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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에 본인은 1년 전에 한번 오른 적이 있는 불암산을 다시 찾았다. 단, 북쪽의 당고개 역 인근에서 출발했던 그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태릉 방면의 남쪽 구간만 잠깐 오르다가 곧장 하산했다. 여기를 답사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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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지도를 만지작거리던 중, '공릉산 백세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문과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 근처에는 서울 과학 기술 대학교와 원자력 병원이 있고, 산기슭에는 서울여대, 육사, 태릉 선수촌 등이 있다. 예전에 불암산을 올랐다가 돌아오면서 이 도로(화랑로)를 버스 타고 지난 적은 있지만, 정작 근처의 불암산 구간을 답사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여기를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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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뒤로 난 언덕길의 좌우로는 처음엔 평범한 울타리가 있다가 나중엔 살벌한 철책으로 바뀌기도 했다. 왼쪽엔 한전 인재 개발원은 고압 전기 시설 때문에 경비가 삼엄하며, 오른쪽에는 문화재인 태릉에다가 태릉 사격장이 있으니 아무래도 아무나 못 들어가게 통제를 해야 한다.
불암산이 남쪽엔 요주의 문화재와 보안 시설이 많이 자리잡아 있다. 그래서 이런 것들 말고 참호 같은 군사 시설도 있었고 거기에는 '촬영 금지 - xxxx부대장 백' 이런 표시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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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철책을 따라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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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딱 한 군데 전망이 트인 곳에서는 육사 캠퍼스가 희미하게 보였다. 지인용(智仁勇) 탑과 근처의 동그란 육군 박물관이 보인다. 봉화산에서는 육사를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산에서 저기를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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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인재 개발원에서는 한참 멀어졌다고 생각하지만 바닥에는 한전에서 매설한 듯한 무슨 표지석이 눈에 띄었다. 3 말고 4라고 적힌 것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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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불암산 남부의 등산로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나타났다. 서울 둘레길을 선택하면 인서울에 속한 산중턱 능선만 계속 타면서 북쪽의 당고개· 수락산 방면으로 갈 수 있다. 사실, 공릉산 백세문에서 시작해서 본인이 지금까지 걸은 길도 서울 둘레길이다.

아니면 다른 길로 가서 봉우리를 갈아탈 수 있다. 그러면 거기서 또 다른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거기서 불암산의 정상으로 가거나 아니면 이 상태로 삼육 대학교 방면으로 하산할 수 있다.
본인은 오랜 고민 끝에 서울 둘레길은 더 가지 않고 정상· 삼육대 방면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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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철책이고 울타리고 뭐고 다 없어지고 산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고 본인은 삼육대 방면으로 하산했다. 그러자 여기부터는 삼육대 사유지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각종 울타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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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정상은 바로 저기이다. 북한· 수락산처럼 얘도 꼭대기 부근은 온통 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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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삼육대 캠퍼스 안에 있는 그 유명한 '제명호'라는 인공 호수이다.
종교 계열 학교 아니랄까봐, 곳곳에서 금주 금연 강조하고 성경 말씀이 걸려 있고 "거룩한 안식일에 드리는 예배에 등산객 여러분도 초대합니다" 이런 표지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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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육 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의 모습. 삼육 대학교 캠퍼스를 구경한 건 이번이 난생 처음이었다.
비록 불암산 자체는 별로 높게 오르지 않고 등산을 짤막하게 마쳤지만 작년에 갔던 곳과 중복되지 않는 구간만 다닌다는 목표는 달성했다.

천장산 기슭에 의릉이 있는 것처럼 여기 근처에는 태릉과 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가 보지는 않았다. 그 대신 본인은 여기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낮은 산인 초안산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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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산은 전철 1호선 녹천 역에서 내리면 코앞에 있다.
옆에 중랑천을 흐르는 동부 간선 도로가 원래는 강의 양 옆으로 상행과 하행이 달리는데, 여기 초안산 구간만은 부지가 없어서 전철 선로가 중랑천의 바로 옆을 지난다. 이 때문에 이곳은 동부 간선 도로도 폭이 좁아지기 때문에 병목과 정체가 발생하곤 했다.

도로의 확장을 위해 철도 선로를 이설하겠다는 계획이 거의 2000년대부터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아직도 진행은 지지부진한가 보다. 그래도 여기 주변의 풍경이 가까운 미래에 바뀌기는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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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산은 워낙 작고 낮은 산이며, 비슷한 체급인 봉화산처럼 등산로도 여기저기 많이 뚫려 있었다. 여느 산들처럼 어디에서 어디 지점까지가 수 km 거리가 아니다. 그냥 몇백 m만 설렁설렁 걸으면 된다.
원래는 산의 규모가 더 큰데 덕흥로라는 길을 내느라 둘로 쪼개진 듯하다(창동 주공 4단지 아파트, 생태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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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산치고는 정상 주변에 헬리패드도 있고 정자와 심지어 태극기 등, 메이저급 산의 정상에 있을 만한 시설은 다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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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초안산을 찾은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것.
초안산에는 조선 시대 궁궐 내시, 양반, 서민 등의 무덤이 1000여 개 가까이 있다고 한다. 정상 근처를 보니 웬 묘비와 석상들이 여럿 보였다. 내가 지금까지 올랐던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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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천 역에서 /자 모양으로 산을 남서쪽으로 가로질러서 하산했다. 역시 빽빽한 아파트와 빌라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5/25 08:31 2017/05/2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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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여행

지난 설날 때 본인은 가족과 함께 당일치기로 강화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강화도는 민족 영산(?)이라는 마니산이 있고, 고려 시대에 나라가 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 임시 수도였으며 1876년 강화도 조약의 장소이기도 해서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그러고 보니 팔만대장경도 지금이야 경남 합천군의 해인사에 있지만, 만들어진 곳은 강화도이다. 고려는 그야말로 "불심으로 대동단결"을 실천한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방대한 무게와 부피를 자랑하는 수많은 경전들을 그 시절의 교통 인프라 여건에서 섬-내륙으로 바다까지 건너면서 수송하는 것조차도 굉장히 큰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과거에 신라에 유일하게 여왕이 있었고 여러 가문이 차례로 번갈아가며 왕위를 잇는 관행이 있었다면, 고려에는 저런 종교 배경의 특성상 말기에 신 돈 같은 비선실세(?) 승려도 존재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의 이념은 '숭유억불'이었다. 조선의 개국공신들이 보기엔 고려가 망한 것에는 타락하고 막장으로 치달은 정교일치 불교계의 책임이 커 보였던 것 같다.
뭐, 지금에 와서는 조선도 이미지가 바닥을 기며, 유교 역시 진작부터 꼰대(질)의 상징에  '유교탈레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같은 말이 나돌 정도로 평가가 최악이다. 뭐든지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걸 느낀다.

아무튼,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차를 몰고 서쪽으로 향했다.
서울 근교에서 자연을 벗하며 놀 만한 곳으로는 동쪽으로 남한강이 있는 양평, 혹은 북한강이 있는 가평· 춘천 방면도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거기보다 더 색다른 곳을 찾다 보니 강화도로 의견이 쉽게 한데 모였다.

강화도는 면적이 300㎢가 넘고 생각보다 크더라. 시내와 대부분의 볼거리는 북부에 있는 반면, 마니산만 혼자 최남단에 있는 듯했다. 북부에는 강화대교, 남부에는 초지대교가 있어서 육지와 통한다. 서울에서 강화도 남부를 가는 건 인천 공항 가는 것과 비슷한 거리이고, 북부는 그것보다 거리가 살짝 더 길어지는 듯하다.
강화도로 가는 길은 올림픽대로 + 국도 48호선(북부) 또는 지방도 356호선(남부) 끝이다. 아주 직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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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산성. 강화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유적이지 싶다. 안내문 표지판 말고 다른 시설은 없이 그냥 도심 속의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주차 걱정 없는 시골이니 그냥 골목길 담벼락 아무데나 차 세우고 내려서 구경했다.
그러고 보니 고려 행궁도 지도상으로 근처에 있는데 거기에는 못 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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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돌하르방이 있다면 강화도에는 고인돌이 있다. 그나마 돌하르방은 훗날 유명세를 타서 레플리카가 만들어진 게 훨씬 더 많은 반면, 여기에 있는 고인돌은 옛날에 만들어진 레알이다.
접근하기도 편하게 딱 국도변에 넓은 들판과 함께 강화도 전체에서 가장 고퀄이라 여겨지는 고인돌이 놓여 있었다. 영국의 스톤헨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인돌들은 딱히 식별 수단이 없으니 그냥 발견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서 부르는가 보다.

여기 주변에는 마침 강화 역사 박물관과 강화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두 박물관도 있었다. 하지만 설 당일이 휴관이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나저나 '고인돌'은 안 그래도 영어로도 dolmen이라고 하는데 故人인지 '고이다+전성어미ㄴ'인지 어원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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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근리에 있는 고인돌을 하나 더 답사했다. 처음에 봤던 것보다는 크기가 약간 더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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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풍경은 사방이 온통 논밭 벌판이고, 그러면서 높이가 300m쯤 돼 보이는 낮은 산들이 종종 둘러져 있는.. 그런 형태였다. 산들은 정상에도 뭔가 정자나 군사 시설 같은 게 빠짐없이 세워져 있는 편이었고, 그게 지상에서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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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우리는 강화도의 최북단에 있는 평화 전망대로 갔다. 여기는 민통선 안이기 때문에 중간에 검문을 받고 출입증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연고지나 지인 초청이 없어도 되며, 사전 방문 신청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다. 모든 차량 동승자가 아니라 그냥 대표자 한 명의 이름과 연락처, 차 번호만 적으면 됐다. 내 경험상 국내 민통선 안의 출입 정책은 각 지역과 관할 부대마다 케바케였다.

우리나라 군사분계선은 대부분 높은 산지이며, 선 주변에는 DMZ라고 불리는 완충 지대가 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의 서쪽 끝은 그 특성이 내륙· 동부와는 극과 극 수준으로 다르다. 여기는 육지가 아니라 물이 그대로 군사분계선이고 양측 강변이 남방과 북방한계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는 DMZ 같은 건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 대신 동부와는 달리 강안경계라는 게 있다. 한강이 서울 시내 구간만 해도 강폭이 1km 남짓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육박하고 강북과 강남을 가르는데.. 강화도가 있는 한강 최하류로 가면 강폭은 2km에 달하며, 강남과 강북이 무려 남조선과 북조선을 가른다..! 군사분계선이 육지에서 강으로 바뀌는 경계를 보고 싶으면 강화도에 도달하기 전에 파주의 오두산 전망대에 가 보면 된다.

6· 25 때 우리나라가 지형상의 불리함으로 인해 서부는 오히려 있던 땅도 빼앗겨서 38선 이남, 한강 이남으로 후퇴하게 됐다. 이 때문에 서울이 북한과 더욱 가까워졌으며, 군사분계선이 저런 식으로 한강을 따라 형성되었다.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있는 낙동강 하구와는 달리, 한강 하구는 민간인이 접근 불가능한 영역으로 봉인되어 버렸다. 여기를 뱃길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아라뱃길이라는 경인 운하를 나중에 또 만들어야 하게 됐다.

황해에는 강과 바다에 형성된 군사분계선 근처에 섬이 여럿 있다. 게다가 연평도나 백령도 같은 섬은 위도가 상당히 높고 북한의 본토와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남한 땅이다. 이건 북괴가 전쟁 당시에는 섬들을 점령할 해군력이 없었기 때문에 종전 후에도 남한 땅이 될 수 있었다. 휴전 직전엔 오히려 국군과 UN군이 북한 지역 위도의 다른 섬들까지도 몽땅 점령해 있었지만 휴전과 함께 철수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인해 강화도를 포함한 그 일대의 섬들은 비록 다리가 놓였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육군 전방 부대가 아니라 상륙 작전을 염두에 둔 해병대가 주둔한다. 민통선 검문도 응당 얘네들 몫이다. 그리고 군용차도 일반적인 전차(탱크)보다는 수륙 양용 장갑차 같은 게 더 친숙하다.
아니, 우리나라 해병대 전체가 그냥 서부 전선의 전방 도서 지역을 지키라고 존재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병대는 훈련소와 자대, 본부도 후방인 포항이 아니면 전방인 황해 이렇게 딱 두 지역에만 있다.

옛날에 태평양 전쟁 시절처럼 섬을 땅따먹기 하면서 물과 육지에서 모두 작전을 수행하는 게 쉬울 리 없으니 해병대는 일반 육군 보병보다 전투력이 더 뛰어난 정예 병력으로 간주된다. 100% 지원자만 그것도 경쟁을 뚫고 들어갈 정도이며, 훈련 때 목봉 체조 같은 것도 육군이나 해군이 아닌 해병대만 한다. 다만, 그게 전투력과는 별 관계 없는 지나친 이빨과 마초이즘 기수놀이, 똥군기로 변질된 건 문제이긴 하다.

해병대 아니랄까봐 "빨간 배경에 노란 글씨"로 민통선 내 행동 주의 사항이 적힌 안내판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전망대 내부의 통제는 해병대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리 빡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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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강 건너 펼쳐져 있는 북한 땅이다. 황해도 개풍군. 내륙처럼 남북의 DMZ 산림 없이 강 너머로 곧장 북한의 마을과 논밭, 건물, 심지어 사람까지 곧장 보이기 때문에 전국의 어느 전망대보다도 어떤 의미에서 북한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그것도 위도상 최남단의 북한 땅을 말이다. 이게 강화도에 소재한 전망대에서 얻을 수 있는 소득이었다. 그런데 저기는 북한의 입장에서 민통선 내부이지 않을까?

철원의 평화 전망대나 고성의 통일 전망대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였고, 파주의 도라 전망대에서도 기껏해야 군인 극소수만을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당장 빨간 점퍼를 입은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주택 담벼락을 서성거리는 두세 명의 사람 등 역대 전망대들 중 북한 민간인(군인이 아닌)을 제일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같이 "북한 방면 사진 촬영 금지" 이런 통제도 없었다.

아, 물론 사람까지 보는 건 육안으로는 불가능하고 유료 망원경을 동원해서 봐야 한다. 이런 곳에서는 500원 투자할 가치가 있다.
저 멀리 세로로 선전 구호가 쓰인 걸로 추정되는 기둥도 있었는데 글자가 무엇인지는 아쉽지만 망원경으로도 제대로 식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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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봉우리의 이름이 제적봉이랜다. '적'의 한자가 enemy(敵)가 아니라 red(赤)이다. 즉, "공산당 빨갱이들을 제압하다"라는 뜻이다.
이름의 유래 설명에 따르면, '제적봉'이라는 이름은 박 정희 대통령의 개입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예전에 이 승만 대통령은 호수의 이름을 반공 컨셉을 넣어서 '파로호'(오랑캐들을 격파하다)라고 지은 적이 있는데, 이것과 무척 비슷한 심상을 형성한다. 조선 시대 얘기지만 '척화비'도 동일한 맥락일 수 있겠다.

이렇게 평화 전망대를 구경한 후, 우리는 교동도를 찾아갔다. 민통선 검문소는 교동대교보다 한참 앞에 있었다. 전망대에 갈 때와 비슷하게 간단한 출입 신청서만 작성하면 출입 허가는 곧장 나오며, 한번 출입증을 받으면 내 기억으로 2~3일 정도 교동도에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다. 여느 민통선 구역처럼 해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통금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자정~새벽 4시 정도에만 출입을 자제하면 된다.

교동도는 2014년이 돼서야 다리가 놓였으며, 아무래도 주민 출입이 뜸하니 대교 주제에 도로폭은 겨우 2차선이었다(편도 1차선).
그리고 섬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농촌 마을일 뿐 어촌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다. 해수욕장? 횟집? 그런 거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보안 때문에 바다로 나갈 수가 없으니까. 괜히 민통선 마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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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갔을 때는 교동도에 있는 커다란 '고구 저수지'가 온통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하늘의 색과 바닥의 색이 거의 동일한 게 무슨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보는 듯했다. 썰매를 타고 놀고 싶었다.

교동도를 한 바퀴 도니 날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강화도까지 왔는데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마니산을 어귀는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남쪽으로 향했다.
정상의 참성단까지 가는 길은 서울 남산처럼 흙길 등산로와 계단 등산로가 모두 닦여 있는 듯했다. 등산은 차마 못 하고 돌아왔지만 여기도 마치 제주도 한라산이나 성산 일출봉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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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자유·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아이고 이거 무슨 예비 의료인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도 하는 것 같다. 등산을 이렇게 거창하게 윤색해 놓은 시는 난생 처음 본다. =_=;;

나중에 강화도를 다시 찾아오는 건 결혼하고 애까지 동반한 뒤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 강화도에서 의미 있는 여행을 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4/22 08:33 2017/04/2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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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앵봉산· 봉산

서울 북서쪽의 은평구에는 동쪽으로는 북한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 병풍 역할을 하는 길다란 언덕? 산?이 있다. 높이가 200여 m 남짓밖에 안 되니 등산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그냥 공원· 산책로에 가깝다.
정상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그냥 대놓고 횡단· 종단에 의의를 둬야 한다. 또한 산기슭은 온통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등산용품 매장이나 유원지 같은 걸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저기는 전형적인 동네 뒷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봉우리엔 북쪽에서부터 남쪽 순으로 앵봉산· 봉산· 수색산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다. 본인은 지난 한겨울에 저기를 다녀 왔다.
서울 시내 등산을 다니면서 본인은 한양도성, 북한산성 등 산과 관련된 여러 유물, 제도, 순환 관광 코스들에 대해 알게 됐다. 저기를 답사하면서 이번에는 '서울 둘레길'에 대해서 이제야 드디어 확실하게 감을 잡았다.

예전에 북한산이나 아차산을 오를 때도,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아니라 능선이나 중턱에 이상한 길이 나 있는 건 지도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다 한데 이어져 있고 서울시에서 비교적 최근에 작정하고 일관된 시스템으로 '둘레길'이라는 걸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는 건 처음으로 알게 됐다. 공식 홈페이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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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나름 지리 공부도 되고 나쁘지 않은 발상인 것 같다. 높은 산들은 그냥 중턱에만 길이 나 있고, 앵봉산· 봉산처럼 낮고 긴 산은 정상 능선이 경로이다.
서남부는 산이 없는 관계로 예외적으로 안양천을 따라 길이 나 있다. 그러니 옛날에는 산을 피하느라 경부선 철도도 영등포로 우회하는 형태로 놓인 것이지 싶다.

이런 의미를 두고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 역에서 내려서 먼저 앵봉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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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와 정자, 체력 단련 시설이 나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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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참호 같은 군사 시설도 등장했다.
안 그래도 답사 당시 날씨가 몹시 추웠는데 저 참호 안에 들어가서 한숨 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기 안은 왠지 따뜻할 것 같았다.
한겨울엔 땀이 안 나는 대신 콧물이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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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산의 건너편은 초록색 펜스로 가려졌다. 군사 시설 때문은 아니고, 건너편에 서오릉이 있어서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이다. 이 점에서는 의릉 때문에 펜스가 쳐진 서울 천장산과 사정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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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딱 한 군데 전망대가 있기도 해서 풍경 사진을 남길 수도 있었다. 여기 말고 다른 곳은 온통 나무가 우거져서 산 아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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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는 이렇게 텔레비전 송신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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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펜스의 색깔이 잠시 검정으로 바뀌기도 하다가 다시 초록으로 복귀하면서 내리막이 이어졌다.
나중엔 울타리와 산책로도 없어지고 흙길이 나오다가 서오릉로와 합류하는 걸로 앵봉산 구간이 끝났다. 여기까지 3km가 넘게 좀 걸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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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이 다니는 서오릉로를 횡단하면 봉산 구간이 곧장 나온다.
이 공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차를 세워 놓기에 안성맞춤인데 여기는 딱히 차 끌고 방문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게 딜레마이다.
참고로, 답사 당시에 저기는 길이 온통 빙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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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도 정상(?)이라고 불리는 곳에는 정말 금방 도달할 수 있다. 꽤 넓은 공터가 닦여 있으며, 전망대와 정자, 그리고 봉수대 모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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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건너편에는 비슷한 높이의 언덕인 망월산이 있고, 망월산과 봉산 사이에 '고양 향동 공공주택 지구'라는 이름으로 한창 공사판이 벌어진 게 보였다. 몇 년 뒤면 저기도 온통 아파트들이 빽빽하게 들어서게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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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높이가 대략 어떻고 산기슭이 어떤 분위기인지는 위의 사진 한 장으로 대략 설명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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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지난 뒤에도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런 식으로 길이 계속 이어졌다.
산이 자연스럽게 끝날 때까지 증산· 수색 방면으로 계속 가고 싶었지만, 시간과 보급의 한계로 인해 서울 시립 서북 병원쯤에서 하산을 결정했다. 내려가는 길이 온통 미끄러운 빙판이 돼 있어서 다니기가 몹시 힘들었다.

최종 하산 지점은 봉산을 정면으로 관통하여 서울과 고양시를 잇는 터널 근처였다. 이건 작년 여름 시점의 로드뷰를 봐도 아직 미개통 상태였을 정도로 정말 최근에 뚫린 터널인 것 같았다.
국도 1호선 증산로 방면으로 한참을 걸은 뒤, 최종적으로는 새절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비록 산의 절대적인 높이는 낮은 편이지만 여느 산을 오를 때와 비슷한 시간 동안 총 7km가 넘게 걸은 것 같다.

산 너머로 그린벨트 마을 같은 게 있었으면 고양시 쪽으로 하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쪽은 공사판이고 볼 게 없어서 도로 서울 시내 방면으로 하산하게 됐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본격적으로 '서울 둘레길'이라는 컨셉으로 북한산 쪽도 돌아다녀 보고 이곳의 완전 반대편인 동부의 일자산 쪽도 가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7/04/19 08:34 2017/04/1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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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수락산

2016년은 내 평생 등산을 제일 많이 간 해였다. 서울 근교에 있는 20여 개의 산을 일일이 답사했다.
그 뒤 한동안 바빠서 등산을 못 하다가 모처럼 시간을 내어 수락산을 다시 도전했다. 이번엔 인서울인 수락산, 당고개 다음으로 장암 역(= 의정부)에서 올랐으며 예전과는 달리 물론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산 건너편으로 넘어가면서 몇 시간 동안이나마 좋은 추억을 만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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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은 국립공원이 아니니 북한산· 도봉산처럼 탐방 지원 센터나 각종 출입 금지 구역 같은 건 없다. 등산로도 더 다양하게 열려 있었다. 그래도 그린벨트 구역, 문화재 보호 구역 같은 건 있었다.
장암 쪽에서 접근하는 등산로에는 각종 산장 식당들을 외에도 '노강서원'과 석림사가 있었다. 석림사까지 지난 뒤부터는 흙길 등산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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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계곡 쪽 등산로만 골라서 올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락산은 '물'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어지간한 산들은 계곡이 있어도 특히 한겨울엔 가뭄을 버티지 못하고 바짝 말라 있기 십상인데.. 수락산은 곳곳에서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이웃의 북한산에도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긴 하다. 하지만 거기는 다 자연 보호를 명목으로 출입이 금지돼 있으며 눈으로 구경만 가능하다.
서울 근교에서 수락산처럼 출입금지도 아니면서 이 정도로 고퀄 대규모의 계곡과 물웅덩이가 존재하는 산은 본인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난 물에 들어가서 노는 걸 아주 좋아한다. 추워서 두꺼운 외투를 입은 상태였지만 옷 벗고 물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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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폭포 옆으로 나란히 등산로가 조성돼 있기도 했다. 시기가 시기이니 산은 온통 낙엽으로 뒤덮여 갈색으로 변했다.
여름과 가을의 초록색이 시각적으로 더 좋긴 하지만, 그래도 등산자의 입장에서는 덥지 않은 동계 산행이 다른 계절 산행보다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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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올라서 한 봉우리의 능선에 진입하자 주변 전망도 얼추 보이기 시작했다. 수락산도 단순한 흙산이 아니며, 높은 부분은 화강암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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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뿌옇고 흐렸다. 그래도 아래로는 도봉 차량 기지가 보이고, 저 멀리는 도봉산이 분명하게 보였다.
수락산은 가끔 굉장히 가파른 계단을 타고 바위를 오르는 곳이 있었지만, 도봉산이나 북한산만치 험하게 손으로 뭘 잡고 올라야 하는 건 없었다.
(아, 검색을 해 보니 수락산도 '기차 바위'인가 여기는 줄을 잡고 바위를 타야 하는 험한 구간이 있다고 한다. 단순히 내가 거치지 않았을 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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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상 능선에 도달했으며, 거의 다 왔다. 정상은 불과 2~300m밖에 남지 않았다. 정상의 반대쪽으로 가면 일명 '기차 바위'에 도달하는데, 난 거기로는 가지 않았다.
고도가 더 올라가니 도봉산 역과 장암 역이 나란히 보이는 지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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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수락산 정상이다. 오르는 데 역시 2시간 정도 걸렸다. 해발 637m라니 검단산이나 예봉산보다 약~간만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태극기가 펄럭이고 안내문이 쓰여 있는 저 바위 위로는 도대체 올라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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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체없이 하산을 시작했다.
남쪽으로 계속 진행했으면 인서울인 수락산 내지 당고개 역 방면으로 하산하거나, 또 방향을 꺾어서 불암산으로 산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산을 횡단하는 게 목적이었기에 남양주 청학동 방면을 선택했다.
여기는 군데군데 눈이 덜 녹은 흔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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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을 하나 지나자 '내원암'이라는 웬 절간 내지 암자가 나왔다.
수락산은 성곽이나 봉수대 같은 건 없지만 서원이나 절 같은 옛날 스타일 건물이 등산로 바로 옆에 종종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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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의 물이 참 탐스러웠다.
별도로 사진을 첨부하지는 않지만, 수락산은 약수터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어지간한 산들은 약수터 자체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물이 고갈됐거나 더러워서 식음 불가 상태인 반면, 여기서는 마실 수 있는 물이 나오는 약수터가 몇 군데 있었다. 더워서 땀을 흘리는 상태는 아니지만 목이 좀 말랐는데 등산 당시 꽤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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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바위도 하나 타고.. 하지만 철봉과 발받침이 있으니 딱히 힘들거나 위험하지 않았다.
그 뒤 하산을 계속하니까 흙길이 점점 폭이 커지고 전깃줄과 전봇대가 보이고 건물들과 차량까지 보이면서 계곡과 등산로는 유원지로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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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렇게. 계곡을 반쯤은 운하처럼 바꿔 놓은 것 같다. 한여름 장마철에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피서객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다.
다만, 그린벨트 구역에서는 건물을 무단 증축하는 건 물론이고 계곡 근처에다 함부로 정자 같은 걸 만들어 놓고 "우리 식당 이용할 사람들만 근처 물가에서 노셈" 이러는 것조차도 원래 다 불법이다. 사유지 드립을 치지만 걔네들도 이미 법을 어기고 있긴 마찬가지다. 피서철만 되면 이런 게 뉴스에 종종 보도되나, 생계형 잡범형 불법 행위라고 해서 단호하게 근절되지도 않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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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지를 빠져나오니 드디어 시내버스가 다니는 찻길이 나왔다. 그래도 길이 별로 크지 않고 여전히 오지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런 느낌이 좋다.
예전에 갔던 도봉산에서는 완전히 건너편으로 넘어갔으면 양주시 송추 유원지 근처에 도달했을 텐데, 거기서는 대중교통으로 서울로 돌아오는 게 애로사항이 꽃폈지 싶다.
하지만 여기는 다행히 당고개 역까지 가는 남양주 소속 시내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꼬불꼬불 비탈길(순화궁 고개?)을 타고 덕릉 예비군 훈련장을 지나는 게 인상적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등산을 마치고 나자 드디어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서울 지하철 7호선 종점에서 내려서 등산을 시작해서는 4호선 종점으로 돌아왔다.
수락산에 대한 총평은.. 산 이름이 괜히 '수락산'(물이 떨어진다?)으로 붙은 게 아니구나 싶었다. 예전에 수락산을 올랐을 때는 이런 면모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일찍 가서 자리만 맡아 놓으면 차를 생각보다 높은 고도까지 몰고 갈 수 있으며 주차도 별 문제 없어 보였다. 의정부 쪽이나 남양주 쪽 모두 말이다. 왔던 곳으로 되돌아온다면야 차를 가져가는 데 문제가 없지만 이번에는 편도 동선이었으니 부득이 차 없이 뚜벅이 산행을 했다. 나중에 여름에 피서를 위해 수락산에 다시 가 보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7/03/27 08:36 2017/03/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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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부에서 동쪽 북부까지 늘어선 산들을 살펴보면 북악산 - 북한산 - 도봉산의 순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쯤만 해도 본인은 북악산과 북한산의 차이도 몰랐는데 등산 많이 하면서 서울 지리 지식이 참 많이 늘었다. 북한산과 도봉산의 사이에 있는 것이 '우이령 고갯길'이며 본인은 거기도 갔다 와 봤다.

북한산은 서울 주변의 여러 산들과 비교했을 때 워낙 거대하고 등산로가 많은 산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난번에 갔던 정릉-백운대-우이동보다 더 서쪽으로 가서 형제봉· 문수봉 일대를 오른 뒤, 평창· 구기동 일대로 하산하는 경로를 짜서 북한산을 올랐다.

본인은 예전에 북악산을 북동쪽으로 종단해서 국민 대학교 방면으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계속해서 북한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까지는 그 당시 확인했지만, 시간과 체력 문제 때문에 더 진행하지 않고 귀가했었다.
그때 더 가지 못했던 길을 이제야 다시 찾아가서 개척하게 됐다. 지하철 길음 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국민 대학교로 러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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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가 대중적으로는 홍대만큼이나 미대가 유명한 걸로 본인은 알고 있다. 뭐, 주변에 애들 놀 곳이 차고 넘치는 홍대에 비해,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의 산기슭에 자리잡은 국민대는 위치와 분위기 차이가 많이 나긴 한다. 국민대는 놀기 좋은 위치가 아니라 등산 가기 참 좋은 위치에 있다.

그리고 본인 개인에게 국민대의 인지도는 강 승식 교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어 형태소 분석기를 연구· 개발하고 있는 컴퓨터공학과 교수여서 말이다. 아,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만나 보고 아는 사이는 아님.
2010년대부터는 U-tagger라는 걸출한 작품 때문에 울산대가 국어 정보처리 경진대회에서 상을 연달아 휩쓸기도 하면서 이 바닥의 막강한 경쟁자로 등극해 있긴 하다. 거기는 주 개발자인 박사 출신 학생은 들어 봤지만 교수님은 누군지 잘 모르겠다.

이런 잡생각을 하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국민대 정문을 지나서 더 북쪽으로 가면 사진과 같은 터널이 보이며, 사진 기준 오른쪽에 공터와 함께 등산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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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몇 차례 언급했듯, 북한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라 국립공원이다. 그래서 입구에 이런 간단한 초소가 있고 밤에 '통금'도 존재한다. 하지만 저 초소는 안이 잠겨 있고 근무자는 없었다.

국민대 근처에 있는 등산로 출입구의 명칭은 '북악공원 지킴터'이다. 여느 등산로 입구처럼 '탐방 지원 센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는 않다. 아마 '탐방 지원 센터'보다는 더 간소화된(?) 시설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바로 옆에 대학교가 있다 보니..;; 네임드급 산의 등산로 출입구라고 해서 식당과 등산용품 매점이 즐비하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도 이색적이었다.

아, 등산 당시의 개인 근황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을 지금까지 얘기를 안 했구나.
본인은 지금까지 거의 모든 등산을 꼭두새벽이나 그에 준하는 매우 이른 아침에 해 왔다.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등산은 점심 시간이 지난 오후 2시 무렵에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이 등산은 평범한 정규 스케줄에 근거해서 진행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4년 반이 넘게 아무 탈 없이 잘 썼던 맥북이 아무 징후도 없다가 하드디스크 케이블의 노후화로 인한 인식 + 부팅 불가라는 중대한 기능 고장을 최초로 일으켰다. 교체 부품을 주문해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당일 즉시 수리는 안 되었으며, 컴을 얄짤없이 며칠 맡겨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애플 공인 서비스센터는 무슨 삼성이나 LG전자 서비스센터처럼 곳곳에 많이 있지 않다. 회사와 가까운 분당 소재의 센터들은 아이폰만 취급하지 컴퓨터의 수리는 되지 않아서 서울 센터들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며칠간 날개셋 코딩은 어차피 못 할 텐데, 맥북 없이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그 동안 몰아서 미리 처리하는 쪽으로 개인 스케줄을 재조정했다. 그래서 오전에 서비스센터를 들렀던 당일의 오후에 등산을 급히 가게 된 것이다. 본인은 노트북 PC의 고장에 대비해서 이런 식으로 시간 손실을 최소화하는 Plan B 전략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 날은 낮 기온도 10도가 안 될 정도로 매우 추웠던 덕분에 한낮에도 무더위 걱정 없이 높은 산의 등산이 가능했다. 단지, 낮이 매우 짧아져 있어서 등산 시간에 제약이 심했던 게 아쉽다. 오후 2시도 정말 아슬아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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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공원 지킴터'의 등산로는 이런 모양으로 시작되었다. 오르막이 계속됐다.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마지막으로 등산을 갔을 때보다 단풍은 더욱 진행돼 있었다.
나중에 갈림길이 몇 번 나왔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북악산이나 정릉 탐방 지원 센터 방면으로 빠지지 않게 주의했다. 나의 목표는 '형제봉 + 대성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기에는 심곡사· 영불사라는 절을 찾아가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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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특유의 울타리 쳐진 흙길과 문명화(?)의 흔적은 영불사까지가 끝이었다. 그 뒤부터는 여느 산처럼 숲이 우거지고 비좁고 가파른 산길 산행이 시작됐다. 해발 287m에, 대성문까지 약 2.5k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난 지 얼마 안 됐다.

여기서 능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었다. 전망대나 계곡이나 특이한 자연· 인공물 같은 거 없고, 묵묵히 산을 오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중간에 형제봉에 근접했으며 거기로 가는 갈림길도 있었지만 본인이 못 보고 그냥 지나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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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말의 전망대 비슷한 바위가 나왔다. 여기서는 전망이 훤히 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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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울타리 쳐진 흙길이 나왔다. 여기는 벤치 하나 없고 전망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공간이 굉장히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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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더 올라간 뒤에야.. 드디어 첫 목적지인 북한산성 대성문에 잘 도달했다.
예전에 정릉에서 북한산을 올랐을 때는 보국문에 도달한 뒤 동쪽의 대동문 쪽으로 갔다. 이번에는 보국문의 서쪽인 대성문에 도달한 뒤, 또 서쪽의 대남문으로 갔다. 여기 고도는 이미 620m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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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대동과는 달리 대성-대남은 거리가 무척 짧은 편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잠시 하강만 하면 곧 대남문이며, 성곽 전방의 저 봉우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문수봉 정상이다.
허나, 등산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시간상의 한계(이미 오후 3시가 다 돼 감), 그리고 어차피 성곽을 따라 그대로 오르지도 못한다는 이유(안전상의 문제로 우회 등산로 이용) 때문에 본인은 문수봉은 가지 않았다. 그냥 이 사진만으로 만족한 뒤, 대남문에서 하산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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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대남문이다. 벌써부터 태양의 고도가 극도로 낮아지는(= 날이 저묾) 게 티가 난다. 이러면 찍은 사진의 색감과 명도· 채도도 별로 안 좋고 특히 역광은 감당할 수가 없어서 풍경 사진 남기는 데는 큰 악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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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에서 구기동 방면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저기까지도 대략 2.5km 정도라고 한다. 처음에는 통나무 계단이 있었지만 그게 끝난 뒤부터는 흙길이 아니라 돌길이 굉장히 길게 지겹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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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길은 언제부턴가 계곡으로 바뀌었다(구기 계곡). 산 중턱에는 계곡을 건너는 다리도 몇 개 있었지만 물은 바짝 말랐거나 고인 웅덩이 형태로만 있었다. 하지만 아래로 계속 내려가자 그래도 나름 흐르는 맑은 물이 몇 군데 있었다.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이런 계곡에서 물놀이 하는 것도 좋다. 물론 국립공원들은 계곡이 죄다 민간인 출입 금지이기 때문에 저것들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추워서 콧물이 나고 손이 시려운 지경인데도 본인은 물놀이 생각을 하면서 산을 내려갔다. 몸은 별로 안 추운데 손가락 같은 말단은 어쩔 수 없이 추위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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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 탐방 지원 센터를 지나서 드디어 하산을 마쳤다. 서울 종로구 산기슭 그린벨트 지대에 이렇게 땅밟기를 하게 됐다. 여기엔 정치인들이 많이 산다는데...

버스가 다닐 정도의 큰길에 도달하니 '현대'라는 이름이 붙은 아파트도 아니고 3층짜리 벽돌 빌라가 있었다. 이건 물론 고도 제한 때문에 건물을 저렇게 지은 것이지 싶다.
지도를 보니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이북 5도청'이 여기서 불과 몇백 m, 버스 한두 정거장 남짓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5km가 넘는 산길을 다니고 와서 다리에 근육통을 호소하는 상태에서 선뜻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또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풍경 사진을 찍기에는 이미 날이 많이 춥고 어두워져 있었다.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귀가했다. 이북 5도청을 일부러 안 찾아가고 하산길에 자연스럽게 구경하려면 구기보다 더 서쪽의 비봉 탐방 지원 센터 방면으로 하산했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구기 터널과도 꽤 가까이 있었다. 거기를 지나면 이미 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이 나오는 은평구가 나온다.

이북 5도청을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한국 고전 번역원은 버스 차창 밖으로 잠시 구경했다. 조선 왕조 실록은 전산화와 번역이 완료됐지만 그보다 분량이 더 방대하고 디테일한 승정원 일기는 여전히 완역이 요원한 상태라고 한다.
한편, 북한산은 비록 서울 북부의 확장을 가로막는 지형 장애물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나름 군사· 안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또 시민들에게 굉장히 좋은 휴식처 역할도 한다는 게 느껴졌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 그리고 낙산)에 있던 성곽은 한양도성이다. 그러나 북한산에 있는 성곽은 북한산성이며 성남 쪽의 산엔 잘 알다시피 남한산성도 있다.
남한산성 일대는 6· 25 때 부산이 그랬고 고려 시대 때 강화도가 그랬던 것처럼 유사시에 임시 수도 역할을 할 수 있게 행궁이 있다. 저긴 워낙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에... 실제로 병자호란이 치러졌으며 지금은 도로가 닦여서 안에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고 심지어 마을버스까지 다닌다.

그 반면 북한산성은 발로 힘들게 등산을 하지 않으면 접근할 방법이 없으며, 군사 목적으로 건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여기서 전쟁을 치른 내력이 없다.
그러니 북한산성은 접근성이 좋은 한양도성과, 역사 내력과 유적이 풍부한 남한산성에 밀려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없는 것 같다. 남한산성과 비교했을 때 마치 북극과 남극, 그리고 지구형 행성과 가스형 행성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또한, 남한산성은 거기 유적지 일대만 도립공원인 반면, 북한산성은 그냥 산 전체가 통째로 국립공원이니 격이 차이가 있다. 뭐, 유적지 때문이 아니라 자연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12 08:36 2017/02/1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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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도봉산

지금까지 서울 북부의 산행은 지난번의 북한산, 그리고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락산· 불암산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 북악산은 북부라고 치기에는 생각보다 '덜' 북쪽이고.
수락산은 지하철 접근성이 좋으며 나름 두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지만(각각 수락산, 당고개에서 출발), 그때는 산들의 특성 내지 등산 계획 수립 요령에 대해 지금 같은 지식과 노하우를 갖추지 못한 초창기였다. 그래서 정상까지는 안/못 가고 모두 중턱에서 내려왔다. 그때는 둘레길과 등산로의 차이도 모르던 정말 초짜 시절이었다.

가을은 날씨가 안 덥고 산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시기이니 가히 등산의 계절이라 할 만하다. 매니아들 중엔 아예 날 잡아서 멀리 지리산, 설악산 등으로 원정 가는 사람도 있다. 등산이 마냥 중장년 아재들의 전유물 취미이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가끔 보면 내 또래의 젊은 사람, 심지어 여자분도 있다.
이런 와중에 본인은 삼성산 다음으로는 지금까지 의외의 미개척 상태였던 도봉산을 다녀왔다.

도봉산은 북한산의 이웃에 있는 별도의 산이지만, 여기도 여전히 북한산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그래서 북한산처럼 시설이 잘 돼 있으며 경치도 매우 아름답다. 그 대신 입산 시간대가 제한되며,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거나 허용 등산로를 이탈해서 다니다 걸리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런 점에서 도봉산은 건너편의 수락산과는 급이 좀 다르다.

도봉산이 같은 국립공원인 북한산과 다른 점으로는 성곽이나 무덤 같은 건 없고 사찰이 더 많이 있으며, 전철 접근성이 훨씬 더 좋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는 지리적으로 서울의 북쪽 끝인 관계로 근처에 근처에 시내버스 차고지가 있음과 동시에 지하철도 잘 알다시피 7호선의 종점과 도봉 차량 기지가 있다.
도봉산 역은 강릉의 정동진과 위도가 거의 같은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상 철도 2개가 평행하게 만나는 관계로 이 역은 그냥 1호선 역과 7호선 역 두 채가 나란히 놓인 형태이다.

철덕으로서 지하철 답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등산을 위해서 도봉산 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역의 동쪽에는 '서울 창포원'이라는 야외 식물원이 있다. 반대로 국도 3호선을 횡단하여 서쪽으로 1km 남짓 걸어가면 국립공원 출입구가 나오고 등산로가 시작된다.
처음에 '도봉 탐방 지원 센터'가 나오고 그 다음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 분소'에서 길이 본격적으로 갈린다. 북한산 둘레길도 있고 도봉산 등산로도 두 군데가 존재하는데, 본인은 은석암 방면으로 등산해서 도봉 대피소+도봉 계곡 방면으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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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길은 여느 산과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한참 산을 오르다가 커다란 바위가 나오기도 하고, 하늘이 간간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 말고 하산길이 국립공원답게 훨씬 더 잘 닦여 있었다.
은석암은 말 그대로 암반이기 때문에 손으로 줄을 잡고 바위를 올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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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턱쯤에 도달하자 시야가 탁 트이고 산 아래가 그럭저럭 보이기 시작했다. 도봉산 전철역이 보이고, 저 멀리 도봉 차량 기지도 보였다. 주변의 외곽 순환 고속도로와 이웃의 수락산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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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사는 아닐 테고 아마 천축사가 아닌가 추정되는데.. 산 속 저 높은 곳에 저렇게 절이 하나 떡 놓여 있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눈에 들어온 풍경이 가히 장관이었다. 그에 반해 여백이 부족한 건.. 아니고 카메라가 시야각과 색감이 부족하다.
본인은 뺑 돌아서 한참을 더 걸은 끝에 저 절이 있는 봉우리까지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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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커다란 봉우리 등장~! 그 뒤 등산 난이도도 덩달아 올라갔다.
장갑을 안 가져갔는데 로프를 잡은 손 내지 발을 딛고 있는 신발 바닥이 미끄러지면 어떡하나 겁이 나는 상황이 몇 번 있었다. 실제로 도봉산은 가까운 과거에 인명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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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서 낮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인제 하늘이 좀 파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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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은 여러 개의 바위 봉우리들이 제각각 정상을 구성하고 있으며, 다른 산들과는 달리 봉우리 위에 딱히 정상 표지석이나 국기 같은 건 없었다. 최고봉을 등반 가능한 건 아니며, 등산객이 접근 가능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신선대였다. 군사 시설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안전 때문에 최고봉에 못 가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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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의 바로 옆에도 이런 돌무더기가 있었는데.. 크기를 짐작케 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다시피하구나. 옆의 나무들을 보고 짐작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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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변에도 온통 높은 산과 봉우리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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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당초 계획은 오봉도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양주나 못해도 송추· 의정부 방면으로, 산을 횡단하여 서울에서 더 먼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삼성산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정작 정상에 도달하고 나니 지도의 묘사와 지금 위치가 씽크가 되질 않았다.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어서 길이 있는 곳으로만 내려가니까 결국은 서울 방면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단풍으로 물든 숲은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여기가 내가 올랐던 길보다 단풍이 더 든 것 같았다. 그리고 산 기슭보다 중턱이 붉은색이 더 짙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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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서 봤던 계곡이 여기에도 있었으며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정오에 근접하자 이제야 이쪽으로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였다.

도봉산에 대한 종합적인 평을 하자면 등산 시설을 제외한 인공물이 매우 드물고, 북한산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산 같다. 북한산은 어느 등산로든 지하철만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워서 버스가 필요한 반면, 도봉산은 국립공원으로서는 나름 역세권이기까지 한 게 좋다. 수락산, 청량산, 아차산 등 지하철 역세권인 산들 중에서는 가히 최고의 퀄리티가 아닌가 싶다. 등산기 두 편을 글 한 편에다 묶으려고 했는데 도봉산은 분량이 길어져서 또 단독 게재를 하게 됐다.

* 여담: 국립공원 이야기

자연 보호를 목적으로 근대적인 국가 제도 하에서 도입된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은 미국의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요세미티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구나. 어쨌든 미국이 최초이긴 하다. 'national park'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 첫 도입된 건 1967년이어서 올해로서 딱 반세기가 지났다고 한다.
영예의 제1호는 지리산이며, 그 뒤로 국립공원은 대부분 네임드급 산들의 독식무대였다. 설악산, 한라산, 속리산, 주왕산, 계룡산, 오대산 등.
그렇기 때문에 이쪽 사정은 산악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서울의 북한산은 1983년에 비교적 '늦게' 지정된 거라고 한다.

하지만 산만 있는 건 아니어서 남해의 한려해상 국립공원도 있으며 충남 태안 역시 해안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경북 경주시는 건물 지으려고 땅만 팠다 하면 문화재가 도깨비 방망이 두들기듯이 출토되는 특수성이 감안되어, 토함산, 남산과 일대 시가지 약 137제곱km가 국립공원으로 그것도 무려 1968년부터 지정됐다.
도시형 국립공원이란 건 경주가 전국적으로 유일무이한 사례이다. 여기에 사는 경주 시민은 법적으로는 국립공원에서 사는 셈이다. 경부 고속도로에서도 경주 근처에 '경주 국립공원' 운운하는 표지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허나, 국립공원에서 산다고 실생활에서 별로 좋을 건 없다. 오히려 문화재 보호와 도시 미관 유지 명목으로 개발 제한에 고도 제한 같은 규제가 어지간한 그린벨트 이상급으로 걸리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지주의 입장에서는 재산권 행사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미국의 워싱턴 D.C.에서는 모든 건물이 백악관보다 낮은 층수로만 지어져야 한다던데 그런 게 고도 제한이다. 그리고 작년에 지진 피해를 많이 입었던 황남동 일대는 전통 보존 운운하면서 주택은 반드시 기와집으로 올려야 한다는 게 법으로 규정돼 있었다. 그런 식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25 19:39 2017/01/2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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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예봉산, 삼성산

1. 예봉산

북한산 백운대 다음으로 본인이 찾아간 산은 남양주에 있는 예봉산이었다. 언젠가 한번 방문하려고 오래 전부터 점찍어 둔 산이었다.
예봉산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검단산을 마주보고 있으며, 해발 683m로 검단산과 비슷한 높이이다(검단산보다 약~간 더 높음). 그리고 예봉산은 주변에 예빈산, 운길산, 적갑산 같은 봉우리들이 있어서 산맥을 구성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반 년쯤 전에 검단산을 올랐을 때는 뿌연 안개 때문에 아래를 전혀 내려다보지 못했다. 한강이고 뭐고 하나도 안 보였다. 그래서 다음에는 강 건너편의 예봉· 예빈산 일대를 올라서 거기서 경치 구경을 다시 하려고 마음먹었으나.. 사실 이번에도 너무 이른 아침에 올라서 그런지 경치가 막 선명하게 잘 보이지는 않았다. 뭐, 그래도 한강을 내려다보겠다는 목표 자체는 그럭저럭 성취했다.

예봉산까지 무슨 교통편을 이용해서 갈지가 문제였다. 일단 산이 경의중앙선 팔당 역과 가까이 있긴 하다. 하지만 완전 가까운 건 아니고 몇백 m를 지나서 굴다리 밑으로 지난 뒤, 또 몇백 m를 걸어 올라가서 각종 마을과 유원지를 지나야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직선거리가 아닌 실제 이동 거리는 그리 가까워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등산로 근처까지 마을버스가 다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 대신 로드뷰를 통해 등산로 입구 근처에 차를 세울 만한 넓은 공터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 점을 감안하여 본인은 여기는 차를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차를 가져가면 알다시피 산을 편도 횡단을 할 수 없어지고 이동 경로에 큰 제약이 걸린다(차가 있는 곳으로 반드시 되돌아와야 하므로). 그걸 감수하고도 이렇게 결정을 내렸다.

서울 동부에서 저기로 가려다 보니 지난번 검단산에 갈 때처럼 하남 시내를 저절로 거쳐 가게 됐는데.. 팔당대교 진입로는 뭔지는 몰라도 굉장히 배배 꼬여 있었다. 그냥 직진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P턴을 하고 뭔가 굉장히 골치아프게 돼 있었다. 그리고 양평으로 가는 국도 6호선(경강로)과, 팔당 역 경유 남양주로 가는 길(팔당로)은 같이 나란히 지나는 듯해도 서로 왕래가 불가능했다. 팔당대교에 있을 때부터 어느 길로 들어갈지를 결정하고서 빠져나가야 했다.

요컨대 팔당대교는 진입과 진출이 모두 좀 이상한 구조였다. =_=;; 뭔가 이렇게 된 사연이 있는 것 같다.
뭐 아무튼 현장에 도착은 잘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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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인터넷을 통해 미리 봐 놓은 공터이다. 본인은 등산 전날 밤에 정확하게 이곳에 미리 도착해서 차를 세워 놓고 캠핑을 했다.

밤이 되니 밖은 기온이 거의 10도 무렵까지 뚝 떨어졌다. 또한 주변은 가로등 포함 불빛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칠흑같이 어두컴컴했다.
그에 반해 차 안은 따뜻하고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자동차 덕분에 이런 오지에서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외박을 한다는 게 참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차 안도 온기가 언제까지나 유지되지는 못하기 때문에 드디어 싸늘해지고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미리 준비해 간 담요를 뒤집어쓰기만 하면 됐다. 이튿날 아침이 되니 온도차 때문인지 차의 창문들은 온통 성에가 껴 있었다. 밖에서 차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은폐 효과까지 덤으로 달성됐구나.

아침 7시 무렵, 해가 뜨자마자 본인은 곧장 산을 올랐다. 정상까지 갔다가 차를 세워 둔 이 마을로 돌아오긴 하되, 그래도 갈 때와 올 때의 경로 자체는 다르게 경로를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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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봉산은 직전에 갔던 북한산에 비하면 정~말로 특징 없는 마이너한 산이었다.
계곡이나 암반 같은 자연 분야로나, 보안 시설이나 묘지나 역사 유적 같은 인간 분야로나.. 특이사항이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등산로 자체는 그럭저럭 닦여 있지만 계단이나 안내 표지판, 벤치, 난간 같은 것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보다시피 인제 여기에 난간 하나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전망대도 없어서 정상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한강 경치고 나발이고 뭐 없었다. 그냥 비탈길 따라 끝없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게 전부였다. 손이 필요한 구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리 트레킹만으로 충분하다. 이 정도 높이와 규모의 산이 이 정도로 밋밋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이렇게 마이너하고 한적하고 덜 유명하니까 검단산보다도 훨씬 한산하고 주차 걱정도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공원인 북한산이었으면 저렇게 공터에 아무렇게나 차 달랑 세우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유료 주차장에다 차를 대야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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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80분 동안 낑낑댄 끝에 정상에는 별 문제 없이 도달했다. 주변엔 아무도 없는 관계로 타이머를 이용해 이렇게 내 모습을 남겼다.
아 그러고 보니 맥북을 챙기는 걸 깜빡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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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팔당 역 쪽으로 가긴 하지만 그래도 올라왔던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했다. 인제 슬슬 산 정상으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는 그래도 계단이 쭉 깔려 있고 중간에 한강 방면의 전망대도 딱 한 군데 있어서 등산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 건너편의 저 높은 산이 바로 검단산이다. 또한, 팔당대교와 희고 길쭉한 팔당 역도 선명히 보인다. 나머지 울창한 숲과 나무, 등산로 계단 장면은 그렇게 특별한 게 없으므로 첨부를 생략하겠다.

하산하면서 좀 걱정은 했다만, 마을 어귀에 있는 팔당2리 마을회관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차를 세워 놓은 쪽으로 몇백 m를 걸어서 차에 무사히 잘 도달했다. 차는 4시간 가까이 주인을 기다리며 잘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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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엔 팔당 역의 바로 옆에 있는 남양주 역사 박물관을 구경했다. 남양주에 무슨 특별한 역사 유물이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산대놀이, 묘비 글씨 탁본, 기와 무늬, 바느질 무늬 같은 것들이 전시돼 있었다.

아침 시간이 되니 역 주변에는 등산객과 자전거족들이 많이 서성이는 게 보였다. 이렇게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2. 삼성산

2016년 한 해 동안 서울 근교에 있는 어지간히 높은 산들은 다 오른 듯하다. 점찍어 둔 산이 두어 곳 정도 더 남았는데, 지금까지 관악산 일대의 서울 남서부를 못 간 상태였다.
관악산 자체는 예전에도 몇 번 간 적이 있기 때문에 예봉산의 다음으로는 더 서쪽에 있는 '삼성산'을 선택했다.

차를 가져가지 않고 전철을 1시간을 훌쩍 넘게 타서 안양까지 이동했다. 서울 방면은 전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남쪽으로 또 가야 산에 접근 가능한 반면, 안양 방면은 전철역 + 국도 1호선 대로변에서 비교적 가까이에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산 입구나 한적한 시골 마을이 아니라 그냥 큰길에서 등산을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예전에 성남 남동부의 불곡산을 올랐을 때와 비슷하다. 본인은 관악 역에서 내려서 등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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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이렇게 흙길과 바위가 적절히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나무로 덮여서 하늘이 잘 안 보이는 곳과, 하늘이 뻥 뚫려 보이는 곳도 종종 교차되는 편이었다. 이 산에서 하늘이 중요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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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일대는 비행 항로이기 때문이다. 비행기들이 하늘 위로 정말 많이 지나갔다. 이것까지 이미 다 예측하고 비행기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갔다.
비행기를 관찰하려면 엔진 소리가 나는 바로 그쪽을 봐서는 안 됨. 소리 근원지보다 소리의 진행 방향으로 한 발 더 나아간 쪽을 봐야 한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그 이유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소리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데 딜레이가 있으며, 그 동안에도 비행기는 앞으로 더 나아가기 때문이다. 굳이 비행기 자체가 초음속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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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어느 정도 오르자 드디어 탁 트인 landscape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거 보는 게 등산의 묘미다.
주변 경치가 전반적으로 이러했다. 여기저기 봉우리가 솟아 있고, 푸른 풀숲에 부분적으로 황금빛 단풍이 물든 게 색깔 배합이 내가 보기엔 경이로움이 느껴질 정도로, "정말 아름다웠다." 직접 봐야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날은 등산 가기도 아주 좋은 날씨였다. 직사광선 없이 흐리고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었다. 이런 날 등산 같은 활동을 안 하는 건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을 지경이었다.

아, 위의 사진의 중앙 우측에 있는 건물들은 안양 예술 공원이라는 유원지이다. 내가 나중에 저쪽으로 하산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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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이 사진은 호락호락 쉽게 찍은 사진이 아니다.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바위에다 카메라를 최대한 바른 구도로 놓은 뒤, 타이머 셔터를 눌러 놓고 허겁지겁 저 포즈를 취해서 혼자 찍은 것이기 때문이다. 저 땐 바람도 꽤 세게 불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카메라가 균형을 잃고 바위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삼각대가 필요한 듯.
그래서 그런지 내가 그렇게 밝은 표정으로 찍히지는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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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 교육 대학교가 내려다보였고, 저 멀리 KTX 광명 역도 보였다~! 등산 가서 고속철 철도역을 볼 줄이야.. 땡잡았다.
역 주위로도 온통 고층 아파트가 지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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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것들은 국내 인터넷 지도로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물건일 것이다. 저 거대한 둥근 원판은 군사 시설이기라도 한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서울 강남 서남부에 무슨 성곽이 있을 리는 만무한데 저 봉우리는 왜 철책이 둘러져서 반토막이 나 있는 걸까? 저기는 산의 과반이 예비군 훈련장 등 군사 시설로 싹 봉인돼 있는 박달산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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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의 사실상의 정상이라 일컬어지는 국기봉에 잘 도달했다. 이름에 걸맞게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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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봉 정상 근처에서는 삼막사라는 절이 내려다 보였으며, 여기에서 몇백 m 정도 떨어진 곳엔 삼성산의 실제 정상이 보였다. 실제 정상에는 건물과 철탑이 있으며, 아무래도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 같지는 않았다.
저기가 국기봉보다 약간 더 높긴 하지만 그래도 몇 미터 차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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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달한 뒤 내 의도는 북서쪽으로 진행해서 호암산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었다. 안양 방면과 관악산 방면을 모두 등지고 하산하려 했으나.. 산에 실제로 있어 보면 방향 감각을 거의 유지할 수 없더라..;; 결국은 삼성산과 관악산 사이의 계곡으로 들어섰고 서울대 수목원과 안양 유원지(예술 공원)로 착지하게 됐다. 삼성산의 서울 방향에 무슨 천주교 묘지 공원도 있다고 들었으나 그런 건 전혀 구경 못 했다.

여기도 경치가 아주 아름다워서 온 보람은 있었다. 단지 하산 후에도 버스 정류장까지 엄청난 거리를 걸어야 했을 뿐.;;
흐음 어쩌다 보니 삼성산 사진이 예봉산 사진보다 훨씬 많아져 버렸다. 높이는 예봉산이 더 높은데 아무래도 삼성산이 특이사항이 더 많아서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24 08:38 2016/11/2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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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동안은 등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100~200m짜리 언덕 산책에만 머물렀고 8월 동안은 그마저도 아예 포기하고 지냈다가..
폭염이 물러나고 가을이 되자 지금까지 올랐던 어느 산들보다도 더 높고 험한 산으로 과감하게 달려갔다. 오랫동안 마음에만 품어 놓고 있었던 산, 바로 북한산이다.

여기는 동네 뒷산 같은 듣보잡 산이 아니라 국립공원이다. 네임드급 산이고 또 괜히 그렇게 지정된 게 아니다. 등산로를 벗어나거나 출입 금지된 계곡 같은 데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걸리면 과태료를 먹는다. 그 대신 네임드급 산답게 등산로는 아주 잘 닦여 있으며 각종 위치 안내 시설도 잘 돼 있다. 공중 화장실도 꽤 높은 지점까지 설치돼 있다.
이런 거대한 산 때문에 서울이 북쪽으로 더 확장을 못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휴양지가 서울과 가까이 있다는 건 또 다른 면에서는 축복이다. 주말마다 수많은 등산객들이 북한산을 찾는다.

역시 높고 험하고 길어서 오르내리는 시간도 왕복으로 6시간 가까이 꽤 오래 걸렸다.
마지막 분기점에서 백운대 정상까지 딱 300m라고 쓰여 있었는데, 저 거리의 낚시에 낚이지 말 것. 산책 하듯 설렁설렁 비탈길이나 계단을 오르는 300미터가 아니다. 발뿐만 아니라 손도 써야 하는 왕창 힘든 암벽 등반으로 300미터다.

그래도 (1) 남한산성과 같은 성곽(북한산성), (2) 우이령 같은 고갯길, (3) 아차산 같은 아래 전망, (4) 커다란 암벽, (5)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 (6) 용마-망우산 같은 애국지사 묘역 등..
여기는 지금까지 산에서 경험했던 여러 복합적인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좋은 산이었다.
본인은 정릉 탐방지원 센터 - 보국문 - 대동문 - 용암문 - 백운대 정상 - 백운 탐방지원 센터 - 우이동 분소의 순으로 올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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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은 일일이 등산객의 수와 신원을 파악하고 통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입산 가능 시간대가 정해져 있다. 산에서 무단으로 짱박혀서 외박· 야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
탐방지원 센터 근처에는 유료 주차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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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예전에 갔던 우이령길처럼 울타리가 쳐진 흙길 형태로 등산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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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중간 마주치는 계곡은 물이 참 맑고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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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등산로는 가파른 돌계단으로 바뀌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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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구간에 진입하여 보국문이 나왔다. 여기가 이미 해발 500m대에 달한다.
예전에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을 올랐던 생각이 났다. 거기는 분지 지형이어서 성곽 아래의 옴푹 패인 곳에 거의 마을 하나가 조성돼 있는 반면, 북한산은 그렇지는 않다.

여기서 서쪽 대성문 쪽으로 가면 평창동 방면으로 하산 가능하다. 본인은 하산은 그쪽으로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일단 정상으로 가고 싶어서 동쪽 대동문 방면으로 발길을 돌렸다. 북한산의 서쪽은 다음 기회에 방문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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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길을 한참을 걸었다. 이제 산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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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에는 어째 넓은 공터가 있어서 많은 등산객들이 쉬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으로 가려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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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문까지 지나고 백운대가 점점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래 전망은 더욱 좋아졌다. 그러나 암벽을 타는 진짜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슬금슬금 오르던 고갯길과 성곽길도 다 지나고, 등산의 양상이 확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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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발만 써서는 안 되고 손으로 로프를 꽉 붙잡아야 진행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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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저기가 백운대이다. 저렇게 보니까 정상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저 사진에서 사람이 어느 크기인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_=;; 저 육중한 바윗덩어리를 올라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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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아예 저렇게 암반을 타는 사람도 있었다. 저게 진정한 의미의 클라이밍이다. 고전 게임 레밍즈에서 '클라이머'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냥 설렁설렁 발만 써서 비탈길을 오르는 등산은 하이킹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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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는 온통 이런 봉우리들을 볼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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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창 고생한 끝에 어쨌든 정상에 도달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햇볕도 안 나고 등산 가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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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인명 사고라도 났는지 119 헬리콥터가 떴다. 살다 살다 헬리콥터가 내 발 밑으로 날아다니는 건 처음 본다. 여기가 어지간히도 고도가 높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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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주변의 암반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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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하산은 어째 계곡을 따라서 했다.
백운대 탐방 지원 센터는 산중턱에 있었으며, 자동차 도로가 닦여 있었다. 자동차 도로는 경사는 아주 완만하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는 걸어야 하는 거리가 왕창 길다는 단점도 있다.

한참을 걸어서 다 내려와 보니 결국 예전에 우이령 고개를 갈 때 들렀던 그 분기 지점에 도달했다. 하긴, 거기는 우이령길, 북한산 등산로, 북한산 둘레길 등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다.
4· 19 묘지라든가 손 병희· 여 운형· 조 병옥 등 유명인사들의 묘소는 등산로가 아니라 둘레길 영역에 있는 듯하다. 동북쪽으로 하산한다면 그쪽으로라도 들를 수 있지 않나 생각했지만 그쪽 구경은 못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23 08:27 2016/10/2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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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가족 여행 (2016/9/15~17)

지난 추석 때 본인은 제주도로 2박 3일 가족 여행을 다녀 왔다. 이로써 본인은 지금까지 제주도를 딱 세 번 방문했다.
맨 처음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인데, 너무 오래 돼서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로는 4년 전에 회사 워크숍으로 역시 2박 3일간 다녀 왔다. 그 뒤 이게 세 번째이다.

이번에 간 건 버스를 타고 가이드를 따라다닌 단체·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숙소만 잡고 차를 렌트한 뒤 가족 단위로 자유롭게 돌아다닌 여행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여행과 차이가 있다. 글을 둘로 나눌까 하다가 귀찮아서~ 또 글 분량 대비 사진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어서 그냥 한 포스트에 전체 일정을 몽땅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의 지명으로서 '제주'라는 고유명사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 제주특별자치도: 행정구역으로서의 명칭이다. 이때 접미사 '도'는 경기도, 경상도 할 때의 그 도이다. 그러고 보니 한자는 의외로 그냥 '길'을 뜻하는 道였다. 都 같은 다른 글자가 아니구나.
  • 제주도: 섬으로서의 명칭이다. 이 '도'의 한자는 당연히 島. 한라산이 있으며 대한민국 영토 중에 가장 넓은 그 섬을 가리킨다. 제주특별자치도라는 행정구역은 바로 제주도와 그 주변에 있는 우도· 마라도 등의 마이너 섬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 제주시: 다시 행정구역 명칭이다. 제주도를 정확하게 남북으로 이등분해서 북반구 영역(주변 섬들 포함)은 제주시에 속하며, 남반구 영역은 서귀포시에 속한다. 우도는 제주시 소속이지만 마라도는 서귀포시 소속이다.

이런 제주도와는 달리, 울릉도는 도 단위의 고유한 행정구역이 할당돼 있지 아니하다. 그냥 본토의 '경상북도' 소속이고 그 하위 범주로서 '울릉군'이라는 주소를 가진 형태이다. 뭐, 얘는 위도로만 따지면 강원도 소속이어도 할 말이 없는 위치이긴 하지만 말이다.

면적으로만 따지면 전국에 울릉도보다 더 넓은 섬은 거제도, 강화도, 진도처럼 몇 개 더 있다. 인천 공항의 건설을 위해 간척으로 합쳐 놓은 영종+용유도도 울릉도보다 약간 더 넓다. 그러나 이들은 본토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편이며 아예 다리도 놓였기 때문에 섬이라는 느낌이 덜 든다.

울릉도는 본토와 다리로 연결되지 않은 섬 중에서는 아마 제주도 다음으로 가장 넓지 싶다. 제주도 만만찮게, 아니 그 이상으로 본토와는 100km가 넘게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강원도에 준하는 급의 위도에도 불구하고 6· 25 전쟁의 포화조차도 비껴 갔을 정도이다. (공산당에게 점령 당했거나, 수복을 위해 군대가 상륙하고 전투가 치러진 내력이 없음)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도 단위의 구역을 독립시키기에는 울릉도는 너무 좁고 인구가 적다. 다리가 없고 공항도 없으니 자동차와 비행기 모두 아웃. 왕래하는 교통수단은 오로지 배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에 반해 제주도는 면적과 거리가 모두 독보적인 원탑이며, 고대엔 아예 탐라국이라는 별개의 국가를 이루기도 했을 정도로 단절성이 뛰어나기에 저렇게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이지 싶다. 서울이 특별시인 것만큼이나 우리나라의 섬들 중에 행정구역상으로 '특별'이라는 말이 붙은 곳은 제주도밖에 없다.
과거에는 제주도는 행정구역 명칭도 '특별자치'라는 단어가 없이 똑같이 '제주도'였다. 그래서 개념을 더욱 혼동하기 쉬웠다. 똑같은 단어인데 넓은 범위에서의 의미와 좁은 범위에서의 의미가 달라서 헷갈리기 쉬운 게 세상엔 많이 있다. ('이름', IME 등등..)

제주도와 울릉도에 비하면 쓰시마 섬(대마도)은 외국 영토치고 이례적으로 굉장히 가까이 있는 섬이다. 하지만 얘는 근대에 일제가 강탈한 게 아니고 역사적으로 굉장히 오래 전부터 일본인들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소유주가 진작부터 지금처럼 굳어졌다.
이런 걸 생각하면 섬과 행정구역 사이의 경계를 생각하는 게 의외로 재미있으면서 한편으로 골치 아픈 문제인 것 같다.

사회 지리 얘기는 제끼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비행기는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아니니, 어딜 가든 비행기를 탈 기회가 찾아오면 이것만으로도 나의 신경이 바짝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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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 본 현대 자동차 남양 연구소이다. 지상에서 뭔가 익숙한 지형지물이 보이니 반가웠다.
뿌옇게 형상만 보이던 사진을 콘트라스트 올리는 보정을 하니 부득이하게 흑백 사진처럼 바뀜. 주행 트랙에서 저 둥그런 위쪽 끝과 아래쪽 끝 사이의 거리는 나름 거의 2km에 달한다.
저게 나타나기 불과 몇십 초 전엔 '자동차 안전 연구원'의 주행 트랙도 봤다. 두 기관의 거리를 알고 있으니 시간차를 통해 이 비행기의 주행 속도를 얼추 계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광주 부근에서는 광주 공항도 볼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내가 착륙하지 않는 다른 공항도 내려다보는 건 아무래도 자주 경험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제주도에 도착한 뒤엔.. 공항에서 렌터카 사무실은 어떻게 찾아갈지, 공항 주변은 분명 자동차들로 교통지옥일 텐데 어떻게 빠져나갈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공항 주변 도로의 혼잡을 완화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부터 렌터카 업체들은 다 공항 바깥 외곽으로 이주했으며, 그 대신 업체들이 연합하여 승객과 렌터카 허브를 왕래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조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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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이호 테우 해수욕장을 들렀다. 가족 중에 나만 유일하게 물놀이 준비를 하고 여행을 떠났으며, 나 혼자 바닷물에 들어가서 물과 흙을 묻히며 재미있게 놀았다. 물에 들어가는 건 언제나 웰컴. 이로써 올해 본인은 서해, 동해에 이어 남해 바닷물까지 모두 경험하게 됐다.

일행이 있으니, 혼자 달랑 해수욕장에 갔을 때와는 달리 소지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이렇게 물에 들어간 내 모습을 사진 찍어 줄 사람도 있고 말이다.
이 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좀 끈적거리는 게 동해보다는 서해 바닷물에 더 가까워 보였다. 단, 제주도답게 검은 모래도 있고, 바닥이 울퉁불퉁한 곳이 많아서 편하게 돌아다니기는 어려웠다.

해수욕장의 이름이 좀 특이한데, '테우'는 제주도 고유의 모양을 한 소형 어선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물놀이를 딱 마치고 나니까 날씨가 급격히 흐려지고 비까지 내려져서 타이밍이 절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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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시내를 벗어나 남부의 서귀포시로 갔다. 제주도 남부를 횡단하는 동안 이런 산길을 굉장히 길게 지났다. 여기는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곳도 신호등 교차로가 아니라 로터리 형태로 된 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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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제주도의 동남쪽 끝에 있는 성산 일출봉을 올랐다. 높이가 해발 180m 남짓 된다. 처음엔 초원과 오솔길로 시작하지만 정상 부근의 바위는 나름 가파른 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 관계상 한라산 등산은 하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 아쉬운 대로 등산 흉내를 냈다.
식사와 이동 시간을 빼니 첫째 날의 일과는 이 정도로 마치게 됐다. 산과 바다를 제각각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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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아침엔 천지연 폭포를 구경했다. 사진을 따로 첨부하진 않지만 여기까지 가는 길도 울창한 숲과 호수? 개천이 아주 잘 꾸며져 있어서 경치가 좋았다.
또한, 저 사진엔 용케 안 들어갔지만 현장 주변은 아침부터 온갖 관광객들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구도가 잘 나오는 바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려면 한창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유사품인 천제연 폭포와 혼동하지 말 것...;; 사실, 둘 다 비슷하게 경치가 아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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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천지연보다는 작고 덜 유명한 '원앙 폭포'라는 곳에 들렀다. 차를 세운 뒤 계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했는데..
여기는 천지연과는 달리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물은 해수욕장보다 훨씬 더 맑고 차갑고 깨끗하고 좋았는데...! 어제 같은 물놀이 준비를 하지 않고 나온 게 너무 후회됐다. 발만 담그고 돌아가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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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柱狀節理)라고 용암이 바닷물과 닿아서 식으면서 생긴 기묘한 지형이라는데, 중문 대포 해안에 있는 걸 봤다. 인간이 돌을 일부러 저렇게 깎은 게 아닌데 자연적으로 어떻게 저런 모양이 생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용암 아니랄까봐, 바위가 뭔가 흐르는 듯한 모양에 구멍이 숭숭 난 채 시꺼멓게 굳은 걸 보니, 선지 생각도 났다.

이로써 둘째 날 오후가 됐고 여행의 전체 일정은 후반부로 들어섰다.
지금까지는 보다시피 공무원들이 관리하는 자연 명소들을 주로 들렀다. 자연 명소라는 특성상 관광 장소는 100% 실외이고, 외지 관광객의 입장료가 2000원가량이었다.

이제 후반부부터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설 박물관들을 들렀다. 이런 곳은 입장료도 9천원~1만원대로 훨씬 더 비싸진다.
4년 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는 첫째 날은 한라산 등산으로 하루를 보냈고 둘째 날 자연 관광은 송악산과 마라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셋째 날은 서울 도착을 오후 2시쯤에 했을 정도로 식사와 이동 말고 딱히 활동한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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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국 테마파크는 우리나라 포함 세계 각국의 온갖 유적· 유물과 유명 건물들을 적게는 1/3, 많게는 1/25급으로 축소한 구조물들을 넓은 실외에 전시해 놓았다. 만리장성, 자금성, 에펠 탑, 미국 국회의사당이던가 백악관, 이집트와 멕시코의 피라미드, 우리나라의 청와대, 경복궁, 옛 서울 역, 피사의 사탑, 자유의 여신상 등 볼것이 아주 많다.

여기 말고 누나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고 싶어했던 박물관으로는 오설록 녹차 박물관과 그 근처에 있는 제주 유리의 성이었다. 하지만 이 두 곳은 내가 4년 전에 갔던 곳이기 때문에 또 가지 않았다.
돌아다니면서 세계 자동차 박물관을 종종 지나쳤는데 여기에도 못 갔으며, '제주 아쿠아플라넷'도 후보지에는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들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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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에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박물관은 살아 있다'라는 실내 응용 미술(?) 박물관이었다. 이런 식으로 2D와 3D 착시를 일으키는 벽화에 쏙 포즈를 취해서 자기가 그림 속의 주인공이고 높은 곳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거나 사지가 잘린 것처럼(!) 흉내를 내고, 그걸 다른 일행이 사진 찍어 주는 곳이다. 걸어다니면서 조용히 눈팅만 하는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손수 퍼포먼스를 좀 하면서 추억을 남겨야 한다.

저건 내가 표정 연기를 잘했다고 가족들이 다들 좋아했다. 밑에 부대찌개 그림이 있는 줄은 현장에 있을 때 미처 몰랐다. 제기랄. =_=;;

지금까지 다녀갔던 곳들은 자연 관광지는 대체로 어머니께서 제안하셨고, 맛집 식당과 박물관들은 누나의 제안으로 들렀다.
그 반면 셋째 날에는 한림 공원과 넥슨 컴퓨터 박물관을 들렀는데, 이것들은 내가 제안한 장소였다. 컴퓨터 박물관은 4년 전 당시에도 없다가 새로 생긴 곳이고, 반대로 한림 공원은 먼 옛날 수학여행 때 들른 곳이긴 하지만 다시 구경하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둘째 날에는 주요 짐들을 호텔에다 놔 두고 편하게 다녔지만, 마지막 날은 다시 숙소로 돌아오지 않으니 체크아웃 후 첫째 날처럼 다시 모든 짐을 차에 싣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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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 공원은 그야말로 식물원, 동물원, 동굴, 수석 전시관, 민속촌이 몽땅 합쳐진 멀티테마 공원이었다. 원래 있던 자연 지형을 토대로 조성된 국립공원이 절대 아님. 개인 사업가가 깡촌 황무지에다가 흙 깔고 외국에서 사 온 식물 종자들을 어렵게 심어서 일군 사립 공원이다. 어지간한 박물관들이 다 둘러보는 데 1시간 남짓한 시간을 잡지만, 여기는 1시간 반~2시간은 족히 잡아야 했다. 그러고도 입장료가 딱히 더 비싼 것도 아니었다.

맑고 하늘이 파랄 때 갔으면 경치가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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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서귀포 외곽이 아니라 제주 시내에 있었다. 이 때문에 여기는 동선을 고려하여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림 공원을 다니던 중에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하필 오후에 컴퓨터 박물관을 관람할 때부터는 딱 그쳤고 하늘이 맑아졌다. 날씨를 감안하면 올실내인 컴퓨터 박물관을 오전에 관람하고, 오후에 한림 공원에 가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컴퓨터 박물관은 전반적으로 저런 곳이었다. 컴퓨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옛날 컴퓨터 기계들이 즐비하고 특별히 고전 게임을 할 수 있는 옛날 컴퓨터, 그리고 일부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는 부스가 있었다.

하지만 나처럼 하드웨어 덕후가 아닌 평범한 프로그래머가 보기에도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컨텐츠 면에서 좀 2%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있어 보였다. 옛날 게임 소프트웨어 자체는 오늘날의 컴퓨터에서도 인터넷으로 구해서 에뮬로 얼마든지 띄울 수 있으니 희소성이 부족하다. 컨텐츠를 보강해서 아예 비디오 게임 전용 테마 박물관으로 가든지, 아니면 컴퓨터 박물관이면 에니악이나 우리나라 최초의 슈퍼컴 같은 학술적인 역사 자료까지 잔뜩 더 보강해서 개성을 강화했으면 어떨까 싶다. 두 이념을 좀 어중간하게 빈약하게 추구한 것 같다.

전반적인 규모도 다른 테마 박물관보다 작기 때문에 관람은 서둘러서 하면 한 3, 40분이면 다 할 수 있다. 다만,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으니 어린애들을 풀어놓고 시간 보내기에는 좋다. 실제로 우리가 갔을 때도 여기는 아이들 천지였다.
지하 1층은 카페 + 무료 고전게임 오락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코인 제약도 없다 보니 한 사람이나 가정이 자리를 너무 오래 차지하고 있는 걸 방지하는 수단이 없는 건 아쉬웠다.

굳이 사진을 첨부하지는 않지만.. "그 날이 오면 3" 게임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비치돼 있던데, 출시일이 웬 1990년으로 기재돼 있었다. 1편이나 2편의 출시일과 혼동한 듯. 3편은 1993년작이다.

한메 타자 교사도 있어서 본인은 세벌식으로 바꿔서 베네치아 게임을 해 봤는데.. 키보드의 감이 생소하고 또 최종이 아닌 390 배열로 하느라 버벅대서 8단계 2만 점대 초반에서 죽었다.
그런데, 이 점수로도 순위권에 아슬아슬하게 들지 못했다. 이미 하고 간 사람들 중에 타자 고수가 많았다. 이 사람들은 다 두벌식으로 쳤을 텐데.. 이 모바일 시대에도 컴퓨터 키보드 타자 고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하다.
공공장소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난 뒤엔 민주 시민답게 설정을 다시 두벌식으로 되돌려 놓는 것을 본인은 잊지 않았다. -_-;;

박물관 관람을 다 마친 뒤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은 걸 확인한 뒤엔 흑돼지 삼겹살을 먹었다. 제주도에서 한 마지막 식사가 제일 비싼 식사였다.
시간이 빠듯하지 않을까 서둘렀는데 그래도 시간이 1시간 남짓 있었기 때문에.. 공항 근처에 있는 자연 유적지인 용두암을 추가로 구경했다. 여기는 딱히 입장료가 들지는 않았다. 바위 사진보다도 비행기 사진에 더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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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제 시간에 무사히 자동차를 반납하고 공항 수속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는데..
연휴 마지막 날엔 엄청난 트래픽을 감당치 못하고 비행기들이 줄줄이 지연을 먹고 있었다. 면세 구역은 돗자리까지 깔고 몇 시간째 탑승을 기다리는 인파들로 가득했고 마치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이거 김포 공항의 통금에 걸려서 인천 공항에서 돌아와야 하는 건 아닌가 우려도 했지만 다행히 통금 시각은 밤 10시가 아닌 11시였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그 전에 서울에 도착함. 돌아오는 비행기는 광동체인 보잉 777이어서 마치 국제선을 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는 참 매력적인 교통수단이다.
이륙할 때 엔진이 최고 출력으로 가동되어 온몸으로 공기를 내뿜는 그 소리(청각)는 선로 위 전동차의 VVVF 구동음에 필적하는 청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소리가 너무 크고 우렁차기 때문에 어설픈 장비로는 녹음을 제대로 할 수도 없다.

또한, 급격한 가속 때문에 뒤로 쏠리는 그 가속도는 다른 대형 대중 교통수단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비행기 말고 뭔가 스릴있고 짜릿하다는 놀이기구들도 근본 원리는 다 사람에게 G의 왜곡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터, 바이킹 등.

착륙할 때 점점 고도가 낮아지고, 바퀴가 땅에 닿으면서 '쿵!' 착지 충격이 느껴질 때도 즐겁다.
서양 일부 문화권에서는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승객들이 박수를 친다던데.. 뭔가 사람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반영해서 생긴 문화 같다.
착륙 직후 플랩이 펼쳐지고 뭔가 저항이 걸리는 듯한 큰 소리가 나는 건 전동차로 치면 회생 제동이 걸리는 소리와 비슷하며, 자동차에서 엔진 브레이크가 걸리는 소리와 비슷한 것 같다.

이렇듯, 조종사에게는 제일 힘들고 긴장되는 순간이(이착륙) 승객에게는 제일 즐거운 순간이다.
모든 게 훌륭하다. 단, 딱 하나, 비행기에는 과거 새마을호 열차처럼 Looking for you 같은 "음악"이 없었을 뿐이다.
이것이 내게는 항덕과 철덕 사이의 운명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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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글을 맺기 전에 아이템 하나 추가함.
제주도의 풍경 상징이라 하면 딱 연상되는 건 (1) 본토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야자수, 그리고 (2) 이 돌하르방이다.
돌하르방은 그저 장승의 제주도 바리에이션이기라도 한 건지, 처음에 누가 언제 왜 무슨 용도로 만든 물건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정말로 옛날에 만들어진 물건보다는, 근현대에 유명해지고 나서 관광 마케팅 목적으로 일부러 따라 만들어진 모조품 돌하르방이 월등히 더 많다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_=;; '돌하르방'이라는 이름 자체도 '참치'만큼이나 근현대에 와서야 정립된 명칭이다.

돌하르방은 생각보다 크기가 다양하며, 사소하게는 저렇게 왼손과 오른손 중 위에 놓는 손의 위치도 통일돼 있지 않고 케바케이다.
제주도에 가면 "모처에 있는 요것이 현존하는 제일 오래 된 원조 돌하르방이다!" 이런 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난 돌하르방은 여러 모로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과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해 왔다.
저 모아이 석상 사진은 소인국 테마파크에 있는 걸 촬영한 것이다. 모아이도 원래는 돌하르방처럼 모자도 쓰고 있고 심지어 눈알도 붙어 있으나, 오늘날은 소실되고 없는 석상이 훨씬 더 많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13 19:36 2016/10/1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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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의 관광 일정을 마친 뒤, 이제 평화의 댐을 보러 화천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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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다와 산뿐만 아니라 계곡과 강,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이것대로 또 경치가 몹시 아름다웠다. 물에 들어가서 발이라도 담그고 나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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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마어마한 높이 좀 보소.
평화의 댐은 잘 알다시피 5공 시절에 다소 불순하고 비현실적인 동기 하에 만들어졌다. 하다못해 다목적 댐도 아니고..
하지만 일단 만들어 놓고 보니, 훗날 북한이 진짜로 예고 없이 수공을 퍼부었을 때 물을 제어해서 재앙을 예방하는 역할을 그럭저럭 수행하긴 했다.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 잡듯이 "어쨌든 결과는 그닥 나쁘지 않았다"처럼 된 셈이다.

사실, 4대강도 그렇고 우리나라처럼 계절 변덕이 심한 나라에서 치수와 관련된 토목 공사 투자가 무의미한 뻘짓인 경우는 별로 없었다. 불볕더위와 가뭄이 조금만 계속돼도 옛날엔 제한급수에 온갖 난리 호들갑을 떨었으며, 반대로 태풍이나 홍수가 한번 났다 하면 TV에서는 전국적으로 수재의연금 성금 모집하던 게 불과 20여 년 전의 관행이었다. 요즘은 지구 온난화다 뭐다 하면서 기상 이변이 예전보다 더 심하면 심해졌지 날씨가 결코 온순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 같은 난리 호들갑이 왜, 무엇 덕분에 쏙 들어갈 수 있었겠는지를 잘 생각해 보자.

내가 방문하던 당시에도 평화의 댐은 또 무슨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래서 댐 위로 지나가 볼 수는 없었고, 댐 주변에서 댐과 공원의 사진만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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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공원에는 온갖 공격 무기들의 모형이 전시돼 있는데.. 예술 작품을 표방하다 보니 도색은 저렇게 형형색색으로 돼 있다.
평화의 댐 자체는 민통선에 있지 않다. 하지만 근처의 두타연 계곡은 민통선 안이라고 한다. 여기를 들어가려면 또 다른 장소에서 출입증을 끊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검문소에서 즉각 신분증만 까면 되는지 난 잘 모르겠다.

전국의 어느 민통선이든 자가용을 이용한 출입 허가를 받은 외지인은

  1. 받은 임시 출입증을 차 앞유리에 잘 보이게 노출시킬 것.
  2. 이런 데서 교통사고라도 나면 피차 왕창 골치 아파지니 절대적으로 안전 운전할 것.
  3. 목적지가 아닌 길가에 무단으로 주· 정차를 하지 말고 길을 빨리 통과할 것.
  4. 블랙박스를 끄고 다닐 것. (군사 시설을 무단 촬영하지 말 것)
  5. 민간인이 전투복을 입고 다니지 말 것.
  6.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모든 용무를 마치고 퇴장할 것.

이라는 수칙이 존재한다. 도로 통과형이 아닌 일반적인 민통선 구간들은 반드시 들어갔던 초소로 나오는 게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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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목적지가 있는 홍천으로 가기 위해 경로를 남쪽으로 바꿨다. 양구, 화천 다음으로 계속 서쪽으로 가면 철원이 나온다. 하지만 철원은 예전에 간 적이 있으며, 어차피 우리나라의 최북단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서는 춘천-홍천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남행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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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경치가 아주 아름다운 어느 쉼터를 발견했다. 이 사진엔 담기지 않았지만 뒤에는 지붕 달린 정자도 있다. 저 벤치에 앉아서 노트북 PC를 들여다보는 인증샷도 남기고 싶었으나.. 본인은 싱글 솔로이다 보니 사진을 찍어 줄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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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화천 수력 발전소를 발견했다. 역시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여기 근처에는 군부대 포병 훈련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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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획에는 없었는데, '파로호' 안보 전시관이라는 게 있어서 여기도 잠시 들렀다. 파로호란 근처에 있는 호수의 이름이다. 북한강 상류가 화천댐에 가로막히고 고여서 호수를 형성한 것이다.
여기 일대의 댐과 수력 발전소는 일제 강점기 말기(1944년)에 건설되었으며, 6· 25 전쟁 중이던 1951년 4~5월 사이에는 북한군의 수공에 맞서 이 댐을 점령하거나 파괴하기 위해서 국군· UN군과 북한· 중공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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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의 풍경은 이 사진 한 장만 남겼다.
이렇게 화천을 지나고 드디어 춘천에 진입했다. 춘천, 그리고 더 남쪽의 홍천에서는 군사 훈련 중인 탱크들이 줄지어 도로를 달리는 걸 유난히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저속으로 일종의 떼빙(대열운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간인 자동차들의 통행이 좀 지장을 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반적인 군용차와는 달리 탱크는 엔진 소리가 뭐랄까.. 유별나게 시끄럽고 더 기괴했다. 여느 중장비의 엔진 소리와도 달랐다. 차마 말과 글로 묘사할 수가 없다. 게다가 탱크는 차체의 폭도 여느 자동차보다 더욱 크기 때문에 좁은 도로에서 교행이나 추월하기가 더욱 난감했다.

그래도 저것도 다 나라 지키려고 저러는 건데 신기한 구경 하나 하는 셈치고 관대히 넘어갔다. 6· 25 전쟁이 벌어지던 당시에 우리나라는 저런 탱크가 아예 한 대도 없었다. 그 반면 북한군은 242대 보유. 이 숫자 통계는 초딩 시절부터 배워서 알고 있었다.
안전 운전에 지장을 줄 정도로 졸음이 밀려 와서 춘천 외곽에서는 잠시 차를 세워서 20분 남짓 쪽잠을 잔 뒤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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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강 재구 소령 추모 공원'이고 입구 주변이 이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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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기철 목사 하면 '일사각오'가 떠오르듯 강 재구 소령은 그야말로 '희생정신', '살신성인'의 아이콘이다.
1960년대에 한국군이라는 게 조직 분위기가 지금 군대보다 결코 더 좋지 않았다. 아직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못살던 시절이었고 북한의 무력 도발 위협은 임팩트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

그러면 군대를 열악한 자원이라도 최대한 잘 활용해서 나라를 잘 지키기라도 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합리적인 시스템 대신, 까라면 까 식의 미개한 일본군 관행에 사람 잡는 구타· 똥군기가 만연했다. 그래 놓고는 "나 간부다" 편법 한 마디에 초소가 숭숭 뚫리기도 했으니 군대가 제 역할 제대로 못 했다.

그리고.. 지금이니까 연간 군대 내 전체 자살자· 사고 사망자가 두 자리 수이지 그때는 세 자리 수를 가뿐히 넘어서곤 했다. 옛날 군대가 지금 군대보다 좋은 건 딱 하나, 아직 출산율 높고 인구가 많던 시절이다 보니 조금만 몸이 안 좋으면 방위· 면제로 빠지는 길도 지금보다야 훨씬 더 꽤 관대하게 열려 있었다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부하가 실수로 병사들 한가운데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수습하려고, 그것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상관이라는 사람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걸 온몸으로 웅크려 덮어서 막은 뒤 산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건 정말 전군의 사기를 진적시키는 미담이 아닐 수 없었다.

강 소령이 소속되었던 부대는 북한과 대치해 있는 평범한 전방 부대는 아니고, 베트남 파병을 갈 예정이던 부대였다. 박통이 외화벌이와 국력 신장을 위해서 선진국 군인에 비해 저렴한 인건비와 높은 가성비를 메리트로 내세우며 베트남전 파병을 결의했다. 그러자 맨주먹과 근성밖에 가진 게 없고, 시골에서 농사만 짓는 것보다야 더 짧고 굵게 돈을 많이 벌어 와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 한 장정들이 여기에 많이 지원한.. 그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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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재구 소령 추모비와 추모탑이 이렇게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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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은 아담한 크기이고 강 소령의 흉상, 초상화, 유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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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소령은 나이 30도 못 되어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 대신 그야말로 불멸의 이름을 남기고 영예를 얻었다. 고인의 모교에서는 육사는 말할 것도 없고 서울 고등학교까지 다 고인을 기리고 있고, 육군 부대에도 '재구 대대'라는 이름의 대대가 생겼다.

어릴 때부터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모델격의 인물을 마음에 두는 게 참 좋은 것 같다. 육사 32기 출신의 엘리트 군인으로 대장까지 역임한 정 승조 장군(1976년 임관, 2013년 예편)이 있는데, 이분이 1976년 당시에 육사를 수석 졸업하고 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했을 때에도 "강 재구 소령의 전기를 읽고 큰 감화를 받아서 육사를 갈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밝힌 바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 육사는 학비 걱정 없지, 진로도 안정적이지, 가히 오늘날의 SKY급 대학에 맞먹는 위상과 입결을 자랑했다는 점도 생각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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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세로쓰기여서 읽기가 어렵다. 강 소령 역시 처음에는 수류탄을 다른 데로 멀리 던져 버리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몸으로 폭발을 막는 방법을 선택하게 됐다.

이분에 대해서 상훈 기록을 찾아보면, 어디서는 태극 무공 훈장이라는 최고 등급 훈장을 받았다고 돼 있고 다른 어디서는 4등 공로 훈장을 받았다고 돼 있는데.. 무슨 성경의 모순 구절을 보는 것 같다.
이것도 성경의 모순 구절 풀듯이 문제를 풀면 된다. 본문 텍스트에 나와 있듯, 정답은 '둘 다 받았다'이다. 더 높은 훈장은 나중에 추가로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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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산화하던 당시에 입었던 전투복은 수류탄 파편을 맞아서 저렇게 너덜너덜해져 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다른 군인의 증언에 따르면 수류탄 폭발로 인해 고인은 사지가 절단될 정도의 치명상을 입었고, 그래도 폭발과 함께 즉사한 건 아니고 잠시 살아 있었다고 한다.

수류탄을 실수로 떨어뜨린 병사의 실명(박 해천 이병)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저 병사는 비록 무슨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평생 얼마나 큰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채 살았을지 모르겠다. =_=;; 지금은 그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넘게 지나기도 했고, 저분의 근황이 어떤지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전해지는 게 없다.
이름이 기록으로 남아 버린 이상, 나라면 은폐(?)를 위해 개명부터 했을 것 같은데, 그 시절은 지금처럼 쉽게 개명이 가능한 때도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_-;;

실제로 생존 무장공비 출신인 김 신조 씨는 얼굴이 알려진 건 말할 것도 없고, 이름까지 교과서에 대문짝만 하게 실려서 그 당시 남조선 군필자들의 웬쑤가 됐다. "니놈 때문에 내가 군대 전역도 늦어지고 말년에도 얼마나 조뺑이 치고 고생했는지 알아?" 야사에 따르면 길거리에서 어느 예비역 아저씨에게 뒤통수를 까이기까지 했다고.. 결국 그는 부담감을 견디다 못해 실제로 '김 재현'으로 개명까지 했다. 최소한 법적으로는 김 신조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근황이 더 검색되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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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 와서 새롭게 처음 알게 된 사실은 강 재구 소령도 생전에 크리스천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인터넷으로만 봐 오던 곳들을 실제로 돌아다니면서 답사를 잘 마쳤다.
날씨가 여전히 덥고 물과 전기가 부족하고, 또 배고프고 피곤하기도 해서 여기서 더 놀지는 않았다. 조양 IC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집에 돌아갔다.

이틀 동안 1분 1초가 버릴 게 없는 즐거운 여행을 했다. 산과 계곡과 바다를 모두 구경했으며 고속도로부터 엔진 브레이크 비탈길까지 골고루 750km에 달하는 거리를 운전했다. 이 정도로 욕구를 해소했으니, 당분간은 또 서울을 빠져나간다거나 차 끌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생각이 안 들 것 같다. 시골은 차량 운행이 뜸하고 어디든지 주차 걱정 없이 차를 세울 수 있는 것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강원도는 꽤 넓다. 내년 여름에는 정선, 영월, 태백, 동해처럼 태백선 철도와도 인접해 있는 강원도의 '남부'를 돌아다녀 볼 예정이다. 영역이 공교롭게도 강릉 이남이냐 이북이냐로 나뉘는 것 같다. 이번에 다닌 곳은 온통 북부이니 말이다.
또한 내년엔 이제 병특 마친 직후에 만들었던 여권이 유효 기간이 1년 남짓밖에 안 남는데, 아직도 여권엔 사증란이 많이 남아 있다. 어딜 가든 외국 여행도 한번 다녀오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23 08:31 2016/09/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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