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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경과 과학이라는 케케묵은 논쟁거리에 대해서 또 오랜만에 다뤄 보고자 한다. 수 년 전에 이미 늘어놨던 지론도 있지만 이 기회에 또 복습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과학과 신학(혹은 성경? 종교?)은.. (1)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가르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접근하는 관점과 영역이 서로 완전히 다를 뿐이다.

과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 바이러스가 있고 양성자 중성자 전자가 있다고 가르친다. 그에 비해 성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천사, 마귀가 있고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가르친다.
성경은 예수님이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갖춘 분이라고 가르치지만, 과학에서는 빛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가르친다.

뭐, 인간이 과학 지식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왜 꼭 흐르는 물에 손을 씻어야 위생적인지를 현업 의사들조차 납득을 못 했다. 심지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소수의 의사가 역으로 의료인들 사이에서 왕따 아싸 취급을 당했을 정도였다.

옛날 동의보감에 미개하고 황당한 내용이 있다고 한의학을 싸잡아 욕하는 경우가 있던데.. 비교하려면 동시대를 비교해야지? 1600년대에는 서양 의학도 사돈 남말 할 처지가 절대 아니었다.

길거리에 침을 함부로 뱉어서는 안 된다는 것, 여러 사람이 같이 식사를 할 때 국자를 써서 각자 덜어 먹어야 위생적이라는 것.. 이런 것도 거의 비타민의 발견에 비견될 정도로 문명 사회에서 굉장히 늦게 자리잡은 관행이다. 우한 폐렴 창궐 시절엔 그걸로도 모자라서 사람들 입을 전부 마스크로 틀어막기도 했었고 말이다. (비말을 통한 감염을 막기 위해)

이런 건 과학적 발견을 통해 인간이 이 자연 세계의 규모를 측정하고 자연이 돌아가는 내부 디테일을 알게 되면서 정착된 사례이다. 가령, 지구의 크기를 알게 된 것, 광속이란 게 유한하며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게 된 건 대단하지 않은가? 이 덕분에 인간의 생활이 크게 편리해졌음은 물론이고 인간의 건강과 수명까지 향상될 수 있었다.

나도 학교에서 과학 교육을 따로 받지 않았다면.. 뭔가 불에 타는 물질과 그렇지 않은 물질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고, 생명체의 구성 물질과 나머지 무생물 물질은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연 발생설(모기는 도대체 어디 있다가 뿅 튀어나오는지!)이나 플로지스톤설을 어느 정도 지지했을 수도 있다. 지구가 둥글다고는 차마 실감하지 못했을 수 있고, 만물에 대해 피타고라스나 돌턴 정도로만 생각했을 수 있다.
물체는 원래 자기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아니라(관성) 정지해 있으려는 게 본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마찰..), 자연은 진공 상태를 싫어한다고도 생각했을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이 눈부시게 개척해 놓은 과학이라는 걸 맛보고 나니..

  • 세상 만물은 정적으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넘사벽 급의 거시세계인 천체와 은하들도 끊임없이 돌고 돌고 팽창하고 밀려나고 있고.. 미시세계의 입자들도 팽그르르 돌면서 넘사벽 급의 힘으로 상대방을 꽉 붙잡아서 물리적 변화와 화학적 변화의 경계를 형성한다.
  • 이 투명한 공기 중에도 눈과 귀로 당장 보이거나 들리지는 않지만 별별 희한한 파동들이 에너지를 전하고 있다.
    이걸 뭘 어떻게만 해 주면 자연 현상과 자연의 산물로부터 초월적인 엄청난 에너지· 동력을 얻을 수 있고, 정보를 저장하고 보낼 수도 있다.
  • 세상 만물은 이 이상 절대로 더 쪼개거나 분석 불가능한 단단하고 관념적인 놈이 아니다.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도.. 흠~
  • 유기물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게 가능하고 이제는 없는 원소도 아주 제한적이나마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정말 100년, 200년 전 사람들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상상도 못 했던 문명의 이기들을 값싸고 풍부하게 누리고 있다.
과학이라는 학문은 마찰이 없고 공기 저항도 없는 깔끔한 강체 내지 이상 기체에서 시작해서는.. 갈수록 엄청나게 더 복잡한 현상이 가능한 이유를 분자· 원자 레벨에서 설명하고 수식으로 딱 떨어지게 기술하고 예측한다. 보통은 미시적으로 가지만 천문학/천체물리학 하나만 예외적으로 엄청난 거시세계를 다루는 듯.

그러니 학교 시험 문제 같은 데서도 "공기의 저항은 무시한다, 마찰은 무시한다" 이게 얼마나 엄청난 말인지..
애들을 그저 문제 푸는 기계로만 키울 게 아니라면, 자기가 상대하는 복잡한 개념과 원리, 숫자들이 실생활에서 어떤 위력을 나타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걸 우리가 과학이라는 도구 덕분에 얼마나 간편하게 취급하고 쓸데없는 삽질을 안 하게 됐는지를 과학 교육에서 잘 일깨워 줘야 하리라 여겨진다.
(공기의 저항이 없다는 건 깃털과 쇠구슬과 심지어 흙먼지조차 같은 속도로 툭 떨어지며, 사람이 빗방울에 맞아서 다칠 수도 있는 상태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계엔 과학 기술이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도 있고, 분야가 달라서 애초에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가령, 인간의 사후 세계 같은 건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탐구하는 게 전혀 불가능한 영역이다.

과학 교육이 세상을 보는 눈을 저렇게 획기적으로 바꿔 놓은 것처럼.. 본인은 성경을 공부하고 나니 인간이 죽는다고 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과학 관찰이나 기술 발달만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인 공허함과 불안함,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영적 세계라는 게 존재하며, 이건 세상에서 굴러다니는 이상한 설화나 귀신 이야기 같은 것과는 급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 성경이 기본적으로는 논리나 증거 대신 믿음을 요구하는 책이지만, 그래도 도를 넘게 황당한 막장 판타지나 이상한 반지성주의 음모론을 강요하는 건 아니다!! 세상 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급으로 예언들이 정확하게 문자 그대로 적중한 건 또 어떻고?
  • 성경에 기록된 각종 사건과 스토리들이 정말로 다 실제로 있었다고 세상 역사와도 교차검증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제일 중요하게 다루는 예수님의 실존 여부조차 미스터리인 건 아니다. 부활도 세상에서 차마 받아들이지 못해서 "제자들의 부활 체험 사건 / 영적으로 부활" 이딴 식으로 부르긴 하지만, 사도들의 이런 엄청난 변화 자체는 명백한 역사적 팩트인 것이다.
  • 인간의 과학 지식으로 설명이 안 되는 기적 얘기가 있긴 하지만, 일부 디테일 내용은 오늘날의 자연 과학의 관점에서도 맞고 타당하고 시대를 명백히 앞서 있기도 하다.

과학은 인간은 자연 세계라는 게 굉장히 보수적이고, 물질이나 에너지가 뜬금없이 우연히 뿅 생기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그럼 그게 맨 처음에 우연히 생기려면..?? 기원은 과학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방식일 수밖에 없다.

  • 질량 보존의 법칙, 에너지/운동량 보존의 법칙
  • 열역학 제1, 제2 법칙. 영구기관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음.
  • 자연 발생설은 사실이 아님.
  • 후천적인 획득 형질은 후손에게 유전되지 않으며, 돌연변이는 십중팔구 생물에게 해로움. 한번 정해진 종의 특성이 호락호락 바뀌지는 않음
  • 연금술 따위 기술로 금을 만들 수는 없음 (입자 가속기 풀로 돌려서 만들까말까.. 게다가 가속기 돌리는 비용이 금을 시장에서 직접 사는 비용보다 더 비쌈)

그러니 이 정도면 과학의 범위를 벗어난 곳에 신의 기적 정도는 있을 수 있고 믿을 만하다는 결론을 개인적으로 내린 것이다.
정치와 종교가 다른 것만큼이나 성경과 과학은 주로 다루는 영역이 서로 별개이다. 성경은 인간의 온갖 추악한 마음 상태에 대해서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지만, 딱히 자연의 신비를 밝혀 내는 걸 금지하고 죄라고 규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활동은 성경의 관심사가 아니다.

성경에 솔로몬의 재판이라는 엄청난 이야기가 기록돼 있지만, 현실 인간의 세계에서 솔로몬의 재판 같은 재판이 매번 벌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CCTV와 유전자 감식 기술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범죄자들을 잡아내고, 애매한 사람을 고문하면서 취조할 필요를 없게 해 주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줬는가? (물론, DNA라는 초월적인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생명체의 흔적과 유전자 정보를 기록한 신에게 감탄하는 건 옵션..)

의료 쪽만 해도 성경을 쭉 읽어보면 세상 의사의 필요성을 명백히 인정하는 논조이다. 신자들은 닥치고 기도만 하면서 손 빨고 있으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병 고치는 기적은 평소에는 좀체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불리는 거다.

이런 식으로 영역을 구분하고 지내면 만사가 편안할 텐데.. 두 분야가 크게 대립한 건 아무래도 기원(origin) 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인이 생각하는 방법론을 적용하면 충돌을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 상당수를 자연스럽게 해소하고 넘길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 여러 번 얘기한 적이 있으니 이 자리에서 또 언급하지는 않겠다.

내가 보기엔 진화도 맞고 창조도 서로 다른 영역에서 맞다. 진화론은 특정 조건과 범위 하에서 생물 종의 분화 과정을 설명하는 과학 이론이 당연히 맞다.
하다못해 예수님의 지상 재림 이후에 육식동물들이 다시 초식으로 돌아갈 거라는 예언(사 11:7, 65:25) 말이다.  만약 그런 변화가 문자적으로 발생한다면 그것조차도 생물학적으로 보면 진화이다. 딴 게 진화가 아니다~!

단지, 종의 분화가 아니라 생명 자체의 갑툭튀 원리, 기원, 근원을 이런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실험실에서 이 정도 진화를 관측하고 재현했다고 해서 그게 인간까지 진화의 산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전에 얘기한 적이 있던가..? 다윈은 근성의 관찰 덕후여서 지렁이가 땅을 갈고 뒤엎고 기름지게 만들어 준다는 걸 인류 역사상 거의 최초로 알아낸 과학자였다. 구더기가 파리의 유충이라는 것도 모르던 시절에 도대체 어떤 할 일 없는 사람이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고 지렁이나 관찰하고 있었겠는가? 다윈도 당대엔 "저 양반, 진화론이나 주장하더니 이젠 인류의 조상이 지렁이라고까지 말할 기세로군!" 이런 비웃음이나 실컷 당했었다.

평범한 창조론자(?)라면 이런 지렁이의 오묘한 행동 패턴도 절대 우연히 생길 수 없고 다 지적설계 어쩌구 하는 결론으로 갈 것이다. 본인도 그런 심증을 잘못됐다고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신이 지렁이를 그런 용도로 창조하신 게 맞지.. 하다못해 스타크래프트의 종족별 밸런스조차도 수학에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 치밀하게 연구해서 정하거늘, 더 정교한 게 어떻게 우연히 저절로 생기겠는가? 게다가 간과하기 쉬운 사실인데, 다윈도 나름 신학 공부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다윈은 과학자로서 생물들을 관찰해 보니.. 타락한 현 자연 세계에는 그저 "보기 좋았더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매정· 냉정함, 죽음, 환경 적응.. 그 어떤 예수쟁이 창조론자라도 저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윈은 이런 부정적인 면모를 더 주목하면서 common designer라는 면모까지 common ancestor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신이 저런 걸 일부러 만든 매정 잔혹 잔인 사악한 성품의 보유자가 아니라면 저건 그냥 생물 진화의 산물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관점을 잘 생각해 보자..! 그저 창조론자들이 단순하게 매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은 사탄적인 심보로 진화론을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 과학계가 굳이 앞장서서 신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과학 관찰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까지 신을 일부러 배제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대폭발 vs 정상 우주론"이 대표적인 예이다.

다음으로..
그러고 보니 과학뿐만 아니라 성경도 (2) 쓸데없는 미신을 배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별로 안 그럴 것 같고 계산 과정도 서로 딴판인데 계산 결과는 어쩌다 보니 동일한 셈이다. 사실, 기독교 사고방식이 입력되면 죽은 사람 갖고 도 넘게 장난 치는 농간에 휘둘리지 않게 돼서 뒤가 굉장히 깔끔해진다.

한편, 과학 말고 수학은 사실상 성경 급의 절대적인 진리를 가르치고 논하긴 한다. 단지 그건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참인 것만으로 한정이지, 영적인 가치 판단과는 전혀 무관할 뿐이다. 과학은 '법칙(law)'이라고 부르지만 수학은 '정리'라고 부르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3/05/16 08:35 2023/05/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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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사모하는 찬양

0.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 내지 영적 노래들의 상당수는 주제가 "거룩하신 하나님 찬양, 우리를 구원하신 주께 감사, 예수님의 보혈~~"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 아니면 그분이 베푸신 위대한 구원 쪽이다.
그런데 드물게 예수님의 재림 내지 내세, 종말을 염원하는 미래 지향적인 곡도 있다. "그 날은 오리라, 예수님 이 땅에 어서 오시옵소서".. 이것도 과거나 현실 지향적인 기존 교리들과 대등한 핵심 교리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건 은사주의 진영에서 "성령님이여 어서 뜨거운 불처럼 내 심령에 임하시옵소서" 이러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니 오해 마시기 바란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령이 당연히 임하니 걱정할 필요 없고, 뜨거운 체험을 하고 싶으면 그냥 사우나에 가면 된다.

그 이상으로 오순절 때 일회적으로 일어났던 표적, 혹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지금 일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건 교리적으로 무의미하고 맞지 않는다는 게 본인의 소신이다. 더 자세한 건 이 글의 주제와 벗어나는 얘기이므로 여기서 더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1992년에 발매되었던 주찬양 8집 "Hosanna! 이 땅을 고치소서" 앨범에서는 마지막 트랙이 이런 재림 염원과 관련된 짤막한 찬양곡들의 메들리였다. "누가 아는가 / 마라나타 / 고개 들어 주를 맞이해"인데.. "누가 아는가"는 송 명희 작사인 국산곡이고 뒤의 두 곡은 외국곡 번역이었다.

1.
그리고 본인도 옛날에 이런 구조를 염두에 두고 청년부 특송용 메들리를 만들어 봤었다. 2014년 10월이었으니 정말 옛날이구나~
바로 "나의 사랑 나의 생명 - 우리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 보라 그 날이 곧 다가오리라" 이다. 세 곡 다 국산 창작곡이다.

첫 곡은 시 18:1을 염두에 둔 어린이 찬송 스타일의 사랑 고백이다.
둘째 곡은 구 정민 목사가 작사· 작곡한 창작곡으로, 가사 내용은 열심과 헌신 결단이다. 단, 2절 가사가 '썩어져 죽는' 게 아니라 그냥 떨어져서 죽는다고만 묘사해도 될 것 같다(요 12:24).
그 뒤 마지막 곡이 종말과 재림 소망이다. 가사를 보면 예수님의 지상 재림뿐만 아니라 천년왕국과 영원(새 하늘과 새 땅) 얘기까지 종말 장면이 다 나온다.

세 곡은 가사 내용으로나 멜로디로나 이어서 부르기에 큰 무리가 없다.
또한 첫째 곡과 셋째 곡은 파트가 둘로 나뉘어서 서로 돌림노래 부르듯이 제각기 재잘거리는 효과가 있다. "영원토록 정성 다해 사랑합니다"도 그렇고, "보라 그 날이"는 더 심하게 서로 따로 논다.
이런 건 회중 찬송으로는 살려서 부르기 어려우니 특송으로 실제 효과를 구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이렇게 메들리를 만들었던 노하우를 살려, 그로부터 3년 반 뒤인 2017년에는 "맑고 밝은 날 / 변찮는 주님의 귀한 약속 /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메들리를 만들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가장 감미로운 곡들 조합이었다고 생각한다.
2014년작은 맨 첫 곡 "나의 사랑 나의 생명"이 사랑 고백이었는데, 2017년작은 마지막 곡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가 사랑 고백이었다.

2.
그 다음으로 본인 기억에 남는 특송 편성은 "그 날 다가오네"이다. 2018년 10월작. (☞ 링크)
이 곡은 우리 청년부 내부에서 꼭 불러 보고 싶다는 제안이 있었고, 또 이런 작은 교회 여건에서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리마스터링을 해서 부르기에 굉장히 적당한 곡이기도 했다. 그래서 곧장 잘 추진되었다.

이 곡은 가사부터가 "그 날 다가오네"로 시작하니, 히 10:25를 1초 만에 바로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그 날이 다가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는 말씀 낭송을 전주 때 넣었다. 목소리 굵직한 형제를 통해서.. 전주는 원곡 첫 소절의 끝부분을 살짝 변형하는 형태로 본인이 만들어 넣었다.

처음엔 남녀 듀엣으로 시작한 뒤, "얼마나 기쁠까, 구주 예수 만날 때" 후렴에서 합창이 들어간다. 그리고 2절에서는 조를 G에서 A플랫으로 반음 올린다.

2절 뒷부분에서는 잠시 무반주 후렴 반복도 넣었다.
진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격스러운 장면을 생각하면서 목놓아 크게 외쳐 부르라고 친구들에게 주문했다.
그 뒤 맨 마지막 소절 "얼마나 영광스런 날일까"도 반복하다가 자매 솔로로 최종 마무리를 짓게 순서를 짰다.
별다른 고민을 안 해도 개조는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곡을 보자마자 곧바로 척 들었다.

예배 때 회중 찬송으로 큰 기복 없이 밋밋하게 부르던 곡을 분석해서 각종 파트, 순서 추가, 관련 성구 낭송, 관련곡 메들리로 가공 후 특송 형태로 부르는 것.. 개인적으로 굉장히 즐겁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꼭 너무 웅장하고 어렵고 화려하고 복잡한 별도의 특송용 곡을 찾을 필요 없이 말이다.

앞서 소개했던 "고개 들어"라든가 "보라 그 날이"는 엄격 진지 근엄 웅장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그 날 다가오네"는 막 화려하고 웅장한 분위기가 아니며, 좀 삐딱하게 보면 슬프고 한풀이 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고 고달픈데 어서 주님 오셨으면 좋겠다~~ 같은 징징거림 말이다.
뭐, 하지만 이런 부류의 곡도 진짜로 슬프고 힘들 때 부르면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그 날 다가오네"는 Jim Hill (full name: James Vaughn Hill 1930-2018)이라는 사람이 1955년에 지은 곡이다. 실제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나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영감을 받아서 저 곡을 썼다고 한다.
그는 6 25 사변 때 참전한 적이 있고, 또 빌/글로리아 게이더와도 같이 찬양 사역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18년 1월에 80대 후반의 나이로 소천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5/14 08:35 2023/05/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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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수 년 동안 죄, 회개, 믿음 등의 주요 성경 용어에 대해서 글을 많이 써 왔다. 그런데 이런 면모에 대해서 다뤘던 적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퀴즈: 성경에서 엉뚱한 데에다 갖다붙여서 사람 겁 주기 딱 좋은 죄 투톱은?
답: 짐승의 표 666(계시록)이랑 성령모독/훼방죄(복음서)이지 싶다.

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요일 5:16의 사망에 이르는 죄도 있겠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기도하라고 말하지 아니하노라!! ㄷㄷㄷㄷ”
와, 이것만 모아서 설교나 강해를 해도 될 거 같다. 내가 아는 답만 최대한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짐승의 표 666은 아직 정체가 뭔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이런 걸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으며, 이 죄는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는 죄이다. 현재로서는 해당사항 아직 전무하니 제일 짧게 패스한다.

(2) 666이 미래를 다룬다면, 성령 모독은 과거에 있었던 특이한 죄이다. 막 3:29-30에 나와 있듯이, 직접적으로는 예수님이 성육신해 있던 당시에나 지을 수 있던 죄이고, 지금은 복음을 거부하고 안 믿는 죄와 다를 바 없다. 이쪽으로 흡수돼 있다.
무슨 “감히 이 ‘주의 종’의 설교에 토를 달다니, 이건 성령 모독죄라구! 니가 무사할 것 같냐” 이딴 소리나 하라고 있는 개념이 아니다. 특히 비성경적인 은사주의가 잘못됐다고 팩트폭격을 가하는 건 성령 모독이 더욱 절대 전혀 아니다. -_-;;

(3) 마지막 ‘사망에 이르는 죄’도.. 무슨 구원을 잃고 지옥 가는 죄인 것처럼 확대해석 하는 분이 많다. 난 요한일서에서 갑자기 뜬금없이 그런 개념이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살인을 저질렀으면 세상 법에 의해 사형 당해야 되고, 사형수 구명을 위해서 기도하고 난리법석 칠 필요 없다는 평범한 의미로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힘든가..?? 행 25:11에 기록된 바울의 말이 딱 정확한 예시이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 ‘욕심-죄-사망’(약 1:15).. 이건 사람의 구원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문자적으로 죽는다는 뜻이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계속 죄 지으면 육신의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구원이 다~ 지옥으로부터 건짐받는 구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처럼 구원받지 못하고 죽으면 지옥을 가는 것일 뿐, 사망이 곧 반드시 지옥/불못을 의미하지 않는다. 계시록이 지옥/불못을 ‘둘째 사망’이라고 분명하게 구분한다는 걸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은 맥락으로,

(1) 난 구약에서 “뭘 어기는 혼은 끊어지리라”도 개인의 사후세계 구원 여부와 관계 있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 신약의 아나니야와 삽비라건, 구약의 사울이나 웃사건.. 그렇게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개인의 구원 여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이라는 건 죄사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쪽(의식법) 한정이지, 규범 율법(도덕법)을 평소에 한 치의 오차 없이 다 지켰다는 걸 얘기하지 않는다고 본다.

(2) 예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자살했다고 구원을 잃는 것도 절대 아니다. 자살도 정말 문자 그대로 사망에 이르는 죄 중 하나에 해당되겠지만, 그 이상으로 특별히 더 심각한 죄가 아니다. 남을 여러 명 죽인 흉악 살인범도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데 자기 자신을 죽인다고 구원을 잃는다는 건 좀.. -_-;;
죽어서 이 땅에서의 생명이 끝나 버렸으니 그 누구의 기도도 통하지 않겠지만, 이 역시 사람의 구원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다. 구원받지 못한 채 자살하면 지옥에 갈 뿐이다.

이상이다.
구원받은 사람도 계속 죄를 지으면 구원 자체 말고 다른 잃을 게 엄청나게 많다. 간증, 보상, 하나님과의 관계, 상속, 건강, 생명 등..
가령, 세상에서도 아부지에게 심하게 밉보이면 법적인 부모 자식 관계는 유지될지 몰라도, 당장 재산을 한 푼도 상속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자식들 간에 상속 문제 때문에 연 끊고 살인까지 나는 게 비일비재하다. 과연 저게 사소한 문제일까?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다.
성경 신자에게 "죄의 정의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보통은 "믿음에서 나지 않은 것은 죄", "어리석은 생각은 죄",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죄"처럼 로마서 구절, 잠언 구절이 줄줄이 떠오르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신학 공부를 열심히 하면 죄라는 것의 정의도 웨슬리의 정의가 어떻고 칼빈의 정의가 어떻고 하는 걸 먼저 떠올리게 되나 보다.
이거 무슨 화학에서 Acid에 대한 아레니우스의 정의, 루이스의 정의 이런 거 공부하듯이 말이다.;;

옛날의 똑똑한 신학자들이 방대한 성경 텍스트를 정리하고 체계화해서 후학 신자들에게 도움이 될 자료를 많이 만들고 각종 짤막한 용어들도 만들어 놨을 것이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시기와 장소에 따라 분간해서 받아들이는 방법론도 개발해 놓았다. 아까 저런 특이한 죄들도 그런 원리에 근거하여 분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다 성경으로부터 파생돼야 하며, 우리 일반인이라도 시간만 충분하면 그런 것들을 스스로 재연 reproduce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신학이 성경보다 먼저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3/05/04 08:35 2023/05/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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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자

1.
교회는 신앙, 헌신, 하늘에서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무료 섬김이라는 게 아무래도 세상 직장 조직에 비해서는 더 많이 행해지고 허용되고 권장되는 바닥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누구로부터 누구에게든, 물건이건 남의 시간이건 “계속되는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지는 말자!!”

무료인 게 진짜로 값어치가 전무한 싸구려여서 무료인 게 아니다~! 비록 절대값에 넘사벽급 차이는 있을지언정, 저 말은 예수님의 보혈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곡식 밟는 소의 입에 마개 씌우지 마라”(신 25:4) 같은 뜬금없는 구절이 신약에서 왜 거듭 인용되었겠는지를 생각해 보라.
주의 일을 한다는 사람이 교회 안팎에서 “주인님은 엄한 사람이어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재능기부 신앙페이 착취하는..”(마 25:24, 눅 19:21) 이런 평판이 나도는 일이 절대적으로 없어야 한다.

2.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다른 분야도 전문가일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고 했지, 성경이 과학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거 아니다. 심지어 창조과학이라도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면모가 있을 수 있다.
신앙, 믿음이란 게 개나 소나 반지성주의를 조장하라는 말이 아니다.

3.
개인적인 체험, 간증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교리라고 확대해석 하지 말자!
누구는 기도 응답으로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지만 병 고침 기도가 거절로 응답된 사람도 많다. 그건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의 표적이 전~혀 아니다.

자기가 갑자기 깨달아지고 복음이 믿어진 건 좋은 일이긴 한데, 남한테까지 저절로 믿어져야 구원이네 어쩌구 하는 건 선을 심하게 넘은 짓이다. 이건 그 말을 퍼뜨리는 당사자보다도, 교리 오류를 바로잡지 않고 용납하고 자꾸 마이크를 건네주는 교회 쪽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내 경험상 이 세 가지만 좀 지키면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온갖 혼란과 무질서, 분쟁, 다툼이 상당수 정화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스스로 유지되지 못하고 내부 분열 때문에 무너지는 조직은 정상적인 조직이 아니다. (눅 11:17-18) 세부적인 성경 해석· 신학 노선· 교리 교파를 떠나서 어디든지 말이다.

* 하자

4.
상대 비교와 탐욕의 해악을 절대 만만하게 보지 말고 경계하자.
물리적인 행위가 동반되는 살인, 간음, 도둑질에 비해 만만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 위대한 바울마저도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 탐욕 앞에서는 GG 쳤다. (롬 7:7)

자기는 지금까지 어지간한 기독교인들보다 의롭고 선하게 살았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며 예수 따윈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탐욕이 출동하면 어떨까?
이 역시 온갖 귀신 잡신을 섬기고 돌· 금속 형상에다 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우상숭배이다(골 3:5).

자본주의의 온갖 병폐를 만든 것이 탐욕이지만,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필망하게 만드는 것 역시 탐욕이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 말하고,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한다. (마 6:24, 눅 16:13) 상금 아니면 훈장이지, 훈장에다가 훈장의 제조 원가만 제외한 나머지 상금 같은 건 없다.;;

성경대로만 행하면 당장 교회도 현실의 교회들보다 사람 수도 적고 훨씬 꼬질꼬질하고 인기도 없고, 남보다 ‘간지’가 안 나고 비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세상 시스템이 탐욕을 자꾸 조장하는 구조인 건 부인할 수 없다. 신세 비관, 남과 비교, 오지랖, ‘엄친아 엄친딸’... TV 드라마와 인터넷 광고들이 온~통 이걸 조장하고 있다. 괜히 악한 현 세상인 게 아니다.

  • “누구누구는 강남에 번듯한 아파트 장만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월세야” (출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 “누구누구는 30대 나이에 벌써 그랜저 뽑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마티즈야”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소유)

그런데 요런 불만을 위선, 허세 같은 방법으로 해소, 은폐하다 보면, 교회는 팀웍과 간증과 순수성을 잃고 급속도로 타락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진리, 하나님의 역설을 논할 자격을 상실할 것이다!
하나님이 아나니야와 삽비라를 시범 케이스로 괜히 죽여 버리신 게 아니다. 초대 교회 때 이미 그런 누룩이 침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암적 요인은 정말 0순위로 척결해야 한다.

5.
아까 1번의 연장선상에 있는 말인데.. 교회는 목욕탕, 병원 같은 곳임을 기억하자.
깨끗한 사람은 굳이 또 목욕할 필요가 없고(요 13:10)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눅 5:31). 내가 교회에 무슨 대접을 받으러 온 고객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자.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에서 ‘국가’를 ‘교회’로 바꿔서 생각하라.

완벽한 성도만으로 구성된 교회가 있으면 너님이 거기 가입하는 순간부터 그 교회의 완벽성이 깨질 거다.
내 자아/자존심을 방어하기 위해서 교회 지체에 대해 악하게 추측하거나 남에게 상처 주지 말라.

교리가 달라져서, 죄에 대한 회개가 없어서 교제를 끊는 거라면 모를까.
처음에는 간이라도 내 줄 것처럼 ‘형제님 사랑합니다’ 이러다가, 단순 감정 상하는 일 때문에 둘도 없는 원수지간이 되고 교회 떠나거나 옮기는 일이 생기지는 않게 하자.
성경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분명히 말한다! (요 13:35)

6.
그리고 이건 정말 아무에게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긴 한데.. 영적 대미지 컨트롤 능력을 키우도록 하자.

일이 너무 안 풀리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답이 없다 싶을 때,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의구심이 드는 상황일 때,
일단은 기도하고 믿고 기다려라. 기도 응답 자체가 “기다려라”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렇다고 될 대로 돼라 자포자기 포기하지도 마라.

하나님은 “딴 건 다 괜찮은데 이것만은 좀..” 하필 그 약점만 골라서 뒤흔들 수 있다. 여러분의 속을 박박 긁어서 본성이 튀어나오는 상황을 허락하시는 것 자체를 갖고 하나님을 야박하다고 탓하거나 그분 성품을 의심하지 말자.
나도 인내, 기다림 같은 거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인데.. 이게 신앙생활의 본질이라는 건 머리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ㅠㅠ

마귀가 인간을 죄로 유혹하는 압도 다수의 패턴은 “남들이 다 하는데 너만 안 하면 너만 바보 되고 손해 보고 뒤쳐질 걸?”이다. 근데 그걸 이기는 게 당신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다.

영적 성장에는 영재· 천재가 없다.
한 자릿수 나이 때 미적분을 술술 풀고 성경 100구절 이상을 암송하고 토플 만점을 받는 애는 있어도,
한 자릿수 나이 때 부모님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때리면서 훈계할 필요가 없어서 잠 22:15의 예외에 해당하는 애는 없다~!

신앙 생활은 마라톤이고 지구력이 중요하다. 우직하게 꾸준히.. 잔꾀 안 부리고 일관되게 성실/신실하게 살아라.
크리스천이 아니고서야 요즘 시대에 ‘환경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천한 자리와 고귀한 자리를 모두 만드신 분이다. (롬 9:21) 궂은 자리, 남 안 보는 자리에서 성실하면 하나님께서 갚으시고 더 크고 높은 직책을 주신다.
세상 추세하고는 좀 반대로 미친 척 하고 살아라. 하나님의 느긋하고 일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사고방식에 적응하기 바란다.;;

Posted by 사무엘

2023/05/01 08:35 2023/05/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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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게 미쳐 보자

예수 믿고 교회 댕기고 성경 읽는다는 사람들, 소위 교인들은..
솔직히 말해서 예수님에게 제대로 좀 미쳐 봐야 된다. 평생 24시간 365일 그러지는 못하더라도 한번쯤은 말이다.

특히 외모와 체력과 능력이 제일 뛰어나고.. 어쩌면 갓 취업한 사회 초년생이어서 돈도 그럭저럭 벌면서 아직 처자식도 없는 청년 시절..
그럴 때 확~ 꽂혀서 예수님을 위해서 미친 척 뭔가 내 재능, 시간, 물질 등을 통 크게 허비(???)해 봐야 된다. (비싼 향유 부은 여인)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성경을 밤새워서 몽땅 독파해 버린다거나,
  • 교회에 큰 변고가 생겼거나 무슨 선교사가 어려움을 당했다거나 할 때.. 평소 내는 주일 헌금보다 10배 이상의 액수로 사비를 쾌척해서 후원한다거나..
  • 지원자가 없는 예배당 청소나 교회 주차 안내, 주일학교 교사를 하거나..
  • 의식의 흐름을 따라 찬송시를 쓰거나 선교 편지, 신앙 서적 번역을 해 보거나..
  • 길거리에서 거리 설교나 전도지 배부를 하거나..
  • 가끔은 구원받지 못한 가족 친지, 종교 문제로 갈등하던 사람이 미운 게 아니라 안타깝고 불쌍하게 보이고.. 남을 위해서 뭔가 눈물 흘리면서 기도해 보고, 알량한 내 자존심을 다 깨뜨리면서 펑펑 울어 보고..

이런 경험이 아무리 못해도 20대 시절에 한 번은 있어야 되지 않겠냐..??
성경적으로 정상적으로 정당하게 살면서 광신자 소리 좀 들어 봐야 된다.
20대 시절에 무슨 유럽 여행을 가 보고 강남 클럽을 가 보고 별의별 걸 다 해 보겠다는데, 예수 믿는 청년은 저런 경험을 좀 해 봐야 된다. 이건 내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 "으이그 저 돈지랄을 하느니 불우이웃이나 아프리카 기아들이나 돕지?
  • 진짜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겉으로 지가 예수 믿는다는 티 안 낸다"
  • "네가 제정신이 아니니 많은 학식이 너를 미치게 하는도다~~" (행 26:24)

이런 부류의 빈정거림은 성경적으로 매우 "정상"이고 예상 가능한 피드백이니까 걱정 마시라. 마 26:8-9, 막 14:4-5, 요 12:5 따위. 당연히 매우 잘못된 소리라는 점에서 말이다.
또한, 십중팔구 평소에는 불우이웃 어려운 이웃 따위는 쥐뿔도 관심 없던 인간들이 꼭 이런 상황에서나 이웃 핑계 대는 법이다. -_-;;

예수에 미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를 안다면.. "실컷 내 마음대로 죄 펑펑 지으면서 살다가 죽기 직전에만 샥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되겠네"
이런 생각은 너무 졸렬하고 민망해서 누구든지 꺼낼 엄두를 못 내게 된다.

마 12:41-42를 보면.. 예수님께서 "심판의 날 때 니느웨 사람들이 너희를 책망할 것이고, 스바의 여왕이 너희를 디스할 것"이라고 예시를 들며 그 당시의 세대를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 우리는 요나의 선포를 듣고도 데꿀멍 하고 회개를 했는데.. 니들은 요나보다 더 큰 분 바로 옆에서도 꼼짝도 안 했냐? 이것들이 간이 배 밖에 나왔냐?
  • 나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수행원 챙겨서 억만 리 원정을 힘들게 떠났었는데.. 니들은 솔로몬보다 더 큰 분을 바로 옆에 두고도 못 알아봤냐? 이 ㅂㅅ아?

그런 것처럼.. 죽기 몇 시간 전에 십자가에서 겨우 구원받았던 강도가 저런 부류의 사람들을 맹렬히 책망하게 될 거라고 난 생각한다.
"너희들은 구원받고 나서 겨우 몇 시간밖에 못 살았던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에 있었으면서 뭐가 어쩌고 저째..???"
그는 자기는 역대급 먹튀 뽀록 구원을 달성한 운 좋은 케이스라고 자랑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출애굽기에서도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게으르다"고.. "뱃대지가 부르고 살 만하니까 종교에나 심취"하는 거라고 아주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진단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목이 뻣뻣하다 (완악하고 고집 세고 믿음이 없다)"라고 진단하셨을 뿐이다.
어느 게 진짜 새겨 들어야 할 경고인지를 생각해 보자.

내가 예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예수 믿고 성령님이 거주하는 신앙 생활이 뭔가 재미없고 따분하고 손해 보고 불편하고 꾹 참아야 하고 억압과 제약 핸디캡이 가득한 인생일 거라는 그 편견, 프레임에 속지 말길 바란다.
세상에는 온통 이상한 이단에 맛이 간 광신자에 대한 묘사가 가득하다. (오징어 게임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 길은 성경적인 좋은 광신자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뻘건 조끼에 뻘건 십자가 들고 무슨 좀비처럼 전도하는 사람을 묘사하지, 죄와 심판과 의에 대해서 제대로 선포하는 복음 전파자를 묘사하지 않는다.
광신자 프레임이 두려워서 자기는 구원받고 나서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그럼 그건 달란트를 받고도 주인을 믿지 못하고 뭐가 두려워서 그 돈을 땅에만 파묻어 둔 게으르고 악한 종의 사고방식과 다를 게 없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없고 개인의 구원 여부를 X선 찍듯이 척 들여다볼 수 없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성령님이 거한다는 증거는 보이는 언행의 변화로 드러난다.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건 생각보다 천천히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허나, 교회들이 그런 양육을 안 시키고 당장 겉으로 빨리 드러나 보이는 결과물인 종교적인 열심만 강요하고 다그치면.. 이상한 광신자 아니면 아예 영적 성장이 정지한 환자들만 잔뜩 양성하면서 큰 폐해가 야기될 것이다.

아무쪼록, 구원받은 신자, 기독인이라면 예수님에게 제대로 미쳐 보자.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찬송가 가사대로 실행해 보라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4/24 08:35 2023/04/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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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결 차량

삼륜차가 아닌 오늘날의 일반적인 자동차들은 바퀴가 4개 이상 달렸고,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다들 사각형 상자 형태이다.
그러나 덩치 큰 버스 중에 굴절버스는 길이 대비 회전반경을 줄이기 위해 회전 중에 차량의 앞뒤가 살짝 꺾일 수 있다. 그리고 트레일러나 캠핑카(캐러밴? 카라반?)는 꺾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서로 다른 차량이 견인되는 형태이다.

우리나라의 법--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는 단일 차체 자동차의 최대 길이는 13m, 그리고 트레일러는 최대 16.7m까지 가능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이보다 더 큰 차량은 일반적인 차량이 아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공도를 주행하려면 해당 지역의 수장으로부터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짐을 가득 싣는 대형 트레일러는 바퀴가 뒤쪽 끝에 몰려 있는 반면, 캠핑카는 바퀴가 차체의 정중앙에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리는 payload의 무게, 바퀴의 크기 같은 특성을 고려해서 이런 차이가 생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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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공차 중량이 750kg 이하인 소형 트레일러 내지 캠핑카는 일반 승용차 운전 면허만으로 견인 운전이 가능하다. 이보다 더 큰 차를 끌고 다니려면 별도의 면허(특수)를 취득해야 한다.
검색을 해 보니 요 정도 크기의 캐러밴이 무게가 730kg여서 특수 면허 없이 견인 가능한 상한인 듯하다. 4~5인 가족이 넉넉하게 지낼 만한 크기는 아니어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나라에서는 1종 '보통' 면허를 따고 나서 1년 뒤에 '대형' 내지 '특수'로 면허 테크트리를 추가로 올릴 수 있다. 대형이야 버스나 축 3개 이상짜리 거대한 트럭을 몰기 위해 필요하지만, 특수는 다른 차량을 견인하는 차를 몰기 위해 필요한 면허로, 얘 내부적으로 또 '대형, 소형, 구난'이라는 세부 등급이 나뉜다.

'특수-소형'은 750kg 초과 3t 이하짜리 차량을 견인할 수 있기 때문에 대형 캠핑카 정도에 대응한다.
수출용 컨테이너나 강철 코일, 심지어 자동차 따위를 잔뜩 실은 그 거대한 트레일러는 당연히 '특수-대형'이다. 옛날 일본식 발음 용어로는 '츄레라'..;;
원래는 츄레라 면허 하나만 있었으나, 캠핑 인구의 증가로 인해 2016년쯤부터인가 '특수-소형'으로 기존 면허의 간소화 축소 에디션이 따로 추가됐다.

이렇게 동력 없이 처음부터 피견인용으로 만들어진 차량 말고 다른 멀쩡한 고장· 사고 차량을 견인하려면 '특수-구난' 면허가 있어야 한다. 영역이 살짝 다르다. 사다리차가 이사용과 소방용이 용도가 다르듯이 말이다. 도로 위의 양아치로 악명 높은 사설 견인차 기사는 나름 '특수-구난' 면허 소지자인 것이다.
요건 옛날 일본식 발음 용어로는 '렉카 면허'였다.

일반 승용차야 캠핑카를 끌고 있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대형 트랙터는 트레일러를 견인하는 형태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상황이 좀 다르다. 트레일러의 연결 없이 트랙터만 단독으로 운전할 때라도 운전자에게는 특수 면허가 있어야 한다.
이는 대형 버스에 아무도 타지 않았더라도(15인 초과..) 버스를 운전하려면 대형 면허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이 적게 타는 트럭은 무려 11.5톤짜리까지도 1종 보통 면허만으로 운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담이지만, 교통 관련 법규들을 찾아보면.. 이렇게 일정 규모 이하까지는 간단한 편이다가 그 한계를 넘어갈 때부터 절차가 급격히 복잡해지는 선이란 게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 드론(무인기)은 연료 제외 기체의 무게가 12kg 이내까지가 커트라인이다. 이보다 작은 드론은 비행 신고나 조종자· 장비 증명 같은 절차가 훨씬 더 간편하지만, 그 이상부터는 까다로워진다.
  • 이륜차는 배기량 125cc 이하까지는 도로교통법상 원동기장치 자전거이고, 이거 초과부터는 이륜자동차로 분류된다. 운전을 위해 필요한 면허의 종류가 얘를 경계로 살짝 달라진다.

2. 굴절 차량

연결 차량과 관련하여 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뒤에 끌려다니는 트레일러나 캠핑카 카라반은 앞의 트랙터나 승용차와 별개인 독립된 차량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단독으로 등록을 해야 하며, 자신만의 번호판을 부여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차는 앞쪽(견인차) 번호판과 뒤쪽(피견인차) 번호판의 번호가 서로 다르다. 다른 게 정상이다~!! 오.. 처음 알게 됐다.

그 반면, (1) 굴절버스는.. 앞뒤의 번호판이 동일한 단일 차량이며, 애초에 앞뒤 파트의 분리가 가능하지 않다. 이런 차는 운전을 위해 특수 면허도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그냥 대형 면허만 있으면 된다.
그래도 이런 차도 주차를 위해 후진할 때 트레일러를 몰고 후진하는 것과 비슷한 운전 테크닉이 필요하기는 할 것 같다.

(2) 개인적으로 몰랐던 사실 하나 더..
시내를 다니는 대형 굴절버스는 길이가 16.7m조차 넘어서 거의 18m에 달한다고 한다.
현행법으로는 굴절버스를 포용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저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무려 114조에 가서야 특례가 추가되었다.
동법 1항의 별첨 31에 따르면 굴절버스는 최대 길이가 19m까지 허용된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인터넷 상으로 찾기도 굉장히 어렵다.;;

(3) 그러고 보니 굴절 버스는 "앞바퀴 - 중간바퀴 - (관절) - 뒷바퀴"인 편인데.. 엔진과 구동축은 어디에 장착되는 걸까..??
버스는 맨 처음에 트럭과 같은 FR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RR이 정착했다. 굴절 버스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는 이 RR의 뒤에다가 관절과 차축만 그대로 추가한 형태인 "중간 엔진, 중간 바퀴 MM(??)"이 쓰였다. 이게 더 직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객 탑승 공간이 있어야 할 곳에 엔진이 들어가는 건 보기 좋지 않고 정비성도 열악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굴절버스들은 관절까지 넘어서 여느 버스들과 마찬가지로 닥치고 맨 뒤에 엔진과 구동축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건 다 좋지만 관절보다도 뒤에 무거운 엔진과 구동축이 실리니.. 가속 중에 관절 앞뒤가 꺾여 버리는 잭나이프 현상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사실은, 엔진 차원에서 그걸 제어하는 기술도 다 개발됐다고 한다.

3. 트레일러 버스

지금이야 대형 버스는 엔진이 뒤에 장착되는 게 국룰이며, 사람이 타고 내리기 편하라고 바닥을 최대한 낮게 만든다. 이는 트럭과는 완전히 다른 특성이다.
하지만 옛날, 20세기 초중반에는 대형 버스도 엔진이 앞에 장착됐고, 트럭과 동일한 프레임에다 뒤쪽만 살짝 바꿔서 버스를 만들곤 했다. 그렇게 하는 게 간단하고 쉬우니까.. 버스와 트럭 사이에 구조적인 차이가 더 적었고 서로 비슷했다.

이와 관련하여 ‘트레일러 버스’라는 게 있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놀랐다.
우와, 참신한데? 트랙터에다가 이런 객차를 연결하면 버스가 되고, 여느 화물칸을 연결하면 트럭이 되겠다. 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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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제조 기술이 부족하고 자동차가 아주 비싸고 귀하던 시절에는 이런 식의 운용이 의미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건 이내 구닥다리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차체가 수송 가능 인원에 비해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운전사와 차장이 반드시 따로 필요하며, 코너링이나 후진 같은 운전이 대단히 어렵고 사고의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레일러 버스는 20세기 중반의 과도기 유물로 전락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날 굴절버스는 트레일러 버스의 후신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근데, 쿠바 같은 일부 나라에서는 트레일러 버스가 아직도 현역인가 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4. 이륜차 등 소형차

(1) 그러고 보니 시골의 딸딸 경운기도 뒤의 짐받이 부분은 엄밀히 말하면 아주 자그마한 트레일러이다. 하지만 이런 농기계는 번호판 등록이 필요한 차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2) 오토바이에다가도 사이드카나 트레일러를 연결해서 사실상 삼륜차로 개조하는 경우가 있다. 오토바이는 전통적으로 번호판이 뒤에만 장착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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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요즘 오토바이는 배기량 50cc짜리 초소형이라도 다 환경을 위해 4행정 엔진을 쓰고, 운행을 위해 번호판 등록과 면허를 요구하니 자동차의 특성과 갈수록 비슷해지고 있다. 즉,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작고 단순한 쪽은 전동 킥보드나 전기 자전거처럼 배터리 기반의 퍼스널 모빌리티로 넘어가고 있다.

(4) 자동차라는 게 발명되기 전, 소가 끄는 달구지야 한반도에서도 오래 전부터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느다란 고무 타이어에 철제 프레임이 달린 현대적인 형태의 리어카가 최초로 등장한 곳은 1920년대의 일본이라고 한다. 소가 아니라 사람이 끄는 것에 최적화된 수레.. 역시 인력거를 발명한 나라에 걸맞은 발상인 것 같다.

(5) 서양에서는 마차가 발달했지만 동양? 혹은 조선 한정은 가마라는 게 있었다. 오히려 죄인을 호송하는 수레를 소가 끌고 가곤 했었다.;;
그 뒤 오늘날은 사람이 끄는 수레는 공항이나 마트에서의 쇼핑카트, 그리고 바퀴 달린 여행 가방으로 형태가 바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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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3/04/21 08:35 2023/04/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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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덩치와 스케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탱크, 가장 큰 비행체(비행선), 가장 큰 육상 대포는 나치 독일에서 만들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자력 이동 기계인 Bager 288도 독일제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은 태평양 전쟁 시절에 일제가 만들었고, 그때 이후로 전함은 미사일에 밀려서 유행이 끝났다. 그 대신,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모함은 현재까지 미국이 타이틀을 쥐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핵폭탄은 냉전 시절에 소련이 만들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도 지금은 파괴되고 없지만 구소련의 작품인 An-225이었다.
허나, 세계에서 가장 큰 우주 발사 로켓은 역시 냉전 시절에 미국이 개발했던 새턴 V이며.. 얘가 인간을 달로 보내는 용도로 쓰였다.

2. 거리

아폴로 8호 이전까지 인간은 지표면으로부터 겨우(?) 200~300km 떨어진 가까운 우주에서 지구를 빙빙 돌며 우주 유영이나 우주선의 도킹 같은 것만 테스트 했다.
그러나 1968년 12월 말에 발사되었던 아폴로 8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을 태우고 단순히 지구 대기권만 벗어난 우주가 아니라,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아득히 먼 우주까지 나가서 달을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지표면으로부터의 거리 킬로수가 갑자기 1000배가 넘게 뻥튀기된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1960년대 안으로 인간을 반드시 달에 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무인부터 보내면서 차근차근 테스트했어야 할 여러 위험한 사항들을 한 미션 때 몰아서 수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 미션들도 지구를 돌기만 했을지언정, 비행 속도 자체는 비행기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상태였다. 아폴로 8호가 추가로 한 일은 거기에다 몇 분 동안 약간만 더 가속을 해서 그 속도로 달에 가게 한 것이었다. 나머지 3~4일에 달하는 시간 동안은 그냥 우주 글라이더 같은 관성 활강이다. 우주 비행은 지구에서 우주로 나가는 게 우주에서 달로 가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하나라도 잘못되면 아폴로 8호는 승무원들을 태운 관짝이 된 채 우주 저 멀리 날아가 버리거나, 지구로 영원히 못 돌아오고 달을 돌게 됐을 수도 있는데.. 위험한 도박이 성공해서 승무원들이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사람이 탔을 때야 달에 무조건 최대한 빨리 가야겠지만.. 그런 제약이 없는 무인 탐사선은 겨우 그 거리(?)도 다른 행성들의 중력 평형점을 이용해서 연료를 최대한 아끼면서 달에 천천히 가기도 한다. 지난 8월에 우리나라에서 발사된 '다누리'처럼 말이다.

3. 아폴로 11호 이전의 10호

1969년 7월의 아폴로 11호는 뭐 인간이 역사상 최초로 지구 외의 다른 천체에 발을 딛는 데 성공한 과업이었다. 정말 전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이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으며, 서로 전쟁 중이던 나라들이(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일명 축구 전쟁) 월드컵 축구 경기도 아니고 달 착륙을 관람하려고 잠시 휴전을 했을 정도였다.

그럼 11호의 영광에 가려진 앞뒤의 콩라인 은메달 미션들은 어땠을까?
10호는 8호 때와 달리 달 착륙선이 준비돼 있었다. 착륙선이 달에 내려가는 시늉만 살짝 하다가 도로 상승해서 사령선과 합체하고 돌아왔다. 요 최종 절차만 빼면 그 전까지는 이제 달에 다녀올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생각 같아서는 이때 바로 달에 착륙까지 하고 싶었겠지만, 이때는 달 착륙선이 땅의 맨땅에서 다시 발사되어 귀환할 준비가 다 갖춰지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달 표면과 착륙 예정지의 상태에 대한 조사도 다 돼 있지 않았다.
달에다 내 뼈를 묻어 버리고 싶다면야 어째 무리해서 착륙을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 지구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ㄲㄲㄲㄲ

10호 발사 당시에 NASA 관계자들은 승무원들이 공명심에 사로잡혀서 통제를 무시하고 달 착륙을 감행하는 객기를 부리면 어떡하나 약간 불안한 기색이었다고 한다.

4. 아폴로 11호 다음의 12호

초대박을 쳤던 아폴로 11호의 바로 다음에 달에 갔던 12호 승무원의 심정은 10호 승무원의 심정과는 사뭇 달랐을 것 같다. 달나라에 간다니 정말 가슴이 벅찼겠지만 하필 인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는 2등이니까 말이다.

아폴로 계획 중에서는 큰 사고가 터져서 승무원들이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생환한 13호가 유명하다. 그러나 자잘한 사고나 돌발상황은 이때 말고 늘 있었으며, 특히 12호는 발사 거의 직후에 지구상에서 벼락을 맞았다..;;; 타이밍 한번 참.. ㄲㄲㄲㄲㄲ

이 대미지 때문에 사령선 안의 컴퓨터가 상당수 다운되고 손상이 발생해서 미션이 거의 실패 직전까지 갔다. 로켓의 맨 꼭대기에 있는 비상 탈출 로켓이 실제로 사용될 뻔했지만 어째어째 대미지를 수습하고 달에 잘 다녀왔다. 달에 최초로 가는 것뿐만 아니라 두 번째로 다녀오는 것도 충분히 감격스럽기는 했을 것 같다.

이 12호는 미국이 1967년에 먼저 달에 보냈던 자국의 '무인 탐사선'인 서베이어 3호의 착륙 지점과 거의 같은 곳에 착륙했다. 당연히 의도적으로 지점을 거기로 맞춘 것이다. 그런데 유인에 비해 무인 달 탐사 내력은 정말 존재감이 없긴 한 것 같다.;;

그 외에, 12호는 달 탐사 장면을 컬러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하려 했지만.. 승무원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가 실수로 렌즈를 태양 쪽으로 들이대 버렸고.. 맹렬한 열과 빛 때문에 카메라가 망가져 버려서 생중계는 행해지지 못했다. 이런 해프닝도 있었다.

벼락을 맞은 직후, 지상 기지에서는 발사체들의 상태에 이상이 없는지 파트별로 꼼꼼히 질문하고 지시를 해서 점검과 보수를 마쳤다. 그러나 다 마치고 지구 재진입 때 펼쳐야 하는 낙하산은 지금 이 상태로는 확인을 할 수 없었다. 만약 낙하산에 이상이 생겼다면 승무원들은 달 탐사를 마치고 지구에 다 와서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게 됐을 것이다.

기지에서는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미리 알고 죽으나, 아니면 그때가 다 돼서야 뒤늦게 알게 되나 상황이 달라지는 건 전혀 없으니.. 기왕이면 임무 수행 중에 승무원들의 사기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12호의 낙하산은 이상 없이 잘 펼쳐졌다.

5. 13호 승무원의 대사

  • "어 휴스턴, 이거 문제가 생겼다"의 대사가 we've had인지 혹은 we have인지에 논란이 많은가 보다. "이제 막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아니면 "지금까지 우리가 모르던 문제가 쭉 있었다"로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 안 그래도 똥줄 타는 상황이었는데 사령선이 재진입 중에 이례적으로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된 이유는?? 아무래도 수십~수백 kg에 달하는 월석을 가져오지 않아서 사령선이 예상보다 더 가벼웠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 대신 13호는 달 착륙선도 예기치 않게 지구에 도로 가져오게 됐다. 달 착륙선은 바다로 풍덩..

  • 재진입 성공 후 이들의 첫 교신은 옛날 영화 "에어 포스 원" 결말부의 "Liberty 24 is chainging the call sign. Liberty 24 is now air force one."와 같은 느낌을 준다.

6. 과학 탐사

아폴로 계획은 전반부 11~14호, 그리고 후반부 15~17호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반부를 넘기고 후반부에 가서야.. 달에 다녀오는 과정은 그럭저럭 익숙해지고 안정화가 됐으니(?) 승무원도 무작정 극기훈련 생존왕 군인 파일럿이 아니라 민간인 과학자 중에서도 선발할 여유가 조금씩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 달에 갔다가 살아서 돌아오는 것 자체가 아니라, 달에서 뭔가 의미 있는 채취와 탐사를 하는 것에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긴 것이다. 15호는 최초로 월면차를 투입됐으며, 역대급으로 월석을 많이 캐어 오기도 했다.

하긴, 1910년대에 남극 탐사 경쟁이 벌어졌을 때도 아문센 팀은 역대급 오지로 모험을 떠나는 만큼, 전원 생존 전문가 위주로 팀원을 뽑았다. 개썰매를 타고 다니고 개고기도 서슴지 않고 먹었다.

그러나 스콧 팀은 자금빨 기계빨만 믿고 남극을 너무 여유롭고 낭만적으로 생각했나 보다. 민간인 과학자도 끼워 넣었으며, 가면서 수시로 남극 생태 관찰을 하고 돌 같은 거 수집도 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 스콧 팀은 1등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전원 남극에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

7. 마지막 17호

끝으로, 1972년 말에 마지막으로 발사된 아폴로 17호야.. 어찌된 일인지 전 미션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깜깜한 밤에 발사됐다(왜?). 그리고 달에서 달 착륙선이 발사되어 달 지면을 이륙하는 광경이 촬영된.. 유일한 미션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15, 16호 때도 촬영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것이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월면차와 함께 달에 남겨진 카메라를 지구 기지에서 1.4초가 넘는 랙을 감내하면서 원격으로 어렵게 조종했다는 게 신통방통하기 그지없다. 달 착륙 승무원이 조종한 게 아니다..!

아프리카 대륙이 나와 있는 지구 사진이 바로 아폴로 17호 때 달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폴로 17호 승무원은 이게 사실상 마지막 유인 달 미션이라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하고 확인사살까지 한 이상, 제아무리 천조국이라도 이 정도로 등골이 휘는 미션에 계속 자금을 대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애초에 11호 때부터 "달에 가겠다고 돈지랄 하지 말고 당장 도탄에 빠진 민생부터 챙겨라~!!" 이런 발사 반대 시위가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유진 서넌 선장은 지구로 귀환할 타이밍이 되자 달 착륙선에 오르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겨서 방송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 we leave as we came, and God willing, as we shall return, with peace and hope for all mankind. Godspeed, the crew of Apollo 17." -- 우리 반드시 돌아올 그 날, 전 인류의 평화와 희망을 담아오겠습니다. 아폴로 17호 대원들, 잘 다녀와라.


이건 뭐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을 떠나면서 "나는 되돌아올 것이다" 이러고, 리 승만 할배가 휴전을 수락하면서 "지금은 비록 휴전하지만 우리는 북녘의 동포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통일 과업을 꼭 이루고 말 것이다" 이렇게 말한 것과 비슷한 비장함이 느껴진다.
달에 최초로 착륙했을 때 11호 승무원이 한 말, 일명 "작은 발자국과 위대한 도약" 드립과도 아주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 같다.;;

8. 소스 공개

여담이지만, 지난 2010년대쯤부터는 github에 온갖 옛날 골동품 소프트웨어들의 소스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오픈소스니 카피레프트니 하는 이념에 충실하던 존 카맥 같은 몇몇 매니아들이나 유행이 지난 Doom, Quake 같은 자사 게임의 C 코드 소스를 공개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저 때부터는 페르시아의 왕자(Apple-II 원본)나 MS-DOS 1.x 같은 까마득한 유물의 어셈블리어 소스도 올리는 게 유행이 됐다. 물론 걔네들은 지금 환경에서 빌드는 못 한다. -_-
그 와중에 아폴로 11호 우주선의 총괄 제어 시스템 프로그램의 어셈블리어 소스조차도 NASA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마가렛 해밀턴 선생과 그 동료/부하들의 손길이 깃든 그 코드 말이다.
달 표면 사진이나 각종 로켓 설계도뿐만 아니라 이런 것까지 공개되다니, 컴덕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미국이나 서구권에서는 이런 것도 다 보존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서울 올림픽 총괄 전산 제어 시스템인 GIONS의 소스가 전해지지 않는 것이 개인적으로 몹시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고는 일회용으로만 써먹고 끝났기 때문이다. 유지보수? 노하우 전수? 수출? 아무것도 안 되고 개발팀이 공중분해되어 흩어졌다.

우주선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라면 임베디드에 어셈블리어이겠지만, 얘는 IBM 메인프레임에서 돌아가는 물건이고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내가 듣기로는 말로만 듣던 그 코볼(!!) 언어로 작성됐다.
얘를 시험한 이전 미션인 전국체전은 제미니나 아폴로 초기 미션이고, 86년 아시안게임은 아폴로 8이나 10 정도에 대응하고, 서울 올림픽은 대망의 아폴로 11.. 이러면 싱크로가 잘 맞는데..

사실, 전국체전이나 아시안게임은 실패했을 때의 쪽팔림과 사고 여파가 올림픽보다 작을 뿐이지, 세부 종목이나 처리할 것들의 복잡도는 오히려 올림픽보다 더 높았다. 그러니 베타테스트 용도로는 아주 적격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4/15 08:35 2023/04/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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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는 1942년 6월 13일, 리 승만 할배가 워싱턴 D.C.에서 Voice of America 단파 라디오를 통해 고국으로 내보냈던 7분 남짓한 길이의 항일 독립 투쟁 격려 선전 방송이다.

“나는 이 승만입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국내외 2300만 동포에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 지극히 기쁜 소식을 전하노니, 누구든지 귀가 있는 자는 듣고 주변 동포에게도 이 소식을 일일이 전해 주시오~ 일제의 학정에 신음 중인 우리 동포에게 자유의 소식을 전하시오. 철창 감옥에 갇히고 형틀에 묶여서 죽어가는 우리 동포에게 생명의 소식을 전하시오…” (약간 요약하고 각색)

내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송이 있다는 건.. 지난 2007년 말에 출간된, “일본 그 가면의 실체”(청미디어) 책에 별첨돼 있던 음원 CD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저 방송이 나갔던 때는 할배가 Japan Inside Out 책을 저술해서 출판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리고 1942년 6월이라는 날짜를 보면 알 수 있듯, 저 때는 이제 막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겨우 승기를 잡았던 시점이었다. 아직 카이로고 포츠담이고 그런 선언이 나오기도 1년 이상 전이었다.

하지만 할배는 배짱 장사를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일본의 미국 침략을 반 년 이상 일찍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패망도 남들보다 훨씬 더 일찍 예상하고 확신했던 것이다.

“저 악독한 왜적은 하와이와 필리핀을 일시에 침략하여 제 무덤을 팠으니 미국은 잊지 않고 보복할 것입니다.
왜적들은 지금은 의기양양해 있지만 이내 혹독한 불벼락으로 응징당하고 패망의 길로 갈 것입니다. 일황 히로히토는 필히 파멸당할 것이니, 이는 세상이 다 아는 이치입니다.”

“우리 독립군이 중국 및 영국 미국과 더불어 연합군의 일원으로 당당히 왜적을 타파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요? 이 순신의 후예로서 우리 군인의 의기와 용맹이 세계에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 독립의 서광이 비치나니 일심 합력으로 왜적을 파하고 우리 자유를 우리 손으로 회복합시다. 분투하라! 싸워라! 우리가 피를 흘려야 자손 만대의 자유 기초를 회복할 것이다. 싸워라! 나의 사랑하는 2300만 동포여!”

아~~ 전시에 선전 선동은 이런 식으로 피끓는 말투로 하는 게 정석이구나 싶다. 전쟁에서 사기라는 게 기여하는 바가 정말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을 저 따위로 했으니.. 할배가 나중에 미국을 상대로도 광복군 규모를 말도 안 되게 부풀리고 개 뻥카를 쳤겠구나 싶다. 이제 이해가 된다.

1940년대 정도면 일제의 악랄 집요한 탄압 때문에 국내에서의 항일 독립 운동은 사실상 씨가 마른 상태였다. 본인이 전에도 얘기했지만..
“일제가 망할 일은 없을 것이고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건 영원히 물 건너갔구나, 이대로 세대가 교체되면 한국인의 정체성은 진짜 씨가 마르겠구나. 물론 최후의 발악을 하는 소수의 불령선인 민족주의자가 있긴 하겠지만, 말 그대로 최후의 발악일 뿐 대세를 뒤바꾸지는 못하겠구나.. 지금까지 30년을 애썼지만 아무 소득이 없는 걸 보면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이미 이런 생각이 퍼져 있었다.

항일 독립 운동은 무의미하고, 이제는 2등 신민 조선인의 권익 향상, 차별 철폐, 일본 내에서의 참정권 쟁취 운동이나 해야겠다는 게 그 당시 국제 정세를 알지 못하는 민족주의 지식인 상류층의 주된 생각이었다.

이런 와중에 단파에 실려 태평양 너머로 울려 퍼진 리 승만 할배의 독려 메시지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엥, 이건 뭐지..?? 울나라 임시정부인지 뭔지는 중국에 있는 걸로 들었는데 본부가 언제 미국으로 이사 갔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할배의 선전 방송은 일제의 입장에서는 어지간한 불순불온 삐라를 훨씬 능가하는 최악의 불온 유언비어였다. 그들은 자국민이건 조선인이건, 전쟁 중에 외국 단파 라디오의 청취를 엄금했다. 요즘으로 치면 서버가 외국에 있는 불법 도박이나 마약을 단속하듯이 단속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 당시 조선인 중에서 엄청난 고가였던 단파 라디오에 접근 가능해서 외국 소식을 직접 접할 수 있었던 사람은 방송국 기술자와 언론인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은 혼자만 이 소식을 들은 게 아니라, 목숨 걸고 방송 내용을 주변에 퍼뜨리다가 결국 1942년 하반기부터 줄줄이 걸렸다. 수십~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코렁탕을 먹고 투옥됐다. 이것은 '단파 방송 밀청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다.

옛날에 전파 통신 기술이 미약하던 시절에는 전파 거리가 적당히 길고 지구 전리층에 반사되고 산란성 투과성도 적당하고.. 취급하는 기술 난이도도 아예 초단파 FM 방식보다는 낮던 ‘단파’ 라디오가 장거리 통신용으로 즐겨 쓰였다. 음질이야 메롱이기 때문에 천상 음성용이지, 음악은 안 된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모스 부호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에 비해 지금 인터넷 기반 스트리밍은 대륙 간 전송은 거의 다 해저 케이블이 담당하고, 지역 내에서 무선 전송용으로는 곳곳에 기지국을 도배해 줘야 하는 극초단파가 쓰인다. 이런 기술의 변화도 참 격세지감이다.

* 여담: 반일 감정

요즘 본인은 채널 A도 아니고 채널 W라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의 문화랄까 분위기가 지난 쌍팔년도 이후로 참 많이도 달라졌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해 왔다.
위성 방송 같은 걸로 외국 방송을 쌩으로 그대로 보는 것도 아니고.. 나름 정식으로 수입돼서 우리말 자막까지 붙은 일본 드라마와 다큐를 그대로 보다니..

거기에다 일본어 학습(한국인 화자 입장에서)이라든가 일본 연예인 얘기도 나온다.
노인과 바다처럼 망망대해로 나가서 낚싯대로 '마구로' 잡는 어부가 울나라로 치면 무슨 인간극장 다큐의 소재이다.
아무리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이라지만 저게 제도적으로 가능한가 궁금했다. 검색을 해 보니 채널 W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일본 방송 컨텐츠의 직수입 방영이 허가된 케이블 방송이라고 한다.

일제 시대의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했던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우리나라는 SKY 명문대에 일어일문학과가 없다. 아.. 내가 알기로, 그나마 셋 중 한국대에만 1980년대가 돼서야 일어일문 비스무리한 학과가 유일하게 추가됐다.

최근에 만들어진 '항거' 영화에서야 형무소장이나 간수, 헌병뿐만 아니라 조선인 죄수인 유 관순 본인까지도 현장에서는 현실 고증을 반영해서 일본어를 쓰는 걸로 나온다. 그러나 옛날 1950, 70년대에 만들어진 국내의 유 관순 영화들은 반대로 재판정에서 일본인 판사와 검사까지도 편하게 한국어를 쓴다.
그 시절에 일본어를 구사하는 배우를 구하지 못해서일 리는 절대 만무하고, 당연히 그냥 "왜색을 제거하기 위해서" 언어 고증을 무시한 것이었다.

찬송가조차 일본인이 작사한 건 슬쩍 '작사자 미상'으로 처리하고 넘기기도 했었다.
가라데?? 당연히 태권도라고 바뀌어서 소개됐다.
국어에 별 희한한 단어까지 다 일본식 한자어라고 추방해야 된다느니 마느니 그랬다.

역사, 지리, 언어 등 온갖 분야에서 "원래 잘 될 수 있었는데 일본놈들의 로비와 방해 때문에 못 된 거다" 식의 피해망상이..
적당하거나 그나마 동정하거나 이해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 병적으로 치달으려 했다.

그리고 피해의식에 비례해서 일본한테 너무 쫄아 있기도 했다.
나 학생 시절에 정신력 강조하는 선생들의 훈화 말씀만 듣고 있다 보면.. 이렇게 군기가 개 빠져 갖고는 얼마 못 가 우리나라가 쫄딱 망해서 다시 일제 식민지가 될 것만 같았다. -_- 일제 식민지가 아니면 다시 북괴가 남침해서 적화통일 되거나.. =_=

과장 좀 보태면 쓰레기 하나 없는 일본 길거리가 우리집 안방보다 더 깨끗할 것 같았다.
일본인은 진흙처럼 잘 뭉치고, 조선인은 엽전까지는 아니어도 모래알처럼 제 팔 흔들면서 안 뭉치다가 각개격파 당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이러니 1990년대 말까지 "일본은 없다", "일본은 있다" 같은 선정적인 책이 많이 팔리고 베스트셀러에 올랐었다.

그러던 게 세월이 많이 흐르기도 하고, 울나라도 일본의 경제와 과학기술을 많이 따라잡고, 다이쥬 대통령 때부터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됐고 월드컵은 어쩌다 보니 한일 공동 개최로 치렀고..
또 요즘은 일본보다도 중공이 훨씬 더 많이 깽판 치고 망언 어그로를 끌고 있기도 하니 원색적인 반일감정이 상대적으로 누그러졌다.

뭐, 아직도 반일 정신병자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과거사 정도면 "일본이 이만치 유감이니 사과니 보상이니 했으면 많이 한 거다, 더 논하지 않고 퉁치기로 해 놓고 약속을 안 지키는 게 더 문제"라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요즘은 많이 눈에 띈다.
아직까지 일본이랑 대놓고 갈등하는 티라도 나는 아이템은 독도 하나만 남은 것 같다.

허나, 역대 울나라 대통령 중에 리 승만 할배만치 편집증적으로, 거의 트라우마 급으로 일본 싫어하고 반일 반일거린 지도자는 없었다. 북괴와 전쟁을 치르던 중에도 “어디 우리 집안 싸움에 개입하기만 해 봐라, 우린 왜놈부터 죽여 버린 다음에 괴뢰군을 쏘겠다” 이랬었다.

세상에 저런 방송을 했던 당사자가 대통령이 됐는데 반일을 안 하고 배기겠는가? 이건 당연한 귀결이니 우리가 이해해야 된다.
한편으로, 오죽했으면 이런 반일 대통령 밑에서조차 노 덕술이니 김 창룡 같은 간부가 있어야 했겠는지도.. 자세한 맥락을 살펴보고 이해해야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모든 나라들과 교류하며 가능한 한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 그러나 일본하고는 독특한 과거사 때문에 우리만의 고유한 외교 정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 할배가 양자 이 인수에게 남긴 유언 중 일부

이건 성경으로 치면 마치 예수님이 구원을 위해 유대인에게만은 행 2:38 같은 회개의 침례를 추가로 요구하고, 베드로에게는 뭔가 특별한 회개· 회복 절차를 요구하신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했고, 또 베드로야.. 이와 관련해서 인생 최악의 사고를 한번 쳤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래를 지키고 울창한 산림 환경을 지켜 준 것은 고래기름의 대체제와 화석연료 원자력을 개발해 준 과학자 기술자 공학자라고 믿는다. 알량한 환경팔이 파이터들이 기여한 건 거의 없다고 본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만들고 반일 항일 극일을 제일 잘 실현해 준 것은 횬다이 쌤숭 같은 기업이라고 믿는다. 국부를 창출하고 실력으로 일본을 이긴 주역들이 아닌가? 어설픈 반일정신병자들이 기여한 건 거의 없다.

아무쪼록,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대놓고 로비 한다거나, 일본 기업에다가 횬다이 쌤숭 기업의 기술 기밀을 팔아넘기는 간첩이 없는 한... 지금 우리나라는 친일파가 문제인 나라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일본이 아니라 중공이나 북괴에다가 팔아넘기겠지!!)
과학기술과 팩트와 개방을 통해 양 나라가 과거의 앙금을 극복하고 털어냈으면 좋겠다. 침략한 쪽이든 침략당한 쪽이든 죄악이나 병크를 반복하지 말고 서로 손잡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 옛 중앙청 건물은 그 위치에 있지만 않았어도 개인적으로 더 강하게 존치를 주장했겠지만.. 광화문과 경복궁과 청와대를 다 틀어막는 건 좀 아니어서 철거 쪽 입장도 이해를 한다. 할배 대통령도 당연히 그 건물을 없애고 싶어했었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3/04/12 08:36 2023/04/1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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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본인이 개인적으로 서서히 불현듯이 꽂히고 있는 찬송가는..
To god be the glory "주 하나님 큰 일을 행하셨네" 이다.
제도권 교회 찬송가(통일/새)에 수록돼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없는 듯..

1. To God be the glory! Great things He hath done!
So loved He the world that He gave us his son;
who yielded his life an atonement for sin,
and opened the life gate that all may go in.

2. Oh, perfect redemption, the purchase of blood,
To every believer the promise of God;
The vilest offender who truly believes,
That moment from Jesus a pardon receives.

(3절도 있긴 하지만 생략)

(후렴)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let the earth hear His voice;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let the people rejoice;
Oh, come to the Father, through Jesus the Son,
And give Him the glory; great things He hath done.


이 곡은 멜로디가 좀 클래식하다 보니 엄근진한 경배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멜로디가 그저 "면류관 가지고"나 "다 찬양하여라", "기뻐하며 경배하세"처럼 힘차고 엄근진한 것뿐만 아니라 화사하고 우아하고 예쁜 면모도 있다. 그래서 더욱 꽂혀든다.

또한, 가사를 뜯어보면 "주께 영광"뿐만 아니라 요 3:16 인용에 대놓고 복음 메시지로 가득하다. 복음성가에 아주 충실한 곡이다.
2절은 최악의 나쁜 범죄자 죄인(vilest offender)이라도.. 진심으로 믿으면(행 8:37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그 순간 예수님으로부터 pardon을 받는다고 쓰여 있다.

이 엄청난 가사의 작사자는 또 패니 크로스비 여사이더라. 명불허전 또 걸려들었다.;;
이분은 정말 복음의 본질을 정확히 간파했던 것 같다.
이 곡의 작곡자는 William Doane으로,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패니 크로스비와 오랫동안 같이 활동한 동역자라고 한다. 그녀의 시 중 무려 1500편에다가 곡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독자 여러분 중에도 예수 믿는 분 계시면 이 찬양의 시청을 권한다.
난 G장조로 머리에 입력돼 있는데 공식 반주는 반음 더 높은 A플랫인가 보다.
https://www.youtube.com/watch?v=-15v9iworAU
https://www.youtube.com/watch?v=2CeBoSQsBR0

2.
다음으로 찬양의 형태와 관련해서 할 말이 있다.
큼직~~한 채플 안에서 성가대가 아니라 사복 입은 남녀노소 몇백 명이 단체 합창으로 무슨 찬송가를 부르는 영상은
의외로.. 천조국뿐만 아니라 영국 것이 걸려 나오는 경우도 많더라.
본인이 유튜브를 뒤지면서 지금까지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었다. 이건 걔네들 문화인 것 같다.

회중 합창은 영국 게 많고,
뭔가 가족 중창이라고 해야 하나 요런 건 미국 내륙의 크리스천 동네가 본좌이다.. 특히 자녀가 대여섯 이상씩 있는 대가족이 악기 하나씩 쥐거나 파트 하나씩 맡아서 찬양 부르는 건.. 개인적으로 정말 보기 좋고 부러웠다.

3.
참고로 To God be the glory는.. 쌍팔년도 시절 미국의 유명한 흑인 복음성가 가수 겸 작곡자인 Andrae Couch의 곡 My tribute (어찌하여야 / 나의 찬미)의 후렴부에 나오는 To God be the glory (하나~~~~님께 영광)와 동일한 표현이다. 개인적으로 곡의 제목을 보는 순간 저 곡이 떠올라서 멈칫 했다.
그리고 부활 찬송 "주님께 영광"은 Thine be the glory라고 시작하니 헷갈리지 않도록 하자.;;

4.
그리고 또 참고로.. 본인이 예전 2010년대에 꽂혔던 찬송을 열거하자면..

  • Wonderful grace of Jesus
  • And can it be that I should gain
  • 그 참혹한 십자가에 주 달려 흘린 피

이런 것들이다. 이 블로그의 과거 글에서도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스타일 찬송가인데 통일 찬송가 따위에 실리지 않았고 기성 교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곡은 어떤 경로로 국내에 소개되고 알려졌는지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하다. Ron Hamilton 같은 사람도 기성 교회에서는 내가 알기로 거의 듣보잡이지 않나?

대체로 기성 장로교니 감리교니 하는 개신교와 잘 섞이지 않는 침례교 교단 쪽에서 자체 찬송가를 편찬하면서 번역하고 소개했지 싶다. 성서 침례교회처럼 말이다. 내력 면에서 킹 제임스 유일주의와는 큰 관련이 없다.
본인의 찬양곡 스펙트럼은 저런 침례교 스타일에다가 1990년대 국내 CCM도 좀 추가돼 있는 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4/08 08:34 2023/04/0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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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몇 차례 글을 썼던 바와 같이, 킹 제임스 성경은 로마 교황에 정치적으로든 교리적으로든 반대한 종교 개혁 내지 개신교 진영의 산물이다. 성공회건 청교도건, 세부 신앙 노선은 다를지언정, 반가톨릭이라는 이념은 동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이니 루터니 개혁주의를 그렇게도 떠받들면서 킹 제임스 성경의 가치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칼빈이 활동했던 제네바를 알면서 KJV의 전신인 제네바 성경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이 이미 성경이 필사본 번역본이라도 완벽하게 보존 가능하다고 명시한다"
이런 식으로 장로교인을 상대로, 특히 목회자에게 킹 제임스 성경을 소개하고 변증하는 분도 있다.

다만, KJV 유일주의를 믿는 바이블 빌리버 진영 자체는 개신교보다는 침례교, 특히 재침례회에 가까운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이건 말보회 한킹 진영이건, 후대에 추가로 등장한 흠정역 진영이건 공통 동일이다.

세례가 아니라 반드시 물 침례를 고집하고,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행위 구원이나 구원 상실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단 구원받기까지는 자기 자유의지에 따른 믿음 고백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개인의 구원 여부가 몽땅 다 답정너 예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사람들은 저 문제에 대해서는 칼빈주의도 알미니안주의도 아닌 중간 제3의 견해를 가지며, 이 때문에 두 진영으로부터 모두 배척당하기도 한다. =_=;;

문제는 그 당시 걸출한 종교 개혁자들의 통찰이 저런 것에까지 미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개신교는 이신칭의 교리를 재확립하고 교황을 대적하고 가톨릭을 반대했다는 점에서는 옳았다.
그러나 온전한 정교분리라든가, 믿음 고백자에게만 물침례.. 이런 것까지 정립한 건 "아니었고", 오히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을 여전히 박해하곤 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KJV의 번역을 지시한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 왕에게도 이런 한계가 있었다.
http://baptistnews.co.kr/mobile/article.html?no=13605

  • “왕은 백성들에게 세속적인 모든 사항은 명령할 수 있으나, 개인의 신앙과 영혼에 관한 것은 그렇게 할 수 없사옵니다.
  • “폐하께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시오이다~!” (석총 - 궁예의 700여 년 뒤 잉글랜드 버전.. ㄲㄲㄲㄲㄲ)

이 당연한 말을 한 게 그 시절엔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었나 보다.
저 주장을 한 ‘토머스 헬위스’는 체포되어서 1616년경에 옥사했고, 또 다른 침례교 지도자인 ‘에드워드 와이트먼’이라는 사람도 이단으로 몰려서 1612년에 화형 당했다.
좀 과장 보태면 태조 왕 건에서 궁예가 석총을 죽인 것과 정말 비슷하다..;; =_=

제임스 1세는 전반적으로는 당연히 선한 군주였다. 세계에서 거의 최초로 금연 운동을 추진한 걸로도 유명하고..
(뭐,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개신교도들 수백 명을 박해하고 죽인 전임인 메리 여왕조차도 종교 말고 세상 정치 쪽은 그닥 암군 폭군 악녀가 아니었다.)

단지, 제임스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강력한 왕권신수설 신봉자에 국교회주의자였다. 국왕이 곧 성공회 수장.. 왕이 곧 제사장..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다스리는 왕이 돼서는 온갖 삐딱서니 타는 귀족과 신하들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킹 제임스 성경이 막 번역되고 출간됐던 1610년대에.. 토머스 헬위스 같은 자국의 침례교 지도자가 반역자로 몰려서 순교한 것은.. 좀 애석한 일이라 하겠다.
단순히 반가톨릭 정도를 넘어 정교 분리까지 대놓고 주장하다 보니, 왕권신수설을 밀어붙이던 절대군주한테 찍혔던 것 같다. 성공회도 청교도도 아닌 침례교인들은 세속 세계사에서는 그냥 듣보잡 취급일 뿐이고..

텐데일이나 세르베투스뿐만 아니라 저런 사람도 순교한 것이다. 제각기 완전히 다른 사유로 인해서.
틴데일이야 킹 제임스 진영에서 워낙 띄워 주는 인물이기 때문에 0순위로 접했고, 세르베투스는 칼빈의 흑역사 얘기하는 데서 접했다. 그 반면, 이런 얘기는 우리 진영에서 전혀 접한 적 없었다.
역시 각 진영에서는 자기에게 유리한 것 위주로만 가르치는 것 같다. 우리 진영에서.. 무슨 예수회 선교사가 일본에서 순교한 걸 가르칠 리는 만무할 테니 말이다.. =_=

본인은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와 침례교 신앙을 모두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건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로 느껴진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진영이 특정 번역자 자체를 우상화하고 떠받드는 게 아니니 “아 그렇구나~ 저 사람도 자기 신념 때문에 저랬었구나”하고 넘길 뿐..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는 이런 제임스 왕이나 성경 번역자들의 인품, 개인사 등에 좌지우지되는 게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

물론, 제임스 1세 왕도 명색이 크리스천인데, 설마 무슨 북괴 김 부자라든가 느부갓네살/네로 같은 정신나간 개인 우상화 개인 숭배를 조장한 건 아니었다. 일단 황국 신민들이 먼저 형식적으로라도 "교회의 머리이신 우리 개인의 신앙의 수호자이신 위대하신 국왕 폐하 만만세" 이러면.. 왕도 "허허~ 과인도 일개 인간일 뿐이니라~ 교황놈은 적그리스도일 뿐이고 진짜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겠지" 이렇게 겸손하게(?) 화답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침례교인들은 좀 더 시대를 앞서 간 요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세상 역사에서는 가톨릭에서 이탈한 개신교.. 이런 식으로만 다루는 경향이 크지만, 침례교는 종교 개혁 이전부터 이미 개신교의 신앙을 갖고 있었던 다른 그 무언가로 여겨진다.
개신교 측에서는 미국 건국에도 청교도가 큰 기여를 했고, 청교도의 근면 성실 청부 개척 정신이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편이다.

그러나 침례교 측에서는 자기들이 청교도들로부터도 박해를 받았고, 자기들이 노력한 덕분에 미국이 국교 없이 진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참고로 침례교라는 말은 교리/교파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용어이다. 침례에 대한 교리 하나만 지지한 뒤에 구원관이나 하나님의 경륜 쪽은 완벽한 칼빈주의인 사람도 있고, 반대편인 사람도 있다.

다만, 통상적으로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침례교는 대외적으로는 알미니안/웨슬리안에 더 가깝다고 여겨진다. 개신교와 척졌다는 역사 내력이 있고, 칼빈주의 예정을 대놓고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저런 식의 편견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단지, 킹 제임스 유일주의를 표방하는 '독립 침례교회'(독침;;)들은 개신교 종교 개혁자들을 추앙하기보다는 그쪽 동네에서 평이 좋지 않은 세대주의를 지지하는 편이다.

이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한킹 진영이건 흠정역 진영이건, KJV 독침들은 칼빈주의를 거의 진화론 반박하듯이 맹렬히 반대하고 비난하곤 했다.
어디 그 뿐이랴? 그쪽에서는 기성 개신교들은 성경을 제대로 해석할 줄 모르고 다 타락하고 종교 통합 은사주의에 물들고 어쩌구 하면서 비판하고 척지고, 반대로 거기서는 킹진영을 향해 성경 역본을 우상시하는 이단에 세대주의 시한부 종말론자니까 상종을 말라고 욕하고..;;;
이게 바로 말보회의 창립 이래로 2~30여 년째 이어져 온 갈등과 대립과 반목이었다. 상대방에 대해 정확하게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뭐, 나도 교리 노선이야 KJV 유일주의에 세대적 진리보다 더 나은 패러다임을 지금까지 결코 보지 못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허락하시는 뜻"을 분간하지 않는 말장난 역할극 예정론은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든, 내 교리적 정체성을 타협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서로 비방만 해 갖고는 득/덕이 될 게 없지 않겠는가? 개신교에서 유래되지 않은 기독교 교파의 내력에 대해 더 체계적으로 고찰하면서 타 교파 사람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보고 소통하고는 싶다.
침례교 중에서는 심지어 속세를 떠나 자연인처럼 살고 심지어 세상 정부와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곳도 있다는 식의 인식이 있는데.. 적어도 KJV 독침은 그런 곳은 결코 아니다. ㅡ,.ㅡ;;

킹 제임스 성경은 명백한 개신교 배경의 성경이었으니 이 점을 이용하고 어필을 해야 하는데.. 개신교를 마냥 적대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접근 방식이기 때문이다. 말보회는 초창기에 조금만 더 젠틀했으면 이단 소리 훨씬 덜 듣고 오해를 훨씬 덜 사고 적을 덜 만들면서 킹 제임스 성경을 훨씬 더 널리 전할 수 있었을 텐데.. 좋은 기회를 놓쳤던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3/04/05 19:33 2023/04/0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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