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47 : Next »

서울 지하철 6호선 역촌 역의 4번 출구로 나가면 ‘은평 평화 공원’이라는 자그마한 공원이 있다. 지하철역 출구에 곧바로 자그마한 도시공원이 꾸며져 있는 건 대전 서대전네거리역과 비슷한 느낌이다.
저기는 2010년부터 공원으로 개장했고 그 전엔 그냥 평범한 건물 부지였던 것 같다만.. 은평구에서 무슨 생각으로 공원을 만들었나 모르겠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아무튼, 은평 평화 공원의 한쪽 구석에는 윌리엄 해밀턴 쇼(1922-1950).. 라는 6 25 참전용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대단한 집안에 너무 존경스럽고 대단한 분이었다.
일단 부모가 한국에 온 감리교 선교사였고, 저 사람을 평양에서 낳았다.
그는 한국에서 자라서 대학교까지 들어갔는데 2차 세계대전 땐 해군 장교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그 뒤에 한국에서 또 6· 25 사변이 터지자 대학원 박사 학업까지 미루면서 해병대 장교로 참전했다.

1950년 9월 22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서울 수복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분은 녹번동.. 바로 이 일대에서 전투를 수행하다가 적으로부터 저격을 당해 전사했다고 한다. 김 재현 기관사(1923 ~ 1950. 7. 20. 대전)와 비슷한 연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모, 그리고 저 사람(아들)까지 모두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혀 있다. 호머 헐버트처럼 말이다.

“내 친구 나라 한국이 위기에 처했는데 같이 도와주지 않고 나중에 전쟁이 끝났을 때 슬그머니 선교사로 들어가는 것은 제 양심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성경도 ‘사람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요 15:13)? 공부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같이 적힌 약력과 소개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런 사람이 소개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은평 평화 공원은 찾아가 볼 가치가 충분하다. 우연인지 뭣 때문인지, 은평은 이름을 구성하는 한자부터가 grace & peace 굉장히 성경적인 심상이 담겨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분은 천수를 누렸으면 하버드에서 한국학 전문 연구자의 커리어를 쌓았을 것이고, 아마 그 당시 하버드에서 한국학을 개척하고 있었던 서 두수 교수(서 남표 카이스트 전 총장의 부친!) 같은 분과도 인연이 분명 생겼지 싶다. 이를 생각하면 더욱 아쉽고 안타깝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응? 이 완용..????)

위의 저 말은 두고두고 기억되고 영원히 감사와 존경과 칭송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적이 핵이나 미사일 얘기를 할수록 우리는 더욱 강하게 평화를 외쳐야 한다.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평화를 외치는 사람만이 더 정의롭고 정당할 수 있다”


잠깐 욕 좀 퍼부어야겠으니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이런 하드코어 빨갱이 씨발새끼의 저주받을 암 유발 망언은 두고두고 박제되어서 영원무궁토록 규탄과 개쌍욕을 쳐먹었으면 좋겠다. 저런 새끼는 애국시민과 자유를 되찾은 동족 북한 주민들의 분노의 돌탕질에 맞아 대가리가 깨져 뒈지기를 개인적으로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만약 이 땅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해서 저런 놈이 천수를 누리고 편하게 죽고 무덤까지 만들어진다면.. 묘비에다가는 저 말이라도 꼭 새겨 넣어 줬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말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빨갱이가 아닌 다른 사유로는 결코 욕설을 노출하지 않는다. 뭐 독도는 일본땅? 저런 진짜 개씹창 망언부터 참교육 시켜 주고 난 다음에 대응해도 전혀 문제될 것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14 08:35 2020/12/14 08:35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30

1.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현장 몰카 사진

카메라라는 물건이 발명된 이래로 세상에 많고 많은 몰카가 촬영됐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진귀하고 중요한 몰카 축에 드는 사진은 바로 1944년 8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 근처에서 정말 목숨 걸고 몰래 촬영된 이 사진들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것은 나치 독일에 의해 고용되어 학살된 동족들 시체를 치우는 등의 뒷정리를 하던 소극적 부역자.. 일명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에 속하는 유대인들의 협조로 도촬됐다.
존더코만도는 식사와 보급은 일반 수용자보다 약간 더 좋게 받았지만, 동족을 적극적으로 괴롭히거나 밀고· 통제하지 않았으며, 용도가 다하면 역시 가스실로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카포 같은 급의 악질 끄나풀은 아니었다.

글쎄, 나치 수용소 내부에서 수감자들의 처참한 몰골이라든가 시체더미를 치우는 실제 사진(연출이 아닌)이나 동영상이야 물론 있다. 하지만 그건 연합국이 전쟁에서 이겨서 해당 지역의 수용소가 해방된 뒤에 연합군의 주도로 촬영된 것들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나치 독일에 의해 현업으로 돌아가고 있는 동안에.. 선전용으로 만들어진 관제 어용 기록 말고, 현장 내부의 라이브 사진이 몰래 찍힌 것은 놀랍게도 저게 유일하다고 한다.

삼청교육대에서 웃통 벗고 목봉 체조 열심히 하면서 "저희는 여기서 참교육 받으면서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대본만 읊는 입소자 인터뷰 영상이랑, 거기 내부 음지에서 온갖 끔찍한 가혹행위가 저질러지는 게 몰래 카메라에 찍힌 것은.. 퀄리티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서로 다르지 않겠는가?

이 사진들은 주변 배경을 자르고 사람이 나온 부분만 확대하고 보정을 많이 한 것이다. 더구나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촬영자와 카메라의 근처에도 나치 간부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멀리서 줌 당겨서 정말 몰래 급하게 허겁지겁 찍느라 각도와 구도는 엉망이고 초점도 흐리고.. 퀄리티는 열악함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사진이 찍히는 곳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현장감과 섬뜩함이 더 느껴진다. 한 트럭 가득한 시체들을 불태우는 장면, 여성 수용자가 야외에서 나체로 가스실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

마지막 장은 도저히 피치 못할 상황에서 각도를 너무 높게 든 걸 확인도 못 하고 셔터를 누른 바람에, 사람과 건물을 찍지 못하고 하늘과 나무만 찍었다.
찍고 나서 필름은 치약 튜브 안에다 넣어진 채로 폴란드의 레지스탕스에게 무사히 전달됐다고 한다.

2. 승리의 날에 기습 키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이 원자폭탄을 두 방 맞고 무조건 항복했을 때..
저 괴물 같던 일제가 "드디어, 드디어" 항복했고 지긋지긋하던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미국 시민들은 기뻐서 난리가 났다.

길거리에 뛰쳐나와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얼싸안고 춤추고 날뛰었다.
우리나라의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결승 진출..?? 그 분위기쯤은 저리 가라였다.
그 당시 영상 기록을 보면 무슨 미국이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V-J day in Times Square이라는 제목으로 남겨진 이 사진은..
1945년 8월 14일, 길거리에 나와 있던 한 간호사가 근처의 어느 생면부지의 해군 수병에게서 기습 키스(!!)를 당하는 순간이 절묘하게 기자의 카메라에 담긴 것이다. (누군지는 검색해 보면 다 나옴ㅋㅋ)
저 VJ는 비디오자키 따위의 뜻이 당연히 아니고 victory over Japan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 두 사람은 커플이 아니다.
그러니 평소 같으면.. 특히 요즘 같으면 저런 짓은 영락없이 성추행 성희롱이고, 여자 쪽으로부터 귀싸대기가 날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저 당사자 아가씨는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인데, 그리고 여느 괴한도 아니고 지금까지 조국을 위해 정말 고생했던 군인 아저씨인데" 하는 생각으로 눈 딱 감고 키스를 받아 줬다고 한다. 눈을 감은 채, 저 남자가 누군지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간호사는 저 사건을 마음속에만 묻어 놓은 채로 훗날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저 간호사가 자신이었다고는 한 1970년대가 돼서야 언론에다 털어놓았다.
하지만 기습 키스를 날린 수병이 누군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 수병은 어차피 저 아가씨에게만 키스를 날린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_=;;;

Posted by 사무엘

2020/11/30 19:35 2020/11/30 19: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25

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나 철도 차량이 밟은 대로 나아가지 않고 핸들을 꺾은 대로 정확하게 방향 전환이 되지 않는 상황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바퀴가 헛돎

전근대 시절에 인간이 만들어 낸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가 바퀴라고 한다. 육상 교통수단들은 바퀴가 지면을 구를 때 두 물체 사이에 발생하는 마찰력을 이용해서 움직인다. 굴러가는 바퀴에 밟힌 작은 돌멩이 같은 게 확 튀어오르는 걸 생각하면, 평소에 바퀴가 구르면서 지면에다 전하는 힘이 결코 만만찮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지면과 바퀴의 마찰이 너무 작으면 바퀴만 혼자 헛돌면서 차체는 가속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제동을 걸어도 바퀴는 멈춰섰지만 차체는 계속 미끄러져 움직일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는 바퀴가 모래나 진창에 파묻혔을 때, 또는 빙판길에서 미끄러질 때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철도는 구름 마찰력이 작아서 동력 효율이 우수한데 그 장점이 이런 데서는 악재가 된다. 기관차가 출력만 높고 충분히 무겁지 않으면 바퀴가 미끄러지거나 헛돌기 쉽다. 철차륜이 고무 타이어처럼 끼이익~ 거리면서 레일에다 스키드마크를 남기지는 않겠지만 저런 현상이 발생하는 건 철도 시설에 절대로 좋지 않다.

8200호대 전기 기관차라든가 과거의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는 엔진 출력은 좋은데 험준한 지형에서 저런 공전 현상이 발생하는 게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화물용 전기 기관차는 더 무거운 물건으로 따로 만들어졌고, 새마을호 PP는 산악 철도인 중앙· 영동· 태백선에는 투입되지 못하고 퇴역했다.

바퀴로 움직이는 차량은 비행기나 선박과 달리, 닥치고 가볍고 엔진 출력만 높을수록 장땡이 아닌 셈이다.
공항 계류장에서 대형 여객기를 견인하는 토우카 역시 이런 이유로 인해 자체적으로 왕창 무겁게 만들어진다.

2. 조향 중에 미끄러짐

고속 주행 중에 핸들을 급하게 틀면 차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전복되기 쉽다. 그런데 길이 아주 미끄러운 상태이거나 코너를 도는 동안에도 확 밟아서 가속을 한다면... 차는 전복되기보다는 그렇게 곧이곧대로 돌지를 않고 확 미끄러질 수 있다.

  • 차가 의도한 회전 반경보다 더 크게 돌면서 커브의 바깥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언더스티어라고 한다. (= 핸들을 덜 꺾은 것과 같음)
  • 반대로, 차가 앞부분이 홱 과격하게 돌면서 의도한 회전 반경보다 더 작게 급격하게 도는 것을 오버스티어라고 한다. (= 핸들을 더 꺾은 것과 같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륜구동은 언더스티어 성향이 더 강하며, 후륜구동은 오버스티어 성향이 더 강하다. 마치 추우면 옷을 더 입으면 되지만 더운 건 답이 없듯이.. 오버스티어는 사람이 테크닉으로 제어가 가능한 반면, 언더스티어는 감속 자체 말고는 제어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자동차 매니아 중에서는 후륜구동을 선호하는 사람이 좀 있다. 물론 일반인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굳이 전륜/후륜구동의 스티어링 성향의 차이를 인지할 정도로 과격하게 운전할 일은 없는 게 정상이겠지만 말이다.

전륜구동(FF)은 무거운 전방 엔진이 실린 바퀴가 구동하기 때문에 초반 가속이 미끄러짐 없이 안정적이다. 눈이 쌓인 빙판길에서 전륜이 후륜보다 미끄러짐이 덜하며 훨씬 더 잘 나아간다.
그러나 급가속 때는 관성 때문에 차의 뒷쪽에 무게가 쏠리기 때문에 후륜구동이 더 유리해져서 상황이 좀 바뀐다.

이륜차가 아니라 양쪽 바퀴로 굴러가는 차들은 아무래도 액체(선박)· 기체(비행기) 같은 유체가 아니라 딱딱한 고체 표면 위를 굴러가니 기본적인 안정성은 보장된다. 곧은 길에서 직진 주행만 한다면 딱히 좌우 무게 균형을 맞춰야 한다거나 전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급커브에서 과속을 하면 사고가 나고, 열차의 경우 탈선할 수 있다.

3. 좌우 요동이 갈수록 심해짐

일명 fish tail(피시테일) 내지 sway(스웨이)라고 불리는 위험한 현상을 말한다. 고속 주행 중에 차체의 뒤쪽(= 후륜)이 옆으로 힘이 가해지는 바람에 차가 접지력을 잃고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한다. 그럼 운전자는 당황해서 핸들을 쏠리는 쪽의 반대로 틀고 브레이크도 밟는데, 차는 이번엔 반대쪽으로 더 크게 쏠리기 시작한다. 런닝머신 위에서 장난감 차량을 굴린 예시를 보면 무슨 현상인지 정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다. (☞ 동영상 링크)

요동은 갈수록 커지고 결국 차는 스스로 전복되거나 도로 한쪽(중앙분리대 내지 가드레일)을 들이받게 된다. 주변의 멀쩡히 가던 차와 높은 확률로 충돌도 한다. (☞ 2013년경의 유명한 피시테일 단독 사고 영상) 비행기로 치면 실속에 빠진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건 무슨 급발진도 아니면서 발생 원인이 의외로 딱 정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고 한다. 어떤 자료에서는 오버스티어 성향이 있는 FR 차량에서 주로 나타난다고 하고, 어떤 자료에서는 반대로 FF 차량에서 더 잘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구동륜의 구분 없이 다 나타날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급브레이크를 밟지는 말고 핸들을 침착하게 쏠리는 방향의 반대로 틀면서 오히려 가속을 해 줘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가속이란 관성 때문에 차체가 뒤로 쏠리는 걸 의미하며, 그렇게 해 줘야 뒤에 무게가 실리고 접지력이 그나마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후륜구동 차에서는 더욱 절실히 저렇게 해 줘야겠다.

차가 혼자가 아니라 뒤에 캠핑카 같은 걸 끌고 있으면 고속 주행 중에 이런 요동 현상에 더욱 취약해진다. 후진만 어려운 게 아니라 전진에도 애로사항이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속 및 급핸들 조작을 더욱 삼가고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일정 무게 이상의 트레일러 차량을 운전하기 위해 특수 면허가 괜히 필요한 게 아니다. (☞ 외국에서 캠핑카를 끌던 차량이 요동치다가 사고 나는 장면)

철도는 조향이란 게 없으니 자동차 같은 수준의 피시테일 현상은 없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다. 레일과 바퀴가 꽉 조여진 게 아니기 때문에, 고속 주행 중에는 어쩌다 생긴 좌우 진동이 커지면서 차량이 요동칠 수 있다. 이것을 그 업계 용어로는 사행동(snake motion)이라고 한다. 승차감을 저해하고 레일과 바퀴를 손상시키고 최악의 경우 탈선 사고까지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현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행동이 발생한 채로 굴러가는 철도 차량 대차을 각각 앞에서 본 모습,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Posted by 사무엘

2020/11/28 08:32 2020/11/28 08:32
,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24

사이클로이드 -- 下

이제 우리는 오일러 방정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도 사이클로이드의 최단 강하 성질을 유도해 보고자 한다.
이것은 뉴턴 말고 동시대의 다른 천재 과학자이던 요한 베르누이가 최초로 발견했다.

물리 과목이 고전역학과 유체역학, 열역학, 전자기학을 넘어 파동과 입자 파트로 넘어갈 즈음에, 우리는 스넬의 법칙이란 걸 접하게 된다.
빛이 한 매질 속에서 v1이라는 속도로 나아가다가 속도가 다른(v2) 매질로 진입했을 때 잘 알다시피 굴절이 발생하는데.. 그 굴절 각도 사이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

sin θ1 : v1 = sin θ2 : v2

비율이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법칙이다.
물리학이라는 게 딱딱한 물체의 가시적인 움직임만 기술하는 줄 알았는데.. 물 속에 비치는 물체가 실제보다 얕게 보이는 이유와 정확하게 얼마나 얕게 보이는지까지 수식으로 알려준다는 것이 경이롭다. 이건 게임에다 비유하자면 말 그대로 오브젝트들의 운동 역학뿐만 아니라 그래픽 렌더링에까지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뭐, 0도~90도 사이에서 sin x는 x 자체와 별 차이 없을 정도로 단조증가만 하니, 위의 법칙이 아주 특이한 결과를 만들지는 않는다. 빛의 속도가 빠른 곳에서는 각도가 작아지고, 느린 곳에서는 각도가 대체로 커진다. 단지 고각이 될수록 그 정도에는 선형적이지 않은 차이가 발생할 뿐이다.
(낮은 각도에서 x와 sin(x)는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은 단진자 주기의 근사값을 구할 때도 쓰인다. 이에 대해서는 곧 다시 다루어질 것이므로 참고하시라.)

그런데 빛은 애초에 질량이 없는 물건이고 구슬처럼 데구르르 구르지도 않을 텐데 저 법칙이 사이클로이드 내지 최단 강하 곡선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고지대는 매질이 진해서(...;) 빛의 속도가 제일 느리고, 아래로 갈수록 점진적으로, 선형적으로 매질의 농도가 옅어져서 빛이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게 빛에게 중력 역할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공기 아니면 물 같은 이산적인 흑백이 아니라, 그러데이션을 생각하면 된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위에서 아래로 빛을 조금이라도 비스듬하게 쏘면.. 빛 역시 단순무식하게 직선 형태로 나아가지 않게 된다.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쭈루룩 휘어지고, 그 궤적이 놀랍게도 사이클로이드가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즉, 궤적의 어느 점에서나, 어느 높이에서나 sinθ / v의 값은 일정해야 한다.
출처에 따라서 sinθ / sqrt(h) = C(상수) 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앞서 값을 구한 바와 같이, 속도 v는 sqrt(2*g*y)로, 높이의 제곱근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y축이나 높이 h나 동일한 개념인 것은 다들 아실 테고..

그리고 여기서 각도 θ라는 건 보다시피 y축(세로선) 기준의 값이다. 이를 x축 기준으로 환산하면 90도-θ나 마찬가지이다. 즉, y축 기준 입사각 90도는 x축 기준 0도와 같다는 뜻.. 그러므로 y축 기준으로 sin θ는 우리 입장에서는 cos θ와 같은데..;;

여기서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다.
cosθ는 1/sqrt(tan(θ)^2 + 1) 로 형태를 바꿔치기 할 수 있다! (sinθ^2 + cosθ^2 = 1이니까)
여기서 탄젠트라는 건? 고맙게도 x축 대비 y의 변화량.. dy/dx, 다시 말해 y'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sinθ/v에서 분자는 1/sqrt(1+y'^2)로 깔끔하게 나왔고, 분모 v에다가는 sqrt(2gy)를 집어넣으면..
이게 곧 미분 방정식

1/( sqrt(2gy)*sqrt(1+ y'^2)) = C

이 나오는데, 이건 앞서 오일러-라그랑주 방정식에서 d/dy 안에다 대입해서 집어넣었던 ∂F/∂x'와 같은 형태이다. 그때는 x를 먼저 구했지만 지금은 y를 먼저 구할 뿐... 그리고 그때도 지금처럼 y를 먼저 구하는 식으로 풀 수 있다.

잡다한 상수와 근호를 치우고 식을 정리하면 y(1+y'^2) = C 를 얻는다.
제곱이 좀 압박스럽게 보이긴 하지만, 얘는 dx = dy sqrt( y/(C-y) ) 로 변형 가능하며 이건.. 역시 이전 방식에서 얻었던 x'의 형태와 같다.
그러니 y를 삼각함수의 제곱으로 치환해서 계속 풀어 나가면 된다. 이상..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다른 참고 사이트에서 열람하시기 바란다. (☞ 참고 1, 참고 2)

사이클로이드는 공대 1학년의 기초 필수 코스인 벡터 미적분학 교육과정에서 정말 최고로 적합한 교보재인 것 같다.
스넬의 법칙 덕분에 풀이의 일부가 좀 간소화된 듯한 느낌인데.. 사실 스넬의 법칙도 직접 유도해 보면 물리에 앞서 오일러-라그랑주 방정식과 동급의 수학 원리가 이미 깔끔하게 담긴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빛이 속도를 최대화하기 위해 사이클로이드 궤적 형태로 굴절된다니, 이건 우주 로켓 발사와도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공기가 가장 짙고 공기 저항도 극심한 지상에서는 이 구간을 빨리 빠져나가는 게 중요하므로 로켓이 닥치고 수직 상승한다. 하지만 공기가 충분히 옅어지면 이제 수평으로도 속도를 내서 지구 궤도에 진입할 채비를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각 고도별로 수직과 수평 동력을 잘 배분하여 연료를 가장 적게 쓰고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로를 짜는 건 굉장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여기에도 사이클로이드 궤적이 쓰이는지 궁금하다.

2. 등시 곡선

아이고 힘들다.. 최단 강하 곡선 얘기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네.. 그런데 이게 사이클로이드의 역학적 특성의 끝이 아니다.
얘는 최단 강하 곡선인 동시에 놀랍게도 ‘등시 곡선’이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공을 곡선의 맨 꼭대기에서 굴리든, 밑바닥 근처에서 살살 굴리든, 목적지인 밑바닥에는 동일한 시간 후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공기 저항과 마찰을 무시하는 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말을 들으면 같이 떠오르는 게 있다. 바로 단진자의 운동.
학창 시절에 배운 기억으로는 단진자도 각도라든가 추의 무게와 무관하게 왕복 주기가 동일하다. 오로지 실의 길이 l과 중력가속도 g의 영향만 받아서 2π*sqrt(l/g)라는 공식이 나왔었다. (줄 길이의 제곱근에 비례)

그런데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단진자가 그리는 궤적은 사이클로이드가 아니라 그냥 원호이다. 둘이 어떻게 동일할 수가 있지?
관련 자료를 다시 찾아보니, 단진자의 주기는 각도와 완전히 무관한 게 아니었다. 중등 수준에 맞게 난이도 보정을 하느라 θ가 충분히 작아서 sinθ가 θ와 얼추 같다고 “치고” 식을 유도한 것이었다. 원래 미분방정식은 θ'' + sinθ *g/l = 0 이렇게 나오는데, sinθ를 놔두면 미분방정식이 너무 어렵고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물리 시간에 뭔가 “sinθ가 θ와 얼추 같다고 치고” 식을 유도하는 걸 접한 기억은 있지만 그게 단진자 주기 공식이었다는 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sinθ를 살려서 문제를 해석학적으로 정확하게 풀려면 타원 적분이란 걸 동원해야 하며, 최종적인 답이 무한급수의 형태로 튀어나오게 된다. 이런 복잡한 항들이 2π*sqrt(l/g)의 뒤에 덕지덕지 추가적으로 곱해진다. 자세한 것은 타 사이트의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단진자가 이 정도로 까다로운 물건이었다니..;;

그럼 60도짜리 진동과 15도짜리 진동이 일치할 정도가 되려면.. 진자도 원호 궤적이 아니라 사이클로이드 궤적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 사이클로이드는 원 궤적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진자의 궤적이 사이클로이드가 되게 바꾸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따로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이렇게.. 반지름 a/2짜리 원을 굴려서 얻어지는 사이클로이드 모양의 벽을 반반 쪼개서 양 옆에 배치하면 된다. 그러면 아무 지점에서 진동시켜도 사이클로이드 궤적을 그리면서 완벽한 등시 등주기가 실현된다. 얘는 각도와 무관하게 진동 주기에 π*sqrt(l/g) 다음으로 원운동 진자 같은 복잡한 항이 덕지덕지 붙지 않는다. 이것을 첫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호이겐스 진자라고 부른다.

사이클로이드 궤적은 어째서 등시 강하가 보장되며, 저렇게 진자를 진동을 보정하면 어떤 원리로 사이클로이드가 되는 걸까?

우린 임의의 궤적 함수가 주어졌을 때 구슬이 끝까지 다 굴러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구하는 함수 T를 이미 구한 바 있다. 분자는 sqrt(1+f'(x)^2) dx이고, 분모는 sqrt(2*g*f(x))이던 그 식 말이다.
그걸 써먹으면 된다. 얘를 임의의 시작점을 집어넣어서 끝까지 적분을 하더라도 항상 동일한 값이 나온다는 것을 입증하면 등시 강하 특성을 입증할 수 있다.

그런데 사이클로이드는 매개변수 형태로 표현돼 있으므로..
x = r*(θ-sinθ), y = r*(1-cosθ) 로부터
dx/dθ = r*(1-cosθ), dy/dθ = r*sinθ 를 얻는다.
그러므로 dy/dx는 양변을 r로 나눈 sinθ / (1-cosθ)가 된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식의 분자 부분을 다음과 같이 깔끔하게 dx 대신 dθ로 치환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으로 분모는? f(x), 아니 y에 해당하는 r*(1-cosθ)만 대입해 주면 되는데...
우리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약간의 변화를 줘야 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최고점인 y=0일 때 속도가 0이었지만, 우리는 y>0이고 더 낮은 임의의 지점에서 가속을 시작하여 구슬을 굴리더라도 끝까지 다 구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동일하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그 임의의 지점을 단순 높이로 나타내건 각도로 나타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원을 0도에서 180도(pi!) 반원 각도만치 굴려서 사이클로이드 궤적을 굴리는 상황을 설정할 것이므로 각도 표기를 계속 사용할 것이다.
θ0이라는 각도에서 처음으로 공을 굴렸다면 속도가 어떻게 될까?
v = sqrt(2g*(y-y0)) 로부터 sqrt( 2g*r*( cos(θ0) - cos(θ) )) 이 나온다. 각도를 빼는 게 아니라 y축 관점에서 cos 결과값을 빼 주면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이클로이드의 y축 매개변수 r*(1-cosθ)에서 1이 cos(θ0)로 바뀐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 그냥 제일 높은 곳에서 처음부터 구른 것이면 θ0는 0도이기 때문에 분자와 분모에서 2a*(1-cosθ)가 통째로 약분되어 없어진다. 적분식은 θ와 무관한 상수가 되며(= 극값), 사이클로이드가 고정된 최단 강하 곡선임이 증명된다.
다음으로 분모의 1을 cos(θ0)이라는 상수로 바꾸고, 얘를 θ0부터 pi까지 정적분한 값도 θ0와 무관하게 고정된 값이 나온다는 것을 입증하면.. 이건 구르는 소요 시간이 θ0의 값과 무관한 등시 곡선임을 추가로 증명할 수 있다.

얘도 다루기가 많이 까다로워 보이지만.. 그래도 끝자락이 삼각함수에서 비교적 취급하기 쉬운 상수인 pi이며, 삼각함수들을 반각/배각 공식을 이용해 제곱으로 치환하면 제곱근 근호를 걷어내고 적분을 그럭저럭 격파할 수 있다. 이렇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경이롭다. =_=;; 특히 마지막에 arcsin으로 치환되는 적분 부분이 정말 압권이다.
이를 통해 θ0은 싹 사라져 버리고, θ0가 있더라도 그냥 θ0=0일 때와 동일하게 상수 시간이 도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이다. 사이클로이드를 제대로 마스터 하려면 호이겐스 진자의 진동 궤적이 왜 사이클로이드가 되는지도 해석학적으로 유도해야겠지만.. 그건 이 자리에서는 생략하겠다.
아무쪼록 (1) 사이클로이드가 원이나 타원의 호가 아닌 이유, (2) 저게 최단 강하 곡선인 이유, (3) 어느 위치에서건 등시 강하 곡선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면 당신은 대학 나온 훌륭한 이과생 공돌이라고 불릴 자격이 될 것이다.

1600년대 중후반은 갈릴레오와 케플러에 이어 뉴턴, 라이프니츠, 베르누이 같은 사람이 등장하면서 미적분학이 태동하고 고전역학이 전성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그 옛날 사람들이 사이클로이드라든가 단진자 운동의 특성을 갖고 저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저 때는 괘종시계가 현역이던 옛날이었기 때문에 단진자 운동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등주기를 실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게 시계의 정확도와 직결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1700년대에 가서는 오일러와 라그랑주가 나오면서 이 바닥은 더 세련된 계산법이 개발되고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0/11/25 08:35 2020/11/25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23

사이클로이드 -- 上

이전 글들에서는 현수선 얘기를 하면서 한창 쌍곡선함수 얘기를 늘어놨는데, 이 글에서는 분위기를 바꿔 정통(?) 삼각함수 얘기를 좀 하겠다.
수학에서 다루는 많고 많은 곡선 중에는 “원을 직선 위에서 굴릴 때 그 원에 놓인 정점이 그리는 궤적”이란 게 있다. 이걸 ‘사이클로이드’라고 한다.

반지름 r인 원이 (0, r) 위치에 놓여 있다. 그리고 궤적을 추적하고자 하는 점은 처음에 바닥의 원점 (0, 0)에 있다고 치자.
수학 좌표계는 x의 양의 방향이 오른쪽이고 y의 양의 방향은 위쪽이다. 이 상태로 원이 x의 양의 방향으로 굴러가려면 시계 방향으로 굴러가야 하며, 각도는 처음에 270도에서 시작했다가 줄어들어야 한다. 각도가 늘어나는 방향은 반시계 방향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즉, (cos(3π/2 - θ), sin(3π/2 - θ)+1) 정도 될 텐데..
cos(3π/2 - θ)는 sin(-θ) → -sin(θ)로 간소화시킬 수 있다.
sin(3π/2 - θ)도 -cos(θ)로 간소화시킬 수 있다.

이건 원이 제자리에서만 빙글빙글 도는 상황이다.
실제로 굴러간다는 조건을 추가하면 원은 아주 단순하게 x축의 양의 방향으로 r*θ만치만 이동하게 된다. 원의 전체 둘레는 2πr이고 θ는 각도 겸 원호의 둘레와 정확하게 대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이클로이드의 궤적은 ( r*(θ-sinθ), r*(1-cosθ))라고 깔끔하게 나온다. 원이 헛돌지 않고 제대로 굴러가는 이상, 점이 아예 뒤로 후퇴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이클로이드는 원이나 타원의 호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실제로는 이와 무관한 별개의 궤적이다. 아래의 그림 비교와 관련 설명을 참고하시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얘는 x와 y의 위치를 매개변수를 통해 제각기 나타낼 때는 식이 저렇게 아주 깔끔하게 구해지는 반면, y=f(x) 꼴의 단순한 양함수로 나타내는 건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롭다. x축이 그냥 sin(t)가 아니라 t-sin(t)인데.. 이게 역함수를 구하기가 몹시 난감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x=g(y)라는 일종의 음함수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내는 게 y=f(x)보다는 더 할 만하다. 원이 굴러간 거리에 대한 함수가 아니라 원의 범위 영역에 대한 함수 말이다.
사이클로이드는 이렇게 까다로운 면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이클 궤적의 길이라든가 그 궤적 아래의 면적은 적분을 통해 깔끔하게 떨어지는 형태로 구할 수 있다. 이쪽으로 더 관심 있으신 분은 위키백과 등의 타 사이트를 참고하시라.

이 글에서 현수선 다음으로 사이클로이드를 소개한 이유는 얘도 현수선과 동급으로 역학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특성이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1. 최단 강하

먼저, 얘는 일명 ‘최단(최고속) 강하 곡선’이다. 높은 지점에서 낮은 지점으로 공을 굴리는데 무작정 최단 거리인 직선 경사로가 아니라, 사이클로이드를 상하 반전시킨 형태의 경사로를 만드는 게 좋다. 그러면 공이 중력 버프를 받아서 목적지에 더 빨리 도달하게 된다! (지면 마찰과 공기 저항 따위는 모두 무시)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다면 비행기의 비상 탈출용 미끄럼틀도 직선이 아니라 이런 형태로 만드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무리이겠지만, 그래도 어린이용 미끄럼틀 중에는 이런 과학 고증(?)을 반영하여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흉내 낸 모양인 것도 있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이것도 까놓고 말해 그냥 포물선이라든가, 사분원이나 2차 베지어 곡선, 혹은 아예 역학적인 안정성이 검증돼 있는 현수선이 최단 강하일 수도 있을 텐데 왜 하필 사이클로이드가 당첨인 걸까? 직선보다 아래로 볼록한 모양이어야 하겠다는 건 수긍이 가지만 왜 하필 저 모양이 최적인지는 직관적으로 납득이 잘 안 된다.

먼저 우리는 구슬이 처음 놓여 있는 좌측 최상단 꼭대기가 원점 (0, 0)이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계산의 편의를 위해, y축은 중력이 향하는 방향(=아래)이 +로 증가하는 방향이라고 간주하도록 하겠다. 즉, 통상적인 수학 좌표가 아니라 컴퓨터 화면의 좌표계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구슬은 아래로 굴러가면서 x축과 y축 모두 값이 일관되게 증가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저 사이클로이드 공식도 y축의 부호를 뒤집을 필요 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푸는데 매우 중요하게 활용되는 단서는 (1) "역학적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구슬이 직선 경사로를 쫙 구르건 그 어떤 꼬불꼬불한 곡선을 타고 오르내렸건, y축 중력 가속도가 g인 상태에서 y라는 높이만치 내려가 있다면 그 당시에 물체의 속도는 mgy = mv^2 /2를 근거로 v=sqrt(2*g*y)가 된다. 위치 에너지가 그만치 운동 에너지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x축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 속도는 xyz 같은 축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단위 시간당 이동량이다. 그 속도를 얻은 상태에서 수평 이동을 한다면 구슬은 공기 저항과 마찰이 없는 한, 영원히 등속 운동을 할 것이다. 상승하면 속도가 점차 느려질 것이고, 하강하면 속도가 붙어서 빨라질 것이다.

여기까지 준비가 완료됐으면 사이클로이드 문제는 크게 두 방법으로 풀 수 있다.
하나는 뉴턴이 터를 닦으시고 오일러-라그랑주가 끝장을 낸 (2) 변분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하드코어한 고전역학의 범주에서 끝을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파동 분야에서 정립된 (3) 스넬의 법칙을 접목하는 것이다. 겉보기로 수식의 압박이 변분법보다는 '약간' 덜할지 모르지만, 그럼 스넬의 법칙은 왜 어째서 성립하는지를 일일이 따지고 든다면 난이도는 비슷하게 안드로메다로 치솟는다.

그럼 변분법 버전부터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다.
통상적인 미분이 함수의 극점을 구해서(= 도함수가 0) 특정 구간에서 함수의 최소/최대값을 구하는 데 쓰인다면, 변분법이란 범함수의 최소/최대값을 구하는 방법론을 말한다.
그럼 범함수란 무엇이냐? 프로그래밍에는 평범한 숫자나 객체가 아니라 함수 자체나 람다를 다른 함수의 인자로 넘겨주는 게 있다. 그것처럼 수학에도 함수를 받아들여서 스칼라 형태의 값을 되돌리는 함수가 있는데, 그걸 범함수(functional)라고 한다. 특정 함수가 특정 구간에서 미분 불가능한 지점의 개수.. 그런 것도 범함수의 일종이 될 수 있다.

변분법을 이용하면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경로가 직선인 이유처럼 공리 수준의 너무 당연해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둘레가 동일한 도형 중에 면적이 최대인 놈이 원의 형태가 되는 이유, 물방울· 비누 방울이나 잠수정이 전부 구형으로 만들어지는 이유(단위 면적당 압력 최소화) 같은 것도 다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유도할 수 있다.

최단 강하 곡선 문제에서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은 길이나 면적 따위가 아니라 "도달 시간"의 최소값이다.
구슬이 위에서 아래로 굴러가는 궤적을 y = f(x)라는 함수로 나타낸다면, a라는 임의의 x축 지점에서 구슬의 진행 속도는 f(a)의 값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 속도는 앞서 공식을 구한 바와 같이 전적으로 y축에 의해서만 결정되고, y축의 값은 x축 대한 함수 f로부터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2-1) 이 함수를 어째 잘 적분해서 f(x)라는 함수에 대해 구슬이 다 내려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속도 함수를 적분해서 구하는 건 보통은 거리이기 때문이다. 시간에 대해 적분하면 끝이다. (예: 시속 100km로 2시간을 달린 거리는 200km)
그런데 반대로 소요 시간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함수 궤적의 거리가 주어져 있어야 한다. (예: 시속 100km로 300km를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그래도 이것도 적분이긴 하다.

앞서 sqrt(2*g*y)이라고 값을 구한 속도 v는 거리/시간, 즉 ds/dt라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 ds라는 건 역시 x 변화량 대비 y의 변화량을 거리화한 것이며, y 변화량은 곧 f(x)의 변화량과 같다. 그러므로 이것은 sqrt(1 + f'(x)^2 )로 나타낼 수 있다.
v = ds/dt 에서 sqrt(2*g*f(x)) = sqrt(1 + f'(x)^2 ) / dt 가 되고..
이 관계로부터 dt = sqrt(1 + f'(x)^2 ) / sqrt(2*g*f(x))이 된다.

오.. 그러므로 구슬이 구르는 궤적 함수가 f이고 중력 가속도는 g, 구슬이 다 구른 오른쪽 끝의 x축 지점이 a라 할 때, 구슬이 다 구르는 데 걸리는 시간 T는 다음과 같이 깔끔하게 구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까지 도달했으면 문제가 반 정도는 해결됐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a와 g가 고정돼 있을 때 T를 최소화하는 f(x)를 구하면 된다.

1/sqrt(2*g)는 그냥 상수이므로 적분 기호 밖으로 옮겨도 아무 상관 없다. 그리고 범함수에서는 그 정의상 x라는 변수뿐만 아니라 그 x에 대한 함수 f(x)까지 범함수의 parameter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f(x) 대신 그냥 y로 표기하며, 도함수도 f'(x) 대신 dy/dx라고 표기하는 걸 더 일상적으로 보게 된다. 애초에 사이클로이드도 f(x) 대신 x, y축 따로 매개변수 형태로 표기하는 게 더 유리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쓰이는 도구는 바로 (2-2) 오일러-라그랑주 방정식이다.
x, y라는 변수가 있고 F가 y, y', x에 대한 범함수라고 하자. 우리가 푸는 문제에서는 x, y는 구슬의 궤적을 나타내며, F는 그 궤적으로 끝까지 구르는 데 걸리는 소요 시간을 구하는 구간 적분이 된다.
오일러-라그랑주 방정식에 대해 제일 간단하고 엉성하게 요점만 말하자면, F가 극값(최소 또는 최대)이 나올 때 이들은 다음 등식을 만족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 그런지 궁금하면 이변수함수의 연쇄법칙을 동원해서 저 식을 직접 유도하면 된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시간과 지면의 부족으로 증명을 생략하겠다. ㄲㄲ)

저 식에서 F에다가는.. 우리가 구한 처음 식 T에서 상수배 항과 dy 적분을 걷어낸 sqrt((1+x'^2)/y), 즉 순간 변화량을 대입한 뒤, 식을 x'에 대해 풀면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경우, ∂F/∂x가 0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물체의 속도는 x축 위치와는 전혀 무관하고 y축 높이에 의해서만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식에서 d/dy (∂F/∂x')도 같이 0이어야만 한다. F를 x'에 대해 편미분한 뒤, 양변에 sqrt(y)를 곱한 결과는 아래와 같이 된다. (x가 어떤 함수인지 정확한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x와 x'는 서로 독립변수로 간주됨) 이 식을 x'에 대해서 정리하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헥헥.. 이제 x'이 구해졌다. 그러면 함수 x는 y에 대해 적분을 해서 구할 수 있긴 하지만.. sqrt(x/(1-x))라는 함수는 부정적분을 호락호락 쉽게 구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쟤를 수월하게 적분하는 방법은 x, y를 다른 변수 형태로 치환하는 것이다. 애초에 사이클로이드는 x, y 궤적을 매개변수 형태로 치환해야 표현하거나 취급하기 용이한 물건이다.

y를 sin(t)^2 / C^2 으로 치환하면 거추장스러운 C가 없어진다. 그리고 근호 안의 식이 sin(t)^2 / cos(t)^2로 바뀌고 근호도 없어져서 식 전체가 tan(t)로 바뀌는 마법이 펼쳐진다.
단, dy도 sin(t)^2의 도함수인 sin(t)*cos(t) dt로 바뀌기 때문에 저 tan(t)에다가 sin(t)와 cos(t)를 곱해 줘야 한다.
tan은 sin/cos이므로 cos는 서로 약분되어 없어지고.. 최종적으로 적분해야 하는 식은 sin(t)^2 dt가 된다.

그리고 sin(x)^2은 삼각함수 덧셈 정리로부터 유도된 반각 공식에 의거하여 (1-cos(2x))/2로 처분 가능하다. 이게 적분하기 훨씬 더 편하다.
사이클로이드를 기술하는데 각도가 t건 2t건 그건 중요하지 않으므로 x축의 궤적은 각도 θ에 대해 C*(θ-sin(θ))가 도출되며, y축은 이미 sin(t)^2의 간소화형인 C*(1-cos(θ))로 답이 나와 있다. 이것으로 유도 끝..

우리는 사이클로이드의 x, y축별 매개변수식에서 아주 중요한 특성을 하나 주목하게 된다. 바로 매개변수 t에 대해서 x축의 궤적 함수는 y축 궤적 함수의 부정적분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y축의 궤적 함수는 x축 궤적 함수의 도함수이다. 애초에 이런 관계였구나..

이것은 사이클로이드를 매개변수가 아닌 양/음함수로만 기술할 때는 간파할 수 없는 특성이다. 그리고 이런 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이클로이드의 x, y 궤적은 앞서 제시되었던 미분 방정식을 만족하고 해당 범함수에 대해 오일러 방정식을 충족하고, 최단 강하 곡선 역할까지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이다. 현수선하고 뭔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현수선을 분석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더 어려운 것 같다..;; 현수선이 역학적으로 자연스럽고 안정된 궤적이라면, 사이클로이드는 좀 더 인위적이고 최적화된 듯한 느낌이 드는 궤적이다. 다만, 둘 다 중력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얘는 중력이 작용하는 지표면에서 공을 몇 도로 던졌을 때 제일 멀리 날아가냐 하는 문제와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삼각함수의 반각 공식이 쓰였다는 공통점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이클로이드는 그것보다도 당연히 훨씬 더 복잡하고 난해하다.
글이 이것만으로도 너무 길어졌으니, 최단 강하 증명의 다른 풀이법 등 나머지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하도록 하겠다. =_=;;

Posted by 사무엘

2020/11/22 08:34 2020/11/22 08:34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22

우리 주변에서 교량(다리)이라는 건축물들을 보면 (1) 교각이라고 불리는 기둥들이 물 위에 일정 간격으로 박혀 있고, 그 교각들을 한데 잇는 길이 위에 놓여 있다. 그 이상 딱히 다른 특이사항은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밋밋 평범한 다리의 예: 한남대교 ㄲㄲㄲ)

하지만 어떤 교량은 추락· 투신을 방지하기 위한 난간의 규모 이상으로 (2) 거대한 철골 구조물(트러스? 아치?)이 놓여 있다. 자동차보다 훨씬 더 무거운 열차가 다녀서 그런지 한강철교가 이런 형태이다. 그 밖에 서울 지하철이 다니는 동호대교(3호선)과 동작대교(4호선)도 이런 범주에 들며, 특히 후자는 동그란 아치 모양의 철골 구조물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만, 모든 철교가 이런 형태인 건 아니다. 그리고 철골 구조물이 그냥 다리 하부에 상판과 기둥 사이에 설치된 것도 있다. 성수대교 내지 구 당산철교(부실 시공 붕괴 위험으로 인해 1997년에 철거됨)가 그 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르버트러스 공법이 사용된 성수대교. 유난히 야경이 많이 검색돼 나온다.)

경부 고속도로의 초기 개통 구간 중에는 비록 강을 건너는 건 아니지만 아래의 지형을 훌쩍 타넘는 고가 교량이 몇 군데 있었다. 대전 육교와 당재 육교가 대표적인데, 미관을 살리고 아래에 차지하는 공간도 최소화하기 위해 교각이 아치 형태로 만들어졌다. 1960년대 말에는 이 정도 건축물을 만드는 것도 굉장히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다음으로 대형 교량 중에는 (3) 다리의 기둥을 아득히 초월하는 높은 주탑이 세워져 있고, 다리 상판이 케이블에 매달린 형태인 게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천대교의 어마어마한 위용..)

사장교는 상판의 각 지점이 주탑과 직통으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주탑으로부터 덕지덕지 뻗은 케이블은 직선 모양이다. 서울에서는 올림픽대교가 사장교의 유명한 예이며, 서울과 인천 공항을 연결하는 인천대교, 그리고 당진과 평택을 잇는 서해안 고속도로의 서해대교도 사장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림픽대교는 이런 게 사장교라고 작은(?) 주탑 하나로 데모를 보인 수준이다.)

그 반면 현수교는 양 주탑이 주케이블로 연결돼 있고, 주케이블에 일정 간격으로 매달린 보조 케이블들이 상판들을 지탱하는 형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케이블의 선형은 곡선이다.
영종대교, 부산의 광안대교, 울산의 울산대교가 현수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색깔이 빨간 게 인상적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Golden Gate)는 현수교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이다. 1940년에 바람에 흔들려 요동치다가 붕괴된 걸로 유명한 미국의 타코마 다리 역시 현수교였다.
현수교는 현존하는 다리들 중 기둥 사이 간격을 압도적으로 제일 멀리 벌릴 수 있는 형태이다(거의 2km 이상도).

울산대교는 인도가 존재하지 않는 자동차 전용 도로 교량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주행 중에 차에서 갑자기 내려서 뛰어내리는 자살 시도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에다 무슨 마포대교 같은 급의 거대한 난간과 자살 방지 시설을 추가로 설치하는 건 불가능하다. 케이블이 상판을 지탱하는 현수교의 특성상, 다리가 버틸 수 있는 하중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울산대교~!!)

사장교와 현수교는 경제성 및 안정성 면에서 제각기 장단점이 있다. 사장교는 주탑이 하나만 있어도 되지만 현수교는 그 특성상 적어도 둘 이상 필요하다.
한강의 하류 서울 시내 구간은 폭이 1km 남짓이니 강치고는 굉장히 큰 편이지만, 그래도 사장교라면 모를까 현수교가 필요할 정도의 길이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사장교와 현수교의 차이를 한눈에 쏙 들어오게 그림으로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 이렇게 (1)뿐만 아니라 (2)나 (3) 유형의 다리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바다를 건너는 길이 수 km짜리 거대한 교량은 굳이 엄청나게 높은 주탑까지 세우면서 (3)과 같은 형태로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저 미관과 폼 때문에? 그렇지 않다. (2), 특히 (3)은 같은 무게를 지탱하는 다리라도 “기둥 수를 최소화해서” 만들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자잘한 기둥 여러 개를 그냥 커다란 주탑 하나와 케이블로 퉁치는 게 더 저렴하다는 것, 콘크리트 구조물이 그냥 물도 아닌 바닷물 소금물에 쩔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 적을수록 좋다는 것 따위는 부수적인 이유이다. 무엇보다도 다리 아래로 일정 규모 이상의 큰 선박이 지나갈 공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강이 아닌 바다 위의 교량이라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된다.

과거에는 이럴 때 자동차와 선박의 건널목 평면교차나 마찬가지인 도개교를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리 자체를 엄청 크고 높게 만들고 말지, 교통수단 간의 평면교차는 만들지 않는 추세이다.
이렇게 다리의 유형 종류를 알고 나면 다음에 자동차나 열차로 다리를 건널 일이 있을 때 이 다리는 어떤 방식인지를 더 주의 깊게 보게 될 것이다.

현수교와 관련해서는 꽤 의외의 사실이 있다. 현수교의 주케이블이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선은 현수선이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매달려 있기만 할 때는 현수선이지만, 일정 간격으로 주렁주렁 매달린 보조 케이블로부터 힘을 받으면서 유사품(?)인 포물선에 가깝게 변형된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현수선은 걸리는 무게가 선 자체의 길이에 비례해서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 살펴본 바와 같이 미분 방정식에 거리 적분이 들어갔으며, 이게 cosh라는 함수의 근원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현수선 아래에 하중이 걸리는 것은 선 자체의 길이나 기울기와 전혀 무관하게 그냥 x축의 일정 간격으로 균일하게 힘이 가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미분 방정식이 f(x) = x 급으로 아주 간단해지며, 문제의 함수는 포물선을 그리는 이차함수로 귀착된다.

다만, 선형이 완벽하게 포물선이 되기 위해서는 걸리는 하중이 띄엄띄엄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일정하게 걸려야 하며, 줄 자체의 무게는 걸리는 하중과 비교했을 때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없다시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는 선형이 현수선과 포물선 사이의 어중간한(?) 모양이 되겠지만.. 포물선과 현수선은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한도 내에서는 어차피 서로 매우 비슷한 모양이라고 여겨진다.

1600~1700년대에 고전 역학과 미적분학이란 게 처음 생겨나던 시절에는 뉴턴, 호이겐스, 베르누이, 라이프니츠 같은 당대의 날고 기는 수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궤적이 포물선일까 현수선일까 긴가민가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시절엔 충분히 헷갈릴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20/11/16 19:35 2020/11/16 19:35
,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20

현수선

자연에서 중력이 만들어 내는 물체의 '운동 궤적'은 이차함수 포물선이다. 중력이 물체를 아래로 일정하게 가속시키기 때문이며, 이는 심지어 총알 같은 작고 가볍고 빠른 물건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구에서는 그나마 공기의 저항이란 게 있어서 그 포물선의 말단 부분이 더 가팔라지는 것을 막아 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람이나 공기 저항 같은 게 없다면 이것들이 다 포물선 궤적일 것이다.. ㄲㄲ)

한편으로, 중력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물체의 선형'은 현수선이다. 밀도가 동일한 줄, 선, 사슬 따위를 양 끝을 잡아서 매달았을 때 그 줄이 자연스럽게 축 늘어진 모양 말이다. 이건 포물선이나 타원(!!) 따위가 아니라 수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선형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포물선은 공중으로 내던져진 물체가 붕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 궤적 말고 자연에서 포물선이 쫙 그려지는 것은.. 글쎄, 불꽃놀이에서 불꽃이 자기 궤적 잔상을 남기면서 움직이는 모습 같은 게 아니면 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에 반해 현수선은 길다란 줄이 늘어져서 정지한 모습 그 자체이기 때문에 어쩌면 포물선보다도 더 친근한 모습일 수 있다.
포물선은 이차함수이며 원뿔곡선에 속하는 반면, 현수선은 답부터 말하자면 더 생소하고 어려운 쌍곡선함수, cosh이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이며 이 함수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일단 쌍곡선함수라는 것 자체가 중등 교육과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수선의 원리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고전역학 지식이 필요하며, 식을 유도하려면 역시 중등에서는 배우지 않는 미분방정식이라는 걸 풀어야 한다.
하지만 꼭 그 정도로 엄밀하게 따지지 않더라도 cosh가 될 수밖에 없는 대략의 이유 정도는 중등 수준만으로도 납득할 수 있다.

현수선은 외형상 명백하게 중력이 작용하는 아래로(y축 값이 작아지는 쪽) 볼록하면서 좌우가 대칭인 곡선이어야 할 것이다.
현수선 공식을 유도하는 여러 사이트들의 설명은 대체로 비슷하다. 선 내부에 있는 임의의 점에 대해.. x축으로 작용하는 힘은 좌우가 모두 동일한 반면(그래야 합력이 0으로 상쇄되고 안정되므로), y축으로 작용하는 힘은 자연스러운(= 줄이 향하는 방향) 상하뿐만 아니라 양쪽 줄의 무게까지 감안했을 때 합력이 0이 된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식에서 Fx는 T(x)cosθ = T(x+dx)cosθ일 뿐만 아니라 x, dx, θ에 관계없이 값이 일정하다. 그리고 Fy에서 m은 "줄의 밀도"와 해당 지점까지 "줄의 길이"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림의 출처는 여기..)

그래서 선의 정체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은 형태의 미분방정식으로 귀착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이 f(x)는 어떤 점 x에서의 기울기(좌변)가 0부터 x까지 f(x) 함수 곡선의 거리(우변)와 동일 내지 상수배 정비례한다는 뜻이다.
양변을 한번 더 미분하면 아래처럼 되지만, 2차 도함수(도함수의 변화량을 나타내는 도함수..)는 머리로 이해하기가 더 난감하다.

그럼 sqrt(1+f'(x)^2)라는 거리 적분식은 어디서 왜 나오는가..? 줄의 무게가 줄의 길이에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x축 지점에 대한 도함수에다가 그 지점까지 선의 길이에 대한 함수값을 대입하면 식이 그렇게 나오게 된다.

도함수 f'(x)가 x 자체와 같은 함수 f(x)는 x의 부정적분인 x^2 /2 + C ... 즉 포물선이 된다.
f'(x)가 f(x)와 같은 함수는.. e^x, 즉 지수함수이다.
그 반면 f'(x)가 거리 적분과 같은 함수는 중력이 작용하는 임의의 지점에서 역학적 평형을 이루는 현수선이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 미분방정식을 풀면 이 f(x)는 cosh가 된다.

cosh는 맞은편 쌍곡선함수인 sinh와 짝이며, 미분· 적분을 하면 상대방으로 곧장 바뀐다. cos/sin처럼 부호가 바뀌면서 4행정(?) 순환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2행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cosh는 2차 도함수도 자기 자신과 같다.
그 말인즉슨... f(x)는 어디에서든 길이의 증가폭과 면적의 증가폭이 동일한 함수라는 뜻도 된다! y=x 같은 직선은 이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다. x가 커지면 길이는 일정하게 증가하더라도 아래의 면적은 제곱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cos^2 + sin^2 = 1이듯이 쌍곡선함수는 cos^2 - sin^2 = 1이다.
sqrt( 1 + f'(x)^2 )에서 f(x)에다가 cosh(x)를 집어넣으면 f'(x)^2는 sinh(x)^2가 되는데, 얘는 저 정의에 따라 cosh(x)^2 - 1로 치환 가능하다. 그러니 -1은 앞의 1과 상쇄되어 없어지며, 제곱은 제곱근과 상쇄되어 없어지니...
찰나의 거리 변화량을 구하는 함수가 자기 자신과 동일해지는 것이다!

예전에 란체스터의 법칙 얘기를 하면서도 쌍곡선함수가 나왔는데, 얘가 비록 삼각함수보다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나름 자기 분야에서 유용한 구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11/14 08:35 2020/11/14 08: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19

1. 크리스천의 삶

성경 말씀대로 크리스천답게 사는 것,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은 내 성깔을 죽이고 희생과 헌신과 손해를 수반하고 일면 바보같이 사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이건 그렇다고 무슨 인생의 대단한 낙을 포기하고, 아무 멋도 재미도 없이 금욕주의 꼰대같이 사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 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

뭐, 옛날 중세에는 도를 넘게 꼰대같은 관행이 있긴 했다.
가령, 성경은 음행만 죄로 규정하고 금지할 뿐, 정상적으로 결혼한 부부의 사생활은 뭘 하든 서로 좋으면 하나님도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귀히 여겨 주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옛날엔.. 이거 뭐 섹스 자체를 추잡하고 지저분한 짓으로 규정해서 오로지 불가피한 욕구 해소와 자녀 생산 수단-_-으로만 치부했다. 전날 부부관계를 한 사람은 이튿날 예배 참석도 금지당했다. (무슨 레위기의 부정한 사람 규정처럼) 그러면서 피임까지도 금기시됐다.;.
이 정도면 인간에게 생식기와 성욕 같은 걸 만드신 하나님의 성품이 추잡하고 더러운 거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 뿐만이 아니다. 대외적으로만 거룩한 범생이 같은 말을 늘어놓으면서 사석에서는 지위를 이용해서 여성에게 더러운 성추행을 일삼는 놈들도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어 왔다. 그래서 과거에 마 광수 교수조차 저런 부류의 인간들을 극혐하면서 욕을 퍼부었다.
(마 교수야 내세를 부정하는 무신론 불신자였고, 우리 솔직해지자는 명목으로 소설을 꽤 야하게 썼었다.;;; 하지만 그분은 위선을 철저히 배격하는 소신이었으며, 오프라인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절대 안 넘고 학생들을 깍듯이 존중해 주기도 했다.)

과거에 대한 반대급부로 사람들이 하는 일은 대체로 이쪽 아니면 저쪽의 잘못된 극단으로 치닫는 편이다.
체벌 자체는 성경적인데 그걸 빌미로 미친 아동학대를 저지른다거나, 아니면 아예 정상적인 체벌까지 싹 금지하고 애새끼들을 전대미문의 싸가지없는 세대로 키운다.

흉악범 살인범만 사형에 처하랬는데 그걸 빌미로 무고한 사람도 누명 씌워 사법살인으로 잡는다거나, 아니면 아예 사형 집행을 안 하면서 직무를 유기하고 가해자를 평생 공짜로 재우고 먹여 준다. 이게 과거와 현재의 차이이며, 피해자의 인권이 억울하게 짓밟히는 건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성에 대해서도 과거에는 너무 억압적이었다가 지금은 세상 망조 들 정도로 너무 풀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신과 오해, 악한 추측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최초의 여성 이브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에 반발하여 원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도 않고서 “만지지도 말라”를 덧붙였다. 학교에서의 두발 단속에 반발해서 아예 삭발하는 것과 비슷한 심보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서 그녀는 뱀의 유혹에 곧장 넘어가 버렸다.

달란트/므나 비유에서 게으르고 악한 종도 주인에 대해 사람을 억압하고 갑질하고 착취하는 악덕업자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하나님에 대해서 비슷하게 오해하고 악한 편견을 가진 삐뚤어진 심보를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자기에게 해 준 건 없으면서 자기 안 믿으면 몽땅 지옥에나 보내겠다고 협박하는 저열한 신 정도로 생각하지, 죄와 심판에 대한 경고라든가 십자가에서의 은혜와 사랑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런 사고방식의 연장선으로.. 세상에는 예수 믿고 교회 다니기 시작하면 지금 즐기고 있는 것들을 못 하게 된다는 피해의식 비슷한 인식이 좀 있다. 그러니 “좀 있다가, 나중에, 죽기 직전에 예수 믿을게” 이런 반응이 나온다.
아니, 그 정도 반응이면 차라리 감지덕지다. 요즘 매체에서는 천국은 아주 따분하고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곳이고 지옥이 화끈하고 재미있는 곳처럼 묘사된다.

“유능한 변호사들은 몽땅 지옥에 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천국과 지옥의 거주자 간에 소송이 붙으면 지옥이 승소할 것이다”야 피식 웃고 말 개드립이지만.. 심지어 “천국이 저런 꼴도 보기 싫은 꼰대 위선자들이나 우글거리는 곳이라면 난 그냥 지옥 가고 말겠다”처럼 흘러가는 지경이다.

이건 영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시국에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세상에 복음을 어떻게 지혜롭게 전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옛날에는 불신자라도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정도의 관념이라도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좋은 것, 즐거운 것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성생활이든 음악 스타일이든, 인간관계든... 이것이 변함없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금지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인생의 낙을 뺏어가려는 악의적인 의도가 아니라 진짜로 우리를 ‘위해서’ 금지되어 있는 것들이다. (혼전순결, 육신적인 정욕에 대한 각종 절제 등)

better late than never.. 아예 지옥을 가 버리는 것보다는 죽기 직전에라도 간신히 믿고 구원받는 것이 낫다. 하지만 그건 젊고 팔팔하고 능력 좋을 때부터 진작부터 구원받고 주님을 섬기고 그분과 교제하며 산 것에 비해서는 명백하게 “손해”이다.
하나님이 “그럼 나 죽기 직전에만 믿으면 되겠네” 정도의 유치한 잔머리 계산 따위에 농락당할 지능일 리는 만무하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신자조차도 자기도 솔로몬 같은 부귀영화도 좀 누리고 수백 명의 미녀들과 원나잇 스탠드(!!)도 왕창 해 보고.. 그러면서 구원도 덤으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꽤 편하게 생각한다. 상금과 훈장 둘 중 하나만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상금에서 훈장의 제조원가만 제외한 나머지 상금과 훈장을 같이 받을 수는 없을까요?” 같은 잔머리를 굴린다. 훈장의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를 모르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신앙 생활이 세상적인 부귀영화와 무조건 정반대 상극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물질적인 복과 세상적인 성공을 허락해 주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그 사람에게 언제나 마냥 좋은 일인 것만은 아니다!

또한 성경은 요한복음에서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더 복되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굳이 전도서의 저자처럼 평생을 온갖 사치 향락과 오덕질과 연구 실험 하면서 진 다 빼고 말년에 가서야 결국 “모든 게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허무하게 고백하지 않아도 된다.
젊은 나이에 미리 그걸 말씀을 통해 간접 경험으로 체득한 뒤, 동일한 시행착오를 또 겪지 않는 것이야말로 더 복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예수 믿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그렇게 진짜 수준 높고 영원한 행복, 평안, 낙, 멋, 재미 등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고 당장 보이는 것을 넘어서 영원을 보는 안목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 지금 세상에서 학교나 직장에서의 본분도 아주 고차원적으로 행할 수 있다.

일찍 예수 믿고 성경을 알게 되는 것은 여러분의 인생에 손해가 절대로 아니다. 좋은 것이 모두 거기에 있다. 아니, “좋다, 즐겁다, 선하다” 등의 정의 자체가 바뀔 것이다. 찬송가 가사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는 빈말이 아니다. 그렇게 해 볼 가치가 있으니까 다 생각이 있어서 나온 말이다.

2. 판단 문제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우리가 남이가" 양비론 퉁치기(?)를 암시하는 듯한 구절이 있다.

  • 판단받지 않으려거든 판단하지 말라 (마 7:1-2)
  • 죄 없는 자부터 먼저 돌로 치라 (요 8:7)
  • 교회 내부 교인간의 분쟁을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서 해결하려 들지 마라 (고전 6:6-7)

이건 참 훈훈하게 들리지만, 한편으로 지 죄를 슬쩍 은폐하고 넘어가려는 의도로 악용에 가깝게 오· 남용되는 빈도도 굉장히 높은 구절들이다.
교리 쪽에서 제일 흔한 오류가 교회와 유대인 혼동,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 혼동, 예정과 자유 의지 혼동 같은 것이라면.. 행실 쪽에서 제일 흔한 오류는 바로 저런 유형이지 싶다.

세상에서는 아무 사람이나 덥석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양심과 자율과 사랑(?) 대신, 시스템과 법과 매뉴얼대로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려 애쓴다.
신약 교회는 그런 세상 조직보다야 더 유도리 있게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니 것 내 것 구분도 없는 무법천지가 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헌신이라는 명분으로, 하늘나라에서 받는 보상을 목표로 신앙 열정페이? 좋다. 그 자체는 종교적으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건 굉장히 신중하게 조심해서 적용되어야 하는 관행이다.
가까운 가족이라 해도, 교인이라 해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고 공과 사를 구분해서 선을 그어야 하는 영역 구분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 관계에서건 남의 시간과 노력을 존중해 주고, 호의를 권리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안 그러면 가족 같은 교회가 '가~~족같은 교회'로 전락하는 건 순식간이 된다. 회사만 가족 같은 회사가 있는 게 아니다. 물론, 반대편 극단인 목사/전도사 노조..?? 이딴 것도 병신 미친짓이긴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은 교회 하나로 충분하지, 기독교 기업, 기독교 국가 같은 걸 만들지 않으신 이유를 생각해 보자.
종교 본연의 기능에만 충실한 제일 원초적인 조직인 교회 하나, 신학교 하나조차 오래 유지를 못 하고 교리 때문에 찢어지고 사람 때문에 분리되고 파편화되는 게 이 바닥의 생리이다. 하물며 신앙의 이름으로 돈이나 권력까지 다루는 조직은 만들어 봤자 서로 의만 상한다. 일반 불신자 경영자가 운영하는 기업만치도 못 돌아가고 폭파될 것이다.

그 반면, 교회는 사람을 스펙이나 능력으로 평가하거나 짜르지 않는다. 그리고 교회만치 작은 죄의 누룩 하나, 연약한 지체가 시험 들고 실족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반응해야 하는) 조직은 없다. 물론 죄를 책망하는 진리 팩트폭격에 지 혼자 자존심 상하고 삐치고 발끈해서 뛰쳐나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두 상황(약함 vs 악함)을 잘 분별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성경은 "판단하지 말라" 바로 다음에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누가 거짓 선지자인지 아닌지 판단을 해야 된다.
"죄 없는 자부터 먼저 돌로 치라" 다음에 예수님은 여인에게 "가서 앞으로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살아라"라고 당부하는 걸 잊지 않으셨다. 누구든지 성경은 끝까지 꼼꼼히 다 읽어봐야 된다.

끝으로 신자간의 법정 분쟁 문제는..?? 이건 마치 교회와 세상 정부의 관계, 교인과 정치의 관계만큼이나 미묘하고 민감한 구석이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일체 세상 법정에 의지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3. 박해에 대한 대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교분리를 지지하며, 위의 모든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한다. 특히 군대에도 가며, 필요하다면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는 것도 불사한다.
그런데 그 나라가 개인의 신앙을 간섭해서 예수 못 믿게 한다거나 교회를 핍박한다면, 혹은 교묘하게 핍박하는 듯이 보인다면 어떡해야 할까?

기독교 신앙은 "가능하면 이 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옵소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이다.
그리고 "죽음을 불사하고, 죽을 각오까지 하고 싸우라. 죽으면 죽으리이다"가 올바른 자세이다. 그러다가 진짜로 순교할 수도 있지만, 섭리가 있어서 살아서 돌아올 수도 있다.

무슨 옛날 일본군 같은 무조건 나가 죽어라 카미카제 특공대가 아니다.
그리고 "주여, 내게 고난의 십자가를 얼마든지 내려 주시옵소서" 이건 교만 만용 객기이며 '지나친 의로움'이다. 저건 예수님보다 더 의로운 짓거리이다. 저렇게 깝치는 애들은 진짜 고난 시험이 실전으로 닥쳤을 때는 베드로보다 더 큰 실수를 하고, 행 19에 나오는 7형제들보다 더 큰 망신을 당할 것이다.

도피, 망명 등 최대한 안 부딪히기 위해 노력하다가 도저히 안 되면 소극적으로 항거하고, 핍박이 가해지면 받고, 그래도 위의 권위자와 통치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주여 저 (새끼)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예수님처럼, 스데반처럼 숭고하게 간구하는 게 FM이고 가장 이상적인 대처이다.

저걸 인간의 육신만으로 위선 가식 연기 없이 실천한다는 건 딱 잘라서 전혀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게 십자가의 권능이고 기독교의 능력이다.

그런데... 저게 예수쟁이들로 하여금 뻔히 보이는 시국을 분간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고, 멀쩡히 챙길 수 있는 정당한 권리까지 바보 병신같이 호구처럼 가만히 있다 뺏기라는 얘기도 아니다. 그건 마치 기도만 죽어라고 하면 공부 안 해도 시험 100점 맞을 수 있다는 소리와 같고, 기도만 죽어라고 하면 병에 걸려도 병원 갈 필요가 없다는 소리와 같다.

그래서 이런 영역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가미되어 신앙생활의 좌파와 우파, 또는 매파와 비둘기파 성향이 나뉜다.
북한에서도, 옛날 로마 제국 초대 교회 시절에도, 정들었던 교인들이 하나 둘 잡혀가고 순교하고, 교회 안에 배신자 밀고자가 튀어나오고, 아무리 기도해도 당장 박해가 끝날 기미가 안 보이니..

혈기 넘치는 젊은 청년들 중심으로 “우린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냐? 우리도 힘을 모아서 보복하러 가야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로마 정부나 김정은 정권 따위 갈아엎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엄마 감성!!) 신앙의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영화 <바울>, 모 지하 교회 출신 탈북자 증언 등 참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지금 대한민국이야 북한 같은 기독교 박해는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민감하게 생각하다 보니 지금 중공 폐렴 대처를 핑계로 이상하게 교회에다가만 감염원 누명을 과장해서 씌우고 모임에 불공평하게 제약을 가하는 것조차 명백히 불순한 수작이자 박해로 간주하고, "이런 정책까지 마냥 고분고분 따를 수만은 없다. 적극적으로 청원을 넣고 항의하고 대항해야 한다, 힘을 모아서 일어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내가 조심스럽게 내리는 결론은.. 그런 운동은 아직까지는 그냥 개인별로 자기 신념과 재량에 따라 참여하고 활동할 사항인 것 같다.
옛날 LA 폭동에다 비유하자면, 성경에 명시된 권리를 행사해서 총 들고 집 지키고 폭도들에게 발포하는 것도 훌륭한 크리스천 시민의 모습이지만, 한편으로 평소에 워낙 선행을 많이 베풀고 평판이 좋아서 폭동 때 오히려 흑인들이 앞장서서 집을 지켜 줬다는 Mama Kim 아줌마 같은 사람도 예수쟁이들 중에서 더 많이 나왔어야 했다. 두 면모가 모두 필요하고 적절히 발휘돼야 한다.

국가 정책과 교회 활동이 서로 충돌하고 이것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저항과 투쟁이 뒤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최후의 수단이 동원되기에 앞서, 신자들이 잘 행한다면 그 문제를 원천적으로 예방· 회피하거나, 정말 초월적인 상호 해피엔딩으로 해결될 여지가 없지 않은지를 꼭 살펴봐야 할 것이다.
좌우 성향의 균형이란 건 이런 해법을 찾으라고 있는 개념이다.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빨갱이들은 좌우 균형과 아무 상관없고, 그냥 잡아 죽여야 할 기생충 암세포 버러지일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1/06 08:35 2020/11/06 08: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16

성경으로 성경 풀이하기

1.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음

"무엇보다도 너희끼리 뜨거운 사랑을 품으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으리라." (벧전 4:8)
라는 말씀과 관계가 있는 구절들은 내가 아는 한 다음과 같다.

(1) 사랑의 위력/효과에 대한 말씀의 원조는 잠언이다.
"미움은 다툼들을 일으키되 사랑은 모든 죄를 덮느니라." (잠 10:12)

(2) 저기서 말하는 사랑은 교회 지체간의 brotherly love이다. 이에 대해서는 바울 서신에서 언급돼 있다.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친절하게 애정을 가지고 서로 먼저 존중하며.." (롬 12:10)
"형제의 사랑을 지속하고" (히 13:1)

(3) 지체들간에 그렇게 사랑한다면, 특별히 누군가가 오류에 빠져 잘못 행동하는 것을 사랑으로 잘 권면하게 된다.
"형제들아,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진리를 떠나 잘못하는데 누가 그를 돌아서게 하면.. 그 죄인을 그의 길의 잘못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한 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을 그가 알게 할지니라." (약 5:19-20)

이런 게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면서" 진리를 얻어 가는 과정이다~!
물론 머리로 이렇게 아는 것하고, 진짜로 성령의 열매로서 사심· 가식이나 조건 없이 사랑이 실천되어 나오는 것은 또 별개의 일인 것을 알 필요가 있다.

2. 야고보서와 로마서

성경에서 야고보서는 “믿음뿐만 아니라 행위로 의롭게 된다”를 가르치면서 언어 통사와 논리 구조상 로마서와 정면으로 모순되는 책이라고 여겨진다. 두 책의 텍스트를 입력시켜서 컴퓨터로 구문 분석을 했더니 통사론적으로 모순 판정이 나왔다는 카더라 통신이 전해지지만..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실험을 했는지, 믿을 만한 결과인지 출처가 불분명하다.

두 책은 똑같이 아브라함을 거론하고 똑같이 창 15:6까지 인용함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정반대로 전개된다. 이걸 보면 굳이 기계가 아닌 사람이 보더라도 두 책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으면 그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그에게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느니라. (롬 4:2-3)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 위에 드릴 때에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위와 함께 일하고 행위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느니라, 하시는 성경 기록이 성취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 불렸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보거니와 사람이 행위로 의롭게 되고 단지 믿음만으로 되지 아니하느니라. (약 2:21-24)


오죽했으면 믿음 덕후 종교 개혁자였던 마틴 루터는 야고보서가 성경 정경이 아닐 거라고 현실을 부정했으며, 차마 쓰레기라고는 말 못 하고 지푸라기 같은 책이라며 극딜을 가했다. 참고로 야고보서는 신약 성경 중에서는 시기적으로 제일 일찍 먼저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위의 필요성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증거는 보이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로써 그 믿음이라는 게 실체가 있다는 것이 인증된다”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예전에도 비유를 들었듯이, 자동차가 시동이 걸렸으면 공회전만 하지 말고 변속기를 D로 넣고 앞으로 나아가야(행위의 열매) 존재의 의미가 있다.

N에서 공회전만 하면 그 자동차는 아무 쓸모가 없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 차의 존재(구원과 믿음)와 작동 자체가 거짓인 건 아니다. 그런 차원인 것이다.

히 5:9에 따르면, 예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직접 몸소 고난을 받고 섬김과 순종을 실천함으로써 완전하게 됐다고 한다. 이건 예수님이 성육신 이전에는 신으로서의 능력이나 레벨이 2% 정도 부족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마치 노아(창 6:9)나 욥(욥 1:1)이 perfect였다고 해서 한 치의 죄가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듯이 예수님에 대한 made perfect도 그런 자질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예수님이 행위를 통해서 뭔가 공개적으로 인증, 입증을 받았다는 뜻이다. 예수님조차 본을 보이셨는데 구원받은 성도들 역시 가식 위선적인 선행이 아니라 믿음의 선행을 실천해 보여야 그 믿음의 실체를 대외적으로 인증받고 남에게 영향력을 행세할 수 있다. 이것이 야고보서가 말하는 바이다.

이 외에도 야고보서에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되면 사망”(약 1:15)은 “죄의 삯은 사망”(롬 6:23)과 대조된다. “믿음의 단련이 인내를 이룸”(약 1:3)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롬 5:3-4)과도 대응하는 구석이 있다.

3. 노아의 날과 롯의 날

본인은 우주(지구 포함)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한 신의 창조를 믿으며, 연대기에 관해서는 오래된 우주와 젊은 인류를 지지한다고 이 블로그 글을 통해 몇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의 간극(gap)을 믿는다. 이것이 과학뿐만 아니라 성경적으로도 이치에 맞기 때문이다.

간극 지지자라면 벧후 3:6의 “물의 넘침으로 인한 멸망”이 노아의 홍수가 아닌 더 큰 우주적인 이전 세상의 심판과 멸망이라고 본다. 그러나 반대론자는 이것도 무조건 100% 노아의 홍수라고 여긴다. 도대체 어느 쪽의 말이 맞는 걸까?

본인은 예전에 여러 논리와 비유를 들면서 간극이 성경 교리 차원에서 가능하고 옳으며, 이게 지질학· 천문학 관찰과도 조화를 가장 잘 이룬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벧후 3:6이 노아의 홍수 얘기가 아닌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기' 컬렉션에다가 항목을 개설하여 이야기를 늘어놓도록 하겠다.

성경적으로 볼 때 노아의 홍수는 소돔· 고모라의 멸망과 호응하고 짝을 이룬다. 전자는 물바다, 후자는 불바다여서 그런 것 같다. 소돔과 고모라도 성경에서 노아의 홍수와 거의 대등한 급으로 굉장히 자주.. 악과 심판과 폐허의 상징으로 두고두고 언급된다. 즉, 인지도가 매우 높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는 인간을 포함해 코로 호흡하는 육상 동물만 다 죽었지, 다른 어류· 식물· 곤충 따위는 굳이 방주에 타지 않아도 멸종하지 않았다.
소돔과 고모라는 뭐.. 그 지역에 있는 생명체들은 몰살을 면하기 어려웠겠지만, 면적이 노아의 홍수보다는 훨씬 좁았다. 두 심판은 강렬하긴 하지만 규모 면에서 전면적이지 않고 부분적(partial)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성경 본문을 살펴보자.
베드로후서는 바로 앞 2장의 5~6절에서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의 사례로 저 두 사건을 쌍으로 언급하고 있다.
더구나 예수님도 눅 17:26-30에서 노아의 날과 롯의 날을 같이 거론하면서 둘을 쌍으로 엮으셨다. 이 정도면 둘이 매우 비슷한 심상이라는 건 성경적으로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반면, 벧후 2의 바로 다음 3장은 어떤 문맥인가?
이 홍수와 나란히 대응하는 불 버전은 하늘과 땅을 통째로 불태워 없애 버리는 것이며(7절), 겨우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정도하고는 쨉이 안 된다. 계속해서 10~12절을 읽어 보면, 거의 원자력 핵융합/핵분열 급의 전우주적 물질 붕괴가 묘사되어 있다. 단순히 산소에 의한 연소가 아니다.

이런 묘사는 벧후 이외의 다른 책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저 불 심판이 소돔과 고모라와 차원이 다른 것과 동급으로, 과거의 물 심판 역시 노아의 홍수와 같은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 본인의 논리이다. 2장 5절도 노아의 홍수이고 3장 6절도 노아의 홍수라고?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맥에서 또..??
아래의 비례식을 생각하면서 본문을 진지하게 다시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노아의 홍수 : 소돔과 고모라 유황불 =
???? :
하늘과 땅이 몽땅 불로 멸망, 물질 붕괴

4. 수식 대상과 범위

위의 3번 아이템과 이어지는 내용인데..
성경에는 긴 문장에서 수식의 대상과 범위를 잘 분간하며 읽어야 하는 부분이 좀 있다.

(1)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 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중략)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 (벧후 3:6-7)

벧후 3장을 처음부터 쭉 읽어보면 종말과 재림을 믿지 않는 비웃는 자들이 나타날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그것으로 말미암아”와 연결되어 비웃는 자와 인과관계를 형성하는 다음 사건은 “현 세상은 불로써 멸망할 것”이다. 걔네들 때문에 이전 세상이 물로써 멸망한 게 아니다.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거리 차이 때문에 저렇게 읽히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과거의 물 심판은 미래의 심판하고 그냥 대조 대구를 이루기 위해 언급되었을 뿐이다.

(2)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그에게 경배하리라. (계 13:8)

‘세상의 창건 이후로’는 생명책의 이름 등재 시기를 수식한다. 어린양의 도살..;; 시점을 수식하는 게 아니다.
문장의 통사 구조는 중의성을 지니는데 니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뒤에 계 17:8에서 대놓고 “세상의 창건 이후로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가 분명하게 다시 등장한다. 안심하시라.

어린양이야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에 딱 한 번 죽임을 당했다가 부활했다. 어린양의 도살 시점은 계 5:6에서 “전에 죽임을 당했었던” as it HAD BEEN slain이라고 대과거 완료 시제를 통해 표현돼 있다.
참고로 마 1:6에서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인”, 전처 ex-wife라는 개념도 that HAD BEEN the wife of Urias 과거 완료 시제로 표현됐다는 걸 생각하자. (지금은 우리야가 아닌 다윗의 아내이다 / 지금은 죽지 않았고 살아 있다~ 계 1:18)

5.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

성경의 복음서에는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가 있다. 전자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 관점에서 묘사한 마태복음에 있고, 후자는 예수님을 온전한 인간 관점에서 묘사한 누가복음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은 마태복음에 비해 유대인 민족색이나 왕국복음 같은 얘기가 덜 나오며, 킹 제임스 성경은 비유에 등장하는 화폐 단위를 음역이 아니라 아예 영어 파운드로 로컬라이즈 번역해 버리기도 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종 세 명이 각각 5, 2, 1달란트씩을 받는다. 그걸 밑천으로 각각 5와 2달란트.. 즉 정확하게 수익률 100%를 달성한 종은 칭찬을 받지만, 1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걸로 아무것도 안 하고 돈을 묵힌 죄로 바깥 어둠 속으로 추방당한다. 이 장소는 성경적인 심상으로 볼 때 지옥으로 여겨진다. 즉, 게으르고 악한 종은 아예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그러나 므나 비유에서는 종 10명이 각각 1므나를 “동일”하게 받는다. 그리고 1므나를 밑천으로 투자해서 10므나, 즉 수익률 1000%를 낸 사람도 있고 5므나(500%)를 번 사람도 있어서 수익률이 차이가 난다. 달란트와 달리 원금 별도는 아니고 원금 포함인 것 같긴 하다만.. (달란트는 5+5, 므나는 1-1+10)

여기서도 1므나로 아무것도 안 한 종은 주인에게서 꾸중을 듣는다. 하지만 받았던 원금을 빼앗기는 것으로 끝이고, 추방까지 당하지는 않는다. 심판이 집행되어 처형 당하는 대상은 따로 있다.
므나 비유는 아무리 봐도 구원을 잃지 않고 보상만을 잃는 구원받은 크리스천을 빗댄 얘기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저건 그리스도의 심판석 등급이다.

이 정도 차이는 세대적 진리 공부를 좀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간할 것이다.
그런데 본인이 이 성경 본문에서 요즘 추가로 주목하고 있는 아이템은 바로.. 예수님의 칭찬도 두 비유에서 서로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마 25:21은 “네가 적은 것(few - many 少)에도 신실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눅 19:17은 “네가 아주 작은 것(very little - big 小)에도 신실했다”라고 말한다. 전자는 일의 양, 금전의 액수, 물건의 개수를 따지고, 후자는 일 또는 물건의 규모를 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뭐 언뜻 보기에는 구분 없이 섞어 써도 별 차이 없으며, 그게 그 말 같게도 들린다. 하지만 왕국 복음에서는 “적은 일에 신실함”이 나오고 은혜의 복음에는 “작은 것에 신실함”이 언급되는 것에도 뭔가 미묘한 영적 통찰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최소한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의 차이 같은 차이는 있지 않을까? 이 역시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1/03 08:34 2020/11/03 08:34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15

항공 사건 사고와 관련하여 꼭 볼 만한 명작 영화로는
Flight 93 (2006), 그리고 Sully (2016)가 있다. 실제 사건으로나 영화의 작품성으로나 모두 탁월하다.

1.
전자는 2001년 9 11 테러 당시에 테러리스트에게 피랍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미국 국내선, 보잉 757-222) 여객기 내부에서 벌어졌던 일을 다룬다. 9 11 테러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항공 보안 규정은 지금보다 훨씬 더 널널했다.

사건은 빨간 머리띠를 두른 테러리스트들이 갑자기 승무원들을 제압하고 조종실로 난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중에는 승객들이 힘을 합쳐 기내식 카트로 박치기를 해서 조종실 문을 부수기는 하지만.. 이미 조종간을 잡고 있던 테러리스트가 이판사판 동귀어진 차원에서 비행기를 평지로 추락시켜 버렸다.
추락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커다란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면서 기체는 형체도 없이 박살났다. 그리고 전원 사망..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승객들의 영웅적이고 숭고한 저항 덕분에 이 사건은 저 비행기만 혼자 추락하는 걸로 끝날 수 있었다. 테러리스트들을 그대로 놔 뒀으면 쟤는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에다 꼬라박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때 미처 무장을 못 하고 긴급 출격했던 미군 F-16 전투기 2기는 얘와 몸으로 충돌할 각오까지 했었다고 한다.
이 기체가 추락한 지점에는 현재 Tower of Voices라는 이름의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한편, 후자는 2009년 1월,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US 에어웨이즈 1549편(미국 국내선, 에어버스 A320-214)의 불시착 사고를 다룬다. ‘설리’는 당시 여객기 기장의 이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기체는 이륙한 지 얼마 못 가 새떼들과 제대로 충돌한 덕분에 좌우 엔진이 몽땅 망가지고 시동이 꺼져 버렸다. 새가 기체와 단순히 부딪힌 정도를 넘어 엔진으로 빨려들어갔기 때문이다. 공기만 들어와야 하는 엔진 내부에 크고 무거운 생명체 이물질이 들어갔으니 뭐..
기체는 순식간에 글라이더로 전락하고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기장이 얼마나 적절한 상황 판단으로 강에 잘 불시작해서 승객들을 전원 구출했는지는.. 직접 보면 알 수 있다. 공포의 GPWS 경보음을 “웽웽~ pull up!” 단계까지 듣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여객기 기장은 세계적으로도 드물지 싶다.

영화에서는 NTSB 조사관들이 저런 영웅 기장을 과실 있는 가해자인 것처럼 막 의심하고, 그때 비행기를 꼭 이렇게 처박았어야 했냐는 식으로.. 검사가 피의자 심문하듯이 거칠게 몰아세우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 사고 조사 때는 그렇지 않았다. 도저히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에 딱히 빡세게 조사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기장 당사자가 영화에서 상대측 조사관들이 너무 악의적으로 묘사됐다고 이의를 제기했을 정도였다.

3.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도 1971년 1월, 대한항공 포커 27기 납북 미수 사건 정도면 충분히 영화로 만들 만한 스토리였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납북 미수라고는 하지만 이건 진짜 북괴 간첩은 아니고 그냥 중2병 또라이의 단독 범행이었다. (대공 용의점 없음) 그렇지만 피의자가 진짜 폭발물을 소지하고 있었고 여객기를 진짜로 이북으로 보낼 뻔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와중에 승무원들은 매우 적절하게 잘 대처했다. 기내에 탑승 중이었던 보안관이 놀라운 실력으로 테러리스트를 사살했으며, 결정적으로 놈이 기폭시킨 폭탄은 전 명세 부기장이 자기 몸으로 덮어서 폭발을 상쇄했다. 그리고 그분은 순직.. 기체는 다행히 바닷가에 잘 불시착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강 재구 소령의 비행기 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에 강 소령 전기 영화(1966)도 나오고, 공군의 활약을 다룬 빨간 마후라(1964)도 나왔는데.. 저 일화가 잊혀져 가고 있는 건 아쉬운 일이다.
또한, 보안관이야 1969년 말 YS-11기 납북 사건의 교훈 때문에 도입된 것이지만 그 당시에 소지품 보안 검색은 저런 사제 폭탄의 반입을 허용했을 정도로 여전히 허술했던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0/31 19:34 2020/10/31 19:34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14

«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47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1/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1667193
Today:
1000
Yesterday:
1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