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가족 여행 (2016/9/15~17)

지난 추석 때 본인은 제주도로 2박 3일 가족 여행을 다녀 왔다. 이로써 본인은 지금까지 제주도를 딱 세 번 방문했다.
맨 처음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인데, 너무 오래 돼서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로는 4년 전에 회사 워크숍으로 역시 2박 3일간 다녀 왔다. 그 뒤 이게 세 번째이다.

이번에 간 건 버스를 타고 가이드를 따라다닌 단체·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숙소만 잡고 차를 렌트한 뒤 가족 단위로 자유롭게 돌아다닌 여행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여행과 차이가 있다. 글을 둘로 나눌까 하다가 귀찮아서~ 또 글 분량 대비 사진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어서 그냥 한 포스트에 전체 일정을 몽땅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의 지명으로서 '제주'라는 고유명사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 제주특별자치도: 행정구역으로서의 명칭이다. 이때 접미사 '도'는 경기도, 경상도 할 때의 그 도이다. 그러고 보니 한자는 의외로 그냥 '길'을 뜻하는 道였다. 都 같은 다른 글자가 아니구나.
  • 제주도: 섬으로서의 명칭이다. 이 '도'의 한자는 당연히 島. 한라산이 있으며 대한민국 영토 중에 가장 넓은 그 섬을 가리킨다. 제주특별자치도라는 행정구역은 바로 제주도와 그 주변에 있는 우도· 마라도 등의 마이너 섬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 제주시: 다시 행정구역 명칭이다. 제주도를 정확하게 남북으로 이등분해서 북반구 영역(주변 섬들 포함)은 제주시에 속하며, 남반구 영역은 서귀포시에 속한다. 우도는 제주시 소속이지만 마라도는 서귀포시 소속이다.

이런 제주도와는 달리, 울릉도는 도 단위의 고유한 행정구역이 할당돼 있지 아니하다. 그냥 본토의 '경상북도' 소속이고 그 하위 범주로서 '울릉군'이라는 주소를 가진 형태이다. 뭐, 얘는 위도로만 따지면 강원도 소속이어도 할 말이 없는 위치이긴 하지만 말이다.

면적으로만 따지면 전국에 울릉도보다 더 넓은 섬은 거제도, 강화도, 진도처럼 몇 개 더 있다. 인천 공항의 건설을 위해 간척으로 합쳐 놓은 영종+용유도도 울릉도보다 약간 더 넓다. 그러나 이들은 본토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편이며 아예 다리도 놓였기 때문에 섬이라는 느낌이 덜 든다.

울릉도는 본토와 다리로 연결되지 않은 섬 중에서는 아마 제주도 다음으로 가장 넓지 싶다. 제주도 만만찮게, 아니 그 이상으로 본토와는 100km가 넘게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강원도에 준하는 급의 위도에도 불구하고 6· 25 전쟁의 포화조차도 비껴 갔을 정도이다. (공산당에게 점령 당했거나, 수복을 위해 군대가 상륙하고 전투가 치러진 내력이 없음)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도 단위의 구역을 독립시키기에는 울릉도는 너무 좁고 인구가 적다. 다리가 없고 공항도 없으니 자동차와 비행기 모두 아웃. 왕래하는 교통수단은 오로지 배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에 반해 제주도는 면적과 거리가 모두 독보적인 원탑이며, 고대엔 아예 탐라국이라는 별개의 국가를 이루기도 했을 정도로 단절성이 뛰어나기에 저렇게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이지 싶다. 서울이 특별시인 것만큼이나 우리나라의 섬들 중에 행정구역상으로 '특별'이라는 말이 붙은 곳은 제주도밖에 없다.
과거에는 제주도는 행정구역 명칭도 '특별자치'라는 단어가 없이 똑같이 '제주도'였다. 그래서 개념을 더욱 혼동하기 쉬웠다. 똑같은 단어인데 넓은 범위에서의 의미와 좁은 범위에서의 의미가 달라서 헷갈리기 쉬운 게 세상엔 많이 있다. ('이름', IME 등등..)

제주도와 울릉도에 비하면 쓰시마 섬(대마도)은 외국 영토치고 이례적으로 굉장히 가까이 있는 섬이다. 하지만 얘는 근대에 일제가 강탈한 게 아니고 역사적으로 굉장히 오래 전부터 일본인들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소유주가 진작부터 지금처럼 굳어졌다.
이런 걸 생각하면 섬과 행정구역 사이의 경계를 생각하는 게 의외로 재미있으면서 한편으로 골치 아픈 문제인 것 같다.

사회 지리 얘기는 제끼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비행기는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아니니, 어딜 가든 비행기를 탈 기회가 찾아오면 이것만으로도 나의 신경이 바짝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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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 본 현대 자동차 남양 연구소이다. 지상에서 뭔가 익숙한 지형지물이 보이니 반가웠다.
뿌옇게 형상만 보이던 사진을 콘트라스트 올리는 보정을 하니 부득이하게 흑백 사진처럼 바뀜. 주행 트랙에서 저 둥그런 위쪽 끝과 아래쪽 끝 사이의 거리는 나름 거의 2km에 달한다.
저게 나타나기 불과 몇십 초 전엔 '자동차 안전 연구원'의 주행 트랙도 봤다. 두 기관의 거리를 알고 있으니 시간차를 통해 이 비행기의 주행 속도를 얼추 계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광주 부근에서는 광주 공항도 볼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내가 착륙하지 않는 다른 공항도 내려다보는 건 아무래도 자주 경험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제주도에 도착한 뒤엔.. 공항에서 렌터카 사무실은 어떻게 찾아갈지, 공항 주변은 분명 자동차들로 교통지옥일 텐데 어떻게 빠져나갈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공항 주변 도로의 혼잡을 완화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부터 렌터카 업체들은 다 공항 바깥 외곽으로 이주했으며, 그 대신 업체들이 연합하여 승객과 렌터카 허브를 왕래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조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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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이호 테우 해수욕장을 들렀다. 가족 중에 나만 유일하게 물놀이 준비를 하고 여행을 떠났으며, 나 혼자 바닷물에 들어가서 물과 흙을 묻히며 재미있게 놀았다. 물에 들어가는 건 언제나 웰컴. 이로써 올해 본인은 서해, 동해에 이어 남해 바닷물까지 모두 경험하게 됐다.

일행이 있으니, 혼자 달랑 해수욕장에 갔을 때와는 달리 소지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이렇게 물에 들어간 내 모습을 사진 찍어 줄 사람도 있고 말이다.
이 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좀 끈적거리는 게 동해보다는 서해 바닷물에 더 가까워 보였다. 단, 제주도답게 검은 모래도 있고, 바닥이 울퉁불퉁한 곳이 많아서 편하게 돌아다니기는 어려웠다.

해수욕장의 이름이 좀 특이한데, '테우'는 제주도 고유의 모양을 한 소형 어선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물놀이를 딱 마치고 나니까 날씨가 급격히 흐려지고 비까지 내려져서 타이밍이 절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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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시내를 벗어나 남부의 서귀포시로 갔다. 제주도 남부를 횡단하는 동안 이런 산길을 굉장히 길게 지났다. 여기는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곳도 신호등 교차로가 아니라 로터리 형태로 된 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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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제주도의 동남쪽 끝에 있는 성산 일출봉을 올랐다. 높이가 해발 180m 남짓 된다. 처음엔 초원과 오솔길로 시작하지만 정상 부근의 바위는 나름 가파른 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 관계상 한라산 등산은 하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 아쉬운 대로 등산 흉내를 냈다.
식사와 이동 시간을 빼니 첫째 날의 일과는 이 정도로 마치게 됐다. 산과 바다를 제각각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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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아침엔 천지연 폭포를 구경했다. 사진을 따로 첨부하진 않지만 여기까지 가는 길도 울창한 숲과 호수? 개천이 아주 잘 꾸며져 있어서 경치가 좋았다.
또한, 저 사진엔 용케 안 들어갔지만 현장 주변은 아침부터 온갖 관광객들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구도가 잘 나오는 바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려면 한창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유사품인 천제연 폭포와 혼동하지 말 것...;; 사실, 둘 다 비슷하게 경치가 아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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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천지연보다는 작고 덜 유명한 '원앙 폭포'라는 곳에 들렀다. 차를 세운 뒤 계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했는데..
여기는 천지연과는 달리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물은 해수욕장보다 훨씬 더 맑고 차갑고 깨끗하고 좋았는데...! 어제 같은 물놀이 준비를 하지 않고 나온 게 너무 후회됐다. 발만 담그고 돌아가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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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柱狀節理)라고 용암이 바닷물과 닿아서 식으면서 생긴 기묘한 지형이라는데, 중문 대포 해안에 있는 걸 봤다. 인간이 돌을 일부러 저렇게 깎은 게 아닌데 자연적으로 어떻게 저런 모양이 생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용암 아니랄까봐, 바위가 뭔가 흐르는 듯한 모양에 구멍이 숭숭 난 채 시꺼멓게 굳은 걸 보니, 선지 생각도 났다.

이로써 둘째 날 오후가 됐고 여행의 전체 일정은 후반부로 들어섰다.
지금까지는 보다시피 공무원들이 관리하는 자연 명소들을 주로 들렀다. 자연 명소라는 특성상 관광 장소는 100% 실외이고, 외지 관광객의 입장료가 2000원가량이었다.

이제 후반부부터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설 박물관들을 들렀다. 이런 곳은 입장료도 9천원~1만원대로 훨씬 더 비싸진다.
4년 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는 첫째 날은 한라산 등산으로 하루를 보냈고 둘째 날 자연 관광은 송악산과 마라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셋째 날은 서울 도착을 오후 2시쯤에 했을 정도로 식사와 이동 말고 딱히 활동한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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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국 테마파크는 우리나라 포함 세계 각국의 온갖 유적· 유물과 유명 건물들을 적게는 1/3, 많게는 1/25급으로 축소한 구조물들을 넓은 실외에 전시해 놓았다. 만리장성, 자금성, 에펠 탑, 미국 국회의사당이던가 백악관, 이집트와 멕시코의 피라미드, 우리나라의 청와대, 경복궁, 옛 서울 역, 피사의 사탑, 자유의 여신상 등 볼것이 아주 많다.

여기 말고 누나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고 싶어했던 박물관으로는 오설록 녹차 박물관과 그 근처에 있는 제주 유리의 성이었다. 하지만 이 두 곳은 내가 4년 전에 갔던 곳이기 때문에 또 가지 않았다.
돌아다니면서 세계 자동차 박물관을 종종 지나쳤는데 여기에도 못 갔으며, '제주 아쿠아플라넷'도 후보지에는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들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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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에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박물관은 살아 있다'라는 실내 응용 미술(?) 박물관이었다. 이런 식으로 2D와 3D 착시를 일으키는 벽화에 쏙 포즈를 취해서 자기가 그림 속의 주인공이고 높은 곳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거나 사지가 잘린 것처럼(!) 흉내를 내고, 그걸 다른 일행이 사진 찍어 주는 곳이다. 걸어다니면서 조용히 눈팅만 하는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손수 퍼포먼스를 좀 하면서 추억을 남겨야 한다.

저건 내가 표정 연기를 잘했다고 가족들이 다들 좋아했다. 밑에 부대찌개 그림이 있는 줄은 현장에 있을 때 미처 몰랐다. 제기랄. =_=;;

지금까지 다녀갔던 곳들은 자연 관광지는 대체로 어머니께서 제안하셨고, 맛집 식당과 박물관들은 누나의 제안으로 들렀다.
그 반면 셋째 날에는 한림 공원과 넥슨 컴퓨터 박물관을 들렀는데, 이것들은 내가 제안한 장소였다. 컴퓨터 박물관은 4년 전 당시에도 없다가 새로 생긴 곳이고, 반대로 한림 공원은 먼 옛날 수학여행 때 들른 곳이긴 하지만 다시 구경하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둘째 날에는 주요 짐들을 호텔에다 놔 두고 편하게 다녔지만, 마지막 날은 다시 숙소로 돌아오지 않으니 체크아웃 후 첫째 날처럼 다시 모든 짐을 차에 싣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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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 공원은 그야말로 식물원, 동물원, 동굴, 수석 전시관, 민속촌이 몽땅 합쳐진 멀티테마 공원이었다. 원래 있던 자연 지형을 토대로 조성된 국립공원이 절대 아님. 개인 사업가가 깡촌 황무지에다가 흙 깔고 외국에서 사 온 식물 종자들을 어렵게 심어서 일군 사립 공원이다. 어지간한 박물관들이 다 둘러보는 데 1시간 남짓한 시간을 잡지만, 여기는 1시간 반~2시간은 족히 잡아야 했다. 그러고도 입장료가 딱히 더 비싼 것도 아니었다.

맑고 하늘이 파랄 때 갔으면 경치가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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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서귀포 외곽이 아니라 제주 시내에 있었다. 이 때문에 여기는 동선을 고려하여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림 공원을 다니던 중에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하필 오후에 컴퓨터 박물관을 관람할 때부터는 딱 그쳤고 하늘이 맑아졌다. 날씨를 감안하면 올실내인 컴퓨터 박물관을 오전에 관람하고, 오후에 한림 공원에 가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컴퓨터 박물관은 전반적으로 저런 곳이었다. 컴퓨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옛날 컴퓨터 기계들이 즐비하고 특별히 고전 게임을 할 수 있는 옛날 컴퓨터, 그리고 일부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는 부스가 있었다.

하지만 나처럼 하드웨어 덕후가 아닌 평범한 프로그래머가 보기에도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컨텐츠 면에서 좀 2%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있어 보였다. 옛날 게임 소프트웨어 자체는 오늘날의 컴퓨터에서도 인터넷으로 구해서 에뮬로 얼마든지 띄울 수 있으니 희소성이 부족하다. 컨텐츠를 보강해서 아예 비디오 게임 전용 테마 박물관으로 가든지, 아니면 컴퓨터 박물관이면 에니악이나 우리나라 최초의 슈퍼컴 같은 학술적인 역사 자료까지 잔뜩 더 보강해서 개성을 강화했으면 어떨까 싶다. 두 이념을 좀 어중간하게 빈약하게 추구한 것 같다.

전반적인 규모도 다른 테마 박물관보다 작기 때문에 관람은 서둘러서 하면 한 3, 40분이면 다 할 수 있다. 다만,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으니 어린애들을 풀어놓고 시간 보내기에는 좋다. 실제로 우리가 갔을 때도 여기는 아이들 천지였다.
지하 1층은 카페 + 무료 고전게임 오락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코인 제약도 없다 보니 한 사람이나 가정이 자리를 너무 오래 차지하고 있는 걸 방지하는 수단이 없는 건 아쉬웠다.

굳이 사진을 첨부하지는 않지만.. "그 날이 오면 3" 게임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비치돼 있던데, 출시일이 웬 1990년으로 기재돼 있었다. 1편이나 2편의 출시일과 혼동한 듯. 3편은 1993년작이다.

한메 타자 교사도 있어서 본인은 세벌식으로 바꿔서 베네치아 게임을 해 봤는데.. 키보드의 감이 생소하고 또 최종이 아닌 390 배열로 하느라 버벅대서 8단계 2만 점대 초반에서 죽었다.
그런데, 이 점수로도 순위권에 아슬아슬하게 들지 못했다. 이미 하고 간 사람들 중에 타자 고수가 많았다. 이 사람들은 다 두벌식으로 쳤을 텐데.. 이 모바일 시대에도 컴퓨터 키보드 타자 고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하다.
공공장소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난 뒤엔 민주 시민답게 설정을 다시 두벌식으로 되돌려 놓는 것을 본인은 잊지 않았다. -_-;;

박물관 관람을 다 마친 뒤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은 걸 확인한 뒤엔 흑돼지 삼겹살을 먹었다. 제주도에서 한 마지막 식사가 제일 비싼 식사였다.
시간이 빠듯하지 않을까 서둘렀는데 그래도 시간이 1시간 남짓 있었기 때문에.. 공항 근처에 있는 자연 유적지인 용두암을 추가로 구경했다. 여기는 딱히 입장료가 들지는 않았다. 바위 사진보다도 비행기 사진에 더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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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제 시간에 무사히 자동차를 반납하고 공항 수속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는데..
연휴 마지막 날엔 엄청난 트래픽을 감당치 못하고 비행기들이 줄줄이 지연을 먹고 있었다. 면세 구역은 돗자리까지 깔고 몇 시간째 탑승을 기다리는 인파들로 가득했고 마치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이거 김포 공항의 통금에 걸려서 인천 공항에서 돌아와야 하는 건 아닌가 우려도 했지만 다행히 통금 시각은 밤 10시가 아닌 11시였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그 전에 서울에 도착함. 돌아오는 비행기는 광동체인 보잉 777이어서 마치 국제선을 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는 참 매력적인 교통수단이다.
이륙할 때 엔진이 최고 출력으로 가동되어 온몸으로 공기를 내뿜는 그 소리(청각)는 선로 위 전동차의 VVVF 구동음에 필적하는 청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소리가 너무 크고 우렁차기 때문에 어설픈 장비로는 녹음을 제대로 할 수도 없다.

또한, 급격한 가속 때문에 뒤로 쏠리는 그 가속도는 다른 대형 대중 교통수단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비행기 말고 뭔가 스릴있고 짜릿하다는 놀이기구들도 근본 원리는 다 사람에게 G의 왜곡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터, 바이킹 등.

착륙할 때 점점 고도가 낮아지고, 바퀴가 땅에 닿으면서 '쿵!' 착지 충격이 느껴질 때도 즐겁다.
서양 일부 문화권에서는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승객들이 박수를 친다던데.. 뭔가 사람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반영해서 생긴 문화 같다.
착륙 직후 플랩이 펼쳐지고 뭔가 저항이 걸리는 듯한 큰 소리가 나는 건 전동차로 치면 회생 제동이 걸리는 소리와 비슷하며, 자동차에서 엔진 브레이크가 걸리는 소리와 비슷한 것 같다.

이렇듯, 조종사에게는 제일 힘들고 긴장되는 순간이(이착륙) 승객에게는 제일 즐거운 순간이다.
모든 게 훌륭하다. 단, 딱 하나, 비행기에는 과거 새마을호 열차처럼 Looking for you 같은 "음악"이 없었을 뿐이다.
이것이 내게는 항덕과 철덕 사이의 운명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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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글을 맺기 전에 아이템 하나 추가함.
제주도의 풍경 상징이라 하면 딱 연상되는 건 (1) 본토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야자수, 그리고 (2) 이 돌하르방이다.
돌하르방은 그저 장승의 제주도 바리에이션이기라도 한 건지, 처음에 누가 언제 왜 무슨 용도로 만든 물건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정말로 옛날에 만들어진 물건보다는, 근현대에 유명해지고 나서 관광 마케팅 목적으로 일부러 따라 만들어진 모조품 돌하르방이 월등히 더 많다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_=;; '돌하르방'이라는 이름 자체도 '참치'만큼이나 근현대에 와서야 정립된 명칭이다.

돌하르방은 생각보다 크기가 다양하며, 사소하게는 저렇게 왼손과 오른손 중 위에 놓는 손의 위치도 통일돼 있지 않고 케바케이다.
제주도에 가면 "모처에 있는 요것이 현존하는 제일 오래 된 원조 돌하르방이다!" 이런 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난 돌하르방은 여러 모로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과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해 왔다.
저 모아이 석상 사진은 소인국 테마파크에 있는 걸 촬영한 것이다. 모아이도 원래는 돌하르방처럼 모자도 쓰고 있고 심지어 눈알도 붙어 있으나, 오늘날은 소실되고 없는 석상이 훨씬 더 많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13 19:36 2016/10/1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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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강선(성남여주선) 개통

나나나 나나나나나.. 널 좋아한다고
나나나 나나나나나.. 널 사랑한다고 ♪

즐거운 소식은 마음까지 적셔 준다.
몸 속으로 보내는 은빛 메시지
내 혼과 함께 달리는 철도. 성남여주선.

성남여주선(경강선)이 드디어 개통했다.
얘의 성격을 살펴보자면, 여느 지역의 지하철 내지 도시철도가 아니다. 다른 지하철 노선과 연장 직통 운행하지도 않는다. 신분당선이나 서울 지하철 9호선, 공항 철도나 수도권 고속철처럼 코레일의 자회사라든가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회사가 운영하는 게 아니며, 순수하게 코레일 본가의 관할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미 있는 철도를 복선전철화하거나 리모델링· 고속화한 것도 아니고 없는 길을 완전히 새로 낸 것이다. 이건 1970년대의 태백선 이후로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뭐, 경강선의 부분집합 전신에 근접하는 놈이 수려선이라고 먼 옛날에 있긴 했다. 협궤인 데다, 폐선되고 없어진 것도 1970년대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수려선은 수원-용인-이천-여주 순으로 길이 나 있었다. 용인 경전철은 얘의 선형을 아주 약간만 계승했지만, 근본적으로 경전철이라는 한계가 있으니 장거리 교통수단 역할은 못 한다.
그러나 이번에 개통한 경강선의 성남-여주 구간은 중전철에다 일반열차가 다니는 것까지 염두에 둔 full scale 철도이다. 그리고 수원· 용인까지는 가지 않고 광주-이천-여주의 순으로 길을 쫙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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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선과 신분당선은 다 빨강· 노랑 계열의 노선색인데.. 완전 딴판인 보색인 파란색으로 '이매'라는 역명판이 당당히 등장한 걸 보니 처음엔 적응이 안 됐다. 내가 갑자기 색맹이 되기라도 한 건지, 일종의 문화 충격마저 느껴졌다. 경강선의 이매 역엔 '성남 아트 센터'라는 부역명이 병기돼 있지 않다.

판교야 처음부터 건물 부지의 정중앙에(교차로 중앙이 아님), 마치 여의도 역(5호선+9호선)처럼 신분당선+경강선과의 환승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지만.. 이매는 분당선 것조차도 처음엔 존재하지 않다가 지하를 뒤늦게 파내서 꽤 힘들게 중간 추가한 역이다. 위치의 특성상 인근의 야탑과 서현에 비해 한적하고 2006년 10월 현재 아직까지 스크린도어조차 없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고 투자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렸던 역이었는데, 이젠 졸지에 환승역으로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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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스크린도어가 없는 역을 찾기가 더 어려운 지경이구만 저기는 아직..;;
열차가 가까이 진입하는 걸 직접 보니 스크린도어 없던 시절엔 겁 나서 지하철을 어떻게 이용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가까운 미래에 이제 이 역에도 스크린도어가 생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칭찬할 만한 점이 하나 더 있으니, 판교와 이매 모두 경강선과의 환승이 괜찮은 편이다. 고저 차가 크지 않았으며, 계단만 오르내리니 곧장 타 노선 승강장이 나왔다. 막장환승이 아니어서 첫인상이 좋았다.
판교뿐만 아니라 이매에서도 환승을 위해서는 비록 운임이 추가로 붙지는 않지만 게이트에 카드를 일단 찍긴 해야 하더라. 완전히 동일한 회사(코레일) 구간끼리인데도 환승 게이트가 존재하는 게 이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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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은 안내 전광판의 타이포그래피에 심하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굴림체를..;;
또한 열차 위치를 안내하는 꼬마열차 그림도 표시가 그리 정확하지가 않았다. 굼벵이처럼 찔끔찔끔 움직이다가 갑자기 확.. 이건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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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와 이매를 제외하고 경강선의 나머지 역들은 기본적으로 지상 고가이다. 하지만 중간에 산을 가로지르는 터널을 엄청나게 많이 지나며, 초월 역은 역사 건물은 지상이고 선로는 반지하였던 걸로 기억한다.
광주까지 벗어나서 이천· 여주 정도 가면 대부분의 구간이 지상으로 바뀌고 논밭까지 슬슬 나오기 시작하더라.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야 터널 같은 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긴 경부선 철도도 천안 이남 대전 근처는 가야 처음으로 터널이 등장한다. 그에 비해 21세기에 만들어진 경강선은 대놓고 얼마나 험준하게 건설됐는지를 알 수 있다. 경부선이 지금 같은 근성으로 건설됐으면 서울-부산을 그냥 최단거리로 잇기 위해 대전 따위는 안중에 없이 충주 상주를 곧장 경유해서 만들어졌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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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렸지만 초록색이 알록달록하게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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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역은 쌍섬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이름을 자동차 고속도로 IC 이름뿐만 아니라 철도역 이름으로도 접하게 되니 기쁘다. 얘가 경춘선으로 치면 평내호평처럼.. 광역철도와 일반 장거리 간선철도의 경계를 이루는 구간이 아닌가 싶다.
현재 경강선 전철은 4량 1편성으로 개통했으며, 일반 시간대에 1시간에 3대꼴로 운행되고 있다. 위상이나 배차간격은 여러 모로 경춘선과 아주 비슷하다.

경춘선 일대는 북한강이 지나가며, 한강 상수원 보호를 위한 개발 제한이 걸려 있다. 거기는 천상 레저· 관광 철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광주시 일대는 그냥 산 같은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서울이나 성남으로 가는 교통이 불편했을 뿐이다. 그 걸림돌이 해소되고 교통만 편리해지면 거기도 아파트가 잔뜩 지어지고 앞으로 인구가 증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니 이천· 여주까지는 몰라도 광주 곤지암 정도까지만 가는 열차는 앞으로 더 자주 운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편성당 차량도 적어도 6량급으로는 증결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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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강선을 달리는 전동차는 좌석에 난생 처음 보는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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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으로 벼가 익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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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을이 하루아침에 광역전철 역세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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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경강선은 영릉이라고 불리는 '세종대왕릉'을 철도로 접근 가능하게 해서 소위 한글 운동 진영으로부터도 큰 주목을 받게 됐다. 본인도 유일하게 이 역에서는 내려서 주변 지역을 살펴봤다.
역의 내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내용이 벽에 걸려 있고, 역의 일부 외벽에도 한글 자모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다만, 역에서 영릉까지 걸어서 가는 것 역시 여전히 무리다. 서울대입구 역에서 서울대를 가는 것보다도 더 멀고, 오이도 역에서 실제 오이도까지 가는 것과 비슷하다. 3~4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버스 같은 추가 교통수단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9월 말 현재, 역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이제 막 인근 도로의 확장 공사가 한창이더라.

원래 역명도 간단하게 '영릉'이라고 붙이려 했으나, 한글 단체에서 정말 끈질기게 태클을 걸어서 끝내 '세종대왕릉'이라고 이름을 바꾼 거라고 한다.
내가 알기로 역대 조선 왕들의 무덤은 그냥 인서울 내지, 좀 멀리 있으면 남양주쯤에 있는 게 전부인데.. 세종대왕은 워낙 넘사벽급의 성군이었던지라 멀찍이 떨어진 명당에 엄청 크고 화려하게 무덤을 꾸민 듯하다.

사실, 영릉을 찾아가는 데는 이 세종대왕릉 역보다도 다음 종점인 '여주' 역이 차라리 더 나을 정도라고 한다. 거기가 더 번화가이고 버스도 더 많이 다니기 때문.
여주 역은 장암이나 소요산 역처럼 그냥 단선 승강장 형태였다. 열차는 특별히 인상선을 타지 않고 들어온 형태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갔다(오리카에시). 과거의 수려선 여주 역과는 당연히 동일 위치가 아니며, 더 남쪽 외곽에 있다.

세종대왕릉과 부발 역 사이에는 철길이 또 하나 가로질러 갔는데, 이건 차량기지 겸 중부내륙선으로 가는 선로라고 한다(양 진로로 추가 분기함). 경강선 전동차는 이 기지에서는 경정비를 받고, 중정비는 여전히 죽전 인근의 분당 차량기지에서 같이 받는다.

이렇게 답사를 마친 뒤, 본인은 여기까지 온 김에 지금까지 가 보지 못한 신분당선 정자 이남 연장 구간도 시승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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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당선도 종점인 광교(경기대) 역 근처에서는 유일하게 지상으로 나온다.
얘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전방이 보이기 때문에 어린애들도 몹시 신기해하는 게 보였다. 신분당선이 미래의 철덕 꿈나무를 양성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으면 좋겠다.

또한, 경강선은 이렇게 공사가 착착 진행되어 영동 고속도로와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대체하는 철도가 어서 생겼으면 좋겠다.
비단 경기도만이 아니다. 부산-울산 광역전철도 개통이 임박했다. 11월 중순쯤 개통해서 올해 하반기에 드디어 수도권이 아닌 지방 광역시 권역에 중전철 형태의 통근형 궤도 교통수단이 등장할 예정이다.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11 08:30 2016/10/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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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셋 한글 입력기 8.6

이번에는 으레 관례적으로 하던 중간 보고(다음 버전 개발 근황) 없이 곧장 새 버전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6이 나왔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왜 2016년이 다 돼서 인제야 도입됐나 싶은 새로운 기능들이 많이 도입되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8.5 때보다 더욱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앞으로 최대 두세 번 정도 더 버전업 해서 9.0 정도는 갈 수 있을 듯하다. 무슨 작업을 더 할지 로드맵은 이미 다 잡혀 있다.

※ IME와 연결되는 키보드 드라이버를 변경하는 기능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서는 글쇠배열 편집을 통해 드보락이나 콜맥 같은 다른 외국어 글자판을 같이 쓸 수 있다.
그러나 외부 모듈의 경우, 이것은 IME 방식으로 글쇠를 인식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단축키나 암호 입력을 그런 영문 글자판으로 할 수는 없으며, 잘 알다시피 IME가 동작하지 않는 모드로서 '쿼티 자판' 내지 '빈 입력 스키마'가 언제나 반드시 추가돼야 했다. 이것 때문에 불편하다고 지금까지 사용자로부터 문의도 많이 들어왔었다.

물론 외부 모듈은 IME로서 자기 영역만 책임지면 되지 굳이 키보드 드라이버의 영역까지 개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번 8.6 버전에서는 한글 IME와 연결되는 키보드 드라이버를 간단하게 바꿀 수 있는 UI가 추가됐다. native 빈 입력 스키마 상태에서 드보락 내지 콜맥을 한글 글자판과 병용하는 사용자에게 굉장한 유용한 기능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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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외부 모듈에서 제어판을 연 뒤 "시스템 계층 - 고급 시스템 옵션"을 가 보면, "한글 IME와 연결할 영문 키보드 드라이버"라는 콤보 상자가 나타나 있다.
디폴트는 한국어 키보드 드라이버인 kbdkor로, 맨 앞에 있다. 자주 사용하는 걸로 판단되는 드보락과 콜맥은 곧장 2~3순위이며, 나머지 외국어 드라이버들은 이름의 알파벳 순으로 등재돼 있다. 운영체제에 존재하는 모든 키보드 드라이버 DLL들을 자동으로 탐색한 것이다.

이걸 변경한 뒤 제어판을 '확인'으로 닫으면.. 외부 모듈이 직접 레지스트리를 고치는 게 아니라 운영체제의 레지스트리 편집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고친다. HKEY_LOCAL_MACHINE 레지스트리 값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관리자 권한이 필요한데, 외부 모듈은 자기가 독립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DLL이기 때문이다. (권한이 없을 수도 있음)

확인 질문에 '예'로 대답한 뒤 운영체제 로그인만 다시 하면 바뀐 글자판이 적용된다. 단, 당장 로그인 암호를 입력하는 기준 영문 글자판부터 바뀌기 때문에 절대 주의해야 한다. 잠시 암호를 없애거나 숫자 기반으로 변경할 것을 권함.

한국어 이외의 다른 외국어 키보드 드라이버에서는 (1) 한국어 키보드에 존재하는 고유한 한영/한자 글쇠를 인식하지 못하므로 단축글쇠 차원에서 Shift+Space 같은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2) 또한, Windows XP 이전의 운영체제에서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기반 드라이버만이 바뀌지만 Vista 이후부터는 모든 한글 IME들의 기반 드라이버가 이걸로 바뀌어 버린다. 내 프로그램은 문제가 없지만 MS 한글 IME의 경우 한글 글쇠배열까지 영문 글쇠배열을 기준으로 뒤죽박죽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타 한글 IME를 사실상 제대로 쓸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주의하기 바란다.

※ 키보드 드라이버의 글쇠를 UI에서도 유동적으로 인식

위의 작업은 그 자체만으로는 그냥 일부 매니아 유저가 손으로 레지스트리를 일일이 고쳐야 했던 것을 더 편하게 해 주는 UI 껍데기를 추가한 것에 불과하고..
더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이 김에 키보드 드라이버와 관련된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날개셋> 변환기가 콜맥 키보드 드라이버 드라이버를 불러오려 하면 리가처(일명 dead key) 테이블 쪽에서 버퍼 overflow가 나서 죽던데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해당 드라이버가 리가처들을 이례적으로 잔뜩 갖고 있어 보이긴 했지만, 내 프로그램도 어떤 경우든 당장은 죽지 않아야 하므로.

그리고 획기적인 건.. 제어판 포함하여 내 프로그램에서 글쇠배열를 보여주는 부분에서 기준 글쇠배열이 단순 쿼티 고정이 아니라 지금 사용 중인 드라이버의 배열을 보여주게 했다.
다음 그림을 보면 확실하게 감이 올 것이다. 사용자가 배당한 검은 글자 말고 위의 흰 글자들..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 이래로 지금까지 이건 무조건 쿼티 고정이었다. 그러나 현재 키보드 드라이버가 드보락과 연결돼 있으면 이제는 드보락 배열로 표시된다. 세벌식 최종 기준으로 초성 ㅇ은 쿼티의 J 자리에 있지만 드보락에서는 H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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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드라이버라는 게 그 본질은 스캔코드와 가상 키코드 사이의 대응 규칙에다가 각종 dead key 조합을 담고 있는 '테이블'이다. 실행 가능한 기계어 코드나 매크로· 스크립트가 들어있어서 보안 문제를 걱정해야 하고, 신뢰성 보장을 위해 디지털 서명이라도 받아야 하는 그런 물건은 아니다. 그래서 Windows 9x 시절에는 키보드 드라이버는 실제로 *.kbd라는 형태의 그냥 데이터 파일이었다.

그러나 NT 계열에서는 키보드 드라이버는 그냥 static한 구조체 포인터를 되돌리는 함수를 구현한 DLL 형태이다. 무슨 다국어 UI DLL처럼 리소스/데이터만 들어있는 DLL도 아니고 엄연히 함수 실행 부분이 일단은 있다. 같은 테이블을 되돌리더라도 각 아키텍처에서 메모리로 직통으로 올릴 수 있게 구조체 멤버 같은 건 적절히 align/padding이 처리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같은 32비트 x86용 드라이버라 하더라도.. 순수 32비트 OS용과, x86-64 OS에서 64비트하고 같이 운용되는 32비트 드라이버는 서로 호환이 되지 않는다. 본인은 이걸 이제야 알게 됐다. 후자는 비록 포인터가 4바이트이더라도 구조체의 포인터들은 32비트가 아닌 64비트 단위로 듬성듬성 padding돼 있어야 하더라. 어쩐지 그래서 콜맥 드라이버도 받아 보면 i386, amd64뿐만 아니라 wow64가 따로 있었구나. 통상적인 DLL을 만들 때는 그걸 구분할 필요는 없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 단항 연산자

다음 버전에서 추가하네 마네 하면서 떡밥만 날렸던 ++ -- 단항 연산자를 그냥 이 기회에 추가해 버렸다. 덕분에 손 놓은 지 꽤 오래 됐던 복잡한 수식 해석 코드들을 다시 실컷 복습했다. 하지만 작업은 생각만치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얘는 문자열로 표현할 때 +가 두 개 있는 것과 형태를 구분하기 위해, 우선순위 조정이 아닌 다른 사유로 괄호가 필요한 첫 사례가 되었다.
물론 공백만 삽입해 줘도 되긴 하지만, 괄호로 확실하게 구분하는 게 더 보기 좋아서 괄호를 사용하기로 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5.0 방식 입력 설정 포맷은 구조 확장으로 인해 더 쓰이지 않는 데이터 청크라든가, 호환성 유지를 위해 누더기 땜질식으로 확장된 청크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5.0 이후로 backspace 동작 관련 옵션들은 판이하게 확장되었으며 저장 방식도 바뀌어 왔다. 거기에다 연산자의 추가는 레거시 파일 포맷의 무질서도(?)를 더욱 키웠다.

하지만 파일 포맷을 또 변경하는 건 유니코드에 한글 자모가 더 추가되는 정도의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아직까지는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이건 우리나라 경제로 치면 화폐 개혁을 하는 것과 같은 급의 파격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날개셋> 변환기가 이제 오랜만에 대공사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3~4.x를 5.x 포맷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5~8.x 포맷을 새 포맷으로 바꾸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 UI

사소한 UI 쪽으로 가면, 모든 대화상자들의 외형을 총체적으로 재검토해서 버튼들의 크기와 간격을 최대한 일관성 있게 재조정했다.
마소에서는 Windows 표준 GUI 가이드라인 차원에서 명령 버튼들의 크기(특히 '확인'과 '취소')를 50*14로 할 것을 권하고 있다. (단위는 픽셀이 아니라 dlu라고 대화상자 내부에서만 쓰이는 추상적인 단위임) 내 프로그램은 그건 준수하지 않고 45*16을 쓰고 있으며, 이번에 크기를 다 그걸로 통일시켰다.

달랑 '확인', '취소' 두 글자.. 영어로 표현해도 OK와 Cancel에 불과한 그 단어를 집어넣기에는 50*14는 너무 납작하기 때문이다. 가로만 너무 길고 세로는 짧다. '맑은 고딕'은 그나마 글꼴 metric의 종횡비가 좀 개선됐지만, 과거 굴림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요건 내 프로그램이 의도적으로 Windows 표준 GUI와는 약간 다른 정책을 취하는 부분임을 밝힌다. 사실, 국내에 애초에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신경쓰고 만들어지는 Windows용 프로그램 자체도 별로 없지만.

그리고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남아 있는 버그라면 버그인데..
잔상이 생기는 문제를 두 군데 해결했다.
하나는 날개셋 제어판 창을 가로로 쭉 키웠을 때, 날개셋 에디트 컨트롤에만 non-client의 테두리 부분에 남는 성가신 잔상이다. (아래 그림에서 오른쪽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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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리라는 이벤트가 왔을 때 그린 잘못밖에 없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일단은 고전 테마에서만 존재하는 문제 같은데, 대화상자 우측 하단에 있는 크기 조절 손잡이가 인근의 버튼 영역을 덮어써서 생기는 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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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원인을 해결했다기보다는 그냥 경험적으로 문제를 피해 간 것에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UI 경험이 더 개선됐을 것이다. 이 두 잔상은 기술적으로 문제를 피해 간 방식도 서로 완전히 달랐다.

※ high-DPI 지원, 기타

그리고 모든 구현체 프로그램들에 내부적으로 high-DPI aware 플래그를 추가했다. 이건 마소가 제시하는 표준을 준수했다는 점에서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일부 사용자에게는 단점 및 악재가 될 수도 있다.
125% 같은 high-DPI에서 대화상자들이 뿌옇게 확대+보정된 저해상도로 나오는 게 아니라 깔끔한 고해상도로 나올 테니 그건 장점이다. 하지만 편집기의 경우 어떤 DPI에서도 본문 글꼴이 무조건 16*16 픽셀로 찍히기 때문에 고해상도 + 대형 모니터에서는 이제 글자가 너무 작아서 알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건 자체 비트맵 글꼴을 사용하는 내 프로그램의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이므로 당장 쉽게 해결 가능하지는 않다. 요 특정 윈도우만 확대+보정해서 출력하는 기능이라도 써야 하지 않나 싶다. 호환성의 왕중왕인 Windows API 중에 뭔가 있을 것 같으나.. 높은 우선순위로 살펴보겠다고는 장담을 못 하겠다. 앞서 얘기했듯이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문자 입력 관련 기능만 연구하기도 갈 길이 너무 먼 상태여서 말이다.

저것들 말고도..

  • 외부 모듈에서 문자표 대화상자가 가끔 제대로 동작하지 않던 것을 개선했다.
  • 기본 입력 스키마의 추가 인식 글쇠를 수정하면 처음에 날개셋문자 값이 무식한 10진수로 찍혀 나오는 엄청난 버그를 왜 인제 발견했는지.. 당장 고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제어판의 글쇠배열 편집 페이지에서 '상태변수' 수식은 문법이 틀려도 종료 시에 에러가 찍히지 않게 했다. (어차피 설정 파일에 저장되지도 않고.. 창을 닫는 마당에 에러 체크 따윈 전혀 필요하지 않음)
  • 언제부터 이런 어처구니없는 버그가 들어갔는지 모르겠는데.. 편집기가 0바이트인 파일을 아예 열지 못하고 에러 처리하던 버그를 모 사용자로부터 제보 받아서 즉시 개선했다.
  • 현재 편집기는 파일을 저장할 때는 원래 있는 파일의 날짜와 크기를 체크해서 내 프로그램이 아닌 외부에서 변경되었으면 그걸 사용자에게 확인시킨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열었던 파일을 아무 변경 없이 그냥 닫더라도 파일이 외부에서 변경되었으면(날짜 크기 변경, 삭제) 재저장할지 사용자에게 확인시키게 했다. 단, 애초부터 읽기 전용으로 열지 않았고 하드디스크에 있는 파일에 한해서이다. (네트웍, 이동식 드라이브에서 연 파일은 제외)
  • Google 단모음 키보드를 예제 입력 방식으로 추가했다. 기존 두벌식에서 겹자음과 ㅑㅕㅛㅠ만을 제거한 간소화 버전인데 나름 모바일에서의 가성비가 좋다. '하꾜'는 연속 입력이 되지만 '학교'는 중간 딜레이가 필요하다. 천지인처럼 모든 종성에서 타이머를 줘야 하는 게 아니라 ㅂㅈㄷㄱㅅ 요 자음에 대해서만 주면 되는데, 그 값을 글쇠배열 수식에서 소문자 변수를 통해 지정하게 했다.

이렇게 사소하게 고치고 더한 아이템들이 더 있다.
두벌식에서 글쇠 수를 지금보다 더 늘리지 않고 shift도 쓰지 않고 쌍자음 음절 경계 구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어쩔 수 없이 (1) 타이머를 쓰거나, 아니면 (2) 초성은 다음에 이어지는 모음의 특성을 추가로 이용해서 쌍자음을 구현하는 것 정도가 전부인 듯하다.

※ 타자연습

끝으로 타자연습의 경우, 입력기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high-DPI 플래그를 넣었으며 이 외에도,

  • 도움말의 '세벌식 만물상 → 운영체제에서 두세벌식 전환을 어떻게 하죠?'에.. Windows 8~10 기준으로 글자판을 전환하는 방법이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빠져 있는 것을 확인하여 설명을 추가했다. 확실히 운영체제의 버전이 올라갈수록 전환하는 방법이 더 복잡해져 왔다.
  • 좀 심각한 문제이던데, 타자연습을 종료한 뒤에도 잔여 프로세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던 문제를 해결했다. 구형 운영체제에서는 이런 일이 없는 것 같던데 10에서는 문제가 있었다. Windows에서 프로세스는 단순히 실행을 끝내고 리턴만 하는 게 아니라 ExitProcess를 호출해 줘야 어디서나 확실하게 종료되는 듯하다.
  • 문장/글 연습에서 사용자가 추가한 디렉터리에 있는 연습글들은 우클릭했을 때 해당 연습글을 (1) 바로 편집하거나 (2) 파일이 있는 곳을 탐색기로 열어서 바로 찍어 주는 명령을 메뉴에 추가했다.

지난 3.5부터는 사용자 연습글을 추가하는 방식이 XML 기반에서 디렉터리-파일 기반으로 확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 사용자가 연습글 리스트 XML을 직접 고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제 와서 큰 의미는 없겠지만, 이번 버전에서는 연습글 경로에서 내부 압축 꾸러미 이름을 식별하는 구분자를 @에서 *로 전격 변경했다.
별표는 파일 시스템 차원에서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문자이기 때문에 이제 *.tc 파일 자체가 경로 중간에 @가 섞여 있더라도 이제는 아무 문제 없이 취급 가능하다.

※ 맺는 말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 대해 대외적으로 들어오는 의견은 크게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일반 사용자: 타 플랫폼 포팅도 좀 해 달라.
  2. 일반 사용자: 요런 요런 상황에서 외부 모듈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심하면 뻑나기까지 한다.
  3. 좀 컴덕후 기질이 있는 분들: 오픈소스화해 달라.

그런데 잘 알다시피 이것들은 모두 나로서는 전혀 현실성이 없으며, 예측 가능한 미래에 가능하지 않은 것들이다.

1. 리눅스, 맥 OS, 심지어 안드로이드까지 하나씩 골고루 다 요청을 받았었다. 특히 안드로이드는 그냥 화면 터치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외부 키보드를 연결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PC 키보드 지향 입력 시스템인 내 프로그램도 이제 충분히 진입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여러 플랫폼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반대로 단일 플랫폼에서 여러 구현체(편집기, 외부 모듈, 입력 패드)를 제공할 정도로 Windows에만 특화돼 있다. 한 플랫폼에 올인하면서 입력 기능 연구만 하기에도 본인은 시간이 부족하다. 포팅은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2. 이런 신고는 십중팔구가 내 자리에서 재연이 안 되는 것들이다. 내 프로그램도 외부 모듈의 짬밥이 이미 10년 가까이 돼 가는데, 기본적인 안정성은 이미 충분히 확보했다. 한글 입력이 전혀 안 되거나 아예 crash가 발생할 정도의 치명적인 문제는 내 프로그램 단독이 아니라 같이 돌아가는 백신이나 보안 프로그램과의 충돌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본인은 백신 같은 거 전혀 안 쓰는 사람이다.
내 프로그램이 디지털 서명이 된 채로 배포된다면 이런 문제가 더 줄어들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아마추어 개인 개발자 차원에서 가능한 일은 아니다. 디지털 서명을 발급받으려면 돈이 드는 건 둘째치고라도 신원 보증을 위해 사업자 등록증 같은 것도 있어야 한다. =_=;;

3. 전에도 한번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무슨 전세계 오픈소스 진영의 해커 덕후들이 다 한글과 세벌식 자판을 쓰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오픈소스화한다고 해서 누가 내 프로그램을 타 OS로 짠 포팅해 준다는 보장도 없다. 또한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명예 보상쯤이야 지금 같은 클로우즈드 소스 체계에서도 이미 충분히 받고 있다.
내 프로그램은 심하게 갈라파고스화된 1인 독재 체제에서 폐쇄적으로 개발되고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게 최선의 조치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08 08:33 2016/10/0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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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DA와 SONY의 로고타입

'혼다'랑 '쏘니'.
1946년에 설립된 일본의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전문 분야는 다르다. 혼다는 자동차· 오토바이 등 엔진 달린 탈것 전문이고 쏘니는 전자 쪽 전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마치 현대 자동차와 삼성 전자처럼. 종전 후에 설립되었기 때문에 미쓰비시 같은 기업과는 달리 전범 논란이 없다.

혼다와 쏘니는 둘 다 납작한 로만체 계열의 서체로 로고타입을 표현한다.
그래서 혹시 "완전히 동일한 서체인가?"란 의문을 품고 로고타입을 자세히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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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동일하지는 않다. N자 모양을 보면 차이가 명백하다. 단순한 폭이나 진하기 같은 산술적인 차이가 아니다.
혼다가 글자 모양에 변화를 더 줬다고 볼 수 있다. 보통은 N에서 대각선 획이 오른쪽 수직선에 완전히 붙지 혼다의 것처럼 아래에 독자적으로 닿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서체는 운영체제에서 흔히 보는 서체들 중에서는 Bookman Old Style과 비슷하다. Bookman도 Times 같은 다른 서체들에 비해서는 꽤 납작한 편이지만, 로고타입은 그것보다 더욱 납작하다.
이것 말고 또 서체가 유사한 기업 로고타입의 쌍이 무엇이 있는가 궁금해진다. 아주 오랜만에 글꼴 관련 짤막한 기록을 하나 남겼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06 08:30 2016/10/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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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래의 후손이 보라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옛 말이 있다. 비록 인간은 개인 단위로는 수명이 유한하지만, 기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존재가 잊혀지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런 기록 덕분에 인간은 과거 선조들의 경험을 전수받고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며, 지식과 정보를 축적할 수가 있다.

조선 시대의 실록은 굉장히 값진 문화 유산이다. 오늘날은 컴퓨터가 발명되고 반도체 기반의 초소형 고밀도 기억장치가 등장한 덕분에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문자 및 멀티미디어 정보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단, 여기에 저장된 정보는 접근을 위해서 역시나 복잡한 컴퓨터 장비가 필요하며 열과 자성, 충격, 습기 같은 물리적인 악재에 취약하다. 충분히 백업을 하지 않으면 삽시간에 몽땅 소실될 위험도 있다.

비록 비효율적이고 저장 밀도도 안습하지만, 수백· 수천 년을 버티고 살아남은 정보 저장 매체는 결국 돌판이나 종이책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 반면, 수백 년 전의 인류가 사용한 플로피 디스크 내지 자기 테이프가 발견되었다면 후손들은 과연 해독이 가능할까?

뭐 아무튼, 굳이 정보뿐만이 아니라도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 우리는 이런 걸 향유하며 살았다"라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종종 '타임캡슐'이라는 걸 만들어서 매립해 왔다. 한 시대를 대표하고 추억이 될 만한 물건들을 커다란 통에다가 넣어서 밀봉하고 땅 속에 파묻어 둔다. 그 뒤 지금으로부터 수십~수백 년 뒤에 개봉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94년에 서울시에서 서울 도읍 600주년을 기념해서 타임캡슐을 제작한 것이 유명하다. 다른 건 모르겠고 아래아한글 2.5 패키지가 포함된 것이 본인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요즘이야  플랫폼이 Windows로 넘어가면서 아래아한글의 점유율이 그 시절 만하지 않은데 나중에 그 2.5 패키지를 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요 캡슐은 남산 한옥 마을 인근의 타임캡슐 광장에 매립돼 있다. 설정상의 개봉 예정일은 600에다가 400을 더해서 1000이 되는 무려 2394년. 그런데 미래의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이 수틀려서 자기 권한으로 그냥 조기 개봉해 버려도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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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말고도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이것저것 타임캡슐을 만들어 묻은 게 의외로 굉장히 많다는 걸 본인은 처음 알았다. 이런 용도의 캡슐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업체가 있을 정도이니 자세한 건 여기를 참고하면 되겠다.

타임캡슐은 뭔가 킬로그램 원기 내지 인간의 냉동보존 같은 느낌이 드는데, 꼭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공기와 습기를 완벽하게 차단한 채로 보존이 잘 돼야 한다. 안 그러면 보관된 물건들은 수백 년 뒤에 낡고 썩는 바람에 후손들은 쓰레기밖에 건질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매립된 모 타임캡슐을 겨우 50여 년 뒤에 조기 개봉했는데, 캡슐이 습기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한 바람에 매장품이 이미 다 폐품으로 전락한 사례도 있었다.

2. 외계인(?)이 보라고

자, 그럼 후손들이 보는 타임캡슐만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성격이 위의 것과는 좀 다르지만 일종의 우주 스케일인 타임캡슐(?)도 있다.
1972년과 1973년에 발사된 외행성 탐사선인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는 혹시 마주칠지 모르는 외계인에게 인간의 존재를 소개하기 위해서 요런 그림이 그려진 동판이 장착되었다. 유명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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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 이런 것까지 생각할 만한 사람은 외계인 덕후 과학자인 칼 세이건밖에 없다. ㄲㄲㄲㄲㄲ)

일단 외계인이 보는 게 목적이니 인간의 언어와 문자는 전혀 동원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는 GUI 운영체제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아이콘과도 비슷한 컨셉이 된다.
당장 보아하니 이 탐사선이 어디서 왔는지를 태양계와 지구를 통해 표현했고, 이걸 만든 주체인 호모 사피엔스를 그림으로 묘사했다. 옷을 그려 넣으면 옷까지 신체의 일부라고 외계인이 오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부득이 사람을 알몸 형태로 그렸다.
그것 말고 다른 의미도 있는데 귀찮아서 검색은 생략한다.

굳이 비주얼한 것 말고 다른 인위적인 의미를 외계인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우주 공통인 수학· 과학 원리를 동원하는 것밖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그래서 영화 <컨택트>에서도 전파 신호가 2 3 5 7 11 13 같은 소수 수열 주기로 오는 걸 인지하고는 주인공이 "이건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신호야. 노이즈가 아냐!"라고 흥분· 감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학이 문자이고 물리학이 언어가 되는 셈이다. "같은 우주에서 살고 있다면 이들도 같은 물리 법칙을 발견했을 것이고 우리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이어니어 이후,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호와 2호는 가히 외행성 탐사선의 끝판왕인데, 얘는 아예 축음기와 음반이 들어갔다.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서 금칠까지 한 엄청 비싼 음반이다.
이 음반에는 파도와 바람 같은 자연의 소리, 시대별 주요 음악, 세계 55개 언어로 발성한 인삿말(한국어도 포함) 등이 수록되었으며 음반 뒷면에는 파이어니어 금속판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다른 상징적인 그림도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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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외행성 탐사선에 실린 물건은 기껏 지구의 땅 속에 묻힌 타임캡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먼 미래를 상정하고 만들어졌다. 물론 이걸 누군가가 실제로 발견하고 읽어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저건 지구의 타임캡슐과는 달리, 사실상 그냥 상징적인 퍼포먼스일 뿐이라고 봐야 한다.

가까운 별이나 행성 하나까지 가는 데도 거리가 기본이 광년급이다.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을 차치하고라도 그 우주에서 좁쌀, 먼지보다도 작은 탐사선을 누가 발견한다는 기약이 있을까? 차라리 태평양 망망대해에서 유리병에다 구조 요청 쪽지를 넣고 밀봉 후 병을 흘려보내는 게 훨씬 더 희망적이다.

그래도 인간이 이런 식으로 땅 속과 우주로, 서로 다른 방식과 목적으로 미래에 누군가가 보라고 자신의 족적을 남긴 내역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뭐, 성경적으로야 우주 공간에 지구 말고 다른 곳에 지적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란 없을 것이고 거기에 너무 집착하는 건 별로 권장할 만한 행동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아는가. 기독교를 변증할 때도 "인간이 아직 밝혀내지 못한 무수히 넓은 영역 안에 하나님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십니까?" 이런 말을 하는데, 같은 논리로 "인간이 아직 탐사하지 못한 무한히 광대한 우주 안에 인간 말고 다른 지적 생명체가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되십니까?" 이건 종교색을 떠나 자연을 탐구하는 관점에서만 보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니까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엔 만화가 박 무직 씨가 그린 <호텔>이라는 만화가 꽤 히트 쳤다. 거기서는 인류가 지구 온난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멸망하기 전에, 거대한 '호텔'을 지어서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해서 남긴다. 그걸 까마득히 먼 미래에 외계에서 온 지구인의 후손(?)이 발견한다. 뭔가 지구 버전과 우주 버전을 합친 느낌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03 19:35 2016/10/0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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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영화)

<부산행> 재미있게 잘 봤다.
새마을호가 나온 <라이터를 켜라>, 서울 지하철이 나온 <튜브>에 이어 KTX가 주 배경인 영화가 나왔다. 영화 스크린에서 서울 역, KTX, 무궁화호, 디젤 기관차 등등을 보니까 참 사랑스럽고 정겹고 훈훈했다.
난 좀비나 출연 배우나 심지어 스토리까지도 하나도 관심이 없다시피하고, 오로지 철도 구경하러 <부산행>을 봤다. 전국에 나처럼 생각한 철덕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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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의 운행 번호(406. 짝수는 하행이 아니라 서울 방면 상행 번호임. 400대는 경부선 부산행이 아니라 경전선 경유 마산행!)라든가 실물과는 다른 차량 외부 행선지 LED 같은 건 너무 사소한 아이템이니 따로 거론하지 않겠다.
꼭 남기고 싶은 소감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촬영의 편의를 위해 그냥 깜깜한 밤을 설정하고 만들었던 <라이터를 켜라>와는 달리,
배경이 낮이고 긴 터널 통과라는 설정으로 명암 조절을 한 것은 굉장히 훌륭한 점이다. 높게 평가한다.
대전-동대구 사이는 실제로도 긴 터널이 많은 구간인데, 그때 남자 주인공들의 객차 이동과 좀비 격투가 등장하는 건 각본을 탄탄하게 잘 짰다고 볼 수 있다.

한 터널이 통과 시간이 2분인가 3분이었는데, 열차가 시속 300km로 정상적으로 전속력으로 달린다면 대전-대구 구간에 통과하는 데 3분씩이나 걸리는 긴 터널이 있지는 않다. 그래도 황학 터널이 거의 10km에 달하며, 비상 상황에서 열차가 약간만 감속을 했다는 걸 감안하면 저런 설정은 설득력을 충분히 얻는다.

2.
철도 차량의 진행 방향과 등화의 색깔을 헷갈리는 건 철도 등장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고증 오류이다. <튜브>에서 본 적이 있는데, <부산행>도 초반에 그런 옥에티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철도 차량은 그 특성상 자동차로 치면 깜빡이(방향지시등)에 해당하는 등화는 없다. 그 대신 전방으로는 백색등, 후방으로는 적색등을 켠다. 국정원 연재 추리 퀴즈 중에 이 특성을 이용해서 용의자의 논리 오류를 논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전기 철도 차량과 관련하여 나올 만한 고증 오류는 팬터그래프의 배치 방향이다. 팬터그래프는 진행 방향 기준 최대한 후방에 있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부산행>의 경우, 열차가 달리는 모습을 외부에서 클로즈업 한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아서 팬터그래프 같은 건 확인할 수 없었다.
<라이터를 켜라>는 장면이 바뀔 때 열차의 외부 클로즈업이 종종 나오기도 했는데 이와 대조적이다. 애초에 쟤는 새마을호 디젤 동차가 배경이어서 전철과는 무관한 설정이기도 했다만..(그래서 주인공이 천장 위를 기어가는 스턴트를 하는 것도 가능했고!)

3.
동대구에서 디젤 기관차에 수십 명의 좀비가 달라붙자 기관차 바퀴에 불꽃이 튀고 힘이 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나온다. 이건 두 말할 나위 없이 연출이며 과장이다.
7000호대 디젤 (전기) 기관차는 무려 수천 마력에 달하는 출력을 자랑하며, 몇십 톤짜리 객차를 몇 개씩 견인하는 차력사이다. 얘 혼자 무게만 120톤을 넘으니, 지상의 도로를 달리는 대형 트레일러의 트랙터조차도 기관차 앞에서는 어설픈 풋 사과로 전락한다.

속도만 느리지 토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그깟 좀비들이 좀 달라붙어 봤자 차량의 주행에는 아무 영향 없다.

4.
저런 것들을 제치고 내 눈에 제일 확실하게 들어온 비현실적 고증 오류는 바로..
대전 역에서 수십 명의 군인 좀비들이 유리창을 깨고 아래의 선로로, KTX 열차 위로 후두둑 떨어졌는데 어떻게 전차선에 닿아서 감전돼서 타 버린 좀비가 한 놈도 없느냐는 것이다. 요거 간파한 분이 계신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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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선에서 펑~펑! 불꽃이 튀고 일부 좀비는 시꺼먼 통구이가 돼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면 관객과 주인공들을 더 멘붕시키고 더 공포감을 조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당장 제작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고, 또 끈질긴 불사신으로 묘사되는 좀비의 이미지와도 맞지 않는 연출이 될 테니 그런 고증까지는 제낀 듯하다.

이 영화는 좀비로 변한 주인공을 제외하면 좀비가 죽는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끝날 때가 다 돼서 그나마 안전한 부산에 주둔한 군인을 제외하면, 군인들도 소총 하나 없이 중대급 병력이 몽땅 좀비에게 무기력하게 쳐발려서 죽거나 자기도 좀비가 되는 모습으로 나온다.
특히 대전은.. 차라리 경비 인력을 처음부터 전경으로만 설정하지 왜 군인을 집어넣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나중에 상화(마 동석)가 승강장에서 사용한 도구도 전경 방패와 방망이이고 말이다.

위험물 관리를 잘못해서 수많은 국민들을 좀비로 전락시키고 나라를 내전 급의 파탄으로 몰아넣은 바이오 기업이 실제로 있다면, 저건 뭐 삼풍 백화점이나 세월호 따위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큰 사고를 친 것이다. 혼란이 다 수습된 뒤엔 그 기업은 공중분해돼야 할 것이고 대표와 핵심 간부들은 사형· 무기징역급의 중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_=;;
그리고 승객 중에서 악역이라면 악역인 영석(김 의성)은 정말 <라이터를 켜라>에서 국회의원 박 용갑, 그리고 <테이큰>에서 장 끌로드, <13구역>에서 국방부 장관 크루거(13구역 몰살 계획이 탄로나서 짤리는..), <타이타닉>에서 '칼' 같은 비열한 캐릭터라 여겨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01 08:37 2016/10/0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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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량 + 대포

전차와 자주포를 구분할 줄 아는지 여부는(외형, 용도 모두) 아마 일반인과 밀덕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잣대가 아닐까 싶다. 군사 디테일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느 것이든 그저 똑같은 탱크로 보이겠지만, 둘은 그 본질이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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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는 적진을 향해 말 그대로 돌진해서 싸우는 역할을 하는 차량이다. 눈에 보이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적을 향해서 포를 직사로 쏜다.
그 반면 자주포는 대형 곡사 화포에다가 움직이는 기능을 부가적으로 추가한 형태이다. 탱크만치 험지와 급경사, 물 속까지 돌아다니지는 못하지만 수~수십 km 밖에 있는 표적에다가 위력도 훨씬 더 강한 포를 쏜다.
스타크래프트 탱크에다 비유하면 전차는 말 그대로 탱크 모드이고, 자주포는 시즈 모드에 대응하는 셈이다. 게임에서는 한 차량이 두 모드를 겸하는 재주꾼이지만 현실에서는 둘은 별개로나 운용 가능하다.

군용차 중에는 전차보다 더 무장이 작은 장갑차도 있다. 이런 차량은 전차보다도 더욱 이동과 방어에 특화돼 있으며, 무장은 있더라도 포가 아닌 중기관총 같은 더 가벼운(?) 형태로 국한되곤 한다.
심지어 바퀴도 궤도가 아닌 일반 고무 타이어가 달려 있기도 하다. 굴삭기가 궤도형도 있고 고무 바퀴형도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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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군용차의 속성에는 이동 능력과 전투 화력이 일종의 tradeoff 형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장기에서도 이런 점을 반영하여 차(車)와 포(包)가 가장 값어치가 높은 말인 것이지 싶다. 적절한 작명이다. "차 떼고 포 떼고"라는 관용구는 핵심요소를 빼서 엄청난 핸디캡을 부과하겠다는 얘기이며, 윷놀이로 치면 윷과 모를 빼고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말(馬)이나 코끼리(象)를 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2. 드래군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 공격 유닛 중에는 '드래군/드라군'이라는 놈이 있다. 영어로는 dragoon인데 '용'을 뜻하는 dragon과 철자가 아주 비슷하다(O가 하나 더 붙었을 뿐).
드래군은 우리 문화권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근세 서양에 존재했던 기마병을 뜻한다. 시기가 중세 이후이기 때문에 무슨 두꺼운 갑옷 차림에 냉병기 무장은 아니고, 그 대신 머스킷으로 무장해 있었다.

그런데 영한사전을 찾아보면 드래군의 원래 우리말 번역이 '용기병'이라고 그러길래.. 저 '용'은 도대체 무슨 한자이고 무슨 뜻으로 말이 저렇게 번역되었는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설마 했는데 그 용은 龍이었다. 드래군들이 지닌 장구류(깃발, 헬멧)에 용 모양의 휘장이 붙어 있었다고 말이다. 불과 천둥을 내뿜는 머스킷 총구가 서양 문화권에서 용의 입을 연상시켰는가 보다.
영어로도 '드래곤'과 굉장히 비슷한 단어인데 한국어 '용'도 그걸 노린 건지, 마치 dung과 '똥'과 비슷한 급의 우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토스의 드래군은 다리가 넷 달렸고 덩치도 아주 크다. 비슷한 테란 메카닉 유닛인 골리앗보다도 더 크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프로토스 용사들의 수족만 기계로 교체한 거라면 외형이 이족보행 로보캅처럼 됐을 텐데, 저렇게 '기마병'을 표방하느라 다리 개수도 늘어난 듯하다. 원래 프로토스 족이 근본적으로 인간보다 덩치가 더 큰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군대 조직 생각을 하다가 문득 스타크래프트 추억이 다시 떠올랐다.

3. 육군 보병을 지원하는 화력

전쟁에서 가장 본질적인 주역은 예나 지금이나 땅개 보병 소총수이다. 사람은 결국 물이나 하늘에서 사는 게 아니라 땅에서 사니까.. 그리고 온갖 최첨단 무기들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특수하고 전문적인 병과들도 많이 생겼지만, 얘들도 존재 목적은 결국 보병이 벌이는 전투를 보조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난관에 부딪힌 보병 부대가 통신으로 "우리는 현재 적에게 포위됐다. / 이런이런 장애물 때문에 진격을 못 하고 있다. 여기여기 좌표를 폭격해 주길 바란다! 지원 바란다!" 식으로 후방 기지에다 연락을 한다.

군대에 어떤 기계가 도입되면 기계 덕분에 인력만으로 할 수 없는 넘사벽 급의 일을 거뜬히 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계는 아무 환경에서나 제 능력을 발휘 가능한 게 아니며, 유지 보수하고 관리하는 인력을 추가로 필요로 한다. 기계는 사람보다 생물학적으로 척박한 곳에서는 더 잘 견디겠지만, 너무 복잡하고 정교한 물건이라면 충격이나 진동에는 의외로 취약하고 신뢰성이 마냥 무한하지 않다. 만능 강화복이나 로봇 병기 같은 게 2010년대에도 실용화되지 못하고 여전히 공상과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총체적인 가성비를 따졌을 때, 알보병은 현대전에서도 가성비가 그렇게까지 꿀리지 않는다. 군사 분야에서 알보병이라는 병과가 송두리째 100% 기계로 대체되지는 않았으며, 기계는 자기 전문 영역에서만 언제까지나 인간을 보조하는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

보병을 지원하는 화력은 크게 포격과 폭격으로 나뉜다. 포격은 앞서 소개했듯이 자주포로 어마어마하게 먼 표적에다 포를 쏘는 것이며, 폭격은 공군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폭격기들이 직접 날아와서 적진에다 폭탄을 떨구고 가는 것이다. 비주얼은 폭격이 더 멋있을지 모르지만, 포격이 더 안전하고 저렴하며 포탄을 더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면서 더 오래 지속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

한편, 위의 것과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저격도 매우 훌륭한 지원 임무이다. 적군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소모하는 총알 효율로는 이거 뭐 게임이 안 되니까..
다만, 얘는 화력 덕후나 지휘 통솔 공동작업 같은 일반적인 군사 이념을 추구하지는 않으며, 혼자 하는 잠입 액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나름 전문직 병과임에도 불구하고 포병 장교나 전투기 조종사와는 달리 장교가 아닌 부사관 계열로 간주된다. 해군으로 치면 여느 군함이 아니라 잠수함 근무에다 비유할 수 있겠다고 본인이 언급한 적이 있지 싶다.

적군의 대포 사격은 우리 역시 대포 사격으로 대응하고 제압하는 편이며, 적군의 저격수를 제압하는 것도 일반적으로는 아군의 저격수이다. 급이 같아야 서로 싸움이 되는가 보다.

4. 군용기

수송기: 군용기 중에서 말 그대로 이동과 수송에 가장 특화돼 있으며 민항기와 가장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물건이다. 모든 전쟁에는 전투 인원보다 보급· 지원 인원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군용기에서도 수송기는 비록 직접 교전을 하지는 않아도 역할이 가히 절대적이다. 공중급유기도 수송의 일종으로 봐야 하려나?

정찰· 조기경보기: 수송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래의 비행기들처럼 본격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공중이라는 특성상 땅과 바다의 어떤 기계도 할 수 없는 첩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명백한 이유로 인해 군용기 중에서 무인화가 가장 먼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폭격기: 무장을 잔뜩 실어서 아래의 땅을 쑥밭으로 만드는 일에 최적화돼 있다. 군용기 중에서 실질적인 kill 수를 제일 많이 달성하고 20세기 전쟁사를 가장 거창하게 장식한 물건이 바로 폭격기이다.
항공 폭탄은 그냥 중력의 힘으로 낙하만 하는 것이니 포탄· 미사일이나 어뢰와는 달리 추진을 위한 기폭제나 엔진이 필요하지 않고 순수하게 본연의 임무인 파괴를 위한 폭약만 잔뜩 집어넣어서 만들면 된다는 큰 장점이 있다. 다만, 요즘은 정밀 유도 미사일의 발달 덕분에 옛날처럼 무식한 융단폭격 전술이 그렇게까지 막 쓰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전투기: 얘는 수송기나 폭격기, 혹은 동급의 전투기 같은 다른 군용기를 떨구는 일에 최적화됐다. 공중에서 매우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를 공격하는 것은 지상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것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전투기는 기동성이 그 어떤 군용기보다도 뛰어나며 무장도 최첨단으로 달려 있다. 여러 비행기 조종사 중에서도 전투기 조종사는 되기가 가장 힘든 전문직이다.
전투기는 과격한 기동 때문에 탑승자 대비 연료 소모도 많은지라, 커다란 전투기의 내부도 겨우 2명이 타는 좌석을 빼면 다 연료를 싣는 공간이다. 여객기는 공간 확보 때문에 연료가 날개 안에 실려 있는 편이지만, 전투기는 날개 주변에다가는 무장을 싣는다.

5. 총포

일반 총(개인 소화기급은 사정거리 수십~수백 m, 대형 중화기급은 수 km): 총구에서만 불이 뿜어져 나오고, 그 뒤에 총알 하나에서 탄두 하나가 목표물의 특정 지점에 곱게 박힌다. 작은 권총 정도는 비교적 자유로운 자세로 쏠 수 있지만 장거리 사격은 화력이나 정확도 면에서 영 무리이다. 적어도 강선이 새겨진 소총급은 돼야 군인이 개인 화기로 쓸 만하며, 이런 총은 개머리판을 어깨에 댄 채로 쏴야 한다.
혼자 들고 다닐 수 있는 소총도 잠깐 동안이나마 자동 연사 기능이 있다(방아쇠를 한번 당기고 있는 동안 계속 총알이 나가는..). 하지만 총열 순환과 냉각 기능이 있고 위력이 더 강한 중기관총 같은 급이 되면 운용을 위해 여러 인원이 필요하며, 경화기를 넘어 중화기의 범주에 들기 시작한다.

산탄총: 총구에서만 불이 뿜어지는데 총알 하나에서 단일 탄두가 아니라 여러 쇠구슬들이 퍼지면서 목표물에 박힌다. 이것도 스플래시 대미지인지?
이런 총기는 사정거리가 짧기 때문에 전투용으로는 부적합하며, 인명 구조를 위해 자물쇠를 부수고 문을 딸 때 혹은 그냥 사냥 용도로 쓰인다. 마치 칼 중에서도 부엌칼처럼 어째 비군사적인 목적으로 유용한 구석이 많다. 물론 그래도 부엌칼이나 샷건 역시 사람을 얼마든지 끔살시킬 수 있는 위험한 흉기인 건 자명한 사실이다.

대포(사정거리 수십 km): 사람이 혼자서 들고 다닐 수 없는 물건이다. 옛날에는 성벽 요새나 군함에 달려 있었으며, 야전에서는 커다란 수레바퀴를 굴려서 운반하곤 했다.
그 시절에는 대구경 화포답게 무슨 볼링공 같은 거대한 탄환이 날아가서 목표물을 박살내곤 했으나, 요즘 대포에서는 그냥 단단한 탄두가 아니라 고폭탄이 날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총구뿐만 아니라 명중 지점에서도 불꽃과 폭발이 일어나며, 넓은 영역에 파편이 날리면서 '스플래시 대미지'가 발생한다.

로켓과 미사일(사정거리 수백~수천 km): 대포보다도 더 강하고 정확한 화력을 원한다면 결국 탄환에다가 직접 로켓 엔진을 달아서 추진시키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20세기 중후반이 돼서야 등장한 미사일이라는 물건이다. 얘는 발사 직후(총)나 명중 직후(포)뿐만 아니라 날아가는 동안에도 꽁무니에서 불과 연기가 피어오른다. FPS로 치면 얼추 로켓 런처처럼 되는 셈이다.
미사일은 고작 수십 km가 아니라 수백~수천 km를 날아서 대륙을 건널 수 있는 지경이 되었으며, 목표물을 향해 스스로 자세를 잡는 유도 기능도 갖추고 있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다가 고작 재래식 폭탄이 아니라 핵폭탄을 장착하면 가히 인류 역사상 최강의 병기가 탄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북한이 하는 짓을 보면 알 수 있듯, 핵무기의 개발에는 장거리 발사체의 개발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과거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때처럼 일개 폭격기가 적국의 영공 깊숙한 곳까지 친히 기어 들어와서 핵폭탄을 떨구는 짓은 오늘날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 로켓 기반 화기 중에도 바주카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놈도 있긴 하지만, 대략적인 추세가 이러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28 08:31 2016/09/2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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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철도의 선로 이설 내력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런 글을 발견했다. 경부선 철도가 1905년 첫 개통한 이래로 선로가 이설되고 선형이 바뀌어 온 대략의 내력이다.
우와! 이렇게 사진과 함께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거 완전 좋다. 딱 내 스타일이다. 저기 사진을 같이 펴 놓고 이 글을 보시기 바란다.

1.
지난 2010년엔 경부선 병점 역 이남으로 분기하는 지선 서동탄 역이 개통했다. 그런데 2000년 초까지만 해도 경부선은 원래 서동탄 방면의 병점기지선이 본선 구간이었다는 거 아시는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수원-천안 2복선 확장+선형개량+전철화 공사 과정에서 병점-오산대 구간 선로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이설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커브도 약간 줄어서 열차가 더 고속으로 달릴 수 있게 됐다. 기존 선로는 차량 기지 입출고용으로 자연스럽게 용도가 변경되었다. 적절하다. 저렇게 재활용을 할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그나저나 구 선로는 지금의 서동탄 역 이남 구간에서 상· 하행 선로가 실제로 저렇게 쩍~ 벌어져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2.
무슨 강이 지나는 것도 아닌데 두정-천안 사이 서쪽에 천안 축구 센터를 감싸는 둥그런 커브가 생긴 건.. 역시나 지금은 이설· 폐선되고 없는 철도의 흔적이었구나. 부산 방면 경부선 하행 선로가 저 궤적을 타고 장항선으로 갈아탔었다.
저 선로 대신 지금은 더 북쪽+동쪽에 공간을 덜 차지하는 입체교차 선로가 새로 생겼다. 이 역시 수원-천안 2복선 공사와 함께 이설되어 새로 생겼지 싶다..

3.
대전 부근은 지형이 험하기도 하고 경부고속선과의 연결 문제도 있고 해서 추가적인 선형 개량이 종종 있었다. 예전에는 고속선이 옥천에서 너무 일찍 끊어지는 바람에 KTX가 연결선을 타고 재래식 경부선으로 허겁지겁 내려와야 했으나, 2015년 8월에 대전과 대구의 도심 구간이 다 개통한 뒤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대전남연결선은 이제 더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그냥 철거해 버려도 할 말이 없으며, 해당 지역에서는 그걸 원하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번 힘들게 만들어 놓은 건축 구조물을 굳이 일부러 부숴 버릴 이유가 없다. 아까 경부선 구선로를 병점 차량 기지 입출고선으로 활용하듯이 이것도 뭔가 다른 활용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천-신동 사이에 있는 대구북연결선도 현재 비슷한 처지이다.

4.
그 다음으로 경부선에서 주목할 만한 이설은 엄청 옛날인 일제 강점기, 그것도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대구 역과 김천 역은 1905년 1월, 경부선 개통과 동시에 개업했다. 하지만 그 사이의 구미 역은 개업일이 1916년 11월 1일이다. 그 이유는 경부선이 첫 개통 당시엔 지금의 구미 시내 구간을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지금의 경부고속선 내지 국도 4호선과 비슷한 선형으로 금오산을 관통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선로를 만들었더니 그 시절의 증기 기관차가 그 정도 오르막도 제대로 못 오르고 헉헉거렸다. 중간에 보조 기관차를 연결해 줘야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경부선 개통 후 10년 남짓 뒤엔, 영업거리가 더 길어지는 걸 감수하고라도 구미 시내 우회 경로로 선로를 대거 이설하게 됐다. 구미 역이 바로 이때 생겼으며, 곧 있으면 개통 100주년을 맞이한다. 반대로 옛 선로에는 '금오산 역'이라고 기관차의 관리를 위한 간이역이 있었으나, 그건 선로 이설과 함께 폐역됐다.

잘 알다시피 박 정희가 1917년 구미 출생인데, 마침 그 즈음에 거기로 경부선 철길이 지나게 된 것은 뭔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상록수 최 용신 선생이 활동하던 당시에 수인선 철도가 건설된 것처럼 말이다.
이건, 훗날 1930년대에 행해진 복선화 공사 때문에 왜관철교 일대가 이설된 것과도 별개의 이야기이다.

5.
다시 우리나라 얘기로 돌아온다. 대구선 이설과 경부고속선 대구 이남 구간의 건설의 영향을 받아서 그쪽에 경부선 본선이 살짝 이설된 건 제끼고..

청도군 소재의 남성현 역 일대는 이미 유명하다. 험준한 산악으로 인한 경사+커브 때문에 건설하기도 힘들고 열차가 다니기도 힘든 구간이다. 성현 터널이 완공되기 전에는 무려 8단계 스위치백 선로를 임시 부설해서 건설 자재를 나르면서 경부선 철길을 깔았으며, 터널이 완공된 뒤엔 임시 선로는 철거됐다.
그런데 기껏 뚫은 성현 터널도 약 30여 년 뒤인 1937년에는 경부선 복선화 공사 과정에서 선로가 또 통째로 딴 데로 이설되면서 폐쇄됐다. 지금 성현 터널은 '청도 와인터널'이라는 관광지로 재활용 중이다.

6.
밀양으로 내려가면, 상동 역 이북으로 산을 직통으로 뚫고 가는 직선 터널들은 역시나 경부선 개통 처음부터 그랬던 건 절대 아니었다. 원래는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꼬불꼬불 굽이치던 선형이었다.
단선도 아닌 복선 공용 터널이 일제 강점기 때 있었을 리가 절대 없지. 단순히 일제 강점기 시절의 복선화가 아니라, 경부선 KTX 1차 개통을 앞두고 대구-부산 기존선의 전철화 과정에서 선형 개량을 한 거지 싶다.

또한, 지금 선로는 추화산을 서쪽 끝 밀양 시내 근처에서 터널로 직선으로 쌩 통과하는 반면, 옛날에는 동쪽 능선으로 빙 둘러 갔다.
우회 구간에는 짤막한 단선 터널이 있다. 바로 이것. 단면은 아래쪽이 다시 좁아지는 말발굽 모양이다.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하고 자동차용이 아닌 철도 터널이었다는 증거다. 옛날에는 경부선이 여기를 지났음을 말해 준다.

7.
이제 부산으로 간다.
부산 북부 구간도 1990년대 말, 화명 신도시의 개발로 인해 선로가 내륙이 아닌 강쪽으로, 그 대신 더 곧게 이설되었다. 구포 바로 이북의 화명 역이 1999년에 이 과정에서 새로 생겼으며, 1993년에 구포 무궁화호 전복 참사가 난 곳도 지금은 이설되고 없는 구간상의 지점이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는 구포보다는 화명 역에 더 가까이 있었다.

예전에는 경부선 선로가 지금의 부산 지하철 2호선과 비슷한 선형으로 시가지를 꽤 깊게 지났다. 어쩐지 지금 경부선 부산 북부 구간은 선로가 평지에 있지 않고 다들 높은 고가이던데, 다 나중에 그렇게 바뀐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제 강점기 때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님.

옛날에는 경부선이 지금의 서울 역(남대문)보다 더 북쪽까지 이어졌었고(서대문), 지금의 부산 역(초량)보다 더 남쪽까지 더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간 구간에도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다.
1908년의 경의선 직결+부산 개통, 1916년의 구미 시내 구간 개통은 일제 강점기의 일이고, 1930년대 이후 경부선 복선화도 큰 이벤트이다.
해방 후에는 주로 경부고속철 내지 수원-천안 2복선화로 인한 이설이 많았던 걸으로 요약된다.
다들 나의 정신을 살찌우는 소중한 철도 역사 지식이다. 머리에 몽땅 집어넣고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25 19:35 2016/09/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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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의 관광 일정을 마친 뒤, 이제 평화의 댐을 보러 화천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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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다와 산뿐만 아니라 계곡과 강,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이것대로 또 경치가 몹시 아름다웠다. 물에 들어가서 발이라도 담그고 나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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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마어마한 높이 좀 보소.
평화의 댐은 잘 알다시피 5공 시절에 다소 불순하고 비현실적인 동기 하에 만들어졌다. 하다못해 다목적 댐도 아니고..
하지만 일단 만들어 놓고 보니, 훗날 북한이 진짜로 예고 없이 수공을 퍼부었을 때 물을 제어해서 재앙을 예방하는 역할을 그럭저럭 수행하긴 했다.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 잡듯이 "어쨌든 결과는 그닥 나쁘지 않았다"처럼 된 셈이다.

사실, 4대강도 그렇고 우리나라처럼 계절 변덕이 심한 나라에서 치수와 관련된 토목 공사 투자가 무의미한 뻘짓인 경우는 별로 없었다. 불볕더위와 가뭄이 조금만 계속돼도 옛날엔 제한급수에 온갖 난리 호들갑을 떨었으며, 반대로 태풍이나 홍수가 한번 났다 하면 TV에서는 전국적으로 수재의연금 성금 모집하던 게 불과 20여 년 전의 관행이었다. 요즘은 지구 온난화다 뭐다 하면서 기상 이변이 예전보다 더 심하면 심해졌지 날씨가 결코 온순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 같은 난리 호들갑이 왜, 무엇 덕분에 쏙 들어갈 수 있었겠는지를 잘 생각해 보자.

내가 방문하던 당시에도 평화의 댐은 또 무슨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래서 댐 위로 지나가 볼 수는 없었고, 댐 주변에서 댐과 공원의 사진만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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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공원에는 온갖 공격 무기들의 모형이 전시돼 있는데.. 예술 작품을 표방하다 보니 도색은 저렇게 형형색색으로 돼 있다.
평화의 댐 자체는 민통선에 있지 않다. 하지만 근처의 두타연 계곡은 민통선 안이라고 한다. 여기를 들어가려면 또 다른 장소에서 출입증을 끊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검문소에서 즉각 신분증만 까면 되는지 난 잘 모르겠다.

전국의 어느 민통선이든 자가용을 이용한 출입 허가를 받은 외지인은

  1. 받은 임시 출입증을 차 앞유리에 잘 보이게 노출시킬 것.
  2. 이런 데서 교통사고라도 나면 피차 왕창 골치 아파지니 절대적으로 안전 운전할 것.
  3. 목적지가 아닌 길가에 무단으로 주· 정차를 하지 말고 길을 빨리 통과할 것.
  4. 블랙박스를 끄고 다닐 것. (군사 시설을 무단 촬영하지 말 것)
  5. 민간인이 전투복을 입고 다니지 말 것.
  6.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모든 용무를 마치고 퇴장할 것.

이라는 수칙이 존재한다. 도로 통과형이 아닌 일반적인 민통선 구간들은 반드시 들어갔던 초소로 나오는 게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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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목적지가 있는 홍천으로 가기 위해 경로를 남쪽으로 바꿨다. 양구, 화천 다음으로 계속 서쪽으로 가면 철원이 나온다. 하지만 철원은 예전에 간 적이 있으며, 어차피 우리나라의 최북단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서는 춘천-홍천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남행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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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경치가 아주 아름다운 어느 쉼터를 발견했다. 이 사진엔 담기지 않았지만 뒤에는 지붕 달린 정자도 있다. 저 벤치에 앉아서 노트북 PC를 들여다보는 인증샷도 남기고 싶었으나.. 본인은 싱글 솔로이다 보니 사진을 찍어 줄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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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화천 수력 발전소를 발견했다. 역시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여기 근처에는 군부대 포병 훈련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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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획에는 없었는데, '파로호' 안보 전시관이라는 게 있어서 여기도 잠시 들렀다. 파로호란 근처에 있는 호수의 이름이다. 북한강 상류가 화천댐에 가로막히고 고여서 호수를 형성한 것이다.
여기 일대의 댐과 수력 발전소는 일제 강점기 말기(1944년)에 건설되었으며, 6· 25 전쟁 중이던 1951년 4~5월 사이에는 북한군의 수공에 맞서 이 댐을 점령하거나 파괴하기 위해서 국군· UN군과 북한· 중공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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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의 풍경은 이 사진 한 장만 남겼다.
이렇게 화천을 지나고 드디어 춘천에 진입했다. 춘천, 그리고 더 남쪽의 홍천에서는 군사 훈련 중인 탱크들이 줄지어 도로를 달리는 걸 유난히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저속으로 일종의 떼빙(대열운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간인 자동차들의 통행이 좀 지장을 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반적인 군용차와는 달리 탱크는 엔진 소리가 뭐랄까.. 유별나게 시끄럽고 더 기괴했다. 여느 중장비의 엔진 소리와도 달랐다. 차마 말과 글로 묘사할 수가 없다. 게다가 탱크는 차체의 폭도 여느 자동차보다 더욱 크기 때문에 좁은 도로에서 교행이나 추월하기가 더욱 난감했다.

그래도 저것도 다 나라 지키려고 저러는 건데 신기한 구경 하나 하는 셈치고 관대히 넘어갔다. 6· 25 전쟁이 벌어지던 당시에 우리나라는 저런 탱크가 아예 한 대도 없었다. 그 반면 북한군은 242대 보유. 이 숫자 통계는 초딩 시절부터 배워서 알고 있었다.
안전 운전에 지장을 줄 정도로 졸음이 밀려 와서 춘천 외곽에서는 잠시 차를 세워서 20분 남짓 쪽잠을 잔 뒤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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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강 재구 소령 추모 공원'이고 입구 주변이 이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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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기철 목사 하면 '일사각오'가 떠오르듯 강 재구 소령은 그야말로 '희생정신', '살신성인'의 아이콘이다.
1960년대에 한국군이라는 게 조직 분위기가 지금 군대보다 결코 더 좋지 않았다. 아직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못살던 시절이었고 북한의 무력 도발 위협은 임팩트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

그러면 군대를 열악한 자원이라도 최대한 잘 활용해서 나라를 잘 지키기라도 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합리적인 시스템 대신, 까라면 까 식의 미개한 일본군 관행에 사람 잡는 구타· 똥군기가 만연했다. 그래 놓고는 "나 간부다" 편법 한 마디에 초소가 숭숭 뚫리기도 했으니 군대가 제 역할 제대로 못 했다.

그리고.. 지금이니까 연간 군대 내 전체 자살자· 사고 사망자가 두 자리 수이지 그때는 세 자리 수를 가뿐히 넘어서곤 했다. 옛날 군대가 지금 군대보다 좋은 건 딱 하나, 아직 출산율 높고 인구가 많던 시절이다 보니 조금만 몸이 안 좋으면 방위· 면제로 빠지는 길도 지금보다야 훨씬 더 꽤 관대하게 열려 있었다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부하가 실수로 병사들 한가운데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수습하려고, 그것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상관이라는 사람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걸 온몸으로 웅크려 덮어서 막은 뒤 산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건 정말 전군의 사기를 진적시키는 미담이 아닐 수 없었다.

강 소령이 소속되었던 부대는 북한과 대치해 있는 평범한 전방 부대는 아니고, 베트남 파병을 갈 예정이던 부대였다. 박통이 외화벌이와 국력 신장을 위해서 선진국 군인에 비해 저렴한 인건비와 높은 가성비를 메리트로 내세우며 베트남전 파병을 결의했다. 그러자 맨주먹과 근성밖에 가진 게 없고, 시골에서 농사만 짓는 것보다야 더 짧고 굵게 돈을 많이 벌어 와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 한 장정들이 여기에 많이 지원한.. 그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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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재구 소령 추모비와 추모탑이 이렇게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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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은 아담한 크기이고 강 소령의 흉상, 초상화, 유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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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소령은 나이 30도 못 되어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 대신 그야말로 불멸의 이름을 남기고 영예를 얻었다. 고인의 모교에서는 육사는 말할 것도 없고 서울 고등학교까지 다 고인을 기리고 있고, 육군 부대에도 '재구 대대'라는 이름의 대대가 생겼다.

어릴 때부터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모델격의 인물을 마음에 두는 게 참 좋은 것 같다. 육사 32기 출신의 엘리트 군인으로 대장까지 역임한 정 승조 장군(1976년 임관, 2013년 예편)이 있는데, 이분이 1976년 당시에 육사를 수석 졸업하고 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했을 때에도 "강 재구 소령의 전기를 읽고 큰 감화를 받아서 육사를 갈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밝힌 바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 육사는 학비 걱정 없지, 진로도 안정적이지, 가히 오늘날의 SKY급 대학에 맞먹는 위상과 입결을 자랑했다는 점도 생각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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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세로쓰기여서 읽기가 어렵다. 강 소령 역시 처음에는 수류탄을 다른 데로 멀리 던져 버리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몸으로 폭발을 막는 방법을 선택하게 됐다.

이분에 대해서 상훈 기록을 찾아보면, 어디서는 태극 무공 훈장이라는 최고 등급 훈장을 받았다고 돼 있고 다른 어디서는 4등 공로 훈장을 받았다고 돼 있는데.. 무슨 성경의 모순 구절을 보는 것 같다.
이것도 성경의 모순 구절 풀듯이 문제를 풀면 된다. 본문 텍스트에 나와 있듯, 정답은 '둘 다 받았다'이다. 더 높은 훈장은 나중에 추가로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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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산화하던 당시에 입었던 전투복은 수류탄 파편을 맞아서 저렇게 너덜너덜해져 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다른 군인의 증언에 따르면 수류탄 폭발로 인해 고인은 사지가 절단될 정도의 치명상을 입었고, 그래도 폭발과 함께 즉사한 건 아니고 잠시 살아 있었다고 한다.

수류탄을 실수로 떨어뜨린 병사의 실명(박 해천 이병)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저 병사는 비록 무슨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평생 얼마나 큰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채 살았을지 모르겠다. =_=;; 지금은 그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넘게 지나기도 했고, 저분의 근황이 어떤지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전해지는 게 없다.
이름이 기록으로 남아 버린 이상, 나라면 은폐(?)를 위해 개명부터 했을 것 같은데, 그 시절은 지금처럼 쉽게 개명이 가능한 때도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_-;;

실제로 생존 무장공비 출신인 김 신조 씨는 얼굴이 알려진 건 말할 것도 없고, 이름까지 교과서에 대문짝만 하게 실려서 그 당시 남조선 군필자들의 웬쑤가 됐다. "니놈 때문에 내가 군대 전역도 늦어지고 말년에도 얼마나 조뺑이 치고 고생했는지 알아?" 야사에 따르면 길거리에서 어느 예비역 아저씨에게 뒤통수를 까이기까지 했다고.. 결국 그는 부담감을 견디다 못해 실제로 '김 재현'으로 개명까지 했다. 최소한 법적으로는 김 신조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근황이 더 검색되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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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 와서 새롭게 처음 알게 된 사실은 강 재구 소령도 생전에 크리스천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인터넷으로만 봐 오던 곳들을 실제로 돌아다니면서 답사를 잘 마쳤다.
날씨가 여전히 덥고 물과 전기가 부족하고, 또 배고프고 피곤하기도 해서 여기서 더 놀지는 않았다. 조양 IC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집에 돌아갔다.

이틀 동안 1분 1초가 버릴 게 없는 즐거운 여행을 했다. 산과 계곡과 바다를 모두 구경했으며 고속도로부터 엔진 브레이크 비탈길까지 골고루 750km에 달하는 거리를 운전했다. 이 정도로 욕구를 해소했으니, 당분간은 또 서울을 빠져나간다거나 차 끌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생각이 안 들 것 같다. 시골은 차량 운행이 뜸하고 어디든지 주차 걱정 없이 차를 세울 수 있는 것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강원도는 꽤 넓다. 내년 여름에는 정선, 영월, 태백, 동해처럼 태백선 철도와도 인접해 있는 강원도의 '남부'를 돌아다녀 볼 예정이다. 영역이 공교롭게도 강릉 이남이냐 이북이냐로 나뉘는 것 같다. 이번에 다닌 곳은 온통 북부이니 말이다.
또한 내년엔 이제 병특 마친 직후에 만들었던 여권이 유효 기간이 1년 남짓밖에 안 남는데, 아직도 여권엔 사증란이 많이 남아 있다. 어딜 가든 외국 여행도 한번 다녀오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23 08:31 2016/09/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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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y 2: 내륙 산악 드라이빙

아침에 눈을 뜨니 숙소 주변은 안개가 자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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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다를 뒤로 하고 양구로 가기 위해 꼬불꼬불 고갯길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둘째 날엔 하루 종일 이런 길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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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위성 사진 지도를 보면, 동북부는 온통 초록색 삼림으로 뒤덮였는데 양구 일대만 사람 머리로 치면 땜통처럼 동그랗게 패여 있다. 양구는 대구처럼 일종의 분지 지형이며 6· 25 전쟁 당시에 외국인 종군기자는 우묵한 사발(punch bowl)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한글로는 장모음의 표기가 생략되어 '펀치볼'이라고 적는데, '볼'이라고 해서 ball인 건 아니다. ball은 단모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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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옛날 서체가 참 정겹다. 옛날에 우리나라는 각종 표지판과 간판, 자막에 이런 어설픈 둥근고딕 형태의 서체를 굉장히 많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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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한번 탔다가 다시 내려오니 '사발의 안'에 자리잡은 양구 시내가 나타났다.
을지 전망대와 제4 땅굴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양구 통일관에 가서 입장료를 내고 민통선 출입 신고를 하면 된다. 절차가 고성 통일 전망대를 관람하는 것과 비슷하다. 단, 오후에 늦게 도착해서 시간이 충분치 않으면 둘 중 하나는 못 볼 수도 있다.
양구 통일관 자체도 북한의 실상 같은 안보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양 옆에는 각종 전적비· 충혼탑과 탱크가 놓여 있고 또 독특한 외형을 한 '전쟁 기념관'도 있다. 나름 볼것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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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화해와 협력을 통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 이 좁아 터진 땅덩어리에 1국가 2체제가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그에 반해 북괴는 여전히 자기 체제의 유지를 위해 주체사상과 남조선 혁명, 공산화 통일 구도를 접은 적이 없다.
하지만 북괴의 마귀적인 현 체제를 갈아엎지 않으면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선사할 수 없으며, 그럼 남북은 통일을 하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안 하는 것만도 못하다. 그러니 현실은 둘 중 하나가 물리적으로 없어져야만 통일이 될 것이고 남한 주도의 통일은 사실상 무력 흡수 형태가 될 공산이 크다.

그걸 감당할 리스크가 없다면? 그냥 영구분단, 고립, 봉쇄이라도 제대로 해서 북한이 스스로 붕괴라도 하게 내버려 둬야지.
매정· 냉정하게 들리더라도 저 북괴한테 평화를 구걸하며 계속 퍼주는 것보다는 저거야말로 훨씬 올바르고 더 인간적인 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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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전쟁 기념관은 전쟁터를 형상화한 기발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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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증을 받은 뒤엔 양구 통일관의 북쪽(12시 방향)으로 간다. 로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 3시를 선택하면 을지 전망대로 가며, 계속 12시 방향으로 직진하면 땅굴로 갈 수 있다. 난 먼저 을지 전망대로 갔다.
전망대도 북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이 먼저 3시 방향으로 나 있는 이유는.. 산을 오르는 우회로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길이의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을지 전망대는 해발 고도가 무려 1000미터가 넘고 국군 GOP가 코앞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지도에서 높이를 무시하고 보면 전망대와 땅굴은 직선 거리가 상당히 가까우며 길이 서로 연결돼 있다. 하지만 보안 때문인지 안전 때문인지는 몰라도 민통선 안에서 이 두 장소를 곧장 왕래할 수는 없었다. 전망대를 본 뒤엔 다시 민통선 밖으로 나와서 그 로터리까지 갔다가 그야말로 수십 km를 뺑이를 치면서 땅굴을 보러 가야 했다. 동선이 아쉽다.

뭐 아무튼..
앞서 얘기했듯이 을지 전망대는 본격 군사 시설이기 때문에 전망대 건물 자체와 양구 시내 방면으로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북한 쪽은 촬영이 절대 금지.
하긴, 파주의 도라 전망대는 금이 그어져 있어서 카메라질은 금 밖에서 어깨 너머로만 할 수 있던데, 여기는 통제가 더 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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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 전망대에서는 나무로 뒤덮인 빽빽한 산과 숲, 그리고 끝없이 둘러진 철조망, 띄엄띄엄 설치된 우리나라와 북한의 GOP를 볼 수 있었다. 도라 전망대는 평지, 철원의 평화 전망대는 초원, 고성의 통일 전망대는 바다인데 여기는 그냥 산이다.

믿어지지 않는 얘기이지만 가이드 아가씨의 설명에 따르면, 옛날에는 북한이 남한 병사들을 꾀어 내려고 자기네 여군들을 근처의 계곡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대놓고 노출시켰다고 한다. 이거 무슨 선녀와 나무꾼 얘기도 아니고..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미인계엔 미인계로 대응했는데, 1992년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일부러 을지 전망대 GOP 근처에서 했다고 한다. 이 1992년도 대회에서 진을 차지한 우승자가 바로 이 승연 씨. 하지만 이분은 각종 부적절한 언행들로 인해 지금은 몸값이 많~이 하락하고 망가진 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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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전망대와는 달리 이 전망대는 응당 내비 지도에 나와 있지 않다.
산을 내려갈 때는 2단 고정 엔진 브레이크를 단단히 걸면서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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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적지인 제4땅굴 광장에 도착했다. 얘는 서부가 아닌 동부 전선에서 최초이자 현재까지 최후로 발견된 땅굴이다.
과거의 제1과 제2 땅굴은 지상에서의 이상 징후를 토대로 발견된 반면, 제3과 제4는 귀순자의 증언을 토대로 발견되었다. 다만, 제4 땅굴을 제보한 귀순자는 우리나라 군 내부에까지 드나들었다가 나중에 또 중국에서 잠적해 버렸기 때문에 쟤 혹시 이중간첩이 아닌가, 제4 땅굴은 그저 역정보 떡밥 유포일 뿐인가 하는 불안한 음모론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귀순자가 얘기하는 장소 일대에서 시추공을 이곳 저곳 내리꽂으며 수백 번이나 허탕을 친 뒤에야 땅속의 빈 공간을 발견했다. 우리나라가 땅굴의 존재를 확실히 인지한 때는 1989년 12월 24일이다. 그 뒤 우리 쪽에서 역갱도를 파기 시작해서 북한의 땅굴과 실제로 관통에 성공한 것은 그로부터 3개월 정도 뒤인 1990년 3월 3일이다.

제2와 제3 땅굴은 민통선 검문소를 통과한 뒤에도 북쪽으로 엄청 깊숙히 들어간 곳에 있지만, 이 제4 땅굴은 가는 경로의 대부분이 의외로 민통선으로 잠겨 있지 않았다. 단지, 땅굴 광장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무슨 군부대 입구처럼 막혀 있었고, 여기 안으로 들어가려면 아까 양구 통일관에서 발급받은 출입증을 제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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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 땅굴은 자가용을 끌고 개인 단위로 찾아갈 수가 있기 때문에, 가는 길목에 이런 표지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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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 광장의 중앙에는 이런 멸공탑이 세워져 있고, 땅굴 발견 당시에 육군 참모총장이던 이 진삼 대장이 작성했다는 '건립취지문'이 새겨져 있다.
저 사람은.. 리즈 시절에 자기가 북파공작원 신분으로 휴전선을 몰래 넘어가서 소수의 부하들과 함께 북한군 수십 명을 사살했다는 이빨 무용담을 늘어놓아 왔으나... 그게 사실인지 주작인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그는 군인 신분을 벗어난 정치질과 똥별질 때문에 안 좋은 평판이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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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견 헌트 소위의 무덤과 동상을 드디어 현장에서 실물로 보게 됐다. 제1과 제2 땅굴을 저지하던 시절엔 우리 군인들이 북한군의 총격을 당하거나 지뢰를 밟아서 죽거나 다치곤 했다. 제3 땅굴이 발견됐을 때는 다행히 그런 얘기가 없었음.
어쨌든, 과거 경험을 토대로 인명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4 땅굴을 정찰할 때는.. 화약 냄새를 맡을 줄 아는 군견을 처음으로 투입하여 먼저 보내 봤다.

그리고 이 전략은 매우 현명했음이 입증되었다. 저 군견은 땅굴 안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고 혼자 앞으로 뛰어가다가 북한군이 설치한 지뢰를 밟고 폭사했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죽을 걸 군견이 대신 죽어 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값진 공을 세웠기 때문에 이 군견은 사후에 이렇게 떠받들여지게 되었고, 소위라는 장교 계급과 인헌 무공 훈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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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의 입구는 이렇게 생겼다.
제2 땅굴은 그냥 전구간 걸어다녀야 한다.
제3 땅굴은 북한군이 판 땅굴 내부에서는 걸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판 역갱도는 걸어서 오르내리는 갱도도 있고 전동차로 오르내리는 갱도도 있다. 전동차를 타려면 땅굴 입장료에다 전동차 이용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그 반면 제4 땅굴은 역갱도에서는 걸어야 하고 땅굴 내부는 전동차로 다닌다. 터널의 단면적이 너무 작아서 사람이 걸어 다니려면 어정쩡한 오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그마한 전동차를 타고 쪼그리고 앉은 채로 이동해야 한다. 안 그래도 북한은 가평 남이섬과 임진각 공원에 있는 꼬마열차를 연상케 하는 협궤 레일을 제4 땅굴 내부에 부설해 놓기도 했었다.

물론 제2와 제3 땅굴도 공간이 충분히 큼직한 건 아니다. 성인 남자가 간신히 서서 걸을 수 있는 정도이며, 울퉁불퉁한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기 쉽기 때문에 안전모는 반드시 쓰고 다녀야 한다.

제4 땅굴은 길지만 민간인에게 공개된 구간은 겨우 100여 m 남짓에 불과하며, 생각했던 것만치 거창하게 볼 건 없었다. 지하로도 민통선 영역까지만 가지, 남방한계선을 넘어 DMZ까지 가지는 않는다. 위도를 비교해 보면 제4 땅굴의 입구는 을지 전망대보다는 훨씬 남쪽에 있다(몇백 m 정도 차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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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간단한 안보 전시관이 있어서 6· 25 전쟁 때 양구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또한 제4 땅굴의 특징도 잘 설명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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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 땅굴 역시 내비게이션 지도에는 보이지 않는다. (4편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6/09/20 19:32 2016/09/2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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