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mal.pe.kr/bbs/view.php?id=ulimal&no=318
여기 나오는 단어들은 "고어"가 아닙니다.

저는 간결하고 짤막하고 청각적으로 변별도 잘 되는 외래어나 한자어 한 단어를, 무리하게 다 순우리말로 풀어야 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있는 우리말도 다 활용 안 하면서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끌어들이고, 그게 더 뽀대난다고 생각하는 건 매우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런 순우리말을 살리려면.. 국어시간에 가르치는 것보다도,
영한사전의 뜻풀이를 바꾸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빠를 겁니다.

king에 왕보다 임금이 먼저 나오게 하고, reliable에 '신뢰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보다 '미더운'이 먼저 나오게 하면, 학생들부터 금방 익히게 됩니다. 왜? 당장 짧고 좋으니까!

그 외에도 아주 미세하고 섬세한 감정 차이를 내는 영어 단어랑 일대일 대응할 간결한 순우리말 어휘들도.. 찾아 보면 아주 많을 겁니다.
한번 보세요. 방나다, 사그랑이, 가년스럽다, 떼꾼하다, 에멜무지로 등등..

번역투 표현이 왜 문제가 되느냐? 일본의 영어사전으로부터 일본식 표현을 그대로 베낀 영한사전 때문입니다.
지금 영어의 영향력이 얼마나 됩니까? 지금 현실적으로 국어사전보다도 우리 국어생활에 더 영향을 끼치는 건 영한사전입니다. 영한사전이 바뀌어야 우리말이 삽니다.

※ 성 제훈 박사님이 매일 올리는 저 "우리말 123" 글터에 매일 들러서 내용을 구독해 보시길 권합니다. 유익합니다.

보태기~
그리고, 영한사전 못지않게 순우리말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곳은..

성경!

영한사전이 전국 수백만의 학생들의 언어 중추를 결정한다면,
성경은 전국 수백만의 크리스천들에게 절대적 권위를 가진 텍스트로 글자 하나하나가 그대로 골수에 박혀 영향을 끼칩니다.

거기에 순우리말이 있으면,
순우리말도 살리고, 세속적인 말투라는 느낌도 안 들고...
일석이조 아닙니까.

킹 제임스 성경만 봐도, 거기 나오는 고어(?)들은 당대 1600년대에도 안 쓰던 말이었습니다. ye, thou 따위는 그때에도 이미 you로 통합되어 있었습니다. 성경 본문과 제임스 왕께 바치는 헌사는 문체가 살짝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가라사대" 없애는 거 반대입니다.
개역개정판도 그렇고, 요즘 나오는 '문체만 옛날식'인 성경들(흠정역 등)이 왜 그런 말까지 없애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시되"는 너무 깁니다. 성경에 said, saith가 한두 번 나오는 말이 아닌데, 운율 생각해서라도 한 음절이라도 짧아야죠. "이르시되"는 say보다는 tell 같은 다른 용도가 있는 단어입니다.

흠정역이 비판받는 점이, 제한된 현대어 어휘만으로 영어 번역에만 충실하다 보니, 표현이 너무 장황하고 운율감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럴 때 순우리말을 뒤지면 더 좋은 번역이 나올 수 있지요.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8:58 2010/01/1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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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길

빙판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도로를 철도와 매우 비슷한 여건으로 만들었다.

1. 길이 원래 아무리 넓었어도 눈이 잔뜩 쌓인 곳으로는 다닐 수가 없고 차선조차 보이지 않는 지경이 됐으니, 눈이 옴푹 패인 곳, 바퀴 자국이 있는 곳이 궤도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게 됐다.
사람이 다니는 길도 마찬가지. 제설이 된 비좁은 오솔길을 따라서만 통행을 해야 하다 보니,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면 일관된 좌측/우측 통행이 필요해졌고, 사람이 마주오면 기다렸다가 대피하는 지점까지 생겼다. 도로의 위상이 2차원에서 1차원으로 감소했다.

2. 마찰이 매우 작아져서 차량의 등판 능력이나 제동 성능이 크게 떨어졌고, 바퀴가 헛도는 현상이 생겼다. 축중 하중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다. 이 또한 철도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번에 FR 차량은 제아무리 수입차 고급차라 해도 제대로 굴욕을 당했지 싶다.

철도가 눈· 비에 끄떡없는 교통수단인 이유는, 태생부터가 원래 마찰이 매우 작은 상태로 운영되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정 철도 덕후라면, 이 눈길을 보면서 철도를 바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2:50 2010/01/1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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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셋 개발 10주년

올해 여름이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개발된 지 무려 10주년이 됩니다. (2000년 8월)

이 프로그램의 초기 버전(1.x)은 단순히 자체 한글 입출력 체계로 조합형 한글과 세벌식 최종 자판+모아치기를 구현해 보겠다는 아주 소박한 의지로 출발했습니다. 동기는 간단했습니다. 지금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이게 가능하지 않으니까 한번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죠.

입력기의 기술 데모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정말 초라한 에디터 프로그램이었지만 2.x에서는 드디어-_- 탭과 자동 줄바꿈이 지원되면서 그럭저럭 쓸 만한 에디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문자 집합의 크기가 16비트로 확장되고 간단한 옛한글 표현도 가능해졌고, 매우 불완전하긴 하지만 플러그 인이라는 개념도 이 때 처음 도입됐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3.x 시절부터입니다. 프로그램 내부 구조가 처음부터 다시 설계됐고, 글쇠와 오토마타에서 수식이 도입되어 프로그램의 활용도가 크게 올라갔습니다. 일부 미흡한 점이 있긴 하지만 유니코드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표현 가능한 옛한글의 범위도 월등하게 넓어졌죠.
특히 3.x에서 드디어 외부 모듈이 도입됐습니다. 한글 입력 기능을 단순히 에디터뿐만이 아니라 진짜 운영체제 표준 입력기로 쓰는 날이 도래한 것입니다.

4.x에서는 3.x에서 닦아 놓은 기반을 토대로 하여 수많은 기능들이 마음껏 추가되고 버그가 고쳐졌으며, 말기에는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여 드디어 64비트 버전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현재 버전의 형태와 일치하는 완전체가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5.x는 다시 한번 유니코드 5.2를 기준으로 프로그램의 한글 표현 범위가 확장되었으며, 유니코드 지원을 좀 불완전하게 하던 것을 완전히 보강했습니다.
요즘은 터치스크린 입력 방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고 어지간한 IME라면 키보드 외의 여러 방식으로 문자를 입력하는 도구도 갖추고 있는 만큼, 최근에는 이쪽 분야의 기술을 적극 수용하는 연구를 해 왔습니다. 예전에 편집기가 제공하던 ‘화면 키보드’를 이런 입력 패드의 일종으로 바꾸고 문자표라든가 부수 한자 입력기 같은 것을 추가했으며, 편집기도 아니고 외부 모듈도 아니면서 입력 패드만 띄워 주는 별도의 유틸리티도 추가했습니다.

앞으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다양한 한글 입력 방식을 구현하는 가능성을 계속해서 넓혀 나갈 것입니다.
기본 입력 단위인 날개셋문자를 확장하고, <날개셋> 기본 입력기에도 뭔가 확장할 게 있습니다. <날개셋> 고급 입력기에도 고급 입력기라는 취지에 맞게 추가할 기능이 있습니다.
94개의 기본 글쇠뿐만 아니라 임의의 글쇠도 인식할 수 있는 스키마를 추가하고, 아이폰이나 휴대전화 입력 방식을 PC 상으로 흉내 내는 입력 패드도 추가할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 생각하고 있는 큼직한 기능을 모두 잘 추가한다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곧바로 6.0으로 올라가는 데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이 벌써 5.x가 꺾이기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단번에 6.0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고 5.7이나 5.8 정도는 한 번 거치게 될 것입니다. 특히 7은 지금까지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버전 번호에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숫자인데, 윈도우 7 유행을 따라-_- 도입될 가능성이 큽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5.5x는 이미 구현된 기능들의 한도 내에서는 정말 윈도우용 “싸제”(=MS와 무관하게 개발된) 한글 IME로서는 그야말로 최정상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여겨집니다. 구닥다리 윈도우 95/NT4부터 시작해 64비트 7까지, 운영체제 문자 프로토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5.0까지는 거의 2년에 버전이 1.0씩 올라가는 게 가능했는데 이제는 어렵네요. 버전업 속도는 점차 더뎌지고 있습니다.

한글 입력기로서 생각할 수 있는 기능이 다 들어가 버려서 이제 더 작업할 게 없으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이제 보안 패치나 미래의 OS에서 제대로 동작하는 버그가 있을 때 패치나 이따금씩 이뤄질 것입니다. 그리고 슬슬 타 운영체제 포팅이라든가, 심지어 SDK 내지 소스 공개를 생각할 수도 있죠.
그 날이 6.x나 7.x 시절이나 언제쯤 오게 될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아무쪼록 곧 다가올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개발 10주년을 자축하며, 지금까지 제 프로그램을 성원해 주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1:01 2010/01/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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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식 승강장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승강장 반대편'에서 쉽게 탈 수 있지만,
상대식 승강장은 '반대편 승강장'으로 가야 탈 수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설동 지선을 타고 성수 역에 도착하면 시청· 을지로 방면 열차는 바로 '(동일) 승강장 반대편' 열차를 타고 손쉽게 갈 수 있지만, 잠실· 강남 방면으로 가려면 계단을 이용해 '반대편 승강장' 열차를 타야 한다.

이거 용어가 좀 확실하게 통일되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쉽게 말해 평면 환승은 '승강장 반대편'입니다. 이 말만 하면 선로를 가리키는 개념이 됩니다. 한 승강장을 공유하는 맞은편 열차라는 뜻이고요,
계단을 이용한 환승은 승강장 자체를 이동하므로 '반대편 승강장'입니다. 선로가 아니라 다른 승강장을 가리키며, 선로는 그 승강장에 붙어 있는 좌우 어느 것이든 될 수 있습니다.

마치 C++에서 new operator와 operator new 같은 개념 차이가 되겠군요.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58 2010/01/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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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땐 철도로

이번 크리스마스는 가족하고도, 교회 사람들과도, 심지어 애인-_-(그런 게 있을 리가? ㅋㅋㅋㅋ)하고도 보내지 않았다.

우리 교회는 성탄절에 크리스마스트리, 산타 나부랭이 따위는 없다. 그 대신 그 날 전통적으로 복음 전도 집회를 해 왔다. 보통 거기 가곤 했는데 올해는 그것도 빠지고, 그 대신 25, 26일에 걸쳐 철도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혼자 간 건 아니고,
누군지 아마 짐작하는 분도 있겠지만... 카이스트 후배이며 본인의 최측근자-_-에 속하는 모 지인과 함께 갔다. 여행 가서도 서로 노트북 꺼내서 각자 만들던 프로그램을 열심히 짜는 골수 덕후들끼리,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______^

대략의 경로를 얘기하자면 강릉 정동진을 찍은 후 부산행이었다. 동해 바다까지 가서 회 요리를 안 먹을 수가 없어서 맛있게 먹었는데, 참고로 횟값이 방값보다 더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엔 그 길로 부산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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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먹은 맛있는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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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커플들이 많이 보였던 정동진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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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에서의 인증샷

청량리-강릉 열차를 제외한 나머지 열차는 정말 텅 비어 있었다. 연휴 기간이 이런데 나머지 기간엔 적자가 얼마나 심할까, KTX와 경인선 전철로 번 돈을 이런 데에다 메꾸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갈 때와 올 때 모두 스위치백을 오르내렸다. 강릉 방문은 거의 3년 반만에 처음이고 영동선 방문은 2년 반만에 처음이었다. 정동진 역은 역시 바닷가를 찾은 관광객이 많았고 아침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는데,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출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성탄절이 이러한데 신정 연휴 때는 더욱 붐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행 코스에서 영동선과 태백선을 전구간, 그것도 다 낮에 이렇게 답사하는 건 그때 내일로 티켓 때도 못 했었기 때문에 기쁘기 그지없었다. 정말 맑고 좋은 겨울 날씨가 여행을 더욱 즐겁게 했다. 같이 간 녀석은 이제야 내일로 티켓을 샀던데, 내가 여행가는 요령 코치를 잔뜩 해 줬다. 철도 덕후 후학을 양성해야 하는데 얘가 유력한 후보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얘는 내일로 티켓으로 좌석이 없고, 나는 매 여행 경로마다 지정석 표를 사서 같이 동반하는 그런 형태였다.

강릉에 이어 경부선 대구-부산 구간도 정말 천하절경이기 때문에 강원도 산악 철도와 잘 어울렸다. 차이가 있다면 경부선은 중앙-태백-영동선보다 열차 주행이 훨씬 더 빠르며 승객도 훨씬 더 많다는 것이었다. 경부선에서 전기 기관차 열차를 탄 것도 이번이 난생 처음이었다. 그 전엔 새마을호(디젤 동차) 아니면 KTX만 탔으니 경부선에서 딱히 기관차형 열차 자체를 접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는 부산 지하철을 1~3호선 모두 속성으로 시승했다. 3호선 전동차의 구동음과 대구 2호선 전동차 구동음은 음높이까지 완전히 동일하다는 사실에 부산 출신의 다른 철도 전문가-_- 후배와 함께 합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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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하철 1호선은 개통 시기라든가 당시의 건설 인프라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갓 개통하던 1985년과 동일하다. 그러나 시설 투자가 열악하여 스크린도어도 없고, 아직까지도 저항 차량이 다니고 있고, 무엇보다도 서울 지하철에서는 오래 전에 사라진 자갈 도상을 아직까지 사용 중이다.

부산은 김해 경전철을 사실상 지하철 4호선으로 보고 노선색도 보라색으로 설정한 모양이던데, 그렇다면 부산은 정말 1호선부터 4호선까지 스케일이 전부 다 다르고 숫자가 커질수록 규모가 더 작아진다. 역시 먼저 생긴 게 장땡이며, 서울 지하철 1호선보다 더 큰 지하철은 앞으로 결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 올 땐 비행기로

저 녀석은 내일로 티켓 여행을 계속하지만 나는 이내 서울로 복귀해야 했기 때문에, 지하철 구경만 잠깐 한 후 부산에서 헤어졌다. 그 후 나는 김해 공항으로 가서 무려 비행기-_-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비행기 이륙하는 소리를 듣고 싶고, 오랜만에 인천 말고 김포 공항 구경도 좀 하고 싶어서였다. ^^;;

공항까지는 버스를 탔는데, 덕분에 지하철 3호선으로만 통과하던 부산 시내 동서를 지상 도로를 이용해서 구경할 수 있었다. 만덕-미남 사이의 터널은 서울로 치면 마치 남산 1호 터널 같았다.
그리고 철도로 부산을 방문하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경부선의 부산 시내 고가 구간은 100년 전에 경부선이 처음 건설되던 시절부터 고가였을 리는 없을 텐데 언제 저렇게 이설됐는지도 궁금하다. 심지어 서울조차도 경부선 서울 구간은 그냥 평지인데 말이다.

내 스스로 국내선 비행기를 탄 건 난생 처음이고, 김포 공항 구경은 거의 10년만에 처음이었다. 주말이지만 전혀 혼잡하지 않았다.
시속 60은 낼까 궁금하던 그 느려 터진 중앙-태백-영동선 열차를 타다가 돌아올 땐 비행기를 타니, 분위기가 이보다 더 극과 극일 수 없었다. 역시 국내선은 국제선보다 훨씬 더 타기 쉬우며, 여권도 필요 없고 출입국 신고 절차도 없이(당연하지만) 신분증만 있으면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의 비행기 탑승 기록이 해당 항공사 외에 정부 기관 차원에서 남지는 않는다. ^^ 또한 국내선은 보안 구역으로 들어가도 면세점 같은 건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김해 공항인데 저가 항공사인 에어 부산을 이용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메이저 항공사하곤 놀라울 정도로 가격 차이가 별로 없는 데다 서비스는 대한이 훨씬 더 낫다는 평판에 따라 지난번에 미국 갈 때 이용했던 대한 항공을 또 이용했다.

뭐, 그래 봤자 비행 시간이 40분밖에 안 되는 국내선은 역시 국내선일 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착륙 모드로 들어섰다. 시속 800km가 채 안 되는 속도에 순항 고도는 7000m대에 머물렀다가 금세 내려가야 했으며, 도중에 먹거리가 나온 건 음료수 한 컵밖에 없었다. 영상/음성 서비스도 당연히 없고 비상시 대처 요령도 승무원이 직접 시범을 보이더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포 공항은 명색이 그래도 서울 시계 안에 있다 보니, 비행기가 착륙 직전에 인근 도로의 차들로부터 불과 2~30 m 남짓 위까지 하강하는 것도 봤다. 멀찍이 오지에 건설된 인천 공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니 김포 공항은 24시간 운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항공 상식 사이트에서 본 것처럼, 착륙할 때 비행기 날개에서 뭔가를 탁 치켜세우면서 거센 역풍 소리가 들리는 것도 확인했다.

이렇게... 이틀 동안 한 20만원이 좀 넘게 돈지랄-_-을 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강릉-부산-서울을 다니니 우리나라가 정말 좁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로 다른 교통수단들에 대한 차이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게 내가 노는 방법이며 유흥비 지출을 하는 방법이다. 정말 보람있게 돈 썼으며 알찬 재충전 시간이었다. ^^;;
성탄절 연휴는 이렇게 보냈고 다음 주의 신정 연휴는 그냥 집에서 코딩하고 쉬다가 서울 근교의 지인이나 좀 만나면서 보낼 생각이다.

※ 그 외의 비행기 관련 추가 소감

1. 지난번에도 글로 쓴 적이 있을 것이다. 기차 내지 지하철을 타면서는 안내방송에서 ‘고객’이라는 단어를 귀가 따갑도록 듣지만, 비행기 안에서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냥 손님이다.

2. 비행기와 공항 건물 사이를 드나들 때 김포 공항은 여전히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보통 도착했을 때만 버스인지? 최신식 초대형으로 건설된 인천 공항은 그와 달리 출발과 도착 모두 통로가 비행기와 건물이 일체형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바깥 공기를 마실 일이 없었다.

3. 각종 표지판에서 전속 서체를 사용하는 인천 공항과는 달리, 김포 공항은 다 맑은 고딕으로 바뀌어 있는 걸 확인했다. 그나저나 도착장을 나선 후 지하철 5호선을 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분. 김포 공항은 접근성이 좋다는 것 하나는 정말 인정한다.

4. 올가을부터 새롭게 무슨 종이 영수증 스타일로 개정된 철도 승차권은, 영락없이 국내선 비행기 탑승권(국제선 아님)을 따라한 게 맞음을 확인했다. ㅋㅋ

5. 비행기로 이렇게 짧은 여행을 하니 오로지 시작과 끝점만 있고, 정말 중간 과정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다. 교통 정체라든가 역/휴게소 정차, 멀미 나부랭이가 없다. 그냥 부산에서 서울로 싹 순간 이동을 한 느낌이고, 중간에 체력이나 정신력의 소모가 전혀 없다. 이게 단순히 소요 시간이 짧아서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글쎄다.
그러니, 공항까지 오고 가느라 까먹는 시간을 감안했을 때 설령 총 소요 시간이 다른 육상 교통과 별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출장 갈 때 비행기가 뭔가 업무 효율면에서는 승산이 있기도 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56 2010/01/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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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의 속도를 올리는 방법 외

- 차량: 더 성능이 좋은 동력차를 도입한다. 특대형 디젤 기관차와 새마을호 디젤 동차는 1980년대에 열차 고속화의 선두 주자였다. 특히 역에 자주 정차하고도 표정 속도가 높으려면 가감속이 높은 차량이 필요한데, 이런 형태에는 동력 집중식보다는 동력 분산식이, 기름보다는 전기 차량이 훨씬 더 유리하다.
- 동력차의 기어비를 바꾼다. 8200호대 전기 기관차의 경우, 스펙상의 최고 속도는 시속 150이지만, 기어비를 바꾸면 시속 200을 넘길 수도 있다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전기 기관차는 산업선 화물 위주로나 많이 쓰여서 속도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 있다.

- 선로: 당연히 선형을 직선화하고 개량함으로써(필요하다면 고가, 터널 건설) 열차의 속도를 올릴 수 있다. 물론 이는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 레일을 더 무겁고 튼튼한 재질로 교체하고, 덜컹거리지 않는 장대 레일을 쓰면 된다. 그래야 레일이 빠르게 달리는 육중한 열차를 견딜 수가 있다. 물론 요즘 건설되는 철도는, 굳이 고속철이 아니더라도 m당 60kg 이상의 최고급 장대 레일은 기본이다.

- 선진적인 신호 시스템도 알게 모르게 열차의 고속(빠르게 운행), 고밀도(자주 운행) 운행에 매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똑같은 복선이지만 지금의 경부선은 별다른 하드웨어 투자 없이도, 일제 강점기 때보다 허용 선로 용량이 5배에 가깝게 증가해 있다. 신호 시스템이 낙후해 있으면 안전상의 이유로 인해, 단위 구간에 대해서 열차를 매우 띄엄띄엄 보수적이고 소극적으로 운행할 수밖에 없어지며, 구간별로 진입 허가를 받기 위해 수시로 열차 속도를 줄여야 하게 된다.
교통수단들 중에 오로지 철도만이 ATS, ATC 같은 잘 통제된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지하철의 경우는 신호 시스템만 치면 기술의 첨단성이 고속철 뺨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경부선 열차가 1970~80년대에 들어서 서울-부산이 6시간이 넘다가 4시간 50분대로 진입하고, 나중에 4시간 10분으로까지 단축된 것은 그 당시에 위의 모든 분야에서 시설 투자와 개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바퀴를 굴리는 육상 교통수단은 축중 하중이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본인은 운전 경험이 아직 거의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같은 차라도 FF(전륜구동), FR(후륜구동)은 핸들에 전달되는 느낌부터 시작해서 차가 움직이는 감각이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흠 난 FF 승용차를 몰 때나, 자동차 학원에서 FR 트럭을 몰 때나 별 차이를 못 느낀 걸로 기억하는데.

일단 기술적으로 FF가 FR보다 부품 수는 줄일 수 있지만, 만들기는 좀더 어렵다고 들었다. FR은 앞바퀴의 조향 반경이 FF보다 더 클 수 있고 핸들링 성능이 좋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뒷부분이 지나치게 가벼울 경우 바퀴가 헛도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FR은 뒤에 화물로 인한 충분한 하중이 실릴 수 있는 트럭 같은 차에 적합하다.
FF는 역시 작은 승용차에 적합하지만 차체가 커질수록(=엔진 무게보다 훨씬 더 큰 하중이 실린다는 보장이 있는) 점점 FF보다는 FR이 더 유리해지는 것 같다. 반면 버스는 엔진까지 뒤에 있는 RR 방식이 동력 전달에도 유리하고 앞부분이 가벼워져 핸들 조작에도 좋다.

철도 차량은 조향이라는 개념도 없고 그런 구동축 위치도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마찰이 작다는 특성상, 축중 하중이 더욱 중요하다. 쇠로 된 길 위에 쇠로 된 바퀴가 구르다 보니, 차가 지나치게 가벼우면 바퀴가 헛돌기 쉽다. 8200호대 전기 기관차라든가 새마을호 디젤 동차도 엔진 자체의 성능은 훌륭하지만, 이런 현상 때문에 선형이 안 좋은 곳에서 도입되지 못해 왔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54 2010/01/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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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공간

우주복을 입지 않은 채 사람이 맨몸 내지 평상복 차림으로 우주 공간에 내던져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온몸의 생리 작용이 뒤틀리기 시작하고, 불과 수 분 후에 의식을 잃고 질식사한다.
하지만 압력 차이 때문에 무슨 FPS 게임처럼 사람 몸이 풍선 터지듯 터진다거나, 즉사(질식사, 동사 등-_-)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과거 우주 개발 과정에서 우주복이 찢어지고 사람이 우주 공간에 잠시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다.
그럼.. 머리만 산소 탱크와 밀폐 헬멧으로 연결하고 두툼한 외투만 걸치면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우주 공간이 지구 지표면과 다른 점은 크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영하 270도에 달하는 극저온: 지표면 위로 뜨거운 열권을 지나고 외기권으로 나가면 사실상 우주가 시작된다. 여기는 온도가 매우 낮지만, 물질이 없기 때문에(당연히 수분도, 공기도..) 저온의 타격을 우리가 생각하는 형태로 입지는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햇볕에 직접 쪼이면 자외선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우주 공간에서 온도라는 개념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사람 피부가 닿는 순간 코와 입은 얼어붙지만, 전신의 열이 싹 빠져나가고 동상에 걸리고 조직이 얼어죽는 건 아님. 공기의 온도가 섭씨 100도에 달하는 사우나 안에는 있어도 괜찮지만, 물은 50도만 넘어가도 피부에 닿으면 화상을 입는다. 저온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2. 진공 극저기압: 사실 우주 공간에서 사람에게 가장 해를 끼치는 요인, 즉 직접적인 사인은 무중력도 아니고 바로 이거라고 한다. 몸이 폭탄에 맞은 것처럼 산산조각 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압력 차이 때문에 모세혈관이 터지고 뇌에 공급되는 산소가 부족해지고 신체가 부풀어오른다.
그러니 몸에는 당연히 갖가지 탈이 난다. 잠수병과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과 소련이 최초로 우주 개발을 할 때도 진공에서 생명체의 생존 가능성 실험을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3. 무중력: 무중력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중력이 없다는 건 중력에 의한 마찰력도 없다는 뜻! 제대로 걸을 수가 없고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고 컵에 물을 따를 수도 없는 신세계가 펼쳐진다. 우주에서는 정지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신체를 바둥거려도 이동이 되지 않고 뭔가를 반대 방향으로 던지고 쏴야만 이동 가능하다고 한다.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탔는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지기 직전에 체험하는 그 아찔하고 불안한 상태가 바로 무중력 상태이다!

바람은커녕 심지어 우주선 안의 공기의 대류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촛불을 켜면 그 주변의 산소만 동그랗게 소모한 뒤 탁 꺼진다. 환기가 안 되면 사람이 자다가도 자기가 내뱉은 얼굴 주변의 이산화탄소에 감당을 못 하고 질식할 수 있다. 지구상의 실험실에서 극저온과 진공은 만들 수 있지만, 무중력은 우주 정거장까지 가지 않고는 경험할 수 없다. (지구상에서는 추락 실험으로 길어야 몇 초 정도씩밖에 경험 못 함)
우주 정거장에서 오랫동안 무중력 상태를 경험한 사람을 조사한 결과, 무중력 역시 인간의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뼈가 약해지고 체력도 떨어지며, 혈액 순환이 잘 안 돼 얼굴이 붓는다.

4. 해로운 광선: 우주에는 지구와 같은 자기장도 오존층도 없다.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온갖 해로운 우주선(cosmic ray)에 그대로 노출된다. 인간이 지구에서 1년 동안 받는 방사선의 양을 우주 공간에서는 하룻밤만에 받는다. 개중에는 사람의 세포를 죽이고 암을 발생시키고 유전자를 손상시키는 것도 다분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시커먼 암흑 천지인 우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살벌한.. 무슨 금성 같은 킬링필드는 아니며, 인체도 그렇게 호락호락 평형을 잃는 존재는 아니다.
그래도 우주는 역시 인간이 복잡한 장비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머무르기 힘들고 생명의 도전을 거부하는 오지임에는 틀림없다. 우주 비행사가 착용하는 우주복은 무게만 100kg에 달한다고 한다. 그걸 입고 전투까지 하는 스타크래프트 마린 메딕이 존경스럽다. ^^;;;

그렇기 때문에 우주선에 장착되는 임베디드 컴퓨터는 우리가 개인용으로 사용하는 컴퓨터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이 성능이 떨어지지만, 역시 튼튼하고 '우주선'에도 강하며 전력 소비가 적은 놈이 1순위로 채택되는 것이다.

earthling이라는 말이 있다. 이때 -ling은 저글링, 초글링 할 때의 그 '링'이다. 마치 테란(지구인)처럼 우주의 관점에서 지구에 사는 인류를 참 초라하게 일컫는 말인데, 한국어로 맛깔나게 표현하자면 '땅깨 나부랭이'뻘 되겠다. -_-;;

인간이 마지막으로 달에 갔다 온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나서야 이 경제 불황 속에서도 세계는 강대국을 중심으로 인간을 다시 달에 보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유럽을 주축으로 우주 개발 경쟁에 다시 불이 붙는 중이다. 40년 전에도 정말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쳐발라서 그 거대한 로켓을 쏘아올리고 달에 사람을 보냈지만, 이것저것 다 떼어낸 후 다 끝나고 돌아온 건, 낙하산을 뒤집어쓴 달랑 소형 캡슐 하나였다.

지구를 벗어났다가 안전하게 귀환하기란 그만치 힘들다. 우주 왕복선, 우주 정거장이 괜히 필요해진 게 아니다. 우주 왕래를 좀더 편하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이다.
흔히, 달에 간 건 그렇다 쳐도 지구 같은 발사대도 없는 달에서 어떻게 사람이 내렸다가 되돌아올 수 있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그런데 달에 갔다 온 건 마치 비행기가 달 공항에 '어숍쇼~' 착륙했다가 다시 이륙하듯이 그렇게 뜬 게 절대 아니다. ^^;; 달 표면에 무슨 깔끔한 활주로라도 있는 줄 아나? =_= 지구 인력을 탈출한 모선은 달 궤도를 계속 뱅뱅 돌고 있고, 별도의 소형 착륙선을 아래로 떨어뜨려 보낸 것이다. 그리고 임무를 마친 착륙선은 최소한의 연료로 떠서 모선에 합류 후, 그렇게 귀환했다.
그리고 달에는 40년 전, 탐사선을 띄우기 위해 세팅한 발사대의 흔적이 당연히 남아 있다.
달은 지구보다 인력이 훨씬 더 약한 덕분에 이런 식으로 귀환이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하나라도 이상이 생겼다면 우주 비행사들은 우주 공간이나 달이 그들의 무덤이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아폴로 11호 당시 미국 정부는.. 달 탐사가 실패했을 때 대통령이 발표할 담화문.. --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명복을 빌고, 우리는 유족들을 진심으로 애도할 것이고 어쩌구저쩌구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된 -- 도 미리 다 써 놓고 있었다는 것.. 유명하다.

도중에 사고가 나고 실패라도 한다면 중계방송을 당장 중단하고 방송을 바꿀 태세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케네디 대통령이 야심차게 예고한 것처럼 1960년대가 완전히 가기 전에 달 탐사는 극적으로 성공했다.
비록 중간의 아폴로 13호는 13 공포증을 극복하려고 하다 오히려 이를 증폭-_-시키는 계기가 되고 말았지만, 다행히도 승무원이 전원 무사 생존 귀환함으로써 성공적인 실패로 또다른 모범이 되었다. 영화로 제작될 가치도 충분한 스토리였다.

이렇게 임무를 마치고 귀환한 승무원들은 몸에 탈이 없는지, 혹시 우주 공간에서 새로운 병원균을 옮겨 오지는 않았는지 한두 주간 병원에 감금돼 정밀 검사를 받은 뒤, 이상이 없으면 풀려나고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마치 실탄에 수류탄까지 지급 받고서 무장공비 소탕 작전에 투입됐던 군인들이, 작전 후에는 옷 다 벗겨지고 실탄 회수 확실히 한 뒤, 위로/포상 휴가 주어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까.

아무쪼록 우주 얘기는 참 재미있다.
비록 지구에서 발사체 띄우다가 사고로 사람이 죽은 경우는 있어도, 우주 공간에서 실종되거나 죽은 사람이 아직까지 없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단, 명왕성의 발견자인 클라이드 톰보의 경우처럼.. 지구에서 죽은 사람의 유해를 우주 탐사선에다 실어 보낸 경우는 있다 ^^)

사실, 달 다음으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은 금성이고 화성보다도 훨씬 더 가까우나, 금성만 유독 이산화탄소 불지옥이어서 화성과 같은 탐사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건 심하게 낭패이고 아쉬운 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53 2010/01/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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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에서 만난 동지

몇 달 전의 일이다.
지인을 만나러 오랜만에 카이스트를 방문했는데..
만난 지인이라는 녀석이 말하길.. 나한테 소개해 줄 친구가 있다고 했다.

부산 영재고 출신에 전자과 07이던가 08학번.
과는 전산이 아니라 전자이지만 물론 프로그래밍도 한다.
그런데 데스크톱 컴퓨터의 메인 OS가 리눅스이고, KDE이던가 개발이 가능한 고수급의 리눅스 프로그래머이다. 세벌식도 쓴다고 하던가? 그렇게 들었는데.. 이 친구도 완전 비주류의 길을 가고 있구나.

거기에다가 결정적으로 그 친구..
철-_-도-_-오-_-덕 이다..!! ㅎㄷㄷㄷ

국내 철도를 다 섭렵했음은 물론이고.. 일본 철도는 이미 계층이 많기 때문에 관심 밖이고 자기는 주로 유럽 철도를 연구한다고 하더라. 사진도 잔뜩 있고..
나하고 그냥 얘기가 술술 터져나왔다. 걔도 부산에 있다 왔으니 부산의 철도/지하철은 당연히 다 꿰뚫고 있고..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 경부선의 선형, VVVF, 부산 지하철의 노선별 차량 계보 차이, 지하철 구동음 선율의 아름다움....;;;

생판 처음 보고 나이 차이도 6년이 넘는 카이스트 선후배가 서로 갑자기 외계어로 10분이 넘게 free talking을 진행하니,
날 데리고 온 지인 녀석하고 저 친구의 룸메는 입이 딱 벌어졌고, 동영상 찍고 난리가 났다. (업로드는 절대 하지 말지어다 -_-)

그렇다. 덕후는 덕후를 알아본다. 저 녀석은 이 장면을 의도하고 나와 걔를 서로 소개시켜 준 것이다. ㅋㅋㅋㅋ 교회 바깥 사람하고 이렇게 말이 통하는 사람과 후련하게 의사소통을 주고받기는 그때가 거의 처음이었다.
같은 철도 덕후라고 해도 개인별 주특기는 또 따로 있는 법. 그 친구는 유럽 철도 전문이었고, 나는 Looking for you 연구 결과를 들려 줬다.

지금은 그 친구 어찌 지내려나 궁금하다. 사실 덕후는 제각기 심취해 있는 나만의 세계가 따로 있는지라(나부터가 그렇기 때문에-_-) 서로 단합하거나 뭉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고 기회만 잘 따른다면... 저런 친구한테 <날개셋> 소스 인계해서 리눅스 쪽 개발 맡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도 품을 정도였다. ^^;; 카이스트와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ㅋㅋㅋㅋㅋ

덧. 오덕과 덕후의 어감 차이는 무엇일까??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52 2010/01/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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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dilascia.com/ruint.htm

본인이 이 사람 이름을 본 것은 비주얼 C++ 6.0을 쓰던 시절부터이다.
MSDN을 보면 각종 함수 레퍼런스, 툴 설명서뿐만이 아니라 고맙게도 일부 책이나 간행물 내용까지 수록돼 있었는데, 어느 프로그래밍 잡지의 C++ Q&A란을 애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코너를 집필하는 사람이 바로 저 전설의 프로그래머 Paul DiLascia였다.

특히 비주얼 C++ 6.0 MSDN에는 bmp 파일 뷰어를 밑바닥부터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 놓은 게 있었는데
친절한 설명도 설명이거니와 이 아저씨는 글빨 입담이 정말 구수하다는 것을, 생소한 영어를 읽으면서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윈도우+MFC 프로그래밍의 달인인 건 의심의 여지가 없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원래 수학 전공에다 컴퓨터 예술 쪽에도 심취해 있는 다재다능 엄친아였다. 이름이 좀 유럽풍인 것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뉴욕에서 태어나서 자란 골수 미국인이라고 한다. 조상이 이민자?

링크를 건 곳은 저 사람의 2003년 시절 인터뷰이다.
고수 프로그래머로서의 조언도 여럿 담겨 있는데, 그 내용이 무척 공감이 간다.

- 최신 기술 동향은 놓치지 않되, 남들이 좋다고 하는 데에 소신 없이 절대 우루루 휩쓸려 따라가지 말라. 가령 클라이언트처럼 C/C++가 독보적인 분야가 있고, .NET 같은 곳이 더 유리한 분야가 따로 있을 뿐이다. 자신의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툴이나 기술을 잘 고르는 요령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것들은 도구일 뿐이며 절대적인 우열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 Win32 API가 존재하는 한.. 윈도우즈 운영체제가 밑바닥부터 새로 뒤바뀌지 않는 한, 너무나 클래식(?)한 C/C++이나 MFC 같은 것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 없어지지 않는다. 더 업데이트가 안 되고 있다는 말은 그만큼 API가 성숙하고 안정화됐다는 뜻으로 오히려 다행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 늘 목표를 명확히 하고 내가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무슨 도구를 쓰는 게 가장 최적일까를 고민하라. 디자인 과정을 소홀히 하지 말라.

민장(minjang.egloos.com) 님 블로그에서도 비슷한 요지의 말을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워드, 엑셀 같은 유명 소프트웨어에 들어있는 GUI 베껴서 따라 만드느라 시간 낭비 절대 하지 말라!" (그 시간에 실제 기능 구현에 필요한 자료구조/알고리즘 연구나 더 해라)

란 주문도 들어있다. ^^;;
아마 C++ Q&A 운영하면서 "나도 저기에 들어있는 그 기능, 그 UI 만들고 싶다. 어떡하면 좋은가?" 류의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는 급의 문의를 엄청 많이 받았지 싶다.

* * * * *
  Too many programmers spend all their energy implementing some cutesy UI feature like docking windows or pink scrollbars because they saw it somewhere else. Microsoft has 5000 programmers to create animated paper-clips. You don't. Don't fall into the code envy trap!

  Don't get side-tracked implementing the latest GUI feature you saw in Word or Excel.
(그런 공룡 대기업들이나 부리는 '가진 자의 여유'를 당신이 따라할 여건은 안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 * * * *

저건 우리나라의 유명한 비주얼 C++ 서적의 저자인 이 상엽 씨도 똑같은 말을 했다.

* * * * *
  그래도 예술적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 제작에 열을 올린다면 좋은 이야기다. 그것도 아닌 것을 예술인냥 착각하고 움직이지는 절대 말라는 것이다. 예술적 가치가 없는 부분이 어떤것인가를 물어 볼것이다. 거 있지 않은가? MS 사에서 도움말 강아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고 자신의 프로그램에 강아지 만들어 넣는거...Visual C++의 워크 스페이스 창이 도킹 되었다가 떨어졌다 하는데 나두 이거 만들구 싶다 라는거...
예를 간단하게 들어서 MP3 에 있는 압축기술이나 음성인식 또는 지문인식 등의 기능이 예술이라고 볼수 있고 그냥 강아지 이리저리뛰어 다니는 것은 처음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것은 잡다구리 테크닉이다.
* * * * *

그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편집기 프로그램은... 9년이 넘게 개발되고 버전이 5.5가 넘어선 지금까지도 완전 윈도우 95의 기본 컨트롤과 UI 요소만 사용하여 만들어져 있다. ^^;;; 편집기의 경우 과거 3.41 버전에서 MFC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이제 도구모음줄이 도킹을 할 수 없게 바뀌었다. 그게 원래 MFC가 구현해 주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편집기를 실행해 보면 도구모음줄 아이콘들이 좀 중앙에 안 있고 메뉴, 즉 위쪽에 너무 바싹 붙었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것도 딱히 바꿀 방법이 없다.
아이콘 사이에 임의의 크기로 여백을 내는 것도 MFC가 윈도우 프로시저를 다 서브클래싱해서 굉장히 지저분한 작업을 한 끝에 구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MFC는 단순히 윈도우 API wrapper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 따라하는 일에 너무 심취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아쉽게도 이 사람은 작년(2008) 9월, 40대 후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밝혀져 있지 않다. 비주얼 C++ 2008의 내장 MSDN에는 2006년자로 작성된 그의 글을 볼 수 있는데, 이제 더는 그런 글을 접할 수 없으니 안타깝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40 2010/01/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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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에서 컬러로

※ 정지 사진

사진술이란, 화학 물질을 잘 이용하여 빛의 강약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어떤 영상을 보존하려는 기법이다.
최초의 흑백 사진이라 흔히 알려져 있는 것은 1825년 프랑스의 조제프 니세포어 니엡스라는 사람이 남겼는데, 노출 시간이 무려 8시간에 달해서 태양이 한 나절 동안 만들어 낸 그림자가 모두 사진에 담길 정도였다.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는 이미 흑백 사진 기술은 사실상 안정화가 되었다.

그러나 흑백으로 만족하지 않고 천재 물리학자인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빛이 RGB 세 축으로 분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낸 후 1861년, 최초의 컬러 사진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물론 지금처럼 쉽게 한 방으로 찰칵 찍은 게 아니라, 색깔 축별로 사진을 세 장 찍어서 정교하게 합성하여 만든 것이므로 방법이 쉽지는 않다. 그 전에는 흑백 사진에다가 수작업으로 색을 입히는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은 물론이고 1차 세계 대전과 1900년대 초를 찍은 컬러 사진도 "존재"는 한다. 단지 실용화가 안 됐을 뿐이지. 컬러 사진 기술 자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찍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6· 25 사진조차도 컬러를 보기가 쉽지 않으나, 서양인이 구한말 1900년대 초에 서울 모습을 찍은 컬러 사진도 극소수 전해 내려오는 게 있다. 컬러 사진은 1920년대에 코닥 사에서 컬러 필름을 대량 생산하면서부터 보편화되었다.

※ 영화

기술적 토대는 19세기 말에 마련되어서 정말 초라한 흑백 무성 영화로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 같은...=_=
그때 영화는 진짜 말 그대로 환등기 같은 걸로 틀어 주는 움직이는 그림일 뿐이었으며, 음악을 따로 곁들이거나 내레이터가 중간 중간 라이브로 설명을 해 줬다.

여기에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 기술이 결합하여 동영상에 소리까지 첨가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이다. 단순히 움직이기만 하던 그림이 말하는 그림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후 한동안 흑백 영화 전성기가 이어지다가 컬러 영화는 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1940~50년대부터 차츰차츰 등장하기 시작했다. 십계(1956), 벤허(1959)가 그 초창기의 컬러 영화이며, 심지어 우리나라 6· 25 직후의 참상도 누가 컬러로 찍어 놓은 희귀 영상 기록이 남아 있다.

※ 텔레비전

비록 화질이 영화보다는 못하지만, 동영상과 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꿔서 장거리로 송수신하는 방식이니, 기술적 난이도는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그 원리는 1920~30년대에 완성되고 실용화됐다. 발명자의 이름을 따서 음극선관(CRT)의 이름을 브라운관이라고도 일컫는다.

미국에서 1931년에 시험 방송이 시작되고 영국에서 1937년, 세계 최초의 TV 방송국인 BBC가 개국했다. 한국에서는 1956년이 돼서야 TV 방송이 첫 시작했다(물론 다 흑백). 즉, 일제 강점기 때엔 우리나라에 TV가 없었고,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지고 있다는 방송은 다 라디오를 통해서나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컬러 TV는 은근히 등장이 늦었다. 기술 개발이 성공한 건 1950년대이지만, 미국에서도 가격 장벽이 낮아지고 본격적으로 보급된 건 60년대가 돼서였다. 그래도 달 착륙 동영상을 흑백이 아닌 천연색으로 볼 수 있게 된 건 정말 천만 다행이다. 70년대 중후반부터 흑백은 이미 골동품 내지 휴대용 초소형 TV용으로나 전락했다.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5공 시절인 1980년대 초반이 돼서야 컬러 TV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 3S 정책이라는 비아냥거림은 있다. 그런데 그럼 박 정희 때는 컬러 TV가 전혀 없었고 땡전 뉴스부터 천연색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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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수천 년을 살아 오면서 뭔가 기록을 남기는 방법이란 글 아니면 기껏해야 그림밖에 없었다. 사진처럼 기가 막히게 초상화나 풍경화를 잘 그리는 화가가 장땡이었다. 아니면, 사람 얼굴 윤곽은 데스마스크 같은 걸로 남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사진술이 개발되어 사진을 남기고 심지어 동영상을 만들고 이를 전파로 만들어 송출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전과 그 후의 인류의 삶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발명이 아닐 수가 없었다.
1900년대 초에는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덕분에, 사람의 실물 사진도 모자라서 살아 있는 사람의 뼛속 사진까지 이미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발달한 사진술은 얼마 안 있어 금성과 달 같은 우주의 모습까지 담아 오는 데 성공한다.

사진을 한번 팟 찍으면 내 영혼이 빠져나가는 줄 알고 혼비백산했을 당대 사람들이 이해가 될 만도 하다.
사람을 해부하지 않고 자기 손의 뼈 사진을 봤을 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
당대의 화가들은 사진술의 발명으로 인해 자기 정체성을 심각하게 재고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도, 도시 건물 같은 거.. 완전 실사 뺨치게 그리는 걸 업으로 즐기는 화가도 있다)

우리는 지금 불과 200여 년 전 사람들조차 상상도 할 수 없던 대단한 문명의 이기를 당연하게 사용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스팸 메일 없는 이메일을 상상할 수 없듯,
사진술의 대중화와 동시에 인류는 이제 음란물과의 전쟁을 치르기 시작하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39 2010/01/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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