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베네딕트 아놀드'(1741~1801)라는 사람이 거의 미국의 이 완용, 배신자 변절자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이던 시절에 미국군에서 장성급 장교로 복무하던 군인이었다. 그런데 영국 스파이와 내통하면서 군사정보 유출과 이적행위를 시도했고, 이게 발각되자 영국으로 빤스런.. 아니, 도피 귀순을 해 버렸다.

물론 이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나쁜짓을 한 건 아니었다. 자기가 전쟁터에서 일말의 공을 세운 게 제대로 카운트되지 않은 것, 미국군 내부에서의 부조리 같은 여러 변명거리가 있긴 했다. 그는 처음부터 구제불능의 기회주의자 인간쓰레기 급 인성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군생활 도저히 못 해 먹겠으면 간첩짓은 하지 말고 공개적으로 "난 영국으로 전향하겠다~ 저쪽에서는 계급을 더 올려주고 연봉도 2배로 더 주기로 했다" 이렇게 떳떳하게 밝히기라도 하고 미국을 떠났어야 했다. 저 사람의 처사는 신사답지 못했으며, 당시 통념상으로 용납될 수 없었다.
이 사람은 그렇게 무리수를 불사하며 미국을 통수 치고 배신했지만.. 영국이 기대했던 것 같은 막 커다란 전술적인 이익을 주지는 못했다. 애초에 이 사람은 엄청나게 유능해서 영국으로 스카웃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베네딕트와 접촉하던 저 스파이가 삐끗 실수로 정체가 탄로나는 바람에 포로로 잡혔다. 이 사람이야말로 영국 입장에서 더 유능· 충직한 군인 애국자였다.
미국 측에서는 베네딕트와 그 스파이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영국도 생각 같아서는, 사람의 가성비만 따진다면 당연히 쌍수 들고 그러고 싶었다. 스파이는 돌려받고, 베네딕트는 본국으로 재송환돼서 바로 반역죄로 처형.. 그러면 땡이니까.
그러나 영국은 명예와 약속과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사고방식 때문에 차마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편으로 제발로 귀순해 온 사람을 제멋대로 갖다버린다면.. 그 소문이 퍼져서 앞으로는 아무도 영국으로 귀순을 안 할 테니 말이다. 옛날에 스위스 용병들이 신용에 목숨을 걸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 같다!
결국 인질 교환 협상은 결렬됐다. 베네딕트는 영국에서 목숨 부지한 대신, 영국군 스파이는 미국에서 처형 당했다.
그 스파이는 미국군을 상대로 베네딕트에게 불리한 증언을 일절 하지 않았다! 자기 목숨을 건 그 어떤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의리를 지키다가 당당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래서 그를 처형한 미국군 측에서도 "적이지만 훌륭하다"라고 칭송하면서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허나, 베네딕트는 영국에서 그 스파이 이상의 값어치를 못 했다. 그 스파이의 상관이었던 영국군 지휘관은 베네딕트를 죽도록 싫어했다. 베네딕트는 예편해서 민간인이 된 뒤에도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사람들로부터도 아주 멸시받으면서 입에 간신히 풀칠이나 하다가 갔다.
단지, 그 스파이가 들키고 잡힌 것 자체가 베네딕트의 이중 배신이나 뻘짓 때문은 아니라는 거.. 이거 하나만이 최소한의 위안(?)이 될 뿐이다.
자, 이 일화에는 꽤 성경적인 원리가 담겨 있다.
베니딕트의 영국인 신분은 베네딕트가 뭘 이쁜 짓 잘해서 유지된 게 아니었다. 뭐, 영국 군함으로 달려가서 귀순 요청을 한 것까지는 자기 의지와 결단으로 한 것이지만, 그 뒤부터 자기의 신분은 자기 노력으로 유지된 게 아니다. 그냥 영국이라는 나라의 의리와 자비심으로 유지됐을 뿐이다.
그것처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거의 어디 망명 가고 귀순한 급으로 신분이 확 바뀐 사람들이다. 그들의 구원은 그들의 행실이 아니라 구원자의 한결같음, 자비심, 신실하심으로 유지된다.
※ 같이 생각해 볼 점
1.
베네딕트는 미국의 입장에서 배신자, 반역자라는 불명예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배신 전에 공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일례로, 뉴욕 주의 ‘새러토가’라는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영국군과 맞서 싸우다가 발목에 총상을 입은 적도 있었다.
목발이나 휠체어(!!) 신세까지 야기할 정도의 중상은 아니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엄연히 나라를 위해 싸우다 영예롭게 다친 것이니 임팩트가 컸다. 오죽했으면 이 사람의 도주와 배신 소식을 전해들은 미국 측 사령관(토머스 제퍼슨??)이 이렇게 말했었다고 한다.
“우린 그놈을 붙잡는다면, 다리만 짤라서 전쟁 영웅으로 정중히 예우하고 국립묘지에 묻어 줄 것이다. 나머지 몸뚱아리는 반역자의 최후에 걸맞게 교수형에 처하고!”
새러토가에는 지역의 역사를 소개한 공원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베네딕트 아놀드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고 “미국 식민지 소속으로 이곳에서 가장 용맹한 무공을 펼쳤던 어느 군인”이라면서 사람의 발 모양의 기념비가 만들어져 있다!

이거 무슨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같은 느낌이다.
베토벤은 한때는 나폴레옹을 칭송하는 교향곡을 만들고 있었지만.. 칭송 대상이 황제로 흑화해 버리자 크게 실망해서 인물 이름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 곡은 “과거의 위대했던 어느 영웅을 추억하며”라고 컨셉이 바뀌었다.
2.
이렇듯, 새러토가 전투에서 입은 부상은 베네딕트의 커리어에서 분명히 플러스가 됐다. 하지만 그는 겨우 그 정도만 플러스 된 것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헉, 괜찮으십니까?”라는 부하의 질문에 “다리에 총 맞았다. 차라리 가슴팍에 맞았으면 더 좋았을 걸..” 이런 말까지 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 말은.. 공교롭게도 훗날 진주만 공습 때 허즈번드 킴멜 사령관이 했던 말과 아주 비슷하다.
그 사람도 현장에 있다가 일본군 함재기가 쏜 총탄에 맞기는 했으나.. 직격이 아니라 딴 델 맞고 튕겨나온 도탄이어서 파괴력이 약했다. 옷이 살짝 찢어지고 피부에 찰과상을 입는 정도로만 다쳤다.
킴멜은 어이가 없어서 “내가 저 총알을 급소에 정통으로 맞고 전사를 했으면 차라리 더 나았을 것을.. 적의 총알조차 날 안 도와주네 ㅠㅠ”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진주만을 지키려다가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어쨌든 영예롭게 전사한 군인 vs 진주만 수호에 실패한 채 목숨만 부지하는 바람에 한직으로 좌천됐다가 초라하게 예편한 군인..은 차이가 어마어마하니까 말이다.
미군은 일본군 정도로 똥군기를 강요하고 무의미한 죽음을 미화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래도 군대라면 어느 나라 군대든 오로지 결과 지향적이고 “이기든지 죽든지” 근성을 중요시하는 풍조가 없을 수 없었다.
3.
내가 인간의 구원에 대해 설명할 때 즐겨 사용하는 비유가 있다. 예수 믿어서 구원받으면 그 사람의 영적 신분이 탈북 귀순자와 비슷한 급으로 달라진다고 말이다.
대한민국에 들어온 탈북자는 여기서 그 어떤 죄를 지어도 대한민국 교도소나 대한민국 사형장에서 인생을 종친다. 그 어떤 경우에도 북으로 송환은 절대 되지 않는다. 인도주의적으로나, 북한 주민도 원래 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명분으로나.. 이게 지극히 합당하다.
바로 이와 정확히 같은 맥락에서.. 한번 제대로 예수 영접하고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면 그 뒤에 그 어떤 죄를 짓고, 심지어 회개 안 하고 개망나니로 살아도.. 일단은 지옥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타이틀, 신분은 절대 취소되지 않는다. 하지만 제일 기본적인 구원 말고 다른 거 잃을 게 왕창 많을 따름이다.
하나님과의 교제, 사람들 앞에서의 간증, 기도 응답, 하늘나라 가서의 보상과 상급, 어쩌면 당장 육신의 건강과 생명까지..
그런데도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마치 마음대로 죄 지어도 된다는 모랄빵이라고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할 수 있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는다고 해서 대한민국 교도소가 편한 곳인 건 절대 아니다. 목숨 걸고 탈북해서 대한민국 땅에 왔으면 여기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자유를 누리고 자기 인생을 펼 생각을 해야지, 여기까지 와 갖고는 범죄나 저지르면서 빌빌대다가 교도소에서 자기 인생 종쳐 버릴 텐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예전에 뭉괴 시절에 우리나라에서.. 명백히 탈북 의사를 밝혔던 북한 주민들을 범죄자라는 핑계로 북으로 도로 송환시켜 버린 건.. 정말 천인공노할 반인륜 범죄였다. 범죄자면 대한민국 공권력으로 다스릴 것이지 왜 저런 미친 짓을 했는가?
그때 저 사람들.. 도로 북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진짜 기절초풍 멘붕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이젠 남조선 땅으로 가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런 소문이 퍼지고 더욱 탈북 의지가 꺾였을 것이다.
이렇게 된 걸 김돼지 놈들은 기뻐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건 이전 정권이 빼박 친종북 정권이었고 두고두고 욕 먹고 씹혀도 할 말 없는 악행이었다.
아무쪼록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인간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통해서 유지되는 것이다.
베네딕트도 완전 찐따였지만 그래도 영국의 의리 덕분에 미국으로 송환되지 않고 영국인 신분이 유지됐다.
그런 것처럼 정상적인 대한민국 정부라면 탈북자를 북으로 송환시키지 말아야 한다.
4.
뭐, 이 글만 보면 영국이 어지간히도 명예와 약속을 잘 지키는 신사 집단인 것 같지만,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쟤들이 너무 신사적이어서 청나라를 상대로 아편 전쟁을 일으킨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영국은 저 시절에 군인이라면 "나 죽여 주쇼~" 하듯이 한줄로 쭉 늘어서서(전열보병!!!) 총질을 해야지~ 미국처럼 싸우는 건 신사답지 못하고 치사하고 비열하다고 막 징징댔다.
미국이 어떻게 싸웠냐고? 자원과 병력이 부족하니 저 멀리 숨어서 영국군의 장교만 골라서 저격하는 식으로, 일종의 게릴라 전술을 썼다. ㄲㄲㄲㄲ
영국군은 20세기 초까지도 잠수함조차 치사하고 비열 비겁하다고 깠다. 그러니 독일군 유보트에 치를 떨었던 거구나.
영국 신사는 언행이 어떤 사람인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조선 양반의 서양 버전 같은 꼰대 기질도 있었던 듯.. =_=
5.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민법에 따르면 친자식은 도 넘는 개망나니 노답이면 의절하고 상속에서도 제외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족보에서 파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낳은 양자녀는 한번 입양을 결정했다면 파양 의절이 사실상 안 되거나, 조건이 훨씬 더 까다롭게 돼 있다고 한다. 입양 전에 소개받은 아이의 상태나 성장 배경 자체가 실제와 완전히 다르고 악의적인 거짓 구라 사기 급인 정도로.. 극단적으로 억울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어찌보면 성경적으로 이혼이 허용되는 조건과 비슷해 보인다. 정말 정말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 단순 성격 차이 감정 싸움 같은 걸로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는 그리스도인이 접붙여짐 받은 양자와 같다고 말한다.
선천적 혈통상인 하드웨어 유대인과 달리, 그리스도인은 후천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인 개조를 거쳐서 양성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굳건하게 보호받고 구원이 보장된다고 볼 수도 있다.
Posted by 사무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