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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간에 이종교배를 하면 예전에 없던 새로운 종(종간잡종) 자체는 나올 수 있다. 동물의 경우 노새나 라이거가 대표적인 예이고 식물도 그런 예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교배했다고 원하는 형태의 잡종이 툭툭 튀어나오는 건 아니다. 가령, 감자와 토마토가 지상과 지하에서 동시에 열리는 포메이토 같은 건 SF 수준의 유전자 조작이 필요해 보이는데 만드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감자와 토마토 정도야 그냥 따로 키우면 되지, 왜 그런 이상한 생물을 가성비 차원에서 굳이 만들 필요가 있는지 필요성 자체조차 난 잘 모르겠다. 이런 거라도 만드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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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채찍질 하는 게 유전공학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또한 잡종은 일반적으로 번식 가능하지 않다. 노새와 라이거는 유전자가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이대로 대를 잇는 자손을 남길 수는 없다. 유전과 관련하여 나름 금도의 벽이 있는 셈이다. 이 분야에 대해 비전공자로서 본인이 아는 건 이 정도까지가 전부이다.

그런데 동물을 성질을 죽이기 위해 화학적으로 거세시켰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식물에다 특수한 처리를 해서 씨 없는 포도나 씨 없는 수박을 만든 건 정말 대단해 보인다. 프로그래밍으로 치면 치밀한 API 훅킹이나 문서화되지 않은 꼼수 기능을 동원해 불법복제 크랙을 만들거나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과 비슷해 보인다.

씨 없는 수박의 경우 씨가 아예 안 만들어지는 건 아니며, 검고 딱딱한 진짜 씨가 생기기 전에 하얗고 물렁물렁한 초기 단계의 씨 흔적 정도는 남아 있다고 한다. 이건 '뼈 없는 닭갈비' 같은 급은 아닐 테니까. 그래도 그런 씨의 잔재는 수박을 먹는 데 불쾌함을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그 자그맣고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씨에서 엄청난 동식물 성체가 자라난다는 건 손톱만 한 SD카드에 수 GB에 달하는 정보가 저장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자연 창조 섭리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 열매 안에 씨가 안 생기도록 유전적인 제어는 또 어떻게 하는지 이 역시 신기한 영역에 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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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이말년 본좌님의 압박..!! ㅋㅋㅋㅋㅋㅋ
단, 우 장춘 박사는 이미 일본인 학자에 의해 발명된 씨 없는 수박을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와서 소개했을 뿐이지, 통념과는 달리 그걸 최초로 발명한 분은 아니다.

우 박사가 업적을 남긴 분야는 따로 있다.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해서 얻은 잡종이... '유채'라는 이미 존재하는 다른 제3의 종과 유전자 차원에서 완전히 동일함을 입증했다. 라이거와는 달리 번식에도 아무 문제 없다. 그게 유채에서만 어떻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음. 어떻게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했는데 배추와는 별 관계 없어 보이는 유채가 나오지?

유채는 공교롭게도 한국어와 영어에서 모두 이름과 관련된 우여곡절이 존재한다.
'유채'라는 단어는 한자어인데, 얘의 순우리말 이름은 웬 뜬금없는 '평지'이다. 물론 지금은 plain / flat land라는 한자어에게 소리를 완전히 빼앗겨서 유채를 저렇게 부르면 아무도 못 알아들을 듯하다.

영어로는 더 골때리게도 rape여서 흉악 범죄와 완전히 동음이의어이다! 욕설과 동음이의어인 ‘시발 자동차’가 차라리 덜 민망할 지경. 그래서 유채씨를 짜서 만든 식용유를 과거에는 rapeseed oil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캐나다’라는 나라 이름을 일부 집어넣어서 ‘카놀라유’라는 새로운 마케팅 명칭이 통용된다.

우 박사는 이 유채를 연구해서 1930년대에 유전학적으로 '종의 합성'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다. 이 덕택에 종의 분화를 설명하는 다윈의 진화론이 일부 수정되고 보강됐다고 한다.
여느 외국인도 아니고 무려 한국인 과학자가 종과 종 사이의 변화를 실험으로 입증해서 U's triangle이라고 자기 이름을 학계에 남겼을 정도인데 이건 창조 진화 논쟁에서 꽤 중요한 사건이 아닌가? 특히 대진화를 믿지 않는 진영에서 인정할 건 인정하고 해명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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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진영의 아젠다는 진화란 소진화와 대진화로 나뉘며, 종과 종이 바뀌는 대진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반면 안티들은 대진화도 얼마든지 관찰되고 실험으로 입증되었는데 창조좀비들이 스스로 귀를 막고 눈을 막아서 반박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깐다.

창조 진영에서 말하는 "종과 종 사이의 변화는 관찰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화학으로 치면 원소가 다른 원소와의 화학 반응을 통해서 다른 원소로 변하는 일은 없다는.. 그러니까 싼 물질에다 마술을 부려서 금을 짠~ 만들겠다는 연금술은 그저 떡밥일 뿐 그런 기술은 존재 불가능하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주장으로 보인다.

오늘날이야 원자보다 더 작은 단위(원자핵, 전자 등등)의 관찰과 조작을 해서 동일 원소의 동위원소도 논하며, 무슨 방사능 가속 실험실에서 새로운 원소를 너끈히 만들어 내고 심지어 이런 원소가 존재한다면 이런 특성을 갖고 있을 거라고 예측까지 가능한 세상이 됐다. 그러니 원소야말로 절대불변의 물질의 본질을 나타내는 경계 단위라는 통념은 엄밀히 말해 진작부터 깨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술 덕분에 원래의 목표이던 구리를 초원자 단위로 조작해서 금을 뚝딱 만드는 게 가능해지고 저렴하게 실용화됐나? 금값이 구리값과 대등하게 폭락하고 금융계에 일대격변이 일어났나? 그렇지는 않다는 거다. 극한의 환경에서 잠깐만 존재 가능하다가 0.1초 만에 원자핵이 붕괴해서 다른 원소로 변해 버리는 그런 불안정한 방사성 원소를 하나 만들어 낸 게 학술적인 의미 이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당장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인조 다이아몬드는 있어도 인조 금 같은 건 없다는 얘기다. 또한 인조 다이아몬드조차도 퀄리티나 제조 원가가 다이아몬드의 가격을 흑연의 가격과 동등하게 낮출 정도의 물건은 결코 아니다.

그러니 생물 쪽으로 가서 종을 원소에다 비유해 보자. 유채건 뭐건 그런 종간변화가 관찰된 것 자체야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종의 기원' 진화 이론이 바뀌었다고 해서, 원숭이건 뭐건 미지의 공통 조상이 진화해서 지적 생명체인 인간이 되었다는 그 비현실적인 확률을 설명하는 데 그게 실질적인 기여를 한 건 여전히 거의 없다.
그러니 창조 진화 논쟁은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고 서로 핀트가 어긋난 쪽만 공략하면서 소모전을 계속하고 있으며, 여전히 생명의 기원과 분화에 신의 창조가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물론 신의 개입이라는 건 과학으로 재연이나 설명 가능하지는 않다. 과학은 천체들이 뉴턴의 법칙대로 돈다는 것만 설명할 뿐, 처음에 누가 그 천체들을 만들어서 언제 그렇게 힘을 가해서 뺑뺑이 돌리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답을 주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달은 그 외형이나 특징이 너무 특이해서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지 아무래도 우연히 저렇게 만들어진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격이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할 것이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생물, 생리, 천문 등 여러 분야에서 사람에게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지 말라는 법칙을 정해 놓았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들을 거스르고 금기의 벽을 깨고, 자신에게 당장 불편하다 싶은 건 안 불편하게 하는 기술을 그 좋은 머리로 꾸준히 개발해 왔다(전 7:29).

간단한 예부터 들자면..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창 3:19)에 반대하여 땀 안 흘리고 편하게 일하려고 에어컨 같은 엄청난 냉방 기술을 개발했으며, '고통 중에 자식을 낳을 것이요'(창 3:16)를 무효화하려고 무통 분만 기술을 개발했다.
'땅을 일정 주기로 쉬게 하라'라는 명령을 어기려고 질소 합성법을 개발하여 식량 생산에 치트키를 입력해 넣었다.
인간은 땅과 첫째 하늘까지만 영역을 두고 사는 게 원칙이지만.. 알다시피 우주 개발도 진행해서 왕년에는 인간이 달에까지 갔다 왔다.

분야를 불문하고 이런 엄청난 일들을 벌여 온 인간인데 하물며 유전공학 쪽은 어련하겠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잡종· 이종교배를 통해 생명의 본디 프로토타입인 유전자가 교란되는 것을 명백히 싫어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레 19:19가 대표적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노새'라는 가축이 가성비가 뛰어나고 좋으니 잡종을 만들며, 그 밖에 어느 동식물이든 필요하다면 유전자 조작도 얼마든지 일삼을 것이다.

자, 그런데.. 이런 일체의 시도 자체가 다 나쁘기만 할 것일까? 그걸로 인해 무슨 성경이나 하나님의 권위가 깎이기라도 하는 걸까?

하나님의 법칙을 자꾸 거슬러서 인간이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보이지 않는 대가를 치르고 삽질하는 것이야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이고 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더운 여름에 에어컨이 발명된 것 자체를 저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주 개발을 하느라 돈지랄 하는 걸로 다른 사회 복지에나 좀 투자할 것이지!" 뭐 정치적으로 이런 이견이 제기된다면야 그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우주 개발 덕분에 월석의 특징이 밝혀지고 천왕성과 명왕성 사진이 공개된 것 자체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비록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법에 도전하는 영역일지언정 과학 기술 자체는 거대한 칼과 같아서 기본적으로 가치 중립적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크리스천이 전쟁 무기를 생산하는 회사에 다니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듯, 유전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내지 NASA에서 근무하는 항공 우주공학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전혀 없다.

기독교 변증법 중에서 좀 구차하다면 구차하지만, "인간이 지금까지 밝혀 낸 지식이 이것밖에 안 되는데 그 영역의 밖에 있는 신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게 있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대상을 외계인으로 바꿔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며, 난 둘 다 말이 된다고 본다. 몇백억 광년에 달하는 방대한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인간밖에 없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으니 SETI 프로젝트도 하고 옛날에 외행성 탐사선에다가 외계인들 있으면 보라고 금속판도 집어넣는 쇼를 한 것이다.

물론 본인은 크리스천으로서 이 방대한 우주에 지적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여긴다. 허나 그건 내 믿음일 뿐이니,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큼이나 외계인을 찾는 그 심정은 동의하진 않더라도 동일하게 기회를 보장해 주고 존중해 줘야 한다고 본다. 그 시도 자체를 종교의 힘으로 봉쇄하고 강제로 찍어누르는 건 옛날 갈릴레오 재판 같은 병신짓을 재연하는 것일 테고.

말이 길어졌는데,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다른 분야들도 그렇겠지만 과학과 종교 사이의 논쟁을 보면 양 진영들이 진실을 서로 다른 쪽에서 부분적으로만 갖고 있으며, 상대방을 향해서 뭔가 헛발질만 일삼는 게 눈에 많이 띈다. 원거리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말이 안 통하니, 서로 빡치고 감정만 상해서 결국은 인신공격을 일삼는 백병전으로 논쟁의 양상이 바뀐다.

본인은 창조과학(?) 쪽이 문자적인 6일 창조를 목숨 걸고 사수하는 것 하나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창 1~3이 허구 설화라고 매도하고 하루가 원어로는 어떻고 헛소리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허나 예전부터 내가 우려해 왔듯이 창조과학 진영도 다른 데서 쓸데없는 적을 만들고 삽질하는 게 너무 많아서 역효과가 크다. 과학과 성경 어느 하나도 확실하게 방어를 못 한 채 쓸데없이 저격당하고 털릴 구실을 많이 주고 있다.
자기들이 삽질해 놓고는 감당 못 하겠으면 딤전 6:20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이라는 실드 뒤에서 정신 승리하고 쏙 숨어 버리는 식이니 누가 인정해 주겠는가?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그럼 창조 과학조차도 "거짓으로 과학으로 불리는 것"일 가능성은 없을 줄 아는가??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지금 기독교회들은 진화론 걱정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노아의 홍수의 과학적 증거가 발견됐네 그딴 걸 한가하게 논할 때가 아니다. 과학에 앞서 자기들 본업인 성경 해석 노선부터가 진영별로 다 찢어지고 파편화돼 있다. 이게 해결되지 않는 한 창조과학회 식의 문제 접근 방식은 세속 과학계를 절대로 설득할 수 없고 논쟁을 이길 수 없다고 난 장담한다. 자기 코가 석 자라는 것부터 알고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성경과 과학 논쟁의 핵심에 있는 '간극'이고 말이다. 이전 세상의 멸망을 지질학· 천문학과 결부지어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성경 용어와 루시퍼의 타락 같은 자기네 교리 체계부터 정립하는 게 선행돼야 할 것이다.

제발 쓸데없는 논쟁 헛발질은 하지 말고... 상대방의 의견을 반대하더라도 그 의견이 정확하게 뭔지는 알고서 반대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창조 진화 논쟁은 여느 정치· 종교 분야 논쟁만큼이나 서로 덕 될 게 없어 보인다.
신자들은 인간이 저렇게 도발적인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무슨 하나님이나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거라는 속좁은 생각은 하지 말고, 오히려 걔네들 위에서 여유롭게 "그래 종과 종 경계도 얼마든지 그렇게 흔들릴 수 있지. 하지만 그래 봤자 부처님..은 아니고 하나님 손바닥 안일 뿐이야" 이렇게 상대하려면 과학 지식과 성경 지식이 모두 균형 있게 갖춰져 있어야 할 텐데.. 쉬운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상, 지난 여름에 수박 먹으면서 문득 들었던 잡생각을 글로 정리해 보았다.

* 여담 1: 우 장춘, 석 주명, 공 병우 박사

우 장춘 박사는 일본에서 고생 잔뜩 하고 자라면서도 공부 엄청 열심히 해서 과학자로서 성공했고, 또 해방 후에 우리나라에서도 일체의 물욕과 명예욕 없이 너무 우직하게 학자의 길, 농학자 외길만 고집한 존경스러운 분이다.
사적으로 쓰라고 준 돈도 몽땅 영농 선진화 연구를 위해 종자를 구입하는 데 쓰거나, 연구소에 물을 대기 위해 우물을 파는 작업을 발주하는 비용으로 써 버린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 와중에 그래도 자식 농사도 잘 지어서 딸은 미국에서 저명한 대학 교수가 돼 있다. (영문학자+수필가인 피 천득의 딸도 외국에서 대학 교수인데.. 그것도 부친 같은 문과가 아니라 물리학과로!)

나비 박사 석 주명은 6· 25 전쟁 때 표본 데이터도 날리고 서울에서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인해 참 원통하고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지만, 우 장춘은 생활권이 일본과 부산 사이여서 그런지 6· 25의 포화도 직접적으로 맞지 않고 잘 생존한 듯하다. 농작물뿐만 아니라 수목 쪽으로도(산림 녹화) 공헌한 숨은 과학자들이 여럿 있는데, 언젠가 이런 분들에 대해서도 다룰 일이 있으면 좋겠다.

한편, 공 병우 박사는 애초부터 한반도 북부의 실향민이기도 하고 6· 25 때 이북에 끌려가기까지 했다가 월남했다.

* 여담 2: 당신은 어느 레벨인가?

(1) 이 세상은 우연히 저절로 생긴 게 아니라 신에 의해 창조된 거다.
이 정도야 뭐 물증이 없더라도 심증상으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증명도 반증도 가능하지 않은 신념의 영역이니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다.

(2) 이 세상은 신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6천여 년 전에 엿새 만에 창조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입장은 “지금 현 세상이 그때 그렇게 창조된 거지 그게 우주 전체의 완전 첫 기원을 말하는 것은 아님”이다. 6일 창조만 이용해서 모든 기원을 갖다붙이고 노아의 홍수만으로 모든 지질 시대 격변을 설명하다 보면, 결국은 어거지가 등장하고 생물학뿐만 아니라 지질학 천문학까지 여러 분야와 적을 만들게 된다.
많고 많은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결국 유신론적 진화론을 동원하거나 '하루'의 문자적 해석을 부정하게 된다. 성경의 용어 정의는 놔두고 관점을 바꿔서 "세상들"을 분리할 생각은 왜 안 하는 걸까? 성경을 바르게 나눌 줄 모르기 때문이다.

(3) 지구는 가만히 있고 태양 포함 다른 행성과 별들이 지구를 돈다. 일명 천동설.
성경에는 여호수아와 히스기야 시대에 그림자의 회전이 잠시 멈추었다는 기록이 있긴 한데, 내가 보기엔 그것도 차라리 지구의 자전을 중단시키는 게 태양의 공전(?)을 중단시키는 것보다는 구현하기 더 쉬울 거 같다. -_-;;

(4) 지구는 납작 평평하다.
설마 '땅의 원 위에 앉으신 이'(사 40:22) 내지 '땅의 네 모퉁이'(계 7:1) 같은 걸 flat earth의 근거로 갖다붙인 건 아니겠지.. 3~4 때문에 1이나 2(부분)까지 도매급으로 비웃음과 조롱 당할까 심히 두렵다.
1~4를 두고 생각나는 한자성어와 속담이 있다. ‘화사첨족’. 잘 그린다고 하니까 뱀 발까지 그린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6 08:28 2016/11/1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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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저항에 대한 생각

물이나 공기 같은 물질은 고정된 형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학적으로 유체(fluid)라고 분류된다. 얘들은 비록 형체가 없을지언정 자신만의 밀도와 점성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 있는 다른 물질(기체 속의 액체/고체, 혹은 액체 속의 고체)을 상대로 이것저것 힘을 작용한다. 부력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저절로 작용하는 힘이지만 양력과 항력은 유체 속에서 고유한 운동을 하는 놈에게만 덤으로 생기는 힘에 속한다.

유체역학에서 항력이라고도 불리는 이 저항은 물체의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하는 일을 무척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가장 기초적으로는, 종이나 나뭇잎을 높은 데서 떨어뜨렸는데 자유 낙하하지 않고 팔랑거리며 천천히 떨어지는 게 공기의 저항 때문이다. 미개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공기 저항과 중력 가속도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막연하게 가벼운 물체는 천천히 떨어지고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는 줄 알았던 듯하다.

하지만 공기를 쫙 뺀 진공 속에서는 깃털과 쇠구슬이 엄연히 동일한 속도로 떨어진다. 또한 달에 간 아폴로 월면차가 인증을 했듯이, 거기는 그 가벼운 흙먼지조차도 지구처럼 자욱한 연기 형태로 남지 않고 파도 물보라처럼 곧장 깔끔하게 낙하해 없어지는 걸 알 수 있다. 지구의 물보라보다 천천히 떨어지기 때문에(중력 가속도가 더 작음) 뭔가 실사 같지 않고 게임에서 나타나는 흙먼지 이펙트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걸 1970년대 초에 CG로 재연한 게 아니라면 이건 지구에서 자연스럽게 촬영하기란 불가능하다.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없다면 낙하산도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이 공기 저항 덕분에 무려 수 km에 달하는 높은 고도의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고도 사람이 다치거나 물건이 부서지지 않는다. 이거 생각해 보면 꽤 신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빗방울이 일정 속도 이상으로는 더 가속이 되지 않는 덕분이다.

하물며 공기보다 밀도가 월등히 더 높은 물의 저항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공기 중에서 총알을 빠르게 발사시키는 총은 물 속 불과 수십 cm 깊이에 잠겨 있는 목표물에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운동 에너지 1/2 mv^2에서 차라리 v를 크게 희생하고 m이라도 더 높인 작살총을 쏘는 게 더 나을 정도이다.

물 속에서 다리로 바닥을 저벅저벅 디디면서 빠르게 걷기란 저항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작정하고 수영을 하며 나아가는 사람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신발조차도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벗어야 할 정도이다.
수영은 단순히 물에 떠서 생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에서 빠르게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비행기가 단순히 공중에 뜨는 것뿐만 아니라 빠르게 비행하는 것도 중요하듯이 말이다.

유체 속에서 운동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항력은 물체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급격히 커진다. 설마 지수함수 급은 아니지만 일단 유체와 그 물체 사이의 상대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며, 이것 말고도 유체의 밀도와 물체의 운동 방향 단면적, 그리고 유체의 모양이 결정하는 '공기저항(항력) 계수'에 비례한다. 더 자세한 것은 위키백과 설명과, 이 분야 전공자로 추정되는 어떤 분의 블로그 글을 링크하는 것으로 설명을 생략하겠다.

이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동력은 아예 속도의 3제곱에 비례한다. 저 항력 방정식에다가 속도가 한번 더 곱해지기 때문이다. 이러니 공기 중에서 달리는 차량은 고속에서의 가속이 급격히 힘들어지며, 일정 속도 이상부터는 공기 저항에 적극 대비하는 설계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물론, 정지 상태에서 첫 출발하는 것도 정지 마찰력의 극복 때문에 힘이 대단히 많이 필요하며, 저단 기어가 이런 이유 때문에 존재한다. 하지만 경제 속도를 넘어선 고속은 안 그래도 엔진이 토크가 떨어지고 힘을 쥐어 짜다시피하는 상태인데 공기 저항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다.

심지어 자동차에 에어컨이 아무리 엔진 힘을 깎아 먹는다 해도, 어지간한 고속 주행 중엔 그냥 그 에어컨을 켜는 게 창문을 열어서 바람 저항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을 정도이다. 승객도 시원하고 차에도 부담이 덜 가고..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에어컨의 오버헤드에 맞먹을 정도라는 뜻이다.

이러니 부가티 베이런이 500마력에서 1000마력으로 엔진 출력을 두 배로 올렸는데도 최고 속도는 시속 300대에서 겨우 400대로밖에 못 올렸다.
아예 공기와의 마찰열까지 고려해야 하는 건 왕복엔진 자동차 수준에서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차체는 아니어도 타이어가 열받는 것 정도는 현실성이 있다. 이건 무슨 법칙에 근거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무슨 변수로 기술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공기 저항의 극복을 위해서는 물체의 단면적을 그저 작게만 만드는 게 장땡이 아니다. 일명 '유선형'이라고 불리는 매끄러운 설계가 필요한데, 그 수학 이론적인 배경은 잘 모르겠다. 단지 베지어 곡선이라는 것도 비행기를 설계하는 어느 엔지니어가 이 분야만 파다가 만들어 낸 곡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공기 저항 공식에서 단면적 외의 다른 변수가 바로 '항력 계수'이며, 주요 도형에 대해 알려진 항력 계수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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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계수들은 도형의 모양을 기술하는 수식에 대해 온갖 적분 등 복잡한 연산을 동원해서 산출했는지, 아니면 그저 경험적으로 얻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 measured라고 써 놓은 걸 보니 경험적으로 얻은 값인 듯.

위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의외로 그저 동글동글하게만 만드는 것도 장땡이 아니다. 물론 걔도 아예 각이 진 놈들보다는 계수가 작지만 말이다.
정말로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 사방팔방으로부터 가해지는 극심한 수압을 견뎌야 하는 잠수정이다. 그리고 걔들은 고속 주행이 목표인 물건이 아니다.

하다못해 골프공조차도 매끈한 구가 아니며, 표면이 온통 옴푹 패여 있다. 이 역시 나름 유체역학적으로 공기 저항을 극복하고 잘 날아가라고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며, 골프공 제조사의 고유한 기술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이걸 영어로 dimple이라고 하는데, 사람 얼굴에 옴푹 패인(?) '보조개'라는 뜻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여 년 전 대우 에스페로가 광고에서 항력(공기 저항) 계수가 0.29라고, 그 당시 국산 양산차들 중 최저인 과학적인 외형이라며 이 수치를 최초로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자랑을 쳤었다. 마치 뇌세포의 성분 DHA가 들어간 '아인슈타인 우유'처럼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좋아 보이게 마케팅을 한 셈이다. 본인은 이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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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로는 첫 출시되었을 때는 쏘나타 같은 2000cc급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후기 모델들은 아반떼 같은 준중형급으로 엔진을 다운사이징한 게 이례적이다. 물론 차체의 크기는 동일한 채로 말이다.)

한편, 이륜차는 단면적이 일반 자동차보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공기 저항에는 의외로 그리 유리한 외형이 아니다.
오토바이는 워낙 가볍고 단위 중량 당 마력이 큰지라 초반 가속은 자동차를 아득히 관광 태운다. 하지만 의외로 시속 200 이상급의 고속은 헉헉대는데, 다름아닌 공기 저항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륜차가 그런 고속 주행을 하면 안전 관점에서도 심각하게 안 좋기도 하고 말이다.

엔진 없이 사람의 발로 페달을 밟아 달리는 자전거도 돈지랄을 한 경량화에다 기어비 최적화, 초인적인 라이더 같은 최상의 변수를 동원하면 순간적으로나마 거의 시속 100을 능가하는 고속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의 초고속 주행 기록은 앞에서 커다란 우산? 양산?을 후방으로 펼쳐 주고 주행하는 자동차를 바짝 붙어서 따라가면서 세운 거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공기 저항을 앞의 자동차가 대신 받아 주니 고속 주행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단체 관광버스들이 교통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앞뒤로 대열운행, 일명 떼빙을 여전히 일삼는 이유는 1차적으로는 다같이 무리해서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허나, 보조적인 이유로는 연비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커다란 선두가 공기 저항을 다 받으면서 출발하니까 뒷차들은 상대적으로 나아가기가 쉽다고..
그 정도로 연료 절감 효과가 존재하고 경험적으로 입증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원리는 철도 차량에도 적용 가능할 듯하다. 단순히 쇠 레일+쇠 바퀴로 인한 마찰 계수 감소 말고, 다수 차량의 밀집 운행으로 인한 효율 증대도 장점이 되겠다.

사실, 자동차의 옆에 툭 튀어나와 있는 백미러는(후면경) 유체역학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으며, 방해가 되는 물건이다. 비행기의 날개처럼 양력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돌출된 것도 아니고..
허나 운전을 위해서는 절대로 없어서 안 되는 필요악이기 때문에 달려 있다. 이걸 자그마한 카메라로 100% 대체가 가능하다면 연비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상...;;
열역학에서는 이상 기체라는 개념까지 설정해서 기체가 열과 압력을 받아서 액화나 기화하고 그 과정에서 열을 수송하는 과정을 수식으로 설명한다. 거기는 물리뿐만 아니라 반쯤은 화학에도 속하는 영역 같다. 물론 엔진이나 냉동 기관 같은 게 다 열역학 이론에서 비롯된 기계이므로 이건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요 기술이다. 에어컨이 발명된 덕분에 인간이 거주하고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넓어졌으며, 냉장· 냉동고가 발명된 덕분에 식품의 장거리 수송과 장기간 보존이 가능해졌다. 동력 엔진의 발명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유체역학에서는 그렇게 기체의 상태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 안에서 운동하는 강체의 에너지 효율을 다룬다. 서로 영역이 다른 셈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비행기가 만들어졌는데 걔네가 조금이라도 연료를 덜 소모하고 더 경제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차체를 유체역학적으로 잘 디자인 하는 게 필수이니 두 역학 분야는 동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늘과 실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1 19:29 2016/11/1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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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강 위에 교량(다리)을 건설한다고 하면 우리는 강의 양쪽 건너편을 잇는 통상적인 형태의 다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리가 꼭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아니라 강을 따라 그냥 물 위를 지나는 다리도 드물지만 있다. 쉽게 말해 강과 수직이 아니라 평행인 다리 말이다.

작은 개천의 경우 물줄기를 따라 그 위에다 길을 놓아서 개천을 완전히 덮어 버린 '복개 고가 도로'가 있긴 하다. 과거에 서울의 청계천도 그 위에 고가 도로가 닦여 있었지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철거된 걸로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일개 도로만으로 복개가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폭이 큰 하천에도 남단이나 북단을 나란히 지나는 교량이 있다.

그런 교량은 아무 이유 없이 만드는 건 아니고.. 강을 따라 닦였던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건설되곤 한다. 차선수를 늘려야 되는데 한쪽은 강이고 다른쪽은 바위산이거나 이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확장의 여지가 없을 때 말이다. 그럼 다리를 놓음으로써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강을 건너는 다리라면 남단과 북단을 최단거리로 연결하기 위해 당연히 직선 형태로 만들어지는 반면, 강을 따라 지나는 다리는 교량 주제에 커브가 존재하기도 한다.

한강의 서울 시내 구간에서는 북단의 강변북로와 남단의 올림픽대로에 이런 다리가 모두 존재한다.
강변북로는 1970년대에 먼저 4차선이라는 초라한 규모로 건설됐다. 이거 건설과 확장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한때는 용산-왕십리 방면의 경원선 철길을 없애 버리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제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 철도 관계자가 이를 필사적으로 만류한 덕분에 그렇게 되지 않았으며, 경원선은 오히려 용산-성북 복선전철로 거듭났다.
그리고 강변북로의 기존 도로는 서쪽 방면 전용이 되고, 동쪽 방면 도로는 일부 구간이 교량 형태로 새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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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올림픽대로는 1980년대의 5공 시절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서울 올림픽의 유치에 성공한 그 당시 분위기를 반영하여 평범한 '강변남로' 대신 저런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하긴 이 도로는 김포 공항과 서울 올림픽 경기장을 직통으로 쭉 잇기도 하니 이름이 88 올림픽 '고속도로'보다는 훨씬 더 타당성과 개연성을 갖추고 있다.

올림픽대로는 노량진동과 동작동 사이의 2km 남짓한 구간이 '노량대교'라고 불리는 교량이다. 강변북로와는 달리 처음 만들어진 1986년 당시부터 상· 하행이 모두 교량이다. 다만, 30년 전 처음부터 지금 같은 광활한 10차선은 아니었으니, 지금 여기를 달려 보면 다리가 덕지덕지 작은 구획으로 나뉘었다가 확장되고 합쳐진 흔적을 볼 수 있다. 교량의 폭을 확장하는 건 터널의 폭을 확장하는 것만큼이나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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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대교는 엄연히 이름이 붙어 있는 교량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대로 내부엔 교량 구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어떤 표지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다리는 한강을 '건너는' 다른 교량들을 아래로 지나서 입체 교차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운전자가 노량대교의 존재를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어느 샌가 교량에 진입했다가 어느 샌가 빠져나가 버린다.

다음으로, 서울을 빠져나가서 국도 6호선을 타고 양평 쪽으로 가 보면.. 병풍처럼 펼쳐진 산의 아래로 강이 유유히 흐르는 게 경치가 대단히 아름답다.
원래 거기는 험준한 지형 때문에 좁고 구불구불한 2차선짜리 도로였지만 1990년대에 공사를 통해 4차선으로 확장됐다. 남한강이 북한강과 합류하기 직전 지점(중앙선 철도로 치면 양수-신원 사이 구간)에서는 땅에서 도로를 확장하기가 여의찮은 관계로, 동쪽 방면 도로는 강변북로처럼 강 위에 교량을 나란히 설치하는 방식으로 부설했다. 이 다리는 이름이 '용담대교'이며 지난 1996년에 개통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담대교는 나름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이다. 이 사진보다 색감이 더 아름다운 사진도 있는데 그건 다 가로 크기가 500픽셀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서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남)한강은 서울 시내 구간과는 달리 상수도 보호 구역이라는 것이다. 수질 오염을 야기할 수 있는 일체의 개발· 건축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양평이 괜히 경치가 좋은 게 아니다. 강가는 온통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도 6호선의 교량은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굉장히 특수한 공법을 동원해서 건설됐다고 한다.

끝으로, 유사한 사례가 아니라 대조군을 소개하고서 글을 맺겠다.
경부선 철도는 잘 알다시피 밀양의 삼랑진 역 이남부터 낙동강을 나란히 따라 달린다. 그런데 거기도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노반 확보를 어찌 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한쪽은 그냥 강이고, 다른 한쪽은 바위산이었던 것이다.

경부선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교량을 만드느니 차라리 산에다 불가피하게 터널을 뚫는 걸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삼랑진-원동-물금 일대엔 상행은 그냥 평지인데 하행만 터널을 지나는 기묘한 구간이 몇 군데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음 지도 캡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철도는 좌측통행인 건 다들 아실 테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경부선은 상행 방면이 먼저 생겼고 복선화 공사 때는 오른쪽에다 하행 선로를 '나중에' 추가했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터널까지 뚫지는 않아도 되는 쉬운 곳에다가 선로를 먼저 만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상. 본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 교량 중에는 강을 수직으로 건너는 놈만 있는 게 강을 나란히 따라가는 놈도 제한적이나마 있다.
  2. 그런 교량은 대체로 산과 강 사이에 낀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지곤 한다.
  3. 다만, 경부선 철도의 경우 낙동강 구간에서 그 흔적이 편도 교량이 아니라 편도 터널로 남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20 08:28 2016/10/2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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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구성하는 기체들

지구 대기권을 구성하는 '공기'라는 물질은 아무 색도 맛도 냄새도 없어서 '공기수송'처럼 존재감 없음을 비유하는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 공기는 실제로는 생각보다 구성이 복잡하고 무게와 압력도 있는 물질이다. 공기 덕분에 양력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어서 그 무거운 비행기가 뜰 수 있으며, 반대로 자동차나 비행기는 공기에 의한 마찰과 저항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고속화가 힘들다.
즉, 공기는 물리적으로 엄연히 존재감이 있으며, 화학적으로 성분도 제법 다양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기초 과학 상식을 복습해 보고자 한다.

기체는 눈에 안 보이고 몹시 가볍기 때문에 양 내지 성분 비율을 논할 때 부피가 참 직관적이긴 하지만, 그건 온도와 기압을 동기화시켜야 제대로 된 비교가 가능하다는 맹점이 있다. 기체의 '질량(무게)'과 '부피'는 중학교 과학 시절부터 날 참 헷갈리게 했던 주제이며 지금까지도 별로 와 닿지가 않는다. (그냥 시험 점수를 위해서 달달 외우는 정도를 넘어 본질과 원리를 밑바닥부터 싹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

'몰'이라는 단위도 따지고 보면 질량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하지만 공기 중의 약 78%가 질소라고 할 때 그 비율은 일단 내가 알기로 1기압에서의 부피 비율이다. 실생활에서 기체의 양이라고 했을 때 현실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는 건 질량보다는 부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 질소

공기에서 3/4 내지 4/5 가까이 차지하는 가장 많은 물질은 질소이다. 무슨 유독가스가 '공기보다 무겁다/가볍다'라고 할 때 그 레퍼런스와 가장 가까운 기체는 응당 질소이다. 질소는 원자 번호가 7번으로 얘보다도 가벼운 원소는 수소, 헬륨 등 극히 드물다. 공기보다 가벼운 가스보다는 무거운 가스가 더 많다.

무색 무미 무취 무독성에 안정적이고 물질의 변화를 촉진하지 않는 기체가 지구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점으로 보인다. 질소처럼 공기 중에 75~80%씩이나 들어있는데도 호흡 시 인체에 아무 탈을 내지 않는 기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물론 산소가 없이 질소'만' 그렇게 꽉 차 있으면 사람은 응당 질식(사)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고압 심해에서 있다가 갑자기 나올 때 혈관 내에서 기포를 형성해 혈관을 막는 '잠수병'의 주범 기체도 질소이다. 아무래도 대기에서 차지하는 성분이 많기 때문에 그렇다.

변질 걱정 없이 굉장히 장기간 보존해야 하는 공산품은 진공 포장을 하는데, 식료품의 경우 산화 방지를 위해 일명 '질소 밀봉 포장'을 해서 보존한다. 이게 과도하다 보니 "질소를 한 봉지 구입하시면 감자칩을 요만치 보너스로 드립니다"라는 개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비행기 랜딩기어 타이어에는 일반 공기가 아니라 100% 질소를 주입한다. 착륙 마찰열로 인한 발화· 연소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얘를 액화한 액체 질소는 초강력 냉각과 냉동 용도로 쓰인다. 산소보다도 끓는점이 더 낮다.

그런데 얘는 그저 안정적이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 않는 비활성 기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자동차 실린더 같은 고온 고압에서는 환경 오염 물질인 질소 산화물로 합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질소 화합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폭발물의 제조에도 쓰인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런 질소가 의외로 단백질의 주요 구성 성분이고 비료의 원료라는 것이다. 산소만큼이나 질소도 알고 보면 생명 유지에 매우 중요한 원소인 셈이다. 물론 이건 대기 성분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원소로서의 특성일 뿐이기 때문에 공기 중의 질소를 쌩으로 바로 활용하는 건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다 '질소 고정' 같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20세기에 와서야 가능해졌다.

2. 산소

질소가 단백질을 구성하여 생명체를 존재 가능하게 한다면, 산소는 그 생명체가 본격적으로 생명 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 산소가 없이는 인간 포함 코로 호흡하는 생명체들은 단 몇 분간도 살 수 없다.
공기 중에 산소 농도가 높으면 사람 역시 조금만 숨을 쉬어도 더 크고 많은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서는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발을 땅에서 떼어서 걷는 것만으로도 100미터 전력질주를 한 듯이 숨이 차서 고생하게 된다.

모든 신체 활동에 산소가 쓰인다. 하지만 근육을 쓰는 비중이 더 높기 때문에 오래 했을 때 근육이 땡겨서 못 하는 건 무산소 운동이다. 반대로 팔다리 근육은 그다지 힘든 상태가 아닌데 오로지 숨이 차서 못 하는 건 유산소 운동이다.
가만히 있으면서 무거운 기구를 들거나 옮기기를 반복하는 힘 쓰는 운동은 대체로 무산소이다. 그 반면, 수영· 등산· 달리기처럼 순간적으로 강한 근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꾸준한 신체의 이동을 수반하는 운동들은 대체로 유산소 운동이다. 둘은 비슷한 자질 같지만 서로 완전히 동등하지는 않다.

화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산소는 말 그대로 '산화'라고 불리는 물질의 화학 반응에 그야말로 터보 모드 가속을 넣는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꺼져 가는 불씨를 순수 산소 속에다 집어넣으면 불길이 확 일어나서 탄다. 자동차 엔진의 터보차저는 본질적으로 하는 일이 공기를 더 집어넣는 건데,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산소를 더 집어넣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철 같은 금속도 불꽃을 일으키며 맹렬하게 타 버려서 어떻게 태우느냐에 따라 산화철로 바뀌거나 아예 녹는다. 금속을 녹일 정도인 초고온의 불꽃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료를 특수한 걸로 많이 투입해야겠지만, 고농도의 산소를 공급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산소는 자신은 아무 변화 없이 화학 반응을 촉진만 하는 '촉매'가 아니다. 화학 반응을 일으킨 뒤 자신은 다른 원소와 결합하여 '산화물'이라는 다른 물질로 바뀌어 버린다. 제일 흔하고 만만한 산화물은 바로 이산화탄소 되겠다. 동물은 호흡으로, 그리고 각종 동력 엔진들은 폭발과 연소를 통해 온통 산소를 없애고 이산화탄소를 배설하기만 하는 반면, 녹색 식물은 광합성이라는 경이로운 메커니즘을 통해 물과 빛, 이산화탄소를 역으로 산소와 양분으로 바꾼다.

현대 과학으로도 이런 식물이 하는 일을 흉내 내고 대체하는 기계는 못 만들고 있다. 그나마 인간이 백열등과 형광들을 거쳐서 LED라는 사기적인 빛을 만드는 것까지 성공한 덕분에, 미래엔 날씨를 안 가리는 실내 농업이 가능할지 논하는 정도이다. 질소 공급이 해결됐고 빛 문제도 해결됐다고 치는데 다음으로 물 문제는 변덕스러운 자연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조달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산소는 여러 모로 유익한 기체이긴 하나, 그렇다고 산소가 공기 중에 지금의 질소가 있는 것만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불이 너무 쉽게 붙고 화재 진압을 하기 너무 어려워진다. 그리고 사람 같은 생물체 역시 폐에 과부하가 걸리고 산소 중독이 발생하여 신체 이곳 저곳에 탈이 난다.
나중에 언급할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려서 죽어 가는 사람이라면 헤모글로빈에 달라붙은 일산화탄소를 떼어내기 위해서 100% 고압 산소 주입 처방을 내리긴 한다. 허나 그건 예외적이고 특수한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산소에는 지금까지 언급한 것과 같은 유익한 산소만 있는 게 아니다. 노화를 촉진하고 인체의 수명을 깎아먹는 '활성산소'라는 것도 있다. 둘 다 같은 O2이지 않은지? 이게 화학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도 경수만 있는 게 아니라 얼음이 가라앉는 '중수'라는 게 있을 수 있는데 활성산소도 뭔가 돌턴의 원자설 범위를 넘어서는 미세한 차이가 있는 산소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3. 이산화탄소

탄소는 그야말로 마법에 가까운 화합물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 만능 원소이다. 다이아몬드, 흑연, 그을음 검댕이 다 동일 원소 기반의 물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얘가 불꽃을 활활 내어 타면서 산소와 결합하고 난 기체 찌꺼기가 이산화탄소이다. 그나마 식물이 있으니 산소와 이산화탄소 사이를 오가면서 탄소가 재활용 순환이 가능하다.

단, 이것도 조건이 있다. 산소 공급을 잘 받으면서 '완전 연소'를 이뤘다면 불꽃이 파랗고 에너지도 더 많이 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좀 답답하게 '불완전 연소'를 했다면 불꽃은 노래지고 에너지가 덜 나며 연기· 그을음이 발생하면서 부산물도 일산화탄소가 나오게 된다.

이산화탄소는 질소나 산소 같은 기체와는 특성이 많이 다르다. 끓는점이 그런 기체들보다 훨씬 더 높아서 비교적 쉽게 액화나 응고 가능하다. 드라이아이스라고 다 들어 보셨을 것이다. 또한 얘는 물에도 더 잘 녹는 편이며, 이때 물을 탄산이라는 비교적 약한 산성으로 바꾼다. 탄산은 톡 쏘는 맛이 좋아서 청량음료를 만들 때 쓰인다.

이산화탄소는 공기에 대략 0.03%(백분율), 혹은 표현을 달리하면 300ppm(백만분율) 정도 존재하니 질소와 산소에 비하면 가히 극미량이다. 사람이 내뱉는 숨은 산소가 몽땅 이산화탄소로 바뀐 게 아니라 20% vs 0.03%이던 것이 16% vs 4% 정도로 바뀐 수준이라고 한다. 다만, 최근에는 화석 연료 소비의 증가 때문에 전지구적인 이산화탄소 농도가 0.04%로 증가했다고 전해진다.

이산화탄소는 연소의 부산물로 나온 물건인 만큼, 산소와는 정반대로 불을 꺼 버리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질소나 산소보다 인체에 훨씬 더 해롭다.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찔끔찔끔 증가하여 0.x%정도가 되면 슬슬 나른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공기 전체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사람의 날숨과 근접하게 되면(이산화탄소 2~3%)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고 어지러움이 느껴질 지경이 된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정상적인 날숨의 농도인 4%대를 초과하게 되면 두통, 구토 등 본격적인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호흡을 통해서 이산화탄소를 내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폐가 상하고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수 시간 이상 이런 환경에 노출되면 영구적인 장애와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도 이산화탄소 농도이면 촛불쯤은 바람 없이도 곧바로 꺼뜨릴 수 있다고 한다.

10%를 넘는 이산화탄소에 노출되면 사람은 불과 몇 분 만에 활동 불가능에 빠지고 의식을 잃는다. 물에 얼굴까지 잠긴 것과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질식한다. 하물며 이산화탄소가 지금의 산소 농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있다면.. 사람은 그런 곳에 들어가는 즉시 폐가 이산화탄소로 인해 작살이 나면서 기절하고 죽는다.

이런 이산화탄소는 유감스럽게도 온실효과를 일으키며 지구 온난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양도 얼마 안 되는 주제에 인간에게 끼치는 민폐가 꽤 크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도 탄산가스 배출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런데 태양계에서 지구의 이웃인 금성은 대기의 무려 95% 가까이가 이산화탄소이며 양도 엄청 많아서 대기압이 지구의 90배에 달하는 완전 미친 행성이다. 이 정도 공기압은 바닷속 수심 900미터에서 받는 압력과 비슷해서 빈 깡통쯤은 곧장 찌그러지며 어지간한 잠수함들조차 내려가지 못하는(심해 전용 잠수정 필요) 살인적인 압력이다.
이러니 금성은 낮과 밤, 여름과 겨울, 적도와 극지대 구분이 없이 지표면 전체가 1년 내내 섭씨 450~500도에 달하는 고온 고압 불지옥을 자랑한다. 가스형 행성도 아니고 지구와 가장 가까운 행성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됐는지가 참 안쓰러울 뿐이다.

4. 일산화탄소

일산화탄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분자에서 탄소 원자가 이산화탄소보다 하나 더 적다. 원래는 이산화탄소가 생겨야 할 상황에서 뭔가 2% 부족한 여건 때문에 생기는 물건에 가까우며, 똑같은 무색 무미 무취..이지만 그런 것치고는 원조인 이산화탄소와 비교했을 때 특성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마치 같은 산소 원자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기체 분자로서 산소와 오존은 서로 확 다르듯이 말이다.

이산화탄소가 섭씨 -100도 이상의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도 액화· 응고하는 것과 달리, 일산화탄소는 다시 질소· 산소처럼 -200도에 가까운 엄청나게 낮은 온도에서 액화· 응고한다. 또한 일산화탄소는 이산화탄소처럼 더 반응할 게 없어서 불을 꺼뜨리지 않으며, 산소와는 불꽃까지 내면서 활활 타며 반응해서 원래 의도했던 목적지인 이산화탄소로 변한다.

사실, 진공이라고 해도 정말 아무 물질도 없는 0의 진공은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듯, 현실에서는 대체로 완전연소가 이뤄지는 상황에서도 일산화탄소는 극미량 찔끔찔끔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가 엄청 많이 다니는 도심은 농촌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일산화탄소의 농도도 상대적으로 더 높다. 불완전연소가 일어나서 사람 건강이나 기계의 동작 효율에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산소는 질소만큼 있으면 위험하고 이산화탄소는 지금의 산소만큼만 있어도 사람을 즉사시킬 정도인데.. 일산화탄소는 그 적은 이산화탄소만큼만 있어도 극도로 위험하다. 이산화탄소는 농도를 논할 때 퍼센트와 ppm이 번갈아가며 쓰이지만 일산화탄소는 스케일이 워낙 작기 때문에 십중팔구 ppm으로 농도를 기술한다.

일산화탄소가 위험한 이유는 잘 알다시피, 사람의 뻘건 혈액 속에 존재하는 철 이온 기반 헤모글로빈이 산소보다 일산화탄소와 반응을 거의 200배가 넘게 더 잘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까..? 그러니 일산화탄소가 정말 극미량만 있어도 헤모글로빈이 병신이 돼 버리고 뇌 방면 산소 공급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곧바로 두통, 어지럼증, 체력 저하가 발생하며 심하면 사망. 단적으로 말해 연탄가스 중독의 주범이 요놈이다. 옛날에는 이걸로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니면 뇌가 손상되어 평생 장애인이 되거나.

일산화탄소의 부피 대비 농도가 겨우 10ppm만 돼도 당장 죽지는 않지만 거기서 수십 분간 있어 보면 사람의 컨디션이 살짝 달라진다. 호흡 계통에 문제가 있는 환자는 겨우 이것만으로도 몸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농도가 지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비슷한 급의 세 자리수 ppm에 진입하면 혈액이 본격적으로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금방 숨이 차고 신체 활동이 힘들어진다.

1000ppm이 넘어가는 농도에서 몇 시간째 노출되면 사람은 드디어 금세 의식이 몽롱해지며 얼마 못 가 매우 높은 확률로 픽 쓰러져 죽는다. 이산화탄소가 이 정도 농도이면 아직 그냥 아주 살짝 나른함이 느껴질 정도에 불과하며, 건강과 생명엔 여전히 아무 지장이 없다. 얘는 치사량이 이산화탄소의 수백 분의 1 이하에 불과해서 훨씬 더 위험함을 알 수 있다.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로봇은 동력 계통의 유연함이 인간의 근육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계는 생명체와 달리 방사선 피폭에 강하고, 또 호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유독성 기체 속에서도 잘 버티는 게 장점이다.
사실, 생명체도 헤모글로빈이 아닌 헤모시아닌(구리 이온) 기반인 무척추동물들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헤모시아닌은 산소 운반 효율도 헤모글로빈의 1/4에 불과하다는 게 단점이다. 개미나 바퀴벌레를 터뜨려 죽였는데 무슨 피 빨아먹은 모기도 아닌 것이 죄다 시뻘건 혈흔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도 참 골칫거리이지 싶다.. -_-

5. 특별판: 수소

원래는 지구의 대기에서 질소와 산소 다음으로 많이 있는 기체는 '아르곤'이라는 진짜 비활성 기체이다(부피 비율은 대략 1%가량). 얘도 화학적으로 다른 용도가 있긴 하지만 워낙 화합물을 안 만들고 존재감도 없다 보니 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그 대신, 질소, 탄소, 산소 얘기가 다 나온 마당에 왠지 누락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수소 얘기를 하고서 글을 맺겠다.

수소는 원자 번호 1번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으며,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를 통틀어서 가장 가볍고 가장 흔하고 많은 원소이다. 그리고 산소와 반응도 아주 격렬하게 한다. 불꽃이 튀면 퍽 하고 타 버리는 게 무슨 천연가스 같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천연가스 같은 연료로 사용하기에는 수소는 너무 가볍고 한편으로 위험하다. 지구 대기에 수소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이유는 그 가벼운 수소를 대기로 가둬 두기에는 지구의 중력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지만, 수소를 채운 풍선이나 비행선이 하늘로 둥둥 뜨는 걸 생각하면 좀 이해가 될 것이다. 너무 가볍고 자유로운(?) 기체답게 액화와 응고는 절대영도보다 겨우 10~20도 높은 극한에 근접해야만 가능하다. 압축과 보관도 평범한 기술로는 할 수 없다.

탄소가 붙은 탄화수소(알코올, 천연가스 등) 계열이 아니라 순수하게 수소만을 연료로 활용할 수 있다면 효율도 좋고 고갈 걱정도 없고 탄산가스가 아닌 수증기만 나오는 매우 깨끗한 엔진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건 다름아닌 저런 기술적인 난관으로 인해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아직 제대로 실용화가 안 된 채 떡밥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원소로서의 수소가 아니라 수소 기체는 지구상에 흔치 않으며, 물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를 얻는 비용도 그리 만만찮다는 걸 알아야 한다.

수소는 앞서 소개한 기체들과는 달리, 대기 중 농도가 얼마인 곳에 인체가 노출되면 무슨 반응이 오고, 독성이 있고 하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소가 그만치 대기 중에 섞여 있었다가는 자기가 진작에 스스로 폭발해서 다른 화합물로 변해 버리고 없기 때문에 인체의 반응 자시고 할 게 없다. 폭발이 위험한 거지 딱히 폐에 생화학적인 민폐를 끼칠 여지는 없다.

이런 수소는 자기 바로 다음으로 가벼운 비활성 기체 원소인 헬륨과는 특성이 완전히 상극이다. 헬륨은 수소 같은 반응성이 없으며, 양도 수소보다 훨씬 적고 값이 더 비싸다.
수소가 들어간 화합물 중에 물이야 워낙 특이하고 유명한 놈이다. 그것 말고 그다지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화합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메탄(탄소+수소): 자연에서는 쓰레기가 썩을 때, 더 구체적으로는 식물이 부패· 분해될 때(초식동물의 소화 과정도 포함) 생성된다. 그러니 쓰레기 매립지에는 이렇게 생성된 메탄을 수집해서 연료로 활용하는 설비도 있다. 하지만 메탄 자체는 천연가스의 주성분이며, 무색 무취로 별로 더럽지 않은 물질이다. 메탄과 메탄'올'의 차이는 CH4와 CH3OH의(수산화기 OH) 차이에서 유래된다.
  • 황화수소(황+수소): 달걀 썩는 악취의 주범으로, 황을 포함한 단백질이 부패할 때 난다.
  • 암모니아(질소+수소): 대변이 아니라 소변 테크로부터 유래되며, 화장실의 지린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17 08:39 2016/10/1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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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형차가 대형차를 추돌

요즘 자동차들은 안전 장치들이 워낙 발달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 폐차 수준으로 박살 날 충돌· 전복 등의 사고가 나도, 탑승자는 벨트만 잘 매고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경상 수준을 넘지 않고 잘 살아남는다.
하지만 이런 발전하는 기술에도 불구하고, 소형차가 대형차를 들이받으면 여전히 십중팔구 중상· 사망 급의 사고가 난다. 당연히 소형차에서.

물론 차량의 덩치와 무게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양 차체의 높이 차이로 인해 소형차가 범퍼와 엔진룸부터 충격을 받는 게 아니라, 앞유리와 A필러를 직통으로 거쳐(;;) 캐빈(탑승 공간)이 곧바로 박살나기 때문인 게 무척 크게 작용한다.
영화 <테이큰>에서도 공사장 차량 추격씬에서 이게 잘 묘사돼 있다. 브라이언을 쫓던 마지막 악당이 불도저의 블레이드 부분과 정면충돌하는 장면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차라리 앞이 꽉 막힌 담벼락을 꼬라박는 것보다도 이런 유형이 더 치명적인 사고인 것이다. 저 악당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가로등도 안 켜진 깜깜한 길가에 그것도 커브길에 불법주차된 대형 트럭을 뒤늦게 발견하고 들이받는 바람에 승용차 운전자가 골로 간 사고 사례가 종종 전해지곤 한다. 링크를 거는 이 사고에서도 탑승자 2명이 모두 숨졌다.

이런 유형의 사고의 극단적인 사례로는 지난 2014년 10월 28일, 호남 고속도로 상행선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있다. 군 입대를 하는 친구를 배웅하러 애들이 5명이서 승용차를 렌트해서 달렸는데.. 과속 상태로 커브를 틀다가 균형을 잃고 갓길에 서 있던 4.5톤 트럭(도로 보수 차량) 후미를 들이받았다.
차가 트럭의 밑으로 말려 들어가면서 딱딱한 트럭 짐받이가 딱 저렇게 캐빈을 강타했으며, 이 때문에 차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그리고 입대 당사자를 포함한 탑승자 5명은 전원 사망하고 말았다.;;; 당사자의 지인뿐만 아니라 여친까지 다같이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니 자동차 회사들은 범퍼뿐만 아니라 앞유리와 A필러(앞유리+앞좌석 사이의 지지대)도 최대한 튼튼하게 만든다.
먼저 앞유리야..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아무리 충격을 받아도 금만 쩍쩍 갈 뿐 '와장창' 깨지지 않게 유리에다 온갖 첨가물을 섞어서 특수한 방법으로 제조된다.

다음으로 A필러도 단순한 금속 기둥이 아니며, 여기에도 자동차 회사들의 기술이 집약된다. 그래야 (1) 차량이 전복되거나 (2) 차량 위로 위험물이 떨어지거나, (3) 저렇게 차체가 높은 장애물과 충돌하더라도 차의 형체가 '최대한' 유지되고 캐빈 내부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1)과 (3)은 그렇다 치더라도 (2)도 적재 불량 화물차에서 뭔가가 떨어질 때 내지, 도로에 떨어진 이물질을 앞차가 밟으면서 튕겨 올라가서 뒷차를 강타할 때처럼 생각보다 발생 가능성이 높은 돌발상황이다.
물론 이렇게 하고도 탑승자가 사망 혹은 중상으로 귀결되기 십상이지만 이것도 그나마 옛날 자동차보다는 생명을 많이 구한 결과이다.

평상시에야 A필러는 차량이 모퉁이에서 회전할 때 운전자에게 측면 사각지대를 만들어서 회전축 안에 있는 장애물이나 사람을 못 보고 부딪치게 만드는 위험 요소이다. 그러나 이게 사고 시에는 자동차 내부의 탑승 공간을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꽤 중요한 안전 장치 역할을 한다. 이렇듯, <테이큰> 영화 한 장면으로부터도 자동차 안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었다.

2. 대형차가 소형차를 추돌

위의 경우와는 반대로 대형차가 소형차의 뒤를 추돌하면..
이것도 역시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을 듯하다. 소형차는 다 박살이 날 것이다. 특히 대형차가 엄청난 운동량을 이기지 못해 소형차를 깔고 올라타는 지경에 도달하면 제아무리 단단하게 만든 A필러라 해도 다 짓이겨질 것이고 탑승자는 전원 사망 확정이라고 봐야 한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2009년 4월 23일의 서울 수유동 대형 관광버스 교통사고이다. 관광버스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모두 하차시켜 주고 공차 회송 상태였다. 버스 기사는 모든 업무를 마쳤으며, 이제 차를 회사에다 세워 놓고 퇴근하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하필 이때 날벼락이 떨어졌다. 평소에도 정비 불량으로 인해 맛이 갈 기미를 보이던 브레이크가 4· 19 묘지 인근의 어느 내리막길에서 드디어 말을 전혀 듣지 않기 시작했다.

급발진 수준은 아니었겠지만 내리막이니 차량은 점점 속도가 붙었으며, 가로수와 승용차 몇 대를 들이받고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 한 대를 추돌한 걸로도 모자라 그 차를 밑에 깔고서 160미터 가까이를 밀고 갔으며, 더 앞의 승용차 7대를 추가로 들이받고 전신주를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승객이 탄 것도 아니고 빈 버스인데도 속도가 붙자 엄청난 파괴력이 나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버스에게 깔린 채로 끌려간 승용차에는 계모임을 마치고 찻집으로 이동하던 학교 교직원들이 하필 7명이나 구겨서 타고 있었는데.. 아무도 차에서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그 어떤 알량한 안전장치라도 이 정도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인생이 이렇게 끝나게 될 거라고는 전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투신 자살하는 사람한테 깔려 죽는 것만큼이나 정말 운 한번 더럽게 없다.
듣기로는 2차를 가지 않고 먼저 귀가한 계 멤버 딱 한 명만 화를 피해서 살아 남았다고 전해진다. =_=;;;

이 사고로 버스 운전사, 버스 회사 사장, 버스의 정비 업체까지 줄줄이 경찰에 소환되었다. 너무 큰 피해가 났기 때문에 버스 운전사는 징역 2년 6월형을 받았다. (참고로 2010년 7월 3일, 인천대교에서 고장난 마티즈 CVT를 피하려다가 교각 아래로 추락해서 14명의 사망자를 낸 공항 리무진 운전자는 금고 3년형이 선고됐다. 1차 원인 제공자인 김여사는 금고 1년.) 그만큼 무거운 대형차 운전자는 사고가 났을 때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리고 또 안타까운 사고가 더 있었다. 2013년 12월 14일, 경부 고속도로 하행선의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방면에서는 승용차 간의 접촉사고 때문에 후속 차량들의 정체가 시작됐는데, 이걸 뒤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또 4중 추돌 사고가 났다.
문제른 부딪친 차량들의 배열 순서였다. 맨 앞은 그랜저였고 그 뒤는 25톤 탱크로리. 그 뒤엔 벽돌을 가득 실은 25톤 화물차였는데.. 양 25톤짜리 대형차의 사이에는 승용차가 한 대 있었다.

25톤 화물차는 운동량을 주체하지 못하여 앞의 승용차를 그대로 짓눌렀고, 승용차는 양 대형차 사이에서 완전히 으스러졌다. 승용차에는 두 집에서 제각기 남편만 빼고 아내와 자녀 두 명이 타서 총 6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 사고로 모두 끔살 당했다. 두 집의 가장들은 하루아침에 처자식을 모두 잃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런 사고는 올해에도 계속됐다. 지난 5월 16일엔 남해 고속도로의 터널에서 대열 운행을 하던 관광버스들이 정체 구간 급정거로 인한 9중 연쇄 추돌 사고를 냈는데, 전후의 관광버스 사이에 끼여 있던 모닝 승용차가 다 짜부러지는 바람에 거기서만 탑승자 4명이 모두 숨졌다. 그리고 이걸로도 모자라서 7월 17일엔 영동 고속도로 봉평 터널 인근에서 관광버스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은 채 앞차를 네댓 댄가 연달아 들이받고 특히 바로 앞의 K5 승용차를 완전히 짓뭉갰다.

영동 고속도로의 사고는 대열 운행도 없었고 브레이크 고장도 아니었고 순수하게 운전 기사가 졸다가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낸 것이었다. 앞차엔 강원도로 피서 여행을 다녀 오던 20대 여대생 4명이 차를 꽉 채워 타고 있었는데 모두 남해 고속도로 사고처럼 비명 한 마디 못 지르고 전원 즉사했다. 운전자 남성 한 명만 중상.
이 글에서는 사진 첨부는 생략하지만 이들 역시 잔해의 모습이 위에서 소개한 것들 만만찮게 처참했다. 소형차는 대형차의 곁을 달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그럼, 이런 충돌 사고가 났을 때 꼭 대형차의 탑승자만 생존에 무조건 유리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2013년 8월 7일, 중부 고속도로에서는 운전 중 시비가 붙어서 한 승용차 운전자가 고속도로 위에서 차를 고의로 급정거하는 미친 짓을 했다. 시비가 붙은 차와 추가로 뒷차 3대까지는 급정거를 했지만, 다섯 번째로 달려오던 5톤 트럭은 제대로 정지하지 못하고 앞차를 모조리 들이받았다.

그런데 이 사고에서는 가장 큰 차를 몰고 가장 뒤에서 추돌한 트럭 운전자 한 명만 숨졌다. 트럭은 승용차와는 달리 전방에 엔진룸이 없어서 전방을 들이받으면 운전석이 곧장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고와 비극을 야기한 고의 급정거 운전자는 징역 7년 구형에 3년 6월형이 확정되는 엄벌을 받았다. 앞서 거론된 버스들의 사고보다 사상자 수는 적지만 죄질이 워낙 나쁘기 때문이다. 부디 길을 틀어막고 만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보복· 위협운전이 근절되기를.

3. 음주운전자가 낸 후방 추돌 교통사고

지금까지 차량 대파와 인명 사고를 야기하는 교통사고를 후방 추돌 위주로 살펴봤다.
후방 추돌은 정면 충돌보다야 충격량이 작을지 모르지만, 승용차의 경우 연료 탱크가 뒤에 있기 때문에 이걸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어서 더욱 위험하다.

아무리 천천히 가더라도 멀쩡히 잘 가고 있는 앞차를 뒷차가 대놓고 들이받는 경우는 잘 없다. 시내 도로 교차로라면 신호 대기 중인 차를 뒤늦게 발견해서이고,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는 갑자기 정체 구간 또는 사고 현장이 나타난 걸 대처를 못 해서 사고가 나는 편이다. 대처를 못 하는 원인으로는 (1) 브레이크 고장 같은 대형차의 기술적인 사정뿐만 아니라 (2) 무리한 떼빙(좁은 간격으로 대열 운전), (3) 과로로 인한 졸음 운전이 있다.

이것보다 좀 더 어처구니없는 원인은 (4) 운전 중 스마트폰/DMB 조작하다 전방 주시 태만이 있다. 제일 죄질이 나쁜 건 두 말할 나위 없이 (5) 음주운전 되시겠다. 그래도 음주운전은 개인의 승용차 레벨에서 발생하지, 트럭 운전이 생계인 대형차 기사가 대놓고 겁대가리 상실하고 음주운전을 하지는 않는다.

지난 6월엔 이 지선 씨가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안면이 다 타고 일그러지는 중화상을 그 쌩고생을 해서 치료하고 피부 이식을 해서 복원한 게 겨우 저 모양이다. 16년 전인 2000년 7월경에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그분의 인생이 저렇게 달라진 것이었다. 그나마 얼굴이 그렇게 다 불타는 와중에 렌즈까지 끼고 있던 눈은 다치지 않아서 시력을 전혀 잃지 않은 건 기적적인 천만다행이었다. (그분 수기에 언급돼 있음)

2012년 6월 11일 새벽, 인천 공항 고속도로에서 음주운전 차량이 앞에 멀쩡히 가던 승용차를 거의 전속력으로 추돌했다. 이 때문에 피해 차량에서는 불이 났으며, 공항에서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가장을 포함해 일가족 4명이 기절한 채로 불타는 차에서 모두 몰살을 당했다.

그런데 인간은 어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게 없나 모르겠다. 2015년 2월 3일 새벽에는 고속도로가 아닌 구미 시내에서 만취 음주운전자가 외제차로 앞의 경차를 추돌했다. 아까와 똑같이 경차에서는 불이 났고, 운전자인 학원 선생과 여고생 3명, 탑승자 4명이 모두 숨졌다. 이것도 시속 100이 훨씬 넘게 밟으면서 급발진 급의 추돌 사고를 낸 것이니 차와 탑승자가 멀쩡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2016년 6월 10일 밤, 인천 청라 국제도시에서는 또 음주운전자가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들이받아서 이번엔 불은 안 났지만 일가족 3명이 숨졌다. 전~부 후방 추돌이다. 그리고 피해자는 탑승자 전원이 몰살이지만 가해자는 경상에 그치고 살아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더욱 분통 터진다.

음주운전자가 추돌 사고를 낼 거면 아까처럼 세워져 있는 대형차나 들이받아서 자기 혼자나 죽을 것이지, 꼭 왜 저런 식으로 남까지 죽이는 사고를 내나 모르겠다. 글쎄, 가해자도 죽은 사고도 있긴 했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따로 음주 측정을 안 해서 안 알려진 건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음주운전자가 가로수를 들이받거나 고가에서 추락해서 그나마 민폐는 덜 끼치고 자기 혼자만 다친 사고 사례도 있긴 하다.

2014년 7월 20일 새벽에 대전에서는 (1) 한 음주운전자가 신호 대기 정차 중에 퍼질러 자 버려서 파란불이 됐는데도 출발 안 함. (2) 그 차량을 다른 음주운전자가 추돌해서 사고를 냈고, 덕분에 경찰 조사 과정에서 (3) 두 운전자가 모두 혈중 알코올 농도 0.1% 초과급의 음주운전이 적발되어 둘 다 사이좋게 면허 취소됨.. 요렇게 음주운전자끼리 병맛스러운 팀킬을 벌인 일이 있었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한 번 단속으로 일석이조 실적을 올렸다.

그리고 2016년 1월 26일, 청주에서는 눈에 뵈는 게 없던 한 음주운전자가 경찰서의 순찰차 주차 구역에다가 제 발로 차를 몰고 와서 차를 당당하게 세우는 바람에 곧바로 경찰에 현행범으로 검거되기도 했다. "거기는 일반 주차 구역이 아니에요. 아저씨, 차 빼 주세요. → 어라? 아저씨 좀 술냄새가 심하게 나네요?"처럼 된 셈. 이건 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차라리 귀여운 사례이다.
아무튼 술 마신 뒤에는 제발 운전대 좀 잡지 말자.

* 여담

교통사고에 대해서만 글을 잔뜩 썼다가 또 얘기가 부득이하게 옆길로 새게 됐다만.. 말이 나왔으니 이 지선 씨와 관련된 여담도 좀 늘어놓자면 이렇다.

- 정확한 시기와 발표 주체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분의 개인 홈페이지는 2000년대 중반경에 어디선가 조사한 국내 개인 홈페이지들 중에 전체 트래픽/방문자수 2등을 차지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참고로 1등은..? 시스템 클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_=;; )

- 교통사고 화재 현장의 화상뿐만 아니라 화공 약품 테러로 인한 화상도 끔찍한 사고 내지 사건이다. 앞서 이 지선 씨는 그래도 눈은 멀쩡히 남았지만, 1999년 5월 20일..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의 피해자인 김 태완 군은 전신 3도 화상에다가 실명까지 한 채로 7주간을 깜깜한 사경을 헤매다가 결국 패혈증으로 숨졌다. 도대체 어떤 놈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밝혀지지 못한 채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 2009년에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로 회사에 체납 임금 청구 소송을 벌였는데 악덕 업주로부터 황산 테러를 당한 모 여직원도.. 지금은 그나마 많이 회복됐고 이 지선 씨와 마찬가지로 사회 복지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대외적으로는 마치 과거의 지존파 피해 여성처럼 가명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건 실명은 아니다. 어쩌다가 저런 블랙 기업에서 첫 발을 잘못 디디는 바람에 이런 불행을 겪었는지가 안타깝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29 08:21 2016/08/2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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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퀴, 엔진, 문 등의 내부 배치가 특이한 놈

요즘 자동차들은 대형 고급 승용차가 아니면 트럭 정도만이 FR(앞쪽 엔진, 뒷바퀴 구동)이다. 중형 이하의 작은 승용차들은 다 연비와 공간에 더 유리한 FF(앞쪽 엔진, 앞바퀴 구동)로 물갈이됐고, 버스들은 1종 보통(대형이 아닌) 면허로도 운전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10몇 명짜리 '봉고차'급이 아닌 이상, 공간 확보와 조향에 더 유리한 RR(뒤쪽 엔진, 뒷바퀴 구동)로 바뀌었다.

승용차는 대형이 FR인데 버스는 소형이 FR인 게 흥미롭다. 이를 종합하면 트럭이 아닌 승용· 승합차는 차량의 크기에 따라 FF-FR-RR의 형태로 엔진과 구동 형태가 바뀌기라도 하는가 보다. (뭐 외국엔 승용차도 경차 위주로 RR이 일부 있기도 하니, 이게 절대적인 경향은 아니지만..)
아무튼 이런 이유로 인해 대형 버스는 다른 차들과는 달리 엔진 소리가 뒤쪽에서 들리며, 엔진과 연결된 팬벨트가 돌아가는 것도 뒤쪽에 보인다. 대부분의 차량들의 앞면에 으레 붙어 있는 라디에이터 그릴이 버스의 앞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1980년대까지는 국내의 대형 버스에도 전방 엔진 모델이 있었다. 본인도 초딩 시절에 시골에서 그런 버스를 탄 기억이 남아 있다.
전방 엔진 버스는 운전석이 있는 앞부분의 바닥이 유난히 높았고, 운전석의 오른쪽 중앙이 보다시피 뭔가로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대신 맨 뒷좌석이 위로 봉긋 솟아 있지 않고 높이가 앞의 다른 좌석들과 동일했다.
요즘 버스들은 맨 뒷좌석은 위로 한두 계단 높이 솟아 있는 게 당연시되고 있는데, 이 버스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게 어릴 때도 굉장히 신기하게 느껴졌다.
비행기로 치면 보잉 사가 개발한 전무후무 유일한 삼발기인 727을 보는 느낌이다. 날개 밑에 엔진이 달려 있지 않은 게 신기함.

후방 엔진 버스에서는 맨 뒷자리가 폭도 좁은 데다 시끄럽기까지 한 최악의 폭탄 자리인 반면, 전방 엔진에서는 맨 뒷자리에 그 정도까지 페널티는 없을 듯하다.
반대로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버스는 무거운 엔진이 전방에 달려 있는 데다 옛날엔 파워 스티어링마저 없었을 테니 정지 상태에서 조향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하물며 주차는 완전 고역이었겠다. 지금처럼 후방 카메라나 경보 장치가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현대 FB(전방 엔진) 버스와 RB(후방 엔진) 버스는 외형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맨 뒷좌석의 높이를 보면 구분 가능하다. 대우 자동차도 BF105 같은 초기 모델은 전방 엔진 FR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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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일대우(대우 자동차에서 버스 생산 부분만 계승한 후신)에서는 현대 자동차와는 달리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전방 엔진 버스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국내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전량 수출만 한다. 외국에 무슨 특별한 수요가 있어서 어째 수출 전용으로라도 생산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뭐, 이 글에서는 주로 전방 엔진 얘기만 했지만 잠깐 버스의 외형 얘기를 조금만 더 하고 넘어가겠다. 미국의 스쿨버스처럼 앞에 보닛이 달린 버스, 그리고 무슨 10~20톤 이상급 초대형 트럭처럼 뒷바퀴에 바퀴가 앞뒤로 두 줄이 달린 버스도 국내에서는 볼 수 없다.
화장실이 달린 버스가 달리기엔 우리나라는 국토가 너무 좁다. 철도계에서 열차의 주행 속도가 올라가면서 침대차가 사라졌듯이, 버스도 고속도로와 휴게소 인프라가 발달하면서 자체적으로 화장실을 내장할 필요는 없어졌다.

옛날 버스 중에는 앞쪽 출입문이 요즘 버스처럼 앞바퀴의 앞에 있는 게 아니라 앞바퀴의 뒤에 달린 버스도 있었다.
물론 현대 카운티처럼(예전의 코러스/콤비.. 그러고 보니 전부 'ㅋ' 돌림 이름이네.) 중형 버스까지는 오늘날까지도 그런 형태의 차들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더 커 보이는 차가 그런 형태인 건 참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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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에 선보인 시발 자동차의 자매품 버스..;; '씨X 뒈X' 같은 욕설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리라. -_-;;

2. 동력원이 특이한 놈

바로 앞의 사진에서 버스의 앞면에 걸린 현수막 문구를 제대로 읽어 보면.. '국산 시발 디젤 버스'이다.
버스 같은 대형차는 만약 기름으로 달린다면 디젤 엔진 기반인 게 너무 당연한 얘기인데, 그때는 디젤 차량을 국내에서 만들어 낸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라서 저렇게 써 붙인 것이었다.

그러다가 천연가스로 달리는 버스들이 1990년대 이후부터 야금야금 등장하기 시작했고, 다른 버스는 몰라도 최소한 대도시의 시내버스들은 거의 다 물갈이가 됐다. 천연가스 버스는 이제 특이한 놈이라고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주류이다. 석유 내연기관은 소형차용 휘발유와 대형차용 디젤로 나뉘는데, 어째 천연가스 엔진은 소형차(택시)와 대형차(버스)에 모두 쓰인다는 게 신기하다.

서울 시내의 공기가 시골에 비해 썩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천연가스 버스의 도입은 공기 질의 개설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잘 알다시피 디젤 차량은 선진국들에서 정말 찍어 누른다 싶은 수준으로 배기가스 규제를 걸고 있다.
과거의 디젤 버스들은 엔진이 달린 후면부에 매연 그을음도 시커멓게 잔뜩 묻어 있어서 몹시 더러웠다. 이건 단순히 흙먼지가 묻은 게 아니었다.

경상용차인 다마스와 라보는 알고 보니 휘발유도 디젤도 아니고 진작부터 가스 전용이다. 그런데 웬 배기가스 규제를 받고 그것 때문에 차를 단종하네 마네 말이 있었나 모르겠다.

한편, 2010년대부터는 서울에서 남산 투어용으로 하이브리드도 아닌 순수 전기 버스가 다니고 있다. 요렇게 생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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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데 환경 보전을 위해 전기를 선택한 건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안 그래도 전기차는 배터리 문제 때문에 지금도 소형차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대형 버스가 그것도 배터리 집전 방식만으로 승객을 가득 싣고 에어컨 틀고 산길을 오를 수 있는지가 우려되기도 한다.
실제로 운행 개시 후 얼마 못 가 이런 애로사항이 잔뜩 제기되었다. 하지만 예전에 남산에 갔을 때도 버스가 다니고 있는 걸 보니, 문제점을 수정해서 운용은 계속하고 있는가 보다.

고질적인 배터리 충전+항속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 자동차에서는 몇 년 전에 수소 연료전지 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연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양산과 실용화 단계까지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배기구가 있긴 하지만 그냥 수증기+물만 나온다고 한다.

외국에는 더 엽기적인 발상을 해서 버스 차체에다 배터리 대신 가공전차선을 장착한 '트롤리버스'라는 게 있다. 비록 바퀴는 궤도 위에 놓여 있지 않다는 점에서 노면 전차와 다르지만, 공중에 있는 전차선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궤도 교통수단이나 마찬가지이다. '무궤도 전차'라고 불리기도 한다.
뭐 그럴 거면 "조향을 아예 할 필요가 없는 노면전차나 경전철을 만들고 말지, 저딴 걸 왜 만들어?"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위치가 좀 콩라인스러운 면모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버스의 입장에서는 정교한 레일을 만들 필요 없고 버스도 안에 간단한 집전 장치와 모터만 있으면 되고 배터리 충전 필요 없이 풍부한 전기를 팡팡 끌어다 쓸 수 있으니 나름 괜찮다. 얘도 아까 말한 전방 엔진 버스와 마찬가지로 맨 뒷좌석이 위로 툭 튀어나와 있지 않다.
외국에는 차선이나 하나 떼 낸 버스 전용 차선이 아니라 아예 버스 전용 고가 도로도 있다고 한다. 이것과 트롤리버스가 연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교통 평론가 한 우진 님의 블로그에 소개돼 있다.

전기 모터는 열과 폭발 뒷감당을 하는 내연기관보다 작고 조용하다. 냉각수나 엔진오일, 배기가스 촉매 변환 계통 따윈 없어도 되고 정비성과 유지보수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이 때문에 차량 내구연한을 기름 차량보다 훨씬 더 길게 잡아도 된다.

당장 이북의 평양에도 트롤리버스가 있으며, 영화 <태양 아래>에서는 하필 퍼진 버스를 시민들이 밀고 가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그리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버스가 가파른 비탈길을 매연 안 내뿜고 깨끗하게 오르기 위해서 재래식 케이블 전차와 더불어 트롤리버스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트롤리버스라 하면 노면전차만큼이나 좀 낡고 꼬질꼬질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노인학대급 차량을 굴리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편견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3. 외형이 특이한 놈

버스와 트럭을 정확한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시내버스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큰 슈퍼 에어로시티는 길이가 거의 11미터에 달하며 엔진 배기량은 10리터, 엔진 최대 출력은 300대 초반 마력이다. 이 덩치에 얼추 대응하는 트럭은 8톤 초장축 정도 된다.
(1종 보통 면허로 사람이 많이 타는 버스는 15인승까지밖에 운전할 수 없지만, 트럭은 이 8톤보다도 더 큰 12톤 미만까지도 운전할 수 있다. 그러니 운전 면허라는 건 단순히 기술 수준보다는 법적 책임감을 두고 제정되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그런데 버스 한 대의 덩치를 더 키우고 대당 수송력을 더 키우기 위해 두 가지 시도가 있었다. (1) 위로 층수를 더 늘리거나 (2) 버스의 앞뒤 길이를 더 늘이는 것이다. 그리고 선뜻 믿어지지 않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 두 종류의 버스를 생각보다 옛날에 서울에 도입하려 한 적이 있었다.

높이를 키우거나 길이를 키우면 대당 수송력은 일반 버스보다 확실히 1.몇 배가량 더 증가한다. 입석까지 감안하면 차 한 대에 100명 이상은 너끈히 탈 수 있다. 하지만 외제차를 소량 수입하는 것이다 보니, 수송력 대비 차량 단가는 일반 버스의 2배 이상으로 훨씬 더 증가하고 정비도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어서 가성비 문제 때문에 도입이 무산되곤 했다.

먼저, 2층 버스 얘기부터 하자면.. 얘 원조는 역시 빨간 2층 버스를 굴리던 영국이다. 유명한 런던 명물이니 사진 첨부는 귀찮아서 생략한다.
2층 버스는 여행객을(특히 외국인) 대상으로 굴리는 도시 관광버스 계열이 있는가 하면, 본격 노선 버스(일반 시내버스) 계열이 있다. 전자는 2층은 천장이 없이 뚫려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일반 시내버스용으로는 국내에서 1991년 10월부터 2개월간 서울 시청 - 사당 - 과천 노선을 시범 운행한 적이 있다. 차종으로는 독일 '네오플란'이라는 메이커 수입차를 3대 도입했다. 본인은 그 당시 자동차생활 같은 잡지에서 이에 대해 흥미롭게 다뤘던 걸 본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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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버스는 딱히 회전반경이 걸리는 건 없겠지만 아무래도 무게중심이 높다 보니 커브를 돌 때는 특별히 조심해야겠다. 승용차보다 약~간만 차체가 높은 SUV만 해도 고속 회전 중에 전복 위험이 더 커지니 말이다.
또한 2층 버스는 당연한 말이지만 노선을 짤 때 중간에 높이가 4~5미터 남짓한 육교, 교량, 신호등 따위와 부딪치지 않는지를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2층으로 인해 같은 면적에 걸리는 하중이 증가하는 건 바퀴를 더 달면 해결 가능하다. 하지만 승하차 시간이 길어지는 건 감안해야 할 문제 되겠다. 2층 버스의 구조에 맞는 복층 승강장과 출입문이라도 만들지 않는다면 말이다. 열차로 치면 승강장 길이보다 더 긴 열차가 들어와서 앞의 일부 출입문만 열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당시에 저 2층 버스를 베타테스트 해 봤다. 도로 주행에 딱히 문제는 없었지만, 총체적으로 볼 때 시내 대중교통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차량을 놀이공원 셔틀버스 부류로 용도변경 처분했다. 그 동안 오히려 철도에서 ITX-청춘이라는 국내 최초의 2층 열차가 등장했으나 얘는 아직 경춘선에서만 볼 수 있다.

2층 다음으로, 일명 아코디언 버스라고 불리는 굴절 버스 차례다. 철도 차량이나 트레일러 트럭처럼 중간에 꺾이는 부분을 만들어서 차체의 길이를 늘렸다(11미터 → 거의 18미터). 얘도 의외로 역사가 오래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 여름경에 서울 시내에서 스웨덴제인 스카니아-볼보 차량을 도입해서 테스트한 적이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역시 유지· 정비 비용 같은 가성비 문제 때문에 흐지부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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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묻혔던 굴절 버스는 그로부터 20여 년 뒤, 2004 서울 버스 대개편 때 다시 등장했다. 이때는 이탈리아 이베코 차량이 살짝 로컬라이즈와 원가 절감 디버프를 거쳐서 들어온 뒤, 470 같은 일부 파란 간선 버스에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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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4자리 번호인 초록 버스와 3자리 번호인 파랑 버스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버스 개편 당시의 원래 의도는 둘을 훨씬 더 차별화하는 것이었다. 파랑 버스는 진짜 '대로'급의 간선에서 버스 전용 차선 위주로만 달리고 정거장도 적고 심지어 빨강 버스처럼 요금까지 더 비싸게 받으려 했다. 그리고 그런 파란 버스에 굴절처럼 수송력이 큰 차량을 집어넣는다는 게 계획이었다.

얘는 탈 때 계단을 덜 올라도 되는 저상(1번. 내부 배치 특이)에다 엔진도 기름이 아닌 천연가스 기반이어서(2번. 동력원) 버스의 여러 분야에서 신기원을 개척했다.
운용하는 데 2층 버스만치 기술적으로 어렵거나 위험한 요소는 없지만, 주차나 회차는 좀 아슬아슬할 듯하다. 그리고 중간문이나 후문에서 운전사의 시선을 교묘하게 피한 불법 무임승차를 주의해야 할 것이다. 뭐 CCTV로 잡아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서울 시민들이면 잘 알다시피 저상 버스는 2000년대의 시즌 2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했으며, 몇 년 못 가 시내 도로에서 사라졌다. 고장이 나면 국내 기술자들이 뒷감당을 할 수 없었으며, 디버프가 너무 심하게 됐는지 엔진 출력이나 냉방 조절도 기사 재량으로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기획예산처에서는 굴절 버스의 도입을 세금 낭비 돈지랄로 끝났다고 깠었는데, 이에 대해 한 우진 님은 그렇지 않다는 반박글을 썼었다.
이때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현대 자동차에서 국산 굴절 버스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베코 외제차가 보였던 냉방 같은 문제까지 해결해서 말이다. 하지만, 양산은 더 되지 않았다. 뭔가 포니 쿠페처럼 묻혀 버린 것 같다.

지하철에서는 6호선의 609편성 국산 인버터 지하철이 고장이 너무 잦아서 퇴출되고 다시 외제 인버터로 돌아갔는데.. 버스는 반대로 외제가 정비가 힘들어서 퇴출되고 다시 국산차로 돌아간 것이 특이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10 08:32 2016/08/1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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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 승용차의 종류

자동차에서 일반 서민들이 범접할 수 없는 최고급 승용차라고 하면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말 그대로 롤스로이스, 마이바흐, 벤틀리처럼 대통령, 대기업 총수 등이 운전수를 부려서 타는 기함 계열이다. 차체가 크고 내부엔 온갖 편의 시설이 즐비하다. 뒷좌석에도 팔걸이 다리 받침대가 있고, 개인 모니터와 냉장고도 있다. 차 문과 트렁크는 스위치 조작으로 자동 개폐가 가능하다. 주행 중에도 워낙 조용하고 진동이 안 느껴져서 밖이 고속 주행 중인지 알기가 어렵다.

겨우 네댓 명이 타는 승용차 주제에 공차중량이 2톤을 넘으며, 5000~7000cc에 달하는 배기량으로 300~500마력짜리 출력을 내는 8기통짜리 엔진은 그 규모와 성능이 거의 대형 버스나 트럭과 비슷하다. 그것도 버스· 트럭과는 달리 디젤이 아닌 휘발유 엔진으로 그렇게 달린다. (그럼 연비가..;; ) 힘이 워낙 넘치기 때문에 변속기도 5~6단이 아닌 8단 이상급이며, 1000대 중반 rpm만으로 시속 100km쯤은 거뜬히 넘어간다. 에어컨을 켜도, 무거운 짐을 가득 실어도 고속도로쯤은 슬금슬금 적당한 경제 속도 주행일 뿐, 경차처럼 힘겨운 고rpm 주행이 아니다. 아, 나도 이런 차 몰고 싶다..

이런 차는 진짜 높으신 분들의 보안을 위해 장갑을 장착하여 방탄 의전 차량으로 개조되어 운용되기도 한다. 기관총 탄환은 물론이고 차 밑에서 폭탄이 터져도 어지간히 방어할 수 있다.
물론 장갑이 장착되면 차체는 무슨 군용차처럼 굉장히 무거워진다. 하지만 엔진이 원래부터 워낙 고성능이니 이 정도 부담이 크게 문제될 건 없다.

'크고 호화로운 차' 말고 다른 갈래로는 스포츠카 내지 슈퍼카 계열이 있다. 여기도 포르쉐, 부가티, 람보르기니, 페라리 같은 역사 깊은 메이커 계보가 있다. 이런 차들은 떡대와 갑빠, 안락함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날렵함과 스포티함을 추구했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게 높이가 낮고 정말 매끄럽게 생겼으며, 문도 대체로 쿠페형이다.
사실, 시속 300km 이상은 엔진 출력만 크다고 달성 가능한 게 아니라 속도에 비례해서 폭발적으로 커지는 공기 저항의 제어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같은 고급차여도 단순 호화로운 기함급과 스포츠카 차급의 디자인 철학이 달라진다.

이런 명품 스포츠카들은 너무 성능이 좋으니.. 오토바이도 아닌 것이 그냥 쑥 밟으면 단 몇 초 만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로 진입한다. 운전자는 관성 때문에 뒤로 확 밀릴 것이다. 이런 차를 일반 승용차 몰듯이 밟았다간 그야말로 급발진 사고에 준하는 큰일이 난다.

실제로 2012년 10월엔 이런 일이 있었다. 억대의 포르쉐 카레라 S 한 대가 차주의 경제 사정 때문이었는지 은행에 압류 당해서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었다. 차량은 경기도 화성시에 소재한 자동차 안전 연구원(교통 안전 공단 산하)에 넘겨져서 간단한 검사를 받았는데.. 일반 직원이 이 차를 몰고 시운전을 해 보다가 차가 폭주해 버렸고, 빗길에 미끄러져서 충돌 사고 발생. 운전자는 중상을 입었으며, 차는 경매가 불가능할 정도로 박살 나는 바람에 폐차 처분되었다..; 다시 말해, 압류 자산 값을 못 하고 허무하게 일생을 마쳤다.

호화형이든 스포츠형이든 대도시 시내 도로에서 이렇게 지나치게 고성능인 차들이 제대로 달릴 만한 공간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엔 우리나라보다 땅이 넓은 나라도 많고, 자동차라는 게 남자의 재력 과시와 질주 본능이라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육신적인 욕망을 잘 충족하는 물건이다 보니, 저런 데에 집착하는 부자들이 꼭 있다.

그리고 이런 명차들은 한때는 다 수제 주문 생산을 했기 때문에 더욱 비싸고 희귀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한테나 팔지도 않았다. 하지만 요즘 같은 자본주의 규모의 경제 시대에는 아무리 명차 메이커라 해도 그런 방식으로는 충분한 수익을 내고 살아남을 수가 없어서 다른 자동차 대기업에 합병됐거나 마케팅 방식을 바꿨다. 옛날 같은 고자세를 버리고 돈만 주면 당연히 아무에게나 팔며, 고급차라 하지만 운전수가 태워 주는 구도뿐만 아니라 차주가 오너 드라이빙을 하는 것도 고려해서 뒷좌석만 너무 고급스럽게 꾸미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 자동차에서도 이런 이미지의 쇄신을 위해서 이례적으로 에쿠스라는 브랜드를 접고 제네시스 EQ 900을 기함으로 계승한 것이라 생각된다.

※ 국회의원들의 이동 수단

우리나라는 1952년, 아직 6· 25 전쟁 중이고 수도가 부산으로 임시로 옮겨져 있던 시절에 '부산 정치 파동'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간단히만 말하면 이 승만 대통령이 2선에서도 확실하게 당선되고 독재 기반을 다지기 위해, 자기를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강제로 연행하고 구속한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이 승만을 정치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알 만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때 이 승만 정권이 국회의원들을 납치한 방식이 지금의 우리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이야 국회의원들은 그야말로 평범한 회사원 월급쟁이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돈 많이 벌고 온갖 예우를 세금으로 공짜로 받으면서 호화롭게 산다. 출퇴근 할 때도 당연히 '검정 고급차'를 끌고 다닌다. 과장 좀 보태면 "남들은 전부 외제차인데 나만 에쿠스예요" 이게 그 바닥에서는 겸손이랍시고 나오는 말일 지경이다. 덴마크의 국회의원들은 자전거로 통근하는데 우리나라 국회의원과 너무 비교된다고 까는 글도 인터넷에 올라온 적이 있다. 마치 같은 폭설이 내렸는데 미군과 국군에서 간부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다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1952년 저 시절엔 우리나라가 몹시 가난했고, 게다가 나라가 전쟁 중이었다. 그러니 국회의원들도 얄짤없었다. 무슨 공장 출퇴근하는 노동자마냥 한데 모여 통근버스를 탔었다. 그랬기 때문에 저 때는 검문을 핑계로 그 버스를 강제로 세운 뒤, 헌병대가 군용차를 동원해 버스를 통째로 코렁 시설로 끌고 가는 방식으로 야당 의원들을 간단히 연행할 수 있었다. (!)

지금 느닷없이 옛날 독재가 어떻고 세금값 월급값 못 하는 국회의원(놈)들이 어떻고 하는 골치 아픈 정치 얘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다. 그건 잠시 잊고, 단지 고위 정치인의 이동 수단에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이런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한번 생각해 봤다.

※ 1000마력짜리 스포츠카

세계의 명품 스포츠카/호화 고급 승용차들이 다들 세 자리 수 마력대의 성능을 내고 있을 때, 프랑스의 '부가티 베이론'이 8기통 엔진을 두 개 붙인 16기통 엔진에다 터보차저도 4개나 들여서 1000마력을 돌파했다. 그렇게 해서 최고 속도를 시속 400~430km까지 달성했다.
프랑스는 그렇잖아도 바퀴식 고속철도도 세계 최고 속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2007년, 574km/h!!!) 자동차까지.. 상상 이상의 속도 덕후 과학 기술 강국인 것 같다. 어디 그 뿐인가? 프랑스는 옛날에 콩코드 초음속기도 영국과 공동 개발할 정도였다!

하지만 콩코드와 마찬가지로, 속도가 올라갈수록 가성비는 정말 돈지랄에 가까운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엔진 두 개를 붙였다고 해서 속도도 기존 300대짜리 슈퍼카의 두 배에 준하는 시속 5~600이라도 나오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이런 엔진은 기름뿐만 아니라 공기(=산소)도 어마어마하게 소비한다. 세상에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는데 없어지는 연료가 다 어디로 가겠나? 다 같은 질량의 배기가스(혹은 기껏해야 + 물)로 바뀌어서 차 밖으로 나간 거다. 겨우 한두 명의 탑승자를 이동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 속도가 얼마인지와 무관하게 연료를 태운 양에 정확하게 비례해서 속도가 더 올라가는 건 진공의 우주 공간 속을 비행하는 우주선에서나 가능하지, 공기 속에서 움직이는 자동차나 비행기는 결국 일정 속도 이상부터는 더 속도를 올리기가 급격하게 힘들어지는 것 같다. 이건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가속이 더 어려워진다는 상대성 이론하고는 전혀에 가깝게 무관하며, 광속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저속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공기 저항, 타이어가 받는 마찰열 등..

하지만 비행기는 역설적으로 그런 공기 저항을 받아야 뜰 수가 있으며, 자동차는 지면 마찰이 어느 정도 있어야 바퀴를 굴려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뭔가 비선형적인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기술하려면 역시나 복잡한 미분 방정식을 풀 줄 알아야겠다. 중등교육 수준의 물리 시험 문제에서는 '단, 공기 저항은 무시한다' 단서가 아무 생각 없이 나왔겠지만 대학 이후의 고등교육 전공부터는 이상이 아닌 현실을 다루니까. 이 분야를 정밀하게 연구해서 자동차와 비행기의 엔진 성능을 더 끌어올리려면 풍동 실험실 같은 게 필요하고 기계공학 석박사 이상의 학력과 연구 경력이 필요하겠다.

※ 우리나라의 스포츠카 컨셉 차량의 역사

1976년에 천신만고 끝에 이탈리아 디자인과 일본 엔진으로 포니라는 고유 모델을 겨우 만들어 낸 우리나라에서 하루아침에 포르쉐나 람보르기니 같은 명품 스포츠카가 만들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술로나 경제력으로나 정서로나 모두.
그나마 쥬지아로가 같이 설계해 줬던 포니 쿠페조차도 "이런 디자인은 경제성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우리나라 정서와 미풍양속(?)과 맞지 않는다. 높으신 분들의 눈 밖에 나겠다"라는 이유로 양산되지 못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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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쿠페. 당시 포니의 개발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훗날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쿠페 모델이 컨셉트 카만으로 묻힌 걸 무척 아쉬워했다.)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쿠페형으로 스포츠카 비스무리한 물건을 최초로 시도한 것은 1990년에 출시된 현대 스쿠프이다. 엑셀과 비슷한 외형과 크기이고(동일한 하체 프레임, 엔진 배기량도 1500cc로 동일) 성능도 외국의 스포츠카에 비해서는 택도 없었지만, 엑셀에서는 선택사양이던 리어 스포일러가 기본으로 달려 있고 뭔가 날렵한 외형이 젊은 연령의 운전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스포츠/경주용 자동차에 리어 스포일러는 그저 폼이나 장식으로 다는 건 아니고, 고속 주행 시에 차량에 발생하는 양력을 억제해서 주행 안정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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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스쿠프 1 (1990), 엑셀 X2 (1989. 뉴 엑셀 말고), 쏘나타 Y2 (1988)는 전방의 램프 모양이 서로 굉장히 비슷했다. 이 중에 가장 먼저 나온 것이 중형차인 쏘나타 Y2이고, 얘는 조르제토 주지아로 디자인의 끝물을 본 작품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쏘나타의 디자인이 더 작은 차급인 스쿠프와 엑셀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겠다.
포니부터 시작해서 스텔라(쏘나타의 전신)와 프레스토(엑셀의 전신)까지 다 쥬지아로의 디자인인 반면, 당시 최고급 승용차이던 그랜저(1986)만은 쥬지아로가 관여하지 않은 디자인이라는 특징이 있다. 얘는 일제와 합작해서 만들어진 거니까.

스쿠프는 젊은 컨셉답게 유난히 파란색이 많았고 빨강도 심심찮게 보였던 것 같다. 무채색 중에는 차라리 검정. 드물게 하양도 있었지만, 스쿠프가 엑셀· 쏘나타 같은 평범한 승용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색 도색인 건 내가 본 기억이 없다. 여러 모로 독특한 차였다.

외형 다음으로 엔진을 논하자면, 그랜저가 1986년 처음엔 2000cc 엔진으로 시작했다가 2400cc를 거쳐 나중에 3000cc V6 모델을 출시했듯, 스쿠프도 처음에는 미쓰비시 오리온 엔진을 사용하다가 1991년 봄에 최초의 자체 개발 알파 엔진을 얹고, 그 해 가을에는 터보차저까지 얹는 식으로 성능을 끌어올렸다. 특히 최초의 휘발유 터보 엔진을 장착함으로써 스쿠프는 1500cc 배기량에서 엔진의 최고 출력이 세 자리수 마력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제로백이 10초 이내로 당겨졌으며, 최대 시속이 200km를 돌파했다.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스쿠프 이후로 스쿠프 2가 나왔고, 그 뒤 현대 자동차에서는 엘란트라를 시작으로 아반떼라는 준중형 승용차를 내놓았다. 스쿠프가 터보를 소개했다면 엘란트라는 DOHC 흡기 방식을 도입하여 고성능을 표방했다.
이 엘란트라의 후속 모델로는 잘 알다시피 아반떼가 나왔다. 1세대 아반떼는 가성비 최강에 그야말로 불후의 명차로 대접받았는데.. 이 아반떼 플랫폼을 기반으로 스쿠프의 뒤를 잇는 스포츠 쿠페 후속 모델이 나왔다. 바로 티뷰론.

현대 자동차가 거의 1990년대 초부터 애지중지 연구했던 컨셉트 카로 HCD-II가 있는데, 그게 양산된 게 티뷰론이다. 마치 철도계에서 컨셉트카 HSR-350x가 양산된 것이 KTX-산천인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4분 30초짜리 티뷰론 광고 영화 동영상은... 뭐랄까 스케일 한번 참 거창하게 만들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보기엔 좀 중2병스럽기도 해 보인다.
악당들이 포르쉐를 탈취해 가는데 경찰들은 자기 경찰차로는 쟤들을 따라잡질 못함. 그런데 때마침 베일에 싸인 티뷰론을 수송하는 트레일러가 지나간다. 경찰들은 거기로 진입해서는 트레일러 운전사에게 신분증 제시하면서 "우린 경찰입니다. 좀 협조해 주시죠"..와 함께 그 티뷰론을 공권력-_-을 동원해 빌려 타고.. 쌩쌩~~

저게 고딩 시절에 거원 제트오디오 CD 안에 예제 동영상으로 들어있기도 했다.;; 사이버 가수 아담 뮤직비디오와 더불어 말이다. ㅎㅎ
옛날에 엘란트라 아우토반 CF도 그렇고 현대차 관계자들은 자기 회사 차로 외국 스포츠카를 따라잡는 걸 그렇게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티뷰론 이후로 2000년대에는 '투스카니'라는 스포츠형 쿠페가 나왔다고 한다. 이제 현대도 기술이 많이 발달했고 차의 배기량도 2700cc로 뛰어서 그럭저럭 무늬만 스포츠카에서 레알 스포츠카로 진입하는 단계라는 소리를 들었다. 국내외로 평도 좋았다. 하지만 본인은 이 차는 정말 본 적이 없고 기억도 전혀 없다. 스쿠프만 해도 그 어리던 시절에 지방에서도 종종 봤던 것 같은데 얘는 왜 이리 생소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200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현대 자동차가 밀고 있는 스포츠형 쿠페는.. '제네시스 쿠페'이다.
에쿠스 다음으로 대형이던 후륜 세단을 베이스로 한 차량답게 얘 역시 후륜이다. 게다가 세단 제네시스와 동일한 3800cc 엔진도 얹혔는데, 세단과는 달리 저렴한 중형급의 2000cc 모델도 추가로 존재한다.
뭐 가격이 수억에 달하는 외국의 초고성능 슈퍼카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제네시스 쿠페 정도면 제로백도 5초대까지 왔고 세계 어디를 가도 진정한 스포츠카 체급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그게 21세기에 와서야 달성된 것이다.

현대 자동차는 과거의 에쿠스 같은 호화형 차량에다, 고성능 스포츠카까지 최고급 승용차는 모두 '제네시스'라는 브랜드로 판매하려는가 보다.
또한 스포츠카의 포지션이 처음에는 엑셀과 비슷한 소형에서 시작했다가(스쿠프), 준/중형(티뷰론, 투스카니)을 거쳐 중/대형(제네시스 쿠페)로 점차 커져 온 것을 현대 자동차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 주행 시험장

우리나라에서는 현대 자동차가 기아 자동차까지 같은 계열사 안으로 흡수한 뒤, 그야말로 국내 톱급 규모의 자동차 제조사로 군림해 있다. 그래서 대졸 신입 사원의 연봉도 업계 최강인 것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풍족하다. 국내의 자동차 제조사들 중엔 유일하게 차량 수송을 위한 철도 차량을 자체 보유하고 있으며(울산-성북.. 아니 태화강-광운대), 또 기술 연구소 내에 자체적인 주행 시험장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태화강 역 근처에 있는 현대 자동차 주행 시험장은 트랙에서 직선 도로의 길이가 1km가 채 되지 않아 다소 작은 감이 있다. 물론, 대도시에다 철도역까지 가까운 곳에 그 정도 시험장이라도 있는 게 감지덕지이겠지만..
화성시에 있는 남양 연구소의 주행 시험장은 트랙의 직선 길이가 2km 남짓으로 훨씬 더 길며, 그렇기 때문에 시속 200km급의 고성능 주행 시험도 그럭저럭 가능하다. 그보다 더 북쪽에 있는 교통 안전 연구원의 주행 시험장도 인터넷 지도로 보면 크기가 그 정도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볼 때 움직이는 물체가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서 커지니, 슈퍼카의 성능을 안정적으로 테스트하는 데는 그 정도 크기로도 부족하다. 현대 자동차는 미국 모하비 사막에도 국내의 시험장보다 더 큰 주행 시험장을 건립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름하여 Hyundai/Kia Proving Grounds. 트랙 내부의 직선 도로는 거의 4km에 육박한다.
참고로 보잉 747을 연료 만땅 상태에서 이륙시키기 위해 필요한 활주로의 길이가 이미 2.5~3km에 달하며, A380이나 An-225급이라면 진짜 저렇게 4km 정도는 돼야 한다.

참고로 이 모하비 주행 시험장은 모하비 공항(겸 우주항)과 꽤 가깝다. 직선 거리로 10km 남짓 떨어진 건 미국의 땅 넓이를 감안하면 이웃집이나 마찬가지인 거리이고 무엇보다도 위도가 거의 같다. 모하비 공항은 세계에서 실려 온 노후 중고 항공기들의 보관소이며 민간 우주 왕복선이 뜨고 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끝으로, 모하비 주행 시험장보다도 더 긴 유명한 주행 시험장은 독일에 있는 Ehra-Lessien test track인데, 트랙 직선 거리는 거의 9km에 달한다. 아까 언급되었던 부가티 베이론의 최고 속도는 이 시험장에서 측정되었다. 자동차의 속도가 극단적으로 빨라지면 모든 게 불안해지는데, 오버런 내지 커브 전복 사고를 안 내려면 최고 속도를 찍자마자 허겁지겁 감속을 해야 했을 것 같다. 물론 대형차가 아니니 그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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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속 자동차는 아예 정식 주행 시험장에서 테스트를 하지도 못하고 얄짤없이 사막 모처로 가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_-

Posted by 사무엘

2016/08/07 08:39 2016/08/0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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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력: 공기보다 가벼운 가스를 잔뜩 실어서 뜬다. 배가 물에 뜨는 것과 개념적으로 동일한 원리임. 비행선이나 기구는 둥실둥실 우아하게 뜨고 내릴 수 있으며 공중 정지가 가능하고 연료도 적게 들어서 좋다. 그러나 얘는 중량 대비 동체의 부피가 너무 커지며 비행 속도도 대단히 느려서 실용성이 떨어진다. 엔진이 꺼졌다고 바로 추락하지는 않지만, 피탄 면적이 너무 크기 때문에(가스가 새면?) 그게 안전 관점에서 안 좋다.

(2) 양력(고정익. 동체가 움직여서 생성): 고성능 엔진으로 공기+배기가스 혼합 가스를 내뿜어서 추력을 만들긴 하지만, 추력으로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고 그 뒤 날개로 양력을 발생시켜서 뜬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빠르게 움직여야만 양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조종이 까다로우며, 이착륙 시엔 매우 길고(가속) 넓은(날개 폭..) 활주로가 필요하다. 그래도 장거리 비행에 충분한 비행 속도와 경제성(항속거리)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 바로 이 방식이다.

(3) 양력(회전익. 날개 자체가 공기를 휘저어서 생성): 엔진으로 로터를 회전시키고 그걸로 직통으로 양력을 발생시켜서 뜬다. 고정익기보다 더 불안정하고 조종과 자세 제어가 까다로운 데다, 느리고 연비도 안 좋다. 하지만 활주로 없이 달랑 뜰 수 있고 공중 정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전히 고정익기와는 별개의 활용 영역이 존재한다.

(4) 추력: 날개 없이 연료를 태운 배기가스를 내뿜는 반작용 추력만으로 뜬다. 날개도 없이 초기에 굉장한 고도와 속도를 얻을 수 있으나, 연료 소모가 너무 극심하여 연료와 중량 대비 항속 거리가 매우 짧다. 이건 비행기보다는 로켓이나 미사일, 우주선의 동력원으로 더 적합하다. 지구 중력을 탈출하려면 닥치고 위로 솟구쳐 올라가야 하며, 달이나 우주 같은 곳은 애초에 대기가 없어서 부력이고 양력이고가 전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기가 없다는 말은 연료를 태울 산소도 없음을 의미하므로, 연료 자체를 산화제와 함께 섞어서 만들어야 한다.

(2)의 원리로 날도록 만들어진 비행기/비행체라도 중량 대비 엔진 출력이 캐사기급으로 좋다면 제한적으로 (3)이나 (4) 같은 기동을 할 수 있다.
그래서 F-22 같은 최신 전투기는 무슨 로켓처럼 수직 상승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람이 안 타서 가벼운 무선조종 항공기 같은 것도 실속에 빠졌을 때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리고 차라리 프로펠러가 있는 쪽이 위로 향하도록 하면.. 프로펠러가 마치 헬리콥터 로터처럼 돼서 비행기를 호버링 상태로 최소한 추락 사고는 안 내고 보전이 가능하다. 반쯤은 틸트로터 비행기처럼 운항 가능한가 보다.

물론 덩치 큰 여객기에게는 저런 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동체를 수직으로 세웠다가는 곧바로 추락한다..;;

이런 기계들 말고 새와 곤충 같은 생명체가 공중에 뜨는 건 일단 (1)과 (4) 부력과 추력은 제끼고 시작한다. (1)은 크기 압박, (4)는 분출과 힘 압박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구현 가능하지 않다. 결국 남는 건 양력인데, 생물의 비행은 고정익과 항공익 어느 하나로 딱 떨어지지는 않아 보인다.

날개를 직접 퍼덕여서 상하 압력차와 양력을 만드니, 대놓고 고정익은 아니다. 게다가 어디서든 간편하게 떴다가 내릴 수 있으니 고정익의 한계를 갖고 있지 않다. 새가 무슨 활주로가 필요하다거나, 주변 공기를 다 빨아들여서 온갖 요동을 치고 후폭풍을 일으키며 날지는 않는다!
하지만 긴 날개를 쫙 펴서 글라이더처럼 활강하는 새도 있기 때문에 고정익 비행 원리도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고정익 항공기를 발명한 선구자들이 새들의 날갯짓을 눈에 불을 켜고 관찰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새들은 하늘을 날기 편하라고 여느 육상 동물들보다 시력이 아주 좋으며, 덩치 대비 폐활량도 훨씬 더 우수하다고 한다. 뼈도 가볍고 공기구멍이 많다던데, 그럼 골다공증이 인간에게는 병이지만 새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보다.

지상에서 무려 9~10km 위인 어지간한 여객기 순항 고도에서 나는 철새들도 있다. 이들은 그 먼 길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정말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매 같은 새가 공중을 날다가 거의 8~90도로 급강하해서 지표면의 작은 동물이나 물고기를 채어 가는 건 어지간한 전투기의 기동 뺨치는 스킬이다. 이런 기술은 절대로 그냥 저절로 생길 수가 없으니 '지적 설계'의 근거로 인용되기도 한다.

큰 새가 아니라 벌새나 참새 같은 극단적으로 작은 새들은 활강 따위 없이 닥치고 죽어라고 날갯짓을 해야만 공중에 뜰 수 있다. 이는 헬리콥터의 특성에 더욱 가깝다. 날개를 퍼덕이는 횟수가 초당 수십 회에 달하기 때문에(분당 2~3천 회) 소리가 '퍼덕퍼덕'이 아니라 말 그대로 엔진 소리처럼 '부웅', 영어로는 droning이 된다.

이 때문에 요런 동물들은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며, 덩치 대비 식사량도 엄청나게 많다. 내연기관으로 치면 회전수가 왕창 높은 오토바이용 2행정 숏 스트로크 엔진 같다. 디젤 엔진과는 스타일이 완전 반대다.
새들은 그렇게 힘들게 공중에 떠 있다 보면 곧 지치기 때문에 착륙해서 쉬어야 한다. 옛날에 중국에서 "저 새는 해로운 새다" 운동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무슨 무기를 쓴 게 아니라, 모조리 쭈욱 도열해서 참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쉬질 못하게 해서 비행 중에 지쳐 떨어지게 하는 방법으로 참새를 잡았다.

새 다음으로 곤충으로 가면.. 전세계에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고 있는 동물은 같은 사람이 아니며,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도 아니고 뱀도 아니고.. 모기라고 한다. 곱게 피만 빨아먹고 꺼지는 게 아니라 나쁜 병원균을 같이 옮겨서... (그래도 모기 다음의 굳건한 2위는 사람이 맞댄다. ㄲㄲ)
모기는 비행체로서는 힘이 아주 부족하며 항속거리도 짧다. 지상에서 스스로 10층 이상의 고층 빌딩을 오르지는 못하며, 엘리베이터나 계단 복도 등을 타고 올라온다고 한다.

하지만 모기는 기동성은 최고이다. 공중정지부터 시작해 그야말로 상하좌우전후 6방향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그나마 민첩하지 않아서 파리보다야 훨씬 쉽게 잡을 수 있는 게 다행이다. 게다가 피를 빨아먹은 뒤엔 무거워서 민첩성· 반응성이 더욱 떨어지기 때문에 인간에게 잡힐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원하는 시뻘건 액체를 얻었으면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고 사라지는 게 사람과 모기에게 모두 좋을 텐데, 그런 것까지 생각할 정도로 모기가 똑똑하지는 못하다. 게다가 모기의 '웨엥' 날갯짓 소리는 흡혈 이상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극도의 불쾌감과 모기에 대한 살생 충동을 부추기는 요소이다.

* 여담: 복엽기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발명한 비행기를 포함해 1910~1920년대까지의 비행기의 형태는 복엽기가 대세였다. 복엽기란, 날개가 위아래로 두 겹이 달린 비행기를 말한다. 그게 옛날 비행기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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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한눈에 봐도 공기 저항을 최소화한 '에어로다이나미컬'한 디자인은 아니어 보이는데.. 초창기에 비행기의 모양이 저랬던 이유가 무엇일까?
날개를 두 겹으로 배열하면 같은 속도에서 공기를 더 많이 부딪치고 양력도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2배까지는 아니어도 1.x배 정도는 말이다. 또한 이렇게 하면 한 날개에 걸리는 공기의 압력 오버헤드를 분담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옛날의 비행기는 100여 년 전의 열악한 엔진+날개 기술로 일단 어떻게든 공중에 뜨는 걸 목표로 했다. 속도는 일단 안정적으로 뜬 뒤에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였던 것이다. 애초에 고정익기는 이륙할 때(양력)와 착륙할 때(제동) 모두 뒷바람이 아닌 맞바람이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금속으로 더 튼튼한 비행기 날개를 넣는 기술이 개발되고 엔진의 성능도 향상되면서 비행기의 트렌드는 단엽기로 바뀌었다.
헬리콥터로 치면 상하로 로터가 둘 달린 동축 반전 로터가 만들어졌다가, 나중에는 지금 같은 테일로터 방식이 주류가 된 것과 비슷한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 여담: 라이트 형제에 대해서

세상을 바꿔 놓은 발명들이 일단 개발된 뒤에도 아무 탈 없이 곱게 정착하고 실용화된 건 아니었다.
자동차의 경우 영국에서는 잘 알다시피 멀쩡하게 잘 만들어 놓고도 적기 조례라는 규제 병크(기존 마차 운수업자들 보호..) 때문에 자동차 기술이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뒤쳐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는 이제 유명인사가 되고 돈방석에 앉은 게 아니라... 자국 정부 기관으로부터는 외면받고, 비행 기술을 시샘하는 동종업계 종사자들로부터는 웬 표절 도용 소송을 당해서 굉장히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됐다. 그 동안 정작 프랑스와 영국, 심지어 일본 같은 경쟁국에서는 라이트 형제를 VIP로 대접했으며, 한편으로는 비행기 제조 기술을 빼내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한국도 아니고 선진국에 엔지니어· 덕후의 천국인 미국이 그것도 자국 국민으로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발명을 한 라이트 형제를 당대에 그렇게 홀대했다는 건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형인 윌버 라이트는 여기 저기 쓸데없는 소송에 말리면서 몸과 마음이 쇠약해졌으며, 1912년에 40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동생인 오빌 라이트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비행기 기술이 지금의 컴퓨터 기술만큼이나 가히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본 뒤, 1948년에 죽었다. 1903년에 플라이어 1호를 띄우고도 40년이 넘게 더 살아 있었던 것이다.

오빌과 윌버가 한 비행기를 같이 타고 조종한 건 1910년 5월 25일의 가족 비행이 마지막이었다. 지금까지는 여든이 넘은 친부가 "둘이서 한 비행기를 타다가 추락 사고라도 나서 다 죽어 버리면 비행기 연구의 맥이 끊어지지 않느냐? 그러니 연구 중에 비행기엔 반드시 한 명씩만 타고 다른 한 명은 땅에 있어라"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라고 함..;;

그리고 끝으로, 라이트 형제는 목사의 아들인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런데 평생을 비행기에 미쳐 사느라 두 사람 모두 독신으로 살다가 갔다..;; 후세는 못 남겼지만 전세계인들이 영원히 기억하는 이름을 남겼다.
비행기를 발명해서 유명해지고 신문 기자로부터 혹시 결혼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들은 이렇게 대답한 것이 잘 알려져 있다.

  • 오빌: 형부터 결혼하면 그 다음에 나도 할 거예요.
  • 윌버: 비행기와 부인에게 둘 다 쓸 시간은 없습니다. (!!)

그래서 둘 다 독신이 됐대나 어쨌대나..;;

Posted by 사무엘

2016/08/04 08:38 2016/08/0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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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나 비행기, 열차 같은 모든 교통수단들은 진행 방향이 다른 교통수단과 한 지점에서 교차할 위험이 있는 곳에서는 신호 시설의 통제를 받으며 움직여야 한다. 비행기는 이륙이야 그냥 관제탑으로부터 허가가 날 때까지 활주로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지만 착륙은.. 신호 대기를 할 수 없고 상시 선회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트래픽 대비 활주로가 부족한 혼잡한 공항에 착륙하는 게 다소 난감한 일이다.

그런데 동일 경로의 공유와 교차가 같은 종류의 교통수단끼리만 발생하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옛날에 이종간의 하이브리드를 시도한 교통수단들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교통수단들간의 이색적인 교차 양상에 대해 살펴보겠다.

1. 사람 vs 자동차

이건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가장 먼저 생긴 갈등(?)일 것이다. 이 때문에 일단 횡단보도가 만들어졌으며, 아주 혼잡한 곳에서는 사람과 자동차를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서 육교와 지하도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높이의 변화는 노약자, 혹은 짐이 많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악재이기 때문에, 귀차니즘에 충실한 보행자의 무단횡단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고 있다.

사람들과 차들이 터져 나가는 교차로에서는 그냥 단순무식하게 일정 시간 주기로 빨간불과 파란불을 반복하면 되지만 한적한 시간과 장소에서는 점멸 신호 내지 주문형(보행자가 버튼을 눌러서 요청을 했을 때에만 잠시 후 파란불이 되는) 신호등이 운용되기도 한다.

2. 육상 vs 철도

육상 교통수단들 중 진행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놈은 단연 철도 차량이다. 차량이 무겁고 수송량이 압도적이며, 무엇보다도 너무 둔하고 지면 마찰도 작아서 가감속을 날렵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얘가 일단 속도가 붙어 버렸으면 아무도 감당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의 차와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인 교통사고가 나면 무단횡단에 굉장히 관대하고 오로지 운전자에게만 과실을 뒤집어 씌우는 관행이 심하지만, 그래도 철길 주변 보행이나 철길 건널목 교통사고에서까지 보행자에게 무한 관대하지는 않다.

철길 건널목 사고가 나면 철도 당국은 여러 모로 골치아파진다. 2002년 5월에 어느 전라선 상행 새마을호에서 발생했던 3연속 건널목 사고는 요런 사고의 아주 극단적인 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지금까지 꾸준히 전국의 수백, 수천 곳에 달하는 건널목들을 야금야금 모조리 정책적으로 입체화해 왔다. "열차를 급정거시킬 수 없다면 애초에 급정거해야 할 상황 자체를 봉쇄하자"라는 발상에 따른 것이다. 이런 조치 덕분에 오늘날 철도 건널목 사고는 3, 40년 전에 비해서 굉장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이 아닌 서울에도 일부 건널목이 있다. 물론 무려 3복선이 된 경부선이나 2복선짜리 경인선 구간에 건널목이 있는 건 아니며, 그 이북의 경의선과 경원선, 특히 경원선 구간에 한정되어 있다.

먼저 서빙고 역에서 한남 역 방면으로 400미터쯤 전방 반포대교 근처를 보면 건널목이 있다(서울 용산구 서빙고로62길). 새마을· 무궁화 같은 열차도 아니고 전동차가 지상에서 차들이 기다리고 있는 건널목을 통과해 간다니 참 상상이 안 된다.
서빙고 역 인근에는 자동차 도로를 예각으로 가로질러서 미군 기지로 들어가는 단선 철도도 이따금씩 쓰이는가 보다. 이거 유명한 사진이다. 차단기도 없이 이거 정말 안습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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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회기 역에서 외대앞 방면으로 얼마 안 간 곳에도 건널목이 있으며(서울 동대문구 휘경로12길), 이웃 외대앞 역은 역 출입구에 대놓고 선로 횡단 건널목이 있다. 육교와 지하도로 대체 경로도 있으니 코레일에서는 여기를 못 없애서 난리이나, 인근 주민과 상인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서 건널목을 완전히 못 없앤 상태이다.

심지어 육교에다가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까지 다 놔 줘도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한다. 아무리 최첨단 액세서리 기능들로 무장한 안경이나 휠체어가 있어도, 그런 게 애초에 필요하지 않은 건강한 눈과 건강한 다리보다 나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그런가 보다.
경원선 구간은 일반열차가 다니기도 하고 게다가 이렇게 건널목까지 있으니 전동차(운행 계통상으로는 경의중앙선)의 배차간격을 지금보다 더 줄이는 건 도저히 무리일 것이다.

경원선보다 상태가 더 안습한 건널목은 바로 서울 역 이북 경의선 구간에 있는 '서소문 건널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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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수색 기지에서 서울· 용산 역으로 입출고하는 KTX 포함 모든 일반열차들이 이 선로를 지나기 때문에 그야말로 크리티컬 중의 크리티컬이다. 그야말로 몇 분이 멀다 하고 차단기가 내려온다. 애초에 경의선 서울-신촌 통근열차/전동차가 1시간에 1대꼴밖에 못 다니고 지금도 경의중앙선의 지선으로 전락한 이유도 이런 열차들의 트래픽 때문이다.

그러니 이 건널목으로 정상적인 차량 통행은 곤란하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완전히 틀어막고 건널목을 없애기에는 지상의 자동차 트래픽도 무시 못 하며(밤에는 열차 운행도 뜸해지거나 중단되니), 이 건널목은 입체화를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로 위로는 서소문 고가차도가 있고, 지하로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지나기 때문이다(시청-충정로 사이. 서울 도시 구간에는 2호선이 별로 깊지도 않음). 여러 모로 진퇴양난이다.

3. 육상 vs 배

배는 물 위를 다니는 교통수단이며, 자동차는 수륙양용이 아닌 이상 다리가 놓여 있어야 물 위를 건널 수 있다. 그러니 자동차와 선박이 교차 가능한 상황이란 단 한 가지 경우뿐이다. 바로 다리가 도개교(bascule, 跳開橋) 형태인 것이다. 이게 철도로 치면 차단기가 내려오는 것과 개념적으로 동일하다.

요즘은 건축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애초에 다리를 지을 때 어지간히 큰 선박도 아래로 지나갈 수 있게 왕창 높고 크고 기둥 간격도 넓게 만들곤 한다. 선박의 통과를 위해 다리를 통째로 들어올리게 되면 그 동안 자동차들의 통행이 막히는 큰 불편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요즘은 길거리에 자동차들이 좀 많나..;; 그러니 도개교는 노면 전차만큼이나 좀 과거의 유물이고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돼 있다.
우리나라에는 도개교가 전국을 통틀어 딱 한 군데 있다. 바로 부산의 영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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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일제 강점기인 1934년에 도개교 형태로 오리지널이 완공됐다. 부산은 일본과 가까운 항구 도시로서 그 시절부터 대도시였으며, 나룻배만으로 영도와 본토 사이를 오가기에는 트래픽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다리가 생기긴 했지만 그때엔 선박의 트래픽도 여전히 만만찮은 수준이어서 리즈 시절엔 다리 도개를 하루에 무려 7번이나 했다고 한다. 매회 도개 시간은 약 20분.

이렇게 자동차와 선박 사이의 평면교차가 이뤄졌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영도대교의 도개는 15분씩 하루 2회로 줄었다. 게다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50년 전인 1966년 9월에는 다리 아래로 상수도관을 매달면서 도개가 중단되어 버렸다. 노면 전차(1968) 내지 증기 기관차(1967)와 비슷한 시기에 도개교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게 흥미롭다.
뭐, 도개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다리를 근 60년 가까이 잘 쓰면서 지냈는데.. 마침 1994년 가을,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터졌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는 혹시 성수대교 시즌 2가 벌어질 여지는 없는지 전국의 유명 교량들을 부랴부랴 긴급 점검했다. 이때 서울에서는 지하철 2호선이 다니는 당산철교가 시범 케이스로 제대로 걸렸다. 그야말로 "성수대교가 안 무너졌으면 얘가 무너졌을 것이다. 달리던 지하철이 다리와 함께 나란히 강으로 추락해서 초특급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급의 막장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산철교는 전면 철거 후 새로 만들어졌는데..

부산에서는 지은 지 너무 오래 된 영도대교가 '대대적인 긴급 보수, 혹은 아예 철거 후 재시공 필요' 판정을 받았다. 간이역 건물만큼이나 역사적인 가치가 크고 안전을 위해 여러 번 땜빵도 했지만, 넘쳐나는 교통량을 감당하고 근본적인 안전이라는 토끼까지 둘 다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지금 다리는 철거해 버리고 다리를 더 큰 규모로 다시 놓을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됐다. 그래도 새 다리는 오리지널 영도대교와 최대한 같은 외형으로 만들고, 먼 옛날에 봉인되어 버렸던 도개 기능도 상징적인 차원에서 다시 부활시켰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영도대교는 지난 2013년 11월에 개통했다. 하루 한 번(오후 2시) 다리를 15분 동안 들어올린다.
그러고 보니 민방위 대피 훈련도 매달 15일의 이 시간대에 20분 동안 진행한다. 다리를 들어올리는 건 출퇴근 시간대를 피해서 벌건 대낮에 하는 게 아무래도 운전자들에게 민폐가 덜하기 때문일 것이다.

4. 육상+철도의 특수한 경우

음, 그러고 보니 전라남도 무안과 영암 사이에는 호남선의 지선인 대불선이라는 화물 철도가 있다.
얘도 종점 인근에 자동차 도로와 만나는 건널목이 있는데, 여기는 서울처럼 열차나 차량 통행량 자체가 너무 많아서 입체화가 필요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과는 전혀 다른 문제가 건널목에 존재한다.

대불선은 전철화가 돼 있다. 그런데 이게 고성능 전기 기관차를 운용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는 호재이지만, 화물 수송 능률면에서는 큰 악재이기도 하다.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린 전차선 때문에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화차에다 선뜻 실을 수가 없으며, 게다가 전차선의 높이보다 더 높게 화물을 쌓은 트레일러가 건널목을 지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즉, 교량 때문에 높은 배가 통과할 수 없어 지는 것과 비슷한 양상의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여기 건널목에는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됐고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동식 전차선이 존재한다. 마치 배가 지나가게 다리를 들어올리듯, 아슬아슬 간당간당한 대형 트레일러가 건널목을 통과할 때는 건널목 위를 지나는 전차선을 잠시 치울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치 주문식 횡단보도 신호기처럼.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

5. 육상 vs 비행기

자동차가 비행기의 항로를 침범한다는 건 불가능-_-한 일이고, 그 대신, 과거에 일부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가 비상시에 군용기의 활주로로 쓰이는 경우는 있었다.
경부 고속도로에 신갈, 천안을 비롯해 몇몇 구간이 이상하리만치 곧고 길게 잘 뻗었으며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붙박이 중앙분리대가 없이 페이크 이동식 중앙분리대만 있었다. 그런 곳이 바로 활주로 공용 구간이었다.

옛날에는 물론 자주는 아니었겠지만 공군이 가끔씩 경부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틀어막고 실제로 훈련을 했다.
동아일보 1988년 3월 30일자를 보면, "팀 스피리트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의 하나인 비상 활주로 이착륙 훈련이 30일 경부 고속도로 판교-신갈 구간에서 전투기 F4, F5, F15, F16, 대형 수송기 C123, 폭격기 B52 등이 참가한 가운데 실시됐다." 같은 보도가 있다. TV 뉴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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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지금 8차선, 10차선으로 확장되고 있고 24시간 차들로 터져 나가는 그 경부 고속도로의 일부를 틀어막고, 거기서 전투기 이착륙 훈련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이야 그런 비상 활주로들은 다른 한산한 도로로 옮겨지고 해제되고 있다. 특히 활주로 구간의 중간에 분기점이나 나들목을 만들다 보면 활주로 기능이 자동으로 상실되었다. 성환 활주로에 생긴 북천안 IC처럼 말이다.

그런데, 활주로+고속도로 공용보다 더 엽기적인 사례가 있다.
스페인의 남부에 있는 영국 속령인 '지브롤터'라는 지역에는 지브롤터 국제 공항이 있는데, 얘는 전세계의 공항들 중 유일하게 공항 활주로가 일반 도로와 수직으로 평면교차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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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이착륙 예정일 때는 마치 철도 건널목처럼 차단기가 내려오며, 운전자들은 눈앞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걸 저렇게 빤히 지켜보게 된다.
활주로에는 이물질 하나 있어서는 안 된다. 일례로 2000년 7월에 발생한 에어프랑스 4590편 콩코드 여객기 추락 사고는 바로 전에 먼저 이륙한 비행기에서 떨어진 부품을 밟는 바람에 발생한 사고였다.

그런 와중에 여객기 활주로가 자동차 도로와 평면교차한다는 건 안전이나 보안 면에서 굉장히 아찔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활주로를 포함하는 공항 담장 외벽에 철조망이 괜히 쳐진 게 아닌데.;;
캄보디아의 씨엠 립 국제공항은 비행기 착륙 후에 여객 터미널까지 승객이 활주로 바닥을 걸어서 이동하며, 제주 국제공항에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X자 모양으로 평면교차하는 두 활주로를 바꿔 가며 운용하긴 한다. 일본의 나리타 국제공항은 지역 주민들의 알박기 때문에 반쯤 고자처럼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지브롤터 국제 공항은 그런 공항들보다 더 엽기적이다. 비보호 좌회전+평면교차가 있던 옛 88 올림픽 고속도로의 남장수 IC의 공항 버전이라 하겠다.
활주로는 지형과 역사적인 사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만들어졌으며, 딱히 더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01 08:39 2016/08/0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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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칼리스타(1992)와 기아 엘란(1996).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그 옛날에 저런 자동차도 팔았나 싶은데, 위의 두 자동차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 본인은 직접 본 경험이 전무하다. (초딩 시절에 대우 임페리얼조차 길거리에서 본 적이 있건만, 저것들은 정말 듣보잡. 그나마 칼리스타는 자동차 잡지를 통해서 접하긴 했었다.)
  • 나름 2인승 스포츠카 컨셉으로 영국제 자동차를 그대로 들여 와서 생산했다.
  • 생소한 컨셉에다 너무 비싼 가격으로 인해 망했음. (수제 생산 크리)

굳이 나 말고도 자동차 매니아들이라면 국내의 자동차 역사에서 두 차량이 갖는 유사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1. 기아 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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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자동차는 1980년대 말에 외제차 수입 규제가 완화되자마자 3000cc급 대형 고급차 컨셉으로 머큐리 세이블이라는 미제 승용차를 수입 판매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쯤 전인 1970년대 말에 현대 자동차에서 최고급차 컨셉으로 포드 그라나다를 포드 사 CI조차 안 걷어내고 그대로 판매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머큐리 세이블은 무엇보다도 도어에 번호 기반 자물쇠가 장착돼 있는 게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 뒤로 기아 자동차는 스포츠카를 만들 결심을 하게 되고, 영국 로터스 사의 스포츠카인 엘란을 생산 라인을 인수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건 외제차를 하나도 안 고치고 100% 똑같이 만들어 판 건 아니며 엔진, 서스펜션, 내장재 등 여러 곳에 변형과 로컬라이제이션이 가해졌다.

현대 자동차에서 1990년대 초에 '엘란트라'라는 준중형 승용차를 내놓았는데, 그때는 얘를 수출할 때 이 '엘란'과의 이름 충돌을 의식해서 '엘'은 빼고 '란트라'라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이름으로 수출해야 했다.
하지만 나중에 기아 자동차가 '엘란'에 대한 모든 권리를 인수하고 그 기아 자동차를 현대 그룹이 꿀꺽 해 버리니, 그때부터는 이름 충돌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이제 '엘란트라'는 후속 모델 아반떼의 수출명으로도 당당히 쓰이고 있으니 참 세상 많이 변했다.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의 중간 체급이라고 전륜구동 준대형 '아슬란'을 만든 건 망한 듯하지만, 그래도 엘란트라처럼 엑셀과 쏘나타 사이의 준중형 체급은 굉장한 선견지명으로 판명됐으며 오늘날까지도 잘나가는 중이다. 자동차 엔진 기술을 개발하는 것 자체뿐만 아니라 이렇게 평균적인 소비자들의 수요 심리를 잘 읽는 것도 자동차 회사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능력일 것이다.

엘란은 범퍼 위로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는 게 인상적이다. 이게 그 시절에 스포티한 디자인 유행이었던 것 같다. 대우 에스페로와 현대 아반떼 초기형 말고는 이런 디자인을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엘란은 20년 전 물가로 3천만 원이 넘는 비싼 가격이었으며, 전국적으로 1055대 남짓만 생산된 뒤 단종됐다. 이것도 나중엔 차를 좀 팔려고 제작사에서 원가 미만인 2천만 원대 후반 가격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팔기도 해서 얻은 실적이었다. 참고로 대우 임페리얼이 최종 생산량이 863대였다.

2. 쌍용 칼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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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란이 미래지향적이라면 칼리스타는 딱 봐도 복고풍의 컨셉이다. 원 제작사는 영국의 팬서(panther. 만화 주인공 핑크 팬더도 곰이 아니라 표범임) 웨스트윈드 사로, 이를 쌍용 자동차에서 인수하여 SUV 말고 쌍용 최초의 승용차 명목으로 국내에서 생산했다. 영국 본토에서는 동일 모델의 차명이 '리마'(Lima)였다고 하는데, 칼리스타는 도대체 무슨 어원이고 누가 지은 이름인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옛날 자동차의 주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휀다(바퀴 덮개)가 저렇게 돌출돼 있는 것이다. 외국의 차덕들도 서양이 아닌 웬 동북아시아 대한민국에서 이런 차가 생산되다는 것에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고 하지만, 딱 봐도 이런 자동차는.. 매니아들 말고는 일반 서민들에게 많이 팔리게 생기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대기업 총수 같은 부자들이 그랜저 대신 이런 차를 굴리지는 않을 테고.

스포츠카를 표방하고 있어서 엔진의 성능은 나쁘지 않았으나, 자동화 대량 생산을 못 한 탓에 차 가격은 1990년대 초 물가로 역시 무려 3천만 원을 넘어섰다.
결국 앞의 엘란만치도 못 팔았다. 연 판매량은 10~20대에 불과했으며, 1994년까지 누적 판매 100대를 채 못 채우고 단종됐다(78대). 그것들도 다 국내에서 굴러다닌 게 아니라 수출 처분되기도 했다.

칼리스타 이후로도 이런 복고풍 로드스터 승용차는 국내에 현재까지 다시 등장한 적이 없다. 엘란보다도 먼저 만들어진 차인데 굉장히 파격적인 시도였던 것 같다. 엘란이 등장한 때는 칼리스타가 이미 단종된 뒤였다.

* 이 외에 대우 르망 이름셔(Irmscher, 1991)도 생각난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차종은 아니고 그 당시에 생산되던 대우 르망을 '이름셔'라는 외국 회사에서 스포츠형으로 튜닝해서 고급화하고 성능을 올려 놓은 것이다.
르망은 분명 엑셀· 프라이드 같은 소형차 체급인데 이름셔 에디션(?)은 엔진 배기량부터가 중형차급 2000cc로 버프되어서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으며, 그 외에 다른 내외장제도 더 고급스러운 것으로 바뀌었다.

보통 국내에서는 세금 규제를 피하려고 이미 있는 외국 원판 차량도 배기량을 줄여서 내놓곤 한다. 옛날에 그라나다도 그랬고 대우 에스페로도 준중형 차급에 비해 너무 작은 1500cc 엔진을 얹은 게 화근이어서 빌빌댔다. 이름셔는 그와는 정반대 케이스였다.
하지만 이름셔 역시 인지도 부족과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별로 인기를 못 얻었다. 1000몇백만 원에 달했는데, 그 돈 쓸 거면 아예 대놓고 중형차를 사는 게 나았기 때문일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23 19:32 2016/07/2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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