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WNDCLASS와 HCURSOR

GUI 환경에서 키보드로 글자 입력을 받기 위해 캐럿(caret, 혹은 cursor)이라는 깜빡이는 세로줄이 나타난다면, 마우스의 입력을 받기 위해서는 마우스 포인터라는 게 떠 있다. 키보드 문자 입력과 마우스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이다 보니, 문자 입력이 시작되면 마우스 포인터는 화면을 가리지 말라고 쏙 사라지곤 한다. 그 반면, 키보드 단축키와 마우스는 전혀 배타적이지 않고 상호 보완적이므로 이 경우는 마우스 포인터가 사라질 필요가 없다. 간단히 말해 스타를 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Windows 운영체제 내부에서 생성되는 모든 창(window)들은 마우스 포인터가 자기 영역을 지날 때 어떤 모양의 포인터를 표시할지를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다. 가장 static하고 간단한 방법으로는 윈도우 클래스를 등록할 때 WNDCLASS의 hCursor 멤버에다가 지정해 주면 된다.

HCURSOR라는 타입은 마우스 포인터의 모양을 나타내는 자료구조의 포인터이다. 마우스 포인터는 아이콘(HICON)과 거의 동급으로 취급되며, 아이콘에다가 중심 위치(hot spot) 정보만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화살표 그림의 경우 화살표가 가리키는 뾰족한 지점이 바로 hot spot의 위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콘이라는 것은 개념적으로 AND 연산용 비트맵(마스크)과 XOR 연산용 비트맵(그리기)이 추가된 정사각형 비트맵(HBITMAP) 쌍이다.
마우스 포인터 자체를 프로그램 코드를 통해 동적으로 생성하고자 한다면 이런 관계에 대해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구조 덕분에 배경색을 반전시키는 마우스 포인터도 만들 수 있다. 또한, Windows에서 아이콘과 마우스 포인터가 매우 유사하게 취급된다는 것은 GetIconInfo 함수나 ICONINFO 구조체의 스펙을 보면 금방 수긍할 수 있다.

색깔 중에 system color가 있고 DC 오브젝트들(브러시· 펜 따위) 중에도 stock object가 있으며, 클립보드 포맷 중에 표준 포맷(CF_TEXT ...)이 있는 것처럼.. 마우스 포인터 중에도 용도가 고정되었고 운영체제 차원에서 모양을 공통으로 관리하는 것이 몇 종류 있다. 이런 공용 포인터의 예로는 일반 화살표, 모래시계, 입력란용 I-beam 등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있으며, 이들은 제어판을 통해 그 모양을 바꿀 수 있다. 응용 프로그램에서는 LoadCursor(NULL, IDC_*)를 호출해서 이들의 HCURSOR 값을 얻을 수 있으며 이를 응당 클래스 등록 시에 사용하면 된다.

그래픽 에디터라든가 게임 급으로 정말 아주 튀는 GUI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공용 포인터 말고 다른 독자적인 포인터를 쓸 일은 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튀지 않는 일반 업무용 프로그램에서도 custom 포인터가 필요한 경우가 가끔은 있다.

  • 워드 프로세서의 경우, IDC_IBEAM의 변형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탤릭체 글자에서는 포인터의 모양도 살짝 기울어지며, 세로쓰기 모드에서는 포인터의 모양 역시 90도 돌아간다.
  • drag & drop 상태를 표시하기 위해, 화살표 밑에 사각형 테두리와 [+] 마크가 붙은 포인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것도 의외로 공용 포인터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ole32.dll 내부에 있는 비공식 리소스를 몰래 뽑아 와서 쓰는 경우가 많다.
  • 먼 옛날, IDC_HAND가 존재하지 않던 Windows 95/NT4에서는 winhlp32.exe의 내부에 있는 손가락 링크 모양 비공식 리소스를 몰래 뽑아 와서 하이퍼링크를 구현할 때 쓰기도 했다.

LoadCursor는 원래 모듈(EXE/DLL)의 리소스로부터 마우스 포인터 그림을 추출하는 함수이다.
CreateCursor 함수는 HBITMAP을 받는 게 아니라 쌩짜 AND/XOR 비트맵 배열만을 입력받아서 포인터를 생성해 주는데, 그 말인즉슨 얘는 애초에 모노크롬 포인터밖에 못 만든다는 뜻이다. 컬러를 지원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마우스 포인터는 마치 GIF처럼 애니메이션 가능한 버전도 생겨서 단순 아이콘과 차별화가 이뤄지긴 했다. ico 파일에는 크기와 화질이 다른 여러 아이콘들이 있을 수 있다면, ani에는 동일 아이콘의 여러 프레임이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교집합인 정보가 있지만 서로 완전히 호환되지는 않는 미묘한 관계가 됐다.

2. WM_SETCURSOR와 SetCursor 함수

윈도우 클래스를 등록할 때 hCursor 멤버에다가 NULL을 지정하면 그 윈도우는 마우스 포인터가 기본적인 화살표로 지정된다거나, 아니면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올투명 이미지가 지정되어서 포인터가 사라진다거나 하지 않는다.
어찌 되는가 하면, 이 윈도우 영역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유지되었던 마우스 포인터가 변경 없이 그대로 유지된다..! 마치 C언어에서 초기화되지 않은 변수처럼 undefined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동작을 원하는 프로그래머나 기대하는 사용자는 전무할 것이다. 그러므로 클래스 차원에서 지정된 기본 포인터가 없는 윈도우는 자신의 윈도우 프로시저 내부에서 매번 실시간으로 마우스 포인터를 지정해 줘야 한다. 어떻게? WM_SETCURSOR라는 메시지가 왔을 때 SetCursor라는 함수를 호출해서 하면 된다.
아니 사실은 클래스 포인터가 이미 지정돼 있는 창이라도 필요하다면 이렇게 마우스 포인터를 실행 중에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다. 동일한 웹브라우저 창이라도 포인터가 링크 위를 가리키고 있을 때는 조건부로 손가락 모양으로 바뀌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윈도우 안에서 마우스 포인터가 움직이면 WM_MOUSEMOVE만 오는 게 아니라 그 전에 WM_SETCURSOR부터 날아온다. 그에 반해 SetCursor는 굳이 WM_SETCURSOR 메시지 타이밍이 아니어도 아무 때나 언제든지 호출 가능하다. 이 함수 자체는 지금 포인터가 나 자신이(스레드 단위) 생성한 윈도우에만 있으면 위치 불문하고 포인터 모양을 즉시 바꿔 준다. WM_PAINT 타이밍 때에만 사용 가능한 BeginPaint/EndPaint처럼 특정 메시지에 매여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왜 굳이 WM_SETCURSOR라는 메시지가 따로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저렇게 일상적으로 마우스 포인터가 움직였을 때 빼고는 얘는 WM_MOUSEMOVE와는 설계 철학과 생성 조건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 윈도우가 disable됐을 때는 그 윈도우로 마우스가 움직이더라도 통상적인 WM_MOUSEMOVE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때에도 WM_SETCURSOR는 전달하는 상황 정보(hit-test code)만 달라진 채 언제나 온다.
  • hit-test code가 같이 온다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듯, WM_SETCURSOR는 클라이언트와 논클라이언트를 가리지 않고 온다. 그에 반해 WM_MOUSEMOVE는 클라이언트 영역 전용이고 WM_NCMOUSEMOVE가 따로 있다.
  • 마우스가 capture된 뒤부터는 마우스가 움직이면 반대로 WM_MOUSEMOVE만 오지 WM_SETCURSOR는 오지 않는다. 마우스의 포커스가 포인터 위치와 무관하게 이 윈도우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포인터의 모양도 잠시 고정된다.
  • 그리고 결정적으로.. WM_MOUSEMOVE는 지금 화면을 대면하고 있는 최하위 child 윈도우에 직통으로 전달되는 반면, WM_SETCURSOR는 최상위 parent 윈도우에 먼저 전달되어서 얘들이 처리를 포기/거부했을 때에만 child로 내려간다.

마지막 항목이 중요하다. 이런 메커니즘의 차이로 인해 두 메시지는 서로 호환성이 전혀 없으며 별도의 메시지로 분리되어야만 한다. 이 메시지가 그냥 이 시점에서 표시할 HCURSOR 값만 곱게 얻는 게 목적이라면 WM_SETCURSOR 메시지는 SET이 아니라 GET이라는 동사가 붙어서 WM_GETCURSOR, WM_QUERYCURSOR처럼 명명됐을 수도 있다. 대화상자의 WM_GETDLGCODE 메시지처럼 그냥 return (LRESULT)LoadCursor(...)의 형태.
그런데 그게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마우스 포인터를 재지정할 의향이 있다면 WM_SETCURSOR가 올 때마다 SetCursor를 수동으로 매번 호출도 해야 하고, 그러면서 리턴값도 0이 아닌 값으로 되돌려야 한다. 특히 DefWindowProc를 호출해서는 안 된다.

DefWindowProc가 WM_SETCURSOR 때 하는 일 중에는 논클라이언트 영역에서 포인터를 화살표 내지 창의 크기 조절 손잡이 모양으로 바꾸는 것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 영역에서 DefWindowProc은 "난 마우스 포인터 모양을 자체적으로 처리할 의향이 없으니, (1) 내 부모 윈도우에서 이의 없으면 (2) 최종 처리를 내 자식 윈도우에 맡기겠소"라는 의미가 된다. Def..없이 return 0은 (2)만을 담당한다.

참고로, SetCursor(NULL)을 하면 클래스 WNDCLASS::hCursor = NULL과는 달리 비로소 마우스 포인터가 화면에서 사라진다. 이것은 HideCursor / ShowCursor 함수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이들 함수는 포인터의 레퍼런스 카운터를 1 증가나 감소시켜서 카운터가 양수이면 포인터를 계속 표시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계속 감추고 있는다. 캐럿을 표시하거나 감추는 ShowCaret / HideCaret과 비슷한 원리로 동작한다.
그에 반해 SetCursor(NULL)은 효과가 일시적이므로 해당 윈도우가 WM_SETCURSOR에서 계속해서 SetCursor(NULL)을 해 줘야만 포인터가 없는 상태가 유지된다.

사소한 사항이다만, WM_MOUSEMOVE는 메시지 큐에 post 형태로 전해지는 반면, WM_SETCURSOR는 리턴값을 꼼꼼히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sent된다는 차이도 있다. 마우스 메시지 훅킹 같은 걸 한다면 요런 차이가 민감하게 와 닿을 것이다.

3. 대기 상태 표현하기

프로그램이 파일을 읽고 쓰고 복잡한 계산을 시작해서 대략 0.n초 정도 짤막하게 사용자의 응답(더 정확히는 운영체제 메시지)에 반응을 하지 않게 됐다면, 이에 대해 가장 간단하게 피드백을 주는 방법은 SetCursor(LoadCursor(NULL, IDC_WAIT))를 해서 마우스 포인터를 그 악명 높은 모래시계 모양으로 바꾸는 것이다.

물론 처리가 끝났다면 포인터 모양을 원상복구 해야 한다. 이것은 SetCursor의 리턴값을 보관하고 있다가 도로 전달하는 것으로 쉽게 구현 가능하며, 이렇게 시작과 끝을 생성자와 소멸자에다 넣어서 간단한 C++ 클래스를 구현할 수도 있다. MFC에 있는 CWaitCursor가 그 예이다.
모래시계로 변해 있던 동안 마우스 포인터가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이동했거나, 위치가 안 바뀌었더라도 그 사이에 포인터 아래의 윈도우가 바뀌었다면.. 프로그램이 의식을 회복(?)했을 때 WM_MOUSEMOVE와 그에 상응하는 WM_SETCURSOR도 오기 때문에 포인터 모양이 자동으로 갱신되긴 한다. 그러나 그런 외부적인 변화가 전혀 없었더라도 포인터 모양이 원상복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마우스 포인터의 움직임은 일종의 하드웨어 인터럽트 형태로 발생하며, 응용 프로그램이 WM_SETCURSOR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고 있더라도 포인터가 움직인 것에 대한 반응은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처리를 열심히 하고 있는 동안에는 좀 전에 지정된 모래시계 모양이 유지된다. 물론, 포인터가 정상적으로 응답 중인 다른 프로그램 창 위에 놓여 있으면 거기 모양으로 바뀌며, 한 프로그램이 수 초 이상 너무 오랫동안 응답을 안 하고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내 프로그램 창이 고스트 윈도우로 바뀌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한다면 프로그램의 디자인 형태가 바뀐다. 작업은 백그라운드 스레드에다 담당시키고 프로그램은 현재 진행 상황을 출력하면서 UI 메시지 반응도 평소처럼 한다. progress 컨트롤이 장착된 대화상자가 이 역할을 하며, 사실 Windows Vista부터는 task dialog로 이걸 간단하게 띄울 수도 있게 됐다.
동영상 인코더처럼 input 데이터를 직접 생성하고 작성하는 기능은 없고, 이미 있는 데이터를 변환하는 일이 전부인 프로그램이라면 별도의 대화상자 없이 자기 main frame window 자체가 통째로 진행 상황을 표시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날개셋> 변환기도 이런 형태의 프로그램이다.

이를 좀 더 일반화해서 생각하면 이렇다. 어떤 윈도우가 하는 역할이 자신과 별개이고 독립적인 타 작업의 진행 상황을 관찰하면서 표시하는 게 전부라면, 보통은 그 윈도우 내부의 마우스 포인터를 굳이 별도로 모래시계 모양으로 바꾸지 않는다. 설치 프로그램들이 그 예이다. 다만, Windows Installer 엔진의 경우 본격적으로 설치/제거를 수행하는 마법사가 뜨기 전에 준비 작업을 하느라 자그마한 대화상자가 떴을 때는 마우스 포인터를 거기로 가져가면 모래시계로 바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런 게 대화상자 윈도우에서 WM_SETCURSOR를 처리함으로써 구현 가능하다. 이 메시지는 부모-자식 top-to-bottom 형태로 내려가기 때문에, 부모에서 메시지를 가로채 버리면 자식 윈도우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우스 포인터를 모래시계 모양으로 바꿀 수 있다. 밑에 지금 무슨 윈도우가 있는지 핸들도 wParam으로 친절하게 전달된다. 여기서 SetCursor 호출만 하고 리턴값으로 nonzero를 지정하지 않으면, 대화상자 배경들만 포인터가 바뀌고 버튼 같은 각종 컨트롤들은 바뀌지 않게 된다. (위의 스크린샷처럼)

이와 대조적으로, 키보드 메시지는 포커스를 잡고 있는 최하위 윈도우에 직통으로 전달되니(bottm-to-top), 그 위에서 공통 단축키 같은 걸 처리하려면 message loop 차원에서의 pre-processing이 필요한 것이다.

<날개셋> 변환기의 경우 변환하는 파일이 적으면 스레드 없이 그냥 비응답 상태로 빠진 채로 변환을 수행한다. 그러나 수십 개, 수MB 이상 분량 파일을 요청하면 대화상자의 모든 컨트롤들을 disable시키고 progress 컨트롤을 출력하고, 대화상자 내부의 마우스 포인터를 모래시계로 바꾼 뒤 변환을 수행한다. 이때는 어차피 대화상자의 다른 기능들을 전혀 사용할 수 없고 ESC나 [X]를 눌러 중간 취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할 만한 상황은.. 딴 작업이 아니라 대화상자 자기 내부에다 출력할 데이터들을 준비하고 초기화하는 작업이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때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제어판의 대화상자에도 그런 경우가 몇 가지 있다.
이때는 문제의 콤보나 리스트박스가 빈 채로 먼저 대화상자를 출력한 뒤, 스레드를 만들고 마우스 포인터를 IDC_WAIT가 아니라 IDC_APPSTARTING 모양으로 바꿨다. 대화상자가 출력은 됐지만 아직 초기화가 덜 돼서 백그라운드에서 작업 중임을 이렇게 나타낸다.

요렇게 백그라운드의 스레드 작업이 끝난 뒤에는 마우스 포인터를 어떻게 원상복구 할지가 문제가 된다.
아까처럼 스레드 없던 시절에는 작업하던 사이에 포인터 위치가 바뀌었으면 WM_SETCURSOR와 WM_MOUSEMOVE가 자동으로 생겼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작업이 수행되던 중에 포인터 이동에 대한 처리는 이미 다 이뤄졌기 때문이다.

마우스 포인터의 이동 없이 아래의 창에다가 WM_SETCURSOR를 인위적으로 생성해서 포인터 모양을 원래 것으로 갱신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만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일단 본인이 사용하는 방법은 GetCursorPos로 현재 포인터 위치를 얻은 뒤, 그거 그대로 SetCursorPos를 하는 것이다. 위치가 바뀐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면 WM_SETCURSOR와 WM_MOUSEMOVE가 생성되기는 하는 것 같더라.
이 정도면 Windows 프로그래밍에서 마우스 포인터 제어와 관련해서 어지간한 문제는 다 다룬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06 08:35 2017/02/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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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이야기

요즘은 사회 전반에 비밀이라는 게 갈수록 없어지고 내부가 개방되고 있다. 어떤 폐쇄적인 집단에 대해서 직접 소속된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던 내부 사정이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진다. 이로 인한 부작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내부의 오랜 비리나 부조리가 폭로되고 시정되기도 한다. 그러니 비밀이 없어지고 투명해지는 것 자체는 대체로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굳이 북한 주민 인권 같은 거창하고 정치적인 얘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폐쇄적인 조직 중 대표적인 예인 군대를 예로 들면.. 2000년대 중후반에 연재되었던 주 호민 씨의 웹툰 <짬>이 미필자나 여성을 상대로 군대의 내부 사정을 대중적으로 잘 알렸다. 그저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관제언론인 국방일보 같은 것 말고 말이다.
그 뒤로 2010년대에는 군대 안에서도 더욱 희소한 병과를 소재로 한 <DP 개의 날> 같은 웹툰까지 발표되었다. <짬>의 주인공이 평범한 육군 운전병인 반면, 저건 주인공이 탈영병 체포조 소속인 헌병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 복지 음지, 소록도, 무슨 특수부대, 극한 직업, 원양어선, 국정원 내부, 대성동 주민 등등..
이 좁은 대한민국 땅에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나 싶은 이야기들에 본인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군대 체험으로도 모자라서 교도소 내지 그에 준하는 피의자· 피고인 신분 체험기까지 인터넷에 종종 올라와서 유명세를 탄 게 있다. 직접 범죄를 저질러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고, 유경험자는 부끄러워서라도 공유를 꺼리니 대중적으로 알려질 일이 극히 드문 아이템인데도 말이다.

예전에 '마사토끼'라는 웹툰 작가가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라고.. 기소되어 재판을 거쳐 벌금형을 받기까지의 실화 각색 만화를 공개한 적이 있었다. 이분에 대해서 다른 만화 작품은 모르겠고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풍자하여 탐정 만화를 그린 걸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봤었다. (그러고 보니 <빵점동맹>에서는 그림 말고 스토리 작가이기도 했구나.)
그랬는데 자신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원에 출두하고 벌금형을 받은 체험기까지도 선뜻 웹툰 소재로 선택해서 공개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스펙 없던 어떤 지방대 문과 계열 졸업생이 노량진에서 죽어라고 공부한 끝에 영어, 국어, 국사 등의 맥을 차례로 잡고 국가직· 지방직 공무원 시험 합격 3관왕을 달성했다.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사람은 전문 웹툰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꽤 준수한 그림 실력으로 자신의 시험 준비와 시간 관리 요령을 만화로 그려서 연재했으며, 본인은 이걸 본 적이 있다. 이런 성공 자랑 스토리에 비해 법원 다녀 온 이야기는 다시 떠올리고 싶은 유쾌한 경험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마사토끼보다 더 수위가 센 만화도 나왔다. 바로 "교도소 일기"로, '엄격 진지 근엄' 짤방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그림은 교도소 내부에서 군기를 잡는 헌병뻘 되는 교정직 공무원을 묘사한 것이다. 무슨 나치 시절 SS 요원처럼 검은색 제복 차림이다.

주인공은 제목과는 달리 교도소에서 실형을 산 건 아니고, 구치소에만 있다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걸 크게 구분하지 않으며, 구치소와 교도소 무슨 용어를 선택하건 만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달라질 건 없으니(이런 데에 절대 와서는 안 된다. 범죄 저지르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제목을 편의상 교도소 일기라고 뽑았다고 한다. 미결수들은 관대한 처분을 받기 위해 일과 시간에 판사에게 '앙망문'ㅠㅠ을 많이 써서 보낸댄다.

저기를 전근대 용어로는 '감옥'이라고 하고 '형무소'는 일본 본토에서는 지금도 쓰이는 일본식 한자어다. 오늘날 우리말의 공식 명칭은 '교도소'. 죄인을 가둬서 벌을 준다는 의미 대신 얘들을 바르게 교화한다는.. 뭔가 긍정적인 뉘앙스를 넣어서 말을 다시 만든 것이다. 가격을 인상하는 게 아니라 합리화, 재조정하듯이 말이다. -_-;;
영어로는 prison 또는 jail이라고 하는데, 한국어 같은 유치장-구치소-교도소를 영어로 정확하게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jail은 prison보다 동사로 활용도 더 잘 되는 것 같다. "I could have jailed you for doing/saying that!"처럼.

요즘 워낙 교도소의 사정이 좋아지고 공권력의 위상도 땅에 떨어진 덕분에 그냥 차라리 "깜빵이나 갈래요" 심정으로 범죄 저지르는 간 큰 사람까지 등장할 정도라지만..
근본적으로 개인 사생활과 자유가 없는 곳은 아무리 생물학적인 생존이 보장되는 곳이라 해도 사람이 갈 곳이 못 된다.
화장실 이용이 저 따위로 극도로 불편한 거 하나만 봐도 오금이 저릴 것 같다. 저기가 진짜로 국립 호텔이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군대에서 짬밥을 먹는다면 교도소에서는 콩밥을 먹는다. (여담이다만, 왜 '짬밥'만 사이시옷/사잇소리가 적용되어 '짬빱'이 되고 '콩밥'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다. '볶음밥'과 '비빔밥', '물고기'와 '불고기'의 차이처럼 말이다. 이건 국어학계에서도 "그냥 케바케. 정말 원칙이 없다"로 귀착되고 있는 문제이다.)

경찰서 유치장은 무슨 입소대대요, 구치소는 훈련소나 보충대, 진짜 형이 확정되어 가는 교도소는 자대뻘 되려나 모르겠다.
군대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군대가 교도소와 다를 바 없네 하는 말이 있다. 군대와 교도소는 개인의 자유가 없거나 지극히 제한된다는 공통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존재 목적이 서로 매우 다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큰 차이도 있다.

  • 군대에서는 휴대와 관리 효율을 위해서 식당에서 포크 겸용 숟가락 하나만 쓰는 반면, 교도소에서는 끝이 아주 뭉툭한 플라스틱제 숟가락과 젓가락이 쓰인다. (자해 내지 탈옥 도구로 활용 못 하게. 죄수들에게 금속류를 줘서는 위험하다)
  • 군대에서는 병사들의 체력 단련을 강조하고 권장하지만, 교도소에서는 실내에서 신체 운동이 절대 금지다. 하다가 걸리면 징계 받는다. (가혹행위 못 하게)
  • 전투복은 야외 활동 능률을 위해 상의와 하의 곳곳에 주머니가 많다. 그러나 죄수복은 정반대로 주머니 같은 거 없다. 신발에도 명백한 이유로 인해 전투화와는 달리 끈이 일체 없다.
  • 군대에서는 병사들의 선거권이 보장되지만 교도소 수감자들은 그렇지 않다.
  • 군대는 비록 몰래 목 매달아 자살하는 사람도 나올지언정, 영창 화장실이 아닌 이상 화장실 안만큼은 사용 중 완전한 폐쇄를 보장해 준다.
  • 그나마 교도소는 불침번 같은 건 없구나. 일과 시간이 끝나면 다같이 푹 자는 게 보장된다. 다만, 밤중에 화장실 이용은 여전히 편하게 못 한다.

수저조차 흉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은 교도소뿐만 아니라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줄 때도 비슷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음을 생각해 보자. 실제로 9· 11 테러 때 테러범들은 스테이크 써는 용도의 플라스틱 나이프만 갖고도 승객과 조종사들을 제압했다고 하니까. 그 뒤 미국에서 운용되는 여객기들은 액체 반입 제한에다 스테이크는 미리 다 썰어 놓은 채로 주는 등, 별별 보안 제약이 더 생겼다.

다음으로, 집단 내 서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군대에서 훈련소는 같은 날 들어와서 같은 날 나가는 동기들만으로 구성돼 있어서 형태가 제일 단순하다. 자대부터는 병들이 들어온 날이 제각각이어서 짬과 서열과 계급 차이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복무 기간은 다들 동일하다. 또한 장교인 소대장 아래로 병 중에서도 완장 찬 분대장이 있어서 후임들을 통제한다.

그에 반해 교도소는 한 방의 수감자들이 들어온 날과 나가는 날에 아무 개연성이 없다. 연령대도 전혀 비슷하지 않다. 그러니 동기는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참과 말년 서열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해서도 절대 안 된다. 감방 내부에서 죄수들끼리 군대놀이가 행해지고 일진 같은 조직과 '짱'이 존재하고 간수 끄나풀이 존재하는데 그걸 간수들마저 죄수 관리의 편의라는 미명 하에 묵인· 동조· 방치한다면 교도소가 얼마나 개판이 되겠는가?

물론, 아예 사형수나 극도의 흉악범 또는 죄질과 별개로 멘탈에 문제가 있는 위험 죄수는 독방에 따로 수용되거나 더 엄한(= 햇빛 구경하기가 더욱 어려운) 교도소로 옮겨지긴 한다.
군대에 소규모 징계 시설인 영창이 있듯이, 교도소도 그런 목적으로 독방이 있다. 보는 눈이 없이 혼자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아무 행동도 못 하고 벽만 쳐다보고 지내야 하니 그건 그것대로 고문이라고 한다. 독방이 무슨 왕중왕도 아니고 교도소 안의 교도소 역할을 한다.

병역 의무가 있는 나라에서 누구든지 가능한 한 군대에 안 가려고 애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허나, 질이 지나치게 안 좋아서 통제가 안 되는 단점이 신체 능력이 뛰어난 장점보다 더 큰 사람은 군대에서도 아무리 사람이 부족해서 난리라 한들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만한 게 죄수들이니까 얘들을 삼청교육대 식으로 인간흉기로 개조시켜서 공작원으로 투입하거나 선원으로 부려먹는 건 인권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부려먹는 갑의 입장에서도 영화· 소설에서 보는 것만치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언제 딴마음 품고 사고 칠지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고 덥석 위험한 무기나 도구를 쥐어 주고 일을 시킬 수 있겠는가? 일례로, 박통 시절에 실미도에서 몰래 양성되었던 북파 공작원들도 사형수· 죄수 출신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일제 강점기 때도 조선인을 상대로 징병제는 갈 데까지 다 간 말기인 1938년이나 돼서야 시작됐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군대 안 가려고 장애인으로도 모자라서 전과자가 되는 것까지 불사할 정도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요즘 같은 평시에야 많지 않다. 하지만 옛날에 정말 나라가 전쟁에 휘말려서 위태롭고 병사들의 사망률이 높던 시절에는 "군대 가느니 차라리 감옥 가고 만다, 배째!"도 당연히 있었다.

사람이란 살면서 병원에 갈 일이 없어야 하듯이 법원이나 경찰서 같은 곳에도 정말 갈 일 없고 마주칠 일이 없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피해 신고자나 증인 신분으로 가는 거면 최소한 자기 마음은 부끄러울 것 없고 떳떳하겠지만, 그래도 골치 아픈 일에 엮인 상태인 건 변함없지 않은가?

군인과 민간 공무원의 하이브리드인 군무원이라는 직종이 있듯이, 군대와 교도소의 하이브리드인 '국군 교도소'도 있다. 군인 신분으로서 영창보다는 크고(빨간 줄 그이고), 그렇다고 군번 즉각 말소에 민간인 싸제 교도소로 옮겨질 정도까지는 아닌 규모의 죄를 지은 사람이 가는 곳인데.. 이곳 역시 가서 좋을 건 전혀 없는 곳이다.

반대로 그런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에 비례해서 고소득 전문직이다.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스트레스와 책임감이 크고 재미없는 일을 하니까. 영적으로 보자면 저런 직업은 인간의 죄의 결과를 수습하는 직종에 속하기 때문에 저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수요가 절대 없어질 수가 없다. 옛날에 그 고상한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서 미국을 세운 뒤에도 교도소는 거의 곧장 필요해졌다지 않는가?

가령, 검사라 하면 얼마나 머리가 비상하고 공부 많이 한 사람일 텐데, 그 좋은 머리로 맨날 하는 일이 뭔가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게 아니라 남을 일단 의심하고 나쁘게 보고 기소하고 형량을 판사에게 청구하는 일이다. 정신 건강에 좋은 일은 아니어 보인다. 저것만 하다가 맛이 가 버려서 인격 파탄 막장 싸이코 검사가 나오는 것도 본인은 이해는 할 것 같다. (피의자에게 막말, 가혹행위..;; )

우리나라에 10월 28일은 '교정의 날'이라고 법정 기념일이다. 저건 9월 18일 철도의 날만큼이나 교정 분야의 궂은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날이다. 우리나라가 민간 싸제 교도소가 막 발달한 나라는 아니니, 이 바닥 종사자들은 사실상 다 공무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교도소만 찾아 다니면서 포교· 선교 활동을 하는 종교인들도 있다. 군대보다도 저런 곳이 복음이 더 절실히 들어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개인 활동을 못 하는 곳에 있으면서 성경이라도 제대로 읽고, 인생과 죄 문제와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라는 것이다.

사람이란 게 꿈에도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덜컥 장애인이 될 수도 있고, 비슷한 이치로 욱 하다가 정말 사소한 실수 때문에 은팔찌 득템에 경찰서 정모를 할 수도 있다. 굳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람이 죽는 급의 큰 교통사고를 내거나 경제 사범으로 몰리는 바람에 철창 신세를 질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애초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겠지만 세상엔 이런 바닥도 있다는 걸 미리 염두에 둔다면 나중에 예상치 못한 비극이 찾아왔을 때 좀 덜 당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03 08:34 2017/02/0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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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진왜란과 관련된 조선 기생들

임진왜란 때 활동한 기생이라 하면, 경남의 진주성 촉석루에서 적장을 껴안고 장렬히 산화한 논개가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승부 게임을 할 때 나의 가장 약한 말을 상대방의 가장 강한 말과 자폭시켜서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전술을 '논개 전술'이라고 한다.

그런데 3· 1 운동 때 수원의 유 관순이라고 불리는 다른 여성 열사(이 선경)도 있었듯이, 임진왜란 때도 평양의 논개라고 불리는 '계월향'이라는 다른 기생이 있었다. 일본군 장수에게 겁탈당하자 이왕 버린 몸인데 그를 꾀어서 신임을 얻고, 아군 군사를 몰래 잠입시켜서 그 적장을 참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거사를 치른 뒤 두 사람이 다같이 탈출은 할 수 없어지자..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그 아군에게 "나는 어차피 더럽혀진 처지이니 날 죽이고 가 주세요. 님 혼자라도 살아서 나라를 구해야죠" 이렇게 부탁하고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진주, 평양 다음으로는 강원도 고성에 월이(WALL-E? 개드립 -_-;;;)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얘는 전쟁 중은 아니고 전쟁 전에 염탐을 위해 미리 침투했던 일본의 어느 첩자와 정분이 났다. 그리고 첩자가 그려 놓은 지도를 몰래 엉뚱하게 바꿔 놔서 훗날 왜군을 대거 엿먹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건 딱 봐도 현실성이 낮으며 공로를 검증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러니 실존 인물이 아니라 마치 윌리엄 텔 같은 주작 구전 설화일 뿐이라고 반박해도 할 말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설화도 아무 근거 없이 무작정 생긴 건 아닐 텐데 그 시절에 고성에서 진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제가 임진왜란에 앞서서, 그리고 한일 병합 전에 경부선 철도 부설을 위해서 자국 첩자를 보내서 한반도를 무단으로 막 측량해 갔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조선 자국의 지리 연구가인 김 정호에 대해서는 옥사설을 꾸민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2. 벨기에의 폭군

세계사에 악명을 떨친 인간 백정 학살자로는 김 일성, 이디 아민, 폴 포트, 마오 쩌둥, 히틀러, 스탈린 같은 유명한 인물이 있다. 그런데 딱 한 명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저기서 4위)는 악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생소하다. 본인은 최근에야 알게 됐다.

골수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에서.. 도둑질 하다 걸린 사람의 손목을 자른다는 얘기는 들어 봤다만,
이 미친놈은 피식민지 아프리카(콩고) 흑인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시켜서.. 고무 생산 할당량을 못 채우면 멀쩡한 사람 손목을 잘랐다.
다음에도 못 채우면 팔을 통째로 자르고, 3차 미달 때는 사형.

무슨 내전 지대에서 지뢰 밟아서 다리를 잃은 사람들도 아니고, 저렇게 손목· 팔이 잘린 흑인들 사진이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ㅠㅠㅠ

사진 보기 (약혐 주의)

아니, 그냥 평범한 채찍질이나 태형으로 벌 주는 것도 아니고, 손· 팔을 잘라 버리면 로동을 할 수가 없어지는데 그럼 1차 미달 이후부터는 바로 죽으라는 소리였나 싶은 의문이 들기도..

지금 북한에서 사람들이 지위를 막론하고 탈북하는 이유도 뭔가?
저렇게 미치도록 일해서 채워야 하는 할당량을 생각하니 답이 안 나와서 목숨 걸고 탈출하는 거다. 저렇게 목숨을 저당잡힌 채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그저 한숨만..;
그 당시 영국도 식민지 착취와 아프리카 로동자 인권 유린으로 치면 딱히 할 말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국주의 가해국들이 보기에도 벨기에는 너무 막장이어서 진상 조사를 벌이고 인권 개선을 촉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식민지 지배를 처음 해 보는 후발주자 나라들이.. 경험과 노하우도 없고 그저 피지배자들 기선제압을 하는 걸 목표로 극악무도한 공포 폭력 통치를 시행하곤 했다.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도 괜히 무단 통치로 시작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일제의 입장에서.. 조선은.. 그렇게도 악랄하게 수탈 착취한 것에 비해서 솔까말 그리 막 가성비 맞는 식민지도 아니었다. 한반도가 무슨 산유국도 아니고 저렇게 땅 넓고 식량이나 지하자원 넘쳐나는 곳도 아니잖아.. 뭔 뽕을 뽑겠냐? 걍 만만하게 합병해서 덩치 키우고, 특히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좋으니까 정한론이 나왔던 거다.

그나저나.. 매국노 이 완용이 1909년에 뜬금없이 바로 저 레오폴드 2세의 서거(?) 추도식에 참석하러 명동 성당에 가 있다가 이 재명 의사에게서 칼빵을 맞았다. 우리나라와는 이렇게도 인연이 연결된다.

3. 이 승만 대통령이 내린 칭호들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 이 승만이 후세에게 남긴 행적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뿐만 아니라 각종 이름에서도 은근히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이 박사 대통령 각하께서 XXX라는 이름을 하사해 주시였습니다~~"

  • 무궁화호: 지금 같은 완행 간선 열차 말고 1960년 2월에 등장한 디젤 기관차 기반의 경부선 특급 열차였는데, 그 시절에 서울-부산을 6시간 40분 만에 달리는 호화 열차는 지금으로 치면 KTX나 다름없는 포스를 자랑했다. 이 열차의 이름을 대통령이 직접 지어서 붙인 거라고 대한뉴스가 인증했다. 열차 이름 다음으로는 아무래도 군사 분야의 명칭이 많다.
  • 연무대: 논산 육군 훈련소의 별칭. 1952년에 역시 대통령 각하가 붙인 이름이다. 광주의 '상무대'는 어떤가 모르겠다.
  • 을지: 양구에 있는 을지 전망대 내지 을지 대대. '을지문덕' 장군에서 착안해서 대통령이 붙였다. 하긴, 서울에는 '을지로'라는 길이 있는데 그건 이 대통령의 전부터 존재했던 명칭이다. 강원도 여행을 갔다 오면서 알게 됐다.
  • 파로호: 출처는 역시 동일한 강원도 여행이다. 북괴 멧도적 '오랑캐를 격파하다'라는 뜻으로 대통령이 붙인 이름이다.

한때는 이 승만 아래의 어느 아부꾼 부하가 서울특별시의 이름까지 각하의 호를 딴 '우남시'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저 할배는 대통령 이상으로 왕처럼 행세하는 걸 좋아했으며, 커다란 자기 동상과 자기 얼굴 들어간 지폐까지도 만들긴 했다. 하지만 "우남시"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오글거렸는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야 그럼 내가 북괴 김 일성이랑 뭐가 다르게 되냐"라는 식으로 반문했다고 한다. =_=;;;

그 대신 "우남로"라는 도로명은 전쟁 후 1950년대 중반에 닦인 성남시 한 구석의 어느 도로에 붙어 있다.
저 할배는 과시욕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큼직한 자기 동상을 세우고, 자기 생일을 국경일 급으로 기념하고, 지폐에다가 자기 얼굴 사진을 그려 넣었다. 그런 부심은 있었지만 그래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도를 넘어서는 수준의 개인 우상화와 숭배 강요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건국 거의 직후부터 성탄절을 빨간날로 지정했으며, 군대에 군종 병과를 별도로 꼭꼭 챙겨서 장병들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 (황군을 표방하는 일본군엔 그런 거 당연히 전무했음)

저런 이름들과는 달리, 대통령의 관저의 명칭이 경무대이다가 이 승만 이후에 지금의 '청와대'로 바뀌었는데, 이건 박 정희가 아니라 그 전인 윤 보선 때 그렇게 된 거다. 그리고 박 정희는 이름을 지은 것보다는 현판이나 돌에다 글씨를 쓴 게 더 많이 전해지는 것 같다. 숙정문 현판, 옛 광화문 현판, 국기태권도,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등.

4. 영예로운 유물과 그렇지 않은 유물

우리나라에는 현충원만 있는 게 아니라 파주 적성면에 적군 묘지가 있다. 남한 영토에서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북한군 및 중공군의 유해들을 최소한의 예우만 해서 매장해 놓은 것이다.
조선의 임금 중에 세종대왕 영릉은 멀리 여주의 최고의 명당에 거대한 규모로 조성돼 있다. 성군이 죽으면 무덤을 가장 으리으리하게 꾸며 주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한 전통이며, 성경에도 나온다(대하 32:33).

그에 반해 연산군은 조/종 칭호를 못 받았으며 무덤도 '능(릉)'이 아닌 그냥 '묘'가 서울 북부 한구석에 초라하게 놓인 게 전부이다. 사람이 유한한 일생 동안 남긴 행적을 바탕으로 후세들로부터의 평판이 영원히 달라지는 건 내세· 종교관과 관련해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예전에도 한번 얘기했듯이 6· 25 전쟁 중에 우리 국군이 이룬 최초의 승전은 대한해협 해전이다. 육군이 아닌 해군의 몫이다. 그 전투의 주역이었던 백두산함 자체는 진작에 퇴역했지만 그 군함의 돛대는 해군 사관학교던가 어디에 고이 보존돼 있다. 역사적인 유물이니까 말이다.

그에 반해 천안의 독립 기념관에는 honor가 아닌 dishonor와 관련된 유물이 기념관 한구석에 실외 전시돼 있다. 바로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면서 남은 일부 건물 잔해들로, 특별히 첨탑도 여기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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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하되, 별다른 설명도 없고 울타리 같은 보호 장비도 전혀 안 두른 채로 내팽개쳐 놨다. 땡볕과 눈비를 고스란히 맞을 뿐만 아니라 관람객이 침 뱉고 심지어 오줌을 싸건 상관 없게 방치했다. 첨탑은 공터의 중앙의 제일 "낮은" 구덩이 비슷한 곳에다가 놔 뒀다. 참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전시해 놨다. 일부러 깨 부수고 파괴할 필요는 없지만, 애지중지 고이 모셔 두지도 않은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독립 기념관에 언제 직접 찾아가서 저걸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함의 마스트와 조선총독부 청사 첨탑은 이렇게 후세로부터 극과극 정반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북괴 정권이 붕괴하고 통일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나면 북한 관련, 김돼지 우상화 유물들도 99% 이상은 흔적도 없이 폐기하고 극소수 상징적인 유물만 이렇게 놔둬서 기록 겸 반공 교육 자료로 활용해야 하지 않나 싶다.

5. 탈북자가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방식

탈북자들 중에는 강 철환, 주 성하 기자처럼 현직 언론에 종사하면서 북한 쪽 소식통을 모니터링하고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사람이 있다. 최근에는 신문뿐만 아니라 박 진희 씨처럼 TV에 얼굴이 노출되는 방송사 기자도 등장했다.
언론 기자 입장에서 북한 내부 소식은 너무 극단적이고 엄청난 일이 많은데 검증은 어렵고 제보자의 신변도 보장할 수 없는지라, 취급하기 굉장히 꺼려지는 분야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처럼 제도권 언론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혼자 강연을 뛰고 책을 쓰고 기자회견을 열면서 상대적으로 음지에서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탈북자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몸을 덜 사리면서 개인적인 탈북 과정이나 수용소 경험담 같은 참혹한 얘기를 막 거론하는 편이다. 남자만 있는 게 아니라 영어 공부해서 TED에까지 강연을 한 걸로 유명해진 이 현서, 그리고 박 연미 같은 젊은 여성도 등장했다. 이렇게 public형과 private형 두 그룹을 나눠서 생각할 수 있는 듯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본적으로 북한의 인권 사정은 매우 참혹하며 탈북자는 인도적으로 대해야 하긴 한다. 그러나 이들 중에도 위장 탈북자, 안보 장사 사기꾼이 있다. 심지어 탈북자 커뮤니티를 이간질하기 위해 북괴가 의도적으로 제3국을 거쳐 보낸 간첩도 있다. 그러니 탈북자의 증언을 교차검증하여 팩트를 걸러 내는 문제가 쉽지 않다. 당장 검증이 안 되는 주장도 마냥 무시하고 버릴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31 08:23 2017/01/3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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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994년에 발매되었던 국산 패키지 게임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리크니스'라고 그림체나 게임 진행 방식이 슈퍼마리오와 비슷한 형태인 아케이드 게임이다.
본인은 그 시절에 얘 실물을 해 보거나 구경한 적이 없다. 단지 초딩 말년이던 시절, PC월드 한국어판 1994년 8월호 기사를 통해 소개된 것을 읽은 기억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최근에 오랜만에 되살아나서 다시 회고를 하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는 그 날이 오면, 못말리는 탈옥범, 낚시광 같은 여러 국산 게임들이 있었다.
이 시절에 게임은 하드웨어 제어가 용이한 도스용으로 개발되었다. DirectX나 3D 셰이더 언어, 언리얼/유니티 엔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어셈블리를 이용한 교묘한 하드웨어 테크닉이 고급 기술로 취급되었다. 그래픽 모드를 바꾸고, 비디오 메모리를 직접 조작해서 화면이 Doom처럼 쫙 흐르듯이 갈라지고, 사각형이 아닌 형형색색 모양의 2D 스프라이트로 애니메이션을 구현하고..

IBM PC는 게임 전용 하드웨어가 아니다 보니 3차원 그래픽은 고사하고 부드러운 2차원 화면 스크롤을 구현하는 것조차도 보통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Windows API로 치면 ScrollDC 내지 ScrollWindowEx를 구현하는 거 말이다.
스크롤 기술이 더 발전하면 '다중 스크롤'이 된다. 먼 배경은 천천히 스크롤하고, 가까운 기물은 많이 스크롤해서 반쯤 원근감과 입체감을 내는 것 말이다.

저 리크니스도 그렇고, 더 옛날에 id에서 Doom 이전에 개발했던 커맨더 킨을 보면 자기들의 독자 노하우를 동원해서 게임기를 방불케 하는 빠르고 부드러운 스크롤을 구현했다고 자랑을 했다. 스크롤을 못 하면 페르시아의 왕자 같은 페이지 단위 스크롤밖에 구현할 수 없을 것이고 그건 단조롭다. Titus에서 만들었던 고인돌(Prehistorik) 1편과 2편의 스크롤의 차이도 생각해 보시라.

게임용 그래픽 아티스트들도 포토샵이나 MAX, Maya가 아니라 딜럭스 페인트가 생계 도구였다. 트루컬러 같은 건 없고, 256색에서 팔레트 배분을 잘하고 도트 노가다를 열나게 하는 게 일이었다.
320*200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워낙 저해상도이니, 막 크고 화질 높은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는 건 다행이었다. 그러나 스프라이트 말고 고정된 그림은 가장자리 안티앨리어싱을 잘해서 저해상도에서도 최대한 부드럽게 보이게 해야 했다.

1990년대에 그런 불모지 영역을 개척했던 1세대 게임 개발자들이 김 동건· 이 은석(85되었수다/삭제되었수다), 정 재성(그 날이 오면) 같은 분들이다. 그리고 같은 연배의 개발자로 김 학규라는 분이 있으며, 이분이 옛날에 소프트맥스의 아트크래프트 스튜디오에 소속되어서 만들었던 게임이 리크니스이다.

(이 게임을 심층 분석한 블로그 링크)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크니스는 만화풍 + 파스텔톤의 그래픽을 추구했는데 개인적으로 색감이 참 예쁘고 마음에 든다.
저런 게임 스토리 연출과 각종 그래픽들을 그 시절에 어떻게 다 생각해 내고 만들었는지 경이로울 따름이다. 하드웨어 장비도 열악하고 지금 같은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스토리 화면에서 리크니스(남캐)와 아이리스(여캐)가 눈을 마주친 뒤, 새들이 푸드득 날아가면서 시작 메뉴 화면이 뜬다.
링크하는 블로그 글에서도 지적하지만, 주인공을 선택했을 때의 반응이 참 익살스럽다.
블루스 형제(Titus 작)와는 달리, 이 게임에서는 선택받은 주인공이 기뻐하는 게 아니라 "뭐? 또 나야?" 같은 뻘쭘하고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특히 아이리스 아가씨는 마시던 물을 뿜기까지 한다.

(전체 플레이 동영상)

플레이 장면을 보니 진짜 슈퍼마리오 스타일 같다.
여러 블로그들의 평을 보면.. 리크니스는 왕창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카지노 슬롯 같은 걸 돌려서 공격하는 최종 보스전은 메모리를 강제 조작해서 보스의 HP를 너프시킨 뒤에야 겨우 깼다는 얘기까지 있다.
그럼 나 같은 사람한텐 더욱 어렵겠다. <그 날이 오면>도 그렇고 게임들이 전반적으로 어려웠다. ^^

끝판을 깬 뒤 엔딩은 생각보다 허무하고 별로 볼 게 없었다. 개발팀의 사진 같은 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인이 리크니스를 재주목하게 된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하여 또 있다.
먼 옛날에 하이텔 게임 제작 동호회에서 딱 두 번인가 게임 공모전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얘기 자체는 <삭제되었수다>를 소개하면서 예전에 한 적이 있다. 그때 저 게임이 1등을 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 당시에 본인이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프로그래밍 동호회 친구도 거기에 게임을 출품했으며, 공개된 그 게임을 나도 해 봤다.
그 게임에 쓰였던 BGM들 중 일부가 바로 리크니스 게임의 BGM을 빌린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게 그로부터 거의 20년 뒤의 일이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일부 스테이지의 음악이 귀에 아주 익숙했다.

1990년대에 20대 초반의 나이로 이미 저렇게 날고 기었던 김 학규 씨는 그 뒤로 대학까지 중퇴하고서 게임 개발 학원 강사로 뛰기도 했고, 수제자들과 함께 그라비티를 설립해서 걸출한 온라인 게임을 계속해서 개발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플랫폼도 Windows로 넘어가고 3D 기술 + 네트워크 기술까지 게임 개발 방법론이 그냥 싹 갈아엎어진 거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그걸 일일이 다 공부하면서 어떻게 따라갔는지가 그저 대단할 따름이다. 하지만 개발 능력 대비 경영 수완이 부족해서 자기가 세웠던 회사에서 물러나기도 하고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모양이다.

나도 학창 시절에는 프로그래밍에 빠져서 제도권 교육에서는 완전히 이탈해 버렸지만.. 그렇다고 실력이야 쨉도 안 되고 저렇게 현업에서 당장 돈 되는 물건을 만들 능력도 없다 보니 학교를 때려칠 배짱은 없었다. 저런 사람들의 꿈과 열정이야 참 대단하긴 한데 요즘 우리나라는 게임 업계가 사정이 너무 안 좋긴 하다. 정부로부터의 온갖 규제, 사용자의 불법복제, 끊임없이 치고 들어오는 외산 게임들.. 업계에서는 또 공밀레에 야근 야근..;;

그런데 이렇게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코딩으로 먹고 살자니 그나마 SI 품팔이 같은 진짜 지옥 말고 스스로 수익을 내고 할 만한 데가 미우나 고우나 게임밖에 없다. 국내의 걸출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프로그래머들을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데가 모르긴 몰라도 넥슨, NC 같은 게임 개발사들이다. 에구, 이건 나의 적성· 전공과도 관계가 있는 문제인데 이 바닥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찬찬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28 19:35 2017/01/2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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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도봉산

지금까지 서울 북부의 산행은 지난번의 북한산, 그리고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락산· 불암산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 북악산은 북부라고 치기에는 생각보다 '덜' 북쪽이고.
수락산은 지하철 접근성이 좋으며 나름 두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지만(각각 수락산, 당고개에서 출발), 그때는 산들의 특성 내지 등산 계획 수립 요령에 대해 지금 같은 지식과 노하우를 갖추지 못한 초창기였다. 그래서 정상까지는 안/못 가고 모두 중턱에서 내려왔다. 그때는 둘레길과 등산로의 차이도 모르던 정말 초짜 시절이었다.

가을은 날씨가 안 덥고 산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시기이니 가히 등산의 계절이라 할 만하다. 매니아들 중엔 아예 날 잡아서 멀리 지리산, 설악산 등으로 원정 가는 사람도 있다. 등산이 마냥 중장년 아재들의 전유물 취미이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가끔 보면 내 또래의 젊은 사람, 심지어 여자분도 있다.
이런 와중에 본인은 삼성산 다음으로는 지금까지 의외의 미개척 상태였던 도봉산을 다녀왔다.

도봉산은 북한산의 이웃에 있는 별도의 산이지만, 여기도 여전히 북한산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그래서 북한산처럼 시설이 잘 돼 있으며 경치도 매우 아름답다. 그 대신 입산 시간대가 제한되며,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거나 허용 등산로를 이탈해서 다니다 걸리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런 점에서 도봉산은 건너편의 수락산과는 급이 좀 다르다.

도봉산이 같은 국립공원인 북한산과 다른 점으로는 성곽이나 무덤 같은 건 없고 사찰이 더 많이 있으며, 전철 접근성이 훨씬 더 좋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는 지리적으로 서울의 북쪽 끝인 관계로 근처에 근처에 시내버스 차고지가 있음과 동시에 지하철도 잘 알다시피 7호선의 종점과 도봉 차량 기지가 있다.
도봉산 역은 강릉의 정동진과 위도가 거의 같은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상 철도 2개가 평행하게 만나는 관계로 이 역은 그냥 1호선 역과 7호선 역 두 채가 나란히 놓인 형태이다.

철덕으로서 지하철 답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등산을 위해서 도봉산 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역의 동쪽에는 '서울 창포원'이라는 야외 식물원이 있다. 반대로 국도 3호선을 횡단하여 서쪽으로 1km 남짓 걸어가면 국립공원 출입구가 나오고 등산로가 시작된다.
처음에 '도봉 탐방 지원 센터'가 나오고 그 다음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 분소'에서 길이 본격적으로 갈린다. 북한산 둘레길도 있고 도봉산 등산로도 두 군데가 존재하는데, 본인은 은석암 방면으로 등산해서 도봉 대피소+도봉 계곡 방면으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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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길은 여느 산과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한참 산을 오르다가 커다란 바위가 나오기도 하고, 하늘이 간간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 말고 하산길이 국립공원답게 훨씬 더 잘 닦여 있었다.
은석암은 말 그대로 암반이기 때문에 손으로 줄을 잡고 바위를 올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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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턱쯤에 도달하자 시야가 탁 트이고 산 아래가 그럭저럭 보이기 시작했다. 도봉산 전철역이 보이고, 저 멀리 도봉 차량 기지도 보였다. 주변의 외곽 순환 고속도로와 이웃의 수락산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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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사는 아닐 테고 아마 천축사가 아닌가 추정되는데.. 산 속 저 높은 곳에 저렇게 절이 하나 떡 놓여 있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눈에 들어온 풍경이 가히 장관이었다. 그에 반해 여백이 부족한 건.. 아니고 카메라가 시야각과 색감이 부족하다.
본인은 뺑 돌아서 한참을 더 걸은 끝에 저 절이 있는 봉우리까지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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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커다란 봉우리 등장~! 그 뒤 등산 난이도도 덩달아 올라갔다.
장갑을 안 가져갔는데 로프를 잡은 손 내지 발을 딛고 있는 신발 바닥이 미끄러지면 어떡하나 겁이 나는 상황이 몇 번 있었다. 실제로 도봉산은 가까운 과거에 인명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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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서 낮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인제 하늘이 좀 파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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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은 여러 개의 바위 봉우리들이 제각각 정상을 구성하고 있으며, 다른 산들과는 달리 봉우리 위에 딱히 정상 표지석이나 국기 같은 건 없었다. 최고봉을 등반 가능한 건 아니며, 등산객이 접근 가능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신선대였다. 군사 시설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안전 때문에 최고봉에 못 가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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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의 바로 옆에도 이런 돌무더기가 있었는데.. 크기를 짐작케 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다시피하구나. 옆의 나무들을 보고 짐작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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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변에도 온통 높은 산과 봉우리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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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당초 계획은 오봉도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양주나 못해도 송추· 의정부 방면으로, 산을 횡단하여 서울에서 더 먼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삼성산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정작 정상에 도달하고 나니 지도의 묘사와 지금 위치가 씽크가 되질 않았다.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어서 길이 있는 곳으로만 내려가니까 결국은 서울 방면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단풍으로 물든 숲은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여기가 내가 올랐던 길보다 단풍이 더 든 것 같았다. 그리고 산 기슭보다 중턱이 붉은색이 더 짙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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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서 봤던 계곡이 여기에도 있었으며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정오에 근접하자 이제야 이쪽으로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였다.

도봉산에 대한 종합적인 평을 하자면 등산 시설을 제외한 인공물이 매우 드물고, 북한산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산 같다. 북한산은 어느 등산로든 지하철만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워서 버스가 필요한 반면, 도봉산은 국립공원으로서는 나름 역세권이기까지 한 게 좋다. 수락산, 청량산, 아차산 등 지하철 역세권인 산들 중에서는 가히 최고의 퀄리티가 아닌가 싶다. 등산기 두 편을 글 한 편에다 묶으려고 했는데 도봉산은 분량이 길어져서 또 단독 게재를 하게 됐다.

* 여담: 국립공원 이야기

자연 보호를 목적으로 근대적인 국가 제도 하에서 도입된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은 미국의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요세미티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구나. 어쨌든 미국이 최초이긴 하다. 'national park'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 첫 도입된 건 1967년이어서 올해로서 딱 반세기가 지났다고 한다.
영예의 제1호는 지리산이며, 그 뒤로 국립공원은 대부분 네임드급 산들의 독식무대였다. 설악산, 한라산, 속리산, 주왕산, 계룡산, 오대산 등.
그렇기 때문에 이쪽 사정은 산악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서울의 북한산은 1983년에 비교적 '늦게' 지정된 거라고 한다.

하지만 산만 있는 건 아니어서 남해의 한려해상 국립공원도 있으며 충남 태안 역시 해안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경북 경주시는 건물 지으려고 땅만 팠다 하면 문화재가 도깨비 방망이 두들기듯이 출토되는 특수성이 감안되어, 토함산, 남산과 일대 시가지 약 137제곱km가 국립공원으로 그것도 무려 1968년부터 지정됐다.
도시형 국립공원이란 건 경주가 전국적으로 유일무이한 사례이다. 여기에 사는 경주 시민은 법적으로는 국립공원에서 사는 셈이다. 경부 고속도로에서도 경주 근처에 '경주 국립공원' 운운하는 표지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허나, 국립공원에서 산다고 실생활에서 별로 좋을 건 없다. 오히려 문화재 보호와 도시 미관 유지 명목으로 개발 제한에 고도 제한 같은 규제가 어지간한 그린벨트 이상급으로 걸리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지주의 입장에서는 재산권 행사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미국의 워싱턴 D.C.에서는 모든 건물이 백악관보다 낮은 층수로만 지어져야 한다던데 그런 게 고도 제한이다. 그리고 작년에 지진 피해를 많이 입었던 황남동 일대는 전통 보존 운운하면서 주택은 반드시 기와집으로 올려야 한다는 게 법으로 규정돼 있었다. 그런 식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25 19:39 2017/01/2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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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급발진

지난번 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운전 중에 발생하는 위험 돌발 상황에 대해 좀 생각해 보겠다. 대표적으로 급발진이 있다.
난 안 겪어 봐서 모르겠지만 엔진이 폭주하고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는다면 기어를 N으로 바꾸면 큰 불은 끌 수 있지 않나? 그게 안 되면 시동이라도 끄거나 아니면 도로 옆 벽면을 긁으면서 세우는 걸로 개인적으로 매뉴얼을 구축하고 있다. 점점 더 강력하고 차의 엔진 내지 외형을 파괴하는 방법이라도 동원해서 차를 세운다. 머릿속 운전 프로그램이 try 블록 안에서 돌다가 catch(SUAException e)으로 침착하게 잘 분기해 줄지는 별개의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Sudden Unintended Acceleration)

시동을 끄는 것에 대해서는 핸들과 브레이크가 잠겨 버리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당장 전방에 장애물이 있지는 않아서 몇백 m 정도는 더 나아갈 수 있고(특히 충돌을 피하려고 당장 비어 있는 중앙선을 넘어간 직후), 어떻게든 차가 속도가 붙는 것만을 막고 싶으면 상황에 따라서는 시동을 끄는 게 꼭 자충수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더 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 위험한 방법이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앞의 장애물을 어설프게 요리조리 피하면서 차가 속도가 붙는 걸 방치했다간... 도저히 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더 끔찍한 꼴 나기 때문이다. 그때는 local maximum만 그리디 알고리즘으로 쫓아가서는 안 된다. 정말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하다못해 핸들을 확 꺾어서 차를 전복이라도 시켜서 바퀴를 지면에서 떼어 놓는 것도 불사해야 하리라 여겨진다.

급발진을 규명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마치 UFO를 연구하는 사람과 비슷한 처지인 것 같다. UFO와 급발진은 모두 기존 업계나 학계, 정부 기관에서는 공식적으로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급발진은 다 페달을 반대로 잘못 밟은 운전자의 과실일 뿐이고 UFO는 다 당사자들이 헛것을 본 것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현대의 과학과 기술로 규명은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초자연적인(?) 현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거 무슨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도 아니고 UFO의 증인, 급발진의 증인이라니 참 느낌이 므흣하다..;;
현직 택시 기사 중에 자기 생업과 관련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독특한 분이 있어서 좀 소개하도록 하겠다.

닉: 꿈돌이/택시불만제로/택시독립 (!)

택시 이용과 관련된 유익한 정보, 그리고 현업 택시 기사들의 고충 같은 글이 있어서 그럭저럭 볼 만하다. "고갱님들은 불법 승차거부에 절대로 호락호락 당하지 마세요. 승차거부를 안 하는 대다수의 선량한 택시 기사들을 생각해서라도 승객 여러분들이 신고를 불사하면서 강하게 대처해 주셔야 불법 행위가 근절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새겨들을 만하다.

가끔은 미스터리한 교통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추리와 평론을 하는데, 이분은 놀랍게도 여느 운전자들과는 달리 차량 급발진 같은 건 절대 없다는 게 일관된 지론이다. 옛날 글들 검색해 보시길. "처녀가 애를 낳았습니다 / 선풍기 틀고 자면 죽습니다"와 "멀쩡하던 택시가 갑자기 급발진 폭주를 일으켰습니다"를 동급으로 칠 정도이다. 너무 당당하고 단호하고 강경하게 주장하니 그런 글에는 "무슨 개소리를.. 너 혹시 현기차 알바냐" 이런 부류의 익명 악플들이 잔뜩 달려 있다. -_-;;

지난 2009년 5월에 발생한 한티 역 택시 역주행 사고에 대해서도 급발진은 택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택시가 갑자기 오르막을 시속 100이 넘는 속도로 폭주하다가 결국 장애물과 충돌하여 차체가 두 동강 나고, 탑승자인 기사+여성 승객2 세 명이 모두 즉사한 끔찍한 사고 말이다.

이에 대해 저분은 운전자가 1차 사고의 측면 충돌로 인해 머리에 큰 충격을 받고 졸도했으며, 겁에 질린 조수석 승객이 핸들만 요리조리 돌리면서 고속 주행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일 거라고 추리를 늘어놓았다. 다만, 내가 보기에도 그럼 기사가 어떻게 액셀을 꾸욱 밟고 있는 채로 의식을 잃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기관총 사수가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채로 전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급발진 추정 교통사고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하려나 모르겠다.
엔진 작동 내역과 관련된 결정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긴 하면서도(급발진이 순수하게 복불복 운빨 미스터리의 영역이 아닐 거라는 뜻) 영업 기밀 운운하면서 급발진에 대한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다 운전자의 과실로만 떠넘기고 있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미심쩍고 괘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자기가 잘못해서 사고 내 놓고는 걸핏하면 급발진 핑계 대는 비양심 진상 운전자도 안타깝지만 있다. 진실은 과연 어느 극단 중에 있을지?

사무직 종사자들은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는 게 일일 것이며 본인 같은 프로그래머도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택시· 버스· 트럭 운전사들은 근무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하루 종일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을 잡고 차를 굴리는 게 일이다. 근무 중에 각종 정보 통신 장비 같은 걸 들여다볼 여유는 없다. 영상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이 시대에도 이런 업종 때문에 라디오 방송이 안 망하고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택시 운전을 은퇴 후 용돈벌이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 full time 생계로 하는 거라면 그걸 하면서 블로그질까지 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아무튼 저분은 최근까지도 블로그를 잘 운영하시는 듯하다. 뭐, 교통사고 분석에 대한 판단은 독자 여러분에게 맡긴다.

12. 피시테일

고속 주행 중에 전방에 갑자기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혹은 갑자기 끼어드는 차가 있을 때... 보호본능으로 핸들을 확 꺾어서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때가 있다.
특히 비접촉 뺑소니 사고 블랙박스 영상들을 보면 더욱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가해 차량은 아무 탈 없이 유유히 사라져 버렸는데 자기만 놀라서 휘청거리다가 가로수를 들이받거나 전도· 전복되거나 심하면 옆의 비탈길로 추락하거나 한 거.

갑자기 옆에서 끼어드는 차량 정도면 "배째. 접촉사고 나 봐야 니 과실 100%야" 상황이었다면 차라리 같이 부딪치는 게 나았을 것이다. 피하다가 혼자만 더 큰 사고를 당하고 덤탱이 쓸 바에야 말이다.
길바닥에 갑자기 튀어나온 장애물, 불법주차 차량, 무단횡단자, 심지어 야생동물을 피하느라 안타까운 사고가 나곤 한다. 핸들을 꺾더라도 차량의 제어가 가능하고 수습 가능한 한도 내에서 꺾어야 한다. 옆에 피할 자리가 있는지, 혹시 뒷차가 추돌하지 않겠는지도 총체적으로 따지고 말이다.

결국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피하는 것 vs 차라리 부딪치는 것"의 가성비를 잘 따져야 할 텐데 물론 이런 요령과 경험도 운전자에게 금방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뭐, 저런 게 아니라 아예 정면에서 집채만 한 버스나 트럭이 역주행으로 폭주하고 있기라도 하면 그건.. 워낙 극단적인 상황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닥치고 피하긴 해야겠다.

이렇게 급발진이 '가속으로 인한 위험'이라면, 반대로 '회피나 제동 기동으로 인한 위험'으로 피시테일 현상이 있다.
급핸들이나 급브레이크 조작을 한 뒤에 차가 갑자기 좌우로 요동치면서 비틀거리더니 전복· 전도되는 경우가 많다. 난 저런 상황까지 겪은 적은 없어서 "왜 저렇게 될까? 중심 잡기가 그렇게 힘든가? 핸들과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나? 딱히 타이어가 터지거나 한 것도 아니고 빗길이나 빙판길도 아닌데?" 이런 의문을 품곤 했다. 하긴, 핸들과 브레이크가 평소처럼 말을 듣질 않으니까 사고가 나는 거겠지.

고속 주행 중인 자동차가 무거운 엔진이 장착된 앞은 그럭저럭 중심을 잡았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운 뒷부분이 중심을 잃고 출렁출렁 요동치는 것을 fish tail 현상이라고 한다. 전륜구동 FF 차량에서 발생하기 쉽다고 하지만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이 구동축의 방향은 아닌 관계로, 다른 형태의 차량에서도 수틀리면 발생할 수 있다.

요즘은 차들이 ABS에 VDC(자세 제어 장치)까지 장착돼 있어서 고속 주행 중에도 묵직하고 안정성이 많이 향상됐다. 차체가 떠 버리지 않게 뒷부분에 스포일러를 장착하는 것도 피시테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피시테일 현상이 발생하면 침착하게 차가 쏠리는 쪽의 반대쪽으로 조향을 반복하면서 중심을 잡긴 해야 하는데, 이때 브레이크는 절대 밟아서는 안 된다고 그런다. 그건 차가 한데 쏠리는 현상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제동은 중심부터 잡은 뒤에 시도해야 한다.

13. 양발운전

이번엔 또 다른 현직 택시 기사의 블로그를 소개하겠다.

닉: 두발로

이번 주인공은 자기 애마를 번호판도 안 가리고 버젓이 인증샷 찍어서 올렸을 정도인 분인데, 앞의 분보다 더 독특한 주장을 하고 있다. 다름아닌... "차는 발을 옮겨 가면서 운전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이다.
이분은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는 양발운전의 신봉자이다. 블로그는 온통 양발운전의 유용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동차 제조사와 자동차 공학 교수들에 대한 비판과 성토의 글로 가득하다. 글을 자주 올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근까지 정말 꾸준히 올리고는 있다.

본인은 예전에 밝혔듯이 한동안 양발 운전을 했다. 1종 보통 면허를 따긴 했지만 장롱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서 수동을 몰던 감을 다 잊어버렸다. 그 뒤 자연스럽게(?)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아 오다가 양발 운전에 대한 대외 이미지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자가교정을 해서 요즘은 일반적인 주행 상황에서는 언제나 한발 운전으로 습관을 고쳤다.

하지만 이건 운전 능률이나 안전 같은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냥 대외 평판 때문에 고친 것이다. 오르막에서 출발할 때나(밀림 방지), 전/후진을 반복하며 주차할 때(잦은 페달 조작)는 지금도 종종 옛날 버릇이 살아나서 예외적으로 왼발 브레이크를 쓴다. 요컨대 본인은 두 운전 방식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다.

자동차의 페달이 지금처럼 배치된 건 가장 근본적으로는 클러치 페달이 존재하던 수동 변속 차량과의 역사적 호환성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액셀과 브레이크는 서로 동시에 밟을 일이 전혀 없는 페달이니 꼭 별도의 발을 배당할 필요도 없고 기존 관행을 굳이 꼭 바꿀 필요가 없다. 비행기와 철도 차량 역시 가속과 감속은 한 손으로 조작하는 레버 하나로 간단히 끝내고 있지 않던가? 최소한 저 블로그에서 까는 것처럼 "사고 많이 내서 차 많이 팔아먹으려고 일부러 왼발 브레이크를 채택하지 않았다, 이것은 치밀한 음모이다"까지는 아닐 것이다.

다만, 그런 수동 변속기 같은 legacy를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 처음부터 액셀 오른발, 브레이크 왼발로 만드는 것도 직관적이고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삐딱한 자세야 브레이크가 클러치처럼 왼발로 밟기 딱 좋은 위치에 달려 있으면 해결되는 문제이니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한발로 두 페달을 모두 밟는 지금 체계에서도 액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려서 잘못 밟는 운전 미숙 사고는 얼마든지 난다. 그러니 왼발 브레이크만 유달리 혼동 위험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대신 발을 옮기는 딜레이 없이 거의 곧장 브레이크와 액셀을 교대로 밟는 장점은 꽤 크다고 여겨진다.

요컨대 본인은 왼발 브레이크는, 수동+클러치를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 마치 숟가락을 집고 글씨를 쓰는 손의 방향이 왼손인 것만큼이나 취존 가능한 영역이 아닌가 생각한다. 막연하게, 별 근거 없이 왼발 브레이크가 무작정, 떼빙(대열 운행)이나 우측 차로 추월만치 위험하다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오른발 위치에 맞게 맞춰진 페달을 왼발로 무리해서 밟느라 운전 자세가 이상해지는 건 문제라고 본다. 평소에 언제나 왼발로 밟을 거면 편하게 밟을 수 있게 세팅이라도 해 놓고 써야 한다.

그러니 혼자 특이한 주장을 하면서 기득권 세력과 꿋꿋이 싸우는(?) 저분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난 안 그래도 세벌식에 킹 제임스 성경 등 지금도 이미 마이너한 것들에 너무 많이 몰입해 있으니 가성비가 그리 안 맞는 마이너의 길을 굳이 더 가고 싶지는 않다. 한 발로 액셀과 브레이크를 모두 밟는 건 무슨 두벌식이고, 브레이크에다 별도의 발을 배당한 건 세벌식이기라도 하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_=;;

Posted by 사무엘

2017/01/23 08:39 2017/01/2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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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속도로 포함 자동차 전용 도로의 1차로는 상시 점유해서는 안 된다. 뒤에서 추월 차량이 오면 비켜 줘야 한다. (모든 차로가 막히는 정체 상황이라면 예외) 원활한 차량 흐름과 교통 안전을 위해서는 추월은 언제나 좌측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시내 도로 맨 구석의 직· 우 겸용 차선이라면, 내가 직진이어서 빨간불 때 멈춰 섰고 뒤에서 우회전 차량이 지나가려고 빵빵거린다 해도 미안해하거나 일부러 비켜 줄 필요가 전혀 없다. 뒷차가 무슨 출동 중인 구급차· 소방차가 아닌 한.

이것은 반드시 비켜 줘야 하는 경우와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의 대표적인 예인데, 이 둘을 반대로 잘못 아는 운전자도 있는가 보다.

2.
한적한 도로에서 건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횡단보도가 파란불이 되고 차도는 빨간불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인간적인 심정에서야 경찰이나 단속 카메라만 없다면 이런 신호는 무시하고 눈치껏 그냥 가 버리고 싶다.

주변에 다른 차가 없다면 나 혼자서야 종종 재량껏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앞차가 신호를 지키기 위해서 비록 무의미하게나마 횡단보도 앞에 정지했는데 뒷차가 앞차를 향해 그냥 무시하고 가라고 빵빵거리는 경우가 있다. 그건 좀 심하게 몰상식하고 개념 없는 짓이 아닐 수 없다. "호의(횡단보도 신호 무시를 묵인)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와 같은 급이다. 무시하더라도 원래는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서 무시해야 한다. 남한테까지 자기 습관을 강요하지는 말아야지?

바쁜데 에스컬레이터의 왼쪽 레인의 전방에서 혼자 떡 멈춰 서서 길막 하는 사람이 있으면(오른쪽 레인은 사람들로 이미 꽉 찼고) 나라도 답답해서 그 사람 바로 뒤에서 헛기침 하면서 눈치 주고, 심하면 "실례합니다" 이러면서 비집고 걸어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빈 횡단보도에서 빨간불 때문에 서 있는 앞차에게 신호위반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상황이 완전히 다르니까 말이다.

3.
견인차는 제아무리 싸제 사이렌을 울리고 불빛을 요란하게 반짝여서 소방차 코스프레를 해 봤자 법적으로 긴급자동차가 전혀 아니다. 저 아저씨들도 먹고 살기 빠듯한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것을 받아 주고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무리해서(특히 신호 위반/정지선 위반 같은 걸 감수까지 하면서) 비켜 준다거나 할 필요 따윈 전혀 없다.

4.
전방의 교차로의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뀌었을 때.. 정작 앞차는 서려고 마음먹었는데 뒷차는 "이 정도 타이밍이면 앞차도 그냥 건너가겠지"라고 생각하고 가속을 하는 바람에 뒷차가 앞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가끔 나곤 한다. 그럼 물론 뒷차의 100% 과실로 찍힌다. 한 차선에 양쪽의 차가 동시에 진입하려다가 서로 상대방을 피하느라 휘청대다 사고 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건 좌우 버전이고, 저건 앞뒤 버전 되겠다.

이런 사고는 비록 과실 판정을 받지 않더라도 앞차의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려면, 노란불 때 급히 정지를 할 것 같으면 비상등을 잠시 깜빡여서 "난 설 거다"라고 뒷차에게 알려 주는 게 좋을 것이다. 단순히 브레이크 경고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고속도로에서 전방에 갑자기 정체 구간이 나타날 때 비상등을 켜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이것도 완전 지뢰임..).

정말, 비행기가 이륙을 중단할 수 없는 속도만큼이나, 자동차에도 이 정도로 가속이 됐고 교차로와 가까워졌다면 이제 노란불이 되더라도 교차로에서 설 게 아니라 빨리 통과해야 한다는.. 무슨 한계 속도 같은 개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자동차에 내비게이션과 연계하여 그런 걸 안내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이건 무인 운전 시스템을 구현할 때도 필요한 알고리즘이어 보이는데?

5.
좌회전 신호가 거의 끝나 갈 때, 아니면 비보호 좌회전인 곳에서 앞차만 믿고 따라 좌회전을 하다가 맞은편의 직진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가 종종 난다. 이런 건 좌회전한 쪽이 신호 위반에 준하는 굉장히 불리한 판정이 나므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 밖에, 파란불이 돼서 직진을 하는데, 내 옆에는 탑차 같은 큰 차가 있어서 딱히 시야가 확보돼 있지 않다. 그런데.. 무단횡단자나 꼬리물기 차량이 쌩 가로질러 지나가서 옆의 차는 멈췄는데, 나는 그런 게 있는 줄 모르고 계속 직진하다가 그 무단횡단자나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도 난다.
이런 건 정말 운이 나빴다고밖에 볼 수 없겠다. 과실이야 부딪친 놈에게 더 크게 잡히겠지만, 무단횡단자는 그저 답이 없다.

6.
예전에도 한번 글로 쓴 적이 있듯이, <블랙박스로 본 세상> 동영상들을 쭈욱 보고 있으면 교통사고라는 게 어쩌다가 나는지 유형, 공통점, 패턴이 쫙 분류된다. 이와 관련하여 본인이 또 느낀 게 있다.

"내가 왼쪽 차로/1차로로 갔던 것은 우회전 할 반경을 얻기 위함이었다!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이러다 사고 나는 게 참 많다는 거.
자매품으로는, "내가 우측 차로로 갔던 것은 유턴 할 공간을 얻기 위함이었다!"도 있다.

나름 버스나 트럭 같은 큰 차를 몰고 있거나, 혹은 승용차라도 도로가 폭이 4차선(편도 2차선) 이하의 좁은 곳이어서 후진 없이 한 번에 돌려고 저런 행동을 했을지 모르지만 저건 뒷차 운전자를 헷갈리게 하며 사고의 위험이 높은 행동이다. 현실에서는 상대방이 병신이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매우 높은 과실이 잡혀서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며, 차후 자동차 보험료가 오르는 등 대가를 치른다.

자동차에는 평범한 좌우 회전용 깜빡이만 있지, 유턴이나 고반경 회전을 예고하는 깜빡이는 없다는 걸 명심하자. 또한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은 헷갈릴 것 없이 우회전은 최고 구석 차로에서만 가능하며 유턴은 1차로에서만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7.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는 일단 법적으로는 차도에서 달리는 것이 맞지만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인도 주행도 하며, 운전자의 습성에 따라서는 자전거에서 내린 상태가 아닌 탄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한다. 일부 지역은 횡단보도와 인도에 대놓고 자전거 진행로를 나타내는 차선이 그어지고 전용 포장이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자전거의 진행로는 인도나 차도 하나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자전거 운전자가 유도리 있게 취사선택 가능하게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어 보인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처럼 자전거가 무슨 떼거지처럼 많이 다니는 것도 아니니.
횡단보도 신호를 따라 천천히 갈 것이고 사고가 났을 때 보행자보다 더 불리하게 처분되는 것에 이의가 없다면 인도로 가고, 횡단보도가 빨간불이더라도 자동차처럼 같이 직진하고 싶으며, 위험하지만 그래도 자동차에 비해서 약자로 대접받는 게 낫다 싶으면 차도로 가게 말이다.

단, 차도로 갈 경우 역주행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법으로 막아야 한다. 역주행을 할 거면 무조건 인도로 가야 한다.
특히 최악인 것은 역주행인 주제에 교차로에서 코너링까지 하는 거.. 자동차 운전자를 정말 놀라게 한다. 이 상태로 충돌 사고라도 나면 자전거 운전자 과실로 몰빵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아예 엔진이 달린 오토바이라면 선택의 여지 없이 차도로만 달려야 할 것이고 근처의 횡단보도나 교차로까지 주차· 출차를 위해 불가피한 초단거리 주행을 제외하고는 인도 주행은 금지다. 그리고 차도라 하더라도 최우측 차선에서 자동차의 틈새로 달리는 것도 금지다. 그건 자전거에게만 허용돼 있다. 그 상태로 차량의 도어가 갑자기 확 열려서 개문사고라도 나면 정말 골치 아파진다.

8.
운전자에게 '전방 주시 의무'가 있는 것처럼, 보행자도 차도에 발을 디딜 때면, 동급의 강한 의무까지는 아니어도 '측면 주시'를 강력한 권장 사항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이어폰도 잠시 빼고 말이다.
길 건너편에 목적지 또는 합류할 일행, 탑승할 차가 있을 때 그것만 보고 쪼르르 달려가다가 사고 난다.

한 차선은 직진 차로인데 신호가 빨간불이어서 차들이 서 있다. 한 보행자가 이 틈을 이용해 무단횡단을 한다. 그런데 그 차선의 옆 차선은 좌회전 차선이어서 차들이 달려올 수 있는데 그걸 모르고 지금 당장 텅 빈 것만 보고 건너다가 사고가 난다. 아까 운전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큰차에 가려져서 옆 차로에서 달려오는 차를 못 봐서 그 차에 치이기도 한다.

운전자와 마찬가지로 보행자도 당장 지나가는 차가 없는 도로에서 무단횡단의 충동을 얼마든지 느낀다. 그런데 그럴 거면 좌우 측면을 충분히 주시하고 정말 at your own risk로 잽싸게 민폐 안 끼치고 빨리 건너가야 한다. "불륜 저지를 거면 내가 모르게 하고 나한테 걸리지만 마라. 걸리면 뒈진다" 같은 마인드로 말이다. 그럴 자신 없으면 마음 가라앉히고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가야 하지 않겠는가.

9.
그리고 시내버스가 기사 아저씨의 귀차니즘 같은 이유 때문에 인도에 바싹 붙어 정지하지 않고 승객을 하차시키는 바람에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다. 앞만 보고 쪼르르 내린 승객이 시내버스의 옆 여백으로 지나가는(특히 우회전) 자동차 내지 이륜차와 부딪치는 거다.

물론 이건 버스 기사의 과실이 최소 70% 이상은 먹고 들어간다. 하지만 멈춰 설 기미가 보이는 버스 뒤에서 다른 차량 운전자도 좀 조심해야 하고, 승객도 발이 차도에 닿을 것 같으면 좌우, 아니 차가 오는 오른쪽 방향을 주시하는 센스가 필요해 보인다. 밖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버스는 문이 열릴 때 밖으로 돌출되지 않기 때문에 택시· 승용차와 같은 급의 개문 사고가 나지는 않는다.

10.
끝으로.. 교통사고라는 건 내지도 당하지도 않아야겠지만, 일단 그런 불행한 이벤트에 말려 버렸다면 상황이 최소한 지금보다 더 나빠지는 일은 없게 사후 대처도 침착하게 잘해야 한다.
고속도로 한복판 같은 곳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2차 사고를 당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아니고 남이 당한 사고의 수습을 돕다가 사고 현장으로 그대로 돌진해 온 다른 차에 치여서 중상· 사망을 당한 의인의 안타까운 사연이 적지 않다.

"이 정도면 뒷차도 충분히 인지하고서 속도 줄이고 서겠지"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고속도로에서는 어떤 막장 차량이 달려와서 교통사고 현장에 그대로 꼬라박을지 알 수 없다. 그게 운동 에너지에서 질량이 왕창 큰 졸음운전 대형 트럭이 될 수도 있고, v가 왕창 큰 과속 승용차가 될 수도 있다.
차를 최대한 갓길로 빼고, 그럴 수 없으면 사람이라도 차를 벗어나서 도로 밖으로 멀리 대피해야 한다. 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완전 자살행위다.

움직일 수 없는 고장· 사고 차량이 불가피하게 도로를 틀어막게 됐으면 비상등을 켜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트렁크도 열고 차량의 존재감을 최대한 알려야 한다. 사람이 200미터 후방까지 가서 삼각대를 설치하고 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하니 삼각대 자체에 무슨 원격조종 동력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밤에는 스스로 터지는 불빛이 가시성이 좋다고 하는데 화약이 들어간 물건이어서 유통과 소지에 제약이 걸려 있다고 한다. 비현실적인 법률에 대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20 08:37 2017/01/2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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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의식의 변화

1980년대 말, 한강 고수부지에 가기 위해 사람들이 무려 올림픽대로를 무단횡단으로 건너고.. 아예 자전거를 몰고 역주행까지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0년, 수도권 전철 1호선 신도림 역에서 내린 시민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패거리로.. 개집표기를 통과하지 않고 그냥 울타리를 넘어서 지상으로 나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거 다 옛날에 9시 뉴스 카메라 출동 같은 데서 소개된 아이템들이다.
우리나라가 국민 의식이라는 게 저 정도로 무지하고 미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저런 걸 고발하는 방송계도 남말 할 처지는 아닌 게.. 지금 같은 저작권 의식이 없어서 일본 TV의 시그널송이나 드라마 같은 거 무단으로 베껴 오는 건 예사였다.
지금 같은 초상권 보호나 개인정보 보호 그딴 관념도 없음. 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사람들을 그 어떤 보호 처리 없이 대뜸 인터뷰 해서 쌩얼을 내보냈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2, 30년 전 사람들이 지금 세대보다 특별히 더 사악한 게 아니다. 그냥 하는 짓도 수위가 세고, 그걸 통제하고 계도하는 방식도 수위가 셌을 뿐이다.
단군의 후손들이 역사상 피똥 싸는 가난을 떨쳐낸 지 얼마나 됐다고, 법과 질서와 시스템과 국제 매너라는 걸 접한 게 얼마나 됐다고 지금 같은 의식 수준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 시절에 올림픽대로의 경우는 도로 크기 대비 차도 지금보다 훨씬 덜 다녔으니 무단횡단이 가능했던 측면도 있을 것이다.
경부 고속도로가 갓 만들어진 시절에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전용 도로라는 개념이 존재한 적이 없었고, 지금처럼 자동차가 넘쳐나는 때도 아니었으니.. 그때는 "고속도로에 보행자는 제발 얼씬도 하지 마세요. 제발 무단횡단 하지 마세요. 소 끌고 다니지 마세요"라고 지겹도록 계도와 홍보를 해 댔다.
게다가 일부 비상활주로 구간을 정기적으로 틀어막고 아예 전투기 이착륙 훈련도 할 정도로 고속도로가 널널했다. 지금은? 그랬다가는 작살나지..

(그리고 전철역의 경우도, 저 많은 사람들이 불법 무임승차를 했다는 소리는 아니므로 오해 말 것. 그때는 지금 같은 교통 카드가 없었다. 출발역에서 승차권을 선불로 끊은 뒤 도착역에서 그 승차권을 넣고 나가야 하는데, 나가는 절차만을 생략한 것일 수 있다. 그 시절의 마분지 승차권이야 어차피 재사용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집표를 안 했으니 2구간 이상 장거리를 이용하고도 1구간 요금만 지불한 뒤 쓰윽 나갔을 가능성은 있음.)

뭐, 1970년대에 서울 지하철이 처음 개통했을 때는 "지하철 열차 안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통상적인 여객 열차와는 달리) 이런 것도 차내 안내방송으로 나왔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198~90년대에 우리나라에 마이카 + 너도 나도 해외여행 풍조가 막 생겨났다. 그때는 인구당 교통사고 발생 세계 1위에, 외국 나가서 진상과 추태 부리는 어글리 코리안 이러면서 각성하자는 공익 광고 + 교통 안전 캠페인도 엄청 많았다.

이거도 무슨 조센징들만 국민성이 유전자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거나, 이 엽전노무 새끼들이 노예근성 쩔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보릿고개 이러다가 겨우 30년 남짓 만에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와 외국 여행이라는 걸 난생 처음 접해서 그런 것일 뿐이다.

난 어렸을 땐 우리나라 국민성에 뭔가 진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근데 이거 뭐 해외여행 전면자유화가 된 게 무려 1989년부터이고 그 전엔 외국행 어학연수와 신혼여행, 배낭여행 자체가 없었더구만, 지금까지 개같이 일하고 돈 버는 것밖에 안 해 본 집단한테서 하루아침에 뭘 선한 게 나오길 기대하겠는가?

지금이야 많이 고쳐졌다. 뭐, 레알 선진국 수준으로 고상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웃집 '대륙'에서 우리나라의 전철을 밟고 따라오고 있을 뿐이다. 걔들도 국력 대비 외국 나가기 굉장히 어려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며, 그나마 제일 만만하게 갈 수 있는 외국이 제주도이니 거기에 왕창 몰리는 것이다.
'대륙의 기상' 이러면서 유커들의 미개한 짓을 보면서 비웃는다면, 과거에 한국인들도 외국에서 그렇게 비웃음 받았을 거라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며 왜 일본인이 선진국들에서 한국인보다 더 높은 대접을 받는지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

자동차에 이어 1990년대 말엔 국민 의식 관련 최대의 이슈는 응당 "공공장소에서는 휴대전화 제발 진동 모드로 해 놓으세요"였다. 기억나시는지? 그게 세뇌 수준으로 정착하고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에 지금은 그래도 이 정도로 괜찮아졌다.

이런 역사 선례들을 감안할 때 본인은 필요 이상의 '국까'나 "민중은 개돼지" 이런 식의 비하의식에 공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도 미개하던 옛날에 바랄 걸 바라야지, 모 대통령이 경제는 살렸지만 민주주의는 죽였네 뭐네 하는 배부르고 비현실적인 불평불만 피해의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195, 60년대에 애초에 무슨 성숙한 민주주의 같은 게 있었다고 개수작을. 어유;;; ㅉㅉㅉ

※ 우리는 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가 지금 같은 사회 구조와 분위기에서 예측 가능한 미래에 과학 분야의 노벨 상 수상자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고 무엇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난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저 사회 탓, 제도 탓, 우리 모두의 잘못 이런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서도 안 될 문제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작했던 무슨 프로젝트들이 잘되고 성공하고 지금까지 이어진 예가 있나? 이 역시 거의 없다시피할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는 점점 성장 동력이 멈추고 있다. 제발 내 느낌일 뿐이었으면 좋겠지만, 옛날, 특히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던 시절 같은 팀웍과 화합이 다시 이뤄지지 못하고 뭔가 국운이 다한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해 놓은 것, 벌어 놓은 게 적지 않으니 당장 몇 년간은 먹고 살겠지만 중국이 추격하고 일본· 미국이 더 격차를 벌리면 건축· 전자· 기계· 컴터· 항공우주 등 분야들이 미래에 어떻게 도태하고 뒤쳐질지 모른다.

지금만 해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그저 오로지 돈, 돈, 돈, "스펙 아무리 좋아 봤자 부모 재력 절대 못 이김",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 계급론" 같은 인식이 팽배한 지경인데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더 못살던 시절에는 도대체 무슨 일말의 희망이 있었을까 싶다.
그러니 옛날에는 나라에서 앞장서서 단순무식 반공뿐만 아니라 국뽕 주입도 정말 많이 했다. 엽전의식 노예근성을 없애려고 도로를 하나 닦고 지하철 노선을 하나 개통해도 현수막에 "선진조국 창조", "우리는 할 수 있다" 프로파간다를 집어넣었다. 그 시절 기록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이야 옛날 같은 그저 "국산품 애용, 과소비 추방, 닥치고 저축" 같은 국뽕스러운 경제 이념은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그러나 애국심 마케팅이 필요없어진 것 자체도 알고 보면 그 전에 한창 애국심 마케팅 하에서 육성된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꿀리지 않는 경쟁력을 갖춰서 외제품 수입하는 것만치 수출과 국부 창출도 대등하게 가능해진 덕분에 이뤄진 것이다.

그런 거 못 하면? 우리나라도 그저 다국적 기업들에게 원자재 싸게 공급하는 셔틀 국가밖에 못 된다. 아니, 우리나라는 애초에 1차 산업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지. 외국에 기술 식민지, 경제 식민지가 돼 버리면 국산품과 수입품 한가하게 골라서 사는 사치를 누리는 시절도 다 끝난다.

이런 와중에 다시 나라의 기운이랄까, 성장 동력을 재충전할 만한 이벤트가 있으면 좋겠다. 올해는 안 그래도 대선도 있는 해인데.. 군인으로 치면 "이 지휘관 휘하에라면 내가 기꺼이 믿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수 있겠구나!"처럼,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연구할 만한 동기를 제공하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 물가 등 추가 회상

국민의식이고 뭐고 하는 골치아픈 얘기는 마치고, 이제부터는 순수하게 옛날 모습 회상만 더 하고자 한다.
내가 여기저기서 모은 자료들을 종합하자면,
1899년 9월에 경인선 개통했던 당시에 인천-노량진간 경인선 열차의 운임은 상등(퍼스트?) 1원 50전, 중등(비즈니스?) 80전, 하등(이코노미?) 40전이었다. 쌀 한 가마의 가격이 4원 정도 하던 시절이니 저기에다 0이 4개 정도 더 붙어야 지금 가격과 비슷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의 철도는 지금의 일본처럼 사철 위주로 굴러갔으며, 물가 대비 운임은 지금보다 더 비쌌다. 지금 일본의 철도 운임이 매우 높은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서 돌아갔던 철도 회사들은 대체로 수지가 잘 맞았으며 흑자를 많이 냈다는 통계가 전해진다.

그러니 그 시절에 기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가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비행기를 타는 것과 비슷한 위상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것도 저가항공도 아니고 대한항공 급 비행기 말이다.
1899년 철도가 갓 개통한 직후의 얘기이긴 하지만, 그 시절의 느린 증기 기관차로도 최대 100분 남짓이면 갔을 서울-인천 거리에 무슨 장거리 여객기처럼 좌석이 3등급이나 존재했던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 가능할 것이다. 경인선에 첫 도입되었던 증기 기관차는 탄수차가 별도로 있지 않았고 그리 큰 열차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신분제가 지금보다 더 고착화했던 시절임을 감안하더라도 많이 삽질스럽다.

그로부터 반세기쯤 뒤, 지금 "문화역 서울 294"로 바뀐 옛 서울 역 건물은 1925년에 완공됐으며 그 시절 물가로 건설비가 94만 5천원이 들었다고 전해진다. 이것도 지금 물가라면 '만'이 '억~십억'급은 돼야 할 것이다. KTX 광명 역을 건설하는 데도 3천억이 넘는 비용이 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강 우규 의사가 이 역 광장 근처 위치에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저격을 시도하긴 했지만, 시기가 1919년이기 때문에 이 건물이 있던 때는 아니었다.

그 다음 1935년, 소설가 심 훈이 잘 알다시피 소설 <상록수>를 집필해서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기념 소설 공모에서 당선되었다. 그때 상금이 500원이었던 걸로 유명하다. 소 한 마리의 가격이 60원 정도라고 하니 1900년대 초의 쌀 한 가마 4원과 대조해 보시길.
그 500원은 지금 물가로 최하 수천만~억대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심 훈은 상금의 일부를 떼어서(아마 100원) 장학 재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1935년과 그리 멀지도 않은 1937년도 노래 중에는 놀랍게도 <백만원이 생긴다면>이라는 곡이 있다.
가사는 검색해 보면 나온다. 금비녀 보석 반지 살 거고 그랜드 피아노에.. 자동차도 아니고 비행기를 살 거라고 한다. 지금 100만원이면 당연히 택도 없는 소리지..

저때 100만원은 지금의 100억~1000억 원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1960년대도 아니고 1937년에 저런 문명의 이기들은 서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치품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가사가 1960년대에 한번 리메이크가 됐는데, 이때는 그 시대 상황을 감안해서 TV를 장만하고 3절에 아예 "로케트 타고 달나라 가지"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1930년대에는 비행기가 각광받던 시절이었고 1960년대는 우주 시대가 관심사여서 그랬던 것이지 싶다. 참고로 지금도 혼자서 우주 정거장 정도까지 갔다오는 데 저 몇백~천억 가까이 돈이 든다.

사실,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 대한민국 사이에는 워낙 격변이 심하고 화폐 단위도 여러 번 바뀌긴 했다. 그걸 감안하고 계속 살펴보면,
1968년에 금성사에서 최초로 내놓은 국산 텔레비전의 가격이 68000원이었다. 그 당시 제조업 생산직 근로자의 1년 연봉에 맞먹는 가격이었으며 굳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도 TV는 집집마다 들여 놓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걸 감안하면 독일이 영상 기술이 아주 앞서 있긴 했다. 나치 치하에서 1936년에 베를린 올림픽을 하던 시절에 벌써 공공장소 곳곳에 TV를 비치해서 경기 장면을 중계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브라운관'의 원조 국가답다.

1976년 초부터 국내 판매가 개시된 현대 자동차 포니는 그 당시 대당 가격이 230만원 남짓이었다. 1974년에 개통한 서울 지하철이 기본 운임이 30원부터 시작했고 짜장면 한 그릇이 140원가량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자동차 가격이 저러했다.

그 뒤, 1990년대 초로 가서 내가 직접 겪고 기억한 물가를 나열하자면, 봉지 라면과 200ml 우유가 전부 200원대이던 시절이 있었다. 포니 택시의 기본요금은 700원이었고, 버스비는 초딩 기준으로 80원으로 시작했다가 140원까지 올랐다. 그러다가 1995년에 광역시 등 행정구역 통합이 이뤄지고 본인이 중학생으로 업글하면서 버스비는 400원으로 폭증했다.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600원대 이러던 걸 본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나중에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주유소마다 가격이 들쭉날쭉이 되고 또 리터당 1000원대 이상으로 가격이 확 올랐다.

서울 택시의 기본요금은 2005년에 1600원다가 지금은 거의 3000원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올랐다. 그래도 여전히 택시 뒤를 보면 "10년째 동결인 주행 요금 재조정하라" 이런 구호가 붙은 게 있는데, 당연히 기본요금이 아니라 임률을 말하는 것이다.

버스/지하철의 기본요금은 10여 년 전에 600원인 것부터 봤다가 700원으로 오르고, 2004년 대개편 때 800원이 된 후 900 (2009), 1050 (2012)을 거쳐서 지금은 1250 (2015)이 돼 있다. 이 요금이 지금까지 은근히 가파르게 많이 올라 왔다.
한 줄짜리 일반 김밥도 2000년대 초에 김밥천국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1000원에서 시작했다가 지금은 1500, 2000이 된 지 오래다. 식당에서 시켜 먹는 사이다 한 병도 1000이 유지되는 곳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중.

그러고 보니 옛날에 지하철은 지금처럼 에어컨이 있는 것도 아니고(천장에 그냥 선풍기!) 열이 후끈후끈 올라오는 원시적인 저항 제어 방식인 데다, 기껏 직원용 사무실에 설치된 에어컨의 실외기가 승강장에 있는 무개념 구조이기도 했다. 그러니 승강장와 열차를 막론하고 여름에는 정말 찜통 불지옥이 따로 없었다.

옛날에는 유인 매표소가 있어서 "구로 하나요!" 이러면서 동전을 내밀면 직원이 마분지 승차권을 쓱 주곤 했었다. 요즘 시대엔 그건 인건비 투입하면서 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비생산적인 업무로 간주되어 다 무인화되고 없어졌음. 마치 버스 안내양이 없어지듯이 없어진 거다.
게다가 옛날에는 승차권을 개찰하는 직원도 있었다. 일반열차의 관행이 지하철에도 있었던 셈인데, 지금은 일반열차조차도 개찰이 없어진 지가 오래이니 생소하다.

1966년 서울 모습이 컬러 사진으로 담겨 있는 유튜브 링크를 소개하며 글을 맺겠다. 공교롭게도 서울 찬가(패티김)가 발표된 것도 1969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옛날이다. 증기 기관차, 노면 전차 같은 게 싹 사라지던 시절. 또한, 산업화 전이라고 해서 마냥 환경이 깨끗하고 푸른 풀숲이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옛날 '컬러'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뭐, 일본에도 <나 도쿄에 갈란다> 같은 노래가 있으니, 어디든 사람 많이 모여 사는 곳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 심리는 변함없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17 08:38 2017/01/1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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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지금까지 수집했던 것들을 나열해 보니 글 한 편 분량이 되는구나.

1. 이 순신과 이 완용

이 순신 장군이 동명이인이 있는 것처럼 친일파 이 완용도 "행적까지 비슷한" 동명이인이 있구나. 굉장히 대조적이다.
무의공 이 순신(1553-1611)은 충무공 이 순신(1545-1598)과 동시대를 살았던 무관 정도를 넘어서 아예 충무공의 부하, 부사수 겸 사적인 절친이었다. 기막힌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전사했을 때 응당 이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단, 두 이 순신은 이름에 한자는 완전히 다르다.

한편,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그랜드슬램을 모두 달성한 관료 출신의 매국노 1858년생 이 완용 말고, 1872년생 조선 황족 이 완용도 있다. 이 사람은 악행의 레벨이 비록 오리지널 이 완용보다는 못하지만, 역시나 일제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고 일제 강점기 내내 갑부로 왕창 잘 살았다. 친일 인명 사전 등 이 분야 문헌들에는 몽땅 논란의 여지 없이 이름이 수록됐다.
저 두 이 완용도 한자는 '용' 한 글자가 차이가 있다.

참고로, 내가 이 순신이라는 이름에 저런 동명이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건 철도 덕분이다. 지도를 펴서 KTX 광명 역 주변 지리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인근의 서독산에 '무의공 이 순신의 묘'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명 역 내지 이케아 광명점 바로 근처이다.

2. 1870년대 중반생의 유명인사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 승만과, 아프리카의 성자라 불리는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생년과 몰년이 완전히 같은 동시대 사람이다. (1875-1965)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나이만 이 승만· 슈바이처보다 딱 한 살 더 많고(1874) 몰년은 동일하다.
이스라엘의 건국 대통령 겸 과학자인 하임 바이츠만은 1874년생이고, 김 구는 1876년생이다. 다 그렇게 동시대를 산 듯하다.

처칠과 슈바이처는 잘 알다시피 노벨 상 수상자이다. 그런데 나이가 1년 어린 슈바이처가 1952년에 평화상을 먼저 받았고, 처칠은 그 이듬해인 1953년에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이 흥미롭다. 처칠은 "내가 노벨 상 당첨이라고? 난 2차 세계 대전을 승전으로 이끈 공도 있으니 그럼 평화상이겠지?"이라고 물었는데 "아니요, 문학상이랩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좀 섭섭해(?)했다고 전해진다.

3. 이 희승과 이 병도

일석 이 희승은 우리나라의 저명한 국어학자이며, 특히 우리에게는 중등학교의 국어 교과서에 실린 수필 <딸깍발이>로 잘 알려져 있다. 호의 의미가 ‘아인슈타인’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한편, 두계 이 병도는 우리나라의 저명한 역사학자(특별히 국사학자)이다.

국어학과 역사학은 비록 인문계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다루는 내용이 서로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굳이 공통분모를 접목하자면 역사 언어학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날 것 같다. 그런데 위의 내가 보기에 두 분은 느껴지는 이미지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게 많다.

일단 저 두 분은 생년과 몰년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동시대 사람이다. 똑같이 1896~1989이다. 그리고 모두 일본 유학 경험이 있으며 서울대 라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각각 자기 분야에서 일부 계층--특히 서울대라든가 우리나라 기득권층을 싫어하고, 친일파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은--으로부터 친일 어용학자라는 비판을 좀 집요하게 받고 있다는 것까지도 일치한다. 본인은 그런 비판이 왜 있는지 배경은 이해하지만 그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4. 1936년이 뭔 일이 있었나

1936년이라 하면 손 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받은 게 이때이다.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마지막으로 열렸던 올림픽이요, 개최 주체가 나치 독일인 덕분에 한국인이 히틀러를 구경할 수 있었던 매우 드문 기회였다.
학계에서는 이 해에 우 장춘이 종의 합성 논문으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게다가 같은 해에 공 병우도 안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이는 다들 다르다.

서양으로 가면 영국의 앨런 튜링이 손 기정과 동갑인 1912년생이고 바로 저 때에 계산 가능한 문제와 튜링 기계라는 개념을 제안한 안드로메다급의 논문을 썼다.
한편, 찰리 채플린이 리즈 시절 작품인 '모던 타임즈'를 발표한 때도 1936년이다.
채플린은 1889년 4월생으로, 히틀러와 생일이 나흘밖에 차이가 안 나는 완전 동갑내기였다. 채플린은 그 콧수염 붙여서 히틀러를 풍자하는 연기를 하기도 했다.

하나 더.. 손 기정과 비슷한 연배인 우리나라의 문학가로는 황 순원과 서 정주가 있다. 두 분 다 공교롭게도 동일하게 1915년생, 2000년몰이다. 전공 실력에서는 둘 다 위대한 문인으로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황 순원은 일제와 독재를 거부한 깨끗한 이력 덕분에 더욱 칭송받는 반면, 서 정주는.. 그야말로 도를 넘어서고 실드 가능한 수준을 넘는 기회주의적인 행적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서 서로 좋은 대조를 이룬다.

5. 비행기 관련 인물들

1901년이 역사에서 뭐가 특별한 계기가 있기라도 했는지, 한반도에 비행기 조종사들이 대거 이때 태어났다.

  • 안 창남(1901-1930, 남자, 항일): 1921년에 일본에서 최초로 치러진 비행사 자격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 일단 한반도 땅에서 최초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닌 최초의 한국인이다.
    훗날 중국으로 망명해서 항일 조직을 결성하고 독립 운동도 했는데 1930년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 단명했다.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권 기옥(1901-1988, 여자, 항일): 1925년에 중국에서 비행사 면허를 따서 중국 공군에서 복무했다. 3·1 운동 참가로 인한 체포, 임시정부 요원 활동 등, 안창남보다도 더 열혈 독립운동을 했다. 천수를 누렸으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 신 용욱(1901-1961, 남자, 친일): 예전 글에서 소개한 바 있다. 사업을 하려고 일제 부역은 좀 했음. 자살로 생을 마감함.
  • 박 경원(1901-1933, 여자, 친일): 권 기옥과는 달리 민간 라인에서 비행사 면허를 딴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다. 하지만 신사 참배, 황군 위문 비행 등 유명인사 민간인으로서 친일 행위 저지를 건 다 저질렀기 때문에 오늘날의 평가는 다소 박하다.

박 경원의 경우 생애가 영화 <청연>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실존 인물의 친일 행적 때문에 이미지를 말아먹어서 영화는 작품성에 비해 별로 흥행을 못 했다. 그 옛날에 그것도 여자가 비행기를 몰고 하늘을 날았다는 건 요즘으로 치면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 소연 박사에 맞먹는 쇼킹 뉴스였을 텐데, 그런 급의 엘리트 유명인사가 전국을 돌면서 대동아 공영권 징병 권유 강연을 하고 얼굴마담 역할을 한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 박 경원도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해 안 창남과 비슷하게 단명했다. 근데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참 전에 죽었는데 막 심하게 친일 할 거리가 있긴 했나? 그건 좀 의문이다.

6. 허 현회와 김 기종

허 현회 씨는 현대 의학, 백신 등에 대해 병적인 수준의 불신과 음모론을 제기하고 검증되지 않은 자연 치료를 고집하면서 책도 쓰고 많이 유명해졌던 사람이다. 그러던 와중에 '헬쓰 카레' 같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서 더욱 비웃음을 사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 여름에 자기가 걸린 병을 못 고치고 결국 중년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김 기종 씨는 개량 한복+수염 차림으로 종북 성향 통일 운동을 많이 벌이다가 결정타로 주한 미국 대사에게 살인미수 테러를 저질러서 중형을 선고받은 범죄자이다.
진작부터 사상과는 별개로 성질· 인격도 이상해서 동일한 좌파 성향의 다른 사람들하고도 못 어울렸으며, 그렇다고 변변한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굉장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은 성균관 대학교 법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이도 비슷하고(각각 1961, 1959년생?) 80년대 초반이라는 학번도 비슷하다. 그 시절에 저 학교에서 무슨 마가 씌이기라도 해서 비슷한 시기에 갑자기 저런 동문이 배출됐는지는 모르겠다.

7. 임 백준과 최 백준

우리나라에 임 백준이라는 분은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취업해서 잘나가면서 IT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책도 썼고.
그리고 최 백준이라는 분은 국내에서 코딩· 알고리즘 및 정보 올림피아드 계열 강의를 뛰면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후자의 관심사가 알고리즘 설계, 최적해, 문제 풀이 같은 좁은 분야라면, 전자의 관심사는 컴터 업계의 변화 동향 빨리 빨리 받아들이고 예측하기,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 익히기, 좋은 직장 들어가서 몸값 비싼 개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기계발 같은 더 넓은 분야이다.

8.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

우리나라는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 후에 후폭풍 없이 좋게 곱게 잘 지내는 경우가 잘 없었다. 군인 출신으로서 퇴임 후에 (형식적으로나마) 사형 선고 받고 교도소까지 갔다 온 전직 대통령도 있고, 결국은 비리 수사 받다가 돌연 자살을 선택한 전직 대통령도 있다. 현직인 박 근혜 대통령은 퇴임 후 어찌 될지 모르겠다. 아니, 퇴임 후는커녕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도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 됐구나.
정치 문화가 성숙하지 못해서 비리 없이는 도저히 지지 기반을 모으고 정치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이런 풍조는 그저 정치인 욕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무식하지만 “그럼 니가 직접 해 보든가” 논리가 아직은 통용되는 분야인 것 같다.

현재 전직 대통령들 중에 살아 있는 사람은 전 두환과 노 태우, 이 명박이다. 그런데 전과 노는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돼서 경호만 받고 있으며, 노는 특히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라고 전해진다. 그러니 100% 완전한 예우를 받고 있는 사람은 후자 한 명뿐이다.
전땅크만큼이나 2MB 아저씨도.. 이념과는 별개로 좀 대기업 경영자 출신답게 좋게 말하면 노련하고, 나쁘게 말하면 교활한 구석이 있다. 재임 중에 광우뻥 촛불 때문에 고생 많았고 좌좀들이 선동하는 것만치 나라 망치고 나쁜 통치를 한 건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막 잘한 것도 아니다. 진짜 청렴하고 순진해 빠진 후임 여성 대통령을 접해 보니 저 특성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청렴하기만 한 건 안타깝지만 무능을 수반할 가능성도 높으니 말이다.

전직 대통령이 후임에 의해서 뭔가 문전박대 당한 사례가 있다. 이 승만이야 한번 하와이로 요양 갔다가 박 정희로부터 국민 정서상 입국을 냉정하게 거부 당하는 바람에 타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자기가 천신만고 끝에 세워 놓은 나라 땅에서 죽지를 못했다.
한편, 전 두환은 자기 때 올림픽 유치를 다 시켜 놨지만 정작 올림픽 개막식 때는 역시 국민 정서상 노 태우 정부로부터 입장을 거부 당해서 개막식을 자택에서 TV로만 봐야 하는 신세가 됐다. 물론 그 뒤로도 백담사로 피신하는 일도 벌어졌으니 육사 후배이자 부사수인 노 태우와 사이는 더욱 불편해졌다. 대머리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는 후배가 자기를 기대한 것만치 못 챙겨 주고 내팽개친 셈이니까. 헐~ 이런 일도 있었다.

9. 유럽의 공무원 출신의 과학자

뉴턴, 라부아지에, 아인슈타인은 전· 현직 공무원 출신의 과학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째 영· 프· 독일계가 나란히 한데 모였네.
뉴턴은 조폐국에서 근무하면서 자기 과학 지식을 동원하여 위폐를 판별하고, 화폐 위배범을 잡아서 사형 시키는 걸 즐겼다.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서 근무하면서 개인 시간에 연구를 계속한 끝에 노벨 상까지 받게 됐다. 과학자로서의 명성과 공무원으로서의 안정성을 둘 다 잡은 똑똑하고 부러운 사람 되겠다.

라부아지에는 세리로 있으면서 돈깨나 모아서 다이아몬드를 태워 보는 실험까지 했으나.. 프랑스 대혁명 때 인민의 적 브루주아 계급으로 찍혀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저런 유능한 과학자를 죽게 해서는 안 된다고 국제적으로 구명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광기를 막지는 못했다. 실제로 이 사람은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관리로서는 좀 부정축재도 한 사람이었다.

10. 예능인 출신의 발명가

공무원이 아니라 예체능 분야에 종사하면서 과학..이라기보다는 발명을 한 공학자가 있었다. 물론, 이공계 출신 중에도 음악 같은 예체능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인 사람이 있긴 한데 그보다는 예체능이 더 주업인 경우 말이다.

헤디 라마르(1914-2000)라는 여인은 배우인데 2차 세계 대전 중에 자국 미국의 전쟁 승리를 위해 통신 기술을 연구하던 중에 오늘날 패킷 기반 무선 통신 기술인 CDMA(코드 분할 다중 접속)의 근간 기술을 개발했다. 그 어려운 전자공학은 또 언제 공부하셨나..;; 남편이 이공계였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냥 작곡가였다니 더욱 경이롭다.

그리고 요제프 호프만(1876-1957)이라는 사람은 피아니스트인데 실용적인 자동차 와이퍼를 발명했다. 주기적으로 왔다갔다 움직이는 메트로놈의 동작에 착안해서 발명했댄다.. 피아노 실력도 괴수급이었다는데 완전 천재다.. ㅠㅠㅠ

Posted by 사무엘

2017/01/14 08:32 2017/01/1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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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필요악

  • 살인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살인을 저지른 자를 반드시 죽여라"라는 역설적인 법이 필요하다.
  •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군대라는 대단히 비민주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 어린애를 남을 배려할 줄 아는(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 포함)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애가 잘못했을 때는 정도와 수위의 조절이 필요할지언정 체벌 자체는 행하면서 키워야 한다.

필요악이라는 건 성경이 매우 적극적으로 지지할 뿐만 아니라, 이런 게 없이는 인간 사회가 돌아가고 유지될 수 없다는 걸 굳이 신앙의 힘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본성과 양심이 인지하고 있으며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정치· 비정치 분야를 막론하고 그 너무 당연한 필요악들을 말 같지도 않은 인권과 진보의 이름으로 일부 예외적인 부작용 사례만 부각시키면서 부정하는 애들은 세상을 더욱 망가뜨리고 혼란에 빠뜨리고 있으며, 더 나쁘게 말하면 국가 체제 전복까지 조장하고 있음을 난 확실하게 입증· 폭로할 수 있다.

군대를 예로 들면.. 누구 말마따나 군대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조직이지,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조직이 아니다.
군대에서 계급을 없애 보는 삽질은 이미 FM 공산주의 국가이던 소련이 1920~40년대에 두루 실험해 보고는 절대 유지 불가능하다는 걸 친히 입증해 줬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뭐 니골라 당 운운하면서 개인별 영적 접근성을 제멋대로 차별하는 성직 계급에 대한 비판까지는 좋다. 허나, 아예 일체의 호칭과 직분까지 부정하면서 "사람 위에 사람 없다", "목사만 강단에서 설교하는 건 잘못됐다", "불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복음 설교 외에 다른 설교는 필요하지 않다" 이런 데에 혹한 사람들이 좋은 교회 세워서 성도들을 훌륭하게 양육해 냈다는 소리는 내가 들은 적이 없다.
사역자에 의한 체계적인 말씀 선포와 성경 강해 없이 '교제'만 하는 건 교회가 아니며 신자가 제대로 자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고 교회에서 직분이 무슨 필요악이기라도 하다는 건 아니니 이건 성격이 좀 다른 얘기지만.

12. 최대와 최저

사회나 자연에서 어떤 현상을 측정하는 잣대는 최대와 최저가 있는데,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최대 만만찮게 최소를 중요하게 따져야 하는 경우가 있다.

  • 교통수단의 경우, 순간 최대 속도보다 전체 표정 속도가 더 중요하다.
  • 건강에서 최고 혈압이 높은 것보다 최저 혈압이 높은 게 더 위험하다고 여겨진다.
  • 10년 이하의 징역보다 2년 이상의 징역이 대개 더 무거운 형벌이다.
  • 낮 최고 기온 38도보다, 밤 최저 기온 28도가 체감상 더 끔찍한 무더위이다.
  • 정치인 선거만 해도.. 최선을 뽑는 것보다는 최악을 피하는 게 더 중요하다.
  • 친구의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데는 사정상 불참하더라도, 친구의 친인척 장례식 문상에는 어지간해서는 가는 게 좋다. 결혼식은 일시가 딱 정해져 있지만 장례식은 그래도 기간 range가 있는 편이어서 부담이 더 적기도 하다.

이런 것들..
그러니, 배우자처럼 평생 함께할 사람을 고를 때도,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일치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본인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상대방이 굳이 나처럼 철도를 좋아하거나 세벌식을 쓰지는 않아도 된다. 굳이 컴공과 출신이거나 언어학에 관심이 있지 않아도 된다. 그런 것들은 액세서리 옵션일 뿐이다.

허나, 굳이 그런 게 일치하지 않더라도 북괴 정권에 대한 생각이 일치하고 종북개빨들을 혐오하는 게 일치한다면 그거 하나만으로도 본인과 장벽이 크게 허물어지고 금세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런 밑바닥에서 자꾸 부딪치면 다른 전공이나 취미가 일치하더라도 내 경험상 사람이 하나가 되기 굉장히 난감하고 불편해지더라.

13. 전화위복

예전에 인터넷에서 무슨 신문 기사를 봤다. 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집에 딸이 다운 증후군에다 지능도 딸리는지 문맹이었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그 아이의 어머니는 그래도 얘에게 딱 맞는 역할이 사회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여러 회사들에다 편지를 넣은 끝에 소원을 이뤘다. 어느 기업의 보안팀에서 기밀 문서들을 파기하는 업무용으로 딸을 취업시킨 것이다.
다운 증후군의 특성상 기계적인 단순노동에 싫증 내지 않고 집중 잘하고(포레스트 검프??), 결정적으로 문맹인지라 기밀 문서를 봐도 뭔 말인지 모르니 저런 일에는 쟤만 한 적임자가 없었다고 한다. 세상에~!

하긴, 맹인이 안마사 일을 하는 것도 저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적절한 거다. 안마사는 사람 알몸을 만지는 직업이니까.
또한, 왕조 시대엔 '내시'(환관)가 괜히 있었던 게 아니지.
장애(disability)가 오히려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경우라 하겠다.

과수원에 태풍이 불어서 낙과가 왕창 발생해 버렸는데..

  • 어디서는 어려운 농가를 돕자는 차원에서 그나마 손상 정도가 덜한 낙과들을 반값만 매겨서 "상품성이 좀 떨어지지만 사 주세요" 운동을 벌이는 식으로 난관을 극복했다.
  • 한편, 일본 어디에서는 떨어지지 않은 소수의 과일들을 "혹독한 태풍도 견뎌 낸 특급 과일" 이렇게 오히려 프리미엄을 붙여서 비싸게 파는 마케팅이 성공하기도 했댄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본인도 한글(과 한국어)을 굳이 알파벳처럼 만들려는 연구를 하지는 않는다. 한글이니까, 발상을 달리하여 타 언어· 문자와 구조적으로 다른 대신에 이런 완전히 새로운 활용이 가능하다는 걸 입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14. 침

국어에서 '침'이라는 단어는 순우리말로는 입 속의 타액을 뜻한다. 그러나 한자어로는 길쭉하고 끝이 뾰족한 바늘을 뜻한다(針). 사실, 한의학에서 꽂는 침도 이것과 비슷한 물건이지만 한자는 또 다르다(鍼).
타액과 바늘· 가시는 언어적으로 서로 전혀 관계가 없는 개념이며 소리만 우연히 일치할 뿐이다. 그러므로 순우리말 침과 한자어 침은 동음이의어 관계이다. 하지만 두 침이 같은 문맥에서 므흣하게 섞여 쓰이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
모기는 시각이 아닌 이산화탄소와 땀냄새로 사람을 찾아낸 뒤, 바늘 역할을 하는 뾰족한 주둥이를 피부 내부로 찔러 넣는다. 그 다음에는 흡혈 중에 혈액의 응고를 막기 위해서 진짜 자기 타액도 주입한다. 이게 인체와 이상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모기가 떠난 뒤부터 우리가 다 잘 아는 가려움과 붓기를 유발한다고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도대체 어떻게 하나도 안 아프게 감쪽같이 해치우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혈당 체크를 위해 눈꼽만치만 피를 뽑으려 해도 최소한의 따끔은 감수해야 하는데.. 무통 채혈 기술은 모기한테서 배워야 할 지경이다. 신묘막측한 기술로 통점을 감쪽같이 피해 간다고도 한다. 하긴, 모기가 피를 빨아먹는데 따끔거렸다간 모기는 절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테니.

모기는 원래 식물의 체액만 빨아먹는 놈이었는데 인간의 타락 이후에 습성이 변태같이 바뀐 대표적인 해충일 것이다. 병원균까지 옮기는 아주 해로운 놈인데, 이런 놈이 파리보다 훨씬 둔하고 비행 능력이 떨어져서 그나마 잡기는 쉬운 게 다행이라 하겠다.

그 다음으로 스타크래프트 저그 유닛인 히드라리스크가 있다.
히드라의 공격은 설정상 등뼈에 붙은 가시를 날리는 것이다. 물론 종족 밸런스 때문에 무리해서 range 공격으로 만들어 준 것이지, 현실에서는 좀 무리가 있는 설정이다.

설정과는 달리, 게임상으로 보기에 히드라가 공격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침을 뱉는 것 같다. -_-;;;
뭔가 초록색 체액이 날아가는 듯한 게 針이 아니라 '침'인 것이다. 뽀잉 뽀잉~ 소리도 퉤퉤 침뱉는 것처럼 보인다.
옛날에 스타를 빛낸 100명의 유닛들이라는 이상한 패러디 노래에서도 "가래침은 히드라 갑빠 울트라" 이런 가사가 있었다.

세상에, 저글링도 발톱으로 할퀴어 대는데 더 거대하고 흉포한 히드라리스크가 참 지저분하고 불결한 방식으로 공격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hydra-가 hydro-를 연상시켜서.. 역시나 뭔가 더욱 액체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비록 어원상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히드라 네놈은 여러 모로 공격 수단이 spitting으로 굳어져 가는구나. 뭐 이런 잡생각을 했다.

15. 총질

스포츠 사격과 군대 사격, 펜싱과 검도, 물감과 포스터칼라, 크레파스와 파스텔 등..
체육과 미술 분야에는 뭔가 서로 비슷해 보이는데 용도가 다른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사격 같은 경우 스포츠 사격은 군대 사격보다 훨씬 더 가까이서 쏘고 표적도 더 작고, 총은 더 무겁고 반동이 적고 격발이 훨씬 더 쉽게 되는 걸 쓴다. 한쪽을 잘하는 감으로 다른 한쪽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스포츠 사격 금메달리스트가 곧장 군대 특등사수 저격수와 호환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총은 총알이 날아가는 궤적이 눈으로 안 보이니 궤적에 대해서 온갖 잘못된 오해가 나돌기도 하고, 실생활에서의 대미지가 너무 사기급이다 보니 각종 게임에서는 대미지가 너무 너프다운돼 있다.
많이 빗나갔다가 한번 명중해 버리면 그냥 '윽!' 즉사인데.. 그게 게임에서는 각각의 총알이 대미지를 찔끔찔끔 조금씩 주는 식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런데 "총은 살살 쏘면 안(덜) 아파요. ^^" 이런 말은.. 참 귀엽게 들린다. 살살 쏘면 격발도 좀 덜 시끄럽게 할 수 있으려나? =_=;;;; 총을 일종의 냉병기 같은 관점에서 본 거 같다.
뽕 맞은 마린은 총을 세게 쏘니까 연사력과 단위 시간당 대미지가 올라가기라도 하는가 보다. ㅋㅋ

16. 청소

청소를 해 보면.. 뭔가 기하급수 스케일이 느껴진다. 치우고 없애고 제거해야 하는 물질의 스케일이 얼마인지에 따라서.. 동원하는 도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엄청 큰 덩어리는 손으로 들어서 치우면 된다.
팔로 안아야 할 정도로 큰 놈이 아니라면 집게로 집어서 치울 수도 있다.

다음으로 일일이 손으로 집기에는 작고 많은 이물질은 빗자루로 쓸어 담는다.
빗자루 스케일보다 약간 더 작고 많은 이물질은 청소기를 돌려서 수월하게 제거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빗자루 클래스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먼지들은 걸레로 닦아서 제거하게 된다.

이렇게 청소 도구를 교체하게 하는 이물질의 크기 경계는 실제값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로그를 씌워서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반도체 공장 같은 데서 먼지 제거 청소를 하는 스케일은 더욱 작아질 테니까!!

17. 일광량과 하늘 색깔로부터 시간대 추정하기

동서남북 방향(= 그림자 방향)을 전혀 모른다고 가정할 때, 깜깜한 밤도, 벌건 대낮도 아닌 적당히 짙푸르거나 노을 낀 누런 하늘의 바깥 사진 한 컷만 보고 이게 해가 뜨는 중인지(새벽이나 아침), 해가 지는 중인지(저녁) 판별이 일반적으로 가능할까?

굉장히 알쏭달쏭한 질문인데..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두 하늘은 날씨가 동일하다면 색깔 차원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다고 한다. 그러니 다른 단서가 전혀 없이 색깔만 봐서는 진~짜 원칙적으로는 시간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의외다. 하긴, f(x)의 값 하나만 달랑 보고는 변화량에 속하는 f'(x)의 값을 추론할 수는 없긴 하겠다.

이 말인즉슨, 영화나 드라마 찍을 때 저녁이나 새벽 씬을 편의상 그 반대 시간대에 촬영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영화업계에서는 가상의 선박을 찍을 때도 비용 절감을 위해 한쪽 현만 세트를 만들어 놓고는 좌우 미러링을 해서 좌현과 우현을 다 구현하는 게 관행이다(타이타닉, 연평해전..). 하물며 새벽과 저녁쯤은 손쉽게 바꿔치기 가능하겠다.

영화업계에서 온갖 꼼수를 써서 저비용 트릭을 구현하는 원리를 보면 마치 고도의 마술 테크닉 같기도 하고, 486급 컴퓨터에서 Doom 같은 게임을 돌리기 위해서 존 카맥이 고안해 낸 온갖 기상천외한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을 보는 것 같다. 그.. 부동소수점의 특성을 이용해서 제곱근 역수(= 벡터 정규화를 위한 연산)를 굉장히 빠르고도 상당히 정확하게 구하는 알고리즘처럼 말이다.

18. 해발 고도의 기준

본인은 올해 등산 엄청 많이 다녀오면서 100~200m짜리 언덕부터 시작해 400m는 넘는 것까지 다양한 산을 올랐다.
산의 높이를 논할 때 통용되는 잣대는 해발 고도이다. 쉽게 말해 해수면으로부터의 높이이다. 에베레스트 8848, 백두산 2744, 한라산 1950 이런 것들도 해발 고도이다.

이것 말고, 해당 행성의 중심부로부터의 거리(!!)라든가, 바다가 없다고 치고 그 밑의 대륙 뿌리까지 다 쳤을 때의 높이 같은 꽤 마이너한 잣대도 있다. 그런 기준을 적용하면 지구상엔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은 산도 있다.
또한, 바다가 존재하지 않는 다른 행성의 산의 높이를 논할 때는 선택의 여지 없이 저런 생소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해발 고도는 직관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마냥 장땡이 아니다. 해수면의 높이는 시시각각 변할 뿐만 아니라 어느 바다의 해수면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1m를 빛이 진공에서 진행한 거리가 아니라 미터 원기 내지 지구 자오선 길이를 기준으로 정의했던 것만큼이나 절대적이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천 앞바다에서 밀물 최대와 썰물 최소를 평균한 해수면 높이를 표준 높이로 규정하고, 이를 산의 높이를 재는 잣대로 사용한다. 백두산의 높이 2744는 일제 강점기 때 저 기준으로 측정되었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금도 저 해수면 높이를 사용한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은 평양에서 가까운 앞바다를 기준으로 삼아서 백두산 높이가 2750 정도로 미묘하게 더 높다고 본다.

사실, 2016년 10월인가 그때는 딱히 태풍· 폭우나 온실효과도 없었는데 태양과 달의 배치만으로 바다의 수위가 올라가서 인천과 목포 해안 저지대가 잠시 침수되기도 했다. 이런 게 과연 천체의 인력이구나 싶다.
마치 철도나 도로의 기점 표지판이 있고 산에도 "여기 위치 좌표가 xxx입니다" 표지판이 있는 것처럼.. "이 지대의 높이가 해발 몇 m입니다"이라는 해발고도 원점 표지판도 만들어진 게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인하공전 캠퍼스 안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7호관과 도서관 사이이며, 인터넷 지도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인하공전에는 보잉 727 실습기뿐만 아니라 레어템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11 08:29 2017/01/1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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