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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에 대해서

먼 옛날, 성경의 이스라엘 시대에는 예루살렘 땅에 성전이라는 특별한 건물이 있었다.
이건 출애굽 모세 시절에 있었던 '성막'의 후신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각종 동물 제물(헌물)을 바치는 곳이었다. 그리고 언약궤라든가 만나 샘플, 아론의 싹 난 지팡이처럼 출애굽 시절에 득템했던 아주 홀리한 아이템들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성전은 그야말로 국뽕의 원천이요, 오늘날 가톨릭의 교황청이나 무슬림의 메카를 능가하는 종교 구심점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전은 솔로몬 왕 시절에 지어진 버전 1이 최초였다. 코드네임은 그대로 '솔로몬'.
현존하지 않는 건물이지만 성경은 이 첫 성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많은 분량을 할애해 기록해 놓았다. 건설 과정이라든가 내부 구조와 치수 말이다.

다만, 그 기록이 무슨 조선의 '화성 성역 의궤' 수준으로 자세하고 구체적인 건 아니다.
성막은 출애굽기 기록을 통해서 정확하게 도면을 만들 수 있고 내부 구조를 재현할 수 있는 반면, 성전은 그렇지 않다. 성경의 스펙만 봐서는 유일한 형상이 딱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람마다 도면이 제각각으로 나온다. 상상과 창작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성전 1.0은 이스라엘, 더 정확히는 남유대 왕국이 바빌론의 침략으로 완전히 멸망할 때 싹 다 파괴되어 없어졌다. 홀리 아이템들도 남아나질 못하고 이때 모두 파괴 또는 소실됐다.
감히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셨다는 집이 왜, 어쩌다 저런 처참한 결말을 맞이했을까? 그 이유는 역대기하 끝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뒤 성전 버전 2는 바빌론 포로 귀환 후에 '스룹바벨'이라는 코드네임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다만, 나라가 최전성기 리즈 시절일 때 만들어졌던 1.0 솔로몬에 비해, 2.0은 아무래도 초라할 수밖에 없었다.
구약 성경 '학개'서는 이 성전 2.0이 건축이 중단된 것을 속행하라고 독려하는 내용이다.

이 2.0은 중간에 이방 민족에 의해 일부 훼손과 복구를 겪었다. 요한복음 10:22에 나오는 하누카, 수장절이 바로 이 성전의 수복? 복원을 기념하는 민족 절기이다.

그리고 이 성전은 로마 제국 헤롯에 의해 아주 거대하게 증축됐다. 이때는 외세가 피지배 민족인 유대인들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성전을 이례적으로 증축을 해 준 것이다.
그래도 이건 버전 3까지는 아니고 2.5로 페이스리프트에 가까웠다. 바로 이 성전이 예수님 시절에 존재했던 성전이다.

허나, 성전 2.x는 예수님의 승천 후, 반세기가 채 지나기 전에 티투스인지 타이투스인지 그 로마 장군의 명령으로 싹~~ 파괴되어 없어져 버렸다. 그때 이래로 지금까지, 서기 2025년 현재에도 예루살렘엔 유대교 성전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은 성전이 성전 구실을 전혀 못 하고, 없는 게 차라리 더 나은 지경이 됐을 때는 저런 처참한 파괴를 얼마든지 허용하셨기 때문이다.

성전 1.0 시절에는 유대인들이 자기 민족의 신인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등 우상 숭배 죄를 저질렀다. 성전은 파괴됐고,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기원전 4xx~5xx년 이러던 때의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 유대인들의 종교와 경전이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필 이 시기에 불교와 유교가 생기고 중국 대륙에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출현한 것이 유대인 포로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럼 그로부터 500년쯤 뒤, 성전 2.x가 파괴됐을 때의 상황은 어땠나?
이제 유대인들은 대놓고 우상 숭배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종교관이 다른 극단 쪽으로 이상해지고 뒤틀렸다. 율법을 영혼 없이 외형적으로 따르는 것에만 목숨을 걸면서 정작 구약 성경이 마르고 닳도록 가리키고 있는 예수님을 거부해 버렸다. 심지어 예수의 피가 자기와 자기 후손들에게 얼마든지 돌아오라고 저주 맹세를 하면서 자기 무덤을 파 버렸다!

성전 2.x가 파괴됐을 때는 유대인들이 그냥 전세계로 디아스포라 급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러면서 그 뒤로 2천 년에 가까운 신약 교회 시대가 시작됐고, 인류는 자동차와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비행기를 발명하는 지경에까지 도달했다. 세상에..

생각을 해 보시라. 사도행전에서 바울을 집요하게 죽이려고 난동 부리고 안달 났던 그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버젓이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에도, 성전 휘장이 쫙 찢긴 뒤에도 계속해서 딴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성전에서 어린양을 죽여서 바쳤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우리 인간도 누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했던 말을 또 하게 만들면 짜증이 날 것이다.
성경을 찾아보면 하나님도 굉장히 싫어하시는 게.. 하나님께서 다 이뤄 놓으신 단일 역사 이벤트를 정면으로 부정하거나 또 하라고 부추기는 짓거리이다.

카인과 아벨 시절에 아벨이 어린양을 죽여서 바친 것은 잘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도 예수님을 생까고 어린양을 죽여서 그것도 성전에서 바치는 건 차라리 바알 숭배가 더 낫다 싶을 정도의 미친짓이었다.

모세가 단 한번.. 별로 심각해 보이지도 않는 실수 때문에(반석을 또 때린 거. 그 반석이 누구/무엇의 예표이더라?) 징계 받아서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된 거,
감히 십자가 사건이 자기네 집회 때마다 매번 반복된다고 말하는 어느 종교 의식,
쟤들은 이런 것과 동급의 죄를 짓고 있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저런 극악무도한 짓이 벌어지는 본거지 따윈 100번은 없애고 싶지 않으셨겠느냐 말이다.
1.0 시절과 2.x 시절은 이 정도로 서로 극과 극으로 차원이 다른 상황이었다.

세상 역사가들은 유대인들이 자꾸 로마 제국에다가 반란 일으키고 개겨서~ 징벌 차원에서 성전까지 묵사발 참교육 당함.
이런 식으로 겉으로 보이는 객관적인 현상만 논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영적인 배경을 논하자면 저런 듯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 자체만큼이나 하나님의 역사 경륜을 알 수 있는 지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 시대 크리스천이라도 최소한의 관심을 두고 알아둘 필요가 있다. 현존하지도 않는 건축물에 구약 성경이 그리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제 성전 3.0을 만들겠다고 벼르는 사람들이 있다.
허나, 예루살렘의 저 위치는 이슬람 진영에서도 진작부터 알박기를 해 놨기 때문에 부지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다. =_= 누군가에 의해 3.0이 만들어지기나 한다면 대환란 시절의 임시적인 성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성경에 기록된 "이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싹 무너질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예언도 진짜 정확하게는 2.x가 아니라 가상의 3.0 얘기가 아닐까 싶다.
2.x는 그래도 서쪽 벽은 완전히 파괴되지 않아서 통곡의 벽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 않느냐 말이다. 붕괴는 됐지만 진짜 그 정도로 처절하게 다 박살난 건 아니어 보인다. 마치 창세기 22:8도 실제로 현장에서 준비된 것은 어린양이 아니라 숫양이었으니, 이건 거시적으로 예수님 예언이듯이 말이다.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끝으로.. 에스겔서 4x장에서 길게 기록하고 있는 그 성전은 예수님의 재림 후에 만들어질 버전 4, 마지막 성전이 되지 싶다.
이때는 성전이 왕궁의 역할까지 겸하면서 그야말로 정치 종교 복합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제단이 있기는 하지만 속죄 번제 기능은 없이 화목제만 있는 등.. 시스템이 구약 시절과 비슷하지만 일부 요소가 수정될 것이다.

* 아이고, 두 주 동안 글이 또 끊겨 버렸다.;;;
이 달 중으로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와 타자연습 새 버전을 꼭 내려고 발버둥 쳤지만, 어려울 것 같다. ㅠㅠㅠㅠ

Posted by 사무엘

2025/08/26 08:35 2025/08/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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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엔 예수님의 생애를 주제로 다룬 ‘킹 오브 킹스’라는 만화영화가 개봉하네 마네 했다. 알고 보니 그거는 북미 지역 개봉 기준이었고, 얼마 전인 7월 중순엔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정식 개봉했다.

이 작품에 대해서 아주 재미있게 잘 봤다는 소감도 있고, 뭐든지 문제삼고 꼬투리 잡는 프로불편러 관점의 비판도 있다.
유통사? 제작사가 몰몬 교 신자 소유라느니, 그리고 작품에서 액자 바깥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역사 인물 찰스 디킨스(19세기 영국의 소설가)가 유니테리언 신자라느니.. 그래서 작품에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묘사가 부실하다느니 뭐라나..?

글쎄, 어린애들 눈높이의 만화영화에다가 조직신학 강의를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뭔가 부족한 건 있을지언정, 대놓고 해롭거나 잘못됐거나 반성경적인 메시지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영상물에 대해서는 너도 나도 ‘꼭 봐라 두 번 봐라’ 치켜세울 필요도 없고, 일부러 공포증 수준으로 ‘워이 워이’ 멀리할 필요도 없는 듯하다. 그냥 각자 알아서 보면서 분별하면 되지 않겠냐 말이다.

찰스 디킨스는 나도 지금까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알고 보니 ‘올리버 트위스트’라든가 ‘크리스마스 캐롤’(스크루지 사장님이 나오는)을 지은 영국의 정말 엄청난 대문호이더라. 마술사 ‘데이비트 카퍼필드’도 바로 저 사람이 지은 유명 소설의 주인공 이름에서 딴 예명이다!
하지만 이 사람이 예수 영화에 굳이 왜 등장하는지, 더구나 한국인 감독인 작품에서 왜 들어갔는지는 좀 의문스럽긴 하다.

이 글에서는 킹 오브 킹스를 논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해 왔던 썰을 좀 풀어 보고자 한다. ㄲㄲㄲㄲㄲ

1. 시험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로 이끌려 들어가서 40일을 금식하고 마귀로부터 몇 가지 테스트를 받았다. 물론 그분은 모든 시험에 FM 답안을 내면서 모조리 통과하셨다.
이건 예수님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릅니다”를 제대로 숙지했는지? 하나님의 아들인 인간으로서 개인적인 감정이나 공명심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충실하게 해낼지, 초자연적인 기적 권능을 정말 필요한 일에만 적절히 사용할지를 확인하고 인증받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가령, 배고파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을 빵으로 변환해 보시지? ㅋㅋ”라는 시험을 통과할 역량 정도는 돼야..
훗날 실전에서 “니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면 한번 자력으로 못을 뚝 뽑아내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ㅋㅋ” 이런 도발에 욱하거나 낚이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우와 빵 5조각을 5000개로 불려 놨더니 저 군중들이 좋아서 난리 치는 거 봐라. 이 지지자들을 이끌고 당장 혁명 일으켜서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왕이 돼 봐라~~!” 이런 꼬드김은 어떤가?
마귀가 제안했던 시험 중에도 딱 이런 범주에 드는 게 있었다는 걸 기억하자.

그런데 저런 시험에서 곧장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주 네 하나님만 경배하라 / 그분을 감히 함부로 떠보지 마라” 이런 말씀을 인용해서 답변을 할 정도라면..
예수님은 40일 광야 외박 중에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아주 깊이 묵상했을 것이고 신명기 같은 책은 머리에 몽땅 다 집어넣은 상태였지 싶다.

그럼 성경 말고 잠시 딴 얘기를 꺼내겠다. 1969년, 옛날에 아폴로 10호 미션 때 말이다.
이건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 직전 코앞의 미션이었다. 달 착륙선이 달 상공으로 살짝 하강만 하다가 다시 올라가서 사령선과 합체하고 귀환할 예정이었다.

10호의 달 착륙선에 탔던 승무원 2인은 얼마나 들떴겠는가?
이들 중에 공명심에 들떠서 절제하지 못하고 객기 부리고 일탈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지구 우주센터와 사령선으로부터의 지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달 착륙선을 달에 완전히 내려앉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면.. 후대의 11호 승무원이 아니라 자기들이 인류 역사상 달에 최초로 발을 디딘 사람이 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달에서 지구로 돌아오지는 못하고 달에 뼈를 묻게 됐을 것이다. 10호에는 달 착륙선의 지상 발사 기술은 아직 적용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들만 죽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NASA는 한바탕 뒤집어졌을 것이다.
안 그래도 소련과 경쟁 중이었던 냉전 시국에, 후대의 유인 달 탐사 계획도 줄줄이 꼬였을 것이다.
그래서 극한의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기 감정을 억제하고 공과 사를 구분하며 임무를 충직하게 수행하는 군인 기질이 심지어 성경에서도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물론 “나는 명령에만 따랐을 뿐이다”가 악의 평범성 수준으로 악용돼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하물며 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미션을 수행하던 예수님에게도 저런 자질 검증이 꼭 필요했지 않겠나 싶다!

2. 무술 수련

성경에서 사도행전 9:2는 뭔가 예수 믿는 거를 '길'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말 성경 중에 개역과 한킹은 이 구절의 way를 '도'라고 번역했다. "이 道에 속한 사람들"..

창세기 24:63은 이삭이 저녁에 뭐 요가나 파륜궁이나 영춘권 수련이라도 하러 들로 나간 것 같다. ㄲㄲㄲㄲㄲㄲㄲ
또, 요한복음 3~4장도 있다. 이런 걸 읽어보면 성경도 약간은 동양철학(??)이나 권법서(!!!)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요한과 예수님이 무술 사범이 돼서 제각기 도장을 차렸고, 상대편 제자들을 견제한다.
"요한은 제자들한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친다는데 우리도 좀 가르쳐 주세요!" (눅 11:1) 이건
"싸부님 우리한테도 이런저런 권법 좀 가르쳐 주세요~ 네?" 같다.

마 17:16에서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한 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동네 양아치한테도 얻어터지고 돌아와서 싸부님한테 수련이 부족하다며 혼난 거고.. 뭐 그렇게 대응이 된다ㅋㅋㅋㅋㅋㅋ

내가 어떨 때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에서 카 퍼레이드를 떠올리고, 베드로가 밴을 운전하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자동차가 아니라 무림 버전이 등장했다.
물론 이건 개드립 쪼크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라~!! 예수님을 '주' Lord가 아니라 단순히 스승, 싸부 master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1세기의 현대인이 창 24:63을 읽으면서 저런 느낌이 개인적으로 드는 건 자유이지만.. 아예 성경 번역을 그런 의식의 흐름을 따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성경에 따르면 이때 이삭은 '묵상'하러 나갔다. 시편 19:14 '나의 마음의 묵상이' 할 때의 그 묵상 말이다.
뭐 어디 이상한 데서 말하는 것처럼 '명상, 참선'을 하러 간 게 아니다.

3. 나머지 여러 패턴들

(1) 성경에서 예수님의 행적이 뭔가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온 경우는 다음과 같다.

  • 그놈의 안식일 드립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내내 그분을 따라다닌 트집거리였다. 초자연적으로 사람이 살아난 기적을 보고도 “당신 지금 무면허 의료행위 했지? 의료법 위반이야!” 이딴 반응을 보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 “내가 곧 아버지 하나님과 동급”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많이 빡쳤고, 심지어 그분을 죽이려 했다. 요한복음 5~10장이 온~통 이 얘기밖에 없다.
  • 당대 종교인들의 위선과 악행을 폭로하고 교리적 오류를 지적하시자 팩폭을 당한 당사자들은 빡돌아서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백성들 눈치를 보느라 당장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 눅 16:14를 보면 성경의 다른 논조와는 사뭇 다른 피드백이 등장하는데,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에 탐욕스러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웃었다’. “허이구~ 지가 가난하니까 괜히 부자들 욕이나 하는 거지? ㅋㅋ” 이런 반응을 보인 것에 가깝다.

(2)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는 책망하고 심지어 분노도 하셨다.

  • 제자들의 불신: 특히 변모산 이후 사건 때 제일 크게 실망하신 듯.. 어지간한 중대장 이상이었다.
  • 성전 장사꾼들: 두 번이나 크게 분노하셨다!!
  • 아까 (1)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악행: “이 독사 같은 xx들아!”라는 폭언까지 나왔다.

(3) 예수님이 제자들을 갈군 패턴은 다음과 같다.

  • 왜 이렇게 믿음이 없느냐: 변모산 이후, 부활 직후 엠마오 제자들에게, 물 위를 걷다가 도로 빠진 베드로에게. 제일 흔한 책망이었다.
  • 베드로에게는 아예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 요한과 야고보에게는 “니가 지금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모르는구나” 이건 궁예 식으로 말하자면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하다는 급이었다.

요런 것들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분류해서 “주님의 빡침” 같은 설교나 강해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성경의 예수님께서 인간의 어떤 면모에서 가장 실망하고 분노하셨는지에 대한 답이 나오니까 말이다.

(4) 낯선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마귀 쫓는 것에 대해서

  •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9장 끝부분에서는 “우리의 적이 아닌 진영은 다 우리의 친구다. 그냥 냅둬라” 라고 반응하셨다.
  • 마 7:22-23에서는 그런 행적이 있는 사람이라도 예수님께서 생깔... 수 있다고 경고하셨다.
  •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시전하는 사람이 가짜이다 보니 그 사람이 마귀에게 역관광을 당했다. 마귀 왈,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들어 봤다만.. 네놈은 어디서 굴러온 개뼉다귀냐?”

(5) 예수님은 아주 합리적이다. 옳은 것은 누가 말했든지 그대로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 그들의 말만 듣고 따르고, 그놈들의 행동은 본받지 마라 (마 23:2)
  • 내가 믿기지 않더라도 내 행적은 믿으라 (요 10:38)
  •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에게
  • 이것을 하고, 한편으로 저것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본질과 정신 VS 외형. 눅 11:42)

(6) 성경은 일관성 없는 것, 간보고 쟤는 걸 싫어한다.

  • 요한은 안 마신다고 X랄이고, 예수님은 마신다고 지X..
  • 요한의 침례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인정하면 이렇게 되고, 인정하지 않으면 저렇게 되네..

(7)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꽤 극단적이고 꽤 어려워 보이는 표현이 있다.

  • 현 세상에서 100배 보상. (막 10:30)
  • 내가 속히 오리라 (계 22:20)
  •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들어서 저리로 옮길 것이다
  • 저 사람들이 외치지 않으면 이 돌들이 대신 소리지를 것이다 (눅 19:40)
  • 돌을 갖고도 인간들 집단을 만들 수 있다 (눅 3:8)
이런 패턴들은 만화영화가 아니라 성경 텍스트 자체만을 반복해서 읽고 묵상해야만 서서히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29 19:35 2025/07/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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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1592-98)과 6 25 사변(1950-53).

1. 공통점

  •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국제 전쟁이다. 대리전 같은 양상도 띠었다.
  • 적국으로부터 전쟁 준비 정황이 여럿 포착됐지만 그에 대비를 제대로 못 했다.
  • 초기에는 신무기 때문에 맥을 못추고 털렸었다. (조총, 땅끄)
  • 우리나라가 멸망할 뻔했지만 어쨌든 기적적인 계기로 방어에 성공했다. (이순신, 맥아더 / 한산도 대첩, 인천 상륙작전 등) 그래도 나라가 멸망만 당하지 않았지, 몽땅 쑥대밭이 되고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 우리나라 쪽 대표가 없이 남들끼리 종전(정전) 협정이 진행됐고 오랫동안 질질 끌었다. (일본 vs 명, 북괴 vs UN)
  • 저 전쟁 기간의 대부분은 종전(정전) 협상이 오랫동안 질질 끌리는 동안 벌어졌던 소모전 기간이다.
  • 저 전쟁의 말기 때 적국 진영의 수장이 죽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스탈린)

2. 비슷한 점

(1) 임진왜란은 그 전까지 수시로 한반도를 집적대던 왜구들 국지전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이었다.
6 25는 그 전까지 38선 부근에서 수시로 툭탁툭탁 벌어지던 국지전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이었다.

(2) 임진왜란 때 왜군은 자기들이 성읍을 점령하던 방식처럼 조선의 왕만 빨랑 사로잡으면 전쟁이 바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왕은 잽싸게 피난 가고 없었고, 왕이 부재 중인데도 동네 곳곳에서 의병들이 일어나서 왜군을 당황케 했다. 조선과 일본은 사회관과 국민 정서가 서로 많이 달랐다.
6· 25 때 북괴 측에서는 자기들이 쳐들어오면 20만 빨치산들이 자기를 반겨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쳐들어가 보니 그런 거 없었고 남조선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3)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왕이던 선조는 사람 보는 안목이 거의 트롤러 수준이었다.
원 균과 이순신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든가.. 한국 역사상 최악의 개망나니 미친놈이던 아들 순화군을 기를 쓰고 감싸던 걸 생각하면 말이다.
순화군이 함경도에서 깽판 치고 있자, 도저히 견디다 못한 거기 백성들이 서로 짜고 순화군을 왜군에다 넘겨 줬을 정도였다.
6 25때는? 뭐 리 승만 할배의 정치적 과오 중 상당수가 인사와 관련이 있었다는 거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 차이점

(1) 6 25 때 전황이 제일 안 좋았을 때는 경상도 동남부만 빼고 남한 땅이 다 함락당하고 북괴에게 넘어갔었다.
임진왜란 때는 반대로 전라도 빼고 다 함락당한... 정도는 아니었다. 부산 일대, 그리고 부산에서 한양으로 가는 영남대로 길목 좌우를 제외하면 왜군이 조선 땅을 몽땅 다 점령할 재간은 없었다.

(2)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 자체가 완전히 망하고 멸절당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는 자기는 전대 정권과 전혀 무관하다면서 고개를 숙였고, 조선과 일본은 다시 수교를 맺었다.
그 반면, 6 25가 휴전으로 끝난 뒤, 남한과 북괴는 완전히 단절되고 최악의 적대 관계로 전락했다.

(3) 6 25 때 월북한 남한 지식인들은 다들 좋은 최후를 맞이하지 못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은.. 끝까지 잘 대접받고 잘 살았다.

※ 나머지 이야기들

(1)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과 일본(왜)이 벌였던 해전의 양상을 공부해 보면 흥미로운 게 많다. 가령, 조선의 판옥선은 단면이 U자형이어서 평평한 바닥이 있는 반면, 일본의 전투함은 V자형이었다고..
일본 배는 더 빠르게 이동이 가능한 반면, 조선 배는 안정적이며 제자리에서 변침(조향, 회전)까지 가능할 정도로 최대속도 말고 다른 기동성이 좋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군함의 설계 이념부터가 조선은 방어 지향이고 일본은 공격 지향이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배는 닥치고 상대방에게 달려들어서 다리를 놓은 뒤, 자기 수병들이 그리로 건너가서 백병전을 벌이고 상대방 배를 점령하는 것에 최적화돼 있었다. 옛날에 해전이 진행되는 게 이런 식이긴 했다.

그러나 이 순신은 일본 배의 이런 장점 내지 특성을 봉쇄하는 쪽으로 기가 막히게 작전을 짰다.
지형 특성과 조수 간만 물때를 잘 활용한 건 말할 것도 없고, 판옥선의 강화판이던 거북선은 저렇게 남의 배로 건너와서 백병전 벌이는 걸 봉쇄하려고 등짝을 온통 고슴도치처럼 만들었다.

(2) 임진왜란 당시에 왜군들은 자기 전술이 통하지 않는 거북선을 ‘장님배’(메쿠라부네)라고 부르면서 두려워했다고 한다. 눈에 뵈는 게 없이 달려드는 깡패 같은 배라는 뜻에서 장님이라는 별명을 붙인 듯..

그 다음으로 1850년대에 일본은 서양의 시꺼먼 철갑선 ‘쿠로후네’를 보고는 단단히 쫄게 된다. 이때는 얘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화를 잘 했다.
그래서 임진왜란으로부터 300년쯤 뒤엔 지들도 군함 끌고 조선을 상대로 똑같은 짓을 했다. 운요 호 사건 이후로 조선을 겁 주고 차근차근 무장해제 시키고 이것 빼앗고 저것 빼앗은 뒤, 외교적으로도 고립시키고 끝내는 자기 식민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이런 내력이 있고, 또 러시아를 기적적으로 명목상으로는 승리도 했다 보니 큰 군함을 만드는 일에 진심이 됐다. 그래서 결국은 야마토까지 온갖 삽질 끝에 만들었지만.. 결국 그들에게 20세기 쿠로후네 같은 존재는 바로 미주리 전함이 됐다.
21세기엔 일본이 크고 아름다운 군함과 관련하여 또 무슨 일을 겪게 될지 궁금해진다.

(3) 일제 시대 독립군의 전과 같은 이야기 중엔 과장 주작이 들어가거나 잘못 알려진 것도 적지 않았다. 허나, 일제 이후에 북괴와 싸웠다는 이야기 중에도 그런 예가 있는가 보다.

6 25가 터지기도 전, 육탄 10용사야 한참 전부터 자잘한 논란이 많이 불거졌기 때문에 요즘은 무용담을 신격화하고 띄워 주는 트렌드가 많이 줄었다.
철도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김 재현 기관사는? 전시에 열차 운행을 하다가 피격 당해 전사한 것은 팩트이지만, 일반적인 보급 수송 임무였지 무슨 윌리엄 딘 소장 구출 임무는 아니었다고 하네..;; 이게 왜 지금까지 오랫동안 잘못 알려졌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6 25 개전 초기의 대한해협 해전도.. 뭔가 정체불명 괴선박을 격침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진짜로 북괴 공작원들을 수송한 배였는지는 오리무중이라고 한다. 정확한 전과 보고를 위해서라도 우리측에서 사건 현장 주변을 정밀 수색했지만, 북괴군 시신 같은 거라도 도무지 발견된 게 없었다고 하니..

오히려 6 25보다 수백 년 전의 일을 기록한 난중일기가 단순 일기를 넘어서 정확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 일기에서 언급하는 인물이나 사건이 당대의 외국 사료와 일치하고 교차검증이 됐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난중일기가 백범일지보다 더 신뢰할 만한 사료라는 게 놀랍기 그지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23 19:35 2025/07/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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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폴 블리스. Philip. P. Bliss (1838-1876).
19세기 미국의 찬송가 작사· 작곡자로 심심찮게 접하는 이름 중 하나이다.
이 사람은 바울과 빌립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복음전도자 겸 찬송가 싱어송라이터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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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찌나 복음 선포와 혼의 구원에 진심이었으면.. 당대 기준으로는 파격적인 CCM을 만들었다.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초청)와 "하나님의 진리 등대"(선교)를 작사· 작곡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게 저 사람의 작품이다.

그리고 가사가 '성경'을 다루고 있는 독특한 곡..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과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을 작사· 작곡했다(1874).
그렇잖아도 이 두 곡은 6/8박자에 가사와 멜로디가 좀 비슷해 보이지 않던가?
'성경'이라는 카테고리에 분류되는 곡이지만 여기 가사에도 구원과 복음 얘기는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그 뒤, 이 사람은 호레이시오 스패폴드가 지은 유명한 찬송시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평안, 1873)를 보고는.. 거기에다 우리가 지금 아는 그 멜로디를 작곡해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1876).
이것 말고 "내 너를 위하여"(헌신)도 가사는 딴 사람 것이지만 곡은 저 사람 것이다.

그랬는데 이분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1876년 12월 29일, 오하이오 주에서 칙칙폭폭 열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미국판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당하면서 40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갔다.
강을 건너던 중이었는데 아래의 교량이 쇳덩어리 열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폭삭 무너진 것이다. 이름하여 애슈터뷸라 철교 붕괴 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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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랬던 교량이.. (열차가 정말 조그맣긴 하다.. 20세기가 아니라 19세기여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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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렇게 됐다.

열차는 20여 미터 아래로 떨어져서 박살이 났고, 저 사람 포함 90여 명의 승객이 목숨을 잃었다. 그 시절에 토목 건축 기술이 부족했거나 부실시공이 있었던 듯하다.
이때 열차의 동력원은 석유가 아니라 기껏해야 석탄이었지만.. 그래도 조명용 등불이 다 연료를 쓰고 있었고, 또 이 시절에 객차는 나무로 만들곤 했다. 그래서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사상자가 더 늘었다고 한다.

그랬는데.. 사고 현장에서 이분의 유품을 뒤지는 과정에서.. 그가 지은 새로운 찬송시가 적혀 있는 쪽지가 발견됐다. 조만간 이것도 출판사에 보내려 했는데 고인이 미처 못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발굴된 찬양이 바로... "속죄하신 구세주를 내가 찬양하리라"(1876)이었다!

이건 제임스 맥그라나한(McGranahan)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작곡가가 곡을 붙여서 1878년에 정식으로 발표됐다고 한다. 3박자이다가 후렴에서 4박자로 바뀌는 그 곡 말이다.
"속죄하신 구세주를"이 필립 블리스의 사후 유작, 마지막 찬송가가 됐다.

신기하고 경이롭지 않은가?
호레이시오 스패폴드는 선박 침몰 사고로 가족을 잃고서 찬송시를 썼는데, 거기에다 저 사람이 곡을 붙여 줬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사람이 교량 붕괴 사고로 소천하자, 그 사람이 지은 찬송시에다가 또 다른 사람이 곡을 붙인 것이다!

필립 블리스가 7, 80대 나이까지 더 오래 살았으면 20세기 초까지 찬송가가 얼마나 더 만들어졌을지 궁금해진다.
여담이지만 bliss는 옛날 Windows XP의 푸른 초원 배경그림의 작품 이름이기도 했다~!!! (극락, 최고의 행복, 축복.. 이런 뜻) 이것도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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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저 애슈터뷸라 참사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철도 교통사고이다. 뭐, 차량이 탈선하거나 신호가 꼬여서 정면충돌한 게 아니니, 순수하게 철도 쪽 사고는 아니지만 말이다.
조선은 1899년에야 그 쬐끄만 27km짜리 경인선이 전적으로 외국 기술과 자본으로 만들어진 게 최초이며, 교량은 이듬해에 간신히 완공한 한강철교가 최초였지 않던가?

그러나 미국에서는 수십 년 이상 훨씬 전부터 그 넓은 땅에 수천 km가 넘는 길이의 철도가 땅따먹기 하듯 자체 기술로 건설됐다는 게 참.. 대단하다. 그러다가 어쩌다 한번 저런 불행한 사고도 난 것이다.

그 시절 미국의 대륙 횡단 철도를 이용해서 미국의 동부(네브라스카)에서 서부 끝(캘리포니아)까지 가는 덴 1주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지금이야 비행기로 4~5시간이면 가겠지만, 저 1주일만으로도 마차로 6개월 걸리던 것에 비하면 시공간 워프 수준으로 단축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러시아 대륙횡단 열차도 전 구간 완주하는 데 비슷하게 1주일 정도 걸린다. 이런 초장거리 열차가 등장하면서 경도별 시차라든가 범지구적인 시간대 동기화의 필요성도 최초로 제기되었다.

쟤들은 과학 기술이 저렇게 동시대 다른 나라들을 아득히 앞서 갔고, 한편으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패니 크로스비, 필립 블리스 등 아름다운 찬송가들이 발표돼 나왔다.
이것만 생각하면.. 서부 개척 시대의 끝물을 가던 19세기 미국은 bliss라는 단어의 뜻에 걸맞은 천조국이었던 것 같다. 통상적인 산업혁명기의 서유럽과도 분위기가 달라 보인다.

아 물론 인간 사는 곳은 어디든지 빛이 있으면 어둠도 응당 있었다.
저기는 시골 깡촌은 집집마다 샷건이 필수품이고, 부녀자들도 최소한의 총질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 와일드 무법천지였다.

어지간한 남자들은 완전 술에 쩔어서 살았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난 이 정도 알코올에도 끄떡없는 진짜 싸나이" 허세 부리기 위해서였다;;; 이 짓 하다가 급성 알코올 중독 걸려서 골로 간 사람도 많았고, 정신줄 놔 버린 가장의 가정폭력 때문에 파탄 난 가정도 많았다!

그리고.. 링컨 덕분에 미국에서 흑인 노예 제도가 폐지되기는 했다만.. 그러자 저렴한 노동력은 노예 대신 외노자로부터 조달되기 시작했다. 중국(청나라) '쿨리'라고 들어 보셨나..?
미국의 저 찬란한 대륙 횡단 철도도 상당수가 이런 사람들을 현장에서 처참하게 갈아 넣으며 만들어졌다.

그들은 안전이고 인권이고 없던 정말 힘들고 위험한 현장에서 자국민 대비 정말 저렴한 임금 받으면서 일했는데.. 그 임금에서도 일자리 중개 수수료나 수송 비용, 송금 수수료 등 온갖 공제를 당하고 떼였다. 그들의 조국인 청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비참하게 일해서 푼돈 건진 게.. 그들의 청나라 깡촌에서 가난한 소작농으로 있는 것보다는 덜 비참하고 더 나았다! 이런 합법 노예 계약은 서로 윈윈이었기 때문에 수요가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미국은 현대적인 개념의 대기업과 금융 경제 시스템이 그때 다 갖춰져 있었다. 철강 카네기, 석유 록펠러(로커펠러) 같은 사람도 다 이 시절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무한 시장경제 자유방임 초창기엔, 신흥 기업가 재벌 졸부들이 근로자 임금을 후려치고 각종 산업재해를 은폐하고, 경쟁 기업을 비열하게 말려 죽이면서 독점 담합.. 정말 정말 끔찍한 짓 추악한 짓도 많이 했다. 이 인간들은 워낙 악명이 높아서 '강도 귀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칼 든 전통적인 강도 하층민이 아니라, 칼 안 들고 더 무섭게 사람 잡는 강도 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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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브루주아들을 타도하자고 공산주의라는 괴물이 튀어나올 만도 하지.. 당대에 벌써부터 저런 만평이 만들어져 나올 정도였다.)

이 시절 창업주들은 젊은 시절에 진짜 미치광이처럼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가, 나중에 늙어서는 자괴감 느껴서 도의적으로 사회에 '기부'라도 왕창 많이 하면서 재산을 환원했다. 뭐 학교 세우고 병원 세우면서.. 병 주고 약 주고를 했다. 그런 기부로 과거의 흑역사를 다 덮을 수 있겠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이고~! 필립 블리스 얘기를 하다가 철도를 거쳐서 미국 역사 얘기가 나왔구나.;; 다시 찬송가 얘기로 돌아가 보자.
아무튼 저분도 미국이 한창 저렇던 시절에 복음 전도자로 살면서 저런 찬송시를 썼다! 이걸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미국에는 저렇게 엄청나게 선한 것도 있고, 엄청나게 악한 것도 존재해 왔다.

난 교회에서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속죄하신 구세주를' 요렇게 준비 찬송을 편성해 봤다. 그 밖에..

  • 가사에 ‘갈보리’라는 단어가 있는 곡들
  • 어딘가에 더 가까이 나간다고 말하는 곡들
  • 예수님이 나의 친구라고 말하는 곡들
    뭔가를 모른다고 말하는 곡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아 하나님의 은혜로 등~
  • 가족· 친지· 연인의 죽음을 계기로 만들어진 곡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그날 다가오네 등
  • 패니 크로스비 작사 + 윌리엄 도언 작곡인 곡들
  • 단조만: 현충일과 주일이 겹쳤을 때 ㅎㅎ
  • 분위기가 제일 힘찬 곡들: 무덤에 머물러, 마귀들과 싸울지라 등~

이렇게 비슷한 특성이 있고, 만들어진 계기가 비슷한 곡들을 한데 모으는 것도 의미 있어 보인다.

  • "놀라운 주의 은혜"(Haldor Lillenas) --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1910년대 곡
  • "주 하나님 큰일을 행하셨네" -- "살아계신 주"
  • "참 즐거운 노래를 늘 높이" -- "노래하는 순례자(하늘의 곡조 울리니)"

얘들은 전자는 클래식 찬송가 범주에 드는 반면, 후자는 더 캐주얼 리버럴한 곡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은 가사 내용은 서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굳이 찬송가 vs 복음성가로 구분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찬송가, 더 나아가 기독교 음악 전반에 대한 더 유연하고 가사 지향적인 분류법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 추신

자, 원래는 본인이 여기까지만 글을 썼는데 말이다. '속죄하신 구세주를' 찬송가와 관련하여 긴급히 추가해야 할 관련 정보를 또 입수했다.
'속죄하신 구세주를'이라는 찬송시는 맥그라나한 말고 다른 사람이 이미 지은 옛날 멜로디가 붙기도 했었다. 마치 우리나라 애국가가 아주 옛날에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 천부여 의지 없어서...' 그 스코틀랜드 민요 멜로디로 불리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두 악보를 보시라~!
옛날 멜로디는 바로.. 우리말 찬송가에서는 '하늘 영광 버리시고 예수 강림하셔서'인 그 3/4박자 곡이다. 가사는 완전히 다른데.. 참 신기한 노릇이다.
하지만 저 찬송시를 매우 유명하게 만들어 준 멜로디는 아무래도 맥그라나한이 이 가사만을 위해 새로 만든 그 곡임이 틀림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20 08:19 2025/07/20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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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한민국은..

(1) 인류 역사상 식민지배를 받다가 개발도상국,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제대로 진입한 마지막(내가 알기로) 나라로 여겨진다!
경제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그럭저럭 잘 이뤘다.

쌍팔년도와 세기말까지만 해도 울나라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선진국이냐 아니냐 갖고 엄청 논쟁을 벌였다. "국민성이 이래 갖고는 선진국 못 된다, 정신 안 차리면 북괴가 다시 남침한다, 일본놈들한테 나라를 다시 빼앗길 거다" 자괴감에 빠졌었다.

그러나 아무리 보수적으로 늦게 잡아도 우리나라는 2000년대부터는 명백히 선진국이라는 걸 세계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이후에 한국과 같은 처지였다가 한국처럼 처지를 역전한 나라는 결코 다시 등장한 바 없다. (도시국가 급으로 극단적으로 작은 나라 말고..!!)

(2) 과거의 식민지배라는 것도(일제강점기) 인도나 아프리카의 다른 피지배국들에 비해서는 늦게 당하고 일찍 풀려난 편이었다. 카이로 선언의 특례를 받았다.
훗날 IMF도 이례적으로 일찍 졸업했다.

(3)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UN군의 도움을 제대로 받았다. (후대의 밍밍한 평화유지군 말고!) 나라가 멸망 당할 위기에 빠졌을 때 그야말로 세계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외국에서 왔던 6· 25 참전 용사들이 "우리가 참전했던 이 듣보잡 신생독립국이 그로부터 수십 년 뒤에는 상상을 초월하게 발전하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했구나~!! 우리가 도와줬던 게 헛되지 않았구나!" 이렇게 말하면서 감격한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물론, UN의 도움을 이렇게 받고, UN 창립일을 공휴일로 기념하던 나라가 정작 UN에 가입은 아주 오랫동안 못 하고 있었다. 이건 남북 관계와 관련하여 말 못 할 사정이 있었기 때문인데, 1991년에야 가입을 했으니 이 또한 지나간 옛날 일이 됐다.
옛날에 국제연맹 제안을 했던 미국이 정작 자기는 모종의 이유 때문에 가입 못 했던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정치 말고 다른 분야에서도..

(4) 무려 1400년대, 인류 역사상 마지막으로 자기 고유 문자를 창제했다. 정말 미친 짓이었다.

(5) 유니코드에 자국 문자를 1만 자가 넘게 집어넣고, 코드값 배치가 대대적으로 바뀌는 마지막 특례를 받았다. 이것도 사기적인 이벤트였다.

(6) 복음도 거의 끝물 시기에 들어왔지만 기독교계가 엄청나게 성장했다.
인구 1억이 채 안 되지만 바른 본문 계열 성경 역본도 너무 많이 나와서 난립 중인 특이한 나라이다.

(7) 다음과 같은 큰 과업이 성공적으로 잘 진행되어 미래의 후손들이 두고두고 복을 누리고 있다: 리 승만 시절의 토지 개혁, 220V 승압, 산림 녹화, 그리고 대마 대체 작물 육성.

우리나라는,

  •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은 지난 1994년에 1인당 1만 $를 넘었고, 2005년에 2만 $, 2014년에 3만 $를 넘어섰다.
  • 등록 자동차 수가 지난 2014년에 2천만 대를 돌파했다.
  • 인구는 지난 2012년에 5천만을 찍었고, 2020년쯤엔가 최대치 5184만까지 갔다. 그 뒤부터 감소 시작...

우리나라가 옛날에 수출 위주 경제 개발을 열나게 했고 그게 약발이 잘 통했던 건 국제 정세 운빨도 있었다. 오늘날 세계의 공장=_=으로 무섭게 도약 중인 중국, 아니 중공이 그 시절엔 대약진운동과 함께 장렬하게 삽질 자폭 중이었기 때문이다.

마오 주석이 중공군 개입으로 우리나라의 북진통일을 막아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때는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을 도와주기도 했다. 토법고로 vs 포항제철 급으로 지도자의 역량이 서로 극단적으로 달랐으니 말이다.

이상이다.
이런 글을 쓰는 본인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모든 면모가 다 마음에 드는 건 물론 아니다.
사형 집행 안 하는 거는 너무 열불나며, 너무 심하게 과잉 단속을 해대는 구간단속· 어린이 보호구역 카메라들을 봐도 진짜 개빡친다.

먹는 밥값, 우유값 같은 게 다른 생필품이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봐도 너무 비싸져 있고.. 사실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와 병역의무도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싫어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역사에 기적이 적지 않았고, 후손으로서 감사할 게 많은 나라인 것도 사실이다. 제아무리 헬조선 헬조선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라도 "다음에 (1) 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기 (2) 랜덤으로 전세계 1/n 확률로 아무 나라에서나 태어나기"에 아무 거리낌없이 (2)를 찍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울나라 같은 나라에서 걸핏하면 빈부격차 불평등 헬조선 불평불만 툴툴대는 사람이 어디 외국 이민을 덥석 가서 잘 적응하고 신세 펼 확률은 0은 아닐지 몰라도 매우 낮을 것이다.

물론, 상대적 빈곤감 박탈감, 경쟁의식이란 게 사람을 각성시키고 능력을 뽑아내서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한 건 사실이다. 허나, 지금은 그게 역기능 부작용이 너무 커진 것 같다. 이제는 그거 때문에 너도 나도 애 안 낳는 지경이 됐으니..
이 위기는 단순히 피똥 싸는 가난이나 북괴 남침 위협 같은 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위기인 것 같은데 이건 과연 우리나라가 극복 가능할지 의문이다.;;;

특히 젊은 애들은 희귀한데 복지 혜택 받으려는 노인들만 드글드글한 난장판이 수십 년 뒤에 반드시 도래할 것이다. 그때의 정치인들은 이거 뒷감당을 과연 어떻게 할까? 대놓고 고려장이 시행되지는 못할 테니 결국은 세금이 찔끔찔끔 오르고, 국민연금도 더 내고 덜 받는 형태로 야금야금 교묘하게 바뀌어 갈 것이다. 이건 예고된 결말이다.

※ 덧붙임

(1) 예전에도 한번 했던 말이다만, 유엔군 vs 유엔 평화유지군은 마치 야후 본사 vs 야후 재팬이라든가
구 일본군 vs 자위대, 구 대우자동차 vs 대우버스, 인도 vs 인도네시아, 자바 vs 자바스크립트만큼이나 서로 별개이고 무관한 존재이다;;

(2) 예로부터 "유럽 연합은 사형 집행을 하는 나라와 상종을 안 한다, 우리나라는 무역을 못 하고 경제 불이익을 당할 까 봐 국제 추세에 맞춰서 사형 집행 못 한다" 이런 식으로 이상한 낭설이 나돌곤 했다. 이건 "러브버그는 익충이니 저렇게 산을 새까맣게 뒤덮더라도 나랏님이 못 잡는다" 급의 헛소리가 아닌가 싶다.

그 잘난 EU가 그럼 사형 집행 잘 하고 있는 중국, 일본, 미국을 상대로는 경제 제제 가하면서 잘 응징하고 계시는가? 자국의 흉악 범죄자를 자국에서 극형 내리는 게 무슨 북한 핵무기 개발하는 급으로 세계 인권 평화를 저해하는 짓인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EU 회원국은 사형 집행(사형 제도 존치)하는 나라로 "국제 범죄자 송환"을 안 해 주는 정도겠지.. 이 말이 이상하게 와전된 게 틀림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17 08:35 2025/07/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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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세노바츠 수용소

나치 독일이 점령지에서 인종 청소 대량학살을 목적으로 운용했던 수용소로는 아우슈비츠가 독보적인 인지도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것만 있었던 게 아니다. 마치 북괴에서 운용하는 정치범 수용소가 요덕만 있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저 시절에 일본이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웠듯, 나치 독일은 자기 점령지에다가 '크로아티아 독립국'이라는 괴뢰국을 수립했다.
크로아티아가 어떻고 유고슬라비아가 어떻고 보스니아, 세르비아가 어떻고 등등.. 저기도 나라 사정이 엄청나게 복잡하긴 한데, 내가 그런 걸 다 알지는 못한다. 핵심만 말하자면 저기에는 정치 쪽은 골수 크로아티아 인, 종교 쪽은 골수 가톨릭인 '우스타샤'라는 열성당원이 있었다. 근데 걔들이 파시즘에 물들어서 나치 독일과 손잡았다.

나치 독일은 걔들에게 완장을 채워 주면서 이 점령지의 통치를 맡겼다. 그리고 수용소도 떡 지어서 불순 반동분자들을 마음껏 가두거나 죽일 수 있게 했는데.. 이 우스타샤라는 놈들은 나치 독일도 학을 뗄 정도로 또라이들이었다. 상전인 나치로부터 살인 면허를 받자, 얼마 못 가 오히려 나치 측에서 기겁하고 뜯어말릴 정도로 더 미쳐 날뛰었다.

얘네들은 나치의 주적이던 유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들과 민족적으로 종교적으로 대립하고 있던 이웃 세르비아 인들을 더 집중적으로 괴롭히고 조졌다. 쟤들은 혈통도 다르고, 또 종교도 정교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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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링크)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거나, 성모 마리아나 유아 세례에 대한 교리적 입장이 다르다고 사람을 죽인 게 아니다. 정교회는 개신교· 침례교보다는 가톨릭과 교리가 훨씬 더 가깝고 호환되는 종파일 텐데..
이거 뭐 성호를 긋는 순서가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다니 이건 중세 종교 재판보다도 더 막장인 것 같다. -_-

야세노바츠 수용소는 사람을 극한까지 부려먹으면서 천천히 죽이는 시설이지, 사람을 바로 죽이는 시설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우슈비츠 같은 가스실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스타샤 놈들이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면 차라리 가스실을 구비하는 게 더 자비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 또라이들은 절대로 사람을 급소에다 총알 박아서 단번에 죽이지 않았다.
냉병기로 목을 치거나 눈알을 뽑고 사지를 짜르고, 산 채로 배를 갈라서 내장을 끄집어내거나 불지르는 등..
난징 대학살이나 캄보디아 킬링필드 이상의 잔혹한 학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했다. 게다가 아기나 어린애들한테도 이런 짓을 했다.

쟤들은 세르비아 인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뭐, 목숨이 붙어 있더라도 수용소 내부 환경이 얼마나 끔찍하고 열악했는지는.. 그건 아우슈비츠와 호각이었을 테니 더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 자세한 설명: 링크1 / 링크2

로마 가톨릭은 무려 교황청 차원에서 이런 극악무도한 만행에 대해 침묵을 넘어 은폐했으며, 우스타샤를 그저 애국 민족주의 독립운동 진영 정도로 미화해 왔다고 한다. 이건 로마 가톨릭의 엄청난 과오 흑역사가 아닐 수 없다.

4. 악당들의 최후

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나치 전범들은 다음과 같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1) 가장 먼저, 수괴인 히틀러는 자살했다. 자기는 죽으면 죽었지 베를린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못을 박았으며, 한편으로 패자 루저는 더 존재할 가치가 없다면서 주변을 몽땅 다 부수고 불지르라는 광기어린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건 자국(알베르트 슈페어)이든 프랑스 점령지이든(콜티츠 장군) 해당 나와바리 담당자들이 히틀러의 지시를 거부하고 이행하지 않았다.

(2) 히틀러의 심복 나팔수였던 요제프 괴벨스도 순사라도 하듯이 자살했는데.. 히 총통님이 없는 세상에서는 인생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본인만 자살한 게 아니라 가족을 몽땅 동반 살해했다!!
출산이 애국이라면서 애를 6명이나 낳고 애들 이름도 다 히틀러를 따라 ㅎ(H)로 시작하게 지었는데.. 그 애들을 다 수면제와 독약을 먹여서 죽인 것이다. 저 사람은 정말 상상 이상의 또라이 미치광이였다.

(3) 하인리히 힘러는 친위대 SS와 게슈타포 비밀경찰의 수장이었다. 이 사람은 체포되고 나서 자기 정체가 드러나게 되자.. 즉시 청산가리 앰플을 깨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다. 재판 받고 교수대에 서는 비굴한 꼴은 어떻게든 안 당하려고 발악을 했다.

(4)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도 힘러 못지않은 SS와 게슈타포 쪽의 고위 간부였으며, 유대인들을 국가 차원에서 씨를 말려 버려야 한다고 결정한 주동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나치 독일이 점령했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총독의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능력이 좋았는지 겨우 30대 나이에 엄청난 고관대작이 됐으나..

체코 망명정부와 영국이 손잡고 일으킨 암살 작전에 말려들어 밥숟가락을 놓았다. 수류탄 파편을 많이 맞은 것이 패혈증을 일으켰고, 이것 때문에 1주일 뒤에 쇼크사한 것이다. 1942년 6월, 아직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비교적 일찍 죽었다.

저 사람은 윤 봉길 의사의 의거로 인해 죽은 일본군 장성인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처지가 비슷해 보인다.
후자의 경우, 폭탄 파편을 맞은 당일에는 멀쩡해 보였지만 100여 군데나 생긴 상처에서 패혈증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결국 당일로부터 딱 1개월 뒤에 사망했다.

(5) 아돌프 아이히만은 수뇌부인 저 하이드리히의 명령(전략)을 정말 성실히 수행하면서 유대인들을 아주 조직적으로 대량 학살한 실무(전술) 책임자였다. 전자가 기업 임원· 회장급이라면 후자는 공장장 정도 되는 듯?
이 사람은 나치의 패망 이후에 자기 신분을 숨기고 아르헨티나로 도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배신자의 밀고가 아니라 아들이 입을 잘못 놀리는 바람에 인생이 꼬였다.

장남이 여친에게 자기 아버지 자랑을 실컷 했기 때문이다. 여친이 유대인 출신이며 심지어 여친의 부친부터가 당장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걸 정말 까~~맣게 모르고 말이다..;;;
아이히만 저 인간은 자기 행적을 전혀 후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떠벌려 왔으며, 자신의 반유대주의 신념을 전수받은 후학을 양성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기 아들에게는 평소에 밥상머리 세뇌 교육을 어떻게 했겠는가? 이건 100% 자업자득이었다.

여친은 속으로 기겁을 하면서 남친을 신고했고, 이 소식은 여친 쪽의 아버지를 거쳐 무려 이스라엘 총리의 귀에도 들어갔다. 결국 모사드 요원까지 동원해서 1960년 5월, 현지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를 기어이 이스라엘에서 재판에 넘기고 처형해 버렸다.

쟤들은 유대인 학살 전범이라면 그야말로 지옥까지 쫓아가서라도 제거하려고 눈에 불을 켠 복수귀 상태였다. 감정 같아서는 모사드 요원이 곧바로 그놈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고문해서 한 100번은 죽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허나, 최고 상관인 총리가 절~~대로 그러지 말고 놈을 멀쩡하게 생포해서 반드시 재판정에 보내라고 엄명을 내렸다. 사적 보복을 그렇게 간신히 막았다.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은 무려 9개월이나 걸렸으며, 주요 장면이 전파를 타고 전세계로 모조리 중계됐다고 한다. 이 사람의 배배 꼬이고 뒤틀린 심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아이고 아이히만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 암튼 이 사람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피해 갔지만 훗날 잡혀서 더 험한 꼴을 당하고 이스라엘 법정으로부터 단죄를 받은 유일한 사람이다.

(6) 다음으로 '요제프 멩겔레'. 이 사람은 일본 731 부대의 사령관이었던 '이시이 시로'의 독일판이었다.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을 마루타 취급하면서 자기 꼴리는 대로 온갖 잔혹한 생체실험을 벌였던 인간백정인데.. 전후엔 그 아이히만처럼 남미로 도주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안 잡히고 천수를 누렸다!!

기록에 따르면 1970년대 말에 브라질에서 수영을 하던 중에 심장마비로 60대 후반의 나이에 급사했다고 하는데.. 행적에 비하면 정말 편안한 최후였다.
다만, 이 사람도 아이히만이 덜컥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정말 엄청나게 쫄고 겁 먹고 멘탈이 약해지기는 했었다고 한다.

참고로, 생체실험에 관여한 나치의 악마 의사는 멩겔레 말고도 '카를 브란트'라든가 '카를 게프하르트' 같은 사람이 더 있었다. 얘들은 다행히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회부돼서 사형 판결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7) 하인리히 뮐러는 히틀러 친위대의 간부에다 게슈타포 국장을 역임했던 나치의 핵심 간부였다.
저 아돌프 아이히만의 상관이었으며.. "아이히만 같은 일꾼이 우리 독일에 50명만 더 있었으면 유대인들은 금세 씨가 말랐을 것이고 우리나라가 전쟁을 이겼을 것이다~"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독일의 패전이 임박했고 히틀러가 자살한 직후~~ 싹 증발해 버렸다. 나치 고위 간부 전범들 중에 유일하게 '실종'돼서 전후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남미로 도망쳐서 완벽하게 잠적하고 자연사했다기보다는 아마 실종 당시에 폭격을 맞아서 죽고 시체가 사라진 게 아닐까 싶다.
참고로 나치당의 우두머리에다 히틀러의 개인 비서까지 역임했던 '마르틴 보어만'도 베를린 포위전 이후로 실종 상태였다.. 허나, 이 사람은 1972년에야 시신이 발견되면서 사망이 확인됐다.

(8) 헤르만 괴링은.. 히틀러빠 광신도에 유대인 혐오로 똘똘 뭉친 뚱뚱한 아저씨였다. 자세한 행적은 잘 기억이 안 난다만 이 아저씨는 체포돼서 전범 재판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총살형을 내려 달라는 요청이 소련 측에 의해 묵살되고 교수형이라는 통보를 받자 매우 실망=_=, 낙담하여 몰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이라는 점은 힘러와 동일하지만, 그 타이밍이 다르다.
한편,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 출신인 '루돌프 회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동일한 수용소에 세팅된 전용 교수대에서 처형 당했다.

(9) 회스 말고 '루돌프 헤스'는..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받아 적은 이력이 있을 정도로 히 총통의 오래된 최측근이었다. 허나, 1941년에 일찌감치 연합군에게 체포돼 버리는 바람에 전쟁 중에 대놓고 사고를 치고 전쟁 범죄를 저지른 건 없었다. 그는 이 점이 감안되어 전범 재판에서 사형까지는 안 당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다른 여러 나치 전범들과 함께 '슈판다우 교도소'에 수감됐는데.. 어쩌다 보니 무려 1980년대까지 살아남으면서 넓은 교도소를 혼자 전세 내어 사는 처지가 돼 버렸다. 다른 죄수들은 만기 출소하거나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죽거나 가석방 됐는데 이 사람만 그 어떤 조건에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나치에게 제일 치를 떨던 소련조차도 "쟤는 이제 그만 풀어 주자"에 동의할 지경이 됐으나.. 그는 1987년에 무려 93세의 나이로 굳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사람이 죽으면서 슈판다우 교도소는 통째로 철거됐다.
나치 전범들 중에 이런 식으로 감옥에서 죽은 사람은 헤스가 유일했다.

5. 뒤끝

(1) 독소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됐던 1941년 11월, 나치 독일은 흑해에서 소련의 병원선 아르메니아 호를 폭격기로 공격해서 격침시켰다. 배에는 5000명이 넘는 피난민과 상이 군인들이 타고 있었는데 모조리 몰살당해 버렸고, 생존자는 단 8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 뒤 전쟁이 끝나 가던 1945년 1월에는 반대로 소련 잠수함이 독일의 유람선 ‘빌헬름 구스타프 호’를 어뢰로 공격해서 격침시켰다. 이때는 무려 1만 명이 넘는 피난민과 상이 군인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 중 9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케이스 모두 엄밀히 따지면 군함이 병원선이나 민간 선박을 공격한 것이기 때문에 제네바 협약 위반이고 전쟁범죄였다. 특히 빌헬름 구스타프의 경우, 이건 인류 역사상 단일 선박에서 사람이 제일 많이 죽은 침몰 사고였다. 우리나라의 우키시마 호? 대한항공 007 격추? 그것들 희생자를 아득히 능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자기 배를 격침시킨 소련에다가 항의하고 따질 수 없었다. 자기들이 먼저 한 짓이 정상적인 짓이 아니었으니까.. 공론화하지 않고 그냥 쉬쉬 하고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2)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에.. 홀로코스트에서 겨우 살아남은 유대인들, 가족과 친지를 나치에 의해 잃은 사람들은 당연히 독일이 죽이고 싶도록 미울 수밖에 없었다. 이건 한국인들이 해방 직후에 가졌을 반일 감정보다도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트라우마로 인해 더 극단적인 신념을 갖게 됐다. 나치 전범 윗대가리 겨우 수십 명만 감방에 가두거나 죽이는 걸로는 텍도 없으니 니들도 우리와 똑같이 죽어 보라고.. 독일놈들이 유대인을 수용소에서 600만 명 죽였으니까 이젠 우리도 독일인들을 신분 지위 불문하고 똑같이 600만 명 죽여야 직성이 풀리겠다고..
그걸 시도했던 유대인이 있었다. ㄷㄷㄷ

이들은 ‘나캄’(히브리어로 ‘복수’!!)이라는 이름의 비밀 결사를 만들어서 독일 내부의 상수원에다가 독을 타고 수용소에 납품되는 식료품에다가 독을 집어넣는 식으로 공작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공작이 허술했는지 금세 잡혔다.

독일 경찰은 나캄 조직원들을 체포하기는 했지만.. 이제 막 나치가 패망했던 와중에 이 사람들을 도저히 단죄하고 처벌할 수 없었다. 저들의 원한과 빡침을 생각하면 그들을 잘못 건드렸다간 독일의 이미지만 더 나빠졌을 것이다.
그러니 독일 측에서는 그들을 기소하지 않고 이건 서로 없던 일로 하고 유야무야 넘겼다.;

이상이다.
원래 연합국 진영에서는 일본이나 독일 같은 패전· 전범국들을 국가와 민족을 유지는 시켜 주지만 차 떼고 포 떼고 농업이나 경공업밖에 못 하는 나라로.. 앞으로 전쟁의 전 짜도 입에 담지 못하는 약소국으로 거세시키고 싶어했다. 쟤들이 워낙 크고 끔찍한 사고를 쳤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같은 연합국 진영에서 미국과 소련이 이념 차이로 갈라졌다. 그러니 미국은 공산주의를 견제하려는 속셈으로 이런 전범국들을 슬그머니 다시 소생시켜 주게 됐다. 나라가 너무 못 살고 백성들이 굶주리면 사상적으로도 그만큼 취약해지며, 적화되기가 상대적으로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저런 나라들은 전쟁에서 지고 인프라가 다 파괴됐어도, 고급 인재들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노하우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금방 다시 일어나서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일본은 전쟁 폐허 상태이던 1947년에 최초로 노벨 상 수상자까지 배출했고 말이다.

뭐, 일본은 헌법에다가 군대 미보유와 전쟁 포기를 명시했고, 독일은 탈나치화를 워낙 빡세게 했더니 통상적인 애국심 민족주의조차 없어지고 밍밍해져서 난리일 지경...이다.
특히 이 두 나라들은 핵 무장은 일~~절 안 하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 걔들이 전범국 주제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핵을 개발하겠다고 깝친다면.. 이건 국제 어그로를 제대로 끌면서 진짜 작살이 났을 테니 말이다.;;

오늘날의 UN 상임이사국을 제외하면 오히려 인도, 중국 등 신흥 강국들, 2차 대전 이전에는 식민 지배도 받고 약골이었던 나라들이 핵을 보유하려 난리를 치는 편이다.
그 대신 독일은 몰라도 일본은 상임이사국 자리를 아주 오래 전부터 탐내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피해자인 한국과 중국의 견제와 뒤끝 때문에 그건 쉽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11 08:35 2025/07/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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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1933년부터 1945년은 뭐랄까 광란과 암울의 시기였다. 세계적인 경제 호황 황금기였던 1920년대가 대공황이라는 날벼락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때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의 치욕을 갚으려고, 일본은 나락으로 가는 경제를 살리려고 군국주의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국부를 창출할 방법이 없으니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고 빼앗고 식민지를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일본은 딱 저 무렵에 상하이 사변을 일으키고 만주국을 세웠으며..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해군 군축 규제를 생까기 시작했다.
독일은 권력이 나치에게 완전히 넘어갔으며, 히틀러가 총통 자리에 올랐다. 히틀러는 주변 강대국들이 머뭇거리는 동안(1차 대전의 트라우마 때문에..) 체코나 오스트리아 같은 이웃 나라들을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고,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런 폭주가 나중엔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 독소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을 만들어냈다. 얘들은 명분 없는 침략 전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점령지에서 정말 반인륜적이고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고, 그러면서 결국 연합국에게 지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빼박 악의 축으로 전락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딱 정확하게 이 기간 동안 재임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시절에 있었던 일들 중에 본인 기억에 인상깊게 남아있는 것을 몇 가지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폴란드, 퀴리 부인

우리나라는 위로는 중국, 아래로는 일본에 치이면서 19세기 말~20세기 초의 현대사가 불운하고 기구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폴란드가 역사적으로 처지가 한국과 매우 비슷했다고 한다.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껴서 19~20세기 사이에 양쪽으로부터 번갈아가며 지배 받고, 걔네들 마음대로 영토가 분할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장 2차 세계 대전부터가 바로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는 걸로 시작됐었다.
오죽했으면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폴란드 땅에 만들어졌다! 독일 본토가 아니다.
그러니 나중에 독일이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고 점령지를 상실했을 때는 거기 수감자들을 점점 더 독일 본토에 가까이 있는 수용소로 이감을 해야 했다.

그랬는데.. 더 옛날 19세기 중후반엔 폴란드가 러시아 제국의 식민지였다.
마리 퀴리(퀴리 부인)가 그 시기에 이 지역 출신이었다.

아마 중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였던가..?? 마리 퀴리의 학창 시절 일화가 실려 있었다.
러시아에서 불시에 학교 시찰을 보내서 수업 중인 선생한테 "이 교실에서 제일 똘똘한 애를 하나 지목하시오. 당신이 학생들을 우리 교육방침대로 잘 가르치고 있나 확인해 보게" 대뜸 이런 요구를 했다.

애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얼어붙어서 'ㄷㄷㄷㄷㄷ 제발 저는 지목하지 마세요!!!ㅠㅠㅠ' 이러던 와중에 넘사벽급 우등생 모범생이던 마리 퀴리가 답정너 지목됐다.
교과 내용 질문뿐만 아니라 국가관 사상 검증 질문까지 모든 답변이 러시아어로 막힘없이 술술..

러시아 장학사인지 누군지는 아주 흡족해하며 떠났다. 허나, 그렇게 위기를 넘긴 뒤에 그 선생과 마리는 부둥켜안고 서럽게 엉엉 울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비슷한 시기의 "마지막 수업" 소설과 비슷한 분위기다.

햐, 러시아에 나치에.. 이런 지경이었으니 훗날 동아시아에서 중-일 전쟁이 터졌던 것과 비슷한 구도로 독-소 전쟁이 터졌나 싶기도 하다.
그 사이에 낑겼던 폴란드는 2차 대전 피해를 극심하게 당했다. 뭐, 마리 퀴리는 프랑스 과학자와 결혼해서 프랑스로 귀화했고, 2차 대전이 터지기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험한 꼴을 보지는 않았다.

마리 퀴리가 그냥 타고난 천재이고 독한 공부기계 괴수였다고만 말하는 건 고인에 대한 모독일 거다.
이 사람은 약소민족 차별과 설움, 학계에서 여자라는 성차별 유리천장, 하루에 사과 하나 빵 한 조각밖에 못 먹을 정도의 가난과 굶주림..

그야말로 신체 장애만 빼고 어지간한 역경과 핸디캡을 다 겪었는데 이걸 오로지 실력과 노력만으로 다 극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방사성 원소 라듐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퀴리 부인의 둘째딸이 "어머니, 아버지, 언니, 내 남편.. 다 노벨 상 받았는데 나만 못 받았으니 나는 가문의 수치입니다" 이런 정신나간(...) 소리를 늘어놓을 정도였는데.. 그런 가문이 저런 배경 속에서 만들어졌다.

마리 퀴리는 독일의 그 유명한 과학자.. 공기로 빵을 만든 과학자, 하지만 동족을 죽이는 독가스의 개발에도 참여했던 과학자 '프리츠 하버'와 생년 몰년이 거의 같은 동갑내기였다. 암모니아를 인공 합성한 거나, 방사성 원소를 처음으로 발견한 거나.. 다 비슷하게 넘사벽이었다.

2. 연설과 선동의 천재

꼭 과학 쪽에만 천재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소파 방 정환 선생은 동화 구연의 천재였다.
이 사람이 감방 안에서도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면 동료 죄수들은 물론, 밖의 간수들도 실실 쪼개거나 눈물 짰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진다.
옛날이 지금보다 오락거리가 없고 신파가 더 잘 통하는 시절이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저건 비범한 능력이었음이 틀림없다.

근데 히틀러는.. 연설· 웅변의 천재였다.
"비겁하게 팩트 따위 들이대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날조와 선동으로 승부하자!! 대중들에게 막연한 공포와 적개심을 팍팍 조장하자!"의 훌륭한 모범을 보였다.

"여러분, 살기 힘드시죠? 우리 위대한 게르만 민족이 국력이 부족해서 전쟁에서 진 게 아닙니다.
우리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거, 알고 보면 이게 다~~~ 노뭏... 아니 유대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배신자 쥐새끼들로부터 비열하게 뒤에서 총질을 당했기 때문에 졌을 뿐입니다!!"
이 말을 눈짓 손짓 총동원해서 고래고래 고함 치듯이 외치니까 다들 입 헤 벌렸다.

히틀러는 쿠데타(뮌헨 맥주홀 폭동)가 실패하고 붙잡혔는데, 재판정에서도 연기까지 가미해서 이렇게 피 끓는 호소를 했댄다.
"이러쿵저러쿵.. 그러니 존경하는 판사님, 제 눈을 똑바로 보십시오. 저에게 죄가 있다면 내 나라 내 민족을 사랑해서 국민의 권리를 지키려고 싸운 죄밖에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말빨이 좋았는지, 저 호소에 법정 방청석에서는 "옳소!"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오고 검사와 판사까지 정신줄을 놔 버렸댄다.
"응..?? 여기서는 우리가 피고인을 심문하고 판결을 내려야 되는데.. 왜 반대로 우리가 피고인한테서 연설을 잔뜩 듣고 있는 거지..???? 병신 같지만 아주 멋있는걸? 우리가 설득 당하겠어?"

그 결과, 히틀러는 내란 정치범으로 금고 5년이 나오긴 했지만.. 책상 있고 침대 있는 넓은 독방에서 외부인 접견도 자유롭게 하면서 진짜 편하게 잘 쉬었다. 최소한의 형식적인 솜방망이 처벌만 받다가 겨우 13개월 만에 석방됐다.

그 동안 담당 간수가 "저 같은 미물이 감히 선생님을 곁에서 모시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이랬다. -_-;; 히틀러는 애국자 VIP 양심수로 예우받으면서 이 전과가 정치 커리어에서 커다란 플러스로 추가됐다.;;
울나라로 치면 안 두희를 살해한 박 기서 씨가 받았던 대우와 비슷했다. 저 사람도 살인죄 5년을 최대한 감경해서 3년형이 나왔지만.. 17개월 남짓 만에 삼일절 특사로 석방됐으니 말이다.

히틀러의 선동 기술은 그야말로 악마의 나팔수였던 괴벨스의 도움이 합쳐져서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냈다.
미국은 나라가 부유하고 잘 살다 보니 1920년대에 이미 중산층 서민들이 자가용을 굴리고 라디오도 갖고 있었다고 하던데.. 독일에서는 국민들을 히틀러 연설로 세뇌시키려고 저가형 '국민라디오'를 저렴하게 찍어내서 뿌렸다. 주파수는 특정 채널로 답정너 고정돼 있었고..

히틀러를 유대인 학살 같은 죄악을 빼고 평범하게 정치인, 군인(패배하긴 했지만)으로서만 생각하면 뽀대나기는 한다.
한자 문화권도 아닌 동네에서 웬 卍짜를 심볼로 쓴 것도 그 당시엔 꽤 참신한 디자인이었을 것이고, 나치 SS 군복이 일본군 군복보다야 비주얼이 멋있는 건 사실이니까. =_=;;;

히틀러의 종교관은 김 일성의 종교관과 비슷한 유형의 떡밥인 것 같다.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결국 개인 숭배로 빠지고 이상한 쪽으로 흑화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히틀러는 영화 배우 찰리 채플린과 생년월일이 겨우 4일밖에 차이 나지 않는 완전 동갑내기였다. 찰리 채플린은 나치 독일을 풍자하는 영화에서 히틀러 역을 맡아서 연기를 했으며, 히틀러 역시 그 영화를 보기도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08 08:35 2025/07/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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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 승만 할배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으로서 0에서 1을 만든 거인 위인 초인인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20세기 초 젊은 시절에 가츠라 테프트 밀약을 당하는 걸(조선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일제 식민지가 승인됨) 직접 겪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로부터 반세기 뒤에 자기가 대통령이 됐을 때는 미국이 울나라를 버리고 싶어도 못 버리게 나라 틀을 짰다.

생각을 해 보셔, 해방 직후부터 용산에 주한 미군 기지가 있었으면 6· 25 당시에 겨우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됐겠냐?
친서방, 시장 경제 자유 민주주의, 농지 개혁, 독도 평화선, 주한미군, 반공포로 석방, 한미 상호방위조약, 학생들한테도 민주주의 교육, 국비 유학 장학생 양성..
폐허 속에 붕괴 직전이던 집을 정말 초인적인 인맥 빽 동원해서 무너질 일이 없게는 만들어 놨다.

뭐, 큰 고비를 넘긴 뒤, 인의 장막 속에서 서서히 자기과시와 흑화 조짐이 보인 것은 사실이다.
곳곳에 할배 동상이 세워졌다. 1950년대 후반 몇 년간은 3월 26일인가 할배 탄신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다. 지폐에 할배 얼굴은 진작부터 들어가 있었고.
우리나라 역사상 생존 현직 대통령이 이 정도로 라이브로 떠받들어졌던 건 저 1공 시절이 유일 전무후무하다.

그래도 이때는 한국인들이 대통령이란 걸 처음으로 경험해 보고, 조선 왕정 시대와 일제 시대의 관념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도 꼴랑 10년 남짓이었다.
할배는 조선 황실을 그렇게도 싫어하고 박대했는데 그래도 늘그막에 자기가 왕 같은 대접은 좀 받고 싶어한 것 같다. 그러니 할배 주위에 아부꾼 간신배들도 끊이지 않았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배는 잘못한 것보다 잘한 것이 압도적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할배가 진짜로 악의적인 독재자였으면 애초에 젊은 애들한테 민주주의 교육을 안 시켰을 것이다. 4 19 따위는 그 시절 북괴나 동구권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관총과 탱크로 유혈진압 하면 그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내가 긴 말 하지는 않겠지만, 리 승만이 악의적인 분단의 원흉이라니(!!) 친일파 득세 원흉이라니, 리 승만 대신 김 구만 대통령 됐으면.. 그거는 정말 일고의 가치가 없는 소리이다.

2.
자, 저렇게 리 승만 할배는 항일 독립운동으로나 훗날 울나라 초대 대통령으로나 워낙 큰 족적을 많이 남겼다. 공도 있고 과도 있으며, 그거 갖고 호불호도 많이 갈리는 편이다. 과는 공에 비하면 그야말로 자릿수가 다를 정도로 쨉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아, 오해하지 말라. 리 승만이 정치인으로서 실책을 저지르고 잘못한 것이 작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잘한 것이 정말 너무 넘사벽급으로 엄청나다는 말을 하는 것일 뿐이다.
디즈니 뮬란의 끝부분 대사처럼 말이다. "뮬란, 자네는 제멋대로 가출해서 입대해서 자기 상관을 속이고 궁궐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온갖 사고를 치고는.. 우리 국가와 민족을 구해냈다" 할배의 공과 과가 이런 관계라는 얘기다.)

이런 할배에 비해 서 재필은 그 정도 임팩트가 없어 보인다. 해방 후에 국내에서 정치를 하지를 않았으니 실책이나 악행, 과오를 깔 것도 없다.
그러니 서 재필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그냥 미쿡인이었음. 한국어도 다 까먹고 고국과 동족을 깔보고 무시했음. 미국으로 돌아가서 지 한몸 편하게 잘 살았음. 친일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애국애족 한 것도 아님.”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무덤에 누워 있던 서 재필이 저 말을 들으면 벌떡 일어나서 “뭐가 어쩌고 저째?” 하면서 불같이 화를 내지 싶다. 그 사람이 왜 미국인 행세를 했는지 생각은 해 보셨는가?

서 재필은 20세 청년 나이로 벌였던 갑신정변이 실패하는 바람에 역적으로 몰려서 정말 참혹한 멸문지화를 당했던 사람이다. 자기 부모, 와이프, 심지어 자기 아들, 양아버지, 형.. 집안이 몽땅 싸그리 몰살당했다. 처형, 자결, 노비로 강등..

우리의 고종은 갑신정변 잔당들을 해외로 자객까지 보내서 집요하게 제거했다. 가령, 김 옥균은 중국 상하이에서 피살당한 뒤, 목이 짤리고 머리가 한양 시내에 내걸렸다. (시체를 방부 처리해서 한국으로 운구해 와서는 일부러 저런 짓을)
서 재필은 목숨 부지하려고 일본을 거쳐서 미국까지 도망치게 됐다. 이 모든 게 무슨 고대 근대 중세도 아니고, 1880년대에 구한말 한반도 땅에서 벌어졌다!!

서양에서는 아예 왕을 암살한 반역범이라 해도 가족한테까지 저런 보복을 하지는 않았다. 저 때로부터 수백 년 전에도 말이다. 당사자야 사지 찢기고 내장 끄집어내진 채 죽었을지언정, 가족은 추방이나 신분세탁 정도로 끝났다. 한 마디로 조선이 미개했거나 최소한 고종이 엄청난 암군 폭군이었다. (+ 민씨 일가도)

서 재필은 영어의 영 짜도 모르던 상태에서 인종차별도 쩔던 미국 한복판에 알거지 상태로 내던져졌다. 그러니 생존하려면 이를 악물고 정말 미칠 듯이 주경야독 공부, 공부밖에 할 게 없었다.
결국 그는 만학도 신분으로 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졸업생 대표 연설), 미국 시민권을 받고 거기서 의대를 나와서 의사까지 됐다! 박 정희가 신분 상승을 위해 외국 나가서 만주군 장교가 됐다면, 서 재필은 더 먼 외국에 나가서 저렇게 출세한 것이다.

그는 미국 간 지 12년 만에 성경의 요셉과 비슷한 급으로 신분이 바뀌어서 조선 땅에 돌아오게 됐다. 독립협회 세워서 자기 고국을 청나라 간섭 없는 나라, 미국 같은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춘 나라로 만들려고 말이다.

이런 그가 자기 가족을 절멸시켜 버린 애증의 고국에서 “헤이, my name is 필립 제이슨. // 오우 노!! 코리아는 이래서 노 답!! ㅉㅉㅉ” 이렇게 미국인 행세를 한 거는 정말 정말 소심한 복수이자 귀여운 애교인 거 같은데 말이다. 미국인 행세를 해야 자기가 미국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고 남들이 자기를 함부로 해코지를 못 하지 않겠는가?

그는 진짜로 자기 고국이 싫어졌으면 박 중양처럼 신념형 친일파가 됐거나, 미국에 틀어박혀서 평생 병원이나 경영하면서 떵떵거리며 살았을 것이다. 미쳤다고 현실의 서재필처럼 살았겠냐?
정말 살다 살다 별 희한한 소릴 듣는다.

더 코미디 같은 건.. 이런 서 재필조차도 리 승만의 업적을 가리고 존재를 지우는 대타 용도로는 잘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_=
왜, 미국에 세계 각국 영사관에는 각 나라의 국부들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기에도 리 할배 대신 서 재필 동상이 있는 식으로 말이다. (영화 건국전쟁 참조) 정말 썅소리 나오지 않을 수 없다.

3.
할배는 대통령으로 선출은 합법적으로 됐는데 장기 집권을 하려고 법을 고쳤던 반면..
박 정희는 첫 시작부터가 군사정변이고 집권 중에도 유신 쿠데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치적인 사고를 제일 크게 쳤고 제일 오래 집권했지만, 그 규모에 비해서 자기를 내세우려 한 정도는 덜했다. 과묵하고 뚝심 있는 편이었다.

박 정희는 우리나라 대통령들 중에 명예박사 학위가 전혀 없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딴 요식행위 다 쓸데없다고 거절하고 안 받았다.

  • “학생 여러분은 내일의 주인공이지 지금 오늘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쓸데없이 좌익분자들한테 선동돼서 반정부 데모질 시위 하지 말고 조용히 공부나 하기 바랍니다)”
  • “내가 벌이는 일이 지금은 잔뜩 욕 먹을지 모르지만 평가는 후세가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할 겁니다. 그래도 성이 안 차면 나중에 내 무덤에다 침이나 실컷 뱉으시오.”

쿨하고 씨크하고.. 뭔가 미래를 바라보고 행동하는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저 사람은 암살당하지 않았으면 과연 언제까지 대통령을 했을까? 9대 임기가 끝나는 84년쯤에 자체개발 핵무기 공개하고 90년대 올림픽 유치까지 마치고 나서 퇴임했을까?
저 사람은 제 명에 죽었다면 자기 무덤도 성대하게 꾸미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지 싶다. 지금 같은 왕릉처럼 만들지 말라고 말이다.;;

박 정희는 영부인이 역대 제일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영부인이 소록도까지 찾아가서 위문했던 것 때문에 오죽했으면 2012년도 대선 때 그 동네가 7시 지역에서 '유일'하게 레카 표가 뭉괴 표보다 더 많았었다.

그리고 더 여담을 보태자면..
박 정희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뭔가 모욕이나 무시를 당하면 그걸 절대로 넘기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다 설욕했다.
그래서 학교 선생질 하다가 일본인 교사들로부터 무시 당하자 아예 만주국 장교가 돼서 돌아와서 걔들을 데꿀멍 시켰으며,
가난한 놈팽이라고 장인어른으로부터 무시 당하자.. 아예 나라를 뒤집어엎고 대통령이 돼서 장인으로부터 사과까지 받았다.;; 무섭지 않은가?

또 저 사람 가문은 부친, 당사자, 아들에 이르기까지 다들 아들을 40~50 나이가 돼서야 얻었다. 대를 이은 노산 가문인 게 인상적이다. 박 정희가 1917년생인데 아들 박 지만의 막내아들이 2014~2015년생이니.. 그래도 박 지만은 요즘 세상에 아들만 넷인 애국자 집안이 됐다.;;

4.
이런 박 정희에 비해.. 후임 전땅끄는 좀 더 '촐랑촐랑' 경박한 이미지인 것 같다. =_=;;
자기를 드러내고 쑈맨십 내세우는 걸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이때 '땡전뉴스'라는 게 있었다. 심지어 영부인도 남편이랑 같이 어디서 환호를 받으면 같이 손 흔들면서 화답도 했다.
"인간 전두환", "이 시대에 대한민국을 위해 준비된 답정너 대통령"...;;

박 정희 때는 5 16이나 유신 쿠데타 시절에도 언론이 이 정도로 치켜세우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ㅎㅎ 리 승만 시절과는 좀 다른 형태의 아부꾼이 등장했다.
왜, 옛날에 미국 맥아더 원수도 쑈맨십 있고 언론을 적절히 잘 구워삶던 사람이지 않았던가?
인물 사진, 풍경 사진 한 장을 언론에 내보내더라도 이 구도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를 치밀하게 계산하는 거 말이다. 전땅끄에 대해서도 그런 기질이 느껴진다.

그 과시욕이 어딜 가지 않아서 제주공항 신설 활주로 준공식에 참석하러 갈 때도 군용기까지 악천후에 무리해서 의전용으로 띄웠다가 날려먹은 적이 있었다.
땅끄는 평생 사는 방식이 그러했기 때문에 정치질의 달인이 됐고, 그 기질이 나중에는 "카메라들이 나만 좀 삐딱하게 찍어. /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한테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내한테 당해 보지도 안 해놓고"라는 희대의 멘탈갑 명대사로 이어졌다.

전땅끄는 할배나 박 정희와 달리, 직선제 선거를 통해 당선된 내력이 전혀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래도 저 사람도 권좌에 오르는 과정이 좀 에바였지, 일단 대령통으로서 재임 중의 뚝심 있는 행적은 괜찮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저 사람도 죽을 때는.. 북한 땅 보이는 전방에 이름없이 묻어 달라고 당부했었는데.. 지금 장지를 정하기는 했나? 어디 묻혔나? 참 궁금하다.

※ 나머지 여담

(1) 백범 김 구에 대해서 '킬구'라는 별명이 나도는데.. 이건 당사자의 성깔과 행적을 감안하면 마냥 터무니없는 별명이나 멸칭이 아니었다.
소싯적에 일본인 민간인을 린치해서 죽였던 ‘치하포 사건’뿐만이 아니라, 그는 임시정부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수틀리면 테러와 암살을 종종 사주했기 때문이다. 변절한 안 중근의 아들을 암살하려 했고, 김 립 같은 생사람을 밀정이라고 의심해서 죽여 버리기도 했고.. 뭔가 주토피아 땃쥐 “Ice them!” 같은 인상이다.
그랬는데 그도 결국은 암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2) 할배와 박 정희 사이에 잠깐 대통령을 했던 윤 보선은.. 권력욕이 있었는지 2공 시절 대통령을 퇴임하고도 3공 시절에 대선에 ‘또’ 출마를 했던 유일한 인물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1960~61년 사이 윤 보선 시절에 경무대가 청와대로 바뀌고, 형무소가 교도소로 용어가 바뀌었다.

(3) 할배는 “대통령은 n회 이상 중임할 수 없다. 단, 초대 대통령은 예외로 한다”라고 정말 속내가 노골적으로 뻔히 보이는 개헌을 추진했었다.
그 뒤 전땅끄는 선례가 선례인 관계로 옛날 같은 독재 장기집권을 대놓고 추진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국가원로 자문회 운운하면서 대통령 위의 ‘상황’ 자리를 만드는 데 진심이었다. 꼼수 보소.. 그 흔적이 현행 헌법에까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당연히 사문화된 지 오래다.

(4) 대한민국 역사상 범죄자를 길거리에다 조리돌림 시켜서 망신 준 건 1961년에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읍니다” 시절이 유일, 전무후무했다.
한편, 살인이 아니라 강간 절도 범죄 누범만으로 무려 ‘사형’이 집행된 건 1985년 즈음, 전땅끄 시절의 가정파괴범 처벌이 유일했다.

(5) 박 정희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빡쳐서 북괴를 상대로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일갈했었다. (내 철모와 군화를 가져오너라!)
김 영삼은 역사 바로 세우기 명목으로 중앙청 건물 철거를 강행하면서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라는 말을 남겼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27 19:35 2025/06/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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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표준의 필요성

1. 새마을호 객차

옛날에(1980~2010년대) 우리나라에 새마을호 열차가 다니던 시절에..
새마을호는 기관차 견인형과 액압변속 디젤동차형 둘로 나뉘었던 걸로 유명했다.
동차형 새마을호는 동력분산이 아니라 동력집중식이었다. 즉, 맨 앞, 맨 뒤 양쪽의 동력차만 빼면 그 사이의 객차들은 엔진 같은 게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므로 기관차 견인형 새마을호의 객차와 동차형 새마을호의 객차는 크기와 좌석이 동일하고 인테리어 동일하고 외형적으로 다를 것이 전혀 없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전원 점퍼 같은 세부 규격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호환되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새마을호 객차이지만 기관차 견인형과 동차형을 서로 섞어서 편성할 수 없었다..!

물론 새마을호 전용 동력차로부터 전력을 받는 거랑, 그런 거 없이 통상적인 기관차나 발전차로부터 전력을 받는 게 내부적인 구현 형태는 많이 다르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동차 편성은 그 특성상 유동적인 객차수 조절을 별로 염두에 두지도 않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입출력 인터페이스가 달라야 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 규격이 서로 일치하지 않은 것은 좀 아쉬운 점이다.

이제 우리나라에 동차형 새마을호와 비스무리한 외형을 유지하고 있는 열차는 경복호밖에 남지 않았다.

2. 아폴로 13호 우주선

1970년, 미국의 아폴로 13호 미션 때는 사령선에서 폭발 사고가 났다. 이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달 착륙선에 있던 전기와 산소까지 어떻게든 끌어다가 사령선의 승무원들을 생존시키고, 이들을 지구로 생환시켜야 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사령선의 이산화탄소 제거기와 달 착륙선의 이산화탄소 제거기는 서로 다른 제조사에서 만들었는지 단자 모양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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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있던 엔지니어들이 단자 모양을 어떻게든 맞추는 방법을 찾아내 알려주고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이렇게 똥줄 타는 경험을 한 뒤, 아폴로 14호부터는 두 기계는 단자 모양이 당연히 서로 호환되게끔 시정 조치가 취해졌다.

3. 일본군의 육· 해군 대립

2차 세계 대전 시절에 일본군에서는 육군이 잠수함을 만들고 해군이 탱크를 만들기도 했던 게 아주 유명하다. =_=;;;;; 서로 노하우 공유나 부품 호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전부 따로국밥..
해병대 상륙함이라든가 폭격기 같은 건 육· 해군 경계가 모호할 수도 있다고 치지만, 탱크와 잠수함은 너무했다. -_-;;;

구 일본군의 병크가 워낙 유명하긴 하지만, 컴터 업계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꽤 악독했다.;;; 구글, 애플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내부의 팀들끼리 경쟁하고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정보 공유 같은 것도 없고 같은 기능의 중복 개발이 난무했다.

현재 시스템에서 실행 내지 load돼 있는 프로세스· DLL을 조회하는 API를 Windows 9x 팀과 NT 팀이 어떤 정보 공유도 없이 제각기 따로 개발했질 않나, (dbghelp vs psapi)
Visual C++ 팀과 Windows 팀이 C 런타임 라이브러리를 오랫동안 서로 따로 만들고 놀았다.
Office 팀은 파일 대화상자를 자체적으로 따로 개발하고 심지어 한중일 IME도 따로 자체 개발했었다. (Windows XP 시절까지)

4. C++ 표준 라이브러리

하긴, C++이라는 언어도 말이다.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된 언어가 아니라 "C에다가 객체지향만 살짝 얹은 그 무언가"에서 출발했다가 차츰차츰 아주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진화된(evolved) 언어이다.

얘는 처음 등장했을 때 자기만의 표준 라이브러리, 클래스 라이브러리라는 게 없었다. 언어 차원에서 기본 제공되는 모든 오브젝트들의 뿌리 기본 클래스라는 개념도 없다. 그저 void*만이 있을 뿐;;;

1990년대 초, C++ 3.0에서 템플릿이라는 게 추가되고 나서 이를 이용한 범용적인 알고리즘/컨테이너 구현체인 STL이라는 게 알음알음 등장하고, C++98이 돼서야 라이브러리의 표준화가 논의됐을 뿐이다. 다른 객체지향 언어들과 비교했을 때 표준 라이브러리가 너무 늦게 제정됐다.

그 와중에 C++ 컴파일러가 등장하고 컴퓨팅 환경이 DOS에서 Windows로 넘어가는 동안..
수많은 라이브러리 개발사들은 그새 자기만의 문자열 클래스, 자기만의 동적 배열, 자기만의 링크드 리스트 컨테이너 등등을 만들고 또 만들게 됐다. re-invent the wheel!! 뭐, 이거는 앞에서 언급했던 마소 부서들의 중복 구현과는 성격이 좀 다른 현상이지만 말이다.

5. 전기 플러그

전기· 전자는 표준 규격이라는 게 오만 데 다 필요한 분야임이 틀림없다. (1) 가정용 교류 전기의 전압(100, 220)은 대표적인 예이고, 교류의 경우 주파수도 말이다(50 또는 60hz). 난 직류는 뭔가 민물고기(강=도시철도?) 같고 교류는 바닷물고기(광역/일반/고속철도??) 같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왔다.

(2) 전기 자체의 물리량뿐만 아니라 전원 플러그의 외형적인 모양도 어쩌다 보니 세계적으로 완전히 통합되지 못했다. 전부 합하면 10여 종이나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모든 전원 플러그에 대응 가능한 뚱뚱한 플러그가 공항 면세점이나 잡화점에서 팔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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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기 플러그는 전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옛날 100V용으로 쓰였던 각진 type A형 플러그로 220V를 넣을 수도 있고, 반대로 오늘날 220V용으로 쓰이는 동그란 돼지코 type C 플러그로 100V를 넣을 수도 있다. 그냥 정하기 나름..
그런 맥락에서 만능 플러그 역시 변압은 해 주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그건 소비자가 알아서 변압기를 구비해서 해결해야 한다.

승압을 하면서 플러그의 모양까지 딴 걸로 바꾼 건 뭐랄까 마소에서 16비트에서 32비트로 갈아탈 때 실행 파일 포맷이라는 껍데기를 NE에서 PE로 바꿔 버린 것과 비슷한 변화 같다.

6. 충전 단자

전원 플러그 다음으로는 충전기도 생각해 보자.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국내 핸드폰/피처폰들의 충전기와 짹 모양이 전부 제각각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폰을 통째로 받침대에다 찰칵 꽂아 놓고 충전했던 적도 있는데..

이제는 USB 포트가 전자기기 간의 연결뿐만 아니라 소형 전자기기들의 충전까지 책임지는 만능 단자로 등극했다. 오죽했으면 그 도도하던 아이폰까지 USB C를 도입할 지경이니까.
하지만 컴퓨터와의 접점까지는 없는 일부 저렴한 손전등이나 전동 면도기 중에는 여전히 듣보잡 고유 단자와 전용 충전기만을 고집하는 물건이 있다. 이런 것들은 차차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충전 상태를 나타내는 시각 피드백도 좀 통일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충전 중엔 적색이다가 완료 후엔 녹색.
  • 충전 중엔 녹색이다가 완료 후엔 녹색 점멸;;
  • 충전 중엔 황색이다가 완료 후엔 불빛 꺼짐
  • 충전 중엔 황색 깜빡이다가 완료 후엔 황색

옛날에 폰과 디카의 배터리를 따로 꺼내서 충전하던 시절엔.. 본인은 위의 케이스들을 전부 다 봐 왔다.;;;

7. 좌표계

국가별로 도로에 좌측/우측통행 기준이 다르다면, 컴퓨터에는 CPU 제조사에 따라서 비트 배열 순서(엔디언)가 차이가 있다. 그런데 컴퓨터에는 그것 말고 기하학적인 좌표의 취급 방향도 살짝 파편화된 구석이 있다.

2차원에서는 Y축의 양수가 아래로 가느냐, 위로 가느냐가 다르다. 아래는 글을 써 내려가는 방향과 일치하는 반면, 위는 수학 좌표계와 일치한다.
이건 뭔가 번호 다이얼(아래로)과 계산기의 숫자(위로) 배열 방향 차이와도 비슷해 보이는데..?

BMP 그래픽 파일은 위쪽(수학) 좌표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Windows에서는 원초적인 픽셀 기반의 MM_TEXT 좌표계만이 아래쪽이고, 나머지 현실 단위계와 대응하는 좌표계들은 위쪽이다. macOS 환경은 MM_TEXT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몽땅 위쪽인 걸로 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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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원을 넘어 3차원으로 가면.. XY 평면 위로 Z축의 양수가 어느 쪽으로 뻗느냐에 따라 왼손 또는 오른손 좌표계로 나뉜다. 오래된 표준 그래픽 라이브러리인 OpenGL은 오른손 좌표계이지만, 후발주자였던 DirectX는 왼손 좌표계를 채택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상이다.
자고로 어떤 기계나 컴퓨터 프로그램은 겉으로는 똑같이 동작하더라도 내부 디테일은 어떤 규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제품의 유지보수라든가, 타사 제품과의 연계를 위해서는 산업 표준을 만들어서 그걸 따라 만들게 하는 게 좋다.

컴퓨터 세계를 더 살펴보자면, 유니코드라는 게 없던 1990년대 초까지는 한글 코드조차 조합형이니 완성형이니 난립해서 문제였었다. 21세기 초까지는 동영상 코덱도 난립(1990~2000년대)했었다.
철도는 궤간이 대표적인 문제이고.. 아날로그 TV 시절에는 디지털 동영상 코덱이 아니라 아날로그 영상 신호 내부 구조가 PAL이니 NTSC니 하는 표준 규격이 있었다. 이런 걸 다 다루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니 이 글에서는 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15 19:35 2025/06/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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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력이라는 출력의 의미

1마력이라는 건 75킬로그램짜리--정확히는 질량 75kg에 지구 중력가속도가 적용된 75kgf-- 물체를 초속 1m, 즉 사람이 천천히 걷는 정도인 시속 3.6km의 속도로 들어서 위로 끌어올리는 '일률'을 말한다.
마력에 대해서 문화권별로 HP냐 PS냐 하면서 자잘한 차이가 있긴 하다. 허나, 이 글에서는 그건 논외로 하고, 미터법을 기반으로 하는 프랑스/독일 스타일 마력(PS)을 다루기로 한다.

사실, 힘이라는 건 질량을 가진 물체의 운동 속도를 변화시키는 변화량을 나타낸다. 그 힘이 축적되어서 물체가 이동하면서 일을 하며, 일률은 그 일을 단위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하는지를 나타낸다.
가벼운 물체가 신속하게 움직이거나, 무거운 물체를 그에 상응하게 천천히 움직이면 일률이 서로 비슷하게 산출될 수 있다. 그러니 힘과 일률은 비슷한 것 같지만 엄밀히 따지면 서로 관점의 차이가 있는 개념이다.

그럼 1마력은 어느 정도 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일률일까?
비만이 아닌 성인 남자 하나, 혹은 지게 하나를 꽉 차지하는 쌀 한 가마 무게가 75kg 부근이다.
이건 리어카에 실어서 사람 보행 속도로 밀거나 끄는 것도 사람 혼자서는 쉽지 않은 무게일 것이다. 그런데 이걸 붙들고 위로 끌어올리는 거라면..???? 사람의 근육으로 범접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위력임을 알 수 있다.

올림픽 역도 선수는 75kg의 2~3배에 달하는 무게의 역기를 들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바닥에서 머리 위로 2m 남짓 번쩍 들어올리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 사람이 아니라 동물 말은 이 정도 일률이 평범하게 나오는가 보다.

건강한 성인 남자가 자전거로 페달을 최대한 죽어라고 밟을 때 발이 산출하는 일률이 대체로 0.1~0.2마력 주변이라고 한다.
사람은 체중이 있으니 쎄게 밟으면 페달질 중의 토크(돌림힘)는 그냥 휘발유 승용차 엔진의 최대 토크에 근접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잠깐만 말이다.
중형차의 최대 토크가 반지름 1m짜리 회전축 기준으로 거의 20kgf가량이다. 자전거 페달 크랭크암은 20cm가 채 될까말까이니 저 기준에 맞추려면 힘을 5배 가까이 곱해 줘야 한다.

그런데 자동차 엔진은 그 힘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회전수는 사람의 자전거 페달링 회전수의 수십 배를 상회한다. 제원에 명시된 150~200마력이야 풀악셀을 밟을 때에나 나오는 최대 한계이지만, 악셀 안 밟고 공회전 아이들링 크리핑만 해도 기본이 10마력대이다.
그러니 자동차는 D 해 놓고 슬금슬금 기어가는 상태라도 힘을 절대로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저 상태로도 사람 태우고 과속방지턱쯤은 우습게 넘으며, 아주 약간의 오르막까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엔진 말고 다른 예로는..
(1) 15층 이하 건물에서 통상적인 속도로 주행하는 엘리베이터가 보통 분속 60m라고 한다. 즉, 초속 1m, 시속 3.6km인 마력의 레퍼런스 속도와 동일하다.
어떤 엘리베이터 모터의 최대출력 마력은 승차정원의 수와 얼추 비슷하며, 최소한 그와 선형적으로 비례한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는 카 자체의 무게라든가 다른 여유분도 추가되겠지만 말이다. 15인승 엘리베이터에는 20~30마력짜리 모터가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2) 통상적인 자동차 에어컨이 한여름 최대 출력(최저온?)으로 돌아갈 때 끌어다 쓰는 엔진 동력도 내가 알기로 얼추~~ 1인당 1마력꼴이다.
통계에 따르면 5인승 자동차에 들어가는 에어컨이 깎아먹는 출력 오버헤드가 3~5 마력.
그리고 40인승 이상의 대형 버스에 장착되는 에어컨이 최대 출력이 40~42마력 남짓이라니 꽤 정확하게 대응한다.

디젤 엔진에 지금처럼 커먼레일에 터보차저 같은 기술이 도입되기 전.. 옛날에는 6000~7000cc 배기량의 버스 엔진도 최대 출력이 고작 150~160마력 안팎이어서 요즘 중형 승용차보다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긴, 그때는 버스에 에어컨이 없고 천장 선풍기밖에 없었겠다만..;; 에어컨이 갓 장착됐던 시절에는 이게 차량의 성능에 주는 부담이 꽤 컸다. 에어컨을 쌩쌩 틀면 차가 오르막을 잘 못 오르고 가속이 잘 안 될 정도였다.

그런 배고픈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고속버스의 법적 정의에 "엔진 출력이 차량 총 중량 1톤 당 20마력 이상일 것"이라는 조건이 들어가 있다. 고속버스라면 그에 걸맞은 고성능 차량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생산되는 버스들은 저 조건을 당연히 아득히 충족한다. '현대 유니버스'가 차량 총중량 15톤에 엔진 최대 출력이 400마력에 달한다.

이상이다.
둘을 종합하면 엘리베이터 모터도 1인당 얼추 1마력, 에어컨의 압축기도 1인당 얼추 1마력..
여름에 에어컨을 돌려서 기온을 낮추기 위해, 머릿수 하나당 엘리베이터 타고 위로 올라가는 정도의 동력이 필요하다는 게 흥미롭다.
그리고 이건 성인 남자가 혼자 자전거 페달을 죽어라고(고속 때문이건 오르막 때문이건) 밟는 일률의 최소 10배 이상.. 보통 수십 배에 달하는 위력이라는 것 말이다.

초· 중등 학교에서 가르치는 고전역학 교육은 복잡한 식 계산도 좋지만 이 숫자들이 일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게 사람의 힘보다 얼마나 더 엄청난 힘인지, 우리 주위의 각종 기계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애들한테 일깨우는 교육이었으면 좋겠다.

대전액션 게임을 만들려면 개발자들부터가 먼저 때리고 맞는 경험을 해 보고, 철도인이라면 철-철과 아스팔트-고무의 정지 마찰력 차이와 표준궤 궤간의 길이를 몸과 느낌으로 알아야 하듯이 말이다.
열역학은 하다못해 비빔면 끓였다가 물에 담가서 식히는 것과 접목하고 말이다. (물의 엄청난 비열!!)
비행기가 이륙하는 가속을 자동차 급가속으로 경험하려면 악셀을 얼마나 밟아야 할까~~? 이런 것도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다. 아.. 자동차 운전은 애들이 경험하는 건 아니지만..;;

Posted by 사무엘

2025/06/13 08:35 2025/06/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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