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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 수용소의 참상 같은 것보다는 덜 심각한 분위기로 비교적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1. KBS 박 진희 북한 전문 기자

작년 말에 북한에서 장 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권좌에서 쫓겨나고 숙청당하던 당시에, 아주 이색적인 기자가 TV 전파를 타서 눈길을 끌었다.

박 진희 기자는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훗날 탈북하고, 일본을 거쳐서 2008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빡세게 교정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구수한 평양 사투리가 아주 신기하며 인상적이다.
정치범 수용소 출신인 강 철환, 그리고 김일성 대학 출신인 주 성하 씨는 신문 기자인 반면 저 사람은 방송 기자이다. 게다가 여성. 이런 경우는 최초이다.

이 사람을 개인적으로 인터뷰한 기사도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2. 김 정일 사망 발표

그 당시 TV에서 한동안 모습을 안 비추는 것 같던 리 춘히 아나운서가 검은 상복을 입고 완전 슬픈 표정으로 나타났다.
“위대한 령도자 뽀그리우스 동지께서 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ㅠ.ㅠ”

17년 전에 김 일성이 죽었을 때도 보도 스타일이 저랬는가 궁금하다.... 가 아니라 당연히 그때도 온갖 미사여구로 혹부리우스의 죽음을 미화하고 애도하고 난리가 났었다.

3. 북한 관광을 온 외국인

굉장히 흥미로운 자료이다. 저 외국인들은 북한을 방문한 건 둘째치고라도 어떻게 이 정도 퀄리티의 영상을 녹화해 갈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마 몰래 북한 정부에다 달러를 엄청 많이 줬지 싶다.

도착하자마자 북한 출신의 통역 가이드가 붙는다. 외국인이 North Korea라고 말하자 가이드는 곧바로 DPRK라고 표현을 교정한다. 아시다시피 북한에서는 자기 나라를 가리킬 때 '북'과 '한'이라는 형태소를 모두 싫어하기 때문이다.
쟤들은 김 일성 동상 앞에 헌화와 참배-_-를 한 뒤 전쟁 박물관과 심지어 판문점까지 관광을 한다. (2011년이라 아직 김 정일 동상은 없던 시절.) 북한의 위치에서 휴전선 이남의 태극기를 바라보는 장면은 마치 달에서 지구를 보는 것만큼이나 굉장히 흥미롭다. 국내 매체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시점이니 말이다.

4. 3차 핵실험 보도

“조선 중앙 통신사 보도! 제 3차 지하 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
저 봐라.. 핵실험 한번 했다고 앵커는 펄럭이는 인공기를 배경으로 눈 부릅뜨고 목에 힘 주고 얼마나 의기양양하게 포고를 하는가? 병맛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북한 용어를 빌리자면 참 '기백 넘치는'(?) 말투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저 뉴스 보도 중에도 “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라는 표현이 있다.

저런 북한 특유의 호전적인 웅변· 선동 말투는 한반도의 공산주의자들이 진작부터 개발해서 써먹어 왔지 싶다. 북한은 순수한 의미의 공산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공산주의자들이 사용한 온갖 추악한 거짓 선동 전술은 여전히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건 변함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9/18 08:27 2014/09/1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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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제사나 고사 같은 것이야 사람의 생사 교리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지내지 않는다.
하지만 죽은 조상이 아니라 살아 계신 부모님에게 세배하느라 절하는 건 딱히 문제될 게 없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요삼 2 같은 구절의 의미를 부여하여 좋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심지어 “메리 크리스마스”도 문화 통념적인 차원에서 크게 잘못된 관행은 아닐 수 있다. 이교도의 비성경적인 절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대놓고 드루이드교의 인신공양 관습을 희화한 할로윈 같은 급은 아니니까.

하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쉽지 않은 문제다.

하다못해 불교에는 단순 명복 내지 애도를 넘어, “고인의 극락왕생과 성불을 빕니다”라고 자기네 내세관이 가미된 덕담 문구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내세관이 여타 종교와는 상당히 다르다 보니, 그런 말을 선뜻 사용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우리 쪽 사람들은 교리가 교리이다 보니 누가 돌아가시면 “그래도 아버님은 복음을 전해 들었을 때 분명 의식이 살아 있었으며, 예수님 영접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고개도 끄덕이셨다. 그러니 구원받고 돌아가신 거다” / “아리까리하다” 이런 식으로 얘기가 종종 나온다.

“고인이 꼭 구원받았고 죽어서 하늘로 가셨기를 우리도 진심으로 바랍니다”...가 바로 예수쟁이들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유족을 위로할 때 머릿속으로 실제로 하는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명복'이라는 단어 자체는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이라는 뜻이다. 이런 비성경적인 기원의 단어를 이용해서 성경적인 뜻이 오해 없이 전달될 수 있을까 싶다. 다른 표현으로 바꾸고 싶어도 딱히 대안이 안 떠오르니 말이다.

기독교는 하늘-지옥 말고 다른 사후 세계를 가르치지 않는다. 윤회, 환생, 귀신, 완전 소멸 같은 게 없으며 산 자와 죽은 자가 교류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면 과격하고 매정하게 보일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뒤끝 없이 깔끔하며 온갖 고인드립 미신들을 원천봉쇄하는 건전한 교리이기도 하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사후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에 기독교는 오로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만을 시행할 뿐,
무슨 순교한 믿음의 선배들에 대한 묵념이나 추모 같은 건 안 하는 것이다.
솔직히 교회 역사상 순교자가 얼마나 많이 생겼던가? 군대에서 온갖 장병들의 무용담을 기리고 추모하는 논리를 적용하자면, 예배 때도 매번 그런 묵념이라도 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기독교는 부활을 믿고, 그 믿음의 선배들이 지금도 다 살아 있으며 죽어서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게 교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조치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9/07 08:33 2014/09/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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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여러 번 글을 통해 내 의견을 피력했듯이.. 대한민국의 건국/초대 대통령인 이 승만 박사를 매우 존경하며 그는 잘못한 것보다 잘한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지엽적인 병크나 비리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적적으로 건국되고 지켜지고 유지된 자랑스러운 나라이다.

김 구의 <백범일지>만 읽다가 이 승만의 <독립정신>도 접하고 나면, 정말 독자의 지성과 품격, 안목까지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 그 꼬질꼬질하던 옛날 구한말에 벌써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를 생각하고 한 나라의 이상향을 옳은 방향으로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니. 사악한 공산주의자들의 흉계를 외교력으로 저지하고 나라의 반쪽이라도 붉게 물들지 않게 지켜 낸 것을 감사하게 된다.

이 박사에 대해서 독립 운동가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악의적인 흠집과 필요 이상의 온갖 중상모략에 대해서 본인은 거의 대부분 실드가 있고 대응책이 있다. 임시정부 시절에 부린 똘끼라든가 친일파 등용(?) 정도는 얼마든지 해명 가능하다.

중국의 마오 쩌둥을 생각해 보자.
그는 잘못된 경제 정책으로 수천만 명의 인민을 굶겨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대약진운동에 문화혁명 홍위병 등 온갖 삽질 개뻘짓을 자행하여.. 196, 70년대에 우리나라가 반사 이득으로 경제 도약을 할 기회까지 줬다. 6·25 때 일본이 덕을 본 것만큼이나 우리도 결과적으로는 중국의 삽질의 덕을 본 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오 쩌둥은 중국 내부에서 여전히 공7 과3 정도의 국부로 예우받고 있고, 심지어 국내에서도 마오 쩌둥 존경한다는 사람까지 있다. -_-;; 정신 좀 차리시길. 마오 쩌둥은 6·25 때 중공군 파병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멸공 북진통일의 기회를 영원히 박탈해 버린 적장이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말라.

“비록 적장이지만 훌륭하다” 급의 다른 실드는? 내가 보기엔 글쎄...??
그리고 인간적으로 훌륭한 면모가 있다고 해서 당신은.. 히틀러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이토 히로부미 같은 사람을 존경하고 흠모하고 위인전에까지 선뜻 올리시겠는가? -_-;;

아무리 사람마다 가치관과 견해가 차이가 날 수 있다 해도, 마오 쩌둥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 누가 보더라도 이 승만보다 더 존경할 만한 인물은 절대로 아니다. -_-;;;; 최소한 한강 다리 폭파 병크보다는 우리에게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친 인물이다.
저건 6·25 때 보도연맹인지 국민방위군 같은 거 일일이 다 끄집어내서 때리는 잣대와 동일한 잣대라고는 절대로 볼 수 없다. 내 말 틀렸나?

이런 잣대하고만 비교해 봐도 이 승만에 대한 잣대만 비정상적으로, 불순한 의도로 지나치게 가혹하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걍 건국하지 말고 간판 내리고 김 일성 치하에서 통일 조국 이루며 살았어야 했다”가 아닌 이상.. 그 시절에 불가능했던 일을 못 이뤘다고 헛소리 하는 건 건전한 생각이 아니며 이성적인 판단도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난 이 승만을 미화, 우상화, 숭배 따위를 하지 않는다. 단지, 멀쩡한 애국자 초대 대통령에게 별 희한한 생트집 구실로 부관참시를 하고, 그냥 긍정적인 면모를 얘기만 하면 미화네 숭배네, 일베충 뉴라이트 수꼴 이 따위 헛소리를 해 대며, 저 사람 독재가 김 일성 독재와 똑같았다는 둥의 역사 왜곡, 능멸, 난도질을 하는 꼴을 보니 피거솟을 느끼며 그걸 극도로 혐오하여 반박할 뿐이다.

뭐 아무튼.
그렇다고 해서 이 승만이 대통령으로서 실책이 없는 건 당연히 아니며 잘못한 것도 적지 않다. 설령 아랫사람 부하 잘못이라고 해도, 그런 병신 같은 부하들을 통제를 못 하거나 인재 등용을 제대로 못 한 건 대통령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노 무현 전대통령을.. 법조인으로서는 좋아하지만 그는 대통령 그릇이 아니었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듯, 이 승만도 외교 독립 운동가로서만 좋아하고 대통령으로서는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정도야 충분히 정당한 비판이고 이견이다. 그 사람이 외교를 잘한 것만치 내치를 잘하지는 못했다는 것은 나도 응당 동의하는 바다.

다만, 내가 주장하는 것은 이 승만의 정치적 과오는.. 최소한 누가 자꾸 헐뜯는 것처럼 절대 악의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과정에서 발생한 돌발행위나 과잉진압, 너무 위급하고 나라가 가난하고 열악해서.. 피아 식별도 안 되고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 여건이 아니어서, 인재를 도무지 구할 수 없어서, 지금 뭐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을 대상으로 당장 뭐든지 다 보장하고 허용하기에는 빨갱이들의 거짓 선동이 너무 위험해서 등등등...으로 대부분~~ 실드가 쳐진다.

옛날에 했던 비유를 또 들겠다. Windows 95가 32비트 선점형 멀티태스킹 OS임에도 불구(자유 진영 민주주의)하고 도스와 16비트 코드가 섞인(구시대 악습, 친일 경찰 간부, 일부 자유 제약 등등) 불안정하고 BSOD가 만연한 이상한 제품으로 만들어졌던 건.. 그 당시 일반 “사용자들의 컴”이 Windows NT / OS/2를 도저히 돌릴 수 없는 환경이었고 도스 호환성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 없다. 지금 컴퓨터 환경을 갖고 옛날에 Win95를 만든 엔지니어를 욕하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승만이 악의적이지 않았다는 건 차라리 햇볕 정책이 비록 실패이지만(북한 체제나 주민 인권 개선에 아무 도움도 안 됐고 우리 돈만 엄청나게 축났고, 도리어 그게 다 핵 개발로 돌아왔고.. -_-) 악의적이지는 않았다고 믿는 것보다는 100배 이상 훨~씬 더 쉽게 믿을 수 있다. 자, 더 흥분할 것 같으니, 개인의 정치색이 들어간 논쟁은 여기에서 커트하도록 하고.

본론으로 돌아오면, 잘 알다시피 북한의 갑작스러운 6·25 남침 때 우리나라 정부와 군대는 우왕좌왕 허둥대다가 영남 지방까지 밀려나면서 졸전을 거듭했다. UN군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그때 대한민국이 지도에서 지워질 뻔했다. 그런데 이게 우리 입장에서는 꼭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이기만 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승만 대통령은 저 북한 빨갱이들이 조만간 전쟁을 일으킬 거라고 미국에다가 추가 군사 지원을 끊임없이 요청했지만 미국이 그 요구를 묵살하고 쟤들이 설마 그러겠느냐고 안이하게 대처한 것도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 군부 역시 대통령의 선견지명과는 반대로, 국지전에서 더 나아간 전면전 남침 조짐이 거듭 보고되는 걸 무시하고 태평하게 지내기도 했었다. (그렇게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천하의 군사 강국 미국조차도 옛날에 진주만 기습 폭격을 당하고 9·11 테러를 당했듯이..)

개전 당시에 대통령 수뇌부가 서울을 너무 금방 포기해 버린 것, 국민들에겐 페이크를 치면서 마치 세월호 선장이 도망치듯이 먼저 피난을 가 버린 것 때문에 여론이 안 좋아졌다. 이건 오늘날까지 이 승만을 씹는 사람들이 단골로 꺼내는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건 그렇게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A. 이 승만 대통령은 6월 27일 새벽에 측근들로부터 피난을 안 가면 안 되겠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난 국민을 버리고 서울을 떠날 수 없다”라고 완강하게 고집을 부렸다. 프란체스카와 측근들이 1시간 가까이 설득한 뒤에야 비로소 피난을 갔다.

B. 반대로 무초 대사가 26일 밤쯤에 대통령을 찾아가 벌써 서울을 버리고 떠나서는 안 된다고 1시간 가까이 설득했다. 그러나 “내가 잡혀서는 안 돼. 좀 안전하게 피난 가야겠어”라는 대통령의 말에 더 설득을 포기했다.


이 두 모순되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공존한다. 누가 무슨 얘기를 갖고 대통령을 1시간째 설득했다는 건지? 둘 다 책 인용이고 여러 군데에 동일한 형태로 복붙이 돼 있어서 신뢰도는 충분히 갖춘 source이다.

그런데, 내가 잠시 리서치를 한 바로는.. 교차검증이 잘 안 된다.
A 문헌에서는 무초 대사는.. 참모진이 이미 대전으로 내려간 뒤부터에나 등장하며, B 문헌은 반대로 A 정도의 디테일로 26~27일 사이의 대통령의 구체적인 전후 행적이 나와 있지 않다.
한밤에 국제 전화를 걸어서 “군사 지원이 필요하니, 자고 있는 맥아더를 깨워서라도 당장 불러 달라. 안 그러면 한국에 있는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한 명씩 죽을 줄 알아라” 이렇게 대통령이 협박조로 강하게 얘기한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맥아더는 그 당시 미국이 아닌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과 시차가 비슷함)

“A 사건에 의해서 피난이 결정된 뒤에 B에 기록된 대로 무초가 최후에 피난을 만류했다”.. 라고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는 게 자연스러울 듯하지만, 그렇게 종합하기에는 A가 말하는 시간대가 너무 늦다.

설마 진짜로 B와 A가 나란히 시간 순으로 벌어진 걸까? 이 승만이 그렇게까지 우왕좌왕 변덕쟁이였을 것 같지는 않은데. (처음엔 피난 가기로 결심 → 무초와 싸우고 난 뒤 피난 안 가기로 슬그머니 마음을 고쳐먹음 → 다시 측근의 제안을 받아들여 피난)

참고로 이 승만에 대해 '덜 긍정적'으로 진술하는 B도 조 갑제 닷컴 같은 우파 논객 홈페이지에 소개되고 인용돼 있다.
또한, 엔하위키조차도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와 함께 A안과 B안을 모두 소개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혼란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팩트가 아니라 이 승만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서 각자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A 또는 B를 미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나도 한때는 A 설만 있는 줄 알았으나, B도 신뢰도가 무시 못 할 수준이어 보인다.
이건 정치 성향이나 정치인 호불호 문제가 아니라 역사 팩트 문제이기 때문에 편견 없이 자료를 나중에 좀 더 조사해 봐야겠다. 어느 쪽이든 역사 왜곡과 조작이 부디 없기를.

Posted by 사무엘

2014/08/24 08:33 2014/08/2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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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턴 워커 중장 (1889~1950)

웨스트 포인트를 졸업한 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에 모두 참전하고, 나중에 한국 전쟁에도 중장 계급으로 참전했다. 그가 세운 가장 큰 공은, 필사적으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함으로써 국군과 유엔군이 더는 물러나지 않게 하고 시간을 버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내가 여기서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코리아를 지키겠다.” 이게 성공한 덕분에 나중에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도 가능했다.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않은 임무에 사병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워커의 옆에 있던 맥아더도 워커를 거들면서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라고 “까라면 까”를 돌려서 표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러나 워커 장군은 1950년 12월 23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지프를 타고 이동 중인데 맞은편에서 다른 군용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돌진해 왔다. 그걸 피하려다 지프는 길 밖으로 굴러떨어져 뒤집혔고, 운전병과 장군은 모두 현장에서 즉사했다. (하긴, 한글학자 석인 정 태진도 6·25 중이던 1952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었고..)

가해 차량도 군용차였기 때문에 이 승만 대통령이 나서서 그 차의 괘씸한 운전병을 총살형에 처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정도였다.
하긴, 저 때는 아직 즉결처분 제도가 있던 막장 시절이었다.
북한군의 갑작스러운 침략에 국군은 졸전에 후퇴를 거듭하면서 사기가 떨어지고 군 기강이 개판이 돼 있었다. 명령과 통솔이 안 먹히고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부대가 와해되는 지경이다 보니.. 오죽했으면 정말 고육지책으로 윗사람이 자기 말 안 듣는 부하를 재판도 없이 초법적으로 응징할 권한을 줬었다. “내 명령이 있기 전에 멋대로 전선에서 후퇴하는 놈은 곧바로 총살이다!” 같은 식.

그랬는데 현실에서는.. 아 글쎄 사단장이 자기 기분 좀 나쁘다고, 훈시하는데 좀 몸을 움직였다고 사병을 제멋대로 총살하고,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명령을 수행 안 한다고 중대장이 소대장을 꼬투리 잡아 총살하는 지경이 벌어진 것이다. 무슨 보노의 삼류만화 패밀리 <아침조회> 편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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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하물며 미군 장군을 교통사고로 죽게 한 운전병이 과연 목이 온전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워커 장군의 유족들이 이 승만을 필사적으로 뜯어말렸고, 이건 고의가 아닌 실수로 인한 사고임이 밝혀지면서 해당 운전병은 징역 3년형으로 감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즉결처분 제도는 부작용과 병폐가 너무 많기도 하고, 또 극약 처방이 아니면 지휘가 안 될 정도의 위기가 그럭저럭 해소도 된지라 이듬해인 1951년 7월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걷다'라는 동사에 -er이 붙은 walker이라는 단어를 본인은 레밍즈 게임에서 처음으로 봤던 듯하다. 특별한 작업이나 임무 없이 그저 좌우로 돌아다니기만 하는 보통 생쥐를 가리키고 있으면 저 명칭이 뜬다. 오늘날 서울 광장동에 조성된 '워커힐'이라는 지명과 호텔 상호는 저 워커 장군을 기려셔 명명되었다.

수 년 전엔 지인 초대를 받아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하루 투숙한 적이 있었는데, 시설도 호화롭고 산과 강이 어우러진 주변 경치도 굉장히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한다.

2. 윌리엄 딘 소장 (1899~1981)

6· 25 개전 초기이던 7월 중순에 대전을 사수하는 전투를 지휘했던 분이다. 그러나 병력의 열세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대전을 내어주고 후퇴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 과정에서 길을 잘못 들어 대열에서 이탈하고 실종되었다.

그래서 미군은 특공대를 열차에 태우고 대전으로 다시 투입하여 그를 구출하려 했으나, 북한군의 맹렬한 공격으로 인해 이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 작전에 자원하여 미카 129호 증기 기관차를 운전하다가 적진에서 총격을 받고 순직한 분이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김 재현 기관사이다.

딘 소장은 참으로 놀랍고 한편으로 부끄럽게도, 한국인의 배신과 밀고를 몇 번 당하는 바람에 무려 투스타의 신분으로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혔었다. 평양에까지 끌려가기도 했지만 그나마 심각하게 험한 꼴을 당하지는 않았으며, 1953년 휴전 후에 포로 교환 차원에서 석방된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미국이 대인배인 건, 이런 천하의 배은망덕한 행위를 특별히 부각시키고 트집잡고 늘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딘 소장은 자신을 밀고한 사람이 나중에 체포되었을 때도 그를 용서하고 감형을 탄원했다고 한다.
온갖 편파적인 선동질과 역사 왜곡, 시체 장사로 가득한 오늘날 좌익 매체들의 사악한 짓거리와는 참으로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미군을 구하기 위해 희생된 한국 철도인의 은혜를 미국은 끝까지 잊지 않았다. 여러 차례 미국의 높으신 분들이 고인에게 감사를 표했을 뿐만 아니라 2012년 6월 26일에는 고인에게 미국 국방부 특별 민간 봉사상(특별 공로 훈장)이 추서되었다.

전후에 딘 소장은 영예롭게 예편하였으며, 천수를 누리다 별세했다.

3. 조지 리비 중사 (1919~1950)

공병대 소속의 미군 병사로, 위의 김 재현 기관사와 매우 비슷한 시기와 장소(1950년 7월 19일)에서 전사한 분이다(이 사람은 7월 20일!). 대전 전투에서 딘 소장이 후퇴할 때 같은 그룹에 속해 있었던 셈이다.

그는 후퇴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위험한 일(= 자기를 적군에게 노출하는)을 용감하게 도맡아 하고, 심지어 인간 총알받이 역할까지 하면서 적을 교란시키고 전우들의 탈출과 부상병 이송을 도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결국 총알을 여러 발 맞고 과다출혈로 산화한다. 살아남은 전우들에 의해 그의 무용담이 알려지면서 그에게는 훈장도 일찌감치 추서되었다.

영문 위키백과에는 이 행적만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에 대해서 대전 전투 이전의 행적이 더 알려져 있는 듯하다. 북한군의 진격이 코앞에 임박한 위험한 상황에서, 파주의 임진강 위에 놓여 있던 어느 다리를 끊어서 진격을 저지했다고 한다.

파주시는 임진강 이북이 민통선으로 봉인된 형태인데, 장파리에 가 보면 국도 37호선과 민통선 지대를 연결하는 한 교차로가 '리비 사거리'라고 명명되어 있다. 본인은 작년에 이 길을 따라 들어가서 허 준 선생 묘소에 가 봤었다.
이것이 저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리고 민통선 지대로 들어가는 다리가 바로 '리비교'이며, 이게 그 사람이 끊었던 다리를 훗날 복원한 것이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4/08/19 08:20 2014/08/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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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해설

흐음, 지금까지 내가 블로그에 십계명 자체를 분석한 글을 올린 적이 없었구나.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법으로, 성경에서 출애굽기 20장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나중에 신명기 5장에서 재탕된다.
십계명은 곰곰이 뜯어 보면 굉장히 잘 만든 법 체계이다.
각각의 아이템들이 다 죄라는 vector space에서 서로 일차독립을 이루는 벡터를 구성하고 있다. 쉽게 말해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색깔)를 서로 독립된 분야(R, G, B??)별로 잘 망라했다는 뜻이다.

십계명의 속성을 쪼개 보면 이러하다.

I. 하나님 관련

1.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 형상: 하나님을 잘못된 방식으로, 혹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우기면서 섬기지 말라.
3.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일컫지 말라

신앙 정체성을 국가 정체성에다 비유하자면, 2와 1은 각각 내란죄-외환죄 정도에 대응하는 굉장한 중죄이다. 천주교의 십계명은 1과 2를 한데 뭉뚱그려서 '반역죄' 정도로 취급하는 듯한데, 본인의 입장에서는 신념상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금송아지 사건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이 대놓고 주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러 떨어져 나간 사건이 아니었다. 단지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간주하고 얘에게 경배했을 뿐이다.

3은 한국어는 딱히 그리 심한 게 없지만, 심심하면 Oh my God! Goddamn! Jesus! 이런 신성모독적인 감탄사를 남발하는 게 정확하게 해당한다. 성경이 말하는 그 심각하고 끔찍한 문자적인 지옥은 안 믿으면서, What the hell.. 이런 저주를 가벼이 입에 달고 다니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II. 약간 특이한 구석이 있는 중간 계명

4.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어떤 나쁜 짓을 하지 말라” 패턴이 아니라, “신이 정해 준 휴일엔 욕심 부리지 말고 조바심 내지 말고 반드시 쉬어라”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지금 쉬느라 생산성이 저하되는 것은 하나님이 유· 무형으로 나중에 다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이 계명을 지키려면 역시나 믿음이 필요하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보통일이 아닌 게, 딱 이 날을 노려서 적의 침략을 받기라도 하면 어떡할 참인가? (당장 우리나라의 6·25 전쟁만 해도 북한군이 일요일에 딱 맞춰 쳐들어왔었다!).

물론 안식일은 유대인의 표적이기 때문에 이 계명은 신약 크리스천에게 문자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 유일한 계명이다. 이걸 주일 지키는 것에다 적용하는 건, 마치 열역학 제2법칙을 들이대면서 진화론을 반박하는 것만큼이나 4계명을 굉장히 간접적으로 영적으로 적용한 귀결이다.

5. 부모를 공경하라: 사람 관련이긴 하되, 그냥 일반인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나님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특별한 사람에 대한 계명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패륜죄를 굉장히 싫어하신다. (출 21:15,17; 레 20:9; 특히 압권은 신 21:18-21)
안 지켰을 때 채찍만 가혹한 게 아니라, 지켰을 때 이 땅에서 장수할 거라는 당근까지 문맥에서 직접적으로 주어진 유일한 계명임.

III. 사람 관련

6. 살인하지 말라: 물리적인 폭력으로 지을 수 있는 죄 중에서 단연 1위. 하나님의 법은 “ '살인하지 말라'를 어기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살인은 흉계를 품고 남을 고의로 죽이는 것을 말한다. 고의성 없는 과실치사나 정당방위, 전쟁 등은 해당되지 않음.
7. 간음하지 말라: 꼭 물리적인 폭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사람 몸에다 쉽게 지을 수 있고 자기 자신의 몸까지 실질적으로 더럽힐 수 있는 심각한 죄이다. 간음은 성경에서 영적인 의미도 매우 크다.

8. 도둑질하지 말라: 남의 것을 속여 빼앗는 모든 행위에 대한 철퇴이다. 이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황금률 등 인생의 기본 원칙을 위반하는 죄이다.

9. 거짓 증언하지 말라: 거짓말에 대한 철퇴이긴 한데, 일단 이 문맥이 가장 좁은 범위에서 말하는 것은 판결을 굽게 하는 법적 위증을 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이건 그야말로 입만 뻥긋함으로써 지을 수 있는 죄이다.
10. 탐내지 말라: 이제는 입을 움직일 필요조차 없이 마음과 생각만으로 지을 수 있는 죄가 십계명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것은 인간을 다른 무수히 많은 죄들로 끌어들인 죄이며 스스로 완벽을 자처하던 사도 바울을 떡실신시킨 죄이기도 하다.

십계명은 신약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매우 유익하며, 제4를 제외하면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할 규범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행실을 하도 강조하다 보니, 십계명을 평생 지켜야 구원이 유지된다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율법주의 농간에는 속지 마시길 바란다.

이 자리에서 또 구약 율법과 신약 복음의 조화를 논하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매우 부족하니, 결론만 간단히 말하겠다. 구약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법은 “나 이렇게 외형적인 법을 딱 맞춰 지켰어요. 나 잘했죠? 이 정도면 내 힘으로 칭의와 구원이 가능하겠죠?”라고 으스대라고 있는 게 절대로 아니다.
성경은 십계명이, 아니 하나님의 법 전체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추상적인 계명에 그대로 요약되어 있다고 말한다.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롬 13:9)

Posted by 사무엘

2014/08/10 08:34 2014/08/1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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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하철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차라리 선로로 대피하는 게 낫다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소사보다는 질식사가 훨씬 더 많다는 게 상식이다.
일반적으로는 깊은 지하가 빛도 안 들어오고 산소도 부족해서 생존에 불리한 게 사실이지만, 지하철은 말 그대로 지하에 뚫린 길이다. 지하가 길이 더 없는 막다른 던전이 아니라는 큰 차이가 있다.

유독가스는 위로 굉장히 빠르게 잘 퍼진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때도, 발상을 전환하여 앗싸리 선로로 대피해서 멀찌기 인접역까지 걸어 간 후 거기서 지상으로 빠져나온 소수의 사람들은 다 별다른 부상 없이 멀쩡히 살아 나왔다.
그 반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당장 지상과 더 가까워 보이는 화재 발생 당역의 출구를 통해 나가려 했으며,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살아서 빠져나가지 못하거나, 생존하더라도 유독가스 흡입으로 인해 몸이 상했다. 후자가 더 안전할 것 같은데 결과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특히나 지하 n층 이하의 매우 깊은 역이라면 정말로 무리해서 지상으로 빠져나갈 생각일랑은 버리고 선로로 대피하는 게 더 훨씬 더 안전할 것이다. 선로가 단선 쌍굴이라면 통행하기가 좀 무섭겠지만, 그래도 지하철에서 그 정도 사고가 났다면 어차피 근처 열차들은 안전 장치 내지 사령부로부터의 지시를 받고 멈추니 열차에 치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단, 요즘은 스크린도어가 역설적으로 이런 선로 탈출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2. 구명조끼는 탈출 후에 부풀려라

육상 교통수단과는 달리 비행기나 배는 사고가 났을 때 사망, 부상뿐만 아니라 실종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탑승 전에 신분증으로 탑승객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한다.
또한 얘들은 추락이나 침몰로 인해 동체가 수면에 떨어질 수 있다. 안전벨트와 산소 마스크는 비행기에만 있지만, 구명조끼는 두 교통수단이 공통으로 갖추고 있다.

비행기나 배의 위급 상황에서 구명조끼를 잘 착용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거기에다 공기를 주입해서 부력을 만드는 건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해당 동체를 탈출하여 밖에 나온 뒤에 해야 한다.

이미 물에 빠져서 내부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배나 비행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잠수를 해야 할 수도 있는데, 너무 일찍 공기를 집어넣으면 이것 때문에 동체에서 탈출도 못 하고 거기서 갇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1996년의 에티오피아 항공 961편 피랍 사건과 최근의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선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람들이 부풀어 오른 구명조끼를 입고 있던 것은 바르게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저 비행기 피랍 사건도 마찬가지다. 동반 자살을 유도하던 테러리스트 때문에 비행기는 연료가 고갈되어 추락했다. 기장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기체를 바다 위에 최대한 안전하게 착수시켰으며, 적절한 대처를 한 공로를 인정받아 나중에 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170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 중 목숨을 부지한 사람은 50명에 그쳤는데, 사망자들은 구명조끼를 기내에서 미리 부풀리는 바람에 침수되고 있는 동체에 갇혀서 최후를 맞이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4/07/30 08:34 2014/07/3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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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할 때는 절대로 남 따위와 비교하지 말고 성경과 비교하고 하나님의 법과 '절대적인 잣대로' 비교한다.
그 반면, 위의 권위와 위정자에 대해서는 “이게 그나마 불신자가 불신자를 통제하고 죄의 결과를 제어하려는 최선의 방법이구나. 비록 멍청하거나 사악하거나 혹은 둘 다일 때도 왕왕 있지만, 이거라도 없으면 세상은 더 망가질 수밖에 없으니, 내 신앙을 가로막는 것만 아니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고 순종해야지”라는 '상대적인 잣대'로 접근하면 된다.

이 생각이 딱 정립돼 있으면 정신 건강에 여러 모로 좋다.
큰 절대악에 대해서는 절대 침묵하고서 불가피한 필요악의 작은 폐해만 자꾸 부각시키면서 없애고 뒤집어엎자고 드는 선동질, 반골 기질, 쓸데없는 세상 비관과 피해의식, 하나님보다 더 자비로운 인권 드립, 그리고 인간의 죄성상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사회 제도가 존재 가능하다고 속삭이는 속임수 등등에 넘어갈 일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저건 전부 성경과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내가 가끔 정치색 띤 글을 쓰는 건(특히 종북들 까는) 전부 이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아이템들로 한정해서이다.

2.
신약 성경에 나온 긍정적인 얘기들, 대표적으로 빌 4:13 (나를 강하게 하는 그리스도), 롬 8:28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 같은 것들은...
쉽게 말해 너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환경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예수님을 닮고 그분의 열매를 맺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얘기다. 세상적으로는 오히려 바보 되고 손해 보더라도 말이다. 빌 4장 전후 문맥을 보면 아주 쉽게 유추 가능한 얘기임. 무슨 예수 버프를 받아서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내 야망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얘기가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롬 8:28도 당신이 육신적으로 절대로 원하지 않는 중간 과정과 결말을 다 포함할 수도 있는 얘기다. 신약 성경은 단순히 “차카게 살자” 수준을 넘어서 흔한 통념보다 굉장히 영적이고 고차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가 무엇인지, 그런 문맥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요한복음을 읽을 때쯤부터 미리 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도 “제발 복 좀 주시옵소서”에 앞서 “우리가 이미 받은 복이 얼마나 큰지부터 알 수 있는 안목을 주시옵소서” 기도부터 먼저 한 에베소서 1장의 바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신약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이상한 은사주의 기복 신앙 같은 데에 빠질래야 빠질 수가 없다.

3.
신구약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는 인간의 구원이나 크리스천의 양육 같은 게 아니다. 겨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기에는 성경엔 나머지 잉여스러운 내용이 분량이 너무 많고 그쪽 묘사들이 “쓸데없이 고퀄”이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초림보다 재림 예언이 더 많고, 이뤄진 예언보다 아직 안 이뤄진 예언이 더 많이 적혀 있다. 특히 이스라엘, 유대인의 문자적인 회복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이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문자적인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아니라고 가르치거나 교회가 유대인을 대체했다거나 영적 유대인 드립 친다거나, “예수님을 죽인 나쁜 민족” 운운하면서 반유대주의를 조장한다거나, 14만 4천 명이 자기 교단이라고 가르치는 것들은 전부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이단 교리다. 그런 데서는 당장 떠나고 나오시라.

성경 내용을 영적으로 적용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읽히는 문자적 1차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는 하고서 “그 다음에” 내 개인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영적 교훈을 찾아야 한다. 도대체 어느 문맥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고 어디서 “원수를 사랑하고 왼뺨 맞으면 오른뺨도 대라”가 적용되는지를 제대로 분간할 줄만 알아도 최하 95%가 넘는 이단에는 안 빠질 수 있으며, 성경 읽는 기본 자세의 반은 마스터한 게 아닐까 싶다.

4.
세상에 복음과 구원 말고 공짜란 없다. 어디 하나가 공짜라면 다른 한쪽에서는 반드시 바가지나 착취나 희생이 존재한다. 아니, 구원이라는 공짜마저도 예수님의 보혈 덕분에 가능한 것이니 거시적으로는 공짜가 아닌 셈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인이 예전에 경제관 쪽으로 글을 쓴 적이 있고 성경 교리 쪽으로도 글을 길게 쓴 적이 있다. 중요한 주제이니 관련 글을 반드시 참고하시라.

5.
크리스천의 윤리관은 그야말로 완전 보수 수구 꼴통급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역시 예전 글을 참고하시라.
그리고 역시 위의 예전 글에서 언급한 내용이다만,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게 끝이 아니라는 걸 알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죽은 자에 대한 각종 이상한 미신(귀신 따위), 필요 이상의 신세 한탄, 트라우마, '천추의 한' 같은 게 (일단은) 없다. 이것도 사람의 멘탈을 굉장히 건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가치관이다.

6.
끝으로..
요즘 같은 세상에서 성경대로 살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신이 대체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구심이 드는가?
예수 믿느라 나 혼자만 잔뜩 손해 보고 생존 경쟁에서 뒤쳐지고 부당한 일,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생각이 드는가? 도대체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고 어떻게 살라는 건지 감이 안 오는가?
내가 인간적인 논리를 동원해서 그 질문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을 줄 수는 없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마냥 동네북, 호구처럼 로봇처럼 살라는 말도 당연히 절대 아니다. 다만 난 이런 말은 해 줄 수 있다.

먼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구원 조건, 하나님을 찾는 통로로.. 인간의 다른 그 어떤 스펙이나 외모, 능력도 모조리 제끼고.. 제일 하찮고 나약하고 바보 같아 보이는 '믿음'이라는 것만을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이걸 기회로 삼아야 한다.

왜 하나님이 세상을 그런 원리로 만들어 놓았는지 제대로 이해는 못 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로 공평해야 하는 것은 진짜 공평하게 돌아가게 해 놓으셨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보다 더 잘났고 더 똑똑하고 더 부유한 사람들이 진작에 하나님을 당신보다 먼저 만났을 것이며 게임 다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데 필요한 그 수단을 인간에게 너무 불공평하게 배분해 놓으신 하나님이 불공평하고 잘못된 꼴이 된다. 다른 능력자들이 다 안 믿을 때 당신이 믿어야 인생의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부당한 일, 억울한 일이라고?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악한 카인을 벌을 내려 일찌감치 죽여 버린 게 아니라 반대로 의인 아벨이 카인에게 살해당하는 걸 허락하실 때부터.. 애초에 그 시절부터 불공평하기 시작했다. 저건 전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사건도 얼마나 추악하고 황당무계한 비리와 부조리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는지 역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조차 그 악한 시스템을 한시적으로나마 인정하고 그 시스템을 역이용하여 자기 구원의 사역을 수행하셨으니 우리 역시 너무 피해의식 갖지 말자.

또한 우리의 모든 마음속 생각과 일거수일투족이 다 훗날 심판석 앞에서 회계보고가 될 텐데, 정산되지 않고 숨겨진 죄가 드러나서 하나님 앞에서 쪽팔림을 당하는 것만큼이나.. 그렇게 의로운 행실 때문에 손해 보고 부당함과 고난을 당한 것도 “똑같은 맥락으로” 그때 다 드러나서 보상받는 날이 온다는 걸 생각해 보자. 그거.. 영구적인 손해가 절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란 건 아Q 같은 근자감 정신승리법이 아니다. 영적 배후가 걸린 각종 문제들은.. 그 문제 자체가 물리적으로 제거됨으로써 해결되기보다는
내가 문제를 바라보는 발상을 바꾸고 안목을 바꿔서 성경이 약속한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평강(빌 4:7)을 얻음으로써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욥기만 봐도 하나님은 욥의 고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안 하셨지만 욥이 알아서 데꿀멍하게 된 것이다.

또한 악한 마귀의 통치하에 있는 현 세상은.. 사람이 그 믿음을 행사를 못 하게 시스템을 착착 만들어 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령 충만한 크리스천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이상한 사람들, 잘못 믿고 성경을 잘못 적용하는 사람들의 바보짓, 병크를 잔뜩 부각시키면서 이래서 종교에는 너무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영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한다. 하나님의 뜻을 오· 남용하는 것, 교회와 유대인을 구분 못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
이러니 바른 성경 원천을 토대로 바른 믿음을 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 오늘날의 모습이다.

“저런 사람이 믿는 예수라면 나도 한번 믿어 보고 싶다” 정도의 엄청난 선한 간증이 있는 크리스천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런 평판은 나조차도 감당 못 하며 기대 안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괴감 가질 필요도 없고,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내 힘으로 이를 악물고 뭔가 엄청난 극기과 선행과 고행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더욱 없다.

난 딱 하나가 목표이다. 오로지 교리만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전해서, 누가 그걸 안 믿고 반대하더라도 뭐가 기독교인지 정확하게 알긴 하고서 제대로 반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안 믿을 권리는 있어도, 기독교가 아닌 걸 기독교라고 주장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굳이 긍정적인 변화가 아니더라도 부정적인 편견을 막는 것도 인정받는 것 맞다.

나일롱 신자인 건 하나님 앞에서 겸손도 아니고 자랑도 아니다. 교회사에 등장하는 순교자나 각종 '성인'(?)들의 행적이 자기와는 완전 별개 딴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이 압수되고 성도들이 화형을 당하던 시대에 치러지던 영적 전쟁이 있고, 성경이라 불리는 물건이 넘쳐나지만 그게 죄다 변개되는 오늘날 같은 시대에 치러지는 영적 전쟁도 따로 있다. 난 그걸 추구하며 지낸다.

Posted by 사무엘

2014/06/18 08:33 2014/06/1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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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미갈 이야기

1. 다윗의 조약돌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장면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 같이 좀 생각해 보자.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왜 조약돌을 5개씩이나 챙겨 갔을까? (삼상 17:40)

“발사한 돌이 빗나가는 경우 / 골리앗이 한 발 만에 안 죽을 경우에 대비해서” 같은 답변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필살의 일격 단 한 발로 미간을 명중시켜서 인간 흉기 골리앗을 즉사 내지 최소한 기절이라도 시키지 않으면, 다윗은 곧바로 반격을 당해서 다음 돌은 쏴 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이 조약돌은 FPS 용어로 치면 일종의 레일건인 것이다. 골리앗은 BFG로 무장해 있었고 말이다. 그러니 한 발 이후로는 의미가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비장한 각오를 단단히 한 사람들은... 거사를 치르기 전에 일부러 자기에게 주어진 리소스를 딱 자기 여건에 맞춰 제약하는 퍼포먼스를 행하곤 했다. 일종의 배수진이랄까?
 
안 이숙 여사는 왕복이 아닌 편도 배삯만 치르고 일본에 갔으며,
윤 봉길 의사는 폭탄을 던지러 가기 전에 김 구와 손목시계를 교환하여 자기가 더 저렴한 것을 챙겼다.
옛날 백제의 계백 장군은 마지막 전투를 치르기 전에 자기 처자식부터 미리 죽였다..;;
 
다윗도 만약 그런 식으로 비장하게 행동했다면 필생필사의 각오로 돌을 달랑 하나만 챙겨 가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런 스타일로 행동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데 자기는 죽을 일이 절대로 없으며, 골리앗을 무찌르고 멀쩡히 돌아온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일이 틀어질 가능성 따윈 전혀 고려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그건 영락없이 '근자감'처럼 보였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는 가진 자의 여유마냥 별 생각 없이 평상시처럼 여러 스페어 조약돌을 챙겼다.

아니, 어쩌면 그는 골리앗 정도를 초월하여 아예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당장 현실의 목표물인 골리앗을 원 샷 원 킬 하는 건 너무 당연한 소리이고, 혹시 이 돌발상황 결과에 불복하여 예정에 없던 다른 거인들이 또 튀어나와서 시비를 걸면, 그놈들까지 이 조약돌로 잡아야겠다는 준비까지 한 건지도 모른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거인이 골리앗만 있었던 건 아니며 당장 골리앗에게도 혈육상의 친동생이 있었다고 나오니까 말이다.
 
이 PvP에서 다윗은 골리앗을 PK하고, 골리앗이 갖고 있던 커다란 검을 득템했다. 참고로 사무엘기상 17장을 읽어 보면, 성경은 골리앗을 골리앗이라고 부르는 걸 극도로 기피하면서 의도적으로 '그 블레셋 사람'이라고 에둘러 가리키는 걸 볼 수 있다.

2. 사울의 둘째 딸 미갈

성경에서 사울 왕의 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건 다윗이 골리앗을 죽여서 완전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된 뒤부터이다. 영웅이 된 건 좋은데 다윗이 너무 유명해지고 왕보다도 인기가 올라가자, 그는 왕의 눈 밖에 나 버렸다.

이거 뭐 누명을 씌워 죽일 수도 없고.. 왕은 꼼수 차원에서 다윗을 전쟁터에서 죽게 하려고 높은 군사 직위를 주었으며, 자기 딸을 다윗에게 주어 결혼시켰다. 사실, 왕의 사위로 만들어 주겠다는 건 삼상 17:25에서 이미 약속된 사항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 같은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감히 왕의 딸과 결혼할 수는 없다고 제안을 고사했다. 이에 왕은 다윗을 또 전쟁터에서 죽게 할 명목으로, 아무 지참금 따위 안 받을 테니 다만 민족의 원수 블레셋 사람 100명을 죽여서 놈들 포피만 가져오면 둘째딸 미갈을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다윗은.. 미갈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가서 블레셋 사람 200명의 포피를 갖고 멀쩡히 돌아왔다. 그래서 결혼에 골인했다.
생각을 해 봐. 사랑하는 마누라를 얻으려고 목숨 걸고 전쟁터에서 사람 수백 명을 죽이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맺어진 결혼 생활은 그리 단란하지 못했으며 오래 못 갔다.

미갈은 거짓말까지 해 가며 다윗의 도피를 도와 줘야 했으며, 별거 모드에 빠졌던 그녀는 훗날 아버지의 명에 의해 '발디/발디엘'라는 다른 남자에게로 강제 재혼을 당했다. (삼상 25:44) 그 동안 다윗은 타지에서 또 아비가일, 아히노암이라는 아내를 두 명이나 추가했고 말이다.

허나 여기에도 반전이 있었으니...
나중에 다윗은 긴 도피 생활을 마치고 왕이 된 후, 발디에게서 미갈을 도로 뺏어 와 버렸다! (삼하 3:14-16)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마누라를.. 그것도 자기 나라 왕에게 빼앗긴 발디는 엉엉 울면서 미갈을 뒤따라 갔는데.. 군대 대장 아브넬의 “그만 꺼져”(성경에는 그냥 Go return이지만..ㅎㅎ) 한 마디에 “넹.. ㅠ.ㅠ” 깨갱 하고 버로우 타 버린 완전 안습한 남자로 성경에 나온다. 성경에서 처지가 제일 처량한 남자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다윗과 미갈은 재회를 하였으나, 궁극적인 결말은 또 다시 불미스러웠다.
사사 시절 이래로 방치되어 있던 언약궤가 돌아오던 날, 다윗은 왕의 체면도 다 버리고 너무 즐거워서 백성들과 덩실덩실 춤추고 즐겼는데...

미갈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남편에게 “품위라고는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리면서 당신 참 가관이더군요”라는 요지로 비아냥거리면서 굉장한 악담을 퍼부었다.

다윗도 이것만은 영적인 문제인지라 그냥 넘길 수 없었고, 아내에게 굉장히 실망을 한 듯하다. “나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 앞에서 나는 지금보다 더 어리광 부리고 기꺼이 더 망가질 수도 있소. (그리고 그러더라도 나는 당신이 언급한 그런 천한 여자들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더 대접을 받을 테니 걱정 마쇼.)”

그 뒤로 미갈은 자녀 없이 쓸쓸한 말로를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삼하 6:23) 그 시절에 유부녀가 자기 자녀가 없는 것은 거의 죄악에 가까운 굉장한 치욕이었다는 점을 생각하자.

이것이 단순히 금슬에 금이 간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생리학적 불임을 만들어 버리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그러나 인간의 출산을 굉장히 주관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성경의 전반적인 심상으로부터 유추했을 때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것이 성경에 등장하는 미갈의 마지막 장면이다. 처음엔 다윗이 미갈을 좋아한 게 아니라 미갈이 다윗을 먼저 사랑했다고 나오는데.. 본의가 아니게 시집을 다시 갔다가 돌아온 뒤, 결국 다윗의 여러 아내들 중 랭킹 끄트머리로 밀려나면서 파경으로 갔구나. 인생 한번 참 파란만장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4/06/09 08:37 2014/06/0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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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전 중에 수시로: 눈치껏 차선 바꾸고 잘 끼어들고 들이대기 (배짱과 순발력)
2. 운전하는 전체 시간 내내: 한눈팔지 말고 앞차가 갑자기 서 버리거나 길 옆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는 상황에 대비하기 (멘탈의 지구력이 뛰어나야 함)
3. 목적지에 도착한 후: 이 차가 차지하는 공간과 최소 회전반경을 숙지하여, 좁은 곳에서도 차 안 긁고 주차 잘 하기 (공간 감각)

(0. 운전하기 전 평소에 최소한의 자동차 점검 내지 정비 능력, 그리고 차량 고장이나 사고 발생시 멘붕·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능력)

이들이 서로 완전히 별도의 독립적인 영역을 차지하는 게 틀림없다.
운전 학원에서 교육하고 면허 시험을 치는 내용도 이런 분야에 맞춰서 편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각종 운전 잡설.
승용차는 내 몸뿐만 아니라 나만의 자그마한 개인 공간을 함께 이동시켜 주는 물건이며, 대중교통과는 달리 차를 타러 가고 기다리고 갈아타는 과정에서 까먹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굉장히 아껴 준다.

또한 이동 과정에서 급격한 환경 변화나 온도 변화를 야기시키지 않아서 더욱 좋다. 그런 외부 요인으로 인해 몸에 피곤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업무 능률과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 가령, 밖에서는 추워서 옷을 껴입고 있다가 지하철 안에서는 더워서 옷을 벗는 식으로 온도 조절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밖에 비가 내리고 있으면 대중교통에 비해 자가용의 아늑함, 안락함과 편리함이 크게 증가한다. 비록 도로 사정 때문에 신속함(속도)은 별로 증가하지 않을지 모르더라도 말이다.

본인도 비 내리는 밤에 차에서 야영을 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비는 차의 외형을 매우 더럽힌다는 점에서는 악재이다. 그 빗물이 흐르다가 마르면 물방울 모양으로 온갖 더러운 흙먼지 자국이 차의 표면에 남기 때문이다.

본인은 처음에는 “어제 세차했는데 오늘 비 오네”라는 푸념이, 굳이 세차를 할 필요가 없는데 해 버렸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저 말은 어제 기껏 세차를 해 놓은 게 또 아무 소용 없어지게(=차가 더러워지게) 생겼다는 뜻이다.

비 오는 날 밤의 운전은 비와 야간이라는 두 변수가 합쳐져서 매우 까다롭다. 빗물 때문에 도로가 미끄럽고 더 위험하니 평상시보다 감속이 필수인데, 시야 확보도 잘 안 된다. 단순히 전방 시야뿐만 아니라 본인이 현실적으로 가장 절실하게 체험한 애로사항은.. 도로의 차선이나 횡단보도 정지선조차도 제대로 안 보인다는 것이다.

* 에어컨
요즘 날씨가 날씨인지라 요 근래부터는 드디어 전구간 에어컨을 켠 채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정체 없는 자동차 전용 도로를 경제 속도로 원활히 주행하고 나면, 평소에 연비는 12km/l대는 거뜬히 나오는 편이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주 원활하게 주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찍힌 주행 연비는 10.xkm대.

에어컨이 연비를 10~20% 가까이 깎아먹는다는 말은 사실인 듯했다. 실험으로 입증됐다.
에어컨을 켰다고 해서 차가 딱히 더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연비는 슬그머니 떨어져 있었다.

힘 좋은 디젤보다는 휘발유 차량이, 그리고 대형차보다는 저배기량의 소형차· 경차일수록 에어컨 틀 때 차가 타격을 받고 휘청이는 정도가 더 커진다.
에어컨을 가동하면 엔진룸 쪽에서 무슨 기계가 추가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옛날에 만들어진 소형차의 경우 차 엔진 회전수가 대놓고 살짝 더 올라가기까지 한다.

자전거를 몰아 보면, 헤드라이트를 켜기 위해 바퀴에다 소형 회전 발전기만 좀 연결시켜도 그 발전기의 오버헤드 때문에 자전거 페달 밟는 게 약간이나마 더 힘들어진다. 하물며 자동차의 엔진에는 발전기가 상시 연결되어 있는데, 거기에다 에어컨 실외기뻘 되는 공기 압축기까지 연결되니 부담이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에어컨의 전력 소비량은 자동차에서 최상급으로 전기 많이 잡아먹는 부품인 헤드라이트보다도 수 배 이상 더 많다고 한다.
그러니 헤드라이트에 에어컨을 다 켜고 와이퍼까지 켜는 비 내리는 여름 밤에는, 성능이 시원찮은 소형차의 경우 주행 중에도 배터리에 과부하가 걸리기 쉽다고 한다.

단, 이 에어컨의 전력 소비량이라는 게 안 그래도 엔진 힘까지 쭉쭉 빼 쓰고서 그것도 모자라서 또 전기까지 추가로 그렇게 별도로 쓴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설마?
추운 겨울에 히터는 엔진열을 이용해서 송풍기만 가동하여 거의 공짜로 가동할 수 있지만, 반대로 열을 밖으로 빼내는 건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인 것이다.

온도 말고 단순히 송풍기의 세기만을 바꾸는 건 어차피 연비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걸로 알려져 있다.
또한,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앗싸리 에어컨 트는 게 나은지, 아니면 창문만 열어서 차라리 공기 저항으로 인해 연비가 떨어지는 게 더 나은지는... 이렇다 할 답이 없는 듯하다. 둘이 어차피 비슷하게 비효율적이니, 차라리 에어컨 틀어서 정숙하게 주행하는 게 대체로 더 낫다는 게 중론인 듯. (물론 당장 차의 동력 효율뿐만이 아니라 지구와 환경까지 거시적으로 생각한다면, 에어컨이 치르는 대가가 더 크겠지만 말이다.)

또한 이건 바꿔 말하자면, 공기 저항이 에어컨에 필적할 정도로 차의 성능을 깎아먹는 주범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4/06/07 08:24 2014/06/0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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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세

제아무리 불신자 무신론자라 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죽음 이후의 세계는?
이건 마치 “목 잘린 직후의 느낌이 어떻냐”만큼이나.. 체험해 본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질 못하니 실험으로 입증할 수 없다. 당연히 과학적인 방법론이 접근할 수도 없으며, 사람들이 제각각 자기 종교관에 의지해서 신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윤회· 환생이든, 완전 소멸이든, 하늘과 지옥이든 그 무엇이든지 말이다.

이 분야는 불가지론의 영역이다 보니, 옳다 그르다 같은 감정 싸움은 딱히 없다. 뭐, 굳이 하나 지적하자면 “예수 안 믿으면 다 지옥 간다니 너네 종교는 참 편협하고 배타적이다” 정도의 딴지만 있을 뿐.
그러나 그건 협박이나 공갈이 아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이 죄를 심판해서 죄인을 지옥에 보낸다는 거지, 그 말을 전하는 크리스천이 다른 사람을 제멋대로 해코지 차원에서 지옥에 보낸다는 말이 아니다. 그 교리가 안 믿어지면 그냥 개인적으로만 안 받아들이고 안 믿으면 된다.

그리고 기독교의 내세관은 그 배타적인 것 딱 하나만 받아들이고 넘기면, 나머지는 생각보다 굉장히 뒤끝 없고 깔끔하고 건전하다! 이건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귀신 없고 미신 없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교류 없고, 죽은 사람 갖고 현질(=돈 내라)을 유도하는 지긋지긋한 종교 장난질이 없다! 그 대신 부활의 소망만이 있을 뿐이다.

이 점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람이 죽고 나서 혼이 소멸하고 모든 게 그대로 끝이라면... 내가 단언하는데 이 세상을 지금처럼 힘들게 살 필요라고는 눈꼽만큼도 조금도 없다~~!!! 자살이 전혀 죄가 될 필요가 없다. 누구라도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5. 보편적인 윤리

기독교가 가르치는 성경적 윤리관은 어지간한 세상 사람들이 ‘진보 트렌드’라고 생각하는 것들과는 완전 정반대인 수구꼴통(?) 성향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일단 필요악이라고 여겨지는 것에는 다 긍정적이다. 사형제, 체벌, 나라 지키는 군대, 공권력 같은 것. 절대적인 선악 기준이 없을 때는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처럼 흉악범의 인권이 더 중요한지 피해자 유족의 인권이 더 중요한지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은 단호하기 때문이다.

사형제가 있어서 범죄가 줄어들었느냐, 범죄자의 교화는 어떡하냐 그딴 건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다. 성경의 판결은 “흉계를 품고 사람을 고의로 죽게 한 사람은 이 땅에서 살 자격이 없다.” / “ ‘살인하지 말라’를 어기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인 것이다. “너 고소”가 아니라 “너 죽어”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흉악범도 개인적으로야 예수 믿고 구원받을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형벌에 의해 세상 하직해야 한다. 자기 목숨 바쳐서 피해자 유족들의 한을 풀고 자기 피로 땅을 깨끗하게 해 준 뒤, 빨랑 하늘나라 가야 된다.

그리고 성(sex) 관념도 진짜 깔끔하다. (1) 결혼한 (2) 남자사람과 (3) 여자사람이 하는 것 말고는.. (1)부터 (3)까지 한 단서라도 누락되거나 바뀐 것은 전부 음행, 죄악이고 그것도 굉장히 큰 죄이다.

이런 법칙들이 온갖 인간적인 부조리와 모순을 핑계로 문란해지고 무너졌다고 해서 인권이(특히 여성 인권) 실질적으로 향상되거나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야금야금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헬게이트만이 열릴 뿐이다. 당장 당신의 부모님이 당신을 낳은 뒤 책임감 있게 가정을 꾸리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성장한 당신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물론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늘 이상한 통계 자료나 주고받으면서 답 없는 쳇바퀴 같은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이 윤리관의 경우, 다른 창조/진화나 성경 같은 이슈와는 달리, 굳이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단순히 보수적인 성향 때문에 크리스천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6. 예수님의 부활

위에서 소개된 여러 아이템들도 중요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기독교와 비기독교를 가르는 가장 크리티컬한 변수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인식이다!

세속 백과사전이나 세계사 만화, 인명 사전, 위키백과 같은 데서 ‘예수’를 찾아 보시라. 제아무리 개독안티라 해도 예수라는 인물 자체가 허구라고는 안 그런다. 그건 역사적 증거가 너무 분명해서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열이면 열 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얘기로 끝난다. 아니면 부활까지도 소개는 하지만 “성경이라는 책에 따르면 그랬다고 한다, 기독경에 따르면 그랬다고 전해진다”라고 단서는 꼭 붙이고서, 우리는 저 진술에 책임 안 진다는 식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 내 말이 맞는지 틀린지 직접 확인해 보아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묻혔다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라고 쓰는 순간 그 책은 객관성을 잃고 특정 종교 집단의 교리를 대변하는 경전(?) 내지 간증집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부활이 역사적으로 진짜 사실인지 아닌지는 이 시점에서 관심사가 아니다.

정체불명의 위경이나 이상한 사료를 토대로 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예수는 사실 완전히 죽지 않고 기절해 있었으며, 나중에 제자들의 도움으로 무덤을 탈출한 뒤,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서 후손을 남기고 죽었다는 얘기까지 지어낸 개독안티가 고대로부터 있었다. 고대의 철학자나 석학들도 현대의 지성인 무신론자보다 지성과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얼마 못 가 쏙 들어갔다. 지금도 예수 부활을 공격하는 얘기가 강경한 개독안티 커뮤니티 위주로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성경 자체에 대한 공격 내지 창조/진화보다는 강도가 “훨씬” 덜하다. 이 주제는 너무 민감한 나머지 마치 ‘내세’만큼이나, “진실은 저 너머에” 수준으로 그냥 쉬쉬 하는 분위기다.

그야말로 오합지졸 겁쟁이었던 예수님 제자들이 불과 수십 일 만에 예수 전하느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역전의 용사로 뒤바뀐 것, 고대로부터 수많은 신자들이 자기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면서 믿음을 지킨 것, 더 나아가 오늘날까지 기독교회가 수백, 수천 년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우려먹는 레퍼토리이자 복음의 핵심 근거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다. 새마을호 열차에서 Looking for you가 흘러나온 사건 따위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그게 호락호락 정면으로 뒤집히고 반박당할 것 같은가? 아예 예수님을 비롯해 사도들의 존재를 송두리째 다 무시하고 부정하지 않는 이상, 부활만 쏙 부정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예수님이 기절했다가 주변의 도움으로 무덤을 탈출해서 살아난 거라면 제자들이 그걸 모를 수가 절대 없었을 텐데, 겨우 그런 예수님을 보고는 역전의 용사로 바뀌고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담대히 증언하다가 순교까지 했다고? 에라이..

모르긴 몰라도 아폴로 계획 달 탐사 자작극 음모론을 반박하는 것만큼이나 예수 기절설 같은 건 단박에 반박 가능할 것이다. 법학자로서 무신론· 회의론자이다가 예수님의 부활이 법적으로 너무 분명하고 확실한 사건이라는 걸 발견한 사이먼 그린리프 같은 사람은 과연 무엇을 알아낸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 예수라는 인물이 정말 부활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성경 전체의 실질적인 진위 여부와 여러분의 혼의 미래까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 결론

잠시 눈을 돌려 국가와 국가 사이의 분쟁을 좀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는 당장 북한과 휴전 상태이고 대립 상태이다. 물론 365일 24시간 내내 긴장만 하고 있으면 너무 피곤하고 피차 좋을 게 없으니, 가끔은 대화도 시도하고 화해 무드도 만들려 노력한다. 그러나 둘은 근본적으로 통치 체제와 지향하는 바가 180도 완전히 너무 다른 정치 집단이며 상대방을 적대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 이 상태로는 둘은 도저히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잡아먹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일본하고도 미묘한 애증의 관계가 있다. 경제 쪽으로는 분명 협력과 공존 관계이며, 개인적으로야 한국인과 일본인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매우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독도 때문에 여전히 대립하고 있고, 과거사 문제도 해결 기미가 안 보인다.

바로 이런 세상 국가들의 정치적 분쟁과 비슷한 맥락으로..
개인간의 영적 세계에는 예수님을 두고, 생명의 기원을 두고, 성경을 두고 다양한 분쟁 지대가 존재하고 있다. 이것도 일시적인 휴전 상태일 뿐, 완전한 종전이 아니다. 기회가 되면 이 불씨는 언제든지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다. 크리스천은 불신자와는 얼마나 넘사벽급으로 다른 사고방식을 갖췄는지 자신의 영적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건 혈과 육의 싸움이 전혀 아니다. 그러니, 이런 걸로 신자와 불신자끼리 감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싸운다거나, 한 신념을 남에게 폭력과 협박으로 강요한다거나, 그걸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차별의 근거로 활용한다거나 해서는 정말 절대로 안 된다. 크리스천은 다른 불신자와도 ‘가능한 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롬 12:18).

그런데.. 종교 쪽 논쟁은 서로 싸워 봤자 별로 답도 안 나오고 서로 말도 안 통하고 감정만 나빠진다고 해서 아예 완전 입 다물고 말을 말고 “너는 네 식대로 믿어라. 나는 내 식대로 믿는다”고 선을 마냥 그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성경의 판결대로라면 이건 또 다른 극단이며 크리스천의 직무유기죄로 빠진다. 성경을 읽다 보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진술로 인해 그럼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건지 싶은 딜레마가 느껴질 때가 왕왕 있다.

이런 문제의식이라도 느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크리스천으로 최소한의 영적 생명력은 갖췄다고 하겠다.
그런데, 나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고, 모든 분야에서 개독안티와의 어떤 논쟁도 다 이길 방대한 지식을 갖춘 것도 아니다. 그리고 비록 악의적인 의도는 아니었지만 왕년에 간증 잃을 병맛 같은 행실도 많이 남겼다. 게다가 나 또한 하나님의 모든 사고방식이 다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성품을 다듬고 내 행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도록, 오늘은 어제보다는 더 나은 모습을 보이도록 간구하고 노력을 할 뿐이다. 최소한 상대방이 복음이 무엇이고 기독교 교리가 무엇인지 알기는 제대로 알고서 거절하든가 반대하지, 삐쳐서 마음을 확 닫아 버리는 일은 없게 내 말에 너를 ‘위한다’는 진심을 담으려 노력한다.

사실, 불신자가 예수 믿기 위해서 지금 당장 안 믿어지는 창조론이라든가 하나님의 경륜을 납득해야 할 필요도 없고, 자기 힘으로 술· 담배를 끊어야 할 필요도 없고, 성경관· 윤리관 같은 사상을 인위로 개조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 노력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불신자의 입장에서 구원을 위해 당장 가장 중요한 건 4번과 6번일 것이다. 일단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나머지 믿음은 추가로 공급된다.

그러니 길거리에서 복음 전하다가 불신자가 1~3, 5번 같은 걸 갖고 불필요하게 논쟁을 걸면서 시간을 끌면, 적당히 커트를 하는 기지도 발휘해야 한다. 그런 데에 끌려가면 힘만 빠지지 결론 절대 안 난다.

결국 미우나 고우나 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께서 유한하고 부족하고 여건마저 제각각 불공평(?)하게 타고나는 사람에게서 원하시는 것은.. 다른 육신적인 스펙이 아니라 ‘믿음’으로 귀착된다.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그래도 공평하게 해 놓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공평한 거다.

기독교는 처음에 잘 이해가 안 되는 몇몇 전제조건 아이템만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뒤에는 나름대로 상당히 건전한 원칙과 일관성과 체계가 잡혀 있다. 크리스천들은 그걸 세상에 전해야 한다. 그리고 안 믿는 건 개인 자유인데,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고 기독교가 아닌 걸 남들이 기독교라고 부를 권리는 없다는 것도 분명히 전해야 한다. 이렇게 영적 전투를 치르는 것이 신자의 권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5/06 08:28 2014/05/0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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