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저항에 대한 생각

물이나 공기 같은 물질은 고정된 형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학적으로 유체(fluid)라고 분류된다. 얘들은 비록 형체가 없을지언정 자신만의 밀도와 점성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 있는 다른 물질(기체 속의 액체/고체, 혹은 액체 속의 고체)을 상대로 이것저것 힘을 작용한다. 부력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저절로 작용하는 힘이지만 양력과 항력은 유체 속에서 고유한 운동을 하는 놈에게만 덤으로 생기는 힘에 속한다.

유체역학에서 항력이라고도 불리는 이 저항은 물체의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하는 일을 무척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가장 기초적으로는, 종이나 나뭇잎을 높은 데서 떨어뜨렸는데 자유 낙하하지 않고 팔랑거리며 천천히 떨어지는 게 공기의 저항 때문이다. 미개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공기 저항과 중력 가속도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막연하게 가벼운 물체는 천천히 떨어지고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는 줄 알았던 듯하다.

하지만 공기를 쫙 뺀 진공 속에서는 깃털과 쇠구슬이 엄연히 동일한 속도로 떨어진다. 또한 달에 간 아폴로 월면차가 인증을 했듯이, 거기는 그 가벼운 흙먼지조차도 지구처럼 자욱한 연기 형태로 남지 않고 파도 물보라처럼 곧장 깔끔하게 낙하해 없어지는 걸 알 수 있다. 지구의 물보라보다 천천히 떨어지기 때문에(중력 가속도가 더 작음) 뭔가 실사 같지 않고 게임에서 나타나는 흙먼지 이펙트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걸 1970년대 초에 CG로 재연한 게 아니라면 이건 지구에서 자연스럽게 촬영하기란 불가능하다.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없다면 낙하산도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이 공기 저항 덕분에 무려 수 km에 달하는 높은 고도의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고도 사람이 다치거나 물건이 부서지지 않는다. 이거 생각해 보면 꽤 신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빗방울이 일정 속도 이상으로는 더 가속이 되지 않는 덕분이다.

하물며 공기보다 밀도가 월등히 더 높은 물의 저항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공기 중에서 총알을 빠르게 발사시키는 총은 물 속 불과 수십 cm 깊이에 잠겨 있는 목표물에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운동 에너지 1/2 mv^2에서 차라리 v를 크게 희생하고 m이라도 더 높인 작살총을 쏘는 게 더 나을 정도이다.

물 속에서 다리로 바닥을 저벅저벅 디디면서 빠르게 걷기란 저항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작정하고 수영을 하며 나아가는 사람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신발조차도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벗어야 할 정도이다.
수영은 단순히 물에 떠서 생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에서 빠르게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비행기가 단순히 공중에 뜨는 것뿐만 아니라 빠르게 비행하는 것도 중요하듯이 말이다.

유체 속에서 운동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항력은 물체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급격히 커진다. 설마 지수함수 급은 아니지만 일단 유체와 그 물체 사이의 상대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며, 이것 말고도 유체의 밀도와 물체의 운동 방향 단면적, 그리고 유체의 모양이 결정하는 '공기저항(항력) 계수'에 비례한다. 더 자세한 것은 위키백과 설명과, 이 분야 전공자로 추정되는 어떤 분의 블로그 글을 링크하는 것으로 설명을 생략하겠다.

이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동력은 아예 속도의 3제곱에 비례한다. 저 항력 방정식에다가 속도가 한번 더 곱해지기 때문이다. 이러니 공기 중에서 달리는 차량은 고속에서의 가속이 급격히 힘들어지며, 일정 속도 이상부터는 공기 저항에 적극 대비하는 설계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물론, 정지 상태에서 첫 출발하는 것도 정지 마찰력의 극복 때문에 힘이 대단히 많이 필요하며, 저단 기어가 이런 이유 때문에 존재한다. 하지만 경제 속도를 넘어선 고속은 안 그래도 엔진이 토크가 떨어지고 힘을 쥐어 짜다시피하는 상태인데 공기 저항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다.

심지어 자동차에 에어컨이 아무리 엔진 힘을 깎아 먹는다 해도, 어지간한 고속 주행 중엔 그냥 그 에어컨을 켜는 게 창문을 열어서 바람 저항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을 정도이다. 승객도 시원하고 차에도 부담이 덜 가고..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에어컨의 오버헤드에 맞먹을 정도라는 뜻이다.

이러니 부가티 베이런이 500마력에서 1000마력으로 엔진 출력을 두 배로 올렸는데도 최고 속도는 시속 300대에서 겨우 400대로밖에 못 올렸다.
아예 공기와의 마찰열까지 고려해야 하는 건 왕복엔진 자동차 수준에서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차체는 아니어도 타이어가 열받는 것 정도는 현실성이 있다. 이건 무슨 법칙에 근거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무슨 변수로 기술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공기 저항의 극복을 위해서는 물체의 단면적을 그저 작게만 만드는 게 장땡이 아니다. 일명 '유선형'이라고 불리는 매끄러운 설계가 필요한데, 그 수학 이론적인 배경은 잘 모르겠다. 단지 베지어 곡선이라는 것도 비행기를 설계하는 어느 엔지니어가 이 분야만 파다가 만들어 낸 곡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공기 저항 공식에서 단면적 외의 다른 변수가 바로 '항력 계수'이며, 주요 도형에 대해 알려진 항력 계수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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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계수들은 도형의 모양을 기술하는 수식에 대해 온갖 적분 등 복잡한 연산을 동원해서 산출했는지, 아니면 그저 경험적으로 얻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 measured라고 써 놓은 걸 보니 경험적으로 얻은 값인 듯.

위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의외로 그저 동글동글하게만 만드는 것도 장땡이 아니다. 물론 걔도 아예 각이 진 놈들보다는 계수가 작지만 말이다.
정말로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 사방팔방으로부터 가해지는 극심한 수압을 견뎌야 하는 잠수정이다. 그리고 걔들은 고속 주행이 목표인 물건이 아니다.

하다못해 골프공조차도 매끈한 구가 아니며, 표면이 온통 옴푹 패여 있다. 이 역시 나름 유체역학적으로 공기 저항을 극복하고 잘 날아가라고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며, 골프공 제조사의 고유한 기술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이걸 영어로 dimple이라고 하는데, 사람 얼굴에 옴푹 패인(?) '보조개'라는 뜻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여 년 전 대우 에스페로가 광고에서 항력(공기 저항) 계수가 0.29라고, 그 당시 국산 양산차들 중 최저인 과학적인 외형이라며 이 수치를 최초로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자랑을 쳤었다. 마치 뇌세포의 성분 DHA가 들어간 '아인슈타인 우유'처럼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좋아 보이게 마케팅을 한 셈이다. 본인은 이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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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로는 첫 출시되었을 때는 쏘나타 같은 2000cc급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후기 모델들은 아반떼 같은 준중형급으로 엔진을 다운사이징한 게 이례적이다. 물론 차체의 크기는 동일한 채로 말이다.)

한편, 이륜차는 단면적이 일반 자동차보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공기 저항에는 의외로 그리 유리한 외형이 아니다.
오토바이는 워낙 가볍고 단위 중량 당 마력이 큰지라 초반 가속은 자동차를 아득히 관광 태운다. 하지만 의외로 시속 200 이상급의 고속은 헉헉대는데, 다름아닌 공기 저항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륜차가 그런 고속 주행을 하면 안전 관점에서도 심각하게 안 좋기도 하고 말이다.

엔진 없이 사람의 발로 페달을 밟아 달리는 자전거도 돈지랄을 한 경량화에다 기어비 최적화, 초인적인 라이더 같은 최상의 변수를 동원하면 순간적으로나마 거의 시속 100을 능가하는 고속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의 초고속 주행 기록은 앞에서 커다란 우산? 양산?을 후방으로 펼쳐 주고 주행하는 자동차를 바짝 붙어서 따라가면서 세운 거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공기 저항을 앞의 자동차가 대신 받아 주니 고속 주행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단체 관광버스들이 교통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앞뒤로 대열운행, 일명 떼빙을 여전히 일삼는 이유는 1차적으로는 다같이 무리해서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허나, 보조적인 이유로는 연비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커다란 선두가 공기 저항을 다 받으면서 출발하니까 뒷차들은 상대적으로 나아가기가 쉽다고..
그 정도로 연료 절감 효과가 존재하고 경험적으로 입증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원리는 철도 차량에도 적용 가능할 듯하다. 단순히 쇠 레일+쇠 바퀴로 인한 마찰 계수 감소 말고, 다수 차량의 밀집 운행으로 인한 효율 증대도 장점이 되겠다.

사실, 자동차의 옆에 툭 튀어나와 있는 백미러는(후면경) 유체역학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으며, 방해가 되는 물건이다. 비행기의 날개처럼 양력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돌출된 것도 아니고..
허나 운전을 위해서는 절대로 없어서 안 되는 필요악이기 때문에 달려 있다. 이걸 자그마한 카메라로 100% 대체가 가능하다면 연비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상...;;
열역학에서는 이상 기체라는 개념까지 설정해서 기체가 열과 압력을 받아서 액화나 기화하고 그 과정에서 열을 수송하는 과정을 수식으로 설명한다. 거기는 물리뿐만 아니라 반쯤은 화학에도 속하는 영역 같다. 물론 엔진이나 냉동 기관 같은 게 다 열역학 이론에서 비롯된 기계이므로 이건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요 기술이다. 에어컨이 발명된 덕분에 인간이 거주하고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넓어졌으며, 냉장· 냉동고가 발명된 덕분에 식품의 장거리 수송과 장기간 보존이 가능해졌다. 동력 엔진의 발명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유체역학에서는 그렇게 기체의 상태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 안에서 운동하는 강체의 에너지 효율을 다룬다. 서로 영역이 다른 셈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비행기가 만들어졌는데 걔네가 조금이라도 연료를 덜 소모하고 더 경제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차체를 유체역학적으로 잘 디자인 하는 게 필수이니 두 역학 분야는 동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늘과 실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1 19:29 2016/11/1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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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차량의 회송 방식

사람이 타는 교통수단이라는 건 형태와 처지에 따라 "(1) 화물 < (2) 이동 수단 < (3) 주거 공간" 사이에서 가변적인 위상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간단한 이륜차는 (3)의 특성은 거의 없으며 화물과 이동 수단 사이에 해당한다. 접을 수 있는 자전거는 승용차에도 실을 수 있게 (1)을 더 강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륜차 말고도 모든 교통수단들은 엄연히 공장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이며, 공장에서 갓 생산된 뒤 개인이나 운수 회사 같은 고객이 있는 곳으로 인도될 때까지는 거대한 화물과 동일하게 간주된다. 예외적으로 배야 거주성이 가장 강한 놈이며 팍팍 같은 모델을 반복해서 찍어내는 생산이라기보다는 건축· 건조에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자동차 정도만 돼도 법적으로는 거의 '준부동산'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차량 안은 여느 건물 내부와 마찬가지로 주거침입죄가 적용되는 배경이 될 수 있다.

상품이 교통수단 그 자체이니 그 물건을 목적지까지 그대로 굴려서 전달할 수도 있다. 육상이 아닌 다른 교통수단부터 생각해 보자면, 비행기는 그것 말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잉 사 공장에서 생산된 여객기는 그걸 구매한 항공사까지 자가비행으로 인도된다. 그 거대한 비행기를 분해해서 육로· 해상 수송을 할 수는 없으며 다른 비행기에다 실어서 수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배 역시 동력도 없고 카누, 요트, 보트로나 불리는 자그마한 레저용 양산 장난감 급이 아니라.. ship이라 불리고 등기 등록을 하고 이름까지 붙은 거대한 물건이라면 조선소에서 항구까지 당연히 자력으로 가야 한다. 단, 그것만 있는 건 아니고 선박에는 예인선이라는 게 있어서 엔진이 퍼진 배를 견인하거나, 아니면 법을 어긴 배를 나포하기도 한다.

그럼 철도 차량은 사정이 어떨까? 다음과 같은 세 경우가 모두 존재한다.

  • 자력회송: 선로 위에서 자기 동력으로 주행하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로 치면 소비자에게 아직 정식으로 판매되지 않아서 임시 번호판을 달고 자력 주행하는 차량과 같다.
  • 갑종회송: 선로 위에서 자기 바퀴로 구르긴 하지만 자기 동력이 아니라 다른 기관차에 끌려다니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로 치면 바퀴의 일부를 땅에 댄 채 견인되어 가는 것과 같다.
  • 을종회송: 차량이 통째로 트레일러나 화물선 같은 타 교통수단에 실려서 운송되는 것을 가리킨다. 자동차로 치면 승용차 여러 대를 한꺼번에 수송하는 대형 트레일러를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철도 차량이 트레일러로 수송되는 경우, 각 객차들은 당연히 분리되어야 한다.

자력회송은 신차 출고보다는 이미 운행에 투입된 차량이 스케줄의 소화를 마치고 차고지로 들어가는 상황에서(혹은 반대 경우도 포함) 더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시운전'도 이런 자력회송과 비슷한 운행이다. 차량을 베타테스트한 후 차고지로 들어가는 게 목적이니까.. 다만 평범한 회송의 경우 차고지로 들어가는 게 목적인 반면, 시운전은 움직이는 것을 테스트하는 것 자체가 주 목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각각 결과와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 관점이 서로 다르다.

물론, 기관사가 아닌 승객의 입장에서는 회송이건 시운전이건 이런 열차들은 승강장으로 들어오긴 하지만 승객을 태우지는 않고 불 끄고 무정차 통과하는 기분 나쁜 열차일 뿐일 것이다.

신차를 회송할 때는 자력보다는 갑종회송이 더 즐겨 쓰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한 것이.. 신차를 고객에게 인계하는데 이동 과정에서 이미 차량의 동력원을 가동해 버려서 차량을 조금이나마 닳게(wear out) 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바퀴까지 통째로 다른 차량 위에다 얹기에는 크기와 무게가 너무 부담 되고 번거롭기도 하니까.

지하철 차량의 경우 전기 규격의 차이(직류 vs 교류) 때문에 일반열차의 선로에서는 자력회송을 하고 싶어도 어차피 못 한다. 하지만 궤간은 일반열차와 동일한 표준궤이니 선로 위에서 디젤 기관차로 견인해서 수송하는 갑종회송이 가능하며, 지하철 차량의 반입은 갑종회송 방식이 많이 쓰였다.
지난 2012년 6월 3일엔 KTX-산천 열차가 웬 영동선으로 얼굴마담 나들이를 가서 그 당시에 아직 잔존하던 스위치백 구간까지 통과했었는데.. 이 역시 자력회송은 아니고 디젤 기관차에 끌려가는 갑종회송이었다.

자력회송이 '시운전'과 관련이 있다면, 갑종회송은 '구원운전'과 관련이 있다. 한 차량이 동력 계통에 문제가 생겨서 선로 중간에 퍼져 버리면 다른 기관차가 와서 그 열차를 견인해서 끌고 가는 것 말이다.

40여 년 전, 수도권 전철이 첫 개통하던 시절과는 달리 요즘은 육로 수송 인프라가 크게 발달했고 기존 철도와 직결하지 않는 노선과 차량 형태로 철도가 많이 개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차를 반입할 때 을종수송의 비중이 늘어나는 게 요즘 추세이다. 예전에는 엄청 많이 우회하더라도 최대한 기존 일반열차 선로와 지하철 선로를 거쳐서 차량을 반입했지만, 지금은 그냥 트레일러에 싣는다는 뜻이다.

경전철은 말 그대로 차량의 크기와 편성수도 적으니 트레일러 수송에 대한 부담이 중전철보다 덜하다.
공항 철도 열차는 선로가 다 완성되고 경의선과의 연결선이 개통하지도 않았을 때 차량이 반입됐다 보니, 인천 바닷가까지는 기관차 갑종회송을 했지만 영종도의 용유 차량 기지까지는 배와 트레일러를 이용해서 차량을 을종회송 방식으로 반입했다.
단, 2010년의 2차 개통 때 추가로 도입된 차량들은 철길만 거쳐서 반입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역시 일반열차 선로와 연결되는 구간이 아직 전혀 없던 관계로 트레일러로 차량을 반입했다. 하지만 앞으로 공항 철도와의 직통 운행이 시작되면 자연히 공항 철도를 거쳐서 경의선으로도 가는 길이 연결되므로, 추가 차량은 그쪽으로 갑종회송 방식으로 반입되지 않겠나 싶다. 9호선은 끔찍한 혼잡을 호소하고 있는데 언제쯤 차량이 더 반입되려나 모르겠다.

이상. 철도 차량의 회송과 신차 반입에 대해서는 몇 년 전에도 한번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갑/을종/자력'이라는 용어를 동원해서 또 한데 정리해 보게 됐다.
차량 시운전이라고 하면 본인은 성경의 눅 14:19 말씀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사서 그것들을 시험하러 가니 원하건대 나를 용서하라, 하며" (식사 초대를 거절하면서 대는 핑계)

요즘으로 치면 자가용을 뽑았기 때문에 시승하러 가는 것과 비슷한 심상이지 않은가? -_-

Posted by 사무엘

2016/11/09 08:35 2016/11/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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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태생적으로 신체 활동을 싫어했다. 운동 경기는 스스로 하지도 않고, 남이 하는 걸 즐겨 보지도 않았다. PC 게임으로도 액션· 아케이드에 밀려서 거의 안 했다.
야구의 경우, 아직까지도 정확한 룰과 득점 조건도 모를 정도이다. 투수가 던진 공을 쳐내고 나서 각 선수들이 무엇을 목표로 어디로 그렇게 열나게 뛰어가는지 로직을 모른다. 배구· 농구· 축구만치 룰이 직관적이지 않아서 말이다. 당연히 유명 구단이나 선수 같은 것도 전혀 아오안이다.

야구는 옛날에 '하드볼'이라는 PC용 고전 게임이 있었고, 축구는 더 나중에 'FIFA 연도' 이런 게임이 있었던 것 같다. 요즘도 계속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스포츠라는 장르에 속하는 고전 게임 중에는 그렇게 한 종목에 특화된 놈이 있는가 하면, 간단한 종목들을 여럿 옴니버스 식으로 제공하는 게임도 있었다. 오늘은 그런 게임들을 먼저 좀 늘어놓아 보겠다.

먼저, 캘리포니아 게임즈이다. 학교 친구와 함께 디스켓으로 실행하며 즐겼던 추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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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yx라고 옛날에 스포츠 게임 시리즈를 전문적으로 개발해 온 회사에서 1987년에 발표한 게임이다. Epic Games와는 다른 회사임.
IBM PC뿐만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으로 만들어졌다. PC용의 경우 VGA 카드가 개발되기도 전이었으니 최고 그래픽은 응당 EGA 16컬러였다.
게임 로고가 뜬 뒤엔 위의 사진과 같이 검은 배경에 흰 글씨로 게임 방식을 선택하는 메뉴가 뜬다. 선택막대가 Doom은 두개골이라면 얘는 야자수인 게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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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은 여러 간단한 퍼즐형 스포츠의 컬렉션이다. 요즘 같으면 플래시나 모바일용으로 만들면 딱일 듯한 스케일이다.
보드 타기, 파도 타기, 제기 차기, 롤러 스케이트처럼.. 무슨 올림픽 종목까지는 아니지만 미국 서부의 길거리 스포츠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이 제공되었다.

각 경기별로 주인공은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 특히 부메랑처럼 생긴 디스크 날리기(flying disc)도 있는데... 뭔가 좀 미국스러운 게임 같다. 사람이 날리고 개가 받아서 가져오는 게 아니라, 남자가 날리고 여자가 받는다. 실사로 치면 이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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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남자가 각도와 힘을 설정해서 디스크를 날리는데, 이 자체는 뭐 투사체를 던지는 기능이 있는 게임들과(QBasic 고릴라, Scorched Earth 등) 크게 다를 바 없는 UI이다.
디스크를 날린 뒤부터 게임 컨트롤은 파트너인 여자에게로 넘어간다. 디스크가 떨어질 걸로 예상되는 위치에다 파트너를 잘 조종해야 디스크를 붙잡을 수 있다. 디스크와 여자 파트너의 위치는 화면 위의 미니맵에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남자가 디스크를 오랫동안 안 날리고 가만히 있으면.. 하늘에서 무슨 UFO 같은 게 내려와서 여자를 납치해 가 버린다..;;; 그 장면을 우리가 직접 볼 수는 없고 미니맵 상으로만 표시된다. 그리고는 게임오버. 디스크가 외형상 비행접시와 비슷하니 이런 깜짝쇼를 넣은 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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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캘리포니아 게임즈에서 즐겨 하던 게임은 사이클이었다. 장애물을 요리조리 잘 피해야 넘어지지 않고 제한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 와중에 회전이나 바퀴 들기 같은 위험한 묘기도 종종 해서 성공해야 점수를 딸 수 있다. 생각보다 어려웠던 걸로 기억한다.
1990년에는 VGA를 지원하고 1보다 그래픽이 크게 강화된 캘리포니아 게임즈 2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본인은 2는 접해 보지 못했다.

Epyx에서는 역시 비슷한 시기인 1988년경엔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서울 올림픽을 게임화한 The Games: Summer Edition을 내놓았다. 전편인 Summer Games도 있고 자매품인 The Games: Winter Edition까지 있으니 저 회사는 진짜 스포츠 게임 전문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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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느 작품과는 달리, 이 The Games: Summer Edition은 올림픽 개최국인 한국을 지도까지 곁들여서 굉장히 자세히 소개했다. 위의 애니메이션을 보시라. 한복에다 서울 남산 타워도 나온다. 이 정도면 저 제작사가 그냥 스스로 저렇게 만들지는 않았고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협찬· 후원도 받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쟤들은 캘리포니아 하계 스포츠를 소개하는 게임을 만들면서도 1984년 LA 올림픽을 대놓고 홍보하는 게임을 만든 적은 내가 알기로 없다.

플레이 동영상에 나와 있듯이, 얘는 올림픽 스포츠 게임답게 평행봉, 다이빙, 기계 체조, 양궁, 장애물 넘기, 육상, 사이클까지 간단하지만 다양한 종목의 경기를 제공했다. 게다가 제한적이나마 1인칭 시점 3차원 애니메이션까지 제공하며 그래픽의 퀄리티가 높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의 게임이다!)

운동 선수가 하는 동작의 무엇을 컨트롤해서 무엇으로 승부를 가르고 재미를 만들지를 설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 당시 이 게임을 만든 개발자들은 굉장히 똑똑한 사람들이었음이 틀림없다. 허나, 정작 본인은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이 게임은 어렸을 때 접해 보지 못했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종합 스포츠 게임은.. 위의 것들과는 달리 '동계' 스포츠 담당이다. 바로 Ski or Die. 제목이 참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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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Ski or Die와 캘리포니아 게임즈가 성격이 비슷하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Ski or Die는 Epyx 사의 작품이 아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Electronic Arts에서 개발했다고 나온다. 다만, 신기술의 도입이 늦었는지 1990년작임에도 불구하고 VGA를 지원하지 않고 여전히 16컬러인 것은 좀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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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메뉴를 고르는 게 아니라 주인공의 스키를 조종해서 원하는 경기를 선택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스키, 보드 또는 튜브를 타고 슬로프를 내려가는 건 기본이며, 스키 점프 묘기에다 심지어 눈싸움도 있다. 눈싸움은.. 뭐랄까 SEGA 시노비에서 한 레벨을 깬 뒤에 등장하는 보너스 게임과 비슷한 스타일 같다. (돌아다니는 자객들을 전부 표창 던져서 맞히는 거)

캘리포니아 게임즈에서 자전거나 스케이트를 타고 이동하는 게임은 다 횡(가로) 스크롤이지만, Ski or Die에서 스키를 타고 이동하는 게임은 다 종(세로) 스크롤이라는 차이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07 08:32 2016/11/0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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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도 한번 이런 비유를 꺼낸 적이 있었는데.. 라면을 소프트웨어 플랫폼에다 비유하자면 봉지 라면은 PC, 사발면은 태블릿, 컵라면은 스마트폰 정도에 대응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 플랫폼에서 잘나가던 라면이 다른 플랫폼으로 종종 포팅되곤 한다(카카오톡 PC 버전, 오피스 안드로이드 버전처럼). 비록 둘이 맛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식당에서 주문해서 먹는 라면은 집 밖의 거대한 다른 가게에 들어가서(서버 접속) 먹는 것이니 서버 사이드 웹 애플리케이션일 것이며..
분식점 같은 식당 납품을 목적으로 라면 제조사가 면이나 스프만을 대량으로 따로 파는 건 '엔진' 같은 미들웨어 컴포넌트 내지 라이브러리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다.

2.
스마트폰은 컴퓨터와 달리.. (1)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4시간 켜져 있고, (2) 열받고 뜨거워질지언정 그래도 팬 돌아가는 소리가 안 나고, (3) 보조 기억장치가 있지만 하드디스크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는 전혀 없다.
그래서 (2)와 (3)을 종합하면 스마트폰은 아주 조용하다. 게다가 얇기까지 하다.
어찌 보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컴퓨터가 존재 가능해졌는지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화면은 옛날 구닥다리 액정 같은 단색이 아니라, 고해상도 천연색 그래픽을 찍어 낸다. CPU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나 메모리까지 총체적으로 왕창 발전했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옛날에는 뭔가 영상이 표시되는 기계 자체가 굉장히 미래 하이테크의 상징이었다. 집 현관을 표시해 주는 인터폰이나 자동차 내비 같은 거 말이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모니터는 아날로그 신호에 둥그런 브라운관 형태로나마 진작부터 천연색을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들고 다닐 수 있는 소형 텔레비전이나 인터폰, CCTV 같은 건 원가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의외로 흑백 버전이 2000년대까지 쓰였다. 본인은 몇 차례 이사를 다니며 집을 옮긴 적이 있지만, 컬러 화면이 나오는 인터폰 실물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구경을 못 해 봤다.

그런데 어느 샌가 갑자기 CCTV의 화질이 급격히 향상되고 차량들이 개나 소나 내비에 블랙박스까지 달고 다니면서 블랙박스에 찍힌 사고 영상만 모아서 보여 주는 TV 프로가 큰 인기를 모을 정도가 됐다. 사진과 동영상을 즉각 생성해서 남들 보는 사이버 공간에 용량과 트래픽 걱정 없이 올리는 게 너무 금방, 쉽게 가능해졌다. 이건 1980년대의 SF물들이 제대로 상상하지 못한 너무 엄청난 변화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컴퓨터 자체도.. 이젠 스마트폰 내부에서 가상 머신을 돌려서 도스는 말할 것도 없고 과거의 Windows 9x를 구동할 수도 있게 됐다. 머리만 비교하면 스마트폰의 CPU가 일반 데스크톱 PC의 CPU와도 성능이 호각이 됐으며, 단지 PC에 비해 부족한 건 입력 장치와 하드디스크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발열이나 전원의 한계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모바일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PC에서 x86 계열 CPU + Windows 계열 운영체제를 총칭하는 '윈텔' 독점 구도도 상당 부분 흔들리게 됐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시장 수요를 창출해 냈으니까. x86은 30년을 넘게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하위 호환성을 자랑하지만, 그 때문에 저전력 모바일에서 빠릿빠릿 움직이는 용도로는 상당히 부적합한 CPU가 돼 버려서 말이다. Windows도 마찬가지다.

다만, 단순히 이미 만들어진 정보들을 받아 보기만 하는 인터넷 단말기 이상으로, 뭔가 글쓰기나 코딩 같은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스마트폰은 문자 입력이 너무 불편한 게 흠이다. 구닥다리 타자기의 인터페이스를 답습하고 있지만 그래도 문자 입력 분야에서 키보드만 한 가성비를 제공하는 물건은 아직까지 없다.

예전에 그나마 전화기 버튼이라도 있던 시절에는 3*4 배열이라는 틀은 고정돼 있었는데..
요즘 스마트폰은 화면의 절대적인 크기나 종횡비까지 전부 그냥 흰 도화지 수준인 거 같다.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글쇠 scheme은 어떤 형태일까? 블루 오션이다 보니 먼저 연구해서 표준 틀을 정착시키는 사람이 그냥 장땡이 돼서 혼자 다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난 잘 모르겠다. 난 한글 입력 쪽은 글쇠배열이 아니라 일단은 근본 메커니즘 연구가 주 관심 분야인지라..

글쇠 수가 너무 많으면 안 그래도 작은 화면에 너무 작은 글쇠 버튼을 잘못 찍어서 오타를 내기 쉽고, 반대로 글쇠 수가 너무 적으면 타수가 늘어나고 이것저것 모드를 바꾸는 빈도가 잦아져서 그것대로 또 입력이 불편해진다.
구글 단모음을 한동안 써 보다가 불편해서 다시 나랏글로 돌아왔다. ㅎ, ㅔ 같은 자모를 한 번에 바로 입력할 수 있어서 편한 것보다, 오타가 나서 불편한 게 더 크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나랏글을 거의 2004년부터 10년 넘게 쓰기도 했고 말이다.

3.
스마트폰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오늘날과 같은 사진· 동영상 업로드 문화를 만들어 낸 건 두 말할 나위 없이 '디지털 카메라' 기능까지 전화기 안에 쏙 들어간 덕분에 가능했다.
오늘날 폰의 카메라가 단순 화소수와 색감만 따지자면 어지간한 보급형 디카의 성능을 다 따라잡고도 남는다. 하지만 폰 카메라가 전용 디지털 카메라를 결코 따라잡지 못하는 게 크게 둘 있는데, (1) 줌과 (2) 부팅 속도이다.

근본적으로 카메라의 형태로 적합하게 설계되지 않은 그 얇은 몸체에다 두꺼운 다기능 렌즈까지 우겨넣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폰 카메라는 줌 기능이 전문적인 카메라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시야각도 한계를 받기 때문에 이걸 극복하려면 별도의 파노라마 합성 앱 같은 것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한 디지털 카메라는 사진을 찍을 때에만 잠시 켰다가 끄는 걸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간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밖에서 사진을 몇백 장씩 산발적으로 찍을 일이 있을 때 전력 소모 부담이 훨씬 덜하다. 부팅도 아예 범용 컴퓨터인 스마트폰보다야 비교할 수 없이 더 빨리 되며, 전원을 켜자마자 거의 곧장 촬영 ready 상태가 된다. 그 반면 스마트폰은 이런 특성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하긴, 피처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고 스마트폰에 온갖 복잡 다양한 기능들이 추가될수록 사용자가 알게 모르게 치르는 대가로는 배터리 시간이라든가 폰의 물리적 내구성 같은 게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스마트폰도 켠 직후에 수 초 이내로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PC에 준하는 급의 부팅이 필요하고 엄청난 양의 초기화와 캐싱, pre-fetching을 해 줘야 쓸 수 있는 물건이 되고 있다. 예전에 PDA나 공학용 계산기가 그렇게 부팅 시간이 긴 물건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부팅이 존재하고 악성 코드 걱정을 해야 하는 기기는 다른 전자 기기와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며 훨씬 더 능동적인 물건이다.

한때는 이런 작은 화면에 찍히는 글자는 초간단 비트맵 글꼴 기반인 게 당연시되었는데 그게 힌팅까지 적용된 미려한 윤곽선 글꼴로 바뀌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예전에 비해 그야말로 엄청난 부담이 추가된 거나 다름없다. 윤곽선 글꼴은 캐싱 없이는 도저히 쓸 물건이 못 되며, 캐싱이라는 건 굉장한 양의 메모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같은 일을 해도 예전보다 메모리와 CPU를 훨씬 더 많이 요구하는 이유는 유지 관리 차원에서의 범용성과 추상성을 높인 대신에 오버헤드가 더 커지고 성능 희생을 감수한 게 매우 크게 작용한다(가상 머신, 가상 함수, 등등등등). 스마트폰의 전력 소비나 부팅 속도도 그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05 08:37 2016/11/0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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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으로부터 계속됨)
그 다음으로는.. 한국어 정보 처리· 전산화 분야의 1세대 숨은 원로이며 올해 초에 작고하신 고 박 동인 부장을 회고하고 추모하는 순서가 있었다.
이분은 공식적인 최종 학력은 의외로 그냥 서강대 전자공학과 학사가 끝이지만, 업계에서의 실력과 짬은 석박사급 연구원들을 부하로 부릴 정도였다. 주변으로부터 "대학원 가서 학위 좀 받지?" 권유도 받았지만 자기는 그냥 현장에서 '부장' 호칭으로 불리는 게 좋다면서 사양했다고 한다.

박사 학위 없는 사실상의 박사 포스인 게 철도계로 치면 30년간 열차 시각표 외길만 간 김 영근 씨 같은 인상이 느껴진다.
2014년 한글날엔 국가로부터 공로 표창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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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이분을 대학원 코스웍 재학 시절에 교수님이 특강 강사로 초청하신 덕분에 알게 됐으며 나름 같이 얘기도 나눈 적이 있다. 알다시피 본인은 옛날 이야기를 좀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처음으로 도입되던 시절이 어떻고 성 기수 박사가 어떻고 글자판이 어떻고 하면서 맞장구를 치고 관련 질문을 하자 그분도 굉장히 놀라고 대단해하고 내 나이를 궁금해하셨다. "자네 대전으로 내려와서 살아도 괜찮으면 ETRI에 입사하는 거 어때?" 이런 말씀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셨다. ㅎㅎ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인이 박 부장님을 대면한 경험이었다. 참고로 이분은 전공과 학벌은 보다시피 박 근혜 대통령과 동일하지만, 외모와 인상은 대조적으로 문 재인 씨와 아주 비슷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어째 고인의 생전 모습 사진 한 장을 제대로 구할 수가 없나 모르겠네.. 어쨌든 그렇다. 나이도 1952~53년생 연배로 거의 일치함.

추모 세션이 끝난 뒤엔 학술대회하고 나란히 개최된 올해치 국어 정보 처리 시스템 경진대회의 시상식이 있었다. 내가 참가했던 2011년 당시보다 대회 진행이 더욱 체계적으로 잘 바뀌어 있었다. 대회 측에서 요구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성능을 측정해서 순위가 매겨지게 진짜 '경진대회'처럼 바뀌었으며, 분야가 이런 지정 과제와 자유 공모로 딱 이원화됐다. 단, 상은 여전히 두 분야를 통합해서 주더라.

이로써 학회의 첫째 날 일정이 저녁 7시쯤에 모두 끝났다. 주최 측에서 근처 식당에서 쇠고기 전골과 육회 요리로 만찬을 제공했기 때문에 밥을 맛있게 먹었다. 본인은 일행이 전혀 없는 관계로 어디에 앉을지가 좀 난감한 상태였는데.. NC 소프트에 재직하면서 동시에 대학원도 다니고 있어서 나처럼 박사 수료 상태인 어떤 여자분과 얘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었다. 이분도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논문을 투고했으며, 나중에 알고 보니 논문 발표가 나하고 같은 세션에서 나의 바로 다음 차례였다. 기막힌 우연이군.

식사를 마친 뒤엔 난 다시 혼자가 됐다. 이 날은 어제와는 달리 숙소 안 잡고 (1) 노숙하거나 (2) 24시간 영업하는 가게(PC방, 패스트푸드점, 카페 따위) 에서 버티거나 정말 춥고 피곤할 때에만 (3) 찜질방 정도에나 가려고 생각해 둔 상태였다.

어제 해운대 해수욕장에 갔으니 오늘은 그 다음으로 유명한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갔다. 광안리는 해운대만큼이나 지하철 2호선 역에서 비교적 편하게 접근 가능했으며, 21세기 부산의 명물이라는 광안대교가 전방에 보이고 경치가 멋있었다. 단, 모래의 품질은 해운대보다 못해서 자갈이 종종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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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은 이튿날 아침에 찍은 것임)

여기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뒹굴면서 바다와 교감을 했다. 본격 신선놀음 모드. 해변의 구석진 곳에 가서 진짜로 여기서 잠까지 잘 생각도 했으나..
부슬부슬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새벽 1시 반쯤부터는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근처의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비를 피하고 있다가 결국 근처에 24시간 영업을 하는 카페에서 이튿날 아침 6시까지 버텼다. 이렇게 하루를 보냈다.

차를 가져갔으면 전천후 이동식 텐트가 있으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런 상황에서 숙박 걱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기기 충전은 해결할 수 없으며, 기름값과 톨비 깨지고 어딜 가나 주차비를 뜯겼을 테니 부산 정도는 이렇게 자는 게 더 낫고 마음이 편했다.

※ 토요일(10/8): 학회, 부경 대학교 석당 박물관, 용두산 공원+부산 타워, 국제/자갈치 시장

오늘은 드디어 논문 발표 세션이 있었다. 본인은 아침 9시에 제일 먼저 하기 때문에 서둘러 학교로 돌아갔다.
13년 전의 동일 학회에서는 금요일 오후부터 논문 투고자의 발표 세션이 곧장 시작됐고, 토요일에도 점심을 먹은 뒤에까지 세션이 이어졌다. 그 당시에 당장 내 논문의 발표가 토요일 오후 제일 끄트머리였기 때문에 교수님이 "니가 발표할 때쯤엔 사람들이 다들 가고 별로 없겠다" 그러실 정도였다(그리고 실제로 그러했던 걸로 기억. -_-).

허나 그 사이에 절차가 많이 간소화됐는지 지금은 토요일 오전에 발표 세션을 몽땅 몰아서 진행하는 걸로 바뀌었다. 그 대신 세션이 무려 4개가 동시에 진행된다.
어째 개수를 맞췄는지 논문이 총 64개가 투고됐으며, 구두 발표가 절반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우린 이런 실험을 했소" 통계와 결과 나열이기만 해서 굳이 구두 발표가 필요하지 않은 논문은 포스터 발표로 대체했는데, 이게 나머지 절반이었다. 논문 투고자들이 원하는 발표 형태가 처음부터 감쪽같이 32/32로 나뉘지는 않았을 텐데 중간 조정이 있었지 싶다.

나는 뭔가 발표나 강의를 할 때 비록 말하는 속도가 여전히 너무 빠를지언정, 시간은 그리 초과되지 않고 그럭저럭 지키는 노하우를 오랜 시행착오 끝에 터득했다. 이런 연구를 왜 했고 논문의 초 핵심 본질만 요약하는 한편으로, 논문에서 분량상 차마 다루지 못한 보충 설명 위주로만 발표를 했다. ppt는 14장이고 사실은 지금까지 탱자탱자 놀다가 ppt 자체를 전날 밤에 카페에서 급조해서 준비했다. -_-;;

나는 그럭저럭 후회 없이 말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걸 알아들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1인당 발표 시간은 15분에 불과하다고 공지가 됐을 텐데 다른 분들은 최하 20장 이상에 30~40장짜리.. 이거 무슨 30분에서 1시간 분량으로 자기 연구의 모든 것을 미주알고주알 소개하는 강의 자료를 가져오신 경우가 많았다.
난 14장짜리 ppt로도 15분에 간신히 맞춰서(약간만 초과해서) 발표를 마쳤는데도 말이다.

본인은 어쩌다 보니 한글 입력기와 글꼴 같은 글자 단위의 입출력 기술 관련 연구를 계속하게 됐다. 내 최대의 관심사는 "한글이니까 가능한 고유한 활용 방법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하게 언어정보학 내지 언어공학의 범주에 든다. 그게 아니면 다른 카테고리를 붙일 여지가 없다.
순수하게 전산학이나 컴공의 영역도 아니고, 순수하게 언어학이나 산업디자인의 영역도 아님. 저 바닥엔 난 독자적인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고 논문 쓸 거리도 더 있다.

허나, 언어공학을 한다면서 정작 인공지능에 통계, 빅데이터, 머신 러닝 어쩌구 하는 분야는 난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으며 딱히 전문가도 아니다. 내가 자동차나 철도 공학에 관심만 많지 그쪽으로 딱히 전문가가 아닌 것만큼이나 저쪽도 막 전문가가 아니다. 내가 창작한 프로그램과 논문들은 "한글 및 한국어 정보 처리"라는 범주에는 들지만 뭔가 '주류'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교수님들도 잘 모르고 생각 못 한 기괴한 주제로 논문을 쓸 거니까 뭐 시간만 주어지면 졸업이야 별 문제 없이 하겠지만, 이렇게 학위 받아서 내 논문의 연구 분야를 주제로 일자리 수요가 있을지, 취업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런 약간의 어두운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나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고민 할 시간에 날개셋 코딩이나 한 줄 더 해라"라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극복하기로 했다.

나 말고 '비주류' 주제 연구는 사실상 딱 하나 더 있었다. 숭실대에서 한글 메타폰트에 대해서 연구 발표를 했는데, 흥미롭게도 이 역시 본인과 동일한 세션에 있었다.
오전엔 이런 식으로 내 논문 발표 후에는 남들 발표를 듣고 포스터를 보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학회에서는 먼저 가 버리지 말고 논문 발표를 끝까지 듣고 귀가하라는 취지에서, 세션이 다 끝난 뒤에 점심 식권을 배부했다. 덕분에 점심도 우동 스타일의 만두국으로 든든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로써 학회가 완전히 끝났고, 본인은 오후에 계획했던 주변 관광을 시작했다. 그런데 비가 아침에 좀 그치나 싶었는데 낮부터 또 빗줄기가 굵어졌다. 본인은 열차의 선반에 올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왔지만, 돗자리와 담요는 챙겼어도 우산은 가져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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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비도 피할 겸 먼저 학회장 바로 옆에 있는 석당 박물관부터 관람했다. 건물도 근대 문화재급인데 안에는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기와, 토기, 인물화· 풍경화 등 고미술품과 과거 유물이 많이 전시돼 있었다.
연세 대학교는 일부 건물이 구한말 때 지어져서 근현대 문화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여기도 나름 건립 배경은 다르지만 그에 준하는 옛날 건물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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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건물 밖에 있는 부산 전차도 가까이에서 구경했다. 원래 이 시간대엔 내부도 개방하지만 비 때문에 이번엔 안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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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학교 밖으로 나와서 비를 맞으면서 용두산 방면 동쪽으로 걸어갔다. 중간에 영락 교회라고 크고 역사가 길고 유명한 듯한 교회 예배당을 지나쳐 갔다.
용두산 공원 진입로와 부산 타워가 가까이 보일 무렵에 '부산 근대 역사관'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보수산에서 관람했던 '부산 광복 기념관'과 비슷한 컨셉으로 반일 항일 테마인 박물관이었다. 여기에도 응당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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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곳이었다. 부산이 항구 무역 도시이니만큼 일제의 경제 침탈을 더욱 부각시켜 설명해 놓은 게 인상적이었다.
아, 해방 후 얘기도 없지는 않음. 안에는 부산 전차를 비롯해 옛날 부산 시내와 상점들을 재연해 놓은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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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남산에 타워가 있다면, 부산은 용두산에 타워가 있다. 하지만 용두산은 높이가 50여 m에 불과한 아주 낮은 언덕일 뿐이기 때문에 캐리어 끌고 도보로도 큰 부담 없이 쓱싹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서울 남산 같은 케이블카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부산 타워도 높이나 크기면에서 서울 남산 타워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부산 타워는 그냥 하얀 등대 컨셉이며, 서울의 것과는 달리 전파 송신 기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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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옆엔 웬 공터와 정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어둑어둑하고 비 오는 날 공원이나 산 속 정자에서 혼자 누워서 비를 피해 자거나 코딩하는 것을.. 바닷가에서 뒹구는 것만큼이나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한다.
여기서 좀 쉬다가 입장료를 내고 타워를 올랐다. 본인 주변엔 온통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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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에서 영도 쪽을 내려다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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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국제 시장 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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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건 자갈치 시장 방면이다. 본인은 타워에서 내려온 뒤엔 이쪽으로 직접 답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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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에 있는 다리가 영도대교이다. "매일 오후 2시 정각~15분, 도개 중엔 차량 진입 금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시간대가 안 맞아서 실제로 다리를 들어올리는 모습은 못 봤다.
본인은 몇 년 전에 해양 대학교로 가느라 바로 저 영도대교를 건넌 적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지금 같은 부산 지리 감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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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도 노량진 수산 시장이 있으며 본인은 몇 번 가 봤다. 허나 부산은 아예 바다를 낀 항구 도시이니 수산 시장의 규모가 서울을 능가할 수밖에 없다.
'자갈치'는 과자 이름이기만 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원전이 따로 있더라. 또한, 저 캐치프레이즈는 "왔노라, 보았노라, 질렀노라"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시저가 남긴 말의 원래 뜻은 우리말로 치면 "나 왔음. 봤음. 이김."처럼 극도로 간결하고 시크한 뉘앙스일 뿐인데 번역 과정에서 '-노라'라는 종결어미가 동원되면서 필요 이상의 간지가 추가된 것에 가깝다.
갈매기 모양의 상점 본건물을 가까이에서 본 모습은 굳이 여기에 사진을 또 첨부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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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어는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먹어 봤기 때문에 부산에서는 특별히 광어에 준하는 우럭을 선택했다.
예전에 해수욕장 투어를 하면서 식당에서 코스 요리도 먹어 보고 그냥 회덮밥도 먹어 봤으니, 이번에는 포장만 해서 먹어 봤다.

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우산 쓰고서 청승맞다면 청승맞은 모습으로 회를 혼자 열심히 "쳐묵쳐묵" 했다. 정말 꿀맛이었다. 돼지도 그렇고 광어나 우럭도 그렇고, 외형이 못생긴 편인 동물들이 살은 아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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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 내리는 바다를 구경하면서 식사를 했다.

허기를 달랜 뒤 북쪽으로 가서 국제 시장 일대를 더 돌아다니려 했으나, 비가 계속 많이 오고 길거리가 예상 이상으로 차와 사람들로 굉장히 혼잡한 관계로, 계획한 것만치 많이는 못 다녔다. 안 그래도 날이 빠르게 어두워져서 사진을 찍기 더 힘들어지기도 했다.

해수욕장에서 더 놀자니 비가 계속 내릴 뿐만 아니라, 돗자리가 양면에 모두 흙이 너무 많이 묻어서 더는 무리였다. 김해 경전철 시승을 하자니 여기서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동선이 안 맞았다. 사실, 비 내리는 한낮이라면 편안히 이동하면서 비 내리는 차창 밖을 구경할 수 있는 김해 경전철 시승도 나쁘지 않은 관광이긴 했을 텐데 말이다.

이것저것 고민 끝에 당초 계획보다 일찍 고향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는데 경주를 들르는 건 자연스러운 동선이니까. 다만, 지금 생각해 보니 부산에서 이 정도로 역사 안보 관광을 했는데 UN군 묘지 공원을 미처 못 들른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시 부산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부전 역에서 내렸다. 여기서 꽤 오랫동안 머물면서 폰과 컴퓨터를 충전했다. 역에서 자체적으로 아예 벽면 콘센트에다가 멀티탭을 연결해 놓고 "필요하면 전자기기 충전하고 가세요"라고 친절하게 써 붙여 놓아 있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졌지만 복선전철로 탈바꿈한 동해남부선의 모습을 얼추 확인할 수 있었다. 선로를 복선으로 폭을 확장하려다 보니 시내 접근성을 희생하고 선로가 바다 구경을 할 수 없는 곳으로 많이 이설됐다. 대표적으로 (신)해운대 역은 바다와는 완전히 동떨어졌고 오히려 군부대가 가까이 있는 산기슭으로 이사 갔다. 경춘선 강촌 역과 비슷한 꼴이 났다. 얘도 이름과는 달리 이제 전혀 강 근처에 있지 않으니 말이다.

리모델링된 역들은 무궁화호가 서는 저상홈 승강장과 전철이 서는 고상홈 승강장이 수평으로 나란히(수직· 앞뒤가 아니라) 생겼는데, 신기한 것은 같은 역이 무궁화호 승강장에 적힌 역명과 전철 승강장에 적힌 역명이 서로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점이다.
가령, 전자는 수영 역인데 후자는 센텀 역, 그리고 전자는 그냥 해운대인데 후자는 신해운대. 궁극적으로는 전철역명으로 변경할 거라고는 하는데 그럴 거면 옛 역명으로 간판을 만들기는 왜 만들었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2015년쯤부터는 동해남부선이 완전히 신선으로 이설돼서 지금의 서경주· 경주 역도 다 없어지고 신경주 역이 일반열차까지 취급하게 될 거라고 하는데 2016년 말인 현재까지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도 동남권 '부울경'에 철도가 앞으로 많이 바뀔 예정이니 느긋하게 지켜볼 생각이다.
얼마 안 있어 동해남부선 광역전철이 개통하면 임랑이나 일광, 송정처럼 부산 북부에 교통이 더 불편한 곳에 있는 해수욕장들도 찾아가기가 더 수월해질 것이다.

경주에서 서울로 돌아갈 때는 오랜만에 KTX를 이용했다. 전국의 고속도로들이 저렇게 차선 곳곳을 틀어막고 공사 중인 걸 보니 주말에 고속버스를 탔다가는 왕창 막힐 것 같아서였다.
비록 철도 노조가 파업 중이긴 하지만 코레일도 바보가 아니다. 아무리 사람이 부족하다 해도 회사에 돈을 압도적으로 제일 많이 벌어 주는 cash cow 효자인 KTX는 그야말로 최하 우선순위로 감축될 것이다. 게다가 입석 승객까지 넘쳐나는 일요일 오후에 상행은 감축 같은 건 절대 없다고 봐야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차를 기필코 굴릴 것이다.

사실, 대전· 대구 시내 구간이 개통한 지도 1년이 넘었는데 그 뒤로 KTX를 타 보는 게 처음이었다. 열차는 대구 시내를 벗어나자 곧장 지하 터널로 들어갔으며, 대전 근처에서도 옥천에서부터 천천히 가는 게 아니라 또 터널로 들어가서 곧장 판암 IC까지 직통으로 달렸다. 예전에 비해 느리게 달리는 구간이 확실히 줄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이거 뭐 날씨가 싹 바뀌었다. KTX를 탄 게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계절이 다른 나라로 날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학회가 1주일만 늦게 열렸어도 해수욕은 못 할 수도 있었겠다.

이렇게.. 논문 쓰느라 코딩 시간을 빼앗기고 좀 힘든 나날을 보내긴 했지만, 덕분에 부산에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왔다. 2003년엔 대전에 있다가 서울을 갔다 왔지만, 2016년엔 서울에 있다가 부산을 다녀 왔다.
그리고 학회가 끝난 뒤엔 내가 쓴 논문이 우수 논문 중 하나로 뽑혔다는 뜻밖의 기쁜 소식도 덤으로 접했다. 요즘 뜨고 잘나가는 연구 분야를 다룬 게 아닌데 이런 논문도 알아 주니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01 19:32 2016/11/0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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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 말

본인은 지난 여름에 <부산행>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얼마 전엔 어째 진짜로 부산을 갈 일이 생겼다. 한글 및 한국어 정보 처리 학술대회에다 논문을 투고하고 발표하게 됐기 때문이다. 올해는 28회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쓴 건 아니고.. 학술지에 소논문을 게재하는 게 박사 졸업 이수요건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두 편이 규정돼 있기 때문에 이런 걸 조만간 하나 더 써야 한다.

이번에 쓴 논문은 사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6에 넣으려 했던 새로운 기능에 대한 아이디어가 주제이다(하지만 결국 못 넣고 또 다음 버전 기약을..ㅠㅠ). 분량 제한 때문에 모든 아이디어나 진짜 복잡한 고급 기능 소개는 넣지도 못하고 그냥 기본적인 것에다 약간의 응용 수준까지만 다뤘다.
이런 논문은 학술지 사이트에 영원히 기록으로 남고 후속 연구자들이 검색해서 열람도 하게 되는데, 저런 태생적인 한계만 감안한다면야 나름 후회 없게 논문을 썼다.

이런 기능을 넣을 생각 자체는 회사일을 하다가 떠올리게 됐다. 별개인 것 같은 기능이 알고 보니 한글 입력에다가 이렇게 접목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게 내 개인 프로그램에다가도 들어가고 논문으로 써서 졸업 이수요건도 채우게 됐으니 MS의 과거 캐치프레이즈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everything at once를 얼추 달성했다.

본인이 저 학술대회와 인연을 맺은 것 자체는 대학 학부 시절이던 엄청난 옛날, 2003년 제15회 시절이다. 지금은 은퇴하신 김 진형 교수님의 제안으로 논문을 덜컥 투고했는데, 지금도 검색하면 그걸 볼 수는 있다. 물론 그로부터 13년 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버전이 8.x가 꺾인 지금 관점에서 보면 겨우 2.x를 기준으로 작성된 논문은 가히 흑역사 급의 민망한 퀄리티가 돼 있다.
하지만 그 학술대회에서는 기조 강연 겸 기념품으로 Unicode CJK IME를 득템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아직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외부 모듈조차 개발돼 있지 않던 당시에 중요한 동기 부여와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다음으로 본인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2012년에는 이 학술대회는 아니지만 비슷한 격으로 동시 병행 개최되던 국어 정보 처리 시스템 경진대회를 참관하러 부산을 방문했었다. 거기서 전년인 2011년 대회의 입상자들을 초청해서 관람권을 줬기 때문이다. 그때 경진대회와 학술대회의 개최 장소는 해양 대학교였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올해 대회도 또 부산에서 열리니, 본인으로서는 지리적인 면모가 약간 아쉬웠다.
여기는 자가용과는 완전 상극인 위치였다. 강원도나 경기도의 적당한 오지라면 미지 탐험도 할 겸 응당 차를 가져갔겠지만, 일행도 없이 혼자 이 장거리를 차 끌고 가는 건 금전과 체력 소모가 심하다.
또한 부산은 대도시일 뿐만 아니라 인구밀도 대비 도로 사정이 안 좋은 걸로 전국적으로 악명 높으며, 반대로 학회 장소는 지하철역에서 아주 가까이 있다. 그러니 여행은 어딜 가든 캐리어 끌면서 뚜벅이 형태로 가게 됐다.

그리고 교통· 지리와 관련된 또 다른 악재는.. 기왕 부산을 대중교통만으로 방문하는 흔치 않은 기회가 왔는데, 하필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의 개통 시기를 미묘하게 비껴 가게 됐다는 것이다. 선로는 다 완공됐지만 서울 수도권 바깥에서 통근형 전동차가 다니는 진풍경은 못 봤다.

단점 얘기는 여기까지. 뭐 그렇긴 하지만 이번에 본인은 태어난 이래로 제일 치밀하게 부산 투어를 해서 제한된 시간 동안 뽕을 뽑고 왔다.
<부산행>, <해운대> 같은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부산은 어째 재난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부산은 근대기 개항 이래로 일제 강점기, 6· 25, 그 뒤 민주화 운동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은 동네이다.

대도시로서 1960년대에 전국에서 최초로 직할시로 승격됐으며, 해방 직후에 서울· 평양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노면전차가 다녔던 3대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6· 25 전쟁 중에 평양에 잠시 태극기가 꽂힌 적이 있던 것만큼이나, 부산은 전쟁 중에 임시 수도였던 적이 있다. 그리고 전국의 피난민들이 한데 몰려들었으며, 전국의 대학교들이 부산에 한 자리에 임시 캠퍼스를 개설해서 학생들에게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학회 장소인 동아 대학교 부민 캠퍼스가 부산 역사의 중심지인 아주 기가 막힌 곳에 있었다. 그래서 더욱 보람찬 관광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 목요일(10/6): 해운대 해수욕장

학회의 시작은 금요일부터이지만, 본인은 부산에서 작정하고 놀기 위해서 그 전날에 집을 나섰다. 물놀이와 노숙이 가능하게 갈아입을 옷 여러 벌에다 돗자리와 작은 담요까지 커다란 캐리어에다 몽땅 집어넣었다.

8월 말까지는 논문 쓰는 것 때문에 '문장을 어떻게 다듬을까, 주제별 분량 편성을 어떻게 할까' 갖고 왕창 고민했다면, 9월 말에 학회 참가가 확정된 뒤부터는 여행 계획을 짜느라 '일정 전후로 관광은 어떻게 할까, 열차냐 버스냐, 어디부터 먼저 갈까, 산에서 잘까 바다에서 잘까'로 고민의 양상이 바뀌었다.
차 없이 장거리 여행을 하면 무슨 교통편을 선택할지가 마치 프로그램 짜듯 고민거리가 된다. 그런데 동서울-해운대 직행 시외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가는 길은 모든 논란이 종결돼 버렸다. okay!

해운대까지는 5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오랜만에 보는 대구-부산 민자 고속도로 구간은 경부선 철길과 나란히 지나고 경치도 무척 아름다웠다. 단,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영동뿐만 아니라 전국의 고속도로들이 죄다 곳곳이 보수 공사 중이었으며, 차선이 하나 틀어막혀서 차량 정체가 발생하곤 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남쪽으로 몇 블록 걸어가니 말로만 듣던 해운대 해수욕장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곧장 근처 여관에 방을 잡아서 짐들을 갖다놓고, 물놀이용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버스 안에서 배터리를 다 소진해 버린 폰과 노트북 PC는 콘센트에 꽂아서 충전시켜 놨다. 그 뒤 방 열쇠만 몸에 지닌 채 해변으로 가서 물에 뛰어들었다.

나 요즘 해수욕 즐기는 데 재미 붙였다. 올해에만 해도 동· 서· 남해 바다에서 제각각 다 놀아 봤다.
계곡이나 강에 비해서 바다는 물이 덜 시원하고 끈적거리고 모래 붙는 거 신경을 써야 한다. 물놀이를 마친 뒤에 샤워 같은 후처리가 반드시 필요해서 번거롭다. 하지만 일단 면적이 압도적으로 넓으며 파도가 치는 게 역동적이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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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아주 맑고 따스해서 물놀이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바로 전날 이 동네에 강풍과 물폭탄이 쏟아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만, 시설이 부서진 게 있는지 근처에서는 무슨 복구 공사가 한창이긴 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품 해수욕장답게 모래는 자갈· 돌 같은 걸 전혀 찾을 수 없으며 품질이 좋아 보였다. 글쎄, 소실되는 양이 많아서 모래를 외부에서 사 와서 보충한다고는 하던데..;;
또한, 시골이 아닌 대도시 소재이다 보니, 모래사장 바로 뒤로 곧장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것도 이색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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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가까이 물에서 돌아다닌 뒤엔 여관으로 돌아가서 씻고 옷을 다시 갈아입고, 해변에 두 번째로 찾아갔다. 이제부터는 물엔 가끔씩 발만 담그고 나왔으며, 모래밭에 돗자리를 깔고 이런 식으로 뒹굴거렸다. 점심 도시락도 이 자리에서 꺼내서 먹었다.
맥북은 산과 바다 어디에서든 저렇게 나의 든든한 동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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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이 공식적으로는 폐장한 상태이고 평일에 날도 저물고 있었지만 저 정도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해변의 끝부분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물놀이에다 산책을 많이 하니 꽤 피곤해져서 숙소로 돌아가 좀 쉬었다. 그 뒤 완전히 밤이 된 뒤에 세 번째로 해변으로 갔다. 돗자리와 담요, 컴퓨터, 간식/야식거리만 챙겨서 아까보다는 짐을 줄인 상태로 가서 뒹굴거렸다.

부산 아니랄까봐, 해수욕장 모래밭에서도 인근 건물에서 쏘는 와이파이가 잡혔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6의 업로드와 내 홈페이지 갱신은 바로 부산 해운대에서 행해졌다.
인제는 제법 쌀쌀함이 느껴져서 담요가 제 역할을 했다. 이대로 자 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들었다.

※ 금요일(10/7): 보수산 중앙/민주 공원, 임시 수도 기념관, 학회, 광안리 해수욕장

오후부터 드디어 학회가 시작되니 그 전에 아침엔 부산 역과 동아 대학교의 사이에 있는 보수산이라는 산을 올랐다. 이 산의 정상에는 꽤 큰 규모의 여러 공원들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뒤에 설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일제 강점기, 6· 25, 민주 항쟁 등 이념 한번 참 다양하더라.

해운대에서 부산 역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목적지까지는 버스 환승을 했다.
여담이지만 부산 지하철 최초의 환승역인 서면 역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당한 개념환승(환승 거리 짧음)인 게 좋았다. 서울 지하철 최초의 환승역인 신설동 역은 전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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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북쪽에 있는 무슨 충혼탑. 검색을 해 보면 무엇을 기리기 위해 언제 세운 탑인지가 나오겠지만 생략한다. =_=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게 해 놓은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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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혼탑의 이남으로는 이렇게 조각 공원도 조성돼 있었다. 경치 좋고 날씨도 좋아서 여기서 산책이나 혼자 코딩, 아니면 심지어 노숙을 하기에도 적절해 보였다.
그 뒤로는 4· 19 혁명 기념탑이 있었는데 사진은 생략함.
또한 산 정상에서 주변 풍경을 몇 장 찍은 것도 있으나, 이것보다는 부산 타워에서 찍은 사진이 더 높고 전망이 좋으니 그걸로 대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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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근처에는 부산 광복 기념관이 있었다. 이건 일제 강점기 역사 버전이다.
1876년에 체결되었던 강화도 조약이 생각보다 꽤 불평등한 조약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엔 3· 1 운동 기간 당시(1919년 3~4월)에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각지에서 벌어졌던 만세 시위에 대한 기록도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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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의 글씨체부터가 뭔가 노사모스럽고 "사람이 먼저" 이런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지금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내부에 안내 표지판들의 주요 용어들도 통상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순우리말로 바꿔 적어서 옷차림으로 치면 개량 한복스러운 느낌이 났다. 나도 엄청 국수주의적인(?) 한글 입력기를 전문으로 개발하는 사람이고 저런 시도 자체는 나쁠 게 없으나, 정치색과 관련된 이상한 편견이 생기고 나니 보기가 괜히 민망하다. =_=;;

보수산 꼭대기에 있는 각종 건물과 시설 중 이 민주 항쟁 기념관이 규모가 제일 컸다. 그래서 공원 전체의 대표 이름도 '민주 공원'이다.
이 승만 말기의 4· 19라든가 박 정희 말기의 부마 항쟁,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까지는 나도 의미를 인정하겠다만.. 거기에 왜 5· 18까지 다루고 있고(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이며 지역적으로 딱히 부산과 관계가 있지도 않음) 효순· 미선 반미 시위나 6· 15 정상 회담 얘기는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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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민주 항쟁 기념관보다도 더 남쪽으로 가서 샛길로 빠지면 '대한해협 전승비'가 나온다.
6· 25 전쟁 당시에 북한군은 38선을 넘어서 육로 전방으로만 쳐들어온 게 아니라 동시에 부산으로도 후방 교란을 목적으로 무장 병력을 침투시켰다. 그랬는데 우리나라 해군이 1950년 6월 26일 새벽에 이 괴선박을 발견하여 격침시켜서 수백 명에 달하는 적군들을 꼬르륵~ 수장시켰다. 비록 국군이 그 뒤로 밀려서 서울도 빼앗기고 후퇴하게 됐지만 어쨌든 이 전투가 우리나라로서는 6· 25 '전쟁' 중에 벌어진 전투들 중 최초의 '승전'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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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산에는 이렇게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하여 볼것들이 아주 많았다.
산을 오르내리는 지름길은 이렇게 압박스러웠다. 이런 데서는 살기가 무척 힘들 것 같다.
여기서 동아 대학교까지는 근성으로 걸어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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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대학교 부민 캠퍼스가 나타났다. 고풍스러운 빨간 벽돌 건물이 먼저 날 반겼는데, 이건 실제로 옛날 건물이며 지금은 동아 대학교에서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학회는 그 옆의 신축 건물인 '국제관'에서 열림.
여기까지 관람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 일단 본인은 학교 뒤에 있는 임시 수도 기념관을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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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수도 기념관도 빨간 벽돌 스타일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상하이에 임시 정부 거처가 있었던 것처럼 6· 25 전쟁 중엔 우리나라 정부도 부산으로 피난 가서 대통령이 바로 여기에서 지냈다. 국회도 부산에서 열렸고.
저 건물은 그때의 그 건물 자체는 아니고 원형을 따라 나중에 다시 지어진 거라고 한다. 대통령 관저, 그리고 전시관 이렇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으며, 두 건물은 살짝 간격을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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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과 대통령 집무실이다. 지난번에 고성에서 봤던 대통령 별장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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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저렇게만 써 놔도 업적과 흑역사에 대해 충분히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잘 써 놨다.
한강 다리 폭파나 보도연맹 같은 극단적인 팩트까지 다룰려거들랑 남조선 대통령의 실책에다가 0이 몇 개는 더 붙은 수준의 훨씬 더한 악행을 저지른 공산당의 민간인 학살까지 같이 거론해야지. 예를 들면 개전 초기의 서울대 병원 대학살 같은.

오글거리는 미화나 우상화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악의적이고 불순한 왜곡이나 좀 하지 마라. 그 시절에 저런 대통령이나 희생이라도 없었고, 욕먹을 걸 감수하고라도 살짝 장기집권 안 했으면, 남조선 전체가 빨갱이 치하에 들어갔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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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국제시장>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역사 기록을 종합해 보면 1953년에는 부산에 화재 참사가 두 번이나 났었다. 1월 30일엔 국제 시장에서, 그리고 그 해 11월 27일엔 부산 역 일대에서 큰 불이 나서 피난민들의 생계 터전이 송두리째 박살이 났다.

그리고 195~60년대 우리나라의 컬러 사진을 보면 산업화 이전의 옛날이 오히려 꼬질꼬질하며, 산과 언덕에도 나무라고는 찾을 수 없고 지금의 북한처럼 누런 흙이 다 드러나 보이는 걸 알 수 있다. 사진이 낡고 바래서 누런 톤으로 변한 게 아니다. 인간이 화석 연료와 각종 금속· 플라스틱 재료를 활용하기 전에는 당장 동네 뒷산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그런 연료와 건축 자재 역할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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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할 때는 총기를 갖고 오되(우리가 득템 노획해야 하니까), 손에 쥐지 말고 목에다 덜렁덜렁 걸치고 오너라."
"살 수 있는 유일의 길은 귀순뿐이다! 용단을 내려서 귀순하라!"
전시관에는 6· 25 전쟁 당시에 살포되었던 삐라들이 특집 전시되어 있었다. 하긴, 강원도 화천의 파로호 안보 기념관에서도 봤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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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는 무슨 초등~중등학교가 아니라 인서울 대학교들도 부산으로 피난 가서 저런 데서 수업이 진행됐다.

역사 얘기를 더 보충하자면, 6· 25 전쟁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1950년 8월 18일부로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했다. 그러다 9월 28일에 서울을 수복하고 국군과 UN군이 10월 19일에 평양까지 점령하자 정부는 10월 27일에 환도를 결정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1951년에 전세가 도로 38선 이남으로 밀리자 정부는 1· 4 후퇴 바로 직전인 1월 3일에 다시 부산으로 본진을 옮겼다.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한 날이 1950년 10월 1일인데, 적군이 38선 이남으로 도로 넘어온 날이 1951년 1월 1일이니 정확히 3개월 만의 통한의 후퇴였다.

3월 14일, 아군이 2차 서울 수복을 이뤄 냈지만 이번에는 우리 정부는 예전처럼 곧장 환도하지 않고, 전쟁이 완전히 휴전으로 귀착될 때까지 후방인 부산에 계속 머물렀다. 그래서 1953년 광복절에야 2차 환도가 이뤄졌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다.
건전한 대한민국 국민, 특히 서울 시민이라면 윤 봉길· 안 중근 의사 같은 사람이 거사를 이룬 날이나 순국한 날뿐만 아니라 6· 25 전쟁 때 우리나라가 서울을 수복한 날도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다.

여기까지 구경하고 나니 이제 시간이 되어 본인은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첫째 날에는 강당에서 가만히 앉아서 그저 강연들을 듣기만 하면 됐다. 처음에는 근래에(지금으로부터 1년 이내에) 언어 공학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신진 연구자들 4명이 초청을 받아 자기 연구 분야에 대한 강의를 했고, 그 다음엔 이 바닥에 이미 유명한 교수들 4분이 강의를 했다.

카이스트 학부 시절에는 얼굴을 한 번도 못 뵈었고 딱히 학부 강의를 하지도 않는 것 같으시던 최 기선 교수님은 예나 지금이나 시맨틱 웹이 어떻고 온톨로지가 어떻고 하는 외길을 가시는 듯하던데 강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_=;;
경주에서 한번 뵌 적이 있는 변 정용 교수님도 여기서 강의를 하셨고 본인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분들 말고 또 기계번역과 관련된 강의도 있었다.

그리고 이 학술대회에 후원을 많이 해 준 네이버, NC소프트와 솔트룩스라는 기업의 "자기 회사 자랑 + 인재 모집" 소개 세션도 있었다. 네이버야 검색엔진 전문이니까 자연어 처리에 관심이 왕창 많을 수밖에 없는 기업이지만, 엔씨는 온라인 게임 개발사 아냐?
비주얼 C++에 유니티 3D 엔진을 잘 다루는 클라이언트 개발자, 유닉스 셸 스크립트와 컴터 보안에 능통한 서버/DB 개발자, 혹은 2D 원화/3D 모델 디자이너만 뽑을 것 같은데.. 의외로 거기 내부에도 인공지능 및 자연어 처리 연구소가 있어서 석· 박사급 연구원들이 논문도 많이 내고 있었다. 경쟁사인 넥슨엔 그런 게 있다는 얘기를 못 들었는데 말이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6/10/29 08:30 2016/10/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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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2016년이고 좀 있으면 우리나라에 제6공화국이 출범한 지도 30주년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개헌과 디노미네이션(화폐 개혁)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21세기 전반부에 풀고 가야 할 대표적인 숙제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지금 당장까지는 아니어도 예측 가능한 가까운 미래에 추진하는 것에 찬성 입장이다.
먼저 정치 쪽은.. 대통령 선거 타이밍을 국회의원의 타이밍과 맞추고, 대통령은 미국처럼 4년 + 호응 좋으면 1회 중임 가능하게 하는 게 어떨까?

우리나라가 역사 정서적으로 독재자의 엿장수 식 개헌에 대한 트라우마가 좀 있는 건 사실이다. 이에 대한 반발 때문에 지금 헌법은 반대로 고치기가 너무 어렵게 바뀐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본인이 예전에도 생각을 밝혔듯이, 옛날에 그 정도 독재는 당대의 국민 의식 대비 북한의 위협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 그 정도로 위태롭던 시기에도 그 정도 인권유린이나 정치범 탄압 부작용밖에 없었다면, 세계 역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나마 아주 선량한(?) 독재였다고 본다.

그 독재 권위라도 없이 국론이 완전 사분오열돼서 나라꼴이 도떼기시장 개판오분전이 되고 뭐 하나 큰 사업을 시작하려 해도 맨날 반대를 위한 반대에, 조선 시대식 당파 싸움에, 제발 데모질 좀 하지 말라고 데모가 벌어지고, 이 틈을 노려 공산주의자 간첩들이 활개를 치면서 민· 관을 마음껏 이간질하다가 또 북한이 남침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라. 이것보다야 차라리 강력한 독재가 나았으며 특히 그 옛날에는 그게 더 절실한 필요악이었다. 오죽했으면 전땅크의 5. 18은 몰라도 박통의 5. 16 쿠데타는 그 시절에 어지간한 지식인 지도층들도 지지했을 정도였다(예: 장 준하).

그 와중에 민주화라는 것도 백성들이 그냥 저항만 한다고 이뤄질 수 있는 거 아니다. 통치자들이 기본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최소한의 선량한 마인드는 갖춰져 있었으니 정권 교체가 가능했다. 그게 아니라면 북한은 주민들이 민주 의식 저항 의식이 남조선 인민들보다 부족해서 저 지경이 된 것이겠는가?

예전의 통치자들이 국민을 우습게 여기고 비리 저지르고 잘못한 거야 신나게 까고 비판하고 씹어야 할 것이다. 두 번 다시 그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국민이 감시를 잘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큰 그림을 보면 명백히 썩은 내 풀풀 나는 쓰레기 시궁창 속에서 그나마 이 정도 꽃이라도 기적적으로 피워 낸 거라고 볼 수 있다.

그게 아니라 무슨.. 우리나라가 해방 직후에 우리 민족끼리 아~주 평화롭게 통일 국가 이뤄서 잘 살 수 있었는데 무슨 나쁜놈이 친미 친일 공화국을 만들고 나라를 분단시키고 좋은 기회를 다 망가뜨렸네 하는 그딴 소리에는 본인이 내 양심과 명예를 걸고 죽어도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온몸으로 반대한다.
통일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 시절에 그런 식의 통일이란 100% 김 일성 치하의 적화통일을 의미할 뿐이지. 그 나이 쳐먹도록 아직도 그런 순진한 말을 믿고 있냐?

얘기가 좀 엉뚱하게 흘렀다만.. 아무튼 북한을 대치하고 있는 시국 속에서 우리나라는 미군정을 졸업하고 군사 정권까지 청산한 뒤, '직접 민주주의'까지 잘 이뤘다. 하지만 이제는 1987년 체제도 좀 초월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이렇게 정치 시스템을 고치는 일은(민주화? 직선제 등등)..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게 무슨 북한 주민들을 구출한 급이 아닌 이상, 나라를 외적 침략으로부터 지키거나 가난을 극복한 일만치 위대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 역시 변함없다. 그게 급이 서로 같을 수가 없다.

다음으로 화폐 얘기다. 우리나라의 헌정 시스템은 since 1987이라지만, 지금의 '원'이라는 단위 체계는 무려 since 1962이다. 박통 때 제정된 돈이 만약 있기만 하다면 지금도 동일한 액면가로 통용 가능하다. (물론 그런 골동품 돈은 액면가 그대로 써 버리는 건 완전 바보짓이다. 수집가에게 파는 게 훨씬 더 이익이므로.)

허나, 대한민국 급의 선진국들 중에서 이 '원'만치 가치가 너무 작고 반대로 자릿수가 너무 큰 화폐단위를 쓰는 나라는 없다. 반세기 동안 인플레가 쌓이고 쌓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10만원 지폐까지 만들 지경이 된다면 그걸 하느니 끝의 0 한두 개를 좀 없애 버리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화폐를 새로 만들 때쯤이면, 제발 조선 시대 이씨 말고 대한민국 시대 인물도 모델로 좀 넣자.
굳이 조선을 또 넣을 거면 성역 고정출연급인 세종대왕 이 순신 말고는 장 영실· 정 약용 같은 발명가, 실학자 계열을 넣고 말이다. 유학자들만 너무 빨아댄다. 유교탈레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요즘 저게 평판이 얼마나 안 좋은데!

이런 개헌과 화폐 개혁이 통일과 함께 안 그래도 어차피 사회 기반을 갈아엎어야 할 타이밍 때 원큐로 싹 같이 진행돼 버리면 비용도 제일 덜 들고 좋을 것이다. 이 시기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광복 전후, 6· 25 전후 같은 급으로 분위기가 싹 달라질 것이고 그 날은 아마 국경일· 기념일 정도는 돼서 달력에 표기될 것이다.

아, 한반도에 유일하게 바람직한 통일, 평화 통일, 진정한 통일이란 당연한 말이지만 이북의 김돼지 정권이 스스로 무너지든, 군사력으로 쳐부수든 어쨌든 걔네들이 축출되고 제거되고 처벌받는 통일밖에 없다. 그것 말고 적과 싸우다 져서 통일 '당하든가', 적과 내통하고 적당하게 타협하고 적에게 왕창 돈 갖다 바쳐서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얻은 통일 따위는 안 하는 것만도 못한 잘못된 통일이다.
아무리 통일이 좋기로서니 주체사상 내지 김돼지 부자 동상을 그대로 놔 두고 존치시킬 생각이신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해 보라.

제대로 된 통일이 불가능하다면 차선· 차악 차원에서 차라리 영구분단이 1억 배 이상 낫다. 사채· 보증 써서 막느니 차라리 평범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게 나은 것과 정확하게 같은 이치이다.

어차피 북괴는 교류 끊고 고립만 제대로 잘 시켜도 알아서 붕괴한다. 굳이 전쟁 벌여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조차 없다.
상황이 급하고 저자세로 나와야 되는 건 걔네들이지 우리가 아니다. 걔네들이 그 와중에 핵까지 개발하는 데 성공한 건 그렇게 고립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군인의 본분에다 비유하자면 작전에 실패한 것도 아니고 경계에 실패한 것과 같다. 우리나라 역사상 이런 비극이 앞으로 다시는 없어야 한다.

북괴 정권은 완전히 패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폭탄 끌어안고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자기가 없어지더라도 땅 한 평, 인민 한 명이라도 남조선에 도움이 될 건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독 뿌리고 방사능 오염시키고서 망할 게 뻔히 보인다. 차라리 중국에다 주면 줬지 우리한텐 안 준다. 옛날에 일제가 핵폭탄 안 맞았으면 마지막까지 전인민 옥쇄니 뭐니 하면서 무슨 짓거리를 하려고 했었던가? 그걸 생각하면 된다. 북한은 그런 나라이다.

그렇게 김돼지 정권을 몰아냈다고 생각해 보자. 못 먹어서 허약하고 기형이고 마약에까지 취한 인민들.. 물론 인도적인 차원에서 구제는 해야겠지만, 반쯤 병신인 인민들에게 최소한의 경제력이나 생산 능력이 있을 리 없을 것이고 이건 통일 비용을 왕창 잡아먹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민족끼리'의 허상을 버리고, 북괴 정권을 도와준 건 인민에게는 절대 안 간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괴를 조직적으로 고립 압박해서 망하게 해야 한다. 이럴 자신이 없으면 그냥 영구분단으로 가든가.

이 개념을 복습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전혀 사실이 아님

  1. 통일은 지금 외세의 방해 때문에 못 하고 있다.
  2. 김씨 부자 정권과 주체사상을 그대로 존치하면서 남북을 통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 적절하다 / 옳다.
  3. 북한 정권은 완전히 개과천선해서 대남적화 야욕이 없어졌다.
  4. 북한은 정부가 인민들을 먹여 살리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데도 다른 외형적인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못살고 있다.

* 100% 절대무오한 사실임

  1. 통일은 남 탓 할 필요 없이 북괴의 잘못된 통치 이념과 사상 때문에 못 하는 것일 뿐이다.
  2. 북한은 이념으로서 스탈린이니 레닌이니 하는 공산주의는 물론 진작에 버렸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제일 만만한 나라의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이 사용하던 위장, 간첩질, 거짓 선동, 유언비어, 역사왜곡, 계층간 이간질 등 온갖 비열하고 더러운 방법은 여전히 적극 운용 중이다.
  3. 정상적인 경제개발 및 군사력 육성으로 남조선을 적화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쟤들은 더 극단적이고(핵 등 비대칭무기) 치사한(위와 같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북쪽에 대해서 positive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쟤들이 공략하는 건 오로지 남쪽에 대한 negative이다.
  4.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아는 게 힘이다. 이제라도 우리보다 힘센 일본을 배우자. 근대화하자" 이런 움직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북한에게서 우리가 일말의 배울 만한 선한 것이 있나? 전혀 그렇지 않다. 쟤들은 하다못해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워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적화통일을 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비열하고 더러운 전술에 속지 말아야 하고 경계 분리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5. 자기도 말로만, 입으로만 북한 정권 싫어한다 김 일성 싫어한다 그러면서 필요악과 절대악은 구분할 줄 모르고, 6·25 전쟁이 무슨 남북 양비론인 줄 알고, 적화통일 반대한다면서 적화통일 자금줄 대주는 일에는 아무 관념이 없는 무지한 사람들이 남조선에 너무 많다.

위와 같은 나의 팩트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내가 우리나라 근현대사 내지 정치와 관련하여 쓰는 글에는 북괴, 종북개빨, 더 나아가서 좌좀 깨시민 같은 과격한 단어가 사라질 일이 없을 것이다.

나의 정치 성향이 마음에 안 들고 불편해서 견딜 수 없다면, 누구든지 위의 저 전제조건들만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면 된다. 남이 지지하는 것의 욕만 자꾸 하지 말고 자기가 지지하는 것이 옳고 맞다는 걸 입증해 보이면 된다. A가 틀렸다고 해서 자동으로 B가 맞게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오픈소스가 아니지만 난 사상 체계는 철저한 오픈소스다. 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지 논리를 구성하는 근거 팩트들을 아주 투명하게 제시해 놓았다. 저것만 무너뜨리고 논파하면 내 생각을 바꿔 놓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진영논리에 사로잡혀서 남이 뭐라고 지껄이든 듣지 않고 답은 정해 놓고 박박 우기는 거야말로 폐쇄 클로우즈드 소스겠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한 나라 체계 하에서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서 특혜 받고 나쁜짓 하고 평범하게 부정축재 해 온 놈과,
아예 적국에게 자금 바치고는 그걸 온갖 평화드립 궤변으로 합리화하고 오로지 자국 폄하만 일삼는 놈이 어떻게 서로 레벨이 같냐..? -_-;;
저 둘은 성경에서 아담의 죄와 루시퍼의 죄가 다른 것만큼이나 다르고, 노아의 홍수와 이전 세상 홍수가 다른 것만큼이나 완전히 다르다.

후자가 전자보다 청렴하기라도 한 것도 당연히 절~대 아님. 선조의 친일 내력이나 자식새끼의 특혜/병역비리를 파자면 절대적으로 평균이나 그 이상 나온다. 서로 네거티브 대결만 해서는 양쪽 다 오십 보 백 보이고 끝이 안 난다. 6· 25의 책임이 양비론인 게 아니라 이런 거나 양비론 피장파장이다. 그러니 결국은 대적관과 이념의 건전함으로 결판을 낼 수밖에 없다.

통일이란 건 너무나 엄청난 일이다. 마치 결혼이나 교통사고처럼 나(혹은 우리나라)만 잘한다고 혼자 할 수 있거나 예방 가능한 게 아니다.
그게 어느 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통일에 덧붙여서 개헌· 디노미네이션까지 국가 체계를 적절한 타이밍에 잘 개편해 내는 복을 누리게 될지는 모르겠다. 옛날에 더 늦기 전에 좋은 타이밍 때 220볼트 승압을 싹 해치웠고 철도 표준궤 개궤를 해서 미래에 후손들이 편해진 것처럼 말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그때쯤이면 한글 글자판도 세벌식 중심으로 다시 제대로 논의됐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26 08:31 2016/10/2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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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동안은 등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100~200m짜리 언덕 산책에만 머물렀고 8월 동안은 그마저도 아예 포기하고 지냈다가..
폭염이 물러나고 가을이 되자 지금까지 올랐던 어느 산들보다도 더 높고 험한 산으로 과감하게 달려갔다. 오랫동안 마음에만 품어 놓고 있었던 산, 바로 북한산이다.

여기는 동네 뒷산 같은 듣보잡 산이 아니라 국립공원이다. 네임드급 산이고 또 괜히 그렇게 지정된 게 아니다. 등산로를 벗어나거나 출입 금지된 계곡 같은 데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걸리면 과태료를 먹는다. 그 대신 네임드급 산답게 등산로는 아주 잘 닦여 있으며 각종 위치 안내 시설도 잘 돼 있다. 공중 화장실도 꽤 높은 지점까지 설치돼 있다.
이런 거대한 산 때문에 서울이 북쪽으로 더 확장을 못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휴양지가 서울과 가까이 있다는 건 또 다른 면에서는 축복이다. 주말마다 수많은 등산객들이 북한산을 찾는다.

역시 높고 험하고 길어서 오르내리는 시간도 왕복으로 6시간 가까이 꽤 오래 걸렸다.
마지막 분기점에서 백운대 정상까지 딱 300m라고 쓰여 있었는데, 저 거리의 낚시에 낚이지 말 것. 산책 하듯 설렁설렁 비탈길이나 계단을 오르는 300미터가 아니다. 발뿐만 아니라 손도 써야 하는 왕창 힘든 암벽 등반으로 300미터다.

그래도 (1) 남한산성과 같은 성곽(북한산성), (2) 우이령 같은 고갯길, (3) 아차산 같은 아래 전망, (4) 커다란 암벽, (5)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 (6) 용마-망우산 같은 애국지사 묘역 등..
여기는 지금까지 산에서 경험했던 여러 복합적인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좋은 산이었다.
본인은 정릉 탐방지원 센터 - 보국문 - 대동문 - 용암문 - 백운대 정상 - 백운 탐방지원 센터 - 우이동 분소의 순으로 올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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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은 일일이 등산객의 수와 신원을 파악하고 통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입산 가능 시간대가 정해져 있다. 산에서 무단으로 짱박혀서 외박· 야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
탐방지원 센터 근처에는 유료 주차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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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예전에 갔던 우이령길처럼 울타리가 쳐진 흙길 형태로 등산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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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중간 마주치는 계곡은 물이 참 맑고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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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등산로는 가파른 돌계단으로 바뀌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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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구간에 진입하여 보국문이 나왔다. 여기가 이미 해발 500m대에 달한다.
예전에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을 올랐던 생각이 났다. 거기는 분지 지형이어서 성곽 아래의 옴푹 패인 곳에 거의 마을 하나가 조성돼 있는 반면, 북한산은 그렇지는 않다.

여기서 서쪽 대성문 쪽으로 가면 평창동 방면으로 하산 가능하다. 본인은 하산은 그쪽으로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일단 정상으로 가고 싶어서 동쪽 대동문 방면으로 발길을 돌렸다. 북한산의 서쪽은 다음 기회에 방문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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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길을 한참을 걸었다. 이제 산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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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에는 어째 넓은 공터가 있어서 많은 등산객들이 쉬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으로 가려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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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문까지 지나고 백운대가 점점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래 전망은 더욱 좋아졌다. 그러나 암벽을 타는 진짜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슬금슬금 오르던 고갯길과 성곽길도 다 지나고, 등산의 양상이 확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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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발만 써서는 안 되고 손으로 로프를 꽉 붙잡아야 진행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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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저기가 백운대이다. 저렇게 보니까 정상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저 사진에서 사람이 어느 크기인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_=;; 저 육중한 바윗덩어리를 올라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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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아예 저렇게 암반을 타는 사람도 있었다. 저게 진정한 의미의 클라이밍이다. 고전 게임 레밍즈에서 '클라이머'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냥 설렁설렁 발만 써서 비탈길을 오르는 등산은 하이킹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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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는 온통 이런 봉우리들을 볼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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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창 고생한 끝에 어쨌든 정상에 도달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햇볕도 안 나고 등산 가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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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인명 사고라도 났는지 119 헬리콥터가 떴다. 살다 살다 헬리콥터가 내 발 밑으로 날아다니는 건 처음 본다. 여기가 어지간히도 고도가 높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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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주변의 암반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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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하산은 어째 계곡을 따라서 했다.
백운대 탐방 지원 센터는 산중턱에 있었으며, 자동차 도로가 닦여 있었다. 자동차 도로는 경사는 아주 완만하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는 걸어야 하는 거리가 왕창 길다는 단점도 있다.

한참을 걸어서 다 내려와 보니 결국 예전에 우이령 고개를 갈 때 들렀던 그 분기 지점에 도달했다. 하긴, 거기는 우이령길, 북한산 등산로, 북한산 둘레길 등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다.
4· 19 묘지라든가 손 병희· 여 운형· 조 병옥 등 유명인사들의 묘소는 등산로가 아니라 둘레길 영역에 있는 듯하다. 동북쪽으로 하산한다면 그쪽으로라도 들를 수 있지 않나 생각했지만 그쪽 구경은 못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23 08:27 2016/10/2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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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강 위에 교량(다리)을 건설한다고 하면 우리는 강의 양쪽 건너편을 잇는 통상적인 형태의 다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리가 꼭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아니라 강을 따라 그냥 물 위를 지나는 다리도 드물지만 있다. 쉽게 말해 강과 수직이 아니라 평행인 다리 말이다.

작은 개천의 경우 물줄기를 따라 그 위에다 길을 놓아서 개천을 완전히 덮어 버린 '복개 고가 도로'가 있긴 하다. 과거에 서울의 청계천도 그 위에 고가 도로가 닦여 있었지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철거된 걸로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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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개 도로만으로 복개가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폭이 큰 하천에도 남단이나 북단을 나란히 지나는 교량이 있다.

그런 교량은 아무 이유 없이 만드는 건 아니고.. 강을 따라 닦였던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건설되곤 한다. 차선수를 늘려야 되는데 한쪽은 강이고 다른쪽은 바위산이거나 이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확장의 여지가 없을 때 말이다. 그럼 다리를 놓음으로써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강을 건너는 다리라면 남단과 북단을 최단거리로 연결하기 위해 당연히 직선 형태로 만들어지는 반면, 강을 따라 지나는 다리는 교량 주제에 커브가 존재하기도 한다.

한강의 서울 시내 구간에서는 북단의 강변북로와 남단의 올림픽대로에 이런 다리가 모두 존재한다.
강변북로는 1970년대에 먼저 4차선이라는 초라한 규모로 건설됐다. 이거 건설과 확장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한때는 용산-왕십리 방면의 경원선 철길을 없애 버리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제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 철도 관계자가 이를 필사적으로 만류한 덕분에 그렇게 되지 않았으며, 경원선은 오히려 용산-성북 복선전철로 거듭났다.
그리고 강변북로의 기존 도로는 서쪽 방면 전용이 되고, 동쪽 방면 도로는 일부 구간이 교량 형태로 새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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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올림픽대로는 1980년대의 5공 시절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서울 올림픽의 유치에 성공한 그 당시 분위기를 반영하여 평범한 '강변남로' 대신 저런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하긴 이 도로는 김포 공항과 서울 올림픽 경기장을 직통으로 쭉 잇기도 하니 이름이 88 올림픽 '고속도로'보다는 훨씬 더 타당성과 개연성을 갖추고 있다.

올림픽대로는 노량진동과 동작동 사이의 2km 남짓한 구간이 '노량대교'라고 불리는 교량이다. 강변북로와는 달리 처음 만들어진 1986년 당시부터 상· 하행이 모두 교량이다. 다만, 30년 전 처음부터 지금 같은 광활한 10차선은 아니었으니, 지금 여기를 달려 보면 다리가 덕지덕지 작은 구획으로 나뉘었다가 확장되고 합쳐진 흔적을 볼 수 있다. 교량의 폭을 확장하는 건 터널의 폭을 확장하는 것만큼이나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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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대교는 엄연히 이름이 붙어 있는 교량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대로 내부엔 교량 구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어떤 표지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다리는 한강을 '건너는' 다른 교량들을 아래로 지나서 입체 교차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운전자가 노량대교의 존재를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어느 샌가 교량에 진입했다가 어느 샌가 빠져나가 버린다.

다음으로, 서울을 빠져나가서 국도 6호선을 타고 양평 쪽으로 가 보면.. 병풍처럼 펼쳐진 산의 아래로 강이 유유히 흐르는 게 경치가 대단히 아름답다.
원래 거기는 험준한 지형 때문에 좁고 구불구불한 2차선짜리 도로였지만 1990년대에 공사를 통해 4차선으로 확장됐다. 남한강이 북한강과 합류하기 직전 지점(중앙선 철도로 치면 양수-신원 사이 구간)에서는 땅에서 도로를 확장하기가 여의찮은 관계로, 동쪽 방면 도로는 강변북로처럼 강 위에 교량을 나란히 설치하는 방식으로 부설했다. 이 다리는 이름이 '용담대교'이며 지난 1996년에 개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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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대교는 나름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이다. 이 사진보다 색감이 더 아름다운 사진도 있는데 그건 다 가로 크기가 500픽셀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서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남)한강은 서울 시내 구간과는 달리 상수도 보호 구역이라는 것이다. 수질 오염을 야기할 수 있는 일체의 개발· 건축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양평이 괜히 경치가 좋은 게 아니다. 강가는 온통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도 6호선의 교량은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굉장히 특수한 공법을 동원해서 건설됐다고 한다.

끝으로, 유사한 사례가 아니라 대조군을 소개하고서 글을 맺겠다.
경부선 철도는 잘 알다시피 밀양의 삼랑진 역 이남부터 낙동강을 나란히 따라 달린다. 그런데 거기도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노반 확보를 어찌 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한쪽은 그냥 강이고, 다른 한쪽은 바위산이었던 것이다.

경부선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교량을 만드느니 차라리 산에다 불가피하게 터널을 뚫는 걸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삼랑진-원동-물금 일대엔 상행은 그냥 평지인데 하행만 터널을 지나는 기묘한 구간이 몇 군데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음 지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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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좌측통행인 건 다들 아실 테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경부선은 상행 방면이 먼저 생겼고 복선화 공사 때는 오른쪽에다 하행 선로를 '나중에' 추가했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터널까지 뚫지는 않아도 되는 쉬운 곳에다가 선로를 먼저 만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상. 본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 교량 중에는 강을 수직으로 건너는 놈만 있는 게 강을 나란히 따라가는 놈도 제한적이나마 있다.
  2. 그런 교량은 대체로 산과 강 사이에 낀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지곤 한다.
  3. 다만, 경부선 철도의 경우 낙동강 구간에서 그 흔적이 편도 교량이 아니라 편도 터널로 남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20 08:28 2016/10/2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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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구성하는 기체들

지구 대기권을 구성하는 '공기'라는 물질은 아무 색도 맛도 냄새도 없어서 '공기수송'처럼 존재감 없음을 비유하는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 공기는 실제로는 생각보다 구성이 복잡하고 무게와 압력도 있는 물질이다. 공기 덕분에 양력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어서 그 무거운 비행기가 뜰 수 있으며, 반대로 자동차나 비행기는 공기에 의한 마찰과 저항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고속화가 힘들다.
즉, 공기는 물리적으로 엄연히 존재감이 있으며, 화학적으로 성분도 제법 다양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기초 과학 상식을 복습해 보고자 한다.

기체는 눈에 안 보이고 몹시 가볍기 때문에 양 내지 성분 비율을 논할 때 부피가 참 직관적이긴 하지만, 그건 온도와 기압을 동기화시켜야 제대로 된 비교가 가능하다는 맹점이 있다. 기체의 '질량(무게)'과 '부피'는 중학교 과학 시절부터 날 참 헷갈리게 했던 주제이며 지금까지도 별로 와 닿지가 않는다. (그냥 시험 점수를 위해서 달달 외우는 정도를 넘어 본질과 원리를 밑바닥부터 싹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

'몰'이라는 단위도 따지고 보면 질량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하지만 공기 중의 약 78%가 질소라고 할 때 그 비율은 일단 내가 알기로 1기압에서의 부피 비율이다. 실생활에서 기체의 양이라고 했을 때 현실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는 건 질량보다는 부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 질소

공기에서 3/4 내지 4/5 가까이 차지하는 가장 많은 물질은 질소이다. 무슨 유독가스가 '공기보다 무겁다/가볍다'라고 할 때 그 레퍼런스와 가장 가까운 기체는 응당 질소이다. 질소는 원자 번호가 7번으로 얘보다도 가벼운 원소는 수소, 헬륨 등 극히 드물다. 공기보다 가벼운 가스보다는 무거운 가스가 더 많다.

무색 무미 무취 무독성에 안정적이고 물질의 변화를 촉진하지 않는 기체가 지구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점으로 보인다. 질소처럼 공기 중에 75~80%씩이나 들어있는데도 호흡 시 인체에 아무 탈을 내지 않는 기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물론 산소가 없이 질소'만' 그렇게 꽉 차 있으면 사람은 응당 질식(사)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고압 심해에서 있다가 갑자기 나올 때 혈관 내에서 기포를 형성해 혈관을 막는 '잠수병'의 주범 기체도 질소이다. 아무래도 대기에서 차지하는 성분이 많기 때문에 그렇다.

변질 걱정 없이 굉장히 장기간 보존해야 하는 공산품은 진공 포장을 하는데, 식료품의 경우 산화 방지를 위해 일명 '질소 밀봉 포장'을 해서 보존한다. 이게 과도하다 보니 "질소를 한 봉지 구입하시면 감자칩을 요만치 보너스로 드립니다"라는 개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비행기 랜딩기어 타이어에는 일반 공기가 아니라 100% 질소를 주입한다. 착륙 마찰열로 인한 발화· 연소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얘를 액화한 액체 질소는 초강력 냉각과 냉동 용도로 쓰인다. 산소보다도 끓는점이 더 낮다.

그런데 얘는 그저 안정적이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 않는 비활성 기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자동차 실린더 같은 고온 고압에서는 환경 오염 물질인 질소 산화물로 합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질소 화합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폭발물의 제조에도 쓰인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런 질소가 의외로 단백질의 주요 구성 성분이고 비료의 원료라는 것이다. 산소만큼이나 질소도 알고 보면 생명 유지에 매우 중요한 원소인 셈이다. 물론 이건 대기 성분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원소로서의 특성일 뿐이기 때문에 공기 중의 질소를 쌩으로 바로 활용하는 건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다 '질소 고정' 같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20세기에 와서야 가능해졌다.

2. 산소

질소가 단백질을 구성하여 생명체를 존재 가능하게 한다면, 산소는 그 생명체가 본격적으로 생명 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 산소가 없이는 인간 포함 코로 호흡하는 생명체들은 단 몇 분간도 살 수 없다.
공기 중에 산소 농도가 높으면 사람 역시 조금만 숨을 쉬어도 더 크고 많은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서는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발을 땅에서 떼어서 걷는 것만으로도 100미터 전력질주를 한 듯이 숨이 차서 고생하게 된다.

모든 신체 활동에 산소가 쓰인다. 하지만 근육을 쓰는 비중이 더 높기 때문에 오래 했을 때 근육이 땡겨서 못 하는 건 무산소 운동이다. 반대로 팔다리 근육은 그다지 힘든 상태가 아닌데 오로지 숨이 차서 못 하는 건 유산소 운동이다.
가만히 있으면서 무거운 기구를 들거나 옮기기를 반복하는 힘 쓰는 운동은 대체로 무산소이다. 그 반면, 수영· 등산· 달리기처럼 순간적으로 강한 근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꾸준한 신체의 이동을 수반하는 운동들은 대체로 유산소 운동이다. 둘은 비슷한 자질 같지만 서로 완전히 동등하지는 않다.

화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산소는 말 그대로 '산화'라고 불리는 물질의 화학 반응에 그야말로 터보 모드 가속을 넣는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꺼져 가는 불씨를 순수 산소 속에다 집어넣으면 불길이 확 일어나서 탄다. 자동차 엔진의 터보차저는 본질적으로 하는 일이 공기를 더 집어넣는 건데,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산소를 더 집어넣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철 같은 금속도 불꽃을 일으키며 맹렬하게 타 버려서 어떻게 태우느냐에 따라 산화철로 바뀌거나 아예 녹는다. 금속을 녹일 정도인 초고온의 불꽃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료를 특수한 걸로 많이 투입해야겠지만, 고농도의 산소를 공급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산소는 자신은 아무 변화 없이 화학 반응을 촉진만 하는 '촉매'가 아니다. 화학 반응을 일으킨 뒤 자신은 다른 원소와 결합하여 '산화물'이라는 다른 물질로 바뀌어 버린다. 제일 흔하고 만만한 산화물은 바로 이산화탄소 되겠다. 동물은 호흡으로, 그리고 각종 동력 엔진들은 폭발과 연소를 통해 온통 산소를 없애고 이산화탄소를 배설하기만 하는 반면, 녹색 식물은 광합성이라는 경이로운 메커니즘을 통해 물과 빛, 이산화탄소를 역으로 산소와 양분으로 바꾼다.

현대 과학으로도 이런 식물이 하는 일을 흉내 내고 대체하는 기계는 못 만들고 있다. 그나마 인간이 백열등과 형광들을 거쳐서 LED라는 사기적인 빛을 만드는 것까지 성공한 덕분에, 미래엔 날씨를 안 가리는 실내 농업이 가능할지 논하는 정도이다. 질소 공급이 해결됐고 빛 문제도 해결됐다고 치는데 다음으로 물 문제는 변덕스러운 자연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조달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산소는 여러 모로 유익한 기체이긴 하나, 그렇다고 산소가 공기 중에 지금의 질소가 있는 것만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불이 너무 쉽게 붙고 화재 진압을 하기 너무 어려워진다. 그리고 사람 같은 생물체 역시 폐에 과부하가 걸리고 산소 중독이 발생하여 신체 이곳 저곳에 탈이 난다.
나중에 언급할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려서 죽어 가는 사람이라면 헤모글로빈에 달라붙은 일산화탄소를 떼어내기 위해서 100% 고압 산소 주입 처방을 내리긴 한다. 허나 그건 예외적이고 특수한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산소에는 지금까지 언급한 것과 같은 유익한 산소만 있는 게 아니다. 노화를 촉진하고 인체의 수명을 깎아먹는 '활성산소'라는 것도 있다. 둘 다 같은 O2이지 않은지? 이게 화학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도 경수만 있는 게 아니라 얼음이 가라앉는 '중수'라는 게 있을 수 있는데 활성산소도 뭔가 돌턴의 원자설 범위를 넘어서는 미세한 차이가 있는 산소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3. 이산화탄소

탄소는 그야말로 마법에 가까운 화합물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 만능 원소이다. 다이아몬드, 흑연, 그을음 검댕이 다 동일 원소 기반의 물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얘가 불꽃을 활활 내어 타면서 산소와 결합하고 난 기체 찌꺼기가 이산화탄소이다. 그나마 식물이 있으니 산소와 이산화탄소 사이를 오가면서 탄소가 재활용 순환이 가능하다.

단, 이것도 조건이 있다. 산소 공급을 잘 받으면서 '완전 연소'를 이뤘다면 불꽃이 파랗고 에너지도 더 많이 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좀 답답하게 '불완전 연소'를 했다면 불꽃은 노래지고 에너지가 덜 나며 연기· 그을음이 발생하면서 부산물도 일산화탄소가 나오게 된다.

이산화탄소는 질소나 산소 같은 기체와는 특성이 많이 다르다. 끓는점이 그런 기체들보다 훨씬 더 높아서 비교적 쉽게 액화나 응고 가능하다. 드라이아이스라고 다 들어 보셨을 것이다. 또한 얘는 물에도 더 잘 녹는 편이며, 이때 물을 탄산이라는 비교적 약한 산성으로 바꾼다. 탄산은 톡 쏘는 맛이 좋아서 청량음료를 만들 때 쓰인다.

이산화탄소는 공기에 대략 0.03%(백분율), 혹은 표현을 달리하면 300ppm(백만분율) 정도 존재하니 질소와 산소에 비하면 가히 극미량이다. 사람이 내뱉는 숨은 산소가 몽땅 이산화탄소로 바뀐 게 아니라 20% vs 0.03%이던 것이 16% vs 4% 정도로 바뀐 수준이라고 한다. 다만, 최근에는 화석 연료 소비의 증가 때문에 전지구적인 이산화탄소 농도가 0.04%로 증가했다고 전해진다.

이산화탄소는 연소의 부산물로 나온 물건인 만큼, 산소와는 정반대로 불을 꺼 버리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질소나 산소보다 인체에 훨씬 더 해롭다.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찔끔찔끔 증가하여 0.x%정도가 되면 슬슬 나른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공기 전체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사람의 날숨과 근접하게 되면(이산화탄소 2~3%)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고 어지러움이 느껴질 지경이 된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정상적인 날숨의 농도인 4%대를 초과하게 되면 두통, 구토 등 본격적인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호흡을 통해서 이산화탄소를 내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폐가 상하고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수 시간 이상 이런 환경에 노출되면 영구적인 장애와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도 이산화탄소 농도이면 촛불쯤은 바람 없이도 곧바로 꺼뜨릴 수 있다고 한다.

10%를 넘는 이산화탄소에 노출되면 사람은 불과 몇 분 만에 활동 불가능에 빠지고 의식을 잃는다. 물에 얼굴까지 잠긴 것과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질식한다. 하물며 이산화탄소가 지금의 산소 농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있다면.. 사람은 그런 곳에 들어가는 즉시 폐가 이산화탄소로 인해 작살이 나면서 기절하고 죽는다.

이런 이산화탄소는 유감스럽게도 온실효과를 일으키며 지구 온난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양도 얼마 안 되는 주제에 인간에게 끼치는 민폐가 꽤 크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도 탄산가스 배출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런데 태양계에서 지구의 이웃인 금성은 대기의 무려 95% 가까이가 이산화탄소이며 양도 엄청 많아서 대기압이 지구의 90배에 달하는 완전 미친 행성이다. 이 정도 공기압은 바닷속 수심 900미터에서 받는 압력과 비슷해서 빈 깡통쯤은 곧장 찌그러지며 어지간한 잠수함들조차 내려가지 못하는(심해 전용 잠수정 필요) 살인적인 압력이다.
이러니 금성은 낮과 밤, 여름과 겨울, 적도와 극지대 구분이 없이 지표면 전체가 1년 내내 섭씨 450~500도에 달하는 고온 고압 불지옥을 자랑한다. 가스형 행성도 아니고 지구와 가장 가까운 행성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됐는지가 참 안쓰러울 뿐이다.

4. 일산화탄소

일산화탄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분자에서 탄소 원자가 이산화탄소보다 하나 더 적다. 원래는 이산화탄소가 생겨야 할 상황에서 뭔가 2% 부족한 여건 때문에 생기는 물건에 가까우며, 똑같은 무색 무미 무취..이지만 그런 것치고는 원조인 이산화탄소와 비교했을 때 특성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마치 같은 산소 원자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기체 분자로서 산소와 오존은 서로 확 다르듯이 말이다.

이산화탄소가 섭씨 -100도 이상의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도 액화· 응고하는 것과 달리, 일산화탄소는 다시 질소· 산소처럼 -200도에 가까운 엄청나게 낮은 온도에서 액화· 응고한다. 또한 일산화탄소는 이산화탄소처럼 더 반응할 게 없어서 불을 꺼뜨리지 않으며, 산소와는 불꽃까지 내면서 활활 타며 반응해서 원래 의도했던 목적지인 이산화탄소로 변한다.

사실, 진공이라고 해도 정말 아무 물질도 없는 0의 진공은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듯, 현실에서는 대체로 완전연소가 이뤄지는 상황에서도 일산화탄소는 극미량 찔끔찔끔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가 엄청 많이 다니는 도심은 농촌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일산화탄소의 농도도 상대적으로 더 높다. 불완전연소가 일어나서 사람 건강이나 기계의 동작 효율에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산소는 질소만큼 있으면 위험하고 이산화탄소는 지금의 산소만큼만 있어도 사람을 즉사시킬 정도인데.. 일산화탄소는 그 적은 이산화탄소만큼만 있어도 극도로 위험하다. 이산화탄소는 농도를 논할 때 퍼센트와 ppm이 번갈아가며 쓰이지만 일산화탄소는 스케일이 워낙 작기 때문에 십중팔구 ppm으로 농도를 기술한다.

일산화탄소가 위험한 이유는 잘 알다시피, 사람의 뻘건 혈액 속에 존재하는 철 이온 기반 헤모글로빈이 산소보다 일산화탄소와 반응을 거의 200배가 넘게 더 잘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까..? 그러니 일산화탄소가 정말 극미량만 있어도 헤모글로빈이 병신이 돼 버리고 뇌 방면 산소 공급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곧바로 두통, 어지럼증, 체력 저하가 발생하며 심하면 사망. 단적으로 말해 연탄가스 중독의 주범이 요놈이다. 옛날에는 이걸로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니면 뇌가 손상되어 평생 장애인이 되거나.

일산화탄소의 부피 대비 농도가 겨우 10ppm만 돼도 당장 죽지는 않지만 거기서 수십 분간 있어 보면 사람의 컨디션이 살짝 달라진다. 호흡 계통에 문제가 있는 환자는 겨우 이것만으로도 몸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농도가 지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비슷한 급의 세 자리수 ppm에 진입하면 혈액이 본격적으로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금방 숨이 차고 신체 활동이 힘들어진다.

1000ppm이 넘어가는 농도에서 몇 시간째 노출되면 사람은 드디어 금세 의식이 몽롱해지며 얼마 못 가 매우 높은 확률로 픽 쓰러져 죽는다. 이산화탄소가 이 정도 농도이면 아직 그냥 아주 살짝 나른함이 느껴질 정도에 불과하며, 건강과 생명엔 여전히 아무 지장이 없다. 얘는 치사량이 이산화탄소의 수백 분의 1 이하에 불과해서 훨씬 더 위험함을 알 수 있다.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로봇은 동력 계통의 유연함이 인간의 근육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계는 생명체와 달리 방사선 피폭에 강하고, 또 호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유독성 기체 속에서도 잘 버티는 게 장점이다.
사실, 생명체도 헤모글로빈이 아닌 헤모시아닌(구리 이온) 기반인 무척추동물들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헤모시아닌은 산소 운반 효율도 헤모글로빈의 1/4에 불과하다는 게 단점이다. 개미나 바퀴벌레를 터뜨려 죽였는데 무슨 피 빨아먹은 모기도 아닌 것이 죄다 시뻘건 혈흔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도 참 골칫거리이지 싶다.. -_-

5. 특별판: 수소

원래는 지구의 대기에서 질소와 산소 다음으로 많이 있는 기체는 '아르곤'이라는 진짜 비활성 기체이다(부피 비율은 대략 1%가량). 얘도 화학적으로 다른 용도가 있긴 하지만 워낙 화합물을 안 만들고 존재감도 없다 보니 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그 대신, 질소, 탄소, 산소 얘기가 다 나온 마당에 왠지 누락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수소 얘기를 하고서 글을 맺겠다.

수소는 원자 번호 1번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으며,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를 통틀어서 가장 가볍고 가장 흔하고 많은 원소이다. 그리고 산소와 반응도 아주 격렬하게 한다. 불꽃이 튀면 퍽 하고 타 버리는 게 무슨 천연가스 같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천연가스 같은 연료로 사용하기에는 수소는 너무 가볍고 한편으로 위험하다. 지구 대기에 수소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이유는 그 가벼운 수소를 대기로 가둬 두기에는 지구의 중력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지만, 수소를 채운 풍선이나 비행선이 하늘로 둥둥 뜨는 걸 생각하면 좀 이해가 될 것이다. 너무 가볍고 자유로운(?) 기체답게 액화와 응고는 절대영도보다 겨우 10~20도 높은 극한에 근접해야만 가능하다. 압축과 보관도 평범한 기술로는 할 수 없다.

탄소가 붙은 탄화수소(알코올, 천연가스 등) 계열이 아니라 순수하게 수소만을 연료로 활용할 수 있다면 효율도 좋고 고갈 걱정도 없고 탄산가스가 아닌 수증기만 나오는 매우 깨끗한 엔진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건 다름아닌 저런 기술적인 난관으로 인해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아직 제대로 실용화가 안 된 채 떡밥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원소로서의 수소가 아니라 수소 기체는 지구상에 흔치 않으며, 물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를 얻는 비용도 그리 만만찮다는 걸 알아야 한다.

수소는 앞서 소개한 기체들과는 달리, 대기 중 농도가 얼마인 곳에 인체가 노출되면 무슨 반응이 오고, 독성이 있고 하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소가 그만치 대기 중에 섞여 있었다가는 자기가 진작에 스스로 폭발해서 다른 화합물로 변해 버리고 없기 때문에 인체의 반응 자시고 할 게 없다. 폭발이 위험한 거지 딱히 폐에 생화학적인 민폐를 끼칠 여지는 없다.

이런 수소는 자기 바로 다음으로 가벼운 비활성 기체 원소인 헬륨과는 특성이 완전히 상극이다. 헬륨은 수소 같은 반응성이 없으며, 양도 수소보다 훨씬 적고 값이 더 비싸다.
수소가 들어간 화합물 중에 물이야 워낙 특이하고 유명한 놈이다. 그것 말고 그다지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화합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메탄(탄소+수소): 자연에서는 쓰레기가 썩을 때, 더 구체적으로는 식물이 부패· 분해될 때(초식동물의 소화 과정도 포함) 생성된다. 그러니 쓰레기 매립지에는 이렇게 생성된 메탄을 수집해서 연료로 활용하는 설비도 있다. 하지만 메탄 자체는 천연가스의 주성분이며, 무색 무취로 별로 더럽지 않은 물질이다. 메탄과 메탄'올'의 차이는 CH4와 CH3OH의(수산화기 OH) 차이에서 유래된다.
  • 황화수소(황+수소): 달걀 썩는 악취의 주범으로, 황을 포함한 단백질이 부패할 때 난다.
  • 암모니아(질소+수소): 대변이 아니라 소변 테크로부터 유래되며, 화장실의 지린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17 08:39 2016/10/1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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