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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반공 교육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로 기적적인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저 이북 동네는 오로지 자기 권력 유지만을 위해 다른 공산주의 종주국조차 가지 않은 최악의 길만을 골라서 가면서 고립과 폐쇄, 공멸의 길을 갔다. 그리고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이 품고 있는 대남적화 야욕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꿈도 희망도 없고 심지어 종교조차 없는 주민들이 절망 끝에 상당수가 전국적인 수준으로 마약에까지 빠진 것은 흔히 접하는 기아· 영양실조나 정치범 수용소 같은 것과는 레베루가 다른 문제다. 안 그래도 0으로 수렴해 가던 남북간의 화합· 일치 가능성을 완전한 0으로 확인사살 시키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원래는 마약이 위조지폐, 불법 무기와 더불어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였는데, 그게 국제간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수출이 불가능해지자 북한 내부에서 나돌기 시작하면서 나라를 헬게이트로 만든 것이다.

정말 국제적으로도 나쁜짓은 가지가지 골라서 하는 양아치들이다. 중국이 탈북자를 강제 북송시키는 것은 인륜적으로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걔들이 마약 유통을 단속하는 건 지극히 정당한 행정 조치이지 않은가.
어지간해서는 정치적인 발언은 자제하려 하나, 소위 친북 정권의 햇볕 정책이라는 건 저런 북한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도 전혀 해결한 게 없으면서 그저 북한에게 나쁜짓 할 자금만 잔뜩 그것도 심각하게 많은 액수로 준 걸로 보인다. 그러니 내가 도무지 고운 시선으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뭐 아무튼.

현실이 엄연히 그런 이상, 우리는 알량한 민족 드립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며 반공 정신이 그때나 지금이나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아무리 밉고 마음에 안 들어도, 김씨 부자가 그들보다 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반공 교육이라 하면 뭐 어떤 게 떠오르는가? 내 경험상 내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반공 교육은

  • 그저 북한 공산당의 잔인한 만행만 부각시키면서 증오심, 적개심을 키우는 것이 아니요,
  • 경제 이론을 들먹이면서 공산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유치한 숫자놀음이 아니요,
  • 우리나라 정치· 법조계에 간첩· 종부기들이 이미 싹 다 깔려서 나라가 거덜나기 직전이라고 호소하는 것도 아니요,
  • 심지어는 종교적으로 접근해서 신을 부정하는 공산주의는 마귀 적그리스도 666 식으로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아 물론... 김 정은의 목을 따라고 초특급 인간흉기 북파공작원이라도 양성한다면야 그 정도 요원에겐 정신교육 차원에서 '원쑤'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개심 세뇌를 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 게 아니고 일반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역시나 우리나라의 수립과 발전 과정에 대한 “감사와 자부심”, 그리고 위의 권위에 대한 “신뢰”가 아닌가 싶다.
한 마디로 말해 남에 대한 디버프가 아니라, 나에 대한 버프가 필요하다! 이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돌려 놓기란 대단히 어렵다.

마치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으로 어린 학생에게 성경적인 성 관념을 심어 줄 수 없듯, 저런 사상도.. 형식적이고 유치한 “때려잡자 공산당” 식의 반공 교육만으로 형성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 나라에 아무 애착도 없고, 이상한 음모론이나 믿는 사람들에게 백 날 간첩· 종부기 드립을 쳐 봐야 씨알도 먹히겠나?

방향이 잡히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왜 우리나라가 이상적인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가 이해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치라도 온 게 정말 기적에 가까우며 그 비결이 무엇인지가 이해된다.
큰 방향이 잡히고 나서는 더 세부적인 팩트, 데이터 같은 건 그저 논쟁용으로나 필요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무슨 일베니, 뉴라이트니 친일 나부랭이 같은 특정 계층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상한 딱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선량하고 건전한 애국 사상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버프'의 많은 부분을 우리나라 철도를 통해서 받았다~!!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3/12/22 08:20 2013/12/2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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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분석

* 모닝와이드 -- 블랙박스로 본 세상 시리즈.
운전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주변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시청자의 블랙박스 제보 영상을 소개하는 프로이다.
가끔은 현직 변호사로부터 자문을 구해서 저런 상황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과실 비율이 법적으로 얼마 정도 되는지 해설도 해 준다.
비록 TV 본방 형태는 아니지만, 본인은 안전운전 자가교육(?) 차원에서 유튜브로 저걸 종종 즐겨 본다. 사실, 저 프로는 나 말고도 운전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고 시청률도 높다고 한다.

핸들이나 브레이크를 급하게 조작하다 보면, 차가 평소에 내가 조작한 대로 나아가지 않고 정말로 뱅글뱅글 돌고 미끄러지면서 저렇게 패닉 상태에 빠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무섭다. 차가 패닉이면 운전자도 “아,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완전 멘붕에 빠진다.
특히 주행 중에 타이어가 터지면 조향과 제동이 모두 맛이 가서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저 프로에서 방영되는 교통사고들은 다음과 같은 여러 패턴들 중 하나로 정리된다.
먼저, 좀 빨리 가려고 교통법규를 위반하다가 사고를 내는 경우이다.

1. 안쪽 차선이 빈 것만 보고는 무리하게 교차로 꼬리물기를 시도하다가, 바깥쪽 차선에서 질주하던 차와 박는 것.. 아슬아슬한 꼬리물기 정도가 아니라 빨간불로 바뀐 지 꽤 오래 됐는데도 대놓고 신호를 위반하는 경우도 있다. 딱 내가 교차로를 지나려 할 때 신호가 노랑-빨강으로 바뀌는 거 정말 짜증나며 그 심정 나도 누구보다도 이해한다. 하지만 반대편 방향 차량들도 자기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총알같이 튀어나가려고 매의 눈으로 대기 중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2. 직진 차선(혹은 일반차로)에 차들이 멈춰 선 것만 보고는 무단횡단하거나 U턴 시도하다가 좌회전 차선(혹은 버스전용 차로)으로 달리던 차와 부딪히는 것..

1과 2는 전형적인 병신인증 패턴이다. 단순 과속 차량뿐만 아니라 구급차 같은 긴급자동차, 그리고 사고 현장을 향해 경쟁자들을 제치고 필사적으로 제일 먼저 도착하려는 견인차(wrecker)도 무법 난폭운전 하다가 종종 사고를 내곤 한다.
그 밖에,

3. 답이 없는 졸음운전, 음주운전.;;;
차가 옆 차선을 밟으면서 들썩들썩 불안하게 움직이거나 갑자기 길을 벗어나 도랑으로 푹 빠져 버린다. 사고가 날 때까지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조차 없으니 더욱 끔찍하다.
한편 음주운전은 좀 강하게 처벌할 수 없나 싶다. 만취 운전자들은 보통 멘탈도 맛이 가 있어서 사고를 내고는 뺑소니를 치는 경우까지 있는데, 이 경우 처벌이 더욱 무거워진다.

4. 고속도로나 그에 준하는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급정거 및 급격한 차선 변경.
도로에 갑자기 동물이나 장애물이 튀어나와서 그거 급히 피하느라 차가 중심을 잃고 뒤집히고 도랑으로 빠진다. 아니면, 그 때문에 멈춰 섰다가 뒷차로부터 쾅 추돌을 당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옆에서 갑자기 쓱 들이대는 차를 피하려다 혼자 덤탱이를 쓰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어느 고문관 운전자가 진출로를 놓쳤다고 차를 길 한가운데서 세우거나 아예 후진· 역주행을 한 것 때문에 사고가 나기도 하고.

5. 무단횡단. 다른 것보다도,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보행자(특히 어린애)는... 전혀 예측 불가이고 한 마디로 답이 없다. 말 그대로 '갑툭튀'다.
아무리 운전자가 갑이고 보행자가 을이어서 어지간한 차-보행자 교통사고는 운전자에게 불리하게 법적 책임이 매겨진다지만..
우리나라는 운전자에게 너무 불리하고 가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든다.
차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고 옆의 보행자를 확인할 수 없는 곳에서는 자동차는 닥치고 옛날에 영국에서 적기 조례가 있던 시절처럼 슬금슬금 기어가라는 소리와 마찬가지다.

이유야 어쨌든 보행자를 친 운전자에게 거의 무조건 더 많은 과실이 매겨진다면, 반대로 운전자가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안 치려고 핸들/브레이크를 과격하게 꺾다가 더 처참한 사고를 당했을 경우, 이번엔 그 보행자에게 더 큰 과실을 규정하는 법규라도 있어야 서로 공평하지 않겠는가?

6. 끝으로, 저 동영상 시리즈를 보면서 본인이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유형은 이것이다.
바로, 정비 불량 상태인 대형 트럭/트레일러가 주행 중 갑자기 타이어가 터지거나 심지어 타이어가 빠져나와 굴러가는 것... 이거 정말 무시무시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대형차의 타이어는 개당 무게만 이미 수십~100여 kg에 달하는데, 데굴데굴 구르느라 어마어마한 운동 에너지를 갖고 있다. 게다가 동글동글 엄청 잘 굴러간다는 점에서, 단순 적재 불량 화물이 떨어지는 것보다도 더욱 위험하다.

소개하는 동영상에서 15:35 이후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타이어가 위험하다> 편을 보기 바란다.
3~4차선을 달리던 화물차에서 타이어가 빠져나와서 굴러가더니 통통 튀면서 중앙분리대까지 넘어 반대편 승용차의 앞유리를 내리찍고, 이 때문에 2차 추돌사고까지 냈다. 이게 웬 날벼락이냐.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

게다가 대형차와 얽힌 이런 교통사고는 이 휘소 박사(1935-1977)가 당한 교통사고와 거의 똑같은 패턴이다!
그래서 오래 살았으면 노벨 상까지 받았을 위대한 물리학자가 그렇게 허망하게 도로에서 목숨을 잃었다.
어떤 자료에서는 트레일러의 타이어가 날아와 차 운전석을 강타했다고 하고, 어떤 자료에서는 트럭 자체가 이 박사의 승용차와 정면충돌했다고 하니, 의외로 설이 일치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타이어로 인한 사망 사고라 해도 이는 실제로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 별첨 1: 잡설

- 사실, 자동차뿐만 아니라 비행기도 타이어의 회전과 관련된 고려 사항이 있다. 대형 여객기쯤 되면 어지간한 대형 트레일러보다 덩치가 더 크며, 랜딩기어의 바퀴도 더 많고 더 크고 더 무겁다. 비행기가 이륙하여 땅에서 뜬 뒤에도 10수 개가 넘는 바퀴들은 관성 때문에 시속 300km에 가까운 맹렬한 속도로 한동안 계속 돌게 된다.
랜딩기어를 접어서 기내로 집어넣은 뒤에도 무거운 바퀴들이 그렇게 계속 돌아가고 있으면 비행기의 안정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비행기가 뜬 뒤에는 랜딩기어에다 일부러 브레이크를 걸어서 바퀴의 회전을 중단시킨다고 한다.

- 블랙박스 영상들을 보니, 자동차의 앞부분이 파손되는 사고가 난 뒤에는 사고 차량의 앞유리에 갑자기 와이퍼가 동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하다. 와이퍼 스위치나 센서에 자극이 가기라도 하는지, 왜 그렇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 아무리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에 인색하다고 해도, 자동차 손해 보험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재정이 그리 넉넉치 못하고 적자라고 한다. 들어오는 돈보다 사고 수습을 위해 지출하는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결국 교통사고가 잦으면 운전자가 차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출해야 하는 보험료 부담이 더 늘 수밖에 없고, 국가와 사회의 경쟁력은 떨어지게 된다.
정말 우리 모두를 위해서 안전 운전 방어 운전을 해야겠다.

* 별첨 2: 대형차의 전방주시 태만 사고

지난 12월 14일엔 경부 고속도로 하행선 경주 휴게소 인근에서 끔찍한 교통사고가 났다.
보도블록을 가득 실은 25톤 트럭이 앞의 승용차를 들이받으면서 4중 추돌 사고로 번졌다.
접촉사고 때문에 정체 서행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트럭 운전자가 이를 발견을 못 한 것.

문제는 승용차는 그 25톤 트럭과 자기 앞의 25톤 탱크로리의 사이에 끼였다는 점이다.
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박살났다.
승용차에는 두 집안의 어머니와 각각의 자녀 2명, 총 6명이 타고 있었고.. 이들은 대형차 두 대에 끼여 으스러진 차 안에서 전부 즉사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처자식을 다 잃은 남편 두 명은 완전 멘붕에 빠졌을 것이고, 한편으로 가해 운전자도 업무상 중과실치사상죄로 인해 직장 짤리고 구속되고, 처자식들이 멘붕에 빠질 것이다. 최소한 세 개의 가정이 파탄에 이르게 됐다.
사고의 원인은 비록 음주운전은 아니지만 트럭 운전사가 라디오 조작하느라 전방주시를 소홀히 한 거라고 한다.

사실, 이 사고는 작년 5월에 발생했던 상주 여자 사이클 선수 교통사고 참사와 판박이다.
그때 역시 규모도 똑같은 25톤 트럭 운전사가 DMB를 보거나 조작하다가 전방의 선수단 SUV 차량과 사이클 선수들을 덮쳤다.
이 사고로 선수 세 명이 사망하고 다른 세 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종일 차만 굴리느라 무료하고 따분한 건 이해하지만..
다른 일에 신경 쓰기 전에 자기가 모는 차량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무겁고 운동 에너지가 큰 물건인지를 물리 법칙에 입각하여 절대로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3/12/19 08:37 2013/12/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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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이야기

롤스로이스(Rolls Royce)는 잘 알다시피 영국의 명차로, 세계 톱클래스급의 간지를 자랑하는 대형 초호화 고급 승용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 그룹 회장님이 마이바흐와 더불어 개인용으로 굴리는 차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웹툰에서는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에서 정 안봉 이사장의 자가용이 저 차라고 설정되어 있다..;; (220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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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엔진룸이 매우 두툼한데 비해 헤드라이트는 모양이 작다. 수 년 전 모델은 헤드라이트 아래에 있는 미등이 원형이었는데 지금은 그게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바뀐 듯하다.
참고로 지금으로부터 한 30년쯤 전에는 차 모양이 이랬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라디에이터 그릴은 파르테논 신전을 형상화한 형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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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는 공장에서 마구 찍어내고 재고를 쌓아 놓는 양산이 아니라 주문 생산만 되었으며, 그 공정도 다 장인 수작업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지금 당장 돈만 있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차를 덥석 팔아 주는 것도 아니었고 안정적인 소득과 지위, 평판이 있는 고객에게만 팔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명차를 구입만 덥석 해 놓은 뒤에 차주가 쫄딱 망해 버리면 차는 처분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롤스로이스 같은 차가 겨우 중고 매물로 나도는 건 롤스로이스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체면상 용납할 수 없는 모습인 것이다.

그 대신 한번 고객에게 판매하여 넘겨 준 차는 폐차하는 순간까지 제조사에서 끝까지 책임을 졌다고 한다. 그래서 롤스로이스가 소재로 등장하는 이런 예화가 있을 정도이다.

롤스로이스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퍼져 버려서 차주가 무슨 보험사 긴급 출동도 아닌 차량 제조사에다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제조사에서는 곧바로 헬기를 띄워 다른 멀쩡한 롤스로이스를 공수해 줬는데, 나중에 그에 대한 비용을 청구하기는커녕 그런 일 자체가 없었다며 완전히 입 싹 씻고 함구했다. “롤스로이스는 애초에 고장이 나지 않는다”고 말이다(고장을 공식적으로 고장이라고 취급하지 않으며, 따라서 고장 수리비 같은 개념도 없다).

물론 오늘날은 롤스로이스가 그 정도까지 극단적으로 도도하지는 않다. 이런 극소수 엘리트 고급차는 양산차에 비해 수지가 안 맞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언제까지 그런 고집만 부릴 수는 없다.
마치 오늘날은 슈퍼컴도 저가 양산형 CPU를 병렬로 연결해서 쓰지, 슈퍼컴만의 전용 아키텍처 같은 개념은 없어진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과거의 수제형 슈퍼컴인 크레이 시리즈가 맥이 끊어진 것을 생각해 보시라.

그래서 요즘은 돈만 내면 누구라도 롤스로이스를 사서 굴릴 수 있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예전보다야 이 차 구경하기가 쉬워졌다. 게다가 롤스로이스 역시 뒷좌석만 고급화시키는 게 아니라, 차주가 직접 앞좌석에서 운전을 하는 오너 드라이빙 트렌드를 더욱 반영하는 쪽으로 변모하고 있다.

비록 그 정도로 격이 낮아졌다(?) 해도 롤스로이스의 가격은 여전히 최하 수억 원대로,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내지 에쿠스 네댓 대(5000cc 최상위 모델 기준으로!) 이상 값은 충분히 하는 비싼 가격이다. 게다가 구매한 후에도 어마어마하게 깨질 세금과 기름값, 보험료 따위는 어찌 감당하려고?

롤스로이스는 리무진 형태가 아니라 4명밖에 못 타는 세단 주제에 차의 길이가 5.6m에 달한다. 1톤 트럭 특장차보다는 확실히 더 길고, 2.5톤 트럭의 길이와 얼추 비슷하거나 약간 더 짧다. 그러니 일반적인 승용차 자리엔 주차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크다. 그 대신 뒷좌석에 탄 사람은 앉은 채로 다리를 쫙 들어서 뻗어도 될 정도로 공간이 완전 넉넉하다. 좌석에 앉은 채로 다리를 다 뻗을 수 있는 교통수단은 새마을호 특실, 비행기 1등석 등 극히 드물다.

엔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롤스로이스는 예로부터 V형 12기통 엔진에 6000~7000cc에 달하는 배기량을 자랑한다. 3000cc대의 6기통 엔진만 달아도 대형 승용차인데 롤스로이스는 그 크기의 두 배라는 뜻이다. 차의 무게는 1톤대는 당연히 아니고 공차 중량만 약 2.5톤가량. 여러 통계를 보면 공인 연비는 1리터에 거의 5~6km대라고 한다. 마티즈를 보고 출력이 약하다고 탓해서는 안 되듯, 롤스로이스는 확실히 경제성을 보고 굴려서는 안 되는 차임이 분명하다.. ㅎㅎ

롤스로이스는 전통적으로 엔진의 정확한 출력 한계를 함구하고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던 것 같다. 옛날에 자동차생활 잡지에서 취재를 할 때도 회사 관계자는 “충분히 큽니다”라고만 얼버무렸지 정확한 숫자 얘기를 안 했었다.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인 걸까?
그래도 지금은 롤스로이스에 대한 베일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벗겨졌다. 제원을 검색해 보면 460마력대의 최대 출력과 70kg대의 최대 토크가 곧장 뜬다. 최대 성능이 나오는 rpm은 여느 가솔린 엔진 차량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롤스로이스의 계기판에는 엔진 회전수를 표시하는 통상적인 타코미터는 지금까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이 엔진 최대 성능의 몇 %를 뽑아 쓰고 있는지 백분율만이 표시되며 이것이 타코미터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그런다. Windows Vista부터는 작업 관리자에서 메모리 사용량을 바이트 단위가 아니라 백분율 단위로 보여주는데, 마치 그런 걸 보는 것 같다.

롤스로이스는 뒷좌석 문이 앞좌석과 같은 앞쪽으로 열리는 게 아니라 뒷쪽으로 열리는 게 특이하다. 그리고 타이어 휠의 중앙에 있는 휠캡은 바퀴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차가 움직일 때도 데굴데굴 같이 따라 구르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한다. 차 문과 트렁크는 버튼 하나만 눌러서 전동 개폐가 되며, 뒷좌석엔 좌석별 개인 비디오 장비와 우산 거치대도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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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차, 고급차 소리를 들으려면 단순히 내장재만 호화로운 게 아니라 닥치고 승차감이 좋아야 할 것이다.
승차감에 관한 한 롤스로이스는 정말 본좌급이라고 한다. 탑승자는 엔진음을 도무지 들을 수 없으며 주행 중에도 워낙 진동이 없어서 차가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라니 말 다 했다.

오죽했으면 롤스로이스는 정숙성을 내세우기 위해 내부 모델명을 다 유령과 관계 있는 이름으로 정해 왔다. 그래서 고스트, 레이쓰, 팬텀 따위.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그 단어이며, 고스트와 레이쓰는 스타크래프트 테란 유닛 이름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클록킹 스킬이 있는 유닛이라는 공통점도 있고 말이다. 이들 중 '팬텀'이 바로 가장 비싼 최상위 기함급 모델이다.

끝으로, 명차 고급차의 앞부분에 관례적으로 상징처럼 붙어 있는 마스코트(hood ornament)를 생각해 보자.
현대 차 중에는 제네시스에도 없고 오로지 에쿠스에만 그런 마스코트 비스무리한 액세서리가 붙어 있다.
롤스로이스는 '환희의 여신상'이라고 불리는 마스코트가 달려 있으며 내력도 굉장히 길다. 공식 명칭은 the spirit of ecs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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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이름을 보니까 역시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spirit of ecstasy는 도로가 아닌 철도에 있지 않던가!
새마을호 Looking for you를 빼 놓고서 교통수단에서의 황홀감, 엑스터시를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불가능이다.

정말,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 음악이 흘러나왔던 건 한글 창제 내지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에 버금가는 엄청난 사건이다. 혁명, 혁신,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하필 저 음악을 골라 넣은 그 당시의 철도청 고위 간부는 그야말로 심리학, HCI, 인지과학 분야의 어마어마한 전문가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을 낚기 위해, 미래의 철덕 양성을 위해 치밀한 음모를 꾸미면서 Looking for you를 선곡했을 것이다. 이 현상에 대해서는 정말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된다.

철도가 나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기회가 된다면 강연, 저술을 통해 널리 알리고 싶다.
아아, 롤스로이스 얘기를 하면서도 철도가 연결됐구나.. ㅋㅋㅋㅋㅋ
아무튼, 롤스로이스를 직접 타면서 열차와의 승차감을 상호 비교해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3/12/04 08:30 2013/12/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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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가 세상적으로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고, 인간의 머리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종교(?)인 이유

1. 여타 종교들을 한 치의 타협도 없이 단호히 배척하여 '따'를 자처한다.

2. '원수를 사랑하라' 등, 육신적인 가식· 위선으로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요구를 한다.

3. '부활' 같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황당한 걸 가르친다. 사실 교주가 부활해서 무덤이 비어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도 여기 말고는 없고..;;

4. 잘 믿으면 부귀영화 성공은커녕, 박해를 받을 거라고 대놓고 버젓이 예고한다.


이건 내가 정리한 건 아니고 L.E.맥스웰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채 태어났다> 책에 있는 내용이다.

세상엔 복음에 반감을 갖고 있는 똑똑하고 '이성· 합리적인' 무신론자들이 엄청 많다.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들의 각종 폐단들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은 반종교가 아니라 비종교를 표방한다고 그러는데...
그에 대한 나의 생각/반론은 이러하다.

1. 글쎄, 리처드 도킨스가 나처럼 있지도 않은 신을 무작정 쫓아다니는 불쌍한 무지렁이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무신론을 설파하기 위해 나 대신 죽어 주기까지 했으면(그리고 부활까지 했으면).. 그 사람 주장도 좀 고려해 보겠다.

2. 내가 왜 태어났고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고 죽어서는 어떻게 되고, 절대적인 선과 악이 무엇인지.. 이런 것에 대한 관념이 없는 사람치고 건전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은 난 못 봤다. 절대자 없이 인간이 과연 그렇게 자기끼리 질서정연하게 잘 살고 있었을까? 글쎄? 난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ㅎㅎ

3. 위에도 잘 설명돼 있지만, 인간이 자기 머리로 종교를 만들었다면 나 같으면 단언하건대 철도교를 만들었지 기독교 같은 건 미쳤다고 만들겠나. 절대로 안 한다.

Looking for you 같은 마약 같은 황홀경 음악이 있고, 수인선 복선 전철과 동해남부선 광역전철의 부활 신앙이 있고, 국토 사랑 정신과 희락과 화평과 사랑이 넘치는 철도교를 믿으면 되지 뭐 하러 쓸데없이 사탄 마귀, 지옥, 심판, 휴거 같은 걸 논하겠나? 왜 골치아프게 영적 전투를 치러야 하나? 나도 종교에 대해서 도킨스만치는 그래도 생각을 해 보고 예수 믿는다. ㅎㅎ

이성· 합리적인 무신론자라면 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세상에 인간들이 당신보다 똑똑하지 못해서, 머리 쓸 줄 몰라서 기독교가 안 없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 크리스천이 겪는 슬픔과 고통

크리스천이 아무리 죽음에 대한 준비가 다 된 사람이라 해도, 이와 별개로 죽는 과정은 충분히 두려울 수 있다. 그리고 고통 때문에 울부짖을 수 있다. 예수쟁이도 총 맞으면 죽는 보통 사람이며, 고문 당하면 괴로운 건 마찬가지다.
또한 크리스천이 아무리 부활의 소망이 있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걸 기약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당장 죽었는데 당연히 슬퍼서 울 수 있다. 성경에도 그 유명한 Jesus wept가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뭔가 천추의 한이 맺히고 서러워서, 혹은 증오심과 원망이 맺혀서 “이놈/이것만 아니었으면 내가 요 모양 요 꼴 되지는 않았을 텐데” 같은 식으로 울 일은... 영적으로 잘 성장했다면 없는 게 정상일 것이다.

물론, 크리스천 중에 여전히 그런 것 때문에 세상 비관하고 앓는 소리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무작정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모 아니면 도 식인 것은 진리이나, 그렇다고 해서 “이러지 못할 거면 걍 때려치워라” 같은 돌직구는 정말 신중하게 날려야 한다. 그런 걸로 기껏 자라려던 남의 믿음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3/11/16 08:30 2013/11/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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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의 크리스천 지인 중에는 크리스천의 ‘인격, 행실’에 대해서 정말 많은 관심을 갖고 거기에 심각하게 고민하는 분이 있다. 왜 있잖은가, “크리스천이 되기에 앞서 인간부터 돼야지!” 같은 식의 주장 말이다.

크리스천으로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얼마나 투철했으면, 세상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세상이 악하고 마음이 강퍅해져서가 아니라, 기존 교회들이 병신같이 선교 행위를 하고 예수 간증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아주 강조한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후 4:4보다 롬 2:23-24를 선호한다는 뜻.

이런 성향이 종교적으로 극단으로 치달으면, 결국 선행이 드러나 있지 않은 사람은 구원받은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예정론을 잘못 적용한 주권 구원 내지 행위 구원 쪽으로 빠진다.

그리고 이런 성향이 정치적으로 극단으로 치달으면, 오로지 대형 교회들을 흠집 내고 잡아먹기 위해서 불신자들하고까지 손잡을 지경인 진보 성향으로 바뀐다.

뭐, 저 정도의 잘못된 극단으로 빠진 게 아니라면, 그런 성향에도 일리가 있는 지적이 분명 있다. 예전에 같은 교인들로부터 몰상식적이고 무례하고 육신적인 언행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었거나, 아니면 기성 교회의 비성경적인 관행에 트라우마가 생긴 경험 때문에 그런 성향이 깊어진 게 아닐까 싶다. 이해는 한다.

그런데 이 이슈에 대한 나의 내면의 생각을 좀 말해 볼까?

첫째, 기독교의 교리가 “크리스천이 되기에 앞서 인간부터 돼야지!”였다면, 나는 크리스천이 절대로 못 됐으며 인간은 더욱 못 됐을 것 같다. 나 자신부터 옛날에는 인간성· 사회성, 인격 따위가 지금보다 훨씬 더 거칠고 더러웠다. 그나마 예수 믿고 나서 같은 성도들끼리 부대끼면서 아주 차츰차츰 개선된 것이다.

둘째, 난 기독교의 탈을 쓴 종북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교인’들의 행실에 대한 기대 따위는 진작에 안드로메다에다 보내고 왔다. 이건 무슨 대형 교회의 부정부패나 몰상식한 선교 행위 같은 것하고는 아예 레벨이 다르고 차원이 다른 악행이지 않은가! (걔네들은 애초에 예수님을 내 구주로 제대로 영접도 안 한 사람일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은 한다)

종북이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그 구원에 감격하고 지금 처한 여건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국가와 민족에 자부심과 애착이 생기고, 우리에게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와 지금 진짜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는 곳이 어딘지를 다 자동으로 깨달을 줄 알았는데, 종북이 예수 믿으면 그냥 구원받은 종북이더라!

이게 겨우 일개 인격이나 성품 따위하고 비교가 가능한 문제일까? 성경 말씀이 그런 사람들의 사상 하나조차 제대로 바로 이끌어 주지 못한 걸까?

그러니 난 애초에 혼의 구원과 영원이 걸린 종교 문제는 전적으로 핵심 사상인 교리의 우월성을 보고 선택했지, 주변 사람들의 말단 행실이나 평판 같은 건 “개별적인 case by case”일 뿐, 진지한 고려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정말로 비성경적인 수위가 도를 넘어서는 잘못된 목사나 잘못된 교회가 있으면, 당신 혼자 그 교회를 조용히 탈퇴하면 된다. 대한민국은 자유가 있는 좋은 나라이다. 당신이 그런다고 해서 당신을 고문하거나 수용소로 보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도저히 구원받았을 것 같지 않은 막장 성도라면.. 성경에 규정된 대로 징계하고 쫓아내든가, 아니면 그냥 교제 끊고 이교도나 세리 대하듯이 최소한의 예의와 격식만 차려서 대하면 된다. 그 사람이 만에 하나 진짜 구원받은 게 맞다면 나중에 하늘나라에서나 오해가 풀리기를 바라는 수밖에.

영적 전쟁터는 원래 그 어떤 희한한 짓 험한 꼴이 벌어진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바닥 아닌가?
크리스천이 행동이 병신이었던 게 어디 한두 번이었으며, 그게 그렇게까지 납득이 안 되는 일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현실을 지나치게 탓하고 비관하는 건, 예수님이고 성경이고 복음이고, 게다가 그냥 성경도 아니고 신줏단지 같이 떠받드는 KJV 성경조차도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크리스천이라는 사람이 자기 입으로 영적 전투의 패배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그냥 구원받는 것하고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사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자기와 같은 사상을 지니고 자기처럼 성장하고 자기처럼 행동할 거라고는 절대로 기대하지 말지어다.

교회는 영적 전투 수행을 위한 무슨 소수정예 특수부대가 아니다. 이 세상에 아무 결점이 없는 완벽한 성도들로만 이뤄진 교회가 존재한다면, 당신이 그 교회에 가입하는 순간부터 무결성이 깨진다는 심정으로 교회 생활을 하면 된다.

구원과 행실 사이의 관계 문제는 하나도 어려울 것 없다.
보이지 않는 믿음을 보이는 행위로 나타내야 한다는 내 안의 성령님의 압박이 느껴진다면, 남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이나 잘하면서 남에게 좋은 본을 보이면 된다.

잘못하고 있는 교회 지체를 성경으로 일깨우면서 권면하는 것 이상으로,
누구 다른 사람 때문에 복음이 실추되고 있다는 식으로 피해의식은 어떤 경우에도 가질 필요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3/11/08 08:17 2013/11/0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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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 기초 이야기

a*x + b*y + M = 0
c*x + d*y + N = 0

이라는 두 개의 이원(x, y) 일차방정식이 있다고 치자. 흔히 연립방정식이라고도 불린다.
이 방정식을 풀려면 x, y 중 하나의 계수를 a나 c, 아니면 b나 d로 맞춰 줘서 한 변수를 소거해야 한다. 그래서 일원 일차방정식으로 바꿔서 반대편 변수의 근을 구한 뒤, 그 값을 대입하여 원래 변수의 근까지 구하면 된다.

이를 일반화하여 위의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구하면 다음과 같다. 뭔가 규칙성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잘 안 외워진다.

x = (N*b-M*d) / (a*d-b*c)
y = (N*a-M*c) / (a*d-b*c)

분모를 보니 생각나는 게 없는가?
그렇다. 이것은

[ a b ]
[ c d ]

라는 원소로 구성된 2*2 정방행렬의 행렬식을 구하는 공식이다.
이 행렬식의 값이 0이라는 건 a:b와 c:d의 비율이 동일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행렬을 구성하는 벡터들은 서로 일차(선형) 독립을 이루지 못하며, 상수항이 어떻냐에 따라서 이 방정식은 근이 무수히 많거나 근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런 행렬을 거친 일차변환은 2차원 평면을 1차원 선이나 점으로 찌그러뜨린다. 이런 행렬은 영벡터(모든 원소의 값이 0)가 아닌 벡터 중에서도 자신과의 곱을 영벡터로 만드는 물건이 무수히 존재하게 된다(Ax=O).
예를 들어 연립방정식 x+2*y = 0 과 3*x+5*y = 0의 근은 x와 y가 모두 0인 trivial solution 단 하나밖에 없으나, x+2*y = 0과 3*x+6*y = 0은 두 식이 동치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x = -2*y이기만 하면(가령 2와 -1) 식이 성립한다. non-trivial solution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결국, 근이 무수히 많을 수 있다는 말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들은 모두 필요충분조건 관계에 있으며, 이외에도 이런 행렬의 엄밀한 특성에 대해서는 선형대수학 시간에 많이 배우게 된다.

말이 길어졌는데, 그럼 변수가 세 개 이상이 되면 근을 구하는 양상이 어떻게 바뀔까?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복잡해진다.

변수가 2개일 때는 x, y 근에 최대 두 변수의 곱(최대 2차)으로 이뤄진 항이 분자와 분모에 2개씩 있었다.
그러나 3개일 때는 세 변수의 곱으로 이뤄진 항이 분자와 분모에 6개씩 들어간다.
그리고 이를 일반화하면, n원 1차 연립방정식의 근은 n개의 변수의 곱으로 이뤄진 항이 분자와 분모에 무려 n! (팩토리얼)개씩 들어간다!
이것이 '폭발적'이라는 단어의 의미이다. 예를 들어,

[ a b c ]
[ d e f ]
[ g h i ]

라는 3*3 정방행렬의 행렬식은 다음과 같다. 어떤 규칙성이 있는지, 어떻게 하면 잘 외울 수 있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라.;;

a*e*i - a*f*h - b*d*i + b*f*g + c*d*h - c*e*g

a가 속한 행과 열을 제낀 2*2 행렬(e f / h i)의 행렬식에다가 a를 곱해서 더하고,
다음으로 b가 속한 행과 열을 제낀 2*2 행렬(d f / g i)의 행렬식에다가 b를 곱해서 빼고,
끝으로 c가 속한 행과 열을 제낀 2*2 행렬(d e / g h)의 행렬식에다가 c를 곱해서 더하면.. 이 행렬 전체의 행렬식이 나오긴 한다. 2*2 행렬식이 2개의 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런 식이 3개가 늘어나니 총 6개가 되는 게 맞다.

이런 방식으로 행렬을 쪼개면 그 어떤 크기의 행렬의 행렬식도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크기가 3을 넘어가는 행렬에 대해 행렬식 내지 방정식을 푸는 일반적인 공식을 구하려는 생각은 포기하는 게 좋다. 머리 터진다..;;

참고로 1변수 n차 방정식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2차 방정식은 잘 알다시피 비교적 외우기 쉬운 근의 공식이 존재하는 반면 3차와 4차는 근의 공식이 있기는 하나 인간의 머리로 도저히 외울 수 없을 수 없을 정도로 미치도록 복잡한 형태이다. 게다가 서로 인접한 차수끼리 규칙성 같은 것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5차 이상부터는 대수적인 방법만으론 깔끔하게 풀 수조차 없다.
그에 반해 n변수 1차 연립방정식은 비록 그 정도로 카오틱하게 복잡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다른 양상으로 복잡해진다는 게 오묘한 점이다.

그리고, 이건 일반적인 공식을 구하려 할 때 딸려 나오는 식이 지수함수 급으로 복잡해진다는 소리다.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 그때 그때 특정 숫자가 주어진 행렬의 행렬식을 구하는 알고리즘의 시간 복잡도가 지수함수라거나 NP 완전 문제 급이라는 뜻은 아니다. 둘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변수가 3개를 넘어가는 방정식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가령, 변수가 x, y, z라고 치면 일단 모든 방정식의 x의 계수를 1이든, 맨 위의 식의 계수로든 어쨌든 하나로 일치시켜야 한다. “등식에서 같은 수를 더하거나 빼도 등식은 성립한다.” / “등식에서 같은 수를 곱해도 등식은 성립한다” 라고.. 초등학교 산수 시간에 배우는 지극히 당연하고 기본적인 원리를 이용해서 방정식을 푸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x 변수를 없는 놈 취급할 수 있게 만든 뒤, 다음 방정식에 대해서 y 변수의 계수를 일치시킨다.
이런 절차를 반복하여 변수를 z만 남겨서 z 값을 구하고, 다음으로 y, x의 순으로 재귀적으로 근을 구하면 된다.
행렬이라는 물건 자체가 이런 연립방정식을 푸는 동작을 간략하게 모델링하는 과정에서 고안되었다.
앞서 말한 절차를 행렬 용어로 표현하자면, 가우스-조던 소거법으로 행렬을 대각화하는 것과 같다.

행렬이 대각화가 되고 나면 방정식을 다 푼 것이나 다름없을 뿐만 아니라, 행렬식의 값은 그 행렬의 대각선 원소들의 곱으로 쉽게 구할 수 있게 된다.
행렬을 대각화하는 데 드는 시간 복잡도는 일반적으로 O(n^3)으로, 행렬 곱셈의 비용과 같다.
이 작업을 숫자를 대상으로 곧장 곧장 업데이트하는 게 아니라, 기호를 이용해서 일반적인 경우를 다 고려하여 표현하려다 보면 항 개수가 아까 같은 팩토리얼 급으로 증가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연립방정식 하니까 응용수학 내지 산업/경영공학 같은 데서 다루는 그 이름도 유명한 선형 계획법(LP)이 생각난다.
이런 데서 다루는 문제는 대체로 변수의 개수가 식의 개수보다 더 많고, 식도 등식이 아니라 부등식이다. 애초에 해 자체는 무한히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프의 능선을 따라다니면서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만족하는 영역을 찾는 게 목적이다. 이런 문제는 실용적인 가치도 무진장 높다.

이런 걸 푸는 제일 간단한 알고리즘으로는 simplex method가 있는데, 그 이상의 디테일은 본인도 비전공자인 관계로 잘 모른다. 변수의 차원이 최대 2차원 정도일 때나 그래프를 그려서 생각할 수 있지, 이 역시 3차원 이상으로 가면 머리에 쥐 난다. 고등학교에서 행렬을 2*2까지밖에 다루지 않는 것, 그리고 전산학에서 간단한 bool 대수 연산을 다룰 때 변수를 3개까지밖에 넣지 않는 게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10/26 19:25 2013/10/26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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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판문점과 관련하여 안보 지리 역사 이야기를 늘어놓겠다.
다음은 판문점 주변의 구글어스 사진이다. 이 글 전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므로 별도의 창에다 열어 놓으시기 바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 세상은 참 대단하긴 하다. 이런 봉인된 장소도 항공 사진을 다 볼 수 있고, 사실 올해(2013) 초부터는 구글어스에 북한, 특히 평양의 세부 지리 정보까지 다 뜨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공동 경비 구역(JSA)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먼 옛날, 북한이 일으킨 6·25 전쟁으로 인해서 우리나라와 북한은 서로 치유가 거의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고, 분단은 완전히 굳어졌으며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은 극도로 커졌다.

그런데 이렇게 영토가 양분된 상태로는 서로 왕래가 전혀 불가능하다 보니 당장 휴전 협정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내부이긴 하나 정치적으로 남한 관할도 북한 관할도 아니고 UN이라는 제3자가 중립적으로 관할하는 지역이 필요해졌으며, 판문점이라는 주막이 있던 지역 일대가 그런 구역으로 설정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날에는 주변이 이렇게 허허벌판이었지만 훗날 건물 주변에 전부 풀과 나무가 조성된 듯하다. 지금의 구글어스 항공 사진과 몹시 비교된다.

자, 그럼 이제부터 구글어스 사진에서 우측 하단을 주목하시기 바란다.
가장 좁은 의미에서 판문점은 아무래도 흰색+파란색 지붕 형태로 도열해 있는 아담한 회의장 건물 7개이다. 얘들은 남한과 북한 영토에 반반씩 걸쳐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판문점의 주변 시설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로부터 남한 쪽에 있는 커다란 건물은 '자유의 집'이라고 불리고, 그로부터 남쪽에 있는 연보라색 지붕의 건물은 '평화의 집'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프레스센터이다.

더 남쪽에 있는 칙칙한 건물은 군용차 형상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 병영이다. 판문점 주변엔 온통 병사가 경비하는 초소가 늘어서 있다.
그리고 이렇게 건물들이 있는 곳의 오른쪽을 보면 도로가 아니면서 수풀도 없는 공터가 있는데, 거기는 헬리콥터 이착륙장이다. (본인이 분홍색 글씨로 1번이라고 표시한 곳) 저 옛날 사진에서 헬리콥터가 있는 곳과 동일한 지점일 것이다.

다음으로, 판문점에서 북한 쪽을 살펴보겠다.
회의장 바로 이북에 자리잡은 회색 지붕의 직사각형 건물은 '판문각'이다. 남한의 '자유의 집'에 대응하는 건물이라 하겠다. 그리고 좀 더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밝은 옥색 건물은 '통일각'이다. 나머지 건물들은 역시 병영이나 기자 대기실이다.

공동 경비 구역은 군사 분계선 이남과 이북에 있는 남한과 북한의 비무장 지대를 두루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안에서는 말 그대로 남한 및 UN군 초소와 북한군 초소도 뒤섞여 있다.
남양주 종합 촬영소에는 판문점 세트가 있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거기 항공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재연해 놓은 시설은 회의장과 판문각 정도이다.

영화 <튜브>가 김포 공항 청사 하나를 빌려서 총격전을 촬영했다고 하지만, 판문점 주변은 영화 촬영용으로 도저히 점거할 수 없는 곳이다. 영화는 아무래도 세트장에서 찍는 게 불가피하다.
하지만 진짜 판문점과 세트 판문점은 판문각 주변의 경치가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공 사진을 눈썰미있게 보고 나면 주변 사진을 보고 여기가 진짜인지 세트인지를 분간하는 게 가능하다.

여기는 민통선 수준이 아니라 군사 분계선에 바싹 근접한 몹시 중요하고 위험한 곳인 관계로, 국내에서는 VIP 급의 높으신 분이 아니면 개인 방문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30인 이상 45인 이하의 단체 견학만이 가능하며 방문 예정일보다 꽤 오래 전에 신청을 해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 갔다 온 사람들의 블로그 후기를 보면, 내부 사진 촬영은 의외로 자유로은 듯.
엄연한 우리나라 영토인데 UN 사령부의 허락을 받으면서 아주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서 드나들어야 하는 게 비극임은 틀림없다.

이제 판문점의 서쪽으로 가 보자.
두 길이 합류하는 광장이 있고 광장 중앙에는 자그마한 풀밭이 보일 것이다.
더 서쪽으로는 '사천'이라는 자그마한 개천 위에 놓인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 북한이다. (분홍색 글씨 4번)
이 다리는 국토 분단 전부터 있었지만 훗날 남한과 북한 국경을 가르는 다리가 되고 말았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어로도 말 그대로 bridge of no return이다.

예전에는 이 다리가 북한 사람들이 판문점으로 오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 다리를 통해 6·25 전쟁 말에 포로 송환이 이뤄졌고, 마지막으로는 1968년 푸에블로 호 선원들이 석방될 때 이 다리를 건넜다. 당연히 남으로든 북으로든 한번 다리를 건넌 뒤부터는 반대편 국가로 돌아갈 수 없으니 다리의 이름은 정서적으로 적절하게 붙여졌다. 원래 이 다리의 이름은 <널문다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대형 사건이 터졌다.
이름하여 1976년 8월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지도를 보면, 판문점의 서쪽에 UN사령부 소속의 '제5 관측소'가 있다 (분홍색 글씨 2번). 항공 사진으로는 잘 안 드러나 보이지만 저기는 언덕 위이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남한 방면 말단에는 UN사령부 소속의 '제3 초소'가 있다 (분홍색 글씨 3번). 건너편에는 물론 북한 '제4 초소'가 있고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날에는 UN사 제5 관측소와 UN사 제3 초소 사이의 표시 지점에, 커다란 미루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분홍색 글씨 5번). 그래서 언덕 위의 제5 관측소에서 제3 초소 내지 <돌아오지 않는 다리> 일대를 감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잖아도 북한은 제3 초소에서 근무하는 UN사 소속 병사들에 대해 납치 시도를 여러 번 했다고 한다.

결국 UN사 소속의 미군 장교와 병사, 그리고 여기에 소속된 근로자들이 미루나무를 베어내기로 했다. 그러나 북한은 자신을 더 수월하게 감시하려는 이런 시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 당시 공동 경비 구역에는 UN군이고 북한군이고 사람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에, 북한군은 각종 딴지와 협박을 걸면서 작업을 방해했다.

8월 6일에 이미 근로 부대 소속의 근로자와 경호원들이 한번 퇴짜를 맞고 쫓겨난 적이 있었기에, 8월 18일에는 나무의 줄기 대신 가지만 치기로 하고 작업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이 때 비극이 시작됐다.

북한군은 이번에도 작업을 방해하고 딴지를 걸더니, 나중에는 갑자기 수십 명의 병사들을 데려 와서는 작업 책임자이던 군인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JSA 내부엔 소총을 들고 들어오지는 못하니까). 특히 미군 보니파스 대위와 바레트 중위를 참혹하게 살해하고 말았다. 겁먹은 근로자들이 도망치면서 버린 도끼로 싸이코패스마냥 사람 얼굴을 마구 찍고 난도질했다. 이들은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피투성이가 된 채 끔살당했다.

사실, 이때 북한군은 “무고한 남조선 로동자들은 놔 두고, 미 제국주의 원쑤들에게 집중적으로 본때를 보여 주라”라고 상부로부터 지령도 받은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 부상자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고도 북한은 우리는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며 이게 다 판문점 일대에 긴장을 조장하려 한 너희들 잘못이라고, 안하무인과 적반하장의 극치의 개념 안드로메다 태도를 보였다.

이에 박 정희 대통령은 그 유명한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아울러 “내 군화와 철모를 당장 가져오라!”라는 말까지도 전해진다.
더구나 선전포고 급의 도발로 인해 젊은 장교를 둘이나 어이없게 잃은 미국은 정말 제대로 빡쳤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휴전 이후 최초로 데프콘(경계 준비 태세) 3이 떨어졌다. 참고로 북한의 위협이 전혀 없는 완전 평시가 5,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레벨은 4이다. 3이 되면 한미 연합 사령부에 작전권이 넘어가고 전군의 휴가· 외출이 통제된다. 우리나라 역사상 데프콘 3이 떨어진 때는 저 때와 1983년의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때 단 두 번뿐이었다.

그리고 8월 21일.
미국의 전설적인 나무꾼의 이름을 따 '폴 번연 작전'이 시행되었다.
미국 본토에서 수십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날아와서 한반도 상공을 배회했다. 그리고 바다에는 항공모함까지 와서 북한 해역을 기웃거리면서 무력 시위를 벌였다.

문제의 구역엔 특전사 소속의 수십 명의 무장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JSA 내부에서는 권총 이상의 무기를 휴대해서는 안 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M16 소총, 수류탄, 크레모아 등 살상 무기들이 즐비했다. 이들의 엄호를 받으면서 작업이 재개된 끝에, 문제의 미루나무는 가지치기 정도가 아니라 밑동만 남긴 채 완전히 베여 나가고 말았다. 아래의 before - after 사진을 보시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 작전 수행 중에는 경비 레벨이 데프콘 3이던 게 아예 전군에 실탄이 지급되는 데프콘 2로 올라갔다!
아마 인류 역사상 제일 살벌한 나무 베기 작업?작전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지 싶다.

이런 무력 시위는 단순한 나무 베기 이상으로 북한을 낚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만약에 북한이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총을 한 발이라도 쏘면서 도발에 응할 경우, 이 미군 병력으로 JSA에서 얼쩡거리던 북한군들을 모조리 섬멸하고 아예 북한 본토를 폭격해서 군사 분계선을 북쪽으로 올려 버리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미국의 초강수에 결국 북한은 깨갱 했다. 아무리 중국과 소련이 북한과 친하다지만 이 사건에서만큼은 그들도 북한을 편들 수 없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니가 병신 인증을 한 거니 빨랑 미국한테 사과나 해라”였다.
김 일성은 내부적으로 '북풍 1호'를 발령하여 전군을 무장시키고 대비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버로우 타고 무력 시위와 도발에 절대로 응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서 미국을 달랬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유감을 표명하고 아주 형식적으로나마 사과함으로써 사태를 겨우 수습시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JSA 내부에도 군사 분계선 경계가 확실하게 생겼다. 도끼 만행 사건 이전에는 판문점 회의장 안까지 칼같이 남북 금이 그어져 있는 수준은 아니었으며, 남한 쪽에 속한 JSA에 북한군 초소도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로 금이 그어졌고 그쪽의 북한군 초소는 모두 파괴· 철거되었다. 요컨대, 아래와 같은 사진은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의 결과물이라는 뜻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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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정적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폐쇄되어 남북 사람들이 오가는 용도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에 북한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거치지 않고 판문점으로 가는 길을 트기 위해 북쪽에 자기네만 쓰는 다리를 또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사흘 만에 뚝딱 건설되었다고 하여 <72시간 다리>라고 불린다. 구글 지도에서 북쪽으로 노란색 음영이 쳐진 길이 경유하는 다리이다.

판문점의 역사에 대해 얘기하면서 도끼 만행 사건은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잔학· 흉악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건의 이름에다 '도끼'라는 이름이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영어로도 tree cutting incident뿐만 아니라 axe murder incident라고도 불린다.

참고로 밑동만 남았던 그 문제의 미루나무는 나중에 아예 뿌리째 완전히 뽑혀 없어졌다. 언제 그렇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자리에는 현재 간단한 위령비만이 세워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글어스에도 가로수를 암시하는 흔적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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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3/10/23 08:29 2013/10/2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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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ful Grace of Jesus에 이어 본인이 최근에 팍 꽂혔던 명찬양이 있어 내 블로그에다가도 소개를 좀 하겠다.
참고로 CCM이 전혀 아니다. 가사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300년 전에 찰스 웨슬리가 썼고, 곡은 거의 200년 전에 토머스 캠벨이 만든 완전 고전이다.
유튜브 링크: And Can It Be That I Should Gain

클래식답게 리듬도 아주 규칙적이고 쉬운 찬송가 스타일인데 딱히 국내에 많이 소개된 것 같지 않다.
멜로디가 Wonderful Grace of Jesus만치 그저 화사 발랄한 느낌은 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려하고 웅장하고 감동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사가 정말 고퀄 일품이다. 너무 '찐하다'. 직접 보시라.

1.
And can it be that I should gain
An int’rest in the Savior’s blood?
Died He for me, who caused His pain?
For me, who Him to death pursued?
Amazing love! how can it be
That Thou, my God, shouldst die for me?

2.
’Tis mystery all! The Immortal dies!
Who can explore His strange design?
In vain the firstborn seraph tries
To sound the depths of love Divine!
’Tis mercy all! let earth adore,
Let angel minds inquire no more.

3.
He left His Father’s throne above,
So free, so infinite His grace;
Emptied Himself of all but love,
And bled for Adam’s helpless race:
’Tis mercy all, immense and free;
For, O my God, it found out me.

4.
Long my imprisoned spirit lay
Fast bound in sin and nature’s night;
Thine eye diffused a quickening ray,
I woke, the dungeon flamed with light;
My chains fell off, my heart was free,
I rose, went forth, and followed Thee.

5.
No condemnation now I dread;
Jesus, and all in Him, is mine!
Alive in Him, my living Head,
And clothed in righteousness Divine,
Bold I approach the eternal throne,
And claim the crown, through Christ my own.

후렴
Amazing love! how can it be
That Thou, my God, shouldst die for me?

어찌하여 나 같은 자가 감히 내 구주의 보혈의 수혜 대상이 될 수 있었는가!
나는 민폐만 끼쳤는데 그분은 나를 위해 죽어 주셨다.
죽으실 수 없는 분이 죽다니, 세상에 이런 신비· 미스터리가 따로 없다.
그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섭리를 누가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천사들도 하나님의 지혜의 깊이를 측량하려 했지만 다 실패로 끝났다.
후렴: 놀랍기 그지없는 사랑이로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실 수 있는가?

대충 이런 내용.
영어에서 it is는 흔히 it's로 줄여 쓰는데, 시나 만화 대사 같은 데서는 이따금씩 2음절이 아닌 1음절의 모음을 생략하여 'tis라고 줄이기도 한다. 우리말로 비유하자면 '오타쿠'를 오덕이라고 줄이느냐 덕후라고 줄이느냐의 차이와 같다.

감상평을 잠시 얘기하자면, 1절 처음에는 I should gain이라고 했다가 후렴에서는 thou, my God, shouldst라고 should가 굴절되는 차이가 발생한다. 가사가 맨 처음부터 And로 시작하는 것도 특이점.

4절은 죄에서의 자유를 묘사하면서 My chains fell off가 나오는데, 이것은 감옥에 갇혔던 베드로의 사슬이 풀리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행 12:7). 그리고 2절의 sound는 '소리'나 '건전한'이라는 뜻이 아니라 '깊이를 측량하다'라는 뜻으로, 성경에서 사도행전에서만 쓰인 용법이다(행 27:28). 따라서 이 찬양의 가사는 전반적으로 사도행전스러운 느낌을 준다.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가사가 무려 5절까지 있는 관계로 긴 편이다. 악보에 따라서는 천사가 어떻고 스랍이 어떻고 하는 너무 형이상학적인 2절을 주로 생략하고, 때로는 5절까지 생략하기도 한다. ㅎㅎ

우리 교회에서 지난 8월에 청년부 찬양으로 이 곡을 선정해서 불렀다. 가사는 물론 원판보다 깊이가 훨~씬 덜한 한국어 번역으로..
심지어는 나조차도 한 주간은 Looking for You마저도 제치고 이것만 들을 정도였다.
이런 찬양을 놔 두고 철도 음악을 들을 수는 없어서였다.

작사자와 작곡자는 이걸 한번 부르면서 테스트하고 나서는 “오~ 주여, 우리가 정녕 이런 찬양을 만들었단 말입니까? ㅠㅠㅠㅠ” 하면서 얼싸안고 꺼이꺼이 했을 법도 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3/10/11 08:26 2013/10/1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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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노선도!

지금 각종 SNS와 구글, 네이버 등 검색엔진에서 '성경 노선도'라는 이름으로 떠돌고 있는 아래 그림은 원저자가 본인이다. 김 용묵, 내가 고안한 것임을 이 자리를 통해 밝힌다.

너무 남사스러운 거 같아서 그림에다 딱히 저작권 표시를 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자기가 만들지 않은 작품을 자기 것이라고 사칭하는 일은 막기 위해서 최소한의 출처는 알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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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철도와 성경이라는 두 분야를 서로 융합해서 표현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끝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품을 최초로 만든 건 2006년경이다. 다음은 2006년임을 인증하는 최초의 그림 링크이다.

그러다가 본인은 내 혼자서 발로 그린 노선도를 디자인 일을 하시는 교회의 모 자매님에게 부탁하여 깔끔한 그림으로 만든 뒤, 청지기 카페와 킵바이블에다가 공개했다.
그랬는데 역시 킵바이블의 인지도 덕분인지 이 노선도는 인터넷에서 크리스천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만든 건지도 모르는 채로.. ㅎㅎㅎ

주황과 분홍 같은 붉은 계열은 신구약 성경의 배경 지식이 되는 기초에 속한다. 구약에서는 모세오경, 신약에서는 복음서이다.

파란색은 역사서이다. 구약에서는 역사서가 모세오경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에스더기 구간이 저런 선형을 하고 있는 이유는 시간적으로 느헤미야보다 이전이기 때문이다.
신약에서는 역사서가 사도행전이 전부이며, 사복음서 중 당연히 누가복음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자주색은 소위 대언서로, 신약에서는 계시록이 유일하다.
구약에서 위쪽은 major prophets이고 아래쪽 호세아부터는 minor prophets이다.

사무엘하~열왕기하, 그리고 역대기상~역대기하는 병렬로 배열되어 있고, 이를 대언서가 수직으로 관통한다. 왼쪽은 다윗 이전이고, 오른쪽은 다윗 이후이다.
그리고 에스라와 그 오른쪽의 책들은 바빌론 포로 귀환 이후의 시간대이다.

다음, 연두색은 문학서이다. 욥기는 창세기 시대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룻기는 역사적으로는 사사기 중간에 속하지만 결말이 다윗의 계보로 끝나는 점을 감안하여 그림과 같이 분류했다.
문학서는 위쪽을 차지하면서 예레미야서와 교차하여 예레미야애가로 끝나게 배치한 것이 특징.

신약을 보면, 사도행전 중간부터 바울이 활동하기 시작하므로 바울 서신서의 노선은 그림과 같이 분기되어 나온다.
시기적으로 사도행전 28장까지 다 끝난 뒤에(로마 감금 내지 그 이후 4차 전도 여행) 기록된 것은 사도행전보다 오른쪽에 놓인다.
데살로니가 서신은 바울 서신들 중 상당히 초기에 기록된 서신임을 알 수 있다.

히브리서는 바울 서신과 일반 서신의 경계에 있는 독특한 책이므로 응당 저렇게 배치된다.

즉, 이 노선도는
성경 각 책의 성격, 책이 다루는 연대나 기록된 연대, 그 책이 성경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적당히 시각적으로 나타내면서 책의 66권 배열 순서도 크게 안 흐뜨리려 했다.

사소한 고증 오류가 있을 수는 있으나, 취지는 충분히 설명되었으므로 그런 부분만 약간 고치면 성경에 대한 시청각 교육에 꽤 유용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쪼록 우리 인류에게 성경을 남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한국 철도에게 영광 돌리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10/08 08:31 2013/10/0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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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문득 든 아주 기초 수학 생각이다.
아래 그림은 포물선 2개 x^2+2*x (x=-2..0), -x^2+2*x (x=0..2)와, sin(x*PI/2) (x=-2..2)를 한데 포개 놓은 것이다.
원래 sin, cos 부류의 삼각함수는 주기가 2*PI인데, 이를 4로 좁혀 놓았다.
이렇게 보니까 포물선도 싸인파 곡선과 형태가 생각보다 꽤 비슷해질 수 있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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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부터 2까지 구간의 넓이를 정적분으로 구해 보면 이차함수인 포물선의 면적은 4/3인 반면, 진짜 싸인파의 면적은 4/PI이다. 즉, 포물선에 속하는 면적이 약간 더 크다.

그러나 이 두 곡선은 비슷하게 생겨도 그 본질은 굉장히 다르다. 미분을 해 보면 안다. 이들의 도함수를 그래프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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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파는 도함수도 기준 위치와 진폭만 다를 뿐, 여전히 전구간이 미분 가능한 매끄러운 싸인파이다.
그러나 두 포물선을 인위적으로 연결한 함수는 도함수가 직선으로 바뀌었고, x=0 지점은 연속이긴 하지만 기울기의 좌극한과 우극한의 값이 서로 달라서 미분이 불가능한 점이 되었다. 마치 절대값이 들어있는 일차함수처럼 된 셈이다.

이걸 또 미분하면 어떻게 될까?
싸인파는 역시 또 싸인파이지만 저 직선은 아예 양수 아니면 음수의 상수함수로 바뀌고, x=0 지점은 이제 연속이지도 않게 된다. 마치 인간이 만든 아무리 매끄럽고 뾰족한 바늘도 확대하고 또 확대해서 보면 울퉁불퉁한 표면이 드러나듯이 말이다.

우리가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체의 운동 양상은 관성에 의한 등속 직선, 아니면 힘을 한 쪽으로 균일하게 받는 포물선 형태가 있다. 하지만 출렁이는 물결이나 음파 같은 진동은 삼각함수에 속하는 싸인파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오히려, 포물선 두 개를 갖다붙인 것에 불과해서 미분하면 딱딱한 절대값 직선으로 바뀌어 버리는 곡선이야말로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형태인 것이다.

왜 싸인파가 자연스러운 움직임일까?
삼각함수는 무한소나 무한대로 발산하지 않고 주기를 갖고 -1에서 1 사이를 한없이 진동만 한다.
그러면서도 전구간이 단절 없이 연속이고 미분 가능하다. 미분을 해도 심지어 도함수조차 형태를 바꾸면서 주기적으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내가 수학적인 통찰력이 부족해서 그 원리를 다 '이해'와 '실감'은 못 하겠지만, 적어도 이런 함수는 돼야 정말 매끄러움의 본질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추측까지는 한다.

해석학적으로 볼 때 x^n의 x에 관한 미분은 n*x^(n-1)로 떨어진다. 지수함수 exp는 알다시피 (1/ n!)*x^n의 무한합으로 정의되어, x에 대해 미분하더라도 예전항이 바로 다음항의 미분 결과와 같은 꼴이 되는 형태이다.

그런데, 삼각함수인 sin과 cos는 exp를 홀수승 항과 짝수승 항으로 분할함과 동시에 각 항의 부호를 또 +, -로 교대로 오고 가게 바꾼 형태이다. 그래서 함수가 무한대나 무한소로 발산하지 않고 진동하게 된다. 신기하기 그지없다.

미적분학을 공부하면 삼각함수와 더불어 쌍곡선함수라는 물건도 배우게 된다.
얘는 sin과 cos에다가 h를 붙여서 sinh, cosh처럼 쓰는데, 지수함수를 이루는 무한급수에서 각각 홀수승항과 짝수승항만 쪼개서 취한 함수이다. 삼각함수와의 차이는 부호 스위칭이 없다는 점이 전부다.

그래서 쌍곡선함수는 비록 그래프의 모양은 삼각함수와 완전히 다르지만 삼각함수와 굉장히 비슷한 특성을 갖게 된다. sinh와 cosh는 미분하면 부호 스위칭이 없이 서로 상대편으로만 탈바꿈하며, 삼각함수의 덧셈정리와 비슷한 특성도 가진다. 삼각함수가 cos(x)^2 + sin(x)^2 = 1이듯이 cosh(x)^2 - sinh(x)^2 = 1이다. 전자가 원스럽다면 후자는 정말 쌍곡선스러운 형태이지 않은가?

쌍곡선함수는 사실상 수학 해석학적인 의미 때문에나 배우지, 삼각함수에 비해 실생활에서 유용한 구석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얘도 자연에서 의외로 중요한 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 cosh가 바로 현수선의 방정식을 나타내는 함수이기 때문이다.

현수선이란 밀도가 균일한 줄이 자기 길이보다 짧은 간격으로 양 끝이 어떤 중력장 안에 매달렸을 때, 자신의 무게로 인해 중력의 방향(아래)으로 축 늘어짐으로써 형성되는 선을 말한다.
이것도 포물선과 비슷해 보여서 혼동되기 쉽지만, 포물선하고는 수학적인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현수선은 증가의 폭이 이차함수가 아니라 지수함수와 같은 스케일이다.

알고 보면 아치도 포물선이 아니라 현수선을 뒤집은 모양이다. 현수선 모양으로 구조물을 건설하는 게 모양이 역학적으로 가장 안정적으로 형성된다고 한다.
왜 현수선이 cosh 함수의 형태로 형성되는지 수학적으로 증명하려면 물리학, 미적분학 등 여러 방면의 이론이 동원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현수선은 일부만 잘라 내도 그 모양이 그대로 유지된다. 다시 말해 U자 모양으로 된 현수선의 양 끝의 일부를 잘라내서 u부분만 잡고 있더라도 기존 부위가 받는 힘은 변함없으며, 그 구간의 선 모양이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삼각함수와 쌍곡선함수가 각자 자기 분야에서 포물선과는 다른 매끄러움, 출렁거림 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게 경이롭다.
자연 현상으로부터 얻은 물리량이라는 게 태생적으로 연속적인 데이터의 형태이다 보니, 물리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수학, 특히 미적분학의 발전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했다는 게 느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3/10/05 08:27 2013/10/0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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