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장의 개장을 기다리며

서울에서 신당동은 구미와 더불어 박 정희 대통령이 살았던 곳이다. 이처럼 종로구 이화동에는 이화장이라고 이 승만 대통령이 살았던 사저가 있다.

이화장은 근현대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으며, 내부엔 자그맣게 이 승만 대통령 기념관도 있다. 하지만 여기는 언제부턴가(한 2010년대쯤?) 내부 수리를 이유로 수 년 이상 장기간, 거의 무기한에 가깝게 휴관한 채 방치되었으며 일반인이 들어가 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옛날엔 인터넷 지도에도 '2018년 개장 예정' 이렇게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말도 없다.

그래서 본인은 올해 두어 차례 이화장을 찾아가 봤다.
지하철 4호선 혜화 역 2번 출구로 나가서 방통대 건물 모퉁에서 좌회전 한 뒤, 언덕을 오르며 대학로 파출소 방면으로 골목길을 쭉 걸어가면 된다.
지하철 출입구에서 목적지까지 직선 거리로는 600미터이지만 실제로는 언덕길 7~800미터 정도를 걷게 되니 남자의 걸음으로 10~15분 남짓 걸린다. 막 가깝지는 않지만 도저히 걷지 못할 먼 거리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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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 역 주변에는 방통대와 서울대 병원이 있고 이들은 전반적으로 붉은 벽돌의 오래된 건물이어서 좀 고풍스러운 느낌이다. 그런데 거기서 이화장이 있는 동쪽은 한양도성과 낙산 공원 방면이다. 길이 좁아서 차들이 다니기는 불편하지만 대학로라는 명칭답게 이색적인 카페들과 극장도 있어서 신촌· 홍대 같은 분위기가 난다.
그러다가 이화장에 다다르면 요런 한옥과 담벼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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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가 정문 입구이다. 주변은 온통 공사를 위한 컨테이너 가건물이 지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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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아직 공사판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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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장에 대해 설명해 놓은 표지판은 컨테이너 가건물에 가려져서 접근하기도, 읽기도 어려워져 있었다.
이 정도가 끝.. 더 볼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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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만 대통령 기념 사업회의 공식 홈페이지를 가 보면 휴관 사유가 저렇게 적혀 있는데.. 내가 보기엔 말이 안 된다.
지난 2011년엔 우면산에서 큰 산사태가 났지, 낙산에서 산사태가 났다는 소식은 난 들은 바 없다.

그리고, 설령 그때 피해를 입었다 해도 저 쬐끄만 건물이 무슨 놈의 복구가 7년이 넘게 걸리냐?
화재로 깡그리 소실됐던 숭례문이 복구에 5년이 걸렸고 그것도 예상 외로 굉장히 오래 걸린 축에 든다.

마치 레카를 죽을 때까지 그냥 무기한 구속시켜 저렇게 구치소에 쳐넣어 두는 것처럼.. (주 기철 목사도 정식으로 재판과 형량 선고도 없이 유치장-구치소만 나돌면서 고문 당하다가 죽었다)
유지보수를 핑계로 친일 공화국 분단의 원흉 독재자의 행적은 이렇게 방치함으로써 교묘하게 지우고 폐쇄하고 봉인시키는 게 아닐까? 독립기념관 바깥뜰에다가 조선총독부 건물 잔해를 방치해 놓았듯이 말이다. 괴담 음모론 같은 거 믿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나라 꼬라지가 꼬라지이다 보니 저런 불길한 생각마저 들려 한다.

저 안에 있는 동상도.. 마음 같아서는 당장 무너뜨리고 박살 내고 싶어하는 들쥐들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미개한 반도에 쌔고 널렸다. 완전 위험물이다.

정치 보복 한번 참 졸렬하고 치사하게 한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타인도 다 포용? 즐쳐드시고 엿 먹으라고 해라. 레카도 바보같이 그렇게 어영부영 순진하게 관용 베풀다가 믿는 도끼 발등 찍히고 저 지경 됐다.

표현의 자유? 맨날 천날 광화문에서 "김 일성 만세" 외칠 자유 운운하는데.. 그럼 어디 광주 시내 한복판에서 누가 "전 두환 만세"라고 외쳐도 너그럽게 오냐 오냐 포용할 수 있다면 그럼 본인도 그 자유에 대해 동의해 주겠다.

종북좌좀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뼛속까지 오로지 내로남불과 진영논리에 입각해서 움직일 뿐이다. 난 이래서 그런 놈들이 너무 혐오스럽다. '김 정은 위원장님', '비록 친척을 죽였지만 예의바르고 훌륭한 지도자'와 동일한 잣대와 포용력으로 이 승만· 박 정희를 미화하고 과오를 실드 친다면.. 남한 대통령쯤은 거의 예수에 맞먹는 성군 도덕군자로 포장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들은 광우뻥 선동· 세월호 선동부터 시작해서 온갖 가짜 뉴스와 왜곡, 여론조작으로 세력을 키우고 집권한 주제에 이제 와서 무슨 가짜 뉴스를 근절하겠네 뭐네 수작인가?
그리고 2017년 이래로 지금까지 곳곳에서 드러난 채용 비리와 부적격 인사 임명, 기업의 후원 강요 사례들.. 그게 2013~2016년 사이에 폭로됐으면 광화문 촛불이 몇 번이고 터져 나오고 대통령이 몇 번은 갈아엎어졌을 것이다.

걔네들은 진짜로 부정부패 비리 척결, 친일 청산, 민주주의 등등을 원해서 그런 구호를 외치는 게 절대~ 전혀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반민주적이고 반대자를 악랄하게 탄압할 놈들이 야당이고 약자일 때는 인권 복지 민주 팔고 감성팔이 짓거리를 할 뿐이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대학까지 나와 놓고는 이 사실을 아직도 못 깨달았다면 정말 학교 헛다닌 미개한 개 돼지란 소리 들어도 싸다. 지능과 양심 둘 중 하나 이상은 문제가 있다.

인간의 탈을 썼다면서 좋은 말, 이성과 논리와 팩트로 산업화가 되지 않고 자꾸 나라 체제를 위협하는 이상한 사상에 끌려가고 있고, 격리와 분리도 안 되면.. 어쩌겠는가? 쌍욕 아니면 폭력밖에 처방이 남는 게 없다. 이게 그저 단순히 견해나 성향, 신념이 다르기만 한 문제이면 내가 이런 험악한 말을 절대로 쓰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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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에 왔을 때는 "2017년도 보수 공사"(올해 7월 17일까지)가 진행 중이었고, 얼마 전에 왔을 때는 "2018년도 보수 공사"(내년 3월 5일까지)가 진행 중이었다.
도대체 이화장이 뭘 그렇게 다 뜯어고쳐야 되는지, 모든 공사가 언제 끝나서 언제 재개방을 할지 모르겠다.

과연 이화장이 제대로 개관을 하는 날이 올까? 나의 이 썰은 과연 다 쓸데없는 기우로 끝날까? 어디 한번 두고보련다. 나중에 딴소리가 나오면 이 글이 증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정말 불가피하게 약간 훼손된 건 그렇게도 악랄하게 물어뜯고 욕하면서, 그렇게 민주주의 자체의 근간을 마련한 공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도 없는 배은망덕한 족속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진짜 친일 청산과 민주주의를 제일 방해한 원흉에 대해서는 절대 침묵하는 머저리들..
이 승만 대통령은 미개한 부류들에겐 너무 과분한 지도자였다.

Posted by 사무엘

2018/11/17 08:33 2018/11/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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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 행성들

* 오래 전에 썼던 글을 리메이크 했다.

1960~80년대 냉전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의 주도로 진행된 우주 개발은 인류의 세계관, 우주관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과업이 아니었나 싶다. 그 전에는 아담스키 같은 사람이 내가 금성에서 온 우주인을 만나고 왔다고 구라-_-를 쳐도 반박할 근거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화성에서 사는 외계인이 지구로 쳐들어온다는 스토리인 <우주 전쟁> 같은 소설도 20세기 중후반부터는 읽기에 김이 좀 빠지게 됐다.

태양계의 행성들은 제각기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다르고 궤도의 이심률, 방향 등이 다를지언정, 거의 다 같은 평면상에서 태양을 돌고 있다. 행성들이 마치 원자 주위를 도는 중성자, 전자들처럼 3차원 공간을 다 차지하면서 마구잡이로 도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우리은하 전체가 납작한 평면 원반 형태이다. 그 위아래로 쭉 가면 뭐가 나올까 궁금해진다. (참고로 성경은 하나님의 왕좌가 자리잡은 방향도 북극이 향하는 그 절대적인 북쪽이라고 말한다.)

태양계 시뮬레이터가 있으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태양을 비롯해 각 행성과 위성들의 질량, 반지름, 초기의 운동 방향을 입력해 주면 실시간으로 행성들이 우주 공간을 원뿔곡선을 그리면서 빙글빙글 도는 것이다. 그리고 행성의 임의의 시점에서 하늘을 봤을 때 태양이나 인접 행성들이 어떤 크기로 보일지도 보여주는 그런 프로그램을 누가 물리 엔진 잘 짜서 만들면.. 내가 직접 우주를 창조하는 창조주 기분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 아마 천체의 운동을 제대로 기술하려면 3체 문제 같은 것도 적당히 풀어내야 할 것이다.

지구와 달부터 시작해서 태양계의 행성들을 지구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나열해 보았다.

0. 지구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 물이 액체 상태로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 자전축이 직각의 1/4에 가까운 적당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는 것, 비정상적으로 큰 위성이 존재하는데 달과 태양의 겉보기 크기가 같다는 것.. 뭐 정말 온통 특이한 점밖에 없는 행성이다. (수성, 금성만 해도 자전축은 5도를 안 넘으며 곧게 빙글빙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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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자전 속도가 아주 서서히 느려지고 있으며, 달은 서서히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1. 달

우주의 천체들 중 지구에서 제일 압도적으로 가까이 있는 덕분에 수십 년 전에 인간이 수 차례 직접 다녀오는 데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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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발사된 로켓은 우주선(달 탐사선, 사령선)을 지구의 대기 궤도(parking orbit)에까지 올려주고, 그 뒤 우주선이 추가적으로 가속하여 지구를 도는 궤도를 초점이 달에 근접할 정도로 길쭉한 타원에 이르도록 가속한다.

그렇게 달 쪽으로 가다가 달의 중력에 끌려갈 때쯤이면 감속하여 달의 궤도에 진입하는데, 감속을 안 하면 우주선은 달을 삥 돌면서 8자 모양만 그리고 도로 지구로 돌아오게 된다. 아폴로 13호가 불의의 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원리를 이용하여 달 착륙만 포기하고 지구로 귀환할 수 있었다.

사령선은 달을 도는 동안 달 착륙선을 밑으로 내려보내고, 착륙선은 나중에 다시 사령선과 합체한다.
지구에서 달까지 편도로 가는 데는 3~4일 정도 걸린다. 이 모든 과정에서 로켓이 연료를 분사하여 뭔가 가감속을 하는 시간은 수~수십 분에 불과하다. 로켓은 비행기가 아니고 우주 여행은 지구 대기권 비행이 아니다. 나머지 모든 시간은 그냥 관성으로 천체 궤도를 돌고 끌려가며 이동하는 시간이다.

2. 금성

일찍이 샛별이라고 불리면서 인류의 선망이 되어 온 이 행성은 지구와 가장 가까이 있으며 크기와 중력도 지구보다 약간 작을 뿐 얼추 일치한다. 가는 것 자체는 2~3개월 남짓 걸리고 궤도 진입도 쉬운 편이어서 다 좋은데... 딱 하나. 금성 내부가 24시간 초고온 고압의 불지옥이라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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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탄소로 꽉 찬 지표면 대기의 압력은 잠수함도 못 들어갈 정도인 해저 900m급과 대등하고, 온도는 1년 내내 극지방과 적도를 가리지 않고 섭씨 400도 이상이다. 두꺼운 구름을 뚫고 지표면을 들여다보려면 결국 탐사선을 착륙시켜야 하지만.. 이런 곳에 착륙한 탐사선은 수~수십 분밖에 못 버티고 고장 나고 파괴되고 말았다.
왜 하필 지구에서 제일 가까운 행성 하나만 유일하게 저 지경이 됐는지, 개인적으로 매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와 나란히 쌍둥이나 마찬가지인 행성인데 왜 운명은 서로 정반대로 바뀌게 되었을까?

금성은 태양계의 행성 중 공전 궤도의 이심률이 가장 작으며, 동그란 원에 일치한다고 한다. 크기도 별로 안 큰 행성이 대기압도 가장 짙고 자전 속도가 태양계 행성 중 살인적으로 가장 느리며, 심지어 공전 주기보다도 길어서 하루가 1년보다 더 길다. 또한 이놈과 천왕성만 공전 방향과 자전 방향이 상호 정반대인 것도 이색적이다. (다른 행성들은 그렇지 않음)
또한 금성은 지구와는 달리 자연 위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지도 않다.

3. 화성

인류의 기술로는 가는 데 5개월~1년 정도 걸린다(당연히, 지구와 가장 가까워졌을 때 기준). 여기는 그나마 춥고 메마른 사막일 뿐인 덕분에 여러 탐사선들이 착륙 후에 수 개월~수 년간 활동했으며, 표면 사진도 제일 많이 전해져 있다(온통 시뻘건 산화철이 섞인 붉은 흙). 쉽게 말해 달 다음으로 2순위로 착륙해 볼 만한 곳이다.
그래도 거리의 압박이 있다 보니 여기에 가는 것도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가는 도중에 통신이 끊기고 실패한 우주선 미션들도 굉장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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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은 금성보다도 더 작지만 자전 주기와 자전축 기울기는 지구와 묘하게 비슷하다. 그리고 태양과 충분히 멀어서 그런지 위성도 두 개 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둘 다 지름 10km대의 못생긴(=딱 봤을 때 구 모양을 하고 있지도 못한) 돌덩어리에 불과하며, 지구의 달하고는 스케일이 비교가 안 된다.
포보스는 태양계 전 행성의 위성들 중 공전 고도가 가장 낮으며, 화성과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는지라 먼 미래에 화성과 충돌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 반면, 데이모스는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고 한다.

4. 수성

태양계에서 태양과 가장 가까이 있으며, 한편으로 소행성 왜행성 따위를 제외한 행성들 중에서는 제일 작아서 달보다 약간 더 큰 정도이다. 응당 위성도 없고 대기도 거의 없으며 표면엔 크레이터가 많아서 더욱 달과 비슷한 심상이다.

수성에서는 태양이 얼마만한 크기로 보일까? 공전 주기는 짧은 편이지만, 자전은 지구로 치면 거의 2개월에 가깝게 걸릴 정도로 매우 느리다. 그래서 긴 시간 동안 낮에는 표면이 섭씨 2~300도에 달하는 프라이팬처럼 달궈지고, 밤인 뒷면은 영하 세자릿수대에 도달한다고 한다. 달만 해도 그렇게 되는데 달보다 태양에 훨씬 더 가까이 있는 수성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수성은 지구와의 최단거리도 만만찮지만, 태양을 가장 가까이서 가장 빠르게 공전하는(지구 공전 속도의 약 1.5배이고, 공전 궤도의 이심률도 꽤 큼) 작은 내행성이라는 점으로 인해 탐사선을 보내기가 기술적으로 대단히 어렵다. 그냥 수성으로 보냈다가는 우주선도 십중팔구 태양으로 끌려가 버리기 때문이다. 아까 달 궤도에 진입할 때처럼 감속을 잘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엄청나게 빡세다.

그래서 지난 반세기 우주 시대 동안 수성을 탐사한 우주선은 마리너 10호와 메신저 단 둘밖에 없으며, 전자는 사실 수성의 궤도로 진입도 못 했다. 태양을 돌다가 수성에 근접하게 됐을 때만 잠깐 잠깐씩 탐사했을 뿐이다. 나중에 발사된 후자가 수성을 수천 번 돌면서 전체 표면 지도를 완성한 뒤, 나중에 궤도 유지를 위한 연료가 고갈되자 수성 표면으로 추락했다.

외행성 탐사선들이 보통 행성 스윙바이를 이용해서 가속을 하지만, 수성으로 가는 우주선은 금성을 이용해서 ‘감속’을 한다. 이거 속도를 맞추느라 메신저의 경우, 수성까지 가는 데는 발사 후 무려 6~7년에 달하는 시간이 걸렸다.
아울러, 이런 수성 탐사선은 원자력 전지(외행성)도 아니고 태양광 전지(지구 인공위성)도 아니고 무슨 양산 같은 열 차폐막을 두르고 날아갔다. 뱅글뱅글 바비큐 기동만으로도 태양열의 제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수성은 크기나 색상(칙칙힌 회색..)이 달과 얼추 비슷하니 이 글에서 별도의 사진은 생략하겠다. ㄲㄲㄲㄲ

5. 소행성대

화성에서 목성 사이의 우주 공간에는 마치 마곡 역 개통 전에 서울 지하철 5호선의 발산-송정처럼 중간에 뭐가 빠진 것 같은 긴 공백이 존재한다. 티티우스 보데의 법칙으로도 예측할 수 있는 이 지점에는 마치 우주 찌꺼기 같은 자그마한 소행성들이 태양을 돌면서 마곡 역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중 대표적인 물건은 ‘세레스’라는 이름이 붙은 소행성이다. 예전엔 커다란 한 행성이었다가 뭔가 큰 사고가 나서 박살이 나고 저 지경이 된 잔해들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세레스의 고해상도 표면 사진은 2015년이 돼서야 촬영될 수 있었다. 얘도 온통 크레이터가 가득한 곰보 같은 모습이더라.

6. 목성

화성 이후부터 행성 사이의 거리는 수성-화성 사이의 행성에 비해서 굉장히 벌어진다. 목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이며, 토성만치 폼나지는 않지만 나름 고리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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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의 무늬가 마치 나뭇결 같다는 생각도 든다만.. 저기는 잘 알다시피 착륙할 땅 자체가 없다. 표면에 내려가면 금성 뺨치는 고온 고압 유독가스 폭풍에 한 치 앞도 안 보이고 모든 것이 그냥 짜부러진다. 금성에는 없는 방사능도 왕창 튀어나온다.

목성은 그 큰 행성이 밀도가 작아서 그런지 자전 속도가 매우 빨라서 주기가 10시간대에 불과하다. 그리고 표면의 중력 가속도는 약 2.5G 정도라고 여겨지니 지구보다 더 무겁다.
덩치가 큰 덕분에 위성이 현재까지 무려 70개가 넘게 발견되어 있는데, 그 중 제일 큰 '가니메데'는 수성보다도 약간 더 크다. 그래도 질량은 수성의 절반 남짓이라고 한다.

7. 토성

제원을 살펴보면 여러 모로 목성의 축소판인 행성이다. 크기는 목성보다 약간 작지만 목성보다 훨씬 더 화려한 고리를 갖고 있으며, 자전 원심력으로 인해 적도 방향으로 목성보다도 더 찌그러진 타원처럼 보인다. 태양계에서 고리도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유일한 행성이 바로 토성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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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의 표면은 온갖 화려한 물결 무늬, 나뭇결 무늬, 대적반, 동그란 흉터 같은 형상들로 점철된 반면, 토성의 표면은 너무 반들반들하다. 대기가 짙어서 표면이 잘 안 보이는 건지, 아니면 관측이 충분히 가까이에서 못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은 타이탄이며, 2005년에 카시니-하위헌스 탐사선이 착륙도 했다. 주변 풍경은 화성과 비슷해 보였다.

8. 천왕성

천왕성은 정말 엄청나게 멀다. 태양-토성의 거리가 토성-천왕성의 거리와 비슷할 정도이다. (티티우스-보데의 법칙이 적중하는 마지노 선인 행성인데, 그 법칙은 지수함수 형태이다..)
얘부터는(해왕성도) 지구에서 밤 하늘 관측으로는 볼 수 없으며, 블랙홀 찾듯 중력 존재감을 추적한 계산만으로 발견된 것이다. 표면 사진은 보이저 2호가 촬영해서 보내 준 것만이 유일한데, 이마저도 색깔이 희뿌옇고 퀄리티가 그리 좋지 못하다.

천왕성은 자전축이 무려 98도로 사실상 누워서 자전하기 때문에, 자전과 낮과 밤의 관계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태양을 향하고 있는 한쪽 극지방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낮이고, 반대편은 밤이 그만치 계속된다.

9. 해왕성

앞서 얘기했듯이 물리적 특성과 크기, 발견 경위 등이 천왕성과 비슷한 처지이다. 목-토, 그리고 천왕-해왕 이렇게 짝을 이루는 것 같다. 그래도 지구보다도 더 새파란 게 색깔 하나는 예뻐 보인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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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저 2호는 목성에서 토성까지 가는 데 2년, 거기서 천왕성까지 무려 4년 반, 거기서 해왕성까지 3년 반 정도가 걸렸다. 목성에서 해왕성까지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0년이 걸린 셈이다. 그나마 행성들이 얼추 일렬 최단거리로 늘어섰던 천우의 타이밍 때 날아간 게 이 정도이다.

위성 트리톤은 태양계 행성들의 위성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해왕성의 자전 방향과는 반대인 역행 공전을 하고 있다.

10. 명왕성

너무 멀고 크기가 너무 작고, 보이저 탐사선의 조명조차 못 받았다 보니, 제대로 된 표면 사진조차 없이 오랫동안 상상도만 존재했던 물건이다. 최초 발견자가 미국인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굉장한 애착을 갖고 있었지만, 알고 보니 자기 궤도에서 독보적인 행성도 아니었으며 왜행성· 소행성 등급으로 결론 지어졌다.

그런데 그 작은 명왕성에도 카론이라는 위성이 붙어 있다. 이 둘은 한쪽의 크기와 무게가 충분히 독보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두 행성의 바깥에 있다. 일종의 이중 행성계를 구성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중력에 이끌려 빙글빙글 돌고 있다.

2006년에 발사된 뉴 호라이즌스 호가 9년 반 동안 보이저보다도 더 빠르게 날아간 끝에 드디어 명왕성의 표면 사진을 최초로 보내 줬다. 덕분에 명왕성의 표면은 자기보다 앞의 가스형 행성들보다 더 선명하게 잘 알려지게 됐다. 보아하니 색깔이 수성· 달이나 세레스 같은 회색이 아닌 붉은색 계열인가 본데, 화성처럼 철 성분이라도 있나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18/11/14 08:31 2018/11/1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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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고수 괴수 덕후는 많다. 그 중엔 이 종원 씨라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국내 최고의 버스 전문가가 있다. 본인보다 띠동갑 이상으로 어린.. 아직 나이 30도 안 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여러 번 매스컴도 타고 명성이 자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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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덕이라 하면 흔히 버스 노선이나 여행에 관심이 많아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들만 갈아타면서 24시간 안에 가기 인증" 같은 걸 즐기는 집단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본인도 처음엔 그런 걸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별개의 다른 덕질 분야이며, 저 사람은 순수하게 차량 분야 전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무슨 기계· 전자를 전공한 공돌이 내지 자동차 정비 명장인 것도 아니다. 그의 주 관심사는 그냥 버스의 역사와 차량 계보 그 자체이다. '버스 백과사전'을 출간하고 '한국 버스 박물관'을 설립하고 싶어한댄다. 컴퓨터 박물관이 아니라 비디오 게임 박물관이 필요하듯, 자동차 박물관만으로는 여전히 너무 범위가 넓으니 버스만의 고유한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버스들이 내구연한이 경과했다고 칼같이 퇴역하고 얄짤없이 폐차되는 게 너무 안타깝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런데 일반 소형 승용차와는 달리 버스는 자가용이 아니라 거의 다 영업용으로 쓰인다. 그러니 특정 개인이 애착을 가질 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

게다가 버스는 승용차보다 훨씬 더 크고 비싸고 보존하기도 어려운데, 어째 그런 버스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버스에서 Looking for you 같은 음악을 들었을 리는 없을 텐데..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최근 인터뷰 자료에 따르면, 그는 어릴적부터 비범했다.

  • 4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다니며 버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 한글도 제대로 떼기 전에 버스 노선을 외우고 차종을 구분짓기 시작했다.
  • 즐겨 그리는 그림은 버스였고 모형도 버스만 만들었다.
  • 초등학교 2학년 때 인터넷 버스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버스를 깊게 파고 들었다.

초딩 1~2학년 무렵엔 나도 좀 차덕이긴 했다. (☞ 관련 링크) 남자 꼬마애들이 그 나이 때 공룡이나 로봇을 좋아하듯이 큼직한 버스를 좋아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저 코흘리개 나이 때부터 버스 동호회를 가입하고 저렇게까지 몰두하다니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 보인다.;;

그는 2015년에는 TV에 출연해서 특색 있는 전동차 구동음도 아니고 그냥 털털거리는 내연기관일 뿐인 디젤 엔진 소리만 듣고서 해당되는 버스 차종을 모두 알아맞혔다. 심지어는 자기가 버스 엔진 소리 성대 모사까지 해서 주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우와 +_+
하긴, 똑같은 디젤 엔진이어도 옛날이랑, EGR에 CRDi에 SCR 등 온갖 배기가스 정화 기술이 갖춰진 요즘 차는 엔진 소리가 서로 뭐가 달라도 다른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고 러시아, 미얀마, 라오스 같은 외국도 다녀왔다. 다른 관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퇴역 후 외국으로 수출된 옛날 버스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실제로 몇몇 희귀 아이템은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과 함께 돈을 모아서 구매해서 역수입을 해 오기도 했다!

tvN에서 내 블로그를 보고 보고 연락했다. 1994년 배경 드라마를 만든다고 했다. 94년식 버스는 멸종해서 비슷한 느낌의 버스를 수소문했다. 알고보니 그 드라마가 ‘응답하라 1994’였다. 이후 요청이 종종 들어왔다. 영화 ‘더킹’, ‘마약왕’, 드라마 ‘라이프온마스’에 나온 버스도 섭외했다.
몇 년도에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만 알면 떠오른다. 직접 정리한 자료도 있다.


그러니 이분은 최고의 버스 고증 전문가가 되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대해서도 저 인터뷰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아마 할 말이 왕창 많을 것 같다.
<말죽거리...>의 경우, 중문이 달려 있는 1970년대 버스를 구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후대의 앞문· 뒷문 중고 버스를 구한 뒤, 앞문은 틀어막고 뒷문을 뜯어고쳐서 중문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옛날 버스에 대해서 본인이 아는 것은 엔진이 전방에 달린 대형 버스, 그리고 뒷문도 앞문 같은 폴딩 도어이던 시내버스 정도이다. 1990년대 초, 초등학교 전반부 정도까지는 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철도님의 영향으로 자동차와 비행기에 대해서도 부전공 차원에서 추가적으로 주워 들은 것도 있다. 한반도 역사상 시내버스가 최초로 운행된 곳은 서울· 부산이 아니라 대구라는 것 등..

현대에서 에어로시티 계열 버스를 내놓기 전에 생산했던 RB는 모든 게 동글동글 유선형이었다. 각이라고는 없었다. 그 시절에 바다 건너 일본 버스들이 디자인 트렌드가 그러했는지는 모르겠다.
이 버스를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길거리에서 다시는 찾아볼 수 없게 된 지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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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대우의 BS계열 버스들은 헤드라이트 모양이 정사각형 셀이었다. 이거 정도는 기억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 헤드라이트도 정말 순식간에 사라지고 멸종했다. 길거리에서 현역으로 뛰는 물건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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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첨부는 생략하지만 아시아 자동차 버스들도 있었는데, 얘들 외형은 대우보다는 현대차에 더 가까웠다.
훗날 아시아는 기아에 흡수됐고, 기아는 현대로 흡수됐으니 지금은 결국 다들 한 지붕 아래에서 생산되는 차량이 됐다.

그랬는데.. 이 종원 씨는 저런 것들조차도 당대에 직접 탔을 리도 전무할 텐데.. ㅠ.ㅠ
심지어 그는 지금으로부터 딱 1년 남짓 전엔 현대 자동차 남양 연구소로 초청을 받아 가서 현대차 "직원"들에게 선배들이 수십 년 전에 만들었던 버스들의 계보에 대해서 강연도 했다고 한다..;;

이분이 운영하시는 블로그의 최근 글을 봤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현대 FB485와 새한-대우 BF101 실차를 미얀마에서 구입해서 역수입해 왔다.;;
난 그 시절엔 경쟁사의 새한-대우 BF101만이 짱인 줄 알았는데, 글을 보니 경쟁사인 현대의 제품도 디자인과 편의 시설에서는 메리트가 컸었다. 그리고 사실 두 차량은 엔진은 동일했다.

지금은 현대 버스들이 바퀴 펜더가 동그란 반원이고 대우 버스가 좀 각진 편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 반대.. 현대에서 펜더를 각진 사다리꼴 모양으로 만들고, 새한-대우 버스가 둥글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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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글을 계속 보니, 옛날에는 에어 브레이크가 초대형 트럭이나 고속버스에는 적용되었지만 시내버스는 그렇게 무겁거나 고속 주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열외되어 있었던 듯하다. 현대 FB485에서 도입한 게 최초라고 한다.

또한, 벽면에 리벳이 박혀 있지 않은 깔끔한 형태로 버스 차체를 만드는 것도 그 당시로서는 고급 기술이었나 보다. 의류로 치면 말 그대로 솔기 없는(seamless) 매끄러운 옷에 해당한다.
글을 보면 볼수록 흥미롭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에서 역사적 사연이 있어서 따로 보존된 특수한 버스는 두 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박 정희 대통령 장례용으로 급히 개조· 제작되었던 영구차이다.
18년에 가까운 독재 권력을 휘두른 대통령이 그렇게 허무하게 비명에 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최 규하 권한대행이 급히 영구차 제작 입찰을 했는데, 여기서는 현대 대신 새한-대우가 선정되어서 BF101을 급조한 영구차가 만들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즉, 이 차가 저 때의 저 차였다는 얘기다. 물론 꽃으로 온통 뒤덮혔으니 사전 정보 없이 외형만 봐서는 저게 BF101의 파생형이라는 걸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도 고인의 관을 볼 수 있도록 측면 창문을 아주 크게 만들었다.
이 영구차는 지금도 서울 현충원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본인 역시 직접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에 사마란치 IOC 위원장을 비롯해 각종 스포츠 연맹 총재 같은 높으신 귀빈들을 태웠던 전용 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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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종은 아시아 자동차의 '콤비'이며.. 25인승 마이크로버스 차급이지만 내부가 6인승용 응접실 형태로 개조되었다.
대회가 끝난 뒤에 민수용 개조 부활(?) 같은 거 없이 영구 보존되긴 했지만 그 뒤로 그리 좋지 못한 관리 상태로 방치되어서 버덕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본인도 버스 하면 이 정도는 글 읽으면서 떠올리고 있었는데.. 저분 역시 곧장 언급을 하니 반가웠다. 실미도 사건 때 북파공작원들이 뺏어서 몰았던 그 버스까지는 나도 미처 생각을 못 했는데..
저런 분이야말로 나중엔 아예 버스에서 살림을 꾸리고 살지 않을까 싶다!!

류 준열과 혜리가 만원버스에 탄 장면을 보면 에어컨이 달려 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냉방 시설이 있는 버스는 없었다.


하긴, 버스와 열차에서 에어컨이 나오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에어컨 설비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옛날에는 버스의 엔진 출력 자체가 그 넓은 공간에 냉방을 빵빵하게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 못했다.

이렇게 이 종원 씨의 블로그를 읽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버스에 대한 그의 열정은 철덕을 자처하는 본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본인은 남자라면 무조건 대형 면허 따서 왕창 크거나 왕창 빠른 차를 몰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런 버스 전문가를 부러워하고 존경한다. 나도 한 분야에 저 정도의 외길 전문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이런 괴수에 비해 나의 철덕질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인 거 같다.. ㅜㅜ 나는 아직 철도를 저 정도로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후회되고 자괴감이 든다. 더 분발해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11/11 08:27 2018/11/1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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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 바다, 수소의 연료화

흔히 우리는 바다가 온통 소금물이니 소금은 다들 염전에서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얻는 줄 안다. 하지만 대량의 물을 물리· 화학적으로 변형하는 것은 우리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 비용)가 드는 일이며, 염전 또한 아무 바닷가에나 쉽게 크게 만들 수 있는 시설이 아니다. 정제 비용은 덤이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소금의 출처는 바닷물보다는 의외로 암염의 비중이 더 크다고 한다. 망망대해 가운데에서 마실 물 걱정을 하는 것처럼, 주변이 온통 바닷물이지만 여전히 소금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흔해 빠진 게 물인데 산소와 수소쯤은 물을 전기 분해하면 바로 얻을 수 있잖아?"도 그때 드는 전기의 양을 생각하면 그리 만만한 생각이 아니다. 수소는 생산한 뒤에도 너무 위험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게 어렵다 보니, 21세기의 기술로도 그 막강한 폭발력을 동력 기관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친환경과 가성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뭐, 소금은 이렇게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서도 많이 얻는다만, 우리가 바다에서 진짜 의외로 더 많이 얻는 것은.. 바로 산소라고 한다. 아마존 숲을 포함해 육상 식물이 만드는 산소보다 전세계 바다의 해조류와 미생물이 광합성을 해서 만드는 산소가 더 많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모르겠지만, 일단 지표면에서 면적부터가 바다가 훨씬 더 크기도 하니..

게다가 거대한 양의 바닷물은 이산화탄소를 품고 있기도 하다. 나중에 태양이 적색거성으로 바뀌어서 화력이 강해지고, 태양열 때문에 바닷물이 증발하는 지경이 되면 바닷물이 품고 있던 이산화탄소가 몽땅 증발돼 나오면서 온실효과까지 가미되어.. 지구는 순식간에 금성 같은 불지옥으로 바뀔 거라는 전망이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여러 모로 바다는 소금보다도 더 중요한 분야에서 인류에게 고마운 역할을 하는 듯하다. 아,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 역할도 톡톡히 한다. 소금은 암염으로 더 많이 생산될지 모르지만 생선이 육상 동물 육류보다 더 저렴하고 영양 가성비가 뛰어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2. 음속 -- 진동이 전해지는 속도

공기 중에서 음속이라는 게 초속 330~350m, 시속으로 환산하면 1100~1200km 정도 된다.
음속이 광속보다는 훨씬 더 느리기 때문에, 번갯불이 먼저 번쩍인 뒤(눈에 도달) 수 초 뒤에 폭음이 귀에 도달하여 들리는 것 정도는 주지의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등산 중에 하늘 위로 비교적 낮게 날아가는 비행기를 봤는데, 비행기는 엔진 소리가 들려 오는 곳보다 더 앞서 나가 있는 게 무척 신기했다. 고도가 낮은 것 같아도 못해도 3~4km 정도는 돼 보인다.

그런데 하물며 우주 관측은 광속으로도 감당 못 할 까마득히 먼 거리를 다룬다는 게 더 신기한 노릇이다. 몇백만 년 전의 별의 모습을 이제야 보는 것이니 말이다. 겨우 수 초 전에 비행기가 지구 대류권 상공에서 낸 엔진 소리를 뒤늦게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공기 중의 음속은 인간의 비행기로도 낼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느린 속도이다. 하지만 액체와 고체 속에서는 음속이 훨씬 더 빨라진다.
물 속에서는 극심한 저항 때문에 총알도 제대로 안 나아가고 모든 것이 둔해지고 느려지지만, 음속은 공기 중보다 대체로 4~5배 정도 더 빨라진다. (초속 1.4~1.5km)

게다가 금속 같은 고체 매질 속에서는 음속이 초속 5~6km대로 치솟는다.
지진파가 바로 고체 속에서 나아가는 음파와 본질적으로 비슷한 존재이다. P파 S파 종류별로 속도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초속 수 km대의 스케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원지에서 수백 km 떨어진 곳에 진동이 겨우 몇십 초 만에 느껴졌네 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경주와 포항의 지진 때문에 이쪽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바 있다.
하지만 전파 같은 초월적인 광속도 아니고 그렇다고 로켓이나 우주 발사체의 속도도 아니고, 일상적으로 저런 규모의 속도를 접할 일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소리가 나아가는 건 총알이나 바람이 나아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직접 이동하는 게 아니라, 진동만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과 고체 속에서 음속이 더 빨라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기 저항을 없앤답시고 진공을 만들어 버리면 음속이 증가하기는커녕, 소리가 아예 전해지지 못하게 된다. 열은 복사라는 방식으로 진공 속에서도 나아가서 전해질 수 있는 반면, 음파는 그냥 끝이다.

자연에는 물질의 운동뿐만 아니라 파동/진동도 존재한다는 것이 물리 과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주범임이 틀림없다..;; 그냥 이차함수 포물선까지만 생각하면 되던 게 이제 삼각함수가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빛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지니고 있는 건.. 신학으로 치면 인간이면서 하나님, 삼위일체 급의 난해한 개념이다.

3. 전열기

전기 에너지를 이용하면 잘 알다시피 바퀴를 굴리는 동력을 생성할 수 있고 강렬한 빛(LED)을 만들 수도 있고 컴퓨터를 돌리고 메모리 소자에다 정보를 기록할 수도 있다.
이런 무궁무진한 활용에 비해, 전기로 겨우 열이나 만드는 건 제일 수준 낮은 활용인 것 같다. 어차피 모든 에너지는 열, 그것도 더 재활용하기 곤란한 폐열로 귀착되니 말이다.
마치 싱싱한 참돔이나 우럭, 넙치 활어를 받아서는 회를 만들어 먹지 못하고 몽땅 탕으로 끓여 먹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 차원에서 기름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요리나 난방용 전열기가 의미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전기 제품은 안 그래도 간편하고 화력 좋고 그 자체로서는 공해도 전무한데, 전자 공학 기술의 눈부신 발달 덕분에 전열기도 옛날의 전열기보다 에너지 효율이 당연히 훨씬 더 좋다. 같은 전력을 소모했을 때 빛이나 동력이 나와야 하는 곳에서는 열로 낭비되는 에너지 없이 빛이나 동력만 많이 나오고, 진짜 열이 나와야 하는 곳에서는 열만 아주 강렬하게 잘 뿜어져 나온다.

그러고 보니 똑같이 전기로 음식을 데우는데, 단순히 바닥만 뜨겁게 달궈 주는 전기 오븐이 있는 반면에 전자 레인지도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후자가 전력 소모가 더 많고 더 고차원적이고 심오한 방법으로 음식을 데우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한편으로, 전기가 아닌 통상적인 연료를 사용하는 가스 레인지나 석유 난로도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처음 점화를 할 때는 전기 스파크를 사용하기 때문이며, 이건 휘발유 자동차 엔진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스 레인지의 경우 건전지를 집어넣는 부분이 있으며, 석유 난로는 최소한의 전자식 UI 제공을 위해 전기를 사용한다. 물론 순수 전기 난로보다 전력 소모가 훨~~씬 적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4. 20세기 중반의 리즈 시절

요즘 이공계에서 석· 박사까지 공부하는 종사자들은 추세를 다 알겠지만..
오늘날은 어느 분야건 무슨 20세기 초와 그 이전처럼 울트라 초천재 과학자 한 명이 그야말로 X선처럼 0에서 1을 만드는 급의 기상천외한 걸 창조하거나 발견해 내고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꾸던 그런 시절은 지났다. 모든 연구는 엄청난 자금빨을 동원해 집단으로 행해지며 단독 저자 논문은 거의 없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여러 학문들이 손 잡고 힘을 합쳐서 궁극적으로는 (1) 모든 사람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마음을 읽어 내는 스마트한 시스템, 그리고 (2) 사람을 닮은 기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달려가고 있다.

옛날에, 20세기 이전에 생물학이라는 건 그냥 생물의 생태를 관찰하고 분류하고 해부하는 정도의 방법론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파브르나 멘델처럼 말이다. 그랬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타 분야의 과학· 공학이 발달한 성과물을 접목하여 예전에 상상도 할 수 없던 미시적인 수준의 분석이 가능해졌다.
이른바 분자 생물학이라는 게 태동한 것이다. 그리고 막대한 양의 DNA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니 컴퓨팅 기술과도 손을 잡게 됐다. 이게 물리학으로 치면 마치 뉴턴 고전 역학에서 전자기학,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급의 패러다임 변화이다.

생물학이 그렇게 되는 동안 의학은? X선 덕분에 방사선 치료니 영상 의학이니 하는 분야가 새로 생겼다. 옛날의 의사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언어 공학 쪽은? 언어라는 게 인간이 동물과 다르고 기계와 다른 매우 큰 차별화 요소이다 보니 해결되지 못한 문제와 연구할 것이 아주 많다.
언어학에도 말뭉치 언어학이라는 분야는 컴퓨터 기술의 발달 덕분에 생겨났고.. 이런 식으로 학문들이 타 분야의 도움을 받아서 새로운 유행이 생겨나는 것 같다.

이공계의 트렌드 내지 패러다임이 이렇게 바뀌기 전에.. 그 저변과 기술 기반을 제공한 시절이 내 생각에 20세기 중반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된 동안 과학 기술이 얼마나 눈부시게 발달했던가?
전자공학 쪽에서는 진공관 컴퓨터와 더불어 (1) 트랜지스터가 발명되었다. 항공우주 분야는 (2) 로켓, 인공위성,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3) 원자력 발전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끝으로 생물학에서는 (4) DNA 구조가 규명되었다.

1950~60년대에 미국의 일류대 대학원에서 이공계 공부를 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천지개벽 수준의 과학 기술 업적이 펑펑 터져나오는 걸 경험한 셈이다. 부럽다.

5. 공군 전투 조종 장교 : 이공계 대학원생

  • 비행 시간 : 논문 수, 짬, 연구 실적
  • 전방석 : 1저자, 주저자
  • 후방석 : 공동· 교신저자
  • 전역 후 민항사 : 졸업 후 유명 대기업· 연구소 취업
  • 테스트 파일럿 : 스타트업 창업
  • 장성 진급 : 대학 교수 부임

서로 아귀가 묘하게 잘 맞는 것 같다..;;

6. 기타 수학· 과학 분야 얘기

(1) 예전에 벡터의 내적과 외적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하필 3차원에서는 두 벡터가 주어졌을 때 이 둘과 일차독립이면서 크기도 일정한 의미를 갖는 다른 벡터를 구하는 외적(벡터곱)이라는 연산이 존재하는 게 정말 심오하고 보통일이 아니라는 게 거듭 느껴진다. 3차원 공간을 구성하는 세 축의 방향을 안내해 주는 나침반이나 마찬가지이다.
FBI이니 뭐니 오른손 왼손 손가락 뻗으면서 외웠던 자기장 방향도 이 외적의 개념을 나타낸 셈이다. 또한, 복소수의 개념을 확장한 사원수의 곱셈 연산은 영락없이 벡터 외적 연산을 떠올리게 한다.

(2) 사람이 갈색이나 노랑이 아니고 초록색이나 파란색 머리카락은 100% 염색이지, 자연적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색깔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장미꽃은 원래 백색, 분홍, 홍색 계열 위주이지 청색..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았다. 파란색 꽃 자체는 그렇게 드문 건 아니지만 장미에는 그런 게 없었으나.. 21세기에 와서야 유전 공학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우와..;;
LED도 청색을 구현하기가 제일 어려웠는데 파란색에 뭔가 생물학적인 다른 사연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3) 똑같은 선풍기 바람도 사람에게는 체온보다 낮은 시원한 바람이지만, 아이스크림은 선풍기 바람을 쐬어 주면 반대로 더 빨리 녹게 된다. 아이스크림의 녹는 속도를 늦추려면 오히려 패딩 점퍼로 싸는 게 낫다.
그리고 똑같은 바람도 촛불은 끄게 하지만 큰 불에는 말 그대로 '불난 집에 부채질' 꼴이 되는 것이 흥미롭다. 온도와 풍속이 해당 상황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

(4) 동위원소 물질은 생물로 치면 무슨 유전자 변형 같다..;; 동물이 염색체 하나가 더 붙어서 기형이 태어나는 것 같은 느낌.. 원자로의 냉각수로 쓰이는 중수는 산소+수소이긴 한데 수소가 그냥 수소가 아니라 중성자(中)가 하나 더 붙은 중수소(重)이다. 그래서 중수의 얼음은 일반 물에 집어넣으면 가라앉으며, 끓는점과 어는점도 일반 물보다 몇 도가량 더 높다. 그런데 사람 몸에는 썩 좋지 않다고 한다.

(5) 인체에 대해 다룬 책들의 삽화를 보면 동맥피만 빨갛고 정맥피는 완전 시퍼렇기라도 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게다가 피부에 비치는 정맥 혈관이 검푸르게 보이기까지 하니(특히 좀비의 혈관..) 더욱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정맥이라고 해서 멀쩡한 혈액이 실제로 푸른색인 건 아니다. 명도· 채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의 피는 언제나 붉다.

이건 마치 태양에 흑점이란 게 있다고 해서, 우주에서 맨눈으로 관측한 태양의 표면에 검은 구멍이 숭숭 보이는 건 절대 아닌 것과도 비슷한 이치이다. 흑점은 태양의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뜨겁고 덜 밝을 뿐, 여전히 극도로 눈부시고 밝은 건 마찬가지이다.
대기의 산란 같은 게 없는 우주에서 태양을 보면 빨강이나 노랑, 주황 같은 색은 전혀 없으며, 그냥 맹렬한 흰 빛만을 볼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11/08 08:31 2018/11/0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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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셋 한글 입력기 9.6

2018년도 벌써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사이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파이널 버전인 9.5가 나온 지 70일 남짓 지났고, 본인의 근황에도 여러 변화가 생겼다. 내 인생에 한글 입력기 TODO list가 비어 있는 나날도 이렇게 오는구나 싶다.

뭐, 정말로 TODO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생각 같아서는 이미 여러 번 얘기했듯이 입력 설정 파일 포맷을 뜯어고치고 싶고 엔진 구조를 다시 설계하고 싶고, 도움말을 몽땅 영작도 하고 싶다. 허나, 그런 것들은 지금 도저히 추진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 거창한 것들이고 비용 대비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굳이 지금 같은 학생 신분에서 졸업을 더 늦추면서까지 욕심을 내지는 않는 것이다. 9.5를 넘어 10.0이라는 대망의 버전 번호는 그 날을 위해 비워 두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거창한 것 말고 GUI, 보조 기능, 데이터 쪽에 아주 자잘하게 바뀐 것은 있다. 이것들을 일단 9.6 정도로 정리하고자 한다.

1. 필기 인식!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지난 9.3 버전 이래로 총 10개의 입력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9.6에서는 기존 도구들과는 성격이 매우 다른 물건이 하나 더 추가되어 11개가 되었다.
바로 필기 인식이다. 현재의 글쇠배열이나 날개셋 입력 설정과는 아무 관계 없이, 글자의 모양을 사용자가 마우스로 그리고 프로그램이 이를 인식하여 문자를 입력시킨다. 기술적으로는 '온라인 필기 인식'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필기 인식은 MS IME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갖추고 있지만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는 없는 기능 중 하나였다. 뭐, 애초에 내 프로그램의 존재 목적과 전문 분야는 세벌식 관련 특수 기능, 키보드 인식 관련 customization, 옛한글과 복합 낱자 처리.. 따위이지, 그런 AI 분야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필기 인식 엔진을 직접 구현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기존 API를 통해서라도 날개셋에서 필기 인식 기능을 제공할 수는 없으려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본인은 방법을 찾아 봤는데.. 다행히도 방법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Windows CE 내지 XP 태블릿 에디션 같은 일부 제품군에만 그런 API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데스크톱용 Windows에도 필기 인식 기능을 다 사용할 수 있더라.
그리고 API 형태가 XP 시절과 Vista 이후가 서로 좀 달라졌다. 이 시점에서 굳이 legacy API를 지원할 필요는 없으니, 내 프로그램의 필기 인식 기능은 후자만 지원하는 형태로 개발되었다.

필기 인식 덕분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다음 버전이 9.51이 아니라 당당하게 9.6으로 매겨질 수 있게 됐다. 자체 기능이 아니라 운영체제의 API를 빌려서 동작하는 기능이 한자 단어 사전과 더불어 하나 더 추가됐다. 필기 인식이야말로 키보드 대신 포인팅 장비만으로 문자를 입력하는 기능의 백미 진수가 아닌가 싶다.

위의 스크린샷에서 보듯이 필기 인식 도구는 (1) 글자를 그리는 공간인 정사각형 입력란, (2) 인식된 글자 후보 목록, 그리고 (3) 주요 도구 명령(획 지움 등)과 (4) 자주 쓰이는 키보드 글쇠 버튼들로 평범하게 구성되어 있다.

"부수로 한자 입력"이나 "문자표" 같은 입력 도구들은 키보드에 없고 평소에 자주 쓰이지 않는 특수문자 몇 자를 입력하는 게 목적인 반면, "필기 인식"은 일상적으로 자주 쓰이는 linguistic한 문자들을 연달아 많이 입력하는 용도로 쓰인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 문자표들은 리스트의 항목을 더블 클릭해야 글자가 입력되지만, "필기 인식"은 한 번 클릭하는 것만으로도 글자가 곧장 입력되게 했다.

그리고 이 입력 도구는 중요한 옵션이 두 종류 있다. 첫째, UI 모드이다.
위의 스크린샷처럼 입력란이 하나만 있고 글자 후보 선택을 수동으로 할 때는 타이머도 옵션으로 지정할 수 있다. 마지막 획을 긋고 나서 별다른 조치 없이 2초 정도 있으면 1순위 글자가 자동으로 본문으로 삽입된다. 매번 '인식 완료'를 누르거나 목록에서 글자를 찍을 필요가 없다. 아니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입력란을 2개를 꺼내서 쓸 수도 있다. 왼쪽의 입력란에다가 글자를 그린 뒤에 곧장 오른쪽 입력란에다 글자를 그리기 시작하면 왼쪽에서 인식된 글자가 곧장 본문에 삽입되는 것이다. 창이 세로로 길쭉한 크기이면 두 입력란도 좌우로 가로가 아닌 상하로 세로로 자동으로 배열된다.

입력란이 2개 있을 때는 space나 엔터를 누르는 것도 먼저 인식 결과를 본문으로 보내고 난 뒤에 수행한다. 글자를 그리고 있고 후보 목록이 뜬 상태가 일종의 composition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둘째로, 사용할 필기 인식 엔진의 언어이다.
필기 인식 엔진이란 건 범언어 세계 공통 형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각 언어별로 제각기 나뉘어 있다.
그래서 한글은 오로지 한국어 엔진에서만 인식 가능하며, 히라가나· 가타카나는 일본어 엔진에서만 인식된다. 중국에서만 쓰이는 간체 한자를 인식하려면 중국어 엔진을 사용해야 한다.

어느 언어에서나 동일하게 인식 가능한 문자는 숫자, 알파벳, 아스키 기호와 한중일이 완전히 동일하게 사용하는 공통 한자들뿐이다. 한글을 알아보지 못하는 중국 및 일본어 엔진에서는 '튽'을 입력하면 다들 長이 1순위로 제시되는 걸 볼 수 있다.

이 입력 도구는 기본적으로 한국어 엔진을 사용하지만, 컴퓨터에 한중일에 속하는 언어가 2개 이상 설치되어 있다면 원하는 언어의 엔진을 우클릭 메뉴에서 선택할 수도 있다. 프로그램 제목 표시줄에도 현재 사용 중인 언어가 나타나 있다.
Windows 10 기준으로 설정 - 언어 옵션에 들어가면, 각 언어별로 언어 팩이나 IME와는 별개로 필기/음성 데이터를 받는 버튼이 있다. 거기서 한중일 언어의 필기 데이터를 받으면 그 기능을 내 프로그램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내 경험상, Microsoft의 한중일 기본 IME가 제공하는 필기 인식이랑, 저 official한 필기 인식은 따로 노는 별개의 기능인 것 같다. 마소의 일본어/중국어 IME는 '확장 입력기 애플릿'을 통해 자체적으로 필기 인식 기능을 제공하지만, 내 프로그램에서는 여전히 일본어/중국어 필기 인식 엔진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

의외로 Windows Vista는 CD 대신 DVD로 출시되고 전세계 다국어가 기본 내장되기 시작한 첫 버전이어서 그런지..
중국어· 일본어 IME를 끄집어낸 적 없고 Office조차 설치하지 않은 한국어판에도 중국어와 일본어 필기 인식 엔진이 다 기본 내장돼 있는 듯했다. 그것도 Ultimate 말고 Home premium급이 말이다. 아무튼..

한중일 언어의 필기 인식은 이렇게 정사각형 격자에서 글자를 하나씩 인식하는 방식으로, 마치 학창 시절의 칸 공책처럼 동작한다. 하지만 라틴 알파벳은 길쭉한 4선지에다가 단어를 한붓그리기 하듯이 필기체로 날려 쓰는 형태로 동작한다. 즉, 프로그램의 UI 자체가 서로 다르다.
요즘 Windows 10급 컴퓨터에 영어 필기 인식 엔진은 기본으로 다 깔려 있고 이 기능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내 프로그램에서는 그건 보류하고 일단은 형태가 더 간단한 한중일 위주로만 구현을 했다.

이런 식으로 필기 인식뿐만 아니라 음성 인식(받아쓰기)도 보조 입력 도구로 구현됐으면 좋겠는데.. 기존 API를 공부하는 것만 해도 필기 인식보다는 훨씬 더 어려울 것 같다. 동아시아 언어는 지원이 아직까지 훨씬 미비하기도 하고 말이다.

2. 글꼴 본뜨기/본뜬 글꼴 삭제 기능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내부적으로 전용 비트맵 글꼴을 사용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유니코드의 모든 문자의 글립을 직접 내장해서 제공하지는 않으며, 그럴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한자 같은 글자는 그냥 사용자의 컴퓨터에 들어있는 운영체제 글꼴로부터 비트맵을 추출하라고 글꼴 본뜨기라는 기능이 있다. 유니코드 영역별로 여기는 무슨 글꼴을 이용해서 추출하라는 간단한 절차 스크립트 파일도 있다.

날개셋 제어판의 '시스템 계층'으로 가 보면 글꼴 본뜨기를 하고, 필요하다면 절차 스크립트를 편집하고, 본떴던 글꼴 파일을 삭제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번 9.6에서는 이 글꼴 본뜨기 관련 기능들이 크게 개선되었다. 다음과 같은 변화가 생겼다.

(1) 예전에는 글꼴 본뜨기 버튼을 누르면 그냥 무조건 모든 본뜨기 작업을 처음부터 새로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미 본뜨기가 돼 있는 파일은 또 건드리지 않고 넘어가며, 변화가 생긴 항목에 대해서만 본뜬다.
만약 모든 항목이 본뜨기가 돼 있어서 파일이 생성된 게 하나도 없으면 "모든 항목이 본뜨기가 돼 있습니다. 혹시 이것들을 무시하고 본뜨기를 처음부터 다시 하시겠습니까?"라고 확인 질문이 나오며, 여기서 사용자가 '예'를 누르면 이전처럼 본뜨기를 처음부터 새로 하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글꼴 본뜨기를 한 뒤, 절차 스크립트에 명시된 영역과 겹치는 파일이 남아 있으면 그건 자동으로 제거하게 했다.
예를 들어 스크립트에 0~300, 500~800이 명시돼 있었고 이렇게 본뜨기를 했다고 치자. 나중에 500~800을 400~800이나 500~900으로 바꿔서 본뜨기를 하게 됐다면.. 이 영역과 충돌하는 이전의 05000800.16/8 같은 파일은 이 프로그램이 알아서 제거해 준다는 것이다. 충돌이 발생하지 않게 해 준다.

(3) 본뜬 글꼴 삭제 기능은 스크립트에 명시돼 있는 파일을 삭제하는 것과 스크립트에 명시되지 않은 잔상을 삭제하는 것을 취사 선택 가능하게 했다. 물론 둘 다 싹 다 없애는 것도 가능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 또한, 글꼴을 본뜨거나 삭제하기 전에, 이미 날개셋 한글 입력기 프로그램이 로딩해서 열어 버린 글꼴 파일들이라도 모두 닫게 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덮어쓰거나 삭제할 수 있다.
이제는 본뜬 글꼴을 삭제해 버리면 한자 글꼴이 존재하다가도 다시 한자가 표시되지 않는 상태로 되돌아가는 게 가능해졌다. 이전 버전에서는 그게 가능하지 않았었다.

(5) 끝으로, 본뜨기 스크립트의 내부 구조도 개편했다.
SYMBOL, HANGUL, LATIN이라고 섹션을 구분하여 SYMBOL 영역에서는 예전과 동일하게 본뜰 문자 영역을 명시하면 된다.
HANGUL과 LATIN에서는 예전처럼 번거롭게 AC00~AC00, 00~FF을 써 줄 필요 없이, 이미 선언된 글꼴 ID만 써 주거나.. 아니면 새로운 글꼴을 선언만 하면 자동으로 완성형 한글이나 영문 글꼴을 본뜨도록 했다.

스크립트에서 글꼴 ID도 예전에는 고정된 배열을 기반으로 5~63 사이만 지정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쿨하게 아무 숫자로나 지정 가능하게 했다(32767 이내). 그리고 완성형 한글이나 영문에서 재사용 없이 글꼴을 일회용으로만 선언할 때는 번호를 지정할 필요조차 없이 그냥 0만 줘도 된다.

한글 입력 엔진과는 무관한 그냥 UI 기능인데, 뭔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향상시키는 여러 작업들이 한데 행해졌다.

3. 이모지(emoji) 입력

2010년대부터 유니코드의 확장 평면에는 한자뿐만 아니라 이모지(Emoji)라고 불리는.. 이모티콘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웹과 모바일에서 실질적으로 이모티콘처럼 쓰이는 온갖 그림문자들이 추가되고 있다.
유니코드 위원회는 출처와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임의의 문자를 제멋대로 넙죽 받아들이고 추가해 주는 곳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임의로 이런 그림문자들을 오랫동안 많이 사용해 온 덕분에 이들도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코드 번호가 주어지게 되었다.

BMP를 벗어나 확장 평면이라는 제2군, 2루에 추가되는 문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쓸 일이 없는 듣보잡 벽자 한자나 고대 문자, 악보 기호 등이 고작이었는데.. 웬일로 채팅에서 활발히 쓰이는 그림문자가 이 영역에 대거 추가되었다.
그래서 유니코드의 버전이 10에 도달한 무려 2010년대까지도 모든 글자가 16비트 코드 포인트 하나로 감당 가능하다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UTF-16의 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던... 구닥다리 글꼴 엔진이나 텍스트 에디터들이 이제야 부랴부랴 수정되어야 했다고 한다. 뭐, 출처를 알 수 없는 카더라 통신이다.

폰트는 근본적으로 흑백 벡터 이미지밖에 표현을 못 하니, 인쇄를 염두에 둔 워드 프로세서에서는 이런 이모지들이 그냥 U+26??대의 그림문자와 별 다를 바 없는 외형으로 찍힌다. 하지만 전문적인 채팅 앱이나 스마트폰의 텍스트 입력란에서는 이것들이 컬러 그림으로 표시된다. 이 정도면 마치 한자만큼이나 글자와 그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서식(글꼴, 글자색, 크기 변경 등) 없는 텍스트 입력란 하나만 만드는데도 온갖 유니코드 문자 처리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실상 그림 출력까지 감당해야 할 듯하다.;;

2010년대에 나온 최신 중국어· 일본어 IME를 보면 이런 이모티콘을 입력하는 전용 문자표나 입력 모드가 꼭 존재하더라. 이런 거 입력도 뭔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내 프로그램은 모든 유니코드 문자를 고르는 범용적인 문자표 외에, 분야별 전용 문자표 같은 것은 딱히 고려 대상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말이다.
또한 편집기도 일반 문자들조차 흑백 비트맵 나부랭이로 출력하는 주제에 이모지를 컬러 이미지로 출력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이모지의 지원과 관련하여 할 만한 최소한의 조치는 글꼴 본뜨기 스크립트에다가 이 영역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Windows의 경우 Segoe UI Symbol이라는 글꼴이 이모지 출력용으로 쓰이고 있어서 이걸로 U+1F300부터 U+1F6FF 정도를 전각으로 본뜨면 된다. 문자표의 영역명에는 이 영역도 이미 등록돼 있다.

이건 아주 간단한 조치이니 지난 9.5에도 반영돼 들어갔으면 좋았겠지만..;; 인제 생각이 나 버렸으니 뭐 어쩔 수 없다. 이제 9.6을 설치한 뒤 글꼴 본뜨기를 다시 해 주면 편집기에서 이모지 글꼴들을 볼 수 있다.

4.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의 개선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는 지난 9.3과 9.5 버전 시절에 도입되었던 핵심 기능들 중 하나이다. 이제 더 고칠 게 없을 거라 여겨졌지만 미세한 개선 사항과 버그들이 더 발견되어서 9.6에서 다들 고쳤다.

  • numlock 키패드로도 후보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안 그래도 세벌식 자판은 키보드의 1~0은 문자가 배당돼 있는데 Ctrl+숫자뿐만 아니라 numlock 키패드도 지원된다면 아무래도 더 도움이 될 것이다.
  • 한글을 조합하는 중에 capslock 또는 이에 준하는 조합 종료 글쇠를 누르면 원래는 아무 반응이 없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외부 모듈은 지금 조합이 덧나면서 조합이 종료되는 문제가 있었다. 편집기, 외부 모듈, 입력 패드에서 모두 아무 반응이 없게 일관되게 조치를 취했다.
  • 편집기와 입력 패드는 입력 도구를 꺼내는 과정에서 대화상자를 꺼내고 창 포커스가 바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원천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데 외부 모듈은 현재 조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입력 도구를 열거나 닫을 수 있다. 이미 조합이 있는 상태에서 저 도구를 꺼내거나 닫으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던 것을 다 해결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8/11/05 08:32 2018/11/0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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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수학에서의 패턴

1998년에 개봉한 <파이>라는 영화가 있다. 제목은 음식 파이가 아니라 원주율 파이를 가리킨다. 구체적인 내용은 본인도 기억이 안 난다만 배경은 아마 20세기 중반 정도의 가까운 과거이고, 수학 덕후 주인공과 유대교 랍비가 나오고 '쿵쿵따다 쿵쿵따다 쿵쿵따다 쿵따~' 이런 인상적인 BGM이 나오고, 이례적으로 흑백으로 만들어진 좀 마이너 매니악한 취향의 영화이다.

벤허처럼 1950년대에도 컬러로 만들어진 영화가 있는 반면, 1990년대에 일부러 흑백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소수나마 있다. 내가 아는 건 쉰들러 리스트와 저것밖에 없다.
뭐, 킬 빌은 녹엽정 격투 장면이 수위 조절(사지가 날아다니고 피가 철철 튀고..)을 위해서 일부 흑백으로 촬영됐다고는 하는데.. 그런 일부 장면 말고 작품 전체가 흑백인 것 말이다.

과거에 텔레비전의 화질이 디지털 HD로 한층 업그레이드 되자, 출연자들의 피부 표면이 예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분장· 화장을 맡은 방송 스탭들의 수고가 더 커졌다고 한다.
그리고 텔레비전이 흑백으로 컬러로 바뀌었을 때에도 예전에 대충 하면 되던 각종 보정이나 특수효과들이 이제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동안 난리가 났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없는 눈을 만들어서 눈 내리는 장면을 만들기가 흑백 시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도 그저 만만하지는 않다. 컬러 찍듯이 평범하게 세팅을 한 뒤에 영상에서 채색을 제거하고 명도만 남긴다고 해서, 보기 좋은 흑백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 물론 아니라고 한다. 흑백으로 찍었을 때 배경과 인물 분간이 잘 되게 별도의 방법론을 동원해야 한다.
얘기가 좀 옆길로 새었다만 아무튼.. 저 pi 영화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인공의 신념(가설)이 담긴 독백 대사가 나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수학은 자연의 언어이다.
2. 우리 주변의 만물들은 수를 통해 표현되고 이해될 수 있다.
3. 그 수들을 그래프로 표현해 보면 패턴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자연에는 패턴이 어디에나 존재한다.


1번을 반영하여 <컨택트>(1997)라는 영화에서는 외계인이 무슨 심장 박동 같은 신호를 2 3 5 7 11... 소수 간격으로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수학은 지구인이나 외계인이나 다같이 공감할 자연의 언어이니까 말이다.
2번은.. 오늘날 디지털 컴퓨터에서 맨날 하는 짓이 바로 이것이다. 양자화, 전산화, DB화... 인간이 접하고 취급하는 사물의 모든 현상과 정보를 숫자로 표현했기 때문에 컴퓨터가 글과 그림, 소리를 출력할 수 있다.

그리고 3번과 그 이후는 정말 그러한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런 패턴을 발견해서 깔끔한 수식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세상 모든 수학자들의 로망인 건 사실이며, 영화에서는 이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그런데 패턴이라...;; 이 시점에서 본인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대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로그 2에 4를 푼다. 우선 2로그에서 앞에 있는 2를 뒤로 쭉 빼. 그리고 4 위에 살짝 올려. 왜? 패턴이니까. 수학은 논리가 아니고 뭐다?"


로그값 계산을 저렇게 거창하게.. 무슨 집 맞은편 편의점까지 모험을 떠나고, 동네 뒷산으로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듯이 하는 풀이는 처음 본다. ㅠㅠ

당연히,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전자의 영화에서 말하는 그 심오한 패턴이랑, 후자의 영화에서 말하는 그냥 시험 문제 풀이 테크닉에 가까운 패턴은.. 격이 완전히, 달라도 너무 다른 용어이다.
(뭐, 안 내상 씨도 혹시 진짜 현업 수학 교사를 불러다가 연기 시킨 게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연기를 잘하긴 했다.;; ㄲㄲ)

말죽거리 잔혹사는 영어 명사의 종류 고추X집물뿐만 아니라 수학에서도 그 당시의 참 비효율적인 입시 위주 암기 위주 교육을 그럭저럭 풍자했다.
하지만 뭐든지 다 잘하는 천재 괴수들은 그런 교육 체제에서도 다 100점 받고 할 거 다 하긴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8/11/03 08:36 2018/11/0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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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면서 클래스 멤버들의 공개 등급이라는 개념을 접한다. 까놓고 말해 public, protected, private은 C++, C#, Java에 모두 공통으로 거의 동일한 용도로 쓰이는 키워드이다.

C++은 이런 공개 등급을 마치 case나 default처럼 뒤에다 콜론을 붙여 일종의 label 형태로 지정하지만, Java/C#은 멤버 함수 및 변수의 선언에 공개 등급이 같이 붙는다. 이 세 등급의 차이는 아래 표와 같다.

출처 \ 공개 등급 public protected private
외부 O X X
파생 클래스 내부 O O X
자기 클래스 내부 O O O

public이야 멤버의 접근에 아무 제약이 없는 등급이지만 pr*로 시작하는 나머지 두 등급은 그렇지 않다. 단지, protected는 파생 클래스의 내부에서 자기에게 접근을 허용하는 반면, private은 이마저도 허용하지 않는다. 상속 관계에서부터 둘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private은 사람으로 치면 자식에게도 물려주거나 공유하지 않는 개인 칫솔, 속옷, 복용하는 약 같은 급의 지극히 '사쩍'인 물건에다 비유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어떤 공개 등급이라도 자기가 선언해 놓고 자기 클래스의 멤버 함수에서도 사용하지 못하는 등급은 없다. 심지어 자기 자신 this뿐만 아니라 자기 클래스에 속하는 아무 객체라도 말이다.
즉, 아래의 코드에서 bar(함수)와 priv_member(변수)가 똑같이 Foo의 멤버라면, bar는 o라는 다른 인스턴스의 priv_member에도 저렇게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다.

void Foo::bar(Foo& o)
{
    priv_member += o.priv_member;
}

this 포인터가 아예 없는 static 멤버 함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는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선언은 자기가 했지만, 접근과 사용은 내가 곧장 못 하고 파생 클래스에서만 가능하다거나 하는 기괴한 개념은 없다.

오히려 반대로 부모 클래스에서는 공개였는데 파생 클래스에서는 부모의 멤버를 감추고, 외부에서는 오로지 파생 클래스가 새로 제공하는 public 멤버만 사용 가능하도록 클래스를 더 폐쇄적인 형태로 바꾸는 건 가능하다.

C++에서는 클래스를 상속할 때 별 생각 없이 파생 클래스의 이름 뒤에다 콜론을 찍고 public Base1, public Base2 이런 식으로 public을 붙이곤 한다. 이때 써 주는 공개 등급은.. 부모 클래스 멤버들의 공개 등급이 파생 클래스에서는 어떻게 되는지를 결정한다. 그 방식은 한편으로는 직관적이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헷갈리고 어렵다.

상속 방식 \ 기존 공개 등급 public protected private
public public protected private
protected protected protected private
private private private private

public 상속은 부모 클래스 멤버들의 공개 등급을 파생 클래스에다가도 원래 지정되었던 형태 그대로 유지시킨다. 부모 때 public이었던 놈은 파생에서도 public, protected는 protected.. 그런 식이다.

그 반면, protected나 private 상속으로 가면 일단 부모 멤버들은 몽땅 private, 또는 잘해야 protected로 등급이 바뀐다. public 속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외부에서 파생 클래스 객체를 대상으로 부모 클래스의 멤버에 접근은 할 수 없어진다. public, protected, private이라는 공개 등급을 각각 3, 2, 1이라는 수라고 생각한다면, 클래스를 상속하는 방식 N은 부모 멤버들의 공개 등급을 N보다 크지 않은 등급으로 재설정하는 셈이다.

다른 예로, 부모 클래스에서 protected였던 멤버가 있는데 자식이 부모를 private로 상속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 멤버는 부모에서의 공개 등급은 protected였기 때문에 자식 클래스의 내부에서 마음대로 접근이 가능하다. (참고로 public 멤버는 부모에서 public이었다 하더라도 non-public 상속을 거치면 파생 클래스에서의 외부 접근이 곧장 차단된다. 내부 접근과 외부 접근의 차단 시기가 서로 차이가 있다.)

하지만 private 상속된 protected 멤버는 파생 클래스에서의 등급이 private로 바뀌었다. 그렇기 때문에 얘로부터 상속받은 손자 클래스에서는 이 멤버에 더 접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한번 private/protected 상속으로 인해 작아져 버린 공개 등급은 후속 파생 클래스가 다시 public으로 상속한다고 해서 다시 커지지 않는다. 상속 과정에서 기존 공개 등급을 동일하게 유지하거나 더 낮출 수는 있어도 도로 높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부모 클래스에서 private 상태였던 멤버들은(처음부터 그리 됐든, 상속 방식 때문에 그리 됐든..) public 등 그 어떤 방식으로 상속을 받더라도 파생 클래스에서는 결코 접근할 수 없다. 위의 표에서 그냥 평범하게 private라고 명시된 놈은 현재 private이기 때문에 다음 파생 클래스에서는 감춰진다는 뜻이며, 취소선이 그어져 있는 private은 이미 접근 불가이고 파생 클래스의 입장에서는 그냥 없는 멤버가 됐음을 의미한다.

C++은 언어 차원에서 POD(단순 데이터 더미)와 객체(생성자 소멸자 가상 함수 등..)의 구분이 모호하다 보니, struct와 class의 언어적 구분도 없다시피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냥 디폴트로 지정돼 있는 멤버의 공개 등급이 전자는 public이고 후자는 private이라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처럼, 클래스를 상속할 때 공개 등급을 안 쓰고 그냥 class Derived: Base {} 라고만 쓰면 Base는 private 방식으로 상속된다. C++의 세계에서는 디폴트 공개 등급이 어디서든 private인 셈이다.

class 대신 아예 struct Base { private: int a; } 이런 식으로 클래스를 선언해도 된다. 미관상 보기 좋지 않으니까 안 할 뿐이지.
얘는 클래스 선언 문맥에서는 struct라는 대체제가 있고, 템플릿 인자 문맥에서는 typename라는 대체제가 있으니 위상이 뭔가 애매해 보인다. 전자는 C 시절부터 있었던 키워드요, 후자는 C++98에서 추가된 키워드이다.

코딩을 하다 보면 범용적인 부모 클래스의 포인터로부터 자식 클래스로 static_cast 형변환을 하는 경우가 많다. 파생 클래스가 부모보다 멤버가 더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protected/private 상속을 한 파생 클래스는 자기만의 새로운 멤버/메소드가 있는 한편으로 부모에게 가능한 조작이 금지되어 버린다.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식 클래스 관계는 is-a 관계라고 일컬어지고, 자식 포인터에서 부모 포인터로 형변환은 "당연히"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당연한 건 public 상속일 때만으로 한정이다. 비공개 상속일 때는 정보 은닉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자식에서 부모로 가는 게 허용되지 않으며, 심지어 static_cast로도 안 된다! Visual C++ 기준 C2243이라는 고유한 에러까지 난다.

기술적으로는, 객체 내부의 ABI 차원에서는 아무 위험할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객체지향 이념에 위배된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에서 부모로 못 간다. 무리해서 강제로 부모인 것처럼 취급하려면 reinterpret_cast라는 무리수를 동원해야 한다.

게다가 C++은 다중 상속(=가상 상속) 때문에 일이 더 크고 복잡해진다.

class A { public: int pub_mem; };

class B: virtual protected A {};

class C: virtual public A {};

class D: public B, private C {};

D o; o.pub_mem = 100;

위의 코드에서 저 멤버에다가 100을 대입하는 것은 가능할까?
이걸 판단하기 위해서는 컴파일러는 클래스 D의 가능한 상속 계통을 모두 순회하면서 최대 공개 등급(?)이 public이 되는지 따져 봐야 한다.
(참고로, 둘을 virtual로 상속하지 않았다면, 저 pub_mem이 B에 딸린 놈인지 C에 딸린 놈인지 알 수 없어서 모호하다고 어차피 컴파일 에러가 남..)

B는 A를 protected 상속했기 때문에 여기서 pub_mem이 protected가 되어 버려서 나가리. C는 A를 public으로 상속했지만, 최종 단계인 D에서 C를 private 상속해 버렸기 때문에 private가 된다.
요컨대 A에서 D까지 가는 동안 public이 계속 public으로 유지되는 상속 계통이 존재하지 않으며, 최대 공개 등급은 B 계열인 protected로 귀착된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구문은 컴파일 에러가 나게 되며, pub_mem은 D의 멤버 함수 내부에서나 건드릴 수 있다.

Visual C++의 경우, 가상 상속이 아닌 일반적인 상속 공개 등급 위반이라면 C2247 Not accessible because .. uses ... to inherit from 이라는 좀 단정적인 문구의 에러가 뜬다.
그러나 가상 상속 체계에서는 "접근 경로가 없다"라는 표현이 들어간 C2249 No accessible path to ... member declared in virtual base ... 에러가 난다. 공개 등급 체크를 위해서 더 복잡한 계산을 한 뒤에 판정된 에러이기 때문에 그렇다. 매우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아무튼.. 참 복잡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C++ 이후의 언어들은 상속은 그냥 부모 멤버들의 공개 등급을 그대로 유지하는 public 상속만 생각하는 편이다. 다중 상속을 봉인해 버렸다는 건 더 말하면 입만 아플 것이고.

단지, 새로 선언하는 클래스 자체에 공개 등급을 부여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추가적인 상속을 아예 할 수 없게 지정할 수도 있다. 이것이 C#에서는 sealed이고, Java는 final인데, 정작 이런 개념은 C++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튼 C++이 객체지향 언어로서 여러 실험과 시행착오를 많이 했고 거기서 너무 무리수로 여겨지는 개념들은 후대의 언어에서는 짤렸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31 08:36 2018/10/3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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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

서울의 중심부에 속하는 광화문-시청-종각 일대는 어쩐 일인지 대형 서점이 두 개나 비교적 서로 가까운 거리(광화문 교보, 종각 영풍)에 입점해 있다. 그 덕분에 책을 사러 잠시 들르기 좋다.
본인은 여러 볼일을 보러 시내에 갔는데, 광화문 근처에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이라는 게 있다는 걸 근래에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래서 거기도 짬을 내어 들렀다.

아래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관람하는 형태이고, 2층은 그냥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3층은 이 승만 시절의 건국 초기, 4층은 산업화와 민주화 ~ 현대의 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기억에 남는 전시물들 사진을 소개하면서 본인의 생각을 덧붙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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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일제 시대는 제끼고..
저건 1948년 5· 10 총선거를 앞두고, 역사상 처음으로 투표라는 걸 해 보는 단군의 후손들에게 요령을 설명하는 포스터이다.
저 때는 지금 같은 주민 등록 번호나 신분증이 없었던 관계로 투표를 하려면 유권자 등록부터 먼저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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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한자는커녕 한글도 못 읽고 심지어 아라비아 숫자조차 못 읽는 사람이 있었나? 막대 표기라니 무슨 로마 숫자 같다.
당사자에게는 좀 잔인하고 미안한 얘기이지만, 이 정도로 무지· 무식한 사람들의 집단에서 무슨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지도자 선출과 민주주의 따위를 바랄 수 있었겠는지 본인으로서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사람들이 무슨 정책이나 이념이나 공약을 보고 자기 소신대로 투표를 하겠는가? 그냥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향응을 주는 진영에서 부탁하는 대로, 혹은 빨갱이들이 지상락원 선동하는 대로 우루루 끌려갈 확률이 99.9%이지.. 이래 갖고는 나라 망한다.

세상 물정 모르고 학교에서 불철주야 애들만 상대하던 교사가 퇴직하고 나와서 어설프게 사업이라도 하겠다고 나서면.. 그 교사의 퇴직금은 반쯤 과장 보태면 그냥 먼저 맡은 놈(= 사기꾼)이 임자라고 한다. 심지어 현직 교사들조차도 자기들이 학교 밖 사회에서는 완전 호구 취급 받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할 정도이다.

오늘날 교사는 분명 아무나 될 수 없는 직업이고,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교사까지 된 사람은 일반인들 평균 이상의 지능과 체력과 리더십을 갖춘 인재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될 수가 있다. 하물며 무지몽매한 민중들의 투표권이 어떤 방식으로 오· 남· 악용될지 대해서야 뭐 안 봐도 비디오이다.

투표권이란 게 무슨 운전 면허에 준하는 급으로, 혹은 군복무 조건까지 요구할 정도로 까다롭게 주어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나이와 학력, 그리고 자기 소득으로 단돈 1원이라도 세금을 내는 최소한의 경제력 같은 조건 정도는 붙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소한 연령을 지금보다 더 낮춰서 무슨 중· 고등학생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는 건.. 영 아니라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애들이 정치에 대해 뭘 안다고..

5월 총선거 이후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생일이니 박물관에서도 당시 경축 기념식을 하던 분위기 회고록과 할배 대통령의 축사 연설 육성 같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단, 제헌 국회 때 애드립으로 드려졌던 기도문은 종교색 때문인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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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분단과 북괴 정권의 수립 과정, 1940년대에 좌익이 저지른 각종 반란과 혼란 공작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곧장 6· 25 전쟁 파트로 넘어갔다.
전쟁 당시에 북한의 절반인 10만 명에 불과하던 남한의 육군은 휴전 이후 1954년엔 70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 영상 자료가 소개하는 바와 같이 군사력이 증강된 것은 사실이다. 왜냐고? 이제 상시 징병제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난 1950년대 이 승만 때는 원자력 연구소만 만들고 국방 과학 연구소는 순전히 1970년대 박통의 작품인 줄로만 알았는데..
저 때도 '국방부 과학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연구 기관이 생기긴 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하긴, 저 때는 어떻게든 북괴의 남침 시즌 2를 원천 봉쇄하는 게 최대의 과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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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으로 1960년대로 넘어간다. 저게 바로 그 시절에 국내에서 최초로 생산해 낸 자석식 전화기와 라디오이다. ㅠ.ㅠ
전화기는 다이얼조차 없이 수동 발전기로 최소한의 전기 신호를 전화선을 통해 보내는 기능만 있다. 그리고 라디오는 기능이 굉장히 빈약해 보이는데 크기는 꽤=_= 크다.
하긴, 저 때는 저렇게 전파를 통해 아날로그 신호를 수신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최첨단 기술이었을 것이다.

텔레비전은 지금으로부터 5년도 더 전에 아날로그 송출이 중단되고 디지털로 전환된 반면, 라디오는 그런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운전자용 아니면 비상용으로 TV와는 용도가 확 다르니 예로부터 통용되는 단순한 아날로그 기술만으로 충분한 듯하다.
그나저나 라디오 중에는 TV 채널의 음성 부분만 추출 가능한 물건도 있었는데, 그럼 이제 그건 불가능해진 건가 모르겠다. 라디오 방송국이 일부러 TV 방송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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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교통 박물관에서 봤던 시발 자동차를 여기서도 보게 됐다. 색깔도 동일하다.
저 시절엔 자매품으로 시발 리무진과 시발 버스도 있었는데.. 그건 실물은 말할 것도 없고 레플리카가 만들어진 것도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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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공화국 시절, 박통의 원대한 국토 마개조 야망이 저 지도에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짧은 역사 동안 정말 박통 같은 위대한 지도자는 없었다. 옛날에 무슨 "인도와 마 광수를 바꾸지 않겠다" 이런 구호가 있었던가 본데, 저 시절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로 건전하고 불가피하고 선했던 경제 개발 반공 독재라면 어줍잖은 2공 의원내각이니 사분오열 당파싸움 민주주의 따위하고는 얼마든지 맞바꾸고도 남는 장사였다.

저 과업들을 다 일관되게 이루려 하다 보니 통상적인 임기만으로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장기집권을 하게 된 거다.
그리고 그걸 추진하려면 돈이 왕창 많이 필요한데 돈이란 게 땅 판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국가고 국민이고 다들 가난했다.
초창기에는 삼성과 현대도 그냥 오늘 내일 직원 월급 주는 걸 걱정하는 아류 영세 기업일 뿐이었으며, 돈줄은 제도권 은행이 아니라 지하에서 민간 사채업자들이 잔뜩 쥐고 있었다. 그만치 나라 사정이 답이 없고 열악했다.

그러니 박통은 화폐 개혁을 감행하고, 기업들이 돈 걱정 없이 투자를 할 수 있게 사채의 전부나 일부를 국가가 초법적인 권한으로 강제로 탕감해 버리기도 하고, 국민들에게는 온통 저축을 강조하면서 경제 개발 자금이 은행으로 모이도록 독려했다. 일본과 수교하면서 받은 소위 일제 피해 배상금도 최소한 다른 이상한 짓거리로 탕진하지 않고, 경부 고속도로와 포항 제철의 건설에 썼다. 왜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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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 국가가 잘살고 국민들이 다들 등 따시고 배 부른 중산층이 되어 자기 생업에만 종사하면서 가족과 오순도순 즐겁게 잘 살기만 한다면.. 골치 아픈 정치에 관심 가질 필요 따위 없고 반공은 저절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당장 자기가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으면 무슨 계급 갈등에 자본가들을 타도해야 되네 혁명 과업을 이뤄야 하네 식의 불순한 수작에 귀를 기울일 일이 없다.

그러니 위의 포스터는 그저 정치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어느 정도 사실이다. 실력으로 일본을 이기는 게 가장 훌륭한 극일 반일이듯이, 자유 시장 경제 하에서 북괴보다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수준 높은 반공이다.
오늘날의 좌익 종북 빨갱이 위정자들은 이와 정반대 짓거리를 하고 있다. 기업을 몽땅 망가뜨리고 서민 경제를 파탄 몰락시키는 게 대남적화에 어떤 형태로든 더 유리하다. (선동에 더 취약해지고 먹을것 앞에서 인간성이 더 쉽게 상실되는 등..) 이른바 경제 무장의 해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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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은 너무 많고 시간은 부족하고 야당의 쓸데없는 태클은 심해지고 기존 선거 방식대로는 계속 당선되기가 어려우니..
박통은 헌법을 뜯어고치는 초강수를 밀어붙였다. 우리나라 헌정 사상 전무후무한 10월 유신.. 이게 '우리식 사회주의'...가 아니고, '한국식 민주주의'이고 이것만이 살 길이라고 긍정적인 프로파간다 홍보를 죽어라고 해야 했다. 병신 같지만 왠지 멋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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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니는 뉴질랜드로 수출되었던 것을 역수입한 것이어서 포니로서는 아주 드물게 우핸들이다. 게다가 안을 들여다보니 자동 변속기이더라. 2도 아니고 1이 오토라니.. 정말 보기 드문 모델이다.
옛날에 무슨 영화 찍고 자동차 박물관에 전시하는 용도로 이집트에 수출되었던 포니를 하나 역수입했다고 그러던데, 그 시절에 포니가 참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긴 했었다.

이렇게 산업화 얘기부터 한 뒤에 한켠에 개발 부작용에 대한 한계, 민주화 열망 그런 얘기도 소개돼 있었다. 이념적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듯했다.

이 승만은 건국 초기와 관련하여 육성과 사진을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 반면, 박통에 대해서는 경제 성장 성과만 저렇게 소개돼 있고 당사자의 족적은 박물관에서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이쪽으로 더 관심이 있으면 아무래도 상암동에 소재한 "박 정희 기념 도서관"을 찾아가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또한 못살던 시절, 한창 산업화 하던 시절에 서민들 생활이 어땠는지에 대한 자료는 경희궁 근처의 "서울 역사 박물관"과도 영역이 일부 겹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이라면 차라리 구한말· 일제 시대를 빼 버리고, 서울 올림픽이나 대전 엑스포, IMF 극복 같은 역사 자료도 더 풍부하게 넣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것도 벌써 2~30년 묵은 역사의 영역으로 옮겨져 가고 있으니 말이다.

관람을 다 마치고 내려가는 계단에서 정~~말 뜻하지 않게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청년부 동생과 마주쳤다. 서로 깜짝 놀라면서 좁은 세상을 실감했다. =_=;;;

※ 외솔 상 시상식

이 날 서점과 박물관을 방문한 뒤 본인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서울 시청 근처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되었던 올해치 외솔 상 시상식이었다. 본인은 수상자와는 별 인연이 없지만, 거기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에는 본인의 지인 분들이 여럿 있었다.

"재단법인 외솔회"라고 국어학자 외솔 최 현배 박사를 기념하는 단체가 있다. 거기서는 매년 고인의 탄신일(10월 19일)에 즈음해서 한국어· 한글과 관련해 문화· 학술 분야에서 1명, 계몽· 운동 분야에서 1명 이렇게 총 2명을 선정해서 상을 준다.
그렇게 시작된 시상식이 2018년 기준 벌써 40회를 맞이했다고 한다. 공 병우 박사도 외솔 상의 아주 초창기 수상자였다.

올해는 학술 분야는 서울대 국문과 교수 겸 국립 국어원 원장을 역임했던 권 재일 교수가, 운동 분야는 한글 문화 연대의 어느 간부가 받았다. 돌아가신 지 벌써 15년이 돼 가는 허 웅(한글 학회 회장) 박사가 외솔의 제자였고, 권 교수는 허 웅의 제자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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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입구에는 본인이 다니는 대학원의 총장과,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 명의로 화환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외솔회는 재단법인이지만, 비슷한 업종(?)에 속하는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는 사단법인이라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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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은 상만 씨크하게 주고 끝인 게 아니라 외솔 선생의 생전 육성 청취, 수상자의 소감 연설, 심지어 "한글이 목숨이다"를 가사로 뮤지컬 공연까지 생각보다 프로그램이 많았다. 게다가 뷔페 저녁 식사도 공짜로 줬다.

전공 분야와 관련해서 외솔의 사상과 행적은 이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다룬 바 있으니 그걸 참고하면 될 듯하다.
킹 제임스 성경 신자가 0.5초 만에 이해 가능하게 한데 요약하자면, 요일 5:7 구절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 대신에 '말, 글, 얼'을 집어넣으면 씽크로율이 99%에 근접할 것이다.
이분은 말년에 기독교로 개종해서 개인적인 종교가 실제로 기독교였다고도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그런 신앙보다는 그냥 방망이 깎던 노인 스타일의 대쪽 강직한 고집쟁이 원칙주의자 "한글이 목숨" 언어학자로 더 알려져 있다.

그는 1970년 봄, 아폴로 13호의 발사를 세 주 남짓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분이 그 근성으로 성경· 신학 쪽도 진지하게 파고들었다면 이 분야 순우리말 용어에도 분명 관심을 가졌을 것이며 혼과 영 대신에 넋과 얼을 제안도 분명 했으리라고 본인은 추측해 본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28 08:33 2018/10/2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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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문체, 어문 정책 등

1. 교과서의 문체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었지 싶은데..
본인은 먼 옛날 초딩 시절에 형· 누나(가족, 사촌 등)의 교과서를 미리 보니, 교과서가 갈수록 글자 크기가 작아지고, 컬러이던 것이 흑백으로 바뀌는(중등 이상) 것에서 일종의 문화 충격을 느꼈고 심리적으로 겁을 먹었었다.

특히 말투가 반말로 바뀌는 게 싫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1990년대엔 초1~2에서는 '해요체'였고, 과도기인 초3에서 좀 더 격식을 차린 '하오체', 그 다음 초4부터 '해라체' 반말로 바뀌었다. 지금은 어떤가 모르겠다.
그냥 반말도 모자라서 '하여라(해라)/써라'에서 연결어미가 더 생략되어 '하라/쓰라'라고만 하면.. 더 건조하고 무뚝뚝하게 느껴졌다.

  • 하십시오: 아주 높임
  • 하시오: 약간 높임
  • 하세요: 두루 높임
  • 해요: 두루 낮춤
  • 하게: 약간 낮춤
  • 해라: 아주 낮춤

이게 바로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어의 문체이다. 군대에서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요'로 끝나는 비격식체 '두루 높임/낮춤'이다.
학교 교과서는 맨 처음엔 두루 높임으로 시작했다가(계산하세요), 약간 높임을 보여준 뒤(계산하시오) 곧장 아주 낮춤으로 바뀐 셈이다(계산하여라).

물론 한국어의 글에서는 존댓말보다 이런 반말이 훨씬 더 보편적이다. 그리고 간결하기 때문에 쓰는 것일 뿐, 굳이 독자를 낮출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 사실 한국어는 제일 짧은 반말을 쓰더라도 용언 뒤에 각종 어미들이 덕지덕지 달라붙느라 여전히 좀 거추장스러운 구석이 있다. (예: 프로그래밍 언어를 한국어로 설계해 보면?)
하지만 저런 말투의 변화조차도 어린 동심의 입장에서는 병아리가 알을 깨는 것과 같은 큰 변화였던 것이다.

한국과 달리 서양 내지 영어권 애들은 그런 거 고민이 필요 없는 언어를 쓴다. 부모님 하나님도 그냥 you라고 부르고.. 나이 꼰대질 없이 누구든 그냥 통성명부터 한 뒤, you 아니면 이름으로 부르면 되니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에서도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sir을 앞뒤에 덧붙이는 것만 빼면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말하면 된다.

이런 의사소통에서의 효율이 더 멀리 나아가 학문과 기술의 발달 깊이, 그리고 업무 프로세스의 효율 차이까지 가져온 건지도 모른다.
1990년대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 같은 극단적인 예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2. 옛날 한글 개역성경의 이색 문체

오늘날 우리말에서 성경 같은 경전은 '-느니라, -도다, -노라, -소서' 같은 엄격 진지 근엄한 고어 문체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고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전근대적인 절대권위라는 게 몽땅 무너진 오늘날에는 일상생활에서 저런 말투를 사용하거나 접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천주교야 오래 전부터 현대어 스타일로 번역된 공동번역을 사용했기 때문에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독교회 쪽은 사정이 달라서 개역성경의 문체를 하루아침에 탈피하는 건 신자들의 정서상 아직 요원해 보인다. 그러니 2000년대에 와서도 교회에서 예배용으로 사용하는 성경의 주류는 여전히 개역성경을 약간만 고친 개역개정판에 머무르고 있다.

심지어 킹 제임스 성경 진영에서도 본문 내용이 변개되고 삭제된 것들을 논할 뿐, 문체는 개역성경의 고어 문체를 별 이의 없이 그대로 수용해서 성경을 번역하는 편이다. 아니, KJV도 고어체이니 한국어 역시 의도적으로 고어체로 번역하는 게 더 어울릴 지경이다.

본인은 어린 시절에 성경의 이런 문체가 신기하게 느껴졌으며, 또 맨 끝에 있던 계 22:18-19.. 그 유명한 성경 변개 금지 경고문(말씀에다 더하거나 빼는 자는 이렇게 될 것이다)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 인상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서 본인을 훗날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로 이끈 건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아직 한글 개역성경만 보던 옛날에..
본인은 한글 개역성경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이 끊어지시는 부분만이 이례적으로 고어체 대신 평범한 '-다'로 끝나는 것을 일찍부터 주목했다. 이것도 인상이 아주 강렬했다.

  •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마 27:50)
  •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막 15:37)
  •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눅 23:46)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 19:30)

요한복음만 빼고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저렇다.
동사 용언이 ㄴ이나 '았' 같은 시제 선어말 어미 없이 으뜸꼴 형태 그대로 쓰이는 건 무슨 제목이나 자막 같은 데서.. "누구누구 죽다", "어디에 가다"처럼 드물게 쓰이기는 한다.
그런데 존대 선어말 어미 '시'는 붙어서 '떠나시다, 운명하시다'는 어린 동심에 굉장히 특이한 심상을 만들어 냈다.

개역성경에서 '-시다'라고 끝나는 구절을 찾아보면 사복음서에만 딱 10군데가 나온다. 마 16:4 "떠나가시다"부터 요 18:1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까지..
하지만 이것들은 별 의미는 없고, 단순히 이 부분을 맡은 번역자의 번역 스타일 때문에 들어간 특이한 일탈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훗날 개역개정판에서는 다들 '떠나시니라'(마 27:50), '숨지시니라'(막 15:37, 눅 23:46) 같은 '-시니라' 꼴로 바뀌었다.

3. 여담: 한중일의 언어 정책 변화

동북아시아 삼국은 20세기가 가히 격변의 시대였다. 사회· 정치뿐만 아니라 문자 언어 쪽도 큰 변화를 겪었다.

(1) 중국: 1956~1964년에 걸쳐 공산당 마오의 령도력으로 한자들의 획을 대폭 줄인 '간체자'를 제정했다. 1953년, 6· 25 휴전 협정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은 '나라 국'을 國이라고 쓰고 있었지만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부터는 그렇지 않게 됐다.
또한 보조 표음용으로 알파벳 기반의 한어병음도 1958년에 전격 시행하여 기존 주음부호를 대체했다. 오늘날은 '대만'만 옛날 정체(번체)와 주음부호를 계속해서 쓰고 있다.

(2) 일본: 1949년, 아직 미군정 하에 있을 때 '신자체'를 만들었다.
이런 글자의 변화 말고도 지금처럼 히라가나를 고유어의 표기에 활용하는 일본어 정서법 역시 해방(한국의)/패전(일본의) 이후에 도입되고 정착했다. 그 전에는 지금은 히라가나로 표기했을 말도 다 가타카나로 표기했다.

(3) 한국: 아직 일제 시대이던 1933년에 초안이 나온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업적이었다. 이때 아래아 같은 잉여 옛한글은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한국어 정서법이 지금과 얼추 비슷하게 정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서법을 바탕으로 한국어 성경(개역성경전서 1938)과 국어사전(조선어 학회 큰사전 1947~57)이 출간될 수 있었다. 저 1938년도 성경을 또 개정하여 1961년에 나온 것이 바로 개역개정판 이전까지 국내에서 널리 쓰였던 그 개역성경이다.

한국은 중· 일과 달리, 국가 차원에서 한자를 손본 적은 없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러니 그냥 정자체를 그대로 쓰고 있고, 그냥 조금 한자깨나 아는 사람들이 중국보다는 일본식 약자를 무단으로 쓰는 편이었다.

4. 여담: 소나기

자고로 옛날에 이 승만은 지금 본인과 비슷한 나이 때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소설가 황 순원은 지금 본인과 비슷한 나이 때 일생일대의 명작 걸작인 단편소설 <소나기>를 지었다.

소나기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고, 아니 그 전에 한메 같은 타자연습 프로그램의 연습글로도 신물나도록 봤다. 내가 알기로 이 소설은 발표된 이래로 자국의 국어 교과서에서 누락된 적이 없다. 영화와 애니로도 이미 실컷 만들어져 나왔다.

다른 때도 아니고 아직 6· 25 전쟁도 안 끝났고 나라가 온통 박살이 나 있었을 때..
쉽게 말해 그 암울하던 이 범선의 <학마을 사람들> 사건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을 시절에 어째 저런 전원적이고 낭만적이고 아기자기 예쁜 소설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놀랍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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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 중딩 시절에는 소나기 정도만 해도 텍스트가 상당히 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이 안 든다.
  • 남자애는.. 정말 숙맥이다.;;
  • 한편으로는 단선 철길 폐색 구간의 양방향에서 잘못 진입한 열차가 떠오르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25 08:34 2018/10/2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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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재작년(2016)에 이어 올해 열린 한글 및 한국어 정보처리 학술대회(제30회)에 논문을 투고하고 발표했다.
재작년에는 현재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 '복합 낱자 입력 로직 생성기'라고 깔끔하게 구현된(8.8~9.0) 기능의 개념과 필요성에 대해서 썼다.

그 뒤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세벌식 글쇠배열에서 구현 가능한 모아치기, 동시치기 등의 개념을 정립했으며 이와 관련된 연구, 날개셋 9.5에서 새로 구현된 기능의 핵심 아이디어, 그리고 간단한 관련 실험 결과를 짧은 분량에 최대한 요약해서 소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파이널 버전에서 최종 테크 명목으로 연구된 (1) 세벌식 응용 기능을 발표한 자리이니 본인으로서는 뜻깊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특이한 점은 장소이다.
재작년에는 학술대회가 부산 동아 대학교에서 열렸다. 서울과 굉장히 먼 대도시라는 특성상, 차를 가져가지 않고 커다란 캐리어만 끌고 다니며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장소가 서울 고려 대학교이고, (2) 차나 숙박이 전혀 필요 없이 집에서 간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학회를 다녀 오는 분위기가 완전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

적당히 경기도 외곽이나 강원도 지방에 자가용을 몰고 내려가고 주변에 좀 놀러도 다니고, 밤에는 차에서 자면서 추억을 만드는 학회를 생각했는데.. 이건 결국 본인의 대학원 재학 중에는 이뤄지지 않게 됐다.
그래도 해수욕을 하고 여관방과 카페에서 잔 학회와, 교통과 숙박 걱정이 전무한 인서울 학회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의미가 있었다. 극단적으로 먼 곳과 극단적으로 가까운 곳의 차이이다.

그리고 (3) 다른 학교가 아니라 고려대라니.. 여기는 본인이 대학 학부 시절에 최초로 논문을 투고하고 참가했던 먼 옛날 2003년 제15회 대회 때와도 동일한 장소였다. 거기를 15년 만에 다시 찾아가다니.. 참 좁은 세상이다. (그땐 본인이 아직 대전에서 학교를 다니고 서울에 거주지가 없던 시절인 관계로, 숙박은 서울 친척 집에서 함)

올해는 딱 30회 기념에다 인서울 버프까지 받아서 그런지, 재작년은 물론이고 예년 평균의 2배를 상회하는 많은 논문이 투고되었다.
재작년엔 4개의 세션에서 토요일 오후 12시 반쯤에 모든 논문 발표가 마무리 되었던 반면, 올해는 5개의 세션에서 무려 오후 5시까지 끊임없이 논문 발표 스케줄이 배당되어 있었다.

재작년에는 학회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했던 반면, 올해에는 우리 학교의 김 한샘 교수님이 발표 세션 중 한 곳에서 좌장을 맡으시고 우리 학교 언어 정보 연구원에서도 논문을 투고했다. Universal Dependency라고.. 언어들의 구문 분석 태그 세트도 전세계 공통 통합 체계를 만들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걸 난생 처음 들었는데, 저 세션은 바로 그 UD 관련 발표 세션이었다.

또한 (4) 본인처럼 한글 코드와 글자판 같은 기초/마이너 분야의 연구를 하는 분을 몇몇 뵐 수도 있었다.
변 정용 교수님은 재작년에는 특강만 하시더니 올해는 논문도 투고하셨고, 내 논문까지 포함해서 아예 이 분야만을 위한 별도의 발표 세션도 배당되었다. 이것도 좋았다. 재작년에 냈던 내 논문은 인지과학 세션으로 분류됐었다.

그러니 이번 학술대회는 개인적으로 느낀 분위기가 재작년 대회보다 훨씬 더 좋았다.
그런 데다가 정말 고맙게도 본인은 2년 전에 이어 올해에도 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재작년과는 달리 아예 대회 시작 전에 미리 알려 주더라.
뭐, NLP처럼 많은 연구자들이 몰리는 주류 연구 주제에서 두각을 보였다기보다는, 워낙 독특하고 마이너한 분야를 파고 있고 그게 학술적으로 무가치한 건 아니니, 그 연구 성과를 인정받은 것에 대한 비중이 더 컸을 것이다.

본인이 여기에 논문을 하나 더 낸 이유는 다른 동기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학교 졸업 이수요건 충족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학계에서 논문이라는 건 크게 학위논문(대학원 졸업용), 학술지(저널) 논문, 그리고 학술대회 발표 논문(프로시딩)으로 크게 나뉜다.
본인은 발표 논문만으로 이수요건이 충족되는 줄 알고 있었으나 그렇지는 않더라. 사실 프로시딩은 투고하고 게재되는 절차가 제일 신속 간편하고 격도 제일 낮다. 학계 이 바닥의 최신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자기 연구 성과를 정말 짤막하게 신속하게 광고하는 수단에 가깝다.

결국 학술지 논문 두 편 이상인데, 하나는 KCI 등재 또는 등재후보 등급 이상의 학술지에 실어야 한다. 그건 본인이 이미 작년에 하나 해냈다. 나머지 하나 더는 이론적으로는 정말 아무 학술지에나 실어도 되고 더 부담 없이 해도 된다.
하지만 논문이란 건 한번 투고하면 영원히 기록이 남고 특히 박사들에게는 취업 스펙이나 마찬가지인 아이템인데, 너무 대충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발표 논문도 학술지 논문으로 발전시켜서 실으려면 내용을 추가 보완하는 두벌일을 하게 됐다.

그래도 이런 학술대회에서 우수 논문 추천을 받으면 관련 학술지에다가 발표 논문의 파생 논문을 싣는 것도 한결 더 수월해진다. 본인의 이전 학술지 논문도 이런 절차를 거쳐서 실을 수 있었다.
한글 및 한국어 정보처리 학술대회는 본인과 이런 관계가 있는 자리였다. 올해 대회에 참가하여 추억을 만들고 온 기록을 내 블로그에다가도 남기고자 한다.

※ 장소와 분위기

고려대는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교내로 들어온 차량은 지하로 쏙 보내 버리고 지상에는 보행자와 이륜차 정도만 지나가는 넓은 광장을 두는 게 요즘 대학교 캠퍼스들의 디자인 트렌드인 것 같다. 라이벌인 연세대만 해도 2010년대 초중반에 '백양로 재창조' 리모델링을 하면서 캠퍼스를 그렇게 뜯어고쳤으니 말이다.

요런 학회는 첫째 날엔 참가자들이 몽땅 한 자리에 모이니 커다란 강당이 필요하고, 다음날 실제 학회가 진행될 때는 발표 세션들이 있을 강의실 네댓 개와 포스터가 전시될 광장이 필요하다.
두 공간이 성격이 좀 다르다 보니 이번에는 첫째 날 모이는 장소(인촌 기념관)와 둘째 날 모이는 장소(현대자동차 경영관)가 학교 정문의 서쪽과 동쪽으로 서로 완전히 달라졌다. 동일하거나 인접한 건물에서 층만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올해 학술대회는 논문이 많이 투고된 것에 비해 첫째 날의 프로그램이 의외로 어느 때보다도 적었다. 특강 딱 세 개 이후에 경과 보고와 시상식만 하고 끝이었다.
보통 저녁 7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저녁 먹으러 나갔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5시 반에 칼같이 첫째 날 일정이 종료됐다. 새내기 박사 졸업자들의 자기 학위 논문 발표라든가 후원사 홍보 세션 같은 것도 없고..

그리고 만찬도 예전에는 뷔페라든가, 앉아서 먹는 한식 정도가 나왔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냥 교내 학생 식당에서 각자 알아서 배식 받아 먹는 것으로 끝이었다. 이번 학회가 참가자가 이례적으로 굉장히 많아서 이렇게 결정한 것 같긴 하나.. 이렇게 하니 모르는 사람과 안면을 틀 기회가 없어서 일면 아쉬웠다.

※ 특강(초청 강연): 검색엔진

특강 세 편 중에서 (1) 네이버에서 근무 중인 어느 언어공학 박사가 한 강의가 제일 유익했고 머리에 제일 많이 남았다.

  • 오늘날 전세계에 유의미하게 남아 있는 검색엔진은 구글, 마소 Bing, ..., 러시아 XXX, 중국 바이두, 한국 네이버 등 딱 7개 남짓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폐쇄적이거나, 기술 배경이 특이하게 고립된(갈라파고스화..) 곳 말고는 그나마 구글이 사실상 전부 다 먹었다. 우리(네이버)는 이런 상황에서 뒤쳐지고 도태하지 않게 위기의식을 갖고 피말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 웹사이트 검색과 블로그/뉴스 검색은 성격이 매우 다르다.
  • 검색엔진들이 웹 문서들을 평가하고 노출 순위를 매기는 세부 기준들은 전적으로 개발사들의 권한· 재량인 동시에 중대한 영업기밀이다. 교사들의 시험 문제 출제와도 같다. 그게 유출되면 당연히 오· 남용 악용되고(시험지 유출처럼..!!) 그걸 막으려고 피차 또 왕창 피곤해진다. 아무리 오픈소스네 개방이네 해도 개방되는 건 중립적인 기술과 알고리즘일 뿐, 그런 주관적인 잣대는 국회의원 같은 높으신 분이 요청한다 하더라도 넘겨줄 수 없다.
  • 뭔가 얼토당토않은 사이트가 상위로 랭크된 듯한 게 있으면 그건 기술적인 문제나 한계, 버그 때문일 뿐이다. 노출 우선순위는 전적으로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상상을 초월하게 방대하고 복잡한!) 결정될 뿐, 그게 내부인의 농간에 의해 호락호락 조작 가능한 게 아니다. 관련 괴담이나 음모론들은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 굳이 AI나 기계 학습 관련 알고리즘을 다 이해하고 있고 직접 코딩 구현까지 했다고 해서 엔지니어 채용 시에 크게 가산점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 기술을 이용해서 실제 언어 데이터를 상대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창의적인 실험을 해 봤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강연 내용들은 본인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 내 직장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옛날에, 1990년대 25년쯤 전에 검색엔진이라는 건 수많은 웹사이트들을 사람이 손으로 도서 분류하듯이 카테고리화해서 안내하는 길잡이, 아니면 msdn의 검색(search) 기능처럼 그냥 기계적으로 특정 주제어가 존재하는 웹페이지들을 정확도와 빈도 순으로 보여주는 메타사이트일 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검색엔진은 웹메일, 뉴스 기사 등 온갖 서비스들을 같이 제공하는 포털 사이트를 겸하게 되어 덩치가 커졌으며, 검색 기능에도 온갖 자연어 처리 기술이 접목되었다.
2002년쯤에 네이버에 지식인이라는 게 도입되면서 이변이 일어났다. 검색엔진은 그냥 기계적인 검색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고 그 사람이 원하는 정보를 즉각 대령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됐다.

그리고 나라 밖에서는 구글이라는 신흥 강자가 세계의 웹을 정복했다. 야후, 심마니, 엠파스 등.. 1세대 검색엔진들은 싹 도태해 버리고 물갈이 됐다. 과거에 워드 프로세서를 두고 마소 vs 한컴이던 게 지금은 검색엔진을 갖고 구글 vs 네이버 구도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아무튼..

(2) 그 다음, 젊어 보이는 어느 고려대 '영문과' 교수님은 맥북 Keynote를 써서 발표하면서(예능· 디자인?), null space가 어떻고 야코비안 행렬이니 벡터 편미분이니 나열하며 반쯤 선형대수학 강의를 하시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정말 학문에 경계란 게 없는가 보다.
하긴 언어 응용 중에 음성 처리 쪽은 기술 집약적이고 굉장히 이과스러운 분야이기도 하니까..

※ 특강: 한글 코드

(3) 그리고 마지막으로 변 정용 교수님은 예나 지금이나 자음· 모음을 이중 삼중으로 임의로 집어넣은 한글을 구현하려고 애쓰고 계셨다.
지금 유니코드에서는 한글을 글자 단위로 완성형으로 쓰지는 않는다. 단지, 낱자 레벨에서는 완성형인 게 사실이다. 초성의 자음 집합과 종성의 자음 집합이 일치하지 않는다. ㅄ이라는 낱자 번호로부터 ㅂ과 ㅅ을 자연스럽게 추출할 수 없으며, 초성 ㅂ으로부터 종성 ㅂ의 코드값을 얻을 수 없다. 다 테이블을 갖고 있어야 한다.

변 교수님의 주장은 그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지금의 160여 만 자 옛한글조차도 한글을 컴퓨터에서 제대로 구현한 게 아니라고 한다. 원래 훈민정음의 원리대로 한글 자모를 뭉쳐 넣고 조합하면 399억 종류, 32비트 정수 범위를 초과하는 가짓수의 글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그냥 영어의 strike, school라든가, 중국의 xian, yao 등등.. 세계 모든 언어에서 1음절로 표현되는 음운은 몽땅 한글 한 글자로 묶어서 표현하겠다는 포부이다.;;

프로그래밍 언어 분야에도 극단적인 순수주의자(purist)가 있듯이, 한글의 표현 방식에 대해서 이런 최고 수준의 추상화와 순수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분이 계시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24자인지 28자인지 최소한의 낱자만 문자 코드에 배당해 놓고, 얘를 쭈루룩~~ 늘어놓는 것만으로 모아쓰기 글자가 생성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단지 그렇기 하기에는 제반 글꼴 기술이라든가 음절 경계 구분 쪽의 부담이 대책 없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낱자는 그냥 코드 차원에서 완성형으로 퉁친 것이다. 심지어 현대 한글은 글자마디 11172자를 다 집어넣기도 했다.
뭐, 유니코드 5.2가 등장하기 전에는 심지어 마소에서도 1.1 자모를 최대 3개까지 한데 묶어서 최대 9개의 코드 포인트를 차지하는 옛한글을 편법으로 구현한 적이 있다. 그러니 변 교수님의 지론도 기술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조합 가짓수가 비현실적으로 너무 많긴 하다.

변 교수님이야 무려 1980년대부터 한글 코드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니, 학회에서도 이분에 대한 courtesy 차원에서 특강에 논문 발표 기회까지 잔뜩 마련해 줬다. 하지만 "한글을 굳이 저렇게 이상한 형태로 활용할 필요가 있나, 그게 무슨 돈이 되고 실용적인 의미가 있나? 멀쩡한 IPA 부호를 냅두고 굳이 저런 한글 변형을 쓸 사람이 있겠나" 같은 이의 제기도 물론 있다. 이건 요즘처럼 AI네 빅데이터네 머신러닝이네 떠들어대는 시절에 신세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인기 분야라고는 할 수 없다. =_=;;

발표 자료 중에는 북한에서 유니코드 위원회에다 '한글' 대신 '조선글'이라는 명칭을 써 달라 뭐 이렇게 영어로 이의 제기 메일을 보냈던 것의 캡처 화면이 잠시 지나갔다. 북한은 국가· 민족 정체성과 관련하여 한(韓)이라는 글자를 아주 싫어하니까..
물론 북괴는 그래 봤자 회비도 잔뜩 체납된 상태에서 발언권이고 영향력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한글 배열 순서를 북한 식으로 해 달라, 최고존엄(김 일성 김 정일) 전용 문자 코드를 배당해 달라" 이런 요청 따위도 몽땅 씹혔으며, 유니코드에서 한글은 오로지 100% 남한의 관행대로만 배당되었다.

북한이 작성한 이메일을 쭉 훑어보니 byte를 bite로 잘못 써 놓은 게 보였다. ㅡ,.ㅡ;;
하긴, '자전거'도 bycicle이라고 쓰기 쉬운 와중에 I와 Y를 헷갈리는 거 이해는 된다.
게다가 4비트 nibble도 '야금야금 물어뜯어 갉아먹다'라는 뜻이 있으니, 그 다음 byte 역시 bite와 전혀 무관한 명칭은 아니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22 08:31 2018/10/2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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