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에 대해서

1. 자유형 집행할 돈과 공간이 없으면 딴 대안을 찾아야

요즘 우리나라는 교도소에서 죄수 수용할 공간이 없어서 난리이다. 한편으로 늘어나는 고령 노인 죄수들 때문에 교도소가 반쯤은 국립 무료 요양호텔로 전락해 있기도 하며, 또 더 잃을 게 없이 밥만 축내고 있는 사형수들은 제아무리 진상 부리고 깽판을 쳐도 교도관들이 어찌하질 못하는 등, 여러 문제가 많다.

사실, 징역/금고 같은 자유형 자체가 생각보다 최근에 등장한 현대적인 개념이다.
그 전, 전근대 시절의 감옥들은 판결이 날 때까지, 혹은 다른 진짜 형벌이 집행될 때까지만 죄수를 구금하는 '구치소'였을 뿐이다.
물론, 죄수를 가두고는 상부에서 죄수의 존재를 잊어버리는=_= 바람에 그 구금이 사실상 무기징역이 돼 버리는 경우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오늘날의 무기징역 확정 판결과 같은 급이 전혀 아니었다.

일정 기간 구금하는 것 자체를 형벌로 간주하는 건 옛날 행정으로는 집행하기 쉽지 않았다. 그 긴 기간 동안 죄수를 먹이고 재우고 관리하는 비용도 몽땅 다 세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도소의 과포화 문제가 심각한 지경이고 대한민국의 사법/법무부의 역량으로 이걸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면??

답은 간단하다.
자유형 대신 사형, 신체형, 재산형, 명예형의 비중을 늘려서 교도소 공간을 확보하는 수밖에. 내 말 틀렸냐?
"신상 비공개로 징역 10년 살래? 아니면 '차카게 살겠습니다' 광화문에서 조리돌림 한번 하고, 이 얼굴과 연락처 다 까발리고 사회에서 평생 고개를 못 들고 사는 대신에 교도소에서는 1년만 살래?" 딜을 제안하든지..

어떤 경우든 집행유예 남발이나 심지어 '교도소에 에어컨' 같은 더 흉악하고 사악한 해결책을 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난 극심한 저출산과 고령화 때문에 그렇잖아도 나라에서 잘 살던 시절에 내놓았던 의료· 복지 정책을 도저히 시행하지 못하는 때가 수십 년 안으로 들이닥칠 거라고 생각한다.
국민연금 고갈은 말할 것도 없고,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도 대폭 축소되거나 폐지될 것이다.

정상적인 일반 시민들 부양할 돈도 없는 지경인데 하물며 죄수들..??? 쟤들 언제까지 공짜로 먹이고 재워 줄까? 이래도 인권충들이 이길까, 아니면 뒤늦게라도 정의의 편이 이길까..?
난 지금 같은 교도소와 형벌 제도도 과연 언제까지 버틸지 눈 부릅뜨고 지켜볼 생각이다.

영어로 life가 생물학적인 생명이라는 뜻도 있고, 인생.. 삶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 잠 4:23 issues of life (생명의 근원, 인생의 문제)이나 약 4:14의 life가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형은 생명을 앗아가는 형벌이고, 종신형은 인생을 앗아가는 형벌이다. 단, life imprisonment는 종신형이니 life를 인생이라고 본 듯하다. 생명형을 가리키는 단어는 capital punishment라고 따로 있으니 말이다.

난 우리나라 특유의 "가해자 행세하는 피해자, 100을 피해 봤으면 이 기회에 500, 1000을 뜯어내서 신세 고치려는 짓거리" 정서를 매우 싫어한다고 예전에도 글을 썼었다.
그러나 살인에 사형을 요구하는 '생명에 생명'은 정말 정확하게 당한 만큼, 또는 오히려 그 이하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과잉보복이나 과잉보상이 절대로 추호도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늘어나면 무슨 어딜 가나 머리가 되고 1등하고 복 받고 잘살고... 아이고, 그러기 전에 먼저 사회가 건강해져야 할 것이다. 경찰· 검찰이나 법원이나 교도소나 보험사가 할 일이 줄어들고, 접촉사고 하나에 아이고 뒷목 잡는 나일롱 환자 짓거리가 근절되고.. 그러면 병원이나 소방서나 군대, 사회복지사 등이 할 일도 덩달아 줄어들 것이다.

그게 정상인데 교회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자기 신자 1명 늘리는 동안 시험 들고 실족한 사람 5명과 개독안티 10명을 추가하는 식으로 움직이니 빛과 소금은커녕 사회로부터 지탄 받는 것이다.

2. 찬송가 가사와의 접점

그러고 보니 찬송가 가사에서 형벌이 아주 분명하게 언급되는 예가 딱 두 가지가 떠오른다.

먼저, (1)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의 3절이던가 후반부.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가 있다.
Let goods and kindred go, this mortal life also; the body they may kill: God's truth abideth still; his kingdom is forever!

이건 대놓고 재산형, 명예형, 생명형에 너무 정확하게 대응하니... 앞서 형벌의 종류를 나열할 때 머리속에서 바로 떠올랐다.
저건 뒤집어 말하면 사람이 인생 살다가 박탈당할 수 있는 것,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을 분야별로 나열한 셈이다.

그리고 (2)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의 2절 전반부를 보자. "옥중에 매인 성도이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Our fathers, chained in prisons dark, Were still in heart and conscience free;
이건 신체형과 자유형을 가리킨다. 두 곡의 가사가 상호 보완적인 것 같다.

(1) 루터가 살던 1500년대 시절에는 현대적인 의미의 징역 자유형이라는 게 없었다. 그 시절에 사람이 종교 이단으로 몰려서 공권력에 의해 작살나는 방법은 전재산 몰수에 추방, 가족과 생이별, 목이 뎅겅 짤리거나 화형..이었다. 그 험악한 시대상이 가사에 간접적으로나마 담겼다.
그 반면 (2)는 1800년대 중반, 징역형이라는 게 서구권에서 도입된 뒤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더 점잖게 옥에 갇혔다는 언급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 주제별 성경 공부 시간 때 '마귀론'을 다룬 적이 있었다. (신론, 기독론, 교회론 등에 이어)
그때 맨 첫 시간에도 본인은 준비찬송으로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골랐었는데.. 이때는 끝부분이 아니라 앞부분의 가사 때문이었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 천하에 누가 당하랴 /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그야말로 마귀의 정체와 위력, 놈과 싸우는 방법 등.. 단순히 영적 전투를 넘어 마귀론에 관한 한 정말 최고의 찬송이었기 때문이다.

중간에는 "내 평생에 가는 길" (2절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 내 영혼 평안해”)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장수, 대장 소개를 하고 나서 그 다음에 “앞서 가신 주를 따라갑시다 / 원수 마귀 모두 쫓겨가기는 예수 이름 듣고 겁이 남이라 / 마귀 권세 감히 해치 못함”) 이걸 하고,
마지막 시간에 피날레로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영광 영광 할렐루야)”를 골랐었다.

3. 군대의 전역일과 교도소의 석방일

군대는 룰루랄라 집에 가는 만기 전역 당일도 법적으로 군복무 기간에 포함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사자는 집에 가는 동안에도 법적으로는 여전히 군인 신분이다. 정확히는 휴가 나온 군인 내지, "전역 귀가"라는 마지막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과 비슷한 신분이 된다.

그 날이 지난 자정부터 진짜 진정한 민간인으로 전환된다. 전역 신고하고 군부대 정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바로 민간인이 되는 게 절대 아니다.
그러니 너무 감격스러워서 밖으로 나가자마자 안쪽으로 쌍욕을 퍼붓는다거나 도 넘는 경거망동 일탈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아직까지는 경찰이 아니라 헌병에게 잡혀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말 원칙대로라면.. 혹은 전쟁· 사변 같은 급박한 상황이라면 그 날 일과까지 다 수행하고 나서 저녁에 귀가한다 해도 문제될 게 없다. 그건 너무한 조치이니 어지간해서는 당일 오전 중에 곧장 보내주는 것이다.

뭐, 진짜 급박한 상황이라면 전역이 통째로 연기돼서 그날 아예 집에 못 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군복무 기간이 통째로 연장될 수 있다.
지금 육군의 복무 기간인 1년 6개월은 진짜 법적인 기간이 아니라 "원래는 2년인데 그냥 편의상 6개월 깎아 주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병역법 제18조) 수틀리면 얼마든지 원래대로 되돌리고, 심지어 더 연장도 할 수 있다.

전역 당일 11시 59분 59초까지가 군인 신분인 것과 동급으로.. 입영 장정도 법적으로는, 원칙적으로는 보충대로 갓 입소하는 당일 0시 0분부터가 이미 군인 신분이다. 그것도 이병으로 말이다. 우리나라 군대에는 훈련병이라는 계급이 따로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간부는 양성 중에는 후보생이고 정식 임관을 한 뒤에야 군인인 반면, 병은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부터 곧바로 정식 군인이다. 징병제인 데다 병은 훈련소에서 짤릴 위험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이런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소에 있을 때라도 극단적인 상황에서 전사· 순직이라도 하면 일병으로 추서된다.

요즘 우리나라는 군복무 기간 대비 병은 계급이 너무 많고 부사관은 계급이 너무 적은 편이다.
이등병을 그냥 훈련병으로 그대로 치환해 버리고, 훈련소를 수료하면 바로 일병부터 시작.. 이렇게 계급을 단순화시키는 게 가장 이질감 없고 현실적이지 않겠나 싶다.

갑자기 군대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이런 군대와 달리 교도소는 만기 출소일 0시 자정이 형기가 완전히 끝나는 시점이다. 이때부터는 저 사람은 수감자· 죄수가 아니라 일단 시민 신분이 된다. 단지, 전과자일 뿐인 거지.

그렇기 때문에 형기를 마친 죄수는 원래는 0시 새벽에 칼같이 석방 방면이 가능하다.
허나, 귀가 교통편이나 인근 주민들의 반응 같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실제로는 최소한 해가 뜨고 대중교통이 다니는 아침에 출소하게 된다. 물론 출소 준비는 전날 한참 전부터 시작되지만 말이다.
이런 차이가 있다.;;

예전에도 몇 번 말했듯이, 일부 나라들은 군인의 탈영은 처벌하는 반면, 죄수의 탈옥은 따로 처벌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군인이야 애초에 근무 중에 탈영은커녕 긴급피난조차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극한직업이며(경찰· 소방처럼), 모병제 국가라면 자기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이 직무를 저버려서는 더욱 안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죄수는 처지가 다르다.

죄수가 기회만 되면 최대한 탈출하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기본 보편적인 욕망이고, 그것 자체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마치, 범죄자의 직계가족이 그의 도피를 도와준 건 도의적으로 형사처벌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탈옥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탈옥 과정에서 교도소 시설을 파손하거나 교도관을 폭행하는 사이드이펙트...를 남겼다면 그건 여전히 처벌 대상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7/01 08:35 2026/07/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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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교회에서 에스겔서 16장을 읽다가..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나서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6절, 명령어 Live를 “너는 살라”가 아니라 곧이곧대로 “살아라~~”라고 번역한 역본을 읽으니 ‘어 이거 무슨 애니 대사랑 비슷한데.. 뭐더라?’ 싶다가.. 출처를 곧 떠올린 것이다. 성경과 지브리 애니의 만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표현만 약간 비슷할 뿐, 저 말이 나온 상황과 맥락은 서로 완전히 다르고 접점이 거의 없다.
성경에서 “살아라”라고 말하는 상황은 애니에서처럼 니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남주 ‘아시타카’가 간지나게 일깨워 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부모로부터 버려진 여주 ‘산’을 갓난아기 때 거둬들이고 키워 준 들개의 신 ‘모로’가 했을 법한 말이다.

그 뒤로도.. 성경이 말하는 건 그렇게 불우한 처지였던 네년을 먹이고 어르고 달래면서 키워 줬더니 음행이나 저지르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상태가 딱 그 여자와 같다는 식의 얘기 일색이다.
모노노케 히메하고는 1도 관계 없는 흐름으로 간다. 지브리 애니는 자연 파괴가 어떻고 재앙신, 사슴신이 어떻고 하는 세계관일 뿐, 우상숭배니 음행이니 따위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니까.

버려진 여아를 제3자가 거둬들여 키웠다는 맨 앞의 초창기 설정, 그리고 그놈의 “살아라” 대사 때문에 의식이 잠시 이쪽으로 흘렀다~!

이렇게 하나님과 애증(?)의 관계로 묘사되는 이스라엘 백성, 일명 유대인 말이다.
저 사람들은 저래 뵈어도 성경이 역사적으로 문자적으로 사실이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걸 물증에 가까운 수준으로 입증하고 있는 민족이다. 예수를 배척하고 안 믿었으면서 정작 하나님과는 저런 관계인 게 참 특이하다.

쟤들은 하나님과 특별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타 민족들 대비 특혜와 보호 버프를 더 받았고, 그 대신에 죄 짓고 타락할 때 위약금 명목의 징벌도 더 빡세게 받았던 민족이다. 딱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하나 더.. 쟤들은 비록 혹독한 징벌을 받더라도, 어떤 경우에도 민족 정체성을 잃고 완전히 멸망해 버리지는 않는다는 거.. 이거 하나는 보장됐다. 그건 하나님 차원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성경에 언뜻 보기에 신약 크리스천의 교리 행실과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뜬구름 잡는 구약 예언의 비중이 왜 이리 큰지?
그 예언들이 다들 심판 일색에 부정적이고 절망적이고 암울해 보이지만, 최종 결말은 왜 한결같이 "회복"인지를 생각해 보시라!
일반적인 크리스천은 저 나라, 민족에 대해서 이렇게 인식하고 처신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겠다.

1. 현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예언을 다 이룬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대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에 건국됐으니, 이 세대가 다 가기 전에 예수님 다시 오실 거임" 이러는 '반쯤' 시한부 종말론스러운 이야기를 들어 보신 분이 있을 것이다.
난 그 사건에다가 성경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적용을 해도 되는지.. 성경 본문에서 그 세대라는 단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세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지.. 그건 좀 조심스럽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 극단으로 가서 저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유대인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도 명백히 오류일 것이다.
그럼 거슬러 올라가서 나치와 히틀러는 유대인을 미워하고 죽인 게 아니었나? 진짜 유대인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혼자 뻘짓 한 거냐? 이스라엘의 사관학교 생도들은 유대인도 아니면서 맨날 맛사다 요새를 잊지 말자고 생쑈 하냐..?? 그건 그것대로 여러 모순과 문제점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2. "저것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저주받을 종자들이다~"

....;; 이건 진짜 최악의 멍청한 발상이니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지어다! 심지어 옛날의 걸출한 개신교 종교개혁자 중에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미안하지만 명백한 오류이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지 않았으면 비유대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리지 못했다. 어디 너님의 죄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기여한 게 없는 줄 아냐??? 이 주제에 관한 한은 '양비론'이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성립한다고 봐야 한다.

3. 막연한 반유대주의 선동에는 가담하지 않는 게 옳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간 과정은 마치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처럼 혼란한 와중에 현실적인 이유나 강대국들의 농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혈이 발생한 것도 적지 않다.
언론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학살하는 것만 보도하지만 실제로는 적들도 민간인 위장 총질 같은 비열한 짓을 많이 했다. 이런 건 한쪽 편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쟤들이 쏘는 로켓 대비 그걸 요격하는 이스라엘 측의 방어 시스템은 유지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서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중동의 왈가닥 미친개처럼 처신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비록 쟤들은 신약 성경이나 예수 이런 것에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슬림 광신도처럼 히잡이나 "알라후 아크바르!" 같은 짓거리를 벌이지도 않는다.
이스라엘은 나름 친서방 자유 진영에 속하면서 6 25 때 저 멀리 대한민국을 도와줬었고, 연평도 포격 때 북괴 규탄도 제일 강력하게 했었다.

4. 그렇다고 쟤들이 정말 선 넘고 범죄 저지르고 깽판 치는 것까지.. 무작정 다 옹호할 필요는 없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가령, 예수상 훼손과 조롱 인증샷.. 이거는 진짜 정신나간 짓이던데?? (개인적으로 물론 예수상 별로 안 좋아하는 소신이지만 이와 별개로) 괜히 총리까지 나서서 사과하고 수습한 게 아니더라.

5.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심판의 도구를 그리스도인이 "자처"하지는 말아야 한다

너 말고도 이스라엘 싫어하고 가혹하게 대해 줄 사람은 주변에 넘쳐나니까 너는 그런 일에 가담하지 마라.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남았냐, 걔네들을 심판자 명목으로 침략하고 학살했던 주변 민족이 살아남았냐?
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다른 정상적인 소명 부르심에나 응답하고 따르시길 바란다. 육신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어라.

6. 교회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매우 중요한 사항이니 밑줄 치시라. 교회는 교회이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다. 서로 신분과 처지가 다른 집단이다.
로마서 9~11장을 읽어보아라.
막~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쟤들과는 완전히 손절이다" 뉘앙스가 절대 아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못 알아보고 그 일시적으로 눈먼 것까지도 하나님이 다른 기회로 활용해서 이방인 교회 시대 경륜을 열었다"로 딱 요약되지 않는가?

오히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생긴 기회가 이 정도인데, 하물며 걔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면 세상이 얼마나 더 살기 좋아졌겠냐" 이런다. 유대인을 세상을 향한 축복의 통로 정도로 본다.
이게 어딜 봐서 유대인이 교회로 대체됐다는 의미이겠는가? 유대인이 구원받고 개종하면 그냥 유대인 크리스천 교회 성도가 될 뿐이다. 우리는 돼지고기도 못 먹는 유대인이 아니라,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감사하면 된다.

아 물론 본인도.. 이 2000년대가 다 돼서 유대인들 혈통과 지파는 어떻게 다시 따질 것이며, 저 완강한 인간들이 도대체 언제 짠~ 예수님을 다시 알아보고 설마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회복되겠는지,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디테일"을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는 건 있다.
그러나 유대인과 교회를 구분하면 뭐 세대주의가 어떻고 시한부 종말론이 어떻고 프레임 씌우는 건 논점 일탈이어 보인다. 뭐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최대한 그대로 믿어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이상이다.
우리나라 국군이 북괴의 무력 도발에 대해 처음부터 이스라엘처럼 대처했다면.. 아마 진작에 북한으로 전투기고 공작원이고 잔뜩 보내서 핵 시설 같은 건 바로 폭격했을 것이고, 연평해전?? 천안함?? 그냥 몇 배로 보복했지 싶다.
물론 그만큼 젊은이들 군생활은 더 빡세졌겠지만, 이렇게 처음에 짧고 굵게 기선제압을 확실하게 해 놓는 게 나라의 미래 관점에서는 차라리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 여담: 아시리아와 바빌론

그러고 보니 유대인들의 옛날 역사와 관련하여 인상적인 게 하나 있다.
옛날, 기원전 600~500년 무렵에 있었던 신바빌론, 일명 칼데아 왕국은 남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용도로 정말 잠깐 왕성했다가 신기루처럼 싹 사라져 버린 정말 특이한 나라이다.
100년도 채 유지되지 못하고 망했다는 점에서 원나라와 비슷한 것 같다. 그 전의 아시리아, 그 후의 페르시아에 비해 존재감이 없으며, 세계사에서는 별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사실, 바빌론 자체가 처음에는 아시리아의 관할에 있는 나와바리 중 하나에 불과했는데 갑자기 세력이 커져서 주종 관계가 바뀐 거라고 한다.
심지어 아시아라는 대륙 이름이 바로 아시리아 - 앗수르에서 유래된 거라고 하네.. 참고로 아시리아는 시리아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이니 혼동하지 말자.;;; 굉장히 헷갈리기 쉬운 사항이다.

아시리아는 이스라엘 북왕국을 멸망시켰으며, 바빌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접수했었다. 그러나 딱 하나 남왕국 예루살렘만은 정복하지 못했었다. (히스기야 왕 시절을 생각해 볼 것) 그리고 아시리아 이후의 바빌론이 남왕국을 접수한 것이다.

그 뒤,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 있던 그 기원전 5xx년 기간 동안 인도에서 불교, 중국에서 유교가 태동하고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활동했었다. 동양에도 나름 그리스 철학자들 뺨치는 인문학 르네상스 같은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신바빌론은 여러 모로 신기한 나라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22 08:35 2026/06/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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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사무엘상 17장에는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 배틀이 기록되어 있다.

골리앗은 성경에서 챔피언이라고 기록돼 있다는 것,
하지만 성경은 골리앗에 대해서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으면서 대부분 ‘그 블레셋(필리스틴) 사람’이라고만 지칭한다는 것,
다윗은 초탄 원샷만으로 골리앗을 무조건 바로 제압하지 못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텐데 그래도 조약돌을 5개나 챙겨 갔다는 것 등..
여러 이슈들을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이미 다뤘었다.

그런데 같은 본문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이번에는 군사 디테일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온다. 본인이 근래에 밀리터리나 전쟁사 쪽으로 관심을 많이 보여서 그리 된 것 같다.
이 글에서는 그쪽으로 떠오른 의식의 흐름을 논하도록 하겠다. 군사 이야기, 성경 번역 이슈 등..

1. 저격

한반도로 치면 아직 고조선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옛날이니까 저렇게 참 낭만적으로 싸우는 게 가능했다. 오늘날의 전장에서 골리앗이 매일 성큼성큼 나와서 “니놈들도 장수 한 명을 대표로 보내서 나랑 1:1 PvP 뜨자 으하하하하하!!!” 도발하고 있었다면?
저 멀리서 특전사 저격수가 숨어서 저격소총으로 골리앗의 마빡에다 바람구멍을 뚫었을 것이다. 무거운 갑옷 입고 있으면 뭐하나. 골리앗은 아마 남북전쟁 존 세지윅 장군과 비슷한 방식으로 전사했을 것이다.

옛날이니까 일당백이 가능했고 1:1 PvP만으로 전투의 승패를 결정해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저 때는 아예 왕이 군대 총대장의 역할까지 겸하면서 전쟁터에 직접 나가서 싸우곤 했다.
(요즘 용어로 치면 사울은 군령권 담당이고 아브넬은 군정권 담당인 건지?)

2. 참호 trench

성경을 보니 이스라엘군 진영, 정확히는 사울 왕이 있는 곳이 trench라고 묘사돼 있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삼상 17:20) 정확히는 킹 제임스만 그렇다.
그래서 킹을 번역한 성경들에서는 ‘참호’라는 단어를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이 이 구절을 보면 1차 세계대전의 서부 전선 참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엥? 기관총 따위 없고 현대전 같은 엄폐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에 이 사람들이 땅 파서 참호/진지/벙커 같은 걸 만들었나?

나중에 엘리야가 제단 주변에 도랑 파서 물 흐를 길을 만들었다고 할 때도 trench가 쓰였다(왕상 18:32). 그러니 trench는 명백하게 주변보다 낮은 지형을 말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눅 19:43을 보면 비킹들은 공성전을 치르기 위해 바리케이트 치거나 토성 쌓거나 투석 병기를 설치하는 걸 묘사하는데, 킹은 여기서도 주변 땅을 파는 전술이 묘사된다. 신기하지 않은가? (참고로 로마 제국이 맛사다 요새를 함락시킨 방식은 잘 알다시피 지하가 아니라 토성 + 투석기 같은 지상 공략이었음)

심지어 구약에서 킹과 비킹이 차이가 나는 대표적인 구절인 창 49:6도 킹은 “벽을 파내려갔다”이고 비킹은 “소의 힘줄을 끊었다”이다. 이 정도면 킹은 뭔가 땅 판다는 표현을 작정하고 더 선호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 마치 다른 구절에서는 ‘기뻐하다’를 더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분의 뜻대로 vs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나야 히브리어 헬라어를 논할 짬은 안 되니, 그냥 이 상황만 설명해 보자면 말이다.
사울 왕이 있는 곳이 지리적으로 낮아서가 아니라 영적 상태/수준이 왕창 낮아서 단순히 진지 진영이나 텐트 대신, 참호라는 단어를 쓴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여기서 낮다는 건 무슨 겸손한 낮은 마음 같은 긍정적인 뉘앙스가 전혀 아니고 부정적인 뜻이다.
일례로, 아까 삼상 17을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그야말로 나라를 구한 순간에도.. 사울은 자기를 음악 치료까지 해 줬던 다윗이 누군지 전혀 못 알아보는 중증 안면 인식 장애를 앓고 있지 않던가?

나중에 삼상 26:7에서 사울은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수색 작전을 펼치던 중에도 참호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고 묘사된다.
이때 사울은 적과 싸우는 것도 아니었는데.. 간단히 천막 치고 쉬었겠지, 설마 정식으로 진지 구축하고 참호를 파지는 않았을 것이다. 쉽게 말해 국군이 탈영병을 잡는 데 무슨 무장공비 소탕 작전 같은 전술을 펼치겠느냐 말이다. 뭐, 정말 흉포한 무장 탈영병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성경에서 “이집트로 내려가다”라는 표현이 쓰였듯이, 또 요나가 배의 밑바닥으로 내려가 잠을 퍼질러 잔 게 단순히 요나의 물리적인 위치만 내려가는 게 아니었듯이..
성경은 동일한 심상으로 사울이 머무른 곳을 참호라고 표현한 게 아니었나 싶다! 지리적인 저지대가 아닌 다른 저지대라는 것이다.

3. 목을 베어 죽인다 vs 죽이고 목을 벤다

아이고 참호 얘기가 왕창 길어졌는데..
골리앗은 다윗에게서 미간에 조약돌을 맞고는 그때 그저 기절이 아니라 완전히 절명한 것이 틀림없다.

급소를 잘 맞히면 일반인도 무릿매로 돌 던져서 사람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그러니 그것 자체는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불신자라도 선뜻 인정한다.
허나, 총알 탄두도 아니고 그 큰 돌을 사람 면상에 완전히 박아 버릴 수는 없다(삼상 17:49).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초자연적인 현상인 것 같다.

50절을 보면 “죽였는데 다윗에게는 칼은 없었다”라고 돼 있고, 그 다음 51절은 다윗이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이다. 즉,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벤 건 그냥 확인사살용이다. 수급을 얻기 위한 시체 훼손이나 다름없다.

이걸 보니 행 5:30이 떠오르더라. 보통은 “나무에 매달아 죽인”이라고 돼 있는데.. 영어로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죽이고(죽여서) 나무에 매단 slew and hanged”이다.
시간상으로는 예수님은 당연히 십자가에 매달렸다가 나중에 죽으셨으니, 일각에서는 저건 킹의 오역이라고까지 주장하는데..

그런 식이면 예수님은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고 절명하신 거지, 애초에 인간의 완력으로 살해 자체를 당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간에게 돌에 맞거나 칼에 찔리거나 목을 뎅겅 하는 식으로 처형 당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인간들이 예수님을 안 죽인 것도 아니다.

“바라바를 살려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이렇게 요구를 한 것 자체가 slew의 범주에 든다고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우리 인간들 언어에는 애초에 “문 닫고 나가!!”라는 모순? 유도리까지 존재하지 않느냐 말이다. ㅋㅋ

4. shield와 target

영어 성경에는 방패를 뜻하는 단어로 shield와 target 두 종류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등장하는 믿음의 방패는 shield (엡 6:16)인 걸 보니, 둘 중에 더 일반적인 단어는 역시 shield인 것 같다.

사무엘상 17장으로 돌아가서 골리앗의 무장을 보면, 주 방어구인 커다란 방패는 shield라고 돼 있다. 이건 워낙 크고 무거워서 부사수가 따로 들고 다녔을 정도였다(삼상 17:7).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골리앗은 상체에 보조 방어구 명목으로 target이라는 작은 방패도 차고 있었다(삼상 17:6).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윗과 골리앗은 성경에서 너무 유명한 소재이니 관련 삽화가 넘쳐난다. 하지만 저 두 종류의 방패까지 그대로 묘사한 그림은 매우 드물다.
target은 말 그대로 dart 과녁판 같은 느낌이 들고 왠지 동그랗게 생겼을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의외로 역본들 간에 번역이 일치하지 않는다.
(1) 킹 제임스만이 삼상 17:6이 target 방패, 보조 방어구였다고 말하고 비킹들은 이 구절이 그냥 javelin.. 던지는 작은 투창이라고 표현한다.

즉, 비킹은 이걸 보조 방어구가 아니라 보조 무기라고 본 것이다. 손에 들고서 찌르는 용도로 쓰는 큰 창은 spear이고, 요런 투창은 또 따로 있었던 듯하다.
다만, 5절과 6절은 모두 투구와 갑옷, 금속 각반(정강이가리개)과 함께 계속 방어구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니 어깨에도 공격 무기보다는 킹처럼 방패 같은 방어구 얘기가 나오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2) 다음으로.. 킹의 번역에 따르면 이 구절에서는 shield가 큰 방패이고 target은 더 작은 방패이다.
그러나 왕상 10:16-17에서 솔로몬 왕이 만든 방패 얘기가 나올 때는 관계가 정반대이다. target이 큰 방패이고, 다음 shield가 작은 방패이다. 같은 킹에서도 의외로 이런 용례 차이가 존재한다.

5. 무용담

끝으로.. 다윗과 골리앗은 원수지간이지만 다윗과 요나단은 그 정반대이다. 요나단의 우정은 너무너무 훈훈하고 아름답고 눈물이 핑 돌 것 같다.

요나단도 나름 신라의 관창 같은 면모가 있었으며, 심지어 그러고도 살아서 돌아왔다. 요나단은 다윗보다 연장자인 데다 심지어 왕자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시절에 다윗에게 아마 이런 식으로 말을 했지 싶다.

“이야~ 나도 정말 다혈질이어서 바로 얼마 전에도 객기 부린 적 있어. 우리 아버지의 명령 없이 혼자 무단으로 내 부사수만 데리고 블레셋 진지로 그냥 쳐들어갔지. 그래서 블레셋(필리스틴) 놈들 20명 정도 목을 따고 돌아왔거든? (삼상 14)

그랬는데도 저 괴물 골리앗은 도저히 상대할 엄두가 안 나던데.. 너는 어떻게 그놈 앞에서도 무섭지가 않았니? 그 순간에도 오로지 하나님만 생각한 거야?
다윗, 넌 나보다도 더 또라이 같고 진정한 GOAT다. 내가 리스펙한다!! 나한텐 다나까 안 써도 되니 앞으로 편하게 말 놓아라~! 너랑 나 사이엔 뭐 금수저 흙수저니 출신 계층은 일절 따지기 없기야? 알았지?”

애비인 사울 왕은 권력에 집착하면서 다윗을 시샘하고 갈수록 흑화해 갔다. 그러나 그의 아들 요나단은 자기 대신 차기 왕위를 빼앗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다윗을 정말로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 같은 우정으로 챙겨 줬다.

Posted by 사무엘

2026/05/05 08:35 2026/05/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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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위기: 판별법

성경의 레위기에는 구약 제물들의 종류, 신체의 부정(불결) 판정 기준, 나병(문둥병) 판정 기준 등 율법의 여러 규례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리의 굽이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은 부정하다", "비늘 지느러미가 달린 통상적인 물고기가 아닌 수중 동물은 부정하다~~" 펠리컨은 어떻고 대머리독수리가 어떻고 등등등... 얘는 먹을 수 있고 저런 건 먹어서는 안 된다는 판정도 많다.

이 부분을 읽으니 개인적으로는 쓰레기 배출 기준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귤 껍질은 음쓰이고 바나나 껍질도 음쓰인데, 파뿌리는 뭐 어찌어찌 하지 않으므로 일쓰이다.
플라스틱은 딱딱하고 형태가 있지만 뭐가 묻은 건 재활용 불가능한 일쓰이다. 그렇지 않은 건 재활용 쓰레기..ㄲㄲㄲㄲㄲㄲㄲ

이렇듯, 옛날 사람들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갈랐지만, 현대인들은 버릴 때.. 재활용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걸 가른다고나 할까..?? 양상이 비슷해 보인다.

대한민국은 쓰레기 분리 배출을 세계적으로 정말 엄격하고 빡세게 하는 나라이다. 페트병을 내용물을 싹 씻고 라벨까지 일일이 떼서 배출하는 나라가 여기 말고 또 있을까.;; 쓰레기 봉투를 일일이 검사해서는 귤껍질을 일쓰에다 버렸다고 과태료를 때리는 나라가 또 있을까?

물론 이건 우리나라가 땅이 매우 좁고 쓰레기를 무작정 매립 소각만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음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런 절박함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쓰레기의 재활용 효율이 높으며, 관련 기술이 굉장히 발달했고 인프라도 잘 갖춰졌음이 사실이다. 얼마 전에 의성에 쌓여 있던 쓰레기산이 순식간에 싹 없어진 것도 생각해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음쓰와 일쓰의 경계에 있는 애매한 쓰레기에 대해서는 좀 유도리가 있었으면 좋겠고, 좀 더 명확하고 일관된 구분 기준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플라스틱의 경우도.. 힘들게 분리배출 해 봤자 재활용이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며? 업체들이 수거해 가서는 도로 뒤섞는다는데.. 그래 놓고는 쓰레기 뒤처리를 소비자한테 전가하는 짓거리는 좀 멈췄으면 좋겠다.

2. 민수기: 밥 투정

민수기 11:5를 보면 말이다. 이집트를 떠나서 광야 생활 중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단으로 크게 불평과 투정을 늘어놓는다.
맨날 천날 보급 전투식량인 M-레이숀(manna)만 먹으니 맛없어 죽겠다고 징징대고, 반대로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시절에 뭘 얼마나 잘 얻어먹었었는지 추억 보정을 막 해댔다.

(1) 먼저 생선: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얘가 아무래도 소· 돼지· 양 같은 육상 동물 고기보다는 더 저렴했을 것이다.
(2) 오이와 참외(멜론): '박'과 식물이다.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이 아니라 열매 맺히는 덩굴채소라는 공통점이 있다.
막 비싸고 희귀하고 맛있는 식재료라기보다는 가성비 좋은 서민형 과채류가 아니었을지? 저 시절 저 때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쭈글쭈글 큼직한 호박 같은 것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3) 부추와 (양)파와 마늘: 요게 핵심인 것 같다. 이것들은 자극적인 맛이 나는 향신료 조미료 용도이다. 얘들은 심지어 불교에서 말하는 오신채에도 모두 포함돼 있다!

종합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그렇게 아주 거창하고 대단하게 잘 먹은 것도 아니었던 주제에 괜히 식재료 타령을 늘어놓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쟤들이 이집트에서 무슨 초호화 열대과일을 먹었겠는가? 생선이라고 하니 무슨 감성돔이나 가을 방어, 혼마구로라도 뜯었겠는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인생에서 먹는 즐거움도 절대 무시 못 할 경험이니 M-레이숀이 너무 질린다는 생각 자체는 누구든지 들 수 있다.
허나,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간구를 정당한 절차대로 했어야 했다. 성경에는 슬로브핫의 딸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모세에게 이것저것 건의나 이의 제기를 하는 게 나오며, 이에 대한 주 하나님의 피드백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성경의 하나님은 '무조건 닥치고 까라면 까'가 아니었다.

단지, "에구에구 나 죽네~~ 난 그냥 이집트로 돌아갈래~~ 이 빌어먹을 광야 생활 때려칠 거야!" 식으로 반역에 가까운 불평을 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이건 애가 부모한테 "왜 이런 망할 집구석에서 날 태어나게 만들었어?" 이렇게 대드는 급이나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민수기 11장을 읽어보면 이건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호소한 게 아니었다. 일부 불순분자들이 꼬드기고 선동하고 물 흐리면서 불평 불만이 터진 거라고 나온다.
그러니, 쟤들은 밥을 돼지갈비 소갈비로 먹었다 하더라도 그러면 또 다른 걸 갖고 얼마든지 불평 불만 X랄을 떨었을 가능성이 99.9%라는 것이다. M-레이숀 일괄 급식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3. 신명기: 특별 담화

신명기 내용은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모세 령도자가 퇴임 회고 연설을 하는 것 같다!! 맥아더 장군이 퇴역 연설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여정을 거쳐서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이런이런 성읍들을 정복했고 바산 왕 옥도 처치했었습니다. 놈은 침대의 길이만 소형 승용차 길이와 맞먹는 4.5미터에 달했었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에서 이런이런 비극도 겪었고 이런 부끄러운 흑역사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 여러분의 하나님을 여러분의 온 역량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십시오. 그 길만이 살 길입니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단지 사라질 뿐이지요." 대신에
"사람은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꼭 명심하십시오." (신 8:3)가 있는 셈이다.

신명기 원고가 라이브로 낭독 중계됐던 날은 "최고 령도자님의 특별 담화 방송" 명목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기 텐트에서 텔레비전 켜 놓고 채널 고정했을 것이다.

아니면 무슨 대한뉴스 같은 프로파간다 뉴스 영화가 단체 상영됐을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테란 캠페인을 다 마치면 나오던 뉴스 영화 동영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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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는 이런 식으로 뽀대나게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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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힛 족속 여부스 족속, 누구누구들 다 쳐부쉈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그래픽까지 동원해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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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불평하다가 벌받아 죽었을 대, 금송아지 만들어서 누구 몰살 당한 장면은 이런 식으로 녹화 영상 보여주고..

뭐 그렇다.
모세오경에서 마르고 닳도록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 바로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펼치신 팔로 니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다(해방시켰다)"이다.

우리 민족의 경우 일제가 무려 원자폭탄을 두 방이나 쳐맞은 덕분에 패망하고 그래서 해방됐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어지간한 태풍이나 지진,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만 돼도 그 위력은 TNT 몇만~수십만 톤급인 인간의 핵무기 몇 방으로 감당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하물며 육중한 홍해 바닷물을 그 엄청난 시간 동안 양쪽으로 붙들기 위해 필요한 힘.. 내지 댐의 건설 비용은 얼마나 될까? 이게 바로 '강한 손과 펼치신 팔'의 의미이다.

그리고 성경은 이집트로부터 해방됐다고, 한 작은 악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혹은 구원받았다고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 책이다.
세상의 게임이나 영화, 문학에서는 주인공이 빌런을 해치우고 공주님을 구출하는 걸로 끝이다. 결혼하는 걸로 끝이고,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이나 북괴 김 돼지를 없애는 걸로 끝이다.
그러나 그 뒤 주인공이 공주님과 평생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가? 탈북자는 대한민국 땅에 와서 잘 정착하고 살고 있는가? 구원받은 영적 아기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잘 자라고 있는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끄집어낸 이유 역시 그 뒤의 big picture가 있기 때문이다. 성막을 만들고, 매주 꼬박꼬박 안식일 지키라고, 수많은 가축을 잡으면서 저 다양한 희생제물들을 바치면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라고, 주변의 이방 민족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특이한 민족 행세를 하며 살라고 끄집어낸 것이다.

성경은 그런 책이다. 인생이라는 장기전 마라톤을 다루는 책이다.
구원받고 나서 그 뒤의 삶이 중요하고, 이집트에서 나온 뒤의 삶이 중요하고, 여자와 결혼에 성공하고 그 뒤의 삶이 중요한 그런 책이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기 12~14장 유월절과 홍해 사건 이후의 모세오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닌가 싶다.

※ 보너스

뭐, 모세오경보다는 한참 뒤의 일이지만,
사무엘상 5장 당시에.. 블레셋(필리스티아)의 다곤 신전 안에 CCTV가 있었다면 밤새 뭐가 녹화돼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이건 아마 심야괴담회의 소재도 될 수 있지 않겠냐?
블레셋의 신전 관리인이 얼굴 흐리게 처리하고 출연해서는..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CCTV 녹화 영상에는 제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던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주변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다곤 신이 저절로 자빠지고 엎어지고 팔다리가 끊어졌던 것입니다." 이럴 텐데 말이다.

그리고 다음 6장의 '블레셋 식 언약궤 귀환 차량'은 비록 내연기관이 아니라 소이긴 하지만 자율주행 기술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새끼를 갓 출산해서 젖이 나오는 암소가 지 새끼들을 버려두고 뭐에 홀린 듯이 똑바로 방향을 잡고 어디론가 유도를 받아서 간다니 이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아~ 성경 읽는데 자동차, 드론, 용형, 심야괴담회 같은 마구니들이 마구마구 떠오르니 매우 재미있다~~ ㅋ

Posted by 사무엘

2026/02/25 08:35 2026/02/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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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님'을 붙일 것인가

대한민국의 기독교 신자들은 관례적으로 ‘예수’라고 안 하고 꼭 ‘예수님’이라고 부른다. (예: 기도를 끝낼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마 불자들은 비슷한 논리로 ‘부처’ 대신에 ‘부처님’이라고 하지 싶다.

그런데 성경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렇게 접사 ‘님’이 붙지 않은 경우가 있다. 특히 개역, 한킹 같은 옛날 20세기 성경 말이다.
찬송가 가사에도 “예수 따라가며”,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인하여” 등 가끔은 이 접미사가 생략된 게 있다.

난 옛날에, 지금보다 권위주의 유교 사상이 더 강했을 옛날에 성경 및 찬송가 번역자가 예의를 모르고 싸가지가 없어서 ‘님’을 생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께서’를 붙인 것만으로도 높임의 의미가 들어갔다고 본 거겠지.
“예수께서 가라사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보다 훨씬 더 간결하고 운율 잘 맞고 매끄럽게 읽힌다.

이제 와서 익숙한 찬송가 가사의 강박/약박 내용어/기능어 배치와 운율까지 깨뜨리면서 억지로 ‘님’을 첨가해서 수정하는 것에도 개인적으론 반대 소신이다. ‘님’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암튼 그건 그런데..

그래서 요즘 나오는 성경 역본들은 본문에도 ‘님’이 추가되는 추세이다. 다만, 번역 방침이 그렇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는 ‘님’을 넣지 않아야 마땅할 것이다.

(1) ‘그분’이 아니라 ‘이름’ 자체만을 가리키는 경우: 수태고지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 십자가 명패 “이 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 / 예수라는 이름 앞에 모두 무릎을..

(2) 적대진영의 대사: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들어 봤는데.. 네놈은 도대체 뭐임?” (사도행전 19장 그 유명한..)
저거는 부정한 악령의 말이다. ‘예수님’ 이렇게 해 놓으니 꽤 어색하다.

(3) ‘여호수아’의 헬라 표기인 예수. 행 7:45, 히 4:8
이거는 킹 제임스 기반 역본들에만 존재하는 특징인데.. 님 붙일 필요가 전~~혀 없다. 특히 후자 히브리서는 진짜 예수님과 달리 안식을 못 줬다는 문맥이다!
근데 모 민간 군소번역 중에는 이것도 예수님이라고 옮긴 사례가 있더라.

그러니 ‘님’을 안 붙여도 상관없고, 붙일 거면 제대로 봐 가면서 붙여야 된다는 것이다.
마치 아예 한글로만 써 놓으면 상관없는데, 한자를 병기했는데 틀려 버리면 병기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효과가 날 수 있다.. 이런 것이다.

아, 하나 더. 가나의 혼인 잔치 요 2:5의 경우, 예수님을 높이는 스타일로 번역하면 “그분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는지”라고 마리아도 예수님을 높여서 번역하는 편이고..
좀 인본주의적으로 어머니가 아들을 거론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라고 번역하는 편이다. 한국어는 이런 것도 갈린다.

2. 맞춰/맞혀

신 19:5는 산에서 벌목 중에 도끼를 잘못 놀리는 바람에 옆의 사람을 사고로 죽였을 때... 즉 과실치사와 도피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을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우리말 성경들은 "도끼가 자루에서 쓰윽 빠져나가 이웃을 맞춰서 죽게 하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더라. 오리지날 개역성경 이래로 개역개정, 그리고 킹 제임스 계열인 한킹과 흠정역, 표준역까지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이건 도끼가 다른 사람 머리를 명중한.. 다시 말해 투사체가 목표물에 닿은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맞춰서'가 아니라 '맞혀서'가 돼야 한다. 발음은 동일할지라도 말이다.

'맞추다'와 '맞히다'는 “내가 문제를 얼마나 맞혔는지 확인하려고 답안지를 정답지와 맞춰 봤다(대조)”, “총은 영점을 잘 맞춰(세팅) 놔야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힐 수 있다” 이런 관계이다.
다시 말해 맞추는 건 맞히기 위한 준비나 풀이 과정에 가깝다. 아니면 맞혔는지 여부를 확인해 보는 절차랄까? 비슷한 상황에서 쓰이니 헷갈리기 쉽지만, 동일한 표현은 분명 아닌 셈이다.

개역성경이야 워낙 오래됐으니 그렇다 치지만 그게 개역개정이 나올 때도.. 한킹이나 흠정역이 여러 번 교열되고 심지어 표준역이 나올 때도 이 구절은 바뀐 적이 없었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만큼 사람들이 '맞춰'와 '맞혀'의 차이에 대해 둔감한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부딪치다'와 '부딪히다'처럼 말이다.

3. 듣기만 해도 알아들을 수 있게 번역해야

본인의 오래된 지론인데 말이다.
성경은 가능한 한 동음이의어가 없게, 낭독만 들어도 알아듣는 데 99% 이상 지장이 없게,
텍스트는 한자나 아라비아 숫자 같은 타 문자의 보조 없이 한글(+ 공백, 문장부호)을 쭉 늘어쓴 것만으로도 독해하는 데 지장이 없게 번역해야 하지 않나 싶다.

가령, 사자는 그냥 lion을 나타낼 때만 쓰고, 메신저를 뜻하는 사자는 '전령' 같은 다른 말로 바꿔야 할 듯하다.
'악의'는 아기와 발음이 겹치기 때문에 '악의적' 또는 다른 유의어로 바꾸는 게 더 좋게 들린다.

그리고 '네'는 같은 문맥에서 '너의'도 되고 숫자 4도 될 수 있어서 매우 심각한 모호성이 존재하는 관형어이다. 한국어의 구조 차원의 에러, 버그, 결함이 아닐지? 안 그래도 '내'와 '네'조차 발음 구분이 안 되는 지경인데.
'내/네'는 my라는 뜻으로 굳히고, thy는 '너의'라고 풀어 써 주는 게 현실적으로 덜 어색하고 제일 자연스럽겠다.

아울러 첫날/천 날은 일천 날, 첫째 날 정도로 구분해 주고,
낫게/낮게 → 나은 걸로, 낮은 걸로.. 풀어 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 건 한자로 해결 가능한 동음이의어도 아니다!

flying → 활용형이 그냥 '나는'이 돼 버려서 이것도 체언과 분간이 안 되고 말이 굉장히 보기 안 좋다.
'비행하는'으로 완전히 대체 가능한 것도 아니고 '날으는'을 허용하든지 뭐 어찌 대책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심지어 '날으는'조차도 '나르는'과도 구분이 안 되어 완벽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우리말은 한글 특유의 모아쓰기 특성 덕분에 띄어쓰기를 안 해도 어지간해서는 알아보는 데 큰 지장이 없다. 그리고 적당히 붙여 쓴 게 전체 의미를 한 덩어리 단위로 묶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가끔은 정말로 헷갈릴 때가 있다. '삶은 달걀'(boiled / life is) 같은 예도 있고, 또 '바라바라 하는', '바보'(행 13:6), '노'(렘 46:25)처럼 짧아서 헷갈리는 고유명사도 있다.

헷갈리는 한자어에 대해 괄호+한자 병기를 하기에 앞서, 헷갈리는 고유명사에 대해 별도의 표시가 훨씬 더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옛날에는 고유명사들을 별도의 폰트로 표기하기도 했지만 컴퓨터 시대에 서식이 없는 텍스트에서는 그런 걸 어떻게 표현할 텐가? 이런 게 숙제라는 것이다.

저런 문제에 비해서 뭐 "강하고 담대하라"가 비표준어이니까 "마음을 강하게 먹고 담대해져라" 이렇게 늘이는 거는 훨씬 후순위의 문제이다. 그것만 물고 늘어지고는 '거룩하다'는 '거룩하라'라고 잘도 쓰더구만? 형용사· 명사 품사통용은 어차피 절대적인 답이 없는 문제이다.

예전에도 몇 번 했던 말이지만 난 인터넷, 네티즌 이런 말을 어설프게 순화하는 것보다, 장(페이지/챕터) 같은 말을 더 잘 분간되는 말로 바꾸는 게 현실적으로 훨~~씬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5/12/14 08:35 2025/12/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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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콩라인이지만 특이한 인물

성경의 창세기는 바벨 탑 사건 이후 12장부터는 아브라함-이삭-야곱 3대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의 관점이 세상 전체에서 특정 민족으로 범위가 확 좁아진다.
아브라함은 아무 보이는 증거 없이도 하나님 말씀만 따라 뜬금없이 고향을 떠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만으로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 열두 지파를 만들었다.

그들 사이에 낀 이삭은 애비나 자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삭도 생각보다 굉장히 대단하고 놀라운 구석이 있다.

(1) 이삭은 일단 기적적으로 탄생했다.
아예 처녀에게서 태어난 예수님 정도로 드라마틱한 건 아니지만, 폐경 불임 여성에게서 갑자기 아기가 짠 태어난 것만으로도 21세기 현대 의학으로 불가능한 일이 이뤄진 것이었다. 생명이 없는 목재 지팡이에서 새순이 돋은 것과 동급이다.

(2) 이삭은 아브라함이나 야곱과 달리, 개명 조치를 받은 게 없다.
아브라함은 개명 후의 이름이 유명하고, 야곱은 개명 전 이름이 더 유명하다. 야곱의 개명 후 이름은 부족· 민족· 국가의 이름으로 확장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3) 그리고 이삭은 외아들로 태어나서 나름 죽다 살아났고, 부모가 정해 준 여자하고만 평생 살았다.
애비 아브라함은 본처와는 그렇게도 자식이 안 생겨서 한때는 몸종 하갈까지 동원할 정도였다.
그러나 본처가 죽고 나서 재혼한 여자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녀가 잔뜩 생겨서 기존의 이스마엘/이삭 구도가 무색할 지경이 됐다. (창세기 25장 앞부분 참고)

아브라함은 재력이 풍부한 족장이었으니 아마 많이 어린 여자와 재혼한 게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추측만 한다.;;
손자인 야곱은? 뭐 처음부터 본처가 친자매 두 명이었고, 거기에다 첩도 있어서 서로 출산 경쟁을 했다.
이런 이야기가 이삭에게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삭은 리브가 말고 다른 아내, 그리고 에서와 야곱 말고 다른 자녀 얘기가 적어도 성경에는 전혀 없다. 전근대 시절의 대가족이 아니라 현대의 핵가족을 보는 것 같다.

(4) 또한, 이삭은 장가를 40세에 갔고 저 쌍둥이 아들들을 60세에 얻었다고 한다.
얘들도 애비인 아브라함 못지않게 무자녀 기간이 길었는데.. 이삭은 아브라함 부부처럼 첩을 동원한다거나 하지 않고 이 문제로 인해 중보기도를 하고 하나님에게 호소를 했다. (창 25:21) 애비보다 믿음이 훨씬 더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비록 외국 타지에서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이는 잔머리는 이삭도 아버지를 똑같이 따라했지만 말이다.

2. 외아들을 번제 헌물로 바치는 시험

뭐, 이삭의 삶에서 제일 드라마틱한 순간은 22장 번제물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 장면을 드라마나 영화로 각색한다면 창 22:8의 대사는 이렇게 만들면 딱이지 않겠는가?

“어, 아버지, 오늘은 장작과 불만 챙겨 가고 제물이 없는 거 같은데요?”
“아들아~ 번제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직접 예비해 주실.. 아 아니,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하실 거야.

성경 번역할 때야 provide himself a lamb 문장이 영어 4형식이니 5형식이니 한 형태만 골라잡아야 하니 논쟁하고 싸운다 치지만.. 관련 2차 창작물에서는 이런 식으로 두 의미를 모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창작물이 성경의 뉘앙스를 반대로 왜곡한다거나, 단순히 성경에 없는 내용을 뇌피셜 창작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기존 의미를 보충 보강까지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물론 한참 나중에 현장에 도착해서 제단이 다 세팅된 뒤엔 아브라함이
“아들아.. ㅠㅠㅠㅠ (으허허허어어엉) 오늘은 하나님께서 너를 번제물로 바치라는구나!!
이렇게 절규했을 것이다. 이건 거의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이 "너희 중에 한 명이 오늘 밤 나를 배반할 것이다" 이렇게 비통하게 선언하시는 것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은,

"예에에에에...??? (곧 평정심을 되찾고) 네 아버지, 알겠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따를게요."
(아들의 너무 초연한 모습에 더 ㅎㄷㄷ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신 게 있으니 네가 죽어서 번제물이 되더라도 하나님이 너를 반드시 다시 살려주실 거다. 이 애비는 그렇게 믿는다.. ㅠㅠㅠ 그럼.." (칼을 번쩍 들고 아들을 찌르려고 할 때)

"어이 잠깐 스톱! 아브라함, 아브라함아!" 이러면서 분위기 급반전. 그 이후 이야기는 여기서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을 겪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예배를 마치고 다시 자가용이 있는 곳으로 돌아올 때의 심정은 정말 어땠을까 싶다.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눴겠는가? 특히 이삭은 그야말로 죽다 살아나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거나 다름없었을 텐데.
이러니 이삭의 인생은 누구누구 예표로 가득하다. 이 사람이 장가 간 것도 평범한 결혼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창세기 24장이 그렇게도 길게 쓰여 있는 것이지 싶다.

3. 상남자 에서,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overdrive

(1) 앞서 거론된 바와 같이, 이삭에게는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이 있었다. 얘들은 외모와 성격이 극과 극인 걸 보면 생물학적으로 일란성은 아니고 이란성이었지 싶다.

이삭은 번제물이 되라는 요구에 순응하고 결혼도 100% 전적으로 부모가 정해 준 여자와 했을 정도로 순종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저런 성품과 별개로 상남자 기질도 있었다. 그래서 두 아들 중에서 산적 같은 마초 상남자 기질이 있는 에서를 야곱보다 더 좋아했다.

에서는 창세기 27장에서 아버지 이삭의 부탁을 받고는 짐승 사냥을 하러 평소 애용하는 엽총 샷건을 척~ 메고 오프로드용 SUV를 몰고 떠났을 것 같다. 아니면 할리데이비슨 바이크.. 터미네이터나 듀크 뉴켐을 생각하면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노아는 홍수가 그치고 나서 물이 좀 빠졌는지 주변 상황을 알아보려고 방주 뚜껑을 열고는 드론을 날려보냈을 것 같고, 리브가는 엘리에셀 일행의 차량에다가 세차와 주유를 일일이 직접 해 주는 것 같은가? 에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듀크..??
아 그러고 보니 성경에서는 Duke (족장, 추장, 공작 등등)라는 칭호를 하필 에돔.. 즉, 에서의 후손들에게만 유일하게 쓰고 있다. 창세기 36장이 대표적인데.. 이것도 매우 의미심장한 연결고리인 것 같다!!!

(2) 그 다음으로, 세월이 흘러 창세기 30장 이후로 넘어가서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는 장면을 읽어보면.. 그는 형에게 환심을 사려고 알라딘 Prince Ali 같은 퍼레이드를 벌이고 별 생쑈를 한다. 그래도 형은 과거의 팥죽 장자권 사취 사건은 쿨하게 잊었는지 동생을 반갑게 대해 줬다.
그 다음에, 이들이 나중에 같이 어디로 가려 할 때 야곱이 한 말 중에는 창 33:13이 있다.

아이고 형님도 아시다시피, 제 일행에는 연약한 어린애들이 많고 가축들도 엄청 많아서요.. '억지로 무리하게 끌고 가다가는' 다들 하루도 못 버티고 퍼지고 죽을 수도 있거든요~~

억지로 무리해서 빨리 몰고 가는 게 영어 성경에서는 overdrive라고 표현되었다. 성경 전체에서 딱 한 번 나오는 단어인데, 이게 자동차 기술 용어로는 다른 의미로 아주 친숙하다.

바로 엔진 크랭크축이 도는 것보다 바퀴 구동축이 더 많이 돌도록 기어비를 설정하는 것..
심지어 크랭크축과 구동축의 직결도 아니고 구동축이 더 많이 도는 걸 overdrive라고 한다. 보통은 변속기에서 최고단 기어가 overdrive 상태이다.

자동변속기는 일반적으로는 엔진의 토크가 허용하는 한 가장 높은 단을 설정한다. 그래야 최저 엔진 회전수(=연료 소모)에서 최고 속도 최고 성능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이렇게만 하면 차도 힘이 딸리고 가속이 잘 안 돼서 운전자가 답답할 수 있다.

저 창세기에서 오버드라이브의 부작용은 애나 가축이 퍼지고 죽는 것이었는데, 차에서 극단적인 오버드라이브란 정지 상태에서 2단에서 출발 같은 식으로 엔진에 무리를 주고 부르르르 떨리게 하고 심하면 시동을 꺼뜨리는 것이다. 이러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될 것이다. 컴퓨터로 치면 오버클럭에다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옛날 자동변속기 차량에는 '오버드라이브를 끄는' 옵션 버튼이 있었다. 이건 최고단을 봉인해서 최대 n-1단까지만, 기껏해야 1:1 직결까지만 변속되게 하는 기능이었다.
개념을 알고 보면 간단한데, 말을 거창하게 '오버드라이브'라고 하니까 뭘 오바한다는 건지 잘 와닿지 않는다.;;

파워 버튼, 오버드라이브 버튼, 2나 L단 이런 게 자동변속기에다가 "무조건 최고단으로만 동작하지 않게 하는" 예외를 제공하려고 존재했던 기능이다. 엔진 브레이크를 써야 할 때, 오르막 오를 때, 앞차 추월할 때처럼 고단보다는 고RPM이 필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부터는 자동변속기도 기술이 발달하고 저것들을 몽땅 통합하는 준수동 스포츠 모드라는 게 등장하면서 자질구레한 버튼들이 없어졌다.
내 차도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보통은 현재 진행 중인 단수가 그대로 표시되는데, 최고단 N단은 N-1단으로 반드시 바뀐다. 이게 개념적으로 '오버드라이브 끄기'를 구현한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 상태에서 다시 +를 눌러서 N단으로 되돌릴 수는 있지만..)

이상. 성경과 자동차가 이렇게도 연결된다.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5/12/07 08:35 2025/12/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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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엔 예수님의 생애를 주제로 다룬 ‘킹 오브 킹스’라는 만화영화가 개봉하네 마네 했다. 알고 보니 그거는 북미 지역 개봉 기준이었고, 얼마 전인 7월 중순엔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정식 개봉했다.

이 작품에 대해서 아주 재미있게 잘 봤다는 소감도 있고, 뭐든지 문제삼고 꼬투리 잡는 프로불편러 관점의 비판도 있다.
유통사? 제작사가 몰몬 교 신자 소유라느니, 그리고 작품에서 액자 바깥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역사 인물 찰스 디킨스(19세기 영국의 소설가)가 유니테리언 신자라느니.. 그래서 작품에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묘사가 부실하다느니 뭐라나..?

글쎄, 어린애들 눈높이의 만화영화에다가 조직신학 강의를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뭔가 부족한 건 있을지언정, 대놓고 해롭거나 잘못됐거나 반성경적인 메시지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영상물에 대해서는 너도 나도 ‘꼭 봐라 두 번 봐라’ 치켜세울 필요도 없고, 일부러 공포증 수준으로 ‘워이 워이’ 멀리할 필요도 없는 듯하다. 그냥 각자 알아서 보면서 분별하면 되지 않겠냐 말이다.

찰스 디킨스는 나도 지금까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알고 보니 ‘올리버 트위스트’라든가 ‘크리스마스 캐롤’(스크루지 사장님이 나오는)을 지은 영국의 정말 엄청난 대문호이더라. 마술사 ‘데이비트 카퍼필드’도 바로 저 사람이 지은 유명 소설의 주인공 이름에서 딴 예명이다!
하지만 이 사람이 예수 영화에 굳이 왜 등장하는지, 더구나 한국인 감독인 작품에서 왜 들어갔는지는 좀 의문스럽긴 하다.

이 글에서는 킹 오브 킹스를 논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해 왔던 썰을 좀 풀어 보고자 한다. ㄲㄲㄲㄲㄲ

1. 시험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로 이끌려 들어가서 40일을 금식하고 마귀로부터 몇 가지 테스트를 받았다. 물론 그분은 모든 시험에 FM 답안을 내면서 모조리 통과하셨다.
이건 예수님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릅니다”를 제대로 숙지했는지? 하나님의 아들인 인간으로서 개인적인 감정이나 공명심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충실하게 해낼지, 초자연적인 기적 권능을 정말 필요한 일에만 적절히 사용할지를 확인하고 인증받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가령, 배고파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을 빵으로 변환해 보시지? ㅋㅋ”라는 시험을 통과할 역량 정도는 돼야..
훗날 실전에서 “니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면 한번 자력으로 못을 뚝 뽑아내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ㅋㅋ” 이런 도발에 욱하거나 낚이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우와 빵 5조각을 5000개로 불려 놨더니 저 군중들이 좋아서 난리 치는 거 봐라. 이 지지자들을 이끌고 당장 혁명 일으켜서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왕이 돼 봐라~~!” 이런 꼬드김은 어떤가?
마귀가 제안했던 시험 중에도 딱 이런 범주에 드는 게 있었다는 걸 기억하자.

그런데 저런 시험에서 곧장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주 네 하나님만 경배하라 / 그분을 감히 함부로 떠보지 마라” 이런 말씀을 인용해서 답변을 할 정도라면..
예수님은 40일 광야 외박 중에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아주 깊이 묵상했을 것이고 신명기 같은 책은 머리에 몽땅 다 집어넣은 상태였지 싶다.

그럼 성경 말고 잠시 딴 얘기를 꺼내겠다. 1969년, 옛날에 아폴로 10호 미션 때 말이다.
이건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 직전 코앞의 미션이었다. 달 착륙선이 달 상공으로 살짝 하강만 하다가 다시 올라가서 사령선과 합체하고 귀환할 예정이었다.

10호의 달 착륙선에 탔던 승무원 2인은 얼마나 들떴겠는가?
이들 중에 공명심에 들떠서 절제하지 못하고 객기 부리고 일탈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지구 우주센터와 사령선으로부터의 지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달 착륙선을 달에 완전히 내려앉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면.. 후대의 11호 승무원이 아니라 자기들이 인류 역사상 달에 최초로 발을 디딘 사람이 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달에서 지구로 돌아오지는 못하고 달에 뼈를 묻게 됐을 것이다. 10호에는 달 착륙선의 지상 발사 기술은 아직 적용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들만 죽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NASA는 한바탕 뒤집어졌을 것이다.
안 그래도 소련과 경쟁 중이었던 냉전 시국에, 후대의 유인 달 탐사 계획도 줄줄이 꼬였을 것이다.
그래서 극한의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기 감정을 억제하고 공과 사를 구분하며 임무를 충직하게 수행하는 군인 기질이 심지어 성경에서도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물론 “나는 명령에만 따랐을 뿐이다”가 악의 평범성 수준으로 악용돼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하물며 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미션을 수행하던 예수님에게도 저런 자질 검증이 꼭 필요했지 않겠나 싶다!

2. 무술 수련

성경에서 사도행전 9:2는 뭔가 예수 믿는 거를 '길'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말 성경 중에 개역과 한킹은 이 구절의 way를 '도'라고 번역했다. "이 道에 속한 사람들"..

창세기 24:63은 이삭이 저녁에 뭐 요가나 파륜궁이나 영춘권 수련이라도 하러 들로 나간 것 같다. ㄲㄲㄲㄲㄲㄲㄲ
또, 요한복음 3~4장도 있다. 이런 걸 읽어보면 성경도 약간은 동양철학(??)이나 권법서(!!!)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요한과 예수님이 무술 사범이 돼서 제각기 도장을 차렸고, 상대편 제자들을 견제한다.
"요한은 제자들한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친다는데 우리도 좀 가르쳐 주세요!" (눅 11:1) 이건
"싸부님 우리한테도 이런저런 권법 좀 가르쳐 주세요~ 네?" 같다.

마 17:16에서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한 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동네 양아치한테도 얻어터지고 돌아와서 싸부님한테 수련이 부족하다며 혼난 거고.. 뭐 그렇게 대응이 된다ㅋㅋㅋㅋㅋㅋ

내가 어떨 때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에서 카 퍼레이드를 떠올리고, 베드로가 밴을 운전하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자동차가 아니라 무림 버전이 등장했다.
물론 이건 개드립 쪼크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라~!! 예수님을 '주' Lord가 아니라 단순히 스승, 싸부 master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1세기의 현대인이 창 24:63을 읽으면서 저런 느낌이 개인적으로 드는 건 자유이지만.. 아예 성경 번역을 그런 의식의 흐름을 따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성경에 따르면 이때 이삭은 '묵상'하러 나갔다. 시편 19:14 '나의 마음의 묵상이' 할 때의 그 묵상 말이다.
뭐 어디 이상한 데서 말하는 것처럼 '명상, 참선'을 하러 간 게 아니다.

3. 나머지 여러 패턴들

(1) 성경에서 예수님의 행적이 뭔가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온 경우는 다음과 같다.

  • 그놈의 안식일 드립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내내 그분을 따라다닌 트집거리였다. 초자연적으로 사람이 살아난 기적을 보고도 “당신 지금 무면허 의료행위 했지? 의료법 위반이야!” 이딴 반응을 보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 “내가 곧 아버지 하나님과 동급”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많이 빡쳤고, 심지어 그분을 죽이려 했다. 요한복음 5~10장이 온~통 이 얘기밖에 없다.
  • 당대 종교인들의 위선과 악행을 폭로하고 교리적 오류를 지적하시자 팩폭을 당한 당사자들은 빡돌아서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백성들 눈치를 보느라 당장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 눅 16:14를 보면 성경의 다른 논조와는 사뭇 다른 피드백이 등장하는데,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에 탐욕스러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웃었다’. “허이구~ 지가 가난하니까 괜히 부자들 욕이나 하는 거지? ㅋㅋ” 이런 반응을 보인 것에 가깝다.

(2)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는 책망하고 심지어 분노도 하셨다.

  • 제자들의 불신: 특히 변모산 이후 사건 때 제일 크게 실망하신 듯.. 어지간한 중대장 이상이었다.
  • 성전 장사꾼들: 두 번이나 크게 분노하셨다!!
  • 아까 (1)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악행: “이 독사 같은 xx들아!”라는 폭언까지 나왔다.

(3) 예수님이 제자들을 갈군 패턴은 다음과 같다.

  • 왜 이렇게 믿음이 없느냐: 변모산 이후, 부활 직후 엠마오 제자들에게, 물 위를 걷다가 도로 빠진 베드로에게. 제일 흔한 책망이었다.
  • 베드로에게는 아예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 요한과 야고보에게는 “니가 지금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모르는구나” 이건 궁예 식으로 말하자면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하다는 급이었다.

요런 것들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분류해서 “주님의 빡침” 같은 설교나 강해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성경의 예수님께서 인간의 어떤 면모에서 가장 실망하고 분노하셨는지에 대한 답이 나오니까 말이다.

(4) 낯선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마귀 쫓는 것에 대해서

  •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9장 끝부분에서는 “우리의 적이 아닌 진영은 다 우리의 친구다. 그냥 냅둬라” 라고 반응하셨다.
  • 마 7:22-23에서는 그런 행적이 있는 사람이라도 예수님께서 생깔... 수 있다고 경고하셨다.
  •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시전하는 사람이 가짜이다 보니 그 사람이 마귀에게 역관광을 당했다. 마귀 왈,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들어 봤다만.. 네놈은 어디서 굴러온 개뼉다귀냐?”

(5) 예수님은 아주 합리적이다. 옳은 것은 누가 말했든지 그대로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 그들의 말만 듣고 따르고, 그놈들의 행동은 본받지 마라 (마 23:2)
  • 내가 믿기지 않더라도 내 행적은 믿으라 (요 10:38)
  •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에게
  • 이것을 하고, 한편으로 저것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본질과 정신 VS 외형. 눅 11:42)

(6) 성경은 일관성 없는 것, 간보고 쟤는 걸 싫어한다.

  • 요한은 안 마신다고 X랄이고, 예수님은 마신다고 지X..
  • 요한의 침례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인정하면 이렇게 되고, 인정하지 않으면 저렇게 되네..

(7)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꽤 극단적이고 꽤 어려워 보이는 표현이 있다.

  • 현 세상에서 100배 보상. (막 10:30)
  • 내가 속히 오리라 (계 22:20)
  •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들어서 저리로 옮길 것이다
  • 저 사람들이 외치지 않으면 이 돌들이 대신 소리지를 것이다 (눅 19:40)
  • 돌을 갖고도 인간들 집단을 만들 수 있다 (눅 3:8)
이런 패턴들은 만화영화가 아니라 성경 텍스트 자체만을 반복해서 읽고 묵상해야만 서서히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29 19:35 2025/07/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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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드로 서신

본인은 와이프와 함께 성경 통톡을 하면서 올해 초쯤엔 베드로전후서를 쭉 지나갔었다.
그런데, 와~ 이건 신약의 주류(!!)인 바울 서신이 아니라고, 특정 수신자가 존재하지 않는 일반서신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볼 게 절대 아니라는 걸 특별히 느꼈다.

그 짧은 분량에 몇 절 간격으로 주요 암송/유명 구절들이 빵빵 터져나온다. 후서보다도 전서가 더한 것 같다.
비킹에서 매우 치명적으로 변개된 구절 중 하나인 '말씀의 젖 먹고 자라라' 벧전 2:2도 그 중 하나.

이들 책에서는 precious 보배로운, 귀중한 이라는 단어가 다른 어느 책보다도 자주 나온다.
왕가의 제사장과 특별한 백성, 남녀노소 주종 인간관계, 위의 권위에 순종, 목(회)자를 향한 권면, 시험과 인내, 올바른 행실과 선한 간증까지, 바울 서신 몇 권치 내용이 다 압축된 것 같다.

베드로전서가 특별히 강조하는 건 그냥 선한 행실을 하는 게 아니라 불신자 세상 사람들이 비방하고 악담을 하다가도 무안해져서 입을 다물게 될 정도의 어마어마한 행실이다. 그들에게 너희의 소망을 증언하고 답변할 걸 늘 예비하라고..
이런 논조는 기존 바울 서신서나 심지어 야고보서에서도 딱히 못 봤던 것 같다.

거기에다 행실만 얘기하면 섭섭하니 벧전에는 지옥에 떨어진 천사, 죽은 자에게 선포, 감옥에 있는 영에게 선포, 구원의 모형으로서 물침례처럼.. 경륜이나 영적 세계 관련 어려운 구절까지 슬쩍 들어가 있다.

벧후 3장 끝부분을 보면 베드로가 바울 서신을 언급하면서 일부 내용이 참 질기고 난해했다고 얘기하는데..
"님이 기록하신 서신도 똑같이 난해해요"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베드로가 어려운 구절을 슬쩍 집어넣은 스타일을 총체적으로 살펴보니, 벧후 3:6은 단순 노아의 홍수 얘기가 절대 아니겠다는 생각도 더욱 확실하게 들었다.

성경에서 element라는 단어는 갈라디아서 4장과 베드로후서 3장에서 각각 두 번씩만 등장한다.
전자는 유치한 '초등원리' 문맥인 반면, 후자는 온 우주가 불에 녹는 상황이다 보니 '원소'라고 번역되었는데..

사실 이것조차 1800년대 이후 돌턴의 원자설을 학교에서 배운 후대 사람의 선입견이 가미된 번역이 아닌가 싶다. 뭐, 만물이 분자건 원자건 미립자 근본 본질 차원에서 다 분해되고 포맷될 거라는 점은 변함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베드로에 대해서 뭐 "쿠오바디스"라든가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십자가형 당해서 순교~~ 이런 카더라 일화를 찾아보기 전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라고 말하는 서신을 통해 기억하는 게 먼저이지 않겠나 싶다. 그 사람이 직접 후대의 크리스천들이 읽으라고 글을 남겨 줬으니 말이다.

2. 자동차

성경은 자동차가 발명되기 한참 전에 만들어진 책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자동차를 대입해 넣어도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겠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세 곳 정도 있다.

(1) 출 20:17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종이나.. 소나 나귀나 소유 중 아무것도 탐내지 말라"
소나 나귀 대신에 "남의 차를 탐내지 말라~~"라고 생각해 보면 이 계명이 오늘날 기준으로 뭘 의미하고 어떻게 적용하면 되겠는지 감이 바로 올 것이다.

(2) 삼상 8:5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우리에게 붕붕이를 주소서"라고 생각해 보아라.
단순히 남 앞에서 간지와 가오 내세우려고 왕을 선출하고 나면.. 이제 왕의 유지보수 비용 때문에 세금 부담이 왕창 늘고 니들 등골이 휠 것이다.

그때 와서 후회하더라도 하지만 한번 권력 맛을 봐 버린 왕이 호락호락 하야를 하겠는가? 아니, 단순히 권력욕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기 목숨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왕은 하야를 못 한다. 호랑이 등 위에 앉아버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붕붕이는 물론 정치 권력과는 관계가 없지만.. 얘도 한번 지르고 나면 단순 차값+기름값과는 차원이 다른 지출이 발생하고 사람 생활 패턴과 씀씀이가 달라져 버린다. 카푸어 되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3) 막 11:2 등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베드로야, 저 마을 어귀를 가 보면 공장에서 갓 출고된 새끈한 스타크래프트 밴이 키가 꽂혀 있을 것이다. 그거 몰고 이리로 돌아와라. 누가 뭐라 하면 '주님이 필요로 하신다'라고 대답해라. 내가 차주하고는 미리 입을 맞춰 놨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예루살렘 입성 장면 때 카퍼레이드가 같이 떠오른다.
예수님 제자들 중에는 그 나이의 남자들답게 차덕 컴덕도 있을 것이고, 베드로는 가방끈은 짧아도 대형에 해기사 면허까지 보유하고 있고.. =_=;;; (훗날 저 베드로전서· 후서를 기록하게 될 바로 그 사람이!!)

솔로몬만 해도 살았던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그 머리로 차덕 총덕 컴덕 항덕이 아니라 자연덕 생물덕이었다는 게 흥미롭게 느껴진다.

3. 안티오크

나는 '안티오크/안디옥(Antioch)'이라는 지명을 난생 처음 접한 곳이 성경이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스타크래프트였다. =_=;;;
프로토스 외계인들의 본거지 도시 중 하나가 안티오크이기 때문이다. 프로토스 캠페인을 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리고 프로토스의 영웅 중 한 명은 이름이 Fenix인데.. (질럿이다가 나중에 드라군으로..)
안디옥이 등장하는 성경 사도행전에는 벨릭스(Felix)라는 이름의 총독이 나온다. (행 23:24)

이에 대한 기억이 잠재의식 속에 깊이 박힌 관계로, 난 사도행전 후반부(=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이후)를 읽으면 지금도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기억이 머리에 같이 어른거린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Fenix는 아마 불사조 phoenix를 베낀 명칭이었을 것 같지만, 본인은 그것보다도 성경 인물 Felix가 먼저 떠오를 정도이다. ㅠ.ㅠ

4. 호환, 마마, 전쟁

"내가 네게 기근과 ‘악한 짐승’들을 보내서 니 자식을 앗아갈 거다.
다음으로는 ‘역병’과 피가 니들을 지나갈 거고
그 뒤엔 내가 너에게 ‘칼’을 보낼 것이다.
나 곧 주가 이렇게 말한 줄이나 알아라." (에스겔 5:17~ 임의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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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름 3권 분립(lawgiver, judge, king)이 나뉘어 언급되는 구절이 있듯이,
성경엔 나름 옛날 어린이들의 3대 재앙이었다는 호환, 마마, 전쟁이 나오기도 한다! ㄷㄷㄷㄷ
세계 보건 기구(WHO)는 요즘이야 이것저것 욕 많이 먹고 있지만 한때는 그래도 국제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해서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박멸하는 데 성공한 적이 있다. 즉, 3대 재앙 중 ‘마마’를 없앴다.

전세계에서 천연두 감염 발병이 마지막으로 보고된 게 1977년 10년경이다.
참고로 인류 역사상 마지막으로 단두대에 의한 사형이 집행된 것도 1977년 9월이니 꽤 비슷하다.;;;

유엔이야.. 잘 알다시피 ‘전쟁’을 없애려고 만들어진 단체이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하긴, 먼 옛날에 한번 연합군 진영이었다고 그 나라들이 언제까지나 영원히 우방 동맹인 건 아니니까 말이다.

5. 머신러닝

데이터 → 정보 → 지식 → 지혜의 관계를 피라미드 계층으로 묘사한 그림이 있다. 이거 무슨 과학 → 수학 → 철학 → 신학 같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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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머신러닝에서 다루는 개념이지만~~
성경 공부와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커 보인다.

성경이란 게 무슨 학술논문, 수학 교재처럼 막 수리논리적으로 ‘엄밀하게’ 쓰여진 책은 아니다.
용어와 개념 definition부터 시작해서 lemma, theory, proof.. 이런 게 나오지는 않는다. 그나마 로마서가 일부 구간에서 그런 형태를 흉내만 비스무리하게 냈을 뿐이다.

  • 죄라 함은 *****한 것을 말한다.
  • 이 교리의 적용 대상으로서 닝겐이란 이러이러한 특성을 가진 검은 머리 이족 직립보행 포유류를 말한다. 최초의 시조는 아담이다. 생물학적 분류는 호모 사피엔스이다.

성경 여기저기에 흩어진 내용들을 분야별 주제별로 한데 모으고 체계화하면 조직신학 교재가 된다.
그럼 성경이 처음부터 조직신학 교재처럼 쓰여졌으면 좋겠지만, 그런 식으로 저술해서는 성경이 그야말로 동서고금 보편적인 텍스트가 될 수 없어진다.
조직신학 자체도 당대 인간의 학문 패러다임이 반영되어 만들어진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패러다임보다 더 위에 있는 텍스트이지 않은가?

그야말로 일자무식 농경시대부터 지금 과학혁명 정보화 혁명까지 동서고금 남녀노소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만들어질 수 없다. 인류가 언제부터 그런 엄밀함을 따지기 시작했다고 감히 그런 배부른 소리를 지껄이나.

그리고 뭐랄까, 후세에게 사이드이펙트/나비효과를 끼치지 않으면서 수백~수천 년 뒤를 내다본 예언을 정확하게 담을 수가 없다. 이 주제만으로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이 글의 주제가 이건 아니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결국은 평범한 스토리 ‘데이터’들을 담으면서 거기에다가 하나님의 성품을 슬쩍 담아 넣고, 여러 시대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역사 패턴도 찔끔 담아 넣는 게 성경 기록자의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은 추상적인 데이터로 가득한 책이며, 독자들에게 데이터를 통한 학습과 패턴 추출.. 일종의 머신러닝을 요구한다. 이걸 신앙 용어로는 “성령님을 통한 조명”이라고 표현한다. ㄲㄲㄲㄲㄲ

머신러닝에 underfit과 overfit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동일한 오류 유형이 성경 공부도 존재한다.
6일이라든가 1천 년을 문자적으로 안 믿는 거, 개나 소나 영적 해석에 비유로 치부하는 건 underfit이다.

반대로 본질적이지 않은 디테일에만 너무 문자적으로 꽂혀서 난리를 치는 건 overfit이라 하겠다.
솔로몬의 재판을 읽고는 “요즘은 CCTV와 유전자 감식 기술이 발달했으니 괜찮아요! 아 그럼 나도 앞으로 남의 아기 몰래 뺏어서는 저 사람 주라고 연기하면 되겠네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overfit인 듯. ㅋ

성경이라는 데이터가 점들이 저렇게 콕콕콕 박혀 있는 걸 말한다면.. 하나님이 의도한 선형이 과연 무엇일까 판단하는 건 닝겐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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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5/05/23 08:35 2025/05/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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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향유의 가격

성경에서 오병이어 기적 장면을 보면.. 5000여 명의 군중들한테 한 끼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비용 견적이 200 데나리온 정도로 산출됐다. (요 6:7, 막 6:37)
그런데 예수님에게 어떤 여인이 쏟아부은 향유라고 해야 하나.. 그거 가격 견적은 300 데나리온이 나왔다! (요 12:5, 막 14:5) 이걸 비교하니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

당시 로동자 평균 일당이 1데나리온이라는 거, 그리고 요즘 밥값 물가를 같이 생각하면 200~300데나리온은 아주 러프하게 어림잡아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다. 자동차 한 대는 너끈히 살 수 있는 돈이고 사회 초년생이나마 직장인 연봉에도 근접한다.

우와~ 저 여인은 정말 예수님을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느껴진다. 요즘으로 치면 가히 초호화 고가 브랜드 명품 화장품이나 로션, 향수를 통째로 예수님 머리인지 발인지에다 끼얹어 없앤 격이다.

이러니 이건 성경에 기록되고 박제될 만도 한 사건이었겠다. 두 렙돈을 바친 과부 이야기는 “절대적인 양은 적으면서 진심”인 거고, 이 옥합 깨뜨린 여인 이야기는 “절대적인 양도 많으면서 마음도 진심”이랄까? 주님께 허비하는 건 허비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이 여인에 대해서 “아니 그 비싼 향유를 살 돈으로 차라리 가난한 사람 자선을 하지 무슨 저런 낭비를?” 이렇게 비아냥거린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진짜로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한 게 절대 아니라는 게 포인트다. 교회 가기 싫고 예수 믿기 싫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사고방식이다. 그냥 "으으~ 난 솔직히 저렇게까지 몽땅 다 바칠 자신은 없다~"라고만 말하고 마는 게 훨씬 더 정직하고 나았을 것이다.

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은 세공업자들이 바울 일행을 적대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다이아나 여신을 정말 진지하게 위대한 신, 자기의 절대자 구원자로 섬기는 게 아니었다. 그냥 자기들이 제조하는 다이아나 형상이 안 팔리게 되고 자기 밥줄이 끊기게 생겼으니 빡쳤을 뿐..
진짜 오로지 신념 이념에만 미쳐서 폭탄 들고서 "알라후 아크바르!!" 이러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 상당수의 우상 숭배는 그냥 돈이 얽혀 있다. 물론 요즘은 예수 믿고 교회 댕기는 것조차 그런 마인드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이지만 그건 별도로 생각할 사항이다.

2. 누가복음(눅)과 요한복음(요)의 관계

(1) 눅에는 “사람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기록)을 믿는다면 지옥에 대한 증언도 믿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눅 16:29-31)
요에서는 사람들이 모세를 제대로 믿었다면 예수님도 응당 믿었을 거라고 말한다. (요 5:46)

(2) 눅에는 죄인인 여인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무슨 죄인인지는 언급이 없다. (눅 7:37)
요에는 간음하다가 현행범으로 붙잡힌 여인이 나온다. (요 8:3)

(3) 눅에서는 침례인 요한이 회개의 열매를 촉구하면서 혈통상의 아브라함 후손 드립을 치지 말라고 말했다. (눅 3:8)
요에서는 예수님도 아브라함 같은 믿음이나 행실도 없는 주제에 아브라함의 후손 부심 따위 가질 자격 없다고 말씀하셨다. (요 8:39-40)

(4) 눅에는 사람들 가운데서 높이 평가받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럽다는 말이 있다. (눅 16:15)
요에서는 사람을 두려워해서 사람의 칭찬을 하나님의 칭찬보다 더 우선시했다는 진술이 있다. (요 12:43)

(5) 요에서 소경이 눈 뜨고 “주여, 내가 믿나이다!” (요 9:38)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왠지 눅에서 십자가에 매달렸던 강도가 “주여, 당신의 나라로 가실 때 부디 저도 기억해 주십쇼~!” (눅 23:42) 이러던 것과 심상이 아주 비슷해 보인다.
“그 참혹한 십자가에 주 달려 흘린 피”라는 찬송가는 2절에서 그 강도를 언급하는 한편으로, 후렴 가사는 “나 믿노라, 나 믿노라”라는 걸 생각해 보자.

3. 복음서의 기적과 사도행전의 기적

요한복음 9장에는 선천적인 소경이 나온다면, 사도행전 3장에는 선천적인 하반신마비 앉은뱅이가 나온다. 대충 이런 장면이다.

“이 불쌍한 장애인 거지에게 한푼 좀 줍쇼~~ 네에에? ㅠㅠㅠㅠ”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 니가 뭘 원하는지는 얼추 알 거 같다만, 난 돈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내가 가진 건 아주 특출난 스킬이지. 예수 싸부님을 3년간 따르면서 습득된 스킬이야. 당신 같은 사람이 놀라서 까무러칠 스킬이지. (손 내밀며) 나사렛 예~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을지어다!”

“아니 다 큰 어른이 장애인을 갖고 노나~ (손을 탁 뿌리치며) 아 돈 안 줄 거면 됐네 이 사람아..!!
어?? 어라? 뭐야, 다리에 힘이.. 일어서지네?? 엇 세상에 내가 걸을 수 있게 됐잖아!!”

이게 복음서에서 줄곧 등장하는 예수님의 기적과 차이점으로 내 눈에 와 닿는 건 두 가지이다.

(1) 이때가 그놈의 안식일은 아니어 보인다는 거. 안식일에 병 고친 거 갖고 예수님이 트집 잡힌 걸 생각하면 진짜 안식일 트라우마라도 생겼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오늘날로 치면 예수님을 무슨 무면허 의료행위 했다고 고소할 각이다. ㄲㄲㄲㄲㄲㄲㄲ 예수님은 그야말로 현대 의학을 아득히 뛰어넘는 일을 하셨는데도 말이다.
아니면 인공위성 우주발사체를 보고 영공통과료를 안 냈네, 비행계획 신고를 안 하고 멋대로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니네, 항공법 위반이네 어쩌구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2) 사두개 인이 본격적으로 악역으로 등장한다는 거. 복음서 시절에는 사두개 인은 그냥 “칠형제와 한 번씩 다 잤던 형수는 최후에 누구 아내가 되는 겁니까?” 잔머리 정도나 굴렸던 분파였다. 저 때 악역은 그냥 바리새 인, 서기관 정도였었는데..
하지만 사도행전의 타임라인은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이후이다. 그러니 부활이란 걸 믿지 않는 사두개 사람들도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고발하는 적대세력으로 등장하게 됐다.

하긴,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무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을 행하기도 했다.
사도행전 9장에서 ‘다비다’라는 여인, 그리고 20장에서 졸다가 건물 밖으로 추락사한 ‘유두고’. 하지만 이건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행한 기적보다 존재감이 훨씬 작고 사람 이름도 생소한 편이다. ㄲㄲㄲㄲ

4. 사도행전과 복음서의 추가적인 유사점과 차이점

(1) 사도행전은 저자의 특성상 아무래도 누가복음의 연장선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복음 전파 사명이 계승되는 부분을 생각하면 마태복음의 끝과 사도행전의 시작이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누가복음의 끝에 묘사되는 승천 장면과 사도행전 시작의 승천 장면은 살짝 다른 묘사도 있으니 말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동안 변모도 하고 승천도 했다고 묘사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2) 타 복음서들은 바리새 인이나 서기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적대시하고 배척했다고 묘사하는 편이지만 요한복음은 그냥 유대인들이 지위 막론하고 전반적으로 예수님을 배척했다고 묘사한다.
그것처럼 사도행전은 믿지 않는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자주 나온다. 이건 사도행전이 누가복음이 아니라 요한복음을 꽤 닮은 면모인 것 같다.

(3) 예수님은 체포되고 나서 온갖 황당한 거짓 고소 내용에 대해서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않아서 침묵하셨고, 오로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에만 집중하셨다. “니가 그리스도냐?” 이런 부류의 질문에만 짧게 핵심만 답변하셨을 뿐이다.

그 반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은 아무래도 예수님과는 처지가 다르니 거짓 고소에 대해서 예수님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자기 권리를 챙긴 면모가 보인다. 자신이 골수 바리새 인 출신인 것과 한편으로 로마 시민권자인 것을 잘 활용했고, 심지어 적절한 타이밍 때 부활 드립을 쳐서 바리새 인과 사두개 인 사이의 내분 팀킬도 조장했다. 이런 건 뭔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무해하라”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4) “저놈을 없애 버려라!!” Away with him, Away with this man도 뭔가 요한복음과 사도행전만의 공통분모라 하겠다. (요 19:15, 행 21:36, 행 22:22)

특히 fellow는 출 2:13이나 욘 1:7 같은 곳에서 친근한 동료, 동기라는 뜻이 있지만, 가끔씩은 그것보다 더 멸칭으로 놈, 작자, 새X라는 뜻도 얼마든지 들어간다.
아합이 미가야를 부를 때도, 그리고 베드로가 “이놈도 예수와 한 패였어요!”라고 정체를 폭로당하려 할 때도 다 fellow가 쓰였었다.

5. 나머지 미분류 얘깃거리들

(1) 성경에서 예수님이 분노하신 건 제자들의 불신, 성전 장사꾼들(두 번이나!!),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 악행 이렇게 얼추 세 갈래로 나뉜다. 나름 서로 다른 분야인데 이걸 조목조목 분석하고 세분화해서 “주님의 빡침” 같은 설교나 강해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2) 예수님이 죽으심과 관련해서 사용하신 물건, 들렀던 장소들은 공교롭게도 전부 다 새거다. 당나귀, 다락방, 무덤.. 신기하지 않은가? 남이 썼던 중고는 전혀 없다.

(3) 성경에 나오는 현타의 대표적인 예는 탕자의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눅 15:17)

(4) 성경에서 뭔가 찢어진 게 좋게 등장하는 건 예수님의 죽으심 직후에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나머지는 암곰이 애들을 찢었다거나, 웃사가 천벌 받아 죽으면서 찢겼다거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얘기들이다.

(5) 성경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해서 저렇게 말하지만 한편으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고(요 4:22),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다고도 말한다(롬 3:2).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잘못됐고 척결되고 없어져야 할 대상인 건 절대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25/02/15 13:35 2025/02/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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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한번씩 했던 말들이긴 하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나열하고 한데 대조· 비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니 이렇게 한번 더 개념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1. 비킹: 예정 vs 자유의지

난 기회가 된다면 킹 제임스 진영의 밖에 있는 제도권/일반 교회 신자와 다음 주제들에 대해 언제든지 진지하게 토론해 보고 싶다.

  • 님 다니는 교회· 교파에서는 예정과 자유의지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
  •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 선과 악을 분간 못 하는 어린 아기는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어찌 될까? 이런 의문에 대한 댁들의 생각은 어떤가..?

난 이 주제에 대해 극도로 단순화시켜서 비약해서 말하자면..
"십자가 이전에는 알미니안(자유의지), 그 이후부터는 칼빈(섭리, 예정, 영원한 구원)"설을 개인적으로 지지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을 분간한다.

성경에는 당연히 절대자 하나님의 주권과 재량, 예정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마다 환경 처지가 제각각이고 신체· 지능 리소스도 제각각이다. 하루 종일 일한 품꾼이건 마감 1시간 전에 온 품꾼이건 동일한 일당을 받았다는 포도원 비유도 있다. 모태신앙 구원도 있고, 십자가 강도 같은 끝물 구원도 있다.

(1) 그러나 이건 개개인의 구원 여부가 엿장수 마음대.. 아니, 하나님 마음대로라는 얘기가 아니다.
미리 아심도 있고 구원받은 사람의 신분 변화가 '예정'된 건 있지만, 그게 로보트 마냥 개개인의 구원 여부를 말하는 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정을 수학 집합에다 비유하자면 원소나열법이 아니라 '조건제시법'이다. 울나라 법에다 비유하자면 특별사면이 아니라 일반사면을 말하는 거다.

"파라오의 마음을 더 강퍅하게 만들겠다" 이건 스스로 삐딱서니 타기 시작한 악인의 벡터의 크기 정도나 하나님이 더 키워 버리시겠다는 얘기이다, 아예 벡터의 방향을 마인드 컨트롤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시험이나 함정수사는 기회제공일 뿐, 아예 대놓고 죄 지으라고 꼬드기는 범의유발이 아니다.

어떤 경우건 "신이 누구누구는 처음부터 죄인 역할극을 하게 만들려고, 지옥불로 떨굴려고 창조했다", "하나님이 악도 필요해서 같이 창조했다" 같은 식의 결론은 난 절대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아 그래서 하나님이 악도 필요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가스실도 냅두고, 북괴 정치범 수용소도 저렇게 냅두고 731 부대와 캄보디아 킬링필드도 다 묵인한 건가?
그러면 죄의 책임이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 있는 꼴이 된다. 그런 하나님 믿으라고 불신자한테 복음을 참 잘도 전할 수 있겠다.

저걸 믿을 바에야 차라리 진화론이 낫다!! 진화론은 "서로 죽고 죽이고 속고 속이고 중독시키고 말려 죽이는 자연의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신이 만든 게 아니라면 오랫동안 스스로 진화해서 저리 된 거다"라고 이렇게 변명하는 거라도 있다! 알겠는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죄악까지 전부 하나님이 의도한 빅픽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착각하는 거다.

(2) 이와 같은 맥락으로.. 아기· 영유아가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가 도대체 신학적으로 왜 논란이고 논쟁거리인지 난 이해되지 않는다.
예수님 탄생 당시에 헤롯 왕에게 학살당했던 2살 이하 아기들이 다 원죄 때문에 지옥 갔다면.. 나는 정말 기독교 안 믿었을 거다. 나부터가 부끄러워서라도 그런 신 믿으라고 주변에 못 전한다.

성경에 따르면 그 어떤 흉악범죄자라도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당 갈 수 있다. 반대로 예수 안 믿고 자기 죄 가운데 죽었다면 그 범죄자를 체포한 경찰이나 사형 판결을 내린 판사 검사, 심지어 그 범죄자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라 해도 지옥 간다.
이건 불신자 입장에서는 선뜻 동의나 납득이 안 될 수 있지만, 이게 기독교 교리이다. 허나, 이런 기독교조차도 예수님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능력조차 아직 없는 아기까지 몽땅 지옥으로 보내는 미친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3) 내가 간극 재창조를 적극 지지하는 이유도 겨우 젊은 지구 오래된 우주 같은 과학 연대기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6천 년 전 6일 창조가 전부라면 사탄 마귀는 도대체 언제 창조됐고 언제 타락했는데? 인간은 죄를 짓는 바람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후손들이 대대로 고생하게 됐구만, 그럼 저놈은 언제 어디서 반역해서 무슨 처분을 받았는데? 최소한 인간보다는 훨씬 더 큰 스케일의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는가?
이게 이전 세상의 멸망과 간극 없이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러니 성경에는 하나님의 주권 예정도 있고, 인간 쪽의 자유의지도 있다. 가중치가 반반이고 상호 보완적이다. 마치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세 분과 한 분..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 거의 그런 급이다. 서로 자기만 옳다고 피터지게 싸울 주제는 아니어 보인다.

이것 말고도 킹 진영과 비킹 진영 간에는 교회와 이스라엘(유대인)의 관계, 전천년주의 vs 무천년주의 같은 관점도 차이가 있다. 더 깊게 들어가면 세대주의도 나온다만, 이 이슈는 이 글에서는 일단 논외로 하련다. 벌써 글이 너무 길어졌으니 말이다.

2. 킹: 영어 vs 원어

자, 킹 제임스 진영은 한킹이고 흠정역이고 표킹이고 어느 역본 진영을 가건, 위에서 논했던 저런 교리 문제는 그럭저럭 다 일치한다. 이견이 없고 교통정리가 돼 있다. (적어도 난 그런 걸로 알고 있음) 나는 저 관점이 매우 합리적이고 건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좁디좁은 진영을 지지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킹 제임스 진영들이 시급하게 필요한 게 뭐냐 하면.. 원문과 원어, 원어와 영어 사이의 개념정리 교통정리이지 싶다.
이게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자체적으로 승패가 가려지질 않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작은 킹 진영들이 더 쪼개지고 분열되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 역본이 제일 짱이네 하면서 도토리 키 재기 대립이 끊이질 않는다. 이거 심각한 지경이다.

일단, 원문 레벨은.. 정말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루터고 칼빈이고 옛날 종교개혁자 대선배들은 마 5:22가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화내는 자"라고 적혀 있는 바른 본문 계열의 성경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오늘날의 비킹들은 그렇지 않다. 그냥 무조건 화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다.

요일 5:7 요한의 콤마 삼위일체 구절도 마찬가지. 비킹이 삭제한 게 아니라 오히려 킹이 후대에 첨가한 거라고 반박하는 분도 있다. 근데.. 이때는 킹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아예 가톨릭 예수회의 두에 랭스 성서조차도 이 구절이 들어가 있었다. 빼면 뺐지 도대체 누가 언제 왜 뇌피셜을 펼쳐서 첨가를 했다는 말인지..??

킹 유일주의를 반대하고 반박하는 그 어떤 목사, 신학자도 벧전 2:2가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영적으로 자라려면"이 틀렸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려면"이 사본학적으로(?) 맞다고 자신의 학자적 양심과 손모가지를 걸고 맹세하는 사람..? 난 못 봤다.

이런 것들 말이다. 이건 번역 오역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원문 내용이 변개되고 달라진 사항이다. 다시 말하지만 옛날 칼빈이나 루터나 에라스무스 이런 사람이 번역했거나 봤던 성경이랑, 지금 현대인들 대다수가 보는 성경이 이런 건 서로 같지 않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나는 킹 쪽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말씀 보존 학회가 다른 행실이나 언변에서 제아무리 깽판을 쳤어도 걔네들이 이 주제에 관해서 말하는 건 절대적으로 맞다. 나는 저쪽을 지지한다.

자 여기까지는 한킹 흠정 표킹 어느 진영들도 일치한다. 그러나 그 뒤에 번역을 함에 있어서 영어와 원어의 비중을 서로 어떻게 둘 것인가 하는 것에서 또 예송 논쟁 노론 소론, 탕수육 부먹 찍먹 같은 당파싸움이 벌어져 있다.

내가 예전에도 말했지만, 이 바닥 대안 성경 1호라 할 수 있는 말보회 한킹은 영어 킹을 그대로 곧이곧대로 중역한 성경이 아니라, 영킹과 동일한 원어 대본을 번역하고 영킹을 일부 참고만 한 성경이다. 그래서 여기에 만족하지 못해서 원어 누룩(?)을 좀 뺀 게 흠정역이고, 흠정역보다도 더 과격하게 영어 직역을 추구한 역본이 표준역.. (심지어 도량형까지 마일, 파운드 그대로 썼을 정도로. =_=)

예를 들자면 "영어로 같은 단어이면 우리말로도 (가능한 한 어지간해서는 몽땅) 다 같은 단어로 번역돼야 한다", "it came to pass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 "God forbid는 하나님이 금하신다라는 뜻을 넣어서 번역해야 한다" 이런 거 말이다. 영어 KJV는 영어권 화자에게만 최종 권위인가, 아니면 원어 원문과 대등한 전세계의 최종 권위인가???

사실 성경 원어 원문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꽤 함축적이고 모호성이 많다. 뜬금없이 나오는 it he 대명사가 뭘 가리키는지 애매한 게 많고, 시제가 과거 미래 중 뭔지, 대화 인용이 어디까지이며 어디부터가 내레이터인지.. 알쏭달쏭한 게 많다.
이런 부분에서 한킹은 영킹과 자잘하게 미묘하게 일치하지 않는 게 있다. 그러니까 오역 변개는 분명 아닌데 어쨌든 영킹과는 미묘하게 다른 이게 오로지 영킹 최종 권위 순수주의(!!!) 성향인 분들한테는 성이 안 차는 거다. =_=;;

그럼 원어가 헷갈릴 때는 무조건 영킹대로 번역만 하면 되느냐? 그런데 영어는 또 영어만의 중의성이 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자면 전치사. for을 '위하여'라고 할지, '인하여'라고 할지?? of나 in은 또 얼마나 뜻이 다양한가?
제아무리 교리적인 편견 없이 기계적으로 곧이곧대로 번역만 했다고 한들, 교리와 해석을 전혀 가미하지 않고 번역을 옳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킹 제임스 영어는 현대 영어와는 뜻이 달라진 것도 여럿 있고, 이럴 때도 번역자의 해석과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영킹이 단어 뜻을 스스로 정의하는 내장사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대로 엄밀한 뜻 구분 없이 단순히 운율이나 패러프레이징 차원에서 비슷한 단어를 일부러 다르게 늘어놓은 것도 있다. slay와 kill, create / form / make 같은 거.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고 이 블로그는 킹이나 비킹, 심지어 불신자까지 다 보는 공간이니 내가 내막을 자세하게 다 늘어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거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앗싸리 오로지 영킹 그대로 번역만 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진작에 해결됐을 텐데 그것도 아니니 참 문제다.;;

그러니 이 동네에서는 아까처럼 예정이냐 자유의지냐 이런 거 논쟁은 할 필요 없고, 그 대신 비킹 입장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할 희한한 주제를 갖고 논쟁을 벌이는 지경이다.

아 끝으로.. 영킹에 하나님 영감이 또 짠~~ 임했건, 자필원문에 임했던 영감이 번역과 필사 과정에서도 쭉 내려오고 '보존'되어 왔건.. 결과물은 어쨌든 지금 우리말 성경도 영감으로 주어져 있다는 얘기 아니냐?
이거 갖고도 너무 쓸데없이 머리 쥐어뜯고 싸우지는 말자구우~~ 아멘!

Posted by 사무엘

2024/10/30 08:35 2024/10/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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