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 승만 할배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으로서 0에서 1을 만든 거인 위인 초인인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20세기 초 젊은 시절에 가츠라 테프트 밀약을 당하는 걸(조선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일제 식민지가 승인됨) 직접 겪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로부터 반세기 뒤에 자기가 대통령이 됐을 때는 미국이 울나라를 버리고 싶어도 못 버리게 나라 틀을 짰다.

생각을 해 보셔, 해방 직후부터 용산에 주한 미군 기지가 있었으면 6· 25 당시에 겨우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됐겠냐?
친서방, 시장 경제 자유 민주주의, 농지 개혁, 독도 평화선, 주한미군, 반공포로 석방, 한미 상호방위조약, 학생들한테도 민주주의 교육, 국비 유학 장학생 양성..
폐허 속에 붕괴 직전이던 집을 정말 초인적인 인맥 빽 동원해서 무너질 일이 없게는 만들어 놨다.

뭐, 큰 고비를 넘긴 뒤, 인의 장막 속에서 서서히 자기과시와 흑화 조짐이 보인 것은 사실이다.
곳곳에 할배 동상이 세워졌다. 1950년대 후반 몇 년간은 3월 26일인가 할배 탄신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다. 지폐에 할배 얼굴은 진작부터 들어가 있었고.
우리나라 역사상 생존 현직 대통령이 이 정도로 라이브로 떠받들어졌던 건 저 1공 시절이 유일 전무후무하다.

그래도 이때는 한국인들이 대통령이란 걸 처음으로 경험해 보고, 조선 왕정 시대와 일제 시대의 관념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도 꼴랑 10년 남짓이었다.
할배는 조선 황실을 그렇게도 싫어하고 박대했는데 그래도 늘그막에 자기가 왕 같은 대접은 좀 받고 싶어한 것 같다. 그러니 할배 주위에 아부꾼 간신배들도 끊이지 않았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배는 잘못한 것보다 잘한 것이 압도적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할배가 진짜로 악의적인 독재자였으면 애초에 젊은 애들한테 민주주의 교육을 안 시켰을 것이다. 4 19 따위는 그 시절 북괴나 동구권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관총과 탱크로 유혈진압 하면 그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내가 긴 말 하지는 않겠지만, 리 승만이 악의적인 분단의 원흉이라니(!!) 친일파 득세 원흉이라니, 리 승만 대신 김 구만 대통령 됐으면.. 그거는 정말 일고의 가치가 없는 소리이다.

2.
자, 저렇게 리 승만 할배는 항일 독립운동으로나 훗날 울나라 초대 대통령으로나 워낙 큰 족적을 많이 남겼다. 공도 있고 과도 있으며, 그거 갖고 호불호도 많이 갈리는 편이다. 과는 공에 비하면 그야말로 자릿수가 다를 정도로 쨉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아, 오해하지 말라. 리 승만이 정치인으로서 실책을 저지르고 잘못한 것이 작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잘한 것이 정말 너무 넘사벽급으로 엄청나다는 말을 하는 것일 뿐이다.
디즈니 뮬란의 끝부분 대사처럼 말이다. "뮬란, 자네는 제멋대로 가출해서 입대해서 자기 상관을 속이고 궁궐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온갖 사고를 치고는.. 우리 국가와 민족을 구해냈다" 할배의 공과 과가 이런 관계라는 얘기다.)

이런 할배에 비해 서 재필은 그 정도 임팩트가 없어 보인다. 해방 후에 국내에서 정치를 하지를 않았으니 실책이나 악행, 과오를 깔 것도 없다.
그러니 서 재필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그냥 미쿡인이었음. 한국어도 다 까먹고 고국과 동족을 깔보고 무시했음. 미국으로 돌아가서 지 한몸 편하게 잘 살았음. 친일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애국애족 한 것도 아님.”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무덤에 누워 있던 서 재필이 저 말을 들으면 벌떡 일어나서 “뭐가 어쩌고 저째?” 하면서 불같이 화를 내지 싶다. 그 사람이 왜 미국인 행세를 했는지 생각은 해 보셨는가?

서 재필은 20세 청년 나이로 벌였던 갑신정변이 실패하는 바람에 역적으로 몰려서 정말 참혹한 멸문지화를 당했던 사람이다. 자기 부모, 와이프, 심지어 자기 아들, 양아버지, 형.. 집안이 몽땅 싸그리 몰살당했다. 처형, 자결, 노비로 강등..

우리의 고종은 갑신정변 잔당들을 해외로 자객까지 보내서 집요하게 제거했다. 가령, 김 옥균은 중국 상하이에서 피살당한 뒤, 목이 짤리고 머리가 한양 시내에 내걸렸다. (시체를 방부 처리해서 한국으로 운구해 와서는 일부러 저런 짓을)
서 재필은 목숨 부지하려고 일본을 거쳐서 미국까지 도망치게 됐다. 이 모든 게 무슨 고대 근대 중세도 아니고, 1880년대에 구한말 한반도 땅에서 벌어졌다!!

서양에서는 아예 왕을 암살한 반역범이라 해도 가족한테까지 저런 보복을 하지는 않았다. 저 때로부터 수백 년 전에도 말이다. 당사자야 사지 찢기고 내장 끄집어내진 채 죽었을지언정, 가족은 추방이나 신분세탁 정도로 끝났다. 한 마디로 조선이 미개했거나 최소한 고종이 엄청난 암군 폭군이었다. (+ 민씨 일가도)

서 재필은 영어의 영 짜도 모르던 상태에서 인종차별도 쩔던 미국 한복판에 알거지 상태로 내던져졌다. 그러니 생존하려면 이를 악물고 정말 미칠 듯이 주경야독 공부, 공부밖에 할 게 없었다.
결국 그는 만학도 신분으로 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졸업생 대표 연설), 미국 시민권을 받고 거기서 의대를 나와서 의사까지 됐다! 박 정희가 신분 상승을 위해 외국 나가서 만주군 장교가 됐다면, 서 재필은 더 먼 외국에 나가서 저렇게 출세한 것이다.

그는 미국 간 지 12년 만에 성경의 요셉과 비슷한 급으로 신분이 바뀌어서 조선 땅에 돌아오게 됐다. 독립협회 세워서 자기 고국을 청나라 간섭 없는 나라, 미국 같은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춘 나라로 만들려고 말이다.

이런 그가 자기 가족을 절멸시켜 버린 애증의 고국에서 “헤이, my name is 필립 제이슨. // 오우 노!! 코리아는 이래서 노 답!! ㅉㅉㅉ” 이렇게 미국인 행세를 한 거는 정말 정말 소심한 복수이자 귀여운 애교인 거 같은데 말이다. 미국인 행세를 해야 자기가 미국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고 남들이 자기를 함부로 해코지를 못 하지 않겠는가?

그는 진짜로 자기 고국이 싫어졌으면 박 중양처럼 신념형 친일파가 됐거나, 미국에 틀어박혀서 평생 병원이나 경영하면서 떵떵거리며 살았을 것이다. 미쳤다고 현실의 서재필처럼 살았겠냐?
정말 살다 살다 별 희한한 소릴 듣는다.

더 코미디 같은 건.. 이런 서 재필조차도 리 승만의 업적을 가리고 존재를 지우는 대타 용도로는 잘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_=
왜, 미국에 세계 각국 영사관에는 각 나라의 국부들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기에도 리 할배 대신 서 재필 동상이 있는 식으로 말이다. (영화 건국전쟁 참조) 정말 썅소리 나오지 않을 수 없다.

3.
할배는 대통령으로 선출은 합법적으로 됐는데 장기 집권을 하려고 법을 고쳤던 반면..
박 정희는 첫 시작부터가 군사정변이고 집권 중에도 유신 쿠데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치적인 사고를 제일 크게 쳤고 제일 오래 집권했지만, 그 규모에 비해서 자기를 내세우려 한 정도는 덜했다. 과묵하고 뚝심 있는 편이었다.

박 정희는 우리나라 대통령들 중에 명예박사 학위가 전혀 없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딴 요식행위 다 쓸데없다고 거절하고 안 받았다.

  • “학생 여러분은 내일의 주인공이지 지금 오늘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쓸데없이 좌익분자들한테 선동돼서 반정부 데모질 시위 하지 말고 조용히 공부나 하기 바랍니다)”
  • “내가 벌이는 일이 지금은 잔뜩 욕 먹을지 모르지만 평가는 후세가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할 겁니다. 그래도 성이 안 차면 나중에 내 무덤에다 침이나 실컷 뱉으시오.”

쿨하고 씨크하고.. 뭔가 미래를 바라보고 행동하는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저 사람은 암살당하지 않았으면 과연 언제까지 대통령을 했을까? 9대 임기가 끝나는 84년쯤에 자체개발 핵무기 공개하고 90년대 올림픽 유치까지 마치고 나서 퇴임했을까?
저 사람은 제 명에 죽었다면 자기 무덤도 성대하게 꾸미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지 싶다. 지금 같은 왕릉처럼 만들지 말라고 말이다.;;

박 정희는 영부인이 역대 제일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영부인이 소록도까지 찾아가서 위문했던 것 때문에 오죽했으면 2012년도 대선 때 그 동네가 7시 지역에서 '유일'하게 레카 표가 뭉괴 표보다 더 많았었다.

그리고 더 여담을 보태자면..
박 정희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뭔가 모욕이나 무시를 당하면 그걸 절대로 넘기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다 설욕했다.
그래서 학교 선생질 하다가 일본인 교사들로부터 무시 당하자 아예 만주국 장교가 돼서 돌아와서 걔들을 데꿀멍 시켰으며,
가난한 놈팽이라고 장인어른으로부터 무시 당하자.. 아예 나라를 뒤집어엎고 대통령이 돼서 장인으로부터 사과까지 받았다.;; 무섭지 않은가?

또 저 사람 가문은 부친, 당사자, 아들에 이르기까지 다들 아들을 40~50 나이가 돼서야 얻었다. 대를 이은 노산 가문인 게 인상적이다. 박 정희가 1917년생인데 아들 박 지만의 막내아들이 2014~2015년생이니.. 그래도 박 지만은 요즘 세상에 아들만 넷인 애국자 집안이 됐다.;;

4.
이런 박 정희에 비해.. 후임 전땅끄는 좀 더 '촐랑촐랑' 경박한 이미지인 것 같다. =_=;;
자기를 드러내고 쑈맨십 내세우는 걸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이때 '땡전뉴스'라는 게 있었다. 심지어 영부인도 남편이랑 같이 어디서 환호를 받으면 같이 손 흔들면서 화답도 했다.
"인간 전두환", "이 시대에 대한민국을 위해 준비된 답정너 대통령"...;;

박 정희 때는 5 16이나 유신 쿠데타 시절에도 언론이 이 정도로 치켜세우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ㅎㅎ 리 승만 시절과는 좀 다른 형태의 아부꾼이 등장했다.
왜, 옛날에 미국 맥아더 원수도 쑈맨십 있고 언론을 적절히 잘 구워삶던 사람이지 않았던가?
인물 사진, 풍경 사진 한 장을 언론에 내보내더라도 이 구도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를 치밀하게 계산하는 거 말이다. 전땅끄에 대해서도 그런 기질이 느껴진다.

그 과시욕이 어딜 가지 않아서 제주공항 신설 활주로 준공식에 참석하러 갈 때도 군용기까지 악천후에 무리해서 의전용으로 띄웠다가 날려먹은 적이 있었다.
땅끄는 평생 사는 방식이 그러했기 때문에 정치질의 달인이 됐고, 그 기질이 나중에는 "카메라들이 나만 좀 삐딱하게 찍어. /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한테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내한테 당해 보지도 안 해놓고"라는 희대의 멘탈갑 명대사로 이어졌다.

전땅끄는 할배나 박 정희와 달리, 직선제 선거를 통해 당선된 내력이 전혀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래도 저 사람도 권좌에 오르는 과정이 좀 에바였지, 일단 대령통으로서 재임 중의 뚝심 있는 행적은 괜찮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저 사람도 죽을 때는.. 북한 땅 보이는 전방에 이름없이 묻어 달라고 당부했었는데.. 지금 장지를 정하기는 했나? 어디 묻혔나? 참 궁금하다.

※ 나머지 여담

(1) 백범 김 구에 대해서 '킬구'라는 별명이 나도는데.. 이건 당사자의 성깔과 행적을 감안하면 마냥 터무니없는 별명이나 멸칭이 아니었다.
소싯적에 일본인 민간인을 린치해서 죽였던 ‘치하포 사건’뿐만이 아니라, 그는 임시정부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수틀리면 테러와 암살을 종종 사주했기 때문이다. 변절한 안 중근의 아들을 암살하려 했고, 김 립 같은 생사람을 밀정이라고 의심해서 죽여 버리기도 했고.. 뭔가 주토피아 땃쥐 “Ice them!” 같은 인상이다.
그랬는데 그도 결국은 암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2) 할배와 박 정희 사이에 잠깐 대통령을 했던 윤 보선은.. 권력욕이 있었는지 2공 시절 대통령을 퇴임하고도 3공 시절에 대선에 ‘또’ 출마를 했던 유일한 인물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1960~61년 사이 윤 보선 시절에 경무대가 청와대로 바뀌고, 형무소가 교도소로 용어가 바뀌었다.

(3) 할배는 “대통령은 n회 이상 중임할 수 없다. 단, 초대 대통령은 예외로 한다”라고 정말 속내가 노골적으로 뻔히 보이는 개헌을 추진했었다.
그 뒤 전땅끄는 선례가 선례인 관계로 옛날 같은 독재 장기집권을 대놓고 추진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국가원로 자문회 운운하면서 대통령 위의 ‘상황’ 자리를 만드는 데 진심이었다. 꼼수 보소.. 그 흔적이 현행 헌법에까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당연히 사문화된 지 오래다.

(4) 대한민국 역사상 범죄자를 길거리에다 조리돌림 시켜서 망신 준 건 1961년에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읍니다” 시절이 유일, 전무후무했다.
한편, 살인이 아니라 강간 절도 범죄 누범만으로 무려 ‘사형’이 집행된 건 1985년 즈음, 전땅끄 시절의 가정파괴범 처벌이 유일했다.

(5) 박 정희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빡쳐서 북괴를 상대로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일갈했었다. (내 철모와 군화를 가져오너라!)
김 영삼은 역사 바로 세우기 명목으로 중앙청 건물 철거를 강행하면서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라는 말을 남겼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27 19:35 2025/06/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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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올해 상반기가 끝나 간다.
본인은 이제 좀 슬럼프를 벗어나서 일상으로 돌아온 듯하다. 한때 꽁꽁 얼어붙었던 블로그의 글 빈도도 회복됐고, 손을 완전히 놔 버린 지경이던 한글 입력기 개발도 재개됐다.
예전에는 글을 분량에 따라서 2, 2.5, 3일 간격으로 올렸는데 이제는 최소 2.5, 3, 3.5로 텀을 좀 늘렸다.

오는 6월 28일 토요일엔,

  • 인천 지하철 1호선의 북쪽 검단 연장 구간이 개통할 예정이다.
  • 서울· 수도권 지하철의 기본요금이 150원 더 오를 예정이다. (2년 전, 버스· 지하철 요금이 올랐을 때부터 계획됐던 사항임)
  • 정확히는 전날(27일) 저녁이긴 하지만, 오징어 게임 3이 공개될 예정..이다. ㄲㄲㄲㄲㄲ

요 때에 맞춰서 날개셋 프로그램들 새 버전도 공개됐으면 좋겠지만 그건 못 해서 아쉽다. 현재로서는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타자연습은 무려 4년 만에 4.0을 낼 예정이고, 입력기도 10.8? 정도가 되겠다. 이번 7~8월은 안 넘기고 나왔으면 좋겠다.
이건 개발자가 유부남이 되고 나서 공개되는 첫 버전이 되겠다.

역사적으로 6월 28일은..

  • 뭉괴 시절에 진짜 아무 명분도 없이 뜬금없이 바뀌어 버린 철도의 날. (누가 9월 18일로 도로 좀 되돌려라!)
  • 그리고 6 25 사변 초기에 서울이 함락당하면서 벌어졌 서울대 병원 대학살일이다.

그 다음날 6월 29일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선언(1987), 삼풍 백화점 붕괴(1995), 제2연평해전(2002)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
백범 김 구는 6 25 사변일으로부터 거의 정확히 1년 전에 피살 당했구나. 1949년 6월 26일 일요일. 흥미롭다.;;

날짜와 관련해서는 이런 과거 역사와 미래 사건들이 떠오른다만..
이 글에서는 그보다 전인 이 달 초, 현충일 연휴 때 만들었던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본인은 그때 와이프와 함께 양양의 낙산 해수욕장과 하조대 해수욕장, 그리고 하조대 전망대와 정자를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치가 상상 이상의 대박이었다. 대한민국에 이런 퀄리티의 해변이 있었나 다시 보게 됐다.
신혼여행 가서 봤던 동남아 모 바닷가 색깔의 절반에는 근접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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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먼저 들렀던 낙산 해수욕장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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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어쩜 이렇게 계곡 물처럼 맑고 투명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다음에 맑은 낮 시간대에 하조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하조대 해수욕장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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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하늘 아래에 에메랄드 색 바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보면 3~5m 아래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청명한 바닷물, 상아색의 고운 모래.. 물에 들어가 보니 수온은 완전 냉탕..
이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싹 시원해지고 힐링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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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비하면, 서울에서 가까운 영종도 황해 바닷가는 그냥 흙탕물 호수일 뿐이구나 싶었다.
바닷물은 1미터 깊이에서도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정물인 데다, 모래사장도 모래라기보다 시커멓고 찐득찐득한 진흙에 더 가까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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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대는 해수욕장은 저렇고, 언덕 위의 '하조대' 정자 부근은 정말 추울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었다. 시원한 바다에 시원한 솔숲 언덕이라니 여기는 정말 기가 막힌 피서지였다.
울나라 애국가의 2절 가사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실제로 저 하조대 소나무를 말하는 거라 카더라.

그리고 그 당시에 또 인상적이었던 건 양양과 강릉의 날씨 차이였다. 양양과 강릉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데 낮 기온 차이가 많이 났다.
전자는 25도 부근에 머물렀던 반면, 후자는 30도.. 강릉이 훨~씬 더 더웠고 햇볕 열기가 강했다. 오후 4~5시 사이의 강릉이 오후 1~2시 사이의 양양보다 더 더웠으니 말 다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상이다.
한때 양양의 해수욕장들은 뭔 계기가 있었는지 젊은이들 사이에서 서핑 명소로 유명해졌다.
그랬는데 한편으로 풍기문란한 장소=_=;;라는 프레임이 씌워져서 "가족 단위로 휴가 가기에 민망한 곳"이라는 편견이 생기고, 이 때문에 피서객이 오히려 감소했다고 한다. 양양 주민들 입장에서는 억울해서 펄쩍 뛸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해수욕장이 정식 개장하기 전에 미리 가 보니 양양의 바닷가는 해수욕장으로서는 정말 최고 퀄리티였다.
속초나 고성까지 너무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아도 이렇게 좋은 해수욕장이 있으니 여름에 놀러 다녀오면 좋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25 08:35 2025/06/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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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대엔 공룡기업 IBM이 메인프레임에만 안주하느라 개인용 컴터 PC 시장의 흐름을 못 읽었다. 그 결과 그 나와바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한테 다 내줘 버렸다. IBM은 나름 컴퓨터 아키텍처를 설계할 줄 알고 OS/2 같은 운영체제를 만들 기술도 있는 하드· 소프트 겸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나중엔 거의 같은 패턴의 역사가 또 반복되었다.
마소와 인텔도 공룡기업이 된 뒤엔, 2000년대 후반 모바일 시장의 흐름을 못 읽었다. 결국, 그 나와바리는 구글과 애플(소프트), 퀄컴과 ARM(하드) 등에게 다 내줘 버렸다.
앞으로 이런 식의 파이와 기회가 또 새로 생길지, 저 기업들조차 후발주자에게 뭔가 주도권을 빼앗기는 날이 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2.
좀 옛날 얘기를 하자면..
1940년대에 강대국 해군 장성들은 "앞으로 해전의 주인공은 항공모함이 될 것이냐 전함이 될 것이냐.."를 갖고 많이 고민했었다.
그게 삼성이니 LG 경영진이 2010년대에 "지금이라도 스마트폰을 육성할까? 아님 그냥 원래 하던 피쳐폰에나 계속 올인할까?" 고민하던 거랑 아주 비슷한 양상이었지 싶다.;;

이때 노키아, 모토로라, 블랙베리 같은 쟁쟁한 업체들이 몰락했으며, LG도 실패해서 MC사업부를 통째로 정리해 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만이 성공했다.
저 S사도 처음에 Windows Mobile 기반으로 옴니아를 밀던 시절에는 그냥 갤갤거리면서 삽질을 많이 했었는데 언제부터 무슨 계기로 안드로이드 기반의 갤럭시로 기사회생 했나 모르겠다. 그 이면에도 수많은 공밀레 비화가 있지 싶다.

3.
옛날에 코닥 사는 한때 마케팅 잘하고 연구개발 인력도 우대하는 엄청난 모범 기업이었다. 무려 1970년인가 1980년대에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까지 했었다.
그러나.. 디카의 미래를 과소평가하고 계속 필카만 고집하다가 지금처럼 몰락했다.

그 당시에는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어 봤자 이 거대한 디지털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 줄 컴퓨팅 환경이나 메모리 기술이 가성비 있게 뒷받침되지 못할 거라고 경영진들이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니 이미 잘나가고 있는 필카와 쓸데없이 팀킬만 벌일 것 같은 분야의 상품화를 접어 버렸지만.. 그건 단견이었다.

4.
전에 한번 얘기했지만 이스트소프트는 한때 알툴즈 프로그램들의 품질과(특히 '알집'과 알FTP) 유료화 정책 때문에 무진장 욕을 많이 먹었다. 컴덕들 사이에서 평판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저 회사 자체는 지금까지 뭔가 뜬다고 하는 유행 분야들만 귀신같이 공략하면서 중견기업으로 어째어째 살아 있다.

1990년대에 워드 프로세서, 2000년대 초에 유틸리티와 온라인 게임, 201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 AI 기업으로..;; 알집을 만들던 회사가 요즘은 버추얼 인플루엔서를 만들어서 운용하고 있을 정도로 체제를 싹 바꿨다.
긴 세월 동안 주력 사업 분야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바꿔 온 IT 기업은 흔치 않은데 말이다.;; 그 중에 진짜 고인물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초대박 난 게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하도 AI, AI 하니까 삼성에서는 애플 아이폰에도 없는 뭔 동작 자동 인식 AI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글쎄, 당장 신기하기는 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기능이 괜히 들어가서 폰 가격이 비싸지고 배터리가 더 두툼해지고 CPU와 전력 소모가 늘어난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5.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까지 약 20년 남짓한 기간 동안은 PC 환경에서 인스턴트 메신저 내지 인터넷 전화 솔루션이란 게 존재했다. ICQ, MSN 메신저, 스카이프, 네이트온 같은 추억의 프로그램들 말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라면 다 고유한 IP 주소가 있을 테니, 특정 IP 주소로 텍스트 메시지를 쏴 주는 원시적인 툴이야 운영체제의 기본 유틸리티 차원에서 제공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실용성이 떨어지고 보안도 심히 취약하다. 결국 회원 가입을 받아서 id로 사용자를 식별하는 중앙집중형 메신저 프로그램이 등장하게 됐다.

그랬는데.. MSN이 2010년대 초에 제일 먼저 서비스를 접고 없어졌다. 마소가 아예 스카이프를 인수해 버렸고, MSN을 이걸로 대체했다.
한때는 인터넷 전화 분야에서는 스카이프가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못 읽었는지, 기업 경영상의 삽질과 오판이 있었는지 스카이프는 비교적 최근인 지난 5월부로 완전히 섭종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스카이프가 망한 이유에 대해서 분석한 유튜브도 여럿 있다.

공교롭게도 ICQ는 작년, 2024년 6월 말이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정확히 1년 전에 섭종했다. 햐~ 30년 가까이 시대를 풍미했던 메신저인데.. 아 그러고 보니 천하의 구글에서도 2010년대에 잠깐 구글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PC+모바일+웹 복합인 구글 메신저를 선보였다가 사업 접었었다.
한때 대한민국 국민 메신저였던 네이트온은 산소호흡기 장착한 채로 살아 있기는 한가 보다. 한때는 '이야기'나 '새롬 데이타맨'처럼 PC 통신 에뮬을 개발하던 국내 업체들도 인터넷 전화 분야로 사업을 개척했었는데.. 잘나가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뭐 스마트폰 시대와 함께 카카오톡이 이 바닥을 완전히 평정해 버렸다. 애초에 2010년 그 초창기에도 카카오톡 때문에 피쳐폰을 버리고 스마트폰을 장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이제는 관공서에서 보내는 각종 고지서와 통지서 우편물조차 카카오톡으로 보내는 세상이 됐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전화 요금이나 문자 요금으로 과금되는 통신 트래픽을 훨씬 더 저렴한 인터넷 데이터로 대체해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해 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동차에다 비유하자면, 전기차를 만들어서 기름값에 부과되는 세금을 회피하고, 저렴한 산업용 전기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 말이다. 이러니 통신사들이 심기가 불편해서 한때는 아이폰이 국내에 수입돼 들어오는 것조차 이것저것 태클 놨었다.

WorksMobile 같은 업무용 메신저라든가 Zoom 같은 본격 화상 회의 프로그램은 카카오톡과는 영역이 좀 다른지 현역으로 남아 있다. 사내 인터폰은 스마트폰과 별개로 재래식 유선전화기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업무용 메신저는 B2B 솔루션이니까 고객사에다 바로 과금을 하면 될 테고, 화상 회의 앱은 동시 참석 가능자 수나 회의 가능 시간 같은 것에다 제약을 걸고 부분유료화를 하면 승산이 있어 보인다.

MSN이고 카카오톡이고 무엇이든지.. 세월이 흐를수록 무진장 무거워지고 느려져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게 보안· 암호화 관련 코드 때문에만 무거운 게 절대 아니다. 그냥 간단히 글과 그림을 주고받는 기능만 있으면 수익을 낼 수 없으니 상업 광고가 들어가고 각종 예쁘게 꾸미는 기능, 유료 써비스 관련 기능이 어떤 형태로든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변화가 아니지만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오죽하면 어떤 해커가 그 메신저 프로그램의 내부 프로토콜을 분석해서 기본 기능만 돌아가는 light weight 클론을 따로 만들기도 할 정도이다. 물론 이건 브라우저의 광고 차단 플러그인 만큼이나 일단은 개발사에서 기를 쓰고 단속하는 행위이다.;;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단속하던 게 광고 차단 단속으로 바뀌었다니.. 참 격세지감이다!

6.
아이고 메신저 얘기가 많이 길어져 버렸는데.. 다시 기업 얘기로 돌아와서 좀 어두운 사례들을 나열하도록 하겠다.

블리자드라든가 보잉, 인텔 같은 기업들은 한때 자기 분야에서 날고 기면서 초일류를 자랑하던 집단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들의 최근 행보를 보면 20년~30년 전에 펄펄 날던 그 기세가 절대 영원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넥슨의 흑역사 서든어택 2가 나왔을 때는 블리자드의 오버와치와 얼마나 비교되며 까이곤 했는데, 그 오버와치를 만들었던 모범 개발사조차도 디아블로 이모탈이니 워크래프트 3 리마스터링은 정말 처참하게 욕 먹으며 망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주요 개발진이 모두 퇴사해서 유지보수 역량조차 없다고 여겨지지 않는가.

인텔과 보잉은 공통적으로 엔지니어와 연구 개발을 우대하던 경영진이 물러나고.. 인건비 절감과 단기 흑자 실적만 강조하는 경영진 때문에 난리가 났는가 보다. 제품 품질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를 당했다.
비행기에서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허술한 결함과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하고, 인텔은 AMD 같은 후발주자와의 격차가 갈수록 줄어들고..

인텔은 자기 사정이 좋지 않았는지 2020년부터는 1997년부터 20년이 넘게 물주 역할을 했던 인텔 국제 과학기술 전람회(ISEF)의 후원을 중단했다. 이제 그 대회는 I는 떼고서 개최되고 있다~!
글쎄, 더 찾아보니 국내에서는 장학퀴즈(2024)라든가 도전 골든벨(2020)도.. 비교적 최근인 2020년대에 다들 종영했다.

스펀지 같은 단순 지식 정보 프로라든가 노래 경연대회(창작 동요 + 대학 가요) 부류는 시대의 흐름 때문에 폐지될 만하지만(넘쳐나는 유튜브+나무위키 ㅋㅋㅋㅋ).. 저렇게 공익성 있는 프로는 기업 후원이 끊긴 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제 요즘 자라나는 애들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제3악장의 의미를 알 기회가 없을 것이다. =_=

7.
우리나라 대형 메이저 게임 개발사 중에서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고, 자체 야구단이 있고 AI 기반 자연어 처리 연구에도 유난히 진심이던 좀 특이한 기업이 있었다.
직원들 연봉과 복리후생은 업계 최상이고 사내 병원과 어린이집까지 있는 꿈의 직장이었다.

웬 게임 개발사가 '한글 및 한국어 정보처리 학술대회'에도 후원을 왕창 하고 거기 소속 연구원이나 엔지니어가 논문을 꾸준히 내길래..
나도 한때는 "진짜 인간 같은 AI라도 개발해서 NPC나 GM 역할을 자동화하려나?" 이런 생각까지 했었다.

저 회사는 20년 30년 묵은 고인물 썩은물 석유 아저씨 유저들만 집중적으로 과금시켜서 먹고 사는 것 같더라만.. 그래도 모바일 게임 하나 잘 만들어서 그걸로도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았다고도 들었다.

하지만 정말 의외이고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게임 개발은 과거의 성공에만 안주하다가 많이 말아먹었고, AI나 NLP는 그쪽대로 딱히 별 성과 없이 돈만 왕창 날린 것 같다.
오히려 거길 나와서 따로 회사 차린 사람들이 더 대박 게임 출시해서 승승장구 중이랜다. 이 정도라면 정말로 이전 직장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2010년대부터 그렇게도 오래 육성을 했지만 2020년대에 LLM 기반 AI가 왕창 뜨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AI 전문 스타트업에 비해서도 차별점이 없다. 이제는 그 분야 사업 내지 연구를 접고 매몰비용 처리하려나 보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연간적자'라고 검색을 하면 나라 살림 적자랑 저 회사 적자 소식 요 둘만 주루룩 뜨네. -_-;;

특히 30여 년 전에 과학고에 카이스트 수석, MIT 박사, 30 초반에 SK 상무 출신이었다는 그 천재소녀 부사장은 미친 스펙에 비해서는 그 이후에 세상을 뒤집어엎을 연구 성과를 낸 게 없고, 행보가 정말 너무 초라하긴 했다;;
과거의 명성 대비, 연봉에 "비해서" 말이다. 결국 작년에 경질됐다.

이렇게 끝날 거였으면 사업이나 경영에 관여할 게 아니라, 그 엄청난 공부 머리를 살려서 평범하게(?) 공대 교수만 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비슷한 연배인 중국 리 페이페이 교수 같은 사람이 됐어야지.
뭐 지금이야 이미 억만장자일 테니 이제 평생 일할 필요 자체가 없겠지만.. 그 사람이 겨우 그렇게만 탱자탱자 사는 건 재능낭비이고 카이스트의 국비 장학생 제도에 대한 자괴감을 야기할 것이다.

서든어택2 삽질, 블리자드의 삽질.. 등등의 소식을 들어 왔지만 이 회사의 삽질은 그런 것과도 성격이 좀 다른 것 같다.
이제는 전통적인 메이저 게임사 3N 중에서 여전히 메이저로 대접받는 N은 사실상 하나밖에 안 남았다고 여겨진댄다. 다음으로 스마일게이트, 크래프톤 이런 신생업체가 떠오르는 강자라고..

물론 저 회사가 지금 이 정도 위기만으로 무슨 자금줄 끊긴 중소마냥 당장 오늘내일 하는 지경인 건 전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조직을 쇄신해서 새 사업 아이템으로 과거의 영광을 새로 되찾을지, 아니면 결국 과거의 영광만 껴안고 장렬히 자폭하거나 서서히 쪼그라들지.. 중대한 기로에 놓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21 19:35 2025/06/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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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를 성인이 돼서, 특히 정보 보호 보안의 관점에서 현실성을 생각해 보니.. ㄲㄲㄲ

1.
저 시절에 도둑들은 평범한 열쇠나 카드키, 비밀번호 도어락이 아니고, 지문이나 안면· 안구 홍채 같은 생체 인식도 아니고, 무려 음성 인식 기반의 첨단 보안 시스템을 구축했구나 싶다. 이거 생각보다 대단한 기술이 동원됐다~~ ^^
특정 인물의 성문을 정교하게 판독하는 건 아닌지, 아무나 "열려라 참깨"라고 외치기만 하면 된다. 두목뿐만 아니라 알리바바나 형 카심까지 다 문을 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건 주문, 암구호.. 아니 패스워드를 누군가가 엿들을 수 있기 때문에 보안 관점에서는 별로 좋지 않은 시스템이다. -_-;; 그러니 알리바바한테 바로 털렸다.
저 도둑들은 매일은 아니어도 최소한 매주나 매월 암구호를 바꾸기라도 했어야 했다... 들깨건 후추건 다른 단어로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아니, 근본적으로 장물들이 털린 걸 인지한 그 직후에 당장 암구호를 교체했어야 했다. 알리바바의 방문 이후에 카심이 방문하기까지 텀이 하루 이틀보다는 훨씬 더 길었을 텐데 말이다.

2.
알리바바의 형 카심은 도둑들의 기지? 아지트? 소굴 안에서 휘황찬란 금은보화 장물(..)들을 보고는 넋이 나가는 바람에 패스워드를 까먹었다. 그래서 굴 안에 갇혀 버렸고.. 나중에 기지로 돌아온 도둑들에게 곧바로 살해당했다.

문이 안 열릴 때 카심은 얼마나 당황하고 패닉에 빠졌을까? 얼마 후에 반대편 바깥에서 도둑 일행들이 도착해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릴 때는 진짜 바지에 쉬도 지릴 정도로 멘붕했지 싶다.
또한, 이런 일이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졌다면 카심이 저렇게 곱게 깔끔하게 단칼에 죽을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_=;;

저 도둑들은 다른 용어로 표현하자면 산적? 마적이라든가 조폭?? 같은 무시무시한 집단이다.
카심은 온몸이 결박당한 채 손가락이 하나씩 잘리거나.. 하다못해 꼴깍꼴깍 코렁탕이라도 주입 당하면서 "네놈은 누구야? 여길 어떻게 알고 들어왔어? 저번에 없어졌던 우리 장물들도 니가 가져간 거지? 어디로 처분했어? 어서 불어!" 이런 심문과 함께 정말 처참 끔찍하게 죽었을 것이다.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전기 고문은 없었겠지만. ㄲㄲㄲㄲ

동화에서는 오로지 동심파괴를 방지하기 위해서 곧바로 푹찍악으로 서사가 단순화됐을 뿐이다.

3.
몇 년 전엔 우리나라에서 오피스텔 건물 출입문들에 누군가가 정체 모를 괴표식을 그려 놔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입주민들, 특히 혼자 사는 여성들이 자기가 범죄 표적이 된 거 아니냐고 질겁을 하고 경비실 내지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게 뉴스에 보도되었다.

자 그런데.. 부자가 된 알리바바 역시 이런 일을 당했었다!
도둑들은 카심의 시체를 꿰멘 업자를 수소문해서 알리바바의 집을 알아냈다. 그래서 일단 저 대문에다가 X표를 그려 놨다.
그 시절에는 GPS도 없고, 오늘날의 도로명주소 같은 행정구역 체계도 없었기 때문이다. 집 주소나 지리 좌표만 간단히 적어 오는 건 가능하지 않았다.

허나, 알리바바의 하녀 모르기아나가 이걸 보고는 수상함을 느꼈다. 그래서 길거리 모든 집들에다가 똑같이 X표를 해서 개인정보 유출 시도를 막아냈다.
X표를 지우는 것보다는 발품 팔아서라도 몽땅 다 그리는 게 차라리 더 쉬웠는가 보다.

알리바바의 집을 알아냈다고 보고했던 부하는 모르기아나의 대처로 인해 임무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판본에 따라서는 개갈굼 당하는 걸로 끝나거나, 아니면 열받은 보스에게 즉결처형 당했다. -_-;;;

4.
도둑들은 삽질 수고를 감내한 끝에 알리바바의 집을 다시 알아내고 이번엔 정확하게 숙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두목이 알리바바를 암살하려고 기름 상인으로 위장하고 알리바바의 집을 찾아갔다.
이때 자기 부하들 40명을 각각 드럼통.. 아, 아니 그에 준하는 기름 항아리에다가 몰래 집어넣어 놓고 낙타에 실었다.

옹.. 도둑들은 평소에 활동할 때는 말을 타고 다녔을 텐데 낙타도 그만치 보유하고 있었구만.
그런데 칼을 든 성인 남자가 들어가려면 항아리가 얼마나 커야 했으며 부하들은 꼼짝달싹 못 하면서 얼마나 개고생 했을까?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때도 알리바바의 하녀 모르기아나는 정말 현명하게 대처했다. 처음엔 도둑들 정체를 간파하고는 저 40개에 달하는 항아리에다가 끓는 기름을 차례로 부어서 부하들을 혼자서 몰살시켜 버렸다!!!
사람 40명을 그렇게 죽이고도 태연하게 써빙을 계속했으며.. (고기 요리랍시고 죽은 도둑들 인육을 냈던가??? ㄷㄷㄷㄷㄷ)
나중에 칼춤으로 도둑 두목까지 저격했다니... 모르기아나는 일개 하녀가 아니라 거의 살인 기계 공작원 수준의 멘탈을 보유한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을 그런 방식으로 즉사· 무력화시키려면 무슨 쇳물이나 황산· 염산이라도 부었어야지, 겨우 튀김용 기름 정도로 사람이 순식간에 끽 소리 못 하고 순식간에 무력화될 것 같지는 않다. 그 정도면 화상만 입은 채 항아리 깨고 튀어나올 수 있고, 무엇보다 옆의 동료들이 비명을 듣고 튀어나와서 모르기아나에게 얼마든지 역공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여러 모로 동화는 동화로만 알고 봐야 할 것 같다. 디테일이 거 참... ^^
모르기아나의 저런 초인적인 행적 정도면.. 하녀가 뭐야, 진짜 알리바바의 양녀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어떤 동화책은 머리말에 "세상에 모든 계모들이 다 (이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이렇게 편찬자의 코멘트가 붙어 있곤 했다. 콩쥐팥쥐, 장화홍련, 신데렐라 등등등..
알리바바의 경우, "단, 알리바바도 정직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건 아닙니다." 이렇게 쓰인 책이 있었다. ㅎㅎ

* 참고로 참깨와 들깨는 깨라는 열매의 형태와 용도만 비슷할 뿐, 근본적으로는 서로 다른 농작물이다. 깻잎을 고기쌈 용도로 생으로 먹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들깨잎을 먹지 참깨잎은 그 대상이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19 08:35 2025/06/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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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표준의 필요성

1. 새마을호 객차

옛날에(1980~2010년대) 우리나라에 새마을호 열차가 다니던 시절에..
새마을호는 기관차 견인형과 액압변속 디젤동차형 둘로 나뉘었던 걸로 유명했다.
동차형 새마을호는 동력분산이 아니라 동력집중식이었다. 즉, 맨 앞, 맨 뒤 양쪽의 동력차만 빼면 그 사이의 객차들은 엔진 같은 게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므로 기관차 견인형 새마을호의 객차와 동차형 새마을호의 객차는 크기와 좌석이 동일하고 인테리어 동일하고 외형적으로 다를 것이 전혀 없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전원 점퍼 같은 세부 규격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호환되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새마을호 객차이지만 기관차 견인형과 동차형을 서로 섞어서 편성할 수 없었다..!

물론 새마을호 전용 동력차로부터 전력을 받는 거랑, 그런 거 없이 통상적인 기관차나 발전차로부터 전력을 받는 게 내부적인 구현 형태는 많이 다르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동차 편성은 그 특성상 유동적인 객차수 조절을 별로 염두에 두지도 않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입출력 인터페이스가 달라야 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 규격이 서로 일치하지 않은 것은 좀 아쉬운 점이다.

이제 우리나라에 동차형 새마을호와 비스무리한 외형을 유지하고 있는 열차는 경복호밖에 남지 않았다.

2. 아폴로 13호 우주선

1970년, 미국의 아폴로 13호 미션 때는 사령선에서 폭발 사고가 났다. 이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달 착륙선에 있던 전기와 산소까지 어떻게든 끌어다가 사령선의 승무원들을 생존시키고, 이들을 지구로 생환시켜야 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사령선의 이산화탄소 제거기와 달 착륙선의 이산화탄소 제거기는 서로 다른 제조사에서 만들었는지 단자 모양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상에 있던 엔지니어들이 단자 모양을 어떻게든 맞추는 방법을 찾아내 알려주고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이렇게 똥줄 타는 경험을 한 뒤, 아폴로 14호부터는 두 기계는 단자 모양이 당연히 서로 호환되게끔 시정 조치가 취해졌다.

3. 일본군의 육· 해군 대립

2차 세계 대전 시절에 일본군에서는 육군이 잠수함을 만들고 해군이 탱크를 만들기도 했던 게 아주 유명하다. =_=;;;;; 서로 노하우 공유나 부품 호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전부 따로국밥..
해병대 상륙함이라든가 폭격기 같은 건 육· 해군 경계가 모호할 수도 있다고 치지만, 탱크와 잠수함은 너무했다. -_-;;;

구 일본군의 병크가 워낙 유명하긴 하지만, 컴터 업계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꽤 악독했다.;;; 구글, 애플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내부의 팀들끼리 경쟁하고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정보 공유 같은 것도 없고 같은 기능의 중복 개발이 난무했다.

현재 시스템에서 실행 내지 load돼 있는 프로세스· DLL을 조회하는 API를 Windows 9x 팀과 NT 팀이 어떤 정보 공유도 없이 제각기 따로 개발했질 않나, (dbghelp vs psapi)
Visual C++ 팀과 Windows 팀이 C 런타임 라이브러리를 오랫동안 서로 따로 만들고 놀았다.
Office 팀은 파일 대화상자를 자체적으로 따로 개발하고 심지어 한중일 IME도 따로 자체 개발했었다. (Windows XP 시절까지)

4. C++ 표준 라이브러리

하긴, C++이라는 언어도 말이다.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된 언어가 아니라 "C에다가 객체지향만 살짝 얹은 그 무언가"에서 출발했다가 차츰차츰 아주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진화된(evolved) 언어이다.

얘는 처음 등장했을 때 자기만의 표준 라이브러리, 클래스 라이브러리라는 게 없었다. 언어 차원에서 기본 제공되는 모든 오브젝트들의 뿌리 기본 클래스라는 개념도 없다. 그저 void*만이 있을 뿐;;;

1990년대 초, C++ 3.0에서 템플릿이라는 게 추가되고 나서 이를 이용한 범용적인 알고리즘/컨테이너 구현체인 STL이라는 게 알음알음 등장하고, C++98이 돼서야 라이브러리의 표준화가 논의됐을 뿐이다. 다른 객체지향 언어들과 비교했을 때 표준 라이브러리가 너무 늦게 제정됐다.

그 와중에 C++ 컴파일러가 등장하고 컴퓨팅 환경이 DOS에서 Windows로 넘어가는 동안..
수많은 라이브러리 개발사들은 그새 자기만의 문자열 클래스, 자기만의 동적 배열, 자기만의 링크드 리스트 컨테이너 등등을 만들고 또 만들게 됐다. re-invent the wheel!! 뭐, 이거는 앞에서 언급했던 마소 부서들의 중복 구현과는 성격이 좀 다른 현상이지만 말이다.

5. 전기 플러그

전기· 전자는 표준 규격이라는 게 오만 데 다 필요한 분야임이 틀림없다. (1) 가정용 교류 전기의 전압(100, 220)은 대표적인 예이고, 교류의 경우 주파수도 말이다(50 또는 60hz). 난 직류는 뭔가 민물고기(강=도시철도?) 같고 교류는 바닷물고기(광역/일반/고속철도??) 같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왔다.

(2) 전기 자체의 물리량뿐만 아니라 전원 플러그의 외형적인 모양도 어쩌다 보니 세계적으로 완전히 통합되지 못했다. 전부 합하면 10여 종이나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모든 전원 플러그에 대응 가능한 뚱뚱한 플러그가 공항 면세점이나 잡화점에서 팔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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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기 플러그는 전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옛날 100V용으로 쓰였던 각진 type A형 플러그로 220V를 넣을 수도 있고, 반대로 오늘날 220V용으로 쓰이는 동그란 돼지코 type C 플러그로 100V를 넣을 수도 있다. 그냥 정하기 나름..
그런 맥락에서 만능 플러그 역시 변압은 해 주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그건 소비자가 알아서 변압기를 구비해서 해결해야 한다.

승압을 하면서 플러그의 모양까지 딴 걸로 바꾼 건 뭐랄까 마소에서 16비트에서 32비트로 갈아탈 때 실행 파일 포맷이라는 껍데기를 NE에서 PE로 바꿔 버린 것과 비슷한 변화 같다.

6. 충전 단자

전원 플러그 다음으로는 충전기도 생각해 보자.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국내 핸드폰/피처폰들의 충전기와 짹 모양이 전부 제각각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폰을 통째로 받침대에다 찰칵 꽂아 놓고 충전했던 적도 있는데..

이제는 USB 포트가 전자기기 간의 연결뿐만 아니라 소형 전자기기들의 충전까지 책임지는 만능 단자로 등극했다. 오죽했으면 그 도도하던 아이폰까지 USB C를 도입할 지경이니까.
하지만 컴퓨터와의 접점까지는 없는 일부 저렴한 손전등이나 전동 면도기 중에는 여전히 듣보잡 고유 단자와 전용 충전기만을 고집하는 물건이 있다. 이런 것들은 차차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충전 상태를 나타내는 시각 피드백도 좀 통일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충전 중엔 적색이다가 완료 후엔 녹색.
  • 충전 중엔 녹색이다가 완료 후엔 녹색 점멸;;
  • 충전 중엔 황색이다가 완료 후엔 불빛 꺼짐
  • 충전 중엔 황색 깜빡이다가 완료 후엔 황색

옛날에 폰과 디카의 배터리를 따로 꺼내서 충전하던 시절엔.. 본인은 위의 케이스들을 전부 다 봐 왔다.;;;

7. 좌표계

국가별로 도로에 좌측/우측통행 기준이 다르다면, 컴퓨터에는 CPU 제조사에 따라서 비트 배열 순서(엔디언)가 차이가 있다. 그런데 컴퓨터에는 그것 말고 기하학적인 좌표의 취급 방향도 살짝 파편화된 구석이 있다.

2차원에서는 Y축의 양수가 아래로 가느냐, 위로 가느냐가 다르다. 아래는 글을 써 내려가는 방향과 일치하는 반면, 위는 수학 좌표계와 일치한다.
이건 뭔가 번호 다이얼(아래로)과 계산기의 숫자(위로) 배열 방향 차이와도 비슷해 보이는데..?

BMP 그래픽 파일은 위쪽(수학) 좌표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Windows에서는 원초적인 픽셀 기반의 MM_TEXT 좌표계만이 아래쪽이고, 나머지 현실 단위계와 대응하는 좌표계들은 위쪽이다. macOS 환경은 MM_TEXT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몽땅 위쪽인 걸로 난 알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차원을 넘어 3차원으로 가면.. XY 평면 위로 Z축의 양수가 어느 쪽으로 뻗느냐에 따라 왼손 또는 오른손 좌표계로 나뉜다. 오래된 표준 그래픽 라이브러리인 OpenGL은 오른손 좌표계이지만, 후발주자였던 DirectX는 왼손 좌표계를 채택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상이다.
자고로 어떤 기계나 컴퓨터 프로그램은 겉으로는 똑같이 동작하더라도 내부 디테일은 어떤 규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제품의 유지보수라든가, 타사 제품과의 연계를 위해서는 산업 표준을 만들어서 그걸 따라 만들게 하는 게 좋다.

컴퓨터 세계를 더 살펴보자면, 유니코드라는 게 없던 1990년대 초까지는 한글 코드조차 조합형이니 완성형이니 난립해서 문제였었다. 21세기 초까지는 동영상 코덱도 난립(1990~2000년대)했었다.
철도는 궤간이 대표적인 문제이고.. 아날로그 TV 시절에는 디지털 동영상 코덱이 아니라 아날로그 영상 신호 내부 구조가 PAL이니 NTSC니 하는 표준 규격이 있었다. 이런 걸 다 다루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니 이 글에서는 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15 19:35 2025/06/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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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력이라는 출력의 의미

1마력이라는 건 75킬로그램짜리--정확히는 질량 75kg에 지구 중력가속도가 적용된 75kgf-- 물체를 초속 1m, 즉 사람이 천천히 걷는 정도인 시속 3.6km의 속도로 들어서 위로 끌어올리는 '일률'을 말한다.
마력에 대해서 문화권별로 HP냐 PS냐 하면서 자잘한 차이가 있긴 하다. 허나, 이 글에서는 그건 논외로 하고, 미터법을 기반으로 하는 프랑스/독일 스타일 마력(PS)을 다루기로 한다.

사실, 힘이라는 건 질량을 가진 물체의 운동 속도를 변화시키는 변화량을 나타낸다. 그 힘이 축적되어서 물체가 이동하면서 일을 하며, 일률은 그 일을 단위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하는지를 나타낸다.
가벼운 물체가 신속하게 움직이거나, 무거운 물체를 그에 상응하게 천천히 움직이면 일률이 서로 비슷하게 산출될 수 있다. 그러니 힘과 일률은 비슷한 것 같지만 엄밀히 따지면 서로 관점의 차이가 있는 개념이다.

그럼 1마력은 어느 정도 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일률일까?
비만이 아닌 성인 남자 하나, 혹은 지게 하나를 꽉 차지하는 쌀 한 가마 무게가 75kg 부근이다.
이건 리어카에 실어서 사람 보행 속도로 밀거나 끄는 것도 사람 혼자서는 쉽지 않은 무게일 것이다. 그런데 이걸 붙들고 위로 끌어올리는 거라면..???? 사람의 근육으로 범접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위력임을 알 수 있다.

올림픽 역도 선수는 75kg의 2~3배에 달하는 무게의 역기를 들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바닥에서 머리 위로 2m 남짓 번쩍 들어올리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 사람이 아니라 동물 말은 이 정도 일률이 평범하게 나오는가 보다.

건강한 성인 남자가 자전거로 페달을 최대한 죽어라고 밟을 때 발이 산출하는 일률이 대체로 0.1~0.2마력 주변이라고 한다.
사람은 체중이 있으니 쎄게 밟으면 페달질 중의 토크(돌림힘)는 그냥 휘발유 승용차 엔진의 최대 토크에 근접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잠깐만 말이다.
중형차의 최대 토크가 반지름 1m짜리 회전축 기준으로 거의 20kgf가량이다. 자전거 페달 크랭크암은 20cm가 채 될까말까이니 저 기준에 맞추려면 힘을 5배 가까이 곱해 줘야 한다.

그런데 자동차 엔진은 그 힘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회전수는 사람의 자전거 페달링 회전수의 수십 배를 상회한다. 제원에 명시된 150~200마력이야 풀악셀을 밟을 때에나 나오는 최대 한계이지만, 악셀 안 밟고 공회전 아이들링 크리핑만 해도 기본이 10마력대이다.
그러니 자동차는 D 해 놓고 슬금슬금 기어가는 상태라도 힘을 절대로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저 상태로도 사람 태우고 과속방지턱쯤은 우습게 넘으며, 아주 약간의 오르막까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엔진 말고 다른 예로는..
(1) 15층 이하 건물에서 통상적인 속도로 주행하는 엘리베이터가 보통 분속 60m라고 한다. 즉, 초속 1m, 시속 3.6km인 마력의 레퍼런스 속도와 동일하다.
어떤 엘리베이터 모터의 최대출력 마력은 승차정원의 수와 얼추 비슷하며, 최소한 그와 선형적으로 비례한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는 카 자체의 무게라든가 다른 여유분도 추가되겠지만 말이다. 15인승 엘리베이터에는 20~30마력짜리 모터가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2) 통상적인 자동차 에어컨이 한여름 최대 출력(최저온?)으로 돌아갈 때 끌어다 쓰는 엔진 동력도 내가 알기로 얼추~~ 1인당 1마력꼴이다.
통계에 따르면 5인승 자동차에 들어가는 에어컨이 깎아먹는 출력 오버헤드가 3~5 마력.
그리고 40인승 이상의 대형 버스에 장착되는 에어컨이 최대 출력이 40~42마력 남짓이라니 꽤 정확하게 대응한다.

디젤 엔진에 지금처럼 커먼레일에 터보차저 같은 기술이 도입되기 전.. 옛날에는 6000~7000cc 배기량의 버스 엔진도 최대 출력이 고작 150~160마력 안팎이어서 요즘 중형 승용차보다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긴, 그때는 버스에 에어컨이 없고 천장 선풍기밖에 없었겠다만..;; 에어컨이 갓 장착됐던 시절에는 이게 차량의 성능에 주는 부담이 꽤 컸다. 에어컨을 쌩쌩 틀면 차가 오르막을 잘 못 오르고 가속이 잘 안 될 정도였다.

그런 배고픈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고속버스의 법적 정의에 "엔진 출력이 차량 총 중량 1톤 당 20마력 이상일 것"이라는 조건이 들어가 있다. 고속버스라면 그에 걸맞은 고성능 차량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생산되는 버스들은 저 조건을 당연히 아득히 충족한다. '현대 유니버스'가 차량 총중량 15톤에 엔진 최대 출력이 400마력에 달한다.

이상이다.
둘을 종합하면 엘리베이터 모터도 1인당 얼추 1마력, 에어컨의 압축기도 1인당 얼추 1마력..
여름에 에어컨을 돌려서 기온을 낮추기 위해, 머릿수 하나당 엘리베이터 타고 위로 올라가는 정도의 동력이 필요하다는 게 흥미롭다.
그리고 이건 성인 남자가 혼자 자전거 페달을 죽어라고(고속 때문이건 오르막 때문이건) 밟는 일률의 최소 10배 이상.. 보통 수십 배에 달하는 위력이라는 것 말이다.

초· 중등 학교에서 가르치는 고전역학 교육은 복잡한 식 계산도 좋지만 이 숫자들이 일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게 사람의 힘보다 얼마나 더 엄청난 힘인지, 우리 주위의 각종 기계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애들한테 일깨우는 교육이었으면 좋겠다.

대전액션 게임을 만들려면 개발자들부터가 먼저 때리고 맞는 경험을 해 보고, 철도인이라면 철-철과 아스팔트-고무의 정지 마찰력 차이와 표준궤 궤간의 길이를 몸과 느낌으로 알아야 하듯이 말이다.
열역학은 하다못해 비빔면 끓였다가 물에 담가서 식히는 것과 접목하고 말이다. (물의 엄청난 비열!!)
비행기가 이륙하는 가속을 자동차 급가속으로 경험하려면 악셀을 얼마나 밟아야 할까~~? 이런 것도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다. 아.. 자동차 운전은 애들이 경험하는 건 아니지만..;;

Posted by 사무엘

2025/06/13 08:35 2025/06/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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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사의 메리트와 고충

예로부터 의사는 사람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고도의 전문직으로 여겨져 왔다. 고소득 수요가 마를 일 없고 불황 탈 일 없고 정리해고 구조조정 그딴 거 없으니..
의사는 취업 시장이나 결혼 시장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인 최상위 랭킹을 자랑하는 깡패이다. 흙수저의 입장에서는 자기 노력으로 의대 들어가서 의사가 되는 건 100% 확실한 신분 상승 수단이었다.

물론 의사에게 이런 부와 지위가 꽁으로 주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의사는 요구되는 지능과 멘탈로나, 학업량과 업무량과 스트레스로나 결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직업이다.
맨 처음 의대에 가는 것부터.. 의대는 어느 듣보잡 지방대에 소속돼 있더라도 의대라는 학과 그 자체가 SKY 같은 간판이다. 의대에 입학하려면 대학 입시에서 전국 석차 0.x%대의 최상위를 찍어야만 한다. 당연히.. 의대를 선망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무슨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준비하듯이 의학 지식이나 의술을 선행학습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냥 국영수 중등 교육과정을 몽땅 마스터함으로써 자기가 앞으로 고등학교 공부보다 더 혹독한 의대 공부도 암기하고 소화할 능력이 되는 모범생이라는 것만 입증해 보이면 된다.

이러니 서울 어느 동네의 사교육계에서는 코흘리개 7~8살 애들한테도 '의대반'이라는 이름으로 아동학대 급의 선행학습을 시키는가 보다. '의대고시'라는 말까지 있는데, 이건 의대 졸업생들이 치르는 의사 국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과학고니 영재고니 그런 데서는..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만 공부 잘하던 똘똘이 제자가 갑자기 평범한 이공계 대신 의대를 선택하면 교사가 공식적으로 진로 지도를 안 해 준다. 심지어 국비로 전액 지원했던 수업료까지 회수한댄다.
하지만 애나 학부모가 겨우 그 정도 페널티 갖고 눈 하나 깜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평생 가져다 줄 넘사벽 급의 보상에 비하면 말이다. 아이고 그놈의 의대가 뭐길래.. -_-;;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만인이 염원하는 초 엘리트 코스를 통과한 현직 의사들의 사정은 어떨까? 이제 먹이사슬의 최고 꼭대기에 진입했는데 서울 강남에 개원한 성형외과 원장부터 시골 깡촌의 요양병원 원장까지 누구든지 떵떵거리면서 만족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느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모든 의사들이 동일하게 생각하는 건 물론 아니겠지만(...), 그래도 자기 자녀는 아무리 똘똘해도 자기 같은 개고생을 시키지 않으려 한다. 의대 보내서 대를 이어 의사를 만들더라도 최소한 대한민국 땅에서는 아니다.

비정상적으로 너무 저렴한 의료숫가라든가, 바이탈 과목에 대한 수련 기피 심화,
수술실에도 CCTV, 권한과 재량은 없이 의무와 처벌밖에 없는 쪽으로 의료법 집행, 고의나 과실 없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환자를 못 살린 것만으로 그냥 소송 걸리고 의사 커리어 끝장.;;

오죽했으면 여객기 안에서 어느 의사 승객이 응급환자를 살리기는 했는데.. 다른 건 바라지도 않고 “내가 의사라는 걸 주변에 절대 발설하지 말라” 이것만 신신당부 했다고 한다. 겸손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
본인이 아는 의사 당사자들은 저런 주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편이다. 그분들은 지금 우리나라 같은 저렴하고 편리한 의료 인프라는 절대로 오래 지속되지 못할 거라고 푸념한다.

결정적으로는 의대 증원 추진 강행.. 이건 의대생들을 몽땅 적으로 돌리고 국가의 의료 인프라까지 반영구적으로 작살낸 최악의 실수였다고 여겨진다.
뭐, 그 당시 대통령은 어차피 탄핵되어 짤렸고, 그 후임 정권도 이 정책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어차피 별 의미는 없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가까운 미래에 심각한 위기에 부딪히기는 할 것 같아서 우려된다.

2.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글쎄, 의대 졸업하고 국시에 합격해서 일반의 면허를 따고, 공공기관 등지에서 월급 받으며 평범한 의술만 베푼다면.. 그 사람은 딱 평범한 대기업 과장이나 비행기 조종사, 대학 조교수 정도로만 번다.

스타 의사 병원장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는 건 당사자가 사업 수완 공부도 의대 공부하듯이 추가적으로 집요하게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적극적인 방송 출연이나 유튜브 활동, 자기 병원 홍보 등..
이건 너무 당연한 이치이다. =_=;; 뭐든지 다 잘하고 다른 분야로 무슨 사업을 해도 성공할 만한 애들이 의사라는 진로를 선택했을 뿐..

심지어는 서울대 치대를 나와서 병원을 운영하다가 관두고 아예 사업을 해서 여느 치과 의사보다 훨씬 더 떼돈 번 사람도 있다. 오스템임플란트의 창업자라든가, 원로 배우 신 영균.. 의사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의사만 장땡인 건 아니어 보인다. 그 밖에..

- 자우림 김 윤아는 남편이 치과 의사인데, 남편이 자기보다 돈을 더 많이 번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 조 현아(현재 개명하여 조 승연)의 남편은 서울대 의대를 나온 성형외과 의사였다. 하지만 저런 스펙조차도 아예 재벌가에 비할 바는 못 되니=_= 남편이 인성파탄 분노조절장애 마누라에게 많이 치이고 시달리면서 살았다고 한다.
결국 도저히 견디다 못해 이혼했지 않은가. 뭐 이건 많이 극단적인 케이스이긴 했다.

- 드물게 의사 면허와 변호사 면허를 동시에 소지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뭐 공부의 신이고 그냥 병원에서 환자나 돌보면서 썩기(?)에도 아까운 사람인 걸까? ㄷㄷㄷㄷㄷ

- 안 철수는 직업 의사의 길에서 이탈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개인적으로는 엄연한 의사 면허 소지자이다.
남에게 의료행위 가능하고 자기 자신이나 남에게 약 처방전을 써 줄 수 있고 사망 진단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수 년 전 코로나19 시절에 지방 내려가서 의료 봉사도 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이 갑부가 된 건 회사(안랩..)를 차려서 사업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의사로서의 소득만으로 저렇게 된 게 아니었다.

3. 무면허와 돌팔이

(1) 10여 년 전, 가수 신 해철 씨를 의료사고로 죽게 한 의사 ㄱ 씨는 그냥 의대도 아니고 서울대 의대 학벌을 자랑하는 괴수였다.
그 사람은 개원해서 각종 언론에도 나오면서 잘나가는 스타 의사로 명성을 떨쳤으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실력 부족인지 인성이 쓰레기였는지, 중대한 의료사고를 연이어 내면서 여러 환자들을 죽였다.

끝내는 톱스타 유명인사까지 골로 보내는 바람에 구속도 되고 손해 배상 때문에 완전히 몰락하고 의사 면허도 뺏겼다.
뺏긴 면허는 자숙 기간 후에 재취득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 뒤에 이 사람 근황은 딱히 전해지지 않는다. 이젠 도저히 얼굴 팔아서 의료행위를 할 수가 없겠지.

서울대 의대를 나오고도 저런 돌팔이가 예외적으로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따름이다. 환자 성추행 같은 거 말고 다른 쪽으로 막장이랄까.. 법조인과 비교하자면 그 미친 '노쇼 변호사 아줌마' 정도와 견줄 수 있겠다.

(2) 한편, 지난 2023년에는 무려 27년 동안이나 무면허로 봉직의로 재직했던 어느 의사호소인이 60대 나이가 다 돼서야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수억에 달하는 연봉을 받으며 평생을 승승장구 했으나 그 끝은 징역 7년.. 교도소에서 은퇴식을 하게 됐다.;;

저 사람은 1993년에 모 지방 의대를 졸업했지만 국시에서 계속 떨어졌는가 보다. 이 때문에 정식 면허는 받지 못한 채로 면허증을 위조해서 의사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한다. Catch me if you can 영화 스토리처럼 말이다.

의사 국시는 변호사 시험이나 교사 임용시험 같은 게 아니라.. 운전면허나 고졸 검정고시 같은 절대평가이다. 과락 없이 일정 점수 이상만 만족하면 다 합격이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는 텍도 없어서 요즘 의사들의 세계는 정말 어중이떠중이 다 무슨 전문의, 어디 임상강사니 펠로우니 하면서 학벌과 간판 인플레가 장난이 아니다.

진짜로 의대 졸업장과 의사 면허증 하나만 달랑 갖고서 의료계라는 무림에 발을 딛는 건.. 갓 운전면허 따고 나서 현실의 대한민국 도로에 내던져지고 택시나 버스 회사에 취업하려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근데 저 사람은 그 혹독한 의대 공부를 버티고 졸업할 깡으로 정말 최소한의 요건인 국시 하나 통과를 못 했나 싶다.

그래도 저 사람은 무면허로도 딱히 의료사고를 낸 건 없었나 보다. 그러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안 들켰던 게 아닐까?
(1)과 (2)는 의료 사건 사고와 관련해서 서로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극단적인 사례인 것 같다.;;

4. 제도 관련 나머지 얘깃거리들

(1) 병원 의료진은 자기가 맡은 환자의 몸에서 총상(!!) 또는 아동학대 정황이 발견되었을 경우, 경찰에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이것은 법적 의무이다. 뭐, 아동학대 정도는 119 구급대원이나 어린이집 교사라도 발견 즉시 신고하지만 말이다.
웹하드 업체가 데이터 중에 아동 포르노 같은 선 넘는 불온물을 발견했을 경우, 고객의 사생활 보장이고 계약 조건이고 나발이고 없이 무조건 신고하게 돼 있다. 업종별로 이런 신고 의무가 법에 명시돼 있는 듯하다.

(2) 예식장에서 혼인 신고를 해 주지는 않듯, 산부인과에서 신생아의 출생 신고를 원래는 자동으로 해 주지 않았다. 좀 떳떳하지 못하게 출산을 하는 산모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서였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더라도 위생적으로 열악한 곳에서 덥석 출산을 하지 말고, 일단 병원에 오라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서류상으로 파악되지 않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아이가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 병원에서 출생 신고를 곧장 하는 걸로 방침이 바뀌었다.

(3) 의사와 한의사는 그야말로 견원지간이다. 의사 쪽에서는 한의학이 과학적으로 검증받지 못해고 미개하다고 왕창 깐다만.. 그래도 몸이 미묘하게 아픈데 양의학(?)에서 진단과 치료를 제대로 못 하는 일은 요즘 세상에 아주 흔하다. 그런 틈새시장 때문에 한의학은 어지간해서는 하루아침에 망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깔려면 동시대를 까야지? 동의보감 내용을 갖고 깐다면.. 서양 의학도 1610년대에는 만만찮게 미개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서양에서도 비타민의 존재를 모르고 손을 씻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4) "푹 쉬고 잘 요양하세요" 의사가 환자들에게 지시하는 원론적인 건강 지시는 의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지만 정작 의사 본인들도 안 지키거나 현실적으로 '못' 지키는 경우가 많다고 카더라.
성경에 나오는 "그들의 말은 듣고 하는 행동은 본받지 마라"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의사는 바리새인 서기관처럼 악의적인 이중잣대 위선자인 건 아니다.
한편으로, "몸 망치며 무리해서 돈 벌어 놓고는 나중에 골병 들어서 병원비로 도로 토해 버리는 것"은 인간이 아주 대표적으로 저지르는 뻘짓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5) 우리나라는 여전히 법대가 있기는 하지만 법조인이 되려면 반드시 로스쿨을 졸업해야 하는 것으로 교육 시스템이 바뀌었다. 그러나 의전원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다들 도로 재래식(?) 의대 시스템으로 복귀했는데..
그렇다고 의전원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차병원/차 의과대학 한 곳만이 의전원을 운영하고 있다.
차병원은 뭐고 길병원은 뭔지.. 아무튼 흥미로운 일이다.

(6) 치과는 안과, 내과, 이비인후과 등.. 여러 진료과와는 좀 다르게, 따로 취급되는 감이 있다. 마치 다른 여러 생선회 vs 참치회 같은 느낌이다. ㅎㅎ
환절기 감기에 걸리면 처방전 없이 걍 약국 레벨로 때울지 아니면 병원을 갈지? 그리고 내과로 갈지, 이비인후과로 갈지.. 고민된다.
그나저나 우리나라는 병원 약값이 정말 엄청나게 싸기는 하다. 의사 진료뿐만 아니라 약도 의료보험인지 건강보험인지 보험빨을 많이 받는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09 19:35 2025/06/0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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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와 잇몸 건강

신체 기관 중에 구강은 외부로 노출되어 있으면서 음식물이 들어가는 부위이다. 거기에 나 있는 치아, 일명 이빨은 뼈의 일부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손발톱이 뼈가 아닌 것만큼이나 치아도 생리학적으로 뼈가 아니다. 치아는 뼈보다 더 단단한 대신, 몸 속 뼈와 같은 정도로 재생되지는 못한다. 인체에서의 용도도 여느 뼈와는 사뭇 다르다.

치아는 일반적으로 잘 썩지 않고 형체 유지가 잘 되는 신체 부위이다.
부패가 한창 진행되어 살이 다 썩어문드러진 시체, 으스러지고 불에 타는 급으로 끔찍하게 죽은 시체에서도 치열 모양을 스캔 뜨고 치과 진료 기록을 대조해서 사람 신원을 알아낼 수 있을 정도이다.

옛날에 히틀러도 자살 후 시체가 휘발유 끼얹고 불질러졌지만 치열 대조를 통해 신원이 확인됐었다.
그러니 일본에서는 대규모 화재나 붕괴 참사가 터져서 사람이 많이 실종되거나 죽었을 때 시신의 신원 확인을 도와줄 ‘경찰치과의’를 육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이 자연 세계의 농간이기라도 한지.. 뮤탄스 균인지 뭔지 하는 아주 소수의 예외적인 세균은 하필 인간 치아 법랑질 안에서 잘 살면서 치아를 부식시킬 수 있다.
이빨이 썩는 건 자연에서 흔히 보는 유기물의 부패하고는 성격이나 양상이 다르다. 에나멜질이 썩네 상아질이 썩네, 신경까지 닿네.. 그러면서 진행 단계가 4개나 세분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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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치아뿐만 아니라 잇몸의 건강도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이의 병.. 충치, 치아우식증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경각심을 일깨우고 교육을 하는 편이다. 그러나 잇몸의 병.. 풍치, 치은염-치주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본인 역시 양치할 때 잇몸에서 피가 나는 건 비타민 C 결핍증 정도로만 아는 게 전부였다. 요즘 세상에 비타민 결핍증은 마치 컴퓨터에서 메모리 할당 실패와 비슷한 존재감이 돼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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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몸병도 충치와 마찬가지로 얼추 4단계로 나뉜다. 잇몸은 다른 곳보다도 이와 이 사이에 양치가 제대로 안 돼 있을 때 탈이 나기 쉽다.
얘는 치아처럼 시커멓게 변색되는 건 없다. 그냥 벌개지고 퉁퉁 붓다가 나중에는 이의 아래쪽이 다 드러나 보이게 된다.

전자는 건물이 화재나 폭발, 테러 때문에 폭삭 주저앉고 붕괴하는 것과 비슷하다.
후자는 건물이 지진이나 홍수 때문에 지반이 싹 없어지는 바람에 그냥 자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꿩 대신 닭"은 가능할지 몰라도 "이 없으면 잇몸"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 없이 잇몸만으로 어떻게 고기를 씹겠는가.

건강한 치아 and/or 잇몸을 위해서 양치는 오토바이에 헬멧, 자동차에 안전벨트와 같은 급의 너무 기본적이고 당연한 얘기이다. 약품 가글은 물리적인 칫솔질을 결코 대체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를 무슨 때 밀듯이 너무 세게 닦는 것도 이와 잇몸에 안 좋다고 하니 인체는 뭔가 극단적인 것에 취약한 게 틀림없다.

무슨 알코올(소주!!!)이나 소금물 가글 같은 민간요법보다는 정기적으로 스케일링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인간의 구강 내부에는 칫솔이 제대로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 공간이 꽤 많기 때문이다.

흔히 스케일링이라고 하지만 이거는 치아 표면이나 사이에 낀 비늘, 물때, 관석, 막 같은 치태(scale)를 제거한다는 뜻이다. 정확한 의미는 ‘디스케일링’이다.
부엌을 깨끗이 해서 파리나 바선생이 꼬이지 않게 하듯이, 저런 뮤탄스균이 좋아할 만한 먹잇감을 구강 안에 남겨두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 2010년대 중반부터 서민들의 재정 부담이 덜어진 게 둘 있다. 하나는 명절에 고속도로 톨비가 면제되기 시작한 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치아 스케일링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19세 이상 대상으로, 연 1회만. 횟수 카운터는 매년 1월 1일에 초기화됨)

10년 전, 20년 전 물가로 5~6만 원씩 하던 스케일링 시술 비용이 갑자기 2만원 부근으로 내려가니 이거 정말 참신하게 느껴졌었다.
스케일링을 의료보험 처리해 줘서 더 중하고 어려운 충치 치료를 예방하는 게 국가의 의료보험 재정에도 더 이익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마냥 포퓰리즘 선심을 쓴 게 아니다.

스케일링은 저런 치태를 초음파 레벨로 드드드드 진동시켜서 먼지 털듯이 제거한다.
시술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치아나 잇몸 자체를 물리적으로 깎아버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애초에 스케일링은 치과 의사가 아니라 치위생사 레벨에서 행해지는 비교적 ‘가벼운’ 시술이다.
복잡한 진료· 치료나 내외과 수술이 아니라, 주사 놓는 것과 비슷한 레벨이라는 것이다. 주사는 간호사가 놓지, 의사가 놓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의료인이 아니면 할 수 없음)

치아나 잇몸을 물리적으로 건드리는 거라면 그건 진짜 치과 의사가 맡아야 하는 매우 위험한 시술이다. 잇몸 치료라든가, 발치(이를 뽑아버리는)도 이에 해당한다.
스케일링은 보험 적용 전에 5~6만원 남짓하던 가격, 그리고 6개월~1년 주기가 권장된다는 점.. 이걸 감안하면.. 자동차로 치면 엔진 오일 교환과 비슷한 정비인 건지도 모르겠다.

지하철 열차가 90도에 가까운 급커브를 지날 때 바퀴와 레일 사이에서 키링키링 불쾌한 소음이 나는 게.. 스케일링 기계가 치아를 들쑤시는 소리와 참 비슷하게 느껴진다. ^^

비전공자인 내가 아는 건 이 정도까지다.
이빨이 몽땅 나간다 해도 그건 눈 한두 개를 잃는 것보다는 덜 치명적일 것이다. 보험에서도 실명을 더 크게 보상하며, 군대에서도 이건 곧장 4급이나 면제 등으로 처분해 준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눈을 다칠 정도의 극단적인 이벤트는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니, 안과보다는 치과가 존재감이 더 크고 사람이 치과를 찾을 일도 더 잦은 듯하다.

근데.. 입안이 무슨 배 속 내장도 아닌데, (1) 같은 입안을 보고 치과마다 진단해 내는 충치 개수가 다르고 치료 견적이 들쭉날쭉이라는 얘기가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 주변 지인들 얘기를 들어 보면 치과 진료에 대한 과잉진료 불신이 여전히 없지 않다. 자동차 정비 쪽에 과잉 정비(멀쩡한 부품까지 몽땅 다 갈아 버리는-_-) 폐단이 있는 것처럼 의료도 사정이 비슷한가 보다.;;

그리고 또.
본인은 양치할 때 치약 묻힌 칫솔에다가 물을 약간이라도 습관적이나마 묻히는 편이다. 거품이 잘 나고 치약이 잘 도포되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2) 치과 의사들은 막 해롭고 나쁜 짓까지는 아니어도 그걸 별로 권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들 중 하나로 흔히 지목되는 "치약 성분이 희석되기 때문"은 좀 의아하게 느껴진다. 물을 묻히든 안 묻히든 치아에 닿는 절대적인 치약의 양은 동일하고 물리적인 솔질 강도도 동일한데 왜 약효가 떨어진다는 걸까? 그리고 광고에 나오는 것보다 치약을 훨씬 적게 써도 된다는 지론과도 별로 안 맞아 보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07 08:35 2025/06/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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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사와 형사, 고의와 과실

우리나라 형법은 고의성 없이 의도치 않게 실수로 사고를 치고 피해를 끼친 것은 '기본적으로' 처벌을 하지 않는다. 전과자를 만드는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도를 불문하고 어쨌든 사고 쳐서 남에게 피해 끼친 걸 '액면 그대로 물어내도록' 강제 절차를 취하는 건.. 형사가 아니라 민사 소송의 영역이다.

그 대신, 형사의 관점은 가해자가 고의로 저지른 범법 행위의 흉악성이다. 물론 피해가 클수록 더 흉악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 관계가 언제나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형사는 "단돈 100원을 훔쳤더라도, 피해자가 당한 피해가 미미하더라도, 절도는 중죄다." 이런 관점이다. 상습적이거나 직무상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저건 경범죄가 아닌 형사처벌 중범죄가 된다.

그럼 빌려 준 돈 갚으라고 법으로 대응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못 갚는 게 아니라 일부러 배째라 엿먹어라 안 갚는 거고, 돈 빌리던 처음 순간부터 갚을 생각 따윈 전혀 없었을 정도로 (1) 정말 단단히 악의적이어야만..!!
그래야만 민사를 넘어 사기죄로 형사 고발까지 가능하다. 그리고 그걸 입증하는 건 대단히 어렵다.

다만, 아무리 고의성이 없는 실수여도 (2) 비가역적으로 너무 큰 피해를 끼친 건 형사처벌이 뒤따른다.
운전 중에 졸다가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게 하거나 중상해를 입히거나..
담배꽁초를 잘못 버려서 야산을 홀랑 다 불태워 버리거나.

사람 죽인 걸 민사에서 승소했다고 해서 도로 살려 받을 수 있지는 않다.;; 그러니 그건 가해자를 벌주는 걸로 처리해야 정의로울 것이다. 이것이 민사와 형사의 관점 차이라 하겠다. 입법, 사법, 행정이 분리됐을 뿐만 아니라 민사와 형사도 영역이 나뉜 것이다.
형벌인 벌금 역시 피해자의 피해 보상에 쓰이는 돈이 아니다. 그건 그냥 세외수입 명목으로 국고로 갈 뿐이고, 피해 보상금은 배상금, 추징금 등 다른 경로로 움직인다.

또한, 어렵고 위험한 일을 (3) 돈 받으면서 직업으로 수행하는데 큰 실수를 저지른 건.. 미안하지만 '업무상 중과실' 어쩌구 운운하는 형사 처벌로 이어진다.
의사가 어처구니없는 의료 사고로 환자를 죽였거나, 용접공이 작업하다가 불똥 잘못 튀겨서 가스를 폭발시켰거나..
여객기 조종사가 한눈 팔다가 자기 잘못으로 뱅기를 추락시켜서 승객들을 죽였거나 등..

물론 과실범은 고의범보다는 더 가볍게 처벌된다. 감방을 가도 징역이 아니라 금고로 처분된다.
그리고 형사 처벌은 끼친 잘못이나 수습 비용에 '정비례'해서 형량이 한없이 올라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정비례해서 올라가는 건 민사 배상이나 행정처분일 뿐이다.

가령,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이면 킬 수 n에 정비례해서 면허 취소 벌점이 쌓이기는 한다. 그러나 금고/징역 형량이 5+n년으로 쭉쭉 올라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다른 모든 과실 중범죄는 'n년 이하의 금고'인 반면, 산불만은 악질적인 방화가 아닌 단순 실화이더라도 산림보호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 규정되어 있다.
지난번에 시청 역 차량 돌진 사고로 사람 9명을 죽인 가해자의 형량이 "금고" 7년 6개월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산불로 온 나라를 작살을 낸 사람이라면 감방만 갔다 온다고 일이 끝나지는 않는다. 그 다음은 민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이 숲 다 날리고 나서 임로를 뒤늦게라도 제대로 닦았으면 좋겠다.;;

(4) 형사처벌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실수였다고 무작정 다 용서되지는 않는 사례는 다음과 같이 생각보다 다양하다.

- 마약 복용이나 운반이 적발된 거(던지기), 운동 선수가 도핑에 적발된 거는.. 이유 불문하고 당사자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그러니 공항에서 낯선 사람의 물건 운반 요청에 절대 응하지 말아야 한다. 프로 운동 선수는 평소에 감기약 하나 복용하는 것도 일일이 코치나 주치의와 상의하면서 극도로 몸을 사려야 한다.

- 운행하는 자기 자동차의 번호판이 외부의 이물질 때문에 일부라도 가려지는 것 역시.. 아무리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였다 해도 과태료를 꽤 비싸게 먹는다! 이건 넓은 의미에서 대포차를 모는 거나 다름없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니 주의해야 한다.

2. 판사와 검사

지난 1997년 4월경엔 이태원 살인 사건이란 게 벌어졌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어느 고삐리 싸이코패스 주한미군이 타메시기리--옛날에 사무라이가 자기 검의 성능을 시험한답시고 길거리의 아무 행인이나 뎅겅 하던 짓거리--라도 하듯이 화장실에서 사람을 흉기로 난자해서 죽인 묻지 마 살인이었다.

옛날에는 잊을 법하면 이렇게 주한미군 중에 질 안 좋은 놈이 사고 친 게 보도되곤 했다. 그러면 또 일각에서는 “더는 못 참겠다! 주한미군은 당장 꺼져라~ 우리민족끼리 통일통일” 이렇게 선동질을 했고 말이다.
햐~ 그러고 보니 효순 미선 장갑차 압사 사고도 벌써 20년도 더 전 일이 됐다. 이런 분야의 사건 사고를 다시 떠올려 보니 참 감개무량하다. 아무튼~~

저 사건은 용의자가 금방 색출되어 붙잡혔는데.. 문제는 2명 중에서 누가 살인범 주범이고 누가 망만 본 종범인지 확실치 않았다는 것이었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두 여인이 이 아기는 자기 꺼라고 주장했듯이, 여기서는 패터슨과 에드워드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이 살인범이라면서 책임을 떠넘겼다.

이럴 때, 전근대 사법 시스템이라면 진범이 겁에 질려 제 발로 자백하고 실토할 때까지 둘 다 진실의 방에 쳐박아 넣고 죽어라고 물리 치료를 시키거나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처방밖에 답이 없었을 것이다. 허나 그건 요즘 관점에서는 너무 무식하고 야만적인 방법이니 아웃이고;;

이 사건에서 둘 중 누가 진범인지를 가리는 건 판사가 아니라 검사의 영역이 됐다. 이렇게까지 너무 고지식하게 역할 분담을 한 게 효율적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판사는 기소된 죄목에 대해서만 유죄 여부와 형량을 판정했다.

그리고 이때 이 사건을 맡았던 박 검사라는 사람이 잘 알다시피 심각하게 트롤짓을 했다. 자기 신념 하나에만 꽂혀서 살인범 판정을 정반대로 엉뚱하게 하는 바람에 그 뒤의 일들을 몽땅 꼬이게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생시켰다.
게다가 진범을 출국 정지 연장조차 깜빡(?) 잊고 안 해서 미국으로 보내 줘 버린 건.. 도저히 옹호해 주기 힘들겠다.

자기가 미군 범죄 수사부보다도 정확하게 범인을 찾아냈다고 자뻑하고 있었는데 2015년엔 결국 자기가 풀어 준 범인이 어렵게 도로 한국으로 송환됐다. 그때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실제로 그는 이게 엄청난 흑역사 오점 트라우마가 됐다. 나중에 주변에서 이태원 살인 사건이 거론되기만 하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현실부정에 신경질 히스테리를 보였다고 한다.

저 사람은 나중에는 지방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고 살다가.. 2023년에는 ㅈㅅ로 석연찮게 생을 마감했다.
의사 중에 돌팔이가 있다면 법조인 중에는 안타깝지만 저런 부류도 있긴 한 것 같다.

이태원 살인 사건과 비슷한 시기인 1995년에 치과 의사 모녀 살인 사건도.. 우리나라 검찰이 외국 법의학자들까지 동원한 변론 방어를 못 이기고 피고는 최종 무죄 판결, 그 대신 진범은 영원히 놓친 케이스가 됐다. 저것도 참 아리까리한 사건이었다.
이러니 법조인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3. 과거와 현재

옛날 조선 시대엔..

(1) 남을 고의로 죽인 살인죄라도 그 이유가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그랬다"이고 그게 사실이었다면 정상참작을 매우 많이 해서 형량을 크게 줄여 줬다.
물론 그 반대급부로 패륜 범죄는 더 엄하게 처벌했다. 그리고 옛날답게 존속에 대한 패륜에 비해서 반대 방향으로 아동학대 같은 것에 대한 인식과 처벌은 미약했다. 아예 왕궁에서 왕자조차 애비로부터 혹독한 학대를 당하기도 했을 정도이니..

(2) 지방 수령이 국고를 사적으로 횡령하는 큰 부정부패를 저질렀더라도..
횡령한 재물을 자식새끼 장가· 시집 보내는 혼수 비용에 썼다고 하면 정상참작과 감형이 많이 됐다.
횡령 액수에서도 그건 차감하고 계산했을 정도였다.

(3) 저 때는 오늘날 관점에서 비인간적인 '연좌제', '삼족을 멸할 죄'라는 게 존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적 정도로 선 넘는 게 아니라면.. 죄 짓고 쫓기는 죄인을 '가족'이 숨겨 주고 도피를 도운 것에 대해서는 불고지죄나 연대책임을 묻지 않았다.
가족 혈연에 대해서 "가재는 게 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가 뭔가 보편적인 인륜이고 법리라고 인정한 것이다.

저 때는 법이 지금보다 좀 더 친가정적인 면모가 있었던 것 같다.;;
가족이기 때문에 이럴 때는 더 눈감아 주는 대신, 반대로 저걸 어겼을 때는 더 크게 처벌한다~~ 이런 식이라면 논리적으로 충분히 수긍이 간다.

이 이념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법에도 어느 정도 반영돼 있다. 허나,

  • 중증 정신병자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감금시키는 건 오로지 가족이 동의했을 때만 가능하다. (더 글로리 드라마에서도 묘사됐듯이!)
  •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애들이.. 정작 알바를 하려고 해도 부모 동의가 있어야 하니 밖에서 먹고 살기 위해 당장 할 만한 게 범죄밖에 없다~~

이건 그 가정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을 때 문제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사법 역사상, 고의 살인 중에 최고의 동정 실드를 얻은 건 "김 보은 양 사건"이었으니 말이다(의붓애비가 딸한테..).
그리고 "이 은석 사건"도 단순 존속살인 패륜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이 사람 정도면 가석방도 되지 않을지..?

애가 극심한 가정폭력 아동학대를 못 견뎌서, 혹은 중증 치매 간병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부모를 죽이고 자수한 거,
아니면 덩치 커지고 힘은 센데 중증 자폐 때문에 사고 치는 걸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반대로 부모가 "너 죽고 나 죽자" 심정으로 아들을 죽여 버리고 자수한 거..
이런 것도 뉴스에 뜨면 댓글은 온통 동정 실드로 가득해진다. 이런 건 비록 고의적인 살인이지만 여느 흉악범죄 살인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영예(!!)를 얻은 살인은 박 기서 씨의 안 두희 피살 사건이지 싶다. 부모의 원수 정도를 넘어 국가의 원수를 갚는 급의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몽둥이여도 구일본 해군의 정신주입봉은 그냥 똥군기의 상징이지만, 우리나라 '정의봉'은 뭐.. 심지어 경찰이 범행 도구를 몰수하지 않고 당사자에게 고이 돌려줬을 정도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04 08:36 2025/06/0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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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난수를 얻기 위해서는 난수를 생성하는 첫 씨앗도 난수여야 한다.",
"엔진이 정지 상태였다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맨 처음에 외부로부터 힘을 공급받아야 한다"(시동) 같은 재귀적인 원리 법칙이 있다.

컴퓨터가 먼저 등장했을까, 프로그래밍 언어가 먼저 등장했을까? 역사적으로 답은 후자이다.
지금은 완전히 망해 버렸지만 2000년대에 인텔 Itanium이라는 64비트 CPU가 처음 출시됐을 때 Itanium용 Windows 2000도 같이 개발되고 있었다. 아직 미완성인 CPU를 타겟으로 그걸 지원하는 운영체제가 어떻게 나란히 개발될 수 있었을까? (에뮬레이터, 그리고 비슷한 특성을 지닌 다른 기성 64비트 OS의 도움을 받아서)

이런 식으로 컴퓨터의 세계에서는 뭔가 재귀 딜레마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려 한 사례를 분야별로 찾아볼 수 있다.

1. 파일 압축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위해서 압축 프로그램 패키지의 압축을 풀어야 한다??

그러니 PC 통신 시절부터 압축 프로그램은 무조건 당장 실행 가능한 EXE 형태로 배포되는 게 불문율이었다. 당연히 이 딜레마를 파훼하기 위해서다.
뭐, 옛날엔 용량을 줄이는 것도 중요했으니 그 EXE는 실행 파일 압축 유틸로 압축돼 있기도 했을 것이다.

2. 부팅을 위해서는 컴에다 운영체제를 설치해야 하는데, 운영체제 설치 프로그램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부팅이 돼 있어야 한다.

그러니 운영체제들은 원본 CD나 USB 메모리로부터 자체 부팅하는 기능이 있다. 그리고 설치 프로그램부터가 자기 운영체제 GUI 셸의 자그마한 클론을 자체 보유하고 있다.
설치 대상 컴터에서 기본적인 하드웨어들을 세팅하고 최소한의 파일들을 하드에 복사했으면.. 다음엔 그 GUI 클론 환경으로 곧장 진입한다.

옛날에 Windows 9x 시절에는 설치 프로그램이 Windows 3.1 셸 기반의 GUI 클론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운영체제의 설치가 거의 다 끝나면.. 설치 프로그램의 최종 마무리 파트(프린터 세팅, 응용 프로그램 등록..)는 "새 운영체제"에서 돌아가는 일회성 프로그램의 형태가 될 정도로 비중이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끝.. 신기하지 않은가?

3. 컴파일러를 돌리기 위해서 컴파일러의 소스를 컴파일해야 한다.

그래서 C/C++처럼 컴파일러 자기 자신을 직접 빌드할 수 있을 정도로 스케일이 큰 언어는 버전 n의 소스를 개조해서 차기 버전 n+1을 만들었다.
그 뒤 버전 n 컴파일러로 버전 n+1을 빌드하고, 빌드된 버전 n+1 컴파일러로 n+1 소스를 '또 다시' 컴파일해서 최종적으로 n+1 컴파일러 바이너리를 만들었다. 최신 컴파일러도 새 기능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최신 버전에서 구현된 최적화 기능 같은 게 적용돼야 하니까 말이다.

물론 컴퓨터의 초창기 시절.. 진짜 최초의 원조 컴파일러는 얄짤없이 쑤제 기계어/어셈블리어로 만들어져야 했다. 이건 마치 지구상 완전 최초의 생명체만큼이나(진화론 관점에서..) 지금으로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전설적인 존재이다.

4. 컴터는 운영체제가 파일 시스템을 세팅하기 전에, 운영체제 프로그램 파일을 디스크로부터 읽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운영체제 프로그램은 파일 시스템과 무관하게 디스크에서 물리적으로 고정된 첫 지점으로부터 읽어들이는 걸로 규약이 정해졌다. 컴퓨터의 펌웨어 차원에서 말이다. (BIOS건 UEFI건)
부팅 디스크는 io.sys 같은 파일을 아무렇게나 카피만 해 넣는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닌 이유가 이 때문이다. 특수한 전용 유틸을 써야 만들 수 있다.

5. 가상 메모리는 컴퓨터의 메모리를 관리하는 파트인데.. 가상 메모리 관리자의 동작을 위한 메모리를 관리하는 파트도 필요하다.
이건 메모리를 관리하는 데 드는 메모리, 로켓이 연료 무게 때문에 더 필요해지는 연료, 세금을 걷는 데 드는 세금.. 이런 개념이다.
보통은 메모리 관리자를 두 번 세팅하는 걸로 해결했다.

오늘날 64비트 컴퓨터들이 포인터에서 44~48비트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컴의 물리적인 메모리가 많아 봤자 수백 GB나 수 TB 정도밖에 없는데, 비현실적으로 공간을 너무 방대하게 잡으면.. 아무 도움이 안 되고 불필요한 메모리 사용만 늘기 때문이다.

6. 응용 프로그램들이 사용하는 C/C++ 런타임 라이브러리는 역시 응용 프로그램과 같은 계층에 존재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전, 부팅을 위해 실행되는 운영체제의 코드들도 C/C++ 함수를 왕왕 사용한다.
그래서 Windows의 경우, msvcrt뿐만 아니라 ntdll에도 보면 C 함수들 구현체가 왕왕 들어있다. 커널용 CRT와 응용 프로그램용 CRT가 별도로 제공되곤 했다.

단, NT 말고 9x 계열은 CRT DLL에 대한 배려가 딱히 없었다. 16비트 시절에는 DOS나 Windows를 불문하고 CRT를 그냥 static link 해서 각자 탑재하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들마다 메모리 모델이 다를 수 있어서, DLL이 프로세스별로 독립된 메모리 주소 공간을 갖지 못해서, C 라이브러리가 지금에 비해 그닥 거대하지도 않아서..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01 19:35 2025/06/0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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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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