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C++ MFC의 역사 -- 上

옛날에 비주얼 C++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창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MFC 자체에 대해서는 의외로 블로그 개설 이래로 글을 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이 주제로 한번 칼럼을 써 보겠다.

MFC는 잘 알다시피 C 언어 기반인 윈도우 API를 C++로 얇게 포장하는 한편으로, C++의 특성을 살려 더욱 생산성 있고 편리한 윈도우 응용 프로그램 개발을 목표로 만들어진 C++ 라이브러리이다. C 언어로 API만 쓸 때에 비해 네이티브 코드 프로그램 개발이 넘사벽급으로 훨씬 더 편리해진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특히 message map 덕분에! ㅋㅋ).

이것의 역사는 윈도우 3.x 시절이던 1992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MS의 주력 운영체제가 도스에서 윈도우로 바뀌고, 주 개발 언어가 C에서 C++로 이제 막 바뀌던 매우 중요한 과도기였다. 당시 볼랜드의 터보 C의 인지도에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긴 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도 MS C라는 컴파일러를 개발해서 팔고 있었고, 이게 7.0 버전부터는 C++ 언어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MFC는 바로 MS C/C++ 7.0부터 도입되었으며, 그 다음부터는 제품명이 그 이름도 유명한 비주얼 C++ 1.0으로 바뀌게 되었다. 당시에는 라이브러리에 Microsoft Foundation Classes라는 거창한 정식 명칭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Application Frameworks라고 불렸다. 이것이 바로 AFX의 어원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MFC의 핵심 인클루드 파일 이름은 mfc.h가 아니라 afx.h / afxwin.h이다. 또한 AfxGetApp(), AfxMessageBox() 같은 함수명과, AfxWnd##, AfxFrameOrView##처럼 MFC가 자체적으로 생성하는 윈도우 클래스 이름에도 AFX라는 약어를 찾을 수 있다.

비록 16비트 시절부터 존재하긴 했지만 MFC가 본격적으로 볼랜드 사의 컴파일러와 걔네들 라이브러리를 누르고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건 32비트로 넘어오면서이다. MFC가 첫 도입되었을 때는 C++ 개념을 구현하는 데 드는 특유의 오버헤드가 성능 면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었다. 가령, code bloat으로 인한 용량 증가를 비롯해, 가상 함수 호출이라든가, 윈도우 핸들을 C++ 개체로 연결하기 위한 비용 같은 것 말이다.

워낙 옛날에, C++이 지금과 같은 규격으로 확장되기 전에 개발되던 것이다 보니 MFC는 RTTI를 자체적인 메커니즘으로 구현했으며, 컨테이너 클래스를 템플릿 없이 자체적으로 여러 구현체로 만든 게 있다. CPtrList, CObList 같은 것 말이다. MFC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는 C++에 아직 템플릿이란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흔한 namespace조차 쓰지 않았다. 당연히 그때는 namespace가 없었기 때문.

MFC가 드디어 어느 정도 안정화를 이뤄 낸 것은 비주얼  C++ 4.2에서 도입된 MFC 4.2이다(MFC42.DLL). 비록 후속 버전인 비주얼 C++ 5와 6에서 개선과 기능 추가가 있었지만, 이것은 하위 호환성이 완벽하게 유지되는 변화이기 때문에 파일 이름이 동일했고, 이것이 MFC42.DLL이 윈도우 98 이래로 모든 윈도우 운영체제가 기본 내장하고 있는 표준 MFC DLL이 되었다.

오늘날 운영체제가 제공하는 MFC42.DLL은 이제 비주얼 C++ 6.0이 제공하던 클래식 MFC42.DLL과 하위 호환성만 유지되는 superset으로, 비주얼 C++과는 별개로 운영체제가 관리하는 DLL이다. 가령, 윈도우 7의 워드패드와 그림판은 명목상 MFC42.DLL을 사용하지만, 원래 VC6에는 없던 리본 인터페이스를 자기네 MFC42.DLL로부터 가져와서 사용하고 있다.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가면서 MFC는 일부 내부 자료구조가 바뀌었다. 특히 handle map은 스레드마다 서로 따로 돌아가기 때문에, 서로 다른 스레드끼리 핸들을 주고받을 때는 MFC 개체가 아닌 핸들을 직통으로 주고받아야 안전하다.

뭐, 이뿐만이 아니라 자체 구현으로 표시하던 toolbar와 status bar가 윈도우 95/NT 3.5부터는 common control이라고 운영체제에 정식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그걸 그냥 끌어다 쓰는 걸로 내부 구현이 바뀌었다는 것도 첨언하겠다.

비주얼 C++ 6에서 닷넷으로 넘어가면서는 CString 같은 기초 자료형이 MFC가 아닌 ATL이라는 다른 라이브러리로 내부 관할이 바뀌고, 완전히 템플릿 기반으로 바뀌어서 한 코드로 ansi string과 wide string을 모두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DLL의 배포 방식이 변화를 겪기도 했다.

그 뒤 MFC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렇다 할 큰 변화가 없었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C# 언어와 닷넷에 비해 MS가 네이티브 개발을 너무 홀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특히 MS는 오피스 제품을 주축으로 독자적인 화려한 GUI(메뉴, 툴바 등)를 선보였고 오피스 2007부터는 리본 UI라는 완전히 새로운 물건까지 선보여 왔는데, 이를 모방하여 구현해 주는 MFC 기반 싸제 GUI 라이브러리가 제3자에 의해 미들웨어로 전문적으로 개발되어 판매될 정도가 되었다. 이름하여 GUI 툴킷.

과거 오피스 97/2000까지만 해도 프로그램 비주얼이 운영체제의 그것과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오피스 XP부터 운영체제 기본 프로그램의 비주얼과 그런 오피스(?)급 프로그램의 비주얼은 이질감이 확 생겨 버렸다. 사실은 오피스 XP의 그 하얗고 깔끔한 2D같은 GUI가 윈도우 XP의 전반적인 GUI 디자인이 될 예정이었는데, 그 계획이 수틀리는 바람이 그 오피스 계열하고 운영체제의 알록달록 둥글둥글(?)한 디자인 계열은 따로 놀게 된 거라고 한다.

다음 하편에서는 이 GUI 툴킷과 관련된 MFC의 변천사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2/03/27 08:35 2012/03/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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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인명 사고에 대한 생각

지난 3월 12일에 본인은 출근길에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으며 월요일 하루를 시작했다.
딱 정확하게 본인이 타려는 지하철이 앞 역에서 웬 인명 사고가 발생해서 열차 운행이 한동안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스크린도어까지 버젓이 있는데 웬 인명 사고가 난단 말인가? 이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지하철 지연 증명서(난 뭐 지연이라기보다는 열차 탑승을 애초에 포기한 경우이지만)라는 걸 구경했다.

그런데 사고의 사망자는 놀랍게도 일반 승객이 아니라 지하철 회사의 직원이고, 역무원도 아닌 기관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선로로 접근이 가능한 내부 직원이 마음먹고 자살을 하려 든다면, 제아무리 스크린도어가 갖춰져 있어도 애시당초 소용이 없을 것이다.

철도 공기업에서 승무직으로 일할 정도이면 연봉 빵빵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정년도 보장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아주 부러운 지위에 속하는 사람이다. 군대로 치면 제일 중요한 전투 병과요, 게임 개발로 치면 딱 프로그래머에 해당하지 않는가. 최소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자살할 이유는 없다.

하긴 2004년, 본인이 아직 대학 재학 중이던 시절엔 대구 과학고의 1회 졸업생이고 카이스트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어떤 사람이 대구 지하철 기관사로 취직한 게 신문에 보도된 적도 있었다. (☞ 관련 기사 클릭 )

그땐 카이스트라는 스펙에 비해 저학벌(?) 직업을 선택한 이례적인 사례로 그 사람이 소개되었지만, 저게 과연 그렇게 만만한 직업일까? 요즘은 SKY급 대학 나오고도 공기업, 공무원엔 말단으로라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을 텐데. 이런 트렌드와는 무관하게 나도 2007년에 서울 도시철도 공사에서 공채를 하던 시절에 원서를 넣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철도 차량 운전 면허가 없으니 승무직은 못 하더라도 다른 부서로라도 말이다. 그때 난 병특 중이었기 때문에 애당초 지원을 할 수가 없어서 못 했을 뿐이다.

다만, 지하철 기관사의 근무 여건은 그리 좋다고 보기 어렵다. 우선, 근무 시간이 불규칙적이고 교대를 돌면서 주기적으로 주말을 반납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야 하는 사람에겐 큰 마이너스) 아니, 승무직은 입사 지원할 때부터 주말 교대 근무에 동의한다는 각서를 제출한다. 비록 버스 기사처럼 교통 체증과 복잡한 도로, 매연, 차멀미로 인한 데미지는 없어서 좋지만, 몇 시간째 햇빛을 못 보면서 어두컴컴한 터널만 돌아다니는 것도 정서에 좋을 리가 없다. 자세한 건 예전 글을 참고할 것.

그래서 본인은 기관사가 그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할 정도이면, 근무 환경에 적응을 못 해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렸거나, 아니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사내에서 왕따이거나 대인 관계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이 사고에 대한 후속 뉴스 보도를 보니 내 추측이 얼추 맞는 것 같다.

특히 도철은 1인 승무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 지하철 회사이기 때문에 그 점이 노조로부터 두고두고 까여 왔으며, 이번 기관사 자살 사건을 계기로 그게 또 부각되었다. 하지만 차량 상주 승무원 수의 최소화는 철도 기술의 엄연한 트렌드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근본적인 까임거리가 될 수는 없을 듯. 도철은 1990년대 중반에 1인 승무로도 모자라서 아예 무인 운전까지 시도한 적이 있는 과감한 회사이긴 하다만 말이다. (운전실이 없는 완전 무인 운전인 신분당선 전동차에도 승객들과 부대끼는 진짜 승무원이 객실에 한 명 있긴 함.)

난 우리나라 지하철의 스크린도어를 보면 무척 놀라움을 느낀다. 오죽했으면 국가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2009~2010년을 전후하여 서울 지하철의 거의 모든 역들에다 스크린도어를 도배해 버렸을까? 수백 개에 달하는 그 많은 지하철역들에다 스크린도어를 이렇게 단기간에다 모두 설치한 나라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거의 기네스북 감이 아닐까?

그만치 지하철 자살 러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그런 무리수를 둔 것이다. 뉴스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당장 본인이 이용하는 집 근처의 지하철역에서만 해도 최소한 3명이 각각 2004년, 2007년, 2008년에 선로 투신으로 목숨을 끊은 적이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나마 스크린도어가 설치되면서 2008년 기록이 마지막이 된 것이다.

지난 2010년 8월 23일, 분당선 태평 역에서 발생한 인명 사고에도 본인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건 사람이 죽지는 않아서 큰 사고로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사람 만날 일이 있어서 분당에서 학교로 가는 길이었는데 열차 지연으로 인한 불편을 겪었다. 분당선에서 태평과 야탑 역은 2012년 3월 현재까지도 아직 스크린도어가 없다. 다만, 공사 중이긴 하다.

직접 겪어 보지도 않고 남이 처한 상황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만..
저렇게 작정하고 자살하려는 사람을 치는 사고를 낸 기관사는 하나도 잘못이 없는데 왜 그 정도까지 충격과 정신 공황을 겪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끔살 당하는 장면을 라이브로 본 것에 대한 정신적 데미지는 있겠지만, 자기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식의 생각엔 제발 안 빠졌으면 좋겠다. 이건 불의의 사고로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작정하고 자살하려는 사람이 죽은 것이다. 사형 집행관만큼이나 하나도, 전혀 죄책감 가질 필요가 없다. 일본처럼 죽은 사람 유족에게 민폐에 대한 책임으로 벌금을 때리지 않은 걸 고맙게 여겨야 할 판.

그나저나 작년 12월엔 공항 철도에서 정말 어이없는 사고가 난 적이 있다. 막차 운행이 아직 안 끝났는데도 끝난 줄 알고, 선로 보수 인부 여러 명이 선로로 들어갔다가 전동차에 치여 끔살 당한 것이다. 한밤중인 데다 요즘은 전동차가 기술이 좋아서 워낙 조용하게 달리기 때문에, 저런 상황에서는 답이 없다..;; 기관사도 갑툭튀한 사람들 보고 간이 떨어질 정도로 얼마나 놀랐을까? 이건 승강장 자살도 아니고..! 텅 빈 막차를 몰고 저기까지만 가면 오늘 근무 끝이고 들어가서 잘 일만 남았을 텐데!

원래 그런 건 다 규정이 있다. 지하철의 경우, 심야에 업무를 위해 선로 내부로 들어가는 직원은 열차 운행 영업이 종료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전차선(전깃줄)이 완전히 단전된 걸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 사탄의 인형 처키는 건전지 없이도 움직였지만-_-, 현실의 전동차는 그렇지 않으니까. -_-;; 선로 보수· 청소 차량들은 애시당초 전기가 아닌 기름으로 움직인다.
그러니 내가 보기엔 저 사고는 일차적으로는 일종의 근무 기강 문제이다. 거기에다 또 선로 보수 인력이 외주 용역이다 보니 앞뒤 손발이 안 맞은 것일 수도 있겠고.

그랬는데, 고의적인 자살이 아니면서 사람이 여럿 죽는 사고가 나 버리는 바람에, 내 기억이 맞다면 애꿎은 전동차 기관사도 일단은 잡혀 들어갔다. 경적을 안 울리고 완벽한 수준의 안전 조치를 안 취했다고... 구속인가? 한국은 법을 적용하는데 동기나 과정보다 결과를 더 우선시하는 풍토가 있어서..;; 안타까운 일이다. 기관사의 입장에서는 저건 정말 운이 없어서 이런 신세로 전락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하루에 전철이 수송하는 승객 수가 얼마나 엄청나고 방대한지를 감안하면, 그에 비해 저 정도로 예외적인 급으로 발생하는 사고는 정말 극소수이고 새 발의 피도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철도는 정말 수송 효율이 좋고 안전한 교통수단이 맞다. 오늘도 수도권 시민들의 운송을 책임지는 지하철/전철 기관사님들 힘내시길.

Posted by 사무엘

2012/03/25 08:26 2012/03/25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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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폐터널 이야기

철도 덕후에게는 상식이겠지만, 서울 역을 출발한 KTX는 금천구청 역까지는 기존 경부선으로 달리다가 거기서 별도의 선로로 분기하여 한참을 달린 뒤에(거의 5km) 반지하역인 광명 역에 진입하고, 거기서 또 대략 11km에 달하는 거리를 지하 터널로 달린 뒤에 반월 호수 근처에서 다시 지상으로 나온다.

광명 역은 원래 남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때쯤 선로는 방향을 바꿔서 동쪽을 향하게 된다. 서해안 고속도로와 외곽 순환 고속도로가 만나는 조남 분기점을 지나는 자동차 운전자라면, 바로 밑으로 KTX도 달리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그 뒤 KTX는 화성 시내 대부분의 구간을 지상 고가로 달린다. 그런데 화성시 봉담읍 상리 일대를 보면, 왼쪽에 삼봉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고 고속선은 산을 완전히 비껴서 완만하게 커브라면 커브를 틀면서 달리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경부 고속선이 처음 건설되던 당시에는 이런 계획이 아니었다. 산기슭을 다 터널로 뚫어서 완전히 직선으로 길을 낼 생각이었다. 즉, 고속철은 수원여대 혜란 캠퍼스 쪽으로 더 가깝게 건설될 수 있었다.

이런 계획이 빗나가게 된 것은, 산 속 고속철 예정 노선의 바로 밑으로 폐광산의 갱도가 뒤늦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화성시 봉담읍 상리 산 104번지에 소재한 삼보 광산. 원래 아연과 납 따위를 캐던 광산이었는데 채산성이 없어지면서 1991년에 사업을 접은 곳이었다. 완전히 폐광된 때는 1999년이라고 함.

폐광산의 갱도 때문에 지하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그 위로 복선 전철 선로가 깔리고 수백 톤짜리 고속철이 시속 300km로 달린다면 노반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고 안전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결국, 1990년대 중반에 총길이 약 2.2km를 목표로 이미 300m 정도 뚫었던 터널은 공사가 “취소”되었고, 그보다 동쪽으로 500m 정도 비껴 간 완전 지상 우회 구간이 대안으로 선택되었다. 그것이 오늘날의 고속선 선로이다. 이 때문에 공사 기간도 길어지고 그 터널 뚫느라 든 110억 원가량의 국비는 허공으로 갔다..;; 그리고 경부 고속철 '상리 터널'은 영원한 흑역사로 전락했다.

(참고로 옛날에 국립 국어원에서 표준 국어 대사전을 처음 만들 때 든 예산이 112억 원 남짓이었다. 만들어진 시기가 비슷하니 물가 차이도 별로 안 난다. 세상에 철도글 쓰면서도 사무엘님의 직업병이 아니랄까봐, 어문 관련 사건이 관련 검색 결과로 떠오르는구나. ㅋㅋ)

철도의 폐터널은 기존 철도가 복선· 전철화나 선형 개량으로 인해 이설되면서 잉여로 전락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상리 터널의 경우는 아예 짓다가 만 경우이기 때문에 드문 사례이다. 공사 전에 좀 더 지반 조사를 똑똑하게 했다면 건설비를 좀 더 절약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당 지역에서는 폐광산 근처를 생태 공원으로 조성하거나 청소년 시설을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공사가 중단된 터널은 그 당시엔 입구가 봉인된 채 폐쇄되었지만, 지금은 이미 사유지가 되어서 내부가 유용히 쓰이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폐터널은 각종 곡물의 저장 창고 등의 용도로 굉장히 좋다. (☞ 관련 링크)

경부선만 해도 복선화 과정에서 왜관-구미 구간이 대대적으로 이설된 적이 있기 때문에, 옛 단선 구간에 존재하던 터널이 진작부터 비슷한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포항 이북으로 일제가 건설하다가 공사가 중단되어 버린, 동해 중부선의 폐터널도 포항에 남아 있다.
철도 폐터널의 낭만을 잘 묘사한 아래의 글도 참고하라. 철덕이라면 하악하악 하기에 충분한 아이템이다. (☞ 관련 링크)

지하철은 태생적으로 망할 일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대도시에 건설되다 보니, 전쟁이라도 나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지 않는 이상, 지하철 터널이 잉여로 전락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서울 지하철 6호선이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때문에, 건설 중에 허겁지겁 노선을 변경하긴 했었지만 딱히 짓다 만 터널이 생겼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그런 게 있더라도 일반인은 가 볼 수 없을 것이고) 다만, 신설동 역의 잉여 지하 승강장 같은 아이템이 있긴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2/03/23 08:30 2012/03/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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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 전세계적인 히트를 친 게임을 만든 유명 개발사가 왕년에는 이런 고전 게임을 만든 적이 있었고, 그걸 내가 어렸을 때 즐겨 한 적도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본인의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Rick Dangerous 시리즈는 온통 순발력과 타이밍 퍼즐로 가득한 2D 아케이드 플랫폼 게임이다. 체력도 없이 주인공을 즉사시키는 트랩이 곳곳에 지뢰밭처럼 깔려 있고, 여러 번 죽으면서 시행 착오를 겪지 않고서는 트랩을 알 수 없는 것도 많아서 본인은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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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의 개발사는 영국의 Core Design이다. 훗날 툼 레이더를 개발한 회사라니 믿어지는가? 1996년에 나온 1부터 시작해 2003년의 Angel of Darkness 시리즈까지를 이 회사가 만든 뒤, 나중에는 개발사가 Crystal Dynamics로 바뀌었다.

2.
Dangerous Dave는 id 소프트웨어의 그 이름도 유명한 존 로메로의 옛날 작품인 거 모르는 분이 별로 없을 것이다. 나중엔 기획 쪽으로 부서를 옮겼지만 이 양반도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사람이고, 회사 내부에서 쓰는 게임 데이터 제작용 툴 정도는 직접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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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액션/아케이드 게임은 주인공이 으레 마초스러운 남자이며, 게임의 목적은 언제나 여자친구나 공주님을 구하는 설정인 게 많다. 그러나 그 통념을 정면으로 깨고 오히려 여자가 왕자님을 구하러 모험을 떠나는 게임이 있으니, 바로 Jill of the Jungle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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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Epic MegaGames에서 개발한 이 게임은 비슷한 시기의 다른 게임에 비해서는 그래픽이 좀 허접하다. 맵의 각 칸을 구성하는 그래픽이 딱 격자인 게 티가 날 정도이니 말 다 했다.;; 하지만 인상적인 건, 내가 알고 있는 고전 게임들 중에 제일 관대하고 UI가 친절하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 F1 도움말이 있는 게임이 얼마나 됐을까? ㅋ 어디서나 저장 가능하고 게임 주변 환경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이 엄청 많이 나온다. 말이 많다.

그리고 시간 제한도 없으면서 목숨 수 제한도 없다. 그 당시의 2D 아케이드 플랫폼 게임들은 시간 제약이 없으면 목숨 수 제한이 있다거나, 아니면 그 반대인 것처럼 둘 중 하나는 있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 목숨 수 제한이 없더라도, 죽고 나면 예전에 먹은 아이템은 다 잃은 채 게임을 해당 레벨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이건 그렇지도 않았다.
약간의 고비를 좀 넘기면 한 3, 40분 정도만 애쓰면 무난하게 엔딩을 볼 수 있다.

이 게임을 만든 프로그래머는 Tim Sweeney이다. 그렇다. 훗날 3D 게임용 Unreal 엔진을 만든 그 개발자이다.

4.
길 잃은 바이킹(The Lost Vikings)은 1992~93년을 풍미한 유명한 게임이다. 한 주인공만 조종하는 여느 아케이드 플랫폼 게임과는 달리, 이 게임은 제각기 특기가 다른 세 명의 주인공을 순서대로 조종해서 맵의 퍼즐을 풀고 이동해야 한다. 달리 빨리 달리고 점프를 할 수 있는 놈, 화살을 쏠 수 있는 놈, 방패 겸 낙하산이 있는 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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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의 개발사는 Silicon & Synapse인데, 이게 훗날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WOW로 세계를 뒤흔들어 놓는 게임 개발사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렇다, <길 잃은 바이킹>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옛 작품이다. id 소프트웨어로 치면 Commander Keen 같은 옛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RTS 장르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블리자드도 왕년엔 아케이드를 만들었다.

5.
옛날에 본인이 접한 게임들 중에는 엔딩을 본 것도 있고, 끝내는 정복을 못 한 어려운 것도 있다.
그래서 이것과 관련된 기억을 좀 나열해 보자면.. 대표적으로 보글보글 레벨 32가 있었다.
잘 알다시피 이건,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위에 있는 좁은 구멍을 통해 밑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대단히 위험하다. 여섯 마리나 되는 몬스터에게 십중팔구 부딪혀 죽는다.

아주 오래 기다리고 있으면 몬스터 중 일부가 구멍 위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Hurry up과 고래크리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이 레벨까지 오는 것만 해도 천고만신 만신창이인데 레벨 32가 본인의 병목 지점이었고, 여기서 크레딧 다 깎아먹은 뒤 본인은 끽해야 3x나 4x대 레벨이 한계였다. 이보다 더는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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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대가 지나서 요즘은 유튜브에 온갖 고전 게임들을 플레이하는 우주괴수들의 동영상이 나돈다. 공략 사이트들도 있다. 그리고 저 레벨은 방법만 알면 그렇게 어려운 레벨도 아니다. (☞ 공략 사이트 클릭)
비결은 시작 지점에서 거품을 불어서 그 거품 위로 점프를 하여 top-to-bottom이 아니라 bottom-to-top으로 몬스터들 굴 속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단, PC용 버전은 게임기용 버전보다는 그렇게 하기가 더 어렵다.

6.
추억의 레밍즈!
여러 에디션들 중에서 Oh no! More Lemmings의 Crazy 카테고리는 레벨 1도 쉬운 편이 아닌데 레벨 2 Dolly Dimple에선 어지간한 레밍즈 뉴비들은 다 떨어져나가고 만다.

미칠 듯이 쏟아져나오는 레밍즈에 출구까지는 높이 차이가 너무 심하고(추락사), 도구도 얼마 없고, 게다가 100% 다 구출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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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법은 이 그림에 나와 있듯이 한 놈만 저런 땅파기를 이용해 밑으로 내려가게 한 후, 저렇게 사다리를 파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공략법 보고도 제대로 못 따라할 것 같다.
추락사를 할 높이에서 떨어지더라도 출구로 떨어지는 건 안전하기 때문에, 사다리를 출구 위까지 놓고 쥐들을 거기로 떨어뜨리는 해법도 있긴 하다.
이것도 공략집 사이트를 소개하겠다. (☞ 클릭)

7.
게임 개발 업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완전 상식이겠지만, 왕년의 스타 개발자가 옛날답지 않은 이상한 모습으로 몰락한 사례가 여럿 있다. 앞에서 언급되었던 존 로메로는 id 소프트웨어를 떠난 뒤에 정말 처참하게 망가진 케이스이며, 빌 로퍼도 한때 블리자드의 부사장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거기를 떠난 후 근황이 묘연하다.

그리고 울티마 시리즈를 만들어서 천재 게임 개발자로 추앙받던 리처드 개리엇은 그 명성은 안드로메다로 가고 가히 우주먹튀 수준으로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 있다.

8.
국내의 기업들은 영어나 알파벳을 쓸데없이 남발하고 문서, 간판이나 소프트웨어의 UI 같은 데서 표준어/맞춤법도 틀리는 반면, 오히려 외국계 기업이 그런 걸 더 잘 지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장 떠오르는 예는 맥도날드이다. 간판에다 한글로 ‘맥도날드’라고 큼직하게 쓰고 영어로는 작게 보조로 쓴 것 때문에 예전에 민간의 한글 운동 단체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블리자드도 그런 식의 개념 면모 때문에 사용자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물론, 한국이 블리자드 게임들을 워낙 폭발적으로 사랑해서 매상을 많이 올려 줬으니 거기서도 우리나라를 특별히 배려-_-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동기야 어쨌든 잘하는 건 잘하는 것이니까. 스타크래프트 2는 동영상에 나오는 사람의 입모양까지 한국어에 맞춰 만들어졌고, 각종 배경에 나오는 문자까지 전부 철저하게 한국어로 바뀌었다.

특히 WOW에서던가 배틀넷에서던가, 채팅 중 입력하는 한글 자모 커맨드를 세벌식 자판 기준까지 지원해 준 건 세벌식 사용자들로부터 오래 전부터 칭송받은 사항이다. 어떻게 외국계 기업이 세벌식 자판까지 알고 로컬라이즈를 할 수 있었을까?

9.
어느 장르에서든 게임이 2D에서 3D로 바뀌면 옛날 같은 개떼 물량전이 퇴색하는 건 어쩔 수 없는 tradeoff임이 분명하다. 아무래도 둘의 CPU 처리 부담의 차이가 장난이 아니니까 말이다.
단적인 예로, 스타크래프트 2나 워크래프트 3에서 스타크래프트 원판의 저글링 개떼 같은 찰진(?) 맛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둠 2에서 퀘이크로 넘어갔을 때만 해도 그렇다. 100% 폴리곤으로 넘어간 첫 버전이던 퀘이크는 이제 맵 어디를 뒤지더라도 과거의 둠 2 같은 광활한 평지에서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사무엘

2012/03/20 19:21 2012/03/2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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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덕질 근황

날씨는 봄 기운이 만연하고 좋다.
그런데 기름값은 또 왜 이리 미친 듯이 지구 종말 수준으로 오르고 있는지? 2000도 모자라서 2100 돌파. 그래도 진짜 지구 종말 직전엔 기름값이 3천~5천 원 이상이 될 수도 있으니, 그런 극단적인 표현은 나중을 위해 아직은 아껴 두고 있다.

3년 전에 나의 일기장에 “기름값이 1600원대로 폭등했다”란 문장이 있는 걸 보고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말세의 반이스라엘 감정은 아마 기름값 하나만으로도 아주 쉽게, 금방 조장되고 달성될 것이라 본인은 믿는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오랜만에 각 분야별 내 오덕질 근황이나 좀 올려 본다.

1. 본업

난 이번 학기가 석사 논문 학기이다. 이 때문에 이번 학기는 정말로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못 할 것 같다.
논문 작성 과정에서 대략 아래와 같은 애로사항이 꽃피고 있다.

내용 채워 넣는 난이도 10
남에게 설득, 어필하는 난이도 30
형식에 맞춰 쓰는 난이도 60 ㅠㅠㅠㅠㅠㅠㅠ


다만, 이 달 말쯤 <날개셋> 한글 입력기 6.51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6.7로 바로 건너 뛰는 건 좀 무리이고, 6.51로 결론. 6.5 이래로 주로 바뀐 곳은 편집기이기 때문에, 외부 모듈을 쓰는 분은 별로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주요 변화 사항은 현재까지 다음과 같다.

  • 예전에 블로그에다 글을 올렸듯, type 3 키보드에서 한자 키의 보정 방식을 바꿈 (이건 외부 모듈에도 적용되는 공통 사항)
  • 오토마타에, 3.0 이래로 -7까지 있던 대체 상태에다 -8과 -9라는 새로운 대체 상태 추가 (이건 아주 특수한 기능이고 말 한 마디로 설명하기가 곤란해서...)
  • 편집기에 있는 여러 사소한 버그들 잡음. (그냥 평범하게 쓰는 데는 별 영향 없음)
  • 북한 표준 두벌식 글쇠배열의 오류를 바로잡고, 글쇠배열이 아닌 입력 유형 파일로 제공. 고증을 거쳐서 낱자 결합 규칙과 오토마타까지 북한의 실제 한글 입력 방식을 재현함.
  • 완전히 잉여 기능이긴 하지만, 2.0 이래로 10년째 변함없이 갖고 있던 한컴 2바이트 완성형 옛한글의 변환 테이블에 존재하던 일부 오류 수정

진짜로 작업하고 싶은 것들은 규모가 훨씬 더 큰 것들인데.. 이거 작업은 아무래도 논문 통과 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 단어 단위 한자 변환 기능은 도대체 언제 넣나. ㅜㅜ

2. 철도

<자유 여행 패스와 함께하는 경전선 3일 여행> 클릭.
본인은 지난 겨울방학 때 하나로 티켓으로 경전선을 완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저런 글은 정말 뼛속까지 철덕력으로 넘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다는 걸 적극 공감한다. 한 우진 님께 그저 존경과 찬사를 보낼 뿐이다.

‘두 역 갔다가 한 역 되돌아오기’라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걸 본인은 알고 있었지만, 이걸 저 글에서처럼 이론으로 정립한 건 처음 본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직통 열차가 좌석이 없을 때도 대전-천안, 천안-서울처럼 구간을 나누면 두 구간 모두 대체로 좌석이 생긴다. 이런 것처럼 열차는 중간 정차역이 있다는 특성상 단순 point-to-point 교통수단인 고속버스나 비행기보다는 뭔가 ‘테크닉’이 많이 발달할 수 있는데, 이런 것도 철도의 매력임이 틀림없다.

3. 기독교

모처럼 UCC 하나 공개한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찬양인 <놀라운 주의 은혜>(Wonderful Grace of Jesus)의 1절을 혼자 아카펠라 4부 합창으로 불러 봤다. 여자친구라도 있으면 듀엣이 됐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그냥 싱글 코어이다. ㅋㅋ 들어 보시라. 이것이 화음의 위력이다.

그리고 본인은 작년 겨울방학 때, 킹 제임스 성경과 기독교회사에 대한 아주 유익한 다큐멘터리 영화 A Lamp in the Dark의 대본 번역에 참여한 바 있다. 그 영화가 드디어 자막이 삽입된 영상물로 완성되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클릭해서 보시기 바란다. 무려 3시간에 달하는 분량.

난 2010년부터 블로그로 홈페이지 체계를 고친 이래로, 종교 관련 글에 내가 믿는 게 좋다는 식의 글은 잔뜩 올렸어도, 남이 믿는 게 잘못됐다는 글은 거의 올리지 않고 그런 건 최대한 자제하면서 지냈다.

그랬는데 요 최근에 성경의 역사 시리즈와 천주교 시리즈처럼 수위가 센 글이 갑자기 올라온 이유는... 바로 이 번역 작업을 하면서 동기 부여를 받아서였다. 이건 좀 양심상 글로 좀 정리해서 올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의 부담이 들어서이다. 이 영화를 보면 참된 교회사와 천주교의 정체, 바른 성경과 부패한 성경의 출처와 원인 등의 모든 것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강추.

4. 한글 진영

어제(17일 토), 정말 오랜만에 한글 학회를 찾았다. 지금까지 연락을 너무 안/못 하고 지낸 분들께 인사도 드릴 겸 해서이다. 임원 모임과 더불어 <한국어의 힘>이라고 김 미경 교수의 특별 강연도 있었는데, 무척 유익한 내용이었다. 대략 이런 요지.

  •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단일 모국어가 공식 언어로 통용되어 계층간에 위화감이 없고 소통에 불편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복 받은 것인지 알아야 한다.
  • 모국어라는 건 그렇게 호락호락 취사선택 가능한 게 아니며, 이중 언어 국가들은 두 언어가 동등하게 공존하고 있는 구도가 결코 아니다. 복 거일 씨의 영어 공용화론은 가정 내지 전제 조건부터가 잘못 설정되었다.
  • 한국인만치 이민 2세가 자기 모국어를 쉽게 저버리는 민족은 별로 없다. 교포와 국내 외국인들에 대한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이 절실하다. 모국어 실력은 국가 경쟁력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다니는 대학원 소속의 다른 학생들도 들으면 참 좋았을 텐데(특히 한국어 교육이 세부 전공인 분들) 아쉽다.
김 선생님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 언어 이슈에 많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아쉬워하셨는데, 그때 현장에 있던 사람은 나 빼면 진짜로 전부 5, 60대 이상 중년들밖에 없었다.;; 안타깝지만 한글 학회에서 여는 모임들이 대부분 그런 분위기이다. ㅡ,.ㅡ;;

철도와 성경 덕질에 한동안 밀려 있던 이쪽 분야에 오랜만에 새 기운을 좀 충전했다. 그나저나, 한자 진영은 이 2012년에 아직도 초등학교 한자 교육 시행에 목숨을 걸고 있다니, 정말 놀랍다.. ㅜㅜ

5. 노트북 교체

본인, 조만간 새 노트북을 장만할 예정이다. 무척 정들었지만 구닥다리가 되어 버린 코어 2 듀오 기종을 거의 4년 가까이 썼다. 마침 부모님께서 쓰시는 더욱 고물 구닥다리 컴퓨터는 듣자 하니 이제 하드웨어가 맛이 가고 진짜로 폐기할 때가 된 듯하다. 그래서 지금 내 컴을 고향으로 보내고 나는 새 걸 장만하는 게 계획인데.. “맥북이냐 아니냐” 때문에 너무 고민된다.

  • 장점: 10년 넘게 Windows 독점만 경험하다가 이번 기회에 좀 새로운 세계로.
  • 단점: 내가 모든 걸 알고 통제하지 못하는 운영체제를 써야 하는 데서 예상되는 굉장한 이질감과 적응 기간 (비록 Windows를 같이 쓴다 하더라도 불편 불가피)

일반 유저가 아니라 개발자,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에 맥북을 더욱 써 봐야 할 명분이 있는 반면, 역설적으로 그 이유 때문에 Windows 기득권을 희생하기도 대단히 곤란한 처지이다.
뭐, 내가 10년 전 고등학생 시절처럼 인제 와서 본격적으로 xcode와 맥 프로그래밍을 공부할 여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윈도우 하나만 해도 앞으로 8이 나오면 또 이상한 게 잔뜩 도입되어 바뀌어 있을 텐데. IT계는 정말 너무 복잡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2/03/18 08:20 2012/03/1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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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녀와 야수 (1991)

정말 동화적인 환상으로 가득한, 전형적인 디즈니스러운 작품이다. 역대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에는 에리얼(인어공주), 포카혼타스, 자스민(알라딘), 뮬란 등 여러 여주인공이 있는데, 역시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벨이 내가 보기에 제일 예쁘다. 나의 미의 판단 알고리즘이 이미 서양 기준에 물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제목에서부터 미녀를 표방하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이 당시에는 여전히 2D 애니메이션이 주류이지만, 정교한 컴퓨터그래픽이 부분적으로 도입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알라딘의 경우 용암과 양탄자에서 CG가 들어갔고, 미녀와 야수에서는 둘이서 드디어 무도회장에서 춤을 출 때 배경이 간지나는 3차원 CG로 처리되었다.

엔딩에서 야수에게 걸린 저주 마법이 풀리는 장면이 정말 아름답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 후에 이 땅에 걸린 저주가 풀릴 거라고 하는 성경의 예언을 기억나게 한다. 이것도 명장면이지만, 나중에 나온 라이온 킹은 음악을 너무 잘 만들어서 그 감동이 전작을 압도해 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바로 다음에 라이온 킹에 대해서 얘기할 때 다시 다뤄질 것이다.

미녀와 야수에서 벨의 옥구슬 같은 목소리를 담당한 성우는 Paige O'Hara(페이그 오하라 1956~)라고 하는 중년 여성이다. 이런 장편 만화영화는 중간에 뮤지컬처럼 노래가 이따금씩 나오며, 동일 주인공에 대해서도 일반 대사 성우와 노래 성우를 따로 쓰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벨의 목소리는 일반 대사와 노래가 모두 동일 인물이다.

인어공주에서 그 이름도 유명한 주제가 Under the sea를 작곡하고 미녀와 야수의 Tale as old as time을 작곡한 음악가는 Howard Ashman (1950~1991)이다. 이 분야에서는 가히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었는데, <미녀와 야수> 영화 제작 중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인해 작업을 다 못 끝내고 40대 초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미녀와 야수> 영화를 다 보고 credit roll까지 다 올라가고 나면, 저 사람을 추모하는 tribute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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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온 킹 (1994)

월트 디즈니 사의 역대 최고 대박으로 손꼽히는 명작이다. 동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우화 같은 만화영화가 과연 흥행 성공할 수 있을지 처음에는 디즈니 내부적으로도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으나, 라이온 킹은 결국 제작비의 20배가 넘는 수익을 낸 걸로도 모자라, 영화의 수명이 다 끝난 뒤에도 각종 캐릭터 상품 로열티로 계속 돈을 벌어다 줬다.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로 이 만화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본인이 받은 임팩트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정말 화려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아프리카 정글, CG로 만들어진 살떨리는 들소 떼 돌진(stampede) 등 여러가지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두 영국인(Tim Rice와 Elton John)이 작곡한 음악들이 아름답고 엔딩이 너무 감동과 전율이었다. 난 라이온 킹을 능가하는 퀄리티의 엔딩이 나오는 영상 매체를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스카를 물리친 후 심바가 Pride Rock에 오를 때 흘러나오는 역동적인 엔딩 음악은 뭐랄까.. 찬송가로 치면 예수님의 부활을 표현하는 <무덤에 머물러> 같은 느낌이다. Pride Land가 잿더미에서 다시 옛날의 모습을 회복한 뒤에 이어지는 코러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광복이나 남북 통일, 영적으로는 계 21:4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환희와 희열 그 자체이다. 도대체 머리에 뭐가 든 사람이 이런 음악을 작곡하고 공연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직접 들어 보시라. 겨우 허구의 만화영화 엔딩으로만 쓰기엔 아까운 퀄리티이다.

라이온 킹은 ‘하쿠나 마타타’ 같은 문구를 포함해, 주인공의 각종 이름에도 아프리카 현지 언어인 스와힐리어 표현을 많이 퍼뜨렸다. 무파사, 심바, 라피키는 다 스와힐리어라고 한다. 다만, 무파사의 동생이며 반동 인물인 스카(Scar)는 응당 영어 단어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름 그대로 눈가에 흉터가 있다.

영화에 나오는 하이에나 3총사의 이름은 잘 알다시피 반자이· 셴지· 에드인데, ‘반자이’도 스와힐리어이며, 통념과는 달리 일본어 ‘반자이’가 아니라고 한다. 로마자 표기까지 Banzai로 완전히 일치하지만, ‘텐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_-)’ 할 때 그 반자이하고는 관계가 없으니 오해하지 말 것. 하이에나들 중에서는 ‘에드’만 스와힐리어가 아닌 영어 이름이다.

라이온 킹 이전에 본인에게 아프리카 밀림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준 만화영화는 TV로 봤던 <재키와 머피>였다. 거기에다 <밀림의 왕자 레오>도 있으니, 일본이 웬일로 아프리카 동물을 배경으로 한 만화영화를 좀 만들긴 했다. 이 때문에 라이온 킹이 유독 일본에서는 짝퉁 표절 소리를 들으면서 세계 평균만 한 인기는 못 누렸다고 한다.

첨언하자면, 스와힐리어와 관련 지어 CCM 중에도 떠오르는 검색 결과가 있다. 1998년에 발매된 최 덕신의 <갈망>의 1번 트랙 <오 놀라워라>는 스와힐리어 코러스가 시작과 끝부분에서 반복해서 흘러나온다. 도입부에서 라이온 킹의 주제가인 Circle of Life가 약간 오버랩된 건 나만의 생각인 것 같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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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 정도로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만화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과연 천조국 미국의 기상을 느낀다.

다만, 음모론 쪽에 관심이 많은 기독교계에서는 디즈니 사와 그쪽 작품을 굉장히 경계하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디즈니 사 애니메이션 작가들 내부에서는, 일종의 이스터 에그 차원에서 좀 성적인 장면을 작품 안에다 아주 몰래 집어넣는 게 거의 관행으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라이온 킹에서 심바가 풀밭에 털썩 주저앉을 때 SEX 모양으로 꽃가루가 생긴다는 루머, 들어 보신 적이 있는가? 디즈니 사에서는 SFX를 의도한 것이었다고 해명하다가 나중에는 제풀에 지쳐서 DVD로는 그 장면을 아예 삭제하고 판매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거 말고도 논란이 된 예가 몇 가지 더 있다. 무슨 디즈니 만화영화 포스터를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뚫어지게 들여다보면, 남근을 발견할 수 있다거나 그런 것.

물론 개중에는 도시전설, 과민반응 급인 루머도 있다. 하지만 그런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집단의 내부에서는 과연 어떤 오덕-_-질이 벌어지고 있을까? 계약직인지 정규직인지는 모르겠다만(모르긴 몰라도 예술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프리랜서 형태로 작업을 하지 않을까?), 앞서 말했듯이 디즈니 사의 일류 음악가가 에이즈에 걸려 죽었다는 것도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굳이 저런 선정적인 주제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다니던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은 라이온 킹에 들어있는 소위 뉴에이지 사상(circle of life? 윤회?) 내지 아프리카 샤머니즘을 굉장히 비판하신 적이 있다. 라피키가 무파사의 환상을 심바에게 보여주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저건 영락없이 부리는 영(familiar spirit)을 지닌 자가 하는 짓이며, 구약 율법대로라면 돌로 쳐 죽일 중죄이다.

하긴, 그 정도로 뼛속까지 성령 충만하고 성경의 사고방식에 단련되어 있는 사람은, 그 명작 타이타닉(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볼 때조차도 불륜과 음행, 반역을 미화하는 역겨운 영화라고 불편해한다. (누드도 나오고 아마 검열삭제 암시 장면도 있었을걸? ㄲㄲ) 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그런 반성경적인 코드가 그토록 아름다운 영상과 음향에 아주 교묘하게 녹아 있다. 그렇다고 세상의 영화를 전면 거부하고 살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경각심은 잊지 말아야겠다.

이런 저런 얘깃거리가 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가능한 한 디즈니 만화영화에 대해서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싶다. 요즘은 잘 알다시피 Pixar 합병까지 했겠다, 3D CG 애니메이션이 대세인데 어떤 작품을 만들며 지내는지 모르겠다. 본인은 2008년에 Wall-E를 본 게 마지막이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도 음악에 대한 나의 감수성이 아직까지 죽지 않았음은, 거의 10년 가까이 뒤에 Looking for you를 통해서 입증되었다. (이 글은 철도 얘기가 없을 줄 알았지? 페이크다.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2/03/15 19:20 2012/03/1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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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동차 쏘나타

‘쏘나타’(Sonata)는 음악 용어인 동시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 현역으로 살아 있는 국산 승용차 브랜드이기도 하다. 주행을 마치 음악 연주처럼 조화롭고 우아하게 예술의 경지로 소화해 낸다는 뜻을 담은 작명이리라. 제작사는 현대 자동차이다.

외래어 표기법 FM대로는 ‘소나타’라고 적어야 맞으나, 잘 알다시피 ‘소나 타(고 다녀라)-_-’라는, 자동차에게는 심히 굴욕적일 수 있는 개드립을 의식해서인지 공식 한글 표기를 ‘쏘나타’라고 바꿨다.
아니, 실제로 옛날엔 경쟁사인 대우의 김 우중 회장이 그런 언어유희로 쏘나타를 디스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 뒤, 대우의 경쟁 차종인 로얄 살롱/프린스 시리즈는 깨끗이 사라진 반면, 쏘나타는 건재하다.

승용차는 뒷부분에 차명 엠블렘이 관례적으로 부착되어 있는데, “쏘나타의 엠블렘에서 첫 글자 S를 떼서 갖고 있으면 서울대에 붙는다”라는 웃기지도 않은 도시전설이 나돌았나 보다. 그래서 특히 학교에서 교사가 세워 놓은 차의 엠블렘이 졸지에 ‘쏘나타’에서 ‘오나타’(ONATA)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때문에 21세기에 출시된 후속 모델은 한 글자만 떼어 갈 수 없게 엠블렘이 일체형으로 바뀌었다는 후문이 나돈다.

본인이 이걸 보고 떠오른 건, 이 상 시인의 ‘오감도’이다. 쏘나타에서 글자 하나를 떼어내서 오나타가 되었는데, 이처럼 오감도는 잘 알다시피 건축 용어인 ‘조감도’(鳥瞰圖)의 한자에서 한 획을 떼어내서 오감도(烏瞰圖)로 바꾼 것이다. (잘 알다시피 작가는 문과 출신도 아니고 건축 공학 전공의 공돌이로, 시에다가 ‘가역반응’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글자를 변개하여 뭔가 2% 빠진 듯한 cripple을 만듦으로써, 장조에서 단조로, 완전 연소에서 불완전 연소로 바뀌는 것 같은 그리 불안하고 각박하고 즐겁지 못한 분위기를 연출한 셈이다.

얘기가 옆길로 좀 많이 빗나갔으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쏘나타는 잘 알다시피 현대 자동차가 개발하여 판매하는 중형 세단 승용차이다. 기아 자동차의 K5, 그리고 르노삼성의 SM5가 동급 차량으로 쏘나타하고 경쟁하는 구도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쏘나타가 오히려 같은 회사에서 만든 아반떼와 그랜저 사이의 콩라인으로 전락한 면모도 있다. 안 그래도 기름값도 비싼데 아반떼 같은 더 작은 차를 장만하거나, 아니면 돈 약간만 더 보태서 더 크고 간지 나는 그랜저를 사고 말지, 쏘나타는 이도 저도 아닌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트렌드인 양극화의 손길이 자동차에까지 뻗친 것 같다.

최초의 쏘나타는 그랜저보다 1년 남짓 앞선 1985년에 출시되었다. 이때는 외형이 스텔라하고 별로 다를 게 없었다. MS 개발툴로 치면, 비주얼 C++ 1.0이지만 여전히 전신인 MS C/C++ 7.0스럽던 시절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쏘나타다운 고유 모델이 처음으로 나온 건 1988년. 바로 이것이다. 본인은 아직도 쏘나타 하면 이 모양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엑셀보다 더 크고, 특히 바퀴의 휠 모양이 저렇게 생긴 게 쏘나타의 고유 외형이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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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91년 초에 외형이 더 매끄러워진 뉴 쏘나타가 나오고 1993년에 쏘나타 2(II)가 나왔는데, ‘뉴’와 2는 외형이 서로 비슷한 편이었다. 그리고 1995년에는 쏘나타 3이 나왔다. 3은 뒷부분의 붉은 램프의 디자인이 기존 쏘나타들에 비해 좀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1998년에 나온 EF 쏘나타는 램프 모양을 포함해 외형이 예전 모델보다도 더욱 알록달록 동글동글해졌다. 은근히 그랜저 같은 고급스러운 맛까지 느껴졌다. 이런 디자인은 2001년에 나온 뉴 EF 쏘나타도 물려받았는데, 헤드라이트에 원이 두 개인 듯한 파임이 들어가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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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나온 NF 쏘나타는 예전 모델들에 비해서는 다시 각진 느낌으로 돌아간 듯하다. 사실은 너무 오랫동안 우려먹은 쏘나타라는 브랜드도 다른 걸로 대체할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쏘나타로 회귀한 거라고 한다.

2007년는 마이너 업그레이드 버전인 쏘나타 트랜스폼이 나왔다. NF와 생김새가 거의 같지만 앞의 헤드라이트의 크기가 더 커지고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습도 살짝 달라졌다. 아래 그림에서 오른쪽이 NF 오리지널, 왼쪽이 트랜스폼이다. 구분할 수 있으시겠는가? 전동차로 치면 1차 도입분과 2차 도입분 사이에 생긴 미묘한 차이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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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날 쏘나타의 최신 모델은 잘 알다시피 2009년에 출시된 YF이다. 쿠페 스타일의 날렵한 외형은 역대 쏘나타들 중 가장 과감하고 참신한 디자인이 아닌가 싶으며,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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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반떼 MD(2010년형)와 그랜저 HG(5세대 2011년형)하고 좀 닮은 건 사실이다. 다들 비슷한 컨셉으로 디자인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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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의 역사를 통해 현대 자동차의 엔진 기술의 발달사도 엿볼 수 있다. 격투기의 체급이 체중에 따라 나뉘듯 자동차의 체급은 배기량으로 얼추 분류가 가능한데, 중형차에 속하는 2000cc만 예로 들자면 스텔라의 후속 모델이던 1985년형 쏘나타가 엔진 최대 출력이 110마력이었다.

그러던 것이 SOHC 대신 DOHC 엔진이 장착되면서 뉴 쏘나타에서는 동일 배기량으로 137마력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 후 쏘나타 2(146마력)를 거쳐 쏘나타 트랜스폼에서 150마력대에 도달하고, 신형 YF 쏘나타의 2000cc 기본 모델은 이미 165마력을 찍었다. 그러면서도 연비는 오히려 미미하게 더 좋아졌다.

하긴, 옛날에 1세대 그랜저가 3000cc 최고급 모델의 최대 출력이 161마력이었으니 기술이 발달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건 SOHC 방식만으로 낸 출력이었다. SOHC와 DOHC의 차이는 컴퓨터로 치면 싱글과 듀얼 코어의 차이요, 생물로 치면 심방/심실의 수의 차이로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원래 YF 쏘나타는 예전 모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급형 2400cc 모델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얼마 못 가 명이 끊겼다. 위로는 그랜저 2400cc (쏘나타에게는 높은 사양이지만 그랜저에게는 낮은 사양)와 경쟁하는 구도가 되면서 완전히 밀렸고, 아래로는 너무나 성능이 좋은 2000cc 기반 쎄타 II GDI 터보 엔진이 개발되면서 2400cc 모델의 존재의 의미를 지워 버렸기 때문이다.

YF 쏘나타 2.4는 난 지금까지 딱~ 한 번 봤다. 2400cc 모델은 그랜저처럼 뒷부분의 배기구 머플러가 좌우에 쌍으로 두 개 달려 있다.

2011년에는 YF 쏘나타의 하이브리드 모델이 출시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앞의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양이 더 단순하게 바뀌었다. 하이브리드인 덕분에 공인 연비가 21km라고 하는데, 옛날에 그 작고 열악한 티코의 최저 사양 연비가 24.1km(자동도 아니고 수동)였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경제성이 아닐 수 없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전기로 달릴 때면 너무 조용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이 자동차 소리를 못 들어서 위험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에, 일부러 자동차 주행 소음을 만들어 주는 장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디젤 전기 기관차처럼 내연 기관과 전동기가 모두 달려 있다 보니, 더 무겁고 엔진 부품이 더 복잡하고 유지 보수 비용도 더 드는 건 감안해야 할 점이다.

쏘나타, 앞으로 몇 년 뒤엔 또 어떤 모델로 변모할지 궁금해진다.
난 어렸을 때 뒷좌석의 중앙에 팔걸이를 내릴 수 있는 차를 보고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쏘나타에는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다.
고급 승용차와 관련된 잡설을 몇 개 추가하며 글을 맺는다.

1. 한때 그랜저는 한국 최고의 고급차의 대명사로 통용되었다. 그 각그랜저의 위엄은 정말! 허나 지금은 그냥 준대형차 수준으로 옛날에 비해서는 굉장히 보급형 세속(?) 모델로 격이 낮아졌으며, 이젠 그랜저 택시까지 있을 정도이다. 이건 마치 새마을호의 위상의 변화를 보는 것 같다. 서울-대전-대구-부산만 찍던 도도한 열차가 지금은 흠.. 그래도 둘 다 현실적인 격은 좀 낮아졌을지언정 그 상징적인 의미는 변함없다.

2. 그랜저보다 더 고급인 레알 대형 차량으로 현대 자동차가 만들고 있는 차는 잘 알다시피 제네시스와 에쿠스이다. 둘은 외부에 현대 자동차 엠블렘조차도 있지 않아서 언뜻 보기에 외제차 같은 인상을 준다. 연비가 10km도 안 되는 3000~5000cc급 대형차들은 그야말로 기름 먹는 하마이며, 진짜 재벌이나 사장님들이나 타고 장군· 장관들 관용차로나 쓰일 법하다. 5명밖에 못 타는 승용차 주제에 최대 출력은 45인승 버스의 그것을 능가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2/03/13 08:20 2012/03/1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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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셋> 편집기는 내부 에디팅 엔진이 TSF를 완벽하게(A급으로) 지원하게 할지 지정하는 ‘TSF 지원’이라는 도구-옵션 대화상자에 있다. 프로그램이 TSF A급으로 동작하면 그 밑에서 구동 중인 외부 모듈이 에디터의 텍스트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고 MS 한국어 IME는 단어 단위 한자 변환도 가능하며, 일본어 IME의 경우 Natural Input 모드로(커서 위치에 따라서 조합/비조합 모드가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동작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편의에는 속도와 메모리 사용량 같은 tradeoff가 응당 있다. TSF A급으로 동작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이 커서 하나가 움직일 때에도 운영체제의 TSF 시스템에다가 일일이 통보를 해 줘야 한다. 그래야 연동이 제대로 된다.

그런데 이 TSF 시스템이라는 게 돌아가는 모습이 못마땅할 때가 있다. 내 프로그램이 문서 전체처럼 꽤 많은 영역의 블록을 잡고 있으면, 이따금씩 운영체제는 블록 텍스트가 무엇이 있는지 수 MB에 달하는 데이터를 일일이 요청한다. 그것도 키 하나 누를 때마다, 커서가 움직여서 블록 영역이 조금이라도 바뀔 때마다 말이다. 그 텍스트 얻어 와서 도대체 뭘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 요청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거 참.

이 때문에 <날개셋> 편집기로 20MB 이상 대용량의 텍스트를 열고, 새로운 글자 입력보다는 오리고 붙이기 같은 편집이 주 사용 목적이라면 ‘TSF 지원’ 옵션을 끄고 프로그램을 다시 실행하는 게 성능 면에서 낫다. TSF A급을 유지하면서 지금보다 성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대용량 파일을 수월하게 다루는 전문적인 에디터를 개발하는 게 목적이라면, 별도의 전문적인 메모리 관리자도 쓰고 더욱 심도 있게 성능 최적화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날개셋> 편집기의 1차적인 개발 목적은 잘 알다시피 그냥 입력 엔진의 기술 데모일 뿐이기 때문에, 그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론 아주 작고 가볍고 최적화 잘 되고 빠른 에디터도 어느 정도 지향하고 있다. 그런 컨셉의 프로그램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에디팅 엔진이 너무 비효율적이고 느리면 그것도 영 보기 안 좋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버전업을 거듭하면서(특히 5.x 후반과 6.5 사이에) 내부적으로 최적화도 상당히 많이 되었으며, 몇십 MB짜리 파일 정도는 부담 없이 편집하고 저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혹시 MS에서 만든 다른 TSF A급 프로그램은 사정이 어떨까 궁금했다. 워드패드를 살펴봤는데, <날개셋> 편집기보다 성능이 더 안 좋다. 아까보다 더 작은 수 MB짜리 파일을 열어도 프로그램이 감당을 못 하고, 역시나 커서 한 칸만 움직여도 프로그램이 몹시 굼뜬다. Select All 명령을 내리니 아예 프로그램이 뻗는 듯. Windows는 기본 제공하는 프로그램들 중 에디터가 몹시 부실하다는 게 이 자리에서도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TextEdit(맥)나 gedit(리눅스)는 그렇지 않다.

사실, 위지윅이나 서식 지정 같은 기능이 전혀 없는 에디터라 해도, 유니코드에 따른 다국어를 제대로 지원하려 한다면 개발 난이도가 안드로메다 급으로 급상승한다. 바로 아랍· 히브리 지원 때문이다. Complex script 체계에서는 같은 글자라 해도 앞뒤에 무슨 글자가 있냐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질 수 있고, 커서가 움직이는 단위와 문단을 나누는 기준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특수한 유니코드 제어 문자 처리도 해야 한다. 한 줄에 L2R 문자와 R2L 문자가 공존할 때 커서 위치는 어떻게 계산할 것이며, 게다가 세로쓰기라든가 자동 줄바꿈 옵션과의 연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_-

Uniscribe라는 API가 있다지만 그게 다루는 각종 개념을 공부하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저런 문자의 처리는 심지어 전문적인 상업용 워드 프로세서인 아래아한글조차도 2005 버전이 돼서야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프로그래머용 에디터에서는 그리 필요하지도 않은 기능이다.

EditPlus는 지금 최신 버전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3.1x대 버전을 살펴본 기억으로는 아랍어의 매끄러운 처리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었지 싶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부 문자 단위 크기만 ansi에서 wide char로 바꾼다고 해서 완벽한 유니코드 지원이 되는 건 아니다. 비록 화면으로 보기 좋게 찍히지만 않을 뿐, 정보 손실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날개셋> 편집기는 복잡한 다국어 글꼴 처리 쪽은 아예 깨끗하게 접고(무시하고/포기하고)-_- 신경을 안 쓴다. 입력이라는 분야에만 초점을 맞춰 그쪽의 전문성만을 유지하며 개발되고 있다. 오히려 아랍· 히브리 문자는 깔끔하게 깨진 문자로 메모리 순서대로 단순하게 표시해 주니, 각 글자의 코드 포인트를 확인할 일이 있을 때는 유용하기도 하다. -_-

이렇듯, 텍스트 에디터를 하나 만들더라도 프로그래머용 기능 특화냐, 아니면 입력기와 유니코드 글꼴 쪽으로 특화냐 같은 개발 패러다임이 나뉠 수 있다. <날개셋> 편집기는 TSF 지원 같은 입력기 특화이고, 정확히 말하면 여타 어느 프로그램도 시도한 적이 없는 ‘한글 입력’ 특화이다. 하지만 글꼴 쪽의 전문적인 지원은 없다. 또한, Syntax highlighting기능조차도 없을 정도로 프로그래머 특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양한 자동화 기능을 염두에 둔 텍스트 필터도 제공하기 때문에 전문 기능이 아주 없는 건 또 아니다. 일종의 패러다임 짬뽕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2/03/11 08:40 2012/03/1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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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운영체제용 한국어 키보드 드라이버에는 type 3이라는 방식이 있다. 이게 왜 있는지 내력을 좀 설명하자면 이렇다.

한국에서 쓰이는 PC 키보드에는 한글/영문 입력 모드 전환을 위해 한영 키가 있고, 한자 변환을 위해 별도의 한자 키가 있다. 하지만 도스 시절에 이 키를 하드웨어적으로 인식하기란 쉽지 않았고, 당시 많은 자체한글 프로그램들이 실제로는 Shift+Space로 한영 전환을 하곤 했다. 그리고 한자 변환은 아래아한글의 관행인 F9가 대세였다.

한영 전환 글쇠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편차가 큰 것 같다. 한영 키가 직관적으로 그렇게 누르기 편한 위치에 있지도 않은 건 사실이다. 그 때문에, 이걸 굉장히 싫어하고 오로지 Shift+Space만 쓰는 사람도 있다. 오로지 한영 전환 글쇠 때문에 MS IME를 버리고 새나루나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쓸 정도이니까.

그러나 반대로 Shift를 이용한 뒤에 진짜로 공백을 누르고 싶은데 실수로 글쇠 전환이 되어 버려서 그게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본인은 후자에 가까운 타입이어서 그냥 한영 키를 쓰는 것을 선호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제품에서 원래 ‘정석대로’ 한영/한자 키만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도스 시절의 저 관행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해 Shift+Space를 한영 키로, Ctrl+Space를 한자 키로 드라이버 차원에서 인식하는 키보드 드라이버도 별도로 제공했는데, 이것이 바로 type 3이다.

이 드라이버는 반대로 기존 한영/한자 키는 Ctrl/Alt로 인식한다. 그래서 드라이버를 쓰면 Shift뿐만 아니라 Ctrl/Alt도 좌우를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Shift+Space와 Ctrl+Space를 원래 자체적인 용도로 쓰는 엑셀 같은 프로그램(행 또는 열 전체 선택)에서는 해당 글쇠를 사용할 수 없어지는 문제도 존재한다.

type 3 키보드를 사용하려면 제어판에 들어가서 키보드 드라이버를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수 단계에 걸친 마법사 질문들을 전부 일관적으로, 운영체제가 권장하지 않는(non-typical) 예외 옵션만 골라야 사용할 수 있다.

이런 키보드 드라이버가 있기 때문에 본인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도록 만들어야 할지 모르는 고민에 빠지게 됐다. 일단 이 프로그램은 한영 전환과 한자 전환 글쇠를 마음대로 사용자 지정 가능하기 때문에, 드라이버 차원에서 글쇠를 변조해 주는 type 3 같은 드라이버는 사용하지 않길 권한다. 기존 type 1에서도 얼마든지 Shift+Space로 한영 전환이 가능하고 그게 기본값이다.

일단, 이 프로그램은 type 3에 대한 보정을 한다. 사용자가 Shift+Space를 누른 것을 드라이버가 한영이라고 fake로 알려 주더라도, 키의 스캔코드는 여전히 space이기 때문에 한영이 아닌 Shift+Space에 해당하는 단축글쇠를 참고한다. type 3은 Ctrl과 Alt의 좌우 구분은 가능하지만 한영과 한자 키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모드가 되는 것이다.

한자 키는 지금까지는 보정을 했는데 다음 버전부터는 보정하지 않을 것이다. 보정을 하기 때문에 Ctrl+Space는 말 그대로 한자가 아닌 Ctrl+Space로 type 3에서도 그대로 인식되며, 이 때문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설치 직후 기본 설정으로는 type 3 키보드로 한자 변환을 할 수 없었다. 보정을 하지 않게 되면 이 키는 Ctrl+한자 키로 인식된다.

그리고 다음 버전부터는 ‘한자’ 키뿐만이 아니라 ‘Ctrl+한자’도 한자 후보 변환으로 인식하는 값을 단축글쇠 테이블의 기본값으로 추가할 것이다. 이로써 동일한 기본 설정만으로 type 1과 type 3 모두 각각의 한자 키로 한자 변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요컨대 한영 전환인 Shift+Space는 보정을 하지만, 한자 변환인 Ctrl+Space는 보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영 전환 글쇠와는 달리 한자 변환 글쇠는 매우 드물게 쓰이고 사용자별 편차도 거의 없으니, 그냥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겠다. 어차피 MS IME는 그냥 한자를 누르든 Shift+한자를 누르든, Ctrl+한자를 누르든 똑같이 동작하더라.

다만,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다음 버전에서는 후보 변환 기능이 세분화되어 Shift+한자는 제2 후보 변환으로 기본 설정이 바뀔 예정이다. 이것을 type 3 키보드는 제대로 인식을 못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사용할 때는 글쇠를 임의로 변조하는 type 3 대신 글쇠를 있는 그대로 돌려 주는 기본 type 1을 쓸 것을 권한다.

여담이다만, 윈도우 운영체제의 한글 키보드는 한영 전환과 한자 변환 말고 전/반자 모드 전환이라는 또 다른 명령이 존재한다. 이건 완전히 듣보잡화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_-;; 키보드에 독립된 글쇠가 있지도 않고, 그 글쇠가 Alt+=로 정의되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2/03/09 08:58 2012/03/0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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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쓰기와 세로쓰기

우리나라의 문자 언어 문화는 지난 20세기 후반에 큰 변화를 겪었다. 이는 두 양상으로 요약된다. 첫째로 한자를 섞어 쓰는 빈도가 크게 감소하였으며, 둘째, 세로쓰기가 전멸하다시피 하고 가로쓰기가 대세가 되었다. 사실, 예전에 한글 학회의 슬로건이 “한글만으로 가로로 쓰자”일 정도였다. 한글 전용만 주장한 게 아니라 가로쓰기까지 주장했다는 뜻.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세로쓰기는, 태생상 세로로 길쭉할 수밖에 없는 간판이나 책의 등짝 같은 극소수 제한된 환경에서나 볼 수 있는 듯하다. 더 나중에는 그런 곳에서마저도 세로쓰기를 하느니 차라리 영문 문화권처럼 가로쓰기를 90도로 돌린 표기로 대체될지는 모르겠다.

붓글씨+세로쓰기 스타일이던 성경책은 이미 1990년대 중· 후반부터 한국 교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지 오래이다. 신문은 1990년대 초반에 한겨레가 처음으로 한글 전용+가로쓰기를 시작한 후, 1999년에 그 보수적인 조선일보마저 가로쓰기로 돌아섰다.

출판물뿐만이 아니라 영상 매체에서도 분명한 추세를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는 TV 프로에서 방송이 시작되기 전 ‘제공’이라는 명목으로 뜨는 광고주 리스트라든가, 일부 중요 인명이나 문구는 때에 따라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혼용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다 가로쓰기이다.

영화관에서는 과거에 길쭉한 스크린의 우측 상단에 으레 세로쓰기로 뜨던 한글 자막도, 이미 옛날에 가로쓰기로 다 바뀌었다. 세로쓰기는 확실히 낡은 구닥다리 스타일로 간주되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할까?

세로쓰기가 천덕꾸러미가 되고 도태된 가장 큰 이유는, 컴퓨터가 세로쓰기를 전혀 하지 않는 문화권에서 처음으로 발명되었고 따라서 세로쓰기도 컴퓨터에서 직관적으로 처리하기 곤란한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전락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물론, 본인은 명백히 가로쓰기에 익숙한 가로쓰기 지지자이다. 세로로 써진 빽빽한 글은 한국어가 한국어처럼 덩어리 단위로 눈에 확 들어오질 않는다. -_-;; 일단은 가로든 세로든 자기에게 익숙한 방향의 텍스트가 눈에 더 빨리 들어오겠지만, 아무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면 두 눈이 가로로 달려 있는 이상, 가로쓰기가 더 유리하게 읽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세로쓰기를 일부러 의도적으로 배척할 필요는 없고 제목이나 장식용으로 제한적으로는 적절하게 활용하는 게 한글의 특성도 살릴 수 있고, 공간 활용 면에서 더 효율적이지 않냐 하는 정도의 견해를 갖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저렇게 읽기 불편한 세로쓰기 책들로 도대체 어떻게 독서와 공부를 했을까?

마치 요즘 자동차들이 전부 자동변속기로만 나와서 운전자들이 수동변속기 운전의 묘미를 경험할 기회가 없는 것처럼, 가로와 세로쓰기가 모두 가능한데 오로지 가로쓰기만 함으로써 우리가 다른 방면에서 얻는 기회비용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열린 가능성을 생각해 볼 의향은 있다는 뜻이다. 그렇잖아도 요즘은 컴퓨터도 온통 와이드 화면이 대세인데, 이런 곳에서는 세로쓰기가 공간 활용이 더 효율적이기도 할지 모른다. (가독성 같은 다른 요소는 제끼고 오로지 공간 효율만)

오늘날 국내엔 세로쓰기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 극소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강경한 한자 혼용론자이고 세로쓰기를 거의 종교적인 숭배에 가까운 수준으로 미는 경향이 있는데, 본인은 그런 주장에까지 공감하지는 못한다. 가령,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때문에 남한의 지식· 학문의 수준과 깊이가 하락하고, 사상까지 온통 좌경화되었다는 식의 드립. -_-;;

원래 한자의 종주국이 세로쓰기의 종주국이기도 한지라 한국과 일본의 세로쓰기 관행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20세기 중반에 간체자를 만들고 가로쓰기를 전면 시행하면서 어문 규범이 크게 바뀌었고, 한국 역시 스타일이 상당 부분 서구화했다. 현재는 일본만이 세로쓰기를 아주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소프트웨어의 국제화에서까지 진지한 고려 대상이 되어 있다.

윈도우 운영체제의 경우 한글 글꼴의 이름 앞에 ‘ @ ’가 붙은 세로쓰기 바리에이션 글꼴을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편집 중인 텍스트의 방향이 가로인지 세로인지 운영체제 IME에게 알려 주는 프로토콜도 제공한다.  MS 워드에서 MS IME나 <날개셋> 한글 입력기로 한글-한자 변환을 해 보면, 세로쓰기 중일 때는 한자 후보 리스트도 세로쓰기로 나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날개셋> 타자연습은 아예 세로쓰기로 타자 연습도 가능하다. ㄲㄲ

일본은 자기 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 이름-성 순으로 표기하는 건 일찌감치 서구화했으면서, 세로쓰기는 서양 스타일을 따르지 않고 자기 식으로 고수하고 있으니 흥미로운 차이인 것 같다. 미국이 관습상 110V 전압과 비표준 단위계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만큼이나 일본 역시 세로쓰기를 언제까지나 고집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서양의 라틴 알파벳 문화권에서는 진짜 크로스워드 게임 같은 데서나 세로쓰기를 볼 수 있는 듯하다. 애초에 단어의 일부가 양 줄에 걸쳐서는 안 되는 정서법이니, 세로쓰기와는 더욱 어울리기 힘들다고 볼 수 있겠다.

문득 드는 생각은, 한글에도 세로쓰기 용도로 잘 튜닝된 글꼴이 개발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가로쓰기용 가변폭 글꼴이 ‘이’보다 ‘빼’가 더 길쭉한 것처럼, 반대로 세로쓰기용 가변폭 글꼴은 ‘이’보다 ‘봅’이 더 길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 개 같은 글자가 세로로 배열되었을 때 구조적으로 중심이 잘 잡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당장 가로쓰기용으로도 가변폭 글꼴이 연구된 게 잘 없는데, 벌써 세로쓰기까지 생각하는 건 사치인 것 같다. ㅋ

Posted by 사무엘

2012/03/07 08:25 2012/03/0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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