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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91년, '오쓰 사건'이라고..
일본을 방문 중이었던 러시아 제국의 황태자를 대상으로 어느 정신이상 망상장애 일본인이 칼을 휘둘러 외국 국빈 암살 미수라는 엄청난 사고를 친 적이 있었다.

이때는 러일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참 전이었고 일본은 대국 러시아 앞에 넙죽 엎드리고 쩔쩔매던 시절이었다. 조선에서도 일본을 견제하려고 괜히 러시아에게 붙으려 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중에 을미사변이 1895년에..)

그랬는데.. 저 사건은 수틀리면 러시아와 일본 간에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심각한 사항이었다.
일본에서는 사태를 수습하려고 그야말로 천황부터 신민들까지 몽땅 국가적으로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메이지 천황이 직접 나서서 황태자를 문병 갔고, 전국 각지에서 "황태자님,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쾌유를 빕니다" 전보가 빗발쳤다.

가해자는 당연히 붙잡혔다.
그런데 그때 일본의 법은 "황족을 고의로 죽거나 다치게 한 자는 대역죄를 적용하여 무조건 사형에 처한다"였다. 이때 황족이란 자국의 황족을 의미했다.
러시아의 황태자는 저 법에서 가리키는 황족이 아니었다. 더구나 저 사람도 다치기만 했지 죽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 일본의 법으로는 가해자를 무기징역까지는 처해도 사형에 처할 수는 없었다.

이때 일본 정부에서는 담당 판사에게 외압을 넣어서 "우린 지금 러시아에게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 그러니 러시아 황태자도 황족으로 간주하고 어떻게든 저놈을 사형시켜라" 이렇게 명령했다.
그러나 그 당시 판사는 "우리 일본은 그렇잖아도 서구 열강에게 밀리고 무시당하는 중이다. 그런데 상황이 급하다고 사법이 그렇게 일관성 없게 누구 기분 따라 들쭉날쭉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국제 사회에서 미개한 호구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원칙대로 무기징역까지만 때렸다.

우와 이거 영국을 상대로 법을 논하면서 항변했던 청나라 임칙서를 보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저런 소신판결이 통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 국가적인 사죄 운동과 가해자의 무기징역 처분으로 만족하고 사과를 받아들였다. 일본에게 더 딴지 걸거나 보복하지는 않았다.

2.
1898년엔 이웃 조선에서 자국 국왕을 상대로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졌다.
고종은 그 옛날에 커피를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인데, 거기에 누군가가 치사량을 넘는 아편 마약을 탄 것이다.
고종은 커피잘알이어서 그런지 몇 모금 맛만 보더니 맛이 이상하다고 바로 뱉어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아들 순종은 그걸 마셔 버리는 바람에 오랫동안 끙끙 앓고 평생 후유증 장애까지 얻게 됐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최근에 국왕과 사이가 안 좋아진 신하 김 홍륙이 지목됐고, 공범도 몇 명 잡혔다.
그리고 이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는 함 태영이라고.. 그야말로 구한말, 일제 시대, 대한민국을 두루 아우르며 법조인, 목사, 교사, 부통령까지 역임했던 젊은 똘똘이 천재 지식인이었다.

그는 자기가 공부했던 법리로 이 사건을 조사해 보니, 김 홍륙이 진짜로 암살에 개입했는지 증거조차 아직 불확실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역모는커녕 무죄 선고를 하려 했다.
고종은 노발대발하여 당장 저놈을 역적으로 몰아서 사형에 처하라고 외압을 넣었으나.. 함 태영은 자기 소신을 고집했다. 그러자 고종은 그 사람을 짜르고 다른 판사를 동원해서 기어이 김 홍륙 일당을 사형에 처해 버렸다.

뭐, 왕족을 암살하려 한 놈이니 당사자를 사형에 처하는 건 그 어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친다. 아까 그 일본법 기준에도 완벽히 부합한다.
근데 이번에는 그냥 죽인 게 아니라 시체를 공개 전시해서 백성들이 다 뜯고 찢게 했으며, 마누라를 포함한 가족까지 몽땅 감옥에 가둬 옥사시키거나 유배형에 처했다.

자, 1898년이면 오쓰 사건보다 나중이고 조선에서 갑오개혁도 일어난 뒤였다. 반역죄인이라도 연좌제 내지 죽은 시체한테 소급 처벌은 한참 전의 '영조' 때부터 이미 폐지· 금지 상태였다. 그랬는데 고종은 그야말로 감정적인 괘씸죄에 의거한 잔인한 형벌과 초법적인 보복을 마구 남발했었다. 서 재필, 김 옥균 때도 그랬고, 김 홍집 때도 그랬고..

이 사건은 당연히 국제적으로 지탄받았다. 일본이 남의 나라 궁궐에 무단으로 쳐들어가서 왕후를 살해한 만행이 세계에 알려져서 규탄받고 이미지가 깎이긴 했지만, 그 피해 당사자 국가의 내부에서 미개한 짓이 벌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 외교관들이 이 소식을 자국으로 타전했다.

뭐, 변명이나 참작의 여지는 있다. 고종은 참 좋지 않은 시국에 힘겹게 왕 노릇 하느라 정신 건강이 좋을래야 좋을 수 없던 상태였다.
안에서는 반역 쿠데타에 암살/독살 음모, 밖에서는 외세 침략..;; 오죽했으면 남의 나라 대사관으로 도망가서 목숨을 구걸할 정도였으니.. 자국의 사법과 치안이 개판이기 때문에 군주가 오히려 자국의 치외법권이고 외국 법이 통용되는 곳으로 도피한 것이다.

이러니 고종은 노이로제 수준으로 극도로 예민해졌으며.. 망상에 빠져 아무나 막 의심하고 죽이고, 누구를 사형에 처할 때 곱게 죽이지 않고.. 뭔가 궁예나 히틀러나 스탈린의 말년 같은 모습으로 얼마든지 빠질 법했다.

게다가 민씨 집안으로부터의 부추김도 있었다. 뭐, 고종은 실제로는 히틀러나 스탈린 정도로 깽판을 칠 권력 자체가 없으니 그런 스케일로 깽판 치지는 않(못)았지만 말이다.
고종에 대해서 예로부터 저런 독살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1919년에 고종이 진짜 죽었을 때는.. 일제에 의한 독살 의혹 루머가 쫙 퍼질 만도 했다. (진실은 저 너머에..)

그리고 원인이야 어쨌든, 그의 이런 행태는 "일본 정도면 조선을 지배해도 되겠다"라는 국제적인 통념에 기여를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해방 후에 "우리는 군주제는 절대 다시 하지 말고 민주공화정으로 가야 한다" 이런 생각을 식자층들이 하게 됐다.

참고로, 훗날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대 대머리 땅끄 대통령도 사법부에 외압을 넣고 개입한 적이 있었다. 뭐 이런 것들..

  • "대통령 각하께서 대국민담화를 해 버렸으니 국민 앞에서 약속을 지켜야 된다. 이 윤상 군의 유괴살인범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사형에 처해라"
  • "여성들한테 독약 먹이고는 죽어가는 걸 스너프 사진을 찍었다고? 아이고 88 서울 올림픽이 코앞인데 세계가 지켜보는 와중에 동네 창피하다. 더 조사할 것도 없고 그놈은 바로 사형 때려~ 이건 명령이다"

하지만 이건 정치범이 아니라, 증거 확실하고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뒈져야 마땅한 흉악범을 처단한 것이어서 구한말 고종과는 상황이 다르다. 시체를 공개적으로 잔인하게 능멸한 것도 아니니.. 지금과 비교하면 오히려 정의를 구현한 사이다 같은 구석도 있었다. ㄲㄲㄲㄲㄲ

3.
자, 원래는 글을 여기까지만 쓰고 말려고 했는데, 고종과 관련하여 또 하나 흥미로운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있었다. 바로 1896년의 치하포 사건..!!

이건 따지고 보면 조선 땅에서 무고한 일본인이 아무 면식도 없는 조선인에게 살해당한 테러이자 강력 범죄였다.
하지만 이건 을미사변 때문에 그렇잖아도 반일 감정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비록 애매한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표면적인 명분은 민비 암살에 대한 보복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일본도 이때는 이걸 명분으로 대놓고 무력 보복을 하지는 않고 몸을 사렸다. 총칼 대신 외교부가 개입해서 "범인을 꼭 체포하고 사형에 처하도록 해라~ 사건 조사를 우리가 하겠다" 이렇게 점잖게만(?) 압박을 넣었다.

이때 고종은.. 일본의 요구에 호락호락 따르지 않고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난 김 구가 일본인을 죽이고 나서 거의 직후에 현행범으로 체포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조선 정부는 범인을 색출하고 체포하라는 일본 측의 요구에도 일부러 영혼 없이 세월아 네월아 늑장 대응하다가.. 사건 발생 무려 3개월 후에야 그를 체포했다.

일본 측:, "너네 법을 보니 살인범은 참수를 하게 돼 있네? 저놈을 반드시 참수해 주시오"
조선 왈: "ㄴㄴ 우리도 근대화 돼서 갑오개혁 이후로 사형은 교수형으로 집행한다. 작년에 동학의 수괴 전 봉준도 교수형이었으니 김 창수(김 구의 옛 이름) 역시 교수형에 처하겠음."

이래 놓고는 김 구를 감금한 채로 또 딜레이를 시전했으며.. 고의에 가깝게 죄수들을 아주 허술하게 관리했다. 결국은 탈옥이라는 명목으로 김 구를 사실상 석방 방면해 버렸다.
글쎄, 이때 서울-인천 간에 전화가 갓 개통돼서 국왕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사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 명령을 전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들 아시다시피 백범일지에는 워낙 이빨 주작도 많아서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고종은 김 구의 처분에 관해서는 절대로 일본 말을 호락호락 듣지 않음으로써 을미사변에 대해 아주 쪼잔 소심하게 저항하고 뒤끝을 부리긴 한 것으로 보인다. "니들이 민비 암살범(미우라 고로)을 대놓고 감싸고 풀어 줬어? 그럼 우리도 일본인을 죽인 조선 신민을 감싸 줄 거다"랄까?
이것도 위의 1, 2번과 더불어 생각할 점인 것 같다. 오쓰 사건, 독다 사건에 이어 치하포 사건이라니..!!

이렇듯, 김 구는 2년 가까이 해주와 인천 감옥에서 빵살이를 하다가 탈옥을 했다.
참고로 이 승만은 조금 나중인 1899년에 고종 폐위 음모에 휘말려서 5년 반이 넘게 옥살이를 하다가 사면을 받고 풀려났었다. 이 승만은 서대문 형무소의 전신인 한성감옥에서 지냈기 때문에 김 구와는 장소가 달랐다.
뭐, 고종은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헤이그 밀사 파견 내역이 발각되는 바람에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강제 폐위됐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7/27 08:35 2026/07/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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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교회에서 에스겔서 16장을 읽다가..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나서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6절, 명령어 Live를 “너는 살라”가 아니라 곧이곧대로 “살아라~~”라고 번역한 역본을 읽으니 ‘어 이거 무슨 애니 대사랑 비슷한데.. 뭐더라?’ 싶다가.. 출처를 곧 떠올린 것이다. 성경과 지브리 애니의 만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표현만 약간 비슷할 뿐, 저 말이 나온 상황과 맥락은 서로 완전히 다르고 접점이 거의 없다.
성경에서 “살아라”라고 말하는 상황은 애니에서처럼 니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남주 ‘아시타카’가 간지나게 일깨워 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부모로부터 버려진 여주 ‘산’을 갓난아기 때 거둬들이고 키워 준 들개의 신 ‘모로’가 했을 법한 말이다.

그 뒤로도.. 성경이 말하는 건 그렇게 불우한 처지였던 네년을 먹이고 어르고 달래면서 키워 줬더니 음행이나 저지르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상태가 딱 그 여자와 같다는 식의 얘기 일색이다.
모노노케 히메하고는 1도 관계 없는 흐름으로 간다. 지브리 애니는 자연 파괴가 어떻고 재앙신, 사슴신이 어떻고 하는 세계관일 뿐, 우상숭배니 음행이니 따위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니까.

버려진 여아를 제3자가 거둬들여 키웠다는 맨 앞의 초창기 설정, 그리고 그놈의 “살아라” 대사 때문에 의식이 잠시 이쪽으로 흘렀다~!

이렇게 하나님과 애증(?)의 관계로 묘사되는 이스라엘 백성, 일명 유대인 말이다.
저 사람들은 저래 뵈어도 성경이 역사적으로 문자적으로 사실이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걸 물증에 가까운 수준으로 입증하고 있는 민족이다. 예수를 배척하고 안 믿었으면서 정작 하나님과는 저런 관계인 게 참 특이하다.

쟤들은 하나님과 특별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타 민족들 대비 특혜와 보호 버프를 더 받았고, 그 대신에 죄 짓고 타락할 때 위약금 명목의 징벌도 더 빡세게 받았던 민족이다. 딱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하나 더.. 쟤들은 비록 혹독한 징벌을 받더라도, 어떤 경우에도 민족 정체성을 잃고 완전히 멸망해 버리지는 않는다는 거.. 이거 하나는 보장됐다. 그건 하나님 차원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성경에 언뜻 보기에 신약 크리스천의 교리 행실과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뜬구름 잡는 구약 예언의 비중이 왜 이리 큰지?
그 예언들이 다들 심판 일색에 부정적이고 절망적이고 암울해 보이지만, 최종 결말은 왜 한결같이 "회복"인지를 생각해 보시라!
일반적인 크리스천은 저 나라, 민족에 대해서 이렇게 인식하고 처신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겠다.

1. 현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예언을 다 이룬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대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에 건국됐으니, 이 세대가 다 가기 전에 예수님 다시 오실 거임" 이러는 '반쯤' 시한부 종말론스러운 이야기를 들어 보신 분이 있을 것이다.
난 그 사건에다가 성경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적용을 해도 되는지.. 성경 본문에서 그 세대라는 단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세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지.. 그건 좀 조심스럽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 극단으로 가서 저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유대인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도 명백히 오류일 것이다.
그럼 거슬러 올라가서 나치와 히틀러는 유대인을 미워하고 죽인 게 아니었나? 진짜 유대인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혼자 뻘짓 한 거냐? 이스라엘의 사관학교 생도들은 유대인도 아니면서 맨날 맛사다 요새를 잊지 말자고 생쑈 하냐..?? 그건 그것대로 여러 모순과 문제점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2. "저것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저주받을 종자들이다~"

....;; 이건 진짜 최악의 멍청한 발상이니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지어다! 심지어 옛날의 걸출한 개신교 종교개혁자 중에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미안하지만 명백한 오류이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지 않았으면 비유대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리지 못했다. 어디 너님의 죄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기여한 게 없는 줄 아냐??? 이 주제에 관한 한은 '양비론'이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성립한다고 봐야 한다.

3. 막연한 반유대주의 선동에는 가담하지 않는 게 옳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간 과정은 마치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처럼 혼란한 와중에 현실적인 이유나 강대국들의 농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혈이 발생한 것도 적지 않다.
언론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학살하는 것만 보도하지만 실제로는 적들도 민간인 위장 총질 같은 비열한 짓을 많이 했다. 이런 건 한쪽 편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쟤들이 쏘는 로켓 대비 그걸 요격하는 이스라엘 측의 방어 시스템은 유지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서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중동의 왈가닥 미친개처럼 처신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비록 쟤들은 신약 성경이나 예수 이런 것에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슬림 광신도처럼 히잡이나 "알라후 아크바르!" 같은 짓거리를 벌이지도 않는다.
이스라엘은 나름 친서방 자유 진영에 속하면서 6 25 때 저 멀리 대한민국을 도와줬었고, 연평도 포격 때 북괴 규탄도 제일 강력하게 했었다.

4. 그렇다고 쟤들이 정말 선 넘고 범죄 저지르고 깽판 치는 것까지.. 무작정 다 옹호할 필요는 없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가령, 예수상 훼손과 조롱 인증샷.. 이거는 진짜 정신나간 짓이던데?? (개인적으로 물론 예수상 별로 안 좋아하는 소신이지만 이와 별개로) 괜히 총리까지 나서서 사과하고 수습한 게 아니더라.

5.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심판의 도구를 그리스도인이 "자처"하지는 말아야 한다

너 말고도 이스라엘 싫어하고 가혹하게 대해 줄 사람은 주변에 넘쳐나니까 너는 그런 일에 가담하지 마라.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남았냐, 걔네들을 심판자 명목으로 침략하고 학살했던 주변 민족이 살아남았냐?
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다른 정상적인 소명 부르심에나 응답하고 따르시길 바란다. 육신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어라.

6. 교회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매우 중요한 사항이니 밑줄 치시라. 교회는 교회이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다. 서로 신분과 처지가 다른 집단이다.
로마서 9~11장을 읽어보아라.
막~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쟤들과는 완전히 손절이다" 뉘앙스가 절대 아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못 알아보고 그 일시적으로 눈먼 것까지도 하나님이 다른 기회로 활용해서 이방인 교회 시대 경륜을 열었다"로 딱 요약되지 않는가?

오히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생긴 기회가 이 정도인데, 하물며 걔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면 세상이 얼마나 더 살기 좋아졌겠냐" 이런다. 유대인을 세상을 향한 축복의 통로 정도로 본다.
이게 어딜 봐서 유대인이 교회로 대체됐다는 의미이겠는가? 유대인이 구원받고 개종하면 그냥 유대인 크리스천 교회 성도가 될 뿐이다. 우리는 돼지고기도 못 먹는 유대인이 아니라,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감사하면 된다.

아 물론 본인도.. 이 2000년대가 다 돼서 유대인들 혈통과 지파는 어떻게 다시 따질 것이며, 저 완강한 인간들이 도대체 언제 짠~ 예수님을 다시 알아보고 설마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회복되겠는지,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디테일"을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는 건 있다.
그러나 유대인과 교회를 구분하면 뭐 세대주의가 어떻고 시한부 종말론이 어떻고 프레임 씌우는 건 논점 일탈이어 보인다. 뭐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최대한 그대로 믿어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이상이다.
우리나라 국군이 북괴의 무력 도발에 대해 처음부터 이스라엘처럼 대처했다면.. 아마 진작에 북한으로 전투기고 공작원이고 잔뜩 보내서 핵 시설 같은 건 바로 폭격했을 것이고, 연평해전?? 천안함?? 그냥 몇 배로 보복했지 싶다.
물론 그만큼 젊은이들 군생활은 더 빡세졌겠지만, 이렇게 처음에 짧고 굵게 기선제압을 확실하게 해 놓는 게 나라의 미래 관점에서는 차라리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 여담: 아시리아와 바빌론

그러고 보니 유대인들의 옛날 역사와 관련하여 인상적인 게 하나 있다.
옛날, 기원전 600~500년 무렵에 있었던 신바빌론, 일명 칼데아 왕국은 남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용도로 정말 잠깐 왕성했다가 신기루처럼 싹 사라져 버린 정말 특이한 나라이다.
100년도 채 유지되지 못하고 망했다는 점에서 원나라와 비슷한 것 같다. 그 전의 아시리아, 그 후의 페르시아에 비해 존재감이 없으며, 세계사에서는 별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사실, 바빌론 자체가 처음에는 아시리아의 관할에 있는 나와바리 중 하나에 불과했는데 갑자기 세력이 커져서 주종 관계가 바뀐 거라고 한다.
심지어 아시아라는 대륙 이름이 바로 아시리아 - 앗수르에서 유래된 거라고 하네.. 참고로 아시리아는 시리아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이니 혼동하지 말자.;;; 굉장히 헷갈리기 쉬운 사항이다.

아시리아는 이스라엘 북왕국을 멸망시켰으며, 바빌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접수했었다. 그러나 딱 하나 남왕국 예루살렘만은 정복하지 못했었다. (히스기야 왕 시절을 생각해 볼 것) 그리고 아시리아 이후의 바빌론이 남왕국을 접수한 것이다.

그 뒤,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 있던 그 기원전 5xx년 기간 동안 인도에서 불교, 중국에서 유교가 태동하고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활동했었다. 동양에도 나름 그리스 철학자들 뺨치는 인문학 르네상스 같은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신바빌론은 여러 모로 신기한 나라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22 08:35 2026/06/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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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 관순: 나는 공산당.. 아니, 왜놈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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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관순 열사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 중에는..
"유 관순은 일제 강점기 당대에는 인지도가 전혀 없는 듣보잡이었다가 해방 이후에야 뒤늦게 발굴되고 부각됐다. 3· 1 시위에서 천안 나와바리의 행동대장이었을 뿐이지, 딴 지역에도 유 관순 정도의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친일 변절 지식인들에 의해 불순한 의도로 쟤만 혼자 '너무' 신격화된 경향이 있다" 이런 부류의 평가절하가 있다.

저게 유 관순 말고도 타 지역의 여러 열사들을 같이 골고루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라면 얼마든지 고려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고 유 관순이 진짜로 타 지역 시위 주동자 대비 단 1도, 추호도 다를 바 없다는 말은.. 이 역시 필터링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때 시위 가담자로서 체포되고 투옥돼서 몇 달, 또는 길어야 1~2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이야 많다. 물론 그 행적만으로도 훗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겨우 여고생 신분으로 그렇게 고분고분 옥살이를 하지 않고, 서슬 퍼런 법정에서 "너희 왜놈들은 우리를 재판할 자격이 없다!"고 당당히 외쳤고, 심지어 재판정에서 의자를 던져서 가중 처벌을 받고, 형무소 안에서도 만세 시위를 추진하고.. 자기 신념에 따라 일본의 입장에서는 진짜 악바리 같이 개기다가 기어이 구타로 장살당한 사람은 정말 드문 케이스이지 않은가? 저 증언 자체가 몽땅 조작 구라가 아니라면 말이다.

당연히 그때 투옥됐던 사람들이 전부 다 유 관순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 그때 잠깐 수모를 꾹 참고 옥살이 하고 나와서는.. 공부 더 하고 교육자, 사업가 등으로 크게 성장해서 일본을 실력으로 이기는 게 민족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더 이익"일 수도 있다. 하다못해 유 관순도 옥사하지 않고 살아 나왔으면 커서 무엇이 됐겠느냐 말이다.

그러나 저렇게.. 뭔가 이 승복 어린이나 신라의 관창 같은 기개를 보이면서 짧고 굵게 간 예외적인 사람도 의미가 있으며, 후세가 특별히 기억하고 기릴 가치는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만 생각해도 유 관순은 여러 3·1 운동 참가자 추진자 중의 하나 수준은 넘어서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2. 박 열 + 가네코 후미코: 독특한 아나키스트 계열 국제결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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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2 마지막 금사회 에피소드를 보고 나서 영화 '박 열'을 봤더니..
무지개 운수가 의뢰를 받아서 타임머신 타고 100년 전의 일본으로 잠입하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주연 배우가 동일인물.. ㄲㄲㄲㄲㄲ)

아~ 저 시절이니까 도기가 택시가 아니라 인력거를 몰고 있는 거고,
이름이 doggy이니까 "나는 개XX로소이다"라는 시도 썼고..
가네코 후미코는 좀 똘끼어린 여성인 게 고은이하고 인상이 아주 비슷한 거 같고..;;

그렇잖아도 모범택시 2의 금사회 에피소드는 도기가 일부러 교도소로 들어가는 내용인데,
박 열도 대부분의 장면은 주인공이 감방에 갇힌 상태로 진행된다. 감방에서도 미친척 하고 똘끼 부리는 거 캐릭터가 비슷하다.
재판 1심 때 조선 예복 코스프레 한 거는.. 진짜 영락없이 부캐 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더라. ㅋㅋㅋ

일제 시대를 다룬 한국 영화가 과연 관동대지진을 다룰 일이 얼마나 되겠나? 이건 애초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닌데. 더구나 일본 판 십볼렛 색출전(삿 12:6)을 영화로 보다니.. 나름 흥미진진한 소재를 고른 것 같다.
박 열은 1920년대부터 해방될 때까지.. 20대부터 40대까지 인생 황금기를 일본 감옥에서 무기수로 보냈지만 그래도 어째 살아서 나오기는 한 게 참 특이한 것 같다. (참고로, 조선총독부 본진에다 폭탄을 던졌던 김 익상 의사는 박 열과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시기대에 투옥됐지만, 일제 말기 때 결국 의문사했었다)

박 열 저 사람한테 가네코 후미코는.. 진짜 김 학준 선생에게 최 용신 같은 존재로 기억에 각인됐지 싶다(소설 상록수의 모티브를 제공한 실제 인물).
지진만 없었으면 저 두 사람 인생이 실제 역사와는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어찌 됐을지 참 궁금하다. 공교롭게도 박 열과 김 학준 모두 몰년은 1974년이었다.

* 가네코 후미코는 변호사 후세 다쓰지와 더불어, 대한민국 건국 훈장이 추서돼 있는 단 둘뿐인 일본인이다.;;;
사실, '소다 가이치'라고 조선에 정말 엄청난 온정을 베푼 일본인이 더 있긴 한데.. 이 사람은 법이나 정치, 군사 쪽으로 항일을 한 게 없어서 그런지 훈장까지는 못 받았다. 그 대신 이분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묻혀 있는 유일한 일본인이다.

3. 김 마리아 외: 엘리트 신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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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시리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다들 기억 하시려나 모르겠다. 시즌 1의 첫 에피소드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 피해자는 바로 '강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마리아'는 마치 '에스더'처럼 성경의 인물을 그대로 딴 옛날 스타일 여자 이름이다. 가톨릭에서는 이런 이름을 세례명으로만 쓰겠지만, 개신교 쪽은 그런 개념이 없으니 본명을 그대로 저렇게 짓는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파됐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엔 지식인 신여성 중에 '마리아' 동명이인이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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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마리아(1891-1944)는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인지도가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기까지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시절에 일본과 미국에서 대학원 급 공부를 한 고학력자였던 데다, 항일 운동 쪽으로도 도쿄 2· 8 독립 선언에다 3· 1 운동까지 할 거 다 했기 때문이다.
그때 붙잡혀 끌려가서 옥고를 치르고, 심문 과정에서 왜경으로부터 잔인한 고문을 당해서 몸이 비가역적으로 상했으며, 이 때문에 지병· 후유증을 평생 달고 살았다. 독신으로 살다가 1944년에 병으로 순국한 것도.. 그 지병이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저분은 행적과 공로가 워낙 탁월하니 1962년에 진작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유 관순 열사도 요절하지 않았으면 아마 김 마리아와 가장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단.. 저분은 전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신학은 주전공과 별개로 따로 공부한 것 같은데 말이다. 설마 이공계는 아니고 문과 무언가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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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다음으로, 참 공교롭게도.. 저분과 띠동갑 후배인 동명이인 김 마리아(1903-1970)도 있다.
사진을 검색해 보면 1891년생 원조 김 마리아는 직모 단발머리의 젊은 얼굴인 반면, 1903년생 김 마리아는 더 나이든 파마머리 중년 모습이 주로 나온다.

이분은 이 범석 장군의 부인이었고 광복군 여군+공작원 커리어를 거쳤다. 사격의 귀재였다고 하니 한국의 애니 오클리 같은 느낌도 드는데..ㄷㄷㄷ 여러 모로 원조 김 마리아와는 활동 분야가 많이 달랐다. 업적의 발굴과 조명이 원조 김 마리아보다 훨씬 늦었기 때문에 1990년에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3) 참고로, 더 늦게 태어난 박 마리아(1906-1960)도 미국 대학원 출신의 엘리트 신여성이었다. 이 사람은 세월이 흐른 덕분인지, 유 관순 같은 이화학당도 아니고 이화 전문학교를 나온지라, '이대 나온 여자'의 원조급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제 말기 때 황국신민 내선일체 이딴 짓을 해서 친일 부역자라는 오점이 찍혔고, 해방 후에는 부통령 후보 이 기붕의 아내로서 권력욕을 뿜뿜하며 제대로 흑화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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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가 어땠는지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일가족 동반 ㅈㅅ).. 그러니 박 마리아는 김 마리아와 달리 전혀 영예롭지 못한 악녀로 역사에 남았다. 이름값을 제대로 못 했다.

이 '마리아'들과 비슷한 연배와 비슷한 커리어인 임 영신(1899-1977), 김 활란(1899-1970)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알아보면 재미있지만..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니 생략하겠다.

4. 윤 형숙: 일제와 공산당 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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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니라 호남 지방에서는 ‘윤 형숙’(1900-1950)이라는 여성 열사가 있었다. 이분은 3· 1 운동 당시에 광주에서 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헌병의 칼을 맞아 왼팔이 잘리는 중상을 입었다.
이분은 체포된 뒤에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열악한 곳에서 구금· 투옥돼 있다가 병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도 잃고 말았다.

아니, 군인이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해서 팔과 눈을 하나씩 잃은 건 영국의 넬슨 제독이나, 독일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처럼 사례가 있는데.. 윤 열사의 사례는 정말 믿기 힘들다. 사진에 찍힌 모습 중에는 대놓고 저런 신체 장애가 묘사된 게 딱히 없는 것 같다만..
허나,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 행적이 가히 전설적이었는지, 저분은 '윤 혈녀'라는 별명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저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항일뿐만 아니라 반공에도 진심이었다. 해방 후, 6· 25 사변 중엔 손 양원 목사와 동일한 날짜에 동일한 장소에서 북괴 공산군에 의해 나란히 순교하여 주님 곁으로 가게 됐다.
1950년 9월 28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대한민국이 서울을 수복했던 날, 적들은 반동 민간인들을 모두 처형하고서 퇴각했기 때문이다. 호남 지방은 영남보다 위도가 더 낮았는데도, 영남과 달리 지역이 몽땅 다 북괴에게 점령 당했었다.;;;

윤 열사는 아까 3번의 마리아 정도의 고학력 유학파는 아니었지만, 살아 생전에 지방에서 지역 교회를 묵묵히 섬기면서 전도사와 교사로 헌신했었다. 세상에 이런 '여수의 유 관순' 같은 분도 있었다. ㅠㅠㅠ

Posted by 사무엘

2026/06/18 08:35 2026/06/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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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5월쯤에 일제 시대 독립운동에 대해서 글을 하나 썼었는데 공교롭게도 올해도 비슷한 시기에 글감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번씩 했던 말도 있지만 다른 형태로 다시 정리해 보고자 한다. ㄲㄲㄲ

1919년에 벌어졌던 3· 1 운동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고 이를 기리는 삼일절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중요한 기념일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3· 1 운동은 결과만 냉정하게 따져 보면 당일이 그렇게까지 “기쁜 날”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나라 밖 소식을 접하기가 어렵던 시절에, 선조들은 민족 자결주의라고 어디서 막연히 주워 들었다. 그래서 우리도 당당히 독립을 선언하면 세계에서 다 알아주고 독립을 지지하고 승인하고, 일본이 아닌 한국 편을 들어 줄 거라고 희망회로를 돌리게 됐다.
물론 민족 자결주의 하나뿐만은 아니고.. 거기에다가 고종(암군이긴 해도 미우나 고우나 일단 자국의 군주 얼굴마담이니)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대한 독살 의혹, 1910년대 폭압적인 무단통치에 대한 반감, 스페인 독감과 기타 등등 생활고도 시위에 대한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시궁창이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서 말석 끄트머리로나마 승전국이었다.
승전국의 식민지는 저 희망회로의 적용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
가령, 민족 자결주의는 그 시절에 무슨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켜 주라고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었다. 일본으로부터 조선도 마찬가지.

그러면 3· 1 운동은 아무 소득 없이 총칼 앞에서 무참히 진압당했고, 한국인들은 헛다리 짚고 뻘짓만 하다가 괜히 일제로부터 무수한 인명과 재산 피해만 당하고 아무 소득 없이 끝났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지금 같은 교통 통신 수단도 없던 시절에 식민지 피지배민들이 지배자를 상대로 전국적으로 이 정도로 대규모 비폭력 항쟁을 조직적으로 일으킨 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웠다.
일본 입장에서는 저걸 총칼로 마구 찍어눌러서 당장 진압은 했지만.. 국제적 위신의 손상에다 내부적인 멘탈 대미지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크게 입었다.

“니들은 식민지를 도대체 얼마나 거지같이 관리했길래 10년도 채 안 돼서 식민지에서 저 정도로 처절한 만세 시위가 벌어졌냐?”
일본은 이웃 열강들로부터 이런 갈굼을 당했고, 그 갈굼이 조선총독부로 전해졌다.
다시 말해, 서구 열강들은 일본을 향해 "당장 조선을 해방시켜 줘라" 이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네 식민 통치 방식에 문제가 좀 있나 보다? 이번엔 좀 선 넘었네?" 정도의 눈치는 줬다.

이때부터 쟤들은 과장 좀 보태면 만세의 만 짜만 나와도 발작을 일으킬 지경이 됐다.
조선 땅에서 조금 무리수인 정책을 추진할 때면 “야, 조센징 만세 폭동을 벌써 잊었냐? 시즌 2가 벌어지는 수가 있다?” 이러면서 몸 사리는 시늉 정도는 하게 됐다.

이 때문에 조선 식민지를 관리하는 치안 비용이 크게 증가했고, 이는 일제의 입장에서 식민지의 가성비 하락으로도 이어졌다.
고종 다음으로 나중에 순종이 죽었을 때만 해도 쟤들은 또 만세 시위가 벌어지지는 않으려나 진심으로 긴장했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이 넘어갔음)

솔직히 1919년 3월 1일이 지금 대한민국이 세워진 날이라고 하면 그건 좀 정신승리 보정이 개입된 생각일 것이다. 무슨 시오니즘 대회나 밸푸어 선언이 발표됐던 날이 이스라엘 건국일이기라도 하냐?
그리고 1940년대 태평양 전쟁 때 조선인들이 남의 전쟁에 강제로 징용되고 끌려간 건 그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라도 져야 할 사항이냐? 누구는 약간 나중에 6 25 전쟁 중에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못 지켜 줬던 건 그렇게도 욕하고 비판하던데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만세 시위 하나 했다고 일제가 조선을 니에니에 독립시켜 줬을 리는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시도가 쌓이고 쌓인 게 시너지 효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일본을 물리적으로 힘으로 패퇴시킨 것이야 한국의 능력이 아니라 연합국, 특히 미국의 원자폭탄이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저런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시도가 없었다면 일제의 패망이 곧바로 한반도의 해방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로 선언에 코리아의 독립이 따로 명시된 게 괜히 이뤄진 줄 아냐?
이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건 전형적인 “A가 틀렸다고 해서 자동으로 B가 정답이 되는 건 아니다” 논리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건국 초기부터 관습적으로 삼일절을 아주 성대하게 기념해 왔다. 그리고 그 초창기, 리 승만 할배 시절엔 대한민국이 1919년부터 시작된 나라라고 대놓고 홍보하곤 했다.
특히 저 때는 북괴야말로 1947년인지 48년에 갑툭튀한 듣보잡 사생아 집단일 뿐이고, 남한은 훨씬 전부터 정통이라는 걸 강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념이 오늘날 우리나라 헌법의 전문에도 명시된 것이다.

이거 마치 Watcom C라는 신생 컴파일러가 볼랜드/마소 제품 대비 자기 내력을 뻥튀기하려고 첫 버전을 1.0이 아니라 무려 6.0부터 매겼던 것과 비슷한 행동 같은데.. 뭐 그랬다. 이런 내력이 있다.
본인은 삼일절과 주일이 겹쳤던 날에 교회에서 준비 찬송으로 특별히 만세, 함성, 승리 이런 단어가 들어있는 곡을 골라서 부르곤 했다.

* 흥미로운 사실

(1) 조선은 특이한 지리빨 덕분에 그 시절에 대영제국의 손아귀로 들어간 적이 없는 꽤 예외적인 나라였다. 어디 대영제국 뿐이랴? 병자호란, 신미양요, 병인양요 등에서 다 지고도 멸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조선이 자기 힘으로 자신을 스스로 지켜낸 게 아니었다. 인간들의 과학기술과 군사력이 발달해서 지리빨이 약발이 다했을 때 조선은 그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했다.

열강들은 조선을 먹지 않았지만, 그 대신 19세기 말에 조선이 중립을 선언한 것도 전혀 존중해 주지 않았다.
조선은 서양 식민지가 되지 않은 대신, 이웃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그러니 나중에 독립될 때도 여느 대영제국 식민지와는 좀 다른 격으로 취급받게 됐다.

(2) 1920년대에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세계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 편을 드는 것에 절망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특히 전간기) 일본은 세계가 일본을 영국 미국과 대등한 열강으로 인정하지 않고 함대 제작 쿼터를 많이 주지 않는 것에 절망하고 분노했었다. ㄲㄲㄲㄲㄲ
이게 지금은 군대를 안 가면 안 되는 나라 vs 군대를 가지면 안 되는 나라의 차이로 이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인물 관련해서도 할 얘기가 있는데.. 분량이 길어지니 이건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15 08:35 2026/06/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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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라는 게 발명되고 대중화되기 전에는 다음과 같은 무선 통신 수단이 만들어져 쓰였다.

1. 무전기 (야외 근거리)

두 사람이 서로 수백 m나 수 km씩 떨어져 있어서 서로 보이지 않고 생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즉시 연락 가능하다.
기지국 없이 단말끼리 직통이다. 단순하지만 그만큼 보안이 취약하다. 그리고 일단은 수신과 발신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지형 영향을 많이 받으며, 초장거리 통화도 당연히 안 된다. 대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방식으로 동시에 제각각 통신할 수도 없다. 이런 저런 제약이 많지만 야외에서 험한 일 하는 군대· 경찰· 소방 같은 계층에서는 무전기가 오늘날까지도 매우 유용한 통신 수단이다.

2. 재래식 무선 전화기 (집)

이건 개념적으로는 송수화기만 무선화해서 유선 전화기 본체와 무전을 주고받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유선 전화 인프라에 의존적이며, 무선 통신이 가능한 사정거리가 매우 제한된다. 사실상 실내용이다.
요즘으로 치면 와이파이 AP의 사정거리가 옛날 무선 전화기의 사정거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싶다. 집 근처에서 무선 전화기의 통화 트래픽을 도청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3. 카폰 (차)

유선 전화에 의존하지 않고 그렇다고 개인용 무전기 같은 한계도 없이 전화가 되는 물건이다. 하지만 이걸 가능케 하는 설비가 사람이 일상적으로 들고 다닐 정도의 크기가 못 됐고 전원 공급 문제도 있으니.. 자동차가 매우 적합한 대안으로 선정됐다.
카폰은 처음에는 그야말로 차량용 대형 무전기일 뿐이었다. 살인적인 기계 가격도 가격이지만, 회선이 너무 부족해서 근본적으로 많이 보급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게 나중에는 기지국과 통신하는 초보적인 주파수 공유 이동통신으로 발전했다.

4. 삐삐 (어디서나)

얘는 통화가 안 되는 일방적인 호출기에 불과하다. 삐삐 자체는 거의 모스 부호 급의 작은 정보밖에 전하지 못하고, 실제 통화는 연락을 받은 사람이 공중전화라도 찾아가서 따로 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삐삐는 (1) 모든 개인이 언제 어디서나 갖고 다니는 소형 단말기, (2) 전국구 중앙 기지국 기반 통신, (3) 건물 안이나 지하에서나 산속에서나 잘 터지는 접근성처럼...
그 이전의 무선 통신기기들이 갖추지 못했던 개인 이동전화의 또다른 중요한 덕목을 작은 스케일로나마 실현했다.
경찰 소방 말고, 대형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업무용 삐삐를 여전히 갖고 다닌다고 한다.;; 거기서는 회중시계도 여전히 쓰이는 구석이 있는지 문득 궁금하네..

이런 단계를 거쳐서 오늘날의 휴대전화는..
무선 전화기 같은 온전한 전화 기능을
무전기와 카폰을 합친 이동성을 살리면서
삐삐의 휴대성 보편성까지 한꺼번에 실현한 괴물 같은 물건이 됐다.
물론 이게 그냥 이뤄진 건 아니고, 기지국이 카폰이나 삐삐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이 촘촘하게 필요해졌다.

자동차 운전에다 비유하자면, 이것들은

  • 유인 운전을 전제로 한 부분적인 운전 보조 (크루즈, 차로 이탈 방지)
  • 주차나 도로 정체 같은 특수한 상황 한정으로만 무인 자동운전
  • 별도의 설비가 설치된 전용 도로/노선 사이만 무인 자동운전
  • 그냥 무선 통신으로 타인에 의한 원격 운전..!!

이런 것처럼 다양한 분야별로 단서나 제약이 붙은 조건부 불완전 자율주행 기능과 비슷하다.
허나, 휴대전화는 제약 없이 완전 자율주행이 실현된 것과 비슷한 격이 됐다.

뭐, 옛날 무선 전화기가 본체와 통신을 하던 것이.. 오늘날의 핸드폰· 이동전화는 기지국과 통신을 하는 것으로 스케일만 살짝 바뀐 거라고 볼 수 있다. 허나, 이동전화는 중요한 차이점이 더 있다.
바로.. 사용자가 많이 이동해서 한 기지국의 사정거리를 벗어나더라도, 가까운 다른 기지국이 실시간으로 그 단말기를 바톤 터치해서 연속적으로 끊김 없이 챙겨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통화를 하는 중에 관할 기지국이 바뀌어도 그 통화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 이런 건 무선 전화기 시절엔 생각할 수 없었던 기능일 것이다.

한때 팬텍, 모토로라, 노키아, 블랙베리 등 핸드폰을 잘 만드는 업체들이 세계적으로 많았지만 잘 알다시피 다들 몰락했다.
우리나라의 삼성 전자는 잘 알다시피 애니콜부터 시작해서 이동전화 단말기의 개발에 진심이었는데.. 얘들 역시 처음부터 잘 나갔던 건 아니었다. 특히 옴니아 시절까지만 해도 얼마나 삽질을 많이 했었냐;;

그랬는데 안드로이드 기반의 갤럭시 스마트폰을 잘 만들어서 그야말로 세계를 석권해 버렸다.
삼전은 비록 모바일용 CPU나 운영체제를 직접 만드는 정도의 기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메모리와 디스플레이 같은 주요 부품에 탄탄한 기술이 있고 스마트폰 하드웨어를 '전반적으로' 고퀄로 잘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러니 구글에서 직접 만든 넥서스 같은 스마트폰까지 제치지 않았는가.;; 어찌 보면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상이다.
옛날에 공 병우 박사나 백 남준 같은 분은 독특한 정신 세계에다 엄청난 천재 겸 선각자였다. 겨우 196, 70년대에 남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시도를 했던 분인데..
공 박사는 PC나 PC 통신을 넘어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 시대를 살았다면 세벌식 자판을 거기에다 어떻게 접목했을까?

백 남준은 다들 아시다시피 비디오 아트라는 분야를 새로 개척했는데, 브라운관보다 훨씬 더 얇고 거대하고 화질 좋은 오늘날의 최첨단 디스플레이 장비를 보면 또 뭘 만들 생각을 했을까?
글을 맺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Posted by 사무엘

2026/05/25 08:35 2026/05/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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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사무엘상 17장에는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 배틀이 기록되어 있다.

골리앗은 성경에서 챔피언이라고 기록돼 있다는 것,
하지만 성경은 골리앗에 대해서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으면서 대부분 ‘그 블레셋(필리스틴) 사람’이라고만 지칭한다는 것,
다윗은 초탄 원샷만으로 골리앗을 무조건 바로 제압하지 못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텐데 그래도 조약돌을 5개나 챙겨 갔다는 것 등..
여러 이슈들을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이미 다뤘었다.

그런데 같은 본문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이번에는 군사 디테일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온다. 본인이 근래에 밀리터리나 전쟁사 쪽으로 관심을 많이 보여서 그리 된 것 같다.
이 글에서는 그쪽으로 떠오른 의식의 흐름을 논하도록 하겠다. 군사 이야기, 성경 번역 이슈 등..

1. 저격

한반도로 치면 아직 고조선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옛날이니까 저렇게 참 낭만적으로 싸우는 게 가능했다. 오늘날의 전장에서 골리앗이 매일 성큼성큼 나와서 “니놈들도 장수 한 명을 대표로 보내서 나랑 1:1 PvP 뜨자 으하하하하하!!!” 도발하고 있었다면?
저 멀리서 특전사 저격수가 숨어서 저격소총으로 골리앗의 마빡에다 바람구멍을 뚫었을 것이다. 무거운 갑옷 입고 있으면 뭐하나. 골리앗은 아마 남북전쟁 존 세지윅 장군과 비슷한 방식으로 전사했을 것이다.

옛날이니까 일당백이 가능했고 1:1 PvP만으로 전투의 승패를 결정해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저 때는 아예 왕이 군대 총대장의 역할까지 겸하면서 전쟁터에 직접 나가서 싸우곤 했다.
(요즘 용어로 치면 사울은 군령권 담당이고 아브넬은 군정권 담당인 건지?)

2. 참호 trench

성경을 보니 이스라엘군 진영, 정확히는 사울 왕이 있는 곳이 trench라고 묘사돼 있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삼상 17:20) 정확히는 킹 제임스만 그렇다.
그래서 킹을 번역한 성경들에서는 ‘참호’라는 단어를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이 이 구절을 보면 1차 세계대전의 서부 전선 참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엥? 기관총 따위 없고 현대전 같은 엄폐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에 이 사람들이 땅 파서 참호/진지/벙커 같은 걸 만들었나?

나중에 엘리야가 제단 주변에 도랑 파서 물 흐를 길을 만들었다고 할 때도 trench가 쓰였다(왕상 18:32). 그러니 trench는 명백하게 주변보다 낮은 지형을 말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눅 19:43을 보면 비킹들은 공성전을 치르기 위해 바리케이트 치거나 토성 쌓거나 투석 병기를 설치하는 걸 묘사하는데, 킹은 여기서도 주변 땅을 파는 전술이 묘사된다. 신기하지 않은가? (참고로 로마 제국이 맛사다 요새를 함락시킨 방식은 잘 알다시피 지하가 아니라 토성 + 투석기 같은 지상 공략이었음)

심지어 구약에서 킹과 비킹이 차이가 나는 대표적인 구절인 창 49:6도 킹은 “벽을 파내려갔다”이고 비킹은 “소의 힘줄을 끊었다”이다. 이 정도면 킹은 뭔가 땅 판다는 표현을 작정하고 더 선호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 마치 다른 구절에서는 ‘기뻐하다’를 더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분의 뜻대로 vs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나야 히브리어 헬라어를 논할 짬은 안 되니, 그냥 이 상황만 설명해 보자면 말이다.
사울 왕이 있는 곳이 지리적으로 낮아서가 아니라 영적 상태/수준이 왕창 낮아서 단순히 진지 진영이나 텐트 대신, 참호라는 단어를 쓴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여기서 낮다는 건 무슨 겸손한 낮은 마음 같은 긍정적인 뉘앙스가 전혀 아니고 부정적인 뜻이다.
일례로, 아까 삼상 17을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그야말로 나라를 구한 순간에도.. 사울은 자기를 음악 치료까지 해 줬던 다윗이 누군지 전혀 못 알아보는 중증 안면 인식 장애를 앓고 있지 않던가?

나중에 삼상 26:7에서 사울은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수색 작전을 펼치던 중에도 참호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고 묘사된다.
이때 사울은 적과 싸우는 것도 아니었는데.. 간단히 천막 치고 쉬었겠지, 설마 정식으로 진지 구축하고 참호를 파지는 않았을 것이다. 쉽게 말해 국군이 탈영병을 잡는 데 무슨 무장공비 소탕 작전 같은 전술을 펼치겠느냐 말이다. 뭐, 정말 흉포한 무장 탈영병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성경에서 “이집트로 내려가다”라는 표현이 쓰였듯이, 또 요나가 배의 밑바닥으로 내려가 잠을 퍼질러 잔 게 단순히 요나의 물리적인 위치만 내려가는 게 아니었듯이..
성경은 동일한 심상으로 사울이 머무른 곳을 참호라고 표현한 게 아니었나 싶다! 지리적인 저지대가 아닌 다른 저지대라는 것이다.

3. 목을 베어 죽인다 vs 죽이고 목을 벤다

아이고 참호 얘기가 왕창 길어졌는데..
골리앗은 다윗에게서 미간에 조약돌을 맞고는 그때 그저 기절이 아니라 완전히 절명한 것이 틀림없다.

급소를 잘 맞히면 일반인도 무릿매로 돌 던져서 사람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그러니 그것 자체는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불신자라도 선뜻 인정한다.
허나, 총알 탄두도 아니고 그 큰 돌을 사람 면상에 완전히 박아 버릴 수는 없다(삼상 17:49).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초자연적인 현상인 것 같다.

50절을 보면 “죽였는데 다윗에게는 칼은 없었다”라고 돼 있고, 그 다음 51절은 다윗이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이다. 즉,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벤 건 그냥 확인사살용이다. 수급을 얻기 위한 시체 훼손이나 다름없다.

이걸 보니 행 5:30이 떠오르더라. 보통은 “나무에 매달아 죽인”이라고 돼 있는데.. 영어로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죽이고(죽여서) 나무에 매단 slew and hanged”이다.
시간상으로는 예수님은 당연히 십자가에 매달렸다가 나중에 죽으셨으니, 일각에서는 저건 킹의 오역이라고까지 주장하는데..

그런 식이면 예수님은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고 절명하신 거지, 애초에 인간의 완력으로 살해 자체를 당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간에게 돌에 맞거나 칼에 찔리거나 목을 뎅겅 하는 식으로 처형 당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인간들이 예수님을 안 죽인 것도 아니다.

“바라바를 살려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이렇게 요구를 한 것 자체가 slew의 범주에 든다고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우리 인간들 언어에는 애초에 “문 닫고 나가!!”라는 모순? 유도리까지 존재하지 않느냐 말이다. ㅋㅋ

4. shield와 target

영어 성경에는 방패를 뜻하는 단어로 shield와 target 두 종류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등장하는 믿음의 방패는 shield (엡 6:16)인 걸 보니, 둘 중에 더 일반적인 단어는 역시 shield인 것 같다.

사무엘상 17장으로 돌아가서 골리앗의 무장을 보면, 주 방어구인 커다란 방패는 shield라고 돼 있다. 이건 워낙 크고 무거워서 부사수가 따로 들고 다녔을 정도였다(삼상 17:7).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골리앗은 상체에 보조 방어구 명목으로 target이라는 작은 방패도 차고 있었다(삼상 17:6).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윗과 골리앗은 성경에서 너무 유명한 소재이니 관련 삽화가 넘쳐난다. 하지만 저 두 종류의 방패까지 그대로 묘사한 그림은 매우 드물다.
target은 말 그대로 dart 과녁판 같은 느낌이 들고 왠지 동그랗게 생겼을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의외로 역본들 간에 번역이 일치하지 않는다.
(1) 킹 제임스만이 삼상 17:6이 target 방패, 보조 방어구였다고 말하고 비킹들은 이 구절이 그냥 javelin.. 던지는 작은 투창이라고 표현한다.

즉, 비킹은 이걸 보조 방어구가 아니라 보조 무기라고 본 것이다. 손에 들고서 찌르는 용도로 쓰는 큰 창은 spear이고, 요런 투창은 또 따로 있었던 듯하다.
다만, 5절과 6절은 모두 투구와 갑옷, 금속 각반(정강이가리개)과 함께 계속 방어구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니 어깨에도 공격 무기보다는 킹처럼 방패 같은 방어구 얘기가 나오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2) 다음으로.. 킹의 번역에 따르면 이 구절에서는 shield가 큰 방패이고 target은 더 작은 방패이다.
그러나 왕상 10:16-17에서 솔로몬 왕이 만든 방패 얘기가 나올 때는 관계가 정반대이다. target이 큰 방패이고, 다음 shield가 작은 방패이다. 같은 킹에서도 의외로 이런 용례 차이가 존재한다.

5. 무용담

끝으로.. 다윗과 골리앗은 원수지간이지만 다윗과 요나단은 그 정반대이다. 요나단의 우정은 너무너무 훈훈하고 아름답고 눈물이 핑 돌 것 같다.

요나단도 나름 신라의 관창 같은 면모가 있었으며, 심지어 그러고도 살아서 돌아왔다. 요나단은 다윗보다 연장자인 데다 심지어 왕자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시절에 다윗에게 아마 이런 식으로 말을 했지 싶다.

“이야~ 나도 정말 다혈질이어서 바로 얼마 전에도 객기 부린 적 있어. 우리 아버지의 명령 없이 혼자 무단으로 내 부사수만 데리고 블레셋 진지로 그냥 쳐들어갔지. 그래서 블레셋(필리스틴) 놈들 20명 정도 목을 따고 돌아왔거든? (삼상 14)

그랬는데도 저 괴물 골리앗은 도저히 상대할 엄두가 안 나던데.. 너는 어떻게 그놈 앞에서도 무섭지가 않았니? 그 순간에도 오로지 하나님만 생각한 거야?
다윗, 넌 나보다도 더 또라이 같고 진정한 GOAT다. 내가 리스펙한다!! 나한텐 다나까 안 써도 되니 앞으로 편하게 말 놓아라~! 너랑 나 사이엔 뭐 금수저 흙수저니 출신 계층은 일절 따지기 없기야? 알았지?”

애비인 사울 왕은 권력에 집착하면서 다윗을 시샘하고 갈수록 흑화해 갔다. 그러나 그의 아들 요나단은 자기 대신 차기 왕위를 빼앗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다윗을 정말로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 같은 우정으로 챙겨 줬다.

Posted by 사무엘

2026/05/05 08:35 2026/05/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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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위기: 판별법

성경의 레위기에는 구약 제물들의 종류, 신체의 부정(불결) 판정 기준, 나병(문둥병) 판정 기준 등 율법의 여러 규례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리의 굽이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은 부정하다", "비늘 지느러미가 달린 통상적인 물고기가 아닌 수중 동물은 부정하다~~" 펠리컨은 어떻고 대머리독수리가 어떻고 등등등... 얘는 먹을 수 있고 저런 건 먹어서는 안 된다는 판정도 많다.

이 부분을 읽으니 개인적으로는 쓰레기 배출 기준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귤 껍질은 음쓰이고 바나나 껍질도 음쓰인데, 파뿌리는 뭐 어찌어찌 하지 않으므로 일쓰이다.
플라스틱은 딱딱하고 형태가 있지만 뭐가 묻은 건 재활용 불가능한 일쓰이다. 그렇지 않은 건 재활용 쓰레기..ㄲㄲㄲㄲㄲㄲㄲ

이렇듯, 옛날 사람들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갈랐지만, 현대인들은 버릴 때.. 재활용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걸 가른다고나 할까..?? 양상이 비슷해 보인다.

대한민국은 쓰레기 분리 배출을 세계적으로 정말 엄격하고 빡세게 하는 나라이다. 페트병을 내용물을 싹 씻고 라벨까지 일일이 떼서 배출하는 나라가 여기 말고 또 있을까.;; 쓰레기 봉투를 일일이 검사해서는 귤껍질을 일쓰에다 버렸다고 과태료를 때리는 나라가 또 있을까?

물론 이건 우리나라가 땅이 매우 좁고 쓰레기를 무작정 매립 소각만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음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런 절박함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쓰레기의 재활용 효율이 높으며, 관련 기술이 굉장히 발달했고 인프라도 잘 갖춰졌음이 사실이다. 얼마 전에 의성에 쌓여 있던 쓰레기산이 순식간에 싹 없어진 것도 생각해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음쓰와 일쓰의 경계에 있는 애매한 쓰레기에 대해서는 좀 유도리가 있었으면 좋겠고, 좀 더 명확하고 일관된 구분 기준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플라스틱의 경우도.. 힘들게 분리배출 해 봤자 재활용이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며? 업체들이 수거해 가서는 도로 뒤섞는다는데.. 그래 놓고는 쓰레기 뒤처리를 소비자한테 전가하는 짓거리는 좀 멈췄으면 좋겠다.

2. 민수기: 밥 투정

민수기 11:5를 보면 말이다. 이집트를 떠나서 광야 생활 중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단으로 크게 불평과 투정을 늘어놓는다.
맨날 천날 보급 전투식량인 M-레이숀(manna)만 먹으니 맛없어 죽겠다고 징징대고, 반대로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시절에 뭘 얼마나 잘 얻어먹었었는지 추억 보정을 막 해댔다.

(1) 먼저 생선: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얘가 아무래도 소· 돼지· 양 같은 육상 동물 고기보다는 더 저렴했을 것이다.
(2) 오이와 참외(멜론): '박'과 식물이다.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이 아니라 열매 맺히는 덩굴채소라는 공통점이 있다.
막 비싸고 희귀하고 맛있는 식재료라기보다는 가성비 좋은 서민형 과채류가 아니었을지? 저 시절 저 때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쭈글쭈글 큼직한 호박 같은 것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3) 부추와 (양)파와 마늘: 요게 핵심인 것 같다. 이것들은 자극적인 맛이 나는 향신료 조미료 용도이다. 얘들은 심지어 불교에서 말하는 오신채에도 모두 포함돼 있다!

종합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그렇게 아주 거창하고 대단하게 잘 먹은 것도 아니었던 주제에 괜히 식재료 타령을 늘어놓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쟤들이 이집트에서 무슨 초호화 열대과일을 먹었겠는가? 생선이라고 하니 무슨 감성돔이나 가을 방어, 혼마구로라도 뜯었겠는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인생에서 먹는 즐거움도 절대 무시 못 할 경험이니 M-레이숀이 너무 질린다는 생각 자체는 누구든지 들 수 있다.
허나,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간구를 정당한 절차대로 했어야 했다. 성경에는 슬로브핫의 딸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모세에게 이것저것 건의나 이의 제기를 하는 게 나오며, 이에 대한 주 하나님의 피드백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성경의 하나님은 '무조건 닥치고 까라면 까'가 아니었다.

단지, "에구에구 나 죽네~~ 난 그냥 이집트로 돌아갈래~~ 이 빌어먹을 광야 생활 때려칠 거야!" 식으로 반역에 가까운 불평을 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이건 애가 부모한테 "왜 이런 망할 집구석에서 날 태어나게 만들었어?" 이렇게 대드는 급이나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민수기 11장을 읽어보면 이건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호소한 게 아니었다. 일부 불순분자들이 꼬드기고 선동하고 물 흐리면서 불평 불만이 터진 거라고 나온다.
그러니, 쟤들은 밥을 돼지갈비 소갈비로 먹었다 하더라도 그러면 또 다른 걸 갖고 얼마든지 불평 불만 X랄을 떨었을 가능성이 99.9%라는 것이다. M-레이숀 일괄 급식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3. 신명기: 특별 담화

신명기 내용은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모세 령도자가 퇴임 회고 연설을 하는 것 같다!! 맥아더 장군이 퇴역 연설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여정을 거쳐서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이런이런 성읍들을 정복했고 바산 왕 옥도 처치했었습니다. 놈은 침대의 길이만 소형 승용차 길이와 맞먹는 4.5미터에 달했었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에서 이런이런 비극도 겪었고 이런 부끄러운 흑역사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 여러분의 하나님을 여러분의 온 역량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십시오. 그 길만이 살 길입니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단지 사라질 뿐이지요." 대신에
"사람은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꼭 명심하십시오." (신 8:3)가 있는 셈이다.

신명기 원고가 라이브로 낭독 중계됐던 날은 "최고 령도자님의 특별 담화 방송" 명목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기 텐트에서 텔레비전 켜 놓고 채널 고정했을 것이다.

아니면 무슨 대한뉴스 같은 프로파간다 뉴스 영화가 단체 상영됐을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테란 캠페인을 다 마치면 나오던 뉴스 영화 동영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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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는 이런 식으로 뽀대나게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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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힛 족속 여부스 족속, 누구누구들 다 쳐부쉈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그래픽까지 동원해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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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불평하다가 벌받아 죽었을 대, 금송아지 만들어서 누구 몰살 당한 장면은 이런 식으로 녹화 영상 보여주고..

뭐 그렇다.
모세오경에서 마르고 닳도록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 바로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펼치신 팔로 니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다(해방시켰다)"이다.

우리 민족의 경우 일제가 무려 원자폭탄을 두 방이나 쳐맞은 덕분에 패망하고 그래서 해방됐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어지간한 태풍이나 지진,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만 돼도 그 위력은 TNT 몇만~수십만 톤급인 인간의 핵무기 몇 방으로 감당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하물며 육중한 홍해 바닷물을 그 엄청난 시간 동안 양쪽으로 붙들기 위해 필요한 힘.. 내지 댐의 건설 비용은 얼마나 될까? 이게 바로 '강한 손과 펼치신 팔'의 의미이다.

그리고 성경은 이집트로부터 해방됐다고, 한 작은 악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혹은 구원받았다고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 책이다.
세상의 게임이나 영화, 문학에서는 주인공이 빌런을 해치우고 공주님을 구출하는 걸로 끝이다. 결혼하는 걸로 끝이고,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이나 북괴 김 돼지를 없애는 걸로 끝이다.
그러나 그 뒤 주인공이 공주님과 평생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가? 탈북자는 대한민국 땅에 와서 잘 정착하고 살고 있는가? 구원받은 영적 아기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잘 자라고 있는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끄집어낸 이유 역시 그 뒤의 big picture가 있기 때문이다. 성막을 만들고, 매주 꼬박꼬박 안식일 지키라고, 수많은 가축을 잡으면서 저 다양한 희생제물들을 바치면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라고, 주변의 이방 민족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특이한 민족 행세를 하며 살라고 끄집어낸 것이다.

성경은 그런 책이다. 인생이라는 장기전 마라톤을 다루는 책이다.
구원받고 나서 그 뒤의 삶이 중요하고, 이집트에서 나온 뒤의 삶이 중요하고, 여자와 결혼에 성공하고 그 뒤의 삶이 중요한 그런 책이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기 12~14장 유월절과 홍해 사건 이후의 모세오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닌가 싶다.

※ 보너스

뭐, 모세오경보다는 한참 뒤의 일이지만,
사무엘상 5장 당시에.. 블레셋(필리스티아)의 다곤 신전 안에 CCTV가 있었다면 밤새 뭐가 녹화돼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이건 아마 심야괴담회의 소재도 될 수 있지 않겠냐?
블레셋의 신전 관리인이 얼굴 흐리게 처리하고 출연해서는..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CCTV 녹화 영상에는 제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던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주변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다곤 신이 저절로 자빠지고 엎어지고 팔다리가 끊어졌던 것입니다." 이럴 텐데 말이다.

그리고 다음 6장의 '블레셋 식 언약궤 귀환 차량'은 비록 내연기관이 아니라 소이긴 하지만 자율주행 기술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새끼를 갓 출산해서 젖이 나오는 암소가 지 새끼들을 버려두고 뭐에 홀린 듯이 똑바로 방향을 잡고 어디론가 유도를 받아서 간다니 이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아~ 성경 읽는데 자동차, 드론, 용형, 심야괴담회 같은 마구니들이 마구마구 떠오르니 매우 재미있다~~ ㅋ

Posted by 사무엘

2026/02/25 08:35 2026/02/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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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디지털, FM-AM

전파에다가 정보· 신호를 담아서 주고 받는 기술은 그 형태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발전했다. 그리고 아날로그 안에서는 AM(진폭 변조) 방식이던 게 FM(주파수 변조) 방식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지원 대상 매체를 살펴보면, 음성을 담는 기술부터 발명된 뒤에 영상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영상은 처음엔 흑백만 지원하다가 나중에 컬러로 확장됐다.

AM 라디오는 초보적인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20세기 초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FM 라디오는 제트기, 레이더, 형광등, 초창기 컴퓨터처럼 2차 세계대전 이후에나 대중화되고 보급됐다. FM은 잡음에 강하고 음질이 매우 좋지만(스테레오까지!) 디코딩을 위해 AM보다 더 훨씬 복잡한 회로를 만들어야 하고 만들기가 기술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덕분에 FM 수신까지 가능한 휴대용 건전지 라디오가 만들어지게 됐다. 이건 지금으로 치면 스마트폰 같은 혁신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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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국민라디오 VE301. 280 x 385 x 177 밀리미터.. 전축 스피커 하나 정도 크기였다. ㄲㄲㄲㄲ)

그 전.. 나치 독일이 프로파간다 선전용으로 보급했던 국민라디오는 당연히 진공관 기반에 AM 전용, 답정너 특정 주파수 전용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 기술로 진공관 라디오를 그 정도로 소형화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전자공학 기술의 산물이었다.

FM 라디오뿐만 아니라 텔레비전도 방송 자체는 193~40년대부터 조금씩 등장했지만 대중화된 건 사실상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였다. 하물며 1960년대까지만 해도 TV는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도 집집마다 보급되는 게 도저히 무리인 비싼 사치품이었으니 말이다. 그 전에 일반 서민들이 뭔가 영상을 접한 건 TV가 아니라 뉴스 영화 같은 것들이었다.

아날로그 텔레비전은 영상은 AM 방식, 음성은 FM 방식을 썼다. 그래서 옛날에 일부 고급 라디오는 FM에서 주파수를 더 올려서 텔레비전의 일부 낮은 번호 채널의 음성을 수신 재생하는 기능도 있었다.

영상은 음성보다 정보량이 근본적으로 훨씬 더 많고 취급하기 영 빡세다. 그러니 노이즈 때문에 좀 망가지더라도 처리 난이도가 더 낮고 차지하는 대역폭도 더 적은 AM 방식을 사용했다. 단, 지상파 텔레비전이 그렇다는 거고, CCTV나 현관 인터폰 같은 제한된 환경에서는 영상도 더 깔끔한 FM 방식이 쓰였다.

그 시절에 전파 상태가 안 좋으면 TV의 영상은 금방 노이즈 끼고 엉망이 됐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소리는 어지간해서는 깨지거나 잡음 끼지 않고 양호한 편이었던 걸 요즘 3~40대 이상 연령들은 기억하실 것이다. 그게 바로 이런 차이점 때문이다. 시스템이 일부러, 화질보다 음질을 더 신경 쓰는 쪽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영상을 통째로 디지털로 구현하는 건 1980년대 후반까지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1978년에 등장한 레이저디스크는 오늘날의 CD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광학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은 화질만 더 좋아진(TV나 VHS 비디오 테이프 대비) 아날로그 FM 신호로 기록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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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와 레이저디스크. 지름 12센티미터와 12인치의 차이가 저랬다.)

1982년에 등장한 CD는 소리를 디지털로 기록한 매체이긴 하지만 잘 알다시피 쌩 무압축이다. 영상은 그런 식으로 디지털화하는 게 절대 불가능하니 엄청난 컴퓨팅 능력을 가진 코덱이 필수였다.

1987년에는 IBM PC 차원에서의 마지막 그래픽 카드 규격인 VGA가 등장했는데, 그 당시의 단자 기술로는 고해상도 컬러 그래픽 영상을 화면에다 쏴 주는 대역폭이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VGA D-SUB 단자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들어졌었다!
비디오 메모리가 겨우 256KB네 512KB네 하면서 640*480 해상도를 논하던 시절,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인데 말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DVI나 HDMI 같은 디지털 단자로 세대 교체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가 돼서야 디지털 동영상을 표방하는 MPEG1 기반의 Video CD가 등장했다. 하지만 이건 매체의 용량으로나, 가정용 컴터들의 성능으로나.. 기존 아날로그 텔레비전이나 비디오(VHS)에 비해 그닥 뛰어나지 못해서 묻혔다.
1990년대 말, MPEG2 기반에다 DVD 정도가 등장한 뒤에야 서서히 판도가 바뀌었다. 영화도 컴퓨터로 보는 시대가 됐으며, 그리고 기존 텔레비전도 디지털로 바뀌고 화질이 바뀌고 무엇보다도.. 화면 종횡비도 더 납작하게 바뀌었다.

여기에 덧붙여 컴퓨터의 성능이 더욱 향상되고 무선 인터넷의 속도가 무섭게 빨라졌다. 그 덕분에 2010년대부터는 영화를 디스크 집어넣어서 보는 게 아니라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보게 됐다. 이 때문에 DVD 다음의 광학 매체인 블루레이는 오히려 인기가 영 시들해졌다.
MPEG 1과 2+의 존재감의 차이는 조금 분야가 다르지만 유니코드 1과 2+의 존재감의 차이와도 비슷한 넘사벽이 된 듯하다.

오늘날 디지털 TV가 전파를 주고 받는 방식은 둘 중 하나만 따지자면 FM보다는 AM의 변형 확장에 가깝다. 잡음 오류 검출은 디지털 신호에 담긴 정보의 체크썸으로 알아서 하니, FM의 고유한 장점이 별 의미 없기 때문인 듯하다.
깜빡거리는 형광등이 없어지고 PC에서 하드디스크 돌아가는 소리가 없어지고(SSD..), TV에서 백색잡음이라는 게 없어지다니.. 아니 백색잡음 영상을 인코딩한 디지털 동영상을 유튜브로 일부러 찾아 재생하다니 참 기가 찰 지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디지털이라는 건 그 음성이나 영상 신호의 원자적인 기본 단위까지 기계가 다~ 0 아니면 1로 100% 정확하게 파악하고 변별한다는 걸 의미한다. 아날로그는 그런 보장이 없다.
아날로그 기기는 이 신호가 진짜 신호인지 노이즈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영상이나 음성으로 변환해 내보내기만 할 뿐이다. 그러니 디지털이 아날로그 FM보다도 훨씬 더 고급 기술인 것이다.

※ 여담: 레이저디스크

레이저디스크는 비록 영상을 아날로그 뭉텅이로 다뤘지만 그래도 VHS보다야 월등히 더 뛰어난 매체였다. 단순히 화질만 더 좋은 차원이 아니었다.
오디오 CD와 마찬가지로 테이프를 번거롭게 감을 필요 없고,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디지털 영상과 마찬가지로 화질 저하 없이 고속 재생이나 일시정지가 가능했다고 한다. 오~ 이걸 생각하니 현타가 온다.

VHS는 잘 알다시피 그 작은 테이프에다가 영상 정보를 최대한 많이 집어넣기 위해 영상 정보를 기울인 사선 모양으로 기록한 걸로 유명한데..
그 대신 조금이라도 일반적이지 않는 방법으로 테이프를 다루면 재생하면 헤드-트랙 사이의 동기화가 깨져서 화면 유지가 안 됐다. 일시정지를 시키는 것조차도 뭔가 건물 엘리베이터를 닫힘 버튼 누르면서 존버하는 것 같은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프레임 단위 이동이나 고속 재생 같은 것에도 매우 취약했다.

하지만 레이저디스크는 그런 제약이 없었다니.. 그 시절엔 정말 꿈만 같았겠다. 그리고 얘는 후기형 한정이지만 음성은 오디오 CD처럼 디지털화도 됐다고 한다.
하지만 얘는 그 시절에 비싸도 너무 비쌌기 때문에 VHS처럼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니 그냥 소수의 영화광들 전유물로 머물렀다. 너무 크고 무겁고 보관하기 어려웠다는 단점은 덤이고..

Posted by 사무엘

2026/01/02 08:35 2026/01/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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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콩라인이지만 특이한 인물

성경의 창세기는 바벨 탑 사건 이후 12장부터는 아브라함-이삭-야곱 3대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의 관점이 세상 전체에서 특정 민족으로 범위가 확 좁아진다.
아브라함은 아무 보이는 증거 없이도 하나님 말씀만 따라 뜬금없이 고향을 떠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만으로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 열두 지파를 만들었다.

그들 사이에 낀 이삭은 애비나 자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삭도 생각보다 굉장히 대단하고 놀라운 구석이 있다.

(1) 이삭은 일단 기적적으로 탄생했다.
아예 처녀에게서 태어난 예수님 정도로 드라마틱한 건 아니지만, 폐경 불임 여성에게서 갑자기 아기가 짠 태어난 것만으로도 21세기 현대 의학으로 불가능한 일이 이뤄진 것이었다. 생명이 없는 목재 지팡이에서 새순이 돋은 것과 동급이다.

(2) 이삭은 아브라함이나 야곱과 달리, 개명 조치를 받은 게 없다.
아브라함은 개명 후의 이름이 유명하고, 야곱은 개명 전 이름이 더 유명하다. 야곱의 개명 후 이름은 부족· 민족· 국가의 이름으로 확장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3) 그리고 이삭은 외아들로 태어나서 나름 죽다 살아났고, 부모가 정해 준 여자하고만 평생 살았다.
애비 아브라함은 본처와는 그렇게도 자식이 안 생겨서 한때는 몸종 하갈까지 동원할 정도였다.
그러나 본처가 죽고 나서 재혼한 여자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녀가 잔뜩 생겨서 기존의 이스마엘/이삭 구도가 무색할 지경이 됐다. (창세기 25장 앞부분 참고)

아브라함은 재력이 풍부한 족장이었으니 아마 많이 어린 여자와 재혼한 게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추측만 한다.;;
손자인 야곱은? 뭐 처음부터 본처가 친자매 두 명이었고, 거기에다 첩도 있어서 서로 출산 경쟁을 했다.
이런 이야기가 이삭에게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삭은 리브가 말고 다른 아내, 그리고 에서와 야곱 말고 다른 자녀 얘기가 적어도 성경에는 전혀 없다. 전근대 시절의 대가족이 아니라 현대의 핵가족을 보는 것 같다.

(4) 또한, 이삭은 장가를 40세에 갔고 저 쌍둥이 아들들을 60세에 얻었다고 한다.
얘들도 애비인 아브라함 못지않게 무자녀 기간이 길었는데.. 이삭은 아브라함 부부처럼 첩을 동원한다거나 하지 않고 이 문제로 인해 중보기도를 하고 하나님에게 호소를 했다. (창 25:21) 애비보다 믿음이 훨씬 더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비록 외국 타지에서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이는 잔머리는 이삭도 아버지를 똑같이 따라했지만 말이다.

2. 외아들을 번제 헌물로 바치는 시험

뭐, 이삭의 삶에서 제일 드라마틱한 순간은 22장 번제물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 장면을 드라마나 영화로 각색한다면 창 22:8의 대사는 이렇게 만들면 딱이지 않겠는가?

“어, 아버지, 오늘은 장작과 불만 챙겨 가고 제물이 없는 거 같은데요?”
“아들아~ 번제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직접 예비해 주실.. 아 아니,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하실 거야.”

성경 번역할 때야 provide himself a lamb 문장이 영어 4형식이니 5형식이니 한 형태만 골라잡아야 하니 논쟁하고 싸운다 치지만.. 관련 2차 창작물에서는 이런 식으로 두 의미를 모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창작물이 성경의 뉘앙스를 반대로 왜곡한다거나, 단순히 성경에 없는 내용을 뇌피셜 창작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기존 의미를 보충 보강까지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물론 한참 나중에 현장에 도착해서 제단이 다 세팅된 뒤엔 아브라함이
“아들아.. ㅠㅠㅠㅠ (으허허허어어엉) 오늘은 하나님께서 너를 번제물로 바치라는구나!!”
이렇게 절규했을 것이다. 이건 거의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이 "너희 중에 한 명이 오늘 밤 나를 배반할 것이다" 이렇게 비통하게 선언하시는 것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은,

"예에에에에...??? (곧 평정심을 되찾고) 네 아버지, 알겠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따를게요."
(아들의 너무 초연한 모습에 더 ㅎㄷㄷ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신 게 있으니 네가 죽어서 번제물이 되더라도 하나님이 너를 반드시 다시 살려주실 거다. 이 애비는 그렇게 믿는다.. ㅠㅠㅠ 그럼.." (칼을 번쩍 들고 아들을 찌르려고 할 때)

"어이 잠깐 스톱! 아브라함, 아브라함아!" 이러면서 분위기 급반전. 그 이후 이야기는 여기서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을 겪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예배를 마치고 다시 자가용이 있는 곳으로 돌아올 때의 심정은 정말 어땠을까 싶다.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눴겠는가? 특히 이삭은 그야말로 죽다 살아나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거나 다름없었을 텐데.
이러니 이삭의 인생은 누구누구 예표로 가득하다. 이 사람이 장가 간 것도 평범한 결혼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창세기 24장이 그렇게도 길게 쓰여 있는 것이지 싶다.

3. 상남자 에서,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overdrive

(1) 앞서 거론된 바와 같이, 이삭에게는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이 있었다. 얘들은 외모와 성격이 극과 극인 걸 보면 생물학적으로 일란성은 아니고 이란성이었지 싶다.

이삭은 번제물이 되라는 요구에 순응하고 결혼도 100% 전적으로 부모가 정해 준 여자와 했을 정도로 순종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저런 성품과 별개로 상남자 기질도 있었다. 그래서 두 아들 중에서 산적 같은 마초 상남자 기질이 있는 에서를 야곱보다 더 좋아했다.

에서는 창세기 27장에서 아버지 이삭의 부탁을 받고는 짐승 사냥을 하러 평소 애용하는 엽총 샷건을 척~ 메고 오프로드용 SUV를 몰고 떠났을 것 같다. 아니면 할리데이비슨 바이크.. 터미네이터나 듀크 뉴켐을 생각하면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노아는 홍수가 그치고 나서 물이 좀 빠졌는지 주변 상황을 알아보려고 방주 뚜껑을 열고는 드론을 날려보냈을 것 같고, 리브가는 엘리에셀 일행의 차량에다가 세차와 주유를 일일이 직접 해 주는 것 같은가? 에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듀크..??
아 그러고 보니 성경에서는 Duke (족장, 추장, 공작 등등)라는 칭호를 하필 에돔.. 즉, 에서의 후손들에게만 유일하게 쓰고 있다. 창세기 36장이 대표적인데.. 이것도 매우 의미심장한 연결고리인 것 같다!!!

(2) 그 다음으로, 세월이 흘러 창세기 30장 이후로 넘어가서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는 장면을 읽어보면.. 그는 형에게 환심을 사려고 알라딘 Prince Ali 같은 퍼레이드를 벌이고 별 생쑈를 한다. 그래도 형은 과거의 팥죽 장자권 사취 사건은 쿨하게 잊었는지 동생을 반갑게 대해 줬다.
그 다음에, 이들이 나중에 같이 어디로 가려 할 때 야곱이 한 말 중에는 창 33:13이 있다.

아이고 형님도 아시다시피, 제 일행에는 연약한 어린애들이 많고 가축들도 엄청 많아서요.. '억지로 무리하게 끌고 가다가는' 다들 하루도 못 버티고 퍼지고 죽을 수도 있거든요~~

억지로 무리해서 빨리 몰고 가는 게 영어 성경에서는 overdrive라고 표현되었다. 성경 전체에서 딱 한 번 나오는 단어인데, 이게 자동차 기술 용어로는 다른 의미로 아주 친숙하다.

바로 엔진 크랭크축이 도는 것보다 바퀴 구동축이 더 많이 돌도록 기어비를 설정하는 것..
심지어 크랭크축과 구동축의 직결도 아니고 구동축이 더 많이 도는 걸 overdrive라고 한다. 보통은 변속기에서 최고단 기어가 overdrive 상태이다.

자동변속기는 일반적으로는 엔진의 토크가 허용하는 한 가장 높은 단을 설정한다. 그래야 최저 엔진 회전수(=연료 소모)에서 최고 속도 최고 성능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이렇게만 하면 차도 힘이 딸리고 가속이 잘 안 돼서 운전자가 답답할 수 있다.

저 창세기에서 오버드라이브의 부작용은 애나 가축이 퍼지고 죽는 것이었는데, 차에서 극단적인 오버드라이브란 정지 상태에서 2단에서 출발 같은 식으로 엔진에 무리를 주고 부르르르 떨리게 하고 심하면 시동을 꺼뜨리는 것이다. 이러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될 것이다. 컴퓨터로 치면 오버클럭에다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옛날 자동변속기 차량에는 '오버드라이브를 끄는' 옵션 버튼이 있었다. 이건 최고단을 봉인해서 최대 n-1단까지만, 기껏해야 1:1 직결까지만 변속되게 하는 기능이었다.
개념을 알고 보면 간단한데, 말을 거창하게 '오버드라이브'라고 하니까 뭘 오바한다는 건지 잘 와닿지 않는다.;;

파워 버튼, 오버드라이브 버튼, 2나 L단 이런 게 자동변속기에다가 "무조건 최고단으로만 동작하지 않게 하는" 예외를 제공하려고 존재했던 기능이다. 엔진 브레이크를 써야 할 때, 오르막 오를 때, 앞차 추월할 때처럼 고단보다는 고RPM이 필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부터는 자동변속기도 기술이 발달하고 저것들을 몽땅 통합하는 준수동 스포츠 모드라는 게 등장하면서 자질구레한 버튼들이 없어졌다.
내 차도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보통은 현재 진행 중인 단수가 그대로 표시되는데, 최고단 N단은 N-1단으로 반드시 바뀐다. 이게 개념적으로 '오버드라이브 끄기'를 구현한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 상태에서 다시 +를 눌러서 N단으로 되돌릴 수는 있지만..)

이상. 성경과 자동차가 이렇게도 연결된다.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5/12/07 08:35 2025/12/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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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집 앞 주유소에 찍힌 휘발유 가격을 보면서 세계사 연표를 떠올리곤 한다.

한동안 기름값이 대항해시대 르네상스 종교개혁을 가리킬 땐 좋았는데.. 요 근래에는 갈릴레오, 돈키호테, 동의보감, 킹 제임스 성경을 넘어서 병자호란과 경신대기근까지 찍었다. =_=;;
나중에 나폴레옹, 실학자, 프랑스 대혁명, 오일러, 가우스까지 갈까 봐 겁난다.
형사가 경찰서 구내식당에서 "요즘 반찬들이 전부 잡범뿐이네~ 어디 살인 사건 없나?" 이런 드립 치는 거랑 비슷하게 느껴진다. ㅠㅠㅠㅠ

코로나 직후에 비행기들이 싹 멈춰 버렸던 2021년 초였나.. 그땐 기름값이 잠깐이지만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반대로 지난 2010년 초 MB 때 금융위기에다 고환율 정책 이러던 시절엔 딱~~ 한 번 기름값이 근현대를 넘어 미래까지 간 적이 있었다. 기억 나시는가? 지하철 요금이 아직 1000원 초반대이던 시절에 휘발유 1리터가 2030~2050이었던 거 말이다.
이 정도면 유닉스 epoch이 부호 있는 32비트 정수 기준으로 오버플로가 나는 시기까지 도달한 거다. 그러다가 몇 년 뒤에 셰일 가스가 발견되면서 기름값이 다시 확 내려갔다.

2.
율곡 이 이는.. 조선 역사 500여 년을 통틀어 공부 머리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친 괴수 천재였다고 한다.
10대 중후반부터 20대 초반 나이에 과거 시험에 급제를 9번 하고 공부로는 어디서든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댄다.

이건 요즘으로 치면 대학교 1~2학년 나이에 휴학하고 군대를 다녀오는 게 아니라, 사시 행시 외시를 모조리 덜컥 합격해 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아니면 의대 졸업장 겨우 하나만 있는 건 시시하니까 의사 다음으로 변시 합격+변호사 면허라든가.. 의대 재학 중에 취미로 비행기 조종 사업용 면장까지 같이 득템.. 이런 것과도 비슷하다. (의대 공부를 다 소화하고도 비행기 조종을 익히고 비행 시간을 채울 여유가 있음 -_-)

율곡 선생은 수천~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중국 고전들이 머리에 사진 찍듯이 스캔 이미지 파일로 박혀 있고, 자기 주장을 글로 쓸 때 적재적소에서 문장이 톡톡 튀어나왔는가 보다.
글은 당연히 붓으로 한문으로 쓰고 말이다. 그땐 컴퓨터 키보드나 중국어 IME 같은 건 없었으니까.

이러니 저 사람은 우리나라 5천 원 지폐에 얼굴이 들어가 있고, 저 사람의 모친은 5만 원 지폐에 얼굴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말이다..

율곡 선생은 그럼 그 좋은 머리로 세상에 뭘 창조해 내고 무슨 기여를 했는가..??? 물건이 아니면 무슨 참신한 사상· 이론이라도 정립했는가?
뭐 관료로 일하면서 몇몇 선진적인 정책을 내놨다고는 하지만 채택되지 못했고.
겨우 공자 왈 맹자 왈 먹물질에만 재능 낭비를 했던 건 아닐까..?

참고로 율곡보다 1세기 가까이 전을 살았던 서양의 초천재 중 하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이 사람이 남긴 게 뭔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일 테고.

율곡은 딱 16세기를 풍미했던 사람으로,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거의 동시대 인물이었다. 서양에서는 딱 비슷한 시기에 각종 종교개혁자와 신학자가 등장하고, 그 뒤부터는 슬슬 과학혁명을 주도한 수학자 과학자들도 나온다. (티코 브라헤, 케플러, 갈릴레오 ...)

이런 게 동양과 서양의 발전 양상의 차이를 만든 것 같다.
중국과 한반도에서 공평하게 시험 점수만으로 관료를 선발하는 과거 시험을 시행한 게 서양보다 몇백 년을 앞섰다고는 하지만.. 이것도 그리 큰 메리트가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3.
내가 늘 하는 말인데 조선은 기록에 정말 진심인 나라였다.
조선왕조 실록이라든가, 수원 화성의궤 같은 기록은 정말 대단한 유물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기록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매우 아쉽다고 생각하는 건 (1) 뭐, 한글을 창제해 놓고는 쓰지도 않고 여전히 한문일색인 것, 그리고 (2) 온갖 미주알고주알을 다 기록해 놨다면서 정작 공돌이 장 영실과 지도 제작자 김 정호 같은 국가유공자의 출생과 최후 기록이 없는 것이다.

처음엔 기록돼 있었는데 나중에 소실된 거면 더 할 말은 없지만, 유학자 먹물이 아니어서 기록에 소홀했던 거라면 매우 유감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4.
조선 왕들 중에서는 이 방원이 유일하게 고려 시절 과거에 급제했던 이력이 있는 왕이다. 즉, 이 사람도 왕창 똑똑한 사람이긴 했다.
비록 정 몽주를 제멋대로 죽여서 애비와도 척지게 된 흑역사도 있긴 하지만, 이 사람이 그래도 나름 제일 잘한 건.. 맏아들 대신에 세종을 후계자로 삼고 아들이 나라를 안정되게 다스릴 기반을 닦아 놓은 것이었지 싶다. (경쟁자들은 몽땅 다 제거.. 피는 이 애비만이 묻힘)

종묘 떠받드는 거, 경복궁 가리던 중앙청 청사 헐어버린 것도 좋다 치는데..
오늘날까지 지폐에 대한민국 시절의 인물이 없는 건.. 이건 너무 심하게 에바인 것 같다.

정치인이나 군인을 제외한다면 공 병우, 우 장춘, 전 길남, 앞으로 50년~100년쯤 뒤엔 이 종욱 이런 사람도 제발 좀 넣었으면 좋겠다. 도대체 언제까지 조선 아니면 일제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참이냐.
아니면 조선 시대 중에서는 하다못해 정 약용 같은 사람이라도 말이다. (정 약용은 뭔가 조선판 벤저민 프랭클린 같은 인상이 느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5/11/29 19:35 2025/11/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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