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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코아, Win32 API, MFC 같은 플랫폼 종속적인 API를 전혀 쓰지 않고 순수하게 표준 C/C++ 라이브러리 함수만으로 백 엔드 엔진만 만들었다 해도 Windows + Visual C++로 작성한 코드가 안드로이드 내지 맥 같은 다른 플랫폼에서는 곧장 컴파일 되지 않거나, 빌드된 프로그램이 의도한 대로 동작하지 않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회사에서 wchar_t 때문에 굉장한 불편을 겪었다. 잘 알다시피 Windows에서는 이게 2바이트이지만 다른 플랫폼에서는 4바이트이다. 플랫폼을 불문하고 2바이트 문자 단위로 동작하는 strcpy, strcat, strlen, printf, atoi 등등은 직접 구현이라도 해야 하는지..? 특히 파일로 읽고 쓰려면 말이다.

C++ string 클래스야 typedef std::basic_string<unsigned short> string16; 부터 먼저 만들어 놓고 썼다지만 그렇게 처음부터 객체를 만드는 게 아니라 raw memory를 다루는 상황에서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런 게 원초적인 애로사항이고 또, 소스 코드 내부에서 유니코드 문자열 상수를 표현하는 방식도 또 다른 난관이다.
언어가 제공하는 L"" 문법은 wchar_t형 기반이다. 그러니 wchar_t 말고 명시적으로 unsigned short 배열에다가는 문자열 상수를 쓸 수 없고 "가"를 { 0xac00, }로 표현하는 식의 삽질을 해야 한다.

거기에다 비주얼 C++은 C++ 소스 코드나 명령 프롬프트가 UTF8과 전혀 친화적이지 않다는 다른 문제점도 있어 더욱 불편하다. 유니코드가 등장하면서 플랫폼별로 문자열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심하게 파편화됐다는 생각이 든다.
문자열을 저장하고 메모리를 관리하는 방식이 난립하는 것 말고(string class!) 문자열을 구성하는 문자를 표현하는 방식 그 자체부터가 말이다.

2.
하루는 Visual C++에서 표준 C 함수만 사용해서 만들어 준 코드를 안드로이드 내지 맥 OS 플랫폼으로 넘겨 줬더니 컴파일 에러가 났다. wcslen 함수가 선언되지 않았다고 꼬장을 부리는데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strlen은 인식되는데 wcslen은 왜 인식이 안 되는 거지?

그런데 알고 보니 wcslen은 strlen과는 달리 string.h가 아니라 wchar.h에 선언되어 있었다.
Visual C++은 string과 wchar에 wcslen을 모두 선언해 줬지만 타 플랫폼은 그렇지 않았다. 흐음~ 나의 불찰이다.

malloc/free 함수는 stdlib.h에도 있고 malloc.h에도 있다.
memset/memcpy는 string.h에도 있고 memory.h에도 있다.
그런 예가 몇 가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wcs* 함수는 Visual C++에만 string/wchar 겸용으로 선언돼 있었던 듯하다.
C 인클루드 헤더는 한 함수가 오로지 한 헤더에만 유일하게 존재하지는 않기도 하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3.
요즘 표준 라이브러리들의 헤더 파일을 보면 함수의 인자마다 타입과 이름만 있는 게 아니라 소스 코드 정적 분석을 위한 Annotation 정보가 같이 들어있다. 같은 포인터라 해도 이건 읽기 전용, 쓰기 전용.. 쓴다면 어떤 조건으로 얼마만지 써지는지(옆의 인자만큼~) 같은 거.

그래서 함수 하나만 봐도 선언도 정말 덕지덕지 길어졌다. 이 정보들이 처음부터 있지는 않았을 텐데, 그 수많은 API들의 선언에다 일일이 다 기입하는 건 완전 중노동이었을 것 같다.
한때는 정적 분석 기능은 개발툴의 유료 최상급(엔터프라이즈 같은) 에디션에서나 접근 가능한 고급 기능이었는데, 이것도 죄다 무료로 풀리는 듯하다. 유료 GUI 툴킷이 통째로 MFC에 들어갔듯이 말이다.

4.
요즘은 CPU 아키텍처야 x86 아니면 ARM만 살아 남아서 그런지, 이식성을 논할 때 비트 순서, 일명 endian-ness 얘기는 별로 안 나오는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x86은 요지부동 리틀 엔디언인 반면, 옛날에 매킨토시의 밑천이던 PowerPC는 빅 엔디언이었다. 트루타입 폰트 포맷이 빅 엔디언 기반인 건 이런 애플의 영향력이 닿아서 그랬던 걸까?

먼 옛날 대학 시절에 터미널에 원격 접속해서 거기서 C 컴파일러를 돌려 봤던 게 본인으로서는 빅 엔디언 컴퓨터를 직접 구경한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다. 큰 자릿수가 앞부분부터 저장되다니 굉장히 신기했다. 이건 앞으로 수동 변속기 차량이라든가 IA64 (Itanium) 컴퓨터만큼이나 앞으로 또 접할 일이 없는 초희귀템으로 남을 것 같다.

최신 CPU인 ARM은 하드웨어 차원에서 endian-ness를 모두 지원하기 때문에 아무 쪽으로든 취사 선택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완벽한 양손잡이이고, 철도에다 비유하자면 좌측/우측통행 전용 복선 철도가 아니라 어느 쪽으로든 운용 가능한 단선병렬과 비슷한 격이다.
결국은 다 지원하는 것으로 가는구나. 한글 코드에서 조합형/완성형 논쟁, CPU 미시구조에서 CISC/RISC 논쟁, 리눅스에서 그놈/KDE 셸 논쟁도 다 비슷한 방식으로 종결됐듯이 말이다.

비트 순서 같은 하드웨어 특성을 타는 요소 말고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언어 차원에서.. 사소하지만 코드의 이식성을 은근히 저해하는 요소는 내 경험상 몇 가지 있었다. 그러니 GUI가 없고 특정 운영체제의 API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작정 이식이 잘 될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5.
당장 떠오르는 건, 64비트 상수를 나타내는 % 문자가 파편화돼 있다(%I64d, %lld). 그리고 long이 Windows에서는 64비트 플랫폼에서도 여전히 32비트이지만 타 플랫폼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이식성을 생각한다면, long은 파일 오프셋 계산에 영향을 주는 곳에서는 절대로 구조체 멤버로 쓰이거나 sizeof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앞서 논했던 char_t도 마찬가지이고!) 그런 데서는 정말 닥치고 int32, uint64처럼 비트수를 명시한 typedef를 쓰는 게 안전하다.

C#이나 Java, D는 아무래도 1990년대 중후반에 PC에서 32비트 CPU 정도는 확실하게 정착한 뒤에 등장한 최신 언어이다 보니, 32/64비트 플랫폼을 불문하고 long이 처음부터 일관되게 64비트였다. 하지만 C/C++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컴퓨터 하드웨어의 발전의 격변기와 동고동락했던 언어이다 보니, 저런 깔끔함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 돼 있다.

그리고, fopen에다 주는 옵션에서 r/w/a (+)만 있고 b/t 모드가 지정되지 않았을 때..
Windows는 binary 모드로 동작하는 반면 맥에서는(타 플랫폼은 확인 안 해 봄) 디폴트가 text였다. 멀쩡한 코드가 완전 엉뚱하게 동작하고 파일이 쓰라는 대로 써지지 않고 읽으라는 대로 읽히지 않아서 한창 문제를 추적했더니.. 결국은 이런 데에서 차이가 있었다. 이것도 표준 규격이 정의돼 있지 않나 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Visual C++은 fopen조차 쓰지 말고 fopen_s를 쓰라고 권한다. printf_s, qsort_s 같은 *_s 물건은 안전하고 편리하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식 불가능한 Visual C++만의 전유물로 남을지 궁금하다..

strdup와 _wcsdup는 표준처럼 생겼지만 진짜 표준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놈이다. 앞에 괜히 밑줄이 있는 게 아니다. _wtoi 이런 것도 Windows를 벗어나면 컴파일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지뢰이니 strtol, wcstol을 쓰는 게 안전하다.
strtok의 경우 Visual C++은 토큰 컨텍스트를 따로 받는 _s 버전을 추가한 반면, 타 플랫폼은 strtok, wcstok 함수 자체가 그렇게 고쳐진 것도 있다. 이런 것들도 너무 골치아프다.

6.
끝으로, 이건 이식성하고는 큰 관계가 없는 얘기다만..
형변환 연산자인 static_cast는 코드 생성 차원에서 하는 일이 전혀 없거나(base class* → derived_class*, enum → int), 뻔한 값 보정(float → int, char → int), 또는 다중 상속일 때는 컴파일 타임 때 결정된 고정된 상수만치 this 포인터 보정 정도만(derived_class_B* → base_class) 하는 걸로 으레 생각했다.

그런데 다중 상속을 다룰 때 꼭 그런 일만 하는 건 아니다. 포인터가 처음부터 NULL이었다면, 거기서 또 얼마를 뺄 게 아니라 cast된 포인터도 그냥 NULL을 주는 예외 처리를 해야 한다. 과연 생각해 보니 그렇다. 아래 코드를 생각해 보자.

struct A { int a,b; };

struct B { int c,d; };

struct C: public A, public B { int e,f; };

void foo(B *pm) { printf("Received %p\n", pm); }

int main()
{
    C m, *pm=&m;
    printf("Passing %p\n", pm); foo(pm);
    pm=NULL; printf("Passing %p\n", pm); foo(pm);
    return 0;
}

단일 상속과는 달리, 다중 상속에서 passing의 값과 received의 값이 서로 달라질 수 있다고 아는 것은 하나를 아는 것이다.
그러나 NULL일 때는 다중 상속이더라도 언제나 NULL이 유지된다는 것이 함정이다. 우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경우를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꽤 충격적이다. 간단하지만 다중 상속의 보이지 않는 오버헤드를 보여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5/13 08:29 2016/05/1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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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은 지난번 글과는 달리 성경과 신앙관을 곁들인 아이템들 위주이다.

1.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거기서도 거의 끝부분인 백보좌 심판 쪽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그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계 20:12, 15)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모든 인생 행적이 기록되고 저장돼 있는 방대한 매체가.. 무슨 거대한 IDC(데이터센터) 서버 컴퓨터라든가, 데이터베이스 백업용 자기 테이프 형태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게 무척 신기하다.
영원에서 영원까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결국은 제일 오래 가는 정보 저장 매체는 '책'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책이라는 정보 저장 매체와 관련하여 이런 엄청난 끝판왕 말씀도 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다른 일들도 많으므로 만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심지어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들을 담지 못할 줄로 나는 생각하노라. 아멘." (요 21:25)
(당연히.. 예수님이 창세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냥 평범한 30대 청년의 일거수일투족 인생 로그만 덤프 뜨는 거라면, 이 세상이라도 책들을 다 담지 못할 거라는 말은 과장일 수밖에 없지.)

2.
'테크노피아'라는 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듯, '테크놀러지 + 유토피아'의 합성어이다. 전자를 통해 후자를 이룬다는 말. 이건 전혀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다. 어느 정도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다.

과학 기술은 수많은 인간(시장경제 논리의 특성상 모든 인간까지는 아니더라도!)을 질병과 굶주림으로부터 구했으며, 단순노동 노가다로부터 해방시켜 줬다. 인간을 돌도끼 들고 야생을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게 해 줬다. 생존본능 지향적인 욕구를 충족시킨 뒤, 더 창의적이고 고차원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해 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슬로건인 Your potential, our passion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걸 경제 제도와도 결부지어서 생각해 보면, 본인은 그저 다국적 기업의 음모, 유대인 재벌의 음모 이러면서 일방적으로 자본주의만을 마귀적으로 몰고 가는 식의 선전 선동에 공감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 황금 만능주의가 아무리 부작용과 폐단, 병크가 있다 해도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그보다 훨씬 더 사악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보다 국가가 개인을 착취하는 게 훨씬 더 악하다. 신앙은 있는데 선악 구도에 대한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지 못한 채 어설픈 정의감만 있으면 흔히 말하는 '좌독' 성향이 되기 쉽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뭐 그런 그렇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국내에서 '테크노피아'라는 말은 지금으로부터 한 30여 년쯤 전에 금성사가 회사 이미지 광고를 내보내면서 썼다. 금성사 하면 국내에서 최초로 흑백 텔레비전을 만들어 낸 업체가 아니던가. LG 전자로 바뀐 뒤 2010년경에 얇은 대형 TV 광고에다가는 "기술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동일한 이념의 광고 카피를 내보내기도 했다.

LG 말고 삼성의 경우는 '휴먼테크'라는 말을 만들어서 오늘날까지 자기네 논문 공모전에다가 쓰고 있다. 그리고 현대 자동차에서도 옛날에 엘란트라를 웬 '휴먼터치 세단'이라는 수식어로 광고했는데.. 어감이 좀 이상했는지 얼마 못 가 '고성능 엘란트라'라고 바꿨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뭘 터치한다는 거지? 사람의 감성?

전세계에 테크노피아에 대한 환상이 처음으로 개발살이 난 때는 1차 세계 대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과학기술 무용론, 문명의 이기 거부 쪽으로 갈 필요는 없다. 이 자연에는 애초에 선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인은 유사의학, 친환경, 백신 반대 이런 거 공감하지 않으며, 원자력 발전도 적극 찬성론자이고.. 뭐 그렇다.

단지 과학 기술은 마치 칼이나 돈처럼 가치 중립적인 도구일 뿐이다. 마치 "총칼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다"라는 말이 있듯, 과학 기술도 저렇게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반대로 사람을 온통 타락시키고 죄 짓게 만드는 데 쓰이는 것 역시 가능하다. 단순히 원자력처럼 물리적으로 위험한 기술만 위험한 게 아니다.

또한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죄 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고 타락 이래로 세상에 내려진 저주와 엔트로피 증가 자체를 거꾸로 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모 성경 구절이 제아무리 패러디 되더라도, 인간에게 진짜로 자유를 선사할 수 있는 건 기술이나 노동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진리'라는 사실도 변함없을 것이다.

3.
그러고 보니, "총칼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일 뿐이다"
이건 특히 미국에서 총기 규제/금지를 반대하고 개인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전미 라이플 협회(NRA) 같은 단체에서 들이대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총기를 금지한다고 해서 금지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결국 진짜 총을 뺏어야 할 나쁜놈들에게서 총을 완전히 없애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니 너라도 총을 구입해서 이 험악한 세상에서 네 목숨 지켜야 한다.. 뭐 이런 논리.

개인적으로는 그 논리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난 크리스천으로서 절대악을 놔두고서 필요악만 나쁘다고 없애자는 식의 논리에는 어떤 형태로든 전혀 찬성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지, 총칼이 사람을 죽이는 거 아니다.
무기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역사적으로 볼 때 시민들이 무장을 강제로 해제당한 뒤에 악당들에게 더 참혹한 꼴 험한 꼴을 많이 당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가 되는 과정에서 군인들은 무장해제 당하고 백성들 역시 사냥용 무기나 위험물은 압수 당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의 지배를 받을 때 무장해제 차원에서 쇠붙이를 몽땅 빼앗겨서 농기구조차 빌려 쓸 지경이 됐었다. 같은 맥락으로, 미국 같은 나라에서 크리스천들이 "총을 빼앗긴 다음에는 성경을 빼앗길 거다" 식으로 생각하는 거 공감한다.

무기를 동원해서 내 집을 내가 지키는 건 부부관계 사생활만큼이나 정말 신성한 권리이며, 그 어떤 이유로든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는 행위는 정말 목숨을 거는 위험한 짓이 돼야 하는 게 마땅하다. 어쩌다 싸이코 미친놈 때문에 발생하는 총기 사고 같은 건 저 자유라는 대전제 하에서 일부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법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뿐이다.

옛날에 영화 배우 찰턴 헤스턴이 한때는 월남전 반전 시위도 했을 정도로 그쪽으로 진보 성향이었으나, 총기 소유에 관한 한은 꼴보수 스탯을 유지해서 NRA 회장으로 활동했던 것 유명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영화 <연평해전>에서는 어째 된 일인지 저 말과는 정반대 심상의 말이 있다.. 총기 소유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쪽으로 반대다.

"약이 사람 살리는 거 아니다. 사람이 사람 살리는 거다." (한 상국 중사. 배 위에서 야식 먹으면서 신참 박 동혁에게)
사람을 살리는 것도 사람, 죽이는 것도 사람. 이게 문득 생각이 났다.
난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지만.. 일단 인상깊게 보는 영화는 대사를 다 외운다.

4.
프로그래머의 최종 테크는 치킨집 사장이고, 억만장자의 최종 테크는 건물주 임대업자라고 한다. (☞ 관련 링크)

오죽했으면 대한민국 땅에서 조물주보다 더 위대한 건 건물주랜다. "의느님", "천당 위에 분당" 이래로 내가 무릎을 쳤을 정도로 기발한 신조어다. =_=;;
"건물은 내가 직접 벌어서는 살 수가 없어요. 받아야죠. 그 방법밖에 없어요." (모 자산 관리소장 인터뷰 중)

난 누구처럼 뭐 지금 사회 구조가 엿같네, 금수저 은수저 계급론 그딴 거 거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돈으로 돈 버는 건 정도의 문제이지 그 자체를 나쁘다고 죄악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도 그놈의 임대업인지 뭔지 하면서 생업 걱정 없이 날개셋 한글 입력기 코딩이나 평생 펑펑 하고 싶긴 하다.

외제 명품 호화 사치 유흥 음주가무 주색잡기 같은 건 정말 하나도 눈꼽만치도 관심 없음. 그리고 돈 너무 많아서 에쿠스만 굴리고 다니느라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도 못 들어본 사람들은 난 교통 분야에 한해서는 전혀 부럽지 않다.
부러운 건 딱 하나. 돈 자체가 아니라 코딩할 시간이 있다는 게 부러울 뿐이다.

물론 아무 부동산이나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100% 돈 놓고 돈 먹기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아무 건물이나 공실률이 없이 빵빵 입주자가 들어오는 게 아님. 이거도 여느 자영업만큼이나, 투자 잘못해서 본전도 못 뽑고 망한 사람이 역시 당연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는 어디에든 땅 내지 집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인 건 사실이다.
구약에 나오는 "땅을 상속 받으리라"가 얼마나 큰 복인지, 그리고 한국 교회가 어째서 물질주의 기복신앙으로 빠져들었고 왜 걸핏하면 땅, 건물에 목숨을 거는지, 왜 "성전 건축 헌금"이 있는지가 이해가 된다.

그에 반해 신약 성도는 세상에서 알박은 거처가 없이, 복은 일단 영적인 형태이며 이 세상에서 순례자(pilgrim)라고만 표현돼 있다. 이것만 생각해도 소위 십일조 헌금이라는 건 교회와 얼마나 안 어울리는 이상한 관행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솔직히 성경은 의식주 중에서 의식에 비해 '주'는 상대적으로 덜 강조한다(딤전 6:8, 눅 3:11, 마 6:25 등).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 성경에는 요셉이 흉년을 빌미로 전국의 모든 농토를 국유화해 버린 게 나온다(창 47). 이때에 요셉이 취한 정책은 일종의 무상 몰수 유상 분배였는데 성경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룻기도 부동산 상속과 관계가 있는 책이고.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 봤으면 싶다.

끝으로 중요한 것. "건물은 내 힘으로 돈 벌어서는 절대로 살 수 없어요. 받아야죠. 그 방법밖에 없어요"에는 의외로 굉장한 성경적인 진리가 담겨 있다.
칭의와 '구원'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저런 관념이 박혔으면 좋겠다. -_-;;

5.
오늘날 인간은 채식만 해서는 제대로 영양 공급을 받을 수 없다. 몸 관리를 위해서는 육류를 통한 단백질 공급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다니엘의 시험이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또한, 소림사에서도 한창 성장을 해야 하는 동자승 내지 무술 수련을 하는 승려들은 고기를 부득이하게 먹는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정작 인간에게 단백질을 공급해 주는 소는 어째서 풀만 먹어도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걸까? 인간 중에서는 거의 최 배달 같은 전문 파이터-_-나 소를 상대했네 뭐네 그러지 않던가?

생물학적으로 간단히만 말하면, 소는 풀로부터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성분도 몽땅 소화해서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뽕'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염소만 해도 셀룰로오스를 소화할 수 있어서 종이를 먹을 수 있는 반면,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동물은 원래 이론적으로는 풀만 먹어도 저렇게 크고 힘센 개체로 성장이 가능하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성경에도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유독 소에다 비유한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욥기에서 베헤못이라는 영적 괴물이 소처럼 우적우적 풀을 뜯어 먹는댄다. (욥 40:15)
미래에 천년왕국 때는 땅의 저주가 풀려서 사자도 소처럼 풀만 먹는 초식동물로 바뀔 거랜다. (사 11:7, 65:25) 어렸을 때 교회 댕긴 애들은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노래 기억하실 것이다.
그리고 다니엘서에서도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미쳐 버렸을 때 "소처럼" 풀을 뜯어먹으며 지내게 될 거라고 경고하는 게 나오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한다. (단 4~5)

사람은 소처럼 아무 풀이나 짚을 먹을 수는 없다. 그러니 옛날에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딱히 식량 보급이 없더라도) 길가의 풀을 알아서 뜯어먹으며 진격하라"라는 미친 명령을 내렸던 일본의 졸장 무다구치 렌야 장군이 더욱 병맛스럽게 느껴진다.

뭐, 사람은 풀뿐만이 아니라 고기도 아무렇게나는 못 먹는다. 다른 육식 동물은 야생에서 초식 동물의 생살과 내장을 생으로 뜯어먹고, 반쯤 썩거나 상한 것까지도 막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 반드시 익혀서 먹어야 한다. 사람이 기생충 같은 거 오염에 더 취약한 듯하다.

6.
아이고, 골치아픈 잡생각을 많이 늘어놓았는데, 끝으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스타일의 위대한 성경 목록가 오케스트라를 소개하며 글을 맺겠다.

창세기, 생명의 호흡
출애굽기, 유월절 어린양
레위기, 우리의 대제사장
(...)
잠언, 외치는 지혜
(...)
마태 마가 누가 요한, 하나님, 사람, 메시야
(...)
계시록, 왕들의 왕, 주들의 주


이게 단순히 성경 각 책들의 요약 소개가 아니라, 각 책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고 있다.
First Assembly of God라는 곳에서 공연한 걸로 보이는데.. 정말 웅장하고 훌륭한 찬양이다. 가사는 다 외워 버릴 가치가 있다.

처음엔 조용한 단조풍으로 시작하다가 스케일이 갈수록 커진다. He is. (그분은 계신다, 모든 것이 되신다~~)
난 이미 음성 추출해서 차에서 듣고 있다.
S. M. Lockeridge라는 목사가 1976년에 했다는 "그분은 나의 왕이십니다!"라는 엄청난 설교를 떠올리게 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들어 보시라.

Posted by 사무엘

2016/05/10 19:36 2016/05/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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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생활 관련 잡설

1.
내가 한겨울에 운전을 하면서 지금까지 본 가장 낮은 기온은 -13도이다.
그런데 기온이 영상과 영하를 오락가락 할 때 차에서 표시해 주는 온도계를 보면, 가끔 0도라고 표시할 때도 있고 -0도라고 표시할 때도 있다.

기온이 영상이었다가 어느 땐가 영하로 내려갔다면, 그 사이에 0도이던 순간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존재했겠다는 중간값 정리 개드립이 떠오르는 한편으로.. (시각 t에 대한 기온 변화 함수는 연속함수일 테니..)
또 하나 떠오른 생각은.. "저 컴퓨터는 온도를 내부적으로 부동소수점 실수로 표현하고 있겠구나!"였다.

2의 보수 기반 정수로 표현했다면 0이 두 종류가 있을 수가 없었을 테니까.
이공계 지식을 알면 기계 내부의 별별 디테일이 머리에 들어온다.
그나저나 연도에는 서기 0년이 없다고 한다. 서기 1년의 이전 해는 바로 기원전 1년. 마치 건물에서 지상 1층의 아래는 0층이 아니라 바로 지하 1층인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2.
밤에 잠을 자는데 그냥 평범한 침실이 아니라, 밖에 어디 아늑하고 아담하고 눈에 안 띄는 곳에 콕 짱박혀서 자고 싶다. 집 밖에서 야영을 하고 싶다.
하루 종일 대형 트럭이나 트레일러를 몰다가 밤에 뒷좌석의 간이 침대에서 길다랗게 누워 자는 화물차 운전사 있잖아.. 뭐 그런 거에 갑자기 꽂혀서 로망이 생겼다.

트럭이 아니라 버스도. 땅 넓어서 이동에 며칠씩 걸리는 나라에서는 버스 안에도 화장실이 있고 운전사가 두 명 타서 한 명은 운전하고 다른 한 명은 짐칸에서 자다가 몇 시간 주기로 교대 근무를 한다는데.. 뭐 그렇게 자는 것도 좋다. 되게 편안하게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청계천 공원이나, 아예 깊은 산 속 수풀 덤불에 짱박혀서 침낭과 외투 껴입고 자고 싶기도 하고,
무슨 무장공비나 북파공작원처럼 비트 파서 맥북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아 근데.. 산에서 자면... 그땐 식물들도 광합성 안 하고 호흡만 하기 때문에 산소 공급 측면에서는 안 좋으려나.

성경을 동원해서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밖은 폭풍 때문에 배가 다 가라앉게 생겼는데 밑전에서 쿨쿨 잘 쳐자던 요나처럼 자고 싶다. 서리해서 먹는 수박이 박진감 넘치고 더 맛있듯, 저거 그야말로 꿀잠이지 않았을까? 오죽했으면 선장이 한심해서 sleeper라는 단어까지 썼다. ㅋㅋ

3.
과식과 과속은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다. 다음은 고기와 관련된 명언들이다.

  •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죠." (베어 그릴스)
  • "밥상에 자연의 향기가 물씬 풍기네. 자연에도 달리는 동물이 있는데 여긴 그게 없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빨리 라면 끓여 주세요~~" 의 주인공. ㅠㅠㅠ 그런데 세종대왕도 딱 저런 타입이었다~ 고기와 학문을 사랑하신 우리 대왕님)
  • "이모, 반찬이 죄다 잡범이네. 아니, 어떻게 살인사건이 하나도 없나?" (영화 아저씨 대사 중)
  •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일본군 병맛 졸장 무타구치 렌야)

4.
지금까지 컵라면으로만 접하던 육개장 사발면이 언제부턴가 봉지 라면으로도 나오는 걸 편의점에서 봤다.
이걸 보니 딱 바로 든 생각은... 뭔가 스마트폰 앱이 데스크톱 PC용으로 포팅되어 출시된 듯한 느낌이다~~!! 카카오톡처럼.
신라면과 짜파게티는 반대로 PC에서 오랜 인기를 누리던 장수 소프트웨어가 모바일용으로 포팅된 예이다.
식당에서 라면을 시켰을 때 보통은 면이나 스프가 신라면 베이스가 많다고 하는데, 그럼 이건 서버 기반의 웹 애플리케이션인 걸까? =_=;; 라면 하나를 두고도 별 희한한 생각이 다 들었다. ^^

5.
2000년대 이래로 우리나라 가요계는 그야말로 그냥 아이돌도 아니고 '걸그룹' 아이돌 위주로 구도가 급격히 바뀐 듯하다. H.O.T 같은 남자 그룹도 아니고, 이 효리나 박 정현 같은 여성 솔로도 아니고.. 하긴 옛날에는 핑클이나 SES 같은 그룹도 있긴 했다만 요즘은 그때보다 애들이 더 어리고, 무엇보다 그룹 당 인원 수가 무진장 많으며 게다가 다국적이기까지 하다. 아이고 정말 정신없다. 그 와중에도 아이유는 어째 솔로로 여전히 잘 나가고는 있다만...

올해 연초에 방영됐던 '프로듀스 101'은 참 인상적이었다. 슈스케 시리즈보다 스케일과 선정성이 더 커졌다. "정말 자본주의의 진수이구나.. 도대체 어떤 사람이 약 빨고 이런 프로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저런 걸 한다고 또 저기 출연을 하는 여자애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참가를 신청해서 저 고생인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출연자들은 다들 98년에서 2002년생.. 나보다 띠동갑 이상으로 어린 걸 보고는 기겁을 했다.

예능과 끼만으로 돈 버는 게 쉬울 리가 있겠나..;; 저런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학업 스트레스가 낫지. 나중에 내 자녀가 철딱서니 없이 '나도 연예인 될래. 걸그룹 아이돌 할래' 이러면 참 골치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드라마도 그렇고 노래도 그렇고.. 정공파로 나가는 건 약발이 다했으니 '병맛'으로 승부하는 것 같다. "병맛으로 인한 중독성 때문에 욕을 하면서도 저게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자꾸 보게 된다" 같은 것이랄까.. 텔미, 크레용팝 빠빠빠, 픽 미 다 그런 부류인 것 같다. 걸그룹과 관련해서 본인이 최근에 얻은 경험으로는..;;

  • 서현과 설현이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걸 얼마 전에 확실하게 깨우쳤다. 특히 설현은 쏠 스마트폰 CF에 출연해서 더 유명해졌다.
  • 10년이 넘게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의 약자로만 알았던 이니셜이 이제는 걸그룹 명칭이 됐구나. 101이 그대로 알파벳으로.. 참 기발하다. =_=;;
  • 크레용팝 빠빠빠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곳은 서울 아차산 기슭에 자리잡은 폐업한 유원지인 "용마랜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뮤비에 나온 장면을 항공 사진 지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 한때 교회에서 <주께 가오니>를 굉장히 과격한 독수리춤 안무로 표현해서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던 그 당사자가.. 훗날 트와이스라는 걸그룹의 멤버로 데뷔했음을 알게 됐다! 이름은 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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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석면은 거의 방사능 물질과 같은 급으로 왕창 위험한 물질이었구나. 수 년 전부터 "지하철 역사 내부에서 석면 검출" 이러는 뉴스 보도를 여느 "미세먼지 주의보"처럼 그리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지내 왔는데.. 그렇게 사소하게 치부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슬레이트 지붕도 전부 석면이라면.. 그렇게도 위험한 물질인 것치고는 일상생활에서 너무 흔히 봐 왔는데 말이다.

보온· 단열재로 쓰였다는데 그럼 스티로폼과도 용도가 비슷한 건가?
한 분야에서 가성비가 아주 뛰어난 물건이 환경을 치명적으로 파괴하고 인체에 안 좋다는 게 뒤늦게 밝혀져서 흑역사로 전락한 게.. 토머스 미즐리의 발명품 말고도 더 있었다.

7.
끝으로, 운전자의 직업병을 소개한다.
골목길을 거닐다가 옆에 요런 적당한 공터를 발견하면.. 차를 세워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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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발견한 어느 한적한 골목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5/08 08:23 2016/05/0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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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역사에 대해서 글을 쓰는 건 거의 3년 반 만에 처음인 것 같다.
지난번 자동차 이야기에 이어, 이번엔 화제를 VIP의 애마 말고 다른 쪽으로 좀 돌리도록 하겠다.

까마득히 먼 옛날인 순종 황제라든가 이 승만· 김 일성 같은 사람이 몰았던 차는 유니크템으로서 오늘날까지 실물이 존재하는데..
정작 해방 후에 한국 땅에서 직접 처음부터 조립해서 생산된 최초의 자동차인 '시발'(1955)은 의외로 실차가 오늘날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이거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발은 차체 외형은 자동 기계 공작 없이 엔지니어가 일일이 손으로 두들기고 펴서 만들고, 엔진은 미국 자동차 부품을 불법 복제해서 넣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이 물건들은 수출로 팔려 나가지는 못했을 것이고, 차량이 한물 갈 때쯤 다들 폐차 처분되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자동차 박물관 같은 데에 전시돼 있는 시발 택시는 그 시절에 달렸던 실차가 아니며, 다들 레플리카이다(예전의 고증을 반영해서 후대에 옛 물건을 일부러 새로 만든 복원품). 지금 불국사가 신라 시대에 지어진 원판이 아니라 훗날 재건된 건물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발 이후에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를 현대 자동차 위주로 좀 늘어 놓으면 이렇다.

  • 코티나(1968): 현대 자동차가 창립 후 면허 생산한 최초의 자동차. 외국의 자동차를 단순히 완제품 수입만 해서 판 게 아니라 면허 생산한 것임.
  • 포니(1975~1976): 잘 알다시피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 디자인 자체는 외국의 디자이너(쥬지아로)가 한 것이고 엔진도 일제(미쓰비시 새턴)이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지구상에 없던 모양의 자동차를 한국 땅에서 생산해 내는 데 성공함.
  • 프레스토(1985): 포니의 후속으로 개발된 포니 엑셀의 세단형 버전에 붙은 별칭이며, 요건 현대차 최초의 전륜구동 승용차이다. 전륜구동은 후륜구동보다 부품 수가 더 적지만 만들기는 더 어려웠다. 첫 승용차인 포니가 괜히 후륜구동이었던 게 아님.
  • 엑셀(1989): 연료 분사 방식이 카뷰레터에서 전자제어 다중분사(MPI)로 넘어가는 과도기. 최신 기술은 최상위 모델인 GLSi에서 첫 도입됐다. 이때 CF에서는 자동차에도 드디어 컴퓨터가 들어간다며 최첨단 기술이랍시고 왕창 자랑을 해 댔었다.
  • 엘란트라(1990): DOHC 흡기 방식 도입으로 엔진 출력 향상. 이 역시 최신 기술은 최상위 모델에 도입되곤 했다. 엘란트라 이전엔 그랜저의 최상위 모델인 V6 3000cc (1989)짜리도 SOHC 방식이었다.
  • 스쿠프(1991): 최초의 2도어 쿠페. 엔진을 최초로 독자 개발(알파 엔진). 터보차저
  • 액센트(1994): 최초로 로얄티가 전혀 들지 않고 현대 자동차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100% 독자 개발한 승용차다. 이만치 기술이 발달했다.

확실히 현대 자동차의 역사는 포드 사와 기술 제휴를 하던 시절과, 그 후 미쯔비시 사와 손잡은 시절로 시즌 1과 2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와 미쓰비시 사이의 기술 주종 관계 역전은 우리나라의 자동차 역사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구나 공동 개발한 자동차들이 하필 일본에서는 다 망했는데 한국에서만 대박을 친 것도 신기하고 말이다(그랜저/데보네어 V, 에쿠스/프라우디아).

1990년대에 자동차의 엔진 성능은 비슷한 시기에 무슨 컴퓨터의 클럭 속도가 증가한 것만치 그 정도로 폭발적으로 뻥튀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요즘 차는 같은 배기량으로도 몇십 년 전 자동차가 상상도 못 할 만치 큰 출력이 나오는 건 사실이다. 특히 DOHC 흡기라든가 터보차저가 엔진 출력을 크게 끌어올려 주긴 했다.

포니 같은 옛날 차들을 보면 엔진룸이 요즘 차보다 더 길고 각지게 돌출돼 있는 주제에 정작 뚜껑을 열어 보면 공간은 더 휑하다. 부품들도 다 기계식이고 단순하다.
하지만 요즘 차들은 온통 복잡한 전자 부품들로 가득하고 그러면서도 엔진룸은 최대한 줄이고 객실 공간을 짜내다시피하게 설계된 것이 눈에 선하다.

포니부터 시작해서 엑셀, 스텔라, 쏘나타 Y2까지 그 시절 자동차들은 조르제토 쥬지아로의 디자인이다. 그러나 1986년에 나온 각그랜저는 시간대가 얼추 저 시절에 듦에도 불구하고 쥬지아로의 디자인이 아니며, 디자인과 설계까지 모두 현대/미쓰비시 공동 개발이다. 우리나라의 동전 중에 500원만이 다른 동전보다 늦게 따로 등장했으며, 열차 명칭 중에 새마을호는 비둘기/통일/무궁화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먼저 쓰이고 있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쥬지아로 이후로 한참 뒤, 2000년대 말에 fluidic sculpture라는 이념 하에 YF 쏘나타와 아반떼 MD를 디자인한 사람은 안드레 허드슨이라는 미국인이다. 쏘나타는 미국물 먹은 디자인이고, 경쟁 차종인 K5는 유럽물 먹은 디자인이라고 흔히 비교되곤 했다.

* 보너스: 현대 자동차의 차명 관련 개드립

  • 코티나: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 자동차가 생산한 최초의 차량이다. 최초라는 건 시행착오의 시범타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의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인해 차가 생각보다 잘 퍼지고 고장이 잦았던지라, 코티나의 초창기 모델은 '고치나', '코피나', '골치나' 등 불명예스러운 개드립이 많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치면 버그가 꽤 많았던 듯.
  • 그라나다: 역시 유럽 포드 사의 차량을 면허 생산한 것이다. 얘는 그 당시로서는 그랜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꿈의 최고급 승용차였으며, 국내에 아직도 이 차를 애지중지 관리 잘 하면서 소장 중인 사람이 있다. 채널 A 카톡쇼에서 그 차주와 차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제18회).. 차주의 가족들은 차명에서 G를 B로 바꿔서 차를 '불안하다'라고 부른다고 한다. 너무 옛날 차여서 언제 갑자기 퍼질지 몰라서 타기 불안하다고. -_-;;
  • 쏘나타: '소나 타'. 이건 그 당시 경쟁사(대우?)의 회장조차도 현대를 디스할 때 구사한 드립이라고 한다.-_-;;; 한국어 보조사의 특성상 나름 중의성도 있다. (1) 사람이 아닌 소를 싣는 데 적합한 차라는 의미와, (2) 이런 저질 차를 탈 바에야 차라리 소를 타는 게 낫다는 의미. 그래서 1985년에 스텔라의 최상위 트림으로 Y1 모델이 나왔을 때에는 CF에 분명히 '소나타'라고 기재돼 있었지만, 그 이듬해, 심지어 Y2이 나오기도 전에 곧장 '쏘나타'라고 한글 표기가 ㅅ이 ㅆ으로 바뀌었다!
  • 에쿠스: 어느 난센스퀴즈에 따르면, 궁예가 타고 다니는 차라고 한다. -_-;; 글쎄, 한 나라의 국왕이니까 저 정도 기함급 승용차를 몰 만도 하겠다. 그런데 이젠 에쿠스도 단종되고 제네시스 EQ 900으로 넘어갔으니 옛날 이야기가 됐다.

소나타/쏘나타 드립에 대해서는 다음 사진과 화면을 참고할 것.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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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과거에 쏘나타는 후면 엠블렘의 첫 글자가 떨어져 나가서 '오나타'라고 바뀌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름 하나 갖고 참..;; 조감도가 한 획만 빠져서 오감도로 바뀐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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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6/05/06 08:38 2016/05/0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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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처럼, 좋게 말하면 심오하고 나쁘게 말하면 '그래서 뭐 어쨌다고?' 병맛스러운 저 말을 한 사람은 20세기 초에 영국의 유명한 산악인인 조지 맬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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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저 말이 나온 주변 맥락과 뉘앙스는 그렇게 고상하지 않았다.
"왜 산을 오르시는지?" / "(아 씨바, 날파리 같은 기자들한테 같은 대답 90번만 더 하면 100번이네...) 왜긴,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르는 거지 딴 이유가 있겠어요?" 이런 성가신 상황이었다. -_-;;
실제로 저 사람은 성격이 꽤 저돌· 괴팍·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이었다. 괄호 안의 말은 내가 아무 근거 없이 상상만으로 윤색해 넣은 게 아니다.

난 이말년 씨리즈 <아낌없이 아끼는 사나이> 편에서 저 말을 난생 처음으로 접했다. 거기서는 "내가 아끼는 이유는 아낄 것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라고 패러디됐다. 아 이말년은 교양과 상식을 더해 주는 유익한 만화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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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드립은 나라도 치겠다. "내가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자꾸 버전업 하는 이유는 코딩할 게 거기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1924년에 해발 고도가 8848m에 달하는 에베레스트 산을 올랐다. 정상을 불과 몇백 m (높이) 정도만 남긴 제6캠프에서 마지막 일꾼 및 셰르파 가이드들과 작별한 뒤, 제7 캠프를 만들 재료들을 들고 뿌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이제 산소통 운반을 도와 주는 앤드루 어빈이라는 파트너하고만 동행했다. 그 시절엔 산소통이 지금보다 더 크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목적지와 가까워질수록 보급을 담당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이탈한다는 점에서는 마치 연료통을 하나 둘 떼어내면서 상승하는 우주선 로켓과도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제7 캠프를 넘어선 뒤, 악천후 속에서 그대로 실종되어 버렸고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나중에 그가 빙벽에다 꽂은 피켈이 발견되었지만, 올라가는 중에 박은 건지 아니면 하산 중에 박은 건지 판별할 수 없었다. 즉, 그가 사고로 죽긴 했지만 에베레스트 정상을 실제로 정복했느냐 안 했느냐는 산악계의 긴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영국은 10여 년 전에 남극점과 북극점의 최초 정복도 대영제국 소속이 아닌 사람에게 뺏긴 적이 있던지라, 에베레스트 산의 최초 정복만은 기필코 자국인이 이뤄 내길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공식적으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최초로 정복한 걸로 인정되는 사람은 뉴질랜드 출신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셰르파) 듀엣이다. 시기는 1953년. 에휴, 그래도 뉴질랜드 정도만 해도 영연방의 범주에는 들지 않나.

만약 맬러리가 이들보다도 30년 가까이 먼저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밟았다면 이는 엄청난 일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당시의 날씨와 열악한 장비를 감안하건대 그건 불가능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하산 중이 아닌 등산 중에 죽었을 거다)
수학으로 치면 페르마의 대정리는 1990년대에 상상을 초월하게 복잡한 현대 수학 이론을 총동원해서야 겨우 증명이 완결됐는데, 설마 1600년대 사람인 페르마가 수학적으로 아무 오류 없이 그 명제를 완벽하게 증명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추정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고인의 유품 중에 정상 인증샷을 찍은 카메라 필름이라도 있었으면 정상 정복 여부 논란이 확실하게 종결됐을 텐데 그게 발견되지 못했던가 아니면 시간이 너무 오래 되어 필름이 다 망가졌던가.. 아무튼 그 방법으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힐러리/텐징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달했을 때에도 주변에는 깃발이라든가 인간이 닿은 흔적 같은 건 주변에 전혀 없었고 말이다.

1924년으로부터 무려 75년이 지난 1999년 5월에는 국제적으로 조직된 수색단의 수색에 의해 조지 맬러리의 시신이 드디어 발견되었다. 타이타닉 호도 1912년에 침몰했고 잠수정에 의해 침몰 잔해가 최초로 발견된 게 1985년인가 1986년이니, 시간 간격(74년)이 서로 비슷하다.

시신 사진 보기

등산복은 상당 부분 삭아 없어졌지만 추운 날씨 덕에 고인을 알아볼 수는 있는 형태였다. 시신은 앞으로 엎드린 자세였고, 동선을 재구성해 보니 산소도 부족하고 너무 숨가쁘고 힘든 상황에서 아마 추락사를 했을 거라는 결론이 도출됐다고 한다.
실제로 저런 고산 지대에 폐활량 훈련을 따로 받지 않은 일반인이 내던져지면, 한 발자국만 내디뎌도 숨이 너무 차서 견딜 수가 없어진댄다. 이거 무슨 우주 비행사나 전투기 조종사가 받는 G 견디기 훈련도 아니고..

맬러리는 저렇게 시신이라도 발견된 반면, 파트너인 앤드루 어빈은 여전히 아무 흔적조차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한 증발 상태이다. 에베레스트 산은 히말라야 산맥의 산들 중에 워낙 유명하고 등산로도 다 개척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일부 운 나쁜 산악인들은 등반을 시도했다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공동묘지라는 타이틀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고 한다.

페르시아의 왕자나 툼 레이더 같은 게임이야 분위기 내는 차원에서 던전 한쪽 구석에 해골이 놓여 있는 반면, 저기는 해골이 실사판으로 존재한다. 지나가는 등산가들은 그걸 "그저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보고 넘어간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한편, 맬러리 이후에 에베레스트 산을 확실하게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는 서로 정말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정상을 몇 발자국 앞두고 서로 "니가 먼저 가라" 그랬을 정도로. 의 좋은 형제 그 자체였다.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서유기 -- 여행의 끝>과는 정말 대조되는 장면이다.

정상 인증샷에는 온통 텐징의 사진만 있고 힐러리의 사진은 없는데.. 원주민인 텐징이 카메라를 다루는 방법을 몰라서 힐러리가 찍은 사진만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딱히 남에게 카메라 사용법을 가르칠 만한 상황은 못 됐다"는 게 그의 공식적인 답변이다. 그땐 카메라가 더 크고 무겁고 복잡했으며, 요즘처럼 스마트폰에 셀카봉이 있던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내려갈 거 왜 산을 오릅니까?"라고만 생각하면 등산만치 삽질스러운 짓도 별로 없을 거다. 딱히 운동이나 경치 감상, 탐험에 애착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삽니까?" 정도의 어리석은 질문으로 치부하는 산악인들은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난 그 정도로 거창한 이념은 없고, 그냥 운동과 경치 감상, 탐험을 목적으로 요 근래에 등산을 좀 시작하고 있다. 높이가 에베레스트의 10%도 채 안 되는 산들이만. ^^

Posted by 사무엘

2016/05/03 19:37 2016/05/0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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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양 아래

개그에 장난끼가 농후하던 <디 인터뷰>보다야 훨씬 더 고퀄이고 진지하고 고증 잘 됐고,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외국 영화가 하나 만들어져 나왔다. 감독은 러시아 사람임. 본인은 바로 극장에 가서 관람했다. 이런 진귀한 영상은 돈 주고 볼 가치가 있다.
제목이 태양 아래(under the sun)라니, 영락없이 전도서의 표현에서 모티브를 딴 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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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엔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가 그야말로 국내외로 초대박을 쳤는데, 한편으로 뭔가 반인륜 범죄를 폭로하는 영상물에도 '태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경우가 있다. 국내에 마루타라고 소개되었던 1988년작 고어 영화 <흑태양 731>도 영어 제목은 the men BEHIND the sun이다. 물론, 이제 와서 북괴는 잔학함(함수의 특정 지점 최대값)과 지속 기간(함수의 구간 적분값)이 둘 모두 과거 일제를 능가하고 있긴 하다만 말이다.

<태양 아래>는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딱히 스릴 넘치게 싸우고 죽이는 장면 같은 건 전혀 없다. 이건 탈북자나 북한 지하 교회, 국경의 버려진 꽃제비나 정치범 수용소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며, 오히려 완전히 반대다.
북한이 외국인에게 어느 정도 촬영해도 좋다고 허가를 했을 정도로, 평양에서 핵심계층으로 최상위급으로 잘사는 어느 집안의 애가 2014년도 김 일성 탄신일(태양절) 행사를 앞두고 소년단에 가입하고 행사 준비에 어떻게 투입되는지를 굉장히 잘 묘사해 놓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그러니 잘 조작되고 각본대로 돌아가고, 북이 찍어도 좋다고 OK 한 장면 위주로 영화를 만든 건데 애초에 그런 위기나 돌발상황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장면에다가 감독이 위험을 무릅쓰고 추가로 몰래 찍은 북한의 민낯 폭로 장면이 들어갔을 뿐이다.

영화에서 먼저 인상적으로 와 닿았던 건 언어와 말투다.
이 영화에는 북한 사람들의 라이브 실황이 담겨 있다. 남한 사람이나 다른 외국인, 재외 교포가 북한 사람을 어설프게 연기한 게 아니다.
먼 옛날, 초등학교 사회/도덕 시간에 교과서에서 "남과 북은 언어도 차츰 이질감이 생기고 있다"의 예로 딱 한 번 들은 걸로 기억하는 북한말 '마사지다'(못 쓰도록 망가지다)를 현지인이 구사하는 걸 난생 처음 봤다. 저 영화 중에 나온다.
" '입빠이'는 일본어 잔재이니 쓰지 맙시다" 이런 말은 여러 번 들었지만, 일본 사람이 직접 저 말을 쓰는 걸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서 봤을 때 신기하게 느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평양 사람들이 대놓고 "일정이 급하지비. 날래 하라우. 내레 죽겠시요." 이렇게 사투리를 구사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신이 보낸 사람>에서는 남한의 배우가 종결어미만 저렇게 어설프게 북한 말 흉내를 내면서 북한 사람 연기를 했지만, 현실적으로 진짜로 어색하고 북한말처럼 느껴지는 요소는 내가 이 자리에서 차마 흉내내기 어려운 고유한 억양이더라.

학교에서는 한복을 입은 여선생이 김 일성 수령님의 리즈 시절 행적을 설파한다. 사악한 왜놈과 지주놈들을 방법했으며, 1950년에 원쑤 미국놈들이 백두조선을 침략했을 때 전투기를 무슨 척 노리스처럼 빵~ 하고 떨어뜨리면서 무용담을 남겼다고 가르친다.
애들이 언제부터 세뇌 받았는지 "동방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고운 나라래서 이름도 '조선'이래요. 아~ 세상에 부러울 것 없어라" 이런 오글거리는 노래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부른다. 여기가 정녕 2016년에 서울에서 불과 200km쯤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말인가... 연기가 아니라 라이브 실황??

수령님의 탄신일이 다가오니 평양의 어린이들은 다들 온갖 매스게임에 동원된다. 체제 선전 내지 외화벌이용으로. 저것들 정말 얼마나 연습해서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2012년쯤이던가, 이 명박 대통령이 이 태양절 행사를 겨냥해서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에 돈지랄 안 하면 인민이 얼마든지 더 먹고 살 수 있다"라는 요지로 살짝 쿠사리를 먹였더니.. (말 표현을 대놓고 저렇게 한 건 당연히 아니지만, 뜻은 통하게)
북에서는 발끈 해서 "우리의 최고존엄을 모독한 불구대천의 원쑤 쥐명박 역적패당 무리를 죽탕치자!!"라는 구호로 또 인민들을 끌어들이며 더 지X을 해 댔다. 이에 대해 더 자세한 사항은 옛날 글을 참고할 것.
그런 식의 인민 동원이 내부적으로 어떻게 이뤄지고 각본이 어떻게 짜여지는지, 저거 연기를 하다가 어떤 NG가 나기도 하는지를 저 영화를 보면 얼추 알 수 있다.

그렇게 밤낮으로 안무 공연 연습을 하던 중, 여자애 하나가 발목이 삐어서 병원 입원 신세를 지게 됐다.
그러자 학교 선생과 급우들이 단체로 문병을 가는 장면도 선전용으로 취재해서 내보냈는데.. 선물에 잔뜩 둘러싸여 있는 당사자는 "저는 수령님의 은덕으로 완치 중입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복귀하겠습니다" 이러고, 선생과 급우들은 "네가 없으니 너무 가슴이 아파 연습이 안 될 지경이야. 동무야, 빨리 복귀해서 같이 자리를 빛내자" 대사를 카메라 앞에서 읊어 댄다..

다친 당사자는 속으로 얼~마나 압박을 느꼈을까..? ㅠㅠ 이거 뭐 한 번만 더 다쳐서 병원 갔다가는 나가 죽어야 하지 싶다. 사실, 북한은 자살조차 했다가는 가족에게 뒤끝 해코지가 가는 곳이긴 하다만..;;

북한은 정말 개인은 없고 오로지 집단, 당만이 존재하는 숨막히는 곳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완벽한 실사판이다.
임금님이 아주 아름다운 어의를 입고 계신다고 침이 마르도록 아부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이 벌거벗었네?" 그랬다가는 가족이 다 수용소로 끌려가는 곳. 그게 동화와 다른 점일 뿐이다.

영화는 제일 압권인 장면을 맨 마지막에 보여준다. 주인공인 북한 소녀(진미)에게 어느 기자가 "이제 소년단 가입해서 빨간 머플러 받으니 뭐가 좋을 거 같아요?"라고 슬쩍 물었는데.. 얘는 오로지 각본 대사만 읊지 자기 생각을 말을 못 하고 울먹인다.
"좀 서정적인 동시 같은 거 생각나는 거 없어요?"라는 질문에 즉시 튀어나오는 건 "나는 소년단에 가입하면서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 ..." 어쩌구저쩌구다.

이 영화를 찍은 만스키 감독은 "북한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와 삶이 얼마나 행운인지, 북한에서 반인륜적인 범죄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래서 난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한반도 전체를 이런 생지옥으로 만들지 않고 반쪽에나마 자유를 선사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그 남조선 할배가 떠올랐다.

내치에서 잘못한 것, 병크와 과오도 많았지만 공로가 과오를 넘사벽급으로 압도한다고밖에 볼 수 없다. "ㅇㅅㅁ 없었으면 적화통일"은 "ㅂㅈㅎ 없었으면 아직도 보릿고개"보다야 훨씬 더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이다. 그 할배에 대해서 뭐 부정선거, 야당 탄압, 다리 끊고 도망한 거(?) 그거야 결과만 보면 뭐 잘못한 거니 더 할 말이 없는데, 딴 건 몰라도 분단의 원흉이라고?? 이건 한 마디로 정신병자 급의 미친 소리다.

난 자유가 없는 곳에서 살았으면 일찌감치 미쳐 버리거나 자살했지 싶다. 내 인생 최고의 업적인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음란한 성경은 가라> 같은 글도 자유가 있으니 만들어질 수 있었지. 난 남조선 정도의 통제나 억압도 못 견뎌서(교육제도, 군대 문제) 옛날엔 개 깽판 난리를 쳤는데 하물며 북에서는 상상도 하기 싫다.

한편으로 ㅅㅇㅁ 같은 사악한 미국 서식 종북충들을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평양은 참 살기 좋은 도시예요" 저런 악한 인간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는데 지금이 어디 겨우 일베충 따위나 욕하고 있을 때냐?
"남이나 북이나 '똑같다' " 이러는 인간들하고도 난 정말 상종을 하고 싶지 않다. 대학 교육까지 받은 사람이라면 자기 나라가 마음에 안 들고 현 대통령이 싫고 더러운 감정을 표출할 게 있더라도, 정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면서 해야 하는 법이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이지 좌우 이념 문제가 아니다.

저런 악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서 저 무리들과 공존? 통일? 개가 웃고 소가 웃을 일이다. 저기엔 절대 침묵하면서 일본 욕만 하고 민족 팔고 통일 파는 그 어떤 짓거리들도 내 경험상 다~ 멍청하거나 사악한 수작이다. 그놈의 전쟁이 무서워서 저 체제를 무너뜨릴 수가 없다면야 차라리 영구 분단을 유지하면서 놈들을 고립시켜서 말려 죽이고 굶겨 죽이기라도 하는 게 100배 1000배 나은 전략이지.

이 문제에 관해서는 난 그 어떤 금전적인 손해나 인간 관계 단절을 감수하고라도 한 치도 뒤로 물러서고 싶지 않다. 악의 제국을 미화하면서 자국 정부과 국민을 이간질시키는 악한 무리들은 대한민국 땅에서 썩 꺼질지어다.

영화 제목에서 '태양'이란 김씨 왕조의 자칭 타이틀을 풍자하여 붙은 단어이다. 아래 성경 말씀은 굳이 북한 왕조 같은 곳이 아니어도 보편적인 세상을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겠지만, 이북 저 동네는 정말 이 말씀이 절실히 적용된다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해 아래에서(under the sun)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전 1:14)

Posted by 사무엘

2016/05/01 08:38 2016/05/0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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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종 어차(1903)

황제의 즉위 무려 40주년을 기념하여 도입됐으며(참고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60년이 넘었다만..), 이게 한반도 땅에서 최초로 달린 자동차이다. 차종은 '포드 모델 A'이라는 2도어 오픈카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확실치 않으며, 자동차 역사 연구자 사이에서 그게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이런 거야말로 고종 실록 같은 데에 수록되지 않았나?

허나, 이 차는 얼마 못 가 러일 전쟁 기간 중에 소실된 관계로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 시절에 자동차는 얼마나 비싼 물건이었을 텐데, 명백한 사고 폐차도 아니고 러일 전쟁 자체가 한국 땅에서 벌어진 것도 아닌데(청일 전쟁이 아님), 도대체 그 당시에 국가 자산 관리가 얼마나 막장으로 되고 있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그래서 얘는 가정사로 치면, 첫째 자식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이름도 없이 일찍 죽은 형· 누나 정도의 존재감으로 취급된다.

2. 순종 어차(1913)

일제 강점기가 된 뒤에 데라우치 총독이 자기 차와 더불어 조선 황실에 대한 예우를 위해 선물해 준 차라고 한다. 1911년엔 고종 어차 시즌 2로 영국제 다임러 리무진이 들어왔고, 1913년에는 순종 어차 명목으로 더 큰 캐딜릭 8기통 리무진이 들어왔다. 고종-순종 부자가 타라고 차를 두 대 구매했으나, 실소유자는 곧 순종-왕비 부부로 바뀌었다. 도입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운전대는 명백하게 오른쪽에 있다.

이 차들에 대해서도 도입 시기에 대해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는 건 아니다. 1911-1913년 도입이라고 하는데 다른 자료에서는 한참 나중인 1918년식이라는 얘기도 있고. 저래 뵈어도 엔진의 배기량은 5000cc가 넘는데 제원상 최대 출력은 30몇 마력밖에 안 됐다는 것 역시 참 안습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자동차 기술의 한계가 거기까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들은 엄연히 현재까지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 된 자동차 실물이다. 그리고 저 차종 자체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차량이 전세계적으로 극소수인데, 한국에 있는 물건은 보존 상태가 양호해서 세계 자동차 역사의 관점에서도 유물로서 가치가 대단히 높다고 한다. 6· 25 전쟁의 포화까지 견뎠을 정도이니, 얼마 타지도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고종 어차 최초 도입분과는 운명이 정반대이다.

일단 아래 사진에서 왼쪽 것이 1911년도 다임러 리무진이고 오른쪽 것이 1913년도 캐딜락 리무진이다. 범퍼와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양이 서로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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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한때는 흙 묻고 빛 바래고 먼지가 수북이 앉은 채로 창덕궁 차고에 방치돼 있었으나, 1990년대 말에 현대 자동차와 영국의 올드카 복원 전문 업체가 협력해서 표면을 광 내고 대대적으로 보수를 했다. 복원하는 덴 시간이 5년에 가깝게 걸렸으며 비용도 10억 원가량이 들었다고 한다.

복원 작업은 2001년 말에 완료됐으며, 이 덕분에 어차는 완전히 새 차처럼 변했다. 캐딜락의 경우 원래 검정이었는데 표면 도색도 빨강으로 바꾼 듯하다. 현재 이들은 경복궁 안의 국립 고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캐딜락 리무진의 before과 after를 대조한 것이다.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했다. 저 차들이 191X년대에 갓 들여 온 직후에는 저렇게 반들반들 윤이 났을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이 지금 시퍼렇게 녹이 슬었다고 해서 그게 처음 만들어지던 당시에도 퍼렇지는 않았으며(동상은 원래 갈색· 구리색임), 옛날 사진이 지금 누렇게 바래 있다고 해서 옛날 그 당시의 풍경 자체가 누렇게 바랬던 건 아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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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 일성 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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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름아닌 북한의 수괴인 김 일성이 몰고 다니던 승용차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구소련 시절의 자동차이다.
구소련이라 하면 총(AK47!)과 비행기(AN-??)와 우주선은 만들었어도 정작 고유 모델 자동차를 만들었다는 정보는 영 생소하다. 저건 ZIS 110이라는 모델로, 1948년에 김 일성이 스탈린으로부터 선물받았다고 한다.

김 일성은 이 차를 즐겨 몰고 다녔다. 6· 25 전쟁 중에는 안전한 후방에서 보고나 받고 명령만 내린 게 아니라, 경북 왜관까지 남하해서 전선을 시찰하고 북한군 병사들을 지휘했다고 한다. 고속도로도 없던 와중에 참 멀리까지도 내려왔다. 낙동강을 사수하네 마네 하던 리즈(?) 시절엔 그야말로 한반도 전역의 적화통일이 코앞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랬는데 1950년 가을, 인천 상륙 작전으로 인해 전세가 역전되었고 김 일성은 시급히 후퇴를 해야 했다. 평양까지 빼앗기고 계속 북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앞은 강으로 가로막혀 있고 다리가 없고 차량으로는 도저히 건너갈 수가 없었다. 다른 길로 뺑뺑이를 칠 수도 없고.. 그래서 김 일성은 (아마 눈물을 머금고) 자기 애마를 어쩔 수 없이 버리고 도망쳤다고 한다. 난 차량이 남한에서 노획되었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이 차량은 1950년 10월 22일, 평양에서 동북쪽으로 약 100km쯤 떨어진 청천강 근처에서 남한 국군(6사단 수색대)에 의해 발견되고 노획됐다. 국군이 38선을 최초로 넘어서 국군의 날이 시초가 된 10월 1일 이후로 정확히 3주 만의 일이다.
이걸 최초로 발견하고 신고한 병사가 누군지를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검색은 더 귀찮아서 안 하련다. 그 병사는 당연히 큰 포상을 받았다.

김 일성의 리무진은 대한민국의 국고로 귀속됐다. 김 일성은 차만 버렸지 차키까지 놔 두지는 않았겠지만, 그 시절의 옛날 차들은 지금 같은 첨단 이모빌라이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스타터 모터의 배선만 연결하면 강제 시동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차가 그때 이후로 줄곧 한국에서 애지중지 보존되어서 반공 안보 교육(?) 아이템으로 쓰였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이 승만 대통령은 1951년, 미 8군 사령관이던 월튼 워커 장군의 부인에게 이 차를 선물로 줬다. 워커 장군은 잘 알다시피 1950년 12월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통사고로 한국 땅에서 순직했기 때문이다(교전 중 전사는 아니고..).

부인 되시는 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를 인수했지만 차는 곧 고장 났다. 냉전 중에 미국에서 적성국인 구소련제 차량은 부품을 구해 유지 보수를 하기도 어려웠던 관계로, 그녀는 차를 또 처분해 버렸다. 그렇게 김 일성 리무진은 미국 땅에서 정처 없이 30년 가까이를 방황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차가 사고가 나고 폐차됐다면 김 일성 리무진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그랬는데 사단법인 유엔 한국 참전국 협회라는 단체에서(대표: 지 갑종) 1970년대에 백방으로 수소문을 한 끝에 이 차의 소재를 미국에서 찾아 냈으며, 뉴저지에 소재한 어느 자동차 수집상으로부터 거금을 주고 1982년에야 그 차를 한국으로 도로 역수입을 해 왔다. 먼 나라로 수출되었던 포니가 20여 년 뒤에 드라마 촬영을 위해 도로 역수입된 것처럼. 그때 고맙게도 대우 그룹 김 우중 회장이 재정적인 지원을 해 줬다고 한다.

또한, 그때 이래로 지 회장이 러시아 엔지니어까지 초청해서 관리를 잘 한 덕분에, 김 일성 리무진은 현재도 간단한 정비만 하면 곧장 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좋다고 한다. 이분은 6· 25 전쟁 휴전 60주년을 얼마 남기지 않았던 2013년 7월 16일, 차량을 전쟁 기념관에다 기증했다. 덕분에 우리는 전쟁 기념관에서 김 일성 리무진과 동시에 곧 소개할 이 승만 리무진도 나란히 관람할 수 있다.
참고로 6· 25 전쟁을 계기로 김 일성은 자기 애마뿐만 아니라 강원도 고성에 있던 자기 별장도 빼앗겼다.

4. 이 승만 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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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일성 차량에 비해 이 승만 리무진은 설명할 게 훨씬 없다. 1956년에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부터 선물받은 의전용 방탄 캐딜락이다. 그러므로 전쟁 중에 굴러다닌 건 아님. 애초에 이 승만은 6· 25 때 피난도 자차가 아니라 열차를 타고 갔다.

얘는 어차처럼 창덕궁에서 보관되어 오다가 2000년부터 전쟁 기념관으로 옮겨져 전시되었으며, 2013년경에는 역시 때 빼고 광 내는 부분적인 복원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이 작업은 당연하지만 구한말 어차를 복원하는 것만치 힘들고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차 역시 당장 시동 걸고 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정태를 넘어 동태보존 상태라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6/04/28 08:31 2016/04/2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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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입력· 편집하는 기능을 제공하는 에디터나 개발툴, 워드 프로세서에는 응당 텍스트를 검색하는 기능이 있다.
찾기 명령은 아무래도 바꾸기 명령과도 같이 쓰이는 경우가 많으니 이건 편집 기능의 일종으로 간주되며, 보통은 '편집' 메뉴의 하위 항목으로 들어가는 편이다.
그러나 편집 메뉴가 이미 다른 기능들로 너무 비대한 상태이거나, cursor를 원하는 조건대로 이동시키는 찾기/탐색 기능이 별도로 굉장히 전문적으로 발달해 있는 경우, '검색(Search)'이라는 메뉴가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이 메뉴 구성은 프로그램들마다 제각각이다.
과거에 아래아한글은 1.x대까지 '찾기' 메뉴가 별도로 있다가 2.1부터 '편집'으로 들어갔다. 전반적으로 기능들이 메뉴에 많이 추가되면서 두 메뉴의 인수 합병에 정당성이 생긴 것이다.
Windows의 메모장은 9x 계열의 것은 '찾기' 메뉴가 존재하는 반면, 2000/XP의 것은 그렇지 않고 '편집' 메뉴에 있다.

<날개셋> 편집기는 1~2.x대까지는 찾기 기능이 '편집' 메뉴에 있었지만, 3.0부터는 별도의 '검색' 메뉴로 분리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검색과 관련된 기능들을 전부 편집에다가 몰아 넣으면 보기, 삽입, 도구 같은 다른 메뉴들에 비해 '편집'만 항목 수가 너무 많고 비대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날개셋> 편집기가 무슨 메모장만치 그렇게 기능이 적은 초소형 프로그램도 아니니.. 양 극단 사이에서의 고민 끝에 지금과 같은 메뉴 배치를 선택했다.

한편, 내 편집기에는 없지만 좀 기능깨나 있다 싶은 텍스트 에디터들은 Find in files 기능이 필수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얘의 정체성도 약간 오락가락 하는 편이다.
아래아한글은 2.0에서 이 기능이 최초로 추가된 이래로 요게 '파일' 메뉴에 쭉 있어 왔으며, Visual C++ IDE도 옛날 버전에는 한동안 파일 메뉴에 있었다. 아무래도 한 문서를 편집한다기보다는 inter-file스러운 기능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파일'에다 분류했던 듯하다.

하지만 Visual C++의 경우 6인가 닷넷 이후부터 이 기능은 '편집' 메뉴로 이동했으며, IDE의 버전이 올라갈수록 요건 기존 '찾기' 기능의 자연스러운 연장선 형태로 인터페이스가 바뀌어 왔다는 게 주목할 점이다.
물론 '검색' 메뉴가 별도로 있는 에디터라면 Find in files는 응당 파일도 편집도 아닌 그 메뉴에 자리잡고 있다.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옵션을 지정하는 명령이 요즘은 도구 메뉴의 맨 마지막에 있는 게 대세이지만, 한때는 preference라는 이름으로 파일 메뉴에 있기도 하고 Adobe Reader처럼 아예 편집 메뉴의 있기도 한 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옛날에는 역시 '옵션'이라는 메뉴가 별도로 있기도 했지만 프로퍼티 시트의 등장으로 인해 한 대화상자에서 엄청 많은 옵션들을 죄다 몰아서 지정하는 게 트렌드가 되면서 옵션만을 위한 메뉴는 요즘 UI 트렌드에서는 사라지는 추세이다.

끝으로, 이 검색 메뉴가 존재한다면 그 위치가 어디쯤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파일이야 맨 먼저 등장하는 것이 불문율이지만, '보기', '삽입(입력)' 같은 다른 메뉴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인 순서가 어떻게 될까?
앞서 말했듯이 찾기 기능은 편집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편집 메뉴의 바로 다음에 오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실제로 검색 메뉴가 따로 존재하는 많은 프로그램들은 "파일-편집-검색-(보기)"의 순으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다. NotePad++, Source Insight, 그리고 도스와 Windows용을 막론하고 볼랜드 IDE (Borland C++, C++Builder, 델파이), AcroEdit 등.

그런데 <날개셋> 편집기는 "파일-편집-보기-검색"으로, View 메뉴가 더 앞에 있다. 검색 메뉴가 처음으로 추가되었던 3.0 초창기 시절에는 "검색-보기"이었는데 나중에 모종의 이유로 인해 "보기-검색"으로 바뀌었다.
"검색-보기"가 적힌 과거의 흔적은 까마득히 먼 옛 버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스크린샷 움짤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보기-검색"으로 순서를 바꾼 이유는 아마 본인이 옛날에 개발 과정에서 참고했던 EditPlus가 "보기-검색" 순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흥미로운 것은, 마소에서 만든 도스용 QBasic과 QuickBasic, 그리고 후대 버전인 QBX (MS Basic PDS 7), 도스용 비주얼 베이직 그쪽 라인은 역시 "보기-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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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Windows 95와 그 이후에 새로 등장한 MS-DOS 에디터는 "검색-보기"로 돌아갔다. 대화상자에 선문자가 없는 그 프로그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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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적으로 따졌을 때 "검색-보기"가 더 자연스러우며 그 역순은 EditPlus와 QBasic 계열 같은 예외적인 프로그램에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날개셋> 편집기도 이번 8.4부터는 다시 "보기-검색"이 아니라 "검색-보기"로 복귀했다.
이 조치를 내리기 위해 저런 리서치와 고민이 있었음을 이 자리에서 밝힌다. ^^

Posted by 사무엘

2016/04/25 19:36 2016/04/2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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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라는 물건은 차체의 크기와 엔진의 배기량 같은 전반적인 규모를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고, 같은 규모라면 사람을 태우는 것과 화물을 싣는 것을 각각 얼마만큼 비중을 뒀느냐에 따라서도 여러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사람에 초점을 두면서 덩치가 커지면 버스가 되고, 화물에 초점을 두면서 덩치가 커지면 트럭이 된다.
그런데 전문적인 트럭이나 버스로 불리기에는 작은 승용차급 크기에서도 생각보다 다양한 차종이 존재한다.

가장 흔한 건 5명이 타고 짐은 뒤의 트렁크에 싣는 '세단'이다. 세단은 객실과 화물칸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정숙성 면에서 좋다. 그러나 짐을 높이 쌓기 어려우며, 이런 화물칸에다가 성인용 자전거 같은 건 접지 않은 이상 아무래도 실을 수 없다.

옛날에는 해치백이라고 뒷부분에 위로 열리는 문이 달린 차량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라는 포니부터가 해치백이었고, 그 뒤에 르망이나 프라이드(초기 모델)도 해치백이었는데 요즘 국내에서는 해치백 승용차는 거의 찾을 수 없게 됐다. 해치백은 통상적인 승용차보다 더 큰 SUV의 전유물이 된 듯하다.
해치백은 세단처럼 뒤에 뭔가 돌출된 부위가 없다 보니, 유체역학적으로 볼 때 뒷유리에 먼지가 더 잘 쌓이고 더러워지기가 쉽다. 그래서 뒷유리에도 와이퍼가 달려 있다.

요런 5인승 승용차/SUV급 체형에다가 뒤에 트럭처럼 짐받이도 장착된 차량을 특별히 '픽업트럭'이라고 하는 것 같다. 미국 시골에서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처럼 평범한 세단형 승용차가 아니라 픽업트럭이 자가용으로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험지를 종종 달려야 하니 차체가 크고 튼튼할 필요가 있으며, 땅 넓고 길 넓고 단독 주택에 자기 차고도 있고, 기름값 싸고 배기량 규제도 없으니 큰 차 굴리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다. 그리고 한편으로 인건비가 비싸서 어지간한 가사노동은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이사 갈 때처럼 짐을 많이 실을 일 있을 때도 용달차를 부르기보다는 자차로 일을 직접 처리해야 한다.

이러니 미국의 시골 문화에는 큼직한 픽업트럭이 어울린다. 영화 <킬 빌>에서 빌의 동생 버드는 사막 한가운데의 어느 컨테이너에서 살았던 한편으로 자가용이 픽업트럭이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자동차 문화라는 것도 참 가난하고 열악하고 배고픈 여건 속에서 태동했다. 수출을 위해서 무작정 중공업을 육성했는데, 그래도 외화는 목숨 걸고 아끼려고 기름값에 세금 왕창, 자동차 배기량에 세금 왕창..;; 고위 공무원들의 관용차에도 4기통보다 더 큰 차는 금지시켰을 정도다. 또한, 소비자에게만 규제를 넣은 게 아니라 심지어 자동차 제조사에도 생산 가능한 자동차의 종류까지 규제를 했다.

그러니 국내에서 생계형 미니 용달 화물차는 기아 자동차의 전신인 기아 산업에서 만든 삼륜차부터 시작했다. 삼륜차는 내가 몇 차례 예전 글에서 소개한 바 있으니 이 자리에서 사진 첨부는 생략하겠다.
그 후 1974년에 기아에서는 잘 알다시피 '브리사'라는 승용차를 내놓았는데, 사실은 그 전 1973년 여름에 베타테스트 명목으로 브리사의 전신인 픽업 트럭을 먼저 내놓은 적이 있었다. 브리사는 상용차부터 출시된 뒤에 그걸 베이스로 나중에 만들어진 승용차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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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동차에서 나온 포니 역시, 앞좌석까지만 동일하고 뒷부분은 짐받이로 대체된 픽업 트럭 에디션이 응당 있었다. 최대 적재는 400kg 남짓까지 가능했다.
포니나 SMC 덤프트럭 같은 옛날 차들을 보면 엔진룸은 요즘 자동차보다 더 길고 각지게 돌출돼 있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 보면 들어있는 부품은 생각만치 조밀하지 않고 듬성듬성해 보이는 게 인상적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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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화물차이긴 한데 천장이 있고 외형은 승용차와 동일한 일명 3도어 '밴' 에디션도 있었다.
포니 이후에 엑셀까지 밴 에디션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진 첨부는 귀찮은 관계로 생략하겠다.
엑셀은 포니와는 달리 원래 세단인데 밴은 해치백? 쿠페? 스타일이니 이것도 인상적이었다.

기아와 현대에서 픽업트럭을 내놓는 동안 대우 자동차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아래의 요놈은 휠 모양을 보아하니 맵시나 기반인 것 같은데 내가 어렸을 때 실물을 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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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이것보다도 내가 더욱 신기하게 여기는 추억의 자동차는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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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승용차의 픽업트럭 파생 에디션이 아니라, 아예 트럭에 더욱 근접해 있는 형태이다. 앞부분은 엔진룸이 돌출돼 있고 좀 승용차처럼 생겼지만, 그래도 앞의 차체와 뒷바퀴 휀다는 짐받이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짐받이는 후면뿐만 아니라 측면까지 모두 열어 젖힐 수 있다. 일반 트럭처럼 말이다. 승용차로 치면 딱 봐도 그랜저/쏘나타급의 중대형의 덩치이고 적재 용량 역시 7~800kg에 달했다.

실제로 엔진의 배기량도 2000cc급이었고, 휘발유가 아니라 '디젤' 엔진 기반이었으니 더욱 트럭에 가깝다. 걍 1톤 트럭의 약간 마이너 버전이다. 크고 무거운 디젤 엔진을 승용차에다 얹으려다 보니 그 당시 기술로는 부득이하게 중앙이 불룩 튀어나온 전용 보닛이 필요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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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대우 자동차는 독일 오펠 사로부터 수입한 승용차용 디젤 엔진을 얹기도 했기 때문에 국내 자동차 역사에서는 디젤 승용차의 원조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 당시의 현대/기아 계열에서는 찾을 수 없는 기록이다. 그러니 픽업 트럭 역시 휘발유 에디션(흰 놈. 제미니/맵시나 기반)과 디젤 에디션(파랗고 더 크고 엔진이 불룩한 놈. 로얄 디젤 기반)이 모두 존재했다고 한다.

요놈은 그 당시 웬일로 '맥스'라는 차명이 붙었으며, 1988년까지 생산되다 단종됐다.
본인은 25년 가까이 전의 어린 시절, 집에서 피아노를 구입했을 때 피아노가 바로 이 맥스 픽업트럭의 짐받이에 실려서 오는 걸 본 기억이 있다. 그 차의 색깔도 딱 저런 파란색이었다. 그 피아노는 2016년 현재, 아직도 본인의 고향집에 있다.

그에 반해 요즘은 트럭은 기본이 1톤 단위로 시작한다. 그것보다 더 작은 '경상용차'는 국내 유일의 경상용차인 다마스와 라보가 사실상 독식하고 있는 걸로 안다. (적재 하중 550kg)
경차에게 주는 법적 혜택이 워낙 독보적인 관계로, 이 차량은 비록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 마진이 남는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생계수단 장사 밑천으로서 기본적인 판매 수요는 절대보장이다.

다만, 원가 절감을 위해 자동 변속기, ABS, 에어백, 자세제어, 그딴 거 하나도 없..다. 안전 테스트도 결과에 관계없이 단종돼서는 안 되는 차량이라고 꾸준히 열외· 면제-_-돼 왔고, 사고 시에 연료가 새는지, 디젤 엔진이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하는지 이런 것만 검사를 받아 왔다. 뭐 현실이 그렇다.

그러고 보니 트럭 중에도 옛날에는 포터에 1.25톤짜리 바리에이션이 있었고, 기아의 점보 타이탄 중에는 1.4톤 모델이 있어서 오늘날 1톤과 2.5톤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걸 찾을 수 없다. 엔진음이 여자 톤에서 남자 톤으로 바뀌는 과도기적인 체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상. 오늘은 소형 트럭 쪽에서 특별히 픽업트럭를 중심으로 옛날 차들을 회상해 보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04/23 08:33 2016/04/2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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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철도/도로 뒷북 이야기

1.
국내 고속도로계에서 독보적으로 낙후한 이단아이던 88 올림픽 고속도로는 지난 2015년 말에 드디어, 드디어 전구간이 4차선으로 확장되었으며 이름도 '광주대구 고속도로'라고 바뀌었다. 솔직히 이 도로는 착공· 건설 시기가(개통 시기가 아님.)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시기와 비슷할지 몰라도, 지리적으로는 올림픽과 정말 아무 상관도 없었으니까..

중앙분리대조차 없이 2차선이던 이 고속도로는 설계 최대 속도도 100이 아닌 80km/h이었으며, 중앙선을 침범하여 앞차를 추월하다가 마주 오던 차와 정면 충돌하는 사고가 잦아서 교통사고 발생 빈도 내지 사고 사망률이 여타 고속도로들보다 몇 배로 더 높았다. 백괴사전에서는 "44(死死) 내림픽 저속도로"라고 개드립을 치면서 깠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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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 여건이 다른 고속도로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히 리모델링된 국도보다도 열악했던 관계로, 한국 도로 공사는 여기 구간의 통행료는 여타 고속도로의 반값 정도로만 징수했다. 서울 지하철이 '최소 거리 이용 추정의 원칙'에 의거하여 요금을 측정하듯, 고속도로 톨비 역시 비록 진입과 최종 진출 나들목 자체가 88 내부의 나들목이 아니더라도 경로상으로 88을 이용했을 만한 위치라면 그걸 감안하여 산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가 이 도로도 찔끔찔끔 선형 개선과 확장, 이설 공사를 되풀이했으며, 그게 드디어 작년 말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오랫동안 존속해 온 통행료 특별 할인도 폐지됐다.

전국의 고속도로 나들목들 중 유일하게 평면교차+비보호 좌회전(고속도로에서!)이라는 엽기적인 형태로 남아 있던 '남장수 IC'는 해당 구간이 대거 이설되면서 없어졌다. 이를 대체하는 동남원 IC가 생기긴 했지만 저기서 서쪽으로 수 km 떨어진 곳이다. 남장수 IC가 없어진 건 철도로 치면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스위치백이라든가 통표 폐색 구간이 없어진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옛날에는 이 88 말고 다른 고속도로도 이름만 고속도로이지 2차선에 평면교차 같은 막장 시설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호남 고속도로, 영동 고속도로 따위도 처음엔 그랬다.
심지어 1990년대에 대구와 원주를 잇는 중앙 고속도로조차도 처음엔 2차선으로 건설되고 있었는데 감사원에서 이를 잡아 냈다. "이렇게 만들었다간 99.9% 나중에 또 확장하느라 더 고생하고 돈과 시간을 더 낭비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설계를 갈아엎고 다시 만들어라. 그리고 이를 선례로 삼아 앞으로 새로 만드는 모든 고속도로들은 처음부터 반드시 4차선 이상 크기로 건설해라."라는 현명한 지시를 내려서 개선이 됐다.

저렇게 1990년대에도 2차선으로 건설될 뻔한 고속도로가 있었는데 1960년대 말 그 옛날에 처음부터 전구간 4차선으로 시작을 했던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 과정이 문득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다만 그 시절에 박통이 이미 "내가 야당이 하도 반대해 대서 일단은 4차선으로만 건설하지만 경부 고속도로는 얼마 못 가 분명히 비좁아질 거다. 확장을 하게 될 테니 도로 주변에 건물 건설 허가를 내지 말고 준비를 해 둬라" 이런 예고까지 했다고 한다.

경부 고속도로가 유지 보수 비용이 결국 건설 비용만큼이나 더 들었다고 회자되긴 한다만, 그건 다른 고속도로들도 훗날 꾸준히 개선되어 온 건 대동소이했다. 허나 88은 박통도 아니고 나름 5공 시절인 1980년대에 건설된 주제에 오랫동안 개선되질 못해서 까임거리가 된 것이다. 영호남 화합? 실질적인 수요보다는 정치 논리에 따라 건설됐다 보니 리모델링의 우선순위도 뒷전으로 밀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것도 이제 다 지나간 일이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88 올림픽 고속도로에 이어, 철도 경전선도 올해는 대대적인 선형 개량 공사가 끝나서 여러 구간이 이설되고 여러 간이역들이 없어질 예정이다.
자, 다음부터는 철도 얘기를 주로 늘어놓도록 하겠다.

2.
과거에 20세기 말에 우리나라의 최하등급 열차는 비둘기호였다. 정선선에서 운행하다가 2000년 11월 14일을 끝으로 퇴역했다.
객차형 비둘기호는 너무 싸서 수지맞지 않은 운임 체계, 너무 낡고 노후화한 객차 같은 여러 이유로 인해(비산식 화장실, 수동 출입문, 별도의 발전차 없이 객차가 차축 연결해서 소규모 자가발전-_-, 에어컨도 없음..) 21세기에까지 존속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긴 했다.

그 다음으로 통일호도 객차형은 차량이 비둘기호 만만찮게 열악했던지라 2004년 3월 31일, KTX 개통을 앞두고는 모두 퇴역했다. 근성열차라고 불리던 청량리-부전 통일호가 이때 사라졌고 경춘선도 통일호가 모두 무궁화호로 바뀌면서 사실상 운임이 강제로 일괄 인상된 효과도 났다.

나머지 디젤 동차형 통일호는 '통근열차'라고 이름이 바뀌었는데, 얘들은 진해선, 동해남부선, 군산선 등에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차근차근 무궁화호로 교체되면서 명줄이 위태로워졌다. 기관차-객차형처럼 차량이 완전히 다른 무궁화호 말고, CDC 객차 자체가 일명 RDC 무궁화호로 개조되기도 했다.

현재 통근열차의 최후의 보루는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는 경의선과 경원선밖에 안 남았다. 허나 경의선에서는 이미 진작에 전철에 밀려 퇴출되었으며, 현재 전국에서 오리지널 CDC가 다니는 곳은 이제 소요산 이북의 경원선이 유일하다! 과거에 정선선 비둘기호와 비슷한 꼴이 된 셈이다. 비둘기호:정선선 = 통근열차:경원선 정도의 비례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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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0년쯤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약 빨고 더 연장되어 연천까지 가 버리면 이제 CDC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더 북쪽의 잔여 구간은 지금 경의선이 그런 것처럼 안보 관광 열차가 대신 맡을 것이고.

물론 경원선 연장 구간은 전철이 들어간다고 해도 일단은 복선 노반만 확보해 놓은 '단선 전철' 형태로 운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복선 구간 운행이 너무 당연시되는 지하철 통근형 전동차가 갑자기 단선 구간에서 상하행 교행을 한다니 그것도 참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될 것 같다. 하긴, 천하의 KTX도 과거에 광주 역을 드나들 때는 꼬불꼬불 단선 구간을 다니긴 했다.

3.
21세기 이래로 경기화학선, 세풍제지선, 화순선 등 여러 산업· 화물 철도들이 소리소문 없이 열차 운행과 관리가 중단되고 사실상 폐선 테크를 타 왔다.
하지만 화물 분야에서 철도가 마냥 몰락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라, 지난 2010년 말에는 부산신항선이라는 걸출한 화물 철도가 개통했다. 그것도 복선으로. 여객이 아니고 항구 화물 전용 철도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쯤 뒤, 작년에는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평택에서 평택항으로 향하는 화물 철도가 또 신규 개통했다. 이름하여 평택선. 경부선과 연결하는 삼각선도 상하행으로 모두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무 방향으로나 통한다.

경부선 전철에서 성환-평택은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이기도 하고 역간거리가 무려 9km가 넘는다. 공항 철도를 제외하면 수도권 전철에서 역간거리가 가장 긴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사이엔 온통 들판에 소규모 마을밖에 없기 때문에 역이 만들어질 여지가 별로 없다.

평택 다음 성환 역에도 사이에 웬 지선 철도가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뻗어 나간다. 이건 하행 방향으로만 있고 서울 상행 방향은 없는데, 다름아닌 성환읍 학정리의 야산 하나를 몽땅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군부대로 향하는 비밀 철도이다. 서빙고 역에서 미군 기지로 들어가는 그 철도, 그리고 호남선에서 논산 육군 훈련소 방면으로 가는 강경선 같은 걸 떠올리면 되겠다.

관련 신문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그 군부대는 탄약창인가 보다. 탄약은 굳이 사방으로 파편이 날리는 수류탄 같은 부류가 아니더라도, 내부에 다 화약이 들어있는 위험물이다. 한 탄약고가 공격을 받아 폭발하면 인근의 다른 탄약고까지 연달아 재귀적으로-_- 폭발하면서 Doom 2의 레벨 23 Barrels o' fun이 실사판으로 재연되는 참극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스플래시 대미지를 예방하기 위해 탄약창은 최대한 넓게 띄엄띄엄 지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탄약창의 부지가 굉장히 크다. 다만 여기에 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눈꼽만 한 보상밖에 못 받고 오랫동안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서 꽤 고달프게 지냈다고 한다.

4.
그 밖에 작년에 있었던 의미 있는 사건으로 또 떠오르는 건.. 서울 역과 노량진 역에 정식 환승 통로가 개통했다는 것이다.
버스와는 달리 지하철은 내렸다가(=집표 구역 밖으로 나감) 다시 탔을 때 환승 할인이 없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 9호선이 개통한 뒤에도 노량진 역에는 물리적인 환승 통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공항 철도와 경의선도 기존 지하철 1· 4호선 서울 역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거기는 수도권 전철 전체를 통틀어 예외적으로 철도끼리 내렸다가 30분 이내에 다시 타도 환승 할인이 인정되게 되었다. 일명 소프트 환승이다.

사실, 지금은 찍고 나간 동일 게이트에 5분 이내에 다시 들어가도 1회에 한해 기본 운임 재징수 면제라는 예외까지도 추가돼 있다. 이런 것들도 다 소프트웨어로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다 구현 가능한 건데 굳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으니 막아 놓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5년도 더 전에 환승 통로가 개통했지만, 2010년 이전엔 '국철/중앙선' 청량리 역과 서울 지하철 청량리(1호선) 역도 마치 경의선 신촌과 지하철 신촌(2호선)만큼이나 환승이되지 않았고 별개의 역으로 취급되곤 했다. 또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갓 개통했을 때에도 신당 역은 2호선과의 환승 통로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몇 달간을 환승이 안 되는 역으로 영업을 했었다. 이때엔 소프트 환승 같은 건 없었다.

서울 역의 경우 지하철과 공항 철도가 정말 도를 지나칠 정도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관계로, 수직 이동 삽질을 줄이고 수평 이동도 무빙워크로 도와 줄 환승 토로가 정말 절실했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환승 통로 만들어 주세요" 급이었다. 그래서 작년 3월에 먼저 개통했다.
한편, 노량진은 민자역사의 건설과 맞물려서 환승 통로의 개통이 한없이 늦어졌다. 이건 마치 분당선 야탑 역과 인근 버스 터미널과의 통로 개통과도 비슷한 문제였던 것 같다. 둘 다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일이 늦어졌고 그 동안 승객들만 불편을 겪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래도 작년 10월 말에 환승 통로가 생기긴 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물리적인 환승 통로가 뚫린 덕분에,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두 역에만 존재하던 소프트 환승 예외 로직은 폐지되었다. 마치 88 올림픽 고속도로가 리모델링이 완료되면서 반값 통행료 제도가 없어진 것과 같은 이치다.

단, 서울 역에 있는 4개 전철 노선 중 경의선은 여전히 여타 노선들과 단절되어 있으며, 여기는 수도권 전철에서 유일하게 소프트 환승 예외가 계속 유지된다. 1시간에 1대밖에 안 다니는 마이너 지선에까지 굳이 환승 통로를 뚫을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신촌은 아주 유니크한 구간으로 그렇게 명맥이 유지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4/20 08:38 2016/04/2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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