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 34 : Next »

2007년 내일로 티켓 여행기

새 홈페이지에다 이 귀한 자료를 내가 아직 올리지 않고 있었구나.
병특 회사에 다니는 중이던 2007년, 본인은 나이가 만 24세였던 덕분에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일로 티켓 여행을 즐겼다. 지금으로부터 딱 4년 전에!

사실은 내일로 티켓 자체가 그때 처음으로 생겼었다. 본인은 ISEF 참가 1세대일 뿐만 아니라 내일로 티켓 1세대. ㄲㄲㄲ
그 후로 코레일이 내일로를 정책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내일로 UCC 공모전을 하고, 하계뿐만이 아니라 동계 내일로도 시행하고, KTX 내일로에다 일반 내일로도 2회에 한해 KTX 운임 50% 할인까지 도입했지만 내 때는 처음이라 그런 게 없었다.

그때는 정말 꿈같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보이저 호가 우주의 사진을 찍어서 지구로 전송하듯, 미지의 세계를 철도로 탐사하면서 수많은 사진, 동영상을 찍었다. 여행 경로 구상과 모든 계획은 내가 직접 했고, 나중에는 내일로 티켓 여행을 떠나는 후배에게 코치도 해 줬다.

내일로 티켓을 이용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목걸이 명찰 형태의 티켓을 받는다. 이거 무슨 대회, 학회, 워크숍 같은 데에 등록하고서 받은 명찰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마치 한국의 모든 철도역이 대회장이 된 것 같다. 실제로 여행 기간 동안 본인의 모습은, 미리 정해진 오전· 오후 일정대로 철도 워크숍에 참석한 기자 내지 연구원 같았다.

7일 중 4일은 주말+제헌절+회사 연차를 이용해서 연달아 여행을 즐겼고, 나머지 3일은 일종의 번외편으로 회사 퇴근 후에 밤에 또 기차를 타고 왔다. 수원까지만 갔다 오거나, 심지어 광주까지 갔다가 새벽 상행 열차를 되돌아온 후 바로 다시 출근-_-, 그리고 주 간선이 아닌 경춘선만 타고 돌아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티켓을 사용했다. ^^;;

귀차니즘에 입각하여 하이라이트 중의 하이라이트 사진만 첨부한다. 지금 나이가 되는 후배 여러분들은 나중에 나이 들어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당장 내일로 여행을 가고 특히 새마을호를 많이 타 두기 바란다.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이런 충고를 하는 거다. ㄲㄲ

차창 밖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동해남부선 해운대 부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산 지하철 2호선의 북서쪽 구간은 낙동강+경부선과 나란히 달리기는 하지만 서울과는 달리 고저 차이가 존재하며, 광역전철 직결 운행도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부선에서 경치가 제일 빼어난 곳.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마곡 역 승강장 사진과 더불어 2007년에 본인이 남긴 명장면 중 하나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북선으로 진입하는 열차 안에서 경부선과 경부고속선을 나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이 날 유난히도 날씨가 참 좋았다. 그리고 최강 광량.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야말로 산과 강, 들판뿐이던 영동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동선과 태백선이 합류? 분기? 하는 지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일로 티켓의 대단원을 찍은 곳! 이 마석 역은 본인이 방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리고 경춘선 전철이 개통하기 한참 전에 이미 선로가 이설되면서 철거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인은 이곳에 올린 사진들에 딱히 워터마크를 넣는다거나 내 꺼라는 티를 안 냈다. 우클릭을 막지도 않고..
한국 철도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미래의 철덕 꿈나무들에게 동기와 자극을 주기 위한 비영리 목적이라면, 누구라도 마음대로 퍼 가고 사용해도 좋다. 새마을호 덕후인 사무엘 님이 찍은 거라고 출처 밝혀 주면 Thank you이지만, 강요는 안 함..;; 자기가 찍은 거라고 거짓말만 안 하면 된다.

사실, 웹에 올리기 위해 해상도를 팍 낮춘 것만으로도, 디카 원본 사진에 비해서 엄청나게 품질을 저하시킨 것이다.
원본 사진을 누가 갖고 있는지만 대조해 봐도 사진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는 바로 판가름이 날 테니, 인터넷 상으로 그렇게 저작권 따지지는 않을 생각.

Posted by 사무엘

2011/07/12 08:11 2011/07/12 08:11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539

아직 윈도우 3.1 시절이던 1990년대 초중반에, PC에 최초로 CD-ROM과 사운드카드 같은 멀티미디어 열풍이 불었다.
그 후 얼마 안 가 온통 인터넷 열풍이 불었다. 요즘 스마트폰 열풍인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초기에는 인터넷도 모뎀으로 접속을 하느라 인터넷을 쓰는 동안에 별도의 접속 유틸리티를 띄워야만 했지만, 이내 전용선이 깔리고 전용선으로도 모자라 오늘날엔 무선 인터넷이 등장했다. 2010년대의 무선 인터넷이 10년 전의 유선 인터넷보다 더 빠른 시대가 됐다. 흠좀;;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메일이라는 게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그 이름도 유명한 ‘한메일넷’은 이미 1990년대 중후반부터 전국민에게 무료 이메일 계정을 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포털 사이트로 발전했다. 포털 사이트의 이름은 ‘다음’이 된 지 오래이지만 과거 호환성을 위해 이메일 계정의 도메인은 여전히 hanmail.net을 쓰고 있다.

그런데 본인은 드물게도 드림위즈 이메일을 쓰고 있다. 1999년, 한창 신문 광고를 연달아 내면서 자기 사이트를 홍보하던 이 찬진 사장의 모습에 영향을 받아서 가입한 것 같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직접 돈은 한 푼도 낸 것 없이 이메일과 파일 보관함을 잘 쓰고 있고, 심지어 내 홈페이지조차도 처음엔 이곳 계정에서 시작했으니 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싼 게 비지떡인 건 사실이다. 드림위즈는 처음에는 이메일 계정의 용량이 15MB, 홈페이지 계정의 용량은 5MB밖에 안 되었다. ㄲㄲㄲ
한때는 SMTP/POP3을 지원해서 아웃룩으로도 수월하게 메일 확인이 가능하였으나 2002년 무렵에 금세 그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그런데 1999~2000년대엔 내가 메일 확인을 며칠에 한 번도 아니고 몇 주에 한 번 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숙사에서 사는 한낱 고삐리가 뭐 중요한 연락을 주고받을 일도 없고 지금처럼 자주 인터넷에 들어갈 일도 없었고 여건도 안 됐으니까. 이메일이 없던 시절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나마 고3 때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 후에 방송국 관계자와 연락 주고받느라 이메일 확인 빈도가 잠깐 늘었던 것 같다.

그 후 지금은? 하루에도 몇 시간 간격으로 메일을 확인한다. -_-;;; 가히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생각하면 마치 한때 뻘밭, 논밭이던 땅이 지하철까지 다니는 최대의 번화가로 개발된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온라인 공간도 오프라인 부동산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비유할 수 있겠다.

본인은 카페에 가입하기 위해 다음 ID도 갖고는 있지만, 거기 이메일 주소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공개한 적이 없고 로그인도 며칠에 한 번꼴로 한다. 직장 생활만 하던 시절에는 진짜로 로그인을 몇 달에 한 번 한 적도 있다. 거기도 가입한 지 최하 5년은 넘었지만 그 ‘땅’은 아직까지 전혀 개발되지 않고 있다.

초창기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다모임이나 아이러브스쿨 같은 커뮤니티가 유행처럼 번졌었고 세이클럽도 있었다. 싸이월드는.. 2000년대 초에 떠오르는 스타였으나, 지금은 블로그라든가 다른 social network들에 밀려서 완전히 망한 상태.

메신저로는 대학 입학과 함께 가입한 MSN을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다. hotmail은 메신저에 가입하기 전부터 이용은 해 왔지만 드림위즈 같은 주류가 되지는 못해 있다. 그리고 메신저 자체도 오늘날은 MSN이 급속도로 몰락하고 네이트온로 물갈이된 듯하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는데, 카이스트 메일 주소가 아직까지 살아 있고 로그인 가능하다! ㅜㅜ 졸업 후로 몇 년째 돌보지 않고 지냈는데, 편지함의 용량도 생각보다 많아서 스팸 메일이 수천 통 쌓여 있었다. ㄷㄷㄷㄷ;;

요즘 이메일의 종결자는 단연 gmail이라 하겠다. 본인은 이건 5년쯤 전에 지인으로부터 추천장을 받은 덕분에 가입했다. 드림위즈보다 용량도 많고 훨씬 더 편리한데도 불구하고 그냥 10년도 더 전부터 써 온 드림위즈를 아직까지도 주요(가장 자주 확인하는) 메일 계정으로 사용 중이다. 그냥 관성 때문이다. 이미 인지도가 압도적이니까..;;

드림위즈 외의 본인의 이메일 계정을 아는 분이 독자 여러분 중에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계정은 확인 주기가 최하 며칠에서 몇 주에 달하기도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드림위즈를 사용하기 바란다. 아울러 본인은 포털 사이트의 쪽지 역시 거의 확인하지 않음을 알린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01 08:25 2011/06/01 08:25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519

개인 홈페이지 개설 10주년

본인이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한 지 이제 벌써 10년이 됐다. 2001년 5월 10일 이래로 말이다.
10년 전 그때는 본인이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인터넷 세벌식 사랑 모임을 통해 <날개셋> 한글 입력기 1.1x가 갓 공개되던 때였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그 시절 추억에 잠겨 본다.

그때는 HTML 코딩으로 개인 홈페이지 만드는 게 유행이었고, 포털 사이트들도 맞춤형 홈페이지 마법사 같은 걸 제공했었다. 사실, 무려 2001년이 돼서야 개인 홈페이지를 만든 본인도 시기적으로는 이른 게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홈페이지는 모름지기 업데이트가 홈페이지를 처음 새로 만드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법! 본인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공개 소프트웨어를 꾸준히 개발하고 있고, 또 쉴 새 없이 여타 컨텐츠-_-들도 공급해 온 덕분에, 대형 커뮤니티도 아니고 얼어붙은 듣보잡 공간도 아니면서 꽤 잘 돌아가는 개인 홈페이지를 10년째 잘 유지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 추세에는 당분간 변화가 없을 것이다.
내 홈페이지 방명록에 최초로 글을 남기신 분은 kz 님이었다.

내 홈페이지가 초창기에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곳은, 지금은 없어진 인터넷 세벌식 사랑 모임이었다. 내 홈페이지뿐만이 아니라 거기에다가도 <날개셋> 한글 입력기 1~2.x를 독점(?) 공급했으니 그쪽 바닥에서 유명해질 수밖에. 내 홈페이지는 세사모의 인지도를 등에 업고 성장한 셈인데 이것도 다 지난 추억이 되고 말았다.

잘 알다시피 내 홈페이지의 초창기 주제는 한글, 세벌식, 컴퓨터 프로그래밍 쪽이었으며 지금도 그 구도가 크게 달라져 있지는 않다. IOI 문제 번역과 정렬 알고리즘 모음집 같은 자료는 국내 검색엔진에 별도의 디렉터리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일종의 성지가 되었다.
이에 덧붙여 10년 전에 없던 커다란 topic이 추가된 게 둘 있으니 하나는 기독교와 성경 카테고리요, 다른 하나는 그 이름도 유명한 철ㅋ도ㅋ이다.

이 홈페이지는 처음에는 드림위즈 계정에서 시작하였으나, 1년 남짓 후 지금의 new21로 갈아탔다. 꾸밈이라고는 없이 진짜 생 HTML 텍스트+링크만 잔뜩 있는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다. 지금 홈페이지의 버전은 지난 2010년 1월부터 시작된 시즌 4이다. 2002년의 시즌 2때부터 new21 계정 + 제로보드가 사용되었으며, 2006년의 시즌 3은 시즌 2에서 게시판의 용도별 정리 + 앞서 언급한 신규 주제(기독교, 철도)의 추가에 따른 컨텐츠 보완이 주 목표였다. 아, ‘절대공간’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소개된 게 시즌 3부터이다.

시즌 4는 일종의 쇄신이었다. 홈페이지의 거추장스러운 컨텐츠들을 상당수 삭제하여 대문을 일종의 시즌 1처럼 다시 단순화시켰다. 그리고 무려 8년 가까이 커뮤니티 공간으로 써 온 구닥다리 제로보드 4 게시판을 없애서 과거와의 과감한 단절을 선언했다. 그 대신 설치형 블로그 엔진을 얹었다. 이 얼마나 큰 변화인가?

원래 시즌 4 작업을 홈페이지 개통 10주년에 맞춰서 지금쯤 하려고 했는데 2010년에 허겁지겁 추진한 이유는,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새로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홈페이지를 바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게 준비 작업의 일종인 셈이었다. 블로그 자체도 무려 2010년이 돼서야 정말 엄청나게 늦게 도입한 것이기도 하나-_-;;,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블로그 글이 이제 벌써 500개에 달해 있다. 이 정도면 옛날 제로보드 시절은 까맣게 잊어버리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시즌 5는 2014~2016년쯤에 내가 박사 과정이 꺾이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거의 완전체 수준에 도달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날개셋> 다음 아이템의 연구 결과가 나올 무렵쯤에나-_-;; 선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때쯤이면 나도 스마트폰을 쓰고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웍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ㅎㅎ 아예 홈페이지 계정을 new21 말고 다른 걸로 바꿀지도.

시즌 1과 2가 본인의 대학 시절을, 시즌 3이 본인의 병특과 직딩 시절을 대표했다면 시즌 4는 본인의 대학원 시절을 대표할 것이며 시즌 5는 그 후 본인의 인생에서 정말 결정적인 순간을 함께하는 홈페이지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무렵에 연애와 결혼은 가능하려나.. ㄲㄲㄲㄲㄲㄲ
아울러, 시즌 5 때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영문/일본어 소개 페이지를 만드는 것도 계획되어 있다.

나는 홈페이지의 덕을 정말 많이 봤다. 홈페이지 덕분에 맺어진 인연을 생각해 보면... 물론 이따금씩은 나도 열폭도 하고 키배도 뜨고 무진장 과격한 글도 쓰면서 친구뿐만이 아니라 적도 만들고 내 홈페이지를 떠나는 사람도 만들었다. 정치 놀이, 종교 놀이는 20대 초· 중반의 패기로 하기에는 정말 재미있었다. ㅎㅎㅎㅎ

그때 내가 조금만 분을 참고 친절한 자세를 보였으면 동지가 떠나지는 않았을 텐데 약~~간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아쉽다거나 후회되는 건 아니다. 내가 무슨 장사를 하다가 고객을 잃은 것도 아니니 뭐.. 그때는 나도 현실이 내 정신연령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기가 막힐 때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민감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쓸 때의 태도를 좀 고쳐먹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이런 사실을 깨닫고부터였다. 내가 아무리 진지하게 의분(?)을 담아서 글을 써 봤자, 일단 마음이 편견에 완전히 닫혀 버린 사람에겐 내 글의 진심이 절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

내가 남과 견해가 달라서 욕 얻어먹는 거야 전혀 두렵지 않은데, 남이 나에 대해서 나의 실제 모습과는 다르게(나쁜 쪽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건 나에게 마이너스가 아닐 수 없다. 가령, 나는 정말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에 의거해서 이 승만 전대통령을 존경스러운 애국자라고 주장하는 글을 썼는데, 남은 그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서 김 용묵은 그냥 뉴라이트 수꼴 부류라고 낙인을 찍어 버리는 것이다. ㄲㄲ

그래서 지금까지 이곳 블로그 글을 보신 분은 이미 추세를 느꼈겠지만, 시즌 4를 시작하면서 본인은 본인만의 색깔과 이념과 진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중립· 객관성을 지키고 거부반응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최대한 표방했다. 지금 같은 글투는 그런 옛날의 시행착오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뭐, 비록 옛날 근성이 완전히 죽은 건 아니기 때문에, 요즘도 사형 제도 같은 열불나는 이슈가 나오면 약간 흥분 안 하는 건 아니다만..

그리고 예전에 비해서 서브컬처 유머들의 패러디가 글중에 부쩍 늘었다는 걸 느낄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 화백 만화 대사 같은 것. ㅋㅋㅋㅋ 거기에다가 성경도 들어가고 철도도 들어가니, 이런 생뚱맞은 학문 융합은 오로지 김 용묵의 절대공간에서만 볼 수 있는 컨텐츠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 홈페이지를 지켜봐 준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을 부탁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10년이 지났고 앞으로 또 10년 뒤에는 이곳이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그때는 개근 방문자 위주로 오프라인 모임이라도 좀 추진해 볼까 싶기도 하다. ^^

Posted by 사무엘

2011/05/11 08:47 2011/05/11 08:47
Response
No Trackback , 8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509

그린벨트 지대 답사

독자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본인은 지독한 철도 덕후이다.
하지만 자가용이 있다면, 철도가 닿지 않는 오지를 다녀 보고 싶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런 곳이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행정구역상 분명 서울인데도 높은 빌딩과 아파트들은 온데간데없고, 푸른 들판과 비닐하우스와 화훼 단지, 단독주택들이 즐비한 흠좀무스러운 곳이 있다. 그린벨트라고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다.

본인은 대학 시절에 인터넷 신문에서 '지하철 타고 다니는 어느 농부'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이건 '소리 없는 아우성'만큼이나 얼마나 안 어울리는 조합인가? 화제의 인물은 집이 광명시에 있어서 7호선 역세권인데, 잘 알다시피 천왕 역 일대가 허허벌판이다 보니까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산다고 한다. ㅎㄷㄷ;;
또한, 강서구의 마곡 역 일대는 아예 지하철역의 개통마저 10년이 넘게 무산시켰을 정도로 대표적인 미개발 지역이었다. 1990년대에 고 건 서울 시장이, 후세를 위해 택지 개발을 보류했기 때문.

천호대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 보면, 강동 역에서 서울 지하철 5호선은 상일동과 마천 방면으로 꺾어지지만, 가던 방향으로 하남시 쪽으로 계속 진행하면 드디어 시가지가 끝나고 별천지가 펼쳐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강남만치 금싸라기 땅과(2, 3, 7, 9호선과 분당선 지하철!) 미개발 지역의 격차가 심한 곳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서초구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동은 그린벨트로 묶여서 시간이 정지해 버린 시골 마을인데, 거기도 듣자하니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하더라. 굳이 미어 터지는 서울 도심에서 지지고 볶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신 분들. =_=;;

그런데, 미국 LA에 가 보니까 일반 서민들이 다 그런 시골 마을에서 살던데... ㅠ.ㅠ
집집마다 차고가 있고 가족 구성원이 제각기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 아파트라고 해 봤자 달랑 2~3층짜리 공동 주택인데, 좀 빈민이나 아직 경제 기반이 부족한 신혼 부부들이나 사는 곳이고.. -_-;;; LA 시내는 땅값이 너무 비싸서 다들 베드타운 위성도시에서 사는데, 외곽에서 시내로 매일 서울-대전뻘 되는 거리를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게 일상사라고 한다. 이런 게 역시 잘 사는 대륙 국가의 기상이다. -_-
그냥 대륙도 아니고(중국은 뭐.. -_-), 그냥 잘 살기만 하는 나라(일본은 국가가 잘 사는 것만치 서민이 잘 사는 나라는 아님)도 아니고, 잘 사는 대륙 국가가 말이다.

뭐 어쨌거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홀연히 답사를 다녀왔다. 세곡동으로 고고씽.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가 언제까지나 개발 제한 구역일지는 모르겠다. 서울에 녹지대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ㄷㄷㄷ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너무나 한적한 골목. 내가 몰고 온 차도 저 차들 중에 있다. ^^;;
내 차 남 차를 떠나서, 공공장소에서 차 번호는 남의 초상권이나 주민 등록 번호만큼이나 유출하거나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므로 모자이크 처리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그런데 주차 문제는 좀 심각할 듯.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같은 성남시 내부이지만, 분당과는 달리 경부 고속도로 서쪽에 있는 성남시 고등동, 신촌동은 역시나 도시 분위기와는 거리가 너무나 먼 곳이다. 군사 시설인 서울 공항까지 있다 보니 더욱 개발 제한이 심할 것 같다. 이 크고 아름다운 도로는 널널하기 그지없어서 차들이 쌩쌩 달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 공항은, 청와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민간 지도에 표시도 되어 있지 않은 군사 시설이다. 그래서 청와대처럼 청색 기와 지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비군 훈련장을 지나서 양재 IC와 가까워지면서 시골이 아닌 서울 분위기가 나고, 차들이 급격히 늘어난다. 양재 IC 근처에는 현대와 기아 사옥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데, 마치 대전 역 근처에 있는 코레일· 철도 시설 공단 쌍둥이 건물을 떠올리게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 공항과 세곡동 일대의 한적한 도로와는 달리, 경부 고속도로는 평일 낮에도 차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들은 답이 없는 지경이다.
경부 고속도로는 딱 양재 IC 이남부터가 도로 공사 관할이고, 그 이북은 서울시 관할이다.

운전을 해 보니까 참 재미있다. 생업에 종사하기 위해 차를 매일 몰아야 한다면 스트레스 받고 피곤할 거고, 차량 유지하느라 돈도 딥다 많이 깨지겠지만, 1주일에 한 번 남짓 취미로 하는 거라면 이보다 즐거울 수 없을 것이다.
틈나는 대로 이런 그린벨트라든가 철도 중앙선 구간의 간이역을 자가용으로 답사해 보고 싶다. 내가 사는 곳이 그래도 동부이다 보니 하남, 구리, 양평 같은 곳에 관심이 간다. 서울은 동남부가 철도 인프라가 유난히 열악하기도 하니..

서쪽의 김포는 전형적인 도농 복합 도시인 것 같다.
양평은 한강 상수도를 보존해야 한다는 명목 때문에 강력한 개발 제한이 걸린 곳이다. 그래서 서울과 상당히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휴양· 관광 도시 역할이나 하게 될 듯하다.

본인의 고향인 경주는 잘 알다시피 문화재 보존 떡밥 때문에 아파트나 상업용 건물의 층수 제한이 걸려 있었다. 좀 과장 보태자면, 건물 지으려고 땅만 팠다 하면 각종 유물이 줄줄이 출토될 지경이었으니 개발을 제대로 할 수 있었겠나? 그래서 소중한 문화재들이 정작 건설업자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고 한다.

박통 하면 흔히 오로지 경제 개발, 성장주의만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서울의 과포화와 지나친 팽창을 염려하고 경계도 했으며, 요즘 용어로 표현하자면 행정수도 이전도 구상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행정력을 동원해서 서울 같은 대도시의 어느 구역 이상부터는 개발을 금지하고 녹지로 남기는 그린벨트를 조성했다.

물론, 그린벨트 구역에 땅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게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며, 어떤 면에서는 그게 재산권을 침해하는 악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대단히 아이러니한 사실은, 주로 진보 진영에서(=박통을 욕하는 편인) 그린벨트 정책을 환영하고 박통의 업적이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보수 진영에서 그 정책을 비판한다고. 서로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형태라든가 처지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_-;;;

차를 굴리기 시작했으면, 여친 사귀어서 태우고 다니면서 근처 맛집이나 좋은 데이트 코스 답사를 하는 게 보통일 텐데 나는 드라이브도 완전 오덕스러운 스타일로 하는 거 같다. ㅠㅠㅠ Looking for you와 Oh Glory Korail 들으면서 차 운전하는 재미를 여러분들이 이해하시겠는가? -_-;;;

Posted by 사무엘

2011/05/09 08:54 2011/05/09 08:54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508

카이스트 투어

본인, 요즘 너무 바빠서 몸이 힘든 것만 빼면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좋은 상태이다.
오늘 드디어 <날개셋> 한글 입력기 6.0의 '코딩'이 모두 끝났다! 한동안 자체적으로 여러 테스트를 하고, 지금까지 구현한 기능들을 도움말로 문서화만 하면 진짜 끝이다.

그런데 이거 좀 하다 보면 학교 과제의 압박이 찾아오고, 그거 끝내고 숨 좀 돌리려고 하면 회사일이 급 바빠지고..;; 이리저리 심하게 치이는 느낌이다. 회사를 언제까지 이렇게 다닐 수 있을지는 장담을 못 하겠다. 어차피 박사 과정까지 이런 상태를 유지시켜 줄 리도 없을 테고.

그런 와중에도 짬을 내서 학부 모교에 좀 들렀다. 대학원에 간 이래로 이번이 두 번째이다. 볼일이 좀 있어서였다.

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문에서 시작하여 학교를 가로지르는 간선 도로. 연세대로 치면 백양로에 해당한다. 하지만 카이스트의 도로가 훨씬 더 넓은 데다 교통량도 더 적다는 건 주지의 사실. 그래서 카이스트는 도로 곳곳에 달리는 차량의 속도를 표시하고 통제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연세대도 카이스트처럼 서쪽에 쪽문이 있고, 비록 카이스트의 엔드리스 로드만치 길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거기로 오솔길이 나 있다. 이 점에서는 지형이 두 학교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서울대나 고려대하고보다야 서로 닮은 구석이 좀 있으니까..;;

차를 가지고 들어가려면 주차권부터 뽑아 가야 하는 땅 좁은 인서울 대학들과는 달리, 카이스트는 외부 차량도 간단한 신원 조회만 받은 후 진입 가능하다. 곳곳에 주차된 차들로 북적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딱히 대외 행사가 있는 날만 아니라면, 카이스트 내부는 어디든지 차 세울 곳 고민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지금 소속된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갈 뻔 했던' 대학원.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저기는 근본적으로 내 적성이 아니었으며, 떨어지길 잘 했다.
저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카이스트에서 나름 가장 학과간 협동과정스러운 대학원이며, 자교생보다는 외부 학생들이 많이 온다. 인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예체능 쪽 사람까지.

내가 지원했을 때만 해도 저기는 경쟁률이 꽤 됐고, 여전히 인기가 좋은가 싶었는데... 그런데 최근에 주변 학생에게서 얘기를 들어 보니, 정체성의 위기라고나 할까, 당초 의도했던 학과간 융합이 원활히 잘 되지 못하고 교내 분위기가 딱히 좋지는 않다고 하더라. 이대로 가다간 심하면 전산학과로 도로 흡수될지도 모른다고..;;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이스트의 전통적인 건물은 딱 두 가지 타입이다.
주로 북쪽에 있는 붉은 벽돌 건물, 아니면 주로 강의동인 하늘색 타일 건물. 그리고 건물 높이는 4~5층 남짓. 이게 철도로 치면 간이역 같은 정취를 느끼게 한다.
다만, 요즘은 온통 이질적이고 굉장히 높은 건물도 많이 생겨 있다.

난 저 길쭉한 기계공학동 보면 KTX 천안아산 역이 떠오르곤 했다. 아래 사진과 비교해 보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 남표 총장을 비판하는 대자보는 여전히 학부 식당 맞은편 게시판에 걸려 있었다.

5.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강당은 입학식과 졸업식뿐만이 아니라, 아예 카이스트 정식 입학 전부터 기관 토플을 치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한 장소이기도 하니 학생들에게 친숙할 수밖에 없다.
창의학습관이 2004년경에 생기기 전엔 기초 필수 과목들의 시험(중간· 기말)을 치는 장소이기도 했다.
카이스트는 매주 대강당에서 금요 문화 행사가 열리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정작 본인은 재학 시절에 그런 데에는 거의 못 갔다.

아, one more thing..
카이스트는 강의실 내부에 완전 무료 WIFI가 바로 잡혀서 참 좋다.
연세대처럼 뭐 학번 입력하고 로그인 한다거나 접속 클라이언트· 보안 솔루션 나부랭이 깐다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1/04/20 18:27 2011/04/20 18:27
Response
No Trackback , 5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499

카이스트 사태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넓은 잔디밭 부지 위에 지어진 하늘색 건물들, 그리고 까리용과 오리 연못.
지극히 카이스트스러운 분위기를 잘 표현한 풍경 사진이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올해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3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카이스트 학부생이 무려 4명이나 연달아 자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거기다가 교수까지 한 분 자살!). 몇 년 전의 일명 '카이스트 미네르바' 사건 때는 인터넷 공간 위주로 카이스트가 구설수에 올랐다면, 이번 사건은 정말 개교 이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충격적이고 안타깝고 불미스러운 일인지라 오프라인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되었다.

이 일 때문에 연일 도마에 오르며 까이고 있는 인물은, 카이스트 개혁의 장본인인 서 남표 총장이다. 서 총장 개인은 정말 너무나 대단한 인물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세계구 급의 과학 수재들이 가는 MIT에서 그냥 교수로도 모자라서 학과장을 역임한 박사 중의 박사요, 교수 중의 교수이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자 미국은 이를 두뇌 유출이라고 아까워했다. 서 남표의 인생 경험과 사고방식이라면, 국비로 공부하는 주제에 학부 때 평점 3.0? 3.3도 못 받는 쪼렙들은 징벌성 등록금 좀 매겨도 된다.

내 지론은, 아까운 학생을 4명이나 잡아먹은 서 남표 총장을 당장 짜르고 징벌적 등록금· 영어 강의 따위를 전면 폐지하자는 게 아니다.
또한, 요즘 대학들의 학점 인플레가 얼마나 심한지는 익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카이스트의 상대 평가 자체도 반대하지 않는다. 똑같은 CD-_- 그레이드라도 카이스트나 아주대나 서강대에서 받은 CD는 다른 학교의 CD하고는 어차피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그건 사회가 알아서 인정해 준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사항은, 그렇게 상대 평가를 하는 주제에 징벌적 등록금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 이건 누가 봐도 문제이다.
그리고 애초에 애들을 오로지 수학· 과학 덕후 공부기계 nerd, geek, science wonk로만 만들려면, 그 정책에 위배되는 애들을 뽑지 말았어야지.
뽑기는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해서 고등학교에서 영어나 수학· 물리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다른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한(?) 애들을 대인배스럽게 많이 뽑아 놓고서는,
걔네들을 별다른 배려 없이 획일화한 시스템에다 꽉꽉 집어넣고 부적응자는 등록금 폭탄으로 응징하는 것도, 매우 잘못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은 의무 교육이 아닌 대학에 대해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철학을 기본적으로, 큰 틀에서는 지지한다.
그 학교의 건학 이념과 정책에 동의할 수 없으면 학생이 애초에 거길 가지 말거나 나중에라도 자퇴를 해야지,
기독교계 학교에 제 발로 가 놓고는 종교의 자유 운운하면서 채플 거부 시위 따위나 해서는 안 된단 말이다.

그런 것처럼 카이스트도 거기가 얼마나 유별난 곳인지는 지금까지 사회에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니 거기에 적응 못 할 사람은 애초에 거기에 안 가야 한다. 생각은 그렇지만 사회가 그렇게 이상적인 모습처럼 단순하게 돌아가지는 않으니 현실은 시궁창이다. 학교나 총장이 잘못이 없다는 소리는 당연히 아니다. -_-;;

카이스트는 원래 대학원만 있는 학교였다. 지금보다 훨씬 더 소수정예 집단이었고, 학생들은 100% 기숙사에 학비 100% 면제는 물론이요, 병역까지 사실상 면제나 다름없는 어마어마한 혜택이 있었다. 프로필이 1970년대의 '서울대 학사, 카이스트 석사, 외국 박사'인 공대 교수들은 전형적으로 이 혜택을 입은 분들이다.1)

하지만 지금 카이스트는 학부도 생겼고 특히 서 총장 때 벌어진 엄청난 대학 몸집 부풀리기 덕분에 학생 수가... 마치 새마을호 정차역 수가 늘듯이(ㄲㄲㄲㄲ) 굉장히 늘었다. 그래서 지금 기숙사가 부족해서 난리이고 이 많은 학생들에게 전액 수업료 면제를 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한 지금은 근본적으로 1970년대처럼 어마어마한 인센티브를 주면서 이공계를 갓 육성하던 시절도 아니요, 그런 옛날 방법만으로 이공계를 획기적으로 띄워 줄 수 있지도 않다. 21세기에는 카이스트의 정체성에도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인은 아직까지는 서 남표 식 방법이 근본적으로 나쁘다고만 보지는 않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전임 총장인 로버트 러플린은, 카이스트를 아예 종합 대학으로 바꾸고 로스쿨과 의대를 만들려고까지 했었다. 그것보다는 낫잖아?

수업료 하니까 생각난다. 그렇게도 세금이 아까우시거들랑, 성적 나쁜 애들보다는...
국비로 단물 실컷 빨면서 공부하고도(그리고 그놈의 성적도 아주 잘 나왔는데도!) 의대로 돌아서 버린 친구들한테서나
먹었던 수업료 뱉게 하는 게 국익을 위해서 차라리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_-

하지만 그런 제도는, 우리나라가 부카니스탄 같은 국가가 아니며 카이스트도 이공계 연구소 의무 복무-_- 기간이라도 존재하는 사관학교급이 아닌 이상... 밀어붙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일개 기관이 개인의 차후 진로를 어떻게 일일이 다 찾아다니고 간섭할 수 있겠나?)

또한, 더 생각해 보면 의대 가는 애들 탓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이공계가 얼마나 비전 없고 암울했으면, 어렸을 때 순수하게 과학자의 꿈을 품었던 애들마저 그 꿈을 접지 않을 수 없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서 총장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학생상처럼 그렇게 미치도록 애들 공부시켜서 수학· 과학 덕후를 만들어 봤자 한국에서는 겨우 사악한 악당 공 박사(이 말년 시리즈 ㄲㄲ)밖에 되지 않는다면... 과연 학교가 서 총장의 의도대로 돌아가 줄까?
요즘 평범한 애들이 아무 비전이 없이 9급 공무원에 목숨 건다면, 걔네들보다는 더 머리 잘 돌아가고 똑똑한 애들은 의대· 법대에 매달리는 셈이다.

본인의 재학 시절에는 자살자는 아니고 풍동 실험실 폭발 사고 때문에 학교가 제대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기억하는 분이 계시는지? 이 사고로, 박사 과정 대학원생 한 명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또 한 명은 다리를 잃었다. 역시 이공계의 비극.. =_= 항공 우주 공학은 레어템이어서 기계/전자 공학이나 전산학만치 흔하고 학생 많은 과도 아닌데... 인재의 손실에 따른 타격이 어느 과보다도 컸을 것이다. 사망자인 고 조 정훈 씨에게는 명예 박사 학위--훈장이나 일계급 특진은 아니고ㄲㄲ--가 추서되었다.2)

수학· 과학 덕후와는 거리가 멀고 아예 문과로 계열을 바꾼 본인조차도 카이스트를 잘 버티고 졸업해 나왔는데... 자살이든 사고사든, 뜻하던 학업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심히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 얼마나 국가적인 손실인가?
본인의 졸업 논문 지도 교수이던 전산과의 ㄱ 교수님도 워낙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분이시다 보니, 이 사건과 관련해서 이분의 인터뷰 문구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카이스트 학사 졸업생으로서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니, 아마 서 총장은 이 승만 초대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것 같다. 화려한 미국물 프로필, 천재형, 민심을 모르는 독재자형, 누군가가 죽는 유혈-_- 사태, 유쾌하지 못한 퇴임 같은 점에서.


Notes:
1) 카이스트는 국비 장학생이 기본 구도이기 때문에, 대학원을 자퇴하려면 지금까지 면제 받았던 수업료를 뱉어야 한다. 이는 재학 중의 성적과는 아무 관계 없으며 서 남표 집권 이전부터 있었던 제도이다. 학칙을 찾아보면 관련 조항이 있다. 단, 학부는 그런 조건이 없음.

2) 덧붙이자면, 2003년은 국내 과학계에서 발생한 두 건의 사고가 전국민을 슬프게 했다. 하나는 5월에 발생한 저 사고이며 다른 하나는 그 해 말, 남극 세종 과학 기지에서 전 재규 대원이 순직한 사고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4/12 19:22 2011/04/12 19:22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495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 버린 2004년은, 본인의 대학 후반기임과 동시에 인터넷을 통해 ‘웃긴 컨텐츠’들을 유난히도 자주 접한 해였다.

웃긴 컨텐츠의 원천은 크게 풀빵 닷컴 아니면 일본물로 나뉘었다. 2004년 당시 잠깐 떴다가 사그라든 박 분자 시리즈(휴지의 시, 맵핵의 추억 등), 그리고 서울 버스 개편을 비꼰 <버스 로얄> 및 <투모로우> 같은 영화 예고편 패러디였다.
그리고 일본물로는 일본 환타 CF, 그리고 일본판 가나다송, 숫자송, 인사송이 기억에 남는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이런 거 아는 분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렇게 2004년을 훈훈하게 보내고서 이듬해 초의 일이다.
유머· 엽기 게시판에서 웬 5분짜리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했다. 그리고 그것이 개그 만화 일화와 본인과의 첫 인연이었다. ㅋㅋㅋㅋㅋㅋ
코트의 안에는 마물이 살고 있고 믿을 만한 동료들이 다 맛이 갔다니... 오프닝 가사부터가 무지하게 암울한 한편으로 아스트랄하고 포스가 넘치지 않는지? ^^;;

배경은 지구가 운석 충돌로 멸망하기 3시간 전. 전세계 사람들은 이제 볼장 다 봤다는 식으로 서로 똥이나 처바르면서 미쳐 돌아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진행된 어느 TV 쇼프로에서는 우리나라로 치면 태 진아 같은 연륜을 자랑하는 엔카 가수가 발가벗고 출연하여 엔카는 지겹다고 말한다. 그것도 똥 묻은 파르페 다음으로 싫댄다. ㅜㅜㅜ

문 근영 정도 될 법한 아이돌 가수는 양아치 같은 차림으로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아까 엔카 가수는 딸내미뻘 되는 그 아이돌에게 껄떡대다가 담배빵을 당한다. 그런데 그러면서 미소!! ㅎㄷㄷㄷ;; 갑자기 등장하는 '쿵~따 쿵쿵따' BGM도 은근히 중독성 있었다.

복화술사는 복화술이 너무 어렵다고 하면서 “내 친구는 그저 땡그랑~뿐입니다요”라고 실토한다. 본격 인간성 파탄. 파트너인 인형을 줘 팬다.
그런데 마지막 게스트인 마술사는 자신이 사실 초능력자라고 커밍아웃한 후 운석의 궤도를 바꿔서 지구를 구해 낸다.

복화술사 정도라면 모를까, 앞서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엔카와 아이돌 가수 둘은 연예인 생명은 이미 완전히 파토 났으니, 아마 성형 수술하고 개명 후 이민 가서 잠적해야 할 것이다. ㅋㅋㅋㅋㅋㅋ

그 이름도 유명한 1기 4화 <종말편>을 통해 개그 만화 일화에 입문했다.
처음 봤을 땐 본인도 남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역시 일본 아니랄까봐. 뭐 이런 또라이 같은 만화가 다 있어? ㄲㄲㄲㄲㄲㄲ” 하면서 혀를 끌끌 차면서 봤다.

그런데 중독성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욕을 하면서도 자꾸 또 보게 됐다. 그러면서 빠져들었다. ㅠ.ㅠ
게다가 일본물과 각종 만화에 조예가 깊던 병특 회사 모 동료의 영향으로 본인은 <씰>, <서유기> 등 여타 작품까지 섭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혹자의 코멘트에 따르면, 드디어 사무엘 님도 알량한 웃음을 대가로 자기 영혼을 팔아서 타락시키기 시작했다고라...;;;;

본인은 일본 애니와는 담을 쌓고 사는데 예외적으로 이거 하나만은 찾아서 보게 됐다.
처음엔 엔카가 뭔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핑크빛 카파(괴한)’이 뭔지도 알 정도로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갔다. ^^;;; 본인이 일본어를 할 줄 안다면 대사를 다 외웠을 텐데 말이다. ㄷㄷ;;

최소한 2006~7년부터 거의 3년이 넘게 본인의 MSN 대화명은 개그 만화 일화 대사였다.
- 팔릴까보냐!
- 닥치세요. 이것이 저의 완전체입니다
- 번뇌 이놈, 죽어라!
- 한겨울에도 축시
- 똥 묻은 파르페 다음으로 싫어

엽기적인 거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어서 저런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종말>, <안 오잖아, 가정교사!>, <히라다의 세계>, <서유기> 같은 것들.

2008년 상반기에는 개그 만화 일화 3기가 본인의 병특 말년 생활을 더욱 즐겁게 해 줬다. 매주 저거 올라오는 거 기다리는(자막도) 재미가 참 쏠쏠했다.

병특이 끝난 뒤 다른 직장에서 본인은 플래시 메모리를 분실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다른 동료 직원이 습득했다. 그런데 그 플래시 메모리 안에는 개그 만화 일화 동영상 자막 파일이 들어있었다...;;
그걸 보고서 그 동료가 “이거 주인은 일본 애니 덕후인가 보군.. 그런데 나도 이거 좋아하는데?”라고 말했고, 이걸 계기로 본인과 그분은 서로 개그 코드가 통하는 친한 사이가 됐다. ㅋㅋㅋㅋㅋ

이렇듯, 개그 만화 일화는 본인의 인생에서 최소한 두 명의 사람과 인연을 이어 줬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이런 만화 얘기를 꺼내면 정상인 취급을 못 받는다나? ㄲㄲㄲㄲㄲ

놀랍게도, 개그 만화 일화 에피소드로 영어 연극을 하고 싶으니 대사를 영어로 좀 번역해 달라는 요청을 본인은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다. “베게의 속에는 참치로 가득 -> Inside the pillow is full of tuna” ㅋㅋㅋㅋ 유튜브에는 한때 실제로 영문 자막이 삽입된 개그 만화 일화 동영상이 나돌기도 했는데, 저작권 문제 때문에 요즘은 다들 삭제된 모양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개그 만화 일화는 성우 지망생들의 더빙 연습용으로도 자주 쓰일 정도로 이 바닥 종사자에게는 친숙하다. ^^

1기(시즌 1)의 오프닝 주제가 가사 중 일부가 ‘배구에 걸었던 청춘’인지 ‘발레에 걸었던 청춘’인지가 번역자에 따라 해석이 차이가 있었는데, 이 영어 자막을 보고 정확한 해석이 뭔지 알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물이 살고 있는 코트도 coat가 아니라 court이다. 맛이 갔다는 표현의 원어 표현은 '눈이 죽었다'(eyes are lifeless)임. =_=;;

개그 만화 일화는 원래 만화책으로 나온 스토리를 애니메이션화한 것이다. 만화책은 2008년 말에 드디어 우리나라에 정식 번역 출간되었고, 듣기로는 애니메이션도 정식으로 더빙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개그 만화 일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개그 만화 일화는 김 성모, 삼류만화 패밀리 등 본인으로 하여금 더욱 매니악한 서브컬처 유머 문화에 입문하게 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 여러분도 정신 건강을 웃음을 통해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싶다면, 5분을 투자해서 개그 만화 일화 1기 , 종말, 서유기 편부터 차례대로 섭렵해 보는 게 어떨까? ^^;;

http://blog.naver.com/lhj3496/110031250383 (1기 주제가만으로 만화를 만들었다. <코트 안에는 마물이 살고 있어> ㅋ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3/23 08:12 2011/03/23 08:12
,
Response
No Trackback , 5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484

여행 기록

오랜만에 또 디지털 카메라를 PC에다 연결했다.
이번 겨울방학 기간 동안에 싸돌아다닌-_- 흔적을 약간이나마 사진으로 남긴다. 데이트 코스 같은 건 전혀 아니니 오해 마시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년 12월 26일 밤~새벽에 익산 시내의 어느 골목길.
누리로 + 구특전 새마을호를 조합하니 구세대/신세대 열차가 조화를 이루어 가히 환상적인 철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중부 지방은 눈이 참 많이도 내리고 있었다.
모텔 방을 잡은 후 밖에 나가서 눈사람도 만들었는데,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게 무슨 말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에 눈덩이를 뭉치는 게 무척 힘들지만, 일단 어느 정도 규모가 생긴 뒤부터는 굴리기만 해도 알아서 크기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1년 1월 초, 용인 한국 민속촌.
인간문화재가 선보인 외줄타기 공연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 날은 비록 바람은 안 불었지만 장갑을 끼고도 손이 시릴 정도로 굉장히 추웠다.
그런데도 공연자는 온갖 아슬아슬한 묘기들을 잘 소화해 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하철과 KTX와 고속버스가 한 곳에..!
대구 동부는 간선 교통 연계가 전국에서 가장 잘 되어 있다.
단지, 고속버스 터미널이 회사와 행선지별로 찢어져 있다는 것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괴팍한 점이지만 말이다. 이것도 무슨 어른들의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대구에는 동서남북 사방의 이름이 붙은 시외버스 터미널이 각각 존재하고, 고속버스도 터미널뿐만 아니라 아류격인 서대구 정거장이 하나 더 있다.
시외버스의 경우 서부는 대구 지하철 1호선 성당못 역과, 남부는 2호선 만촌 역과 아주 가까운 반면 동부는 동대구 역 및 고속버스 터미널과 1km 남짓 떨어진 외톨이이다. 그리고 북부는 지하철 연계가 전혀 되지 않는 곳에 있으며, 서대구 고속버스 정거장하고는 600m 정도 떨어져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다를 옆에 끼고 달리는 강릉의 어느 드라이브 코스.
이런 도로는 운전자의 눈요기감으로는 좋지만 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그리 좋지 못하다고들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02/14 18:29 2011/02/14 18:29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465

사진으로 남기는 요즘 일상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아 벌써 2010년이 한 달도 안 남았다.
옆의 회사 동료의 책상을 보니 2011년도 달력이 비치되어 있는데,
‘힘차게’부터 시작해서 글씨체가 심하게 낯익다. 이거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려나?
그렇다. ‘힘차게 땅을 딛고 날아오르다’는 신명 세명조이고, 달력의 숫자와 영문은 신명 중고딕이다. 딱 보면 안다.
도스용 아래아한글의 전성기이던 1990년대 중후반을 풍미하고서 지금은 유행이 완전히 지난 글꼴인데 그걸로 2011년도 달력을 만드는 인쇄소가 있다니! 반가웠다. 내 사랑 신명 글꼴!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KTX 산천을 대전-서울 구간에서 드디어 시승하다.
한눈에 봐도 구형 떼제베 기반 KTX보다 좌석이 더 큼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역방향 좌석이 없다.
이 날은 주말에 밤 11시 20분에 서울에 도착하고도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집에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KTX 2차 개통 후 어느 토요일 오후의 서울 역은 명절을 방불케 하는 인파로 북새통이었다. (그럼 진짜 명절엔 얼마나 혼잡할까?) 하긴, 비슷한 시간대에 고속버스 터미널을 가 봐도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만 10~20분씩 걸리기도 했던 것 같다.
유인 매표소 창구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많은 무인 자동 발권기에다가도 저렇게 사람들이 줄서 있는 건 처음 봤다. 나처럼 홈티켓이나 SMS 티켓을 이용하면 줄설 필요가 없을 텐데!
주말엔 사람들이 어딜 그렇게도 많이 돌아다니는지 열차마다 꽉꽉 차서 갔다. 이틀 전에 예매한 주말 KTX는 영락없이 역방향 좌석에 걸려 있었고, 이미 서울에서부터 입석 승객까지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 말로만 듣던 신경주 역에 드디어 발을 디뎠다.
집에서 신경주 역까지는 기존 경주 역에 갈 때보다 차로 시간이 15분 정도 더 걸린다.
그러나 일단 여기서 KTX를 타면 경주에서 서울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딱 2시간! 시간 단축의 폭이 월등하다. 과거 경주-서울 새마을호는 4시간 40분, 그리고 경주-동대구 환승 KTX는 총 3시간 정도는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주 시내에서 가깝다고 신경주 대신 경주-동대구 환승을 선택하기엔 대구로 가는 재래식 열차가 너무 느려서 시간 손실이 크다.
특히 신경주-동대구는 16분 남짓밖에 안 걸린다는 게 더욱 충격이다. 보통 경주-대구는 최하 40분이고 재래식 열차로도 1시간대였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 통사론 공부하다가 내 기분을 활짝 펴게 만든 예문. (남 기심· 고 영근 지은 <표준 국어 문법론>)
수업을 들으면서 느끼는 건데, 전산학계뿐만이 아니라 언어학계에도 천재들이 너무 많다. -_-;;;
그나저나 이제 고속철은 전구간 개통했으니 다음에 개정판을 낼 때는 예문의 시제를 과거형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2004년 말에 잠깐 등장했다가 자취를 감춘 서울-부산 무정차 KTX가 이번 12월부터 산천 차량으로 하루 딱 1회 재등장하여 서울-부산을 2시간 8분 만에 주파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 두자.

(1~5의 사진들은 모두 서로 다른 날짜와 시간대에 찍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09 19:49 2010/12/09 19:49
, ,
Response
No Trackback , 10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427

2005년 7월 말, 본인은 학부 졸업과 병특 회사 취직을 앞두고 꿈같은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3.4의 개발이 한창이었다. (8월 초에 나왔던 3.4가 심한 버그들 때문에 ㅈ망한 후 그 달 하순에 3.41로 바뀌었음)
그런데, 그 여름방학 기간에 카이스트 학부 식당 입구에 당당하게 걸렸던 포스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해도 이 사실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동아리 홍보도 아니고 개인이, 그것도 당시 2학년밖에 안 된 학부 여학생이 자기 실명과 연락처까지 까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 놓은 건 처음 봤다.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얼굴 보고’(예쁘면 같이 교회 나가겠다)라고 자보에다 낙서를 해 놨다. ㅋ 나도 저 친구 얼굴 본 적 없다.

카이스트와 연세대를 둘 다 다닌 경험상 느끼는 점인데, 어떤 면에서는 카이스트가 연세대보다 연세대의 설립 취지에 더 부합(?)하는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지난번에 쓴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기독교 동아리 많지, 채플만 없다 뿐이지 교내 공식 교회(카이스트 교회)도 있지, 창조 과학 연구회 있지...;; 이 얘기를 하면 심지어 기독교인들도 놀란다.
물론 거기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므로 오해하지 말 것.

Posted by 사무엘

2010/11/23 19:33 2010/11/23 19:33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417

« Previous : 1 :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 34 : Next »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2990467
Today:
2027
Yesterday:
1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