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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7호선을 공부하는 철덕이라면, 청담-뚝섬유원지 구간을 특별히 주목하게 될 것이다. 먼저 청담 역. 거기는 경기 고등학교가 있는 곳이고, 영동 대교와도 가깝기 때문에 자동차로는 그 경로를 타고 금방 갈 수 있다.

이 역이 굉장히 특이하다는 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종착이 아닌 중간역으로서 보기 드문 2폼 3섬식 승강장인 데다, 비환승역으로서 역의 길이가 무려 650m에 달하는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600여 m 간격으로 역을 일일이 만든 저속철 분당선과는 달리, 역 수 대신 단일역의 역세권 길이를 늘린 현명한 결단을 크게 환영하는 바이다.

강 건너편에 있는 뚝섬유원지 역은 7호선 중간 구간의 유일한 지상역이며, 강북에서 한강 유람 시설에 쉽게 닿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역이다. 여기까지가 7호선 2차 개통 구간이다.
그리고 이 7호선이 한강을 건너는 경로가 바로 청담 대교.
1999년에 개통된 서울의 17째 한강 다리라고 한다.

원래는 이 교량도 5호선처럼 하저 터널로 건설할까 논의되기도 하였으나, 여차여차 끝에 지상 교량으로 건설되었다. 어차피 이 도로 덕분에 분당-수서 고속화도로의 생명력이 확 살아나기도 했고, 이게 철도만의 하저 터널로 건설되었다면 지금 같은 위치에 뚝섬유원지 역이 생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지하철 7호선이 강을 건너느라 지상으로 나오는 덕분에 인근의 건대입구 역은 필연적으로 굉장히 얕아졌다. 2호선 건대입구 역도 지상 고가임을 감안하면, 이는 두 역의 수직 환승 거리를 조금이나마 줄여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얕은 지하철은 땅을 파헤치는 개착식으로 건설되었을 것이고, 지하철이 건설되던 동안 안 그렇도 좁아 터진 능동로 도로 일대는 극심한 정체로 몸살을 앓지 않았겠는지도 생각해 본다.
철도 덕후라면 철도와 도로, 도시 개발 역사까지 다 통달해서 이런 수읽기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

청담 대교는 한강 다리들 중 유일하게 복층 교량이다. 즉, 기존의 2~4호선 다리들과는 달리 전동차 선로는 아래층에 있고 자동차 도로는 위층에 있다. 그래서 한 교통수단을 탄 사람이 다른 교통수단을 볼 일이 없다.

서울 지하철이 기존 철도들의 관행인 좌측통행을 버리고 돌연히 우측통행으로 건설된 유력한 이유 중 하나가 “열차와 자동차가 교량에서 나란히 달릴 때 통행 방향이 상이하여 사람들이 혼동하는 일이 없게 하자. 그래서 지하철의 통행 방향도 자동차의 그것과 일치시키자”였다는 걸 생각하면 복층 교량은 무척 참신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동호 대교(3호선)과 동작 대교(4호선)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자동차가 다니는 청담 대교 북단을 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거기에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똬리굴’처럼 생긴 구조물이 있다. 그것도, 터널이 아니라 지상에 마치 롤러코스터 선로처럼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건대입구 쪽에서 청담 대교를 타고 남쪽으로 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길은 지하철 7호선처럼 수직으로 직진하며 내려가는 형태로 되어 있지가 않다. 마치 Q 모양처럼 360도 돌아서 매듭을 한 바퀴 만든 뒤에 다리로 진입하게 되어 있다. 회전하는 게 아닌 직진인데 왜 그럴까?

청담 대교 북단에 있는 하행 진입로는, 건대입구 방면의 서울 시내(능동로)가 아니라 강변 북로 영동 대교 방면(서쪽)으로부터 오는 차량의 소통에 더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 차들이 분당으로 더 편하게 가라고 말이다. 저 지도에서도 보이지만, 강변 북로에서 청담 대교 방면으로 꺾는 차선은 중앙선에서 가까운 1, 2차로쪽인 반면, 동쪽 잠실 대교 방면으로 계속 가는 차들은 우측의 3, 4차로로 가야 한다. 이 구조도 사실은 특이하다. 우회전하는 차가 중앙으로 가고, 계속 직진하는 차가 우측 차로로 가야 하다니?

그래서 강변 북로 서쪽으로부터 청담 대교로는 자연스럽게 직결되고 차선수도 더 많은 반면, 능동로에서 청담 대교로 갈 때는 한 바퀴 뺑 돌아야 하고 길도 더 좁다. 강변 북로와, 강변 북로→청담 대교 진입로를 모두 타넘었다가 다시 고도를 낮추기 위해서이다.
철도에서나 존재하는 것 같던 똬리굴이 청담 대교에 저렇게 존재하는 셈이다.

다만, 청담 대교 상행은 그렇지 않아서 능동로로 진입하는 건 뺑뺑이 없이 곧장 된다. 강변 북로만 타넘으면 되니까 하행만치 더 높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

그리고 강변 북로의 동쪽에서 청담 대교로 진입하는 길은 없다. 더 서쪽에 있는 서울 강남 방면으로 갈 거라면 그냥 인근의 영동 대교를 이용하면 되고, 분당 쪽으로 가려면 굳이 청담 대교로 우회할 필요 없이 그냥 국도 3호선과 성남 대로를 타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청담 대교는 지하철과 자동차 모두의 관점에서 재미있는 특성이 존재하는 교량이다. 나중에 이용할 일이 있을 때 더욱 눈여겨보도록 하자.

Posted by 사무엘

2011/12/14 19:44 2011/12/1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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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주요 국도

※ 1호선

북쪽으로는 통일로(자유로와 혼동하지 말 것)를 경유한다고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은평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연신내-DMC 구간을 따라 지나는 도로가 바로 국도 1호선의 일부이다. 옆에 작은 하천이 있는 바로 그 길 말이다.

그 후 월드컵 경기장을 빙 둘러싼 후 성산 대교로 한강을 건너고, 안양천을 따라 쭈욱~ 남하한다. 일명 서부 간선 도로 되겠다.
그렇게 남쪽으로 가다가 금천 IC를 지나면 서해안 고속도로로 이어지는데, 거기서 국도 1호선은 오른쪽으로 쏙 빠져서 안양부터 수원까지는 '경수 대로'를 경유하게 된다.

대전까지는 철도 경부선과 선형이 유사한 편이며 특히 세류-오산대 역 사이는 철도와 거의 붙어 있다시피하다. 다만, 대전은 서쪽 외곽(유성구)만 살짝 비껴 가고, 공주 쪽에 예상보다 더 가깝다.
논산 육군 훈련소 입소 대대가 있는 바로 그 도로를 지나며, 남쪽으로는 목포까지 간다. 경부선+호남선을 합쳐 놓은 선형인 듯.

※ 3호선

서울· 수도권의 동쪽을 세로로 관통하는 도로이다. 북쪽은 경원선과 굉장히 비슷한 선형이어서 소요산 역을 빠져나가면 있는 도로가 바로 국도 3호선이다(녹양, 망월사, 도봉산 등도 포함). 그러다 도봉 역에서 꺾어서 수락산부터 중화까지는 서울 지하철 7호선 라인.
그 후엔 지하철이 상봉 역 방향으로 지상 도로와 무관하게 선형을 이탈하기 때문에, 국도 3호선은 이번엔 동부 간선 도로와 바싹 붙어서 나란히 지나게 된다.

그렇게 한없이 직진하여 남하하면 영동 대교와 마주칠 텐데, 거기까지 가지는 않는다. 그건 남부 순환 도로로까지 빠지는 국도 47호선 구간이기 때문. 3호선은 천호 대로에서 아차산 역까지 가서 꺾은 뒤, 잠실 대교를 타고 강을 건너며, 잠실에서부터 복정까지 서울 지하철 8호선의 선형을 탄다. 여기는 일명 송파 대로 되시겠다. 복정부터는 모란 역까지는 분당선 선형을 타며, 도로 이름은 그 이름도 유명한 성남 대로.

이렇듯 국도 3호선은 1, 7, 8, 분당 같은 유명한 종축 전철 노선을 골고루 거치나, 성남에서부터는 광주, 곤지암, 이천 쪽으로 가기 때문에 철도와는 전혀 무관한 길을 가게 된다.

※ 4호선

본인은 고향이 경주이기 때문에 이 길이 아주 친숙하다.
경주 시내의 동쪽으로는 경주 월드와 각종 꼬불꼬불한 산길을 거쳐서 감포 해수욕장까지 간다. (단, 반대편으로 보문 관광 단지의 각종 호텔과 컨트리클럽들을 경유하는 그 길은 국도 4호선이 아님.)

경주의 서쪽으로는 대구와 대전을 거쳐서 군산까지 간다. KTX 신경주 역은 이 국도에서 지방도 904호선으로 빠져나가면 갈 수 있으며, 경주 외곽에서부터는 중앙 분리대와 입체 교차로가 갖춰진 고속도로 뺨치는 수준의 좋은 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이 국도는 경주에서 대구까지는 경부 고속도로, 철도(중앙선+대구선)과 더불어 이 국도가 선형이 굉장히 비슷하며, 대구 지하철 1호선도 동쪽의 용계-안심 사이는 이 길을 따라 생겨 있다. 사실은 대구까지가 아니라 대전까지 이 국도, 고속도로, 철도는 삼형제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 6호선

인천에서 시작해서 강릉에서 끝났다는 점은 영동 고속도로(고속국도 50호선)와 비슷하다. 서울의 최고 도심이며 지하철 1호선의 선형이기도 한 종로n가를 포함한다는 점, 그리고 서울과 양평을 잇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는 점에서 서울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도로이다.

인천에서는 경인 고속도로(고속국도 120호선)와 비슷한 길을 가다가 김포 공항을 남쪽으로 감싼 후, 서울 지하철 5호선 마곡 역 부근에서 공항로와 합류한다. 서울 시내에서는 양화 대교로 한강을 건너고 합정~충정로(서울 지하철 2호선 선형. 중간의 고가 도로 포함), 충정로~서대문을 찍은 후 종로로 들어간다.

서울 동쪽을 관통한 뒤 구리 시내부터는 중앙선 철도와 비슷한 선형으로 양평까지 가는데, 강을 따라 펼쳐지는 경치가 아주 아름답다. 길도 4차선+중앙 분리대가 갖춰졌고 나름 잘 닦여 있다. 양평 이후부터는 정보 없음.

※ 7호선

부산에서 강릉까지, 고속국도 65호선(동해 고속도로 및 울산-부산 민자 고속도로)에 딱 대응하는 길이다.
울산 공항부터 경주 역까지는 동해남부선 철도와 매우 유사한 선형이며, 경주 역과 효자-포항 역 근처에 있는 큰길도 이 국도의 일부이다. 그 이북은 영득, 울진, 삼척. 드라이브를 하면서 동해 바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 39호선

안산, 부천, 서울 강서구를 지나서 의정부까지 가는 좀 어정쩡한 선형의 국도인데, 경기도 북부를 지나는 구간에서는 일부 선형이 서울 교외선 철도와 일치한다. 벽제, 장흥, 온릉, 송추 쪽을 참고하면 된다.

※ 46호선

국도 6호선과 마찬가지로 인천에서 시작해서 강원도까지 간다.
경인선과 매우 비슷한 선형으로 경인 대로를 포함하며(영등포 역 북쪽 도로가 바로 이 구간의 일부!), 여의도와 마포 대교를 찍고 천호 대로까지는 강변 북로를 경유한다.
진리 침례 교회와 사랑 침례 교회는 모두 바로 이 국도 근처에 있으며, 본인 역시 자가용으로 교회에 갈 때는 대부분의 경로가 이 국도에 있다.

지금까지 보았듯, 국도라는 건 그냥 선 긋기 나름이지 시설이나 운영과는 전혀 무관한 개념이다.
도중에 자동차 전용 도로가 있을 수도 있고 그냥 일반 시내의 큰 도로가 있을 수도 있다.
꼬불꼬불한 2차선 도로일 수도 있고, 크고 아름다운 8차선 고가 도로일 수도 있다.
옛날엔 어디 여행 가려면 전국 도로 지도 책자가 거의 필수품이었는데 지금은 내비가 있으니 운전하기는 정말 편해졌다.

Posted by 사무엘

2011/12/12 19:37 2011/12/1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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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생각들

1. Shrink는 압축이 아니다

파일 단위로 문서(document)를 취급하는 대부분의 응용 프로그램들은 파일 내용을 메모리로 전부 읽어들여서 처리를 하며, 저장도 내용 전체를 한꺼번에 한 파일로 쓴다.
뭐, 개발툴 같은 경우 여러 파일을 묶어서 프로젝트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개개의 파일을 읽어들여 편집하는 건 전체 단위이다.

하지만, 부분적인 수정이 빈번히 발생하고 매번 파일 전체를 메모리로 읽고 쓰기에는 용량이 너무 커질 수 있는 자료구조는 위와 같은 단순한 방식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데이터베이스라든가, 이메일 클라이언트의 편지함, 그리고 가상 기계 프로그램이 만들어 내는 가상 디스크 같은 건, 프로그램 메뉴를 살펴보면 Compact 내지 Shrink라는 명령이 반드시 존재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데이터들은 오래 사용하다 보면 파일 내부에 fragmentation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그 양이 누적된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shrink를 해 줘야 파일 크기가 실제 내부 데이터가 차지하는 크기와 비슷하게 최적화되며, 데이터를 다루는 performance도 좋아진다.

사실은 오늘날 컴퓨터에 존재하는 파일 시스템 자체부터가 이와 비슷한 발상으로 관리되며, 그래서 '조각 모음'이 필요한 형태이다. 윈도우 비스타 이상부터는 그걸 운영체제가 서비스(시스템이 내부적으로 돌리는 프로세스)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알아서 돌려 준다. 뭐, random access에 최적화되어 있는 SSD 메모리는 그런 패러다임조차 바꿔 놓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데이터베이스나 관련 프로그램들이 그 기능을 '압축'이라고 번역해 놔서 나를 몇 차례 굉장히 혼동시키곤 했다. shrink의 결과가 파일 용량 감소인 건 사실이지만, 재배치 내지 정리와 훨씬 더 가까운 개념이 어떻게 압축이라 불릴 수 있는가? 서랍 정리와 방 정리를 군대식으로 잘 해서 방이 예전보다 넓어 보이는 게 어떻게 물건을 압축한 결과라 볼 수 있겠는가?

전산학, 컴퓨터, IT 쪽에 최소한의 감각이 있는 사람이 압축이라 하면 바로 떠올리는 개념은, 무손실이든 손실이든 압축 알고리즘이며, 결과물의 크기는 줄어드는 대신 데이터를 읽고 쓰는 cost가 커지는 그런 tradeoff이다. 그러니 데이터베이스를 압축하겠다고 하면 개념에 굉장한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차라리 과거 도스 시절에 존재했던 Stacker, DoubleSpace, DriveSpace 같은 디스크 압축 프로그램은 진짜로 그런 의미의 압축이 맞았다.

그럼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shrink 내지 compact를 어떻게 번역하면 우리말로 더 잘 와 닿을지 고민된다. 한 단어로는 어려울 것 같고 끽해야 내부 메커니즘을 표현한 '파일 내부 구조 재정리'라는 뜻이 담긴 표현을 써야 하지 않겠나 싶다.

2. Everett

미국 북서부의 워싱턴 주, 시애틀 근교에는 Everett(에버렛)이라는 도시가 있다. 그런데,

- 윈도우 프로그래머로서: 비주얼 스튜디오 2003의 코드명이 이것이었다.
- 교통· 항공· 우주 매니아로서: 이곳에 보잉 사의 세계 최대 규모의 비행기 조립 공장이 있다. 항공 덕후라면 이 사실이 바로 떠오를 것이다. ㅋㅋ

VS 닷넷 초기인 2002/2003이 버그가 많다고 욕 많이 얻어먹긴 했다. 하지만,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개발을 6년간 VS 2003으로 해 본 본인으로서는 그게 그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다. 닷넷이 아닌 Win32 native의 관점에서 봐도 오히려 VS 6.0보다 향상된 기능이 많고 UI가 깔끔해져서 반갑게 잘 쓰며 지냈다.

운영체제의 코드명인 시카고(윈도우 95), 휘슬러(윈도우 XP), 롱혼(윈도우 비스타) 등과는 달리, 개발툴은 아무나 쓰는 제품이 아니다 보니 코드명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코드명이 있긴 하다.
비주얼 스튜디오 2005의 코드명은 Whidbey, 2008의 코드명은 Orcas이다. 단, 오피스 제품이 코드명이 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못 들었다.

이 글 쓰는 과정에서 미국 지리 공부를 좀 했다. 미국의 행정 수도인 워싱턴 D.C.는 말 그대로 미국의 초기 역사가 담긴 동부 끝자락에 있는 반면, 워싱턴 주는 전혀 동쪽에 있지 않으며 그 반대이다. 워싱턴 주와 워싱턴 D.C.는 지리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으니, 뉴욕 주와 뉴욕 시의 관계처럼 생각해서는 절대 절대 안 된다. ^^;;;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있는 곳은 시애틀. 고로 이곳 근처이며 역시 서쪽 끝 되겠다.

이름도 비슷하고 옛날에 윈도우 95의 임팩트가 크기도 했으니, 난 한동안 MS가 시카고에 있는 줄 알았으며, 고로 실리콘 밸리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치 칼텍과 MIT 사이만큼이나 엄청 멀리 떨어져 있는 줄 알았다. 게다가 빌 게이츠는 하버드 중퇴이기도 하니 웬지 그의 주 활동 영역도 동부였을 것 같지 않나? -_-;;;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빌 게이츠가 2008년 6월 27일에 은퇴했으니, 나 병특 마치기 딱 사흘 전에 은퇴했다.
나는 이제야 군필자가 되어서 한국에서 제약 없는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 직전이었던 반면, 그 양반은 그때 기업 경영자로서 완전 만렙 찍고 은퇴했다. ㄷㄷㄷ

3. 김 명호

우리나라에 김 명호라는 이름은 여러 동명이인이 존재하는데, 다들 IT나 최소한 이공계에서 쟁쟁한 실력자들이다.

-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 기술 임원인 김 명호 상무. IT 매니아라면 이름 안 들어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 카이스트 전산학과의 김 명호 교수. 우리나라에서 얼마 안 되는 데이터베이스 전문가이다. 아, 그러고 보니 카이스트 황 규영 교수도 DB 쪽은 가히 만렙 찍은 분이 아니던가(빡센 강의 커리큘럼 때문에 학부생들로부터 별명이 '황디비'..). 카이스트는 DB에 강하다. ㄲㄲ

- 그리고, 성균관 대학교의 수학과 교수였고, “석궁-_- 테러”로 유명한 김 명호 박사. 좋게 말하면 정말 머리 좋고 유능한 학자이고, 좀 삐딱하게 말하자면 너무 강직하고 현실과 타협을 못 하고 일종의 똘끼도 보이는 천재 타입의 인상? 그 근성이 지나쳐서 교수 재임용에 탈락하고 나중엔 살인 미수 혐의로 징역까지 몇 년 살다 2011년 초에 출소했다.
세상 부적응형의 천재 타입이라면 정말 교수가 아니면 할 일이 없을 텐데, 그 연세에 범죄자로 전락하여 교도소 나와서 앞으로 뭐 하고 사시려나 좀 걱정되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12/10 19:27 2011/12/10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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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성장 단계

생산 설비가 따로 필요하지 않은 IT 기업을 기준으로,

1. 완전 소규모 회사 내지 신생 벤처는 건물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즉, 주소가 xx호로 끝남. 건물은 오피스텔이나 대학교 안의 창업 센터 같은 곳이 보통임.
규모가 너무 작고, 이런 회사는 생기거나 망하는 일도 잦은 편이기 때문에 아직 병역 특례 같은 건 없다.

2. 그러다 약간 규모가 커진 중소기업은 일반 상업용 건물의 층을 하나 차지한다. 주소가 무슨 빌딩 x층으로 끝남. 전형적인 병역 특례 기업 정도의 규모가 된다.

3. 회사가 더 커져서 제법 인지도 있는 중견기업이 되면, 위치 좋고 임대료 비싼 유명 대형 건물의 여러 층을 차지하게 된다. 주소는 x~y층으로 끝남. 한컴이나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액토즈소프트가 대표적인 예.
이쯤 되면 석사 이상의 전문 연구 요원 병특을 뽑을 법도 한 여건이 될 것이다.

Notes:
- 2와 3 사이는 간극이 큰 편이기 때문에, 두 단계의 중간 정도의 위상에 해당하는 회사도 많다.
- 모기업의 본사가 다국적 공룡 대기업이라 해도, 그 기업의 지역 지사는 그냥 중소· 중견기업의 위상이다.

4. 나중에 전국구 이상 수준으로 사업이 잘 풀리면 회사가 빌딩을 사게 되고... 자신만의 사옥을 갖게 된다. 넥슨이나 NHN, 그리고 최근에 이 단계로 레벨업을 한 안철수연구소처럼!

드디어 건물 이름이나 번지만으로 끝나는 주소 득템이다. 이쯤 되면 회사에서 딱히 홍보를 안 해도 입사 지원자들이 줄을 서고 경쟁률이 올라간다. 병특 인력 따위도 전혀 필요하지 않다.
넓은 부지를 확보하느라 도심에서 외곽으로 밀려날 수는 있겠지만, 아무려면 어때, 이쯤 되면 통근 버스를 굴릴 여건도 될 텐데.

5. 그리고, 세계구 수준의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급이 되면, 회사의 최종 완전체는 단지(complex), 캠퍼스(campus)가 된다. 신입 사원을 채용하는 절차도 며칠에 걸쳐 가며 완전 복잡해지고 전문화한다. ㅋ
동이나 우편번호를 독자적으로 할당받는 규모가 될지도..;; 통근 버스 정도가 아니라 캠퍼스 내부의 셔틀버스가 필요해질 수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1/12/08 19:33 2011/12/0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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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도의 ‘마지막’ 기록

1. 지하철, 광역전철, 기존선의 개량· 복선화· 고속화 등을 모두 제외하고,
순수하게 비수도권의 지역과 지역을 잇는 간선 철도가 마지막으로 건설된 것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무려 박통 시절, 1973년의 태백선이 마지막이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말의 경전선이라든가, 1963년의 서울 교외선도 일제가 아닌 한국 정부가 만든 철도이긴 한지만.. 이건 도대체 언제적 얘기냐?

고속도로는 경부 고속도로 개통 40주년이 되기까지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얼마나 많이 건설되었던가. 서해안, 중앙, 중부, 영동 등등~ 그에 반해 철도는 공주를 경유하는 철도가 생겼다거나, 포항과 울진이 철도로 연결되었다거나, 대구에서 광주로 가는 철도가 건설되었다거나 하는 소식이 전-_-혀 없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가 계속되었고 2차 세계대전 같은 이변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일본처럼 자동차도 좌측통행을 하게 됐을 것이고, 일본 본토가 그런 것처럼 전국을 촘촘히 연결하는 철도가 잔뜩 건설되었을 것이다. 사철도 엄청 많이 생겼을 것이고. 사실, 선로의 질을 떠나서 철도 노선의 양이 한반도에서 가장 풍부하던 시절은 역설적이게도 일제 강점기이다. 게다가 그때는 남북 분단 같은 게 없었으니, 철도로 중국이나 러시아로도 갈 수 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일제 강점기가 좋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니 오해 마시길. 그래도 한국과 일본의 위정자들이 철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런 식으로 차이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2. 우리나라에 기름으로 달리는 철도 차량이 마지막으로 도입된 것은?

1996~1998년 사이에 도입된 통근형 디젤 동차, 일명 CDC가 마지막이다.
CDC는 구닥다리 비둘기호 객차를 대체할 목적으로 도입되어 과거엔 경의· 경원선과 각종 비전철 지선(군산선, 동해남부선 등)에서 요긴하게 운행되었으나, 지금은 기름값 폭등 + 통일호 폐지 + 전철화 트렌드에 밀려 찬밥 신세가 됐다. 경의· 경원선의 말단 북쪽 구간을 제외하면 완전히 씨가 말라 있는 상태. 나머지 CDC들은 무궁화호로 개조되었다. 일명 RDC임.

3. 기관차-객차형 열차가 마지막으로 도입된 것은?

2003년에 디자인리미트(현 SLS 중공업)와 현대 로템에서 제조한 신조 무궁화호 객차가 마지막이다.
그 뒤로는 한국 철도계에도 기관차-객차 대신, 전기 동차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더구나 비전철 구간에는 CDC로부터 격상된 RDC 무궁화호도 있으니 추가 객차를 도입할 필요가 더욱 없어져 있는 것도 사실임.

EEC 이래로 대가 끊기는 듯했던 좌석형 전기 동차는 공항 철도 직통 열차를 통해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으며, 다음으로 누리로가 전성기를 열어 놓았다. 통근형 광역전철과 일반열차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경춘선에는 앞으로 2층 좌석형 전동차도 도입될 예정이니 더욱 흥미롭다.

1994년에 마지막으로 도입된 새마을호가 몇 년 뒤에 없어지고, 이렇게 도입된 무궁화호도 모두 퇴역하고 나면 1970~80년대 이래로 대한민국에 존재해 온 새마을-무궁화호 체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될 것이다. 통근형 완행 등급은 운임 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전동차가 대신하고 있으며, 새마을호처럼 내장재가 비정상적으로 너무 호화로운 열차는 이제 필요하지 않으니... 간선 철도에는 고속철 + 로컬 같은 단순한 구도만이 살아남을 듯하다.

그럼, 우리나라 철도의 '최후/마지막 기록'에 속하는 것을 몇 가지 더 살펴보도록 하자.

1. 증기 기관차: 1967년 8월 31일에 서울 역에서 종운식을 함으로써 한국 철도의 현업에서는 완전히 은퇴했다. (관광용으로 일부러 증기 기관차나 그 비슷한 걸 깜짝쇼 차원에서 투입하는 건 제외)

2. 수인선: 우리나라의 최후의 협궤 철도이던 수인선은 원래 인천에서 수원, 여주까지 이어져 있던 게 무려 40년 전인 1972년에 수원까지로 구간이 단축되었으며(수원-여주 폐선크리), 나머지 구간도 점점 역이 폐역하고 열차 운행이 줄더니 1995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운행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유는 당연히 도로 교통에 밀려 수지타산이 너무 안 맞았기 때문.

오늘날까지도 경기도 동남부의 성남, 광주, 이천, 여주 쪽은 이렇다 할 간선 철도가 없는 철도 사각 지대이다. 하지만 수인선이 복선 전철로 다시 건설될 뿐만 아니라, 수원이 아닌 판교에서 시작하여 여주까지 가는 복선 철도도 건설되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분당선 이매 역은 무려 2004년에 야탑과 서현 사이에 새로 생긴 역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성남-여주선의 환승역이 될 예정이다. 그리고 판교는 신분당선에다 이 철도와의 환승역이 됨.

3. 비둘기호: 1914년 9월 1일 오후 1시 무렵에, 미국의 모 동물원에 남겨져 있던 최후의 여행비둘기가 번식에 실패하고 죽음으로써 완전히 멸종하고 말았다. 한글이 이례적으로 창제자와 창제 목적· 시기가 알려져 있는 유일한 문자인 것만큼이나, 여행비둘기는 인류 역사상 멸종의 정확한 시기와 장소가 알려져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여행비둘기가 죽었슴다..--;

바로 이런 느낌이랄까? 대한민국의 정선선에 남아 있던 마지막 비둘기호 열차는 2000년 11월 14일을 끝으로 운행을 중단하였고, 이로써 당시 최하등급이던 비둘기호라는 열차 자체가 없어졌다. 똑같이 비둘기라는 단어가 있다니, 게다가 그냥 비둘기도 아니고 여행비둘기!! ㅋㅋㅋ 비둘기호가 사라진 날은 공교롭게도 2001년도 수능 시험 바로 전날(2000년 11월 15일)이었다. 그 당시 고등학생 철덕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앞서 언급한 수인선 협궤를 마지막 순간까지 달리던 디젤 동차도 운행 등급은 응당 비둘기호였다.
동물을 철도 이야기에다 이렇게 연결시키다니, 내가 쓴 글에 내가 감탄하고 말았다. 나 천재인가 봐. ㅋㅋㅋㅋㅋㅋ 철덕은 열차의 퇴역에 대해 특정 동물의 멸종을 보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는 법이다.

4. 통일호: 비둘기호가 사라진 지 4년이 채 지나기 전에, 통일호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KTX 개통과 함께 과거의 구닥다리 객차형 통일호는 모조리 퇴출되었으며, 이와 함께 서울 교외선도 지나친 잉여력을 못 이기고 정규 여객 열차의 운행이 중단되었다. 살아남은 것이라곤 일부 지선에 디젤 동차의 형태로만 명맥을 유지하던 통근열차 뿐.

KTX 개통 하루 전이던 2004년 3월 31일엔 철도계에서 워낙 유명하던 청량리-부전 전역정차 통일호가 종운식을 했는데, 당시 전국 각지에서 철덕들이 모여 이 열차를 타면서 통일호의 퇴역을 아쉬워했었다. 이 날은 가히 성경이 말하는 엄숙한 명절(solemn feast)이 아닐 수 없었다.

경춘선을 달리던 객차형 통일호가 모조리 무궁화호로 승격되는 바람에, 이는 사실상의 열차 운임 인상 효과를 야기하여 승객들의 불만을 샀다. 하지만 자전거처럼 바퀴로 전기를 생산하고, 정화조도 없이 배설물이 선로 밖으로 곧바로 배출되는 낡아빠진 열차를 21세기에 언제까지나 굴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불가피한 변화인 것도 있다. 그러다 지금은 경춘선은 무궁화호도 없어지고 온통 전철만 다니고 있으니, 참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1/12/06 08:14 2011/12/0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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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당선의 특징

자칭 철도 분석 전문가 사무엘 님이 진단한, 신분당선의 특징.

1. 눈에 확 띄는 홍색 노선색

1990년대엔 서울 지하철 1호선이 회색(국철) + 홍색(순수 지하철 구간)으로 구분하여 노선도에 표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관행이 없어지면서 수도권 전철에서는 한동안 홍색을 볼 수 없었다. 인천 지하철, 공항 철도, 경의· 경춘· 중앙선 등등은 모두 청색이나 옥색 계열을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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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혹시 9호선이 홍색을 쓰지는 않을까 논의된 적이 있었지만 9호선의 노선색은 금색이라고 쓰고 커피색, 황토색, 똥-_-색이라고 읽는, 6호선과 비슷한 색깔로 정해졌다. 공교롭게도 6호선과 9호선은 각각 강북과 강남 전용으로 서로 환승이 되지 않으니 딱히 혼동될 우려는 없긴 함.

대구 지하철이 1호선에서 홍색이라기보다는 적색에 가까운 붉은 색을 처음으로 시도한 후, 수도권에서는 신분당선이 붉은 노선색을 물려받았다. 어쨌든 튀는 건 사실이다.

2. 무인 운전

예전 글에서 언급했듯, 신분당선 전동차는 국내 최초로 운전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완전 무인 운전인 중전철이다. (무인 운전 “경전철”은 부산에 이미 있음) 그래서 열차를 타면 앞과 뒤의 전망이 훤히 보여서 너무 좋으며, 맨 앞 칸에 승객이 몰린다. 인천 공항 내부의 무인 운전 셔틀 전철인 스타라인을 타면서 느꼈던 감동이 그대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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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기관사가 없을 뿐이지 승무원 자체는 한 명이 객실 내부에 상주하며, 상황에 따라 차내 육성 안내방송도 한다.

열차 안의 모니터에서는 현재 열차의 주행 속도와 다음 역까지 남은 거리가 미터 단위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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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철도들의 폐색 방식이 큼직한 구역 단위로 열차의 위치를 파악하고 1폐색 1열차 통제를 하는 반면, 신분당선은 발달된 RF-CBTC (무인 운전 + 무선 통신 기반 이동 폐색식) 신호 시스템을 채택하여, 모든 열차의 위치가 미터 단위로 세밀히 파악되기 때문이라고. 덕분에 동일 구간 사이에 열차를 더욱 촘촘이 배치할 수도 있다.

이 신호 시스템이 후지고 똑똑하지 못하면, 앞 열차가 출퇴근 시간 때 조금만 지연되어도 뒤 열차는 걸핏하면 “열차 신호 대기 관계로 천천히 운행 중입니다” 크리를 먹는다. 일반 자동차도 GPS로 내비에서 위치가 m 단위로 실시간으로 파악되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궤도 위밖에 달리지 않는 철도는 더 똑똑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3. 지하철체와 형형색색 컬러 테마

신분당선의 비주얼 UI는 우릴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서울 디자인 가이드라인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덕분에, 서울 지하철 9호선이나 3호선 연장 구간과는 역 내부 인테리어가 전혀 다르다(난 개인적으로 그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안 좋아한다-_-). 어차피 신분당선은 우측통행도 아닐 정도로 서울+지하철과는 뿌리가 다르긴 하다만, 이 정도로 파격적일 줄은 몰랐다.

신분당선에는 굉장히 이례적으로, 재래식 서울 지하철 전속 서체(초롱테크 개발)가 다시 등장했다. 1990년대 중반의 서울 2기 지하철 이래로 전국의 지하철에서 찾을 수 없던 그 추억의 서체 말이다.
그리고 노선색이 홍색이랍시고 모든 역에 다홍색 띠만 도배한 게 아니라, 각 역마다 테마를 정하고 그 테마에 맞는 서로 다른 색깔을 부여했다. 게다가 각 역마다 온갖 기하학적인 인테리어까지! 철도역을 마치 예술 작품처럼 꾸며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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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지금 있는 각 역마다 개성을 너무 많이 부여해 놓으면, 나중에 역을 추가하기가 힘들 텐데.

4. 요즘 대세는 사철, 급행화

신분당선은 구 분당선보다 역 수가 훨씬 더 적다. 그리고 노선의 선형도 경부 고속도로를 따라 곧게 나란히 이어지기 때문에, 경부 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근처인 정자에서 강남까지 겨우 16분밖에 안 걸린다.

쏟아지는 차들로 인해 만성적인 정체 몸살을 앓고 있는 경부 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 양재IC 사이를 생각하면, 이는 정말 시간 혁명이 아닐 수 없다. 도심 한복판의 서울 역에서 김포 공항까지 딱 20분 주파를 달성해 낸 공항 철도의 위엄에 필적할 만하다.

신분당선의 1차 개통 구간을 공항 철도의 1차 개통 구간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재미있지 않은가?

- 강남(환승) → 양재(환승) → 양재 시민의 숲 → 청계산입구 → (꽤 긴 거리) → 판교(본사가 있는 곳) → 정자
- 김포공항(환승) → 계양(환승) → 검암(본사가 있는 곳) → (꽤 긴 거리) → 운서 → 공항 화물 청사 → 인천 공항

신분당선은 건설과 운영이 100% ‘싸제’인 최초의 철도이다. 서울 지하철 9호선은 건설이 아닌 운영만 싸제인 경우인데, 지금은 운임도 기존 지하철과 완전히 동일하게 매겨지고 있다. 자기네만 따로 비싼 운임을 부과하려 했으나, 서울시로부터의 압력 때문에 깨갱 한 후 저렇게 운영하는 것임.

공항 철도는 처음엔 100% 싸제였으나, 쌓이는 적자 때문에 운영 주체가 코레일로 인수되면서 요금 체계도 좀 하이브리드 형태가 됐다. 서울 포함 내륙 구간은 기존 지하철 운임 체계에 흡수된 반면, 영종도로 가는 곳은 그렇지 않다.

이런 전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분당선은 진짜 자신만의 운임 방식을 최초로 시행하였으며, 기본요금도 900원보다 훨씬 더 비싼 1600원에서 시작한다. 버스로 치면 진짜 빨간색 광역 버스 같은 위상. 이런 독자적인 요금 체계를 쓰는 전철이 자꾸 등장하면서 정기 승차권의 위상이 좀 애매해져 있다. 공항 철도와 신분당선은 현재 자기만의 정기권 체계를 따로 세워 놓은 상태이다.

5. 기타 잡설

- 양재 시민의 숲 역은 인근에 윤 봉길 의사 기념관과 서울 교육 문화 회관 같은 주요 장소가 존재하며,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희생자 위령탑도 거기 근처에 있다. 부역명이 ‘매헌’인데, 이는 아주 이례적으로 지역명이나 근처의 기관명이 아니라, 윤 의사의 호이다.
경춘선 김유정 역과, 안산선 상록수 역(최 용신)에 이어 셋째로, 위인을 컨셉화한 전철역이 또 등장했다. 고인이 생전에 남긴 걸로 알려진 유명한 문구가 역 승강장에 새겨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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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산입구 역은 신분당선의 역들 중 역세권이 가장 없고 가장 한적하고 잉여력이 강한 서울 교외의 역이다. 인테리어도 산과 숲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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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당선 전동차는 6량 1편성이며, 구동음은 요즘 새로 도입되는 전동차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

- 역 내부엔 역 주변 안내도가 없는 것 같다. 모니터로만 표시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 스크린도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차가 도착할 때 요즘 트렌드인 멜로디 대신 재래식 경보음이 들린다.
게다가 이때 화면에 뜨는 문구는.. “열차가 곧 도착하니, 승객 여러분은 스크린도어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아놔 이건 좀 시대에 맞지 않은 과잉 안내 같은데? 개통 후 나중에 다시 가 보니, 과잉 안내 멘트는 없어졌다.

Posted by 사무엘

2011/12/03 08:35 2011/12/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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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마 다리 붕괴 사고

중· 고등학교의 물리 시간에 '타코마의 다리 붕괴 사고'에 대해 들어 본 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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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homa는 윈도우 운영체제의 유명한 글꼴 이름이고, 여기서 지명은 미국 서북부의 워싱턴 주에 있는 Tacoma 시이다.

1940년 7월 1일에 바닷가 해협에 개통된 이 다리는 불과 4개월 만인 11월 7일, 강풍에 다리 전체가 널뛰기 하듯 들썩들썩 흔들리더니 와르르 무너져내려서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비록 다리가 기둥이 적고 무척 가벼운 구조로 건설되어 바람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당초 설계 기준보다는 훨씬 더 약한 풍속(초속 19m가량)에 다리가 아주 개발살이 났기 때문에 건축 공학계의 의문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2차선, 편도는 겨우 1차선밖에 안 되는 좁은 다리였으니 오늘날 서울의 한강에 놓인 8차선급의 크고 아름다운 '대교'들을 생각해서는 곤란하겠다. 사실은 1980년 이전에는 한강 다리들도 넓어 봤자 4차선급밖에 안 됐다가 나중에 다시 확장된 게 태반이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된 구조물이 저렇게 물렁물렁 출렁거릴 수 있는지 신기하기 그지없다.
이 붕괴 사고는 3년 전의 힌덴부르크 호 폭발 사고(1937. 5. 6.)와 더불어, 그 과정이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녹화되어 기록이 전해지는 얼마 안 되는 사고이다. 그것도, 오늘날처럼 스마트폰으로 아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시절과는 넘사벽급으로 다른 20세기 초중반에 말이다.

※ 여기서 잠깐, 힌덴부르크 호 폭발 (또 교통수단 얘기 작렬)

- 그렇잖아도 힌덴부르크 호를 촬영하러 언론사가 일부러 취재를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그랬는데 다 와 가지고 비행선이 화염에 휩싸이면서 폭발· 추락하자 리포터 양반이 “오 끔찍합니다.. 세계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라고 절규를 남겼다.
- 대서양을 건너는 교통수단의 사고로는 비록 승객수 차이가 많이 나긴 하지만 타이타닉 호와 비교될 만하다. 대형 국제 여객선과 비행선 모두, 오늘날은 실용적인 항공기에게 자리를 내 주고 자취를 감춘 상태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한 이 비행선은 미국 뉴저지 주의 레이크허스트 해군 비행장까지 가는 데 꼬박 사흘이 걸렸다. 한편, 영국의 사우샘프턴을 출발한 타이타닉은 출발 후(4. 10.) 닷새(4. 15.) 만에 침몰했고, 이는 목적지인 뉴욕까지 직선 거리로 75~80% 정도 도달한 지점이었다.

비록 비행선이 선박보다 더 빠른 것은 자명하나, 비행선은 여전히 승객의 수면을 챙겨야 할 정도로 속도가 대단히 느렸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느린 배보다 2~3배밖에 빠르지 않았다는 뜻이니 말이다. 진짜 자동차 속도이다. (이 비행 시간을 훗날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는 무려 4시간대 이내로 단축시키기도 했고.)

※ 타코마 다리 붕괴

- 후세에 길이 남을 이 특종 명장면은 다리 정면과 아래 등, 여러 각도와 장면에서 찍은 게 전해진다. 출렁거리는 모습은 모 대학의 연구팀에서, 무너지는 모습은 어느 민간인이 제각기 촬영했다고 한다.
- 중간에 다리를 못 건너고 버려진 승용차는 정말 지못미. 그래도 운전자가 차를 버리고 탈출한 건 당연히 잘한 행동임.
- 어째 컬러 동영상이 전해진다. 1940년에 정지 사진도 아니고 컬러 동영상 기술이 있었나? 아니면 흑백 동영상을 나중에 컬러로 복원했는지?

타코마 다리의 붕괴는 그래도 무슨 부비트랩처럼 갑자기 무너진 게 아니어서 사람들이 일찌감치 대피했고, 그래서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리고 붕괴 원인이 성수 대교와는 달리 부실 공사 같은 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 당시 건축학계가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던 변수 때문이었는데...

잘 알다시피 바람이 다리를 직접적으로 때리는 세기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바람으로 인해 주변에 발생한 공기 진동이 문제였다. 어떤 물체에는 고유 진동수라는 게 있는데, 이와 같거나 최소한 겹쳐지는 배수급의 진동을 지닌 외력이 거기에다 지속적으로 가해지면 같은 힘으로도 더욱 큰 진동이 내부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그 불안정한 상태가 갈수록 심해지면 그 물체는 파괴됨.

일상적으로도 자연에는 수많은 파동이 존재한다. 우리가 자연에서 듣는 음파만 해도 무수히 많은 파동이 겹쳐진 복잡한 파동이지만, 서로 간섭을 일으켜서 많이 상쇄도 된다. 그 무수히 많은 파동들이 우연히 다 겹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로 돌변할 가능성은, 데이터 운이 억발로 없어서 퀵 정렬이 하필 매 루프마다 최악의 pivot만 골라서 시간 복잡도 O(n^2), 공간 복잡도 O(n)이 될 가능성만큼이나 낮다. (내가 생각해도 참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ㄲㄲ)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매체에서 자주 과장되어 묘사되는 장면이긴 하다만, 여성이 굉장히 높은 옥타브로 괴성을 질렀더니 유리창이나 유리컵이 박살 나는 걸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엇, 그러고 보니, 함성에 무너져 내린 여리고 성도 생각나는구나(수 6:20)? 허나 그건 과학 현상이라기보단 초자연적인 기적에 더 가깝겠다.

자동차의 소음기는 반대로 그런 음파 에너지를 counter-음파로 상쇄하여 엔진 소음을 줄여 주는 물건이다. 이게 없으면 자동차도 무슨 오토바이처럼 터덜 털털털 부우웅~ 하는 짙은 소리가 그대로 들리게 된다.

1831년, 영국 맨체스터 근교의 브로스턴 다리는 많은 군인들이 오와열을 맞춰서 행군하자 그 직후 무너졌다. 군인들의 발을 맞춘 박자가 다리의 고유 진동수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7월, 서울 강변의 테크노마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진동 소동이 벌어졌을 때도 혹시 이것과 비슷한 현상이 아니냐며 타코마 다리 사고가 언론의 주목을 잠시 받기도 했다.

그리고 끝으로...
1990년대 도스 시절 게임을 즐긴 친구라면, 타코마 다리와 관련하여 역시나 이 장면이 생각나지 않는지? 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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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 2는 최종 보스인 Jafar만이 있을 뿐, 딱히 레벨별 보스가 존재하지는 않는 게임이다. 그냥 퍼즐을 풀어서 레벨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끝인데..
날으는 양탄자를 타고 동굴 world를 빠져나가기 직전의 막바지 단계에 이런 이벤트가 있다. 방법을 모르면 통과하기 굉장히 어렵고 짜증 난다.

여기서 핵심은, 저 죽지 않는 해골 악당과 적당히 칼싸움을 하고 있다가 다리가 와르르 무너질 때, 해골만 해치우고 자기는 다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왕자는 설정상 자기 칼을 떨어뜨린다. -_-;; Jordan Mechner의 게임답게 이 게임은 영화 같은 기믹이 풍부하다.

일종의 bug exploit을 이용해서 해골을 해치우지 않고 다리를 무너뜨리지 않고, 따라서 칼을 잃지도 않고 건너편의 돌문을 통과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러기는 굉장히 어렵다.
해골과 싸우지 않고 왼쪽의 돌문으로 달려가면, 해골도 오른쪽으로 가서 발판을 눌러 돌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로직상으로는, 해골과 싸우지 않고 왕자가 관문 근처로 가면, 그 해골이 발판에 도착하기도 전에 문이 강제로 쿵 닫히게 돼 있다. 그런데 이런 로직조차도 헛점이 있긴 했다. ^^
나중에 궁궐 world에서 나오는 허리 자르는 칼을 포복하지 않고 점프로 통과하는 게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 역시 bug exploit)

Posted by 사무엘

2011/12/01 08:27 2011/12/0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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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철도를 한 5년만 더 일찍 알았으면 학창 시절에 지리와 물리 공부를 훨씬 더 열심히 했을 것이고, 지금의 국어 정보학 대신 아예 이 진로를 선택했지 싶다. =_=;; 하지만, 그 경우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태어나진 못했겠지. (한숨)

글을 쓰고 보니 비행기 쪽 얘기가 너무 길어지긴 했다만..

1. 달리는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돌고 있는 팽이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와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회전하는 모든 물체에는 잘 알다시피 원심력이 발생한다. 팽이는 좌우로 원심력이 발생하고, 돌고 있는 자전거의 바퀴도 상하로(=지면과 수직으로) 원심력이 응당 발생한다. 이는 바퀴 자체나 팽이가 크거나 무거울수록, 그리고 회전 속도가 빠를수록 더욱 커지며, 이 상태가 관성에 의해 유지되다 보니, 자전거의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해진다. 이따금씩 발생하는 바퀴 좌우의 무게 불균형이 상하 원심력으로 극복 가능하고, 균형 보정을 위한 핸들 조작이 가해지는 한 자전거는 쓰러지지 않는다.

자전거는 고효율·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인간의 매우 유익한 발명 중의 하나이다.
여담이다만, 꼭 원심력 때문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식으로 의문을 품을 법한 현상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 자전거 페달로는 전진만 가능하고 후진이 되지 않는 이유는?
- 고압선 위에 앉은 새가 감전되지 않는 이유는?
- 종이 그릇으로 물을 끓였는데 종이가 타지 않는 이유는?

2. 철로 만들어진 집채만 한 배가 어떻게 물에 뜰까?

잘 알다시피 그 이름도 유명한 부력(buoyancy) 덕분이다.
물은 공기와는 달리 그렇게 가벼운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물질이나 호락호락 가라앉히지 않는다. 아니, 질량을 가진 모든 유체(fluid)엔 원래 그런 특성이 있다. “너만 중력이 있냐? 나도 있다” 그래서 유체 속의 물체를 밀어낸다. 그 이름도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되시겠다.

쇠로 만들어진 배가 물에 뜨는 것은, 그 배의 무게에 해당하는 물의 부피만치 배의 아랫부분이 이미 물에 잠겨서 힘의 평형이 상하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물의 밀도도 만만찮으며, 배도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물속에 가려져 있다.

물체 전체의 부피만 한 물의 무게로도 물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야만 물체가 물 밑으로 한없이 가라앉을 것이다. 그래서 내부에 공기가 많은 깡통은 물에 뜨지만 찌그러진 깡통은 곧장 가라앉는다. 물이 새기 시작한 배가 침몰하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물이 공기보다 훨씬 더 무겁기 때문.

물에 여러 물질을 녹여서 밀도를 키우면 부력도 응당 증가한다. 그래서 맹물에서는 가라앉을 물체가 소금물에서 뜨며, 최강의 소금 농도를 자랑하는 사해 바닷물은 사람까지 둥둥 띄우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배가 물에 뜨는 것은 어디서나 재연 가능한 과학 법칙일 뿐, 물 위를 걸은 예수님의 기적(마 14:25-26) 같은 현상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

3.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로 뜰 수 있을까?

이건 위의 질문보다 더욱 어렵다. 하긴, 18~19세기엔 저명한 물리학자들조차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니 말이다. 비행기의 발명은 가히 어마어마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A4 용지를 준비해서 직사각형의 네 변 중 짧은(21cm짜리) 변을 이루는 두 꼭짓점을 손으로 잡고 입가로 가져간다. 잡고 있지 않은 맞은편 두 꼭짓점은 아래로 축 늘어질 것이다.
이 상태로 종이의 윗부분(아랫부분 말고)을 힘껏 훅~ 불어서 바람을 만들면...;; 놀랍게도 늘어졌던 종이가 벌떡 위로 펴질 뿐만 아니라 더욱 위로 올라가려 하면서 펄럭거리기까지 할 것이다.

종이의 아랫부분을 훅 불면, 아래로 쳐져 있던 종이가 바람을 직접 받아서 위로 펴지는 게 이해가 되겠다만, 종이가 닿지 않는 윗부분에 바람이 부는데 왜 아래의 종이가 붕 뜨게 될까??

바로 이것이 오늘날 고정익 항공기가 하늘로 뜨는 이론적 배경이라고 한다. 베르누이의 원리라고 불리는데, 비행기의 날개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니라 주변 공기의 흐름을 교묘하게 바꿔 압력차를 만듦으로써, 아까 저 종이와 같은 양력(lift)을 만들어서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 존재한다. (잘 이해는 안 되지만, 뭔가.. 냉장고와 에어컨의 동작 원리만큼이나 신기하다) 날개 표면이 이물질로 인해 조금만 울퉁불퉁해지기만 해도, 생성되는 양력이 크게 떨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공기의 흐름부터 만들어야 이로부터 양력이고 자시고가 생길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비행기 자체가 무진장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것이 바로 비행기의 엔진이 하는 일이다. 비행기의 엔진은 공기를 뒤로 뿜음으로써 추력을 만들지, 자동차의 엔진처럼 피스톤을 회전시키는 방식은 아니다. 이 메커니즘 때문에 고정익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긴 활주로가 필요하며, 반대로 사뿐히 내려앉기 위해서도 활주로가 필요하다.
자동차의 고급 옵션 중 하나인 ABS 브레이크가 원래는 이런 비행기에서 쓰이던 기술이 자동차에도 덩달아 도입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주변의 컨테이너나 소형 승용차마저 팬에 빨려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주변 공기를 빨아들인다. 그래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웽~’하는 엔진 내지 팬 소리보다도 ‘쿠르르릉!’하는 박진감 넘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이다.

그럼, 고정익 항공기 말고 다른 비행체는 어떨까?

- 헬리콥터: 가벼운 바람개비를 빠르게 돌려 놓고 손에서 떼면, 이것도 잠시나마 하늘에 살짝 떴다가 떨어지는 걸 알 수 있다. 고정익 항공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발상으로 만들어진 이런 부류의 회전익 항공기는 비록 수송력과 경제성은 크게 떨어지지만, 한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초고속 이동을 해야만 양력이 유지된다는 한계에 매여 있지 않다. 그래서 긴 활주로 없이도 손쉽게 이· 착륙을 할 수 있으며, 공중에서 3차원 여섯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공중에서 정지해 있을 수도 있다.

헬리콥터의 로터는 개념상 날개이지 프로펠러가 아니다. 회전익 항공기라는 개념은 수백 년 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상상을 했을 정도이지만, 이것이 실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로터를 회전시킬 수 있는 가벼우면서도 출력이 굉장히 좋은 고성능 엔진이 먼저 발명되어야만 했다.

- 비행선: 물에 적용되는 배, 아니 어찌 보면 잠수함의 원리를 공기에다가 접목-_-한 것이다. 비행체의 밀도가 공기보다도 가벼워지도록 어마어마하게 큰 부피의 수소나 헬륨을 적재한다. 고도 조절은 잠수함이 심도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하며, 엔진은 방향과 속도 조절용으로만 쓴다. 매우 저렴한 동력비로 하늘에 조용하고 우아하게 뜰 수가 있고 심지어 엔진이 꺼져도 곧바로 추락하지는 않으나..... 역시 수송력이 열악하고 주행 속도가 매우 느리며(빨라 봤자 100~150km/h대. 자동차급밖에 안 됨), 비행 고도도 오늘날의 항공기보다 훨씬 낮은 데다가 덩치까지 엄청 크다 보니 보안에도 매우 취약한 게 흠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행선은 양력이 아니라 부력-_-으로 뜨기 때문에 날개는 없다.
그런데, 공기보다 밀도를 낮추기 위해 비행선이 얼마나 덩치가 커야 했냐 하면.. 위의 그림과 같은 정도이다.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집어넣었는데도! (그림은 과거의 수소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보잉 747, 그리고 여객선 타이타닉 호) 그래 봤자 저 비행선의 승객 정원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와 비슷한 겨우 100여 명 안팎으로, 무려 450명 가까이나 탈 수 있는 747의 1/4 수준도 안 됐다.

- 로켓: 다른 항공기들은 하늘로 떠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게 목적인 반면, 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하늘 위로 최대한 높이 뜨는 것 자체만이 목적이다. 유체고 나발이고 없이 오로지 작용· 반작용의 법칙만을 이용해서 나아가므로, 날개도 필요 없고 오히려 유체의 저항이 없는 진공이 유리할 것이다. 연료 소모가 매우 심하고 유인 로켓의 승무원은 발사 직후에 어마어마한 압력에 짓눌려야 하지만, 지구의 육중한 중력 가속도를 뚫고 수백 km 이상의 고도로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지구 중력의 탈출 속도는 초속 11.2km가량 된다. 지표면에서 이 정도 속도로 공을 던지면 지구로 되돌아오지 않을 경지에 이른다는 뜻. 하지만 이 속도는 음속의 무려 30배를 상회할 뿐만 아니라, 공기와의 저항과 마찰, 그리고 엔진 기술의 한계 때문에 지표면에서 결코 낼 수 없는 속도이다. 성층권에서 겨우 마하 2.x 정도로 비행한 콩코드만 해도 소닉 붐 같은 충격파에, 공기 마찰 때문에 열받아서 수백 도로 벌겋게 달아오른 기체의 유지 보수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로켓은 그 탈출 속도보다는 당연히 훨씬 느리게 뜬다. 하지만 발사 후에도 연료 배기 가스를 뿜어서 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그 밑천으로 지구 대기권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 새들-_-: 비행기를 연구하고 설계한 사람들이 새의 날갯짓을 매우 세밀히 관찰하고 벤치마킹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들은 인간이 만든 비행기처럼 주변 공기를 다 빨아들이지도 않으며, 헬리콥터처럼 날개에 이물질이 닿는다고 해서 바로 박살이 나지도 않는다. 항공계의 영원한 골칫거리인 조류 충돌(bird strike)이나 연료 폭발 같은 건 더욱 없다. 새의 놀라운 비행 원리에 대해 이런 거야말로 진화의 산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으며 지적 설계와 창조의 증거라고 특히 창조 과학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주장을 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11/27 08:26 2011/11/2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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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라 하면, 흔히 주류 대중 교통수단과는 완전히 소외되어 있는 오지만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역세권을 넘어서 아예 전철역의 코앞에 닿아 있는 군부대도 있다. 보안상, 그게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가 않을 뿐. 다음 예를 살펴보자.

1. 세류(1호선)

공군 부대가 바로 옆에 붙어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수원 비행장이 바로 이것임. 민간용 위성 지도로 보면 역 서쪽이 온통 논밭뿐이지만 이는 훼이크이다. 지상에서 위장(?)도 잘 해 놨는지 열차 차창 밖만 봐서는 주변에 군부대나 비행장이 있다는 걸 거의 눈치챌 수 없다. 나도 몰랐으니까.

세류는 전철의 시종착역 중 하나인 병점과, 일반열차를 취급하는 수원 사이에 낀 마이너 콩라인 역이긴 하나 군부대로 인한 고정 수요가 있는 중요한 역이다. 면회 가는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곳에 항공유를 수송하여 공급하는 수단 역시 응당 철도이다. 부대 내부로 이어지는 선로가 있음.
이곳엔 미군 부대도 있기 때문에 국군 공군 장병뿐만 아니라 카투사 역시 이쪽으로 발령 가는 경우가 있다.

2. 녹사평(6호선)

민간 지도에서 녹사평 역 주변으로 아무것도 없는 방대한 공간(위성 지도에서는 다 숲으로 땜질-_-)을 차지하고 있는 건 잘 알다시피 미군 부대이다. 서울 용산구의 금싸라기 땅이라니, 아마 대한민국에서 땅값 가장 비싼 곳에 있는 자신만의 신세계일 것이다.

녹사평은 군부대 근처에 있는 역치고는 너무 으리으리하고 화려하게 지어진 감이 없지 않다. 내가 예전 글에서도 썼듯, 서울 지하철 11호선과의 환승에다 서울 시청 신청사 이전을 염두에 두고 화려하게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둘 다 계획이 흐지부지되었으니 역만 저런 신세가 됐다. 마치, 통합 글꼴 HFT가 제정되었지만 오늘날까지 그걸 쓰는 건 결국 아래아한글밖에 안 남았고 아래아한글 전용 글꼴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 것처럼 말이다. ㄲㄲㄲ

3. 남태령(4호선)

서초구와 관악구의 경계인 동작 대로에 자리잡은 이 역은 역세권 수요 때문도, 환승 때문도 아니요 그냥 서울 지하철 4호선과 과천선의 직결 사업의 산물이다. 동쪽의 서초구 방면으로는 방배2동 전원 마을이 있는데 산으로 뒤덮인 서쪽에 있는 것은... 무려 그 이름도 유명한 수도 방위 사령부이다. 참고로 국가 정보원과 거의 같은 위도상에 있다.

전원 마을은 진짜 말 그대로 단독 주택 일색이며, 3층 이상의 건물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서울 안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코앞의 군부대로 인한 고도 제한+개발 제한 크리 때문. 다만 여느 그린벨트 지대와 크게 다른 건, 코앞에 전철역도 있다는 점 되겠다. 마을 어귀에 나 있는 남태령 역 1번 출구의 모습은 짤방으로도 알려져 있다. 상업 시설이 아닌 한가한 주택가에 덩그러니 놓인 지하철 출입구는 역시나 이색적이다.

참고로 남태령 역은 서울의 최남단 역은 아니다. 1호선의 금천구청 역이 최남단이었는데, 이 기록을 신분당선의 청계산입구 역이 또 갱신했다.
남태령 역은 깊은 섬식 승강장이며 에스컬레이터 형태를 포함해 전반적인 구조가 이대 역을 쏙 빼닮았다. 이쪽 구간은 1기 지하철로서는 드물게 개착식이 아닌 터널식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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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질문: 수방사와 미군 본거지는 저쪽에 있는데, 그렇다면 육본은 어디 있을까?
대전의 위성 도시이면서 국방 도시로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독립한 충남 계룡시에 있다(원래는 논산시 영역이었음).
그리고 여기에 육본뿐만 아니라 육해공 3군의 본부가 모두 자리잡아 있다.
이래저래 논산을 비롯해 이쪽 일대는 육군 훈련소도 있고, 군사 이미지가 굉장히 강한 듯.

계룡 역의 예전 명칭은 두계 역이었다. 무궁화호 중에도 무정차 통과 열차가 있을 정도로 태생이 마이너한 작은 역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 덕분에 현재는 일부 호남선 KTX가 정차하는 이색적인 위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육본이 그 역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는 건 아니다. 거기서 북서쪽으로 직선 거리로 4km남짓 더 가야 된다.

육본, 아니 3군 본부가 있는 곳은 그 호남선 개태사-신도 R400짜리 드리프트가 있는 곳과 상당히 가깝다. 즉, 계룡보다도 과거의 신도 역에서 더 가까웠지만 현재 그 역은 폐역되었음.
군 본부는 민간 지도에는 당연히 표기되어 있지 않으므로 지도에서 찾을 생각은 하지 말라.

Posted by 사무엘

2011/11/25 08:28 2011/11/2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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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성경 드립

1.
창세기 48:13-14를 읽으면서 주인공의 자세로부터 우리나라의 유명하고도 기괴한 어느 철도 시설을 떠올릴 수 있다면, 당신은 성경과 철도에 모두 통달한 용자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바로 지하철 4호선 남태령-선바위 사이의 꽈배기굴 되시겠다.
궁금하신 분은 본문을 직접 읽어 보시길.
실제로, 본인은 남에게 꽈배기굴이 뭔지 설명을 할 때 저 야곱 같은 포즈를 취하기도 하기 때문에 저 묘사가 아주 친숙하다.

2.
유모레스크를 작곡한 체코의 낭만파 음악가 안토닌 드보르작(드보르자크)은 잘 알다시피 타의 귀감이 되는 극렬 철도 덕후였다. (당시는 증기 기관차 열차 시대!)
차량 계보와 열차 시각표를 줄줄 외운 건 물론이고, 음대 교수가 된 뒤에도 열차가 들어오는 시각이 되면 인근의 철도역으로 달려가서 서성거렸으며 대륙 횡단 열차 타 보러 미국까지 갔다는 흠좀무스러운 일화가 전해진다.

당대의 유명인사가 이런 기괴한 행각을 벌이니, 동시대를 살았던 프로이드 파 심리학자들이 이런 개드립을 쳤던가 보다. “당신이 철도 덕질을 하는 이유는, 열차 바퀴의 피스톤 왕복 운동으로부터 성행위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에 빡친 드보르작은 “그럼, 열차가 터널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건 고래의 성행위이기라도 하냐, 이놈아?”로 일갈했다고 한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딱 저런 스타일의 모함을 받은 적이 있다. 마 12:24, 막 3:22, 눅 11:15를 읽어 보시라!
바리새인들의 개드립이 저 심리학자들의 개드립과 완전히 똑같은 차원이지 않은가? ㄲㄲㄲㄲ

3.
본인은 교회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형제가 철도 덕질을 할 때마다 성령님은 탄식한다”, “철도냐 주님이냐 하나만 고르라” 이런 식의 드립(?)을 듣는다. 마치 철도와 신앙이 모순되는 듯한 가정이 잘못된 질문을 받을 때면 본인의 공식적인 답변은 언제나 동일하다.

너희가 철도도, 철도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느니라. (마 22:29, 막 12:24)

저건 마 22:23-28만큼이나 의미가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ㅋㅋㅋ
실제로 본인의 교회 청년부 친구들도 저 답변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_-;; 그저 “네가 나를 설득하여 거의 철도 덕후가 되게 하는도다”(행 26:28)로 쉴드를 칠 뿐. ㄲㄲ

4.
다만, 요 21:15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식사를 마친 뒤에 구로 차량 기지에 있는 수많은 전동차들을 보면서 베드로에게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철도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장면이 연상되지 않는 건 아니다. -_- 졸지에 베드로가 철덕이 되어 버렸군.

Posted by 사무엘

2011/11/23 08:28 2011/11/2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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