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이야 x86이라는 컴퓨터 아키텍처가 세계를 완전히 평정해 버려서 PC부터 슈퍼컴까지.. 그야말로 모바일만 빼면 다 쓰이는 것 같다. 그리고 인텔은 그 x86이란 걸 최초로 개발한 본가로 너무나 유명하다.

x86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하위 호환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아주 점진적으로 진화해 온 아키텍처이다.
1970년대에 8086과 8088이라는 16비트 CPU에서 시작됐는데, 심지어 더 옛날에 8비트 시절의 8080도 x86의 전신 조상이라고 볼 수 있다. 8008이나 4004까지 가면 너무 멀어지는 것 같지만...;;;

이 x86은 1980년대 중반 80386 버전에서 32비트로 확장됐고, 그로부터 20여 년 뒤엔 64비트로도 확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만, x86-64는 인텔이 아니라 AMD에서 처음으로 내놓았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이런 주류 라인인 x86 말고 인텔에서 만든 CPU라니, 뭔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 중에서 Windows, Office, Visual Studio가 아닌 계열을 탐방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 이런 것들이 있었다. 다들 32비트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1. iAPX 432 (1981)

인텔에서 개발한 최초의 32비트 CPU는 80386이 아니라 바로 이놈이었다.
16비트 x86이 최대한 저가 보급형에 현실 타협 컨셉으로 개발됐으니, 그 다음 32비트 CPU는 큰 포부를 갖고 실험적인 기능을 몽땅 때려박아 보자~~ 이런 목표를 갖고 개발됐던 것 같다.

x86만 해도 명령어가 아주 촘촘하고 내부 구조가 복잡한 CISC 방식이었는데, 얘는 그 이념이 더욱 극대화됐다. 운영체제나 특정 객체지향 언어 vm에서 소프트웨어적으로 담당할 일을 CPU가 회로 차원에서, 길다란 인스트럭션 하나 직통으로 최대한 지원하는 것을 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그 시절에 특수 분야에서 현역으로 쓰이고 있던 Ada 언어와 아주 찰떡궁합을 이루려 했다. 오오~ 그러면 이 CPU를 타겟으로 하는 Ada 컴파일러는 intrinsic 명령이나 구문이 많이 제공됐겠다.

글쎄, 객체지향 언어라면 RTTI 기능이나 가상 함수/메시지 테이블을 뒤지는 기능이 CPU빨로 직통 지원된다면 그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그 시절 기술로 CPU 안에 지나치게 많은 기능을 집어넣는 건 부작용을 야기했다.
CPU 내부가 너무 복잡해졌고 제품의 생산 비용도 치솟았다. 그런 주제에 얘는 동시대의 "16비트" 프로세서인 80286보다도 속도가 훨씬 느려졌다.

그나마 이 CPU의 장점을 살릴 수 있게 코드를 잘 생성하는 컴파일러를 개발하는 것도 영 지지부진했다. 단점은 한 트럭인데 장점도 애매하고.. 총체적인 난국이었으며 결국 이 아키텍처는 실패로 끝났다.

이런 홍역을 치렀으니, 인텔에서 1985년 말에 80386은 기존 8086의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고 호환성도 살리면서, 정말 바꿔야 하는 부분만 16비트에서 32비트로 확장하는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32에서 64비트로 넘어갈 때 Itanium은 망하고(너무 파격적) AMD64가 살아남았었다(좀 보수적). 그런데 이와 같은 유형의 삽질이.. 옛날에 32비트로 넘어갈 때도 인텔 내부에서 이미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2. i960 (1988)

iAPX 432의 실패 이후에 인텔에서 오랜만에 새로 만든 비x86 CPU는 바로 얘였다. 정확히는.. 처음엔 지멘스와 공동 개발을 시작했지만 지멘스 쪽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중도 이탈하면서 최종 결과물이 인텔 것이 되었다.

i960은 CISC가 아닌 RISC 방식으로 설계됐으며, 애초에 범용 컴퓨터가 아니라 산업용 임베디드 MCU 용도로 만들어졌다. 에, 그러니까 절대적인 성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특정 분야 연산만 겁나 잘한다거나, 열악한 환경에서도 퍼지지 않고 끈질기게 잘 돌아가는 것 말이다.
얘는 처음에 군용으로 납품되었으며 초창기 F-22 전투기의 내부에도 들어갔다고 한다. 미군 전투기..?? 거기야말로 오랫동안 Ada 언어를 사용했던 곳이 아닌가? 반면교사 선배격인 iAPX 432가 관심을 가졌던 그 언어 말이다.

i960은 인텔이 만들었던 비x86 CPU 중에서는 가장 성공했다. 범용 컴퓨터가 아닌 덕분에 특정 분야에서 고정된 고인물 수요가 보장되어서 수십 년 동안 생산되고 쓰였다.
얘는 일본 SEGA에서 개발한 버추어 파이터 2의 플랫폼인 MODEL2 기판에 채택되어 쓰이기도 했다.

"게임 크리에이터 열전"이라는 20년 전의 일본 만화에서 '스즈키 유 - 버추어 파이터' 편을 보면, 그 시절 기계로 현란한 3D 그래픽 애니메이션을 구현하기 위해 전투기에 들어가는 CPU까지 구해서 기판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1편 때는 조종사 훈련용 전투기 시뮬레이터에 들어가는 CPU와 GPU를 도입했었다. (MODEL1, NEC V60) 그러다가 MODEL2는 전투기 실물에 들어가는 인텔 i960 CPU가 쓰인 것이다. 그런 차이가 있다~!

3. i860 (1989)

얘는 960과 동시기에 같은 회사의 다른 팀에서 나란히 개발되고 있던 또 다른 32비트 CPU였다. 960보다 숫자가 작지만 960보다 나중에 출시됐다.
얘는 산술· 과학 계산을 빡세게 하는 워크스테이션이나 슈퍼컴을 겨냥하여 FPU를 64비트 스케일로 내장했다. 그리고 명령의 병렬 수행을 여러 모로 의식해서 명령 체계를 RISC를 넘어 VLIW 형태로 설계했다. 사실상 32비트판 Itanium이고 Itanium의 정신적 선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i860은 컴파일러가 특정 분야의 프로그램 한정으로 이 CPU의 특성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코드를 잘 번역하고 잘 생성해 줘야만 제 성능을 낼 수 있었으며..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대부분의 상황에서 얘의 성능은 기존 CPU나 동급 경쟁사의 CPU보다 뛰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얘는 얼마 못 가고 실패했다.

인텔은 그래도 이 설계 이념을 버리지 못했다. x86이 당장 현실적으로 상업적으로는 잘나가고 있지만 얘는 레거시 때문에 구조적으로 너무 지저분하긴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중에 64비트로 갈아탈 때는 iAPX 432와 i860의 이념을 계승하면서 단점을 보완은 했다고 생각하면서 Itanium을 개발했다. 하지만 Itanium은 실패한 선배의 전철을 거의 그대로 밟으면서 역시 처절하게 실패했다.

그래도 인텔 i960과 i860의 개발진은 훗날 x86 동네에서 Pentium Pro CPU를 개발했다. 멀티미디어 지원에 필요한 병렬화 고속 연산 명령인 MMX를 만들어서 그 이념을 x86에다가 실현해 냈다.

사실은 마소의 Windows NT라는 것도 맨 처음, 최초로 타겟으로 설정한 아키텍처는 놀랍게도 이 i860이었다고 한다. 마소가 전통적으로 인텔 진영과 사이가 좋기도 했으니.. 하지만 본가이던 i860이 망조가 들고, NT는 처음부터 이식성도 있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곧 x86, MIPS 등의 아키텍처로 포팅된 것이다.

나중에 Windows 2000은 NT 버전 5.0 급이었는데, 얘도 64비트용은 Itanium이 정식 출시되기를 기다리면서 대부분의 기간을 DEC Alpha 환경 내지 Itanium 껍데기 시뮬레이터에서 개발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인텔 CPU가 통수를 치는 바람에 Win 2000은 사실상 x86 전용으로, WinNT의 역사상 지원 CPU가 가장 적은 버전으로 개발돼 버렸다.

글쎄, 인텔이 구닥다리 X86을 버리려고 1990년대부터 삽질했었다면, 마소는 NT 커널을 버리려고 2000년대 중후반부터 이것저것 실험하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시도 역시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

  • 과거에 Windows 3.0은 real, standard, enhanced 이렇게 x86 하에서 실행 모드가 다양했다.
  • 그 반면, Windows NT 3~4는 x86, MIPS, PowerPC 등 지원하는 CPU가 다양했다.
  • Windows 2000은 x86 전용이 돼 버렸지만 그 32비트 한계 하에서 PAE나 /3GB 같은 옵션을 제공하면서 메모리를 최대한 많이 뽑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들어갔다.
  • Windows의 역사상 Itanium을 제대로 지원했던 버전은 XP가 유일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6/07/10 08:35 2026/07/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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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한번씩 이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금융 내지 통화 정책 쪽의 굵직한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1.
가장 먼저 화폐 자체부터..
우리나라는 6· 25 전쟁 때문에 화폐 단위를 여러 번 초기화 리셋을 했다. 돈 찍는 기계와 지폐 도안 원본을 적에게 송두리째 빼앗겼으니 그 돈은 당장 무효화시켜야 했다.

이때는 일본의 도움까지 받아서 도안을 새로 만들고 돈을 부랴부랴 다시 찍었던 일화가 유명하다. 일본은 한국이 예뻐서가 아니라 한국의 빽인 미국한테 잘 보이고 이쁨 받아야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한국을 돕게 됐다. 물론 일본은 한국의 전쟁 특수로 돈을 많이 벌었으니, 저게 오로지 일본만 일방적으로 삥 뜯기고 자선행위 하는 건 아니었다.

그 뒤 우리나라는 전쟁이 끝나 가던 1953년엔 화폐 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1950년대는 지폐에 지금처럼 조선 시대 사람이 아니라 당대 생존 중인 대한민국 사람 얼굴이 있었던 유일한 시절이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뭐... ^^

그러다가 1962년, 박 정희 정권 때 또 화폐개혁이 행해졌으며, 단위 명칭도 환에서 원으로 도로 '환원'됐다. -_- 이게 2025년 현재까지 대한민국 최후의 화폐개혁이다. 현재까지 통용되는 화폐단위가 이때 완전히 정립됐다.
이렇게 단위가 리셋됐던 직후에는 짜장면 한 그릇이 30원이었으며, 두툼한 사전 같은 책 한 권이 300원 남짓 했었다. 지금 물가는 그 시절에 비해 0이 2개쯤 더 붙었다.

2.
그 다음으로 10년쯤 뒤, 1972년 8월에는 사채 동결이라는 전무후무한 조치가 취해졌다. 제도권 은행을 육성하고 저축을 장려하려고. 그래서 기업들 돈 빌려주고 살리려고 꽤 강압적인 조치가 취해졌었다.

오늘날이야 사채는 밑바닥 인생을 위한 제3금융권으로나 취급되지만, 저 때는 우리나라에 제도권 금융이 그닥 탄탄하지 못했다. 금성사나 삼성전자조차도 직원들 월급 줄 걱정을 하는 평범한 중소· 중견기업에 불과했으며, 부자 개인한테서 사채를 썼다가 기한 내에 못 갚고 망하는 기업도 있을 정도였다.

저 때는 경제 성장률이 높고 금리가 아주 높았기 때문에 개나 소나 사채를 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안 믿기지만 사채가 일종의 주식· 비트코인 같은 재테크 수단이기도 했다. 그래서 민간인 개미 중에도 영끌해서 고리대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랬는데 갑작스러운 저 조치로 인해 돈을 빌렸던 기업들은 숨통이 트고, 반대로 돈을 빌려줬던 사채업자들이 낭패를 봤다. 종잣돈을 어떻게 확보했는지 출처를 추궁당하고,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이자가 팍 줄고, 빌려준 돈의 상환 기한도 확 완화됐으니..

그러니 사채 동결은 민생과 나라 경제를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송두리째 바꿔 놓은 급진적인 조치였다. 나쁘게 말하면 오로지 그 시절이니까 가능했던 반민주적인 폭거였다.
허나, 그로부터 몇 달 뒤엔 아예 10월 유신이 시작되면서 나라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쪽까지 더 경직되는 쪽으로 바뀌었다.

3.
그런 일이 있고 나서 20여 년 뒤, 1993년 김 영삼 시절에는 금융실명제가 시행됐다. 이건 2025년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내려진 대통령 긴급명령이다.

옛날 박 정희 시절엔 누구든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은행에 돈을 맡기게 만들어야 했으니 예금주가 누군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중에 좀 먹고 살 만해진 뒤에는 검은 돈 범죄자금 지하경제를 척결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에 금융실명제가 시행됐다. 거의 출산 관련 정책이 1990년대 이후부터 정반대로 유턴 했던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런 굵직한 변화 말고 은행과 관련해서는..
1980년대에 ATM과 초보적인 수준의 신용카드 도입, 1990년대에 은행 창구에 대기 번호표 도입, 2000년대에 인터넷 뱅킹 도입, 2010년대부터 모바일 뱅킹 도입, 종이 없는 전자문서 시스템 도입..;;
이러면서 금융이 물류 교통에서 암호화 통신의 영역으로 많이 바뀐 것을 짚을 필요가 있다.

수십 년 전, 금융이 통신이 아니라 물류이던 시절에는.. 직딩들은 월급도 현금 봉투로 받았다.
국제선 여객기 조종사들은 조종실에다 현금 돈가방을 싣고 날아갔다.;; 도착지 공항에서 그 현찰을 써서 주기료와 유류비를 결제했었다.;;
게다가 신용카드도.. 가게 점주들은 카드 전표 종이쪼가리들을 카드사로 직접 보내고, 그로부터 현찰을 답장으로 받는 형태로 돌아갔다! 정말 엄청나지 않은가?

저런 현물 거래가 통신으로 대체될 수 있게 된 건..
공개 키 비대칭 암호화라는 정교한 알고리즘이란 게 개발되고, 그걸 민간인들 PC와 스마트폰에서도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컴퓨팅 성능이 발전한 덕분이다.

돈이 오가는데 무슨 게임 세이브 파일 조작하듯이 변조가 가해져서는 절대 안 되니 암호화를 하는데.. 그게 군대에서 암구호 전파하듯이 암호키를 배포하는 식으로는 근본적인 보안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각종 값비싼 소프트웨어들에 대해서 씨디키라든가 시리얼 번호 생성기, 불법복제 방지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크랙이 등장했던 이유는? 역공학을 통해 보안 쪽 알고리즘이 유출됐기 때문이다.

그럼 돈이 오가는 건?? 공격자가 금전 거래 패킷을 낚아챘더라도, 암호화 알고리즘을 다 알고 있더라도, 심지어 한쪽의 암호화 키를 알고 있더라도.. 이걸 변조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러니 암호화의 패러다임, 차원이 완전히 다른 암호화가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뭐 그 구체적인 과정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니 생략하고 넘어가겠다. 이건 통상적인 대칭 키 암호화보다 계산량이 차원이 다르게 훨씬 더 많고 복잡하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인터넷 뱅킹을 넘어 모바일 뱅킹 덕분에 계좌이체가 야외에서 거의 현금처럼 통용되게 됐다. 계좌이체는 카드 긁은 내역보다는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결제 내역이 기록으로 남는 건 변함없다.
금융 실명에 이어서 금융 전산화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범죄를 예방하고, 특히 탈세의 여지를 차단했는지를 생각하면 그 혜택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전산 금융은 언제 갑자기 훅 가고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한 번 정도는 은행들이 지금까지 오갔던 돈들의 차액을 현금으로 정산하기는 한다고 한다.

모바일· 인터넷 뱅킹도 밤에 1시간 정도는 중단되곤 한다. 이건 단순히 시스템 정비 차원을 넘어서 정산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시간이다. 이 시간대를 무작정 새벽 3~4시로 옮긴다거나, 예비 서버를 돌려서 무슨 뉴욕 지하철처럼 24시간 끊김 없는 뱅킹을 구현할 수는 없다고 한다. 정산은 날짜가 바뀌기 전에 꼭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화폐라는 걸 만들어 낸 뒤, 처음에는 그 기준 매개물질?물체로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고 싶어하고 귀중하다고 여기고, 거기에다 변질도 잘 되지 않는 금· 은 같은 귀금속을 사용했다. 중국이나 한국은 여러 사정상 그것보다 더 저렴한 구리를 사용했지만 말이다(엽전 동전..).

하지만 오늘날은 인간들이 생산하는 경제 가치 내지 경제 규모가 지구상의 모든 금을 채굴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렸고 또 전산화도 됐다. 현금 거래의 비중이 아주 줄어들었다.
이거 덕분에 화폐 개혁도 어지간하면 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동차 한 대 가격이 무슨 64비트 정수로도 감당 못 할 정도로 커졌다거나 하지 않은 한;;
우리나라는 남한과 북한이 합쳐지는 급의 격변이 생겼을 때 헌법 고치면서 그때쯤에나 화폐개혁도 같이 하면 될 것 같다.

비슷하게 현물 수송이 아니라 통신의 영역으로 바뀔 만도 한 것은 투표이다.
투표 용지 실물이 아니라 누구누구한테 N표 정보만 개인 전자 서명으로 암호화해서 중앙 서버로 보내면 끝.. 선거 비용도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고 얼마나 수월하겠나?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허나, 이건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인 불신풍조와 오· 남용 악용, 조작 가능성 때문에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몽땅 전자투표로만 뽑겠다고 하면 선뜻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뭐 그렇다.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는 것만큼이나 요원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것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IT 기술을 몇 가지 더 열거하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ㄲㄲㄲ

1.
PC로 인터넷 뱅킹을 하려면 잘 알다시피 여러 보안 프로그램 설치, 공인 인증서 등록과 갱신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핸드폰 모바일 뱅킹은 간편 로그인 하나만으로 간단히 시작할 수 있다.
그 이유는? PC는 여러 사람이 한 기기를 익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위험한 기기인 반면, 핸드폰은 처음부터 주인 1인만 사용하게 돼 있고 기본적인 인증과 보안은 폰의 운영체제에서 자체적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쎄, 생각해 보니 이런 식으로 비슷한 쌍이 하나 더 있다. 내비게이션.
요즘은 폰 내비 앱도 정말 기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맨 처음에 지금 이 차량이 어디에 있고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건 차의 붙박이 순정 내비가 폰보다 월등히 더 뛰어나다. 터널 안에서 안정적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폰은 순정 내비의 적수가 못 된다.

왜? 순정 내비는 GPS 신호뿐만 아니라 지금 차량의 핸들 방향과 바퀴 회전수를 통해서도 차의 위치와 속도를 어렴풋이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단서라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낫다.
또한 차량 내비는 대부분의 경우, 이전의 차량 위치/방향과 지금 차량 위치/방향이 고정불변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차량을 그대로 탁송이라도 하지 않는 한). 그 반면 핸드폰은 그런 보장이 전혀 없으니 처음에 자기 위치와 방향을 파악할 때 한참 동안 삽질할 수밖에 없다.

뱅킹은 보안과 관련이 있으니 모바일이 PC보다 더 간편하고 유리한 반면, 내비의 동작은 자동차의 그 static한 특성이 모바일보다 더 유리한 구석이 있다. 이 점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2.
인간의 경제 생활에서 현금이 이렇게 많이 없어진 만큼, 종이 통장도 예전보다 훨씬 더 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완전히 퇴출되고 사라진 건 아니니 위상이 애매한 듯..

이렇게 통장에다가 거래 내역을 찍어 주는 용도로는 이 2020년대까지도 구닥다리 도트 프린터가 현역이다. 도트가 이 분야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수단이다.
통장의 빈 여백에다가 incremental하게 줄 단위로 찌익찌익 뭔가를 추가로 찍어 주는 일을.. 무슨 잉크젯이나 레이저 프린터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는 영수증이나 명세표를 출력하는 걸 여전히 도트 프린터가 담당했었다. 하지만 가게 POS기에서 영수증이 '찌익찌익' 소리 내면서 출력되는 걸 마지막으로 본 게 다들 언제이신가? 깜빡거리며 켜지는 형광등과 비슷한 시기에 다들 퇴출됐지 싶다.

군대에서 울퉁불퉁 흔들리는 전차 안에서 뭔가를 인쇄해야 할 때 러기드 장비로서 충격식 도트 프린터가 쓰인다고는 하는데.. 그 정도로 특수한 거 말고 일반인이 도트 프린터와 그 특유의 180dpi 저해상도 한글 폰트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마지노 선은 정말 은행 통장뿐인 것 같다.

3.
오늘날 현대인들이 누리는 전자 금융을 가능하게 한 주역은.. 지금도 수많은 암호화 트랜잭션들을 거뜬히 소화하고 계시는 메인프레임 컴퓨터들이다.
메인프레임은 입출력 대역폭이 매우 크며, 수많은 작은 작업들을 동시에, 중단 없이 처리하는 것에 최적화돼 있다. 렌더링이나 시뮬레이션을 위해 오로지 대용량 병렬 연산에만 최적화돼 있는 슈퍼컴퓨터하고는 설계 이념이 미묘하게 다르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IBM이라는 공룡 기업이 있는데도 과거엔 CRAY처럼 슈퍼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기업이 또 존재했던 것이다. (IBM System/360  vs CDC 3600처럼)

메인프레임은 모바일은 말할 것도 없고 PC나 슈퍼컴과도 다른 수요가 있는 시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IBM이 전용 아키텍처 설계하고 칩 만들고 전용 컴퓨터에 전용 운영체제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즉, 일반 유저들이 실감을 못 할 뿐, 저 분야에서는 IBM이 일종의 애플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랬는데 IBM은 PC를 과소평가 했다가 마소와 인텔에게 자리를 빼앗겼고, 쟤들은 또 모바일을 과소평가 했다가 구글· 애플이나 ARM에게 자리를 빼앗겨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저런 메인프레임은 구닥다리 COBOL 프로그램들이 현역으로 돌아가는 주 무대이기도 하다. ㄲㄲㄲ 반세기 전에 Y2K 문제를 일으키면 어쩌나 제일 우려의 대상이었던 분야가 바로 이런 쪽이었다.

COBOL은 코드가 영어 문장과 비슷하게 돼 있고, 인라인 어셈블리나 포인터 따위 없는 아주 쌈박한 고급 언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는 인터프리터나 가상머신 바이트코드 언어는 아니고, 네이티브 코드로 컴파일되는 언어이다.

오늘날 COBOL 같은 언어가 새로 개발됐다면 당연히 저런 식으로 구현됐겠지만 COBOL은 가상머신 바이트코드 같은 개념이 아직은 너무 사치스럽고 급진적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옛날 언어이다. 그래서 저렇게 됐다. 비슷한 시대의 레거시 언어인 FORTRAN도 비슷한 처지와 위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2/10 08:35 2026/02/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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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대엔 공룡기업 IBM이 메인프레임에만 안주하느라 개인용 컴터 PC 시장의 흐름을 못 읽었다. 그 결과 그 나와바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한테 다 내줘 버렸다. IBM은 나름 컴퓨터 아키텍처를 설계할 줄 알고 OS/2 같은 운영체제를 만들 기술도 있는 하드· 소프트 겸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나중엔 거의 같은 패턴의 역사가 또 반복되었다.
마소와 인텔도 공룡기업이 된 뒤엔, 2000년대 후반 모바일 시장의 흐름을 못 읽었다. 결국, 그 나와바리는 구글과 애플(소프트), 퀄컴과 ARM(하드) 등에게 다 내줘 버렸다.
앞으로 이런 식의 파이와 기회가 또 새로 생길지, 저 기업들조차 후발주자에게 뭔가 주도권을 빼앗기는 날이 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2.
좀 옛날 얘기를 하자면..
1940년대에 강대국 해군 장성들은 "앞으로 해전의 주인공은 항공모함이 될 것이냐 전함이 될 것이냐.."를 갖고 많이 고민했었다.
그게 삼성이니 LG 경영진이 2010년대에 "지금이라도 스마트폰을 육성할까? 아님 그냥 원래 하던 피쳐폰에나 계속 올인할까?" 고민하던 거랑 아주 비슷한 양상이었지 싶다.;;

이때 노키아, 모토로라, 블랙베리 같은 쟁쟁한 업체들이 몰락했으며, LG도 실패해서 MC사업부를 통째로 정리해 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만이 성공했다.
저 S사도 처음에 Windows Mobile 기반으로 옴니아를 밀던 시절에는 그냥 갤갤거리면서 삽질을 많이 했었는데 언제부터 무슨 계기로 안드로이드 기반의 갤럭시로 기사회생 했나 모르겠다. 그 이면에도 수많은 공밀레 비화가 있지 싶다.

3.
옛날에 코닥 사는 한때 마케팅 잘하고 연구개발 인력도 우대하는 엄청난 모범 기업이었다. 무려 1970년인가 1980년대에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까지 했었다.
그러나.. 디카의 미래를 과소평가하고 계속 필카만 고집하다가 지금처럼 몰락했다.

그 당시에는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어 봤자 이 거대한 디지털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 줄 컴퓨팅 환경이나 메모리 기술이 가성비 있게 뒷받침되지 못할 거라고 경영진들이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니 이미 잘나가고 있는 필카와 쓸데없이 팀킬만 벌일 것 같은 분야의 상품화를 접어 버렸지만.. 그건 단견이었다.

4.
전에 한번 얘기했지만 이스트소프트는 한때 알툴즈 프로그램들의 품질과(특히 '알집'과 알FTP) 유료화 정책 때문에 무진장 욕을 많이 먹었다. 컴덕들 사이에서 평판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저 회사 자체는 지금까지 뭔가 뜬다고 하는 유행 분야들만 귀신같이 공략하면서 중견기업으로 어째어째 살아 있다.

1990년대에 워드 프로세서, 2000년대 초에 유틸리티와 온라인 게임, 201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 AI 기업으로..;; 알집을 만들던 회사가 요즘은 버추얼 인플루엔서를 만들어서 운용하고 있을 정도로 체제를 싹 바꿨다.
긴 세월 동안 주력 사업 분야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바꿔 온 IT 기업은 흔치 않은데 말이다.;; 그 중에 진짜 고인물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초대박 난 게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하도 AI, AI 하니까 삼성에서는 애플 아이폰에도 없는 뭔 동작 자동 인식 AI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글쎄, 당장 신기하기는 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기능이 괜히 들어가서 폰 가격이 비싸지고 배터리가 더 두툼해지고 CPU와 전력 소모가 늘어난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5.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까지 약 20년 남짓한 기간 동안은 PC 환경에서 인스턴트 메신저 내지 인터넷 전화 솔루션이란 게 존재했다. ICQ, MSN 메신저, 스카이프, 네이트온 같은 추억의 프로그램들 말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라면 다 고유한 IP 주소가 있을 테니, 특정 IP 주소로 텍스트 메시지를 쏴 주는 원시적인 툴이야 운영체제의 기본 유틸리티 차원에서 제공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실용성이 떨어지고 보안도 심히 취약하다. 결국 회원 가입을 받아서 id로 사용자를 식별하는 중앙집중형 메신저 프로그램이 등장하게 됐다.

그랬는데.. MSN이 2010년대 초에 제일 먼저 서비스를 접고 없어졌다. 마소가 아예 스카이프를 인수해 버렸고, MSN을 이걸로 대체했다.
한때는 인터넷 전화 분야에서는 스카이프가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못 읽었는지, 기업 경영상의 삽질과 오판이 있었는지 스카이프는 비교적 최근인 지난 5월부로 완전히 섭종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스카이프가 망한 이유에 대해서 분석한 유튜브도 여럿 있다.

공교롭게도 ICQ는 작년, 2024년 6월 말이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정확히 1년 전에 섭종했다. 햐~ 30년 가까이 시대를 풍미했던 메신저인데.. 아 그러고 보니 천하의 구글에서도 2010년대에 잠깐 구글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PC+모바일+웹 복합인 구글 메신저를 선보였다가 사업 접었었다.
한때 대한민국 국민 메신저였던 네이트온은 산소호흡기 장착한 채로 살아 있기는 한가 보다. 한때는 '이야기'나 '새롬 데이타맨'처럼 PC 통신 에뮬을 개발하던 국내 업체들도 인터넷 전화 분야로 사업을 개척했었는데.. 잘나가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뭐 스마트폰 시대와 함께 카카오톡이 이 바닥을 완전히 평정해 버렸다. 애초에 2010년 그 초창기에도 카카오톡 때문에 피쳐폰을 버리고 스마트폰을 장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이제는 관공서에서 보내는 각종 고지서와 통지서 우편물조차 카카오톡으로 보내는 세상이 됐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전화 요금이나 문자 요금으로 과금되는 통신 트래픽을 훨씬 더 저렴한 인터넷 데이터로 대체해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해 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동차에다 비유하자면, 전기차를 만들어서 기름값에 부과되는 세금을 회피하고, 저렴한 산업용 전기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 말이다. 이러니 통신사들이 심기가 불편해서 한때는 아이폰이 국내에 수입돼 들어오는 것조차 이것저것 태클 놨었다.

WorksMobile 같은 업무용 메신저라든가 Zoom 같은 본격 화상 회의 프로그램은 카카오톡과는 영역이 좀 다른지 현역으로 남아 있다. 사내 인터폰은 스마트폰과 별개로 재래식 유선전화기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업무용 메신저는 B2B 솔루션이니까 고객사에다 바로 과금을 하면 될 테고, 화상 회의 앱은 동시 참석 가능자 수나 회의 가능 시간 같은 것에다 제약을 걸고 부분유료화를 하면 승산이 있어 보인다.

MSN이고 카카오톡이고 무엇이든지.. 세월이 흐를수록 무진장 무거워지고 느려져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게 보안· 암호화 관련 코드 때문에만 무거운 게 절대 아니다. 그냥 간단히 글과 그림을 주고받는 기능만 있으면 수익을 낼 수 없으니 상업 광고가 들어가고 각종 예쁘게 꾸미는 기능, 유료 써비스 관련 기능이 어떤 형태로든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변화가 아니지만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오죽하면 어떤 해커가 그 메신저 프로그램의 내부 프로토콜을 분석해서 기본 기능만 돌아가는 light weight 클론을 따로 만들기도 할 정도이다. 물론 이건 브라우저의 광고 차단 플러그인 만큼이나 일단은 개발사에서 기를 쓰고 단속하는 행위이다.;;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단속하던 게 광고 차단 단속으로 바뀌었다니.. 참 격세지감이다!

6.
아이고 메신저 얘기가 많이 길어져 버렸는데.. 다시 기업 얘기로 돌아와서 좀 어두운 사례들을 나열하도록 하겠다.

블리자드라든가 보잉, 인텔 같은 기업들은 한때 자기 분야에서 날고 기면서 초일류를 자랑하던 집단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들의 최근 행보를 보면 20년~30년 전에 펄펄 날던 그 기세가 절대 영원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넥슨의 흑역사 서든어택 2가 나왔을 때는 블리자드의 오버와치와 얼마나 비교되며 까이곤 했는데, 그 오버와치를 만들었던 모범 개발사조차도 디아블로 이모탈이니 워크래프트 3 리마스터링은 정말 처참하게 욕 먹으며 망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주요 개발진이 모두 퇴사해서 유지보수 역량조차 없다고 여겨지지 않는가.

인텔과 보잉은 공통적으로 엔지니어와 연구 개발을 우대하던 경영진이 물러나고.. 인건비 절감과 단기 흑자 실적만 강조하는 경영진 때문에 난리가 났는가 보다. 제품 품질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를 당했다.
비행기에서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허술한 결함과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하고, 인텔은 AMD 같은 후발주자와의 격차가 갈수록 줄어들고..

인텔은 자기 사정이 좋지 않았는지 2020년부터는 1997년부터 20년이 넘게 물주 역할을 했던 인텔 국제 과학기술 전람회(ISEF)의 후원을 중단했다. 이제 그 대회는 I는 떼고서 개최되고 있다~!
글쎄, 더 찾아보니 국내에서는 장학퀴즈(2024)라든가 도전 골든벨(2020)도.. 비교적 최근인 2020년대에 다들 종영했다.

스펀지 같은 단순 지식 정보 프로라든가 노래 경연대회(창작 동요 + 대학 가요) 부류는 시대의 흐름 때문에 폐지될 만하지만(넘쳐나는 유튜브+나무위키 ㅋㅋㅋㅋ).. 저렇게 공익성 있는 프로는 기업 후원이 끊긴 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제 요즘 자라나는 애들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제3악장의 의미를 알 기회가 없을 것이다. =_=

7.
우리나라 대형 메이저 게임 개발사 중에서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고, 자체 야구단이 있고 AI 기반 자연어 처리 연구에도 유난히 진심이던 좀 특이한 기업이 있었다.
직원들 연봉과 복리후생은 업계 최상이고 사내 병원과 어린이집까지 있는 꿈의 직장이었다.

웬 게임 개발사가 '한글 및 한국어 정보처리 학술대회'에도 후원을 왕창 하고 거기 소속 연구원이나 엔지니어가 논문을 꾸준히 내길래..
나도 한때는 "진짜 인간 같은 AI라도 개발해서 NPC나 GM 역할을 자동화하려나?" 이런 생각까지 했었다.

저 회사는 20년 30년 묵은 고인물 썩은물 석유 아저씨 유저들만 집중적으로 과금시켜서 먹고 사는 것 같더라만.. 그래도 모바일 게임 하나 잘 만들어서 그걸로도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았다고도 들었다.

하지만 정말 의외이고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게임 개발은 과거의 성공에만 안주하다가 많이 말아먹었고, AI나 NLP는 그쪽대로 딱히 별 성과 없이 돈만 왕창 날린 것 같다.
오히려 거길 나와서 따로 회사 차린 사람들이 더 대박 게임 출시해서 승승장구 중이랜다. 이 정도라면 정말로 이전 직장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2010년대부터 그렇게도 오래 육성을 했지만 2020년대에 LLM 기반 AI가 왕창 뜨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AI 전문 스타트업에 비해서도 차별점이 없다. 이제는 그 분야 사업 내지 연구를 접고 매몰비용 처리하려나 보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연간적자'라고 검색을 하면 나라 살림 적자랑 저 회사 적자 소식 요 둘만 주루룩 뜨네. -_-;;

특히 30여 년 전에 과학고에 카이스트 수석, MIT 박사, 30 초반에 SK 상무 출신이었다는 그 천재소녀 부사장은 미친 스펙에 비해서는 그 이후에 세상을 뒤집어엎을 연구 성과를 낸 게 없고, 행보가 정말 너무 초라하긴 했다;;
과거의 명성 대비, 연봉에 "비해서" 말이다. 결국 작년에 경질됐다.

이렇게 끝날 거였으면 사업이나 경영에 관여할 게 아니라, 그 엄청난 공부 머리를 살려서 평범하게(?) 공대 교수만 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비슷한 연배인 중국 리 페이페이 교수 같은 사람이 됐어야지.
뭐 지금이야 이미 억만장자일 테니 이제 평생 일할 필요 자체가 없겠지만.. 그 사람이 겨우 그렇게만 탱자탱자 사는 건 재능낭비이고 카이스트의 국비 장학생 제도에 대한 자괴감을 야기할 것이다.

서든어택2 삽질, 블리자드의 삽질.. 등등의 소식을 들어 왔지만 이 회사의 삽질은 그런 것과도 성격이 좀 다른 것 같다.
이제는 전통적인 메이저 게임사 3N 중에서 여전히 메이저로 대접받는 N은 사실상 하나밖에 안 남았다고 여겨진댄다. 다음으로 스마일게이트, 크래프톤 이런 신생업체가 떠오르는 강자라고..

물론 저 회사가 지금 이 정도 위기만으로 무슨 자금줄 끊긴 중소마냥 당장 오늘내일 하는 지경인 건 전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조직을 쇄신해서 새 사업 아이템으로 과거의 영광을 새로 되찾을지, 아니면 결국 과거의 영광만 껴안고 장렬히 자폭하거나 서서히 쪼그라들지.. 중대한 기로에 놓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21 19:35 2025/06/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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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난수를 얻기 위해서는 난수를 생성하는 첫 씨앗도 난수여야 한다.",
"엔진이 정지 상태였다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맨 처음에 외부로부터 힘을 공급받아야 한다"(시동) 같은 재귀적인 원리 법칙이 있다.

컴퓨터가 먼저 등장했을까, 프로그래밍 언어가 먼저 등장했을까? 역사적으로 답은 후자이다.
지금은 완전히 망해 버렸지만 2000년대에 인텔 Itanium이라는 64비트 CPU가 처음 출시됐을 때 Itanium용 Windows 2000도 같이 개발되고 있었다. 아직 미완성인 CPU를 타겟으로 그걸 지원하는 운영체제가 어떻게 나란히 개발될 수 있었을까? (에뮬레이터, 그리고 비슷한 특성을 지닌 다른 기성 64비트 OS의 도움을 받아서)

이런 식으로 컴퓨터의 세계에서는 뭔가 재귀 딜레마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려 한 사례를 분야별로 찾아볼 수 있다.

1. 파일 압축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위해서 압축 프로그램 패키지의 압축을 풀어야 한다??

그러니 PC 통신 시절부터 압축 프로그램은 무조건 당장 실행 가능한 EXE 형태로 배포되는 게 불문율이었다. 당연히 이 딜레마를 파훼하기 위해서다.
뭐, 옛날엔 용량을 줄이는 것도 중요했으니 그 EXE는 실행 파일 압축 유틸로 압축돼 있기도 했을 것이다.

2. 부팅을 위해서는 컴에다 운영체제를 설치해야 하는데, 운영체제 설치 프로그램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부팅이 돼 있어야 한다.

그러니 운영체제들은 원본 CD나 USB 메모리로부터 자체 부팅하는 기능이 있다. 그리고 설치 프로그램부터가 자기 운영체제 GUI 셸의 자그마한 클론을 자체 보유하고 있다.
설치 대상 컴터에서 기본적인 하드웨어들을 세팅하고 최소한의 파일들을 하드에 복사했으면.. 다음엔 그 GUI 클론 환경으로 곧장 진입한다.

옛날에 Windows 9x 시절에는 설치 프로그램이 Windows 3.1 셸 기반의 GUI 클론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운영체제의 설치가 거의 다 끝나면.. 설치 프로그램의 최종 마무리 파트(프린터 세팅, 응용 프로그램 등록..)는 "새 운영체제"에서 돌아가는 일회성 프로그램의 형태가 될 정도로 비중이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끝.. 신기하지 않은가?

3. 컴파일러를 돌리기 위해서 컴파일러의 소스를 컴파일해야 한다.

그래서 C/C++처럼 컴파일러 자기 자신을 직접 빌드할 수 있을 정도로 스케일이 큰 언어는 버전 n의 소스를 개조해서 차기 버전 n+1을 만들었다.
그 뒤 버전 n 컴파일러로 버전 n+1을 빌드하고, 빌드된 버전 n+1 컴파일러로 n+1 소스를 '또 다시' 컴파일해서 최종적으로 n+1 컴파일러 바이너리를 만들었다. 최신 컴파일러도 새 기능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최신 버전에서 구현된 최적화 기능 같은 게 적용돼야 하니까 말이다.

물론 컴퓨터의 초창기 시절.. 진짜 최초의 원조 컴파일러는 얄짤없이 쑤제 기계어/어셈블리어로 만들어져야 했다. 이건 마치 지구상 완전 최초의 생명체만큼이나(진화론 관점에서..) 지금으로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전설적인 존재이다.

4. 컴터는 운영체제가 파일 시스템을 세팅하기 전에, 운영체제 프로그램 파일을 디스크로부터 읽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운영체제 프로그램은 파일 시스템과 무관하게 디스크에서 물리적으로 고정된 첫 지점으로부터 읽어들이는 걸로 규약이 정해졌다. 컴퓨터의 펌웨어 차원에서 말이다. (BIOS건 UEFI건)
부팅 디스크는 io.sys 같은 파일을 아무렇게나 카피만 해 넣는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닌 이유가 이 때문이다. 특수한 전용 유틸을 써야 만들 수 있다.

5. 가상 메모리는 컴퓨터의 메모리를 관리하는 파트인데.. 가상 메모리 관리자의 동작을 위한 메모리를 관리하는 파트도 필요하다.
이건 메모리를 관리하는 데 드는 메모리, 로켓이 연료 무게 때문에 더 필요해지는 연료, 세금을 걷는 데 드는 세금.. 이런 개념이다.
보통은 메모리 관리자를 두 번 세팅하는 걸로 해결했다.

오늘날 64비트 컴퓨터들이 포인터에서 44~48비트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컴의 물리적인 메모리가 많아 봤자 수백 GB나 수 TB 정도밖에 없는데, 비현실적으로 공간을 너무 방대하게 잡으면.. 아무 도움이 안 되고 불필요한 메모리 사용만 늘기 때문이다.

6. 응용 프로그램들이 사용하는 C/C++ 런타임 라이브러리는 역시 응용 프로그램과 같은 계층에 존재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전, 부팅을 위해 실행되는 운영체제의 코드들도 C/C++ 함수를 왕왕 사용한다.
그래서 Windows의 경우, msvcrt뿐만 아니라 ntdll에도 보면 C 함수들 구현체가 왕왕 들어있다. 커널용 CRT와 응용 프로그램용 CRT가 별도로 제공되곤 했다.

단, NT 말고 9x 계열은 CRT DLL에 대한 배려가 딱히 없었다. 16비트 시절에는 DOS나 Windows를 불문하고 CRT를 그냥 static link 해서 각자 탑재하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들마다 메모리 모델이 다를 수 있어서, DLL이 프로세스별로 독립된 메모리 주소 공간을 갖지 못해서, C 라이브러리가 지금에 비해 그닥 거대하지도 않아서..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01 19:35 2025/06/0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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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보 저장, 상태 보관이란 걸 몽땅 실물로 해야 했음

세상에 컴퓨터와 정보 저장 매체라는 게 없던 시절엔..
길고 빽빽한 텍스트가 아니라 겨우 수 바이트, 수십 비트가 채 되지 않을 '객체 상태'도 일일이 다 실물로 관리해야 하니 참으로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 보드 게임의 말들은 잡히면 몽땅 다 즉사이지, HP 같은 건 없다. 윷놀이, 바둑, 체스, 장기..
그도 그럴 것이 각 말들의 HP가 깎이는 걸 또 별도의 기물로 구현하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 하다못해 죄수의 볼기를 줘 패도 매번 때릴 때마다 늘 "n대요~!!" 라고 크게 복명복창을 해야 했다. 정해진 횟수를 절대 틀리지 말라고.
(물론 단순 숫자 한두 개 정도는 마치 운동 경기 스코어 x:y처럼 종이 판떼기로도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태형을 집행하는 국가에서 굳이 그런 물건까지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

-- 교통수단에서 환승 할인이란 걸 구현하는 게 참 난감했다. 기껏해야 승차권에다가 특수한 구멍을 뚫어서 인증하는 정도?

-- 고속도로 톨비도 말이다. 요즘 고속도로는 국영과 민영 구간이 오락가락이고, 대도시에서는 개방식과 폐쇄식이 왔다갔다 한다. 거기에다 차종과 이용 시간대별 할인이 있고, 심지어 차로 수가 적은 고속도로와 많은 고속도로 간에도 미세하게나마 요율이 다르다..!! 이거 정확한 계산을 재래식 종이 통행권으로 하려면 톨게이트를 엄청 많이 만들어 놓고 매번 차를 세워야 할 것이다.

-- 대중교통은 자리를 알아서 찾아서 앉는 자유석 형태로만 운용 가능할 것이다. 좌석 지정 탑승권은 거의 불가능. 1980년대에 새마을호 열차에서 전산 승차권(고정석) 발매가 그만큼 파격적이었던 조치였다. 그 반대급부로, 새마을호는 일부 객차만 자유석을 운영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행정에서 이 복잡한 state 계산의 끝판왕은 운전자 벌점이지 싶다. 이건 3년이라는 유효기간이 존재하는 마일리지와 비슷한 개념이다.
유효한 벌점이 40점 이상이 되면 면허가 정지되는데, 면허정지에 기여한 벌점은 처분벌점에서는 빠지지만 누산벌점에는 남아 있고 이건 또 뭐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고... 나도 제대로 이해를 못 했다.

게임에서 이렇게 하면 HP가 깎이지만 이렇게 하면 HP와 관계없이 즉사(면허 취소)...;; 이렇다.
행정 전산화가 되기 전엔 이런 거 어떻게 관리했을까...?? 경이롭다.

2. 오늘날 같은 획기적인 무선 고속 통신 인프라가 없었음

-- 휴대폰이 없었을 때는 차를 운전하다가 사고 나면 보험사에다 연락을 어떻게 했을까..??
고속도로의 경우, 일정 거리 간격으로 긴급 통화가 가능한 전화기가 비치됐으며 일정 시간 간격으로 순찰차가 다니기는 했다. 그러나 고속도로처럼 잘 관리되는 도로가 아니라 시골 깡촌 농로나 산길이라면 정말 난감할 것이다.

참고로 카폰은 아직 엄청난 사치품이었다.
기계값도 값이지만 지금처럼 제한된 주파수를 쪼개고 쪼개서 수많은 사용자들에게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통신 기술과 인프라가 없었다. 카폰은 전화국과 교신하는 무전기보다 크게 나은 게 없던 지경..

그래서 지금처럼 전 국민이 무선 통화를 하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하긴, 더 옛날에는 유선 전화조차도 회선이 부족하고 자동 교환 기술이 부족해서 집집마다 개통하는 게 불가능했었다.

-- 쌍팔년도 시절, '브레인 바이러스'라는 악성 코드는 1985년에 파키스탄 사람이 만들었는데, 그게 1987년에 미국에서 첫 발견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에야 발견됐다.
무선 인터넷이 없던 시절엔 컴퓨터로 뭔가가 퍼져나가는 속도도 정말 끔찍하게 느렸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경.

-- 좀 더 옛날 얘기를 꺼내자면 레이더나 무전기라는 것도 2차 대전 시기에 발명됐다.
그 전 제1차 세계 대전 때만 해도 아직 전령이라는 게 현역이었다! 목숨 걸고 발품 팔아서 전방 소식을 후방에다 전하는 병과 말이다. 히틀러가 이 시기에 전령병 출신이었고 그것만으로도 부상 당하고 훈장도 받았을 정도였다.
심지어 비둘기 발에다가 편지를 묶어서 전하는 구닥다리 테크닉까지 쓰였었다.

하긴, 2차 대전 때는 말 탄 기병이 아직 현역이었다. 자동차라는 게 있긴 했지만 아직 너무 비싸고 귀했기 때문.. 우리가 누리는 교통 통신 인프라가 지금 같은 가성비를 갖추게 된 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3. 금융 거래도 전산화되지 않았음

-- 월급을 직접 현찰로 봉투에 넣어서 나눠줬다. 월급날 시즌에는 회사들마다 현금을 수송하느라 분주했다.
심지어 국제선 여객기를 조종하는 기장들도.. 도착지 공항에서 유류비를 지불하려고 돈다발이 들어있는 가방을 조종실에 싣고 다녔다.;;;

-- 신용카드라는 게 있긴 했으나.. 지금 우리처럼 간편하게 긁고 통신이 되는 형태가 아니었다.
가게에서는 손님이 카드를 긁었음을 입증하는 종이 전표 실물 뭉치를 잘 보관했다가 카드사에다 직접 청구하고, 카드사는 그걸 보고 대금을 지급했다. 옛날 신용카드에 카드 일련번호가 양각으로 돌출됐던 이유는 이걸 일종의 도장처럼 쓰기 위해서였다.;;; ㄷㄷㄷㄷㄷㄷ

단순히 음성과 영상을 주고받는 통신뿐만 아니라 금융 거래가 전부 무선 자동화 전산화된 것도 세상을 정말 편리하게 바꿔 놓았다. 종이 없는 사무실보다는 현금 없는 세상이 더 많이 실현됐다.
물론 통신으로 돈 거래를 몽땅 가상화시킨 배후에는 디지털 서명을 가능케 한 비대칭 암호화라는 특급 보안 기술이 있었다. ^^
영상· 음성을 디지털로 주고받는 배후에는 압축 알고리즘(코덱..)이 있듯이 말이다.

4. 정보 검색 인프라

지금 같은 학술 정보 검색 인프라가 없던 시절에는 논문을 어떻게 쓰고 참고문헌을 어떻게 찾아봤을까??
뭐 그 시절에는 학계마다 분야별 최신 논문 목록이 마치 전화번호부처럼 종이책 형태로 주기적으로 발간되기는 했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완전 골동품이겠지만..

그래서 그 시절 옛날 논문들은 참고문헌 목록이 21세기 이후 논문들처럼 풍부하지는 못했던 편이라고 한다.
이런 게 '정보 고속도로'니, 'information at your fingertip' 이런 90년대 구호가 실현되기 전의 모습이다. 유비쿼터스, IoT니 하는 구호는 2000년대 이후에나 등장했다.

하긴,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학위논문들이 타자기로 작성되곤 했다. 타자기로 수학식을 표현하려면.. ㄷㄷㄷ
좀 얼리어답터인 사람이 몇백만 원짜리 컴퓨터를 장만해서 아래아한글 1.X로 논문을 써 보겠네 마네 하던 지경이었다.

갤럭시니 아이폰이니 하는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둥그런 브라운관 화면을 통해 상대방을 보면서 영상 통화" 정도를 상상했던 쌍팔년도 시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됐다. ^^

Posted by 사무엘

2024/10/12 08:35 2024/10/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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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중반, 일반 서민 땅개들은 DOS를 벗어나지 못하고 기껏해야 Windows 3.x니 이런 바닥에서 놀고 있었는데,
하늘 위로, 혹은 바다 건너편에는 서민이 범접조차 할 수 없는 별세계가 있었다.
아래의 것들은 골수 얼리어답터나 직업적으로 컴터 연구하는 사람, 해외 문물을 재정 타격 없이 접할 수 있는 금수저의 산물이었다.

1. 매킨토시

매킨토시 컴터 화면으로 실사 사진이나 전자출판 인쇄물 화면이 쫙 뿌려져 있는 건 그야말로 꿈만 같은 신세계 별세계 그 자체였다.
이때는 산돌, 윤 같은 서체도 맥의 전유물이었다. Windows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PC는 저해상도 화면과 프린터에 튜닝이 잘 된 한양, 휴먼, 큐닉스의 나와바리였을 뿐이다.

마소 진영의 빌 게이츠는 장사꾼이어서 악랄한 독점뿐만 아니라 박리다매, 하위 호환성, 고객 눈높이.. 이런 이념을 중시했었다. 그러나 잡스는 그렇지 않고 교주, 소수의 매니아, 고가 프리미엄.. 이런 쪽이었다.
본가부터가 저런데 그 당시 애플 매킨토시의 한국 총판이었던 엘렉스는 안 그래도 비싼 제품 가격을 더 지랄맞게 쳐 올렸다.

PC로 치면 286 AT밖에 안 됐을 저가 보급 사양부터가 1990년대 가격으로 2, 300만 원부터 시작했다. 하이엔드급은 6, 700만 원.. 돈 좀 보태면 집이나 차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흉악한 가격에 빡쳐서 그냥 미국 현지에 가서 제품을 직접 사서 들여 오는 사람도 있었다.

2. OS/2 2.x

1990년대 초에 각종 도스용으로 나왔던 업무용 프로그램· 개발툴들은 DOS뿐만 아니라 OS/2 지원을 Windows 지원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PC용으로 만들어졌던 진정한 32비트 운영체제였다고는 하는데.. 이후에 OS/2 Warp니 멀린이니 이런 거 나왔다가 존재감 없이 사라진 것 같다. 들리는 말로는 코드 구조가 어셈블리어 기계어 코드 일색이고 포터블하지 못했던 것도 OS/2의 명줄을 더 재촉했다고 한다.

나와 개인적인 접점은 전무하다. 단지, "OS/2 써 보려면 컴터 램이 4MB 이상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문구를 1992년도 컴터 잡지에서 보고 깜짝 놀라긴 했었다. ㅎㅎ

3. Windows NT 3.x

껍데기는 Windows 3.1처럼 생겼고 심지어 버전 번호도 똑같이 시작했지만 내부 구동은 정말 넘사벽으로 다른 물건이다.
안정적이고 탄탄하고 순수 32비트 기반이고.. 다 좋은데 램이 지랄맞을 정도로 많이 필요해서 돌릴 수 있는 컴퓨터가 별로 없었다. OS/2보다 더 자비심이 없었다.

NT는 Windows 2000, XP의 전신이고 심지어 오늘날 Windows 10/11의 먼 조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도스 기반의 Windows 3은 x86에서 86 real, 286 standard, 386 enhanced 다양한 모드로 실행 가능했다.
그 반면, Windows NT는 그냥 여러 CPU를 지원했다. x86은 무조건 386인 거고, 그 밖에 MIPS, DEC alpha 등.. 개발 방향과 성격이 이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NT는 DirectX라는 게 개발되기 전부터 OpenGL을 지원하고 있었다. 게임보다는 업무용 그래픽을 위해서.
OpenGL에 대해서는 좀있다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다.

4. NeXTSTEP

잡스가 애플을 잠시 떠나 있던 동안 개발했던 고급 컴퓨터와 거기서 돌아가던 운영체제 되시겠다.
id 소프트웨어의 존 카맥이 이 환경에서 Doom과 Quake를 개발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Windows용 아래아한글 3.0b가 요 NeXTSTEP의 UI를 차용한 독자 UI를 채택했던 바 있다. 특히 스크롤바의 화살표 삼각형이 양쪽 끝에 있는 게 아니라 한데 몰려 있는 거 말이다. ◀-----▶가 아니라 -----◀▶

이상이다.
일반 흙수저 서민들이 저런 급의 OS를 만져보게 된 첫 기폭제가 사실상 Windows 95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해진 건 램값이 싸진 덕분이다.
1990년대 이후 PC의 발전을 논할 때는 컴퓨터 속도의 향상(그 뒤 멀티코어화), 램 용량의 증대(단가 하락), 그리고 네트워크 속도 향상.. 이 순서를 기억하면 될 것 같다.

1990년대 말쯤부터는 슈퍼컴퓨터만을 위한 전용 컴터 아키텍처라는 것도 없어졌고,
워크스테이션이라는 개념도 아주 희박해져서 그냥 하이엔드 급 PC로 흡수된 것 같다.

※ 번외: OpenGL과 화면 보호기

과거..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에는 Windows 컴터에 "3D 텍스트, 3D 미로, 3D 날으는 객체들, 3D 미로"라는 화면보호기가 있었다.
Windows 95 때는 '쁘라스 확장팩'에만 수록되어 있었고, 98부터 XP에는 기본 내장돼 들어갔었다.

얘들은 OpenGL이라는 하드웨어 가속 3차원 그래픽 라이브러리의 기술 데모 명목으로 만들어졌다.
마소는 전통적으로 게임용 그래픽 명목으로 DirectX를 강력하게 지지하곤 했는데 웬 OpenGL인 걸까?
"얘들은 '3D 핀볼'처럼 제3자 외주 개발 프로그램이기라도 했나? 근데 겨우 화면보호기를 외주로 개발해?"

개인적으로 궁금했는데 그게 아니구나.
얘들은 마소에서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인데, Windows 95가 아니라 Windows NT 3.5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95 시절에 출시됐던 Hover! 이라든가 Fury!! 같은 초보적인 수준의 가정용 3D 게임과는 기술 계보가 완전히 달랐다. 이게 핵심이다.

(* 참고로, 저 당시에 마소는 팀 간에 경쟁과 알력 싸움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Windows 9x 팀 vs NT 팀, Office 팀, Visual C++ 팀 등등.. 그래서 서로 정보 공유도 안 하고, 같은 기능 API도 다 따로따로 중복 개발했을 정도였다.. 무슨 구 일본군 육군 vs 해군처럼.. 그 당시 빌 게이츠라든가 스티브 발머는 정말 살벌한 경영자였다. *)

하드웨어 가속이 없이 평범한 재래식 그래픽으로는 화면보호기에 점, 선, 글자 같은 초보적인 그래픽 애니메이션만 가능했다. 그것도 2D 위주..
물론, 쌍팔년도 시절 화면보호기의 정석 교과서는 별들이 씽씽 3차원 원근법이 적용되어 날아다니는 '우주여행'이긴 했다. 아니면 불꽃놀이..??? 시꺼먼 화면에서 점과 선만 갖고 나름 근사한 눈요깃거리였다. 직접 코딩해서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런데 OpenGL이나 DirectX 같은 게 등장한 덕분에 텍스처나 광원이 들어간 3차원 애니메이션이 구현 가능해졌다.
그래서 마소에서는 OpenGL 데모를 화면보호기 형태로 제공하기로 했고.. 사내 OpenGL 화면보호기 덕질 공모전을 열어서 제일 우수한 작품 하나를 Windows 제품에다 넣기로 했다.
그랬는데 결국은 출품된 작품들을 모두 제품에다 넣어서... 그게 저렇게 전세계에 퍼진 것이다.

얘들은 훗날 Windows Vista에서 대부분 빠지고 '3D 텍스트'만 남았다. 그리고 비누방울 같은 다른 보호기가 도입돼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새로 개발된 걔들은 당연히 Direct3D 기반이겠지..??

지금이야 화면보호기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레거시 퇴물이 됐다. 마치 도스 시절에는 하드디스크 파킹 유틸리티가 각종 현란한 그래픽과 함께 유행이었는데 그것도 유행 지나고 퇴물이 됐듯이 말이다.
화면보호기가 하는 일은 세계 절경 풍경이 나오는 잠금 화면, 아니면 아예 컴 화면을 완전히 끄는 절전 모드로 계승되었다. 스마트폰에 화면보호기 따위가 있지는 않다.

이 화면 보호기 얘기는 the old new thing 블로그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하긴, 옛날에는 화면 보호기처럼 화면 전체를 마치 프레젠테이션 화면 전환처럼 조작하는 거 말이다.
Doom 게임에서 화면 녹으면서 내려가던 효과, 하늘소 프로그램에서 텍스트 화면이 좌우로 쫙 갈라지는 거..
비디오 메모리를 직접 조작하던 게 추억의 프로그래밍 테크닉이었다. ^^

Posted by 사무엘

2024/08/17 19:35 2024/08/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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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업계에서 인텔의 경쟁사라고 하면 가장 먼저 (1) 동급의 x64 CPU를 만들어서 경쟁하는 AMD,
(2) 아키텍처 차원에서 x64에 도전하는 ARM 내지 애플, 혹은 심지어 (3) 울나라 삼성 전자까지 떠올릴 수 있다. 인텔이 메모리 반도체에도 손을 뻗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텔은 저것들보다는 대외 인지도가 낮은 분야에서 AT&T와도 경합한 게 좀 있었다.

1. 바이너리: 오브젝트 파일 포맷

C/C++ 언어로 코딩을 한 뒤에 컴파일을 돌리면 생기는 자잘한 obj 파일들 말이다. 기계어 코드를 담는 이 컨테이너 껍데기의 포맷은 누가 언제 제정했을까?
x86 진영에서는 CPU 본가인 인텔에서 제정한 OMF 방식이 16비트 시절부터 널리 쓰였다. 볼랜드니 마소니 컴파일러가 다르더라도 obj 파일은 호환됐기 때문에 툴을 달리하여 링크가 가능했다.

그러나 마소에서는 32비트 Windows NT를 개발하면서 실행 파일 포맷을 바꾸고(NE에서 PE), 빌드 툴체인도 싹 갈아치웠다. 단순히 OMF의 32비트 확장을 쓰는 게 아니라 obj/lib의 포맷도 AT&T에서 제정한 COFF 방식으로 바꿨다. 그 반면, 볼랜드 컴파일러들은 32비트에서도 여전히 OMF 방식을 쓰면서 서로 파편화가 발생하게 됐다.

그 시절에 마소에서는 빌드를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로딩을 더 빠르게 하기 위해서(메모리 매핑), 거기에다 이식성까지 고려해서 같은 여러 명분으로 COFF를 도입했었다. 다만, 지금은 그런 명분이 기술적으로 많이 옅어지고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GNU 툴킷의 도스용 버전에 속하는 djgpp 컴파일러도 라이브러리· 오브젝트 파일 포맷은 COFF 방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바이너리 에디터로 들여다보면 arch! 앞에 이런 문자열이 있고.. "이건 마소 진영과 오픈소스 진영이 공통이네?" 이런 생각을 예전에 했었다.

2. 텍스트: 어셈블리어 문법

자기네 x86 기계어를 간단한 숫자와 영단어 나열만으로 풀어서 표기하는 어셈블리어 말이다. 이것도 인텔 식 문법과 AT&T 식 문법이 공존한다. 이건 단순히 '어셈블러' 제조사 간의 문법 차이가 아니라 '어셈블리어' 차원에서의 더 저수준 차이점이다.

인텔 문법 AT&T 문법
mov eax, 5
add esp, 24h
movsxd rax, ecx
paddd xmm2, xmm1
movl $5, %eax
addl $0x24, %esp
movslq %ecx, %rax
paddd %xmm1, %xmm2

간단하게는 숫자 앞에 $, 레지스터 이름 앞에 %가 막 붙어 있는 게 AT&T 문법인데, 본인 역시 Visual C++이 표시해 주는 인텔 문법에만 익숙하다. 하지만 역시 리눅스 진영 gdb 같은 데에서는 AT&T 문법이 주류이다.
현업에서 어셈블리어를 직접 짤 일은 없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을 디버깅 하다 보면 디버거가 디스어셈블리해 준 어셈블리어 코드를 보게는 된다.

마소는 이거 문법은 딱히 AT&T 식으로 갈아타지 않았고 인텔 문법을 고수하는 듯하다. Macro Assembler 같은 기존 제품과의 호환 문제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뭐, 어차피 같은 CPU 아키텍처이고, 짜는 게 아니라 읽기만 한다면야 자잘한 표기 차이는 그렇게 심각한 차이점은 아닐 것이다.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건 적당히 고급 언어를 표방하면서 실용성을 갖춘 게 인기를 얻고 대중화되는 편이다.
그럼 실용성 대신에 한쪽으로 특화된 언어는 (1) 함수형처럼 수학 내지 순수주의 쪽으로 특화되거나, 아니면 (2) 어셈블리어처럼 기계 지향적인 쪽으로 특화되는 것 같다.

한 소프트웨어의 모든 코드를 저런 특화 언어만으로 작성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이다.
그래서 기존의 실용적인(?) 다중 패러다임 언어들은 저 (1), (2)의 특성을 제한적으로 부분적으로 제공하곤 한다. 그게 (1) 람다 아니면 (2) 인라인 어셈블리인 셈이다.;;

요즘 세상에 대학교 컴공과에서 어셈블리어 코딩 실습을 하는 건 군대에서 총검술, 사관학교에서 승마 실습을 잠깐 하는 것과 아주 비슷한 모양새인 것 같다.
비록 현대의 전장이나 현대의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버렸지만, 코딩이라는 전투에서 백병전이 어셈블리어 실습이 아니겠나..;; =_=;; 실무에서는 쓸 일이 없지만 컴공 엔지니어를 양성한다는 학교에서는 컴퓨터의 밑바닥 모습을 이런 식으로라도 경험시켜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30 08:35 2024/06/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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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에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바둑, 오목, 체스, 스크래블 같은 보드 게임의 AI 위주로 ‘컴퓨터 올림피아드’라는 대회가 잠깐 개최된 적이 있었다. 기억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떠올린다. ㅠㅠㅠㅠ
IOI라고 불리는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와 헷갈리지 마시길. 요즘은 저걸 검색하면 구글도 자꾸 IOI 쪽으로 안내하는 것 같은데 그거랑은 다르다. 컴올은 공식 명칭에 '국제 I'라는 말이 없다. ㄲㄲㄲㄲ

IOI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중등 수준의 10대 청소년들이 문제 푸는 프로그램을 '즉석에서 작성'해서 그 코드의 성능과 정확도를 평가 받는 대회이다. 그 반면, 저건 현업에 종사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개발사들이 오랫동안 미리 연구 개발해 놓은 자기 자기 제품의 AI 성능을 현장에서 겨루는 대회이다. 즉, 로봇 쥐 미로 찾기와 비슷하며, 저런 보드 게임을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끼리 대국한다는 차이가 있다.

근데 컴터 올림피아드도 첫 대회가 1989년부터 시작됐다니.. 그건 IOI와 동일하다. 그리고 가끔은 IOI에서도 간단한 게임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해서 주최측 AI와 대국하고 채점되는 형태의 문제가 나오기는 한다. 그러니 둘이 완전히 다른 별개 분야의 대회까지는 아니긴 하다.

본인이 저 대회에 대해 들어 본 건.. 한때 왕년에 영단어 보드 게임인 스크래블의 AI를 연구하느라 관련 자료를 많이 찾아봤었기 때문이다.
무려 1988년에는 World's fastest Scrabble program (by 앤드루 아펠, 가이 제이콥슨)이라는 논문이 CACM에 게재돼서 후대의 스크래블 AI 개발자에게 아주 큰 영향을 줬다. 모든 가능한 수를 찾는 기본 작업은 이 논문에서 소개된 알고리즘으로 해치우고, 그 뒤에 단순히 당장 점수가 가장 높은 수를 넘어 장기적인 이익을 따지는 건 전략과 휴리스틱의 영역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래된 생각이긴 하다만, 스크래블 게임의 컴퓨터 구현은 대학교 수준의 자료구조와 알고리즘 코딩 주제로 아주 적합하다. 만약 내가 학원이나 학교에서 저런 전공 과목을 가르칠 기회가 있다면 실습이나 과제로 저걸 꼭 넣었지 싶다. =_=;;
하긴, 석사 논문으로 두벌식 한글 연속입력 오토마타를 연구했던 모 교수님은 자기가 강의하는 형식언어와 오토마타 수업 시간에 한글 입력 오토마타를 구현하는 과제를 고정 편성으로 넣었더구만.. 그런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저 논문을 투고했던 연구진은 딱 이듬해인 1989년, 제1회 컴퓨터 올림피아드의 스크래블 부문에 참가해서 우승했다고 한다. 타이밍 절묘하군..

그 뒤 2회와 3회에서는 Jim Homan이라고 MIT 출신의 다른 엄친아 공돌이가 개발한 스크래블 AI가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정황상, 아마 저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AI를 더 발전시킨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저 AI 엔진을 토대로 CrossWise라는 굉장히 깔끔한 크로스워드 게임(설정을 맞춰서 스크래블 게임도 가능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판매했다.

그것 말고 브라이언 셰퍼드라는 사람이 개발한 Maven이라는 스크래블 AI도 유명했다. 얘도 개발 역사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고, 스크래블 보드 게임의 총판사에서는 Maven을 공식적으로 밀었다고 하는데.. 얘에 대해서는 나도 더 아는 바가 없다. 이쪽은 딱히 컴올에 참가한 이력도 없는 것 같다.

뭐, 이것도 다 지난 얘기이다. 지금은 스크래블 게임쯤이야 폰이나 웹에서도 돌릴 수 있을 텐데.. 유행이 지난 것 같다.
하다못해 바둑조차도 세계를 석권해 버린 알파고 개발진이 "이젠 바둑은 더 연구할 게 없다~~" 명목으로 발을 뺐을 정도이니 말이다. -_-;;

저 컴퓨터 올림피아드는 스폰서 내지 운영진을 섭외할 수 없어서 1991년 이후부터 1990년대 내내 맥이 끊겼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부터 다시 개최는 되고 있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인지도가 별로 없고 마이너하다는 냄새가 풍긴다. 고전적인 최적화나 휴리스틱 위주의 AI는 유행이 끝나고 닥치고 인공신경망이 대세가 돼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보드 게임 AI 외길을 가고 있는 제품은 '장기도사'가 유일하지 싶다. 의미 있는 연구이긴 하다만, 보드 게임이라는 장르 자체도 마이너해지고, AI 패러다임도 마이너해져서 수요가 무척 적을 것 같다. 뭐, 그런 식으로 염세적으로만 따지자면 본인의 주특기인 세벌식 자판도 마이너 중의 초 마이너이긴 하다만 말이다. -_-;;

고전적인 AI 대신 2010년대를 풍미했던 건 인공신경망들이었다. 2012년, 사물 인식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AlexNet부터 시작해서 VGG, ResNet, YOLO가 뒤를 잇고 chatGPT, transformer 등등이 쏟아져 나왔으니까.
컴퓨팅 패러다임이 싹 달라졌다. 이 과정에서 파이썬은 머신러닝 학계와 업계의 공용 언어가 되었고, 교육과 실무를 다 장악해 버렸다. ㄷㄷㄷㄷ 파이썬과 루아(Lua)가 처지가 극과 극으로 달라지게 될 줄은 20년 전엔 정말 예상할 수 없었다. 이것도 생각할 점이라 하겠다.

글을 맺기 전에 잠깐.. 그러고 보니 World Cyber games도 생각난다. 얘는 컴퓨터 AI가 아니라 사람이 겨루는 대회이지만, 그래도 E-스포츠 전문이니 뭔가 컴퓨터스럽고 사이버틱한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얘도 2001년에 처음으로 시작됐다가 2010년대엔 스폰서를 못 구해서 한동안 중단됐던 적이 있다. 그 뒤 지금은 재개되기는 했지만 권위나 인지도가 예전만 하지는 않다는 게 컴퓨터 올림피아드와 비슷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25 08:35 2024/06/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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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체에서 접하는 옛날 풍경 모습이란 게 한때는 그냥 사람이 붓에다 물감 찍어서 그린 그림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그게 흑백 사진을 거쳐서 컬러 사진으로 바뀌었는데, 이제는 애초에 흑백 사진밖에 전해지는 게 없던 장면조차 컬러로 재구성된 게 늘고 있다.
컬러이더라도 화질이 안 좋았던 것을 리마스터링까지 한다. 이런 건 소실된 색/화소 정보를 AI의 힘으로 창작해서 복원한 것이다.

AI는 완전히 생판 무에서 유를 창조할 정도로 혁명적인 일은 절대 못 한다.
뭔가 패턴이 있고 생노가다 같긴 하지만, 진짜 노가다보다는 미묘하게 복잡하고 전문성과 창의성(?)이 필요해서 자동화가 안 되고 인력 수작업이 필요했던 일들.. 그러면서 법적 책임과 부담감이 크지는 않은 일.
AI는 딱 그런 업종을 0순위로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1) 음악: 없는 곡을 AI가 작곡도 하는 세상인데, 기존 악보 멜로디를 읽고서 E G Fm 등 코드를 매긴다거나 반주를 넣는 건(편곡) 당연히 자동화될 것이다. 이것도 답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곡에 대한 해석과 창작이라는 범주에 든다!
코드를 만에 하나 좀 이상하게 넣었다고 해서 당장 인명· 재산 손실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AI화하기에 딱 좋아 보인다.

(2) 폰트: 한 폰트 패밀리로부터 다양한 굵기 내지 이탤릭 바리에이션을 자동 생성하기. 윤곽선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산술적으로 부풀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로 인한 세밀한 공간 배치를 인간이 보기 좋게 알아서 하는 것 말이다. 힌팅을 더 똑똑하고 정교하게 생성하는 것도 포함이다.
그리고 한글· 한자의 경우, 샘플 몇 글자만 넣어 주면 그로부터 규칙성을 파악해서 나머지 수천 자의 글자 모양까지 알아서 유추해서 자형 생성하기.

AI는 한글· 한자에 대해서도 알파벳처럼 폰트들이 엄청 많이 넘치도록 개발되게 도와줄 것이다. 한글· 한자가 글자수가 수천 자나 된다고 해서 진짜로 문자로서 자형의 절대적인 정보량? 엔트로피가 알파벳의 수백 배 이상인 건 아니다. '가각간갇'이 무슨 알파벳의 ABCD 급으로 서로 완전히 다른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엔.. 알파벳은 글자 수가 적어서 폰트도 크기가 작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반면.. 한글 한자는 너무 무겁고 뚱뚱하고 컴퓨터 자원도 많이 차지한다고.. 이러니 동양이 서양보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열등하고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정서가 있었다. 100여 년 전, 공 병우니 최 현배니 하던 시절엔 기계식 타자기만 갖고도 문자의 우열이 비교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 정도로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컴퓨터 자원이야 풍부해서 넘쳐나고, AI가 사람으로 하여금 진짜로 본질적으로 창의성이 필요한 작업만 하면 되게 나머지를 보조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이 이런 AI를 만들기 위한 연구 개발은(코딩, 수학식, 논문 등)... 알파벳처럼 원초적으로 가볍고 취급하기 쉬운 tier 1급 문자로 행해졌음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3) 코드 정적분석: 재래식 알고리즘만으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정적분석만으로 실행 결과를 100% 정확하게 예측하고 논리 결함을 찾아내는 게 불가능하다. 그 이상부터는 그냥 휴리스틱/AI의 영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코드뿐만 아니라 주석에 적힌 자연어 문구도 의미를 파악해서 "이거는 시스템 정보나 패스워드가 하드코딩된 거 아냐?" 같은 것도 정적분석이 찾아낼 수 있다. AI는 재래식 정적분석 툴의 쓸데없는 오탐들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4) 그 밖에 이런 AI 기술로 내 생각엔 인쇄된 글자 모양을 보고 그냥 OCR을 하는 게 아니라 이게 무슨 폰트인지를 알아맞힌다거나, (산돌, 윤~~ ㅋㅋㅋ) 거대한 인파 사진을 보고 여기 사람 머리가 몇 개인지 카운트 하는 것.. 아 이건 딥러닝 AI까지는 아니라 그냥 컴퓨터 비전이려나.. 이런 기술이 개발되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다.

(5) 그리고 식당· 카페의 무인 키오스크가 아예 커맨드라인 콘솔이 도입될 게 아니라면 진짜 사람 말을 빨랑빨랑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지금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는 너무 느리고 답답한 반면, 단순 주문 접수는 지금 정도의 NLP로도 그렇게 어렵지 않을 테니 말이다. 확실히 AI 덕분에 단순 안내 데스크나 전화 상담 직원은 많이 없어질 것 같다.

다만, AI는 저렇게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 참고· 보조용 도구로서 강세이다. 법적 책임까지 수반되는 분야에 진입하는 건 많이 더디지 싶다. 그래서 의료 법조 쪽은 그냥 자문· 상담부터 시작할 것으로 보이며, 자동차의 완전 자율주행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 철도는 통제가 너무 잘 된 환경이니 AI 없이 재래식(?) 로직만으로 이미 무인 자동운전이 가능할 지경이다. 차량 번호판 숫자나 QR코드를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정도로 잘 통제된 이미지의 인식은 AI가 아니라 그냥 통상적인 컴퓨터 비전 분야..)
그러니 자동차와 철도의 중간 난이도인 비행기나 선박의 운항에 AI 기반의 자동 운항이 먼저 파고들지 않을까 싶다. 허나, 승객 수백 명이 타는 여객기에 무인까지는 아니어도 부기장이 없어지고 1인 조종이 가능해질지는 과연..?? 저비용 항공사에서 작은 기종부터 1인 조종을 시킬 수는 있겠다.

* 미용· 이발은 굳이 AI화 자동화하자면 못 할 건 없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겨진다. 사람이 직접 가위 들고 사람 머리 깎는 건 가까운 미래에도 변함없을 것 같다. ㄲㄲㄲㄲㄲㄲ

* 빌 게이츠는 무려 25~30년 전부터 제품에다가 자연어를 알아듣는 AI 비서? 에이전트를 넣으려고 애썼던 사람이다.
마소 Bob이라든가 Office 길잡이..;;는 좀 무리한 흑역사였긴 하지만.. 반대로 저 아저씨가 시대를 앞서간 시도를 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귀요미를 겨우 램 16MB, 150MHz짜리 펜티엄 컴터에다 집어넣으려 했으니 욕 먹었던 거지..;; 현실의 기술이 아이디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 미국 말고 의외로.. 중국이 2010년대 이후부터 머신러닝, 언어모델 쪽 연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외국의 최신 논문을 찾아 보면 중국 사람 이름이 엄청 많이 보인다.
그런데 중국은 그런 첨단 AI 기술을 이용해서 인터넷의 불온 컨텐츠를 검열하고 인민들 행동패턴을 감시하는 데도 적극 활용한다는 게 함정....

지난 1990년대 중반까지 기계번역 프로그램이 잠깐 나오다가 유행이 식은 적이 있었다. 일한이라면 모를까 영한은 이거 뭐 도저히 실용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한영은.. 난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절대 개발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인공신경망 기반 AI로 언어 장벽이 이 정도까지 무너지고 낮아진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물론 무슨 기업간 회의나 대통령 연설, UN 컨퍼런스를 기계번역으로 때워도 되는 건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뭔 말인지 내용 파악하는 용도로는 기계번역이 정말 쓸 만해졌다.
게다가 이게 텍스트를 읽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waveform 형태의 말소리를 받아 적은 transcript를 생성하고 그걸 번역까지 하다니.. 유튜브에서 자기 동영상의 음성에서 자막을 아주 정확하게 실시간 생성해 주는 것만 해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암호 해독을 위해 언어학자가 아니라 수학자가 필요한 시대는 이미 20세기 중후반에 찾아왔다. 이제는 기계번역이나 자연어 처리 영역도 언어학자가 아니라 수학자와 데이터 과학자의 차지가 됐다.
2020년대가 되니 인간이 달이나 화성이나 해저에 기지를 만드는 건 전혀 가망이 없고, 그 대신 쌍팔년도 SF에서 거의 상상하지 못했던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대세가 됐다. 그래서 카폰이라는 게 완전히 사라졌고, 무전기는 군· 경· 소방 같은 특수 직종에서나 쓰이는 물건이 된 거다. 뭐, 언어 자동 통번역기는.. 그 시절에도 상상은 했었고 얼추 실현돼 간다.

머신러닝에서 모델이라는 건 코드와 데이터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경계가 참 애매한 것 같다. =_=;; 물론 순수하게 데이터에 속하는 건 훈련용으로 먹이는 텍스트나 그림들이겠지만 저런 신경망 자체도 머신러닝 라이브러리 코드의 관점에서는 데이터일 것이다.
그리고 훈련시키는 건 뭔가 압축하는 것과 비슷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를 풀이하는 건(추론) 압축을 푸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런 AI는 참 엄청나고 대단하긴 하지만.. 공짜로 평범한 계산량으로 돌아가는 물건이 아니다. AI를 돌리기 위해 동원되는 컴퓨팅 자원을 보면 정말 억소리 난다.
chatGPT가 저렇게 답을 '즉시' 뱉어내기 위해서 지구 반대편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성능 슈퍼컴이 전기를 있는 대로 잡아먹고 열을 펑펑 내뿜으며 돌아가야 한다. 살인적인 분량의 신경망 연산이 행해지기 때문이다. 저기 서버가 하루 유지 비용이 원화로 몇 억? 몇십 억이니 그런다. 이때 컴퓨터 내부의 신경망 상태는 상상을 초월하게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훈련이나 추론 과정의 추적이 도저히 불가능할 지경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유인 달 착륙과 귀환을 몇 차례 성공하긴 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위험하고 어렵고 힘들고 비싸게 가까스로 해낸 것이었다. 민간인의 대중적인 달 여행이라든가 달· 화성 기지로 이어지는 건 지금 관점에서도 가까운 미래엔 요원하다.

그리고 AI의 발달 추세에도 이런 우주 개발과 비슷한 면모가 있는 것 같다. 과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자연어 처리가 가능해지기는 했지만.. 그걸 가능케 하는 컴퓨팅 환경이 저 우주 로켓 같은 물건이라는 거다. 물론 컴퓨터 업계도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빠는 건 아니니.. 그 연산에 특화된 CPU를 만들어 간다.

30여 년 전, 486이니 펜티엄이니 하던 시절엔 멀티미디어 지원이 컴터 업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것 기억하시는가?
크게 (1) 동영상 아니면 (2) 게임용 3D 그래픽 실시간 렌더링이라는 두 분야이다.
하긴 그 시절엔 MPEG 동영상을 감상하기 위해서 전용 카드를 꽂네 마네 했던 것 같다. 요즘은 재생이 아니라 컴터 화면을 실시간으로 녹화하고 인코딩할 때에나 전용 카드가 필요한 듯하다.

나중에는 엄청난 물량을 자랑하는 멀티미디어 연산에 특화된 명령이 CPU에 추가되고, GPU라는 건 그래픽 가속기라는 이름으로 도입되곤 했었다.
그랬는데 이제는 단순 그래픽 처리를 넘어 머신러닝 신경망 연산에 특화된 CPU가 대세이다. 당연히 서버에 접속해서 API를 호출해서 구현된 거라고 생각한 통· 번역이 핸드폰에서 비행기 모드까지 켰는데도 동작한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저런 컴퓨터에 비해 인간의 두뇌는? 환경에 끼치는 부작용이 없고 당분 몇 스푼만 공급해 주면 한 나절을 거뜬히 돌아간다.
물론 두뇌와 컴퓨터가 서로 비교 가능한 존재는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생체라는 게 참 경이롭다. 두뇌와 컴퓨터는 다리와 바퀴가 다른 것만큼이나 다른 건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이스트소프트는 맨 처음 1990년대엔 21세기 워드라는 평범한(?) 업무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가 알툴즈로 명성 내지 악명을 떨쳤고.. 그러다가 게임이 더 돈 된다고 생각했던지 '카발'이라는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고 지금 와서는 AI 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게임과 AI 모두 GPU가 쓰인다는 공통점이..)
각각의 제품들이 어떤 평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시류를 따라 참 다양한 분야를 개척하면서 생존하려고 애쓴다는 것 하나는 확실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22 08:35 2024/06/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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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는 클라이언트 내지 서버 개발자로 역할이 크게 나뉜다.

사용자가 자기 머신에(PC 내지 폰) 직접 설치해서 구동하는 그 exe / apk야 클라 개발자의 작품이다.
현란한 그래픽을 구현하고, 같은 하드웨어에서 화면 프레임 수를 늘리려고 고생하는 애들 역시 클라 개발자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용자들을 동시에 수용하고 계정 정보를 관리하고, 이것들이 해킹당하지 않게 보호하고, 클라가 뿌릴 게임 내부 상태를 전해 주는 건.. 서버 및 서버 개발자의 몫이다.

클라 프로그램이 뻗는 건 그 사용자만의 문제이지만, 서버가 뻗는다면....;;;; 뭐 그렇다.
조금 어설프게 비유하자면 클라는 또박또박 보도를 하는 뉴스 앵커이지만, 서버는 뉴스 대본을 생성하고 보도 순서와 분량을 정하는 보도국뻘 된다.

그런데 데스크톱이나 모바일 '앱' 말고 웹 개발로 가면.. 프런트 엔드와 백 엔드라는 계층 구분이 있다.
웹 프로그램은 머신에 설치되는 게 아니라 웹브라우저 화면에서 바로 구동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념적으로는 클라라는 게 없고 서버 프로그램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도 계층 구분이 있다. 사용자한테 보이는 부분, 더 기술적으로는 js html css처럼 서버로부터 받기는 했지만 사용자의 웹브라우저에서 구동되고 사용자가 소스를 직접 볼 수 있는 부분은 프런트 엔드이다.
그 반면, 저런 html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이라든가 DB처럼.. 진짜로 서버에서만 돌아가고 사용자가 코드를 볼 수 없는 부분은 백 엔드라고 불린다.

프런트 엔드 웹 개발자는 웹 '디자이너'와 영역이 겹치며 같이 작업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백 엔드는 디자이너와의 접점이 없으며, 그 대신 Java, C#, 심지어 C++처럼 머신 종속적인 데스크톱용 프로그래밍 언어와 접점이 있을 수 있다. (사용하는 프레임워크가 무엇이냐에 따라)

글쎄, php는 딱히 기계 종속적이지 않으면서 백 엔드 개발에 최적화된 언어인 듯하다.
JavaScript야 웹 개발계의 유니코드요 세계공용어로 등극했으며, 프런트와 백에서 모두 쓰이고 있다.

원래 컴퓨터 업계에서 '프런트/백 엔드' 이런 말은 컴파일러에서 주로 쓰이던 용어였다. 구문 해석해서 parse tree 내지 IR(중간 표현)을 생성하는 게 프런트이고, 이걸로부터 실제 머신 코드를 생성하고 최적화도 하는 게 백이었는데.. 2000년대 이후부터는 웹 개발에서의 계층을 구분할 때도 저런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웹의 초창기에는 웹만을 위한 프로그래밍이라는 개념이 아주 희박했다. 프런트/백의 엄밀한 구분도 없었고 온갖 비표준 파편화 기술들이 난립했었다.
프런트 엔드에 속하는 건 사용자가 폼에 입력한 값이 올바른지 로컬에서 체크해서 에러 메시지 띄우는 수준의 아주 간단한 코드?? 이런 코드는 html 코드의 주석 안에 자그맣게 짱박혀 있곤 했다.;; html이라는 문서가 main이지, 이런 코드는 약간의 동적 요소만 가미해 줄 뿐,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하긴, html 자체를 동적으로 생성하는 기술을 공부해서 DB 만지고 게시판 같은 거 자작하는 게 지금으로 치면 백 엔드 개발이었겠다. CGI 역시 백 엔드의 범주에 드는 초창기 기술일 테고. =_=;; 옛날 제로보드 스킨은 일종의 프런트 엔드 개발이었겠다. ㄲㄲㄲ
플래시니 Java 애플릿 같은 건 물론 프런트이고, 지금의 관점에서는 특정 기업 솔루션에 종속적인 비표준 기술이 됐다.

프런트 엔드에서 돌아가는 웹 프로그램 코드는 특정 기계어로 컴파일되지는 않는다. 무슨 C/C++ 프로그램처럼 저수준 메모리 문제나 보안 문제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특정 JavaScript 코드를 실행함으로써 메모리· 보안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건 그 브라우저에 내장된 js 엔진의 버그이지, js 코드의 버그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문제 있는 js 코드는 다른 부작용 없이 깔끔하게 실행이 거부되고 에러 메시지와 함께 튕기기만 돼야 할 테니 말이다.

그 대신 그 코드는 보통 난독화 처리가 돼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드가 노출돼 있다고 해서 사용자가 그 코드를 읽어서 뭔가 로직을 파악하기는 매우 난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웹 프로그래밍에서 보안의 최대 관심사는 buffer overrun 같은 부류가 아니라.. 신뢰할 수 없는 임의의 외부 문자열이 코드나 태그, SQL 따위로 인식되어 실행되지 않게 하기 위주인 것 같다. C로 치면 % format 문자열에다가 동적 생성된 외부 문자열을 공급하지 말라는 것과 비슷하다.

문득 드는 생각은.. 웹 개발을 위한 전용 IDE가 있을까?
옛날에 나모나 드림위버, FrontPage 같은 위지윅 html 에디터가 있었고.. Visual Studio 6 시절엔 Visual InterDev라고 비베 냄새가 나는 웹 개발 IDE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건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유행이 지나고 한물 갔다. 심지어 마소에서 Expression Studio라고 새로 만들던 웹 개발 저작도구도 2010년대 초반에 개발이 중단됐다.

웹은 과연 IDE의 무덤인지.. 개발에 이클립스 내지 Visual Studio Code 같은 범용적인 에디터/IDE만 쓰이는 것 같다.

※ 비유 개드립

  • "웹 디자인 - 웹 프런트 엔드 개발 - 웹 백 엔드 개발"은 뭔가 "장갑차 - 전차 - 자주포" 순으로 성향이 바뀐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ㄲㄲㄲㄲㄲㄲ
  • 프런트 엔드에서 css / js / html라는 역할 구분 세분화는 입법 사법 행정 삼권분립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 PC용 앱은 일반 봉지 라면, 모바일 앱은 컵라면 사발면.. 그리고 웹사이트를 구동하는 프로그램은 식당 납품용으로 대량 판매하는 라면 사리 내지 스프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 웹 개발이나 컴파일러뿐이겠는가. 인공위성은 프런트 엔드, 발사체는 백 엔드 기술인 것 같고.. 자동차에서도 주행과 관련은 없지만 탑승자가 대면하고 사용하는 부품들은 프런트요, 엔진룸 안에서 차량을 굴리는 데 기여하는 부품은 백에 대응하는 듯.. 이런 식의 구분은 다른 여러 분야에도 존재한다.

※ 모바일 관련

mobile이라는 말이 원래는 물리적인 이동, 교통과 관련된 단어였다. 미술 조형물 모빌이라든가, automobile 자동차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관련 '통신' 뉘앙스가 더 짙어졌다.
그리고 우리말은 참 희한하게도 '모빌'은 통상적인 의미, '모바일'은 통신 의미로 분화됐다. 마치 '도트/닷', '네트/넷'의 뉘앙스 변화와 비슷한 재미있는 현상이다.
'통신사'가 지금이야 SK 텔레콤 같은 게 먼저 떠오르지만 원래 연합뉴스 같은 언론사 용어였다는 것도 생각해 보자.

Posted by 사무엘

2024/06/11 19:35 2024/06/1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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