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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큰 3, 국제시장

2015년 새해 연초에 본인은 이례적으로 영화를 세 개나 영화관에 가서 봤다. (이 글에서 크게 코멘트를 하지 않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까지 포함해서)

1. 테이큰 3

악당이 아니라 니슨이 남에게 굿 럭을 날리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잔뜩 기대를 하고 봤다. 예고편에서는 "우리는 FBI와 CIA를 총동원해서 당신을(니슨) 저지할 겁니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 같던데 실제 영화에서는 놓쳤는지 못 들었다.

1편에서는 흑발 내지 갈색에 가깝게 염색을 하고 출연했던 킴은 원래의 머리 색깔인 금발로 바뀌었다. 1편에서는 끼만으로 먹고 살고 싶어하던 가수 지망생이었던 반면, 3편에서는 철이 들어서 공부를 했는지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하지만 대학교 학부생 주제에 벌써 혼전임신을 한 상태다..;; 1편의 '아만다'만치 심한 수준은 아니겠지만 킴도 좀 노는 타입인 듯. 임신 테스터는 영락없이 "킬빌"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이언 정도의 딸바보라면 딸을 임신시킨 남친을 반쯤 죽여 놓고 머리에 샷건을 들이대면서 "내 딸하고 당장 결혼 안 하면 넌 뒈진다"라고 협박할 법도 한데 그 일에 대해서는 브라이언도 의외로 쿨하다.

이 3편에서는 무엇보다도 킴의 새아빠인 스튜어트가 배우 자체가 더 얍삽하고 사악하게 생긴 사람으로 바뀌고 완전히 악역으로 흑화했다. 1편에서 브라이언을 프랑스로 데려다 줬던 그 전세기가 3편에서는 새아빠가 의붓딸(자기 입장에서)을 납치하는 도구로 용도가 바뀌어 버린다. 이미 비행기가 뜨기 시작했는데, 자동차로 밑의 랜딩기어를 날려 버리는 것만으로 비행기를 저렇게 휘청거리게 만들고 떨어뜨리는 게 항공역학적으로 가능한지는 난 좀 회의적이다.

"다이하드" 어느 시리즈에서처럼 러시아 최종 보스를 해치우는 부분에서 이야기를 끝냈어도 될 텐데, 반전은 좀 억지로 집어넣은 느낌이 든다. 어설프게 "쏠트" 흉내를 낸 듯.
이에 맞서 브라이언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이번에도 남에게 형사를 사칭하고 악당을 고문한다. 새아빠가 얼굴에다 헝겊을 쓴 뒤 브라이언에게 꼴꼴꼴~ 물 고문을 당한다. =_=;;

수사반장인 흑인 도츨러는 처음에는 골칫거리인 브라이언을 직업상 체포하는 역할을 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브라이언의 혐의가 풀리면서 서로 화해한다. "브라이언은 너희(부하들) 능력으로 잡은 게 아니라 잡혀 준 척 한 것일 뿐이다. 빨랑 차 세워라"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똑똑하다.

끝으로, 종교적인 부분. 테이큰 시리즈는 나 같은 신자가 보기에 교리적인 왜곡 같은 건 없어서 보기가 참 편했다. (괜히 이상한 코드 집어넣는 영화들은 천하에 꼴도 보기가 싫었다) 레노어의 장례식을 진행하는 목사가 영어로는, 내 기억이 맞다면 the word of God says... 라고 말하지만, 자막 번역은 그냥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라고 떴다.
성경 말씀 자체에 인격이 담겨 있다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불신자가 대충 의역을 해서 그런 것 같다. "성경은 말합니다"라고 직역을 못 하더라도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정도만 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이번 3편은 1편의 포스를 능가할 수준은 못 되지만 그래도 2편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럭저럭 잘 봤다.
그러고 보니 나 완전 액션 영화 매니아인 것 같다. 인용하는 관련 영화들이 전부 그쪽.. ^^;;

2. 국제시장

"국제시장"은 정말 딱 "포레스트 검프"의 우리나라판 같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아래의 굵직한 사건들을 스크린에서 다뤄 줬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매우 건전하고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1) 6· 25 흥남 철수(1950. 12.): 1차 세계 대전 때 크리스마스 휴전이라는 이벤트가 있었다면, 6· 25 전쟁 때는 이런 기적 같은 사건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잠깐이나마 평양까지 진출하고 북진 멸공 자유 통일이 눈앞에 있었는데.. 중공군 때문에 이 염원이 사실상 영원히 좌절돼 버렸다. 남쪽의 원산까지 이미 적군에게 점령당한 관계로 퇴로가 해로밖에 없었다. 그래서 배를 타야 했다.
참고로 월턴 워커 장군이 교통사고로 순직한 때가 1950년 12월 23일로, 흥남 철수와 타이밍이 거의 일치한다. 지금 서울에 '워커힐'이 바로 저 사람 이름을 따라 명명됐다.

(2) 파독 광부와 간호사(1964~1966): 한 10여 년 전부터 육사 교장의 편지라는 정체불명의 글이 나돌면서 어쨌든 많이 알려졌다. 일류대에 들어갈 정도로 머리 좋고 똑똑하면 뭘 하나, 나라가 가난하고 스스로 부를 창출할 기반이 없으니.. 억만 리 타지에서 학벌에 어울리지 않는 힘든 일 궂은 일을 하는 것인데도 목돈 모을려고 다들 못 나가서 난리였다.

(3) 월남전(1972~1974): 무슨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네(민간인 위장을 한 스파이 얘기는 절대 안 하고) 어쩌네 이상한 헛소리 음모론 대신, 이렇게 건전한 얘기를 풀어 주니 관람하는 기분이 좋았다.
물론, 실제로는 동일 인물이 공무원· 관리 명목이 아닌 인부· 일꾼 명목으로 서독과 베트남을 모두 경험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창작물이라는 허구에서는 한 주인공이 온갖 역사 사건을 다 몰아서 경험하는 게 관행이긴 하다. <여명의 눈동자>나 영화 <진주만> 등의 주인공을 생각해 볼 것.

(4) KBS 이산가족 찾기(1983. 10.): 재연을 한 건지, 아니면 당대의 레알 기록 영상물에다가 주인공을 CG로 합성해 넣은 건지? 어쨌든 재연을 굉장히 잘했다. 난리통에 생이별한 아버지는 못 찾았지만, 여동생은 미국으로 입양돼 있었을 줄이야.
내가 "님아 그 강을..."을 보면서는 그렇게까지 큰 감흥이 없었지만, 이산가족 상봉 장면만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다. "여기는 운동장 아니다." / "Am I really your sister?" ㅠ.ㅠ
미국으로 입양된 막순이 역을 맡은 배우.. 한국계 미국인 신인 같은데 정말 리얼하게 연기를 잘했다. 킬빌로 치면 뭔가 헬렌 김(암살자 카렌 김 역) 같은 위치일까?

부부싸움 하다가 어색하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은 정말 다른 불순한 의도 없이 그 시절에 그랬다는 풍자가 들어간 개그이더구만.. 도대체 뭐가 이념이 들어간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뭐? "나이 많은 꼰대들한테서 지겹도록 들은 얘기를 굳이 또 영화로 봐야 할 필요 있나?" 이런 인간말종 수준의 개소리는 정말로 일고의 가치가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영화는 6· 25 시절의 부산을 다루고 있으면서 정확하게 그 시간과 장소에 있었던 대역경인 "부산역전 대화재"는 건너뛰었다는 점이다. 부산으로 피난 가서 살던 덕수네 집안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을 사건인데, 딱히 집어넣을 만한 공간이 없어서 안 넣은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5/01/25 08:38 2015/01/2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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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번의 여유

얼마 전, 본인은 회사에서 어도비 인디자인의 약간 구버전을 업무상 프로그램 구조 분석을 목적으로 설치한 적이 있었다.
본인은 프로그래머이지 디자이너가 아니며, 나의 컴퓨터 생업 밑천은 비주얼 C++이지 인디자인은 아니다. 이건 잠깐만 들여다보고 버릴 예정이므로 30일 트라이얼 버전만 잠깐 깔았다.
그리고 그걸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 본인은 그걸 방치했는데..

나중에 내 한글 입력기가 인디자인에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듯하다는 문의가 어디선가 들어왔다. 난 비록 30일 기간은 아득히 경과했겠지만 일단 내 회사 컴에 인디자인이 깔려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걸 일단 실행해 봤다. 그랬더니..
프로그램은 "트라이얼 기간이 경과했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실행 기회를 준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일단 실행이 됐다.

어도비가 요즘 먹고 살기가 팍팍한지, 혹은 도를 넘는 불법복제에 이골이 났는지 소프트웨어 제품들에 인증을 강화하고 패키지 일회성 구매보다 사용권/사용 기간 구매 위주로 정책을 짜게 바꾸고 있다고 본인은 들었다. 하지만 30일이 경과하자마자 칼같이 실행을 거부하는 여느 데모나 셰어웨어와 달리, 트라이얼 버전에 대해서는 쟤들이 나름 자비심 있는 조치를 취한 것 같다. 단 한 번만 더 기회를 준 것이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이와 유사한 다른 사례들을 주변에서 여럿 찾을 수 있다.
옛날에 '잔기'(목숨, 마릿수)가 존재하던 게임을 보면, 1이 마지막 잔기인 게임이 있는가 하면 0이 마지막인 게임도 있었다. 이 역시 1보다는 0이 더 관대해 보인다.

지하철의 경우, 운임이 중간에 오르더라도 예전 운임을 기준으로 이미 충전된 한 달치 정기권은 추가 정산 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지금은 없어진 지 10년이 넘었지만, 옛날엔 서울 지하철에 정액권이란 게 있었다. 구입가보다 더 많은 금액이 입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소진 직전 맨 마지막에는 금액이 100원이 남았든 50원이 남았든 무방하게 전철 최장거리 구간도 1회에 한해 더 이용할 수 있었다. 뭐, 지하철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런 운임 누수 꼼수를 막으려면 정액권의 단가를 최대한 높게 잡아야 했겠지만 말이다.

이런 식의 아기자기한 '마지막 한 번의 여유'를 생각할 만한 일이 또 있었다.
한번은 교회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놀다가 야식을 시켜 먹었다. 이럴 때는 집 냉장고나 문에 쳐박혀 있는 야식집 메뉴판을 꺼내서 그 내용대로 주문을 하는데, 그 메뉴판 가격을 그대로 접수받는 집이 내 경험상 생각보다 적다. 수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가격이 올랐다고 그런다. 그러나 이것도 그렇게 센스 있는 조치는 아니다.

자기 집의 옛날 메뉴판 찌라시를 제시하면 그걸 회수하고 새 찌라시로 교환하는 조건으로 1회에 한해, 메뉴에 적힌 대로 옛날 가격을 받게 하는 게 고객에게는 훨씬 더 좋은 서비스가 되지 않을까?
자기네 가게에서 옛날에 집집마다 돌며 뿌렸던 광고 찌라시를 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나중에 그걸로 주문을 한 것만으로도 업소에서 보상을 해 주는 게 마땅치 않은가 말이다.

또한 이것은 "찌라시에 대한 신뢰도를 올리고" 한번 주문을 했던 고객으로 하여금 자기 업소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도 낸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할인 쿠폰이 뭐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소프트웨어 UI 내지 고객을 접대하는 장사를 하는 업종에서는 이런 '마지막 기회'에 대한 아량이라는 덕목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1/23 08:34 2015/01/2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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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 컴퓨터 음악 이야기

올해 상반기는 박사 첫 학기 진학과 <날개셋> 한글 입력기 7.4 완성이라는 본인의 개인사와는 대조적으로, 분위기가 은근히 우울했다.
월드컵 축구 경기는 기대를 저버리는 졸전 끝에 별 재미를 못 봤고, 신촌 동성애 퍼레이드에다 어째 1993년에 벌어진 것과 비슷한 패턴의 사건· 사고가 두 건이나 벌어졌다. 세월호(1993년의 서해 페리호), 그리고 총기 난사+무장 탈영(1993년의 임 채성 무장 탈영 인질극) 말이다. 정치판에서 돌아가는 큼직한 사건들은 좌파와 우파 성향 모두에게 최악의 실망만을 안겼다.

뭐 어쨌거나.. 이번 학기에 본인은 아직 프로그램 개발에 더 전념하려고 수업은 2개만 들었다. 언어학 문법 수업은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확실히 어려웠다. 그래도 다음 학기에 프로그래밍 언어와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 경험을 서로 대조해 보면, 자연어와 인공 프로그래밍 언어가 개념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조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 학기 초부터 기대했던 컴음악은 어려운 한편으로 재미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텀 프로젝트를 발표한 걸 보니 모바일 또는 웹으로 간단한 미디 음악 시퀀서를 만든 경우도 있고, 미디 데이터를 일정 규칙대로 변조하거나 climax를 찾는 알고리즘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 담당 교수님의 연구실에 들어가 있는 학생들은 여러 이미지와 여러 음악들을 분위기에 맞는 것끼리 서로 짝지어 주는 솔루션을 주로 내놓았다.

나도 처음에는 멜로디로부터 chord를 자동으로 매긴다거나 다른 감정 같은 의미를 읽어 내는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곧 단념했다. 그런 것도 없는 곡을 새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엄청 어렵고 창의적인 일이라는 걸 곧 인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컴음악 시간에는 이 기회를 이용해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자동 작곡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걸로 방향을 선회했다. 복잡한 요소들 싹 다 제끼고 오로지 초등학교 음악책에 나오는 동요 급의 간단하고 짤막한 단음 멜로디를 생성하는 것.

음악이라는 게 어느 정도는 무질서하고 무작위한 요소가 있지만, 그 뒤부터는 정말 인간의 언어만큼이나 극도로 예전 문맥에 의존적이고 체계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게 없이 그저 rand()의 결과대로 멜로디와 박자를 뿌리면 그건 음악이 되지 않고 아무 호소력이나 메시지, 시너지 효과가 안 나오는 횡설수설 노이즈밖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연구하면 할수록 음악도 마치 문장을 구문 분석하듯이 계층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각 마디 안의 음표들은 일정 chord 범위에 드는 한도에서 생성되는데, 그 chord가 바뀌는 규칙은 또 다른 상위 계층에 따라 정해지고, 그 계층의 상위 계층은 또??

맨 처음엔 박자를 재귀적으로 무작위 생성하는 것부터 해 봤다. 음색이 들어간 음악이 말 그대로 색, 컬러 그림이라면, 박자는.. 그냥 흑백 그림에 가깝다고 하겠다. 박자도 생각보다 가짓수가 많았으며, 취사선택을 잘 해야 했다.

2 1 1 2 1 1
8
3 1 4
4 2 2
3 1 4
8
2 1 1 2 2
6 2
4 2 2
3 1 2 2
2 2 3 1
8
2 2 2 2
3 1 2 1 1
6 2
3 1 4
8
4 2 1 1
4 2 2
6 2
1 1 1 1 2 2
1 1 1 1 4

아주 공교롭게도, 마지막 두 박자는.. 바로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 그런 노래 없다 다시 불러라”의 박자와 동일하다.. ㅋㅋㅋㅋ 컴퓨터가 그런 박자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박자에다가 음색을 입히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엔 1도 화음에서 시작하고 끝은 언제나 '도'로 끝나고, 주어진 chord와 어긋나는 음은 약박에만 들어가게 하고,
같은 음 반복, 1도씩 증가, 1도씩 감소 같은 인위적인 규칙을 일정 확률로 준 결과, 노이즈보다는 듣기 좋은 멜로디가 종종 생성되었다. 아 물론, Looking for you나 Let it go 같은 퀄리티를 기대해서는 안 되지만..ㅎㅎ

텀 프로젝트를 발표한 후 교수님의 반응은 “(1) 마디별 코드 전환이 부드럽고 꽤 그럴싸하게 작곡이 잘 됐다. (2) 단, 당초 계획만치 참고문헌 내용이나 관련 기존 연구 성과가 반영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었다.

내가 목표했던 퀄리티는 그냥 별 생각 없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수준의 작곡이었다. 그런데 사람은 무작위로 흥얼거린다 해도 결국 예전에 자기가 들어서 기억하고 있는 음악을 변형하는 형태인 반면, 컴퓨터는 그런 경험 데이터가 없이 난수 생성만으로 음악을 만든다. 결국 컴퓨터도 사람에게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려면 모방이 필요하며 기존 음악 패턴에 대한 데이터가 아주 없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래저래 음악은 탁월한 수리 능력에다가 창의성까지 갖춘 괴수 천재들을 매혹시키기 충분한 분야이다. 리서치 과정에서 Musimathics라는 책을 참고했는데, 저자는 이건 뭐 수학, 전산학에 소리를 물리· 전자공학적으로 분석하는 것까지 완전 다 통달한 천재다. 전자공학의 푸리에 변환도 나오고, 작곡 방법론에서 난수 생성 얘기를 하는 데서는 ACM 논문까지 소개한다.

나 또한 딴 건 몰라도 음악의 위력에 대해서는 Looking for you와 관련하여 할 말이 무진장 많다. 이런 음악 한 곡도 지적 설계자의 치밀한 설계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데 하물며 이 세상 만물이겠는가 하는 생각도 응당 들었다.

사실, 과거에 마소에서는 미래엔 이렇게 실시간으로 작· 편곡을 하여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게임이 등장할 걸로 예상하고 DirectX에다가 미디 기반의 DirectMusic이라는 컴포넌트도 만들었다. 1990년대 말이면 아직 소프트웨어 기반 미디 신시사이저도 흔치 않던 시절이어서.. 하지만 게임 음악 기술은 음표 신호 방식이 아닌 waveform 방식으로 대세가 완전히 바뀌었으며, DirectMusic도 개발이 중단된 흑역사로 전락했다.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다음은 여담이다.

1.
어떤 학생이 자기 결과물을 발표하고 시연하는 중이었는데, 파일을 기록했다는 영문 메시지가 writed라고 뜨고 있었다. 본인은 그걸 보면서 속으로 뿜었다. 우와, 정말 생각도 못 했던 단어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내가 발표했던 PPT 자료를 다시 보니, 나도 ‘결론’을 Conclusition이라고 써 놔 있었다. ㅋㅋㅋㅋㅋ

다들 시간에 쫓기는 상태로, 혹은 밤샘 하고 나서 머리 가동률이 70% 이하로 떨어진 상태로 비몽사몽 발로 영작을 하다 보니 저런 오타들이 나왔는가 보다.

2.
본인은 작곡한 멜로디를 출력할 때 미디 API를 쓴 게 아니라, 과거 BASIC에 존재하던 PLAY문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함수를 직접 만들어서 썼다. 지정된 음의 주파수에 해당하는 sine wave를 생성해서 오디오로 출력하는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waveOut*** 어쩌구 하는 함수들을 직접 공부해서 써 봤다.

난 간단한 콘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파일 재생 관련 통지를 그냥 callback 함수 호출로 받게 했는데... 뭐가 이상하게 꼬이면서 잘 되질 않았다.
한참을 디버깅 하다가 시간도 부족하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message-only 윈도우를 만들고 통지를 메시지로 받게 했더니.. 모든 문제가 싹 해결되었다. 메시지가 진리. 두 메커니즘의 차이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픽 애니메이션 출력 때 더블 버퍼링을 하는 것만큼이나, 실시간으로 오디오 데이터를 보내는 것도 더블 버퍼링 기법이 쓰인다는 게 흥미롭다. 관련 코딩을 해 보신 분이라면 이미 잘 아실 것이다.
버퍼 A의 내용이 사운드 카드로 가서 재생되는 동안 미리 버퍼 B의 내용을 보내 놓고 기다리고, 다음으로 버퍼 B가 처리되었으면 다시 버퍼 A에다가 다음 내용을 보내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7/05 08:36 2014/07/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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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제관

내 주변의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들은 의학이나 공학 쪽의 천재가 아닌 이상은 다들 경제, 금융, 법, 행정 쪽으로 몰리고 있다. 거기가 아무래도 잘 나가고 돈 많이 버는 업종이어서 그런 것 같다.
난 그런 골치아픈 학문은 완전 무관심하고 문외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제관에 관한 한은 다음과 같이 확고한 maxim / principle이 머리에 박혀 있다.

1.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공짜로 뭔가를 얻어 쓰고 있다면 그건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남보다 더 노력해서 잉여분을 제공해 준 덕분이거나 남의 것을 희생하거나 빼앗았기 때문이다.

2. 정부(또는 국가)는 먼저 국민의 재산을 빼앗지 않고는 국민에게 그 어떤 편의나 복지도 제공할 수 없다. 그것도 빼앗은 총량보다 훨씬 적은 양만큼만 되돌려 줄 수 있다. 열심히 일해 봤자 다 세금으로 뜯기는 시스템에서는 어느 누구도 먼저 사업을 벌리고 열심히 일하려 나설 수 없다.

3. 복지 제도는 마치 보험과도 같아서 오· 남· 악용되는 일이 없게 나일롱 수혜자를 정확히 걸러내는 시스템이라는 전제조건이 갖춰져야만 실현 가능하다. 가난 구제는 왜 나랏님도 못 하는지를 잘 생각할 필요가 있다. 탈세나 보험 사기에는 아주 민감한 사람들이, 그것과 거의 똑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복지에 대해서는 보편적 복지를 왜 그리도 너무 쉽게 얘기하는가?

4. 부패한 정부의 폐해는 부패한 기업의 폐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더 크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나라가 아무리 나쁘다 해도, 국가가 개인을 착취하는 나라보다 나쁠 수는 없다. 기업은 최소한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얼마든지 입사 안 할 수 있고 사표 쓰고 나올 수 있고, 극소수의 독과점 상황만 아니라면 제품 불매 운동이라도 벌여서 응징할 수 있다.

5. 성장을 좋아하든 분배를 좋아하든, 어떤 경제관을 갖든, 이상적인 부의 분배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개인 자유이다. 그러나 그 경제관은 당신이 월급쟁이일 뿐만 아니라 직접 사업을 하고 남을 고용하고 월급을 "주는" 처지가 됐을 때도 똑같이 유지할 수 있는 관점이겠는지를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6. 사유재산과 자유 시장은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을 그나마 빵의 크기를 키우고 다같이 잘 살게 하는 쪽으로 발산되게 하는 좋은 경제 제도이다. 빈부 격차도 없을 수가 없으며, 때로는 돈으로 돈을 버는 것도 필요하다. 돈으로 돈을 불려서 부자를 훨씬 더 부자로 만드는 걸 허용하지 않고서는 가난한 사람을 작은 부자로라도 만들 수가 없다. 또한 산업 인프라가 대량 생산 위주로 중앙 집중이 돼야 제품의 생산 단가가 내려가고, 덕분에 공산품은 싸고 인건비는 비싼 바람직한 경제 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 이게 그냥 공짜로 되는 게 아니다.

물론 개인의 local maximum을 추구하는 이기주의가 언제나 집단 전체의 이익을 키우지는 않으며, 시장이 아무 통제가 없으면 치킨 게임, 눈치 보기, 담합, 독점 같은 부작용이나 데드락도 생긴다. 당장 이익이 안 나더라도 국가에서 먼 미래를 보고 비효율적인 아이템을 밀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정부만이 마냥 해결책이고 뭐든지 국가가 나서서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은 상당히 조심하고 제한적으로 걸러서 들어야 한다.

간부가 아무리 미워도 간부 없이 군대가 돌아갈 수는 없으며 정치인들이 아무리 미워도 이 악한 세상이 정치 없이 돌아갈 수는 없다.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같은 건 영구 기관만큼이나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 인간의 죄성상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속이는 선동에 속지 말아야 한다. 또한 사유재산과 시장 경쟁의 혜택은 실컷 입었으면서 정작 자기는 이상한 음모론 제기하고 비방만 하는 '헛똑똑이'들을 우리는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정부의 비효율은 한번 놔 두면 정말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시장을 왜곡하고 민생을 헬게이트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관념을 애들에게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난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4/03/27 08:39 2014/03/2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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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 문명에 대한 짧은 생각

나는 내 신앙관과는 별개로 현대의 눈부신 과학 기술과 물질 문명, 문명의 이기, 제도권 의학을 매우 사랑하며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본다.
그에 대해 되도 않은 방식으로 부작용· 폐해만 부각시키며 폄훼하는 음모론, 그리고 대안이랍시고 무작정 자연으로 돌아가네, 이상한 유사과학 끄집어내는 것들을 기본적으로 경멸하며 부정적으로 본다. 역사적으로 다 검증된 시행착오로 왜 또 복귀하려 하냐?

우리나라가 해방 이래로 이 정도로 인권이 발달하고 자유 민주주의 지수가 오른 건..
일단 나라가 올바른 이념으로 건립되었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국민 개인이 등 따시고 배부르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덕분이다.
거기서 민중 항쟁? 데모질, 시위가 기여한 건 아예 0은 아니겠지만 비중이 굉장히 낮다고 본다.
북한이 인민들의 민주 의식 저항 의식이 부족해서 저 지경이 된 게 절대 아니란 말이다. 닥치고 총칼 폭력 위협과 굶주림 앞에서 장사 있냐?

내가 예전에도 여러 번 언급한 비유이다만.. 솔로몬의 재판을 생각해 보자.
세상 정부가 무슨 예수님이나 솔로몬 같은 완벽한 통치나 재판을 할 수는 없다. 세상 정부로부터 종교적인 면모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걸 바랄 수 없다면, CCTV나 유전자 감식으로라도 진짜 애엄마를 가려내는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마땅히 칭송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의 양심을 믿을 수 없다면 양심이 필요하지 않은 시스템을 개발한 학자라도 칭송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나 정교분리 이념에 목숨 거는 사람들은 이 점을 더욱 명심해야 한다.

과학 기술 덕분에 농산물과 공산품의 가격이 인건비에 비해 크게 내려가고 인간의 복지가 향상되고 인간은 생존 이외의 다른 창의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이 인간에게 자유를 선사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죄 짓는 일도 덩달아 증가한 건 전적으로 별개로 생각해야 할 문제다.

과학 기술 덕분에 세상이 더욱 공정하고 질서정연해졌으며, 한 사람의 실수가 집단 전체로 파급될 일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각 개인을 더 선하게 믿어도 되고 군기라든가 끔찍한 일벌백계 같은 게 덜 필요해졌으며, 세상이 덜 각박해져도 되게 되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 피의자를 고문해서 자백을 강요하는 관행을 없앤 것은 뭔 민주화 인권 시위 같은 게 아니라 첨단 과학 수사 기법이다!
  • 옛날에 자연이 지금보다 훨씬 더 깨끗하던(?) 시절엔 오히려 인구와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더 짧았다. 옛날엔 전염병 때문에 인구가 이렇게 밀집한 대도시가 아예 존재할 수가 없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4/03/22 08:38 2014/03/2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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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개론

모태신앙일 뿐만 아니라 모태솔로-_-인 본인더러, 연애 하는 걸 좀 배우라고 영화 <건축학 개론>을 볼 것을 강력히 권하는 지인이 주변에 있었다. 그래서 1년 전 영화를 찾아서 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은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이다.

1. 1990년대도 벌써 20여 년 전의 추억이 돼 가는구나.

2. 내가 보기에도 남자가 정말 미치도록 숙맥이긴 하다. ㅎㅎ 스토리가 참 서정적이고, 흥행 성공했다는 게 수긍이 간다. 기존 소설을 영화화한 게 아니라니 의외.
나도 철도 얘기, 정치 얘기, 프로그래밍 얘기 같은 거 집어치우고, 이성하고 같이 순수하게 저렇게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좀 들긴 했다. 그게 과연 가능하긴 할까?

3. 건축학개론의 스토리 설정은.. 뭐랄까, 황 순원의 <소나기>에다가 옛날 하이텔에 pctools(김 현국) 님이 지은 <소나기 그 15년 후>-_-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저 15년 뒤 패러디판을 아는 분이 독자 여러분 중에 혹시 계시려나.. 물론 영화는 그 패러디물만 한 막장 스토리는 아니며, 여자 쪽이 죽는 걸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4. 그리고 결정적으로, 극중에 나오는 수업 내용은 건축공학하고는 아무 관계 없고 지리에 훨씬 더 가까운 것 같은데? 내가 연세대 건축공학과의 수강 편람까지 다 찾아봤는데, 현실을 감안했을 때 제목은 좀 낚시 같다.

지도 펼쳐서 길과 건물 살피고 여행 가는 건 철도에만 미치고 나면 알아서 다 하게 된다. 내가 예전에 짜 놓은 “철도학 개론” 커리큘럼을 참고하시라. 건축학 개론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만들어 놓은 자료이지만, 저거야말로 음대생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고, 영화의 성격과 훨씬 더 부합하는 이상적인 형태의 수업이다

철도를 배경으로 사랑이 맺어지는 스토리의 영화가 나온다면 얼마나 멋질까! 영화 장면 중에는 중앙선 구둔 역도 나오더구만.

자, 그런 의미에서 “코레일-광역전철 길라잡이-구석구석 상상여행” 코너를 소개하며 글을 맺겠다.
KTX 촬영 명당인 반월 저수지 인근 야산도 아예 반월 역과 함께 공식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단, 이곳은 저 사이트에서 소개된 바와는 달리, 반월보다는 대야미 역에서 접근하는 게 거리가 약간 더 짧고, 찾아가기도 훨씬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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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오늘도 기승전철 달성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19 08:26 2013/05/1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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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 보존 학회와 한글 킹 제임스 성경

1994년, 말씀 보존 학회(이하 말보회)라는 단체가 그 이름도 유명한 “한글 킹 제임스 성경”이라는 역본을 내놓으면서, 한반도에 한국어라는 언어와 한글이라는 문자를 매개로 명목상 '없음'이 없고 변개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사실 그 전부터도 '새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신약이 먼저 나와 있었으나, 방대한 분량의 신구약 성경전서가 최초로 완역된 게 저 때이다.

한킹이 처음 나왔을 때는 한국 교회가 말보회에 대해 그렇게까지 적대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KJV라고 하면 그래도 신학깨나 했다는 사람들한테서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인지도가 있는 성경이었고, 어차피 기존 개역 성경도 허접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모 대형 교회에서는 한킹을 정식으로 받아들여 쓸 의향을 밝히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말보회는 이 좋은 기회를 얼마 못 가 스스로 차 버렸다. “개역 성경은 사탄 마귀의 성경이기 때문에 그걸 읽어서는 구원도 못 받는다 / 우리 성경 침례 교회 이전에 대한민국엔 진정한 신약 교회라는 게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식으로 심한 병크를 저질렀고, 대표의 싸이코 같은 모습이 부각되면서 한국 교회는 마음을 완전히 닫아 버렸다.

배교의 결정판 NIV
스스로 성경이기를 포기한 현대어 성경
오리겐도 울고 갈 변개 실력
현대어 성경으로 한국 교회를 뜨겁게 할 유일한 방법은 땔감으로 쓰는 것밖에 없다 (레알 불쏘시개 인증)


이런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은 당시 말보회가 광고로 퍼뜨리던 문구였다.
왠지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 짤방이 생각난다... “개역성경은 성경의 쓰레기이고 NIV는 성경이라 불릴 수 없는 저질 족속이며 공동번역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저질 성경이다. 그러나 ...” ㅋㅋㅋ

비록 말보회의 주장 중에 일리가 있는 말도 있었고 한국 기성 교계가 각종 비성경적인 관행들을 답습하고 있는 게 한둘이 아닌 건 사실이지만, 말을 저 따위로 해서는 진심이 어떻게 전달되겠나. 말보회는 1998년에는 모 교계 총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이단 판정까지 받음으로써 확인 사살을 당했다. 말씀 보존 학회가 아니라 “말썽 보존 학회”로 찍혔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변개되지 않은 올바른 성경을 통한 영적 부흥 따위는 아주 안드로메다로 가 버리고, '킹 제임스'의 '킹' 자만 꺼내도 “거기 이단 아냐?”란 반응이 나오는 영적 무지가 판을 치는 암흑기로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변개된 성경이 삭제한 게 아니라 “KJV의 구절이 후대에 근거 없이 추가된 것이다”는 식으로, 변개된 역본 및 본문을 옹호하는 신학자들의 잘못된 궤변이 교계에서 더욱 힘이 실리는 계기가 마련되어 버렸다.

2. 킹 제임스 흠정역

그러던 1990년대 중· 후반엔, 말보회 내부에서도 성경의 편집 방침에 대한 대립이 심해졌고 대표 되시는 분의 막무가내 식 독단과 횡포를 견디지 못해 내부 인원이 일부 이탈했다. 이런 식으로 말보회의 밖에 있는 국내 킹 제임스 맨들이 여럿 이를 악물고 의기투합한 끝에 자기네만의 성경 역본을 2000년 여름에 처음으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킹 제임스 흠정역”이다. KJV는 왕이 공인한 성경이라 하여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면 '흠정역'이 되는데, 그 단어를 고유명사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가 정보 올림피아드 출품용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이 완성된 것과 매우 비슷한 건 우연이다. ㄲㄲ

말보회 측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좋아할 리가 없었으니 당연히 크게 반발했다. 흠정역은 한킹을 베껴서 쉽게 만들어진 거라고 엄청 중상모략과 악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둘을 펴서 대조해 보면 이런 모함은 설득력을 잃는다. 한킹은 몇몇 센세이셔널한 구절을 제외하면 흠정역보다 품질이 훨씬 더 열악했으며, KJV가 아니라 실은 공인 본문(TR)을 번역한 이역도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킹을 베끼는 식으로는 흠정역 같은 성경이 결코 나올 수가 없음이 자명하다.

시대를 풍미하면서 좋든 싫든 대한민국 땅에 KJV를 대대적으로 이슈화했던 말보회는 21세기 이래로 어찌 지내고 있는지 난 잘 알지 못한다. 과거의 너무 지나쳤던 병크에 대해서 말보회 내부에서도 “심했다, 그땐 좀 유감이다” 같은 자정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고 난 들었다.

이제 이 글의 초점은 한킹에서 흠정역으로 바뀐다. 흠정역의 주 번역자는 잘 알다시피 정 동수 교수(인하대 기계공학과..;)인데.. 자기 입으로 민망하게 떠벌리지를 않을 뿐이지, 한국에 바른 성경을 보급하고 바른 교회를 세우려는 열망과 부담감을 주체하지 못해 몸서리쳤던 분이다. 그래서 생업을 제외하고 40대를 전후한 인생을 죄다 그 일에 바쳤다.

흠정역 초판이 완성되었을 즈음, 정 교수는 <그리스도 예수안에>라는 기독교 자료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성경 이슈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 사이트는 게시판이 없고 딱히 양방향 의사소통 기능은 없었다. 난 대전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이 시기에 그 사이트를 통해서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편, 그분은 안식년을 이용해 미국으로 건너가서 KJV를 쓰는 펜사콜라 크리스천 대학에서 신학 석사를 받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후 곧장 귀국하여 몸소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이때의 목회는 실패하고 교회가 와해되고 말았다. 2000년대 중반이던 이 시기가 정 목사의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시기였다고 그분이 스스로 증언하며, 지금의 설교 때에도 스스로 언급한다. 뭐 비윤리적인 일이나 스캔들 때문인 건 절대 아니고, 약한 성도들을 시험에 들지 않게 세세하게 어루만진다거나 하는 심리적인 일에 서툴렀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건 성경 지식만으로 되는 게 아니며, 누가 목회를 하더라도 몹시 어려운 일이다.

3. 사랑 침례 교회

말보회가 흐려 놓는 바람에 한번 부정적으로 굳어진 KJV 이미지의 여파는 꽤 컸다. 그러나 말보회의 밖에서 바른 성경을 알리려는 분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수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그 상처는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다. 흠정역 성경을 기존 기독교 매체에다 광고하고, 또 기성 기독교 출판사를 통해 시판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KJV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고 이것도 신뢰할 수 있는 어엿한 대체 한글 성경 역본임을 알리게 되었다.

2008년경, 정 동수 목사는 개인적으로 다시 인도하던 성경 공부 모임을 기반으로 지금의 사랑 침례 교회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Keep Bible이라는 후속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기존 <그리스도 예수안에>를 흡수했다. Keep Bible은 예전 사이트와는 달리 커뮤니티 기능이 크게 발달해 있으며, 각 지역 교회 홈페이지별로 찢어져 있던 커뮤니티 기능을 죄다 흡수하고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KJV 신자들의 교제 공간 겸 자료 창고가 되었다. 현재 Keep Bible에 버금가는 다른 양대 산맥 커뮤니티는 청지기 카페 정도가 고작이다.

이를 통해 흠정역 성경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고, 사랑 침례 교회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성장했다. 2012년에는 예전보다 꽤 더 큰 건물을 구해서 인천 남부로--서울에서 가기는 더 힘들어짐-- 이사를 갔으나, 거기도 이내 꽉 차서 주일 오전 예배 때 3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온다고 한다.

첫 개척했던 교회가 실패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상전벽해의 성공이다. 온라인 상으로 정 동수 목사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도 국내외에 굉장히 많으며 설교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다.

잘 생각해 보면, 지금은 시기적으로도 예전에 비해 KJV 거부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고, 기존 교계 자체도 개역 성경을 개역개정으로 바꾸려는 분위기인데 이 참에 성경 이슈에 눈을 뜬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른 성경을 기반으로 성경대로 건전하고 바르게 행하는 교회에 대한 영적 갈급함을 느끼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고무적인 현상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정 동수 목사는 전임 사역자가 아니라는 것.
대학 교수와 목사를 겸임하고 있는 엄친아라서, 머리는 듀얼코어일 수 있어도 몸이 둘이지는 않다.
주중에 수요 기도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날짜를 불금 시간대인 금요일 저녁으로 대신 잡고, 가끔은 학회 때문에 미국 출장도 가신다. 그런 상태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많은 성도들을 다 감당할 수는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정 목사는 자기는 애초에 전임도 아니니 아예 사례비를 받지 않고 목회를 했다. 그 대신 부목사를 아예 자기 사비로 사례비를 주면서 초빙하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 사랑 침례 교회는 덩치에 비해 사역자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었다.

4. 김 문수 형제님

그런 와중에.. 혜성처럼 나타난 분이 바로 김 문수 형제님이었다.
2009년, Keep Bible 사이트가 개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이분은 정 목사를 빼닮은 말투로 성경의 어려운 내용들을 풀이하고 흠정역을 적극 옹호하는 글들을 시리즈로 올려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원군이 등장한 셈이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사랑 침례 교회에서는 그분을 초청도 한번 했다.

그랬는데 알고 보니, 이분은 나하고도 더 옛날에 PC 통신 하이텔에서 종종 마주친 적이 있는 분이었다.
그때는 난 겨우 중학생-고등학생이었고 저분은 아마 서울대 박사 과정이 꺾였거나 이제 막 박사를 마치신 상황. 베이직 동호회 같은 프로그래밍 동호회에서 마주쳤었기 때문에 난 그분을 컴공 전공자 정도로 생각했다. 물론 컴퓨터 선교회(kcm) 같은 기독교 동호회에서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이 독실한 크리스천인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PC 통신 시절부터도 그분은 쓰는 글의 스타일이 굉장히 자상하고 포근하고 뭔가 권위가 있어 보였고, 박학다식함이 느껴졌었다. 질문이나 잡담을 거의 안 올리고, 올리는 글은 정보나 답변밖에 없었다. 아, 그분은 1999년에 본인이 Intel ISEF에 국내 최초로 출전하게 됐을 때, 하이텔 베이직 동호회에다 해당 신문 기사 본문을 올리면서 내 축하를 해 주시기도 했다. 우와..!

그 뒤 PC 통신이 몰락하면서 그분과의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어졌고 그분에 대한 기억은 내 머리 한쪽 구석에만 남아 있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그분을 킹 제임스 교회에서 정 동수 목사와 얽혀서 다시 상봉하게 될 줄이야. 세상에!

직접 만나고 보니 이분은 1960년대생으로, 정 목사하고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분이었다. 연세가 생각보다 많으신 셈. 그리고 컴공 전공이 아니라 언론정보학 쪽의 문과 출신이었다. 헐, 그런데도 프로그래밍에도 그 정도로 관심을 보이셨나? 전공의 특성상 연설(스피치), 정보 커뮤니케이션 쪽의 전문가였으니 이건 뭐 설교자에게 이보더 더 적절할 수 없는 전공인 듯하다.
이것저것 엉뚱한 짓을 하는 걸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그분은 첫인상만 봐도 책을 무섭게 파는 걸 즐기는 학구파, 학자 기질이 얼굴에 딱 써져 있었다.

만남이 있은 후, 이분은 정 동수 목사로부터 신학 공부 제안을 받으신 듯했고, 처자식까지 있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락하여 유학길에 올랐다. 정 동수 목사가 10여 년 전에 거쳤던 동일한 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공부를 하고, 각종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그 동안 10대 초반 나이인 두 아들에게 영어를 마스터시킨 건 덤. 2010년 가을부터 2012년 가을까지, 내가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했던 기간과 동일한 기간 동안 말이다.

5. 사랑 침례 교회 부목사로 부임

이런 과정을 거친 후, 김 문수 형제님은 귀국해서는 딴 데 갈 필요도 없이 사랑 침례 교회의 부목사로 정식 부임했다. 이미 Keep Bible에 올리는 글들을 통해 사랑 교회 성도들과도 친숙한 상태였으니, 일꾼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그 교회를 위해 완전히 준비된 최적의 인물이었다. 그래서 현재 그분은 대학 강사와 목사 직분을 겸임하고 계신다.
다음은 사랑 침례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김 목사의 가족 사진이다.

사실 내가 김 문수 목사님하고 과거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은 내가 정 동수 목사님하고 개인적으로 가까워지는 데에도 꽤-_- 기여를 했다. 친구의 친구 같은 명목으로? =_=;;; 난 사랑 침례 교회에 다니지 않으며, 그 교회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서울 소재의 다른 KJV 교회를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서울 진리 침례 교회).

김 문수 목사님이 유학 가 계시던 딱 그 기간 동안 마침 흠정역 제 5판(400주년 기념판)의 교열과 간행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나도 여차여차 하던 끝에 이것 저것 작업을 돕는 일에 연루되곤 했다. 김 목사님과의 이런 특별한 만남이나 계기가 없었으면, 다른 목사님들과 친분도 없고 나이도 한참 어린 본인이 그런 일에 개입될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졌을 것이다. 당사자 자신의 역량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이어 준 것만으로도 김 문수 목사는 정 동수 목사의 사역에 매우 큰 유익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킹 제임스 성경과 성경대로 행하는 교회들이 대한민국 땅에서 부흥하면 좋겠다. 그리고 비록 각자 섬기는 교회는 다르지만 믿음이 같은 지체들끼리 언제 또 만나서 교제할 날도 오길..

Posted by 사무엘

2013/05/16 08:21 2013/05/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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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운전 관련 이야기

※ 자차를 굴리면서 예전에 겪은 에피소드들을 한데 엮었다. SNS에다가는 꽤 옛날에 올렸음. 본격 사무엘 님 차덕 인증글. ㄲㄲ

1.

동부 간선 도로는 의정부에서 시작하여 중랑천을 따라 서울 지하철 7호선과 비슷한 선형으로 쭉 내려가다가 한양대 근처에서 강변북로와 합류하는 걸로 끝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잠시 강변북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청담 대교로 빠지는 곳부터 다시 동부 간선 도로가 계속된다. 이 길은 잘 알다시피 분당-수서 고속화도로와 직결되어 성남, 분당, 판교 방면으로 간다.

동부 간선 도로(서울)와 분당-수서 고속화도로(경기도 성남)는 딱히 구분 없이 동일한 길인 것 같지만 주변을 잘 관찰해 보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딱 복정 교차로를 지나고부터 행정구역이 서울에서 성남으로 바뀐다. 그리고 서울 구간은 최대 시속이 80km이던 것이 성남부터는 90km로 상향 조정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밤에 몰아 보면 두 도로는 가로등의 색깔도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서울 구간은 불빛이 흰색 계통인 반면, 경기도 구간은 노란(혹은 오렌지색) 나트륨등이다. 그리고 밝기도 서울 구간이 더 밝아서 지역이 바뀌면 도로 주변의 분위기까지 달라지는 느낌이다.

흰색 불빛이 노란색 불빛으로 바뀌는 경험이 웬지 낯익고 익숙한 것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잠재의식 속에 서울 지하철 5호선이 떠올랐다. 일반 지하철 터널 내부엔 흰 형광등이 있지만 하저 터널(마포-여의나루, 광나루-천호) 내부엔 노란 나트륨등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도 이런 것을 보니 광경이 꽤 낯익고 친숙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동안에도 철도는 언제나 나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다!

2.

그건 그렇고 난 올겨울은 차에서 자는 데 재미 붙이며 보냈다. 운전하는 것 자체만큼이나 이것도 좋다.
밖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지만, 차 안에서 옷 껴 입고 이불 뒤집어쓰고 뒷좌석에 누우면 따스함과 아늑함 그 자체이다. 날씨가 추울수록 더욱 차에서 지내고 싶어진다.

게다가 요즘은 차에서 지내도 땀으로 흠뻑 젖을 걱정, 모기에 물릴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고맙고 좋은지 모른다.
차는 내 이동식 텐트(장막??)이고 아지트이고 내 사무실이기도 하다. 독서와 프로그래밍, 웹서핑도 차에서..

3.

작년 말엔 주유를 한 뒤 한 달 동안 소비한 기름의 양과 차가 달린 거리를 토대로, 내 차의 평균 연비를 한번 계산해 봤다.
일주일에 한두 번 운전하는 꼴이고, 37리터를 주유해서 370km를 좀 덜 갔기 때문에, 어림잡아도 리터 당 거의 9.5~10km 가까이가 나왔다.
이것은 차가 도로 정체 때문에 제대로 못 가고 삽질한 것, 주차장에서 뺑뺑이 친 것, 골목길을 헤매던 것 등 말 그대로 차가 겪었던 모든 상황을 감안한 전체 연비이다.

그런데 경차급이 아닌 크기의 휘발유 차로 전체 연비가 그만치 나왔다고 내가 얘기하자, 회사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너 정말 곱게 몰고 천천히 가고, 정속 주행만 했나 보구나?”라고 내게 물었다.

내가 차를 몰고 가는 목적지는 대부분 교회나 회사이다. 이때는 대부분의 구간을 강변북로와 분당-수서 고속화도로라는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정체 시간대를 최대한 피해서 딱 시속 80~90km을 유지하며 쌩쌩 달린다. 평균 이상의 연비는 이런 데서 다 나왔음이 틀림없다.

물론 나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 뻗지, 민폐 끼치면서까지 무작정 천천히만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대한 급가속· 급제동을 안 하고 부드럽게 출발하고, 언제든 관성을 이용하려 애쓴다. 어지간해서는 엔진 rpm을 2000을 안 넘기려 한다.
아무튼, 내 운전 습관이 좋았다는 걸 연비를 통해 입증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4.

그리고 차를 몰면서 피할 수 없는 주차 문제.
하루는 회사에서 퇴근하면서, 구청 직원이 불법 주차 단속을 하는 장면을 처음으로 직접 목격했다.
저녁 7시 무렵이었는데 이 시간대에도 실제로 이렇게 불시에 단속을 하는구나.

유니폼도 안 입고 겉으로는 전혀 티가 안 나는 중년 남자 두 명이 PDA를 두드리고 휴대용 프린터로 과태료 고지서를 즉석에서 인쇄하더니, 차 와이퍼에다 끼워 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디카로 위반 장면 인증샷을 찍어 갔다.
길가에 세워져 있던 10여 대의 차들이 모조리 다 과태료크리를 맞았다. 승용차는 4만원. 하지만 빨리 내면 20%가 감경되어 3만 2천원.

나도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기 귀찮아서 차를 한번 길가에다 한 3시간쯤 댔는데 결국 과태료를 먹은 적이 있었던지라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교차로나 횡단보도, 버스 정류장이야 가중 처벌을 해도 시원찮을 주차 금지 구역이지만, 한적하고 어차피 주변 차량 통행에 지장 안 주는 곳은 좀 봐 주면 안 되나 싶기도 하고.. -_-;;;

그런데 내가 과태료를 먹었던 위치에는 나중에 가 보면 또 다른 차들이 세워져 있고 또 어김없이 단속을 당해 과태료 고지서가 끼워져 있곤 했다. 다른 차들이 쭈욱 세워져 있는 걸 보고는, 나도 되는 줄 알고 세웠다가 싹 다 큰코다치는 일이 반복된다. 한 운전자의 경험이 다른 운전자에게 전수가 안 되니, 이게 국가 세수의 증가에는 도움이 되는구나.

그래도 과태료만으로 끝나는 게 일반 커피라면, 아예 견인까지 당하는 건 TOP이다.. -_- 차량 보관소까지 찾아가는 데 드는 교통비와 시간, 견인비, 보관료 등등.. 마치 집행유예 기간에 또 범죄를 저지르다 걸려서 형량이 늘듯이, 깨지는 돈과 스트레스와 멘탈 붕괴 정도가 왕창 뻥튀기되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2/06 08:21 2013/02/0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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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지역에 시내버스가 다니는데 정시성, 속도, 편의성 어느 것 하나 승객을 만족시켜 주는 게 없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주민들은 콩나물 시루 같은 만원 버스 안에서 매일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으며, 참다못해 너도 나도 다들 자가용을 끌고 나오는 바람에 도로는 아침과 저녁마다 체증으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고 치자.

그러니 시민들은 관공서를 상대로 끊임없이 버스 증차를 요구하며, 정치인들 역시 이를 공약으로 즐겨 내세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증차라는 건 만만하게 선뜻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버스를 한 대 구입하는 데는 1억이 넘는 비용이 필요하며, 기사를 추가로 고용해야 하므로 인건비까지 증가한다. 게다가 기껏 추가한 차량은 교통량이 적은 낮 시간엔 그저 놀고만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정이 이러하니, 버스 회사는 지금도 적자 때문에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형편인데 버스를 늘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버스 증차보다 교통 공학적으로 월등히 더 좋은 접근 방식은 바로 버스 ‘증속’이다. 속도를 올림으로써 동일 대수의 차량으로 더 높은 회전율을 내는 것이다.

버스 한 대가 20km짜리 노선을 시속 20km로 완주하면, 그 노선의 버스 배차간격은 1시간이 된다. 여기에다가 동일 속도의 버스를 한 대 더 추가하면 배차 간격을 30분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버스의 속도를 40km/h로 올리면 버스 한 대의 운영 비용만으로도 30분 배차를 달성할 수 있다. 더구나 승객은 예전에 비해 절반의 시간만으로도 목적지에 갈 수 있으며, 승객이 빠른 버스로 몰리는 덕분에 자가용이 줄어든다면 가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하겠다.

결국 버스가 빨라지면 대중교통의 경쟁력이 올라가고 운임 인상 요인이 줄어들며, 대중교통이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하는 게 아니라 흑자 경영의 토대가 마련되는 효과가 생긴다. 대도시 간선 도로에 버스 전용 차선이 바로 이 효과를 의도하고 만들어져 있다.
(한 우진의 교통 평론 http://blog.naver.com/ianhan/120005191675 참고)

2.

흔히, 가장 좋은 방어는 공격이라고 그런다. 물고기를 그냥 주는 것보다도,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더 좋은 일이라고 그런다. 그런 것처럼, 경제에서도 사실 가장 좋은 복지는 성장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마치 지금 사형 제도가 오· 남용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져 있듯, 지금은 무슨 산업혁명 초창기도 아니고 대부분의 기업주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선동하는 것 같은 그런 악마가 아니다. 자기가 먹고 살 만하고 사업을 마음껏 해서 돈 많이 벌 수 있겠다 싶으면 투자와 고용에 '복지'까지도 저절로 이뤄지게 돼 있다. (노동자와 기업주 사이의 균형 있는 시각을 원한다면 송 현 선생님의 이 글도 일독을 권한다.)

또한, 복지라는 건 도덕 해이를 야기할 정도로 그냥 공짜로 퍼 주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복지 수혜자라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일을 하고,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쪽으로 복지가 이뤄져야 한다. 기회의 평등일 뿐이지, 결과물의 일방적인 평등이어서는 안 된다. 성경도 율법을 보면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를 그렇게도 강조하면서도, 신체 멀쩡한 사람에게 공짜 퍼주기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허용 안 한다.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먼저 돈을 빼앗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직이다. 그저 표나 더 얻으려고, 어차피 내 돈이 아닌 쌈짓돈이니까, 뒤의 결과를 생각도 안 하고 밑 빠진 독 메우듯이 세금을 탕진하는 정치인에게 정부를 맡겨서는 안 된다. 자기가 더 잃을 게 없는 처지라고, “에라이 이 더러운 세상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지지하는 것..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다. 그랬다간 안 그래도 더러운 세상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더 망가지게 된다.

도대체 무슨 돈으로 시행할지 대책을 알 수 없는 일방적인 무료 급식, 반값 등록금, 그리고 앞서 말한 ‘버스 증차’ 같은 것보다는.. 차라리 굳이 고학력이 필요 없는 직종에는 무리하게 대학을 안 간 사람도 충분히 대우받게 사회 구조를 조정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리고 버스 회사의 적자만 한없이 세금으로 때울 바에야, 차라리 과감하게 혼잡한 도로의 차선 하나를 버스 전용 차선으로 떼어내서 버스 회사가 스스로 버스의 경쟁력을 올리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 심지어 당장은 자가용 운전자들로부터 반발과 욕 얻어먹는 것까지 감수하고라도 말이다. 어느 분야든 이런 일을 추진해 줄 지도자는 없는 걸까?

3.

솔직히 모든 사람이 이유를 막론하고 똑같은 부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며 성경적으로도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저런 불가능한 일을 선동하면서 사회 계급을 갈아엎으려다 다같이 쫄딱 망해서 똑같이 가난해지기는 아주 쉽다. 역사적으로 공산주의가 실패했듯이 말이다. 공산주의의 폐해는 대학교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팀플(조별 과제) 하나만 해 봐도 실감할 수 있다고 그런다. “능력껏 벌어서 필요한 만큼 쓴다”가 얼마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발상인지를 말이다.

그러니, 파이의 절대적인 크기를 어떻게든 키워서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 부자는 훨씬 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접근 방식이 현실에서는 그나마 더 나은 발상인 것이다. 오늘날 다뤄지는 수정 자본주의라는 것은 그 가난한 사람과 부자 사이의 비례상수 정도만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자, 이제 결론을 말하겠다.나는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철도 덕후이다. 그런데, 나의 성장 과정에도 이와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었다. 철도에만 완전 미치고 빠져 있느라 나의 자폐 외곬 기질이 강해졌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건 아주 큰 오해이다.

오히려 철도 덕분에 나는 자폐(?) 기질이 그나마 해소되었고,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식견까지 전무후무한 정도로 올라갔다. 내가 늘 말하지만 대표적으로 음악부터 시작해서 과학, 공학, 역사, 지리 등~ 심지어 신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경제에다 비유하자면 철도는 김 용묵이라는 국가 안에 존재하는 공룡 대기업이다. 그런데 철도에 100만큼 몰두하는 덕분에 다른 인문계, 이공계, 예체능 등까지 최대 20~30 정도는 혜택을 입었다는 뜻이다. 철도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철도가 창출한 각종 고용과 투자 덕분에 다른 분야도 부자가 되었다.

철도마저도 없었으면 이런 효과는 있을 수 없었다. 당장 겉으로 보이는 빈부격차 양극화를 해결한답시고, 철도 오덕질 해 대는 게 보기 안 좋다고 철도에다가만 각종 규제를 넣고 세금을 때리는 식으로 문제를 접근했다면, 철도는 물론 그나마 좀 살아나던 여타 분야 관심사까지 죽게 됐을 것이다.

흔히 박 정희 좋아하는 사람들은 40여 년 전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대동맥이 흐르기 시작했다고 옛날을 회상하는데, 나의 경제의 대동맥은 바로 Looking for you의 리듬과 박자에 맞춰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니 나는 철도가 내 인생에 지금까지 끼친 선한 간증을 언제든지 누구에게라도 증언할 수 있다..

1부터 3까지 서로 비슷하면서도 문맥이 다른 여러 비유들을 동원하여 글을 썼다. 요컨대 어느 분야든, 즉 개인이든 국가든, 발전을 위해서는 인위적인 규제나 일방적인 퍼주기가 아니라,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시너지 효과와 선순환을 유도하는 시스템을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이 경영을 해야 함을 느낀다.

덧붙이는 말)

어떤 유명인사는 “대통령 마음껏 욕해도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표현의 자유는 아주 충분하며 그 사람 역시 그 자유를 이용해, 지금까지 신변의 위협 없이 대통령 욕을 실컷 해 왔을 텐데, 도대체 또 뭐가 부족해서 겨우 그런 소박한 소원과 목표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와 대조적으로, 투스타 출신의 유명한 모 전직 대통령의 동상과 사진 앞에서는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노인들이 아예 합장과 분향까지 하면서 “님은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이러기까지 한단다. 물론, 정치 성향이 그와 다른 젊은이들은 아주 꼴깝이라고 그런 모습을 보기를 역겨워한다.

난 똑같이 찌질하게, 반대편의 '슨상님'이나 거론하면서 네거티브로 나가지는 않겠다. 오히려 반대로 긍정적으로 진취적으로 결론을 내려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가 무슨 북한도 아니고, 그 대통령을 숭배(?)하지 않으면 체포, 구금, 고문하는 나라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도 자발적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옛날을 살았던 사람들은 북한의 무력 도발과 악행에 얼마나 이골이 나 있었고 얼마나 뼈저린 가난에 한이 사무쳐 있었을까? 난 “인간이 배가 고프면 인간성이고 이념이고 나발이고 그런 거 없다.”를 아주 굳게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난 이렇게 선언한다. “대통령 마음껏 욕해도 되는 세상”을 바랄 바에야 차라리, “저 투스타보다 더 존경받고 빠돌이 빠순이가 더 많은 대통령”이 좀 나왔으면 좋겠다.

물론 성경적으로 볼 때 의로운 훌륭한 통치자가 반드시 인기가 많아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내 말은, 문제의 말단 결과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 나라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지도자, 재임 중이 아니라 재임 후에 정말 진심으로 우호적인 평가가 나오는 지도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런 지도자라면 장기 집권 내지 독재 좀 해도 된다.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겨우 5년 단임 만에 쇼부를 볼 수 있겠는가. 사실, 지금의 1987년 헌법 자체도 20년이 넘게 장수했고 좀 업데이트 할 때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12/12 08:32 2012/12/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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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체육 관광부와 국립 국어원에서 2009년부터 해마다 <국어 정보 처리 시스템 경진대회>라는 걸 개최하여 올해로 4회째를 맞이했는데, 올해는 예전의 인서울 관행을 깨고 부산 영도에 있는 한국 해양 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개최 일자는 지난 10월 12일. 공교롭게도 한글 운동 단체들에서 열심히 밀고 있는 조선어 학회 수난 70주년 추모 행사와 겹치는 날짜였다. 그건 서울 경복궁에서 열렸고 저 경진대회는 부산에서 열렸다.

말은 경진대회이지만 사실 참가자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을 치면서 기량을 겨룬다거나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사실은 '공모전'이 더 정확한 명칭이다. 일차적인 개최 목적은 21세기 세종 계획(1998~2007) 때 구축된 세종 말뭉치를 이용하여 한국어 분석과 관련된 의미 있는 데이터 처리를 하는 싸제 프로그램의 개발을 독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한국어와 한글의 기계화 및 교육과 관련된 유용한 소프트웨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 본인은 독자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작년(3회) 대회 때 <날개셋> 한글 입력기 6.3을 출품하여 은상을 받았다.

주최 측에서는 이 대회를 꽤 의욕 있게 밀고 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대회를 주최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힌 바 있으며, 작년부턴가 기존의 <한글/한국어 정보 처리 학술대회>와 이 경진대회를 아예 병행해서 개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에는 심사에 앞서 오전에 부스를 만들어서 일반인과 심사위원이 모두 참관 가능한 작품 전시(데모) 세션을 추가했으며, 게다가 작년 대회 입상자 중에도 원하는 분은 올해 대회의 데모 세션에 같이 참여해 달라고 초청장을 보냈다.

내 프로그램을 홍보할 기회가 왔으니 나는 초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지난 10월 12일엔 회사에 휴가까지 내어 오랜만에 부산에 좀 갔다 왔다.
경부선 막차인 밤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건 새벽 4시 반이 덜 돼서였다. 미리 봐 놓은 지하철과 시내버스 경로로 대회 장소엔 예정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다. 다만, 세월이 세월인지 밤샘은 이미 엄두를 못 내는 지경이 됐고 밤차도 더는 피곤해서 못 탈 것 같다. 피곤이 밀려오기 시작한지라 책상에 엎드려서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밤차는 교통비(굳이 비싼 고속 교통수단을 쓸 필요 없음)와 숙박비(차에서 잠을...)를 아낄 수 있는 저렴한 방법이지만, 제일 피곤한 방법이기도 하다.

부스 개방 시각이 다가오자 대회 주최 측에서 직원이 와서 각종 장비들을 세팅해 줬다. 나는 간단히 준비해 온 유인물과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로 부스를 꾸몄다. 작년 대회 입상자가 나 포함 3명이 온다고 했는데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대로 대상, 금상, 은상 수상자가 나란히 왔다. 울산대 팀은 그렇잖아도 최고 등급인 대상을 받은 데다 부산은 지리적으로 거리도 별로 안 멀고, 이 대회만 작정을 하고 미는 연구실이 있으니 이런 자리엔 거의 확실히 오리라고 예상했다.

한편, 작년에 금상을 받은 최 시영 선생님은 1인 기업 사장이랄까 프리랜서랄까, 어쨌든 조직에 매여 있지 않은 분이기 때문에 이런 데에 가는 데 제도적인 제약이 없는 분이다. 최근엔 data-p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도 하나 고안해서 대외적으로 뭔가 알려야 할 게 많은 처지이기도 하다(실제로 나중에 컴퓨터공학 교수들 앞에서 data-p 얘기 많이를 늘어놓으셨다). 그러니 올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오셔서 나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말동무가 하나 늘었다.

저분은 프로필을 보아하니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엄청난 엄친아인데 독특한 웹 기반 세종 말뭉치 검색 도구를 만들어서 이런 대회의 상위권에 입상하고, 최근에는 전산학에까지 관심을 뻗치고 계신다. 뭘 하시는 분인지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반해, 대학원이나 일반이 아닌 학부생들은 아무래도 이런 좁고 전문적인 분야의 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하는 작품을 만들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며, 입상하더라도 또 중간고사를 앞두고 먼 길을 가서 이런 대회의 데모 세션에 참여할 처지는 못 될 것이다. 이런 나의 모든 예상은 적중했다.. ^^

공식적인 데모 세션은 2시간이었다. 나야 ISEF에 참가하던 고딩 시절 이래로 이런 건 한두 번 하는 게 아니긴 하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내 프로그램의 본질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란 참 쉽지 않았다. 세벌식, 무한 낱자 수정, 오토마타, Bksp 없이 오타 고치기, 텍스트 필터, 에디터와 IME 등등등... 무슨 얘기부터 할까? 이런 것들이 어느 하나만 알아서는 context를 이해할 수 없는 유기체를 구성하고 있다. C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어느 세월에 C++의 클래스, 상속, 오버로딩, 가상 함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템플릿이라든가 람다 함수에 이르기까지 그 필요성과 장점을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확실히 한국어 공학에 비해서 “한글 공학”은 인지도가 미미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사회 문화 분위기가 한국어와 한글의 구분이 상당히 모호하고 오락가락 하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어차피 그 말이 그 말이고 반드시 구분해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병적으로 둘은 완전히 독립적이고 무관한 개념이라고 집작하고 몰고 가는 것도 또한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인 듯.
비록 내 프로그램은 올해의 대회 출품작이 아니기 때문에 심사 대상도 아니지만, 심사위원 중 한 분은 “님 프로그램은 우리 대회보다 규모가 더 큰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공모전에도 출품해 보셈”이라고도 말씀하셨다.

데모 세션이 끝날 무렵에 웬 반가운 손님이 한 명 왔다. 올해에 본인의 석사 졸업 대학원 학과에 석사로 새로 입학한 파릇파릇한 석사 후배. 학교에서 내 얘기를 이미 들었는지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대학원 재학 시절에 석사 신입생이라고는 좀체 구경을 못 했다(한두 명 합격한 지원자는 있었으나, 등록을 안 하고 그걸로 끝). 그러다 겨우 논문 학기가 다 돼서야 여학생 후배 두 명을 본 게 전부인데, 남자 후배라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말동무가 셋으로 늘었다.

부스 전시는 정오 무렵까지 그럭저럭 잘 했다. 이제 느긋하게 앉아서 올해 입상작들의 발표와 심사 장면 구경만 하면 된다.
주최 측에서는 데모에 참여한 작년 입상자들을 예우 차원에서 경진대회 관객으로 자동 등록을 시켜 줬으며, 점심과 저녁 식사는 물론, 생각도 안 했던 여비까지 챙겨 줬다.

출품된 프로그램들은 로컬, 웹, 앱을 골고루 커버하는 다양한 형태였다. 로컬 프로그램 중엔 정통 MFC 기반 프로그램은 없었고, 모두 닷넷 프레임워크 기반이었던지라 세대 차이를 실감했다. 하긴, 업무용 프로그램이야 어떤 형태로든 RAD가 지원되는 툴로 만드는 게 능률과 생산성 면에서 나을 테니 말이다.
말뭉치가 어떻고 태깅이 어떻고 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나도 그것만 전문적으로 판 게 아니니 잘 모르겠다. 발표 중간엔 다시 몰려오는 잠의 쓰나미를 주체할 수 없어서 잠시 졸았다.

올해는 KAIST 전산학과에서 NLP 연구의 선두주자이신 최 기선 교수님 연구실에서 작품을 출품하여 대상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름 한글 입력기를 연구한다면서 학부 시절에 '한국어'와 관계가 있는 연구를 하는 교수님은 한 번도 안 마주치고 졸업을 해 버렸으니 이것도 기이한 일이다. 저분을 포함해 박 종철 교수, 시 정곤 교수(이분은 전산학과가 아닌 인문사회과학부 소속) 같은 분들 말이다. 박 교수님은 이번 대회 행사에서 개회사를 하셨는데, 국어의 위상을 화폐 단위의 위상에다 빗대어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보니 생각보다 국어 사랑 정신이 투철한 전산학자이시라는 게 느껴졌다.

서울을 벗어난 장소에서 올해는 작년 입상작 개발자까지 초청하여 데모 세션을 연 것은 바람직한 시도라고 느껴져서 기분이 좋다. 사실, 옛날에 정보 올림피아드도 그런 식으로 공모 부문 입상자끼리의 교류와 전시 행사가 좀 있으면 좋겠다고 난 예전부터 생각해 왔었다. 참가 작품수가 늘어나고 대회의 권위와 위상이 더 올라가면, 심사와 시상 기준을 다음과 같이 더욱 세분화도 해야 할 텐데 이런 욕심까지 부리는 건 아직은 좀 이른지도 모르겠다.

- 분야: 말뭉치 도구, 교육용 소프트웨어, 또는 기타 유틸
- 부문: 대학 학부, 대학원, 개인 인디 개발자, 또는 기업
- 내력: 첫 개발인가, 아니면 동일 아이디어 하에서 예전 출품/입상작의 꾸준한 개선 내지 리메이크인가

그런데 이 대회를 앞으로 적극 육성하겠다면서 올해는 뽑는 입상작 수가 더 줄었다. 작년에 9명이던 것이 올해는 7명. 게다가 이미 작년도 재작년에 비해서는 지급되는 상금의 총액이 좀 줄어든 것이었다. 이것부터 좀 개선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주최 측에서 참석자 전원에게 저녁까지 쏘는 대인배 대접을 했다. 나도 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면서 교제할 사람이 주변에 여럿 있었지만 나는 선약을 잡은 상태였던지라 눈물을 머금고 먼저 자리를 떴다. 완전히 풀코스를 뛰었으면 영도를 완전히 빠져나가는 시각은 밤 8~9시 사이가 됐을 것이고, 남의 차를 얻어 타고 부전이나 부산 역까지 도착하는 시각은 그보다 더 늦어졌을 터이니, 진짜 부산에서 진한 하루를 보내게 됐을 것이다.

자가용을 가져갔으면 시간과 장소 제약이 없이 인근의 태종대 같은 부산 구경을 더욱 자유롭게 하고 돌아갈 수 있었을지 모르나 이 경우 주차나 유류비 같은 다른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프게 됐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난 그렇잖아도 대중교통만 이용하고도 피곤해서 이 고생을 했는데, 운전까지 해야 했으면 어찌 됐겠는가?

어쨌든 부산에서 기억에 남는 즐겁고 유익한 추억을 남겼다.  이 글에서 다 못 한 주변 이야기는 다음에 올라올 부록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10/26 19:33 2012/10/2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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