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뒷차를 배려하지 않는 저속 차량은 사회악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 차로가 줄어드는 곳으로 합류하거나 어디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깜빡이를 켜고 아가리를 들이미는데도 집요하게 양보 안 해 주고 기어이 지가 먼저 지나가는 뒷차
  • 우물쭈물 하다가 갑자기 내 차 앞으로 끼어들고 차로 변경하는 차

이런 차를 보면 그렇게 크게 열받지 않는다.
뭐, 나도 저 상황에서 양보해 주기 싫기는 마찬가지이니 남의 입장에서 역지사지로 생각한다. “에라이 뭐가 그렇게 급하냐~” 한 마디 툴툴대기만 하고는 잊어버린다.

내 앞에 갑자기 끼어드는 차는 어지간해서는 방어운전으로 대처한다. 운전 그따구로 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에서 빵빵 또는 상향등(더 심각한 경우)은 날리지만, 심하게 놀라거나 화난 상태에서 하는 건 아니다.
정말 어지간히 급브레이크를 밟게 만들고 내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할 정도가 아니라면 난 이것도 관대하게 넘어간다.
내 앞에 차가 끼어드는 게 싫으면 니가 앞에 틈을 안 주고 앞차에다 바짝 붙어서 운전했어야지? 이건 따지고 보면 내가 원인을 제공한 것도 있다.

내 옆으로 쌩~ 추월해 가는 차는? 아이고오 참 기백 있게 운전하는구나!! 응원도 해 주고 내가 N차로로 자진해서 비켜 주기도 한다. 빨리 가고 싶은 차가 1차로로 쭈욱~ 직진해야지.

그에 비해서 나를 제일 열받게 하는 놈들은 누구냐 하면 지 앞에 공간이 뻔히 있는데도 최선을 다해서 바싹 붙어서 빨리 진행하지 않는 앞차이다.
당연히 편도 1차로, 도로 정체, 진출입로 등 추월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어차피 앞에 빨간불 신호대기여서 빨리 가는 게 무의미한 상황인 건 제외, 그리고 빠릿빠릿 가감속하기가 어려운 대형 버스· 트럭의 경우도 논외로 친다.

저~~ 뒤에는 빠져나가려는 차들이 1~2km 가까이 줄지어서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데.. 정작 앞의 분기점에서는 차들이 간격도 넓고 쌩쌩 나간다.
이러니 뒤에서 순순히 줄서는 차들은 바보가 되고, 앞에서 끼어들고 새치기를 하는 게 당연한 관행이 된다.
이런 꼬라지를 내가 전국의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들에서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이거는 끼어드는 차를 단속할 게 아니라, 빠릿빠릿 가지 않는 앞쪽 차를 단속해야 해결 가능한 문제이다.

2차로 이상의 도로에서 2대 이상의 차가 모든 차로를 점거해서 나란히 천천히 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정말 성질 같아서는 총으로 갈기거나 미사일 날려서 박살내 버리고 싶다.

나는 끼어들기 양보를 해 주지 않는 차, 내 앞에 갑자기 끼어들어서 브레이크를 밟게 만드는 차보다도..
저렇게 답답하게 가는 차가 훨씬 더 짜증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훨씬 더 싫다. 사고를 직접적으로 유발할 뻔한 차보다도 저런 무개념 저속 정속충이 훨씬 더 싫다.

과속, 난폭운전, 칼치기, 우측추월을 단속할 게 아니라 그런 운전을 유발하는 느릿느릿 원인 제공자를 척결해야 된다! 과속이 나쁜 게 아니라 도로의 흐름을 깨는 게 나쁜 거다.

그리고 교량과 터널이라 할지라도, 일정 규격 이상을 만족하는 곳은 차선을 점선으로 바꾸고 추월과 차로 변경을 제발 제발 좀 허용해야 한다.
요즘 고속도로 터널들은 정말 엄청나게 길다. 조명도 잘 돼 있어서 밝고 하나도 위험하지 않다.
수 km에 달하는 긴 구간을 이 민족의 웬쑤인 1차로 저속 차량 꽁무니만 바싹 쫓아가라는 건 그냥 운전하지 말고 포복으로 기어가라는 소리와 같다. 왜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없는 걸까?

이 사람들은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28시간이어서 시간이 남아돌아서 천천히 가는 걸까. 아니면 조센징들은 지능이 떨어져서 저런 말도 안 되는 통제 없이는 터널을 도저히 안전하게 주행할 능력이 없는 걸까?
국민성이 너무 순하고 착해 빠져서 저런 악법에도 군말없이 그냥 따르는 걸까? 막연한 안전이라는 미명 하에 과잉 규제에 까스라이팅 당하지 말아야 한다.

이거 뭔가
“도둑이 강도보다 더 나쁜놈이다” --강도는 남에게 당당하게 칼 들이밀고 위협해서 강제로 뺏는 수고(?)라도 하지만, 도둑은 치사하게 남 안 보는 데서 슬쩍 하는 상 찌질한 놈이기 때문-- 내지,
“남의 물건을 훔친 것 자체보다도, 그러고도 도망을 제대로 못 쳐서 멍청하게 붙잡힌 게 더 큰 잘못이다” (스파르타 -_-)
이런 사고방식 같은데.. -_-;;

적어도 나는 운전에 대한 알고리즘, 철학이 저렇다.
내가 빨랑빨랑 가고 싶어하는 것만큼이나 남이 빨랑빨랑 가고 싶어하는 것을 존중한다. 큰 권한과 큰 책임을 같이 추구한다. 최소한 내로남불은 절대 아니다.

2. 지나친 과잉단속도 사회악

새벽에 주변에 차가 없으면 아무 위험 요인이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세게 밟아도 된다.
반대로 차가 많으면 어차피 막혀서 과속을 하고 싶어도 못 한다.

차가 많건 적건 어떤 경우든 과속 단속 따위는 천하에 쓸데없고 필요하지 않다. 굳이 단속할 거면 시속 200km 이내로, 150km 이내 단속 정도만 하면 된다.
커브나 언덕 경사 때문에 전방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곳에서 곧바로 교차로가 튀어나올 때..
이런 극단적인 지형이나 상황이 아니면 우리나라 90%~95%에 달하는 단속 카메라들은 내가 보기에 필요하지 않다.

안 그래도 이 사탄 마귀 구간단속 때문에 열받아 죽겠는데, 그런 곳이라도 추월차로는 비워 둬야 한다.
실제로 단속당하지 않는 최대한의 속도로.. 최선을 다해서 주행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곳에서 옳다구나 1차로 등 여러 차로를 막으면서 심지어 그 단속 속도만치도 내지 않고 세월아 네월아 저속 정속으로 가고 있는 미친X들도 생각보다 많다.

왜, 학교에서 누구 한명 잘못했다고 단체기합.
물건 훔쳐간 도둑이 자백할 때까지 아무도 집에 못 가게 하고 단체기합 주는 거..
전쟁 중에 누가 적군에게 협력했다는 죄목으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몰살하고 지도에서 지워 버리는 거 말이다.

구간단속이라는 것도 저런 단체기합이나 민간인 학살과 동급으로 비인간적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이고 폭압적인 조치이다.
몇몇 등신같은 사고 유발자 때문에 수많은 다른 선량한 운전자들이 다 잠재적인 사고 유발자로 매도당하고, 최선을 다해 빠르게 달릴 권리를 빼앗기기 때문이다.

천천히 가고 싶으면 그냥 맨 가 n차로만 이용하면서 뒷차에게 얼마든지 비켜 주기만 하면..
그리고 방향 전환할 때 깜빡이와 비상등(고맙, 미안)에 조금만 더 관대해지면..
지금 우리나라 교통사고의 70% 이상, 삿대질 보복운전 싸움질은 99.9%가 사라진다. 내가 장담한다.

"환경은 후손에게서 빌려 쓰는 물건이고, 도로는 뒷차 운전자에게서 빌려 쓰는 공간이다"
이걸 전국 모든 자동차 운전 학원들의 원훈으로 삼고 뼛속까지 교육시키고 세뇌시키면 된다.

시속 150으로 쌩쌩 밟으면서 서울까지 2시간 걸릴 걸 1시간 만에 가고, 1시간 걸릴 걸 40분만에 갈 수 있으면
집이 서울에서 더 멀어져도 되고, 집값이 안정될 수 있고 출산율도 더 올라갈 수 있다.
교통문화 선진화 고속화 고도화만이 이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살 길이다!!
이래야 대한민국이 노벨 과학상을 배출할 수도 있다!

미국, 일본 나라들은 100V 전압을 울며 겨자 먹기로 쓰지만 그래도 장기적으로 수십 년 간격으로 110, 120 이렇게 찔끔찔끔 승압을 진행한다고 한다.
그것처럼 우리나라 도로들의 제한속도도 100이던 것을 차차 110, 120으로 올려서 150~200 정도는 찍게 해야 한다. 요즘 차들 성능 얼마나 좋으며 도로도 얼마나 시원스럽게 잘 뚫려 있는데..

화 있을진저, 새벽에 무슨 어린이 보호 개소리 하면서 차들을 30km로 포복시키는 미친놈들이여!
그야말로 길거리의 사탄 마귀 아니겠나.
아니, 이런 정책이 시행되는 것 자체가 이 민족의 악에 대해 하나님이 내리는 심판이 아닐까 싶다. 회개해야 된다.

민식이법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구간 단속을 거의 다 없애겠다고, 시내 50km/h 제한을 6~70으로 완화하겠다고, 학교 주변 1년 내내 30km/h 제한을 폐지· 완화하겠다고 공약하는 대선 후보가 있다면..
난 누구든지, 정당 불문하고 정말 찢이나 허 경영에게라도 표를 줄 의향이 있다.

3. 시대별 혐오 트렌드

(1) 2010년대 초에는 '김여사'에 대한 대중적인 편견과 혐오가 기승을 부렸다.
인천대교 마티즈 사고와 인천외고 운동장 사고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면서 기폭제 역할을 했었다.

(2) 그리고 자동차의 세계에서 급발진이라는 게 거론되고 대중적으로 이슈화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때는 도요타 리콜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왜, 미국에서 여느 운전자도 아니고 운전의 달인인 고속도로 순찰대원이 '진짜배기' 급발진 사고로 희생됐으며, 도요타에서도 자기 차의 페달 쪽 결함을 인정하여 대규모 리콜을 시행했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현대 같은 국내 메이저 자동차 제조사들이 눈총과 욕을 많이 먹었다. 안 그래도 내수 차량을 수출 차량보다 훨씬 더 원가 절감해서 허접하게 만든다는 음모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데 "뭐가 켕기는 게 있어서 운전 기록 장치를 공개하지 않느냐, 무슨 결함을 숨기고 있느냐~~? 영업기밀 핑계 대지 마라" 이런 식으로 말이다.

(3)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대형 버스· 트럭 운전자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부각됐다. 영동 고속도로 봉평 터널(2016)이라든가 그리고 경부 고속도로 양재 IC 인근 사고(2017)가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졸음운전 사고는 고의성 없는 안타까운 실수라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혐오 여론이 조성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4)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엔 디젤차, 전기차 등 특정 제조사 차량(엔진이건 배터리건)에서 화재가 유난히 잘 발생한다는 루머가 기승을 부렸다.
글쎄, 그 루머가 통계 오류로 인한 부당한 편견인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기름차도 비슷한 빈도로 불이 났다, 타 제조사 차량 대비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등등~)

다만, 요즘 자동차 제조사들이 원가 절감 명목으로 제품의 품질 관리를 옛날처럼 빡세게 꼼꼼하게 한땀 한땀 장인 정신을 발휘해서 하지도 않는 것 같다.
뭐 이건 자동차뿐만 아니라 철도, 항공 등 여러 산업· 공업들의 공통적인 트렌드이기 때문에 특별히 이상한 현상까지는 아니다. 오죽했으면 굴지의 여객기 제조사이던 보잉조차 일부 기종에서 2~30년 전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어처구니없는 품질 결함을 방치해서 추락 사고를 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리고 요즘은 교통수단들도 온통 컴퓨터의 통제를 받는 전자기기이고 제조 공정이 극도로 정밀하고 민감해져 있다는 것도 감안할 점이다. 옛날 자동차처럼 마냥 무식하게 튼튼하고, 신뢰성이 보장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옛날 자동차에는 존재하지 않던 급발진이나 자연발화 같은 이슈가 간혹 발생하는 것 같다.

(5) 그리고 2020년대 이후 요즘은 고령 운전자에게 비난과 혐오의 화살이 많이 쏠리는 추세이다. 김여사나 자동차 제조사가 욕 먹던 시절과 비교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가 악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렸으면서 개나 소나 양치기 소년마냥 급발진 호소를 해 댄다. 이러니 진짜 급발진조차 주장하기 어려워지고 급발진을 공식 부인하는 자동차 제조사가 오히려 대중적인 실드를 얻을 지경이 됐다.

늙은이들은 어지간하면 운전 면허를 반납하라고 나라에서 호소를 한다.
수십 년 뒤에 저출산 대비 넘쳐나는 노인들 복지를 감당 못 하다 보면 나라에서 면허에 이어 생명도 자진 반납하라고.. 품위 있는 죽음을 미화하는 캠페인도 많이 내보내지 싶다.;;
철딱서니 없는 젊은이들은 킥라니 사고가 문제이고, 늙은이는 머리가 깜빡깜빡 해서 자동차 사고를 내는 게 문제이다. 성별 젠더 갈등이던 게 연령 세대 갈등으로 바뀌는 것 같다.

(6) 저런 것 말고 천인공노할 음주운전 인명 사고는 예나 지금이나.. 2010년대 초나 2020년대나 변함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왜 이렇게 솜방망이인지.. 이 나라의 법은 도대체 누구의 인권을 지켜 주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4/11/02 08:35 2024/11/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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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한번씩 했던 말들이긴 하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나열하고 한데 대조· 비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니 이렇게 한번 더 개념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1. 비킹: 예정 vs 자유의지

난 기회가 된다면 킹 제임스 진영의 밖에 있는 제도권/일반 교회 신자와 다음 주제들에 대해 언제든지 진지하게 토론해 보고 싶다.

  • 님 다니는 교회· 교파에서는 예정과 자유의지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
  •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 선과 악을 분간 못 하는 어린 아기는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어찌 될까? 이런 의문에 대한 댁들의 생각은 어떤가..?

난 이 주제에 대해 극도로 단순화시켜서 비약해서 말하자면..
"십자가 이전에는 알미니안(자유의지), 그 이후부터는 칼빈(섭리, 예정, 영원한 구원)"설을 개인적으로 지지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을 분간한다.

성경에는 당연히 절대자 하나님의 주권과 재량, 예정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마다 환경 처지가 제각각이고 신체· 지능 리소스도 제각각이다. 하루 종일 일한 품꾼이건 마감 1시간 전에 온 품꾼이건 동일한 일당을 받았다는 포도원 비유도 있다. 모태신앙 구원도 있고, 십자가 강도 같은 끝물 구원도 있다.

(1) 그러나 이건 개개인의 구원 여부가 엿장수 마음대.. 아니, 하나님 마음대로라는 얘기가 아니다.
미리 아심도 있고 구원받은 사람의 신분 변화가 '예정'된 건 있지만, 그게 로보트 마냥 개개인의 구원 여부를 말하는 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정을 수학 집합에다 비유하자면 원소나열법이 아니라 '조건제시법'이다. 울나라 법에다 비유하자면 특별사면이 아니라 일반사면을 말하는 거다.

"파라오의 마음을 더 강퍅하게 만들겠다" 이건 스스로 삐딱서니 타기 시작한 악인의 벡터의 크기 정도나 하나님이 더 키워 버리시겠다는 얘기이다, 아예 벡터의 방향을 마인드 컨트롤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시험이나 함정수사는 기회제공일 뿐, 아예 대놓고 죄 지으라고 꼬드기는 범의유발이 아니다.

어떤 경우건 "신이 누구누구는 처음부터 죄인 역할극을 하게 만들려고, 지옥불로 떨굴려고 창조했다", "하나님이 악도 필요해서 같이 창조했다" 같은 식의 결론은 난 절대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아 그래서 하나님이 악도 필요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가스실도 냅두고, 북괴 정치범 수용소도 저렇게 냅두고 731 부대와 캄보디아 킬링필드도 다 묵인한 건가?
그러면 죄의 책임이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 있는 꼴이 된다. 그런 하나님 믿으라고 불신자한테 복음을 참 잘도 전할 수 있겠다.

저걸 믿을 바에야 차라리 진화론이 낫다!! 진화론은 "서로 죽고 죽이고 속고 속이고 중독시키고 말려 죽이는 자연의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신이 만든 게 아니라면 오랫동안 스스로 진화해서 저리 된 거다"라고 이렇게 변명하는 거라도 있다! 알겠는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죄악까지 전부 하나님이 의도한 빅픽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착각하는 거다.

(2) 이와 같은 맥락으로.. 아기· 영유아가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가 도대체 신학적으로 왜 논란이고 논쟁거리인지 난 이해되지 않는다.
예수님 탄생 당시에 헤롯 왕에게 학살당했던 2살 이하 아기들이 다 원죄 때문에 지옥 갔다면.. 나는 정말 기독교 안 믿었을 거다. 나부터가 부끄러워서라도 그런 신 믿으라고 주변에 못 전한다.

성경에 따르면 그 어떤 흉악범죄자라도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당 갈 수 있다. 반대로 예수 안 믿고 자기 죄 가운데 죽었다면 그 범죄자를 체포한 경찰이나 사형 판결을 내린 판사 검사, 심지어 그 범죄자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라 해도 지옥 간다.
이건 불신자 입장에서는 선뜻 동의나 납득이 안 될 수 있지만, 이게 기독교 교리이다. 허나, 이런 기독교조차도 예수님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능력조차 아직 없는 아기까지 몽땅 지옥으로 보내는 미친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3) 내가 간극 재창조를 적극 지지하는 이유도 겨우 젊은 지구 오래된 우주 같은 과학 연대기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6천 년 전 6일 창조가 전부라면 사탄 마귀는 도대체 언제 창조됐고 언제 타락했는데? 인간은 죄를 짓는 바람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후손들이 대대로 고생하게 됐구만, 그럼 저놈은 언제 어디서 반역해서 무슨 처분을 받았는데? 최소한 인간보다는 훨씬 더 큰 스케일의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는가?
이게 이전 세상의 멸망과 간극 없이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러니 성경에는 하나님의 주권 예정도 있고, 인간 쪽의 자유의지도 있다. 가중치가 반반이고 상호 보완적이다. 마치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세 분과 한 분..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 거의 그런 급이다. 서로 자기만 옳다고 피터지게 싸울 주제는 아니어 보인다.

이것 말고도 킹 진영과 비킹 진영 간에는 교회와 이스라엘(유대인)의 관계, 전천년주의 vs 무천년주의 같은 관점도 차이가 있다. 더 깊게 들어가면 세대주의도 나온다만, 이 이슈는 이 글에서는 일단 논외로 하련다. 벌써 글이 너무 길어졌으니 말이다.

2. 킹: 영어 vs 원어

자, 킹 제임스 진영은 한킹이고 흠정역이고 표킹이고 어느 역본 진영을 가건, 위에서 논했던 저런 교리 문제는 그럭저럭 다 일치한다. 이견이 없고 교통정리가 돼 있다. (적어도 난 그런 걸로 알고 있음) 나는 저 관점이 매우 합리적이고 건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좁디좁은 진영을 지지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킹 제임스 진영들이 시급하게 필요한 게 뭐냐 하면.. 원문과 원어, 원어와 영어 사이의 개념정리 교통정리이지 싶다.
이게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자체적으로 승패가 가려지질 않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작은 킹 진영들이 더 쪼개지고 분열되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 역본이 제일 짱이네 하면서 도토리 키 재기 대립이 끊이질 않는다. 이거 심각한 지경이다.

일단, 원문 레벨은.. 정말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루터고 칼빈이고 옛날 종교개혁자 대선배들은 마 5:22가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화내는 자"라고 적혀 있는 바른 본문 계열의 성경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오늘날의 비킹들은 그렇지 않다. 그냥 무조건 화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다.

요일 5:7 요한의 콤마 삼위일체 구절도 마찬가지. 비킹이 삭제한 게 아니라 오히려 킹이 후대에 첨가한 거라고 반박하는 분도 있다. 근데.. 이때는 킹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아예 가톨릭 예수회의 두에 랭스 성서조차도 이 구절이 들어가 있었다. 빼면 뺐지 도대체 누가 언제 왜 뇌피셜을 펼쳐서 첨가를 했다는 말인지..??

킹 유일주의를 반대하고 반박하는 그 어떤 목사, 신학자도 벧전 2:2가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영적으로 자라려면"이 틀렸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려면"이 사본학적으로(?) 맞다고 자신의 학자적 양심과 손모가지를 걸고 맹세하는 사람..? 난 못 봤다.

이런 것들 말이다. 이건 번역 오역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원문 내용이 변개되고 달라진 사항이다. 다시 말하지만 옛날 칼빈이나 루터나 에라스무스 이런 사람이 번역했거나 봤던 성경이랑, 지금 현대인들 대다수가 보는 성경이 이런 건 서로 같지 않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나는 킹 쪽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말씀 보존 학회가 다른 행실이나 언변에서 제아무리 깽판을 쳤어도 걔네들이 이 주제에 관해서 말하는 건 절대적으로 맞다. 나는 저쪽을 지지한다.

자 여기까지는 한킹 흠정 표킹 어느 진영들도 일치한다. 그러나 그 뒤에 번역을 함에 있어서 영어와 원어의 비중을 서로 어떻게 둘 것인가 하는 것에서 또 예송 논쟁 노론 소론, 탕수육 부먹 찍먹 같은 당파싸움이 벌어져 있다.

내가 예전에도 말했지만, 이 바닥 대안 성경 1호라 할 수 있는 말보회 한킹은 영어 킹을 그대로 곧이곧대로 중역한 성경이 아니라, 영킹과 동일한 원어 대본을 번역하고 영킹을 일부 참고만 한 성경이다. 그래서 여기에 만족하지 못해서 원어 누룩(?)을 좀 뺀 게 흠정역이고, 흠정역보다도 더 과격하게 영어 직역을 추구한 역본이 표준역.. (심지어 도량형까지 마일, 파운드 그대로 썼을 정도로. =_=)

예를 들자면 "영어로 같은 단어이면 우리말로도 (가능한 한 어지간해서는 몽땅) 다 같은 단어로 번역돼야 한다", "it came to pass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 "God forbid는 하나님이 금하신다라는 뜻을 넣어서 번역해야 한다" 이런 거 말이다. 영어 KJV는 영어권 화자에게만 최종 권위인가, 아니면 원어 원문과 대등한 전세계의 최종 권위인가???

사실 성경 원어 원문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꽤 함축적이고 모호성이 많다. 뜬금없이 나오는 it he 대명사가 뭘 가리키는지 애매한 게 많고, 시제가 과거 미래 중 뭔지, 대화 인용이 어디까지이며 어디부터가 내레이터인지.. 알쏭달쏭한 게 많다.
이런 부분에서 한킹은 영킹과 자잘하게 미묘하게 일치하지 않는 게 있다. 그러니까 오역 변개는 분명 아닌데 어쨌든 영킹과는 미묘하게 다른 이게 오로지 영킹 최종 권위 순수주의(!!!) 성향인 분들한테는 성이 안 차는 거다. =_=;;

그럼 원어가 헷갈릴 때는 무조건 영킹대로 번역만 하면 되느냐? 그런데 영어는 또 영어만의 중의성이 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자면 전치사. for을 '위하여'라고 할지, '인하여'라고 할지?? of나 in은 또 얼마나 뜻이 다양한가?
제아무리 교리적인 편견 없이 기계적으로 곧이곧대로 번역만 했다고 한들, 교리와 해석을 전혀 가미하지 않고 번역을 옳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킹 제임스 영어는 현대 영어와는 뜻이 달라진 것도 여럿 있고, 이럴 때도 번역자의 해석과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영킹이 단어 뜻을 스스로 정의하는 내장사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대로 엄밀한 뜻 구분 없이 단순히 운율이나 패러프레이징 차원에서 비슷한 단어를 일부러 다르게 늘어놓은 것도 있다. slay와 kill, create / form / make 같은 거.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고 이 블로그는 킹이나 비킹, 심지어 불신자까지 다 보는 공간이니 내가 내막을 자세하게 다 늘어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거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앗싸리 오로지 영킹 그대로 번역만 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진작에 해결됐을 텐데 그것도 아니니 참 문제다.;;

그러니 이 동네에서는 아까처럼 예정이냐 자유의지냐 이런 거 논쟁은 할 필요 없고, 그 대신 비킹 입장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할 희한한 주제를 갖고 논쟁을 벌이는 지경이다.

아 끝으로.. 영킹에 하나님 영감이 또 짠~~ 임했건, 자필원문에 임했던 영감이 번역과 필사 과정에서도 쭉 내려오고 '보존'되어 왔건.. 결과물은 어쨌든 지금 우리말 성경도 영감으로 주어져 있다는 얘기 아니냐?
이거 갖고도 너무 쓸데없이 머리 쥐어뜯고 싸우지는 말자구우~~ 아멘!

Posted by 사무엘

2024/10/30 08:35 2024/10/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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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말 근황

요즘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겠다.
글이 마를 일이 없을 거라 여겨졌던 내 블로그가 예약분이 다 고갈됐고.. 새 글이 1주일을 넘어 열흘씩이나 끊겼다.; 으악 세상에, 이건 지구 멸망 급의 이변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사실은 글감이야 많다. 기승전결 형식을 갖추고 이 블로그 글 스타일로 다듬는 게 금방 되지 않을 뿐이지.

연애와 결혼이란 게 사람 인생에 정말 큰 영향을 끼치는가 보다.
솔까말 지난 몇 달은 내 개인 일과 대신 여친, 아니 약혼자, 아내(진)와 늘어지게 놀고 추억 만드는 것에 1순위로 시간을 할애해 왔다. 많이 돌아다니고, 생전에 안 보던 일본 애니들도 잔뜩 보고.. 그랬더니 시간이 너무 순식간에 잘 간다. ^^ (물론 순수하게 놀기만 한 건 아니고, 각종 결혼식 준비도.. =_=;;)

평생 영원히 이런 식으로만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올해 이 기간과 앞으로 한동안은 여친한테 더 집중할 것이다. 본인은 그에 대한 후회가 없다. 금덩이를 주고도 못 구할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나이 40이 넘어서야 만나게 됐기 때문에. 이제 다음달 초에 결혼 예정이다.

뭐, 10월도 벌써 다 가니 반려동물과 반려식물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호박 농사는 이제 끝물이고, 그 대신 올가을에 혜성처럼 등장한 꼬냉이를 더 많이 소개하도록 하겠다.

1.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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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하순에 맺혔던 12호 열매는 이렇게 무럭무럭 잘 자랐다. 위의 사진은 각각 9월 25일, 9월 30일, 10월 2일, 10월 8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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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으로 이 아이는 지난 한글날 연휴를 즈음해서 애호박 상태일 때 땄다. 수분 성공 후 약 3주 동안 저 정도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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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집 옥상 아지트에서 얻은 마지막 호박은 바로 저 13호였다. (10월 13일에 개화)
10월이 넘어가고 날씨가 추워지자 호박이들이 암꽃을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만들기 시작했다.
11호 이후에 12호가 피는 데 50일, 12호 다음으로 13호가 피는 데 3주 반..

수꽃은 펜촉이 생기고 나면 거의 하루나 이틀 만에 바로 피는 반면, 암꽃은 호박의 입장에서 만들기도 더 어려운지 피는 데 시간도 훨씬 더 오래 걸린다.
다만, 이틀 사흘이 넘게 펜촉에 노란색이 깃들지를 않고 있으면 그거는 꽃이 못 핀 채 시들어 버릴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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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10월 15일과 10월 17일의 모습이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호박이들이 수명이 다해서 그런지.. 이 13호는 예전의 호박처럼 무럭무럭 잘 자라지 못했다.

13호가 피던 당시에 얘 말고도 곳곳에 암꽃 씨방이 생기고 있었고, 무려 14~16호 후보 암꽃이 하루 이틀 간격으로 계속 피기도 했다. 심지어 씨방과 꽃은 아주 크고 튼실했다. 본인은 12호와 13호에다가 했던 것처럼 꽃가루를 묻혀 줬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수분을 전혀 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수분이 실패했고, 열매가 더 자라지 못했다.
심지어 17호 후보도 있었는데, 얘는 꽃이 피지 못한 채 그대로 시들어 떨어졌다. 13호를 끝으로 호박들이 명줄이 다하기라도 하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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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3호는 농사를 끝내고 호박들을 정리할 때 요 줄기째로 통째로 땄다. 내 주먹보다도 작고, 양파나 귤과 비슷한 가냘픈 애호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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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날씨가 잠깐 아주 추워졌을 때 폈던 호박꽃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내 경험상 호박꽃들도 노란색이 덜 배고 아주 창백해지더라.
그런데 그날 이후로 날씨 자체는 낮 기온이 20도 중반까지 올라가면서 호박들이 아주 못 살 지경은 아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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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지난 10월 중순쯤에 꽃이나 열매 말고 그냥 평범하게 호박 키우던 모습이다.
올해도 호박이 있어서 내 인생이 즐거웠다. 건물 옥상에서 호박 키우는 건 이제 올해가 마지막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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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건물 옥상 말고 다른 야생(?)에다 몰래 심었던 호박이들이다.
테러를 많이 당해서 10월 초까지만 해도 저랬던 게 죽고 쪼그라들어서 결국 저 지경이 됐다.

하지만 완전히 죽은 줄 알았던 줄기에서 그래도 용케 새순이 돋아서 파릇파릇하게 또 자라 있는 게 기특하다.
얘는 꽃이나 열매를 더 바랄 수는 없고, 길어야 2~3주 더 버티다가 11월의 추위 속에 장렬히 최후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2.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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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호박 다음으로는 고양이..
지난 9월부터 찔끔찔끔 내 근황글에 등장하기 시작한 그 턱시도 턱수염 꼬냉이는 우리 커플을 자기 전담집사로 간택했고=_=;; 완전히 상팔자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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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낮에는 혼자 자기 나와바리를 쭐래쭐래 돌아다니다가 저녁과 우리 작업실로 돌아와서 자는 게 일상이 됐다.
얘는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는 딴 길고양이들과는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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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닝겐들 앉는 소파 위를 점령해서는 온몸을 비틀며 난리를 쳤다.
너무 포근해 죽겠다고 아주 그냥 웅변을 하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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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얘를 실내까지 상시 들여놓지는 못한다. 그 대신 신발장 현관에다가 꼬냉이를 위한 편의시설을 좀 설치해 놨다.
사람 입장에서는 신발 발꼬랑내가 진동하는 마굿간 같은 곳이지만, 길고양이의 입장에서는 이것만으로도 호텔 특실이 따로 없을 것이다.

바깥은 춥고 바람 들어오고 사람이나 자동차나 심지어 멍멍이들도 수시로 돌아다닌다. 잠시라도 긴장을 풀 수 없다. 그에 비하면 여기는 얼마나 따뜻하고 아늑하고 안전하고 편안하겠느냐 말이다.
얘도 밖에 나가서는 주변의 다른 길고양이들과 접촉을 하는 것 같던데, 그때는 자기들끼리 무슨 얘기를 나눌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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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달쯤 전과 달리, 일단 얘가 물을 잘 마신다. 정작 지금보다 훨씬 더 더웠던 초창기엔 물을 입에도 안 대는 것 같더니만 태도가 달라졌다. 우리와 많이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경계심을 더 해제한 것 같다.
  • 우리 앞에서 눈 지그시 감고 눕는다거나, 저주파의 '그르르르르릉' 소리를 자주 내기 시작했다. 이 역시 이곳을 아주 편하게 생각하고 있고, 여기에 있으니 기분 좋다는 걸 뜻한다고 한다.
  • 그리고 이놈의 츄르.. 이젠 츄르 스틱만 봐도 환장을 한다. 애가 벌떡 일어나고 눈빛과 표정이 달라진다. 츄르는 정말 고양이의 마약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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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님이 평소에 반려묘 유튜브를 즐겨 보는 편인데.. 어쩌다 보니 우리도 그 영상 내용을 얼추 실습을 하게 됐다. =_=;;
글쎄, 난 저 꼬냉이가 야생 본능을 발휘해서 벌레라든가 쥐(!!!)도 잡고, 심지어 보은 차원에서 우리한테 그런 거 선물도 좀 줬으면 싶다. 그래야 사료값을 하는 것이고 인간의 입장에서 고양이 키우는 보람을 느끼지 않겠는가?
하지만 여친님은 그런 건 사양하더라. 댓가를 바라는 것 없이 고양이에게 오로지 내리사랑만을 베푸는 것 같았다. ^^

우리가 신혼여행을 가면 거의 1주일 가까이 얘를 집에 들여다놓지 못할 텐데.. 그때는 평소처럼 집 근처 야생에서 잘 생존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10/27 08:35 2024/10/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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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

백화점· 쇼핑몰 정도가 아니라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라면.. 상승· 하강 어느 방향이건 걸어서 좀 급하게 이동하려는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 한줄(오른쪽)로만 서고 한쪽(왼쪽) 줄을 비워 두는 게 당연한 매너이다. 요즘은 두 줄로 에스컬레이터를 꽉꽉 채운 채 서 있으라는 오지랖 홍보 캠페인은 그만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물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도의적으로 무릎에 힘 좀 주면서 발을 살살 디뎌야 한다. 특히 내려갈 때 말이다.. 붙박이 콘크리트 계단을 뛰어 내려갈 때처럼 쿵쿵거리지 말지어다.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면 막대한 수리 비용이 깨지며, 수리하는 동안 에스컬레이터를 아예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민폐 인간들 때문에 에스컬레이터에서 오르내리지 말라는 소리가 또 나오게 된다!!

자, 이렇게 가만히 서 있는 사람과 걸어가는 사람의 구분이 생기고 나면 말이다.
사람들이 엄청 몰리는 출퇴근 시간엔 말이다. 서 있는 사람 구획(오른쪽)은 줄이 엄청 길다. 그러나 걸어가는 사람 구획(왼쪽)은 빨리빨리 빠져나가기 때문에 줄이 짧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몸 움직이기 귀찮으니까 세월아 네월아 오래 기다렸다가 천천히 갈지,
아니면 빠릿빠릿 걸어서 몸 쓰는 대신, 덜 기다리고 빨리 이동할지..
승객이 자기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둘 중 하나를 공평하게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줄 서는 건 싫어서 걷는 구획에 갔다가, 에스컬레이터에 도달한 뒤에는 더 안 가고 서서 걷는 구획에 정체를 유발하는 거는 엄청난 민폐 행위이다. 무단횡단에 준하는 범칙금을 먹여서 처벌해야 된다.

개인적으로는.. 애초에 에스컬레이터들의 주행 속도를 지금보다 두세 배쯤 더 올려 주면 어지간해서는 사람들이 답답해서 걸을 생각을 안 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전기료라든가 안전사고 문제도 있어서 현실화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_-;;;

2. 승강장에서 줄 설 때

출퇴근 시간에 열차를 타려는 승객이 엄청 많고 승강장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을 때 말이다.
앞에 선 사람들은 제발 제발 맨앞 코앞까지 바싹 붙어 서라! 내가 고함을 지르면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 맨 뒤 사람들은 줄 설 공간이 없어서 난리인 거 안 보이나?

지금은 역마다 스크린도어가 다 깔려 있다. 선로 쪽으로 바싹 붙어 서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 뒤에서 누가 날 떠밀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 없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열차 안에 빨리 빨리 타서 자리가 있는지 1초 만에 스캔해야 하지 않나? 왜 이렇게 시간관념이 없고 느긋한지 모르겠다.

마치 버스나 택시에서 승객이 내릴 때 개문사고를 예방하려면 차를 길가에 빈틈 없이 바싹 붙여서 세워야 하듯, 지하철 승객도 스크린도어 앞에 바싹 붙어 서는 게 공중도덕으로 정착해야 한다.
이래도 띄엄띄엄 서 있으면.. 그 공간으로 아무나 새치기 해 들어올 수 있게 법으로 허용해야 된다. 법과 질서는 자기 권리를 스스로 부인하고 포기하는 사람까지 밥 떠먹여 주면서 보호하지는 않아도 된다.

난 이런 광경을 보면 진짜로 새치기를 할 생각이다. 누가 저지하면 "아, 줄 서신 거 아닌 줄 알았네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물러날 거고. excuse me나 sorry 같은 말은 절대로 안 한다는 게 핵심이다. -_-;;

그리고 하나 더.
줄 길이를 줄이기 위해서 지하철 회사에서는 출입문의 각 방향별로 일렬이 아니라 '2열 종대'를 권장하곤 한다. 아까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일렬이고, 승강장의 양쪽 끝에는 2열인 것이다.
이거는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옆에 2열로 채워 줄 서는 게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는 어렵다. 그러니 발자국 표식을 그린다거나 시스템적인 장치를 설치해서 이 관행을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은 뒤에 계속 추가되는 사람들이 설 공간도 좀 생각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3. 열차에서 내릴 때

모든 교통수단이 그렇듯이 하차자들이 몽땅 다 내린 뒤에 승차자가 타는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하철의 하차자들은 일렬이 아니라 2열 종대로.. 출입문 공간을 꽉 채워서 내리도록 신경을 좀 써야 한다.

절대로... 한 출입문에서 어느 쪽은 일렬로 쭈루룩 줄 서서 타고, 어느 쪽은 일렬로 동시에 쭈루룩 내리지 않게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타는 줄의 반대 방향에서 줄 서 있던 승차자들의 승차가 늦어진다. 자리에 앉을 기회를 불공평하게 빼앗긴다. 이건 정의롭지 못하고 불공평한 처사이다. 선진국 문명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계몽하고 캠페인을 해야 한다!!!!

진짜 과장 좀 보태면.. 내리는 사람이 자기 양팔을 옆으로 쫙 뻗으면서 내리기라도 해서 승차와 하차가 동시에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이상이다.
지하철 얘기만 하려 했는데.. 생각난 김에 시내버스의 승하차와 관련된 이야기도 딱 둘만 늘어놓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1.
앞문으로 탔으면 제발 좀 차 안으로 빠릿빠릿 들어가라.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데 뒷문 승차를 강제하는 상황을 만들지 마라.
이러다 보면 원래 규칙대로 앞문으로 탄 사람들은 못 앉았는데 뒷문으로 슬금슬금 탄 사람이 뒷부분의 자리에 앉는 일도 벌어진다. 이건 부조리 병폐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2.
요즘은 좌석버스가 아닌 시내버스에도 좌석이 창측· 내측 2개가 장착된 경우가 있다.
근데 일부러 창측이 아니라 내측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개인적으로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개인적인 바람은 앞으로 두 정거장 안으로 내리는 사람이 아니면 혼자 내측 좌석에 못 앉게 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럴 때는 그 사람의 무릎을 좀 세게 끌고 접촉하면서 창측 자리에 앉는다. 남 배려 좀 하라고 경고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10/17 08:35 2024/10/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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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과 듣는 것의 차이

1.
그래픽 사진에 대해서 피부 주름 제거, 색감 명도 채도 보정 같은 온갖 '뽀샵질'이 존재한다.
그것처럼 사운드에도 잡음 제거는 말할 것도 없고, 노래 중에 쓸데없이 들어간 "헉 / 쓰읍" 숨소리 제거, 음량-음역 보정, 너무 커서 찢어지거나 뭉개진 파형 보정 등 갖가지 보정이 존재한다. 음반 음원도 그냥 만들어지는 게 절대로 아니다.

2.
그래픽에는 비트맵을 계단현상 없이 부드럽게 확대하는 휴리스틱 알고리즘이 있고, 산술 연산이나 AI를 동원해서 흐릿한 상을 복원하는 필터도 있다.
그것처럼 사운드에는 음고를 유지하면서 재생속도만 바꾼다거나, 재생속도를 유지하면서 음고를 변형하는 휴리스틱 알고리즘이 있다. (음파는 일반적으로는 음고와 속도가 같이 증가하거나 같이 감소하기 때문. 둘 중 하나만 변형하기가 어렵다)

3.
컴퓨터의 성능이 발달하면서 디지털 영상은 더 고화질로 리마스터링이 행해져 왔다.
3D 모델 소스가 있으면 렌더링과 영상 인코딩을 다시 하면 되고, 아날로그 영화 필름도 화질이 아주 좋기 때문에 이걸 그대로 다시 디지털화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오히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영상이 상대적으로 화질이 안 좋아 보인다. 종횡비도 16:9가 아니라 4:3이니 더 이질감이 느껴진다.
화질이 안 좋거나 아예 흑백인 옛날 영상의 경우 AI를 동원해서 '창작'을 해서 화질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음성은..??? 쌍팔년도 시절에 정립된 CD 음질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얘만 리마스터링 하는 경우는 딱히 없는 것 같다.
단.. 옛날에 PC 스피커로 어설프게 자연 사운드를 구사했던 게임 효과음들은 필요하다면 실제 사운드로 리마스터링 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도스용 황금도끼 게임의 효과음 말이다.;;

4.
음속은 광속보다 훨~~씬 더 느리다.
번갯불과 천둥 소리 사이의 텀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비행기만 해도... 관악산 같은 데서 좀 낮게 날아가는 걸 보시라.
비행기의 엔진 소리는 지금 비행기가 있는 곳보다 더 뒤에서 들리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카카오톡에서 말과 사진을 같이 보내다 보면..
발신자는 '말-사진-말-사진' 이렇게 보냈지만, 수신자는 '말-말-사진-사진' 이렇게 받게 되는 수가 있다. 사진은 아시다시피 용량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전송이 훨씬 더디다.
빛의 속도와 소리의 속도도 이런 부류의 차이가 존재하는 걸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곤 한다.

5.
대부분의 우주 사진, 천체 사진은 노출을 분~시간 단위로.. 심지어 며칠 단위로 하면서 빛을 어마어마하게 모으고 쬐어서 간신히 찍은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 암흑천지에서 무슨 풍경을 건지겠는가?
그렇게 노출하는 동안 한 곳만 뚫어지게 안정되게 보고 있어야 사진이 흐려지거나 망가지지 않는다.

그 반면, 태양 흑점 사진은..??? 정반대로 빛을 미치도록 줄이고 또 줄이고 특수하게 걸러내서 찍은 것이다.
현실의 태양은 겨우 저런 누런 주황색이 아니며, 흑점도 시꺼먼 색이 절대 아니다. 흑점이고 나발이고 아무 구분 없이, 맨눈으로는 차마 볼 수도 없는 미치도록 희고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올 뿐이다.
모든 광학 기기는 아무 조치 없이 태양을 직접 겨냥하는 건 마치 박격포 90도 직사와 동급으로 절대 금지이다.

그런 것처럼 빛뿐만 아니라 소리에도 비슷한 부류의 극한이 있다.
개인적으로 비행기 이륙하는 소리를 아주 좋아하는데 이건 평범한 장비로는 제대로 녹음을 하기 어렵다. 쿠르르르릉~~ 소리가 워낙 웅장(..)해서 파형이 다 넘치고 뭉개지기 때문이다.

영화나 게임에서 각종 총소리, 폭발 등을 보면 화염 비주얼은 실제보다 훨씬 더 과장해서 묘사하고, 폭음 같은 소리는 줄여서 묘사한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남자들 군대에서 수류탄 투척까지 갈 필요 없이.. 차끼리 부딪히는 교통사고 현장 근처에만 있어 봐도 쾅 소리에 크게 놀라게 된다.

6.
음파가 가청 대역을 넘어가면 초음파라고 불린다.
그러나 전자기파가 가시광선 대역을 넘어가면.. 그건 자외선 등 다른 전파가 된다.

7.
철길 근처에 서서 열차가 쌩~~ 지나가는 걸 들어보면 말이다.
같은 소리가 멀리서 날 때는 더 작게 들리고, 가까이서 날 때는 더 크게 들린다는 거야 당연히 상식이다.

그런데 이때 소리를 잘 들어 보면 음량만 작아지는 게 아니라, 음높이까지 변할 때가 있다.
까놓고 말해 ‘솔’ 소리가 그대로 fade out되는 게 아니라 “솔~~~ 파# 파 미..” 이렇게 된다는 뜻이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 보시라.
주행 중인 철도 차량 출사 덕질을 많이 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음향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왜 그렇지..???

이게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도플러 효과이다. 단순히 열차가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는 게 아니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소리의 진동수까지 변한다는 것이다.
이거 마치.. 지구가 둥글다는 걸 설명할 때.. 배가 멀어지면서 단순히 작아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면서' 없어져 버린다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_=;;

도플러 효과가 우주 레벨로 올라가면 음파뿐만 아니라 별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시광선까지 색깔이 바뀐다. 적색편이, 청색편이가 이것과 관계가 있다.
자동차나 야구공의 속도를 측정하는 스피드건도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서 동작하며, 생각보다 굉장히 정확한 결과를 낸다. 색깔만 보고 온도를 측정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4/10/15 08:35 2024/10/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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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보 저장, 상태 보관이란 걸 몽땅 실물로 해야 했음

세상에 컴퓨터와 정보 저장 매체라는 게 없던 시절엔..
길고 빽빽한 텍스트가 아니라 겨우 수 바이트, 수십 비트가 채 되지 않을 '객체 상태'도 일일이 다 실물로 관리해야 하니 참으로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 보드 게임의 말들은 잡히면 몽땅 다 즉사이지, HP 같은 건 없다. 윷놀이, 바둑, 체스, 장기..
그도 그럴 것이 각 말들의 HP가 깎이는 걸 또 별도의 기물로 구현하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 하다못해 죄수의 볼기를 줘 패도 매번 때릴 때마다 늘 "n대요~!!" 라고 크게 복명복창을 해야 했다. 정해진 횟수를 절대 틀리지 말라고.
(물론 단순 숫자 한두 개 정도는 마치 운동 경기 스코어 x:y처럼 종이 판떼기로도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태형을 집행하는 국가에서 굳이 그런 물건까지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

-- 교통수단에서 환승 할인이란 걸 구현하는 게 참 난감했다. 기껏해야 승차권에다가 특수한 구멍을 뚫어서 인증하는 정도?

-- 고속도로 톨비도 말이다. 요즘 고속도로는 국영과 민영 구간이 오락가락이고, 대도시에서는 개방식과 폐쇄식이 왔다갔다 한다. 거기에다 차종과 이용 시간대별 할인이 있고, 심지어 차로 수가 적은 고속도로와 많은 고속도로 간에도 미세하게나마 요율이 다르다..!! 이거 정확한 계산을 재래식 종이 통행권으로 하려면 톨게이트를 엄청 많이 만들어 놓고 매번 차를 세워야 할 것이다.

-- 대중교통은 자리를 알아서 찾아서 앉는 자유석 형태로만 운용 가능할 것이다. 좌석 지정 탑승권은 거의 불가능. 1980년대에 새마을호 열차에서 전산 승차권(고정석) 발매가 그만큼 파격적이었던 조치였다. 그 반대급부로, 새마을호는 일부 객차만 자유석을 운영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행정에서 이 복잡한 state 계산의 끝판왕은 운전자 벌점이지 싶다. 이건 3년이라는 유효기간이 존재하는 마일리지와 비슷한 개념이다.
유효한 벌점이 40점 이상이 되면 면허가 정지되는데, 면허정지에 기여한 벌점은 처분벌점에서는 빠지지만 누산벌점에는 남아 있고 이건 또 뭐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고... 나도 제대로 이해를 못 했다.

게임에서 이렇게 하면 HP가 깎이지만 이렇게 하면 HP와 관계없이 즉사(면허 취소)...;; 이렇다.
행정 전산화가 되기 전엔 이런 거 어떻게 관리했을까...?? 경이롭다.

2. 오늘날 같은 획기적인 무선 고속 통신 인프라가 없었음

-- 휴대폰이 없었을 때는 차를 운전하다가 사고 나면 보험사에다 연락을 어떻게 했을까..??
고속도로의 경우, 일정 거리 간격으로 긴급 통화가 가능한 전화기가 비치됐으며 일정 시간 간격으로 순찰차가 다니기는 했다. 그러나 고속도로처럼 잘 관리되는 도로가 아니라 시골 깡촌 농로나 산길이라면 정말 난감할 것이다.

참고로 카폰은 아직 엄청난 사치품이었다.
기계값도 값이지만 지금처럼 제한된 주파수를 쪼개고 쪼개서 수많은 사용자들에게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통신 기술과 인프라가 없었다. 카폰은 전화국과 교신하는 무전기보다 크게 나은 게 없던 지경..

그래서 지금처럼 전 국민이 무선 통화를 하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하긴, 더 옛날에는 유선 전화조차도 회선이 부족하고 자동 교환 기술이 부족해서 집집마다 개통하는 게 불가능했었다.

-- 쌍팔년도 시절, '브레인 바이러스'라는 악성 코드는 1985년에 파키스탄 사람이 만들었는데, 그게 1987년에 미국에서 첫 발견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에야 발견됐다.
무선 인터넷이 없던 시절엔 컴퓨터로 뭔가가 퍼져나가는 속도도 정말 끔찍하게 느렸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경.

-- 좀 더 옛날 얘기를 꺼내자면 레이더나 무전기라는 것도 2차 대전 시기에 발명됐다.
그 전 제1차 세계 대전 때만 해도 아직 전령이라는 게 현역이었다! 목숨 걸고 발품 팔아서 전방 소식을 후방에다 전하는 병과 말이다. 히틀러가 이 시기에 전령병 출신이었고 그것만으로도 부상 당하고 훈장도 받았을 정도였다.
심지어 비둘기 발에다가 편지를 묶어서 전하는 구닥다리 테크닉까지 쓰였었다.

하긴, 2차 대전 때는 말 탄 기병이 아직 현역이었다. 자동차라는 게 있긴 했지만 아직 너무 비싸고 귀했기 때문.. 우리가 누리는 교통 통신 인프라가 지금 같은 가성비를 갖추게 된 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3. 금융 거래도 전산화되지 않았음

-- 월급을 직접 현찰로 봉투에 넣어서 나눠줬다. 월급날 시즌에는 회사들마다 현금을 수송하느라 분주했다.
심지어 국제선 여객기를 조종하는 기장들도.. 도착지 공항에서 유류비를 지불하려고 돈다발이 들어있는 가방을 조종실에 싣고 다녔다.;;;

-- 신용카드라는 게 있긴 했으나.. 지금 우리처럼 간편하게 긁고 통신이 되는 형태가 아니었다.
가게에서는 손님이 카드를 긁었음을 입증하는 종이 전표 실물 뭉치를 잘 보관했다가 카드사에다 직접 청구하고, 카드사는 그걸 보고 대금을 지급했다. 옛날 신용카드에 카드 일련번호가 양각으로 돌출됐던 이유는 이걸 일종의 도장처럼 쓰기 위해서였다.;;; ㄷㄷㄷㄷㄷㄷ

단순히 음성과 영상을 주고받는 통신뿐만 아니라 금융 거래가 전부 무선 자동화 전산화된 것도 세상을 정말 편리하게 바꿔 놓았다. 종이 없는 사무실보다는 현금 없는 세상이 더 많이 실현됐다.
물론 통신으로 돈 거래를 몽땅 가상화시킨 배후에는 디지털 서명을 가능케 한 비대칭 암호화라는 특급 보안 기술이 있었다. ^^
영상· 음성을 디지털로 주고받는 배후에는 압축 알고리즘(코덱..)이 있듯이 말이다.

4. 정보 검색 인프라

지금 같은 학술 정보 검색 인프라가 없던 시절에는 논문을 어떻게 쓰고 참고문헌을 어떻게 찾아봤을까??
뭐 그 시절에는 학계마다 분야별 최신 논문 목록이 마치 전화번호부처럼 종이책 형태로 주기적으로 발간되기는 했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완전 골동품이겠지만..

그래서 그 시절 옛날 논문들은 참고문헌 목록이 21세기 이후 논문들처럼 풍부하지는 못했던 편이라고 한다.
이런 게 '정보 고속도로'니, 'information at your fingertip' 이런 90년대 구호가 실현되기 전의 모습이다. 유비쿼터스, IoT니 하는 구호는 2000년대 이후에나 등장했다.

하긴,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학위논문들이 타자기로 작성되곤 했다. 타자기로 수학식을 표현하려면.. ㄷㄷㄷ
좀 얼리어답터인 사람이 몇백만 원짜리 컴퓨터를 장만해서 아래아한글 1.X로 논문을 써 보겠네 마네 하던 지경이었다.

갤럭시니 아이폰이니 하는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둥그런 브라운관 화면을 통해 상대방을 보면서 영상 통화" 정도를 상상했던 쌍팔년도 시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됐다. ^^

Posted by 사무엘

2024/10/12 08:35 2024/10/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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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0년대: 시점의 변경

우리나라의 대표 고속도로라고 일컬어지는 경부 고속도로는 1970년에 전 구간이 4차로 크기로 만들어졌다.
옛날 사진을 보니, 그 당시엔 중앙분리대에 화단이 꾸며졌거나, 아니면 비상활주로 운용을 염두에 두고 중앙분리대가 이동식으로 허접하게 꾸며진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1970년대 개통 초기에는 경부 고속도로의 법적 시점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즉 도심 한복판이었다.
그때는 한남대교와 그 이북 제1 남산 터널까지(남산 1호 터널) 합쳐서 '서울부산선'으로 쳤던 것 같다. 마침 얘들 역시 1969년 말(한남대교)과 1970년 광복절(터널), 경부 고속도로와 거의 같은 시기에 개통했으니 말이다.
그 당시로서는 저 교량과 터널도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였고 "조국 근대화 잘 살아 보세, 우리는 할 수 있다" 국뽕 아이템이었다.

경부 고속도로 덕분에 한국에는 고속버스라는 것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초창기에는 서울 구시가지의 근처인 신촌이나 종로5가 같은 곳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회사와 행선지별로 듬성듬성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지만..

그러다가 1970년대 말에 강북 구간은 이 고속도로의 법적 시점에서 짤렸다. 지금으로 치면 한남IC 부근으로 시점이 남하했다. 옛날에 철도는 경부선 서울 역이 서대문에서 남대문으로 남하하기는 했었다만.. 고속도로는 아예 한강 이남으로 내려간 게 흥미롭다.

이때는 몇 차례 북괴의 도발을 겪고 나서(땅굴, 무장공비, 판문점 도끼 만행..) 가카께서 수도를 통째로 남쪽으로 옮길까 하는 극단적인 고민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그 정도 남하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시국 덕분인지 서울 강남이 집중적으로 개발됐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서울 강남 반포에 최초의 통합 '고속버스 터미날'이 만들어져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시에는 엄청난 외곽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지금은 이 터미널조차 주변이 너무 비좁다면서 이전 요구가 나오는 실정이다.

2. 1980년대: 서울 요금소의 남하, 최초의 확장 공사

(1) 경부 고속도로에 처음으로 확장 공사가 행해진 시기와 구간은 바로 1987년.. 중부 고속도로(35)와의 분기· 합류 지점이다. 회덕(대전)-남이(청주) 사이가 처음으로 6차로로 확장됐다. 그 뒤 나라에서는 중부 고속도로도 좀 이용하라고 강남 고텀에 이어 강변 동서울 시외버스 터미널을 개장했다~!

쌍팔년도 이전엔 경부 고속도로가 심지어 서울-판교-수원 구간조차도 아직 겨우 4차로였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 역 주변 역시 쓰레기 매립지였을 정도로 엄청난 미개발 황무지였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다른 이름을 붙일 게 도무지 없어서 걍 밋밋한 '강변'이었던 거다. 마치 대전광역시의 이름이 과거에 '한밭' 뻘밭이었던 것과 비슷한 작명이다. 1987~88년 사이에 울나라 고속도로 업계에 참 많은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경부 고속도로의 최북단 요금소인 서울 요금소에도 변화가 생겼다. 원래 이 요금소는 양재 IC 부근에 있었다. 그러던 게 1987년 말에 훨씬 더 남쪽인 지금의 성남 궁내동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기존 요금소는 명색이 서울의 관문인데 매표소 차로가 겨우 7개 밖에 없어서 너무 너무 비좁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더 확장할 부지는 없고.. 더 남쪽 외곽으로 이사 가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오늘날 서울 요금소는 행정구역상 서울에 있는 게 아니다. 거길 통과하고도 한참을 더 달려야 인서울이 나온다.
옛 서울 톨게이트가 차지하던 부지는 만남의 광장 휴게소로 바뀌었다.

(3)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경부 고속도로'라는 명칭이 공식 명칭으로 정착한 것도 1980년대 초의 일이다. 그 전에는 얘는 그냥 서울부산선, 서울-부산간 고속도로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남침 땅굴도 1970년대 당대에는 '지하 터널'이라고 불렸고, 한강대교 양화대교 한남대교도 1980년대 이전에는 그냥 제1~3 한강교라고 불렸듯이 말이다. 1980년대에는 이런 아기자기한 명칭들이 많이 확립됐다.

3. 1990년대: 계속되는 확장과 버스 전용 차로

경부 고속도로는 '빨리빨리 선개통 후개량'의 산물인지라 찔끔찔끔 땜질과 확장 공사가 끊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이걸 악의적인 졸속 부실시공이라고 폄하하는 건.. 열악했던 예산과 부족한 시간과 온갖 시행착오 속에서 고생했던 작업자들에 대한 모독일 터. 그땐 고속도로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쌩판 처음이던 시절이었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1) 저렇게 최초의 확장 공사가 행해진 뒤, 1990년대 초엔 터져나가던 수도권 양재(서울)-수원 구간에 드디어 칼질이 가해졌다. 얘는 도로의 양쪽 끝에 차로를 더 만드는 게 아니라, 옆에다가 똑같은 4차로 도로를 하나 더 만드는 식으로 한꺼번에 8차로로 확장됐다.

같은 시기에 오늘날 수도권1순환(외곽순환) 고속도로의 전신인 구리-판교 고속도로도 건설이 시작됐다. 서울 요금소를 남쪽으로 옮긴 것은 쟤를 '개방식' 톨게이트 구간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 성격도 있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기에 철도 업계에서는 경부선에 구로-서울 3복선화 공사가 시작됐다. 경인선 2복선화와 경부선 수원-천안 2복선화도 시작됐지만 얘들은 2000년대가 돼서야 완료됐고..

(2) 1995년부터는 이렇게 넓어진 차로를 바탕으로 경부의 수도권 구간에서 버스 전용 차로가 처음으로 시행됐다.
서울 시내의 천호대로에서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시행된 것과도 시기가 거의 비슷하다. 시내버스와 고속버스는 분야가 완전히 다른데도 말이다.
천호대로는.. 서울 지하철 5호선을 건설하느라 어차피 파헤쳤던 도로를 복구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정류장을 설치할 수 있었다. 타이밍이 잘 맞았던 셈이다.

4. 2000년대 이후

(1) 2003년에는 김천-영동-옥천 쪽에 대대적으로 선형이 개량되었다. 산 타면서 꼬불꼬불 위험하게 가던 길이 고가 교량으로 바뀌었다. 30여 년 전에 그렇게도 고생하며 힘들게 만들었던 구닥다리 대전육교와 당재터널(옥천터널)이 드디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0년엔가 추풍령 일대에서 연쇄 추돌 교통사고가 거하게 난 뒤에야 과업에 속도가 붙었다. 단, 얘들은 4차로로 만들어져 버려서 추후에 차로 확장이 꽤 난감해졌다.
비슷한 시기에 경부선 철도에서는 수원 역에서 전철의 평면교차 회차를 없애려고 수원-병점간 2복선화 공사가 한창이었다.

(2) 서울 수도권 구간은 10차로 더 확장됐고 대전· 대구 구간도 다 이런 식으로 확장됐다. 수원신갈 IC의 경우, 넘쳐나는 차들을 감당치 못해서 톨게이트가 상행과 하행별로 따로 분리되는 기괴한 구조가 됐다. 모든 차들이 종이 통행권 대신 하이패스가 장착돼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2010년대 중후반에는 아직도 4차로인 구간은 옥천 부근과 영천-경주-울산 두 곳밖에 남지 않았다.

그랬는데 드디어 경주 부근도 엄청 오랫동안 공사를 한 끝에 6차로로 확장됐다. 경부 고속도로 최초의 터널이라 일컬어지는 경주 터널도 옆에 광폭 터널을 하나 더 뚫어서 확장됐다.
이제 경부 고속도로 전체를 통틀어서 4차로는 20여 년 전에 개량됐던 옥천 구간이 유일하다.

(3) 그리고 2020년대에는 경부 고속도로에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칼질이 가해졌는데.. 바로 지하화다.
동탄 부근 1km 남짓한 구간이 잠깐 지하 터널로 내려갔다. 으음~~~
앞으로 이런 구간이 얼마나 더 생길지는 모르겠다.

이상이다. 경부 고속도로에 대해서 지금까지 글을 많이 썼지만 이런 식으로 역사를 정리하고 종합한 건 처음이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4/10/09 08:47 2024/10/0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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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으면 한글날이기도 하니 오랜만에 이 주제로.. ^^
나는 표준어와 맞춤법, 띄어쓰기 규정을 숙지하고, 어지간해서는 이것들을 최대한 준수하면서 글을 쓴다.
가령, 다르다/틀리다, 안/않, 되/돼 같은 거야 이견의 여지가 없으니 당연히 무조건 구분한다.
하지만 내가 꼭 지키지 않거나 예외를 두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 순우리말 또는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 성 1, 이름 2자 형태가 아닌 성명들은 띄어 쓴다. '윤봉길, 안중근, 김 구, 박 마리아, 남궁 억' (단, 여기 내 개인 블로그에서는 1:2 형태까지도 다 띄어 쓰고 있음)
-- 외래어 명칭 다음에 일반명사가 결합할 때도 띄어 쓴다.
백두산, 한라산, 한강, 흑묘백묘론, 불교, 유교
에베레스트 산, 후지 산, 마지노 선, 모기지 론, 양쯔 강, 나일 강, 라인 강, 이슬람 교, 힌두 교, 조로아스터 교

이건 글자 단위 붙여쓰기를 좋아하는 한자 패러다임에다가 단어 단위 띄어쓰기를 좋아하는 라틴 패러다임이 나중에 섞이면서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혼란이다.
그렇다고 한글을 몽땅 다 풀어 써 버리면서 완전히 후자대로 할 수는 없으니 전자와 후자를 적당히 절충해야만 한다. 잘 정의된 띄어쓰기는 특히 한글 전용 주장하는 사람이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이다.

옛날 사람들은 한자 혼용만 한 게 아니다. 같은 한글도 고유명사나 외래어를 별도의 폰트로 일일이 구분해서 표기할 정도로 세밀했다.
내 개인적으로는.. 필요하다면 이 어절이 체언-조사인지 용언-어미인지 엄밀히 구분하는 표기도 도입돼야 한다고 본다. '삶은 계란'이 계란의 상태를 말하는 건지 인생의 본질을 말하는 건지 기계적인 구분이 필요할 때 말이다.

-- 주요 행적이 20세기 중화민국· 현대 중국/대만 배경인 중국인은 현지음으로 이름 표기. 청나라나 그 이전 중국인은 한국식 한자음으로 표기.
-- 접사인지 관형어인지 긴가민가한 단어는 일일이 띄어 쓰지 않는다. '전세계' the whole world는 원래 '전 세계'가 맞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붙여 쓰는 게 더 편하게 느껴진다.
-- '맞다'는 동사뿐만 아니라 형용사적 용례도 허용해야 할 것 같다. 유사 단어인 '걸맞다', '알맞다'는 다 형용사이지만.
-- "강하고 담대하라" 역시 비문이 아니라 좀 허용해야 할 것 같다. 저게 잘못됐으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알아듣는 데 아무 지장 없는 이런 선언도 틀리게 된다. '거룩하다'도 동사가 절대 아니고 '거북하다'와 동급인 형용사인데?
우리말이 용언이 정말 애매하고 므흣한 품사통용 면모가 있다.

-- "잘 되길 바래".. 이것도 원래는 '바라'가 맞는데.. 아무도 그렇게 안 쓴다. 사실상 특례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지? "바랬다"는 "바랐다"로 고쳐야겠지만, 저 종결어미는... 글쎄다.
-- 'S+모음' 외래어를 그냥 외래어로 쎄게 적는 편이다. 씬(scene), 쏘리(sorry), 싸인파(sine), 싸인(autograph). 이럴 때 신, 소리, 사인은 얼마나 뜬금없게 보이는가.
현대차에서도 소나타를 쏘나타로 괜히 바꾼 게 아니다. ㄲㄲㄲ

-- 개인적으로는 '처' 대신 '쳐'라고 쓰는 걸 아주 선호한다. "이거나 쳐먹어", "창고에 쳐박혀 있는 물건", "잠이나 쳐 자?", "저 사람 쳐 돌았구만" 등등 ㅋㅋㅋㅋㅋ
-- 몇몇 접사 내지 의존명사는 '깜, 꽈, 짜' 이렇게 된소리로 쓰고 싶다.

지난 1988년 한글 맞춤법 개정 때는 한자어의 음을 한글로 표기하는 방식이 단순화됐다.
실제 발음 때 들어가는 사이소리를 무시하고, 언제나 원래 한자음만 적는 걸로 바뀌었다.
숫자, 곳간, 셋방, 횟수 같은 6개 예외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ㅅ을 뺀다. 촛점이 아니라 초점, 갯수도 아니고 개수..

저 쌍팔년도 시절에는 말에 된소리 거센소리가 늘어나면 사람 심성이 거칠어진다(!!!!!!) 이런 풍조가 강했다.
햇님이 아니고 해님.. 효과는 효꽈가 아니라 반드시 '효과' 그대로. 김밥도 김빱이 아니라 '김밥' 그대로..
그러니 사이소리는 말을 쓸데없이 쎄게 만드는(!!) 원흉이니, 표기에 더욱 반영되지 않고 무시됐다.

하지만 이 사이소리는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게 아니라 동음이의어 구분이나 어원 구분, 형태소 경계 구분 같은 여러 역할도 한다.
여러 예가 있지만 하나만.. 내 개인적으로는 prime number를 뜻하는 '솟수'까지 '소수'라고 바꾼 건 잘못된 조치였다고 본다. '소수'는 안 그래도 뜻이 겹치는 동음이의어가 많은데 말이다.

개드립을 좀 치자면.. 표준어 제정한 사람들이 모두 문과 출신밖에 없어서 저렇게 된 게 아닐까? =_=;;;; 문송합니다 -_-;;
'솟수'라고 예외를 추가로 인정하거나, 아니면 씨수, 핵심수, 으뜸수 등.. 완전히 다른 말을 그때 새로 만들어서 학교에 보급했어야 했다. 그리고 대가도 뭐냐. 댓가라고 해 줘야지.

나는 뭐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이런 말을 순화하느니 그럴 게 아니라, '장' page / chapter 같은 기본적인 말부터 순우리말 대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로 들어서 변별이 안 되는 거를 한자로 표기해 봤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이 프라임 '소수'라는 건 정수론에서 다루는 개념이기 때문에 '소수점' 따위하고는 영역이 겹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 소수하고는 혼동될 일이 없다.
하지만.. 소수의 반의어가 합성수도 될 수 있고, 다수도 될 수 있으니.. 꺼림칙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이상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러고 보니 지난 1990년대 이래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30년 가까이 한글 맞춤법 검사기 내지 형태소 분석기 외길을 파 온 연구실은 다음과 같다. 이분들 2020년대 기준으로는 은퇴가 거의 임박했거나 이미 은퇴했다.

  • 부산대 권 혁철 교수: 아래아한글의 맞춤법 검사기
  • 한국외대 유 재원 교수: 마소 Word 한글판의 맞춤법 검사기
  • 항공대 이 긍해 교수: 두벌식 기반 한-영 자동 전환 오토마타를 개발했다.
  • 국민대 강 승식 교수: 초창기 한국어 형태소 분석기의 원조가 아니었나 싶다.
  • 울산대 옥 철영 교수: 형태소 분석기의 떠오르는 강자이다.

아래아한글의 맞춤법 검사기는 오랫동안 개발돼 왔고 퀄리티가 좋은 편이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단순히 학교 문법뿐만 아니라 민간 국어 운동 이념이 들어간 판정도 많이 하고 있어서 약간 논란거리이다.
가령, 그냥 맞춤법· 오타를 지적하라고 돌리는 검사기에서 "일제시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라고 써야 맞습니다"...;; 이런 것까지 굳이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식이다.

꼭 맞춤법 검사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한국어· 한글 정보 처리 분야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능은 다음과 같다.

-- 띄어쓰기를 재구성하기. 하나도 띄어 쓰지 않았거나, 임의로 줄이 바뀌면서 어절 경계 정보가 소실된--특히 pdf나 ocr에서 긁어 온-- 텍스트의 문장을 원래대로 재구성하기
(영문도 대소문자나 하이픈 관련해서 휴리스틱이 필요한 처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한국어보다는 훨씬 더 간단하다.)
-- 텍스트를 쭉 읽으면서 한자어는 몽땅 한자로 바꿔 주기. 당연히 헷갈리기 쉬운 한자를 틀리지 말아야 한다.
-- 텍스트를 이대로 읽을 때, 쓰여 있는 대로 곧이곧대로 발음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토 달기 (긴소리, 사이소리, 말음 법칙, ㅢ의 발음 따위)

Posted by 사무엘

2024/10/06 19:35 2024/10/0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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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부자 금수저 열전

우리나라엔 삼성이니 현대니 백 종원, 이 수만=_=이니 하는 기업인 말고도 다음 인물들이 정말 엄청난 부자였다. 물려받았던 자수성가했건..

1. 육 영수 (훗날 박 정희 대통령 영부인)

옥천에서 손꼽히는 초호화 부잣집 출신이었다. 일제 시대 1930~40년대에 이미 집에 자가용이 있었고 전화기가 있었다. =_=;;
생가를 찾아가 보면.. 꼴랑 집 한 채가 아니라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의 '단지' 형태이다. 근처에 있는 정 지용 시인 생가하고는 완전 넘사벽 급으로 차이가 난다.

그러니 이분의 애비(육 종관)는 사위 박 정희를 아주 깔보고 개무시했다. 가난한 군바리 놈팽이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저 때는 인재가 부족해서 30대에 무궁화나 별까지 다는 사람도 있는 "대신"에, 계급이 높아 봤자 군인들의 연봉이나 복리후생도 개판이었다.

"신랑 육 영수 군과 신부 박 정희 양.."은 실제로, 진짜로 그 당시 결혼식 사회자가 저질렀던 실수이다. 심지어 신부가 신랑보다 키도 더 컸고. ㄲㄲㄲㄲㄲ
그랬는데 사위가 결혼 후 10년 만에 나라를 뒤엎어버리고 대통령이 되니.. 장인어른이 뒤늦게 사위에게 사죄를 했댄다.

박 정희는 모욕을 당한 건 절대로 잊지 않고 이를 악물고 자기 신분을 상승해서 설욕하는 타입이었다. 교사였다가 일본군 장교가 돼서, 나중엔 대통령이 돼서..

2. 공 병우 (안과 의사 + 한글 기계화 연구인)

이 사람은 진짜 개룡남이다. 그 옛날, 1930년대에 혈혈단신으로 일본 유학 가서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까지 따고 안과 의사가 됐다.
그 뒤 경성 한복판에서 개원을 했으니 진짜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았다. 물려받은 거 없이 자기 노력 능력만으로 저렇게 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창기엔 개인 납세자 중에서 전국 톱급으로 세금을 많이 낸 걸로 유명세를 탔다. 안 그래도 능력자 억만장자인 데다, 강직하고 옳곧은 성품 덕에 소득을 하나도 안 숨기고 곧이곧대로 신고했더니 저런 세금폭탄이 떨어졌다.. 근데 그거 다 내고도 하나도 꼴리는 거 없었댄다.
"왜놈들로부터 해방돼서 이제야 내 나라가 세워졌는데 닥치고 정직하게 세금 내서 나랏님을 도와주자" 그런 마음이었다고.. ㅠㅠㅠㅠ

공 박사는 1950년대, 나라가 6 25 때문에 보릿고개니 국제시장, 몽실언니 이러는 개판오분전 폐허가 됐을 때도 혼자 여권 발급받고 미국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유학이나 비즈니스가 아니라 단순 관광 목적으로 말이다..!! (창랑호 만송호 이런 뱅기를 탔으려나?)
1960년대 글자판 표준화 갖고 싸우던 시절에도 이미 외제차 자가용을 굴렸고 아예 운전수까지 고용했다.

그때 나라에서 세벌식 자판을 표준으로 채택했으면 공 박사가 고맙다고 꾸벅꾸벅 하면서 ETRI 같은 기관에 저 사람 사재만으로 슈퍼컴이나 각종 연구 자재 장비가 더 기증될 수도 있었다(고 본다. 내 뇌피셜).;;;
그 시절에 공 박사 같은 애국자 천재와 국가가 대립하고 싸우는 관계가 돼 버린 건.. 참 두고두고 땅을 칠 국가적 불행이었다.

3. 백 남준 (예술가)

1950년대에 서울 한복판에서 자가용 있고 "피아노" 있고, 바나나를 먹을 수 있는 집에서 자랐다. =_=;; 자 이 정도면 말 다 했지? 아마 집에서 TV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그는 생계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덕질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그게 개인적인 천재성까지 가미돼서 독보적인 비디오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분은 정~~말 성품이 온화하고 친절하고 겸손하고, 칭찬이나 공을 주변 조력자들에게 돌리고.. 인성이 정말 킹왕짱이었다고 한다. 개차반 졸부가 절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공 병우 박사에 대해서는 2000년대 이후 스마트폰 모바일 시대까지 살아 있었으면 무슨 덕질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백 남준은 2010년대 이후 브라운관 디스플레이가 없어진 뒤에는 무슨 덕질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난 오랫동안 백 남준과 백 "낙"준이 헷갈리긴 했다.. ^^

4. 근현대사 관련 인물

  • 윤 보선도 예상 이상의 명문가 금수저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 시대에 사비로 영국 유학까지 가능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의외로 정치에도 관심이 있었는지.. 2공화국이 물 건너간 뒤에도 박 정희의 라이벌 격으로 대선에 출마했었다.
  • 이 시영· 이 회영 6형제는 대대로 고위 벼슬을 지낸 갑부 집안 출신이었는데.. 독립운동 하느라 가산을 탕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 그 반면 이 완용· 이 하영 이런 인간들은 친일매국의 댓가로 일제 시대 동안 신흥 갑부로 등극했다. 부동산 재산이 정말 엄청났었다. 물론 그게 전부 일제로부터 받은 건 아니고, 자기들이 머리 굴려서 재테크로 재산을 더 불린 것도 많다.

5. 나머지

한편, 서울대 치대를 나와서 치과 의사를 하다가 관두고 사업을 해서 여느 치과 의사보다 훨씬 더 떼돈 번 사람도 있다. 하긴, 치과 의사가 될 머리로 뭘 하든 성공 못 하겠나 싶다.

  • 오스템임플란트 창업자
  • 원로 배우 신 영균 (.....;)

글쎄, 가수 자우림 윤아의 남편도 서울대 치대 나온 치과 의사이다. 자우림이 어느 인터뷰에서 "설대 치대 출신 치과 의사와 같이 살아 보니 어때요?"라는 질문에 "지금까지 남편이 저보다 돈 더 많이 벌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라고 대답해서 주변을 벙 찌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이런 인물도 떠오른다.

  • 정석의 저자 홍 성대: 사립 고등학교를 설립하고 모교에다 강의동을 지어서 기증할 정도로 억만장자가 됐다.
  • 前 카이스트 화학과 김 봉수 교수: 생활비가 교수 월급만으로 감당이 안 돼서 주식을 시작했다는데.. 관심 분야 업계 흐름과 주식의 세계를 그야말로 자기 전공 공부하듯이 공부한 듯하다. 그야말로 교수 연봉의 수십, 수백 배를 벌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4/10/04 08:35 2024/10/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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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근황

벌써 10월이 됐다. 두 주 남짓 전에 근황글을 올리고는 얼마 안 되어 또 근황 업데이트를 하게 됐다. =_=;;
본인은 연매와 결혼 준비 중이고 호박 농사도 잘 짓고 있다. 2024년과 그 이전.. 신혼집과 약혼자가 생긴 지금과 그 전은.. 생활 방식이 서로 너무 달라져 버렸다. 정말 꿈만 같다. 이전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올해는 10월 1일 국군의 날이 임시공휴일로 갑자기 지정돼서 놀게 됐다. 그렇잖아도 회사에 따라서는 개천절과 주말 사이의 금요일인 10월 4일을 전사 휴무(각자 연차 써서)로 지정한 곳이 있다. 그런데 10월 1일과 2일까지 연차로 연결하면 사기적인 연휴를 만들 수 있을 듯하다.

(막간을 이용해 정치 얘기를 좀 꺼내자면.. 윤통의 재임 기간이 이제 과반이 지난 듯하다. 전반적으로 잘하고 있고 특히 야당 그 정신나간 후보의 당선을 막은 것만으로도 이 사람은 정말 훌륭한 기여를 했다.
그 사람 덕분에 나라의 여러 부분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도 지난 몇 년간 이념 걱정, 정치 얘기를 꺼낼 일 없이 정말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다만 영부인의 논란거리는 나도 차마 실드를 칠 수 없고, 의료 쪽은 왜 저리 깽판을 치는지 그건 우려스럽다. 의대 증원 갖고 욕 먹는 걸 예전 MB 시절 4대강이나 미국산 쏘고기 때문에 욕 먹는 것과 동급으로 칠 수 있는지?
나야 의료 행정 쪽은 문외한이기 때문에 뭐라 주장을 할 수는 없지만 뭔가 우려스럽긴 하다. 저 두 가지만 빼면 난 정치 쪽은 딴 불만이 없다.)

뭐 그건 그렇고.. 본인은 지난 추석 때는 처가(진)까지 포함해서 고향을 두 군데 다녀오면서 양가 부모님을 뵈었다.
올해는 주말과 명절이 이어져서 연휴가 길었으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근데 다들 아시다시피 올해 9월은 추석을 포함해 셋째 주가 다 지나도록 날씨가 어찌나 더웠는지... 80년이 넘는 관측 사상 제일 더운 9월을 기록했다. 추석 때 열대야와 폭염경보를 접하다니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본다.
9월 중순에 8월 중순 날씨가 계속됐고, 이건 추석이 아니라 그냥 하석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지금이야 밤에 10도대 중후반, 낮에 20도대 중후반이니 그런 미친 무더위는 끝났다. 추분이 지나서 낮 길이도 엄청 짧아진 게 느껴진다.
하지만 낮에는 여전히 땀 나고 덥고 실내에서 에어컨이 필요한 건 여전하다. 단지, 더워도 기분 좋게 덥고.. 아침과 밤에 시원해졌기 때문에 견딜 만할 뿐이다.

이번 여름에 살인적으로 더웠던 것처럼 올해 겨울은 반대로 엄청 혹독하게 추울 거라는 분석을 벌써부터 한 사람이 있다. 과연 그 전망이 적중할지 지켜봐야겠다.

1. 파는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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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고향 재래시장 곳곳에서 이렇게 호박이들이 쌓인 걸 볼 수 있어서 몹시 좋았다.
늙은 호박뿐만 아니라 동그란 풋호박도 잔뜩 담긴 게 정말 사랑스러워 보였다.
호박은 사랑이다~!! 집집마다 안방에 한두 개 갖다놓으면 미관에도 좋고 힐링이 된다. 내게는 늙은 호박이 뭐 복조리니 dream catcher이니 하는 물건 역할을 하고도 남는다.

2. 해수욕

추석 때 도대체 해수욕이 웬말이냐.. 햐 올해는 더워도 너무 더웠다. 이런 날은 물놀이를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계곡과 바다 중에 고민하다가 바다를 골랐고, 경주 감포에 있는 나정 고운모래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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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와~~ 여긴 정말 대박이었다.
진흙탕 없이 깨끗한 자갈 바닥에다, 물은 시원하고.. 해질녘인데도 발등까지 다 보일 정도로 맑았다. 흐리고 탁한 영종도 해수욕장 바닷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저런 바닷물에 몸을 담그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시원함과 상쾌함이 느껴졌다. 하루 종일 흘렸던 땀이며, 고속도로에서 저속 차량 때문에 쌓였던 짜증을 바닷물에 모조리 흘려보냈다. 수십 km를 달려서 감포까지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3. 키우는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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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 호박이들이 축 늘어지고 제대로 못 자랐던 이유도 너무 더웠기 때문인 듯하다. 계절이 바뀌자 얘들은 다시 새순이 쭉쭉 돋기 시작했고 꽃도 예전처럼 자주 피우기 시작했다.
흰 줄무늬가 그어진 싱싱한 잎을 봄과 초여름에나 보다가.. 지금 다시 보니 몹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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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8월 초 이후 무려 50일 만에.. 암꽃이 하나 활짝 폈다. 얘를 주변의 다른 호박에서 수꽃을 꺾어 와서 수분시켰더니 수분 성공.. 그래서 제12호 열매가 탄생했다. 만세~!!!
수분된 지 하루 만에 옆으로 뻗었던 줄기는 아래로 축 내려갔다. 그리고 이 아이는 1주일쯤 뒤, 귤 정도 크기까지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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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9월 초에 암꽃이 잔뜩 폈었는데 지금은 타이밍이 좀 늦어졌다.
앞으로 기온이 더 내려가고 추워지면 호박들이 암꽃을 더 피울 것이다. 얘 이후로 13, 14, 15호 열매도 계속 맺혔으면 좋겠다.

4.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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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내가 멧돼지를 좋아하는 걸 알고는 여친님이 한사토이(Hansa toy) 멧돼지 인형을 선물로 장만해 주었다. 우와~~~ 멧돼지와 호박이라니!! ^_^
크기는 새끼 같지만 새끼라면 다람쥐 같은 줄무늬가 있어야지. 저건 성체를 묘사한 인형이다. 그리고 한사토이에 멧돼지 새끼 인형은 또 따로 만들어 팔더라.
한사토이는 어린애들 갖고 노는 완구보다는 좀 더 진지하고 현실적으로 동물 박제라든가 인테리어를 추구한 동물 인형을 만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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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지난번에 소개했던 그 검은 고양이와 자주 마주치고 있고 잘 지내는 중이다.
꼬냉이들은 태생적으로 몸에 물이 묻는 걸 싫어하고 심지어 물을 마시는 것조차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자체적인 '그루밍'이라는 테크닉으로 몸을 깨끗하게 유지한다나..?? 개와는 다른 새로운 특성인 것 같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4/10/01 19:35 2024/10/0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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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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