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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말

예전에 몇 차례 글을 쓰기도 했었다만.. 본인은 운전 습관이나 도로 교통 정책에 관한 한 골수 우파이다.
마치 빈부 격차처럼 빠른 차와 느린 차의 격차를 인정하고 큰 효율, 큰 자율과 큰 책임, 정부 개입의 최소화를 추구한다. 나라에서 불필요하게 쓸데없이 지나치게 규제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공권력은 뺑소니나 음주운전자들 잘 잡아내고 걔네들 반 죽여 놓는 형벌 집행만 잘 하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환경이 후손으로부터 빌려 쓰는 공간이라면, 공공 도로는 뒷차 운전자로부터 빌려 쓰는 공간이다~!!
고객의 시간을 아껴 주는 버스/택시 운전사가 존경과 예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부드럽게 가는 건 안전이 아니라 기름 아끼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분야는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생각과 의견이 여럿 있기 때문에 또 글로 정리해 놓고자 한다.

1. 우회전 후에 나오는 횡단보도가 청신호일 때의 답답함

요즘 도로교통법이 바뀐 것 때문에 예상되고 우려됐던 부작용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중이다. 이 때문에 차들 흐름은 더 꼬이고 도로 정체가 더 심해지고 운전 스트레스가 더해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교차로 우회전 “후”에 나오는 횡단보도는 파란불이더라도 건너는 사람이 전혀 없으면 비보호로 조심해서 그냥 통과하면 된다..!!!!! 이 규칙이 달라진 적은 없었다!!!!!
차들이 그것까지 일일이 우두커니 하염없이 기다렸다가 가면 이거 뭐 우회전을 할 수가 없고 도로가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데.. 우회전하면서 이 횡단보도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차를 한두 번 봤어야지.. 어휴~ 성질 같았으면 그냥 빵빵~ 하고 싶다.
최근에 바뀐 건.. 신호 없는 횡단보도나 아까 같은 우회전 후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차가 알아서 정지해라”이다.
그게 적용된 거지, 딴 게 바뀐 게 아니다.

하지만 나라에서는 최대한 차들 속도를 줄이고 차를 멈추게 만드는 쪽의 홍보만 댓다리 하지, 불필요하게 서 있지 말고 빨리 지나가라는 쪽의 홍보는 절대 안 한다.
기름값 인상분 반영은 광속이고, 하락분 반영은 거북이 속도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젠장 제기랄..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바로잡을 수 있을까?

2. 구간 과속 단속은 정말 사회악 적폐 쓰레기 (거친 표현 주의)

먼 옛날 1945년 8월 15일엔 우리 민족이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됐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운전자들이 빌어먹을 저주받을 이 개썅 미친 변태 적폐 사회악 암유발, 시간 낭비 기름 낭비 공해 유발 백해무익 ㅈ같은 과속 단속 카메라의 학정 압제로부터 해방은 언제쯤 될까? 누구나 자유롭게 악셀 콱 밟으며 운전하는 날이 오기를 염원해 본다.
아 그래서 예로부터 8 15 광복절 폭주족이 있었던 거구나 이런 깊은 뜻이..!

이 멀쩡한 경주 토함산 터널에 전 구간을 틀어막고 시속 70km 구간 단속이라니.. 진짜 미친 거 아니냐..?
카메라를 넣을 거면 70 마일로 하라고.. 킬로미터가 아니라..?
씨발 200으로 밟으면서 쌩 지나가도 시원찮을 이 곧은 길을 말이야?
터널 닦은 근로자와 자동차 개발한 연구원들이 통곡을 하면서 울겠다!

서울 수도권만 이런 줄 알았더니 이런 깡촌 시골에까지 뭔 놈의 카메라가 이렇게 생겼냐..??
그렇게 차들 강제로 발을 묶어 놓으니까 만족스럽냐 이 색X야?
담당 공무원놈 멱살 잡고 죽빵 날리고 싶다.

리 승만 할배를 존경하는 자유 우파들은.. 1930년대의 자동차로도 미국 시내를 100 넘게 밟으면서 경찰 단속을 따돌리고 사고 한 번 안 내고 발표 강연 스케줄을 소화했던 할배의 전설적인 행적과 근성을 본받고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과속이 나쁜 게 아니라 주변 차들의 흐름을 깨는 게 더 나쁘다는 선진적인 인식이 자리잡혀야 할 것이다.

3. 꼬리물기를 억지로 계도하기보다는 신호등을 개선해야

“교차로에서 꼬리물기 좀 하지 마세요~ 교차로 건너편에 차들이 막혀서 못 지나가고 있으면 파란불이더라도 당신도 지나가서는 안 됩니다. 앞차가 안 가고 있을 때 빵빵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백 날 홍보하고 계도해도 별 소용 없다.

꼬리물기 차들 때문에 엉키고 엉망이 된 교차로를 보면서 “역시 조선놈들은 교통 문화가 미개하고 답이 없다. 앞으로 꼬리물기 적발 차량은 신호 위반과 동급으로 벌점 얼마에 과태료 얼마, 12대 중과실..” 이것도 별 영양가가 없는 짓이다.

감흥 신호 개발하고, 꼬리물기 차량을 자동으로 적발하는 무인 탐지기를 개발할 정도의 기술과 자금이라면.. 그걸로,
교차로 건너편에 차들이 못 가고 있는 걸 감지해서 그때는 애초에 파란불을 주지 않는 스마트 신호등을 만드는 게 훨~~~씬 더, 월등히 더 깔끔하고 더 나은 해결책이다.

어떻게든 운전자를 벌 주고 괴롭히고 차를 못 가게 만드는 쪽으로 머리를 굴리지 말고, 운전자가 누구나 수긍 가능한 합리적인 쪽으로 문제 해결책을 개발해야 한다.
옛날에 시스템 클럽에서 예시를 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조선 엽전들이 질서 의식이 없다고 탓할 게 아니라 번호표를 도입해 놓으니까 은행 창구에서 무질서가 싹 사라졌었다.

4. 교차로 통과 결심 지점

난 예전에도 말했지만, 노란불 딜레마로 인한 사고를 봉쇄하기 위해서는 “교차로 통과 결심 속도” 표식 같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을 시속 60 이상으로 지났다면, 중간에 신호등이 노란불이 되더라도 속도를 더 줄이지 말고 그냥 통과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브레이크 밟고 서시오” 말이다. 비행기의 이륙 결심 속도(V1)에서 착안한 개념이다.;;

난 자동차에 대해서는 파란불은 남은 시간 표시에 반대 소신이다. 남은 시간이 촉박할 때 교차로를 난폭하게 통과하거나, 아니면 자기는 시간 넉넉하다고 뒷차를 배려하지 않고 세월아 네월아 너무 느리게 갈 수 있다.
예수님이 부작용을 우려해서 재림 날짜를 인간에게 예고해 주지 않고 있듯, 저런 건 굳이 예고할 필요가 없다. 파란불 잔여 시간 대신에 저런 교차로 통과 결심 힌트만 있으면 된다고 본다.

그 대신, 빨간불의 잔여 시간은 표시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10초나 5초 이하로 남았을 때는 도로 숨긴다. 이때부터는 예측 출발을 하지 말고 파란불이 되는 것만 보라고 말이다.

5. 기타

(1) 비보호 좌회전이라든가,  공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해 주는 좌회전 유도 차로 같은 것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좋다.
하지만 전자는 멍청한 사고가 몇 번 난 뒤엔 또 무식하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 적록 신호로 바뀌어 버린다.
후자도.. 멍청한 운전자가 노란불에 쫄아서 말단 지점에서 멍하니 서 버리면.. 본의 아니게 꼬리물기를 저질러서 옆 차로의 진행을 틀어막는 민폐를 끼치곤 한다. 그러면 또 없어지고.. 으이구~~

그러고 보니 앞서 얘기했던 교차로 통과 결심 지점이라는 건 이런 좌회전 유도 차로 같은 데서 더욱 필요한 것 같다. 이 지점을 지났으면 여기서는 노란불이더라도 멈추지 갈고 지나가라는 것을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2) 자동차 전용 도로의 진출로나 분기 지점 근처에서 차들이 막히고 있을 때 말이다. 뒤에는 차들이 못 가서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 정작 앞에는 차들이 너무 띄엄띄엄 천천히 여유롭게 가는 건 큰 문제이다. 이러면 뒤에서 줄서 있는 차들이 호구 바보가 되고, 눈치껏 앞에서 끼어드는 새치기 차량이 더 빨리 가게 된다.
새치기 차량을 욕하고 벌줄 게 아니라, 새치기를 조장하는 앞차들의 운전 습관을 바꾸도록 계도해야 한다.

(3) 주행 중에 뒷차가 빵빵거리는 것보다, 앞차가 불필요하게 쓸데없이 브레이크 밟아서 브레이크 경고등이 깜빡거리는 게 더 짜증나고 불편하고 싫은 지경이라면..
당신은 운전자로서의 인격이 한 단계 성숙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반찬이듯, 성질 급해서 답답한 게 최고의 운전 교사가 될 수 있다.

(4) 터널과 교량에서 차로 변경이나 추월을 금지하는 무식한 규정도 이제 좀 완화하거나 없앴으면 좋겠다. 비행기 이· 착륙 때 전자기기 사용 금지처럼 거의 의미가 없는 짓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31 19:35 2023/03/3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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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대도시의 도로가 다른 중소도시· 시골의 도로와 다른 점은 가장 먼저 (1) "차로가 많고 폭이 크다는 것", 그리고 신호 대기조차 없는 입체 교차 "자동차 전용 도로"가 많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즉, "무신호, 점멸 신호 내지 자그마한 로터리 < 일반 적록 신호 < 입체교차로"의 순으로 도로의 규모가 커진다.

여기는 엄청나게 많은 차들이 몰려들고 이들을 빠르게 소통시켜야 하니.. 다른 지역에는 해당되지 않는 시설 투자가 많이 이뤄진다. 국도나 고속도로가 아니고 평범한 시내 도로도 아니면서 '도시 고속화도로'라는 건 또 뭘까? 대도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물건일 것이다.

20세기 말까지는 단순히 폭이 큰 길을 넘어서 (2) 고가 차도라는 게 간지 나는 산업화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없는 길을 만들어 내는 제일 무난한 방법이 고가이기 때문이다. 강 위로든, 기존 도로 위로든..
하지만 21세기부터는 진출입로 주변이 여전히 심하게 막혀서 교통 혼잡을 부추김, 고가가 주변 건물이나 아래쪽의 거주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침, 환경이나 보행자에게 친화적이지 못함 등의 이유로 인해 고가 도로를 더 만들지 않으며, 이미 있는 것도 서서히 철거하는 추세이다.

물론 멀쩡히 잘 닦여 있는 고가를 일부러 때려부숴 없애는 건 아니다. 그런 것들은 한번 만들어 놓고 끝인 반영구적인 물건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유지보수를 해야 하는데.. 마침 수십 년 전에 만들었던 시설이 노후화가 너무 심해서 유지보수 비용이 너무 많이 들면 이 참에 그냥 없애는 것이다.
서울 시내에서는 서울 역 고가 차도, 그리고 서대문 고가 차도가 2015년경에 철거돼 없어진 것이 유명하다. 더 전에 2003년쯤엔 청계 고가 차도가 없어졌었다.

2000년대 이후부터 존재감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 중 하나는 (3) 산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긴 터널이다.
20세기에는 길이가 1km 남짓이나 그 이상 되는 메이저한 '인서울' 터널은 남산 터널 3형제가 전부였다. 얘들은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문 유료 도로이기까지 했다. 원효대교나 북악 스카이웨이가 처음에 유료였다가 한참 전에 무료로 풀린 것과 달리, 남산 터널만은 2호를 제외한 1호와 3호가 줄곧 유료이다.

그러나 남산 터널은 밤 시간대와 공휴일엔 무료이며, 차에 3인 이상이 타고 있어도 면제이다. 또한 아주 특이하게도 하이패스를 지원하지 않는다.
전국에 이런 특이한 시스템과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유료 도로는 저기 말고는 없지 싶다. 역사가 긴 만큼 남산 터널만이 지닌 독특한 점이라 하겠다.

남산 터널 이후로는 2004년 초에 우면산 터널이라는 유료 터널이 개통했다.
그 다음으로는 용마산· 아차산· 망우산의 중앙을 횡축으로 관통하는 용마 터널이 2014년에 개통했다. 비슷한 시기에 경주에서는 토함산 터널도 개통했기 때문에 본인의 기억에 더 강렬하게 남아 있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산을 최단거리로 횡단하는 터널 수준을 넘어, 대놓고 (4) 산이나 시내의 아래를 지나는 장거리 지하 도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2016년 7월, 강남 순환로였다. 그 동네에는 남부 순환로라는 옛 도로가 있긴 하지만 이미 느린 시내 도로의 퀄리티로 전락해 있었기 때문에 대체 도로가 필요했다. 남부 순환과 강남 순환의 관계는 거의 통일로와 자유로와 비슷한 정도랄까..

그러니 호암산과 관악산 아래로 새 길을 뻥뻥 뚫어 버렸다. 특히 이 길은 안양 부근에서 서울 강남으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줬다.
그 뒤 이듬해엔 제2 경인 고속도로의 연장인 안양-성남 구간도 비슷한 방식으로 산 아래로 뚫렸다. 강남 순환로가 서울대와 가깝다면, 이 고속도로는 경인교대 근처를 지난다는 유사점이 있다.

2010년대 말~2020년경엔 서울의 좌우 양쪽에 17과 29라는 종축 고속도로가 만들어져서 한강 이북에도 무려 폐쇄식 요금 고속도로 시대가 열렸다.
그 전까지는 한강 이북에 존재하는 고속도로는 오랫동안 100 외곽순환(수도권 1순환)밖에 없었다. 얘는 말 그대로 순환선이고 개방식 요금 구간이기 때문에 다른 장거리 고속도로와는 느낌이나 성격이 많이 차이가 났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 무렵에 동부 간선 도로의 북쪽 구간이 통째로 지하로 들어갔고..
2021년에는 신월-여의 지하 도로(4월)와 서부 간선 복층 지하 도로(9월)가 개통했다.
신월-여의는 여의도에서 경인 고속도로(120)로 빠르게 연계하는 횡축 도로요,
서부 간선 지하는 월드컵대교에서 서해안 고속도로(15)로 빠르게 연계하는 종축 도로이다.

얘들은 건설 비용을 낮추고 싶었는지, 처음부터 작은 승용차들의 트래픽만 흡수하려 했는지, 터널의 높이를 겨우 3미터 남짓으로 아주 낮게 잡았다.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에서는 공도 주행 가능 자동차의 높이 한계를 4미터로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높이가 3미터를 초과하는 대형 버스나 트럭은 구조적으로 이런 곳을 지나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무슨 열악한 굴다리도 아니고 새로 건설한 번듯한 지하 터널이 높이가 이렇게 낮은 건 생소한 트렌드였다. 그래서 대형차가 별 생각 없이 여기로 진입을 시도하다가 천장을 긁는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곤 했다.
사실, 이 정도로 물리적인 높이 제한이 없더라도 우면산 터널이나 강남 순환로조차 수십 톤급 트레일러는 통행을 제한하곤 했다. 그리고 이게 고속도로와 시내 고속화도로의 큰 차이점이지 싶다. 고속도로는 건설 취지의 특성상 산업용 대형차들을 당연히 무조건 받아들여야 할 테니 말이다.

이제는 시내 고속화도로를 넘어서 (5) 기존 고속도로조차 경인과 경부는 수도권 일부 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중이다. 특히 경인은 엄청 옛날에 만들어져서 지반이 어차피 만만한 평지이며 고속도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이니.. 고속도로는 통째로 지하로 내리고 기존 평지 도로는 시내 도로로 바꾼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철도에서 지상의 용산선을 지하의 공항 철도/경의선으로 바꾼 것과 비슷한 발상 같다.
아 그리고 요즘은 대학교 캠퍼스나 아파트 단지도 지상을 몽땅 공원처럼 꾸미는 게 유행이다. 단지 내에서 지하 주차장 입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단지 입구에서부터 자동차를 싹 지하로 넣어 버린다.

이런 식으로 아파트 단지 내 도로부터 시작해 간선 도로와 고속화도로, 심지어 고속도로까지.. 자동차 도로는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 최후 테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부터 전깃줄이 지하로 내려가더니 이제는 도로까지 그 뒤를 따르는 듯..
물론 지하 차도는 고가 차도보다도 건설비와 유지비가 훨씬 더 비싸기 때문에 모든 도로가 그렇게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지하 차도는 화재에도 훨씬 더 취약하다는 걸 감안해야 할 것이다. 단순 고가나 교량은 옆으로 도망칠 곳이 없다는 점만 낭패이지만 지하나 터널은 숨까지 제대로 못 쉬게 될 테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27 08:35 2023/03/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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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도로들 중에서 격이 가장 높은 존재는 단연 '고속도로'이다.
자동차만이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자동차 전용 도로여서 심지어 최저 속도라는 것도 있고,
신호 대기라는 게 없어서 모든 교차로가 입체교차이며, 유료이다.

국도는 애초에 서로 다른 도로를 쭉쭉 이어 놓은 형태인 게 많기 때문에 관리 주체도 도로가 속해 있는 각 광역단체별로 찢어져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그 방대한 구간이 모두 '도로 공사'라는 전국구 단일 전문 기관의 관할이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고속도로는 아주 특수하고 특별하고 차별화된 장소라는 쪽으로 계도과 홍보를 많이 해 왔다.
일단은 안전을 위해서이다. 이런 곳에 보행자나 오토바이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며 무단횡단도 절대로 안 하도록 단속해야 하니까 말이다. 경부 고속도로라는 게 처음으로 생겼을 때는 이런 거 홍보를 마치 휴대전화 진동 모드를 홍보하듯이 했었다.

그런데,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된 지 40년을 넘어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의 관점에서는..?
고속도로도 전국 방방곡곡에 거미줄처럼 깔려서 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이제는 고속도로가 지나는 도시가 특별한 게 아니라, 반대로 고속도로가 없는 도시가 낙후된 오지라는 소리를 듣는다.
197,80년대에야 여권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대학 나온 엘리트 내지 유학생, 사업가, 정부 관료 소리를 들었겠지만 지금은 어중이떠중이 아무나 다 여권 만들고 외국 여행을 갈 수 있지 않은가? 고속도로도 이와 비슷한 이치이다.

그러니 고속도로에 대한 너무 경직된 인식도 조금은 바뀔 필요가 있다.
장거리 뛰는 운전자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건 "이젠 이름 대신 번호로.. 고속도로도 국도나 미국 프리웨이처럼 그냥 번호로만 인지하고 부르는 게 훨씬 낫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다음 경우를 생각해 보자.

1. 이름은 추후에 바뀔 수 있다.
가령, 서울외곽순환은 몇 년 전부터 '수도권1순환'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걸 일일이 인지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기회에 100번 내지 100호선이라는 번호를 기억하도록 하자. (공항 철도 "인천 국제공항" 역이 "인천공항 1터미널"이라고 바뀐 것과 비슷한 개명인 듯 ㄲㄲㄲㄲ)
다음으로.. 88 올림픽 고속도로도 '대구광주'라고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냥 12번이라고 기억하는 게 낫다.

2. 여러 구간이 합쳐진 경우가 있다.
호남인지 논산천안인지 따지지 말고 그냥 25번.
통영대전인지 중부인지 따지지 말고 35번.
인천-안산 구간이 왜 '영동 고속도로'라고 불리는지 생각하지 말고 그냥 50번..이 낫다.
경주-울산-부산의 새 고속도로는 이름이 뭘까? 북쪽의 동해-속초 동해 고속도로와 동일한 65번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3. 도로가 확장되면서 공식 명칭이 자꾸 달라질 수 있다.
경춘인지, 서울홍천인지 서울양양인지 따지지 말고 그냥 60번.
특히 종축 말고 횡축은 인지도가 안 그래도 듣보잡인 편인데 자꾸 확장되고 연결돼서 시종점 기반의 이름이 수시로 바뀐다. 서울에서 가까운 60이나 50뿐만 아니라 40번, 30번, 20번도 다 필요 없고 번호만 기억하면 된다.

4.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 종점 작명법은 순서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상주영천인지 영천상주인지 고민하지 말고 301번.
용인서울인지 서울용인인지 고민하지 말고 그냥 171번이라고만 기억하면 된다.
자, 이러니 번호가 여러 모로 편하지 않은가?

고속도로의 이름은 옛날에 고속도로가 철도처럼 매우 드물고 희귀하고 특별한 존재이고, 국가 단위로 수백 km짜리 단일 구간이 한꺼번에 뚝딱 건설되던 시절에 유효했다. 경부, 중부, 서해안처럼..;;
그러나 지금은 고속도로가 국도처럼 거미줄처럼 너무 많이 생겼고, 찔끔찔끔 지선이 많이 건설되어서 일일이 이름을 붙이는 명분과 효율이 많이 떨어졌다.

물론 이제는 번호도 너무 중구난방처럼 된 구석이 있다. 고속도로 번호에도 세 자리 수가 늘어나고, 두 자리 수의 1자리에도 통상적인 0/5 말고 7, 9, 4 같은 세부 번호가 더 자주 눈에 띄고 있다.
하지만 번호이니까 양반이지 이런 걸 다 이름으로 감당시킨다면 복잡도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도로공사에서는 없애고 싶어하는 고속도로 레거시 양대 산맥이 바로 (1) 재래식 톨게이트와 (2) 재래식 명칭들이다. 하지만 둘 다 단기간에 완전히 없애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게 실현될 정도이면 고속버스 운임에다가 부가가치세는 좀 넣지 말며, 궁극적으로 (3)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는 터미널과 각종 운행 시스템을 완전히 통합하는 게 좋을 것이다. 고속도로는 특별하고 사치스러운 도로가 아니며, 두 버스의 구분도 사실상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지경으로 가고 있으니 말이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고속버스에 부가세가 한시적으로 면제되긴 했는데.. 지금은 어찌 됐나 모르겠다. 내 생각엔 이젠 우등조차 굉장히 흔해졌는데 프리미엄 우등 정도에나 부가세를 매기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고속도로 시설과 관련해서 욕심을 더 낸다면..
(4) 고속도로 나들목들에다가도 지금 지하철 역들처럼 번호를 다 부여하고, 각종 분기점에서 동서남북 방향을 더욱 분명히 명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신갈 분기점에서 영동 고속도로 강릉 방향 문막 IC라고 하면.. 각각의 명칭들은 우리나라 지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코드북 암호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반면, 50번 고속도로 동쪽 방향으로 나가서 20번 IC라고 하면.. 앞으로 IC를 몇 개 더 거친 뒤에 나가면 되는지도 알 수 있으니 초행길 외국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 자국인조차도 깜빡 잊고 있다가 근처 나들목으로 황급히 나가려고 급 차로 변경하다가 사고를 종종 내곤 한다. IC 번호는 이런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 국내 고속도로들이 분기점에서 방향별로 분홍-초록 컬러 유도 차선이란 게 도입돼서 굉장히 편리하고 좋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 분홍-초록 컬러링이 동-서나 남-북 중 하나로 일관된 원칙 하에 부여되기라도 했나 문득 궁금해지는데.. 당연히 일관되게 했으리라 믿는다. =_=;;

※ 덤: 고속도로의 갓길, 차선색 등

일반 도로에서는 길가의 차선이 길가 주차 가능 여부를 나타낸다. (백색 실선은 언제나 가능, 황색 점선은 5분 이내 정차만 가능, 황색 실선은 주정차 금지, 황색 복선은 절대 금지)
그러나 고속도로 같은 자동차 전용 도로는 갓길을 나타내는 차선이 백색 실선이지만 거기에 임의로 주차를 해도 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고속도로의 갓길은 일반 도로의 ‘안전지대’와 비슷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평소에는 차량이 주행이나 정차를 해서는 안 되며, 사고· 고장 같은 정말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주행이 불가능해진 차량을 잠깐 동안만 세워 놓는 게 허용된다.
단순히 한숨 자거나 용변(!!)을 해결하려는 용도로도 세워서는 안 된다. 사실, 저 맹렬한 속도로 달리는 차량 중에 누가 맛이 가서 내 차를 들이받을지 모르는데,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갓길에 차를 세우라고 해도 겁나서 세우지 않는 게 이치에 맞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앙선과 안전지대를 모두 황색으로 표기하다 보니, 일반 차선은 백색이고 황색은 뭔가 건드리거나 범접해서는 안 되는 선이라고 인식이 딱 박혀 있다. 하지만 일본 같은 외국에 가 보면 중앙선이 그냥 백색인 경우도 있어서 좀 헷갈린다.
고속도로는 중앙선이 없이 그냥 중앙분리대가 있고, 통상적인 평면교차 신호나 주차 같은 개념도 없다 보니, 황색으로 뭔가 그어진 걸 볼 일이 별로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24 19:35 2023/03/2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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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자들은 지금으로부터 400년도 더 전인 1611년에 출간됐던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이 무오하고 완전하다고 그렇게도 의미 부여를 하며 떠받든다.
여기서 문득 의문이 든다. 유일주의자들이 그렇게도 떠받드는 킹 제임스 성경 원판은 실제로 어떤 모양이었을까? 그 성경이 정말로 단 한 치의 오류도 없었고 내용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걸까?

요즘은 인터넷에 몇백 년 전의 옛날 영어 성경도 본문이 다 올라와 있고, 1611년도 KJV 종이책의 스캔 이미지까지 몽땅 살펴볼 수 있다. (☞ 관련 링크) 그러니 저 의문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도 아주 간편하게 할 수 있다.

1. 철자법의 변화

오늘날 우리가 읽는 1611년도 킹 제임스 성경이라는 건 1611 version(역)의 1769 edition(판)이다.
KJV는 영단어 스펠링 체계의 변화 때문에 단어 표기를 몇 차례 기계적으로 치환하여 판이 바뀐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내용을 개정하고 변개한 게 결코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령, NKJV(뉴 킹 제임스)가 한 것처럼 thou ye thee 따위를 you라고 바꾼 건 '하느니라 / 하노라'를 '합니다'라고 고친 것과 비슷하다. 하물며 devil을 demon으로 바꾸고 hell을 hades라고 바꾼 것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정도면 말의 의미와 뉘앙스가 달라진 개정· 변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sunne, moone, booke를 sun moon book으로 바꾸고 heauen을 heaven으로 바꾸고, conteyn을 contain으로 바꾼 건..??? 그냥 '읍니다'를 '습니다'로, '홍당무우'를 '홍당무'라고 고친 것에 불과하다. 말이나 발음은 달라진 게 전혀 없고 오로지 표기만 바뀌었을 뿐이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를 "나라가 임하옵시며"로 고쳤다거나, "어린 백성"을 "어리석은 백성"으로 고친 정도의 변화조차도 아니다.

f처럼 길게 늘어뜨린 s 변종이 s와 완전히 통합되어 사라진 건.. 한국어의 역사로 치면 아래아가 없어지고 ㅏ/ㅡ로 통합된 것과 거의 같다.
KJV의 우리말 번역본인 흠정역의 경우, 5판(400주년 기념판, 2011), 6판(마제스티판, 2021)처럼 edition의 변화가 오· 탈자 교정뿐만 아니라 드물게 오역 교정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영어 KJV 자체는 그렇지 않았다.

2. 오· 탈자

그럼 KJV 1611 초판은 스펠링 변화 말고 일체의 오· 탈자가 없었느냐..?? 그렇지는 않았다.
저 때는 자동차도 없고 컴퓨터는커녕 타자기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원고를 마차에다 실어서 가져와서는 식자와 조판에도 정말 지루하고 고된 쌩 노가다를 거쳐야 했다.

설령 작가 내지 번역자가 완벽하게 원고를 내어 줬다 해도, 성경 정도로 방대하고 빡빡 두툼한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삐끗 실수가 전혀 안 들어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이었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일일이 베껴 쓰는 것보다는 나았으며, 인쇄공이 더 옛날의 서기관 필경사보다 처지가 더 나았다. 그게 문자를 기계로 다루면서 최첨단 지식과 정보 문물을 접하는 직업이었으니 말이다.

KJV 1611 초판이 출간되고 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을 통틀어 대략 20여 군데의 오· 탈자가 책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수 년~10수 년 이래로 시정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대명사 he/she/it이 헷갈렸거나 a/the 같은 관사가 빠지는 등의 자잘한 실수였다.

그나마 내용이 유의미하게 바뀌는 변개에 가까운 크리티컬한 녀석이 이거.. 시 69:32이었다. God이 good으로 잘못 찍혔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을 찾는 너희의 마음이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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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과 good은 스펠링이 비슷하고, 비슷하게 '좋은' 심상의 단어이고 God is good이라는 관용구까지 있다. 실수로 잘못 식자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농후했다.
게다가 이 typo는 출간된 지 2년 만에.. 그야말로 제일 먼저 발견되어 시정된 축에 든다.

이런 오탈자나 철자법 변경은 개정· 변개가 아니라는 것이 요지이다. 이건 인쇄 단계에서의 실수를 바로잡은 것일 뿐, 처음 원고를 작성한 번역자가 원고의 컨텐츠를 수정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위키백과를 편집할 때도 "사소한(trivial) 수정"이라고 표시하는 게 있지 않던가? 딱 그런 격이다.

이건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에 본질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부족하고 실수하는 인간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역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적으로는 당연히 KJV 1611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본문 자체는 1611년 이후로 정말로 유의미한 개정 없이 정착됐다.

흠.. 글을 써 놓고 보니 이번 1번과 2번 아이템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책의 부록에 실려 있는 "킹 제임스 성경 본문 개정 의혹에 대한 전면 반박" 이야기의 판박이가 됐다. 이 주제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그걸 참고하시기 바란다.

3. 외경 관련 루머

철자법, 오· 탈자 다음으로.. 심지어 외경 수록 여부를 갖고 1611년 KJV 원판에 대해 이상한 얘기를 퍼뜨리는 진영이 있(었)다.
"1611년판은 비성경적인 가톨릭 외경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온전하지 못하고 오점이 있다~~ 1655년판이니 17xx년판이니 그게 외경이 제외된 진짜 KJV 원조다.." 이런 요지의 얘기 들어 보신 분 계신가?

아예 대놓고 KJV 유일주의를 반대하고 원문비평 사본학 운운하면서 변개된 현대 역본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저런 얘기는 누가 무슨 의도로 퍼뜨리는지 모르겠다.
전에도 한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저런 부류의 얘기엔 전혀 현혹될 필요가 없다.

종교 개혁자와 개신교 동네에서는 가톨릭과 달리, 외경이 성경이 아니라는 인식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영감 받은 성경만 아닐 뿐,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제2류 교양 텍스트 내지 종교 문학 정도로는 인정했다.

당장 KJV 1611 책의 앞부분에 들어간 "역자가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을 보면 외경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어거스틴을 포함해 가톨릭 성인(??)이나 초대 교회 교부들의 말을 인용한 게 종종 나온다. 그게 그 당시 종교계 석학들의 지쩍 밑천이고 성장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반가톨릭 반개신교(!!!)에만 충실한 오늘날의 bible baptist들이 보면 살짝 문화 충격 동심파괴를 경험할 수도 있다. 한킹이건 흠정역이건 저 텍스트가 번역되어 수록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를 것이다.

그러니 KJV는 본문이 명백한 반가톨릭 성경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관행에 따라 외경이 들어갔었다. 단지, 본문이 아니라 부록으로 들어갔을 뿐..!
KJV가 가톨릭 성경이었다면 구약이 39권이 아니라 52권이 됐을 것이다. 에스더기가 10장 3절에서 끝나지 않고 더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KJV는 외경을 싣되, 외경을 성경이라고 간주하지 않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세상에 그 어떤 가톨릭 성경도 에스더기의 외경 부분을 The rest of the chapters of the book of Esther, which are found neither in the Hebrew, nor in the Calde .. 이렇게 별도로 처리하지 않았다.

그때는 성경책을 이렇게 편성하는 것만으로도 번역자가 교황 추종자들한테 해코지· 암살을 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십 년 이상 세월이 흐르면서 개신교 바닥에서는 외경을 읽지 않게 되었고, 외경이 성경책에서도 자연스럽게 완전히 제외되었다.

정확한 역사 맥락을 모르면 아폴로 달 착륙 자작극 음모론 같은 데에 속듯, 비슷하게 KJV 본문 관련 음모론에도 속기 쉽다.
KJV 1611에 외경이 들어가 있었던 건 당시 관행에 따른 부록 명목이었을 뿐, 본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무슨 예수회의 농간 같은 급으로 확대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

4. 인쇄공 로버트 바커

끝으로, 옛날 사람을 한 명 소개하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17세기 잉글랜드 사람이었던 로버트 바커. (Robert Barker)
제임스 1세 왕에게 직통 고용돼서 킹 제임스 성경 1611년도 종이책 초판을 조판· 인쇄한.. 역사에 길이 남을 인쇄공 내지 출판 책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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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왕으로부터 신임을 얻어서 평생 이 업종에 종사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1611 이래로 딱 20년 뒤 1631년, 제임스 1세 이후로 아들 찰스 1세 시절에 새로 편집된 킹 제임스 성경을 인쇄하던 중에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십계명 구절에서 NOT을 빼먹어서 '너는 간음할지니라' wicked bible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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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KJV 초판 시절에 발견됐던 여느 자잘한 오· 탈자와는 차원이 다른 너무 큰 사고였다.
사악한 성경책은 전량 리콜· 회수되어 폐기 처분됐지만, 몇 권은 살아남아서 후대에까지 전해진다.
그는 무슨 투옥· 사형까지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거액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그 뒤로는 몰락해서 그에 대해 근황 기록이 딱히 전해지는 게 없다. 1645년에 사망했다고만 전해질 뿐.

조선의 장 영실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왕에 의해 고용된 특정 분야 기술자였고, 역사에 기억될 업적을 남기기도 했는데..
장 영실은 왕의 가마가 부서지는 초대형 사고가 나는 바람에 리타이어 당하고 기록도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상이다.
성경 신자라면 킹 제임스 성경이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비록 이 성경의 외형이 우리가 지금 보는 성경책과 모든 면에서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 사실은 1611 KJV라는 타이틀에 본질적인 영향을 주는 차이점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

(1) 하루는 성경 역본을 비교하느라 똑같이 NIV로 동일한 구절을 인용했는데, 내용이 서로 같지 않아서 본인과 상대방이 놀란 적이 있었다. (무슨 구절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알고 보니 NIV도 1984년판 이후에 2011년경에 개정됐더라.. 이럴 수가..!!
TNIV 같은 바리에이션이 아니라 NIV 자체가 또 개정된 것이다. KJV는 이런 식으로 쓱 바뀐 게 없다~!!

(2) 글쎄, 이 문제에 대해 덕질을 더 깊게 들어가면 KJV의 캠브리지 판과 옥스퍼드 판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룻 3:15의 끝부분에서 도시로 들어간 사람이 룻(she)인지 보아스(he)인지를 질문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인은 정답만 알지 더 구체적인 내력이나 사연은 아직 잘 모른다. 이에 대해서 나중에 더 다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3) 하나님은 민족과 언어를 나누어서 인간들의 생활권에 '구획/파티션'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 성경과 한 믿음으로 인간들이 무질서에 빠지지 않고 하나가 될 수도 있게도 해 놓으셨다.
꼭 학교에서 가까이 사는 집 애가 성적 우수 모범생이 아니듯.. 예수님과 동시대 같은 지역을 살았다고 해서, 영어가 모국어라고 해서 특별히 신앙 생활을 더 잘하는 게 아니다.

다만, 세계 선교와 복음화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접근성이 훨씬 더 좋은 게 사실이다. 더 많이 받은 사람에게 더 많은 책임이 요구된다는 것이 성경의 합리적인 법칙일진대(눅 12:48), 우리 주님도 한국어 화자보다는 KJV 같은 성경을 직통으로 읽을 수 있는 영어 화자에게 저런 사명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묻기는 하실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19 08:35 2023/03/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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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

1930년대에 일본군 장성인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미국으로 여행인지 출장인지를 갔는데..
시골 깡촌의 평범한 소녀가 공구를 들고 와서 자동차가 퍼진 걸 뚝딱 수리하는 걸 목격했다.
그는 이거 하나만으로도 천조국의 저력을 직감하고 경악했으며, 일본은 이런 나라와 전쟁을 벌여서는 이길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참고로, 옛날에 성경 번역자 틴데일은.. 시골에서 소 모는 꼬맹이 조무래기라도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자국어로 성경을 암송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근데 이 미친 나라는 어떻게 듣보잡 시골 처자조차 기계를 이렇게 잘 다루느냐 말이다.

2. 컴퓨터

한편, 1940년대인가 50년대인가, 컴퓨터 과학자 폰 노이만은 거의 인간 컴퓨터 급의 큰 수 암산이 가능했으며, 그냥 머릿속으로 기계어 코드를 쭈룩 읽고 쓰는 게 가능했던 천재 괴수로 유명했다.
자기 제자들이 컴파일러는커녕 어셈블러를 만드는 것조차 별로 달갑지 않게 봤을 정도였다. 프로그램을 짜고 싶으면 사람이 그냥 직통으로 0 1 쑤제 암산 기계어 코딩을 하면 되지, 엔지니어가 지 한 몸 편하자고(!!) 그 비싸고 거대하고 귀한 컴퓨터를 갖고 무슨 자원 낭비 잉여짓을 하느냐고, 그렇게 힐난을 가했었다.

하긴, 폰 노이만은 컴퓨터에 대해서 '프로그램 내장형 모델'이라는 개념 자체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었다..!!!
컴퓨터가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진공관 배선을 바꾸고 천공 카드를 교체하는 식의 물리적인 노동으로 지정하는 게 아니라, 이 지시사항 역시 프로그램이 취급하는 데이터와 동급으로 메모리 상의 정보 중 하나로 간주시키는 발상이다.

요즘처럼 키보드 코딩만으로 간편하게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진 것 자체가 이런 개념이 도입된 덕분이다.
그러니, 자기가 이 정도로 프로그래밍 환경을 개선했으니, 더 편한 요행 꼼수를 바라지는 마라~~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3. 저격총

역시 2차 세계 대전 때.. '시모 해위해'라고 적군 수백 명을 사살한 핀란드의 전설적인 저격수가 있었다.
그는 저격 잘 하는 비결이랍시고 번거로운 조준경 따윈 없는 게 낫다는 말을 씨부려서 다른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지 혼자 시력이 2.0 3.0을 넘기라도 하는지.. 아무도 이해하지도 이행할 수도 없는 비현실적인 조언을 조언이랍시고 진지하게 남겼던 것이다.

하긴, 그 시절엔 레이더도 없거나 뒤늦게 개발됐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기 폭격기 조종사 역시 시력이 좋은 게 지금보다 아득히 유리하게 작용하긴 했었다.

이것들은 대단한 일화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저 시대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은 급의 자동차를 수리하거나 요즘 컴퓨터와 운영체제 같은 여건에서 기계어 코딩을 한 건 아니라는 점 역시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지금 자동차나 컴퓨터는 정말 저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호락호락 직접 만지고 고칠 수 있지 않다.

제 아무리 천재 괴수 폰 노이만이라 해도, 그 시절에 컴퓨터라는 건 핵 실험이나 탄도 계산, 일기예보 시뮬레이션을 위한 거대한 계산 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국가 기관· 연구소만의 전유물이었으며,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엄청 비싸고 귀하신 몸이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을 겪었고,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을 뿐이었다. 일반 양민들이 개나 소나 그 거대한 컴퓨터보다 성능이 더 뛰어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시대를 살았거나 그걸 예측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 컴퓨터 자원에 대해서 극도로 아껴 쓰고 절약하자는 마음이 뼛속까지 몸에 배겼으며, 그런 사고방식이 자신의 천재적인 두뇌와 결합했기 때문에 '쓸데없이 어셈블러 따위'라는 갈굼이 나온 것이었다. =_=;;;

지금이야 한낱 작업자의 편의 때문이 아니라 업무 생산성 때문에라도 프로그래머들에게 고급 툴과 컴파일러는 듬뿍 쥐어 줘야 한다. 폰 노이만이라도 Windows용 exe 실행 파일을 맨땅에서 만들지는 못할 것이며, 근본적으로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
키가 3m인 인간흉기 골리앗, 특수부대 할아버지라 해도 현대의 전장에서 총 맞으면 죽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시모 해위해도 기술이 훨씬 더 향상된 오늘날의 저격 소총을 보면 조준경 불필요 소신을 바꾸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은 전장에서 수백 명의 적군을 조준경 없이 저격 사살하긴 했지만, 그 대신 저격 거리도 km급이 아니고 우리 생각보다 짧았다고 한다(2~300m). 그만큼 더 위험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4. 비행기

20세기 중반의 천조국 기준으로.. 컴퓨터 업계에 폰 노이만이 있다면, 항공 업계에는 '켈리 존슨'(1910-1990)이라는 정말 전설적인 괴수 엔지니어가 있었다.
이 사람은 평생을 비행기를 조종하는 일이 아니라 비행기를 설계하고 만드는 일에 뼈를 묻었다. 이 사람도 조종을 안 한 건 아니지만, 평범한 여객이나 군용 조종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기체의 안정성을 극한까지 시험하는 '테스트 파일럿' 명목이었다. ㄲㄲㄲㄲㄲ 즉, 여느 파일럿과는 급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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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록히드에서 일하다가 미국의 최신 항공 우주 기술의 산실인 스컹크 웍스의 수장을 역임했고.. 네바다 주에 그 비밀 실험 기지인 AREA 51을 직접 구상하고 만들기도 했다.;;
전투기 P-38, 최초의 제트 전투기 F-80 슈팅스타 쌕쌕이, 마하 2를 최초로 돌파한 F-104, 고공 정찰기 U-2와 SR-71 등..

컴퓨터도, 캐드도 없던 시절부터 이 사람은 인간 컴퓨터나 인간 백과사전이 아니라, 그냥 걸어다니는 풍동 실험실이었다.
"비행기를 이렇게 만들고 날개의 모양과 크기와 각도를 이렇게 만들어서 저렇게 조종하면 실제로 이렇게 날아갈 것이다, 성능과 안정성이 이럴 것이다.. 이 디자인은 요런 비효율과 문제가 있으니 얼추 이 정도로 고쳐야겠다.."

동료 엔지니어들은 낑낑대며 복잡한 수학 계산을 통해 예측을 했지만, 저 사람은 머릿속에서 직감적으로 바로 시뮬레이션이 됐다.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한 게 굉장히 정확하게 적중했다. 이게 진짜 무서운 면모였다.;;; 동료 엔지니어들은 "저 괴수는 공기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나?" 하며 혀를 찼다. 이 정도면 비행기의 폰 노이만 급이 아닐지? ㄷㄷㄷ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보잉 사에서 재직했던 '조(조셉) 서터'(1921-2016)도 전설적인 비행기 개발자였다. 보잉 7x7 프로젝트에 모두 관여하면서 짬을 쌓다가 궁극적으로는 747의 팀 리더가 되어 20세기 최대 크기의 전설적인 여객기를 설계하고 개발하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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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현대의 CPU 설계 중에서는 독보적이고 전설적인 장인 엔지니어가 없나 모르겠다.
CPU는 자동차나 비행기와 달리 애초부터 사람 손으로 만드는 게 가능하지 않은 물건이긴 하다만.. 그래도 미시세계에서도 회로를 이렇게 설계하면 발열이나 전력 소모가 너무 심해진다느니, 몇 마이크로초 단위의 손실이 생긴다느니 뭐니 이런 직관이 발휘될 여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08 08:35 2023/03/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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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역본 간의 차이들

1. 변개 유형 (신약)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자가 타 성경에서 변개됐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크게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나뉜다.

(1) A형 오리겐 변개(원문)
요한복음 "독생하신 하나님", "아들을 순종치 하니하는 자는"
벧전 2:2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 골로새서 "그분의 피로" 삭제 같은 것들.
내용이 차이가 나는 것은 대체로 이 유형에 속한다.

(2) B형 번역 이슈(원어)
이사야서 루시퍼, 사도행전 이스터, 누가복음 갈보리, 요나가 '고래' 배 속, 증인이냐 순교자냐, 지옥이냐 음부냐 등..
같은 원어가 서로 다르게 번역된 것들이다.

(3) C형 후대 본문비평에 의한 변개(원문)
마가복음의 마지막 열두 구절,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 이야기, 요한의 콤마 따위
이건 옛날 사람보다는 웨스트코트-호르트의 기여도가 더 높은 변개이다.
수백 년 전의 옛날 성경에는 심지어 가톨릭용이라고 해도 이 C형 변개가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

2. 변개 유형 (구약)

사실, KJV 옹호자/유일주의자들은 구약보다는 신약의 차이점에 관심이 더 많다. 신약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위주로 전수되어 왔으며, 본문 계보가 명백하게 이분화돼 있어서 번역의 차이에 앞서 내용의 차이가 더 많기 때문이다.

허나, 구약도.. 맛소라 본문 덕분에 본문의 변개 문제는 덜한 편이지만.. 원어의 미스터리함이 아무래도 히브리어가 그리스어보다 더 심하다. 그래서 번역의 차이로 인한 잡음이 더 많고, 원어 말장난이 틈탈 여지도 더 많은 것 같다.
다음은 내가 당장 기억하고 있는 예시 몇 가지일 뿐이다. 보다시피 숫자가 막 대놓고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다.

  • 4년 뒤 / 40년 뒤에 압살롬의 반역 (삼하 15:7)
  • 3년 뒤에 십일조 / 3일마다 십일조 (암 4:4)
  • 온천 / 노새 (창 36:24)
  • 엘하난이 골리앗? 골리앗의 동생?을 죽임 (삼하 21:19)
  • 요셉에게 색동옷 / 소매 긴 옷 (창 37:3)
  • 그들을 톱으로 잘라서 끔살시켰다 /톱으로 강제 노역을 시켰다 (대상 20:3)

그러니 내가 주장하는 건.. 이게 다 맞을 수는 없고, 그래도 어느 것 하나가 정답이긴 할 거라는 점이다.

3. 의외로 KJV처럼 번역된 구절

한글 개역성경(개역개정 포함)이나 심지어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공동번역 성서는 KJV 유일주의자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아쉽지만 부패한 본문에서 만들어진 변개된 역본이다.
그런데 얘들은 아주 극소수 예외적으로 KJV 스타일로 옮겨진 표현도 있긴 하다. 예전에 이미 했던 말도 있지만.. 복습해 본다.

(1) 개역성경의 경우, 창세기 요셉의 옷이 색동옷/채색옷, 어쨌든 무지개 같은 컬러풀한(창 37:3) 옷이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KJV와 일치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현대의 역본들은 장신구 치장이 잔뜩 달린 화려한 옷, 소매 긴 옷 등으로 표현이 바뀌는 추세이다.

(2) 엡 4:12에서 KJV는 “각종 은사들을 통해서 성도들을 온전하게(perfecting) 한다”고 말하지만, 타 역본들은 성도들을 “준비시킨다”(equip, prepare)고 되어 있다.
이건 마치 마태복음 28:19에서 “가르치는”(KJV) 것과 “제자 삼는”(나머지) 것하고 비슷한 차이점 같다. 의미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엡 4:12의 경우, 개역성경도 의외로 ‘준비시켜’ 대신 ‘온전케’ 한다고 KJV와 동일하게 번역되었다. 이건 원문의 차이점인지, 아니면 색동옷 같은 번역 스타일의 차이점인지 잘 모르겠다.

(3) 다음으로 요 3:36은 “아들을 믿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KJV)가 “아들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고 바뀐 걸로 유명한 구절이다. 그런데 얘는 의외로 공동번역 성서도 “아들을 믿지 않는 자”라고 KJV와 동일한 워딩을 했다.

(4) 고후 13:11의 끝인사가 KJV만이 “굿빠이, 잘 있으라, 안녕히 계시오” 등의 작별인사인 farewell이다. 나머지 역본들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거의 다 “기뻐하라”(rejoice)라고 바뀌었다.
우리말 역본 중에서는 심지어 말보회의 한킹조차도 ‘기뻐하라’라고 번역했는데(왜???).. 그런데 공동번역 성서는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farewell이라는 의미로 KJV처럼 번역되었다.

공동번역 성서는 막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했다기보다는.. 흐름상 의역을 하느라고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게 아닌가 싶다. ‘믿는 자’ 다음에 논리적으로 ‘믿지 않는 자’가 나오는 게 맞고, 그리고 서신이 다 끝나는 문맥이니 뜬금없이 ‘기뻐하라’보다는 ‘굿바이’가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4. 진짜 어려운 것

유경험자로서 말할는데, KJV는 겨우 -eth, thou thee ye, gay clothing, prevent 같은 유명하고 잘 알려진 고어가 어려운 건 절대 아니다. 그건 그냥 며칠이면 적응되고 익숙해지니 하나도 문제될 것 없고..

진짜 어려운 건 대명사와 도치이다. 길고 복잡한 문장에서 개나 소나 it he 대명사가 너무 많아서 뭘 가리키는지 분간이 안 될 때.. 그리고 복잡한 도치에서 주/객 관계 따지는 게 좀 어려울 수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왕상 3:27 솔로몬의 재판에서도 "저 여자가 진짜 애엄마다" 할 때도 KJV는 그냥 평범하게 her이다.
두 여자 중 누구를 가리키는 her인지를 기계적인 어휘 통사 구조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에 비해, 다른 역본들은 약간 해석을 추가해서 the first woman이라고 써 놓은 편이다.

솔로몬의 재판이야 워낙 유명하고 문맥이 뻔하기 때문에 "아이를 차라리 저 여자에게 주고, 죽이지는 말아 주세요!"가 진짜 엄마인 걸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허나, 그런 유명한 얘기 말고 더 어려운 문맥에서는 대명사 포인터를 역참조할 때 머리에서 쥐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데 KJV가 그렇게 자비심 없게 번역된 이유는 애초에 원어 원문의 표현이 그렇게 자비심 없고 모호했었기 때문이다. KJV는 표현 추가나 윤문을 극~~도로 꺼리면서, 불가피하게 단어 하나를 추가하더라도 이탤릭체로 티를 내면서 아주 보수적으로 정직하게 번역됐다는 걸 생각해 보자.

5. 고펠나무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는 목재는 무슨 나무일까..??
성경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등장한다. 나는 당연히 전나무, X나무, 포플러나무 같은 친근한 나무 내지 레바논의 백향목, 아니면 출애굽기에서 성막 제조용으로 죽어라고 나오는 시팀나무 이런 걸 떠올렸는데.. 노아의 방주는 그렇지 않더라.

창 6:14에 따르면 고펠나무 gopher wood라고 한다.
그러나 gopher라는 단어는 고유명사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이면서 여기 말고 성경 다른 데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내장 사전을 이용해서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특히 킹 제임스 유일주의 진영에서 좋아하는 방식-- 이 나무의 정체를 밝히는 게 불가능하다.

심지어 킹제임스 흠정역을 출간한 '그리스도 예수안에'에서 편찬한 성경 용어 사전에서도 "노아의 방주를 지을 때 사용한 나무" 이상으로 설명이 더 없다. 다른 표제어들 대비 이상하리만치 풀이가 부실하다.
이건 그냥 통상적인 성서고고학이나 원어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옛날 한글개역 성경은 그냥 '잣나무'라고 했다가 개역개정에서는 '고페르 나무'라고..;;; 음역으로 바뀌었다.
영어는 뉴 킹 제임스에서는 gopher가 단독으로 생산성이 없는 사어라고 간주하고.. gopherwood 한 단어로 붙이는 기지를 발휘했다.;;
현대에는 이게 사이프러스 나무가 아닐까 하는 해석이 등장해 있다(NIV 등). 이건 본문 변개하고는 관계 없고 후대에 와서 등장한 견해이다.

심지어 "노아의 홍수 이후로 멸종하고 현존하지 않는 나무 품종일 것이다",
"애초에 나무 품종 명칭이 아니라 나무를 가공하는 방식의 명칭일 것이다. 혹시 이건 비슷하게 생긴 다른 히브리어 글자의 오기가 아닐까..?? '고페르'가 아니고 '코페르'이면 pitched tree (역청 바른 나무..??)가 된다는데?"

이런 낭설까지 있는가 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건 뇌피셜이 지나친 것 같다. 나는 성경 본문을 교정하는 정도로까지 선을 넘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도 킹 제임스 킹왕짱을 주장해 온 럭크만의 주석서에는 이 구절에 대해 뭐라 해설하고 있는지 있는지 문득 궁금하다.

참고로 이 gopher는 북미 다람쥐 동물이나 컴퓨터 고퍼 프로토콜과 스펠링이 우연히 같지만 이들과는 어원상 서로 전혀 무관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05 08:35 2023/03/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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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목에는 KJV 유일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갔지만, 특정 역본을 옹호한다기보다는.. 무오류한 역본 하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더 원론적인 사실"에 대한 변증 위주이다.

1. 언어 관련

과거에 하나님은 친히 인류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언어와 문화, 민족 구분을 만들었다. 인간들을 강제로 찢어 놓고 파편화시켰다. 인류가 한꺼번에 동반 타락하는 것을 막고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심판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훗날, 언어와 민족의 구분 없이 한 가족인 교회라는 것이 태동할 때는 하나님께서 제일 드라마틱한 기적이면서 사도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기도 했던 외국어 구사 표적을 주셨다.
그리고 알아듣지 못하는 타 언어 때문에 교회에 혼란이 야기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절대로 아니라고 고린도전서에서 거듭 강조하셨다. 세례/침례 문제와 비교하면 대략 이런 관계이다.

  • 스스로 자기 믿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유아나 어린아이에게 침례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물며 침례도 아닌 세례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 통역 없이 교회에서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가 공석에서 남발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물며 외국어도 아닌 날랄랄따따 잡소리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알아듣지 못하는 '원어'에 대한 동경, 환상이 있다. 하나님께 다이뤡트로 내리꽂혀진다는 하늘의 신비로운 언어, 천상의 기계어 어셈블리어뻘..???? C/C++ 고급 언어 짜끄레기나 구사하는 자기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언어라고 말이다.

그게 말은 방언 기도(하나님에게 직통 전달되는 =_=;; )요, 글은 도대체 실체는 모르겠지만 original 원어 원문 성경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이 hoax, myth라고 생각한다. 성경의 기독교는 "죽은 사람 갖고 장난치지 않으며 일체의 뒤끝이 없다(하늘 아니면 지옥.. 끝!)." 그리고 비슷한 차원에서, 무슨 신비로운 언어 주술 주문 말장난질이 없다.

하나님이 언어와 민족 구분을 만드신 것은 인간을 '배려해서'이지, 그런 언어 접근성으로 사람을 차별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정말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이고 인간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가?

이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유대인에게는 성문법인 율법을 주시고 이방인에게 양심의 법을 주셨다고 해서 이게 민족별로 개인 구원 접근성에 대한 차별은 절대 아닌 것과 같다. 유대인은 하나님과 더 가까이 소통하는 큰 특권을 받은 대신에, 법을 어겼을 때의 처벌과 책임도 더 컸다. 마음속에만 있는 양심의 법의 물리적인 근거· 실체가 율법이라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논리로.. 하나님께서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다음으로 영어로 된 최종 권위 성경을 하나 남겨 주셨다고 해서 이것이 영어 모국어 화자에게만 불공평한 특혜를 제공한 게 아니다. 관점을 좀 달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기왕 이렇게 민족과 언어가 다양하게 찢어진 와중에, 총체적인 무질서를 막기 위해서 기준 하나를 제정하신 것 자체를 나쁜 조치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정말 만에 하나 불공평한 특혜라고 해도.. 지금 죽은 언어인 원어 공부한 신학자들에게만 불공평한 특혜를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세상에서 제일 접근하기 쉽고 대중적인 외국어인 영어에다가 특혜를 주는 게 훨씬 낫고 '덜' 불공평하다.

2. 비유

(1) 죽어서 지옥 간 사람이 지옥에서 살아 나와서 막 증언을 하고 "지옥은 정말 있어!! 니들은 정말로 지옥 가면 안 돼!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돼..!!" 이렇게 증언을 하면 사람들이 말을 좀 들을 것이다.
→ 그러나 성경의 답은? 눅 16장 끝부분

(2)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나고 신자들의 휴거까지 목격하고.. 반대로 초자연적인 재앙까지 겪으니 그때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제 좀 정신 차리고 성경 읽고 왕국 복음에라도 순종할 생각을 할 것이다.
→ 그러나 성경의 답은? 계 9:20

(3) 옛날의 히브리어 그리스어 쓰던 사람이 살아나서 우리에게 "어 이건 이런 뜻인데?" 교통정리를 해 주면 성경 번역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될 것이다. 현지인이 깡패 아니겠나?
→ 과연?? 성경의 답은??? @@@

(4)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왜 내게 '아버지를 보여주소서?' 이렇게 따지느냐?
→ 킹 제임스 성경을 본 자는 이미 원어 원문 성경을 보았거늘.. (이하생략)

(5) 계시의 확대

  • 예수님이 사도들이 죽기 전에 다시 오실까? (초대 교회 시절)
    → 예수님이 일곱 교회 경륜까지 다 찍고 나서 21~22세기쯤엔 오실까? (현재)
  • 교황은 바로 그 적그리스도일까? (중세 유럽 종교개혁자들의 생각)
    → 교황은 미래 진짜 적그리스도의 짝퉁 예시 모형인 걸까? (현재)
  • 영국에서 성공회와 청교도를 중재하기 위한 단일 성경 (1600년대 당시)
    → 영어로 완벽하게 보존된 최종권위 성경 (현재)

성경 역본 문제에 대해서 성경의 비유를 적용해서 생각하면 이렇다는 뜻이다.

3. 임의성

성경 기록이란 건 증명 없이,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토 달지 말고 신자가 맞춰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심각하고 민감한 텍스트이다.

가령,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 진술 중 둘째 날엔 다들 아시다시피 "보기 좋았더라"가 유일하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둘째 날에는 뭔가 안 좋은 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기 좋았다는 말을 넌지시 생략하셨구나, 저 바닥엔 여전히 사탄 마귀 잔당이 있고 악이 있구나" 이렇게 유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변개되고 삭제되어서 없는 거면 논리가 정반대로 바뀌어야 된다~!!
"변개된 성서에서는 이 구절에서 '보기 좋았더라'를 고의로 삭제함으로써 재창조니 어쩌구니 하는 이단 교리가 들어올 빌미를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풀이해야 된다. 어느 게 맞는지를 우리가 판단할 수 없다!!

성경에 원래 어떻게 기록돼 있는지에 따라 우리가 까라면 까로 논리를 맞춰야 된다는 거다. 성경 말씀은 전적으로 하나님 마음대로 "임의적"이기 때문에..
그런데 성경이 내용이 다르고 표현이 제멋대로인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

그저 "여기서는 삭제됐지만 다른 구절에는 유사 내용이 있으니 상관없다", "아 그건 후대에 추가된 거고 오래된(???) 사본에는 없다", "원래 인간이 기록한 것이다 보니 오류가 좀 있을 수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이건 내 성질 같았으면 너무 답답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죽빵이라도 날리고 싶은 사항이다.. ㅡ,.ㅡ;;

세상에서는 인간이 제정한 법조문을 갖고도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가 삭제되는 걸 반대하고 투쟁한다.
"A와 B 중"이 "A와 B 등"으로 바뀌어서 뉘앙스가 달라진 걸 귀신같이 간파해서 반대파를 반박하고 버로우 태운다.
그런데 성경은 큰 뜻만 통하게 대충 아무렇게나 만들어져도 괜찮다?

세상에서 맛집을 고르고 물건을 살 때도 같은 값이면 무조건 상태가 더 좋은 걸 고르는데.. 성경에 대한 관념이 무덤덤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 사람에게 성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굳이 최선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4. 불신자에게도 100% 동일하게 적용 가능한 논리

뭐~~ "킹 제임스 떠드는 신자들도 행실이 개판이더라, 말보회가 이단이더라, KJV 쓰는 교회들 중에도 이단 많다"
이런 쓰잘데기없는 소리들이 도대체 왜 나오는 건지 난 개인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킹 제임스 성경을 거부하는 논리들을 보면.. "기성교회 vs KJV" 대신에 "불신자 vs 기독교/교회/예수"라고 치환만 하면 완벽하게 동일한 패턴이 많다.

예: 조선 시대 사람들은 다 지옥 갔나, 이 순신, 세종대왕도 다 지옥 갔나
→ 킹 제임스 이전엔 무슨 성경 썼는데? 한킹 나오기 이전에 주 기철 목사도 다 잘못됐나

지금 도대체 옛날 사람 얘기가 왜 나오는데?
난 그런 사람들이 애초에 예수 왜 믿는지, 교회는 왜 다니기 시작했는지 진지하게 궁금하다.
예수 말고 다른 구원의 길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종교(편의상의 표현)에서..
그렇게 쓰여 있는 성경이 한 종류만 맞고 나머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다 틀렸다고 말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러** 왔노라"
  • "부활의 날에는 그 여자는 칠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 "부활의 날에 **그들이 다 깨어나면** 그 여자는 칠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 "형제에게 화내는 자마다"
    → "형제에게 **이유 없이** 화내는 자마다"

아멘???

당연히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무인도나 감옥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아무 성경이라도 선택의 여지 없이 봐야 한다면 개역이니 NIV니 심지어 메시지니.. 따질 때가 아니다.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을 지경이라면 풀뿌리라도 뜯어먹고 쥐나 벌레라도 먹어야 하지 않는가?
옛날에 그 가난하고 열악한 여건에서 개역이라도 열심히 읽었던 선조들은 그 사람 사정이 따로 있고 우리는 처지가 그때와 다르다.

하지만.. 변개된 성경과 변개되지 않은 성경을 대놓고 한 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고 팩트와 정보가 다 마련돼 있는데 굳이 변개된 성경을 고의로 선택할 필요는 없다.
본인은 위쪽 같은 성경을 보기 싫고 아래쪽의 온전한 말씀을 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둘 다 옳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멘~! ^^ 대한민국이 아무리 물가가 올라서 먹고 살기 힘들기로서니, 풀뿌리나 쥐나 벌레를 찾아 먹어야 할 지경은 아니니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02 08:35 2023/03/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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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본공수 61편 납치 사건"은 지난 1999년 7월 23일, 우리나라로서는 아직 씨랜드 화재 참사(6월 30일)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시절에 일본 국내선으로 뛰던 보잉 747 대형 여객기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얘는 지역만 생각하자면 우리나라와 별 관계 없어 보이지만, 사건의 발생 배경을 생각하면 본인 같은 사람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가해자는 1970년생으로 나름 똑똑하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철덕이었는데.. 대학교 시절에 스케일이 더 큰 항덕으로 전향(!!!)했다. 흐~ 난 대학 말년 때 겨우 철덕에 입문한 케이스인데 말이다. (물론 그 뒤로 무늬만 쬐끄맣게, 명함 내밀기도 민망한 실력이지만 약간 항덕/밀덕 표방을..)

하지만 그 사람도.. 그렇게 늦깎이로 입문했다고 항공사에 승무원이나 사무직, 지상 조업도 아니고 여객기 조종사로 당장 입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비행 시간을 뭘로 어떻게 채우려고? 취미와 직업은 엄연히 서로 다른 영역이다.

결국 그는 대학 졸업 후엔 철도 회사에.. 그것도 열차 운전도 아니고 JR화물에서 상하차 관련 초라한 단순노동 직군에 입사했다. 허나, 음침한 우울증 증세로 인해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업무 실수도 잦았다. 이 때문에 근속연수 2년을 못 채우고 무단결근 잠적하면서 회사를 뛰쳐나와 버렸다. (1994~96)

이 사람은 점점 더 사회성이 오그라들었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혔다. 한때는 자살 시도도 했고.. 집에 틀어박혀서 플심 게임에만 심취해서 살았다.
게임으로는 비행기를 기막히게 조종하면서 아무 사고 없이 사뿐히 이착륙을 시켰다고 한다. 그는 “자기는 똑똑하고 철도/항공에 빠삭한 전문가인데 사회에서 안 알아 준다”는 쪽의 망상에 빠지게 됐다.

그래도 이 사람은 진짜 똑똑하기는 했는지, 컴퓨터 해킹과 본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짓을 현실의 항공업계를 상대로 해냈다~!!
인터넷으로 접한 하네다 공항 내부 구조를 보고는.. 보안 취약점을 발견한 것이다.

“환승을 가장해서 요렇게 요렇게 슬며시 이동해서 출국장으로 들어가면 검사받지 않은 짐을 기내에 반입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걸 착하게 공항과 항공사 측에다가 신고도 하고 “나 잘했죠? 그러니 공항 보안요원으로라도 채용해 주세용~” 라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이 제안마저도 전부 무시 당했다.

결국 이 사람은 폭주해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자기가 찾아낸 그 방법대로 기내에다 흉기를 실제로 반입했고, 이륙이 끝나자마자 그 흉기로 여객기를 탈취해 버렸다.
승무원을 위협해서 조종실로 어째어째 들어갔다. 부기장은 내쫓는 데 성공했지만, 기장은 끝까지 말을 안 들으니 부득이하게 흉기로 찔러서 살해하게 됐다.

이 사람은 플심으로만 보던 여객기 조종실을 실제로 구경하고 이것저것 조작하는 소원을 이뤘지만.. 이것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예비 열쇠로 조종실 문을 따고 다시 들어온 승무원과 승객에 의해 곧 제압당했기 때문이다. 이때는 가해자가 흉기를 내려놓고 조종실 감상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무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걸로 보인다.

저 사람은 악의적인 “다같이 죽자” 자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문적인 베테랑 747 조종사도 아니었다. 그냥 놔 뒀으면 자기 망상대로 비행기의 성능 한계를 시험한답시고 각종 기기들을 마구 건드리다가 기체를 통째로 추락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다행히 부기장이 다시 비행기를 접수해서 상황을 복구했다. 그 덕분에 비행기가 추락한다거나, 승객이 더 죽거나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장이 사망한 관계로 비행기는 목적지로 가지 못하고 도로 회항하게 됐다.

가해자는 2킬 이상이 아닌 only(?) 1킬인 점, 그리고 정신병 정황이 감안되어 사형까지는 아니고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살인에다가 500명이 넘게 탔던 여객기를 상대로 하이재킹이니, 평생 감방에서 썩기에 부족함이 없는 너무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현재까지도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다. 이 사람의 범행 수법이 알려진 뒤에야 하네다 공항의 내부 구조는 당연히 보안 패치가 행해졌다.

저 사람을 보안 요원 특채까지는 안 시키더라도, 항공 당국이 취약점 신고를 받아들이고 간단히 포상이라도 해 줬으면.. 저렇게 기장이 순직하고 저 청년 인생 쫑나고, 수많은 승객들이 당일 스케줄이 아작나는 불편을 겪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참 재능이 아깝다. 일본은 국가적인 손해를 당하게 됐다.

“안에서 잠그면 밖에서는 절대 못 열죠” -- 영화 <라이터를 켜라> 승객 대사가 문득 생각난다. 이거는 여객기가 아니라 열차 버전이다만..
이 때문에 주인공 허 봉구는 열차 지붕 위를 기어가서 운전실로 잠입하는 미친 짓을 한다. 이때는 경부선 철길이 전구간 전철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설정이 가능했다.

저 사건에서는 쫓겨난 승무원들이 비상용 예비 열쇠를 갖고 있어서 조종실에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9· 11 테러 이후에 비행기들이 안에서 열어 주지 않으면 어떤 경우에도 조종실 잠입이 진짜로 절대 안 되게 구조가 바뀌어 있다. 이게 비행기의 한쪽 보안은 강화시켰지만, 반대로 조종사 자체의 일탈 같은 다른 상황에 대한 보안은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끝으로, 이 납치 사건을 보니 먼 옛날 1971년, 우리나라의 F27기 납북 미수 사건도 같이 떠오른다.
이 사건에서는 항덕은 아니고--그 나라 울나라 여건상 강원도 깡촌에서 항덕이 되기란 불가능..-- 그냥 사회 불만 니트처럼 살고 있던 어느 20대 청년이 괜히 북한 가서 팔자 펴고 싶어서(???) 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제 폭탄을 만들어서 국내선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렸다. 이때는 부기장이 폭탄을 껴안고 자폭하는 바람에 이 사람 한 명만 순직하고 희생됐었다. 범인은 체포가 아니라 그냥 현장에서 사살됐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16 08:35 2023/02/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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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짜 뉴스

인터넷과 SNS라는 게 온갖 날조 주작 가짜 뉴스의 온상이라는 비판과 성토가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건 절반 이하만 맞는 말인 듯하다.
"한국은 UN 지정 물 부족 국가", "일제가 석굴암을 훼손했다", 일제가 박은 쇠말뚝, 아베 노부유키의 유언(???), "선풍기 틀어 놓고 자면 죽는다", "김 민지 조폐공사 사장 딸 이야기" 등등등..

인터넷과 SNS가 없던 시절.. 통신 불편하고, "서울 간 놈과 서울 안 간 놈이 싸우면 안 간 놈이 이길" 확률이 더 높던 시절이야말로 가짜 뉴스, 루머, 낭설, 괴담, 유언비어, 도시전설들이 더 많이 나돌았다. 검증을 하기가 극도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인터넷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게 아니다. 이건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닌 것과 거의 같은 맥락이다.
인터넷은 가짜 뉴스 주작이 빠르게 퍼지긴 하지만 그래도 반박되고 바로잡히는 것도 금방 되는 편이다. 그 대신 굉장히 저렴하고 간편하게, 공평하게 인류의 집단지성에 접근할 수도 있다. 정보력만 뛰어나다면 말이다.

"예수님 부활이 사실인가?" 이런 걸 위키나 네이버 지식인에서 찾는 건 좀 난감할 것이다. 그러나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이 사실인가"를 확인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2. 사진과 영상의 화질

옛날에는 뿌연 흑백 사진과 흑백 영상이 더 옛날 기록의 특징이었는데.. 이제는 시퍼런 컬러 사진과 컬러 영상도 3, 40년 가까이 전의 옛날 기록이 되어 간다. 이게 정말 어색하게 느껴지고 문화 충격으로 다가온다.
단지, 옛날 껀 해상도가 낮고 jpeg artifact가 존재하며, 특히 영상은 종횡비가 지금 같은 와이드가 아니었을 뿐이다.

차라리 아주 옛날 영화 필름은 복원을 잘 하면 1980년대의 것도 2K니 4K급으로 리마스터링이 된다. 하지만 화질이 제일 안 좋은 채로 굳어져 버린 건 1990년대의 '비디오' 영상인 것 같다. 이건 정량적인 방법으로 리마스터링이 불가능하다.;; 아날로그 스타일의 노이즈와 화질 열화는 요즘 세대가 알지 못하는 정말 인상적인 현상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AI가 출동하면 어떨까..??
옛날에는 "실종된 이 아동이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이런 외모일 것" 이런 기술이 가끔 무슨 대학원 연구소나 스타트업 기업에서 깜짝쇼로나 선보이던 수준이었다. 신 윤복 화가의 풍속화를 '애니메이션'화해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도 1990년대 최첨단 CG 기술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더 나아가서 개나 소나 옛날 흑백 영상을 컬러화하고 저화질 영상을 거뜬히 리마스터링하고 있다. 이건 소실된 정보를 복원한 게 아니라, AI를 토대로 재구성 각색해서 넣은 것이다. 기술적으로 단순히 고종/순종 어차를 복원해서 때 빼고 광 낸 수준이 아니라, 시발 자동차의 레플리카를 새로 만든 것에 가깝다.
이런 게 쌍팔년도를 거쳐서 2020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기술의 혜택이라 하겠다.

자동차 안, 건물 안, 길거리 곳곳에서 고화질 올컬러 CCTV와 블랙박스 카메라가 넘쳐나는 이 시국에...
난 집 현관 비디오폰의 영상이 컬러인 것 실물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다.. >_< 새로 지어진 집으로 거주지가 크게 바뀔 기회가 별로 없었던 듯..

3. 스마트폰

(1) 스마트폰 때문에 공중전화는 말할 것도 없고 재래식 건물 유선전화도 갈수록 없어지고 회선이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송수화기에 꼬불꼬불 케이블 달린 재래식 전화기의 외형 자체가 깡그리 없어진 건 아니다. 기업 내부에서 쓰는 인터폰에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게 호락호락 없어지지는 않을 듯하다. CCTV가 폐쇄회로 영상이라면 인터폰은 폐쇄회로 통신에 대응할 것이다.

(2) 진짜로 영영 없어진 건.. 인류 역사상 전화기의 평균 싸이즈가 가장 작았던 시절.. 2000년대 초중반의 피처폰/폴더폰이지 싶다.
그땐 기기마다 충전 단자가 호환이 안 돼서 불편하긴 했다만.. 그래도 배터리도 왕창 오래 갔다. 한번 충전하면 2~3일은 아무 걱정 없었다. 통화 안 하고 그냥 대기만 시켜 놓으면.. 본인의 경험 기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가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_-;;

(3) 아 그런데, 요즘은 삼성에서 접어서 크기를 더 줄일 수 있는 엄청난 스마트폰을 내놓으면서 앞의 (2)와 같은 편견도 어느 정도 뒤바꿔 놓았다.
그 반면, 펜이 달려 있는 '노트' 계열 스마트폰은 유행이 지났는지 단종되었다.

(4) 3년 반 가까이 사용해 온 아이폰이 언제부턴가 짹을 연결해도 충전이 도무지 되지 않아서 수리를 받았는데.. 세상에나, 단자 안에 먼지가 한 웅큼 껴 있었다. 그걸 청소하니 인식이 다시 거짓말처럼 잘 되기 시작했다.
전자 기기의 먼지 청소는 옛날 볼 마우스 내부의 먼지 청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먼지가 이렇게 문제이면 짹은 뚜껑 같은 게 둬서 충전기를 꽂지 않았을 때는 밀봉해서 먼지가 들어오지 않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배터리는 완전히 밀봉해서 함부로 분리를 못 하게 만들어 놓고는 이건 참.

(5) 스마트폰을 쓰다 보면.. 카톡, SNS, 은행 앱, 갤러리 등.. 즐겨 쓰는 앱이 정해져 있다. 깔려 있는 모든 앱을 골고루 쓰는 게 아니다.
그러니 실제로 쓰는 앱만 빈도에 따라 한 화면에 자동으로 분류해 주는 기능이 좀 있으면 좋겠다.
옛날에 Windows XP 시절에 잠깐 있었던 '바탕 화면 정리' 마법사와 개념적으로 비슷한 기능인데.. 일단 내가 써 본 폰에서 이런 걸 자동으로 해 주는 건 딱히 못 봤다. 그냥 수동으로 앱들을 한 화면에다 정리를..;;
더구나 스마트폰은 PC 화면과 달리 별도의 메뉴 같은 게 없이 그냥 바탕 화면을 찍는 것만으로 앱을 실행하니, 바탕 화면이 좀 더 능동적으로 optimize가 됐으면 좋겠다.

(6) 그리고 스마트폰은 PC와 달리 영문의 입력도 IME가 개입하는 게 가능하며, 실제로 온갖 자동 완성과 자동 교정 기능들이 개입한다. 그런데 가끔은 오타가 아니고 진짜로 내가 입력하는 단어나 이니셜을 그대로 입력하고 싶은데 입력기가 선택할 여지를 안 주고 오교정한 단어를 그대로 내보내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PC라면 Ctrl+Z를 눌러서 MS Word 같은 앱의 각종 자동 고침 동작을 취소할 수 있는데 폰은 그렇지 않고 오교정을 철회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 게 불편하다.

4. 그 밖에

(1) 개인적으로는 무선 키보드(+ 무선 마우스)가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싫고 마음에 안 든다. 건전지를 번거롭게 교체해야 하는 데다, 오동작 반복 입력 현상이 너무 잦다. 이것도 무슨 전자파인지 간섭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거라고 하는데, 해결됐으면 좋겠다.

(2) 옛날에는 신용카드가 더 딱딱하고 번호도 양각으로 툭 튀어나게 새겨져 있었는데, 요즘 발급되는 카드는 다 매끈한 평면 재질이다. 그런데 내 경험상 이런 카드는 단말기에서 인식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꽂아서 인식이 안 돼서 옛날처럼 다시 긁어야 한다. 이런 건 왜 발생하는 차이점인지 모르겠다.
하긴, USB 메모리도 단자 부분이 튼튼한 금속인 게 있고, 그렇지 않고 가녀린 플라스틱인 게 있는데.. 전자가 훨씬 더 튼튼하고 오래 가고 인식이 더 잘 된다. 후자는 좀 싸구려인 것 같다.

(3) 요즘은 매일 아침 11시 반에 우한 폐렴 확진자이든 자연재해이든, 폭염 주의이든, 실종자 안내이든 뭐든 무조건 오는 것 같다. 재난 문자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 전쟁, 사변, 공습경보처럼 진짜로 심각한 상황에만 좀 왔으면 좋겠다.
국내에서 이런 게 최초로 오기 시작한 계기가 지난 2016년쯤인가 경주 지진이었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13 19:35 2023/02/1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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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실수한 이유

성경에는 예수님의 수제자라 일컬어지던 베드로의 인생일대 흑역사가 기록돼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 베드로는 주님을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죽어도 님하와 같이 죽겠습니다!"라고 호언장담을 해 놓고는..
정작 예수님이 배반당하고 붙잡히시던 타이밍엔 갑자기 사람이 바뀌었는지, 그분을 세 번이나 부인해 버린 사건 말이다.

게다가 부인할 때 심지어 저주하며 맹세했다고.. “아 ㅆㅂ, 내가 저 사람을 본 적이라도 있다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니까? 성을 간다! 내가 할복이라도 해야 내 말 믿어 줄 거야?” 급의 극언까지 불사했다고 성경은 진술한다.

이건 인간의 멘탈의 한계를 너무나 강렬하게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저렇게 될 수 있다. 그러니 "꼴 좋다 졸장부 찌질이 등신"이라는 비난보다는 동정과 공감의 시각이 더 강한 편이다.
"평소에 허세 똥군기만 잔뜩 부리던 녀석일수록 정작 실전에서는 총소리만 나도 혼비백산해서 달아날 거다. 천하의 베드로조차 저랬는데 하물며 너 같은 쪼렙 X밥은?"과 같은 패턴으로 아주 즐겨 거론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다른 시각도 있다. 베드로는 천성이 저돌적이며, 저 정도로 찌질한 겁쟁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호언장담 맹세 자체는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적 진영의 똘마니에게 용감하게 검을 휘둘러서 귀 한쪽을 절단하기까지 했다. (요 18:10)
예수님이 베드로를 저지하지 않았다면 그는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로마 병정들을 그렇게 온몸으로 저지하다가 혼자 또는 동지 몇 명과 함께 장렬히 산화하여 열사의 길을 갈 수도 있었다..!

허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선의의 대응에 전혀 호응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뜯어말리셨다. “야, 내가 어디 무력이 부족해서 잡혀 가는 줄 아니? 지금은 성경 기록이 성취되고 있는 순간 아니냐? 너나 정신 바짝 차리고 처신 잘 하라고..”
그리고 그분은 베드로를 말리는 걸로도 모자라서 공격을 받아 귀가 짤린 그 똘마니를 도로 치료까지 해 주셨다! (눅 22:51)

이러니 베드로는 예수님의 언행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채, 급 ‘시무룩~’ 무기력 모드가 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모세의 소싯적 일화가 떠오른다. 자기는 나름 동족을 위한답시고 어느 노예 감독을 몰래 죽여서 없애 줬는데, 동족은 그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다음날 “허 참, 당신은 노예 감독 다음으로는 우리도 때려죽일 거야?”라고 모세에게 따진 것이다. 그러니 모세는 급 당황하고 멘붕하여 이집트를 떠나서 도망치게 된다.)

베드로는 영적으로 최악의 취약 상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당부처럼 딱히 믿음의 강건을 기도하며 간구하지 않았다. 그러면 안전한 곳으로 멀리 멀리 도망이라도 쳤느냐 하면 그리하지도 않고, 위험한 적진 내부를 혼자 계속 맴돌면서 염탐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어? 저 작자도 예수랑 한 패였어요! 내가 분명히 봤어요!” 이런 말이 들리니 허를 완벽하게 제대로 찔린 것이다. 갑자기 겁에 사로잡혔는지, 멘탈이 나갔는지, 아니면 고의로 삐딱서니를 타고 싶었는지.. 이때 베드로는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태도로 돌변하여 예수님을 거듭해서 부인하게 됐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여 본인이 베드로의 심경 변화 과정을 추측해 보자면 이렇다.
그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그 정도로 단순무식하게 비겁한 허세 겁쟁이는 아니었을 수 있다.
설마.. 의기탱천해 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괜히 쿠사리를 먹여서 의욕을 꺾는 바람에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부인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겠는가?? 당연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보기에 베드로는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성경 말씀을 제대로 믿지도 못한 채, 내면의 두려움을 그저 알량한 혈과 육과 객기로 찍어누르고만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분은 베드로의 본질적인 상태를 간파하고서 그러지 말라고, 영에 속한 싸움에 대비하라고 당부하셨다. 하지만 베드로는 여기에서 실패하고 넘어진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 용감하게 물 위를 걷기 시작했는데 '어어..' 딴 생각을 하다가 불안해지고 물에 빠져 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요 11의 "예수께서 우시니라"는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이나 동정심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 것이다(창 50에서 요셉이 운 이유도 같이 참고를..).
그것처럼 베드로의 흑역사에도 당장 눈에 보이는 예수님의 정적들에 대한 두려움만이 기여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인간이 어디에서 무너질 수 있는지, 신앙생활이 단순 사회 운동이나 정치적인 투쟁과는 무엇이 다른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남을 죽이는 의사 투사든, 자기를 죽이는 열사든 무엇이건 말이다.

그나저나 예수님이 체포되던 당시에 제자들이 모두 성경을 잘 알고 성령 충만하게 FM대로 대처했다면 어찌 됐을까?
“스승님을 잡아갈 거면 우리도 다같이 잡아 가시오! / 우리부터 먼저 죽이시오~” 이렇게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양 옆에 들러리 도적 대신에 베드로와 요한 같은 제자가 같이 달리게 됐을 수도 있다.

혹은 악의 무리들이 예수님만 잡아들이고 제자들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체포됐을 때처럼 골방에서 열심히 기도라도 했을 것이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꾸지람을 듣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지 싶다.
뭐, 다~ '만약에 그랬다면?' 같은 낭설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고 보니 베드로뿐만 아니라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실컷 배반하고 나서는 어떤 계기로 마음이 또 바뀐 걸까? 뭔 바람이 들어서 뒤늦게 돈을 반환하고 난리를 치다가 자살을 했겠는지도 적지 않게 의문이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09 08:35 2023/02/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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