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식주

인간이 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요소를 가리키는 용어로 '의식주'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먼저 의(의복).
사람은 누구나 알몸으로 태어나지만,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해도 최소한의 옷 한 벌은 무조건적으로 갖추고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우주 공간이나 사막이나 극지방 같은 극도의 악천후에서 살지 않는 이상, 벌거벗고 지낸다고 해서 당장 생물학적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지는 않는다. 옷이 무슨 물이나 산소나 음식 같은 물질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옷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과 결코 제대로 생활할 수 없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오직 인간만 말이다. 성경은 그렇게 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옷은 착용자의 신분과 격식을 나타내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옷차림은 문화와 예절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정 상황에서 적절한 의상이 갖춰져 있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상당히 난감해진다. 오죽했으면 성경에서도 결혼식 예복을 갖춰 입지 못한 사람이 예식장에서 강퇴 당하는 비유가 등장한다(마 22:11-13). 교리적으로 담고 있는 메시지는 따로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다음으로 식(음식)이다.
사람은 일차적으로는 물론 체력을 얻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밥을 먹는다. 그러나 식생활은 단순한 연명 활동을 넘어 입을 심심하지 않게 하고 좋은 기분과 컨디션을 유지시키는 등,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서 의외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문명이 존재하는 사회에는 식사 예절이라는 것도 문화에 따라 아주 정교하게 발달해 있다.

인간이 하루에 두어 차례 일과 활동을 중단하고 식사를 해야 하는 건 사실 생산성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비효율과 손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에게 필요한 열량과 영양분을 단번에 주입할 수 있는 알약 같은 게 개발된다 하더라도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인간의 전통적인 식사 관행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명되고 달과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내는 오늘날 21세기에조차도 인류의 식량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전세계에는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이 많으며, 인간의 식량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땅의 소출, 다시 말해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농업은 예나 지금이나 하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만 돌아갈 수 있는 산업이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끝으로 주(집)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집 문제 때문에 결혼조차 엄두를 못 내게 될 정도로 이와 관련된 사회적 병폐가 심각하다. 땅의 절대적인 면적이 좁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너무 좁게 사는 게 문제이다. 아무 곳에나 덥석 정착해서 사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입지 조건을 안 따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의와 식에 비해서 '주'는 상대적으로 덜 강조하는 것 같다. 산상수훈인 마 6:25라든가 만족을 명령하는 딤전 6:8을 봐도, 의와 식은 명시되어 있지만 주는 누락이다. 예수님 역시 변변한 거처가 없이 사셨다(마 8:20).

이는 다른 이유는 없고, 크리스천들이 세상에서는 영적으로 나그네· 순례자로 산다는 사상이 반영되어서 그런 것 같다. 진짜 본향은 하늘에 따로 있으니까. 집이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누구 말마따나 성경도 이렇게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집을 장만하고,'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창 2:24 패러디)

※ 휴대용 식량

그럼 이제부터는 의식주 중에서 '식'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식사는 현장에서 갓 조리된 따끈한 음식을 충분히 가까운 곳(동일 건물)에서 바로 느긋하게 먹는 형태였다. 사실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학교나 일터에서, 혹은 야외에서는 일일이 음식을 조리해서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근처에 식당조차 없다면 남는 선택은 도시락밖에 없다. 남의 행동이나 생각을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저지시키고 싶을 때,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말리겠다”라는 관용구가 쓰이는데, 이게 도시락의 어떤 특성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표현이겠는지를 잘 생각해 보자. ㅋㅋ

그나마 학교는 이제 전부 급식 체제로 바뀌었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무료 급식까지 시행되고 있다 하니,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도시락을 일일이 싸 줘야 하는 부담은 덜게 되었다. 저게 무슨 돈으로 가능하겠는지에 대한 정치적 견해의 차이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아무래도 도시락은 정식으로 차려 먹는 밥보다야 덜 따뜻하고 덜 신선하며, 원하는 형태의 요리를 마음껏 먹을 수 없다는 제약이 존재한다. 더구나 단순히 점심 한 끼나 그렇게 때우는 정도가 아니라 뱃사람이나 군인의 식단은 어땠을까? 지금 같은 냉동이나 식품 보존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고기 같은 건 닥치고 소금에 절이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보존성을 위해 맛을 크게 희생한 식품만 맨날 섭취해야 하는 건 당사자들에게 큰 고역과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오늘날 단순 도시락 이상의 위상으로 통용되는 휴대용 식량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비행기 기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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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 속도가 느리고 공간이 넉넉한 배야 장거리 여객선에는 주방이 있다. 열차에도 식당칸이 있다. 고속버스는 그냥 휴게소에 들르면 끝..;; 그러나 비행기는 그런 것까지 갖출 여건은 안 되니, 8시간 이상 장거리 노선을 뛰는 여객기에서는 미리 납품받은 기내식을 승객들에게 공급하게 된다.

기내식을 받아 먹는 느낌은 참 독특하다. 비록 비행기에서 직접 조리를 한 음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회용 용기에 달랑 담긴 한솥 도시락이나 예비군 점심 도시락 수준의 '대충'도 아니다. 기내식은 항공사의 이미지와도 큰 관련이 있다 보니, 세계 각국의 항공사들은 기내식을 최대한 맛있고 싸구려 티 안 나고 실제 식사와 비슷하게 만들려 애쓴다.

하지만 공중에서는 단순히 데우는 수준 이상의 조리를 하기가 힘들고, 또 기내에 배기는 냄새와 뒷처리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기내식을 한없이 고급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내식은 일반 식사보다 의도적으로 고지방· 고칼로리를 추구하며 제조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극단적인 상황에서 승객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한 끼가 거의 1000kcal에 달한다니 말 다 했다. 그리고 지상보다 더 기압과 습도가 낮은 곳에서 먹는 걸 염두에 두기 때문에, 입맛을 돋우려고 조미료와 기름도 더 많이 넣고, 더 짜거나 더 달게 만든다. 보기와는 달리, 기내식만 많이 먹으면 건강에 별로 안 좋을 것 같다.

2. 전투 식량

식량의 조달은 식욕이 왕성한 수많은 장정들을 거느리는 군대를 운영하는 데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군대에서도 주둔 중이나 평시에는 실시간으로 조리된 밥과 국과 반찬을 식판으로 퍼서 먹는 '일반 식사'가 나온다. 그러나 야전에서 훈련이나 작전 수행 중일 때는 역시 portable한 전투 식량이 배급된다.

야전에서 음식을 취급하는 속도는 행군 속도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전투 식량은 휴대성과 보존성이 좋아야 하고 최소한의 물이나 불로 조리가 가능하며, 정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날로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체력 소모가 극심한 병사들이 먹는 음식이니, 굉장한 고열량이어야 하는 건 두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러고도 전투 식량은 병사들의 입맛에 착 맞고 절대적으로 맛있어야만 한다. 참혹한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일말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밥이라도 잘 먹여 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알고 보면 총포의 기술 발달에 만만찮게, 식품 가공 기술의 발달도 군의 선진화와 현대화에 굉장히 큰 기여를 한 셈이다.

그러니 전투 식량은 앞서 언급한 기내식만큼이나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고, 일반인들이 많이 먹으면 비만에 걸릴 요소가 듬뿍 가미된다. 한국군에서는 굳이 야전에 안 나가고 내무 생활을 하는 중에도 이따금씩 정규 식사 대신에 전투 식량이 병사들에게 식사로 지급되는 때가 있는데, 이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전투 식량 재고분을 소진하기 위해서이다.

밀덕 중에는 국군이나 미군의 전투 식량을 구해 먹으려고 벼르는 사람도 있다. 일반 음식보다 열악한 여건에서 먹으라고 만들어진 음식을 일부러 찾아서 먹는 이유는, 자신이 민간인이 아닌 군인이라는 특권 의식을 경험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전투 식량은 포장과 내용물 등 봐야 할 게 여럿 있기 때문에, 링크를 하나 소개하는 걸로 그림 소개를 대신하겠다.

참고로 전투 식량은 진짜 비상 식량과는 다른 개념이다. 비상 식량은 추락한 비행기의 조종사나, 조난 당한 선원이 구조될 때까지 무인도나 망망대해에서 생존을 위해서 섭취하는 고농축 영양제 같은 음식이다. 단순히 야전에서 작전 수행 중에 먹는 게 아니라, 작전 수행 중에 돌발상황이 불가피하게 생겼을 때 먹는 것이다. 비상 식량은 먹게 될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오로지 보존성과 휴대성만이 강조될 뿐, 맛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3. 우주 식량

우주인은 군인만치 그렇게 격렬한 육체 활동을 하지는 않으므로, 우주 식량은 전투 식량만치 고열량을 추구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중력 내지 우주 공간에서는 지상에서처럼 음식 맛이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우주식은 역시 기내식 만만찮게 조미료 도배가 되어야 한다. 또한 무중력 공간에서 인체가 잃기 쉬운 칼슘 같은 영양소를 우주식이 특별히 보충해 줘야 할 필요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으로 물리적인 형태를 살펴보면, 우주식은 같은 영양 성분이면 무게와 부피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공 건조가 잘 되어야 하며, 그리고 가루· 부스러기가 날리는 형태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무중력 상태에서 음식 파편이 날리면 심각하게 골치 아파지기 때문. 그런 게 기계 내부로 빨려들어가 기계의 고장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니 초기의 우주식은 닥치고 튜브+빨대 형태였다. 먹을 때 입을 크게 안 벌려도 되고, 파편 유출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가장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계와 영양학적 효율을 위해 맛을 크게 희생한 초기의 우주식은 우주 비행사들의 불만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으며, 기술의 발달 끝에 지금은 어지간한 형태의 음식들은 다 우주식으로 개량이 가능해졌다. 김치, 라면, 불고기, 비빔밥, 미역국 같은 것도 모두 우주에서 먹을 수 있다.

우주식은 무중력 상태에서도 음식과 식기가 흩어지지 않게 식판에 이례적으로 벨크로(찍찍이)와 자석이 붙어 있다.
이렇듯, 비행기 기내식과 군대 전투 식량, 그리고 우주 식량은 대체로 영양이 보강되어 있고 휴대성과 보존성이 강화되어 있다는 큰 공통점이 있으면서 세부적인 조건은 살짝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2/10/07 08:32 2012/10/0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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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에 교통수단의 동력 메커니즘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듯, 자동차는 내연기관으로 피스톤을 움직이고 그 힘으로 바퀴를 굴린다. 차체는 지면과의 구름 마찰력을 이용해서 나아간다. 엔진이 차체의 하중(과 그로 인한 정지 마찰력)을 직접 상대하는 부담을 덜려면 변속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이 모두 쓰인다.

비행기는 제트엔진으로 움직인다. 연료를 공기와 혼합시킨 후 압축· 폭발시키고 내뿜어서 그 반동으로 나아간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 가스 폭발 사고 하나만 나도 주변이 엄청난 파괴력에 얼마나 박살이 나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힘을 제어하여 자동차와 비행기를 굴리는 걸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 로켓은 아래로 내뿜어서 그 추력 자체로 위로 뜨는 반면, 여타 항공기는 뒤로 내뿜어서 전진만 하고 하늘로 뜨는 건 날개의 양력을 이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항공기의 엔진은 당연한 말이지만 자동차 엔진보다 연료 소모가 많고 후폭풍과 소음도 막대하다. 하지만 결국 엔진이 밀어내는 건 공기일 뿐이기 때문에, 항공기의 엔진은 출력만 높으면 되지 자동차와는 달리 특별히 높은 토크나 동력비 변환 같은 걸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륙할 때가 비행기에 특별히 힘이 많이 필요하며 순항 중일 때보다 연료가 훨씬 더 많이 소모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달릴 때 파일럿이 무슨 1단, 2단 변속을 한다거나 비행기 엔진음이 단계별로 오르내린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

항공기의 엔진에 경유-중유 같은 디젤 연료가 쓰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공유는 휘발유와 등유 사이의 등급에 속하며, 액체 연료 로켓에 들어가는 연료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단순히 뭔가를 돌리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연료를 폭발시킨 배기가스 자체를 내뿜어야 하기 때문에, 비행기만은 여타 교통수단과는 달리 '전기 동력화'를 전혀 할 수 없다. (배는 전력 공급 문제 때문에 기름으로 달리지만, 그래도 아예 원자로를 내장하고 전기로 움직이는 원자력 잠수함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배가 나아가는 원리를 자동차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좀 특수한 상황인 것 같다.
무거운 바닷물 속에서 거대한 스크루를 회전시켜서 추진력을 만들려면 배의 엔진에는 역시 높은 회전수보다는 낮은 회전수에 높은 토크가 필요할 것이고, 이런 상황에는 디젤 엔진이 매우 적합하다. 유원지 가서 보트에서 노를 젓거나 페달 밟아서 오리배라도 몰아 본 분은 아시겠지만, 물에서 배를 움직이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러니 배의 엔진은 자동차 엔진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배에 철도처럼 디젤-전기 기관이 쓰이기도 하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다만, 배는 자동차와는 역학적 여건이 다른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구름 마찰력에 의해 나아가는 게 아니며(스크루는 바퀴가 아니다!), 엔진에 배의 하중이 그대로 걸리는 형태가 아니다. 무게를 직접 받는다면 최하 수백~수만 톤에 달하는 거대한 배는 도저히 나아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배는 구동축이 수중에 있기 때문에 공기보다야 엔진에 기본적으로 걸리는 부담이 훨씬 더 크겠지만, 갓 출발할 때이든 순항 중일 때이든 그 부담이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동력비 변환 외에 자동차 같은 다이나믹한 변속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배를 탈 일이 있으면 엔진 소리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좀 더 주의 깊게 들어 봐야겠다.

자동차도 제트 엔진을 장착한 초음속 자동차가 사막에서 시운전을 하는데 배에도 굳이 내연기관이 아니라 제트엔진을 장착해서 가게 할 수도 있다. 어차피 망망대해에서는 뒤로 공기를 뿜으며 후폭풍을 일으켜도 위험할 게 없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이 경우 배는 무척 빨리 움직일 수는 있지만 연비도 크게 감소하는 게 불가피하다. 군함 중에는 경제성과 기동성을 겸비하기 위해 내연기관과 제트 엔진이 모두 달린 배가 있다고 한다.

끝으로, 배가 제동은 어떻게 하겠는지를 생각해 보자. 자동차처럼 브레이크를 밟아서 구동축만 붙잡고 있는다고 서는 게 아니며, 주변은 온통 물뿐인데 땅을 붙잡아서 마찰을 일으켜서 설 수도 없다.
배가 제동을 걸려면 정말 엔진의 동력을 뒤로 향하게 하는 역추진을 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초대형 선박은 그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 때문에 속도를 바꾸기가 대형 트레일러나 열차보다도 훨씬 더 힘들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다음은 관련 추가 잡설들이다.

1. 대형 선박은 자동차처럼 키 꽂고 START만 돌린다고 해서 바로 시동이 걸리는 게 아니며, 시동 걸어서 초기화하는 데만 30분~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무슨 예열 과정이라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엔진이 얼마나 거대하면 컴퓨터 운영체제의 부팅도 아니고 기동하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릴 수 있을까?
참고로 디젤 기관차의 시동을 거는 장면은 류 기윤 님 같은 철덕 기관사가 올린 UCC를 통해 본인은 접할 수 있었다. 일반인이 평소에 듣을 수 없는 웽~ 소리가 난다.

2. 전세계의 항구들은 주변 지형과 시설 구조가 완전 제각각이다. 그에 반해 전세계를 누비는 배들은 덩치가 몹시 크고 가감속이 더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배가 항구의 원하는 위치에 제대로 들어오도록 인도하는 일은 매우 몹시 중요하며, 이 일을 하는 사람을 도선사라고 한다.
교통덕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도선사는 교통· 운수업에서는 비행기 조종사에 필적할 정도로 어렵고 중요한 일을 하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종사자의 수도 적고 고령이며, 그 업종에서는 가히 최강의 연봉을 받는다. 게다가 도선사는 영어로는 조종사와 동일한 파일럿(pilot)이라고 불린다.

3. 군사 목적으로 수륙 양용차라는 게 있다. 그리고 철도계에서는 도로와 레일 위를 동시에 달릴 수 있는 특수 자동차도 있다. 흠, 이들을 통합하면 물과 육지는 전천후로 달릴 수 있는 교통수단이 나올 수 있을 듯.
다만, 비행기와의 통합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엔진 구조와 사용 연료가 근본적으로 다르고 날개를 접었다 꺼내는 설비도 필요할 테고... 굳이 무리해서 만든다고 해도 고정익보다는 헬리콥터 같은 회전익 겸용차가 더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4. 자전거를 타고 평지에서 정지 상태에서 처음으로 전진할 때는, 페달을 밟는 것보다 땅을 발로 뒤로 차는 게 힘이 덜 들 때가 있다. 그렇게 한 다음에는 페달 밟는 부담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배가 물을 박차고 나아가는 것에도 이와 비슷한 차원의 역학이 적용되는 게 있는지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2/08/18 08:18 2012/08/18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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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철도를 한 5년만 더 일찍 알았으면 학창 시절에 지리와 물리 공부를 훨씬 더 열심히 했을 것이고, 지금의 국어 정보학 대신 아예 이 진로를 선택했지 싶다. =_=;; 하지만, 그 경우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태어나진 못했겠지. (한숨)

글을 쓰고 보니 비행기 쪽 얘기가 너무 길어지긴 했다만..

1. 달리는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돌고 있는 팽이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와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회전하는 모든 물체에는 잘 알다시피 원심력이 발생한다. 팽이는 좌우로 원심력이 발생하고, 돌고 있는 자전거의 바퀴도 상하로(=지면과 수직으로) 원심력이 응당 발생한다. 이는 바퀴 자체나 팽이가 크거나 무거울수록, 그리고 회전 속도가 빠를수록 더욱 커지며, 이 상태가 관성에 의해 유지되다 보니, 자전거의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해진다. 이따금씩 발생하는 바퀴 좌우의 무게 불균형이 상하 원심력으로 극복 가능하고, 균형 보정을 위한 핸들 조작이 가해지는 한 자전거는 쓰러지지 않는다.

자전거는 고효율·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인간의 매우 유익한 발명 중의 하나이다.
여담이다만, 꼭 원심력 때문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식으로 의문을 품을 법한 현상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 자전거 페달로는 전진만 가능하고 후진이 되지 않는 이유는?
- 고압선 위에 앉은 새가 감전되지 않는 이유는?
- 종이 그릇으로 물을 끓였는데 종이가 타지 않는 이유는?

2. 철로 만들어진 집채만 한 배가 어떻게 물에 뜰까?

잘 알다시피 그 이름도 유명한 부력(buoyancy) 덕분이다.
물은 공기와는 달리 그렇게 가벼운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물질이나 호락호락 가라앉히지 않는다. 아니, 질량을 가진 모든 유체(fluid)엔 원래 그런 특성이 있다. “너만 중력이 있냐? 나도 있다” 그래서 유체 속의 물체를 밀어낸다. 그 이름도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되시겠다.

쇠로 만들어진 배가 물에 뜨는 것은, 그 배의 무게에 해당하는 물의 부피만치 배의 아랫부분이 이미 물에 잠겨서 힘의 평형이 상하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물의 밀도도 만만찮으며, 배도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물속에 가려져 있다.

물체 전체의 부피만 한 물의 무게로도 물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야만 물체가 물 밑으로 한없이 가라앉을 것이다. 그래서 내부에 공기가 많은 깡통은 물에 뜨지만 찌그러진 깡통은 곧장 가라앉는다. 물이 새기 시작한 배가 침몰하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물이 공기보다 훨씬 더 무겁기 때문.

물에 여러 물질을 녹여서 밀도를 키우면 부력도 응당 증가한다. 그래서 맹물에서는 가라앉을 물체가 소금물에서 뜨며, 최강의 소금 농도를 자랑하는 사해 바닷물은 사람까지 둥둥 띄우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배가 물에 뜨는 것은 어디서나 재연 가능한 과학 법칙일 뿐, 물 위를 걸은 예수님의 기적(마 14:25-26) 같은 현상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

3.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로 뜰 수 있을까?

이건 위의 질문보다 더욱 어렵다. 하긴, 18~19세기엔 저명한 물리학자들조차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니 말이다. 비행기의 발명은 가히 어마어마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A4 용지를 준비해서 직사각형의 네 변 중 짧은(21cm짜리) 변을 이루는 두 꼭짓점을 손으로 잡고 입가로 가져간다. 잡고 있지 않은 맞은편 두 꼭짓점은 아래로 축 늘어질 것이다.
이 상태로 종이의 윗부분(아랫부분 말고)을 힘껏 훅~ 불어서 바람을 만들면...;; 놀랍게도 늘어졌던 종이가 벌떡 위로 펴질 뿐만 아니라 더욱 위로 올라가려 하면서 펄럭거리기까지 할 것이다.

종이의 아랫부분을 훅 불면, 아래로 쳐져 있던 종이가 바람을 직접 받아서 위로 펴지는 게 이해가 되겠다만, 종이가 닿지 않는 윗부분에 바람이 부는데 왜 아래의 종이가 붕 뜨게 될까??

바로 이것이 오늘날 고정익 항공기가 하늘로 뜨는 이론적 배경이라고 한다. 베르누이의 원리라고 불리는데, 비행기의 날개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니라 주변 공기의 흐름을 교묘하게 바꿔 압력차를 만듦으로써, 아까 저 종이와 같은 양력(lift)을 만들어서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 존재한다. (잘 이해는 안 되지만, 뭔가.. 냉장고와 에어컨의 동작 원리만큼이나 신기하다) 날개 표면이 이물질로 인해 조금만 울퉁불퉁해지기만 해도, 생성되는 양력이 크게 떨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공기의 흐름부터 만들어야 이로부터 양력이고 자시고가 생길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비행기 자체가 무진장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것이 바로 비행기의 엔진이 하는 일이다. 비행기의 엔진은 공기를 뒤로 뿜음으로써 추력을 만들지, 자동차의 엔진처럼 피스톤을 회전시키는 방식은 아니다. 이 메커니즘 때문에 고정익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긴 활주로가 필요하며, 반대로 사뿐히 내려앉기 위해서도 활주로가 필요하다.
자동차의 고급 옵션 중 하나인 ABS 브레이크가 원래는 이런 비행기에서 쓰이던 기술이 자동차에도 덩달아 도입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주변의 컨테이너나 소형 승용차마저 팬에 빨려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주변 공기를 빨아들인다. 그래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웽~’하는 엔진 내지 팬 소리보다도 ‘쿠르르릉!’하는 박진감 넘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이다.

그럼, 고정익 항공기 말고 다른 비행체는 어떨까?

- 헬리콥터: 가벼운 바람개비를 빠르게 돌려 놓고 손에서 떼면, 이것도 잠시나마 하늘에 살짝 떴다가 떨어지는 걸 알 수 있다. 고정익 항공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발상으로 만들어진 이런 부류의 회전익 항공기는 비록 수송력과 경제성은 크게 떨어지지만, 한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초고속 이동을 해야만 양력이 유지된다는 한계에 매여 있지 않다. 그래서 긴 활주로 없이도 손쉽게 이· 착륙을 할 수 있으며, 공중에서 3차원 여섯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공중에서 정지해 있을 수도 있다.

헬리콥터의 로터는 개념상 날개이지 프로펠러가 아니다. 회전익 항공기라는 개념은 수백 년 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상상을 했을 정도이지만, 이것이 실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로터를 회전시킬 수 있는 가벼우면서도 출력이 굉장히 좋은 고성능 엔진이 먼저 발명되어야만 했다.

- 비행선: 물에 적용되는 배, 아니 어찌 보면 잠수함의 원리를 공기에다가 접목-_-한 것이다. 비행체의 밀도가 공기보다도 가벼워지도록 어마어마하게 큰 부피의 수소나 헬륨을 적재한다. 고도 조절은 잠수함이 심도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하며, 엔진은 방향과 속도 조절용으로만 쓴다. 매우 저렴한 동력비로 하늘에 조용하고 우아하게 뜰 수가 있고 심지어 엔진이 꺼져도 곧바로 추락하지는 않으나..... 역시 수송력이 열악하고 주행 속도가 매우 느리며(빨라 봤자 100~150km/h대. 자동차급밖에 안 됨), 비행 고도도 오늘날의 항공기보다 훨씬 낮은 데다가 덩치까지 엄청 크다 보니 보안에도 매우 취약한 게 흠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행선은 양력이 아니라 부력-_-으로 뜨기 때문에 날개는 없다.
그런데, 공기보다 밀도를 낮추기 위해 비행선이 얼마나 덩치가 커야 했냐 하면.. 위의 그림과 같은 정도이다.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집어넣었는데도! (그림은 과거의 수소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보잉 747, 그리고 여객선 타이타닉 호) 그래 봤자 저 비행선의 승객 정원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와 비슷한 겨우 100여 명 안팎으로, 무려 450명 가까이나 탈 수 있는 747의 1/4 수준도 안 됐다.

- 로켓: 다른 항공기들은 하늘로 떠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게 목적인 반면, 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하늘 위로 최대한 높이 뜨는 것 자체만이 목적이다. 유체고 나발이고 없이 오로지 작용· 반작용의 법칙만을 이용해서 나아가므로, 날개도 필요 없고 오히려 유체의 저항이 없는 진공이 유리할 것이다. 연료 소모가 매우 심하고 유인 로켓의 승무원은 발사 직후에 어마어마한 압력에 짓눌려야 하지만, 지구의 육중한 중력 가속도를 뚫고 수백 km 이상의 고도로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지구 중력의 탈출 속도는 초속 11.2km가량 된다. 지표면에서 이 정도 속도로 공을 던지면 지구로 되돌아오지 않을 경지에 이른다는 뜻. 하지만 이 속도는 음속의 무려 30배를 상회할 뿐만 아니라, 공기와의 저항과 마찰, 그리고 엔진 기술의 한계 때문에 지표면에서 결코 낼 수 없는 속도이다. 성층권에서 겨우 마하 2.x 정도로 비행한 콩코드만 해도 소닉 붐 같은 충격파에, 공기 마찰 때문에 열받아서 수백 도로 벌겋게 달아오른 기체의 유지 보수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로켓은 그 탈출 속도보다는 당연히 훨씬 느리게 뜬다. 하지만 발사 후에도 연료 배기 가스를 뿜어서 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그 밑천으로 지구 대기권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 새들-_-: 비행기를 연구하고 설계한 사람들이 새의 날갯짓을 매우 세밀히 관찰하고 벤치마킹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들은 인간이 만든 비행기처럼 주변 공기를 다 빨아들이지도 않으며, 헬리콥터처럼 날개에 이물질이 닿는다고 해서 바로 박살이 나지도 않는다. 항공계의 영원한 골칫거리인 조류 충돌(bird strike)이나 연료 폭발 같은 건 더욱 없다. 새의 놀라운 비행 원리에 대해 이런 거야말로 진화의 산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으며 지적 설계와 창조의 증거라고 특히 창조 과학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주장을 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11/27 08:26 2011/11/2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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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아주 흥미로운 동영상을 발견했다. 일본을 출발한 제주 항공 비행기가 김포 공항으로 착륙하는 과정을 누군가가 기내에서 창문을 내려다보면서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맑은 낮에 좋은 화질로 아주 잘 찍었다. 김포 공항을 자주 이용하는 분이라면 이 장면이 낯익을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품질 좋은 위성 지도가 서비스되고 있는 덕분에, 조금만 눈썰미가 있으면 동영상의 장면과 지도 그림을 대조하면서 지형 분석을 할 수 있다. 이 비행기의 착륙 경로는 다음과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6분 56초 지점이면 착륙이 1분도 채 안 남았을 무렵이고 비행기의 속도와 고도는 상당히 낮아져 있다. 아래로 펼쳐진 것은 100 외곽순환 고속도로의 김포 톨게이트. 아파트 단지, 불룩한 도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펼쳐진 논밭이 보일 것이다.

 비행기는 남쪽(일본)에서 북쪽으로 올라왔지만, 김포 공항의 남쪽에서 북상하면서 착륙한 게 아니라, 북쪽으로 갔다가 삥 돌아서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착륙했다. 그리고 위의 창밖 풍경은 비행기의 진행 방향 기준으로 '왼쪽'을 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논밭을 가로지르는 6차선 도로는 바로 130 인천공항 고속도로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디어 오른쪽의 넓고 푸른 들판은 김포 공항 부지이다. 다 왔다. 공항 주변은 여전히 온통 논밭이다.
착륙 직전인 비행기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저 4차선 도로는 행주대교로 통하는 국도 39호선이다. 도로와 공항 사이에는 또 개천이 가로막고 있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김포 공항의 북쪽을 지나는 도로는 국도 39호선이며, 남쪽을 지나는 도로는 양화대교와 종로로 통하는 국도 6호선이다.
그로부터 15~20초쯤 뒤면 이 비행기는 드디어 쿵쿵! 진동과 함께 땅에 살며시 내려앉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종합하자면 이 비행기는 외곽순환 고속도로에서 공항까지 얼추 위와 같은 경로를 거쳤다는 뜻이 된다.
직선 거리는 약 2km. 그런데 6:57부터 7:29까지 소요 시간은 얼추 30초이다.
그러므로 이 비행기는 착륙하면서 진행 속도가 시속 240km 정도 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KTX의 최고 속도보다는 좀 낮지만, 그래도 착륙을 앞두고 느리게 난다는 게 그에 맞먹는 속도인 셈이다.

비행기도 비행 경로를 알면 아는 만큼 주변 세상이 보이게 된다. ^^

Posted by 사무엘

2010/12/23 08:48 2010/12/2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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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서 운전대가 있는 방향이나 버스의 경우 출입문이 달린 방향은 해당 국가가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차량 주행 방향(좌측 또는 우측 통행)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동일한 자동차 제조사라도 내수용과 수출용 configuration을 서로 달리해서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우측 통행을 하는 관계로, 자동차의 운전대는 진행 방향 기준 왼쪽에 있고 대형 버스나 봉고차 같은 승합차의 출입문은 오른쪽에 달렸다. 좌우에 출입문이 다 있는 소형 승합차도 옛날에 본 것 같긴 하나, 흔하지 않다.

철도로 가 보자. 철도 차량 중에 특히 동차는 본인이 아는 한 대칭성이 가장 뛰어난 교통수단이다. 앞뒤로만 움직일 수 있는 특성상 앞뒤가 완전히 대칭이며, 전진과 후진을 완전히 동일한 성능으로 할 수 있다. 차를 돌릴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동작이 가능하다는 뜻. 물론 동차가 아닌 기관차도 기관차 하나만 보면 앞뒤 대칭인 녀석도 있으며, 기관차를 어느 방향을 향하여 객차와 연결하더라도 아무 방향으로나 주행 가능하다.
철도 차량의 객차는 출입문 역시 좌우에 모두 달려서 전부 개폐 가능하며, 승강장이 선로의 좌우 어디에 있든지 모두 대처가 가능하다. 철도의 승강장 방향은 사실상 random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우리의 관심사는 비행기이다. 비행기는 출입문이 어디에 달렸을까?
비행기는 돌아다니는 스케일도 전국구를 넘어선 세계구인 만큼, 본인은 언뜻 보기에 철도 차량처럼 좌우에 모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간단히 답만 말하면 민간 여객기의 출입구는 조종사의 진행 방향 기준 "왼쪽"에만 있다. 그 대신 화물은 오른쪽에서 싣는다.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탑승교를 지나서 비행기 앞쪽에 있는 출입구로 들어간 뒤엔, 뒤쪽에 있는 이코노미 객실로 가기 위해 언제나 '우회전'을 했지 좌회전을 한 적이 없을 것이다.
또한, 반대로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언제나 '좌회전'만 해서 비행기에서 내렸다.

뉴스에서 귀빈들이 비행기에서 밖으로 내리는 장면을 떠올려 봐도 내리는 방향은 비행기의 전방 기준 좌측이다.
그렇다. 출입구는 왼쪽에 있다. 비록 비상용 탈출구는 좌우, 심지어 천장에도 여러 군데에 있지만 말이다.

비행기들의 이 규격은 의외로 획일화 일치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전세계의 공항들도 거기에 다 맞춰져 건설되어 있다. 하긴, 민간 여객기의 제조사 자체가 미국의 보잉 사 아니면 유럽 에어버스처럼 극소수이고 전세계 독점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구조가 들쑥날쑥이 될 여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 의문이 생긴다. 왜 오른쪽이 아니고 하필 왼쪽일까? 본인도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과거에 배가 육지와 연결되던 방향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오늘날 통용되는 항공 관련 용어와 각종 시스템, 컨벤션들도 상당수 선박 용어에서 유래되었듯이 말이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승객이 왼쪽 방향에서 타기 때문에, 비행기 조종사들은 엔진을 가동할 때 관례적으로 오른쪽에 있는 4번 엔진(승객이 타는 방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부터 시동을 켠다. 이건 옛날에 소규모 프로펠러기 시절에는 승객 안전을 위해서 그럴 필요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별 의미 없는 관행이 되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22 08:30 2010/07/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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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여행은 정말 재미있다. 이착륙 할 때가 제일 재미있다. 엔진 소리의 음높이가 팍 치솟고 '쿠르르릉!'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전속력으로 달음박질을 하더니, 이내 주변의 중력 가속도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비행기는 하늘에 붕 떠 있다. 이게 이륙이다.
한편 착륙은? 점점 고도가 낮아지더니 '쾅쾅!'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이내 랜딩 기어 바퀴에 의존하여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고, 엔진이 역회전하여 제동 거는 바람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앞쪽이 아닌 뒤쪽부터 착지한다. 뒤쪽에 바퀴도 더 많이 달려 있다.

조종사에게는 이착륙이 제일 힘든 고비이지만 그건 그 사람들 사정이고, 승객에게는 이때가 제일 재미있는 순간이다. 비행기도 열차만큼이나 운전 시스템이 어지간한 건 다 자동화가 돼 있지만, 이착륙만큼은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 좁은 활주로 위치에 딱 맞게 착지하는 건 정지선을 딱 맞춰 지하철 전동차를 세우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또한, 그 집채만 한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로 뜰 수 있는지 선풍기 위의 종이를 비롯해 소위 '베르누이의 법칙'을 설명한다는 여러 예제를 봐도 본인은 이해가 잘 안 되고 실감이 안 간다.

비행기는 최대한 높은 고도로 올라가서 난다. 비록 올라가는 과정이 힘들지만, 높은 곳일수록 대기가 옅고 공기 저항이 작아져서 연료 소모가 줄고 동력 효율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가 너무 옅어서 비행기를 띄워 주는 매개체인 유체 자체가 부족할 지경이어도 안 되기 때문에, 어차피 한없이 높이 올라가지는 못한다. 열기구나 풍선은 터지기 때문에 한없이 못 올라가듯이 말이다.

장거리 여객기의 순항 고도는 3만 피트가 넘으며, km로 환산하면 약 10km 남짓이다. 지구의 대류권과 성층권 사이의 경계쯤이 되는데, 여기가 가격 대 성능비가 가장 뛰어나서 순항하기 좋은 고도라고 한다. 사실 2차 세계 대전 때 미군이 일본에 원자 폭탄을 투하할 때도 거의 9~10km에 달하는 여객기 순항 고도에서.. 이 정도로 굉장히 높은 곳에서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떨어지던 폭탄은 지상으로부터 약 500m에 달한 지점에서 터졌다.)
우리가 지상에서 전방 10km에 아무것도 없는 탁 트인 공간을 볼 일은 거의 없다. 아쉬운 대로 비슷한 체험을 하는 건 등산을 했을 때 정도나? 그러나 비행기 안에서는 나보다 거의 10km 밑으로 성냥갑보다도 작은 집과 도로, 심지어 구름과 바다와 산까지 볼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지구 과학 수업 시간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대류권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지지만 성층권에서는 올라갈수록 다시 기온이 올라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상 100km 정도 고도만 돼도 이미 중간권을 지나 열권이다. 참고로 국제 우주 정거장이 있는 곳은 지상으로부터 약 400km 남짓. 즉, 서울-부산 거리 정도만 위로 올라가도 이미 지구가 확실히 둥글다는 게 느껴지며 우주가 코앞에 있다. 로켓은 비행기와는 달리, 지구 중력을 벗어나기 위해서 닥치고 오로지 위로 전속력으로 치솟기만 하라고 만들어진 물건인데, 그 정도 높이까지 발사체를 띄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로 호가 실패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기상 현상이 없을 것 같은 그 높은 상공에 공기의 급속한 흐름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 사실이다. 일명 제트 기류(jet stream)이다. 이걸 잘 타는 비행기는 바람을 타고 마치 무빙워크 위로 걷듯이 손쉽게 비행이 가능하다. 제트 기류는 발견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이걸 이용하느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딱 같은 위도를 유지하면서 일본을 거쳐서 태평양을 수평으로 횡단하지만,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는 북쪽으로 빙 돌아 알래스카를 거쳐서 오는 것이다. 알래스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세상에 그래도 러시아 동쪽 맨 끝과 알래스카 사이 경계가 그나마 인간이 사는 이어진 영토가 제일 없는 곳이다 보니, 거기가 지구상에서 날짜를 끊는 경계선으로 설정된 것도 참 흥미로운 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또 든다. 순항 중인 비행기 안에서, 순항 중인 다른 비행기(특히 마주 오는)를 창문 밖을 통해 볼 일이 있을까?
승객은 그런 걸 보기가 좀체 어려울 것이고, 아주 운 좋을 때나 우리 비행기의 밑으로 나는 비행기를 하얀 점으로 아주 잠깐 볼 것이다. 그러나 정면이 보이는 조종석에서는 그런 것 목격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거미줄처럼 이으면서 하늘을 누비는 여객기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들도 아무 길이나 직선 거리를 찾아 다니는 게 아니라 경제성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최적화 항로만 몰아서 다니기 때문에 서로 마주칠 가능성이 은근히 높다. 게다가 국제법상 여객기들은 어느 때라도 인근의 공항에 n시간 안으로 즉시 비상 착륙 가능한 항로만 골라서 날아야 하기 때문에, 육지로부터 완전 멀리 떨어진 태평양 허허벌판 같은 곳은 지나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아무 장애물이 없고 가시거리가 굉장히 긴 조종석에서는 하늘 저 편에 무슨 하얀 점처럼 보이는 게 맞은편 여객기이다. 물론 상행(한국->미국)과 하행(미국->한국)별로 날 수 있는 고도도 다 수백 m 이상 차이가 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 점은 그냥 순식간에 커지다가 쌩~ 하고 없어져 버린다. 나도 900km이고 저쪽도 900km이면 상대 속도는 무려 시속 1800km이며, 1초에 500미터가 넘게 나아가는 속도이다. 아찔하다.

고속도로에서도 자동차끼리 안전 거리가 최하 100미터인데, 자동차의 10배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비행기는 서로 100~200m끼리만 근접해도 실제로 부딪쳐서 인명/재산 피해가 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near miss라는 사고로 처리된다. 사고라는 말은 이 사건이 사고 일지에 기록되고 원인 책임 규명 조사와 관련 책임자 징계가 뒤따른다는 뜻이다.

영화나 CF를 보면 구름 위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멋진 동영상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은 CG가 아닌 이상, 당연한 말이지만.. 비행기를 촬영하는 또 다른 특수 비행기를 띄워서 거기서 촬영한 것이다. 흠좀무..;; 두 비행기끼리는 최소 수 km는 떨어져 있고 고도의 기술로 zoom 해서 그런 걸 촬영한 거라고 보면 된다. 하긴 요즘은 전투기 공중 급유까지 하는 세상인데 뭘 못 하겠는가.
다만 비행기는 뒤쪽으로 엄청난 후폭풍을 남기면서 움직인다는 특성상, 뒷모습을 가까이에서 찍는 것은 여러 모로 위험하고 무리라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21 09:08 2010/07/2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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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에 고속철이 있다면 여객 항공기에는 초음속기가 있습니다. (정말 적절한 비유 ㅋㅋㅋㅋ)

1.

1903년이던가,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동력으로 움직이는 항공기를 발명한 후,
항공기는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투기로도 등장하고 이내 여객용으로 가히 지구촌 시대를 열었습니다.
우리가 이용하는 대부분의 여객기는 최고 속도 순항 상태일 때 시속 850~900km (마하 0.9)쯤 되는 아음속기입니다. 이 정도로도 육지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빠른 속도이며, 사실 바람을 잘 탈 때면 아음속기도 시속 1200~1300에 도달해서 잠시 초음속으로 날기도 합니다. 그러나 속도에 대한 열망은 그것으로 모자라 초음속기의 개발을 부채질했습니다.

물론 자동차 중에도 초음속 자동차라는 게 있어서 주로 사막에서 시범 운행한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용성은 거의 없죠. 그리고 그런 차들은 엔진도 일반적인 자동차의 4행정 기관이 아니라 제트 엔진을 쓰기 때문에 배기가스 배출, 연료 소모도 장난이 아닙니다. 여객 항공기는 대개 터보 팬 엔진을 쓰죠.

철도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원으로는 지하철과 고속철 모두 전기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비행기의 동력원은 역시 기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디젤-전기 방식은 아니고요. 항공유는 경유-중유 수준의 묵직한 디젤유는 아니고 휘발유에서 등유 사이뻘 되는 등급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지, 경주용 자동차용 연료에다 그러는 것처럼 옥탄가를 더욱 강화하고, 특히 영하 수십 도에 달하는 구간에서도 얼지 않도록 부동액 성분도 첨가된다고 합니다.

오늘날 실용적으로 운행되는 고속철들이 최고 시속 250~300km대입니다. 하지만 비행기는 활주로를 한창 지나서 날아오르기 직전에 이미 시속 300km대로 달리게 됩니다. 열차가 자꾸 자주 정차하는 건 싫지만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건 신나고 재미있습니다.

항공기는 고도의 유체역학 원리에 따라서 하늘로 뜨게 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양 옆으로 날개도 폼으로 있는 게 아니라 치밀한 설계에 의해 넣은 것이죠. 그런 비행기들은 지구와 같은 공기가 없는 곳에서는 연료를 연소시킬 수 없기 때문에 날 수 없기도 하지만, 양력을 발생시킬 수 없어서 더욱 뜰 수 없습니다.
또한 반대로 말하면 우주선들은 어차피 지구 대기권을 나는 항공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날개가 필요 없습니다.

2.

전투기야 우리나라도 초음속기 개발에 성공했으니 더 말이 필요없지만,
초음속 여객기 하면 역시 영국과 프랑스 합작으로 개발되었던 콩코드가 거의 유일합니다. 잘 알다시피 음속의 2배를 조금 넘겼지요.
사실, 콩코드가 등장하기 전에 미국과 소련은 냉전 구도 하에 우주 개발 경쟁만 한 게 아니라 초음속 여객기 연구도 앞장서서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런 건 만들어 봐야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 하에 일찌감치 연구를 포기했습니다. 그 대신 아음속 여객기의 덩치를 더욱 키우는 연구를 계속했죠.

그 반면 소련은 콩코드보다도 먼저 사실, 세계 최초의 초음속기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상용화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의 항공 기술의 자존심을 걸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공동 연구를 한 끝에 콩코드를 만들어 내고, 적자까지 감수하면서 나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운행을 한 것입니다. 대서양을 건너 런던· 파리에서 미국 뉴욕 사이를 왕래했습니다.

콩코드가 첫 비행에 성공한 것은 1969년 3월로, 인간이 최초로 달에 가는 데 성공한 아폴로 11호 발사의 4개월 남짓 전입니다.
콩코드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폭이 작고 복도가 매우 좁아져서 한 줄당 좌석이 기차나 버스 수준인 2x2입니다. (우왕!)
만석일 때 100수십 명 남짓밖에 탈 수 없어서 이는 결국 한 사람당 매우 비싼 운임으로 연결됩니다. 2003년경에 대서양 한번 건너는 편도 운임이 한국 돈으로 거의 900만~1천만 원.. 일반 아음속 항공기 일반실 운임의 10배가 넘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동력을 내야 하기 때문에 같은 거리를 날아도 연료도 더 많이 들고, 이륙도 더 빨라야 하고 타이어에 걸리는 부담도 더 크고, 뜰 때 더 가파르게 하늘로 올라야 했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성층권의 오존층 파괴 문제, 소닉 붐 충격파, 자국 영공 내에서의 초음속 비행에 대한 규제 등, 골치 아픈 요인도 많았습니다.

끝으로 또 생각할 게 있습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상공은 영하 수십 도에 이르는 저온이지만, 그 정도로 빠르게 날면 공기와의 마찰 때문에 기체 역시 100~200도나 되는 온도로 달궈집니다. 우주선이 지구 대기권으로 재돌입할 때 시뻘겋게 열 받고 달아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음속기는 단순히 엔진의 출력만 강한 게 아니라 열에도 강해야 하고 마치 철도 레일이 여름에 늘어나는 것처럼 어느 정도 신축 현상에도 대비하여 설계되어야 합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음속 여객기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마하 2.2의 속도로 날면서 예전에 8시간 가까이 걸리던 런던-뉴욕을 고작 3시간 반대로 단축시켰기 때문입니다. 생긴 것도 학처럼 정말 우아하게 생겼죠.

이거 아십니까? 콩코드는 지구가 자전하면서 지표면이 돌아가는 속도보다도 더 빨리 이동하는 인류 최초의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우주선이나 로켓은 아예 지구를 떠날 때 쓰는 물건이므로 논외로) 그래서 정오에 런던을 출발하면 현지 시각으로 오전 11시 30분에 뉴욕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이용해 그때 인류 역사상 초유의 엽기적인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1973년 6월 30일에 개기 일식이 일어날 때의 일이었습니다. 이런 사건은 지구상에서는 잘 해야 5~7분 남짓한 시간 동안밖에 관측할 수 없으며 사실 이것도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그런데 지구의 자전 속도보다 더 빠른 비행기가 발명되었으니, 비행기로 달의 그림자를 쫓아가면서.. 일식 장면을 계속 관측하는 게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

과학자들은 일식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경로를 치밀하게 계산해 놓은 후, 그 비싼 콩코드 비행기를 무려 전세 내서 기내에 온갖 측정 장비들을 설치했습니다. 덕분에 하늘에서 개기 일식을 무려 7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관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해 10월 15일에 오일 쇼크가 터지기 100일 정도 전의 일이었죠.
http://sodyssey.egloos.com/2323422.

4.

그러나 초음속 여객기는 대중화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였는지? 콩코드 역시 운영상의 어려움과 적자에 시달렸습니다. 자존심이 있는데 당장 운항을 중단할 수는 없고 좀 애물단지 계륵처럼 됐죠.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20세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콩코드의 내구 연한 30년도 임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2000년 7월, 대형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드골 공항에서 이륙하던 콩코드 4590편.
이륙하는 과정에서, 직전 항공기가 이륙하면서 떨어뜨리고 간 금속띠를 밟으면서 타이어가 쫙~ 찢어져 터지고, 그 타이어 조각이 연료탱크를 파손했습니다.
비행기는 이미 시속 300km V1 속도를 넘어서서 이륙을 중단할 수 없는 상태가 돼 있었고, 기체 뒷부분이 불길에 휩싸인 채로 하늘로 떴습니다.

연료는 양 날개 내부에 담겨 있었는데 그게 다 홀랑 타 버리니 날개가 남아나질 못했죠. 곧바로 양력을 잃고 실속 상태. 조종이 불가능해진 비행기는 고도 100미터를 채 못 오르고 저공에서 빙빙 돌다가 추락해 버립니다.
화재 때문이었는지 탑승객 전원 사망.
최첨단 초음속기에다 25년 가까이 무사고를 자랑했던 호화 여객기 콩코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사고 원인을 추적한 과정이 정말 대단하더군요. 추리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http://blog.naver.com/toysher?Redirect=Log&logNo=50007967386

이 사고를 계기로 콩코드는 안전 기준도 더욱 강화되었지만 슬슬 운행 중단으로 기울어 갔고,
2003년 10월엔 모든 콩코드기가 운항을 중단하고 현역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간간히 뉴욕-도쿄 간 초음속기가 새로 개발 중이라고 몇 년 전부터 소식은 들어 왔지만 그게 언제 다시 실현될지는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4/16 12:35 2010/04/1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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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나 자가용 같은 자동차를 제외한 다른 모든 교통수단에는 객실 내부에 화장실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버스만이 생리 현상을 실시간으로 주행 중에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외국에는 우리나라보다 더 큰 50인승이 넘는 규모에 화장실까지 갖춘 차가 있다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다.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나라의 일반열차들은 소변기만 있는 남자 전용 화장실 + 남녀 공용 좌변기 화장실 이렇게 객차 하나당 화장실을 둘 갖추고 있다. 붙박이 건축물의 화장실에 존재하는 변기는 도기로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교통수단 내부의 화장실 변기는 플라스틱이나 금속재도 많이 보는 것 같다.

공간이 제일 아쉬운 비행기는 남녀 공용 좌변기 화장실 하나만이 존재한다. 화장실을 하나 만들려면 일단 오물 보관 탱크에 세척용 물탱크까지.. 교통수단의 입장에서는 오버헤드가 꽤 생기는 셈이니 말이다(수분은 몸을 무겁게 한다!).
배는 글쎄? 어지간한 규모가 있는 여객선이라면, 그래도 교통수단들 중 가장 여유가 있으니 남녀가 구분된 화장실이 있으려나?

기차를 마지막으로 탄 경험이 한참 옛날인 분들은 아직도, 열차가 정차 중일 때는 화장실 이용이 허용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로, 통일호 직각 좌석 열차가 다니고 천장에 에어컨도 아닌 선풍기가 달려 있던 시절의 얘기이다. 출입문을 손으로 열 수 있어서 주행 중에 선로로 추락하는 게 가능하던 시절의 얘기이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때 화장실 이용이 금지되었던 이유는 오물을 곧장 바깥 선로로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역 승강장 주변 선로로 오물이 투척되면? 충격과 공포.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열차가 고가 위로 달릴 때 그 아래로 지나가지 않았다. 철도청에서는 선로 주변 오물을 수거하는 전담 부서마저 뒀다는 믿지 못할 얘기가 전해진다.
물론 1980년대 이후부터 도입된 객차는 오물을 자체적으로 모아 두는 시설이 있으므로 아무 때나 화장실을 이용해도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아무 걱정 말 것.

비행기는 이착륙 중일 때 정도에나 화장실 사용이 금지된다. 물론 이건 화장실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안전하게 좌석에서 안전벨트 매고 기다려야 하는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오물을 바로 지상으로 투척할 리는 없을 테고.. -_-;; (그랬다간 철도보다 더욱 충격과 공포)

그런데 비상 착륙을 해야 하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아까운 연료를 버리는(fuel dumping) 상황이라면, 분위기 잘 봐 가면서 바다 위로 오물 투척도 못 할 짓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둘 다 환경오염-_-이긴 마찬가지이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연료를 못 써서 덤핑할 정도이면 어차피 그렇게 오래 날지도 못한 상황이고 오물이 그렇게 많이 쌓이지도 않았을 것 같긴 하다. ^^;;;

그리고 어차피 화장실과 바깥이 완전히 격리된 건 아닌 모양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Catch Me If You Can을 보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비행기 화장실을 통해 경찰을 피해 바깥으로 탈출하는 장면도 나왔다. 엥?

화장실 설치와 오물 처리에 관한 한 다른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제일 수월하고 만만한 녀석은 단연 선박일 것이며, 그 이유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정화조 정도는 거치고 배출해야 할 것이다. 전세계의 모든 폐기물 찌꺼기는 결국 바다로 몰려들게 돼 있는데, 강물이 아닌 바닷물은 소금기가 포함되어 있어 쉽게 얼거나 부패하지 않는 구조가 된 것은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화장실 내부에서의 몰래 흡연 집중 단속은 공통적인 추세.
특히 비행기 같은 경우 화장실 내부에 연기 감지기까지 설치되며, 사실은 기내에 라이터 하나 갖고 들어갈 수도 없다. 심지어 향수나 스프레이까지, 액체 반입 자체가 전면 금지는 아니더라도 반입량이 제한이 걸려 있다.

하지만 옛날엔? 스튜어디스가 간접흡연 때문에 폐암 걸렸다고 소송을 걸 정도였으며 심지어 불꽃 하나만 잘못 튀어도 팀킬 ‘캐발살’인 비행선에도 흡연실이 따로 있었다! 역시 보안 관련 규정은 한번 거하게 사고를 당한 뒤에 허겁지겁 생기는 법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4/07 09:25 2010/04/0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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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분야 잡설

1.
“항공기의 발달로 호화 여객선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바로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항공기 대신 고속철,
호화 여객선 대신 새마을호
라고 집어넣으면 역시 딱 말이 되는 것 같다. 정말 말 된다.

새마을호 역시 그렇게 몰락하고 있다.
열악한 선형에서 빠른 속도보다는 전무후무한 내장재로 고급 열차 노릇을 하다가 그 자리를 이제 KTX에게 내어 줬다. 그 대신 KTX는 새마을호보다 좁고 좌석이 열악하다. KTX2는 좀더 나아졌겠지만 말이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타이타닉 생존자였던 고령의 할머니는 회상을 시작하면서 ‘타이타닉은 정말 환상적인 배였어..’라고 말하는 게 나온다. 그처럼 본인도 ‘새마을호는 정말 환상적인 지상 낙원 열차였어’라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회상할 것이다. 새마을호는 과연 인류의 철도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안락하고 화려한 열차였다.
2.
이거 뭐, 비행기 안에서 개인 영상 시스템으로 항공 사고 관련 영상물이 방영되다니... ㅋㅋㅋㅋ 소재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듣자하니 일반 TV 방송을 여과 없이 그대로 상영하다 보니 이런 게 화면으로 나갔나 보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근사하게 식사 하면서 똥 얘기, 토한 얘기를 나누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에 지인과 같이 비행기 탈 일 있으면 여행 중에 역대 비행기 추락 사고의 역사 얘기나 나눠 볼까? -_-

3.
김 민규 님의 글. 교통수단 UI에 관심이 많은 본인으로서 무척 공감이 가는 분석이다.
철도는 그야말로 녹음된 안내방송의 최고조를 달리고 있다. 한국에서 고객이라는 말을 쓰는 분야는 철도밖에 없다.
 
철도는 고속버스나 비행기처럼 point-to-point가 아니라 일단 중간 정차역이 많다 보니, 근본적으로 방송이 잦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데다, 다른 회사 구간은 모르겠지만 도철(SMRT)은 정말 친절 그 자체.
 
"잠시 후 우리 열차는 곡선 구간을 통과하여 약간의 소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급제동이 발생했습니다. 여행 중 불편을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전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성우가 녹음한 방송이 자동으로 나간다. ^^;;
정말로 급제동을 걸 확률이 높은 고속버스에서 저런 방송을 할 리가 없으며,
비행기도 "주변 기류가 불안정합니다. 승객 여러분은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이런 멘트는 승무원이나 기장이 육성으로 영어까지 일일이 말하지, 녹음된 방송이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사실 비행기는 출발 직후의 안전 수칙 안내를 제외하면, 나머지 안내 방송은 다 육성이다.
 
또한, Thank you for your co-operation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란 문구 역시, 공항이나 비행기 내부가 아닌 육상 교통수단에서는 거의 들을 일이 없다. 비행기는 사고 위험이 높은 교통수단이다 보니 통제할 것, 승객에게 당부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안전벨트 자체가 없고, 이미 있던 승차권 개집표기마저 없애고 있는(일반열차) 철도와는 넘사벽.
 
결론은... 비행기 타고 싶다.. ^^;;;;;;;;
그나저나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는 엄밀히 말하면 어법에 맞지 않다. 불편이란, 그냥 끼치는 것이지 끼쳐 "줄" 필요가 전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말이 되지만, "해 주셔서 죄송합니다"는 틀렸다. 그냥 "해서 죄송합니다"인 것이다. 본인은 국문과 전공도 아니고 딱히 토박이말 순수주의자도 아니지만, 내 모국어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엿가락 같은 언어가 되는 건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게 눈에 잘 띄는 편이다.
 
철도 기관사 정도만 해도, 되기 어려운 정도라든가 급여, 사회적 지위가 최소한 공립 학교 중등 교사뻘은 된다. 하지만 비행기 조종사는 가히 대학 교수나 군 장성 같은 레벨이 될 것이다.

- 돈 졸라 많이 벌긴 하는데 쓸 일 별로 없다 (사람 접대를 안 하니, 품위 유지비 같은 것도 별로..)
- 생명 수당.. 위험 부담이 크고 스트레스 받는다
-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하고는 떨어져 돌아다닌다
- 여자 앞에서 졸라 뽀대 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비행기 조종사(특히 국제선 기준)는 아무리 생각해도 바람 피우기엔 최적의 직업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 뭐, 조종사들의 실제 사정에 대해 아는 것도 아니고 현업 조종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므로 오해 없기 바란다.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뜻.

Posted by 사무엘

2010/03/24 16:40 2010/03/2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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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의 추억

1. 공항 가는 길: 드넓은 공항 고속도로와 늘 텅 비어 다니는 공항 철도. 주변 갯벌과 영종 대교의 경치가 무척 인상적이다. 서울에 살면서 짐이 별로 없이 혼자 비행기 탈 때야 싸고 쾌적한 공항 철도가 짱이지만, 공항 철도 수혜권의 밖에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게 문제.

2. 으리으리한 인천 공항 여객 터미널: 리무진으로 공항에 갔다면 3층인 출발층에 코앞에서 내리겠지만, 자가용을 갖고 갔다면 지하 주차장, 그리고 철도를 이용했다면 역시 지하에서 내리므로 터미널까지 한참을 걷고 올라가야 한다.
돈 뽑기, 환전이나 휴대전화 로밍 같은 시설은 널렸으니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만능 콘센트 같은 것도 면세점에 가면 다 있다. 하지만 환전은 인터넷으로 미리 해 가야 싸다. 시계 같은 건 군부대 앞에 있는 사제품을 사는 것보다야 미리 챙겨 가는 게 더 나은 것과 같은 이치.

3. 출국 수속: 맨 윗층(3층)인 출국층으로 올라가, 내가 타는 비행기가 소속되어 있는 항공사의 부스로 간다. 짐이 많으면 카트 하나 끌고 긴 줄을 따라 기다린 후, 자기 차례가 되면 출국 수속을 받는다. 미리 프린트해 놓은 E티켓과 여권을 제시하면 되는데, 항공사에 따라서는 아예 E티켓은 보지도 않고 여권만 주면 되는 경우도 있더라.

이 시점에서 항공권이 발권된다. 직원이 어디 앉고 싶냐고 보통 묻는다. 나는 늘 창가 쪽 좌석을 달라고 했고 그럼 그렇게 티켓이 나왔다. 신체 건강한 성인이라면 비상구 쪽 좌석을 달라고 해도 된다. 발을 길게 뻗을 수 있어 무척 편한 자리인 반면, 여기 앉은 승객은 사고가 났을 때 승무원과 같이 다른 승객들 구조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이건 항공업계에 법으로 규정된 사항이며, 이 때문에 비상구 좌석은 그렇게 할 능력이 있고 그 의무에 동의하는 승객에게만 발권된다.

4. 소지품: 고속버스의 내부에 짐칸과 객실 내 선반이 따로 있듯이, 비행기를 탈 때도 승객은 큰 짐은 따로 부칠 수 있으며, 작은 짐은 그냥 기내에 갖고 들어갈 수 있다. 부치는 짐은 출국 수속을 할 때 무게를 재고 간단히 보안 검사를 한 후, 항공사 측으로 인계하게 된다. 옷가지나 세면도구, 책처럼 당장은 없어도 되면서 싸고 부피가 비교적 크고, 잃어버려도 그렇게 큰 손해가 아닌 짐은 응당 부치면 된다.

부치는 짐은 수송하는 과정에서 컨베이어 벨트 위에 쿵쿵 떨어지기도 하고 직원들이 막 던지기도 한다. 수송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면 정말 '식겁'을 할 거라던데.. 그러므로 충격에 약한 물품은 부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또한 승객들끼리 짐이 뒤바뀌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가방 손잡이 같은 데에다 나만 식별할 수 있는 색깔의 손수건을 묶거나 표식을 미리 해 두는 게 좋다. 무게도 미리 재어서 테스트해 보는 것 역시 상식.

비행기에는 기내에 휴대 반입이 가능한 짐이 있고, 기내 반입이 안 되어 부쳐야만 하는 짐이 있으며, 아예 부치지도 못하는 짐도 있다. 참고로 기내에는 손톱깎이나 커터 같은 작은 쇠붙이도 갖고 들어갈 수 없으며 이런 건 부쳐야 한다. 비행기에 실을 수 없는 물품에 대해서는 소지를 그냥 포기하고 불우이웃 시설에 기증(?)하라는 물품 포기함도 공항 내부에 있다. ^^;;
이런 것과는 반대로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 같은 고가의 전자 기기들은 부치지 말고 기내에서 개인이 직접 휴대해야 한다.

5. paid 구역으로: 이제 탑승권을 받았으므로 paid 구역으로 들어간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다. 철도처럼 자동 개집표기 같은 건 없고,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 여권과 탑승권을 제시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다. 곧바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보안 검색대이다. 가방, 주머니 속의 소지품, 웃옷 다 꺼내서 바구니에 얹고, 본인도 신발 벗고 검색대를 통과하면 된다.

6. 출국 심사: 검색대를 통과한 후 출국 심사를 받는다. 출국 금지된 블랙리스트 등재 인물이 아닌지만 파악하는 과정이므로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해당 사항 없다. -_-
여권과 비행기 탑승권을 제시하면 직원이 여권에다가 우리 공항을 이용하여 출국했다는 도장을 찍어 준다.

7. 대기: 출국 심사까지 마쳤으니 남은 것은, 면세점 쇼핑을 즐기다가 내가 타는 탑승구를 찾아가 비행기에 타는 것뿐이다. 타는곳이 확장 탑승동에 있다면 아직 갈 길이 한참 머니 지하로 가서 셔틀 전철을 타야 한다. 이 구역 내부는 무선 인터넷도 무료로 잘 돌아가고 있으니, 노트북을 갖고 있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면 인터넷을 즐겨도 좋다. 비행기 안에서는 인터넷이 안 되므로 어차피 배터리 다 쓸 거면 지금 쓰는 게 낫다.

8. 탑승: 각 게이트별로 아담한 대기실(?)이 있고 승객들이 앉아서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게이트가 열리면 비행기로 탑승이 시작되는데, 보통 1등석 승객과 노약자 장애인부터 가장 먼저 들어가고 일반실 승객도 좌석 번호에 따른 구역별로 승무원의 통제에 따라 탑승하게 된다. 1등석 승객과 다른 승객들은 들어가는 길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실 승객은 2등석까지는 잠시 구경할 수 있어도 1등석을 구경할 일은 잘 없다.
좁은 통로를 지나서 드디어 비행기 내부에 들어간다. 일반실은 좌석이 굉장히 작아서 KTX 일반실 내지 일반과 비슷하다. 버스처럼 안전 벨트가 있고, 다른 교통수단에는 없던 담요가 있다. 그리고 식수가 비치되어 있다.

9. 출발: 비행기를 타는 건 굉장히 큰 일이다. 보통 승객들도 예상 시각보다 훨씬 더 일찍 맞춰서 공항에 알아서 오고 대비를 한다. 작은 공항의 경우 타기로 예정된 승객들만 다 타면 예정 시각보다 먼저 비행기가 출발해 버리는 경우도 있는 있다. 하지만 비행기가 엄청 많이 드나들고 활주로를 조직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인천 같은 큰 공항은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비행기가 활주로까지 이동하는 것은 꼭 버스가 출발하는 것과 별 차이 없는 느낌이다. 이 동안 우리 항공사를 이용해 줘서 고맙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비상시 대처 요령 같은 게 비디오로 흘러나올 것이다. 그리고 곧 이륙을 할 것이므로 안전 벨트 채우고 전자 기기를 다 꺼 달라는 당부가 나온다. 비행기 내부에서는 이착륙 중엔 안전을 위해 일체의 전자 기기 사용이 금지되며, 순항 중일 때에나 통신 기능이 없는 기기만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기내에서 비행기의 이착륙 중에 창밖 풍경을 찍은 동영상은(유튜브에도 있다) 마치 예비군 훈련장 내부 사진(역시 블로그에 나돈다)만큼이나 규정을 어기고 몰래 찍은 것이다.

10. 이륙: 이륙이 시작되면 비행기의 엔진 소리 옥타브가 급증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가 거칠게 나기 시작한다. 짜릿하다. 비행기는 정말 이 맛에 탄다. 그리고 갑자기 지구의 중력 가속도의 값이 바뀐 듯한 느낌과 함께 비행기는 공중으로 뜨고 경사감이 느껴진다. 바깥 건물과 도로들이 장난감처럼 작아져 보이기 시작하며 구름마저도 아래로 보이게 된다.

본인의 경험상 인천 공항에서 갓 출발한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거의 15~20분 정도로 일정했다. 택싱 내지 대기 시간이 그만치 걸린다는 뜻이다.

11. 순항: 이제 비행기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만 남았다. 거리에 따라서 기내식이 한두 번 나올 것이고, 일부 노선의 경우 면세품을 파는 카트도 돌 것이다. 기내식은 식사도 있고 음료수+과자 간식도 있다.
아 그리고, 입국 신고서도 여행 중에 배부된다. 당신이 불법 체류자가 아닌 정당한 여행객인지(님의 신분은? 입국 후 어디 체류할 예정?), 생물학적으로 위험한 물품을 반입하고 있는지, 세관에 신고해야 할 귀중품이 있는지 등을 아주 형식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 대부분 해당 사항이 없는 질문들에 답변하여 입국 심사 때 제출하면 된다.

비행기에도 승객이 바깥 경치 좀 구경하라고 창문이 있다. 하지만 비행기 창문은 모든 교통수단들 중 가장 작으며 그 이유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착륙 중일 때는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창문을 다 열어 달라고 하며, 반대로 긴 시간 순항 모드일 때는 자는 승객도 있고 하니 창문을 닫아 놓고 기내를 전반적으로 깜깜하게 해 놓는다. 따라서 객실 조명에 관한 한 비행기는 고속버스와 비슷한 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행기 창문을 연다는 말은 블라인드로 가려졌던 유리창을 보이게 한다는 뜻하는 말이지, 바깥 공기와 객실 공기 사이를 개방한다는 뜻은 절대 아님. ㅋㅋㅋ)

지금 모든 대중교통들이 그렇듯이 비행기 내부에서도 흡연은 엄격히 금지이다. 특히 화장실 안에서 몰래 피우는 건 금기 1순위이다. 담배 연기가 화재로 오인이라도 됐다간 망신 톡톡히 당한다. 아예 담배 자체를 기내 반입 금지 물품으로 분류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라이터는 말할 것도 없고!
몇십 년 전만 해도 간접 흡연 때문에 폐암 걸린 스튜어디스가 소송 제기까지 했었는데 세상 참 많이 변했다.

※ 글을 맺으며

비행기 몇 번 타 보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생생한 기억이 남아 있어서 몇 자 정리해 보았다. 착륙 쪽은 쓰자니 너무 힘들어서.. 여기까지만. -_-

그 집채만한 배가 바다에 어떻게 떠 다니는지는 솔직히 이해가 된다. 배만 중력이 있는 게 아니라 유체에도 중력이 있으며, 근본적으로 물도 그렇게 호락호락 가벼운 물질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집채만한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로 뜰 수 있는지는 나는 아직까진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 그냥 무슨무슨 법칙과 수학 공식으로 설명을 하더라도 내 마음으로 "실감"이 가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냥 뜨는 것도 모자라 전투기 에어쇼 같은 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오늘날의 고정익 비행기는 정말 잘 통제된 아슬아슬한 조건 하에서만 뜰 수 있다. 새처럼 자기만 혼자 곱게 뜨는 게 아니라 주변에 온갖 side effect를 남기기 때문에 정말 깔끔하게 잘 정돈된 활주로도 필요하며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조류 충돌 같은 건 상상도 하기 싫은 악몽이다. 엔진이 풀로 돌아가고 있는 팬으로 불순물이 빨려 들어갔다간 작살 난다. 그래서 화산이 폭발해도 화산재와 먼지가 무서우니 그쪽은 피해서 비행해야 하고, 심지어 비행기 위에 쌓인 눈도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 눈 때문에 무거워서가 아니라, 눈이 쌓임으로써 비행기 날개의 표면 외형을 왜곡하여 날개가 만들어내는 양력 효율을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비행기 활주로는 무거운 비행기의 착륙 충격을 견딜 수 있게 일반 도로보다 훨씬 더 튼튼하고 특수하게 건설된다. 비행기 타이어도 자동차 타이어보다 훨씬 더 비싸고 고급 재질로 만들어지며 교환 주기가 짧다. 타이어 내부에는 화재의 요인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산소가 전혀 없이 비활성 기체인 질소만으로 100% 주입한다. 물론 지구 대기도 이미 80%가 질소이긴 하지만.
비행기 타이어가 터지면 터진 부분만 땜질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 한번 착륙을 수행한 비행기는 타이어가 굉장히 열과 무리를 많이 받아 있기 때문에, 몇 시간씩 식히고 쉬게 해 줘야 한다.

V1 속도를 넘어서면 이륙을 중단할 수 없이 무조건 떠야 하며, 연료 소비를 감안하여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의 허용 무게도 다 정해져 있다. 그래서 이륙했다가 곧장 다시 착륙하면 아직 연료 때문에 비행기가 많이 무거운 상태인지라 활주로와 비행기에 심한 무리를 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비행기는 긴급 환자 발생 같은 비상 사태로 인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조기 착륙할 경우, 선회 비행을 하면서 아깝지만 연료를 버려야 한다. 어떻게든 정상 운항 후 착륙할 때와 같은 무게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정말 복잡하지 않은가?
이래서 사람이 만든 날개는 역시 신이 만든 날개보다는 불완전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냥꾼의 총에 맞아 추락한 새가 땅에 떨어지면서 폭발과 화재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게 대단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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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1/11 09:57 2010/01/1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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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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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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