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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자동차

현대 자동차는 뭐 내수용와 수출용 제품 차별 폭리, 부품 불량(에어백 미전개나 급발진?) 같은 일부 불미스러운 일로 인한 비판을 받을지언정 그래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재벌 자동차 회사이며, 나라에 막대한 부를, 개인에게는 꿈의 직장을 제공하고 있는 대단한 기업이다.

대졸 신입사원으로만 들어가도 연봉이 이미 삼성 전자를 능가하는 까마득한 액수인 건 잘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고졸 생산직으로 취업해도 효자에 그 지역 일등 신랑감 소리를 들을 정도이다. 낮은 직급도 워낙 복리후생이 좋으니 연줄과 빽 없이는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하더라.
삼성은 무노조라지만 현대는 그렇지도 않아서 파업이 종종 발생하며, 오히려 귀족 노조의 추태가 협력업체들의 열악한 복리후생과 비교되어 비판받을 정도이다.

자동차 정비소로 시작해서 오늘날의 현대 자동차의 기반을 일군 일등공신은 잘 알다시피 왕회장이다(1915-2001).
오늘날 뱃대지가 불러서 추태를 보이고 있는 건 별개로 욕 먹을 사항이겠지만, 현대차가 옛날엔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악전고투한 끝에 '안 되면 되게 하라' 식으로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살펴보는 건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현대 자동차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던 순간에 외국 기업으로부터 회유를 두 번 받은 적이 있었다.
먼저 고유모델 승용차인 포니를 개발하고 제3세계 위주로 수출까지 한 지 얼마 안 되었던 1977년 5월의 일이다. 주한 미국 대사(그 당시, 리처드 스나이더)가 왕회장을 조선호텔 스위트룸으로 정중히 초청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님 이제 와서 밑바닥에서 자동차 자체개발 해 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지 경제성 면에서 승산 있겠습니까? 님이 지금이라도 (1) 고유모델의 개발을 포기한다면(포니 2 같은 거 만들 생각 하지 말고) 저희 나라에서 현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우리 차 원하는 대로 커스텀 조립 생산할 수 있게 도와 드리죠."

그러나 왕회장은 당장 안정되고 편안한 조립 생산 셔틀 제의를 거부하고 고난의 길을 자처했다. (출처: 정 주영 일화집 "이봐, 해봤어?", 프리이코노미북스)
포니는 이탈리아 사람이 디자인하고 일본에서 개발한 엔진과 파워트레인을 얹은 물건이지만, 어쨌든 한국 땅에서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던 승용차를 밑바닥부터 최초로 창조해 낸 사례였다. 코티나나 그라나다처럼 미국차 로컬라이즈 + 면허 조립 생산이 아니라 말이다. 나라에서 요구한 비율만큼 부품 국산화도 달성한 건 덤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 뒤, 현대차는 알파 엔진이라는 승용차용 엔진을 맨땅에서부터 자체 개발 시작했다. 그 당시 현대로부터 막대한 로얄티를 받으면서 기술 지원을 찔끔 해 주던 일본 미쓰비시는 택도 없는 무모한 시도라고 현대를 마음껏 비웃었다.
그러나 용인 마북리 연구소를 쉬엄쉬엄 방문했던 구보 회장은 개발 중이던 엔진에 고슴도치 가시처럼 꽂혀 있던 240여 개에 달하는 온도계를 보고는 느긋하던 태도가 싹 바뀌었다. "현대차에 독종이 한 명 들어와 있구나(이 현순 박사). 이 자식 안 되겠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그래서 1989년, 1990년 몇 차례 한국으로 날아와 왕회장에게 (2) 엔진의 독자 개발을 포기하라고.. 만들어 봤자 또 최신 기술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개발비 회수도 못 할 거라고 집요하게 로비와 회유를 거듭했다. "개발팀 해체하면 우리가 지금 받는 로얄티를 절반으로 깎아 드리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당시 로얄티 무지막지하게 비쌌었다. 차 한 대 팔면 매출의 거의 4~50%가 로얄티로 날아갈 정도였다.

이거 무슨 북괴에다 핵 개발 포기를 종용하는 것도 아니고..
이때에도 왕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을 했다. 쟤들이 저렇게 큰 당근을 제시하며 회유할 정도인 걸 보니 반대로 엔진 독자 개발은 반드시 꼭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처: "내 안에 잠든 엔진을 깨워라", 김영사)

이 (1)과 (2)의 결정 덕분에 현대차는 포드 수입 자동차를 겨우 조립 생산만 하던 처지를 벗어나 고유모델을 만들어 냈으며,
2밸브 카뷰레터 엔진이나 겨우 조립하다가 자체기술 터보 엔진까지 만들게 됐다.
자체 개발 엔진은 안 그래도 그 당시에 제일 과감한 실험적인 모델이던 스쿠프에 맨 처음으로 탑재됐으며, 1500cc 3밸브 SOHC 터보 엔진이 장착된 스쿠프 터보는 국산 승용차 최초로 최대 시속 200을 돌파하고 제로백 10초 이내도 달성했다.

이걸로도 모자라 현대와 미쓰비시 사이의 기술 주종 관계는 몇 년 못 가 반대로 역전되어 버렸다. 그리고 현대는 스쿠프 - 티뷰론 - 투스카니에 이어 지금은 제로백이 5~6초대인 제네시스 쿠페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 시절에 왕회장 같은 경영자와 이 박사 같은 엔지니어가 같이 있던 것은 국가적인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정도 행적은 있어야 '반일, 극일, 일자리 창출' 같은 걸 논할 자격이 갖춰지지 않나 싶다.

2. 삼성 전자

지금까지 현대차 위주로 얘기를 했는데, 삼성 전자도 그 시절에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도박· 모험을 했다. 백색가전이나 근근이 수입 부품 조립으로 만들다가 1983년 2월에 반도체를 맨땅에서 만들겠다고 경영진이 전격 선언하고 공장을 짓고 개발에 들어간 것이다. 오일 쇼크에, 선진국들의 장벽 등 1980년대의 여러 정황을 보아하니, 반도체 자체 개발이 아니면 기업과 나라를 먹여 살릴 길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1983년 가을에 64K디램의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연구원들은 그야말로 월화수목금금금 갈려 들어갔다고 한다. 외국으로 연수 가서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우고 오려다가 거기 직원들한테 저지 당하고 문전박대 당한 건 우주 발사체나 고속철 개발 같은 다른 분야와 다를 바 없었다. 하다못해 팀원이 "저 다음주에 결혼합니다. 휴가 좀.." 이러자 팀장이 "야 임마 왜 하필 이런 바쁜 때에 결혼을 쳐 해!" 이렇게 버럭 했을 정도였댄다. 그 당시 팀장이 훗날 신화 창조의 비밀 비스무리한 TV 프로에 출연해서 지금 생각하면 그 부하 직원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회고한 걸 본인은 유튜브 동영상으로 봤다..;;

그것 말고 삼성 전자의 반도체 개발과 관련된 다른 에피소드는 잘 모르겠다.
메모리 반도체보다 가치가 더 높은 비메모리 반도체까지 잡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 당시로서는 메모리 하나 잡은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고 감지덕지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이야 삼성은 전자 기기, 현대는 자동차 이렇게 업종이 다르니 서로 맞닥뜨리거나 대립할 일이 없다고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금 하이닉스 반도체의 전신이 현대 전자였으며, 현대 전자에서도 전화기, 컴퓨터 같은 걸 만들었다.
이 건희 회장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현대는 우리 삼성이 다루는 업종의 제품을 다 만들 수 있는데 우리는 왜 현대처럼 자동차를 못 만들지?" 이렇게 위기 의식을 가졌다. 그래서 기어이 1990년대 중반에 자동차 회사를 세웠지만 잘 알다시피 별 재미를 못 봤다.

우리나라에서 2, 30년 전과는 달리 "과소비를 추방합시다, 국산품을 이용합시다" 이런 가난한 구호가 쏙 들어간 이유가 뭘까?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커피나 석유 같은 원자재를 그냥 물 쓰듯이 펑펑 쓰고, 각종 외제품 외제차, 외국산 영화를 마음껏 보는데도 나라가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일차적으로는 세계 각국이 자본주의 경제 논리 실용주의에 입각해서 시장을 적극 개방했기 때문이지만, 그 다음으로는 우리 쪽에서도 그렇게 수입을 마구 해도 될 정도로 국내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상품들을 잔뜩 수출해서 외화 벌고 세금도 많이 내 주기 때문이다. 기업을 욕하기에 앞서 반기업 정서는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 오던 부의 상향평준화까지 저해하며, 부자가 망할 정도이면 서민들은 완전 거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3. 안랩

지난 19대 대선 때 출마했던 대선 후보들의 프로필을 보면, 신고한 재산 액수가 혼자서 타 후보들의 평균 액수보다 0이 두 개쯤 더 붙은 독보적인 사람이 있었다. 의사, 프로그래머, 기업가, 교수를 거쳐서 대통령 자리까지 넘보게 된 그 사람 말이다.

남들은 사짜 직업을 하나만 얻고도 그걸로 평생 안주하고 떵떵거리며 사는데, 그걸로 모자라서 1980년대 말에 이미.. 자료도 구하기 어렵던 시절에 어셈블리어를 공부해서 컴퓨터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그걸로 모자라서 기업까지 차렸으니, 능력과 정신이 모두 존경스러운 인물인 건 사실이다. 빌 게이츠도 평범하게 공부만 해도 변호사나 교수 정도는 그냥 됐을 지능의 소유자인데, 굳이 불안정하고 위험한 창업을 감행해서 세상을 바꿔 놓고 변호사· 교수보다 훨씬 더 부자가 되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 사람도 나름 왕 회장의 일화 같은 일화가 전해지는 게 있다. 1997년, 미국 유학 중에 맥아피 사로부터 자기 기업 인수 제의를 받았지만 애국심 애사심(!!) 차원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이건 그 당시 TV 인생 다큐에서 각색되어 방영되었고, 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다고 한다.

비록 저게 완전히 황당무계한 주작은 아니었겠지만 액수가 정말 그 정도로 엄청났었나, 그리고 개인 능력에 대해서, 또 부인까지 동반된 교수 채용 등 일부 절차나 특혜가 과장이나 거품이 있지는 않았나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게 조금은 있다. 마치 신뢰도가 백범일지의 치하포 사건(고증 오류 + 국모 원수 갚는 것과는 별 상관 없는 단순 일본 민간인 살해)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 말이다.

V3은 국산 소프트웨어로서 1990년대에 수많은 컴퓨터들을 도스용 악성 코드로부터 구한 고마운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그게 현대차만치 세계적으로 많이 수출되어서 쓰여서 외화를 막 벌어 왔고, 미국의 안티바이러스 솔루션을 진지하게 위협할 정도로 그만치 뛰어난 세계구급 제품이었는지도 좀 의문이다.
(물론, 밖에서 막 적극적으로 벌어 오지는 못해도 안에서 외화 유출을 막는 데는 충분히 기여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아래아한글 때문에 MS 워드가 가격을 왕창 낮추고 저자세로 마케팅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효과도 무시 못 함.)

뭐 기록에 좀 과장· 오류가 있더라도 김 구 역시 큰 그림을 봤을 때 애국자인 건 변함없고 안 철수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우리는 10여 년 전에 황 우석 사태도 겪었고 맹목적인 애국심 마케팅의 폐해와 황당무계한 주작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러니 어떤 인물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좀 더 비판적인 안목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다.

각 분야의 전문직들을 깊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다 경험해 봤고, 돈은 이제 평생 써도 다 못 쓸 정도로 벌었고 자식도 하나밖에 없으니.. 이제 안 철수 같은 사람이 다음으로 노릴 만한 건 정말 권력밖에 없긴 했겠다.
과거에 현대 왕회장 역시 1992년도 대선에 출마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바다 건너 트럼프도 그냥 편안한 노후만 보내면 됐을 것을, 자기 사택보다도 더 누추한 장소일 백악관에 그것도 그 나이에 괜히 들어간 게 아닐 것이다. 사실, 경제인 기업가가 돈만 댓다리 많고 권력이 없으면 솔직히 정치 자금 삥이나 뜯기는 셔틀로 전락하기도 쉬울 테니.. (정경유착을 욕만 할 처지가 아님)

대선 후보로서 안 철수는 이념은 대놓고 불순하지는 않은 듯했지만 정치라는 게 본인 당사자의 역량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현 대통령 당선자와 안 씨의 이념 차이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차이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뭐 19대 대선은 이미 지난 일이 됐다만, 저분 설마 다음에 또 출마하려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17 08:34 2017/08/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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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의 운동 관련 여러 생각들

우리는 뉴턴 고전역학을 통해 질량을 가진 두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며, 천체의 운동이라는 것도 그 끌어당기는 힘에다가 초기의 운동 방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3차원 공간에서 원뿔곡선 궤도를 그리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인공위성은 지구를 향해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물체일 뿐이다.

어떤 행성의 크기는 자신이 주변의 모행성이나 항성을 공전하면서 그리는 궤도의 크기에 비해 매우 작다. 단적인 예로 지구와 달 사이의 최단 직선 경로에다가 그 큰 목성과 토성을 포함해 태양계의 타 행성들이 모두 일렬로 늘어설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체의 궤도 운동에 대해 기술하고 계산할 때는 그 천체가 완전한 구인 것도 모자라서 그냥 점이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행성과 위성의 질량 서열이 그 정도로 일방적이고 압도적이지 않을 때는 어느 한쪽을 완전히 무시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 위성이 모행성을 돌면 사실은 모행성도 위성의 중력의 영향을 받아서 조금은 휘청이고 들썩이며, 가상의 질량중심을 축으로 해서 빙글빙글 돌게 된다.

모행성이 위성보다 압도적으로 더 무겁다면야 그 질량중심이 모행성의 실제 중심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둘의 질량이 서로 대등하고 호각인 지경이 되면 질량중심은 아예 두 천체 사이의 외부에 있게 되며, 둘은 상대방을 마주보며 빙글빙글 도는 이중 행성 체계를 형성한다. 태양으로부터 저 멀리 떨어진 명왕성이 위성 카론과 이런 관계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뒤 양 행성은 궁극적으로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가 같아져서 상대방의 한 면만 보게 된다.

지구의 자연위성인 달은 모행성의 규모에 비해 이례적으로 굉장히 크다. 그래서인지 거리도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통째로 들썩이게는 못해도 암석보다 훨씬 가벼운 유체인 물 정도는 인력으로 끌어올려서 기조력을 일으킨다. 태풍이 분 것도 아닌데 달의 근접만으로 해수면의 높이가 바뀌고 어디 저지대가 침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게 개인적으로 굉장히 신기하게 느껴졌다.

지구는 타 행성과는 달리 '살아 있는 행성'으로 여겨진다. 단순히 생명이 존재하고 표면에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끊임없이 화산이나 지진 같은 지질 현상이 발생하고, 공기와 물이 순환하고 물질도 생명과 소멸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게 신의 창조와 개입 덕분이라고 믿어 버리면 더 할 말이 없지만, 지구와 같은 급은 아니어도 폭풍 같은 단순 기상 현상 자체만 따지자면 금성이나 목성처럼 성경이 언급하지 않는 다른 행성에도 존재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대체 무슨 힘으로 저 많고 무거운 물이 끝도 없이 움직이고 파도가 치는 걸까? 과학의 영역에서 답을 구하자면, 지금까지 얘기가 나왔듯이 (1) 지구의 자전, (2) 달의 기조력, 그리고 (3) 땅과 바닷물의 엄청난 비열 차이 덕분이다. 물은 비열이 굉장히 높으며, 지구는 자전 속도가 비교적 빨라서 행성 차원에서 자기장이 존재할 정도이니 이것 역시 굉장한 축복이다. (금성은 여기서 탈락해서 완전 안습 낭패로..)

뭐, 파도에 대해서도 "주께서 경계를 정하사 물들이 넘어가지 못하게 하시며 그것들이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같은 성경 말씀이 있긴 하다(시 104:9). 쓰나미는 저 잠금장치가 일시적으로 해제된 상황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황해는 시간대별로 물이 들어왔다가 빠져서 수위가 가변적인 게 동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현상이고 참 흥미롭다. 전기로 치면 주기적으로 전압이 변하는 교류 전기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지구 안 사정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다시 천체 운동 얘기로 돌아오면..
모행성과 위성 사이에는 천체물리학적으로 이런 게 있다.
어떤 위성이 공전하던 힘이 부족해져서 모행성과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추락하게 됐다고 치자. 혹은 그냥 모행성의 중력에 어떤 돌덩어리가 이끌려 들어왔다고 치자.

그게 크기가 아주 작은 돌덩어리나 인간이 만든 탐사선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고 모행성이 지구처럼 대기라도 있다면, 걔는 빠르게 끌려오다가 대기와의 마찰만으로 타서 없어진다. 그러나 걔가 크기가 굉장히 큰.. 지름이 수백~수천 km 이상 되어 어느 정도 자체적인 중력을 가질 정도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1/n 같은 반비례 함수라는 건 n이 충분히 큰 값이면 그냥 0에 근접하는 아주 작은 값이고 n-1이나 n+1이나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n이 작아지고 0에 근접할수록 함수값은 급격히 커진다. 하물며 만유인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니 그 증가폭이 더욱 커진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저렇게 적당하게 큰 천체는 자체 중력보다 더 큰 인력을 지닌 큰 모행성과 급격히 가까워질 경우, 모행성을 향하고 있는 가까운 면이 받는 인력과(배), 그렇지 않은 먼 쪽(등)이 받는 인력조차도 급격한 차이가 나게 된다.
그 결과 끌려오는 천체는 점점 더 납작해지며, 더 버티지 못하는 경우 말 그대로 오체분시되고 박살이 나 버린다. 모행성과 직접적으로 충돌하기도 전에 이미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볼록 렌즈 거울에서 얼굴이 이상하게 왜곡되어 비춰 보이는 걸 생각해 보자. 그런데 실제 사람 얼굴을 그렇게 잡아당기고 늘어뜨렸다가는 무슨 꼴 나겠는가? 천체가 그렇게 되는 셈이다. 제아무리 금속 덩어리, 돌덩어리라고 해도 버틸 수 없다.
부서진 천체의 파편들은 모행성을 공전하는 방향으로 일말의 힘을 받고 있던 상태이기 때문에, 그래도 모행성 내부로 곧장 추락하지 않고 부스러기들이 그냥 모행성의 고리로 남기도 한다. 행성의 조건 중 하나인 "자기 중력만으로 온전한 구형을 이루고, 자기 궤도에 있는 다른 모든 천체들을 밀어내거나 흡수할 수 있을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특성을 가진 모행성과 위성이 있을 때, 이 위성이 안 부서지고 버틸 수 있는 최저 궤도 크기를 일컫는 '로슈 한계'라는 게 있다. 그리고 그걸 구하는 복잡한 공식도 있다. 모행성과 위성의 반지름과 밀도가 모두 동원되며, 대학 전공 과목 수준의 어려운 식이다. 이 글을 쓰는 본인도 솔직히 말해서 실감이 잘 안 간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지름 수십~수백 m짜리 운석이 지구와 충돌하네 마네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시적인 얘기이다. 인력의 편차 때문에 으스러지고 부서지는 게 가능할 정도로 큰 위성이 지구로 접근했다면, 지구 역시 자전축이나 공전 궤도가 조금이나마 휘청거리고 해수면이 미쳐 날뛰는 등 대이변이 일어날 것이다. 한가롭게 우주쇼나 볼 수 있는 처지는 아니게 되는 게 확실하다.

이상. 오늘은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종말편과 관계 있는 얘기를 하게 됐다. 이 분야 관련 잡생각들을 전부 내뱉고 글을 맺자면 다음과 같다.

1.
궤도역학이라는 건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flyby라는 걸 생각해 내고 지구에서 달로 가는 법, 내행성이나 외행성으로 가는 법을 만들어 내는 걸까..?

2.
현실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걸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 딴 천체에 비쳐진 지구의 그림자라도 보지 않는 한 말이다.
배가 해변에서 몇 km나 떨어져 있으면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게 될까? 날씨가 맑으면 부산 동남부의 바닷가에서 일본 쓰시마 섬까지가 보인다는데, 그 정도 거리이면 상대편이 자기보다 아래에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을까?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을 갔을 때 느낀 건데 위도가 몇 도 내려가면 날씨가 왜 이렇게 더워질 수밖에 없는지(단위 시간과 면적당 태양에 노출되는 열량의 차이) 삼각함수와 구면기하학 지식을 동원해서 계산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3.
신의 창조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우주의 신묘막측함과 정교한 질서를 강조하는 편이긴 한데, 이 우주가 영원무궁토록 한 치의 오차 없이 기계 톱니바퀴마냥 정교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또 아니다.
달은 매년 수 cm씩 지구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으며, 화성의 위성 중 포보스는 화성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로슈 한계에 걸려서 사전 붕괴할지, 아니면 땅까지 떨어져서 충돌할지는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 지구의 자전은 조금씩 느려지고 있다. 다른 이유들도 있거니와, 솔직히 인간이 풍력· 파력 같은 에너지를 막 끌어다 쓰기만 해도 그럴수록 지구의 자전은 새 발의 피만큼이나마 느려질 수밖에 없지, 빨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4.
흔히 오해하기 쉬운데 천문학으로서 궤도역학과, 아예 로켓 공학은 서로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듯하지만 엄연히 완전히 다른 학문 분야이다.
천문학자가 더 고성능 로켓 엔진을 만드는 방법을 알 수는 없으며, 로켓 공학자도 자기 업무에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복잡한 천체 운동을 예측하거나, 우주 탐사선의 진로 전략을 산출하지는 못한다.

5.
로켓 공학자라면 엔진 출력과 발사체의 중량 분배, 자세 제어 같은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할 텐데..
흔히 엔진의 성능을 나타내는 단위는 일률(마력)이다. 1마력은 질량 75kg짜리 물체를 9.8m/s^2 중력을 거슬러서 1m/s의 속도로 들어올리는 것을 말한다.

이건 물체를 중력을 거슬러서 들어올리는 힘을 가리키니 엘리베이터 모터의 출력은 기술하기가 제일 직관적일 것 같다.
어지간한 엘리베이터들의 주행 속도는 보통 초속 3~4m인 듯하고.. 승객의 무게, 객실과 와이어의 무게 이런 것들을 더하면 내 건물에 달린 엘리베이터 전동기의 최대 출력을 얼추 산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 하긴, 옛날에는 우주 엘리베이터 같은 것도 SF에서 제안되기도 했었지.

6.
컴퓨터쟁이들에게 1970년 1월 1일은 일명 유닉스 에폭(epoch)이라고 불린다. 그로부터 20년 전인 1950년 1월 1일이 방사성 원소 측정법의 발견으로 인해 지질학 원년이라 불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데, 1970년 저 비스무리한 시기에 C 언어와 유닉스 같은 게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공 우주 분야의 리즈 시절도 이 유닉스 원년과 얼추 비슷한 시기인 게 너무 신기하다. 인간이 한창 달에 갔다 오고 콩코드가 날아다니고 보잉 747이 개발된 게 다 저 때이기 때문이다. 정작 컴퓨터계엔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조차 아직 없던 시절에..!

7.
이렇게 어떤 기계류가 우주에서 지구 궤도를 돌다가 힘의 균형을 잃어서 서서히 지구로 떨어지거나, 심지어 인간에 의한 통제력을 상실한 채 혼자 빙글빙글 돌게 되면 우주 쓰레기가 된다. 우주 쓰레기는 지구 중력을 탈출하는 속력에 "준하는" 엄청난 운동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부딪쳤다간 지상에서 비행기의 조류 충돌을 훨씬 능가하는 참사를 야기한다.

이런 우주 쓰레기와 비스무리한 것을 지상에서 찾자면,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에서 튀어오른 돌조각· 쇳조각 같은 쓰레기가 아닐까 한다. 도로가 잘 포장되고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이런 것 때문에 맞은편 차선의 차량이나 뒷차가 봉변을 당하며, 앞차 운전자는 멀쩡히 잘 가던 중에 졸지에 교통사고 가해자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사람이 발로 땅을 질질 끌고 차 봐야 사실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그에 반해 자동차 바퀴와 그에 대응하는 땅의 접지력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14 08:31 2017/08/1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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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이야기

"중국 애들 1억 6000만이 대마 하고, 2600만이 메스암페타민, 1100만이 헤로인 한다. 노다지란 말이다. 유엔이 그레 말해!"
개인적으로 <아저씨>(영화)를 테이큰만큼이나 아주 재미있고 인상깊게 봤다. 장면은 좀 잔혹한 편이지만 아시다시피 주인공의 액션이 절륜하고.. 또 굳이 주인공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재치와 센스 넘치는 명대사가 굉장히 많은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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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 발 남았다."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공손하게 댄디하게", "니 동생놈하고 같이 싸잡아서 인체의 신비전에 보내뿐다." "삼청교육대 다시 세워가 싹 다 잡아 쳐넣어야 나라가 산다" 등..
감독이 각본도 썼다는데 정말 대단한 실력이다. (오 사장님은 참 귀여운 막말 제조기이다. ㅋ)

도대체 저 대사는 UN의 언제적 무슨 통계를 인용한 건지 모르겠다만, 다른 나라도 아니고 중국은 아편 전쟁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오늘날까지도 마약 사범을 공산당스럽게 제일 무자비하게 다스리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전인구의 15%가 넘게 여전히 마약을 접하고 있나 의아스럽다. 죽이고 또 죽여도(사형) 근절되지 않는 듯..

세상에 마약이 어떤 게 존재하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일단 마약계에는 같은 마약에도 속칭, 이칭이 많다.
일단 (1) 히로뽕, 필로폰, 메스암페타민은 다 같은 각성제 마약을 가리킨다. 식물이 아닌 화학 약품 기반이어서 그런지, 영어권에서는 결정 모양에서 유래된 ice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필로-' 이건 '필레오', '필라델피아', '데오빌로'에서 알 수 있듯, '사랑'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줄여서 '뽕'이 마약의 상징이다. 국뽕 등...

(2) 대마와 마리화나는 같은 식물계 마약이다. 정확히 말하면 둘의 차이는 벼와 쌀, tobacoo와 cigar/cigarette의 차이와 같다. (대마 잎을 가루로 갈아서 피울 수 있게 만든 것)
(3) 헤로인은 우연인지 '여주인공'과 발음이 완전히 같다. 철자는 heroin(e)에서 E의 존재 여부만 다르다. 모르핀과 마찬가지로 아편 계열의 매우 강한 마약이다.

아저씨 대사에서 언급된 마약은 저 세 종류이다. 오 사장의 말에 따르면 대마, 메스암페타민, 헤로인의 순으로 투약자 수가 적어지는데, 나중에 등장하는 마약일수록 실제로 더 하드코어하고 중독성이 강한 놈이라는 것을.. 본인은 뒤늦게 알게 됐다.

그 밖에 중국이 옛날에 곤욕을 치렀던 아편은 양귀비에서 유래된 또 다른 식물계 마약이다. 본드나 부탄가스는 자기 용도대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 자기 뇌의 건강과 환각 쾌감을 등가교환하는 위험한 물질이 된다.
사실, 담배(니코틴)도 워낙 넓게 퍼져 있을 뿐이지 중독성과 금단증세, 건강에 대한 해악으로 치면 마약"류"에 속한다고 간주된다. 알코올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마약 중에는 알다시피 각성뿐만 아니라 반쯤 마취와 진통 효과가 있는 게 있다. 말이 좋아서 마취이지 이거 의학적으로는 사람이 고통을 느낄 수 없게 강제로 정신을 잃게 만들고 반쯤 죽여 놓는 위험한 조치이다.
그래도 극심한 고통이 따르는 대규모 외과 수술을 할 때가 있고, 환자가 수술 중에 고통 쇼크로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이런 마약은 의사의 판단 하에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혹은, 말기 암이나 방사능 대량 피폭처럼 완치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단지 환자를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서 편하게 보내 주는 것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에도 사용되었다(이 용도로는 주로 모르핀).

어릴 때부터 학교의 사회· 도덕 교과서의 마지막 단원은 언제나 북한과 통일 문제였다. 그것처럼 체육· 보건 계열 교과서에는 마지막에 언제나 마약의 해악을 경고하는 내용이 가득했다. TV 공익광고로도 엄청 많이 나갔고,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안티 마약 공익광고는 그야말로 반공 공익광고 만만찮을 정도로 제일 무섭고 끔찍한 묘사로 악명높았다. 1990년대의 <올가미>, <창살>에 비해, 마 동석이 나오는 2016년도 공익광고는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달라져 있다. (본인은 올가미와 창살 다 본방 본 기억 있음..!)

마약은 전세계 모든 공권력이 근절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단순 소지만 해도 처벌, 또는 혼자 재배하고(!) 소지하고 투약하는 건 상관없는데 남에게 돈 받고 유통한 것이 불법 등 관점도 국가마다 의외로 케바케 제각각이다.
하지만 '쾌락'과 '중독'이 존재한다는 특성상, 마약은 도박 이상으로 지하 경제의 너무 훌륭한 돈줄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뿌리뽑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요원한 일이다. 농가의 입장에서도 너무 흔하게 대량 생산되고 있는 작물보다는 요런 것들이 이윤이 더 짭짤하다. "이 속에 녹아 있는 필로폰만 정제하면 니하고 내하고 평생 먹고 산다~!"

오죽했으면 마약 유통망은 단순 경찰의 함정 수사를 넘어, 국정원 같은 방첩기관까지 동원해서 잡아내려 한다. 공항 같은 데서 마약이 든 가방을 단순 부탁만 받고 나르다가 걸려도 일단은 다 잡혀 간다. 말단의 조직원만 조지는 게 아니라 배후를 송두리째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는 방어하는 쪽에서도 유죄 추정의 원칙에다 불가피하게 더 적극적이고 악랄한 수법을 동원한다는 뜻이다. 거의 빨갱이 잡듯이 말이다.

마약까지 팔아서 외화 벌려고 발악을 하는 북괴가 얼마나 국제적으로 민폐 끼치는 악의 집단인지를 알 수 있다(아편, 대마). 그런 마약을 중국에다가도 팔려고 했다니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단단히 잘못 찾았으며, 그 반대급부로 이제는 북한 주민들이 마약 중독자 폐인이 되고 있다. 이런 북괴의 악행을 더는 용납하지 말고 고립 압박해서라도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건 "유엔도 동의하는" 아젠다이다. 국제 단체들이 결의하고 권고하는 게 사형 제도 폐지처럼 전부 옳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북 제재만큼은 옳게 처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서양에서는 마리화나 정도는 담배만큼이나 남들 하듯이 다 하는 풍조도 있는가 보다. 카지노가 한국에서는 강원랜드 빼고는 자국민은 전면 금지이며 원칙대로라면 심지어 외국 카지노에 다녀온 것조차도 처벌받는 반면.. 서양에서는 그게 그냥 평범한 유흥+숙박 시설 역할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일종의 정서 차이인 듯하다.

스타크래프트에는 스팀팩이라는 게 있고 '뽕 맞은 마린'이 비록 HP는 깎이지만 일시적으로 공격력과 이동 속도가 증가한다.
일반적인 환각· 각성용 마약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근육을 만들고 근력을 일시적으로 증가시켜 주는 스테로이드 계열 마약도 있어서 이런 건 스포츠계에서 엄격한 금지 대상이다. 30여 년 전 우리나라 서울 올림픽 때의 쾌거 중 하나가 바로 육상 선수 벤 존슨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복용을 자체 기술로 잡아낸 것이기도 하다.

이건 점수와 기록의 관점에서는 반칙 부정행위이고, 또 장기적으로는 선수 개인의 건강도 해치니 반드시 추방해야 하는 관행이다. 음주운전을 잡아내는 것처럼 피를 뽑아서 검사하는 게 제일 정확하긴 하지만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드니, 그 전에 소변 검사를 한다. 단, 선수와 동성인 검사관이 찾아와서 화장실까지 따라간 뒤, 소변이 선수의 몸에서 직접 나오는 걸 일일이 확인한다. 게다가 채취하는 소변의 양도 생각보다 굉장히 많기 때문에 단순히 건강검진 받을 때 시험지 같은 거 간단히 묻히는 수준을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자전거 사이클이나 요트, 승마처럼 다른 기계나 동물을 조작하여 이동하는 종목에서는 근력 강화 약물뿐만 아니라 알코올도 금지 대상이다. 이것은 기록· 점수나 개인 건강 차원이 아니라 안전 때문에 취하는 조치이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에는 저 분야에서도 명대사가 있다. "바닥에 흘리는 X끼 죽는다. 오줌에 물 타는 새X 뒤진다. 잡담하지 않습니다. 오줌 교환하지 않습니다." 마약사범 용의자들을 무더기로 검거한 뒤에 소변 검사를 실시하면서 통제하는 경찰관이 하는 말이다.

마약도 그 정의와 범위, 용도를 분류하자면 다 같은 마약이 아니다. 이 글에서 정말 대충 다룬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가 나오긴 하는데 그건 뭐 인터넷 검색하면 나오니까 참조하시고..
강한 마약은 담배의 금단증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하다가 안 하면 괴로워서 온몸이 견딜 수 없는, 가히 고문과 동급의 금단증세가 찾아온다고 한다. "X발 개처럼 짖으라면 짖을 테니 제발 마약 주세요오오오~!!!" 그리고 마약 구입할 돈을 마련하려고 눈 뒤집어져서 끔찍한 범죄도 불사하게 된다.

무슨 악령에 들린 것도 아니고 몸이 어떻게 해야 저렇게 폐인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얼굴은 폭삭 삭고 인상이 망가져 버린다. 일시적인 쾌락 대신 얻는 대가로는 참 가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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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런 물질이 절대 근절되거나 병원· 약국 한구석에서 아주 제한적으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지하 경제 돈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게 어쩔 수 없는 아이러니이다.

* 살다 살다 내가 마약을 소재로 글을 쓰게 되다니.. 이게 다 아저씨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11 19:29 2017/08/1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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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신호등 이야기

※ 신호등에서 황색 또는 노란불은 빨강이나 파랑에 비해서 보기 훨씬 어려운 색이다. 하지만 문맥에 따라서 의미하는 바가 생각보다 다양하다.

1.
자동차 교차로의 3색 신호등에서 노란불은 잘 알다시피 초록불이 곧(대략 2~3초 뒤에?) 끝난다는 걸 알리는 신호이다.
보행자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노란불이 없고 그 대신 청색 신호가 훨씬 더 오랫동안 깜빡거리기만 하니 이와 대조적이다.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빨리 건너가라는 뜻에서 청색 점멸이지만, 자동차 교차로는 빨리 건너가기보다는 여기서 속도 줄이고 멈추라는 뜻에서 황색이다.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신호등이 갑자기 노란불로 바뀌었을 때가 참 난감하다. 원래 FM대로라면 "정지선을 아직 지나지 않았다면 멈춰라"이긴 하지만 이것도 자동차 제동거리의 특성상 현실에서는 무리인 경우도 있다. 신호· 과속 무인 단속 카메라가 있는 교차로라면 이 딜레마가 더욱 커지며, 이것 때문에 운전 면허 도로 주행 시험에서도 신호 위반 때문에 꽤 억울한 탈락자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신호 위반은 페르시아의 왕자로 치면 피 한 칸만 깎이는 대미지가 아니라(2층 추락) 즉사 트랩이다(3층 이상 추락). 일단 면허를 딴 뒤에는 노란불에도 교차로를 과감히 통과하고 배째라 운전을 눈치껏 할지라도, 일단 연습생 입장에서는 굽신굽신 닥치고 서야 합격할 수 있다.

2.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옛날에, 1978년 이전에 우리나라는 노란불이 "좌회전 신호"였다고 한다. 그리고 자동차 신호등도 초록불이 중간 알림 없이 곧장 빨간불로 바뀌었다고 하니 40년 전엔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했나 싶다. 지금처럼 좌회전용 청색 왼쪽 화살표 + 직진용 청색등 체계는 1978년 9월 이후부터 도입되었다고 그런다. (1978년 9월 11일 동아일보 보도)

이를 보도한 그 당시 신문 기사는 "서울 시내에는 현재 168개소에 신호등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니 이 역시 지금으로서는 굉장한 압권이다. 서울시 전체에 교차로 신호등이 꼴랑 168개만 있었다니. =_=;;

3.
한편, 3색이 아니라 그냥 노란불이 [OXO]와 [XOX], 또는 [OX]와 [XO] 반복하는 곳이 있는데 그건 교차로가 아니라 커브나 비탈길에서 그냥 주의해서 진행하라는 정보 제공의 성격이 강하고..

4.
밤에는 차량 통행이 매우 드문 교차로의 3색 신호등이 적색 점멸 또는 황색 점멸로 바뀌기도 한다. 이건 각각 '반드시 정차 후 주위를 살피며 통과', '꼭 완전히 정차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주위를 살피며 조심해서 통과'라는 뜻이다. 자동차 신호등이 그렇게 바뀌고 나면 횡단보도는 신호등이 아예 꺼진다.

이건 약간 리스크를 올린 대신 쓸데없는 신호 대기를 줄여서 피차 편하게 잘 통과하라는 취지로 도입된 시스템이다. 그러니 비보호 좌회전과도 좀 비슷한 위상이다. 그런데 저게 초록불과 완전히 동일한 신호인 줄 알고, 혹은 도로에 나 혼자밖에 없기라도 한 듯이 전속력으로 쌩 질주하다가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

사람이 발이 인도에 있다가 차도로 이동할 때(횡단보도 건널 때, 차에서 내릴 때 등등), 그리고 차가 측면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 길과 길이 만나는 곳으로 진입할 때는 모름지기 "겁대가리"라는 게 발동해야 한다. 총기를 다룰 때 모든 총은 장전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다뤄야 하듯, 도로에서는 옆에서 무엇이든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갖고 횡단하거나 차를 몰아야 한다.

더구나 점멸 신호는 초록불의 보호를 정식으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니 더욱 몸을 사려야 한다. 특히 보행자가 이유 불문하고 갑이며 왕이다. 저런 곳에서 보행자를 치기라도 하면 인생이 더 꼬이게 된다.

5.
끝으로, 철도는 (1) 궤도 위만 달리며 (2) 가감속이 자동차보다 훨씬 더 더딘 교통수단이라는 특성상, 신호등을 운용하는 방식이 자동차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초록은 정상 주행, 노랑+초록은 조금 감속, 노랑은 많이 감속+서행, 빨강은 완전 정지 순으로 의미가 통용된다. 쉽게 말해 "이 신호등이 곧 빨강으로 바뀔 것이다"가 아니라 "이걸 지나친 뒤에 다음에 마주치는 신호등은 빨강일 테니 미리 감속하라"라는 뜻이다. 매우 신기한 차이점이다!

그나마 ATC급 이상 신호 체계에서는 기관사가 창 밖으로 신호등을 볼 필요도 없고 아예 차내의 계기판에 지금 선로 구간의 신호가 곧장 표시된다.
비행기는 한번 뜨고 나면 밖에서 전혀 통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 기껏 격추만이 가능하다. 우주 발사체도 최악의 경우 주변에 다른 피해를 끼치지 말라고 자폭 명령 정도만 내릴 수 있으며, 한번 연소가 시작된 뒤부터 제어가 안 되는 고체 연료 로켓은 그 위험성이 더하다.

그러나 철도는 선로와 차량과 신호 시스템이 일심동체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신호를 어기고 폭주한다면 강제로 차량을 세우는 장치가 다 구비돼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잘 통제받는 교통수단이 바로 궤도 교통수단인 철도이다.

6.
신호등을 보면 컴공과의 운영체제 이론 수업 시간에 배우는 스레드 동기화(도로라는 리소스에 한 방향의 차량만 접근)와 스케줄링(시간 배분) 생각이 난다.

강제로 적록으로 차들의 흐름을 제어하는 신호등은 컴퓨터로 치면 각 프로그램마다 강제로 CPU 시간을 할당해 주는 선점형 멀티태스킹이라 볼 수 있다. 그 반면 로터리나 점멸 신호등은 협력형 멀티태스킹이다.
로터리는 신호대기가 없어서 좋긴 하지만 그래도 교통량이 너무 많아지만 강제 신호보다 비효율적인 체계가 된다.

미래에 도로는 신호 시스템이 교통 상황을 감안하여 더 융통성 있고 똑똑해지는 쪽으로 발전하지 싶다. 중앙선 가변차로 같은 건 옛날에 잠깐 시도되었다가 운전자가 헷갈리기 쉽고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폐지되었는데, 만약 자동차가 대로 한정으로라도 무인 운전 시스템 기반으로 완전히 물갈이되고 중앙 관제 센터가 도로의 모든 자동차들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가변차로도 얼마든지 재등장 가능할 것이다. 철도로 치면 선로가 그냥 상하행 고정 복선이던 것이 첨단 신호 시스템 덕분에 단선병렬로 바뀌는 것과 같다.

본인은 그런 것 말고도 교통 효율을 위해서는 인적이 드문 곳의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요청을 했을 때에만 신호를 주는 것, 그리고 자동차 신호등에도 신호 변경 예상 시간을 안내해 주는 것이 필요하고 생각한다.

7.
비행기에는 상하 고도를 변경하여 이륙, 순항, 착륙이라는 절차가 있다. 그런데 자동차 운전은 비록 상하는 아니지만 좌우로 차선을 변경하는 게 개념적으로 이착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태우고 제일 바깥의 4~5차선에서 출발한 뒤, 수 km 이상 지속적인 고속 주행을 할 때는 중앙선 근처의 1~2차선으로 간다. 바깥 차선은 정차하거나 끼어드는 차들이 많아서 원활한 주행이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 뒤 정차하거나 타 IC로 진출할 때가 되면 슬슬 차선을 바꿔서 다시 바깥 차선으로 돌아간다. 이게 비행기의 착륙과 비슷한 절차인 것 같다.

8.
그런데, 검색을 해 보니.. 신호등이 고장 나거나 회로가 꼬여서 그냥 곱게 꺼지기만 한 게 아니라, 양방향이 "모두 초록불"이 돼 버려서 차량들끼리 측면충돌 사고가 난 경우가 있더라!! 이건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먹는 우물· 상수도에 독이 들어갔다거나 신호등계의 급발진 사고가 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완전 생사람 잡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슨 소프트웨어의 버그도 아니고 하드웨어· 환경 여건으로 인한 전자기기의 오동작· 폭주를 예방하는 방법이 없을까..;

그리고 사실은 신호등이 제 기능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신호등이 파란불이더라도 건너편 차들이 못 빠져나가고 있어서 들어갈 공간이 없으면 교차로를 통과해서는 안 된다. 꼬리물기는 차량 소통의 데드락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도로에 다른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경찰이 수신호를 하고 있다면 그 수신호가 신호등보다 우선순위가 더 높기 때문에 경찰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쪽에서 신호를 하고 있던 경찰들이 실수로 일관성 있게 신호를 못 내려서 사고가 날 때도 있다. 이건 국가에다 소송을 걸어서 보상받는 길이 있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09 08:25 2017/08/0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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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엔 거의 한 달 간격으로 나란히 산행 후기를 올리게 됐다.
본인은 이제 인서울에서는 어지간한 산들은 다 오른 것 같다. 서울 외곽은 지금까지 주로 동쪽으로 살펴본 편이었다. 남양주 예봉산, 하남 검단산을 오르면서 오지를 탐험한 건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경부선이나 과천선 철도 주변에 있는 산들은 직선 거리로는 본인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청계산 내지 관악산처럼 다른 산의 남쪽에 있는 산들은 교통이 불편해서 심리적으로 안 가게 된다. 북쪽으로 의정부의 사패산 같은 산도 다른 메이저 산에 가려져 있다. 게다가 그런 곳은 딱히 그린벨트 지대가 없어서 산기슭까지도 건물들이 빽빽해서 속세를 벗어난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본인은 서울의 동남부에 있는 성남에서는 불곡산을 올랐고 얼마 전에 영장산을 오른데 이어, 이번에는 분당이 아닌 구 성남 시가지의 동쪽에 있는 산을 다녀왔다. 성남과 광주 사이의 산맥 답사가 세 번째를 맞이했다. 등산 지점은 점점 더 북상하고 서울과 더 가까워졌다.
분당· 판교에 직장을 뒀던 사람으로서(지금은 회사가 서울로 이사를 감), 서울 지하철 8호선이 지나는 구 성남 시가지와 거기 산기슭은 분위기가 어떨지 참 궁금했는데 이 답사가 의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

자, 그럼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어디까지 등산을 할지 경로를 짜는 게 첫 고민거리였다.
작년에는 서울 마천 역 근처의 청량산 방면에서 등산을 시작해서 남한산성까지 올라갔었는데, 그때는 남한산성의 북쪽(서문과 북문)만 그야말로 수박 겉 핥듯이 둘러보고 도로 북쪽의 하남시 쪽으로 하산해 버렸다. 남문이나 심지어 조선 행궁 같은 것도 전혀 구경을 못 했다.

그래서 이번 산행에서는 일단 남한산성 남부까지는 성남시에서 접근해서 그냥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그래서 그때 못 한 남한산성 유적지 구경을 잠깐 한 뒤, 남쪽으로 내려가서 검단산과 망덕산까지 쭈욱 걷고 이배재 고개까지 구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성남시에도 하남 검단산과 이름이 동일한 산이 있다.

아침 일찍(7시 무렵), 엄청난 높이의 에스컬레이터로 악명 높은 서울 지하철 8호선 산성 역에서 내렸다. 여느 출구로 나간 게 아니라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는 북쪽의 환승 주차장으로 나간 뒤, 거기서 더 북쪽에 있는 폴리텍 대학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9번 버스를 탔다. 산기슭의 '남한산성 입구'가 아니라 실제로 산을 올라가기도 하는 얼마 안 되는 버스이기 때문이다.

얘는 평소에는 성남 시내를 빙빙 돌다가 산을 오르지만, 주말 한정으로 등산객과 관광객을 위해 지하철역-남한산성 직행 셔틀이나 마찬가지인 9-1이 다니기도 한다.
산을 오르려면 기름이 굉장히 많이 들 것이고 평일에는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이 적어서 채산성이 안 맞을 텐데, 그래도 9번 버스는 10~20분대의 배차간격으로 다니는 편이었다. 지름길이 아니라 좀 이리저리 돌다가 산을 올라가는 것쯤은 얼마든지 봐 줄 만했다.

산을 오르면서 차창 밖 경치 중에서도 사진 찍고 싶은 게 여럿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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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남한산성 내부에 도착했다. 위의 사진은 만해 한 용운 기념관, 그리고 조선 행궁 '한남루'의 입구이다. 한낮인 것 같은 시간대이지만 방문 당시는 아직 아침 8시 남짓밖에 안 됐다. 그러니 둘 다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이제 흙색의 낙엽은 바닥에서나 볼 수 있고 산들이 전반적으로 다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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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남한산성 남문이다. 자동차는 아래로 난 터널을 통해 성곽을 입체교차하여 산성 내부 구간으로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서울의 북악산도 팔각정까지 자동차 도로가 있긴 하다. 그러나 얘는 애초에 북악산의 뒤, 한양도성(서울성곽)의 바깥만 지나며 성곽과 만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는 터널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북악산에서 한양도성을 근접 구경하고 싶으면 도보로 등산을 해야 한다. 그래도 이것도 차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고 험준한 북한산을 올라야만 도달할 수 있는 북한산성보다는 사정이 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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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밖으로 나가자 남쪽으로 내가 가려는 길은 안내가 아주 잘 돼 있었다.
서울에 공식적으로 '둘레길'이 있는 것처럼 성남시에서도 '누비길'이라는 산길 브랜드를 만들어서 홍보하고 있었다. 성남과 광주를 지리적으로 가로막는 산들의 쭉 이으면 자동으로 길이 나오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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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길이 이렇게 평범한 시골길 같다가 나중에는 그냥 산길 흙길로 바뀌었다.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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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턴가 차도가 합류하더니 길이 이렇게 바뀌었다. 산 속에 깔린 자동차 도로는 사람용 등산로보다 경사가 완만한 대신 우회하는 길이가 훨씬 더 길다. 누비길은 얼마 안 가서 차도로부터 분리되어 나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누비길도 자꾸 이쪽으로 안내되어 있었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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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검단산이 하남 검단산보다 훨씬 덜 유명하며, 누비길 말고 딱히 산 자체에 대한 등산로가 인터넷 지도에 별로 안 나오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갑자기 길 좌우로 철조망이 둘러지고 "과거 지뢰 매설 지역" 경고문이 나타났다.
이 산의 정상에는 공군 부대가 있다. 그것 때문에 자동차 도로도 필요했던 거다.

그러니 성남 검단산은 서울로 치면 우면산 같은 분위기였다. 이 길이 공식적으로 성남 누비길의 일부이며 남한산성에서 검단산까지 가는 최단경로이긴 하다. 하지만 서쪽의 약수터 쪽으로 우회하면 이런 군사 시설을 덜 마주치고 검단산 정상 쪽으로 갈 수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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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를 따라 걷고 또 걸은 끝에 검단산의 정상에 도달했다. 진짜 제일 높은 정상에는 군부대와 각종 통신 시설(KT 검단산 중계소?)이 있기 때문에, 민간인을 위한 정상은 차도를 벗어나 왼쪽으로 꺾어서 진짜 정상보다 2, 300m쯤 떨어진 공터에 따로 있었다. 공터에는 헬리패드가 있고 무덤 비석 같은 자그마한 '검단산' 표지석이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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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지체 없이 계속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단산 정상을 지난 뒤부터는 군대 냄새도, 자동차 도로 같은 것도 없이 순수하게 자연의 정취가 느껴지는 산길이 쭉 이어졌다. 안 그래도 날씨도 맑고 따스하고, 주변 경치가 몹시 아름다웠다.

여기는 간간이 사기막골(성남)이나 불당리(광주) 같은 주변 마을로 하산하는 분기점이 있었다. 성남 쪽은 산기슭에 공장(상대원 공업단지)도 있고 뭔가 대도시 같지만, 서쪽의 광주 쪽은 산봉우리가 더 있기도 하고 그나마 골짜기에 간간이 놓인 집들은 시골 분위기 그 자체였다. 다만, 어느 쪽으로든 시야가 나무로 가려져서 시야가 좋지 않은 건 아쉬웠다. 전망대 같은 건 누비길 전구간을 통틀어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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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도 그때 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즉석 코딩으로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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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오르내리며 한참을 걸은 끝에 드디어 망덕산의 정상에도 도달했다. 여기는 딱히 공터가 있지 않고 평범한 등산로 길목에 탁자· 벤치와 정상 표지석이 있었다. 봉우리 이름은 '왕기봉'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성남 누비길에서는 휴식 공간에서도 딱히 운동 기구 같은 건 못 본 거 같다. 만만한 공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 높은 산도 아닌 그 중간 컨셉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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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산 정상을 지나자 등산로는 다음 목적지인 이배재 고갯길을 향하여 고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산은 분홍색 꽃나무가 많이 섞여 있는 반면, 앞에 펼쳐진 저 먼산은 전적으로 초록색으로 배경을 은은하게 물들여 놓은 게 풍경이 장관이었다.
저런 산의 어귀에 있는 마을에 혼자 틀어박혀서 광주시의 맑은 공기 마시면서 논문과 코딩에 전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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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재 고갯길에는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사실, 산들의 높이가 500미터대로 막 낮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고갯길만 해도 이미 고도가 200m를 훌쩍 넘기 때문에 내가 발로 이동해서 만든 고저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출발할 때도 남한산성까지는 버스를 타기도 했고 말이다.

이름이 왜 '이배재'냐 하면, 옛날에 과거 보러 한양으로 올라오던 선비들이 이 고갯길에서 왕궁을 향해서 절을 두 번 했기 때문이라고 그런다.
하긴, 근대화 이전에 한반도에서 한양(서울)-동래(부산)을 육로로 연결하던 지름길은 광주· 용인· 충주를 경유하는 '영남대로'였다. 수원과 대전을 경유하는 육로는 20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철도와 고속도로 모두). 예전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듯, 비행기 항로도 지형에 구애받지 않으니 영남대로의 선형과 더 가깝다.

숭실 대학교 근처에 있는 고갯길은 조심해서 살펴 가라고 해서 옛 이름이 '살피재'였다는데, 고갯길의 이름에도 이런 식으로 다 사연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육교를 타고 맞은편 산으로 등산을 계속할 수도 있다. 예전에 서울 지하철 3호선 녹번-홍제 구간 사이에(지상 도로는 통일로) 백련산과 북한산을 잇는 육교를 봤던 게 생각났다. 성남 누비길도 맞은편 산을 한 번만 더 넘어서 '갈마치 고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시간과 보급 관계상 본인은 거기까지는 안 가고 이 고갯길에서 버스를 타는 것으로 등산· 답사를 마쳤다. 이 길목은 광주 북부에서 모란 역(분당· 서울 8)을 잇는 버스가 수 분 간격으로 많이 다니고 있었다.

이배재로 다음으로 성남 시내에서는 '둔촌대로'라고 폭이 굉장히 방대한 길이 나 있었다. 길가엔 차들이 평행도 아니고 수직으로 주차돼 있었는데 이건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서울 지하철 8호선보다 한두 블록 아래로 성남 구시가지의 남쪽 끝을 지나는 큰길이다.

이 둔촌과 서울 '둔촌동'의 둔촌은 모두 동일하게 '둔촌 이 집' 선생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서울 일자산을 미리 다녀와 본 덕분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이 사람의 묘지가 여기 일대에 있다.
그런데 고려 말기의 너무 옛날 사람이기도 하고, 그가 이 정도로 칭송받을 정도로 뭘 그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게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후손인 광주 이씨 사람들이야 떠받들 만도 하겠지만 타지의 다른 사람들은 글쎄..

이렇게 산에서 역사 유적(남한산성), 군사 시설, 그리고 자연 풍경을 모두 구경하고 성남 시가지 구경은 덤으로.. 오늘도 유익한 답사를 하고 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06 08:31 2017/08/0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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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들에는 각각 current directory라는 개념이 있다. 그래서 파일이나 디렉터리를 지정할 때 매번 드라이브 또는 볼륨의 이름부터 쓰는 게 아니라 그걸 생략하고 이름만 달랑 적거나, ..₩ 처럼 간편하게 ‘상대 경로’를 지정해 줄 수 있다.

기술적으로 봤을 때 current directory는 프로세스 전체 단위로 공유되는 속성이다. 스레드 단위가 아니다.
한 디렉터리 아래에 있는 모든 파일과 디렉터리를 조회하는 건 보통 SetCurrentDirectory를 이용해서 함수의 재귀호출로 구현하는 편인데(이름을 줘서 하위 디렉터리로 갔다가 앞으로 되돌아갈 때는 간편하게 ".."만 지정하면 됨), 이건 여러 스레드가 동시에 수행되지 않게 해야 한다.

여러 군데에서의 디스크 수색을 굳이 동시다발적으로 하려면 해당 함수가 경로 문자열 관리를 자체적으로 해서 FindFirstFile에 언제나 절대경로만 전해 주거나, 아니면 상대 경로를 쓸 거면 아예 별도의 프로세스를 만들어서 돌리게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각 드라이브별로 직전까지 작업하던 디렉터리 정보가 운영체제 차원에서 자동으로 보존될까, 그렇지 않을까?

C:\>cd windows

C:\Windows>d:

D:\>cd doc

D:\doc>c:

C:\Windows>d:

D:\doc>


드라이브별 커런트 디렉터리란, 위의 예에서 C에서는 Windows가 보존되고, D에서는 doc가 보존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정답부터 말하자면 그건 운영체제가 일일이 자동으로 기억하고 챙겨 주지 않는다.
당장 탐색기나 파일 열기 대화상자의 주소창에서 c: 나 d: 라고만 달랑 쳐 보아라. 이 경우 언제나 해당 드라이브의 루트 디렉터리로만 가지, 명령 프롬프트일 때처럼 직전에 해당 드라이브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보던 디렉터리를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명령 프롬프트가 예외적으로, 유일하게 그걸 별도로 지원해 주고 있다.

그럼 질문의 초점이 이렇게 바뀔 것이다. 명령 프롬프트만 왜 그러는 걸까?
물론 명령 프롬프트는 GUI와 달리 '뒤로' 같은 버튼이 없으니 디렉터리를 기억해 주는 게 사용자의 입장에서 편리하다. 그리고 더 큰 이유는 먼 옛날 MS-DOS와의 호환을 위해서이다.

MS-DOS의 최초 버전인 1.0은 무려 1981년에 출시되었으며, 얘는 파일 시스템에 디렉터리라는 개념을 지원하지 않았었다. 즉, 모든 디스크는 루트 디렉터리만 존재했으며, 파일 이름에 (역)슬래시 기호가 들어갈 일이 없었다.

마치 Windows 1.0이 프로그램 창을 겹치게 배열하는 게 지원되지 않았던 것과 동급으로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뭐, 기술적인 한계 때문은 아니고, 애플 사와의 특허 분쟁을 피해 가느라 일부러 기능을 cripple시킨 것이지만) 1980년대 초의 열악한 컴퓨터는 무슨 매체든 디스크의 공간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작고 좁았으니 굳이 디렉터리 계층 구조의 필요가 존재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다가 DOS 2.0부터는 드디어 파일 시스템 차원에서 디렉터리가 도입됐다.
그런데 DOS 1.0용으로 개발된 프로그램은 디렉터리라는 걸 전혀 인식하지 않고 역슬래시 문자도 아예 사용하지 않으니 2.0에서 루트가 아닌 다른 디렉터리에 있는 파일을 읽고 쓸 방법이 없다.

그러니 이 문제를 최대한 호환성을 존중하며 해결하기 위해, :₩로 시작하지 않는 경로는 이제부터 상대 경로로 간주시켰다. 그리고 각 드라이브별로 커런트 디렉터리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상대 경로는 루트 고정이 아닌 커런트 디렉터리에 있는 파일에 접근하는 것으로 정책을 바꿨다. 운영체제가 일종의 state machine 역할을 대신해 주는 셈이다.

Windows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모든 드라이브를 통틀어서 단일 current directory만 관리하지 DOS처럼 동작하지 않는다. 단지 명령 프롬프트에서는 특수한 환경변수를 운용해서 사용자가 돌아다닌 디렉터리를 드라이브별로 추적하여 도스의 동작을 흉내 내 준다. 이건 물론 오늘날까지도 전적으로 호환성 차원에서 해 주는 것일 뿐이다. the old new thing 블로그를 보면 더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환경변수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 프로세스로부터 새로 실행된 child 프로세스에게까지 current directory 변경의 여파가 자동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라 한다.

“타 드라이브의 current directory”라니, 지금까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Windows 9x에서 존재하던 CD ... (점 3개 이상)처럼 뭔가 호환성과 관련된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1.
컴퓨터에서 옛날에는 하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졌으나 나중에는 여러 개 존재할 수도 있게 된 것의 예로는 디렉터리뿐만 아니라 CPU 코어(멀티코어!)라든가 모니터(최소한 듀얼..)도 해당되지 싶다.
그러니 하나밖에 인식을 안 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무조건 붙박이가 아니라 현재 default로 지정되어 있는 것 하나를 기준으로 동작하게 운영체제가 샌드박스 처리를 잘 해 줘야 할 것이다.

하드웨어 말고 소프트웨어적인 요소 중에서도 클립보드 같은 건 운영체제 API 차원에서 다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 말고는... 설마 한 컴퓨터에 마우스 포인터 같은 게 둘 이상 존재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마우스 말고 터치스크린은 여러 손가락이 동시에 눌러질 수 있다. Windows 98에서 멀티모니터 지원이 최초로 도입됐다면 Windows 7부터는 멀티터치 지원 기능이 최초로 추가됐는데, 본인은 지금까지 멀티터치 관련 기기나 API를 접할 일이 전~혀 없었다. 문자 입력과도 분명 연계가 가능할 텐데 그쪽으로 연구할 기회가 없었다.

2.
그러고 보니 시스템 전체 차원에서의 current 설정 vs 특정 항목별 current/default 설정이라는 양대 구도는 Windows의 IME에서도 동일하게 찾아볼 수 있다.
Windows에서 돌아가는 모든 UI 스레드들은 어떤 입력 언어/로케일과 연결돼 있다. 이것은 영어 드보락, MS 일본어 IME, 날개셋 등등 중 하나로.. 키보드 드라이버, IME/TSF 모듈을 모두 통합하는 개념이다.

각 스레드들이 서로 다른 입력 언어와 연결 가능하지만(Alt+Shift, Ctrl+Shift, 또는 도구모음줄 클릭), 어떤 스레드가 새로 생성되었을 때 맨 처음 기본으로 지정되는 'default 입력 언어'라는 건 따로 있다. 이건 제어판에서 변경 가능하다. 이게 디렉터리로 치면 current directory에 가깝다.

그런데, 사실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 각 언어별로도 말 그대로 default 입력 언어가 있다. 한 언어에 속하는 IME들이 여러 개 있을 때, 사용자가 Alt+Shift로 언어만 그걸로 전환하면 그 언어의 default IME에 속하는 놈이 기본 선택된다. DOS에서 존재하던 드라이브별 current directory처럼 말이다.

내 경험상 전체 default IME라든가, 언어별 default IME 같은 건 프로그래밍을 통해 알아 내거나 변경하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MSDN을 뒤져 보면 비슷한 기능을 하는 API가 있긴 하지만 current, active, default 등 용어도 혼란스럽고 기능들이 문서화된 대로 정확하게 동작하질 않는다. 더구나 Windows 8부터는 Win+Space를 통해 IME들을 언어 구분 없이 한 리스트에서 쭉 고르게 UI가 바뀌어서 언어별 default IME라는 건 개념이 굉장히 모호해지기도 했다.

이 방식은 운영체제에 설치된 입력기가 적을 때는 깔끔하지만 10개 가까이 많아지면 화면이 굉장히 난잡해진다. 언어별로 구분하는 Windows 7 이하 기존 방식도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04 08:35 2017/08/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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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성경 관련 생각

1. 소설 <광장>

'광장'이라고, 보통명사 square나 plaza가 아니요, 무슨 법무법인 이름도 아니요, 동명의 한국 현대 소설이 있다(저자: 최 인훈). 본인은 먼 옛날 고딩 시절에 문학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줄거리를 아주 짧게 요약하면, 분단된 나라 현실 속에서 주인공이 여차여차 하다가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얻는다. 그래서 남한행이냐 북한행이냐를 고민하다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제3세계 '중립국' 드립을 치면서 중립국 망명을 고집한다. 그 요청이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주인공은 이마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중립국으로 가는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버리는 걸로 이야기가 끝난다. 마치 디젤 기관의 발명자가 죽는 것처럼 죽는다.

주인공은 워낙 눈이 높았는지 남북이 다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병맛스럽게 보였으며, 어느 체제에서도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해답을 발견하고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아, 참고로 저 작품은 1960년 가을, 이 승만도 박 정희도 권좌에 없던 짤막한 제2공화국 타이밍을 맞춰서 출간될 수 있었다. 마치 영화 <튜브>가 김포 공항 청사 총격전을 '인천 공항 개항에 따른 김포 공항 청사 리모델링'이라는 천혜의 타이밍에 맞춰 찍을 수 있었듯이 말이다.
"동무, 우리 공화국으로 오라우" 같은 말이 대놓고 나오는 소설이 강력한 반공 독재 정권 시절에 출간됐다면 어찌 됐을까? 검열에 당연히 0순위로 걸렸을 것이고 작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서 코렁탕 한 사발 들이키게 됐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민감한 이념 분야를 그것도 그 먼 옛날에 벌써 다뤘던 <광장>은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굉장히 독특하다. 그 당시 작가는 겨우 20대 중반의 청년이었으나 <광장> 하나로 일약 스타가 됐다(1936년생이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만 패치라는 게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소설도 판을 거듭하면서 작가가 일부 문장과 표현을 조금씩 계속해서 수정· 변경했다고 한다.)

다만, 그렇다고 2공 시절이 마냥 서울의 봄처럼 모든 것이 자유롭고 좋기만 했을 거라고 성급하게 판단하는 건 금물이다. 오히려 그렇게 통제가 느슨한 과도기 혼란기를 노려서 김 일성이 6· 25 시즌 2를 또 일으키지 않은 것이나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 테니 말이다.

아무튼, 저 소설이 쓰여지던 시절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더 잘살았으며, 북한이 아직은 공산주의 이념에 더 충실(?)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소설을 읽어보면, 주인공은 남한과 북한의 정치 및 종교 체제를 서로 비교하면서 유사점과 차이점을 분석한다.

'에덴 동산 vs 공산주의가 꿈꾸는 이상향(로동자가 주인, 능력껏 벌어서 필요껏 쓰는, 가난해도 행복한... 등등)'
'스탈린 vs 교황',
'자아비판 vs 고해성사'처럼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전혀 핀트가 안 맞거나 해당되지 않는 비교도 있다.

그런데 마지막 아이템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공산혁명 이래로 시간이 30년이 넘게 지났건만 그들이 약속하는 지상락원은 여전히 도래할 기미가 안 보인다. vs
예수는 속히 다시 오겠다고 말했건만, 그로부터 2000년이 다 돼 가도록 여전히 오지 않고 있다' (동일한 표현은 아니지만 결국 이런 요지의 내용)

하긴, 예수님 당대에는 제자들조차 길어야 몇십 년 안으로, 자기가 죽기 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거라고 생각했다고 여겨진다.
솔직히 생각해 봐라.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11) 이 주변 문맥만 봐서는 그 예수님이 서기 2000년대 이후에나 다시 오실 거라고 누가 예상하겠는가?

그러나 실상은 제자들 중에 그나마 늘그막에 유배지에서 비슷한 체험을 하며 예수님을 자기 생전에 다시 알현한 사람은 사도 요한이 유일하다(요한계시록).
예수님은 그로부터 진짜 2천여 년 뒤에, 인간이 말보다 더 빠른 교통수단을 발명해 내고, 새처럼 하늘을 날고 달까지 갔다 오고, 인터넷과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만들고 한편으로 인간에게서 믿음이라는 건 밑천이 다 바닥나고 진이 다 빠지고, 영적으로 가히 갈 데까지 다 간 막장에 다다른 뒤에야 오실 것으로 여겨진다.

이거 정말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양상이 너무 다르지 않은가?
성경에서 사 61:2와 눅 4:19를 비교해 보면 "{주}의 받아 주시는 해와 우리 하나님의 원수 갚으시는 날을 포고하고" 사이에 실제로는 초림과 재림 간극이 불쑥 끼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자는 그야말로 고구려 백제 신라(주몽, 온조왕, 박 혁거세!)가 건국되던 시절의 얘기인데, 후자는 전국민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KTX가 다니는 시절보다도 (아마도) 더 나중에 있을 사건인 것이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한데 싸잡아서 예언해 놓았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이런 개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대적 진리에서 이걸 흔히 '예언의 산봉우리'라고 언급하곤 한다.

물론 성경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벧후 3:8)라고, 시간에 대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를 허용하는 실드가 있다. 그걸 잘못 적용해서 창세기의 6일 창조 사건 자체조차 문자적인 지구 기준 24시간 하루가 아니라고 해석하는 진영도 있다. 허나, 성경도 정확해야 할 때는 매우 엄밀하고 정확하며,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해석 체계가 막장 엉터리는 아니다.

이것은 나라고 해서 모든 게 다 이해되고 뾰족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거라고 했는데 아담은 왜 안 죽고 930년이나 살 수 있었나요?" 이런 것에도 여러 관점에 따른 답이 있다(영이 죽었다, 수명 자체가 유한해졌다, 짐승이 대신 죽었다 같은..). 그런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 시기에 대해서도 우리가 성경의 기존 용례들을 분석하면서 하나님의 스케일과 사고방식에 맞추고 적응할 수밖에 없다.

또한 '속히(quickly)' 오신다는 말은(계 22:20), 엄밀히 말해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 하는 조건이 충족됐을 때 지체 없이 오겠다는 뜻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while( !should_jesus_come() ) {
   wait(); //척 노리스는 잠들지 않는다. 단지 기다릴 뿐.
   //어쩌구저쩌구
}
go_to_earth();

즉, 이 프로그램이 결코 무한 루프에 빠지거나 뻗는 일 없이 go_to_earth()의 실행이 즉시 될 거라는 것만 보장하지, while문의 예상 소요 시간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노코멘트라는 것이다. 시계의 무브먼트가 빠른 것과, 당장 가리키는 시계 바늘의 위치가 앞서 있는 것은 별개의 개념이듯이 말이다. 기계적인 컴퓨터 프로그램조차 실행이 종료될지를 프로그램만 보고서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예수님 행동을 어찌 예측하겠는가?

뭐,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든 좋다.
여담이지만, 본인은 하나님의 시간 스케일이 이 정도로 워낙 광대하다면, 창세기 1:1과 2 사이에 이전 세상 멸망 간극쯤은 있다 해도 하등~~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같이 든다. 성경은 얼마든지 그렇게 기록되고도 남을 책이다.

<광장>의 주인공은 저렇게 성경을 바르게 나누고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한다는 개념에 대해서 알 리 만무했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해서도 그냥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편견을 넘지 못했다. 천주교와 기독교를 구분 못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좌익들의 흉악한 체제 전복 혁명을 온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는 왕중 왕 예수님의 재림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 것부터 이미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러니 그는 비록 허구 속 인물이긴 하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더구나 자기 죄 가운데 죽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하지만 현실에는 바로 이런 주인공 같은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2. 신앙생활의 본질, 교회

성경이 말하는 신앙생활은 입문하기는 왕창 쉽지만(세상에 구원받는 것만치 쉬운 건..?) 마스터하기는 왕창 어려운(예수님 형상을 이루기란?) 온라인 게임에 입문하는 것과 같다.
신앙생활은 꽤 불확실하고 비결정적이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게임 용어에다 비유하면 어떤 컨텐츠가 업데이트 될지 알 수 없다. 혼자 뻘짓 하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소통하는 법, 게임 퍼즐을 잘 풀어 나가는 법, 사고방식을 개조하는 일종의 요령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만 얘기하니까 뭔가 잘 만들어진 게임 같다만.. 그래도 국방부 퀘스트가 게임이 아닌 것만큼이나 인생은 실전이지 게임은 아니다. 오래 참음, 기다림, 절제처럼 일반 게임에는 절대로 안 나올 요소들이 많이 나온다. 꾸준히 오래 일관되게 지속하는 지구력이 중요하다. 현질, 오토 같은 거?? 없거나 안 통한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기본적으로 마이너한 독고다이 개인 플레이이다. 구원 여부는 철저히 개인 단위이고, 신앙 생활도 철저히 개인의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에 근거해야 한다. 신약 기독교회에는 집단 세뇌 그런 거 없으며, 생각을 못 하게 교주를 우상화하고 맨날 쉴 새 없이 신자들을 바쁘게 몰아세우는 거 없다! (있다면 그건 그냥 이상한 이단 사이비인 경우가 99.9%)

그렇게 독고다이 개인 플레이를 기본으로 하되, 그나마 성경이 인정하는 길드가 바로 교회이다. 조직· 단체의 존재로 인한 시너지 효과 순기능을 개인 신앙에도 접목하라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예수 믿는 믿음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면 어떻게 사는지 지상락원 모습을 맛보기라도 세상에 보이라고 성경이 가정과 국가에 이어 교회를 만들고 인정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교회가 처음 태동하던 시절에는 하나님이 언어 장벽조차 초자연적으로 잠시 허물어 주셨을 정도이다.

이거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니들도 니들이 그렇게 배척하는 공산주의랑 다를 게 뭐냐, 인간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다고 사기 치는 거랑 뭐가 다르냐는 욕 먹게 된다. 조심해야 된다. 그래서 내가 아까 의도적으로 '지상락원'이라는 단어를 쓴 거다. 앞의 저 소설 <광장>만 해도 공산주의와 기독교 모두 지상락원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주인공이 같이 까지 않던가?

물론 교회가 아무리 제 역할 못하고 제아무리 병신짓 한다고 해도 진짜 공산주의만치 나쁘지는 않다. 지금도 공산주의는 사상이 문제가 아니라 공산주의자의 "수법"이 훨씬 더 악하고 해롭기 때문이다. 교회는 아무리 부패 변질돼도 지들만 돈 밝히고 뱃대지 부르는 걸로 끝나지, 그런 더러운 짓 하면서 무슨 국가 체제 전복을 시도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교회라고 해서 내부에서는 아무 법도 질서도 규율도 없고, 남에게 무작정 사랑만 베풀고 마냥 호구 되라는 얘기도 절대 아니다. 선과 악을 칼같이 분별하고 안에 자꾸 침투하는 이단 교리나 거짓 간첩들을 색출하고, 자체적으로 순수성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성경에 지침이 나와 있다.

어쨌든, 성경은 "우리가 반드시 많은 환란을 거쳐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할 껄?"(행 14:22)이라고 말하는데..
이건 구원의 조건이 어렵다는 말이 아니요, 신자들이 무슨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전무후무한 그 끔찍한 대환란.. 아예 취지와 목적 자체가 다른 그 이벤트를 겪는다는 얘기도 아니다. 단지 우리의 일반적인 신앙 여정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교회가 대환란 겪는다는 소리는 아무리 봐도 자기가 지금 무슨 십자가를 지고 있는지를 몰라서 없는 십자가나 남의 십자가를 만들어서 지겠다는 얘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상. 교회 신자라면 교회라는 조직이 왜 존재하고 이게 개인의 신앙생활과 어떤 관계가 돼야 할지 논리적인 개연성을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3. 동물과 식물의 특성

생명의 신비랄까, 이와 관련된 오래된 생각이다.
뭐, 화학적 성분의 차이 때문이겠지만 똑같은 생명체인데 식물은 죽더라도 악취도 안 나고 손에 묻는 것도 별로 없이 곱게 누렇게 말라 비틀어지기만 하면서, 어째 동물보다 훨씬 덜 흉측하게 분해되고 없어지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이건 과학 얘기가 아니라 신념 얘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타락과 창조 세계 저주 이후로 동물, 특히 붉은 혈액의 부패 양상이 더 흉측해진 거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배설물도 그때부터 외형과 냄새가 더 끔찍해졌고 말이다.
옛날에는 사람도 처음 창조되었고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성인의 대변도 태변과 별 차이가 없는 그저 그런 모양이고, 죽는다 해도 시신은 혈액과 내장을 제거하는 등의 처리를 안 해도 미라와 비슷하게 말라 비틀어지고 아주 자연스럽게 흙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추측'한다.

성경은 죄의 삯 내지 결과로 인해 사망이 초래되었다고 말한다(롬 6:23, 약 1:15). 성경에서 믿음과 행위라고 관점의 대립을 보인다고 여겨지는 두 책이 그래도 죄가 죽음과 관계 있다고 공통으로 증언하는 것이 흥미롭다.
아 물론 죄가 들어오기 전의 에덴 동산 낙원 상태라 하더라도, 아담이 한 50m 높이 절벽에서 뛰어내려서 바위 바닥에 떨어졌거나, 깊은 강물에 제 발로 들어가서 폐에 물이 들어가면 죽긴 했을 것이다. 죄 없는 상태가 무슨 물리적인 god mode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을 테니까.

단지, 그때는 살고 싶어서 발버둥치는데 오늘날 같은 나쁜 질병과 노화로 인한 죽음은 없었을 것이고, 스스로 바보짓만 안 하면 그 상태로 영원히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설령 사고사한다 해도 시신이 죽은 식물이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분해됐을 거라는 얘기다.

그럼 식물에 대해 더 생각해 보자면, 씨앗· 종자라는 건 도대체 뭐가 들어있어서 어떤 작용을 하기에 흙 속에서 적당한 수분과 온도가 주어지면 싹이 돋고 중력을 거슬러 솟아나는지.. 옛날 사람들이 이걸 보고 경이로움을 충분히 느꼈을 것 같다. 동물보다도 반쯤은 무생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식물이 더 대단해 보인다. 광합성은 그냥 경이로움 그 자체이고 말이다.

또한 사람은 제대로 힘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한다지만, 정작 인간이 먹는 소는 평생 식물만 먹고도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는 힘을 내며 덩치와 무게도 더 크다. 결국 원래는 식물만 먹어도 기력을 충분히 낼 수 있다는 뜻인데, 인간이 가축만치 뛰어난 소화 능력이 없다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뭐, 인간은 셀룰로오스를 소화할 수 없으며 여느 초식동물들이 먹을 수 있는 사료나 풀을 먹을 수 없다. 그리고 육식으로 가도 여느 육식동물들처럼 어지간히 상하거나 썩은 잡고기와 내장을 날로 절대 먹을 수 없다. 너무 깨끗하게 산 현대인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유독 식성에 제약이 많고 각종 기생충 감염에도 더 취약한 것 같다. 이런 것 생각하면 생물학 공부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다 지나가 버린 일이 됐군.. -_-;;

4. 이불교

다음으로 좀 유쾌한 얘기로 주제를 바꾸겠다.
라면교도 아니고.. 이거 뭐 ㅠㅠㅠ
세상에 이불교가 있는데 하물며 철도교가 없으란 법은 없다~!

"하 석자는 1986년의 영생교 집회를 다녀온 뒤 청주 지역에 이불교를 창시하였다고 전해진다.
모든 신도들은 이불을 펴놓은 속으로 들어가서 예배를 드린다. 특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 한 시간 이상 예배를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병이 치유된다고 믿는다."


"김 용묵은 2004년 새마을호 열차 객실에서 Looking for you 음악을 네 번, 개인적으로 3000번을 들은 뒤 깨달음을 얻어서 철도교를 창시하였다고 전해진다.
철도교 신자는 교통수단과 기계 덕후이며 역사와 지리에 관심이 많다. 수인선과 동해북부선의 전구간 복선전철 부활 재림을 믿는다."

철렐루야 아멘!

* 참고로 라 "멘" 교는 있다. 종교가 아니라 교량의 건설 형태. 우리나라 강원도 정선에 소재한 태백선 조동철교가 라멘교이다.

5. 테이큰

하루는 교회에서 민 32:23을 읽었다.
"... 너희 죄가 너희를 찾아낼 줄을 분명히 알지니라. be sure your sin will find you out."
거리 설교 때도 설교자의 취향에 따라서는 종종 인용되는 구절이다.
그런데 이것도 테이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회개하지 않으면,
Your sin will look for you. And it will find you. And it will kill you. (약 1:15; 눅 13:3,5; 롬 6:23)
완전 대박..;; 위의 참고 구절들을 찾아봐라. 싱크로율 99%이다~!! ^_^

'테이큰'이라는 제목과 주제로 강단에서 설교가 한 편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절은 눅 17:34-35가 딱이겠다. the one shall be taken.
영적 전쟁을 치르는 very particular set of skills를 논하고,
딸 킴이 납치되었다가 몸값 받고 팔리고 다시 구출되는 것을 죄인이었다가 구원받은 인간의 영적 상태에다가 대조해서 강해하고,
우리는 예수님과 business 관계가 아니라 he's all personal to me가 나와야 된다고 결론을 내면 되겠다.

테이큰은 좋은 영화이다. 영적 교훈이 가득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01 08:32 2017/08/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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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자바, 파이썬 등 프로그래밍 언어를 하나 배워서 초보 딱지를 뗄 정도가 되면,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모르던 때보다 컴퓨터를 훨씬 더 유용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초보 딱지를 뗐다는 건 한 변수로부터 복수 개 + 다중 계층 형태로 된 숫자나 문자열에 접근하는 '복합 자료형(composite type)'을 다룰 수 있고, 함수와 반복문과 재귀호출로 반복 절차를 구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거기에다 Windows API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뭐, C/C++보다 더 고수준 언어를 쓴다면 날포인터(raw pointer)를 써서 수동 메모리 관리까지 직접 다룰 일은 없겠지만, 거기는 거기 고유한 방식으로 리스트나 시퀀스처럼 복합 자료형을 제공하는 게 있을 것이다. 복합 자료형과 실행 시간 조건부 반복 및 분기가 튜링 완전한 계산 모델의 본질이며, 자연어로 치면 그냥 Hello world나 I am a boy를 넘어서 길고 복잡한 안은 문장과 이어진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과 같다.

모든 사람이 전산학과 코딩을 전공으로 삼아 생업 수준으로까지 할 필요는 전혀 없다. 굳이 번듯한 GUI 갖추고 제3자가 쓸 만한 번듯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경지에 이르지는 않아도 된다. 그냥 일상생활에서 내가 당면한 문제를 코딩으로 스스로 해결하는 '자가용' 프로그래밍 스킬만으로 충분하다. 원하는 웹사이트 내용을 크롤링 해서 텍스트를 추출하거나, 방대한 무슨 데이터 파일을 내 입맛에 맞게 변환· 가공하거나, 특정 시간대에나 주기적으로 컴퓨터로 하여금 특정 작업을 수행하게 하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대신, 그런 일을 수행해 주는 유틸리티(특히 매크로 같은..)를 찾아서 사용법을 익히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의 경우는 간단한 건 그냥 직접 만들어 쓴다. 그게 더 빠르다.
옛날 직장에 다니던 시절엔 이튿날 아침 9시 3분 전에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해서 출근 도장을 자동으로 찍게 하는 프로그램을 짜 놓고 퇴근 후, 정작 나는 다음날 느긋하게 출근하기도 했었다. 이 정도 잔머리야 뭐 직업 프로그래머라면 완전 껌(piece of cake)일 것이고, 반대로 회사에서 작정하고 오토의 부정 사용을 단속하려 한다면 키보드 드라이버 차원의 보안 프로그램들로 직원들의 컴을 도배시켜 놓겠지만 말이다.

잡다한 서론이 좀 길어졌으니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는 저렇게 고정된 입력에 대해서 언제나 고정된 답만 출력하는 작업 말고 의외로 재미있고 유용한 분야가 있는데, 바로 난수(random number) 생성을 이용한 시뮬레이션, 무작위 표본 추출 등이다.

이 글은 난수 생성 방법 자체에 대해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말이 나왔으니 잠시 언급하자면, 난수란 그 정의상 등장 패턴을 예측할 수 없으면서(혹은, 몹시 어렵고) 각 숫자들의 등장 빈도에 치우침이 없어야 할 것이다. 파이나 자연상수 같은 유명한 무리수가 파면 팔수록 끝없이 생성하는 소수점들은 난수의 범주에 든다고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품질 좋은 난수를 값싸고 빠르게 많이 생성하는 알고리즘에 대한 수요는 매우 많으며, 이건 정수와 관련된 응용 수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분야이다. 옛날에 CACM에서 Random numbers: good ones are hard to find라는 논문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 거기는 그 정도 퀄리티의 논문이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옛날에(1988년!) 이미 게재되었다는 게 전율이 느껴진다.
시뮬레이션도 좋고 각종 게임도 좋지만 추첨 역시 단순 유흥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람의 인생과 진로를 결정하는 매우 사무적이고 크리티컬한 분야에 쓰인다.

추첨의 가장 간단한 형태는 A명의 사람에게 B개의 물건을 무작위로 배분하거나(단, A>B) 그냥 B명을 무작위로 답정너 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일반화하면 단순히 "당첨 B개 vs 꽝 A-B개"라는 이분법적인 상태를 넘어서 3개 이상의 상태를 배분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추첨을 종이와 연필만으로 수행하는 대중적인 방법 중 하나는 사다리 게임이다. 이 정도 추첨이야 언제 어디서든 필요할 때 하라고 사다리를 무작위로 생성해 주는 스마트폰 앱도 진작에 나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 복잡한 조건을 주고 추첨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조 추첨이 대표적인 예인데, 각 조별로 인원과 성별이 비록 조의 수로 나눠 떨어지지 않더라도 최대한 균일하게 유지돼야 하며, 그 밖에 구성원들별로 다른 내부 속성도 최대한 균일하게 유지돼야 한다.
본인은 고등학교 시절에 반 내지 학교 행사 때 테이블별 인원 추첨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서 실시한 적이 있다. 하긴, 반 편성 자체도 일단 컴퓨터가 뒤섞어 놓은 결과에다가 각 반 담임들이 보정을 해서 뽑는다고 들었다. 가령, 문제아들은 한 반에 몰리지 않고 최대한 서로 다른 반에 찢어지게 말이다.

그 뒤 본인은 최근에는 교회 청년부의 소그룹 기도 모임의 인원을 분기별로 새로 추첨해 주는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이 역시 기본적으로 조별 인원과 성별부터 균등하게 맞추지만, 거기에다가 모임에 활발히 참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도 나눠서 특정 성향의 사람이 한 조에 너무 몰리지 않고 최대한 분산되게 하는 조건을 추가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으로, 동일 집안의 친형제· 친자매· 친남매는 같은 조에 결코 걸리지 않게 했다. 흥미롭지 않은가?

처음에 인원과 성별은 무조건 균등하게 나오게 틀을 먼저 짜서 했다. 그러나 나머지 필터링은 알고리즘으로 구현한 게 아니라 무식한 방법을 썼다. 추첨 결과가 조건을 전체 만족하는지 검사해서 안 그러면 그냥 빠꾸 시키고 될 때까지 추첨을 다시 한다. 그러니 이건 프로그램의 실행 종료와 성공 여부를 전적으로 난수 생성 알고리즘의 품질에다 맡기는 셈이다.

물론 이렇게만 해도 소규모 인원의 조편성 결과쯤이야 운이 나빠 봤자 몇십 번 정도 뺑뺑이 만에 답이 즉시 잘 튀어나온다. 허나, 진지한 프로그램이라면 추첨 결과에 anomaly가 존재하면 조의 인원을 무작위하게, 적절하게 교환하고 보정을 해서 그걸 해소해야 할 것이다. 난수 생성 결과와 무관하게 수행이 유한 시간 만에 끝난다는 게 보장되는 알고리즘으로 말이다.

더 나아가면 이렇게 추첨이라는 computation을 위한 범용적인 '로직 선언형 프로그래밍 언어'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보면 SQL처럼 select A from B where 같은 문법 구조를 가질 수도 있겠다. 10명의 인원에다 무엇을 배당하되 무엇과 무엇에는 무엇이 같아서는 안 되고..
마치 "A와 B의 사이에는 C가 있지 않다. C의 오른쪽에는 D가 있다." 이런 단서들 주고 나서 "A~D의 가능한 정렬 순서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풀듯이 추첨 조건을 쫙 명시할 수 있다.

모든 조건의 충족이 불가능하다면 무식하게 무한 루프에 빠지는 게 아니라 저 조건들만 분석해 보고는 일찌감치 "성립 불가능, 답 없음"이라고 에러가 깔끔하게 튀어나와야 한다.
조건들 중에는 일단 추첨 뒤에 사후 보정을 해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속성 변수들을 균등하게 분할하는 것은 변수의 개수만큼 n차원 공간을 만들어서 거기에다가 차곡차곡 무작위로 숫자들을 채워 넣는 선형대수학 같은 방법론을 동원해서 구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추첨· 배분과 관련된 수학 패키지나 프로그래밍 언어 솔루션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다음으로.. 컴퓨터 추첨은 추첨 알고리즘에 인위적인 조작이 없다는 걸 어떻게 보장하느냐고 결과에 대한 불신이 있을 수 있다.
이걸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3자 참관인을 두는 게 바람직할 듯하다. 그래서 1부터 N회 중 가추첨을 몇 번 할지를 결정하게 한 뒤, 그 횟수를 공언한다. 그리고 그 횟수만큼 그 사람이 실제로 추첨을 돌리고 N회째의 결과를 최종 결과물로 선택하는 것이 모두에게 공정할 것 같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몇 회째에 조작된 결과를 내놓아야 할지 알 수 없으며, 참관인은 자기가 원하는 추첨 결과가 나왔을 때가 아니라, 먼저 약속했던 횟수만큼만 가추첨을 돌리다가 최종 결과에는 승복해야 한다. 그리고 가추첨의 결과도 계속 공개되므로 각 가추첨의 결과가 충분히 무작위하지 않고 이상하다면 이의 제기가 가능하다.

빵 같은 걸 두 사람이 먹게 반으로 나눌 때, 한 사람은 칼로 빵을 나누고 다른 한 사람은 나눠진 결과물 중 원하는 것(= 더 큰 것)을 취사선택하게 한다면 그야말로 두 사람이 모두 만족하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으로 논란을 잠재우는 게 합리적이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29 19:33 2017/07/2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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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랏말씀

이런 프로그램이 과거에 개발되어 나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걸 구해서 도스박스에서 개인적으로 직접 돌려 본 건 굉장히 최근의 일이었다.
얘는 개발 목표와 이념이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어찌 보면 날개셋 편집기의 먼 조상뻘 되는 프로그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얘는 시대를 굉장히 앞서 갔던 프로그램이다. 1993~94년 사이에 개발됐는데 무려 유니코드 1.1 방식 옛한글을 세벌식 글자판과 글꼴로 입· 출력하는 텍스트 에디터이기 때문이다. 비록 에디터로서의 기능은 매우 빈약하고(찾기 기능도 없다!) 글자 모양도 심히 열악하지만 그래도 모아쓰기 출력과 글자 단위 cursor 이동 같은 최소한의 처리는 옳게 지원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문으로 훈민정음 서문이 포함돼 있다. 방점도 자형 자체는 있지만 오늘날 OpenType 규격처럼 글자의 뒤에다가 쳐 넣으면 글자의 왼쪽에다 알아서 찍어 주지는 않는다.

그 옛날에 국내에서는 겨우 2바이트 조합형이니 완성형이니 하면서 논쟁이 진행 중이었을 뿐, 유니코드를 아는 사람은 일부 극소수 계층 말고는 없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유니코드는 최소한 2.0이 제정되고 나서 Windows 98 이후의 시간대는 돼서야 갑자기 툭 튀어나온 물건이다.

하물며 지금 같은 인터넷도 없고 "유니코드가 뭐야? 먹는 거야? 주변에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아무것도 없구만?" 이러던 초창기였으니.. 이 프로그램은 서식이나 레이아웃 기능이 없는 텍스트 에디터임에도 불구하고 저장한 파일을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사실상 자기 자신밖에 없었다.

이건 평범하게 터보 C 공부한 어느 똑똑한 대학생이 뚝딱 만들어서 PC 통신에다 올릴 만한 물건은 아니고, 사실은 부산 대학교 김 경석 교수 연구실에서 개발해서 배포한 프로그램이다. 지도교수는 그 당시 유니코드 위원회의 우리나라 대표였고, 동료 학자들과 함께(아마 국어학자들과도..) 문헌을 뒤져서 옛한글 자모들을 선별했으며 <컴퓨터 속의 한글 이야기>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그 책의 부록 디스켓에 포함돼 있다.

물론, 프로그램의 실제 개발은 제자인 대학원생이 했다.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다들 부족한 시간과 여건 속에서 코딩을 하는 편인데, 이 프로그램은 의외로 화면 비주얼은 신경을 썼는지 VGA 기본 팔레트가 아니라 연보라색 계열의 자체 색상을 쓰고 있다.

완성된 글자들의 모양은 볼품없지만, 이미 찍힌 낱자의 모양이 입력 도중에 다른 성분의 낱자에 의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뭔가 타자기를 쓰는 것 같다. 세벌식 글자판에다 세벌식 글꼴의 묘미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더구나 이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채택한 '세벌식 옛한글' 글쇠배열은 오늘날까지 아래아한글이나 날개셋이 그대로 계승하고 있기도 하다.

유니코드 1.1 옛한글 자모 집합은 그 전 1992년에 발표된 아래아한글 2.0이 사용하는 한컴 2바이트 코드에도 반영된 바 있다. 하지만 아래아한글은 아직 2바이트 완조형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옛한글의 표현 능력이 온전하지 못했다.

굉장히 의외의 사실인데, 이 프로그램은 텍스트를 빅 엔디언 방식으로 저장한다. 다시 말해 UTF-16BE라는 것이다. LE가 아니라. (물론 저 당시에는 UTF라는 계층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UCS2만 있음)
저기서 입력하고 저장한 텍스트는 MS Word처럼 UTF-16BE를 지원하는 소수의 프로그램에서 인코딩을 수동으로 지정해 줘서 연 뒤, 날개셋 편집기에서 한글 형태 정규화를 해 줘야 오늘날 통용 가능한 텍스트 형태로 바뀐다. 저 프로그램이 개발되던 시절에는 지금 같은 U+AC00으로 시작하는 현대 한글 글자마디 11172자가 아직 없었다. byte order mark 같은 것도 없었다.

한편, 나랏말씀은 옛날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지만 문서 저장 확인 질문의 Yes/No가 "예/아니오"가 아니라 "예/아니요"인 게 인상적이었다. 그 시절에 본인은 '아니요'를 그 어떤 프로그램의 UI에서도 보지 못했다. 표준어가 나중에 개정되기라고 했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아니오'가 오랫동안 컴퓨터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잘못 내려온 관행이라고 한다.
아래아한글은 2002부터, Windows은 Vista부터 '아니요'로 바뀌었다. 단, 요즘 프로그램들은 대답 자체에 '저장함/저장 안 함'처럼 동작을 일일이 집어넣는 게 대세가 되어 가다 보니 간단한 "예/아니요"를 볼 일이 예전보다 드물어져 있다.

나랏말씀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내가 더 일찍 알았으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한컴 2바이트 코드 같은 걸 거칠 필요 없이, 3.x보다 더 이른 1이나 2.x 버전부터 유니코드 옛한글 기반으로 개발됐을지 모르겠다.
내 프로그램이 1990년대 초· 중반에 개발돼 나왔으면 도스를 겨냥해서 자체한글 텍스트 에디터(편집기) 내지 도스용 한글 바이오스(외부 모듈), 혹은 간단한 램 상주 키보드 훅킹 유틸(입력 패드) 형태로 나왔지 싶다. 흥미로운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아예 한글 Windows용 3rd-party IME나 영문 Windows를 통째로 한글화하는 시스템은 만들기 너무 어려웠을 것 같고.

비록 내 프로그램은 기본적인 한글 입출력 인프라는 운영체제 차원에서 다 갖춰지고 보장된 뒤에야 개발되어 나왔지만, 그래도 기성 IME들이 지원하지 않는 기능들이 매우 많으며 구현체 차원에서도 Windows IME의 온갖 지저분한 꼼수 동작들을 이 정도로 보정하는 3rd-party IME라는 존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 신의손

본인은 한글 IME/텍스트 에디터뿐만 아니라 고유한 타자연습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지금까지 유지보수 중이다.
타자연습을 처음 개발하던 시절에는 당연히 그 당시 국내에 이미 나와 있던 다른 타자연습 프로그램들을 먼저 쭉 살펴보면서 벤치마킹을 했다.

그런데 그 중 압도적으로 높은 완성도로 제일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꼽자면.. 단연 '신의손'이었다. 지금까지도 이 생각은 변함없다.
20년 전 하이텔 게임 제작 동호회 공모전에서 '삭제되었수다'가 혼자 튀면서 압도적인 1등을 했듯이, 타자연습 프로그램 중에서는 신의손이 지존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상업용 내지 셰어웨어로 만들어도 됐을 퀄리티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디자이너가 따로 없이 1인 개발자의 해골만으로 VGA 16색에서 어지간한 게임에 준하는 저 정도의 미려한 그래픽과 UI를 만든 거라면 정말 보통 실력이 아니다.
게임도 스토리나 설정 같은 게 센스가 철철 넘지고.. (신 중의 신 고무신 ㄲㄲㄲ)
내 경험상 16컬러에서 팔레트를 자체적으로 조작해서 자기만의 독자적인 색깔톤을 만들 정도의 프로그램이라면 비주얼에 신경을 꽤 쓴 프로그램이다. 예전의 도스용 Packard Bell desktop 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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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저런 파란 톤이지만 최고 어려운 마지막 난이도에서는 화면이 전반적으로 시뻘건 톤으로 바뀐다. 우와~!)
도스용이지만 그래도 나온 때가 1995년이다 보니, 보다시피 Windows에서 그 퍼런 키보드 배경 그림(95에서만 존재하던!)과 각종 아이콘과 굴림체 글자를 따서 도스용 프로그램에다 접목한 것도 꽤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식상한 윗줄 따라 치기 말고 좌우/상하 대조 같은 연습 방식을 도입한 것도 얘가 원조였지 싶다.

손가락 모양의 포인터로 각종 버튼과 UI 요소들을 선택하는 GUI 비주얼을 자랑하면서 정작 마우스를 지원하지 않은 건 조금 의외였다. 허나, 키보드 뚜드리는 연습만 하라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굳이 마우스까지 지원할 필요는 없긴 하지..

신의손의 개발자는 백 승찬 씨로 알려져 있다. ('신자'이신 분은 옹기장이 백 승남 씨와 혼동하지 말 것.)
이분은 정말 진지하게 게임 개발자로 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근황을 검색해 보니.. 아아~ P2P 유틸인 프루나도 만들었으며 2010년대부터는 이미 모바일로 전향하여 어썸노트라는 앱을 개발해서 여전히 1인 기업 하고 계신다.

신의손은 그냥 대학교 재학 시절에 만든 것인데, 그 프로그램을 상업용으로 판매하려고 유통처를 알아보고 고생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서 실제로 하지는 못했음)
내가 겨우 날개셋 2.x 갖고 깨작거리던 나이 때 벌써 저런 프로그램을 만들 정도였으니 지금은 뭘 못하겠냐..;;
나는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소한 플랫폼과 외형은 진~짜 바뀐 거 없는 투박하고 공대감성 충만한 프로그램만 죽어라고 파고 있는걸. ㄲㄲㄲㄲㄲ

세상 참 많이도 바뀌었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서 경외감을 느끼는 하루이다.

그러고 보니 옛날 프로그램들 중에는 메뉴를 열어 놓은 상태에서도 단축키가 곧장 동작하는 것들이 있었다. 당장 떠오르는 예는 도스용 아래아한글, PowerBasic IDE처럼.
Windows의 기본 UI는 구조적으로 이게 전혀 지원되지 않고 그 대신 메뉴 자체의 액셀러레이터만이 동작하게 돼 있다.
어디서든이 단축키가 동작하는 게 편하긴 한데 그래도 지금은 바뀐 프로그램에 사용자가 적응해야 할 때이긴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27 08:38 2017/07/2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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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에는 운전석과 조수석이 좌우로 나란히 놓여 있고, 2인 승무를 하는 대형 여객기에도 기장과 부기장은 좌우로 나란히 배치된 조종석에 앉는다. 그러나 복좌식 전투기는 좌석이 앞뒤로 나란히 놓여 있다.

전투기는 겨우 한두 명이 타는 것치고는 덩치가 굉장히 크다. 그 작은 안둘기(An-2)가 조종사 포함 10여 명의 인원이 탑승 가능하고 세스나 172 같은 경비행기도 승용차 정도의 인원은 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시길.
전투기는 나머지 공간에 전부 연료와 무장을 싣느라 덩치가 커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객기 조종석에는 좌우에 모두 조종간이 달려 있던데 전투기의 전방석과 후방석은 어떤지 모르겠다. 일단 기체를 조종하는 건 전방석 파일럿이 하고, 무장이나 폭격 같은 건 후방석 파일럿이 한다고 한다. 그리고 굳이 공격을 안 하더라도 조종사 말고도 사람이 탈 자리 여유분이 적어도 하나는 좀 있어야지..

그런데 전투기를 타고 날기만 했다고 다가 아니다. 진급이나 민항사 진출을 위해서는 전방석 비행 시간을 잔뜩 적립해야지, 후방석은 경력에 거의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서로 작전 수행에 기여하는 비중이 대등하지 않은가 보다.

그리고 각 파일럿들의 누적 비행 기록은 자동으로 전산 처리되어 관리되기라도 하나 궁금하다. 이것도 마치 자동차의 적산거리계처럼 조작 가능성이 있으면 안 될 텐데 말이다.
전방석과 후방석은 마치 학계의 논문에서 주(제1) 저자와 제2저자의 차이와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연구 실적 기여도 같은..;;)

지상의 군용차들은 왕창 튼튼하고 무겁고 힘이 좋겠지만 날렵하지는 않다. 무한궤도를 이용해서 험지와 45도 경사를 오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무슨 제로백이 5초 이내이거나 하지는 않다. 고성능이지만 스포츠카 같은 고성능은 아니다.
하지만 전투기는 자동차로 치면 부가티· 포르쉐 같은 스포츠카의 기동성과 날렵함을 갖췄으면서도 무장도 달렸다. 공중의 그 어떤 비행체도 따라잡고 격추시킬 수 있다. 그러니 멋있지 않을 수 없다. 아가리 파이터, 스트리트 파이터가 아니라 이런 게 진짜 '파이터'이다.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동차나 교통수단에 탑재되는 좌석은 그냥 등받이의 각도 조절(리클라이닝) 기능만 있는 편이고,
과거에 철도 차량 중에 구형 통일호 객차의 좌석은 각도 조절이 없는 대신, 등받이를 밀어서 전후 진행 방향을 바꾸곤 했다.

그런데 기울여서 책상과 등받이를 겸하는 건.. 나름 참신한 디자인 같다.
비행기로 치면 로터와 프로펠러를 겸하는 틸트로터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3.
여러 스포츠들 중 양궁은 우리나라에서 태권도 만만찮게 올림픽 메달 싹쓸이 효자 종목이다. 허나 양궁은 조직이 돌아가는 게 태권도 협회보다 훨씬 더 모범적이며, 긍정적인 쪽으로 대단하고 특이한 면모가 많다.

양궁은 불모지에서 천재 스타가 어쩌다 한번 혼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게 없다. 피겨 스케이팅 김 연아, 수영 박 태환 같은 거 말이다. 마라톤은 이 봉주를 끝으로 아예 명맥이 끊겼잖아.. 그런데 양궁은 그렇지가 않고 그야말로 괴수들이 우글거리는 '인재 풀' 형태이다. 독고다이 스타라는 게 없다.

선수 선발 기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닥치고 오로지 성적이다. 대학원들 중에서 외대 통· 번역 대학원은 학부의 간판· 성적이고 면학 계획서고 그딴 거 다 씹어먹고 오로지 학부 졸업장과 번역 테스트 성적만으로 학생을 뽑는다는데 그런 걸 보는 것 같다.
양궁은 오늘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도 다음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뽑히리라는 보장은 1도 없으며, 실제로 그러하다. 자리를 매의 눈으로 노리고 있는 후배들이 곧바로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선수의 세대 교체도 엄청 빠르다. 올림픽에서 메달 따기에 앞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뽑히는 게 더 어렵다. 축구처럼 물리적인 체력이 딸려서 젊은 후배들에게 밀려나고 은퇴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공부 댓다리 잘하는 애들한테는 수능보다 닥치고 변별력 뛰어난 본고사 학력고사가 더 유리하듯, 한국 양궁 선수들은 비가 오고 주변이 시끄러우면 오히려 "땡큐!" 하면서 상대 선수들을 더 쳐발랐다.
올림픽의 양궁 룰 개정은 과장 좀 보태면 한국의 메달 독식을 좀 어떻게든 견제하려고 머리 굴려 온 내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양궁은 판정 자체도 화살이 과녁 중앙에 얼마나 가까운지만 보면 되니, 다른 경기처럼 심판의 판정이나 비디오 판독 그런 거 아무것도 없어도 된다. 얼마나 우아한 자세로 활을 쏘나, FM대로 활과 화살을 파지하나, 활 겨누기 위해서 상대편 선수와 몸싸움 하다가 반칙 저지른 거 없나 그런 걸 보지는 않으니까!
결과만으로 승부하니 아주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과목으로 치면 뭔가 수학적이기까지 해 보이는 개인 멘탈 스포츠이다. (물론,멘탈 스포츠라고 해서 체력 단련 안 하는 건 절대 아님)

협회는 비리 없고, 선수들은 승부조작이나 약물 같은 그 어떤 부정의 여지도 없는 청정지대이다. 세상에, 국내 체육계에 이런 선순환 시스템이 갖춰진 곳도 있었나? 지금까지 양궁 후원 많이 해 준 대표적인 기업이 내가 알기로 삼성 말고 현대 그룹 계열이다.

펜싱과 검도가 다르고, 군대 사격· 저격과 스포츠 사격이 다르듯, 스포츠 양궁도 전근대 시절에 사냥 내지 전쟁용으로 운용된 활이나 석궁하고는 물리적인 특성이 좀 다른 구석이 있을 것이다.

4.
요즘 전자레인지는 가열(조리)이 끝난 뒤에도 사용자가 뚜껑을 열어서 음식물을 가져갈 때 내부적으로 웽~ 소리가 나는 편이다. 자체적으로 내부 냉각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소리가 나는 건 정상적인 현상이며 오동작이나 고장이 아니니, 안심하고 쓰라고 제품 측면 어딘가에 안내가 돼 있다.

그리고 요즘은 에어컨도 가동을 중단하더라도 바로 꺼지지 않는다. 거의 10~20초 가까이 자체적으로 송풍을 더 하다가 꺼지며, 그 이유는 명확하다. 필터를 좀 건조시켜서 곰팡이와 악취를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하는 일은 서로 다른 가전제품이지만 가동 완료 후에 후처리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5.
길거리에 어떤 가게가 있는데, 그 이웃 또는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 동일 업종의 가게가 또 문을 열었다고 생각해 보자. 이건 일반적으로는 상도덕 위반인 지탄받을 일이라고 여겨지며 욕 먹는다.

그런데 작정하고 동일 업종의 유명 가게들이 몇십 개 이상 특정 장소에 밀집해서 단지를 구성하고 있으면 이게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된다. 전체 매출은 가게들이 제각기 따로 있을 때 이들의 매출의 합보다 더 커진다. 이 많은 가게들 틈바구니 중의 하나로 끼어 봤자 돈을 얼마나 벌겠나 싶지만 상인들은 기를 쓰고 이 단지 안에 입주하려 하며, 혼자 따로 노는 것보다 여기 안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가 상도덕 팀킬이고 어디부터가 밀집 시너지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작은 거짓말은 안 믿어도 큰 거짓말은 선뜻 믿는다거나, 사람을 조금 죽이면 살인자이지만 엄청 많이 죽이면 영웅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지? 세상살이가 마냥 단순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리고 지방에서 무슨 공무원이나 다른 전문직 같은 걸 확보하고 있지 않은 한, 사람들도 일자리와 관련해서 이런 시너지에 편승하려고 기를 쓰고 서울에 가려 하는 것이지 싶다.

6.
지난 봄쯤에 코레일에서 평범한 대졸 신입사원 말고 경력직· 특수 분야 전문직에 대한 채용 공고를 냈었다.
코레일에서 사무직이나 기관사 승무직 말고 웬일로 컴공 출신 프로그래머도 뽑다니, 본인은 그걸 보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기는 전문 IT 업체가 아니니 부서별로 두세 명 극소수만 뽑는다.

보직에 따라 서울 아니면 대전에서 근무하게 된댄다. 직무 분야를 보니 무척 인상적이었다.

  • 서버 프로그래밍 및 API 개발
  • 광역철도 자동 운전을 위한 세부 알고리즘 구현
  • 유지보수 무인화를 위한 무선센서 네트워크 제어 알고리즘 구현
  • 철도차량 소프트웨어 운용 및 관리정책 제언

도로 공사에서는 장기적으로 전국의 고속도로에서 톨게이트(차를 세우는 형태의)를 없애고 스마트 하이웨이로 가려 하듯, 코레일에서는 관심사가 온통 무인 운전에 쏠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광역전철까지도 말이다. 그러니 10년 뒤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저런 사람을 뽑는 거다. 그 대신 승무 쪽은 점점 더 채용이 줄어들 것이고.

그도 그럴 것이 930명이 넘는 사람이 타고 시속 300km로 달리는 KTX도 기관사는 1인인데, 10량짜리 전철이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기관사+차장 2인 승무인 것은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눈 뜨고 보기 어려운 광경이지 싶다. 노조의 입장에서는 안전 운운하면서 1인 승무조차도 반대하고 이런 사고방식을 굉장히 싫어하겠지만 요즘 철도계의 전반적인 기술 수준과 트렌드, 그리고 경영자의 생각은 노조의 생각과 다르다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7.
본인은 7차 교육과정이네 수행평가네, 단군 이래 최저 학력 이러던 일명 이 해찬 세대의 바로 윗세대이다. 아마 6차 교육과정의 끝물을 겪었지 싶다.
1990년대 말의 사정이 그랬고 교육과정 차수가 거의 5~10년에 한 번꼴로 올라가 왔으니 본인은 지금쯤이면 교육과정이 9~10차 정도로 개정됐으려나 으레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현황 정보를 검색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명목상으로는 7차 교육과정 상태이다. 그런데 이걸 끝으로 교육과정에 예전 같은 대규모 메이저 revision을 하지는 않고, 7차부터는 7-1, 7-2 같은 식으로 소규모 수시개정만 하는 듯하다. 단, 지금으로부터 10년쯤 전인 2007년에는 7차 초기의 구조와 다소 동떨어지는 대규모 개정이 있었던가 보다.

이런 넘버링 방식을 보니 현실의 다른 분야에서도 많은 예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Windows의 경우 2015년에 나온 10을 끝으로 브랜드명이 바뀌는 대규모 버전업을 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웹으로 수시 패치만을 배포한다. 뭐, 1주년 업데이트라고 해서 예전의 서비스 팩에 준하는 대규모 업데이트가 있었으며 지금의 Windows 10은 출시 직후의 10과는 이질감이 굉장히 많아지긴 했다.

하지만 브랜드명을 매번 생각해 내는 것도 한계가 있고, 또 매번 운영체제의 비주얼을 바꾸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지 결국은 마소의 정책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게 흥미롭다.
경쟁사의 제품인 macOS는 클래식이 1부터 9까지 올라갔다가 최신 버전은 번호를 10으로 굳혀서 OS X라는 명칭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지금은 X를 떼어냈으니 Windows보다 더 먼저 Windows 10 같은 상태가 된 셈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뿐만 아니라 헌정 체제도 제6공화국 아래에서 노 태우로부터 박 근혜에 이르기까지 n기 정부이다.
6공화국 이후로 설마 옛날의 군사정권이나 유신 같은 급의 거대한 개정· 개헌은.. 글쎄, 예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통일(멸공이든 적화이든) 정도의 엄청난 이벤트가 발생한 뒤에나 가능하지 싶다.

단순히 대통령 임기나 중임 관련 규정이 바뀌는 것(제10차 개헌)으로는 공화국 번호(제7공화국!)가 올라가지 않을 것이고, 그나마 그것마저도 확실하게 된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은 헌법이 고치기가 굉장히 어렵게 돼 있기 때문이다.

잡소리가 굉장히 길어졌다만, 날개셋 프로그램들도 9.x 이후부터는 뭔가 이런 '작은 버전업'을 선택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사실, 타자연습은 오래 전부터 단순 소수점 기반의 버전 넘버링만으로 한계가 있는 처지에 이르렀다. 3.x 초반에 지금의 프로그램 뼈대는 거의 완성됐고 가까운 미래에 프로그램의 기반이 싹 바뀌고 기능이 크게 추가될 가능성은 없다.

그러니 3.x부터는 0.01씩 올리다가 0.1씩 올리다가 하면서 결국 3.7에 이르기는 했지만 번호가 좀 부자연스럽다.
더구나 얘는 자신의 변화 없이 입력기의 버전업만으로 같이 업데이트되기도 했는데 이런 것까지 미세하게 기술하기가 어려웠다.
교육과정 번호를 생각하니 이런 생각도 연달아 떠오르더라.

Posted by 사무엘

2017/07/24 08:28 2017/07/2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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