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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예 vs 실리

(1) 롤스로이스: 한때는 구매자에게 차값뿐만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엄근진한 사회 지위 등, 엄청나게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다. 심지어 엘비스 프레슬리한테도 "당신 같은 딴따라는 이런 고매한 차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퇴짜 놨을 정도였다. 이런 사람이 굳이 롤스로이스를 몰려면 중고차를 알아봐야 했다.
==> 지금은 그딴 거 없고 아무나 돈만 내면 살 수 있다. "돈만 내면"...;;

(2) 스위스 은행: 그 어떤 국제기구나 공권력이나 수사기관에게도 예금자의 개인 정보를 절대로 넘겨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구린일을 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출처가 떳떳하지 못한 돈을 여기에다 예치해 두곤 했다.
==> 스위스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국제 추세를 거스르면서 혼자 독고다이는 못 하며, 은행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수사에 협조해 주고 있다.

(3) 남성상: 과거에는 영국 신사, 조선 양반/선비 같은 이미지가 좋은 이미지였다.
==> 오늘날은 그런 거 없고 나쁜 남자 마초 상남자가 좋은 편이다. (절대적인지는 모르겠지만)

(4) 기네스북: 과거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연속살인범 우 범곤, 세계에서 가장 오래 강제로 잠을 안 잔 기록(266시간??) 같은 것도 실려 있었다.
==> 이제는 범죄 행위 내지 사람 건강을 망치거나 동물 학대를 조장하는 기행의 기록은 받아 주지 않는다.

(5) 복싱: 과거에는 선수가 바닥에 대짜로 완전히 뻗어서 기절하지 않은 한 무조건 경기 진행이었다. 그래서 "제 발로 링을 내려오거나 들것에 실려 내려오너라" 급으로.. 선수들이 승부욕 때문에 선뜻 gg를 치지 않고 벽에 기대어 있다가 계속 얻어터져서 사망· 중상 같은 사고가 나기도 했다.
==> 사고가 몇 번 난 뒤, 지금은 경기 시간 단축되고 라운드 수가 더 줄고 휴식 시간 늘고, '스탠딩 다운' 판정에다가 선수 주치의의 재량으로 경기를 임의로 종료시킬 수도 있게 하는 등.. 온갖 안전장치들이 추가됐다.

요컨대 과거에는 지금보다 체면, 위신, 명예를 따지는 성향이 더 컸고 "안 되면 되게 하라, 이기든가 죽어라" 근성과 의지드립을 더 강조했다.
오늘날은 그때보다 실리, 인권을 더 따지는 편이다. "이길 수 없으면 살아서 돌아오기라도 해서 후일을 기약하자" 같은 관점이 된 것이다.
"죽음으로 책임지고 속죄하자" vs "그런다고 상황이 더 나아지는 건 없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살 사람은 살자"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2. 폭력

옛날은 사람들의 사는 방식이 지금보다 더 살벌하고 전투적이었다. 법을 어겼을 때의 형벌이 지금보다 더 엄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면모도 컸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애들이 일찍부터 깍듯이 예의를 지키고 철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 그러고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깝죽댔다가는 바로 쳐맞았으며, 심하면 자기 밥과 목까지 날아갔기 때문이다.

학교에는 꼭 일진 양아치들이 있었다. 그때는 체벌이 훨씬 더 심했고 교사가 학생을 폭행하는 데도 아무 제약이 없었건만.. 그런 강력한 교권을 동원해서 진짜로 섬멸해야 할 교내 불량배들을 제대로 단속하지는 않았는가(혹은, 못했는가) 보다.
군대에서는 좀 만만하고 약점 잡기 쉬운 애들이나 고문관한테 구타와 가혹행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하게 행해졌으며.. 그게 군기 잡는다는 명목으로 간부들에 의해 묵인되기까지 했다.

동네의 체육관? 무술 업계(?)에서는 무협지에서나 보던 ‘도장 깨기’ 관행이 진짜 존재했다. 관장이라는 양반이 동네 양아치한테 두들겨 맞았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 사람은 쪽팔려서라도 밤에 짐 싸서 딴 동네로 몰래 이사를 가야 했다.

바로 이런 풍조의 강화 심화 버전을 상상해 보면, 과거에 서양에는 결투가 있었고 조선에는 석전(!!)이란 게 있었던 배경을 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자가 참관하는 정식 결투에서 상대방을 죽인 것은 살인이 아니라 합법 무죄였다.

석전에서 남에게 돌 던져서 대가리 깨뜨리고 죽인 것 역시 합법이었고, 이때는 심지어 상대편 진영 집을 터는 것까지도 허용됐다. 군인이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인 것과 동급이라는 것이다!
그런 시절에 지금 같은 과학 기술이 있고 여건만 갖춰졌다면 심지어 오징어 게임 같은 것도 합법으로 운영됐을 수도 있다.

3. 인권

옛날은 “인생은 실전이야 이 존만아” 관념이 훨씬 더 강했다. 그리고 ‘갑’과 ‘을’의 권익이 상충하고 둘 다 챙길 수 없었을 때는 명백하게 을이 일방적으로 희생됐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은 진짜 말 그대로 죽어야 했다. 사람을 고의로 죽인 흉악범은 자기도 목이 날아갔다.
  • 실수로 불을 내서 마을 전체를 태워먹은 사람은 처형 당하거나 평생 노예로 일하며 죄값을 갚아야 했다. 신분도 대물림되는 마당에 빚이야 당연히 대물림됐다.
  • 노예들을 배로 수송할 때는 전부 꽁꽁 결박을 했다. 사고가 나서 배가 침몰이라도 하면 그들은 그대로 같이 익사해야 했다.;; 정말 비인도적이고 잔인하지만 그렇다고 노예를 일일이 구조할 수 없으며, 탈출하게 내버려둘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죄수가 탈출하면 죄수 관리를 제대로 못 한 간수가 자기 목숨을 대신해야 했다. 이건 성경에도 나오는 관행이다(행12:19, 행16:27, 행27:47).
  • 우리나라도 6 25 때 전국의 형무소 죄수들을 제대로 이감 수용할 수가 없으니.. 죄질이 가벼운 죄수는 그냥 가석방하고, 중범죄자나 좌익사범 같은 위험한 죄수는 그대로 다 총 갈겨서 죽여 버렸다. 군대에서 즉결처분뿐만 아니라 이런 잔혹한 일도 벌어졌었다.

하지만 요즘은 인권 의식(?)이 워낙 발달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사형 집행을 안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채무도 말이다. 상속을 포기하거나 파산 선언을 하면 된다.
경제적으로 여러 불이익이 뒤따르며 현재의 자기 재산이야 다 공개되고 압류당하고 탈탈 털리지만.. 그래도 자기 능력이 되는 한도까지만 갚으면 되며, 무슨 신체 부위를 판다던가 본인 및 처자식을 노예로 팔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면 세상이 야만에서 문명으로 바뀐 것 같고 인권이 향상된 것 같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 “제로썸 게임”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사형 집행을 안 해서 가해자의 인권을 챙겨 주면, 결국 가해자의 엄벌을 원하는 피해자 내지 유족의 인권이 처절하게 유린당하고 말살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인권팔이 위선자들이 한 마디도 입도 뻥긋 안 한다.

채무자 인권만 챙기느라 걸핏하면 채무를 탕감해 주고 배째가 가능하게 해 놓으면.. 결국 성실하게 빚 갚는 사람만 바보 되고 경제 모랄빵이 벌어진다. 그리고 예전과는 반대로 채권자가 돈을 못 받아서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채권자나 땅 주인 집 주인 기업주가 몽땅 다 샤일록 같은 놈일 거라는 인식도 프레임이고 거짓 선동일 뿐이다.

비정규직을 없애겠답시고 법을 무시하고 얼치기로 그 애들을 정규직으로 승격시키면.. 그럼 피똥 싸게 공부해서 공채 뚫고 정규직 입사한 애들이나 임용 합격해서 정교사가 된 애들은 뭐가 되는가? 이런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노예나 죄수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먹고 살 만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나라 체제가 안정되고 사회 안전망 복지 인프라가 잘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인권을 챙길 여유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다시 옛날 같은 열악하고 처절한 위기 상황이 닥치면.. 아무리 인권 인권 거리더라도 범죄자의 인권과 선량한 일반 시민의 인권을 다같이 챙길 수 없어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회 시스템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윤리관 사회관 같은 게 달라졌더라도 인간이 겪고 있는 문제나 딜레마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건 아니라는 걸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 문제를 해결한 듯하지만 그 문제가 형태만 바뀌어서 다른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게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통찰이 없이, 절대악은 그대로 놔 두고 필요악만 나쁘다고 없애자고 선동하는 애들은 절~~대로 선한 결과를 산출한 적이 없었다. 이런 것에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4. FPS 게임에 비유

FPS 게임에는 time to kill TTK라고..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데 걸리는 시간 내지 필요한 히트수라는 개념이 있다.
단칼에, 총 한 방 잘못 맞으면 바로 훅가는 건 TTK가 짧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 여러 발 때려야 되는 건 반대로 TTK가 긴 것이다.

TTK가 너무 짧으면 대부분의 뉴비들은 그냥 맵에 spawn되자마자 누가 쏜지도 모르는 총에 맞아서 바로 뒤지고 흥미를 잃기 쉽다. 그러나 고수도 재수 없으면 실수로 언제든지 훅갈 수 있으니 처신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초반에 살아남은 소수의 초보가 드물게나마 뽀록으로 선빵을 날려서 고수를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TTK가 길어지면.. 그 누구라도 한 방 맞는다고 바로 죽지는 않고 반격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게임을 시작하는 여건과 기회가 비교적 공평해지고 안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여건에서는 기습 뽀록이 안 통하며, 초보가 고수를 이기는 건 확실하게 거의 불가능해진다.
극단적인 예로, 성경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일격에 바로 쓰러뜨리지 못해서 골리앗의 반격을 허용했다면 그 다음 스토리가 어찌 됐을까? 바로 이런 이치이다.

이제 FPS를 현실 인생에다가 투영해 보자. 초보/고수를 흙수저 금수저에다 비유하고, 킬 올리는 걸 각종 성공이나 출세, 신분 상승 따위에다 비유해 보자면..
세상의 사회 시스템이라는 FPS는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갈수록 TTK가 짧았다가 더 길어지고 있는 것 같다. 여~~러 정황상 말이다. TTK 값이 바뀜으로서 발생하는 장단점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라떼는 말이야 더 가난하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다 버티고 성공했어" 이런 부류의 아재스러운 조언은..
TTK가 짧은 게임에서 살아남아서 고수를 여차여차 끝에 잡았다는 유형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사람도 노력을 안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만의 운도 있었고, 지금 TTK가 긴 시스템에서 적용 가능하지는 않은 면모도 있다는 것이다.

(현실의 전장이야.. 눈부시게 발전한 무기들 덕분에 TTK가 엄청나게 짧다. 총이건 폭탄 포탄이건 한 방 맞으면 그냥 죽는 게 아니라 시체도 못 찾는 처참한 꼴로 죽는 게 태반이다. 군함을 수리하는 정비함이라든가 갑옷 같은 게 괜히 없어진 게 아니다.
TTK가 짧을수록 현실 군대 반영 FPS이고, 길수록 과거 Doom 스타일의 비현실적이거나 캐주얼한 영웅 원맨쑈 FPS 장르가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18 08:35 2021/11/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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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재배 후기

올해는 지난 오뉴월쯤부터 11월 초까지 반 년이 좀 안 되는 기간 동안, 텃밭의 호박들이 본인에게 굉장한 기쁨과 행복과 위안과 애틋함을 선사해 주었다. 등산, 캠핑, 그 다음으로는 농사라니.. 원예가 사람의 정서와 심성에 확실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호박 농사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이 블로그에서 개인 근황을 전할 때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이 글에서는 마지막 근황글 이후인 10월부터 있었던 일만 추가로 전하도록 하겠다.

10월 초까지 늦더위가 계속되고 비도 종종 내리니 호박은 계속해서 잘 크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10월 중순, 드디어 기온이 뚝 떨어지고 기습 초겨울 한파까지 찾아오자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지금까지 밭에서 영글고 있던 호박들을 몽땅 한꺼번에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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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아이들이 올해의 사실상 마지막 텃밭 소출이다.
다들 길이 20cm 부근, 무게 2~3kg대의 고만고만한 놈들이었다. 4kg이 넘는 우량아 내지 누렇게 변한 놈은 딱히 없었다.
주변 잡초들의 끊임없는 겐세이-_-, 물과 영양, 날씨(계절이 바뀌어서 예전만치 따뜻하지 않음) 등 여러 변수 때문에 열매가 지난 9월 동안만치 쑥쑥 자라지는 못한 것 같다.

호박들을 심은 시기가 균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7월부터 10월까지 거의 30여 개의 호박을 얻었다. 그 중 1/3 정도는 단호박이고, 나머지는 일반 호박이었다.
딸 때 줄기/꼭지 부분을 길게 남겨 두는 게 뭔가 뿔처럼 멋있어 보인다.

제일 먼저 심은 놈은 열매를 좀 맺더니 9월쯤부터 이미 잎이 많이 시들고 빠지고 비실비실해지면서 수명을 다해 죽었다. 최후까지 남은 건 앙상한 덩굴 줄기뿐.. 아 그래서 호박을 '한해살이풀'이라고 부르는구나..;; 얘는 차라리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호상(?)을 맞이한 셈이었다.

하지만 호박 열매는 기대하지 않고 잎만 따 먹을 생각으로 여름에 늦게 추가로 심었던 애들이 문제다. 아직 꽃도 피고 잎도 시퍼런 편인데 계절이 바뀌면서 고생하게 됐다. 기온이 뚝 떨어지니 이젠 벌도 안 날아오고 새로 생기는 잎이나 새로 피는 꽃이 크기가 확 작아졌다. 심지어는 예전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꽃이 신속하게 져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생장이 전반적으로 느려지고 작아지고 위축됐다.

정말로 아무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거면 별 미련이 없는데.. 그래도 일부 암꽃 아래의 동그란 씨방 부위가 좀 부풀어 있는 건 어째 살릴 수 없을지, 잎과 줄기에다가 핫팩(!!) 같은 거라도 얹어서 좀 따뜻하게 할 수 없을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당장 이 바닥에다 비닐하우스 온실 같은 걸 만들 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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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호박 암꽃은 수꽃보다 훨씬 드물게 등장하는데.. 가을이 되자 호박들이 더욱 종족 보전의 욕구가 생겼는지, 이렇게 씨방과 열매가 5개씩이나 맺히는 경우도 있었다.

10월 기습 한파를 겪은 직후에는 호박들이 말로만 듣던 냉해라는 것을 입었다. 잎이 평범하게 누렇게 혹은 붉게 시들고 말라 죽는 게 아니라, 짙어지고 시커매지는 건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동상의 식물 버전인 듯..;; 그래도 그 전부터 상태가 안 좋고 어차피 수명이 다해 가던 잎이 그렇게 되는 것의 비중이 컸다. 그 뒤에 기습 한파는 11월 중순에 또 찾아와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한여름에 낮 기온이 30도를 넘어갔을 때는 얘들도 죽은 듯이 축 늘어졌다가 밤이 돼서야 다시 탱탱해지는 것 같더니.. 지금은 상황이 반대로 바뀐 것이다. 더위도 괴롭고 추위도 고생스럽다.;;
물론, 일반적으로 냉해라고 하면 봄에 농사 초기에 발생하는 갑작스러운 추위를 가리킨다. 늦게 심은 한해살이풀이 저온장해를 당하는 이런 상황을 말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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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와 관련해서 본인을 추가로 의아하게 한 것은 식물의 생장뿐만 아니라 수확한 열매의 보관이었다. 본인은 완전 식물알못 농사알못이기 때문에 과일· 채소 같은 건 무작정 냉장 보관하는 게 왜 좋지 않은지를 잘 몰랐다.

수확돼서 줄기에서 잘려 나온 열매는 성장하고 번식하는 생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부적으로 호흡을 하고 반쯤 생체 같은 면모를 여전히 지닌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저온이면 열매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품질이 안 좋아진다고..

이런 이유 때문에 바나나는 냉장고에 놔 두면 껍질이 시꺼멓게 변한다고 한다.
귤은 시퍼럴 때 따 놓으면 유통되는 과정에서 알아서 누렇게 변하게 된다. 호박 역시 조건이 잘 맞으면 수확된 뒤에도 알아서 늙은 호박으로 바뀌어서 장기 보관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럴 기미가 없는 채로 수확된 호박은 서늘한 곳에 보관했다가 1~2주 내로 빨리 먹어야 한다.

어떤 원리로 저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단풍만큼이나 신기한 면모가 아닐 수 없다.
하긴, 애초에 식물은 종자라는 것부터가 영락없이 무생물처럼 생긴 주제에 땅에 심으면 자동차 시동 걸리듯 싹이 난다. 파의 경우, 시장에서 파는 걸 사 와서 뿌리 부분을 화분의 흙에다 꽂아 놓으면 쭉쭉 자라기도 한다.

물론 그런 씨앗을 굽거나 쪄 버리면 완전히 죽어서 발아 능력을 상실하겠지만.. 식물은 “당장 동물 같은 물질대사를 하지 않지만 살아는 있는 상태”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다. 무슨 바이러스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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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을 한꺼번에 수확한 뒤, 본인의 집에서는 며칠 동안 호박 파티가 벌어졌다. 찜, 전, 볶음/조림, 국, 죽 등 별별 형태로 요리해서 다 먹었다. 잎도 잔뜩 따서 고기와 함께 쌈 싸 먹었고.. 30여 개의 호박 중에 딱 하나만이 1개월이 넘도록 누렇게 장기 보존 숙성 중이다.

이 시점에서 이런 의문이 문득 들었다.
다른 과일이나 채소에는 내가 이 정도로 끌리지 않았는데 왜 하필 호박에 대해서만 이런 애틋한 감정까지 갖게 된 걸까? 호박이 뭐길래..?? 스스로 생각한 답은 이렇다.

(1) 열매가 큼직하고 묵직한 한편으로, 정감있고 귀여운 모양이어서 동심(?)과 잘 어울린다. 꿀단지처럼 생기기도 했고 다른 박과는 달리 누렇게 익기도 하고.. 왜 애꿎은 호박이 못생긴 얼굴의 대명사가 됐나 모르겠다.
수박은 그냥 단순한 공 모양이고 일반 박은 말 그대로 바가지 같은 모양인데, 호박은 납작하게 옴푹 패이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모양이 또 있다.

(2) 호박은 여느 나무나 풀과 달리 덩굴이 길쭉하게 마구 솟아난다. 특유의 노란 꽃도 그렇고, 다른 채소들과 달리 그 커다란 열매가 누렇게 익는 것도 뭔가 시골 같은 느낌이 든다.
자그마한 단호박이 아니라, 시골에서나 보던 저런 커다란 맷돌호박이 텃밭에서 직접 열리는 걸 보고부터 개인적으로 눈이 뒤집힌 것 같다.

(3) 호박 덩굴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나면.. 이놈을 처음에 심어서 뿌리가 있는 지점이 어딘지도 제대로 모르는 지경이 된다. 물을 줘도 뿌리 쪽에 집중적으로 주고 싶은데 이거 참...
그리고 열매가 도대체 어디에 맺힐지 알 수 없다.
덩굴을 뒤지다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구석에서 큼직한 열매를 짠~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집앞 편의점까지 모험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자기 텃밭에서 과장 좀 보태면 "심봤다"가 가능한 작물이 호박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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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 사랑스러운 호박들은 자기가 심긴 곳에서 묵묵히 자라서 신이 내려 주신 본능인 “생육하고 번성하라”를 최선을 다해 이행했다. 그렇게 인간에게 유익한 호박 과육을 남겨 주고, 속에는 또 번식을 위한 씨를 잔뜩 박아 넣었다. 아아~ 잘 익은 늙은 호박 한 덩어리 안엔 씨가 몇십 개 정도가 아니라 최하 100개 이상.. 거의 200개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이러니.. 죽은 덩굴이나 낙과한 열매는 무덤 만들어서 묻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호박 xx호, 한날 한시에 열매 맺고 주인에게 큰 기쁨을 준 뒤 xx월 xx일 여기 잠들다 / 잠들어 자연으로 돌아가다”

호박뿐만이 아니다. 겨울철에 멧돼지도 얼마나 배가 고프고 힘들었으면 민가까지 내려와서 헤매다가 다치고 죽는 걸까?
사람이 돈 벌기 힘들고 애 낳고 키우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런 동식물들도 성경의 롬 8:22가 말하는 고통과 신음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나도 불평하다가도 일말의 감사와 사랑이란 걸 느끼고, 이 세상을 더 긍정적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까지 받는다.
올해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토대로 내년에는 기회가 된다면 더 똑똑하고 효율적으로 호박을 키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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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갈 때도 우리 귀여운 아이들을 종종 챙기기 시작했다. ㅎㅎ 작업 도구도 아니고 보온 장비도 아니면서 무게만 7kg 가까이 차지하는 payload이지만.. 그래도 옆에 이렇게 두니까 좋아서 말이다. 저 늙은 호박 한 덩어리가 노트북 컴터보다 더 무겁다.. ㄲㄲㄲ)

올해의 경험을 정리해 보니, 호박 정도면 까다롭지 않고 아무 데서나 금방 잘 자라고 지력 소모도 심하지 않으니 키우기 쉬운 편에 든다. 단지, 큼직한 열매를 많이 수확하려면야 잔가지와 잎을 치고 잡초 없애는 정도의 관리는 해 줘야 한다. 그리고 타 식물에 비해 이상 기온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듯.. 30도 이상의 고온이나 한 자릿수대의 저온에는 노출되지 않게 해 주는 게 좋아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15 08:36 2021/11/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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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국을 나타내는 한자 접사

한(韓 한복, 한류, 한식, 한옥, 한의원... 3인칭)이나 국(國 국악, 국궁, 국어, 국사, 국산... 1인칭)은 뭔가 우리 것, 고유한 것을 나타내는 접사 역할을 한다. 어떨 때 '한'이 붙고 어떨 때 '국'이 붙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원칙이 없는 것 같다. 또한, 요즘은 알파벳 K도 K방역, K팝... -_- 이런 식으로 비슷한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이와 달리, 나라 이름과 별개로 외국을 나타내는 한자 낱글자도 있다.

(1) 양(洋): 우리 전통 문물이 아닌 서양 문물을 포괄적으로 나타낸다. 그래서 양복, 양놈-_-, 양잿물, 양주, 양담배, 양말, 양동이 같은 여러 파생어들이 존재한다.
참고로, 양말 할 때 '말'은 '버선 말'(襪)인데, 한국어에서 사실상 양말에서밖에 쓰이지 않는 굉장히 생소하고 난해한 한자로 보인다. 마치 '가방/구두'가 외래어라는 관념이 거의 없어졌고 '무덤/주검'을 '묻/죽+엄'이라고 쪼개서 생각하는 관념이 거의 없어진 것처럼.. '양말'은 '양+말'이라고 쪼갤 여지가 거의 없어져 있다. '양복-한복'과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2) 왜(倭): 일본을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시대의 트라우마가 워낙 심한 관계로 왜색, 왜놈, 왜구 등의 부정적인 심상이 압도적이다. 단, 일본 음식은 어째 나라 이름이 붙어서 '일식'이라고 부르는 편이다.

(3) 호(胡): 중국 중에서도 특히 청나라를 가리킨다. 호떡, 호주머니 같은 의외의 단어가 원래 중국물 출신이어서 그런지 호짜가 붙어 있다.
그리고 채소 '호박'은 한반도 유래 시기와 경로를 추적해 보건대 胡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여겨진다. 단, 이 어원이 국어사전에 반영되어 있지는 않다. 그리고 '호빵'은 호떡이나 胡와 관계 없는 상표명이다.

2. 어휘

난 개인적으로 덩굴채소 박이 '朴'에서 유래된 한자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수박'의 수는 명백히 水일 테니 '박'도 한자어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그러고 보니 덩굴 채소를 글자로 표현하려면 부수가 草 계열이어야지, 木이 배당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채소 '박'은 순우리말이고, 보석 호박 amber만이 한자로 등재돼 있다(琥珀). 걔는 보석이니 글자의 부수는 다들 玉이다.
보석 호박과 늙은 호박이 모두 주황색 계열인 건 꽤 흥미로운 우연인 것 같다.

그 대신 朴은 '후박나무'를 가리킨다.
우리나라 울릉도의 유명 특산물로 오징어뿐만 아니라 호박엿이 전해지는데.. 이것도 '후박엿'이라는 전혀 다른 재질의 엿이 잘못 전해진 거라고 한다. 호박으로 죽은 쑤어 먹지만 웬 엿까지 만드는 걸까..??

그런데 원래 존재하지도 않던 호박엿이 워낙 유명해지니, 울릉도에서는 뒤늦게 진짜로 호박 성분이 들어간 엿도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라도에 뜬금없이 짜장면집들이 잔뜩 들어선 것처럼 말이다.

3. 성경의 용례

난 어떤 새로운 문물에 관심이 생기면 이에 대해서 어학 사전과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관련 최근 신문 기사를 찾아본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성경에 비슷한 용례가 있는지도 찾아본다.

성경에는 덩굴 뻗는 박 종류 채소 gourd가 딱 두 번 나온다.
먼저,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그늘을 제공해 줬다가 싹 걷어가서 현타를 선사하는 교보재로 사용하신 그 덩굴이 대표적이며.. (욘 4)
열왕기하 4장에서 국을 끓여 먹었다가 사람들이 배탈이 났고 엘리사가 정체불명 마법의 가루를 넣어서 해독한 채소도 요런 야생박이다. (왕하 4: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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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성경에서 그냥 돼지(pig, swine) 말고 야생 멧돼지(boar)는 딱 한 번 나온다. 흥미롭다. "숲에서 나온 멧돼지가 그것을 피폐하게 하고 들의 들짐승이 그것을 먹어치우나이다" (시 80:13)
멧돼지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농작물을 파헤쳐 먹으며 민폐 끼치는 짐승이었는가 보다. 저기서는 타겟이 포도나무이다.;;

vine은 덩굴이라는 큰 뜻이 있으면서 통상적으로 더 좁은 포도나무(grapevine)라는 뜻을 갖는 것 같다.
earth (땅 - 지구), man (사람 - 남자), day (날 - 낮)처럼 영어에는 이런 다의어가 여럿 있는 것 같다. 한국어는 '이름'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성명 full name 또는 성을 뺀 first name만).

4. 품종

사람이 어떤 물건이나 분야에 덕질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생기는 변화가 뭐냐 하면, 종류를 세밀하게 분간하는 눈썰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가령, 다 똑같은 자동차나 열차, 총기 따위가 아니다. "요런 건 언제쯤 어느 제조사에서 생산된 것이기 때문에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드라마에 등장하는 건 고증오류이다, 저 장면에서는 요런 게 들어가는 게 맞다" 어쩌구저쩌구를 논하게 된다.

그런 것처럼 호박은..?
작고 짙은 녹색인 (1) 단호박이 있고, 초록색에 가지처럼 길쭉한 (2) 애호박류가 있다. 얘들은 누렇게 변색되지 않는다.
그 반면, 제일 큼직하고 납작 둥글고 누런 늙은 호박으로 바뀌는 그 일반적인 호박은 (3) 맷돌호박 또는 청둥호박이라고 불린다.
본인은 이 개념이 최근에야 제대로 정립됐다. 그리고..

(1) 맷돌호박은 단호박 애호박과는 달리, 열매가 맺힌 뒤에도 한참을 놔둬서 늙은 호박으로 누렇게 숙성된 뒤에 수확하는 게 정석이다. 그래야 맛도 좋고 무엇보다 개월 단위로 오래 보관이 가능하다. 어쩐지 맷돌호박은 그 모양으로 초록색인 모습 사진은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도 좀체 나오질 않는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맷돌호박이 제 모양이 형성되기 한참 전에, 아직 시퍼렇고 작고 동글동글 단지처럼 생겼을 때 미리 따기도 하는가 보다. 얘는 '풋호박'이라고 한다. 내가 올해 땄던 대부분의 일반 호박(?)은 이런 풋호박 형태였던 셈이다.
풋호박은 빨리 생산되긴 하지만 늙은 호박보다 유통기한이 훨씬 짧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풋호박은 뭐고 애호박은 뭔지 관계가 헷갈리는 편이었다.

(3) 끝으로, 똑같이 누래지는 일반 호박이라도 동양계와 서양계는 외형이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
서양 호박은 동양 호박보다는 덜 납작하고 가로 세로 종횡비가 좀 더 정사각형에 가까운 것 같다. 매끈한 공에 좀 더 가까우며 사람 머리통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얘에다가 눈코입 구멍을 내서 Jack-o'-lantern이라는 것도 만들 수 있다. pumpkin이라는 영어 단어는 바로 이런 호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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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의 세계란 게 이런 것이구나..
그래도 개인적인 생각은 사랑스러운 호박 갖고 하필 괴물 얼굴이나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12 19:34 2021/11/1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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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관련 메모

1. 식물처럼 생겼지만 식물이 아님

생물이라고 하면 동물 아니면 식물 둘로만 나뉜다고 생각하기 쉽다.
다리나 지느러미가 달려서 자력으로 움직일 수 있으면 동물이고, 뿌리를 내리고 땅에 붙박이로 고정돼서 이동하지 못하면 식물.. 이건 대체로 얼추 맞긴 하지만 100% 맞는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현실은 이보다 좀 더 복잡하다.

단적인 예로, 버섯과 미역은 통념과 달리 식물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버섯이야 균류이니까 그렇다 쳐도, 미역· 김· 다시마 따위는 초록색에 광합성까지 하는데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식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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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초'와 '해조류'는 생각보다 차이가 굉장히 더 크다. 해초는 물 속에서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꽃도 피고 꽃가루를 뿌리기 때문에 명백히 식물이지만 미역 같은 해조류, 바닷말은 관다발이 없고 뿌리· 줄기· 잎의 구분이 없다. 뿌리처럼 생긴 건 몸체를 단순히 바닥에 고정시키는 역할만을 한다.

그러고 보니 맛있게 먹는 새까만 김이 도대체 잎인지 줄기인지는 본인도 지금까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홍조류인지 녹조류인지 이런 것들은 동식물 구분이 엄밀하게 적용되기도 전의 더 원시적인(?) 생물이라고 분류된다.

하긴, 광합성이란 게 식물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긴 하지만 극소수의 예외가 있다.
저런 해조류는 말할 것도 없고, '유글레나'라는 짬뽕도 있기 때문이다. 얘는 엽록소를 가지고 광합성을 하는 식물 특성과, 입이나 수축포를 가지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동물 특성을 모두 지닌 특이한 놈이다.

2. 과잉 주입

식물을 잘 키우려면 햇볕과 햇빛을 많이 쬐어 주고 물을 잘 줘야 한다. 그런데 단순 관상· 조경을 넘어서 열매를 수확할 목적으로 키우는 식물이라면 신경을 좀 더 써야 한다. 수분(꽃가루받이)을 자연적으로나(꿀벌~!) 인공적으로 해 주고, 영양분 공급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 줄 필요가 있다.

영양분 공급을 위해서는 일반적인 흙보다 더 기름진 정도인 상토라는 걸 뿌리 주변에 부어 주기도 하고, 아니면 영양분의 농도가 훨씬 더 높은 비료를 투입하기도 한다. 식물의 종류와 발육 시기별로 이런 걸 투입하는 매뉴얼이 다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단순 상토 말고 비료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런 주의 사항이 존재한다. 식물의 뿌리를 통해 흡수되라고 만들어진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식물의 뿌리에 절대로 직접 닿게 살포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건 농알못 일반인에게는 직관적으로 공감이 가지 않는 주의 사항이다.

비료는 사람으로 치면 음식을 넘어 영양제나 약에 가까운 물질이며, 영양분의 농도가 굉장히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식물한테 직접 닿으면 삼투 현상 때문에 그 식물이 오히려 영양분이 털리고 말라 죽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바닷물을 마실 때 벌어지는 현상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리고 북극곰의 간도 비슷한 예가 될 수 있겠다. 비타민 A가 풍부하긴 한데, 풍부한 정도를 넘어서 농도가 너무 높다. 사람이 그 간을 바로 먹으면 다른 독이 아니라 그 과잉 비타민이 중독 증세를 일으켜서 피부가 벗겨지고 중병에 사망까지 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한때는 이게 극지방에서 ‘북극곰의 저주’라고 일컬어졌을 정도였다.
뭔가를 갑자기 너무 많이 먹었을 때 탈이 날 수 있는 건 동물이나 식물이나 비슷하게 존재하는 특성인 것 같다.

3. 잡초

농사라는 건 정말 잡초와의 끝없는 싸움이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식용 부위를 많이 만들어 내도록 품종 개량 최적화된 놈은 그렇지 않은 야생보다 생존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난 뽑아도 뽑아도 끈질기게 자라나는 잡초계의 본좌로 쑥밖에 몰랐는데.. 올가을부터는 잎이 길쭉하고 호리호리한 요놈이 제철 만나서 날뛰는 것 같았다. 야생 잡초 업계의 신흥 강자 다크호스 갑툭튀한 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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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느낌상, 푸른 풀밭치고 이거 없는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각종 야산과 공원 풀밭, 그리고 우리 호박밭의 호박 덩굴 사이에도 어찌나 많이 불쑥 끼어들었는지..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었다.

한 놈은 줄기만 자르는 게 아니라 시범타로 작정하고 뿌리를 완전히 뽑아 봤는데.. 뿌리가 얼마나 깊고 흙을 어찌나 강하게 꽉 움켜쥐고 있던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줄기는 힘을 약간 줘도 쑥쑥 잘 뽑히는 편이지만, 뿌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고서야 이놈의 이름은 '소리쟁이'이고, 그래도 식용/약용?으로 쓸모가 전혀 없는 놈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4. 천사채와 회전초

횟집에서 생선회를 사 먹으면 회가 담긴 접시의 아래에 허연 면발 같은 게 장식용으로 쫙 깔려 있는 편이다. 식용 불가 같지는 않지만, 아무 맛이나 감흥이 없으니 굳이 먹고 싶지는 않다.
알고 보니 얘는 '천사채'라고 불리는 가공식품이다. 원래 다이어트용 건강 식품으로 만들어진 건데, 회 밑밥 용도로 즐겨 쓰이게 될 줄은 몰랐다고 개발자조차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천사채 이전에 회 밑밥으로 쓰인 건 무채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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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채는 앞서 식물로서의 정체성이 의심된다고 이 글에서 언급했던 다시마, 우뭇가사리 같은 '해조류'를 증류 가공해서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양념과 함께 약간만 추가 조리를 하면 잡채(당면) 형태로 만들 수 있다. 그럼 얘는 살 찌게 만드는 탄수화물/당분 덩어리는 아니겠다.

천사채라고 하니까 미국 서부 사막에서 수시로 굴러다니는 회전초..와 뜬금없이 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세상에 종자를 이런 식으로 퍼뜨려서 번식하는 엽기적인 식물도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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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회의 친척뻘인 일식 초밥을 사 먹으면, 거기도 정치를 알기 어려운 밑반찬이 같이 나오곤 한다는 게 흥미롭다. 대표적으로 마늘처럼 생겼는데 마늘 맛은 나지 않는 그 무언가 말이다. 얘는 락교, 염교, 돼지파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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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1/11/10 08:35 2021/11/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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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2021년에 또 30여 년 전의 고전 게임인 페르시아의 왕자를 소재로 글을 써 올리게 되다니..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이번에는 이 게임에서 주인공의 적으로 등장하는 검객, 경비병들에 대해 외국 사이트에서 분석한 데이터를 본인의 경험과 곁들여서 소개하고자 한다. 갑자기 이 주제로 글을 쓰고 싶어졌다.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에는 가시, 칼날, 절벽처럼 주인공의 체력을 깎아먹거나 주인공을 즉사시키는 트랩들이 여럿 존재한다. 검객은 그런 트랩들과 달리 유일하게 생명체이다.
조던 메크너가 열심히 코딩을 하다가.. 게임이 더 다이나믹하고 재미있기 위해서는 '전투'라는 요소가 필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검객을 구현했다고 한다. 이건 유명한 일화이다.

본인은 어린 시절에 이들을 knight를 연상시키는 기사라고 부르곤 했다. 하지만 얘들에 대한 공식 명칭은 guard(s), 즉 경비병에 가깝다. 검객이라고 하니까 무슨 일본 시노비나 암살 자객 같은 느낌이 들고.. 앞으로는 그냥 간단하게 적병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은 칼싸움 동작을 "휘둘러 찌르는 공격 아니면 막기"라는 두 종류로 극도로 단순화시켰다. 남의 공격을 평범하게 막으면 대미지를 입지 않는 대신, 찌르는 사정거리 밖으로 살짝 후퇴도 하게 된다. 물론 칼빵을 맞아도 후퇴..

막으면서 잽싸게 공격을 시도하면 뒤로 밀려나지 않으면서 적에게 반격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적도 그걸 막으면서 반격하고 나도 또 막고 반격하면.. 뭔가 그럴싸한 칼싸움이 연출된다. 자신과 상대방이 거리가 어느 정도 되는지도 이 싸움의 진행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컴퓨터 적병이 반드시 맞고 뒤로 밀려나는 것으로 순환이 끝난다. 재미를 위해 알고리즘이 주인공의 필승으로 귀결되게 구현돼 있는 것 같다.

이 게임이 무슨 대전 액션 시뮬레이션은 아니니, 현실의 칼싸움처럼 이동과 공격을 동시에 한다거나, 상하 좌우 다양한 방향으로 칼을 휘두르고 기상천외한 부위를 찌르고 서로 칼날을 부딪친 채로 힘싸움을 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절에 칼싸움이라는 걸 이렇게 단순화된 형태로 구현한 것만으로도 굉장히 참신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플랫폼 아케이드 장르의 게임에 공격뿐만 아니라 '방어'라는 기동이 존재하는 물건 자체가 매우 드무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 게임은 적병들의 AI를 나름 다양한 난이도로 구현하는 섬세함까지 보였다.
1편에서 레벨 1에 나오는 적병, 그리고 2편에서도 레벨 1, 궁전 옥상에서 마주치는 적병은 난이도가 최하이다. 칼을 휘둘러 찌르는 것만 반복하고 있으면 알아서 다가와서 칼 맞고 꽥~ 죽어 준다. 그러나 이렇게 너무 쉬운 적병은 그 다음 레벨부터는 결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그 다음 레벨부터 나오는 적병들은 내가 칼을 쉬지 않고 휘두르는 동안에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조금 뜸을 들여야만 접근하며, 그렇게 다가올 때 공격을 몇 번 성공시키면 적병이 죽는다. 페르시아의 왕자 1편은 대부분의 적들을 이 테크닉만으로 해치울 수 있다.

그런데 레벨 4쯤 되면 적이 약간은 더 똑똑해진 것 같다. 내 공격을 호락호락 맞아 주지 않고 막는 빈도가 유의미하게 높아져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막고 나서 내게 반격도 한다.
게다가 레벨 6에 나오는 그 '뚱보', 그리고 최종 보스인 Jafar는 공격 키만 사용해서는 해치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내 공격을 90% 이상의 확률로 막고는 반격을 하기 때문이다. 나도 '막기'와 '공격'을 뒤섞으면서 난전을 벌여야만 놈을 때릴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내부적으로는 어떻게 구현돼 있을까?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은 소스가 공개되어 있다지만 너무 옛날 애플 II 어셈블리어여서 분석이 상당히 난감하다.
하지만 제작자가 이것 말고도, 타 플랫폼 포팅 작업 때 참고하라고 내부 알고리즘 기술 문서를 만들었던 것도 공개한 게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얘는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이미 레벨 에디터까지 다 만들어져 있다.

이것들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적병들의 AI는 다음과 같은 형태라고 한다. (☞ 문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레벨 1에만 나오는 제일 쉬운 적병의 skill은 0
  • 나머지 레벨 2에서 11 사이에 나오는 일반적인 적병들의 skill은 1부터 4까지 4등급으로 나뉜다. 참고로 레벨 3에서 등장하는 해골의 skill은 2로, 그냥 평범한 편이다.
  • 레벨 6에 나오는 뚱보의 skill은 5이다.
  • 레벨 8의 첫 부분에만 나오는.. 스스로 공격을 절대로 하지 않는 특이한 적병의 skill은 7이다.
  • 레벨 12에서 등장하는 그림자 인간/도플갱어의 skill은 3이다.
  • 그리고 최종 보스인 쟈파의 skill은 9이다.
  • 0부터 11 사이의 skill 코드 12개 중, 나머지 값들은 쓰이지 않았다. (6, 8, 10, 11)

저 문서에서는 게임의 인트로 화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때 잠깐 등장하는 데모 플레이의 칼싸움도 5, 즉 레벨 6 뚱보의 skill이라고 말한다. (무슨 근거로?)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데모에서 왕자(주인공)와 적병의 스킬이 각각 10과 11, 또는 11과 10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단 페르시아의 왕자 원판 소스에서 "10: kid (demo) / 11: enemy (demo)"라는 문자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 10과 11이 AI 인덱스를 가리키는 게 아닐까..?

또한, 데모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으면 주인공과 적병의 칼싸움 결과는 그때 그때 다르다(난수를 잘 사용하는군!!). 하지만 주인공은 이길 때보다는 질 때가 훨씬 더 많다. 주인공은 적병보다 반격을 당해 칼빵을 맞는 경우가 더 잦으며, 심지어 계속 뒤로 밀려나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처참하게 죽기도 한다. 최소한 이 두 사람의 skill이 동일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skill 테이블에서 정말로 미사용인 것은 6과 8 둘뿐이라고 생각한다만.. 이 역시 추측일 뿐이다.

적병의 AI를 결정하는 변수들은 다음과 같다. 어떤 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만 어떤 건 제대로 문서화돼 있지 않아서 알기가 어렵다. 제일 이해하기 쉬운 방어 관련 변수부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방어 확률(blockprob): 주인공의 공격에 얻어맞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막을 확률. 레벨 1의 적병은 그런 게 전혀 없어서 우리의 공격에 반드시 당한다. skill 1,2에서는 150/255(대략 60%), 3,4는 200/255(78%)이라고 한다.
    뚱보와 쟈파는 100%로 무조건 막는다. 그래도 가끔은 쟤들에게 막기 없이 공격을 성공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살짝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쟤들이 이동이 덜 끝나고 미처 방어 기동을 하기 전에 찌르기가 먹혔기 때문에 그렇다.

  • 방어 후의 재반격(restrikeprob) 확률: 우리 역시 막기 기동을 쓰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칼싸움의 체감 난이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변수이다. skill 0~2의 적병은 재반격을 전혀 하지 않으며, 3,4는 극히 드문 빈도로 재반격을 한다. 그 반면, 뚱보와 쟈파는 매우 높은 확률로 재반격을 하며, 쟈파는 100% 반드시 반격한다.

다음으로 공격 관련 변수이다.

  • 공격 영역에 들어올 확률(advprob): 주인공을 향해 사정거리 안으로 진격해 올 확률..이라기보다는 속도이다. 이건 적병들의 난이도별로 딱히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데, 딱 하나 튀는 놈은 바로 레벨 8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그놈이다. 얘는 확률이 0이기 때문에 절대로 먼저 들어오지를 않는다. 주인공이 칼을 완전히 집어넣어야만 들어오기 때문에 이때 다시 칼을 꺼내서 공격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치고 들어가서 공격을 막고 반격해야 한다.

  • 공격 확률(strikeprob): 주인공이 사정거리 안으로 가까이 들어왔을 때 공격을 할 확률 내지 속도이다. 이것도 딴 적병들은 비슷한 반면, 레벨 8의 그 특이한 적병만이 이번엔 반대로 유난히 높은 값을 갖고 있다. 이 값이 높은 적병하고는 앞으로 돌진해서 좌우 자리를 교체하거나 가까이에서 2연타 콤보 공격을 하기 몹시 어려울 것이다.

그 외에도 이런 게 있다.

  • 칼 맞은 뒤의 refractory 시간(refract timer): 공격을 당하고 나서 움찔 하는 시간으로, 얘 역시 그렇게 유의미한 동작 차이를 만들지는 않는다. 얘가 10으로 설정된 적병은 20으로 설정된 적병보다 칼에 맞은 뒤에도 좀 더 빨리 앞으로(하지만 주인공의 칼에 맞지는 않는 거리로) 다가온다.

  • 방어가 impair되는 확률(impblockprob ??): 제일 미스터리한 놈이다. 심지어 기술 문서나 소스 코드에 설명도 전혀 되어 있지 않고 대놓고 존재감이 없다. 상급 몬스터로 갈수록 값이 커지는 걸 보니 뭔가 좋은 속성 같은데, impaired block이라는 말은 핸디캡을 나타내는 부정적인 의미인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제일 쉬운 skill 0짜리 적병은 주인공이 제자리에서 방어 없이 칼을 휘두르고만 있어도 알아서 달려와서 칼 맞고 죽어 주는 유일한 놈이다. 언뜻 보기에 여기에 해당하는 듯한 특성은 advprob이 최대치인 255인 것이다. 그런데 얘는 뚱보, 쟈파 등 다른 악당들의 AI도 최대치 255이기 때문에 유일한 변별 요소가 되지 못한다. 쟤만 blockprob이 완전히 0인데 여기에 그 동작 특성도 포함돼 있는 건가 궁금해진다.

아 그리고 impblockprob 말이다. 문득 드는 생각은.. 주인공과 적병이 계속 막고 치고 난전을 반복하고 있다가 결국 적병이 힘이 밀려서 맞고 나가떨어질 확률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값이 클수록 오래 버티는 걸까..?? 즉, 쟈파나 뚱보 정도는 돼야 의미를 지니는 변수라 하겠다. 이건 외국의 페르시아의 왕자 해킹 커뮤니티에도 나와 있지 않는 내 추측이다.

게임에 칼싸움도 모자라서 이 정도로 다양한 적병 skill을 대여섯 개 남짓한 변수값의 조절만으로 구현한 거라면 정말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페르시아의 왕자 1의 데모 진행 장면. 이 데모 레벨은 실제 게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2편도 게임 실행 후 키를 누르지 않고 스토리를 끝까지 지켜보고 있으면 플레이 데모가 나오기는 한다. 얘는 실제 게임의 레벨 1에서 시작하는데, 왕자는 얼마 가지도 못하고 그 쉬운 적에게도 거의 자살 급으로 칼에 맞아 허무하게 죽어 버린다. 2편이 데모의 퀄리티가 1편의 것보다 더 부실하다.)

페르시아의 왕자 1편은 보스급 몬스터인 뚱보와 쟈파만이 막고 치는 고급(?) 스킬이 필요한 반면, 2편은 빨간 궁전에 나오는 새대가리 적병들이 모두 그 정도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2편은 한 화면에 적병이 여러 명 한꺼번에 등장할 수도 있고, 싸우다가 자리를 바꿔서 회피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고, 막고 치면서 싸우다 보면 서로 가까워지다가 좌우 자리를 바꾸기도 하는 등.. 전투 요소가 1편보다 훨씬 더 강화되었다. 그리고 최종 보스는 칼싸움이 아니라 장풍을 맞혀서 죽이는 것으로 게임 진행 방식이 달라졌다.

끝으로, 저 문서에서 special color와 one extra health는 칼싸움 skill과 무관한 boolean 값이며 큰 의미는 없다.
페르시아의 왕자 1편의 경우, 각 레벨별로 모든 적병들의 기본 HP가 정해져 있어서 동일한데, one extra health가 true인 skill이 지정된 적병은 HP가 그 기본값보다 1 더 많게 된다.
이 비트가 true인 skill은 4가 유일하다. 즉, 보스가 아닌 졸개 중에서 칼싸움을 약간 잘하는 놈이 HP도 1 더 많은 것이다.

그래서 레벨 4에서는 후반부에 HP가 4인 적병이 처음으로 등장하며(기본값 3), 레벨 5에서는 HP가 4부터 시작했다가 나중에 5로 늘어난다.
skill 4인 적병은 던전 레벨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고 궁궐 레벨에만 존재한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레벨 4~5, 10~11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07 08:35 2021/11/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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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노래, 작곡가 이야기

1. 오 브레넬리 (스위스 민요? ☞ 듣기)

본인은 음악 취향이 굉장히 단순한 편이다. 뭔가 꽂혀서 좋아하는 노래 내지 음악은 찬송가/CCM 아니면 Looking for you 철도 BGM 이 두 장르에 대부분이 쏠려 있다. 여기에 속하지 않는 동요, 가곡, 방송 BGM 중에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드물다.

그런데 이런 노래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멜로디가 특이하게 아름답고 우아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것 중 하나는 일명 ‘오 브레넬리’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그 노래이다. 세상 어느 노래가 후렴이 저런 발랄한 “야~호, 오 트랄랄라~~” 형태이겠는가..;;

원래 스위스 민요라고 하는데 완전히 요들송 스타일은 아닌 거 같고, 결정적으로 정작 그 본가에서는 저 노래가 별 존재감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멜로디에 비해 가사는 출처가 불명확하고 정말 별 것 없어서 각 나라별로 로컬라이즈된 가사 바리에이션이 많다. 심지어 일본어 가사가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옛날 8비트 MSX 시절에 “요술나무”라는 게임이 이 노래를 BGM으로 썼었다.
그러고 보니 “남극탐험”의 BGM은 스케이터 왈츠이고, “덱스더(테그저)”는 게임 오버 때 월광 소나타..

이렇듯, 1980년대의 일본 게임들은 자작곡 대신 서양 클래식 음악을 BGM으로 쓴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로 서양 문물을 온몸으로 갈망하고 탐닉했던 나라이니 저런 것도 수긍이 간다.
1980년대 제미니 자동차 CF에서도 라데츠키 행진곡과 ‘오 샹들리제’ 같은 곡이 흘러나왔고, 배틀로얄 병맛 영화에서도 방송 때 뜬금없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나 베르디 레퀴엠(!!) 같은 클래식 BGM이 연주돼 나왔었다.;; 그래, 일본은 그런 걸 좋아하는 나라이다~!

2. 모든 분수가 흐르면 (Wenn alle Br[ue]nnlein fließen 독일 민요 ☞ 듣기)

본인은 1990년대 중반쯤에 고려 페인트 CF를 TV에서 본방으로 본 이래로, 25년이 넘게 저거 BGM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 CF는 고려 페인트 특유의 도미노 CF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었는데.. 뭔가 화사함,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BGM 노래의 정체를 오랫동안 알 길이 없었다.
수 년 뒤에 독일어를 접하면서 저 노래도 처음에 '데얼, 베얼' 이러고 끝에 '엔, 젠' 거리길래.. 가사가 독일어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

그랬는데.. 유튜브 동영상에 올라온 댓글을 통해 드디어 곡명을 알게 됐다. 이제 속이 다 후련하다~!!!
검색을 해 보니 악보도 잔뜩 튀어나온다. 악보를 읽어보니 내가 기억하는 그 멜로디가 맞다.
하지만 저 CF와 같은 Ab 장조 악보는 하나도 없다. 악보들은 저것보다는 조가 더 낮다. 아마 저 음원은 빈/리베라 같은 소년 합창단에서 부른 게 아닐까 생각된다.

고려 페인트는 한 90년 92년? 그때부터 저런 도미노 쓰러뜨리기 시리즈 CF를 선보였다.
그 당시의 신문 보도에 따르면.. 최소한 첫 작품은 1만 개가 넘는 도미노 블록을 직접 세팅하고 실제로 원큐에 쓰러뜨리면서 CF를 찍었다고 한다. 즉, CG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에 도미노로 실사 사진까지 재연한 건 아무래도 CG였지 싶다.

끝으로, fließen이라는 동사를 보니 이 미륵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ßt)가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독일어라 하니까 선천적 얼간이들에서 작가가 어느 취객으로부터 히틀러 연설을 들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St[ae]rke liegt nicht in der Verteidigung sondern im Angriff (국력은 방어가 아니라 공격으로부터 나온다) 이거 말이다. ㅋㅋㅋㅋ
일개 웹툰이 이 문구를 국내에 많이 퍼뜨려 줬었다.

3. 손에 손 잡고 (☞ 듣기)

그리고 1988년 우리나라 서울 올림픽의 주제가였던 이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약 빤 노래를 상영하면서 올림픽을 치른 적이 있었단 말인가..??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이 정도면 국뽕에 취해도 합법일 것 같다.

이 노래는 작사자와 작곡자가 서로 다른 외국인이고, 한국어 가사를 작사한 사람은 또 따로 있다(서울대 미학과 김 문환 교수.. 지금은 이미 작고). 노래를 부른 사람은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교포였다. 스케일이 여러 모로 국제적이다.
심지어 영어 노래를 부른 남자는 따로 있었다고 작곡자인 모로더가 2013년엔가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기도 했는데.. 대회가 끝난 지 워낙 긴 시간이 지난 뒤였으니 별다른 파장은 없었다.

내가 바로 떠오르는 비슷한 사례는 영화 아저씨에서 "I got it. I don't know. He looks different" 같은 람로완의 짤막한 영어 대사를 말한 사람도 저 배우 본인이 아니라 별도의 성우라는 것 정도이다. 게다가 "손에 손 잡고"의 경우, 내가 느끼기엔 영어 목소리도 한국어 목소리와 음색이 거의 차이가 안 나는데 말이다.
영어권에서 오래 산 교포면 영어도 잘 할 텐데 왜 굳이 다른 성우를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현대 자동차 포니를 설계한 디자이너, 그리고 "손에 손 잡고"의 작곡자는 모두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고, 의도적으로 세계화 국제화를 염두에 둔 작품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작곡자 조르지오 모로더는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선율을 만들기 위해 한국 민요와 유행가들을 수백, 수천 곡 들으면서 연구했다고 한다. 나는 Looking for you만 3천 번을 들었는데 저런 프로 거장들은 이보다 더한 노력을 한 셈이다.

단, 일반인이 "손에 손 잡고"를 노래방에서 부르려면 음원의 원래 조인 Eb로는 어림도 없으니 거의 반토막에 가까운 A조, Bb조 급으로 조를 낮춰야 할 것이다.
이 정도면 느낌이 완전히 다른 노래가 돼 버리겠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조로 불렀다가는 후렴에서 무려 높은 Bb 음과 맞닥뜨리게 될 테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올림픽과 엑스포 모두 너무 고퀄의 선례를 남겨 버렸다. 원래 올림픽은 개최국 해당 지역의 지방 정부가 관여해서 생각보다 조촐하게 치르는 편이었는데.. 갈수록 지방 정부가 아니라 중앙 정부의 개입 비중이 커지고 개회· 폐회 행사도 거창해졌다.
미국이 "1960년대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라"에 미쳐 있었다면, 우리나라는 "1980년대 안으로 올림픽을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하라" 이게 각자 그 여건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역작이었던 듯하다.

서울 올림픽은 9~10월 가을에 개최된 마지막 올림픽이다. 그 뒤의 올림픽들은 '하계'라는 취지에 더 맞게 지금처럼 7~8월 여름에 개최되고 있는데.. 운동 경기가 열리기엔 이때는 너무 덥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리고 한편으로 서울 올림픽은 폐막 직후에 같은 도시에서 장애인 올림픽(패럴림픽)이 곧장 개최되는 첫 선례를 남긴 대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호돌이에 비해 곰두리는 존재감이 훨씬 없어 보이긴 한다.;;

4. 기억에 남는 작곡자들

(1) 찬송가 "어서 돌아오오"와 "눈을 들어 하늘 보라"(믿는 자여! 어이할꼬~~)에서 멜로디의 작곡자.
"지금까지 지내 온 것"에다 그.. "복의 근원 강림하사"(D장조) 멜로디 말고, 뭔가 흥겨운 느낌이 나는 '솔솔 도도 레도레 미~도~' 그 멜로디의 작곡자.
동요에서는 "송이송이 눈꽃송이", "펄펄 눈이 옵니다", "모두 모두 자란다",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어머님 은혜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멜로디의 작곡자.

그 엄청난 주인공은 박 재훈(1922-2021)이라는 목사 겸 작곡가이다. 이분은 지난 8월 초에 캐나다에서 소천했다. (☞ 관련 소식)
세상 언론에서는 이분을 동요 작곡자라고 소개한 반면, 기독교계 언론에서는 찬송가 작곡자라고 소개했다.

이분은 우리나라가 해방된 뒤에는 왜색 없이 우리 아이들을 위한 동요가 있어야 된다면서, 주변에서 동시집을 구해 와서 마구 곡을 붙여 발표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경의 사실상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서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으로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셔요"가 떠오른다고 회고했었다.
본인은 저 노래는 본인의 어린 시절에 동네마다 있었던 이동식 목마 트럭의 BGM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에서 접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2)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MBC "경찰청 사람들"의 오프닝 주제곡을 작곡한 사람이..
"여명의 눈동자"의 그 오프닝 주제곡도 작곡했었구나..! 최 경식.. 세상은 넓고 음악 쪽도 천재가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국민의례와 의전 BGM을 작곡한 이 교숙, 그리고 반도체 박사로서 영상 음악 작곡 쪽도 미친 존재감을 발휘했던 안 지홍(M, 제3~5공화국, 베스트극장 등)과 더불어 잊을 수 없는 분 같다.

(3) MBC 창작 동요제의 1983년 첫 대회에서 금상 우승을 차지한 작품은 잘 아시다시피 '새싹들이다'였는데..
이 곡을 현장에서 불렀던 이 수지 양은 그 뒤 1988년(고1!!), 1994년(대학생), 2002년(성인..)에도 몇 차례 출연해서 이 바닥 대선배로서의 역량을 뽐냈다고 한다. 오오~~
나이가 든 뒤에는 음역이 변했는지 조를 약간 낮춰서 '새싹들이다'를 부르곤 했다. (F장조에서 Eb 장조)

그 뒤에는 결혼해서 애도 낳고 평범하게 살고 있어서 근황이 더 검색되지 않는다. 이 노래를 작곡하고 지도했던 교사도 진작에 정년 퇴임했다.
저분은 1972년생으로, 서울 올림픽 개회식 매스게임에 동원됐던 고등학생들(1987년 고1, 1988년 고2)보다 딱 1년 어린 연배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04 08:36 2021/11/0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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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나치 경례 거부

  • "주변에서 모두가 '예, 예' 할 때 혼자만 양심껏 소신껏 '아니요'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
  •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사관 생도 신조 중)

이런 것의 예시로 요런 짤방이 종종 인용되곤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많은 군중들이 오른팔을 뻗치면서 '하일 히틀러'를 외치고 있을 때 혼자 생까고 가만히 있었던 이 사람은 정체가 무엇일까?
그는 아우구스트 란트메서(1910-1944)라는 독일인이며, 사진은 의외로 전시가 아니고 히틀러의 집권 초기이던 1936년, 나치 독일의 모 군함의 진수식 때 촬영된 거라고 한다.

구체적인 사연은 검색해 보면 다 나오니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지 않겠다.
핵심은 이 사람은 유대인 여자와 결혼해서 딸까지 생겼는데 하필 거의 같은 타이밍 때 나치가 집권하면서 유대인에게 축객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는 저 군함을 제조한 조선소의 직원이었다. 그러니 진수식 행사엔 사실상 강제 동원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치 당에도 가입하긴 했지만, 유대인이니 정치니 이념 그딴 건 별 관심 없고 그냥 취업 때문에 가입한 것에 가까웠다.

그랬는데 나치 당에서 유대인들을 못 살게 굴기 시작했으며, 자기에게도 멀쩡한 아내를 버리라고 이혼을 종용한 것이다. 그러니 당이 좋게 보일 리가 없고 경례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이 사람은 단순히 사랑하는 자기 아내를 버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훗날 등장한 백장미단 조피 숄 같은 급으로 전시에 거창한 신념이나 소신을 갖고 나치 경례를 거부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저런 포즈로 대외 공개용 사진이 찍혀 버리자 나치 당에는 저 괘씸한 놈이 누군지 곧장 추적을 시작했고, 당사자 역시 신변의 위협을 진지하게 느끼게 됐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스웨덴으로 도피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발각됐다. 인종오염법으로 기소되어서 수용소 행..;;

아내는 전쟁 중에 여러 수용소에 끌려 다니다가 1942년쯤에 결국 살해당했다(아마 가스실에서). 저 사람은 살아서 풀려나긴 했지만 이미 비국민 불령선인으로 낙인 찍혀 있었다. 어느 죄수 부대에 징집되었다가 1944년쯤에 전쟁터에서 실종 내지 전사로 최후를 맞이했다.
그래도 어린 딸 둘은 고아원 내지 친인척 집을 거치면서 다행히 살아남아서 자기 부모의 사연을 후세에 전해 줄 수 있었다. 저 사진도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1991년에 딸에 의해 공개된 거라고 한다.

2. 미국의 태평양 전쟁 참전 거부 (입법)

미국은 1941년 말에 일본으로부터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 공습을 당한 것으로 인해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래서 새끼 빼앗긴 암곰을 능가하는 복수귀로 각성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엄청난 빡침이 담긴 대국민 담화인지 연설을 한 뒤, 의회로부터 대일 선전포고와 참전 승인을 받았는데.. 상원에서는 전쟁 개시 관련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그러나 하원에서는 388:1로 반대가 딱 하나 있었다.

전미가 왜놈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눈이 시뻘개졌던 험악한 시국에서 홀로 반대표를 던진 용자는 바로.. 미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자 여호와의 증인 급의 반전주의 소신이던 '지넷 랭킨(1880-1973)'이라는 사람이었다.
이 아줌마는 1차 대전부터 시작해서 2차 대전, 6 25 사변, 월남전까지 일체의 전쟁에 대해 자국이 참전하는 것을 일관되게 반대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분위기에서 이런 아웃사이더가 당장 테러· 협박을 당하지 않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미국이 다양성이 존중받으며 사회적으로 얼마나 성숙한 나라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일제나 나치 독일에서 누군가가 저런 반전 운동을 공개적으로 했다간 그 사람은 어찌 됐겠는가? (군중 속에서 팔 뻗어서 같이 경례 안 한 것만으로도 아까처럼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뒤끝이 뒤따랐거늘..)

하지만 천조국이라도 선 넘을 정도로 이상한 소신을 포용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 아줌마는 이를 계기로 소속됐던 공화당에서 퇴출되고, 정치판에서의 커리어가 통째로 끝장 났다고 한다.
결국 2차 대전 이후의 반전 운동은 정치인이 아니라 사회 운동가로서 개인 단위로 진행됐다. 분야는 다르지만 개고기 반대하면서 이상한 똥고집 부리던 프랑스의 그 아줌마 생각이 문득 난다.;;

3. 곁가지: 미군의 일본군 시체 훼손

이건 참 경이롭고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사진이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1944년 5월, 미국의 어떤 아가씨가 남자친구로부터 웬 해골바가지를 선물로 받고는.. 잘 받았다며 감사 답장을 보내는 모습이 보도된 것이다.
남친은 해군에 입대해서 태평양 전쟁터에서 한창 고생 중이었는데.. 전사한 어느 적군 병사의 유해에서 두개골을 추출해서 여친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다.
전시이니 저 여친도 군수공장에서 근무 중이었으며.. 저 때 나이는 겨우 20살이었다.

그 당시에 일본에 대한 미국의 증오심은 일선의 병사들이 일본군 시체에서 해골바가지를 뜯어내서 장신구로 쓰고 연인에게 선물로 보낼 정도로 극심했다.
최악의 증오스러운 적을 상대로 싸우는 데다, 억만 리 떨어진 망망대해의 섬에 상륙해서 밀림 속에서 전투를 벌이던 태평양 전쟁터는 환경도 최악의 생지옥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본놈들도 상대방에 대해 "저놈들은 귀축영미, 항복했다간 무조건 죽음" 이딴 소리에 골수까지 세뇌된 괴물들이었다. (얼마나 세뇌됐으면, 훗날 전쟁이 끝났으니 귀환하라는 말조차도 안 믿고 섬에 틀어박혀서 거지꼴로 몇 년을 버틴 사람들조차 있었을 정도..)
같은 백인 코쟁이에 기독교 배경이 있고, 말과 문화가 일말의 통하는 구석이라도 있는 서부 전선의 나치 독일 같은 부류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 전쟁터에서는 최악의 조건이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그야말로 인외마경이 펼쳐졌다. 그 살벌함은 포카혼타스 Savages를 아득히 능가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각을 해 보시라. 천조국 군인들이 차라리 평시에 군기가 빠져서 민간인을 상대로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있지만..
전시에 적군의 시체를 훼손해서 저렇게 갖고 놀고 그게 저 정도로 대대적으로 매스컴까지 탔던 건 남북 전쟁, 미영 전쟁, 1차 대전, 월남전, 이라크전 등등등을 통틀어서 저 태평양 전쟁이 전무후무할 것이다. 물론 군 수뇌부에서 이런 짓을 금지하고 단속하긴 했지만, 악이 받칠 대로 받친 군인 개개인의 감정을 다 통제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천하의 미군이니까 이 정도로 정신줄을 놓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해골바가지만 득템해서 장식품으로 써먹는 정도의 짓밖에 안 한 것이다.
일본군은 뭐.. 연합군 포로들을 훨씬 더 잔혹하게 고문하고 학대해서 다 죽이고, 100인 참수 경쟁을 벌이고,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대놓고 식인까지 했다.

이런 악랄한 경험으로 인해, 미국은 쟤들은 안 되겠다고 원자 폭탄까지 터뜨릴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훗날 전범 재판에서도 일제 전범들을 반드시 사형에 처하고, 총살도 아닌 그냥 교수형을 집행할 것을 건의하게 됐다. 교수형은 군인으로서의 예우를 박탈한다는 걸 뜻한다.
반대로 나치 독일 전범에 대해서는 독소 전쟁의 트라우마가 있는 소련이 더 강하게 교수형 사형 집행을 요구했다.

4. 일본 전범의 사형 거부 (사법)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패배와 무조건 항복으로 끝난 뒤엔, 다들 잘 알다시피 일본의 군인 지휘관과 정치인 중에 전쟁 범죄자를 가려내어 단죄하는 재판이(극동 국제 군사 재판) 열렸다. 침략 전쟁을 벌이고, 전투 중에 적군을 죽이는 게 아니라 민간인이나 포로를 고문하고 학살한 짓거리들 말이다.

그런데 이때 재판을 진행했던 연합국--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소련-- 판사들 중에 '라다비노드 팔'이라는 인도인은 유일하게 아싸 행세를 했다.
다른 판사들은 전범들을 처형하는 것에 다 동의했고 총살이냐 교수대냐를 갖고 논쟁하는 정도였던 반면, 저 인도인 판사는 혼자 강경하게 처형을 반대하면서 노골적으로 일본을 실드 쳤다.

그는 단순히 인본주의 박애주의자로서 사형 제도를 반대한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민족 감정상으로 엄청난 친일 성향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에다가 법을 뒤늦게 끼워 맞춰서 적용하는 건 부당하다, 왜 일본에 대해서만 일관성 없이 가혹한 잣대를 적용하느냐, 연합국은 가혹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줄 아느냐, 너는 왜 그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인제 와서 일본 탓을 하느냐" 등..
법리까지 거의 무시하면서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일본을 적극 옹호했다.

그러니 일본에서는 저 사람이.. 우리 한국으로 치면 후세 다쓰지--조선의 독립을 지지했던 일본 변호사--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극진한 예우와 존경의 대상이 됐다.;;; 야스쿠니 신사에 추모비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진작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이 자국 인도를 식민지로 부려먹은 영국과 맞서 싸웠기 때문에 저 사람도 '적의 적은 친구' 논리로 일본을 옹호했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도 그럴 것이 인도는 나치 독일이나 히틀러에 대한 국민 정서도 오늘날까지 굉장히 우호적이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애 이름까지 ‘아돌프 히틀러’라고 지어서 Adolf Lu Hitler Marak라는 이름의 1958년생 정치인도 있을 정도이다~!
하긴 인도인들은 영국인으로부터 탄압을 받았지 나치 독일에 의해 수용소 가스실로 끌려갔던 적은 없으니까.. 일면 수긍이 간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01 08:35 2021/11/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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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성의 독립운동가

(1) 최 재형(1860-1920)
요즘 이 이름은 ‘이 회창’처럼 감사원장을 역임한 대선 후보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활동한 유명 독립운동가 동명이인도 있었다.
그는 겨우 10대의 나이로 생활고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탈북하듯이 무작정 러시아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꽃제비처럼 쓰러져 굶어 죽을 뻔했는데.. 어느 선한 러시아인 선장 부부가 그를 구해 주고 양자처럼 공부도 시키고, 자기 상선(무역선)에 태워서 선원일도 가르치면서 잘 키워 줬다.

그는 러시아어에 능통해서 한국어와 통역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 노동자와 러시아 업주 사이에 중재를 잘 하고 일감 조율을 잘 한 공로로 러시아 황제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그는 이걸로도 모자라서 양부모로부터 한 밑천 물려받았는지 군수업을 시작해서 엄청난 부자까지 됐다. 알거지 빈털터리 상태에서 러시아에서 이 정도로 성공했으니 정말 역전의 용사 개룡남이 따로 없는데..

그는 러시아에서 자신 같은 불우한 처지에 놓인 동포들을 돕고 가르치는 일에 애썼으며, 조국 조선이 일제에 망할 위기에 처하자 항일 독립 운동에 자기 자산을 대부분 탕진했다. 그리고 안 중근 의사에게 권총을 사 주고 사격 훈련을 시켰다. 안 의사의 의거의 배후에 이 사람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안 중근이 아저씨 차 태식이라면, 저 사람은 문 달서 정도 되는 셈..

그는 훗날 1919년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했고 정말 뼛속까지 애국자로 살았지만.. 이 때문에 일제로부터 추적을 받기 시작했고 러시아 정부로부터도 밉보이게 되었다. 결국 1920년에는 일본군에게 잡혀서 그대로 총살 당해 순국했다.

(2) 함 태영(1872-1964)
생몰년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승만 할배와 거의 동연배이며 비슷하게 엄청나게 오래 살았다.
이 사람은 공부 잘하고 똑똑했는지, 20대 초반의 나이로 법관양성소를 수석 졸업하여 판사가 됐다. 갑오개혁으로 인해 등장한 근대식 법조인의 1호 원로 원조인 셈이다.

그래서 고종 황제 시절에 김 홍륙이 저지른 고종· 순종 독살 미수 사건(1898)을 재판했는데.. 먼 훗날, 대한민국에서 심계원(감사원)장과 제3대 부통령도 역임했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에서 모두 고위 공무원을 한 사람이라니, 정말 엄청나지 않은가?? 일제 시대에도 전관예우를 받아서 계속 법조인으로 있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거절하고 그 동안은 목사와 교육자로 살았다.

서 재필과 이 승만은 대한제국 시절에는 그냥 반역자로 몰렸고, 일제 시대 동안엔 미국에 가 있었다. 함 태영은 저런 사람과는 굉장히 대조적이다.

(3) 서 재필(1864-1951)
이 사람도 최 재형 이상으로 근성의 개룡남이었으며, 함 태영 이상으로 머리 좋고 공부를 겁나게 잘했던 것 같다.
18세의 어린 나이로 사서삼경을 줄줄 외우면서 과거에 급제했다. 하지만 개화물 먹은 뒤 갑신정변으로 인해 역적으로 몰려서 완전히 멸문지화를 당했다. 부모와 친형제, 아내까지 몽땅 사약, 자결, 피살 등의 방법으로 죽었다~!! 이때 심지어 어린 자식까지 죽고 말았다.

요즘 같았으면 이런 상황에 당사자도 멘붕 자살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제 조선의 조 짜만 나와도 학을 떼는 골수 혐한 친일파로 돌아서지 않았을까?
그런데 서 재필은 일본을 거쳐서 미국으로 망명 가서는 빈털터리 상태에서 먹고 살려고 직싸게 고생하며 주경야독을 거듭했다. 물론 도와 주는 선교사 후견인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미국은 아직 인종 차별도 있던 살벌한 상태였다.

그는 그 여건에서도 학교에서 1등을 도맡아 하면서 고등학교 졸업식 때 대표 고별 연설을 하는 우등생 모범생이 됐고--(물론, 미국 토박이 동년배 고등학생들보다야 나이가 훨씬 더 많았음..)--, 자국도 아닌 미국에서 의사가 됐다. 친인척을 모두 잃은 알거지 역적 신세로 미국으로 망명 간 지 딱 10년 만에 미국 의사가 된 것이다.

다행히 고국에서도 갑오개혁을 계기로 갑신정변 주동자에 대해서는 사면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구한말 때 잠시 귀국해서 독립 덕후 활동을 하던 당시엔.. 그는 머리로 동포의 자주 독립은 지지하지만 가슴에 조선 자체에 대한 애정은 싹 사라진 상태였다.
조선 땅에서는 완전 코쟁이 미국인 행세를 하면서 "오우 노!! You Koreans들은 이래서 안 돼.. ㅉㅉㅉ" 삿대질을 하고.. 조선 백성들도 그냥 가르치고 계도해야 할 미개인 정도로 생각하면서 자기와 거리를 뒀다고 한다. 뭐, 인간적으로 이해는 된다.

서 재필은 한국이 배출했지만 한국이 제대로 키워 주지 못한.. 참 여러 모로 아까운 인재였다.
그의 유해는 1994년 3월경에 한국으로 돌아왔다(전 명운 의사의 유해와 함께). 공 병우 박사가 다른 관혼상제나 행사에는 좀체 참석을 안 했는데, 이 사람의 유해 봉환식에는 일부러 찾아가 참석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일본인

(1) 소다 가이치(1867-1962)
일본인으로서 기독교 선교사 겸 고아원 원장으로 평생을 헌신한 분이다.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면서 105인 사건이나 3· 1 운동 때는 조선인들을 편들고 실드 쳤으며, 전후에는 자국을 상대로 전쟁 범죄에 대한 회개와 사죄를 촉구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정신을 잃고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조선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살아났으며, 월남 이 상재 선생으로부터 기독교 전도를 받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호의가 자연스럽게 생긴 것 같다.
그는 일본인으로서 유일하게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묻혔다. ‘후세 다쓰지’ 만만찮은 대한 독립 유공자 일본인으로서 손색이 없으나, 정식으로 인정은 아직 못 받았다.

(2)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
조선총독부 산림과에서 근무한 관료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의도가 없이 진짜 순수하게 학자 내지 덕후로서 조선의 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보였던 일본인이었다. <조선의 소반(밥상)>(1929)과 <조선도자명고(도자기 도예 관련)>(1931)를 저술하기도 했다.

그는 망우리 묘지에 묻힌 유일한 일본인..은 아니고 두 명 중 하나이다.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는데, 죽을 때의 유언도 “조선 식 장례로 조선 땅에 묻어 달라”였다고 한다.

3. 역관 출신

(1) 김 홍륙 (러시아어)
이 사람은 천민 출신이었지만, 함경도 출신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래하면서 어부 생활을 한 덕분에 러시아어 회화가 가능했다.
마침 1880년대의 조선 정치판에서는 “친러가 살 길이다” 라인이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잘하는 인재를 찾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런 시대를 잘 탄 덕분에 벼락출세길이 열렸으며 고종의 측근으로서 부귀영화를 엄청난 누리게 됐다.

그러나 그는 나라를 쥐락펴락 하는 고위 공직자에 걸맞은 인품, 교양, 학식을 갖추지 못한 채 친인척까지 동원해서 부정축재와 학정을 일삼았다. 무능한 암군 소리를 듣는 고종이 보기에도 도가 지나쳤기 때문에 그는 결국 짤렸다(파직).

그런데 김 홍륙은 이에 앙심을 품고 고종과 순종 부자를 통째로 암살, 독살하려는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이들이 마시는 커피에다가 몰래 치사량의 아편을 탔는데.. 고종은 커피 맛이 이상한 걸 알고 곧바로 뱉었지만, 순종은 그걸 그대로 마셔 버려서 한동안 앓아누우며 고생했다.

이 어설픈 사건은 곧장 배후가 드러났는지, 김 홍륙은 곧바로 교수형을 당했다. 왕을 통째로 암살하려 했으니 이거야말로 10여 년 전 갑신정변 주동자를 능가하는 역적이었으며, 동시대의 중국이었다면 능지형을 당해도 쌌다. 그래도 갑오개혁을 계기로 연좌제가 폐지되고 잔인한 형벌도 금지된 덕분인지, 그는 김 옥균이나 서 재필 같은 급의 멸문지화를 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훗날 1919년, 고종은 식혜를 마시고 나서는 심한 복통과 각혈을 호소하다가 죽어 버렸기 때문에 이거야말로 일제에 의한 독살설의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고종의 붕어가 3· 1 운동의 강력한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것도 명백한 팩트이고..

(2) 이 하영 (영어)
이 사람은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가난과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랬는데 미국인 의료 선교사 알렌과 만나게 되고, 어설픈 일본어와 영어 실력만으로 고종 황제의 개인 통역관의 자리에 올랐다. 이런 사례를 보면 인생은 정말 타이밍인 듯..

그는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출세하고 성공하면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줄 잘 서고 기회 잘 잡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결국은 을사조약에 찬성하고 일제로부터 자작 지위도 받고, 조선 귀족으로서 떵떵거리며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

더 옛날에 김 대건 신부도 똑똑해서 외국어를 몇 개씩이나 구사했다고 한다. 조선의 관료들도 그 실력이 아까우니 가톨릭 신앙만 버리면 당장 살려 주고 벼슬도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남에게 없는 외국어 실력을 갖고도 이렇게 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연 저렇게 산 사람도 있었다.;;
참고로 이 하영의 손자 중 하나가 참 군인이라 일컬어지던 이 종찬 장군이다.

4. 이완용보다 더 부자 매국노

구한말에 나라를 팔아넘겨서 그 댓가로 호의호식했던 매국노는.. 그 뒤에 활동했던 생계형 친일파나 부역자하고는 성격이 좀 다르다. 전자가 후자보다 수가 더 적으며, 훨씬 더 부유하게 살았고 죄질도 더 나쁘다고 봐야 한다.

매국노의 대명사야 뭐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의 교집합 그랜드슬램을 모두 찍은 이 완용이다. 하지만 재산으로만 따지자면 이 완용보다 더 악착같이 돈을 모으면서 더 갑부, 더 억만장자가 된 반역자도 있었다.

  • 민 영휘: 남이섬이 바로 이 사람의 손자인 민 병도의 사유지라 해서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그 시절에 그 정도 가격이면 한국 은행의 총재까지 역임했던 능력자 민 병도가 개인 연봉과 퇴직금만으로 마련할 수 있는 부동산이고, 딱히 친일의 댓가· 피 묻은 돈이라고까지 볼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내려진 상태이다. (참고로 국사학자는 이 병도이구나)

  • 윤 덕영: 지금의 수성동 계곡까지 포함해서 서울 옥인동, 인왕산 자락까지 그야말로 초대형 저택을 꾸렸던 미친놈이었다. 재산이 이 완용보다도 몇 배는 더 많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단순히 일본으로부터 받은 은사금을 밑천으로 해서 각종 부동산이나 사업으로 재산을 더 불린 것도 생각해야 한다. (참고로 축구 선수 골키퍼는 홍 덕영..;;)

Posted by 사무엘

2021/10/29 08:35 2021/10/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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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의 발전 동향

1. 안전해짐

과거(20세기쯤?)엔 활발히 쓰였지만 현재는 환경을 파괴한다고, 인체에 해롭다고, 혹은 단순히 안전상 위험하거나 부작용이 있다는 이유로 사용이 전면 금지된 물건들을 기억 나는 대로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엔진 노킹 방지용 유연 휘발유: 납 중독 위험
  • 수은 온도계와 수은 건전지: 수은 중독 위험
  • 메탄올 워셔액: 역시 맹독으로 인한 위험

메탄올의 경우.. 위험물인 건 사실이지만, 워셔액 성분으로 인한 자동차 탑승자의 골병 내지 중독 사례가 실제로 보고된 게 있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 살충제(모기) DDT: 생물 농축과 부작용, 내성
  • 제초제 그라목손(파라콰트): 맹독으로 인한 자살/무차별 연쇄살인 위험
  • 살충제(식물 병충해) 파라티온: 역시 맹독으로 인한 위험

주유소에서 차에 바로 주입하지 않는 말통 기름을 판매할 때는 반드시 직원이 나와서 구매자를 대면하고, 구매자의 신상을 확보하고 구매 내역을 기록도 한다. 이것처럼 농촌에서 농약은 휘발유나 번개탄에 맞먹는 위험한 물건이며, 인터넷을 통한 비대면 익명 구매가 허용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197~80년대에 누군가가 개봉한 음료수에다가 그라목손을 섞고 재밀봉해서 자판기 곁에다가 몰래 놔 둬서 생사람 여럿 잡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의 음료수들은 재밀봉이 원천 불가능한 원터치 캔 형태로 바뀌기도 했다.

단, 그라목손은 환경 오염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은 듯하다. 생체가 아닌 흙에 닿으면 오히려 비활성화돼 버린다니까.. 잎만 죽게 하고 뿌리는 제대로 죽이지 못한댄다. 여느 고엽제 같은 물건과는 성격이 달라 보인다.

  • 건축자재 석면: 폐에 발암물질 농축.. 화생방 어느 분야로도 딱히 특이사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먼지와 동일한 특성만으로 치명적으로 위험한 매우 이례적인 놈이다.
  • 냉매 CFC 프레온: 반대로 인체에는 당장 아무 위험이 없는 무독성이지만.. 장기적으로 오존층 파괴
  • 화산 폭발 실험 실습용 중크롬산암모늄: 단순히 위험하다는 이유로 수십 년 전에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삭제됨

20세기 초는 서양을 중심으로 인류가 과학 기술 유토피아 환상에 젖어 있던 때였다. 그게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많이 버로우 타긴 했지만, 20세기 중후반엔 냉전과 더불어 과학 기술이 또 다시 무섭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유전 공학, 원자력, 우주 시대, 컴퓨터 정보화 시대까지 열리면서 1980년대쯤엔 인류는 예전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과학 기술 유토피아 환상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세계 대전이 아니라 자원 고갈 우려와 환경 오염 문제를 갖고 비관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특히, 인간이 과학 기술의 힘으로 발명해서 편리하게 사용하던 각종 물질들이 알고 보니 아주 해로운 놈이었다는 게 밝혀졌을 때 말이다.
하지만 2020년대가 다 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문제 역시 친환경 과학 기술의 힘으로 많이 극복됐다. 그저 무식하게 과학 기술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친환경 친자연으로 살던 옛날은 각종 원시적인 전염병들이 창궐하고 영아 사망률 높고, 먹고 사는 문제 해결하기에 급급하던 시절이지, 지금보다 더 좋던 시절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얘기했었지만 지저분한 화석 연료는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되게 해 주었고, 위험하다는 원자력은 화석 연료조차 쓰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관계라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 저런 해로운 물질들의 대체제를 만드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대체제는 생산 비용이 비싸거나 성능이 원판만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게 안타까운 노릇이다.

  • 요즘 워셔액은 메탄올 대신 에탄올이 들어갔다 보니, 워셔액을 분사했을 때 차내에까지 자욱한 술 냄새가 난다. 하지만 에탄올 워셔액은 예전의 메탄올 워셔액보다 단가가 훨씬 더 비싸다.
  • DDT만 해도 이미 20세기 중후반에 진작부터 사용이 금지되긴 했지만.. 당장 말라리아 사망자가 넘쳐나는 동남아-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는 현실적으로 DDT의 압도적인 가성비를 능가할 대체 살충제가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듯이 DDT가 아직까지도 애용되고 있다고 한다. 당장 호랑이나 사자에게 물려 죽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동네에서 자연 보호 맹수 보호를 주장할 수는 없듯이 말이다.
  • 그라목손 역시 금지되던 당시엔 농민들이 많이 반발했었다. 얘만치 저렴하면서 강한 잡초 제거 성능을 발휘하는 농약이 없다고 한다. 단순히 성능이 너무 강해서 위험한 것만이 문제이고 다른 부작용은 없다면.. 엑기스를 희석하고 괴상한 맛과 냄새를 첨가해서 판매하면 되지 않을까?

참고로, 화학 조미료 성분인 L-글루타민산나트륨(일명 MSG)은 이례적으로 누명을 벗은 사례이다. 저렴하게 감칠맛을 내는 마법의 물질로 추앙받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체에 해롭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던 것이 임상 실험을 통해 인체에 정말로 무해하다는 것이 입증되긴 했는데.. 소비자의 인식은 여전히 썩 좋지 않은가 보다. 그러고 보니 이런 조미료는 뭐고 방부제는 뭔지.. 가공 식품의 세계가 참 궁금하긴 하다.

2. 똑똑해짐

요즘 기계들은 내부적으로 갈수록 더 똑똑해지고 에너지 효율이 올라가고 있다. 전자 공학 기술의 발달 덕분에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단순한 물건에도 반도체 소자와 컴퓨터가 내장돼 들어간다. 내부 구조가 '전자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얘들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성능을 발휘하더라도 3, 40년 전의 물건보다 전기나 기름을 덜 소모하는 편이다. 특히 에너지를 아낀답시고 껐다 켜기를 반복할 필요가 없으며, 적절한 세기로 그냥 켜 두는 게 더 나은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가동하지 않았다가 처음 가동할 때야말로 예열이나 초기화 같은 이유로 인해 에너지가 더 많이 들기도 하니 말이다.

  • PC: 절전 모드로 해 놓으면 전기를 거의 먹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컴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 완전히 시스템 종료를 할 필요가 거의 없다.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설치한 뒤에나 필요할 듯..)
  • 보일러: 난방도 아니고 온수 정도야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냥 상시 켜 놓는 게 더 낫다. 온수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미지근한 물도 포함).
  • 에어컨: 인버터 방식이 등장하면서 에어컨의 효율도 꽤 올라갔다. 하루 종일 켜 놓으면서 등온을 유지하는 건 생각만치 전기를 많이 잡아먹지 않는다.
  • 전기 철도: VVVF 한 마디로 모든 게 설명된다. 전기 모터는 내연기관처럼 공기와 연료 배합을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같은 전력으로 전압과 전류를 적절히 잘 제어하는 게 엔진과 변속기에 대응한다.

그리고 자동차야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 공기 혼합과 연료 분사 방식이 197, 80년대의 원시적인 카뷰레터보다 훨씬 더 정교해졌다. 그래서 90년대 이후의 자동차들은 예열을 할 필요가 없으며, 엔진 브레이크가 걸릴 때 자동으로 fuel cut도 된다.
  • 자동 변속기의 경우 약하게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속도를 유지하는 게, 어설프게 뗐다가 재가속 하는 것보다 대체로 더 낫다. 요즘 에어컨이나 보일러가 등온 유지 중일 때는 에너지 소모가 적은 것하고도 일맥상통한다.
  • 심지어 정지 중에 N으로 바꿀 필요도 없다. D+브레이크만으로도 엔진이 알아서 정지 상태에 맞는 연료 절약 모드로 진입하며, 요즘 차들은 심지어 그때 엔진 시동을 잠시 끄는 ISG 기능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자동차는 악셀 페달을 밟거나 변속 레버를 조작하는 것 자체가.. 밸브의 개폐 정도 같은 기계의 물리적인 상태 변경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컴퓨터의 판단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전해질 뿐이다. 좋게 말하면 매우 똑똑해진 것이지만, 극악의 확률로 컴퓨터가 오동작할 때 급발진의 가능성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기계식 카뷰레터와 전자 제어의 효율 차이는 전등에다 비유하면 백열등과 형광등/LED등의 효율 차이에 맞먹을 것이다. 전동차에다 비유하면 구닥다리 저항 제어 vs VVVF 제어하고도 비슷하다.
게다가 내연기관 연료 분사 기술의 경우, 단순히 차 성능과 연비뿐만 아니라 환경하고도 관계가 있다. 연료가 제대로 연소하지 못하면 전부 검댕이나 질소산화물, 일산화탄소 같은 유해한 배기가스로 바뀌기 때문이다.

세탁소에는 거의 1980년대부터 "컴퓨터 세탁"이라는 수식어가 관행이 돼 있다. 이건 컴퓨터가 내장된 스마트한 세탁기를 운용한다는 뜻이다. 컴퓨터가 세탁물의 양과 상태를 판단하여 물과 세제를 더 똑똑하게 배합해 준다.
그리고 자동차 엔진의 ECU 컴퓨터는 공기와 연료 배합을 그런 식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자동차와 에어컨 얘기가 동시에 나왔으니 말인데..
더울 때 창문을 열어서 공기 저항을 증가시키는 것하고, 그냥 창문 닫고 에어컨을 켜서 엔진 부담을 증가시키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연료 소모가 클까 하는 의문이 자동차 매니아 사이에서 오랜 논쟁거리이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을 넘어가는 폭주가 아니라 경제 속도 이내라면.. 공기 저항이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닌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그냥 창문을 여는 게 에어컨보다는 부담을 덜 준다는 것이 본인의 식견이다.

땡볕에 세워져서 내부 온도가 50~60도에 달했을 때 차 시동을 걸면.. 내부는 왕창 뜨거운데 엔진이 충분히 돌아가지 못해서 에어컨은 아직 충분한 냉기가 안 나오니 엔진과 에어컨 모두 부담이 최고로 걸려 있을 것이다. 이때는 몇 분 동안 그냥 창문 열고 주행하면서 열기를 내보내 주는 게 도움이 된다.

참고로, 요즘 똑똑한 전자레인지는 조리 완료 후에도 한동안 냉각 팬이 돌아가면서 내부를 자가냉각을 하고,
자동차는 시동 꺼진 뒤에도 한동안 송풍기가 돌아가면서 압축기 내부의 습기를 제거한다고 한다. 무슨 터보차저의 후열 처리처럼 말이다. 이런 것조차 사람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게 바뀌고 있다.

3. 나머지

(1) 형광등은 처음 켤 때 전기를 많이 먹는다는 낭설이 나돌았던 대표적인 물건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많이 소모하는 건 아니며, 더구나 요즘 형광등은 옛날 것처럼 처음 켤 때 주절주절 깜빡거리지도 않기 때문에 옛날 통념이 많이 사라졌다. 깜빡거리지 않는 형광등도 최신 전자 공학의 산물이다.

(2) 끝으로,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또 얘기하자면..
매년 풍년 흉년에 연연하지 않고 밥값이 별 차이 없고, 가물건 폭우가 쏟아지건 물 걱정을 옛날에 비해서는 '훨씬' 안 하고 살고.. 물과 전기가 시간제 제한 공급되는 일이 없고, 매년 수재민 돕기 성금 내기 관행이 없어진 게 본인이 보기에는 보통일이 절대 아니다. 치수 인프라가 예전보다 크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0/26 08:35 2021/10/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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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언어 유희

1.
일본식 소주인지 청주인지.. 그런 술을 일본어로 '사케'라고 부른다. 그런데 술안주 중의 하나인 연어도 외래어 음차인 '사먼'뿐만 아니라 '사케'라고 한댄다. (단, 억양의 차이는 있음)
우리말에서 고장(region / out-of-order)이나 거리(distance / street)처럼 일본어에도 이런 유형의 동음이의어가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저 섬나라 사람들도 술을 무척 좋아하는지.. 자국에서 개발한 공개 키 암호화 알고리즘의 이름도 SAKKE라고 붙였다. 고안자의 이름 같은 여러 단어들의 이니셜이긴 한데, 이어서 발음하면 저렇다.;;
하긴, 옛날에 일본 SEGA에서 개발된 황금도끼 게임도 몹들의 이름이 다들 술 이름이긴 했다.

2.
우리나라엔 '대성 나찌 유압 공업'이라고.. 대성 그룹의 계열사이면서 일본에 있는 '나찌-후지코시'라는 이름의 기업과 제휴해서 설립된 기업이 있다. (☞ 홈페이지)
독일 나치 NAZI도 아니고 일본 나치 NACHI라니..!! 대박이다.

하긴, 그 시절에 일본군보다야 독일군이 '때깔'이 더 멋있긴 했다.
검은 군복은 과거에 우리나라 박통의 참모이던 차 지철조차 흉내 냈을 정도이고, 로마 제국 스타일을 흉내 낸 팔 뻗는 경례도 그 자체는 간지 나잖아..

독일은 유보트, V1, V2, 티거 전차 같은 무기도 그렇고, 베를린 올림픽 때 이미 텔레비전 생중계까지.. 과학 기술도 세계 최강이었다.
열등한 인종 민족을 모조리 죽여버려야 한다고 선 넘는 악행만 안 벌였으면 1차 대전 때처럼 그냥 평범한 패전국으로만 남았을 텐데.. 그건 교만으로 인한 패망이고 걔네들의 자업자득이 됐다.

3.
우리나라 현대로템은 '한국 철도 차량'이라고 처음에 상호를 정했는데.. 이게 영어 이니셜이 "KOROS 고로스"(일본어로 殺 죽인다)라고 읽히고 일본 거래처에서 기겁을 하는 바람에 다른 단어를 갖다붙여서 뭔가 스덕스러운 '로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난 일본어를 모르지만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서유기 편에서 "1등 하는 놈을 증오로 죽인다~!"라는 삼장법사의 저주 대사를 통해서 '이치 ... 고로스'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일본은 같은 추축국 전범국이어서 그런지, '고로스'에는 민감하면서 어째 나찌라는 상호는 멀쩡히 남아 있나 보다.

4.
일본어 언어유희라는 분야의 끝판왕은 일본의 20세기 격변기를 풍미했던 히로히토 천황의 궁호(미야고)이지 싶다. 한자로는 迪宮인데, 일본어로 읽으면 '미치노미야'...=_=;; 였다.
이건 일제 시대 때 조선인들로부터 당연히 0순위로 '미친놈이야 히로히토'라는 언어유희와 놀림의 대상이 됐다. 순사 짭새들에 대한 멸칭인 '개/나리'만 있던 게 아니었다.

창씨개명이 행해졌을 때도 이 이름을 응용한 창작물이 많이 시도됐다. 그건 좋게 끝나면 등록이 거부되고 퇴짜 맞았으며, 나쁘게 끝나면 당사자가 경찰서로 끌려가서 코렁탕을 먹었다.
일본에서도 식민지 언어인 조선어에 대해 연구를 안 한 게 아니고 한때는 한글/조선어 독본까지 만들었을 정도인데.. 이런 언어유희를 모를 리 없었다.

요즘은 반일 감정에 편승해서 국내 언론에서 어지간해서는 그냥 일왕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하지만 1990년대 말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래로 우리나라가 외교 때 정식으로 사용하는 칭호는 여전히 원형 그대로 '천황'이다. 북괴의 수장도 꼬박꼬박 위원장이라고 불러 준다면 굳이 천황만 꺼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5.
옛날에 홍 사익이라고.. 조선 황실 출신이 아닌 평민으로서 일본 육사와 육대를 졸업하고, 일본군 육군 중장(한국군으로 치면 투스타 소장에 대응) 계급에까지 오른 유일한 개룡남 조선인이 있었다. 1889년 3월생으로 히틀러나 찰리 채플린과 거의 동갑내기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의 패전 이후에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서 사형을 당했다. 이 사람이 직접 전쟁을 벌이고 나쁜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필리핀에서 저질러진 대규모 연합군 포로 학대에 대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군인 예우도 못 받았는지 총살이 아닌 교수형이 선고되었다.

그는 사형 판결을 받고 돌아와서는 지인들에게 "나 갑종 합격이야~!"라고.. 무슨 징병 신체검사 1급을 받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얘기해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
"뭐 갑종...?? 아.. 교수라고..? 교수형??!!!" 일본어는 甲種과 絞首가 발음이 こうしゅ(코우슈)로 같아서 나름 개드립을 친 것이었다.

우리 한국어로 치면 "내 동생이 방금 대학 교수 임용에 합격해서 난 이제 교수형이지롱~" 이런 드립을 친 것과 정확하게 같았다.

진짜 악질 전범이었던 도조 히데키는 옥중에서 불교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부처님.. 나무아 '미타' 불...)에게 가는 기쁨이여~~" 이런 유언을 남긴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 반면, 홍 사익은 옥중에서 기독교에 귀의했다. 참회와 회개의 고백인 시편 51편을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해서 되뇌이고 들으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 사람은 뭐 독립운동 유공자로 예우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친일 반민족행위자라고 낙인 찍고 지탄할 대상도 아니었다. 동족에게 막 적극적이고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았으며, 창씨개명도 안 하고 늘 자신이 조선인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일본군 내에서 인정받고 저 정도로 출세한 건 오히려 대단한 일이다.
그랬는데 결국 일본은 패망했고 일본인도 아닌 조선인이 전범이 되어 처벌 받았다니 저 사람 개인으로서는 무척 불운한 경우였다고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10/23 19:35 2021/10/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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