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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철도의 선로 이설 내력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런 글을 발견했다. 경부선 철도가 1905년 첫 개통한 이래로 선로가 이설되고 선형이 바뀌어 온 대략의 내력이다.
우와! 이렇게 사진과 함께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거 완전 좋다. 딱 내 스타일이다. 저기 사진을 같이 펴 놓고 이 글을 보시기 바란다.

1.
지난 2010년엔 경부선 병점 역 이남으로 분기하는 지선 서동탄 역이 개통했다. 그런데 2000년 초까지만 해도 경부선은 원래 서동탄 방면의 병점기지선이 본선 구간이었다는 거 아시는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수원-천안 2복선 확장+선형개량+전철화 공사 과정에서 병점-오산대 구간 선로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이설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커브도 약간 줄어서 열차가 더 고속으로 달릴 수 있게 됐다. 기존 선로는 차량 기지 입출고용으로 자연스럽게 용도가 변경되었다. 적절하다. 저렇게 재활용을 할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그나저나 구 선로는 지금의 서동탄 역 이남 구간에서 상· 하행 선로가 실제로 저렇게 쩍~ 벌어져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2.
무슨 강이 지나는 것도 아닌데 두정-천안 사이 서쪽에 천안 축구 센터를 감싸는 둥그런 커브가 생긴 건.. 역시나 지금은 이설· 폐선되고 없는 철도의 흔적이었구나. 부산 방면 경부선 하행 선로가 저 궤적을 타고 장항선으로 갈아탔었다.
저 선로 대신 지금은 더 북쪽+동쪽에 공간을 덜 차지하는 입체교차 선로가 새로 생겼다. 이 역시 수원-천안 2복선 공사와 함께 이설되어 새로 생겼지 싶다..

3.
대전 부근은 지형이 험하기도 하고 경부고속선과의 연결 문제도 있고 해서 추가적인 선형 개량이 종종 있었다. 예전에는 고속선이 옥천에서 너무 일찍 끊어지는 바람에 KTX가 연결선을 타고 재래식 경부선으로 허겁지겁 내려와야 했으나, 2015년 8월에 대전과 대구의 도심 구간이 다 개통한 뒤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대전남연결선은 이제 더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그냥 철거해 버려도 할 말이 없으며, 해당 지역에서는 그걸 원하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번 힘들게 만들어 놓은 건축 구조물을 굳이 일부러 부숴 버릴 이유가 없다. 아까 경부선 구선로를 병점 차량 기지 입출고선으로 활용하듯이 이것도 뭔가 다른 활용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천-신동 사이에 있는 대구북연결선도 현재 비슷한 처지이다.

4.
그 다음으로 경부선에서 주목할 만한 이설은 엄청 옛날인 일제 강점기, 그것도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대구 역과 김천 역은 1905년 1월, 경부선 개통과 동시에 개업했다. 하지만 그 사이의 구미 역은 개업일이 1916년 11월 1일이다. 그 이유는 경부선이 첫 개통 당시엔 지금의 구미 시내 구간을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지금의 경부고속선 내지 국도 4호선과 비슷한 선형으로 금오산을 관통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선로를 만들었더니 그 시절의 증기 기관차가 그 정도 오르막도 제대로 못 오르고 헉헉거렸다. 중간에 보조 기관차를 연결해 줘야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경부선 개통 후 10년 남짓 뒤엔, 영업거리가 더 길어지는 걸 감수하고라도 구미 시내 우회 경로로 선로를 대거 이설하게 됐다. 구미 역이 바로 이때 생겼으며, 곧 있으면 개통 100주년을 맞이한다. 반대로 옛 선로에는 '금오산 역'이라고 기관차의 관리를 위한 간이역이 있었으나, 그건 선로 이설과 함께 폐역됐다.

잘 알다시피 박 정희가 1917년 구미 출생인데, 마침 그 즈음에 거기로 경부선 철길이 지나게 된 것은 뭔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상록수 최 용신 선생이 활동하던 당시에 수인선 철도가 건설된 것처럼 말이다.
이건, 훗날 1930년대에 행해진 복선화 공사 때문에 왜관철교 일대가 이설된 것과도 별개의 이야기이다.

5.
다시 우리나라 얘기로 돌아온다. 대구선 이설과 경부고속선 대구 이남 구간의 건설의 영향을 받아서 그쪽에 경부선 본선이 살짝 이설된 건 제끼고..

청도군 소재의 남성현 역 일대는 이미 유명하다. 험준한 산악으로 인한 경사+커브 때문에 건설하기도 힘들고 열차가 다니기도 힘든 구간이다. 성현 터널이 완공되기 전에는 무려 8단계 스위치백 선로를 임시 부설해서 건설 자재를 나르면서 경부선 철길을 깔았으며, 터널이 완공된 뒤엔 임시 선로는 철거됐다.
그런데 기껏 뚫은 성현 터널도 약 30여 년 뒤인 1937년에는 경부선 복선화 공사 과정에서 선로가 또 통째로 딴 데로 이설되면서 폐쇄됐다. 지금 성현 터널은 '청도 와인터널'이라는 관광지로 재활용 중이다.

6.
밀양으로 내려가면, 상동 역 이북으로 산을 직통으로 뚫고 가는 직선 터널들은 역시나 경부선 개통 처음부터 그랬던 건 절대 아니었다. 원래는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꼬불꼬불 굽이치던 선형이었다.
단선도 아닌 복선 공용 터널이 일제 강점기 때 있었을 리가 절대 없지. 단순히 일제 강점기 시절의 복선화가 아니라, 경부선 KTX 1차 개통을 앞두고 대구-부산 기존선의 전철화 과정에서 선형 개량을 한 거지 싶다.

또한, 지금 선로는 추화산을 서쪽 끝 밀양 시내 근처에서 터널로 직선으로 쌩 통과하는 반면, 옛날에는 동쪽 능선으로 빙 둘러 갔다.
우회 구간에는 짤막한 단선 터널이 있다. 바로 이것. 단면은 아래쪽이 다시 좁아지는 말발굽 모양이다.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하고 자동차용이 아닌 철도 터널이었다는 증거다. 옛날에는 경부선이 여기를 지났음을 말해 준다.

7.
이제 부산으로 간다.
부산 북부 구간도 1990년대 말, 화명 신도시의 개발로 인해 선로가 내륙이 아닌 강쪽으로, 그 대신 더 곧게 이설되었다. 구포 바로 이북의 화명 역이 1999년에 이 과정에서 새로 생겼으며, 1993년에 구포 무궁화호 전복 참사가 난 곳도 지금은 이설되고 없는 구간상의 지점이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는 구포보다는 화명 역에 더 가까이 있었다.

예전에는 경부선 선로가 지금의 부산 지하철 2호선과 비슷한 선형으로 시가지를 꽤 깊게 지났다. 어쩐지 지금 경부선 부산 북부 구간은 선로가 평지에 있지 않고 다들 높은 고가이던데, 다 나중에 그렇게 바뀐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제 강점기 때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님.

옛날에는 경부선이 지금의 서울 역(남대문)보다 더 북쪽까지 이어졌었고(서대문), 지금의 부산 역(초량)보다 더 남쪽까지 더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간 구간에도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다.
1908년의 경의선 직결+부산 개통, 1916년의 구미 시내 구간 개통은 일제 강점기의 일이고, 1930년대 이후 경부선 복선화도 큰 이벤트이다.
해방 후에는 주로 경부고속철 내지 수원-천안 2복선화로 인한 이설이 많았던 걸으로 요약된다.
다들 나의 정신을 살찌우는 소중한 철도 역사 지식이다. 머리에 몽땅 집어넣고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25 19:35 2016/09/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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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도시들의 경전철

서울시는 지난 2009년에 첫 개통한 지하철 9호선을 마지막으로, 중전철 형태로 건설하는 도시철도 지하철은 이제 없을 예정이다. 요즘 서울 주변에 중전철로 건설되는 도시철도들은 엄밀히 말하면 다 광역전철로, 건설 주체가 서울시가 아니다. (성남여주, 원시소사, 신분당, 신안산 등)

한편, 서울 바깥의 사정을 살펴보면, 2005년에 개통한 부산 지하철 3호선은 건설될 때부터 모든 역들에 스크린도어가 같이 설치된 최초의 지하철이다. (스크린도어 없이 완공된 마지막 지하철은 2004년의 광주 지하철) 대구 지하철 2호선은 같은 2005년에 부산보다 아주 약간 일찍 개통했지만 스크린도어 규격이 갖춰지지는 않았다.

그 이듬해인 2006년에 대전 지하철 1호선이 개통했다. 2005년을 전후하여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부산3, 대전, 광주 지하철은 모두 한국형 표준 중(重)전철의 '중(中)형 전동차' 모델을 그대로 도입한 형태의 차량을 운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량의 외형이 다들 비슷하다. (서울은 대형 전동차)

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중형 전동차 기반의 중전철이 개통한 것은 현재로서는 2006년 대전 지하철 1호선이 마지막이며, 이거 이후로 우리나라에 그런 체급의 지하철 내지 도시철도가 개통한 건 지금까지 없다(기존 노선의 연장은 제외). 2000년대 후반부터 개통하고 있는 전철들은 다 '경전철'이다. 통상적인 중전철보다 체급이 더 작고 수송력이 더 적고 건설· 운용 비용도 덜 드는 물건이다.

중전철은 1435mm 표준궤 쇠바퀴에다가 전기 규격도 직류는 1500V, 교류는 25000V로 딱 통일이 돼 있지만 경전철은 그런 표준이 정해진 게 없어서 규격의 파편화가 굉장히 심했다. 그나마 오늘날은 "철제 차륜은 1435mm 표준궤, 고무 차륜은 1700mm 광궤" 정도의 규격은 통일이 됐다.

참고로 경전철이라고 해서 무슨 협궤를 쓴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옛날 수인선 협궤 디젤 동차는 열차 덩치나 수송량으로 보면 영락없는 경전철 급이지만 걔는 애초에 동력원부터가 전철이 아니었고.. 오늘날의 우리나라 철도는 협궤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인연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제 인천 지하철까지 2호선이 개통했으니 오늘은 전국의 경전철들에 대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쭉 정리해 보겠다.

1. 개통 시기
한때는 수도권에서 의정부 경전철과 용인 경전철이 국내 최초의 경전철이 될 뻔했다. 하지만 다 수익성과 관련된 어른들의 사정이 너무 복잡해서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으며, 이 때문에 경전철 최초 개통의 영광은 수도권이 아닌 부산이 뺏어 가 버렸다. 한때 3호선의 지선으로 계획했던 4호선, 그리고 김해 경전철이 모두 2011년 봄과 가을에 차례로 개통했기 때문이다.
그 뒤 의정부 경전철이 2012년 7월에 부랴부랴 개통했고 용인 경전철은 2013년 4월이 돼서야 개통했다. 대구 3호선과 인천 2호선은 각각 2015년 4월과 2016년 7월에 뒤를 이었다.

2. 궤간
철차륜을 쓰는 용인, 김해, 인천 2호선은 표준궤를 쓰고 있다. 부산 4호선은 고무차륜인 관계로 1700mm 광궤 기반. 의정부 경전철은 고무차륜인데, 1700 표준이 제정되기 전에 건설된 관계로 1620mm 궤간을 혼자 쓰는 처지가 되었다. 고무차륜 경전철은 레일도 철이 아니라 콘크리트이다.
대구 3호선은 잘 알다시피 국내 경전철 중 최초로 도입된 모노레일이다. (궤조가 아래 중앙에..) 모노레일이지만 차체의 폭은 중전철 중형 전동차에 뒤지지 않는다.

3. 전원
경전철답게 중전철 직류의 절반인 직류 750V를 쓰며, 전부 제3궤조 집전식이다. 즉, 모든 경전철들은 중전철과는 달리, 공중에 전차선이 주렁주렁 달린 게 없으며 직교류 겸용 전동차 같은 것도 없다. 기존 일반 전기철도와 직통 운행하는 것은 물론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대구 3호선 모노레일은 어찌 된 일인지 전기 규격이 중전철 지하철과 같은 규모인 직류 1500V라고 한다.

4. 영업거리
다들 10~20km대이다. 하지만 김해 경전철(23.4km)은 부산과 김해를 연결하고 공항까지 연계하는 만큼 거리가 제법 되며, 대구 3호선(23.9km)과 인천 2호선(29.2km)도 상당히 긴 편이다.

5. 지상/지하 분포
모든 경전철이 반드시 지상으로만 다니는 건 아니다. 부산 4호선과 인천 2호선은 지상과 지하 구간이 공존한다. 인천 2호선의 경우, 종점 부근과 인천 아라뱃길을 횡단하는 구간만 지상이고 나머지는 다 지하이다. 지상에서 지하를 오르내리는 선로의 경사가 일반 중전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한 걸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두 노선을 제외한 나머지 경전철들은 전구간 지상 고가이다. 하지만 서울에 건설되는 경전철들 중에는 전구간 지하도 있을 예정이다. 자세한 것은 후술 예정.

6. 차량 편성
"표준궤 철차륜 2량 1편성" 요게 뭔가 표준 레퍼런스인 것 같다. 김해와 인천 2호선이 이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의정부는 고무차륜 2량이며, 대구 3호선 모노레일은 3량이다.
좀 특이한 예외는 용인 경전철로, 무슨 버스처럼 1량 1편성인데 폭은 오히려 중전철 대형 전동차보다도 더 크다. 경전철 도입 초기에 혼자 독자적인 선형 유도 모터 기반의 봄바르디에 차량을 수입해서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산 4호선도 예외적인데, 3호선(4량)보다도 더 많은 6량 1편성을 하고 있어서 경전철 중에 차량 편성이 가장 길다.

7. 운전 형태
2인 승무 이런 건 경전철 세계에서는 완전 사치일 뿐이다.
중전철에서는 현재 신분당선만이 무인 운전을 하고 있지만 경전철들은 전부 무인 운전이 기본이다. 차량 안에서 전방과 후방을 볼 수 있다.
김해와 대구 3호선 같은 일부 노선에서는 그나마 안전 요원이 동승하긴 하지만, 신분당선처럼 전기 철도 운전 면허가 있는 정식 기관사가 아니라 그냥 알바 수준의 저렴한 인력이라고 한다.
용인 경전철의 경우 승강장에 스크린도어조차도 없다. 누가 선로에 떨어지면 즉시 비상 정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또 돈 들여서 마련하지 않은 거라고 한다.

이렇듯, 경전철과 중전철은 외형이나 내부 규격이 많이 다르다. 다만, 이 두 철도 시스템을 법적으로 가르는 근본 기준은 전기 규격이나 궤간 같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무게, 즉, 축중 하중이라고 한다.

참고로, 서울시도 중전철 지하철만이 건설을 마쳤을 뿐이지 내부에 경전철을 또 만들고 있다.
신설동-우이동선은 서울 지하철 12호선의 후신이기도 한데, 인구 대비 지하철이 4호선밖에 안 지나는 그쪽 동네의 교통난 해소에 도움이 되리라 예상된다. 2량 1편성에 표준궤로, 전구간 지하이고 차량 기지까지도 지하에 있다. 차량 덩치만 작은 평범한 지하철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 복잡한 서울에서 지상/고가 도시철도를 만든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니까.
왕십리까지 갔으면 좋겠지만 거기가 이미 철도 노선이 4개나 지나고 지상과 지하 구조가 너무 복잡한 동네여서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만들어지고 있는 곳은 남부의 일명 신림선인데, 얘는 의외로 규격이 3량 1편성짜리 고무차륜으로, 규격이 우이동선과는 다르다. 아무쪼록 서울시에서 경전철을 구경하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을 종합하면, 서울-부산-대구의 순으로 개통해 온 기존 중전철 지하철과는 달리, 경전철은 어째 부산-수도권-서울의 순으로 역순으로 개통해 왔다.
그래도 코레일이 운영할 예정인 부산-울산 동해선 광역전철은 경전철이 아니며, 수도권과 마찬가지로 중전철에 그것도 대형 전동차이다. 수도권에 광역전철이 개통한 게 1970년대인데.. 무려 40년이 넘도록 지방에서는 뭘 하고 있었나 모르겠다. 시기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그리고 경전철의 규격에 대해서는 "750V 제3궤조, 무인 운전, 철 또는 고무 차륜, 2량 또는 이에 준하는 수의 편성"을 생각하고 있되, 종류에 따라서는 바리에이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 되겠다. 비록 개통은 선수를 빼앗겼지만 아주 초창기에 추진을 했던 의정부와 용인은 규격면에서 혼자 독특한 면모가 좀 있었다. 허나, 그 뒤에 만들어진 경전철들은 차츰 획일화가 진행되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04 08:29 2016/09/0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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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철도/도로 뒷북 이야기

1.
국내 고속도로계에서 독보적으로 낙후한 이단아이던 88 올림픽 고속도로는 지난 2015년 말에 드디어, 드디어 전구간이 4차선으로 확장되었으며 이름도 '광주대구 고속도로'라고 바뀌었다. 솔직히 이 도로는 착공· 건설 시기가(개통 시기가 아님.)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시기와 비슷할지 몰라도, 지리적으로는 올림픽과 정말 아무 상관도 없었으니까..

중앙분리대조차 없이 2차선이던 이 고속도로는 설계 최대 속도도 100이 아닌 80km/h이었으며, 중앙선을 침범하여 앞차를 추월하다가 마주 오던 차와 정면 충돌하는 사고가 잦아서 교통사고 발생 빈도 내지 사고 사망률이 여타 고속도로들보다 몇 배로 더 높았다. 백괴사전에서는 "44(死死) 내림픽 저속도로"라고 개드립을 치면서 깠을 정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행 여건이 다른 고속도로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히 리모델링된 국도보다도 열악했던 관계로, 한국 도로 공사는 여기 구간의 통행료는 여타 고속도로의 반값 정도로만 징수했다. 서울 지하철이 '최소 거리 이용 추정의 원칙'에 의거하여 요금을 측정하듯, 고속도로 톨비 역시 비록 진입과 최종 진출 나들목 자체가 88 내부의 나들목이 아니더라도 경로상으로 88을 이용했을 만한 위치라면 그걸 감안하여 산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가 이 도로도 찔끔찔끔 선형 개선과 확장, 이설 공사를 되풀이했으며, 그게 드디어 작년 말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오랫동안 존속해 온 통행료 특별 할인도 폐지됐다.

전국의 고속도로 나들목들 중 유일하게 평면교차+비보호 좌회전(고속도로에서!)이라는 엽기적인 형태로 남아 있던 '남장수 IC'는 해당 구간이 대거 이설되면서 없어졌다. 이를 대체하는 동남원 IC가 생기긴 했지만 저기서 서쪽으로 수 km 떨어진 곳이다. 남장수 IC가 없어진 건 철도로 치면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스위치백이라든가 통표 폐색 구간이 없어진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옛날에는 이 88 말고 다른 고속도로도 이름만 고속도로이지 2차선에 평면교차 같은 막장 시설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호남 고속도로, 영동 고속도로 따위도 처음엔 그랬다.
심지어 1990년대에 대구와 원주를 잇는 중앙 고속도로조차도 처음엔 2차선으로 건설되고 있었는데 감사원에서 이를 잡아 냈다. "이렇게 만들었다간 99.9% 나중에 또 확장하느라 더 고생하고 돈과 시간을 더 낭비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설계를 갈아엎고 다시 만들어라. 그리고 이를 선례로 삼아 앞으로 새로 만드는 모든 고속도로들은 처음부터 반드시 4차선 이상 크기로 건설해라."라는 현명한 지시를 내려서 개선이 됐다.

저렇게 1990년대에도 2차선으로 건설될 뻔한 고속도로가 있었는데 1960년대 말 그 옛날에 처음부터 전구간 4차선으로 시작을 했던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 과정이 문득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다만 그 시절에 박통이 이미 "내가 야당이 하도 반대해 대서 일단은 4차선으로만 건설하지만 경부 고속도로는 얼마 못 가 분명히 비좁아질 거다. 확장을 하게 될 테니 도로 주변에 건물 건설 허가를 내지 말고 준비를 해 둬라" 이런 예고까지 했다고 한다.

경부 고속도로가 유지 보수 비용이 결국 건설 비용만큼이나 더 들었다고 회자되긴 한다만, 그건 다른 고속도로들도 훗날 꾸준히 개선되어 온 건 대동소이했다. 허나 88은 박통도 아니고 나름 5공 시절인 1980년대에 건설된 주제에 오랫동안 개선되질 못해서 까임거리가 된 것이다. 영호남 화합? 실질적인 수요보다는 정치 논리에 따라 건설됐다 보니 리모델링의 우선순위도 뒷전으로 밀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것도 이제 다 지나간 일이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88 올림픽 고속도로에 이어, 철도 경전선도 올해는 대대적인 선형 개량 공사가 끝나서 여러 구간이 이설되고 여러 간이역들이 없어질 예정이다.
자, 다음부터는 철도 얘기를 주로 늘어놓도록 하겠다.

2.
과거에 20세기 말에 우리나라의 최하등급 열차는 비둘기호였다. 정선선에서 운행하다가 2000년 11월 14일을 끝으로 퇴역했다.
객차형 비둘기호는 너무 싸서 수지맞지 않은 운임 체계, 너무 낡고 노후화한 객차 같은 여러 이유로 인해(비산식 화장실, 수동 출입문, 별도의 발전차 없이 객차가 차축 연결해서 소규모 자가발전-_-, 에어컨도 없음..) 21세기에까지 존속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긴 했다.

그 다음으로 통일호도 객차형은 차량이 비둘기호 만만찮게 열악했던지라 2004년 3월 31일, KTX 개통을 앞두고는 모두 퇴역했다. 근성열차라고 불리던 청량리-부전 통일호가 이때 사라졌고 경춘선도 통일호가 모두 무궁화호로 바뀌면서 사실상 운임이 강제로 일괄 인상된 효과도 났다.

나머지 디젤 동차형 통일호는 '통근열차'라고 이름이 바뀌었는데, 얘들은 진해선, 동해남부선, 군산선 등에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차근차근 무궁화호로 교체되면서 명줄이 위태로워졌다. 기관차-객차형처럼 차량이 완전히 다른 무궁화호 말고, CDC 객차 자체가 일명 RDC 무궁화호로 개조되기도 했다.

현재 통근열차의 최후의 보루는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는 경의선과 경원선밖에 안 남았다. 허나 경의선에서는 이미 진작에 전철에 밀려 퇴출되었으며, 현재 전국에서 오리지널 CDC가 다니는 곳은 이제 소요산 이북의 경원선이 유일하다! 과거에 정선선 비둘기호와 비슷한 꼴이 된 셈이다. 비둘기호:정선선 = 통근열차:경원선 정도의 비례식임.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9~2020년쯤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약 빨고 더 연장되어 연천까지 가 버리면 이제 CDC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더 북쪽의 잔여 구간은 지금 경의선이 그런 것처럼 안보 관광 열차가 대신 맡을 것이고.

물론 경원선 연장 구간은 전철이 들어간다고 해도 일단은 복선 노반만 확보해 놓은 '단선 전철' 형태로 운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복선 구간 운행이 너무 당연시되는 지하철 통근형 전동차가 갑자기 단선 구간에서 상하행 교행을 한다니 그것도 참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될 것 같다. 하긴, 천하의 KTX도 과거에 광주 역을 드나들 때는 꼬불꼬불 단선 구간을 다니긴 했다.

3.
21세기 이래로 경기화학선, 세풍제지선, 화순선 등 여러 산업· 화물 철도들이 소리소문 없이 열차 운행과 관리가 중단되고 사실상 폐선 테크를 타 왔다.
하지만 화물 분야에서 철도가 마냥 몰락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라, 지난 2010년 말에는 부산신항선이라는 걸출한 화물 철도가 개통했다. 그것도 복선으로. 여객이 아니고 항구 화물 전용 철도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쯤 뒤, 작년에는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평택에서 평택항으로 향하는 화물 철도가 또 신규 개통했다. 이름하여 평택선. 경부선과 연결하는 삼각선도 상하행으로 모두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무 방향으로나 통한다.

경부선 전철에서 성환-평택은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이기도 하고 역간거리가 무려 9km가 넘는다. 공항 철도를 제외하면 수도권 전철에서 역간거리가 가장 긴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사이엔 온통 들판에 소규모 마을밖에 없기 때문에 역이 만들어질 여지가 별로 없다.

평택 다음 성환 역에도 사이에 웬 지선 철도가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뻗어 나간다. 이건 하행 방향으로만 있고 서울 상행 방향은 없는데, 다름아닌 성환읍 학정리의 야산 하나를 몽땅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군부대로 향하는 비밀 철도이다. 서빙고 역에서 미군 기지로 들어가는 그 철도, 그리고 호남선에서 논산 육군 훈련소 방면으로 가는 강경선 같은 걸 떠올리면 되겠다.

관련 신문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그 군부대는 탄약창인가 보다. 탄약은 굳이 사방으로 파편이 날리는 수류탄 같은 부류가 아니더라도, 내부에 다 화약이 들어있는 위험물이다. 한 탄약고가 공격을 받아 폭발하면 인근의 다른 탄약고까지 연달아 재귀적으로-_- 폭발하면서 Doom 2의 레벨 23 Barrels o' fun이 실사판으로 재연되는 참극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스플래시 대미지를 예방하기 위해 탄약창은 최대한 넓게 띄엄띄엄 지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탄약창의 부지가 굉장히 크다. 다만 여기에 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눈꼽만 한 보상밖에 못 받고 오랫동안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서 꽤 고달프게 지냈다고 한다.

4.
그 밖에 작년에 있었던 의미 있는 사건으로 또 떠오르는 건.. 서울 역과 노량진 역에 정식 환승 통로가 개통했다는 것이다.
버스와는 달리 지하철은 내렸다가(=집표 구역 밖으로 나감) 다시 탔을 때 환승 할인이 없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 9호선이 개통한 뒤에도 노량진 역에는 물리적인 환승 통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공항 철도와 경의선도 기존 지하철 1· 4호선 서울 역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거기는 수도권 전철 전체를 통틀어 예외적으로 철도끼리 내렸다가 30분 이내에 다시 타도 환승 할인이 인정되게 되었다. 일명 소프트 환승이다.

사실, 지금은 찍고 나간 동일 게이트에 5분 이내에 다시 들어가도 1회에 한해 기본 운임 재징수 면제라는 예외까지도 추가돼 있다. 이런 것들도 다 소프트웨어로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다 구현 가능한 건데 굳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으니 막아 놓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5년도 더 전에 환승 통로가 개통했지만, 2010년 이전엔 '국철/중앙선' 청량리 역과 서울 지하철 청량리(1호선) 역도 마치 경의선 신촌과 지하철 신촌(2호선)만큼이나 환승이되지 않았고 별개의 역으로 취급되곤 했다. 또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갓 개통했을 때에도 신당 역은 2호선과의 환승 통로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몇 달간을 환승이 안 되는 역으로 영업을 했었다. 이때엔 소프트 환승 같은 건 없었다.

서울 역의 경우 지하철과 공항 철도가 정말 도를 지나칠 정도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관계로, 수직 이동 삽질을 줄이고 수평 이동도 무빙워크로 도와 줄 환승 토로가 정말 절실했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환승 통로 만들어 주세요" 급이었다. 그래서 작년 3월에 먼저 개통했다.
한편, 노량진은 민자역사의 건설과 맞물려서 환승 통로의 개통이 한없이 늦어졌다. 이건 마치 분당선 야탑 역과 인근 버스 터미널과의 통로 개통과도 비슷한 문제였던 것 같다. 둘 다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일이 늦어졌고 그 동안 승객들만 불편을 겪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래도 작년 10월 말에 환승 통로가 생기긴 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물리적인 환승 통로가 뚫린 덕분에,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두 역에만 존재하던 소프트 환승 예외 로직은 폐지되었다. 마치 88 올림픽 고속도로가 리모델링이 완료되면서 반값 통행료 제도가 없어진 것과 같은 이치다.

단, 서울 역에 있는 4개 전철 노선 중 경의선은 여전히 여타 노선들과 단절되어 있으며, 여기는 수도권 전철에서 유일하게 소프트 환승 예외가 계속 유지된다. 1시간에 1대밖에 안 다니는 마이너 지선에까지 굳이 환승 통로를 뚫을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신촌은 아주 유니크한 구간으로 그렇게 명맥이 유지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4/20 08:38 2016/04/2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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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호선의 역사

* 꽤 오래 전인 블로그 개설 초창기에 썼던 글을 리메이크 한 것이다.

1. 개통식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인 8월 15일에 맞춰서 정부 수립을 했다. 그런데 이 8월 15일은 우리나라의 철도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날이다. 1974년 8월 15일은 서울 지하철 1호선 "겸" 수도권 광역전철이 같이 개통한 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의 최고급 열차이던 관광호가 새마을호로 이름을 바꿔 첫 운행을 시작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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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진을 보자. 이 둘은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겉으로는 흑백 사진이지만, 철덕이라면 전동차의 색깔이 저절로 컬러로 복원돼서 뇌에 비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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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의 동선과 스케줄을 보면, '서울 지하철 1호선'(종로선)의 개통식이 먼저 청량리 역 승강장에서 열렸다. 마침 친절하게도 당시 시각까지 사진에 담겨 있다. 아침 11시 15분경.
지하철 개통식 때는 서울 지하철 공사(현 서울 메트로) 소속의 흰 배경에 창틀 부분만 빨강 도색인 전동차가 사진에 담겼다.

이 사람들은 저 열차를 마치 자가용처럼 시승하고 다녔다. 그 당시 종합 사령실이 종로5가 역에 있었던 관계로 그 역에서 내려서 사령실도 잠시 들른 뒤, 서울 역도 지나 남쪽으로 쭈욱 내려갔다.

그렇게 지하철 개통식 팀이 도착한 뒤에야 수원, 인천, 성북 방면의 지상 '수도권 전철'의 개통식이 바로 구로 역 승강장에서 아침 11시 50분쯤에 열렸다. 이번에는 철도청 소속의 파란 배경에 창틀 부분만 흰 도색 전동차가 얼굴마담 역할을 했다. 물론 '초저항'이라고 불리는 저 식빵 모양의 일제 전동차 자체는 철도청 것이든 서지공 것이든 완전히 동일하다.

서울에서 수원이나 인천을 가려면 예전에는 털털거리는 디젤 동차를 타야 했는데 그게 모두 깔끔한 전철로 바뀌었고, 그 전철이 서울 종로에 있는 지하철 구간과 직통 운행까지 한다는 것이 이 지하철· 전철 개통의 의의였다.

가끔 코레일이나 서울 메트로 전동차를 타고서 안에서 철도의 역사 관련 동영상이 나오는 걸 살펴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자기 회사에 해당하는 얘기만 한다. 서울 메트로에서는 지하철 개통 얘기만 하고, 코레일에서는 수도권 광역전철 개통 얘기만 한다. 우리는 두 사건이 모두 순차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알면 되겠다.

지하철· 전철 직통 시스템의 개통식은 원래는 대통령도 참석하고 아주 웅장· 성대하게 치러졌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알다시피... 아침 10시부터 장충동 국립 극장에서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광복절 기념식이 있었는데 거기서 영부인인 육 영수 여사가 괴한에게 총격을 당했기 때문이다(10시 23분).

지하철 개통식 사진에 찍힌 11시 15분은 그 대형 사고가 터진 지 50분 남짓밖에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러니 저 사진에 나온 사람들은 마냥 기쁜 표정만 지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그 당시 양 택식 서울 시장이 아주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과업이었으며, 원래대로라면 개통식은 그의 인생 최고의 날이 돼야만 했다. 하지만 하필 그 날 대통령의 영부인이 세상을 떠나는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그는 사건의 책임을 지고 시장 자리에서 경질되고 말았다.

그의 후임인 구 자춘 시장은 양 택식의 지하철 건설 계획을 거의 다 갈아엎었다. 하지만 저 사람도 선임 뺨치는 불도저였으며, 다음 노선인 2호선이 거대한 순환선으로 만들어진 건 그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2. 발전 내력

서울 지하철 1호선 겸 수도권 전철은 처음에는 한 편성당 6량으로 개통했지만 이미 1980년 12월에 8량으로 증설되었고, 1984년에는 10량으로 증설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 당시 열차를 타고 있는 동안은 "객실에서는 금연입니다. 출입문은 30초 동안 열려 있습니다(일반열차보다 훨씬 더 빨리 닫히고 금방 출발하므로). 지하철 전동차 안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라고, 난생 처음으로 일반열차가 아닌 지하철을 타는 사람을 대상으로 초보적인 안내 방송도 일일이 육성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 개통했을 때 "이 도로에는 사람이나 손수레, 자전거 따위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라고 한참 홍보를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1974년 첫 개통 당시의 운행 계통과 운행 시격은 다음과 같았다.

  • 청량리-성북(지금의 광운대 역): 40분
  • 서울역-청량리: 10분 (R/H 땐 5분)
  • 서울-구로: 10분
  • 구로-인천: 20분
  • 구로-수원: 40분

즉 남쪽으로는 10분 간격으로 구로, 인천, 수원, 인천 행이 번갈아가며 왔다고 생각하면 되고 북쪽으로는 4대 중 1대 꼴로 성북 행이고 나머지는 청량리까지만 간 셈이다.
인천까지 가는 전철이 급행도 없고 배차간격이 지금의 중앙선과 비슷한 수준이요, 수원 가는 전철은 지금의 소요산 행 열차보다 배차간격이 더 길었다는 얘기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경부, 경인선 모두 그냥 복선이었고 특히 경부선 전동차는 지금 급행 전동차가 그런 것처럼 일반열차의 틈새를 이용해서 운행되었으니, 열차를 많이 투입할 수 없었음이 자명하다.
1981년 12월 23일에는 경부선 수원-영등포 구간이 2복선으로 확장되면서 경부선 전동차를 더욱 증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일반열차 눈치 볼 필요 없이 전동차만의 선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 상대식 승강장을 하고 있던 역은 자연스레 쌍섬식 승강장이 됐다.

2복선화 공사는 그때 이미 구로 이남은 방향별 복복선으로, 서울 시내 구간은 공사가 쉽지 않아 선로별 복복선으로 정착한 것 같다. 방향별 복복선은 기존 복선 선로의 양 끝에 선로를 하나씩 추가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예전부터 있던 내선은 일반열차가 계속 쓰고 신설된 외선으로 전동차가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수원 이남으로도 계속 달리는 일반열차와는 달리, 수원에서 북쪽으로 회차해야 하는 전동차는 선로를 바꾸는 회차 과정에서 일반열차 내선을 침범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회차할 때만은 여전히 일반열차 눈치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2복선의 선로 용량에 걸맞게 전동차를 증차하기가 어려웠다.
이 고질적인 문제는 먼 훗날인 2003년, 병점 역이 개통하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차량기지와 함께 회차 전용 입체 교차로가 신설된 것이다. 병점뿐만 아니라 천안에도 전동차 회차 및 장항선 분기가 모두 입체 교차로로 잘 구비돼 있다.

90년대에 들어서서는 경인선도 2복선화가 추진됐다. 거기는 일반열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 타당성 조사는 진작에 다 통과했기 때문에 일이 성사됐다. 그리고 경부선과 경인선이 합류하는 구로-영등포 간은 아예 3복선화도 진행되었다. 1991년 11월 23일은 경인선 2복선화 기공식과 경부선 해당 구간 3복선화의 개통식이 거행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경인선 2복선화는 부평-주안-동인천의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구일 같은 역은 이를 계기로 형태가 크게 바뀌기도 했다.

사실 그 해 5월 25일에는 공사 때문에 1박 2일 남짓한 시간 동안 전동차가 잠시 단축 운행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 경부 고속철 2차 공사 구간에서 경부 고속도로 위를 타넘는 언양 고가 공사와 비슷한 맥락이라 보면 되겠다. 첨단 공법을 동원한 덕분에 공사의 대부분은 차량 통행을 막지 않고 그대로 진행할 수 있지만 아치의 기초를 놓는 한나절 남짓한 시간은 고속도로를 잠시 막아야 했다고 한다.

경인선과 더불어 경부선 수도권 전철도 수원이 아닌 무려 천안까지 남하하는 공사가 1996년부터 추진되었다. 그 시절에 경부선 일반열차를 타면서 아직 완공되지 않은 전철역 승강장이 휙휙 지나가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경부선은 이제 천안 이북은 2복선 전철이 되었지만 일반열차 때문에 경인선처럼 충분하게 급행 전동차를 운행하지는 못한다.

서울 서남쪽이 그렇게 변화를 겪고 있는 동안, 북쪽 종점인 성북 일대에서는 1호선 전동차의 병목을 야기하고 선로 용량을 깎아먹던 '평면교차'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진행됐다.
1978년 12월에는 경원선 용산-성북 구간에도 전동차가 투입되어 종전의 디젤 동차를 대체하고 1호선의 지선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이놈은 선로 합류와 회차 과정에서 유감스럽게도 1호선 전동차와의 평면교차를 야기하고 있었다.

얘는 2005년에 광역전철 중앙선으로 분리해 나감으로써 문제가 해결됐다. 용산-성북이 아니라 용산-덕소가 됐다. 마치 안산선 열차가 처음엔 1호선 경부선의 지선으로 운행되다가 훗날 4호선으로 완전히 독립해 나간 것과 같은 방식이다.
또한 경춘선 무궁화호가 야기하던 평면교차도 경춘선 복선 전철이 다른 선로로 이설되면서 사라졌다. 다만 이런 조치로 인해 반대로 말하면 성북(지금의 광운대) 역이 그 덩치에 비해서 경춘선도 못 타고 중앙선도 못 타고 오로지 1호선 전동차밖에 못 타는 역으로 역할이 줄기도 했다.

다만, 처음에는 이 수도권 전철의 북쪽 종점은 계속해서 올라가서 한동안 의정부북부에 머물러 있다가 이제는 동두천과 양주를 거쳐 소요산까지 올라갔고, 장기적으로는 무려 연천까지 갈 거라고 한다. 경원선 자체는 아예 민통선 안의 월정리와 철원까지 복원할 계획이 잡혀 있고.. 정말 40년 동안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룬 셈이다.

그나저나 먼 옛날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의 내부 인테리어가 온통 빨강이었다는 것이 본인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로마자 표기법이 바뀐 게 반영되고 국철과 지하철 구분 없이 색깔을 남색으로 획일화한 모습만 직접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옛날 사진을 보면.. 오히려 "내가 착각을 하고 있나, 색맹이 됐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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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6/03/20 08:31 2016/03/2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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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신분당선이 용인까지 연장됐고 수인선이 인천까지 연장된 이 와중에 철도 분석 카테고리에 몇 년째 새 글이 없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이번에 게재하는 자료는 수 년 전에 한 번씩 다 다룬 적이 있는 주제이지만, 그래도 최신 정보도 같이 업데이트 했다.

1. 이색 지하철역 열전 몇 가지

승강장은 지상이고, 입구와 통로가 지하인 역은?
구일(경인선 분기 직후의 교량 위에 세워진 역. 경인선 2복선화와 관련된 아주 독특한 내력이 있음), 대방(일반열차 선로가 평지이고, 전철 승강장은 고가이긴 하다만), 반월, (신도림도 해당하지만 지하 환승역)

출구가 하나뿐인 역은?
학여울, 독바위, 반월, 마곡(과거 마천 역이 그랬던 것처럼 출구를 추가로 만들려는 계획은 있는 듯함)

옛날 역명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은?
중앙(바깥에), 신설동(환승 통로 어딘가에 일부러 남아 있음), 야탑(승강장에. 옛날 역번호와 로마자 표기를 볼 수 있음)

2. 역명에 등재된 대학교들

한때, 수도권 광역전철 1호선 회기 역의 부역명은 '경희대앞'이었다. 인근에 경희대 서울 캠퍼스가 있기 때문. 그러나 2009년부터 학교에서 부역명 표기 재계약을 하지 않고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이 부역명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 대신 2012년 말에 개통한 분당선 영통 역이 경희대 국제 캠퍼스와 가까운 관계로 부역명 '경희대학교'를 차지해 있다. 같은 학교가 두 전철역에다 동일 부역명을 번갈아 가면서 쓴 게 흥미롭다.

전철역명의 본좌급인 학교는 역시 부역명도 아니고 주역명으로 '한양대'(2호선)와 '한대앞'(4호선)을 모두 당당히 차지해 있는 한양 대학교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서울 캠퍼스와는 달리, 안산의 에리카 캠퍼스는 전철역에서 그리 가까이 있지 않다.

한양대, 고려대, 숭실대는 지하철 출구가 정문이 바로 이어져 있을 정도로 가까운 학교이다. 서울 근교엔 가천대가 그러하며, 인천에서는 최근에 수인선의 연장 개통 덕분에 인하대도 이 반열에 합류했다.
2호선 신촌은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가 적당한 멀리 떨어진 채 비슷하게 인접해 있는 관계로 어느 학교의 부역명도 끼어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신촌 일대는 교통이 헬인 관계로, 셔틀버스는 경복궁 역을 경유한다.

광운대는 "시종착역"인 성북 역이 자기 학교 이름으로 개명된 덕분에 학교 홍보 효과 하나는 정말 대박으로 누리고 있다.
중앙대는 원래 7호선 상도 역에 교명을 딴 부역명이 붙어 있었지만, 더 가까운 9호선이 개통한 뒤부터는 흑석 역으로 부역명이 이동했다.

그 반면, 총신대는 '총신대입구-이수' 병크 때문에 이 바닥 사정을 아는 철덕들로부터 두고두고 까이고 있는 중.
그리고 서울대입구 역에서 서울대까지 걸어서 가는 사람은 바보 중의 상바보이고. 서울대라는 이름 인지도가 아니었다면, 위치와 거리만으로는 절대로 저런 이름이 붙을 수가 없었다. 그냥 관악구청 역이 됐지 않겠는가.

3. 전철들의 급행 운행

우리나라의 지하철/전철에서 급행의 원조는 평일에 하루 세 번씩 다니던 서울-수원 급행이었다. 1981년에 서울-수원 2복선이 개통하면서 같이 운행을 시작했다.

그 뒤 좀 더 자주 다니는 급행은 경인선에 등장했다. 이 역시 선로의 2복선화와 함께 운행을 시작했다.
경부선에는 2005년 1월, 병점을 넘어 천안까지 2복선화가 완료되면서 경인선과 비슷한 계열의 용산-천안 급행이 추가로 등장했다. 기존 서울-수원 급행도 천안으로 구간이 연장됨. 기존 급행과는 달리 용산 착발 급행은 서울 시내 구간을 일반열차 선로가 아니라 급행 전동차 선로로 다닌다는 차이가 있다.

이렇게 별도의 선로에서 상시 운행되는 급행은 경부선과 경인선에만 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2010년대부터는 편도로만(아침엔 상행만, 저녁엔 하행만) 기존선의 일부 구간에서 찔끔찔끔 다니는 급행이 안산선, 경원선, 중앙선, 경의선, 분당선에서 등장했다.

일산선과 과천선은 너무 짧고 딱히 건너뛸 만한 구간이 없어서 그런지 급행 운행이 없다.
경인선에는 한때 급행보다 더 정차역 수가 적은 특급까지 잠시 운행되기도 했지만 없어졌다.
경춘선은 역시 한때는 급행이 존재했으나, 지금은 급행 역할을 ITX-청춘이 대체한 지 오래이다.

서울 지하철 9호선은 광역이 아닌 도시철도에서 대피선을 이용한 급행이 처음부터 계획되고 운행되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한때는 개통해 봤자 공기수송일까봐, 지하철의 메리트를 만들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낸 아이디어였으나, 9호선은 예상을 뛰어넘는 대박을 쳐서 극심한 혼잡과 차량 부족을 호소하는 중이다.
서울 지하철 7호선도 이제 부천과 인천까지 가는 굉장한 장거리 노선이 됐는데 연장 구간만이라도 급행이 다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신분당선은 일단은 컨셉 자체가 '모든 열차 급행'이다. 하지만 정자 이남부터는 도시철도화할 가능성이 있으며, 중간에 자꾸 역이 생기면 완급 구분이 추가될지도 모른다.

공항 철도의 직통열차는 여느 급행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중간의 모든 역을 씹어먹고 진짜 서울 역과 인천 공항만을 찍는다. 이제는 KTX까지 공항까지 가게 됐지만, 그래도 공항 직통열차는 경춘선 급행과는 달리 고유한 자기 역할이 있다 보니 여전히 운행되고 있다.
전철들의 급행 운행에 대해서 이렇게 분석해 보니 재미있다.

4. 철도 터널

요즘 우리나라 철도의 대세는 왕창 깊고 왕창 긴 터널이다. 정말 시원시원하게 팡팡 뚫어 댄다. 철덕들은 반드시 암기하고 숙지할지어다.

(1) 금정 터널: 2010년, 경부 고속철 2차 개통과 함께 우리 곁을 찾아왔다. 부산 북부 노포동에서 부산진 역까지.. 거의 20km에 달하는 부산 시내 종축을 전부 지하로 관통해 버린다. 물론 부산은 어차피 동서를 가로막는 산이 있으니 고속선 역시 많은 구간을 산 아래로 지난다.
서울 쪽은 광명까지 20km를 약간 넘는 거리를 전부 지상의 기존선을 타면서 천천히 달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부산은 참 복 받았다. 다만, 부산의 경우 고속선이 울산 쪽으로 우회하느라 근본적으로 거리 페널티가 굉장히 큰 것으로 인해 장점이 상쇄되기도 한다.

(2) 솔안 터널: 우리나라에 최후로 남아 있던 영동선 스위치백을 대체하여 새로 건설된 '루프식 터널'이다. 즉, 얘는 직선으로 빨리 이동하는 게 아니라 고저 차이를 극복하는 게 목적이다. 길이는 16.7km에 달한다. 2012년 6월 말에 개통함.
현재 우리나라에는 얘를 포함해 루프 터널이 총 4개가 있다. 중앙선에 두 군데, 그리고 함백선에 한 군데, 그리고 저것. 그 중 솔안 터널이 그리는 원은 다른 세 터널의 회전 반경보다 훨씬 더 크다.

(3) 율현 터널: 길이로 따지자면 위의 저 두 터널을 아득히 버로우 태우는 괴물이다. 서울 수서 역과 무려 평택에 있는 지제 역 사이의 50.3km를 지하로 연결했다! 작년 6월 말에 개통했다. '율현'이란 수서 역 남쪽으로 자곡· 세곡동의 사이에 있는 서울의 외곽 끝자락 그린벨트 지대이다. 그래도 행정구역상으로는 아직 인서울임.
이 선로는 수도권 고속선과 GTX(고심도 급행 광역전철)가 공유한다. 즉, KTX 산천이라는 장거리 고속열차와 누리로 급의 통근형 열차가 한 선로를 같이 쓴다는 뜻이다. 동일 선로 공유라니, 그 깊은 지하에서 속도 차이도 꽤 많이 나는 열차가 완급 결합을 하면 양쪽 다 선로 용량 제약도 많이 걸릴 텐데, 운영이 잘 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4) 대관령 터널: 평창과 강릉을 잇는 21.7km짜리 터널로,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곧 개통할 원주-강릉선 구간에 속한다. 부산을 관통하는 금정 터널보다 약~간 더 길다. 작년 11월 말에 개통했다.
서울에서 강릉을 가기 위해 먼 옛날에는 무려 영주까지 내려가야 했으나 1970년대에는 분기점이 제천으로 바뀌었고(태백선은 일제 강점기가 아니라 해방 후에 만들어졌음), 이제는 원주로 바뀔 예정이다.

2000년대 초엔 영동 고속도로가 산을 몽땅 타넘는 고가로 다시 만들어졌는데, 철도는 오르막을 오르는 게 힘들다 보니 그냥 닥치고 지하 터널로 아주 완만한 경사를 만들어 냈다.
예전에도 한번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1) 광명 역에서 분기하여 인천대교를 따라 곧장 인천 공항으로 가는 철도가 필요하고, (2) 신분당선은 서울 남산 아래를 지나서 광화문까지 직통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이 없는 게 아쉽다.

Posted by 사무엘

2016/03/09 08:37 2016/03/0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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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계시와 비유

1.
먼저 성경 말씀 패러디부터 좀 소개하겠다. 난 철도의 역사가 드디어 욥기 장면과도 오버랩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내가 서울-부산간의 땅에 철길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누가 그것들의 궤간을 정하였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선로 위에 열차를 맞춰 놓았느냐?
그 차량의 대차를 어디에 고정하였느냐? 혹은 그것의 동력 기관을 누가 놓았느냐?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욥 38:4-7 패러디)

"이제 내가 너를 만들 때 함께 만든 특대형 디젤 전기 기관차를 보라. 그가 소처럼 기름을 먹느니라.
이제 보라, 그의 기력은 엔진에 있고 그의 힘은 발전기와 연결된 전동기에 있느니라.
그가 자기 바퀴를 백향목같이 움직이며 동력 전환 계통의 부품들은 서로 얽혀 있고
그의 대차는 강한 놋 덩이 같으며 그의 차축은 쇠막대기 같으니라.
그는 하나님의 철길들 중에서 으뜸이거니와 그를 만든 이가 자신의 연장을 그에게 가까이 댈 수 있느니라." (욥 40:15-19 패러디)


베헤못 빙고.
사실, 힘 자체는 전기 기관차가 더 좋지만 소리와 포스가 더 웅장한 건 디젤 전기 기관차여서.. ^^
욥이 그 당시에 무슨 총연장 몇 km에 차량이 몇 량 있는 사철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 사장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나란히 있는데.. 그때 본인은 윌리엄 워즈워쓰의 유명한 시 <무지개>가 문득 떠올랐다. 본인은 아주 오래 전에 접했지만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역설법 싯구가 워낙 강렬해서 내 기억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아이와 어른을 대조한 다른 유명한 구절은 성경에서 고전 13:11인데, 거기서는 어른이 된 뒤에 유치하고 초딩스러운 일을 버렸다는 심상이어서 낭만주의 시와는 분위기가 영 다르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첫 행이 무척 공감이 갔다. 나는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가 아니라 when I listen to Looking for You일 때 my heart leaps up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영원무궁토록 그러하리라! 그리고 자연의 경건함이 아니라 철도의 경건함 속에서 매일 매일 살고 싶다.

아니, 시의 제목 자체를 레인보우가 아니라 레일웨이라고 바꿔도 될 것 같다. 소리가 비슷하다!
예전에 3· 1 운동 관련 글을 읽으면서 천도교를 보면서도 철도교를 연상한 적이 있었다. rain과 rail도 역시 ㄴ과 ㄹ 차이이다!

3.

"참고로 카지노의 카페트와 조명들은 전부다 심리학적으로 매우 신경써서 만든 것들인데,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두군거리고 슬롯머신을 한번쯤을 돌려봐야할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 구성되어 있다. 특히 슬롯머신처럼 단순하게 생긴 카지노 장비들(...)의 효과음은 돈 짤랑거리는 소리 등 도박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정말 공들인 사운드 이펙트를 자랑한다."
* 나무(엔하)위키의 '카지노' 설명 본문 중.


그렇다. 새마을호 역시 카페트와 조명, 안내 방송과 음향들은 전부 심리학적으로 매우 신경써서 만들어져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두근거리고 단순 이동이 아니라 뭔가 철도라는 악기를 이용한 문화 예술 공연 같은 느낌이 들도록 구성되어 있다. 기내지 레일로드, 고급스러운 간접 조명과 독서등, 두툼한 좌석에다 Looking for you 음악은.. 그야말로 승객을 뼛속까지 철덕으로 세뇌시키고 철도의 노예로 만들기 위한 정말 공들인 사운드 이펙트였다.

도박은 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만약 유흥 차원에서 한다면 내 돈을 잃거나 뺏긴 게 아니라, 그냥 게임 요금에 자리값/서비스료를 지불했다는 생각으로 하는 게 그나마 바람직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것, 더 구체적으로 새마을호를 타는 것은 단순히 몸을 이동하는 데 드는 교통비 운임을 지불한 게 아니라 샘솟는 평안과 기쁨, 행복을 구입했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이폰만 감성 마케팅을 한 게 아니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Looking for you를 듣는 것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새마을호 객실에서 흘러나오는 Looking for you를 듣는 것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경부선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를 타고 열차가 시종점에서 도달할 때 연주되는 Looking for you를 객실에서 듣는 것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4.
전철을 타서 좌석에 앉으면 가방이나 도시락 같은 소지품을 어디에다 놔 둘지가 고민되는 때가 생긴다.
그런데 그런 물건을 두는 위치는 전기 철도 차량의 전력 공급원 내지 집전 방식에 대한 좋은 예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제각기 장단점이 있다.

  • 머리 위의 선반에다 두는 것은 가공전차선+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에 해당한다. 제일 편하긴 하지만 깜빡 잊고 짐을 놔 두고 내리기 쉽다.
  • 바닥의 양 발 사이에다 두는 것은 바로 제3궤조 집전 방식이다. 놔두고 내릴 염려는 적지만 발을 편하게 두기 어렵다.
  • 그냥 손에 쥐고 있거나 백팩에 넣은 채로 있는 것은 배터리 또는 기름+전기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놔 두고 내릴 가능성은 0이지만 승차감이 제일 안 좋다.

선반에 물건을 적재하는 건, C++ 프로그램으로 치면 '전동차 탑승'이라는 함수가 실행되고 스택에 C++ 개체를 하나 선언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전동차에서 내리는 것은 함수 실행이 종료되고 그 변수가 scope을 벗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변수는 스택에서 소멸되고 해당 개체의 소멸자 함수가 실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heap도 아니고 스택에 선언된 개체에 대해 메모리 leak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난 옛날에 논산 훈련소에 있을 때 침상형 생활관에서 바닥 위의 빨랫줄을 보고도 전차선을 떠올렸다. 국방색은 갈록색을 빼닮은 듯이 비슷해서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예표이고, 긴 행렬이 우측통행을 하는 것 역시 지하철의 예표이다.

성경에는 질질 끌리는 긴 옷자락(사 6:1) 내지 수행원 행렬(왕상 10:2)조차도 train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으니 저렇게 생각을 하는 건 성경적인 근거가 충분하다.
자나깨나 철도를 생각하는 것은 가까운 것부터,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5.
난 솔직히 내가 아니어도 전세계의 날고 기는 천재들이 알아서 다 발전시켜 줄 컴퓨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신기술에는 별 관심이 없다.
기술은 어지간한 건 다 상향평준화해 버리고 심지어 오픈소스로 풀리기까지 한다.
내가 안목이 좁은 건지.. IT 업계는 어지간한 아이템, 아이디어는 나올 거 다 나오고 게임 말고는 더 할 게 없는 레드오션이 돼 버린 지 오래인데, 미국은 아직도 뭘 더 만들 게 있어서 컴퓨터 관련 학과가 인기가 많고 코딩을 배우네 창업을 하네 하는 분위기인지 궁금하다. 아이템이 계속 있다면 참 다행이긴 한데.

나는 컴퓨터보다는 우리나라 철도를 위해 일하고 싶다.
나를 죄에서 구원한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해서 내 삶을 주께 드리고 내 몸을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듯이,
객실에서 Looking for you를 틀어서 잠자던 내 야성과 똘끼를 깨우고, 감성을 흥분시키고 한편으로 촉촉히 적시고, 한편으로는 무한한 행복과 감동과 평안과 희락을 준 철도를 위해, 철도를 전하는 일에 내 일생을 바치고 싶다.

"철도 안에서의 한 날이 세상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으니이다. 내가 장막들에 거하는 것보다 차라리 철도의 집(= 철도역) 문지기가 되겠사오니" (시 84:10 패러디) 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 피스톤 왕복 엔진 (자동차. 휘발유와 디젤 모두)
  • 제트 엔진 (비행기. 터보 제트, 터보 팬)
  • 로켓 엔진 (우주 발사체)
  • 전기 모터 (전동차, 전기 철도)

의 내부 구조와 원리, 제원을 측정하는 규격과 물리적 특성, 구동음 등등을 전부 마스터 하고 싶다. 난 정작 대학 졸업할 때까지 기계· 전자 같은 건 완전 담을 쌓고 살았다만..;;

아 뭐 지금처럼 국어정보학 쪽으로 가서 언어를 공부하는 프로그래머가 됐고 한글 입력기와 글꼴 쪽으로 논문 쓰게 된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일이긴 하나,
내가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를 몇 년 좀 일찍 들었으면 진로가 딴판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철도 만세 만만세. 새마을호여 영원하라.
자동차나 비행기 쪽에 관심이 가는 것도 언제까지나 철도와의 비교 차원에서 하는 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 전 학교 안 대졸자 취업 박람회(?)에서 본 코레일 부스..;;

Posted by 사무엘

2015/09/14 08:34 2015/09/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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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개통과 운행 내력 외

한반도에 KTX라는 이름의 고속철이 개통하여 상업 운행을 시작한 지 어언 10년이 넘었다.
개통한 지 무려 반세기가 넘은 일본의 신칸센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KTX도 개통 내력이 은근히 복잡해지고 있으니 한번쯤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2004. 4. 1. [경부 1차 개통]
- 경부선: 서울-부산 (고속선은 대전-광명, 대구-옥천만)
- 호남선: 기존선의 복선전철화. 용산-목포 (대전 이남엔 고유한 고속선 구간 없음)
- KTX 개통과 함께 (1) 서울교외선에 정규 열차 운행이 중단됨. (2) 통일호 폐지, (3) 경춘선 무궁화호 폐지.

* 이 일대 시기의 서울/철도 소사를 참고 차원에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청계고가의 철거와 청계천 복원 사업이 시행됨.
- KTX 개통 약간 전에 서울역 민자역사가 개관함.
- KTX 개통 후 얼마 안 있어 경부선은 서울 역, 호남/전라/장항선은 용산 역으로 역의 역할이 완전히 이원화됨.
- 2004년 7월, 서울 수도권의 버스· 지하철 통합 환승 제도가 시행됨.
- 2005년부터 철도청 폐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출범.

2007.
- 경부선: 대전-대구 사이만 기존선으로 달리면서 김천과 구미에 정차하는 KTX 일부 운행

2010. 11. 1. [경부 2차 개통]
- 경부선: 대구-신경주-울산-부산 사이의 고속신선 신규 개통. 기개통 구간엔 오송과 김천구미 역이 추가 영업 시작함
김천· 구미 KTX는 폐지. 그 대신 수원· 영등포 정차 KTX 생김

2010. 12. 15.
- 경전선: 기존선의 복선전철화. 대구 이남으로 창원, 마산으로 가는 노선. 수요 폭발이었다고 함.

2011. 10. 5.
- 전라선: 기존선의 복선전철화. 익산 이남으로 여수엑스포 행

2012.
- 드디어 KTX-산천 차량 투입

2014. 6. 30.
- 일부 열차가 인천 공항까지 직결 운행 시작

2015. 4. 2. [호남 1차 개통]
- 호남선: 고속신선 신규 개통. 익산· 정읍· 광주송정을 경유하며 공주 역 추가 영업 시작. 저 역들을 제외한 호남선 기존선 역들은 KTX 취급이 폐지됨(광주, 김제 등).
- 동해남부선(앞으로 동해중부선과 연결되어 동해선이 될 예정): 포항 직결 운행 시작

2015. 8. 1.
- 대전과 (동)대구는 기존선과 인접하는 도심 구간까지도 기존선 연결선이 아니라 고속선이 깔림으로써.. 운행 계통이 일반열차와는 완전히 분리되는 복을 누리게 됐다.

요약하면:
고속신선은 오송에서 분기하는 경부선과 호남선 축으로 깔려 있고, KTX 운행 노선은 거기에다 호남 분기(전라선), 경부 분기(경전선, 동해남부선), 그리고 서울 이북으로 공항선이 추가적인 겉저리로 붙은 형태이다.
차량은 아무래도 1세대 떼제베 차량과 2010년대 이후의 2세대 산천 차량 정도로 나뉜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KTX-산천은 HSR-350의 기술로부터 만들어진 열차이긴 하지만 산천 자체가 HSR-350을 그대로 양산한 건 아니다.

더 먼 미래엔:
(1) 호남 고속철이 광주 이남으로 2차 구간이 마저 개통할 것이며, (2) 수서 발 수도권 고속철과 (3) 강릉 방면 동서 고속철이 남아 있다.
“희망을 싣고 번영을 싣고 뻗어가는 철도 따라 커 가는 나라”대로 될지어다. 아멘. (철도의 노래 가사 중)

* 고속철의 이름: 차량이냐 선로냐

고속철 보유국으로서 프랑스와 일본을 비교해 보면 좋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떼제베(TGV)는 '매우 빠른 열차'라는 뜻이며 차량 중심으로 작명됐다. 한국의 KTX도 이니셜을 보면 알 수 있듯, 차량 중심이다. 프랑스는 차량 기술에 자부심이 많은지 그 뒤에도 증속 경쟁을 제일 열성적으로 진행해 왔다. 2007년엔 자기 부상 열차가 아닌 재래식 바퀴식 열차로 무려 시속 574km라는 사기적인 시운전을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신칸센은 '새로운 간선 철도'라는 뜻으로 의외로 차량이 아닌 선로 중심으로 작명됐다. 본인은 철덕으로서 이 차이가 매우 신기하게 와 닿는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차량보다도, 기존 협궤가 아닌 표준궤로 고속철 신선을 깔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와 닿았던 것이다. 1964년에 첫 운행을 한 신칸센 0계 전동차는 떼제베 같은 독자적인 디자인도 아니고 걍 자기네 옛날 전투기와 비슷한 투박한 외형이었다.

새로운 교통수단을 만들 때는 성능뿐만이 아니라 안전도 굉장히 높은 가중치로 고려 대상이 되며, 고속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속 200km를 넘게 증속을 하는 기술보다도, 그렇게 고속 주행 중에 장애물이 나타나고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동 거리를 얼마를 넘지 않고 비상 정지를 도대체 어떻게 할지가 더 심각한 고민거리로 대두되었다. 엔지니어들이 별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 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싸움이 가장 좋은 싸움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됐다.
"가장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 (They're only good when dead 포카혼타스 Savages 대사;; )처럼.
애초에 비상 정지를 할 일이 없게 만들자는 것이다.
건널목 따위는 전혀 안 만들고 모든 구간을 무조건 입체교차로 만들고, 선로에는 아무도 접근을 못 하게 겹겹이 벽을 두르면서 일본의 경부선뻘 되는 도카이도선을 표준궤 고속선으로 새로 만들었다. 1960년대에 벌써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선로를 내세운 '신칸센'이 됐고 이것이 일본 고속철의 선로, 열차, 시스템의 명칭이 됐다.

이런 일본과 프랑스의 고속철 역사를 살펴보면, 철도라는 걸 처음 만들 때는 당연한 말이지만 차량보다 선로가 먼저라는 원칙을 확인할 수있다.

우리나라도 1992년에 대전-천안간의 경부고속선 본선 겸 시험선 구간을 먼저 착공한 뒤, 차량의 선정 계약은 더 나중인 1994년에 맺었다.

시속 200km를 넘는 장거리 간선 철도의 건설 자체는 1964년의 일본 신칸센이 세계 최초이다. 하지만 그 뒤의 추가적인 속도 경쟁은 후발 주자인 프랑스 떼제베가 앞섰다. 가령, 시속 260km대의 상업 운전은 1981년에 떼제베가 세계 최초로 달성했고 신칸센은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뒤인 1992년에야 300계 전동차가 도입되면서 그 속도를 따라잡았다. (300계는 TGV-R, ICE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속철의 차량 입찰 후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1984년 8월에 경부선 천안-서정리 구간에서 겨우 시속 150km 시운전 성공.. 이러던 지경이었다. 그러니 국제적인 안목이 있는 철도 공학자와 경영자들이 통탄할 법도 했다. 1980년대, 전국 곳곳에 포장 도로가 깔리고 마이카 시대가 코앞인데 이래 가지고는 "한국 철도엔 답이 없다"라는 게 뻔히 보였다. 철도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증속을 통해 많이 빠르게 실어 나르는 "회전율 향상"뿐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1985년 11월에 서울-부산 4시간 10분이 달성된 후, 지속적인 레일 장대화와 선형 개량, 기관차 출력 증대로 서울-부산을 1980년대 말까지 3시간 반까지 단축시키려는 계획은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미봉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1992년에 드디어 인천 공항의 건설과 더불어 경부 고속철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뒤의 역사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 그대로이다.

우리나라에서 떼제베 대신 신칸센이 낙찰됐다면, 철덕의 입장에서 전망해 보자면 다른 건 몰라도 떼제베보다 폭이 더 넉넉하고 애초부터 역방향 좌석이 없는 열차가 도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신칸센은 2-3배열 가축수송 열차가(한 줄에 좌석이 5개!) 있을 정도로 같은 표준궤에서도 뚱뚱한 덩치이기 때문이다. 자기네 자위대 전차의 부품도 제대로 수송을 못 할 정도로 빼짝 마른 협궤에 이골이 난지라, 신칸센은 이왕 표준궤로 까는 김에 열차의 폭까지 최대한 더 키운 듯. 하지만 지나친 고자세 때문에 입찰 후보들 중에서는 신칸센이 가장 먼저 탈락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11 08:32 2015/09/1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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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철도 이야기

1. 경의-중앙선 전철 직결 운행

지난 2014년 12월 27일엔, 지하 공덕에서 끝나던 경의선이 용산까지 연결됨과 동시에.. 운행 계통도 둘이 통합되어 직결 운행을 시작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문산에서 출발하여 탄현을 경유한 전철이 용산, 옥수, 한남, 왕십리, 청량리를 거쳐 양평, 용문까지 한번에 간다는 뜻이다.

1978년에 용산에서 성북까지 겨우 1호선의 지선 국철 취급이나 받았던 마이너 노선이 2005년 말부터 용산-덕소 중앙선으로 운행 계통이 분리되었는데, 그게 동쪽으로는 용문까지 연장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서쪽의 경의선과도 연결되는 발전을 이뤘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어도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경우, 중앙선을 달리는 열차도 경의선 시내 구간(공덕, 서강대 같은)에서는 잠시 지하 운행을 하게 된다.
공항 철도와 복층으로 겹치는 구간도 있지만, 어쨌든 서울역-공항(김포, 인천) 테크와 용산역-파주,청량리,양평 테크가 확실하게 분리가 이뤄질 것이다.

이 날짜에 맞춰서 일산선(서울 지하철 3호선 직결)의 원당-삼송의 무려 4km에 달하는 구간 사이에도 역이 하나 더 생겼고, 수인선에도 중간에 역이 하나 더 개통했다.
나는 프로그래머이면서 뭐 Visual Studio 새 버전이 나오고 아이폰 6이 나오고 뭐가 나오고 하는 건 별 관심 없고, 새로 개통하는 철도에 더 관심이 많고 그게 더 기쁘게 들린다. 어떡하지? =_=;;

2. 야탑 역 대합실의 열차 위치 안내 전광판

대한독립만세...!! 응? 까지는 아니어도 어쨌든 만세 만세 만만세!
자고 일어나니 드디어 야탑 역에도 생겼다. 열차 위치 안내 전광판. (승강장 말고 대합실 기준)
인근의 가천대, 태평, 모란, 이매, 서현 등엔 다 있는데..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야탑에만 이런 기본 시설이 지금까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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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타려는 열차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빨리 내려가면 탈 가망이 있는지를 예측을 할 수 없어서 얼마나 불편했나 모른다.
카드 찍고 개표 구역으로 들어갔는데 이제 막 하차 승객들이 내 쪽으로 스물스물 계단을 올라오는 게 보이면 낚였다는 생각에 내면으로부터 진심어린 짜증과 분노와 빡침이 솟구치곤 했다. 안 겪어 본 사람은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없다.
탈 가망이 없는 걸 진작에 알았으면 화장실이라도 먼저 들르면서 다음 6분간의 시간 활용 계획을 달리 수립했을 텐데.

서울 지하철 9호선처럼 아예 지하철 출입구에서부터 위치 안내가 되는 건 좀 오버라고 치더라도, 최소한 대합실 층에는 있어야 한다. 개표 구역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의사 결정이 가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크린도어 같은 건 없어도 되니 저 전광판이 현실적으로 더 필요했다.
너무 불편하고 싫어서 성남시에 민원이라도 넣을 생각이었다.. 아무튼, 이 기쁜 소식을 온 천하 알리세~

3. 2013년 1월 5일

지난 이 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을지로/안국에서 출발하여 청와대 분수대/춘추관까지 가는 초록색 지선 버스가 있었다. 번호는 8000. 시내버스답지 않게 타이어에 무슨 고속버스처럼 은색 휠캡이 고급스럽게 장착돼 있었고, 앞부분에 '청와대' 마크가 달려 있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노선 설정 때문에 이 버스는 한강 수상 택시와 영등포-광명 셔틀 전철을 능가하는 극심한 공기 수송에 시달렸다. 현재 영등포-광명 셔틀은 주말에는 운행을 안 하는데 얘는 반대로 주말에만 운행하다가 결국 나중엔 폐선됐다.

그런데 얘가 폐선이 확정된 날짜가 왜 하필 2013년 1월 5일이어서 철덕인 나의 눈을 번득이게 하는 걸까?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운행을 완전히 중단한 날과 동일하다. 같은 날에 나란히 은퇴했다. 물론 버스의 경우는 노선만 없어졌지 물리적인 차량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우연치곤 대단한 우연의 일치임을 뒤늦게 발견했다.

4. 언제 터널 내부 전등이 교체됐지?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여의나루 하저터널 구간.
원래는 노란 나트륨등이 켜져 있었는데 언제 여타 구간들처럼 흰 형광등으로 바뀌었지..???
교회 갈 때 지하철이 아닌 자차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이 구간을 이용해 보니 바로 티가 남.

<공주와 완두콩> 동화에서 진짜 공주는 담요와 매트리스 수십 장 밑에 깔려 있는 자그마한 콩알에도 배겨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그것처럼 정말 철도와 교감하는 철덕이라면 전동차의 구동음 멜로디 주파수가 자그마한 Hz만치 바뀌어도,
레일의 상태가 조금만 바뀌어도, 지하 터널 바깥 배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바로 눈치를 챌 것이다.

(1) 그나저나 콩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쇠구슬이 더 현실적이었을 거다. 콩알이었으면 그 무게를 못 버티고 그냥 으깨져 버릴 테니.
(2) 서울 한강의 아래에 존재하는 전철용 하저 터널은 총 3개이다. 지하철 5호선 마포-여의나루와 광나루-천호, 그리고 분당선의 압구정로데오-서울숲. 각각 폭약 NATM, 개착식, 실드라는 서로 다른 공법으로 건설되었다는 것도 특이하다. 광나루-천호는 강을 가림막으로 완전히 틀어막고 맨땅이 드러난 바닥을 파서 터널을 만든 뒤, 다시 터널 위를 덮어서 완공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포-여의나루보다는 얕고 존재감이 덜하다.

5. 답정너, 결론은 철도 자뻑

신약 성경 사도행전에 유독 자주 나오는 '이 길', '그 길'은..
this way 9:2, 22:4
that way 19:9, 19:23, 24:22
the way 24:14
분명 강철로 된 1435mm 궤간의 레일이 깔린 길이 틀림없다.
어쩌면 그 길은 그런 궤도가 두 개 깔려 있고 그 위로 25000V 60Hz 교류 전기 전차선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도행전이라는 책이 전반적으로 기행문 분위기이기도 해서 이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그리고 송명희 시인의 <나>를 생각해 보자.
난 솔직히 전반부에 나오는 것처럼 가난하고 못 배우고 병약한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후반부 가사를 보면..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는.. 새마을호+Looking for you를 집어넣으면 너무, 딱 맞아떨어진다. 아, 음성은 아니고 그 자리에 '음악'이 들어가야 하겠다.
하나님은 역시 공평하시다. 그래서 난 한국 철도를 통해 받은 이 셀 수 없는 복을 주변에 나눠 주는 삶을 살고 싶다. 철도교의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5/02/13 19:25 2015/02/1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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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부설하기 위한 임시 철도

철도 얘기를 하기 위해 먼저 컴퓨터 비유를 들어 보겠다.
어떤 복잡한 컴퓨터 아키텍처가 완전 처음으로 발표되었고 이걸 타겟으로 하는 고급 언어 컴파일러를 완전 최초로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상황일까?

이 경우, 일단 그 언어를 타겟 기계어로 옮기는 컴파일러를 그 언어와 타겟 환경 기준으로 만든다. 그런데 그 컴파일러의 소스 자체가 컴파일되지 못했으니 아직 그 언어를 타겟 기계어로 곧장 옮길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원래 목표로 하는 아키텍처보다 구조가 훨씬 더 간단한 가상 기계 내지 임시 P-code 아키텍처를 설계한 뒤, (1) 원래 언어를 임시 기계어로 옮기는 컴파일러와 (2) 임시 기계어 코드를 돌리는 가상 머신을 타겟 기계용으로 야메로 만든다. 둘 다 성능 따위는 쌈싸먹어도 되고 그냥 정확하게 돌아가기만 하게 극도로 단순하게 후딱 만들면 된다.

그 뒤, 원래의 컴파일러 소스를 (1)을 이용하여 컴파일하면 임시 코드 기반이긴 하지만 일단 타겟에서 돌아가고 원래 타겟 기계어를 생성하는 컴파일러가 완성된다. 이렇게 생성된 컴파일러를 이용하여 원래 소스를 다시 컴파일하면.. 드디어 타겟 기계에서 돌아가는 타겟 기계어 컴파일러가 완성된다. 자기 자신도 컴파일할 수 있고, 다른 소스도 컴파일할 수 있고.. 이제 컴파일러 2.0은 1.0을 이용하여 개발한 뒤, 그 2.0 소스를 2.0 컴파일러로 다시 빌드하는 식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자, 이런 얘기가 철도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컴퓨터가 난수를 생성하기 위해 먼저 난수가 필요하고, 자동차나 발전기가 동력을 생산하기 위해서 먼저 최소한의 동력이 필요하며, 또 고급 언어로 작성된 고급 언어 컴파일러는 먼저 동작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소스부터가 컴파일되어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철도 역시 부설을 위해서 다른 보조 철도가 먼저 필요하여 건설된 경우가 드물지만 있다.

가까운 예로는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온수-신풍 구간 개통 때의 일이다. 전동차를 천왕 차량기지에다 반입하기 위해 경인선 오류동 역에서 기존 경기화학선 선로를 이용하여 차량을 최대한 접근시켰다. 거기에서 최종 목적지까지는 임시 선로를 지상에다가 깔아서 옮겼다.
그러니 1990년대 중반에 거기 주변을 살았던 사람들은 거대한 지하철 전동차가 마치 지상 전차처럼 이동해 가는 걸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차량의 견인은 디젤 기관차가 했겠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한 우진 님 블로그, 그리고 '전동차를 사랑하는 모임' 다음 카페의 게시글을 성지순례 하시기 바란다.
차량 반입이 끝난 뒤엔 그 임시 선로는 곧장 철거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예는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해 경부선 철도가 건설되던 시절의 일이니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히 먼 옛날이다.
흔히 우리나라 철도에서 스위치백이라고 하면 영동선에만 딱 한 군데 있다가 지금은 없어진 그 스위치백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영동선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건설된 철도이고, 더 옛날의 일제가 한반도에다 건설한 철도 중에도 스위치백이 없지는 않았다. 단지 그것들은 한반도의 최하 중· 북부 구간 한정이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로서는 실감이 잘 안 날 뿐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금은 흑역사가 된 금강산선이고 말이다.

그런데 중앙선도 아니고 경부선의 건설 과정에서 작업을 위해 인근에 보조 철도가 그것도 스위치백 형태로 건설된 적이 있었다.
바로 경북 청도군에 있는 삼성-남성현 역 사이에 터널을 뚫는 구간이다.
서울 사람이라면 강남에 있는 지하철 2호선 삼성 역밖에 기억이 안 날지 모르나, 철덕이라면 경부선의 대구 이남에 있는 삼성 역도 알 것이다.

거기는 경부선 본선이 부설되는 공사 현장의 지대가 높고 좁고 험준하여 공사 자재를 운반하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그래서 무려 8단계의 스위치백을 거쳐서 터널의 남북 양 끝을 우회하여 연결하는 임시 선로를 먼저 만들게 되었다. 이건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도 처음 시도하는 대공사였다고 한다.

경부선의 대전-대구도 아니고 대구-부산 사이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컴파일러로 비유하자면 산을 직통으로 뚫는 터널은 본디 기계어요, 우회하는 임시 선로는 그 임시 P코드인 셈이다.
그 스위치백은 경부선의 완공 이후에는 응당 철거되었고 철거된 지 무려 100년이 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흔적을 아주 약간은 확인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이 블로그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Posted by 사무엘

2015/02/11 08:37 2015/02/1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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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부에 있었던 옛 철도들

서울 중에서 1970년대 이후부터 육성되기 시작한 강남 일대는 바둑판 모양의 반듯한 도시 디자인에 도로 폭이 무진장 넓고 지하철 역시 엄청나게 많이 다닌다(2, 3, 7, 9, 분당, 신분당!). 하지만 일반열차가 다니는 철도는 완전히 불모지이다. 그나마 고속철 수서 역이 개통하고 나면 완전 동남쪽 끝자락 정도나 장거리 간선 철도의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반면 강북, 특히 서부 지역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포함한 먼 옛날부터 계속 인서울이었다.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기 전부터 형성된 도시이기 때문에 여기는 도로 폭이 강남만치 여유가 있지는 않으며, 꼬불꼬불한 선형에 오거리 같은 교차로도 있고 철도도 진작부터 이것저것 많이 건설되었다. 1899년에 경인선보다 몇 달 먼저 개통했던 노면 전차 말고도 이런 예가 몇 가지 더 있었다.

물론 그 철도들은 오늘날은 남아 있지 못하고 다 폐선되고 없어졌다. 주된 이유는 자동차 통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서울 노면 전차는 1899년에 경인선보다도 몇 달 더 일찍 개통해서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다 겪은 유서 깊은 궤도 교통수단이지만, 서울 지하철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폐선되었다. 그리고 21세기가 돼서야 제일 최근에 없어진 건 용산선 지상 구간이 되겠다. 뭐, 엄밀히는 없어진 건 아니고 그 선형 그대로 지하로 들어가서 경의선과 공항 철도의 복층 공용 구간이 된 것이지만.

그것 말고 서울에, 특히 마포 일대에 있었던 철도는 다음과 같다. (출처: 다음 철도 동호회)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당인리선

그나마 이 바닥에서 제법 인지도가 있는 철도이다. 경의선의 지선인 용산선에서 또 분기하는 지선으로, 지금의 홍대입구 역 인근과 남쪽의 서울 화력 발전소(구 당인리 발전소)를 연결하였다. 발전소의 완공보다 살짝 이른 1929년에 개통하여 발전소가 사용하는 석탄 연료를 수송해 왔으며, 엄청난 옛날 리즈 시절에는 부분적으로 여객 수송도 했는가 보다. 그러니 '방송소앞' 같은 역까지 있었을 터. 발전소를 연결하는 철도라는 점에서는 오늘날 장항선의 지선인 서천화력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철도는 발전소가 석탄 연료를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존재의 의미가 없어졌으며, 가성비가 안 맞게 되자 1982년 6월 10일에 폐선됐다. 지금 '서울 마포구 어울마당로'가 옛 당인리선의 선형을 나타낸다. 홍대앞 걷고 싶은 거리, 예술의 거리 일대 말이다. 건물들이 어설프게 곡선 선형으로 좁게 다닥다닥 붙었고 길쭉한 주차 공간도 있는 거기 말이다.
'동'이 2차원 평면 공간을 나타낸다면 도로명 주소 체계에서 도로명은 1차원 선형을 한꺼번에 나타낼 수 있어서 좋다.

오늘날은 당인리선뿐만이 아니라 당인리 발전소 자체조차도 지하화하네 이전하네 하면서 존폐가 불투명해져 있는 듯하다.
허나 옛날엔 한강과 인접한 당산, 이촌 일대만 해도 오늘날로 치면 마곡, 세곡, 내곡에 준하는 완전 서울 외곽이었다. 조선 시대엔 근처에 아예 사형장이 있을 정도였는데(새남터, 절두산 순교 성지!) 하물며 비슷한 위치에 발전소가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본인은 '당인리선'이라는 단어를 영화 <튜브>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물론 고증과 개연성 따위는 완전히 안드로메다로 보낸 설정 속에서 등장한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당인리선은 그 당시로서도 무려 20년 가까이 전에 이미 폐선되고 없구만, 지하철이 그 선로를 타고 질주해서 발전소와 충돌하여 대형 참사를 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2. 경성순환선

경성/경룡/외곽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이 노선은 철도 노선이라기보다는 열차 운행 계통의 이름이다. 당인리선과 비슷한 1929년에 개통하여 잘 영업하다가 1944년에 폐선되었는데, 폐선 이유는 수요 감소나 자동차 통행 같은 건 아니다. 연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전쟁 물자 공출로 인한 폐선이다.

이 열차는 경의선 서울, 신촌을 경유했다가 신촌-연희에서 경의선과 용산선을 연결하는 짤막한 신선 구간으로 들어간 뒤, 용산선 서강, 공덕리를 경유하여 용산으로 간다. 순환이라고는 하지만 용산에는 삼각선이 없는 관계로 서울로 고리를 완전히 완성하지는 못했다. 경성의 야마노테선 같은 상징성을 부여하기에는 노선 길이가 매우 심하게 아담하긴 하다. (서울-용산 9km 남짓.)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성순환선의 신선이라 할 수 있는 경의선-용산선 연결 구간은 오늘날 서울 서대문구의 신촌로10길과 신촌로11길에 대응한다! 창서 초등학교 서쪽의 그 길 말이다. 물론 당인리선보다는 훨씬 더 일찌 폐역했기 때문에 흔적을 찾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시가지가 대놓고 구부정하게 철길 부지를 따라 형성되었다는 티가 난다.

요약하자면 당인리선은 용산선의 남쪽으로 뻗고, 경성순환선의 연결선은 경의선 방면이니까 용산선의 북쪽으로 뻗는다.
용산선은 원래 경의선의 본선 구간이었는데 1920년대 초에 서울-신촌 신선이 생기면서 여기가 경의선 본선으로 바뀌고 용산선은 잉여로 전락했다. 그러니 이미 만들어 놓은 용산선을 활용하자는 차원에서 당인리선과 경성순환선이 생겼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나중에는 경선순환선은 일제 말기에 진작에 없어졌고, 당인리선도 없어졌다 보니 용산선도 통째로 지하로 들어가 없어졌고 말이다.

재미있지 않으신지? 이런 게 바로 강남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서울 철도 발달사이다.
폐선 덕후라면 이런 용산선과 지선들뿐만 아니라 경의선 자체에 남아 있는 옛 서소문, 아현리 역의 흔적에도 집착할 것이다.
오늘날 남북이 통일되고 서울에서 중국· 러시아로 가는 철도의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기존 경의선의 시내 구간을 2복선 이상으로 확장하는 건 진작에 물 건너 가 버렸으니.. 아예 서울을 우회하여 멀찌감치 외곽에서 경부선과 경의선을 연결하는 철도가 생겨야 하지 않나 싶다. 가령, 소사-원시선을 남북으로 길게 늘어뜨려서 말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오래 된 도시는 도로의 폭이나 교차로 같은 것뿐만이 아니라 길거리 위로 전봇대와 전선이 치렁치렁 달려 있는지, 아니면 전부 지중화되어 있는지를 봐도 구도심인지 신도시인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이것은 분당, 일산이 미관이 아주 깔끔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5/01/14 08:30 2015/01/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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