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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소감

본인은 얼마 안 있으면 적성 검사를 받아야 할 정도로 면허를 딴 지 오래 됐지만, 지금까지 차를 몬 경험이 거의 없고 운전 실력 역시 그 이름도 유명한 장롱 면허 수준에 머물러 왔다. 명절 때나 아니면 다른 일로 인해 고향을 드나들 때는 당연히 선택의 여지가 없이 대중교통만 이용했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한동안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설에는 어떻게 여건이 잘 맞은 덕분에 21세기 이래로 최초로 자차를 이용했고, 더구나 꽤 장거리를 직접 운전까지 해서 무사히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맨날 고속버스에 의지해서 다니던 경로를 내 손으로 주파하니 무척 기분이 좋았다.

1. 천호대로를 타고 지하철 5호선 라인을 따라 동쪽으로 쭉: 천호대로는 서울 시내에서 중앙 버스 전용 차선이 가장 먼저 생겼을 정도로 넓은 도로이다. 직진만 하면 되지만 길 자체가 직선으로만 된 것은 아니다. 중간에 커브도 있고, 언덕도 꽤 있다. 이쪽 구간은 한강이 수평선 방향이 아니라 수직선 방향에 가깝게 흐르기 때문에, 동쪽으로 가는 과정에서 천호 대교로 한강을 건너게 된다.

2. 외곽 순환 고속도로의 상일 IC까지 43번 국도: 강동 역까지 통과하고 나면 5호선 라인을 벗어난다. 이때부터 차선이 좁아지고 지나가는 차들이 눈에 띄게 뜸해지며, 아파트 대신 각종 화원, 공원, 언덕이 나타나면서 시가지가 아닌 교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직진만 쫙 하면 고속도로가 나오니 이보다 간편할 수가 없다. 상일 IC로 진입하지 않고 또 직진을 하면 하남시가 나온다.지도로만 보던 지역을 실제로 구경할 수 있었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이 반포 IC 인근에서 경부 고속도로를 접수하고 있다면 강변 동서울 터미널은 중부 고속도로를 접수하고 있다. 사실 이 터미널 자체가 중부 고속도로의 활성화를 위해 정책적으로 세워진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동서울 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중부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버스들은 알고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경로를 이용한다.

먼저 올림픽 대교를 이용하여 강남으로 건넌 뒤, 올림픽대로를 타고 한참을 동쪽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주행한다. 남쪽으로 가야 할 차가 북쪽으로 가서 상일 IC가 아닌 강일 IC를 통해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버스 차창을 살펴보면 서울 지하철 5호선 고덕 차량기지 근처를 지나는 게 보이니, 얼마나 우회 경로인지 알 수 있다. 이번에는 자가용을 직접 운전한 덕분에 그런 우회 경로를 피할 수 있었다.

3. 외곽 순환 고속도로(100): 8차선으로 된 근사한 도로이다.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하남 분기점이 나오고 여기서 중부 고속도로(35) 쪽으로 가면 동서울 요금소가 나온다. 새벽에 출발했지만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극심한 정체가 계속됐다.

4. 중부 고속도로: 이 도로는 처음엔 8차선인 것처럼 시작하지만 얼마 못 가 차선의 절반은 제2 중부 고속도로(37)로 빠져나가고 4차선으로 줄어든다. 제2 중부는 잘 알다시피 중부 고속도로의 용량 확장을 위해, 영동 고속도로(50)와 만나는 호법 분기점까지 오리지널 중부의 옆에다가 도로를 또 지은 것이다. 중부 고속도로는 경기도 남동부의 험악한 산지를 터널과 교량으로 연결한 험한 선형이기 때문에, 경부처럼 차선 확장을 도저히 할 수 없고 옆에 도로를 또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 영동 고속도로: 호법 분기점과 여주 분기점까지는 잠시 영동 고속도로 구간을 이용한다. 8차선의 아주 시원시원한 길이었지만 중부내륙 고속도로(45)로 진입하는 길부터는 다시 차들이 거북이걸음을 시작했다.

6. 중부내륙 고속도로: 가장 장거리 구간이지만 정체가 심해서 좀 답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4차선이고 최고 시속이 100이 아닌 110이며 터널과 고가 교량이 많다는 점에서는, 중부 고속도로와도 비슷하다.
내가 운전하던 무렵엔, 정체에 시달리던 하행과는 달리 맞은편 상행은 차가 거의 없고 한산하여 극단적인 대조를 보였다. 정체는 거의 괴산 이남까지 가서야 풀려서 차가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날씨가 정말 판타지 급이었다. 눈이 부슬부슬 내리다가 산악 지대로 가니 함박눈으로 돌변했는데, 터널을 하나 지나고 나오자 눈이 그치고 햇볕이 났다. 그랬는데 어느 샌가 또 잔뜩 흐린 날씨로 바뀌었다. 하지만 다행히 빙판길은 없었으니 눈 때문에 딱히 고생하지는 않았다.

7. 경부 고속도로: 김천부터 드디어 내게 아주 친숙한 경부 고속도로이다.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8차선이나 되는 유일한 고속도로이다. 물론 경산부터는 6차선으로 줄어들고 영천 이남부터는 4차선으로 줄어들지만 말이다.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한 지 벌써 40주년이 돼 가는데, 아직까지 4차선을 유지하고 있는 극소수 구간이 그쪽이다.

여기부터는 가끔 서행 상태가 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소통이 원활했다. 무척 인상적인 점은 아까와는 반대로 상행이 막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그나저나 포항으로 가는 길목인 도동 분기점에서의 극심한 혼잡이었다. 저 많은 차들이 포항을 드나드는 차들이라는 것에 적지 않게 놀랐다.

서울에서 경주까지 문에서 문까지 7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그렇게 빨리 가지는 못했다. 워낙 정체가 심해서 이거 시속 100은 낼 기회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그래도 이따금씩 앞에 차가 없을 때는 순간적으로 130~140까지 밟은 적도 있었다.

영천에서 경주까지는, 중앙 분리대와 입체 교차로까지 갖추고 준 고속도로 급으로 변모해 있는 4번 국도를 이용했다. 시설 좋고 차도 거의 안 다니니 최적의 드라이브 코스였다. 최대 시속 80km로 설계되어 있지만 120까지 밟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고속도로와의 차이는 뭐니 뭐니 해도 커브의 반경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거친 어느 고속도로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급커브가 곧바로 느껴졌다. 국도와 고속 국도의 차이가 이런 것이구나. 도로의 설계 최대 시속은 이런 것까지 감안하여 산출된 것이다.

이렇게 무사고로 한번 완주는 했지만, 여전히 난 운전이 어렵게 느껴진다.
군대에서도 사고는 이병 시절이 아니라 어설프게 고참 행세를 시작하는 일병 시절에 많이 난다고 하듯, 자동차 사고도 완전 긴장이 바짝 든 왕초보 시절보다는 스스로 초보 딱지를 뗐다고 생각하고 방심할 때 가장 많이 난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핸들을 잡던 기억이 머리에 선하다. 방심하다가 금방이라도 앞 차를 추돌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차간 거리를 굉장히 길게 유지하면서 달리고 싶은데 그러면 내 뒤에 있던 차가 어김없이 앞으로 끼어드니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다.

Posted by 사무엘

2010/02/15 08:42 2010/02/1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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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답사

2010년 새해!
1월 1일은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고 이튿날 2일은 오후에 잠시 혼자 외출을 갔다 왔다.
눈 덮인 서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답사하고, 가고 오는 길엔 지하철 전동차 구동음 분석을 했다. 횟수가 좀 남게 생긴 지하철 정기권을 쓰려는(dump) 목적도 있었다. ^^;;

그런데 왜 하필 저기를 갔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그냥 느낌이 저기로 쏠리더라.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명소에 가 보고 싶었다.
2007년 현충일엔 친인척 중에 아무도 묻힌 사람이 없는데도 서울 현충원에 혼자 갔다 오기도 했다. 반공 웅변 원고에서나 보던 ‘동작동 국립묘지’를 그때 처음으로 본 것이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있는 곳은 지하철 3호선 독립문 역 바로 옆. 아마 역사 명소 중에서 지하철역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 아닐까 한다. 정말 가깝고, 5번 출구로 나가면 언덕 위로 코앞에 보인다. 그리고 인근엔 북한산이 보이며 한성 과학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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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5), 경복궁(3), 독립문(3)처럼 종로 내지 서대문구 일대에는 아주 서울스러운 냄새를 물씬 풍기는 역명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하철 위의 도로는 4차선으로 좁은 편이며, 그래서 3호선은 좁은 도로를 따라 지나는 종축 노선인 특성상 섬식 승강장이 무척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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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와 출구가 따로 있다.
왼쪽의 허연 굴뚝처럼 생긴 초소는 순간 일부 철도역 현재까지 문화 유적으로 보존 중인 증기 기관차 급수탑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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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원수로 일컬어지는 을사오적들.
이완용의 경우 매국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길 가면서 곳곳에서 테러를 당했다. 돌에 맞고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은 가슴을 칼에 찔리기도 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이 후유증으로 그는 호흡기 쪽 지병을 평생 품은 채 살다가 죽었다. 그 후 일제에 의해 그의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묘지가 조성되었지만, 지속적으로 훼묘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보다못한 후손들이 결국 시체를 화장하고 무덤을 없앴을 정도였다.

한때는 명문 가문이었나 지금 그의 후손들은 주변으로부터의 살인적인 손가락질과 뭇매를 견디다 못해 다 이민 가고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자세한 내역이 궁금하면 인터넷 검색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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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 항일 분자 같은 제일 악랄한 죄수가 수감된 독방이다. 입구가 무슨 변소처럼 생겼는데 저 안은 변기도 없고 전깃불도 안 들어왔다고 한다. 진짜로 사람 인간성을 황폐화시키는 게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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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그 당시 감옥 공간이 부족해서 난리였다. 3.3제곱미터당 7.9명꼴이면.. 모든 인원이 눕기는커녕 제대로 앉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았다. 수감자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극심했을까? 굶주리고, 전염병 옮고...
“삼천리 강산이 다 감옥인데 나가 봤자 뭘 합니까?” (유 관순, 항고를 거부하면서)
성경은 지옥 역시 끊임없이 커지고 확장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이것도 참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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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순환 코스로, 한 건물을 들어가서 나가고 길따라 다른 건물에 또 들어가서 나가는 형태로 꾸며져 있다.
붉은 벽돌이 인상적이다. 이 벽돌들도 다 수감자들의 노역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 한다. 모세 시절에 벽돌 굽는 노역에 강제 동원되었던 이스라엘 노예가 생각난다.

넓은 공터에도 옛날에는 형무소 건물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해방 후 서대문 형무소는 한동안 대한민국 정부 하에서도 그대로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몇몇 동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철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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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이다. 일본군은 장성급이 아니어도 다 모자에 별이 달려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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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를 체포하는 건 누런 군복을 입은 헌병이고, 취조하고 고문하는 건 경찰 내지 사복형사이다.
우리나라도 80년대까지만 해도 고문이라는 게 있었고, 북한엔 지금도 저런다. 탈북 여성 학대 동영상 이런 거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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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기를 때리는 태형. 감옥에서 사고 친 수감자를 응징할 때도 쓰고, 형벌로도 태형이 있었던 모양이다. 김동인의 소설 <태형>을 같이 읽어 보면 당시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사진은 첨부하지 않지만 “고문 체험실”이라고 꾸며 놓은 게 있었다.
무슨 해병대 체험도 아닌데 관람자에게 무슨 고통을 느끼게 해 주는 건 당연히 아니고...
그냥 심의상 좀 잔인한 장면이다 보니,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머리 집어넣고 버튼 누를 때만
사람 고문 장면을 묘사한 마네킹과 비명 소리가 잠시 나오는 장치였다.

스포일링을 하자면, 대사는
“네놈이 감히 대일본제국이 대항하려 들다니. 어서 조직원을 대라!” “난 모른다! 끄아아아악!”
이런 부류이고, 나오는 장면은 손톱 뽑기, 전기 고문, 가시 상자(중세의 철갑 소녀 같은 것임) 정도이다. -_-;;;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딱히 더 비위 거슬리는 장면이 나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노약자 및 임산부는 조작을 삼가 주십시오”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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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을 거친 건지는 모르겠는데, 재판관이 일본인이 아니라 무슨 포청천 같은 중국인 복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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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으로 둘러싸인 이 건물은 바로 사형장.
윤 봉길, 안 중근 같은 의사는 총살이었고 어차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 감옥이 공식적으로 사용한 사형 방법은 교수형이다. 시체를 몰래 반출하는 통로도 있다.

저기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원혼이 서려 있는 곳이긴 하지만,
요즘은 100년 전과는 반대로, 진짜로 죽여야 싼 놈들 사형 집행을 너무 안 해서 심각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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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일제가 18세 이하 소녀 죄수를 수용하기 위해 신축한 소위 지하 감옥. 유 관순 열사가 투옥되었다 순국한 곳이며, 그래서 유관순굴이라고도 불린다.

다 보는 데 1시간이 좀 덜 걸린 것 같다.
그나마 일말의 기독교적인 배경이 있는 영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도 흑인 노예나 인도 같은 식민지를 굉장히 무자비하게 다스렸는데, 하물며 그런 것도 없이 근대화에 성공하여 아주 집요하고 치밀하게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정말 악랄하게 조선을 다스리면서 병참 기지로 삼았고, 항일 독립 운동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섬뜩한 형무소 복도를 거닐어 보니 그때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천안에 있는 독립 기념관의 축소판 정도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24 21:02 2010/01/2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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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경 통독 내력

※ 1독 (1998. 10. 28 완료)
그 전부터도 성경을 한번 쭉 읽긴 해야겠다는 부담감은 갖고 있었지만, 미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세벌식 연습과 더불어 마음을 강하게 먹고 실행에 옮겼다. 개역 성경 본문에다 각종 관주와 주석, 해설이 딸려 있는 <아가페 큰글 성경>을 읽었다.

그 당시는 아무 신학 배경도 없고 성경을 혼자서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지식 수준이었으니, 이게 무슨 말인지는 온통 해설과 주석에 의존해야만 했다. 비록 다음 장을 읽으면 앞 장 내용을 까먹는 악전고투를 하면서도, 어쨌든 태어나서 꾸준히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완독하기는 이 때가 처음이었다. 예후, 히스기야 같은 사람 이름은 이 때 이미 익숙해졌다.

※ 2독 (2000. 5. 21. 완료)
이듬해에는 드디어 영어 성경에 도전해서 그 이름도 유명한 NIV를 다 읽었다. 아직 비록 킹 제임스 성경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각종 성경 책명과 인명/지명, 신학 용어의 영어 표기에 익숙해짐으로써 훗날 KJV를 읽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어로 killed를 안 쓰고 slain을 쓴다는 걸 처음 알았고, crucify, atonement 같은 단어도 이때 알게 됐다. 사도행전이 무척 재미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각 책들이 분위기별로 차이에 대해서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쓰는 신세계역(NWT)이 성경을 어떻게 변개했는지를 NIV와 대조하면서 분석했다. 이로써 본인은 고등학교 시절에 성경을 두 번 완독했다.

※ 3독 (2004. 3. 6. 완료)
본인은 대학에 가서는 한동안 성경과는 동떨어진 방황하는 삶을 살다가,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인생의 일대 격변을 겪었다. KJV는 그저 400년 전에 출간된 ‘개역성경’의 영문판뻘 되는 성경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2독 이후로는 현대어 위주로 여러 다양한 성경이나 읽어볼까 하다가 그 계획은 전면 수정되었다. 3독은 2003년부터 시작했는데, 영어 킹 제임스 성경과 기존 성경을 일일이 대조하고 메모하고 영어 단어장까지 만들면서, 지금까지 본인이 행한 통독 중 가장 꼼꼼하게 읽었다. 본인이 지금 갖고 있는 성경 지식의 상당수가 이때에 축적되었다.

※ 4독 (2006. 12. 22. 완료)
영어는 시간 관계상 보지 않고 우리말 흠정역 성경만으로 3독보다는 가볍고 빠르게 읽었다. 다만, 이때는 누나와 함께 번갈아가며 ‘낭독’을 했다. 덕분에 이때 우리 누나도 난생 처음으로 나와 함께 성경 1독에 성공했다.
이때쯤부터 드디어 이스라엘 주요 족장의 가계도, 사복음서의 구성별 차이 같은 게 슬슬 머리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 5독 (2007. 10. 3. 완료)
한국어, 영어를 거의 섞어 가며서 읽었다. 일과가 끝나고 남은 시간에 성경을 읽는 게 아니라, 성경부터 읽고 다른 일과를 진행하는 습관이 붙기 시작했다. 1~3독 때와는 달리, 특별히 성경을 읽었나 하는 기억조차 없을 정도로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도통 기억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소선지서의 각 책 내용도 머릿속에 남기 시작하고, 성경의 어느 책 어느 부분 하면 대충 무슨 내용인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 6독 (2008. 9. 21. 완료)
5독과 동일한 페이스로 영어 문장을 다시 독해하며 읽었다. ‘성경 지도’가 전보다 더욱 선명해졌다.

※ 7독 (2009. 11. 17. 완료)
가장 최근에 성경을 통독한 기록이다. 여전히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었나? 예전엔 이런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좀 느낌이 다르구나’ 하는 면모를 발견하면서 놀라곤 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통상 1년 1독 속도로 성경을 읽고 있는데, 이를 좀더 올릴까 고민 중이다. 하지만 영어 성경은 조금 해 봤는데 증속이 여전히 무리이다. -_-;;
그리고 7독이 끝난 후, 아직까지 8독을 시작하지는 못하고 통독이 중단된 상태이다. 4독째부터는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거의 쉬지 않고 성경을 많이 읽어 왔는데 그 페이스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바깥에서 온통 세상적인 고민, 번뇌-_-, 육신의 욕망에 노출되어 살다가 매일 짧게나마 세속적인 현대 영어가 아닌 킹 제임스 영어에 발을 담글 필요가 있으며,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사고방식에 내 머리를 동기화시키는 작업이 크리스천에게 꼭 필요하다. 그게 꾸준히 진행되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나의 영적 상태는 알게 모르게 차이가 벌어지게 마련이다.

나는 신학 지식도 없고 히브리/그리스어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절대무오하게 온전히 기록해서 오늘날까지 보존하셨다는 사실을 못 믿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최소한 신학의 저주 정도에는 안 낚일 자신이 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고 비평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믿고 따르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22 01:11 2010/01/22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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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변천사

본인이 고등학교 때부터 딱 바뀌어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생활 습관을 들자면,
매일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세벌식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트북 컴퓨터를 끼고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노트북 없이 산 기간은 몇 개월이 채 안 된다.
노트북보다 더 작은 기계에조차 관심을 두지 않을 정도이다. 통화와 문자 이외에 스마트폰 같은 건 전혀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심지어 지하철 안에서 MP3조차도 노트북을 켜서 들을 정도이다.

초대: 삼성 센스 (1998. 3. ~ 2003. 5.) 지하철에서 분실
펜티엄, 윈도우 95/98급, 800*600 화면
USB 포트도 없는 완전 구닥다리였지만, 잃어버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인생의 멋진 동반자였고 이걸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무려 2.x대까지 개발해 냈다. 램이 원래 16MB이던 것을 48MB까지로 확장하고 유선 랜 카드도 따로 장착했다.
전반적으로 튼튼하고 특히 내장 마이크 성능이 매우 뛰어난 게 마음에 들었으나, 아래 화살표 같은 키캡이 곧 빠지고 99년 무렵부터는 액정 접촉 불량도 조금씩 감지됐다. 2000년 말엔 한번 대대적인 수리를 받기도 했다.

2대: HP 프리자리오 (2003. 7. ~ 2005. 11.) 사고로 파손
펜티엄 III 중고, 윈도우 2000/ME급, 1024*768 화면
초대 노트북보다야 훨씬 성능이 좋지만, 그렇게 좋은 성능은 또 아니었기 때문에 데스크톱 완전 대용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중고여서 그런지 값은 쌌지만 내구성이 좀 약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때 USB 플래시 메모리를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무선 랜 카드를 달아서 썼다.
2004년 말엔 컴퓨터가 아예 켜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여 메인보드를 교체하는 수리를 받았다. 그렇게 계속 사용해 왔지만, 그로부터 1년 남짓 뒤엔 노트북 책상 위의 열린 창문으로 폭우가 그대로 쏟아지는 사고가 나는 바람에 기계 사망.

3대: LGIBM XNOTE (2005. 12. ~ 2008. 5.) 자폭
펜티엄 M 준중고, 윈도우 XP급, 1400*1050 화면
이제야 좀 데스크톱 성능과 비슷한 컴퓨터다운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화면도 큼직하고, 윈도우 XP도 마음껏 돌리고 배경 사진도 트루컬러로 지정하고, 가상 머신도 돌리고 용량 걱정 없이 백업도 마음껏 하고.. -_-;;

모든 게 괜찮았고 이 기계를 한 5년은 쓸까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역시 준중고여서 그럴까? 구입한 지 몇 개월이 안 돼 액정 접촉 불량이 생겼다. 화면을 펼치다 보면 화면이 꺼져 버리는 것 때문에 굉장히 답답했고, 서비스 센터에 문의하여 부품을 여러 차례 교체한 뒤에도 이건 지병처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다 결국은 병특 기간 3년을 미처 못 채우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 5.0이 완성되는 걸 미처 구경 못 하고서 저절로 메인보드가 사망해 버렸다. 컴퓨터가 잘 돌아가다 갑자기 꺼져 버리거나, 켜지질 않았다. 내가 평소에 좀 험하게 다루긴 했어도 딱히 물이 들어가거나 떨어뜨리거나 외부적인 요인은 없었다.

4대: LGIBM XNOTE (2008. 6. ~ ) 현역 활동 중
Core2Duo, 윈도우 비스타급
3대 노트북의 후속 기종으로, 성능은 더욱 향상됐다. 또한 요즘 추세와는 달리 4:3 화면인 아주 희귀한 기종인데, 본인은 와이드 대신 4:3 화면이 훨씬 더 익숙하고 이를 더 선호한다.
지금까지 약 1년 반 동안 썼지만, 잔고장이 전혀 없이 어디서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어서 매우 만족스럽다. 역시 신제품이 튼튼한 건 사실이다.

액정 접촉 불량도 없고, 심지어 노트북의 고질병인 키캡이 빠진 것도 지금까지 전혀 없다. 엔터 키가 조금 약한 상태이긴 하지만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OS로 비스타를 사용하고 있으나 7을 설치하는 데도 아무 문제 없다. 앞으로 수 년은 더 이 기계를 쓸 것이다. 3년을 미처 못 쓴 2대와 3대보다야 임기가 더 오래 유지되지 않을까? ^^

노트북은 너무 작으면 성능에 비해 가격이 치솟으며 더구나 본인처럼, 빠른 타자와 넓은 화면이 보장되는 준 데스크톱 급의 개발 환경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부적합하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겁고 크면 LCD 때문에 역시 가격이 비싸지며, 들고 다니기도 힘들어진다.
역시 자기 용도에 맞는 녀석 구입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4 23:55 2010/01/1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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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자료실을 정리하는 중..)

다른 친구들은 다 교내 컴퓨터/음악 동아리에서 활동하거나 하다못해 취업 스펙 관리하고, 영어/경제 분야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반면..
난 갑자기 무슨 동기를 받아서인지 공대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인터넷 쪽 한글 단체들과 인연을 맺으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때를 생각하니 정말 귀중한 추억이다. 저 사진에 담긴 사람들(특히 젊은이)... 지금은 뭘 하며 지내고 있을까?

2002년 1월 26일, 부천 모임. 철도 나부랭이 쪽은 하나도 모르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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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27-28일, 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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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31일, 한글 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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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2005년 3월 7일. 대전에서 서울로 오후에 KTX 타고 올라가서 모임에 참석했음.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온 시각은 새벽 2시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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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1/14 22:59 2010/01/1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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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재, 본인의 마지막 TV 출연 경험이다.
본인뿐만이 아니라 본인의 동지들도 대거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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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한글 코드, 글자판을 비판하는 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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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병우 박사님이 살아 계시던 시절, 한글 문화원에서 발행한 각종 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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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벌식과 관련해서 TV 출현할 때마다 정말 잘 활용한, 아론 전자 세벌식 최종 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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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1/13 23:56 2010/01/1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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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집 기획 다큐멘터리 3부작 중 하나인 <세계화 시대의 우리 말글>에 잠깐 출연하여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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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1/13 23:44 2010/01/1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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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연출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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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문화 연대 회원이기도 한 황 현정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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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프로에서 기계 번역을 주제로 먼저 출연한 포항 공대 컴퓨터 공학과 이 종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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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1/13 18:02 2010/01/1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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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대전과 호남 지방을 강타한 폭설. 생전에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걸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지난 1월 4일에 서울, 수도권을 강타한 폭설도 이것과 결코 만만찮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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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1/13 11:01 2010/01/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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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립 현충원)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망국노' 주제에 미국에서 미국 대통령이 아니면 상대를 안 한 이 승만의 높은 콧대가 어디서 온 것일까?
오로지 그의 실력이었다.
맨몸으로 자수성가하여 당대 최고 선진국이었던 미국을 바라보고, 미국 사람들을 실력으로 이기고 그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해서 얻은 개인적인 지위와 명예를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사용했다.
참으로 눈물나게 존경스러운 분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우리나라 주권을 꽉 움켜쥔 채로, 노련한 외교술에 반일 반공 강력한 색깔 노선을 고수하던 머리 좋은 대통령이 있을 때는
세계 강대국 지도자들도 한국과 한국 대통령을 함부로 대하질 못했다. 독도 일본땅 망언 따위도 엄두를 못 냈다.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국력이 훨~씬 더 약했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배달민족의 독립을 되찾아 우리를 나라 있는 백성 되게 하시고,
겨레의 자유와 평등을 지켜 안녕과 번영의 터전을 마련해 주신
거룩한 나라 사랑 불멸의 한국인 우리의 대통령 우남 리 승만 박사
금수강산 흘러오는 한강의 물결 남산을 바라보는 동작의 터에
일월성신과 함께 이 나라 지키소서

Posted by 사무엘

2010/01/13 01:11 2010/01/13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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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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