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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기드(rugged) 모델

자동차, 노트북 컴퓨터, 스마트폰 같은 기계들에는 일반 사용자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러기드(rugged) 모델/에디션'이라는 게 있다.
요즘은 기계들이 내부 구조가 상상을 초월하게 복잡하고 정밀해지면서 성능 자체는 매우 향상됐지만.. 그 대신 열악한 환경에서 험하게 다뤘을 때의 신뢰성이 야금야금 감소하고 유리몸처럼 되어 왔다. "무식하게 튼튼하다, 30년이 넘게 아무 고장 없이 잘 돌아간다, 그나마 고장 난 거 같을 때는 툭 쳐 주면 다시 돌아온다" 같은 면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 군인 같은 사람들은 가혹한 환경에서도 통신이나 정보 처리를 위해 각종 전자기기들을 휴대하고 사용해야 한다.
전자기기들은 통상적인 실내보다 더 강한 진동이나 낙하 충격, 굉장한 고온· 저온, 막장 수준으로 높거나 낮은 습도, 혹은 짙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야외에서 사용하는 것을 가정한다.
그리고 자동차의 경우, 막 침수된다거나 엔진 오일을 굉장히 오랫동안 교환하지 않는 것, 부득이한 상황에서 연료를 질이 좀 안 좋은 걸 넣는 걸 생각해 보자.

요즘 자동차는 온통 컴퓨터 기반의 전자 장비로 가득하기 때문에, 같은 수준으로 침수되더라도 대미지가 30~40년 전의 자동차보다 훨씬 더 심하다.
또한, 요즘 자동차들은 옛날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연료를 다루고 배기가스를 정화하기 때문에 연료에 불순물이 들어있을 때의 배탈도 훨씬 더 심하게 난다. 단순히 매연 좀 나고 엔진 출력이 떨어지거나 시동 몇 번 꺼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그 정도면 엔진이 이미 비가역적인 대미지를 입어서 망가진다.

사실은 자동차 안에 탑재된 카오디오나 내비 등의 기기는 처음부터 '러기드' 속성을 어느 정도 지닌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주행하느라 쿵쿵 강한 진동이 수시로 전해지는 차량 안에서 테이프도 아니고 CD를 꽉 잡고 안정적으로 재생하는 건 일반 보급형 CDP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차내 온도가 60~70도까지 올라가더라도 고장 나지 않게 회로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드디스크는 헤드가 디스크로부터 나노미터 급으로 위에 떠서 돌아다닌다는데.. 이런 초정밀한 기기는 진동에는 완전 쥐약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일반적인 놋붉이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배터리들은.. 본인의 경험상 -15도 정도의 저온에도 맥을 못추는 연약한 물건이다. 이런 식으로 어려운 요인들이 많다.

그래서.. 같은 물건이라도 온갖 가혹 환경까지 고려해서 만들어진 군용품은 민간용보다 더 두툼하고 충격이나 진동에 강하게 만들어지며, 사실 외형부터가 무슨 갑옷이라도 입은 듯 아주 투박하게 생겼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 보면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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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군알못 민간인 중에도 일부러 이런 러기드 스타일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도 일부 있긴 하다..
러기드 노트북은 가방도 가죽이 아니라 딱딱한 재질이며.. 러기드 폰은 방수 방진까지 갖춘 경우도 있다. 오오~

그 대신, 이런 러기드 내지 군용 모델은 민간용 모델보다 성능이 더 떨어지거나 가격이 훨씬 더 비싸다. 성능에다가 극한의 신뢰성까지 함께 달성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람이 야전에서 다루는 군용 수준을 넘어서 전투기나 우주 탐사선의 안에 들어가는 컴퓨터는 겨우 외장· 케이블 정도가 아니라 CPU와 마더보드부터가 특수하게 설계된 전용 부품, 심지어 전용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돌아가는 컴퓨터는 진공 상태에서의 고온· 저온에 잘 버티고, 방사능이나 우주선 태양풍 같은 것에도 삐끗 하지 않고 잘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얘들 역시 굉장히 고가인 반면, 속도와 메모리 양 같은 성능은 굉~~장히 뒤떨어져 있다. 우리나라 전기 기관차 안에 아직 386/486 컴터가 현역이네, Windows 2000이 돌아가네 하는 얘기와도 급이 다르다.

다음으로 자동차를 살펴보면.. 일명 두돈반이라고 불리는 K-511 트럭 말이다.
민간용 트럭이 바퀴 크기와 축 수가 저 정도이면 가히 10톤은 넘게 실을 수 있는 덤프트럭 덩치이다. 그런데 왜 제원상의 적재량이 꼴랑 2.5톤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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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이유가 있더라. 완전 비포장 야전 험지 오르막 기준으로 2.5톤이고, 평지 공도에서는 4.5톤 이상이라고 한다.
평지 공도에서도 톤수가 여전히 낮은 건 군용차 자체에 탑재된 장갑 쇳덩어리, 쉽게 말해 러기드 오버헤드 때문일 테고.. 하긴, 승용차만 해도 VIP용 방탄차는 총탄과 폭탄을 방어하는 두툼한 장갑 때문에 동급의 민수용 차보다 훨씬 더 무겁다.

보아하니 군대에서 운용하는 차량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 민간 차량과 완전히 똑같은데 번호판만 군대 소속 번호판
  • 군대에서만 쓰이는 표준 차량 (레토나, 두돈반 따위)
  • 장갑차, 탱크, 자주포 따위.. 건설 현장에다 비유하자면 차량보다는 건설기계에 더 가까운 물건들.

끝으로, '러기드' 하니까 말인데..
교회 댕기는 사람한테는 이 단어가 비교적 친숙할 것이다.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라는 찬송가의 가사에 나오는 "험한 십자가"가 영어로 다 old rugged cross이다. 십자가의 목재 재질이 낡고 거칠다는 뜻인데, rugged를 '험한'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14 08:36 2022/02/1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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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타 소행성의 충돌

우리가 사는 지구에 있었던 다음 굵직한 사건들을 생각해 보자.

  • 천문: 40억 년 이상 전, 달의 생성
  • 지질: 약 6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기의 대멸종 (K-Pg 멸종, 쉽게 말해 공룡 멸종)
  • 역사: 서기 1908년, 의문의 퉁구스카 대폭발

이들은 발생 시기와 규모가 서로 order of magnitude 급으로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발생 원인은 모두.. "소행성과의 충돌"이 가장 유력한 정설로 여겨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단순 돌덩어리급을 넘어선 꽤 큰놈으로 말이다.

달이야 다른 별개의 천체가 우연히 지구로 끌려온 거라는 부부설이 유력했고, 공룡 멸종은 화산 폭발 같은 다른 이변의 가능성도 제기됐었다. 퉁구스카는 아예 외계인이나 혜성 충돌설까지 제기됐던 이변이고..
하지만, 여러 가설들 중 어느 것도 다른 가설들을 확실하게 부정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설득력이 높지 못했다. 그러니 모든 후보들이 제각각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었다.

허나, 20세기 후반 이래로 현재는 지질 관찰을 통해 세 경우 모두 소행성 충돌설이 힘을 얻게 됐다. 소행성의 충돌을 가정해야만 설명 가능한 증거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런 증거 중에는 굉장히 가까운 2010년대에 와서야 발견된 것도 있다고 한다.

1. 달

달은 지구의 크기에 비해 이례적으로 굉장히 크고 무거운 위성이다. 이렇게 부담스럽고 버거운 천체가 처음엔 따로 놀다가 나중에 지구의 중력에 쓱 끌려와서 위성이 되기란 굉장히 어렵다. 부부설· 형제설 따위는 이런 점에서 설득력을 잃게 됐다. 달은 화성의 포보스· 데이모스 같은 돌덩어리와는 성격과 위상이 근본적으로 다른 물건임이 주지의 사실이다~!

더구나 아폴로 미션 때 얻어진 월석을 분석해 보니, 얘들도 지구 지각의 성분과 굉장히 비슷했다고 한다. 그런 성분에다가 충돌로 인한 고열 때문에 변성된 흔적만 있을 뿐..!!
여러 정황상 달은 기존 지구의 성분이 떨어져 나가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입증됐다.

그래서 현재는 '가이아'도 아니고 '테이아(Theia)'라는.. 화성과 얼추 비슷한 질량/무게의 소행성이 지구와 정면은 아니고 비스듬한 각도로 충돌했다는 가설이 그럭저럭 인정받고 있다.
그런 거대한 천체와 부딪혔으니 지구도 맨틀까지 드러날 정도로 충돌 지점이 깊게 파이고, 충돌 파편은 우주까지 치솟을 정도로 난리가 났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자전 주기와 자전축까지 달라지게 됐다.

그 파편이 지구를 돌다가 차차 뭉쳐서 달이 되었을 거라는 게 이 시나리오이다. big bang이 아니라 big splash..
심지어는 이때 달이 2개 생겼다가 달끼리도 비스듬하게 충돌했다~! 현재의 달 뒷면의 울퉁불퉁한 표면이 그때의 충돌 흔적과 관계가 있을 거라고 한다.

2. 중생대 말 대멸종

평균 지름이 최소 10km 이상인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 이로 인해 충격파는 말할 것도 없고 어지간한 화산 폭발 이상의 먼지가 지구 전체를 덮으면서 기후가 바뀌었으며, 이를 못 버틴 육상 동물들 상당수가 멸종해 버렸다고 여겨진다. 중생대 백악기와 신생대 팔레오기 사이의 지층에 이상할 정도로 이리듐이 많이 분포하며, 이는 강한 충격 때문에 암석이 순식간에 녹은 흔적이라는 것이 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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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설도 거의 1980년대부터 떡밥으로 던져지긴 해 왔지만, "그렇다면 그 소행성은 정확하게 지구 어디에 떨어졌을까? 그 흔적을 지금 찾을 수 있을까?"에 오랫동안 말문이 막혀 있었다.
그러다가 멕시코, 아이티 같은 나라가 접해 있는 카리브 해 일대의 유카탄 반도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발견되었고, 이건 단순 화산 활동이 아니라 외계 천체와의 충돌에 의한 흔적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소행성이 깔끔하게 넓은 태평양· 대서양 바다 중심부에 떨어졌으면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하고 해양 동물들이 몰살을 면치 못했겠지만 하늘이 먼지로 뒤덮이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소행성이 땅을 건드리는 바람에 간발의 차이로 여파가 더 커졌다.

달이 "처음부터 따로 생성됐다가 끌려왔느냐, 아니면 지구의 부위가 떨어져 나갔느냐"가 핵심 논점이라면, 이 대멸종은 "지구 내부의 화산이냐, 지구 외부로부터의 소행성 충돌이냐"가 논점이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대멸종뿐만 아니라 빙하기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원리나 원인이 현재까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전부 다 화산재인지 먼지인지가 하늘을 덮어서 햇볕이 못 들어왔기 때문인지..?? 그것밖에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3. 퉁구스카 대폭발

얘는 위의 두 사건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근현대에 벌어진 사건이다. 애초에 인간의 목격담 증언까지 존재한다~! 하늘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떨어지다가 공중 폭발을 일으킨 게 빼박 명백했지만.. 그 당시에는 사건을 분석할 기술과 여력이 인류에게 부족했다.
더구나 관할 국가이던 제정 러시아도 상황이 메롱이었기 때문에 자기 영토 안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건의 기괴함이 좀 더 과장 포장되었고, 음모론과 미스터리의 영역에 잠시 들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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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매우 매우 다행스럽게도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시베리아 깊은 숲 오지에서 발생했다. 덕분에 2150㎢ 면적에서 아름드리 나무가 8천만 그루 가까이 쓰러지고, 15km 남짓 떨어진 곳의 순록 1500여 마리가 열기에 폐사하고, 진동 때문에 수백 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열차가 뒤집히고 집 유리창이 깨진 와중에도.. 사상자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고 인명 피해가 전무했다.

퉁구스카 대폭발이 소행성과의 충돌이라고 깔끔하게 결론이 신속하게 나지 못했던 건 역시 증거 수집 능력 부족 때문이었다. 뭔가가 떨어지거나 폭발했으면 폭심지에 구덩이 크레이터가 생겨야 하고 운석 파편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소행성이 아니라 혜성이나 소형 블랙홀이 떨어졌다느니, 그냥 지표면의 메탄 가스가 대규모로 폭발했다느니.. 외계인이 탄 UFO가 폭발했다느니.. 의식의 흐름에 따라 온갖 희한한 떡밥들이 무려 1970년대까지도 던져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름 30~40m가량의 소행성이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서 떨어지다가 대기와의 마찰열로 인해 공중 폭발한 것으로 결론이 났으며, 파편도 발견되었다.
중생대 대멸종을 야기한 소행성에 비해서는 넘사벽 급으로 작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폭발 위력은 히로시마 원폭의 최소 수백 배는 됐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런 게 대도시 한복판에 떨어졌으면.. 그야말로 도시나 국가가 깡그리 삭제되는 피바다 참극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상이다.
지질 차원에서의 대재앙이 화산이나 지진이라면, 천문 차원에서의 재앙은 태양풍이나 소행성 충돌 같은 부류이지 싶다. 각각 무슨 내란과 외환 정도에 대응하는 듯하다. 앞으로 지구와 소행성이 또 충돌할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원자력 사고에 대해 1~7인지 8인지 등급을 매기듯이, 천문학계에서도 '지구 접근 천체'들을 예의주시하면서 이들의 위험성을 나름 여러 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그 중 유명한 척도는 '토리노 척도'라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11 08:35 2022/02/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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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 서울 지방 검찰청 검사인데, 니 통장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정황이 포착됐으니 혐의를 피하려면 어쩌구저쩌구..

이건 단순 스팸 전화를 넘어서 보이스피싱 범죄일 텐데..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런 전화를 직접 받아서 상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없기를 앙망한다. =_=
말만 들어 보면 그래도 대놓고 남의 계좌로 송금하는 건 아니고, 자기 계좌 개설해서 그리로 돈을 옮겨 놓기만 하는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사기를 쳐서 궁극적으로 남의 돈을 뺏는지 원리를 잘 모르겠다. 궁금하긴 하지만 꼭 알고 싶지는 않음. ㄲㄲㄲ

2. 허 경영 전화

난 지금까지 서너 번 정도 받았다. 주말에도 오더라.. 그래도 받는 사람이 짜증 내는 줄은 아는지, 선은 안 넘기고 딱 15초만 얘기하고 알아서 끊더군.
또한, 날 찍어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투표만 독려하는 내용이다. 그러니 선거법 위반도 아니고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근데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병원 응급실에도 이런 전화가 가서 민폐 끼치고 욕 먹는 건 실드 칠 길이 없다.

3. 여론 조사, 설문 전화

어지간히 한가하면 응해 주고 싶지만, 평일 일과 시간에 그런 한가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딴 일에 전화기 붙들고 몇 분씩 시간 뺏겨 줄 사람이 세상이 얼마나 있을까..?? 은퇴해서 시간 많은 노인이나 애 다 키운 주부가 아닌 이상 말이다.

4. 은행 영업 전화

유효기간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신용카드를 딴 걸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전화. 무슨 금융 상품 가입 권유하는 전화.
제일 최근에는 웬 치과 보험 가입 권유도 하더이다. 하긴, 무슨 마케팅 정보 이용에 동의를 했기 때문에 이런 전화가 오는 거다.;; 귀찮..
은행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돌아가면서 이런 것도 하고 영업 실적 쌓아야 하는 건가?

5. 보험료 돌려준다

요 근래에 등장한 새로운 소재의 듣보잡 전화다.
"여기는 보험감독원(???!!)인데, 니가 가입돼 있는 보험들을 조사해서 보험료를 필요 이상으로 잘못 낸 걸 무료로 찾아서 돌려드리겠다. 건강보험료를 환급해 주겠다..;;" 이런 식인데..
돈 돌려주는 척하다가 결국은 다른 돈 드는 거 가입 권유와 영업질이 나오게 돼 있다. 엮여서 좋을 것 없다.

6. 님하가 모 통신사 우수고객으로 선정돼서 보답으로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무료로 교환해 주겠..

내 경험상, 이거야말로 지난 10여 년 동안 뒈지지도 않고 유구한 역사, 압도적인 빈도와 다양한 번호를 자랑하며 지속되어 온 스팸 전화의 끝판왕이다. 02, 031, 032, 070, 심지어 054, 06x 등... 이런 전화질을 하는 애들은 도대체 어느 조직에 소속됐고 정체가 도대체 뭘까..?

이건 합법적인 텔레마케팅이며, 검사 사칭이나 다단계 피라미드 급의 해로운 놈들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 진짜로 공짜가 있을 리가 있나.. 결국은 폰 값은 다달이 할부로 다 갚게 돼 있다. 매장 가서 사은품 받으면서 사는 것에 비해 실제로 저렴한 건 절대로 없다. 진짜로 폰을 바꿀 일이 생겼더라도 쟤네들 말에 끌려가서 좋을 건 없다고 한다.

이거 말고 또 있을까?
1만이 불법인 막장 범죄이고 나머지 2~6은 일단은 합법이다.
그리고 2와 3은 그냥 녹음된 음성의 자동 발신인 반면, 나머지는 사람의 직접 통화라는 차이가 있다.
아, 이것도 바리에이션이 있어서 6 스마트폰 교환 권유의 경우 처음엔 녹음된 멘트로 시작해서 "상담원 연결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 주세용" 이러는 게 옛날에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다 처음부터 직접 통화인 편이다. ㄲㄲㄲ

사람에 따라서는 다짜고짜 대출 권유하는 전화, 심지어 물 좋은 장소라면서 오피스텔 투자 권유하는 전화까지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스팸 전화인지 그냥 잘못 걸린 전화인지 분간이 어려울 것 같다.
요즘은 유튜브나 각종 시사 다큐, 뉴스에서 PD 내지 기자가 "이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 봤습니다. / '도를 아십니까'에 실제로 따라 가 봤습니다" 별별 잉여스러운 것들을 실험하고, 심지어 전화 발신자를 엿먹이거나 역관광· 농락한 결과가 올라오곤 한다. 광고 전화에 대해서도 그런 예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스팸 메일을 눈에 잘 안 띄는 것 같다. 메일 서비스 차원에서 스팸 메일을 자동으로 거르는 기술이 머신러닝 기반으로 굉장히 발전했으며, 또 광고주들도 법 무서운 줄은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요즘 세상에 아직도 스팸 메일 보내는 놈들은 야동· 도박 사이트 같은 암흑 세계 종사자밖에 없지 싶다. 그 반면, 스팸 전화는 장르가 그 정도로 음란하거나 퇴폐적이지 않고, 다른 쪽으로 세분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09 08:35 2022/02/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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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호박 먹고 호박 가꾼 소감

1. 호박 예찬

하루는 인터넷을 돌아댕기다가 '농민 신문'의 재작년 가을 보도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했다.

“호박은 버릴 게 없어요. 넓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작물이죠. 생긴 것도 푸근하니, 방에 놓으면 복이 온다고도 하잖아요.” (☞ 링크)


우왓~~~ 이 사람은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데, (귀농해서 모친과 같이 호박 농사를..)
호박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정말 100% 정확하게 그대로 사이다처럼 잘 대변해 줬다~!!!! ^__^

"넓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작물.
외형부터가 푸근하고 복스럽게 생겼다."


아아~ 나도 딱 저게 딱 느껴져서 그게 좋아서 진작부터 방에다 호박을 놔 두고 지내 왔다구!
밖에서 텐트 치고 잘 때도 늙은 호박을 갖고 나가고, 운전할 때도 차에 싣고 다니고..
동승자 없는 단독 운행일 때는 조수석에다 호박을 얹어놓고 다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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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의 그림은 사진이 아니라 정물화임..!! 출처는 여기..)

재배가 까다롭지 않고, 어지간한 악조건 속에서도 덩굴을 미친 듯이 길게 뻗으면서 알아서 잘 자라고,
큼직한 열매뿐만 아니라 잎과 씨도 먹고 꽃도 먹고 심지어 꼭지조차 물에 달여서 마실 게 있다.
동글동글하고 큼직하고 무거운 늙은 호박은 그냥 서늘한 상온에 놔두기만 해도 엄청 오래 보관 가능하고..

다른 어떤 채소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감성이 호박에는 있더라~~!
다른 사람의 글을 또 소개하도록 하겠다. ♥♥

어릴 적 호박에 대한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맘때면 농촌에 무성하게 자란 호박 줄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옥토는 다른 농작물에게 다 뺏기고 농사짓기 어려운 밭두렁, 가장자리 자투리땅, 담장 밑 또는 비탈진 언덕이나 버려진 땅이 호박 차지다.

우거진 풀잎 속 호박 줄기는 언제 보아도 기세가 당당하다. 호박잎 속에 감추어져 노랗게 핀 아침 호박꽃은 더없이 청초하다. 꽃 중에 꽃으로 꼽히는 장미꽃처럼 화려하거나 향기롭지 않지만 장미에 돋친 가시가 없다. 피었다 지면 그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참 좋은 선물을 안겨준다. 호박꽃은 농민과 가장 친근한 꽃이다.

(...)
호박은 무더운 여름철 가뭄에 강하며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라는 무공해 식품이다. '늙은 호박은 가을 보약’이라는 말도 있다. 그야말로 호박은 만병통치 건강식품이다. 이렇게 좋은 호박을 온 국민이 많이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호박을 돼지, 메주와 함께 못난이의 대명사처럼 여기다니 호박은 억울하다. 못생긴 것에 비유하거나 부정적으로 쓰이는 속담도 많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호박꽃도 꽃이냐?’ 호박이 수박보다 훨씬 사람에게 이롭다. 호박꽃에는 장미꽃에 있는 가시도 없는데 말이다.

허나 호박은 못난 게 아니다. 최대의 행운을 의미하는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 '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 돌고 돌아……’ 하며 노래 '물레방아 인생’에서 모나지 않고 원만함을 이르기도 한다. 호박은 결코 못난 게 아니다. (☞ 링크)


2. 호박 구매

본인은 이번 겨울 동안 늙은 호박을 꾸준히 많이 사 먹었다. 호박 한 통을 죽 쒀서는 혼자서 다 먹는 데 거의 1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리곤 했다.

자그마한 단호박이나 애호박과 달리, 늙은 호박은 너무 크고 무겁고 양이 많은 데다, 먹을 수 있는 부위만 추출하는 작업도 만만찮다. 그래서 어지간한 마트 레벨에서는 구할 수도 없고 재래시장이나 인터넷 주문에 의존해야 하더라.
수박조차 축소판인 애플수박이라는 개량종이 나오는 와중에, 늙은 호박은 도시 1인 가구와는 안 어울리는 면모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늙은 호박은 딱히 수입산이 존재하지도 않는 같다. (단호박은 겨울에 남반구 지역 수입산이 있음는데 말이다)

하지만 호박이라는 고유한 상징성과 정통성에 가장 충실한 매력적인 아이는 뭐니뭐니해도 이런 맷돌호박의 늙은 형태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본인은 얘를 애용했다.
그 중에는 지름이 32.5cm에 달하고, 무게는 거의 6.5kg에 육박하는 엄청 큰 놈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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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본인이 실물을 직접 보고 만진 적 있는 역대 호박 중에서 제일 크고 무거운 놈이었다. 작년에 텃밭에서 재배해서 수확한 호박도 제일 큰 게 30cm에 근접하는 길이에 4kg대가 한계였지, 저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얘는 외형도 아주 납작하고 주름이 쭈글쭈글한 전형적인 한국형 맷돌호박.
허연 가루에 흙까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게, 호박계의 최고 짬밥을 자랑하는 백전노장처럼 생겨 있었다.
이런 게 정통 늙은 호박이 아니겠나? 내 마음에 아주 들었다. 흐뭇흐뭇~~~~^^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호박을 왜 못생김의 상징이라고 여기는지 좀 알 것 같았다. 누렇고 납작하고 쭈글쭈글하니까..;;
딱~ 시골 할아버지 같은 심상이 느껴져서 그런 걸까..?? 에휴~ 그걸 못생긴 게 아니라 아까 예찬 글에 나온 것처럼 푸근함, 복스러움으로 풀이해야 할 텐데 말이다. ^^

본인은 이 호박을 최하 한 달 이상, 이번 겨울 내내 장난감으로 삼아서 머리맡에 두면서 갖고 놀고 싶었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에 호박을 놔뒀던 자리를 보니 주변이 누가 무슨 오줌이라도 싼 것처럼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뿔싸.. 호박이 바닥이 살짝 금이 가고 갈라져서 내용물이 새기 시작한 것이다.

헐~ 내가 호박을 받자마자 호박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자가 젖어 있지는 않았고 호박이 처음부터 저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배송 과정에서 충격을 좀 받았나?
이 때문에 이 호박은 오래 놔두지 못하고 받자마자 곧장 분해해서 죽을 쑤어서 먹어야 했다. 그래도 내부 상태는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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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와 은화 --- 단호박과 일반 호박. ^^
이렇게 씨앗 숫자가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게 세포 분열의 위력이구나.
동화에서는 호박으로 마차를 만들어서 타고 다니고, 케이크를 잘랐더니 금화가 쏟아져나온다.
그러니 호박을 잘랐더니 금화가 쏟아져나오는 상상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에 봤던 계몽사 세계 명작 동화의 유명 삽화가 떠올랐다. ^__^

3. 호박 재배

오징어 게임의 오 일남 영감이 게임을 관람만 하니 재미가 없어서 게임에 직접 참가도 했듯..
본인도 호박을 사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재배를 시도해 봤다.
작년에 텃밭에서 한번 해 본 뒤, 올겨울엔 내년 4월까지 기다리기가 지루하니 실내에서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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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열매만 매력적인 게 아니다. 호박잎의 가장자리는 프랙탈 무늬를 연상케 한다.
호박 줄기는 털이 북실북실한 게 무슨 동물 같으며, 동글동글 덩굴손은 뭔가 동화 속 마법 같은 느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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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러 덩굴 중 한 놈이 정말 미친 듯이, 독보적으로 무섭게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공중에 매달린 위쪽이 햇볕을 잘 받아서 그런지 잎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커지고 그야말로 살판 났다. 마치 신나서 날뛰기라도 하는 것 같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도 끝이 아니어서 왼쪽으로 한번 더 꺾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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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로부터 약 20일 전(3주)까지만 해도 그냥 막대기 하나를 타고 오를 정도였는데 말이다.
그놈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저렇게 됐다는 거다. 동일한 빨간 막대기를 견줘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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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전, 약 40일 전에는 막대기조차 필요하지 않은 평범한 상태였었다~!
그랬는데 이제 덩굴의 길이는 2미터는 확실하게 넘었고, 쫙 펼쳐 놓으면 2미터 중후반 정도는 되지 싶다. 더구나 가냘프던 줄기가 언제 이렇게 굵어지고 털도 났는지..??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초기에 어디 어디 순을 잘라 주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100% 자연 방치한 상태이다. 몹시 기쁜 한편으로 우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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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동에서도 계속해서 새순이 돋아나고 있고..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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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잎이 무성하고 수꽃만 여러 송이 피더니, 드디어 씨방 달린 암꽃도 슬슬 맺히기 시작했다. 제일 큰 씨방은 이제 쌀알과 콩알 크기 정도는 넘어섰다.
지름이 1cm가 채 안 되는(아마 4~5mm??) 동글동글한 씨방이 자라고 또 자라서 저런 거대한 호박이 된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수꽃과 암꽃이 동시에 펴서 인공수분을 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도둑 걱정 없는 실내에서 사과나 배 크기의 애호박을.. 더 나아가 주름진 늙은 호박까지 구경하고 싶다. ^^

자료를 찾아보니 호박은 저온 단일(短日).. 기온이 적당히 낮고 선선하고, 밤에 광공해 없이 어둠이 좀 길게 지속돼야 암꽃이 많이 맺힌다고 한다.
아~~ 작년에 한창 쌀쌀해지고 호박 농사 시즌의 끝이 임박했던 10월 중· 하순에 그 희귀하다는 암꽃들이 갑자기 잔뜩 많이 폈던 게 이런 특성 때문이었구나! 이제 납득이 된다.

호박은 기온이 낮아지면 암꽃이 더 잘 맺히는데, 사람은 날씨가 추워지면 예전보다 소변이 잦아지는 것 같다. -_-;;
본인의 오랜 경험상, 겨울에 야외에서 텐트 치고 자면 생리 현상 때문에 중간에 깨는 빈도가 그냥 집에서 잘 때보다 훨씬 더 높아지더라. (추워서 깨는 게 아니며, 실제로 이뇨 호르몬의 분비가 달라진다고 함) 거 참 흥미로운 상관관계인 것 같다.

4. 영단어 window의 의미

끝으로, 호박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주제이다만..
window라는 단어는 창문, 창구, 더 나아가 컴퓨터 화면의 GUI 요소를 가리키는 쉬운 단어이다.
그런데 얘는 의외로 '기회, 여유 시한' 같은 뜻도 있다. 호박 농사와 관련된 영어 자료를 읽다가 이런 용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Both male and female flowers open at dawn and close by the end of the day. The WINDOW for pollination is short!
(호박은 수꽃과 암꽃이 모두 새벽에 펴서 저녁에 집니다. 수분 가능한 시간대가 그리 길지 않아요~!)


공교롭게도 영화 테이큰 1 대사 중에도 window의 이런 용례를 발견할 수 있다.

Based on the way these groups operate, our analyst says you have a 96-hour WINDOW from the time she was grabbed.
To what?
To never finding her.
(놈들이 활동하는 패턴대로라면 걔가 납치당한 이후로 골든타임은 딱 96시간이야.
그 뒤엔?
영영 못 찾아.)


buy가 '사다, 구입하다'에서 확장되어 거의 agree, accept의 뜻이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I don't buy that..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어를 학습하는 외국인 화자들은 입김을 후후 불고 악기를 부는 blow라는 뜻을 가진 동사에 웬 뜬금없이 '죄를 자백하다'라는 뜻이 동음이의어도 아니고 다의어 수준에서 들어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식의 의미 확장이 한국어나 영어 등 어느 언어에나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 출처의 자료는 단위도 변환하면서 읽어야 하는 게 기분이 참 묘했다. 호박 덩굴은 극단적으로 길게 자라면 무려 30피트(거의 9미터)까지 뻗을 수도 있댄다. 하긴, 여객기의 비행 고도는 거의 한계까지 올라가면 3만 피트를 넘긴다고 하니까..
항공이 아닌 우주까지 가야 킬로미터 같은 SI 단위가 통용되기 시작한다. 인공위성의 고도 같은 것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06 08:35 2022/02/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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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은 미국-일본이건(태평양 전선), 영국/소련-독일이건(서부 전선) 각색해서 영화 만들 것들이 차고 넘치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 두 영화를 주목하며 독자 여러분께도 추천하고자 한다.

(1) 핵소 고지 Hacksaw Ridge (멜 깁슨 감독, 2016) -- 데스몬드 도스(1919-2006)의 일대기
(2) 언브로큰 Unbroken (안젤리나 졸리 감독, 2014) -- 루이스 잠페리니(1917-2014)의 일대기


보다시피 이 두 실존 인물은 거의 동갑내기였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적병이나 적함· 적기를 공격해서 무력화시키는 통상적 무공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초인적인 행적을 남기고 영웅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영화도 나름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그리고 유명한 배우 출신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 나름 기독교 색채를 집어넣었다는 것, 평이 꽤 좋다는 것이 일치한다.

1.
핵소 고지는.. 주인공이 제칠일안식교 신자였다. 무정부 반전 평화주의자는 아니어서 진주만의 복수를 하고 싶고 군 복무는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집총은 거부하는 좀 이상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항명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됐지만.. 여차여차 해서 의무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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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45년, 오키나와 상륙 전투에서 총 대신 구급상자를 들고 위험한 적진을 종횡무진하면서, 수십여 명의 부상병들을 혼자 구출해 냈다. 그들은 구출되지 못했으면 다들 그대로 죽거나 적의 포로가 됐을 것이다.
의무병은 전장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라 119 구급대원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보직인지는 2002년 제2 연평해전 때 박 동혁 병장이 다쳤던 걸 생각해 보시라.

이 공로 덕분에 그는 순식간에 영웅이 됐다. 동료와 상관들이 다 너를 얕잡아 봐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죄를 했다. 나중에는.. 레알인지 각색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네 소대는 왜 아직 진격하지 않는 거냐? / 아, 도스 이병의 기도가 아직 안 끝났지 말입니다." 이렇게 신앙까지 당당히 인정받는 지경이 됐다.
이 영화에서는 일본군 측 인물이 뭔가 말을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더라.

2.
다음으로 언브로큰은.. 주인공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던 육상 선수 출신이었다. (흠 육상 선수라니 뭔가 에릭 리들 같은 느낌이..)
그는 그 다음 1940년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하려 했지만 이제는 올림픽 경기 대신 전쟁터에 나가게 됐다. 게다가 올림픽 개최 예정국이 아예 적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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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폭격기 승무원으로 복무했는데.. 하루는 격추를 당한 것도 아니고 정비 불량으로 인해 기체가 태평양 망망대해에 추락했다. 구명보트에서 무려 7주를 근성으로 버티다가 구조됐지만, 운 나쁘게도 아군이 아니라 일본군에게 구조되어서 포로로 전락했다.

그는 일본 해군 수용소에서 2년 넘게 고생했다. 일본한테도 얼굴이 알려진 유명한 운동 선수여서 더 고생했다. 특히 수용소의 간수 일본군이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아주 가혹하게 대했다.

하이라이트 장면은.. 주인공이 혹독한 노동에 기진맥진했던 상태에서 무거운 통나무를 들고 땡볕에 서 있는 가혹행위까지 감당해 낸 것이다. (통나무를 떨어뜨리면 총살이라고 위협..) 주인공은 그 상태로 무려 40분 가까이 초인적인 힘으로 버티면서 간수를 노려보며 압도해 버렸다. 주 기철 목사 전기 영화라면.. 솟은 못 위를 맨발로 걸은 일화가 이 장면에 대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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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쟁이 끝난 덕분에 주인공은 해방되고 무사히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해서 심신의 장애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적국인 일본을 용서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일본에서 나가노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1998년엔 노구를 이끌고 일본을 방문도 했었다. 그러나 예전에 그를 학대했던 간수 등 일본군 출신 인물들은 짱박혀 숨어서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천조국은 "미드웨이" 같은 전투 분야에서도 짱이고, 저런 휴먼 드라마 분야에서도 그냥 짱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03 19:33 2022/02/0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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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캠핑 자랑

늘 느끼지만 겨울은 사계절 중에서 밖에서 자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본인은 평소에는 대부분 그냥 집 건물 옥상이나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공원 으슥한 아지트를 캠핑 외박 장소로 이용한다.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하는 평일엔.. 걷거나 자전거만 타도 도달할 수 있는 곳에서 묵었다가 신속히 복귀한다.

그러나 눈· 비가 많이 내린다거나 기온이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등, 날씨가 아주 좋을 때는 특별히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명당에 차까지 몰고 가기도 한다.

1. 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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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기온이 이번 겨울 이래로 최초로 -10도 부근까지 내려갔던 때를 기념해서 갔던 곳이다.
매서운 칼바람도 씽씽 불고 있었기 때문에 텐트 안에 쏙 들어가서 바람을 차폐한 것만으로도 그 직후엔 아주 따뜻했다. 텐트 안에서도 입김을 후 불면 허연 김이 나오는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물론, 텐트 안에서 몇 시간째 드러누워서 정신줄을 놓기 시작하면 다시 추위가 느껴졌다. 두꺼운 무장 없이는 버틸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기계들을 살펴보니, 놋붉 컴터는 역시 못 버티고 배터리가 퍼져 버려서 야외에서 작동 불가.
차 스마트키도 얼어서 일시적으로 인식이 안 됐다. 손으로 좀 비벼 주니 다행히 다시 작동.
그래도 폰은 따뜻한 품속에서 온도 관리를 한 덕분에 밤새도록 전혀 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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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엔 그렇게도 강추위와 칼바람이 몰아쳤건만, 아쉽게도 얼음이 이 정도밖에 안 생겼다.
돌로 둘러싸여 유속이 느리던 일부 구간은 밟아도 될 정도로 얼긴 했지만, 여기만으로 돗자리 텐트를 치고 등까지 대기에는 역부족..
그러니 강물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냥 코앞에다가 텐트를 치는 걸로 대신 만족하고 돌아왔다.

늙은 호박은 집 내지 차 안에만 고이 모셔 놨다. 날씨가 적당히 추우면 내가 얘들도 같이 가져가서 이불 덮고 같이 자곤 하는데.. 이 날씨에 그랬다가는 속이 얼어 버리고 큰일 났을 것이다.

2. 산기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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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이래로 최초로 서울에 함박눈이 펑펑 내렸을 때 갔던 곳이다.
이때는 하나도 춥지 않고 바람도 안 불어서 캠핑 난이도는 뭐.. 애들 장난 수준으로 시시해져 버렸다.
겹겹이 덮고 껴입지 않아도, 침낭 속 에어포켓 기동 따위 하나도 안 해도 춥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그 당시에 여기까지 올라오는 등산로엔 발자국은 단 하나도 찍혀 있지 않았다.

3. 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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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남짓 전까지만 해도 옷 벗고 들어가서 물놀이를 했던 곳에서 이젠 텐트 치고 드러누웠다.
정자나 평범한 풀발, 바위가 아니라 꽁꽁 언 물 위에서 잔다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은가?
겨울 캠핑의 하이라이트는 얼음 텐트라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얼음 캠핑 1회가 일반 캠핑의 10배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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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도인 채로 하룻밤을 지나고 나니 물이 많이 얼긴 했지만.. 아래에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이 두 발로 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한쪽 발로 약간만 체중을 실어 봐도 뿌지직~~~
그랬는데, 하루 뒤.. 낮 기온이 -10이고 밤에 또 -16도로 떨어졌던 타이밍에 다시 와 보니, 아아~ 고맙게도 이제 물이 바닥까지 완전히 꽁꽁 잘 얼었다. 이제는 텐트 안에 이불 침낭까지 펴고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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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간 호박죽 간식은 얼어서 반쯤 샤베트? 슬러시처럼 바뀌었다.

얼음 위에서 잘 때는 덮는 것뿐만 아니라 바닥에 까는 것도 중요하다. 바닥이 차갑기 때문이 아니라.. 바닥으로 내 체온이 전해지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 이 상태로 컴퓨터와 핸드폰까지 있는 상태로 한숨 잘 잤다. 몸을 뒤척이니 밑에서 딱 한 번 뿌직~ 소리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별 문제 없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1년에 한두 번은 간접적으로라도 야생에서 얼음판에 등을 부비고 한숨 자야지 원기가 회복되고 피로가 가시고 얼굴 화색이 바뀐다는 걸 이번에도 체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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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텐트를 쳤던 얼음 바닥의 모습이다.ㅋㅋㅋㅋㅋ

※ 여담

아아~ 본인은 텐트 안에 있을 때는 너무 따스하고 포근하고 아늑하고 행복하다.
잠깐의 번거로움을 참고 세벌식을 쓰면 기존 두벌식보다 한글 타자가 훨씬 더 빨라지고 편해지고 경쾌해지듯, 잠깐의 번거로움을 참고 밖에 뛰쳐나가면 갑갑한 콘크리트 구조물과는 차원이 다른 잠자리를 경험할 수 있다. 내게 맞는 잠자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자연 속에 있다.

무장을 잘 해 가서 모든 담요와 침낭이 부족하거나 지나치지도 않게 잘 쓰일 때.
아침에 아주 따뜻하게 잘 잤는데 침낭을 걷자마자 싸늘한 바깥 냉기가 느껴질 때가 제일 짜릿하고 보람 있다.
반대로 고생해서 가져간 무장이 무게만 차지한 채 새벽에 쓰이지 않았을 때.. 혹은 무장이 부족해서 새벽에 추워서 떨고 고생한다면 그건 실패한 캠핑이다.

뭐.. 잠을 잘 잔 것과는 별개로, 혼자서 텐트를 걷고 이 많은 장비들을 들고 철수할 때는 솔직히 춥고 힘들긴 하다. 그러니 한번 캠핑을 간 것의 뽕을 최대한 뽑으려면 아무래도 한번 텐트를 쳤을 때 텐트 안에서 오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부위는 몰라도 발가락이 시려운 건.. 내 경험상 답이 없더라. 외부 열원·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발을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은.. 일어나서 걷고 활동하는 것밖에 없었다.

앞으로 계속 또 강추위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입이 돌아갈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하다. ^^
"너 화성인이니 자연인이니, 세상에 이런 일이 부류의 프로에 출연해도 되겠다, 출연해 보라"라는 제의를 종종 받는다. 그에 대한 본인의 답변은 늘 동일하다. "겨우 이거 갖고 출연 아이템이 성립된다면 땡큐~ 환영"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2/02/01 08:35 2022/02/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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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컴퓨터라는 건 20세기 중후반에 “(1) 진공관 → (2) 트랜지스터  (3) IC 회로  (4) 그 이후 LSI/VLSI 집적회로”의 순으로 내부 부품이 고도화· 첨단화돼 왔다고 배웠다. 집적회로 안에 트랜지스터가 몇천, 몇만 개씩 들어있고 0의 개수가 뻥튀기됐다고 말이다.
이 덕분에 컴퓨터는 메모리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속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면서 시공간이 워프 됐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크기는 놀라울 정도로 작아져서 드디어 개인용 컴퓨터(PC)라는 것까지 존재할 수 있게 됐다.

더 세부적인 역사를 살펴보자면, 컴퓨터는 아직 1세대 시절에 “(1) 전동식이던 것이 완전 전자식으로 변모, (2) 10진법 대신 순수 2진법 기반, (3) 튜링 완전, (4) 프로그램 내장형”이라는 큰 격변을 거쳤다. 이에 대해서는 본인은 수 년 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특히 (3)을 통해 컴퓨터는 동적 메모리 접근과 능동적인 로직 구현, 즉 프로그래밍이란 게 가능해졌다. 그리고 (4)를 통해 메모리에 코드와 데이터가 모두 적재되고 소프트웨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게 됐다.

그 다음으로 후대의 전자식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를 논할 때 적용할 수 있는 잣대는 바로.. CPU가 한 번에 취급하는 정보량의 단위 크기이다. 이것도 8, 16, 32, 64비트라는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 단계별로 정말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이 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라떼는 말이야 컴퓨터가.. 그땐 그랬지!”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1. 8비트 (1980년대 초)

  • 기종간 파편화가 엄청 심했다.
  • 보통 모니터+본체, 또는 본체+키보드 일체형.
  • 아무것도 안 꽂고 켜면 롬 베이식이 들어있곤 했다.

8비트 컴은 화면 해상도가 너무 낮아서 한글 한자 표현이 난감했다. 한 화면 전체의 정보량이 겨우 64KB에 머물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등급의 컴퓨터는 메모리로나 처리 속도로나 8*8 256자짜리 라틴 알파벳 외의 다른 문자를 취급하는 건 영 메롱이었다.
(일본이 1980년대에 다른 분야가 아니라 게임에서 온갖 창의적인 작품을 내놓으며 펄펄 날았던 이유 중 하나도.. 짐작 가능하다시피 업무용이 아니니 자국 문자 처리를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분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ㅡ,.ㅡ;; )

그리고 이때는 C 컴파일러조차 사치품이었다. 제품 가격으로나, 구동 요구 조건으로나, 생성된 코드의 성능으로나..
그러니 본격적인 프로그래밍을 위해서는 어셈블리어가 필수였다. 물론 이 시절 컴퓨터의 어셈블리어는 요즘 컴퓨터의 어셈블리어보다는 훨~~씬 더 단순하긴 했다.

8비트는 임베디드가 아니라 사람이 직접 다루는 개인용 컴터의 최소 마지노 선이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그나마 얘는 1바이트의 정보량을 오늘날처럼 1옥텟과 동일한 8비트로 고정했다는 의의가 있었다. 더 옛날 컴퓨터들은 1바이트의 크기가 이보다 더 작고 들쭉날쭉이기도 했다~!

2. 16비트 (1980년대 말)

  • 뭔가 현대적인 컴퓨터 외형이 이때 갖춰졌다. 바이오스와 운영체제가 더 분명하게 분리됐다.
  • 모니터, 본체, 키보드가 모두 분리됐다. 그리고 테이프나 롬팩 대신 디스켓, 하드디스크.
  • 재귀적인 디렉터리 구조가 존재하는 파일 시스템.
  • IBM 호환 PC, 교육용 PC 등등 표준화 규격도 정착

과거 MS-DOS 2.0이 바로 CP/M에서 비롯됐던 8비트 잔재를 16비트로 확장한 것에 가까웠다. COM 대신 EXE, 재귀적인 디렉터리 구조 같은 것 말이다.

8비트에서 16비트로 넘어가고부터 모니터에 찍히는 글자의 크기부터가 확 작아지고 화면이 큼직해졌다. 640*480급의 고(?)해상도에서 14~16픽셀 크기의 글꼴이 지원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해상도에서는 256색 이상 색깔을 더 많이 표현할 수 있게 됐고.. 물론 이를 실제로 구경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싼 그래픽 카드와 컬러 모니터도 필요했다.

3. 32비트 (1990년대 초중반)

주소 공간이 그럭저럭 꽤 넓어진 덕분에.. 이제야 현대적인 컴퓨터의 내부 구조를 좀 제대로 실현할 수 있게 됐다. 가상 메모리, 보호 모드, 선점형 멀티태스킹/멀티스레딩.. 그리고 80386은 가상 메모리 구현을 위한 메모리 주소 매핑을 CPU 차원에서 바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각종 메모리에서 지긋지긋한 64KB 제약이 없어지고, 이 제약을 우회하려는 온갖 지저분한 꼼수 기법들을 익힐 필요가 없어졌다. (메모리 모델, EMS, XMS 등등)

32비트는 아키텍처가 오랫동안 안정되어서 굉장히 장수한 시기이다. 80386 이후로 486, 펜티엄 시리즈 등의 여러 CPU들이 등장했지만 얘들은 전부 32비트였다.
80486부터 캐시 메모리가 첫 등장했으며, 부동소수점 보조 프로세서가 CPU에 내장되기 시작했지만, 이런 건 소프트웨어의 호환성에 영향을 주는 변화가 아니다. 286에서 동작하지 않는 386 32비트 전용 프로그램은 엄청 많지만, 486에서만 동작하고 386에서는 동작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제 PC와 워크스테이션이라는 체급 구분이 서서히 없어졌다. 3D 그래픽 렌더링도 Windows나 mac에서 바로..

4. 64비트 (2000년대 중후반)

64비트는 그냥 4GB 제약이 없어진 32비트의 연장선에 가깝다. 이전의 32비트에서 컴퓨터의 근간이 다 완성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PC에서 64비트는 멀티코어 패러다임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고 보편화됐다. (인텔 Core2 Duo CPU) 그래서 32비트 전용 멀티코어나 64비트 싱글코어 CPU는 거의 존재감 없다.

이제는 슈퍼컴퓨터 전용 아키텍처라는 것도 없어졌다.
그런데.. 메인프레임은 Cray도 아니고 x86도 아니고.. 몇 비트짜리에 무슨 아키텍처와 어떤 특성을 가진 컴퓨터인지?? 난 잘 모르겠다.

옛날에는 억대의 슈퍼컴퓨터나 64비트 CPU를 썼지만, 지금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스마트폰의 CPU조차 다 64비트이다. 작다고 해서 16비트/32비트 따위를 쓰지는 않음. 요즘은 경전철이라고 구닥다리 협궤를 쓰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철차륜).
이제 모바일은 모바일이지, 임베디드와는 영역이 많이 달라졌음을 뜻한다. 전광판이나 자판기 같은 것에 들어가는 8비트 임베디드 MCU는 철도에다 비유하면 탄광 안에다 부설한 미니 협궤에 대응할 것이다. 채굴한 광물을 실어 나르는 용도이지, 여객용이 아니다.

※ 여담

(1) 8비트 시절에 화면 해상도가 얼마나 낮았는지를 실감해 보자.. 터미널 콘솔 하나 얹기도 버거워 보이는 환경에서도 무려 GUI를 만든 용자가 있긴 했다.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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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DORE 64에서 64란, CPU가 64비트...는 개뿔, 메모리가 64KB라는 뜻이었다. ㄷㄷㄷㄷㄷ

(2) 옛날에 펜티엄 CPU가 등장했을 때는 이게 64비트라고 말이 많았다. 하지만, 펜티엄이 64비트로 확장한 건 주메모리와 CPU 사이의 데이터 버스의 대역폭뿐이다. 명령 집합, 레지스터 같은 내부 구조와 실질적인 동작이 64비트 단위로 돌아가는 건 당연히 아니다. 반대로 옛날에 386 SX는 원가를 낮추기 위해 CPU만 32비트이고 데이터 버스는 16비트였다.

(3) Windows NT의 구버전은 DEC Alpha 같은 64비트 CPU를 지원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운영체제 자체는 여전히 32비트 기준으로만 동작했기 때문에 64비트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마치 동시대의 Windows 3.x가 386/486에서도 16비트 코드 기준으로 동작했던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일부 멀티태스킹 기능을 제공할 때만 386 CPU 기능을 사용)

Posted by 사무엘

2022/01/29 08:34 2022/01/2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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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영화 "검사와 여선생"

<검사와 여선생>은 1948년 6월에 개봉· 상영됐다는 국산 무성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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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를 지나 40년대의 끝물이었던 저 때는.. 세계는 물론 국내에서도 무성영화는 진작에 유행 지나고 한물 간 상태였다. 하지만 얘는 감독이 무성영화 변사 출신이기도 해서 무성에 애착이 있던지라, 일부러 옛날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필름이 남아 있어서 영상이 전해지는 제일 오래된 국산 영화로는 일제 시대 1930년대 작품인 <미몽>(1936), <청춘의 십자로>(1934) 같은 게 알려져 있다. 이런 골동품 필름은 낡은 극장이 폐업해서 내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창고에 처박힌 게 발견되기도 하고, 심지어 외국에서 상영되다가 말았던 게 정말 우연히 극적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엔 나라가 몹시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독립 운동과 해방을 소재로 한 영화가 여럿 만들어졌다. <자유만세>(1946)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때는 열차 이름조차 ‘해방자호(liberator)’라고 붙였던 시절이니 그때의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된다. 그리고 윤 봉춘 감독은 1947년에 곧장 유 관순 열사와 윤 봉길 의사 전기 영화를 나란히 만들었다.

자.. 이 와중에 <검사와 여선생>은 우리나라 최후의 무성영화이면서 해방 직후에 정치· 시사와 무관한 소재(멜로 드라마 신파)를 채용하여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미군이나 외국인 선교사가 아니라 한국인이 1947년쯤, 대한민국도 아니고 미군정 시절에 노면 전차가 가득하던 서울 시내를 촬영한 장면이 남아 있다. 대한뉴스 기록조차 없는 시기의 기록이니 역사적 가치가 아주 높을 수밖에 없다.

영화 필름이라는 게 무슨 지질 시대 화석이라든가 몇백 년 전 조선 시대 도자기나 실록, 어진보다야 훨씬 더 최근에 만들어진 물건일 텐데? 소실된 게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물가가 너무 비싸고 물자가 귀해서 기존 영상이 요즘처럼 영구 보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내려가고 자기 용도를 다한 영화 필름은 곧장 다른 용도로 재활용돼야 했다. 무슨 전쟁, 화재, 자연재해로 인해 소실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 시대의 유명한 영화 제작자였던 나 운규의 <아리랑>(1926)도 무성 영화이다. 하지만 얘는 현재 필름이 전해지지 않아서 영상이 소실된 상태이다.

무성영화는 배우가 직접 대사를 말하지 않고 변사가 배경을 설명하는 형태이다 보니 무슨 다큐멘터리 같다. 그래도 변사는 무슨 국어책 읽듯이 무미건조하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온갖 감정을 실어서 연기 하듯이 맛깔나게 나레이션과 배우 대사를 처리한다.
뭔가 판소리 같고 북과 장구가 곁들어져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서양에서 무성영화가 상영되던 극장엔 BGM 연주를 위한 피아노인가 오르간까지 갖춰져 있었다고 한다.

자, 본인은 이런 점을 감안하고 검사와 여선생 영화를 유튜브로 신기하게 감상해 보았다.
얘는 역사적 가치 말고 문학 예술적 가치랄까 그런 건 지금의 관점에서는 캐 민망한 수준이다. 정말 유치하고 오글거리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신파극이다.

집이 가난하고 끼니를 너무 많이 굶어서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픽 졸도까지 한 불쌍한 학생(주인공. 이름은 ‘장손’)을 묘사하면서 변사는 “아~ 하나님이시여, 나는 왜 어찌하야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시는 것입니까 어흐흐흐흥 ㅠㅠㅠㅠ” 이러는 식이다.. ㅠㅠㅠ
이런 아이를 담임 선생이 사적으로 잘 챙기고 보살펴 준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 년 뒤, 형무소를 탈옥한 어느 범죄자가 참 우연히도 그 선생의 집으로 숨어 들어오고.. 선생은 그 사람의 사정을 듣고는 불쌍히 여겨서 그를 숨겨 준다.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붙잡힌 사람인지는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런데 우연히도 선생의 남편은 자기 아내가 낯선 남자와 바람 피우는 걸로 오해하게 된다.

이 때문에 부부싸움이 벌어지고, 남편이 자기가 휘두른 칼에 자기가 급소를 실수로 찔려 픽 죽어 버린다. 선생은 과실치사도 아닌 살인죄로 기소되는데..
이게 웬걸.. 그 선생이 옛날에 보살폈던 그 가난한 학생이 그새 고등고시를 통과하여 검사가 돼 있다(사법시험은 1960년대에 등장).

그래서 그 검사가 이 피고인은 나의 옛 스승이었고 이랬던 인품의 소지자이고 정황상 어쩌구저쩌구.. 그래서 선생의 무죄를 이끌어 낸다.
법정을 나와서는 그 검사와 선생은 부둥켜안고 운다. 그 아이는 검사가 돼서 얼마나 성공하고 출세했는지 1940~50년대의 시점에서 무려 자가용을 굴리고 있다. 그는 석방된 선생님을 태우고 자기 집에 모셔서 극진히 대접하고 자기 부인도 소개해 준다.

아, 정말 내 예상보다도 심하게 더 유치찬란하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저 제자는 검사가 아니라 변호사여야 하지 않나 싶다. 검사가 변호사보다 더 간지가 나니까 무리해서 저런 설정을 만든 걸까? ㄲㄲㄲㄲㄲㄲㄲ
그래도 이건 1948년작이고, 당시에 평이 좋았고 “흥행 성공”했던 작품이란 걸 감안하도록 하자. 필름이 괜히 보존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그 어렵고 못살던 시절엔 사람들이 이런 걸 최신 문화 생활 겸 복고풍 무성영화라고 받아들이면서 관람했다. 그러면서 결초보은 같은 심리적인 공감과 대리 만족을 얻으며 눈물 콧물 짰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야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접해서 뻔한 복선과 클리셰와 반전, 어설픈 CG 따위엔 식상해 버릴 정도로 눈이 높아졌지만.. 저 때는 시대 배경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옛날에 소파 방 정환도 환등기 갖고 덕질과 변사 코스프레를 즐기던 천부적인 이야기꾼이었다. 동화 구연을 시작하면 애들이고 어른이고, 심지어 감시하던 일본 경찰 형사까지도 웃다가 울면서 난리가 났다는데.. 물론 그가 이야기를 실감나게 잘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의 청중들은 우리 같은 여가 문화생활이란 게 없어서 신파극에 훨씬 더 잘 반응하기도 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저 변사 녹음은 언제 된 것인지 매우 궁금했는데.. 검색을 해 보니 신 출(본명 신 병균)이라는 분이 우리나라를 통틀어 혼자 남은 마지막 변사였고 2010년쯤에 ‘검사와 여선생’ 연기를 하셨던 것 같다. 이분은 85세의 나이로 지난 2015년 2월에 작고했다. 살아 생전에 그 1920년대 ‘아리랑’ 무성영화의 변사 연기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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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비교적 최근에 녹음한 것이었군.. 어쩐지 52분 31초 지점에.. 엥? ‘초등학교’라는 말이 나오더라. 신을 부를 때 사용하는 명칭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꼬박꼬박 말한다.
변사라는 건 인간문화재 급의 극도로 좁은 고인물 업종일 수밖에 없는데.. 뭔가 서커스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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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절엔 꼭 사관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학생을 다 ‘생도’라고 부르는 걸 알 수 있다. 옛날 한글 개역성경에서 직역하면 ‘대언자들의 아들들(왕하 2 등)’.. 엘리사의 제자 문하생뻘 되는 사람들을 ‘생도’라고 부른 것에서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개역개정판에서는 ‘제자’라고 바뀌었다.

<검사와 여선생>은 훗날 1966년에 흑백 유성영화로 리메이크작이 나오기도 했다. 이때는 제목이 <민 검사와 여선생>이라고 약간 바뀌어서 주인공의 성씨가 앞에 삽입되었다. 그리고 설정을 좀 더 현실화해서 검사였던 제자가 옛 스승을 구하기 위해 변호사로 전업하는 것까지 들어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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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동락 국민학교 김 재옥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영화가 나오기도 했는데, 얘는 제목이 <전쟁과 여교사>(1966)였다..!
무슨 영어로 치면 teacheress 같은 단어가 있기라도 한지.. 그때는 여선생, 여교사라고 꼭 ‘여’짜를 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검사와 여선생>의 앞부분을 보면 노면전차가 다니는 서울 종로 시내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워낙 옛날이니 자동차는 아무래도 196, 70년대보다 훨씬 적게 다닌다.
그런데 <워커힐에서 만납시다>(1966)는 서울 시내에서 현역으로 다니는 노면전차의 모습을 ‘컬러’로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극히 드문 영상물이다. 물론 1966년이니 이때는 노면전차가 폐지되기 거의 직전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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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여선생에 나오는 전차와 비교해 보자. 차량이 바뀌기는 한 거 같다.. ㅡ,.ㅡ;;)

아무튼.. <검사와 여선생> 하나 갖고 옛날 영화와 관련된 온갖 썰들을 풀 수 있었다.
그나저나 1966년이 무슨 날이었나? <소령 강 재구>도 1966년작이고.. 언급된 영화들이 전부 이 해에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옛날에는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지금 같은 청록색이 아니라 녹슬지 않은 갈색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 전의 주변 풍경 모습이나 책의 상태도 지금처럼 누렇게 낡거나 바래지 않았을 것이다. 흑백도 아니고 당연히 컬러였을 것이고..
본인은 옛날 모습을 옛날 그 시절 모습 그대로 보는 것에 관심이 있는데, 옛날 영화가 그 의문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여 흥미를 느낀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26 08:36 2022/01/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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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ependency Walker

Dependency Walker라고.. Windows용 실행 파일에서 export 심벌과 import 심벌들을 재귀적으로 분석해서 모듈 간의 전체 의존 관계를 그래프 형태로 출력해 주는 굉장히 유용한 유틸리티가 있다. macOS나 리눅스 같은 타 OS에도 모듈 간 의존이라는 개념이 응당 있을 텐데, 타 OS용 실행 파일을 분석하는 프로그램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얘는 15년쯤 전, Windows Vista의 출시와 비슷한 시기에 마지막 버전이 나온 뒤부터는 원저자에 의한 개발과 유지 보수가 사실상 중단됐다. 뭐, 지금도 그럭저럭 쓸 만하긴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Windows 7인지 8인지 10쯤부터는 모듈을 열어 보면 내부적으로 무한 루프에 빠져서 분석하는 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고 불필요한 정보가 너무 많이 걸려 나오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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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요즘 마소에서는 운영체제 API DLL들을 분야별로 최대한 잘게 쪼개고 있다. Windows 7에서는 kernel32.dll 하나가 제일 먼저 시범타로 쪼개졌었다. 가령 api-ms-win-core-heap, processthreads, memory, file 따위로 말이다.
그랬는데 요즘은 다른 dll들도 마찬가지이다. 레지스트리 API는 전통적으로 advapi32에 있었는데 그건 api-ms-win-core-registry로 가고, gdi32조차 ext-ms-win-gdi-draw, font, paint, path 등등으로 리모델링 됐다.

응용 프로그램들이야 과거와의 호환성을 위해 여전히 kernel32, gdi32 따위로 링크 되겠지만, 이 운영체제에 내장된 기본 프로그램들은 저런 잘게 쪼개진 dll을 직통으로 사용하는 형태로 빌드 된다.
쪼개진 dll들은 시스템 디렉터리에 있지도 않고, winsxs 아래로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길고 복잡한 디렉터리 한구석에 처박히는데.. 딱히 매니페스트가 있지도 않아 보이구만 어떤 원리로 직통 연결되는지 나로서는 모르겠다.

내가 보아하니, Dependecy Walker가 어떤 PC에서는 이런 쪼개진 stub DLL을 모종의 이유로 인해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거기서 loop cut을 못 하고 위의 스샷에서 표시된 바와 같이 무한 순환 오동작을 일으킨다.
차라리 그 파일을 찾지 못해서 넘어가는 것이면 다행인데, 이것도 100% 올바른 동작이 아닌 건 마찬가지이다.
이런 게 고쳐졌으면 하지만, 저 프로그램은 현재 버전업이 중단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 오픈소스 진영에서는 Dependency Walker의 클론을 직접 만들고 있기도 하다.

참고로, 과거의 Windows 9x에서는 kernel32.dll이 원초적인 dll이었다. 즉, 심벌을 export만 하지, 자신은 실행 과정에서 다른 dll을 import 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Windows는 ntdll.dll이 원초적인 dll이다.

2. 32비트 프로그램에서 실행 중인 64비트 프로그램의 경로 얻기

GetModuleFileNameEx는 현재 컴퓨터에서 실행 중인 다른 프로세스, 혹은 거기 안에 같이 load된 dll의 전체 파일 경로를 얻어 오는 함수이다.
그런데 얘는 전통적으로 32비트 프로그램에서 64비트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정보를 요청하는 건 잘 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냥 단칼에 실행이 실패하는 것도 아니고, 경로를 되돌리기는 하는데 온전한 형태가 아니라 뒷부분이 짤린 일부만을 되돌렸다. 그리고 에러 코드도 ERROR_PARTIAL_COPY라고 당당히 되돌렸다.
32비트 프로그램이 64비트 프로세스의 주소 공간에 접근하는 게 기술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건 걔네들 사정일 뿐이다. 사용자 내지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는 겨우 이런 간단한 정보 하나 온전히 얻으려고 IPC용 64비트 exe를 따로 만들어야 하나.. 멀쩡한 함수가 무용지물이니 우회 경로를 뚫느라 굉장한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오늘 우연히 이 함수를 호출해 보니 Windows 10의 20xx이후의 업데이트 버전에서는 이 문제가 해결된 것 같다. 32비트 프로그램에서 다른 32비트나 64비트 프로그램의 전체 경로를 얻는 것.. 반대로 64비트 프로그램에서 다른 32비트나 64비트 프로그램의 전체 경로를 얻는 것 모두 아무 문제 없다.
Windows 10 구버전이나 Windows 7, 8 같은 거 64비트 에디션이 있으면 같은 프로그램을 구동해서 결과를 확인하고 비교할 수 있겠다만.. 대조군을 구하지 못해서 그것까지 실험은 못 해 봤다.

옛날에는 도대체 무슨 한계 때문에 이 함수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지금은 무엇이 해결되었는지 이 함수와 관련된 사연을 좀 알고 싶다.
이 함수는 원래 psapi.dll에 있던 시스템 정보 조회용 부가 액세서리에 가까운 물건이었으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Windows 7 즈음부터 시작된 API 재배치 정리 작업 과정에서 kernel32의 세부 카테고리로 본진이 이동한 듯하다. 사실, GetModuleFileName이 있던 곳과 같은 곳에 있는 게 논리적으로 훨씬 더 타당하기도 하다.

이런 커널 API 말고 GDI 쪽에서도.. 옛날에 AlphaBlend처럼 Windows 98에서 처음 추가된 그러데이션 그리기 함수들은 msimg32.dll이라는 별도의 DLL에 들어가 있다가 Windows XP인지 Vista인지 그때쯤부터 gdi32로 자리를 옮긴 적이 있었다.
새로 추가된 함수가 이런 식으로 재분류되는 게 완전히 새로운 관행은 아니었던 셈이다.

3. 파일 대화상자의 동작과 current directory

Windows에서 제공하는 파일 열기/저장 공용 대화상자는 사용자가 선택한 파일이 있는 곳으로 프로그램의 current directory도 같이 바꿔 버린다.
그래서 어떤 프로그램에서 USB 메모리 안에 있는 파일을 열기 대화상자로 골라서 열고 나면, 그 파일을 닫은 뒤에도 계속해서 USB 메모리가 사용 중이라면서 안전하게 제거가 되지 않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파일을 열었던 프로그램을 통째로 종료하거나, 열기 대화상자를 꺼내서 다른 드라이브에 있는 파일을 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실, 아주 극단적으로 특이하게 동작하는 물건이 아닌 이상, GUI 프로그램은 자기가 작업하는 파일의 절대 경로를 갖고 있다. 상대 경로를 통해 다른 파일을 참조한다 하더라도 기준이 되는 절대 경로가 따로 있지, 프로그램의 current directory 정보에 의존할 일은 없다. 게다가 current directory는 스레드가 아니라 프로세스마다 하나씩만 보관되는 정보이기 때문에 thread-safe 하지도 않다.

그러니 파일 대화상자가 굳이 저렇게 동작할 필요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도 current directory를 변경하는 이유는.. (1) 레거시 프로그램과의 호환도 있고.. (2) 그리고 다음에 파일 대화상자를 또 열 때 사용자가 마지막으로 선택했던 파일이 있는 곳을 current directory라는 수단을 통해 기억하고 공유하기 위해서이지 싶다.

도스 같은 명령 프롬프트 환경에서는 사용자의 타이핑 수고를 덜기 위해서 current directory라는 개념이 반드시 필요했으며, 그때는 아예 각 드라이브별로 current directory를 다 기억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지금 Windows 환경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리고 어떤 프로그램은 불러들이는 문서 파일이 있는 디렉터리와 current directory가 동일하다는 게 보장돼야만 제대로 동작하는가 보다.

하지만 파일 대화상자도 OFN_NOCHANGEDIR라는 플래그가 있어서 사용자가 어느 파일을 선택하건 current directory를 건드리지 않게 하는 옵션 자체는 있다.
그리고 내부 동작도 바뀌어서 굳이 current directory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사용자가 마지막으로 파일을 선택했던 위치를 기억해서 보여준다.

그러니 오늘날 새로 개발되는 프로그램들은 파일 대화상자를 꺼낼 때 가능한 한 OFN_NOCHANGEDIR를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또한, 이런 조치와는 별개로 current directory 때문에 USB 메모리가 안전하게 제거되지 않는 문제를 운영체제 차원에서도 좀 최소화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건 모니터를 2~3대 연결해서 컴퓨터를 잘 쓰다가 일부 모니터의 선을 뽑아 버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 경우, 운영체제에서는 없어진 모니터의 영역에 있던 프로그램 창들을 재주껏 다른 모니터로 잘 옮겨 줘야 한다. 그런 것처럼 USB 메모리가 뽑혔다면, 거기를 current directory로 참조하던 프로그램은 다른 디렉터리를 참조하도록 상태가 적절히 바뀌어야 할 것이다.

4. 그래픽 뷰어

끝으로, 이건 프로그래밍과 큰 관계 없이 특정 앱에만 해당되는 사항인데..
요즘 Windows 10에 기본 내장돼 있는 그래픽 뷰어 말이다. 오랫동안 사용해 본 내 경험에 따르면, 얘는 좀 불안정한 것 같다. 창을 여러 개 띄워 놓다 보면(5개 이상 여러 파일)..

  • 종종 뻗으면서 지금까지 띄웠던 창들이 한꺼번에 싹 없어진다.
  • 혼자 CPU를 잔뜩 소모하면서 노트북 PC를 열받게 하기도  한다.
  • 사진 파일을 더블 클릭했는데 프로그램이 실행만 되고 창이 뜨지 않고 먹통이 되기도 한다. "파일 시스템 오류 (-805305975)" 이러면서 아예 실행이 안 된다.

2004/2009대 버전으로 개인용 컴과 회사 컴에서 모두 동일한 현상이 발생하니, 이건 내 환경만이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얘는 화면 표시에 그래픽 카드의 하드웨어 가속 기능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뻗는 것도 여느 프로그램들 같은 메모리 버그 때문에 뻗는 게 아니며, 그래픽 카드 드라이버와의 충돌 내지 그쪽의 오류 때문에 뻗는다.

내 기억이 맞다면 Windows XP~7 사이의 기본 그래픽 뷰어는 256색 GIF에 대해서는 트루컬러 JPG와 달리 부드러운 확대/축소를 지원하지 않는다거나, GIF/APNG 애니메이션을 지원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 뷰어는 그런 한계가 다 없어지고 한 프로그램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모두 취급할 수 있어서 기능 면에서는 제일 좋아졌다. 하지만 반대로 구버전에 비해서 안정성은 명백하게 떨어져 있는 게 아쉽다. 특히 앱이 실행되지 않기 시작하면 운영체제를 재시작/재로그인 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

5. CPU 점유 문제

요즘 누구든지 컴퓨터나 폰을 다루면서 겪는 굉장히 성가신 문제 중 하나는.. 어떤 불필요한 프로세스/서비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CPU 자원을 독식해서 기기가 갑자기 혼자 열받고 팬 돌아가고 배터리가 눈에 띄게 빨리 닳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스마트폰은 팬이 없구나~!

개인적으로는 이럴 때 CPU 도둑을 감지해서 “이놈이 지금 폭주 중인데 죽일까요?” 안내를 해 주는 유틸/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스 시절로 치면 memmaker, 윈도 XP 시절에 잠깐 있었던 바탕화면 정리 마법사, 어지간한 악성코드 진단 유틸 같은 명목으로 말이다.

물론 어지간한 컴잘알이라면 이럴 때 작업 관리자를 띄워서 CPU 사용량이 높은 놈을 강제 종료시킬 것이다. 하지만 범인이 평범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서비스 같은 부류라면 뭐가 문제인지를 진단하기 어렵다.

본인의 과거 경험을 떠올려 보면 Windows Update와 관련된 서비스가 폭주한 적도 있었고, 크롬 브라우저가 쓸데없이 폭주한 적도 있었고.. 요 근래에는 WMI provider host인지 뭔지 하는 놈도 폭주해서 강제 종료시킨 적이 있었다.
자고로 업데이트는 CPU를 최하 우선순위로 받으면서 민폐를 절대 끼치지 않고 몰래 몰래 돌아가야 할 것이다. 사용자가 명시적으로 시키지 않은 작업이 저 따위로 돌아가는 건 어떤 경우든 디자인 결함이고 버그이지 않을까?

6. 프로그램 창의 떨림 현상

끝으로, 이건 프로그램이 뻗는 급의 치명적인 문제나 불편한 현상은 아니지만..
요즘 컴퓨터를 쓰면서 프로그램 창을 전환하다 보면, 아주 가끔씩 프로그램들이 non-client 영역(제목 표시줄, 메뉴 따위)이 수십 번 다시 그려지는지.. 수 초 동안 부르르 깜빡거리고 떨리는 경우가 있다.

이 역시 2004/2009급 Windows 10이 깔린 개인용과 회사용 컴퓨터에서 모두 목격하는 현상이다. 201x년대에는 딱히 본 적이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다.
정확하게 어떤 조건 하에서 왜 발생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업데이트가 깔리면서 운영체제의 아랫단은 알게 모르게 많이 바뀌는데, 버그나 부작용도 슬그머니 들어갔다가 또 잠수함 패치되기도 하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23 08:34 2022/01/2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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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의 역대급 흑역사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전국 곳곳에서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참사· 재해를 겪곤 했다. 그런데 사고 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만들어졌던 김 영삼 말고, 김 대중 시절에 특별히 정말 가슴 아픈 비극이 벌어진 게 있었다. 바로 1999년 6월 30일,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이다.

이건 본인이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그때 현장에서 구조됐던 유치원생이 지금은 20대 후반의 성인 사회인이 됐을 정도이니, 세월이 많이 지났다.
작년 12월 9일엔 SBS 꼬꼬무에서 이 사건을 다뤘었다. (☞ 링크)
이야기꾼이던 장 도연 씨는.. 그 당시에 새까맣게 타고 녹은 숯덩이 시신만으로도 부모가 자기 아이를 바로 알아봤다는 말을 하다가, 자기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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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이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방송을 탔다..)

씨랜드 참사는 보면 볼수록 어쩜 이렇게 최악에 최악의 상황만 골라서 일이 터진 건지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 소망 유치원에서는 하필 며칠 전에 서울 강동 교육청 주관의 "여름방학 생활 지도를 위한 원장 회의"에서 유아 숙박 수련 활동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놓고 무시하고 캠핑을 보냈다.
  • 그런데 캠핑 보낸 곳은 하필 온갖 불법과 비리를 감행해서 용도 변경하고, 싸구려로 허술하게 지어지고 화재에도 엄청 취약한 수련원이었다.
  • 그 많고 많은 방 중에서 하필 그 유치원생들이 자고 있던 3층 방 301호에서 화재가 났다.
  • 그리고 하필 그 방에만 화재 발생 당시에 인솔 교사가 전혀 없었다.
  • 하필 그때 화재경보기도, 소화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초기 진화가 안 됐다.
  • 하필 그 수련원은 교통도 엄청 불편한 곳에 있어서 소방차가 오는 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다.

그 (가)건물은 온통 가연성 단열재로 둘러져 있었기 때문에 화재는 기름에 불 붙은 듯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건물은 어지간한 목조건물 이상으로 정말 활활 잘 타서 깡그리 잿더미로 변했다. 목조건물보다 훨씬 더 짙은 유독가스를 내뿜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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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씨랜드 수련원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인솔 교사들이 무려 544명이나 있었다. 그 중 소망 유치원은 방 두 개를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인 301호에서 자던 유치원생 18명은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하고 울부짖다가 전원 몰살 당했다.
거기에다 2층에서는 부천에 소재한 어느 유치원 여자애 한 명만 유일하게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했고, 애들을 구조하다가 순직한 교사와 강사가 4명까지 추가로 총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2. 화재의 원인

그런데 정작 이 처참한 화재가 최초로 발생한 원인은 의외로 썩 명확하게 규명돼 있지 않다. CCTV 기록이나 목격자 같은 것도 없다.
국과수의 공식적인 조사 결과는 모기향 불이 실수로 번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피해자 유족을 비롯해 씨랜드 건물의 구조를 불신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며, 아마 누전 합선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모기향설은 화재 책임 면피를 위한 구실일 뿐이라고 말이다.

불이 복도 같은 엄한 데가 아니라 애들이 자던 301호 안에서 시작됐다는 건 명백한 팩트이다. 이게 성립하는 한, 본인은 전기설도 무작정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 거기서 추워서 전열기라도 가동했거나 더워서 에어컨을 틀었거나 뭔가 전기를 써야 누전 화재가 발생할 수 있지 않겠느냐 말이다.

그런 저렴한 가건물에 에어컨이 있었을 리는 없고, 전등이나 선풍기 하나 남김없이 다 끄고 잤을 테고.. 요즘처럼 개인 스마트폰을 충전할 것도 없던 시절에 그 방에서 전기 화재가 발생할 껀덕지가 내가 보기엔 별로 없다.
실제로 그 애들은 갯벌 체험에 물놀이 등 하루 종일 노느라 정신없었고, 숙소에 들어가서는 덥네 춥네 따질 것도 없이 곧장 몽땅 기절했다고 한다. 쟤들은 중고딩이나 초딩도 아니고 겨우 6~7살짜리 유치원생임을 기억하자. 야영 캠프 수련회 같은 건 아무리 못해도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는 된 뒤에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 반면, 촛불이나 모기향이 재수 없어서 밤중에 곁의 가연성 물질에다 엎어지기라도 하면 대형 화재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씨랜드의 경우도 불이 난 것 자체보다는 건물 자체가 가연성 자재로 뒤덮여 있었던 게 더 문제였을 뿐이다.
그러니 국과수나 법원에서 있지도 않던 모기향을 대놓고 주작한 게 아니라면, 이건 국가 기관의 공신력 있는 기록을 심하게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것도 무슨 한강 의대생이 실족사 했냐, 아니면 타살 당했냐 같은 문제처럼 보인다...

………라고 썼는데, 사진을 다시 찾아보니 저 수련원의 방마다 에어컨 실외기처럼 보이는 물건이 있긴 하다. 평양 아파트에도 없다는 물건이 그래도 저 씨랜드 수련원 컨테이너 가건물에는 있었던가 보다. 그걸 가동하고 있었다면 진짜 전기 화재였을 수도 있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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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동하지 않은 소화기

그리고 그 당시 뉴스 보도 영상을 보니..
씨랜드 수련원 현장에서 나뒹굴던 소화기는 그래도 압력 게이지가 달려 있는 신형 축압식 소화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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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 가압식 소화기는 폭발 위험 문제로 인해 1997년 무렵부터 국내에서 판매와 유통이 금지됐다. 축압식 소화기는 더 안전하고, 스프레이처럼 손잡이를 쥐고 있는 동안만 소화액을 끊어서 분사할 수 있으며, 분출력이 고갈되어 고장 났으니 교환해야 된다는 걸 게이지를 통해 바로 알 수 있어서 여러 모로 좋다.

씨랜드 수련원은 1998년에 개업했다고 한다. 그러니 쟤들도 나름 폐급이 아니라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신형 소화기를 갖추긴 했던 것이다. 무슨 10년 묵은 쌍팔년도 폐급 가압식 소화기도 아닌데 왜 저것마저 불량이어서 동작하지 않았는지는 개인적으로 좀 이해가 안 된다.
설마 실제로 동작하는 소화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인테리어 가짜 소품을 갖다놨던 걸까..??

즉, 이 건물은 용도 변경 부실 시공이 문제이지, 시설의 노후화가 문제일 여지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소화기도 그렇고 전기 시설도 그렇고.. 그래서 본인은 화재의 원인에 대해서도 무슨 피복 벗겨진 전선이 떠오르는 전기설을 선뜻 공감하지 않는 것이다.
관례적으로는 원인 불명의 화재는 몽땅 전기 때문으로 적당히 얼렁뚱땅 때우고 조사를 끝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긴가민가한 원인을 조사하느라 미관에 좋지도 않은 현장을 마냥 세월아 네월아 보존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모기향이라는 다른 원인을 굳이 찾아낸 게 조사를 더 꼼꼼히 한 것에 가깝다.
이 시체가 소사· 익사를 한 건지, 아니면 먼저 죽고 나서 물불에 던져진 건지를 판별할 수 있듯, 전선도 여기서 직접 불이 난 건지 아니면 다른 화염에 휩싸여서 불탄 건지 정도는 육안 판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진짜로 누전 때문에 발생한 화재는 통계 수치보다 드물다.

4. 관련 인물의 처분과 근황

소망 유치원은 사고가 매스컴을 탄 당일 곧바로 허가가 취소되고 폐쇄됐다. 30대 중반이던 유치원 원장은 1심에서 금고 5년이 선고됐지만, 훗날 감형되어 2년 반만 복역하고 2001년 말에 출소했다.
이 사람의 잘못은 교육청의 지침을 무시하고 수련원 입소를 강행한 게 작고, 화재 때 애들을 제대로 구조하지 않고 먼저 대피한 게 크다고 하겠다. (직무상 긴급피난 불허)

사고 10주기인 2009년경엔 이 사람의 근황 인터뷰가 월간조선에 실렸다. 유아교육 쪽 일은 완전히 연을 끊은 채, 딸 키우는 주부로 잠적하며 살고 있댄다. (☞ 링크)

그 사건에 대해서는 지금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차라리 그때 자기도 화재 현장에서 죽거나 화상이라도 입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때 교사들은 301호의 바로 맞은편 314호에 있었고 불이 났다는 걸 정말로 몰랐을 뿐이라며.. 특히 밖에서 삼겹살과 쏘주 회식 중이었던 건 절대 아니라고 여전히 강하게 부인했다. 본인 포함 교사들은 다 교회 다니는 신자여서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면서..

물론 건물을 이탈하지 않았다고 해도 애들을 구조하지 않고 혼자 빠져나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형사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저 주장은 본인이 보기에도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그냥 "이디 아민이 개싸이코 망나니 폭군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식인까지 한 건 절대 아니다~"(요리사의 증언) / "내가 보기로 타이타닉 호는 침몰 후 두 동강이 난 건 절대 아니었다"(사고 후 청문회에 불려간 모 승무원의 증언) 이런 부류의 실드처럼 들린다.

다음으로, 이 따위 건물을 갖고 영업을 한 씨랜드 수련원 사장은 죄가 당연히 더 무거우니 더 큰 벌을 받았는데.. 보도 자료에 따르면 처음엔 금고 5년에다 징역 2년 6월.. 도합 7년 6월이 선고되긴 했다. 금고와 징역을 조합할 수도 있는 건가?
기간으로만 따지면 삼풍 백화점 이 준 회장의 형량과 동일하지만, 이것도 나중에는 5년 정도로 감형됐다.

삼풍 그룹 회장이야 만기 출소 후에 얼마 못 가 죽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출소 후에도 같은 부지를 갖고 어떻게든 편법으로 돈 벌려고 난리를 치다가 지금은 거기 바로 근처에다 제주도 컨셉의 '야자수 카페'를 만든 것 같다. 이거 경영자가 씨랜드 사장과 동일 인물이라는 게 정황상 거의 확실해 보여서 뒤늦게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동일 이름, 동일 나이, 동일 지역!!

하긴, 그 사람이 씨랜드와 무관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씨랜드와 전혀 무관합니다. 악의적인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엄정 대응하겠습니다"라고 공지를 진작에 당당히 했을 것이다.
전재산을 피해자 보상금으로 뜯겨서 파산· 몰락하고 타지에서 조용히 찌그러져 귀양살이를 하는 게 아니라.. 멀쩡히 재기해서 같은 곳에서 희생자 위령비 하나 없이 다른 장사나 하고 있는 건.. 파렴치가 선을 넘는 것 같다. 이 사실이 꼬꼬무의 보도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버렸으니 이제는 저기도 사업에 애로사항이 꽃피지 싶다.

5. 씁쓸한 결말

요컨대 씨랜드 참사의 주범은 (1) 건물주, (2) 건물주와 결탁하고 뇌물 받아서 건축과 사업 허가를 내 준 부패 공무원, (3) 구조 조치 제대로 안 한 교사 정도의 세 그룹으로 나뉜다. 1과 3의 처벌도 너무 가볍거니와 2는 처벌이 없다시피했던 게 울화통이 터진다. 그나마 2를 구속이라도 시키는 데 일조한 어느 양심선언 공익제보 공무원은 눈총을 견디다 못해 이듬해에 퇴직을 하게 됐다. 이게 암담한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열나게 노력해서 보릿고개는 탈출했어도 사회 관행은 8, 90년대가 되도록 여전히 미개했다. 법과 원칙과 안전 의식이 없고 온갖 적당히 편법이 만연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게 아니라, 공무원들을 접대하고 기름칠 하면 되게 만들 수 있다. 남들은 다 그렇게 하는데 혼자 안 하고 있으면 자기만 바보가 된다. 법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는데, 보안 취약점을 이용해서 해킹해서 악성 코드를 주입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합숙 캠프에 보내지 말라는 교육청 지침도 딱히 교통사고나 화재 가능성까지 내다보는 선견지명 차원에서 만들어진 건 아니었을 것이고, 그 정도는 꼬우면 생깔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 차가 전혀 없는데 빨간불 신호 기다리는 게 귀찮아서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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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애들을 화장해서 서해안의 씨(sea)랜드 수련원과는 정반대 방향의 강원도 동해 바다에다 뼛가루를 뿌리고, "OO야, 하늘나라에서 꼭 만나자~~"라고 부모가 울부짖는 걸 보니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고 보니 301호는 제일 끝이고 탈출 계단도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어서 탈출하기 제일 쉬운 위치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저렇게 됐던 걸까! 이걸 생각하니 나도 괜히 또 열받는다.. >_<

서울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시절에 메달을 땄던 유명 아이스하키 선수 아주머니가 이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그 뒤의 조치로 인해 더 상처를 입고 나라에 대한 애정이 싹 사라져 버렸으며, 이 때문에 메달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 간 게 매스컴을 탔다.
미개한 관행은 집권 여당이 누군지하고는 별 관계 없는 총체적인 문화, 의식, 분위기, 풍조 문제였다. 긴 시간 동안 많은 수업료와 진통을 치르면서 차차 개선되었을 뿐이다. 그동안 달라진 게 없는 건 아니다.

확실히.. 옛날엔 세월호보다 더 처절하고 더 큰 사건 사고가 벌어졌어도 2010년대 같은 미친 유언비어 정치 선동과 반정부 시위 폭동 따위는 없었던 것 같다. 이건 지금이 옛날보다 더 퇴보한 게 명백한 사항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20 08:35 2022/01/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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