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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경 통독 내력

※ 1독 (1998. 10. 28 완료)
그 전부터도 성경을 한번 쭉 읽긴 해야겠다는 부담감은 갖고 있었지만, 미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세벌식 연습과 더불어 마음을 강하게 먹고 실행에 옮겼다. 개역 성경 본문에다 각종 관주와 주석, 해설이 딸려 있는 <아가페 큰글 성경>을 읽었다.

그 당시는 아무 신학 배경도 없고 성경을 혼자서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지식 수준이었으니, 이게 무슨 말인지는 온통 해설과 주석에 의존해야만 했다. 비록 다음 장을 읽으면 앞 장 내용을 까먹는 악전고투를 하면서도, 어쨌든 태어나서 꾸준히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완독하기는 이 때가 처음이었다. 예후, 히스기야 같은 사람 이름은 이 때 이미 익숙해졌다.

※ 2독 (2000. 5. 21. 완료)
이듬해에는 드디어 영어 성경에 도전해서 그 이름도 유명한 NIV를 다 읽었다. 아직 비록 킹 제임스 성경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각종 성경 책명과 인명/지명, 신학 용어의 영어 표기에 익숙해짐으로써 훗날 KJV를 읽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어로 killed를 안 쓰고 slain을 쓴다는 걸 처음 알았고, crucify, atonement 같은 단어도 이때 알게 됐다. 사도행전이 무척 재미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각 책들이 분위기별로 차이에 대해서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쓰는 신세계역(NWT)이 성경을 어떻게 변개했는지를 NIV와 대조하면서 분석했다. 이로써 본인은 고등학교 시절에 성경을 두 번 완독했다.

※ 3독 (2004. 3. 6. 완료)
본인은 대학에 가서는 한동안 성경과는 동떨어진 방황하는 삶을 살다가,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인생의 일대 격변을 겪었다. KJV는 그저 400년 전에 출간된 ‘개역성경’의 영문판뻘 되는 성경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2독 이후로는 현대어 위주로 여러 다양한 성경이나 읽어볼까 하다가 그 계획은 전면 수정되었다. 3독은 2003년부터 시작했는데, 영어 킹 제임스 성경과 기존 성경을 일일이 대조하고 메모하고 영어 단어장까지 만들면서, 지금까지 본인이 행한 통독 중 가장 꼼꼼하게 읽었다. 본인이 지금 갖고 있는 성경 지식의 상당수가 이때에 축적되었다.

※ 4독 (2006. 12. 22. 완료)
영어는 시간 관계상 보지 않고 우리말 흠정역 성경만으로 3독보다는 가볍고 빠르게 읽었다. 다만, 이때는 누나와 함께 번갈아가며 ‘낭독’을 했다. 덕분에 이때 우리 누나도 난생 처음으로 나와 함께 성경 1독에 성공했다.
이때쯤부터 드디어 이스라엘 주요 족장의 가계도, 사복음서의 구성별 차이 같은 게 슬슬 머리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 5독 (2007. 10. 3. 완료)
한국어, 영어를 거의 섞어 가며서 읽었다. 일과가 끝나고 남은 시간에 성경을 읽는 게 아니라, 성경부터 읽고 다른 일과를 진행하는 습관이 붙기 시작했다. 1~3독 때와는 달리, 특별히 성경을 읽었나 하는 기억조차 없을 정도로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도통 기억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소선지서의 각 책 내용도 머릿속에 남기 시작하고, 성경의 어느 책 어느 부분 하면 대충 무슨 내용인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 6독 (2008. 9. 21. 완료)
5독과 동일한 페이스로 영어 문장을 다시 독해하며 읽었다. ‘성경 지도’가 전보다 더욱 선명해졌다.

※ 7독 (2009. 11. 17. 완료)
가장 최근에 성경을 통독한 기록이다. 여전히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었나? 예전엔 이런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좀 느낌이 다르구나’ 하는 면모를 발견하면서 놀라곤 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통상 1년 1독 속도로 성경을 읽고 있는데, 이를 좀더 올릴까 고민 중이다. 하지만 영어 성경은 조금 해 봤는데 증속이 여전히 무리이다. -_-;;
그리고 7독이 끝난 후, 아직까지 8독을 시작하지는 못하고 통독이 중단된 상태이다. 4독째부터는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거의 쉬지 않고 성경을 많이 읽어 왔는데 그 페이스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바깥에서 온통 세상적인 고민, 번뇌-_-, 육신의 욕망에 노출되어 살다가 매일 짧게나마 세속적인 현대 영어가 아닌 킹 제임스 영어에 발을 담글 필요가 있으며,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사고방식에 내 머리를 동기화시키는 작업이 크리스천에게 꼭 필요하다. 그게 꾸준히 진행되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나의 영적 상태는 알게 모르게 차이가 벌어지게 마련이다.

나는 신학 지식도 없고 히브리/그리스어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절대무오하게 온전히 기록해서 오늘날까지 보존하셨다는 사실을 못 믿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최소한 신학의 저주 정도에는 안 낚일 자신이 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고 비평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믿고 따르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22 01:11 2010/01/22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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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변천사

본인이 고등학교 때부터 딱 바뀌어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생활 습관을 들자면,
매일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세벌식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트북 컴퓨터를 끼고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노트북 없이 산 기간은 몇 개월이 채 안 된다.
노트북보다 더 작은 기계에조차 관심을 두지 않을 정도이다. 통화와 문자 이외에 스마트폰 같은 건 전혀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심지어 지하철 안에서 MP3조차도 노트북을 켜서 들을 정도이다.

초대: 삼성 센스 (1998. 3. ~ 2003. 5.) 지하철에서 분실
펜티엄, 윈도우 95/98급, 800*600 화면
USB 포트도 없는 완전 구닥다리였지만, 잃어버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인생의 멋진 동반자였고 이걸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무려 2.x대까지 개발해 냈다. 램이 원래 16MB이던 것을 48MB까지로 확장하고 유선 랜 카드도 따로 장착했다.
전반적으로 튼튼하고 특히 내장 마이크 성능이 매우 뛰어난 게 마음에 들었으나, 아래 화살표 같은 키캡이 곧 빠지고 99년 무렵부터는 액정 접촉 불량도 조금씩 감지됐다. 2000년 말엔 한번 대대적인 수리를 받기도 했다.

2대: HP 프리자리오 (2003. 7. ~ 2005. 11.) 사고로 파손
펜티엄 III 중고, 윈도우 2000/ME급, 1024*768 화면
초대 노트북보다야 훨씬 성능이 좋지만, 그렇게 좋은 성능은 또 아니었기 때문에 데스크톱 완전 대용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중고여서 그런지 값은 쌌지만 내구성이 좀 약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때 USB 플래시 메모리를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무선 랜 카드를 달아서 썼다.
2004년 말엔 컴퓨터가 아예 켜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여 메인보드를 교체하는 수리를 받았다. 그렇게 계속 사용해 왔지만, 그로부터 1년 남짓 뒤엔 노트북 책상 위의 열린 창문으로 폭우가 그대로 쏟아지는 사고가 나는 바람에 기계 사망.

3대: LGIBM XNOTE (2005. 12. ~ 2008. 5.) 자폭
펜티엄 M 준중고, 윈도우 XP급, 1400*1050 화면
이제야 좀 데스크톱 성능과 비슷한 컴퓨터다운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화면도 큼직하고, 윈도우 XP도 마음껏 돌리고 배경 사진도 트루컬러로 지정하고, 가상 머신도 돌리고 용량 걱정 없이 백업도 마음껏 하고.. -_-;;

모든 게 괜찮았고 이 기계를 한 5년은 쓸까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역시 준중고여서 그럴까? 구입한 지 몇 개월이 안 돼 액정 접촉 불량이 생겼다. 화면을 펼치다 보면 화면이 꺼져 버리는 것 때문에 굉장히 답답했고, 서비스 센터에 문의하여 부품을 여러 차례 교체한 뒤에도 이건 지병처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다 결국은 병특 기간 3년을 미처 못 채우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 5.0이 완성되는 걸 미처 구경 못 하고서 저절로 메인보드가 사망해 버렸다. 컴퓨터가 잘 돌아가다 갑자기 꺼져 버리거나, 켜지질 않았다. 내가 평소에 좀 험하게 다루긴 했어도 딱히 물이 들어가거나 떨어뜨리거나 외부적인 요인은 없었다.

4대: LGIBM XNOTE (2008. 6. ~ ) 현역 활동 중
Core2Duo, 윈도우 비스타급
3대 노트북의 후속 기종으로, 성능은 더욱 향상됐다. 또한 요즘 추세와는 달리 4:3 화면인 아주 희귀한 기종인데, 본인은 와이드 대신 4:3 화면이 훨씬 더 익숙하고 이를 더 선호한다.
지금까지 약 1년 반 동안 썼지만, 잔고장이 전혀 없이 어디서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어서 매우 만족스럽다. 역시 신제품이 튼튼한 건 사실이다.

액정 접촉 불량도 없고, 심지어 노트북의 고질병인 키캡이 빠진 것도 지금까지 전혀 없다. 엔터 키가 조금 약한 상태이긴 하지만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OS로 비스타를 사용하고 있으나 7을 설치하는 데도 아무 문제 없다. 앞으로 수 년은 더 이 기계를 쓸 것이다. 3년을 미처 못 쓴 2대와 3대보다야 임기가 더 오래 유지되지 않을까? ^^

노트북은 너무 작으면 성능에 비해 가격이 치솟으며 더구나 본인처럼, 빠른 타자와 넓은 화면이 보장되는 준 데스크톱 급의 개발 환경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부적합하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겁고 크면 LCD 때문에 역시 가격이 비싸지며, 들고 다니기도 힘들어진다.
역시 자기 용도에 맞는 녀석 구입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4 23:55 2010/01/1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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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자료실을 정리하는 중..)

다른 친구들은 다 교내 컴퓨터/음악 동아리에서 활동하거나 하다못해 취업 스펙 관리하고, 영어/경제 분야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반면..
난 갑자기 무슨 동기를 받아서인지 공대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인터넷 쪽 한글 단체들과 인연을 맺으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때를 생각하니 정말 귀중한 추억이다. 저 사진에 담긴 사람들(특히 젊은이)... 지금은 뭘 하며 지내고 있을까?

2002년 1월 26일, 부천 모임. 철도 나부랭이 쪽은 하나도 모르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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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27-28일, 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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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31일, 한글 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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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2005년 3월 7일. 대전에서 서울로 오후에 KTX 타고 올라가서 모임에 참석했음.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온 시각은 새벽 2시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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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4 22:59 2010/01/1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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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재, 본인의 마지막 TV 출연 경험이다.
본인뿐만이 아니라 본인의 동지들도 대거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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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한글 코드, 글자판을 비판하는 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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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병우 박사님이 살아 계시던 시절, 한글 문화원에서 발행한 각종 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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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벌식과 관련해서 TV 출현할 때마다 정말 잘 활용한, 아론 전자 세벌식 최종 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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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3 23:56 2010/01/1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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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집 기획 다큐멘터리 3부작 중 하나인 <세계화 시대의 우리 말글>에 잠깐 출연하여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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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3 23:44 2010/01/1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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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연출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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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문화 연대 회원이기도 한 황 현정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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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프로에서 기계 번역을 주제로 먼저 출연한 포항 공대 컴퓨터 공학과 이 종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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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3 18:02 2010/01/1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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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대전과 호남 지방을 강타한 폭설. 생전에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걸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지난 1월 4일에 서울, 수도권을 강타한 폭설도 이것과 결코 만만찮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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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3 11:01 2010/01/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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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립 현충원)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망국노' 주제에 미국에서 미국 대통령이 아니면 상대를 안 한 이 승만의 높은 콧대가 어디서 온 것일까?
오로지 그의 실력이었다.
맨몸으로 자수성가하여 당대 최고 선진국이었던 미국을 바라보고, 미국 사람들을 실력으로 이기고 그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해서 얻은 개인적인 지위와 명예를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사용했다.
참으로 눈물나게 존경스러운 분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우리나라 주권을 꽉 움켜쥔 채로, 노련한 외교술에 반일 반공 강력한 색깔 노선을 고수하던 머리 좋은 대통령이 있을 때는
세계 강대국 지도자들도 한국과 한국 대통령을 함부로 대하질 못했다. 독도 일본땅 망언 따위도 엄두를 못 냈다.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국력이 훨~씬 더 약했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배달민족의 독립을 되찾아 우리를 나라 있는 백성 되게 하시고,
겨레의 자유와 평등을 지켜 안녕과 번영의 터전을 마련해 주신
거룩한 나라 사랑 불멸의 한국인 우리의 대통령 우남 리 승만 박사
금수강산 흘러오는 한강의 물결 남산을 바라보는 동작의 터에
일월성신과 함께 이 나라 지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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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3 01:11 2010/01/13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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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항 풍경 (2006/8/5)

본인은 오로지 종착역에서 Looking for you를 녹음할 목적으로-_-
아무 연고지도 없지만 가장 짧은 새마을호 노선인 장항선을 완주한 적이 있다.
2006년 8월이면 새마을호에서 기내지 레일로드가 폐지된 거의 직후였음.
정말 쓸데없는 돈지랄 같았지만, 그때 녹화한 영상이 지금까지 유튜브에서 진귀한 역사 기록이 되어 있다. ^^

잠은 근처 여관에서 잤고..
지금은 군산과 장항이 연결되고 군산과 장항 역이 딴 곳으로 이설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 사진들도 아련한 추억이 되어 있다.
구도가 괜찮은 것 같다. 바다는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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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1/13 01:08 2010/01/13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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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과 정선선의 고도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ㅎ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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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선 진입. 이것만 보면 그냥 평범한 시골 들판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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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따라 선로도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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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구절리 역은 오래 전에 여객 취급 중단. 아우라지 역이 종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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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차는 방향을 바꾸고.. 사실 이런 시골 비전철 로컬선에는 1량 디젤 동차가 가장 좋은데 기관차+객차+발전차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낭비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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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한산하여 한낮에도 그냥 점멸 신호밖에 존재하지 않는 정선 시가지.
은퇴해서 이런 곳에서 코딩만 하면서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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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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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1/13 00:50 2010/01/13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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