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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

1930년대에 일본군 장성인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미국으로 여행인지 출장인지를 갔는데..
시골 깡촌의 평범한 소녀가 공구를 들고 와서 자동차가 퍼진 걸 뚝딱 수리하는 걸 목격했다.
그는 이거 하나만으로도 천조국의 저력을 직감하고 경악했으며, 일본은 이런 나라와 전쟁을 벌여서는 이길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참고로, 옛날에 성경 번역자 틴데일은.. 시골에서 소 모는 꼬맹이 조무래기라도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자국어로 성경을 암송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근데 이 미친 나라는 어떻게 듣보잡 시골 처자조차 기계를 이렇게 잘 다루느냐 말이다.

2. 컴퓨터

한편, 1940년대인가 50년대인가, 컴퓨터 과학자 폰 노이만은 거의 인간 컴퓨터 급의 큰 수 암산이 가능했으며, 그냥 머릿속으로 기계어 코드를 쭈룩 읽고 쓰는 게 가능했던 천재 괴수로 유명했다.
자기 제자들이 컴파일러는커녕 어셈블러를 만드는 것조차 별로 달갑지 않게 봤을 정도였다. 프로그램을 짜고 싶으면 사람이 그냥 직통으로 0 1 쑤제 암산 기계어 코딩을 하면 되지, 엔지니어가 지 한 몸 편하자고(!!) 그 비싸고 거대하고 귀한 컴퓨터를 갖고 무슨 자원 낭비 잉여짓을 하느냐고, 그렇게 힐난을 가했었다.

하긴, 폰 노이만은 컴퓨터에 대해서 '프로그램 내장형 모델'이라는 개념 자체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었다..!!!
컴퓨터가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진공관 배선을 바꾸고 천공 카드를 교체하는 식의 물리적인 노동으로 지정하는 게 아니라, 이 지시사항 역시 프로그램이 취급하는 데이터와 동급으로 메모리 상의 정보 중 하나로 간주시키는 발상이다.

요즘처럼 키보드 코딩만으로 간편하게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진 것 자체가 이런 개념이 도입된 덕분이다.
그러니, 자기가 이 정도로 프로그래밍 환경을 개선했으니, 더 편한 요행 꼼수를 바라지는 마라~~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3. 저격총

역시 2차 세계 대전 때.. '시모 해위해'라고 적군 수백 명을 사살한 핀란드의 전설적인 저격수가 있었다.
그는 저격 잘 하는 비결이랍시고 번거로운 조준경 따윈 없는 게 낫다는 말을 씨부려서 다른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지 혼자 시력이 2.0 3.0을 넘기라도 하는지.. 아무도 이해하지도 이행할 수도 없는 비현실적인 조언을 조언이랍시고 진지하게 남겼던 것이다.

하긴, 그 시절엔 레이더도 없거나 뒤늦게 개발됐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기 폭격기 조종사 역시 시력이 좋은 게 지금보다 아득히 유리하게 작용하긴 했었다.

이것들은 대단한 일화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저 시대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은 급의 자동차를 수리하거나 요즘 컴퓨터와 운영체제 같은 여건에서 기계어 코딩을 한 건 아니라는 점 역시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지금 자동차나 컴퓨터는 정말 저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호락호락 직접 만지고 고칠 수 있지 않다.

제 아무리 천재 괴수 폰 노이만이라 해도, 그 시절에 컴퓨터라는 건 핵 실험이나 탄도 계산, 일기예보 시뮬레이션을 위한 거대한 계산 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국가 기관· 연구소만의 전유물이었으며,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엄청 비싸고 귀하신 몸이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을 겪었고,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을 뿐이었다. 일반 양민들이 개나 소나 그 거대한 컴퓨터보다 성능이 더 뛰어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시대를 살았거나 그걸 예측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 컴퓨터 자원에 대해서 극도로 아껴 쓰고 절약하자는 마음이 뼛속까지 몸에 배겼으며, 그런 사고방식이 자신의 천재적인 두뇌와 결합했기 때문에 '쓸데없이 어셈블러 따위'라는 갈굼이 나온 것이었다. =_=;;;

지금이야 한낱 작업자의 편의 때문이 아니라 업무 생산성 때문에라도 프로그래머들에게 고급 툴과 컴파일러는 듬뿍 쥐어 줘야 한다. 폰 노이만이라도 Windows용 exe 실행 파일을 맨땅에서 만들지는 못할 것이며, 근본적으로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
키가 3m인 인간흉기 골리앗, 특수부대 할아버지라 해도 현대의 전장에서 총 맞으면 죽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시모 해위해도 기술이 훨씬 더 향상된 오늘날의 저격 소총을 보면 조준경 불필요 소신을 바꾸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은 전장에서 수백 명의 적군을 조준경 없이 저격 사살하긴 했지만, 그 대신 저격 거리도 km급이 아니고 우리 생각보다 짧았다고 한다(2~300m). 그만큼 더 위험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4. 비행기

20세기 중반의 천조국 기준으로.. 컴퓨터 업계에 폰 노이만이 있다면, 항공 업계에는 '켈리 존슨'(1910-1990)이라는 정말 전설적인 괴수 엔지니어가 있었다.
이 사람은 평생을 비행기를 조종하는 일이 아니라 비행기를 설계하고 만드는 일에 뼈를 묻었다. 이 사람도 조종을 안 한 건 아니지만, 평범한 여객이나 군용 조종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기체의 안정성을 극한까지 시험하는 '테스트 파일럿' 명목이었다. ㄲㄲㄲㄲㄲ 즉, 여느 파일럿과는 급이 다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사람은 록히드에서 일하다가 미국의 최신 항공 우주 기술의 산실인 스컹크 웍스의 수장을 역임했고.. 네바다 주에 그 비밀 실험 기지인 AREA 51을 직접 구상하고 만들기도 했다.;;
전투기 P-38, 최초의 제트 전투기 F-80 슈팅스타 쌕쌕이, 마하 2를 최초로 돌파한 F-104, 고공 정찰기 U-2와 SR-71 등..

컴퓨터도, 캐드도 없던 시절부터 이 사람은 인간 컴퓨터나 인간 백과사전이 아니라, 그냥 걸어다니는 풍동 실험실이었다.
"비행기를 이렇게 만들고 날개의 모양과 크기와 각도를 이렇게 만들어서 저렇게 조종하면 실제로 이렇게 날아갈 것이다, 성능과 안정성이 이럴 것이다.. 이 디자인은 요런 비효율과 문제가 있으니 얼추 이 정도로 고쳐야겠다.."

동료 엔지니어들은 낑낑대며 복잡한 수학 계산을 통해 예측을 했지만, 저 사람은 머릿속에서 직감적으로 바로 시뮬레이션이 됐다.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한 게 굉장히 정확하게 적중했다. 이게 진짜 무서운 면모였다.;;; 동료 엔지니어들은 "저 괴수는 공기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나?" 하며 혀를 찼다. 이 정도면 비행기의 폰 노이만 급이 아닐지? ㄷㄷㄷ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보잉 사에서 재직했던 '조(조셉) 서터'(1921-2016)도 전설적인 비행기 개발자였다. 보잉 7x7 프로젝트에 모두 관여하면서 짬을 쌓다가 궁극적으로는 747의 팀 리더가 되어 20세기 최대 크기의 전설적인 여객기를 설계하고 개발하게 됐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쎄, 현대의 CPU 설계 중에서는 독보적이고 전설적인 장인 엔지니어가 없나 모르겠다.
CPU는 자동차나 비행기와 달리 애초부터 사람 손으로 만드는 게 가능하지 않은 물건이긴 하다만.. 그래도 미시세계에서도 회로를 이렇게 설계하면 발열이나 전력 소모가 너무 심해진다느니, 몇 마이크로초 단위의 손실이 생긴다느니 뭐니 이런 직관이 발휘될 여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08 08:35 2023/03/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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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역본 간의 차이들

1. 변개 유형 (신약)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자가 타 성경에서 변개됐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크게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나뉜다.

(1) A형 오리겐 변개(원문)
요한복음 "독생하신 하나님", "아들을 순종치 하니하는 자는"
벧전 2:2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 골로새서 "그분의 피로" 삭제 같은 것들.
내용이 차이가 나는 것은 대체로 이 유형에 속한다.

(2) B형 번역 이슈(원어)
이사야서 루시퍼, 사도행전 이스터, 누가복음 갈보리, 요나가 '고래' 배 속, 증인이냐 순교자냐, 지옥이냐 음부냐 등..
같은 원어가 서로 다르게 번역된 것들이다.

(3) C형 후대 본문비평에 의한 변개(원문)
마가복음의 마지막 열두 구절,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 이야기, 요한의 콤마 따위
이건 옛날 사람보다는 웨스트코트-호르트의 기여도가 더 높은 변개이다.
수백 년 전의 옛날 성경에는 심지어 가톨릭용이라고 해도 이 C형 변개가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

2. 변개 유형 (구약)

사실, KJV 옹호자/유일주의자들은 구약보다는 신약의 차이점에 관심이 더 많다. 신약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위주로 전수되어 왔으며, 본문 계보가 명백하게 이분화돼 있어서 번역의 차이에 앞서 내용의 차이가 더 많기 때문이다.

허나, 구약도.. 맛소라 본문 덕분에 본문의 변개 문제는 덜한 편이지만.. 원어의 미스터리함이 아무래도 히브리어가 그리스어보다 더 심하다. 그래서 번역의 차이로 인한 잡음이 더 많고, 원어 말장난이 틈탈 여지도 더 많은 것 같다.
다음은 내가 당장 기억하고 있는 예시 몇 가지일 뿐이다. 보다시피 숫자가 막 대놓고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다.

  • 4년 뒤 / 40년 뒤에 압살롬의 반역 (삼하 15:7)
  • 3년 뒤에 십일조 / 3일마다 십일조 (암 4:4)
  • 온천 / 노새 (창 36:24)
  • 엘하난이 골리앗? 골리앗의 동생?을 죽임 (삼하 21:19)
  • 요셉에게 색동옷 / 소매 긴 옷 (창 37:3)
  • 그들을 톱으로 잘라서 끔살시켰다 /톱으로 강제 노역을 시켰다 (대상 20:3)

그러니 내가 주장하는 건.. 이게 다 맞을 수는 없고, 그래도 어느 것 하나가 정답이긴 할 거라는 점이다.

3. 의외로 KJV처럼 번역된 구절

한글 개역성경(개역개정 포함)이나 심지어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공동번역 성서는 KJV 유일주의자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아쉽지만 부패한 본문에서 만들어진 변개된 역본이다.
그런데 얘들은 아주 극소수 예외적으로 KJV 스타일로 옮겨진 표현도 있긴 하다. 예전에 이미 했던 말도 있지만.. 복습해 본다.

(1) 개역성경의 경우, 창세기 요셉의 옷이 색동옷/채색옷, 어쨌든 무지개 같은 컬러풀한(창 37:3) 옷이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KJV와 일치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현대의 역본들은 장신구 치장이 잔뜩 달린 화려한 옷, 소매 긴 옷 등으로 표현이 바뀌는 추세이다.

(2) 엡 4:12에서 KJV는 “각종 은사들을 통해서 성도들을 온전하게(perfecting) 한다”고 말하지만, 타 역본들은 성도들을 “준비시킨다”(equip, prepare)고 되어 있다.
이건 마치 마태복음 28:19에서 “가르치는”(KJV) 것과 “제자 삼는”(나머지) 것하고 비슷한 차이점 같다. 의미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엡 4:12의 경우, 개역성경도 의외로 ‘준비시켜’ 대신 ‘온전케’ 한다고 KJV와 동일하게 번역되었다. 이건 원문의 차이점인지, 아니면 색동옷 같은 번역 스타일의 차이점인지 잘 모르겠다.

(3) 다음으로 요 3:36은 “아들을 믿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KJV)가 “아들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고 바뀐 걸로 유명한 구절이다. 그런데 얘는 의외로 공동번역 성서도 “아들을 믿지 않는 자”라고 KJV와 동일한 워딩을 했다.

(4) 고후 13:11의 끝인사가 KJV만이 “굿빠이, 잘 있으라, 안녕히 계시오” 등의 작별인사인 farewell이다. 나머지 역본들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거의 다 “기뻐하라”(rejoice)라고 바뀌었다.
우리말 역본 중에서는 심지어 말보회의 한킹조차도 ‘기뻐하라’라고 번역했는데(왜???).. 그런데 공동번역 성서는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farewell이라는 의미로 KJV처럼 번역되었다.

공동번역 성서는 막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했다기보다는.. 흐름상 의역을 하느라고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게 아닌가 싶다. ‘믿는 자’ 다음에 논리적으로 ‘믿지 않는 자’가 나오는 게 맞고, 그리고 서신이 다 끝나는 문맥이니 뜬금없이 ‘기뻐하라’보다는 ‘굿바이’가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4. 진짜 어려운 것

유경험자로서 말할는데, KJV는 겨우 -eth, thou thee ye, gay clothing, prevent 같은 유명하고 잘 알려진 고어가 어려운 건 절대 아니다. 그건 그냥 며칠이면 적응되고 익숙해지니 하나도 문제될 것 없고..

진짜 어려운 건 대명사와 도치이다. 길고 복잡한 문장에서 개나 소나 it he 대명사가 너무 많아서 뭘 가리키는지 분간이 안 될 때.. 그리고 복잡한 도치에서 주/객 관계 따지는 게 좀 어려울 수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왕상 3:27 솔로몬의 재판에서도 "저 여자가 진짜 애엄마다" 할 때도 KJV는 그냥 평범하게 her이다.
두 여자 중 누구를 가리키는 her인지를 기계적인 어휘 통사 구조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에 비해, 다른 역본들은 약간 해석을 추가해서 the first woman이라고 써 놓은 편이다.

솔로몬의 재판이야 워낙 유명하고 문맥이 뻔하기 때문에 "아이를 차라리 저 여자에게 주고, 죽이지는 말아 주세요!"가 진짜 엄마인 걸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허나, 그런 유명한 얘기 말고 더 어려운 문맥에서는 대명사 포인터를 역참조할 때 머리에서 쥐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데 KJV가 그렇게 자비심 없게 번역된 이유는 애초에 원어 원문의 표현이 그렇게 자비심 없고 모호했었기 때문이다. KJV는 표현 추가나 윤문을 극~~도로 꺼리면서, 불가피하게 단어 하나를 추가하더라도 이탤릭체로 티를 내면서 아주 보수적으로 정직하게 번역됐다는 걸 생각해 보자.

5. 고펠나무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는 목재는 무슨 나무일까..??
성경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등장한다. 나는 당연히 전나무, X나무, 포플러나무 같은 친근한 나무 내지 레바논의 백향목, 아니면 출애굽기에서 성막 제조용으로 죽어라고 나오는 시팀나무 이런 걸 떠올렸는데.. 노아의 방주는 그렇지 않더라.

창 6:14에 따르면 고펠나무 gopher wood라고 한다.
그러나 gopher라는 단어는 고유명사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이면서 여기 말고 성경 다른 데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내장 사전을 이용해서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특히 킹 제임스 유일주의 진영에서 좋아하는 방식-- 이 나무의 정체를 밝히는 게 불가능하다.

심지어 킹제임스 흠정역을 출간한 '그리스도 예수안에'에서 편찬한 성경 용어 사전에서도 "노아의 방주를 지을 때 사용한 나무" 이상으로 설명이 더 없다. 다른 표제어들 대비 이상하리만치 풀이가 부실하다.
이건 그냥 통상적인 성서고고학이나 원어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옛날 한글개역 성경은 그냥 '잣나무'라고 했다가 개역개정에서는 '고페르 나무'라고..;;; 음역으로 바뀌었다.
영어는 뉴 킹 제임스에서는 gopher가 단독으로 생산성이 없는 사어라고 간주하고.. gopherwood 한 단어로 붙이는 기지를 발휘했다.;;
현대에는 이게 사이프러스 나무가 아닐까 하는 해석이 등장해 있다(NIV 등). 이건 본문 변개하고는 관계 없고 후대에 와서 등장한 견해이다.

심지어 "노아의 홍수 이후로 멸종하고 현존하지 않는 나무 품종일 것이다",
"애초에 나무 품종 명칭이 아니라 나무를 가공하는 방식의 명칭일 것이다. 혹시 이건 비슷하게 생긴 다른 히브리어 글자의 오기가 아닐까..?? '고페르'가 아니고 '코페르'이면 pitched tree (역청 바른 나무..??)가 된다는데?"

이런 낭설까지 있는가 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건 뇌피셜이 지나친 것 같다. 나는 성경 본문을 교정하는 정도로까지 선을 넘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도 킹 제임스 킹왕짱을 주장해 온 럭크만의 주석서에는 이 구절에 대해 뭐라 해설하고 있는지 있는지 문득 궁금하다.

참고로 이 gopher는 북미 다람쥐 동물이나 컴퓨터 고퍼 프로토콜과 스펠링이 우연히 같지만 이들과는 어원상 서로 전혀 무관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05 08:35 2023/03/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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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목에는 KJV 유일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갔지만, 특정 역본을 옹호한다기보다는.. 무오류한 역본 하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더 원론적인 사실"에 대한 변증 위주이다.

1. 언어 관련

과거에 하나님은 친히 인류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언어와 문화, 민족 구분을 만들었다. 인간들을 강제로 찢어 놓고 파편화시켰다. 인류가 한꺼번에 동반 타락하는 것을 막고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심판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훗날, 언어와 민족의 구분 없이 한 가족인 교회라는 것이 태동할 때는 하나님께서 제일 드라마틱한 기적이면서 사도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기도 했던 외국어 구사 표적을 주셨다.
그리고 알아듣지 못하는 타 언어 때문에 교회에 혼란이 야기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절대로 아니라고 고린도전서에서 거듭 강조하셨다. 세례/침례 문제와 비교하면 대략 이런 관계이다.

  • 스스로 자기 믿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유아나 어린아이에게 침례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물며 침례도 아닌 세례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 통역 없이 교회에서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가 공석에서 남발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물며 외국어도 아닌 날랄랄따따 잡소리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알아듣지 못하는 '원어'에 대한 동경, 환상이 있다. 하나님께 다이뤡트로 내리꽂혀진다는 하늘의 신비로운 언어, 천상의 기계어 어셈블리어뻘..???? C/C++ 고급 언어 짜끄레기나 구사하는 자기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언어라고 말이다.

그게 말은 방언 기도(하나님에게 직통 전달되는 =_=;; )요, 글은 도대체 실체는 모르겠지만 original 원어 원문 성경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이 hoax, myth라고 생각한다. 성경의 기독교는 "죽은 사람 갖고 장난치지 않으며 일체의 뒤끝이 없다(하늘 아니면 지옥.. 끝!)." 그리고 비슷한 차원에서, 무슨 신비로운 언어 주술 주문 말장난질이 없다.

하나님이 언어와 민족 구분을 만드신 것은 인간을 '배려해서'이지, 그런 언어 접근성으로 사람을 차별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정말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이고 인간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가?

이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유대인에게는 성문법인 율법을 주시고 이방인에게 양심의 법을 주셨다고 해서 이게 민족별로 개인 구원 접근성에 대한 차별은 절대 아닌 것과 같다. 유대인은 하나님과 더 가까이 소통하는 큰 특권을 받은 대신에, 법을 어겼을 때의 처벌과 책임도 더 컸다. 마음속에만 있는 양심의 법의 물리적인 근거· 실체가 율법이라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논리로.. 하나님께서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다음으로 영어로 된 최종 권위 성경을 하나 남겨 주셨다고 해서 이것이 영어 모국어 화자에게만 불공평한 특혜를 제공한 게 아니다. 관점을 좀 달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기왕 이렇게 민족과 언어가 다양하게 찢어진 와중에, 총체적인 무질서를 막기 위해서 기준 하나를 제정하신 것 자체를 나쁜 조치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정말 만에 하나 불공평한 특혜라고 해도.. 지금 죽은 언어인 원어 공부한 신학자들에게만 불공평한 특혜를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세상에서 제일 접근하기 쉽고 대중적인 외국어인 영어에다가 특혜를 주는 게 훨씬 낫고 '덜' 불공평하다.

2. 비유

(1) 죽어서 지옥 간 사람이 지옥에서 살아 나와서 막 증언을 하고 "지옥은 정말 있어!! 니들은 정말로 지옥 가면 안 돼!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돼..!!" 이렇게 증언을 하면 사람들이 말을 좀 들을 것이다.
→ 그러나 성경의 답은? 눅 16장 끝부분

(2)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나고 신자들의 휴거까지 목격하고.. 반대로 초자연적인 재앙까지 겪으니 그때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제 좀 정신 차리고 성경 읽고 왕국 복음에라도 순종할 생각을 할 것이다.
→ 그러나 성경의 답은? 계 9:20

(3) 옛날의 히브리어 그리스어 쓰던 사람이 살아나서 우리에게 "어 이건 이런 뜻인데?" 교통정리를 해 주면 성경 번역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될 것이다. 현지인이 깡패 아니겠나?
→ 과연?? 성경의 답은??? @@@

(4)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왜 내게 '아버지를 보여주소서?' 이렇게 따지느냐?
→ 킹 제임스 성경을 본 자는 이미 원어 원문 성경을 보았거늘.. (이하생략)

(5) 계시의 확대

  • 예수님이 사도들이 죽기 전에 다시 오실까? (초대 교회 시절)
    → 예수님이 일곱 교회 경륜까지 다 찍고 나서 21~22세기쯤엔 오실까? (현재)
  • 교황은 바로 그 적그리스도일까? (중세 유럽 종교개혁자들의 생각)
    → 교황은 미래 진짜 적그리스도의 짝퉁 예시 모형인 걸까? (현재)
  • 영국에서 성공회와 청교도를 중재하기 위한 단일 성경 (1600년대 당시)
    → 영어로 완벽하게 보존된 최종권위 성경 (현재)

성경 역본 문제에 대해서 성경의 비유를 적용해서 생각하면 이렇다는 뜻이다.

3. 임의성

성경 기록이란 건 증명 없이,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토 달지 말고 신자가 맞춰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심각하고 민감한 텍스트이다.

가령,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 진술 중 둘째 날엔 다들 아시다시피 "보기 좋았더라"가 유일하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둘째 날에는 뭔가 안 좋은 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기 좋았다는 말을 넌지시 생략하셨구나, 저 바닥엔 여전히 사탄 마귀 잔당이 있고 악이 있구나" 이렇게 유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변개되고 삭제되어서 없는 거면 논리가 정반대로 바뀌어야 된다~!!
"변개된 성서에서는 이 구절에서 '보기 좋았더라'를 고의로 삭제함으로써 재창조니 어쩌구니 하는 이단 교리가 들어올 빌미를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풀이해야 된다. 어느 게 맞는지를 우리가 판단할 수 없다!!

성경에 원래 어떻게 기록돼 있는지에 따라 우리가 까라면 까로 논리를 맞춰야 된다는 거다. 성경 말씀은 전적으로 하나님 마음대로 "임의적"이기 때문에..
그런데 성경이 내용이 다르고 표현이 제멋대로인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

그저 "여기서는 삭제됐지만 다른 구절에는 유사 내용이 있으니 상관없다", "아 그건 후대에 추가된 거고 오래된(???) 사본에는 없다", "원래 인간이 기록한 것이다 보니 오류가 좀 있을 수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이건 내 성질 같았으면 너무 답답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죽빵이라도 날리고 싶은 사항이다.. ㅡ,.ㅡ;;

세상에서는 인간이 제정한 법조문을 갖고도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가 삭제되는 걸 반대하고 투쟁한다.
"A와 B 중"이 "A와 B 등"으로 바뀌어서 뉘앙스가 달라진 걸 귀신같이 간파해서 반대파를 반박하고 버로우 태운다.
그런데 성경은 큰 뜻만 통하게 대충 아무렇게나 만들어져도 괜찮다?

세상에서 맛집을 고르고 물건을 살 때도 같은 값이면 무조건 상태가 더 좋은 걸 고르는데.. 성경에 대한 관념이 무덤덤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 사람에게 성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굳이 최선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4. 불신자에게도 100% 동일하게 적용 가능한 논리

뭐~~ "킹 제임스 떠드는 신자들도 행실이 개판이더라, 말보회가 이단이더라, KJV 쓰는 교회들 중에도 이단 많다"
이런 쓰잘데기없는 소리들이 도대체 왜 나오는 건지 난 개인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킹 제임스 성경을 거부하는 논리들을 보면.. "기성교회 vs KJV" 대신에 "불신자 vs 기독교/교회/예수"라고 치환만 하면 완벽하게 동일한 패턴이 많다.

예: 조선 시대 사람들은 다 지옥 갔나, 이 순신, 세종대왕도 다 지옥 갔나
→ 킹 제임스 이전엔 무슨 성경 썼는데? 한킹 나오기 이전에 주 기철 목사도 다 잘못됐나

지금 도대체 옛날 사람 얘기가 왜 나오는데?
난 그런 사람들이 애초에 예수 왜 믿는지, 교회는 왜 다니기 시작했는지 진지하게 궁금하다.
예수 말고 다른 구원의 길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종교(편의상의 표현)에서..
그렇게 쓰여 있는 성경이 한 종류만 맞고 나머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다 틀렸다고 말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러** 왔노라"
  • "부활의 날에는 그 여자는 칠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 "부활의 날에 **그들이 다 깨어나면** 그 여자는 칠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 "형제에게 화내는 자마다"
    → "형제에게 **이유 없이** 화내는 자마다"

아멘???

당연히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무인도나 감옥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아무 성경이라도 선택의 여지 없이 봐야 한다면 개역이니 NIV니 심지어 메시지니.. 따질 때가 아니다.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을 지경이라면 풀뿌리라도 뜯어먹고 쥐나 벌레라도 먹어야 하지 않는가?
옛날에 그 가난하고 열악한 여건에서 개역이라도 열심히 읽었던 선조들은 그 사람 사정이 따로 있고 우리는 처지가 그때와 다르다.

하지만.. 변개된 성경과 변개되지 않은 성경을 대놓고 한 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고 팩트와 정보가 다 마련돼 있는데 굳이 변개된 성경을 고의로 선택할 필요는 없다.
본인은 위쪽 같은 성경을 보기 싫고 아래쪽의 온전한 말씀을 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둘 다 옳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멘~! ^^ 대한민국이 아무리 물가가 올라서 먹고 살기 힘들기로서니, 풀뿌리나 쥐나 벌레를 찾아 먹어야 할 지경은 아니니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02 08:35 2023/03/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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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본공수 61편 납치 사건"은 지난 1999년 7월 23일, 우리나라로서는 아직 씨랜드 화재 참사(6월 30일)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시절에 일본 국내선으로 뛰던 보잉 747 대형 여객기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얘는 지역만 생각하자면 우리나라와 별 관계 없어 보이지만, 사건의 발생 배경을 생각하면 본인 같은 사람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가해자는 1970년생으로 나름 똑똑하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철덕이었는데.. 대학교 시절에 스케일이 더 큰 항덕으로 전향(!!!)했다. 흐~ 난 대학 말년 때 겨우 철덕에 입문한 케이스인데 말이다. (물론 그 뒤로 무늬만 쬐끄맣게, 명함 내밀기도 민망한 실력이지만 약간 항덕/밀덕 표방을..)

하지만 그 사람도.. 그렇게 늦깎이로 입문했다고 항공사에 승무원이나 사무직, 지상 조업도 아니고 여객기 조종사로 당장 입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비행 시간을 뭘로 어떻게 채우려고? 취미와 직업은 엄연히 서로 다른 영역이다.

결국 그는 대학 졸업 후엔 철도 회사에.. 그것도 열차 운전도 아니고 JR화물에서 상하차 관련 초라한 단순노동 직군에 입사했다. 허나, 음침한 우울증 증세로 인해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업무 실수도 잦았다. 이 때문에 근속연수 2년을 못 채우고 무단결근 잠적하면서 회사를 뛰쳐나와 버렸다. (1994~96)

이 사람은 점점 더 사회성이 오그라들었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혔다. 한때는 자살 시도도 했고.. 집에 틀어박혀서 플심 게임에만 심취해서 살았다.
게임으로는 비행기를 기막히게 조종하면서 아무 사고 없이 사뿐히 이착륙을 시켰다고 한다. 그는 “자기는 똑똑하고 철도/항공에 빠삭한 전문가인데 사회에서 안 알아 준다”는 쪽의 망상에 빠지게 됐다.

그래도 이 사람은 진짜 똑똑하기는 했는지, 컴퓨터 해킹과 본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짓을 현실의 항공업계를 상대로 해냈다~!!
인터넷으로 접한 하네다 공항 내부 구조를 보고는.. 보안 취약점을 발견한 것이다.

“환승을 가장해서 요렇게 요렇게 슬며시 이동해서 출국장으로 들어가면 검사받지 않은 짐을 기내에 반입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걸 착하게 공항과 항공사 측에다가 신고도 하고 “나 잘했죠? 그러니 공항 보안요원으로라도 채용해 주세용~” 라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이 제안마저도 전부 무시 당했다.

결국 이 사람은 폭주해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자기가 찾아낸 그 방법대로 기내에다 흉기를 실제로 반입했고, 이륙이 끝나자마자 그 흉기로 여객기를 탈취해 버렸다.
승무원을 위협해서 조종실로 어째어째 들어갔다. 부기장은 내쫓는 데 성공했지만, 기장은 끝까지 말을 안 들으니 부득이하게 흉기로 찔러서 살해하게 됐다.

이 사람은 플심으로만 보던 여객기 조종실을 실제로 구경하고 이것저것 조작하는 소원을 이뤘지만.. 이것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예비 열쇠로 조종실 문을 따고 다시 들어온 승무원과 승객에 의해 곧 제압당했기 때문이다. 이때는 가해자가 흉기를 내려놓고 조종실 감상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무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걸로 보인다.

저 사람은 악의적인 “다같이 죽자” 자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문적인 베테랑 747 조종사도 아니었다. 그냥 놔 뒀으면 자기 망상대로 비행기의 성능 한계를 시험한답시고 각종 기기들을 마구 건드리다가 기체를 통째로 추락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다행히 부기장이 다시 비행기를 접수해서 상황을 복구했다. 그 덕분에 비행기가 추락한다거나, 승객이 더 죽거나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장이 사망한 관계로 비행기는 목적지로 가지 못하고 도로 회항하게 됐다.

가해자는 2킬 이상이 아닌 only(?) 1킬인 점, 그리고 정신병 정황이 감안되어 사형까지는 아니고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살인에다가 500명이 넘게 탔던 여객기를 상대로 하이재킹이니, 평생 감방에서 썩기에 부족함이 없는 너무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현재까지도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다. 이 사람의 범행 수법이 알려진 뒤에야 하네다 공항의 내부 구조는 당연히 보안 패치가 행해졌다.

저 사람을 보안 요원 특채까지는 안 시키더라도, 항공 당국이 취약점 신고를 받아들이고 간단히 포상이라도 해 줬으면.. 저렇게 기장이 순직하고 저 청년 인생 쫑나고, 수많은 승객들이 당일 스케줄이 아작나는 불편을 겪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참 재능이 아깝다. 일본은 국가적인 손해를 당하게 됐다.

“안에서 잠그면 밖에서는 절대 못 열죠” -- 영화 <라이터를 켜라> 승객 대사가 문득 생각난다. 이거는 여객기가 아니라 열차 버전이다만..
이 때문에 주인공 허 봉구는 열차 지붕 위를 기어가서 운전실로 잠입하는 미친 짓을 한다. 이때는 경부선 철길이 전구간 전철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설정이 가능했다.

저 사건에서는 쫓겨난 승무원들이 비상용 예비 열쇠를 갖고 있어서 조종실에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9· 11 테러 이후에 비행기들이 안에서 열어 주지 않으면 어떤 경우에도 조종실 잠입이 진짜로 절대 안 되게 구조가 바뀌어 있다. 이게 비행기의 한쪽 보안은 강화시켰지만, 반대로 조종사 자체의 일탈 같은 다른 상황에 대한 보안은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끝으로, 이 납치 사건을 보니 먼 옛날 1971년, 우리나라의 F27기 납북 미수 사건도 같이 떠오른다.
이 사건에서는 항덕은 아니고--그 나라 울나라 여건상 강원도 깡촌에서 항덕이 되기란 불가능..-- 그냥 사회 불만 니트처럼 살고 있던 어느 20대 청년이 괜히 북한 가서 팔자 펴고 싶어서(???) 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제 폭탄을 만들어서 국내선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렸다. 이때는 부기장이 폭탄을 껴안고 자폭하는 바람에 이 사람 한 명만 순직하고 희생됐었다. 범인은 체포가 아니라 그냥 현장에서 사살됐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16 08:35 2023/02/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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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짜 뉴스

인터넷과 SNS라는 게 온갖 날조 주작 가짜 뉴스의 온상이라는 비판과 성토가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건 절반 이하만 맞는 말인 듯하다.
"한국은 UN 지정 물 부족 국가", "일제가 석굴암을 훼손했다", 일제가 박은 쇠말뚝, 아베 노부유키의 유언(???), "선풍기 틀어 놓고 자면 죽는다", "김 민지 조폐공사 사장 딸 이야기" 등등등..

인터넷과 SNS가 없던 시절.. 통신 불편하고, "서울 간 놈과 서울 안 간 놈이 싸우면 안 간 놈이 이길" 확률이 더 높던 시절이야말로 가짜 뉴스, 루머, 낭설, 괴담, 유언비어, 도시전설들이 더 많이 나돌았다. 검증을 하기가 극도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인터넷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게 아니다. 이건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닌 것과 거의 같은 맥락이다.
인터넷은 가짜 뉴스 주작이 빠르게 퍼지긴 하지만 그래도 반박되고 바로잡히는 것도 금방 되는 편이다. 그 대신 굉장히 저렴하고 간편하게, 공평하게 인류의 집단지성에 접근할 수도 있다. 정보력만 뛰어나다면 말이다.

"예수님 부활이 사실인가?" 이런 걸 위키나 네이버 지식인에서 찾는 건 좀 난감할 것이다. 그러나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이 사실인가"를 확인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2. 사진과 영상의 화질

옛날에는 뿌연 흑백 사진과 흑백 영상이 더 옛날 기록의 특징이었는데.. 이제는 시퍼런 컬러 사진과 컬러 영상도 3, 40년 가까이 전의 옛날 기록이 되어 간다. 이게 정말 어색하게 느껴지고 문화 충격으로 다가온다.
단지, 옛날 껀 해상도가 낮고 jpeg artifact가 존재하며, 특히 영상은 종횡비가 지금 같은 와이드가 아니었을 뿐이다.

차라리 아주 옛날 영화 필름은 복원을 잘 하면 1980년대의 것도 2K니 4K급으로 리마스터링이 된다. 하지만 화질이 제일 안 좋은 채로 굳어져 버린 건 1990년대의 '비디오' 영상인 것 같다. 이건 정량적인 방법으로 리마스터링이 불가능하다.;; 아날로그 스타일의 노이즈와 화질 열화는 요즘 세대가 알지 못하는 정말 인상적인 현상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AI가 출동하면 어떨까..??
옛날에는 "실종된 이 아동이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이런 외모일 것" 이런 기술이 가끔 무슨 대학원 연구소나 스타트업 기업에서 깜짝쇼로나 선보이던 수준이었다. 신 윤복 화가의 풍속화를 '애니메이션'화해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도 1990년대 최첨단 CG 기술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더 나아가서 개나 소나 옛날 흑백 영상을 컬러화하고 저화질 영상을 거뜬히 리마스터링하고 있다. 이건 소실된 정보를 복원한 게 아니라, AI를 토대로 재구성 각색해서 넣은 것이다. 기술적으로 단순히 고종/순종 어차를 복원해서 때 빼고 광 낸 수준이 아니라, 시발 자동차의 레플리카를 새로 만든 것에 가깝다.
이런 게 쌍팔년도를 거쳐서 2020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기술의 혜택이라 하겠다.

자동차 안, 건물 안, 길거리 곳곳에서 고화질 올컬러 CCTV와 블랙박스 카메라가 넘쳐나는 이 시국에...
난 집 현관 비디오폰의 영상이 컬러인 것 실물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다.. >_< 새로 지어진 집으로 거주지가 크게 바뀔 기회가 별로 없었던 듯..

3. 스마트폰

(1) 스마트폰 때문에 공중전화는 말할 것도 없고 재래식 건물 유선전화도 갈수록 없어지고 회선이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송수화기에 꼬불꼬불 케이블 달린 재래식 전화기의 외형 자체가 깡그리 없어진 건 아니다. 기업 내부에서 쓰는 인터폰에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게 호락호락 없어지지는 않을 듯하다. CCTV가 폐쇄회로 영상이라면 인터폰은 폐쇄회로 통신에 대응할 것이다.

(2) 진짜로 영영 없어진 건.. 인류 역사상 전화기의 평균 싸이즈가 가장 작았던 시절.. 2000년대 초중반의 피처폰/폴더폰이지 싶다.
그땐 기기마다 충전 단자가 호환이 안 돼서 불편하긴 했다만.. 그래도 배터리도 왕창 오래 갔다. 한번 충전하면 2~3일은 아무 걱정 없었다. 통화 안 하고 그냥 대기만 시켜 놓으면.. 본인의 경험 기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가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_-;;

(3) 아 그런데, 요즘은 삼성에서 접어서 크기를 더 줄일 수 있는 엄청난 스마트폰을 내놓으면서 앞의 (2)와 같은 편견도 어느 정도 뒤바꿔 놓았다.
그 반면, 펜이 달려 있는 '노트' 계열 스마트폰은 유행이 지났는지 단종되었다.

(4) 3년 반 가까이 사용해 온 아이폰이 언제부턴가 짹을 연결해도 충전이 도무지 되지 않아서 수리를 받았는데.. 세상에나, 단자 안에 먼지가 한 웅큼 껴 있었다. 그걸 청소하니 인식이 다시 거짓말처럼 잘 되기 시작했다.
전자 기기의 먼지 청소는 옛날 볼 마우스 내부의 먼지 청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먼지가 이렇게 문제이면 짹은 뚜껑 같은 게 둬서 충전기를 꽂지 않았을 때는 밀봉해서 먼지가 들어오지 않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배터리는 완전히 밀봉해서 함부로 분리를 못 하게 만들어 놓고는 이건 참.

(5) 스마트폰을 쓰다 보면.. 카톡, SNS, 은행 앱, 갤러리 등.. 즐겨 쓰는 앱이 정해져 있다. 깔려 있는 모든 앱을 골고루 쓰는 게 아니다.
그러니 실제로 쓰는 앱만 빈도에 따라 한 화면에 자동으로 분류해 주는 기능이 좀 있으면 좋겠다.
옛날에 Windows XP 시절에 잠깐 있었던 '바탕 화면 정리' 마법사와 개념적으로 비슷한 기능인데.. 일단 내가 써 본 폰에서 이런 걸 자동으로 해 주는 건 딱히 못 봤다. 그냥 수동으로 앱들을 한 화면에다 정리를..;;
더구나 스마트폰은 PC 화면과 달리 별도의 메뉴 같은 게 없이 그냥 바탕 화면을 찍는 것만으로 앱을 실행하니, 바탕 화면이 좀 더 능동적으로 optimize가 됐으면 좋겠다.

(6) 그리고 스마트폰은 PC와 달리 영문의 입력도 IME가 개입하는 게 가능하며, 실제로 온갖 자동 완성과 자동 교정 기능들이 개입한다. 그런데 가끔은 오타가 아니고 진짜로 내가 입력하는 단어나 이니셜을 그대로 입력하고 싶은데 입력기가 선택할 여지를 안 주고 오교정한 단어를 그대로 내보내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PC라면 Ctrl+Z를 눌러서 MS Word 같은 앱의 각종 자동 고침 동작을 취소할 수 있는데 폰은 그렇지 않고 오교정을 철회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 게 불편하다.

4. 그 밖에

(1) 개인적으로는 무선 키보드(+ 무선 마우스)가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싫고 마음에 안 든다. 건전지를 번거롭게 교체해야 하는 데다, 오동작 반복 입력 현상이 너무 잦다. 이것도 무슨 전자파인지 간섭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거라고 하는데, 해결됐으면 좋겠다.

(2) 옛날에는 신용카드가 더 딱딱하고 번호도 양각으로 툭 튀어나게 새겨져 있었는데, 요즘 발급되는 카드는 다 매끈한 평면 재질이다. 그런데 내 경험상 이런 카드는 단말기에서 인식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꽂아서 인식이 안 돼서 옛날처럼 다시 긁어야 한다. 이런 건 왜 발생하는 차이점인지 모르겠다.
하긴, USB 메모리도 단자 부분이 튼튼한 금속인 게 있고, 그렇지 않고 가녀린 플라스틱인 게 있는데.. 전자가 훨씬 더 튼튼하고 오래 가고 인식이 더 잘 된다. 후자는 좀 싸구려인 것 같다.

(3) 요즘은 매일 아침 11시 반에 우한 폐렴 확진자이든 자연재해이든, 폭염 주의이든, 실종자 안내이든 뭐든 무조건 오는 것 같다. 재난 문자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 전쟁, 사변, 공습경보처럼 진짜로 심각한 상황에만 좀 왔으면 좋겠다.
국내에서 이런 게 최초로 오기 시작한 계기가 지난 2016년쯤인가 경주 지진이었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13 19:35 2023/02/1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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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실수한 이유

성경에는 예수님의 수제자라 일컬어지던 베드로의 인생일대 흑역사가 기록돼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 베드로는 주님을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죽어도 님하와 같이 죽겠습니다!"라고 호언장담을 해 놓고는..
정작 예수님이 배반당하고 붙잡히시던 타이밍엔 갑자기 사람이 바뀌었는지, 그분을 세 번이나 부인해 버린 사건 말이다.

게다가 부인할 때 심지어 저주하며 맹세했다고.. “아 ㅆㅂ, 내가 저 사람을 본 적이라도 있다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니까? 성을 간다! 내가 할복이라도 해야 내 말 믿어 줄 거야?” 급의 극언까지 불사했다고 성경은 진술한다.

이건 인간의 멘탈의 한계를 너무나 강렬하게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저렇게 될 수 있다. 그러니 "꼴 좋다 졸장부 찌질이 등신"이라는 비난보다는 동정과 공감의 시각이 더 강한 편이다.
"평소에 허세 똥군기만 잔뜩 부리던 녀석일수록 정작 실전에서는 총소리만 나도 혼비백산해서 달아날 거다. 천하의 베드로조차 저랬는데 하물며 너 같은 쪼렙 X밥은?"과 같은 패턴으로 아주 즐겨 거론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다른 시각도 있다. 베드로는 천성이 저돌적이며, 저 정도로 찌질한 겁쟁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호언장담 맹세 자체는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적 진영의 똘마니에게 용감하게 검을 휘둘러서 귀 한쪽을 절단하기까지 했다. (요 18:10)
예수님이 베드로를 저지하지 않았다면 그는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로마 병정들을 그렇게 온몸으로 저지하다가 혼자 또는 동지 몇 명과 함께 장렬히 산화하여 열사의 길을 갈 수도 있었다..!

허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선의의 대응에 전혀 호응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뜯어말리셨다. “야, 내가 어디 무력이 부족해서 잡혀 가는 줄 아니? 지금은 성경 기록이 성취되고 있는 순간 아니냐? 너나 정신 바짝 차리고 처신 잘 하라고..”
그리고 그분은 베드로를 말리는 걸로도 모자라서 공격을 받아 귀가 짤린 그 똘마니를 도로 치료까지 해 주셨다! (눅 22:51)

이러니 베드로는 예수님의 언행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채, 급 ‘시무룩~’ 무기력 모드가 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모세의 소싯적 일화가 떠오른다. 자기는 나름 동족을 위한답시고 어느 노예 감독을 몰래 죽여서 없애 줬는데, 동족은 그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다음날 “허 참, 당신은 노예 감독 다음으로는 우리도 때려죽일 거야?”라고 모세에게 따진 것이다. 그러니 모세는 급 당황하고 멘붕하여 이집트를 떠나서 도망치게 된다.)

베드로는 영적으로 최악의 취약 상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당부처럼 딱히 믿음의 강건을 기도하며 간구하지 않았다. 그러면 안전한 곳으로 멀리 멀리 도망이라도 쳤느냐 하면 그리하지도 않고, 위험한 적진 내부를 혼자 계속 맴돌면서 염탐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어? 저 작자도 예수랑 한 패였어요! 내가 분명히 봤어요!” 이런 말이 들리니 허를 완벽하게 제대로 찔린 것이다. 갑자기 겁에 사로잡혔는지, 멘탈이 나갔는지, 아니면 고의로 삐딱서니를 타고 싶었는지.. 이때 베드로는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태도로 돌변하여 예수님을 거듭해서 부인하게 됐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여 본인이 베드로의 심경 변화 과정을 추측해 보자면 이렇다.
그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그 정도로 단순무식하게 비겁한 허세 겁쟁이는 아니었을 수 있다.
설마.. 의기탱천해 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괜히 쿠사리를 먹여서 의욕을 꺾는 바람에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부인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겠는가?? 당연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보기에 베드로는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성경 말씀을 제대로 믿지도 못한 채, 내면의 두려움을 그저 알량한 혈과 육과 객기로 찍어누르고만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분은 베드로의 본질적인 상태를 간파하고서 그러지 말라고, 영에 속한 싸움에 대비하라고 당부하셨다. 하지만 베드로는 여기에서 실패하고 넘어진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 용감하게 물 위를 걷기 시작했는데 '어어..' 딴 생각을 하다가 불안해지고 물에 빠져 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요 11의 "예수께서 우시니라"는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이나 동정심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 것이다(창 50에서 요셉이 운 이유도 같이 참고를..).
그것처럼 베드로의 흑역사에도 당장 눈에 보이는 예수님의 정적들에 대한 두려움만이 기여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인간이 어디에서 무너질 수 있는지, 신앙생활이 단순 사회 운동이나 정치적인 투쟁과는 무엇이 다른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남을 죽이는 의사 투사든, 자기를 죽이는 열사든 무엇이건 말이다.

그나저나 예수님이 체포되던 당시에 제자들이 모두 성경을 잘 알고 성령 충만하게 FM대로 대처했다면 어찌 됐을까?
“스승님을 잡아갈 거면 우리도 다같이 잡아 가시오! / 우리부터 먼저 죽이시오~” 이렇게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양 옆에 들러리 도적 대신에 베드로와 요한 같은 제자가 같이 달리게 됐을 수도 있다.

혹은 악의 무리들이 예수님만 잡아들이고 제자들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체포됐을 때처럼 골방에서 열심히 기도라도 했을 것이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꾸지람을 듣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지 싶다.
뭐, 다~ '만약에 그랬다면?' 같은 낭설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고 보니 베드로뿐만 아니라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실컷 배반하고 나서는 어떤 계기로 마음이 또 바뀐 걸까? 뭔 바람이 들어서 뒤늦게 돈을 반환하고 난리를 치다가 자살을 했겠는지도 적지 않게 의문이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09 08:35 2023/02/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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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은사주의에 대해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 형태와 위상이 비교적 명확한 아버지와 아들 말고 성령(..!!)은 존재감이 제일 없고 딱 떨어지게 설명하기가 까다로운 분이다. 그래서 번역도 성령 이전의 초창기엔 성신, 성숨(..!!) 등 난립하는 편이었다.

'신'자가 들어간 번역은 옛날 한글 개역성경에 ‘하나님의 신, 신령과 진정’ 같은 표현에서 남아 있다. 개역개정에서는 바뀌었지만..
성경에서 '신들'(gods)은 하나님 자신은 아니면서 인간보다는 능력이 우월한 천사, 그룹 등 다른 영적 존재에 대한 총칭으로도 쓰인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가리키는 명칭에 '신'자가 또 들어기는 좀 난감해지는 구석이 있다. ㄲㄲㄲㄲ

다음으로 '숨'은 웬 말인가 싶은데 Spirit 말고 Holy Ghost의 번역을 말한다. 영어 성경에서 ghost는 '숨지다/숨을 거두다'를 뜻하는 yield/give up the ghost 아니면 Holy Ghost.. 딱 두 용례에서밖에 쓰이지 않았다. 그러니 숨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마치 testament를 '유언'이라고 번역하는 것 같은 실험적인 시도인 셈이다.

물 위를 걸어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겁에 떨며 한 말은 "앗.. 영이다(spirit)!! ㄷㄷㄷ"였다. 그걸 보고 흐물흐물 동양 귀신이나 서양 유령(ghost??)을 떠올렸다는 워딩은 현대에 와서야 등장한 것이다.

일부 이단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듯이 성령님은 인격적인 존재라고 생각 자체를 안 한다. 그냥 무슨 기, 에너지, 버프 아이템인 것처럼 생각한다.
물론 성경에 그런 것 같은 묘사가 있긴 하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사울이나 삼손 같은 사람이 초인으로 바뀌었다. 신약에서야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자 온갖 이적이 터졌다. 하지만 그게 그림의 전부가 아니다.

본인이 아는 성령은 이 시대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신자에게 임한다. 그걸 성경 용어로는 '성령 침례'(요 1:33, 행 1:5)라고 부른다. 침례 시술사(!!) 요한이 마르고 닳도록 강조한 게 이것이었다. "나는 맛보기로 이렇게 물을 끼얹는 침례를 주는데, 나 뒤에 오실 분은 니들을 성령으로 침례를 주거나 불로 침례를 줄 것이다." 성령을 받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눅 11:13, 요 20:22)

한번 거주한 성령님은 우리를 아주 버리고 떠나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양심을 통해 느껴지는 성령의 권고를 듣지 않고 계속 제멋대로 죄 짓고 육신적으로 살면 약해지고 식고 역사하지 못하게 된다.
구원받은 신자는 성령 강림을 매번 간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수시로 간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건 성경 교리 논란까지 일으키는 주제이긴 하다만..
성령님은 초대 교회가 태동한 직후에 잠시 예외적으로 허락하셨던 초자연적 이적을 지금까지 매번 또 주시지는 않는다. 그래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적이 그렇게 끊임없이 흔하게 발생한다면 그건 기적이라고 불릴 수 없을 것이다.

그때야 교회라는 게 갓 태어났고 신약 성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사도들이 유대인들 앞에서 한번 더 예수님을 증언하고 믿을 기회를 주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표적이 필요했다. 하나님이 바벨 탑 앞에서 인간들의 언어를 헤집어 놓으셨던 것과 반대로, 복음이 세계로 퍼져 나가라고 언어 장벽을 잠시 없애 주기도 하셨다.

하지만 기적이 필요한 예외적인 사유가 없어지고 나면 하나님 역시 기적을 중단하시고 사람들을 평범한 일반적인 여건에다 두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부터 만나의 공급이 끝났듯이 말이다.
그 뒤에는 기적적인 병 고침이나 직통 계시 같은 건.. 정말 극단적이고 특수한 상황에 처한 예외적인 사람 또는 아주 특수한 기도 응답이 아니면 일반적으로는 없다. 가능성이 0은 아니지만, 있더라도 개인의 간증 수준일 뿐,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다. 교리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사도들의 이적 표적을 재현한다는 사람들은 재현을 정확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남이 알아듣는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막 16:17-18이 말하는 것처럼 독극물(poison)을 먹거나 독사(venom)에게 물려도 괜찮다거나 하지도 않다.

진짜로 옛날 사도들처럼 병 고치는 기적이 행해진다면, 지금 우리처럼 병원 치료와 기도를 병행한다거나.. 하나님께서 기도를 거절로 응답하셔도 감사.. 이렇게 어정쩡한(?) 케바케 같은 게 없는 게 정상이다. 특히 환자가 믿음이 부족해서 병이 안 고쳐지네 같은 개소리 구라 야바위 따위 없다!!

환자가 신자건 불신자건, 사도가 손만 얹으면 테란 메딕 실사판처럼 heal이나 restore가 짠~ 일어났다.
그러니 나더러 성령님의 사역을 감히 부정하네, 성령을 모독/훼방하네 그런 식으로 따지고 대들 필요 없다. 일단 성령님의 사역대로, 계약서대로 100% 똑같이 하기는 하고서 내게 태클 거시길.. 마가복음의 마지막 열두 구절이 남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른다.

지금 이 시대에 사도들의 표적을 재현하는 사람은 단언하건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진짜 있으면 일반인들이 그렇게 직싸게 고생하며 공부해서 의대를 갈 필요가 없고, 대학 병원 중환자실이나 암 병동 따위가 없어도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진짜 있으면 전국의 병원부터 순회해야 되지, 무슨 부흥회 따위를 하고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_- 아무튼..

기독교계에서 "우리도 뜨겁던 초대 교회 정신으로 돌아가자~!" 이런 거 강조하다가 "성령님이여 오소서, 불 같이 뜨겁게 임하소서"가 와전되어 "불 받아라~!!"가 된 걸까..?? 이런 트렌드가 언제 무슨 계기로 들어온 건지 잘 모르겠다.

부흥회(?)라는 건 내 경험에 비춰 풀이하자면, 일반적인 설교나 성경 공부 모임보다 새신자 초청 복음 전도나 성령 간구(?)의 비중이 더 큰 집회이다.
그런 곳에서 더 즐겨 불리는 찬송가도 있다. 외국곡인 "불길 같은 주 성령" (...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하소서)이라든가,
국산곡인 "참참참 피 흘리신" ... (성령의 불길 성령불이야)

아~ 참 2~30년 전 추억 돋는다. 템포 올려 가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박수 치며 부르면 분위기가 진짜 뜨거워진다. =_=;; ㅋㅋㅋ
그리고 고 형원 "부흥"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도.. 얘는 뽕짝 느낌은 위의 곡들보다 좀 덜한 것 같다.

이런 곡들의 가사에는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묘사가 있다. 불에 그렇게도 집착한다는 거.. 그 근거가 무엇일까?
일단 행 2:3 오순절 성령 강림에 대한 묘사가 원조가 아닐까 한다. "또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앉더라." (흠정역) 개역성경 계열의 워딩도 이와 그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흔한 통념과 달리, 그래서 정확하게 무슨 물체가 임했다는 건지 이 구절의 묘사는 의외로 분명하지가 않다.
오히려 통사 구조상으로는 불꽃처럼 낼름 갈라진 '혀', 단순히 '혀'에 가깝다. 불은 그저 비유 대상일 뿐이다. cloven tongues like as of fire.. 꽃처럼 아름답다는 말이 니가 진짜 문자적으로 식물 꽃이라는 얘기가 아니듯이 말이다.

이 장면을 게임 아이템이나 쿵 퓨리 각성 모습을 떠올리면서 최대한 불에 가깝게 해석한다 하더라도.. "번갯불 같은 게 번쩍 하더니 버프 효과가 남았다.."이다. 본인은 세례가 성경적이라고 믿지 않지만, 저 혀가 곱게 머리 위에 앉은 거야말로 세례에 가까운 묘사인 것 같다.
저 행 2:3만 읽어서는 무슨 거대한 화염이 사람을 삼키고 감싸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건 구약 엘리야의 갈멜 산 대결이나 불 병거 승천과 헷갈린 것으로 보인다. -_-;; 아니면 페르시아의 왕자 2에서 불 먹은 왕자 모습을 떠올렸거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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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구절이 아니면, 설마 복음서에 나오는 "성령 침례와 불 침례"를 짬뽕 시킨 걸까? 그건 제발 아니기를 개인적으로 바란다.
성령 침례와 불 침례는.. 생명의 부활과 정죄의 부활만큼이나 서로 극과 극으로 다르다. 불 침례는 형벌이며, 받아서는 절대로 안 되는 침례이다. 바로 다음 구절에서 "자신의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되 껍질은 끌 수 없는 불로 태우시리라" (마 3:12) 처럼 대구 대조를 하고 있지 않는가?

겨자씨만 한 믿음이 긍정적인 심상이라고 해서 "겨자씨가 자라서 나무가 돼서 공중의 새들이 앉았다"가 긍정적인 심상일 수는 없다. 그것처럼 "불의 혀처럼 갈라진 것이 싹 앉았다" 이런 간접적인 묘사가 어쩌다가 "성령의 불 받아라~!"로 바뀌었는지 나로서는 성경만으로는 상상이 잘 안 된다.

아, 뜨거운 체험과 기분 각성이 가끔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신앙 생활에서 그게 '주 main'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뜨거운 체험을 하면서 기분 전환하고 싶으면 그냥 사우나에 들어가면 된다. 방언 받고 희열을 체험하고 싶으면 Looking for you를 3천 번 듣고 철도교를 믿어도 된다. 겨우 그런 것만 하기 위해서 무려 성경을 믿고 예수 믿을 필요까지는 없다.

진짜 성령이 임해서 충만해지면 무슨 병 고침 쪽의 기적 이적보다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처럼 평범한 자기 자아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 나오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오지 싶다. 이런 게 이적이다.
"나를 강하게 하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도 1차적인 의미는 저런 걸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반면, 그렇게 불타는 체험을 하고 입이 자동으로 움직이고 직통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바탕 눈물 콧물 빼고 나서
길거리에서 신들린 듯이 전도지 뿌리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는가? 감정적으로 미워하던 사람을 용서했는가?
갑자기 예수님의 성품이 행동으로 나오기 시작했는가? 세상적인 유흥과 쾌락을 탐닉하던 습성이 바뀌고 진짜 성령 충만해졌는가...???
내가 아는 한, 아무것도 없다..;;;;;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다. 저런 건 진짜 성령으로부터 유래된 표적이 아니다.

아무쪼록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진짜로 성령 충만한 게 뭔지를 많이 잘 보여야 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성령 충만을 간구하는 찬송가는 너무 뽕짝보다는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같은 정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나 싶다.

그런데 실로암은 딱히 성령 장르의 가사가 아니고 곡이 뽕짝 스타일도 아닌데 어째 어지간한 은사주의 부흥회 이상으로 군대 교회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는지.. 얘는 멜로디에 무슨 마성이 들어있는지 이 역시 개인적인 미스터리이다. "왼발! 왼발! GOP!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아마 작곡자가 보면 까무러치지 싶다.;;

말이 나왔으니.. 찬송가 중에서 부르기가 좀 조심스러워지는 장르들을 좀 정리하고 글을 맺겠다.

  • 성탄: 아기 예수 묘사는 교리적으로 큰 영양가가 없음. 휴..
  • 성령: 성령의 불로 우리를 태우소서ㅠㅠㅠㅠㅠ
  • 열심과 헌신: 행위 구원이 들어갈 수 있음
  • 선교: 열심히 전도해서 하나님 나라 이뤄 간다ㄲㄲㄲㄲㄲ

이들 장르 자체가 잘못된 건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하지만 이런 장르는 가사에 누룩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내 경험상 높다. 더구나 영어 원래 가사는 그렇지 않았는데 번역이 이상하게 되는 편이다.

성령이야 이 글에서 많이 다뤘으니 더 언급을 생략하겠다. 그런데 다음으로 후천년· 무천년주의에 입각한 선교 이념도 참 난감하다. 하나님 나라 이루고 확장해 간다고 좋은 뜻으로 말하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_=;;
하긴, 성경도 다 소실되고 훼손된 걸 학자들이 '불쌍한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복원하고 복구하고 있는데, 인간이 열심히 노력해서 세상을 복음화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시키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하나님 나라 확장한다는 발상과 제일 비슷하게 세계에 복음이 확 전파됐던 때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였다.
뭐, 그 덕분에 한반도에도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진 건 "일면" 고마운 일이지만.. 이때는 여전히 우생학이니 인종차별도 있었다. 그리고 그 제국주의의 끝은 세계대전 생지옥이었고 말이다. 하나님 나라는 개뿔..

복음 전파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하나님 왕국이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두 눈을 직시하고 역사를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1/30 08:35 2023/01/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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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찬송가, 새찬송가, 복음찬송가, 영광을 주께 등...
뭔가 보편적인 방식으로 선곡하고 편찬된 찬송가라면 아무 거나 가져와도 작사자 색인을 보면 '패니 크로스비'(1820-1915)라는 사람의 곡이 최상위급으로 많이 수록돼 있다.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blessed assurance),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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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패니 크로스비는 인류 역사상 찬송시를 제일 많이 지은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무려 8000개에 달하며, 문헌에 따라서는 9000개에 달한다고도  한다.
참고로, 2등은 6500여 편 남짓인 찰스 웨슬리(만 입이 내게 있으면, 주 보혈로 날 구해 준...)이다.. ㄲㄲㄲㄲㄲ
그리고 솔로몬의 문학 업적이 잠언 3000개, 노래 1005편이었다고 성경에 쓰여 있음을 생각해 보자. (왕상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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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해야 평생에 걸쳐 동일한 주제만으로 시를 8000개가 넘게 쓸 수 있을까?
그냥 1년 365일 24시간 맨날 예수 생각만 하면서 요즘으로 치면.. 트위터/페북에 뻘글 올리는 그 빈도로 찬송시를 썼다고 생각하면 된다.

저분은 우리 같은 사람과는 세상을 인지하고 인생을 사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맨날 아침에 일어나고 하늘을 보면서도, 비구름을 보면서도, 정원의 호박밭 호박꽃을 보면서도 1순위로 늘 창조주 하나님 예수님 생각을 하고 지냈다는 뜻이다. 아~~ 아니지 저 사람은 맹인이었잖아;;; ㅠㅠㅠ

저분은 각종 찬송가나 시집에 자기 이름만 너무 많이 뜨는 게 부담스러워서 거의 100개에 달하는 가명 필명을 돌려가며 쓰면서 찬송시를 많이 발표했다고 한다.
가령, "참 즐거운 노래를 늘 높이 불러서"(원제: 노래하라, 즐거운 순례자여)는 작사자가 오랫동안 C. M. Wilson이라고 기재되었지만, 현재는 이것도 이분의 가사라는 것이 다 알려져 있다.

3.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의 작사자인 존 뉴턴은 에서 "한때 내가 눈 멀었지만 지금은 본다 was blind, but now I see"라고 가사를 썼다. 이건 뭐 영적인 안목 얘기겠지..

그런데 패니 크로스비는.. 레알 맹인이었다.
선천성 기형이 아니라 의료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생후 몇 주 만에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다. 그래서 평생 앞을 못 보는 맹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눈 멀었어도 행복하고, 오히려 눈 멀어서 더 행복하다. 앞으로 하늘나라 가서 눈을 뜨면 사랑하는 예수님 얼굴을 제일 먼저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무슨 자학개그로 "안 본 눈 삽니다" 개드립이 유행인데, 이분은 제일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아무것도 안/못 본 눈"을 천성적으로 보유한 셈이다.
영문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저 말은 크로스비 여사가 아직 살아 있던 1900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주일학교 교재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아저씨> 중에 나오는 대사 "걔(소미)가 천당으로 엄마 찾으러 갔어. 근데, 눈깔이 없어서 못 찾아."는 성경 교리의 관점에서는 사실이 아니다.

4.
패니 크로스비는 영국의 간호사 겸 보건 행정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완전 동갑 동시대 인물이었다. 이건 매우 인상적인 공통점인 것 같다. 둘 다 1820년생이고, 둘 다 90+세까지 장수한 여인이기도 했다. (각각 1915년, 1910년 사망)
앨버트 슈바이처와 우리나라 리 승만 할배가 생년과 몰년이 완전히 일치하는 동갑인 것처럼 말이다.

5.
끝으로.. 이분의 묘지에는 "이분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She hath done what she could라고 당당히 새겨져 있다~! 이건 아무 문구가 아니라 예수님께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여인의 행적을 언급한 막 14:8 구절인데.. 싱크로율이 매우 높게 느껴진다.
이분은 앞 못 보는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환경과 처지 비관을 일체 하지 않고 그 여건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만 성실히 수행했으니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떤 일을 거창하게 벌이려 하지 말고 제일 기본적인 것 본질적인 것부터, 당장 니 여건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생활화해라~~ better late than never 이런 사고방식 말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고 성경적인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1)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싶으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삼라만상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이여,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니 참으로 캄~~사하무니다.." 찬양과 감사와 회개와 간구의 순으로 FM대로 하라느니 말라느니..;;
아이고 이딴 복잡한 거 생각하기 전에, "주님, 제가 뭘 기도해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할 말이 없네요, 오늘은 좀 기도하고 싶지 않네요" 이런 말부터 기도로 표현하라는 것이다.

(2) 영어를 잘하고 싶으면.. "아 씨X 이게 영어로 뭐더라? 말이 퍼뜩 안 떠오르네.. 영어가 술술 튀어나오지 않아서 답답하네" 이런 말부터 영어로 표현할 생각을 해라. -_-;;
(신앙과 관련된 영어 공부를 하고 싶으면 영어 찬송 → 영어 성경 → 영어 기도...의 순으로 난이도를 올리면 될 듯하다.;;)

(3) 기우제를 지내서 진짜로 비가 내릴 거라고 믿는다면.. "비가 반드시 온다"에 손모가지를 걸지는 않더라도, 기우제 지내러 나갈 때 최소한 우산이라도 챙겨서 나가는 걸로 니 믿음을 행위로 입증해 보여라.

(4) 저출산이 그렇게도 심각한 문제이면.. 자꾸 새로운 애들 만들라고 독촉하고 삽질하기 전에, 이미 낳은 애들이나 잘 지켜 주고 자살 안 하게 하고 범죄자놈들은 반 쥑여 놓아라~~

* 이런 게 그다지 비논리 비합리적인 생각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래서 찬송가 중에도 Brighten the corner where you are (거창하게 큰 일 벌일 생각 하지 말고 니 주변부터나 빛을 비춰라) 라는 곡이 있다. 다만 이건 크로스비 여사가 지은 가사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안 창호 선생뿐만 아니라 저분의 인생에서도 이런 "작은 것부터" 정신이 있었다는 것도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3/01/20 08:35 2023/01/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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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기와 전지

세상에 전기라는 에너지는 발전기 아니면 전지로부터 얻어진다.
먼저, 발전기는 전자기 유도 원리를 이용해서 각종 동력 기관의 원운동으로부터 교류 전기를 생산하는 물건이다. 빨리 돌릴수록 전기가 많이 나오고 전력 생산량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즉각 가장 쉽게 조절할 수 있다.

현대 전기 공학의 주요 산물은 (1) 전자석, 그 다음으로 (2) 모터(전동기)와 (3) 발전기, (4) 변압기의 순인 듯하다. 전자석과 모터는 직류의 성격이 강하지만, 그래도 교류 전동기니 유도 전동기니 하는 물건도 없는 건 아니다. 브러시가 어떻고 정류자가 어떻고.. 흠~
그리고 발전기와 변압기는 빼박 교류 전기의 산물이다. 변압기는 영락없이 지레의 전자기 버전이며, '영구자석 : 도체'와 '전자석 : 반도체'는 비슷한 관계인 듯하다.

과학에서 전기 쪽이 단순 V=IR 수준을 벗어나서 패러데이와 맥스웰, 테슬라가 나오고 본격적으로 엄청나게 어려워지는 건 아무래도 전기와 자기가 결합하고 이런 교류 전기가 등장하는 시점부터일 것이다.
하지만 교류가 온갖 난해한 특성과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전기의 주된 취급 형태가 된 건..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교류가 장거리 송전을 위한 변압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발전기로 생산하고 변압기로 가공하기가 직류보다 훨씬 더 용이하다.

즉, 얘는 전기의 안정된 대량 생산에 가장 유리하다. 얘들 덕분에 인간이 다루는 전자기 관련 장비가 영구자석 나부랭이에서 전자석으로 업글 되고, 화학 건전지 나부랭이에서 초고압 대용량 교류 전기로 확장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메이저급 발전소들은 모두 발전기 기반이다. 발전기를 돌리는 동력원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화력이나 원자력, 수력 따위로 나뉠 뿐이다. 이런 추세는 획기적인 직류 장거리 송전/변압이나 무선 송전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예측 가능한 미래에 변화가 없을 것이다.

교류 전기는 그 특성상 직류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변화 주파수라는 개념이 있다. 이게 나라마다 완전히 일치하는 게 아니어서 50hz 내지 60hz 같은 차이가 있다. 심지어 일본은 동부와 서부가 이 규격이 서로 다르다.
전압이 일치하더라도 이 주파수가 호환되지 않는 전자기기를 꽂아서 가동하면 기기의 출력이나 성능 따위가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교류 전기의 주파수는 발전기가 돌아가는 회전수(rpm)로부터 결정된다는 게 흥미로운 점이다. 좀 낡은 멀티탭에다 전원을 연결하고 스위치를 켜면.. ON된 스위치에 불빛이 들어오긴 하는데 불빛이 좀 깜빡거리는 편이다. 그 깜빡거리는 것도 교류 전기의 주기와 동일하게 꺼졌다가 켜지기를 1초에 수십 번 반복하는 것이다.

과거 전자 공학이란 게 처음 태동했던 아날로그 시절엔, 컴퓨터 모니터의 주사율, 그리고 텔레비전 영상 신호의 프레임 수도 이 교류 전기의 주파수와 맞물려서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값이었다.
영화 필름의 24프레임은 약수가 많아서 분할하기 쉬우면서 인간이 충분히 부드럽다고 느끼는 최소한의 수를 따라 정해진 것이다. 그 반면, 텔레비전 신호 30프레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이 더 발달한 디지털 시대가 돼서야 그런 기기들도 전기 종류에 종속되어 동작하지 않게 됐을 뿐이다.
그래도 모니터 주사율은 75hz 정도는 돼야 하고, 유튜브도 60fps짜리 고화질 동영상을 보면 화면이 확연히 부드러운 게 느껴지고 눈이 편하고 좋다.

아무튼.. 교류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데.
이런 거 말고.. 전선이 연결돼 있지 않고 발전기를 돌리는 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도 없는 환경에서 전기· 전자 기기들을 가동하려면? 전지라는 게 필요하다. 특히 산소가 없어서 내연기관을 돌릴 수 없는 우주 월면차나 잠수함 같은 건 선택의 여지 없이 전지로 전기 모터를 돌려서 움직여야 한다. 대형 잠수함은 배터리로 도저히 감당이 안 되니 아예 원자로를 집어넣기도 했지만 말이다.

전지는 좁은 의미에서는 전기 에너지를 화학적으로 축적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그 에너지를 화학 반응을 통해 직류 형태로 방출하며 방전되는 물건이다. 방전 후에 재충전이 가능하면 이차 전지 내지 배터리라고도 불린다. 배터리 중에서도 자동차용 황산-납 배터리와 나머지 리튬이온 배터리는 특성이 서로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이런 것 말고 넓은 의미의 전지는 터빈으로 발전기를 돌리는 게 아닌 다른 원천으로부터 전력을 생성하는 모든 물건을 뜻한다. 수소 같은 연료 전지도 이런 범주에 들며, 원자력 전지나 태양광 전지는 화학보다는 그래도 물리에 가까운 전지이다.

전지는 직류 기반답게 연결할 때 + - 극 구분이 존재한다.
원자력 발전소와 원자력 전지, 그리고 우주왕복선의 액체수소 엔진과 수소 연료전지 엔진은 구동 방식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
아주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 해 온 생각인데.. 발전기는 정렬 알고리즘 중에서 비교 연산을 기반으로 동작하는 범용적인 놈이고, 나머지 전지들은 비교 연산을 하지 않는 특수한 놈과 비슷한 심상인 것 같다.

요즘은 10여 년 전의 우려와 달리 배터리 기술도 많이 발전하긴 한 것 같다. 하지만 배터리 전기차가 초대형 트레일러, 건설 기계, 군용차나 건설 기계까지 꿰차고 들어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리튬이온이건 수소 연료전지건, 이런 전지들은 사고로 파손되고 충격을 받았을 때 화재가 그리도 잘 발생하는가 보다. 게다가 이런 불은 기름 화재가 차라리 낫다 싶을 정도로 끄기도 굉장히 난감하다고 하는데.. 이런 안전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 같다. 컴퓨터뿐만 아니라 배터리도 너무 밀도가 높아지고 불안한 유리몸이 되긴 했다.

그리고 요즘은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 배터리의 '메모리 효과'와 관련된 낡은 낭설들이 많이 불식됐지 싶다.
끝까지 완방 완충을 하면서 쓰는 게 좋다는 얘기 말이다. 이건 과거의 니켈 카드뮴 배터리를 기준으로는 맞는 말이었지만 요즘 배터리를 기준으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 배터리를 끝까지 소모하지 말고, 조금만 썼더라도 곧바로 도로 충전하는 게 배터리의 수명에 더 낫다.
요즘 배터리가 완방 완충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요즘 자동차가 시동 직후에 수 분 이상 길게 공회전 웜업/예열을 할 필요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기술이 더 발전했기 때문이다.

재충전이 불가능한 단순한 건전지가 통용되는 곳은 정말 가늘고 단순하고 오래 쓰는 기기들 한정인 것 같다. 벽시계, 도어락, 가스레인지, 무선 키보드-마우스 같은 곳..?? 손전등은 LED가 등장하면서 배터리 기반으로 가는 듯하고..
글쎄, 제아무리 핸드폰 시계니 스마트 워치니 하지만 고개만 돌리면 간편하게 볼 수 있는 벽시계나 종이 달력도 여전히 필요하긴 한 것 같다.

끝으로.. 전지는 어떤 방식으로 동작하는 것이든 대개 아무렇게나 폐기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함부로 부수거나 분쇄· 분해하면 유독성 화학 물질이 누출될 수 있고, 소각하면 폭발 위험이 있다. 그리고 전지에는 각종 특수한 희소 원소가 들어가곤 하기 때문에 이런 걸 최대한 재활용할 필요도 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인해, 전지는 쓰레기 처리의 관점에서 볼 때 진작부터 특별 취급의 대상으로 분류되어 왔다. 재충전이 되지 않아서 더 쓸 수 없는 놈은 알루미늄이나 종이류처럼 반드시 별도로 수거해서 폐기하게 돼 있다.

하긴, 옛날에는 카드뮴이나 수은이 들어간 건전지도 있었지만 2000년대에는 다들 사용과 유통이 금지되고 퇴출됐다. 공교롭게도 카드뮴과 수은은 각각 20세기 중반에 일본의 유명 공해병이었던 이타이 이타이 병과 미나마타 병의 원인으로 작용한 바 있다.

반도체니 트랜지스터 이런 건 전기라기보다는 전자의 영역 같고..
충전기, 배터리 같은 건 화학/재료공학의 성격이 강해진다. 이런 건 나로서는 진짜 아오안이다.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공부하던 것의 큰 그림을 먼저 펼쳐 보고 세부적으로 들어갔으면 도움이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23/01/12 08:35 2023/01/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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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의 특성

인간이 자연에서 전자기파라는 것의 존재를 예상하고 발견하고 그 특성을 규명하고, 이걸 이용해서 각종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은 19세기 말 이후의 정말 위대하고 경이로운 발명· 발견이다. 이 기술 덕분에 무선 통신과 방송이라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과학 기술은..

  • 질량을 가진 물질 입자를 광속으로 이동시키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순간이동 텔레포트는 SF물 내지 게임에서나 존재한다. 광속이 아니라 음속(공기 중 기준)만 비행기로 아주 어렵게 제한적으로 초월했을 뿐이다.
  • 시간을 거스르는 여행도 못 한다. 타임머신 역시 SF에서나 가능하다.
  • 실용적인 수준의 장거리 무선 송전도 요원하다. 즉, 질량이 없더라도 동력· 에너지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하지는 못한다. (일개 구름에서 천둥 번개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지도 글쎄...)

신호, 정보를 광속으로 주고 보내서 통신하는 것만이 가능할 뿐이다. 물론 이거 하나만으로도 20세기 이후 인류의 생활 양상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전자기파는 진폭과 파장이라는 속성을 갖는데, 단순 강도를 나타내는 진폭보다는 파장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속도야 다 똑같이 광속이지만, 퍼져 나가는 방식이나 강도의 변화 양상 같은 건 파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파장은 정의상 그 전파의 단위 시간당 진동수 내지 주파수와 정확히 반비례하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고주파'와 '단파'는 완전히 동치이며, 반대로 '저주파'와 '장파'도 동치인 개념이다. 앞에 '극/초' 같은 접두어가 똑같이 붙을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자기파 중에서 그나마 주파수가 낮아서 파장이 긴 '원초적인' 영역의 물건을 우리는 전파라고 부른다. 무선 통신과 방송 용도로 이 영역의 전자기파가 쓰인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파장이 짧아지면 맨 먼저 적외선이 나오고 그 다음으로 가시광선, 그 다음에 자외선이 이어진다.
자외선보다도 파장이 짧은 놈은 X선이니 감마 선이니 하는 방사선의 영역으로 간다. 방사선은 전리와 비전리로 나뉘기도 하고.. (에너지가 있어서 인체에도 해로울 수 있는 녀석이 '전리 방사선')

그리고 주파수라는 개념은 사실상 전파의 범주에서만 쓰인다. 적외선 이상으로 가면 파장의 길이가 나노미터 이하 급으로 짧아지며, 그에 반비례하는 주파수는 숫자가 테라헤르츠 급을 넘어서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한쪽은 헤르츠이고 다른 한쪽은 미터이지만 둘 다 본질적으로 동일한 속성을 측정한 결과라는 걸 다시 밝힌다.

기술적으로야 파장이 긴 저주파를 주고 받는 게 더 간단하고 쉽다. 그러니 인간은 이런 쉬운 전파부터 먼저 활용해 왔다. 저주파(장파)는 특성이 대체로 '가늘고 긴' 반면, 고주파(단파)로 갈수록 '짧고 굵은' 성향이 강해진다.

파장이 긴 전파는 장애물의 영향을 덜 받고 멀리 널리 잘 퍼져 나간다. 그리고 지구의 전리층에 반사되기도 하기 때문에 둥근 지구에서도 자연스럽게 수평선 너머 장거리 통신을 할 수 있다.
파장이 굉장히 긴 장파(3~300KHz)는 심지어 수중에서도 전파가 되기 때문에 심해에서 잠수함 간의 통신에 쓰인다. (음파와 별개로!) 공중과 해저에서 모두 장점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장파는 진동수가 낮고 대역폭도 낮기 때문에 안에다 정보를 많이 담을 수 없다.
실시간 음성이나 영상 따위는 감당이 안 되며, 모스 부호 같은 극도로 가볍고 단순한 메시지나 주고 받을 수 있다. 아니면 각지에 퍼져 있는 시계들을 동기화시키는 신호를 보내는 것도 장파로 처리하기에 적절하다.

넓고 지형이 평탄한 나라(몽골, 러시아..??)에서는 장파 라디오 방송이라는 걸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건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이지, 음질 안 좋고 잡음에 취약한 것을 감안해야 한다. 장파를 수신하려면 안테나가 더 크기도 해야 한다고 그런다.

장파보다 파장이 더 짧아진 중파(300~3000KHz) 정도가 AM 라디오에서 사용되는 주파수 대역이다. 실용적으로는 500~1600kHz 부근이다. 여기가 음질과 송· 수신 난이도, 기기의 구조적인 복잡도를 감안했을 때 가성비가 가장 좋은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파보다 파장이 더 짧아진 단파(3~30MHz)는 이제 주파수 단위가 킬로에서 메가로 바뀐다. 얘는 수신하는 기술적 난이도가 중파보다 좀 더 높으며, 지구 전리층에 반사되는 장거리 전파의 거의 마지노 선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얘는 20세기 초중반부터 국경과 대륙을 넘어 외국의 소식을 접하는 통로로 즐겨 쓰였으며, 현재도 소수나마 단파 라디오 방송국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간첩이 난수표 같은 지령을 받는 용도로도 당연히 쓰였다. 이 때문에 이 동네는 쌍팔년도 시절까지 허가 받은 사람 외에 단파 라디오의 소지가 금지였으며, 간첩 식별 요령으로도 "이불 뒤집어쓰고 라디오 같은 걸 청취하는 사람"이 설정돼 있을 정도였다. HAM인가? 아마추어 무선도 이 영역의 주파수를 사용한다.

다음으로 30~300MHz 대역은 초단파/초고주파/VHF로 분류된다. 여기부터는 전파의 특성과 용도가 위의 것들과는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전파는 파장이 왕창 짧아질수록 '짧고 굵은' 모 아니면 도 성향이 강해진다. 지형과 장애물에 취약해지고 사정거리도 짧아질지언정, 그 사정거리 안에서는 멀쩡히 날아가다가 스스로 퍼지고 약해지지 않는다. 직진성이 강해진다.

그리고 처음에 고출력으로 아주 쎄게 쏴 주면 지구의 전리층에 반사되지 않고 오히려 우주로도 전파를 날릴 수 있게 된다. 우주와 지구의 통신은 이렇게 지구 전리층에 튕기지 않는 초단파 이상의 고주파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 그 뜨겁고 두꺼운 대기를 자랑하는 금성에 착륙한 소련 탐사선도 지구와 잠시나마 성공적으로 교신을 한 바 있다.

이런 고주파는 대역폭이 커서 저주파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 과거의 유물인 삐삐, 그리고 음성을 넘어 영상 신호를 담고 있는 텔레비전도 다 이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한다.
아날로그 라디오는 기존의 진폭 변조(AM)가 아닌 주파수 변조(FM) 방식을 채택해서 훨씬 더 좋은 음질에다 스테레오 채널까지 얹을 수 있다. (대략 87MHz ~ 108MHz) 변조 방식의 차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논하도록 하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초단파'는 '초음파'와는 전혀 무관하고 다른 개념이니 혼동하지 마시라.;;;

끝으로, VHF보다도 더한 고주파는 300~3000MHz 대역인 극초단파/극초고주파/UHF라고 불린다.
드디어 컴퓨터의 클럭 속도 같은 기가헤르츠라는 단위가 등장하는데, 얘 정도의 대역폭은 돼야 휴대전화에다 요즘 같은 HD급 텔레비전에 초고속 무선 인터넷 와이파이까지 감당 가능하다.

사실은 아날로그 TV 시절에도 VHF를 넘어 UHF 수신 기능까지 추가해서 지상파의 채널 수를 늘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래서 쌍팔년도 시절 엄청 옛날 텔레비전은 채널 다이얼이 VHF/UHF용으로 두 개 있어서 VHF는 2부터 13까지밖에 없는 반면, UHF 다이얼은 14부터 거의 70까지인가 눈금이 아주 조밀하게 달렸었다. 개인적으로 VHF/UHF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접한 것도 이런 텔레비전에서였다.

라디오에 AM/FM(중/초단) 구분이 있다면 텔레비전엔 VHF/UHF(초단/극초단)의 구분이 있는 셈이다. 텔레비전은 이산적인 채널 번호가 존재하는 반면, 라디오는 주파수 영역이 쌩으로 그대로 통용됐다는 차이도 있다.
VHF 텔레비전의 음성과 FM 라디오는 구성 방식이 비슷했기 때문에 그 당시 일부 라디오는 텔레비전의 작은 채널 번호의 음성을 수신하는 기능이 있기도 했다. 이건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NTSC 규격이 컬러 영상도 재래식 흑백 수상기와의 하위 호환이 됐던 것과 비슷한 면모이다.

VHF를 넘어 UHF 급으로 극도로 조밀한 전파는 멀리까지 보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지국이 많이 필요하다.
까놓고 말해, 삐삐 기지국보다 휴대전화 기지국이 훨씬 더 촘촘하게 많이 필요한 이유도 취급하는 전파의 주파수와 특성 차이 때문이다. 휴대전화 기지국은 나무 같은 걸로 위장한 형태로 우리 생각보다 여기저기 많이 숨어 있다. 휴대전화나 와이파이의 전파를 무슨 라디오 전파처럼 쉽게 간편하게 널리 쏠 수 있지는 않다..!

이상이다. 무선 통신의 세계는 심오하고 신기하기 그지없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광속 같은 전자기파의 물리적인 특성이 달라졌을 리는 없는데 컴터 무선 네트워크의 데이터 전송 속도가 기막히게 빨라지고 텔레비전의 화질이 기겁할 정도로 좋아진 이유는.. 인류가 전파의 주파수를 더 열나게 달구고 짜내는(..!!) 기술을 개발하고 그걸 사방팔방 쏘는 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ㄲㄲㄲㄲ 이게 컴퓨터 반도체의 집적도를 올리는 것과 대등한 효과를 낸 셈이다.

그런데 라디오는 지하에서도 수신되는 것 같은데 고속버스 위성 텔레비전은 차가 터널 안에만 들어가도 먹통이 되는 이유..
와이파이는 AP로부터 수십 미터만 떨어지면 신호가 간당간당해지는 이유, 그 반면 우주로도 전파를 쏴서 탐사선과 교신을 할 수 있는 이유 등등.. 이런 것도 전부 전파의 특성을 알아야 답을 할 수 있다.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가 되는 건 선로를 따라 몽땅 다 기지국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환기 시설이나 지하수 배수 시설과 마찬가지로 그냥 공짜로 되는 게 절대 아니다.

전파라는 게 워낙 신기한 물건이기 때문에 옛날에는 이게 무슨 방사선마냥 사람 건강에 해로울 거라는 낭설이 많이 나돌았다. 컴퓨터 모니터에다 보안경을 씌우고, 모니터를 아래로 매립한 컴퓨터 전용 책상을 비치하기도 하고, 근처에 선인장이나 동전을 쌓아 놓기도 하고..;;
이거 기계 버전은.. 비행기 이착륙 중에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관행이었지 싶다. (전자파가 기계에 혼선을 초래..) 마치 열차 정차 중에 화장실 사용 금지처럼 말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요즘은 전화기건 라디오건 텔레비전이건.. 길쭉한 안테나를 무슨 삼단봉처럼 꺼냈다가 집어넣는 비주얼이 없어진 게 참 인상적이다. 심지어 자동차의 안테나도 말이다.
텔레비전 역시 곤충 더듬이처럼 작대기 한 쌍이 삐져나오곤 했었지만.. 요즘은 그런 거 없다. 이렇게 된 데에도 눈부신 기술의 발전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단파나 장파 라디오는 기기나 안테나가 이 정도로 소형화가 안 되나 보다.

그리고.. 통신이라는 건 교통과 비슷한 면모가 있다. 개나 소나 누구나 아무렇게나 전파를 주고 받을 수 있으면 혼선을 감당할 수 없어지고 아무도 통신을 할 수 없게 된다. 신호등 없이 사방팔방 교차로에서 차들이 밀려드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자동차에 번호판을 달지 않고 공도를 주행할 수 없듯, 민간인이 특정 대역의 주파수로 무선 통신을 하려면 자격을 갖추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중앙 전파 관리소'라는 기관이 이런 전파 대역을 관리하며, 전파와 관련된 테러가 벌어지는 것을 감시한다.

1. 추가 정보: AM과 FM

전파에다가 강약 기복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초창기에는 진폭 변조, 즉 AM 방식이 먼저 개발되어 쓰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주파수를 변조하는 FM 방식이 개발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M이 기술적으로 더 단순하고 쉽고 저렴하다. AM 라디오 기술이 이미 19세기 말에 발명된 반면, FM은 1930년대가 돼서야 발명되었다.
FM은 표현 가능한 가장 강한 신호를 기준으로 주파수를 산정해야 하는 특성상, 단파· 중파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못해도 초단파 급의 전파를 쏴야 송신 가능하며, 취급하는 회로도 더 복잡하고 고가였다. FM은 보기보다 AM보다 훨씬 더 발달된 기술의 산물인 것이다.

FM의 난관은 기술 발전과 부품 대량 생산으로 인해 극복됐다. FM은 AM보다 잡음에 더 강하고 음질이 훨씬 더 좋았기 때문에 음악 방송의 주류로 등극했다. 잡음은 주파수보다는 진폭을 건드리는 게 더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주파의 특성상 FM은 지형이나 날씨의 영향을 더 타면서 난청 가능성이 AM보다 더 높다.

2. 자매품: 적외선 통신

한때..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옛날 노트북이나 피처폰급 휴대전화에는 '적외선 통신'이라는 기능이 있었다.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같은 극초단파 기반의 통신 규격이 제정되기 전에.. 전파보다 파장이 더 짧은 적외선을 전용 다이오드 반도체로 쏴서 초단거리에서 일종의 무선 광통신을 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전파 통신과는 기술적인 성격이 좀 다른데, 그 구체적인 내역은 내가 잘 모르겠다.;;
고주파의 특성상 대역폭이 넉넉하며 통상적인 전파 규제도 없는 반면.. 사정거리가 겨우 수 m대로 극도로 짧다. 그리고 그 짧은 신호가 잘 퍼지지도 않기 때문에 송신기와 수신기는 서로 방향 조준도 잘 해야 한다.

적외선 통신은 지금도 각종 리모콘, 자동문 센서, 스마트키나 하이패스 단말기 같은 소형· 단거리 전자기기의 통신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현역이다. 리모콘은 방향을 돌려 놓으면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경험상 알고 있다. =_=;;

Posted by 사무엘

2023/01/09 08:35 2023/01/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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