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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약 율법과 말라기 구절을 근거로 십일조 헌금을 부과하고, 심지어 솔로몬을 따라 일천번제(?)라는 이상한 헌금 제도까지 시행하는 교회가 적지 않다.
2. 목사는 거~룩한 “주의 종”이고 구약으로 치면 레위 인이다. 교회 예배당은 거룩한 ‘성전’이다.
3. 안식일은 고증상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라며, 어떤 교회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안식일도 모자라서 유월절을 지키는 곳도 있다.
4. 오늘날 수많은 개독안티들은 모세오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트집을 잡는다. 그러면서, 기독경 바이블이 말하는 신은 반인륜적이고 잔인하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신이라고 공격한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고 행한다면 이런 것도 그대로 행하겠냐ㅋㅋ라고 막 빈정댄다.
5. 성경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위의 조롱을 좀 의식하는 사람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와 심판의 신인 반면, 신약의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의 신”이라는 식의 드립? 쉴드?를 친다. 이 사람들은 구약 성경을 근거로 제시되는 각종 ‘보수적인’ 기독교 윤리관(사형 제도, 동성애, 낙태, 옷차림과 외모 등등등)에 대해서도, 동일한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쏙 빠져나간다. -_-;;


이 모든 사례는 성경을 바르게 나누지 않아서 발생하는 촌극이다. 그 사례가 겨우 저 다섯 가지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신약과 구약 교리를 잘못 분간하여 저질러지는 병크는, 기독교회가 존재하는 한 아마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_-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든, 개독안티이든,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방향만 다를 뿐 그 누구라도 똑같이 걸려 넘어지고 오류에 빠지게 된다. 성경은 그렇게 호락호락 만만하게 쓰여진 책이 아니다.

위의 다섯 사례들에 대한 본인의 코멘트는 이러하다.

1.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 성도는 복, 믿음에 대한 구도와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말 3:10 같은 십일조에 대한 보상 자체가 오늘날의 크리스천에게는 약속되어 있지 않다. 성경 어디에도 신약 성도가 예수 잘 믿거나 교회 열심히 잘 다니거나 헌금 많이 하면 물질적인 복을 받고 부자 된다는 약속은 없다. 신약 성도들이 이미 받은 영적 복은 엡 1:3에 규정되어 있고, 헌금 원칙은 고후 8:12 같은 자발적인 규정이 전부이다. (이 관행에 대해서 통탄하는 어느 목사님의 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몸과 시간과 물질을 바치지만, 그 일을 하는 동기에다 구약의 마인드를 집어넣는 건... 정말 생뚱맞고 안 어울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받은 믿음으로 헌신할 뿐이지, 걔네들처럼 ‘십일조 바치면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보상 받는지 따져보자’ 이러는 구도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2. 구약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벧전 2:9, 엡 2:21, 고전 3:16 같은 구절과 비춰 봤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 -_-;;;
물론 본인은, 자긴 그 잘난 제사장의 의무를 다하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만 만인 제사장 운운하는 뺀질이를 아주 싫어하며, 목사와 교사 직분 자체를 부정하는 모임도 명백히 잘못됐고 비성경적이라고 여긴다.

3. 오늘날 신약 교회가 지키는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며, 그와 아무 관계가 없다. 일요일 예배는 예수님이 부활한, 더 정확히 말하면 부활이 알려진 날에서 유래되었을 뿐이다. 태양신 축제와 연관 짓는 건 성탄절, 이스터 정도로 족하다. 일요일 자체는 아무 문제될 게 없다.

4. 이런 부류들은 도대체 어디부터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환이 상한 자, 안면이 함몰된 자는 군대에 가지 못할지니라”고 하면, 얘네들은 군대가 장애인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집단이라고 드립을 칠 친구들이다. 가나안 백성들을 다 진멸하라고 명령한 하나님 탓할 줄만 알지,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명령을 100% 이행 안 하고 걔네들로부터 안 좋은 거 배워서 동화되다가, 죄에 빠져서 하나님에게서 똑같이 큰 벌 받은 건 눈에 안 들어온다.

트집 잡는 게 다 저런 식이다. 저 친구들은 성경에서 그런 의문과 이해가 안 되는 부분만 해결되면 성경을 믿겠다는 의향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알기 때문에, 나도 더 친절하게 설명 안 할 생각이다.
수학의 ‘수’짜도 모르는 초딩이 “님들아, 입실론 델타 증명부터 로피탈의 정리까지를 A4 한 장에다 내가 알기 쉽게 좀 설명해 주셈” 질문 달랑 던져 놓고는, 답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욕지거리 하는 것과 같은 꼴.

그리고 끝으로,
5. 성경 66권을 통틀어 짐승과 수간하지 말라고 명령되어 있는 곳은 구약 율법밖에 없다. 그럼, 저 논리대로라면, 신약 크리스천들은 짐승과 수간해도 괜찮겠다. ㄲㄲㄲㄲ
저 사고방식의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성품이 시대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게 절대 아니라는 데 있다. 단적인 예로,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이라는 명제는 신약과 구약에 동급으로 인용되어 있다(신 4:24, 히 12:29). 그리고 구약 율법에도 정말 가난한 자, 어려운 자를 배려하는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 구절은 얼마든지 있다.

신약과 구약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서 여러 할 말이 있지만, 요약하고 또 요약하자면 이렇다.
구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선택하셨다. 각자 자기 favorite gods들을 찾아 떠난 이방 민족들을 상대로 누구의 신이 진짜 신인지 객관적으로 맞장 뜨는 구도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신정 국가 컨셉의 특이한 규범이 많았고 당장 눈에 띄는 보상에 대한 약속도 많았다. 그러나 몇몇 얘네들의 민족적 특수성이 감안된 규범을 제외하면, 윤리와 관련된 대다수 규범들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유익한 것들이다.

그 후 신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정작 유대인들은 그분을 거부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방인을 상대로 교회를 만들고, 교회로 하여금 유대인들의 질투심을 유발해서 유대인들까지 예수님을 믿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래서 신약 규범은 비격식· 비가시적이고, 자율적이고, 영적인 것이 많다. 그런데 그게 더 수준이 높다.

다만, 이런 하나님의 경륜의 저변에 깔린 공의와 사랑이라는 두 성품은 시대를 불문하고 불변 동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사실을 전제에 깔면 신구약과 관련된 상당수의 오류를 예방할 수 있다.

불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신자? 개독?)들은 도대체 왜 너네 주장만 맞다고 생각하느냐? 맞다는 근거로 맨날 성경을 들이대는데 그건 순환논리이고 우리 같은 불신자한테는 씨알도 안 먹힌다.”
본인은 왕년에 종교 배틀을 한두 번 벌여 본 것도 아니고, 걔네들의 심리 정도는 다 꿰뚫고 있다.

그런데, 참 애석하게도... 진짜로 성경은 순수한 동기로 먼저 믿어야지 나머지 부분도 나중에 차츰 이해가 되게 된다. 나도 저것보다 더 속시원한 반격을 하고 싶어 죽겠는데, 더 할 게 없다. 성경 신자들의 신앙은 세속 논리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당연히 순환 논리도 갖고 있고,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이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겠는가.

단, 일단 먼저 믿어서 나쁠 게 절대 없는데도, 안티들은 성경을 잘못 적용한 극단적이고 이상한 부류들이나 들먹이면서, 그걸 일반화하여 종교가 사람의 정상적인 이성을 마비시키고 우민화한다고 깐다. 그건 그렇지 않다고 그 정도는 본인이 반박해 줄 수 있다. 이해나 증명이 불가능한 몇몇 핵심 명제만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이후부터 기독교 교리는 그걸 바탕으로 철저한 논리와 일관성과 질서 그 자체이다.

본인은 구약 율법과 크리스천의 관계를 군대에다 비유한 적이 있다.
율법은 군인에게 부과되는 온갖 제약과 규율들이다. 그 중에는 각종 심신 단련과 규칙적인 생활처럼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유익한 게 많다. 인간에게도 유익하고 군대가 돌아가는 데도 필요하니까 그런 게 명시된 거겠지.

마치, '10시 취침, 6시 기상'은 전세계 군대나 민간인들이 지켜서 나쁠 게 없는 규정인 반면, '우리의 주적은 북한'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대한민국이라는 민족의 특수성 하에서만 유효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개독안티들이 비판하는 건, '전시에 적진으로 도주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같은 법규를 보고는, 잔인하고 반인륜적이라고 욕하는 것과 거의 똑같다. 저 군법이 과연 잔인하고 반인륜적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약 교회의 크리스천은 민간인이다. 그걸로 끝이다. -_-;;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먹혀드는 비유는 없을 거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가 낳은 사람들 가운데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일어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그보다 크니라. (마 11:11)

위의 말씀은, 제아무리 뼛속까지 FM인 1등급, A급 병사라 해도, 제대한 민간인보다는 못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뭐가 못하다는 건지 모르는 분은 없을 테고.

오늘은 요기까지만 쓰련다.
신약 vs 구약과 더불어 자매품(?)으로는, 신구약 ‘과도기’의 교리와 신약 교리를 잘못 분간하는 오류가 있다는 걸 아울러 밝힌다.

요놈의 주된 부작용으로는 치유나 방언 같은 잘못된 은사주의 교리가 있다. 그래서 행 2:38이 교회 성도들에게 직접 적용되는 교리로 왜곡되고, 막 16:17-18을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 버린다.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구사하고, 중환자에게 안수만 하면 병이 즉시 낫고, 청산가리 같은 걸 마셔도 안 죽고..;; 우리가 시도했다가는 다윈 상 수상자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데? -_- ㄲㄲㄲㄲㄲㄲㄲㄲ

이건 다른 책보다도 마태복음과 사도행전과 히브리서를 잘못 적용했을 때 나타나기 쉬운 증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30 08:46 2011/09/3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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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 받던 시절

찬송가를 부르고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한 뒤, 나는 침례를 받았다. 우선 허리까지 차는 깊이까지 바다로 들어갔다. 침례자는 내 얼굴을 수건으로 감싼 뒤, 나를 얼굴까지 바닷물 속으로 뒤로 제꼈다가 다시 들어올렸다. 오호~ 이런 게 침례로구나. 정말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2002년 8월 11일자 본인의 일기 중에서)


본인은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중· 고등학교 미지의 시기에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내 구주로 영접했다. 그 후 대학 시절에 킹 제임스 성경(KJV)을 접했다. 그 전엔 기독교 신앙이라는 게 막연하게 그저 맹목적으로 무조건 믿는 수밖에 없어서 불신자들 앞에서는 말도 못 꺼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킹 제임스 성경은 단순히 읽는 성경뿐만이 아니라 세세한 교리 노선까지 바꿨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바르게 알게 된 교리 중 하나가 바로 침례이다.
침례는 성도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후, 예수님의 죽으심과 매장· 부활에 내가 동참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의식이다. 신약 교회에서는 침례와 더불어 주의 만찬이라는 단 두 종류의 의식만이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

침례는 그 성격상 온몸이 물에 잠기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물을 가져와서 행하는 게 아니라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가서 하게 된다. 마치 플룻이나 기타는 악기를 가져와서 연주하지만, 피아노는 악기가 있는 곳에 사람이 가서 치듯이 말이다.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아닌 것만큼이나 침례도 구원의 조건이 절대로 아니다. 먼저 구원받고 나서 그 증표로서 침례를 받는다.
그리고 침례는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며, 스스로 자기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란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 군대에 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비행기 비상구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수준... 보다는 덜 엄격하겠지만, 어쨌든 최소한의 조건은 있다.

하나님 앞에서 세례는 무효이다. 더구나 유아세례는 더욱 잘못된 관행이다. 쉽게 말해서 아래 그림에서 (1)이 맞고 (2)는 틀리다는 것.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서 침례 받으시는 모습을 묘사한 온갖 성화· 성경 만화들 중에, 고증상 오류가 있는 게 정말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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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를 기름부음(anointing)과 헷갈려서는 안 된다. 또한 침례는 할례하고도 아무 연결 고리가 없다.
성령 baptism은 성령님이 이마에만 찔끔 임하는 게 아니며, 불 baptism은 이마에만 불이 붙어 활활 타는 게 아니다.
세례든 침례든 뭐가 대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것 때문에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곤 했다. -_-;;

이건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할 차원이지, 성경 자체를 세례 에디션, 침례 에디션으로 따로 내는 건 마케팅 전략일 뿐이다. 침례를 주는 게 당연한데도 오늘날은 침례를 주는 교파만을 침례교라고 따로 부를 정도이니, 매우 통탄스러운 현실이다.

2002년! 킹 제임스 성경을 갓 알게 된 후, 본인은 인터넷으로 관련 분야 지식을 탐독하면서 본인과 함께할 믿음의 동지들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침례를 줄 곳이 주변에 없는지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한글· 세벌식 진영에서 알게 된 어느 지인이 KJV 쪽으로도 안면이 있는 분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리고 그분이 나가는 교회 모임에도 따라 나가게 되었다.

거기는 가정 교회? 지방 교회? 비스무리한.. 그런 모임이었다. 66권 전서가 번역되어 있다는 이유로 흠정역을 쓰긴 하지만, 안티오크의 권위역(당시 신약만 존재하던)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히 9:15-17을 근거로 '유언'(testament)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했다.
일체의 기성 개신교회의 관행을 다 부정하고, 목사도 싫어하고(그래도 자기네 모임에도 결국 목사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는데!),
속세를 떠나 아미쉬나 워치만 니처럼 사는 걸 좋아하고,
자매는 예배 때 머리에다 너울을 씌우고,
매주 모일 때마다 만찬을 하고, 포도즙 잔을 돌려가면서 입 닦으면서 마시고,
제비뽑기로 예배 인도자를 뽑고는 성도들끼리 돌아가면서 성경을 강론하고...
뭐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KJV를 알기 전에 겨우 20대 초반이던 본인의 영적 수준은,
“나중에 서울에서 지내게 되면 어느 유명한 대형 교회에 등록할까? 그런 곳에 다니면 최신 기독교 문화를 최전방에서 바로 접하면서 살 수 있겠지?”
“NIV 다음으로는 표준새번역, NASV, NLT 등 중에서 무슨 성경 역본부터 읽을까?”
이랬었다. 진짜로.

그랬으니, 갓 KJV를 알게 된 직후, 본인은 아직 그쪽 지식이 충분치 못했으며, KJV를 옹호하고 기존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비성경적인 관행을 반대하기만 하면 무조건 나의 아군으로 간주했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보는 저런 작은 모임에도 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그 모임에 수 개월 나간 후, 여름 MT 행사에서 드디어 침례를 받게 되었다.

뭐, 그분들은 침례를 밥티스마라고 불렀다. -_-;; 그리고 너 정말 구원받은 거 확실하냐고 내게 거듭 확인을 하곤 했다. 나중에 딴소리 하면서 침례를 다시 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사연을 거쳐 본인은 침례탕도, 수영장도 아닌 자연에서 흐르는 물속에서 침례를 받았으며 그때의 신앙 고백을 갱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로 본인에게 침례를 준 교회 진영과는 교제를 중단하게 된 것이 아쉽긴 하다. 나도 지식이 늘면서 점점 벌어지는 교리 차이와 분위기 이질감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기를 탈퇴했다. 비록 교리는 정당한 교제 중단 사유이긴 하지만, 좀 곱게 나오지 못한 건 유감스러운 점이긴 하다.

그리고 2003년, 본인은 흠정역을 사용하는 다른 교회를 대전에서 다니게 되었고, 그 계열의 교회를 서울에서 오늘날까지 계속 출석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 년 남짓 뒤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대부흥 + 철도 성령 강림이 있었고. ㄲㄲㄲㄲㄲ
지금으로부터 벌써 8~9년 전인 2002~2003년이 내 인생에서 흥미롭던 시절이긴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28 09:05 2011/09/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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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튜브> 분석 --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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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훈이 오토바이로 전동차를 따라잡는 유명한 스턴트 장면. 당연한 말이지만 스크린도어가 없던 시절이니까 이런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고속터미널 역에서 점프를 하고는 논현 역에서 전동차에 달라붙는 건 도대체 무슨 순간이동이냐! (논현 역은 저렇게 높은 천장이 없기도 하고, 또 고텀-논현은 똑같이 대리석 인테리어여서 서로 연계를 한 건 좋은 아이디어이긴 함. 그럼 촬영 전체를 왜 고텀 역에서 하지 않았냐고? 아마 고텀은 논현과는 달리 곡선 승강장이어서 묘기를 하기가 더 어려워서 그러지 않았을까? 철덕이라면 이 정도 수읽기는 할 줄 알아야 한다. ㅋㅋㅋ)

참고로 <라이터를 켜라>에서는 논현 역 대합실을 서울 역 대합실로 설정한 장면이 촬영되기도 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참고하라. 아주 그냥 지하철역을 일반 철도역으로.;;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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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런 기믹을 생각해 냈는지는 모르지만, 도철(SMRT) 관할의 5~8호선 전동차는 천장에 저런 전광판이 원래 달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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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의 요구 사항이 충족되지 않자, 강변북로와 동호대교를 배경으로 국철 옥수 역이 박살난다.
저런 규모의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고 지하철역에 잘 숨겨져 있다가 터지는 건, 내부 소행 내지 역무원을 매수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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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7호선 전동차가 2호선 선로로 진입해 청담 대교가 아닌 잠실 철교를 건너고 있다. 잠시 후 김 석훈과 박 상민이 다시 전동차 안에서 대면하여 칼부림을 하게 되는데, 이때는 분위기상 전동차가 다시 어두운 지하로 들어간다. 잠실 철교 이북은 한양대까지 가서야 지하가 나오니, 그렇다면 전동차는 이남인 잠실 방면으로 들어갔다는 뜻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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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발의 차이로 상· 하행 열차가 충돌을 피하고 평면 교차하는 장면인데, 당연히 CG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를 보면, 붉은 램프(=자동차로 치면 브레이크 경고등. 후방)가 켜진 열차가 우리 쪽으로 전진해 오고, 흰 램프(=자동차로 치면 헤드라이트. 전방)가 켜진 열차가 뒤로 멀어져 간다는 것.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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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차가 딱 한 번 멈춰 서고 벌어진 터널 내 총격전 장면은 아예 부산 지하철 2호선 전동차를 썼다. 전동차가 더 홀쭉하고 작은 걸 알 수 있다.
부산 2호선 전동차는 서울 7호선 1차 도입분 전동차와 동일한 구동음을 내기 때문에 고증상 유리하다. 그런데 본인이 정말 놀란 건... 영화에서는 박 상민이 이 전동차를 도로 출발시킬 때, 서울 지하철 5호선 전동차의 구동음이 난다는 것! 이 음향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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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다 끝나고, 잠깐 나오는 이 사람도 누군지 잘 모르겠다.
김 석훈은 혼자 열차에 남아서 최대한 오래 스위치를 붙잡고 있다가 죽는 설정(이것도 굉장한 억지 설정이긴 하다만)인데, 설마 살아나기라도 했나..?
그리고 credit roll이 올라가기 전에 잠깐 뜨는 이 문구도 OST 제목이기라도 한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인은 알 길이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26 08:22 2011/09/2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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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튜브> 분석 -- 上

<튜브>(백 운학 감독, 2003)는 잘 알다시피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하철 테러를 컨셉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배급사가 튜브 엔터테인먼트인데, 이 영화와는 관계없이 원래부터 이름이 튜브였다.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악재도 있고 해서 국내 영화관에서는 그리 흥행하지 못했지만, 외국에 비디오 수출로는 본전을 뽑았는가 보다. 그래서 외국의 파일 공유 서비스들을 뒤져 보면, 웬 희한한 언어로 더빙이 된 <튜브> 영화 파일이 돌아다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좋은 점: 철덕들에게 볼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김 석훈· 배 두나· 박 상민 등 배우가 참 멋있다. 밤에 연인들 분위기가 참 낭만적이고 멋있고, 음악도 좋은 편.

아쉬운 점: 인위로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드느라 어거지가 너무 많고, 서울 지하철 시스템에 대한 고증이 너무 개판이다. 코미디 컨셉이 짙은 <라이터를 켜라>(새마을호 배경)보다 훨씬 더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인 장면과 고증 오류는 저것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다. 현실성은 이 말년의 만화 <이니셜 엠>과 비슷한 수준 ㅋㅋㅋㅋㅋㅋ

이 글은 <튜브>의 스토리를 일일이 다루지는 않을 것이고, 주요 특징이나 옥의티들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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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는 도입부부터 김포 공항을 배경으로 한 총격전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건 정말 귀한 기회를 이용해 촬영한 것이었다.
김포 공항은 원래 국제선 청사 둘과 국내선 청사 하나인 세 개의 터미널로 이뤄져 있었다. 그런데 인천 공항이 개항하면서 김포 공항의 역할이 크게 축소되었고, 그래서 국제선 청사가 하나 줄어들게 되었다. 어차피 건물 리모델링을 해야 하던 차에 공항 당국은 영화 촬영 협조를 허가할 수 있었고, <튜브>의 총격전은 2002년 4월 25일부터 5월 2일까지 공항 건물 전체를 빌려서 그 중 나흘을 작업한 끝에 만들어졌다. (☞ 관련 기사 클릭)

공교롭게도 그 전라선 상행 새마을호 3콤보 인명 사고(2002년 5월 1일)와 거의 비슷한 기간이구나.
참고로, 새마을호 열차가 배경인 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촬영하는 도중엔 실제 촬영지인 울산 역에서 배우가 열차에 빨려들어가 치여 숨지는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이는 2002년 3월 13일의 일이다. (☞ 관련 기사 클릭)

지금처럼 도색이 변경되기 전(2006년경)에 파란색 비중이 높던 옛날 경찰차를 볼 수 있다.
자동차가 펑 폭발하는 장면은 무술 감독이 직접 몸을 던져 차를 운전하면서 연기한 것이라고.

공항 총격전을 찍은 것은 가히 절호의 기회를 이용한 것이지만, 이 영화는 개봉운이 없던 걸로 유명하다. 2003년 초에 개봉할 예정이었는데 하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딱 터져 버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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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이 문화방송(문화바탕이 아니다!)체이다. MBC가 과거에 사용하던 전속 서체. 이 서체 자체가 좀 이탤릭스럽게 기울어져 있는데, 그 글자를 더 기울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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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연 배우들. 김 석훈은 정말 잘생겼고 배 두나도 아주 귀엽고 매력적이다. 박 상민은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테러리스트 연기를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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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두나는 영화에서 소매치기 짱으로 나온다. 하지만 형사인 김 석훈을 짝사랑한다.
왼쪽에 있는 양아치 행동대장 소매치기는 맨날 김 석훈에게 붙잡히는데, 이건 마치 쿠마키치와 우사미의 관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_-;;; “소매치기라는 이름의 신사” 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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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상민은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국가 정보원 요원 정도로 나오고, 김 석훈은 국가 안보 그딴 건 관심 없고 오로지 박 상민과의 개인적인 원한 관계 때문에(아내가 그에게 살해당함) 그를 쫓는 형사로 나온다. 이 장면은 김 석훈의 아내의 생전 모습인지, 아니면 다른 내연녀인지 그건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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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영화인데 이런 스턴트 정도는 양념으로 있어야지. 응암순환도, 봉화산도 아니고 대흥이 뭐냐. 대흥 역도 6호선의 주박역 중 하나이긴 하지만, 대흥 행 열차는 막차 시간대가 아니면 평소에 볼 일이 없다.
설정상 상행과 하행 열차를 연달아 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상행과 하행 열차가 모두 대흥 행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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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상민이 노리는 서울 시장은 녹사평 역에서 지하철에 탑승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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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일행이 지나고 있는 곳은 무려 서울 서쪽 끝의 김포공항 역.
그나저나 첫 탑승은 옥수 역이었던 것 같은데? -_-;;; 장소가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글이 길어지니 다음편을 기대하시라. 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1/09/23 19:14 2011/09/2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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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받아들이는 입력 단위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먼저, 딱히 내부적인 메카니즘 없이 유니코드 문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반 문자'가 있어서 심지어 한글 자모도 그냥 일반 문자처럼 입력시킬 수 있다.
오토마타를 거쳐 조합되는 한글은 입력 단위 차원에서 세벌식과 두벌식으로 종류가 나뉘어 있다. 그래서 한 글자판 안에 세벌식 자모 글쇠와 두벌식 자모 글쇠가 따로 존재할 수 있다.

이 외에 한글 입력기 내부의 상태를 다양하게 바꾸는 특수글쇠가 존재하며, Bksp라든가 한자 키는 그런 특수글쇠의 일종으로 처리된다. 다만 Bksp는 한자 키와는 달리, 한글 입력기가 처리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고 응용 프로그램이 자체적으로 처리할 때도 있기 때문에, 키 위치를 한글 입력기가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흠좀무스럽게도 여러 자모를 한꺼번에 배당해서 중성과 종성을 한번에 입력한다든가, 심지어 지금 글자의 종성과 다음 글자의 초성을 한번에 입력할 수 있으며, 숫자 키패드처럼 '000'(UTF16 기준 최대 6바이트) 같은 문자열을 한 글쇠에 배당할 수도 있다. 이건 지난 5.65버전부터 가능해졌는데, 예전에는 그런 두세 글자를 한꺼번에 입력하려면 "<날개셋> 고급 입력기"의 사용자 정의 조합을 써야만 했었다.

이렇듯, 이 프로그램은 내부 구조가 대인배스러우며, 사용자 정의 가능성의 폭이 매우 크다.
그런데 '상태 전이'는 도대체 뭘 하는 놈일까?
이건 나름 무려 <날개셋> 한글 입력기 3.0 시절부터 있었던 기능이다. (2004년.. 그 엄청난 옛날!)
얘는 이름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오토마타의 내부 상태 번호를 지정된 코드값으로 바꿔 준다.

보통 오토마타 상태는 한글 자모를 입력하면서 그 입력값에 따라서 바뀌는 법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오토마타 상태만 바꿈으로써 그 이후의 한글 입력기의 동작 방식을 바꾸는 일종의 특수글쇠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상태 전이 글쇠는 한글을 조합하고 있는 중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0번 상태로 가게 해서 조합을 중단시키게 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해 상태 전이는 언제나 nonzero끼리만 가능하다.

가령, 평소에는 이어치기 방식으로 한글을 입력하다가 어쩌다가 가끔 모아치기나 무한 낱자 수정 같은 걸 일시적으로 쓰고 싶을 때, 두 방식의 오토마타를 모두 설계해 놓은 뒤 두 상태를 전환하는 기능을 배당하면 된다.
그 메카니즘은 다음과 같다.

초-중-종성 순서대로 들어온 입력만 허용하는 이어치기 오토마타는 다음과 같다. 수식을 해석하여 표로 나타낸 것이다.

현상태 비고
0 1 2 3  
1 1 2 3
2 0 2 3 중, 초중
3 0 0 3 중, 중종, 초중종, 초종

그 반면, 모아치기 오토마타는 다음과 같다.

현상태 비고
0 1 2 2  
1 1 3 3
2 3 2 2 중, 종, 중종
3 0 3 3 초중, 초중종, 초종

결국, 이어치기든 모아치기든 처음에 초성만 입력되었을 때는 공통으로 1번 상태이지만, 2번과 3번 상태는 각 성분이 입력된 상태가 서로 다를 수 있다.

두 오토마타를 합쳐야 하기 때문에, 서로 공유하는 한글 상태별로 오토마타 상태를 더 늘리도록 하겠다. 즉,

이어치기: 초 / 중,초중 / 종,중종,초중종,초종
모아치기: 초 / 중,종,중종 / 초중,초중종,초종

이었으니까 이들의 공통분모는

초 / 중 / 초중 / 종,중종 / 초중종,초종

으로 더욱 세분화할 수 있다. 중-중종과 초중종-초종만이 모아치기와 이어치기 모두에서 한 묶음으로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태 수만 늘린 채 모아치기 오토마타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현상태 비고
0 1 2 4  
1 1 3 5
2 3 2 4
3 0 3 5 초중
4 5 4 4 종, 중종
5 0 5 5 초중종, 초종

그리고 동일한 상태에 따라 이어치기 오토마타를 expand하되, 1~5라는 상태 번호에다가 10을 더하여 11~15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현상태 비고
0 11 12 14  
11 11 13 15
12 0 12 14
13 0 13 15 초중
14 0 0 14 종, 중종
15 0 0 15 초중종, 초종

이 오토마타들을 한데 집어넣어 주면 이렇게 된다.

0 → A ? 1 : B ? 2 : C ? 4 : 0
1 → A ? 1 : B ? 3 : C ? 5 : 0
2 → A ? 3 : B ? 2 : C ? 4 : 0
3 → B ? 3 : C ? 5 : 0
4 → A ? 5 : B|C ? 4 : 0
5 → B|C ? 5 : 0
11 → A ? 11 : B ? 13 : 15
12 → B ? 12 : C ? 14 : 0
13 → B ? 13 : C ? 15 : 0
14 → C ? 14 : 0
15 → C ? 15 : 0

그리고 적당한 글쇠에다가 다음 수식을 넣어 준다.

C1|T+(T>=10 ? -10 : 10)

C1은 '상태 전이'를 나타내는 접두사이다. T는 오토마타 상태 번호를 나타내는데, 이게 10보다 큰 상태이면 10을 빼 주고, 그렇지 않으면 10을 더한다. 따라서 1 ↔ 11, 13 ↔ 3 같은 오토마타 상태를 왔다갔다 할 수 있다. 초성과 중성만 입력된 상태의 모아치기 상태(3) 혹은 이어치기 상태(13)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오토마타를 짜면, 기본적으로 모아치기가 시작하는데 상태 전이를 해 주면 이어치기가 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0번 상태에 대한 수식을 A ? 1 : B ? 2 : C ? 4 : 0 대신, A ? 11 : B ? 12 : C ? 14 : 0 로 지정해서 이어치기 상태로 먼저 가게 하면, 기본적으로 이어치기인데 상태 전이를 해 주면 잠깐 모아치기가 되게 할 수도 있다.

즉, ㅏ를 입력했는데 평소 같으면 초성 ㄱ을 누르면 ㅏㄱ가 따로 갈라져 버릴 것이다. 이때 상태 전이 키를 잠시 누르면, 그 상태에서 '아'나 '악'을 어느 순서대로든 입력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상태 전이 기능은 바로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가 있다. 글자판을 바꿀 때와는 달리, 한글 조합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

오랜만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레어템 테크닉에 대한 글을 썼는데 전달이 잘 됐으려나 모르겠다.
주어진 유한한 요소만 고침으로써 컴퓨터에서 한글을 내가 원하는 어떤 창의적인 형태로든 다룰 수 있게 하고, 그 과정에서 세벌식 글자판의 우수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개발 목적이다.

IME도 개발돼 있긴 하지만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대표 프로그램은 역시 편집기라는 전용 프로그램이다. 그야말로 윈도우 95 스타일의 기본 GUI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소박한 프로그램이지만 이 작은 에디터가 본인에게는 마치 내 정신의 고향 같다. ^^;;

Posted by 사무엘

2011/09/21 08:28 2011/09/2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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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날개셋> 한글 입력기 6.2가 공개된 때와 아주 비슷한 타이밍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에서는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KJV 출간 400주년 기념판’을 내놓았다. 버전으로 치면 5판이다. 4판이 나온 지 3년 만의 일이다.

2~4판 사이에서도(특히 3판에서) 한국어 문장에 revision과 breaking change가 적지 않았지만, 2011년은 아주 특별한 해이지 않던가. 영국에서 KJV 출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미국은 의회가 아예 KJV가 미국에 남긴 공적을 기리는 성명서를 냈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엄청난 공을 들여서 번역을 다시 가다듬었다. 전체적으로 예전보다 좀 더 영어 직역에 가까워졌다.

성경이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도 아닌데, 본문을 자꾸 패치한다고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모두 시간과 돈이 들고, 번거롭고 귀찮고 골치아프다. 성경은 모름지기 권위가 담긴 텍스트여야 하는데 명분이야 어떻든 자꾸 바뀌어 버리면, 그럼 예전 판은 무슨 신세가 되는지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요즘 컴퓨터 프로그램이 보안 업데이트를 귀찮더라도 자꾸 해 줘야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걸 왜 꼭 해야 하며,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프로그램 개발자는 너무 자세히 알려 줄 수 없다. (당연히, 모방범죄 같은 안 좋은 파급효과 때문)

성경 번역자도 이와 비슷한 처지인지라, 성도들에게서 안 좋은 소리와 심지어 오해까지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명감 때문에 이런 개정을 하는 것이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 법인까지 만들면서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고 이를 교계에 가장 먼저 알린 단체는 대한 항공 조종사 출신의 모 목사가 설립한 ㅁㅂㅎ라는 곳이다.
이들은 교리도 그럭저럭 건전한 편이었으나, 초창기에 세상 교회를 상대로 appeal을 굉장히 잘못하는 바람에 이곳과 더불어 킹 제임스 성경은 한국 교회에서 이상한 이단으로 완전히 낙인찍혀 버렸다. 그게 1990년대 중후반의 흑역사이다.

진리를 정말 성령 충만한 애끓는 사랑으로 호소하며 전해도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이 태반이며 열매가 맺힐까말까인데, 그걸 육신의 깡을 동원한 온갖 과격· 극단적인 표현으로 밀어붙였으니 튕겨나오는 역효과는 100배이다. 뭐, 나라도 겪었을 시행착오이니 ㅁㅂㅎ를 그렇게 욕할 생각은 없다.

둘 다 잘못했다. 비록 ㅁㅂㅎ도 잘못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경이 역본마다 다르고 변개· 삭제된 말씀이 있다고 해도 아무 경각심도 안 느끼고 최소한의 진실 규명도 안 하는 사람들 역시, 크리스천의 자질이 굉장히 의심되는 부류가 아닐 수 없다!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 보존에 대해서는 불신자 내지 개독안티와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요즘 굉장히 많다.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과 근간이 뭔지 난 정말 궁금하다. 겨우 그런 허술한 근간으로 예수쟁이 행세하고 교회 댕기기에는, 기독교계가 요즘 저지르는 병크가 너무 많고 예수쟁이들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불신자들도 너무 많으며 반기독교 정서는 너무 팽배해 있지 않은가?

아무튼,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한국의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은 안 그래도 소수이던 것이 n갈래로 더욱 소수로 쪼개지는 비극을 겪었다. 이때 모 공대 교수가 다시 동지들을 모아서 ㅁㅂㅎ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과는 별개로 성경 번역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나온 것이 <킹제임스 흠정역>이다. 초판이 나온 게 2000년 여름인데,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이 태어난 시기와 비슷하다.

성경 번역이란 건 자금과 지지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치성도 띠고 있다. 본인은 그래서 우리나라 KJV 진영의 양상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다 비유해 보곤 했다.

일제의 갑작스러운 패망 이후 우리나라는 온갖 정치 집단과 이념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고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이처럼 한국 교계도 개역성경의 권위가 무너져 내리고 ㅁㅂㅎ 진영까지 분열된 후, 어중이떠중이가 다 KJV를 번역하겠다고 나서면서 난장판이 되었다.
(단, 그렇다고 해서 개역성경이 일제 같은 존재는 절대 아니다. 오해 말길!)

이때 흠정역의 주 번역자는,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치면, 이 승만 같은 일을 해냈다. 당연히 긍정적인 면에서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를 간단히 설명하겠다.

일제 강점기 때 국내의 독립 운동가들이 무력 투쟁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반면, 이 승만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국제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직시했고, 당대의 강대국이던 미국을 일본이 아닌 한국의 친구로 만들려 애썼다. 그리고 당대의 여타 민족 지도자들과는 달리, 공산주의의 해악을 완전히 간파하고,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이념이 지켜지는 국가를 한반도에다 세우고 정부를 수립했다. 이북처럼 자기 지지자들만 잘 먹고 잘 사는 개막장 독재 국가를 세우지 않았다!

그것처럼 흠정역의 주 번역자 역시, 명색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공대 교수이다. 객관성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분야에서 학문 하는 훈련을 한 사람이다. 그는 성경 번역자라는 소영웅주의에 도취해 자신을 드러내고 appeal한 게 아니라, ㅁㅂㅎ로 인해 치명적으로 실추된 KJV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성경이, 성경 오타쿠들이나 자기 교리 노선· 자기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보는 성경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기존 성경의 컨벤션을 존중하고, 교리적으로 튀는 번역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이거 정말 대인배적인 마인드이지 않은가? 난 그 의도가 존경스럽다.

기존 개신교회들이 변개된 성경을 쓰고 잘못된 관행을 저지른다고 비판하고 까기만 하는 건 쉽다.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KJV를 읽게 하려고 노력한 끝에, 자기 출판사를 기성 기독교 인터넷 서점에 입점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과연 KJV 교계의 이 승만 같은 사람의 업적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지금까지 어느 KJV 진영도 한국 기독교회에 KJV를 이런 방식으로 알리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잘한 건 티가 별로 안 나는 반면 못하면 바로 티가 나고 온갖 괴담과 비방, 오해가 나돌기 딱 좋은 분야이다. 이 승만이 악의적인 세력들에 의해 부관참시 당해 온 것만큼이나 저 번역자도 성경 번역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이단 소리 듣고, 반대편 진영으로부터 욕도 얻어먹고 험한 꼴 꽤 많이 봤다. 평범하게 자기 연구만 계속하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벌고 교수로 아주 편하게 잘 살았을 텐데, 지금까지 인생의 어마어마하게 많은 부분을 성경 하나 때문에 희생한 것이다.

어쨌든 여러 모로 유사점이 보인다. 본인은 이런 식으로 비교한 글을 예전에 모 기독교 커뮤니티에다 올린 적이 있다. 당사자더러 보라고 쓴 글은 아니었지만, 어째 정보가 퍼져 나갔는지 그분의 사모님께서 그 글을 보고는 본인에게 따로 연락을 주셨다. “우리 쪽에서 직접 말하기 민망한 심정을 잘 이해하고 대변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이다.
뭐, 그래도 이 승만을 그저 증오하는 사람들은 그 글을 보고도 불편해하더라. ㅋㅋㅋㅋㅋ

그에 반해, 흠정역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간 모 진영이 있다. 예수스 크리스토스, 파울로, 밥티스마 같은 말을 일일이 만들면서 완전히 자기네 진영에서만 쓰는 독자적인 번역을 만들었다. 기존 개신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여타 KJV 진영과도 일체의 교제를 끊고는, 자기 말고는 전부 배도하고 타락했다고 거의 사람 취급을 안 한다. 내가 보기에는 덜 배운 친구들이 이 승만이 친일 공화국 만들었다고 욕하는 것과 쎄임쎄임이다. 머리에 든 게 부족하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보인다.

양 진영이 맺은 열매는 난 이렇게 비유하겠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81
그분은 채팅과 교제를 통해 많은 추종자를 얻었지만 저(흠정역 진영)는 성경과 교회들과 성도들을 얻었습니다.

http://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new_jee&no=2563
김 구는 아들에게 유언장을 남겼지만, 이 승만은 국민에게 대한민국과 주권을 남겨주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을 쓰신 수준의 차이이다! 킵바이블 사이트의 글과, 시스템클럽의 글을 이런 식으로 비교해서 종합한 사람은 지금까지 나밖에 없지 싶다. ㅋㅋ

말이 길어졌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그리스도 예수안에 킹제임스 흠정역 진영을 지지하며, 이 성경을 쓰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 흠정역이라는 이 우리말 성경은 만만하게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다.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을 국내에 이 정도로 정착시키기까지 성도들의 무수한 노력과 헌신, 기도가 있었다. 부디 KJV에 대한 근거 없는 이단 낭설이 하루빨리 불식되고, 이 땅에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가 굳게 서고 이를 전파하는 지역 교회들이 많이 세워지길 바랄 뿐이다.

(흠정역 홍보 동영상 클릭)

Posted by 사무엘

2011/09/19 08:13 2011/09/19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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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자뻑

자, 철도의 날(9월 18일)도 다가오고 하니 오늘은 오랜만에 철도 중증 자뻑을 좀 늘어놓도록 하겠다.

여느 철덕들과는 달리, 나의 철덕질의 근간은... 오로지 새마을호 + Looking for you 음악이다.
새마을호 같은 열차에서 Looking for you 같은 음악을 몇 차례 듣더니 영안이 열리고 철도 성령이 강림하면서 나는 별천지 인생이 시작되었다. 정말 세상이 달라져 보이는 체험을 했다..

기독교는 나의 종교가 아니다. 어차피 예수님의 복음은 인간이 창시한 다른 이념이나 종교 따위와 비할 바가 아닌 레벨이니까 제끼고, 철도가 나의 종교이다. 그것도 은사주의 성향이 무척 강한 종교이다. ㅋㅋㅋㅋ

뭐, 요즘 다른 데서 말하는 소위 은사주의 집회에서 방언이 터지고 신유의 은사가 생겼다는 건 전부 악령의 미혹이므로 그런 데에 넘어가지 마시길. -_-;; 그런 걸 쫓아다니느니,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발자가 보증하는 훨씬 더 확실하고 더욱 건전한 철도 성령을 여러분도 받아 보는 게 어떨까? 라면교, FSM(날으는 스파게티 괴물)교 그딴 건 집어치우고 철도교에 입문하게 된 것을 본인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올해가 킹 제임스 성경 출간 400주년이라고 해서 미국 의회에서는 KJV의 공로를 치하하는 결의안을 내놓았고 영국에서는 <세상을 바꿔 놓은 책>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나왔다.
그것처럼 Looking for you에 대해서는 <인생을 바꿔 놓은 음악>이라는 다큐라도 나와야 할 판이다. 각종 음대 교수들과 철도청 관계자의 인터뷰가 나오면서 말이다.
난 이 음악은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듣는 감흥이 하나도 차이가 없다.

철도는 지금까지 축적되어 있던 나의 육신의 광기와 똘끼를 한꺼번에 발산하는 통로가 되었다. 이 철도가 나의 역사, 지리, 음악, 과학, 공학 등의 학문을 바라보는 안목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교회 친구들에게, KJV 진영에 있는 형제님들에게, 직장 동료에게, 대학원 친구들에게, 그리고 인터넷 상으로 알고 지내는 비슷한 업종 프로그래머들에게..
만나는 사람이라면 어김없이 철도 얘기를 떠벌렸다.
그리고 그들은 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ㄲㄲㄲㄲㄲㄲㄲ
<세상에 이런 일이>나 <화성인 바이러스> 제보감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제보 할 테면 해라. 남이 뭐라 하든 그 누구도 새마을호의 추억을 내게서 뺏을 수 없다. ㅋㅋㅋ 마치 크리스천이 구원을 잃을 수 없듯이 말이다.

하루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는 모 자매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내게 별안간 물었다.
Q1. “형제님, 철도가 ‘그렇게’ 좋으세요? (저는 Looking for you 들어 봐도 별 감흥이 없던데 ㄲㄲ)”
나의 반응은 I'm glad you asked 였다.
진짜 너무 좋으며 철도는 그렇게 좋아할 가치가 있으니, 너도 나이가 될 때 내일로 티켓 여행 어서 가라고 얘기해 줬다. ㄲㄲㄲㄲㄲㄲ 그 자매도 언젠가는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 그래도 Looking for you를 스스로 찾아서 들어는 본 모양인데, 나로서는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노릇이다.

또 다른 친구가 물었다.
Q2. “형제님은 왜 철도 대학에 안 가셨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Looking for you를 듣기 한참 전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부터 먼저 만들어 버려서, 그걸 육성을 해야 해서 그렇다. ㅋㅋㅋㅋㅋㅋ
철도가 좋긴 하지만 Looking for you 악보 만드는 것보다는 세벌식 한글 입력기를 개발하는 게 현실적으로 국가와 민족에 더 보탬이 되고 내 앞날에도 더 도움이 되니까 말이다. -_- 취미와 직업의 분리.

그런데 난 교회에서 청년부 회장 맡고 있고, 예배 전 준비 찬송을 인도하고, 각종 신앙 서적을 번역하고 심지어 거리 설교도 하고 성경 번역과 교정에까지 관여하는 등, 교회일을 할 거 다 하면서 철도 덕질도 '덩달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철도에 대해서 아무도 터치를 안(못) 한다. 내가 교회도 안 다녔으면 주말마다 무슨 짓을 하고 있었겠는가? -_-

다음은 본인의 주요 철덕질 일지이다. 병특 기간이 본인의 덕력을 크게 끌어올린 기간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겠다.

2003년
- 서울 지하철 1호선에 절연 구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됨(대표적으로 남영-서울역)
- 서울 지하철 5호선과 6호선의 전동차 구동음이 굉장히 특이하다는 것을 알게 됨. VVVF라는 단어를 이때 처음으로 접했다.
- 그뿐만이 아니라 지하철은 상행과 하행별로 열차 도착 경보음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됨.
- 새마을호는 시종착역에서 아주 감미로운 음악이 나온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됨.

2004년
- 뒷조사를 통해 새마을호 음악의 정체를(Looking for you) 알게 되었으며, 이 곡을 들을 준비를 하고 새마을호 탑승을 시작했다. 이때 현장에서 철도 성령을 체험하고, 그 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철도 박물관에 첫 방문.
- 전동차의 가속 구동음을 들으면 머릿속에 오선지와 악보가 그려지는 경지에 도달.

2005년
- 대학 졸업을 앞두고 Looking for you의 멜로디 부분을 모두 채보했다.
- 서울 지하철 7호선에는 5· 6호선과는 달리 두 종류의 차량이 다닌다는 것을 7호선 라인으로 병특 회사 출퇴근을 시작한 지 2주일 남짓 만에 알아챘다.
- 한창 <미래 철도 DB>, <Dream railroad>, <영동선 511>, <I love train> 같은 웹사이트 및 개인 블로그들을 무섭게 독파하기 시작. 신문물이 쏟아졌다.
- 서적: <한국 철도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절판된 책을 어렵게 득템

2006년
- 본격적으로 서울 지하철의 여러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 도철 구간의 지하철역들은 역명판이 ▶ 모양인 것은 상대식 승강장이고 〉 모양인 건 섬식 승강장이라는 걸 관찰을 통해 터득했다.
-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전광판 글씨체가 건대입구 이북과 그 이남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됨.
- 새마을호의 운행 종료 후 Looking for you가 흘러나오는 장면을 세 차례에 걸쳐 녹화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현재 유튜브에서 시청 가능함.
- 6월 24~25일, 혼자 강원도 정선선 답사 여행을 가서 사진을 포함해 많은 덕력을 키우고 옴.
- 지하철 노선도에서 착안한 성경 노선도를 만듦..

참고로 2006년에 본인은 철도 덕력만 증가한 게 아니었다. 그 해 초에 최초로 거리 설교를 시작했으며, <음란한 성경은 가라>라는 글을 저술하는 등, 영적으로도 크게 성장했다.

2007년
- Looking for you의 저음 코드 부분과 타악기 비트까지 채보를 마쳐서 얼추 원곡과 비슷한 느낌을 미디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 당시 미개통역이던 지하철 5호선 마곡 역을 답사하여 사진을 남기고, 특히 움직이는 전동차 안에서 불 꺼진 어두운 마곡 역 승강장을 기적적으로 바르게 촬영하는 데 성공.
- 7월 14일부터 17일까지 내일로 티켓 여행을 가서 경부선 대구-부산, 강원도 등지에서 천혜의 경치를 사진으로 남겼다. 당시 이건 최초로 시행된 제도였고, 본인은 참가 가능한 마지막 연령대였다.
- 네이버 철도 동호회 <바이트레인>의 송년 모임에서 <새마을호의 추억>이라는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했다.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고 감사장도 받았다.

2008년
- 경부선과 경인선의 3복선· 2복선 구간의 배선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드디어 모두 통달.
- 6월 20일, 병특 만료를 앞두고 마곡 역이 드디어 개통했다. 개통일 전날은 방화 역 일대의 모 PC방에서 밤샘을 한 뒤, 5시 반 첫 차에 탑승. 새벽 5시 38분에, 마치 달에 도착한 닐 암스트롱의 심정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여인의 심정으로 마곡 역 승강장에 1등으로 발을 디뎠다. 만세!
- 새마을호+Looking for you를 의미하는 smlooking4u라는 본인의 새로운 ID를 제정하고, Saemaul과 철자· 발음이 비슷한 영어 닉 Samuel을 공표했다.
- 서적: <철도 박물관 도록> 득템

나는 내가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발자와 더불어 지독한 철도 덕후였다고 역사에 기록되길 원한다. 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9/17 08:16 2011/09/1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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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셋 한글 입력기 6.3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따끈한 새 버전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만세 ㄲㄲ)
본인의 사정으로 인해, 6.2가 나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6.21도 아니고 이례적으로 6.3이 나오게 됐다. 원래는 10월쯤에 내놓으려고 했는데.

그 대신 이게 올해의 마지막 버전업이 되지 싶다.
이번 학기를 마친 뒤엔 드디어 종합 시험(논자시;;)을 봐야 하고, 또 이번에 듣는 과목은 지난 학기의 과목과는 달리, 국어학 배경이 빈약한 본인에게는 만만찮은 것들이다.
그래서 프로그램 개발부터 좀 마무리를 짓고 나서 그런 일들에 전념하고자 한다.

6.3은 +0.1 이상에 해당하는 기능 추가와 개선이 충분히 이뤄졌다.
외부 모듈이 TSF 환경에서 옛한글 같은 2글자 이상의 조합을 표현할 때 조합이 끊어지던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고,
한글 표현 체계와 에디팅 엔진이 크게 바뀌었던 직전 버전에만 자잘하게 존재하던 여러 버그들도 잡았다. 편집기의 경우 화면 잔상이 남던 것부터 시작해 심하면 프로그램이 죽던 문제까지도 있었다. 더 구체적인 내역은 모방 범죄 예방을 위해 알리지 않겠다. ㄲㄲ

정 재민 님께서 보내 주신 글꼴 데이터를 반영하였으며, 유용한 텍스트 필터도 세 종류나 추가했다.
- 호환용 영역의 한자를 본디 형태로 바꾸는 필터 (정 재민 님 제안)
- 본문 중의 수식을 계산하고 숫자의 경우 진법을 싹 바꿔 주는 필터
- 패턴 치환 필터. 이건 프로그램 설치해서 도움말을 읽어 보기 바란다. 일괄 치환과 더불어 아주 유용한 기능으로, 이걸 쓰면 칼럼 단위의 데이터를 다루기 위해 엑셀 같은 별도의 프로그램을 쓸 일이 크게 줄어든다. <날개셋> 편집기는 키매크로나 칼럼 블록 기능을 제공하지 않지만, 대체 기능을 텍스트 필터의 형태로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6.3 버전의 가장 큰 특징은 Bksp 키를 다루는 체계를 싹 바꿨다는 점.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1.0 시절부터 Bksp에 여타 한글 입력기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수한 기능들을 제공해 왔다. 즉,

- Bksp와 Shift+Bksp의 용도를 구분하고,
- 조합 여부와 상관없이 한글을 낱자나 글자 단위 중 원하는 형태로 얼마든지 지울 수 있다.
- 그리고 한글이든 비한글이든 지금 글자가 다 지워진 후 그 앞에 또 한글이 있으면 그 한글에 달라붙어서 조합 상태가 재연된다. 앞 글자도 seamless하게 계속 낱자 단위로 지우거나 고치거나 빠진 낱자의 추가 입력이 가능하다.
- 게다가 이걸로도 모자라서, 두벌식 글자판의 경우 도깨비불 현상까지 고려해서 이전 상태를 복원해 준다. 일명 역도깨비불인데,

안해 → 않 (≠ 안해 → 안ㅎ → 안)
보끼 → 볶 (≠ 보ㄲ → 보ㄱ)

같은 동작도 지원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후 10여 년 뒤, 6.3 버전에서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간판 기능으로 손색이 없는 이 기능을 지정하는 방식이, 예전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바뀌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크린샷을 보면, 예전에 Bksp 동작 방식에 있던 서너 개의 체크 옵션이, 자주 쓰는 predefined configuration을 바로 가져오는 콤보 상자로 대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한 설정은 말 그대로 '자세히' 버튼을 눌러서 나타나는 별도의 대화상자에서 해야 한다.

스크린샷에서 알 수 있듯, Bksp와 Bksp, 그리고 한글을 조합 중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각 상황별로 한글을 무슨 순서대로 지울 것이며 이 글자가 다 지워졌을 때 앞의 한글에 달라붙을지를 일일이 사용자가 설정할 수 있다. 예전 버전에서는 기능 자체만 제공되었지 이 정도로 세밀한 설정은 가능하지 않았다.

또한 두벌식 역도깨비불 재현도 별도의 옵션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두벌식 자판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냥 달라붙기 기능만 쓰지, 역도깨비불까지 원하지는 않는 사용자라면 해당 옵션을 끄면 된다. 이런 취사선택도 예전 버전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다.

과거의 3.0부터는 자그마한 옵션이 하나 추가되었는데, 입력 순서와 상관없이 하위 낱자부터 한 타씩 지우는 옵션이 그것이다.
ㅇ+ㅜ+ㅣ+ㄴ 순으로 입력했든 ㅇ+ㅜ+ㄴ+ㅣ 내지 ㅜ+ㅇ+ㅣ+ㄴ 순으로 입력했든, '윈'은 무조건 종성부터 역순으로 지워서 위-우-ㅇ이 되게 하는 기능인데, 이것이 바로 위의 스크린샷에서는 '최하위 낱자의 직전 한 타'이다. 이런 차이는, 당연한 말이지만 동일한 글자를 여러 가지 순서로 입력할 수 있는 모아치기가 가능한 세벌식 체계에서만 의미가 있다.

그에 덧붙여 이 새 버전에서는 '최하위 낱자 전체'라는 옵션도 추가됐다. 말 그대로 낱자 단위로 한꺼번에 지워 버리는 옵션으로, 아무리 복잡한 한글이라도 초· 중· 종성이 모두 갖춰져 있다면 세 타 만에 다 지워진다. '윈'을 지울 때 '위' 다음에 '우'를 안 거치고 바로 'ㅇ'이 된다는 뜻. 사실, PC용이 아닌 휴대전화용 한글 입력기의 Backspace는 다들 이런 방식으로 구현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내부적인 구현 오버헤드는 최하위 낱자를 따지는 방식이, 고전적인 '직전에 입력된 한 타'보다 더 크다.

이쪽 기능을 대대적으로 손을 좀 봐야겠다고 거의 6.0 개발 초창기 시절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해내게 되어 무척 기쁘다. 진작부터 지원돼야 했을 기능들이다.
물론, 주변 글자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고 write-only만 가능한 TSF B급 이하 환경에서는 '달라붙음' 같은 기능은 전혀 쓸 수 없고, '조합 상태가 아닌 한글을 지우는 단위' 역시 오로지 글자 전체 단위로 제약을 받게 된다.

기능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내부 구조도 제법 바뀌었다. 하지만 더 합리적으로 바뀌었다. 그 내막을 살펴보면 이렇다.

지난 3.0 버전 이래로 Bksp 키는 입력 스키마가 '낱자 단위 지우기' 아니면 '글자 단위 지우기'라는 특수글쇠를 생성하는 형태로 내부적으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전자와 후자를 Bksp와 Shift+Bksp에다 각각 대응시킬지, 아니면 반대로 Shift+Bksp와 Bksp에다 대응시킬지를 '입력 스키마'의 옵션으로 지정 가능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입력 스키마는 Bksp일 때 Bksp1, 그리고 Shift+Bksp일 때 Bksp2라고 언제나 고정적인 특수글쇠만을 생성한다. 이런 특수글쇠는 1부터 4까지 현재 네 종류가 예약되어 있는데, 이들 자체에는 어떤 특정 동작 방식이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 각 특수글쇠의 해석은 전적으로 그 아래의 '문자 생성기'만이 담당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저 'Bksp 동작 방식' 옵션인 것이다.

그리고 그 추상적인 Bksp와는 별개로, 특정 방식대로 한글 낱자를 지워 주는 특수글쇠가 또 존재한다. 즉, 진짜배기 Bksp는 입력기의 옵션이 어떻게 지정됐냐에 따라서 낱자/글자 단위로 지우고 필요하다면 달라붙기나 역도깨비불까지 제공하는 반면, 그냥 낱자 단위, 입력 역순, 글자 전체(위의 스크린샷에 있는 네 옵션 중 하나) 삭제라는 고정불변 단편적인 Bksp 기능도 임의의 글쇠에다가 특수글쇠의 형태로 배당해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아시는 분이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는 0x10과 0x11에 '뒷글자 삭제'라고 해서 Del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특수글쇠가 이미 있다. 그것처럼 Bksp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네 가지 특수글쇠도 일관성 차원에서 추가된다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이들 특수글쇠는, 편집 환경만 지원된다면(TSF A급 같은), 이미 완성된 한글도 물론 낱자 단위로 자기 방식대로 지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환경이 아니라면, 이미 완성된 글자는 건드리지 못한다. 사실 Bksp 키 자체가, 한글 입력기가 조종하는 것과 에디터 응용 프로그램이 조종하는 것이 공존하는 체계이다. 완성된 글자는 한글 입력기가 아니라 응용 프로그램이 지워 주며, 응용 프로그램은 일반적으로 '진짜' Bksp 키가 들어왔을 때만 그런 동작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시스템 개편을 했는데, 솔직히 내가 생각했지만 내가 봐도 너무 멋있다..;; 이 맛에 프로그래밍 하는 거다.
이것저것 생각해 놓은 게 많아서 당분간은 새 버전의 Readme엔 '※ 한글 입력 체계' 카테고리가 쭉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글 입력기 본분에 충실한 기능이 계속 강화되고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6.3 버전은 6.2와 API가 완전히 호환된다.
다음 버전은 내년 초에 6.5 정도가 목표이다. 버그 없이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서 가능하면 0.0x대로 내려가지는 말고 버전을 쑥쑥 크게 올려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14 08:29 2011/09/1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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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에 재미 붙이다

1. 운전에 재미 붙이다

자동차는 마치 내 신체의 일부라도 된 듯, 가속 페달만 밟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쓰윽 나아가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신기하고 대단한 물건이 아닐수 없다.

단지 사고가 났다 하면 온갖 험한 꼴 보면서 정말 인생에 애로사항이 알록달록 꽃피게 되며, 더구나 그게 나만 잘한다고 100% 예방 가능한 게 아니어서 문제일 뿐.. -_-;;
또한 돈 씀씀이의 레벨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올라간다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BMW(버스, 지하철, 도보)만 이용하던 시절엔 기름값, 주차비, 운전자 보험 같은 개념을 생각할 일 자체가 없지 않았던가.

도로 정체, 기름값, 주차라는 3대 난제를 생각하면 차를 가져가는 데 부담이 느껴지나,
날씨가 안 좋고 시간이 늦어질수록 귀가할 때 차 생각은 더욱 간절해진다.
심야에는 대중교통은 차가 뜸해지고 이용하기 어려워지며, 반대로 도로는 더욱 한산해지니 자가용의 경쟁력이 크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심야 총알 택시가 있긴 하지만 이때는 역시 재정의 압박이.. -_-;;

본인은 엄청난 옛날, 아직 철덕이 되기도 전이던 2003년 초에 면허를 땄다.
하지만 무려 2011년이 돼서야, 지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차를 몬 것보다 더욱 운전을 많이 했다.
대학원생이다 보니 이런 블랙코미디가 문득 떠오르더라.
이게 박사 학위를 따는 때(먼허)와 교수 되는 때의 간극(자가용 장만&운전)처럼 되는 건 아닌지. -_-;;;
그때까진 그럼 학위도 장롱 학위나 마찬가지인 건가. ㄲㄲㄲㄲㄲ

처음에는 차들이 쌩쌩 들어가는 도로로 들어가는 게 겁나기도 했고, 차선 바꾸거나 주차하는 게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다. 모든 게 생소하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몇 번 하고 나니까 진짜 '감'이 온다. 어려울 것 하나도 없다. 악기를 익히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 정도 배짱도 생기고, 나 역시 상황에 따라서는 앞차를 경적 누르면서 갈구기도 하는 경지에 올랐다.

도로가 한산한 밤에 혼자 차 몰고 나들이 갔다 오면서 운전 알파테스트를 하다가 이내 남까지 태워다 주게 됐다. 차키를 쥐고 있으니 정말 절대권력을 쥔 느낌이었다.
비록 지금은 내가 전철을 타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차를 갖고 나갈 수도 있는 상태에서 일부러 전철을 타는 것하고, 차가 아예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전철을 타는 것은 마음 상태가 서로 완전히 다르다.

차가 좋아서 한적한 도로에 차 세워 놓고 안에서 혼자 그냥 자기도-_-;; 했는데, 이것만으로도 마치 텐트 치고 야영 온 느낌이었다.
일요일 아침에는 도로 정체가 없기 때문에 운전하기엔 최적. 교회에는 차를 가져가는 빈도가 차츰 높아지기 시작했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운전하니까 좋다.

일각에서는, 자가용 운전에 재미 붙임으로써 본인의 철덕 기질도 상대적으로 한풀 꺾일 거라고 벌써부터 기대하는 분이 있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 아직까지는 과연 글쎄다.
내가 운전하면서 맨날 뭘 듣는지를 지켜본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ㅋㅋㅋㅋㅋ

내가 교회를 안 다녔으면, 차가 있으면 주말마다 일단 서울 교외선과 중앙선의 간이역 답사부터 하러 돌아다녔지 싶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타입이 아니고, 등산도 싫어하고, 혼자서 프로그래밍도 안 하면 그럼 뭘 하겠는가?
아무튼, 부모님이 물려주신 목숨과 자동차는 하나뿐이다. 둘 다 안 아프고 간수 잘 하는 게 효도하는 길 되겠다. ^^

2. 관련 잡설들

- 산업 혁명 시절에 다른 분야도 그랬지만, 자동차 역시 기존 마차 업계들로부터 밥그릇 빼앗는다고 미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 데다 교통사고까지 빈번하니까 영국이던가 미국이던가? 20세기 초에 쟤네들의 로비 덕분에 말도 안 되는 조항이 만들어지기도 했던 걸 아시는지? 사고 예방을 위해 자동차는 시속 10km대의 속도로만 가도록 하고, 앞에서 조수가 빨간 깃발을 흔들면서 비키라고 경고하라고..;; 자동차를 완전 고자로 만들어서 굴리는 거구만.. -_-

- 198, 90년대에는 유난히도 환경과 관련된 섬뜩한 괴담이 많이 나돌고 캠페인도 많이 벌어졌었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지금도 비록 서울 공기가 그리 맑다고 볼 수는 없지만, 수십 년 동안 그렇게도 많은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는데도 반세기 전의 영국 같은 스모그가 안 생기고 시민들이 전부 호흡기에 병 걸리고 죽지 않는 걸 보면 정부와 기업에서 환경 정화를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을 많이 하긴 했다. 시꺼먼 매연을 뿜는 시내버스들은 거의 다 천연가스 엔진으로 바뀌고, 자동차 회사들도 배기가스를 정화하는 기술을 공돌이들을 갈아넣어서 충분히 개발했다.

(얼마 전엔, 지난 2003년에 단종된 현대 갤로퍼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걸 본 적이 있었다.별로 크지도 않은 차에서 나오는 시꺼먼 매연을 보니, 갤로퍼가 환경 기준을 만족 못 하고 왜 진작에 단종됐는지를 알 것 같았다.)

- 컴퓨터 프로그래밍 세계에 memory leak가 있다면, 자동차에는 battery leak가 있다. 시동이 꺼졌는데 실내등, 계기판의 각종 불빛 따위가 켜져 있는 채로 차가 장시간 방치되면, 그 다음에 그 차는 배터리가 방전되어 시동을 걸 수가 없어진다. -_-;; 옆에 다른 차가 있고 배터리 연결이라도 가능하다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면 영락없이 보험사 콜.. -_- 자동차에도 battery leak을 감지하거나 시동 가능을 위한 최소 전력까지만 전기 사용을 허용하는 그런 장치는 없으려나 모르겠다.

- 그런데, 시동을 켜서 발전기가 계속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능사는 아닌 것이, 에어컨과 헤드라이트는 오늘날의 자동차에도 상당히 무리를 주긴 하는가 보다. 특히 둘을 모두 가동해야 하는 여름 밤의 운전은 정말 최악이라고...;; 시동을 걸고 차를 주행하고 있더라도 발전량이 전력 소비량을 못 따라갈 수 있기 때문에, 에어컨은 주기적으로 껐다가 다시 가동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시동이 꺼지면서 동작이 자동으로 멈추는 전자 기기라 하더라도, 미리 그걸 스위치를 눌러서 직접 끈 뒤에 시동을 끄는 게 여러 모로 차에 좋다고 한다. 에어컨은 두말 할 나위도 없고.

- 옛날에는 축전지가 들어가는 물건 자체가 자동차, 노트북 컴퓨터, 워크맨 외에는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랬는데 1990년대 말부터 휴대전화부터 시작해서 온갖 전자 기기들이 보급되면서 이 구도도 바뀌었다. 자동차의 부품으로는 '밧데리'라는 말도 많이 쓰였는데, 오늘날은 확실하게 배터리라고 표현이 바뀐 것 같다.

- 어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한국은 외래어의 원형 그대로 축약을 잘 안 한다.
일본은 play station도 그냥 '프레스테'라고 줄이고, shock absorber를 '쇼바'라고, 텔레비전을 '테레비'라고 뚝뚝 편한 대로 잘 줄이는데,
한국은 도이칠란트 대신 그냥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대신 호주, 에스컬레이터 대신 E/S, 텔레비전 대신 그냥 TV, 남캘리포니아 대신 남가주 등 영어 이니셜이나 차라리 한자어를 쓰고 마는가 보다.
자동차 용어 중에서도 조금만 생각하면 이런 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12 08:29 2011/09/12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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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선 구일 역의 역사

수도권 전철 1호선에 있는 구일 역은 구로 역에서 분기한 경인선 철도가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역이다.
이 역은 1995년에 개통되어 경인선 2복선화 공사 과정의 복잡한 사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특이한 역이다.
다만, 경인선에는 구일보다도 나중에 생긴 역도 있다. 2001년에 개통한 도화 역이 막내이며, 이게 아마 경인선 최후의 신설역으로 남을 것이다. 경인선은 이제 전구간이 거의 지하철 수준으로 역이 많아져 있기 때문에.

구일 역은 위치부터가 심하게 특이하다. 역이 잘 알다시피 안양천을 건너는 철교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신대방, 구로디지털단지, 대림 3개역이야 도림천을 따라 복개 고가로 건설되어 물위에 역이 있다지만, 강을 수직으로 횡단하면서 그 길목에 역이 있는 경우는 구일 역이 유일하다. 그 위치가 개봉과 구로의 정중앙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2호선의 경우, 아무리 선상역이라고 해도 구일 역처럼 선로 아래로 강물이 출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거나 하지는 않다. -_-;;)

경인선 자체가 처음부터 복선으로 건설된 철도가 아니고 1965년에야 복선화가 된 만큼, 안양천 철교 역시 단선 교량이 새로 놓이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두 교량 사이에 공간이 넉넉했는지, 구일 역은 처음에 섬식 승강장으로 만들어졌다. 기존 선로에 신설되는 역이 섬식 승강장인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마치 섬식 승강장을 확장하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개통 당시에 구일 역의 구조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를 선로, ■를 승강장이라고 생각하라.

인천 방면(서쪽)
..┃■┃..
서울 방면(동쪽)

그런데 이것만 있었느냐? 그렇지 않았다. 구일 역이 생기던 시점에는 이미 경인선의 2복선 선로가 딱 개봉 역 직전까지 진행되어 있었다. 서울-구로는 3복선까지 생겼고 말이다. 즉 실제 선로는

인천 방면(서쪽)
│┃■┃│
서울 방면(동쪽)

로, 양 옆에 또다른 복선 선로가 있었다. 2복선 공사를 왜 해야 했는지는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구로 이북의 경부선 서울 시내 구간은 선로별 복복선이 되어 새로운 전동차 선로가 기존 선로의 최북단에 깔려서 ┃┃││처럼 된 반면, 경인선은 방향별 복복선이 되어 새로운 선로가 남쪽과 북쪽에 하나씩 추가된 것이다.
경부선이 경인선처럼 일관성 있게 방향별 복복선이 되지 못한 이유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선로를 그렇게 추가할 부지가 없어서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더구나 남쪽에는 일반열차 선로까지 이미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선로별 복복선이던 선로가 방향별 복복선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한 선로가 다른 선로를 필연적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입체 교차로가 생겼다. 특히 인천 방면 선로는 인접한 경부선 선로를 모두 타넘고 남쪽 끝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고가 위로 붕 떠 있었으며, 이는 안양천을 건너는 구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유로 인해 구일 역의 인천 방면 신규 선로는 다른 세 선로보다 높이가 높다.

경인선의 2복선 신규 선로가 개봉까지만 있던 시절에는 철도청에서 오늘날 경인선 급행 전동차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영등포-주안 반복 열차라는 열차를 운행했다. 구일 이북부터는 그냥 다시 기존 복선 선로를 이용해서 달리고 영등포-구일까지만 신선으로 다니는 그런 열차였다. 경인선 완행 전동차의 일부 선로 용량을 빼내서 거기다 투입시켰던 것 같다. 지금은 영등포-광명 셔틀 전동차가 있지만, 그때는 영등포 역이 그런 부류의 전동차의 시종착 취급도 했다는 게 신기하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경인선도 그렇고 경부선 구로 이북도 그렇고, 전동차 선로는 지금의 급행 전동차가 다니는 선로가 먼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완행 전동차는 지금의 급행 전동차 선로로 다녔다. 그래서 경인선 전동차는 구일 역에 그대로 정차했으며, 그 반면 바깥쪽 선로를 다니던 '영등포-주안 반복 열차'는 아직 승강장이 없었기 때문에 구일 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구일 역을 통과한다는 점만 빼면 영등포-주안 열차의 정차역은 다른 경인선 전동차의 그것과 완전히 동일했다. 아직은 2복선 구간 자체가 너무 짧았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1999년, 경인선 2복선이 부평까지 개통했다. 이제 철도청은 새로운 전동차의 운행 계통을 기존 완행의 계통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했다. 영등포-주안 반복 열차를 없애고, 더 북쪽인 용산에서 출발하되 남쪽으로는 주안이 아니라 2복선이 존재하는 부평까지만 가고, 별도의 선로에서 정차역 수도 줄인 열차를 도입했다. 그때 철도청은 이 열차를 '직통열차'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코레일 민영화 후에야 용어가 급행으로 바로잡힌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으니, 바로 이때부터 내선과 외선의 용도가 바뀌었다. 기존 완행은 새로 추가된 외선으로 들어가고, 급행이 기존 내선으로 들어가서 이 관행이 오늘날까지 이른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물론, 일반열차가 내선을 쓰고 전동차가 외선을 쓰는 경부선처럼, 경인선도 빠른 열차가 내선을 이용하게 일관성 있게 바꾼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용산에서 먼저 회차하는 급행 전동차를 내선에다 배치함으로써, 청량리와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1호선 풀코스 전동차와의 평면 교차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은 게 어차피 서울 시내 구간은 방향별 복복선도 아니고 선로별 복복선이다. 게다가 노량진부터는 일반열차의 선로가 남쪽에 있다가 북쪽으로 꽈배기굴을 통해 위치를 바꾼다. 경부선 3복선 공사와 관련된 더 복잡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서까지는 본인은 아직 잘 모르겠으며, 이에 대한 설명이 있는 자료도 아직까지 접하지 못했다.

이렇게 내선과 외선이 교환됨으로써 구일 역 1층의 중앙 섬식 승강장은 완행이 아닌 급행 전동차가 지나가게 되었고, 구일 역은 급행 무정차 통과역이 되었다. 따라서 그 승강장은 잉여로 전락했다.;;
그 대신 외선에 승강장이 설치되어 완행 전동차는 거기에 정차하게 되었다.

■│┃□┃│■

결과적으로 구일 역은 섬식 승강장의 양 옆에 승강장이 하나씩 더 설치됨으로써 쌍상대식 승강장 형태가 되었는데, 특별히 인천 방면 승강장은 위에 따로 단선 승강장처럼 설치된 특이한 형태가 되었다.

이 글이 이해가 잘 안 되시더라도 구글에서 구일 역 승강장 사진을 찾아 보거나, 이 글을 프린트해서 구일 역을 답사해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참고로 구일 역은 출입구가 동쪽 서울 방면에 하나만 있다. 그래서 강 건너 부천 방면에서 구일 역을 이용하는 사람은 건너편까지 가서 우회를 좀 해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10 08:17 2011/09/10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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