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고 또 오랫동안 새 글을 못 올리다가 이제야 한참 전부터 써 왔던 글을 하나 마무리 지었다. ㄲㄲㄲㄲㄲㄲ

미국은 넓은 땅과 자원에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생산력을 갖추고 세계에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초강대국이다.
단순히 땅 넓고 자원 많고 인구만 많은 게 아니다. 3억이 넘는 인구가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이 집 있고 차 있고 총까지 있고 기본적인 구매력이 갖춰진 중산층이다.

나라가 꽉 막힌 사회주의 공산당 독재 체제가 아니며,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이념에 충실하다. 심지어 그걸 세계에 퍼뜨리면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미국이 해 온 짓이 다 선하고 옳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것만으로도 매우 대단하고 부러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미국은 넘사벽 급의 군사 강국임이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자국 영토엔 전방이라는 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군은 자기 나라가 아니라 미국과 이념을 공유하는 동맹국들을 지키는 데 투입되며 거기가 전방으로 취급받는다. 누구를 넘어서는 게 목표가 아니고 그냥 현상유지가 목표이다.

미군이 거위걸음 연습해서 대규모 열병식을 한다거나, 굳이 에이브럼스 전차나 F-22 전투기 잔뜩 끌고와서 군사 퍼레이드 하는 일 따위는 없다.
그건 서울대나 육사가 무슨 졸업생 취업률 운운하면서 학교 홍보하거나 광고를 뿌리는 일이 절대 없는 것과 완전히 같은 맥락이다. 쟤들은 가끔씩 독립전쟁 하던 시절 옛날 코스프레 정도나 할 뿐이다.

뭐, 미국의 니미츠 급 항공모함을 1개월인지 n개월인지 운용하는 데 드는 유지비는..
그 니미츠 항공모함의 함재기 패거리로부터 공격 당한 나라가 입는 피해 비용과 비슷할 거라는 말이 있다. 둘 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액수일 텐데.. ㄲㄲㄲㄲ
딴 나라들은 저런 항모가 있어도 도저히 유지를 못 하겠지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저 천조국만은 그걸 감당할 수 있다.

이런 미국의 20세기 시대상은 이랬던 것 같다. 이때 나라의 모습이 정말 순식간에 바뀐 것 같다.

  • 1800년대 중후반: "금 캐러 가세" 이러던 서부 개척, 총잡이 카우보이 보안관, 황야의 무법자, dead or alive 딱지가 붙은 현상수배범 포스터, 남북전쟁!!
  • 1900년대: 록펠러, 카네기 등.. 나라가 미칠 듯이 발전하고 현대화되고 부강해지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폐단과 산업화의 부작용도.. 강도귀족 도금시대
  • 1920년대: 금주법, godfathers 시카고 마피아, 중산층들은 이미 다 차 끌고 다니고 라디오도 갖고 있음, 뉴욕엔 이미 초고층 빌딩이 있고 교통체증도 있었음
  • 1940년대: 대공황에다 전쟁까지..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Remember Pearl Harbor. 세계에서 유일하게 군 장병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배급했음
  • 1960년대: 월남전, 히피, 비틀즈 뭐 이러던 시대. 겁나게 크고 각진 캐딜락 엘도라도 같은 자동차. 중산층급 자가용이 자연흡기로 8기통 6000cc급..
  • 1980년대: 전자음향, 마이클 잭슨, 카세트 테이프와 VHS 비디오, 컬러 텔레비전

병맛 영화 쿵 퓨리(2015), Grand theft auto Vice city 게임(2002)도 다 배경이 1980년대 마이애미 해변도시이다. 저게 1980년대 미국 리즈 시절의 상징인 듯..
당대에 Windows 1.0 광고에서도 스티브 발머가 오바 연기를 하면서 Lotus 1-2-3와 Miami vice를 언급하던데.. 후자는 게임인지 영상물인지 무슨 매체를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편,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육해공 군종별로 미국의 인상적이었던 군인은 개인적으로 다음 인물이 떠오른다.
세계 어느 나라 군대가 안 그렇겠냐마는.. 미국도 군 수뇌부가 정말 겁나게 호전적이었다.

1. 육군: 조지 패튼 (최종 계급: 대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질은 진짜 더럽고 지랄맞지만 그래도 어쨌든 아군을 전투에서 이기게는 만드는 지휘관..;;;이었다.
군인, 특히 고위 장성 중엔 군인으로서 유능할 뿐만 아니라 물욕과 권력욕이 있어서 자기 PR과 인맥 관리, 기름칠, 언플, 정치질에도 능숙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맥아더처럼 말이다.

그러나 패튼은 그런 건 나몰라라 out of 안중이고, 오로지 적진으로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 적군을 죽이는 일밖에 모르는 다혈질 싸움닭이었다.
이 사람의 대표적인 어록은 다음과 같다.

- 나는 전쟁이 너무 좋아 죽겠다~ 하루라도 전투가 없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겠다 (..)

- (전투를 앞두고 부하들에게 훈시) 나는 신이 우리의 적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기도한다. 난 자비를 베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뜨악..)
"빈 라덴을 용서하는 건 신이 하실 일이지만, 빈 라덴과 신의 만남을 주선하는 건 우리의 임무이다" 뭐 그런 얘기 같다. ㄲㄲㄲㄲㄲㄲ

- (역시 훈시) 제군들은 전쟁터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치지 마라! 적들이 우리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치게 만들어라! ㄷㄷㄷㄷㄷ

- (훈시) 제군들은 먼 훗날 손주새끼를 무릎에 앉혀 놓고 무용담을 당당히 늘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할애비는 2차 대전 때 후방에서 편하게 뒹굴뒹굴 꿀이나 쳐 빤 게 아니란다
최전방에서 조지 패튼이라는 이 천하의 빌어먹을 X새X와 함께 전방에서 용감하게 진군했지!!" 라고 말이다~~!!!!!!

정말 기백 넘치지 않는가? ㅎㄷㄷㄷㄷ
이 아저씨는 정말 뼛속까지 군인이었다. 용맹하게 싸우는 군인정신을 뼛속까지 숭상하던 아저씨였다.
그래서 무려 쓰리스타 포스타를 자랑하는 넘사벽 신분으로도 야전병원에 몸소 위문도 갔다. 부상병들을 일일이 위문하고 진심으로 격려하는 본을 보이기도 했으나..

반대로 외형상 피 튀기는 부상이 별로 심해 보이지 않던 PTSD(정신병) 환자나 참호족 환자를 의지박약 꾀병으로 오인하고는 싸대기와 함께 "이런 겁쟁이 새끼를 봤나~ 나가 뒤져! / 이 나일롱놈을 당장 영창에 집어넣고 군법재판에 넘겨!"...
이런 막말 말실수 사고를 몇 번 쳐서 커리어에 오점을 찍기도 했다.;;;

패튼은 서부 전선에서 육군을 지휘하면서 나치 독일과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해병대나 일본이나 태평양 전쟁 쪽과는 접점이 없다.

2. 해군: 윌리엄 홀시 (최종 계급: 원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아저씨는 "앞으로 태평양 전쟁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 계획이십니까?"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 왜놈들을 그저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일 겁니다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 좋은 쪽발이는 죽은 지 6개월 지난 쪽발이뿐이다!
  • 앞으로 일본어는 지옥에서나 쓰이는 언어가 될 것이다~!

라는 정말 주옥같은=_=;; 명언을 남겼던 해군 제독이다. 이 사람은 아이스크림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미군은 2차 대전 중에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장병들에게 투게더 같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펑펑 배급해 주던 군대였다.
하루는 병사들이 휴식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줄을 길게 늘어섰는데, 소위 중위.. 초짜 장교들이 계급으로 갑질하면서 앞으로 새치기를 시전했다.

그런데 저 뒤에서 누군가가 그 새치기 장교들에게 니들도 뒤로 와서 줄 안 서냐고 쌍욕을 퍼부으면서 고함을 쳤다.
알고 보니 그렇게 뒤에서 줄을 서 있던 사람이 바로.. 저 윌리엄 홀시.. 무려 포스타 장군이었다고 한다.

저 사람은 적에게는 무시무시하게 막말을 퍼부어도 자기 부하들은 아끼고 챙기고 장병들 복지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던 대단한 사람이었다.

3. 공군: 커티스 르메이 (최종 계급: 대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사람은 미군 육군 항공대에서 공군이라는 조직을 창설한 주역이다.
그는 비행기를 이용한 공습.. 다른 말로는 폭격에 재미를 붙여 버렸다. 그래서 그냥 말 끝마다 "저것들 다 폭격해서 석기시대로 만들어뿐다" (Bomb them back to the Stone Age)
석기시대 드립이 이 사람의 밈이 됐다.

일본은 원자폭탄을 맞기 직전이던 1945년 초에 도쿄를 포함해 주요 대도시이 모두 미군으로부터 불바다 폭격을 당했었다. 그 공습을 다 이 사람이 계획하고 주도했다.
단, 폭격 정확도를 위해 폭격기들을 위험할 정도로 너무 저공으로 비행시켰다. 그래서 아군이 일본 측의 대공화기에 맞을 뻔하고 죽다 살아나오는 고비를 여럿 겪었다.

그래서 하루는 부하 조종사들이 뭐 이런 걸 작전이라고 짰냐며 항의하러 그를 찾아왔다. 그러나 이 아저씨는..
"으하하하~ 오늘 공습 덕분에 이 적은 폭탄만으로 쪽발이들 나라의 수도가 다 박살나고 쪽발이가 10만 명이나 죽었다구.
오늘 작전은 대성공이다! 제군들도 같이 승리의 축배를 들자구!" 이러면서 항의는 그냥 씹어 버렸다.
사실, 이 아저씨도 "적진에서 폭격은 이렇게 하는 거야!" 그러면서 그 위험한 작전에 솔선수범하며 나서기도 했었다.

몇몇 부하가 "민간인 사는 곳에다가 이렇게 폭탄 떨궈도 될까요..?"라고 좀 망설였다. 그러나 이 사람 왈,
"요즘 전쟁에 무고한 민간인 같은 건 없다, 알겠나? 우리를 죽이는 왜놈들 폭격기가 다 이집 저집 돌면서 나사 조립하고 철판 용접해서 만들어지거든. 그냥 다 밀어버리면 됨."
이렇게 우려를 일축했다. 이게 그냥 합리화가 아니라 일본의 상황 기준으로는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가내수공업)

즉, 이 사람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전쟁은 민간인 피해나 오폭을 최소화하면서 전투를 소심하게 조심스럽게 안전하게 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짧고 굵게 화력을 미친 듯이 쏟아부어서 전쟁 자체를 빨랑 최대한 빨리 끝내 버리는 게 궁극적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 여담

(1) 미국은 현재까지 포스타 대장보다도 높은 오성장군, 원수가 총 9명 배출되었다. 맥아더가 가장 유명할 것이고, 위에서 거론된 사람 중에는 해군의 윌리엄 홀시가 여기까지 진급했다.
물론 1950년대 이후에는 지구상에 세계 대전 급의 전쟁이 없는 관계로, 미군에서 이런 계급을 현역에게 부여하지는 않고 있다.

(2) 심지어 더 옛날엔 원수보다도 더 높은 '대원수, 육성장군'도 있었다. 이건 미국-스페인 전쟁(조지 듀이)이라든가 1차 대전(존 퍼싱) 시절의 영웅에게 부여된 게 마지막이다.
뭐, 건국 200주년 기념으로 국부인 조지 워싱턴에게도 대원수 계급이 '추서'되기는 했지만 이건 평범한 군대 진급은 아닐 것이다.

(3) 미국에서 징병제는 월남전 때 마지막으로 부활했다가 1973년을 끝으로 폐지되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징병제로 전환할 수 있게 지금도 군 복무 가능자를 조사하고 리스트를 관리하고 있다고는 한다.
마치 서울 지하철 9호선이나 공항철도가 언제든지 독자적인 추가 운임을 징수할 수 있게 형식적으로나마 고유한 환승 게이트를 관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그런 게 없더라도)

(4) 미국은 냉전 이전, 1945년에 핵 실험을 해 본 유일한 나라이다.
그 뒤 냉전 기간 내내 핵 실험을 하다가 1992년을 끝으로 더 하지 않고 있다.
글쎄, 트럼프 아재가 30여 년 만에 그걸 다시 하라고 요 근래에 지시를 했다는데 실제로 수행됐는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5/11/19 08:35 2025/11/19 08:35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416

1. 미국과 일본: 절대 잊지 않는다

본인이 개인적으로 미국에 대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바로.. 치욕은 무슨 수를 써서든 무조건 갚아 온 근성이다.

(1) 태평양 전쟁 시절, 진주만 공습을 당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맨 먼저 둘리틀 특공대를 보냈다. (카미카제 특공대가 아니라..)
치사하게 비무장 민간인들이나 학살하면서 화풀이를 한 게 아니다. “저놈들도 우리와 똑같이 예상치 못한 데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을 느끼게 해야 한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해야 한다” 이렇게 정말 고차원적으로 보복을 했다는 게 포인트이다!

그 뒤, 미쿡은 진주만 공습에 참여했던 일본 항모를 미드웨이에서 기어이 다 격침시켜 없앴다. 그리고 이듬해엔 진주만 공습을 기획했던 적장인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도 끈질기게 추적해서 끝내 제거해 버렸다. 이런 게 천조국의 저력이었다.

(2) 냉전 시대에 스푸트니크 쇼크를 한번 당한 뒤에는 달에 인간을 보내 버려서 결국 소련을 꺾었다.
(3) 9· 11 테러를 당한 뒤에는 무려 10년 가까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복수의 칼을 간 끝에 빈 라덴도 없애 버렸다.

미국도 인간이 사는 곳이니 언제나 완벽하지는 않다. 누구와 경쟁하거나 싸울 때 방심하다 실수하고 병크를 저지르고 선빵도 맞곤 했다.
그러나 미쿡은 그 실수로부터 반드시 배우고 교훈을 얻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에 정말 무서울 정도로 진심이었다. 예로부터 미쿡의 초월적인 저력은 이런 데서 발휘되곤 했다.

그리고 미국은 자국의 이름을 걸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전사한 군인이라면 그야말로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유해를 추적해서 무조건 찾아 오는 걸로도 유명하다. 소방관이나 군인을 예우하는 관행 역시 대단하고 부럽기 그지없다.

다음으로 일본은..?? 미국과 같은 분야는 아니지만
(1) JAL123편 추락(비행기, 1985)이라든가 후쿠치야마 선 탈선 사고(전철, 2005)를 잊지 않는다
(2) 한국의 이 수현 씨(2001)를 잊지 않는다~~!!!
처럼 중요한 사건 사고를 골수까지 새기고 영원히 간직하는 쪽으로 진심이다.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

일본 항공에서는 JAL123 사고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새파랗게 젊은 신입 사원들한테도 사고기의 잔해를 보여주고 희생자 묘비를 참배 시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자고 정훈(?) 교육을 시킨댄다.
JR 서일본의 자국어 홈페이지에는 후쿠치야마 선 사고에 대한 사과문이 현재까지도 그냥 영구박제돼 있다.

의사자 이 수현 씨야.. 이제 한국에서도 잊혀져 가지만 일본에서 더 기억하고 계속 추모하고 있다. 이 사람 덕분에 한일 관계가 개선됐고 이 씨의 어머니가 일본에서 쏟아져 돌아오는 감사 격려 편지를 읽으려고 일본어를 독학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거 보면 일본인들이 정말 선진적이고 의식이 깨어 있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 더 옛날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나 기억은 좀 별개의 영역인 것 같다. 특히 정치인들의 처신과 반응은 더욱 말이다.;;;

2. 일본(+ 미국)의 선진적이고 부러운 사회 관행

(1) 한국에서는 시내버스가 파업을 하면 버스가 운행을 중단하고 멈춰서 버려서 일반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시내버스가 파업을 하면 버스가 운행을 하는데.. 운임을 안 받고 아무나 공짜로 버스를 태워 준다고 한다. 즉, 시민들에겐 아무 피해를 주지 않고 버스 회사 경영진들만 엿먹인다!

(2) 한국에서는 범죄자 놈들 얼굴을 가려 주고 경찰· 형사들은 생얼을 노출시킨다.
일본인지 미국인지 진짜 선진국은 그 반대다. 경찰· 형사들 얼굴을 가리고 범죄자 놈 얼굴은 그대로 노출시킨다.
일본과 미국은 선진국+민주 국가이면서 사형 집행을 활발하게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3) 일본은 매정할 정도로 책임감이랄까~~ 그런 의식을 밀어붙이는 성향이 강하다.
누가 전철로 투신 자살을 하면.. 그것 때문에 발생한 무수한 철도 운영상의 손실 비용이 유족에게 청구돼 넘어간다. "어차피 가해자도 죽고 없는데 공소권 없음" 끝~~ 이렇게 어물쩡 넘어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4) 무료 생계 지원이 있기는 하지만.. 오프라인 대면으로 아주 번거롭고 불편하게 신청해야 하고 심하면 직원이 "아이구 국민 세금으로 공짜로 먹고 사는 주제에 부끄러운 줄 아쇼" 거의 면박까지 주는 분위기라고 한다.
일본도 처음에는 이쪽 인심이 이 정도로 야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멀쩡히 일할 수 있는데도 이 제도를 악용하고 공짜로 놀고 먹는 인간들이 생기자 정책이 바뀐 거라고 한다.

(5) 한국에서는 대형 해양 사고가 한 건 벌어져서 학생들이 많이 죽자, ... 그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미친 짓거리가 벌어졌었다.
일본에서는 대형 해양 사고가 한 건 벌어지자 학교에 수영장이 설치되고 생존수영부터 열심히 가르치기 시작했다.
미친 근성의 산물인 세이칸 터널도 따지고 보면 해양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일본이 노벨 상을 30명이나 배출하고 그것도 문학이니 평화니가 아니라 알짜배기 과학 분야가 수두룩한 것엔 코리아와 다른 저런 선진적인 의식도 큰 기여를 했지 싶다. 쟤들은 그렇잖아도 춘분과 추분이 공휴일이고(이과), 헌법 제정과 반포일이 모두 공휴일(문과)인 나라이기도 하다.

3. 일본의 바람직한 욕조 수도꼭지

개인적으로는 일본 호텔에서 욕조를 이용해 보고는 다음 두 가지 면모에서 개인적으로 크게 놀랐다.

(1) 물 온도 레버와 수압(수량, 물 세기) 레버가 분리돼 있다.
개인적으로 x, y축으로 모두 돌아가면서 단일 레버만으로 수온과 수량을 모두 조정하게 돼 있는 "조이스틱형" 레버를 싫어한다.
저렇게 해 놓으면.. 샤워 중에 나는 수량만 조절하고 싶은데, 기껏 최적으로 맞춰 놓은 수온까지 더 뜨겁거나 차갑게 바꿔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 반면, 일본의 수도꼭지는 수온과 수량 게이지가 분리돼 있어서 저런 불편이 없었다. 그리고..

(2) 수압 레버의 상하 방향으로 물 분출 타겟을(샤워기 or 욕조 수도꼭지) 곧장 지정한다.
보통은 별도의 버튼이나 레버 자체의 '눌림 여부'로 타겟을 지정하게 돼 있다. 즉, 수도꼭지라는 장치에 별도의 state가 존재한다.

이러면.. 사용자는 수돗물을 틀기 전에 이 수도꼭지의 상태부터 먼저 확인을 해야 한다.
그걸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수돗물을 틀면 나는 이쪽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는데 별안간 위의 샤워기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서 옷 적시고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열도의 수도꼭지는.. 그냥 수량 레버를 '위로' 돌리면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고, '아래로' 돌리면 욕조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온다.
즉, 수도꼭지의 자체 상태를 확인할 필요 없이 내가 직접 타겟과 수량을 동시에 지정할 수 있다. 아주 직관적이고 합리적이다.

이거야말로 정말 바람직한 디자인이 아닐 수 없다. 동일한 수압을 유지하면서 샤워기와 수도꼭지로 번갈아가면서 물을 분출해야 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에다 비유하자면 수도꼭지라는 클래스에다가 물 분출이라는 메소드를 호출하는데, 타겟을 객체 멤버가 아니라 메소드의 인자로 지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역시 일본이구나..! 이런 수도꼭지 하나에도 디자인의 세심함과 센스가 들어가 있구나 싶었다.
이런 건 코리아도 좀 배우고 본받아야 하지 않겠나?

4. 일본의 미국 행 똘끼

끝으로, 일본은 미국에 가거나 미국에다 뭔가를 보내는 일에 오래 전부터 특별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ㄲㄲㄲㄲㄲ

(1) 1926~1927년 사이, 료에이마루 호 조난 사건.
이건 배수량 42톤짜리 자그마한 어선 통통배였는데.. 조업 중에 엔진이 현장 수리 불가능한 고장이 발생해서 자력 주행이 불가능해졌다. 배는 구조되지도 못하고 해류에 이끌려 망망대해를 무려 10여 개월 동안 항해했다. 배가 저렇게 태평양을 건너던 동안 자국에서는 천황이 다이쇼에서 쇼와로 바뀌었다.

그 배는 좌초나 침몰하지 않고 샌프란시스코 연안까지 무사히 갔다. 하지만 선원 12명은 다 굶어 죽었다.;;;

(2)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4~1945년 사이에 나치 독일은 영국으로 V1이니 V2니 하는 초보적인 수준의 로켓? 미사일?을 개발해서 포탄을 날려 댔다.
일본은 그런 짓까지 할 여력은 안 됐고 또 미국이 워낙 너무 멀기도 했으니 뭘 했느냐 하면.. 풍선에다가 폭탄을 실어서 미국으로 떨궜다. 그 방향으로는 제트 기류라는 게 있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다. (뱅기 타고 동아시아에서 북미로 날아갈 때가 돌아올 때보다 더 빨리 감)

9000여 개 중에서 300개 정도가 실제로 미국까지 갔고, 그 중에 또 아주 소수가 미국 여기저기서 산불을 일으키고 집을 부수고 집적거리는 피해를 입혔다. 이런 테러가 언제 어디서 또 벌어질지 모르니 미국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정치인과 군인을 약간 귀찮게 하는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이건 독일 로켓과 마찬가지로 정확도가 너무 처참했다. 물리적인 피해 규모가 미미하기도 하니 미국에서는 이건 종전 때까지 보도하지도 않고 넘겼다. 이런 허접한 눈먼 폭탄이 정확하게 어디에 떨어져서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를 적국에다 피드백 주지 않기 위해서다.

(3) 그리고 끝으로 지난 1992년 11월경엔 일본에서 ‘스즈키 요시카즈’라고 돈키호테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 진 워렌버핏 같은 똘끼도 있어 보이던 아저씨가 풍선에다 의자를 매달아서 앉고는 바다 건너 미국을 가겠다고 나섰다.

처자식 있는 유부남이었는데 사업이 잘 안 돼서 힘들었던 듯.. 그래서 기구나 비행선을 정식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헬륨 풍선 수십 개를 달아서 그거 타고 멋지게 미국에 가면.. 자기가 유명해지고 후원도 들어오고 돈과 명예를 얻게 될 거라고 굳게 믿게 됐다.;;; 지인과 경찰의 만류를 뿌리치고 비행을 강행했다.

그는 그렇게 3~4km 정도의 고도를 시속 70km 남짓한 속도로 날면서 출발지에서 나름 1600km 가까이 수평비행을 이틀 동안 했다. 하지만 해상보안청의 수색기에 의해 마지막으로 관측된 뒤에는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그 뒤 영원히 종적을 감췄다.
미국에 가지도 못했고,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가다가 풍선의 부력이 다해 버려서 망망대해 어딘가에 추락한 듯.

요즘처럼 날렵한 고프로 카메라에다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이라도 있을 때 저런 기행을 했으면 더 빨리 더 많이 주목받았을지도 모른다만.. 저 때는 방송 매체라고는 아직 큼직한 VHS 테이프와 쏘니 캠코더가 전부였던 시절이다. 아깝네그려~
그래도 풍선에다 폭탄을 실어 나르던 시절에 비해서는 일본이 많이 평화로워졌다.

Posted by 사무엘

2025/10/18 08:35 2025/10/18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414

1. 국가 차원에서의 역린, 트라우마

- 우리나라는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강렬한 선례가 있었다 보니 부정선거에 아주 민감하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유권자에게 조금이라도 향응을 주는 걸 엄격하게 단속하고 단칼에 처벌한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른 채 향응 접대를 덥석 받은 쪽에도 어떤 형태로든 불이익이 가해진다.

- 잦은 북괴 도발 때문에 반국가단체 내지 범죄 집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우리나라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은 처벌이 이례적으로 꽤 엄하게 규정되어 있다. 이론적으로는 조폭을 결성한 우두머리는 뭔가 실제로 강도, 절도, 폭행 등의 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그렇게 조직을 만든 것만으로도 최고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제4조1항)

- 비행기 납치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다. 창랑호와 YS-11기 납북 사건.. 이 때문에 미국에서 9· 11을 겪은 뒤에야 적용된 보안 정책이(기장실 절대 봉인) 우리나라에서는 훨씬 더 일찌감치 적용된 경우가 있었다.

- 뭐, 북괴뿐만 아니라 반일 트라우마도 있다. 우리나라는 출입국관리법 차원에서 일제강점기(1910~1945) 때 일본 편에 서서 반인륜 행위에 부역했던 외국인은 입국을 금지시키고 있다. 물론 지금은 사실상 사문이 됐다.

- 대구 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때문에 민간 차원에서는 교통수단 승무원에 대한 불신 트라우마도 쪼금 생겨 있다. 하지만 다른 교통수단은 몰라도 비행기는 정말로 미우나 고우나 승무원 말을 무조건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이런 우리나라 말고 일본은...? 쟤들은 전쟁 때 적군이 땅끄 몰고 쳐들어온다거나(6 25), 적들이 새까맣게 배 타고 상륙하는(임진왜란) 걸 경험한 적이 민족 차원에서 전무하다.
그 대신 쟤들은 도쿄 대공습 때 폭격기들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면서 폭탄 떨군 것, 즉 공습에 대한 트라우마가 진심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만드는 만화영화에도 괴물이 폭격 공습을 퍼붓는 묘사가 많다.

- 중국은 아편전쟁 이래로 마약에 진절머리 트라우마가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천안문 사태'를 입에 담는 걸 불편해한다. 하다못해 중국에서 개발한 언어 AI조차도 이 주제는 절대 함구한다.
중국은 20세기 초에 서구 열강과 일본한테 좀 짓밟혔던 역사가 있는지라 아직도 "다시는 우리 중국을 무시하지 마라, 우리도 한다면 한다" 이런 자격지심이 있다.

- 독일과 이스라엘은 나치에 극심한 트라우마가 있다. 팔 하나 잘못 뻗치는 것만으로도 린치 당하거나 경찰에게 잡혀 갈 수 있다.

- 미국은 워낙 강대국이다 보니 울나라처럼 특정 나라· 민족에 대한 지엽적인(?) 트라우마는 사실상 없는 것 같다. 뭐 굳이 찾자면 9· 11 테러에 대한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는 정도.. 그래서 항공 보안 쪽은 여전히 아주 깐깐· 까칠하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2. 약했던 나라와 강했던 나라

- 한국은 힘이 없는 상태에서 내전이나 치르면서 어렵게 어렵게 독립을 얻었다 보니, 군대에 안 가면 안 되는 나라가 됐다. (징병제)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하고 세계를 상대로 너무 큰 사고를 쳤다 보니, 군대를 보유하면 안 되는 나라가 됐다. (자위대) 서로 처지가 완전히 극과 극이다.

- 20세기 초에 한국은 일제 통치의 부당함과 조선 독립을 국제 사회에 호소했지만 무시당했다.
일본은 자기도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니, 서구 열강과 대등한 대우를 받고 떡고물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국제 사회에 호소했지만(해군 전함 배수량 TO 같은..).. 무시당했다. 이것도 서로 처지가 완전히 극과 극이긴 했다.

- 우리나라는 그냥 광복절이라고 기린다. 일제로부터 해방됐으니 기쁘다는 관점이다. 그리고 현충일은 북괴와 맞서 싸우든, 일제와 맞서 싸우든 어쨌든 오로지 자국을 위해서 목숨 바친 분들을 기리는 날이다.
그 반면, 미국은 VJ.. 태평양 전쟁 때 자력으로 싸워서 일본을 꺾고 쟤들로부터 항복을 받아 낸 날을 기린다. 그리고 미국 ‘재향군인의 날’은 그야말로 세계 각지에서 파병 가서 세계 평화를 위해 싸운 자국 군인들을 기린다. 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등등.. 스케일이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3. 한미일의 교통 문화

(1) 미국이야 1920~30년대에 이미 초고층 마천루라는 걸 만들어냈고 대도시엔 자동차들 때문에 극심한 교통체증이라는 게 있었다.
일본 도쿄는 저 시절에 동아시아답지 않게 엄청나게 번화한 대도시이긴 했다. 증기 기관차가 고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기도 했고.. 다만, 자동차가 미국처럼 보급되지는 못했으니 인력거는 일본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 반면, 한반도는 일제 시대까지는 경성 한복판에서도 아스팔트 포장이나 차선, 중앙선, 신호등 같은 게 아직 전혀 없었다.

(2) 1960년대 말에 우리나라는 시속 100km짜리 경부 고속도로 하나를 국가 차원에서 겨우 만들어서 낑낑댔던 반면..
일본은 그때 시속 200km짜리 고속철 신칸센을 100% 자체 기술과 자본으로 만들어냈고.. 미국은 그때 이미 인간을 달에 보내고 있었다. 이것도 참 전설적인 예화이다.
일제가 1930년대에 경부선 단선에서 증기 기관차로 달성했던 최고 속도(아카츠키, 서울-부산 6시간 반)를 우리나라는 1960년쯤 돼서야 디젤 기관차(특급 무궁화호)로 겨우 따라잡기도 했었다.

(3) 미국은 의료비가 비싸고,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고, 한국은 식비가 비싸다고 여겨진다(우유, 소고기 등등..). 허나, 일본도 식당 밥값이 너무 비싸서 직장인들이 돈 아끼려고 도시락 혼밥하는 게 유행이 됐다고는 하던데..

우리나라는 근대화 산업화 타이밍이 열강들에 비해서는 한 박자 늦었다. 그래서 고속도로나 철도의 건설은 국가 주도로 하는 게 너무 당연시됐고, 2000년대가 다 돼서야 민자 고속도로가 찔끔 등장한 정도이다.
그 반면, 미국과 일본은 철도는 일찌감치 민영 사철이 발달했다. 이 때문에 운임이 왕창 비싸고 운영 시스템의 파편화가 심하지만.. 열차가 엄청 빠르고 서비스가 좋은 면모도 있다.

4. 전통의 계승과 단절

(1) 한국은 20세기에 조선에서 일제 시대, 일제 시대에서 대한민국으로 넘어가던 시기가 그야말로 극심한 넘사벽 대격변기였다. 일례로, ‘국악’이라는 건 1910년 일제 시대 이전까지의 고전 음악을 다루며, 그 이후부터는 현대 음악으로 간주한다.
중국은 청나라가 멸망한 1911년 신해혁명을 엄청난 대격변기로 보니 한국과 사정이 비슷하다. 그 뒤에 중공과 대만이 갈라져나간 것도 비슷하다.

한편,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과 1947년 일본국 리뉴얼이 격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급으로 헌정 체제가 근본적으로 싹 바뀐 시기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2) 우리나라는 화폐개혁은 1962년에 한 게 마지막이고, 개헌은 1987년이 마지막이다. 맞춤법의 개정은 1988년이 마지막이고 로마자 표기법이 2000년에 개정됐었다. (요 근래까지 계속 추가되고 업데이트되고 있는 건 표준어이지, 맞춤법이 아님)
중공은 1956년에 간체자가 제정되고 1958년에 한어병음이 제정되어 어문 규정이 크게 바뀌었다. 글자를 바꾸지 않고 주음부호를 계속 쓰고 있는 대만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됐다.

일본은 패전 후 1949년에 신자체가 제정됐고 1946~47년 사이에 새 헌법이 제정됐으니 이런 것도 한국이나 중국을 앞섰다. 그리고 일본은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화폐개혁이나 개헌은 전혀 없었다.

(3) 미국 역시 지난 2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대통령의 암살은 있었을지언정 쿠데타나 헌정 체제의 단절적인 변화가 전혀 없었다. 어쩌다 보니 FDR 루스벨트만이 대공황부터 2차 세계 대전까지 4선 집권을 하긴 했지만 이조차도 불법적인 장기 집권은 아니었다. (후대부터 3선 이상 연임 금지가 법으로 명시)
미국 달러는 화폐개혁도 20세기 이후로 전혀 없었다. 아니, 있으면 안 될 것이다.;;

(4) 한국은 1953년 이후로 전쟁이 무기한 휴전 상태이며, 20세기 중후반에 수십 년 동안 군사정권을 경험했었다.
대만은 신기하게도 1949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38년 동안이나 계엄이 내려져 있었다고 한다.

(5)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는 모병제로 전환한다거나, “통일을 지향한다” 같은 문구가 헌법에서 삭제될지도 모르겠다. 남한과 북한 간에 영구분단을 인정한다면 말이다.
우리나라가 통일 지향 이념을 부정할 정도라면 일본도 자위대를 아예 정식 군대로 승격시켜 버리려나? 하지만 무려 100년 가까이 한 번도 개정한 적 없었던 헌법을 겨우 저걸 위해서 고친다? (평화헌법) 국민 정서와 법 정서상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와일드 서부 개척 시대의 흔적인 민병대나 총기 소지 관련 법을 고치려나 모르겠는데.. 이것도 220V 승압만큼이나 매우 매우 힘들고 어렵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5/08/08 19:35 2025/08/08 19:35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405

미국에서는 '베네딕트 아놀드'(1741~1801)라는 사람이 거의 미국의 이 완용, 배신자 변절자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이던 시절에 미국군에서 장성급 장교로 복무하던 군인이었다. 그런데 영국 스파이와 내통하면서 군사정보 유출과 이적행위를 시도했고, 이게 발각되자 영국으로 빤스런.. 아니, 도피 귀순을 해 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이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나쁜짓을 한 건 아니었다. 자기가 전쟁터에서 일말의 공을 세운 게 제대로 카운트되지 않은 것, 미국군 내부에서의 부조리 같은 여러 변명거리가 있긴 했다. 그는 처음부터 구제불능의 기회주의자 인간쓰레기 급 인성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군생활 도저히 못 해 먹겠으면 간첩짓은 하지 말고 공개적으로 "난 영국으로 전향하겠다~ 저쪽에서는 계급을 더 올려주고 연봉도 2배로 더 주기로 했다" 이렇게 떳떳하게 밝히기라도 하고 미국을 떠났어야 했다. 저 사람의 처사는 신사답지 못했으며, 당시 통념상으로 용납될 수 없었다.

이 사람은 그렇게 무리수를 불사하며 미국을 통수 치고 배신했지만.. 영국이 기대했던 것 같은 막 커다란 전술적인 이익을 주지는 못했다. 애초에 이 사람은 엄청나게 유능해서 영국으로 스카웃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베네딕트와 접촉하던 저 스파이가 삐끗 실수로 정체가 탄로나는 바람에 포로로 잡혔다. 이 사람이야말로 영국 입장에서 더 유능· 충직한 군인 애국자였다.

미국 측에서는 베네딕트와 그 스파이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영국도 생각 같아서는, 사람의 가성비만 따진다면 당연히 쌍수 들고 그러고 싶었다. 스파이는 돌려받고, 베네딕트는 본국으로 재송환돼서 바로 반역죄로 처형.. 그러면 땡이니까.

그러나 영국은 명예와 약속과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사고방식 때문에 차마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편으로 제발로 귀순해 온 사람을 제멋대로 갖다버린다면.. 그 소문이 퍼져서 앞으로는 아무도 영국으로 귀순을 안 할 테니 말이다. 옛날에 스위스 용병들이 신용에 목숨을 걸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 같다!

결국 인질 교환 협상은 결렬됐다. 베네딕트는 영국에서 목숨 부지한 대신, 영국군 스파이는 미국에서 처형 당했다.
그 스파이는 미국군을 상대로 베네딕트에게 불리한 증언을 일절 하지 않았다! 자기 목숨을 건 그 어떤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의리를 지키다가 당당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래서 그를 처형한 미국군 측에서도 "적이지만 훌륭하다"라고 칭송하면서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허나, 베네딕트는 영국에서 그 스파이 이상의 값어치를 못 했다. 그 스파이의 상관이었던 영국군 지휘관은 베네딕트를 죽도록 싫어했다. 베네딕트는 예편해서 민간인이 된 뒤에도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사람들로부터도 아주 멸시받으면서 입에 간신히 풀칠이나 하다가 갔다.
단지, 그 스파이가 들키고 잡힌 것 자체가 베네딕트의 이중 배신이나 뻘짓 때문은 아니라는 거.. 이거 하나만이 최소한의 위안(?)이 될 뿐이다.

자, 이 일화에는 꽤 성경적인 원리가 담겨 있다.
베니딕트의 영국인 신분은 베네딕트가 뭘 이쁜 짓 잘해서 유지된 게 아니었다. 뭐, 영국 군함으로 달려가서 귀순 요청을 한 것까지는 자기 의지와 결단으로 한 것이지만, 그 뒤부터 자기의 신분은 자기 노력으로 유지된 게 아니다. 그냥 영국이라는 나라의 의리와 자비심으로 유지됐을 뿐이다.

그것처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거의 어디 망명 가고 귀순한 급으로 신분이 확 바뀐 사람들이다. 그들의 구원은 그들의 행실이 아니라 구원자의 한결같음, 자비심, 신실하심으로 유지된다.

※ 같이 생각해 볼 점

1.
베네딕트는 미국의 입장에서 배신자, 반역자라는 불명예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배신 전에 공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일례로, 뉴욕 주의 ‘새러토가’라는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영국군과 맞서 싸우다가 발목에 총상을 입은 적도 있었다.

목발이나 휠체어(!!) 신세까지 야기할 정도의 중상은 아니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엄연히 나라를 위해 싸우다 영예롭게 다친 것이니 임팩트가 컸다. 오죽했으면 이 사람의 도주와 배신 소식을 전해들은 미국 측 사령관(토머스 제퍼슨??)이 이렇게 말했었다고 한다.
“우린 그놈을 붙잡는다면, 다리만 짤라서 전쟁 영웅으로 정중히 예우하고 국립묘지에 묻어 줄 것이다. 나머지 몸뚱아리는 반역자의 최후에 걸맞게 교수형에 처하고!”

새러토가에는 지역의 역사를 소개한 공원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베네딕트 아놀드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고 “미국 식민지 소속으로 이곳에서 가장 용맹한 무공을 펼쳤던 어느 군인”이라면서 사람의 발 모양의 기념비가 만들어져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거 무슨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같은 느낌이다.
베토벤은 한때는 나폴레옹을 칭송하는 교향곡을 만들고 있었지만.. 칭송 대상이 황제로 흑화해 버리자 크게 실망해서 인물 이름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 곡은 “과거의 위대했던 어느 영웅을 추억하며”라고 컨셉이 바뀌었다.

2.
이렇듯, 새러토가 전투에서 입은 부상은 베네딕트의 커리어에서 분명히 플러스가 됐다. 하지만 그는 겨우 그 정도만 플러스 된 것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헉, 괜찮으십니까?”라는 부하의 질문에 “다리에 총 맞았다. 차라리 가슴팍에 맞았으면 더 좋았을 걸..” 이런 말까지 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 말은.. 공교롭게도 훗날 진주만 공습 때 허즈번드 킴멜 사령관이 했던 말과 아주 비슷하다.
그 사람도 현장에 있다가 일본군 함재기가 쏜 총탄에 맞기는 했으나.. 직격이 아니라 딴 델 맞고 튕겨나온 도탄이어서 파괴력이 약했다. 옷이 살짝 찢어지고 피부에 찰과상을 입는 정도로만 다쳤다.

킴멜은 어이가 없어서 “내가 저 총알을 급소에 정통으로 맞고 전사를 했으면 차라리 더 나았을 것을.. 적의 총알조차 날 안 도와주네 ㅠㅠ”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진주만을 지키려다가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어쨌든 영예롭게 전사한 군인 vs 진주만 수호에 실패한 채 목숨만 부지하는 바람에 한직으로 좌천됐다가 초라하게 예편한 군인..은 차이가 어마어마하니까 말이다.

미군은 일본군 정도로 똥군기를 강요하고 무의미한 죽음을 미화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래도 군대라면 어느 나라 군대든 오로지 결과 지향적이고 “이기든지 죽든지” 근성을 중요시하는 풍조가 없을 수 없었다.

3.
내가 인간의 구원에 대해 설명할 때 즐겨 사용하는 비유가 있다. 예수 믿어서 구원받으면 그 사람의 영적 신분이 탈북 귀순자와 비슷한 급으로 달라진다고 말이다.
대한민국에 들어온 탈북자는 여기서 그 어떤 죄를 지어도 대한민국 교도소나 대한민국 사형장에서 인생을 종친다. 그 어떤 경우에도 북으로 송환은 절대 되지 않는다. 인도주의적으로나, 북한 주민도 원래 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명분으로나.. 이게 지극히 합당하다.

바로 이와 정확히 같은 맥락에서.. 한번 제대로 예수 영접하고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면 그 뒤에 그 어떤 죄를 짓고, 심지어 회개 안 하고 개망나니로 살아도.. 일단은 지옥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타이틀, 신분은 절대 취소되지 않는다. 하지만 제일 기본적인 구원 말고 다른 거 잃을 게 왕창 많을 따름이다.

하나님과의 교제, 사람들 앞에서의 간증, 기도 응답, 하늘나라 가서의 보상과 상급, 어쩌면 당장 육신의 건강과 생명까지..
그런데도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마치 마음대로 죄 지어도 된다는 모랄빵이라고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할 수 있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는다고 해서 대한민국 교도소가 편한 곳인 건 절대 아니다. 목숨 걸고 탈북해서 대한민국 땅에 왔으면 여기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자유를 누리고 자기 인생을 펼 생각을 해야지, 여기까지 와 갖고는 범죄나 저지르면서 빌빌대다가 교도소에서 자기 인생 종쳐 버릴 텐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예전에 뭉괴 시절에 우리나라에서.. 명백히 탈북 의사를 밝혔던 북한 주민들을 범죄자라는 핑계로 북으로 도로 송환시켜 버린 건.. 정말 천인공노할 반인륜 범죄였다. 범죄자면 대한민국 공권력으로 다스릴 것이지 왜 저런 미친 짓을 했는가?
그때 저 사람들.. 도로 북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진짜 기절초풍 멘붕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이젠 남조선 땅으로 가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런 소문이 퍼지고 더욱 탈북 의지가 꺾였을 것이다.

이렇게 된 걸 김돼지 놈들은 기뻐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건 이전 정권이 빼박 친종북 정권이었고 두고두고 욕 먹고 씹혀도 할 말 없는 악행이었다.

아무쪼록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인간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통해서 유지되는 것이다.
베네딕트도 완전 찐따였지만 그래도 영국의 의리 덕분에 미국으로 송환되지 않고 영국인 신분이 유지됐다.
그런 것처럼 정상적인 대한민국 정부라면 탈북자를 북으로 송환시키지 말아야 한다.

4.
뭐, 이 글만 보면 영국이 어지간히도 명예와 약속을 잘 지키는 신사 집단인 것 같지만,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쟤들이 너무 신사적이어서 청나라를 상대로 아편 전쟁을 일으킨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영국은 저 시절에 군인이라면 "나 죽여 주쇼~" 하듯이 한줄로 쭉 늘어서서(전열보병!!!) 총질을 해야지~ 미국처럼 싸우는 건 신사답지 못하고 치사하고 비열하다고 막 징징댔다.
미국이 어떻게 싸웠냐고? 자원과 병력이 부족하니 저 멀리 숨어서 영국군의 장교만 골라서 저격하는 식으로, 일종의 게릴라 전술을 썼다. ㄲㄲㄲㄲ

영국군은 20세기 초까지도 잠수함조차 치사하고 비열 비겁하다고 깠다. 그러니 독일군 유보트에 치를 떨었던 거구나.
영국 신사는 언행이 어떤 사람인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조선 양반의 서양 버전 같은 꼰대 기질도 있었던 듯.. =_=

5.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민법에 따르면 친자식은 도 넘는 개망나니 노답이면 의절하고 상속에서도 제외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족보에서 파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낳은 양자녀는 한번 입양을 결정했다면 파양 의절이 사실상 안 되거나, 조건이 훨씬 더 까다롭게 돼 있다고 한다. 입양 전에 소개받은 아이의 상태나 성장 배경 자체가 실제와 완전히 다르고 악의적인 거짓 구라 사기 급인 정도로.. 극단적으로 억울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어찌보면 성경적으로 이혼이 허용되는 조건과 비슷해 보인다. 정말 정말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 단순 성격 차이 감정 싸움 같은 걸로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는 그리스도인이 접붙여짐 받은 양자와 같다고 말한다.
선천적 혈통상인 하드웨어 유대인과 달리, 그리스도인은 후천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인 개조를 거쳐서 양성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굳건하게 보호받고 구원이 보장된다고 볼 수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26 08:35 2025/07/26 08:35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401

필립 폴 블리스. Philip. P. Bliss (1838-1876).
19세기 미국의 찬송가 작사· 작곡자로 심심찮게 접하는 이름 중 하나이다.
이 사람은 바울과 빌립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복음전도자 겸 찬송가 싱어송라이터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는 어찌나 복음 선포와 혼의 구원에 진심이었으면.. 당대 기준으로는 파격적인 CCM을 만들었다.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초청)와 "하나님의 진리 등대"(선교)를 작사· 작곡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게 저 사람의 작품이다.

그리고 가사가 '성경'을 다루고 있는 독특한 곡..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과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을 작사· 작곡했다(1874).
그렇잖아도 이 두 곡은 6/8박자에 가사와 멜로디가 좀 비슷해 보이지 않던가?
'성경'이라는 카테고리에 분류되는 곡이지만 여기 가사에도 구원과 복음 얘기는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그 뒤, 이 사람은 호레이시오 스패폴드가 지은 유명한 찬송시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평안, 1873)를 보고는.. 거기에다 우리가 지금 아는 그 멜로디를 작곡해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1876).
이것 말고 "내 너를 위하여"(헌신)도 가사는 딴 사람 것이지만 곡은 저 사람 것이다.

그랬는데 이분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1876년 12월 29일, 오하이오 주에서 칙칙폭폭 열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미국판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당하면서 40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갔다.
강을 건너던 중이었는데 아래의 교량이 쇳덩어리 열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폭삭 무너진 것이다. 이름하여 애슈터뷸라 철교 붕괴 참사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래 이랬던 교량이.. (열차가 정말 조그맣긴 하다.. 20세기가 아니라 19세기여서 그런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충 이렇게 됐다.

열차는 20여 미터 아래로 떨어져서 박살이 났고, 저 사람 포함 90여 명의 승객이 목숨을 잃었다. 그 시절에 토목 건축 기술이 부족했거나 부실시공이 있었던 듯하다.
이때 열차의 동력원은 석유가 아니라 기껏해야 석탄이었지만.. 그래도 조명용 등불이 다 연료를 쓰고 있었고, 또 이 시절에 객차는 나무로 만들곤 했다. 그래서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사상자가 더 늘었다고 한다.

그랬는데.. 사고 현장에서 이분의 유품을 뒤지는 과정에서.. 그가 지은 새로운 찬송시가 적혀 있는 쪽지가 발견됐다. 조만간 이것도 출판사에 보내려 했는데 고인이 미처 못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발굴된 찬양이 바로... "속죄하신 구세주를 내가 찬양하리라"(1876)이었다!

이건 제임스 맥그라나한(McGranahan)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작곡가가 곡을 붙여서 1878년에 정식으로 발표됐다고 한다. 3박자이다가 후렴에서 4박자로 바뀌는 그 곡 말이다.
"속죄하신 구세주를"이 필립 블리스의 사후 유작, 마지막 찬송가가 됐다.

신기하고 경이롭지 않은가?
호레이시오 스패폴드는 선박 침몰 사고로 가족을 잃고서 찬송시를 썼는데, 거기에다 저 사람이 곡을 붙여 줬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사람이 교량 붕괴 사고로 소천하자, 그 사람이 지은 찬송시에다가 또 다른 사람이 곡을 붙인 것이다!

필립 블리스가 7, 80대 나이까지 더 오래 살았으면 20세기 초까지 찬송가가 얼마나 더 만들어졌을지 궁금해진다.
여담이지만 bliss는 옛날 Windows XP의 푸른 초원 배경그림의 작품 이름이기도 했다~!!! (극락, 최고의 행복, 축복.. 이런 뜻) 이것도 떠오른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나저나 저 애슈터뷸라 참사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철도 교통사고이다. 뭐, 차량이 탈선하거나 신호가 꼬여서 정면충돌한 게 아니니, 순수하게 철도 쪽 사고는 아니지만 말이다.
조선은 1899년에야 그 쬐끄만 27km짜리 경인선이 전적으로 외국 기술과 자본으로 만들어진 게 최초이며, 교량은 이듬해에 간신히 완공한 한강철교가 최초였지 않던가?

그러나 미국에서는 수십 년 이상 훨씬 전부터 그 넓은 땅에 수천 km가 넘는 길이의 철도가 땅따먹기 하듯 자체 기술로 건설됐다는 게 참.. 대단하다. 그러다가 어쩌다 한번 저런 불행한 사고도 난 것이다.

그 시절 미국의 대륙 횡단 철도를 이용해서 미국의 동부(네브라스카)에서 서부 끝(캘리포니아)까지 가는 덴 1주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지금이야 비행기로 4~5시간이면 가겠지만, 저 1주일만으로도 마차로 6개월 걸리던 것에 비하면 시공간 워프 수준으로 단축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러시아 대륙횡단 열차도 전 구간 완주하는 데 비슷하게 1주일 정도 걸린다. 이런 초장거리 열차가 등장하면서 경도별 시차라든가 범지구적인 시간대 동기화의 필요성도 최초로 제기되었다.

쟤들은 과학 기술이 저렇게 동시대 다른 나라들을 아득히 앞서 갔고, 한편으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패니 크로스비, 필립 블리스 등 아름다운 찬송가들이 발표돼 나왔다.
이것만 생각하면.. 서부 개척 시대의 끝물을 가던 19세기 미국은 bliss라는 단어의 뜻에 걸맞은 천조국이었던 것 같다. 통상적인 산업혁명기의 서유럽과도 분위기가 달라 보인다.

아 물론 인간 사는 곳은 어디든지 빛이 있으면 어둠도 응당 있었다.
저기는 시골 깡촌은 집집마다 샷건이 필수품이고, 부녀자들도 최소한의 총질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 와일드 무법천지였다.

어지간한 남자들은 완전 술에 쩔어서 살았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난 이 정도 알코올에도 끄떡없는 진짜 싸나이" 허세 부리기 위해서였다;;; 이 짓 하다가 급성 알코올 중독 걸려서 골로 간 사람도 많았고, 정신줄 놔 버린 가장의 가정폭력 때문에 파탄 난 가정도 많았다!

그리고.. 링컨 덕분에 미국에서 흑인 노예 제도가 폐지되기는 했다만.. 그러자 저렴한 노동력은 노예 대신 외노자로부터 조달되기 시작했다. 중국(청나라) '쿨리'라고 들어 보셨나..?
미국의 저 찬란한 대륙 횡단 철도도 상당수가 이런 사람들을 현장에서 처참하게 갈아 넣으며 만들어졌다.

그들은 안전이고 인권이고 없던 정말 힘들고 위험한 현장에서 자국민 대비 정말 저렴한 임금 받으면서 일했는데.. 그 임금에서도 일자리 중개 수수료나 수송 비용, 송금 수수료 등 온갖 공제를 당하고 떼였다. 그들의 조국인 청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비참하게 일해서 푼돈 건진 게.. 그들의 청나라 깡촌에서 가난한 소작농으로 있는 것보다는 덜 비참하고 더 나았다! 이런 합법 노예 계약은 서로 윈윈이었기 때문에 수요가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미국은 현대적인 개념의 대기업과 금융 경제 시스템이 그때 다 갖춰져 있었다. 철강 카네기, 석유 록펠러(로커펠러) 같은 사람도 다 이 시절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무한 시장경제 자유방임 초창기엔, 신흥 기업가 재벌 졸부들이 근로자 임금을 후려치고 각종 산업재해를 은폐하고, 경쟁 기업을 비열하게 말려 죽이면서 독점 담합.. 정말 정말 끔찍한 짓 추악한 짓도 많이 했다. 이 인간들은 워낙 악명이 높아서 '강도 귀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칼 든 전통적인 강도 하층민이 아니라, 칼 안 들고 더 무섭게 사람 잡는 강도 귀족..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러니 브루주아들을 타도하자고 공산주의라는 괴물이 튀어나올 만도 하지.. 당대에 벌써부터 저런 만평이 만들어져 나올 정도였다.)

이 시절 창업주들은 젊은 시절에 진짜 미치광이처럼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가, 나중에 늙어서는 자괴감 느껴서 도의적으로 사회에 '기부'라도 왕창 많이 하면서 재산을 환원했다. 뭐 학교 세우고 병원 세우면서.. 병 주고 약 주고를 했다. 그런 기부로 과거의 흑역사를 다 덮을 수 있겠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이고~! 필립 블리스 얘기를 하다가 철도를 거쳐서 미국 역사 얘기가 나왔구나.;; 다시 찬송가 얘기로 돌아가 보자.
아무튼 저분도 미국이 한창 저렇던 시절에 복음 전도자로 살면서 저런 찬송시를 썼다! 이걸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미국에는 저렇게 엄청나게 선한 것도 있고, 엄청나게 악한 것도 존재해 왔다.

난 교회에서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속죄하신 구세주를' 요렇게 준비 찬송을 편성해 봤다. 그 밖에..

  • 가사에 ‘갈보리’라는 단어가 있는 곡들
  • 어딘가에 더 가까이 나간다고 말하는 곡들
  • 예수님이 나의 친구라고 말하는 곡들
    뭔가를 모른다고 말하는 곡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아 하나님의 은혜로 등~
  • 가족· 친지· 연인의 죽음을 계기로 만들어진 곡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그날 다가오네 등
  • 패니 크로스비 작사 + 윌리엄 도언 작곡인 곡들
  • 단조만: 현충일과 주일이 겹쳤을 때 ㅎㅎ
  • 분위기가 제일 힘찬 곡들: 무덤에 머물러, 마귀들과 싸울지라 등~

이렇게 비슷한 특성이 있고, 만들어진 계기가 비슷한 곡들을 한데 모으는 것도 의미 있어 보인다.

  • "놀라운 주의 은혜"(Haldor Lillenas) --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1910년대 곡
  • "주 하나님 큰일을 행하셨네" -- "살아계신 주"
  • "참 즐거운 노래를 늘 높이" -- "노래하는 순례자(하늘의 곡조 울리니)"

얘들은 전자는 클래식 찬송가 범주에 드는 반면, 후자는 더 캐주얼 리버럴한 곡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은 가사 내용은 서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굳이 찬송가 vs 복음성가로 구분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찬송가, 더 나아가 기독교 음악 전반에 대한 더 유연하고 가사 지향적인 분류법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 추신

자, 원래는 본인이 여기까지만 글을 썼는데 말이다. '속죄하신 구세주를' 찬송가와 관련하여 긴급히 추가해야 할 관련 정보를 또 입수했다.
'속죄하신 구세주를'이라는 찬송시는 맥그라나한 말고 다른 사람이 이미 지은 옛날 멜로디가 붙기도 했었다. 마치 우리나라 애국가가 아주 옛날에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 천부여 의지 없어서...' 그 스코틀랜드 민요 멜로디로 불리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두 악보를 보시라~!
옛날 멜로디는 바로.. 우리말 찬송가에서는 '하늘 영광 버리시고 예수 강림하셔서'인 그 3/4박자 곡이다. 가사는 완전히 다른데.. 참 신기한 노릇이다.
하지만 저 찬송시를 매우 유명하게 만들어 준 멜로디는 아무래도 맥그라나한이 이 가사만을 위해 새로 만든 그 곡임이 틀림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20 08:19 2025/07/20 08:19
,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99

천조국의 "까라면 까"

1. 까라면 까

20세기 중반에 미국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공밀레 "까라면 까"는 이 둘이지 싶다. -_-;;

(1) "흠~~~ 엔진이랑(정확히는 보일러) 엘리베이터가 큰 이상 없다니 그럼 됐다. 이 정도 대미지는 사흘이면 충분하다. 요크타운을 이 기한 안에 수리를 마치도록. 우린 지금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체스터 니미츠 제독)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태평양 전쟁 시절, 배수량이 2만 톤을 넘는 큰 항모가 갑판에 이전 전투(산호해 해전) 폭탄을 맞고 다 부서져서 함재기를 적재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전문가들이 보니 이건 제대로 수리하는 데 3개월은 잡아야 할 큰 대미지였는데.. 우리의 제독님이 3주도 아니고 3일로 기간을 일방적으로 후려쳤다.

군에서는 화들짝 놀라서 SCV들을 싹싹 긁어모아서 밤새도록 갈아넣고 특근을 시켰다. 무려 1400명에 달하는 정비공들이 달라붙어서 사흘 만에 간신히 외형을 복원하고, 함재기 적재와 항해가 가능한 상태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걸로 모든 수리가 제대로 끝난 건 물론 아니었다.;;; 그러니 요크타운이 일본놈들과 싸우러 출항할 때, 공구를 바리바리 싣고 수리공들을 같이 태우고 갔다. 항해하면서도 계속 내부를 땜질하고 수리해야 했다.

이 조치 덕분에 나중에 일본군도 놀랐다. "어, 코쟁이들한테 항모가 하나 더 있었나? 요크타운은 우리가 분명 박살을 냈는데..???"
이 요크타운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운 뒤, 이번엔 완전히 격침되어 침몰하는 걸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훗날 우리나라 손 원일 제독은 미국을 상대로 군함을 사 올 때 미친 협상력으로 가격을 말도 안 되게 후려쳤었는데... 니미츠는 이렇게 전시에 군함의 수리 일정을 후려쳤다는 차이가 있다.

(2) "우리는 이 1960년대가 가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고 말 것입니다. 그게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케네디 대통령)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통령이 이렇게 선언을 덜컥 해 버리니 그 당시 NASA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모든 게 소련에게 뒤쳐져 있었고 아무 기술이고 노하우가 없었는데.. 도대체 어쩌라고?

근데 천조국의 돈지랄과 미친 공밀레가 기적을 만들어 냈다.
1968년 말의 아폴로 8호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실험들을 여러 단계 한꺼번에 밀어붙여서 사람이 기어이 달을 한 바퀴 돌고 무사히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뭐 하나 삐끗 잘못했으면 사람이 지구로 못 돌아오고 우주에서 죽어 버릴 수도 있었는데.;;

그러다가 10호는 달에 내려가는 시늉만 잠깐 하다가 돌아왔다. 이때 승무원이 자기는 달에 뼈를 묻고 말겠다고 객기 일탈을 부렸으면.. 큰일날 수도 있었다. =_=;; 아직 지구로 귀환하는 시스템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거쳐서 1969년 7월, 아폴로 11호는 1960년대가 가기 전에 정말 가까스로 인간을 달에 무사히 착륙시키고 지구로 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젊은 대통령 케네디.
자기가 직접 글을 썼는지, 아니면 참모진이 대필해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역설의 진리로 독자들을 불끈 울컥 하도록 글을 잘 쓴 것 같다. 저 연설도 그렇고, "나라로부터 무엇을 받을지 생각하기 전에 자기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지부터 생각해 주십시오" 라는 취임사부터 그랬으니 말이다. =_=;;

2. 우리나라의 사례

(1) 우리나라에서 6 25가 터져서 한국 은행이 삽시간에 북괴한테 넘어가 버렸다. 이 때문에 울나라는 돈을 황급히 다시 만들어서 찍고 뿌려야 했는데.. 그걸 맥아더에게 부탁했고 맥아더는 "일본을 상대로 까라면 까"를 시전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위급한 상황이었고 패전국 일본은 이 기회에 무조건 미국한테 잘 보여야 했으니... 조폐국(?? 그 당시 대장성) 인쇄부 근로자들을 무기한 야근 철야 명령과 함께 갈아넣었다. 나중엔 GHQ 병사들이 총 들고 인쇄 공장을 찾아와서 직원들을 호위 겸 감시· 재촉했대나..
새 돈 도안 마스터판은 단 이틀 만에 완성됐으며, 돈 한 트럭 분량을 열흘 만에 찍어서 비행기로 실어 날랐댄다. 이거 통상적으로 최대 6개월 가까이 걸릴 일이었다고 한다. =_=;;

(2) 미국이 인간을 달에 보내려고 용 쓰던 동안 우리나라는 경부 고속도로 닦겠다고 인력과 물자를 갈아넣으며 용쓰고 있었다. 당재 터널 하나 못 뚫어서 사람 10여 명이 죽고 난리였었다. =_=;;;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는다.
인부들이 며칠 씻거나 옷을 못 갈아입으면서 일했고, 도로 포장을 하던 롤러 운전사는 작업하다가 시간이 없어서 용변을 그냥 자리에서 지릴 정도였다. =_=;.

3. 태평양 전쟁 시절의 미국 대통령

사실, 태평양 전쟁 시절엔 니미츠 제독 이전에 미국 대통령부터가 노발대발해서 내리갈굼을 제일 먼저 시전했었다.
영화 진주만에서 나오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대사. "Do not tell me it cannot be done"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애인인 나도 이렇게 벌떡 일어섰는데 당신들 내 앞에서 안 된다는 소리는 일체 말고 까라면 까시오.
우리 조국의 아들들이 불의의 기습을 당해서 차디찬 바다 속에 수장됐는데 뭐? 폭격기 항속거리가 부족하다고? 무리하다간 항공모함마저 털릴 위험이 있다고?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왜놈들한테 무조건 당장 보복하도록 하시오! =_=;;"

천조국은 이때부터 한 근성 했던 것 같다.
쟤들은 일본에게 천 배 만 배 보복한답시고 처음부터 일본을 통째로 지도에서 지워 버린다거나, 일본 민간인까지 몽땅 잔인하게 학살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쟤들도 우리처럼 똑같이 기습 당하고 허를 찔리고 뒤통수 얻어맞게 해야 된다고.. 여기에 목숨을 걸었다. 단순히 평범하게 전투에서 힘으로 밀어서 패배시키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그래서 항공모함에서 자그마한 함재기(프로펠러가 중앙에)가 아니라.. 육중한 육군 폭격기를 발진시킨(프로펠러가 양 날개에) 둘리틀 특공대가 조직되었다. 병맛스러운 일본 카미카제 특공대보다야 비교할 수 없이 멋있지 않은가?

4. 통계와 숫자

영화 미드웨이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 레이튼: 일본군의 현재 동태는 이러한데, 첩보에 따르면 아마 요 때쯤에 요기 일대에서 요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어쩌구저쩌구 브리핑)
- 니미츠: 그래서 결론이 뭐지? 그 추측만으로는 범위가 너무 넓고 막연한데? 어렵겠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라. 그래야 작전을 짤 수 있겠다.
- 레이튼: (하... 나더러 어쩌라고~ 자포자기하듯) 일본군은 오는 6월 4일 현지 시각 아침 7시 정각에 북서쪽 325도 방향으로부터 러쉬를 와서 미드웨이로부터 175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관측될 예정입니다.
- 니미츠: 좋아~ 난 내 부하의 말을 믿는다. 참모진은 저 정보를 바탕으로 곧바로 작전을 짜도록 해라.

(나중에 실전 당일에)

- 아무개: 적 항공모함이 미드웨이 북서쪽 320도 방향, 180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관측됐습니다~!
- 니미츠: (시계를 보더니) 오~ 레이튼. 오차가 딱 5분, 5마일, 5도밖에 나지 않았군?
- 레이튼: 충성! 다음번엔 더 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무 상황에서나 저렇게 레이튼 소령 같은 뽀록을 만들 수야 없겠지만.. =_=;;윗사람, 경영을 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거, 숫자, 통계, 데이터를 좋아한다. 저게 뭔가 군대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일 잘하는 요령이고, 취업이나 이직을 준비할 때 좋은 인상을 주는 이력서를 작성하는 요령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또 하게 된 계기는 그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이었다. (미드웨이는 거의 2019년 말 개봉이었고 저거는 2020년 초였.. 시기가 아주 비슷하다)

  • 미쿡이 지난 반세기 이래 제일 낮은 실업률.
  • 700만 개의 일자리 창출, 지난 3년 동안 경제활동인구 350만 명 증가. 공장이 12000개 증설.
  • 어디 여성 취업률 72%..;;
  • 주식 시장 70% 성장, 국부 창줄 12조 달러.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우리민족끼리 평화, 착한 경제, 사람이 먼저 소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따박따박 무언가가 얼마만큼 생기고 경제가 살아난 걸 입증해 보이는 게.. 일단 말만 들어도 시원시원하다.

물론 숫자와 통계에도 속임수와 말장난과 조작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저것만 너무 집착하면 또 전시행정 같은 다른 부작용 폐단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숫자와 통계는 두리뭉실하지 않고 일단 객관적이다. 하다못해 그걸 까고 반박하는 거라도 정확하게 공략해서 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고, 최소한의 전문성과 책임감이 담겨 있다는 인상을 준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숫자를 이용할 뿐이다"란 말도 있잖느냐 말이다. (by 마크 트웨인 ㄲㄲㄲ)

우리나라도 근로자건 정치인이건 저런 사고방식을 지향하고 우대했으면 좋겠다.
자매품으로 '협상 잘하는 요령'은.. 영화 패트리어트에 나와 있다고 여겨진다. 민병대 대장인 마틴이 적진에 홀로 찾아가서 구라까지 쳐서 포로들을 무사히 데리고 온 거 말이다.

5. 미국의 인내심의 한계

미국은 복수귀로 돌변하여 일본을 차근차근 쳐발랐다.
그런데 전쟁이 너무 길어지고, 일본은 제 살 깎아먹으면서도 도무지 항복을 안 하면서 악으로 깡으로 미국에 출혈을 강요했다. 이오지마 전투의 트라우마까지 추가되니 미국도 점점 지치고 악이 받쳤다.

병사들은 일본군 skull trophy를 챙기는 지경이 됐고, 수뇌부들은 핵폭탄 등 온갖 극단적인 방법까지 고려하게 됐다.
핵 투하는 정말 인내심이 한계 중의 한계에 도달한 뒤에야 내린 극약 처방이었다. 미국은 그걸로도 모자라서 "쪽발이들은 이래도 항복을 안 할 것이다", "소련이라도 끌어들여서 힘을 합쳐 일본을 조져야 된다" 이런 비관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랬는데 리 승만 할배는 미국에게 그러지 말라고.. "니 혼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일본은 항복할 거다. 소련을 끌어들이지 마라. 전후에 한반도엔 미국만이 단독 진출해야 한다." 이렇게 독려했었다. 그게 해방 후 우리나라의 미래를 내다봤던 선견지명이었는데..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그 뒤 우리나라는 식민지 트라우마 때문에 신탁통치조차도 반대하고 남북분단을 선택했으며.. 그게 이제 반영구적으로 굳어져 버렸다.

Posted by 사무엘

2024/04/28 08:35 2024/04/28 08:35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91

미국은 20세기에 외세로부터 침략 받아서 주권을 빼앗긴 적 없고, 공산화된 적 없고, 쿠데타나 비민주 군사 독재를 겪은 적 없고, 헌정 체제가 널뛰기 하듯 바뀐 적도 없고.. 대공황 때문에 고생했던 것만 빼면 정치적으로는 큰 트러블 없이 살기가 참 좋았을 것 같다. 전쟁 참전은 다 남의 나라를 지켜 주러 했지, 자기 나라를 구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천하의 미국도 완벽한 유토피아는 아니니 사법 흑역사가 몇 건 있었다. 그것도 공교롭게도 굉장히 비슷한 시기에 말이다.

1. Joe Arridy (1915-1939) -- 가스실

이 사람은 15세 소녀를 강간하고 손도끼로 찍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처형됐다. 그러나 문제는.. 그는 20대 청년이지만 지능이 5세 어린이 수준밖에 안 되는 정신지체아였다는 것이다. 저런 끔찍한 흉악 범죄를 저지를 능력 따위는 1도 없는 철부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냥 사건 현장 곁에 얼쩡대다가 붙잡혀 가서는.. 실적 올리고 싶은 형사와 검사에게서 집요하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시키는 대로만 하다 보니, 뜻도 모르는 조서에다 지문 찍고 “그 아이 내가 죽였어요”라고 거짓 자백을 하게 됐다.

이 사람은 교도관한테는 “우와~ 근육빵빵 아저씨다~!” 이러면서 교도소에서도 기차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작은 하마 이야기’에도 나오는 그 유서깊은 장난감 말이다!!
이런 사람이 “범행을 언제 어떻게 저질렀습니까” 같은 질문에 일관성 있게 제대로 대답도 할 리가 만무했다.

지금이야 미국에서 사형이 교수형, 전기의자, 아니면 약물 주사인데.. 저 때는 미국도 무슨 나치 독일처럼 가스실을 운용했는가 보다. 그는 gas chamber이라는 게 무슨 장소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해맑은 표정으로 사형장으로 들어갈 때도 기차 장난감을 갖고 들어갔다. 교도관들이 그건 허용해 줬는가 보다.

천하의 미국에서 그때 경찰과 검사, 판사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은 살인이고 사형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어서 무슨 행복한 왕자도 아니고 행복한 사형수 the happiest prisoner on death row라는 역설적인 별명까지 붙었다. 모파상의 소설 ‘행복한 사형수’하고는 관계 없다.

이 사건은 정작 진범이 딴 지역에서 잡혀서 그놈도 처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 통신이 열악해서 소식 업데이트가 더뎠는지, 한번 내린 사법 결정을 호락호락 번복할 수 없다는 똥고집이 작용했는지, 아니면 세뇌당한 저 사람도 자기가 진범인 듯 거짓 자백을 너무 진지하게(ㅠㅠ) 해 버렸는지.. 그래도 저 사람도 같이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는 2011년에야 주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사면을 받았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4년 12월에 부산에서 어느 발달장애 1급 청년이 아주 잠깐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2살짜리 아기를 창 밖으로 휙 던져서 바닥으로 떨어뜨려 죽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가해자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죽음이 뭔지 모르고 경찰이나 검사의 질문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사리분별과 판별이라고는 단 1도 못 하는 말 그대로 저능아였다.

자기가 저지른 짓에 대한 자각이 없고 형사 책임을 질 능력도 전무했으니.. 피해자 집안의 입장에서는 정말 분통 터지겠지만 가해자는 아무 처벌 없이 무죄 방면되고 그 대신 치료 감호 판정만 내려졌다.
이랬는데 미국에서 저 때 저런 분위기 속에서 같은 사건이 터졌으면 가해자가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2. George Stinney Jr. (1929-1944) -- 전기의자

이건 앞의 1번보다도 더 뼈아픈 흑역사인 것 같다. 집 주변에서 7세· 11세 소녀 2명이 끔찍하게 살해 당했는데, 마침 곁에 있던 '만만한 흑인 소년'이 졸지에 용의자로 몰려 체포되고 범인으로 몰렸다. 이 소년은 오히려 경찰에게 그 당시의 주변 상황에 대해 증언을 하고 수색 작업을 도와 주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피해자 가족, 그리고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검사, 배심원들은 모조리 백인이었다. 이들이 모두 짜고 입을 모아서 “보나마나 추잡한 검둥이놈이 사고 쳤구만”으로 몰고 갔다. 재판은 거의 나치 인민재판 급으로 속전속결로 진행됐고, 피고인 측은 제대로 변호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죽였어요”라는 자백을 얻기 위해.. 비록 대놓고 물· 전기 고문이나 몽둥이 찜질까지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굶겨 놓고는 “배고프지? 자백하면 밥 줄게~!” 정도는 시전했다고 한다. 중학생짜리 애한테.

결국 이 소년은 유죄 판결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겨우 15세의 나이로 전기의자형을 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체격이 너무 작아서 엉덩이 부분에다가 두꺼운 성경책을 몇 권 올려놓고 애를 앉혔다니 말이 되는 소리냐.. 게다가 이 친구도 학교에서 싸움박질이 잦긴 했지만 명목상 교회 댕기는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

그는 근현대 이래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사형수라는 타이틀까지 차지하게 됐다. 이 기록은 앞으로 깨질 일이 없을 것이다. 머리가 좋아서 저 나이에 대학교를 입학한 것도 아니고, 저 나이에 사형을 당했다니.. 그것도 누명을 쓰고..

이 사건은 어째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져서 2014년에야 무죄 판결이 났다. 1번은 '사면'이라고 하고 2번은 '재심 결과 무죄'.. 법적 처분이 왜 서로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사건은 정황상 의심되는 진범(백인..!)이 있긴 하지만, 이놈은 빽이 있어서 법의 심판을 피해 갔다. 심지어 그놈의 부모가 배심원으로 들어가서 애꿎은 흑인을 범인으로 조작해서 사형장으로 보내는 추악한 짓을 저질렀다고 한다.

미국은 프랑스나 독일처럼 유대인을 괴롭히는 건 없었지만 저기 특유의 인종 차별이 있었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근절된 건 아니라 여겨진다. 특히 남부 텍사스 같은 레드넥 동네 말이다.. -_-;;
요즘도 경찰들이 과격한 범죄 현장에서 흑인을 더 줘 패거나 심지어 권총 쏴서 사살해서 과잉 진압이라고 욕 먹기는 하는데.. 이 사건은 법적으로 사람을 누명 씌우고 사형장으로 보내 버린 거니 사건의 막장성이 차원이 다르다고 하겠다.

심지어 이렇게 흑인에게 누명 씌우기가 그 뒤에도 몇 건 더 있었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사형까지 가지는 않고 교도소에서 몇 년 썩다가 누명이 풀렸을 뿐..

  • 이 소년은 우리나라 여수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일제는 패망한다” 이런 낙서를 한 게 들통나서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한.. 주 재년 열사와 동갑이다. 역시 1929-1944.

  • 이렇게 인종 차별이 쩔었으니 미국에서는 n**** 이 단어가 f*** 급의 금기어 트라우마로 남았고, 치킨과 수박이라는 맛있는 음식조차 금기시되어버린 것 같다.
  • 그래도 그 미국에서도 흑인 남자(1870)가 백인 여자(1920)보다는 훨씬 더 먼저 투표권이 주어졌다고 한다. 전근대 시절엔 세상 어디에나 가부장적 이념이 강했으니 일면 이해는 된다.

  • 근데 평등은 평등이지만, 반대로 멀쩡한 기존 '인어공주'나 '미녀와 야수'에다가 쓸데없이 유색인종 주인공 집어넣는 PC 리메이크짓은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같은 유색인종이 보기에도 안 좋다. -_-;;

3. Edward Donald Slovik (1920-1945) -- 총살

이 사람은 군인이었고, 위의 두 사례 같은 막장 사법 살인을 당한 정도는 아니다. 결과만 따지자면 군생활에 적응을 못 하고 전시 탈영을 저질렀고, 이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 안 좋은 타이밍에 굉장히 운 나쁘게 일벌백계 시범 케이스로 걸려서 사형 당했기 때문에 좀 억울하다면 억울한 사례가 됐다.

그는 성장 배경이 불우했는지 좀 질이 안 좋게 컸고, 10대 소년 시절부터 각종 기계에 자동차까지.. 온갖 절도죄로 잡범 전과가 주렁주렁했다.
저 사람은 소년원인지 교도소인지를 실컷 드나들다가 1942년에야 겨우 석방됐다. 출소 후엔 직장 잡고 연애에 성공해서 결혼도 하고, 이제 좀 마음 고쳐먹고 바르게 살려고 했다. 근데 결혼 생활 1년을 못 채운 타이밍 때 군 징집 영장이 날아왔다.

평시에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저 사람 정도로 전과가 화려한 사람은 군대에서도 필요 없다고 안 받아 줬다. (무공 전과가 아니라 범죄 전과..ㄲㄲㄲㄲ)
그러나 저 때는 2차 세계 대전 시국이었다. 병력이 많이 필요하니, 캐 싸이코패스 흉악범만 아니면 어지간히 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도 데려갈 정도로 징집 기준이 아주 낮아졌다.

그는 성장 배경의 특성상 단체 생활 잘 하고 군대에 적합한 체질이 아니었다. 각종 훈련이나 작전에서 수시로 낙오를 빙자해 전선을 이탈해 버리면서 전우들을 엿먹이고 고문관 신세를 면치 못했다. 심지어는 6주 동안이나 짱박혀 잠적하기도 했다고.. 그는 “나 이런 데서는 도저히 못 견디겠으니 앞으로 또 탈영하겠다”라고 상관에게 항명을 예고하는 편지를 보내서 결국 찍혔다.

그의 상관들은 이런 편지는 그냥 없는 걸로 하고, 얘를 전투 스트레스가 덜한 부대로 전출이라도 시켜 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어차피 이판사판인데 군사 재판을 받아서 교도소에서 몇 년 썩는 걸로 군생활을 통째로 퉁치고 싶어했다.
사실, 미국 역사상 사형 선고를 받은 탈영병은 탈영 후에 살인· 강간 같은 흉악 범죄까지 저지른 사람뿐이었다. 이렇게 단순 탈영이나 병역 거부 자체만으로 사형이 선고된 적은 옛날 남북 전쟁 이래로 전무했다. 그러니 이 사람도 그걸 노렸는데..

그때는 2차 세계 대전 시국이었다는 것이 역시 문제였다. 천조국도 지긋지긋한 전쟁에 어지간히 이골이 나 있었고, 군복무 부적격자의 인권을 챙기는 것보다는.. 다른 멀쩡한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군기 빠진 꾀병 의심 탈영을 일벌백계 하는 것에 훨씬 더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땐 한 집안 출신의 5형제가 몽땅 한 군함에서 성실히 근무하다가 다섯 명이 한 날 한 시에 몽땅 전사해 버린... '설리번 5형제'(1942) 같은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이 때문에 이 '에디 슬로빅'의 죄질은 정말 불행히도 예상보다 훨씬 더 나쁘게 평가되었으며, 그는 미국의 역사상 탈영죄 단 하나만으로 사형이 선고된 유일한 사례가 되어 버렸다. 그의 선택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결과를 야기한 것이다.
그의 아내와 친척들이 대통령에게 수차례 감형 탄원서를 냈지만 전시이다 보니 별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요청이 받아들여지지도 못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군 탈영병이 21000여 명이나 발생했는데 순수 탈영만으로 사형 선고는 49건, 그게 실제로 집행된 건 이 사람 혼자뿐이었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4/02 08:35 2024/04/02 08:35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82

조금 뒷북이긴 하다만.. 본인은 요 근래에 <건국전쟁>을 보면서 국뽕을 한 사발 잘~~ 흡입하고 왔다.
제목이 뭔가 낯익어 보이던데? 10여 년 전 옛날에 정반대 성향의 진영에서 만들었던 좌빨 다큐 영화는 <백년전쟁>이었구나. 그걸 의식해서 저 영화가 제목을 저렇게 지은 게 아닐까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울나라는 딴 게 국뽕이 아니라 리 승만 보유국이었다는 거, 초대 국부가 할배 같은 사람이었다는 게 너무 과분한 국뽕이었다.
SNS에서는 애국우파 네티즌들이 자기도 이 영화를 봤다면서 티켓 인증샷을 막 올리더라만.. 난 그런 릴레이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영화 내용 요약 내지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관련 생각을 올리련다. ㄲㄲㄲㄲㄲ

1. 패턴

  • 조선은 말기에 일본까지 끌어들여서 동학을 진압하고 나서는 그 일본한테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다.
  • 태평양 전쟁 말기에 미국은 소련까지 끌어들여서 일본을 항복시켰다. 그러나 이게 훗날 한반도 남북 분단의 화근이 됐다.

미국은 저 끈질긴 쪽발이 일본놈한테 학을 떼 버려서 진짜 될 대로 돼라~ 핵도 터뜨리고 "소련까지 끌어들여서" 어떻게든 전쟁을 끝내고 싶어했다. 제3자가 보기에 그 심정이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리 할배는 아무리 그래도 소련은 끌어들이지 말고 한반도에 미국이 단독 진출해야 한다고 그렇게도 당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이것 때문에 미국도 두고두고 고생하게 됐다.
하긴, 미국은 일본이 쳐들어올 거라고 경고했던 할배의 선견지명도 업신여겼다가 된통 당했었다. ㄲㄲㄲㄲ

  • 박 정희는 기업을 육성하려고 민간 사채를 싸그리 정리하려다 보니(1972년 8 3 사채 동결 조치) 시간이 부족해서 유신 독재를 감행했다.
  • 그것처럼 리 승만은 재일 교포 북송을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일본으로 공작원도 보내고(1959년).. 이걸 결판 내려는 욕심이 이듬해에 무리해서까지 4선 출마를 강행하는 데 영향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오~~ 둘이 요렇게 연결된다니 신기하다.

2. 할배의 업적

  • 혁명적이었던 농촌 토지 개혁 -- 단군의 후손들을 단순히 나라 있는 백성으로만 만든 게 아니라, 자기 땅도 있는 백성으로 만들었다.
  • 그 가난하고 못살던 시절에도 교육에 투자하고 쓸데없이 민주주의 정신을 너무 많이 함양시킴
  • 반공 포로 석방과 한미 상호 방위 조약. 50여 년 전에 조선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걸 겪었으니.. 울나라는 이젠 두 번 다시 미국에게 버림받지 않으려고 외교 역사상 최고의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약을 맺어 버렸다.

3. 누명

(1) 한강 다리 폭파 관련 거짓 날조 누명은 이제는 최초로 거짓말이 유포된 배후를 추적해서 학술적으로 다 까발려야 하지 않나 싶다.
건국전쟁 영화를 싫어하고 내용을 반박한 사람들 글을 검색해 보니 맹 사사오입 개헌이나 조 봉암, 최 능진.. 이런 사람들 사형 당한 것만 거론할 뿐, 이 런승만 날조의 반박에 대해 또 재반박을 하지는 않더라.

(2) 말단의 군경 간부라면 모를까, 우리나라 초대 내각은 친일파 반민족주의자 출신이 개뿔 절대 아니었다. 이 시영 가문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이고, 애산 이 인??
이 사람은 독립운동가 변호하고 한글학회에 재산 엄청 기부했던 애국자 법조인이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이런 식의 친일파 단죄는 비현실적이고 무리라고 생각해서 반민특위의 해체에도 앞장섰었다!

(3) 리 승만 할배는 4 19 시국을 뒤늦게 파악하고는 "내가 맞아야 했을 총을 우리 젊은 친구들이 맞았구나" 그러면서 4 19 시위 부상자들을 위문하러 갔다.
선뜻 하야하겠다고 그러자 오히려 시위대며 시민들도 도로 같이 울었고 "리 박사님, 만수무강하십시오" 그랬다. 세상에 참 이상한 바보같은 독재자다.
오히려 그 시절 언론 기레기들이 할배와 시민 사이를 마구 이간질했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짤막한 여행을 무슨 죄 짓고 도피 망명이라도 가는 양 부풀려서 조작 보도를 했다.

4. 어처구니없는 현실

(1) 김 구는 단순히 남북 분단을 반대하고 남북 간 오해를 풀러 북한을 방문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쏘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조만간 남조선에 쳐들어갈 거고, 그러면 쟤들은 꼼짝없이 함락당할 것이다" 그는 이런 소리까지 뻔히 들어서 아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남한에 돌아와서는 "북한은 절대 쳐들어오지 않습니다~ 미군 없어도 괜찮습니다" 이런 거짓말을 했다고?
이게 사실이라면 김 구는 우리가 아는 그 애국자 김 구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사람을 10만원 지폐 도안에 넣겠다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 주미 한국 대사관에는 할배가 아니라 서 재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딴 나라들은 간디 등 정상적인 자기 국부들 동상)

(3) 하와이에서 리 승만의 날 기념일을 제정하려고 했는데 본토 조선인들이 하도 분노하고 반발· 반대하는 바람에 시도가 무산됐다고.. 허 참 기가 막힌 일이 많았다.

건국전쟁은 정말 국뽕 충만하면서 울컥하면서 너무 훌륭하고 아름다운 다큐 영화였다.
영화가 다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오고 상영관 불이 켜지자..  누가 시작했는지 절로 박수가 터져나왔다. 기립이었는지 착석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만.. 곧장 상영관을 빠져나가는 사람이 없이 거의 5초~10초는 박수를 치고는 나갔다.
할배가 1953년인가 54년인가 미국 상원 연설을 해서 열혈 기립박수를 받은 것처럼 말이다.

나는 박수 정도가 아니라 중간 중간에 몇 번이나 “옳소!” “아멘!” 이럴 뻔했다. 말은 차마 못 하고 그냥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걸로 격한 공감을 대신 표현했다.

왜, "세상을 바꿔 놓은 책" 킹 제임스 성경 400주년 다큐와도 오버랩됐다.
그 위대한 성경의 번역을 지시한 왕은 정작 유해라고 해야 하나 정말 보잘것없이 어디 쳐박혀 있던데..
우리나라 국부도 저렇게 존재감 없는 취급을 받고 있구나..

이 조선? 한국이라는 나라는 중국처럼 쪽수 많은 대국도 아니고, 일본처럼 일찌감치 근대화 잘해서 열강 반열에 든 나라도 아니었다.
얼마든지 식민지가 되든 공산화가 되든 이상할 게 없었고,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같은 국력의 나라로 남는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그 듣보잡 한구석에 미국을 너무 잘 알고 미국의 이념을 적극 따르는 지도자를 둔 ‘깨어 있는 나라’가 있으니 “미국 니들도 여기를 다시는 무시하거나 저버리지 마라~~ 니들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나라도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될 거다”이걸 각인시켜 놓은 주역이 바로 그 할배다. 이 능력을 겨우 킬구 아재랑 비교하냐? 허 참~~~

이런 영화 보는 것엔 돈 아깝지 않다. 다들 보고 그냥 파일 소장해라. 누구든지 꼭 봐라 두 번 봐라.
그야말로 할배가 잘한 것을 논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고 불편해하는 거.. 진짜 정신병이다.
외국 나가서 교양과 상식 있는 사람들 앞에서 할배를 비하하고 부정하면 그냥 남한이라는 나라 품격 자체가 그냥 통째로 폄하되고 깎일 것이다.

크리스천인 가수 나얼이 이 영화 포스터를 개인 SNS에 올렸는데 그걸 갖고도 미친놈들이 욕하고 악플 달고 난리를 쳤었다. 기도 안 차서 원..
하지만 그 대신, 나얼이 누군지 모르고 기독교인도 아니던 사람들 중에서도 "나얼? 저 사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애국자군. 음반을 구매해야겠다" 이러는 사람이 생겼다. =_=;;; 팩트만 늘어놓은 다큐가 도대체 왜 정치색 논쟁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건국전쟁 같은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할 게 아니라 공중파 방송국에서 매년 국경일에 틀어 줘야 한다.
실제로 옛날에(2015~2016년) KBS TV에서는 주 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일사각오' 다큐를 무려 전국구로 방영한 뒤에 이듬해에 증보판(?) 영화까지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죽으면 죽으리라' 안 이숙 여사 얘기까지 추가해서 말이다.
난 그때 솔직히 놀랐다. 어떻게 KBS에서 CBS 같은 성향의 다큐를 저렇게 방영할 수 있었지?

아무리 일제에 의해 투옥과 고문을 당했다지만, 주 목사는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항일 독립운동이 아니라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것에 더 가깝다.
우리나라가 국교가 있는 나라가 아니거늘, 광고 없는 국· 공영방송 급이라면 솔직히 주 목사 얘기보다는 리 박사 할배 얘기를 더 우선적으로 방영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일사각오와 비슷한 시기에(2016) 울산 MBC에서는 '마지막 간수'라는 안 중근 다큐를 독자적으로 만들어서 방영한 적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방송사에서 마음만 먹으면 할배에 대한 진실을 전하는 애국 다큐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텐데. 방송사 관계자들의 마음과 의지가 아쉽다.

Posted by 사무엘

2024/02/21 08:35 2024/02/21 08:35
,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66

인간 사회에 계층간 갈등이라는 게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게 과거보다 훨씬 더 조직적이고 과격한 형태로 표출된 건 아무래도 산업 혁명 이후 19세기에 공산주의라는 게 생긴 뒤부터인 것 같다. 구호부터가 “만국의 로동자여 단결하라~~ 기존 체제를 다 뒤집어엎고 브루주아들을 다 타도하고 혁명 과업 완수하자” 이랬으니 말이다.

과거에는 왕부터 시작해서 귀족, 지주/영주 같은 계급만 떵떵거리며 살았다. 나머지 대다수 평민들은 농업 같은 1차 산업에 종사하면서 비슷하게 평등하게 못 살았다. 자기 신분과 출신이 원래 그렇고, 이웃들도 처지가 대동소이하니까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여지가 별로 없었다.

농사가 풍년이어도 세금이나 소작료 명목으로 소출의 대부분을 삥뜯기는 게 참 뼈아팠다. 옛날에 노동력이 부족하고 백성들의 진짜 소득을 정확하게 측정할 행정력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 머릿수에만 비례해서 너무 단순무식하게 세금이 부과된다면 어떨까? 출산이 진정한 재앙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게 싫다고 인간이 법과 공권력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법지대에 혼자 떠나서 모든 걸 자급자족 하면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게 진정한 딜레마였다.

사실, 중앙 정부에서 법으로 정한 세금 자체는 그렇게까지 살인적인 수준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론과 이상은 그러하지만 물자를 수송하는 과정에서 날리고 잃는 걸 감안해서 여분으로 더 걷는 것, 그리고 세리 같은 중간 관리들이 횡령· 착복하는 게 장난이 아니니 최하위 납세자들의 고통이 극심해졌다. 하청에 하청을 거치면서 실제 작업자에게 지급되는 보수가 급격히 쪼그라드는 것과 완전히 같은 이치이다.

물론 세금 착취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못 버틸 지경이 되면 죽창 들고 민란이 발생하고 '의적'이라는 게 나타나기도 했다. 로빈 후드, 임 꺽정, 홍 길동, 윌리엄 텔.. 이런 거 말이다.
그래도 이건 국가 체제 전복을 의도하는 건 아니었으며 그럴 재량도 없었다. 단순히 탐관오리를 벌하는 것까지가 끝이었다.

그랬는데.. 산업 혁명 물류 혁명이 일어난 뒤부터는 상황이 약간 달라졌다.
기계와 인간의 생산성 격차가 아득히 벌어졌고, 또 브루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격차도 정말 아득히 벌어졌다. 이거 덕분에 2차와 3차 산업이라는 것도 본격적으로 생겨나고 농산물과 공산품이 싸게 많이 보급되면서 인간의 ‘평균적인’ 삶은 크게 올라가긴 했지만.. 이건 다른 방면에서 큰 부작용도 야기했다.

산업화 초기에 영국 같은 나라에서 공장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과 조건이 얼마나 열악하고 복지가 참혹했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흑인 노예도 아니고 나름 자국민이었는데도 말이다.
시골에서 농업 대부분에 가내수공업 약간이나 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공장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단순노동자로 처지가 바뀌었는데.. 삶의 질이 크게 좋아질 리가 없었다.

뭐 영국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도 산업화 초기엔 그랬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빈부격차는.. 과거의 통상적인 왕족 귀족과 평민 사이의 빈부격차와는 성격이 좀 다른 부류였다.
그리고 이런 초창기의 경제 시스템은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시장 만능 방임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극치였다. 오늘날과 같은 인권 관념이라든가 취약 계층 복지 같은 건 없었다. 돌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살벌했겠는지 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쪼기 서양은 문화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돈 많은 상류층들 중에도 교회 댕기는 신자가 대다수 주류였다. 그러나 이때 유럽의 기독교회들은 뭐 해외로 선교를 하기도 했지만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도 많이 했다. 그리고 자국 사회에서 하나님 사랑 다음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제대로 충실하지 못했다. 보다못해 영국에서 자선 냄비 이러면서 "구세군"이라는 교파가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그래서 19세기 중후반과 20세기 초 사이의 문학 작품들을 보면 이런 인간성 상실 동심파괴 시대상이 적지 않게 반영돼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작가는 기억이 안 난다만 <플랜더스의 개> 말이다.
스크루지 꼰대가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뭔가 옹고집전의 외국판 같기도 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명작 소설도 이런 시국에서 교회가 사회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성에서 만들어졌다. 저 때 자기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극혐한 빈곤층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니 결국은 참다못해 마음 독하게 먹고 악한 쪽으로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탐욕스러운 자본가 부자는 한없이 자기 배만 불리면서 더 부자가 되고, 로동자들은 평생 뼈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절대로 탈출하지 못하면서 부자들의 노예로 대대로 비참하게 살다 갈 거라고 말이다.

이런 현실은 로동자들끼리 단결해서 악에는 악으로 대응하고 싸우고 투쟁해야 바꿀 수 있댄다. 그래서 노조에 파업, 사보타주, 붉은 머리띠, 꽹과리 등 살벌한 구호와 방법론이 등장했다. 그러면서 “자본가들을 타도해서 부를 다같이 강제 분배하자, 사람이 먼저이고 로동자가 주인인 세상을 만들자, 능력만큼 벌고 필요한 만큼 쓰는 체제를 만들자” 같은 구호를 외쳤다.

공산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저런 걸 부추기고 추진하는 정치 단체를 흔히 '공산당'이라고 한다.
인간 사회의 근본 모순과 고뇌에 대해서는 기원전 500년에 가까운 옛날에 기록된 성경의 전도서에도 나와 있고, 비슷한 시기에 불교의 창시자인 싯다르타도 똑같이 고민했었다. 싯다르타는 번뇌를 떨치고 혼자 열심히 수련해서 해탈이라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반면, 공산주의자는 계급 투쟁과 혁명을 통해 좀 더 현실적인(?) 돌파구를 뚫은 듯하다.

마르크스인지 레닌인지 이런 아저씨들이 이 바닥으로 열심히 연구해서 이론적 근간(?)을 마련했다. 19세기 중후반에 이미 인터내셔널가라는 노래가 만들어지고 공산당 선언이라는 것도 만들어졌다.
현실 역사에서야 공산 혁명이 성공한 구소련과 그 주변 중국과 동유럽이 공산 진영으로 여겨지지만, 더 과거인 1871년엔 프랑스에서도 단 70일 남짓이지만 공산 혁명 정부가 집권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가 뭔가 혁명, 저항 이런 쪽으로 영국· 독일보다 더 쎈 정서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 싶다.;;

이 사람들은 모든 게 과격했다. 자본가 프롤레타리아들이 고수하던 삶의 방식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적폐로 몰아 척결하고 뜯어고치고 지워 버리려 했다.
종교색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 심지어 1주일의 길이도 7일은 종교색이 느껴진다면서 바꿔 버렸다. 파리 코뮌은 10진법을 존중해서 한 주의 길이를 아예 10일로 바꿨고, 나중에 소련은 약수가 더 많은 8일로 바꾸려 했던 걸로 기억한다. =_=;; 이런 반골 기질이 있으니 나중에 중공은 그 보수적인 정서법을 다 뜯어고치고 간체자와 한어병음을 과감히 도입했다.

일본은 나라가 잘 살고 철저하게 자유 진영을 롤모델로 삼으면서 서구화 근대화를 잘 해서 그런지, 대놓고 공산화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반사회 혁명분자야 당연히 있었고, 그건 심지어 한반도니 만주니 하는 식민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 서해의 단편 소설 <탈출기>(1925)가 딱 그런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공산주의 진영은 2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 거의 반세기 가까이 리즈 시절을 찍었다.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라는 악역이 패망해서 고꾸라졌고, 소련은 엄연히 전승국으로 예우받으며 국제 위상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해방 직후에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헝가리· 불가리아· 체코 같은 소련 주변의 동유럽 국가들도 많이 공산화됐다.

그리고 소련의 반대편에서는 어쩌다 보니 미국.. 20세기에 서유럽을 제치고 승전국에다 세계 최강국으로 등극한 이 나라가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게 됐다. 2차 대전 추축국을 상대로는 총 쏘고 포 쏘면서 대놓고 싸웠는데, 공산 진영과는 대놓고 싸우지는 않는 대신 고삐 풀린 듯이 군비 경쟁 우주 개발 전쟁만 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두고 '냉전'이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 붙였다.

아프리카라든가, 오세아니아, 남아메리카 같은 남반구 지역은 너무 멀어서 그런지 공산주의와의 직접적인 접점은 없는 것 같다. 이런 곳을 제3세계라고 부르나??
하지만 쿠바가 무슨 계기가 있는지 골수 반미 국가였고(카스트로??), 그 아래 중남미도 몇몇 친미 노선 국가를 제외하면 '체 게바라'가 어떻고 해방신학에 종속 이론이 어떻고 하는 게 반미는 물론이고 공산혁명 냄새가 좀 난다. 그쪽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그렇게 느껴진다.

아 물론 미국이 다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걔들도 분명 자기 국익대로 몰래 비열한 짓 삽질 X신짓을 한 게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남아메리카가 그 넓은 땅에 그 많은 농산물에 풍부한 자원이라는 잠재성 대비 그다지 잘살지 못하는 건.. 모든 걸 미국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어 보인다. 뭔가 통치 체제나 이념, 개인의 가치관 세계관에 문제가 있긴 했다.

체 게바라는 골수 반미 반자본주의 혁명가였다. 하지만 그는 사후에 자본주의자들에 의해 공산주의 슈퍼스타처럼 이미지가 조작됐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엄청난 고인드립이 아닐 수 없다. =_=;; 마치 니콜라 테슬라가 아주 뛰어난 과학자 공학자였지만 훗날 음모론 오컬트계의 교주뻘 인물로 이미지가 조작된 것처럼 말이다.;;
저 장사꾼들은 돈만 된다면 정말 뭐든지 만들어 팔긴 하는가 보다. 하긴, 반미 시위 때 불태우는 용도의 성조기 내지, 성조기가 그려진 속옷· 걸레조차 다 미국에서 만들어서 판다고 하지 않는가? =_=;

우리나라, 남한, 대한민국이야 처음부터 할배의 영도력 덕분에 골수 미국 편에 붙어서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 그 반면, 우리나라를 대적하고 무너뜨리려 한 저 악의 무리들이 처음에 소련 편 공산주의를 밀었으니..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서 뼛속까지 반공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과격 좌익 시위를 단속하는 정도하고는 레벨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상이다. 세계사나 인문학 따위 알못인 본인이 그냥 주워 들은 기억만 주섬주섬 늘어놓아 보았다. =_=;;
글쎄, 계급 갈등 투쟁 덕분에 진짜 적폐를 청산하고, 근로자의 인권과 복지가 크게 향상된 긍정적인 결과물도 없지는 않았다. 그 이념이 '수정 자본주의'에 많이 반영되어 들어갔다. 이게 양심적인 업주나 기독교회를 통해서 이뤄진 게 아니라 투쟁을 통해 이뤄졌다는 건 그쪽 편에 선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성경에는 “종들은 주인에게 복종하라”뿐만 아니라 야고보서에 “착취되고 빼돌려진 근로자 인건비가 울부짖는다, 부자들에게 화 있을지어다”도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기능은 약간 조금이 끝이었다. 이 혁명가 운동꾼들은 오로지 광기와 선동만 있을 뿐, 이성이 없었다. 본질적으로 그저 음해하고 까내리고 부수고 죽이고 파괴할 줄만 알지, 어려운 걸 만들고 창조하고 설계하는 건 몰랐다.
걸핏하면 자기들끼리도 비판하고 '총괄'하고 '타도'하고.. 어제의 동지도 바로 스파이로 몰아서 고발하고 죽여 버리고..;; 총체적인 무질서와 팀킬에 빠졌다. 한 구악을 청산했다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똑같은 짓을 하거나, 예전만도 못한 더 큰 신악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저런 사고방식의 열매가 바로 소련의 대숙청, 중공 문화대혁명 홍위병과 대약진운동, 캄보디아 킬링필드 같은 것들이다.
쟤들은 옛날 문화재도 엄청 많이 때려부수고 박살내 버렸다. 중국의 경우, 오히려 장 제스가 타이완으로 도망가면서 싹싹 긁어간 문화재들이 문혁의 피바람을 피해서 살아남았을 정도이다. 인류가 20세기의 이런 참극으로부터 뭔가 교훈을 얻고, 다시는 저런 짓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도 운동권 내부에서 추잡한 성추행이라든가 프락치 오인 린치 같은 사건이 당연히 있었다. 보고 배우고 하는 짓이 저런 것밖에 없는 애들이 도덕적으로 자신들의 타도 대상보다 우월할 리는 절대 만무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건 내로남불 위선이다. 남에게는 땀흘려 일해야 노동의 가치를 안다느니 헛소리를 지껄였지만, 공산당 고위 간부들은 절~~대로 자기 부를 남에게 분배하면서 자기 이념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은 '공산주의 사상'과 '공산주의자의 수법'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소신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다.
가령,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것처럼 초대 교회 때 교인들이 모든 재산을 공유했던 것은 결과만 보자면 공산주의대로 행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체제 전복 선동을 한 건 아니었다.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공산주의자들이 동원하는 수법은 초대 교회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온통 비인간적이고 비열하고 추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이 빨갱이 소리를 들어 온 주 이유이다.

물론, 공산주의자들만 그런 수법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군국주의 1당 독재, 통치자 우상화, 전체주의, 닥치고 숙청 같은 건 공산주의와 무관했던 구 일본 제국이나 나치 독일도 동원했었다. 프랑스 혁명 공포 정치도 통치자 1인 우상화만 없을 뿐, 조금 저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저런 군국주의 전체주의는 없어지고 최소한 주류에서는 완전히 밀려났으니 이제 저런 공산혁명 어쩌구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저런 짓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1990년대 이후엔 북괴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공산권 국가들이 무너지거나 최소한 경제만은 개방했다. 세계는 다시는 저런 미친 혁명 실험을 하지 않고, 그냥 지금 같은 시장 경제에다가 세금으로 복지 보정만 하는 체제로 다들 수렴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를 개방했고 민주주의를 흉내만 낼 뿐, 중국과 러시아 같은 나라는 한국·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도.. 저런 숨막히는 나라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과거의 상명하복 똥군기 문화의 여파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여전히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게 많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미국은 단순히 크고 땅 넓고 자원만 많은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 정교분리, 삼권분립, 자유 민주주의와 현대적인 인권 이념을 퍼뜨린 정말 위대한 나라인 것 같다. 캐나다나 호주 같은 평범한 영연방 국가로 그치지 않고, 덕분에 인구도 그런 나라보다 훨~씬 더 많아져 있다.

아무쪼록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고, 경제나 정치 쪽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감각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산업혁명 초기에야 진짜로 근로자들의 처지가 너무 가혹했지만, 지금은 진짜 내로남불 귀족 노조를 더 비판해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부와 세금에는 똑같이 낙수효과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멀쩡한 역할 분담을 쓸데없는 계급 갈등으로 비화하는 이간질과 반기업 프레임 따위에 속지 말고.. 옛날에 실패가 진작에 입증된 실험을 또 하겠다고 덤비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오징어 게임 '혁명적인 개X끼'가 얼마나 끔찍한 욕설인지가  얼추 이해가 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2/09 08:35 2024/02/09 08:35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62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

1.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외륜선 달린 증기선이 떠 다니는 미시시피 강을 배경으로 “톰 소여의 모험”이라는 동화? 소설을 집필한 작가로 유명하다.
‘허클베리 핀’은 거기 나오는 톰 소여의 친구의 이름인데, 원작 동화가 큰 히트를 치자 친구 캐릭터만 갖고 소설을 또 쓰면서 이름이 제목에 등장하게 됐다.

이 사람은 얼마 전에 이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패니 크로스비 여사와 동시대 인물이다. 검색을 하면 무슨 아인슈타인처럼 백발에 수염도 북실북실한 노신사의 모습이 주로 걸려 나온다. 그리고..

2.
그는 시대를 정말 엄청나게 앞서간 좌파 진보(?) 성향이었다.
무슨 공산당 빨갱이 성향이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 시절에 인종 차별 반대하고 제국주의 반대하고 저딴 일들이 신과 기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걸 극혐 거부했다. 심지어 자국에서 과거에 인디언들 땅 빼앗고 죽인 것까지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놀랍지 않은가?

사회 상류층들의 위선을 싫어하고, 불의와 거짓이 알량한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퉁쳐지는 걸 반대했다. 자기가 싫어하는 걸 비판할 때는 온갖 신랄한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누명 조작 사건이 벌어졌을 때, 드레퓌스 진영을 온몸으로 옹호했다. 드레퓌스를 실드 쳤던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극찬했었다. 그 유명한 n명 출생 드립을 동원해서 말이다.

“세상에 위선자 사기꾼 돌팔이 겁쟁이 기회주의자 따위는 1년에도 수백 명씩 태어난다. 그러나 에밀 졸라 같은 양심적이고 용감하고 정의로운 지식인은 몇백 년에 한 명 태어날까말까다.”
글쎄, 영국은 저런 사람이 정치판에 부족해서 결국 19세기 중반에 아편 전쟁을 벌이게 됐는가 보다.

3.
마크 트웨인은 성향이 성향이다 보니 사회 풍자 소설도 많이 썼다.
이건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인 영국 조나단 스위프트와 비슷한 면모인 것 같다.

걸리버 여행기야말로 걸리버가 무슨 ‘하멜 표류기’마냥 난쟁이들과 부대낀다는 내용의 초딩용 가벼운 판타지 동화라고 생각하면 그건 정말 경기도 오산이다.
거인국 등 나머지 에피소드 3개를 다 봐야 된다. 제일 유명한 첫 에피소드 소인국 편은 전체 소프트웨어의 기능 중에서 셰어웨어 비등록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영국 사회에 대한 블랙코미디 풍자를 넘어 거의 인간 본성에 대한 혐오와 회의 자괴가 담긴 참신하고도 심오한 소설이다.
이런 소설이 1800년대도 아니고 1720년대에 출간됐으니 얘도 시대를 엄청 많이 앞선 것이었고, 작가는 굉장한 천재였다.

여담이지만 작가의 이름 Swift는 오늘날 애플의 iOS/macOS 프로그래밍 언어의 이름으로 등극했으며,
걸리버 여행기 소설 중에 등장하는 미개 종족 이름 Yahoo는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검색 엔진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다.;;;
CPU 아키텍처별 비트 배열 순서의 차이를 나타내는 big/little endian이라는 것도 저 소설에서 등장하는 '계란 깨는 방향'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어이쿠~ ㄲㄲㄲㄲㄲㄲ

4.
이렇게 마크 트웨인과 웬 걸리버 여행기가 오버랩 됐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마크 트웨인은 참 신기하게도 핼리 혜성이 지구를 찾아온 때에 거의 맞춰 태어나고(1835년 11월), 그 다음 핼리 혜성이 지구를 찾아온 때에 거의 맞춰서 죽었다(1910년 4월)!!

저 사람 본인도 이에 대해 진작부터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자기는 다음 혜성 방문 타이밍 때 죽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농반진반으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 씨가 돼 버렸는지, 70대 중반의 나이로 진짜로 그 시기에 죽었다..;;

그는 이런 출생 배경 때문인지 문돌이 소설가인 것치고는 자연과학 쪽으로도 일반인들 이상의 관심과 조예가 있었다. 그리고 저런 골수 진보 성향(!!) 때문인지, 자기 살아 생전에 발표되어서 교계를 뒤흔들었던 따끈한 학설인 진화론에 대해서도 응당 호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저 사람은 무슨 볼테르 급의 완전 개독안티 무신론자 반종교.. 까지는 아니고, 명목상 신자이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형적인 “예수는 믿지만 (인간한테 실망해서) 교회는 안 다닌다”, “예수님이 지금 인간들 교회를 보신다면 빡쳐서 또 다 뒤집어엎고 불호령을 내리실 것이다” 성향이었다.
개인적으로 저런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그냥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도의 생각으로 간주한다. 이해는 하지만 완전 동의는 안 한다.

(당신들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그 예수님이 자기 피까지 비용으로 치러서(!!) 교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는걸? 그 사람들로 뽁짝거리고 시끄럽고 정신 없는 교회에 주일마다 발품 팔아 출석하는 신자들이.. 바보 멍청이어서 그러는 건 아닌데..?? ㄲㄲㄲㄲ)

뭐, 저 정도 말은 크리스천이 전혀 아니었던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도 했던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저런 성향이 좋게 발전하면 히틀러한테도 당당히 항거했던 행동하는 양심 본회퍼 목사처럼 될 수 있을 것이고, 나쁘게 발전하면 그냥 자유주의 해방 신학처럼 될 것 같다.

5.
끝으로, 1910년엔 5월 중순엔 실제로 핼리 혜성이 지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이때는 “다가오는 핼리 혜성의 꼬리 부분을 관찰해 보니 이건 분명 독가스 성분이다. 이때는 지구 전역에도 독가스가 잔뜩 퍼질 예정이다. 지구의 인류는 꼼짝없이 멸망할 것이다~~” 이런 황당한 종말론 설레발이 많이 나돌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얘기지만 그 당시엔 1908년 퉁구스카 대폭발의 충격 때문에 저런 선동도 통했던 것 같다.

현실에서는 그런 종말은 당연히 없었다. 단지, 그로부터 100일쯤 뒤에 조선 왕조 하나만 종말을 맞이했을 뿐이었다..!! =_=;;

Posted by 사무엘

2023/01/28 08:35 2023/01/28 08: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118

« Previous : 1 : 2 : 3 : 4 : Next »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6/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3936820
Today:
1236
Yesterday:
4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