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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에 운동 삼아 가까운 산이나 강 중 어딜 좀 갈까 고민하던 중.. 예전에 한강 공원들에 대해 조사하다가 스쳐 지나갔던 '서울함 공원'이 문득 떠올랐다.
한강 공원에 웬 군함이라니..! 본인의 집에서 자전거로 가기에는 좀 먼 거리이지만 모처럼 근성을 발휘해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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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말로만 듣던 군함이 진짜로 보였다. 한강의 선형이 직선이 아니며 강에도 밤섬 같은 장애물이 있다 보니.. 군함은 서강대교· 양화대교를 넘어서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야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인의 퇴역 군함 답사는 평택 해군 기지, 그리고 강릉 통일 공원 이후로 세 번째이다. 각 답사 때 보고 온 것들은 다음과 같다.

  • 평택(2012): 초청해 주신 분이 직접 근무하고 계시던 포항급 초계함, 피격 침몰했다가 인양된 천안함, 그리고 제2 연평해전 당시에 침몰했다가 인양된 참수리 고속정[357].. 전국에서 제일 빡센 해군 기지이다 보니 제일 하드코어한 전시물이 많았다.
  • 강릉(2016): 구축함인 전북함[916](1972년 미군으로부터 인계, 1999년 퇴역), 강릉 무장공비들이 탔던 북한 잠수함, 어느 탈북자 팀이 타고 온 목선
  • 그리고 지금 서울: 호위함인 서울함[952](1984년 건조, 2015년 퇴역), 만기 퇴역한 다른 참수리급 고속정, 돌고래급 잠수함

정리하자면, 평택에서는 아예 현역인 군함 아니면 파괴된 군함을 봤으며, 강릉에는 북한에서 만들어진 배가 있다. 그에 반해 서울함 공원에는 정상적으로 만기 퇴역한 국내 군함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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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띄워져 있는 이 군함은 공원의 이름이기도 한 '서울함'이다. 제원을 검색해 보니 강릉의 전북함보다는 덩치가 약간 작다(길이 119m vs 104m). 그래도 서울함이 훨씬 더 나중에 만들어졌으며, 당시로서는 시설도 제일 좋았기 때문에 이름도 여느 지방이 아니라 수도인 '서울'이 당당히 붙었다고 한다.

퇴역한 뒤엔 경인 아라뱃길(운하)를 통해서 배를 한강으로 예인해 놨는데.. 꼭대기 부분이 너무 높아서 한강 교량 아래를 통과할 수 없는 부분은 별 수 없이 잘랐다가 재조립을 했다고 한다. 서울에 딱히 부산 영도대교 같은 도개교가 있지는 않으니까.. (해군 관계자 가이드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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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로 근처에는 서울함 공원 안내소 건물이 있었다. 이 안내소와 군함 내부에 입장하려면 입구에서 입장료(성인 3천원)를 내고 당일 유효한 종이 팔찌(?)를 차야 하더라.
그리고 안내소 안의 벽에는 이렇게 우리나라 해군과 한강의 역사, 그리고 전시된 군함들의 현역 활동 시절 사전이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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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 군함들 중에 (1) 잠수함은 덩치가 가장 작은 덕분에 아예 실내에 이렇게 같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침 가이드가 잠수함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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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 참수리 고속정은 땅에 전시되었으며, 안내소 건물의 2층과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현재 참수리급 고속정은 후속 모델인 '윤영하 급' 신형 고속정으로 대체되고 있는 중이다. 이 급에 속하는 동일한 형태의 고속정이 여러 척 제작되겠지만, 최초로 제작되는 배는 '윤영하함'이라는 이름이 붙을 거라고 한다.

프로그래밍 언어로 치면 급은 타입의 이름이요, 그 급으로 만들어진 각 배들의 이름은 그 타입으로 선언된 변수의 이름에 대응하는 셈이다. 천안함의 경우, '천안'은 변수의 이름이고 이 변수의 타입(급)은 '포항'이다.
선박은 타 교통수단과 달리 각각의 개체에 고유한 이름을 붙이는 게 관행으로 남아 있다. 거기에다 군함만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번호까지.. 번호도 붙이는 체계가 있을 텐데, 더 자세한 건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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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리 고속정의 조타실이다. 영화 <연평해전>에서 한 상국 상사가 근무하다가 전사한 곳으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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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이 지휘를 내리는 곳인데, 윤 영하 소령도 바로 여기서 적탄을 맞아 치명상을 입고 전사했다고 한다.
평택에서도, 지금 여기서도 가이드를 하신 분은.. 그 당시 357호는 상대방이 절대로 공격하지 않을 거라 믿고 배 옆구리를 다 내주면서 방어 기동을 하다가 기습 공격을 당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괴놈들이 비열한 건 훗날 박 왕자 씨 총격, 천안함, 연평도, 목함 지뢰에 이르기까지 전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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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참수리 고속정의 구경을 마쳤다.
다음으로 서울함도 안내소에서 저렇게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자전거 도로가 다리 아래를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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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군함을 여러 번 구경한 경험이 있으니 배의 안팎 분위기는 그럭저럭 익숙했다.
여행용으로 잠깐만 탄다면 모를까 이런 덥고 비좁은 배에서 며칠 묵으면서 남자들과 부대끼고 숙식을 해결해야 하고, 복잡한 기계류를 유지보수 관리하고 청소하고, 낮은 확률로 자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전투까지 벌어야 한다니..

선원과 군인은 둘 다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인데 해군은 두 직종의 교집합이다.
해군은 타군에서 찾을 수 없는 세일러복, 특유의 흰색 정복, 그리고 육군과는 미묘하게 다른 용어들이 인상적이다.
일반인들은 이 순신 장군이라고 말하지만 해군 출신은 이 순신도 제독이라고 부른댄다. 글쎄, 라이벌(?)이라 일컬어지는 영국의 넬슨 다음에는 제독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반면, 동양의 이 순신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딱히 제독이라고 부른 적이 없는 것 같다.

captain은 육· 공군에서는 대위이지만 해군에서는 훨씬 더 높은 계급인 대령이다.
ensign도 깃발을 나타내는 '엔싸인' 말고 2음절 모음을 생략한 '엔쓴'은 해군 소위라는 뜻이다.
미군은 과거의 일본군 같은 병맛스러운 육· 해군 대립은 없지만, 계급 용어가 서로 통일이 안 돼 있다.

육군에서 소대· 중대· 대대 같은 편제는 딱히 논리적인 개연성 없이 전적으로 편의상 집단을 분할해 놓은 것에 가깝다. 그러나 해군은 아무리 작은 놈이라도 배 한 척의 최고 책임자인 정장· 함장이 되는 것의 상징성이 매우 매우 크다. 그러니 고속정의 승조 인원은 육군 1개 중대의 인원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정장이 육군 중대장에 준하는 대위 계급의 보직인 것이지 싶다.

뱃사람들의 전통에 따르면 함장석에는 함장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도 앉을 수 없다는데.. 글쎄, 이건 마치 초병은 아무리 높은 사람에게라도 원칙대로라면 FM대로 반말로 검문 가능하다는 원론적인 사항처럼 들린다. (현실에서는 잘 안 지켜진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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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서울함 공원 안내소와 그 주변을 본 모습은 이러하다. 서울에 이런 곳도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한번 가 볼 것을 권한다. 오후 2시 반부터 약 1시간 동안 가이드 설명이 있던데, 그 다음 가이드 시각이 오후 4시 언제던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 여행 가다가 단순 교통사고로 침몰한 배보다야 훨씬 더 기억해야 하는 배는 이런 계열의 배들이다.

북한에서는 동해안에서 자기들이 먼 옛날 나포한 미국 푸에블로 호를 먼 공해 쪽으로 빙빙 돌아서 서해안으로 예인해 왔다. 그래서 대동강 강변에다가 전시해서 자기네 안보 교육(?)에 써먹고 있기도 하다.
남한도 수도 시내를 관통하는 강변에 비슷한 성격의 전시품이 생긴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02 08:29 2018/09/02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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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는 이야기와 생각들

소사-원시, 서해선이 이미 지난 6월 중순에 개통했구나! 철덕답지 않게 완전 깜빡 잊고 있었다. 광역전철 동해선은 부산권에 있지만 서해선은 수도권에 있다. 노선색은 서울의 우이 경전철과 비슷한 녹색이다.
이것 말고 올여름 휴가 이후 본인의 머릿속을 거쳐 갔던 경험과 아이디어들을 다음과 같이 두서없이 나열해 본다. 어쩌다 보니 경제 쪽 얘기도 나왔다.

1. 경제 양상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셀프 주유소라는 건 극히 드물고 생소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급증해서 대세가 돼 가고 있다.
  • 종로 한복판 건물들에 "임대 문의" 상태인 공실이 이렇게 많은 걸 보고 놀랐다. 나중에는 이 공실들을 국가에서 매입해서 이런 식으로 부동산 국유화라도 실현할 것 같다.
  • 패스트푸드점들은 요 1년쯤 전부터 이제 키오스크 기계로 주문을 안 할 수 없게 됐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직원에게 직접 주문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불편하다.
  • 편의점 계산대의 직원이 예전엔 전부 나보다 어린 알바생이었는데 지금은 다들 중장년 어르신으로 바뀌었다.

지하철 개찰구와 매표소에 직원이 몇 년 전에 진작에 사라졌던 것처럼.. 이들 변화 중에 일부는 기계화· 무인화 추세로 인해 비정치적으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도 있다.
그러나 비현실· 비정상적으로 상승한 인건비 때문에 그런 변화가 더 가속화되고 부추겨진 것도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임대료나 카드 수수료 탓만 할 게 아니다.

2. 무더위

올해의 폭염은 드디어 1994년 폭염까지 압도하면서 관측 사상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을 수립했다. 낮 최고 기온의 10자리가 3이 위태롭고(40도), 밤 최저 기온의 10자리에 2가 위태로운(30도) 지경이 됐다. 너무 더워서 오히려 해수욕장 인파가 줄어들 정도이고, 심지어 모기조차 자취를 감춘 것 같다. (땀과 이산화탄소가 있는 곳은 언제 어디서든 기가 막히게 달려오니, 이거 뭐 옛날 사람들이 자연 발생설을 괜히 믿었던 게 아닌 듯..)

아침에 일어나서 코와 피부 상태를 살펴보면 습도가 막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건조 고온일 때는 일교차가 커서 밤에라도 시원해지는 편인데 올해는 지구 표면이 태양의 반대편으로 돌아섰을 때에도 어쩜 이렇게 계속해서 더운지 모르겠다.

이 와중에 원전 다 망가뜨리고, 그 대신 북괴 땅을 통과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북괴산 석탄으로 화력 발전을, 산림 마음껏 파괴하는 태양광 발전을 돌려서 어디 한번 에어컨 잘 가동해 봤으면 싶다. 누가 들으면 4대강에만 특혜· 비리가 가득하지, 태양광 발전판 납품은 지저분한 관행이 전혀 없을 줄 알겠다.

3. 냉난방

요즘 자동차들은 똑똑해서 평지에서 "가속 → 타력 주행과 함께 감속 → 재가속"을 반복하는 것보다, 액셀러레이터를 아주 약하게나마 계속 밟으면서 적은 힘으로 등속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연료가 덜 든다고 한다.

그런데 동일한 원리가 냉난방 설비인 보일러와 에어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보일러도 그냥 온수 모드로 켜 놓고 잊어버리는 게 낫고.. 에어컨도 적당히 높은 온도에서 상시 켜 놓는 게 어설프게 껐다 켜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전기가 덜 든다. 완전히 높아져 버린 온도를 새로 낮추는 게 자동차로 치면 멈춘 상태에서 가속만큼이나 아주 힘든 일이긴 한가 보다.

4. 아는 것이 힘

보이스피싱이야 요즘 수법이 하도 많이 알려졌다 보니, 이제 문명의 이기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 외에는 어지간해서는 속는 사람이 없다. 다짜고짜 돈을 어디로 보내라거나 보안 카드 번호를 다 입력하라는 무식한 주문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나마 근래에까지 사용되어 온 그럴싸한 수법은 법원· 검찰 직원 사칭이다. 당신이 지금 사기 범죄에 연루됐으니 혐의를 벗으려면, 오해를 풀려면, 니 계좌에서 돈이 몽땅 인출돼 털리는 피해를 막으려면.. 돈을 다른 안전한 계좌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데, 여차여차 하면서 결국 대출 얘기가 슬쩍 나오는가 보다.

이런 부류의 낚시에도 절대 속을 필요 없다. 정부 기관이 일반인에게 저런 식으로 접근해서 그 따위 요구를 할 일이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법과 관련 규정을 조금만 알면 속을 일이 없는데 사람들이 몰라서 당하기 쉬운 것에 대한 홍보가 더 필요해 보인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견인차는 법적으로 긴급자동차가 전혀 아니라는 것, (걔들도 교통법규를 다 지켜야 함, 우리가 일부러 비켜 줄 필요 전무함)
택시에 목적지부터 들은 뒤에 구두에 의한 조건부 승차 거부는 불법, 그리고 현금영수증 발급 거부도(현금이 더 싸고 카드는 더 비싼 것까지 포함) 탈세와 연루된 완전 불법이라는 것 말이다.

그리고 피서철에 경치 좋은 계곡의 전망 좋은 곳에 평상이 꼭 설치되어 있고 거기서 놀려면 근처 식당에서 바가지 요금을 주고 반드시 식사를 해야 하는 것 말이다.
개발 제한 구역 내에서 어느 누구의 땅도 아닌 곳을 사유지화해서 그렇게 영업을 하는 것부터가 불법이다. 고발당해서 과태료인지 벌금인지 그거 뜯기는 것보다, 법을 모르는 행락객들에게서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기 때문에 업주들이 그렇게 배째라를 시전하는 거다.

5. 체지방과 뱃살

살 빼려면 적게 먹고, 먹는 양보다 활동· 운동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건 틀림없다. 다만..

인간은 자동차 용어로 치면 연비가 상상 이상으로, 기막히게 좋고 효율적인 피조물이다. =_=;; 차라리 항온동물의 특성상 숨 쉬고 가만히 있으면서 체온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열량 소모가 많을지언정, 운동 때문에 추가로 소모되는 열량은 굉장히 적다. 죽어라고 몇 시간씩 운동해서 소모한 열량 정도는 밥 한 그릇 뭐 하나 먹으면 바로 보충되고 원상복귀될 정도..
하긴 그렇게 효율적이니, 인류가 옛날에 왕창 못살던 시절에 흉년 들고 쫄쫄 굶어도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냥 무식하게 굶기만 하면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체지방이 빠지는 게 아니라 수분과 근육부터 먼저 빠진다고 하니 낭패. 당연히 건강에 안 좋다.

그럼 열량 소모를 늘리겠다고 추위에 오랫동안 벌벌 떨며 살면? 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열량 소모가 크게 증가하긴 한다. 하지만 면역력 저하 등으로 인해 이 역시 건강에는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친다. 부작용이 크다.

심지어 운동조차도 어설프게 해서는 안 되고 땀이 날 정도로 그리고 한 30분 이상 해야 그때부터 체지방이 슬슬 빠진다고 그러던데..
체지방이야말로 신체에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닌 존재인가 보다. 난감하다. =_=;;
건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체지방만 곱게 빼는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

6. 연구는 엔진 가동, 강의는 히터

요즘 대학교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방학 동안 알바를 죽어라고 뛰어도 학비를 마련할 수 없네, 이래서 헬조선이네 뭐네 그런 불평 불만이 많다.
그에 대한 반박으로는 대학 교수는 학원 강사와는 차원이 다른 고급 인력이고 대학교 시설도 마찬가지인데, 등록금이란 게 왜 반드시 두 달 알바만으로 충당 가능한 액수여야 하느냐, 가치가 서로 동등하다고 볼 수 있냐 같은 원론적인 말이 있다. 이 블로그에서 양측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하지는 않겠다.

사실 대학교는 고등 교육 기관이며, 단순 지식 전달보다는 연구가 더 우선이어야 한다. 학부를 영어로 괜히 under이라는 말을 붙여서 표현하는 게 아니다. 학부는 중등 교육까지 마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기 위한 기본 전공 내지 이론을 익히는 과정이다. 그리고 진짜 연구는 대학원부터가 시작이다.
그게 아니고 그냥 취업을 위한 공부, 고시 합격을 위한 공부가 전부라면 대학은 존재 의미가 없다. 학원과 별 다를 바 없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학 교수에게는 연구가 main이고 강의는 덤인 게 맞다. 그런데 이 개념을 누군가가 SNS에서 정말 기가 막히게 맛깔난 비유를 동원해서 표현했더라.
"(대학교에서) 강의는 엔진에 연결된 압축기를 돌려야 하는 에어컨이 아니라, 엔진의 폐열을 이용하는 히터다."

우와...!! 하트 뿅뿅~~
공돌이 냄새가 풀풀 작렬하는 완전 직관적이고 참신하고 멋진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약 빨아야 이런 예를 생각해 낼 수 있을까?
나도 내가 쓰는 글에서 이런 유형의 비유를 많이 생각해 내서 써먹고 싶다. 사람의 입을 선박의 조향타에다 비유한 성경 이래로 혼자 읽기 아까운 비유를 발견하여 여기에다가도 공유하게 됐다.

이런 대학은 개나 소나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 아니며, 학비 부담 때문에 전국민이 갈 수 없다고 해서 그 자체가 크게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2차 대전 당시에 그 전쟁광 나치 독일과 일제조차도 대학생은 대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징집을 연기해 주거나, 징집하더라도 병이 아니라 장교로 임관시켰을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대학 등록금이 문제인 것보다는 쓸데없는 학력 인플레가 더 문제이다. 공부 적성 아닌 애들은 빨리 다른 적성 찾아서 자기 분야 기막히게 잘하면 돈 벌고 성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공부 좀 하고 싶어진 만학도들이 추가 교육을 받는 평생 교육 인프라가 발달돼야 할 것이다. 뭐 말은 쉽지만 이것도 실현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7. 소유, 구매, 임대

끝으로, 경제 쪽 얘기를 어설프게 좀 늘어놓고 하고 글을 맺겠다.
"물고기를 그냥 덥석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줘라"라는 요지의 격언이 있다. 그런데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더 발전해서 일을 더 키우면 자기가 아예 물고기 떼를 양식하게 된다.

본인은 완전 경알못이다 보니 정확한 개념이나 용어는 모르겠지만.. 경제가 돌아가는 건 내가 어렸을 때 생각하는 것만치 단순무식 고지식하지 않다. 월급만 모아서는 노후 대비까지 충분히 할 수 없으니, 부자가 되려면 돈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해야 한다. 큰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투기 같은 합법적인 도박도 하고, 빚까지 동원해서 없는 돈을 있는 것으로 많이 '간주'시켜야 한다.

그리고 재화를 갖는 방법이란 게 소유에서 구매로, 구매에서 임대나 공유로 더 가벼워지고 있다. 부동산이나 자동차 같은 비싼 물건뿐만 아니라 기술이나 소프트웨어 같은 무형 자산도 라이센싱 정책이 월 임대 형태로 다 바뀌고 있지 않던가?

기업으로 치면 자체 기술 개발을 하기보다는 그냥 사 오는 것이다. 그게 당장 더 싸게 먹히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어느 선택도 기업에 득이 되거나 해가 될 수 있다. 현대 자동차나 삼성 반도체나 다 기술 개발에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그 비용 대비 결과가 시원찮았으면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물론 과거의 대우 자동차는 기술 개발을 너무 소홀히 한 게 자충수가 됐지만..

농산물의 경우 수입 개방을 하면 안 되네, 식량이 무기화되네 이러면서 예로부터 말이 많았다. 물론 식량을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고 해서 수출국이 자기 멋대로 식량을 호락호락 무기화하지는 못한다. 걔네들이 몽땅 북괴 같은 미친 나라도 아닌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국의 농업 인프라가 몽땅 망해 버리는 것도 마냥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오늘날이 선진국급 국가들 사이에 재래식 무기 전쟁이 거의 없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군대를 필요 없다고 해체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수틀리면 언제든 자유 무역이 중단되고 보호 무역이 대세가 될 수 있으며, 전쟁도 다시 벌어질 수 있다. 그에 대한 대비는 필요한 것 같다.

모든 걸 경제 논리로만 따지자면 무기를 개발하고 군대를 운영하는 그 천문학적인 비용을 그냥 적장에게 건네 주면서.. "이 돈 줄 테니 우리 침략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 줘. 그럼 너도 편하고 나도 좋지 않냐 ㅠㅠ" 읍소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짓 해 봤자 람로완 앞에서의 오 명규 사장 꼴밖에 나지 않으니 거시적으로는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각 나라별로 군비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북괴를 상대로 "이 돈 줄 테니 우리 침략하지 마" 평화 운운하는 놈들은 정말 쳐죽여도 시원찮을 사악한 빨갱이인 것이다..

8. 직업에서 안정성과 자유도는 사실상 반비례

똑같이 연 소득이 4000이라 해도, 프리랜서의 4000과 사기업 4000, 그리고 공무원 4000은.. 정말 급이 다르긴 하다. 특히 프리랜서는 4대 보험과 노후 대비는 말할 것도 없고, 근무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도 전부 자기 주머니에서 나가니, 소득에다 최하 1.5~2는 곱해야 동급의 공무원 연봉과 비교되지 않을까 싶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경기 영향 안 받는 직업을 가지려고 괜히 아둥바둥 매달리는 게 아니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절대 안 망하고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퇴직 연금까지 나오는 조직에 들어가려고 괜히 목숨 거는 게 아니다.

그런데 안정적이거나 소득 높은 직업은 대부분 합당한 이유가 있다. 자기가 창의적으로 뭘 만드는 일이 아니라 휘하의 사람이나 물자를 관리하는 일, 스트레스 받고 책임감 큰 일, 아니면 제복 입고 근무 중 순직이 가능한 일이다. 일례로, 교사가 그렇게도 메리트가 많고 신랑감 신부감으로 적격이라지만.. 난 그런 일은 절대 안 맞으며 못 하겠다.

조직 생활 스트레스 없고 마음대로 일감 찾아서 일하면 되는 프리랜서랑, 반대로 들어가는 것부터 왕창 힘들고 스트레스이지만 일단 들어가면 안에서 최강 철밥통인 조직은.. 서로 일장일단이 있는 듯하다.

세상에 값도 싸고 성능도 왕창 좋은 물건은 일반적으로 존재하지 않듯이 직업 세계도 다수가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비합리적이지는 않다. 편하게 앉아서 돈 많이 버는 직업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눈에 보이지 않게 정신 건강이라도 야금야금 등가 교환하는 게 있는 법이다. 그러니 너무 간보려 하지 말고 자기 여건에 맞고 자기가 가장 잘하고 1인자가 될 수 있는 직종을 선택해서 종사하면 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09 08:34 2018/08/0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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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여행기: PART 4 (2018/7/24)

통일관 안에는 북한의 실상, 북한의 대남 도발사 같은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뭐 그렇다고 마냥 북괴의 만행 비난에 반공 멸공만 강조하는 분위기는 아니고, 말 그대로 통일 통일 거리는 프로파간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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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포로에게는 탄광 맞벌이 일을 시킵니다. 아무리 충실하게 일을 해도 국군 포로의 집은 확실하게 3대까지 반동 낙인을 찍습니다. (그래서 아오지 탄광 같은 특별히 더 힘든 곳으로 배치를..)"
저건 옛날에 국군 포로 귀환자로 잘 알려진 조 창호 중위가 정확하게 당했던 대우이기도 하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싸우다가 자기 의지에 반하여 생지옥으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생각하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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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2016년 10월경, 한창 레카가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탄핵 당하고 매장 당하던 시절의 북괴 로동 신문이다. 역시 윗동네에서도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느라 정신 없었다.
국정농단이 어떻고 하는 건 쟤들이 알 바 아니고, 북괴가 원하는 대로 안 해 주는 남조선의 애국 대통령이니까 싫다고 몰아내라고 선동하는 것일 뿐이었지.
쟤들은 '외치다'도 '웨치다'라고 표기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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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수봉 공원 내부에 있는 현충탑의 주변 모습이다. 원래 자유 공원에 충혼탑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그걸 1972년에 수봉 공원 현충탑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여기 주변으로는 나무 그늘과 산책로, 정자, 간단한 운동 시설도 있어서 쉬러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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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재일 학도 의용군 참전비이다. 아까 자유 공원에 있던 참전비는 자국 "인천" 학도병의 것이니 헷갈리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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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은 인천 지구 전적비이다. 별도로 소개하지는 않지만, 옆에는 UN 참전 기념탑도 있다.
이건 특정 집단의 참전 기념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전투와 승전 자체를 기념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라가 전반적인 분위기가 정상이라면, 필요 이상으로 옛날에만 집착하고 군대 얘기 전쟁 얘기만 꺼내는 건 군국주의 전체주의 수꼴 냄새가 풀풀 나는 발상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 분위기가 정상이 아니다. 본인은 온갖 악의적인 역사 왜곡과 나라 정체성 부정, 악의 무리에게 굴종하는 불의한 거짓 평화가 횡행하는 꼴을 견딜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저항과 반발 심리로 우리나라가 악의 무리로부터 자신을 지켜 온 역사를 더욱 심도 있게 공부하고 주변에 알릴 것이다.

이렇게 공원을 쭉 돌아다녀 봤다. 지도상으로는 산 속에 어린이용 놀이공원과 양궁장, 그리고 인공 폭포 광장도 있는 모양이던데, 본인은 거기에는 들르지 못했다. 밖이 너무 더워서 공원을 꼼꼼히 돌아다닐 여건이 못 됐기 때문이다.
또한, 인천에 거주하는 실향민들의 염원을 전하는 망배단(望拜壇)이라는 비석도 있었는데, 이건 사진 소개를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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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본인이 인천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오랫동안 말로만 들어 왔던 '국제 성서 박물관'이었다. 인천 주안 감리교회에서 자기 예배당 바로 옆에 부설한 별관인데, 실제로 박물관은 그 건물의 5층에만 놓여 있다. 하지만 한 층만으로도 생각보다 넓고 볼 게 많았다. 자기 신앙의 뿌리와 정체성에 일말의 관심이 있는 교인이라면 꼭 가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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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술이 종교 개혁과 성경의 보급에 끼친 영향,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 우리나라 교회사 등 여러 주제를 다루면서 소장 자료도 굉장히 고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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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셩교젼서. 말은 들어 봤다. 옛날에는 한자음을 표기할 때 y가 가미된 모음이 지금보다 더 많이 쓰였던가 보다.
존 로스는 킹 제임스 성경을 대본으로 삼아 한국어 성경 번역본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왜 지금 우리나라는 변개된 성경이 주류가 됐나 모르겠다. 하긴, 개역성경에도 KJV 표현이 일부 전해지는 게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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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성경의 역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장로교가 주류가 된 현재와는 달리, 우리나라 초창기에는 감리교가 더 우세했다. 또한 이 승만, 김 구, 유 관순, 최 용신, 이 준, 남궁 억 등 한국의 주요 크리스천 독립 운동가들은 대부분 감리교 출신이다. 이것은 국내의 감리교회에서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점이기도 하다.

장로교는 하나님의 전지전능 섭리를 굉장히 강조해서 칼빈주의 예정론을 지지하는데, 너무 오버해서 하나님께서 죄악까지 다 설계하고 예정하고 지옥 갈 사람도 미리 다 찍어 놓으셨다고 얘기하니 그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반면, 감리교는 존 웨슬리 이래로 알미니안주의에 입각하여 신자의 행실을 더 강조하는데.. 악행이 계속되면 아예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까지 우기니 이는 지나친 비약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뭐 그건 그렇고, 참고로 주 기철은 감리교가 아닌 장로교 목사였다는 점을 덧붙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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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서양으로 넘어간다.
옛날에는 성경전서 책이 어지간한 사전이나 도록 연감 이상으로 정말 거대하고 부피가 컸다. 그레이트 성경만 거대했던 게 아니다.

이건 충분히 수긍이 가능한 일이다. 옛날에는 기계만 해도 요즘의 물건보다 기능과 성능이 뒤쳐지면서도 더 크고 무거웠다. 하물며 지금으로부터 몇백 년 전에 깨알같은 글자를 정교하게 찍는 인쇄술이 발달하지는 못했을 것이며, 지금 같은 얇디얇으면서 튼튼한 종이를 만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옛날에는 성경의 여백 곳곳에 온갖 삽화들이 많이 들어갔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그야말로 장인 정신이 깃든 예술 작품처럼 꾸민 셈이다. 오늘날 같은 경제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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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bible과 she bible 이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 킹 제임스 성경이 출간 당시에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케임브리지 판과 옥스퍼드 판으로 갈려서 sin/sins 같은 극소수 미묘한 차이가 발생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혹시 그걸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케임브리지 판이 맞음)

킹 제임스 성경 유일무오설을 공격하는 유치한 수법 중 하나는 이렇게 시기와 장소에 따른 KJV edition들의 파편화를 거론하면서 "그럼 도대체 어느 edition이 유일무오한 건가요? ㅋㅋㅋ"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답 내지 반박은 다 마련돼 있다.

KJV는 출간되는 과정에서 저런 파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실수 때문에 vintage와 vinegar를 헷갈린 일명 '식초 성경', 그리고 not을 빼먹어 버려서 아예 "너는 간음할지니라"가 된 '사악한 성경'이 만들어져 나온 적도 있었다. 저 때는 컴퓨터가 없었으며, 인쇄는 여전히 노동 집약적인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번역자의 실수가 아니라 인쇄소 식자공의 실수가 들어갈 여지도 아주 많았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나저나 저 룻 3:15의 경우, 심지어 NASV와 NIV처럼 non-KJV 역본들간에도 끝부분의 주어가(도시로 들어간 사람)이 룻이냐 보아스냐 차이가 있긴 하다.

이 외에 사진을 일일이 소개하지는 않지만..

북한 성경: "조선기독교도련맹중앙위원회 1983"라는 소속과 연대가 붙어 있었다. 문체는 현대어이고 공동번역 스타일이었다. 종교 쪽으로 에큐메니컬한 사람들이 대체로 정치 쪽으로도 에큐메니컬한 편이니.. 그래도 야훼가 아니라 여호와 표기이긴 했다.

에티오피아어 성경: 유니코드 문자표에서나 봤던 희한한 문자가 책의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걸 난생 처음 봤다. 마치 이과생들이 그리스 문자를 수식에서 기호 용도로만 실컷 봐 왔다가 그걸로 그리스어 자연어 텍스트를 써 놓은 걸 보고 놀라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에티오피아 문자는 영역이 U+12?? ~ U+13??이어서 U+11??대인 한글 자모의 바로 다음이다. 그래서 본인도 이 문자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 듯하다.

필사 성경: 박물관에는 국내의 여러 신자들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그냥 읽는 것도 아니고, 손수 타이핑도 아니고.. 종이에다 펜으로 다 베껴 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말 어지간한 근성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것으로.. 본인은 2018년 개인 하계 휴가를 마무리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날씨 타이밍 하나는 완벽했다. 이런 날씨에 피서 휴가를 안 가면 도대체 언제 가겠는가?
다만, 2박 3일을 차와 텐트에만 의지하며 숙소를 따로 안 잡았는데, 그러기에는 밤에 너무 덥긴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여파가 휴가를 마친 뒤에도 며칠간 계속되었으며, 직장에 출근해서까지 한동안 고생했다.

미리 말하는데, 내년 하계휴가로는 군인 없는 양구· 인제라 불리는 경북의 대표적인 오지들 "봉화-영양-울진"을 답사하고자 한다. 철도고 군사 이슈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계곡과 바다만 즐기고 올까 한다.
그 뒤 내후년은 남해 일대를 생각하고 있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8/08/06 19:35 2018/08/0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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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여행기: PART 3 (2018/7/24)

박물관 관람을 계속했다.
말 제대로 안 통하고 아무 생활 기반도 없던 억만 리 타지에 가서 3D 업종에 종사하며 억척같이 일하고 돈 모으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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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면 양반이지, 멕시코로 이민 간 사람들은 알로에인지 에네켄인지 손을 다치기 쉬운 더 이상하게 생긴 작물을 키우는 농장에서 일해야 했다. 그리고 멕시코 라인은 미국 라인과 달리 이민자가 막 많지도 않았으며, 후세들은 그냥 현지와 동화되면서 한국 정체성을 상실해 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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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창호야.. 예전에 도산 공원에 갔을 때도 봤지만 그야말로 "애국이란 게 뭐 거창한 게 절대 아니다. 당신은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하고 있습니까?"주의자였다.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신실해야 큰일을 맡을 수 있게 된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 이게 굉장히 성경적인 심상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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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KBS 해외동포상이란 게 있긴 했다.
서 남표 교수는 카이스트 총장 재임 시절의 행적에 논란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인 커리어 자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미 1995년에 저런 데에도 뽑힌 적이 있고..
2002년에는 김 진우 교수가 뽑혔는데 이분은 언어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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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 대학교의 교명은 '인천+하와이'의 줄임말이다. 설립 배경에 국내의 타 대학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사연이 있다.

이민사 박물관을 관람한 뒤, 월미도에서의 마지막 코스로는 테마파크에서 놀이 기구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별다른 예고나 안내 없이 정비를 이유로 테마파크가 휴관 상태였다. 그래서 놀이기구를 타 보지는 못했다. 그 대신 근처에 있던 등대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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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인천 상륙 작전 당일에 길을 인도하는 역할을 한 등대는 팔미도라고 월미도보다 훨씬 더 작은 다른 무인도의 등대이다.
본인은 월미도 등대로 착각하고 있었다. 마치 예전에 미국 여행 갔을 때 서부 UC 버클리와 동부 버클리 음대를 헷갈렸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월미도 관광을 마친 뒤, 본인은 동쪽으로 쭉쭉 관광을 시작했다.
영종도, 월미도는 모두 행정구역상 인천 중구이다. (신도와 장봉도는 인천 옹진군) 그 반면, 앞으로 경유하게 되는 곳들은 '미추홀구'이다.
미추홀? 완전 처음 듣는 이름이어서 도대체 뭔가 싶었는데.. '남구'가 무려 2018년 7월부로 이름이 저렇게 바뀐 거라고 한다. 바뀐 지 한 달도 안 된 따끈한 새 이름이다.

처음에는 구가 다 동서남북 평범한 이름으로 붙기 시작했는데 인천도 도시의 외형이 바뀌면서 그 이름이 도시의 실질적인 방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됐다.
가령, 서울 남산은 오늘날 서울의 완전 중심부에 있을 뿐 남쪽 끝에 있는 산이 전혀 아니며, 동인천 역도 부평구에 소재하지도 않고 인천의 동부에 있는 역이 절대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남구라는 구 이름이 다른 역사적 근거가 있는 명칭을 사용하여 개명됐다고 한다.

이제 본인은 인하 공전을 찾아가서 대한민국 수준 원점, 교육용 보잉 727기를, 그리고 옆에 인하 대학교에서 우남호 여객기를 찾아가서 인증샷을 찍었다.
인하대는 캠퍼스 안의 차도가 온통 일방통행 위주로 만들어진 게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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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원점은 설명을 해 놓은 안내판을 모두 촬영했다. 나도 지금까지 배경을 잘 몰랐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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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727은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는 레어템인 삼발기이며, 엔진이 주날개 아래에 달려 있지 않다.
이 기체는 1991년에 동체 착륙 사고를 겪고 나서는 비행 불가 판정을 받고 인하 공전에 교보재로 기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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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DC-3 여객기는 대한 항공의 전신인 '대한 국민 항공사(KNA)'에서 '우남호'라는 이름으로 1954년에 도입한 기체를 훗날 대한 항공이 인수한 것이다. 얘는 그로부터 15년 뒤인 1969년에 만기 퇴역하고 1974년에 인하 대학교로 기증되었다.
KNA는 DC-3 여객기 달랑 세 대를 운용했는데... (창랑호, 만송호, 우남호) 창랑은 납북 테러를 당했고 만송은 사고로 날려먹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우남호만이 살아남아서 만기 퇴역했다. 이 때문에 KNA는 경영난과 빚에 허덕이게 되었고, 창업주가 자살하는 참극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하와이 교포 1세들이 비행기를 타고 1955년에 모국을 방문한 것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민항기의 태평양 횡단이었다고 한다. 교통수단이 배에서 비행기로 바뀐 것이다.
아까 전에 관람했던 이민사 박물관과 잘 연계되는 내용이다.

인하대 구경을 마친 뒤에는 여기서 동쪽으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또 다른 공원인 수봉 공원을 찾아갔다. 수봉산이라고 월미산과 비슷한 높이의 아담한 언덕에 자리잡아 있다.
얘는 언제 무슨 계기로 만들어진 공원인지 모르겠지만, 현충탑과 각종 전적비들이 자유 공원 만만찮게 여럿 있었으며 통일· 안보 전시관도 있었다. 산 중턱까지 차를 몰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일인 덕분에 한산하고 주차 걱정도 없어서 좋았다.

부산으로 치면 뭔가 보수산 공원과 비슷한 곳 같았다.
그래도 보수산은 4· 19니 민주 운동이니 하는 것을 기념하는 시설도 있는 반면, 수봉산에는 온통 주적 북한과 맞서 싸운 것에 대한 기념물만 있었다. 뭐, 보수산에도 대한해협 전승비가 있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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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봉 공원은 길의 토폴로지가 T자와 비슷했다. 세로줄 I 모양 경로는 자동차로 접근 가능하다. 그래서 가로줄과 만나는 끝까지 올라가면 그 교점에 한국 자유 총연맹이라는 우파 단체에서 운영하는 '인천광역시 통일관'이 있다. 여기가 자가용으로 다닐 수 있는 한계 지점이었다.

거기서 ─자 모양의 좌우로는 도보로만 진행할 수 있는데(차도는 공원 관리 차량 전용), 한쪽 끝으로 가면 광장과 함께 현충탑이 나오고, 다른 쪽 끝으로 가면 차도를 다리로 건넌 뒤에 인천 지구 전적비가 나왔다. 그 양 끝도 막힌 게 아니라 공원을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가 있었다. 단지 거기는 자가용으로는 진입할 수 없을 뿐.

Posted by 사무엘

2018/08/04 08:32 2018/08/0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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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여행기: PART 2 (2018/7/23)

카페와 카페리, 장봉도 식당을 거치면서 폰과 노트북은 배터리를 꽉 채웠다. 다음 보급이 어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폰은 이 상태로 아예 꺼 버렸다.
고속 충전이 되는 전용 어댑터를 챙기지 않고 그냥 일반 USB 케이블만 챙긴 바람에 폰의 충전 속도가 발목을 잡았다. 이거 무슨 원주율을 arctan(x)의 x=0 부근 급수 전개로부터 유도된 왕창 수렴 느린 공식으로 구하는 것 같은(pi/4 = arctan(1) = 1 - 1/3 + 1/5 - 1/7 ...).. 그런 답답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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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아니 삼목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저녁 7시 무렵이었다. 아직 해가 떠 있고 여전히 더운 것을 감안하면, 을왕리나 왕산 해수욕장으로 또 돌아가서 물놀이를 계속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그러지는 않고, 곧장 인천대교를 건너서 본토로 돌아왔다.

이제 휴가의 컨셉이 피서에서 인천 시내 관광으로 바뀌었으니 다음 목적지인 인천 자유 공원을 찾아갔다. 인천대교도 구간 단속 때문에 과속을 거의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폭주는 비트코인과도 같아서 사패산 터널이든, 강남 순환로든 무엇이든 어떤 도로가 처음 생겨서 단속이 강화되기 전에 일찍, 미리 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자유 공원은 고맙게도 전면 무료이고 혼잡하지도 않은 공영 주차장이 근처에 있어서 주차 걱정이 전혀 없었다.
공원 한구석의 으슥한 모퉁이에 텐트를 치고 거기서 잠들었는데, 밤에도 시원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너무 더워서 웃통 벗고 물에 적신 수건을 등에 걸쳐야 했다. 아침에 시원한 바닷물과 함께 신선놀음을 했던 경험이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휴가 날짜 자체는 이렇게 왕창 더운 날에 절묘하게 잘 잡았다. 기껏 휴가를 떠났는데 비가 쏟아진 것보다는 나으니 말이다. 또한 텐트 안에서 노숙하는 동안에도 코딩을 계속하여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버그를 두 개나 잡았다.

3. 셋째 날: 월미도와 인천 시내 명소 관광

해가 뜨자마자 자유 공원을 정찰하기 시작했다. 이 공원은 '응봉산'이라고 불리는 최대 높이 70m 남짓한 언덕에 자리잡아 있는데, 이른 새벽부터 산책과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라고 하고, 산책과 운동과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또한 인천 자유 공원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매카써 장군의 동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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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은인인 더글러스 맥아더(최종 계급은.. 오성장군 원수!). 이 동상은 무려 1957년에 세워졌다고 하니, 지금은 그로부터 무려 60년이 훌쩍 넘었다. 내가 이 명물을 직접 보러 물놀이도 동해 대신 황해를 택하면서 인천 러쉬를 갔다.
시간대의 한계(역광...) 때문에 그리 좋은 구도와 색감으로 사진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리고 위에 새는 날아가거나 내려올 생각을 안 해서 사진에도 그대로 찍혔다.

맥아더는 부친부터가 별 단 장군이었고, 거기에 개인 노력을 가미하여 1, 2차 세계 대전을 경험한 최연소 장군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6· 25 사변 때 그가 입안했던 인천 상륙 작전은 전쟁사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천재적인 작전으로 기록되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전선이 교착된 채로 휴전을 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 않는가?

다만, 맥아더는 상륙 작전의 대성공을 계기로 좀 자만에 빠졌는지, 이후 중공군의 개입에 대해서는 오판을 거듭하며 수세에 몰렸다. 수틀리면 또 핵 터뜨리지 같은 생각으로 트루먼 대통령과도 대립하다가 예편하게 된 것 역시 아쉬운 점이다.

맥아더는 컨셉이었는지 파이프 담배를 무는 걸 좋아했으며, 공식 석상에서는 반드시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모자를 벗어서 정수리가 드러난 모습은 히로히토 일왕이라든가 이 승만 할배와 함께 찍은 사진 같은 일부 소수밖에 전해지지 않는다.
카리스마 넘치고 콧대 높고 기세등등 오만방자(?)해서 아무하고나 서글서글 친하게 지내지 않고 적도 많은 타입이었는데..

우리나라의 이 승만 대통령이 이런 맥아더와 완전 사이 좋은 절친 관계였다. 아무나.. 그것도 미국인도 아닌 가난한 듣보잡 신흥 국가 사람이 맥아더 같은 깐깐한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둘 다 비슷한 고집쟁이 괴짜 꼴통인 한편으로 엄청난 천재형이다 보니,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었나 보다.

아무튼, 이 사람 동상의 존재를 불편해하는 악질 빨갱이들은 동정의 여지가 없는 인간 쓰레기들이다. 사회 정의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원래는 놈들을 대한민국 국적 박탈하고 외국으로 추방해서 한국 땅 영원히 못 밟게 만들든가, 정신병원· 수용소 내지 사형장으로 보내야 된다. 그리하지 않고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비롭고 관대하게 처분한다 해도 이런 놈들이 최소한 교육자, 법조인, 정치인, 군· 경 공무원 같은 직업은 네버, 절대, 결코 가질 수 없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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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인천 자유 공원에는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탑(1882-1982)과 6· 25 당시의 인천 학도 의용대 참전비가 세워져 있다.
먼 옛날에는 심지어 자유의 여신상의 축소판 레플리카까지 놓여 있었다고 한다. 똑같이 자유, 자유 하니까 유사성이 있어서 건립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맥아더와는 관계가 없으며 다른 논란의 여지도 많았기 때문에 20년 남짓 만에 철거되었다(1976-1997).

이렇게 자유 공원의 답사를 마친 뒤, 본인은 더 서쪽에 있는 월미도를 찾아갔다.
월미도는 한때 '월미산'이라는 해발 108m 남짓한 언덕으로 구성된 섬이었다. 하지만 일제 시대 때 간척을 통해 육지와 연결되어서 사전적인 의미의 섬은 아니게 되었다. 그때는 부유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 내지 휴양 시설이 들어섰으며, 심지어 바닷가에 '월미 해수욕장'도 들어섰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해수욕장 피서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자가용 승용차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철도가 등장해서 여가를 위한 장거리 여행이 가능해진 뒤부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 해수욕장이라는 것이 도입된 것도 일제 시대 때이다. (1913년의 부산 송도 해수욕장이 최초)
오늘날 인천은 그 시절과 달리, 본토에는 해수욕장이 없다. 본토에서 떨어진 섬으로 가야 간척되지 않은 갯벌이 있고 물도 그나마 더 맑은 해수욕장이 나온다는 것이 부산과의 차이점이다.

해방 후에는 월미도 일대는 각종 공장, 항만, 군사 시설이 잔뜩 들어서면서 민간인 접근 금지 구역이 되었다. 심지어 해군 제2함대까지 주둔해서 '수방사의 해군 버전' 역할을 했으며, 연안뿐만 아니라 월미산 전체도 입산 금지였다. 그러다가 제2함대는 평택으로 이전하고 2001년이 돼서야 월미산은 공원으로 탈바꿈하여 개방되었다고 한다.
다만, 월미도 말고 그 남쪽에 있는 일명 소월미도는 지금도 인천 해양 경비 안전서, 인천 해상 교통 관제 센터 등..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코렁 시설들이 가득한 보안 통제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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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안 그래도 너무 더워서 등산을 못 한 지 몇 달째 됐는데, 월미산을 정상까지 올라 봤다.
둘레길은 저렇게 큼직하게 잘 닦여 있고, 거기서 계단을 오르면 정상 쪽으로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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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면 먼저 큼직한 광장에 도달하는데, 거기서 (1) 진짜 산 정상, (2) 구식 대포가 놓인 옛 성곽, (3) 전망대 타워를 골라서 갈 수 있었다. 그 세 곳의 모습은 위의 사진으로 보는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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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본 모습은 대략 이러하다.
월미산을 다녀온 뒤엔 산기슭에 있는 한국 이민사 박물관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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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수교 이래로 단군의 후손들의 첫 이민이라 할 수 있는 1900년대 초의 하와이 이민, 멕시코-쿠바 이민 등.. 가끔 TV 다큐멘터리에서나 봤을 법한 근현대사 이야기들을 시기와 지역별로 일목요연하게 접할 수 있어서 아주 유익했다. 부산에서 봤던 '부산 근대 역사관'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01 19:31 2018/08/0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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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여행기: PART 1 (2018/7/22)

본인은 재작년과 작년(2017) 여름에 강원도를 다녀왔다.
재작년에는 영동 고속도로 이북으로 안보 관광 위주로, 작년에 그 이남으로 철도 답사 위주로 나눠서 바다와 산을 즐기며 힐링 잘 하고 왔다.

그 뒤 본인은 올해의 하계휴가 때는 인천을 다녀왔다. 올해의 피서 장소는 작년 말 겨울에 미리 정했으며, 심지어 내년 여름에 갈 곳도 정해 놨다.
비록 바다의 퀄리티만 따지자면 황해가 동해보다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반도에서 내륙에 제일 깊숙이 붙어 있고 서울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바닷가에 한 번쯤 가 보는 것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인천 시내 관광도 계획했기 때문이다.
본인은 반공 우파 시민으로서 아직 맥아더 장군 동상 구경을 못 해 봤다. 인천 상륙 작전 현장은 강원도 첩첩산중 오지에 있는 어지간한 안보 박물관이나 전적비 이상으로 역사 교육에 유익할 것이다.
강원도의 동부 전선 고지전은 최소한 1951년과 그 이후에 벌어진 전투인 반면, 인천 상륙 작전은 개전 초기인 1950년 9월에 벌어진 사건이니 시기가 서로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다.

이런 여러 정황을 감안하여, 본인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광과 물놀이를 위해서 영종도를, 그것도 대중교통 대신 자차를 몰고 방문하게 되었다.
원래는 시기를 지금 7월 말 내지 8월 초쯤으로 생각했지만, 지난 7월 중· 하순이 날씨가 어떠했던가? 1994년을 능가하는 살인적인 무더위가 전국을 강타했던지라, 결국 시기를 좀 더 앞당겨서 휴가를 떠났다. 일요일 교회 예배를 마친 뒤 오후부터 화요일까지로 일정을 잡았다.

1. 첫째 날: 비행기 촬영과 저녁 물놀이, 해변에서 외박

이번 휴가의 첫 목적지는 인천 공항 전망대였다. 하지만 전망대 자체는 너무 일찍(무려 오후 4시!) 문을 닫아서 운영하지 않는 상태였으며, 언덕도 그렇게 막 높지는 않았다. 그래서 김포 공항으로 치면 오쇠 삼거리 정도에 해당하는 공항 남쪽 착륙 경로를 추가로 찾아가서 거기서도 저공 비행 착륙 중인 비행기들을 근접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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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가는 길에 공항 고속도로에서 원없이 밟고 싶었지만 제대로 그러지 못했다. 과속 단속 카메라가 악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많았던 데다(구간 단속 포함), 1차로의 저속 차량까지 피하다 보니 끽해야 최대 140km/h 남짓밖에는 밟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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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는 대한 항공 로고가, 뒤에는 스카이팀 로고가 그려져 있는 여객기이다. 기종은 보잉 777.
이게 본인이 찍은 비행기 사진 중에 비행기가 제일 크게 잘 나온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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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었는데, 여객기들은 날개 아래에 마치 자동차로 치면 번호판처럼 무선 통신 호출 부호가 그려져 있는가 보다. HL 7783, HL 8067처럼 말이다.
비행기가 아예 땅에 있거나 반대로 너무 높게 떠 버리면 날개 아래를 볼 수가 없을 텐데, 착륙을 앞두고 저공 비행 중인 모습을 가까이서 관찰한 덕분에 이런 것도 볼 수 있었다.

공항 근처에서 비행기 출사를 그럭저럭 한 뒤, 이제 공항 남서쪽의 용유도 구간으로 들어갔다.
영종도와 용유도의 분위기 차이는 마치 제주도 북부 시내와 남부의 서귀포시, 그리고 경부 고속도로 동쪽의 분당과 서쪽의 산기슭 주택가들 사이의 차이와 비슷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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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마주친 마시안과 용유 해수욕장은, 그 당시 시간대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6시~7시쯤) 온통 갯벌밖에 없었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을왕리 해수욕장은 입구부터가 사람과 차들로 북적대고 온갖 민박과 식당이 들어서 있어서 제대로 돌아가는 중인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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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차를 세우자마자 바닷물에 들어가서 30분 정도 놀았다. 이제 좀 무더위를 날려 버리고 살 것 같았다. "해수욕도 식후경"이 아니라, 반대로 해수욕부터 한 뒤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물회 냠냠..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밤 9시 무렵이었다. 이제 모래밭에 텐트를 치고 안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여기는 동해가 아니라 황해이고, 더구나 썰물이어서 그런지 파도와 바람이 없다시피했다. 바다가 아니라 그냥 커다란 호수에 온 것 같았다. 파도가 역동적으로 휘몰아치는 곳을 원한다면 멀어도 동해로 가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도 물은 그렇게 더럽지도 미지근하지도 않고 충분히 해수욕을 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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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과 새벽에도 막 시원한 건 아니어서 텐트 안에서는 이불 없이 옷통도 벗고 잤다. 뭐 그래도 열대야에 시달리는 서울 시내보다는 여기가 더 시원했다. 바다에 또 뛰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텐트 안을 바닷물과 모래로 더럽히고 싶지는 않으니 여기서 제동이 걸렸다.
밤에는 주변에서 온통 폭죽을 터뜨려서 시끄러웠다. 하지만 본인은 워낙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는 데 지장이 없었다.

2. 둘째 날: 한낮 물놀이, 장봉도

새벽 5시 반쯤 눈을 뜨니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한밤중엔 물이 들어오는 것 같았는데 이때는 다시 물이 빠져 있었다.
간밤에 텐트 안에서 컴퓨터 작업(..)을 실컷 했기 때문에 아침에는 배터리가 남아 있지 않았으며, 8시 무렵부터는 이미 햇볕의 열기가 느껴지면서 텐트 안에서 지내기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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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할 것이 없으니 이때부터 오전 내내 3시간이 넘게 물놀이를 즐겼다. 평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어제 저녁보다는 바다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빠져나갔던 물도 다시 들어오고 있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밀물과 썰물은 마치 교류 전기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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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 중일 때는 물이 차가운 것과 별개로 폭염 자체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물 밖으로 나오니 차와 폰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궈져 있고, 신체도 물기가 마르자마자 곧장 따가운 뙤약볕이 느껴졌다.
그만큼 바닷물이 지금까지 더위를 잊게 하는 데 혁혁한 기여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만, 물은 더위는 막아도 자외선을 막아 주지는 않는다. =_=;;; 옷과 신발이 막아 주는 것은 물과 정반대이다.
덕분에 얼굴과 팔은 자외선 차단제를 발랐음에도 불구하고 더 검어졌으며(tanning), 아예 무방비이던 발등과 목덜미 등의 노출 부위는 벌겋게 타서(sunburn..) 내가 샌달을 신었고 U자형으로 파인 셔츠를 입었다는 것을 표시해 주었다. =_=;;

12시가 넘어서야 아쉬움을 뒤로 하고 텐트를 걷고 짐을 쌌다. 그리고 근처 카페에 들러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2시간 남짓 폰과 컴퓨터를 충전하고, 물을 보충하고 옷 정리 등 여러 작업을 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개발 작업도 했다. 물놀이를 오래 해서 그런지 슬슬 피곤하고 졸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오후에는 차를 몰고 영종· 용유도의 북부를 돌아다니면서 어제와는 달리 이륙하는 비행기들을 구경했다. 그 뒤 삼목 선착장으로 가서 장봉도로 가는 카페리를 탔다(신도 경유). 여기는 인천 공항을 만드느라 간척을 하기 전에는 삼목도라는 또 다른 섬이었다고 한다.
영종도 근처의 신도는 아주 가깝기 때문에 배 탄 지 10분이면 도착하고, 거기를 거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진 장봉도까지는 삼목에서 총 3~40분이 걸린다. 차를 실을 수도 있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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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바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니까 이제 좀 해수욕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바다 바람이 느껴졌다.
배 안은 시원하고 쾌적하고 콘센트도 쓸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밤에 숙소를 따로 안 잡으니 다른 건 몰라도 폰과 노트북의 충전 문제가 골칫거리였다. 전적으로 식당과 카페에서만 보급을 받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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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도에서는 주변의 바위섬과 해변을 구경했으며, 오늘의 특식 겸 유일한 단백질 섭취 명목으로 2~3인분 n만원짜리 매운탕을 혼자서 다 먹어 치웠다.
여기도 해수욕장(옹암)이 있다. 영종· 용유도보다 더 깊숙한 오지로 갔으니 더 한산하고 더 맑은 해변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이 시간대엔 갯벌만 펼쳐져 있고 제대로 물놀이가 가능한 상태가 아니어서 허탕 쳤다. 뭐, 어차피 본인 역시 여벌옷 등 물놀이 채비를 하지 않은 채로(나머지 짐은 차에다 두고) 배를 타 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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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8/07/30 08:36 2018/07/3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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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고궁 박물관 답사

본인은 서울에 있는 조선 시대 궁궐들 중에서 경복궁을 제외한 나머지 4개(덕수, 경희, 창경· 창덕)는 지난 1~2년 사이에 모두 가 봤다. 정작 제일 크고 유명한 경복궁만 유일하게 안 가 봤는데 요 얼마 전에 드디어 답사하게 됐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교회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오늘은 이에 대한 기록을 특징적인 것 위주로만 간략하게 남기고자 한다.

경희궁 옆에 서울 역사 박물관이 있듯이, 경복궁의 옆에는 박물관이 있다. 그것도 양 옆에 두 개나 있다.
왼쪽에는 고궁 박물관이 있고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의 5번 출구와 연결된다. 오른쪽에는 민속 박물관이 있고 주차장과 연결된다.
그러니 지하철을 타고 온 일반인들은 고궁 박물관과 연계하기가 쉬우며, 관광버스를 타고 경복궁을 단체로 찾은 관광객들은 민속 박물관과 연계하기가 쉽다.

본인은 먼저 고궁 박물관에 들어갔다.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 유료이지, 광화문 성벽 너머에만 있는 박물관은 무료 입장 가능하다.
고궁 박물관은 2층부터 지하 1층까지 세 층에 걸쳐 조선 황실 중심으로 흥미로운 유물들을 많이 전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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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면류관이다. 신라 금관 같은 통상적인 왕관이 아니라 사각형 판때기 아래로 여러 줄들이 치렁치렁 달렸고 어찌 보면 졸업식 학사모와 비슷하게 생긴 머리 장식품(?)이다. 국가 군주보다는 뭔가 옥황상제가 써야 할 것 같이 생겼다.

한글 개역성경에서는 crown 왕관이 면류관이라고 토착화 로컬라이즈 번역이 됐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도 면류관이라는 용어가 친숙하다. 마치 빵이 떡으로 바뀌고 각종 악기들도 다 유사 국악(!!) 버전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면류관 가지고"라는 찬송가부터 시작해서 '생명의 면류관', '가시 면류관(!!)'까지 있다. 허나, 면류관이 원래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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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포함해 왕가의 높으신 분들이 타던 전용 고급 가마를 연(輦)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가마는 인력거라든가 죄수 호송용 수레와 달리, 바퀴가 아닌 사람의 다리만 이용하여 더 힘든 방식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탑승자는 나름 작은 방 안에서 외부 환경과 완전히 분리돼 있다. 이런 가마를 타는 느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내 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라는 찬송이 있는데... 얘가 3절 가사의 끝부분이 "당신의 연이 되어 주만 태우리..."이다. 이 연이 바로 輦이며, 뒷부분의 '태우다'도 불태우는 burn이 아니라 give a ride, carry라는 뜻이다. 헐~ 내가 주님만 태우는 가마가 되고 싶다는 심상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떠올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 가사는 원래 시로만 존재하다가 나중에 곡이 붙은 것이다. 처음부터 노래용 가사로 만들어졌다면 저렇게 알아듣기 난해한 1음절 한자어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Margaret Barber이라고 워치만 니의 정신적 스승급인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이 쓴 찬송시 If the path I travel lead me the cross를 번역한 게 아닐까 심증이 있지만, 저 한국어 번역은 그냥 모티브만 딴 수준에 가깝지 영어 원문을 충실하게 번역한 것도 아니다.

"당신의 연이 되어 주만 태우리" 같은 말도 영어 원문엔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어권에서는 그 가사에 붙은 곡이 다른 형태로 따로 있다.
그러니 지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저 가사는 도대체 누가 언제 무엇을 의도하고 이렇게 번역한 것인지가 오리무중이다.
아이고, 난 조선 시대 유물을 보면서도 직업병이 별 희한한 형태로 발동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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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순종 어차를 드디어 이렇게 곁에서 보게 됐다. 이건 한반도를 돌아다닌 적이 있는 제일 오래된 자동차이며, 후대에 처음부터 다시 만든 재현품 레플리카가 아니라 오리지널 실물이다.
1950년대에 나왔던 시발 자동차조차 실물은 다 소실되어 버려서 지금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건 레플리카뿐인데, 순종 어차는 참 놀라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단지 때 빼고 광 내고 도색을 새로 하는 복원 작업을 빡세게 했을 뿐이다.

1910년대 일제 시대 초기에 도입되었다 보니, 핸들이 모두 좌측통행 기준인 오른쪽에 있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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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8기통에 5153cc에 달하는 대용량 엔진이 겨우 32마력 남짓한 출력밖에 안 나왔다니 정말 허무하기 그지없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의 자동차 기술이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것이다. 그때는 선박도 증기선 타이타닉 호가 다녔던 시절이니..
참고로 지금 제네시스 EQ900의 최상위 8기통 5000cc 휘발유 엔진은 최대 출력이 425마력으로, 32마력의 10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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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 기억이 맞다면 종묘에서 선왕에 대한 제사를 지낼 때 세팅하는 제삿상이라고 한다.
굽지도 않은 시뻘건 고기가 참 맛있어 보여서(죄다 가짜 모델일 뿐이지만..) 사진을 찍게 됐다.
성경의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가 문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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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이라고 하면 목이 긴 갈색 계열의 그 동물을 의미하지만, 옛날에 아프리카 기린을 보지 못한 동양 사람들에게 '기린'은 뭔가 서양의 유니콘과 비슷한 상상 속의 동물을 가리켰다. 유니콘은 흰색인 반면, 저 기린은 시퍼렇다.
옛날에 지금 같은 캐릭터 산업이 발달했을 리는 없으니, 상상 속의 동물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완전 아무 근거도 없는 엉뚱한 동물을 주작하지는 않았을 텐데.. 용이라든가 해태, 기린 같은 동물은 어디에서 유래되어 사람들의 기억에 새겨진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볼 것들이 많았다.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가니까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각종 집기와 건물 인테리어가 서양 스타일로 바뀌었다. 그리고 순한글로 쓰인 문서가 증가하고, 서체도 궁서 흘림 계열로 바뀌었다.

임금 하면 빨간 곤룡포가 떠오르는 법인데(세종대왕이 집현전의 신 숙주에게 덮어 줬다는..), 조선 황실의 마지막 황태자라 일컬어지는 영친왕이 입은 빨간 곤룡포가 전시돼 있었다.

조선과 관련된 각종 박물관을 가 보면 태조 이 성계의 어진은 꼭 전시돼 있지만 조선의 모든 왕들의 어진이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많은 어진들이 소실되어 현재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6· 25 사변이 터졌을 때 어진들을 부산으로 옮긴 것까지는 잘했는데, 휴전 후에도 그걸 서울로 옮기지 않고 있다가 부산에서 대판 화재가 나는 바람에(용두산 대화재) 소실된 게 많다.

끝으로, 조선의 과학 기술이라고 전시해 놓은 것은 몇몇 화포와 측우기, 해시계, 물시계 자격루였는데.. 나무를 깎아서 정교한 기계를 만든 것까지는 보통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동양이 서양보다는 과학 기술이 확실히 뒤쳐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서 아쉬웠다. 서양에서 18~19세기 동안 수학·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하던 동안 조선은 내세울 게 고작 저것밖에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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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구경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입장권을 구매하고 경복궁 안으로 들어갔다. 위의 사진은 경복궁 입구에서 남쪽으로 광화문과 세종대로 방면을 바라본 풍경이다.
지금은 여기가 아무것도 없는 넓은 운동장 공터이며, 한쪽 구석에 입장권 매표소 정도만 있다. 하지만 25년 남짓 전까지만 해도 바로 이 자리에 조선 총독부 청사가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찔함이 느껴진다.

경복궁은 일반적으로는 저녁 5시에 입장을 마감하고, 6시에 폐장한다. 그리고 특정 시기에만 한해서 제한된 인원을 밤 10시까지 추가적으로 받아들이는 식으로 야간 운영을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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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근정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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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경복궁에서 그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라 여겨지는 경희루 주변의 경치이다.
이제 이 두 곳을 빼면 나머지 건물과 골목길은 그냥 여타 고궁들을 돌아다니는 것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현재 남아 있는 부지 내에서도 모든 건물이 복원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 풀밭과 숲도 많이 있으며,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뭔가 대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답사 당시의 사정상(특히 너무 더워서..;;), 동쪽에 있는 민속 박물관은 못 보고 원래 들어왔던 곳으로 그대로 다시 나갔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기도 둘러볼 일이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7/27 08:29 2018/07/2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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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빌 보면서 든 생각들

이미 수 년 전부터 B급 병맛 명품 액션 영화인 <킬 빌>에 대해서 종종 언급하고 한두 마디 잡생각을 던진 적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서 아이템 몇 가지를 별도의 글로 더 늘어놓고자 한다.

1.
킬 빌 2부에는 베아트릭스 키도가 암염탄을 맞고 생매장을 당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관을 정권지르기로 뚫고 무덤을 탈출해 버린다.
누님은 완전 흙투성이가 된 몰골로 지상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근처의 어느 카페에 불쑥 들어가서 점원에게 물 한 잔 좀 달라고 부탁한다.

거기 점원은 혼자 커피 맛을 보면서 빈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뽀얀 흙먼지를 날리면서 다가오는 누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엥, 저게 뭐야?" 하며 표정이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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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라이터를 켜라>에서, 허 봉구가 열차 옆문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본 식당칸 직원이 어리둥절해하는 것과 굉장히 유사한 장면 같다. 뭔가 음식 서빙을 하는 직원이 단역으로 잠시 출연하고, 시간대가 밤이고, 뭔가 위급한 상황인 주인공을 독대한다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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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시 2부를 보면 왕년에 베아트릭스 키도가 위치가 노출되는 바람에 호텔 방에서 '카렌'이라는 다른 여성 킬러와 대치했던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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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서 누님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Well, guess what, bitch?
I'm better than Annie Oakley. And I got you right in my sight.
"근데 말야.. 난 애니 오클리보다도 명사수이고 넌 이미 내 사정거리에 들어있어.
손만 까딱하면 곧바로 네년 이마에 납덩이가 박힐 거야. 그러니 곱게 내 말 들으라고.."


엥? 애니 오클리? 저 사람은 누구지? 그래서 찾아봤다.
그녀는 미국에서 거의 전설을 넘어 레전드 급이던 여성 총잡이(1860-192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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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이 바닥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는지, 자기보다 나이 더 많고 경력 많은 남성 총잡이 라이벌들까지 모조리 쳐바르면서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길고 두툼한 치마 차림의 아가씨가 저 멀리 사람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동전을 총을 쏴서 명중시켰다.. 총기도 권총, 라이플, 샷건을 가리지 않았다.

하긴, 1800년대 후반이 딱 마침 백색화약과 탄피 같은 게 막 도입되어서 총기가 우리가 아는 형태로 발전한 그 시기였다.
애니 오클리보다도 총 잘 쏜다는 말은 박 태환보다 수영 더 잘하고 김 연아보다 얼음판 스케이트를 더 잘 탄다는 얘기와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옛날 사람인 관계로 스포츠 사격으로 가서 우리가 아는 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거나 하지는 않았다. 전쟁터에서 수백 명을 장거리 저격해서 전공을 세운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리즈 시절이 세계 대전이나 남북 전쟁, 서부 개척 같은 격변의 시기를 묘하게 비껴 가서 그런가 보다. 그 놀라운 사격 실력이 주로 수렵 내지 서커스 묘기로나 선보여졌다는 게 아쉽다.

저분은 19세기 말에 북미 대륙에서 총 쏘며 살았으니 여행비둘기도 많이 잡았으려나 모르겠다.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을 정도로 많던 놈들이 1914년에 결국 멸종..)
저격수 '스나이퍼'라는 단어도.. 날아다니는 도도새를 쏴서 맞힐 정도로 총 잘 쏘는 사람, 즉 수렵에서 유래되긴 했다.

아무튼 킬 빌 덕분에 이런 역사 상식을 하나 주워 담았다. ^^
물론, 한국 사람이 애니 오클리가 누군지 알 리가 없으니, 한국어 자막은 당연히 영어 곧이곧대로 번역되지 않았다.
'블랙 맘바'조차도 생소하다고 그냥 코브라로 번역됐을 정도인걸..

3.
한편, 앞의 저 장면에서 상대편 암살자인 카렌 김을 연기한 배우(헬렌 김)은 한국계라고 한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성인 윤막순을 연기했던 한국계 배우 스텔라 최와 비슷한 캐스팅 같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국제시장에서 이산가족 상봉 씬을 보고 있으면.. 처음엔 통역사가 영어를 통역해 주는데, 상봉이 성공한 뒤부터는 영어가 갑자기 자막으로 동시 통역되어 나온다.
이건 실제 생방송에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처리이다. 하지만 울고불고 하는 장면에서 통역사가 말을 일일이 통역하는 게 어색하니 마치 '시적 허용'처럼 영화적 각색이 들어간 셈이다.

킬 빌에서는..?? 키도 누님이 시퍼런 일본도를 수하물도 아니고 버젓이 기내에 반입한 채로 비행기 타고 오키나와에서 도쿄로 가는 것만 해도 완전 비현실적인 각색이다.

4.
2편에서는 엘 드라이버가 돈가방에다가 블랙 맘바 독사를 몰래 숨겨서는 버드를 교묘하게 죽여 버리는 장면이 있다.
버드가 독사에게 물려서 의식을 잃고 죽어 가는 동안, 엘은 아주 태연하게 인터넷에서 찾아 본 블랙 맘바의 독의 위력을 설명해 주는데..
그때 사용하는 표현들이 정말 가관이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연출만 한 게 아니라 각본도 썼다는데, 문학 조예가 굉장히 뛰어난 것 같다.

The amount of venom that can be delivered from a single bite can be gargantuan.
You know, I've always liked that word, "gargantuan."
I so rarely have an opportunity to use it in a sentence.
단 한 방만 물려도 주입되는 독의 양은 gargantuan(무진장 많은.. 거대한, 크고 아름다운)이래.
이거 알아? 난 gargantuan이란 단어를 완전 좋아하거든.
지금까지 이 단어를 사용할 기회가 좀체 없었는데 말야.


저 생소한 단어는 또 어디서 찾아 와서 써먹었는지 원..;;
그리고 엘은 끝에 가서야 자기가 너(버드)를 죽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 준다.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실력만은 개인적으로 인정했던 베아트릭스 키도가.. 자기와 결투라도 벌인 끝에 장렬하게 죽은 게 아니라 겨우 너 같은 찌질한 놈팽이에게 어이없이 제압 당하고 죽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랜다.

Now in these last agonizing minutes of life you have left,
let me answer that question you asked earlier more thoroughly.
Right at this moment, the biggest "R" I feel is regret.
Regret that maybe the greatest warrior I have ever met, met her end at the hands of a bushwhackin', scrub, alkie, piece of shit like you. That woman deserved better.


여기서 갑자기 biggest "R"이 왜 나오느냐 하면.. 이 부분 대사는 원래 다음과 같이 더 길게 쓰여졌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상영 시간 등 모종의 이유로 인해 편집됐다.

Now in these last agonizing minutes of life you have left,
let me answer the question you asked earlier more thoroughly.
When it comes to that bitch, I gotta lotta "R's" in me.
Revenge is one. Retribution is another. Rivalry is definitely one.
But I got another "R" for that bitch you might be surprised to find out. Respect.

But right at this moment, the biggest "R" I feel, is Regret.
Regret that maybe the greatest warrior I have ever met, met her end at the hands of a bushwhackin, scrub, alacky piece of shit like you. That woman deserved better.


복수, 응징, 경쟁.. 거기에다 존경심. 하지만 지금 제일 강하게 느끼는 건 유감스러움.
이것들이 전부 R로 시작하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천재적이지 않은가?

5.
1부에서 오키나와에 있는 핫토리 한조 아저씨의 가게 장면을 보니 갑자기 그게 너무 땡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혼밥을 이렇게 질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teel이 단순히 강철 자체가 아니라 sword처럼 검을 가리킬 때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어떤 분은 킬 빌을 많이 보고 나니 KB 국민은행을 보고도 KB가 영화 제목 이니셜인가.. 생각하고 순간 뿜었다고 그런다..;;
킬 빌 1에서는 그야말로 수십 명 이상이 죽어 나가지만 2에서는 단 세 명밖에 안 죽는다. 버드, 파이 메이, 빌.
그리고 전부 남자가 여자에게 죽임 당한다.

1편에서는 일본 사무라이가 나오더니만, 2편에서는 중국 쿵푸와 총질까지.. 뭔가 만화적인 무술 잡탕이다. 최종 병기는 오지심장파열술이라는 궁극의 기술이 아니던가..;;
정말.. 어지간한 평범한 창의력으로 만들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거 같다... ^__^

Posted by 사무엘

2018/07/04 08:37 2018/07/0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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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본인도 좀 흔치 않은 협동과정 대학원에 소속돼 있긴 하다만..
서울대에 있는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은 더 독특한 곳인 것 같다.

박사 졸업생 중에.. 문 중양 교수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학부이지만 이쪽으로 전공을 완전히 바꿔서 현재는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물론 조선 및 한국의 과학사 쪽에 특화돼 있다. 국사 연구에도 이공계들이 좀 많이 와야 한다고 호소하던 허 성도 전 서울대 중문과 교수 같은 분이 좋아할 듯하다.

장 대익 교수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학부인데 대학원을 가서는 진화생물학, 인지과학 이런 걸 쭉 파다가 어쨌든 역시 서울대 교수가 됐다. 다만 여느 교수들과는 달리 전공의 스펙트럼이 막 깊고 좁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분은 열렬한 다윈 매니아이고 창조과학의 맹렬 안티 저격수이기도 하다.;;

김 태호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 학부 졸업 후에 이 분야로 진로를 옮겼고, 현재는 전북대 교수 겸 '한국 과학 문명학 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세벌식 자판 사용자이고, 작년 가을엔 연세대에서 무려 한글 기계화의 역사에 대해 강연도 했다.
강연 중 화면을 보니 직결식 글꼴도 잠시 나오던데.. 청중 중에 그 직결식 글꼴을 만든 사람도 있었다는 걸 과연 알았을지 궁금하다.

2. 멋있는 법조인

  • 한 문철: "예상할 수도 없었고 피할 수도 없었던 사고. 100대 0입니다!" (이 판정을 보험사 직원들이 싫어합니다)
  • 천 종호: "안 돼 안 바꿔 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 그럼 니 돈 주면 되지 왜 남의 돈을 뺏어 주...나!!! 공부만 잘하면 되나?"
  • 박 준영: 명대사 때문은 아니고.. 그야말로 한국판 엔자이 사건들을 전부 들춰 내서 피고인들의 누명을 벗겨 줬거나 그러려고 애쓰고 있구나.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2007년의 수원 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그리고 무기수 김 신혜 사건까지 다 동일 인물인 줄은 몰랐다.

그런데 글쎄, 아무리 사회 약자를 위해서 발벗고 일한다 해도, 변호사까지 돼서는 사무실 월세도 못 내고 파산에 스토리펀딩 운운하는 건 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좀 언플 오바 같다. 선장이 자기 할 일 다했고 다른 선원과 승객들 다 대피시켰고, 자기도 충분히 구조되고 탈출할 수 있는데도.. 선장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고 객기 부리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데..
뭐 종합적인 평은 지켜봐야 할 일이고.

다만, 머리는 좋아서 사시까지 붙었는데 그 뒤로 사상은 이상해지고 맛이 가서 6· 25가 무슨 침인지 모른다거나, 자기 나라 정체성 부정과 적화 부역에 앞장서고 있는 이상한 법조인들과 그거 출신 정치인들은 하나도 멋있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징그러운 괴물처럼 보인다.

3. 우주 개발 관련 멋진 말들

  • 세상에 불가능한 게 무엇인지를 말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요, 내일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 로버트 고다드
  •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1960년대 안에 달에 갈 것이고,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 케네디 대통령

케네디는 그렇다 치더라도, 옛날에 로버트 고다드도 이렇게 멋진 말을 남겼는 줄은 지금까지 몰랐다. 나이키 광고 카피보다 훨씬 더 고퀄이다.
게다가 저 말은 고다드가 액체 연료 로켓을 개발해서 유명인사 되고 떼돈 번 뒤,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면서.. 밥 로스 화가가 "참 쉽죠?" 이러듯이, 기자들이나 후학 앞에서 덕담이랍시고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 말은 고다드가 1904년, 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덕분에 그 당시 관행이었던 졸업생 대표 고별 연설 때 나왔다..;; 질병 때문에 학교를 늦게 들어가서 동기들보다 나이가 두 살 정도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말 후덜덜이다.
참고로 서 재필도 1889년에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식 때 고별 연설을 한 바 있다. 공부 하나는 정말 겁나게 잘했는가 보다. 그리고 같은 고졸이어도 100년 전의 고졸과 지금의 학력 인플레 하에서의 고졸은 같은 레벨이 아니었을 거라는 게 실감이 간다.

물론 세상에는 엄연히 인간의 힘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도 있으며,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까라면 까"가 많은 폐단과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만으로 신 앞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인간의 정상적인 지적 활동과 노력이 몽땅 쓸데없는 바보짓인 것도 절대 아니다. 최소한의 상식적인 분별력과 판단력이 있으면 21세기가 다 돼 가지고서 달 착륙 자작극이네 NASA 음모론 그딴 소리는 절대 나올 수 없다.

  • 아폴로 13 (1995): Hello, Houston. This is Odyssey. It's good to see you again.
  • 에어 포스 원 (1997): Liberty 2-4 is changing call signs. Liberty 2-4 is now Air Force One!
  • 라이터를 켜라 (2002): "열차가 부산역에 멈춰 섰다. 다시 반복한다. 열차가 부산역에 안전하게 멈춰 섰다."

다들 비슷한 형태의 결말부이긴 한데,
1이 제일 스케일 크고 감격스럽고 멋있고.. 2는 그냥 통쾌하고 정의 실현을 대리 만족한 정도이고, 3은... 좀 병맛스럽다.

4. 경찰에 대한 뻔한 이미지

법조인 다음으로 경찰을 살펴보면.. 영화에서 경찰이 묘사되는 모습을 보면 뭔가 판에 박힌 패턴이 있는 것 같다.
먼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꼭 나온다. <아저씨>에서는 차 태식에게 "이 아줌마 콧구멍에서 반점이 나왔어. 뭔 얘긴지 알아?"라고 열과 성의를 다해 심문을 하던 박 형사가 있으며,
<범죄도시>에서 '진실의 방'을 빤히 쳐다보던 피의자에게 "뭐 보노, 새꺄? xx 터쟈뿔라.."라고 일침을 놓는 오 동균 형사가 있다. 주연 못지않게 아주 웃겼다.

그리고 미국물의 경우, 경찰은 근무 중에 끼니를 때우기 위해 꼭 도넛을 먹고 있다. 주토피아에서 아주 잘 묘사돼 있지만 꼭 주토피아만 그런 건 아니다.
일본의 경우 도넛 역할을 하는 게 컵라면이라고 한다. 옛날에 강력 사건이 벌어져서 단체로 수색 작업에 나선 경찰들 모습이 매스컴을 탔는데.. "어, 그런데 저 경찰들이 먹고 있는 건 뭐야?" 이런 식으로 마케팅이 돼서 컵라면이 대박을 쳤다고 한다.

옛날에는 설거지를 해도 서양에서는 동물인 해면을, 동양에서는 식물인 수세미를 썼다고 하는데 문화권별로 재미있는 차이점이 보인다.

5. 한국, 일본, 미국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 군대를 일정 기간 강제로 의무적으로 다녀와야 하는 나라 vs
  • 국제법상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 (침략 전쟁, 해외 파병, 무기 수출 같은 거 할 수 없는 자위대만으로..)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 이 좁아 터진 땅덩어리 하나 겨우 지켜 내느라(그것도.. 같은 언어 쓰는 명목상의 동족으로부터) 천신만고 겪은 나라, 육군이 비대한 나라 vs
  • 2차 대전, 6·25,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 등등 세계 방방곡곡 남의 나라의 평화를 지키느라 애쓴 자국 군인의 노고를 치하하는 나라, 해군이 비대한 나라

완전 극과 극이다.

6. 괴담과 도시전설

그러고 보니.. 내가 초딩 정도로 어렸던 시절엔 도대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이상한 괴담, 도시전설 같은 게 그리도 많이 나돌았다.
밤이 되면 학교 안의 무슨 동상· 석상이 살아 움직여서 책을 읽는다네, 눈에서 빛이 난다네 하는 거,
옛날에 조폐공사 사장의 딸 '김 민지' 양이 끔찍하게 유괴 살해 당해서 현행 동전 디자인에 그 아이의 족적이 곳곳에 들어갔네 어쩌네 하고.. ㅠㅠ

공포의 삐에로 인형의 섬뜩한 한 마디 "또 둘이네."라든가..
그러니 <공포특급>, <오싹오싹 공포체험> 이런 책도 인기가 많았다. 요즘은 국내에 암약 중인 "조선족 장기 적출단의 실체" 같은 게 괴담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옛날에 관련 중국· 홍콩 영화가 인기를 끌기라도 했는지, '강시'라고 팔· 다리의 관절이 굽지를 않는 청나라 복장의 좀비? 드라큘라?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이놈한테 당하지 않으려면 숨을 쉬지 않고 꾹 참아야 된댄다. 쟤는 모기처럼 이산화탄소를 감지하는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끝으로, 초딩 시절에는 정말 몸서리칠 정도로 무서웠던 의료 통과의례가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포경수술이요, 다른 하나는 주사의 끝판왕 일명 '불주사'라고 불리는 결핵 예방 접종이다.
세월이 흘러 포경수술은 굳이 모든 애들이 반드시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대세가 굳어져 가고 있다.

이거 원조는 유대인의 표적으로서 성경에서 당당히 언급되는 할례이다. 그런데 어느 미개한 곳에서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를 대상으로 소중한 부위에다가 무슨 짓을 하길래 거기에다가도 할례라는 말을 붙이고, 그러다 애 잡거나 성 불구로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불주사라는 용어 그 자체는 옛날에 물자가 부족해서 주사 바늘을 일회용으로 못 쓰고 알코올 램프 불꽃으로 소독해서 재활용하던 관행에서 유래되었다(흐음, 알코올 자체도 소독제인데..??). 하지만 주사 바늘은 사용 과정에서 바늘 끝이 미세하게 손상되고 뭉툭해져서 관통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굳이 위생과 감염 문제가 아니더라도 재사용해서 좋을 것은 전무하다. 마치 아날로그 신호나 JPG 그림이 열화되는 것처럼 성능이 떨어지게 된다.

내 기억으로 결핵 예방 접종(BCG)은 처음에 어깨가 아닌 팔뚝에 준비 주사를 놔 보고 며칠 뒤에 거기가 부풀어올랐는지의 여부에 따라 후속 접종을 하거나 안 했지 싶다.

엄청 옛날에 행해졌다고 전해지는 천연두 예방접종은 더 뜨겁고 따갑고 아팠는지 모르겠다만, 그 시절 얘기가 와전되고 과장되어.. 결핵 예방 접종까지도 무슨 담배빵을 지지기라도 하는 듯이 '불주사'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선사했던가 보다.

지금도 흉터가 남는 주사식 결핵 예방 접종 자체는 시행되고 있는가 보다. 그리고 옛날에 초등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씰도 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자는 취지로 판매? 강매되었던 것인데 요즘은 옛날 이야기가 돼 간다. 차라리 카톡 이모티콘 같은 걸 이런 형태로 판매하는 게 더 나을지도..?

7. 흔한 오류

내 경험상, 가방끈 길고 머리에 든 게 많은 사람이 특별히 빠지기 쉬운 위험, 오류 내지 함정이란 별 거 아니다.

(1) 자기가 배우고 아는 지식이나 이론이 실제로 유효하게 적용되는 조건, 문맥, 한계, 범위를 분간하지 못하고 아무 데서나 나대는 것.
(2) 자기가 이 분야에서 전문가이니까 딴 분야에서도 전문가일 거라고 착각하는 것. 위의 1번이랑 비슷하지만 좀 더 고의적이고 적극적인 맥락에서다.


이 함정에 빠지면 그 누구라도 헛똑똑이 바보가 될 수 있다. "세상에 나보다 더 겸손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내지 "저는 평생에 거짓말이라고는 전혀 한 적 없습니다"처럼 되고 "난 오로지 완벽한 사람들로만 구성돼 있는 교회에 다니고 싶어" 같은 망상에 빠지게 된다.
마음 상태 문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능도 전혀 개입하지 않는 건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12 08:33 2018/06/1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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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글다 =_=;;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해변에서 가까이서 본 광안대교와, (대략 1.2km 정도 떨어짐)
저 멀리 일본 쓰시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본 광안대교(대략 50km)는 외형상 서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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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쪽에서 본 교량은 해수면 수평선의 아래로 푹 꺼지듯 내려앉아 있음이 명백하다.
굳이 이 사진 말고 어느 풍경 사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원근법 때문에 작게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건 교량 위 아래의 기둥 크기 비율을 고려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망원경으로 보더라도 아래로 꺼진 건 명백하게 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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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광안리 해수욕장 해변은 말 그대로 해수면에 거의 근접하는 낮은 고도인 반면, 쓰시마 섬에 소재한 '한국 전망대'는 해발 70m에 달하는 언덕 위의 고지대이다! 그럼 상식적으로 광안대교가 밑동까지도 잘 보여야 정상일 것이다. 참고로 광안대교의 도로는 해발 45~50m 남짓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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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이가 왜 발생할까?
답은 하나, 지구는 둥글기 때문이다.
배가 저 멀리 사라질 때도 그냥 중앙의 소실점 근처에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수평선 아래로 내려앉듯이 사라지는데..
그 현상만 갖고는 flat earther들이 선뜻 수긍하질 않으니, 이럴 땐 일개 선박보다 훨씬 더 크고 확실한 증거인 광안대교 풍경을 제시해 보자.

이 문제 갖고 고민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특히 성경 믿고 신의 창조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말이다.
과학으로 검증이나 재현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세계 지도가 평면이니까 지구도 평면이다" 수준의 유체이탈이나 마찬가지인 아무말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예수님 부활이 사실인 것만큼이나 아폴로 승무원들이 달에 다녀 온 것도 사실이고, 지구가 둥근 구인 것도 사실이다. 그건 창조· 진화라든가 성경의 무오성하고는 아무 관계 없다.
"땅의 원"(circle of the earth - 사 40:22)이 지구가 둥글다는 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땅의 네 모퉁이"(four corners of the earth - 계 7:1)는 지구가 평면이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이 그 문맥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니다.

그리고.. 세상을 너무 음모론 괴담스럽게 볼 필요 없다. 세상이 영적으로 아무리 악해도 멀쩡히 눈과 귀로 관찰 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것을 호락호락 조작하고 사기를 치지는 않는다. 지구 모양을 갖고 사기를 쳐서 도대체 누가 무슨 이득을 얼마나 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늘 하는 얘기가 있는데, 세상 다른 현상은 다 음모론적으로 접근한다 해도 최소한 (1) 전기차가 망한 것과 (2) 인간이 과거에 달이 간 적이 있는지, 갔다면 지금은 왜 달에 더 안/못(?) 가고 있느냐 하는 건 음모론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현상이다.

(1)은 무슨 석유 회사의 외압 로비 같은 거 전혀에 가깝게 없으며, 있다 해도 전기차 몰락의 주 요인이 결코 아니다. 그냥 전기차가 배터리의 무게와 가격, 항속 거리와 충전 시간이라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기름차의 기술 발달을 따라가지 못해서 망했을 뿐이다. 전기차는 처음에 간단하게 만드는 게 기름차보다 쉬웠을 뿐이지 그 이후로는 실용화가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디젤 엔진 기반의 대형 버스와 트레일러가 배터리 기반 전기차로 가능할까?? 21세기에도 어림도 없는 일이다.

(2) 역시.. 천문학적인 발사 비용 대비 효과가 없으니 더 안 보내는 것일 뿐이다. 허무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 이것보다 더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우주 관련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꼭 미국 NASA만 세상 모든 정보를 움켜쥔 빅 브라더스 흑막인 것처럼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도대체 왜 소련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미국 최대의 경쟁자요 어떻게든 미국의 행보에서 약점 잡을 것 찾느라 목숨을 걸었던 소련조차 미국이 달에 사람을 보냈던 걸 빼박 다 ㅇㅈ했구만.. 설마 미국과 소련이 나란히 같이 짜고 조작극을 벌였다고 믿으시는가? 애초에 NASA 자체가 소련의 스푸트니크 쇼크에 멘붕 하고서 미국이 허겁지겁 설립한 연구 기관일 뿐인데 말이다.

지금은 그 냉전이 끝났다. 컴퓨터가 처음으로 대중화되고 정보화 시대네 뭐네 말이 나오자 이번에는 666이 어떻고 모든 것이 컴퓨터에 의해 중앙 통제되고 정보 접근성으로 인한 신분 계층 차별이 일어나고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게 될 거라는 식으로 괴담이 왕창 나돌았다.
난 그 심정은 이해한다. 198, 90년대라면 나도 그런 쪽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대의 뚜껑을 열어 보니 세상은 그렇게 막장으로 무식하고 폐쇄적이고 흉물스럽기보다는.. 훨씬 더 상업주의 자본주의적으로 돈의 논리를 따라 개방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양의 기술과 정보들이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기는커녕, 대중들에게 개방되고 무료로 내지 아주 저렴하게 풀렸다. CCTV, 블랙박스, 중앙집권 전산화 덕분에 치안, 행정과 금융이 정말 투명하고 깨끗해지고 신속· 공정해졌다.

남극과 달은 은폐는커녕 표면의 스트리트 뷰가 나도는 지경이다!
아폴로 우주선을 제어하던 컴퓨터 프로그램의 어셈블리어 소스가 github에 공개되어 있다. 설마 그게 다~~ 주작 조작이겠는가?

물론 그것들이 마냥 자선행위 차원에서 풀린 건 아니며, 그 투자 비용은 더 교묘한 방식과 다른 형태로 어떻게든 회수되긴 할 것이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던 기술과 집중되었던 자본이 나중에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쪽으로 얼마든지 악하게 쓰일 수 있으며,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가능성은 본인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언제 어떤 형태로 구체적으로 실현될지 우리로서는 선뜻 추측할 수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 그 엄청난 기술들이 대중들을 통제하여 고작 아폴로 계획 자작극이나 지구 평면이라는 엄청난 팩트(?)를 은폐하는 데 동원되어 쓰이고 있다고 믿는 건... 성경을 믿는 것보다 정말 엄청나게 더 큰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게 틀림없다.

고대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네스는 같은 날 같은 정오 시간대에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그림자 길이가 차이가 난다는 걸 발견하고는 그걸 토대로 지구의 둘레를 추측 계산해 내기까지 했다. 이 때는 성경의 구약과 신약 중간 시기이던.. 그야말로 엄청난 옛날이다. 기구 하나조차 띄울 여력이 안 되던 시절에 지구가 둥근 건 너무 당연한 귀결이고, 그 둘레를 오늘날의 측정값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정확하게 알아맞힌 것이다.

컴퓨터, 우주선, 휴대전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2천 몇 백 년 전의 사람보다도 통찰력이 뒤쳐져서야 되겠는가?
세상 자녀들이 빛의 자녀보다 더 지혜롭게 머리 잘 돌아가는 분야가 있다는 건 성경도 인정한 팩트이다(눅 16:8). 그걸 굳이 부인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7 08:33 2018/06/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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