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학 전공자 내지 IT 분야 종사자에게는 상식으로 통용되는 당연한 개념이다만..
오늘날 범용(generic-purpose)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1. 로컬

흔히들 PC로 대표되는 컴퓨터에서 stand-alone으로 동작하는 전통적인 프로그램이다. Windows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피스, 비주얼 스튜디오 같은 업무용 프로그램은 아직 로컬 프로그램의 아성을 무너뜨릴 영역이 없다.
가장 역사가 길고,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동작하며, 특정 컴퓨터 아키텍처(기계어)와 운영체제의 실행 파일 포맷에 종속적이다. 그래서 이쪽 개발 환경은 전통적으로 C/C++ 같은 저수준 최적화 언어가 강세이다.

물론 클라이언트가 아닌 서버 프로그램은 성격이 약간 다르긴 하나, 서버 프로그램 자체는 역시 서버라는 로컬 컴퓨터 자신의 자원만을 이용하여 동작한다. 여객 운송과 화물 수송의 차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리고 사실은, 다음에 설명할 2.웹 프로그램을 돌려 주는 기반도, 클라이언트든 서버든 1.로컬 프로그램들이 다 마련해 주고 있다. 그러니 로컬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없어질 수는 없다. 단지 전체 소프트웨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 뿐이다.

옛날에는 불특정 개인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업용 제품은 패키지 형태로 발매되곤 했지만, 오늘날은 인터넷의 발달과 극심한 불법 복제로 인해 이런 전통적인 형태의 배포의 비중이 굉장히 줄어들었다. 오늘날 국산 패키지 소프트웨어는 아래아한글과 V3 말고 있나? -_-;; 또한 보안 위협으로 인해 이런 프로그램 역시 한번 설치하고 끝이 아니라 끊임없는 보안 패치와 업데이트의 필요성이 커져 있기도 하다.

2. 웹

개인용 컴퓨터의 성능이 굉장히 향상되고 그에 따라 웹 표준이 발달하면서 웹브라우저, 정확히 말해 WWW는 단순히 그림과 하이퍼링크가 동원된 문서라기보다는 거의 프로그래밍 플랫폼처럼 오래 전부터 바뀌었다.

웹 프로그래밍의 최대 매력은 로컬을 월등히 능가하는 범용성과 기계 독립성, 생산성이다. 브라우저에서 사이트 접속만 하면 바로 실행..;; 마치 게임처럼, 클라이언트와 서버, 코딩과 디자인 등을 두루 아우르는 종합 예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령, 옛날에는 GWBASIC이나 LOGO로 어린 학생들에게 그래픽 프로그래밍 교육을 시켰다면, 지금은 그냥 HTML5만 써도 될 것이다.

물론, 로컬 개발에 비해서는 혼자 독립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느낌이 좀 덜 들며-_-, 기술이 아직까지 안정화해있지 않은 면모가 있고, 로컬 컴퓨터 자체를 세밀하게 제어할 수 없으며 성능이 떨어진다는 한계도 있다. 가령, 오피스 제품군이 웹 애플리케이션으로 완전히 대체될 날은 과연 글쎄?
그러나 앞으로 웹 프로그래밍의 비중은 절대 무시 못 할 것이고 수요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3. 앱

스마트폰에서 동작하는 '로컬'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성격이 역시 1과는 사뭇 다르다.
스마트폰 자체는 PC보다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로컬에서 모든 처리를 마친다기보다는 서버에다 input을 보내서 받은 output을 보여주는 형태의 앱이 많다. 또한 스마트폰은 화면이 작고 PC 같은 빠른 문자 입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PC와는 다른 독자적인 GUI가 필요하다. 터치스크린은 마우스와 완전히 동일한 포인팅 UI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hovering이란 게 없다) 다만, PC에는 없는 기울임, 흔들림, 방향, 현재 위치 같은 특수한 입력을 받아들일 수 있다.

스마트폰은 PC만치 사용자가 컴퓨터 내부를 완전히 손쉽게 제어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그래서 PC용 프로그램보다는 더 엄격한 과금 체계를 갖추고 프로그램을 배포하여 수익을 낼 수 있다.
스마트폰 앱은 역사가 짧기 때문에 PC 같은 지저분한 호환성 잔재 같은 게 덜하고, 일찍부터 자바든 C#이든 객체지향 언어와 가상 기계 바이트코드 기반의 프로그래밍 환경이 잘 구축돼 있다. 깔끔한 최신 프로그래밍 인프라가 기본으로 제공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스마트폰 CPU는 ARM 아키텍처밖에 없지만, 그래도 커널 말고 다른 응용 프로그램들은 네이티브 코드가 아니다. 그런 .NET이나 자바 같은 가상 기계 자체가, 1~3(로컬, 웹, 앱) 사이의 이질감을 낮추고자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울러, CPU의 성능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LCD 디스플레이 소자가 보편화하고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스마트폰 같은 물건도 대중화될 수 있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곧 메인프레임-단말기 모델이었다.
컴퓨터라는 게 무진장 비싼 물건이고 자원이 귀하다 보니, 모든 처리는 중앙 컴퓨터에다 맡기고 각 사용자는 단말기로 서버에 접속해서 명령 프롬프트에서 서버의 기능을 사용하곤 했다. 그때는 컴퓨터는 대학, 연구소, 정부 기관, 군대의 전유물이었고,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을 감히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았었다. (알파넷이 미국이 아닌 소련에서 발명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게 오늘날의 인터넷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_-)

그러다가 20세기 말에는 PC가 대세가 되었다. 개인용 컴퓨터 하나만으로 어지간한 일은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만원버스에 시달리면서 출퇴근하다가 번듯한 자가용이 생긴 셈.
PC의 사고방식으로는 소위 PC 통신은 어쩌다 한 번씩만 다른 컴퓨터에 접속하는 특별한 작업이며, 웹브라우저 역시 오피스 패키지처럼 별도로 구입해서 사용하는 특수한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 후 오늘날 대세라고 회자되고 있는 건 일명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개인용 컴퓨터가 무진장 작아지고 통신 인프라가 발달한 덕분에, 예전처럼 부족한 자원을 공유하려고 컴퓨터들을 연결하는 게 아니라 진짜 유비쿼터스 세상이 돼서 컴퓨터들을 연결한다. PC 통신 시절에만 해도 하이텔 단말기가 있었는데 오늘날의 스마트폰에 비하면 얼마나 격세지감인가!

전세계 컴퓨터가 다 인터넷에 연결되고 클라이언트와 서버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궁극적으로는 (거의) 모든 작업이 웹 프로그램만으로 해결되고 모든 자료가 웹에 저장되는 세상이 온다. 예전에는 PC끼리 자료 전송을 위해서 플로피 디스켓이나 USB 메모리를 썼는데, 이제는 사용자의 로컬 컴퓨터나 스마트폰 그 자체가 플로피 디스켓이나 USB 메모리와 마찬가지가 된다는 뜻.

이걸 역시 자동차에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사람이 직접 자가운전을 하니까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도로가 막히고 여러 문제가 생기다 보니, 전세계 도로가 한데 통제되고 지능형 임대 자가용이나 궤도 교통수단이 생겨서 모든 사람들이 그걸 간단히 이용하는 형태가 된 셈이다.
물론 이게 온전히 실현되려면 시스템적으로나, 보안 쪽으로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14 08:26 2011/10/1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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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고향집에 있는 부모님께서 사용하시는 PC는 내가 쓰는 PC보다야 훨씬 더 구닥다리 기종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펜티엄 3에 램은 192MB인 윈도우 2000/ME급 사양이었다. 완전 골동품..;;

그런데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서 서비스를 받고 났더니, 도대체 누구에게서 서비스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컴퓨터에 윈도우 XP가 깔려 있었다.;;
잘 알다시피 XP는 못해도 램이 256MB 정도는 돼야 쓸 수 있는 덩치이지 않은가. 부팅에서부터 간단한 인터넷 확인을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본인의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결국 본인은 내가 대학 학부 시절에 쓰던 펜티엄 4 + 램 512MB짜리 컴으로 PC를 교체해 드렸다. 부모님이야 진짜로 간단한 인터넷 접속 + 워드 작업밖에 안 하시기 때문에 기계가 물리적인 고장만 안 난다면 이 컴을 앞으로 10년-_-은 더 쓰실 법도 해 보였다. 한때 내가 개인 작업용으로도 쓰던 컴이었으니, 인계 당시 최적화는 잘 되어 있었고 윈도우 XP의 체감 속도는 씽씽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고향에 가서 확인해 보니, 악성 코드가 덕지덕지 달라붙어서 컴의 성능을 다 깎아먹고 있었다.
부팅 직후에 시작 메뉴를 열어서 웹브라우저를 띄울 때 운영체제가 굼뜨는 모습이 꼭 옛날의 램 192MB짜리 컴을 쓰던 것과 비슷했다. 램이 그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은 컴에서 말이다.;;

시스템 정보 → '로드된 모듈'을 보면 정체 불명의 이상한 dll이 explorer.exe 내지 iexplore.exe에 달라붙어 있었고, 파일을 지우고 레지스트리를 아무리 정리해도 이런 파일은 재부팅 후에 잡초처럼 계속 생겨나곤 했다.
USB 포트로 메모리 스틱이나 외장 하드를 이 컴에다가 꽂았다가 빼서 확인해 보면, 역시나 루트 디렉터리에 이상한 exe와 autorun.inf가 생겨 있었다.

나는 이런 부류의 악성 코드들이 운영체제에 어떤 방식으로 기생하는지, 어떻게 전염되는지 기술적 디테일을 전혀 알지 못한다.
내 컴퓨터에 지금까지 그런 것들이 침입한 적이 없으며, 내가 스스로 대처한 경험이 없다. 난 내 컴에 백신도 전혀 안 깔고 지낸다.

저런 악성코드를 완전히 뿌리뽑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본인은 집 컴의 C:를 그냥 밀어 버리고 운영체제를 다시 설치했다. 사실, 컴퓨터의 상태가 굉장히 안 좋기도 했다.
마침 내가 대학 시절에 만들어 놨던 윈도우 XP sp0(-_-) 원본 씨디가 있어서 그걸 썼다.
XP sp2 통합 씨디 이미지를 갖고 있긴 하지만, 또 씨디 굽기가 귀찮아서..;;
허나 그것이 본인에겐 고난의 시작이었다..;;

운영체제 자체의 설치는 40분 남짓한 시간 만에 별 탈 없이 됐다.
그래픽 카드는 nVidia GeForce의 완전 구닥다리 초창기 모델이어서 그런지, 별도의 드라이버를 설치할 필요조차 없이 운영체제가 알아서 잡아 줬다.
원래 그래픽 카드가 잡혀 있지 않으면 그냥 800*600 슈퍼 VGA의 제일 기본 VBE 모드만 가능하다. 그것보다는 약간 나아진 셈이다.

그리고, XP 이전 2000 이하의 OS는 그래픽 카드 드라이버를 설정 안 하거나 안전 모드로 부팅한다거나 하면, 아예 640*480 16컬러 VGA밖에 지원되지 않았으니 그 시절은 참 어지간히도 암울했었다. 단, 덧붙이자면, 9x 계열과는 달리 2000은 원시적인 16컬러 VGA에서도 화면이 바뀌는 곳에서 마우스 포인터가 깜빡거리는 현상이 없던지라, 얘는 하드웨어 제어를 어떻게 하는지 본인은 개인적으로 궁금증이 들곤 했다. 이것이 NT 커널의 위력인가..?

악성 코드 없이 광속으로 반응하는 청정 OS를 써 보는 기쁨도 잠시. 새 OS는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20세기의 유물로 전락한 전화 걸기 대화상자가 뜨는 걸 보고 경악했다.
어라? 네트워크가 전혀 설정되어 있지 않았고, 장치 관리자에 가 보니 이더넷 컨트롤러의 드라이버가 정체 불명이라고 찍혀 있었다.

본인의 컴퓨터 하드웨어 지식은 “요즘은 랜 카드나 사운드 카드는 다 마더보드 내장인데 OS가 알아서 다 잡아 주지 않나?”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두 가지 카드는 다음과 같았다.

1. 2001년에 나온 구닥다리 SP0이어서 못 잡는 것이 아닐까? SP2를 따로 설치하면 아마 자동으로 잡힐 것이다. (잘 알다시피 윈도우 XP SP3은 SP1 이상을 요구하며, SP0에서 바로 설치 못 함)
2. 아니면, 이 컴퓨터의 랜 카드의 메이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Realtek 브랜드의 드라이버 아무거나 설치해 주면 될 것이다.

사실, 최신 운영체제는 무엇보다도 최신 하드웨어의 지원 능력면에서 구버전보다 우월하다. 이 점에서는 심지어 과거의 윈도우 ME도 98 SE보다 훨씬 더 낫다. 98만 해도 드라이버를 따로 설치 안 하면 USB 메모리조차 인식을 못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50여 MB에 달하는 SP2 설치 파일을 다른 곳에서 애써 복사해 오고, 내가 아는 랜 카드 드라이버를 몇 개 구해서 설치해 봤다. 하지만 두 시도 모두 실-_-패로 끝났다. 특히 SP2는 이 운영체제가 어둠의 경로-_-로 설치된 거라는 걸 알기라도 했는지 제품 시리얼 번호를 갖고 트집을 걸면서 더 진행을 거부하였다.

이런 와중에 새 OS는 설치된 지 불과 몇십 분 만에 또 악성 코드에 감염됨으로써 나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인터넷이 아예 안 되는 컴퓨터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범인은 아까 그 프로그램들을 복사· 설치하기 위해 꽂은 어머니의 USB 메모리였다. 그 메모리는 이미 예전 컴퓨터로부터 악성 코드가 묻을 대로 묻어 있었을 것이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USB 메모리의 autorun을 실행하지 않게 하는 윈도우 보안 패치는 생각보다 한참 뒤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 컴퓨터의 OS는 업데이트 하나 없는 XP sp0으로, 온갖 보안 결함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호구이지 않던가. 이런 우라질레이션..;; -_-;;

도대체 CD롬도 아니고, 디스켓이나 다름없는 USB 메모리를 꽂기만 하면 자동으로 autorun이 돌아가게 해 놓은 친구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기능을 넣었는지 모르겠다.. 키보드 입력을 버퍼 크기 제한도 없이 받아들이는 C언어의 gets 함수만큼이나 보안 면에서 멍청하고 위험한 디자인이 아닌가?

그런 주제에 윈도우 XP의 설치 프로그램은 설치 도중에 자기 운영체제와 웹브라우저에 대해서 '가장 강력하고 보안이 뛰어나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으니 그 어이없음에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뭐, 10년 전에 그랬다는 소리니까 봐 주자.;; 9x 계열이 갖고 있던 자유도와 유닉스 계열의 엄격함과 탄탄함(robustness)은 동시에 충족될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이념이니까 말이다.

이미 시스템 정보에는 악성 코드 DLL이 올라가 있었고, 레지스트리에서는 역시 정체 불명의 실행 파일이 시작 프로그램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탐색기에서 드라이브를 열 때의 동작 방식도 이상하게 바뀌었다.
악성 코드를 없애려고 운영체제를 재설치했는데 일이 꼬여서 이렇게 되었고 랜 카드도 전혀 잡히지 않았으니, 본인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SP2가 적용된 윈도우 XP 원본 씨디를 또 만들었다. 귀찮아서 안 하려 한 짓을 결국은 하게 됐다. 그리고 그걸로 XP SP0을 밀고 윈도우를 또 새로 설치했다. 그래서 악성 코드는 노아의 홍수와 같은 심판으로 또 없애 버렸지만, SP2로도 랜 카드는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참다못해, 이놈의 랜 카드의 정체가 뭔지 파악하기 위해 컴퓨터의 케이스를 개방해야 했다. 랜 카드는 ASUS 마더보드 내장형이었는데, 모델명별로 자기만의 랜 카드 드라이버가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장치 관리자에서 드라이버를 이걸로 업데이트하자 드디어 네트워크 설정이 잡히고 인터넷이 되기 시작했다. 휴우...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인터넷이 되니 이제 큰 불은 껐다. 다른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기 위해 가상 CD 구동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그리고 구닥다리 IE6을 당장 IE8로 교체했다. 세상에 컴퓨터 역사상 굴지의 IT 기업들이 앞장서서 “고객님, 제발 이 버전 쓰지 말고 업그레이드 하세요!”라고 하소연을 하고, 너무 오래 살아남아서 죽지 못해 사는 좀비처럼 된 소프트웨어가 IE6 말고 또 있을까?

비주얼 C++ 6도 너무 오래 살아 있는 소프트웨어이긴 하지만, 일단 이건 불특정 다수가 쓰는 프로그램은 아니고. 그런데 요즘은 어느샌가 IE 7마저도 이제 지원 안 할 거니까 업글하라고 눈칫밥을 주는 웹사이트가 하나 둘씩 생기고 있다.

IE 7이나 8을 XP에서 첫 설치하려면 무슨 IME의 동작과 관련된 운영체제 패치부터 먼저 설치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IE는 잘 알다시피 문자 입력과 관련된 괴이한 현상이 심심찮게 존재하는데, 역시 서로 민감한 부위를 건드리긴 하는가 보다.
플래시 메모리에 묻어 있는 악성 코드도 못 걸러내는 주제에, 웹브라우저가 자동 다운로드 기능을 차단하는 건 본인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불편했고 헛다리 짚는 듯한 느낌이었다. 필요한 팝업창을 차단해서 불편한 것보다 더 불편했다.

이런 식으로 컴퓨터를 대강 세팅했다. 고향에서 맨날 밥만 얻어먹고 가는 게 아니라 이번엔 고향집 컴퓨터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아버지 차에다가 내 돈으로 기름도 몰래 채워 넣는 등, 이쁜 짓(?)도 좀 하고 왔다. ^^;;
허나, 내년 설날에 고향에 가 보면 또 컴퓨터에 악성 코드가 덕지덕지 묻어 있을 것 같다. -_-;;; 혹시 부모님 직장의 컴들은 이미 다 오염돼 있지는 않나 모르겠다. 여쭤 보니 운영체제도 비스타/7이 아니라 XP라던데.. 더욱 걱정된다.

글을 맺으며..;;

1. 이번 일을 계기로, 보안 패치 없는 윈도우 XP는 정말 쓰레기라는 걸 체험했으며, 컴퓨터 환경에 따라서는 랜 카드도 저렇게 잡아 줘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2. 옛날에 윈도우 9x는 설치 GUI가 아예 윈도우 3.x 엔진 기반이었다. 그리고 9x만의 특징인데, 오래 쓰다 보면 가끔 메뉴의 ▶ 모양이라든가 윈도우의 버튼들이 숫자· 문자로 바뀌는 기괴한 버그가 나타나곤 했다. 아무리 옛날에 PC 환경이 열악했다고 해도, 그런 허접하고 불안한 운영체제를 어떻게 몇 년간 썼는지 놀랍기 그지없다.

3. 악성 코드는 정말 구제역 같은 느낌이 든다. 컴퓨터 보안 쪽으로 더 알고 싶다.

4. 윈도우 비스타가 깔린 본인의 컴은 데스크톱과 노트북 모두 3~4년째 OS의 재설치 없이 악성 코드 청정 지대이며, 이상 무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11 19:25 2011/10/1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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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노래 해설

1.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 온 겨레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 새 세상 밝혀 주는 해가 돋았네
한글은 우리의 자랑 문화의 터전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2.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 넉 자는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한글은 우리의 자랑 민주의 근본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3. 한 겨레 한 맘으로 한데 뭉치어 힘차게 일어나는 건설의 일꾼
바른 길 환한 길로 달려 나가자 / 희망이 앞에 있다 한글 나라에
한글은 우리 자랑 생활의 무기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이 노래는 제목이 그냥 <한글 노래>이다.
즉, 한글날과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한글 자체에 대한 찬가라는 점에서, 제헌절 노래나 삼일절 노래, 6· 25 노래 등과는 위상이 좀 다르다.

한글 노래는 언제 봐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참 감동적이다.
지난 2004년엔 본인, 가사를 손으로 필사한 적도 있다.

잘 알다시피, 이 노랫말을 지은 분은 외솔 최 현배 박사이다. 많고 많은 국어학자 중에 그분 정도로 한글을 진정 사랑한 분만이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수준의 역동적인 가사를 쓸 수 있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1절은 한글 창제의 감격을 묘사했다.
외솔의 동지이자 조선어 학회 사건 당시의 fellowprisoner (롬 16:7, 골 4:10, 몬 23)이었던 석인 정 태진 선생이 1949년 <한글날을 맞이하여>라고 발표한 논설을 보면 비슷한 표현을 볼 수 있다.

“과연 그 날이야말로 우리 배달민족이 길고 긴 어두움에서 새로운 빛을 보던 날이었고, 그 날이야말로 과연 우리 민족이 오래오래 죽음의 길을 걷던 발길을 돌려서 영원의 삶의 길로 나아오던 바로 그 날이었던 것입니다.”

영생의 길.. 가히 종교적인 수준의 찬사인걸? (단, 너무 기쁨에 겨웠는지, 글 중엔 한글과 우리말을 그렇게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은 표현도 좀 나오며, 6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기엔 다소 구태의연한 권면도 없지는 않음)
내 신앙관과 짬뽕을 하자면, 그야말로 성경에 나오는 의의 태양(말 4:2) 같은 심상이다.
주찬양 선교단 7집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의 2번 트랙 <빛>을 BGM으로 깔면 적절할 것 같다.

2절은 한글의 우수성이 묘사되어 있다.
외솔의 저서 <한글갈>에 있는 문장을 보면, 노래 가사는 저서의 요약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한글은 그 짜임이 가장 과학스럽고 그 자형이 정연하고 아름다우며, 그 글자 수가 약소하고도 그 소리가 풍부하며, 그 학습이 쉽고도 그 응용이 광대하여 글자로서의 모든 이상적인 조건을 거의 다 갖추었다 할 만하니, 이 글자를 지어낸 세종대왕 한 사람 당대의 밝은 슬기가 능히 천고만인의 슬기를 초월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글자를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하니 이는 고금이 다름없고 안팎이 한가지이다.”

한글을 ‘민주의 근본’이라고 칭한 것도 단어를 아무렇게나 선택한 게 아니다. 외솔의 평소 지론이 담겼다.
배우기 쉽고 편리한 글자로 문맹을 퇴치하고 국민들을 똑똑하게 만들어야만 민주주의도 실현된다는 그분의 철학은, 유고작인 <한글만 쓰기의 주장>을 읽어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3절로 가자.
전통적인 기독교 찬송가를 보면, 앞부분은 예수님이나 크리스천의 삶에 대해서 노래하다가도 마지막 절은 재림, 천국, 내세 같은 거시적인 주제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코레일의 사가 Oh Glory Korail도 보아라. 마지막 절은 한국 철도가 대륙을 넘어 세계로 뻗어간다고 스케일이 확 커지지 않던가. ㄲㄲㄲ

그런 맥락에서 한글 노래의 마지막 3절은, 한글을 통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김 동길 전 연세대 교수가 1980년대에 한글 문화권에 대해서 글을 썼듯이 말이다.

물론 21세기가 된 지금, 현실은 시궁창이다. 굉장히 시궁창이다.
외국어는 범람하고 국어 문법은 갈수록 잡-_-탕이 돼 간다.
그리고 미래가 안 보이는 경제 불황과 영적 배도와 타락, 그리고 막장으로 치닫는 사회 시스템 앞에서는... 한글이고 나발이고 답이 없다. -_-
나도 솔직히 육신적인 심정으로는 한글 문화권 나부랭이 따위를 바라느니(교리적으로 다분히 후천년주의적이기도 하다ㅋㅋㅋ), 차라리 하늘나라를 바라고 말겠다.

허나, 그래도 한국보다 더 못 사는 나라들로부터 이민자는 꾸준히 유입되고 있고,
생업을 위해서든 한류 열풍 때문이든, 오늘날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비록 진짜 메이저급 언어의 학습자에 비할 바는 못 되더라도 은근히 ‘많다’.
신토불이니,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다” 식의 구태의연한 드립을 동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 끼인 우리나라가 우리만의 개성을 내세워서 세계에 얼굴을 내밀려면 미우나 고우나 한글을 들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한글이 ‘생활의 무기’란다. 최 현배 박사는 공 병우 한글 세벌식 타자기의 가치를 알았고, 문자를 다루는 기술을 기계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던 사람이다. 그랬기 때문에 ‘무기’라는 단어를 썼다. 자, 이 정도로 풀이하니 한글 노래의 가사가 정말 외솔스럽다는 게 와 닿으시는지?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주 시경 선생은 그 옛날에 불모지이던 국어학의 기초를 닦고 한글 맞춤법의 근간을 마련해 놓았다.
최 현배 박사를 비롯한 조선어 학회의 학자들은 언어학의 결정체인 국어사전을 만들었다.
공 병우 박사는 기계와 사람의 편의성을 기가 막히게 조화시킨(=C언어스러운?ㅋㅋ) 전대미문의 한글 타자기를 발명했다.
그리고 아래아한글을 만들어 낸 프로그래머들은 음..;;
아놔 다들 너무 천재들이다..;;

그 다음으로 본인은 지금까지 해 놓은 일이 그 ‘한글탑’ 위에다가 벽돌 한 장 정도 올려놓은 수준은 되려나..? ㅋㅋ
(연세 대학교 캠퍼스 안엔 연세 한글탑이 있다.)

9월 18일 철도의 날과 10월 9일 한글날은 딱 3주 간격이며, 둘은 같은 요일이다.
고로 올해는 철도의 날과 한글날이 모두 일요일이다.
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본인, 무릎을 쳤다.
철도와 성경이 만나듯, 철도와 한글 쪽도 이렇게 만날 필요가 있다. ㅋㅋㅋㅋ

예전의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김 진우 교수님은 이번 학기에 연세대 국문과 학부에서 <언어학의 이해>를 강의하고 계시는데, 한글날 근처의 주엔 이례적으로 여타 단원을 건너뛰고 ‘문자의 발달사’ 단원을 강의하신다. 당연히 한글을 기리기 위해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09 08:33 2011/10/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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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 소프트웨어들이 다 그렇듯이, 본인의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도 자기 정체성을 소개하는 고유한 About 대화상자가 있다. 타자연습은 그냥 별도의 About 탭이 대화상자를 대신하고 있고..;;

이게 참 재미있는 게, 원래 도스 시절에 풀다운 메뉴를 갖춘 각종 응용 프로그램들은 About 표시 기능이 맨 첫째 메뉴의 첫째 항목에 있었다.
하지만 윈도우 운영체제의 관행은 정반대로 맨 마지막 도움말 메뉴의 맨 마지막 항목에 About을 놓는 것인지라, 위치가 그렇게 바뀌어 버렸다.
과거 도스용 아래아한글과 윈도우용 아래아한글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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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래아한글은 아래아한글이고, 이제 내 프로그램의 경우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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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프로그램이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어느 부속품이며(편집기, 외부 모듈, 변환기 등등) 부속품의 버전이 무엇인지를 명시한 후, 이 프로그램이 <날개셋> 한글 입력기라는 제품의 구성 요소임을 밝힌다.
(이 글은 최신 6.3버전이 완성되기 한참 전에 작성된 글이어서 스크린샷은 6.2 기준. -_-)

모든 부속 프로그램들은 About 대화상자를 표시하는 명령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편집기는 도움말 메뉴에, 외부 모듈은 language bar의 도움말 메뉴에, 변환기는 대화상자의 시스템 메뉴에, 입력 패드는 트레이 우클릭 메뉴에 등.

그 다음으로 나오는 것은 한글 입력기 전체의 버전과 구동하는 CPU 비트수이며, 이 프로그램의 간단한 용도와 저작권, 날짜, 라이센스, 제작자 홈페이지 주소처럼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 ^^

거기에다 간략한 운영체제 버전과 메모리 양 정보는 액세서리. 윈도우 9x에서는 리소스 퍼센티지도 나온다. -_-
개인적으로는 홈 에디션, 프로페셔널 에디션, 서버 에디션 같은 정보도 표시해 주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귀찮아서-_- 생략.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버전과 함께 나타나는 비트수는, 현재 돌아가고 있는 모듈의 비트수이다.
그러므로 64비트 OS에서 64비트 에디션을 설치했더라도, 현재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32비트라면 이 수치는 32비트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걸 보면, 굳이 작업 관리자를 열지 않더라도 이 프로그램의 비트수를 바로 알 수 있다.

그 대신, 64비트 OS에서 32비트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면, 운영체제 버전 다음에 '64 bit'라는 숫자가 따로 명시된다. 이 점 착오 없기 바란다.
32이든 64이든 운영체제와 프로그램의 비트수가 일치하면 이런 말이 따로 뜨지 않는다.

외부 모듈은 이것 말고도 유용한 정보가 About 대화상자에 또 뜨는 게 있다.
바로, 스크린샷에서 보다시피 현재 구동 중인 응용 프로그램이 TSF / IME중 어느 기술 계층을 사용하는가이다.
비스타부터는 무조전 TSF이니까 이게 큰 의미는 없다만, TSF A급인지 B급인지도 가르쳐 주고, 게다가 비스타 이상에서는 TSF 확장 모드를 사용 중인지도 알려 준다. (TSF A*라고 별표가 추가됨)

한글 입력기로서, 특히 사용자가 버그 신고를 할 일이 있을 때 무척 유용한 정보를 덩달아 제공해 주는 셈이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또한, 오늘날의 사용자가 볼 일은 없겠으나,
윈도우 9x에서 윈도우 3.x용 16비트 프로세스 밑에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 IME를 돌려서 About 대화상자를 띄웠다면,
무려 16 bit IME mode라는 말까지도 뜬다. -_-;;
무조건 NTVDM을 돌리는 NT 계열은 해당사항 없음.

IME라든가 훅 DLL 같은 걸 만드는 게 아니라면, 32비트 DLL이 16비트 EXE 밑에 붙을 일은 없을 텐데, 무척 신기한 경우이다. 16비트 EXE는 32비트 EXE처럼 자신만의 주소 공간을 갖고 있지 않고 굉장히 이상한 방법으로 실행된다.
그 상태를 판단함으로써 지금 EXE가 16비트인지 32비트인지를 알 수 있다.

그 반면, 32비트와 64비트끼리는 과거처럼 호환성이고 썽킹(thunking)이고 나발이고 없이 코드가 서로 상종을 안 하기 때문에, 둘을 완전히 따로 만들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32비트와 64비트는 이렇게 서로 따로 노는데도 불구하고, 비주얼 C++ IDE는 32비트 프로그램임에도 64비트 OS에서 64비트 프로세스를 잘도 디버깅을 할 수 있는지 무척 신기하다. 제아무리 커널 오브젝트 핸들을 32비트와 64비트 프로세스끼리 공유가 가능하다 해도, 이건 보통일이 아닌 것 같다.

이상,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about 대화상자에 대한 설명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07 08:17 2011/10/0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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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으로 보는 옛날 열차들의 추억

오늘날 인터넷으로만 컨텐츠가 제공되고 있는 두산 동아의 <두산 세계 대백과 사전>의 전신은, 바로 동아 출판사의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이다. 무려 1982년에 총 30권 분량으로 나온 책으로, 전체의 가격은 그 시절 물가로 100여 만 원에 달했다! 오리지널의 타이틀에 ‘원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던 이유는, 당연히 그 시절에 올컬러로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이 출판된 건 가히 보통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1990년대에 서비스 팩이라고 해야 할까, 보유편이 두 권 추가로 나왔다. 내 기억이 맞다면, 마지막 보유편에 서울 지하철 5호선에 대해서 “현재 건설 중이고 개통 예정인 지하철”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현재 우리집에서 아직까지 이 책을 주기적으로 꺼내 보는 사람은 가족 중에 물론 나밖에 없다. ㅋㅋㅋ 어머니께서 그 옛날에 그 거금을 들여서 본인의 교육을 위해 투자를 하신 셈이다.
지금은 20년이 넘은 책의 표지 껍질이 우수수 떨어지고 종이가 슬슬 누렇게 변하는 중. 종이가 세월이 들어서 누렇게 변하는 건, 아예 불타서 누렇고 검게 변하는 것과 속도만 다를 뿐 화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산화 현상이라고 하니, 후덜덜하다.

1990년대 초· 중반엔 이 백과사전의 24권의 앞부분만 너덜너덜했다. ㅈ이 시작하는 부분이었고 ‘자동차’ 표제어의 풀이와 자동차 원색 화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본인의 관심사가 컴퓨터, 한국어 등으로 옮겨 갈 때마다 그쪽의 access가 순간적으로 늘곤 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백과사전에서 분량이 가장 많은 표제어는 단연 ‘대한민국’이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모든 요소가 줄줄이 소개돼 있기 때문에.;; )

그러나 지금 자주 보는 부분은 당연히 철도 쪽이다. -_-;; 한국 철도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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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오옷!!
DEC와 EEC가 모두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철덕이라면 엄청난 감격과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잘 모르시는 분이라면 본인의 옛날 글 복습 요망
이 백과사전은 초판이 1982년에 나왔으며 따라서 원고는 거의 1980년 무렵에나 작성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DEC, EEC가 지금으로 치면 마치 누리로만큼이나 갓 도입되었으며, 새마을호 말고 무궁화· 통일호라는 명칭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이다.

본인이 옛날에 쓴 이 글에서 언급돼 있듯, DEC는 새마을호였고 EEC는 우등 열차(현재의 무궁화) 컨셉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때는 특대형 기관차가 여객 열차의 시속 150도 달성하기 전이었던지라, 110이 빠른 열차로 간주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때 넘사벽급 귀족 열차라던 새마을호의 좌석이 지금의 KTX하고 비슷하게 느껴지지 않은지? -_-

뉴욕 지하철 전동차는 영화에서 맨날 보던 모습이니 친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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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이 마치 비행기(전투기)처럼 동그란 건 신칸센만의 전매 특허이고.
우리나라에는 2004년부터 등장한 KTX의 전신이 바로 저 주황색 떼제베 열차이다. 외형이 벌써부터 좀 친숙하다.

물론, 우리나라에 도입된 건 저 정도로 구닥다리 버전은 아니고 1996년도 버전인가 그렇다. 전동기의 출력을 더 키워서 한 편성을 무려 20량 935명 수송으로 만든 건 한국 것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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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1991년판 기네스북의 국내 기록을 보자.
이제 드디어 시속 150km가 나오고, 새마을호 디젤 동차가 나온다.

하지만 내가 늘 강조하지만, 새마을호 디젤 동차가 최초로 등장한 건 1987년이고, 이 동차가 시속 150km와 서울-부산 4시간 10분을 최초로 달성한 건 아니다. 그 전에 특대형 디젤 기관차가 끄는 유선형 새마을호가 1985년 11월에 이미 시각표 개정을 통해 4시간 10분을 달성했다.

철덕이라면 경부선 열차가 특히 어느 구간에서 전속력인 시속 150km로 달리는지도 알 필요가 있다. 이 블로그를 뒤져 보면 답이 나오니 관심 있는 분은 찾아 보시길.

Posted by 사무엘

2011/10/04 19:11 2011/10/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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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노선하고, 그 노선을 상징하는 전동차는 서로 일대일관계가 딱히 성립하라는 법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관계를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서울 지하철을 예로 들어 보자.

1호선 하면 떠오르는 터줏대감 차량은 누가 뭐래도 히타치 사의 저항 전동차이다. 바로 이것! (장소: 철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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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 도입된 저항 방식 전동차라고 하여 철덕들 사이에서는 ‘초저항’이라고 불린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지하철의 역사를 간직한 차량이 아닐 수 없다.
운전석의 중앙에 저렇게 문이 달린 게 당시 일본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물론 일본은 지하철이 죄다 협궤인 관계로, 저런 커다란 전동차는 만들어서 수출만 했을 뿐 본토에서 굴리지는 않았다.

1974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그 오리지널 전동차는 이미 2000년대를 전후해서 모두 퇴역했다. 하지만 차량과 편성수의 증결로 인해 동일한 스펙으로 나중에 도입된 전동차는 2000년대 중· 후반까지 간간이 명맥을 유지했다.
철도청(현 코레일) 소속 차량은 파란색, 서울 지하철 공사(현 서울 메트로) 소속 차량은 빨간색 도색이었다는 건 상식.

2호선은 유일한 순환선인 데다, 승강장에 가장 늦게까지 구닥다리 플랩식 전광판이 남아있었고 차량도 2호선에서밖에 볼 수 없는 레이템이었다. 게다가 외곽이나 강변이 아니면서 지상 고가 구간이 간간이 있다는 점도 2호선을 더욱 특색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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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에서만 볼 수 있던 터줏대감 차량은 역시 MELCO 쵸퍼 전동차이다. 사실은 2005년부터 도입된 신형 전동차도 한동안 유니크 아이템이긴 했다.

3호선 하면 떠오르는 건 단연 배불뚝이 GEC 쵸퍼 전동차. 객실 내의 천장에 모니터가 달려 있던 유일한 차량이었다. 지금처럼 서울 메트로 자체 방송이 나간 게 아니라 새마을호처럼 코모넷이라는 외주 업체가 방송 컨텐츠를 따로 공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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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전동차는, 3호선과 같이 동시 건설 중이던 4호선에도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4호선은 과천선과 직결되고 GEC 쵸퍼 전동차는 교직 겸용이 아니었던 관계로 얘는 2호선에 일부 대체 투입되었다.

그래서 본인의 기억 속엔, 서울 지하철들 중 유일하게 4호선만 차량의 개성이 가장 희미하다. 다른 호선들은 개통 초기에 어떻게 생긴 전동차가 다녔는지 본인이 분명히 아는 반면, 4호선은 잘 모르겠다.

현재는 100% VVVF인 건 확실하고, 그냥 1호선에서 볼 수 있는 코레일/서울 메트로 VVVF 차량의 subset이 다니는 듯. 단, 1호선엔 없는 애드립도 있는데, 서울 메트로가 굴리는 차량 중 대우 중공업 제조 차량은 7호선 1차 도입분 차량과 동일한 시끄러운 GEC 알스톰 구동음이 난다는 게 특색이다. 1호선에는 그런 차량이 없다.

다음으로 세월이 흘러 2기 지하철 시대가 열린다.
5~8호선 전동차는 차량 프레임은 표준화 내지 단일화가 되어서 다 똑같다. 그래서 1~4호선과는 달리 5~8호선은 이례적으로 외형이 천편일률적이다. 애드립을 찾자면 전면부의 색깔띠의 모습이 5호선만 6~8호선과는 차이가 있으며, 통유리가 7, 8호선의 2차 도입분 차량부터 도입되었다는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또, 6호선 전동차만 객실 내부에 쇠기둥이 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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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선은 전면부의 두 겹짜리 색깔띠가 아래로 삐치지만, 5호선만 한 줄이고 앞에 '서울도시철도'라는 문구까지..)
물론, 외형은 비슷해도 under the hood는 여전히 제각각인지라 전동차 구동음은 노선별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본인은 ‘VVVF의 향연’이라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

5~8호선만이 2011년 현재까지 전동차의 순혈주의(?)가 가장 잘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이 질서도 7호선 연장으로 인한 3차 도입분 전동차가 들어오면 다소 흔들리게 될지 모르겠다.

끝으로 9호선 전동차는 전국의 다른 전철 노선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외형을 하고 있다. 동글이를 좋아하는 요즘 추세에 걸맞지 않게 외형이 좀 각진 느낌을 준다. 그리고 헤드라이트는 아예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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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차량은 조향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자동차와 같은 주황색 깜빡이(방향 표시등)는 전혀 의미가 없으며,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진과 후진을 완전히 동일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자동차로 치면 헤드라이트 겸 후진 경고등(white)이, 브레이크 경고등(red)과 나란히 놓이게 된다.
그런데 9호선 전동차는 이 둘이 나란히 놓인 게 아니라 완전히 따로 놓였다는 게 인상적이다.

다만 9호선 전동차는 외형은 독특해도 under the hood는 공항 철도나 여타 지방 지하철과 동일하여, 구동음은 음높이만 다를 뿐 다들 비슷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전동차들 중, 도철의 5~8호선 전동차가 제일 무난하게 생긴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02 08:21 2011/10/0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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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약 율법과 말라기 구절을 근거로 십일조 헌금을 부과하고, 심지어 솔로몬을 따라 일천번제(?)라는 이상한 헌금 제도까지 시행하는 교회가 적지 않다.
2. 목사는 거~룩한 “주의 종”이고 구약으로 치면 레위 인이다. 교회 예배당은 거룩한 ‘성전’이다.
3. 안식일은 고증상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라며, 어떤 교회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안식일도 모자라서 유월절을 지키는 곳도 있다.
4. 오늘날 수많은 개독안티들은 모세오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트집을 잡는다. 그러면서, 기독경 바이블이 말하는 신은 반인륜적이고 잔인하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신이라고 공격한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고 행한다면 이런 것도 그대로 행하겠냐ㅋㅋ라고 막 빈정댄다.
5. 성경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위의 조롱을 좀 의식하는 사람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와 심판의 신인 반면, 신약의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의 신”이라는 식의 드립? 쉴드?를 친다. 이 사람들은 구약 성경을 근거로 제시되는 각종 ‘보수적인’ 기독교 윤리관(사형 제도, 동성애, 낙태, 옷차림과 외모 등등등)에 대해서도, 동일한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쏙 빠져나간다. -_-;;


이 모든 사례는 성경을 바르게 나누지 않아서 발생하는 촌극이다. 그 사례가 겨우 저 다섯 가지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신약과 구약 교리를 잘못 분간하여 저질러지는 병크는, 기독교회가 존재하는 한 아마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_-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든, 개독안티이든,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방향만 다를 뿐 그 누구라도 똑같이 걸려 넘어지고 오류에 빠지게 된다. 성경은 그렇게 호락호락 만만하게 쓰여진 책이 아니다.

위의 다섯 사례들에 대한 본인의 코멘트는 이러하다.

1.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 성도는 복, 믿음에 대한 구도와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말 3:10 같은 십일조에 대한 보상 자체가 오늘날의 크리스천에게는 약속되어 있지 않다. 성경 어디에도 신약 성도가 예수 잘 믿거나 교회 열심히 잘 다니거나 헌금 많이 하면 물질적인 복을 받고 부자 된다는 약속은 없다. 신약 성도들이 이미 받은 영적 복은 엡 1:3에 규정되어 있고, 헌금 원칙은 고후 8:12 같은 자발적인 규정이 전부이다. (이 관행에 대해서 통탄하는 어느 목사님의 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몸과 시간과 물질을 바치지만, 그 일을 하는 동기에다 구약의 마인드를 집어넣는 건... 정말 생뚱맞고 안 어울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받은 믿음으로 헌신할 뿐이지, 걔네들처럼 ‘십일조 바치면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보상 받는지 따져보자’ 이러는 구도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2. 구약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벧전 2:9, 엡 2:21, 고전 3:16 같은 구절과 비춰 봤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 -_-;;;
물론 본인은, 자긴 그 잘난 제사장의 의무를 다하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만 만인 제사장 운운하는 뺀질이를 아주 싫어하며, 목사와 교사 직분 자체를 부정하는 모임도 명백히 잘못됐고 비성경적이라고 여긴다.

3. 오늘날 신약 교회가 지키는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며, 그와 아무 관계가 없다. 일요일 예배는 예수님이 부활한, 더 정확히 말하면 부활이 알려진 날에서 유래되었을 뿐이다. 태양신 축제와 연관 짓는 건 성탄절, 이스터 정도로 족하다. 일요일 자체는 아무 문제될 게 없다.

4. 이런 부류들은 도대체 어디부터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환이 상한 자, 안면이 함몰된 자는 군대에 가지 못할지니라”고 하면, 얘네들은 군대가 장애인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집단이라고 드립을 칠 친구들이다. 가나안 백성들을 다 진멸하라고 명령한 하나님 탓할 줄만 알지,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명령을 100% 이행 안 하고 걔네들로부터 안 좋은 거 배워서 동화되다가, 죄에 빠져서 하나님에게서 똑같이 큰 벌 받은 건 눈에 안 들어온다.

트집 잡는 게 다 저런 식이다. 저 친구들은 성경에서 그런 의문과 이해가 안 되는 부분만 해결되면 성경을 믿겠다는 의향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알기 때문에, 나도 더 친절하게 설명 안 할 생각이다.
수학의 ‘수’짜도 모르는 초딩이 “님들아, 입실론 델타 증명부터 로피탈의 정리까지를 A4 한 장에다 내가 알기 쉽게 좀 설명해 주셈” 질문 달랑 던져 놓고는, 답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욕지거리 하는 것과 같은 꼴.

그리고 끝으로,
5. 성경 66권을 통틀어 짐승과 수간하지 말라고 명령되어 있는 곳은 구약 율법밖에 없다. 그럼, 저 논리대로라면, 신약 크리스천들은 짐승과 수간해도 괜찮겠다. ㄲㄲㄲㄲ
저 사고방식의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성품이 시대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게 절대 아니라는 데 있다. 단적인 예로,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이라는 명제는 신약과 구약에 동급으로 인용되어 있다(신 4:24, 히 12:29). 그리고 구약 율법에도 정말 가난한 자, 어려운 자를 배려하는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 구절은 얼마든지 있다.

신약과 구약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서 여러 할 말이 있지만, 요약하고 또 요약하자면 이렇다.
구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선택하셨다. 각자 자기 favorite gods들을 찾아 떠난 이방 민족들을 상대로 누구의 신이 진짜 신인지 객관적으로 맞장 뜨는 구도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신정 국가 컨셉의 특이한 규범이 많았고 당장 눈에 띄는 보상에 대한 약속도 많았다. 그러나 몇몇 얘네들의 민족적 특수성이 감안된 규범을 제외하면, 윤리와 관련된 대다수 규범들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유익한 것들이다.

그 후 신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정작 유대인들은 그분을 거부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방인을 상대로 교회를 만들고, 교회로 하여금 유대인들의 질투심을 유발해서 유대인들까지 예수님을 믿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래서 신약 규범은 비격식· 비가시적이고, 자율적이고, 영적인 것이 많다. 그런데 그게 더 수준이 높다.

다만, 이런 하나님의 경륜의 저변에 깔린 공의와 사랑이라는 두 성품은 시대를 불문하고 불변 동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사실을 전제에 깔면 신구약과 관련된 상당수의 오류를 예방할 수 있다.

불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신자? 개독?)들은 도대체 왜 너네 주장만 맞다고 생각하느냐? 맞다는 근거로 맨날 성경을 들이대는데 그건 순환논리이고 우리 같은 불신자한테는 씨알도 안 먹힌다.”
본인은 왕년에 종교 배틀을 한두 번 벌여 본 것도 아니고, 걔네들의 심리 정도는 다 꿰뚫고 있다.

그런데, 참 애석하게도... 진짜로 성경은 순수한 동기로 먼저 믿어야지 나머지 부분도 나중에 차츰 이해가 되게 된다. 나도 저것보다 더 속시원한 반격을 하고 싶어 죽겠는데, 더 할 게 없다. 성경 신자들의 신앙은 세속 논리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당연히 순환 논리도 갖고 있고,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이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겠는가.

단, 일단 먼저 믿어서 나쁠 게 절대 없는데도, 안티들은 성경을 잘못 적용한 극단적이고 이상한 부류들이나 들먹이면서, 그걸 일반화하여 종교가 사람의 정상적인 이성을 마비시키고 우민화한다고 깐다. 그건 그렇지 않다고 그 정도는 본인이 반박해 줄 수 있다. 이해나 증명이 불가능한 몇몇 핵심 명제만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이후부터 기독교 교리는 그걸 바탕으로 철저한 논리와 일관성과 질서 그 자체이다.

본인은 구약 율법과 크리스천의 관계를 군대에다 비유한 적이 있다.
율법은 군인에게 부과되는 온갖 제약과 규율들이다. 그 중에는 각종 심신 단련과 규칙적인 생활처럼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유익한 게 많다. 인간에게도 유익하고 군대가 돌아가는 데도 필요하니까 그런 게 명시된 거겠지.

마치, '10시 취침, 6시 기상'은 전세계 군대나 민간인들이 지켜서 나쁠 게 없는 규정인 반면, '우리의 주적은 북한'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대한민국이라는 민족의 특수성 하에서만 유효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개독안티들이 비판하는 건, '전시에 적진으로 도주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같은 법규를 보고는, 잔인하고 반인륜적이라고 욕하는 것과 거의 똑같다. 저 군법이 과연 잔인하고 반인륜적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약 교회의 크리스천은 민간인이다. 그걸로 끝이다. -_-;;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먹혀드는 비유는 없을 거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가 낳은 사람들 가운데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일어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그보다 크니라. (마 11:11)

위의 말씀은, 제아무리 뼛속까지 FM인 1등급, A급 병사라 해도, 제대한 민간인보다는 못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뭐가 못하다는 건지 모르는 분은 없을 테고.

오늘은 요기까지만 쓰련다.
신약 vs 구약과 더불어 자매품(?)으로는, 신구약 ‘과도기’의 교리와 신약 교리를 잘못 분간하는 오류가 있다는 걸 아울러 밝힌다.

요놈의 주된 부작용으로는 치유나 방언 같은 잘못된 은사주의 교리가 있다. 그래서 행 2:38이 교회 성도들에게 직접 적용되는 교리로 왜곡되고, 막 16:17-18을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 버린다.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구사하고, 중환자에게 안수만 하면 병이 즉시 낫고, 청산가리 같은 걸 마셔도 안 죽고..;; 우리가 시도했다가는 다윈 상 수상자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데? -_- ㄲㄲㄲㄲㄲㄲㄲㄲ

이건 다른 책보다도 마태복음과 사도행전과 히브리서를 잘못 적용했을 때 나타나기 쉬운 증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30 08:46 2011/09/3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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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 받던 시절

찬송가를 부르고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한 뒤, 나는 침례를 받았다. 우선 허리까지 차는 깊이까지 바다로 들어갔다. 침례자는 내 얼굴을 수건으로 감싼 뒤, 나를 얼굴까지 바닷물 속으로 뒤로 제꼈다가 다시 들어올렸다. 오호~ 이런 게 침례로구나. 정말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2002년 8월 11일자 본인의 일기 중에서)


본인은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중· 고등학교 미지의 시기에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내 구주로 영접했다. 그 후 대학 시절에 킹 제임스 성경(KJV)을 접했다. 그 전엔 기독교 신앙이라는 게 막연하게 그저 맹목적으로 무조건 믿는 수밖에 없어서 불신자들 앞에서는 말도 못 꺼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킹 제임스 성경은 단순히 읽는 성경뿐만이 아니라 세세한 교리 노선까지 바꿨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바르게 알게 된 교리 중 하나가 바로 침례이다.
침례는 성도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후, 예수님의 죽으심과 매장· 부활에 내가 동참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의식이다. 신약 교회에서는 침례와 더불어 주의 만찬이라는 단 두 종류의 의식만이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

침례는 그 성격상 온몸이 물에 잠기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물을 가져와서 행하는 게 아니라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가서 하게 된다. 마치 플룻이나 기타는 악기를 가져와서 연주하지만, 피아노는 악기가 있는 곳에 사람이 가서 치듯이 말이다.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아닌 것만큼이나 침례도 구원의 조건이 절대로 아니다. 먼저 구원받고 나서 그 증표로서 침례를 받는다.
그리고 침례는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며, 스스로 자기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란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 군대에 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비행기 비상구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수준... 보다는 덜 엄격하겠지만, 어쨌든 최소한의 조건은 있다.

하나님 앞에서 세례는 무효이다. 더구나 유아세례는 더욱 잘못된 관행이다. 쉽게 말해서 아래 그림에서 (1)이 맞고 (2)는 틀리다는 것.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서 침례 받으시는 모습을 묘사한 온갖 성화· 성경 만화들 중에, 고증상 오류가 있는 게 정말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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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를 기름부음(anointing)과 헷갈려서는 안 된다. 또한 침례는 할례하고도 아무 연결 고리가 없다.
성령 baptism은 성령님이 이마에만 찔끔 임하는 게 아니며, 불 baptism은 이마에만 불이 붙어 활활 타는 게 아니다.
세례든 침례든 뭐가 대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것 때문에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곤 했다. -_-;;

이건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할 차원이지, 성경 자체를 세례 에디션, 침례 에디션으로 따로 내는 건 마케팅 전략일 뿐이다. 침례를 주는 게 당연한데도 오늘날은 침례를 주는 교파만을 침례교라고 따로 부를 정도이니, 매우 통탄스러운 현실이다.

2002년! 킹 제임스 성경을 갓 알게 된 후, 본인은 인터넷으로 관련 분야 지식을 탐독하면서 본인과 함께할 믿음의 동지들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침례를 줄 곳이 주변에 없는지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한글· 세벌식 진영에서 알게 된 어느 지인이 KJV 쪽으로도 안면이 있는 분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리고 그분이 나가는 교회 모임에도 따라 나가게 되었다.

거기는 가정 교회? 지방 교회? 비스무리한.. 그런 모임이었다. 66권 전서가 번역되어 있다는 이유로 흠정역을 쓰긴 하지만, 안티오크의 권위역(당시 신약만 존재하던)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히 9:15-17을 근거로 '유언'(testament)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했다.
일체의 기성 개신교회의 관행을 다 부정하고, 목사도 싫어하고(그래도 자기네 모임에도 결국 목사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는데!),
속세를 떠나 아미쉬나 워치만 니처럼 사는 걸 좋아하고,
자매는 예배 때 머리에다 너울을 씌우고,
매주 모일 때마다 만찬을 하고, 포도즙 잔을 돌려가면서 입 닦으면서 마시고,
제비뽑기로 예배 인도자를 뽑고는 성도들끼리 돌아가면서 성경을 강론하고...
뭐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KJV를 알기 전에 겨우 20대 초반이던 본인의 영적 수준은,
“나중에 서울에서 지내게 되면 어느 유명한 대형 교회에 등록할까? 그런 곳에 다니면 최신 기독교 문화를 최전방에서 바로 접하면서 살 수 있겠지?”
“NIV 다음으로는 표준새번역, NASV, NLT 등 중에서 무슨 성경 역본부터 읽을까?”
이랬었다. 진짜로.

그랬으니, 갓 KJV를 알게 된 직후, 본인은 아직 그쪽 지식이 충분치 못했으며, KJV를 옹호하고 기존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비성경적인 관행을 반대하기만 하면 무조건 나의 아군으로 간주했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보는 저런 작은 모임에도 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그 모임에 수 개월 나간 후, 여름 MT 행사에서 드디어 침례를 받게 되었다.

뭐, 그분들은 침례를 밥티스마라고 불렀다. -_-;; 그리고 너 정말 구원받은 거 확실하냐고 내게 거듭 확인을 하곤 했다. 나중에 딴소리 하면서 침례를 다시 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사연을 거쳐 본인은 침례탕도, 수영장도 아닌 자연에서 흐르는 물속에서 침례를 받았으며 그때의 신앙 고백을 갱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로 본인에게 침례를 준 교회 진영과는 교제를 중단하게 된 것이 아쉽긴 하다. 나도 지식이 늘면서 점점 벌어지는 교리 차이와 분위기 이질감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기를 탈퇴했다. 비록 교리는 정당한 교제 중단 사유이긴 하지만, 좀 곱게 나오지 못한 건 유감스러운 점이긴 하다.

그리고 2003년, 본인은 흠정역을 사용하는 다른 교회를 대전에서 다니게 되었고, 그 계열의 교회를 서울에서 오늘날까지 계속 출석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 년 남짓 뒤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대부흥 + 철도 성령 강림이 있었고. ㄲㄲㄲㄲㄲ
지금으로부터 벌써 8~9년 전인 2002~2003년이 내 인생에서 흥미롭던 시절이긴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28 09:05 2011/09/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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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튜브> 분석 --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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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훈이 오토바이로 전동차를 따라잡는 유명한 스턴트 장면. 당연한 말이지만 스크린도어가 없던 시절이니까 이런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고속터미널 역에서 점프를 하고는 논현 역에서 전동차에 달라붙는 건 도대체 무슨 순간이동이냐! (논현 역은 저렇게 높은 천장이 없기도 하고, 또 고텀-논현은 똑같이 대리석 인테리어여서 서로 연계를 한 건 좋은 아이디어이긴 함. 그럼 촬영 전체를 왜 고텀 역에서 하지 않았냐고? 아마 고텀은 논현과는 달리 곡선 승강장이어서 묘기를 하기가 더 어려워서 그러지 않았을까? 철덕이라면 이 정도 수읽기는 할 줄 알아야 한다. ㅋㅋㅋ)

참고로 <라이터를 켜라>에서는 논현 역 대합실을 서울 역 대합실로 설정한 장면이 촬영되기도 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참고하라. 아주 그냥 지하철역을 일반 철도역으로.;;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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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런 기믹을 생각해 냈는지는 모르지만, 도철(SMRT) 관할의 5~8호선 전동차는 천장에 저런 전광판이 원래 달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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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의 요구 사항이 충족되지 않자, 강변북로와 동호대교를 배경으로 국철 옥수 역이 박살난다.
저런 규모의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고 지하철역에 잘 숨겨져 있다가 터지는 건, 내부 소행 내지 역무원을 매수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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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7호선 전동차가 2호선 선로로 진입해 청담 대교가 아닌 잠실 철교를 건너고 있다. 잠시 후 김 석훈과 박 상민이 다시 전동차 안에서 대면하여 칼부림을 하게 되는데, 이때는 분위기상 전동차가 다시 어두운 지하로 들어간다. 잠실 철교 이북은 한양대까지 가서야 지하가 나오니, 그렇다면 전동차는 이남인 잠실 방면으로 들어갔다는 뜻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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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발의 차이로 상· 하행 열차가 충돌을 피하고 평면 교차하는 장면인데, 당연히 CG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를 보면, 붉은 램프(=자동차로 치면 브레이크 경고등. 후방)가 켜진 열차가 우리 쪽으로 전진해 오고, 흰 램프(=자동차로 치면 헤드라이트. 전방)가 켜진 열차가 뒤로 멀어져 간다는 것.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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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차가 딱 한 번 멈춰 서고 벌어진 터널 내 총격전 장면은 아예 부산 지하철 2호선 전동차를 썼다. 전동차가 더 홀쭉하고 작은 걸 알 수 있다.
부산 2호선 전동차는 서울 7호선 1차 도입분 전동차와 동일한 구동음을 내기 때문에 고증상 유리하다. 그런데 본인이 정말 놀란 건... 영화에서는 박 상민이 이 전동차를 도로 출발시킬 때, 서울 지하철 5호선 전동차의 구동음이 난다는 것! 이 음향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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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다 끝나고, 잠깐 나오는 이 사람도 누군지 잘 모르겠다.
김 석훈은 혼자 열차에 남아서 최대한 오래 스위치를 붙잡고 있다가 죽는 설정(이것도 굉장한 억지 설정이긴 하다만)인데, 설마 살아나기라도 했나..?
그리고 credit roll이 올라가기 전에 잠깐 뜨는 이 문구도 OST 제목이기라도 한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인은 알 길이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26 08:22 2011/09/2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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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튜브> 분석 -- 上

<튜브>(백 운학 감독, 2003)는 잘 알다시피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하철 테러를 컨셉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배급사가 튜브 엔터테인먼트인데, 이 영화와는 관계없이 원래부터 이름이 튜브였다.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악재도 있고 해서 국내 영화관에서는 그리 흥행하지 못했지만, 외국에 비디오 수출로는 본전을 뽑았는가 보다. 그래서 외국의 파일 공유 서비스들을 뒤져 보면, 웬 희한한 언어로 더빙이 된 <튜브> 영화 파일이 돌아다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좋은 점: 철덕들에게 볼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김 석훈· 배 두나· 박 상민 등 배우가 참 멋있다. 밤에 연인들 분위기가 참 낭만적이고 멋있고, 음악도 좋은 편.

아쉬운 점: 인위로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드느라 어거지가 너무 많고, 서울 지하철 시스템에 대한 고증이 너무 개판이다. 코미디 컨셉이 짙은 <라이터를 켜라>(새마을호 배경)보다 훨씬 더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인 장면과 고증 오류는 저것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다. 현실성은 이 말년의 만화 <이니셜 엠>과 비슷한 수준 ㅋㅋㅋㅋㅋㅋ

이 글은 <튜브>의 스토리를 일일이 다루지는 않을 것이고, 주요 특징이나 옥의티들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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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는 도입부부터 김포 공항을 배경으로 한 총격전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건 정말 귀한 기회를 이용해 촬영한 것이었다.
김포 공항은 원래 국제선 청사 둘과 국내선 청사 하나인 세 개의 터미널로 이뤄져 있었다. 그런데 인천 공항이 개항하면서 김포 공항의 역할이 크게 축소되었고, 그래서 국제선 청사가 하나 줄어들게 되었다. 어차피 건물 리모델링을 해야 하던 차에 공항 당국은 영화 촬영 협조를 허가할 수 있었고, <튜브>의 총격전은 2002년 4월 25일부터 5월 2일까지 공항 건물 전체를 빌려서 그 중 나흘을 작업한 끝에 만들어졌다. (☞ 관련 기사 클릭)

공교롭게도 그 전라선 상행 새마을호 3콤보 인명 사고(2002년 5월 1일)와 거의 비슷한 기간이구나.
참고로, 새마을호 열차가 배경인 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촬영하는 도중엔 실제 촬영지인 울산 역에서 배우가 열차에 빨려들어가 치여 숨지는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이는 2002년 3월 13일의 일이다. (☞ 관련 기사 클릭)

지금처럼 도색이 변경되기 전(2006년경)에 파란색 비중이 높던 옛날 경찰차를 볼 수 있다.
자동차가 펑 폭발하는 장면은 무술 감독이 직접 몸을 던져 차를 운전하면서 연기한 것이라고.

공항 총격전을 찍은 것은 가히 절호의 기회를 이용한 것이지만, 이 영화는 개봉운이 없던 걸로 유명하다. 2003년 초에 개봉할 예정이었는데 하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딱 터져 버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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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이 문화방송(문화바탕이 아니다!)체이다. MBC가 과거에 사용하던 전속 서체. 이 서체 자체가 좀 이탤릭스럽게 기울어져 있는데, 그 글자를 더 기울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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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연 배우들. 김 석훈은 정말 잘생겼고 배 두나도 아주 귀엽고 매력적이다. 박 상민은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테러리스트 연기를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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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두나는 영화에서 소매치기 짱으로 나온다. 하지만 형사인 김 석훈을 짝사랑한다.
왼쪽에 있는 양아치 행동대장 소매치기는 맨날 김 석훈에게 붙잡히는데, 이건 마치 쿠마키치와 우사미의 관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_-;;; “소매치기라는 이름의 신사” 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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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상민은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국가 정보원 요원 정도로 나오고, 김 석훈은 국가 안보 그딴 건 관심 없고 오로지 박 상민과의 개인적인 원한 관계 때문에(아내가 그에게 살해당함) 그를 쫓는 형사로 나온다. 이 장면은 김 석훈의 아내의 생전 모습인지, 아니면 다른 내연녀인지 그건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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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영화인데 이런 스턴트 정도는 양념으로 있어야지. 응암순환도, 봉화산도 아니고 대흥이 뭐냐. 대흥 역도 6호선의 주박역 중 하나이긴 하지만, 대흥 행 열차는 막차 시간대가 아니면 평소에 볼 일이 없다.
설정상 상행과 하행 열차를 연달아 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상행과 하행 열차가 모두 대흥 행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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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상민이 노리는 서울 시장은 녹사평 역에서 지하철에 탑승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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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일행이 지나고 있는 곳은 무려 서울 서쪽 끝의 김포공항 역.
그나저나 첫 탑승은 옥수 역이었던 것 같은데? -_-;;; 장소가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글이 길어지니 다음편을 기대하시라. 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1/09/23 19:14 2011/09/2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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