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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을 검색해 보니 5년도 더 전, 굉장히 옛날에 한번 텔레비전 방송 사고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말 그대로 출연자가 저지른 실수 위주로 유명한 국내 사건들을 나열했었다.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류를 해 보고자 한다. 이유와 원인이야 어쨌든 최종 시청자들이 방송사에서 의도하지 않은 화면을 보게 된 일체의 사건들을 일컫는다.

다음 카테고리들은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현실성이 떨어지며, 사건의 심각성도 그에 비례해서 더 커진다. 실수가 아니라 범죄에 더 가까워진다.

1. 출연자의 실수

생방송 중에 갑자기 돌발상황이 발생하여 출연자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빵터져 버리는 귀여운 유형이 많다. "나라의 경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파리가 앉았습니다"(2001)가 이 카테고리의 대표적인 예다. 한번 웃음병이 도져 버리면 마치 비행기가 실속에 빠져 버린 것처럼 출연자들이 헤어나오기가 어려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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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를 수습하려고 MC가 나름 재치와 센스를 발휘해서 애드립을 구사한 것이었을 텐데, 오히려 그게 게스트 출연자의 웃음 고문을 더욱 가속해 버렸다. =_=;

다만, 외국에서는 생방송 중에 뉴스 기자가 현장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당하는 방송사고도 있었다. 이건 재미있는 사고라고 볼 수는 없다.
출연자의 실수로 인한 방송 사고는 관계자가 자기 방송사 내부에서 징계를 당하는 결과는 야기할 수 있는 반면, 그래도 대외적으로 누가 경찰서 정모를 한다거나 공권력의 철퇴를 받지는 않는다. 사안이 제일 가볍다.

2. 출연자의 고의 난동

국내에서는 카우치 성기 노출(2005)이 이 카테고리에서는 아마 제일 충격적인 사례에 속할 것이다.
이것 때문에 인디 음악 하는 사람들이 몇 년 동안 방송에 나오지도 못하고 고생 많이 해야 했다. 그리고 쇼 프로는 무조건 생방송이 아니라 최소한의 사전 검열은 가능하게 5분 지연 전송을 하게 제도가 바뀌었다.
이건 스샷을 올리기가 좀 민망하니 그냥 링크로 대체하겠다. 오죽했으면 이 장면을 북한 방송 화면에다 합성하여 "천하의 개쌍놈들" 짤방이 만들어졌다.

그나저나 또 외국에서는 생방송 중에 리포터가 갑자기 권총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건 실수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3. 외부인의 난입

여기서부터는 일단 해당 TV 프로의 제작과 출연에 관여하는 사람에게는 잘못이 없다. 방송 중 외부인의 난입은 비행기 사고로 치면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와 비슷한 격이다.
이 분야에서 지존으로 꼽히는 국내 방송 사고는 두 건이 있다. 먼저 "귓속에 도청장치" 사건(1988). 이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엽기적인 사고인지라 외국에서도 소개되었다. 어떻게 겁대가리를 상실하고서 생방송 중인 뉴스 스튜디오로 침입을..? 하지만 그래도 심하게 악의적이지는 않은 정신병자의 난동일 뿐이었다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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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보면 화들짝 놀란 스탭이 괴청년을 제압하여 바닥에 철퍼덕! 패대기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또한, 괴청년은 끌려 나가서 화면 밖으로 사라진 뒤에도.. 다시 한 번 "도청장~~!@#!@"이라고 단말마의 비명을 처절하게 외친다.

이 사건과는 달리, 만민 중앙 교회 MBC 침입 난동(1999)은 사안이 더 심각하다. 일개 종교 집단의 시위로 인해 공중파 방송국이 털리고 정규 방송이 중단되는 초유의 해프닝이 발생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외부인의 물리적인 난입보다 더 ㅎㄷㄷ한 단계가 있으니 바로 그것은..

4. 전파 납치

컴퓨터에 해킹이나 패킷 스니핑이 있듯이, 이건.. 방송국이 멀쩡하게 송신해 준 신호를 가로채서 다른 것으로 대체해 버리는 무지막지한 테크닉이다. 이것은 방송계의 위조지폐 내지 비행기 하이잭이나 마찬가지이며, 통상적인 방송 사고를 아득히 초월하는 범죄 행위이다. 특히 북한과 대처 중인 우리나라에서는 전파를 갖고 장난 치는 짓을 더욱 무겁고 심각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단순히 기존 신호를 교란시키고 수신을 방해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신호로 대체하는 것은 값비싼 장비가 필요하고 기술적으로도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는 없다. 음성은 그렇다 쳐도 영상은 바꿔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전파 납치는 국내에서는 보고된 적이 없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미국에서 벌어진 '맥스 헤드룸' 전파 납치 사건(1987)이다. 영화가 방영되던 텔레비전에서 몇 분 동안 갑자기 기괴한 배경에 가면을 쓴 웬 정신병자의 기괴한 엽기 퍼포먼스가 흘러나왔으니 시청자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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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괴전파가 대략 어느 지역에서 발신되었는지 정도만이 어렴풋이 파악됐을 뿐, 누가 왜 저질렀는지 범인은 끝내 잡히지 못하고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저 정체 모를 아저씨는 방송국에 가지 않고, 방송국 기자를 만나지 않고도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를 그럭저럭 실현했다. 하지만 어렵게 기껏 집어넣은 화면엔 동요 가사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따위는 없었다. 가면을 쓴 얼굴에 알아듣기 힘든 기괴한 음성, 그리고 끝에는 웬 SM스러운 스팽킹+신음 장면만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을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방송· 통신 내지 전파 공학이라고 해야 하나.. 저런 것도 특히 처음 개발되고 등장하던 당시엔 슈퍼 울트라 하이테크이긴 했겠다. 난 저런 건 진짜 새까맣게 모른다. 하나도 모르는 문외한이다. 근원을 파헤치려면 물리학의 전자기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지만.. 이건 뉴턴 고전 역학도 아니고 손에 잡히지 않는 물질 세계의 특성에 대해 난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어서 GG를 쳐 버렸다.

라디오에 FM과 AM이 왜 존재하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 중파· 단파 방송은 무엇이고 케이블 TV, 위성 TV, DMB는 무엇인지, 옛날에 무전기는 어떤 원리로 동작했고 지금의 휴대전화와는 기술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지금의 와이파이 무선 인터넷과는 차이가 무엇인지, UHF/VHF는 무엇인지...
터널 안에서도 음성· 영상 신호가 끊어지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자동차 내비는 터널 주행 중일 때 보정을 어떻게 하나?) 그러고 보니 옛날에 무전기는 송· 수신을 동시에 할 수 없어서(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치면 실시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턴 방식!) 말을 하는 쪽이 내 말이 끝났음을 알리기 위해 '오버'라고 해 줘야 했다. 그거랑 지금 무선 전화의 기술적인 차이는 무엇인지 등등등..;;

그래도 이런 분야에도 괴수 천재는 분명 있을 것이다. 옛날엔 정말 전파를 갖고 노는 사람은 자동차 기술자만큼이나 가히 마술사라고 불리기도 했을 것 같다.
신호 상태가 안 좋거나 수신되는 신호가 아예 없을 때는 옛날에는 수상기를 통해 그저 랜덤한 아날로그 white noise와 치지지직 소리만을 접할 수 있었던 반면, 요즘은 JPG artifact를 본다. 과연 디지털 시대를  실감한다.

*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본인은 11년쯤 전에 공중파 텔레비전에 출연한 적 있음. ^^;;

Posted by 사무엘

2016/01/18 08:25 2016/01/1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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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한말의 매국노

옛날에 나라를 일본에다 팔아먹은 을사오적 매국노 중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완용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사실 송 병준도 만만찮은 악질이고 후손들이 하는 짓까지 쌍으로 우주 쓰레기급임에도 불구하고 이 완용만 너무 유명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건 정당한 자업자득 인과응보이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 완용의 행적은 흔히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저 사람이 아니었어도/없었어도 어차피 조선은 망할 처지였다, 매국은 한 개인만으로 가능한 악행이 아니다" 같은 실드를 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우파 진영에서 괜히 그런 말을 해서 친일 수꼴이라고 안 먹어도 될 욕과 오해, 거짓 고소를 쳐먹을 필요가 없다.

저 사람은 김 옥균처럼 애국을 생각하고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결과가 안 좋게 된 그런 성향의 친일을 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 일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일빠 오덕후 매니아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무능하고 부패하고 개 썩어 빠진 미개한 조선 정부보다는 선진국 일본에게 통치를 맡기는 게 근대화를 제대로 이룰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조선 백성에게 더 좋을 거라는.. 그런 순진한 의도로 매국을 한 것도 아니다.

단적인 예로 이 완용은 일본어라고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던 사람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나라를 팔아먹는 얘기를 나눌 때도 통역을 쓰거나, 아니면 간단한 담소쯤은 영어로 나눴다. 둘 다 똑똑하고 영어는 잘했으니까. =_=;; 이 완용은 죽기 전에 아들한테 유언으로 "앞으로는 또 미국이 뜰 거 같으니 그쪽으로 잘 보여라"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사실이라면 정말 꺼삐딴 리의 실사판이다.

그는 성경으로 치면 발람처럼 그냥 자기 가족의 영달을 위한 기회주의자일 뿐이었다. 자기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르면서 조선 땅의 학교에다가는 일본어 시간을 잔뜩 늘리고, 3·1 운동 가담자에게는 불순분자 선동에 넘어가서 뻘짓 하지 말고 곱게 찌그러져 있으라는 공갈 담화문이나 신문에 게재했었다.

만에 하나 시대의 대세가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관여했다 해도, 그 뒤의 태도가 어떻느냐에 따라서 실드와 평생까임권이 갈릴 수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이 완용은 평생 일말의 반성이 없었으며 이에 대해서는 그 어떤 실드와 동정의 여지가 없다. 그 사람도 한반도에 무슨 근대적인 제도를 도입하고 마냥 나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식의 말도 있나 본데, 그런 식이면 김 일성조차도 왕년에는 눈꼽만치 항일 운동을 한 경력이 있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의 북한 치하보다야 차라리 일제 강점기가 훨씬 더 낫다. 일제 말기로 갈수록 '훨씬'이라는 단서는 설득력을 잃겠지만.)

물론, 일제 강점기 때도 근대화가 이뤄지고 식량 생산이 늘고 인구가 느는 등, 말기의 전쟁만 아니었으면 일말의 긍정적인 면모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얘기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금기시하지는 않아도 된다. 굳이 일제만을 욕하기 위해 조선의 탐관오리들을 미화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허나, 그렇게 식민지 근대화론을 최대한 감안한다 해도, 이 완용은 그와 무관하게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완벽한 개새끼가 맞다(글자를 XX 따위로 가리는 처리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 단군의 후손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무궁토록 욕과 저주를 먹을 것이며, 족보에서 이름이 파이고 후손들이 부끄러워서 혹은 무서워서 전부 외국으로 이민 가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사실, 이 완용의 후손들은(송 병준의 후손도 마찬가지) 다 재산 잘 챙겨서 잠적하거나 외국으로 도피해 있지, 누구 말마따나 겨우 조무래기 경찰이나 군 간부로 가 있지는 않다. 그리고 숨어서 자기 재산 되찾는 소송이나 걸지 그런 사람들이 미쳤다고 시사· 정치 발언이나 하면서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광역 어그로를 끌겠는가? 얘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친일파 이 완용의 대조군이 될 만한 사람은 두 명 정도가 있다.
이 봉창 의사는 이 완용과는 달리, 일본어를 일본 토박이와 분간을 못 할 정도로 능숙하게 구사했으며 일본인 지인과 인맥도 많았다. 독립 운동을 하겠다고 김 구를 찾아갔을 때에도 김 구는 쟤가 혹시 일제의 첩자가 아닌가 오랫동안 의심했을 정도였다. 대화를 많이 나눠 보면서 이 봉창의 레알 진심을 확인한 뒤에야 의심을 풀었다.

그는 그렇게 일본 내부에서의 인맥과 접근성 덕분에 덴노가 있는 곳까지 가까이 가서 폭탄을 던질 수 있었다. 의거를 치르러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일본인 친구들은 그가 어디 여행이나 다녀 오는 줄 알고 배웅을 했다. 그때 히로히토 덴노가 죽거나 중상을 입었으면 역사가 또 크게 바뀌었지 싶다. 사람의 속마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음을 느낀다.

그 다음으로, 외국인 대한 독립 유공자인 호머 헐버트가 있다. 그는 한국과 한국인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국어를 독학으로 마스터 하여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리고 한글 같은 대단한 문자를 스스로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왜 안 썼냐고 본토 사람들에게 반문을 했을 정도였다. 구한말 때부터 이미 헤이그 특사들을 같이 도와 주고, 이 완용이 디스했던 3·1 운동을 지지한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2. 아베 노부유키의 괴예언

그럼 다음으로, 구한말이 아니라 일제 말기에 마지막(제9대) 조선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와 관련된 얘기를 좀 하겠다.
이 사람은 전범이며,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실드의 여지가 없는 악행을 많이 저지른 사람이다. 전쟁이 더 길어지고 일제가 일찍 항복해서 물러나지 않았으면 정말 가관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일제의 패망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도 이런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왔다.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세뇌라..;; 그래서 저 말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고 친일파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꽤 자주 언급되고 인용되는 편이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 놓았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의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그 식민 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노부유키는 조센징 노예들을 우습게 여긴 아주 나쁜놈이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본인은 이 사실과는 별개로, 저 말이 그에게서 직접 유래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저 말이 내용면에서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로를 이간질하는 노예적 삶'이라고 했는데..
한반도에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감시하고 이간질하는 노예적 삶을 조장한 진짜 주범은 소련과 그쪽을 추종한 공산주의자이다! 공산주의는 사람의 악한 본성을 최대한으로 뽕을 뽑아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모든 인민을 평등한 거지로,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바보 노예로 만들지 않으면 유지가 되지 않는 저주받을 체제이다.

UN의 제안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위원회를 발족시킨 것부터(1946년 2월) 시작하여 단독 국기와 애국가 제정(1947년), 분단과 단독 정부 수립도 북한이 먼저 시작한 거다! 아직도 이 승만이 분단의 원흉이네 정읍 발언(1946년 6월)이 민족 반역질이네 이 따위 헛소리가 내 눈에 띄는 거 난 용납 못 한다. 정읍 발언은 이미 다 발생해 있는 원인으로 인한 "대응의 결과"일 뿐, 그 자체가 원인이 아니다.

일제는 단군의 후손들에게 많은 불행을 끼쳤지만, 그래도 이념 갈등과 남북 분단에까지 관여하지는 않았다. 공산주의는 일제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그저 탄압과 박멸의 대상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지고 러시아가 이겼다면 조선은 일제 식민지가 되지 않는 대신에, 러시아의 식민지가 돼서 훗날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가 됐을 거라는 전망도 있지 않은가.

남한은 나라가 잘 세워진 덕분에 공산주의의 직접적인 마수는 천만다행으로 피해 갔다. 하지만 그래도 북한의 방해 공작 때문에 민주주의 내지 시민의 자유를 불가피하게 더욱 제약하게 됐고, 더 강력한 공권력이 필요해진 관계로 친일 군경 간부 청산도 제대로 하기 어려워지는 등 여러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둘째, '옛 조선의 영광'이라고?
일제는 조선을 아주 비하하면서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는 세뇌를 일삼아 왔다. 그 예 중 하나가 바로, 멀쩡한 지리학자인 김 정호가 병신 같은 조선 정부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옥사한 거라고 조작한 것이고 말이다. 그런 식으로 비하를 하거나, 아니면 일본과 조선은 정체성이 하나라고 내선일체를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 일제 식민 지배의 수뇌부라는 양반이 갑자기 웬 뜬금없는 '옛 조선의 영광' 드립을 공개적으로 친단 말인가? 논리적으로 앞뒤가 전혀 안 맞는다. 이 어설픈 립서비스만 없었어도 예언(?)의 신뢰성과 사실성이 크게 올라갔을지도 모르는데... 저건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는 무슨 일본 해군 제독 얘기보다도 현실성이 더 떨어진다.
일본이 부러워할 정도로 조선이 리즈 시절이었던 때를 굳이 생각해 보자면, 아마 세종대왕 시절 정도밖에 없을 게다. 그리고 그건 아베 같은 사람이 그 상황에서 갑자기 거론할 이유가 없는 너무 먼 옛날이다.

마지막으로,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은 족히 걸릴 것이다'를 생각해 보자.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표현이다.
바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했다는 말 중에도 '100년 드립'이 존재한다. 6· 25 전쟁 중이던가 후던가.. 돌 위에 돌 하나 안 남은 처참한 폐허를 보고는 "한국은 이거 다 복구· 재건하려면 한 100년은 더 걸리겠다"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맥아더의 저 말도 아베 노부유키의 말과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출처 검증이(언제 어디서 한 말?) 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허나, 맥아더의 말은 설령 사실이 아니라 주작이라 하더라도, 저주· 악담이 아니라 그냥 주관적인 전망일 뿐이었으며 결정적으로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비록 영토가 반토막 나고 병크와 비리도 많고 문제도 없는 건 아니지만, 세계 10위권의 찬란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이 여전히 한낱 '옛 조선의 영광'만도 못한 상태인 걸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두 '100년 드립'은 모두 적중하지 않았다.

아베의 괴예언은 "그때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는 병맛나는 허세로 끝나는데.. 이것조차도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에서 후퇴하면서 직전에 남긴 말 "I shall return.."을 묘하게 닮아 있다. 물론 맥아더는 나중에 진짜로 돌아와서 마치 프로토스 드라군의 생산 대사처럼 "I have returned"까지 당당하게 찍은 반면, 아베 노부유키는 그런 거 없었다.

우리나라는 이제 사실상 있지도 않은(유효 오차 범위 이내) 친일 망령보다는, 당장 현실적으로 훨씬 더 큰 위협인 이런 망령이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까 주의하고 경계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처사라 생각된다.

폴 포트는 죽었지만 그는 언제고 시공을 초월해서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성공한 자들을 무조건 부정한 무리로 몰아붙이고
자신의 불행한 처지가 무조건 사회 부조리 때문이라 몰아붙이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선동가들의 장난에 놀아날 때
폴 포트는 언제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1/15 08:32 2016/01/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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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와 금식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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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마 17:21 흠정역.

벌써 9년이 훌쩍 넘은 옛날 일이 되긴 했다만.. 저건 2006년 5월 13일자 국민일보에 실린 에스더 코리아라는 단체의 금식 기도회 광고이다.
평소에는 개역성경을 보지만 자기 행사의 성경적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부득이 킹 제임스 성경을 인용한 센스가 참 웃프다.

성경에서 저기 문맥은 이러하다.
예수님이 핵심 제자 세 명(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변모하신 뒤, 돌아와 보니 다른 제자들은 그 동안 부정한 영이 들린 어느 소년을 고쳐 달라는 부탁을 받은 상태였다. 허나 그들은 스승만치 실력이 뛰어나지 못해서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직도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꽤 실망하신 듯.. "어휴.. 내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것까지 일일이 다 터치를 해 줘야 하냐? 아이를 데리고 와 봐라." 하신 뒤 아이를 바로 고쳐 내셨다.
제자들이 나중에 "우리는 왜 부정한 영을 내쫓지 못했습니까?"라고 슬쩍 묻자 이때 예수님은 "일차적으로는 너희의 불신 때문이다. 그러나 저번 건 좀 쉽지 않은 일이고 간절한 금식과 기도로 약발을 올릴 필요가 있다"는 요지로 대답을 하셨다. 그리고 이 '금식과 기도'를 언급한 마 17:21이 KJV 이외의 다른 역본들에서는 '없음' 삭제된 것이다.

다만, 이와 동일한 '금식과 기도' 말씀이 막 9:29에도 있는데 굳이 '흠정역'이라는 단어까지 거론하면서 마 17:21을 인용한 이유는 본인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더구나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이런 말은 '킹제임스 흠정역'이나 '한글 킹제임스' 같은 기존 한국어 역본을 있는 그대로 인용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창작한 문장이다.

뭐, 마가복음 9장이면 29절 '금식과 기도'는 남아 있지만, 그 뒤의 46과 48절에서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지옥 경고문이 무단으로 삭제되었다는 점을 참고로 알아 두도록 하자.

2. sky와 heaven

한국어로는 이 두 단어가 별 구분 없이 똑같이 '하늘'로 번역되어서 차이가 잘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이 둘이 신학· 성경 용어로서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완전 반성경 반기독교적인 옛날 팝송인 Imagine의 첫 부분 가사를 통해서, 의외로 금방 실감할 수 있다.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heaven이고 hell 그딴 건 없고 우리 머리 위로는 오로지 sky만 있는 세상을 상상해 보아요)


이걸 생각하니 개인적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게 느껴졌다.
바로 저런 사고방식으로 인해 오늘날은 성경 역본들조차도 heaven과 hell이라는 단어가 본문에서 갈수록 줄어들고 sky로, 그리고 반의어는 grave, hades, sheol 등 이상한 단어로 대체되고 있다.
크리스천이 주변에 복음을 전할 때 예수 안 믿으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얘기하지, 하데스나 스올이나 저승에 간다고 얘기하던가? 이런 단어의 변개는 그야말로 기독교의 근본 교리와 정체성을 공격하는 짓이 아닐 수 없다.

3. 그분의 피로 우리의 죄들을 씻으시고

먼 옛날에 본인은 <카타콤의 순교자>라는 기독교 역사 소설을 만화 형태로 각색한 책을 우연히 접한 적이 있었다.
로마 제국 시절에 끔찍한 박해를 피해서 크리스천들은 지하 무덤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무슨 도사처럼 생긴 백발 노인이 성경 두루마리를 펼쳐서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같은 난해하지만 감격스러운 말씀을 낭독했다. 그리고 예수쟁이라는 인간들이 믿는 해괴망측한 교리가 도대체 뭔지 알고나 싶어서 어느 로마 군인이 모임에 몰래 합류하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나 첩자 내지 배신자의 밀고로 붙잡힌 신자들은 콜로세움에서 인간 횃불이나 사자밥이 되는 최후를 맞이했다. 그 순교 컷의 하단에는 많고 많은 관련 성경 구절들 중에 계 1:5-6이 자막으로 적혀 있었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에서 우리를 씻으시고 하나님 곧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께 즉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 1:5는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를 죄를 씻어 주셨다고 wash라는 단어까지 써서 문자적으로 말하는 유일한 구절이다. 그러나 킹 제임스 이외의 다른 모든 성경 역본들은 wash가 loose 내지 free로 바뀌어서 '죄들에서 해방시켰다'라고 되어 있다. 루시퍼나 이스터나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벧전 2:2)만치 유명한 변개 구절은 아니지만 굉장히 충격적인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자세한 것은 다음 영문 사이트의 내용을 참고하시라.

'죄를 씻었다'라는 표현이 없으면 당장 찬송가 가사부터가 근거 구절을 잃는 직격탄을 받을 것이다.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를 찬송가에서 찾아 보면, 참고 구절은 다들 요일 1:7을 제시한다. 이건 그나마 계시록과 동일하게 사도 요한이 기록한 책이고, 꿩 대신 닭이라고 cleanse를 써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라는 의미 자체는 통한다. 그러나 깨끗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속하는 wash와 정확하게 같지는 않다.

그 카타콤의 순교자 책에서도 '해방하시고' 대신에 '씻으시고'라고 적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순교자

내가 앞에서 성경 변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카타콤이니 순교자 같은 이야기를 많이 꺼낸 이유는.. '순교자'(martyr)라는 엄청난 단어가 존재하는 성경 자체도 킹 제임스뿐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스데반이 순교자였다고 인증하였고(행 22:20), 주님은 계시록에서 안디바라는 어느 성도가 순교자였다고(계 2:13) 증언하셨다. 끝으로, 음녀 바빌론이 바로 순교자들의 피에 만취했다고 나온다(계 17:6).

킹 제임스를 제외한 다른 모든 역본들은 순교자 대신 그냥 '증인'이다. 증인은 킹 제임스 성경에도 얼마든지 쓰인 단어인데? 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을 비롯해서 고난의 증인(벧전 5:1), 신실한 증인(계 1:5) 등..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무수히 많은 순교자를 만들어 낸 바로 그 악의 무리들은 '순교자'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성경을 절대로 좋아할 리가 없을 거라는 점이다. 가령, 로마 가톨릭의 과거 만행을 은유적으로 폭로하는 계 17:6 같은 경우는 그냥 증인이라고 썼을 때는 표현의 수위가 상당수 희석될 수밖에 없다.

5. 예수님은 은근히 낮추고 사탄을 높임

그 뿐만이 아니다. 계 2:13은 순교자/증인 말고도 충격적인 차이점이 더 있다. 킹 제임스는 간단하게 '사탄의 자리'(seat, 좌석)라고 번역한 반면, 다른 역본들은 대적인 사탄을 지위를 대놓고 높여서 '사탄의 왕좌'(throne)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건 마치 우리로 치면 '일왕· 덴노/김 정일' vs '천황/김 정일 국방위원장' 정도와 비슷한 차이가 아니겠는가?

복음서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분께 먼저 경배(worship)를 한 뒤에 애원과 간청을 했는데, non-KJV들은 그 부분을 상당수 그냥 무릎을 꿇었거나 절했다고만(bow / kneel down) 표현했다. 그러나 그런 역본들도 계시록 13장에서 사람들이 짐승 적그리스도에게 홀딱 반하는 장면에서는 곧이곧대로 경배했다고 번역했다.
이 정도면 그냥 막가자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KJV에도 그냥 무릎을 꿇었다는 표현은 따로 있다. 막 15:19만 봐도 두 표현이 병렬로 모두 등장하는 곳도 있기 때문에 이들은 단순히 상호 혼용 가능한 관계가 아니다.

6. 보혜사 vs 위로자

본인은 예전에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영화를 소개했고, 거기 엔딩 크레딧 중엔 어느 북한 지하 교회 할머니의 기도를 몰래 녹취한 음성이 흘러나온다고도 얘기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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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여, 복원하시고 역사하시는 주의 보혜사가 나타나심을 (나는) 압니다."
그런데 그 당시엔 '보혜사'(redeemer)라는 단어를 보고도 왜 나의 직업병이 발동하지 못했던 걸까?
보혜사는 요한복음 14~16장의 예수님의 기도에서 성령님을 가리키며 등장하는 단어이다. 허나 저 무명의 어르신이 킹 제임스 성경을 봤다면 기도에도 막연한 보혜사가 아니라 '위로자'(comforter)라는 단어가 쓰였을 것이다.

병맛 개그 차원에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황폐화되는 현실"이 아니라, 저기는 순전히 끔찍한 박해 때문에 교회가 문자 그대로 무너지고 주변 사람들이 이미 다 피흘려 순교한 너무 처절하고 절박한 상황인데.. 위로자가 없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학대받는 자에게 위로자가 없다고 말씀하는 전 4:1과 동일하게 연결되는 단어인 것이다.

7. 사람이 구원받는 장면에서의 변개

십자가에 매달렸던 한 강도가 구원받는 누가복음 장면에서(눅 23:42).. 강도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러서 구원받았지(롬 10:13, 행 2:21), 변개된 성경에서처럼 '예수여~, 예수 씨' 이러지 않았다. 이건 마치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게 대단하지, '그 사람/그분'이 육신을 입고 온 것은 전혀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딤전 3:16).

선천성 맹인이 시력을 얻고 구원받는 장면에서(요 9:35)도 예수님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라고 물었지 "네가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라고 하시지 않았다.

또한, 행 8:37이 변개된 성경에서 모조리 삭제된 것은 매우 유명하다. 이것은 이디오피아 내시가 구원받는 장면에서 적절한 신앙 고백의 필요성과 물침례의 조건을 명시한 구절인데 이게 없어짐으로써 비성경적인 유아 세례가 횡행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다 커서 스스로 믿음을 고백할 줄 아는 신자에게만 침례를 주는 교회가 오히려 유별난 교파인양 '침례교'라고 따로 불리게 되었다. 그게 성경적으로 당연하고 그것만 유일하게 맞는데도 말이다.

교회사에서 진짜 기독교회들은 노바티안, 왈덴시스 등 모임 인도자의 이름을 딴 이상한 듣보잡 집단으로 명명되고 정작 '기독교회'라는 이름은 이상한 집단이 도둑질해 간 것과 비슷한 역설이다.

이런 것 말고도 뭐..;;
이스터, 루시퍼, 갈보리, 총 13군데에 달하는 '없음' 구절 같은 건 더 말하면 입만 아프니 또 거론하지 않겠다.
예전에 본인이 쓴 <음란한 성경은 가라>라는 글은 이런 차이점들 중에서 특별히 제목이 암시하는 분야에서의 차이점을 다루었다.

게다가 성경의 맨 첫 구절인 창 1:1도 다르고(KJV는 heaven, 나머지는 heavens 복수), 맨 마지막 구절인 계 22:21도 다르다(non-KJV는 '주 예수'만 있고 '그리스도' 빠짐). 이런 팩트 속에서 KJV는 그저 개역성경의 영문판 같은 성경이라 말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시중에 나온 성경들이 그냥 다 똑같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신앙에서 교과서, 계약서, 법전 이상인 크리티컬하고 중요한 그 텍스트가 말이다.

애초에 기독교는 예수 유일주의를 주장하는 곳인데, 그런 교리를 내세우는 근간인 텍스트 또한 하나만 옳고 그 하나와 일치하지 않는 다른 것들은 다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논리적으로 지극히 타당하지 않겠는가? 성경 역본 문제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바로 답이 보인다.

개독안티들이야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을 믿을 리 없으며 말씀이 보존되어 있으면 "안 되는" 처지이기 때문에 KJV를 얼마든지, 기를 쓰고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다는 사람이 그런 논리에 끌려가면 이건 뭐 이적행위인지 팀킬인지 참 곤란한 상황이 된다. 본인은 특정 집단의 이익은 개뿔, 내 신앙의 근간과 정체성을 방어하기 위해서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옹호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5/12/31 08:35 2015/12/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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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 25 개전 초기의 승전 기록

우리는 6· 25 전쟁에 대해서 초기엔 기습적인 남침에 허를 제대로 찔린 나머지 서울을 사흘 만에 뺏기고 한동안 졸전과 패전, 후퇴만을 거듭하다가 낙동강 일대까지 밀렸다고 알고 있다.
그건 물론 거시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개전 초기에도 다음과 같은 일부 국지전에서는 국군이 승리하기도 했다는 것을 기억해 두면 좋겠다.

(1) 춘천-홍천 전투
6월 25일부터 30일까지 한반도의 중· 동부 지역인 춘천 일대에서 북한군이 진격해 오는 것을 국군 제6보병사단이 성공적으로 차단한 전투이다.

물론 서울을 빼앗긴 상황인 데다 북한군의 엄청난 물량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아군도 7월 1일에 춘천을 내어주고 후퇴하게 되었지만, 이때 제6보병사단이 벌어 준 며칠간의 시간은 정말 결정적인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이로 인해 북한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서 남진이 사흘 정도 지연되었으며, 그 동안 우리 쪽에서는 전열을 가다듬고 UN군의 파병을 논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정말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나라를 구했다. 당시 이 사단의 최고 지휘관은 김 종오 장군이었다.

(2) 대한해협 해전
본토의 휴전선 인근에서 저런 난리가 벌어지는 동안 바다, 그것도 후방도 그저 조용하지만은 않았다. 북한군은 육로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동해를 따라 부산으로도 곧장 후방 침투용 공작원을 보냈기 때문이다. 누가 주장하는 것처럼 1980년 5월에 광주에 공작원 600명이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1950년 6월에 부산에 공작원 600여 명이 괴선박 한 척을 타고 침투되고 있던 건 사실이었다.

손 원일 제독이 도입한 백두산함은  6월 25일 당일 밤에 북한군이 탄 괴선박을 발견하고 "귀함은 언제 어디서 출항하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 소속 국가가 어디인가? 정지하라. 정지하지 않으면 발포한다"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응답이 없고 나포도 되지 않자 결국 함포를 발사했다.
괴선함도 무장이 달린 군함이었기 때문에 몇 차례 교전이 오갔으나.. 결과는 남한의 승리였다. 아군은 몇 명이 전사· 부상하고 군함이 경미한 손상을 입은 반면, 괴선박은 완전히 침몰했으며 그 안에 있던 수백 명의 북한군 병사들은 부산에 상륙하지 못하고 수장됐다. 대한민국 최초의 6· 25 전투 승전은 바로 이 해전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다뤄졌던 흥남 철수는 이로부터 거의 정확히 반 년 뒤 크리스마스 직전에 있었던 일이다. 중공군의 개입 때문에 서울까지 도로 빼앗긴 1· 4 후퇴가 있기 열흘 남짓 전이기도 하다. 이때 수많은 피난민들이 탔던 미군 군함은 다행히 적군의 공격을 받지 않고 부산에 무사히, 기적적으로 잘 도착했다.

6· 25 하니까 나는 생각이다. 리암 니슨이 맥아더 역을 맡아서 인천 상륙 작전을 배경으로 하는 6· 25 영화가 내년에 나온다고 하는데.. 기대된다. <오! 인천>이나 <클레멘타인>(스티븐 시걸..) 꼴 나지 말고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난 니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전쟁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UN군이 널 찾아 내서 널 죽여 버릴 거야." / "잘해 보라우" 이런 대사가 나오려나 모르겠다.
딸을 구출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에펠 탑이라도 폭파할 기세였으니, 북괴군을 섬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평양에 핵이라도 떨어뜨릴 생각 정도는 충분히 하고도 남겠다. ㄲㄲㄲ

2. 일제 강점기 때의 독특한 인권 변호사

일제 강점기에 대한민국의 독립에 기여하여 건국 훈장을 받은 인물 중에는 프랭크 스코필드 같은 외국인이 있다는 건 다들 아실 것이다. 그런데 유럽/미국인, 혹은 중국인이 아니라 적국인 일본인 중에도 이런 훈장이 추서된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무다구치 렌야처럼 캐 무능 병신 졸장 일본군 고위 인사를 빈정대면서 대한민국 독립 유공자감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만, 여기서 말하는 건 그게 아니라 진짜로 진지하게 훈장을 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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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인공은 바로 '후세 다쓰지'(1880-1953)라는 변호사이다. 임진왜란 때에도 김 충선 같은 항왜 귀순 장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저 사람은 애초에 군인이 아니고 메이지 대학 출신의 법조인이다. 훈장이 추서된 건 다소 늦은 2004년으로, 당연히 당사자의 후손이 훈장을 대신 받았다. 외국인인 관계로, 훈장만 줄 뿐 연금 같은 다른 혜택은 없다.
사실은 더 일찍부터 이 사람에게 훈장을 추서하려는 논의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태생이 일본 국적이라는 점 때문에 논의가 미뤄지곤 했다고 한다.

그가 일본의 법조인으로서 조선인에게 잘해 줄 수 있었던 것은.. 뭐 안 봐도 비디오다.
이 사람은 정말 인권 변호사였다. 일본 자국 내에서 차별과 설움을 받는 부라쿠민 소수 민족들, 그리고 자기 나라의 식민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적극 변호를 해 줬다. 그리고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고 심지어 자국의 조선 침탈을 비판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일본 정부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혔으며, 굳이 조선 편들기뿐만이 아니라 굉장히 진보 좌파스러운(일본 제국주의의 입장에서 봤을 때) 다른 판결들 때문에 급기야는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물론 종전 후에는 복권됐다.

그는 1919년에 3· 1 운동 이전에 일본의 조선 유학생들이 벌였던 2· 8 독립 선언의 주동자들을 변호하고 이들은 일본 내란죄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주장했다. 관동 대지진 때 벌어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사죄문을 신문에 기고하고, 정부의 폭동 묵인과 날조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 정도면 굳이 한국 편 일본 편을 떠나서 정말 일본 안의 살아 있는 양심 급이 아닌가 싶다.

3. 태평양 전쟁의 마지막 일본군 패잔병

잘 알다시피 일본은 1930년대 말에 중일 전쟁부터 일으켰다가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키고, 동남아 일대 나라들을 무단 침략하고 점령하면서 세계를 상대로 그야말로 온갖 깽판을 부렸다. 그러다가 핵을 두 방이나 맞는 험한 꼴까지 당하고 전쟁에서 완벽하게 참패했다.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했으며, 그 대가로 단순히 2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가 아니라 20세기 이래로 자기가 차지했던 식민지들을 몽땅 뱉어 내게 됐다. 우리나라 역시 이때 덤으로 일제로부터 해방됐다.

이에, 지금까지 점령지에 있던 일본군들은 무장을 해제당하고 그대로 본국으로 귀환하게 됐다. 그런데 연합군과 직접 교전하다가 항복하고 포로가 된 게 아닌 일부 군인들은 그 당시의 교통· 통신 사정을 감안했을 때 패전과 항복 소식을 제때 접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이 도가 지나쳐서 종전 후 수~수십 년이 지나도록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동남아 밀림 속에서 문명을 거부하고 혼자 일본군 행세를 하며 산 독특한 패잔병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는 '오노다 히로'라는 일본군 소위인데.. 무려 1974년까지 필리핀의 루반 섬에서, 본국으로부터 아무런 보급도 명령도 안 받으면서 자칭 일본군 행세를 하며 지냈다고 한다. 필리핀 민간인을 약탈· 살상하면서 말이다.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 그만 투항하라고 필리핀 정부, 동료 병사, 심지어 일본에 있는 가족까지도 애걸복걸을 했지만 그는 싹 다 귀축영미의 거짓 선전쯤으로 치부하고 믿지 않았다.

머리가 없는 좀비도 아니고..
우리 부모님이 죽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시신 옆에서 먹고 자며 지내던 누구처럼..
도대체 일본군 내부에서 정신 교육 세뇌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저런 인지부조화 망상에 젖어 지낼 수 있었을까?
6· 25 때는 우리나라에도 "후퇴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끝까지 고지를 지킬 것이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움에 임하겠습니다"란 FM 답변으로 맥아더 장군을 감동시킨 병사가 있긴 했지만, 저 아저씨는 좀 심하게 오버했다. =_=;;
게다가 6· 25 때 남한은 침략자로부터 자국 영토를 지키는 입장이었던 반면, 저기서 일본은 대놓고 남의 나라에 쳐들어간 침략자였으니 동일선상에 있는 비교 상대도 안 된다.

그는 그렇게 근성으로 살다가 결국, 한참 전에 예편한 옛 직속상관으로부터 명목상 투항 명령서를 정식으로 전달받은 뒤에야 투항했다. ㅋㅋㅋ
무슨 도마냐..;; 내 눈과 손으로 못자국과 창자국을 직접 보고 만지지 않는 한 절대로 믿지 않겠다고.. (요 20:25)
이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는지 사도 요한은 훗날 요일 1:1에서 말씀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가 보았을 뿐만 아니라(look, see) 만지기까지 했다(handle)는 표현을 특별히 넣었다.

4. 6·25 때 일본군이 몰래 참전했는가?

우리나라는 건국 당시에 주변에 적이 참 많았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과 소련이 전부 공산화가 된 와중에, 남조선만 친미 자유 진영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비록 붉게 물든 나라는 아니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식민 통치를 했던 철천지 웬쑤이니 역시 수교를 할 리가 없었고, 서로 소 닭 보듯 애써 외면하면서 없는 사람 취급하는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는 6·25 전쟁의 포화에 휘말렸다. 이에 UN군이 북한을 저지하러 참전했다. 일본은 아직 UN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전범국이었으며, 헌법 차원에서 무장을 영구적으로 해제 당한 상태였다. 이념에 따라 남북 어디를 군사적으로 편들 필요가 없고 애초에 편을 들 수조차 없으며, 그저 이웃집 불 구경만 하면 되는 중립 옵저버였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몰래 무슨 군대를 파견해서 원산 앞바다에서 기뢰 제거 같은 전투 행위를 슬그머니 했다고도 한다. 이건 마치 196~70년대에 휴전선을 몰래 넘어 북한 영토로 가서 북한군 몇십 명을 때려잡았다는 북파공작원의 얘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다. 비록 일본이 북한을 편든 건 아니었지만, 저것도 결국은 다~ 군사 무장 명분이라는 자기 이익을 노리는 수작이기 때문에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6·25 당시에 참전한 남한 아군 중에는 재일 학도 의용군도 있었다. 이들은 UN군의 신분으로 참전했는데, 일본어는 잘하지만 한국어는 못하곤 했다. 이 승만 대통령은 전선 시찰 중에 이걸 우연히 발견하고는 일본이 전쟁에 슬그머니 개입한 줄로 생각했다. 그 연륜과 성깔이라면, 그 순간 그는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구한말 동학 농민 운동의 트라우마가 떠올랐지 싶다.

당장 급하다고 외세를 끌어들여서 내란을 진압했다간 내란이 끝난 뒤에 나라가 무슨 꼴이 나는지? 게다가 일본은 지금 이 상태로도 미국의 병참 기지가 된 덕분에 얼마나 대박 재미를 보고 있는데, 하물며 진짜 병력까지 한반도에 개입한다면?
이 사람이 젊은 시절에 받은 트라우마의 양대 산맥이 바로 저 일본이랑, 미국(가쯔라 태프트 밀약 때문에 버림받은 것)이었으며, 이로 인한 강박관념 성향은 그가 훗날 대통령이 된 뒤 초강경 외교 노선으로 고스란히 표현됐다.

이에 이 승만은 거침이 없었다. "미국이 일본까지 슬그머니 끼워서 전쟁에 참가시키려는가 본데, 만약 왜놈들이 한반도에 온다면 우린 왜놈부터 죽이고 나서 북한군을 쏘겠다" 이런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요즘으로 치면 "전쟁 나면 간부들부터 죽이고 나서 북한군 쏘겠다" 거의 이런 급의 극단적인 발언이었다. 물론 "아, 쟤들은 일본인이 아니라 교포입니다"라는 해명으로 오해는 곧 풀렸다.

'정읍 발언'이 아니라 '왜관 발언'이라고 검색해 보면 이때 대통령의 행적을 알 수 있다.
전자는 이 승만이 남북 분단의 원흉이라고 말도 안 되는 거짓 선동질을 할 목적으로 종종 언급되는 반면, 후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승만의 독도 수호 궁극의 반일 노선의 결과물인 평화선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게 팩트를 모르니까 6· 25 때 이 승만이 일본으로 도망칠 계획을 잡고 있었네 하는 이상한 위사가 나오면 그런 떡밥은 좌우 문맥 따지지도 않고 좌좀들이 옳다구나 잘도 물고 낚이는 것이다. 이 승만은 오히려 이때에도 권총샷 드립을 구사하면서 자신은 한국 땅에서 뼈를 묻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혔다.
"우리나라가 전쟁에서 져서 북한군이 내 앞에까지 쳐들어오게 된다면 난 이 권총으로 적을 쏘고 다음에 아내를 쏜 뒤, 마지막 총알로는 자결할 것이다."

5. 구국의 영웅에서 쳐죽일 나치 부역 반역자로 -- 프랑스의 앙리 필리프 페탱 장군(1856-1951)

마지막으로,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얘기를 좀 하고 글을 맺겠다.
저 사람은 보병 장교 출신의 군인이다. 1차 세계 대전 때 베르됭 전투에서 독일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면서 가히 구국의 영웅으로 등극했으며, 종전 후에는 프랑스의 역사상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문 원수 계급에 추대되었다.

저기 연도가 보이시는지? 저 사람은 1856년생이다. 1차 세계 대전 타이밍 때만 해도 이미 50대 나이가 꺾인 노장이었으니, 저 전쟁을 끝으로 완전히 은퇴만 해 버렸으면 그는 평생 부와 명예를 거머쥐면서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처음엔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급박한 시대 정세가 "구관이 명관" 운운하면서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2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또 프랑스가 전쟁에 휘말리자 그는 총리 자리에 올랐는데, 여기서 그는 자기의 영광스러운 과거 커리어를 모조리 말아먹는 실책을 저질렀다. 나치 독일에게 그냥 항복해 버렸고, 그 대가로 '비시 프랑스'라는 괴뢰 정부의 수립을 보장받은 것이다. 그는 강대국인 나치 독일에 저항해 봐야 국민적으로 얻을 게 없으며, 이렇게 정권을 유지하는 게 국민에게 더 이익이고 그리 치욕스러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히틀러가 그렇게까지 인간 악마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오판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모조리 빗나갔다. 나치가 패망하고 전쟁이 끝나자 그는 졸지에 매국노 반역자가 되었다. 고국으로 돌아오자 부하 군인들은 아무도 페탱 장군에게 경례를 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그를 사형시키라는 여론까지 들끓었다. 90세에 육박하는 고령이 된 그는 최종적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며, 마치 나폴레옹처럼 대서양 연안의 섬으로 유배를 당하고 거기서 세상을 떠났다.

이 사람은 뭔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조선의 사대주의를 추구한 것 같기도 하고, 김 옥균처럼 악의적이지는 않았지만 오판을 저지른 구한말의 친일파 같기도 하다. 리즈 시절 이후에 다른 분야에서 삽질을 하다가 예전 커리어를 다 말아먹었다는 점에서는 심 형래나 홍 명보, 그리고 프리츠 하버(시대를 잘못 타고나고 잘못된 줄을 선 과학자)와도 비슷해 보인다. 일생일대의 패착을 저질러서 쳐죽일 반역자가 된 건 박 헌영과도 비슷하지만, 박 헌영은 리즈 시절의 업적도 별로 없으니 페탱과 같은 급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친일 청산 문제를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청산 문제와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마치 성경에서 벧후 3:6-7을 노아의 홍수하고 비교하는 것만큼이나 바른 비교가 아니어 보인다. 겨우 몇 년 적군에게 점령당했던 것하고, 아예 한 세대가 바뀔 정도로 긴 시간을 지배당한 것을 어떻게 똑같이 비교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6· 25 때 북한군 부역자 청산 문제와 비교하는 것이 체급이 더 맞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만 봐도 이전의 독립 운동 경력을 나중의 변절 내지 좌익 공산주의 활동으로 다 말아먹었다던가, 반대로 이전의 친일 경력을 나중의 반공 활동 경력으로 상쇄한 입체적인 인물이 적지 않다. 자기 개인 블로그나 SNS에다가 개인적인 인물 취향과 호불호만을 밝히는 것이야 상관 없겠지만, 남과 논쟁을 하고 남을 설득까지 하려면 공과 과를 따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겠다.
다만, 기회주의자는 분명 아닌데 당시 판단력의 한계로 줄을 잘못 서서 평판을 망친 사람이라면 참 안타까운 예가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5/12/20 08:39 2015/12/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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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살펴봤듯, 북한에서는 자유를 찾아 귀순한 공군 파일럿이 역사적으로 쭉 있어 왔다. 하지만 월북을 한 남한 파일럿은... 있을 리가. -_-;;
물론, 육군에서는 최 덕신 같은 최고위층의 월북 흑역사가 있었고, 1984년에는 사회에서도 이미 문제가 좀 있던(..) 22사단 소속의 조 준희 일병이 동료와 상관을 사살한 후 월북해 버리는 일도 있었으나.. 그래도 남한에서 공군 전투기 파일럿이 미제 F-xx 전투기를 갖다 바치면서 월북한 정신나간 경우는.. 없다.

단, 북한의 공작원에 의해 남한의 항공기가 북으로 납치 당한 일은 먼 과거에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폭탄을 터뜨려서 너 죽고 나 죽는 테러 말고, 납북 말이다.

1. 창랑호 납북 (1958. 2. 16.)

지난번 글에서는 김포 공항의 역사를 얘기하느라 글이 길어졌는데, 이번에는 대한 항공의 전신인  "대한 국민 항공"이라는 회사의 얘기를 좀 많이 하겠다.

저 시절은 김포 공항이 개항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다. 또한 나라가 몹시 가난하고 항공사도 가난해서 더글러스 사(훗날 타사와 합병되어 맥도넬 더글러스가 된)의 중소형 프로펠러 여객기인 DC-3 세 대를 굴리며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각각의 비행기 기체에도 마치 배처럼 우남호, 만송호, 창랑호라고 이름이 붙어 있었다. 비행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항공 시스템의 많은 용어와 관행이 배에서 유래되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건 그리 이상한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은 열차도 다 저렇게 차량별 이름을 따로 썼으니까 말이다.

그때는 경부 고속도로 따윈 없고 도로가 죄다 비포장이니, 자동차로는 차가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세월아 네월아 10몇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가장 빠른 경부선 열차를 타도 해방자호가 9시간이었고, 1955년 광복절에 등장한 통일호 특급열차가 7시간 이랬으니(훗날 1960년, 무궁화호가 6시간 40분으로 단축), 이 당시 교통 사정이 어떠했는지가 이해가 되시겠는가?
비행기는 육상 교통수단보다야 넘사벽급으로 빠르겠지만 당연히 외국인, 정부 고위 관료, 극소수 유학생 같은 사람들밖에 못 탔지, 서민들은 국제선이 아닌 그냥 서울-부산 국내선이라 해도 비싼 가격 때문에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어쨌든.. 저 날 창랑호는 승무원 포함 34명의 승객을 태우고 부산을 출발하여 서울 김포 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승객 중에 북한 공작원이 타고 있었고, 비행기는 평택 부근의 상공에서 하이재킹을 당했다. 비행기는 기수를 북으로 돌려서 그 당시 북한에서도 지은 지 얼마 안 되었던 평양 순안 공항에 착륙했다.
탑승 전에 짐 검사 같은 건 안 하다시피했는지, 공작원은 반항하는 승객을 둔기로 제압하고 기장을 위협하여 얼마든지 자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북한은 뻔뻔하게도 창랑호의 승무원과 승객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앙망하여 자진 월북했다고 의기양양하게 거짓 발표를 했다. 남한은 이에 맞서 당연히 규탄 성명을 발표했으며 승객들의 송환을 요구했다. 비행기와 함께 이미 북으로 가 버린 공작원들은 어쩔 수 없으니, 승객들의 신원과 주변 인물들을 조회하여 공작원들을 지원한 것으로 의심되는 간첩 몇 명만을 뒤늦게 잡아들여 벌을 줬다.

승객 중에는 미국인이나 독일인 같은 외국인도 적지 않게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다국적 외교 문제로 불거졌다. 압박을 견디다 못해 북한은 자기네 공작원을 제외한 나머지 피랍 승객· 승무원 26명은 3월 6일에 판문점을 통해 전원 돌려보냈다. 북에 있는 동안 공산당 세뇌 교육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던 사람은 좀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그러나.. 북한은 비행기는 돌려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비행기 3대 중 한 대를 그냥 잃은 대한 국민 항공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해야 했다. 게다가 사실은 만송호도 1957년 7월 7일에 부산 수영 비행장에 착륙하던 중에 추락해서(2013년 아시아나 214 사고처럼?) 비록 인명 피해는 없지만 기체를 다 날린 상황이었는데 창랑호까지 잃었으니..=_=;;

회사의 창업주인 신 용욱은 자신부터가 일제 강점기 때부터 항공 덕후에 유능한 비행기 조종사였고 이 불모지에서 항공 사업까지 한 비범한 인물이었다. 이 승만이 대통령이 된 뒤에도 대통령 각하보다는 박사라는 호칭을 더 좋아했듯이, 저 사람도 사업가가 된 뒤에도 사장님보다 기장님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했을 정도.

단, 이 사람은 업종과 행적이 그렇다 보니 과거에 대동아 전쟁을 위한 일본군 항공 수송과 비행기 헌납 같은 빼도 박도 못 할 친일 논란이 있기도 하다. 동갑내기 파일럿인 안 창남과 같은 인생을 살지는 않은 게 아쉽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그 시절에 일제한테 그 정도 협조를 안 하고서야 고자본 전문직인 항공 사업을 조선인이 어떻게 그것도 한반도 본토에서 경영할 수 있었겠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해방 후에 그가 비행기에다 붙인 우남· 만송· 창랑이라는 이름들 역시 이 승만, 이 기붕, 장 택상... 당대 정치인들의 호였다. 다소 정치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작명이었다. 막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돈이 많이 깨지는 항덕의 꿈을 사업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배후 권력이 무엇이 되건 적절히 잘 이용하고 기름칠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허나 그 당시에 대한민국은 항공업으로 막 재미를 보기에는 근본적으로 너무 국력이 부족하고 서민들이 가난한 나라였다.
각 비행기들은 사장이 사업 밑천 마련을 위해 미국에 로비를 하고 집 팔고 빚 내면서 정말 힘들게 어렵게 구입한 것이었다. 그 가난하던 시절에 비행기를 구입할 정도의 엄청난 외화 유출을 감수하려면 구두쇠 대통령으로부터 승인도 필요했다.
그랬는데 광복 후에는 북한으로 인한 악재, 늘어 가는 적자, 경영난, 회사 빚을 감당치 못하고 사장은 환갑을 갓 넘긴 1961년에 결국 한강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까지 세상을 뜨자 대한 국민 항공사는 상황이 막장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 나라에 항공사가 없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이걸 국가가 인수하여 국영 기업을 만들었다(1962. 9.). 허나, 이것이 영 실적이 좋지 않아서 한진 그룹 산하로 민영화해 버린 것이 오늘날의 대한 항공이다(since 1968. 11.). 박통이 조 회장에게 "시궁창이 된 이 회사를 임자가 책임지고 좀 살려 보게나" 이렇게 구슬리면서 떠넘겼다고 한다.

그 시절의 옛날 비행기 중 유일하게 우남호만이 내구연한이 경과할 때까지 잘 날다가 만기 퇴역했으며, 요건 인하 대학교 본관 1호관 옆의 잔디밭에 정태보존돼 있다. 항공 사진 지도로도 확인 가능하다. 옆의 인하공전 안에 교육용으로 비치되어 있는 보잉 727하고는 다르므로 혼동하지 말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남호의 모델인 DC-3은 나름 1940년대를 풍미하며 전세계적으로 많이 생산되었던 명품 비행기이다. 그런데 평평한 지면에 정지해 있을 때는 기체의 전방이 위를 향하게 경사가 져 있다. 비행기가 엔진 성능이 지금만치 좋지 못하던 시절에 최대한 양력을 많이 받아서 잘 뜨게 하려고 일부러 저렇게 설계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비행 중에는 물론 평평한 상태로 움직인다.

그리고 보잉 727은 DC-10 같은 삼발기이고 엔진이 날개 아래가 아니라 동체 뒤에 있다. 보잉 사가 개발한 여객기 중 유일하게 삼발기라고 한다. 당연히 엔진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날개 밑에 엔진이 없다니, 전동차로 치면 팬터그래프가 없는 제3궤조 집전 차량이요, 헬리콥터로 치면 꼬리날개가 없는 동축 반전 로터 같은 변종을 보는 것 같다.

두 비행기 모두 오늘날의 전형적인 비행기들과 비교했을 때 독특한 점이 하나씩은 다 있었다. 우남호는 몰라도 보잉 727 정도 되는 비행기를 분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옮겨 오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얘는 1991년에 조종사의 부주의로 동체 착륙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수리 불가 비행 불능 판정을 받고 퇴역하여 학교에 전시되는 운명이 되었다. 그래도 삼발기여서 엔진의 위치가 높은 덕분에, 바닥이 쫘악 긁히는 와중에도 엔진이 터지거나 연료가 새어서 화재가 나는 일은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다.

한때는 인하공전 말고도 전라남도 강진의 '성화 대학'도 항공 특성화 전문대를 표방하면서 캠퍼스 안에 보잉 727을 비치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 학교는 몇 년 전에 망하고 폐교했다.

끝으로, 비행기와는 관계 없는 여담이지만,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후엔 북한은 좌초한 자기네 잠수함을 돌려 달라는 개소리를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무장공비들의 시신만 돌려 주고 저 무례한 요구는 당연히 씹었다.

2. 대한 항공 (1969. 12. 11.)

창랑호 납북 사건으로부터 10여 년 뒤, 그리고 한진 그룹 산하의 대한 항공이 출범한 지 1년 남짓 뒤에 북한에 의한 비행기 하이재킹 사건이 또 발생했다. 강릉에서 출발하여 서울 김포 공항으로 가던 대한 항공 여객기인데, 지금 같은 운행편 번호는 모르겠고 비행기 기체가 일제 YS-11이었다는 것만 전해진다.

이번에도 뻔하다. 승객으로 위장해 타고 있던 북한 공작원 내지 간첩이 승무원을 위협하는 바람에 비행기는 원산의 선덕 비행장에 착륙하게 됐다. 북한은 역시 남조선 인민의 자진 입북이라고 선전했으나 그런 거짓말이 통할 리가..
결국 북한은 사건 이후 2개월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이듬해 2월 14일에야 승객 50명 중 39명은 돌려보냈으나 11명(승객 7, 승무원 4)은 여전히 그리하지 않았으며, 그 뒤에도 이들의 생사조차도 알려 주지 않았다. 참고로 1969년은 김 신조 사건, 강릉· 삼척 무장공비 등 북한이 온통 무력 도발을 벌였던 살벌한 1968년의 바로 이듬해이다.

돌아오지 못한 승객은.. 듣자하니 대체로 1년 전의 이 승복처럼 북한에서 투철한 반공 정신을 너무 발휘해서 세뇌 교육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북한 사람들에게 밉보인 나머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 듯하다. 다만, 전부 싸그리 처형 당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것까지는 아니고 지방 어디선가 정착해서 살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더러는 지난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가족이 잠깐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뭐, 어떤 경우든 6· 25 전쟁으로도 모자라서 하루아침에 멀쩡한 가정을 찢어 놓고 이산가족을 또 만든 북한은 천하의 개쌍놈이 맞다. 이 사건 역시 북한이 비행기를 돌려 줬을 리는 만무하고..

요즘 항공 업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관행이 정착해 있다.

  • X선을 동원한 정밀한 짐 검사: 두 말할 나위가 없음. 이런 첨단 기술이 일제 강점기 때부터 존재했다면 굳이 비행기가 아니어도 안 중근, 윤 봉길 등 여러 항일 의사들의 거사들 역시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 기내에서 절대 금연: 일부 승무원이 간접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뒤에야 정착했다. 화재의 위험도 있는데 과거엔 비행기 내에서 액체 연료 라이터까지 반입해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 수하물과 탑승객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절대로 출발하지 않음: 수하물을 가장한 폭탄 테러를 몇 번 겪은 뒤부터 도입됐다. 마치 사격 훈련 후에 모든 탄피를 반드시 수거해서 개수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한 격의 안전 조치이다.
  • 비행 중에 조종실을 절대로 개방하지 않음: 9· 11 테러를 겪은 뒤. 단, 테러범이 아니라 반대로 파일럿이 혼자 미치거나 맛이 간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외부에서 그를 전혀 제압할 수가 없는지라 최근에(2015. 3. 24.) 저먼윙스 9525편 고의 추락 사고 같은 일도 발생했다.
  • 나이프는 기내식의 스테이크를 써는 플라스틱제조차도 기내에 반입하지 않고 액체 역시 기내 반입을 제한함: 이것도 9· 11 테러를 겪고서 미국이 신경이 바싹 곤두서서 내린 조치이다.

한국은 북한의 테러에 이골이 나 있는 관계로, 비행 중에 조종실을 절대로 개방하지 않는 건 진작부터 시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조치로도 하이잭이 아닌 1987년의 대한 항공 858 폭탄 테러를 막지 못한 건 안타까운 점이다. 승객과 짐이 다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건 이미 그때 다 정착돼 있지 않았나?

북한은 서울 올림픽의 개최를 방해할 목적으로 비행기도 폭파하고 1986년 9월엔 김포 공항에서 외국인을 사주하여 폭탄 테러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번에도 명불허전 천하의 개쌍놈 북괴 인증이다.

본인은 건국 초기에 우리나라의 친일 청산과 민주화를 제일 방해하고 가로막은 원흉도 결국 따지고 보면 북괴라는 지론이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다. 걔네들 때문에 결국 보안을 빌미로 국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복잡한 법이 필요하고 강한 공권력이 필요하고, 일제에 부역했던 형사와 경찰들에게 또 일자리를 줘야 하게 됐다.
요런 절대악에 대한 배경 설명을 쏙 빼고 필요악이 좀 한계를 지녔고 일부 잘못하고 병크 저지른 것만을 편파적으로 부각시키면서 남을 속이고 역사 왜곡하고 선동질 하는... 입에 들어가는 쌀이 아까운 인간들에게 절대로 속지 말라.

일제 강점기 때는 그나마 우리가 힘이 없어서 나라를 빼앗겼으니 실력을 양성해서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일말의 건전한 구호라도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북한엔 도대체 무슨 선한 것이 있고 우리가 뭘 배울 게 있단 말인가? 그저 걔네들의 교묘한 간첩질과, 종북 세력들의 이적 행위만을 잘 감시하고 잡아내면 될 뿐이다.

우리가 중동에 노동자를 보내서 달러를 벌어 온 동안 쟤들은 위조지폐와 마약으로 외화를 벌었다. 살아 온 게 늘 그런 식이다. 민족? 통일? 꿈 깨라. 김돼지 왕조나 그에 준하는 막장 통치 체제가 살아 있는 한,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쟤들은 비교하는 것조차 수치스러운 악의 무리들이다. 민족이 일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관이 일치하는 것이다.

특히 어떤 경우든지 남한이나 북한이나 하나도 다를 바 없고 똑같다는 말은 내가 정말 극혐한다. 인간이라면 뚫린 입이라고 말을 그 따위로 지껄이지 말라.
우리나라 진보, 중도라고 하는 진영이 종북 빨갱이라는 오명을 만년 벗지 못하는 이유는,
북한이 아주 정상적으로 외교를 하는 국가이고 인민들을 정상적으로 먹여 살리고 있는데도.. 아주 불가피하게 가난하고 못사는 줄로 그쪽 동네를 거짓으로 미화하기 때문이다. (왜 안 도와 주느냐, 왜 대화를 안 하느냐, 왜 안 퍼 주느냐, 쟤들이 막나간다고 우리까지 막나가면 우리도 쟤들하고 똑같게 되는 거다) 법과 규칙을 지키지 않으며 그저 힘에 굴복할 줄밖에 모르는 놈들은 힘으로 제압해 줘야 할 뿐이다.

철도야 국토 분단과 함께 곧장 찢어졌으며, 장단 역 기관차, 김 재현 기관사, 월정리 역 등 안보 주제와 관련해서 할 얘기가 넘쳐난다.
그러나 철도뿐만 아니라 비행기· 항공에다가도 뭔가 색다른 분위기로 이런 현대사와 안보 주제를 연결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5/12/17 08:30 2015/12/1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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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한 주민들이 북한을 탈출하는 전형적인 방법은 일단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간 후, 거기서 또 국경을 넘어 친북 성향이 아닌 나라로 가서는 거기서 배나 비행기를 타고 남한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을 매수하기 위해 뇌물을 줘야 하기 때문에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 탈북 여대생 이 현서 씨의 TED 강연 같은 걸 들어 보면 정말 처절한 사연을 들을 수 있다.

왜 그렇게 힘들게 빙 돌아서 남한으로 오는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최단거리 루트인 휴전선 일대는 경계가 너무 삼엄하고 철조망과 지뢰밭도 즐비해서 접근이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인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지 않으면 체제 유지가 안 되기 때문에, 그리고 남한의 입장에서는 자유 왕래를 허용했다간 일부 불순분자들의 이적· 간첩 행위가 만연할 것이기 때문에 남과 북은 이런 서로 다른 이유로 인해 상호 왕래를 금지하고 있다.

반대로, 다른 화해니 평화니 온갖 정치 쇼를 한다 해도, 이런 기본적인 남북 왕래와 서신· 통신 왕래조차 지금까지 이뤄진 게 없으니 옛날 햇볕 정책이니 뭐니 하는 건 들인 돈에 비해 아무 선한 열매가 없으며, 심지어 그 돈이 다 북괴의 핵 개발에 보태졌다고 단정을 지어도 반박이 도저히 안 되는 것이다. 분단의 본질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한때는 집단으로 배를 타고 탈북하는 경우도 있었다. 1990년대에 <광호의 일기> 시리즈를 출간하기도 했던 김 만철 씨와 그쪽 집안이 대표적인 예임. 요즘은 북한 당국도 그걸 알기 때문에 어선이 조업을 하는 것도 일일이 다 감시하고, 특히 일가족 전체가 한 배에 타는 것 자체를 허락을 안 해 준다.

근래에는 오히려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육군 병사가 DMZ를 성큼성큼 횡단해서 귀순하기도 했다. 노크 귀순 사건도 있었고, 심지어 상관 병사들을 프래깅 한 뒤에 귀순한 경우도 있다. 민간인보다는 차라리 거기서 직접 근무를 하는 군인이 육로 접근이 더 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공군 전투기 파일럿에게는 육로나 해로보다 더 좋은 선택이 있다. 바로, 자기가 조종하는 비행기로 직접 남한 영공으로 진입해서 탈북하는 것. 어쩌면 이게 제일 화끈하고 쉬운 방법이다.
파일럿까지 됐을 정도이면 북한에서도 최정예 엘리트이며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탈북을 할 필요도 없을 텐데, 그래도 자유가 좋아서 남한을 선택한 것이다.

1. 노 금석

6· 25가 휴전으로 끝난 지 얼마 안 되었던 1953년 9월 21일에 귀순했으니 귀순 공군 파일럿 라인의 거의 1호가 아닌가 싶다(귀순 당시 22세). 뭐, 전쟁 전인 1950년 4월에 이 건수라는 북한 파일럿이 이미 귀순했다고는 하지만, 너무 오래 됐고 기록이나 관련 소식이 부족하다.

노 금석은 그 옛날에 공산주의 거짓 세뇌 교육 내지 소련군이 북한 지역에서 벌인 온갖 행패에 이미 진절머리 환멸을 느꼈다. 그래서 겉으로는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척하지만 기회만 되면 비행기를 이용해 언제든지 북한을 탈출할 생각을 진작부터 했다고 한다.
8월 종파 사건도 벌어지기 전의 워낙 옛날이었으니 그때의 북한은 김 일성에 대한 우상화는 지금보다 덜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생지옥인 건 변함없다.

그는 훈련 작전 중에 대열을 이탈한 뒤, 목숨을 걸고 저공을 비행하면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미 점찍어 뒀던 김포 비행장에 스스로 착륙했다.

잠시 역사 얘기를 하자면, 김포 국제공항의 전신인 김포 비행장은 일제가 1938년에 건설해 놓았던 공군 기지로, 처음엔 민간 공항이 아니었다. 그때는 거기가 인서울도 아니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수원 비행장 같은 곳일 뿐이었다(물론 일제 강점기 땐 수원 비행장이 없었고.. ㅋ). 1950년대에 민· 군 공용으로 사용하던 인서울 공항은 여의도 공항이었다. 얘는 일제 강점기 초기부터 있었으니 역사가 매우 길다.

그러다가 김포 공항이 1958년 1월 말에 개항해서 민간 공항 기능을 물려받았으며, 김포 공항은 군 기지가 없는 100% 민간 공항으로 바뀌었다. 1960년에 이 승만 대통령이 하야 후에 하와이로 갈 때는 김포 공항을 이용했다. 그리고 1971년에 지금의 성남 서울 공항이라는 공군 기지가 추가로 생기면서 여의도 공항의 군사 기능까지 인계했다.

과거에 부산에서는 비좁은 수영 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외곽에 지금의 김해 국제공항이 생겼지만 여전히 군· 민 공용이다. 부산의 인천 공항 격인 '영남권 신공항'도 몇 차례 논의되었지만 결국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논의만으로 끝났다. 그 반면, 서울에서는 여의도 공항의 역할을 김포(민)와 성남 공항(군)이 분산 인계받고, 김포로도 모자라서 인천 공항까지 생겼다.
아무튼 요렇게 대체 공항이 생김으로써 여의도 공항은 간판을 완전히 내렸으며, 활주로 부지는 여의도 광장으로 바뀌었다가 오늘날 여의도 공원이 되었다.

아무튼, 갑자기 적기가 불쑥 나타나서 사뿐히 착륙까지 했으니, 당시 김포 비행장 관계자들은 발칵 뒤집혔다. 미국은 냉전 시절의 적국이던 소련의 위협적인 미그 15 전투기를 어떻게 좀 구해서 분석할 수 없을까 전전긍긍하던 상태였는데, 웬 적군 파일럿이 귀순하면서 최신형 미그 15 현물을 갖다 바친 것이다.

혹시 이 사람을 따라 북한 전투기가 날아오지 않을까 비행장 전체는 최강의 경계령이 떨어졌다. 미그 15기는 곧바로 격납고로 옮겨졌고 파일럿 당사자는 사진 촬영 후 최고로 삼엄한 경비를 받으며 군 당국으로 이송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는 이내 귀순 용사 영웅으로 최고의 예우를 받았으며 무려 10만 달러(60년 전 물가로!)에 달하는 포상금을 받았다. 이제 평생 일 안 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을 듯.

그는 굳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 눌러앉을 필요도 없이, 그 밑천으로 곧장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냉전 초기였던 그 당시에, 적국에서 귀순한 전투기 조종사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언제든지 웰컴"인 최고급 인재였다. 그는 거기서 영어를 배우고 미 공군, 보잉, 록히드, 엠브리-리들 항공 대학교 같은 걸출한 기관을 드나들면서 관련 고위직을 역임했으며, 은퇴 후 2015년 현재에도 생존하여 미국에서 평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1953년의 귀순은 정말 그의 인생을 바꾼 현명한 결단이었다.

2. 정 낙현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진 지 얼마 안 되었던 1960년 8월 3일, 이 사람도 원산에서 미그 15를 몰고 출격했다가 동해안의 속초 비행장으로 단독 착륙 후 귀순했다. 그 당시 파일럿의 나이는 24세.
그 뒤 남한에서 별 문제 없이 정착하고, 공군 교관 등 고위직을 역임하다가 대령으로 잘 예편했다고 나온다. 귀순 파일럿 출신 대령 1호이긴 한데, 그 외에 다른 특이 사항은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196, 70년대의 영상 기록관 자료나 옛날 신문 기사들만 나오지 최근 근황은 알 수 없다.

1970년에는 박 순국이라는 북한 공군 파일럿이 미그 15를 몰고 비행하다가 남한 영공에 들어왔고, 이내 남한 전투기들에 둘러싸여 속초 비행장에 불시착했다. 이 사람은 귀순 의사가 없었고 처음에는 "실수로 남조선에 들어왔을 뿐이다. 나를 어서 북으로 송환해 달라"라고 거듭 주장했으나, 한국· 미국의 정보 기관이 선배격인 정 낙현까지 동원해서 끈질기게 회유를 한 끝에 최소한 겉보기로는 전향했다고 한다.
다만 박 순국은 남한에서 과음을 일삼다가 간이 나빠져서 1976년에 사망했다. 이 점에서는 바로 다음에 소개할 이 웅평과 비슷한 처지가 됐다.

3. 이 웅평

본인이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았던 1983년 2월 25일엔 남한에서는 팀 스피릿 훈련이 진행 중이었으며, 여기에 대응하여 북한도 전투기를 출격시킨 상태였다. 이 사람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미그 19를 조종하던 채로 탈북을 감행했다. 남한의 공군에게도 이내 발각되었지만 그는 날개를 흔들어서 귀순 의사를 밝혔으며, 남한 전투기들의 엄호를 받으면서 수원 비행장에 착륙했다.

훈련 중에 진짜로 적기가 출현하다 보니 그 당시엔 우리나라도 혼비백산해서 민방위 관계자가 서울· 인천· 경기 지역에 경계 경보를 때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의 귀순이 대외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북한에서 전투기 파일럿으로 모자랄 것 없이 살던 상류층이었지만, 남조선의 라면 봉지 하나만 보고도 감격해서 탈북을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라면이 뭐예요? 먹는 거예요?"는 둘째치고라도, 세상에 "판매나 유통 과정에서 훼손· 변질된 제품은 판매점이나 본사 대리점에서 교환해 드립니다".. 이런 민주적이고 당연한 절차조차도 북한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는 귀순 후 역시 남한에 잘 정착했으며, 남한 정착 12년 만인 1995년에 정 낙현에 이어 대령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늘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살았으며, 무엇보다도 혼자 불쑥 탈북한 자기 때문에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이 해코지를 많이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탈북자의 증언을 들어 보니 그의 예상은 불행히도 정확했다. 다들 수용소로 끌려 갔댄다. 가장이 전투기라는 국가 자산까지 무단 유출하면서 탈북을 감행한 괘씸죄에 대한 연좌제였다.

그는 가족 걱정을 술로 달래다가 간의 건강이 매우 나빠졌다. 1990년대 말부터 간경화로 투병하다가 2002년 5월에 사망했다. 그 전에 대구 성서 초등학교의 개구리 소년 중 하나인 김 종식 군의 아버지 김 철규 씨도 정확히 같은 이유 때문에 2001년 10월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참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4. 이 철수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벌어지기 4개월 남짓 전이던 1996년 5월 23일에 귀순한 분이며, 이분은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2015년 현재까지 최후의 귀순 공군 파일럿이다. 평안남도에서 미그 19를 몰고 출격한 점(아직도 구형 미그 19를!), 저공 고속 비행으로 북한을 탈출한 점, 우리나라 공군의 엄호를 받으며 수원 비행장에 착륙한 점, 당사자가 훗날 대령까지(2010년에) 진급한 점은 13년 전 이 웅평의 판박이이다.

단, 이 사람이 귀순할 때는 과거의 이 웅평 때와는 달리, 서울과 인천에 민방위 경보가 울리지 않아서 평시 경계가 소홀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또한 이 웅평과는 달리 이 사람은 현재까지도 건강하게 현역 복무를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탈북자 출신으로는 최초로 장성 자리까지 내다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강릉 무장공비 사건 때 유일하게 생포된 공작원은 이름이 이 광수이다. 그는 대한민국으로 완전히 전향한 후 해군 군무원 겸 교관, 안보 강사 등으로 재직 중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내가 어뢰를 오래 다뤄 봤고 북한 관행도 잘 아는데(어뢰에다 숫자를 표기하는 방식)... 저건 확실하게 북한 소행으로 보인다. 2009년 11월에 벌어졌던 대청해전에 대한 보복이다."라고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5/12/14 08:37 2015/12/1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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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적어 없는 타동사

킹 제임스 성경에는 의미상 분명히 타동사인데 목적어가 없이 동사 하나만 달랑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옛날 영어에는 그런 문법이 원래 가능했나 보다.
사실, KJV에는 원어로는 뭔가 자비심 없는 짧은 단어 배치가 가능할지 모르나 영어로는 문법적으로 가능하지 않아서 이탤릭체로 단어를 집어넣은 게 있다. 하지만 그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려다 보면 한국어로도 이탤릭체 단어가 또 첨가되어야 하기도 한다.

(1) SLAY
Bring these men home, and slay, and make ready; (창 43:16)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이 요셉의 형들을 대접하는 장면이다. 저 slay는 당연히 사람(these men)을 죽이는 게 아니라 식용 가축을 도축하여 고기를 대접한다는 뜻이다.
한국어 성경 번역은 모두 ‘짐승을’이 추가되어 있고, 영어 역시 KJV를 제외한 성경들은 an animal 또는 animals라고 목적어가 추가되었다.

(2) MOCK
And Sarah saw the son of Hagar the Egyptian, which she had born unto Abraham, mocking. (창 21:9)

하갈이 낳은 아들이 ‘이삭’을 조롱하는 것을 사라가 봤다는 장면인데, 정작 영어 성경 구절을 보면 mock에 이삭이라는 단어가 없고 심지어 대명사조차도 없다. 이것은 KJV 영어만의 용법은 아닌지, 영어 성경도 굉장히 많이 의역된 역본에만 Isaac이 들어 있으며, 대명사가 빠진 역본이 KJV 말고도 더러 있다.

참고로, 문장 전체의 목적어가 또 분사구문으로 행동을 취하는 다른 대표적인 예는 스데반의 순교 직전을 묘사하는 행 7:59이다. calling upon God의 주체는 they가 아니라 스데반이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는데 “주 예수님”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입증된다만, KJV 이외의 성경 역본에서는 God이 없다. 이것은 KJV도 call의 목적으로 God을 향상 계시 차원에서 이탤릭체로 넣은 부분이다.

And they stoned Stephen, calling upon God, and saying, Lord Jesus, receive my spirit. (행 7:59)

(3) SEND
And Abimelech king of Gerar sent, and took Sarah. (창 20:2)
성경에는 목적어 없이 send가 ‘사람(심부름꾼)을 보내다’라는 뜻으로 엄청 자주 쓰인다. 영어 성경 중에는 a man / a messenger를 첨가한 것과 그렇지 않은 역본이 반반씩 있는 듯.
흥미로운 것은, 옛날 개역성경은 이 단어를 목적어 없이 직역하여 우리말로도 ‘왕이 보내어’라고 번역했다는 점이다. 개역개정판부터는 ‘왕이 사람을 보내어’라고 바뀌었다.

2. 죽음을 뜻하는 단어

성경은 영적 세계, 사후 세계, 구원을 다루는 책인 만큼, 죽음/죽임을 뜻하는 단어가 여럿 존재한다. 사전적인 차원에서의 동의어도 있지만, 비유적인 표현도 많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라고 할 때 killed를 안 쓰고 slain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쓴다는 걸 알게 된 게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 rabbit and turtle이 아니라 hare and tortoise라는 것, 뱀이 snake 대신 serpent인 것, 돼지가 pig/hog 대신 swine인 것만큼이나 생소했다.

하나님이 성경을 어떤 동작에다 비유를 하셨는지 성경의 다음 용례들을 살펴보자. 이건 교회에서 설교나 성경 공부 소재로 삼아도 될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1) DEPART 떠나다
그녀의 혼이 떠나려할 때에 (이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이더라.) ... (창 35:18, 라헬)
... 주의 종이 평안히 떠나도록 허락하소서 (눅 2:19, 예루살렘의 시므온)
... 나의 떠날 때가 가까이 이르렀도다. (딤후 4:6, 바울)

(2) SLEEP 잠들다
... 이 말을 하고 그가 잠드니라. (행 7:60, 스데반)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고 (왕상, 왕하, 대하.. 숱하게 등장)
무덤들이 열리니 잠든 성도들의 많은 몸이 일어나 (마 27:52)
...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자는도다. 그러나 내가 그를 잠에서 깨우러 가노라 ... (요 11:11)
그러니 고전 11:30도 단순히 자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고전 15:51, 살전 4:13-14 같은 건 두 말할 나위도 없고!

(3) GIVE UP THE GHOST 숨지다, 숨을 거두다
창세기(아브라함, 이스마엘, 이삭, 야곱), 사복음서(예수님), 사도행전(아나니야와 삽비라, 헤롯)
특히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오로지 이 표현만 사용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마 27:50, 막 15:37, 눅 23:46, 요 19:30). die라고 하지 않았다.

(4) DIE 죽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DECEASE die/death와는 달리 동사형과 명사형이 동일하다. 성경에 딱 4번만 등장하는데..
사 26:14와 마 22:25에서는 die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병렬되고, 눅 9:31에서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가리킬 때 쓰였다.
벧후 1:15는 우리말 성경들이 웬일인지 순교를 '내가 떠나간 후에도' departure이라고 좀 의역하는 경향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5/11/30 08:24 2015/11/3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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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행기에는 잘 알다시피 이제 이륙을 중단할 수 없고 중간에 이상이 생겼더라도 일단은 반드시 떠야 하는 V1 속도라는 게 있는데..
비슷한 개념이 자동차에도 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로 속도가 붙은 채로 교차로와도 충분히 가까워져 버렸으니, 이제는 중간에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더라도 서면 안 되고, 급제동이 아니라 그냥 가속을 해서 교차로를 통과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속도 말이다. 이런 걸 내비가 안내해 준다면 어떨까.;;

자동차가 존재하고 각 자동차의 상태를 일일이 다 감안하는 지능형 신호 시스템이라도 도입되지 않는 한, 이놈의 노란불 딜레마는 마치 기독교계에서 믿음과 행위, 자유 의지와 예정, 육신과 성령만큼이나 잡음이 끊이지 않는 어려운 문제로 남을 듯하다.
아니면 그냥 자동차 신호등도 남은 시간 카운트다운을 좀 표시해 주면 안 되나..?? -_-;; 부작용이 더 크려나?

2.

  • 자전거로 자동차 도로를 역주행하는 것
  •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차가 1차로를 정속으로 계속 주행하는 것
  • 여러 자동차들이 좌우나 전후로 등속· 동일 간격을 유지하면서 주행하는 것 (일명 떼빙)

음주운전, 과속, 신호위반 따위에 비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무척 더디긴 하지만, 위의 사항들은 모두 불법이다. 마음만 먹으면 단속에 걸려서 과태료 딱지 먹어도 할 말 없는 사항이다.

하지만 FM대로 밀어붙이기가 좀 어려운 구석도 있다. 먼저 자전거 얘기. 자전거는 근본적으로 경로 자체가 인도와 차도 사이에 끼여 무척 애매한 위치에 있다. 오토바이도 아니고 겨우 자전거가 인도도 제대로 못 다니고 게다가 한 길에서 상행과 하행을 못 다니니 왕복을 위해 반드시 중앙선 횡단을 해야 하는 건 좀..;; 비현실적이다.

다만, 차도에서 그것도 차가 옆에서 튀어나올 수 있는 교차로 주변에서 자전거가 역주행을 하는 건 몹시 위험해 보이는 짓이니 자제해야겠다. 제아무리 제일 바깥쪽 차선으로 조심스럽게 다닌다고 하더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주행/추월 차선 얘기다. 도로 정체 상황이 아니라면 중앙선에서 제일 가까운 차선은 추월용으로 언제나 비워 둬야 하며, 딴 차를 추월했으면 자기 자신도 다시 오른쪽으로 2차로 이상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외국에서는 "1차로는 화장실 이용하듯이"(이용한 뒤 곧장 나와라)라는 의식이 딱 박혀 있다. 느린 차들이 모든 차선들을 점유하고 있으면 뒷차 운전자의 심정은 짜증 그 자체일 것이다.

끝으로 줄지어 다니는 떼빙이다. 이건 과속이나 신호 위반이 아니고, 요리조리 차선을 바꾸는 난폭운전은 아니나, 다른 방향으로 난폭 운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여 금지되는 행위이다. 돌발 상황이 많은 도로에서 차량 간격을 아슬아슬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다른 차가 사이에 끼어들지 않게 하는 건 몹시 어렵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앞의 차가 급정거하게 됐을 때 연쇄 추돌 사고가 날 우려도 있고 말이다. 여러 차량들이 길을 아는 선두차를 따라서 동일 목적지로 갈 때 떼빙을 하기 쉬운데, 요즘 세상엔 내비를 켜서 각자 알아서 찾아가는 게 낫다.

떼빙이나 추월 차선 위반 차량을 적발하려면 건 속도· 신호 위반 단속처럼 특정 지점을 체크하는 게 아니라 구간을 꾸준히 감시해야 하니 현실적으로 난감하며, 무인 기계가 하기는 더욱 힘들 것 같다. 하다못해 구간식 속도 위반 단속도 그냥 시작점과 끝점에서 동일 차량의 통과 시각만 비교하면 되는 반면, 차로 위반은 그런 부류가 아니니까 말이다.

3.
버스 운전사가 운전을 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변속기 스틱을 전방이 아니라 꼭 뒤로 밀더라. 뒤는 짝수단이나 후진이 있는 쪽이다. 버스나 트럭 같은 디젤 차량은 정말로 1단이 아니라 2단에서 출발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단은 정지 상태에서 오르막을 오를 때에나 필요한 듯.
게다가 내가 최근에 확인을 했을 때는 승객이 더 탈 수 없을 정도로 버스가 초만원이고 그만큼 무거운 상태였다. 그런데도 버스는 아무 탈 없이 2단에서 아주 부드럽게 잘만 출발을 했다. 힘이 딸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내 경험상, 어떤 버스에 따라서는 금방이라도 시동이 꺼질 정도로 부르르 떨리면서 출발하기도 했다. 그건 기사 아저씨가 클러치 조작을 잘못했거나 아예 3단 출발을 시도하기라도 해서 그런 건지 궁금해진다.

또한, 버스는 정지해서 문이 열리기 직전에 '쉬익~ 치익'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는데.. 그건 운전석을 관찰해 보니 주차 브레이크 같은 걸 조작하는 소리 같다. 아무래도 승용차와는 구조가 다른 듯.
주차 브레이크를 거는 걸 깜빡하고 운전사가 차에서 내렸다가 버스가 슬금슬금 앞뒤로 미끄러지기 시작해서 대형 사고가 나는 동영상을 몇 번 봤었다. 디젤 엔진에 무거운 대형차일수록 1/2 mv^2에서 v가 커지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게 되고, 또 엔진 브레이크의 효력이 약하고 주 브레이크가 무리를 받기도 쉽댄다. 제동 장치를 빡세게 잘 만들고 적절히 활용하는 게 필수이다.

4.
지난 여름에 휴가차 양평으로 가던 길에 국도변의 모 휴게소 주변에서 뜻밖에 득템한 사진이다.
포니도, SMC 덤프트럭도 아니고.. 무려 "제무시" 트럭의 실물을.. 그것도 굴러가는 모습을 조우하게 됐다.
곧바로 사진을 찍었다. 딱 보면 알겠지만, 자동차계의 생생한 노인학대 현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미국 GMC에서 제작한 군용 2.5톤 트럭이 민간에 풀려 나온 것이다.
그리고 GMC를 일본식으로 변형해서 발음하면 '지 에무 씨' → '제무시'가 된다. ㄲㄲㄲ
앞바퀴 휀다의 모양으로 보건대 M602 / M35 / K511 계열이다. 한 196, 70년대에 생산되었던 물건.
군필자 분들은 '육공 트럭'이라고 부르더라.

그런데 진짜로 낡은 원조는 6·25 내지 2차 세계 대전 시절에 생산된 놈도 있다고 한다.
군용차다운 압도적인 무게와 엔진 출력 덕분에 강원도 산길을 오르면서 통나무들을 실어 나르는 실력은 이놈 만한 게 없다고 함.
다만 기름 먹는 하마인 건 각오해야 할 것이고, 심지어 미국 차 아니랄까봐 이런 트럭이 디젤도 아니고 휘발유 엔진 모델도 있다고 한다.

5.
초가삼간도, 산 정상도, 그리고 도로가 극심하게 막힐 때 신호 대기 중의 운전석도 훌륭한 코딩과 작문 공간이다.
너무 맑고 밝은 낮에는 명암차 때문에 바깥 경치와 모니터 화면이 카메라에 동시에 담기지 않는 반면, 흐린 날엔 그게 가능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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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당연한 말이지만 엔진의 경제 속도로 고단 고속으로, 그리고 최대한 관성을 활용해서 나아가고 있어야 연비가 극대화된다. 그 반면, 길이 막혀서 나아가질 못하면 길에서 아까운 기름을 흘리면서 시간은 시간대로, 돈은 돈대로.. 자동차의 가성비는 극악으로 곤두박질친다.
컴퓨터로 치면 메모리가 부족해서 가상 메모리 페이지 파일 교체만 하느라 다른 일을 못 하고 성능이 그냥 곤두박질치는 것에다 비유가 가능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본인은 도로 정체를 매우 싫어한다. 시내 도로보다 2~3배 가까이 우회해서 가더라도 신호 안 받고 연속 주행이 가능한 자동차 전용 도로가 자동차에게는 이익이고 결과적으로 그게 돈과 시간을 아끼는 경우가 많았다. 자동차 전용 도로마저도 답이 없으면.. 그냥 차 안 가져가고 만다.
그나마 신호 대기 시간에 다른 작업이라도 해서 내 개인 시간이라도 좀 아껴야 할 필요를 느낀다.

6.
속담과 성경 구절 몇 개를 자동차를 배경으로 좀 각색해 보면...
"일찍 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보다 운전자에게 훨씬 더 절실히 와 닿는 속담은 "일찍 도착한 차가 주차 자리를 차지한다"이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보다 운전자에게 훨씬 더 절실히 와 닿는 말씀은 "옆차에게 (끼어들) 틈을 주지 말라"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11/28 08:31 2015/11/2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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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디가 홀수 개만 있는 3박자 계열 곡

대표적인 예가 무엇이냐 하면 <예수 따라가며>(Trust and obey)에서 "..." 부분,
그리고 <구주를 생각만 해도>(Jesus, the very thought of thee)에서 "..." 부분,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에서 "..." 부분이다. 생각보다 예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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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적절한 용어를 몰라서 묶음 단위를 편의상 그냥 '단'이라고만 부르겠다.
대부분의 찬송가들은 못갖춘마디를 감안하더라도 한 절이 보통 기승전결 4개의 단으로 구성되고 각 단은 4개의 마디로 이뤄져서 총 16마디로 돼 있다.

그러나 위의 곡들은 무슨 이유인지 둘째 단은 마디가 4개가 아니라 3개만 있다.
그래서 마지막 마디를 한 마디만 부르고 곧장 다음 단으로 넘어가는 게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하고 어색하다. 반주자도, 찬양 인도자도, 회중들도 여기서는 좀 멈칫 한다. 마디를 하나 더 추가하고 싶어진다.
실제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경우, 21세기 새찬송가에서는 마디를 하나 더 추가해 버리기도 했다. 찬송가 편찬자들이 보기에도 홀수 마디는 너무 어색했는가 보다. 아래 두 악보를 대조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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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곡의 작곡자는 무엇을 의도하고 둘째 단에는 마디를 홀수 개만 넣었는지 모르겠다.
이건 6박자 계열도 아니고(6/4 또는 6/8) 엄연히 3박자인데 굳이 마디 수를 반드시 짝수 개로 맞춰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반론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홀수 마디는 영 아닌 것 같다.

2. 못갖춘마디의 박자 구획

<날 위하여 십자가의>(How can I keep from singing)는 보다시피 '어찌 찬양 안 할까'라고 번역된 맨 마지막 단 가사가 원제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찬송가들이 고유 제목 대신, 닥치고 가사 첫 줄을 곧 곡을 식별하는 제목으로 취급하는 게 관행이 돼 있다. 어차피 대부분의 찬송가들이 외국곡 번역이다 보니 원제목이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나, 국내 창작곡에 대해서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당신을 향한 노래>를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으로 바꿔서 적는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뭐, 제목은 그렇고.. 내가 이 곡에 굉장히 불만인 것은, 박자가 굉장히 이상해지는 형태로 못갖춘마디의 구분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찬송가 책들을 보면 얘는 다음 그림에서 A 형태로 기보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실제로 부르면서 강약약 박자를 느끼는 건 B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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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이 곡은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 자매 한 자리에>의 전반부 3/2박자 부분하고 리듬과 박자가 완전히 동일하다는 뜻이다. 못갖춘마디를 저렇게 적어야 할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는다.
억지로 끼워 맞춰 보면 악보대로 박자를 맞추는 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으며, 한국어 번역 기준으로 기능어가 아닌 내용어에 강박이 더 걸리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멜로디의 흐름은 그 박자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애국가의 앞부분처럼 박자가 어색하고 연상거부가 심하다.

저렇게 우리나라 애국가 스타일로 박자가 아주 이상한 예가 하나 더 떠오른다. 바로 <예수가 거느리시니>(He leadeth me; O blessed thought)의 후렴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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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약박이고 '날 항상 돌'이 '강 약 중강 약'이 들어가야 하지만, 실제 멜로디는 홀수 박자가 아니라 짝수 박자가 음높이가 높고 영락없이 강박이다. 그래서 쓰기는 A처럼 써졌지만 부르기는 B처럼 불러지며, 이 때문에 뒷부분에 박자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게 된다. 교회 다니는 분이라면 정말 그런지 한번 직접 불러 보시라.

찬송가도 가끔은 이렇게 비판적인 안목으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굳이 찬송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외국곡의 가사를 번역할 때는 가능한 한 내용어는 강박에, 기능어는 약박에 배치해서 부르기 자연스럽고 쉽게 했으면 좋겠다.

* 잡설

1.
악보에서 스타카토 같은 꾸밈음 기호는 C/C++로 치면 매크로와 같은 구석이 있다고 본인은 옛날에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음악 시간에 '적기' / '내기'라고 기보법을 배우는 건 영락없이
#define STACCATO(pitch, interval)  play(pitch, interval/2); pause(interval/2) 이런 꼴이니까 말이다.
그럼 페르마타(늘임표)는 C/C++로 치면 register나 inline와 비슷해 보인다. 늘이는 것이 권장 사항이지만 그래도 연주자의 재량껏 무시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2.
군대에서 유격 훈련을 정신없이 받다 보면 <어머니의 마음>을 부르다가 후렴은 <스승의 은혜>로 넘어가기 쉽다고 한다. 둘은 동일한 3/4박자에 조와 분위기도 비슷한 편이다.
그런 것처럼 찬송가에도 분위기가 비슷하고 메들리로 엮기 좋은 pair가 몇 쌍 있다.

  • 내 죄 사함 받고서 →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구원 + 성령 동행. 둘 다 경쾌하고 명랑하다.
  •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위로와 평안, 간구 쪽으로 좋은 조합이다.
  •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성경 카테고리. 내가 교회 청년부 찬양 때 실제로 메들리를 시도하기도 했다. 작사· 작곡자가 동일하고 굉장히 좋은 조합임. (단, 전자곡은 극초반만 빼면 나머지 가사는 성경이라기보다는 구원 카테고리에 더 가까운 내용이다.)
  • 내 주의 보혈은 → 이 세상 험하고: 서로 다른 작곡자의 곡이지만 리듬과 멜로디가 아주 비슷하며, 구원에서 신뢰와 확신 카테고리로 주제가 잘 넘어간다.

3.
끝으로, 이건 멜로디가 아닌 가사 얘기이며, 번역도 아니라 영어 원가사 얘기이다.
찬송가 가사 중에는 영어로는 "예수님은 내 꺼"라는 표현이 있다. 그것도 옛날 클래식 찬송가에 말이다.

  • My Jesus, I love Thee, I know Thou art mine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 Blessed assurance, Jesus is mine!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높임법이 존재하고 소유에 대한 개념이 보수적인 한국 및 한국어 문화로는 직역하기가 영 곤란한 대목이다. 사실, 성경적인 용례를 봐도 A is mine은 하나님이 "모든 혼은 내 것이다"(겔 18:4), "금과 은도 내 것이다"(학 2:8), "보복은 내 것이다"(롬 12:19), "첫 열매는 모두 내 것이다"(출 13:2)처럼 '갑'의 소유를 명시하는 게 전부이지.. 을이 갑을 보고 내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권에서 찬송가 가사를 Jesus is mine이라고 가끔 쓴 것은 다른 서정적인 의미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my Lord, my God, my savior, 심지어 my love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본인으로 하여금 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긴, 아 6:3가 있으니(나는 내 애인 것이고, 내 애인도 내 것이다) 이런 용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5/11/25 08:36 2015/11/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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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이야기

1. 에어컨의 핵심은 압축기

본인은 몸에 열이 많고 더위에 약하다. 날씨도 더운 것보다는 추운 걸 더 좋아한다. 추위는 뭔가를 더 껴입기만 하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반면, 더위를 극복하려면 장비를 가동해야 하고 에너지 소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뭐 겨울에도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손이 시려울 때, 정전기가 생길 때, 얼굴 표면이 부르틀 때는 좀 불편하긴 하다만..)

집도 너무 덥기 때문에 여름방학 땐 개인적인 코딩이나 연구는 가능한 한 학교로 ‘피서’를 가서 진행하곤 했다. 산기슭이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학교가 집보다는 훨씬 덜 더운 것 같다. 공공장소인 도서관이나 기껏해야 동아리 방 정도만 활용할 수 있는 학부생과는 달리, 대학원생은 자체 연구실이 있는 것도 좋다.

이런 특성상, 본인에게 여러 문명의 이기들 중에 열역학과 동력 기관의 산물인 에어컨은 정말 축복 중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냉장고와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식품 보존과 더위 극복에 애로사항이 잔뜩 꽃폈을 것이다. 냉동 공학 분야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자동차 공학, 철도 차량 공학, 심지어 한글 공학만큼이나 냉동 공학도 있으며, 이건 엄연한 기계 공학의 한 분야이다. 그러니 오늘은 에어컨 이야기를 좀 집중적으로 늘어놓아 보겠다.

에어컨은 외부에 아무 영향도 안 끼치면서 혼자 곱게 주변의 온도를 낮춰 주는 요술상자가 아니다. 그 원리는 본질적으로 물이나 알코올이 증발하면서 주변을 시원하게 하는 것과 같다. 단지, 에어컨은 물보다 더 쉽게 액화나 기화가 되는 물질을 냉매로 쓰고 열전달이 순환이 가능한 구조를 갖춰 놓았다.
더운물과 찬물을 한데 섞으면 미지근한 물이 되지만, 미지근한 물이 저절로 더운물과 찬물로 바뀌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에어컨은 저절로 발생하지 않는 그 일을 인위로 발생시키는 기계이다.

C++ 가상 함수만 해도 일반 함수에 비해 많은 성능 비용이 뒤따르듯, 세상에 공짜는 없다. 에어컨은 에너지 소모가 대단히 많은 걸로 악명이 높다. 송풍기나 방열기의 팬은 에어컨이 소모하는 전체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며, 90% 이상은 냉매의 상태를 강제로 바꾸는 압축기가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송풍기의 강약만 조절하는 건 에어컨의 전력 소모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온도의 높낮이와 실질적인 가동 시간이 더 중요하다.

압축이라는 게 간단하게 그냥 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에어컨에는 실외기라는 크고 무거운 물건이 필요하다. 에어컨의 진짜 ‘엔진’은 실외기인 것이다. 한쪽이 열을 잃었으면 다른 쪽이 열을 얻었다는 뜻이므로 그 열을 방출하려면 또 다른 의미에서 어차피 외부 통로가 필요하기도 하고 말이다.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난 잘 모르지만, 공기든 냉매든 압축은 조용히 진행 가능한 작업은 아닌지라 소음과 진동이 뒤따른다. 에어컨 실외기가 마냥 조용하게 동작하지 못하는 게 이 때문이다.

에어컨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기계값과 전기료 어디로 보나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초호화 사치품이었다. 그에 비해 오늘날 가정, 차량, 공공기관, 교통수단 등에 널리고 널린 에어컨을 보면 참 경이롭기 그지없다.
지하철을 생각해 보자면, 옛날에 197, 80년대엔 객실에 에어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천장에 선풍기만 달랑), 전동차의 동력 제어도 원시적인 저항 방식이었다. 제동을 걸 때 열이 바닥에서 솟아올랐으니 여름에 지하철은 완전 찜통 지옥철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기술이 인류의 삶을 지금까지 정말 편하게 만들어 줬다.

2. 차량용 에어컨

차량용 에어컨은 송풍기는 배터리로 가동하더라도 압축기는 대놓고 엔진 힘을 끌어들여 가동한다. 내 차만 해도 에어컨을 켜거나 껐을 때 엔진룸으로부터 느껴지는 엔진음과 진동이 살짝 달라진다. 또한, 시동을 켰더라도 오랫동안 정차하고 있으면 냉기가 좀 약해지다가, 액셀을 밟아서 엔진 rpm이 증가하면 바람도 다시 차가워지는 경향이 있었다.
어디선가 언뜻 본 자료에 따르면 승용차용 에어컨만 해도 엔진 출력을 3~4마력 정도는 깎아 먹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동을 안 켠 on 상태일 때는 에어컨을 켜더라도 그냥 송풍기 바람만 나온다는 뜻인데 실제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확인을 못 해 봤다.

옛날에는 마치 자동 변속기만큼이나 아무 차에나 에어컨이 달린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저배기량 경차는 가격은 둘째치고라도 엔진 출력이 견디질 못해서 에어컨을 제대로 틀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 사람이 가득 탄 채로 에어컨 틀고 오르막을 오르면..?;; 또한 굳이 경차뿐만 아니라 대형 버스도 과거엔 엔진 출력이 충분치 못해서 에어컨을 달고 틀기가 부담스럽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공간이 넓으니 에어컨도 용량이 꽤 커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요즘 자동차는 종류를 불문하고 그렇게까지 약골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더운데 차의 엔진과 연비를 걱정해서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에어컨을 안 틀고 참을 필요까지는 없다.
20년쯤 전에 486/펜티엄급 골동품 컴퓨터에서는 128kbps짜리 평범한 MP3을 하나 재생하는 것만으로도 CPU 사용률이 10~20%대까지 치솟았으며 컴퓨터가 다른 데서 버벅댔다. MP3 디코딩은 계산량이 엄청난 연산이긴 하지만, 요즘 컴퓨터로는 그건 뭐 ‘껌’이지 않은가. 에어컨이 자동차에 끼치는 오버헤드도 그런 식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내연 기관이 없이 아예 전기로만 달리는 자동차에는 에어컨의 가동이 꽤 난관으로 작용할 것 같다.

그래도 에어컨은 사무실에서는 선풍기와 달리 서류를 흩날리지 않으며, 음료수 비용이나 땀으로 인한 의복 세탁 비용, 매번 몸을 씻는 데 드는 비용을 아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의 작업 생산성을 은근히 향상시켜 준다. 또한 자동차에서는 창문을 열 필요를 없게 해 주니 공기 저항 면에서는 오히려 연료를 아껴 주기도 한다. 에어컨은 마냥 에너지를 처먹기만 하는 하마가 아닌 것이다.
올해 초에 별세하긴 했다만, 싱가포르의 독재(?) 대통령 리콴유는 사는 곳이 사는 곳이다 보니, 에어컨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에어컨이 한여름에 생산성과 능률의 향상으로 인해 가져오는 축복을 직감했던 것이다.

자동차가 전진뿐만 아니라 후진이 가능하듯, 에어컨에서 열 전달 방향을 반대로 바꿔 주면 냉방이 아니라 난방도 할 수 있다. 즉, 실내의 에어컨 송풍기에서는 더운 바람이 나오고 실외 송풍기에서는 찬 바람이 배출되는 것이다. 단지 그건 아무 쓰잘데기가 없는 짓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겨울에 난방을 하고 싶으면 그냥 난로를 때고 히터/보일러를 틀면 된다. 그러고 보니 히터도 전기로만 하는 게 아니라 석유를 때서 가동하는 경우가 많으나, 요즘은 기름값이 너무 비싸서 그마저도 올전기로 때우는 추세로 가고 있다.
자동차는 이 점에서 좀 여유가 있다. 엔진열이 자동으로 공급되니, 히터는 에어컨과 달리 엔진에 아무런 추가 오버헤드가 없이 공짜로 가동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에어컨과 마찬가지로 시동이 켜져 있는 동안에 한정일 것이며, 전기 자동차는 아예 해당사항이 없다.

3. 습기 관리

자, 그럼 마지막으로 습기· 물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글을 맺겠다.
에어컨은 시원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굳이 저온이 아니어도 습기가 싹 빠져 보송보송한 공기를 불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땡볕만 내리쬘 때보다, 비 오기 직전의 눅눅하고 후덥지근하고 불쾌지수가 최악인 상황에서 에어컨은 더욱 놀라운 성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에어컨은 남은 건조하게 만들어 주지만 반대로 자기는 물기에 찌들려 산다.
냉매를 액화시키기 위해 냉각기 내부의 온도는 영하 몇십~수십 도까지 떨어진다. (우리가 원하는 실내 온도까지만 내려가는 게 아님) 그럼 주변의 공기는 견디지 못하고 습기가 다 이슬로 바뀐다. 겨우 5도가 될까말까인 냉수만 물병에다 가득 담아 놔도 장마철엔 병의 표면이 얼마 못 가 물기로 온통 축축해진다. 하물며 에어컨 내부는 어떻겠는지를 충분히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국정원 추리 퀴즈 시리즈에서는 이 원리를 소재로 사용한 적도 있었다. 물이 없는 상황에서 은 요일 요원은 에어컨을 가동한 뒤 냉각판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면서 1주일을 버텼다.

maintenance-free하고 청소가 필요 없이 선풍기처럼 오래 오래 쓰는 에어컨이 존재한다면 참 좋겠지만.. 현실의 에어컨은 그렇지 않다. 일단 외부 공기를 걸러 주는 필터를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하고, 또 아까 거론한 냉각기의 냉각판도 별도로 청소가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일명 '에바'(EVAporator)라고 불리는 듯. 시간이 흐르면서 먼지가 쌓이기도 하거니와, 축축한 채로 바깥 공기를 받아들이는 일만 하다 보면 냉각판이 온갖 세균과 곰팡이의 온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중에 차내에 굳이 에어컨이 아닌 송풍기만 틀 때에도 지린내와 악취의 원흉 역할을 한다.

차라리 차가 실외 땡볕 아래에 주차돼 있다면 모를까, 그 상태로 눅눅한 지하 주차장에 장시간 주차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런 공기가 사람 건강에도 좋을 리가 없다. 사실 냉방병이라고 불리는 것도 안팎의 급격한 온도 변화로 인한 피로도 증가와 면역력 감소라기보다는 호흡기 질병에 더 가깝다는 자료도 어디선가 봤었다. 코로 코렁탕...은 아니고 먼지와 세균을 꾸역꾸역 들이켰는데 몸에 탈이 안 날 리가. 어차피 급격한 실내외 온도 차이 자체는 한겨울에도 만만찮게 경험하는데 굳이 여름에만 몸이 특이하게 탈이 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찌든 악취는 필터만 교체하거나 송풍구에 소독만 한다고 없어지지 않더라.
내 경험상 자동차 공업소에서는 잘 해 주지 않고, 전문적인 자동차 에어컨 출장 청소 업체를 불러서 해야 했다. 필터는 엔진오일의 주기와 비슷하게 교환하는 반면, 냉각판은 거기 있는 상태 그대로 조수석 쪽에서 통로를 낸 뒤, 세제를 발라서 세척을 했다. 거기를 세척해 줬더니 진짜로 냄새가 싹 없어졌다. 거기에 설마 무슨 동물 배설물이나 사체 급의 끔찍한 오염원-_-이 있기라도 한 건 아니었고 그냥 정말 오랫동안 청소를 안 해 줘서 평범한 오염원들이 누적된 거랬다.

본인이 궁금했던 것은 왜 에어컨 가동 없이 송풍기만 가동했을 때 악취가 나며, 에어컨을 가동하고 나고 잠시 지나면 냄새가 없어지느냐는 것이었다. 청소 기사에게서 설명을 듣긴 했는데 이 역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1) 악취를 내는 요소들은 온도가 낮을 때는 일시적으로 냄새를 일으키지 않으며, (2)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더라도 냉각판이 송풍기에 영향을 주기는 하는 것 같다. 왜 어째서 그런지는 본인에게 묻지 마시고... ^^

그래서 인터넷이나 자동차 정비소 직원의 공통된 조언으로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n분쯤 전부터 에어컨을 끄고 송풍만 가동해서 냉각판의 습기를 좀 말리라는 것이었다. 그 n의 값은 2~3이나 5, 심지어 10 이상으로 사람마다 차이가 있었다.
실제로 고급 외제차는 시동이 꺼진 뒤에 자동으로 송풍기를 말리는 기능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게 실제로 효과가 있긴 한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15/11/19 08:37 2015/11/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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