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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계시와 비유

1.
먼저 성경 말씀 패러디부터 좀 소개하겠다. 난 철도의 역사가 드디어 욥기 장면과도 오버랩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내가 서울-부산간의 땅에 철길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누가 그것들의 궤간을 정하였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선로 위에 열차를 맞춰 놓았느냐?
그 차량의 대차를 어디에 고정하였느냐? 혹은 그것의 동력 기관을 누가 놓았느냐?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욥 38:4-7 패러디)

"이제 내가 너를 만들 때 함께 만든 특대형 디젤 전기 기관차를 보라. 그가 소처럼 기름을 먹느니라.
이제 보라, 그의 기력은 엔진에 있고 그의 힘은 발전기와 연결된 전동기에 있느니라.
그가 자기 바퀴를 백향목같이 움직이며 동력 전환 계통의 부품들은 서로 얽혀 있고
그의 대차는 강한 놋 덩이 같으며 그의 차축은 쇠막대기 같으니라.
그는 하나님의 철길들 중에서 으뜸이거니와 그를 만든 이가 자신의 연장을 그에게 가까이 댈 수 있느니라." (욥 40:15-19 패러디)


베헤못 빙고.
사실, 힘 자체는 전기 기관차가 더 좋지만 소리와 포스가 더 웅장한 건 디젤 전기 기관차여서.. ^^
욥이 그 당시에 무슨 총연장 몇 km에 차량이 몇 량 있는 사철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 사장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나란히 있는데.. 그때 본인은 윌리엄 워즈워쓰의 유명한 시 <무지개>가 문득 떠올랐다. 본인은 아주 오래 전에 접했지만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역설법 싯구가 워낙 강렬해서 내 기억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아이와 어른을 대조한 다른 유명한 구절은 성경에서 고전 13:11인데, 거기서는 어른이 된 뒤에 유치하고 초딩스러운 일을 버렸다는 심상이어서 낭만주의 시와는 분위기가 영 다르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첫 행이 무척 공감이 갔다. 나는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가 아니라 when I listen to Looking for You일 때 my heart leaps up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영원무궁토록 그러하리라! 그리고 자연의 경건함이 아니라 철도의 경건함 속에서 매일 매일 살고 싶다.

아니, 시의 제목 자체를 레인보우가 아니라 레일웨이라고 바꿔도 될 것 같다. 소리가 비슷하다!
예전에 3· 1 운동 관련 글을 읽으면서 천도교를 보면서도 철도교를 연상한 적이 있었다. rain과 rail도 역시 ㄴ과 ㄹ 차이이다!

3.

"참고로 카지노의 카페트와 조명들은 전부다 심리학적으로 매우 신경써서 만든 것들인데,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두군거리고 슬롯머신을 한번쯤을 돌려봐야할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 구성되어 있다. 특히 슬롯머신처럼 단순하게 생긴 카지노 장비들(...)의 효과음은 돈 짤랑거리는 소리 등 도박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정말 공들인 사운드 이펙트를 자랑한다."
* 나무(엔하)위키의 '카지노' 설명 본문 중.


그렇다. 새마을호 역시 카페트와 조명, 안내 방송과 음향들은 전부 심리학적으로 매우 신경써서 만들어져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두근거리고 단순 이동이 아니라 뭔가 철도라는 악기를 이용한 문화 예술 공연 같은 느낌이 들도록 구성되어 있다. 기내지 레일로드, 고급스러운 간접 조명과 독서등, 두툼한 좌석에다 Looking for you 음악은.. 그야말로 승객을 뼛속까지 철덕으로 세뇌시키고 철도의 노예로 만들기 위한 정말 공들인 사운드 이펙트였다.

도박은 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만약 유흥 차원에서 한다면 내 돈을 잃거나 뺏긴 게 아니라, 그냥 게임 요금에 자리값/서비스료를 지불했다는 생각으로 하는 게 그나마 바람직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것, 더 구체적으로 새마을호를 타는 것은 단순히 몸을 이동하는 데 드는 교통비 운임을 지불한 게 아니라 샘솟는 평안과 기쁨, 행복을 구입했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이폰만 감성 마케팅을 한 게 아니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Looking for you를 듣는 것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새마을호 객실에서 흘러나오는 Looking for you를 듣는 것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경부선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를 타고 열차가 시종점에서 도달할 때 연주되는 Looking for you를 객실에서 듣는 것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4.
전철을 타서 좌석에 앉으면 가방이나 도시락 같은 소지품을 어디에다 놔 둘지가 고민되는 때가 생긴다.
그런데 그런 물건을 두는 위치는 전기 철도 차량의 전력 공급원 내지 집전 방식에 대한 좋은 예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제각기 장단점이 있다.

  • 머리 위의 선반에다 두는 것은 가공전차선+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에 해당한다. 제일 편하긴 하지만 깜빡 잊고 짐을 놔 두고 내리기 쉽다.
  • 바닥의 양 발 사이에다 두는 것은 바로 제3궤조 집전 방식이다. 놔두고 내릴 염려는 적지만 발을 편하게 두기 어렵다.
  • 그냥 손에 쥐고 있거나 백팩에 넣은 채로 있는 것은 배터리 또는 기름+전기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놔 두고 내릴 가능성은 0이지만 승차감이 제일 안 좋다.

선반에 물건을 적재하는 건, C++ 프로그램으로 치면 '전동차 탑승'이라는 함수가 실행되고 스택에 C++ 개체를 하나 선언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전동차에서 내리는 것은 함수 실행이 종료되고 그 변수가 scope을 벗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변수는 스택에서 소멸되고 해당 개체의 소멸자 함수가 실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heap도 아니고 스택에 선언된 개체에 대해 메모리 leak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난 옛날에 논산 훈련소에 있을 때 침상형 생활관에서 바닥 위의 빨랫줄을 보고도 전차선을 떠올렸다. 국방색은 갈록색을 빼닮은 듯이 비슷해서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예표이고, 긴 행렬이 우측통행을 하는 것 역시 지하철의 예표이다.

성경에는 질질 끌리는 긴 옷자락(사 6:1) 내지 수행원 행렬(왕상 10:2)조차도 train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으니 저렇게 생각을 하는 건 성경적인 근거가 충분하다.
자나깨나 철도를 생각하는 것은 가까운 것부터,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5.
난 솔직히 내가 아니어도 전세계의 날고 기는 천재들이 알아서 다 발전시켜 줄 컴퓨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신기술에는 별 관심이 없다.
기술은 어지간한 건 다 상향평준화해 버리고 심지어 오픈소스로 풀리기까지 한다.
내가 안목이 좁은 건지.. IT 업계는 어지간한 아이템, 아이디어는 나올 거 다 나오고 게임 말고는 더 할 게 없는 레드오션이 돼 버린 지 오래인데, 미국은 아직도 뭘 더 만들 게 있어서 컴퓨터 관련 학과가 인기가 많고 코딩을 배우네 창업을 하네 하는 분위기인지 궁금하다. 아이템이 계속 있다면 참 다행이긴 한데.

나는 컴퓨터보다는 우리나라 철도를 위해 일하고 싶다.
나를 죄에서 구원한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해서 내 삶을 주께 드리고 내 몸을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듯이,
객실에서 Looking for you를 틀어서 잠자던 내 야성과 똘끼를 깨우고, 감성을 흥분시키고 한편으로 촉촉히 적시고, 한편으로는 무한한 행복과 감동과 평안과 희락을 준 철도를 위해, 철도를 전하는 일에 내 일생을 바치고 싶다.

"철도 안에서의 한 날이 세상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으니이다. 내가 장막들에 거하는 것보다 차라리 철도의 집(= 철도역) 문지기가 되겠사오니" (시 84:10 패러디) 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 피스톤 왕복 엔진 (자동차. 휘발유와 디젤 모두)
  • 제트 엔진 (비행기. 터보 제트, 터보 팬)
  • 로켓 엔진 (우주 발사체)
  • 전기 모터 (전동차, 전기 철도)

의 내부 구조와 원리, 제원을 측정하는 규격과 물리적 특성, 구동음 등등을 전부 마스터 하고 싶다. 난 정작 대학 졸업할 때까지 기계· 전자 같은 건 완전 담을 쌓고 살았다만..;;

아 뭐 지금처럼 국어정보학 쪽으로 가서 언어를 공부하는 프로그래머가 됐고 한글 입력기와 글꼴 쪽으로 논문 쓰게 된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일이긴 하나,
내가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를 몇 년 좀 일찍 들었으면 진로가 딴판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철도 만세 만만세. 새마을호여 영원하라.
자동차나 비행기 쪽에 관심이 가는 것도 언제까지나 철도와의 비교 차원에서 하는 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 전 학교 안 대졸자 취업 박람회(?)에서 본 코레일 부스..;;

Posted by 사무엘

2015/09/14 08:34 2015/09/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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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개통과 운행 내력 외

한반도에 KTX라는 이름의 고속철이 개통하여 상업 운행을 시작한 지 어언 10년이 넘었다.
개통한 지 무려 반세기가 넘은 일본의 신칸센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KTX도 개통 내력이 은근히 복잡해지고 있으니 한번쯤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2004. 4. 1. [경부 1차 개통]
- 경부선: 서울-부산 (고속선은 대전-광명, 대구-옥천만)
- 호남선: 기존선의 복선전철화. 용산-목포 (대전 이남엔 고유한 고속선 구간 없음)
- KTX 개통과 함께 (1) 서울교외선에 정규 열차 운행이 중단됨. (2) 통일호 폐지, (3) 경춘선 무궁화호 폐지.

* 이 일대 시기의 서울/철도 소사를 참고 차원에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청계고가의 철거와 청계천 복원 사업이 시행됨.
- KTX 개통 약간 전에 서울역 민자역사가 개관함.
- KTX 개통 후 얼마 안 있어 경부선은 서울 역, 호남/전라/장항선은 용산 역으로 역의 역할이 완전히 이원화됨.
- 2004년 7월, 서울 수도권의 버스· 지하철 통합 환승 제도가 시행됨.
- 2005년부터 철도청 폐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출범.

2007.
- 경부선: 대전-대구 사이만 기존선으로 달리면서 김천과 구미에 정차하는 KTX 일부 운행

2010. 11. 1. [경부 2차 개통]
- 경부선: 대구-신경주-울산-부산 사이의 고속신선 신규 개통. 기개통 구간엔 오송과 김천구미 역이 추가 영업 시작함
김천· 구미 KTX는 폐지. 그 대신 수원· 영등포 정차 KTX 생김

2010. 12. 15.
- 경전선: 기존선의 복선전철화. 대구 이남으로 창원, 마산으로 가는 노선. 수요 폭발이었다고 함.

2011. 10. 5.
- 전라선: 기존선의 복선전철화. 익산 이남으로 여수엑스포 행

2012.
- 드디어 KTX-산천 차량 투입

2014. 6. 30.
- 일부 열차가 인천 공항까지 직결 운행 시작

2015. 4. 2. [호남 1차 개통]
- 호남선: 고속신선 신규 개통. 익산· 정읍· 광주송정을 경유하며 공주 역 추가 영업 시작. 저 역들을 제외한 호남선 기존선 역들은 KTX 취급이 폐지됨(광주, 김제 등).
- 동해남부선(앞으로 동해중부선과 연결되어 동해선이 될 예정): 포항 직결 운행 시작

2015. 8. 1.
- 대전과 (동)대구는 기존선과 인접하는 도심 구간까지도 기존선 연결선이 아니라 고속선이 깔림으로써.. 운행 계통이 일반열차와는 완전히 분리되는 복을 누리게 됐다.

요약하면:
고속신선은 오송에서 분기하는 경부선과 호남선 축으로 깔려 있고, KTX 운행 노선은 거기에다 호남 분기(전라선), 경부 분기(경전선, 동해남부선), 그리고 서울 이북으로 공항선이 추가적인 겉저리로 붙은 형태이다.
차량은 아무래도 1세대 떼제베 차량과 2010년대 이후의 2세대 산천 차량 정도로 나뉜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KTX-산천은 HSR-350의 기술로부터 만들어진 열차이긴 하지만 산천 자체가 HSR-350을 그대로 양산한 건 아니다.

더 먼 미래엔:
(1) 호남 고속철이 광주 이남으로 2차 구간이 마저 개통할 것이며, (2) 수서 발 수도권 고속철과 (3) 강릉 방면 동서 고속철이 남아 있다.
“희망을 싣고 번영을 싣고 뻗어가는 철도 따라 커 가는 나라”대로 될지어다. 아멘. (철도의 노래 가사 중)

* 고속철의 이름: 차량이냐 선로냐

고속철 보유국으로서 프랑스와 일본을 비교해 보면 좋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떼제베(TGV)는 '매우 빠른 열차'라는 뜻이며 차량 중심으로 작명됐다. 한국의 KTX도 이니셜을 보면 알 수 있듯, 차량 중심이다. 프랑스는 차량 기술에 자부심이 많은지 그 뒤에도 증속 경쟁을 제일 열성적으로 진행해 왔다. 2007년엔 자기 부상 열차가 아닌 재래식 바퀴식 열차로 무려 시속 574km라는 사기적인 시운전을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신칸센은 '새로운 간선 철도'라는 뜻으로 의외로 차량이 아닌 선로 중심으로 작명됐다. 본인은 철덕으로서 이 차이가 매우 신기하게 와 닿는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차량보다도, 기존 협궤가 아닌 표준궤로 고속철 신선을 깔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와 닿았던 것이다. 1964년에 첫 운행을 한 신칸센 0계 전동차는 떼제베 같은 독자적인 디자인도 아니고 걍 자기네 옛날 전투기와 비슷한 투박한 외형이었다.

새로운 교통수단을 만들 때는 성능뿐만이 아니라 안전도 굉장히 높은 가중치로 고려 대상이 되며, 고속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속 200km를 넘게 증속을 하는 기술보다도, 그렇게 고속 주행 중에 장애물이 나타나고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동 거리를 얼마를 넘지 않고 비상 정지를 도대체 어떻게 할지가 더 심각한 고민거리로 대두되었다. 엔지니어들이 별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 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싸움이 가장 좋은 싸움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됐다.
"가장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 (They're only good when dead 포카혼타스 Savages 대사;; )처럼.
애초에 비상 정지를 할 일이 없게 만들자는 것이다.
건널목 따위는 전혀 안 만들고 모든 구간을 무조건 입체교차로 만들고, 선로에는 아무도 접근을 못 하게 겹겹이 벽을 두르면서 일본의 경부선뻘 되는 도카이도선을 표준궤 고속선으로 새로 만들었다. 1960년대에 벌써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선로를 내세운 '신칸센'이 됐고 이것이 일본 고속철의 선로, 열차, 시스템의 명칭이 됐다.

이런 일본과 프랑스의 고속철 역사를 살펴보면, 철도라는 걸 처음 만들 때는 당연한 말이지만 차량보다 선로가 먼저라는 원칙을 확인할 수있다.

우리나라도 1992년에 대전-천안간의 경부고속선 본선 겸 시험선 구간을 먼저 착공한 뒤, 차량의 선정 계약은 더 나중인 1994년에 맺었다.

시속 200km를 넘는 장거리 간선 철도의 건설 자체는 1964년의 일본 신칸센이 세계 최초이다. 하지만 그 뒤의 추가적인 속도 경쟁은 후발 주자인 프랑스 떼제베가 앞섰다. 가령, 시속 260km대의 상업 운전은 1981년에 떼제베가 세계 최초로 달성했고 신칸센은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뒤인 1992년에야 300계 전동차가 도입되면서 그 속도를 따라잡았다. (300계는 TGV-R, ICE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속철의 차량 입찰 후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1984년 8월에 경부선 천안-서정리 구간에서 겨우 시속 150km 시운전 성공.. 이러던 지경이었다. 그러니 국제적인 안목이 있는 철도 공학자와 경영자들이 통탄할 법도 했다. 1980년대, 전국 곳곳에 포장 도로가 깔리고 마이카 시대가 코앞인데 이래 가지고는 "한국 철도엔 답이 없다"라는 게 뻔히 보였다. 철도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증속을 통해 많이 빠르게 실어 나르는 "회전율 향상"뿐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1985년 11월에 서울-부산 4시간 10분이 달성된 후, 지속적인 레일 장대화와 선형 개량, 기관차 출력 증대로 서울-부산을 1980년대 말까지 3시간 반까지 단축시키려는 계획은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미봉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1992년에 드디어 인천 공항의 건설과 더불어 경부 고속철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뒤의 역사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 그대로이다.

우리나라에서 떼제베 대신 신칸센이 낙찰됐다면, 철덕의 입장에서 전망해 보자면 다른 건 몰라도 떼제베보다 폭이 더 넉넉하고 애초부터 역방향 좌석이 없는 열차가 도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신칸센은 2-3배열 가축수송 열차가(한 줄에 좌석이 5개!) 있을 정도로 같은 표준궤에서도 뚱뚱한 덩치이기 때문이다. 자기네 자위대 전차의 부품도 제대로 수송을 못 할 정도로 빼짝 마른 협궤에 이골이 난지라, 신칸센은 이왕 표준궤로 까는 김에 열차의 폭까지 최대한 더 키운 듯. 하지만 지나친 고자세 때문에 입찰 후보들 중에서는 신칸센이 가장 먼저 탈락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11 08:32 2015/09/1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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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철도 이야기

1. 경의-중앙선 전철 직결 운행

지난 2014년 12월 27일엔, 지하 공덕에서 끝나던 경의선이 용산까지 연결됨과 동시에.. 운행 계통도 둘이 통합되어 직결 운행을 시작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문산에서 출발하여 탄현을 경유한 전철이 용산, 옥수, 한남, 왕십리, 청량리를 거쳐 양평, 용문까지 한번에 간다는 뜻이다.

1978년에 용산에서 성북까지 겨우 1호선의 지선 국철 취급이나 받았던 마이너 노선이 2005년 말부터 용산-덕소 중앙선으로 운행 계통이 분리되었는데, 그게 동쪽으로는 용문까지 연장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서쪽의 경의선과도 연결되는 발전을 이뤘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어도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경우, 중앙선을 달리는 열차도 경의선 시내 구간(공덕, 서강대 같은)에서는 잠시 지하 운행을 하게 된다.
공항 철도와 복층으로 겹치는 구간도 있지만, 어쨌든 서울역-공항(김포, 인천) 테크와 용산역-파주,청량리,양평 테크가 확실하게 분리가 이뤄질 것이다.

이 날짜에 맞춰서 일산선(서울 지하철 3호선 직결)의 원당-삼송의 무려 4km에 달하는 구간 사이에도 역이 하나 더 생겼고, 수인선에도 중간에 역이 하나 더 개통했다.
나는 프로그래머이면서 뭐 Visual Studio 새 버전이 나오고 아이폰 6이 나오고 뭐가 나오고 하는 건 별 관심 없고, 새로 개통하는 철도에 더 관심이 많고 그게 더 기쁘게 들린다. 어떡하지? =_=;;

2. 야탑 역 대합실의 열차 위치 안내 전광판

대한독립만세...!! 응? 까지는 아니어도 어쨌든 만세 만세 만만세!
자고 일어나니 드디어 야탑 역에도 생겼다. 열차 위치 안내 전광판. (승강장 말고 대합실 기준)
인근의 가천대, 태평, 모란, 이매, 서현 등엔 다 있는데..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야탑에만 이런 기본 시설이 지금까지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타려는 열차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빨리 내려가면 탈 가망이 있는지를 예측을 할 수 없어서 얼마나 불편했나 모른다.
카드 찍고 개표 구역으로 들어갔는데 이제 막 하차 승객들이 내 쪽으로 스물스물 계단을 올라오는 게 보이면 낚였다는 생각에 내면으로부터 진심어린 짜증과 분노와 빡침이 솟구치곤 했다. 안 겪어 본 사람은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없다.
탈 가망이 없는 걸 진작에 알았으면 화장실이라도 먼저 들르면서 다음 6분간의 시간 활용 계획을 달리 수립했을 텐데.

서울 지하철 9호선처럼 아예 지하철 출입구에서부터 위치 안내가 되는 건 좀 오버라고 치더라도, 최소한 대합실 층에는 있어야 한다. 개표 구역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의사 결정이 가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크린도어 같은 건 없어도 되니 저 전광판이 현실적으로 더 필요했다.
너무 불편하고 싫어서 성남시에 민원이라도 넣을 생각이었다.. 아무튼, 이 기쁜 소식을 온 천하 알리세~

3. 2013년 1월 5일

지난 이 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을지로/안국에서 출발하여 청와대 분수대/춘추관까지 가는 초록색 지선 버스가 있었다. 번호는 8000. 시내버스답지 않게 타이어에 무슨 고속버스처럼 은색 휠캡이 고급스럽게 장착돼 있었고, 앞부분에 '청와대' 마크가 달려 있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노선 설정 때문에 이 버스는 한강 수상 택시와 영등포-광명 셔틀 전철을 능가하는 극심한 공기 수송에 시달렸다. 현재 영등포-광명 셔틀은 주말에는 운행을 안 하는데 얘는 반대로 주말에만 운행하다가 결국 나중엔 폐선됐다.

그런데 얘가 폐선이 확정된 날짜가 왜 하필 2013년 1월 5일이어서 철덕인 나의 눈을 번득이게 하는 걸까?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운행을 완전히 중단한 날과 동일하다. 같은 날에 나란히 은퇴했다. 물론 버스의 경우는 노선만 없어졌지 물리적인 차량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우연치곤 대단한 우연의 일치임을 뒤늦게 발견했다.

4. 언제 터널 내부 전등이 교체됐지?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여의나루 하저터널 구간.
원래는 노란 나트륨등이 켜져 있었는데 언제 여타 구간들처럼 흰 형광등으로 바뀌었지..???
교회 갈 때 지하철이 아닌 자차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이 구간을 이용해 보니 바로 티가 남.

<공주와 완두콩> 동화에서 진짜 공주는 담요와 매트리스 수십 장 밑에 깔려 있는 자그마한 콩알에도 배겨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그것처럼 정말 철도와 교감하는 철덕이라면 전동차의 구동음 멜로디 주파수가 자그마한 Hz만치 바뀌어도,
레일의 상태가 조금만 바뀌어도, 지하 터널 바깥 배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바로 눈치를 챌 것이다.

(1) 그나저나 콩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쇠구슬이 더 현실적이었을 거다. 콩알이었으면 그 무게를 못 버티고 그냥 으깨져 버릴 테니.
(2) 서울 한강의 아래에 존재하는 전철용 하저 터널은 총 3개이다. 지하철 5호선 마포-여의나루와 광나루-천호, 그리고 분당선의 압구정로데오-서울숲. 각각 폭약 NATM, 개착식, 실드라는 서로 다른 공법으로 건설되었다는 것도 특이하다. 광나루-천호는 강을 가림막으로 완전히 틀어막고 맨땅이 드러난 바닥을 파서 터널을 만든 뒤, 다시 터널 위를 덮어서 완공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포-여의나루보다는 얕고 존재감이 덜하다.

5. 답정너, 결론은 철도 자뻑

신약 성경 사도행전에 유독 자주 나오는 '이 길', '그 길'은..
this way 9:2, 22:4
that way 19:9, 19:23, 24:22
the way 24:14
분명 강철로 된 1435mm 궤간의 레일이 깔린 길이 틀림없다.
어쩌면 그 길은 그런 궤도가 두 개 깔려 있고 그 위로 25000V 60Hz 교류 전기 전차선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도행전이라는 책이 전반적으로 기행문 분위기이기도 해서 이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그리고 송명희 시인의 <나>를 생각해 보자.
난 솔직히 전반부에 나오는 것처럼 가난하고 못 배우고 병약한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후반부 가사를 보면..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는.. 새마을호+Looking for you를 집어넣으면 너무, 딱 맞아떨어진다. 아, 음성은 아니고 그 자리에 '음악'이 들어가야 하겠다.
하나님은 역시 공평하시다. 그래서 난 한국 철도를 통해 받은 이 셀 수 없는 복을 주변에 나눠 주는 삶을 살고 싶다. 철도교의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5/02/13 19:25 2015/02/1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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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부설하기 위한 임시 철도

철도 얘기를 하기 위해 먼저 컴퓨터 비유를 들어 보겠다.
어떤 복잡한 컴퓨터 아키텍처가 완전 처음으로 발표되었고 이걸 타겟으로 하는 고급 언어 컴파일러를 완전 최초로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상황일까?

이 경우, 일단 그 언어를 타겟 기계어로 옮기는 컴파일러를 그 언어와 타겟 환경 기준으로 만든다. 그런데 그 컴파일러의 소스 자체가 컴파일되지 못했으니 아직 그 언어를 타겟 기계어로 곧장 옮길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원래 목표로 하는 아키텍처보다 구조가 훨씬 더 간단한 가상 기계 내지 임시 P-code 아키텍처를 설계한 뒤, (1) 원래 언어를 임시 기계어로 옮기는 컴파일러와 (2) 임시 기계어 코드를 돌리는 가상 머신을 타겟 기계용으로 야메로 만든다. 둘 다 성능 따위는 쌈싸먹어도 되고 그냥 정확하게 돌아가기만 하게 극도로 단순하게 후딱 만들면 된다.

그 뒤, 원래의 컴파일러 소스를 (1)을 이용하여 컴파일하면 임시 코드 기반이긴 하지만 일단 타겟에서 돌아가고 원래 타겟 기계어를 생성하는 컴파일러가 완성된다. 이렇게 생성된 컴파일러를 이용하여 원래 소스를 다시 컴파일하면.. 드디어 타겟 기계에서 돌아가는 타겟 기계어 컴파일러가 완성된다. 자기 자신도 컴파일할 수 있고, 다른 소스도 컴파일할 수 있고.. 이제 컴파일러 2.0은 1.0을 이용하여 개발한 뒤, 그 2.0 소스를 2.0 컴파일러로 다시 빌드하는 식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자, 이런 얘기가 철도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컴퓨터가 난수를 생성하기 위해 먼저 난수가 필요하고, 자동차나 발전기가 동력을 생산하기 위해서 먼저 최소한의 동력이 필요하며, 또 고급 언어로 작성된 고급 언어 컴파일러는 먼저 동작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소스부터가 컴파일되어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철도 역시 부설을 위해서 다른 보조 철도가 먼저 필요하여 건설된 경우가 드물지만 있다.

가까운 예로는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온수-신풍 구간 개통 때의 일이다. 전동차를 천왕 차량기지에다 반입하기 위해 경인선 오류동 역에서 기존 경기화학선 선로를 이용하여 차량을 최대한 접근시켰다. 거기에서 최종 목적지까지는 임시 선로를 지상에다가 깔아서 옮겼다.
그러니 1990년대 중반에 거기 주변을 살았던 사람들은 거대한 지하철 전동차가 마치 지상 전차처럼 이동해 가는 걸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차량의 견인은 디젤 기관차가 했겠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한 우진 님 블로그, 그리고 '전동차를 사랑하는 모임' 다음 카페의 게시글을 성지순례 하시기 바란다.
차량 반입이 끝난 뒤엔 그 임시 선로는 곧장 철거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예는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해 경부선 철도가 건설되던 시절의 일이니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히 먼 옛날이다.
흔히 우리나라 철도에서 스위치백이라고 하면 영동선에만 딱 한 군데 있다가 지금은 없어진 그 스위치백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영동선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건설된 철도이고, 더 옛날의 일제가 한반도에다 건설한 철도 중에도 스위치백이 없지는 않았다. 단지 그것들은 한반도의 최하 중· 북부 구간 한정이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로서는 실감이 잘 안 날 뿐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금은 흑역사가 된 금강산선이고 말이다.

그런데 중앙선도 아니고 경부선의 건설 과정에서 작업을 위해 인근에 보조 철도가 그것도 스위치백 형태로 건설된 적이 있었다.
바로 경북 청도군에 있는 삼성-남성현 역 사이에 터널을 뚫는 구간이다.
서울 사람이라면 강남에 있는 지하철 2호선 삼성 역밖에 기억이 안 날지 모르나, 철덕이라면 경부선의 대구 이남에 있는 삼성 역도 알 것이다.

거기는 경부선 본선이 부설되는 공사 현장의 지대가 높고 좁고 험준하여 공사 자재를 운반하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그래서 무려 8단계의 스위치백을 거쳐서 터널의 남북 양 끝을 우회하여 연결하는 임시 선로를 먼저 만들게 되었다. 이건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도 처음 시도하는 대공사였다고 한다.

경부선의 대전-대구도 아니고 대구-부산 사이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컴파일러로 비유하자면 산을 직통으로 뚫는 터널은 본디 기계어요, 우회하는 임시 선로는 그 임시 P코드인 셈이다.
그 스위치백은 경부선의 완공 이후에는 응당 철거되었고 철거된 지 무려 100년이 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흔적을 아주 약간은 확인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이 블로그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Posted by 사무엘

2015/02/11 08:37 2015/02/1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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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부에 있었던 옛 철도들

서울 중에서 1970년대 이후부터 육성되기 시작한 강남 일대는 바둑판 모양의 반듯한 도시 디자인에 도로 폭이 무진장 넓고 지하철 역시 엄청나게 많이 다닌다(2, 3, 7, 9, 분당, 신분당!). 하지만 일반열차가 다니는 철도는 완전히 불모지이다. 그나마 고속철 수서 역이 개통하고 나면 완전 동남쪽 끝자락 정도나 장거리 간선 철도의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반면 강북, 특히 서부 지역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포함한 먼 옛날부터 계속 인서울이었다.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기 전부터 형성된 도시이기 때문에 여기는 도로 폭이 강남만치 여유가 있지는 않으며, 꼬불꼬불한 선형에 오거리 같은 교차로도 있고 철도도 진작부터 이것저것 많이 건설되었다. 1899년에 경인선보다 몇 달 먼저 개통했던 노면 전차 말고도 이런 예가 몇 가지 더 있었다.

물론 그 철도들은 오늘날은 남아 있지 못하고 다 폐선되고 없어졌다. 주된 이유는 자동차 통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서울 노면 전차는 1899년에 경인선보다도 몇 달 더 일찍 개통해서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다 겪은 유서 깊은 궤도 교통수단이지만, 서울 지하철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폐선되었다. 그리고 21세기가 돼서야 제일 최근에 없어진 건 용산선 지상 구간이 되겠다. 뭐, 엄밀히는 없어진 건 아니고 그 선형 그대로 지하로 들어가서 경의선과 공항 철도의 복층 공용 구간이 된 것이지만.

그것 말고 서울에, 특히 마포 일대에 있었던 철도는 다음과 같다. (출처: 다음 철도 동호회)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당인리선

그나마 이 바닥에서 제법 인지도가 있는 철도이다. 경의선의 지선인 용산선에서 또 분기하는 지선으로, 지금의 홍대입구 역 인근과 남쪽의 서울 화력 발전소(구 당인리 발전소)를 연결하였다. 발전소의 완공보다 살짝 이른 1929년에 개통하여 발전소가 사용하는 석탄 연료를 수송해 왔으며, 엄청난 옛날 리즈 시절에는 부분적으로 여객 수송도 했는가 보다. 그러니 '방송소앞' 같은 역까지 있었을 터. 발전소를 연결하는 철도라는 점에서는 오늘날 장항선의 지선인 서천화력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철도는 발전소가 석탄 연료를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존재의 의미가 없어졌으며, 가성비가 안 맞게 되자 1982년 6월 10일에 폐선됐다. 지금 '서울 마포구 어울마당로'가 옛 당인리선의 선형을 나타낸다. 홍대앞 걷고 싶은 거리, 예술의 거리 일대 말이다. 건물들이 어설프게 곡선 선형으로 좁게 다닥다닥 붙었고 길쭉한 주차 공간도 있는 거기 말이다.
'동'이 2차원 평면 공간을 나타낸다면 도로명 주소 체계에서 도로명은 1차원 선형을 한꺼번에 나타낼 수 있어서 좋다.

오늘날은 당인리선뿐만이 아니라 당인리 발전소 자체조차도 지하화하네 이전하네 하면서 존폐가 불투명해져 있는 듯하다.
허나 옛날엔 한강과 인접한 당산, 이촌 일대만 해도 오늘날로 치면 마곡, 세곡, 내곡에 준하는 완전 서울 외곽이었다. 조선 시대엔 근처에 아예 사형장이 있을 정도였는데(새남터, 절두산 순교 성지!) 하물며 비슷한 위치에 발전소가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본인은 '당인리선'이라는 단어를 영화 <튜브>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물론 고증과 개연성 따위는 완전히 안드로메다로 보낸 설정 속에서 등장한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당인리선은 그 당시로서도 무려 20년 가까이 전에 이미 폐선되고 없구만, 지하철이 그 선로를 타고 질주해서 발전소와 충돌하여 대형 참사를 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2. 경성순환선

경성/경룡/외곽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이 노선은 철도 노선이라기보다는 열차 운행 계통의 이름이다. 당인리선과 비슷한 1929년에 개통하여 잘 영업하다가 1944년에 폐선되었는데, 폐선 이유는 수요 감소나 자동차 통행 같은 건 아니다. 연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전쟁 물자 공출로 인한 폐선이다.

이 열차는 경의선 서울, 신촌을 경유했다가 신촌-연희에서 경의선과 용산선을 연결하는 짤막한 신선 구간으로 들어간 뒤, 용산선 서강, 공덕리를 경유하여 용산으로 간다. 순환이라고는 하지만 용산에는 삼각선이 없는 관계로 서울로 고리를 완전히 완성하지는 못했다. 경성의 야마노테선 같은 상징성을 부여하기에는 노선 길이가 매우 심하게 아담하긴 하다. (서울-용산 9km 남짓.)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성순환선의 신선이라 할 수 있는 경의선-용산선 연결 구간은 오늘날 서울 서대문구의 신촌로10길과 신촌로11길에 대응한다! 창서 초등학교 서쪽의 그 길 말이다. 물론 당인리선보다는 훨씬 더 일찌 폐역했기 때문에 흔적을 찾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시가지가 대놓고 구부정하게 철길 부지를 따라 형성되었다는 티가 난다.

요약하자면 당인리선은 용산선의 남쪽으로 뻗고, 경성순환선의 연결선은 경의선 방면이니까 용산선의 북쪽으로 뻗는다.
용산선은 원래 경의선의 본선 구간이었는데 1920년대 초에 서울-신촌 신선이 생기면서 여기가 경의선 본선으로 바뀌고 용산선은 잉여로 전락했다. 그러니 이미 만들어 놓은 용산선을 활용하자는 차원에서 당인리선과 경성순환선이 생겼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나중에는 경선순환선은 일제 말기에 진작에 없어졌고, 당인리선도 없어졌다 보니 용산선도 통째로 지하로 들어가 없어졌고 말이다.

재미있지 않으신지? 이런 게 바로 강남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서울 철도 발달사이다.
폐선 덕후라면 이런 용산선과 지선들뿐만 아니라 경의선 자체에 남아 있는 옛 서소문, 아현리 역의 흔적에도 집착할 것이다.
오늘날 남북이 통일되고 서울에서 중국· 러시아로 가는 철도의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기존 경의선의 시내 구간을 2복선 이상으로 확장하는 건 진작에 물 건너 가 버렸으니.. 아예 서울을 우회하여 멀찌감치 외곽에서 경부선과 경의선을 연결하는 철도가 생겨야 하지 않나 싶다. 가령, 소사-원시선을 남북으로 길게 늘어뜨려서 말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오래 된 도시는 도로의 폭이나 교차로 같은 것뿐만이 아니라 길거리 위로 전봇대와 전선이 치렁치렁 달려 있는지, 아니면 전부 지중화되어 있는지를 봐도 구도심인지 신도시인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이것은 분당, 일산이 미관이 아주 깔끔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5/01/14 08:30 2015/01/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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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원래는 있었는데 국토 분단으로 인해 기능이 상실되고, 게다가 6· 25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터만 남은 비운의 철도역을 심층 탐방해 보겠다. 오오오~ 흥미진진 두근두근~!
얘들은 황량한 부지만 달랑 있고 건물 실체가 없는 관계로, 주소도 도로명 주소 같은 게 없이 여전히 지번 기반이다. 이름도 '역'이 아니라 그냥 '역지'이다. 황룡사가 아니라 황룡사지인 것처럼 말이다.

1. 경의선 장단 역

장단 역은 원래는 1906년 4월에 경의선이 개통했던 당시부터 영업을 시작한 창립 멤버이다. 그때는 같은 창립 멤버인 문산 역의 바로 다음이 장단이었다. 지금 문산 이북에 있는 운천, 임진강, 도라산 같은 역은 먼 훗날 이뤄진 남북 경의선 철도 연결 작업의 산물이다. (더구나 운천은 그저 임시승강장일 뿐이고.)

장단 역이 유명해진 건 잘 알다시피 인근 선로에 반세기 동안 버려져 있던 녹슨 증기 기관차 때문이다.
1950년 12월 31일, 고 한 준기 기관사는 평양 방면으로 화물 열차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그 때는 중공군의 인해 전술로 인해 국군과 UN군은 후퇴 중이었다(서울을 북한군에게 도로 빼앗긴 1· 4 후퇴의 불과 닷새 전이었다). 그래서 이 열차는 더는 북상할 수가 없게 되었으며, 장단 역에는 전차대 같은 게 없어서 진행 중인 열차의 방향을 남쪽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결국 이 열차는 북한군에게 노획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차라리 동작 불능 상태로 파괴 대상이 되었다. 이에 명령을 받은 미군 병사들은 소총을 난사하여 기관차를 벌집으로 만들고 또 탈선까지 시켰다. 한씨는 다른 하행 열차를 갈아타고 후퇴했다. 김 재현 기관사 때처럼 열차가 무슨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서 벌집이 된 건 아니다.

그렇게 긴급 상황에서 버려진 증기 기관차 화통은 2005년에 임진각으로 옮겨졌고, 녹을 벗겨내는 대공사를 거쳐서 2009년부터 임진각에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그 난리 중에 장단 역 자체는 완전히 파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위치 자체도 38선, 지금의 군사 분계선과도 너무 가까운지라 복원이나 관광지 조성 같은 건 요원하다. 민통선도 아닌 완전 비무장지대에 있으니 말이다.

장단역지의 공식 주소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동장리 198”이다. 지도 사이트에서 주소를 입력하면 위치가 정확하게 나온다. 도라산리도 아니고 동장리이기 때문에 도라산 역에서 1km가 넘게 북쪽으로 멀찌기 떨어져 있고, 군사 분계선이 몇백 m 코앞이다.
이 일대의 항공 사진을 보면 4차선 도로의 옆으로 경의선 단선 철길이 지나고, 주변은 온통 숲이다.
예전에 기관차가 임진각으로 옮겨지기 전에 시뻘겋게 녹슨 채 내팽개쳐져 있던 시절의 사진을 보면.. 여기 어딘가의 경의선 선로 옆에 나란히 있었던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북 분단 전의 리즈 시절엔 장단 역은 제법 컸다고 그러는데 지금 저 지형을 봐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또한 '죽음의 다리'라고 불리는 교량이 장단 역 남단 300m쯤에 지금도 있다고 하는데 항공 사진으로는 짐작을 못 하겠다.

2. 경원선 철원 역 외

철원은 남북 분단 이전에는 지금의 춘천에 맞먹는 큰 도시였으며, 철원 역도 무려 1912년에 개통한 경원선의 창립 멤버역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교통 요지였다. 게다가 금강산선의 분기역이기까지 했으니 역의 덩치도 당시의 경성 역만큼이나 컸다고 한다.
철원 역 일대는 분단 직후에는 북한 치하에 있다가 6· 25가 발발하면서 건물과 시설이 모조리 초토화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대한민국이 수복한 후, 다행히 터와 최소한의 흔적은 건졌다. 위치도 DMZ는 아닌 단순 민통선 내부인지라 개인이 그럭저럭 찾아가서 답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안보 패키지 관광을 이용해서 이 지역을 방문하면, 철원 역은 아무래도 건물 실체가 짝퉁 형태로라도 남아 있는 월정리 역보다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관광버스가 정차하지도 않고 가이드가 그냥 차창 밖으로 “여기가 철원 역 부지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걸로 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를 직접 땅밟기를 하고 살펴보고 싶으면 평일에 개인이 자가용을 끌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물론 사전에 군부대에 연락해서 허가를 받고서 말이다. 다른 방문자의 경험담을 보자면, 원래부터 그 지대의 출입증을 갖고 있는 지역 주민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같이 들어가는 게 아닌 경우(외지인의 단독 방문), 감시하는 군인이 동승· 동행을 한다고 그런다.

"사람이 가득하던 도시가 어찌 외로이 앉았는가! ..." (애 1:1)
성경의 이 애가(lamentation) 구절이 철원역지를 보면 저절로 읊어질 것 같다.
경원선은 경의선과는 달리 남북이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니 지도를 펴 놓고 옛 철길 궤적을 한번 추적해 보도록 하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그림 한 장으로 모든 게 설명된다.
좌측 최하단의 '묘장로' 인근에 있는 붉은 점은 바로 지금의 경원선 종점인 백마고지 역이다.
그리고 근처의 오른쪽 위에 있는 점은 옛 철원 역으로, 지금은 민통선 안에 빈 터만 남아 있다.
더 위로 들판과 산지의 경계에 있는 붉은 점은 월정리 역이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남한 쪽의 논밭 들판들은 거의 다 민통선 내부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단, 월정리 역은 원래는 민통선 지대를 넘어 더 북쪽의 DMZ 내부에까지 걸쳐 있었으나 좀 덜 위험한 곳으로 살짝 옮겨져서 복원된 것이다.
그리고 철원 역도 지금은 국도 3호선에 딱 붙은 지점에 복원되었지만 원래 있던 곳은 그보다는 좀 더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북한으로 넘어가서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는 붉은 점이 바로 가곡 역으로 추정되는 지점이다. 북한의 월정리 역에 해당하는 버려진 역이다! 선로는 없고 역사 흔적만 있다.
다음으로 '평강군'에 걸쳐 있는 점은 평강 역으로, 오늘날 경원선의 북한 구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북한에서는 자기 구간을 강원선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쪽에 있는 푸른 점은 철원에서 금강산선의 궤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각각 한다리, 대위교, 그리고 전선 휴게소 인근에 있는 교각이다. 위의 자료가 정확하다면, 철원 역에서 분기한 금강산선은 남쪽으로 좀 내려간 뒤에 동쪽을 향해 간다는 걸 알 수 있다.

끝으로, 군사 분계선 인근의 분홍색 점은 제2 땅굴 입구가 있는 지점인데 참고로 첨가해 넣었다.

위의 점들이 다 철길로 연결되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할까?
본인은 경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황룡사지보다도 철원역지, 장단역지 같은 이름을 들었을 때 더욱 가슴이 뭉클하고 뭔가 울컥함을 느낀다. 분단된 철도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이기에.

미국의 로스엔젤레스는 잘 알다시피 '천사의 도시'라는 뜻이고,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평화와는 별 관계가 없는 짓을 하는 북한 같은 또라이 반국가단체가 '평강, 평양' 등 '평'자가 들어간 지명을 갖고 있다는 건 참 역설적인 것 같다. 북한은 자기들의 악한 체제의 유지를 위해 주민들에게 절대로 자유를 주지 않으며 눈과 귀를 강제로 틀어막고 지내고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다.

한편, 경의· 경원 라인과는 달리, 동해중부선 쪽은 일제가 한창 공사를 하다가 패망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쪽에는 영업을 하다가 우여곡절을 겪고 파괴되고 없어진 역 같은 건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4/11/16 08:41 2014/11/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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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주요 사건들과 철도

1.
경부선이 개통하던 당시에는 지금의 서울 역이 있는 곳보다 더 북쪽에, 서울 중심과 더 가까우며 지금으로 치면 지하철 5호선 서대문 역과 가까운 곳에 경부선 서대문 역이 있었으며 이것이 그때의 진짜 서울 역이었다. 지금의 서울 역은 남대문 역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유 관순 열사는 잘 알다시피 이화 학당을 다녔는데, 이화 학당은 지금의 이화여고가 있는 곳에 있었다.
이화여고는 서대문 역과 가깝다. 따라서 이화 학당 역시 그 시절엔 경부선 서울 역의 역세권에 있었으며, 유 관순은 경부선 열차를 타고 서울과 고향 천안을 수월하게 오갈 수 있었다.

서대문 역은 1919년 3월, 3·1 운동이 벌어지던 와중에 폐역되었으며, 남대문 역 이북으로는 서대문이 아닌 신촌으로 꺾는 드리프트 선로가 1920년 말에 뒤늦게 건설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다 아는 구 서울 역 건물은 1925년 9월에 완공되었다.

2.
농촌 운동가 최 용신 선생은 샘골 학원 주변으로 수인선 철도가 생기는 걸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참 애석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1935년 사망, 수인선은 1937년 개통. 약 2년 반 차이) 그래도 자기 지역으로 철도가 건설될 예정이라는 소식 정도는 듣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3.
1929년의 광주 항일 학생 운동의 배경에도 철도가 있다. 나주에서 광주 사이를 열차로 통학하던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사이에 싸움이 붙은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이유는 물론 일본인 학생이 한국인 여학생을 희롱했기 때문임. 이게 결국은 수십 명의 학생들이 엉겨붙은 패싸움으로 커져 버렸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호남선 나주 역(광주보다 더 남쪽)과 광주 역을 오가는 열차란 상상하기 어렵다. 서울 방면에서 광주로 가는 열차는 있어도, 목포 방면에서 광주로 가는 열차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호남선은 몰라도 경전선 쪽은 지금까지 변화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때의 광주 역은 지금의 광주 역과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리고 광주 동쪽으로는 담양과 남원으로 가는 '전남선'이라는 철도가 부설되어 있었다. 이것도 참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남선은 1944년에 일제의 전쟁 물자 공출로 인해 선로가 철거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하에서 광주 역은 다른 곳으로 이설되고 새로 건설된 경전선이 광주를 지나게 되었으나, 이마저도 선로가 남쪽 외곽으로 이설되면서 광주 역은 지금과 같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 것이다.

뭐 지금의 광주송정 역인 구 송정리 역이 호남선과 전남/경전선과의 환승역이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며, 1929년에 다녔던 열차는 어떤 형태로든 호남선 남부와 전남/경전선을 직결하는 통근열차요, 지금으로 치면 광역전철뻘 되는 열차였던 것 같다.

그리고 여담으로, 대도시 중심부에 있지만 철도 선형상으로는 왠지 고립된 고자처럼 되었다는 점에서는 신촌과 광주 역이 서로 좀 비슷한 구석이 있다.

4.
끝으로, 조선어 학회 사건이 있다.
1942년 여름, 영생 여자 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이 방학을 맞이하여 집에 가러 열차를 탔다. 한 열차를 같이 탄 여학생들이 낄낄대며 한국어로 수다를 떨었는데, 하필 옆에 조선인 사복 형사가 타고 있었다.
때는 이미 창씨 개명에 조선어 사용 금지 등의 민족 말살 정책이 시행 중이던지라.. 일제의 앞잡이이던 그 형사는 “이것들이 황국 신민이면 신민답게 일본어를 쓸 것이지 왜 조선어를 쓰고 난리냐?”라고 꾸짖었다. 그 학생들은 우리끼리 얘기를 나누는 것일 뿐인데 웬 참견이냐는 식으로 대들었다. (상대방이 일제 끄나풀인지 처음엔 몰랐음)

이에 형사는 빡쳐서 다음 역에서 여학생들을 강제로 끌어내려 심문을 했고, 나중에는 일행 중에 제일 강하게 반항하던 박 영희라는 학생의 집에까지 쳐들어가서 옛 일기장을 압수했다. 그런데 거기에 “학교에서 국어(=일본어)를 썼다가 선생님에게서 꾸지람을 들었다”란 문장이 있는 걸 보고는...

국어를 썼으면 칭찬을 받아야지 왜 꾸지람이냐? 그 선생 누구야? 이거 악질 반동 새끼구만?” 취조를 한 끝에.. 옛 교사였던 한글학자 석인 정 태진 선생의 정체가 드러났다.
일제 고등 경찰은 이 사람이 소속되었던 조선어 학회까지 과격 무장 독립 운동 조직으로 날조하고 일망타진해서 성과 한 건 올리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조선어 학회 사건이 벌어진 계기이다. 더 자세한 내력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참고하시라.

난 옛날에는 한글, 국어 쪽으로만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 이 사건을 다시 읽어 보니, 그 당시 영생여고보 학생들이 이용한 철도 노선은 함경선이었고 지금의 북한 치하에서는 평라선 구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깊이 와 닿는다. 아아~ 지금도 국토가 분단되지만 않았다면..!
철도교에 입문하고 나면,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철도를 중심으로 다시 볼 줄 아는 안목이 생긴다.

안 중근 의사가 중국이 아닌 국내의 철도역 승강장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라도 했다면 거기는 그야말로 철덕들의 성지가 되지 않았겠는가?
6·25 때도 군인· 경찰 말고 민간인 중에 가장 많이 순직한 사람들이 바로 철도인이다. 철도 사랑과 나라 사랑이 별개가 아닌 것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Posted by 사무엘

2014/10/12 08:32 2014/10/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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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선된 철도, 안성선을 아십니까?

우리나라의 간선 철도인 경부선을 보면 대전에서 호남선이 서쪽으로 분기하고 천안에서 장항선이 서쪽으로 분기한다. 동쪽 내륙 쪽으로 분기하는 건 조치원(충북선)과 김천(경북선) 정도다.
아울러, 과거에는 수원에서 서쪽으로 수인선이 분기하기도 했다.

한 쪽으로만 분기하는 게 아니라 양방향으로 모두 분기하는 역은 흔치 않다. 안산선과 과천선이 만나는 금정 정도가 고작인데, 얘들은 일반열차가 아니라 전철만 다니는 노선이어서 존재감이 좀 덜하다.

먼 옛날에는 수원에 서쪽으로 수인선뿐만 아니라 동쪽 여주 방면으로 수려선도 있어서 동서남북이 모두 철길로 통했었다. 그러나 수려선은 영동 고속도로 개통의 타격으로 인해 이미 1973년에 폐선됐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수원은 분당선과 수인선이 만남으로써 일반열차+전철이 수직+수평 양방향으로 분기하는 역이 될 예정이긴 하다.

그때는 수원이 그랬던 것처럼 천안도 양방향 분기역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서쪽으로 장항선이 있었다면, 동쪽으로는 안성 방면으로 가는 안성선이라는 철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철도와 전혀 인연이 없어 보이는 안성에도 철도라니? 게다가 둘은 사실 1920년대에 매우 비슷한 시기에 착공되어 개통했다. 그 당시 장항선과 안성선의 이름은 각각 충남선, 경기선이었다.

천안에서 안성까지는 30km가 좀 안 되는 거리이고, 평택과 안성은 지리적으로 수원과 용인 정도의 관계와 비슷하다.
일제는 안성선을 연장해서 이천을 지나 여주까지 가게 할 생각이었다. 여주에는 수려선이 있긴 했으나, 안성선은 표준궤이고 수려선은 협궤인 관계로 선로의 직결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즈 시절에 안성선은 안성을 지나 경기도 이천의 장호원읍까지 약 70km 남짓한 거리가 뻗어 있어서 수려선의 길이와도 비슷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공사를 하면 실제로 여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때문에 안성선은 연장은커녕 이미 있던 선로도 뜯겨져 나가서 천안-안성 사이의 짤막한 로컬선으로 전락해 버렸다. 해방 후에도 이 구간은 복원되지 못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0년대에 안성선을 연장해서 여주가 아니라 원주까지 가게 할 계획을 한때 했었다. 경북선(김천-영주), 충북선(김천-제천)에 이어 경부선과 중앙선을 잇는 제3의 철도를 만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정부는 철도보다 자동차 도로를 더 육성하면서 이 계획을 백지화해 버렸다. 경부 고속도로가 안성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건설되자 안 그래도 짤막하던 안성선은 더욱 잉여로 전락하고 말았다. 1970년대 말에 안성선은 하루에 겨우 n회밖에 열차가 운행하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나마 표준궤인 덕분에 수려선보다는 더 오래 명맥을 유지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 뒤 1985년 4월 1일, 수인선이 영업을 중단하기 10년 남짓 전에 안성선은 여객 열차의 운행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그리고 1989년 1월 1일부로 완전히 폐선 처리되어 모든 선로가 사라졌다. 수려선과 수인선의 종말 사이에 이런 사건도 있었다는 걸 알아 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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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4 19:21 2014/09/0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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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톤 드보르작

음악가 드보르작. 알면 알수록 대단하며 우리 같은 후대의 철덕들의 귀감이 되는 존경스러운 철덕이다. 우리 모두 드보르작을 본받자. 불끈!

진 회숙의 <클래식 오딧세이> 중에서

드보르작은 사실 상당히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는 한 가지 것에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기관차와 역, 철도에 관한 것이었다. 프라하에 살고 있을 때, 그는 매일같이 프란츠 요제프 역으로 가 입장권을 사서 구내로 들어간 다음 역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보고, 개찰구의 역원이나 짐꾼, 감시원, 기관사들과 농담을 하기도 하고 기차에 관한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기차 시간표를 줄줄이 암기하고 있었던 그는 열차가 가끔 늦기라도 하면 마치 큰일이나 난 것처럼 지나가는 역원이나 승객에게 그 이유를 물으며 야단법석을 피웠다고 한다.

그렇다고 음악원 선생 노릇을 전폐하고 역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음악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을 때에도 그는 틈틈이 역장이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고풍스러운 시계를 신경질적으로 꺼내보며 열차의 도착 시간을 점검하곤 했다. 그러다가 정 궁금하면 학생을 역으로 보내 11시 20분 도착 예정인 브륀-프라하 행 급행열차 158호가 정시에 도착했는지, 기관사인 야로슬라브 보트루바가 무슨 재미있는 경험을 하지나 않았는지 알아오게 했다.

이 때문에 노바크, 수크, 피비히, 레하르와 같은 미래의 대음악가들이 종종 수업을 중단하고 스승의 취미에 봉사하기 위해 요제프 역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꾀가 난 제자가 역에 다녀오지도 않고 다녀온 것처럼 꾸며서 애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이 곧 들통이 나 그 제자는 드보르작으로부터 무척 호되게 야단을 맞았는데 그 제자의 표현을 빌면 당시 드보르작의 모습이 마치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았다고 한다.

어느 날 드보르작의 딸과 약혼한 제자 요제프 수크가 고향에서 돌아왔다. “그래, 여행은 어땠는가?”하고 드보르작이 물었다. “모든 것이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2시 34분 정각에 크로세비치를 출발해 3시 13분에 벤샤우에 도착, 거기서 물을 공급 받고, 3시 28분에 발차하여 5시 46분에 프라하에 도착했습니다. 아, 그리고 저희가 탄 열차의 번호는 10726번이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서 수크는 ‘이 정도면 스승이 만족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그의 대답을 들은 스승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은 것이었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드보르작이 하는 말,

“자네 정말 한심하군. 10726번은 열차번호가 아니라 기관차의 제작번호란 말일세. 이 벤샤우 열차의 번호는 187이야.”
이렇게 제자를 향해 쏘아붙인 드보르작은 다시 딸에게로 고개를 돌려 이렇게 물었다. “그래 너는 이런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거냐?”

철도 차량의 번호와 운행 번호는 정말로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긴 하다만.. ㅋㅋㅋ
이것 말고도 드보르작의 놀라운 언행을 살펴보자. 이 사람이 오늘날 지하철이나 전기 기관차의 VVVF 구동음이라도 들었으면 정말 뿅 갔지 싶다..

“이것은 많은 부품으로 되어 있어. 너무 너무 다양한 부품들이지. 모두 각자가 모두 중요성을 가지고 있고, 각자 그 역할이 있어. 심지어 가장 작은 스크류 부속조차 제 위치에 있으며 무언가를 연결하고 있어. 모든 부품이 그 목적이 있고, 그 역할이 있어. 그 결과는 말이야 놀라워!!”

“오오 그런 기관차가 트랙에 있다니!! 그들이 석탄과 물을 넣으면 말이지, 단 한 사람이 작은 레버를 누르면, 큰 레버가 작동되기 시작해, 비록 기차는 수천 톤의 금속덩어리 인데도, 기관차는 토끼처럼 움직인다고! 내가 만약 기관차를 발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내가 작곡한 모든 교향곡이라도 포기할 수 있어!!


2. 유 병언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것은... 우리나라엔 정말 뜻밖의 인물도 완전 뼛속까지 철덕이라는 점이다.
정말 욕 나오고 분노가 치민다. 내가 다 민망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유 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취미생활로 알려진 각종 폐열차 구입에 약 2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기독교 복음 침례회(구원파)가 소유한 전국 폐교, 연수원 등 4곳에 있는 각종 폐열차는 120여 량. 전남 곡성군 삼기면의 한 폐교에는 ㈜아해 소유의 폐열차 4량, 화차 58량이 있다. 벌크라고 불리는 화차는 유류, 시멘트 원료 등 각종 화물을 운송하는 데 쓰인다.


게다가 저 아저씨는 내가 재벌 갑부가 됐으면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정확하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ㅠㅠㅠㅠㅠ
금수원 사진에 웬 서울 지하철 열차가 있는 걸 보고는 깜짝 놀랐었는데, 실상은 이거 뭐 상상 이상이었다.

자고로 철덕이라면 철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과 무와 예체능 일체의 학문을 분야 불문하고 두루 겸비한 인재로서
나라사랑 국토사랑 정신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한국 철도의 향기를 좋은 간증으로 남겨 방방곡곡에 전해야 하거늘!
만나면 철덕의 명예를 걸고 한 대 패 주고 싶다.
구원파라고 해서 일반적인 기독교회까지 함께 싸잡아 팀킬시킨 게 다가 아니었구나.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이 폐전동차를 구입한 것이 밝혀지면서 회사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앞으로는 객실을 해체해 고철로만 파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기록된바, 철도의 이름이 너희로 말미암아 일반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도다, 함과 같으니라." 꼴이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4/07/13 19:37 2014/07/1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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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의 철도계 새소식

내 블로그에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 있기에 잠시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하겠다.

1. ITX 새마을 운행 개시

등굣길에 근처 철길에서 지금까지 못 보던 열차가 지나가는 걸 봤다.
이 빨간 열차는 바로.. 지금의 새마을호(전후동력과 기관차 견인형 모두)를 대체할 차세대 열차 ITX 새마을이다. 지난 5월 12일부터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작년 초에 퇴역하고서 1년 4개월 만의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마을'.. 1974년에 등장한 이래로 40년째 열차 이름으로서 명맥을 이어 가는구나!
10여 년 전, 정식 개통 전에 클로즈 베타테스트 중이던 지금의 떼제베 개량 KTX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누리로, ITX 청춘 등, 2010년대부터는 여객열차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전부 전동차 기반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열차 호칭에서 등급명-차량명을 병기하는 체계도 차츰 정착해 가고 있다. KTX 산천이 원조였고 말이다.

누리로의 명칭도 이런 체계에 편입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어찌 되려나 모르겠다.
무궁화호라는 이름은 그냥 예전의 기관차 견인형 여객열차 내지 개량형 디젤 동차의 총칭으로 남을 듯. 그리고 배 이름 관행의 잔재이던 '-호' 접미사도 이제는 없어져 가는 추세다.

우리 학교는 앞에 철길이 있어서 매우 아주 굉장히 좋다.
가끔 디젤 기관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멀리서라도 들으면 마음의 기쁨과 안정과 평안이 찾아온다.

2. 평화열차 DMZ train 운행 개시

'경의선' 하면 내력과 관련하여 철덕이 할 말이 참 많다.
서울 시내 구간이 일반열차들의 기지 회송 구간으로 쓰인다는 특성상 오랫동안 수도권 광역전철 버프를 못 받고 있다가 2009년에야 전철이 개통했다.
그 전, 2006년 가을에는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의 1987년 초기 도입분이 퇴역하면서 일명 '임진강 라이너' 새마을호가 3년 남짓 운행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경의선 수도권 전철이 문산까지 뚫리면서 임진강 라이너는 자연스레 폐지되었으며, 통근열차가 다니는 단선 비전철 구간은 운천, 임진강, 도라산 같은 남북 철도 연결 버프를 받은 21세기 구간으로 확 줄어 버렸다. 운행 거리가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지선 수준이 된 것이다. 전국에서 CDC 기반의 통근열차(구 통일호)가 최후까지 다니던 구간은 이 경의· 경원선밖에 없었는데, 이 둘 사이에서도 경의선은 경원선과는 처지가 많이 달라졌다. 경원선은 동두천 이북으로도 거의 50분에 가깝게 달릴 비전철 구간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4월을 끝으로 통근열차 명목의 경의선 여객 열차의 운행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럼 오리지널 CDC를 볼 수 있는 곳은 진짜로 경원선밖에 안 남는구나.
그 대신 등장한 것은 일명 DMZ-train이라고 불리는 '평화 생명 관광 열차'이다. 어차피 경의선에서 그 짤막한 CDC 구간의 수요는 안보 관광객밖에 없었으니 적절한 조치인 것 같다. 이 열차는 운임 체계상으로 KTX, 무궁화호 같은 일반열차가 아니라 O-train, V-train 같은 관광열차의 위상이 된 것이다.

운행 횟수는 하루 두 번이고 당연히 패키지 안보 관광과 연계해서 다닌다. 차량은 새로운 건 아니고 기존 CDC를 관광용으로 개조한 물건이라 함. 물론, 운임은 과거의 통근열차보다 훨씬 더 올라갔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민통선 구간에 있는 도라산까지 갔다 오려면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하며 돌아오는 표도 반드시 같이 구입해야 한다.

모든 변화가 달갑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특히 관광열차 명목으로 비싸진 운임) 본인은 이게 철도 경영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한 변화인 것 같다.
또한 한 가지 좋아진 점은, 이 열차는 문산이 아니라 서울 역에서 도라산까지 환승 없이 직통으로 간다는 것이다. 서울과 문산 사이엔 능곡 한 곳에서만 추가 정차한다.

올여름에는 경원선에도 이런 컨셉을 반영하여, 청량리에서 백마고지까지 가는 경원선 버전의 DMZ train도 운행을 시작할 거라고 한다. 그래도 경원선에는 정규 여객 통근열차도 여전히 병행이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은 정선선, 그리고 교외선에도 안보 쪽은 아니어도 비슷한 컨셉의 관광열차가 좀 다녔으면 어떨까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4/05/17 08:26 2014/05/1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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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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