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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생태

1. 꿀벌 재앙

올해 봄은 잠시나마 우한 폐렴 확증자가 매일 수십만 단위로 폭증했었고, 거기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 급등, 그리고 강원도 산불 재앙 같은 암울한 소식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때 스쳐 지나갔던 또 다른 불길한 소식은 꿀벌 전멸이었다. 꿀벌들이 별 이유 없이 떼거지로 폐사하거나, 나갔다가 감쪽같이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고 시체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꿀벌이 거의 100억 마리 가까이 없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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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단순히 꿀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다. 꿀벌이 없으면 쟤들이 꿀을 모으면서 평소에 자연스럽게 수행하던 훨씬 더 중요한 일인.. 꽃가루 수분'이 이뤄지지 못하게 된다.
이러면 식물들이 열매를 못 맺고, 농사와 식량 생산에 엄청난 애로사항이 꽃피게 된다. 가뭄이나 홍수, 해충만이 농사를 망치는 게 아니다.

본인은 실내에서 호박 인공수분을 직접 해 보니 꿀벌의 존재감과 고마움을 그럭저럭 실감할 수 있었다. 꿀벌이 인류를 위해 하는 일의 양과 효율은 인력이나 기계로 절대로 대체할 수 없다..;;;;
글쎄 일부 작물에 대해서는 드론을 날려서 꽃가루를 뿌린다는데, 그걸로 과연 door-to-door 배달이 가능할까? 부디 이 현상이 부디 전지구적인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꿀벌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 전자파로 인한 교란설 아니면 기상이변으로 인한 오판설이 나돈다. 그런데 기상이변??
작년 겨울과 올 3~4월 봄의 날씨는 아무런 이상 조짐이 없는 평범한 추위에 평범한 겨울 가뭄이었지.. 전국의 꿀벌들 수십억 마리가 떼거지로 실종될 정도의 기상이변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었는데?

본인은 비록 동식물의 생태에 대해 모르긴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무슨 4~5월에 함박눈이 내린다거나, 지금이 예전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춥거나 덥다는 날씨 데이터 증거가 있긴 한가? 진짜 몰라서 질문을 던져 본다. 난 좀 수긍이 되지 않는다.

꿀벌이 사라진 원인이 완벽하게 규명되었고, 이건 일시적인 이변일 뿐이니 또 이런 일이 호락호락 생기지는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는지, 아니면 매스컴에서 쉬쉬하고 숨기는 게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러다가 장거리를 비행하는 철새들도 길을 못 찾아서 엉뚱한 데서 얼어 죽는다거나 하지는 않을까 모르겠다.

2. 동물들의 이동 행로 관련 비극

  • 비행 곤충들은 밤에 달빛만 보고 무식하게 달려드는 놈이 많다. 그래서 인류가 만들어 낸 수많은 불빛들이 굉장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광공해는 단순히 별을 보기 어렵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자연에 해를 끼치고 있다.;;
  • 육상 동물들은 산이 깎이고 도로가 놓이는 바람에 반대편으로 건너 가려다가 로드킬을 종종 당하곤 한다.
  • 댐이나 하구둑 때문에 연어가 강과 바다를 왕래하지 못하게 된다고 들었다.
  • 새는 비행기와 충돌하거나 엔진에 빨려 들어가서 자기도 죽고 비행기까지 박살 내곤 한다. 그리고 잘 날아다가다가 높이 솟은 투명한 방음벽에 부딪혀서 사망· 중상을 당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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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애벌레 완전변태의 위엄

배추흰나비의 한살이 같은 건 초등 자연 시간에 배우는 건데.. 유충이 성충으로 바뀌는 세부 과정은 본인도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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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벌레는 번데기 안에서 녹아서 액체처럼 걸쭉해진다. (호흡 등의 필수 조직과 일부 세포를 제외한 나머지 부위는 전부!!)
  • 그 뒤 성충 형태로 재조립..
  • 뇌와 신경 조직이 완전히 새로 조직되었는데.. 성충은 애벌레 시절의 경험과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애벌레 시절에 겪었던 전기충격 내지 냄새를 기억하고 회피)

우와~~!! 곤충의 "완전변태"를 겨우 올챙이가 개구리로 바뀌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친다.
금속 기계에다가 비유하자면, 그냥 기름치고 부품 교체하거나 분해 재조립하는 수준이 아니라..
용광로에 집어넣고 녹여서 새로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생체에서 이런 변태를 위해서는 엄청난 영양분이 필요하다. 가녀린 곤충 레벨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애벌레가 괜히 고농축 단백질 덩어리인 게 아니다. 커다란 척추동물이 저렇게 변이하는 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고 스타크래프트 저그에서나 볼 수 있다.
(그나저나 요즘은 '변태'가 '변태성욕'의 준말로 너무 강하게 굳어진 감이 있다.. =_=;; )

4.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어류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식물이 생겨난 다음에 식물을 먹는 초식동물이 등장하고, 그 다음에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의존 관계에 따라 시간 순서가 정해지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소화 메커니즘의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육식이 초식보다 더 단순하다.
그리고 육상 동물보다 먼저 등장한 것으로 여겨지는 어류의 세계에서는 육식이 훨씬 더 보편적이다. 바닷속의 밑바닥에 무슨 해초 풀밭이 있다거나, 해초를 우적우적 뜯어먹는 소 같은 물고기가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육식과 초식의 선후 관계를 따지는 게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아.. 바다에서는 플랑크톤이 동물성/식물성으로 나뉜다. 심지어 대양에서 식물성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해서 산소를 만드는 게 아마존 정글의 붙박이 나무들이 산소를 만드는 것보다 더 많다고도 그런다.
그리고 거대한 고래는 이런 플랑크톤들을 왕창 많이 흡입해서 그 큰 덩치를 유지한다. 이런 걸 보면 고래는 사자· 호랑이 같은 사나운 맹수보다는 하마· 코끼리 같은 대형 초식동물의 해상 버전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육식과 초식이라는 구분은 완전 절대무오 급의 특성 차이가 아니다.
초식동물이라도 굶주리고 있을 때 앞에 고기가 놓여 있으면 잘도 먹는다. 그리고 육식동물도 섬유질 풀까지는 아니어도 식물 과육 정도는 먹을 줄 안다.

야생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단순 약육강식을 넘어서 굉장히 잔인· 잔혹한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미가 가망 없는 새끼를 그냥 버리는 정도를 넘어서 잡아먹는 것, 그리고 포식자가 다른 동물을 산 채로 그대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뜯어먹고, 심지어 임신 중이던 태아까지 끄집어내서 먹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생존 본능대로 하는 일일 뿐이니 알량한 인간의 윤리 잣대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악마 싸이코패스여서 사냥감을 산 채로 잡아먹는 게 아니다. 사냥하느라 너무 지쳐서 사냥감을 완전히 죽일 기력조차 없고, 힘들게 얻은 사냥감을 또 언제 빼앗길지 모르니 저렇게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것이다. 태아쯤이야 뭐 힘들게 사냥해서 덤으로 얻은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고..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 야생 동식물들을 챙기고 먹이가 있는 곳을 안내해 주신다고 한다(마 6:26; 시 104:21, 147:9). 시편, 그리고 예수님의 산상설교에도 언급돼 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은 신이 내려 준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에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그래도 번식도 하고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최대한 새끼들을 챙기기도 한다.

성경에는 미래에 땅의 저주가 풀리고 지상락원이 이뤄질 때, 육식동물들이 초식으로 돌아갈 거라는 예언이 있다. 그때 동물들이 생물학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5. 코끼리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육상 동물은 코끼리 중에서도 아프리카코끼리이다.
우리나라에도 부산, 대전 등의 대도시 동물원에 아프리카코끼리가 전시된 적이 있었지만 스트레스와 질병으로 인해 하나씩 폐사했다.

2008년 3월,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전시됐던 최후의 생존자 '리카'가 향년 29세의 나이로 죽음으로써 현재까지 국내 동물원엔 아프리카코끼리가 전무하다. 나머지 전시돼 있는 코끼리는 얘보다 약간 작은 아시아코끼리이다.

그런데 '리카'는 혼자 있으면서 외로웠는지.. 곁에 전시돼 있던 암컷 아시아코끼리인 '사쿠라'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_=;;
사쿠라는 그 당시 거의 40대 나이의 암컷이었고,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과부 상태였다. 동물원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리카보다도 사쿠라 쪽에서 먼저 작업을 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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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그래서 2007년까지만 해도, 저렇게 리카와 사쿠라가 무슨 견우와 직녀마냥 서로 코를 부비면서 뜨거운 연애를 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됐다고 한다!!

그러나.. 코끼리의 아시아 에디션과 아프리카 에디션은 '종'보다도 한 단계 위인 '속' 레벨에서 생각보다 큰 차이가 난다. 이종교배는 태어날 후세에게 위험했다.
(참고로, 산토끼와 집토끼도 '속'이 다름. 그런데 사자와 호랑이는 '종'이 다름. 멧돼지와 집돼지는 종보다도 작은 '아종' 레벨의 차이일 뿐.. 교배에 아무 문제 없음)

30여 년 전, 1978년엔 영국의 체스터 동물원에서 여차여차 하다 보니 딱 지금처럼 아프리카코.. 수컷과 아시아코.. 암컷 사이에서 잡종이 태어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생후 겨우 10일째에 별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버렸다.
부검해 봐도 별다른 징후가 없었고, 그냥 잡종 태생으로 인한 선천적 면역 체계 문제만이 원인으로 지목될 뿐이었다.
일반적으로 근친상간이 유전적 다양성의 결여 때문에 위험하다고 여겨지는데, 이종교배도 뭔가 다른 방향으로 유전적으로 위험한가 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서울대공원에서는 이 리카와 사쿠라를 합사시키고 엮어 주지 않았다.
리카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다가 저 사진이 찍힌 지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죽었다.;; 사쿠라는 2010년대까지 살아 있는 근황이 검색되는데, 지금은 어찌 됐는지 모르겠다.

6. 나머지

지구상의 동식물들이 한 종이 일방적으로 잡아먹히기만 해서 멸종하거나, 한 종만 왕창 불어나서 난리 나지 않고 그럭저럭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 말이다. (인간이 개입해서 망쳐 놓는 것 말고 자연 그대로 있을 때) 이건 우주의 천체들이 중력으로 인한 인력만이 존재하는데 이리저리 한 덩어리로 붙어 버리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도는 것만큼이나 우연히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허구에 가깝지만,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손"은 진짜 있는 것 같다.

  • 그러고 보니 물고기들은 눈꺼풀이 없고 눈을 깜빡이지를 않는구나..;; 고래도 그런가?
  • 오리-거위-고니(백조)와 왜가리-학(두루미)은 은근히 구분이 잘 안 된다.;;
  • 사자-호랑이-표범(적응력)-재규어-퓨마-치타(달리기 속도) 이런 걸 보니 퀵-병합-힙-셸 같은 O(n log n)짜리 정렬 알고리즘이 나열되는 것 같다.;; 하긴 한때 애플에서 맥OS의 코드명을 저렇게 고양잇과 맹수들로 지은 적이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2/10/11 08:36 2022/10/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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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생태

1. 작물의 분류 기준 -- 악기와 비교했을 때

관악기는 전통적으로 금관악기와 목관악기로 나뉘는데, 이게 처음에는 말 그대로 목재냐 금속이냐 하는 재질에 따른 분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구분이 거의 무의미해져서 그냥 발성 방식에 따른 분류로 바뀌었다.
길쭉하고 손가락으로 구멍을 막은 채 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면 목관악기요, 나팔 모양이고 호흡과 입술 떨림의 차이로 음을 내면 금관악기이다.

작물 중에서 과일과 채소의 구분도 이렇게 모호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곡식은 종자 낱알이 식용 부위이고 과일은 열매가 식용 부위이다. 그러니 채소는 나머지 잎, 줄기, 뿌리 따위가 식용 부위이다.

수박· 호박 같은 박류, 참외· 오이, 그리고 토마토는 열매가 맺히는 놈들이기 때문에 먹는 부위만 따지자면 과일이다. 그러나 실용적으로는 가열하는 주식 요리의 부품으로 주로 동원되는 놈들은 채소, 그렇지 않고 후식· 간식 형태로 단독으로 날것으로 고유한 맛을 즐기며 먹는 놈들은 과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같은 박이어도 수박은 과일로 여겨지지만 호박은 채소로 여겨진다. 토마토는 법적으로 과일인지 채소인지에 대한 논란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열매 형태로 맺히는 채소는 '과채류'라고 따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나저나 참외와 오이가 계통상 굉장히 비슷한 녀석이었다니 의외이다. 애초에 '참외'라는 이름은 '레알(참) 오이'에서 유래된 거라고 한다.

2. 광합성에 대해서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만, 요 몇 년쯤 전엔 나라에서 산의 멀쩡한 숲을 밀어내고 나무를 마구 베어 없애고 있었다.
환경 단체에서 항의를 하자 나랏님이 들이댄 변명이 뭐냐 하면 “수십 년 이상 오래된 늙은 나무는 광합성 성능이 떨어져서 어차피 산소 만드는 것보다 호흡하는 양이 더 많다. (그러니 이런 나무는 다른 나무로 대체하거나 어쨌든 베어 버려도 괜찮다)”였다.;;

엥..? 이게 도대체 무슨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논리이지..??? 과학적으로 진짜 사실인가? 구체적인 근거는?

글쎄, 호박을 키우면서도 어차피 병들고 누렇게 시들고 다른 잎에 가려져서 햇볕을 많이 받지도 못하는 잎은 괜히 영양분만 소모하기 때문에 따서 없애는 게 낫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나무가 통째로 잉여이기 때문에 없애는 게 낫다는 말은 난 정말 처음 들었다.

아닌 거 같은데?? 야바위 말장난 궤변 사기 같은데?
특히 이 당시 정권이 워낙 입만 열면 거짓말투성이였고,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서 거기에다 태양광 패널 도배를 하는 걸 보고는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과학을 떠나서 정치색이 들어가니 저 말을 더욱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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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산에다 태양광 패널 설치하느라 나무를 베어낸 것 때문에 산사태 났던 걸 기억하는 분이 계시나 모르겠다.
그리고 산으로도 모자라서 바다 위의 태양광 패널에 새똥이 잔뜩 묻고, 그거 세척하고 버린 오염수 때문에 바다 생물들이 떼죽음 당하고..

이런 걸 생각하면 우리가 친환경 대체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화끈하게 화석/원자력 연료 쓰고 기존의 플라스틱 제품을 쓰는 게 더 나은 경우가 적지 않아 보인다.
특히 종이 빨대 같은 거.. 제조 과정이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으며, 그냥 플라스틱 빨대보다 더 나쁘면 나쁘지 좋지 않다고 들었다. 그러면서 괜히 입에 무는 느낌만 더 안 좋다.

원래 하던 대로 하면서 이미 심어 놓은 나무나 잘 지켰으면 좋겠다. 미우나 고우나 나무를 땔감으로 쓰지 않게 해 주는 것은 석유· 석탄이고, 석유· 석탄조차 쓰지 않게 역할을 훌륭하게 분담해 준 것은 원자력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팩트이다.

아이고, 얘기가 옆길로 많이 새긴 했다만..
식물의 잎은 도대체 무슨 원리로 광합성을 하고 자기 할 일을 하는지.. 자외선은 생물의 세포를 파괴한다고 들었는데 쟤들은 뙤약볕을 맞아도 괜찮은지, 잎에 걸리는 병은 도대체 무슨 과정을 거쳐서 퍼지는지..??
그리고 살아 있는 식물의 뿌리는 주변의 흙에 어떤 작용을 벌이는지, 식물이 자라면서 흙의 무게가 달라지기는 하는지.. 참 많은 것이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

3. 물과 양분의 흡수

동물은 식물을 먹어서 영양분을 섭취하는데, 식물은 동물이 먹고 남긴 것 내지 동물 시체가 썩고 분해된 것으로 다시 영양분을 얻는다니 이건 참 오묘한 관계이다. 식물 자신이 시들어서 죽은 흔적도 당연히 자연으로 되돌아가서 다른 살아 있는 식물에게 쓰인다.

식물은 자라기 위해 물과 비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시간에 너무 많이 주면 그건 그것대로 또 탈을 일으킨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뿌리가 익사하고 썩는다, 삼투압 때문에 식물이 역으로 영양분을 잃고 말라 죽는다)
본인은 이런 말에 쫄아서 물과 비료를 지금까지 소심하게 주는 편이었다. 그러나 여러 정보통으로부터 조언을 들어 보니 그 정도까지 소심하게 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물을 줘 보니 어지간히 많이 주지 않으면 땅속까지 물기가 잘 스며들지 않고, 뿌리에 잘 닿지 않는다.
물과 비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과감하게 많이, 뿌리에 좀 더 가깝게 줘도 될 것 같다. '조금씩 자주'보다는 '가끔씩 많이'를 더 지향해야겠다.

호박처럼 잎이 무성한 식물이 무더위에 물이 부족하면 잎들이 기공을 닫고 축~~ 늘어진다. 이건 수분 손실을 막아서 생존을 도모하는 기동이지만, 광합성을 못 하고 양분 생산도 못 하기 때문에 식물의 입장에서는 스트레스 받고 굉장히 좋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이런 식물에게는 즉시 물을 많이 보충해 줘야 하며, 특히 열매를 거두고 싶은 식물이라면 이런 상태가 되지 않게 평소에 물을 잘 줘야 된다.

그렇게 물을 주고 2~30분 정도 지나면 축 늘어졌던 잎이 다시 기공을 열고 바싹 기립한다.
다만, 밤엔 빛이 없어서 식물이 애초에 광합성을 못 하고 증산작용도 없는데.. 이럴 때 뿌리가 감당을 못 할 정도로 물을 많이 주는 건 식물에게 여전히 좋지 않은 짓이랜다.

다음으로 비료도 말이다.
질소 성분은 영양성장(자기 자신)에 필요하고, 칼륨이나 인 따위는 생식성장(꽃과 열매)에 주로 필요하다고 하는데..
식물한테는 소변이나 심지어 막걸리· 맥주 같은 술도 양분이 될 수 있다. 단, 조건은.. 물을 많이 타고 희석해서 줘야 된다.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결되지 않고 목이 더 말라지고, 오래 굶은 사람한테 묽은 죽이 아니라 음식을 갑자기 많이 먹이면 탈이 나서 죽는다고 하는데.. 식물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너무 찐한 걸 갑자기 흡수하면 똑같이 탈 난다.

식물에게 뿌리를 정조준해서 오줌을 찍 싸는 것은 주변의 위생에도 좋지 않을 뿐더러, 농도가 너무 짙어서 식물에게 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뿌리에 직접 닿지는 않는 밑동 근처에다가 퇴비나 알비료를 묻는 것 정도로는 내 경험상 별 문제가 없고, 식물에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특히 잎이 누래지고 시들어 가던 자그마한 호박 줄기가 갑자기 잎이 확 커지고 색깔이 짙은 초록색으로 바뀐 것에는 내 경험상, 비료빨이 큰 기여를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2/10/08 19:34 2022/10/0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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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세트 테이프

카세트 테이프는 플로피 디스크(디스켓)과 더불어 20세기 중후반을 풍미했던 정보 저장 매체이자 특별히 음반 매체였다.
얘의 발명자는 '루 오텐스'라는 엔지니어인데(1926-2021), 이 사람이 바로 작년 3월에 세상을 떠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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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따르면 얘는 1963년에 처음으로 출시됐다고 한다.
1970년대에 비디오 테이프의 표준 규격이 정해지던 시절에 VHS와 베타맥스가 경합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전 1960년대엔 오디오 테이프도 표준화 과정에서 여러 회사들 간의 경합과 진통이 있었다.
여기서 필립스의 이 카세트 테이프가 최종 승자가 되면서 세계를 석권하게 된 것이다.

카세트 테이프라는 게 발명되기 전에 인류가 보유한 소리 저장 수단은 방송국 장비 급인 거대한 릴 테이프.. 아니면 SP/LP 같은 레코드밖에 없었다. 1945년, 일본 천황의 항복 옥음방송도 원판이 SP 레코드에 녹음되고 재생됐다는 건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다가 카세트 테이프가 발명된 덕분에 인류는 1시간 가까이 적당한 분량이 들어가는 음반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가 있게 됐다. 그 뒤 1980년대 초에 워크맨이란 게 발명되면서, 밖에서 걸어다니며 음악을 듣는 것까지도 가능해졌다.

얘는 저렴할 뿐만 아니라 비교적 쉽게 녹음도 됐다. 라디오 방송의 녹음이라든가 마이크 꽂아서 외부 소리의 녹음, 아니면 테이프끼리의 복제까지.. 실용성도 뛰어났으니 세계를 석권할 수밖에 없었다.

루 오텐스 아재는 평생을 필립스 네덜란드 본사에서 재직했으며, 20여 년 뒤의 후속품인 CD를 개발하는 데도 참여했다. 이 CD도 나름 발명된 지 아직 50년이 채 지나지 않은 물건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대체제가 이미 DVD에 이어 블루레이까지 나와 있으니 원..
게다가 지금은 음원 기술이 몽땅 디지털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휴대용 기억장치 자체가 인터넷 아니면 USB 메모리에 밀려 입지가 크게 줄어든 것도 참 격세지감이다.

테이프가 CD는 물론이고 더 과거의 레코드와도 다른 독특한 특성이 무엇이냐 하면.. 현재의 재생 지점이 기기 차원에서 물리적으로 나타나 있다는 점일 것이다. ㄲㄲㄲㄲ
전에 한번 얘기한 적이 있었나..? 카세트 테이프는 테이프가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쏠릴수록 좌우 reel이라고 해야 하나 회전부의 주행 속도가 서로 달라진다. 이를 통해 나름 무단변속기의 원리를 얼추 짐작할 수 있다.;;

21세기에 태어난 애들은 디스켓과 더불어 카세트테이프가 뭔지 알까...??
더 옛날 8비트 컴터 시절엔 저 카세트테이프가 파일을 읽고 저장하는 용도로도 쓰였다는데.. 그건 나조차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난 레코드가 현물 기계를 통해 돌아가고 재생되는 모습도 본 적이 전혀 없다. -_-;;

2. 추가 음향 기술

카세트 테이프는 수십 년 동안 시종일관 같은 방식으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고 개량형 바리에이션이 좀 있었다. 이는 전신인 LP 레코드도 마찬가지였다.

(1) 크롬/메탈: 음원을 기록하는 테이프의 자성체가 평범한 산화철이 아니라 산화크롬 기반이었다. 이게 고음부까지 더 깨끗하게 잘 기록돼서 음악 감상용으로 화질이 더 좋았던가 보다. '메탈'은 크롬보다 더 고급형인 듯..
단, 이런 신소재로 제대로 뽕을 뽑으려면 재생기도 고급 테이프를 제대로 지원해야 했다. 여러 모로 자동차용 고급 휘발유의 테이프 버전에 대응하는 셈이다.

(2) 스테레오: 이미지 파일에 레이어가 있다면 사운드에는 여러 채널이란 게 있다. 사람은 눈 2개의 영상을 합성해서 공간과 거리감을 느끼는데, 이와 비슷하게 좌우의 스피커 2개로부터도 공간을 인지하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알 수 있다.

시청자로 하여금 공간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 전용 고글을 쓰고 거리 착시를 느끼게 왜곡된 영상을 보는 일명 3D 영화라는 게 요즘도 잘나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것처럼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으로도 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서라운드 입체음향'이라는 게 존재한다. 이건 거대한 음향 설비를 갖추거나, 전용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써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카세트 테이프는 말할 것도 없고 LP조차도 1960년대에 스테레오 녹음이 지원됐다고 한다. 재생기의 입장에서 스테레오는 좌우에 서로 다른 소리를 동시에 재생하는 것이니, 결국 동일 길이 동일 음질 기준으로 기억 공간이 두 배로 필요하다. 아날로그 시절에 그 공간을 어디서 어떻게 확보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3) 돌비: 옛날에 카세트 테이프나 테이프 재생기의 주변에서는 '돌비' 어쩌구저쩌구 하는 상표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얘는 레이 돌비(1933-2013)라는 음향 공학자 겸 사업가가 1965년에 설립한 '돌비 연구소'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회사를 차려서 1970년대에 카세트 테이프의 재생 노이즈를 제거해 주는 전자 회로를 개발했다. 테이프는 그냥 공음부만 재생해도 치이이익~ hissing noise가 들리는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즉, 일반 소비자용 상품이 아니라 전세계의 테이프 재생기 제조사를 상대로 B2B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런 회로도 크기와 성능, 가격대별로 여러 모델이있었는데.. 1990년대에 최고급 메탈 테이프에다가 최신 돌비 모드를 적용해서 녹음된 음악을 해당 돌비 모드를 적용해서 재생하면.. 노이즈 한 점 없이 CD 뺨치는 깨끗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테이프로도 말이다.

이런 게 쌍팔년도 시절에 테이프라는 아날로그 기술만으로 어떻게든 음질을 더 향상시키려는 몸부림이었던 셈이다.
돌비 연구소는 지금도 건재하고 있으며, 카세트 테이프 말고도 영화관용 영화의 4채널 서라운드 음향 저장 포맷을 진작에 선점한 덕분에 이게 마르지 않는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나저나 전자레인지에서 물이 갑자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걸 가리키는 돌비(突沸) 현상은 Dolby하고는 무관한 어원이구나~! 저것도 뭔가 파동과 관계 있는 물리 현상이다 보니 왠지 Dolby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ㄲㄲㄲ

3. 영상 기술과의 관계 등, 나머지 여담

(1) 19세기 초창기에 축음기는 사진이나 영사기와는 별개의 영역으로 발명되고 발전했다. 둘이 합쳐져서 유성 영화라는 게 생기고 텔레비전 방송까지 시작된 건 아무래도 20세기 초부터이다. 전화가 발명된 것도 19세기 말쯤..?

(2) 영상 쪽은 디지털화된 이래로 화질 관련 정보량이 4K니 8K니 하면서 계속 올라가고 더 복잡한 코덱이 개발되고 기술이 바뀌어 왔다. 더구나 요즘의 HD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 이거 뭐 전자기파의 물리적 특성이 30년 전과 지금이 서로 달라지기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어떻게 이렇게 화질이 좋아질 수 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그 반면, 음성은 이제 인간이 차이점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음질이 충분히 좋아져서 그런지, 먼 옛날에 제정됐던 CD 규격 이후로 딱히 음질이 더 올라가지 않은 것 같다. 라디오 방송은 심지어 신호 송수신 방식도 TV와 달리 여전히 아날로그이다.
뭐, 라디오는 전쟁· 재난 시국에서도 아주 단순한 전자 장비만으로도 누구나 간편하게 수신하라고 일부러 안 바꾸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3) 이렇게 정보 통신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2020년대 이 와중에도.. 전화 통화 음질은 여전히 썩 좋지 않은 것 같다. 상대방의 전화 연결을 기다리는 컬러링 소리만 해도.. 여느 mp3 음원하고는 억만 광년 떨어진 음질이지 않은가?
전화로는 대체로 음성만 오가다 보니, 디지털 기반인 인터넷 전화에서도 저음질 음성의 압축에만 왕창 최적화된 AMR-WB 같은 부류의 전용 코덱이 쓰인다고 한다. 전화로 음악이나 다른 일반적인 자연음은 짤리거나 왕창 왜곡되고 열화되어 들리게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2/10/06 08:35 2022/10/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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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프레임

내가 기독교 신앙, 특히 이단과 관련해서 굉장히 답답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예를 좀 들면 다음과 같다.

(1) 창세기의 간극 얘기를 들으면 뭔 듣도 보도 못한 김 기동이니 귀신이니 아담 이전 인류(?) 이런 거 떠올리지 말고, “왜 둘째 날에는 ‘보기 좋았더라’가 없을까? 그러게, 물과 땅은 언제 창조됐고 루시퍼는 언제 타락했을까? 예레미야서에도 without form and void가 나오는구나!”를 좀 생각해 보자.

(2) 구원의 영원한 보장 얘기가 나오면 뭔 구원파 생각 좀 하지 말고, 바울 서신서가 실제로 뭘 말하며, 모순되는 듯한 히브리서 야고보서가 뭘 말하는 것이겠는지 생각하는 시늉이라도 해 보라.

(3) 왕국 얘기가 나오면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 따위 생각하지 말고, 성경 용어가 kingdom이고 예수님이 왕 중 왕이며 통치 형태가 왕국이라는 걸 좀 생각하자.

(4) 휴거 얘기가 나오면 다미선교회니 뭐니부터 생각하지 말고, 살전 4:16-17을 제발 좀 먼저 떠올려 보자~!

하.. 이런 분들은 정말 오로지 이단 소리 안 듣는 것에만 목숨을 거는 것 같다.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ㅡ,.ㅡ;;; 세상으로부터의 편견이 그렇게도 두렵나?
이런 사고방식이니까 요한계시록을 읽는 게 통째로 금기시되고, 교회들이 대문 앞에다가 “신천지 출입금지”라고 써 붙이는 것 같다.

이단들이 “우리도 성경 믿어요, 성경 공부해요~!” 이러면 이분들은 아예 성경 읽고 공부하는 걸 그만두지 싶다. =_=;;
거리설교를 이상하게 보고, 구원 확인 질문을 불쾌히 여기는 것도 이런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아니, 예수 믿어서 은혜로 구원이 없으면 그건 기독교라고 부를 수 없잖아..!!!

그리고.. 신천지 추수꾼이 교회에 쳐들어와서 집기를 부수고 폭력을 쓰고 난동을 부리면서 예배를 방해한다면야 그러면 경찰에 신고하고 세상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건 좀..;; 성경의 비유를 이상하게 갖다붙여서 이단 교리 펴는 것까지도 경찰에다 신고해서 강제로 찍어누르고 금지시킬 생각인가?? ㅡ,.ㅡ;;
무슨 무한리필 부페 식당 입구에 “운동부 회식 금지”라고 써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좀 민망하다.;;

그래서 본인은 제안한다.
“나는 저 이단들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쪼잔하게 지내지 말고,
이렇게 단순하고 상식적으로 건전하게 성경대로 믿는 게 이단이면 난 그냥 이단 소리 듣고 말겠다” 같은 대인배 마인드를 가져 보면 어떨까? 자기가 믿는 것, 자기가 가는 신앙 노선에 대한 확신을 좀 가져 보시라.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그 길을 따라 내 조상들의 하나님께 그렇게 경배하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나이다.” (행 24:14)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고, 가슴 펴고 통 크게 살아 보시라~!!

난 자동차, 철도, 컴퓨터, 호박, 멧돼지, 군사, 역사 등 이것저것 온갖 잡학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한데..
저런 미주알고주알 진짜 이단(?)들 교리는 거의 모른다. 정답만 알면 되지 오답을 일부러 공부할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정답의 일부가 오답이랑 비슷해 보이는 건 정답의 잘못/탓이 전혀 아니다.;; 그리고 비슷해 보여도 실상은 전혀 같지 않은데 같은 줄로 착각하는 건 당사자의 잘못일 뿐이다.;;

※ 보너스: 후대 드립

내 경험상,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교리나 학설을 반박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그 theory의 내용 본질을 저격하는 게 아니라 출처· 기원· 계보를 따지고 트집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 요일 5:7 삼위일체 요한의 콤마는 원래 성경 본문에 없었고 후대에 추가된 것이다.
  • 젊은 지구 창조론은 웬 안식교에서 만들어낸 산물이다.
  • 반대로 간극 이론은 토머스 캘머와 넬슨 다비 같은 19세기 최근 사람들이 세대주의에 입각해서 진화론에 대항하려고 따로 만들어 낸 것이다.
  • 또 간극 얘기인데, replenish는 처음에 ‘다시’라는 뜻이 절대 절대 없었다. 후대에 진화론에 대항하려고 이런 의미가 재조명되고 추가됐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도 교리를 직접 파고드는 게 아니라 진영논리 이단 프레임에 입각한 좀 비합리 비논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안식교가 주장하건 몰몬 교가 주장하건, 성경이 6일이라고 말한 것을 6일이라고 그대로 믿고, 1천 년이라고 말한 것을 1천 년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올바르고 잘하는 것이지 않는가?

더구나 그렇게 기원· 출처를 따진 것이 정확하게 맞는 팩트조차도 아닌 경우가 왕왕 있다.
요한의 콤마는 피터 럭크만 박사의 반박 자료에 따르면, 이미 고대 로마 제국 교부 시절부터 멀쩡하게 있어서 삼위일체 교리를 방어하는 데 잘만 쓰였다.

간극 역시 19세기보다야 훨씬 전부터 사람들이 간파했다. 사탄 마귀의 타락과 이전 세상의 멸망이라는 개념 자체를 깨우치기 위해서 무슨 대단한 지성이나 과학 발견이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토머스 캘머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의 출간보다 수십 년 이상 먼저 간극을 주장했었다.

replenish는.. 더 말을 하지 않겠다. 멀쩡히 중세부터 쓰였던 단어이고 더 강조해서 반복해서 채우고, 소모되어서 없어진 것을 다시 보충한다는 뜻이다. 애초부터 단순 fill과 동일한 단어가 아니었는데 이것도 무슨 재창조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의미가 왜곡된 거라는 소설은 어쩌다가 튀어나왔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10/04 08:35 2022/10/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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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함수'에 속하는 '초월함수'들 중에 지수함수인 e^x는 미분을 하던 적분을 하던.. 도함수나 부정적분이 전부 자기 자신과 동일한 굉장히 특이한 기본 함수이다.
지수는 저렇고, 삼각함수/쌍곡선함수는 그냥 답정너 정의에 가깝게 미분-적분 순환고리를 그냥 외운다.
그럼 e^x의 역함수인 ln x는 부정적분이 과연 어찌 될까?

ln x는 도함수가 1/x라는 간단한 형태로 정의되는 덕분에, '부분적분'으로 부정적분을 구하는 아주 교과서적인 예로 다뤄진다.
부분적분은 곱의 미분법으로부터 유도되어 두 함수 F, G의 곱에 대해

F(x)G(x) = ∫ F'(x)G(x) dx + ∫ F(x)G'(x) dx

가 된다는 원리이다. 보통은 저것보다는 순서를 바꿔서

∫ F'(x)G(x) dx = F(x)G(x) - ∫ F(x)G'(x) dx

요런 형태로 더 소개되는 편이다.
ln x의 경우, 위의 부분적분에서 F는 그냥 x로, G는 ln x를 집어넣으면 바로 풀린다. 그러면 F'(x)는 1이라는 상수가 되고 G'(x)는 1/x가 되므로

∫ ln x dx = x*ln x - ∫ x/x dx = x*ln x - x = x(ln x - 1)

이렇게 답이 구해진다. x*(ln x)' 가 x/x로 바뀌어서 1로 상쇄되는 것이 백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럼 ln x의 0..1 정적분의 값은 얼마일까? 다시 말해 위의 그래프에서 선이 y축의 0 아래로 뚝 떨어지는 구간의 면적은 얼마일까?
저 역도함수에다가 0과 1을 대입해서 차를 구하면 -1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더 직관적으로 아는 방법도 있다.
저 구간은 ln x의 역함수인 exp(x)에서 x의 음수 구간 면적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니 exp(x)를 0부터 -∞까지 적분해 봐도 동일한 값을 더 쉽게 구할 수 있다. exp는 그냥 자기 함수에다 값을 대입하는 것만으로 적분값을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ln x의 부정적분인 x(ln x - 1)의 의미는 바로..
저 X축의 x, 그리고 Y축의 ln x라는 직사각형에서.. 맞은편의 역함수 exp(ln x) 구간의 면적을 뺀 나머지 면적이라는 것이다. -x의 의미는 바로 -exp(ln x)라는 것..!!

부분적분에서 곱을 구성하는 두 함수 중의 하나가 그냥 x 자체인 덕분에, 기하학적으로 이런 의미까지 지니게 된 셈이다.
앞서 부분적분 식에서는 x가 x*(1/x)를 적분해서 얻어졌었는데.. 여기서는 exp와 ln이 상쇄되어 얻어졌다는 게 흥미롭다.

이런 부분적분은 삼각함수 등 다른 초월함수들의 '역함수'의 부정적분을 구할 때도 요긴하게 쓰인다.
부분적분의 특성상 원함수의 도함수도 알아야 하는데, 그건 역함수의 미분법을 동원해서 구하면 된다.

다음으로, ln x를 넘어서 (ln x)^2의 정적분을 구하려면?
부분적분 패턴에서 F'(x)와 G(x)를 모두 ln x로 잡으면 된다. 그러면 F(x)는 x*(ln x -1)에 대응하고, 최종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복잡한 식이 도출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를 일반화해서 (ln x)^n의 부정적분은

x*(ln x)^n - a*x*(ln x)^(n-1) + b*x*(ln x)^(n-2) ... +- z*x*(ln x) +- z*x + C (적분상수)

이런 꼴이 된다. 모든 항에 x는 기본으로 붙어 있고 그 다음에 (ln x)의 n승에 대한 항이 형성되어 항의 수는 총 n+1개..
부호는 -와 +가 번갈아가며 바뀐다.
맨 앞의 제일 고차항인 (ln x)^n의 계수는 언제나 1이지만, 그 다음 항인 a...z로 갈수록 n과 n-1, n-2... 가 차례로 곱해져서 n=2일 때는 2 2.. n=3일 때는 3 6 6, n=4일 때는 4 12 24 24... 이렇게 계수가 정해진다.

그러므로 0에서 1까지의 정적분 값은 n의 홀짝 여부에 따라 부호가 교대로 바뀌는(홀-음수, 짝-양수) n!이 된다.
원함수에다가 미리 -를 씌운 (-ln x)^n라고 해 주면 0..1 정적분은 간단하게 n!로 떨어진다. n이 홀수승일 때는 (ln x)^3의 값이 음수이던 것이 - 부호를 만나서 양수로 바뀌고, 짝수승일 때는 거듭제곱이 음수를 양수로 바꾸기 때문에 팩토리얼이 언제나 양수로 나오는 것이 보장된다.

로그의 거듭제곱의 적분이 팩토리얼과 관련이 있다니.. 신기한 노릇이다. 이 덕분에 지수뿐만 아니라 팩토리얼조차도 정의역이 단순히 자연수에 국한되지 않고, 지수함수와 적분와 동급인 실수 영역에 연속적인 형태로 정의될 수 있게 됐다.

(-ln x)^n의 0..1 정적분은 치환적분 기법을 동원해서 다음과 같은 형태로 바꿀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로그를 쓰면 구간이 0~1인데, 지수를 쓰면 구간이 0~무한대로 바뀐다는 차이가 있다. ㄲㄲㄲ
요 함수가 일명 '감마'(Γ) 함수라고 불린다. 단, 감마 함수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 팩토리얼과 완전히 같지는 않아서 Γ(n+1)의 값이 n!에 대응한다.

x^x은 0일 때와 1일 때의 함수값이 동일하고, 그 사이엔 함수값이 살짝 작아졌다가 1 이후부터 폭발적으로 커진다.
감마 함수도 양의 실수 구간에서는 이와 비슷한 성질이 있어서 1과 2일 때의 함수값이 동일하다. 그 사이에는 함수값이 약간 작아졌다가 2 이후부터 폭발적으로 커진다.

단, x^x는 미분을 통해 그 최소값을 해석적으로 정확히 구할 수 있는 반면, 감마 함수는 대략 x≒1.46163에서의 최소값 0.88560...을 수치해석으로 구할 뿐이다. 이 수의 정확한 특성은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감마 함수는 소수점이 .5 인 수.. 다시 말해 자연수에다가 1/2이 첨가된 수에 대해서는 π(원주율)의 제곱근의 배수인 그 무언가를 되돌린다. 이런 것도 여느 지수함수나 그쪽 바리에이션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면모이다.

특히 Γ(1/2)의 값은 딱 정확하게 sqrt(pi)인데, 이것은 정규분포 함수의 원형인 e^(-x^2)의 전구간 적분 면적과 동일한 값이다.
1/2일 때 감마 함수 적분식은 적분변수 x를 sqrt(t)로 치환하면 딱 정확하게 e^(-x^2)의 전구간 적분과 동일한 식이 나오기 때문이다. ㅎㄷㄷㄷ..

물론 e^(-x^2)은 부정적분이 초등함수의 형태로 표현되지 않는 괴상한 물건이며, 가우스 적분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을 동원해야 전체 면적만을 구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뱅그르르 회전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갑자기 원주율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이 글의 범위를 한참 넘어서기 때문에 더 자세한 얘기를 생략하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로그의 n승을 정적분 했더니 n팩토리얼이 튀어나왔다. 반대로 팩토리얼 값에 로그를 씌운 것도 로그와 관련이 있다. log N!은 수가 증가하는 정도가 N log N과 얼추 비슷하다.
왜 그런가 하면 N!은 1*2*3...*N이니 log N!은 log 1+log 2+log 3+ ...log N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log N에 대한 적분에다 근사시킬 수 있으며, 그 부정적분에는 N log N이 포함되어 있다.

컴퓨터 알고리즘 중에서 정렬이라는 건 n개의 원소들을 나열하는 순열 최대 n!개의 가짓수 중에서 오름차순/내림차순 순서를 만족하는 것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그런데 비교 연산을 한 번 할 때마다 그 가짓수를 이분 검색 하듯이 최대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니 가짓수도 팩토리얼로 폭발적이고, 매 단계마다 가짓수를 줄이는 규모도 지수로 폭발적인데.. 결국 비교 연산을 수행하는 정렬 알고리즘의 이론적인 시간 복잡도는 팩토리얼의 로그급인 n log n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팩토리얼 내지 팩토리얼의 로그를 근사하는 공식을 더 엄밀하게 파고들면 n log n에다가 다른 자잘한 항들도 여럿 붙는다. 이런 건 감마 함수를 변형해서 만들어지는데, '스털링의 근사 공식'이라고 한다.
애초에 x^n * e^(-x)도 e^(n ln x - x)로 바뀌니, n log n이라는 결론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상이다. 로그에 이렇게 심오한 의미가 많이 담겨 있는 줄 몰랐다.;;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로그의 밑 얘기만 하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이공계에서 쓰이는 로그의 밑은 사실상 딱 세 종류.. 2, e, 아니면 10이라고 보면 되겠다.
2는 컴퓨터과학 전산학에서 특별히 아주 좋아하는 숫자이고, e는 지금까지 봐 왔듯이 천상 수학 미적분 해석학 전용이다. 10은 10진법과 관계가 있다 보니 데시벨이나 pH (산/염기 지수) 같은 로그 기반의 현실 과학 단위에서 쓰인다. 단, 복소해석학으로 가서 로그를 복소수 범위로 확장하면.. 0과 1만 빼고 -1이나 i조차 로그의 밑이 될 수 있으니 참 ㅎㄷㄷ하다.

현실에서 엄청 큰 측정값을 표기할 일이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메가· 기가· 테라· 페타 같은 접두사를 동원해서 자릿수를 줄이는 걸로 퉁칠 것이다. 아예 로그를 동원해서 자릿수를 후려친다는 건 정말 그 분야에서 얻을 수 있는 측정값의 스케일이 0의 개수 자릿수 차원에서 극단적으로 널뛰기 한다는 걸 뜻한다.

원래는 log 다음에 아래첨자로 밑을 일일이 써 주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쓰이는 밑이 분야별로 저렇게 뻔히 답정너이니.. 그런 번거로운 표기는 잘 쓰이지 않는다. 밑이 e인 로그는 자연로그라고 해서 그냥 ln이라고 쓰는 정도?
밑을 생략한 log 표기는 밑이 무엇이건 중요하지 않고, 수가 증가하는 게 log 스케일이라는 것만이 중요할 때 쓰인다. 앞서 언급했던 시간 복잡도 표기처럼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10/01 08:35 2022/10/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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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대해서

1. 우한 폐렴

우한 폐렴이라고 불리는 코로나19 얘는.. 아직도 꾸준히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극소수의 위· 중증 사례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늘고 긴 계절 감기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 같다.
세계는 그럭저럭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그나마 제일 가볍고 부담이 적은 방역 조치인 마스크 착용만은 남겨 놓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마스크에 집착하는 경향이 세계 평균보다 유난히 더 심하다.

직업적으로 어쩔 수 없이 방문자나 손님에게 마스크를 강요해야 하는 종업원이나 공무원, 버스 기사 말고 일반인들 중에서는 내 경험상 남자보다 여자가 더 집착이 심하다.
봉변당할까 봐 담배 피우는 양아치들한테 훈계도 무서워서 못 하는 세상에.. 마스크 갖고 이간질 지적질과 이로 인한 분쟁은 여전히 굉장히 쉽게 잘 벌어지는 듯하다.

진짜로 괴질이 무서워서는 절대 아니고.. 그냥 "나도 불편하게 쓰고 있는데 남이 안 쓰고 있는 꼴 배아파서 못 봐 주는 것"에 가깝다. 그러면 법적 의무가 아닌 곳에서는 너도 다같이 최대한 벗고 지내면 되지, 남을 그렇게 시샘하고 배아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쟤네들 때문에 우한 괴질 확산" 미개한 마녀사냥 관행 따위 없어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사람들 의식 수준이 그때에서 멈춰 있는 걸까?
오죽했으면 "신천지 출입 금지 -- 우한 괴질 감염 원인 제공 시 민 형사 소송 걸겠음" 이런 경고문을 아직까지 써 붙여 놓은 교회도 있다.

대면도 아니고 카메라/스피커를 통해 마스크 지적질을 당해 보면 짜증이 두 배 세 배로 치솟는다.
하루는 본인은 차를 몰고 버거킹 드라이브쓰루 입구에 들어가서 햄버거를 주문했다. 그런데 직원이 마스크 써 달라고 요구를 하길래 어이가 달아나고 기분이 확~ 잡쳤었다. 허얼...

그대는 뇌가 있고 생각은 좀 하고 사시는가?
그대와 내가 지금 실내에서 대면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대는 카메라로 내 얼굴을 보고 있고, 내 비말은 그대에게 퍼뜨리고 싶어도 퍼뜨릴 수가 없구만..
내 차에서 내가 마스크 안 쓴다고 내가 그대나 다른 손님한테 우한 폐렴이 퍼지겠나, 아니면 내가 반대로 감염되겠나..??

이건 도대체 뭔 정신나간 유체이탈 방역 시책이란 말인가? 윗대가리들이 알바 교육을 그렇게 시키더냐? 이런 말까지 나왔지만 겨우 이런 일로 애매한 사람과 싸우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참았다.
심지어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 부스 안에서도 마스크 안 쓰고 있다가 스피커를 통해 한소리 듣기도 했다. 도대체 어느 할일 없는 공무원이 일요일 저녁에 이런 거 감시나 하고 있었던 거야..??

마스크 쓰라는 '정중한' 요구에 별 진상 행패 부리는 미친 손놈들이야 법의 철퇴로 참교육 시켜 줘야겠지만,
고압적으로 갑질 오지랖 부리듯이 융통성 없는 무리한 마스크 요구.. 이것도 심각하게 문제가 있긴 한 것 같다. 이거 무슨 '문법 나치'도 아니고 말을 새로 만들고 싶다. '마스크 나치'라고.

생각이라는 걸 너무 안 하고 타성에 다들 길들여져 버린 건 아닌지..??
반경 3~5m 주위에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도 그 불편한 마스크를 잘도 쓰고 다니는 분들이 많다. 실외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폐지된 지가 언젠데..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착용 요구 정도는..
운전 중에 웬 되도 않은 어린이 보호 구역 30km 제한이나 구간 단속만치 나를 빡돌게 만들지는 않는다.
마스크 쓰는 것쯤이야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니까.. 그냥 영혼 없이 "에잉, 그래 더러워서 마스크 쓰고 만다, 이제 됐냐 이놈야?" 이렇게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저놈의 속도 단속은 내 인생과 내 시간과 차의 연료에 직접적으로 심각한 대미지를 끼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의 조선인들은 창씨개명을 안 하면 취업이나 배급 따위에 큰 불이익을 받았고, 정상적인 사회 활동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2021년, 거리 두기로도 모자라서 백신패스까지 있던 시절엔 우한 괴질 백신을 안 맞으면 커피 한 잔 마시러 들어가기도 어렵고 정상적인 사회 활동이 거의 불가능했다.

조직에 취업해야 하는 회사원, 특히 의료인이나 공무원들은 백신 접종이 일제 말기의 창씨개명 신사참배만큼이나 사실상 반강제 필수였다. 그런데 백신을 3차까지 맞고도 우한 괴질에 두 번, 세 번이나 또 걸린 사람이 전국에 수백 명이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정말 로또 급의 확률을 뚫은 것 같다.;;

그 반면, 어디 취업할 필요가 없는 개원 의사들 중에 백신의 효용을 의심하는 몇몇 분들은 어디 눈치 살필 데가 없으니 안 맞고 존버 했다. 백신도 안 맞고 괴질에 걸리지도 않고 2020~2021년을 넘긴 사람들이 진정한 승리자이지 싶다.

마치 공 병우 박사가 1940년대에 창씨개명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자가 사망신고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분은 한국인 안과 의사/의학박사 1호로 경성 종로 한복판에서 개인 병원 개원을 했다. 일자리를 알아볼 필요 따위 전혀 없고, 자기 병원에서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는 일만 남았으니 그렇게 배짱을 부릴 수 있었을 것이다.

* 참고로, 지역 감정을 없애기 위해서 '우한 폐렴' 대신 중립적인 '코로나19' 이 제안에 대해서는.. 나는 예전에 언론에서 버젓이 써먹었던 '대구 발 코로나'라는 카운터로 대응하고자 한다. 아주 위선적인 수작이다.

2. 자폐

TV 드라마에는 무슨 서번트 증후군 같은 자폐 천재 기믹이 좀 있는가 보다.
지난 2013년에는 주인공이 그런 기질이 있는 남자 '의사'로 나오는 <굿 닥터>라는 드라마가 방영됐는데.. 그로부터 9년 뒤엔 주인공이 비슷한 기질의 여자 '변호사'로 나오는 <이상한 변호사 우 영우>가 방영됐었다. =_=;;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우 영우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절에 친형이 중증 자폐였던 어떤 사람이 디씨 갤러리에다 체험담을 올렸었다. (☞ 링크)

  • 우 영우는 그냥 사회성 없는 천재일 뿐, 자폐가 절대 아님.
  • 현실의 자폐는 99%가 지적장애+의사소통불가 이건 패시브로 갖고 있음. TV나 유튜브에 나와서 '자폐인도 할 수 있다'고 인터뷰하는 애들은 그냥 자폐 상위 0.1%라고 보면 된다.
  • 자폐 1급 태어나면 집안 풍비박산 난다고? 개구라. 풍비박산 정도가 아니라 기둥뿌리가 가루가 된다.
  • 물건 들고 난리치고 부수고 으에엑 크에엑 키에엥 소리 지르는 거? 그건 레벨 1임. 식칼 들고 난리 친 적도 있어서 그때 집에서 칼을 못 쓰고 플라스틱 빵칼을 썼다.
  • 뉴스에 나오는 장애인 시설 구타 학대? 다 이해할 수 있음.

헐..
2차 대전이나 6· 25에 실제로 참전했던 용사 할아버지가 어설픈 전쟁 영화 보고는 코웃음 치면서 "그 영화? 그건 그냥 애들 장난이지.. 사람이 포탄을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그냥 형체가 없어져 버리고 나뭇가지에 내장이랑 살점이 덕지덕지 걸려 있어.." 이렇게 증언하는 것처럼 들린다.

저 글에서는 그 형이 하루는 후다닥 밖으로 내달리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트럭에 치여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그 날 병원 응급실에서 눈물 흘리면서 운 사람은 가해 차량 운전사밖에 없었다고 한다.
글쓴이는 가해자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제야 해방됐다, "저놈 잘 죽었다"에 가까운 안도감이 들어서..;; 스스로도 소름 끼칠 정도였다고....;;

노인은 중증 치매, 아이는 중증 자폐... 이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질병이다.
이렇게 대응시키니까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와 닿는다. ㅠㅠㅠㅠㅠ
나치 독일이 T4 작전(장애인 학살) 벌이면서 이런 애들을 청소해 버리자고 그랬으면..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일고의 가치 없이 "뭔 개소리야" 이러면서 알량한 인권 드립을 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중증 치매만 해도 가족 간병인/보호자가 참다못해 환자를 살해해 버리고는 자기도 같이 자살하거나 당당히 경찰에 자수하고 교도소로 가는 사례가 부지기수인 인간성 파탄 질병이 아니던가?
인간에게 이런 질병이 존재하는 한, 안락사 논란은 정말 끊이질 않을 것 같다.

이건 뭐 부정한 영· 마귀 들린 것도 아니고 뭘까..?? 뇌가 생물학적으로 맛이 가 버린 건 성경이 말하는 영적 세계하고 전혀 무관한 영역인 걸까?
성경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불치병인 하반신/전신마비를 고치고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살리시는 기적이 나오는데.. 중증 자폐나 치매를 고쳤다는 얘기는 어째 없는지 궁금하다..;; 육(외형상의 장애, 질병)이나 영(마귀 들림) 말고 혼을 고친 것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28 19:37 2022/09/2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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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네로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는 세계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긴 폭군이었으며, 특히 마가 씌인 듯한 잔인한 기독교 박해로 인해 교회사의 관점에서는 더욱 악평을 받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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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발 노안인 인상에 걸맞지 않게, 나이가 아주 젊었다.
겨우 30 초반의 나이에 부하들의 신임을 잃고 폐위당한 뒤,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참고로 조선에서 손꼽히는 폭군이었던 연산군도 겨우 20대 때 흥청망청 놀면서 나라를 말아먹은 뒤, 30이 될까말까인 나이에 죽었다.

네로에게 흔히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로마 대화재 배후설이다.
부하들을 시켜 시내를 일부러 불질러 놓고는 불 구경 하면서 띵까띵까 악기 연주하고 시를 지었다..???
(꼴도 보기 싫던 낡고 흉측한 건물들이 다 사라지니 속이 다 시원하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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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9 11 테러 자작극설 음모론이라든가, "할배가 일부러 다리를 폭파하고 먼저 튀었다", "빵이 없다고? 그럼 과자/고기를 쳐먹으면 되지"(마리 앙투아네트) 급의 악성 루머로 여겨진다. 정황상 네로가 그 정도까지 악마 싸이코패스는 아니었다.

그는 불 구경은커녕, 외지로 휴가를 가 있었다. 그 와중에 화재 소식을 듣고는 기겁하여 전차를 몰고 수십 km를 달려서 현장에 헐레벌떡 돌아왔다.
황제가 직접 발로 뛰며 화재 진압을 지휘하고, 자기 사재를 털어서 구호 물자를 마련하고, 심지어 궁궐의 일부를 개방해서 이재민들 임시 거처도 마련했다.
재난에 정말 최선을 다해 대처했다는 건 제아무리 네로를 싫어하고 혹평하는 역사가라도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네로가 선정을 베푼 건 거기까지가 끝이었던 것 같다.
화재 발원지에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다른 건물을 올리려 해서 "이거 너무 노골적인데? 혹시 저 건물 올리려고 일부러 불지른 거 아냐?" 의혹을 본격적으로 살 짓을 하긴 했다. 그리고 무리한 토목 공사 때문에 나라 경제를 말아먹기도 했다.

그리고 자기 평판이 깎이고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것 같자, 그는 그제서야 예수쟁이들에게 방화범 누명을 씌워서 화풀이를 시작했다. 이건 명백한 팩트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집단이란 게 등장한 지 30년 남짓밖에 안 됐던 시절인데.. 이때 이들의 대외 이미지는 막 나쁜놈 사회악이라기보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 아싸 정도였다.

남들 다 믿는 걸 로마 잡신들을 섬기지 않고, 국가 공권력 자체는 인정하는 것 같지만 황제를 신성시하지 않고 웬 듣보잡 예수라는 교주가 부활했다며 설치고 다닌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얘기를 나눠보면 천성은 착하고 성품도 훌륭해 보이고.. 쟤들이 도대체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신비로운 부류였다.

그랬는데 민심이 흉흉할 때 과거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이나 '중세 유럽 페스트 창궐 후의 종교 재판'처럼 누구 아싸 한 놈 희생양 삼아 조져야겠다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그리고 이때는 크리스천들이 걸려들었다. "이게 다 저 예수 믿는 이상한 놈들 때문이다. / 저놈들은 이번 화재 피해를 별로 입지 않았다 / 사실 쟤들이 방화범이다 / 쟤들은 로마 제국의 반역자다" 이런 식으로..

네로는 이 사람들을 그냥 곱게 죽인 게 아니라 동물 가죽을 뒤집어씌우고 나서 맹수들에게 던져넣기, 십자가형, 길거리 인간 횃불(= 화형-_-) 급으로 정말 가학적이고 잔혹하게 죽였다.
어떤 방식이건, 이런 잔인한 양민 학살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이어지자 다른 비기독교인들조차 "쟤들이 아무리 나쁜놈들이라지만 이건 너무했다, 선 넘었다"라고 이의 제기를 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게다가 이때는 거짓으로 신자 행세를 하다가 조직을 밀고하는 가짜 끄나풀 간첩 배신자까지 들끓었다. 그러니 이때는 어중이떠중이 다 교회로 전도 초청 따위는 꿈도 꿀 수 없고, 진짜 신자 형제를 가려내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사람 마음속을 알 수가 없으니 신뢰할 만한 이웃 교회 지도자의 추천과 보증이 아주 중요한 변별 요인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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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바로 이때 네로를 대면한 뒤, 참수형을 당해 순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AD 67년경. 신약 성경 데모데후서는 이런 배경에서 기록되었다.

(죄수를 사형에 처하라는 어명까지 악기를 띵띵 연주하면서 내리는 개싸이코패스 네로의 기백.ㄲㄲㄲㄲㄲㄲㄲ
저 아저씨가 현대인이었으면 락 같은 데에 심취해서 아마 일본 환타 CF에 나오는 DJ 선생이나 가죽점퍼(록커) 선생처럼 코스프레를 했지 싶다. ㅋㅋㅋㅋㅋㅋㅋ)

바울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와 같이 어째 로마 시민이었다.
로마 시민은 (1) 범죄 혐의가 있더라도 채찍질 같은 고문을 동반한 심문을 받지 않으며, (2) 반역죄가 아닌 한 사형을 당하지도 않을 정도로 엄청난 특권층이었다.
그리고 로마 시민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로마로 가서 지역구가 아닌 전국구 재판을 청구할 권리까지 있었는가 보다.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로마 행을 고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소원대로 로마에 가서 사도행전 28장 이후의 연대기부터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복음을 널리 전했다. 최신 학문 유행 문화의 원산지였고 지금으로 치면 뉴욕이나 도쿄와도 같은 대도시였던 로마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그리고 로마 정부로부터도 예수 믿고 전하는 것에 대해서 처음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로마 대화재 사건을 계기로 다시 체포되었으며, 이때는 결국 반역죄로 사형을 당하게 됐다. 네로가 바울을 어떻게든 죽여 없애 버리려고 안달이 났기 때문이다. (3) 하지만 그는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이때도 십자가형 같은 잔인한 형벌을 받지 않고 곱게(?) 참수만 당했다.

참고로, 네로 시절엔 아직 콜로세움 경기장은 없었다. 그건 AD 80년 이후에나 등장했기 때문이다. 네로 때의 순교랑, 원형 경기장에서 양민들이 맨손 무방비로 굶주린 사자 떼와 맞닥뜨리는 장면을 동시에 떠올릴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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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의 입장에서 네로에 의한 박해는 정말 엄청나고 혹독한 환란이었다. 베드로전서 역시 제일 가깝게는 이런 시국을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저 네로놈이 적그리스도이고, 이 순간만 잘 넘기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거라고 생각했다.

뭐, 예수님이 곧장 다시 오시지는 않았고 로마 제국에 의한 기독교 박해는 그 뒤로도 수백 년 동안 잊을 만하면 간헐적으로 또 계속되었다.
이게 횟수를 따져 보니 총 열 번이었다. (☞ 관련 링크) 계 2:10에서 말하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하리라'가 이 로마 제국의 박해를 의미한다고 분석하는 해석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네로의 깽판 자체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 황제 역시 AD 68년에 쿠데타로 인해 황제 자리에서 쫓겨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세상 역사에서 네로는 처음엔 통치를 잘 하다가 말년에 궁예처럼 흑화해서 광기어린 실책을 저지른 폭군이다. 히틀러처럼 그냥 예술만 했으면 좋았을 걸 괜히 정치를 하다가 돌아 버린 사람 정도?
뭐, 폭군으로서는 평범한(?) 범주에 들지, 무슨 공산주의나 파시즘이 가미됐던 20세기 최악의 싸이코패스들.. 히틀러, 김 일성, 폴 포트, 이디 아민 정도까지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죽은 뒤의 장례도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고 지워 버리는 정도는 아니라, 평범한 왕보다만 약간 덜 예우하는 수준으로 그쳤다고 한다.

물론 아무리 실드를 친다 해도 폭군은 폭군이며,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 박해의 첫 포문을 열었던 악역이 네로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기독교인들만 왜 그리 잔인하게 죽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26 08:35 2022/09/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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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자동차 주차와 관련해서 다음 사항들은 오해와 분쟁이 벌어지지 않게 적절한 법과 관행이 마련되고 정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1.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장기 주차

한적하고 공간 넉넉한 임시 주차장 휴게소 같은 데서는 도입을 검토할 법도 하지 않을까? 장기 주차가 등록된 차량은 그 기간 동안 고속도로 내부에서 24시간 이상 체류 가능하다.

동일한 목적지로 가는 개별 운전자들이 여기에다 자기 차를 세워 놓고, 대표의 다른 차로 합류하는 거다. 즉, 이건 고속버스 환승이나 대중교통 환승의 자가용 버전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수요가 장기 주차 시스템을 유지 보수할 만치 많지 않다면 굳이 이런 걸 만들 필요가 없겠지만 말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와 휴게소들은 대부분 중간 회차 같은 기동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졌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ㅡ,.ㅡ;;

2. 주차장에서 아직 오지 않은 차를 위해 일행이 자리를 미리 찜해 놓기

일단, 관리자가 없는 무료 주차장 내지, 아파트 입주민처럼 주차장의 아무 자리나 동등하게 이용할 권한이 있는 사람끼리는 저런 관행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냥 먼저 차 끌고 자리 댄 놈이 임자여야 한다.
이건 지정 좌석이 없는 시내버스나 지하철 같은 곳에서 지금 없는 사람의 자리를 맡아 놓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동일 것이다. 혹은, 한 명만 줄 서서 기다리다가 중간에 갑자기 자기 일행을 잔뜩 끼어들이는 소극적인 새치기에다가도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주차한 순간부터 시간에 비례해서 요금이 부과되는 유료 주차장이고 자리가 부족하다면? 먼저 온 일행이 차 번호를 말하고 주차 공간을 선점하는 시스템 정도는 도입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 경우, 실제 차가 아직 안 들어와서 일행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안도 주차 시간에 포함되어 요금이 좀 더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일행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거나, 올 거라는 차가 일정 시한까지 오지 않으면 그 자리는 그냥 다른 차에게 넘어간다. 그리고 노쇼에 대해서는 보증금을 낸 것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의 페널티를 받게 된다.

이것도 이런 복잡한 시스템을 굳이 개발해야 할 정도로 발생하는 빈도가 높지 않다면.. 이 역시 내 상상 잉여 뇌피셜만으로 끝날 수 있다. 어떤 경우건 ‘주차 자리 선점 금지’만으로 깔끔하게 끝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ㄲㄲ

3. 장애인, 여성 주차 등

지하철 안에는 객차의 양 끝에 노약자석이 있으며, 시내버스 안에는 앞쪽에 역시 노약자석 내지 휠체어석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건물 주차장에는 건물과 가까운 쪽에 장애인 주차칸이라는 게 법적 의무 차원에서 반드시 만들어져 있다.
장애인의 인권을 배려하려는 차원에서인지.. 장애인 주차 위반은 여느 평범한(?) 불법 주차보다 과태료가 굉장히 세다.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의 위반에 맞먹는다.

원래는 부정 주차보다 불법 주차가 죄질이 더 나쁘고 과태료가 더 비싼 것이 인지상정이다. 전자는 단순히 "차를 댈 수 있는 곳이지만 그게 니 차는 아님" 수준인 반면, 후자는 "공공의 안전을 위해 아무도 주차해서는 안 됨. 버스 정류장이나 횡단보도, 교차로, 소화전 근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주차 위반에 대한 처벌은 부정을 넘어 불법으로 보는 수준이다. 그만치 강경하다.

뭐, 그에 대해서 나 역시 큰 이의는 없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인권의 척도가 진정한 선진국의 척도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각종 관공서나 마트에서 장애인 자리는 10여 군데가 텅~~ 비어서 썰렁한데 다른 사람들은 주차 자리를 못 찾아서 뺑뺑이 치는 걸 보노라면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상시 무조건 비워야 하는 자리는 일부만 놔 두고, 나머지는 약간 유도리를 둔다. 진짜로 몸 불편한 장애인 탑승 차량이 들어온 경우, "나중에라도 전화 오면 군소리 없이 15분 안으로 달려와서 차 빼는 조건으로 주차. 불응 시 주차료 가중 부과" 이렇게라도 하면 안 될까? 물론 장애인 탑승 차량도 자리 좀 확보해 달라고 마트에다가 미리 연락을 하고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개인적으로는 여성 전용칸은 법적 강제력도 없고 도대체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지하철에도 임산부 배려석이라고 앉을지 말지 고민되는 굉장히 어정쩡한 좌석이 몇 곳 표시돼 있는데, 그와 똑같은 모양새이다.

이것도 굳이 시행을 할 거면 평소에 무조건 비워둘 정도까지는 아니고, 실제 해당자가 왔을 때만 비켜 주는 형태가 됐으면 좋겠다.
진짜로 평소에 늘 비워져 있는 건 고속도로의 1차로(추월 차로)여야 하는데, 이건 또 안 비워져 있다. -_- 이러니 대한민국의 교통 문화가 노답인 것이다. 뭐, 쌍팔년도 시절에 비해서야 많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끝으로, 경차 전용 주차칸도 말이다. 자그마한 경차 전용 주차칸은 그거 혜택을 입는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되며, 그거 갖고 경차 구매 동기를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는 난 좀 회의적이다.;; 없는 자투리 공간의 틈새를 경차 전용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멀쩡한 구간을 일부러 좁혀서 경차 전용으로 만드는 짓은 자제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통신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했으니 주차와 관련된 시스템도 이런 식으로 좀 더 스마트해졌으면 좋겠다. 횡단보도는 보행자 작동식, 교차로는 감흥 신호를 더 늘리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24 08:35 2022/09/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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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성경 이야기들 -- 下

7. 부분적인 순종

  • 아브라함: 혼자만 나온 게 아니라 사고뭉치 룻도 같이 데리고 와서 쓸데없이 전쟁에도 연루되고 두고두고 고생했다.
  • 출 3~4에서 모세: 혼자서는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고 뒤로 빼서 결국 형 아론까지 붙긴 했지만.. 그게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 베드로는 영혼 없이 "네에~ (참 잘도 잡히겠네요.) 그래도 일단 님하 말대로 그물을 하나 던져는 보겠습니다": 그 뒤 그물이 찢어지고 배가 뒤집힐 뻔함.
  • 아말렉을 몽땅 다 진멸하지 않고 살진 짐승을 '선의로' 살려서 데리고 온 사울: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울러, 출5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 주라는 명령을 전하기는 했지만 너무 쫄아서 선포와 경고가 아니라 애원, 타협, 협상하는 말투가 돼 버렸다.

말 안 들으면 니들이 재앙 당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재앙 당한다.. 노예가 줄어들면 너희들도 좋을 거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물 잔뜩 탔다.
그러니 파라오의 반응은? 더욱 기고만장해서 꿈쩍도 안 하고 "이것들 너무 편하게 해 줬더니  안 되겠어? 앞으로는 일을 더 시키겠다"로 맞받아친 것이다.

부분적인 순종, 불완전한 순종은 대놓고 불순종보다는 낫다. 그러나 그 역시 100점짜리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다는 걸 성경은 거듭 가르쳐 주는 듯하다. 꼭 사울처럼 마음 상태가 처음부터 글러먹은 게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건 크리스천이 복음을 전할 때도 염두에 둬야 할 원칙인 것 같다.
죄, 심판, 복음 얘기를 제대로 안 하면서 "예수 믿어서 나쁠 거 없다, 손해볼 것 없다~ 너한테도 좋다" 이런 걸 너무 강조하는 건.. 듣는 사람의 기분도 못 잡으면서 잃어버려진 혼을 제대로 구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건 그냥 종교 영업 행위나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다.

8. 게으르다, 목이 뻣뻣하다

출애굽기에서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 보고 '게으르다' (idle)라고 평했고, (5:17 노예 시절)
하나님은 '목이 뻣뻣하다~~~~' (stiffnecked) 라고 평하시었다. (32:9 금송아지 사건)

파라오야.. 좀 편하게 대해 줬더니 노예 주제에 뱃대지 불러서 헬렐레 빠져 가지고 힘들다고 징징댄다고.. 먹고 살 만하니까 그 다음으로 신이나 찾아 댕기고 종교 활동이나 쳐 한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하나님은.. 10대 재앙과 홍해 기적까지 베풀면서 가련한 이 군상들을 비참한 노예 신세에서 구출해 줬는데..
광야 생활이 쪼~금 힘든 거 갖고 금세 불평 불만 터뜨리고, 심지어 도로 이집트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고 정말 마음이 완악하고 바른 믿음이 없다고 그걸 질타하셨다.

지극히 세속적인 관점 vs 지극히 영적인 관점.
같은 인간 집단을 보는 관점이 서로 극과 극으로 정말 다르다. =_=;;

9. 에스더기: 왕권의 상징

세상에서 보안을 상징하는 물건은 열쇠요,(허가되지 않은 사람이 물건이나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은 도장(이 명령이나 메시지가 진짜 당사자 본인의 것)인 것 같다. 유언 같은 건 주작되지 않고 진짜 당사자가 살아 생전에 정신이 멀쩡할 때 자의로 남긴 게 맞음을 입증하는 체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재산 상속이나 어느 조직의 후계자와 관련된 분쟁이 어찌나 많은지!!)

인감은 도장을 지문처럼 활용할 수 있게 등록해 놓은 체계이다.
동양은 모르겠다만, 서양에서는 왕이 끼는 반지가 옥새를 겸하게 만들어져 있었던 것 같다. 성경에서도 에 3:12.. 성경 전체에서 가장 긴 절이라고 일컬어지는 구절이 이에 대해서 언급한다.

에스더기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것과 '주, 하나님, 여호와' 같은 단어가 본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이색적인데, 유난히 왕의 권위와 관련된 언급이 많은 것 같다. 전 8:4 "왕의 말씀이 있는 곳에 권능이 있나니...", 더 나아가 마 8:9(권위 아래에 있는 사람)의 제일 실질적인 사례가 이 책인 것이다. 하필 그 권능을 이용해서 license to kill the Jews가 전파됐으니 문제지..

왕이 내린 명령이 옥새로 날인되고, 그게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파발들을 통해 방방곡곡으로 전파된다. 한번 내린 어명은 워낙 최고존엄급 절대 권위가 있기 때문에 왕 자신이라도 쉽게 식언· 번복할 수 없다. 그 대신 그걸 다른 명령을 추가로 내려서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에스더 같은 이질적인 책이 어째 성경에 포함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현대의 암호학은 수학 이론과 컴퓨터의 계산빨을 이용해서 디지털 세계에서 보안과 권위/권한이라는 분야를 모두 담당하는 도구인 셈이다.

10. 혼전 임신에 대한 화형 응징

옛날에 신라의 김 유신은 여동생 문희를 혼전임신 죄목으로 불태워 죽이려 했고, 이거 보고는 김 춘추가 그녀와 일종의 shotgun marriage를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건 창세기 38장에서 야곱의 아들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혼외임신 죄목으로 불태워 죽이려 한 것과(창 38:24-25)... 심상이 아주아주 아주 비슷하게 느껴진다. =_=

물론 서로 완전히 같은 상황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본인이 김 유신 장군 묘를 종종 구경하면서 동시에 교회도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ㅋㅋㅋㅋ

한반도는 역사를 통틀어서 화형이란 게 없다시피했다.
신라가 존재하던 시절에 내가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화형이라는 단어를 본 건 박 제상이 일본에서 고문 당하다가 화형 당해 순국했다는 얘기밖에 없다. (왜놈들이야말로 그때부터 왕창 잔혹.. -_-)

성경도 마찬가지다. 목을 조르거나 짜르거나 그냥 몸통에다가 칼을 쑤셔넣어서 죽이는 건 자주 나오지만, 홀랑 불태우는 거.. 특히 초자연적인 불 말고 저런 식의 화형은 등장이 역시 거의 없다. 그런데 대놓고 let her be burned는 이례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것도 둘 다 아녀자를.. 부정한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이러니..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는 마리아도 예수님을 초자연적으로 수태했던 당시에 처신을 잘못했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겠다. 나름 약혼남이 자기 아이가 아닌 아기를 속도위반 임신으로 잘 덮어 준 셈이다.

11. 빤스런(..)

그리고 성경에는 나름 빤스런이라는 것도 나온다.
아니, 빤스 정도가 아니라 몸에 걸치고 있던 걸 홀랑 버리고(붙잡히니까) 발가벗은 채로 줄행랑을 쳤다고 나온다. 도마뱀이 자기 꼬리 끊고 도망치듯이 말이다.

  • 막 14:51-52 예수님이 배반당하고 붙잡히시던 당시에, 성경에 이런 민망한 장면이 왜 기록됐을까, 이 청년은 누구일까 참 궁금해진다.
  • 행 19:15-16 그 유명한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에 대해서도 들어서 아는데, 닌 도대체 누구냐?" 역관광 장면이다.;;
  • 그리고 암 2:16도 이런 빤스런 장면을 언급한 예언이다.

12. 양비론

"진실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함께 모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님을 대적하며" (행 4:27)

본인은 오래 전부터 다른 주제는 몰라도 인간이 구원받아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에는 좌우 구분이 없고 정말 피장파장이라는 말을 해 왔다. 서민이건 기득권 정치· 종교 지도자건, 심지어 외세건 똑같이 말이다. 진정한 양비론이다.

빌라도는 그냥 세속적이고 보신주의적인 정치인이었을 뿐, 사도신경에까지 거론될 정도로 독보적인 악역은 아니었다.
진리가 무엇인지 죄와 심판은 무엇인지 같은 건 관심 없고, 그저 유대인의 왕을 참칭하는 내란 수괴 정치범만 아니라면 누가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국내 교회들이 한때는 "예배 때 사도신경 암송 안 하는 교회는 이단" 이러는 편이었지 싶은데.. 그래도 세월이 흘러서 요즘은 사도신경을 절대시하는 비중이 예전에 비해 줄어든 듯하다.

여담으로, 기독교라고 불리는 여러 교파들 중엔 가톨릭이나 개신교 말고 어디어디 지역 '정교회'라는 게 있다. 여기는 하나님 예수님 이러기는 하지만 교리 바리에이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
세계 지리에서 중부·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종교는 상당수가 가톨릭도 이슬람도 아닌 기독교라고 분류돼 있다. 그러나 그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신교 같은 기독교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 중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분명 사도행전 8장에 뿌리를 둔 역사적인 교회이지만.. 에녹서 같은 위경도 같이 정경으로 인정하고, 특히 빌라도와 그의 아내까지.. 부부를 반쯤 선한 인물, 성인으로 취급한다. 예수님을 처형하는 것을 꺼렸을 뿐만 아니라(롯???) 훗날 회개하고 크리스천이 됐고 순교까지 했다고 말이다.;; 역사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21 08:35 2022/09/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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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성경 이야기들 -- 上

1. 창세기와 계시록의 2 6 7 패턴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를 보면, 둘째 날에만 유일하게 '보기 좋았다'라는 말이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여섯째 날은 그냥 보기 좋은 게 아니라 '매우 보기 좋았다'라고 끝난다.
마지막 일곱째 날은 하나님도 쉬시고 아무 코멘트 없이, 그 날을 복 주셨다고만 나온다.

이와 비슷한 패턴이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 얘기에서도 발견되는 것 같다.
각 교회별로 격려와 질타(책망)가 하나씩 있는 구조인데, 2타인 서머나 교회와 6타 필라델피아 교회는 책망이 없다.
2타는 책망이 없이 격려와 행동강령 당부만 있지만, 6타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인 칭찬과 긍정적인 약속이 추가로 들어있다.
그러다가 다음 마지막 7타 라오디케아는 제일 부정적인 책망만 가득하고 심지어 약 처방이 있다.

창세기 1장의 6일이 문자적인 6일이듯, 계시록 20장의 1천 년도 문자적인 1천 년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복음서의 엄청난 표현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 중에는.. 선뜻 실감이 가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일이 지금 당장 이뤄질 거라는 식으로 과장 막말(?)처럼 보이는 워딩이 생각보다 많다.
정말 액면 그대로 사실일까? 지금이 아니면 정확하게 어느 문맥에서 성립한다는 걸까? 이러니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1) 나(예수님)와 복음을 위하여 집· 토지(부동산!!)나 가족 인척 관계(형제 자매 부모 아내 자녀)까지 희생하고 버린 자는.. "지금 이 시대"에 그 재산과 인맥을 백 배나 받되 핍박과 함께 받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으리라. (막 10:29-30)
==>> 나중에, 죽은 뒤에 보상 받는다는 말이야 종교적으로 그리 어려운 약속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받는다고 했다. 이게 뭘 의미할까..??

(2) 죽음을 맛보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마 16:28, 막 9:1, 눅 9:27)
==>>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바로 영접해서 지금처럼 초림과 재림의 구분이 생기지 않았다면 저 때 진짜로 저 일이 이뤄졌지 싶다.

(3) 이 세대가 가기 전에 다 이루리라. (마 24:34)
==>> 참고로 앞의 마 23:36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라는 심판 선포는 뜬구름 잡는 먼 미래가 아니라 현재, contemporary한 문맥이다. generation 세대를 쓸데없이 길게 늘어뜨리는 말장난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다음은 시기보다는 그냥 규모의 엄청남을 뜻한다.

(4) ... 만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심지어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들을 담지 못할 줄로 나는 생각하노라. (요 21:25)
==>> 이 지구가 얼마나 넓은데.. 예수님이 하나님이고, 단순 공생애 사역이 아니라 창조주로서 지질학 천문학 역사까지 몽땅 다 망라해야 이 말이 문자적으로 성립할 것 같다.

(5)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들어서 저리로 옮길 것이요.. (마 17:20)
==>> 믿음이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의 이론적인 상한이 이 정도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6) 들의 백합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 ... 솔로몬도 이것들 중 하나와 같이 차려입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마 6:28-30)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금과 은으로 떡칠을 했던 솔로몬의 부귀영화가 야생 들풀 짜끄레기보다도 못했다니..?? 이 말은 정말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곱씹어야 할 것 같다.

자연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하나님이 각 개체들 차원에서 다 알고 모니터링 컨트롤을 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러니 성경에는 신이 인간의 세포 분열(= 머리카락 수)을 모조리 파악하고(마 10:30), 일개 어류가 동전을 삼킨 것까지 안다는 묘사가 존재하는 것이다(마 17:27).

3. 인칭과 인용 방식

성경에서 다니엘서 4장은 1인칭과 3인칭이 뒤섞인 굉장히 독특한 시점으로 서술되었다.
처음엔 느부갓네살 왕이 내리는 조서 내용 그 자체인 듯이 시작하다가, 그 다음에는 느부갓네살 기준인 "내가 이러쿵저러쿵 하던 중에 이런 꿈을 꿨거든? 그러니 다니엘아, 해석 좀 해 보삼~~"이라고 텍스트 전체가 1인칭 시점으로 문장이 전개된다.
그 뒤, 다니엘의 답변부터가 "다니엘이 말하기를..." 이런 식의 평범한 3인칭 시점이다.

내가 알기로 다니엘서는 성경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원문의 언어도 100% 히브리어가 아니다. 중간에 아람 어인지 뭔지가 껴서 바뀐다. 12개의 챕터 중 전반부는 재미있는 기적 스토리, 후반부는 어려운 예언으로 구획 구분이 잘 된 편인데.. 그래도 바빌론 포로기라는 격변의 시기에 기록돼서 그런지 집필 논조가 일관돼 있지 않다.
사실, 스토리가 다루고 있는 시간 간극도 꽤 큰 편이다. 맨 처음에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안 먹은 건 다니엘의 유년기 시절이지만, 마지막에 사자굴에 쳐넣어졌다가 나온 건.. 그야말로 늙어 죽기 직전의 말년이다.

다음으로, 사도행전 1:4는 간접 인용과 직접 인용이 뒤섞인 구절이다.
언뜻 보기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라는 당부는 간접이고, "그 약속에 대해서는 니들도 내게서(예수님) 이미 들어서 잘 알지?"라는 확인은 직접인 것 같다. (KJV, NASV)
하지만 인용 방식이 바뀌는 게 뭔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한 성경 역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까지 몽땅 직접 인용에다 포함시키곤 한다. (개역, NIV 등)

성경 중에는 직접 인용에 대해 따옴표가 쳐져 있거나, 심지어 예수님 말씀의 직접 인용을 빨간색 글자로 표시한 책이 있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편집조차도 하려면 결국 답이 100%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고 모호한 행 1:4 같은 구절에서 막히게 된다.

4. 영적 존재에 대해서

수백 년 전 옛날의 신자들은 꼭 천당 지옥이 아니더라도 성경이 묘사하는 영적 세계, 영적 존재에 대한 동경, 환상이 오늘날의 신자보다 훨~씬 더 강했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첫째, 그 재료 귀하고 인건비 많이 들던 시절에 성경책 하나에도 뭔 삽화와 무늬가 그렇게 많이 들어갔는지..?? 1611년 KJV 원판 책만 봐도 그렇다. 천사 그림, 스랍, 그룹(세라핌 케루빔) 그림 따위 말이다. 그러니 안 그래도 비싼 책이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 ㄲㄲㄲㄲ

둘째, 그 사고방식이 옛날 찬송가 가사에도 투영돼 있다.
20세기에 나온 CCM이나 캐롤 가사 중에 천사가 주어로 나오는 “천사 찬송하기를 / 천사 화답하도다” 이런 걸 보신 분이 있는가? 전혀 없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And can it be라는 찰스 웨슬리의 구원 찬송도 여러 절 중에 2절, “세라핌조차 감격에 못 이겨 주의 깊은 사랑을 노래하도다” 이런 초월적인 내용이 있다.. 이건 영 실감이 안 가서 요즘 찬양집에서는 생략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어로 번역도 절대 되지 않았다. 저 가사는 무려 1738년작이었다.

5. 성경의 논리 전개 방식

  • "... 이런 사람은 불신자만도 못한 인간" (딤전 5:8)
  • "(니들이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세리조차도 그 정도는 할 줄 안다" (마 5:46,47)
  • "그건 마귀들도 믿는 사항이다" (약 2:19)

성경엔 이런 식으로 대적이나 불신자의 존재를 의식한 영적 하한 '마지노 선'을 설정한 논리 전개가 종종 나온다.
"병시나 산소, 문과 출신인 나도 알고 있음"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일이다.

  • 선행으로 구원을 얻는 게 아닌 것만큼이나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 마음 생각만으로 죄를 지을 수 있는 것만큼이나(탐욕 등) 마음 생각만으로 구원받을 수도 있다
  • 예수님은 보이는 병을 고치는 것과 동급으로 보이지 않는 죄를 사할 수도 있다 (마 9:5,6)
  • 평생 나쁜짓 하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구원받는 사람이 있는 것과 동급으로, 반대편 극단에는 평생 가난하고 호구 같이 불쌍하게 살았는데, 복음은 거부하고 지옥 가는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람도 있을 수 있... 아니, 적지 않다.

이렇듯, 성경은 비유 내지 비례식을 동원한 논리 전개도 많이 나온다. 신앙 생활 원리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죽어라고 말 안 듣던 네놈들이 하물며 내가 죽은 뒤엔 얼마나 더 깽판 칠까..? (신 31:27)
  • 죄인인 너희도 자식 새끼 잘 챙겨줄 줄은 아는데 하물며 하늘의 아버지는 너희를 얼마나 더 잘 챙겨 주시겠는가? (마 7:11, 눅 11:13)
  • 동적 바인딩으로 생성된 이방인 교회가 이 정도로 잘됐으면 하물며 정적 바인딩인 유대인들이 회복되면 얼마나 더 잘되겠는가? (롬 11:12,24)

특히 "A:B인데 하물며 C:D는 어떻겠는가?" 요런 패턴 말이다. 로마서에 많이 나온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18 08:35 2022/09/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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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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