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벌식 파워업 이야기

본인은 10여 년 전인 2000~2001년 사이에 세벌식 솔루션 3관왕-_-? 3총사를 차례로 최초로 개발하였다. 이 홈페이지 대문에 다 공개되어 있다.

하나는 주력 연구 작품인 <날개셋> 한글 입력기. 이건 사실 세벌식 글자판을 기본으로 삼아 한글 입력 체계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를 목표로 하는 학술적인 프로그램이다. 이윤을 목표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또 딱히 사용자 중심적으로 만드는 프로그램도 아니기 때문에, 여느 공개 소프트웨어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이한 기능과 라이선스, 그리고 초심자가 언뜻 보기에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 복잡한 UI를 고수하고 있다.

뭐, 그래도 어쨌든 대부분의 일반 사용자들은 그냥 에디터가 하나 필요해서, 혹은 Shift+Space를 쓰거나 한글 로마자 글자판을 쓰려고, 혹은 세벌식 모아치기를 하려고, 또는 드보락 자판을 같이 쓰려고 이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건 이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기능의 완전 빙산일각일 뿐이다. 좀 외람된 비유이다만, 구원받아서 누리는 크리스천의 온갖 영적 복은 다 제끼고, 오로지 죽어서 지옥 안 가고 천당 가려고 예수 믿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엥?)

그리고 다음으로 잘 알다시피 타자연습 프로그램이 있다. 세벌식을 연습하려면 세벌식 사용자가 만든 세벌식에 최적화된 타자연습 프로그램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만들었다. 세벌식이 그냥 잉여 옵션이 아니라, 세벌식, 특히 최종 자판이 main인 프로그램.

사실, 아래아한글 워디안/2002가 리모델링된 한컴타자 유틸리티를 공개하기 전이던 2000년대 초엔, 세벌식 최종을 정식 지원하는 타자연습 프로그램은 박 정만 님이 개발한 '광타'밖에 없었다. 그리고 윈도우 운영체제와 아래아한글 97이 제공하던 최종 자판은 오류가 있었다. 그만치 최종 자판은 인지도가 안습하였다. 그런 와중에 세벌식 최종 전용 타자연습 프로그램인 <날개셋> 타자연습의 임팩트는 결코 작지 않았다.

타자연습은 잘 알다시피 한글 입력기의 한글 입출력 엔진을 빌려서 개발되었다. 비록 수 년 전부터는 입력기의 연구 개발에 밀려서 타자연습의 메이저 버전업이 중단된 상태이지만, 본인은 이 프로그램의 개발을 완전히 접거나 포기한 상태가 아니다. 껀수가 생기면 얼마든지 프로그램을 또 업데이트할 생각이다. 이 프로그램은 입력기보다는 훨씬 더 사용자 지향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다음으로 이 두 프로그램에 비해 인지도가 덜하고 <날개셋>이라는 브랜드도 붙어 있지 않으나, 또 아주 중요한 세벌식 솔루션이 마지막으로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세벌식 파워업이다.

세벌식 파워업은 세벌식과 관계가 있으나 <날개셋> 한글 입력기와는 무관한 프로그램이다. 이건 <날개셋> 없이 운영체제의 기본 IME만으로 세벌식을 쓰려는 사람에게 필요하다. 이 프로그램은 클릭 한 번으로 MS 기본 한글 IME의 두벌식/세벌식 설정을 간편하게 바꿔 준다. 이 외에도 화면에 세벌식 최종 글쇠배열을 띄워 놓는 기능과 한글 IME 제어판 설정을 바로 꺼내 주는 기능도 있어서 세벌식 사용자에게 무척 유용하다.

이 프로그램은 사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의 개발이 끝나고 정보 올림피아드도 끝났던 2000년 말에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레지스트리 설정을 바꿈으로써 윈도우 95/98/ME의 한글 IME를 대상으로는 잘 동작했으나, 2000에서는 동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능만으로도 본인은 세벌식 사용자들에게서 칭찬과 감사의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세벌식 파워업이 진짜로 ‘파워업’이 된 때는 2004년,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3.0으로 대폭 업그레이드된 그 시절이었다. 그때 두 가지 정말 큰일을 해냈다. 먼저 공유 메모리 패치 지점을 reverse engineering으로 찾아냄으로써, 드디어 2000/XP 등 모든 계열의 한글 IME에서 세벌식 자동 전환 기능을 동작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당시 오류가 있던 MS 한글 IME의 세벌식 최종 글쇠배열을 아예 파일 차원에서 ‘패치’하는 엽기적인 기능을 추가했다!

그 당시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 3.0과 더불어 외부 모듈이 처음으로 개발되고 있었는데, 그러는 한편으로 MS IME 자체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어, 그걸로 참고표와 가운뎃점을 찍는 방법을 찾아냈던 것이다. 이것 역시 <날개셋> 개발에 필적하는 쾌거였다.

파워업 프로그램이 마지막으로 큰 변화를 겪은 때는 그로부터 2년 반쯤 뒤에, 윈도우 비스타와 MS 오피스 2007이 나왔을 때이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MS가 세벌식 최종 글쇠배열 오류를 고쳐 준 덕분에, 패치 기능은 이제 더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글자판 자동 전환 기능이 동작하려면 바뀐 메모리 변경 지점을 알아야 했기에, 그때는 VMware로 윈도우 비스타를 급히 설치하고, 아주 가벼운 개발툴인 비주얼 C++ 4.2 (무려 1996년 프로그램!)를 설치하여 그거 디버거를 이용해 메모리 변경 지점을 알아냈다.

윈도우 7/오피스 2010의 한글 IME는 윈도우 비스타/오피스 2007의 그것과 구조가 거의 같기 때문에 파워업의 추가적인 알고리즘 패치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파워업을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하고 나면 한글 IME 설정 대화상자가 뜨지 않으며(그쪽에서 의도적으로 실행을 거부함),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된 프로그램은 파워업의 글자판 전환 기능이 통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새로운 이슈가 발견된 셈인데, 글자판 전환 기능이 안 되던 문제는 최근에 다행히 간단한 조치 끝에 해결하여 패치를 등록하였다. 관심 있으신 분은 받아서 사용하기 바란다.

내가 왕년에 무슨 생각으로 무슨 똘끼를 발휘하여 이런 세벌식 솔루션을 세 종류나 만들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세벌식을 극도로 활용한 전문적인 한글 입력기, 그리고 세벌식 beginner를 위한 타자연습, 그리고 단순 세벌식 light user를 위한 파워업. 제각기 커버하는 영역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세 프로그램은 유니코드 API를 지원하는 방식도 제각기 다 다르다. 입력기는 잘 알다시피 자체 제작한 호환 레이어가 있어서 유니코드 기반 바이너리로도 9x 계열 운영체제에서 동작 가능한 가장 정교하고 바람직한 구조로 되어 있다. 타자연습은 ANSI/유니코드 에디션이 제각각 빌드되어 있고, 파워업은 그냥 ANSI 빌드로만 배포된다. 한편, 64비트 바이너리가 따로 빌드되어 배포되고 있는 건 입력기가 유일하다.

본인은 이 프로그램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세벌식의 보급에 큰 기여를 해 왔을 거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고인드립이 될까 봐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지만, 공 병우 박사님이 5~10년 정도만 더 살아 계셨으면(1995년 타계)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개발되는 것도 보고 가셨을 텐데 하는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내가 지금까지 왜 이런 짓을 했을까? 글쎄다. 딴 게 아니고 한글 같은 문자는 컴퓨터에서 두벌식으로만 쓰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막연한 관념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한글 기계화 이념에 관한 한은 세벌식만이 살 길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어서이다. 그 생각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다. “그 불편한 두벌식을 쓰면서 어떻게 한글이 우수한 문자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세월이 흘러, 나의 감성을 건드리는 영역은 철도에게 자리를 많이 내 줬다. 세벌식 쪽은 그냥 워낙 오래 전부터 내가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분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저 관성만으로 덕-_-력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세벌식은 그래도 너무 매력 있는 한글 글쇠배열이며, 동시에 한글 기계화의 근간을 이루는 교리이다. 요즘은 컴퓨터도 다들 멀티코어가 대세인데, 세벌식은 내가 예전에 글로 쓴 적이 있듯이 사람 손의 병렬화-_-에 유리한 방식이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다들 이 기회에 세벌식으로 글자판을 바꿔 보시길 바란다. 터치스크린이 주류인 모바일에서는 세벌식은 동시치기를 통한 활로를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2/02/14 08:16 2012/02/14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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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king for you의 작곡자, MALTA

이제는 더 말하면 입만 아프겠다만,
본인은 2003~2004년 사이에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라는 음악을 들으면서 철도 성령을 체험하고 철도 덕후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 Looking for you를 작곡한 사람은 MALTA라는 예명을 쓰는 일본의 재즈 색소폰 연주자이다. (☞ 공식 홈페이지)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면, 공유 정신이 투철한 네티즌들 덕분에 이 사람 주요 곡은 물론, 심지어 과거의 실황 공연 동영상까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생각보다 연세가 지긋한 분이고, 본인의 부모님 연배이다. 아니, 부모님보다 나이 더 많다..;;
일본인이라기보다는 서양 사람처럼 생겼다. 덩치도 그렇고.

공식 홈페이지에 기재된 프로필에 따르면, 그는 13세 때부터 색소폰을 불기 시작해서 도쿄 예술 대학을 졸업했다. 그 후 미국 유학을 선택하여 그 이름도 유명한 버클리(Berklee) 음대를 졸업하고 거기서 강사도 역임했다고 한다.
재즈 내지 실용 음악이 강한 학교에 잘 찾아간 듯하다. 몇 년 전에 본인이 뒷조사를 해 본 기억에 따르면, 버클리 음대 Alumni 리스트에 저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1983년 11월, 일본에서 MALTA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첫 음반을 냈다.
Looking for you가 수록된 앨범은 Obsession으로, 1988년에 발매됐다. 즉, 여전히 상당히 초창기 시절의 작품인 것이다. 그때는 기술과 장비가 차이가 있었는지, 음반 녹음을 미국 LA에서 했다고 자랑을 치던 시절이었다. 즉, 우리가 지금 듣는 Looking for you도 원판은 미국에서 녹음됐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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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성령을 소환해 낸 전설의 곡 Looking for you가 첫 소개된 그 앨범)

생각을 해 보라. 어느 때에 한국의 대중교통에서, 운행 시작 전이나 종료 후에 객실 내부에서 저렇게 가슴 터질 것 같은 빠르고 경쾌하고 톡 쏘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던가? 그리고 그 당시 철도청이나 코모넷(새마을호 내부의 시청각 UI를 담당하던 하청 업체) 담당자는 어째 이렇게 매니악한 음악을 선곡할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통방통하지 않은가?

난 재즈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저 음악만은 예외로 그냥 닥치고 수백, 수천 번 듣고 또 들었다. 눈 지그시 감고 앉아서 새마을호 객실에서 저 음악 들으면서 타거나 내리던 시절을 회상하는 게 습관이 됐다. 그리고 전곡을 허접하게나마 nwc 악보로 옮겼다.

참고로 Looking for you는 새마을호에 처음으로 비디오 화면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01~2002년 사이에 등장했다가, KTX가 개통한 2004년 중반부터는 종착역 도착 때만 흘러나오는 걸로 바뀌었고(출발 전에는 이제 Steve Barakatt의 Dreamers로 변경), 2007년 중반 무렵에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인이 2006년에 세 차례 Looking for you 열차내 재생 장면을 촬영하여 유튜브에 올린 것은 이제 전설적인 역사 기록으로 등극해 있다.

나는 흔히 말하는 각종 가요나 연예인, 영화, 락 음악 같은 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대신, 그쪽 똘끼가 여기에 전부 쏟아졌다.
MALTA 당사자는 꿈에도 모르겠지만, 역사는 그의 음악이 한국에서 극렬 철도 덕후를 한 명 배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기록할 것이다. 철도님, 사랑합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2/02/11 08:12 2012/02/1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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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으로부터 이어짐)

왕년에 게임 개발자였던 Bill Williams가 진로를 바꾼 것에는 그의 기구한 성장 내력도 작용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는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이라는 희소 유전병을 지니고 있었다(몇백· 몇천 명 중에 한 명꼴로 걸리는 병이고 아시아· 아프리카계 사람에게는 거의 발견되지 않음. 열성 유전자.). 인체 장기 내부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점액이 선천적으로 이상하게 만들어져서 각종 물질대사와 질병 면역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이 때문에 보균자는 몸의 이곳저곳에서 탈이 나면서 오래 못 살고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한다. 무슨 에이즈도 아니고..?

애초에 그는 13세까지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선고까지 받았지만 예상의 3배에 가까운 기간을 산 상태였다.
그가 신학교를 다닌 지역인 시카고는 공기가 그리 안 좋은 곳이었고, 거기서 지낸 2년간의 시간이 그의 지병을 악화시켰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고통과 고뇌 가운데서 Naked Before God: The Return of a Broken Disciple이라는 책을 썼다. 예수님 시대에 ‘나다니엘’이라는 어느 소심하고 병약한 젊은이가 몰래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이 세상의 질병과 슬픔, 고통에 대한 의문의 해결책을 얻는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작가 자신의 삶을 그린 자서전적 소설이다. 교리보다는 영성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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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성경의 욥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요한복음 2~3장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주인공을 설정한 첫 모티브는 막 14:51-52이라고 한다.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그 유명한 사건! 책 제목에 괜히 naked란 말이 들어간 게 아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얼마 못 가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아마존 서평을 보니 책에 대한 독자 리뷰는 굉장히 좋은 편이다. (구글 도서 서비스는 완전히 엉뚱한 동명이인을 책의 저자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아니므로 착오 없기 바란다.)
15년 전의 그의 대표작인 Alley Cat이라는 게임과는 너무나 딴판인 분위기이지 않은지?

그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 IT계에 있다.
오늘날 전세계에 가장 널리 퍼진 압축 알고리즘인 zip을 고안한 사람은 Phil Katz (1962-2000)라는 천재 프로그래머이다. 도스 시절에 쓰이던 pkzip, pkunzip에서 pk는 당연히 그의 이름의 이니셜이며, 사실 모든 zip 파일은 첫 부분이 PK라는 문자로 시작한다.

jar이나 안드로이드 apk, 그리고 MS 오피스 2007 문서들도 다 zip을 컨테이너 파일 포맷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그 인지도는 얼마나 압도적인가?
도스 EXE의 식별자인 MZ (고안자인 Mark Zbikowski에서 유래)와 더불어 그는 가장 유명한 파일 포맷을 만든 거장 중 하나이다.

Phil Katz는 Bill Williams와 딱 두 살 차이이고, pkzip의 전신인 pkarc를 만든 게 1986년으로 역시 20대 초중반의 나이로 작품을 남긴 사람이다. 게다가 30대 후반의 나이로 요절한 것까지도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빌의 생년과 몰년에다가 2만 더하면 된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듯, pkzip의 개발자는 Bill Williams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급사하여 그 당시 IT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갑자기 늘어난 부를 감당하지 못한 나머지 재산 탕진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채 호텔에서 객사했다 -_-)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IT계라도 예외가 아니다.
작년 가을엔 세상 언론들이 스티브 잡스의 죽음에는 완전 애도하고 자서전까지 만들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그로부터 1주일 뒤에 잡스보다 컴퓨터의 발전에 월등히 더 기여한 어느 전산학자가 죽었을 때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유닉스 운영체제의 개발에 참여하고 C언어를 발명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은 영문학의 기반을 다 닦은 셰익스피어를 문학의 천재로 칭송하지만, 그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고 아예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에 참여한 천재 언어학자인 랜설롯 앤드류스 같은 사람은 거의 알지 못한다.

이런 것처럼, 개인적인 재능과는 무관하게 인생의 정확한 행로와 목표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달라지는 게 자명하며, 그리고 사람의 어떤 행적에 대해 사람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하고는 웬지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게임계에도 저런 사연을 남긴 개발자가 있었다는 게 무척 애착이 간다. 그리고 그 Alley Cat 게임도 보통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 다시 보게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2/02/09 08:24 2012/02/09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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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에 혹시 옛날에 Alley Cat이라는 아래의 완전 구석기 시대 게임을 해 보신 분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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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해 봤다.
전설의 카세트테이프까지 접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1990년대의 16비트 IBM 호환 PC의 발전은 다 지켜본 세대이기 때문이다.

저 게임의 제목은 우리말로는 딱 ‘도둑고양이’라는 뜻이다.
내가 갓난아기이던 1984년에 만들어진 게임이요, (PC용이 1984년. 8비트 Atari용 원판은 1983년에!)
6만 바이트가 채 안 되는 실행 파일 하나에 게임에 필요한 모든 코드와 데이터가 다 들어있다.
실행하면, 도.도. 시.시. 라~시라솔... 로 시작하는 그 중독성 있는 음악이 나온다.

실행 파일을 들여다보면,

This program requires a color graphics adapter.

라는 문자열이 있다.
This program requires Microsoft Windows도 아니고(과거에 윈도우 3.x용 프로그램이 도스에서 실행되었을 때 뜨던 실행 거부 메시지), VGA도 아니고.. 컴에 CGA가 없을 때 출력해 줄 에러 메시지가 들어있다니 도대체 얼마나 옛날 게임인 걸까? 320*200 4색짜리 그래픽 ㅋㅋ

이 게임을 만든 사람은 Bill Williams (1960-1998)라는 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John Harris라는 다른 프로그래머가 만들다 만 것을 이어받아서 자기 식으로 완수한 거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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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영문 위키백과)

아주 흔하고 동명이인이 많은 이름이긴 한데, William의 애칭이 Bill 아니던가? 그럼 동일 이름 중복?

그야말로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그 열악한 하드웨어에서 어셈블리 코딩만으로 저렇게 고양이가 뛰어다니는 세계를 창조했다는 게 심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존 카맥(John Carmack)이 Doom 엔진을 만들어 낸 나이도 저 때와 비슷하다. 다들 25세가 채 되기 전이다! 천재들은 다 그 나이 때 이미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

저 게임은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아케이드· 플랫폼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HP가 없이 즉사하는 시스템을 별로 안 좋아했다.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놀라게 해서-_-) 그리고 맨날 빗자루에 걷어 채여 날아가는 고양이가 좀 불쌍했다. 드럼통에서 창문 빨랫줄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그때 딱 창문에서 떨어지는 물건에 이따금씩 맞는 게 싫기도 했고.

하지만 게임의 세계관이 심히 창의적이고 독특한 건 사실이다. 게임은 몰입도가 상당히 높다. 게임 속의 고양이는 끊임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길바닥에서 고양이가 좀 지체하고 있으면 개가 달려와서 고양이를 죽인다. 드럼통에도 너무 오래 있으면 밑에서 괴물 머리가 툭 튀어나오면서 고양이를 밑으로 쫓아낸다. 방에 들어가서도 안심할 수 없다. 빗자루의 방해를 안 받고 미션을 완수하려면, 주기적으로 계속 바닥을 돌아다니면서 흙먼지를 묻혀 줘야 한다. 고양이가 좀 발 붙이고 쉴 틈이라곤 없다.

보글보글만큼이나 게임에 갑툭튀하는 랜덤한 요소가 많다. 화살표 키도 어떻게 조작하냐에 따라 고양이의 이동 속도와 점프 방향이 생각보다 다양하게 바뀐다. 나름 머리를 써서 만들었다는 흔적을 느낄 수 있다. PC 스피커만으로 상당히 정교하게 합성해 낸 효과음도 일품.

이 게임은 딱히 엔딩이 없어서, 퀘스트를 달성해서 암고양이를 만난 뒤에도, 진행 속도와 난이도만 더 올라간 채 게임은 한없이 반복되었다. 또한 원래 PC가 아닌 게임기용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PC 버전도 종료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컴퓨터를 그냥 끄거나 Game Wizard 같은 유틸리티의 Crash back to DOS 기능을 사용해서 빠져나가야 했다.

난 Bill Williams의 작품이라고는 Alley Cat밖에 알지 못하지만, 외국에 있는 어느 고전 게임 개발자 열전 사이트에서는 그를 1980년대를 풍미한 천재 게임 개발자라면서 게임 디자인계의 ‘스탠리 큐브릭’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His games are completely original and stunning.”

그는 1990년대에는 게임 개발을 완전히 접고, 뜻밖의 진로를 선택했다.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목회를 할 의향으로 시카고에 있는 루터 신학교에 돌연 입학하여, 1994년에는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재학 중에도 성경 탐구에 대한 열의가 남다른 우수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2/02/07 08:18 2012/02/0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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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의 확장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한 신혼부부가 세월이 흘러 경제력이 생기고, 또 자녀들 때문에 더 넓은 행동반경이 필요해지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간다.
어떤 교회가 성도 수가 늘고 기존 건물이 너무 비좁아지면, 역시 더 큰 곳으로 예배당을 옮긴다.
건물을 예로 들었지만 길도 예외가 아니다. 처음에 설계했던 길의 크기에 비해 교통량이 지나치게 늘면 길을 넓히게 된다.

과거에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이 끝난 뒤, 박 정희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야당이 하도 반대를 해 대서 일단 4차선으로만 만들었지만, 이 도로는 얼마 못 가 너무 비좁아지는 때가 분명 온다. 그러니 언제든지 확장을 할 수 있게 대비해 두고, 도로의 양 옆 50m에는 건물 건축 허가를 내 주지 말아라.”

오늘날 박통의 예상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경부 고속도로가 40년 전의 4차선 형태 그대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곳은 영천-경주-울산과 추풍령 일대의 극소수 구간뿐이다.
비록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에 너무 저비용으로 단기간에 날림으로 만들어져서 나중에 땜질을 하는 데 비용이 더 들었다는 비판이 있긴 하다만, 박통 역시 정황상 원하던 규모로 도로를 애시당초 못 만든 고충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1. 길을 넓히는 작업은, 이상적인 경우라면 기존 도로의 양 옆에 차선이 하나씩 추가되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중앙 분리대의 위치가 바뀌지 않으며, 기존 도로의 센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 매우 좋다.
다만, 터널이나 교량은 유연한 확장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양 옆으로 같은 시설을 더 만드는 식으로 확장이 이뤄진다. 오래 된 터널이 세 개 존재하고 중앙의 2차선짜리 터널 내부에 중앙선이 있다면, 그건 100% 나중에 1차선짜리 터널이 추가로 건설된 거라고 보면 된다. (예: 서울 종로구의 사직 터널)

2. 그러나 기존 도로의 한쪽 옆에 동일한 규모의 새 도로가 건설되어 기존 도로는 상행, 새 도로는 전체가 하행이 되는 식으로 확장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존 도로와 새 도로가 완전히 분리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서로 고저 차이가 있기도 하다.

서울의 대표적인 횡축 자동차 전용 도로인 강변북로(그리고 아마 올림픽 대로도)가 이런 식으로 확장된 좋은 예이다. 강변북로는 지금의 서쪽 방향이 원래 있던 도로였다. 편도 2차선의 4차선짜리 도로였는데 좀더 한강 쪽에 가까운 4차선짜리 고가 도로가 추가로 건설됨으로써 총 8차선이 되고, 새 도로는 동쪽 방향을 맡게 되었다.
터널 중에서는 남산 제1터널이 이런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추후에 옆에 터널을 하나 더 만든 뒤, 각각 상· 하행 역할 분담.

3.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 그냥 옆에, 혹은 복층으로 독립적인 상· 하행 방면이 존재하는 새 도로가 추가되는 걸로 끝난다. 중부 고속도로(고속국도 35호선)가 좋은 예이다. 험준한 산 위에 놓인 높은 고가는 이거 뭐 건드릴 수가 없기 때문에 옆에 그냥 제2 중부 고속도로(고속국도 37호선)를 추가로 만드는 것 외엔 답이 없었다. 철도로 치면 방향별 복복선이 아닌 선로별 복복선처럼 되었다.

세 가지 경우 중 기존 선로나 차선의 상하행 용도가 바뀌기도 하는 방식은 2번이 유일하다. 그래서 길에 각종 신호 시스템이 정교하게 얽혀 있는 철도가 2번처럼 확장되기란 대단히 어렵다. 뭐, 철도는 복선에서 복복선으로 바뀌는 것 자체가 수도권 대도시가 아니면 대단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경부· 경인선은 1번과 같은 방식으로 복복선으로 확장되었지만, 이들이 합류하는 구로 이북의 서울 시내 구간은 3번 방식으로 확장되었으며, 이는 아마 부지 문제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어떤 길이 처음엔 작았다가 나중에 확장되었다는 증거는 구조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자동차 전용 도로의 경우는 진출입로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자동차가 우측통행을 하며, 편도 4차선 도로라면 진출입로는 당연히 맨 오른쪽 끝인 4차로에 있다. 중앙선과 가장 가까운 곳이 1차로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강변북로의 동쪽 방면 도로는 맨 왼쪽 끝의 1차로에 진출입로가 수시로 존재한다. 마포 대교나 원효 대교의 진출입 램프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왜 그럴까?

그것은, 예전 도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진출입로의 영향 때문이다.
강변북로가 확장되기 전에는, 한강 다리의 북단에서 강변북로의 동쪽 방면으로 진입하려면, 지금은 서쪽 방면으로만 쓰는 옛 도로의 오른쪽 끝으로 진입로(램프)가 이어져야 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 길을 크게 고치지 않은 채로, 옆에 있는 강변북로 동쪽 방면으로 살짝 연결시키다 보니 새 도로에 처음 닿는 곳은 4차로가 아닌 중앙선 근처의 1차로가 된 것이다. 즉, 강변북로 동쪽으로 갈 때도 서쪽 방면 도로를 살~짝 찍은 뒤에 동쪽 방면으로 건너간다는 뜻이다. (옛 도로의 오른쪽 끝인 2차로 → 새 도로의 왼쪽 끝인 1차로로 바뀜) 이해가 되시겠는가?

동서 방면 도로와 남북으로 가는 도로가 십자형으로 만나고 어느 방향에서든 모든 방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입체 교차로의 가장 교과서적인 형태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이 클로버형 나들목이다. 그러나 한강과 복잡한 시가지를 끼고 있고, 더구나 기존 시설물까지 존재하는 서울 시내의 자동차 전용 도로가 그런 깔끔한 모양을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곤란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약간의 복잡한 시설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 도로에서 다른 도로로 갈아타는 입체 교차로 램프가 좀 복잡하고 삽질스럽게 생겼다 싶으면, 이것도 옛 도로가 확장된 흔적이기라도 한가 의심해 봐도 좋을 것이다. 입체 교차로는 신호 대기가 없어서 무척 좋긴 하지만, 자동차에 내비가 보급되기 전에는 이런 복잡한 도로를 어떻게 찾아갔을지 옛날에 운전하던 분들이 초행길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2/02/05 08:36 2012/02/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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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KTX 근황

말도 많고 탈도 많던 KTX 산천 차량이 어느 샌가 경부선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보기 힘들어져 있다.
심지어 하루 단 한 번 있는 서울-부산 무정차 KTX도 처음에는 산천이 다니던 게 다시 떼제베 차량으로 복귀했다. 타는 승객이 많을 리가 없고, 또 과거의 구특전 새마을호 #1~#4 컨셉인 특급 열차엔 최신형 내장재로 무장한 산천만치 적합한 편성은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의외의 결과이다.

이렇게 된 일차적인 원인은, 코레일이 이놈의 산천 차량이 하도 고장이 잦아서 차량 품질을 믿을 수 없다고 차량 제조사를 디스했기 때문이다. 안습한 현실이다.
그럼 이 산천 차량이 다 어디 갔느냐 하면, 호남· 전라· 경전선 같은 마이너 노선으로 갔다. 일종의 좌천 발령인가. ㄲㄲㄲㄲ

사실, 2010년 초에 KTX 산천이 처음 도입됐을 때도 새 차량은 호남선에서 집중적으로 베타테스트를 거치곤 했다. 경부선보다 수요가 적고 차량 운행도 뜸하니 위험 리스크가 적기 때문이다. 서울 도시철도 공사가 옛날에 국산 인버터 전동차(일명 609 편성)를 왜 5~8호선 중 6호선에다가 시범 투입했었겠는지를 생각해 보라.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호남선은 열차의 운행 횟수는 변함없는데 차량이 다 산천으로 바뀜으로써 좌석수가 크게 감소했다. 그래서 승객들이 평일 낮에도 자리를 못 구해 아우성인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18량 고정 편성인 떼제베는 한 편성에 무려 900명이 넘는 승객을 실어 나르지만, 산천은 8량 1편성이 기본이고 좌석도 더 커서, 수송량이 떼제베의 절반이 채 안 되기 때문이다. 중련을 해도 700명 남짓.

경부선은 2010년에 2단계 공사까지 끝남으로써 광명 이남의 전구간에 전용 고속신선이 부설되었고, 이제 대전과 대구의 시내 구간에만 전용선이 깔리면 된다. 승객 수요도, 선로의 품질도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그 반면 호남선은 아직 대전 이남은 느린 기존선이다. 거기에다 광주-서울, 전주-서울 고속버스가 가히 시내버스를 능가하는 배차간격으로 다니고, 천안-논산 고속도로라는 지름길까지 있어서 철도의 강력한 경쟁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선 KTX도 장사가 그렇게까지 아주 안 되는 건 아닌 게 현실이다.

2010년 말에 경전선 KTX가 개통한데 이어, 이제 전라선도 복선 전철화와 선형 개량이 끝난 관계로 드디어 KTX가 2011년에 소리 소문 없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하루 편도 5회이지만 전주· 남원· 순천도 서울에서 KTX 타고 환승 없이 한번에 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수 엑스포를 염두에 둔 개통이다. 투입된 건 모두 산천 차량이다.

전라선은 한때는 동일 구간을 경유하는 고속도로가 없어서 전통적으로 철도 수요가 많기도 했다. 광주 쪽으로 확 꺾는 호남 고속도로(25)와, 아예 진주· 통영 쪽으로 가는 통영-대전 고속도로(35)의 넓은 공간 사이에 고속도로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게 지금은 전주-광양 고속도로(27)가 전라선과 거의 같은 선형으로 생겨서 사정이 나아졌다.

그러나 이런 호남 지방의 수요를 월등히 압도하는 건 역시 영남 지방의 수요임이 드러났다.
말이 경전선이지 사실 '경남선'이라 해야 맞겠다.
경전선 KTX가 개통한 후, 창원· 마산의 여객 수요는 코레일의 예상을 넘어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 역에서 타고 내리는 승객은 가히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그야말로 자리가 없어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부랴부랴 열차를 증편해 주고, 산천이던 차량을 떼제베로 바꾸고, 산천 중련의 경우 동대구에서 한 편성 떼어내던 걸 안 떼고 끝까지 가게 했다.

경전선은 어차피 고속신선은 1차 개통 당시의 구간과 동일한 서울-대구까지밖에 이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1차 개통 시절에 진작에 개통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아직 산천도 없던 시절에 거기까지 투입하기엔 차량이 부족하고, 호남과의 공급 균형(?)과 수요 예측 문제로 인해 아직 개통을 안 했던 것 같다.

2차 개통 후에 영등포와 수원 정차 KTX는 승객이 어떻게 됐나 모르겠다. 듣기로는 영등포보다 수원에서 이용객이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울산은 신경주에서 그리 멀지 않고 당초 계획에도 없었고, 게다가 울산 시내에서 굉장히 멀다는 여러 악조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예상 이상의 이용객 대박을 내 주고 있다. “교통 불편하고, 비행기를 타느니 KTX 타지” 라는 비즈니스맨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리라 예상한다. 이는 앞으로 포항으로 가는 KTX에 대한 수요도 희망적일 것임을 시사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경우, 신경주 역은 손님 많이 뺏길 듯.

요컨대 KTX의 흥행 성적은 접근성이 너무 불편한 구미김천(아무리 구미에 공업 단지가 있다 해도 너무 불편..)이나, 병크에 가까운 ㅇㅅ 역을 빼면 전반적으로 최소 중박 이상인 것 같다. 요즘 KTX는 코레일에게 돈 잘 벌어다 주고 있는 cash cow임이 분명하며,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본인보다 더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가 있는 철덕이라면 의견 남겨 주기 바란다.

TRIVIA:

1. KTX 고속신선이나 요즘 복선 전철로 개량되는 철도야 고가와 터널이 정말 밥먹듯이 나오지만, 그야말로 20세기 초에 개통하고 복선화까지 되었으며 지형적으로 원래 평지이기까지 한 경부선 대전 이북 구간은 정말 터널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서울울 출발한 경부선 열차가 처음으로 터널을 만나는 곳은 대전까지 거의 다 와서 내판-부강 역 사이 지점이며, 나중에 부강-매포 사이에도 터널이 나온다. 겨우 몇 초 만에 다 통과해 버리지만, 그래도 열차 내부가 다 깜깜해지고 귀에 이명 현상까지 느껴질 정도이니 엄연한 터널이다.

2. 경부선 기존선에서 KTX 고속신선을 올려다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대전 이북에서 고속신선은 기존 경부선과 딱 두 번 마주치고 그나마 대전 북부에서 기존선과 고속신선이 좀 나란히 달린다. 김천 근처에서는 두 선이 자주 마주치는 편.

그런데 양 열차가 비슷한 시간대에 나란히 달려서 서로 상대방 열차를 볼 수 있게 되는 일은 얼마나 발생할까? 이를 예측하고 관측하는 건 마치 특별한 천체 현상의 관측하는 것 같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가끔 본 적이 있다.
혜성의 출현이나 일식· 월식 같은 건 시뮬레이션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 다 예측하는데, 이것도 열차 시각표와 지리 데이터를 주면 계산에 의한 예측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02/03 08:19 2012/02/03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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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우중(전 대우 그룹 회장) 씨는 경기고 출신인데 학창 시절에 좀 '놀아서' 서울대는 못 가고 연세대 상경과에 갔다고 한다.

2. 도올 김 용옥 박사(인문학자, 방송인)도 역시 학창 시절에 일탈도 하고 패싸움도 일삼을 정도로 좀 '놀았고', 특히 수학이 완전 바닥을 기는 바람에 서울대를 못 가고 고려대에 갔다고 한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형들은 다 KS(경기고-서울대) 라인에 교수가 돼 있는데 자기만 가문에서 학벌이 가장 안 좋아서 컴플렉스가 있었고 함. 그것이 훗날 그의 '학위 수집증' 기질에 영향을 준 것 같다.

3. 김 진우 교수(일리노이 주립대 언어학 명예교수, 연세대 석좌교수)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굉장히 잘 했고 원래 서울대 언어학과를 가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Catch Me If You Can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교통· 통신이 열악하던 옛날에, 하나밖에 없던 서울대 지원서가 어이없는 이유(가정사 관련..)로 소실되는 바람에 서울대에 지원 자체를 못 하고 차선책으로 연세대 영문학과에 가게 됐다고.
그래도 그 덕분에 최 현배 박사도 만나고, 지금은 서울대 대신 연세대 라인 인맥에 합류. 이분은 모교인 연세대에도 언어학과를 개설하고 싶어하는 1人이시라 한다.

4. 오 준호 교수(KAIST 전자공학)는 우리나라 최고의 로봇 전문가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카이스트' 하면 '휴보 로봇'이 떠오르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어릴적부터 기계 덕후였고 뼛속까지 공돌이였다. 당사자의 회고에 따르면, 공부에는 한동안 손을 놓고 지내다가 고등학교 때 수학에서 극한이라는 개념을 배우면서 공부에 순식간에 물미가 텄고, 교육과정을 다 따라잡았다고 한다. 흠좀무.
그러나 대학은 서울대 대신 연세대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독일어를 도저히 못 해서였다고 한다. -_-;;

좀 노느라 서울대를 못 간 바람에(3은 제외) 대신 간 학교가 연세대· 고려대급이라니 오늘날의 수험생들에겐 참 경악스럽긴 하지만,
옛날에는 대학 진학률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고 지방 국립대의 위상도 높았으며, SKY 그룹 안에서도 학교간 지원자의 학력 격차가 지금보다 더했음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오늘날처럼 재수· n수가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시절은 더욱 아니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기업인인 1을 제외한 2~4는 모두 석· 박사는 외국에서 마쳤다.

그리고 4번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게 있는데, 외국에도 역사적으로 라틴어 때문에 학력 발목이 잡힌 유명인사가 꽤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처럼.

끝으로, 본인은...
학부는 당시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을 가장 많이 인정해 주던 곳으로 가고,
대학원은 적성에 맞는 과를 찾다 보니,

서울대하고는 둘 모두 인연이 없게 됐다. 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2/02/01 08:52 2012/02/0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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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은 지구를 돌다가, 여느 우주선처럼 지구 대기권 마찰로 인해 발생하는 2천 도에 달하는 열을 견디면서 재돌입 후, 여객기마냥 케네디 우주 센터 내부의 활주로에 곱게 착륙까지 한다. 괜히 여객기 모양에 날개까지 달려 있는 게 아니다.

과거에 달에 갔다 온 우주선 승무원들이 낙하산 들고 바다에 첨벙 떨어지던 것에 비하면 메커니즘이 무척 발전한 셈이다. (단, 우주 왕복선이 하강할 때는 동력이 없는 관계로 여객기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하강하고 큰 힘을 받은 상태로 착륙한다.. 이때는 비행기보다는 글라이더에 더 가까운 셈. 착륙 전용으로 쓰이는 활주로는 무척 튼튼해야겠다.)

이 우주 왕복선이 처음으로 등장한 건 1981년이다. 한 대만 있는 게 아니라 외관상 거의 똑같게 생긴 여러 기체가 존재하는데, 처음으로 발사된 건 컬럼비아 호이고 이것 말고도 챌린저, 디스커버리, 애틀란티스, 인데버, 엔터프라이즈 같은 이름이 붙은 놈이 있다.

영국의 여객선 타이타닉 호도 상· 하행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동일한 규격의 자매선이 사실은 최소한 두 척 더 있었는데(올림픽 호, 브리타닉 호), 이와 같은 맥락이다. 우주 왕복선 역시 여러 대를 만들어서 하나를 띄운 뒤 번갈아가면서 유지 보수를 한다. 재사용 가능한 우주 왕복선 컨셉이니 진짜로 운영도 왕복선처럼 하는 셈이다. 다만, 생긴 건 거의 똑같아도 내부적으로는 나중에 만들어진 기체가 더 가볍고 성능이 조금이나마 더 최적화되어 있다.

여기서 본인은 흥미로운 차이를 아주 오래 전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1981년에 처음으로 발사된 컬럼비아 호의 발사 장면을 보면, 셔틀과 로켓이 모두 예쁜 흰색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 발사된 우주 왕복선들의 사진을 보면, 로켓의 외부 연료 탱크가 마치 녹이라도 슨 것처럼 붉은 갈색이다. 왜 그런지 굉장히 궁금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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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왕복선을 처음 발사할 때는 로켓 전체를 하얗게 도색을 했다. 외관상 예쁘기-_-도 하고, 또 흰색의 빛 반사 같은 다른 효과를 노린 게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굳이 거길 도색할 필요는 없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면서 안 하게 됐다. 셔틀이야 나중에 재돌입할 때 열을 무지하게 받으니, 열 좀 덜 받으라고 흰색을 칠할 수 있지만 연료 탱크는 어차피 일찌감치 갖다 버리는 게 아니던가. (발사 후 111km무렵의 고도에서 셔틀 본체와 분리되어 자유 낙하하다가 불타 없어짐)

게다가 그 도색의 무게만 무려 300kg에 달했다고 한다. 페인트는 몸을 무겁게 할 뿐이야. 그러니 여러 정황상 도색을 안 하게 됐다. 연료 탱크의 붉은 갈색은 녹-_-은 당연히 아니고, 단열재의 원래 색깔이라고 한다.

우주 왕복선들 중 디스커버리 호가 1984년 이래 지금까지 25년이 넘게 비행을 하여 최강의 짬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듣기로는 현업에서 뛰고 있는 우주 왕복선들이 예상 이상으로 고장이나 오동작률이 높아지고 있어서, 안전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다시 재래식 1회용 로켓으로 회귀해야 하나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말은 어디선가 들었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 안 남. 지금 우주 왕복선의 추가 생산이나 도입 계획이 없는 것도, 우주 왕복선 컨셉이 많이 시들시들해졌음을 의미한다.

이 우주 왕복선은 두 차례 큰 사고가 난 적이 있다. 1986년에 잘 알다시피 챌린저 호가 발사 후 2분을 채 못 넘기고 폭발하여 향후 2년간 우주 왕복선의 발목을 묶어 놓았다. 그리고 2003년에는 최초의 우주 왕복선인 컬럼비아 호가 임무를 마치고 재돌입하던 도중에 공중분해되었다..;; 그동안 수백 회 이상 우주 왕복선을 굴린 횟수와 이게 재래식 로켓에 비해 절약해 준 비용을 감안하면, 우주 왕복선은 1981년 이래로 30년간 잘 운영되어 온 게 사실이나, 사람들은 강렬하게 부정적이었던 사건만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3. 맺음말

우주 왕복선은 개발된 이래로 지구 저궤도만 뱅글뱅글 돌다가 귀환하곤 했으며, 오히려 그 용도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위험한 대기권 재돌입이 필요하고 충분히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도 마음만 먹으면 새턴 로켓 같은 크고 아름다운 로켓을 다시 만들어서 우주선을 쏘아올려서 달에 다시 갔다 올 수는 있지만... 경제성에 비해 잉여력이 너무 강해서 문제이다. -_-;;

본인은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 구간의 개통 내지 수인선 복선 전철 개통만큼이나, 뉴 호라이즌 호가 명왕성을 언제쯤 탐사하며 인간이 언제쯤 달에 다시 가게 될지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다. 아폴로 18~20호가 취소된 게, IMF 때문에 서울 3기 지하철 계획이 취소된 것만큼이나 애석하다. 비록 본인은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구를 떠나서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지는 않지만 말이다.

왜 하필 태양계의 둘째 행성 금성만 저런 불지옥이 돼 버렸는지가 참 안타까우며, 그게 마치 창세기 1장에서 둘째 날에만 '보기 좋았더라'라는 말이 왜 없는지만큼이나 애착이 간다. 이 정도면 철덕을 넘어 우주덕? -_-;;

Posted by 사무엘

2012/01/30 11:35 2012/01/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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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너무 오랫동안 글이 없어서 먼지 쌓이고 파리 날리던 천문· 우주 분야에 오랜만에 글을 남긴다.

1. 우주 정거장

철도에 역이 있고 바닷가에 항구가 있으며,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이 있는 것처럼 우주에도 station이 있다. 이름하여 우주 정거장.
우주 정거장은 쉽게 말해서 커다란 유인 인공위성과 같은 물건이다.

땅에 뿌리를 박고 건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structure/building보다는 unit에 가깝지만, 엄연히 여러 사람이 들어가서 우주에서 수 주에서 최고 수 년까지 체류가 가능한 공간이다. 자체 추진 수단이나 착륙 설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교통수단이나 비행체에도 속하지 않는다.

우주 정거장이라고 해 봤자 지구에서 의외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고도가 해발 기준 400km가 채 되지 않는 저궤도이다. 쉽게 말해 서울-부산 거리만치만 위로 올라가도 검은 우주와 둥글고 푸른 지구가 곁들어진 우주 정거장에 다다를 수 있다는 뜻. 그러나 사람이 체류하는 데 쓰는 수십~100수십 톤급의 거대한 구조물을 그 높이까지라도 쏘아올리는 게 쉬운 일일 리가 없다. (조립은 우주 공간에서 했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음속 여객기의 순항 고도가 대류권과 성층권 사이, 그리고 초음속 여객기의 순항 고도가 성층권이라면, 우주 정거장이 있는 곳은 열권이다. 인공위성은 태양열 발전을 위한 큼직한 집전판이 필수.

이런 우주 정거장이 하나쯤 있으면, 지구에서 인위로 세트를 만들거나, 아니면 아예 동력이 있는 우주선을 쓰는 것보다 인간이 우주 공간에서 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체류하면서 주변을 관찰하거나 무중력· 진공 관련 실험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이 이념 경쟁을 하던 시절에는 소련이 살류트 시리즈, 미국이 스카이랩 시리즈 같은 여러 우주 정거장을 띄웠다. 하늘 실험실이라니... 스카이랩 이름 한번 참 잘 지었다.
장비가 노후화하고 공기 저항 때문에 슬슬 추진력 약발이 다한 나머지 지구 대기권으로까지 도로 내려와 버린 우주 정거장은, 여느 인공위성이 그러하듯 태평양이나 대서양 어딘가에 추락함으로써 최후를 마친다. 폐기를 잘못하는 바람에 파편과 잔해라는 우주 쓰레기를 잔뜩 남긴다면, 민폐라고 국제적으로 까임권을 얻게 된다.

비교적 최근엔 구소련이 쏘아 올린 마지막 우주 정거장인 '미르'가 지난 2001년에 임무를 마치고 장렬히 산화하였다.
오늘날은 구소련이 붕괴하고 냉전도 끝나고 나라들이 서로 협력하는 구도이다 보니, 1998년에 미국, 러시아, 일본, 유럽 등 7개 국가가 협력하여 국제 우주 정거장(ISS)을 띄워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옛날에 <생명 그 영원한 신비> 다큐 기억하시는가? 일본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우주인인 모리 마모루 박사가 1992년에 우주로 나가서 수행한 임무 중 하나가 이 ISS의 건설을 위한 여러 준비 실험이었다. 뭐, 그 사람만 연구에 참여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한동안 지구상에 우주 정거장은 저 ISS밖에 없었고, 요즘 돈 처발라서 우주로 나갔다가 온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갔다 오는 곳이 바로 저기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설적인 프로그래머였던 찰스 시모니, id 소프트웨어의 존 카맥, 그리고 울티마의 개발자 리처드 개리엇(오늘날은 우주먹튀 개발자라는 비아냥-_-) 등... 억만장자 천재 프로그래머들이 다 저기 가려고 안달인 듯하고 실제로 갔다 온 케이스도 있다.

지난 2011년 9월에는 중국이 톈궁(天?) 1호라는 우주 정거장을 쏘아 올려 미국, 러시아에 이은 제3의 우주 정거장 발사국의 대열에 올랐다.

2. 우주 왕복선

지구의 어마어마한 중력을 뚫고 대기권을 벗어나 최하 수백 km 이상 고도의 우주로 나가려면, 잘 알다시피 어마어마한 추진력과 이를 지속적으로 공급해 줄 엄청난 양의 연료가 필요하다. 그 정교한 메커니즘이 하나라도 수틀리면 수백, 수천억의 비용을 들여 만든 로켓은 궤도 진입에 실패한 채, 그저 하늘 폭죽으로 전락해 버린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핵을 유도하고 있던 고스트가 중간에 죽어 버리면 핵은 어떻게 되던가..?
3천억짜리 간이역은 그래도 나중에라도 번화한 역이 될 수 있지만 3천억짜리 폭죽은 대체 뭐냐..;;

그 크고 아름답던 로켓도 발사된 후에는 연료 다 쓰고, 이것 떼어내고 저것 떼어내고 바다에 버리고... 재돌입· 귀환 후 남는 건 진짜 허무하기 그지없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부품 재활용을 잘 하도록, 그리고 무조건 뜨기만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떠서 궤도 진입 후에는 궤도 '비행'에도 더 용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우주선이 미국에서 개발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우주 왕복선이다.

우주를 왕복한다고 해서 지구와 달을 몇 번씩 왔다갔다 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우주 정거장 정도의 저궤도 왕복이다. 임무에 따라서는 우주 정거장과 도킹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왕복이라는 의미를 강조하여 영어로는 '(스페이스) 셔틀'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이게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빵셔틀, 칠판셔틀 등 굉장히 이상한 비하의 의미가 들어가 버렸는데, 원래 뜻은 그런 게 아니다. -_-;;

항공· 우주에 관심이 있는 친구라면, 이 '셔틀' 부분이 보잉 747 위에다 얹힌 채 공장으로부터 발사대로 공중 수송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형 로켓은 분해 후 육로, 특히 열차를 이용해서 나르느라 주요 부품들까지 궤간 폭을 초과하지 않는 크기로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그 반면 우주 왕복선은 저 정도 크기는 아예 통째로 쿨하게 비행기로 나른 모양이다.
사실, 로켓 부품의 수송 경로를 추적하는 것도 마치 지하철 전동차의 반입 경로를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울 것 같다. 이런 게 바로 교통수단간의 융합. ㅋㅋ

글이 길어지니 우주 왕복선에 대해서는 다음에 계속 다루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2/01/28 08:36 2012/01/2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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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C#이나 파이썬도 아니고 비주얼 베이직으로 작성된 코드를 C++로 포팅해야 할 일이 있었다. C/C++로 갈아탄 뒤로는 베이직 코드는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거 정말 몇 년 만이냐.

들여다봐야 하는 코드는 닷넷도 아니고 비주얼 베이직 6으로 만들어진 코드였다. 하지만 GUI가 아니라 계산 알고리즘을 포팅하는 것이기 때문에 포팅이 크게 어려운 건 없었다. VB6에서 닷넷으로 넘어가면서 완전히 뒤집어엎어진 건 API 체계이지, 언어 자체가 그렇게 많이 바뀐 건 우려한 것만치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자바와 자바스크립트의 관계에 필적하는 이질감은 아닌 것 같다.

언어가 바뀐 것은,
- 첫째, statement이던 것이 C 언어의 영향을 받아 다 일관된 함수 호출 형태로 바뀜. 그래서 매개변수 전체를 괄호로 싸야 됨. (파이썬도 3.0에서는 print가 statement에서 함수로 바뀜)

- 둘째, 타입이 예전보다 더 엄격해지고, 모든 변수는 반드시 사용 전에 선언을 해 줘야 함. 베이직은 원래 그런 걸 안 하는 언어이다가 하는 걸로 바뀌었다 보니, 변수를 선언하는 키워드가 Var이 아니라 Dim...이다. 원래는 배열을 선언할 때만 쓰는 키워드였지.
이런 추세를 정면으로 역행하는 GWBASIC의 잔재인 DefINT A-Z 같은 명령문은 당연히 퇴출이다.

- 셋째, 그리고 객체지향 패러다임에 맞춘 API의 전면 재구성이다. 예전엔 그냥 global 단위로 곧바로 호출하던 함수도 다 분야가 나뉘어서 클래스나 namespace에 소속된 메소드로 바뀌었다. 그래서 수학 함수도 바로 Sqrt라고 하면 안 되고 Math.Sqrt라고 써 줘야 하며, Math를 자주 쓴다면 Using 선언을 한 뒤에 생략해야 한다. 하긴, 비베에는 예전부터 With 키워드는 있긴 했다만.

이 정도.
요즘 언어들은 C/C++ 영향을 받아서 다들 대소문자 구분을 하는 게 유행이기 때문에, 혹시 비주얼 베이직도 그렇게 바뀌지 않았으려나 생각했다만...
의외로 명칭에 대소문자 구분을 안 하는 건 VB6이나 닷넷이나 마찬가지이다.

베이직은 원래 좀 가볍고 동적인 언어였는데, MS의 닷넷 입맛대로 대수술을 거치다 보니 그냥 C#의 표현력에 필적하는 전형적인 절차형 언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전의 베이직 같은 느낌은 파이썬이 더 잘 간직하고 있는 듯.

배열 첨자도 ()로 싸고, 함수 호출 인자도 ()로 싸는 건 베이직의 특징이다. 언뜻 보기에 굉장히 혼동될 것 같은데 C++처럼 [] () 따로 연산자 오버로딩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의외로 둘이 문법 차원에서 혼동될 일은 없다. 참고로 본인은 ::와 .의 구분이 없는 객체지향 언어들에 대해서도 의아해한 적이 있었는데 이 구분 역시, 포인터만 없다면 거의 필요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베이직은 대입도 =, 동등 비교도 =이다. A=B=1이라고 하면 C언어 식으로 치자면 A=B==1처럼 해석된다. 원래 베이직의 대입문은 Let A=1 처럼 써 줘야 맞는데 Let이 C언어의 auto만큼이나 캐잉여로 전락하는 바람에 지금 같은 꼴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Let을 Dim처럼 변수 선언 키워드... 아니 C++0x의 auto처럼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Dim A as Double
Dim I as Integer

뿐만 아니라

Let A = 0.52 '자동으로 실수 확정
Let I = 5    ' 자동으로 정수 확정

이렇게도 되게 말이다. 타입이 이랬다저랬다 바뀌는 Variant가 아님. 기발하지 않은지? ㄲㄲ

베이직처럼 구문 분석이 쉬운 언어는 IDE의 인텔리센스나 코드 자동 완성 같은 기능이 C++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안드로메다급으로 훨씬 더 빠르고 똑똑하고, 돌아가는 게 손에 착착 달라붙는다. 도스 시절의 퀵베이직이 이미 인텔리센스만 없을 뿐이지 그런 꿈의 프로그램 개발 환경을 어느 정도 제공하고 있었다. 빌드 속도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음.

그러나 C++ 코드는 실시간으로 코드 변경 사항을 IDE가 따라잡으려면, 비주얼 스튜디오든 Source Insight든, 어쨌든 background에서 소스를 다 까 보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어떻게든 처리 속도를 올리려고 덕지덕지 남기는 부가 정보 데이터가 많다. 함수 이름을 바꾼 게 C/C++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 최소한 수 초 뒤에 IDE의 ClassView에 반영되는 반면, 베이직은 ‘즉시’이다.

이런 생산성과, C++ 특유의 졸라 가볍고 효율적인 네이티브 코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프로그래밍 언어 + 개발 환경은 정녕 없는 것일까.
하긴, 윈도우 환경에서 베이직 언어로 네이티브 코드를 생성하는 컴파일러는 MS 제품 중에는 없고 파워베이직이라는 브랜드가 있다. 하지만 인지도가 안습한 수준.

Posted by 사무엘

2012/01/26 08:45 2012/01/2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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