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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파주, 2014년 철원 당일치기 여행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올해엔 본인은 아예 2박 2일 일정으로 강원도 투어를 다녀왔다. 자료 리서치와 최적 경로 프로그래밍, 예산 편성, 운전, 관광 전부 1인 단독 플레이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돌아왔다. 여행의 자유가 있고 자동차가 있으면 얼마나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중에 신혼여행을 가도 이 정도의 감흥은 못 느낄 것 같다.;;

※ Day 1: 동해 바다 최북단

한밤중에 집을 나서서 제2중부 고속도로(37)와 영동 고속도로(50)를 달렸다. 강원도에 가까워지자 길이 젖어 있었으며 금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선이 안 보이고 와이퍼를 고속으로 가동해야 할 정도로 비가 오는 곳도 있었다.
거기에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도로 곳곳이 보수 공사 중이어서 운전을 더욱 조심해서 해야 했다. 갑자기 차선이 줄어들거나 도로 선형이 바뀌는 지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심야가 아니라 주말 낮이었으면 병목 때문에 길이 왕창 막혔을 것이다.

난 운전대를 잡는 동안은 어지간해서는 몸 컨디션과 시간대를 불문하고 거의 졸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비 오는 밤에 고속도로 운전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이 느껴졌다. 그래서 부득이 휴게소에 들러서 3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주변 경치 감상을 포기하면서까지 심야 운전을 강행한 이유는 도로 정체가 없을 때 서울을 빠져나가고 해가 뜨자마자 강원도에서 관광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첫 목적지인 이 승복 기념관에 도착했다. 고속도로 속사 IC와 그리 멀지 않고, 또 올림픽도 얼마 안 남았으니 특별히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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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나름 해발 700m에 달하는 대관령 고지대라고 한다. 주변의 산들엔 안개가 자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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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은 단순히 건물 한 채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동상, 묘소, 생가와 학교의 복원 모형 등 볼거리가 많았다. 정식 개장하기 전인 이른 시간이었지만(아침 7시 무렵) 친절하게도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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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익숙한 포즈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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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무장공비에게 살해당한 일가족들이 이 언덕에 한데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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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두 사람이 한데 공유하고 표면이 짙은 초록색 형태인 옛날 나무 책상은.. 본인도 초딩 저학년 시절에 학교에서 실제로 사용한 적이 있다. 교실 바닥도 저렇게 목재여서 청소 시간엔 밀대로 닦는 게 아니라 아니라 왁스칠을 해야 했다.
그 밖에 생가 사진, 각종 기념비 사진, 그리고 밖에 뜬금없이 전시돼 있는 각종 탱크와 전투기 사진은 첨부를 생략하겠다. 이것 말고도 올려야 할 사진이 너무 많아서 말이다.

역사적으로 명백히 입증된 사건을 안 믿고 자작극설 같은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꼭 있어 왔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든가 난징 대학살, 그리고 아폴로 계획 달 착륙에 대해서 말이다. (종교의 영역으로 가면 예수님의 부활까지도..)
뭐, 같은 맥락으로 이 승복에 대해서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조선일보의 주작이라고 뜬금없이 이의 제기를 한 불순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1990년대 말에 있었다.
이건 유족들의 강렬한 반발과 함께 주작이 아닌 팩트라고 최종 판결이 났다. 하지만 안 그래도 잊혀지고 동상이 철거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던 이 승복은 이미 완전히 확인사살을 당한 뒤였다.

쟤는 무슨 대단한 반공 영웅이 결코 아니다. 10살짜리 초딩이 무슨 정치를 알고 이념을 알았겠는가?
그저 학교에서 배운 대로 평범하고 순진하게.. 마치 "차조심 해라 / 낯선 사람을 무작정 믿고 따라가지 마라"를 실천하듯이 "공산당 나빠요 / 싫어요"를 시전한 죄밖에 없는데 빨갱이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

1.21 사태 때는 김 신조라는 공비 딱 한 명만이 생포되었는데, 이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는 김 익풍이라는 사람이 생포되었고 훗날 완전히 전향했다. 그는 사건 당일로부터 무려 41년이 지난 2009년 12월에야 이 승복 기념관 관장의 제안으로 이 승복의 묘지를 참배하고, 유족들에게 공개적으로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주작설에 대해서도 극구 부인했음은 물론이다. 아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이 그때 이 승복의 가족을 직접 죽인 것은 아님..;;

이 승복 기념관의 관람을 마친 뒤 곧장 강릉으로 달려갔다. 해는 완전히 떴지만 중간에 비상등을 켜고 달려야 할 정도로 안개가 짙게 낀 구간도 있었다. 운전을 극도로 조심스럽게 해야 했다. 그래도 비는 더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하늘이 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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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통일 공원이 있는 곳은 바다와 산, 영동선 철도가 나란히 지나니 바깥 경치가 아주 아름다웠다. 함정 전시관에서는 퇴역한 커다란 전함과 탈북용 어선, 그리고 강릉 무장공비 잠수함을 구경했는데 생각보다 볼 게 많았다. 예전에 평택 해군 기지를 견학한 적이 있어서 전함 내부의 풍경은 그럭저럭 익숙했다.

해군은 배가 그야말로 생활관 겸 전장이고 안 그래도 힘든 선원 생활이 군대와 결합하니 얼마나 힘들까 싶다. 그리고 배는 곧 기계덩어리이며, 모든 기계는 관리하는 인력을 필요로 하니 육군 보병보다야 더 기술지향적이다.
여기에는 '전북함'이라고 길이 119미터, 배수량이 3천 톤 정도 되는 구축함이 1999년에 퇴역한 후 전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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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옛날 골동품들.
난 25년쯤 전 초딩 시절에 컴퓨터 학원에서 GWBASIC을 배울 때, 정확하게 저 두 컴퓨터들의 실물을 구경하고 써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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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바다를 보며 찍은 사진이다. 방파제 같은 시설 주변에서 파도를 막으려고 이렇게 잔뜩 집어넣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테트라포드'라고 한다. 뾰족하게 만들어서 파력을 효과적으로 상쇄하기 위해 공이나 정육면체가 아니라 다리가 4개 달린 형태이다.

그런데 방파제에서 멀쩡한 길을 놔 두고 사람이 저기 위를 일부러 지나가는 건 바다의 낭만을 즐기는 것과는 억만 리 떨어진.. 거의 자살행위 급의 미친 짓이다. (☞ 더 자세한 설명)
십중팔구 발을 헛디디거나 미끄러져서 아래 틈새로 쏙 빠지기 쉬운데.. 몇 m 아래에 있는 단단한 콘크리트 덩어리와 수 차례 부딪히면서 바닷물에 빠지기 때문에 매우 높은 확률로 중상 또는 사망이 보장된다.

물에 안 빠지고 목숨을 부지했더라도 혼자서 위로 다시 기어올라오는 게 거의 불가능하며, 심지어 살려 달라는 외침 소리가 바깥까지 퍼져 나가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안 그래도 인적도 드문 곳인데 비명 소리도 파도 소리에 그냥 묻히기 때문이다. 익사하지 않더라도 테트라포드들 사이에 갇힌 채로 조용히 탈진해서 죽기 딱 좋다.
더구나 구조 신고가 접수됐다 하더라도 빠진 사람을 찾는 건 심히 어려우며, 구조 작업 역시 극도로 힘들고 위험하다. 저기에 비하면 차라리 아무 지형 장애물이 없이 파도에 휩쓸려서 물에만 곱게 빠진 건 완전 양반이다. 거긴 보트를 투입해서 곧장 출동이라도 가능하지.

테트라포드는 어지간한 플랫폼 아케이드 게임에 있는 데쓰 트랩, 남극 크레바스, 민통선 안의 지뢰밭, 사냥용 덫, 함정 급으로 위험하다고 봐야 한다.
모래사장+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저길 갈 일은 물론 없고, 저기서 사고를 당하는 사람은 다 낚시꾼들이다. 낚시 명당이긴 하지만 안전을 등가교환하고 가는 장소라는 건 진지하게 생각할 점이다.

한편, 전북함의 옆에는 어느 북한 주민들이 탈북할 때 사용했다는 어선이 있었다. 이 배는 그나마 탈북에 성공한 경우에 속하지만, 어떤 사람은 배에 탄 채로 죽어 버려서 배는 식량과 연료가 떨어진 채 시체만 싣고 일본으로까지 떠내려간 비극적인 경우도 있다. 사진 첨부는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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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있는 것은 바로 1996년 강릉 무장공비들이 탔던 북한제 잠수함이었다. 벌써 20주년이 됐다. 같은 계열의 색으로 도색은 다시 반들반들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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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은 일반 군함보다 공간이 훨씬 좁고 거주성이 열악했다. 일어서 있을 수가 없다. 물(잠수함..)이든 땅(땅굴..)이든 그 아래 속에서 지내는데 공간을 넉넉하게 내기란 힘들 것이다. 게다가 북한 사람들은 못 먹어서 키부터가 남한 사람보다 작으니까.
잠수함 안은 온갖 복잡한 계기판과 밸브, 스위치들로 가득했는데, 계기판 아래에 자그맣게 찍혀 있는 "1991. 평양"이라는 글자가 참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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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이 잠수함이 좌초하면서 부서진 부분인 듯하다. 이것 말고도 사진 찍은 게 많이 있지만 첨부를 생략한다.

지금까지 함정 전시관을 살펴봤다.
강릉 통일 공원은 (1) 함정 전시관, (2) 항일 기념 공원, (3) 안보 전시관이라는 세 파트로 나뉜다. 함정 전시관은 나머지 둘이 있는 곳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직선 거리 7~800m)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고저 차이도 상당하기 때문에 이동을 위해 차량이 사실상 필수이다. 뭐, 어차피 여기까지 찾아가는 수단 자체가 자동차밖에 없기도 하지만.

(2)는 그냥 공터에 각종 옛날 전투기와 6· 25 전투 전적비에다가 강릉 항일 인사 추모비가 있는 수준이지만, (1)과 (3)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둘 중 아무 한 곳에서만 입장료를 구입하면 당일 하루 동안 양쪽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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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기념 공원은 위와 같이 생겼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항일 관련 전시물보다는 해방 이후 관련 전시물이 더 많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파란 프로펠러기는 박 정희 대통령 시절에 사용되었던 대통령 전용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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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항일 관련 전시물인 강릉 의병 항쟁 기념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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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전시관의 모습. 출입문의 위에 있는 파란 지붕이 뭔가 실사가 아닌 CG 그러데이션처럼 굉장히 예쁜 색상으로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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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보 전시관에는 여느 6· 25 내지 반공 관련 자료뿐만 아니라 강릉답게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 대한 자료가 더 많이 있었다. 무장공비들이 은신처 마련을 위해 판 구덩이를 가리키는 말인 '비트'가 이 사건 때문에 널리 알려졌다.
얘는 그냥 '비밀 아지트'의 약자라고 한다. 영어 bit나 beat와는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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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 중인 동영상을 촬영한 건데 평소답지 않게 굉장히 선명하고 깨끗하게 잘 찍혔다.
조 창호 중위는 내가 이 블로그에서 전에 소개한 적도 있는데.. 참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슬픈 사례이다.
저건 행방불명 전사자로 현충원에 등재되었던 자기 이름을 몇십 년 만에 손수 지우는 모습이다.
전사한 걸로 간주되어 1계급 특진을 해서 '중위'를 추서받은 것이었는데, 당사자가 살아서 돌아왔으니 저분은 형식적으로나마 진짜 중위로 진급식을 한 뒤 곧장 전역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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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전시관을 나와서 언덕을 내려가면서 찍은 모습. 카메라는 내가 눈으로 본 색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파란 하늘과 바다가 저렇게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2편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6/09/15 19:20 2016/09/1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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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무더위로부터 자극과 동기를 받아 본인은 이번 여름에는 바다에도 다녀 왔다. 지난 봄엔 등산을 많이 갔는데 여름엔 드디어 바다도 간 것이다. 물론 등산은 한 10월쯤 돼서 덜 더위지면 운동 차원에서 다시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가고 싶은 산이 아직 몇 군데 더 남아 있다.

단순히 산이나 계곡이나 강이 아니라 꼭 바다 구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 바쁜 와중에도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다녀온 소감을 먼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제아무리 가정과 사무실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들어온다 해도, 피서를 직접 가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된다는 게 느껴졌다. 안 갔다왔으면 후회했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잘 알다시피 해수욕장의 퀄리티는 동해가 서해보다 더 낫다. 서해는 얕고 물이 더 탁하다. 서울 사람들이 가까운 인천 앞바다를 놔 두고 괜히 강원도나 부산까지 가는 게 아니다. 부산은 대도시답게 빽빽한 고층 건물이 해수욕장 모래사장의 바로 앞까지 닿아 있고 심지어 해운대 해수욕장은 지하철로도 접근 가능하다. 그리고 거긴 잘 알다시피 피서철엔 사람들로 완전 터져나간다..;; 이런 풍경을 정작 수도권인 인천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학 동안 본인은 학기 중일 때보다 회사에 더 자주 출근하고, 주일마다 교회, 그리고 방학 기간 동안 성경 특강을 부탁받은 것도 있어서 행동 반경에 제약이 심했다. 그래서 동해보다 더 가까운 서해부터 1박 2일 스케줄로 먼저 가게 됐다. 동해는 멀기도 하고, 비단 바다 구경뿐만 아니라 각종 안보 관광 코스를 엮어서 최하 2박 이상의 스케줄로 다시 갈 예정이다.

일단 서해의 어느 해수욕장을 갈지 많이 고민했다. 사실, 공항이 걸쳐 있는 용유도에도 끝자락에 해수욕장과 유원지가 있긴 한데 그건 제외하고, 또 전라도 이남으로까지 너무 멀리 가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크고 유명해서 혼잡할 걸로 예상되는 해수욕장도(대천 같은..) 제외하고, 해변에 상업 시설들이 너무 다닥다닥 늘어서 있지 않고, 적당히 외지고 잠시 속세를 떠났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곳을 골랐다.

그래서 태안군의 북쪽에 있는 구례포/학암포 해수욕장이 선택됐다. 참고로 최후까지 경합했던 후보는 거기 남쪽에 있는 (1) 안면도에 소재한 해수욕장들, 그리고 (2) 장항선+서천화력선을 구경할 수 있는 춘장대 쪽이었다. 비록 철도 구경은 못 했지만 그래도 구례포/학암포 주변에도 마치 춘장대 해수욕장처럼 근처에 화력 발전소가 있긴 했다. 일말의 공통점이다.

서해를 갈 예정이니 응당 서해안 고속도로를 탔다.
평소에 자주 구경하는 경부 고속도로는 차선수가 정말 많고 넓다. 그리고 온갖 광역· 고속버스들이 넘쳐나며 버스 전용 차선까지 있다. 그 반면, 서해안 고속도로는 경부보다는 아담하며 수도권 구간에서도 버스를 거의 볼 수 없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서울 서남부는 이미 경부선 전철이 발달해 있고, 또 경부와는 달리 서울 진입로(서부간선)가 너무 비좁아서 병목이 심해서 경부 같은 교통망을 구축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지 싶다.

태안은 서산을 경유해서 국도를 타고 산 같은 비탈길도 한참을 오른 뒤에야 나타났다. 일요일 예배를 마친 뒤 저녁이 돼서야 현장에 도착했는데, 오토캠핑장 주변은 차 끌고 텐트 친 피서객들로 가득했다. 나야 홀몸이고 자동차가 곧 이동식 텐트이니 따로 텐트를 치지 않았다. 에어컨 냉기가 남아 있는 동안은 차 안에서 좀 쉬다가, 냉기가 빠졌을 때쯤 이제 주변 지형과 시설 정찰을 시작했다. 그래도 바닷가답게 바깥도 제법 시원한지라, 냉기가 빠진 뒤에도 차에서 자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심야와 이른 아침, 해수욕장이 정식 개장하지 않은 시간대이긴 하지만 모래밭에 돗자리 깔고 바닷바람 맞으며 책 읽고 코딩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꿈 같은 피서가 시작됐다. 먼 길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바닷물에다가는 아직은 발만 담갔다. 진짜 본게임은 시작도 안 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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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주변은 몇십 m 떨어진 물체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해무가 짙게 껴 있었다. 그리고 썰물 상태여서 동해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갯벌이 쫘악 펼쳐져 있었다. 바닷물은 한 200m쯤 뒤로 싹 밀려났으며 이 때문에 부표(사진엔 안 나옴)까지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지금은 저렇게 돗자리 깔고 노트북 PC까지 올려 놓은 채로 사진을 찍었지만, 밀물 때는 여기 일대는 다 물에 잠겼다. 아무튼, 이로써 등산 코딩에 이어 갯벌 코딩까지 달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가 뜨고 더워졌으며, 해무가 차츰 걷히고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개장 시각이 지나자 텅 비다시피하던 해변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렇다고 인산인해 수준인 건 물론 아니고, 혼자 쾌적하게 물 속을 돌아다니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본인 역시 이 무렵부터 하반신뿐만 아니라 상반신과 얼굴까지 몽땅 바닷물에 담갔다. 기온과 수온이 모두 해수욕에 안성맞춤이었다.

본인은 비록 수영을 할 줄은 모르지만,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근 채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 바다는 계곡이나 강과는 달리 계속 파도가 치니 물이 뭔가 역동적이고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이 많은 물을 밀어내는 엄청난 힘이 어디서 유래된 걸까? 지구의 자전? 달의 인력? 온도 차이? 이렇게 비열이 엄청난 물질이 액체라는 유체라는 게 지질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물의 저항과 공기 저항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별별 잡생각을 하며 물놀이를 했다.

서해는 정말 얕고 바닥의 경사가 완만해서 모래사장으로부터 한참을 멀리 떨어져도 여전히 발이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그럼 여기는 바닥의 경사가 몇 퍼밀인 걸까? 철도 차량의 경사 한계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까?" 뭐 이런 생각도 덩달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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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밀물과 썰물의 차이라는 것을 이렇게 직접 보니 몹시 신기했다. 정오 무렵이 되니까 물이 제일 많이 들어왔으며, 그 넓던 갯벌이 감쪽같이 몽땅 바닷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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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안개가 곁들어져서 여기도 꽤 괜찮은 풍경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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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오른쪽에는 요렇게 나무로 덮인 언덕도 있는데, 이 산길을 따라 몇백 m쯤 걸으면 이웃의 학암포 해수욕장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물놀이에다 주변 지역 산책도 몇 시간 하니, 생각보다 팔다리가 쑤시고 피곤하고 배도 고팠다. 그래서 본인은 저 길을 끝까지 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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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점심 시간이 어중간하게 지난 오후 2~3시경, 드디어 해수욕장을 나와서 옷을 갈아입었으며, 학암포 근처의 민박· 펜션과 식당들이 즐비한 마을로 가서 식사를 했다.
바다에 갔으니 해물을 먹어야지. 해수욕장 잘 찾아간 것에 대한 자가보상 차원에서 두세 명 분량의 회 코스 요리를 마지막 매운탕까지 혼자 다 먹어치웠다.

의식주 중에서 의와 주는 전혀 신경쓸 필요 없으니 교통비(유류/톨비)를 제외한 나머지 예산은 전부 '식'에 집중 투입되었다. 사실 여행 기간 내내 이때 말고 나머지 끼니는 거르거나 부실하게 해결한 편이었다. 또한 밥뿐만 아니라 전기 공급도 열악한 상태였는데 식당에 있는 동안 컴퓨터와 전화기를 덩달아 충전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때 총체적인 에너지 보충을 했다.

학암포 해수욕장은 마을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또 물에 들어가지는 않고 다시 돗자리 깔고 누워서 해변과 언덕을 구경하며 쉬었다.
그렇게 저녁 무렵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엔 정체 시간대를 피할 겸, 서해안 고속도로의 유명한 행담도 휴게소에서 몇 시간 동안 머물면서(휴식+코딩) 추억을 더 만들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원하는 대로 머물 수 있는 것은 역시 자차가 있을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피서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생업 전선에서 여전히 피서 전과 다를 바 없는 폭염을 경험하면서 좌절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동해도 조만간 어서 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해에서는 뿌연 해무, 갯벌과 초록색 바닷물을 보고 왔다면, 동해에서는 더 맑고 깊고 시퍼런 바다를 보게 될 듯하다.

그나저나 햇살이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물에서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얼굴, 팔뚝, 심지어 발등까지 제법 탔다. 물은 자외선의 차단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12 19:28 2016/09/1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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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천장산, 낙산

컴퓨터도 더 작은 모바일로 바뀌고, 철도도 더 작은 경전철로 바뀌는 게 트렌드인지..
지금까지 산책삼아 다녀 온 작은 언덕들의 주요 탐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도록 하겠다.

1. 천장산

서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구소들이 가득하고 남쪽에도 산림 과학원, 카이스트 경영 대학원 등이 있어서 왠지 지적인 느낌이 드는 산이다. 그런 쪽 말고도 동남쪽에는 경희 대학교가 있고 동쪽에는 의릉과 한국 예술 종합 학교(일명 한예종)이 있다.
게다가 산의 이름부터가 '하늘 아래 명당'이라는 뜻인데 이런 산을 오르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해서 지하철 6호선 상월곡 역에서 내려서 산책로를 올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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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아파트도, 교수 아파트도 아닌 과학자 아파트다. ㄷㄷㄷ 하긴, 과학자들은 국가를 먹여 살리는 기간 인력이지.
그런데 지금 '과학자 아파트'라는 단어로 구글링을 하면 온통 북한 소식만 검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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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이렇게 빽빽한 나무들로 가득해서 산림욕을 즐기기 좋았다.
단, 천장산은 앞서 말했듯이 산기슭에 여러 연구소와 심지어 문화재까지 있는 관계로 접근이 통제된 곳이 아주 많았다. 사방팔방 등산로가 뚫려 있는 봉화산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일단 국립 산림 과학원이 관리하는 '홍릉숲' 영역은 전부 펜스가 쳐져서 막혀 있었다. 서쪽의 연구소 방면도 접근 불가이며 거기 있는 건물들을 구경도 할 수 없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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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41m짜리 낮은 산이니 정상에는 아주 금방 도달한다. 그런데 홍릉숲 말고 맞은편 쪽도 전부 펜스가 둘러져서 막혀 있다. 펜스 건너편은 '의릉' 쪽에서 올라와야만 갈 수 있다.
즉, 그냥 동네 뒷산 오르듯이 오르면 천장산은 거의 셰어웨어 데모 수준만 구경할 수 있었다. 갈 수 있는 경로가 단 한 곳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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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는 북서쪽을 바라보는 딱 한 곳에만 있었다. 북부 간선 도로를 넘어 가까이 있는 언덕은 북서울 꿈의 숲 내지 오패산이고,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은 그냥 북한산이다.
여기를 지난 뒤부터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냥 계단을 따라 꼭대기에서 하산하며, 산기슭 둘레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한예종의 입구에 도달하게 되었다. 의릉을 가려면 한예종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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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릉은 서울 동대문구· 성북구 주민, 제복 입은 현역 군인, 한복 착용자 등등이 무료 입장 가능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입장료 1000원을 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풀밭이 참 깔끔하게 닦여 있던데.. 본인은 여기서 천장산을 다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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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산의 진짜 꼭대기에 도달했다. 위의 사진에서 연두색 펜스 왼쪽이 처음 들렀던 곳이고, 지금은 의릉 쪽에서 산을 다시 올라 있다. 의릉 쪽 등산로는 정상까지 나무 판자 내지 시멘트로 마치 협궤 철길 같은 등산로가 닦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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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의릉 방면에서 산을 한 바퀴 도는 쪽으로 하산했다. 저 멀리 경희 대학교 평화의 전당이 보였지만 길이 봉인돼 있어서 그쪽으로 직접 갈 수는 없었다. 여기는 통제 구역이 많아서 산을 종단할 수 없으며, 들어왔던 의릉 입구로 되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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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무들에 둘러싸인 초록색 지붕의 건물이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지도와 대조해 보니 저건 한예종 미술원 건물이었다. 본캠 건물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

한예종이 있던 이곳에는 잘 알다시피 안기부 청사가 있기도 했다. 남산 청사와 더불어 이렇게 천장산 청사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다 합쳐져서 내곡동으로 간 것이다. (의릉 근처에 있던 것이 지금은 헌릉 근처로 바뀌었다는 게 흥미롭다.) 사실 아까 그 미술원 건물도 과거에는 안기부 건물의 일부였다고 함. 그러니 그 시절엔 민간인이 이렇게 천장산에 자유롭게 접근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안기부 강당 건물은 리모델링되거나 철거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 남아 있었다. 별로 볼 건 없이 썰렁해서 사진 첨부는 생략하지만, 그 강당에서 지난 1972년에 남북 7· 4 공동 선언이 발표됐다고 한다.

이렇게 의릉과 천장산 구경을 한 뒤, 본인은 무작정 한예종 캠퍼스를 지나서 큰길을 찾아 쪽문 밖으로 나갔다. 초행길이었지만 이렇게 나가는 게 맞았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 이내 버스가 다니는 길이 나오고, 상월곡 역의 다음 역인 돌곶이 역이 나왔다. 이렇게 여행을 마쳤다.

2. 낙산

낙산은 안습한 높이 때문에 온통 아파트와 건물로 뒤덮인지라, 항공 사진을 봐도 산 같아 보이지가 않을 정도이다. 그래도 지형상 엄연히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는 산이며, 꼭대기에 도달하고 나면 서울의 중심부에서 번화한 대학로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다. 산이라고 하면 보통 2차원 공간이 연상되지만 낙산에서 공원에 속하는 영역은 한양 도성을 따라 길쭉한 '길'이라는 1차원적인 성격이 강하다.

동대문(흥인지문)이 있는 교차로에서 북쪽을 보면 한양 도성이 시작되고 땅의 고도가 높아진다. 평소에 여기를 종종 자동차를 몰며 지나가기도 하는데, 저 성곽 공원에는 무엇이 있을지 언젠가 한번 땅밟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지난번에 남산에서 한양 도성 구간을 지나면서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지하철 동대문 역에서 내린 뒤, 실제로 성곽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낙산을 올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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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문은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존재감이 없었고, 동대문과 남대문은 왕년에 임진왜란 때 왜군이 통과하기도 한 뜻깊은(?) 곳이어서 존치. 그 반면 서대문은 다른 명분이 없어서 일제 강점기 당시에 노면 전차 복선화를 구실로 헐림...;; 뭐 이런 말이 있던데.
어쨌든 동대문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동대문의 양 옆으로는 동소문(혜화문), 그리고 남소문(광희문)이 있다. 비록 성곽은 동소문 방면 것만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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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오르막을 오르자 주택은 뜸해지고 고급 카페와 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주거지 대신 공원 티가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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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너머 건너편도 굉장한 고지대인 것 같은데 저기에도 집들이 빽빽하다.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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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정상까지 시내버스도 다니고 있었다.
예전에 교회 친구들과도 낙산 공원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남쪽의 동대문 쪽에서 안 오고 서쪽의 대학로 쪽에서 오르느라 성곽이 있는 이곳까지 올라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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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밖으로 나가니 한성 대학교가 바로 내려다 보였고, 그 밖에 경치는 대략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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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인가 제3 전망광장까지 가니 성곽이 잠시 끊어졌고, 본인은 여기서 산을 내려갔다. 요런 계단을 내려가니 또 빽빽한 빌라촌이 나왔고, 거기를 지나자 각종 극장들이 보였다. 방통대 건물이 멀리 보이길래 거기와는 90도 수직인 방향으로 이동하여 큰길을 찾았고, 이내 지하철 혜화 역에 도달하여 산책을 마쳤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07 08:33 2016/09/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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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기간 정산

1. 폭염과 열대야의 악몽

여름은 참 최악의 계절이다. 끝이 안 보이는 미친 날씨 때문에 차박(내 인생의 큰 낙), 등산(운동..;;), 거리설교(교회), 자전거 출퇴근(회사)은 오래 전부터 몽땅 올스톱 됐다. (그런데 이런 날씨에도 끝까지 근성으로 교회에서 매주 거리설교 나가시는 분들은 완전 존경을..)

어떻게 자정~새벽 2시 한밤중에 기온이 이렇게 높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침 8~9시 무렵이면 이미 오후 2~3시처럼 덥다. 그나마 새벽 4~6시 사이가 가장 인간적인 생활이 가능한 시간대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괴로운 건 시간대를 불문하고 지하철 승강장이 너무 덥다는 것이다. 일단 차를 타고 나면 차 안은 시원하긴 하지만, 지하철을 기다리는 단 몇 분 동안에 이미 옷이 땀으로 흠뻑 젖곤 했다.

여름이 겨울보다 좋은 건 정전기 없고 손이 시렵지 않고(밖에서 놋붉 꺼내서 코딩할 때..), 아침에 피부가 트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전부 단점뿐이다. 다만, 워낙 더워서 그런지 8월부터는 그래도 모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적(바다)· 녹조(강) 소식이 예전만치 심하게 들리지 않았으며 차 송풍기의 냄새가 싹 사라진 건 일말의 다행스러운 점이다.

변변한 태풍 하나 없을 정도로 무더위와 가뭄이 심각했건만, 옛날처럼 언론에서 가뭄이다, 절수, 제한급수 이러면서 호들갑을 안 떤 것부터가 4대강 같은 전국적인 치수 사업을 잘한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여름은 절대로 그냥 못 지나갔을 텐데 말이다.

어디 지형적으로 유속이 느려지는 곳은 여전히 녹조가 생기긴 하지만 그건 4대강 때문이 아니라 4대강 덕분에 그것밖에 안 생긴 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물 관리를 안 했으면 뭐 녹조가 없긴 했을 것이다. 그냥 바짝 마르고 쩍쩍 갈라진 강바닥만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화력 발전을 안 한 덕분인지, 고등어를 없애 버린 덕분인지 언제부턴가 미세먼지 얘기도 쏙 들어갔다.

이럴 땐 그래도 산기슭에 있고 중앙 냉방도 나오는 학교 연구실이 시원하고 좋다. 하지만 이제 수업 학점은 다 채웠고 학위논문 지도를 받을 때까지는 당분간 휴학을 하게 되는데, 이제부터는 학교에 차를 가져갈 수 없어서 접근성 메리트가 크게 떨어진다. 등록을 해야만 정기주차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학 기간엔 회사를 더 자주 나가고 특히 이번 방학 동안에는 한마음 미션에서 성경 강의도 뛰느라 학교엔 사실상 더욱 갈 여유가 없었다.
그 대신 집 근처 카페(낮과 저녁)와 패스트푸드점(심야)에 피서 가서 코딩을 하는 신풍조가 생겼다.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도 거기가 생각보다 집중 잘 되고 능률이 좋더라. 음료수값 정도 투자할 가치는 있어 보인다.

올해가 가기 전에 서해, 동해, 남해를 다 구경하고 오고 싶다. 시원하고 차 세울 수 있는 공터가 넘쳐나는 외지에서 차박을 실컷 하고 싶다. 자동차는 훌륭한 이동식 텐트이다.
가을 이후부터는 등산도 다시 계속할 것이다. 가야 하는 산들이 몇 개 더 남아 있다.
그리고 내년에는 여권의 유효기간이 1년 남짓 남는 관계로, 마지막으로 여권에 도장을 하나 더 남기고 올 예정이다. 사증란이 아직 한참 남아 있는데.. -_-;; 어디로 갈지는 아직 미정이다.

그나저나 자가용을 굴리고 나니 개인적인 철덕 기질과는 별개로 예전보다 열차를 확실히 덜 타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진작에 답사 다녀 왔을 수인선과 서울 9호선 연장 구간, 신분당선 이런 것들도 아직 못 가 봤다. 내가 사는 곳에서 너무 멀기도 하다만.

2. 코딩 드립

진실로 수확할 것은 많되 일꾼들이 적도다.
진실로 코딩할 것은 많되 체력과 머리가 따라주지 못하는도다.

코딩하고 싶은데 코딩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가 아니라 철덕은 코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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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야, 이거 재미있어.. 그래, 코딩이!
이전에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던 기능들이 새로 구현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재미가 없을 리가 있나.
그래서 내가 코레일에도 안/못 들어가고 이 짓 하고 있는 거 아니겠는가?

예전에도 말을 한 적이 있나 모르겠는데..
프로그램 짜는 거 자체보다도, 그 전에 제한된 시간과 지능 하에서 코딩을 무엇부터 어떻게 할지, 프로그램 짜는 절차를 먼저 프로그래밍하는 것도 굉장히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야 손발이 덜 고생하기 때문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6 (다음 버전)은 대박 예감을 하고 있다.
아, 굳이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다거나 수익을 많이 낸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내 기준과 논리 체계 하에서 구조적인 대박이 확실시된다는 뜻이다.

3. 여러가지 사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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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한번 시원스레 잘 내린다. 한창 학교에 틀어박혀서 종합 시험(논문 제출 자격 시험) 공부를 하던 때의 풍경이다. 학교에서 외박을 했다.
7월 초까지만 해도 아직 장마철이어서 종종 비도 오고, 이른 아침엔 그렇게까지 덥지는 않았었는데 얼마 못 가 날씨가 불지옥 급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본인이 이 사진을 찍고 있던 동안 여기서 400m쯤 떨어진 곳에 있던 중앙 도서관은 지하가 침수돼서 매스컴까지 타고 난리가 났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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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근처에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원 말고도 '매봉산'이라는 아주 작은 언덕이 있다. 사실 이게 다른 공원들보다 지하철역에서도 더 가까이 있다. 얘는 높이나 면적이 강남구의 매봉-도곡 역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매봉산'과도 비슷해 보인다. 둘 다 산책용 근린 공원이 조성돼 있다.

단, 응암동 매봉산은 도곡동 매봉산에는 없는 시설이 있다. 바로 유류 저장고.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6년엔 매봉산 기슭에 석유 비축 시설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1978년엔 여기 근처에 난지도가 만들어졌다. 그 시절에 여기는 인서울이 아니며 민간인 거주를 의도하지 않은 완전 외곽 변두리로 취급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난지도도 폐쇄되고 월드컵 경기장이 건설되자 여기는 민간인 친화적인 곳으로 탈바꿈했다. 석유 비축 시설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다. 이제는 더 쓰이지 않는 동그란 석유 탱크는 녹슨 채로 매봉산 등산객들을 맞이하는 중이다. 이제는 더 쓰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탱크들은 지금도 여전히 민간 지도의 항공 사진에 표시되어 보이지 않는다. 현재는 탱크를 완전히 철거하고 거기 일대를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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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5호선의 종점인 마천 역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쭉 걸어가면 군부대가 나오고 남한산성 방면의 청량산 등산로가 이어진다.
그런데 거기서 북쪽으로 쭉 걸어가면 '천마산'이라고 봉화산보다도 더 아담한 언덕과 함께 근린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 산의 건너편은 하남시.
지형이 흥미로운 것 같아서 여기도 한번 원정 산책을 갔다 왔다. 주차 공간도 있어서 접근성이 나쁘지 않았다.

4. 비행기 조종

교회 어르신 중에 공군 관계자가 계셔서..;; 올여름엔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 조종이라는 진귀한 경험을 한번 해 봤다.
씨러스 SR22 경비행기로 사천 공항에서 청주 국제공항 중간 기착 후, 김포 국제공항까지 날아가 봤다. 물론 시뮬레이터로. (세종 대학교 모의 비행 훈련 센터)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항공 시뮬 게임을 해 본 거라고는 초딩 시절에 1990년도 LHX (공격 헬기)가 전부였다. 그 흔한 플심 같은 것도 전혀 안 해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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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승 경비행기인지라 순항 속도 자체는 KTX와 별로 차이가 안 났지만 (1) 중간 정차 안 하고 (2) 지형 안 타고 직선으로 쭉 가고 (3) 가감속이 훨씬 더 민첩하기 때문에 정말 금방 이동했다. 우리나라가 땅이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다. 지금 같은 경제력과 구매력으로 일본처럼 인구 1억에 국토 길이가 1천 km는 돼야 그나마 비행기가 국내선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하철 전동차의 마스콘은 내가 있는 쪽으로 당겨서 가속을 하고 앞으로 밀어서 감속을 한다. 이게 자동차의 액셀과 브레이크 페달 역할을 한다.
철도 차량과는 달리, 비행기의 엔진(스로틀) 레버는 앞으로 밀어서 출력을 올린다. 특별히 글라이더처럼 활강을 하는 게 아니라면 엔진은 자동차로 치면 오르막을 오를 때처럼 늘 켜져 있으며, 마치 송풍기 풍량을 조절하듯이 출력 강약을 조절할 뿐이다. 변속이나 엔진 브레이크(연료 공급이 아니라 바퀴 회전 관성 의해 엔진도 역으로 회전수가 덩달아 유지되는 것) 같은 건 없다.

비행기는 가만히 놔두면 내 예상 이상으로 뒤집히거나 자세가 불안정해지기가 쉬운가 보다. 시뮬레이터만으로도 그게 느껴졌다. 조종간 잡는 거, 그리고 착륙할 때 고도와 속도, 위치 잡는 거 꽤 힘들었다. 물론 착륙 테크닉은 기계화 자동화도 돼 있을 것이고, 자동차로 치면 마치 주차 테크닉처럼 많이 해서 경험이 쌓이면 실력이 금방 늘겠지만 아무래도 속도감이 잘 안 느껴지는 공간에서 기체의 위치를 원하는 대로 맞추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정말 안 움직인다 싶은데 좀 한눈 팔다 다시 아래를 보면 풍경이 싹 바뀌어 있다. 비행기 타는 경험이 그렇다.
시뮬레이터의 가격만 해도 시뮬 대상인 비행기 자체의 가격과 비슷한 어마어마한 고가이다. 단지, 한번 도입한 뒤에 유지비가 비행기 실물을 띄우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더 저렴할 뿐이다.

조종간, 브레이크, 플랩, 스로틀 레버 정도를 만져 봤고 나머지 계기는 정신이 없어서 머리에 경험을 못 담았다.
가이드를 해 주신 교관님은 밑에 지형을 척 보더니 여기는 어디쯤이고 저 멀리 있는 산은 무슨 산이고.. 남한 땅 지형 지리 정보가 머리에 다 입력돼 있으신 듯했다.
그야말로 자기 손바닥 안처럼 다 파악하고 계셨다. 20년 가까이를 전투기 몰고 전국의 하늘을 날아다니신 짬이 어디 간 게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비행기 얘기· 군사 안보 얘기, 교회 얘기 등등도 많이 나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01 08:32 2016/09/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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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봉화산

서울 중랑구에 있는 봉화산은 둘레길만 따라 산기슭을 한 바퀴 도는 거리는 4km가 좀 넘고, 정상까지 높이는 해발 160m 정도 되는 작고 낮은 산이다. 인접한 산맥 능선이 없이 혼자 불쑥 솟아 있는 일종의 '독립구릉'인지라 예로부터 지리· 지형적인 이용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종착역이 이 산의 이름을 따서 작명되어 있다.

본인은 혹서기에는 높은 산 대신 서울 곳곳에 공원 형태로 조성돼 있는 작고 낮은 산들을 틈틈이 답사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는 봉화산 역 → 정상 → 중랑구청의 순으로 봉화산 북남 종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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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역 4번 출구로 나가서 산을 향해 계속 전진하니 일단 나무들이 무성한 공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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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지나서 계속 산의 중심부 쪽으로 비탈길을 오르자, 길은 점점 좁아지고 흙길 등산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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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은 산의 규모에 비해 출입구와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굉장히 많이 나 있었다. 그래도 어느 걸 타도 적당히 중심부 쪽으로만 가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길 잃을 염려는 안 해도 된다.
여느 산들과 마찬가지로 산중턱에는 운동 기구들이 설치된 공터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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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송전탑과 매점(!)이 나오고, 거기를 지나자 정상이 나왔다. 정상에는 듣던 대로 봉수대가 있었다. 하긴, 산이 이름부터가 봉화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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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전체를 통틀어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는 여기 하나뿐이었다. 곳곳에서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던 용마산과는 반대다. 봉화산은 육군 사관학교와 가까이 있기도 하지만 이 산에서 그쪽을 내려다볼 수는 있지는 않다. 보안상의 이유도 있을 것이고. 위의 풍경은 중랑천과 천장산 방면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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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지나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봉화산 도당굿 보존 위원회' (서울시 무형 문화재 제34호) 이런 건물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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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청 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뭐 이런 식이었다. 7호선 먹골 역 방면인 서쪽으로도 갈 수 있고 길이 그야말로 사방으로 뻗은 듯했다.
중랑구청은 봉화산의 남쪽 중에서도 약간 동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다. 본인이 이 지점을 선택한 이유는 여기도 아까 봉화산 역 방면의 북쪽과 마찬가지로 공원이 꾸며져 있으며, 여기 근처에서는 집으로 환승 없이 한 번 만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이로써 서울 지하철 4~6호선의 종점 근처에 있는 산들을 모두 가 봤다. 4호선 당고개(수락산, 불암산), 5호선 마천(청량산), 6호선 봉화산까지. 이제 7호선 도봉산만 남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18 08:35 2016/08/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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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름 밤엔 저녁에도 집에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더웠다. 저 멀리 강원도에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데 시간 관계상 아직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그 대신 동부 간선 도로를 타고 내 마음의 고향인 교외선 일대로 홀연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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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역은 송추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뒤 얼마 안 지나서 장흥 유원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그런데 폐역 상태이다 보니 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아무 표지판도 없었다. 그래서 다 와 놓고도 역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선뜻 찾을 수 없었다.

열차가 다니지 않고 인적도 끊긴 간이역 근처의 으슥한 골목에다 차를 세워 놓은 뒤, 저녁을 먹고 컴퓨터 작업을 하고 책을 읽다가(가로등 불빛) 이동식 텐트 안에서 잠들었다. 새벽이 되니까 살짝 한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원하던 경험이 바로 이것이었다. 차를 아무 데나 세워도 될 정도의 한적하고 으슥한 시골에서 혼자 이렇게 자 보는 거. 정말 꿀잼이었다. 그것도 철도역 근처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인가? 물론 위의 사진들은 이튿날 새벽에 동이 튼 뒤에 찍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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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체가 아니라 HY울릉도라는 간판 서체 자체가 여기는 1990년~2000년대 이후로 시간이 정지했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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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장흥의 서쪽 다음 역이며 교외선에서 그나마 가장 크고 최후까지 역무원이 상주했던 곳인 일영 역의 승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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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 역은 밖의 마당(?)에 지붕만 있는 실외 광장 대합실이 있었다. 다른 철도역에서는 보지 못한 독특한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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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찾은 송추 역은 건물 모양과 마당, 그리고 광장 대합실이 있는 것이 모두 일영 역과 비슷한 형태였다. 하지만 일찌감치 영업이 중단되고 거의 폐역처럼 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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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추 역의 앞마당에 있는 광장 대합실.
요약하자면 일영과 송추는 형태가 비슷하고 장흥만 임시 승강장만 달랑 놓인 좀 간이역스러운 스타일이었다.
장흥이 아니라 송추나 일영의 저 앞마당에다가 차를 세워 놓고 거기서 밤을 보냈으면 또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날은 일단 교외선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왔지만, 가까운 미래엔 중앙선(양평)과 경춘선(가평)의 한적한 전철역 근처에도 가서 캠핑을 하고 싶다.
그리고 바다로도 가고 싶다. 강원도 동해, 그리고 김포-강화 쪽의 서해 모두. 언젠가 꼭 갔다 와서 여기에 사진과 여행기를 올릴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16 08:30 2016/08/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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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 공원 내부의 셔틀버스, 맹꽁이 전기차

서울 상암동에 있는 하늘 공원은 월드컵 경기장과 가까이 있으며, 역시나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시기에 맞춰서 개장했다. 사실 얘는 인근의 평화의 공원, 노을 공원, 난지천 공원과 더불어 '월드컵 공원'이라는 단지를 구성하는 공원 중 하나이다. 요컨대 서울에는 올림픽 공원만 있는 게 아니라 월드컵 공원도 있다.

본인은 지난 10여 년 동안 여기를 교회 친구들이나 다른 지인과 함께 몇 번 가 봤다. 하지만 지하철(월드컵경기장 역)로든 승용차로든 월드컵 경기장 쪽에서 접근해서 하늘 공원으로는 걸어서 계단으로 직접 오르기만 했다.
하늘 공원 내부의 주차장에 직접 주차를 한 건 최근에 간 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공원 꼭대기까지 도보가 아니라 '맹꽁이 전기차'라고 불리는 내부 셔틀버스를 타고 올랐다.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물론 무료는 아니다. (1인당 편도 2천, 왕복 3천원)

남산에도 전기 버스가 다니긴 한다만, 하늘 공원에도 이런 게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사실, 하늘 공원뿐만 아니라 옆의 노을 공원 캠핑장과 노을 공원 주차장 사이에도 동일한 전기차가 다닌다. 차량 한 대엔 10~12명 정도가 탈 수 있다.
이 전기차는 제3궤조나 전차선을 통해서 급전받는 건 아니고 배터리 기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차량이 한없이 쉬지 않고 다니지는 못할 것이고 주기적으로 충전이 필요하다. 또한 차량의 덩치나 출력에도 응당 한계가 걸린다.

맹꽁이 전기차를 타는 느낌은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유적지 내부에서 툭툭이를 타던 느낌과 비슷했다.
사실, 우리나라 정도의 자본과 기술이 있는 나라이니까 전기차이지, 못사는 나라라면 이렇게 관광지· 공원 내부를 다니는 셔틀은 죄다 선진국에서 차령 경과로 폐차된 2행정 삼륜차 툭툭이 같은 차량일 것이다. 배기가스 처리도 제대로 안 하는 것들..;;
전기 자동차가 배터리 충전과 항속거리 문제만 잘 해결해서 내연기관 자동차 대신에 실용화가 됐다면 얼마나 가볍고 조용하게 잘 달렸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2. 식물 이야기

하늘 공원에 펼쳐진 푸른 억새밭과 꽃밭은 이번이 처음 구경하는 건 아니지만 다시 봐도 경치가 참 아름다웠다. 머리가 복잡할 때 기분 전환 효과가 탁월했다. 강 건너 멀리 빌딩숲이 아니라 들판만 바라보면 무슨 마라도 내지 Windows XP 초원 배경 같지, 인서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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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빨간 꽃은 양귀비이다. 모든 버섯이 독버섯은 아니며 모든 뱀이 독사는 아니듯, 모든 양귀비가 마약 성분이 든 품종인 것도 역시 아니므로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모처럼 꽃밭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John Rutter라고, 찬송가 중에서도 좀 시편 8편스러운 창조 세계 찬양과 성탄 캐롤 분야 작곡이 전문인 영국의 유명한 음악가가 있다. 이 사람이 만든 성가 중에 Look at the world (바라보라 세상의 모든 일들)라는 불후의 명곡이 있는데..

Look at the earth: bringing forth fruit and flower
Look at the sky: the sunshine and the rain

Praise to thee, O Lord for all creation
Give us thankful hearts that we may see!
All the gift we share, and every blessing
All things come of thee.


곡중의 2절 가사가 떠올랐다.

꽃은 동물로 치면 일종의 생식기이다. 풍매화는 꽃가루를 단순히 바람에다 날리기만 하지만, 충매화는 예쁜 꽃과 달콤한 꿀을 만들어서 곤충을 끌어들인 뒤, 꽃가루가 덩달아 묻은 곤충들이 열심히 날아다님으로써 꽃가루+암술 교접과 번식이 저절로 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충매화가 풍매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생겼다. 풍매화는..?? 퀄리티가 "엥? 걔들도 꽃이 피긴 해?" 수준이다. 소나무나 벼가 꽃이 핀다고는 하지만 백합· 장미 같은 걸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옛날에 <생명 영원한 신비> 다큐에서도 충매화에 대해서는 풍매화와 비교했을 때 정말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을 이룬 거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신자들은 신이 그렇게 만들어서 그렇게 된 거라고 믿고, 그 다큐에서는 생명이 스스로 진화해서 그런 걸 만들었다고 얘기하니,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풍매화는 그냥 광고 찌라시 내지 스팸 메일을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 살포하는 것이고, 충매화는 그래도 목적을 갖고 가게를 찾은 고객에게 사은품과 함께 자매품 광고를 같이 하는 것과 같다. 후자가 광고 효율이 더 높을 거라는 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기계공학적으로 봐도 풍매화가 그냥 글라이더 내지 증기 기관이라면, 충매화는 진짜 엔진 달린 비행기 내지 내연 기관 급의 혁신인 것 같다.

본인은 생물학하고는 완전히 담을 싼 배경이지만 이렇게 식물의 번식 방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자동차 운전과도 관계가 있다. 봄철에 나무 아래 그늘에다 차를 세워 놨는데, 나중에 보니 잎과 가지 정도만 위에 떨어진 게 아니라 차 전체가 뿌연 송홧가루 테러를 당해 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그래도 차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그게 의외로 멀리까지 퍼져 있었다. 하지만 송홧가루를 이렇게 많이 살포해도 가성비는 꿀벌이 나르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식물 중에도 곤충과 상생하는 게 아니라 아예 곤충을 잡아먹는 놈도 있고, 또 '라플레시아'처럼 거대하지만 지독한 악취를 내는 못생긴 꽃을 피우는 놈도 있다. 그런데 그건 그것대로 꿀벌이 아니라 '파리'를 끌어들여서 꽃가루를 퍼뜨리려는 의도라니 참 이것도 걔네만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그리고 하나 더.. 동물은 어지간히 이상한 예외적인 종을 제외하면 암컷과 수컷이 따로 있다. 식물은 반대로 비록 수분(가루받이) 자체는 다른 몸체의 것으로 하더라도 일단 한 몸체에 암술과 수술이 같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허나, 이것도 예외가 있어서 동물 중에도 자웅동체가 있으며, 식물 역시 암그루와 수그루가 따로인 자웅이주(암수딴그루)가 있다.

자웅이주의 대표적인 예로는 살아 있는 화석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은행나무가 있다. 전세계를 통틀어 단 한 품종밖에 존재하지 않아서 언어 계통으로 치면 고립어처럼 다른 나무와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는 아주 유니크한 놈이라고 한다. 얘가 수분을 해서 열매를 맺었는데 그게 잘못해서 터지면 주변에 지독한 악취를 풍긴다. 암그루와 수그루가 서로 만나지만 않게 배치하면 도시 가로수로서 다른 자질들은 다 훌륭한데 그 악취만이 문제라고..

그런데 묘목 수준일 때 이 은행나무가 암그루인지 수그루인지를 파괴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판별하는 게 과학적으로 꽤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여러 모로 나무들도 다 같은 나무가 아니고 침엽수와 활엽수, 상록수와 낙엽수 구분도 있는 등 굉장히 신기한 특성이 많다.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은 지금처럼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덕후가 될 여지는 없는 시절을 살았으니, 그 머리로 자연 속에서 완전 동식물 분류 덕후가 된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 같다. (왕상 4:33)

단백질인가 뭔가 하는 성분의 차이 때문이겠지만, 똑같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질이어도 식물이 동물보다 보존성이 훨씬 더 뛰어나며, 부패하더라도 그 중간 과정(비주얼이나 악취)이 훨씬 덜 혐오스럽다. 식물의 씨 vs 계란, 두유 vs 우유 같은 식품의 차이점을 생각하면 명백하다. 꽃가루도 일반적인 환경에서 딱히 상하거나 썩지는 않는다고 하며, 꿀조차도 상한다거나 냉장· 냉동 보관 필수 이런 말은 내가 들은 적이 없다. 이것도 시사하는 바가 큰 차이점이라 여겨진다.

3. 풍경

갑자기 식물 얘기가 좀 길어졌다만..
하늘 공원에서는 아래에 있는 '난지 한강 공원'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인다. 하늘 공원이 고지대이고 식물들 때문에 산책로 위주로만 다녀야 한다면, 한강 공원은 말 그대로 한강과 더욱 가까이 있으며 잔디밭이 있어서 거기서 돗자리 깔고 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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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아서 모든 사진은 스마트폰으로만 찍었다.

그나저나, 월드컵 공원에 포함돼 있지는 않지만 월드컵 경기장 근처에는 또 매봉산이라는 자그마한 언덕이 있다. 얘는 쓰레기와는 무관하고 진짜로 자연적인 산이다. 여기 산 속에는 1980년대까지 국가에서 석유를 비축해 놓던 기름 탱크가 남아 있는데, 요것들은 나름 국가 기간 시설인 관계로 민간 항공 지도에 표시되지 않고 가려져 있다.
이쪽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답사해 보고 싶다. 옛날에는 이 언덕 전체가 아마 민간인 접근 금지였지 싶다.

4. 쓰레기 매립지의 변천

하늘 공원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평범한 해발 100미터짜리 언덕이 아니다. 여기가 한때는(25~30년쯤 전) '난지도'라고 불리는 거대한 쓰레기 산이었다는 걸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울 것이다. 올림픽 공원을 건설하던 부지에서는 몽촌토성 유물이 나왔지만 월드컵 공원의 부지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쓰레기가 쌓여서 저 높이와 덩치의 산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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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난지도에서 '난'은 難이나 亂 같은 안 좋은 뜻이 절대 아니라 蘭, 즉, 난초라는 꽃을 뜻하는 아주 향기로운 이름이었다. 쓰레기 매립이 시작되기 전에 거기는 자연의 정취가 가득한 들판이었고 데이트 내지 심지어 신혼여행 장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는 원래 지금과는 정반대로, 홍수를 맞으면 종종 침수도 되는 저지대였다.
그랬던 곳이 한때는 서울 시민들이 배출하는 오물, 건축 폐기물, 하수 슬러지 등등을 한몸에 뒤집어쓰고서 온갖 해충과 악취를 내뿜는 죽음의 장소로 전락한 것이다. '달동네'만큼이나 예쁜 이름과 실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예에 속한다.

이런 내력으로 인해 하늘 공원 곳곳에는 땅 속 쓰레기의 부패로 인해 발생하는 메탄 가스를 수집하는 시설이 있고 바로 옆엔 열병합 발전소인 지역 난방 공사도 있다. 일반 쓰레기들은 방사능 폐기물만치 위험하지는 않으며, 완전히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방사성 원소의 반감 붕괴 주기만치 길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절대적인 양이 너무 많으니 처리하는 게 골칫거리이다.

하늘 공원의 이런 외형과 내력이 믿어지지 않거니와, 옛날에는 겨우 마포구 상암동 일대가 쓰레기 매립지일 정도로 서울 시내가 그만큼 작기도 했다는 것 역시 실감이 안 간다. 남산이 있는 곳이 벌써 서울의 남쪽 외곽으로 간주되었고 합정동 일대에 무려 화력 발전소가 있으며, 조선 시대엔 한강 모래사장에 아예 사형장(새남터)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시절에 거기는 서울 시내에서 완전히 떨어진 교외 변두리로 여겨졌음을 뜻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에 비해 사회 인프라가 부족하고 시민 의식이 미개해서 교통사고 1위, 쓰레기 배출량 1위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러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땐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쓰레기 봉투 종량제와 쓰레기 분리 배출이 당연한 관행으로 잘 정착한 지 오래다. 지금의 우리나라 정도면 이제 세계적으로도 쓰레기나 하수 처리 같은 건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게 선진적으로 잘하는 축에 든다. 육지뿐만 아니라 안산 시화호나 울산 태화강도 옛날에는 죽음의 호수, 죽음의 강 어쩌구 그랬는데 요즘은 그런 말이 딱히 없다. 오염 물질을 처리하는 기술도 예전에 비해 많이 발달한 덕분이다.

난지도는 1978년부터 쓰레기 매립지로 쓰였지만 1992년부터 매립이 중단됐으며(쓰레기가 너무 많이 쌓여서..), 국가에서는 이 쓰레기더미를 몽땅 흙으로 덮고 녹지 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무슨 묘지 공원처럼 말이다. 돈이 한두 푼 든 게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거기는 다시 시민들의 휴식 공간과 데이트 코스로 잘 바뀌었다. 서울 안에 등산로도 아니고 그 정도 고지대이면서 그 정도로 넓은 녹지는 흔치 않다.

그 대신 1992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포함 수도권의 쓰레기 매립은 인천 서구 검단5동, 공항 철도 청라 역의 북쪽으로 경인 아라뱃길의 건너편에 있는 거대한 부지에다가 하고 있다. 거기엔 웬 뜬금없이 '드림파크'라는 이름의 골프장과 공원이 있는데, 거기는 이미 매립이 다 끝나고 휴양· 레저 부지로 탈바꿈한 곳이다. 기왕 골프장을 만들 거면 멀쩡한 산 깎고 환경 파괴하지 말고 쓰레기 매립장 위에 그럭저럭 잘 만든 것 같다.

드림파크보다 더 서쪽에 논밭이나 갯벌이 아니고, 재개발 부지는 아니어 보이고, 그렇다고 군사 보안 시설도 분명 아닌데 거대한 제방이 쳐져 민간인의 접근은 막힌 한 넓은 땅이 보인다. 거기가 바로 현재 쓰이고 있는 쓰레기 매립지이다. 과거의 난지도 시절만치 무식하게 쏟아붓고 파묻는 게 아니라, 분비되는 각종 부패 액체(침출수)와 기체(메탄..) 처리는 영글게 잘 하고서 매립한다.

거기가 옛날에는 행정구역상으로 김포군이었기 때문에 '김포 매립지'라고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행정구역이 인천으로 바뀌었다. 마치 김포 공항이 처음 지어지던 시절에는 김포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서울 강서구로 바뀐 것과 정확하게 같은 맥락의 변화이다. (김포 지못미)
한강의 상수도 취수 시설은 점점 상류로 이동해서 남양주까지 갔고, 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는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서 성남(경부), 안산(서해안), 하남(중부)까지 갔다. 김포 공항도 서울의 관문으로 운용하기엔 너무 비좁고 혼잡해져서 저 멀리 영종도에다 인천 공항이 대신 만들어졌다.

이처럼 쓰레기 처리장도 세월이 흐르면서 저 멀리 인천 서쪽 끄트머리로 옮겨졌다. 하지만 쓰레기 처리장을 받는 지역의 입장에서는 마치 교도소나 시신 화장장만큼이나 땅값 떨어뜨리는 영 좋지 않은 시설이 오는 것이니, 이런 걸 호락호락 받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지역에다 쓰레기 처리장을 유치하는 대신에 서울시에서는 우리를 위해 뭘 해 달라, 뭘 보장해 달라는 식으로 딜이 오가곤 한다. 어 이건..? 철도를 지하화하지 않고 지상으로 만드는 대신에 뭘 만들어 달라 이러는 싸움과 비슷한 분위기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13 08:36 2016/08/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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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배봉산, 백련산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본인 역시 코딩 집중도가 올라가고 대외적으로 이것저것 바쁜 일이 생기니.. 지난 봄만치 멀리 가서 높은 산을 오르지는 못하고 있다. 날씨가 풍경 사진을 찍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이긴 하나, 본인처럼 열 많고 땀 많이 흘리고 더위에 약한 사람에게는 장거리 산행을 몹시 괴롭게 하는 날씨이다.

이럴 때는 도심에서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그냥 100~200m대 높이의 공원에 가까운 언덕을 산책하고 오는 걸로 만족하곤 했다. 중전철 대신 경전철, 행성 대신 왜행성 같은 느낌이랄까? 하긴, 예전에 올랐던 산 중에도 개화산이나 응봉산처럼 완전 작은 놈이 있었다.

이 글에서는 원래 가려던 산 대신 예정에 없던 엑스트라로 다녀온 곳이 두 군데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얘들은 다 외곽이 아닌 시내 중심지에 있고, 산 반대편으로 건너갔다고 해서 교외 지역이나 경기도에 도달하는 게 아닌 것치고는 지하철 접근성이 별로 좋지 않다. 이에, 본인 역시 둘 다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으로 방문해서 다녀 왔다. 단, 한 곳은 자전거를, 다른 한 곳은 자동차를 이용했다는 차이가 있다.

1. 배봉산

정상의 높이는 108미터, 종축 횡단 거리도 1km 남짓밖에 안 되는 정말 아담한 산이다. 한때 사도세자가 죽은 후에 여기에 묻혔었다는 걸 안내 표지판을 보고 처음 알았다(나중엔 더 멀고 터 좋은 곳으로 이장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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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봉산으로 접근하는 곳이 이곳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배봉산 근린공원'은 이렇게 근사한 입구를 갖추고 있다. 바로 옆에는 야외무대라는 공터도 있다. 위치는 산의 최남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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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둘레길만 돌아다닐 수 있고 정상으로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본인은 응당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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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건물 계단 오르는 정도의 기분으로 잠깐만 수고를 하고 나니 금세 정상이 나왔다. 단, 산의 진짜 정상은 유적 발굴 공사 때문에 접근이 막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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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봉산은 전반적으로 나무들이 굉장히 조밀하게 우거져 있어서 위로나 좌우로나 경치를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나마 정상 근처에 딱 한 군데 있는 전망대도 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이 정도에 불과했다. 전방에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용마산으로, 여기서 3~4km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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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지난 뒤부터는 능선(?)을 타고 북쪽으로 가는 길이 이런 식으로 나 있다. 산이 면적이 굉장히 작은 관계로 여기 말고 다른 길은 없는 듯하다. 아까 언급한 그 둘레길도 사실은 서울 시립대 부근에서 끊어졌다.

북쪽 끝까지 가면 '휘경 광장'이라는 공터가 나오며, 더 진행하면 휘경2동 주민센터를 보면서 하산할 수 있었다. 혹은 그냥 서울 시립대 부지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본인도 평소 같으면 당연히 그쪽으로 하산을 했겠으나, 이번엔 자전거를 세워 둔 곳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관계로 부득이 방향을 돌려서 배봉산 능선을 1왕복했다. 이렇게 하는 데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실, 배봉산은 남쪽의 횡축 도로인 사가정로(전농동사거리 동쪽)의 남쪽으로도 계속 이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는 그렇잖아도 경사가 굉장히 급한 언덕길이다. 사가정로의 남쪽에 계속 이어지는 언덕엔 아파트도 있지만 또 '답십리 공원'이 조성돼 있다. 낮은 배봉산보다도 더욱 낮은 언덕이지만 인근 주민이 부담 없이 운동과 산책을 하기에는 아주 좋은 장소이다.

본인은 여기 일대에 있는 운동 장소로는 그냥 청계천, 중랑천, 한강 주변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물뿐만 아니라 고지대에도 애착이 간다. 이런 데에 돗자리 깔고 누워서 잠도 자고 싶은데 여름 밤에는 모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2. 백련산

이 산은 인왕산과 안산만치 유명하지는 않으며 정상의 높이도 이들보다 낮지만, 어쨌든 이들보다 더 서쪽에 은평구와 서대문구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종단하는 거리는 대략 2km 정도 된다.

지도를 보니 산기슭에는 '백련사길'이라는 도로가 있고, 그 길가엔 백련사 방문객과 백련산 등산객이 무료로 이용 가능한 주차장이 있었다. 안 그래도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힘들게 생겼던데 주차장이라니? 마이 프레셔스!
학교 갈 일이 있을 때 곧장 차를 끌고 갔다 왔다. 새벽에 여기 등산을 한 뒤 학교로 가면 동선이 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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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세워 놓은 뒤 '팔각정'이라는 정자 겸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계단을 쭉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에만 팔각정이 있는 게 아니라 등산로 입구에도 있다. 계단을 다 오르자 위와 같은 능선 산책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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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운동 시설과 웬 송전탑 같은 시설도 있었다. 그것들을 지나친 뒤, 총 약 1km 정도 걷자 '은평정'이라는 정자가 나타났다.
여기가 백련산의 실질적인 정상이지만 정상 표지석 같은 건 없다. 그런 걸 세우기에는 너무 낮은 산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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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걸 내려다볼 수 있다.
인왕산이 보이는 동쪽으로는 막 해가 뜨는 시간대여서 사진을 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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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정을 지난 뒤에도 북동쪽으로 산행을 계속했다.
중간에 갈림길이 나타났는데, 여기서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을 선택했다. 오른쪽은 북한산 자락으로 길이 계속 이어지는 반면, 왼쪽은 그대로 하산하면서 산행이 끝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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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도가 충분히 낮아졌는지 아파트와 시멘트로 포장된 길, 그리고 근린공원이 눈에 띄었다. 거길 지나자 지금까지 못 보던 암반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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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산은 전망대라고는 정상의 은평정밖에 없는가 싶었는데 요런 곳이 하나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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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무로 된 계단을 따라 계속 하강하자.. 결국은 서울 지하철 3호선이 지나는 '통일로' 도로에 도달했다.
녹번 역과 홍제 역의 사이(그래도 녹번에 훨씬 더 가까움), 서대문구와 은평구의 경계쯤 되는 지점에 이렇게 큰 다리가 있어서 백련산과 북한산 자락을 연결하고 있었다.

체력과 날씨, 시간이 허락한다면 저 다리를 건너서 등산을 계속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산행은 여느 때와는 달리 몸만 달랑 온 게 아니니 발 닿는 대로 계속 편도 경로로 이동할 수 없었다.
이제는 지금까지 온 길의 정확한 역순으로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은평정에서 여기까지도 또 1km가 넘었던 듯하니 편도 거리가 약 2.몇 km. 그래서 왕복으로 대략 5km 가까이를 걸었다. 시간은 2시간이 좀 덜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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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미션을 완수하고 출발지로 돌아왔다. 새벽에 갓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주변은 온통 주차된 차들로 가득했다.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큰일 났겠다. "일찍 움직이는 운전자가 주차 자리를 차지한다"라는 말이 진리임을 알 수 있었다.
차가 없었으면 또 세월아 네월아 마을 버스를 기다리고 근처의 지하철역에서 또 환승을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다음 목적지인 학교로 아주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26 08:35 2016/07/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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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남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서울의 너무 중심에 있는 바람에 지금까지 등산 대상에서 아오안이었던 산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남산. 물론, 옛날 그 사대문의 안 좁디좁은 한양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남쪽이라는 얘기다.
서울 남산이라 하면 케이블카와 거대한 타워가 상징이지만, 그것 말고도 남산 일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참 많이도 변해 왔다. 과거에 여기 일대는 한양 도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예 수련을 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신궁'이라는 커다란 신사가 여기 기슭에 만들어졌다.

해방 후에 신사는 당연히 곧장 철거됐다. 그 뒤,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박통이 들어선 1961년부터는 남산에 잘 알다시피 코렁탕 시설인 중앙정보부 청사가 들어섰다. "남산에서 왔습니다."란 말만 들어도 사람들이 벌벌 떨 지경이었대나. 이북에서 온 간첩만 벌벌 떨어야 하는데 무고한 시민들까지 떨었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잠시 설명충 기질을 발휘하자면,
남산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20년쯤 전인 1995년까지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와 중앙정보부가 있던 곳이었다.
그 반면 남영동 대공분실은 치안 본부, 즉 오늘날의 경찰청 관할이다.
그리고 서빙고 대공분실은 군 소속이었다. 국군 보안 사령부, 지금의 기무 사령부 관할이다.
그러니 똑같이 코렁탕을 제조하는 곳이어도 소속이 제각기 모두 달랐다.

공 병우 박사는 세벌식 글자판을 주장하다가 정부 정책을 건방지게 비판하는 죄로 1970년대에 중정 요원에게 연행되어 남산 구경을 하고 온 적이 있다. 그것 말고도 중정과 안기부의 흑역사는 많다.
5공 시절에 김 근태, 박 종철 같은 사람이 고문을 당한 곳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며, 이 근안 역시 경찰 출신이니 여기서 활동했었다.
그럼 박통을 암살한 김 재규는? 10. 26 사태의 수사권이 아무래도 전땅크 아래의 보안 사령부에 있었던 관계로, 그는 서빙고로 끌려가서 자기 옛 부하들에게 고문을 당했다.

그래도 신사는 전부 공원(특히 안 중근 의사 기념관. 중앙 기준 10시 방향)으로 바뀌었으며, 과거의 중정/안기부 건물은 다 유스호스텔, 방재 센터 등 다른 평범한 건물로 개조됐다(11~12시 북쪽 방향). 남산 기슭은 그린벨트 지대인지라 이미 만들어진 건물을 철거를 하면 했지 더 증· 개축은 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김 영삼 정권 때는 조선 총독부 청사만 헐린 게 아니라 남산의 외관을 가리던 외인 아파트도 폭파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는 지금 식물원이 조성돼 있다. (5시 남쪽 방향)

그러니 지금은 과거에 비해 남산이 그나마 자연 본연의 모습을 정말 많이 되찾은 셈이다.
사실, 남산은 본격적인 산행의 대상이 되기에는 시내와 너무 가깝고, 산 높이도 너무 낮은 관계로 진작부터 관광지 내지 공원 컨셉으로 꾸며져 왔다. 그래서 타워가 있는 정상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도 전국에서 최초로 생겼다. 정상에 도달해도 "남산 무슨봉 해발 262m" 이런 표지석 같은 건 없다.
뭐, 단순 관광객들은 케이블카나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가겠지만, 여기도 도보로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 코스가 없는 건 아니다.

본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산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었다. 교회 친구들과 함께 주일 저녁에 남산 근처까지 차를 몰고 간 적은 있었지만 거기를 제대로 구경하지는 못했으며 케이블카도 못 타 봤다. 그래서 이 기회에 운동삼아 남산을 걸어서 올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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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선 회현 역에서 내려서 남산 쪽을 향해 골목길을 오르니 남산 공원 입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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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공원은 경치가 좋고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원과 산이 있다니,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공원에는 독립 운동가 김 구와 안 중근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넓은 공터는 이름부터가 '백범 광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쪽에는 안 중근 의사의 어록이 새겨진 바위들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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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 시민의 숲 근처에는 윤 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더니 여기에는 안 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었다. 기념관 자체는 1970년대부터 있었지만, 지금의 세련된 건물로 새로 만들어진 건 2010년대의 일이라고 한다.

안 중근 의사는 뜻을 결의하면서 왼손 약지의 앞단을 절단한 행적이 워낙 임팩트가 강한지라, 안 중근 하면 그 "대한국인 손바닥" 그림이 상징처럼 따라다닌다. 그나마 열 손가락 중에서 제일 덜 중요한 부위이니까.
이분은 무예에만 강한 게 아니라 글씨도 잘 쓰고 사상적인 배경도 무척 심오했다. 처음부터 요인 암살 같은 과격한 방법을 선택한 게 아니라, 이거 정말 좋게 가지고는 씨알도 안 먹히고 동양의 평화가 이뤄질 수가 없어 보이니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다.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생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던 당시의 상황, 고인이 사용한 권총 등 어지간한 자료는 다 전시돼 있다.
사소한 사실이다만, 안 의사는 교수형을 당해서 순국했다. 총살을 당한 건 윤 봉길이니 혼동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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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서울 타워(N타워?)가 보이는 쪽으로 계속 전진했다. 옆에는 가림막을 치고 성벽을 다시 만드는지 뭔 공사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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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은 이런 식으로 쭉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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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복판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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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계단을 오른 끝에 드디어 정상 도착. 적당한 아침에 도착하니 타워 주변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엄청 많았다.
맨 먼저 봉수대가 보이기에 등산 인증샷은 봉수대에서 저렇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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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를 가까이에서 올려다보면서 기념 촬영. 그리고 건너편 봉우리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탑이 있어서 또 사진을 찍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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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동쪽으로 버스들이 내려가는 방향으로 했다. 남산은 타워가 있는 정상까지 포장된 차도가 있긴 하지만 일단 관광버스나 노선버스 전용이다. 아무나 자가용을 끌고 올라갈 수는 없다. 차라리 엔진 없는 자전거는 허용된다.
어쨌든, 이 차도에서 또 도보 등산로가 갈라져 나가는 곳이 있어서 본인은 응당 그쪽으로 경로를 바꿨다. 역시 남산에도 돌계단뿐만 아니라 더 자연 친화적인(?) 등산로가 있었다.

하산을 계속하니 등산로는 아스팔트 도로와 합류했으며, 본인은 결국 국립 극장이 있는 쪽으로 나와서 장충단로라는 큰길에 이르렀다. 그리고 길 바로 건너편에는 '한국 자유 총연맹' 본부가 있었다. 남산 공원에는 김 구 동상이 있더니, 자유 총연맹 내부에는 이 승만 동상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동대입구 지하철역까지는 좀 멀 것 같아서 버스를 타고 싶었으나.. 버스 승강장을 찾지 못해서 결국 그 거리를 다 걸어서 갔다. 3· 1 운동 기념탑, 유 관순 열사 동상, 제2 남산 터널을 몽땅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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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국민대, 성균관대), 안산(연세대)처럼 어째 대학교 구경과 함께 등산이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번에는 동국대 차례가 됐다.

단, 이번 산행에서는 남산을 동서 위주로 횡단하다 보니 남북으로는 상대적으로 충분히 구경하지 못했다.
남쪽의 식물원이라든가 북쪽의 남산골 공원, 타임캡슐 광장 같은 건 못 봤다.
금수저를 위한 초등학교라고 옛날부터 유명하던 '리라 초등학교'도 남산 북쪽 기슭에 있다. 대성동 초등학교만큼이나 특이한 학교인 걸로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18 19:32 2016/07/1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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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우면산

본인이 지금까지 올랐던 산들 중에 대모산· 구룡산은 거의 유일하게 서울 강남구 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로부터 1년 반쯤 뒤, 최근에 본인은 그보다 서쪽으로 서초구 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우면산을 올랐다.
우면산은 왼쪽으로는 남태령 고개를 경계로 관악산을 마주 보는 형태이며, 한편으로 동쪽으로는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로 인해 말단의 언덕이 살짝 둘로 쪼개져 있기도 하다. 그 쪼개진 지역에는 서울 인재 개발원과 양재 자동차 학원이 자리잡고 있다.

군사 시설 보안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대모산· 구룡산은 남쪽 건너편 기슭에 유명한 코렁 시설이 있기 때문에 남북 종단 횡단을 할 수 없다. 건너편은 철조망이 둘러져서 완전히 막혀 있다.
우면산은 그렇지는 않고 제한적으로나마 종단 등산로가 있다. 그 대신 얘는 꼭대기에 공군 부대가 있고, 남쪽에서는 공군 부대까지 올라가는 자동차 도로가 닦여 있다. 그 외에 이 산은 웬 과거 지뢰 매설 지역 출입 금지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대모산· 구룡산의 아래로는 구룡 터널이 있어서 분당-내곡 고속화도로의 일부 구간이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예술의 전당과 우면산의 아래로는 '우면산 터널'이 뚫려 있으며 이 도로는 과천으로 향한다. 우면산 터널은 유료 도로이다.

이들 산의 남쪽 기슭도 행정구역상으로는 아직 서울이다. 하지만 거기는 아무래도 서울 시내와는 떨어진 외곽이고 전원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다만, 경부 고속도로에 인접해 있는 우면산의 남쪽 기슭에는 KT나 LG 같은 기업의 연구소가 있고 한국 교육 개발원(옛날에 탐구생활을 출간한 기관..;;)도 있어서 '우면동'이라 하면 왠지 지적인 냄새가 풍긴다. 게다가 지금은 거기 일대에 삼성 전자 연구소도 지어지고 있다.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우면산은 이런 특징을 가진 산이다. 등산로는 남부터미널 역에서 내린 뒤 예술의 전당 근처에서 아주 쉽게 접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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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을 오르는 첫 구간은 느낌이 이러했다. 벌써부터 철조망이 등장하는데, 이건 서울특별시 인재 개발원과의 영역 구분을 위해 쳐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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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길엔 서초구민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돈을 후원해서 만든 계단도 있었고, 위의 사진처럼 널찍한 공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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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역시 울창한 숲이 잘 꾸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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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이 접근 가능한 우면산의 실질적인 정상인 소망봉 '소망탑'에 도달했다. 여기는 예술의 전당이 발밑에 딱 내려다보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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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었다. 강남에서 바라본 경치 하나는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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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을 당기니, 저 멀리 남산과 북한산까지 보인다.

소망봉에 도달한 뒤부터가 문제였다.
꼭대기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서남쪽으로, 이왕이면 선바위 역 근처의 전원마을로 하산하고 싶었으나 그 길은 이제 "과거 지뢰 매설 지대 위험"이라는 명목으로 막혀 있었다.
이제부터 서쪽으로 가려면 도로 하강하여 꼭대기와는 거리를 두고 산중턱의 능선을 따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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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의 왼쪽을 돌아보면 가끔씩 이런 골짜기 같은 게 보였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길은 반쯤은 지뢰 때문에, 반쯤은 군부대 때문에 저렇게 몇 겹씩 철조망이 쳐진 채 막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참을 간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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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찍은 본인의 등 뒤에는 공군 군부대가 있다. 말로만 듣던 자동차 도로도 발견했다. 등산로가 이렇게 연결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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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에서 바라본 건너편 관악산. 관악산은 남산에 있던 각종 전국구 전파 송신 시설들이 모두 이전한 관계로 꼭대기에 저런 케이블들이 있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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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길을 따라 끝없이 하산을 계속했다. 차도 주변에도 도보 등산로로 빠지는 샛길이 한두 군데 정도 있는 듯했으나 본인이 현장에 있을 때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 표지판도 없는데 그런 걸 어떻게 찾아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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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내려가니 송동 마을에 도달했다. 차도의 선형의 특성상 과천 쪽으로 서쪽으로 뻗어 가지 못하고 어중간한 지점에 도달하게 됐지만, 그래도 꿩 대신 닭을 얻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산에 없는 우면산의 고유한 캐릭터는.. 5년 전에 발생한 대형 산사태의 흔적이다. 산사태 피해 복구 공사 알림 표지판과 '급경사지 붕괴 위험 지역' 표지판이 보였다.

이렇게 등산을 마친 뒤, 양재대로(국도 47호선) 큰길까지 나왔다. 거기서 선바위 역까지는 버스로 이동한 뒤 귀가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16 08:29 2016/07/1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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