관점도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니다. 과거의 어떤 문제를 해결한 대신,또 다른 방식으로 하극상과 계층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 기강을 교묘하게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게 있다. 옛날과 지금을 비교해서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 취합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야만· 폭력적인 체벌 없는 학교와 학교폭력 일진 없는 학교를 둘 다 이룰 수 없다면, 나는 후자가 더 우선순위가 높으며 그거라도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는 게 변함없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우리나라 기준으로 좀 살펴봤는데, 다음으로는 특별히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군사력 넘사벽, 정보력 넘사벽, 장병 복지 넘사벽이던 천조국이었다. 세계 최초로 병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보급해 줄 정도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허나, 1940년~50년대는 이런 초일류 선진국조차도 각종 인권이나 보건에 대한 관념이 지금과는 굉장히 달랐다는 것을 우리는 몇몇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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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담배..;; "의사들이 선택한 최고의 담배 카멜~!!" (1946년)
"엄마, 말보로 피우면서 기분 좀 푸세용~" (아빠도 아니고 엄마에게~!! ㅠㅠ) 이딴 광고가 버젓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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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50년대까지만 해도, 부모나 선생이 어린아이를 벌 주는 목적으로만 패는 게 아니라.. 그냥 남자가 같은 성인 여성(부인, 여친..!!)을 무릎에다 엎어 놓고 엉덩이를 줘 패기도 했다.;; 그게 평범한 시대상이었기 때문에 각종 영화에도 버젓이 촬영돼 들어갔다. 그래도 도구를 쓰지는 않고 그냥 맨손으로..
남존여비라는 게 동양 유교 문화권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당신은 여전히 부인을 때립니까?" 질문과 함께 "Why you should beat your wife"라는 글을 돈 주고 사서 읽어 보란다. 답이 없다.. -_-;;;
"여자와 북어는 삼일에 한 번씩 패야 맛이 좋아진다"의 미국판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실은 이런 성차별적인 발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어 왔다.
다만, 이런 건 가장이 집사람을 훈계하고 바로잡는다는 맥락이지, 술 쳐먹고 깽판 치면서 지 꼴리는 대로 구타하는 걸 말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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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제도가 필요한가, 학교에서 체벌이 필요한가, 낙태를 합법화하는 게 좋은가" 갖고 논쟁하듯이.. "필요하다면 여성(=부인)을 때려야 하는가?"에 대한 옹호 의견 중 하나가.. "Spanking might help get back some of ... respect they lost." 쉽게 말해 "가장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때릴 필요가 있다"이다. -_-;;;

다시 말하지만 저렇게 옹호 의견을 피력했던 사람은 여혐 싸이코 남성 우월주의자가 아니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가정을 책임지는 권위자로서 "부인의 행실이 지나치게 방자하다면 저런 극약 처방을 해서라도 저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옹호한 것이다.
물론 성경에는 자녀에 대한 체벌만 지지하지, 부인에 대한 스팽킹 같은 건 언급돼 있지 않다.. 오히려 여자는 남자보다 더 약한 그릇인데(골 3:19, 벧전 3:7), 모질게 대하지 말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3) 그리고 끝으로..
저 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인종 차별이 여전히 심한 편이었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총 잡고 전투하는 보직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기껏해야 취사병 등의 비전투 지원 병과에나 머물렀다. 물론 예외적으로 총 쏘고 전투기 조종한 흑인도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 시절 백악관 같은 관공서의 화장실은 남녀뿐만 아니라 흑백도 따로 구분돼 있을 정도였다.
군대에서 인종 차별은 2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차츰 없어지기 시작해서 70년대 월남전 타이밍 정도는 돼서야 완전히 근절됐다.

Posted by 사무엘

2021/03/05 08:35 2021/03/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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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힘(= 질량을 가진 물체의 속도를 달라지게 만드는 그 무언가)이라는 것은 그 근원 내지 본질이 (1) 중력, (2) 전자기력, (3) 약한 핵력, (4) 강한 핵력이라는 넷 중 하나로 귀착된다.

1. 중력

솔직히 중력 하나를 발견하고 개념과 공식을 정립한 것만으로도 인류는 정말 위대한, 엄청난 발상의 전환을 경험했다. "사람이 땅으로 떨어진다"가 "지구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아니 지구와 사람이 서로 끌어당기기는 하는데, 그 힘의 차이가 한쪽이 너무 넘사벽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로 바뀐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인류는 질량과 무게라는 걸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지구가 둥글다면 지구의 아래쪽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데?" 같은 걸 궁금해할 필요가 없게 됐다. 우주는 이차곡선, 일명 원뿔곡선 궤적 운동이 만연한 공간이라는 것이 수학적으로 깔끔하게 규명됐다. 천동설이 완전히 확인사살 당한 건 덤..

그리고 물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기술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떡밥 수준으로나 나돌고 학자마다 표기 방법도 제각각이던 '미적분학'이라는 것이 학문으로서 체계적으로 정립됐다. 여러 물체 중 진자의 운동은 정확하게 움직이는 괘종시계를 만드는 것과 관계가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뉴턴으로 대표되는 이 고전역학은 부력이나 양력을 다루는 유체역학으로 이어지며, 공학으로 넘어가서는 기계공학을 정립시켰다. 중등 수준의 시험 문제에서는 "단, 공기의 저항은 무시한다, 마찰은 무시한다" 같은 단서가 붙지만, 현실의 문제를 풀 때는 그런 것까지 다 고려해야 할 것이다.

열역학은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변환 관계를 열과 결부지어서 꽤 심오하게 다루는 분야라 하겠다. 이론 자체는 새로운 게 나올 게 거의 없이 다 완성됐기 때문에 이것도 동력 기관이나 에어컨처럼 기계공학과의 응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오죽했으면 100여 년 전에 이 분야의 대가이던 켈빈 경이 "이제 물리학은 나올 거 다 나왔고 측정값의 소수점을 바로잡는 일밖에 안 남았다"라고 내뱉었을 정도였다.;; 양자역학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 이 사람은 비행기도 존재 불가능하다고 예견했었지만, 다행히 비행기가 실제로 발명되는 건 간발의 차이로 보지 못하고 19세기 말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끝으로, 기계공학과의 접점이 없이 고전역학이 물 만난 고기 역할을 하는 분야로는 천문학을 빼놓을 수 없다. 애초에 뉴턴, 케플러, 갈릴레이도 다 천체의 운동 연구에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었다(진자가 아니라;;). 중력이란 건 앞으로 다룰 전자기력이나 원자력하고는 0의 개수가 수십 개씩 차이가 날 정도로 약하며, 천체 급으로 거대하고 거시적인 계로 나가야만 그 효과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물론, 천문학에서도

  • 우주 전체가 그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모든 천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다가 다시 한데 도로 붙어 버리지 않겠는가? 어떻게 유지 가능한가?
  • 우주의 모든 공간 아무 방향으로나 무한히 많은 별들이 놓여 있으면.. 지구도 그 별빛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어디서나 낮과 밤 구분이 없이 24시간 내내 밝아지지 않겠는가?

같은 논리 궤변이나 역설이 이미 몇백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어떤 건 그 시절의 과학 지식과 관측 기술만으로는 정확한 답을 구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뉴턴조차도 "좋은 질문인데,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신이 알아서 인위로 조절하시지 않을까?"라고 넘겼을 정도였다.

오늘날 우주 생성의 유력 시나리오로 여겨지는 대폭발설은 저런 역설들을 말끔하게 해결해 준다.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천체간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으니 한데 도로 붙을 일도 없고, 별빛도 지구에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는 게 있다. 우주가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게 관측을 통해 확인도 됐다.

그런데 그럼 우주가 팽창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태양계 전체조차도 우리 은하의 중심부를 초속 수백 km로 공전한다는데 그럼 그 공전을 가능하게 하는 중심의 거대한 중력은 정체가 무엇인지.. 난 천체물리학을 딱히 전공하지도 않았으니 그런 건 잘 모르겠다.

2. 전자기력

중력 얘기가 좀 길어졌다만.. 자연에는 중력과는 완전히 다르고 중력보다 더 강한 다른 힘의 원천도 있다.
중력이 아니고 원자력도 아니면서 자연에서 발견되는 다른 힘들은 근원이 몽땅 전자기력으로 귀착된다. 이 역시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전자기력은 서로 관계가 전혀 없어 보이는 힘까지도 한데 연결하고 있는 것이 많다.

제일 간단하게는 자석이 철을 끌어당기는 것.. 왜 이런 일이 가능한지 중력만으로는 알 길이 없다. 더구나 자석에는 당기는 것뿐만 아니라 미는 힘도 있다.
더 나아가 찌릿찌릿 정전기와 마찰 전기를 포함한 전기 현상, 전자석과 교류 발전기, 전동 모터.
그리고 생물의 근육이 힘을 내는 원천도 전자기력이다. 생체는 전기로 움직이는 각종 금속 기계와 전혀 다른 단백질 덩어리일 뿐인데.. 그래도 생각해 보니 생물 중에도 아예 전기 뱀장어나 전기 가오리 같은 동물도 있긴 하다.;;

소금쟁이가 물에 뜨고, 물이 컵의 용량보다 미묘하게 많이 담겨도 곧바로 넘치지 않게 하는 표면장력도 전자기력으로 가능한 일이다.
더 나아가 마찰력, 팽팽한 줄이나 스프링의 장력, 원자 레벨의 각종 화학 반응.. 이를테면 폭발(내연기관, 총기)도 배후에는 모두 전자기력이 있다! 원자조차 방사선을 내뿜으면서 더 작은 구성요소 입자 단위로 붕괴되고 엄청난 에너지를 내는 정도는 돼야, 그건 전자기력을 넘어서는 다른 힘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그러니 전자기력부터는 화학하고도 어느 정도 관련이 생긴다. 그리고 이놈의 전자기력만 정복하면 자연의 이치를 어지간한 건 다 깨달았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물론 그걸 미주알고주알 제일 저수준에서 통합적으로 기술하는 공식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복잡하고 어렵다.. -_-;; 맥스웰 방정식이라고 이름은 들어 보셨는가? 그리고 전기도 직류가 아닌 교류로 가면 얼마나 살인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워지는지~!

수학에서 미분과 적분은 서로 다른 목적과 방법론으로 출발했다가 합쳐져서 미적분학이 됐다. 하긴 지수와 로그도 서로 따로 출발했다가 한데 만났다고 하던데..
어쨌든 이건 물리학에서 전기와 자기가 합쳐져서 전자기학이 된 것과도 비슷해 보인다.

고전 물리학은 중력 위주의 고전역학에다가 이 전자기학 정도까지가 포함된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에 비해 패러데이, 맥스웰 같은 사람은 인지도가 지나치게 낮은 감이 있다.
고전역학의 곁가지로 열역학, 유체역학 등이 있는 것처럼, 전자기학의 곁가지 범주에 드는 게 전자기파의 특성을 좀 다른 관점에서 세밀하게 연구하는 광학이다. 각종 렌즈라든가 그 이름도 유명한 레이저가 이 바닥을 연구하면서 개발된 물건이다. 광학은 고전 물리학의 영역에서 연구되는 것도 있고, 양자역학 수준의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연구되는 것도 있다.

빛도 전자기파의 일종이긴 한데 이놈은 도대체 파동(전자기파)일까 입자(광자..??)일까 하는 고민이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거 뭐 예수님이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인 것처럼 빛도 이중성을 지닌 것이다.

빛의 속도가 무한이 아니라 유한하다는 것, 그리고 매질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는 사실 역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에 필적하는 엄청난 발견이며 인류에게 발상의 전환을 선사했지 싶다. 실제로 진공에서의 빛의 속력은 매우 중요한 물리 상수이며, 오죽했으면 오늘날 1m라는 길이의 단위가 광속에 근거하여 정의돼 있기도 하다.

전자기파는 파동인 주제에 음파와 달리 매질이 없어도 퍼져나갈 수 있으며, 덕분에 열을 '복사'라는 방법으로 전할 수도 있다.
전기로 빛을 내기도 하고 반대로 빛으로부터 전기를 얻을 수도 있다. 전기로 동력을 얻을 수도 있고, 전파 형태로 바꿔서 정보를 주고 받을 수도 있다. 이걸로도 얼마나 할 게 많으면, 공학과 접목한 분야가 전기공학과 전자공학으로 나뉜다.

아울러,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물리학에는 광학 말고 음파나 물결, 지진파처럼 전자기파가 아닌 다른 일반적인 파동, 진동을 연구하는 분야도 있다. 도플러 효과니 뭐니 하면서.. 얘들은 관찰되는 현상의 규모가 전자기만치 미시적이지는 않으니 고전 역학과도 접점이 있는 분야일 듯하다. 지금까지 수학 시간에만 접하던 삼각함수 그래프를 현실에서 보게 된다.

3. 원자력

고전 물리학을 통해 인간은 우주 만물이 돌아가는 현상을 차원이 다르게 정확하고 세밀· 엄밀하게 기술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부터 엄청난 양의 기술을 개발하고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런데 20세기부터는 유럽의 천재 물리학자들에 의해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이라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분야가 새로 개척되었다.

돌턴의 생각과 달리, 원자는 더 쪼개지지 않는 물질의 최종 근원· 본질이 아니었다. 이것도 양성자니 중성자니 전자니 하면서 더 쪼개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더 미세한 입자들은 일반적으로는 중력이나 전자기력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굳게 붙들려 있어서 마치 한데 뭉친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특이한 원소는 이런 상태를 비교적(?) 쉽게 바꿀 수 있으며 원자력이라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얻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원소에서는 방사선이라는 아주 위험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이 분야도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 외에 다른 양자 역학 선구자들은 해당 분야 전공자가 아니면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막스 플랑크, 조세프 톰슨, 어니스트 러더퍼드, 닐스 보어 이런 사람들 말이다.
그나마 뢴트겐은 X선을 발견했고 세계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니 그럭저럭 인지도가 있는 듯하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살아 있는 사람의 뼈를 해부하지 않고 라이브로 촬영할 수 있게 됐다니,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이건 의료에도 영상 의학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 냈다.

비슷한 시기에 러더퍼드는 우라늄의 방사선을 연구하면서 방사선 중에 알파 선과 베타 선을 최초로 구분해 냈다. 그리고 원자핵 내부의 양성자들이 전자기력의 반발을 이겨내고 안정적으로 핵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고 추론함으로써 강한 핵력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에 비해 약한 핵력은.. 원자력 중에서 전자기력보다는 약한 힘인데, 이게 있어서 탄소 동위원소 붕괴라는 게 발생하며 연대기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까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다음으로 보어는.. 우리가 지금 당연히 알고 있는 원자 구조 모형--원자핵 주변에 전자들이 마치 태양계에서 행성들이 태양을 도는 것처럼 도는 형태--을 최초로 제안했다. 이것은 선배 러더퍼드가 제안했던 모형을 더 개선한 형태였다.
여담이지만 보어는 full name의 앞부분이 '닐스 헨리크'라는 단어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5차 방정식을 연구했던 노르웨이의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의 앞부분과 완전히 일치한다.;; 신기한 노릇이다. 보어는 덴마크 사람이었다.

전자기학만 해도 돌아 버리겠는데 하물며 양자 역학부터는 관찰하고 다루고 계산하는 것들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으니 어지간한 기계· 전자 공대생들도 접점이 없어지는 듯하다. 그냥 학부 1학년의 기초필수 과목 수준에서 잠깐 다루고 넘어가 버린다.
사실, 원자력이라는 건 물질 자체를 원자 차원에서 존재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힘이 적용되는 범위는 상상을 초월하게 짧지만, 반대로 그 어떤 힘보다도 압도적으로 강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물질이 다른 물질로 호락호락 바뀌지 않으며, 물리적 변화와 화학적 변화에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 과거의 연금술은 몽땅 실패했다. 어떤 금속이 물리적(?)으로 엄청난 열이나 충격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원자 차원에서 물질이 붕괴해서 다른 금속으로 바뀌었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전기 분해만 해도 꽤 힘들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 과정인데, 하물며 극도로 불안정한 방사성 원소를 합성하는 입자 가속기는 가동에 드는 동력 비용이 억소리 난다. 오죽했으면 원소의 무게당 생성 비용이 금보다 훨씬 더 비싸질 정도이다.
마치 생물에도 종과 종 사이의 경계가 존재하며 종간 잡종은 자연적으로 더 번식을 할 수 없듯이, 원소 간에도 뭔가 이런 경계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생물학도 20세기에 분자 생물학이 태동하고 DNA라는 물건의 내부 구조가 밝혀지면서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급격한 발전을 하게 됐다. 그 전 19세기까지만 해도 생물학은 파브르 곤충기, 맨델의 초파리 유전 이러면서 그냥 이미 있는 생물을 잔뜩 관찰하거나 해부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러더퍼드가 "물리 이외의 다른 과학은 그냥 우표 수집과 별반 다르지 않음"이라고 괜히 말했던 게 아니다.

양자 역학이 등장하면서 물리학은 화학하고 굉장히 가까워졌다. 심지어 저 러더퍼드는 톰슨, 보어, 아인슈타인 등과는 달리,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하긴, 저 때는 원소 주기율표라는 게 완성된 지도 얼마 안 됐던 시절이었다.
이런 지식들이 차근차근 쌓이고 공학과도 손을 잡으면서 결국은 원자 폭탄을 만들고 원자력 발전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인류는 태양에서 유래되지 않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상대성 이론은 그 자체가 양성자 중성자가 어떻고 전자가 어떻고 하는 양자 역학과 관계가 있지는 않고, 뭔가 다른 관점에서 기존 고전 물리학(역학+전자기학)의 한계를 보완했다. 미세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광속을 논하는 천체 운동에서 기존 물리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오차 문제도 여럿 해결했기 때문이다.

e=mc^2이라든가 "물체의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시계가 더 느리게 가게 된다"는 문과 출신 일반인이라도 알 법한 너무 유명한 공식인데.. 저걸 어떻게 관찰과 증명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뉴턴과 갈릴레이 시절에는 정확한 진자 운동을 기술하는 게 목표였는데, 그로부터 300여 년 뒤엔 국제선 열차와 비행기가 등장하면서 세계 각국의 시계를 정확하게 똑같이 동기화시키는 게 매우 중요한 임무가 됐다. 상대성 이론은 이런 데서 오차를 줄이는 데에도 기여했다.

4. 맺는 말

이상이다.
지금까지 정말 맛만 보는 수준으로 간략하게 늘어놓은 바와 같이, 고전 물리학이 고전 역학과 전자기학으로 구성된다면, 현대 물리학은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이 뼈대를 구성한다고 보면 되겠다. 고전에서 현대로 갈수록 관찰하는 스케일은 말도 안 되게 작아진다. 천문학적인 거대한 우주만 있는 게 아니라 각 물질의 입자 내부에도 작은 우주가 펼쳐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쿼크니 글루온이니 하면서 도대체 얼마나 더 쪼개야 이제는 진짜로 원천적인 물질의 본질이 도출될지, 아직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가상의 힘의 근원은 실존하는 건지, 4대 상호 작용을 더 근본적인 힘으로 통합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뉴턴 역학에서 시작했던 물리가 어째 이 정도로 추상적인 수준까지 갔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교통수단 내지 군대의 작전 장소를 육해공으로 나누는 것만큼이나, 자연 과학을 물리-화학-생물로 나누는 것은 상당히 그럴싸한 구분법이다. 화생방은 이 개념이 그대로 담긴 명칭이며, 사람이 다치는 방법도 물리적인 외상, 화학적 독극물, 아니면 생물학적 질병이라는 세 양상으로 정확히 나뉘는 편이기 때문이다. (지구 과학/천문은 잠시 논외로 하고..)

요즘은 자연 과학이 아닌 학문에다가도 개나 소나 과학이라는 말을 붙이는 편이다(예: 사회 과학). 하지만 물리는 다른 어떤 과학보다도 수학이 도구로 동원되는 비중이 높고, 뭔가 아주 fundamental하다는 느낌이 난다.
그래서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리 전공자들은 자기 학문에 대한 부심이 있는 편이고 화학 같은 다른 과학이나 심지어 공학 쪽은 순수하지 못하다고(!!) 까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뭐, 아까 저 러더퍼드의 어록도.. 화학이나 생물은 우표 수집하듯이 그저 실험 결과 데이터 수집하면서 끙끙대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반면, 물리는 뭔가 깔끔한 이론과 법칙이 나와 있어서 더 근본적으로 우월하다는 요지로 한 말이었다.
그렇다고 화학이 완전히 물리의 하위 호환 시다바리로 전락한 것도 아니고 그쪽은 또 그쪽만의 관심사와 방법론, 연구 분야가 있다. 화학하고 화학 공학은 또 보기보다 굉장히 다르다. 아울러, 화학-화학 공학, 생물-생명 공학은 있지만 물리에 대응하는 공학은 기계, 전자, 항공우주, 원자력 등으로 굉장히 세분화돼 있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이렇게 인류의 과학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으며, 우리는 자연 만물의 내부 구조를 과거에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정도로 미시적인 수준까지 관찰하고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과학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은 마치 석유가 아직 고갈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파도 파도 계속 나오고 있으며, 본질적인 한계는 여전히 넘지 못할 것 같다는 게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마치 생명의 기원, 언어의 기원 자체를 설명하지는 못하듯이 "그럼 질량이라는 건 도대체 무슨 존재이길래 그렇게 뜬금없이 끌어당기는 힘을 내는 걸까?" 같은 의문을 떠올릴 수 있는데, 그런 것까지 따지자면 무슨 종교 논쟁처럼 답이 안 나오게 된다.

수혈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피를 똑같이 인공적으로 만들지는 못하고 있고, 식물을 대신해서 광합성을 하는 기계를 직접 만들지는 못할 것 같다. 아무리 양자 역학이 발달해도 구리로 금을 값싸게 인위로 합성하지는 못할 것이고, 인간이 저렴한 가격으로 비행기 타듯이 지구를 떠나 아예 다른 행성으로 건너가는 세상이 올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몸, 혼, 영의 위상이 물리학으로 치면 각각 중력, 전자기력, 핵력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그냥 내 감과 뇌피셜이다. ^^

Posted by 사무엘

2021/03/02 08:36 2021/03/0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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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역사 사건 분석

1.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적중한 "20년 텀" 예측

(1)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의 페르디낭 포슈 원수는 1919년 6월에 열린 베르사유 조약(패전국 독일 vs 연합국)에 대해서, "이건 영구적인 평화를 이뤘다고 볼 수 없고 기껏해야 20년 정도의 휴전으로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딱 20년 뒤인 1939년 9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2) 1956년 7월, 미국의 전기 기술 전문가 시슬러 박사는 우리나라의 할배 대통령을 만나서 너님 나라는 원자력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자력은 화석연료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꿈의 에너지입니다. 땅이 아니라 머리를 캐서 만드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자원 빈국인 한국 실정에 아주 적합합니다."

할배는 이 권고를 적극 받아들여서 그 가난한 나라 살림에 국비를 들여서 원자력 전문가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국비로 유학 보내 주고 교육 파견 보내고..
시슬러는 할배에게 "지금 원자력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그 꿈이 20년쯤 뒤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거의 정확히 20년 뒤, 1978년 4월, 원조가카의 집권 후반기가 돼서야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완공됐다.

2. 나라들 비교

세계 대전 진영

  • 일본은 1차 대전 때는 말석이나마 연합국 승전국 진영에 있었지만, 2차 대전 때는 미국을 대적한 추축국 전범국으로 전락했다.
  • 이와 비슷하게 중국은 2차 대전 때는 일본에게 침략을 당한 뒤 어째 연합국 승전국 쪽 줄을 섰지만, 다음 세계대전(만약 벌어진다면) 때는 얘야말로 추축국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

국력과 위상의 차이

  • 미국은 자국 내에서 전쟁이 벌어진 적이 전혀에 가깝게 없고(남북전쟁이나 미영 전쟁은 너무 옛날이고, 진주만이나 9 11 정도나 예외?? 그리고 그걸로 끝), 현재는 세계 곳곳에 자국 군대를 파견해서 다른 나라들을 도와주는 경찰 국가이다. (늘 모범 경찰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 일본은 옛날에 너무 사고를 친 벌로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가 됐다.
  • 그 반면, 한국은.. X도 힘이 없고 자기들끼리도 제대로 못 뭉친 대가로.. 세계 수많은 나라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살아남았고, 현재는 군대를 안 가면 안 되는 나라가 됐다.

3. 일제강점기 전후에 일본의 변화

일본은 일제강점기의 거의 직전부터 육군 군복이 바뀌었고..
패전(자기네)과 해방(한국) 거의 직후부터 맞춤법이 바뀌었다.
그래서 딱 러일 전쟁까지만 해도 일본군은 군복이 검정이다가 몇 년 뒤 호남 지방 의병을 토벌하던 무렵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그 황토 내지 황록색 군복 차림을 하기 시작했다. (1905년 38식 군복 ~ 1912년 45식 군복)

그 반면, 지금 쓰이고 있는 일본어의 표기 체계는 일제강점기가 끝나면서 정립됐다.
1946년부터 히라가나가 공문서에서도 쓰이기 시작했고 표기하는 방식 자체도 살짝 바뀌었다. 상용 한자를 재정립했으며, 1949년에는 신자체라 해서 우리가 ‘약자’라고 부르는 그 간소화된 한자들도 완전히 공식화됐다. 나라 국을 或이 아니라 玉을 곁들여서 쓰는 것으로 중국 간체자보다 먼저 정한 것이다. (중공은 6 25 사변이 끝나던 때까지도 아직 或이었음)

요컨대 일본은 한반도 일제강점기의 앞에 군복 개편, 뒤에 맞춤법 개편이 있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와 비슷하게.. 한반도에서 1900~1910년 사이에 일제 시대의 시작을 열었던 철도가 경부선· 경의선(중국 연결)이라면,
1940년대에 일제 시대의 끝을 함께하고 끝내 완성되지 못했던 철도는 동해선(러시아 연결)이다.

금강산선(관광용..)이나 경북선(적자) 같은 철도는 이미 있던 선로도 전쟁 물자 공출 명목으로 뜯어갔었지만 이런 장거리 간선은 미래를 내다보고 일제가 전쟁 중에도 굳이 애써 건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4. 일제 시대에 아직 우리나라에 없었던 것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일제 시대에 아직 한반도에 없었고 해방 후나 일제 말기가 돼서야 도입된 것들을 더 늘어놓자면 다음과 같다.

  • 디젤 기관차: 다만, 전기 기관차는 금강산선에 있었다. 195~60년대엔 우리나라에 반대로 디젤 기관차가 있고 전기 기관차는 없었다. (기존 기관차는 금강산선의 폐선과 함께 폐차됨)
  • 명조체: 일제 시대에는 여전히 개역성경체 같은 붓글씨 서체만이 쓰였다. 오늘날의 명조 같은 서체는 해방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 손목시계: 아직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한반도에 내려왔던 소련군 양아치들이 즐겨 약탈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 텔레비전: 천황 옥음방송은 라디오로 송출됐었다~! 다만, 일본 말고 서양의 독일은 아무래도 텔레비전 기술의 선구자이다 보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벌써 영화 필름이 아니라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를 했다.
  • 길거리에 중앙선과 신호등: 경성 시내에조차 저런 게 아직 없었다. 일제 시대엔 아직 "자동차는 사람을 피해서 도로의 중앙으로 다닐 것"이라는 단선 철도 같은 규범만이 존재했다. 자동차가 워낙 적고 넓은 도로가 없었으니까..

5. 공작원, 핵 개발

할배는 말기 때 북한이 아니라 일본으로 테러 공작을 위한 공작원을 보냈었다. 다른 반일 감정 때문이 아니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던 재일 교포 북송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김 구 암살범인 안두희조차 그 공작원 중 하나였다.
할배는 자국이 아니라 남의 나라 영토에 있는 자국민 동포가 거짓말에 낚여서 북한으로 가는 것까지도 저지할 정도로 정말 반공 박애주의자였다.

한편, 원조가카는 말기 때 자주국방을 위해 핵무기를 몰래 개발하고 있었다. 1970년대에 저 사람 최대의 고민거리는 석유 파동과 주한 미군 전면 철수였지 싶다. 이론물리학자이던 이 휘소 박사야 이것과 전혀 무관한 인물이지만, 할배 때부터 육성했던 한국의 원자력 전문가가 이 휘소만 있는 건 아니었고, 핵 개발을 주도한 것 자체는 사실이다.

비공식 회고에 따르면 원조가카는 96년쯤의 올림픽 유치와 행정수도 이전, 핵무기까지 짠~ 마무리 지은 뒤에 퇴임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행정수도 이전은 요즘 같은 국토 균형 발전 따위가 아니라.. 단순히 지금 서울이 북한과 너무 가까워서 불안한 것 때문에 구상하던 과업이었다.

원조가카가 암살 안 당하고 유신 헌법으로 9대 임기를 만료하면 84년, 10대 임기까지 만료하면 90년까지 가긴 했을 텐데..
공작원과 핵무기 모두 수장이 하야하고 암살당하면서 백지 물거품이 돼 버렸다. 뭐 둘 다 궁극적으로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을 것이고 국제적으로 여러 후폭풍을 감내하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할배와 원조가카 두 분 다 북한과 관련해서 참 엄청난 일을 하고 있긴 했던 게 사실이다.

그 뒤로 남한이 허울 좋은 민주화니 화해니 평화니 헛소리에 놀아나면서 좋은 기회들을 다 병신같이 날린 바람에, 지금은 반대로 적국이 핵무기를 만들어 버리게 된 게 안타깝다.

6. 국내 최초의 로켓 개발

6· 25 사변의 휴전 이후 딱 정확히 6년 뒤인 1959년 7월 27일.
우리나라에서 국방 과학 연구소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국방부 과학 연구소’의 주관으로 나름 40km 고도까지 날아간 다단계(3단) 분리 로켓을 개발해서 쏘아올린 적이 있었다.

아니 그 옛날에..??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기 힘든 소식이며, 관련 전공자들도 이 사실을 뒤늦게 접하고는 “엥??” 이런다. 참관한 대통령은 비교적 친숙한(?) 박통이 아니라 할배였다. 시연 장소는 인천 바닷가. (☞ 대한뉴스 제225호 보도, ☞ 관련 자료)

할배 때 나름 그 없는 살림에 원자력 연구소도 만들었고 서울대와 한양대 공대에 원자력공학과를 신설했다는 얘기는 들었다만, 자기 입김이 직접 개입해서 설립된 인하대에다가는 아예 ‘병기공학과’를 만들었다고 한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소식 때문에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뭔가 느낀 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연구 개발을 했으면 노하우를 꼼꼼히 기록하고 전수하는 것도 중요하다. 안 그러면 예전에 애써 개발했던 걸 또 중복 개발해야 된다.
저 때 우리나라의 로켓 연구는 이듬해 할배 정권의 붕괴으로 인한 나라 혼란,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발사체 개발을 싫어하는 미국의 견제로 인해 계속되지 못했다.

할배의 로켓, 원조가카의 핵이 연계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할배가 더 오래 살고 4· 19 따위 안 벌어지고 4대 대통령까지 갔으면 역사가 또 어찌 됐을지 모른다. 마치 “박통이 암살 당하지 않았으면”처럼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한국-일본 재수교가 박통 때의 1965년보다는 확실히 더 늦게 성사됐지 싶다.

7. 최초의 국립공원과 우남 역??

서울 지하철 8호선은 복정과 산성 사이에 제법 긴 지상 구간을 지나는데, 여기 일대가 개발되고 역이 하나 추가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 역은 현재 계획이나 건설 중인 전국의 여러 추가역들 중에 유일하게 이름이 정해진 게 없어서 밋밋하게 ‘8호선 추가역’이라고만 불리고 있다.

이 역의 가칭은 오랫동안 ‘우남’이었다. 초대 대통령인 이 승만 할배가 어째 남한산성에 꽂혔는지 1954년경에 유적지를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여기 근처를 지나는 도로를 닦고, 도로의 이름을 자신의 호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우남호’라는 여객기도 있었던 시절인 걸 감안하도록 하자)

우리나라에 국립공원이라는 게 생긴 게 1960년대 박통 시절의 일이고 지리산 국립공원이 제1호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전에 할배도 국립공원이라는 걸 만들 생각을 했으며, 남한산성을 1호로 지정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할배가 물러난 뒤에 싹 다 리셋돼 버렸고 관련 기록도 별로 전해지지 않는다. 게다가 우남로라는 이름도 지금은 그 도로가 인근의 헌릉로에 흡수되어서 없어졌다.

안 그래도 2010년대 초에 성남시장을 포함해 관련 정치인들은 정치적으로 할배를 매우 싫어하고 할배의 흔적과 존재를 지우고 싶어하는 좌편향이었다. 그래서 개명이 광속으로 추진되어 우남로, 우남 역 모두 금기어가 되었으며, 8호선 추가역은 가칭이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역으로 전락한 것이다. 행정구역의 이름을 감안하여 중립적인 이름을 굳이 정한다면 위례 정도가 돼야 할 것 같다.

현재는 남한산성이 다들 아시다시피 국립이 아니라 도립공원이다(since 1971). 소재지의 행성구역은 광주시 중부면이다가 2015년에 면의 이름 자체가 '남한산성면'으로 바뀌었다.

8. 중국과 북괴

  • 옛날에 우리나라 임시정부의 항일 독립운동을 도와줬던 진영은 장 제스이지 마오 쩌둥이 전혀 절대 아니다! 중공은 대한민국의 북진 멸공 통일을 저지한 원흉이다.
  • 북괴는 일본이 패전 후에 GHQ로부터 참교육 받고 체제가 바뀐 것만치도 달라진 것이 없다. 북괴는 일본이 그나마 립서비스로마나 사과하고 보상한 것만치도 과거사를 사죄한 적 전무하다.

이런 와중에 아직도 친일 청산을 못 했네 하는 헛소리는 많은 말이 필요 없고 그냥 망상 정신병일 뿐이다. 온갖 악하고 삐딱하고 잘못된 사상들의 근원이 바로 존재하지도 않는 일제 잔재나 친일파 따위 탓하는 반일정신병이다.
2010년대에도 아직도 전향을 못 했을 정도이면.. 진짜로 그냥 죽어야 낫는 말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저그의 패러사이트는 메딕의 리스토어로 고칠 수라도 있지, 현실의 반일정신병은 그런 것도 없다.. 팩트로 치유되지 않으면 다른 그 어떤 걸로도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2/24 08:34 2021/02/2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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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보기 어려워진 것들

  • 길가의 평행주차용 동전 투입 주차기: 각 주차 구획마다 돈 투입구와 시각 카운터가 달려 있는 그 물건 말이다. 만화영화 주토피아에 나오고 미국· 일본에는 지금도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춘 것 같다. 요즘 치솟는 인건비 때문에 단순 노동은 다들 무인화 기계화되는 추세이지만, 노상 주차장은 내가 보기에 사람이 운영하는 경우가 더 많다.
  • 기계식 주차 타워: 198, 90년대에는 첨단 기술이라고 소개되는 편이었지만 큰 차가 들어가기 어렵고 운영비가 많이 들고 종종 사고도 나서 그런지 요즘은 잘 안 만드는 것 같다. 그냥 지하 주차장을 큼직하게 만들고 만다.
  • 천장에서 아래로 매달려서 목운동 하듯이 돌아가던 선풍기: 교실과 각종 대중교통에서 볼 수 있었던 물건이지만 요즘은.. 천장형 에어컨에 밀려서 거의 볼 수 없어졌다.

여담으로, 소용돌이형 모기향은 당연히 초록색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팔리는 것들은 다 갈색이다. 모기향에 전통적으로 쓰이던 초록색 색소가 발암 유해물질이라고 판명되어 퇴출됐기 때문이랜다.
우주왕복선도 처음 발사됐을 때는 기체가 몽땅 간지나는 흰색이었는데, 나중에는 액체 연료 탱크 부위는 도색하지 않고 그냥 갈색 단열재 색깔이 노출돼 보이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2. 옛날 전화기

피처폰과 스마트폰의 기술적인 차이는 정확하게 무엇일까? 피처폰도 컬러 화면이고 카메라가 달려 있고 터치스크린 기반일 수 있다. 하지만 얘는..

  • 소프트웨어 확장성(O): 스마트폰과 달리, 안드로이드나 iOS 같은 범용 모바일 운영체제 기반이 아니며, 기본 내장된 앱만 쓸 수 있다. 임의의 3-rd party 앱들을 자유롭게 설치하거나 지울 수 있지 않다.
  • 사용하는 통신망의 기술 수준(X): 2G냐 3~4G냐 하는 것은 구형폰이냐 최신폰이냐의 차이이지, 피처폰과 스마트폰의 차이가 아니다.
  • 비디오 성능과 글꼴(X): 화면에 비트맵 글꼴이 찍히던 전화기를 쓰던 게 10여 년 남짓 전 같은데.. 요즘 전화기는 고해상도 화면에 트루타입 글꼴과 다국어 레이아웃 엔진을 갖추고 있다. 확장 평면 한자고 아랍어고 이모지고 모두 표현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 구형폰과 최신폰의 차이이지, 피처폰과 스마트폰의 차이는 아니다.

2000년대 중후반, 휴대전화라는 게 처음 등장하고 화면이 컬러로 바뀌고 카메라가 내장되는 등.. 전화기가 심상찮게 변모하고 있던 시절에는 충전 단자도 통합 규격이 없어서 서로 제멋대로 완전히 따로 놀았다. 1980년대에 PC에서 한글 코드들이 난립하던 것, 2000년대까지 동영상 코덱들이 난립하던 것과 다를 바 없던 불편한 시절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어지지 않는 장면인데.. 어느 샌가 싹 교통정리가 됐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21세기 이래로 휴대전화가 발전해 온 모습을 보면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3. 골동품의 가치 함수

자동차, 컴퓨터, 가전기기 같은 물건들은 구입한 직후부터 중고품이 되어 되팔 때의 가격이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한다.
완전히 똥차 똥컴 폐급이 되는 시점에서는 가치가 0이 되고 심지어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즉, 이 따위 쓰레기는 가져가 주는 사람에게 역으로 돈을 주는 구도가 된다.

그런데 그 물건을 안 버리고 고이 보관한 채로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

  • 아직도 포니나 브리사를 생생하게 굴리는 사람이 있다면?
  • 아직도 동작 가능한 286 XT 컴터를 보유한 사람이 있다면?
  • 브라운관 모니터/텔레비전이라든가 볼 마우스, 옛날 애니콜 시절의 전화기를 보관 중인 사람이 있다면?
  • 계몽사 학습 그림 과학 같은 80년대 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 아직도 1980년대 원화 구권 지폐를 보관 중인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옛날 디스켓, 카세트 테이프 같은 건 어떨까?

그럼 그 물건은 보존과 관리 상태가 좋다는 전제 하에 희소성 덕분에 가치가 다시 서서히 오르게 된다. 50년 이상~10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면 후손들이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수집해 놓은 옛날 물건을 밑천으로 장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올드카 대여업 같은 것 말이다.

이렇게 서서히 하락해서 0이나 음수가 됐다가 한참 뒤에 값어치가 서서히 오르는 현상은 나름 보편적인 구석이 있어 보인다. 혹시 시간 t에 대한 수학 함수로 기술할 수는 없을까?
물론 변수가 단순한 형태는 아니다. 보존 상태라든가, 현역일 때 가격이 떨어지는 속도, 그 제품의 평균적인 교환 주기와 수명 등을 다양하게 감안해야 한다. 이건 심리학과 산업공학 같은 걸 한데 연계한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4. 단색 화면

요즘이야 천연색 초고화질 카메라가 달린 CCTV와 스마트폰이 넘쳐나고 있지만.. 컴퓨터 모니터와 텔레비전이 단색(모노크롬!)이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집의 현관 인터폰은 아직도 흑백인 경우가 많이 눈에 띄지만 이것도 세월이 흐르면 바뀔 것이다.

모니터는 흑백 TV와는 달리 검은 배경에 흰색만 있는 게 아니라 초록과 호박(주황) 이렇게 3색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학교나 학원 등의 주변에서 초록: 하양: 주황을 본 빈도가 거의 3:2:1의 비율이었던 것 같다. 마치 자동차를 구매하면서 도색을 고르듯이 단색 모니터는 색깔을 고를 수 있었던 것이다.;;

텔레비전이야 기술적으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컬러화가 가능했지만, 우리나라는 원조가카가 여러 모종의 이유 때문에 의도적으로 도입을 저지했다. 그때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력과 구매력으로는 라디오도 아니고 TV는 여전히 굉장한 사치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TV의 컬러화는 1980년대의 전땅크 5공 시절에 가서야 실현됐다.

딱 그렇게 텔레비전이 가정마다 보급됐을 때 마침 6 25 휴전 30주년도 됐고.. KBS에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기획해서 방영한 것은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타이밍을 정말 기막히게 잘 잡은 초대박 이벤트였다.

5. 미래 전망

(1) IPv6: IPv4 주소가 완전히 고갈되고 할당이 종료된지 어언 10년이 돼 가지만 IPv4는 오늘날 여전히 건재하다. IPv6의 보급은 당시 예상과 달리 2020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매우 더딘 편이다. 공유기로 유동IP를 쪼개는 편법으로 공간 문제가 그럭저럭 극복되고, 일반인들이 당장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인 듯하다.

(2) ARM64: 과연 ARM 기반 CPU는 스마트폰을 넘어 x86 천지인 PC 시장까지 뚫을 수 있을까? 이건 요즘 컴터쟁이들의 초유의 관심사이다.

  • 먼 옛날, 인텔이 결국 Itanium을 포기하고 x86-64로 갈아탐.
  • 마소가 결국 Windows Phone을 포기하고 데스크톱용 Windows 10을 그대로 ARM64로 포팅함.
  • 마소가 결국 자체 MSEdge 엔진을 포기하고, Edge 브라우저를 크로뮴 기반으로 다시 만듦.

마소뿐만 아니라 애플도 말이다. 과거에 PowerPC에서 인텔로 갈아탔던 것처럼, 거기서도 x86-64를 과감히 버리고 ARM64로 물갈이를 해 버릴까?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공룡 IT 기업의 경영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궁금해진다.

(3) 전기차: 배터리 문제를 도저히 극복하지 못해서 만년 소형차에나 머물 것 같고 테슬라는 저래 갖고 버티겠나 싶었는데.. 요즘은 의외로 물건 잘 만들고 잘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수소 연료전지를 전통적으로 밀었던 현대차가 미래가 더 불투명해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순수 전기차가 넘보지 못하는 대형 상용차(버스, 트럭)을 수출까지 하면서 활로를 찾고 있다. 쟤들은 수소 공급 인프라를 같이 잘 구축해 나가야겠다.

(4) 8200호대 전기 기관차: 21세기 초반에는 철도계에서 아주 각광받는 스타 효자였지만 앞으로 얼마 못 가 계륵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 같다.
얘들이 담당하던 무궁화호 객차들이 슬슬 퇴역하고, 신형 여객열차들은 전부 기관차 기반이 아닌 전동차들이고, 화물은 8500이나 7600 같은 전담 기관차가 따로 있으니 얘네들을 써먹을 데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라마다 철도 전기 규격이 제각각인 편인지라, 얘들은 디젤 기관차와 달리 중고품 수출하기도 난감하다!

(5) 미래형 초고속 교통수단: 새로운 초음속기 내지 재래식 레일+바퀴식을 초월하는 초고속 자기부상, 진공 튜브 열차가 과연 2020년대에 선보일 수 있을까? 일본의 츄오 신칸센만 해도 2020년대가 다 끝나야 나올까말까인데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참고로 16년 전, KTX가 처음 개통했을 때는 KTX가 자기부상 방식이라고 잘못 알던 사람도 많았다. 그때는 그만큼 인지도가 부족했다. 내가 강조하지만 그때는 아직 유튜브가 없어서 “이제 우리가 뜬다” 같은 개통 홍보 동영상조차 지금 남아 있지 않다.. 엄청난 옛날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2/21 19:35 2021/02/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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