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살펴봤듯, 북한에서는 자유를 찾아 귀순한 공군 파일럿이 역사적으로 쭉 있어 왔다. 하지만 월북을 한 남한 파일럿은... 있을 리가. -_-;;
물론, 육군에서는 최 덕신 같은 최고위층의 월북 흑역사가 있었고, 1984년에는 사회에서도 이미 문제가 좀 있던(..) 22사단 소속의 조 준희 일병이 동료와 상관을 사살한 후 월북해 버리는 일도 있었으나.. 그래도 남한에서 공군 전투기 파일럿이 미제 F-xx 전투기를 갖다 바치면서 월북한 정신나간 경우는.. 없다.

단, 북한의 공작원에 의해 남한의 항공기가 북으로 납치 당한 일은 먼 과거에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폭탄을 터뜨려서 너 죽고 나 죽는 테러 말고, 납북 말이다.

1. 창랑호 납북 (1958. 2. 16.)

지난번 글에서는 김포 공항의 역사를 얘기하느라 글이 길어졌는데, 이번에는 대한 항공의 전신인  "대한 국민 항공"이라는 회사의 얘기를 좀 많이 하겠다.

저 시절은 김포 공항이 개항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다. 또한 나라가 몹시 가난하고 항공사도 가난해서 더글러스 사(훗날 타사와 합병되어 맥도넬 더글러스가 된)의 중소형 프로펠러 여객기인 DC-3 세 대를 굴리며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각각의 비행기 기체에도 마치 배처럼 우남호, 만송호, 창랑호라고 이름이 붙어 있었다. 비행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항공 시스템의 많은 용어와 관행이 배에서 유래되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건 그리 이상한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은 열차도 다 저렇게 차량별 이름을 따로 썼으니까 말이다.

그때는 경부 고속도로 따윈 없고 도로가 죄다 비포장이니, 자동차로는 차가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세월아 네월아 10몇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가장 빠른 경부선 열차를 타도 해방자호가 9시간이었고, 1955년 광복절에 등장한 통일호 특급열차가 7시간 이랬으니(훗날 1960년, 무궁화호가 6시간 40분으로 단축), 이 당시 교통 사정이 어떠했는지가 이해가 되시겠는가?
비행기는 육상 교통수단보다야 넘사벽급으로 빠르겠지만 당연히 외국인, 정부 고위 관료, 극소수 유학생 같은 사람들밖에 못 탔지, 서민들은 국제선이 아닌 그냥 서울-부산 국내선이라 해도 비싼 가격 때문에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어쨌든.. 저 날 창랑호는 승무원 포함 34명의 승객을 태우고 부산을 출발하여 서울 김포 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승객 중에 북한 공작원이 타고 있었고, 비행기는 평택 부근의 상공에서 하이재킹을 당했다. 비행기는 기수를 북으로 돌려서 그 당시 북한에서도 지은 지 얼마 안 되었던 평양 순안 공항에 착륙했다.
탑승 전에 짐 검사 같은 건 안 하다시피했는지, 공작원은 반항하는 승객을 둔기로 제압하고 기장을 위협하여 얼마든지 자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북한은 뻔뻔하게도 창랑호의 승무원과 승객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앙망하여 자진 월북했다고 의기양양하게 거짓 발표를 했다. 남한은 이에 맞서 당연히 규탄 성명을 발표했으며 승객들의 송환을 요구했다. 비행기와 함께 이미 북으로 가 버린 공작원들은 어쩔 수 없으니, 승객들의 신원과 주변 인물들을 조회하여 공작원들을 지원한 것으로 의심되는 간첩 몇 명만을 뒤늦게 잡아들여 벌을 줬다.

승객 중에는 미국인이나 독일인 같은 외국인도 적지 않게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다국적 외교 문제로 불거졌다. 압박을 견디다 못해 북한은 자기네 공작원을 제외한 나머지 피랍 승객· 승무원 26명은 3월 6일에 판문점을 통해 전원 돌려보냈다. 북에 있는 동안 공산당 세뇌 교육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던 사람은 좀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그러나.. 북한은 비행기는 돌려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비행기 3대 중 한 대를 그냥 잃은 대한 국민 항공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해야 했다. 게다가 사실은 만송호도 1957년 7월 7일에 부산 수영 비행장에 착륙하던 중에 추락해서(2013년 아시아나 214 사고처럼?) 비록 인명 피해는 없지만 기체를 다 날린 상황이었는데 창랑호까지 잃었으니..=_=;;

회사의 창업주인 신 용욱은 자신부터가 일제 강점기 때부터 항공 덕후에 유능한 비행기 조종사였고 이 불모지에서 항공 사업까지 한 비범한 인물이었다. 이 승만이 대통령이 된 뒤에도 대통령 각하보다는 박사라는 호칭을 더 좋아했듯이, 저 사람도 사업가가 된 뒤에도 사장님보다 기장님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했을 정도.

단, 이 사람은 업종과 행적이 그렇다 보니 과거에 대동아 전쟁을 위한 일본군 항공 수송과 비행기 헌납 같은 빼도 박도 못 할 친일 논란이 있기도 하다. 동갑내기 파일럿인 안 창남과 같은 인생을 살지는 않은 게 아쉽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그 시절에 일제한테 그 정도 협조를 안 하고서야 고자본 전문직인 항공 사업을 조선인이 어떻게 그것도 한반도 본토에서 경영할 수 있었겠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해방 후에 그가 비행기에다 붙인 우남· 만송· 창랑이라는 이름들 역시 이 승만, 이 기붕, 장 택상... 당대 정치인들의 호였다. 다소 정치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작명이었다. 막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돈이 많이 깨지는 항덕의 꿈을 사업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배후 권력이 무엇이 되건 적절히 잘 이용하고 기름칠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허나 그 당시에 대한민국은 항공업으로 막 재미를 보기에는 근본적으로 너무 국력이 부족하고 서민들이 가난한 나라였다.
각 비행기들은 사장이 사업 밑천 마련을 위해 미국에 로비를 하고 집 팔고 빚 내면서 정말 힘들게 어렵게 구입한 것이었다. 그 가난하던 시절에 비행기를 구입할 정도의 엄청난 외화 유출을 감수하려면 구두쇠 대통령으로부터 승인도 필요했다.
그랬는데 광복 후에는 북한으로 인한 악재, 늘어 가는 적자, 경영난, 회사 빚을 감당치 못하고 사장은 환갑을 갓 넘긴 1961년에 결국 한강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까지 세상을 뜨자 대한 국민 항공사는 상황이 막장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 나라에 항공사가 없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이걸 국가가 인수하여 국영 기업을 만들었다(1962. 9.). 허나, 이것이 영 실적이 좋지 않아서 한진 그룹 산하로 민영화해 버린 것이 오늘날의 대한 항공이다(since 1968. 11.). 박통이 조 회장에게 "시궁창이 된 이 회사를 임자가 책임지고 좀 살려 보게나" 이렇게 구슬리면서 떠넘겼다고 한다.

그 시절의 옛날 비행기 중 유일하게 우남호만이 내구연한이 경과할 때까지 잘 날다가 만기 퇴역했으며, 요건 인하 대학교 본관 1호관 옆의 잔디밭에 정태보존돼 있다. 항공 사진 지도로도 확인 가능하다. 옆의 인하공전 안에 교육용으로 비치되어 있는 보잉 727하고는 다르므로 혼동하지 말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남호의 모델인 DC-3은 나름 1940년대를 풍미하며 전세계적으로 많이 생산되었던 명품 비행기이다. 그런데 평평한 지면에 정지해 있을 때는 기체의 전방이 위를 향하게 경사가 져 있다. 비행기가 엔진 성능이 지금만치 좋지 못하던 시절에 최대한 양력을 많이 받아서 잘 뜨게 하려고 일부러 저렇게 설계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비행 중에는 물론 평평한 상태로 움직인다.

그리고 보잉 727은 DC-10 같은 삼발기이고 엔진이 날개 아래가 아니라 동체 뒤에 있다. 보잉 사가 개발한 여객기 중 유일하게 삼발기라고 한다. 당연히 엔진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날개 밑에 엔진이 없다니, 전동차로 치면 팬터그래프가 없는 제3궤조 집전 차량이요, 헬리콥터로 치면 꼬리날개가 없는 동축 반전 로터 같은 변종을 보는 것 같다.

두 비행기 모두 오늘날의 전형적인 비행기들과 비교했을 때 독특한 점이 하나씩은 다 있었다. 우남호는 몰라도 보잉 727 정도 되는 비행기를 분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옮겨 오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얘는 1991년에 조종사의 부주의로 동체 착륙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수리 불가 비행 불능 판정을 받고 퇴역하여 학교에 전시되는 운명이 되었다. 그래도 삼발기여서 엔진의 위치가 높은 덕분에, 바닥이 쫘악 긁히는 와중에도 엔진이 터지거나 연료가 새어서 화재가 나는 일은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다.

한때는 인하공전 말고도 전라남도 강진의 '성화 대학'도 항공 특성화 전문대를 표방하면서 캠퍼스 안에 보잉 727을 비치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 학교는 몇 년 전에 망하고 폐교했다.

끝으로, 비행기와는 관계 없는 여담이지만,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후엔 북한은 좌초한 자기네 잠수함을 돌려 달라는 개소리를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무장공비들의 시신만 돌려 주고 저 무례한 요구는 당연히 씹었다.

2. 대한 항공 (1969. 12. 11.)

창랑호 납북 사건으로부터 10여 년 뒤, 그리고 한진 그룹 산하의 대한 항공이 출범한 지 1년 남짓 뒤에 북한에 의한 비행기 하이재킹 사건이 또 발생했다. 강릉에서 출발하여 서울 김포 공항으로 가던 대한 항공 여객기인데, 지금 같은 운행편 번호는 모르겠고 비행기 기체가 일제 YS-11이었다는 것만 전해진다.

이번에도 뻔하다. 승객으로 위장해 타고 있던 북한 공작원 내지 간첩이 승무원을 위협하는 바람에 비행기는 원산의 선덕 비행장에 착륙하게 됐다. 북한은 역시 남조선 인민의 자진 입북이라고 선전했으나 그런 거짓말이 통할 리가..
결국 북한은 사건 이후 2개월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이듬해 2월 14일에야 승객 50명 중 39명은 돌려보냈으나 11명(승객 7, 승무원 4)은 여전히 그리하지 않았으며, 그 뒤에도 이들의 생사조차도 알려 주지 않았다. 참고로 1969년은 김 신조 사건, 강릉· 삼척 무장공비 등 북한이 온통 무력 도발을 벌였던 살벌한 1968년의 바로 이듬해이다.

돌아오지 못한 승객은.. 듣자하니 대체로 1년 전의 이 승복처럼 북한에서 투철한 반공 정신을 너무 발휘해서 세뇌 교육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북한 사람들에게 밉보인 나머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 듯하다. 다만, 전부 싸그리 처형 당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것까지는 아니고 지방 어디선가 정착해서 살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더러는 지난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가족이 잠깐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뭐, 어떤 경우든 6· 25 전쟁으로도 모자라서 하루아침에 멀쩡한 가정을 찢어 놓고 이산가족을 또 만든 북한은 천하의 개쌍놈이 맞다. 이 사건 역시 북한이 비행기를 돌려 줬을 리는 만무하고..

요즘 항공 업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관행이 정착해 있다.

  • X선을 동원한 정밀한 짐 검사: 두 말할 나위가 없음. 이런 첨단 기술이 일제 강점기 때부터 존재했다면 굳이 비행기가 아니어도 안 중근, 윤 봉길 등 여러 항일 의사들의 거사들 역시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 기내에서 절대 금연: 일부 승무원이 간접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뒤에야 정착했다. 화재의 위험도 있는데 과거엔 비행기 내에서 액체 연료 라이터까지 반입해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 수하물과 탑승객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절대로 출발하지 않음: 수하물을 가장한 폭탄 테러를 몇 번 겪은 뒤부터 도입됐다. 마치 사격 훈련 후에 모든 탄피를 반드시 수거해서 개수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한 격의 안전 조치이다.
  • 비행 중에 조종실을 절대로 개방하지 않음: 9· 11 테러를 겪은 뒤. 단, 테러범이 아니라 반대로 파일럿이 혼자 미치거나 맛이 간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외부에서 그를 전혀 제압할 수가 없는지라 최근에(2015. 3. 24.) 저먼윙스 9525편 고의 추락 사고 같은 일도 발생했다.
  • 나이프는 기내식의 스테이크를 써는 플라스틱제조차도 기내에 반입하지 않고 액체 역시 기내 반입을 제한함: 이것도 9· 11 테러를 겪고서 미국이 신경이 바싹 곤두서서 내린 조치이다.

한국은 북한의 테러에 이골이 나 있는 관계로, 비행 중에 조종실을 절대로 개방하지 않는 건 진작부터 시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조치로도 하이잭이 아닌 1987년의 대한 항공 858 폭탄 테러를 막지 못한 건 안타까운 점이다. 승객과 짐이 다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건 이미 그때 다 정착돼 있지 않았나?

북한은 서울 올림픽의 개최를 방해할 목적으로 비행기도 폭파하고 1986년 9월엔 김포 공항에서 외국인을 사주하여 폭탄 테러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번에도 명불허전 천하의 개쌍놈 북괴 인증이다.

본인은 건국 초기에 우리나라의 친일 청산과 민주화를 제일 방해하고 가로막은 원흉도 결국 따지고 보면 북괴라는 지론이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다. 걔네들 때문에 결국 보안을 빌미로 국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복잡한 법이 필요하고 강한 공권력이 필요하고, 일제에 부역했던 형사와 경찰들에게 또 일자리를 줘야 하게 됐다.
요런 절대악에 대한 배경 설명을 쏙 빼고 필요악이 좀 한계를 지녔고 일부 잘못하고 병크 저지른 것만을 편파적으로 부각시키면서 남을 속이고 역사 왜곡하고 선동질 하는... 입에 들어가는 쌀이 아까운 인간들에게 절대로 속지 말라.

일제 강점기 때는 그나마 우리가 힘이 없어서 나라를 빼앗겼으니 실력을 양성해서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일말의 건전한 구호라도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북한엔 도대체 무슨 선한 것이 있고 우리가 뭘 배울 게 있단 말인가? 그저 걔네들의 교묘한 간첩질과, 종북 세력들의 이적 행위만을 잘 감시하고 잡아내면 될 뿐이다.

우리가 중동에 노동자를 보내서 달러를 벌어 온 동안 쟤들은 위조지폐와 마약으로 외화를 벌었다. 살아 온 게 늘 그런 식이다. 민족? 통일? 꿈 깨라. 김돼지 왕조나 그에 준하는 막장 통치 체제가 살아 있는 한,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쟤들은 비교하는 것조차 수치스러운 악의 무리들이다. 민족이 일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관이 일치하는 것이다.

특히 어떤 경우든지 남한이나 북한이나 하나도 다를 바 없고 똑같다는 말은 내가 정말 극혐한다. 인간이라면 뚫린 입이라고 말을 그 따위로 지껄이지 말라.
우리나라 진보, 중도라고 하는 진영이 종북 빨갱이라는 오명을 만년 벗지 못하는 이유는,
북한이 아주 정상적으로 외교를 하는 국가이고 인민들을 정상적으로 먹여 살리고 있는데도.. 아주 불가피하게 가난하고 못사는 줄로 그쪽 동네를 거짓으로 미화하기 때문이다. (왜 안 도와 주느냐, 왜 대화를 안 하느냐, 왜 안 퍼 주느냐, 쟤들이 막나간다고 우리까지 막나가면 우리도 쟤들하고 똑같게 되는 거다) 법과 규칙을 지키지 않으며 그저 힘에 굴복할 줄밖에 모르는 놈들은 힘으로 제압해 줘야 할 뿐이다.

철도야 국토 분단과 함께 곧장 찢어졌으며, 장단 역 기관차, 김 재현 기관사, 월정리 역 등 안보 주제와 관련해서 할 얘기가 넘쳐난다.
그러나 철도뿐만 아니라 비행기· 항공에다가도 뭔가 색다른 분위기로 이런 현대사와 안보 주제를 연결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5/12/17 08:30 2015/12/1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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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한 주민들이 북한을 탈출하는 전형적인 방법은 일단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간 후, 거기서 또 국경을 넘어 친북 성향이 아닌 나라로 가서는 거기서 배나 비행기를 타고 남한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을 매수하기 위해 뇌물을 줘야 하기 때문에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 탈북 여대생 이 현서 씨의 TED 강연 같은 걸 들어 보면 정말 처절한 사연을 들을 수 있다.

왜 그렇게 힘들게 빙 돌아서 남한으로 오는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최단거리 루트인 휴전선 일대는 경계가 너무 삼엄하고 철조망과 지뢰밭도 즐비해서 접근이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인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지 않으면 체제 유지가 안 되기 때문에, 그리고 남한의 입장에서는 자유 왕래를 허용했다간 일부 불순분자들의 이적· 간첩 행위가 만연할 것이기 때문에 남과 북은 이런 서로 다른 이유로 인해 상호 왕래를 금지하고 있다.

반대로, 다른 화해니 평화니 온갖 정치 쇼를 한다 해도, 이런 기본적인 남북 왕래와 서신· 통신 왕래조차 지금까지 이뤄진 게 없으니 옛날 햇볕 정책이니 뭐니 하는 건 들인 돈에 비해 아무 선한 열매가 없으며, 심지어 그 돈이 다 북괴의 핵 개발에 보태졌다고 단정을 지어도 반박이 도저히 안 되는 것이다. 분단의 본질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한때는 집단으로 배를 타고 탈북하는 경우도 있었다. 1990년대에 <광호의 일기> 시리즈를 출간하기도 했던 김 만철 씨와 그쪽 집안이 대표적인 예임. 요즘은 북한 당국도 그걸 알기 때문에 어선이 조업을 하는 것도 일일이 다 감시하고, 특히 일가족 전체가 한 배에 타는 것 자체를 허락을 안 해 준다.

근래에는 오히려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육군 병사가 DMZ를 성큼성큼 횡단해서 귀순하기도 했다. 노크 귀순 사건도 있었고, 심지어 상관 병사들을 프래깅 한 뒤에 귀순한 경우도 있다. 민간인보다는 차라리 거기서 직접 근무를 하는 군인이 육로 접근이 더 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공군 전투기 파일럿에게는 육로나 해로보다 더 좋은 선택이 있다. 바로, 자기가 조종하는 비행기로 직접 남한 영공으로 진입해서 탈북하는 것. 어쩌면 이게 제일 화끈하고 쉬운 방법이다.
파일럿까지 됐을 정도이면 북한에서도 최정예 엘리트이며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탈북을 할 필요도 없을 텐데, 그래도 자유가 좋아서 남한을 선택한 것이다.

1. 노 금석

6· 25가 휴전으로 끝난 지 얼마 안 되었던 1953년 9월 21일에 귀순했으니 귀순 공군 파일럿 라인의 거의 1호가 아닌가 싶다(귀순 당시 22세). 뭐, 전쟁 전인 1950년 4월에 이 건수라는 북한 파일럿이 이미 귀순했다고는 하지만, 너무 오래 됐고 기록이나 관련 소식이 부족하다.

노 금석은 그 옛날에 공산주의 거짓 세뇌 교육 내지 소련군이 북한 지역에서 벌인 온갖 행패에 이미 진절머리 환멸을 느꼈다. 그래서 겉으로는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척하지만 기회만 되면 비행기를 이용해 언제든지 북한을 탈출할 생각을 진작부터 했다고 한다.
8월 종파 사건도 벌어지기 전의 워낙 옛날이었으니 그때의 북한은 김 일성에 대한 우상화는 지금보다 덜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생지옥인 건 변함없다.

그는 훈련 작전 중에 대열을 이탈한 뒤, 목숨을 걸고 저공을 비행하면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미 점찍어 뒀던 김포 비행장에 스스로 착륙했다.

잠시 역사 얘기를 하자면, 김포 국제공항의 전신인 김포 비행장은 일제가 1938년에 건설해 놓았던 공군 기지로, 처음엔 민간 공항이 아니었다. 그때는 거기가 인서울도 아니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수원 비행장 같은 곳일 뿐이었다(물론 일제 강점기 땐 수원 비행장이 없었고.. ㅋ). 1950년대에 민· 군 공용으로 사용하던 인서울 공항은 여의도 공항이었다. 얘는 일제 강점기 초기부터 있었으니 역사가 매우 길다.

그러다가 김포 공항이 1958년 1월 말에 개항해서 민간 공항 기능을 물려받았으며, 김포 공항은 군 기지가 없는 100% 민간 공항으로 바뀌었다. 1960년에 이 승만 대통령이 하야 후에 하와이로 갈 때는 김포 공항을 이용했다. 그리고 1971년에 지금의 성남 서울 공항이라는 공군 기지가 추가로 생기면서 여의도 공항의 군사 기능까지 인계했다.

과거에 부산에서는 비좁은 수영 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외곽에 지금의 김해 국제공항이 생겼지만 여전히 군· 민 공용이다. 부산의 인천 공항 격인 '영남권 신공항'도 몇 차례 논의되었지만 결국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논의만으로 끝났다. 그 반면, 서울에서는 여의도 공항의 역할을 김포(민)와 성남 공항(군)이 분산 인계받고, 김포로도 모자라서 인천 공항까지 생겼다.
아무튼 요렇게 대체 공항이 생김으로써 여의도 공항은 간판을 완전히 내렸으며, 활주로 부지는 여의도 광장으로 바뀌었다가 오늘날 여의도 공원이 되었다.

아무튼, 갑자기 적기가 불쑥 나타나서 사뿐히 착륙까지 했으니, 당시 김포 비행장 관계자들은 발칵 뒤집혔다. 미국은 냉전 시절의 적국이던 소련의 위협적인 미그 15 전투기를 어떻게 좀 구해서 분석할 수 없을까 전전긍긍하던 상태였는데, 웬 적군 파일럿이 귀순하면서 최신형 미그 15 현물을 갖다 바친 것이다.

혹시 이 사람을 따라 북한 전투기가 날아오지 않을까 비행장 전체는 최강의 경계령이 떨어졌다. 미그 15기는 곧바로 격납고로 옮겨졌고 파일럿 당사자는 사진 촬영 후 최고로 삼엄한 경비를 받으며 군 당국으로 이송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는 이내 귀순 용사 영웅으로 최고의 예우를 받았으며 무려 10만 달러(60년 전 물가로!)에 달하는 포상금을 받았다. 이제 평생 일 안 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을 듯.

그는 굳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 눌러앉을 필요도 없이, 그 밑천으로 곧장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냉전 초기였던 그 당시에, 적국에서 귀순한 전투기 조종사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언제든지 웰컴"인 최고급 인재였다. 그는 거기서 영어를 배우고 미 공군, 보잉, 록히드, 엠브리-리들 항공 대학교 같은 걸출한 기관을 드나들면서 관련 고위직을 역임했으며, 은퇴 후 2015년 현재에도 생존하여 미국에서 평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1953년의 귀순은 정말 그의 인생을 바꾼 현명한 결단이었다.

2. 정 낙현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진 지 얼마 안 되었던 1960년 8월 3일, 이 사람도 원산에서 미그 15를 몰고 출격했다가 동해안의 속초 비행장으로 단독 착륙 후 귀순했다. 그 당시 파일럿의 나이는 24세.
그 뒤 남한에서 별 문제 없이 정착하고, 공군 교관 등 고위직을 역임하다가 대령으로 잘 예편했다고 나온다. 귀순 파일럿 출신 대령 1호이긴 한데, 그 외에 다른 특이 사항은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196, 70년대의 영상 기록관 자료나 옛날 신문 기사들만 나오지 최근 근황은 알 수 없다.

1970년에는 박 순국이라는 북한 공군 파일럿이 미그 15를 몰고 비행하다가 남한 영공에 들어왔고, 이내 남한 전투기들에 둘러싸여 속초 비행장에 불시착했다. 이 사람은 귀순 의사가 없었고 처음에는 "실수로 남조선에 들어왔을 뿐이다. 나를 어서 북으로 송환해 달라"라고 거듭 주장했으나, 한국· 미국의 정보 기관이 선배격인 정 낙현까지 동원해서 끈질기게 회유를 한 끝에 최소한 겉보기로는 전향했다고 한다.
다만 박 순국은 남한에서 과음을 일삼다가 간이 나빠져서 1976년에 사망했다. 이 점에서는 바로 다음에 소개할 이 웅평과 비슷한 처지가 됐다.

3. 이 웅평

본인이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았던 1983년 2월 25일엔 남한에서는 팀 스피릿 훈련이 진행 중이었으며, 여기에 대응하여 북한도 전투기를 출격시킨 상태였다. 이 사람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미그 19를 조종하던 채로 탈북을 감행했다. 남한의 공군에게도 이내 발각되었지만 그는 날개를 흔들어서 귀순 의사를 밝혔으며, 남한 전투기들의 엄호를 받으면서 수원 비행장에 착륙했다.

훈련 중에 진짜로 적기가 출현하다 보니 그 당시엔 우리나라도 혼비백산해서 민방위 관계자가 서울· 인천· 경기 지역에 경계 경보를 때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의 귀순이 대외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북한에서 전투기 파일럿으로 모자랄 것 없이 살던 상류층이었지만, 남조선의 라면 봉지 하나만 보고도 감격해서 탈북을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라면이 뭐예요? 먹는 거예요?"는 둘째치고라도, 세상에 "판매나 유통 과정에서 훼손· 변질된 제품은 판매점이나 본사 대리점에서 교환해 드립니다".. 이런 민주적이고 당연한 절차조차도 북한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는 귀순 후 역시 남한에 잘 정착했으며, 남한 정착 12년 만인 1995년에 정 낙현에 이어 대령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늘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살았으며, 무엇보다도 혼자 불쑥 탈북한 자기 때문에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이 해코지를 많이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탈북자의 증언을 들어 보니 그의 예상은 불행히도 정확했다. 다들 수용소로 끌려 갔댄다. 가장이 전투기라는 국가 자산까지 무단 유출하면서 탈북을 감행한 괘씸죄에 대한 연좌제였다.

그는 가족 걱정을 술로 달래다가 간의 건강이 매우 나빠졌다. 1990년대 말부터 간경화로 투병하다가 2002년 5월에 사망했다. 그 전에 대구 성서 초등학교의 개구리 소년 중 하나인 김 종식 군의 아버지 김 철규 씨도 정확히 같은 이유 때문에 2001년 10월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참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4. 이 철수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벌어지기 4개월 남짓 전이던 1996년 5월 23일에 귀순한 분이며, 이분은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2015년 현재까지 최후의 귀순 공군 파일럿이다. 평안남도에서 미그 19를 몰고 출격한 점(아직도 구형 미그 19를!), 저공 고속 비행으로 북한을 탈출한 점, 우리나라 공군의 엄호를 받으며 수원 비행장에 착륙한 점, 당사자가 훗날 대령까지(2010년에) 진급한 점은 13년 전 이 웅평의 판박이이다.

단, 이 사람이 귀순할 때는 과거의 이 웅평 때와는 달리, 서울과 인천에 민방위 경보가 울리지 않아서 평시 경계가 소홀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또한 이 웅평과는 달리 이 사람은 현재까지도 건강하게 현역 복무를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탈북자 출신으로는 최초로 장성 자리까지 내다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강릉 무장공비 사건 때 유일하게 생포된 공작원은 이름이 이 광수이다. 그는 대한민국으로 완전히 전향한 후 해군 군무원 겸 교관, 안보 강사 등으로 재직 중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내가 어뢰를 오래 다뤄 봤고 북한 관행도 잘 아는데(어뢰에다 숫자를 표기하는 방식)... 저건 확실하게 북한 소행으로 보인다. 2009년 11월에 벌어졌던 대청해전에 대한 보복이다."라고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5/12/14 08:37 2015/12/1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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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 프로그래밍

1.
예전에 본인은 시스템 종료 중에라도 사용자가 무슨 동작을 취하면, 컴을 아주 꺼 버리는 시스템 종료가 아니라 그 뒤 '재시작'으로 종료 모드를 바꾸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것과 비슷한 제안인지도 모르겠는데, 또 하나 아이디어를 내자면 이렇다. 사용자가 한동안 컴퓨터를 건드리지 않아서 모니터가 꺼지거나 컴퓨터가 절전· 최대 절전· 종료 등으로 바뀌게 되면, 그 모드로 진입하기 전에 화면에 10초나 5초 정도 카운트다운을 좀 띄웠으면 좋겠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처럼 화면을 빤히 보고 있으면서 키보드· 마우스만 안 건드리고 있는데 화면이 갑자기 꺼져 버려서 당황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화면 보호기 정도는 카운트다운 없이 바로 진입해도 상관 없겠지만 아예 하드웨어적인 변동이 생기는 저런 모드는 예고가 있으면 좋겠다.

2.
동영상 엔진인 '코덱'과 과거의 컴퓨터 통신 장비인 '모뎀'이 정확히 같은 조어법에 의해 거의 같은 구조의 이니셜을 가진 단어이구나.

3.
식당에서 주문을 한 뒤에야 "아 손님, 죄송하지만 재료가 떨어져서 그 메뉴는 지금 제공이 안 됩니다"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허탈하잖아. 애초에 메뉴판에 그런 메뉴는 disable된 상태로 시각 피드백이 있으면 좋겠다.

4.
공동 작업을 하는 코드의 명칭에 영어 스펠링이 틀린 게 많아서 작업에 지장을 적지 않게 받은 적이 있었다. 검색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분명 availableItem이런 단어가 있는 걸 봤었는데 나중에 보니 avalible이라고 돼 있는 식.
이건 당장 버그나 성능 같은 동작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또 다른 형태의 민폐이다. 도서관으로 치면, 책을 보고 나서는 자기 분류 코드상으로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다 책을 꽂은 것과 같다. "잘못 꽂힌 책은 없는 책과 같습니다. 정리는 사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열람하신 책은 그냥 여기에 놔 두세요" ;;;;

5.
관광 가이드를 매뉴얼과 스케줄 대로 승객들을 안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에다가 비유한다면, 이 사람이 수행하는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는 정말 그야말로 try ... catch문으로 빽빽이 무장하고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갑자기 아플 때, 뭔 물건을 놔 두고 왔을 때, 여권을 잃어버렸을 때, 긴급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일행 중 일부가 없어져서 못 찾을 때 등등.. 그 어떤 예외 상황에서도 패닉과 스케줄 펑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의연히 대처가 가능해야겠다.

6.
Windows 환경에서 응용 프로그램이 자기 영역으로 사용할 수 있는 메모리 주소는 64KB 이상부터이다. NULL 포인터인 0자체뿐만이 아니라 첫 64KB는 가상 메모리 영역 설계 차원에서 봉인되어 있으며, 이 주소에 메모리를 읽거나 쓰는 건 무조건 에러가 난다. 사실, 0 자체뿐만 아니라 64KB 정도까지는 막혀 있어야 NULL포인터 자체뿐만 아니라 NULL로부터 구조체 멤버를 참조한 포인터도 에러로 처리될 수 있을 것이다. ((POINT *)NULL)->y처럼.

아울러, 과거의 Windows 9x는 이보다 제약이 더 커서 64KB가 아니라 상위 4MB까지가 추가로 막혀 있었다. 64K부터 4M까지의 영역은 16비트 프로그램(도스용 & Windows용 모두)이 사용한다. (☞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

이런 이유로 인해 전통적으로 32비트 Windows 프로그램들은 시작 주소(preferred base)가 딱 4MB로 맞춰지곤 했다. NT 계열에서는 꼭 4MB가 아니라 64KB 이상 아무 지점이어도 상관이 없지만, 4MB 이상이어야 윈도 9x와 NT계열에서 모두 실행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오늘날까지도 하드디스크가 C로 시작하는 디스크 드라이브 관행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다.
플로피 디스크가 완전히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A, B 드라이브는 사실상 결번으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 요즘은 하다못해 USB 메모리 드라이브를 거기에다 할당해도 될 것 같은데!

※ 알고리즘

7.
longest common subsequence를 구하는 문제와 longest increasing subsequence를 구하는 문제는 서로 관련이 있는 무척 흥미로운 문제인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후자는 임의의 sequence와, 그 입력을 오름차순으로 정렬한 sequence와의 longest common subsequence를 구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후자는 전자 문제로 다항 시간 만에 변환 가능한 special case이다.

두 문제는 일단 다이나믹 프로그래밍으로 O(n^2)의 복잡도로 풀 수 있지만, 더 작고 특수한 케이스인 후자는 O(n log n)의 해법도 있다.
전자 문제는 문장의 정확도를 구하는 알고리즘, 소스 코드의 diff 툴 등 활용되는 분야가 굉장히 많다. 지금은 어떤가 모르겠는데 내 때에는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의 첫째 날 1번 문제가 해법이 이 형태로 귀착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999년도의 꽃병 문제는 대놓고 저런 타입이었고, 2000년도의 palindrome 문제도 자신과 자신을 역순으로 뒤집은 단어와의 longest common subsequence를 구하는 것과 동일하다.

8.
엑셀에서 파이 모양 차트를 그리면 아이템별로 파랑, 빨강, 주황 등 알록달록한 색깔이 배당되어 차트가 그려진다.
그런데 최초의 색깔인 파랑부터 아이템 N에 이르기까지, 색깔을 선별하는 방식이 과연 무엇일까?
Office 2003까지는 뭔가 보라색 위주의 우중충하고 칙칙한 색깔 위주였는데 2007부터는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더 세련되게 바뀌었다.

이건 뭔가 RGB나 hue 같은 색공간에서 최대한 균등하게, 마치 흑에서 백으로 디더링 픽셀을 하나씩 채워 나가듯이 색깔을 뽑아낸 것 같다(관련 링크). 그 구체적인 알고리즘이 궁금하다.
그리고, 이런 픽셀 채우기 문제의 domain을 2차원 평면이 아니라 3차원 공간으로 확장하면 문제의 난이도가 어찌 되는지도 궁금하다.

※ 자동차

9.
자동차 차량 취급 설명서의 각종 선택사양에만 적용되는 설명들은 C/C++ 코드에서 #if #endif 전처리기에 대한 아주 좋은 예시라 여겨진다.

10.
오늘날 "일찍 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와 닿는 말은 "일찍 움직이는 차가 주차 자리를 차지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기타 미분류

11.
공항 안에 개인 물품 보관함 같은 게 있으면 단독 여행 시에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과 계절이 크게 다른 지역을 여행 갈 때 지금 입은 옷을 보관해 놓는다거나, 반입 금지 내지 무게 제한에 걸린 물건을 귀국 때까지 임시로 보관할 수 있게 말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당사자가 보관함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게 곤란하니, 추가 비용을 부담해서 보관 대행을 맡길 수 있어야 하겠다.

12.
비행기와 열차의 큰 차이:
열차는 출발 15분 전부터 승강장으로 입장이 가능한 반면, 비행기는 출발 15분 전에 탑승이 종료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담인데, 내 경험상 인천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견인차에 끌려 터미널을 떠난 순간부터 활주로에 진입하여 이륙을 시작할 때까지도 거의 정확히 15분이 소요된다.

13.
"바탕체 레귤러"라는 서체 이름을 보고는 바탕체 볼드가 아니라
"바탕체 라지"가 순간적으로 먼저 떠올랐다.
요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_=;;
하긴, 아메리카노가 생각이 안 나서 순간 "아프리카노요"라고 주문을 했다는 사람 얘기도 있으니..;;

14.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우측통행, 도로명 주소 등 일상생활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여러 규범이 바뀌었으며, 이런 차원에서 단위도 비표준 단위가 통상적으로 쓰이던 곳까지 SI 단위가 강제 추진되었다.
고기의 무게는 오래 전부터 '근'이 거의 전멸하고 100그램 단위로 다 정착을 한 것 같지만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곳은 부동산에서 다루는 건물이나 땅의 면적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1평'을 '3.3제곱미터'로 바꿔서 실생활에서 유리한 게 없다.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음절수도 너무 많아서 발음하기가 불편하다. 바꿀 거면 사람이 실제로 생각하는 넓이의 덩어리도 1제곱미터나 10제곱미터 단위로 업데이트가 돼야 할 텐데.
참, 그나저나 화면의 크기를 표기할 때 으레 쓰이는 '인치'는 센티미터로 바뀌기라도 했는지 궁금하다. 여기도 평이나 근 만만찮게 좀 이상한 단위가 관습적으로 쓰여 온 곳이니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4/19 08:36 2015/04/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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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발명한 교통수단은 그 형태가 자동차(육상-도로), 열차(육상-철도), 비행기(하늘), 그리고 배(물)라는 네 종류로 크게 나뉜다. 각 교통수단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다닐 수 있는 형태의 길 위에서만 다닐 수 있는데..
군사 같은 특수한 용도를 목적으로 두 분야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하이브리드 교통수단도 드물게나마 있다.

1. 자동차+열차

도로도 달릴 수 있고 레일 위도 달릴 수 있는 차량이다.
바퀴에다가 밖으로 툭 튀어나온 채 레일에 닿는 특수한 휠캡을 끼우는 방법이 있고, 아예 레일 주행용 대차를 타이어의 전후에 따로 갖추고 있다가 필요할 때 내리는 방법도 있다. 전자는 사람이 휠캡을 착탈하는 게 골치아픈 일이겠으며, 후자는 엔진 구동축 자체가 도로 바퀴용과 철도 바퀴용이 둘 존재해야 하니 기술적으로 구현하기가 더 어렵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로+철도 겸용 차량은 군용 내지 선로 시설 보수용 차량으로 일부 존재한다. 우리나라 군용 트럭들은 특수한 휠캡을 끼워서 유사시에 레일 주행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어디에선가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지 확인은 못 해 봤다.
하긴, 과거에는 굳이 동력 엔진이 없는 인력거나 마차조차도 열차 버전이 없지는 않았다. 오늘날도 관광· 레저용으로 레일바이크가 있고 말이다.

2. 열차+열차

사실은 철도는 길에 대한 제약이 가장 심하기 때문에 도로가 아니라 같은 철도끼리라 해도 궤간이 다르면 차량이 못 다닌다. 우리나라야 육로로 인접하는 나라가 사실상 없는 지형에다가 표준궤 단일 궤간이 잘 정착하여 궤간 혼란이 존재하지 않지만, 당장 러시아의 시베리아 철도만 해도 표준궤가 아닌 광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한 선로에다가 궤간이 다른 궤조를 동시에 여럿 설치하는 것이다. 전차선이 아니라 협궤/광궤용 제3궤조가 생기는 셈이다. 이건 이것대로 몹시 힘든 일이며, 선로가 분기라도 하는 곳에서는 작업 난이도가 답이 없는 수준으로 치솟는 걸 감안해야 한다.

궤간 문제를 선로가 아닌 차량을 바꿔서 해결하는 방법은 가변궤간 대차를 설치하는 것이다. 틸팅열차가 대차 위의 객실의 기울기를 조절해서 원심력을 상쇄한다면, 가변궤간 대차는 양 바퀴 사이의 간격을 궤간 변경 구간 사이에서 조정한다.
튼튼하게 꽉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부품의 유격이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가변궤간 대차는 일반적인 고정형 대차보다 수명이 짧고, 정비불량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이것도 마치 앞의 도로+철도 겸용 차량처럼 그냥 A궤간용 바퀴와 B궤간용 바퀴를 둘 다 들고 다니면서 필요한 것을 들었다 놓았다만 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텐데, 둘 다 들고 다니기엔 철도 차량의 대차 부품들은 너무 무겁다는 게 흠일 것이다. 일반적인 화차나 객차를 다 그렇게 만들기에는 경제적이지 못하다.

3. 자동차+비행기

사실, 자동차와 비행기는 한 물건에 다 구겨넣기에는 엔진 구조가 서로 너무 다르고 차체/기체의 외형도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이런 이유로 인해 flying car 같은 물건은 SF 창작물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의 산물로 치부돼 왔다.
하지만 엔진 출력이나 차의 덩치, 연비 같은 실용적인 제약이 없다고 치면.. 고정익기와 회전익기 중 어떤 형태가 자동차와의 융합에 더 어울리는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고정익기 겸용 자동차가 있다면 미국처럼 땅 넓은 데서 원래부터 자가용 비행기를 굴리고 살던 부자들이 아주 좋아할 것이다. 한 기계만으로 하늘과 땅에서 모두 장거리 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량은 도로를 달릴 때는 날개를 잘 접어 두는 기능이 있어야 할 것이고 완전한 고정익 비행기처럼 연료를 날개 안에다 집어넣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착륙을 위해서는 온전한 형태의 활주로가 필요하며 타이어 역시 도로 주행뿐만 아니라 랜딩기어 역할도 할 수 있게 아주 튼튼한 고가의 제품을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비행이라는 게.. 단순히 보조용을 더 원한다면.. 다시 말해 차가 꽉 막히고 있을 때 정체 구간이나 사고 지점만 폴짝 뛰어 넘어갈 수 있고 주차장에서도 옆 차를 밀 필요 없이 원하는 지점에 쏙 드나들 수 있는 걸 원한다면.. 헬리콥터 같은 회전익기 형태의 비행 겸용 차량이 더 유용할 것이다. 고정익기는 뜨고 내리기 위해 활주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역할은 할 수 없다.

아니면 아예 자동차용 제트팩이라도? =_=;;
평소에는 제트 가스를 후방으로 분출해서 가속력을 얻는 데 쓰지만 그걸 아래로 분출하면 차를 뜨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특수한 용도로 쓰이는 초음속 자동차 같은 건 조금만 개조하면 비행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4. 비행기+비행기

비행기 중에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고정익기의 프로펠러로도 쓸 수 있고, 회전익기의 로터처럼도 쓸 수 있게 한 '틸트로터' 형태의 하이브리드가 있다. 바람개비가 향하는 각도를 바꾸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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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헬리콥터처럼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면서도 헬리콥터보다 더 많은 중량을 더 빠르게 수송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구현하기가 어렵고 전반적인 가성비는 어느 한쪽에 특화된 비행기보다 열악하다는 단점도 있어서 널리 쓰이지는 않고 있다.

5. 자동차+배

다음으로 배 이야기를 해 보자.
자동차와 선박 사이의 교배는 '수륙양용'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친숙한 개념이다. 물론 십중팔구 군용차 형태로 말이다. (1) 물에 뜨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방수 처리가 되기 때문에 차체의 대부분이 물에 잠긴 상태에서도 운행 가능한 차, 아니면 아예 (2) 물에서도 뜬 채로 달릴 수 있는 차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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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가 민수용 자가용으로 양산되면 일단 낚시꾼들이 무진장 좋아하겠다. 저 차의 이름은 Python이라고 한다. 전산업계에서는 '파이썬'이라고 명칭이 통일되다시피했는데, 다른 업계에서는 '톤', '손' 등 여러 표기가 혼재하는 듯.)

6. 열차+배/비행기

철도 차량은 그 배타성으로 인해 육지가 아닌 다른 교통수단과의 하이브리드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배는 제끼고 랜딩기어가 철도 차량 형태인 비행기가 있어서 활주로가 철길 형태인 상황만을 한번 가정해 보자.

쇠는 고무보다는 착륙 충격과 마찰열에 더 강하겠지만, 그래도 일반 철길도 매일 유지보수를 해야 하는 판에 레일 활주로가 maintanance-free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활주로 이탈 사고를 크게 예방해 주는 것도 아니고 딱히 유리한 게 없다. 오히려 쇠로 만들어진 바퀴와 대차는 아무래도 중량면에서 불리할 것이고 착륙 후 제동을 거는 데도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음, 그나저나 하늘을 날 수 있는 열차라니 은하철도 999 생각도 나고 철덕으로서 이색적인 느낌이 든다.

7. 비행기+배

사실, 20세기 이래로 하이브리드가 가장 잘 발달한 조합은 비행기와 배끼리이다.
지금과 같은 잘 닦인 공항과 활주로가 없던 시절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강, 호수, 바다에서 쉽게 뜨고 내릴 수 있는 비행기가 있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또한 옛날에는 엔진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관계로, 장거리 비행기는 비행 중에 엔진이 퍼져서 망망대해로 떨어질 위험이 높았다. 그러니 이걸 감안해서라도 물에 뜨고 내리는 비행기는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이었다.

먼저, 다리에 바퀴 대신 뗏목이나 스키처럼 생긴 플로트가 달려서 물에 뜰 수 있는 자그마한 수상기(floatplane)라는 게 있다.
그리고 이것보다는 규모가 크고, 동체 자체가 하부가 둥그렇게 생겨서 물에 뜰 수 있는 비행정(flying boat)이 있다.
A380이나 심지어 An-225보다도 더 커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비행기로 간주되는 휴즈 H-4 허큘리스도 비행정이다. (참고로 '휴즈'의 철자가 Hughes인데.. gh는 알다시피 영어에서 발음이 가장 기괴하게 다양한 걸로 악명 높은 철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비행기 기술이 발달하고 육지에도 공항과 활주로 시설이 구축되면서 배의 기능을 겸하는 비행기는 인기를 잃게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수상기든 비행정이든, 물에 뜨는 데 쓰이는 장비들이 일단 기체가 하늘로 뜬 뒤부터는 항공역학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무게만 차지하는 잉여가 되어 비행 가성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또한 물에 착륙(응? 륙?)하면 활주로나 랜딩기어 타이어의 정비는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착수 충격도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이로 인한 기체의 정비가 여전히 불가피했다. 바닷물이라면 염분 부식 문제도 있고 말이다.

오히려 비행 원리가 적용되어 수면을 수~수십m 남짓 떠서 매우 빠르게 달리는 선박으로는 호버크래프트나 위그선 같은 부류가 있다.
고정익기는 "공기를 거슬러 빨리 달린다 → 날개에 양력이 생긴다"의 순인데 이런 선박의 원리를 설명할 때는 "뜬다 → 물의 저항이 없어서 빨리 달린다"로 순서가 바뀌는 것 같다.
성능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조종을 위해 선박과 항공기 면허가 모두 필요하고 안전 같은 문제가 있어서 이쪽 역시 생각만치 실용화는 못 돼 있다.

* 교통수단간의 이종교배 하나만 생각했는데 글 쓸 것, 생각할 거리가 무척 많고 재미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2/16 08:25 2015/02/16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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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세기 초· 중반이 배경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다면 그 당시 길거리를 달리던 옛날 자동차들도 재연되어야 한다. 이런 '올드카'들은 상업적인 임대 수요가 있으며, 이를 대여해 주는 업체도 응당 존재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원하는 올드카를 못 구하면, 외국으로 진작에 수출된 옛날 국산차를 다시 역수입해 와서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진작에 처분된 차들이 외국에서는 아직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1990년대 이전의 옛날 자동차는 지금의 자동차하고는 당장 연료가 호환되지 않을 텐데 그런 건 어떻게 극복했나 모르겠다. 당장 휘발유만 해도 유연과 무연의 차이가 존재하며 경유 역시 유황 성분이 더 줄어들고 이것저것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는.. 어차피 화면에는 올드카의 외형만 비치면 되니까 엔진은 요즘 차량의 것으로 싹 갈아 버릴 수도 있다.
요즘 관광용으로 일부러 도입해서 굴리는 증기 기관차는 겉모양만 증기이지 석탄이 아닌 석유로 물을 끓인다거나, under the hood는 아예 내연 기관이 달린 디젤 기관차인 경우가 대부분이듯이 말이다.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 엔진 교체는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며, 엔진이 다른 것으로 교체되어 버리면 엔진음은 옛날 차의 것이 그대로 재연되지 못할 것이다.

본인은 지난 올해 상반기 중에 서울 시내에서 포니 2를 한 대 구경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한 차를 20년, 30년씩 굴린 차주들은 당연히.. 주변에서 “그랜저를 줄 테니, 그 포니를 내게 파시오.” 식으로 제안하면 절대로 응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엄청나게 길게 길러서 기네스북급의 기록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해도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그걸 안 자른다. 하물며 자기 인생을 함께한 올드카 애마를 돈 몇 푼에 처분하겠는가?

우리나라의 올드카 수집가로 유명한 사람은 이걸로 아예 직업을 삼은 금호 상사의 대표 백 중기 씨이다. 금호 렌터카와 혼동하지 말도록. 이미 1970년대부터 길거리에서 소리없이 사라져 가는 올드카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고 시발 자동차 택시, 기아 삼륜차, 이 승만· 박 정희 대통령의 관용차 등 까마득한 올드카들을 수집해 왔다고 한다.

단종되고 제조사로부터 A/S가 더 없고 부품을 정상적인 통로로 구할 수 없는 자동차는 소프트웨어로 치면 지원이 완전히 종료된 abandonware나 마찬가지이다. 저분은 수백여 대의 올드카를 보유하고 있다는데 단순 정태보존인지, 아니면 운전이 가능한 동태보존의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세금· 보험료 같은 굴레 없이 수집이 가능했는지도 궁금하다.
거기에다 평상시에 보존· 유지를 위해 물리적으로 깨지는 비용을 생각하면 올드카 임대를 통해 그렇게까지 많이 수지 맞는 장사를 해 온 건 아니라고 함. 아무튼 덕업일치에 좋은 일을 해 온 대단한 분이다.

2.
그리고 올드카 얘기 하나 더.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새한 자동차 시절의 구닥다리 8.5톤 덤프 트럭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한 자동차계의 노인학대가 존재한다는 정보를 엔하위키를 통해 전격 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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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에서 생산한 바퀴 10개짜리 카고트럭.
무려 1940년대 중반에 생산된 군용차인데, 현역에서는 1970년대에 물러나고 민수용으로 풀린다.
그런데 그런 차가 충북 내지 강원도의 오지에서 적어도 2000년대 중후반까지 혹사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 차의 애칭은 '제무시 트럭'이다. GMC를 일본식으로 읽으면 '지-에무-씨'가 되는데 그걸 줄여서 '제무시'라는 기괴한 명칭이 된 것.
군용차는 무겁고 완전 기름 먹는 하마 급의 연비를 자랑하지만,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튼튼하며 어지간한 트럭이 지나갈 엄두를 못 내는 험지나 오르막도 거뜬히 오른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이 트럭의 활약기를 살펴보시기 바란다.

3.
세워진 자동차에 주차료가 부과되는 것만큼이나 공항에 세워져 있는 비행기에는 시간에 비례하여 주기료가 부과된다. 이거 생각보다 꽤 비싸다. 인천 공항에 보잉 747 여객기를 세워 놓는 비용은 하루 기준으로 거의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지금은 더 올랐을지도 모름)

물론 보잉 747은 어마어마하게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거대한 물건이긴 하나, 어쨌든 금액의 스케일이 10분당 1천원 꼴로 주차료를 받는 서울 시내의 좀 비싼 유료 주차장의 임률도 아득히 초월하는 셈이다. 게다가 인천 공항 정도면 주기료가 합리적이지, 공항 이용 비용이 악랄하게 비싼 축에 드는 공항도 아니다.
비행기는 하늘을 날면서 승객과 화물을 나를 때는 돈을 벌어다 주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만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수 년 전엔 인천 공항의 주기장 한쪽 구석에는 태국, 이란 등 운영이 제대로 못 되고 있다가 사실상 망한 항공사의 여객기가 최대 4대 무단 방치된 적이 있었다. 2년 넘게 방치된 비행기는 당장 운용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주기료도 수억원 대가 넘게 밀렸을 텐데... 2010년대 이후로는 뉴스 기사가 더 보도되지 않는 걸로 보아 지금쯤은 인천 공항 측에서 그런 흉물을 임의로 압류· 매각을 해서 처리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도 남북 관계가 안 좋아져서 개성 공단이 가동이 몇 달 중단된 동안 기계들이 다 망가졌다고 공장주들이 울상이었다. 자동차만 해도 한 달 정도만 안 몰고 있으면 상태가 어찌 될지 알 수 없는데 기계라는 게 참 그런 특성을 가진 물건인 것 같다. 장기간 가동을 안 할 거면 연료를 빼내고 장기 보존 가능한 특수한 처리라도 해야 할 터.

4.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모하비 사막에는 '모하비 공항'이라는 생소한 공항이 있다. 얘는 세관· 검역 시설을 갖춘 국제공항도 아니고 정기 운항 비행기도 없이 사막에 덩그러니 놓인 듣보잡 공항일 뿐인 것처럼 보이나, 다른 공항에는 없는 특별한 속성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식 타이틀이 단순 airport가 아니라 air and space port라는 것. 즉, 여기는 단순 항공기뿐만 아니라 민간 우주선(Spaceship One 같은)이 이착륙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는 바로 민항기의 양로원 내지 무덤이다. 건조하고 땅값 저렴한 사막이다 보니 전세계에서 퇴역한 항공기, 혹은 망한 항공사로부터 매각된 항공기들이 여기에 수두룩하게 쌓인다. 아직 현역으로 구를 만해서 다른 항공사로 저렴한 중고로 팔려간다면 다행이지만, 상품성을 상실할 만큼 심하게 노후한 항공기는 여기서 폐기되어 부품이 뜯겨 나간다.

5.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 근처(근처..래 봤자 수백~천수백 km 떨어져 있지만)에 있는 아리조나 주의 데이비스 몽선(Davis-Monthan) 공군 기지 인근에는 '노후 전투기 보관소'가 있어서 수천 대에 달하는 퇴역 군용기들이 보존되어 있다. 미 해군, 공군, 해병대가 쓰다가 퇴역시킨 군용기들은 거의 다 여기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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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남아 있는 항공기들은 대략 70%가량은 약간의 수리를 거친 뒤 다시 비행이 가능한 정도라고 한다.
모하비 공항은 인근에 에드워즈 공군 기지가 있긴 하지만 공항 자체는 민간 공항이다. 하지만 여기는 주 보존 대상도 군용기들이고 엄연한 공군 시설 내부이다.

이 보관소의 항공 사진을 보노라면 “전투기는 많지만 조종사가 없습니다(부족합니다)!”라고 하는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의 대사가 고증에 굉장히 충실하게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여러 조종사가 한 비행기를 굴리가면서 타는 게 일반적이지, 전투기가 조종사보다 더 많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과연 show me the money 국가인 미국이니까 가능한 스케일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1/07 08:27 2014/11/0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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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적인 자동차

잘 알다시피 핸들 조작을 통해 앞바퀴의 진행 방향을 좌우로 꺾을 수 있다. 앞바퀴의 조향은 직관적이며 조향 중에 전방만 잘 응시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모퉁이에서 너무 서둘러 조향을 시작하는 바람에 회전 방향의 안쪽의 장애물과 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날 가능성을 줄인다는 뜻. 하지만 제일 전방에 있는 바퀴가 돌기 때문에 조향을 위한 회전 반경이 커진다는 단점도 있다.

방향이 꺾인 앞바퀴는 회전 중에 좌우의 바퀴가 서로 다른 속도로 돌게 된다. 회전반경 안쪽의 바퀴가 더 천천히 돌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전륜구동이라면 회전 중에 이런 것까지 감안해서 좌우의 바퀴에 엔진의 동력이 서로 다른 비율로 전달돼야 한다는 점을 혹시 생각해 보셨는지? 자동차 파워트레인의 차동기어가 하는 일이 이것이다.

2. 지게차

좁은 공장 안에서 작업하는 것까지 염두에 둔 이런 차량은 회전 반경을 최소화하기 위해 앞바퀴뿐만 아니라 뒷바퀴도 자유자재로 조향 가능하다. 평소에 도로를 직진으로 주행할 때도 조향은 뒷바퀴로 하는 편이라고 한다.

3. 탱크 같은 무한궤도 차량

얘는 모든 바퀴가 무한궤도에 일렬로 매여 있기 때문에 특정 바퀴만 방향을 틀 수가 없다. 그럼 조향을 어떻게 할까?
의외로 간단하다. 왼쪽 궤도와 오른쪽 궤도의 회전 속도만 인위적으로 다르게 하면 된다. 바퀴가 마치 지네처럼 앞, 중간, 뒤 등에 온통 달려 있기 때문에, 오히려 차량의 중앙을 축으로 삼고 제자리에서 차체를 빙글빙글 돌리는 것조차 가능할 정도이다. 즉, 탱크는 조향 능력에 관한 한은 지게차에 필적할 정도로 탁월하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4. 철도 차량

깔끔하게 '노답'이다. 철도 차량은 운전대에 핸들에 대응하는 기기가 없으며, 오로지 전진 아니면 후진만 가능할 뿐 스스로 조향을 전혀 할 수 없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선로 분기는 전적으로 외부에서 해 줘야 한다.

5. 비행기

비행기는 날고 있을 때는 날개의 배치를 바꿈으로써 공기의 흐름을 바꿔서 좌우 정도가 아니라 상하로도 기수의 진행 방향을 조정한다. 양력을 얻는 주날개뿐만 아니라 수직 꼬리날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비행기의 랜딩기어 바퀴는 자동차 바퀴처럼 조향이 가능하다. 옛날 비행기는 뒷바퀴를 조향하는 형태였지만 요즘 비행기는 자동차처럼 앞바퀴를 쓰는 게 추세라고 한다.

대형 여객기는 복잡한 여객 터미널에서 활주로로 이동할 때 견인차의 도움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바퀴는 어떤 것이든 방향 전환이 가능하긴 해야 한다.
물론 헬리콥터는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물건이니 지상에서의 조향은 전혀 필요나 의미가 없다.

6. 선박

선박의 추진력을 책임지는 선미 부분의 스크루를 보면, 뒤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방향키라고 불리는 칸막이 같은 게 있다. 조타기를 돌리면 바로 그 칸막이의 각도가 바뀌며, 스크루의 회전에 의해 밀려난 물의 진행 방향이 바뀐다. 이로써 배의 진행 방향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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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배도 개념적으로 뒷바퀴를 조향하는 셈이다. 오늘날의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배를 항구에다 사고 없이 제대로 정박시키는 것은 '도선사'라는 별도의 전문직을 필요로 할 정도로 대단히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자동차로 치면 '발렛 파킹'이다.

한편, 옛날의 외륜선은 그럼 조향을 어떻게 했는지가 좀 궁금해진다. 걔네들도 바퀴 바로 뒤에 물의 진행 방향을 바꾸는 장치가 있었나? 아니면 외륜 자체를 조향하는 장치가 있었는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는 일반적인 동그란 핸들이 달려 있다.
조향 장치가 없는 철도 차량은 가속과 감속을 시키는 레버가 운전의 상징이다.
(자동차만 핸들의 중심이 유난히 두터운 건.. 다들 에어백이 달려 있어서 그런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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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3차원 공간을 떠 다니는 물건이다 보니 조이스틱 같은 조종간이 있다.
그리고 배는.. 물레방아처럼 생긴 동그란 고리인데 고리의 밖에도 일정 간격으로 손잡이가 달린 그 전형적인 조타기가 아무래도 상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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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소속 국가가 좌측/우측 중 어느 방향 통행을 표준으로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운전대의 위치가 달라진다.
그러나 비행기는 승객은 진행 방향 기준 무조건 왼쪽으로 탑승하고, 화물은 오른쪽으로 탑승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전세계 공통 관행이다. 그러니 여객기에 승객용 탑승교가 연결된 사진을 찾아 보면 10이면 10 모두 왼쪽에 붙어 있다.
철도는 애초에 조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대 방향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고, 선박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4/10/29 08:31 2014/10/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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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하철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차라리 선로로 대피하는 게 낫다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소사보다는 질식사가 훨씬 더 많다는 게 상식이다.
일반적으로는 깊은 지하가 빛도 안 들어오고 산소도 부족해서 생존에 불리한 게 사실이지만, 지하철은 말 그대로 지하에 뚫린 길이다. 지하가 길이 더 없는 막다른 던전이 아니라는 큰 차이가 있다.

유독가스는 위로 굉장히 빠르게 잘 퍼진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때도, 발상을 전환하여 앗싸리 선로로 대피해서 멀찌기 인접역까지 걸어 간 후 거기서 지상으로 빠져나온 소수의 사람들은 다 별다른 부상 없이 멀쩡히 살아 나왔다.
그 반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당장 지상과 더 가까워 보이는 화재 발생 당역의 출구를 통해 나가려 했으며,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살아서 빠져나가지 못하거나, 생존하더라도 유독가스 흡입으로 인해 몸이 상했다. 후자가 더 안전할 것 같은데 결과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특히나 지하 n층 이하의 매우 깊은 역이라면 정말로 무리해서 지상으로 빠져나갈 생각일랑은 버리고 선로로 대피하는 게 더 훨씬 더 안전할 것이다. 선로가 단선 쌍굴이라면 통행하기가 좀 무섭겠지만, 그래도 지하철에서 그 정도 사고가 났다면 어차피 근처 열차들은 안전 장치 내지 사령부로부터의 지시를 받고 멈추니 열차에 치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단, 요즘은 스크린도어가 역설적으로 이런 선로 탈출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2. 구명조끼는 탈출 후에 부풀려라

육상 교통수단과는 달리 비행기나 배는 사고가 났을 때 사망, 부상뿐만 아니라 실종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탑승 전에 신분증으로 탑승객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한다.
또한 얘들은 추락이나 침몰로 인해 동체가 수면에 떨어질 수 있다. 안전벨트와 산소 마스크는 비행기에만 있지만, 구명조끼는 두 교통수단이 공통으로 갖추고 있다.

비행기나 배의 위급 상황에서 구명조끼를 잘 착용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거기에다 공기를 주입해서 부력을 만드는 건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해당 동체를 탈출하여 밖에 나온 뒤에 해야 한다.

이미 물에 빠져서 내부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배나 비행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잠수를 해야 할 수도 있는데, 너무 일찍 공기를 집어넣으면 이것 때문에 동체에서 탈출도 못 하고 거기서 갇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1996년의 에티오피아 항공 961편 피랍 사건과 최근의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선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람들이 부풀어 오른 구명조끼를 입고 있던 것은 바르게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저 비행기 피랍 사건도 마찬가지다. 동반 자살을 유도하던 테러리스트 때문에 비행기는 연료가 고갈되어 추락했다. 기장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기체를 바다 위에 최대한 안전하게 착수시켰으며, 적절한 대처를 한 공로를 인정받아 나중에 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170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 중 목숨을 부지한 사람은 50명에 그쳤는데, 사망자들은 구명조끼를 기내에서 미리 부풀리는 바람에 침수되고 있는 동체에 갇혀서 최후를 맞이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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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0 08:34 2014/07/3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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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흔히 육해공 3군으로 나뉘는데, 이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육군: 땅개로 설명 끝이다. 장병들은 병영에서 생활하면서 각종 작업이나 일과 수행을 위해 온갖 장소를 돌아다녀야 한다. 보병+소총수라는 제일 기본 보직이 있으며 이들에겐 행군 능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단, 의사 중에 TOP은 외과 의사이듯이, 육군 중의 TOP 병과는 역시 포병이 아닌가 싶다.
  • 해군: 배가 곧 생활 공간 겸 전장이기도 하다는 게 중요한 특징이다. 해군만의 그 특유의 세일러 복장이 있다. 육군에 행군과 화생방이 있다면 해군엔 전투수영이 있다. 연평해전, 천안함 등의 사건으로 인해, 근래까지 병사들 중에서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한 전사자가 제일 많이 나온 곳이다.

그리고,

  • 공군: 여타 군과는 달리 공군은 소수의 전투기 조종사를 지원하고 비행장· 기지 내부를 방어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투 병과의 비중이 높으며, 병사가 무슨 비행기 타고 영공을 지키다가 전사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육군 같은 행군· 숙영은 없지만 화생방의 비중이 높다.

공군 훈련소에서 수류탄 훈련은 완전 야메로 넘기면서 교관이 “너희들이 이걸 던지는 상황이라면 전쟁은 이미 진 거다.”라고 말하는 건 유명한 일화인 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기지 바깥을 몇 겹으로 지키고 있던 육군 병력이 전멸했다는 뜻이므로.

군용기에는 비행기 대 비행기가 싸우는 전투기만 있는 게 아니다. 지상에다 다량의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 전문인 폭격기도 있고, 정찰기· 조기경보기도 있다. (한편, 전투와 폭격을 겸할 수 있는 공격용 군용기를 전폭기라고 한다)
그리고 또 무시 못 할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다름아닌 수송기이다. 방대한 물량이 생명인 오늘날의 전장에서 군대 유지의 생명은 보급이다. 수송기는 이 보급을 책임지는 물건이기 때문에, 비록 전투기 같은 화려함은 없을지언정 전쟁에서의 숨은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배보다 수송량은 부족하지만 속도가 워낙 넘사벽이니..

역사적으로 볼 때 월남전의 상징이 헬리콥터라면, 걸프전 하면 수송기를 떠올려도 좋다. 다량의 수송기 덕분에 그 먼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에 미국(+다국적군)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조종사밖에 못 타는 전폭기만 먼저 도착해 있으면 뭘 하나. 정비 인력, 각종 부품, 무장, 보급이 없는데?

군용 수송기는 웬지 프로펠러기가 많이 눈에 띄는 것 같다. 본인의 직장이 있는 판교도 아무래도 서울 공항과 가까운 곳인지라 종종 수송기가 저공으로 날아다니는 게 눈에 띈다.
굳이 군용기뿐만이 아니라 화물기가 전반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얘네들은 민항기에 비해 랜딩기어가 굉장히 낮은 걸 볼 수 있다. 개로 치면 다리가 몹시 짧은 닥스훈트 같은 품종? 기체가 지면에 더욱 가까이 있다. (왼쪽은 보잉 737, 오른쪽은 수송기 C-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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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실 화물을 싣는 모든 교통수단들이 공통으로 갖는 특징이다. 기체의 높이가 낮아야 무거운 화물을 기내에 반입하기가 쉬우니까. 시내버스만 해도 사람이 타기 불편하다고 저상 버스가 있는 지경인데 하물며 화물은 어떠하겠는가? 짐받이에다가 탑승교를 마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영화에서도 종종 보지만, 수송기의 뒷문은 아예 아래로 열어젖혀서 화물을 싣는 입구 램프(ramp)로 종종 쓰인다. 중세 영화 장면에서 성(castle)문을 바닥 쪽으로 열어서 문짝을 그대로 도랑과 성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bridge)로 쓰듯이 말이다.
이렇게 비행기의 기체가 지면과 가깝게 낮아지다 보니, 날개는 기체에서 상당히 윗부분에 달릴 수밖에 없어진다. 그래야 날개 밑에다 엔진이든 프로펠러든 달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수송기의 외형은 일반 민항기와는 살짝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런 날개의 구조는 비행기의 연비 절약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특성은 아니라고 한다.
또한, 군용차만 해도 사륜구동에 차체가 온통 무거운 쇳덩이여서 튼튼하고 힘은 좋다만, 완전 기름 먹는 하마이지 않던가. 군용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장에서 임시로 만들어진 거칠고 험악한 활주로에서도 안 부서지고 뜨고 내릴 수 있게 튼튼하고 다소 무겁게 만들어진다. 그러니 군용 수송기는 민항기보다 경제성이 여러 모로 떨어진다.

앞서 말했듯이 수송기는 전투기보다 '간지'가 덜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종 병과를 전공한 정예 공군 장교가 도저히 전투기를 조종할 수 없게 됐을 때 차순위로 빠지는 게 수송기나 헬리콥터 쪽 보직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보직으로 가는 인원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전투기의 조종간을 잡은 경험만이 공군 장성으로 진급할 때나 전역 후 민항사로 재취업할 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수송기 경력은 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송기도 전쟁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니, 그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 덧붙이는 말

1. 수송기 추락 사고

우리나라는 1982년에 도대체 무슨 마가 씌였는지 군 수송기가 두 대나 산에 추락하는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하나는 2월에 제주도 한라산이고, 다른 하나는 6월에 서울 청계산.
사고의 원인(악천후 때문에 방향· 위치 감각 상실), 사고 기체(C-123),
게다가 인명 피해(50여 명의 탑승 장병 전원 사망)까지 완전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그 이듬해에 민간에서 워낙 큰 사건· 사고가 또 나긴 했지만(KAL기 추락, 그리고 아웅산 폭탄 테러)
5공 시절에 군 내부에서 발생한 저 사고는 완전히 흑역사로 치부되고 비밀로 함구되었으며, 희생자 유족은 제대로 된 보상이나 예우도 못 받았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관련 자료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저런 거야말로 재조명과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이슈가 아닌가 싶다.
과격한 훈련 중에 전투기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날씨 때문에 육지 지형을 파악 못 해서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게 애석하다. 뭐, 기체의 노후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는 듯하지만 말이다.

2. 조종사가 되기

항공업계는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위험한 전문직군이다 보니, 의료계와 더불어 조직 내부의 군기가 세고 그 대신 종사자의 대우도 매우 좋은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공군 사관학교 + 조종 병과로 가는 것이다. 군기 바짝 든 건장한 공군 출신 조종사는 민항사에서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이건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가 보장돼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어릴 적부터 몸 좋고 공부도 매우 잘해야 하거니와, 돈이 안 드는 대신 인생의 상당량을 국가를 위해 고된 군생활에 바쳐야 한다.

게다가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의 의무 복무 기간은 10년이지만, 공군 조종사만은 그 기간이 15년이다. 양성 비용이 워낙 많다 보니 국가에서 좀 더 오래 뽕(?)을 뽑아야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예전에는 군을 거치지 않고 민간 테크만으로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사실상 외국으로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미국은 자동차는 이미 신발이나 다름없는 필수품이고, 진짜 돈 많은 유명인사는 자동차를 넘어 자가용 비행기까지 날리는 천조국이니 말이다.
지금은 상황이 나아져서 국내에도 차츰 항공 관련 학과가 개설된 대학이나 조종사 양성소가 생기고 있다. 그러나 국내든 국외든 그야말로 극심한 돈지랄은 불가피하다. 그 비싼 비행기를 조종하는 법을 배우는 게 돈으로나 노력으로나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을 거쳐서 배출된 조종사는 한동안 자기 연봉에서 교육비가 공제된다. 그런 식으로 채무를 청산한다. 청산이 완료되기 전에 조종사가 그 회사를 퇴사한다면 미납 교육비를 모두 뱉어 주고 나가야 한다.

그러고 보니, 대한 항공 조종사 출신인 말씀 보존 학회 대표가 문득 대단하게 보인다. =_=;;; 공사가 아닌 민간 출신이다. 킹 제임스 진영을 이끄는 사람들은 다들 참 똑똑한 사람들이긴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3/08/05 08:36 2013/08/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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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협동체와 광동체

철도에는 잘 알다시피 궤간(케이프/협궤 1067, 스티븐슨/표준궤 1435 등)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런데 여객용 비행기에도 기체의 폭(그리고 크기도 덩달아)을 구분하는 간략한 잣대가 존재한다.
바로 협동체와 광동체.
객실에 복도가 한 줄로만 존재하는 기체는 협동체이고, 두 줄 존재하는 기체는 광동체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육상 교통수단들은 버스든 열차든 선택의 여지 없이 복도가 한 줄만 존재하는 협동체이다. 차로의 폭과 궤간의 제약에 곧장 걸리기 때문이다. 2-2가 가장 무난하고 보편적이며, 우등 고속버스나 KTX 특실 정도만이 2-1이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우리나라 철도엔 2-3짜리 아주 불편하고 열악한 객차도 있긴 했는데 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이다.

배야 그런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넘사벽급의 대형화가 가능하니 논외이다.
그 반면 비행기는 폭에 관한 한, 둘의 중간 위상에 속하는지라 한 줄 아니면 두 줄이라는 구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협동체는 2-2 또는 끽해야 3-3이 보통이다. 그러나 광동체는 2-4-2, 3-3-3, 3-4-3 등의 좌석 배치가 가능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항공 교통 시장이 커지고, 한번에 승객을 최대한 많이 태우는 비행기가 개발되어야만 했다.
허나 비행기는 무슨 열차처럼 길이를 무한정 길게 할 수 없다. 비행기를 무슨 굴절 아코디언 버스 같은 형태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기체가 너무 길어지면 택싱 때 활주로의 최소 회전 반경에 걸리고 공항 격납고 같은 주기(駐機) 시설의 크기에도 부담을 끼친다.

그럼 높이는 어떻냐는 발상이 나온다.
육상 교통수단 중에는 2층 버스도 있고 국내엔 열차 중에 ITX-청춘 같은 2층 열차가 있다.
더구나 활주로 같은 공항 시설들도 위쪽은 뻥 뚫린 하늘이니, 비행기의 높이를 살짝 높이는 것은 항공역학적인 문제만 없으면 현실적으로 가장 제약이 덜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오늘날은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드디어 실제로 에어버스 A380 같은 2층 여객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옛날에는 비행기에서 2층 객실은 전좌석의 비상 탈출구 설치 요구조건을 만족할 수 없어서 이마저도 여의찮았다.

민항기에는 “비상시에는 인근의 비상구를 이용하여 기내의 모든 승객이 90초 안에 밖으로 탈출이 가능하게 설계되어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최근의 아시아나 항공 소속 여객기의 착륙 사고(추락 사고가 아니다)를 통해서도 이 규정의 중요성이 잘 부각되어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객실이 2층이 되면 이게 쉽사리 가능해질까?

그러니 길이와 높이 다음으로 비행기의 몸집을 미묘하게 더 키우기 위해 폭이 고려되었으며, 그 결과 한 줄에 10명 정도를 실을 수 있는 광동체 여객기가 개발되었다. 비행기는 무슨 열차 수준으로 폭을 꽉 맞춰야 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어차피 비행기의 실질적인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날개의 폭이나 수직미익의 높이 같은 극단적인 요소이다. 그런 규격을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동체의 크기만 살짝 키운 것은(나머지는 엔진의 성능 같은 걸로 보강?) 기존 공항이나 격납고에서의 운용에 별다른 문제를 끼치지도 않았다고 한다.

역사상 최초로 상업용 양산에 성공한 ‘광동체’ 여객기는 그 이름도 유명한 보잉 747이다. 그러고 보니 인텔의 80x86 CPU만큼이나 보잉도 그냥 숫자만으로 제품명을 정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경쟁사인 에어버스는 앞에A자라도 붙이는데.. (에어버스가 그럼 AMD인 거냐!)

보잉 747은 에어버스 A340, A380과 더불어 엔진이 4개 달린 얼마 안 되는 비행기이기도 하다. (외형을 보면, 날개 하나에 팬이 2개 달려서 총 4개. 단, 엔진들이 양 날개에 균일한 간격과 위치에 놓여 있지는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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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거의 모든 비행기들은 양쪽에 하나씩 그냥 2개이며, 요즘은 광동체급의 대형 여객기도 그러하다.
자동차 엔진도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2000cc만으로 30년 전의 3000cc 이상급 엔진의 출력을 내는데,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되겠다.

물론 A380은 워낙 덩치가 크기 때문에 응당 4엔진이다. 보잉 747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기의 타이틀을 차지했다.

2. A380

747은 1등석-비즈니스석을 없애고 전부 이코노미로 개조할 경우 520여 명이 탈 수 있다. 일본은 실제로 그렇게 개조를 한 뒤 747을 국내선에다 굴리고 있다.
일본은 신칸센 열차를 5분 간격으로 지하철처럼 굴리고, 지하철도 출퇴근 시간엔 좌석을 접고 모든 승객을 입석으로 만들어서 굴리기까지 하는 콩나물 시루 같은 나라이다. 비행기도 그런 식으로 운영하는 게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닐 듯.

그런데 A380은 800에서 무려 1000명까지도 탑승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진짜 KTX 수준이다. 그 인원을 태우고 선로 위를 달리는 게 아니라 아음속으로 하늘을 난다니..;; 747은 조종석과 특실만 2층이지만, A380은 아까도 말했듯이 실제 2층 객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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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985년에 일본에서 JAL123 추락 사고가 난 뒤로는 단일 기체에 500명이 넘는 너무 많은 인원을 태우는 건 안전상 꺼리는 분위기가 일어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가 됐나 보다.

3. An-225 화물기

그럼, A380보다 더 큰 비행기가 설마 있을까?
항덕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안토노프(Antonov) An-225라는 수송기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이다.
이건 크고 아름다운 걸 추구했던 구소련 시절의 산물이다. 냉전 시절에 차르 봄베라고 해서 세계에서 가장 큰 핵무기를 만들어 실험용으로 터뜨린 동네도 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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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225는 1988년에 단 한 대밖에 생산되지 않은 명물이다.
저 정도 크기면 탱크, 우주왕복선 등.. 무거운 기계류들을 못 실을 게 없었을 것이다. 정작 미국은 거대한 자기네 우주왕복선을 747 개조 수송기로 날랐는데 말이다.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듯.. An-255는 엔진이 무려 6개가 달려 있다!

활주로에 끼치는 무게 부담을 줄이려고 랜딩기어는 7열로 늘어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행기가 한번 착륙하고 나면 어지간한 공항의 활주로는 열과 충격 때문에 남아나질 못했다고 한다. 이륙하는 데도 3km가 훨씬 넘는 긴 활주거리가 필요하다.

저게 우리나라에 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An-225급의 비행기가 무사히 뜨고 내릴 수 있는 공항은 국내에서는 인천 공항의 4km짜리 제3활주로밖에 없다고 한다. 원래 이 광활한 활주로는 A380을 모시려고 만들어진 신설 활주로이다.

4. 비행기 조종 면허

자동차의 운전 면허 체계는 최소한의 유동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대형차 면허는 소형차 면허도 덩달아 포함하는 구조이다.
그리고 면허는 차체의 크기뿐만 아니라 차량의 성격(개인용/영업용), 법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승차 인원수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1종 보통 면허로 승합차는 15인승까지밖에 못 몰지만, 트럭은 대형 버스급의 11톤까지도 몰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 조종은 그렇지 않다. 소형이든 대형이든 무조건 단일 기종만 몰 수 있다. 747로 면허를 딴 파일럿은 오로지 747만 조종할 수 있지, 비슷한 급의 광동체 여객기라고 해서 787이나 767 같은 건 조종할 수 없다. 그렇게 조종 면허를 상호 호환시키기에는 비행기의 내부 구조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영세/저가 항공사들은 보유 기종을 무조건 보잉 737 같은 식으로 통일하는 게 필수이다. 다양한 기종이 존재하면, 골치 아파지는 게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민항기 시장에 신규 업체가 진출하려면 “자사의 기체는 보잉 xxx 면허와 완전 호환” 이런 식으로 선전을 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과거에 에어버스가 처음 끼고 들어올 때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3/07/10 08:38 2013/07/1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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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 저수지 답사를 마친 뒤 다음으로 본인이 간 곳은 또 다른 철도 성지였다.

2. 철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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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이제 내가 여기를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으로 방문하는 날도 찾아오는구나! 그렇잖아도 의왕 역에서 철도 박물관까지 가려면 수백 m 이상 걸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주차는 공간이 아주 넉넉하고 요금 걱정도 없고 아무 문제 없었다.

예전에 철도 박물관은 겨우 몇백원 대의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저렴한 입장료를 징수했으며 그나마도 철도 회원은 동반 1인까지 아예 무료 입장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가 보니 그런 대인배스러운 제도는 언제부턴가 없어져 있었다. 일반인은 입장료 2천원을 내야 하며, 철도 회원 혜택 같은 거 없다.

물론 난 철덕으로서 예전에도 여길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를 또 찾아간 이유는, 여기가 반월 저수지로부터 10km가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겸사겸사 또 찾아갈 만한 명분이 성립하고, 개인적인 볼일이 좀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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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경부선 선로에 대한 좋은 전망을 제공하는 것도 철도 박물관으로서 장점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아까의 KTX 촬영지와 마찬가지로, 이 박물관의 근처에도 저수지가 있다는 점이다.

철도 박물관에서 본인은 부족했던 박물관 관련 사진을 찍고 자료를 수집했으며, 방문 기념으로 구내 서점에서 다음 아이템들을 질렀다. (정 용태 님, 보고 계신지? 레일러 14호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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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판매하던 철도 박물관 도록은 이제 절판되고 없었다. 있을 때 사 놓길 잘했다. 그 대신 동인지 <레일러>를 박물관에서 정기적으로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박물관 직원을 불러서 새마을호의 역사와 관련된 날짜가 두 군데 잘못 소개되어 있는 걸 고쳐 달라고 건의를 했다.
차량실에 새마을호 PP 디젤 동차가 1987년 7월 1일부터 운행을 시작했다고 소개되어 있는 걸 7월 6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고,
반대로 새마을호 PP가 최초로 서울-부산 4시간 10분 운행을 시작한 것도 아니라고 얘기해 줬다. 그건 PP가 등장하기 전에 1985년 11월 16일부터 달성된 것이니까 말이다.

3. 오봉 역

철도 박물관 다음으로 승용차로 가 보지 않을 수 없는 철도 명소로는 오봉 역을 빼놓을 수 없다.
얘는 경부선에서 분기하는 지선인 남부 화물기지선의 끝에 있는 역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객 영업 없이 화물만 취급하는 역이다.
먼 옛날에는 경부선 전철 의왕 역의 이름은 '부곡'이고 오봉 역이 '의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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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박물관과 오봉 역의 거리는 4km도 채 되지 않는다.
입구에 경비실이나 차량 진입 차단기 같은 건 없는지라, 별 부담 없이 차를 끌고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단, “직원 차량 외 주차 금지”라는 압박을 주는 표지판이 있긴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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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건물은 이렇게 생겼다.
철덕들 중에는 아예 승강장 내부로 들어가서 사진 촬영을 한 사람도 있는 듯하던데 난 차마 그렇게는 안 하고 잠시 있다가 다시 나갔다. 그 대신 이런 근처의 선로 사진을 좀 남겼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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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 부산 일대도 면적이 무척 넓고 철도 배선이 의외로 복잡하며, 항구나 공업 단지로 빠지는 지선 철도가 많기 때문에 승용차를 끌고 답사할 만한 곳이 무척 많을 것이다.

4. 김포 공항 근처

수도권 남부의 “반월 저수지-철도 박물관-오봉 역” 3대 명소를 아우르는 테마 여행을 이렇게 잘 마쳤다.
임무를 다 마쳤으니 이제 집에 갈까 생각했는데 아직 시간이 좀 더 남아 있었고, 철도를 출사한 날 비행기도 같이 출사하여 둘을 비교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점심을 먹을 생각도 포기하고, 국도 1호선을 타고 서울 서부로 간 뒤 곧장 다시 김포 공항으로 향했다. 해가 지기 전에 가야 하니 말이다.

반월 저수지가 KTX 촬영의 명당이라면, 오쇠 삼거리는 비행기 출사의 명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말 공교롭게도 여기도 전철 김포공항 역으로부터는 3.2km 정도 떨어져 있다. 다만, 여기는 버스가 수시로 많이 지나다니는 편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는 비교적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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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주변의 흔한 보안 경고문.
여기는 시끄러운 비행기 소리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이지만, 엄연히 국유지이기 때문에 민간인이 무단으로 이곳 땅을 이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도 처음 와 봤을 때에 비해서는 주변에 이것저것 공사도 많이 진행 중인 것 같았다.
덕분에 주차는 샛길 인근에 아무데나 얼마든지 해도 되니 걱정할 것 없다.
여담이지만 이 공항 주변의 황무지 일대에는 군부대인지 예비군 훈련장인지 어쨌든 군사 시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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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여기 온 보람이 있었다.
지금 비행기가 놓인 저 활주로 말고, 왼쪽에도 활주로가 하나 더 있었으며 공항 내부의 비행기는 그 왼쪽 활주로에서 이륙을 하는 편이었다.
김포 공항에서는 아까 KTX보다도 더욱 자주, 수 분 간격으로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가 이착륙했다.

이륙은 본인이 서 있는 공항 남쪽으로 하는 게 아니라 북쪽으로 한 관계로 근접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하지만 착륙은 다행히 근접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마치 UFO처럼 아주 멀리서 불빛만 어렴풋이 보이던 비행기들이, 형체와 비행 소음이 갈수록 커지더니 공항 담장 너머로 사뿐이 착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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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덕들은 비행기 한 대만 보면 보잉 7xx 같은 기종은 물론이고 소속 항공사 같은 것도 곧바로 입에서 튀어나올 것이다.
의외로 여객기 말고도 소속이 어딘지 모를 터보프롭 경비행기 같은 것도 착륙하는 게 종종 목격되곤 했다.
그런 작은 비행기라면 모를까 중형 여객기 이상 되면, 랜딩기어가 활주로에 닿을 때 마찰로 인한 연기가 튀는 게 이 멀리서까지 보였다.

이곳에 공개하지 않은 다른 사진과 동영상도 많이 찍었다. 소기의 방문 목적을 달성했다.
내가 선 지점은 여전히 공항 담장으로부터 500m에 가깝게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그래도 비행기의 착륙 경로와 일직선상에 있고, 지대가 살짝 높은 덕분에 보다시피 공항 활주로까지 어렴풋이 보인다는 점이 좋았다. 다음에 또 촬영할 기회가 있을 때는 다른 장소도 탐색해 봐야겠다.

동영상들을 보니, 보잉 737급의 여객기가 내 머리를 지난 뒤, 활주로에 착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23~25초였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활주로의 착륙 지점까지의 거리는 정황상 거의 1km는 된다. 담장에서 활주로 사이에도 수백 m에 달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착륙 직전 상태인 비행기의 주행 속도는 대략 시속 140~150km대는 된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시간이 조금만 더 늦었으면 퇴근 시간대가 되어 귀가하는 길이 도로 정체로 애로사항이 꽃폈을 것이다.
만약 그랬으면 난 정체 시간대를 피해서 그냥 밖에서 저녁을 먹고, 차에서 한두 시간 좀 자면서 아예 밤 9시 이후까지 기다렸다가 귀가하려 했다. 난 어차피 차에서 야영을 하는 걸 아주 좋아하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서울 외곽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만 좀 막혔을 뿐, 서울 시내에서의 자동차 전용 도로 주행은 그다지 최악의 상태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사히 잘 돌아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07 08:31 2013/05/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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