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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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이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개발된 지 무려 10주년이 됩니다. (2000년 8월)
이 프로그램의 초기 버전(1.x)은 단순히 자체 한글 입출력 체계로 조합형 한글과 세벌식 최종 자판+모아치기를 구현해 보겠다는 아주 소박한 의지로 출발했습니다. 동기는 간단했습니다. 지금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이게 가능하지 않으니까 한번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죠.
입력기의 기술 데모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정말 초라한 에디터 프로그램이었지만 2.x에서는 드디어-_- 탭과 자동 줄바꿈이 지원되면서 그럭저럭 쓸 만한 에디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문자 집합의 크기가 16비트로 확장되고 간단한 옛한글 표현도 가능해졌고, 매우 불완전하긴 하지만 플러그 인이라는 개념도 이 때 처음 도입됐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3.x 시절부터입니다. 프로그램 내부 구조가 처음부터 다시 설계됐고, 글쇠와 오토마타에서 수식이 도입되어 프로그램의 활용도가 크게 올라갔습니다. 일부 미흡한 점이 있긴 하지만 유니코드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표현 가능한 옛한글의 범위도 월등하게 넓어졌죠.
특히 3.x에서 드디어 외부 모듈이 도입됐습니다. 한글 입력 기능을 단순히 에디터뿐만이 아니라 진짜 운영체제 표준 입력기로 쓰는 날이 도래한 것입니다.
4.x에서는 3.x에서 닦아 놓은 기반을 토대로 하여 수많은 기능들이 마음껏 추가되고 버그가 고쳐졌으며, 말기에는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여 드디어 64비트 버전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현재 버전의 형태와 일치하는 완전체가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5.x는 다시 한번 유니코드 5.2를 기준으로 프로그램의 한글 표현 범위가 확장되었으며, 유니코드 지원을 좀 불완전하게 하던 것을 완전히 보강했습니다.
요즘은 터치스크린 입력 방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고 어지간한 IME라면 키보드 외의 여러 방식으로 문자를 입력하는 도구도 갖추고 있는 만큼, 최근에는 이쪽 분야의 기술을 적극 수용하는 연구를 해 왔습니다. 예전에 편집기가 제공하던 ‘화면 키보드’를 이런 입력 패드의 일종으로 바꾸고 문자표라든가 부수 한자 입력기 같은 것을 추가했으며, 편집기도 아니고 외부 모듈도 아니면서 입력 패드만 띄워 주는 별도의 유틸리티도 추가했습니다.
앞으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다양한 한글 입력 방식을 구현하는 가능성을 계속해서 넓혀 나갈 것입니다.
기본 입력 단위인 날개셋문자를 확장하고, <날개셋> 기본 입력기에도 뭔가 확장할 게 있습니다. <날개셋> 고급 입력기에도 고급 입력기라는 취지에 맞게 추가할 기능이 있습니다.
94개의 기본 글쇠뿐만 아니라 임의의 글쇠도 인식할 수 있는 스키마를 추가하고, 아이폰이나 휴대전화 입력 방식을 PC 상으로 흉내 내는 입력 패드도 추가할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 생각하고 있는 큼직한 기능을 모두 잘 추가한다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곧바로 6.0으로 올라가는 데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이 벌써 5.x가 꺾이기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단번에 6.0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고 5.7이나 5.8 정도는 한 번 거치게 될 것입니다. 특히 7은 지금까지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버전 번호에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숫자인데, 윈도우 7 유행을 따라-_- 도입될 가능성이 큽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5.5x는 이미 구현된 기능들의 한도 내에서는 정말 윈도우용 “싸제”(=MS와 무관하게 개발된) 한글 IME로서는 그야말로 최정상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여겨집니다. 구닥다리 윈도우 95/NT4부터 시작해 64비트 7까지, 운영체제 문자 프로토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5.0까지는 거의 2년에 버전이 1.0씩 올라가는 게 가능했는데 이제는 어렵네요. 버전업 속도는 점차 더뎌지고 있습니다.
한글 입력기로서 생각할 수 있는 기능이 다 들어가 버려서 이제 더 작업할 게 없으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이제 보안 패치나 미래의 OS에서 제대로 동작하는 버그가 있을 때 패치나 이따금씩 이뤄질 것입니다. 그리고 슬슬 타 운영체제 포팅이라든가, 심지어 SDK 내지 소스 공개를 생각할 수도 있죠.
그 날이 6.x나 7.x 시절이나 언제쯤 오게 될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아무쪼록 곧 다가올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개발 10주년을 자축하며, 지금까지 제 프로그램을 성원해 주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Posted by 사무엘
섬식 승강장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승강장 반대편'에서 쉽게 탈 수 있지만,
상대식 승강장은 '반대편 승강장'으로 가야 탈 수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설동 지선을 타고 성수 역에 도착하면 시청· 을지로 방면 열차는 바로 '(동일) 승강장 반대편' 열차를 타고 손쉽게 갈 수 있지만, 잠실· 강남 방면으로 가려면 계단을 이용해 '반대편 승강장' 열차를 타야 한다.
이거 용어가 좀 확실하게 통일되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쉽게 말해 평면 환승은 '승강장 반대편'입니다. 이 말만 하면 선로를 가리키는 개념이 됩니다. 한 승강장을 공유하는 맞은편 열차라는 뜻이고요,
계단을 이용한 환승은 승강장 자체를 이동하므로 '반대편 승강장'입니다. 선로가 아니라 다른 승강장을 가리키며, 선로는 그 승강장에 붙어 있는 좌우 어느 것이든 될 수 있습니다.
마치 C++에서 new operator와 operator new 같은 개념 차이가 되겠군요.
Posted by 사무엘
※ 갈 땐 철도로
이번 크리스마스는 가족하고도, 교회 사람들과도, 심지어 애인-_-(그런 게 있을 리가? ㅋㅋㅋㅋ)하고도 보내지 않았다.
우리 교회는 성탄절에 크리스마스트리, 산타 나부랭이 따위는 없다. 그 대신 그 날 전통적으로 복음 전도 집회를 해 왔다. 보통 거기 가곤 했는데 올해는 그것도 빠지고, 그 대신 25, 26일에 걸쳐 철도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혼자 간 건 아니고,
누군지 아마 짐작하는 분도 있겠지만... 카이스트 후배이며 본인의 최측근자-_-에 속하는 모 지인과 함께 갔다. 여행 가서도 서로 노트북 꺼내서 각자 만들던 프로그램을 열심히 짜는 골수 덕후들끼리,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______^
대략의 경로를 얘기하자면 강릉 정동진을 찍은 후 부산행이었다. 동해 바다까지 가서 회 요리를 안 먹을 수가 없어서 맛있게 먹었는데, 참고로 횟값이 방값보다 더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엔 그 길로 부산까지 갔다.
갈 때와 올 때 모두 스위치백을 오르내렸다. 강릉 방문은 거의 3년 반만에 처음이고 영동선 방문은 2년 반만에 처음이었다. 정동진 역은 역시 바닷가를 찾은 관광객이 많았고 아침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는데,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출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성탄절이 이러한데 신정 연휴 때는 더욱 붐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행 코스에서 영동선과 태백선을 전구간, 그것도 다 낮에 이렇게 답사하는 건 그때 내일로 티켓 때도 못 했었기 때문에 기쁘기 그지없었다. 정말 맑고 좋은 겨울 날씨가 여행을 더욱 즐겁게 했다. 같이 간 녀석은 이제야 내일로 티켓을 샀던데, 내가 여행가는 요령 코치를 잔뜩 해 줬다. 철도 덕후 후학을 양성해야 하는데 얘가 유력한 후보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얘는 내일로 티켓으로 좌석이 없고, 나는 매 여행 경로마다 지정석 표를 사서 같이 동반하는 그런 형태였다.
강릉에 이어 경부선 대구-부산 구간도 정말 천하절경이기 때문에 강원도 산악 철도와 잘 어울렸다. 차이가 있다면 경부선은 중앙-태백-영동선보다 열차 주행이 훨씬 더 빠르며 승객도 훨씬 더 많다는 것이었다. 경부선에서 전기 기관차 열차를 탄 것도 이번이 난생 처음이었다. 그 전엔 새마을호(디젤 동차) 아니면 KTX만 탔으니 경부선에서 딱히 기관차형 열차 자체를 접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는 부산 지하철을 1~3호선 모두 속성으로 시승했다. 3호선 전동차의 구동음과 대구 2호선 전동차 구동음은 음높이까지 완전히 동일하다는 사실에 부산 출신의 다른 철도 전문가-_- 후배와 함께 합의를 봤다.
※ 올 땐 비행기로
저 녀석은 내일로 티켓 여행을 계속하지만 나는 이내 서울로 복귀해야 했기 때문에, 지하철 구경만 잠깐 한 후 부산에서 헤어졌다. 그 후 나는 김해 공항으로 가서 무려 비행기-_-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비행기 이륙하는 소리를 듣고 싶고, 오랜만에 인천 말고 김포 공항 구경도 좀 하고 싶어서였다. ^^;;
공항까지는 버스를 탔는데, 덕분에 지하철 3호선으로만 통과하던 부산 시내 동서를 지상 도로를 이용해서 구경할 수 있었다. 만덕-미남 사이의 터널은 서울로 치면 마치 남산 1호 터널 같았다.
그리고 철도로 부산을 방문하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경부선의 부산 시내 고가 구간은 100년 전에 경부선이 처음 건설되던 시절부터 고가였을 리는 없을 텐데 언제 저렇게 이설됐는지도 궁금하다. 심지어 서울조차도 경부선 서울 구간은 그냥 평지인데 말이다.
내 스스로 국내선 비행기를 탄 건 난생 처음이고, 김포 공항 구경은 거의 10년만에 처음이었다. 주말이지만 전혀 혼잡하지 않았다.
시속 60은 낼까 궁금하던 그 느려 터진 중앙-태백-영동선 열차를 타다가 돌아올 땐 비행기를 타니, 분위기가 이보다 더 극과 극일 수 없었다. 역시 국내선은 국제선보다 훨씬 더 타기 쉬우며, 여권도 필요 없고 출입국 신고 절차도 없이(당연하지만) 신분증만 있으면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의 비행기 탑승 기록이 해당 항공사 외에 정부 기관 차원에서 남지는 않는다. ^^ 또한 국내선은 보안 구역으로 들어가도 면세점 같은 건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김해 공항인데 저가 항공사인 에어 부산을 이용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메이저 항공사하곤 놀라울 정도로 가격 차이가 별로 없는 데다 서비스는 대한이 훨씬 더 낫다는 평판에 따라 지난번에 미국 갈 때 이용했던 대한 항공을 또 이용했다.
뭐, 그래 봤자 비행 시간이 40분밖에 안 되는 국내선은 역시 국내선일 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착륙 모드로 들어섰다. 시속 800km가 채 안 되는 속도에 순항 고도는 7000m대에 머물렀다가 금세 내려가야 했으며, 도중에 먹거리가 나온 건 음료수 한 컵밖에 없었다. 영상/음성 서비스도 당연히 없고 비상시 대처 요령도 승무원이 직접 시범을 보이더라.
김포 공항은 명색이 그래도 서울 시계 안에 있다 보니, 비행기가 착륙 직전에 인근 도로의 차들로부터 불과 2~30 m 남짓 위까지 하강하는 것도 봤다. 멀찍이 오지에 건설된 인천 공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니 김포 공항은 24시간 운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항공 상식 사이트에서 본 것처럼, 착륙할 때 비행기 날개에서 뭔가를 탁 치켜세우면서 거센 역풍 소리가 들리는 것도 확인했다.
이렇게... 이틀 동안 한 20만원이 좀 넘게 돈지랄-_-을 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강릉-부산-서울을 다니니 우리나라가 정말 좁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로 다른 교통수단들에 대한 차이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게 내가 노는 방법이며 유흥비 지출을 하는 방법이다. 정말 보람있게 돈 썼으며 알찬 재충전 시간이었다. ^^;;
성탄절 연휴는 이렇게 보냈고 다음 주의 신정 연휴는 그냥 집에서 코딩하고 쉬다가 서울 근교의 지인이나 좀 만나면서 보낼 생각이다.
※ 그 외의 비행기 관련 추가 소감
1. 지난번에도 글로 쓴 적이 있을 것이다. 기차 내지 지하철을 타면서는 안내방송에서 ‘고객’이라는 단어를 귀가 따갑도록 듣지만, 비행기 안에서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냥 손님이다.
2. 비행기와 공항 건물 사이를 드나들 때 김포 공항은 여전히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보통 도착했을 때만 버스인지? 최신식 초대형으로 건설된 인천 공항은 그와 달리 출발과 도착 모두 통로가 비행기와 건물이 일체형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바깥 공기를 마실 일이 없었다.
3. 각종 표지판에서 전속 서체를 사용하는 인천 공항과는 달리, 김포 공항은 다 맑은 고딕으로 바뀌어 있는 걸 확인했다. 그나저나 도착장을 나선 후 지하철 5호선을 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분. 김포 공항은 접근성이 좋다는 것 하나는 정말 인정한다.
4. 올가을부터 새롭게 무슨 종이 영수증 스타일로 개정된 철도 승차권은, 영락없이 국내선 비행기 탑승권(국제선 아님)을 따라한 게 맞음을 확인했다. ㅋㅋ
5. 비행기로 이렇게 짧은 여행을 하니 오로지 시작과 끝점만 있고, 정말 중간 과정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다. 교통 정체라든가 역/휴게소 정차, 멀미 나부랭이가 없다. 그냥 부산에서 서울로 싹 순간 이동을 한 느낌이고, 중간에 체력이나 정신력의 소모가 전혀 없다. 이게 단순히 소요 시간이 짧아서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글쎄다.
그러니, 공항까지 오고 가느라 까먹는 시간을 감안했을 때 설령 총 소요 시간이 다른 육상 교통과 별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출장 갈 때 비행기가 뭔가 업무 효율면에서는 승산이 있기도 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 차량: 더 성능이 좋은 동력차를 도입한다. 특대형 디젤 기관차와 새마을호 디젤 동차는 1980년대에 열차 고속화의 선두 주자였다. 특히 역에 자주 정차하고도 표정 속도가 높으려면 가감속이 높은 차량이 필요한데, 이런 형태에는 동력 집중식보다는 동력 분산식이, 기름보다는 전기 차량이 훨씬 더 유리하다.
- 동력차의 기어비를 바꾼다. 8200호대 전기 기관차의 경우, 스펙상의 최고 속도는 시속 150이지만, 기어비를 바꾸면 시속 200을 넘길 수도 있다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전기 기관차는 산업선 화물 위주로나 많이 쓰여서 속도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 있다.
- 선로: 당연히 선형을 직선화하고 개량함으로써(필요하다면 고가, 터널 건설) 열차의 속도를 올릴 수 있다. 물론 이는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 레일을 더 무겁고 튼튼한 재질로 교체하고, 덜컹거리지 않는 장대 레일을 쓰면 된다. 그래야 레일이 빠르게 달리는 육중한 열차를 견딜 수가 있다. 물론 요즘 건설되는 철도는, 굳이 고속철이 아니더라도 m당 60kg 이상의 최고급 장대 레일은 기본이다.
- 선진적인 신호 시스템도 알게 모르게 열차의 고속(빠르게 운행), 고밀도(자주 운행) 운행에 매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똑같은 복선이지만 지금의 경부선은 별다른 하드웨어 투자 없이도, 일제 강점기 때보다 허용 선로 용량이 5배에 가깝게 증가해 있다. 신호 시스템이 낙후해 있으면 안전상의 이유로 인해, 단위 구간에 대해서 열차를 매우 띄엄띄엄 보수적이고 소극적으로 운행할 수밖에 없어지며, 구간별로 진입 허가를 받기 위해 수시로 열차 속도를 줄여야 하게 된다.
교통수단들 중에 오로지 철도만이 ATS, ATC 같은 잘 통제된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지하철의 경우는 신호 시스템만 치면 기술의 첨단성이 고속철 뺨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경부선 열차가 1970~80년대에 들어서 서울-부산이 6시간이 넘다가 4시간 50분대로 진입하고, 나중에 4시간 10분으로까지 단축된 것은 그 당시에 위의 모든 분야에서 시설 투자와 개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바퀴를 굴리는 육상 교통수단은 축중 하중이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본인은 운전 경험이 아직 거의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같은 차라도 FF(전륜구동), FR(후륜구동)은 핸들에 전달되는 느낌부터 시작해서 차가 움직이는 감각이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흠 난 FF 승용차를 몰 때나, 자동차 학원에서 FR 트럭을 몰 때나 별 차이를 못 느낀 걸로 기억하는데.
일단 기술적으로 FF가 FR보다 부품 수는 줄일 수 있지만, 만들기는 좀더 어렵다고 들었다. FR은 앞바퀴의 조향 반경이 FF보다 더 클 수 있고 핸들링 성능이 좋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뒷부분이 지나치게 가벼울 경우 바퀴가 헛도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FR은 뒤에 화물로 인한 충분한 하중이 실릴 수 있는 트럭 같은 차에 적합하다.
FF는 역시 작은 승용차에 적합하지만 차체가 커질수록(=엔진 무게보다 훨씬 더 큰 하중이 실린다는 보장이 있는) 점점 FF보다는 FR이 더 유리해지는 것 같다. 반면 버스는 엔진까지 뒤에 있는 RR 방식이 동력 전달에도 유리하고 앞부분이 가벼워져 핸들 조작에도 좋다.
철도 차량은 조향이라는 개념도 없고 그런 구동축 위치도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마찰이 작다는 특성상, 축중 하중이 더욱 중요하다. 쇠로 된 길 위에 쇠로 된 바퀴가 구르다 보니, 차가 지나치게 가벼우면 바퀴가 헛돌기 쉽다. 8200호대 전기 기관차라든가 새마을호 디젤 동차도 엔진 자체의 성능은 훌륭하지만, 이런 현상 때문에 선형이 안 좋은 곳에서 도입되지 못해 왔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몇 달 전의 일이다.
지인을 만나러 오랜만에 카이스트를 방문했는데..
만난 지인이라는 녀석이 말하길.. 나한테 소개해 줄 친구가 있다고 했다.
부산 영재고 출신에 전자과 07이던가 08학번.
과는 전산이 아니라 전자이지만 물론 프로그래밍도 한다.
그런데 데스크톱 컴퓨터의 메인 OS가 리눅스이고, KDE이던가 개발이 가능한 고수급의 리눅스 프로그래머이다. 세벌식도 쓴다고 하던가? 그렇게 들었는데.. 이 친구도 완전 비주류의 길을 가고 있구나.
거기에다가 결정적으로 그 친구..
철-_-도-_-오-_-덕 이다..!! ㅎㄷㄷㄷ
국내 철도를 다 섭렵했음은 물론이고.. 일본 철도는 이미 계층이 많기 때문에 관심 밖이고 자기는 주로 유럽 철도를 연구한다고 하더라. 사진도 잔뜩 있고..
나하고 그냥 얘기가 술술 터져나왔다. 걔도 부산에 있다 왔으니 부산의 철도/지하철은 당연히 다 꿰뚫고 있고..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 경부선의 선형, VVVF, 부산 지하철의 노선별 차량 계보 차이, 지하철 구동음 선율의 아름다움....;;;
생판 처음 보고 나이 차이도 6년이 넘는 카이스트 선후배가 서로 갑자기 외계어로 10분이 넘게 free talking을 진행하니,
날 데리고 온 지인 녀석하고 저 친구의 룸메는 입이 딱 벌어졌고, 동영상 찍고 난리가 났다. (업로드는 절대 하지 말지어다 -_-)
그렇다. 덕후는 덕후를 알아본다. 저 녀석은 이 장면을 의도하고 나와 걔를 서로 소개시켜 준 것이다. ㅋㅋㅋㅋ 교회 바깥 사람하고 이렇게 말이 통하는 사람과 후련하게 의사소통을 주고받기는 그때가 거의 처음이었다.
같은 철도 덕후라고 해도 개인별 주특기는 또 따로 있는 법. 그 친구는 유럽 철도 전문이었고, 나는 Looking for you 연구 결과를 들려 줬다.
지금은 그 친구 어찌 지내려나 궁금하다. 사실 덕후는 제각기 심취해 있는 나만의 세계가 따로 있는지라(나부터가 그렇기 때문에-_-) 서로 단합하거나 뭉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고 기회만 잘 따른다면... 저런 친구한테 <날개셋> 소스 인계해서 리눅스 쪽 개발 맡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도 품을 정도였다. ^^;; 카이스트와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ㅋㅋㅋㅋㅋ
덧. 오덕과 덕후의 어감 차이는 무엇일까??
Posted by 사무엘
http://www.dilascia.com/ruint.htm
본인이 이 사람 이름을 본 것은 비주얼 C++ 6.0을 쓰던 시절부터이다.
MSDN을 보면 각종 함수 레퍼런스, 툴 설명서뿐만이 아니라 고맙게도 일부 책이나 간행물 내용까지 수록돼 있었는데, 어느 프로그래밍 잡지의 C++ Q&A란을 애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코너를 집필하는 사람이 바로 저 전설의 프로그래머 Paul DiLascia였다.
특히 비주얼 C++ 6.0 MSDN에는 bmp 파일 뷰어를 밑바닥부터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 놓은 게 있었는데
친절한 설명도 설명이거니와 이 아저씨는 글빨 입담이 정말 구수하다는 것을, 생소한 영어를 읽으면서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윈도우+MFC 프로그래밍의 달인인 건 의심의 여지가 없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원래 수학 전공에다 컴퓨터 예술 쪽에도 심취해 있는 다재다능 엄친아였다. 이름이 좀 유럽풍인 것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뉴욕에서 태어나서 자란 골수 미국인이라고 한다. 조상이 이민자?
링크를 건 곳은 저 사람의 2003년 시절 인터뷰이다.
고수 프로그래머로서의 조언도 여럿 담겨 있는데, 그 내용이 무척 공감이 간다.
- 최신 기술 동향은 놓치지 않되, 남들이 좋다고 하는 데에 소신 없이 절대 우루루 휩쓸려 따라가지 말라. 가령 클라이언트처럼 C/C++가 독보적인 분야가 있고, .NET 같은 곳이 더 유리한 분야가 따로 있을 뿐이다. 자신의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툴이나 기술을 잘 고르는 요령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것들은 도구일 뿐이며 절대적인 우열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 Win32 API가 존재하는 한.. 윈도우즈 운영체제가 밑바닥부터 새로 뒤바뀌지 않는 한, 너무나 클래식(?)한 C/C++이나 MFC 같은 것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 없어지지 않는다. 더 업데이트가 안 되고 있다는 말은 그만큼 API가 성숙하고 안정화됐다는 뜻으로 오히려 다행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 늘 목표를 명확히 하고 내가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무슨 도구를 쓰는 게 가장 최적일까를 고민하라. 디자인 과정을 소홀히 하지 말라.
민장(minjang.egloos.com) 님 블로그에서도 비슷한 요지의 말을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워드, 엑셀 같은 유명 소프트웨어에 들어있는 GUI 베껴서 따라 만드느라 시간 낭비 절대 하지 말라!" (그 시간에 실제 기능 구현에 필요한 자료구조/알고리즘 연구나 더 해라)
란 주문도 들어있다. ^^;;
아마 C++ Q&A 운영하면서 "나도 저기에 들어있는 그 기능, 그 UI 만들고 싶다. 어떡하면 좋은가?" 류의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는 급의 문의를 엄청 많이 받았지 싶다.
* * * * *
Too many programmers spend all their energy implementing some cutesy UI feature like docking windows or pink scrollbars because they saw it somewhere else. Microsoft has 5000 programmers to create animated paper-clips. You don't. Don't fall into the code envy trap!
Don't get side-tracked implementing the latest GUI feature you saw in Word or Excel.
(그런 공룡 대기업들이나 부리는 '가진 자의 여유'를 당신이 따라할 여건은 안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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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우리나라의 유명한 비주얼 C++ 서적의 저자인 이 상엽 씨도 똑같은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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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예술적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 제작에 열을 올린다면 좋은 이야기다. 그것도 아닌 것을 예술인냥 착각하고 움직이지는 절대 말라는 것이다. 예술적 가치가 없는 부분이 어떤것인가를 물어 볼것이다. 거 있지 않은가? MS 사에서 도움말 강아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고 자신의 프로그램에 강아지 만들어 넣는거...Visual C++의 워크 스페이스 창이 도킹 되었다가 떨어졌다 하는데 나두 이거 만들구 싶다 라는거...
예를 간단하게 들어서 MP3 에 있는 압축기술이나 음성인식 또는 지문인식 등의 기능이 예술이라고 볼수 있고 그냥 강아지 이리저리뛰어 다니는 것은 처음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것은 잡다구리 테크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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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편집기 프로그램은... 9년이 넘게 개발되고 버전이 5.5가 넘어선 지금까지도 완전 윈도우 95의 기본 컨트롤과 UI 요소만 사용하여 만들어져 있다. ^^;;; 편집기의 경우 과거 3.41 버전에서 MFC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이제 도구모음줄이 도킹을 할 수 없게 바뀌었다. 그게 원래 MFC가 구현해 주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편집기를 실행해 보면 도구모음줄 아이콘들이 좀 중앙에 안 있고 메뉴, 즉 위쪽에 너무 바싹 붙었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것도 딱히 바꿀 방법이 없다.
아이콘 사이에 임의의 크기로 여백을 내는 것도 MFC가 윈도우 프로시저를 다 서브클래싱해서 굉장히 지저분한 작업을 한 끝에 구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MFC는 단순히 윈도우 API wrapper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 따라하는 일에 너무 심취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아쉽게도 이 사람은 작년(2008) 9월, 40대 후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밝혀져 있지 않다. 비주얼 C++ 2008의 내장 MSDN에는 2006년자로 작성된 그의 글을 볼 수 있는데, 이제 더는 그런 글을 접할 수 없으니 안타깝다.
Posted by 사무엘
※ 정지 사진
사진술이란, 화학 물질을 잘 이용하여 빛의 강약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어떤 영상을 보존하려는 기법이다.
최초의 흑백 사진이라 흔히 알려져 있는 것은 1825년 프랑스의 조제프 니세포어 니엡스라는 사람이 남겼는데, 노출 시간이 무려 8시간에 달해서 태양이 한 나절 동안 만들어 낸 그림자가 모두 사진에 담길 정도였다.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는 이미 흑백 사진 기술은 사실상 안정화가 되었다.
그러나 흑백으로 만족하지 않고 천재 물리학자인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빛이 RGB 세 축으로 분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낸 후 1861년, 최초의 컬러 사진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물론 지금처럼 쉽게 한 방으로 찰칵 찍은 게 아니라, 색깔 축별로 사진을 세 장 찍어서 정교하게 합성하여 만든 것이므로 방법이 쉽지는 않다. 그 전에는 흑백 사진에다가 수작업으로 색을 입히는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은 물론이고 1차 세계 대전과 1900년대 초를 찍은 컬러 사진도 "존재"는 한다. 단지 실용화가 안 됐을 뿐이지. 컬러 사진 기술 자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찍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6· 25 사진조차도 컬러를 보기가 쉽지 않으나, 서양인이 구한말 1900년대 초에 서울 모습을 찍은 컬러 사진도 극소수 전해 내려오는 게 있다. 컬러 사진은 1920년대에 코닥 사에서 컬러 필름을 대량 생산하면서부터 보편화되었다.
※ 영화
기술적 토대는 19세기 말에 마련되어서 정말 초라한 흑백 무성 영화로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 같은...=_=
그때 영화는 진짜 말 그대로 환등기 같은 걸로 틀어 주는 움직이는 그림일 뿐이었으며, 음악을 따로 곁들이거나 내레이터가 중간 중간 라이브로 설명을 해 줬다.
여기에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 기술이 결합하여 동영상에 소리까지 첨가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이다. 단순히 움직이기만 하던 그림이 말하는 그림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후 한동안 흑백 영화 전성기가 이어지다가 컬러 영화는 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1940~50년대부터 차츰차츰 등장하기 시작했다. 십계(1956), 벤허(1959)가 그 초창기의 컬러 영화이며, 심지어 우리나라 6· 25 직후의 참상도 누가 컬러로 찍어 놓은 희귀 영상 기록이 남아 있다.
※ 텔레비전
비록 화질이 영화보다는 못하지만, 동영상과 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꿔서 장거리로 송수신하는 방식이니, 기술적 난이도는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그 원리는 1920~30년대에 완성되고 실용화됐다. 발명자의 이름을 따서 음극선관(CRT)의 이름을 브라운관이라고도 일컫는다.
미국에서 1931년에 시험 방송이 시작되고 영국에서 1937년, 세계 최초의 TV 방송국인 BBC가 개국했다. 한국에서는 1956년이 돼서야 TV 방송이 첫 시작했다(물론 다 흑백). 즉, 일제 강점기 때엔 우리나라에 TV가 없었고,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지고 있다는 방송은 다 라디오를 통해서나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컬러 TV는 은근히 등장이 늦었다. 기술 개발이 성공한 건 1950년대이지만, 미국에서도 가격 장벽이 낮아지고 본격적으로 보급된 건 60년대가 돼서였다. 그래도 달 착륙 동영상을 흑백이 아닌 천연색으로 볼 수 있게 된 건 정말 천만 다행이다. 70년대 중후반부터 흑백은 이미 골동품 내지 휴대용 초소형 TV용으로나 전락했다.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5공 시절인 1980년대 초반이 돼서야 컬러 TV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 3S 정책이라는 비아냥거림은 있다. 그런데 그럼 박 정희 때는 컬러 TV가 전혀 없었고 땡전 뉴스부터 천연색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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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수천 년을 살아 오면서 뭔가 기록을 남기는 방법이란 글 아니면 기껏해야 그림밖에 없었다. 사진처럼 기가 막히게 초상화나 풍경화를 잘 그리는 화가가 장땡이었다. 아니면, 사람 얼굴 윤곽은 데스마스크 같은 걸로 남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사진술이 개발되어 사진을 남기고 심지어 동영상을 만들고 이를 전파로 만들어 송출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전과 그 후의 인류의 삶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발명이 아닐 수가 없었다.
1900년대 초에는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덕분에, 사람의 실물 사진도 모자라서 살아 있는 사람의 뼛속 사진까지 이미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발달한 사진술은 얼마 안 있어 금성과 달 같은 우주의 모습까지 담아 오는 데 성공한다.
사진을 한번 팟 찍으면 내 영혼이 빠져나가는 줄 알고 혼비백산했을 당대 사람들이 이해가 될 만도 하다.
사람을 해부하지 않고 자기 손의 뼈 사진을 봤을 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
당대의 화가들은 사진술의 발명으로 인해 자기 정체성을 심각하게 재고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도, 도시 건물 같은 거.. 완전 실사 뺨치게 그리는 걸 업으로 즐기는 화가도 있다)
우리는 지금 불과 200여 년 전 사람들조차 상상도 할 수 없던 대단한 문명의 이기를 당연하게 사용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스팸 메일 없는 이메일을 상상할 수 없듯,
사진술의 대중화와 동시에 인류는 이제 음란물과의 전쟁을 치르기 시작하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Posted by 사무엘
수도권 전철 1호선은 서울 지하철 1호선에다가 수도권 전철 경부· 경인· 경원선을 모두 합친 방대한 노선으로, 운영하는 회사도 하나가 아닌 둘이다 보니 운행 계통이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구로-용산은 경부와 경인선 열차가 공용하는 전국 유일의 3복선 구간이고 급행도 다니는 데다, KTX를 포함한 일반열차까지 볼 수 있어서 전국에서 열차가 가장 많이 다니는 뻑뻑한 구간이다.
이 구간은 사실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 된 철도 구간이기 하기 때문에 역별로 개업 시기도 천차만별로 다양하다. 게다가 각 역들의 개성도 은근히 넘치는 덕분에 일일이 분석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구로: 경부선과 경인선의 분기역으로서 1973년에 이미 신호장 역할을 하는 역사가 미리 세워졌다가 1974년, 수도권 전철이 개통하면서 여객 영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전국에서 전동차 선로가 가장 많은 복잡한 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상하*완급*경부/경인 이렇게 2*2*2 에다가 입출고선을 하나 포함하여 선로가 무려 9개. 인근에 전동차 차량 기지도 있다.
신도림: 1984년,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개통하면서 환승역으로 같이 개통했다. 하지만 중간에 이렇게 역이 생기고도 신도림과 다음 역인 영등포 사이의 거리는 1.6km에 달해 여전히 긴 편이다.
엄청난 환승객 수에 ‘비해서’ 승하차 승객은 적은 편이며, 출입구도 2개뿐이다. 코레일이 영업을 하지 않고 오로지 서울 메트로만이 운영하는 역으로, 지하로 들어가는 출입구만 있지 지상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등포: 1899년, 경인선과 함께 개업한 역사 깊은 역이다. 긴 역사에 걸맞게 역 부지가 넓고 KTX를 제외한 모든 일반열차들이 정차한다. 전동차 승강장에서는 지하도로 내려가는 계단도 있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는 게 인상적이다.
신길: 서울 지하철 5호선이 1996년에 개통한 후, 5호선과의 환승을 위해 1997년에 지금의 신도림처럼 1호선 플랫폼만 세워졌다가 1998년 1월에 1호선 역사까지 완공됐다. 두 노선 모두 곡선역이며 특히 5호선은 원래 1호선 쪽으로 가지도 않는 노선이었는데 애써 환승역을 만들려고 노력한 티가 농후하다.
신길 역은 여러 가지로 나름의 특색이 있다. 환승 거리가 굉장히 길다는 것, 2003년경에 이 역만 유독 스크린도어가 만들어졌다는 것, 1호선 역사는 마치 동대구 역처럼 언덕 위에 세워진 구조라는 점이다. 출구는 3개뿐이고 5호선 방면인 3번 출구는 큰길이 아닌 주택가 쪽이어서 찾기 어렵다. 그나마 1호선 역사마저도 없던 1997년엔 출구가 거기 하나뿐이었을 테니 신길 역을 이용하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 같다.
대방: 1974년, 서울 지하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다. 신도림처럼 지하철과의 환승역도 아닌데 지상 역사가 없이 지하도를 통해 들어간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개통 당시부터 이런 형태였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 경부선 3복선 공사 때 역 구조가 큰 변화를 겪었을 거라 추측한다. 마치 경인선 구일 역이 2복선 공사 때문에 출입구부터 시작해 구조가 크게 바뀐 것처럼 말이다.
인근의 다른 역들에 비해 이용객이 적은 편이다. 대방-노량진 사이 구간에서 일반열차 선로가 아래로 꽈배기굴을 틀고 전동차 선로의 반대편으로 들어간다.
노량진: 영등포와 더불어 1899년에 개통한 한국 철도의 시발점이다. 한강 철교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이곳이 경인선의 종점이었다. 역사가 깊은 덕분에 일반열차용 승강장도 있어서 한때는 장항선 완행 무궁화호가 정차하기도 했지만, 철도청이 공사화할 무렵이던 2005년에 일반열차 취급은 인근의 영등포 역에게 완전히 넘겨줬다.
전동차 플랫폼이 4(상하*완급)개 말고도 하나 더 있어서 5개인데, 이는 과거에 경인선 2복선 공사 과정에서 노량진 종착 열차가 존재하던 시절에 쓰였다. 지금은 영등포 역이 광명 셔틀 전동차 때문에 비슷한 이유로 플랫폼이 5개가 되어 있다.
용산: 1900년, 한강 철교가 건설된 후 곧장 개업한 역이다. 한때는 인근의 전자 상가하고만 연결돼 있던 정말 허름한 간이역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호남/장항/전라선 일반열차에다가 중앙선· 경의선(앞으로) 전동차가 만나는 최고의 교통 요지가 되어 있다. 중앙선 단선 플랫폼까지 합쳐서 원래는 플랫폼이 5개였지만 지금은 중앙선 플랫폼이 복선화하여 6개로 늘었다. 즉, 중앙선 열차를 타는 곳과 내리는 곳이 서로 분리됐다는 뜻.
남영: 1974년, 서울 지하철과 함께 개통한 역으로, 급행 전동차가 전혀 없이 복선 섬식 승강장으로 아담하고 조촐하게 만든 티가 딱 느껴진다. 사실 수도권 전철 중에 고가 섬식 승강장 형태는 매우 드물며, 3호선 지축 역 정도가 고작이다. 승강장에 바로 화장실이 연결돼 있는 게 특징이다.
8개역의 내력을 정리하자면
경인선과 함께 있었던 제일 나이 많은 역은 영등포, 노량진, (용산).
서울 지하철 1호선과 함께 개통한 역은 구로, 대방, 남영.
그보다도 나중에 환승역으로 개통한 역은 신도림(2), 신길(5)이 되겠다.
Posted by 사무엘
이번에는 각 교통수단을 둘둘씩 묶어서 비교한 것이다. ^^;;
※ 도로-철도 VS 비행기-배
- 전자는 육상 교통수단인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가장 간단한 차이가 존재한다. 후자는 전자보다 날씨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으며, 날씨가 심하게 안 좋을 경우 심지어 결항까지 한다.
- 전자는 탑승자의 신변 확인이 없이 걍 돈 내서 승차권만 갖고 있으면 누구나 탈 수 있다. 하지만 후자는 탑승권에 임자가 따로 있으며, 하다못해 피서차 고기잡이 뱃놀이를 가더라도 승선자 명단과 연락처는 미리 확보해 놔야 한다. 후자는 사고가 날 경우 동체 내지 탑승자가 아예 실종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 도로-비행기 VS 철도-배
- 후자가 전자보다 대체로 에너지 효율이 높으며, 대량 수송에 더욱 친화적이다.
- 후자는 전자에 비해 가감속 성능이 떨어지며, 높낮이 변화에 무척 취약하다는 특징이 존재한다. 철도는 작은 마찰계수의 특성상 등판능력이 매우 떨어지며, 배는 고도 자체가 해수면에 완전 붙박이 고정. ㅋㅋㅋㅋ
- 전자는 언제나 우리 승강장과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동체의 앞부분 단일 입구를 통해 탑승한다. 하지만 후자의 철도는 언제나 승강장과 평행인 옆면으로 탑승하며 터미널형 탑승 형태는 매우 드물다. 배는 수직형과 평행형이 모두 쓰이는 듯하나, 매우 큰 배는 철도처럼 평행형이다. (타이타닉 같은 옛날 영화들에서 배 타는 장면 참고)
※ 도로-배 VS 철도-비행기
- 전자는 평면 위에서 조향이 가능한 깔끔한 2차원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후자의 철도는 앞뒤로만 달릴 수 있는 1차원 교통수단이고, 비행기는 완전한 3차원 교통수단이다.
- 후자는 기술 개발을 통해 전자보다 속도를 월등히 더 끌어올릴 여지가 충분히 있다. (고속철, 초음속기 등^^)
- 후자는 전자보다 다니는 길에 훨씬 더 민감하다. 자동차는 그래도 비포장 도로에서도 달릴 수 있고 배 역시 쇄빙선 같은 것도 있긴 한 반면, 철도는 매일 정교하게 선로 보수를 해야 하는 교통수단이며, 비행기 역시 활주로에 조금이라도 이물질이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배의 경우, 잠수함은 여객용으로 통용되는 교통수단이 아니므로 고려에 넣지 않았고 언제나 해수면을 떠 다니는 교통수단만 생각한 것임.
Posted by 사무엘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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