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답사기: 아차산

본인은 지난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 블로그의 여행 카테고리가 대부분이 등산 후기로 도배될 정도로.. 서울 근교의 어지간한 산들은 다 돌아다녀 봤다.
그러면 다음으로는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처럼 점점 더 먼 곳에 있고 더 크고 높고 유명한 산들로 원정이라도 가야겠지만 본인 여건상 그렇게는 못 하고, 일단은 예전에 이미 올랐던 산들을 다른 등산로로 다시 오르는 쪽으로 등산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특히 지금 정도로 지리 특성과 역사 배경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사진과 여행기를 남기는 관행이 정착하기 "전", 완전 초창기나 더 옛날에 올랐던 산들이 이런 복습 대상이다.
아차산은 서울 시내에 가까이 있고 높이도 아주 낮아서 만만하고, 먼 옛날에 회사 사람들과 같이 오른 적이 있으며 2016년경에 용마산 쪽에서 혼자 답사한 적도 있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또 찾아갈 일은 없으리라 여겨졌다. 하지만 그런 편견을 깨고 다시 가 보니 예상 밖으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아차산은 도보 내지 대중교통으로는 말 그대로 서울 지하철 5호선 아차산 역에서 접근 가능하다. 단, 역은 천호대로라는 큰길에 있으며 여기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또 수백 m~ 1km가량 떨어져 있는데, 등산로 코앞까지 도달하는 대중교통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산을 향해 미묘하게 오르막 형태인 긴 먹자골목과 주택, 빌라를 지나야 한다.

자동차로는 여기뿐만 아니라 ‘아차산로’라는 찻길을 통해 산기슭의 공영 주차장까지 접근할 수 있다. 아차산-광나루 사이의 고갯길을 지나다 보면 위로 차도가 고가 형태로 지나는 걸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길이다. 아차산은 마치 북악산의 북악 스카이웨이처럼 막 높게는 아니어도 내부에 자동차 도로가 닦여 있으며, 이게 동쪽의 장신대와 워커힐 호텔 및 아파트 쪽으로도 간다.

아차산의 여러 등산로 중 이렇게 남쪽 공영 주차장 일대는 여느 산답지 않게 상당한 고퀄로 꾸며져 있다. 바로 근처에 외국인들이 찾는 고급 호텔이 있기 때문인지, 아차산성 같은 고대 유적이 있기 때문인지, 등산로가 서울 둘레길로 지정됐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가 법적으로 무슨 국립공원 같은 급은 절대 아니며 발굴된 삼국시대 유적이 무슨 경주 남산 같은 급으로 양과 질이 엄청난 것도 아닌데, 더구나 이웃의 용마산 등산로를 비교해 봐도 아차산 서울 구간은 뭔가 특별한 관리를 받아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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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기 전, 주차장 근처에 이런 생태 공원이 있는 걸 발견하고 들러 봤다. 공원 자체도 평지가 아니라 비탈길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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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아차산성 + 아차산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날은 맑고 덥지 않으며, 나뭇잎들은 아직 단풍으로 물들지 않고 초록색이 남아 있으니 이런 날이 등산 가기 아주 좋았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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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은 주변 조사와 복원 공사가 한창이니 여기 일대에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울타리· 표지판과 함께 근처만을 스치듯이 구경할 수 있었다.
사실, 산에 군사 보안 시설이 전혀 아니면서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을 보는 일은 몹시 드물다. 우면산 같은 산은 아예 과거 지뢰 매설 지역이라는 경고문까지 있지 않던가?

아차산엔 군사 시설 같은 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등산로를 벗어난 다른 어딘가에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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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가 곁들어진 흙길을 벗어난 뒤부터는 등산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흙길 대신 암반이 등장하고, 나무 없이 하늘이 뻥 뚫린 곳이 나타났다. 그리고 산 아래의 전망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본인은 옛날에 아차산을 오를 때에는 이런 흙길 대신 암반이 굉장히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산을 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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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망대에는 무료 망원경도 비치되어 있었다. 평범한 서울 야산에서는 보기 드문 시설이다.
아차산과 그 북쪽 산맥(?)은 나름 서울과 구리시의 경계이다. 예전에 일자산이 동서로 서울과 하남시를 갈랐던 것처럼 말이다. 둘 다 서울 동부에서 서울 둘레길 경로라는 공통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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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한 언덕을 올라서 아까 전에 지나쳤던 다른 언덕을 찍은 것이다. 요게 아차산 상부의 특징이다.
여기 일대의 넓은 공터가 아마 정상은 아니고 "해맞이 광장"이었지 싶다. 여기서 풍경 사진을 여러 구도로 남기긴 했지만, 전부 게재는 시간과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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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산 위의 풀밭 같은 평지를 지났다.
산 꼭대기 근처에 넓은 평지가 있으면 거기는 십중팔구 H자 모양의 헬리패드가 있을 텐데, 여기는 그렇지도 않았다.
풀밭에 돗자리 깔고 앉고 싶기도 하지만.. 길을 벗어나지 말라고 울타리가 낮게나마 계속 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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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돌무더기 위의 마지막 평지가 바로 아차산의 정상이었다. 정상 표지석 같은 건 없고 그냥 문화재 유적 설명만 있었다.
아차산 자체는 높이가 300m도 채 되지 않고 서울 남산과 비슷한 급일 뿐이다. 다만, 높이 대비 비탈이 완만하고 이동 거리는 긴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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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깔린 돌무더기는 역사 고증을 거친 건지 아니면 별 생각 없이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만, 흰색과 누런색이 어우러진 게 마치 은덩이 금덩이 같고 색깔 배색이 나름 화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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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정상의 바로 옆에는 저렇게 이웃의 용마산이 있다. 아차산 정상 이후에 그냥 이 봉우리로만 하산하는 길은 딱히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반면, 서울 둘레길은 용마산 방면으로 형성돼 있다. 거기서 용마산 정상으로 가려면 서쪽으로 더 가야 하고, 둘레길은 북쪽 망우산 방면으로 향한다.

본인은 아차산 정상을 찍은 이후에는 일단 서울 둘레길을 선택했다. 여기부터는 작년에 답사했던 구간과 중복이니 헬리패드나 보루 같은 장소를 옛날에 봤던 기억이 슬금슬금 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용마산 정상 도착 직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 반면, 이번엔 날씨가 아주 맑으니 분위기가 좋은 대조를 이뤘다.

단, 그때는 망우산 묘지 구경을 하느라 서울 북부로 빠져나가 버렸으니 이번에는 산 동쪽의 구리시 방면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깔딱고개를 오르내린 뒤 사거리가 등장했을 때, 본인은 "아치울 마을" 방면을 선택했다. 좀 충분히 많이 걷고 나서 구리시 북부에서 하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심지어 발 아래로 아차산 터널조차 넘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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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고 좁은 구리시에서도 아차산의 자기 관할 영역 내부에 나름 ‘구리 둘레길’이라는 걸 제정해서 홍보하고 있었다. 여기는 별다른 문화재 유적은 없고 그냥 울창한 숲길이 이어졌다.
처음 입산했던 서울 광진구 관할 구간에 비해 훨씬 조촐 단촐했으며 다른 등산객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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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에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다만, 수질 검사를 언제 해서 결과가 어떻게 나왔다는 쪽지가 붙어 있지는 않았다.
아치울 마을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은 나름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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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마을이 나타났다. 등산 마치고 내려가면서 과천, 광주, 남양주, 하남, 성남 등 여러 곳의 산기슭 마을을 구경했는데, 구리시의 마을을 이렇게 구경하는 건 처음이었다.
본인은 뒷산이 병풍처럼 깔렸고 단독주택과 빌라들이 들어선 한적한 마을에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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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차산 등산을 마치고 마을 어귀에까지 도달한 뒤, 대로(아차산로, 국도 43호선)로 나가서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바로 옆에 강변북로(거의 시점!)와 한강이 지난다.
이곳을 지나는 버스들은 대부분 광나루 역을 경유하고, 모든 버스들이 닥치고 강변 역으로 갔다. 거기가 시· 종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일대에 석유 공사의 본사일 리는 없고 철조망이 둘러진 무슨 시설이 있는 것을 차창 밖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민간 지도에는 당연히 숨겨져 있고.. 나름 아차산에도 보안 시설이 하나 있긴 하구나.
성남 석운동에는 송유관 공사가 있더니 성격이 비슷한 시설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6 08:37 2018/01/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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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버전 개발 근황 2

오늘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 9.3에서 팝업창 형태로 새로 추가되는 보조 입력 도구 두 가지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1.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이 입력 도구는 구동 직후에 화면에 뜨는 것이 없다. 그 대신, 사용자가 뭔가 한글 입력 같은 조합을 만들기 시작하면 짠 나타나서 지금 단계 이후에 진행 가능한 조합(왼쪽)과, 이 상태에서 변환 가능한 후보 문자열(오른쪽)들을 목록으로 쫙 표시해 준다.
사용자 정의 조합의 경우, 가령 A를 누른 뒤에 ' ` ^ -이런 것을 뭘 더 누를 수 있고, 그걸 누르면 문자가 무엇으로 바뀌며, 지금 상황에서 무슨 문자로 변환 가능한지 목록으로 미리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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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영문 쿼티에다가 글자별로 온갖 확장 부호들을 후보로 배당해 놓은 QwertyExt 예제를 불러온 뒤 =를 눌렀을 때 나타나는 목록이다. 비록 단어 단위가 아니고 글자 단위이긴 하지만, 일일이 한자 글쇠를 누를 필요 없이 곧장 후보 변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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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각각 한글과 라틴 알파벳으로 일본어 히라가나 문자를 입력할 때 나타나는 목록의 모습이다. 지금 상황에서 저런 알파벳이나 한글 자모를 누르면 저런 문자가 계속 입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정보다 약간 옅은 회색 글자는 이 문자가 조합이 아닌 완성된 형태로 삽입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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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한글 조합은 사용자 정의 조합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테이블 기반이 아닌 '공식 기반'이니 직관적인 편이며, 조합 가능한 글자 수도 아주 많다. 그렇기 때문에 'PC+현대 한글' 같은 아주 널널한 경우라면 굳이 이런 식의 preview 기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글 입력도 옛한글을 다룬다거나 글쇠 수가 아주 적은 모바일 내지, 허용 한글 제약 기능이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면 이 도구의 유용성이 크게 올라간다. ㄹ로 시작하는 옛한글 겹자음은 ㄷ으로 시작하는 옛한글 겹자음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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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뿐만 아니라 '두'다음에 결합 가능한 옛한글 중성들도 저렇게 쫙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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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 낱자 입력 로직 생성기'를 돌려서 KS X 1001 완성형 한글만 입력 가능하게 하고, 더 결합의 여지가 없는 단계에 도달하면 조합을 곧장 끊게 오토마타를 설정했다. 그랬더니 '바'와 '파'에 대해서 이렇게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다. '파' 다음에는 '바'와는 달리 ㄷ, ㄺ 같은 받침이 붙지 못한다. '바'는 반대로 '파'에 있는 받침 ㅆ이 존재하지 않는다.

'박'은 '밖'이 결합 가능하며 '발'은 그 뒤로 '밝, 밟'이 존재하기 때문에 쟤들 둘만 회색이 아닌 검정으로 표시되어 있다. '밟'이 저 목록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ㄼ이 단독 글쇠로 존재하지 않는 세벌식 390 글쇠배열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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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입력 도구는 현재 사용 중인 키보드 입력 스키마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입력 기능을 갖춘 타 입력 도구를 기준으로도 잘 동작한다. 한손 입력기는 저렇게 천지인 (또는 옵션을 바꿔서 나랏글) 모음에다가 5개 자음(초성 종성 따로)을 갖췄다는 것이 목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글 조합에 대해서 진행 가능한 조합 단계는 (1) 가장 최근에 입력된 낱자에 대해서 더 적용 가능한 낱자 결합 규칙을 모두 먼저 표시한 뒤, (2) 바로 다음 입력 단계(가령, 중성 다음엔 종성)에 해당하는 글쇠들 중 글쇠배열에 있는 것을 표시하는 식으로 동작한다.
즉, 낱자 결합 규칙과 글쇠배열을 기본적으로 활용하되, 이 중에서 오토마타 수식과 한글 입력 범위 제약 검사를 통과한 것만 한정해서 가나다 순으로 출력한다.

이 도구는 오로지 현재 조합 중인 문자(열)에만 관심이 맞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성을 입력하고 있을 때 다음 글자의 초성이나 중성(두벌식 기준)까지 미리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사용자의 요청이 많고 그것까지 고려하는 게 충분히 유용하다면 다음 버전에서는 반영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제외했다.

그리고 이미 제공되는 후보 변환 UI와는 달리, 숫자를 눌러서 항목을 바로 선택하는 기능도 제공되지 않는다. 얘는 후보 변환 UI보다는 개발툴의 에디터 같은 데서 제공하는 "자동 완성 목록 UI"를 표방하여 설계됐기 때문이다. 키보드를 사용하려면 설정 대화상자에서 옵션을 지정해야 하며, 이 경우 상하좌우 화살표와 Page up/down으로 선택막대를 이동시킬 수 있다. 엔터와 ESC는 덤이고.

이 도구는 '글쇠배열 이름 표시'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cursor의 바로 아래에 표시돼야 한다. 하지만 구현체의 상황에 따라서는 기술적으로 위치를 알 수 없어서 불가피하게 화면 한구석 같은 엉뚱한 곳에 표시될 수도 있다.
심지어 EditPlus 3.x는 이 도구를 띄워 놓으면 조합 문자열이 계속 같은 곳에서 덮어 써지면서 입력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후대 버전에서는 고쳐졌나 모르겠다.

이 프로그램이 근본적으로 없는 길을 트는 방식으로 동작하며, 한 프로그램에서 되게 하는 방법이 다른 프로그램에는 부작용을 일으키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EditPlus 한 프로그램에서만 부작용이 발생하는 걸 더 어찌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일단 개발 과정에서 이런 일이 있었음을 밝힌다.

2. 조합 안에 조합 생성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말 그대로 한글을 입력하는 게 핵심인 입력기이다.
한글 IME는 조합하고 있는 한 글자만 신경 쓰면 되지 중국어나 일본어 IME처럼 단어· 문장을 통째로 조합을 잡을 필요가 없다. 길다란 조합 문자열 내부에서 또 가상의 caret을 이동한다거나 구간별로 영역을 달리하여 점선이나 실선으로 표시할 필요도 없다. 그건 내 프로그램의 관심 분야가 아니라고 도움말의 '일러두기'에다가 명시까지 해 뒀다.

개발자인 본인의 시간과 체력은 매우 한정돼 있는데, 이 와중에 관심 분야를 대책없이 이것저것 문어발처럼 뻗치다 보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죽도 밥도 안 되는 이상한 산으로 가 버릴 위험이 있다. 더구나 편집기 같은 전용 프로그램이라면 모를까 외부 모듈이라면, 한글 IME에서는 어차피 운영체제가 조합을 그렇게 일본어· 중국어 IME처럼 표시하는 기능을 애초에 지원해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프로그램도 기왕이면 타 언어 IME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수 있으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본인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해 왔다. 기약 없는 먼 미래의 일이지만 장기 과제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2017년 겨울~그리고 올해 초 사이에 바로 그 꿈이 실현되는 미래가 찾아왔다.
글자 단위로 동작하는 기존 문자 생성기를 내부 버퍼에다 감싸서 단어· 문장 단위로 통째로 변환 후보를 제시하고 변환하는 기능들에 대해 공통 인터페이스를 제시하고, 이걸 '입력 도구'의 형태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한글을 글자 단위로 곧장 내보내지 않고 묶어서 내보내는 것은..

  • 과거 도스용 아래아한글에서 잠시 제공하던 새김 단위로 한자 입력
  • TSF를 지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에서도 단어 단위로 한글-한자 변환. 특히 매번 한자 키 안 누르고 곧장 변환하기
  • 한글 발음으로 일본어나 중국어 입력 (당연히 단어· 문장 단위로 한꺼번에 변환)
  •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듯이, 자주 사용되는 단어의 자동 완성

이렇게 잠재적인 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냥 공통 인터페이스를 상속받아서 각 기능별로 후보를 제시하는 알고리즘만 달리하면 된다. 구현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되어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다 뜯어고치고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만큼 보람을 느낀다.

'새나루' 입력기에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개발 방향의 컨셉· 차이로 인해 제공하지 않던 기능이 두 가지쯤 있었다. 하나는 드보락이나 콜맥 같은 임의의 영문 키보드 드라이버를 한글 IME(= 새나루 자신)와 연결하는 기능이다. 이건 내 프로그램도 지난 8.6 버전 때부터 드디어 도입됐다. 임의의 키보드 드라이버와 연계 가능하게 프로그램 구조가 싹 개선되면서 두 입력기 간의 차이가 없어졌다. 내 프로그램은 그에 덧붙여 키보드 드라이버의 동작을 보정하는 옵션까지 갖추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자 변환 관련이다. 새나루는 한글, 영문처럼 '한자'라는 입력 모드가 있어서 (1) 매번 한자 키를 누르지 않아도 한자 후보가 한글과 함께 곧장 떠서 변환할 수 있었으며, '단어 단위 조합 생성'이라는 옵션이 있어서 (2) TSF가 지원되지 않는 환경에서도 2글자 이상의 단어 단위로 한자를 변환할 수 있었다. (1)과 (2)를 동시에 사용하면 타 한글 입력기를 쓸 때보다 한자 변환을 훨씬 더 빠르고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한자 혼용론자 진영(!!)에서는 자기들끼리 새나루의 사용을 권장할 정도였다.

그에 반해 내 프로그램의 개발 이념에 비춰 보면, 단어 단위 한자 변환은 그냥 이미 있으니까 덤으로 제공하는 보조 기능에 가깝다. 한글을 단어 단위로 조합을 잡는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딱히 개발자가 한글 전용 소신을 갖고 있어서 의도적으로 제공 안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개발 방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 지원하지 않았다. 세벌식 모아치기가 아니라 그런 기능이 필요하면 날개셋 대신 그냥 새나루 쓰라고 말이다.

그랬는데 먼 훗날, 결국 내 프로그램도 새나루에서만 제공되던 기능을 더 범용적인 형태로 수용하고 구현하게 됐다. (1)은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입력 도구를 띄워서 후보 목록만 표시하게 설정하면 된다. 그리고 (2)는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를 띄워서 단어 단위 한자 변환 기능을 설정하면 된다.
지금까지는 그런 변환 기능이 날개셋 한글 입력기 내부에서 어떤 위상과 계층을 차지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구현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입력 도구'라는 이론적 근간이 마련됐기 때문에 구현됐다.

한글 말고 영문의 경우도 T9 같은 모바일용 입력 방식에서는 단어 단위 조합이 필요하다. 한 글쇠에 여러 글자가 배당되어 있고 사용자가 multi-tap 없이 각 대표 글쇠만을 눌렀을 때, 사용자가 의도한 실제 단어가 무엇인지 유추하고 자동 완성 후보를 제시하려면 변환 엔진이 단어 전체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할 테니 말이다.
이 '조합 안에 조합' 입력 도구는 '휴대전화 입력기' 내지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입력 도구와도 연계해서 사용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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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조 입력 도구의 내부에서 '조합 안에 조합'이 생성되고 있을 때는 문자 입력 기능에 기술적으로 다음과 같은 제약이 걸린다.

1. 빈 입력 스키마(호환 옵션 포함) 계열의 글자판을 사용할 수 없으며, '글쇠 누름' 계열의 날개셋문자로 문자를 입력할 수 없다. 그건 태생적으로 글쇠를 IME가 가로채지 않고 응용 프로그램 내부로 보내는 기능이기 때문에 '조합 안에 조합'을 생성하거나 건드릴 수 없다. 한글이야 애초부터 IME가 글쇠를 가로채지 않으면 입력할 수 없는 문자이기 때문에 별 문제될 게 없는 반면, 영문이나 숫자를 입력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2. 이 상태로 또 글자 단위 후보 변환을 할 수 없다. '조합 안에 조합' 입력 도구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어 전체를 한꺼번에 다른 문자열로 변환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 또 글자별 후보 변환을 하는 상황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외부 모듈이 원래 고유하게 갖고 있던 후보 변환 UI와, 조합 안의 조합이 요청할 수 있는 후보 변환 UI 사이의 충돌 등, 상황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때도 굳이 한자 변환을 하고 싶다면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입력 도구를 미리 꺼내 놓고 사용하면 된다.

이런 제약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구현체가 전용 텍스트 에디터인 '편집기'밖에 없다면 굳이 존재하지 않을 제약이다. 하지만 외부 모듈과 입력 패드에서는 내가 가로채는 글쇠뿐만 아니라 응용 프로그램이 처리하는 글쇠도 고려해야 하고, 운영체제와 통신하는 부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만능 범용성을 보장할 수 없다.

'조합 안에 조합'은 저렇게 제약과 불편한 점만 있는 게 아니며, 그 특성상 고유한 장점도 있다.
외부 모듈(대부분의 환경)이나 입력 패드는 편집기처럼 주변의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조합이 끝난 글자를 낱자 단위로 지운다거나 다시 조합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합 안의 조합' 입력 도구는 자기가 자체적으로 텍스트를 갖고 있으니, 구현체를 불문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동일하게 텍스트를 자유롭게 조작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 결론

이로써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제공하는 입력 도구들은 오랫동안 4개만 있던 것이 10개로 크게 늘었다. 이들의 특성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명칭 도입 시기 동작 외형
한손 입력기 5.3 (2009) 자체 조합 입력
화면 키보드 5.3 (2009) 기존 입력 스키마
부수로 한자 입력 5.51 (2009) 자체 입력 대화상자
문자표 5.52 (2010) 자체 입력 대화상자
휴대전화 입력기 9.1 (2017) 자체 조합+기존 스키마
글쇠배열 이름 표시 9.1 (2017) 읽기전용 팝업
수식 계산 기록 9.3 (2018) 읽기전용 대화상자
내부 입력 상태 표시 9.3 (2018) 읽기전용 대화상자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9.3 (2018) 기존 입력 스키마
팝업
조합 안에 조합 생성 9.3 (2018) 기존 입력 스키마 팝업

입력 도구의 동작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 자체 조합 입력: 입력 도구가 자신만의 고유한 문자 생성기를 갖추고 조합 문자열을 입력시킨다. 한손 내지 휴대전화 입력기가 이 범주에 속한다.
  • 자체 입력: 굳이 문자 생성기의 조합 없이, 완성된 비조합 문자를 간단히 입력시킨다. 한자 부수 및 문자표가 이 범주에 속한다.
  • 기존 입력 스키마: 현재 사용 중인 입력 스키마와 문자 생성기를 기준으로 날개셋문자를 보낸다. 화면 키보드가 이 범주에 속한다.
  • 읽기전용: 현재 사용 중인 입력 항목의 상태를 표시만 할 뿐, 자기 자신은 아무런 입력 기능이 없다. 글쇠배열 이름 표시라든가 수식 계산 기록 같은 도구가 이 범주에 속한다.

입력 도구의 외형도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분류된다.

  • 대화상자: 제목 표시줄을 갖추고 크기 조절도 되며, 리스트 박스, 콤보 박스 같은 사무적인(?) 컨트롤들이 나타나 있다. 클래식 데스크톱 UI에 가깝다.
  • : 대화상자와 같은 형식을 갖추지 않고 큼직한 버튼 위주로만 구성돼 있다. Metro UI에 가깝다.
  • 팝업: 평소에는 화면에 보이지 않다가 글쇠 같은 특정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에만 잠시 cursor 주변에 나타난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흐르거나 조합이 종료되면 창이 도로 사라진다.

아울러 9.3 버전에서는..

  • 대화상자형 입력 도구들 중에 도움말이 제공되는 것은 제목 표시줄의 오른쪽 끝에 [X]뿐만 아니라 [?] 버튼도 추가했다.
  • 그리고 '입력 도구 선택' 대화상자의 목록에서 이미 켜 놓은 입력 도구는 앞에 *(별표)가 덧붙여져 있게 했다. 평소에 나타나 보이지 않는 '팝업형' 입력 도구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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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ㄹ+한자 특수문자 변환 테이블의 오류 수정

ㄹ을 입력하고서 한자를 누르면 아시다시피 여러가지 단위 기호가 나타나는데, 넷째 후보로 F가 있던 것을 °로 변경했다. 이건 다음과 같은 여러 정황상 후보 변환 테이블의 오류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 아마 화씨 온도 단위를 의도한 것 같으나, ℉는 뒤에 따로 또 있다.
  • 단순 전각 F는 ㅍ+한자에도 이미 있기 때문에 중복 등재이다. 그 반면 °은 지금까지 KS X 1001 특수문자 중 유일하게 초성+한자 어디에도 배당되어 있지 않았다.
  • 넷째 다음으로 다섯째와 여섯째에는 분, 초 ′ ″ (프라임, 더블 프라임)이 있기 때문에 도-분-초 순서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 °은 KS X 1001 2바이트 코드가 A1C6이다. F는 A3C6으로 서로 비슷하다면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하기 쉬운 관계이다.

확인해 보니 Windows 95, 아니 3.1 이래로 MS 한글 IME는 줄곧 ㄹ+한자에 F가 있긴 했다. 참 유구한 전통이긴 하지만 오류가 명백하기에 날개셋은 F를 °로 변경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저 오류는 본인이 최초로 찾아낸 게 아니라 역시 정 재민 님의 제보가 출처이다.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발견해 내는지..

하긴, Windows 98 시절엔 ㄹ 자리에 유로화 기호가 추가되었으며, Vista 타이밍엔 ㅁ 자리에 우편번호 기호가 추가되기도 했으니, 이 변환 테이블이 20년째 완벽한 고정불변도 아니긴 했다.
참고로 유로화 기호(U+20AC)는 2바이트 코드로 역변환이 가능한 반면, 우편번호 기호(U+327E)는 그렇지 않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3 08:35 2018/01/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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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 사이의 기간에 마소에서 '도움말, 튜토리얼, tour, intro, guide' 장르에 속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들을 좀 회상하고자 한다.
요즘 튜토리얼이라 하면 컴퓨터 게임에서 본게임을 수행하기 전에 기본적인 조작법을 익히는 싱글 플레이어 미션 정도를 가리킨다. 툼 레이더로 치면 Lara's home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게임 정도가 아니라 컴퓨터라는 괴상한 기계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아주 많았다. '컴맹'이라는 단어 기억하시는가? 1992년에만 해도 '키출판사'라는 곳에서는 <저는 컴퓨터를 하나도 모르는데요>라는 컴퓨터 입문서를 하나 잘 만들어서 전국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수 년간 석권하며 초대박을 쳤었다.
그런 시절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컴퓨터 입문을 도와 주는 프로그램도 나올 필요가 있었다. 특정 프로그램의 사용법뿐만 아니라 키보드 타자 내지 심지어 마우스 같은 사치품(?)을 다루는 방법도 사용자가 익혀야 했다.

마소에서는 오래 전부터 뭔가 인터랙티브한 학습/데모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에 남다른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거 학습을 잘 시켜야 컴퓨터 사용자를 늘리고 잠재적인 자기 고객도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사실은 방대한 운영체제나 Office 솔루션의 '설치 프로그램'도 단계별로 뭔가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UI 구조가 반쯤은 이런 데모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그러니 마소에서 1990년대에 '마법사'라는 UI 요소를 만들어 냈고 두 개념을 합쳐 '설치 마법사'라는 말까지 만든 것이지 싶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도입했던 '길잡이 clippy'는 너무 과잉 오버 사족으로 여겨져서 오래 못 가고 망했다만..)

아무튼.. 마소에서 지극히 초창기에 만들었던 학습 프로그램의 원조로 본인은 QuickBasic 4.5에 들어있던 (1) QuickBasic express를 기억한다. 실행 파일은 learn.com이고, qbcbt.ctx/scn/sob, 그리고 bx.pgm이라고 내부 구조를 알기 어려운 코드/데이터 복합 보조 파일을 추가로 사용한다.
이들 파일들을 다 합해 봤자 크기는 100K가 채 되지 않으며, 압축된 것도 아니어서 얼추 내부 문자열 같은 건 그대로 확인 가능하다. 그래도 프로그램을 실행해 보면 저 작은 크기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학습 컨텐츠가 많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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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은 16색 텍스트 모드에서 아스키 아트를 최대한 창의적으로 활용해서 화려하게 꾸몄다. 무려 열차를 그렸으며, 프로그램을 실제로 돌려 보면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기관차의 구동축이 움직이며 선로가 가로 스크롤을 하기 때문에 열차가 진짜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프로그램 이름에도 BASIC만 빼면 Quick, express 온통 이런 단어들이니 얼마나 스피디한 느낌이 나겠는가? 말 그대로 '퀵베이직 특급· 고속· 급행열차'인 셈이다.

물론, 아스키 128번 이후 문자를 이용한 아스키 아트는 2바이트 단위의 동아시아 문자 코드와는 상극이니 이런 프로그램은 한글화 따위는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니면 아스키 아트들을 2바이트 특수문자 기반으로 완전히 마개조 재창조 초월번역을 해야 할 텐데, 일본은 몰라도 그 당시 한국 마소에서 그런 용자짓을 할 여유와 능력, 재량이 있었으리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마소에서는 이런 부류의 프로그램에 대해 내부적으로 이미 CBT(computer-based training)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뭐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컴맹 왕초보를 위해서 QuickBasic을 구동하고 프로그램을 불러오고 실행하는 것까지만 설명하는 튜토리얼을 상당한 덕력을 담아서 굉장한 고퀄로 만든 것이다.
화차 그림에 쓰인 주의사항 보이시는가? 아주 대단한 선심이라도 쓰는 듯 "주목: 이런 지식은 아무 데서나 알려주는 거 아니야!" 이런 드립까지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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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 "자, 디스크에 저장된 프로그램을 불러오는 걸 실습해 보시겠습니다."
저장: "짜잔~! 프로그램이 final.bas라는 이름으로 저장됐습니다."

문장들의 문체가 전반적으로 은근히 재치 있고 익살스럽기 때문에, 한국어의 사무적인 해요체 합쇼체로 번역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길이도 너무 길다.
저건 그야말로 디스크와 파일에 대한 개념도 아직 부족해서 하드디스크에 몇백 GB짜리 사진을 저장하면 컴퓨터의 무게가 물리적으로 증가할 것처럼 생각하는 왕초짜를 위한 설명이다..;; C언어라면 몰라도(저 때는 마소에서 아직 C++ 컴파일러를 개발하지 않았던 시절) 베이직만은 그야말로 왕초보라도 접근 가능한 대중적인 프로그래밍 툴로 만들려는 빌 게이츠의 야심이 담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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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나고 나면 이 프로그램이 가르쳐 준 lesson의 핵심 요약을 요렇게 쭉~~ 늘어놓아 준다. 잊어버릴까 봐 종이에다 프린트 명령까지 제공하는 배려를 했다.
사실, 영어권에서 뭔가 개념원리 학습 자료를 만들어 놓은 걸 보면 참 대단하고 부러움이 느껴질 때가 많다.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지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령, 컴퓨터 쪽은 아니지만 무려 1930년대에 GM사에서 영업사원들(이미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들 말고) 교육용으로 변속기의 원리를 설명해 놓은 필름을 보면.. 매체의 기술 수준 말고, 강의 자체는 기본적인 물리 법칙부터 시작해서 공학적인 응용에 이르기까지.. 지금 봐도 나무랄 데 없는 고퀄이다. 저렇게 기본기와 실용주의에 충실한 교육이 쌓이고 쌓인 덕분에 미국이 과학 기술 선진국이 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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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나고 나면 다시 열차 그림과 함께 엔딩 화면이 나타나는데..
이번에는 시작 화면과는 달리 화차가 텅 비었고 아무 짐도 실려 있지 않다. 아하.. 이런 차이를 담았구나!!
난 그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이번에 스크린샷을 찍기 위해 프로그램을 오랜만에 다시 돌려 보면서 차이를 알게 됐다.

QuickBasic은 시대를 풍미했던 명작이고, 지금도 고전 레트로 레거시 프로그래밍 장난감으로서 외국에 매니아 커뮤니티가 있다.
그런데 QuickBasic의 인지도에 비해 이 자습서 프로그램은 존재감이 너무 묻히고 있는 것 같다. QuickBasic learn.com, Express 등 내가 생각하는 모든 관련 키워드들을 조합해서 검색해도 스크린샷 한 장 뜨는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learn.com은 어찌 된 이유인지 도스박스에서 안 돌아가고 시스템이 뻗는다(0.72 기준). 이것 때문에 더욱 접근이 어려웠다. VMware 같은 다른 가상화 유틸에서 돌려야 했다.

QuickBasic 말고 자습서로서 가장 유명한 건 아마 (2) Windows 3.1의 자습서이지 싶다. '프로그램 관리자'의 도움말 메뉴에 당당히 등재돼 있기 때문에 쉽게 접근 가능하다. PC 환경의 판도를 도스에서 Windows로 완전히 뒤바꾸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기본적인 마우스 사용법을 가르치고 Windows의 기본 UI 요소들을 다루는 일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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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습서야 검색을 해 보면 스크린샷과 동영상들이 이미 넘쳐나니 이곳에서 미주알고주알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고해상도(?) 화면에서 16색+도트 노가다로 깔끔하게 파스텔톤 그림을 그려 놓은 화풍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문자 때문에 고해상도가 필요했던 일본 게임들의 그림체도 이런 형태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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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열기' 명령을 내려서 기존 문서를 불러오는 실습은 QuickBasic 자습서와 Windows 자습서에 공통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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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창 제목을 마우스로 드래그 해서 창의 위치를 옮기는 것, 그리고 라디오· 체크· 콤보 등 기본 GUI 요소들을 실습하는 것도 있다.

사실은 (3) Windows 95에도 자습서가 있다.
1990년대 중후반은 컴퓨터의 기본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 대한 고려가 여전히 필요한 시기였으며, Windows 95가 3.1에 비해 UI 요소가 바뀐 것도 워낙 많았기 때문에 시작 메뉴, 작업 표시줄, 폴더 같은 것에 대한 학습이 필요했다. 이때는 Windows 95 사용 관련 컴퓨터 서적도 정말 많이 출간됐었다.

단, 95의 자습서는 모든 컴퓨터에 기본으로 깔리지 않았으며, 운영체제를 설치할 때 사용자가 수동으로 자습서를 직접 골라야 했다. 그리고 구동하는 방법도 내 기억으로 도움말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고 메뉴에서 바로 선택 가능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3.1의 자습서보다는 훨씬 덜 알려져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95의 자습서는 Visual Basic으로 개발되었지 싶다. 외부 링크로 소개를 대신하고자 한다.
그 당시 Windows 95의 비주얼 컨셉은 푸른 창공, 하늘과 구름이었다. 제품 패키지 박스와 부팅 스플래시 화면부터가 그렇고, 이스터 에그에 내장되었던 음악도 clouds.mid였으니.. 그러니 자습서에도 경비행기 그림이 있는 게 수긍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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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끝으로.. 이거야말로 정말 오래된 기억에만 의지해서 회상하는 것이지만..
MS Word 중에서 16비트 Windows를 지원하는 마지막 버전이었던 (4) 6.0 역시 자습서를 내장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Windows 3.1 자습서와 같은 엔진 기반으로 추정되고 비슷한 톤의 흰색 계열 화면이었다. 하지만 Windows 자습서와는 분명 다른 내용이었고, 배경 그림에 그 당시 Word 특유의 만년필 그림이 있긴 했다.

이 역시 내가 구글링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진짜로 역사 속으로 묻혀 버려서 그런지 인터넷 상으로는 자습서의 장면이나 동영상을 구할 수 없다.
16비트 시절 회상은 이 정도까지 하겠다.
사실, 도스박스로도 Windows 3.1 정도는 돌릴 수 있다. 이것도 0.6x대의 구버전에서는 안 되다가 후대 버전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도스박스는 여느 가상화 툴처럼 디스크 이미지를 별도로 만들 필요 없이, 기존 파일 시스템의 디렉터리를 곧장 mount 해서 쓰면 되는 게 참 편하다.
Windows 95까지도 돌린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부터는 아무래도 하드웨어 가상화의 도움을 받는 VMware 같은 더 정교한 가상화 프로그램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도스박스에서 Windows 3.1을 설치하면 다 좋은데, 프로그램 그룹의 수집과 생성이 왜 자동으로 되지 않는지가 의문이다. 프로그램 관리자가 기본 프로그램, 보조 프로그램 같은 그룹이 아무것도 없는 채로 시작된다.

한편, Windows 95부터는 부팅 직후에 간단한 welcome 프로그램을 실행하던 관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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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때는 '알고 계십니까' 팁을 출력했지만 98과 2000에서는 인터넷 연결, 제품 등록 같은 걸 안내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실행 형태가 바뀌었고, ME와 XP부터는 이런 게 없어졌다.
2000년대 ME/XP 시기에는 컴퓨터의 기본 사용법을 가르치는 클래식한 자습서는 사라졌지만, Windows의 새 기능을 소개하는 데모는 플래시 내지 HTA (HTML application) 형태로 잠시 존재했다.
특히 XP에 내장돼 있던 플래시 기반의 "새 기능 투어"는 굉장한 퀄리티였다. 비록 한글화되지 않았으며, 이런 관행 역시 Vista와 그 이후부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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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프로그래머의 직업병을 발휘하여, 이런 자습서 내지 튜토리얼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과정은 어떠할까 생각해 보고 글을 맺겠다.
웹이나 플래시는 처음부터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표시하는 데 최적화된 저작도구 내지 플랫폼이라 치지만, EXE 기반의 전통적인 데모 내지 자습서· CBT 프로그램은 어떤 방법론을 동원하여 만들었을까?

순차적인 절차대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이벤트 드리븐 방식으로 개조하는 건 만만찮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과거의 터보 C/파스칼에 존재하던 BGIDEMO 예제처럼 순차적으로 일괄적으로 그래픽 데모가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Windows용으로 짜는 걸 생각해 보자. 간편하게 자기가 원하는 타이밍 때 그림을 그리고 마는 게 아니라, 운영체제로부터 그림을 그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에만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니, 지금은 어느 데모의 그래픽을 출력할 차례인지 내부적인 진행 상태를 추상화해서 잘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나 끊임없는 그리기 작업은 스레드나 타이머 같은 완전히 다른 방법론을 동원해서 해야 한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자습서 프로그램은 그 특성상 학습 대상 프로그램이 실행된 가상의 화면을 표시할 일이 많고 심지어 그 가상의 화면에서 사용자가 창을 조작하는 것을 흉내까지 내야 할 때가 있다.
모든 그림들을 무식하게 비트맵 이미지로 때려박는 건 공간 효율과 유지 보수(일부 컨텐츠가 수정되었을 때, 화면 해상도가 변경됐을 때 등) 관점에서 별로 좋지 못하다.

저런 건 진짜 윈도우를 생성한 뒤에 서브클래싱 같은 customization으로 내가 원하는 형태로만 동작하게 제약을 추가하는 식으로 구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윈도우 그림만 가짜로 그린 뒤에, 창의 이동과 크기 조절, 메뉴 표시 같은 당장 학습에 필요한 이벤트에만 임기응변으로 반응하게 만들 수도 있다. Windows 자습서는 정황상 대부분의 UI는 후자 방식으로 구현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건 좀 어설프고 삽질스러워 보이는 면모가 있다.

당신이 Visual Basic의 짝퉁 개발툴을 직접 개발한다고 생각해 보자. VB의 디자인 모드에서 떡 나타나 있는 폼의 '윈도우 프로시저'는 어떻게 구현되어 있을지가 궁금하지 않은가? 평소에는 클라이언트 영역에 일정 간격으로 격자 도트가 찍혀 있을 것이고, 자신의 위치나 크기가 바뀌면 폼의 정보가 수정된다. 자기에게 놓인 차일드 컨트롤을 클릭하면 크기 조절을 위한 8개 모서리가 주변에 표시되며, 이걸 더블 클릭하면 해당 컨트롤에 대한 이벤트 핸들러 코드를 편집하는 창이 뜬다.

자습서 창 내부에서 특정 윈도우의 외형과 동작을 구현하는 일도 이런 것과 비슷한 차원일 것이다. 어떤 물건이긴 한데, 실물이 아니라 뭔가 영화 촬영용 소품과 비슷한 격의 물건을 갖다놓는 격이 된다.
'짝퉁'을 만드는 식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이 한계에 달했는지, 나중에 마소에서는 실제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상태에서 그때 그때 도움말이 응용 프로그램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인터랙티브한 형태로 출력되는 모델을 고안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윈도우 훅 중에서도 WH_CBT라는 게 있다. 어떤 프로그램이 내부에서 창을 생성하거나 없애고, 포커스가 바뀌고 창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 자습서는 학습 대상 프로그램에서 요런 특정 동작만 감지하면서 상황에 맞는 도움말을 출력하거나 지시를 사용자에게 내릴 수 있다. 이런 간단한 용도라면 굳이 모든 메시지를 통째로 훔쳐보는 무거운 다른 훅을 설치할 필요 없이 저것만 사용하면 된다.

이런 훅을 사용한 아주 모범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HTML 도움말인 CHM 말고, Windows XP까지 지원되었던 재래식 HLP 파일을 생성하는 (5) 오리지널 Help Workshop 툴을 보면.. 도움말 프로젝트를 생성하는 요령을 설명하는 traning card라는 자습서 세션이 있었다. 전용 자습서가 거창하게 뜨는 게 아니라, 화면 옆에 아주 자그마한 도움말 창만 추가로 뜬 뒤, 도움말이 시키는 대로 실제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기능을 익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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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이야 HLP 도움말 자체가 폐기되었으며, 이런 식의 도움말 디자인 패러다임 역시 완전히 한물 가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Help Workshop에 이런 간소화판 자습서 튜토리얼이 존재했다는 것도 오늘날 인터넷에서는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0 08:33 2018/01/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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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 전망대와 행주산성

본인은 작년에 강화도에 나들이를 다녀와서 이 블로그에다가도 여행기를 올린 바 있다.
그때 본인은 고인돌이나 마니산, 고려 행궁뿐만 아니라 북쪽에서 전망대도 보고 왔다. 남한과 북한이 첩첩산중의 육지가 아니라 거대한 강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러니 여기는 DMZ 같은 건 없으며, 강 건너편에는 의외로 북한의 마을이 곧바로 보이고(선전용으로 일부러 때깔 곱게 꾸며 놓은 것이지만..) 군인이 아닌 평범한 주민들도 보인다. 이런 광경은 한반도의 서부인 한강 하구에만 존재한다.

그러니 본인은 이렇게 강 건너편의 북한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강화도 말고 또 있는지 궁금해졌다. 지도를 찾아보니 '오두산 통일 전망대'라는 게 있다는 걸 새로 알게 됐다. 오두산은 높이가 100m 남짓한 낮은 산이며 백제 시대에 '오두산성'이라는 성곽도 만들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가 임진강이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어서 경관이 아주 좋으며, 자연스럽게 강 건너편의 북한 땅을 보기에도 좋다. 게다가 그 어느 전망대보다도 서울과 가까이 있고 자유로 도로의 바로 옆이기까지 하니 접근성도 훌륭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1992년 9월, 노 태우 정권 시절에 여기에 통일 전망대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사실은 자유로와 거의 동시에 완공된 거나 마찬가지이다. 이에 본인은 하루 날을 잡아서 차를 몰고 여기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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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을 올라서 아래의 자유로를 내려다 본 모습이다. 반대로 자유로를 저렇게 달리는 도중에도 이 전망대가 차창 밖으로 보인다.
자가용이 없더라도 셔틀버스가 평지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전망대를 찾아갈 수 있다. 자세한 건 해당 기관의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그런데 이 높은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 근성의 자덕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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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의 입구 모습이다. 여기는 위도가 가장 높고 바다를 옆에 낀 강원도 고성의 통일 전망대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정반대이다.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오두산 전망대는 북한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전망대들과는 달리 "민통선 안에 있지 않다!" 여기 주변의 지형과 군사분계선의 특이한 선형 덕분에 가능한 전국 유일의 예외가 아닌가 싶다. 덕분에 이 전망대는 드나들기 위해서 신분증을 까고 차량 번호를 적고 출입 허가증을 받는 식의 난리를 칠 필요가 없다.

군부대 내부에 있는 전망대들은 북측 방면 사진 촬영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엄격한 통제가 걸리는 편이지만, 이 전망대는 그런 게 전혀 없이 아주 관대한 분위기였다.
아, 그렇다고 해서 이 전망대 주변에 일제의 군사 시설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다. 여기 일대는 국내의 인터넷 지도 사이트들이 항공 사진을 제공하지 않는 엄연한 전방 보안 지역이다.

전망대 안에는 실향민들을 위해 북한의 주요 도시들 내부를 3D 그래픽으로 재현해 놓은 동영상 상영관이 있고, 북한의 도발 역사와 통일의 필요성, 남과 북이 추구하는 통일 이념 같은 원론적인 얘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남한이 서부 지방도 땅을 좀 더 많이, 송악산 정도까지만 수복했으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고려 시대 유적이 더 많아졌을 것이고 경의선 전철이 개성까지도 뚫렸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오두산 전망대 같은 전망대도 이곳이 아니라 송악산 정도로 더 북상하게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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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주된 풍경은 이것이다.
저~~멀리 보이는 땅은 북한 개풍군이다.
그리고 왼쪽 중간에 있는 땅은 남한 김포시 하성면이다. 북한 땅과 남한 땅 사이에 있는 물길은 임진강과 합류한 한강으로, 반쯤 이미 서해 바다이다.
김포시 하성면과 내가 있는 곳 사이에 있는 물길은 한강이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물길은 임진강이다. 지리 구도가 대략 이렇게 된다. 이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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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안에 들어가 보면 여기가 어디쯤인지 지도와 함께 잘 설명되어 있다. 한강 하구 정도로 가면 강폭이 거의 2km에 달한다.
여기도 나름 두 물줄기가 만나는 셈인데, 남양주 두물머리나 정선 아우라지와는 분위기가 영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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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망대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북한의 마을과 주민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사람은 망원경으로 봐도 매우 자그마해서 식별이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논밭에서 농삿일을 하는 건 분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여기 주변에는 선전 구호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오두산 전망대가 또 아주 좋은 건 여느 전망대들과 달리 망원경이 무료라는 점이었다. 덕분에 망원경을 비교적 오랫동안 만지작거리면서 망원경으로 비치는 상을 카메라로 찍는 시도까지 할 수 있었다. 물론 원하는 각도를 맞추기란 대단히 어려웠고 색깔도 뿌옇긴 하지만, 그래도 사물 자체는 카메라의 줌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찍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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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남한 쪽(김포 하성면)을 보고 찍은 모습이다. 흐리던 하늘이 맑고 파래져서 경치 구경하기에 적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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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폭(=거리)이 좀 압박스럽긴 해도 수심이 막 깊어 보이지 않고 심지어 밀물 썰물까지도 있다는데.. 누가 미친척 하고 근성으로 헤엄쳐서 월북이나 탈북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긴,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기도 했다.
다대포 해수욕장이 있는 부산 낙동강 하구와는 달리, 군사적으로 완전히 봉인되어 버린 한강 하구의 안습한 현실을 이렇게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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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에서 남한 내륙 쪽을 둘러보니, 맞은편 언덕 위에는 웬 거대한 한옥 건물이 보였다. 저건 도대체 뭔가 궁금해서 찾아 봤더니 '고려 통일 대전'이라고 고려의 종묘뻘 되는 행사를 치르는 '고려 역사 선양회'라는 단체 소속의 사유지라고 한다. 헐... 저기서 1년에 한 번 '대제'를 지낸다고..

이렇게 본인은 오두산 통일 전망대 구경을 잘 마쳤다. 이런 걸 보면 맨날 뉴스에서 핵 만들고 미사일 쏘는 그 또라이 북괴라는 나라가 내가 사는 곳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실존한다는 걸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파주에서 데이트 코스 관광지로 알려져 있는 헤이리 예술 마을, 프로방스 마을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고 북한과도 불과 4~5km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전방이라는 것에 놀랐다. 거기도 보안 문제 때문에 국내 인터넷 지도에서 항공 사진이 제공도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좀 정치적인 이슈 얘기를 하자면, 본인은 인제 와서 남북이 뭔가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건 거의 '영어 공용어화'만큼이나 가능하지 않으며 타이밍이 물 건너 갔다고 상당히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북괴 체제를 붕괴시킬 기회를 다 놓쳐 버렸기 때문이다.

통일만 되면 한국이 인구가 7500만이 되고 탄탄한 내수 시장을 갖춘 동북아시아 강국이 되고 어쩌구 희망적으로 나불거리는 건, 북한 주민들이 굶주린 약골· 마약 중독자가 아니고 남조선 인민들에 준하는 체력과 생산성이 있으며, 김씨 정권에 세뇌되지 않은 정상적인 정치관 종교관 국가관을 갖고 있을 때에나 성립하는 얘기이다. 지금 그 전제조건이 성립하는가? 전혀, 네버..

그러니 지금은 정말 통일을 외칠 때가 아니라, 통일이 안 되고 설령 북한 땅을 다른 세력이 다스려도 좋으니 전적으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소말리아 아이티 캄보디아보다도 못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구출하고, 북괴 정권을 고립하고 압박시키고 무너뜨리는 일에 신경써야 할 때이다. 지금은 우리가 힘이 충분치 못해서 휴전선 전방에서 '북괴의 위협'만 제거하고 예방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북괴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는 것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걸 할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영구분단만 유지해도 중간은 간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북괴랑 대화하자네 퍼주자네 하는 놈들은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다 쳐죽이고 씨를 말려야 된다. 이놈들은 일제 시대 친일파 따위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나쁜 악마들이기 때문이다. 악마를 상대로는 전기톱이 훌륭한 대화수단이거늘 무슨 달러 현찰이 대화수단이란 말인가?
꼭 이런 애들이 북괴를 좋게 말할 수는 없으니 오로지 남한만 정체성을 부정하고 역사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며, 맨날 민족 민족 들먹이지만 동족이 자유를 빼앗긴 굶주린 노예로 사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두산 전망대 다음으로 본인은 동일하게 자유로와 아주 가까이 있는 행주산성을 덤으로 들렀다. 언덕의 높이가 서로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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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이 자리잡았던 덕양산은 서울 봉화산만큼이나 산맥 없이 혼자 우뚝 솟은 독립구릉이다. 강 쪽으로는 거의 절벽이고 육지에서는 경사가 완만한 편이어서 요새화에 유리하고 군사적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언덕의 특성상 경사의 압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정말 낮기 때문에 성인 남자의 체력 기준으로는 슬금슬금 오르면 정말 금방 정상까지 갈 수 있다. 예전에 서울 응봉산을 오르던 정도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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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달하니 역시 자유로+강변북로와 한강, 마곡철교(공항 철도), 방화대교 등의 다리가 내려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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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행주대첩 승전을 기념하는 기념비와 정자도 있었다.
행주산성 안에 있는 각종 건물들은 조선 시대에 있었던 오리지널이 아니라 다들 후대에 새로 건설된 것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간판이 '덕양정', '대첩비각', '충의정' 등으로 한문이 아닌 한글로 적혀 있었다.

행주대첩(권 율)은 진주성 대첩(김 시민), 한산도 대첩(이 순신)과 더불어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3대 대첩 중 하나이다. 이 순신은 임팩트가 독보적으로 너무 크고, 진주성은 그래도 2차 전투 때는 함락되어 버리기라도 했다만, 행주대첩에 대해서는 본인이 지금까지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주산성 안에는 적당히 나무 아래에서 쉴 공간이 많이 있었으며, 그 당시 전투를 기리는 기념관도 드문드문 자리잡아 있어서 휴식과 힐링용으로 좋았다. 단, 본인의 막연한 예상과는 달리 여기는 돌로 쌓은 성벽 같은 건 없었다. 토성 비스무리한 것만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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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본인은 이 정도로 서울 서부까지 온 김에 행주대교를 건넜으며, 인천 계양 역 근처의 경인 아라뱃길 공원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여기는 정작 배의 통행은 전무하다시피하고, 오히려 양 옆 둑길이 훌륭한 자전거 라이딩 코스가 되었을 뿐이다. =_=;; 이러려고 괜히 운하를 팠나 자괴감이 충분히 들 만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07 08:29 2018/01/0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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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에서 제일 큰 주목을 받는 교통사고의 유형은 (1) 음주운전, (2) 졸음운전 대형차(버스, 트럭) 사고, 그리고 (3) 고령 운전자 사고인 것 같다. 일명 김여사 사고는 2010년대 초에 인천외고 운동장 사고와 인천대교 마티즈 사고 때 크게 논란이 일었다가 요즘은 잠잠해진 듯. 하지만 지난 2017년 여름에 발생했던 일산 백병원 차량 돌진 + 건물내 추락 사고는 오랜만에 또 발생한 김여사의 전형적인 운전 미숙 사고이다..;;

1. 음주운전

뺑소니와 더불어 죄질이 제일 나쁜 축에 들며 사람을 제일 빡치게 하는 사고이다. 이런 사고가 꼭 피해자는 차량 화재+몰살인데 가해자는 그냥 경상인 경향이 있다. 좀체 근절되지 않고 있어서 가해자 처벌을 더 강화하라는 여론이 기세등등하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우리나라는 범죄자 인권에 너무 관대한 곳이어서 별 희망이 없을 것 같다. 이 글에서 음주운전 사고 사례는 생략하고, 더 소개하지 않겠다.

굳이 단속 기준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일단 대인사고가 났다 하면 가해자를 완전 작살을 내 줘야 할 것이다. 최소한 피해자 유족 측 변호사가 "저래 봤자 가해자는 고작 몇 개월~1년이나 살다 나올 텐데 그냥 합의해서 푼돈이라도 챙기시죠?" 이딴 식으로 유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제기랄, 이게 나라냐? 오래된 생각이다.

2. 대형차 졸음운전

이건 2016년 7월의 봉평 터널 사고에 이어 작년에도 지난 7월에 경부 고속도로 상행선 양재IC 인근에서 거한 사고가 한 건 터지는 덕분에 또 이슈가 됐다.
버스와 승용차가 1차로에 엉겨 있길래 이것만 봐서는 "또 어떤 승용차가 자기 길이 막히니까 버스 전용 차선 침범하는 병신짓 하다가 뒤에서 달려오는 버스에 추돌 당했나" 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추돌 사고 자체는 2차로에서 발생했다. 오히려 버스가 웬일로 버스 전용 차선에 있지 않고 앞의 정체 구간을 못 본 채 앞의 승용차를 그대로 쾅 들이받고 타고 올라갔다. 승용차 과실 100%에서 버스 과실 100%로 원인이 완전히 반전되었다.

뒷차가 무게와 속도를 이기지 못해 앞차를 짓뭉개고 타고 올라가는 건 태생적으로 여러 객차들이 줄줄이 연결된 철도 차량의 중대한 충돌· 탈선 사고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렇게 될 정도이면 승객이 많이 죽거나 다친다.
"흰색 K5"가 졸음 운전 대형 버스에게 추돌 당해서 탑승자 전원 중상· 사망의 피해가 났다는 점은 봉평 터널 사고와 동일하다.

하루 10몇 시간씩 쉬지도 못하고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분들의 처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방법이 없는지? 근본적으로는 물류비 교통비의 인상으로 불가피하게 귀결돼야 할지도 모른다. 가해자인 운전사도 딸을 셋이나 둔 가장이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무리하게 근무를 했다던데 말이다.

몇 시간 운전했으면 얼마 동안은 반드시 쉬라고 법으로 강제로 규정해도 현실에서는 빡빡한 운전 스케줄이 더 중요하고 제대로 지켜질 수가 없는가 보다. 운전 기사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처럼 버그와 싸우는 건 없지만 그래도 일정에 쫓기는 건 동일한가 보다.
물론, 아예 대형차의 최대 속도를 강제로 낮춰 버리는 건 미친 짓이며 개인적으로 적극 반대다. 자꾸 새 법을 만들고 규제만 더 넣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쉬는 걸 보장하는 법'부터 제대로 시행되게 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영업용 차량을 쉴 새 없이 운전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미친 짓을 할 리는 없으니, 음주운전은 주로 자가용 승용차가 저지르는 편이다. 그 반면, 졸음운전 사망 사고는 운전이 생업인 대형차 운전자가 내는 편이니, 가해자의 성격과 양상이 서로 다르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버스 전용 차선 침범은.. 자기 차가 제로백을 5초 만에 달성 가능한 제네시스 프라다 같은 급의 차라든가, 무슨 1분 1초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응급 환자를 수송하는 거라도 아니라면 꿈에도 시도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이건 단순히 단속에 걸리고 과태료 벌금 무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거는 도박이기 때문이다.)

3. 고령 운전자

다음으로 이건.. 자가용과 영업용 차량을 딱히 가리지 않고 고령 운전자가 순간적으로 손발 움직임 내지 판단 착오를 일으켜서 사고를 내는 빈도가 높아지는 편이다. 김여사처럼 '일부 예외적이고 운 나쁜 사례'만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2010년경이던가.. 면허를 4년 반 동안 필기 시험에서만 거의 무려 1000번 가까이 떨어진 할머니가 결국 턱걸이로 필기와 실기까지 간신히 합격했다. 이분은 전국적으로 매스컴을 탔고, 현기차에서는 축하한다고 이 어르신에게 경차를 한 대 기증도 해 줬으나..
저분은 그로부터 1년이 채 못 가 차가 반파되는 교통사고를 냈다고 한다. 그 뒤로 근황은 전해지는 게 없어서 알지 못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2015년의 일인데.. 어느 70대 모범택시 운전기사가 서울 소공동 소재의 롯데 호텔에 차를 몰고 들어가던 중, 이거 뭐 졸음운전도 아니고 갑자기 몸이 말을 안 들었는지 화단을 들이받고 근처에 세워져 있던 고급 승용차들 4대를 연달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 보도 자료 링크)

인명 피해 없는 접촉사고 수준에 불과했지만, 문제는 피해 차량 4대 중에서 제일 저렴한 싸구려 차가 그랜저였다는 거. 나머지는 포르쉐 두 대와 에쿠스였다..;;
수리 견적이 거의 5억 가까이 나왔으나.. 기사분은 대물 한도 1억까지만 보장되는 보험에 들어 있었고, 나머지 보상비는 고스란히 개인 부담이 됐다.

내가 알기로 택시나 노선 버스 같은 영업용 차량은 대 "인"은 I, II 보상 모두 무한대인 보험에 의무적으로 들게 돼 있다. 하지만 대물은 아니었나 보다.
저분은 처음에는 급발진 핑계를 대며 발을 빼려 했으나, 블랙박스 영상을 판독한 결과 그렇지 않고 순수 자기 과실 100%인 게 빼박 입증됐다.

그야말로 집안 뿌리를 뽑아도 갚지 못할 액수 때문에 택시 기사는 식음을 전폐하고 그대로 주저앉았고, 거의 자살을 생각하는 지경까지 됐다. 이건 뭐 거의 빚보증 잘못 서서 인생 조진 것과 별 차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롯데 호텔 측에서 이 사정을 듣고는 보험 보상 범위를 초과하는 나머지 액수는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회장님이 초 대인배 조치를 취해 준 덕분에 구제를 받았다. (☞ 보도 자료 링크)

나름 모범 택시라는 것도 최하 5년 이상 무사고를 달성한 '모범 운전자'만 몰 수 있는 것일 텐데, 평생 쌓아 왔던 무사고 커리어를 저분은 저 사고 하나로 다 말아먹었다..;;
그러니 고령 운전자를 상대로는 적성검사를 더 자주 시키고, 일본처럼 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하는 쪽으로 인센티브 주고 장려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너무 젊은 애들은 철없고 객기 부리느라 사고율이 높아서 자동차 보험료가 비싸다지만, 반대편 극단의 노인은 다른 이유로 인해 사고율이 높은 게 현실이다. 다만 교통이 너무 불편해서 정말로 차가 없으면 안 되는 곳에서는 문제를 어찌 해결하면 좋을지 궁금해진다.

아울러, 고령자는 운전자로서 내는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보행자로서 신호 무시 무단횡단 교통사고도 좀 문제이다. 노인분들은 지금처럼 차들이 넘쳐나고 교통법규 준수가 절실하던 시절에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을 보내지 않았으며, 오랜 연륜에 따른 고집도 있어서 교통법규를 꼬박꼬박 잘 지키는 편이 아니다.

무단횡단을 할 거면 측면주시 잘 해서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남들과 다르게 잽싸게 건너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들은 몸이 민첩한 것도 아니니 문제다. 애초에 무단횡단도 빨간불 기다리는 게 귀찮다기보다는 횡단보도까지 쭉 우회하는 게 귀찮고 거동이 불편해서 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 기타: 긴급 자동차 관련

출동 중인 구급차나 소방차 같은 긴급자동차는 재량껏 눈치껏 신호 무시와 과속, 중앙선 침범과 버스 전용 차선 주행이 허용되며, 막히는 길에서 양보받을 권리도 인정받는 등 여러 특례가 보장된다.
하지만 긴급자동차도 운이 나쁘면 사고를 낼 수 있고, 과실 비율에서 언제나 면책되는 건 아니다. 옛날에 모닝와이드 블랙박스로 본 세상에서 이런 사고 사례가 방영된 게 있었다.

(1) 사이렌 울리며 출동 중인 구급차가 있었는데, 교차로에서 좌우로 당장 차가 없는 걸 보고는 신호 무시하고 슬금슬금 직진했다. 하지만 그 왼쪽에서는 파란불 신호만 보고 계속 달려오던 시내버스가 있어서 결국 둘이 충돌했다.

→ 구급차는 정말 합법적인 긴급자동차였던 관계로, 드물게 우열 없는 쌍방과실 50:50이 나왔다. 자기 차량 보험사가 각각 상대방 차의 손해를 물어주면 된다. 사설 견인차가 사고를 냈으면 이런 판정은 당연히 못 받는다.

(2) 화재 신고를 받고 여러 소방차들이 대열을 지어 사이렌 울리면서 출동 중이었다. 그 행렬이 지나가는 걸 못 참고 어떤 승용차가 소방차 중 대형 물탱크차를 추월해서 그 앞에 바싹 끼어들었다.
그런데.. 교차로에서 소방차들이 좌회전을 시작했는데 하필 그 승용차 앞에서 노랑-빨강으로 신호가 끊겨 버렸다. 단속 카메라가 있었는지 승용차는 우물쭈물 하다가 정지를 선택했으나, 무거운 물탱크차는 곧장 정차할 수 없어서 승용차를 추돌했다. 승용차가 없었으면 물탱크차는 선두 소방차들을 따라 꼬리물기쯤 해도 아무 문제 없을 상황이었을 텐데.

→ 승용차의 입장에서는 하필 노란불 딜레마 때문에 참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더구나 결과적으로는 소방차가 앞차를 추돌한 것이고, 크고 무거운 소방차보다 승용차가 훨씬 더 많이 부서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과관계로 볼 때 승용차가 공익을 수행하는 긴급자동차를 상대로 거의 민족 반역자 급의 너무 큰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당연히 100:0 나왔다. 이거 방영된 동영상의 밑으로는 악플도(승용차 운전자 욕) 작살나게 많이 달렸다.

* 기타: 운전 면허 시험장에서 발생한 어이없는 사망 사고

지난 2016년 11월엔 도봉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참 어이없는 인명 사고가 났다. 시험을 치기 위해 배정받은 차량으로 가던 어떤 20대 여성이 다른 20대 남성 응시자가 탄 트럭의 앞을 슬금슬금 지나갔는데.. 이때 트럭은 출발 신호를 받고는 곧이곧대로 출발을 해 버렸다. 그래서 여성을 쳤다.

면허 시험장에서 차들이 무슨 쌩쌩 고속으로 달릴 리는 전혀 만무하다. 갓 출발하려던 상태였으니 곧장 사고를 감지하고 정지만 했으면 피해자는 기껏해야 좀 넘어지고 다치고 까지는 걸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숨지고 말았다. 가해자는 너무 놀라고 당황했거나 아니면 반대로 상황 파악을 못 했는지, 넘어진 피해자를 바퀴로 깔고 간 것 같다.

세상에 차량 급발진도 아니고, 어느 미친 음주운전자와 정면충돌을 한 것도 아니고, 대형 사고가 도무지 날 것 같지 않은 저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고로 죽다니 참 허탈하다.
아니,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동차는 총기와 맞먹는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에 저런 곳도 군부대 사격장에 준하는 군기와 안전수칙이 철저히 지켜졌어야 했다.
모든 총기는 장전된 것처럼 다루고 절대로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 말아야 하듯, 그와 동일하게 누구든지 차 앞을 얼쩡거리지 말았어야 했고 그러는 사람이 있으면 감독관이나 주변 직원이 철저히 제지했어야 했다.

내 발이 인도에 있다가 차도로 옮겨지는 순간이라면 반사적으로 측면을 응시해야 하며, 주차된 차들 주변을 얼쩡거릴 때는 보행자일 때든 운전자일 때든 왕창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이어폰 끼고 스마트폰 들여다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심지어 무단횡단까지 하는 사람들은 안전불감증이 너무 심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멀쩡한 운전자를 인생 꼬이게 하지 말고 조심해야지. 사실 요즘은 블랙박스도 있고 해서 도를 넘는 막장 보행자는 마냥 약자라고 편드는 게 아니라 과실이 더 높게 나오기도 한다. 그래야 마땅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04 08:35 2018/01/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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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창경· 창덕궁과 종묘를 다녀오고 나서 몇 달 뒤, 다음으로는 종로가 아닌 시청, 정동 쪽으로 놓여 있는 고궁을 답사했다. 이번에는 자전거 없이 전적으로 걸어다니기만 했는데, 답사 동선의 고저차를 감안하면 궁극적으로 이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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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시청 역은 서울 시청 및 서울 광장뿐만 아니라 덕수궁과도 아주 가까이 있다. 입구의 이름은 '대한문'인데, 본인은 저 명칭을 20여 년 전에 나왔던 어린이용 비디오 한자 교재의 출판사 이름으로 먼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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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대는 지난 2017년 3월, 반공 애국 시민들이 박 근혜 대통령의 인민재판 부당 탄핵을 반대한다고 태극기를 흔들며 목놓아 외쳤던 역사적인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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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안으로 들어간다. 정전인 중화전이다. (돌바닥에 비석 같은 신하들 자리..) 이런 것들 이름을 붙이는 방식은 어떠했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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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에는 동서양 건축 양식이 퓨전으로 섞인 의외의 건물이 있었다. 이름은 '정관헌'이라고 하고, 구한말인 1900년에 고종이 연회장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추가로 지은 거라고 한다.
그리고 근처에는 '석조전'이라고 더 나중에 지어진 서양식 석조 건물도 있다. 덕수궁은 마냥 기와집 일색이 아니라 안에 의외로 이런 서양식 건물이 있었다. 물론 지금 있는 건물은 재건 복원된 것이고,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나머지 덕흥전, 함녕전 등의 건물도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지만 소개를 생략하겠다. 이렇게 덕수궁을 둘러본 뒤 본인은 후문 쪽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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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구세군 회관을 지났다. 옛날엔 뭔가 근대식 건물이라 하면 전부 붉은 벽돌 일색이었던 것 같다. 그게 지금으로 치면 '유리궁전' 같은 유행이었던 듯.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도 뭔가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는지, 제복 차림의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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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로와 새문안로2길 사이에는.. 서울 도심의 최고 입지임에도 불구하고, 덕수궁 복원을 위한 문화재 발굴과 조사라는 명목으로 민간인의 접근이 봉인된 넓은 폐허(?) 공터가 있다. 다른 구간은 높은 담장 때문에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출입문이 있는 곳에서는 철문 사이에다 렌즈를 집어넣어서 내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인제 와서 서대문(돈의문)이라든가 이 일대의 한양도성도 과연 부지 확보와 복원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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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그 이름도 유명한 구 러시아 공사관 첨탑에 도달했다. 고종 황제의 흑역사인 1896년 '아관파천'의 현장이다. '구'에서 알 수 있듯, 지금의 러시아가 아니라 공산주의 소련 이전의 '러시아 제국' 시절 얘기다. 노(魯)뿐만 아니라 아(俄)도 러시아를 가리키는 한자로 쓰인 것이 생소하게 보인다.

원래 러시아 공사관은 훨씬 더 넓고 큰 건물이었지만 그것들은 6· 25 전쟁 중에 몽땅 파괴되고 이 부분만 현재까지 남아서 전해진다. 아까 그 폐허 부지와 직선 거리상으로는 가까운 곳에 있지만, 높이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여기로 가려면 정동 공원 등 다른 곳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주변 지형의 특성으로 인해, 구도는 전부 탑을 올려다보는 형태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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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아래의 정동 공원도 경치가 좋아서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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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 다음으로 나가서 새문안로를 횡단하니 경희궁의 진입로인 흥화문은 곧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희궁은 조선의 궁전 5개 중에서는 존재감이 제일 없다. 서울의 궁전들 중에서 훼손이 제일 심해서 볼 게 제일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 궁전들보다 잔디밭 마당이 유난히 넓고, 곳곳이 복원 공사가 한창이었다.

본인조차도 한글 학회 회관 근처에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오피스텔 단지가 있는 걸 보고는, 수 년 동안 "경복궁도 아니고 경희궁은 뭐야?"라고 생각했지, 이 도심 근처에 다른 궁전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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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은 자기 건물만 철거된 게 아니라 부지 자체도 다른 건물로 막 잠식당해 왔다. 한때는 명문 서울 고등학교가 이 자리에 있다가 그나마 강남으로 이전했으며, 서울 교육청도 여기에 떡 자리잡고 있다.
컨텐츠가 빈약하고 온통 공사판이어서 그런지, 여기는 인서울 궁전들 중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아무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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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건물 없이 땅만 덩그러니 놀고 있다. 대문인 흥화문, 그리고 정전인 숭정전이 사실상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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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구경은 뭐 이 정도로 끝..?? 주변 사진을 더 찍은 것도 있지만 블로그에다가는 여기까지만 공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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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본인은 경희궁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서울 역사 박물관을 찾아갔다. 학교에 갈 때 버스를 갈아타는 지점이며, 마당에는 노면 전차가 하나 전시되어 있기도 하니 본인은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1층은 도서관 자료실과 특별 전시관이고, 2층은 조선 시대, 일제 시대, 해방 이후의 순으로 상설 전시관이 있었다. 아, 여기 역시 관대하게도 무료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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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특별 전시가 두 개가 진행 중이었다. 하나는 "파독 간호사 여성들의 삶"이라고 뭔가 국제시장스러운 소재였다. 그것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른 하나로, 우당 이 회영 육형제 가문에 관한 소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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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은 조선 시대에 요즘 시세로 치면 못해도 몇백 억에 달할 땅과 재산을 소유한 플래티넘 금수저 출신이었다. 단순히 농사나 장사로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대대로 관료였다. 얘들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묵인만 해도 원래 하던 정치인이나 법조인 한 자리나 꿰차서 전관예우를 충분히 받고 얼마든지 계속해서 떵떵거리며 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나라를 빼앗겼다는 소식에 육형제 전체가 삼국지의 도원결의보다 더 드라마틱한 결의를 했다. 그 많던 재산을 정말 헐값에 몽땅 처분하고 만주로 건너가서 '신흥 무관 학교'를 세우는 미친 짓을 했다. 그리고 지지리도 돈 안 되는 일인 무장 투쟁 노선 독립운동가의 양성과 지원에 가산을 탕진했다. 이거 무슨 독립 운동가 배출의 숨은 요람이었다는 남쪽 끝 '소안도' 섬 얘기를 듣는 느낌이다.

여섯째인 막내는 맏형에 비하면 거의 맏형의 아들 수준으로 터울이 크긴 하다만.. 이 육형제가 모두 그 부자 가문에 걸맞지 않은 힘든 가시밭길을 걷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나마 다섯째 '이 시영'만이 유일하게 해방 이후에까지 살아남아서 초대 부통령을 역임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선행을 한 독립 운동가와 그 가문이 안 중근· 윤 봉길, 유 관순, 김 구만치 진작부터 널리 알려지고 칭송받지 못한 주 이유는 이들이 일체의 진영과 파벌을 싫어하고 뭔가 신 채호처럼 이상주의 순수주의 무정부주의 독고다이 아나키즘 성향의 항일 노선을 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그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도 그리 호의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 처음엔 같이 관여하다가 감투 싸움 밥그릇 싸움에 환멸을 느끼고 뛰쳐나왔다. 기독교계로 치면 하나님은 믿되 일종의 무교회주의를 지향한 셈이다.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어디든 진영 논리 파벌 싸움이 지저분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진영과 파벌과 정치로 여러 사람을 한데 결집시키지 않고서는 뭔가 큰 일을 이룰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이분들의 행적은 2% 부족한 듯한 아쉬움과 한계가 남았다. 전근대적인 조선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점은 매우 훌륭하지만, 그 뒤에 현실적인 대안 역할을 할 이념을 제대로 판단하고 채택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래도 저런 중립 노선만으로도 아예 사회주의 공산주의 좌빨 노선보다는 훨씬 더 건전하고 나았다.

부통령 '이 시영'이라는 이름을 본인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 사람이 저런 가문 출신이었다는 점은 지금까지 미처 몰랐다. 저런 이상주의 중립 성향의 사람이.. 미국물 먹은 노련한 현실주의자요 강경한 반공 독재 스타일인 이 승만과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 전쟁이 나고 희대의 흑역사 병크인 보도연맹 학살 사건까지 터지자, 그는 "내가 이럴려고 정치인 됐나" 자괴감을 느꼈다. 그래서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담화를 발표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청렴한 정치와 남북 통일까지 이루기에는 현실이 너무 급박하고 안 좋았다.

그나저나, '신흥 무관 학교'와 옆의 '경희궁'이 나란히 등장하는 건 참 절묘한 우연인 것 같다. 저 학교가 경희 대학교의 먼 전신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구경을 한 뒤 2층으로 올라갔다. 박물관의 이름답게 서울의 역사가 조선 이 성계 시절부터 잘 전시되어 있었다. 이 순신· 세종대왕의 동상이 놓여 있는 광화문 앞의 세종대로가 옛날에는 저런 모양이었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근대화 이전에 한반도에서 통용되던 대로(큰길)들은 이런 형태였구나.
해남대로는 경부선+호남선을 얼추 합한 선형이며 오늘날의 국도 1호선과 비슷한 것 같고, 영남대로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긴 하지만 잘 알다시피 용인-이천-충주-문경을 경유하니 경부선이나 경부 고속도로와는 완전히 다른 선형이다. 그리고 부산도 우리가 지금 아는 부산항 쪽으로 가는 건 아니다.

블로그에다가는 여기까지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자료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일제 강점기 때 경성의 파노라마 사진 내지 서울 축소 지도가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해방 후 대한민국 시절 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서울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은 마장동의 청계천로에 있는 '청계천 박물관'도 가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본인은 성곽이나 궁궐을 몽땅 원형대로 복원하라는 식으로 무작정 환경이나 문화재 덕후 성향은 아니다. 조선은 외세의 침략에 제대로 대처를 못 하고 굴욕적으로 망했으니 끝이 매우 좋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필요 이상으로 국뽕 불어넣고 미화할 필요는 전혀 없다. (특히 민비 미화..)
하지만 반대 극단으로 가서 무작정 조선만 인구의 과반이 노비이고 길거리에 똥덩어리가 굴러다니던 헬 중의 헬이었으며 차라리 일제 통치가 나았다는 식의 비하 역시 걸러 가며 들으려 한다.

그리고 본인은 항일 독립 운동가들을 예우하고 존경하지만, 그 사람을 띄워 주면서 의도하는 결론이 또 되도 않은 친일파 괴담 내지 분단의 원흉 이딴 식이라면 그 진영의 주장 역시 철저하게 씹을 것이다. 늘 말하지만 걔네들은 일본· 미국을 비판하는 잣대와 중국· 북괴를 비판하는 잣대가 절~대로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믿고 거르는 게 건전한 역사관이라고 본인은 믿는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01 08:32 2018/01/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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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주께 속한 것들

  • 해석 (창 40:8)
  • 판단/심판 (잠 29:26)
  • 전쟁 (삼상 17:47)
  • 보복 (신 32,35, 시 94:1, 나 1:2, 롬 12:19, 히 10:30)

이런 거 한데 모아서 의미를 강론하면 심도 있는 설교 한 편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아, 실제로 이런 설교가 나왔다.
위의 요소들을 종합하면,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만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인간에게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2. 믿음에 대해서

평소에 아무리 영적이고 소위 말하는 신앙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상을 살면서 정말 최소한의 세상적으로 방어적으로 생각하는 게 있으며, 그로 인해 판단을 잠시 잘못하거나 하나님의 일을 불신할 수도 있다.

그 천하의 사무엘도 처음엔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이 덩치 크고 잘생겨서 스펙 외모가 탁월한 걸 보고는 "이 사람이야말로 장군깜 대왕깜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때 기어이 하나님의 그 유명한 " '주'는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느니라" 말씀이 나오게 됐다. (삼상 16:6-7을 꼭 보시길)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포악한 헤롯 왕에게 체포되자 교회가 정말 열심히 뜨겁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정작 기적이 일어나고 베드로가 진짜로 탈옥해서 찾아오니까 교회 사람들이 믿질 못했다. 여자애가 문을 열어 보지도 않고 달려와서 "저거 베드로 님 목소리예요!"라고 외치자 그에 대한 어른들의 반응은 "너 미쳤구나?"였다. (행 12:14-15. "아니면 (죽은) 베드로의 천사의 목소리이겠지"라는 확인사살까지 나옴..)

5천 명을 먹이는 오병이어 기적 이전에 똑똑한 제자 빌립이 계산기 뚜드리면서.. "이거 아무리 적게 잡아도 예산이 200데나리온, 1천만 원이 훌쩍 넘게 필요하겠는데요?"라고 말한 건
빌립이 특별히 믿음이 없거나 악의적이기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사무엘도, 저 초대교회 사람들도 저 상황에서 처음엔 당연히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우리가 죄나 잘못이라고 판단할 자격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다.
단지,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면 곧장 자기 생각을 유연하게 고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면 된다.

계산기 뚜드리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고(눅 14:28, 31) 세상일을 소홀히 하라는 말도 아니고, 그냥 하나님 핑계로 내 일을 방관하라는 말도 아니다. 인간은 신처럼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예수쟁이들도 평소에야 병 걸리면 병원 가고 백신도 맞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고 정상이다.

그 대신 세상 돌아가는 일이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라는 여지를 늘 고려하고 믿음을 전제로 깔고 살면 된다는 것이다.

3. 내가 믿는 것에 대한 흔한 부정적 편견과, 그에 대한 반박

(1) 구원의 영원한 보장
오해: 기쁜 소식 선교회, 일명 구원파..;;
반박: 저기서 무슨 교리를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너무 당연한 얘기이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선행으로 구원을 얻은 게 아니기 때문에 자기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일단 한번 예수님을 제대로 내 구원자로 영접만 했다면 말이다. 구원의 근거는 인간 쪽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 쪽에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사람이라면 아주 예외적인 개막장이 아닌 이상, 죄에 대해서 결코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2) 왕국
오해: 여호와의 증인.. =_=;;
반박: kingdom은 지극히 평범한 성경 용어이다. 예수님이 지상 재림해서 이 땅을 다스릴 때에도 당연히 절대왕정으로 다스리지, 무슨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해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선거 유세할 일 따위는 없다. 개역성경에서 그냥 '나라'라고 번역한 단어들도 nation이 아닌 이상 kingdom은 '왕국'이라고 번역해야 정확하다.
멀쩡한 좋은 용어의 어감을 다 망가뜨려 놓는 집단이 공산주의자만 있는 건 아니어 보인다(인민, 동무..).

(3)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오해: 특정 성경 출판사, 특정 목사를 떠받드는 편협한 짓이다.
반박: 그건 KJV 유일주의를 반대하는 진영에다가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한 치졸한 논리이다. 그럼 그 사람들의 최종 권위는 그냥 특정 신학교 교수 내지 현대의 그리스어 히브리어 학자들일 뿐이지.

오로지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고 믿는 종교가, 그 종교의 근거 경전이 단 한 종류만 완벽하게 보존돼 있고 나머지는 잘못됐다고 믿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또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는 엄청난 얘기도 믿는데 말씀이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온전히 번역됐다고는 왜 못 믿는가? (저 말씀과 그 말씀이 서로 다르다는 태클은 사절)
내 신앙은 그 어느 집단이나 사람의 이익을 결코 대변하고 있지 않다.

(4) 간극 재창조
오해: 아담 이전의 인간, 귀신 따위를 가르친다.
반박: 전혀 아니다. 인간 문명만 6천 년이고 현 세상이 문자적인 6일 동안 창조되었을 뿐이지, 이전 세상은 더 오래 전부터 있었고 그걸 세속 과학이 말하는 긴 지질 시대 및 우주의 역사와 조화시키면 아무 문제 없다. 그리고 재창조는 기독교에서 당연하게 가르치는 사탄 마귀의 창조와 타락을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다. 아담은 최초로 죄를 지은 인간이지만 최초로 죄를 지은 인격체는 아니다.

(5) 세대주의
오해: 시한부 종말론을 조장한다.
반박: 세상에 끝이 있는 것 자체는 맞다. 단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미래를 알 수 없고 끝이 없는 것처럼 신실하게 살다가 죽거나 들림받는 것이 바람직할 뿐이다.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도 있고 한편으로 맹렬한 보복과 "네 어린것들을 돌에 메어치는 자가 행복하리로다"도 있는 책이다. 성경의 저자가 싸이코 정신분열 다중인격자가 아닌 이상, 세대주의는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고 성경에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 우리에게 당장 적용되지 않는 구절들을 잘 분별해 주는 아주 건전한 성경 풀이법이다. 먼저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다음으로 영적으로 적용한다.

나로서는 계시록 20장에 거듭 반복해서 나오는 문자적인 1000년을 안 믿는 건, 창세기 1장의 문자적인 6일을 안 믿는 것하고 하나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성경에 논리·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고 일면 믿어지지 않는 게 있으면 솔직하게 안 믿으면 된다. 성경이 말하는 바 자체가 그게 아니라고 주작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이다.

4. 음모론

믿을 가치가 있는 음모:

  • 이 세상의 영적 배후에 있는.. '빛의 천사로 위장한 세상의 신' (고후 4:4. 성경에 아예 대놓고 나와 있음)
  • 북괴의 대남적화 음모. 재래식 무기로 안 되니 비대칭무기, 남조선의 법조계와 교육계 적화, 나라 정체성 부정, 역사왜곡. 작은악과 필요악 교란. 민주팔이로 사회 기강과 체제 전복.
  • 철도청의 음모. 승객을 철덕 철도 중독자로 만들기 위해 과거 철도청에서는 코모넷에 외주를 줘서 새마을호 객실에다 Looking for you 곡을 주입해 넣음

별 영양가 없는 음모

  •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배후
  • 유대인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음모
  • 백신 제조 및 제약 회사들 음모

일고의 가치가 없는, 택도 없는 음모

  • 9· 11 테러는 자작극이다
  • 아폴로 계획 달 착륙은 NASA의 거짓 조작이다
  • 남북 통일을 원하지 않는 미국 일본의 음모, 친일파 음모, 뭐시기의 국정농단 음모 따위

5.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 초딩 시절에 4천~4500만이라고 배웠던 우리나라 인구는 5천 1백만을 넘어섰고, 옛날에 50억이라고 배웠던 세계 인구는 선진국들의 저출산 풍조에도 불구하고 80억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 지구 전체의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340ppm쯤 된다고 배웠던 것이 이제는 400ppm을 넘어섰다고 한다. 하지만 오존층은 파괴되는 걸 한창 걱정하던 시절과는 달리 많이 회복됐다고도 한다.
  • 언어학에서 한국어· 일본어에 대한 우랄 알타이 어족설은 부정되고 있다.
  • 한때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라고 배웠던 마리아나 해구 아래의 '비티아스 해연'(11034m)은 1957년에 행해진 러시아의 첫 탐사 이후로 재탐사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질 않아서 당시 측정의 정확도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 어렸을 때는 곰팡이를 식물의 특수한 형태라고 배웠던 반면, 요즘은 이놈은 동물도 식물도 아닌, 균계라는 독자적인 카테고리로 분류되고 있다.
  • 난 어렸을 때는 김 구가 젊은 시절에 "국모의 원쑤"를 갚으려고 민간인으로 위장한 일본 육군 장교 첩자를 때려죽였다고 배웠지만, 사실 그건 생 날조이고, 김 구가 그냥 객기로 애매한 일본인 민간인을 죽인 흑역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때 '청산리 대첩'이라고 배웠던 항일 독립군의 전투는 비록 우리가 전술적으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과연 정말 '대첩'이라고 불릴 정도의 압도적인 교환비로 이긴 것인지는 진위가 좀 의심받고 있다. 그 정도로 일본군이 졸전· 패전을 하고 학살당했는데 당시 지휘관이 문책되거나 본토로 지원 요청이 갔거나, 많은 시신이 수습되어 야스쿠니 신사에 간 정황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제도 자기에게 불리한 역사를 대외적으로 조작할 가능성이 있지만, 조작할 이유가 없는 내부 기록에도 증거가 없으며 한국 내부에서도 전과 기록에 대한 과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용돼 왔기 때문이다.

반대로 조선을 비하하는 근거로 즐겨 활용되던 지리학자 김 정호의 최후에 대해서 '주리 틀기+옥사설' 역시 21세기에 와서는 주작으로 여겨져서 부정되고 있다. 관련 증거와 기록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지도 작품이 잘만 전해져 내려오며, 지도의 제작에 관여했던 다른 관료들도 아무 처벌 없이 승승장구+자연사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식으로.. 그 정의상 절대불변인 수학 공식이라든가, 우주가 뒤엎어지지 않는 한 절대불변이 보장되는 뉴턴의 법칙, 열역학 법칙 같은 게 아닌 한.. 세상 대부분의 학문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고쳐지고 보완된다. 심지어 고전 텍스트조차도 일본어· 영어를 거쳐서 중역되었던 것이 원어 직역으로 다시 나온다거나, 검열되었던 내용을 원래대로 다 넣어서 다시 출간되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추세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성경만은 그런 트렌드, 그런 연구 방법론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다. 오늘날 인간의 노력으로 성경 본문이 더 나아지고 있다거나, 새로운 해석, 더 정확한 해석이 나온다고 믿지 않는다. 그런 새로운 추세로 나왔다는 대안이란 게 기껏해야, 겨우, 고작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아니라 갈대밭을 건넌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아니라 아담과 '스티브'였다", "가룟 유다도 사실 알고 보면 인간적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난 더욱 단호히 거부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성경이 전제로 깔고 있는 인간의 죄성과 근본 성품이라는 건 정말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만큼이나 6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텍스트가 바뀌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죄인이 성경 말씀의 판단을 받아서 고쳐져야지, 인간이 성경을 업데이트 해야 할 필요나 이유나 당위성은 없다. 오늘날은 옛날처럼 성경을 물리적으로 파괴하고 없애지는 않지만 성경 본문이나 해석을 변조하고 왜곡하는 시대이다.

다른 모든 텍스트들은 번역을 거칠수록 마치 jpg 손실 압축처럼 원래 의미로부터 차이와 왜곡이 커질지 모르나, 영어 킹 제임스 성경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는 본인은 다른 특례나 섭리가 있었다고 믿는다.

전에도 한 적이 있는 얘기이지 싶은데.. 이 '지구 안'에서는 저 수천 m 깊이에 달하는 암흑천지 바닷속이나 극지방, 심지어 화산 근처 등 일반적인 형태의 생명체가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에서도 생명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구 밖 우주에서는 제아무리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 헤매도 생명 같은 건 코빼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증명이나 반증이 불가능한 신념의 영역이긴 하지만, 본인은 이것이 보통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무신론 회의론자라면 이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니 지구 밖에서도 기를 쓰고 생명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세상엔 이런 식으로 성경에 대해서든 신에 대해서든, 뭔가 우연 같아 보이지 않은 구석이 존재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7/12/29 08:34 2017/12/2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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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다중 상속 생각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같은 Windows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다 보면 여러 개의 COM 인터페이스를 한꺼번에 상속받아 구현한 단일 클래스를 구현하게 된다.

그런데 하루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각각의 인터페이스들이 다 IUnknown을 상속받았는데 어떻게 어느 인터페이스로 접근하든지 AddRef, Release 같은 공통 인터페이스들은 중복 없이 동일한 함수 및 동일한 숫자 카운터 인스턴스로 연결될까? 데이터 멤버 없이 인터페이스 상속만 하면 this 포인터 보정이 필요 없이 다중 상속과 관련된 문제들이 상당수 깔끔하게 해결될까?

그래서 클래스 A, 이로부터 상속받은 B와 C, 그리고 B와 C를 다중 상속한 D 이렇게 네 개의 클래스가 있을 때 일명 ‘죽음의 다이아몬드’ 현상을 해소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를 정리해 봤다. C++의 다중 상속과 관련해서는 이제 더 글을 쓸 게 없을 줄 알았는데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요소들이 더 있었다.

1. 가상 상속

클래스에서 상속이라는 건 기술적으로 어떤 구조체에다가 부모 클래스의 컨텐츠(데이터 멤버)들을 앞에 쭉 늘어놓고 나서 그 뒤에 나 자신의 컨텐츠를 추가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부모 클래스와 자식 클래스 포인터를 형변환 하는 건 그냥 프로그래밍 언어 차원에서의 의미 변환일 뿐, 메모리 주소가 바뀌는 것은 전혀 없다. 아주 쉽다.

그런데 가상 상속은 부모 클래스의 컨텐츠를 그렇게 나 자신의 일부로서 고정된 영역에 배치하는 게 아니라, 포인터로 참조하는 것과 같다.
부모 클래스를 ‘가상’이라는 방식으로 상속한 자식 클래스는 부모 클래스와 자식 클래스가 굳이 메모리 상에 연속된 형태로 있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동일 부모를 공유하는 다수의 클래스가 다중 상속되더라도 이들이 공통의 유일한 부모 하나만을 가리키게 하면, 한 부모 클래스의 데이터들이 불필요하게 여러 번 상속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D가 B, C를 ‘가상’ 상속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부모인 B와 C가 A를 미리 가상으로 상속해 놔야 한다.
가상 함수도 자식이 아닌 부모 클래스에서 미리 지정해 놔야 하듯 말이다.

그러니 클래스 라이브러리 개발자는 공통 부모를 공유하는 여러 클래스들이 사용자에 의해 다중 상속되겠다 싶으면 그 공통 부모를 virtual로 상속하도록 설계를 미리 해 놔야 한다. 특히 그 클래스(공통 부모 말고)가 순수 가상 함수 같은 걸 포함하고 있어서 상속이 100% 필수라면 더욱 그러하다.
앞의 A~D의 경우, 혹시 A가 default constructor가 없어서 B, C의 생성자에 모두 A를 초기화하는 인자가 들어있었다 하더라도, D의 A는 D의 생성자에서 제공된 인자만으로 딱 한 번만 초기화된다.

가상 상속을 한 자식 클래스는 굉장히 이색적인 특징을 하나 갖게 된다.
자식 클래스의 포인터에서 부모 클래스의 포인터로 형변환을 하는 것이야 너무 당연한 귀결이며, 반대로 부모에서 자식으로 가는 건 좀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가능하다. 단일 상속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고, 다중 상속이라 하더라도 그냥 고정된 크기만큼의 포인터 덧셈/뺄셈만 하면 된다.
그에 반해, 부모 클래스에서 자신을 virtual 상속한 자식 클래스로 형변환은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A *pa = new D; //자식에서 부모로 가는 건 당연히 되고
B *pb = new D;
D *pd;
pd = static_cast<D*>(pb); //부모에서 자식으로 가는 건 요건 괜찮지만
pd = static_cast<D*>(pa); //요건 안 된다는 뜻..

그 자식 클래스의 주소와 부모 클래스의 주소 사이에는 컴파일 타임 때 결정되는 관계 내지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자식에서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단방향 연결 리스트를 타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됐는데, 저런 형변환은 단방향 연결 리스트를 역추적하는 것과 같으니까 말이다.

물론, 가상 상속이라 해도 현실에서는 D라는 오브젝트 내부에서 A가 배치되는 오프셋은 고정불변일 것이고 컴파일러가 그 값을 계산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자식 클래스들과 연속적으로 배치되지만 않을 뿐이다.
static_cast를 어거지로 구현하라면 구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A가 반드시 D에 속한 A라는 보장도 없고, 포인터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데.. C++ 컴파일러가 그런 어거지 무리수까지 구현하지는 않기로 한 모양이다.

2. 가상 함수로 이뤄진 추상 클래스(인터페이스)들만 상속

죽음의 다이아몬드를 해소하기 위해서 요즘 프로그래밍 언어들은 C++ 같은 우악스러운 수준의 다중 상속을 허용하지 않고, 잘 알다시피 데이터 멤버 없고 가상 함수로만 구성된 추상 클래스들의 다중 상속만 허용하곤 한다.
그러면 문제의 복잡도가 크게 줄어들긴 한다.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 장땡은 아니다.

명시적인 데이터가 없는 클래스라 하더라도 가상 함수가 들어있는 클래스를 상속받을 경우, 2개째와 그 이후부터는 클래스 하나당 vtbl (가상 함수 테이블 v-table) 포인터만치 클래스의 덩치가 커지게 된다.

단일 상속 체계에서는 this 포인터의 변화가 전무하니 상속을 제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한 vtbl의 크기만 커질 뿐, 그 테이블을 가리키는 포인터의 개수 자체가 늘어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다중 상속에서는 D 같은 한 객체가 상황에 따라 클래스 B 행세도 하고 클래스 C 행세도 하면서 카멜레온처럼 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A, B, D일 때의 vtbl, 그리고 C일 때의 vtbl 이렇게, 테이블과 테이블 포인터가 둘 필요하다.

클래스 D에 속하는 인스턴스 포인터(가령, D *pd)를 부모 C의 포인터로 변환해서 전달할 때는 pd는 A, B, D 같은 직통 상속 계열 vtbl이 아니라 C의 vtbl을 가리키는 형태로 오프셋이 보정된다. 그리고 여기서 가상 함수를 호출하면.. this 포인터가 C가 아닌 D를 기준으로, 보정 전의 형태로 복구된 채로 함수에 전해진다. 이 함수는 애초부터 C가 아닌 D에 소속된 함수이기 때문이다.

즉, 다중 상속에서 가상 함수를 호출하면 비록 겉으로 this 포인터는 바뀐 게 없지만 내부적으로 vtbl을 찾는 것을 부모와 자식 클래스가 완전히 동일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보정이 일어나고, 그걸 함수에다 호출할 때는 보정 전의 값을 전하도록 일종의 thunk 함수가 먼저 수행된다.
한 클래스 오브젝트에서 여러 인터페이스 함수를 자유자재로 호출하는 polymorphism의 이면에는 이런 비용 오버헤드가 존재하는 셈이다. 무슨 숫자나 문자열로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닌 이상, 서로 다른 클래스에 존재하는 가상 함수는 vtbl의 종류와 오프셋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다.

3. 멤버로만 갖기

다중 상속의 지저분함을 회피하는 방법 중 하나는.. 원하는 기능이 들어있는 클래스를 내 아래로 상속하지 말고 그냥 멤버 변수로 갖는 것이다. 상속하더라도 걔만 따로 상속해서 확장 구현을 한 뒤에 그걸 멤버 변수로 갖는다. 이 개념을 유식한 용어로는 aggregation이라고 한다.

이 방법은 다중 상속의 각종 오버헤드는 피할 수 있지만 그만큼 다른 방면에서 불편을 야기한다. 그 클래스가 동작하는 과정에서 내 클래스의 함수 및 데이터를 빈번하게 참조해야 한다면(결합도 coupling가 높은 관계..) 그 통로를 억지로 트는 게 더 불편하며 코드를 지저분하게 만든다. 또한 서로 다른 클래스 간에 중복 없이 동일한 기능을 제공하는 일관된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게 다중 상속이 아니면 답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게 경험상 딱 떨어지는 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복잡한 클래스 계층이 필요한 대규모 개발을 한 경험이 없는 프로그래머라면 이런 부류의 문제는 배경을 이해하는 것조차 난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중 상속이 무조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며, 그걸 억지로 우회하다 보면 결국 다른 형태로 불편함과 성능 오버헤드가 야기될 거라며 다중 상속을 옹호하는 프로그래머도 있다.

이상.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다중 상속은 사람마다 취향 논란이 많은 주제이다. 비록 C++이 이걸 지원하는 유일한 언어는 아니지만, 네이티브 코드 생성이 가능한 유명한 언어 중에서는 C++이 사실상 대표격인 것처럼 취급받고 있다.

어떤 기능이 절대적으로 나쁜 것만 아니다면야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좋을 것이다. 상술했다시피 다중 상속이 가능해서 아주 편리한 경우도 물론 있다. 한 오브젝트로 다수 개의 기반 클래스 행세를 자동으로 하는 것과, 그 오브젝트 내부의 구현 함수에서는 여러 기반 클래스를 넘나드는 게 동시에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중 상속은 가성비를 따져 보니 그 부작용과 오버헤드, 삽질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구현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나 하는 게 PL계의 다수설 대세로 흐르고 있다. this 포인터의 보정이라든가, 복수 개의 기반 클래스들이 또 공통의 기반 클래스를 갖고 있을 때 발생하는 모호성의 처리 등.. 템플릿 export만치 막장은 아니지만 컴파일러 개발자와 PL 연구자들의 고개는 설레설레 저어지곤 했다.

그래서 C++ 이후에 등장한 더 깔끔한 언어인 D, C#, Java 등은 다중 상속을 지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다중 상속을 우회하고 복잡도를 완화하기 위해, 적어도 가상 상속만은 할 필요가 없게끔 static 내지 가상 함수 선언만 잔뜩 들어있는 인터페이스에 대해서만 다중 상속을 허용하는 것이다. Java는 두 종류의 상속을 extends와 implements라고 아예 구분까지 했다.

물론 이런 패러다임 하에서는.. 프로그램 구조가 간단해서 가상 함수로 만들 필요가 없는 것까지 일단은 인터페이스부터 만들어 놓고 구현 클래스를 내부적으로 또 만드는 식의 오버헤드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Java는 final이 아닌 함수는 기본적으로 몽땅 가상 함수일 정도로.. 디자인 이념이 애초에 성능 대신 극도의 유연성이니, 그 관점에서는 그건 별 상관이 없는가 보다.

가장 대중적인 기술이 알고 보면 레거시 때문에 굉장히 지저분하고 기괴하기도 하다는 것은 CPU계에서 x86이 그 예이고,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는 C++이 해당되지 싶다. 전처리기(+생짜 파일 기반 인클루드), 다중 상속, 클로저 없이 특유의 pointer-to-member 기능 같은 것 말이다. 후대 언어에서는 저런 게 결코 도입되지 않고 있다.

본인은 다중 상속을 굳이 의도적으로 기피하면서 코딩을 하지는 않는다. 다중 상속이 필요하고 당장 편하겠다 싶으면 한 클래스에다 막 엮었다. 그 상태로 막 복잡한 pointer-to-member나 람다를 구사하면서 컴파일러를 변태적으로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고, 컴파일러가 그냥 this 포인터 보정을 알아서 해 주는 것만 원했으니까 말이다.

하루는 ", public"라고 검색을 해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소스 코드 내부에도 혹시 다중 상속을 쓴 부분이 있나 찾아 봤는데.. 그래도 2017년 현재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소스 코드에는 데이터 멤버가 존재하는 클래스를 둘 이상 동시에 상속받은 부분은 없었다. 추가적인 상속처럼 보이는 것은 COM 인터페이스 내지, 내가 콜백 함수를 대신해서 내부적으로 만들어 놓은 추상 클래스 인터페이스들이었다.

한두 번 썼을 법도 해 보이는데.. 이 정도 규모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도 실질적인 다중 상속을 사용한 부분이 없다면 그건.. 정말로 가성비 대비 불필요하게 지원할 필요는 없을 법도 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7/12/26 08:37 2017/12/2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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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공 시절

우리나라 헌정 체제의 변천사에 대해서는 본인이 이 블로그에서 몇 차례 글로 다룬 적이 있었다.
초대 대통령인 할배가 집권했던 최초의 1공화국 시절은.. 지금으로서는 뭐랄까 같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이질감이 심하다. 대체역사물 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은 그런 나라이다. 태극기, 한국어, 한글만 없다면 말이다.

이때 대통령은 생전에 군대의 근처에도 안 가 본 문돌이였고 군사 정권도 분명 아니었지만, 가난한 여건에다 극렬 반공 트렌드 때문에 나라가 막 자유롭다고는 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리고..

  • 지금과 같은 화폐 단위가 도입되고 마지막으로 화폐 개혁을 한 게 1962년,
  • 군대에 상병과 병장 계급이 추가된 게 1962년,
  • 공문서에서 서기 연호만 쓰기 시작한 게 1962년(더 옛날의 이 승만 시절 관보나 대한뉴스, 각종 법조문에서는 4천 몇백 년 하면서 단기 연호가 나온다~!)
  • 마지막으로 탈영병을 사면해 준 게 1963년
  • 부산이 전국 최초의 직할시로 승격된 게 1963년
  • 국가 차원에서 독립 유공자를 본격적으로 발굴해서 훈장을 추서한 게 1962년...

당장 떠오른 예만 나열해도 이 정도이니 지금의 우리나라 기틀이 상당수 다져진 건 확실히 박통 때부터라는 건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나저나, 대통령 관저의 이름이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바뀐 건 박통보다 미묘하게 전인 윤 보선 때 1961년..)

해방 이후 1962년 이전에 우리나라는 6· 25 전쟁을 전후한 1950년 8월과 1953년 2월에 화폐 개혁을 시행했다. 1950년이야.. 개전 직후 서울이 털리고 한국 은행에 보관돼 있던 현찰 뭉치들이 괴뢰군에게 통째로 노획돼 버렸기 때문에 그 돈은 당연히 국가 차원에서 무효화하고 유통을 금지시켜야 했다. 수능 문제지가 시험 전날에 외부로 유출된 것과 얼추 비슷한 상황이다. 새로 만든 돈은 부득이 일본에서 인쇄해서 수입해 와야 했다.

그 뒤 1953년의 화폐 개혁은 단위도 '환'으로 바뀌어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는 용도로 쓰이다가, 훗날 1962년에 단위가 또 바뀌어 지금의 '원'이 정착했다. 개드립을 좀 치자면, 환에서 원으로 '환원'됐다.

할배 각하는 기본적으로야 크리스천이었지만, 자기 치적에 대한 자랑질도 했다. 남산과 탑골공원에 크고 아름다운 자기 동상을 세우고, 남한산성 근처 도로를 닦고는 자기 호를 따서 '우남로'라는 이름을 붙였다(지금은 헌릉로와 합쳐져서 없어짐). 1957년부터 하야 직전의 60년까지는 황금연휴 부근도 아닌 대통령 탄신일(3월 2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 승만은 양력 기준 1875년 5월 1일생인데, 이 날짜가 그 당시 음력으로는 3월 26일이었던 것이다. 임시 공휴일은 그냥 일관되게 매년 양력 3월 26일에 시행되었다.

그리고 할배는 생일을 기리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환' 지폐에다 한복 차림의 자기 초상화를 집어넣었다(100, 500환). 처음엔 정중앙에다 집어넣었는데 지갑에 돈을 넣을 때 자기 얼굴이 접힌다는 걸 발견하고는 한쪽 끝으로 위치도 옮겼다. (그런데 소리만 '환'이지, 이때도 한자 표기는 여전히 '원'이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 우리나라 지폐가 온통 조선 시대 '이씨' 인물만 너무 많이 집어넣었다는 비판이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먼 옛날에 대한민국 인물, 그것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인물을 집어넣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던 셈이다. 전무후무 1공 시절에 말이다. 지폐에다 자기 얼굴을 떡 집어넣는 건, 나중에 군인 출신 대통령도 하지 않은 짓인걸.. 반쯤은 자기 자발적인 지시이고, 반은 부하들이 알아서 아부질 하는 걸 본인도 듣기 싫지는 않고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거지 싶다. 대통령과 왕의 차이점에 대한 관념도 아직 드물던 시절이기도 했으니..

제1공화국 시절엔 남한 땅에서 미국처럼 서머타임(일광 시간 절약)이 시행되기도 했다. 미국이 단위 체계와 전압처럼 세계 규격과 달리 혼자 따로 노는 관행 중 하나인데.. 1960년대 박통 때부터는 폐지됐다. 그 서머 타임은 훗날 서울 올림픽을 하던 시절에 또 잠깐 부활했다가, 올림픽이 끝난 뒤부터는 다시 영구 봉인됐다.

2. 부산 잔혹사

우리나라 광역시들 중 대전은 공항이 없고(대전 대신 청주에..), 울산은 지하철이 없다. 꽤 흥미로운 사실이다.
대전은 포항· 울산 같은 네임드급 공장이 없는 대신(산업단지 자체가 없는 건 아님. 대덕구 대화동에..), 정부 청사와 각종 과학 연구소들이 있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데.. 1공화국 얘기가 나왔으니 그 시절에 특정 지역과 관련해서 기억나는 아이템을 하나 더 늘어놓아 보겠다.

부산은 앞서 언급했듯이 1960년대에 전국에서 제일 먼저 직할시로 승격됐으며, 서울· 평양과 더불어 한반도에 노면전차가 다닌 세 도시 중 하나이다.
6· 25 때 북괴에 점령당하거나 대판 전투가 치러진 이력이 없고, 오히려 안전한 최후방인 덕분에 임시 수도 본진 역할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부산은 전쟁과 지진이 없는 대신, 피난민 목조 판잣집들이 밀집해 있던 와중에 화재 참화를 여러 번 겪었다.

1953년 1월 30일엔 영화로도 나왔던 국제시장에서 대화재가 나서 수천 채에 달하는 상가와 판짓집들이 다 타 버렸다. 하지만 이건 나중에 또 벌어졌던 화재들에 비하면 피해 규모가 약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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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 27일, 전쟁이 끝난 지 정확히 3개월 뒤엔 또 판자촌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 시내 중심부로까지 번져서 부산 역, 방송국, 신문사까지 몽땅 불에 탔다. 이 때문에 부산 역이 철거되고, 오리지널 부산 역보다 1km 남짓 북쪽에 있던 초량 역이 지금의 부산 역 역할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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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2월 10일과 26일에는 또 두 차례 대형 화재가 용두산 언덕 일대를 덮쳤다. 판잣집들 피해야 말할 것도 없고, 이번엔 휴전 뒤에도 귀차니즘에 입각하여 서울로 아직 안 옮기고 부산의 모 창고에 보관해 놓고 있던 조선시대 어진과 유물, 문화재들 수천 점이 소실돼 버렸다.
국제시장, 부산역, 용두산 등등.. 다 비슷비슷한 지역이다. 열악한 닭장 같은 곳에서 살다 불 한번 나면 이렇게 작살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다가 5년 뒤에 1959년에는 땅, 불 다음으로 바람과 물 차례였다(이젠 '마음'만 남았나?-_-). 14호 태풍 사라 때문에 일대가 또 박살이 났으니, 1950년대에 부산은 제2의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살기가 참 잔혹한 곳이었지 싶다.

3. 1960년, 1980년의 올림픽

미국에서는 케네디 대통령과 링컨 대통령의 공통점 뭐 이런 괴담이 나돌았고, 또 1840년부터 1960년까지 20의 배수 년도에 당선됐던 대통령은 제 명에 못 살고 병사· 암살로 최후를 맞이했다는 일명 '테쿰세의 저주' 괴담이 나돌곤 했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대한민국으로서의 역사는 아주 짧으며 정치가 아닌 스포츠 분야이긴 하다만, 20의 배수 년도에 참가했던 올림픽이 좀 뭔가 특이했다.

우리나라는 그 가난하고 열악했던 1948년 런던 올림픽 첫 참가 때, 그리고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1952년도 올림픽에서도 복싱과 역도에서 메달을 따 오곤 했다. 그런데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현재까지 전무후무하게 메달을 단 하나도 못 따는 부진을 보였다. 이 때문에 올림픽 선수단 대표이던 손 기정 단장은 삭발을 하고 귀국했다.

1960년대에는 국제 대회에 선수를 선발하고 육성하는 스포츠 행정 체계가 굉장히 미개하고 막장이었던 듯하다. 밥그릇 싸움과 부정부패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때문에 뉴스 기사를 찾아보면 손 기정은 1966년 방콕 아시안 게임 때도 선수단 단장이었는데, 이때는 나름 성적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뭔가 심하게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서 삭발 귀국을 단행했던 듯하다.

게다가 로마 다음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나름 가까운 이웃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수들을 파견한 것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성적은 꽤 부진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하에 박 정희 정권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고 스포츠 단체들을 통합하고 태릉 선수촌도 만들면서 엘리트 체육의 육성에 힘썼다.

지금 괴수들이 우글거리고 한국인 코치가 세계 곳곳에 활동하는 지경이 된 양궁조차도 처음부터 지금 같은 인프라가 갖춰진 게 절대 아니라는 점이 아주 흥미롭다. 우리나라가 건국 이후 최초로 메달을 딴 분야는 역도와 복싱이지 양궁이 아니지 않던가??

뭐, 1960년대는 그렇다 치고 그로부터 20년 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짐작하다시피 우리나라가 애초에 보이콧을 해 버리고 참가를 안 했기 때문에 메달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산권 국가인 중국조차도 참가를 안 했다는 게 흥미롭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라고 해서 반드시 친소 성향은 아니니까..
세월의 변화를 느낀다만,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 여자 양궁의 초창기 멤버이던 김 진호 선수가 커리어에서 큰 손해를 봐야 했다.
2000년대부터는 1960, 1980 같은 굴곡이나 이변이 아마 더는 없을 것이다.

4. 국민투표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라 하면 대통령, 국회의원 같은 어떤 대표자를 뽑는 선거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국가적으로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릴 일이 있을 때 투표를 통해 yes/no를 묻는 제도도 있다(우리나라 헌법 제72조). 이를 '국민투표'라고 한다. 마치 논문이라고 해서 학위 청구용 졸업 논문만 있는 게 아니라 학술지 논문도 있고 발표 논문도 있듯이, 투표란 것도 그렇게 성격에 따른 구분이 있는 것 같다.

보통은 이런 의사 결정을 국민이 아닌 의회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게 돼 있으나,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직접 묻는 예외적인 제도도 대통령이 자기 재량껏 시행할 수 있다. 투표 결과가 대통령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나왔다면 이건 강력한 설득력을 얻게 되니 의회도 어찌하기가 난감할 것이다.

국민투표는 보통은 헌법을 고쳐야 할 때 시행되곤 했으며, 투표일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되곤 했다. 이 승만 때는 시행된 적이 없고 1960년대의 군사 정권 시절이 원조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 10월, 제6공화국 수립을 위한 개헌을 앞두고 시행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북괴의 붕괴와 흡수 통일과 같은 급의 이변이 없는 한, 현 헌정 체제에서는 앞으로도 할 일이 없는 게 좋을 것이다.

5. 대통령의 초법적 권한: 계엄과 긴급명령

자고로 대통령은 왕이 아닌 관계로, 자기 멋대로 기분대로 "짐이 곧 법이다" 식으로 통치할 수 없다. 특히 무엇보다도 혼자 평생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으며, 자기 자식에게 권좌를 슬쩍 넘겨줄 수도 없다. 현대의 대통령은 국가 원수라는 지위와 예우는 동일하지만, 권한의 행사 범위는 법의 통제를 받으며, 전근대 시절의 왕에 비해 큰 제약이 걸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전쟁을 포함한 굉장히 긴박하고 불가피한 상황일 때 예외적으로 일시적으로 법과 권한, 의회의 동의 같은 절차를 씹어먹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 정도는 이미 법에 보장돼 있다.
대표적인 예는 계엄이다. 계엄은 나라 사정을 준전시 상태로 만들어서 바싹 긴장시키고, 국민의 기본 자유와 권리를 일부 제한하는 조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건국 이래로 1948년 여순 반란(여수· 순천 일대)과 4· 3 사건(제주도)을 시작으로 제일 최근에는 1979년의 부마 항쟁(부산· 경남)과 10· 26 사건 때 계엄이 내려졌으며, 전땅크의 쿠데타의 정점인 1980년 5월 17일 내란 때 또 계엄이 내려진 것이 "마지막"이다. 마지막 두 계엄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내려졌었다.
뭐, 4· 19 혁명(의거), 5. 16 쿠데타(군사 혁명), 10월 유신 같은 크리티컬한 이벤트 때는 제주도까지 포함한 전국에 계엄크리가 떨어지기도 했었다.

계엄 다음으로 현행 헌법 제76조에 의거한 '긴급명령'이란 게 있다. 이건 건국 이래로 지금까지 총 16번이 내려졌는데, 그 중 13회가 6· 25 전쟁 기간 중에 내려졌다. 전시의 마지막 명령인 제13호는 1953년 2월, 1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화폐 개혁 지시였다.
대부분의 역대 긴급명령들은 관련법이 따로 제정됨으로써 폐지되었다. 우리나라에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내려진 긴급명령은 1993년 8월, 금융실명제를 빵 터뜨려 실시한 김 영삼 대통령의 명령이었다.

박 정희는 긴급명령을 제3공의 말기에 단 한 번밖에 내리지 않았으며(제15호, 1972. 8. 2.), 이것도 계엄과는 달리 정치 분야는 아니었다. 그 대신 이 양반이 특별히 고안해서 1974년부터 75년, 4공 유신 시절에 1년 반 남짓 동안 무려 아홉 번이나 남발했던 더 강한 특별 명령은 바로 '긴급조치'였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로 시작하는 게 제1호였고, 제9호가 가장 길었다. 이전의 긴급조치를 해제한다는 명령도 별도의 긴급조치 호수로 올라가곤 했다.

대부분의 긴급조치들은 사실상 빨갱이들, 데모질 하는 애들을 잡아서 벌 준다는 협박이었지만, 딱 하나 제3호만은 민생과 관련된 다소 생뚱맞은 긴급조치였다. 긴급조치는 박통이 암살당하고 헌법이 업데이트 되면서 즉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민투표 내력, 개헌 내력처럼 계엄과 긴급명령(/조치) 내력도 살펴보는 게 재미있다. 이런 게 사회 공부의 묘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12/23 08:36 2017/12/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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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프로그램의 GUI 구성요소들 중에는 여러 아이템들을 한데 나열하는 리스트 박스(list box)라는 게 있고, 고정된 한 문장에 대해서 예/아니요, 참/거짓 여부를 지정하는 체크 박스(check box)라는 게 있다.

체크 박스는 프로그램이 고정 붙박이 형태로 제공하는 기능이나 옵션 하나에 대한 설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리스트 박스는 보통은 가변적인 개수의 항목들 중에 하나를 선택할 때 쓰인다.
그런데 가끔은 이 두 물건의 기능을 한데 합치고 싶은 상황이 생긴다. 리스트 박스의 각 아이템들에 대해서 1비트짜리 정보를 배당해서 선택 여부를 지정하는 것 말이다.

뭐, Windows의 리스트박스 컨트롤은 모든 아이템들에 대해서 1비트도 아니고 그냥 machine word 크기 하나로 custom 정보 data를 지정하는 기능이 있다. 또한 필요하다면 하나가 아닌 복수 개 multi-selection 모드로 동작하게 할 수 있고, 각 아이템에 대한 custom drawing도 가능하다.

하지만 딱 부러지게 아이템들 앞에 자동으로 운영체제의 check box 그림을 그려 주고 체크 박스의 리스트를 구현하는 기능 자체는 없다. 필요하면 사용자가 그걸 직접 구현해서 쓰게 여건만 만들어 놨을 뿐이다.
그래서 MFC의 경우 기존 리스트박스를 서브클래스 해서 CCheckListBox라는 걸 제공한다. owner drawing만 구현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space를 누른 키보드 입력과 check 버튼 주위를 누른 마우스 클릭도 감지하게 메시지 몇 개를 서브클래스 했다.

자고로 화면에 뭔가 길다란 리스트를 만들고 아이템들을 복수 선택할 수 있게 해 놓은 프로그램의 원조는 PC-Tools나 MDIR, Norton Commander, 심지어 Windows 3.x의 파일 관리자 같은 파일 관리 유틸리티이지 싶다. 복수 개의 파일을 복사하거나 삭제하는 기능을 제공해야 하니 리스트의 복수 선택 기능이 무조건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selection이라는 것과 highlight 선택막대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프로그램의 동작이 달라지곤 했다. 도스용 프로그램들은 selection과 선택막대가 서로 따로 논다고 본 반면, Windows는 selection이 곧 선택막대의 연장선이라고 봤다.

그래서 Windows의 리스트박스는 화살표 키를 누르는 순간 기존 selection들이 다 사라지면서 선택막대가 움직이곤 했다. Shift+화살표로 연속된 영역을 한꺼번에 선택하는 것 말고 불연속적인 영역을 취사선택하려면 Shift+F8부터 눌러서 선택막대가 아닌 포커스 테두리가 깜빡거리는 상태로 들어간 뒤, 포커스 테두리만 움직이면서 Space로 아이템들을 선택하면 됐다.

굉장히 특이한 동작인데 Windows에서는 이게 기본이다. 기본적으로 포커스 테두리만 움직이게 하는 모드는 extended 플래그(LBS_EXTENDEDSEL)로 따로 있었다.
그에 비해 평소에는 선택막대와 selection이 다같이 움직이고 Ctrl+화살표로 포커스 테두리를 움직여서 Space로 선택하는 비교적 '직관적인 방법'은 훗날 리스트뷰 컨트롤이 도입하게 된다. 아이템을 복수 선택하는 방식은 이 두 컨트롤이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또한, 각 아이템들에 대해 체크 플래그를 지원하는 건 아이템을 그냥 복수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과는 UI의 관점이 다르다. 비록 내부적으로 본질적으로는 아이템별로 1비트짜리 boolean 정보를 지정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겠지만 용도가 같지 않다는 것이다.

복수 선택은 대체로 아이템들이 진짜 가변적이고 사용자에 의해 아이템을 추가하거나 삭제까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쓰이겠지만 체크 리스트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히 응용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기능과 옵션이 많기 때문에 리스트 형태로 만들었을 뿐이다. 체크 리스트는 복수 선택과 달리, 선택 막대 selection과는 완전히 별개로 관리되기도 해야 할 것이고 말이다.

다음은 MFC의 CCheckListBox를 사용했던 먼 옛날 날개셋 한글 입력기 1.x의 옵션 대화상자이다.
Windows XP부터는 테마도 등장했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 따라 체크 박스를 그리는 방법 역시 더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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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리스트 박스가 아니라 무려 트리 컨트롤(공용 컨트롤)을 사용했던 날개셋 2.x의 옵션 대화상자의 모습이다.
Internet Explorer가 4인가 5에서부터 인터넷 고급 옵션들을 이렇게 트리 컨트롤로 구현해서 오늘날 최후의 11 버전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지원하는 옵션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본인 역시 이 스타일을 따라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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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 컨트롤들은 owner-draw 안 쓰고도 자체적으로 아이템별 비트맵을 지정할 수 있으며, 더구나 트리 컨트롤은 아이템들을 카테고리별로 분류도 할 수 있으니 더욱 좋다.
날개셋 3과 그 이후부터는 이들 옵션이 상당수가 오토마타와 글쇠의 수식, 별도의 카테고리 옵션 등으로 떨어져나간 관계로, 저렇게 트리 컨트롤까지 써야 할 정도로 긴 옵션 리스트를 만들 일이 없어졌다.

사실, 트리 컨트롤은 IE 4 타이밍에서 TVS_CHECKBOXES라는 스타일이 추가되기도 했다. 기존 이미지 스타일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그건 놔두고 옆에 체크 박스를 별도로 추가해 주는 형태이다.

트리 컨트롤에서 체크 박스는 설치 프로그램에서 어떤 소프트웨어 제품의 구성요소들을 계층 구조로 나열한 뒤 설치· 제거할 부분을 선택받는 부분에서 유용하게 쓰일 듯하다. 이런 데서는 자식 노드가 하나라도 선택되면 부모 노드들은 중간 상태로 바뀌고, 부모 노드를 선택하거나 해제하면 자식들도 한꺼번에 선택이나 해제되는 동작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트리 컨트롤의 체크박스 기능은 깔끔하게 구현되지 않아서 잡음이 많다. 스타일을 윈도우를 생성한 뒤에 SetWindowLongPtr로 런타임 때, 그리고 아이템을 하나라도 추가하기 전에 적절한 타이밍에만 지정할 수 있다.
레이먼드 챈 아저씨는 저건 차라리 스타일이 아니라 메시지 형태로 구현하는 게 더 나았을 정도라면서 API 설계 구조를 비판한 바 있다. (☞ 링크) 실제로 콤보 박스의 extended UI 여부는 스타일이 적절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덩그러니 CB_SETEXTENDEDUI라는 메시지를 통해 지정하게 돼 있다.

한편, 트리 컨트롤은 처음 도입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체크 박스와는 달리, '복수 선택'은 지원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리스트뷰 컨트롤처럼 아이콘을 Shift 및 Ctrl을 이용하여 복수 선택할 수 있지 않다는 뜻이다.
Windows 운영체제는 탐색기에서 볼 수 있듯이, UI 디자인 철학이 "트리로는 분야를 하나 선택만 하고", "리스트에다가 그 분야에 속하는 아이템들을 출력한 뒤 복수 선택해서 지지고 볶는다" 형태이긴 했다.

계층 구조를 나타낼 수 있는 복잡한 UI 컨트롤에서 복수 선택까지 가능하면 프로그램의 기능이 매우 복잡해지며, 리스트도 아니고 트리 컨트롤이 굳이 복수 선택까지 가능해야 할 일은 매우 드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Visual Studio IDE부터가 클래스· 리소스· 솔루션 뷰의 트리 목록이 진작부터 복수 선택을 지원한다. 걔들은 4.0 시절부터 공용 컨트롤 없이 진작부터 자체 구현 트리 컨트롤을 써 왔기 때문이다.

끝으로, 체크와 다중 선택을 짬뽕한 듯한 기괴한 UI가 Windows의 역사상 단 한 번, 8의 리스트뷰 컨트롤에서 잠시 등장한 적이 있었다.
아이템의 좌측 상단 같은 특정 부위를 마우스로 가리키고 있으면 체크 박스가 나타나고, 그걸 클릭하면 아이템을 복수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통 아이템을 클릭하면 기존 selection들은 다 없어지고 그것'만' 선택되곤 하는데, 체크 박스를 선택하면 기존 selection들을 놔두고 그걸 추가로 선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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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엔 아마 터치 장치를 염두에 두고.. Ctrl/Shift+클릭이나 드래그 없이 클릭만으로도 아이템들을 복수 선택할 수 있게 고심 끝에 저런 기능을 넣었던 듯하다.
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는지, 이런 기능은 내 기억이 맞다면 Windows 8.1에서 곧장 없어졌고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하긴, Windows 8은 저 정도면 약과이지, 아예 시작 버튼을 없애 버렸을 정도로 엄청 과격한 모험을 한 물건이기도 했으니까.

이렇듯, 리스트 박스, 리스트뷰 컨트롤, 트리 컨트롤을 두고 아이템의 복수 선택 및 체크 선택과 관련하여 할 말이 무척 많은 걸 알 수 있다. 복수 선택은 단수 선택만치 일상적으로 자주 쓰이는 기능은 아닐 뿐더러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지 동작의 customization의 폭도 넓은 편이다. 그래서 운영체제의 GUI가 곧장 직통으로 지원하지 않고 구현을 사용자에게 맡기는 편이었던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12/20 08:36 2017/12/2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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