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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폭염이 극심했던 올여름 8월 동안 전국 이곳저곳을 누볐다. 바다와 계곡에서 두루 물놀이를 했다.

1. 홍천 아름다운마을

지난 광복절 연휴에 교회 수련회를 여기로 다녀왔다. 행정구역 상 홍천이지만 동쪽 끝의 내면 소재여서 인제· 강릉과 가까웠다.
3주가 넘게 지속된 열대야 때문에 고통받던 와중에.. 여기까지 먼 길을 운전해서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새벽 최저 기온이 겨우 18~19도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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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숙소 근처에는 이렇게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 갈 것도 없이 가는 길에도 곳곳에 강과 계곡이 많이 보였다. 거기서 물놀이를 하는 일행도 눈에 띄었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나도 몇 번이고 차를 세우고 물놀이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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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구간은 성인 남자의 가슴과 목까지 찰 정도로 물이 꽤 깊었다.
물놀이를 정말 원없이 했고, 미리 챙겨간 말통에다 이 맑은 물을 잔뜩 담아서 40~50리터 가까이 채웠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 호박이들 농업용수로 쓰였다.

그나저나, 수련회 강의 주제가 "약속의 땅 이스라엘"이었던지라.. 준비 찬송으로는 '여호와 하나님',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면서', '나는 순례자, 낯선 나라에'처럼 뭔가 이스라엘스러운 곡을 골랐다.
그리고 갈 때와 올 때 모두 서울-양양 고속도로의 명불허전 상습 정체 구간(화도-서종-설악)의 지긋지긋한 위력을 체험했다.

2. 강원도 양양

교회 수련회는 여친과 함께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친과는 두 주쯤 뒤인 8월 말에 바다로 여행을 따로 다녀왔다.
양양과 속초 사이, 대포항과 물치 해수욕장보다 약간 남쪽에 있는 모텔방을 잡았다. 여기는 7번 국도에 바로 붙어 있고 동해 해변도 바로 내려다보여서 경치가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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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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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변에도 누군가가 텃밭 일구고 호박을 잔뜩 키우고 있어서 몹시 반가웠다. 동업자가 있구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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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비가 내렸고 하늘이 우중충했지만.. 기온으로나 수온으로나 물놀이를 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본인과 여친 모두 물에 들어갔다.
다만, 날씨가 날씨여서 그런지 파도가 강한 편이었다. 하반신 이상 물이 차는 곳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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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으로 이런 오글거리는 말을 하기는 좀 뭣하지만.. 바다는 남자의 가슴을 흥분시키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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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로사 커피점이 우리나라 브랜드라는 거, 그리고 본점이 강릉에 있다는 거.. 이 두 가지를 처음 알게 됐다. 지난 6월 에디슨 박물관에 이어 또 다른 강릉 명소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 이런 곳에서 여친과 함께 커피와 후식을 먹어 보니 아주 운치 있었다.

오후에 돌아올 때는 오랜만에 영동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이때가 8월 29일이었는데, 일본의 무슨 태풍 때문인지 강릉 일대에서는 정말 앞이 안 보일 정도의 물폭탄 폭우가 쏟아졌었다. 대관령 서쪽에 들어서가 날씨가 거짓말같이 바뀌어서 맑아졌다.

영동 고속도로는 2000년대 초에 대대적으로 선형개량이 됐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더 나중에 만들어진 서울-양양보다는 선형이 열악해 보였다. 급커브와 급경사가 많고(물론 고속도로 설계 기준에는 맞췄겠지만), 일부 내리막은 시속 80 구간 단속까지 있었다. 세월의 격차와 기술력의 차이가 느껴졌다.

3. 영종도 왕산 해수욕장

8월 31일, 동해를 다녀오고서 이틀 뒤 주말엔 서해 끝자락인 영종도의 왕산 해수욕장을 다녀왔다. 을왕리의 바로 옆 이웃인데, 여기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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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이런 분위기..
한낮에 갔더니 밀물이어서 물이 많고 나름 파도도 쳤다. (동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사람들도 바글바글 엄청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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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방수빽에다가 전화기를 집어넣은 채로 사진을 찍었다. 이게 있으니 소지품 걱정을 할 필요 없고, 해수욕 중에도 전화기를 늘 몸에 지닐 수 있어서 좋았다만.. 그 대신 사진의 화질을 많이 희생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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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님의 초상권을 침해하는 사진은 아니라고 판단되어 그대로 수록한다~~

* 번외편: 길고양이

여친님은 나처럼 회사 다니는 직장인이 아닌 관계로, 작업실 내지 스튜디오를 따로 구해서 평일엔 거기서 일한다.
거기 주변에는 닝겐뿐만 아니라 주인 없는 길고양이가 여럿 돌아댕기는 것 같았는데.. 어쩌다 보니 아주 귀엽고 애교 많은 검은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치게 됐고 얘와 친해져 버렸다. 요것도 지난 8월에 있었던 주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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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요놈이다.
아니, 여느 야생 길고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한테 대뜸 다가와서는 발등에다가 얼굴을 부비고, 벌렁 퍼질러 눕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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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 작업실에도 몇 번 초대해 줬더니 거기도 돌아다니면서 자기 영역 표시를 하고, 벌렁 나자빠져서 행복한 표정을 짓더라. 딴 고양이 냄새가 전혀 없는 아지트를 발견했으니 오죽 좋겠어?
이제는 우리 커플의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한다. 내가 아침이나 저녁에 찾아가서 "냐아옹~" 흉내를 내면 걔도 야옹 거리면서 나온다. 집으로도 쭐래쭐래 따라온다.
여느 고양이한테는 이러면 그냥 경계하고 달아난다. 절대로 얘처럼 반응하지 않는다. 진짜로 집고양이였다가 버려졌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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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반려묘로 키워야 하나 싶은데.. 일단은 밥만 하루에 한두 번꼴로 주고는 밖에 도로 내보낸다. '츄르'라는 간식을 고양이가 그렇게도 좋아한다고 하는군..
얘는 맛있는 참치나 닭가슴살만 먹고 다른 평범한 사료는 남기는 '편식'까지 할 줄 알더라. 주변에 다른 캣맘들도 있으니 대놓고 밥을 쫄쫄 굶지는 않는 듯하다.
그런데 얘는 꼬리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사고나 학대를 당해서 잘리기라도 한 건지.. 그리고 사료에 비해 물을 너무 안 마시는 것 같다.

작업실 주변에 개집.. 대신 고양이집을 하나 마련해 줬는데, 얘가 거기에 들어가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겨울이 되고 날이 추워진 뒤에 저 안에다가 핫팩 하나 던져 주면 어떨까? 그러면 거기서 밤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길고양이들이 겨울엔 따뜻한 곳을 찾아서 갓 시동 꺼진 자동차의 엔진룸 안까지 들어간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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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 작업실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심지어 저 아이의 친구인 듯한 다른 고양이도 가끔 목격되곤 했다. 얘는 꼬리가 있고, 쟤보다 야위었다는 것만 빼면 둘이 색깔이 완전히 동일하고 빼닮았다.
얘는 작업실 근처까지 온 적은 없어서 우리가 직접 밥을 주지는 못했다.
뭐 이런 일이 있었다~~ ^^

Posted by 사무엘

2024/09/15 08:35 2024/09/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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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편

성경의 시편은..

  • 하나님 쪽은 내가 죄 때문에 너무 더러워서 차마 나아가기가 민망하고
  • 인간 쪽은 당장 악인 원수들로부터의 해코지가 두렵고..

이렇게 양측으로부터 샌드위치 신세가 된 사람의 처절한 고뇌가 많이 담겨 있다.

물론 시온이 어떻고 땅 상속이 어떻고 하는 건 구약 관점의 보상 얘기이다.
원수에 대한 저주나 보복이 종종 언급되는 건 하나님 관점 내지 재림 관점에서이다. 신약 크리스천의 행실 교리로 참고할 사항은 아니다.

허나, 신약 크리스천도 정규분포 안에 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 전쟁을 치른다면.. 저렇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낀 시편 기자의 심정을 거의 똑같이 경험하게 되는 게 정상이다. 시편 얘기가 지금이라고 해서 별개가 절대 아니다.

죄에 대해서 "그래서 뭐 어쨌다고? 어차피 남들도 다 똑같이 하는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잖아? 니 혼자 도도하게 굴어 봤자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이렇게 치부하는 게 아니라~~~
"이런 죄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구나~! 이런 죄를 지은 대가가 누군가의 피흘림과 죽음이구나! 이런 더러운 마음 상태로 어찌 주 앞에 나아갈 수 있으리요?"

이렇게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하는 거.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리면서 1천 일보다, 주와 함께 초막에서 단 하루가 더 낫다~~ 금은보화보다 더 낫다"
이러는 그 심정, 그 영성을 시편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이건 정말 평범한 상태로 기록할 수 있는 시가 아니다.

복음서 이후 신약 성경의 상당수를 바울이 기록했다면, 시편 대부분은 다윗이 기록했다.
왜 하나님이 다윗을 사용하셨는지(한때 간음 살인이라는 흉악한 죄를 지었는데도), 반대로 사울이 인간적인 평가 대비 하나님이 왜 학을 떼 버리셨는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다.
이래서 성경은 겨우 인간의 생각대로 막연하게 “그냥 우리끼리 차카게 살자” 스타일로 써 갈긴 책일 수가 없는 것이다.

2. 찬송가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들 중에는 작사자가 주변 가족, 친지, 연인을 질병이나 사고로 잃고 나서 극심한 슬픔과 고난 가운데 가사를 지은 것이 여럿 있다.

(1)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 내 영혼 평안해 (호레이쇼 스패포드)
작사자의 4살짜리 아들이 병으로 죽고, 나머지 네 딸들을 여객선 충돌 사고로 모조리 익사.. (19세기 말. 인제 증기기관 여객선이란 게 처음으로 등장했던 시절임)

(2)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조세프 스크리븐)
작사자의 약혼녀가 결혼식 바로 전날에 강물에 빠져 익사함. 그 뒤 모친이 중병에 걸려서 위독하다는 소식까지..

(3) Near to the Heart of God (Cleland B. McAfee)
작사자의 어린 조카딸 2명이 디프테리아에 걸려서 죽음 (19세기 말, 이런 후진국형 전염병이 아직 현역이던 시절)

(4) 그 날 다가오네 - 얼마나 영광스러운 날일까 (제임스 힐)
작사자의 장모가 갑자기 근육마비에 걸리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남

이것 말고도 다른 예들이 또 있겠지.
본인은 교회에서 집회 전 준비찬송을 인도할 때 가사 내용이 서로 비슷한 거, 조나 박자가 비슷한 것, 단조로만 이뤄진 것, 혹은 뒤에 이어질 설교 및 강의 주제와 관련 있는 것, 후렴에 ‘주여’가 나오는 거, 같은 작사-작곡자 쌍인 것 이런 것들을 묶어서 편성해 봤다.

그랬는데 한번은 "작사자가 가족· 친지를 잃고서 지은 곡들"만 골라 보니 저렇게 아주 그럴싸한 조합이 나왔다. 심지어 카테고리도 기도와 간구, 위로와 평안, 천국과 재림 이렇게 다양하다.
물론, 그 특성상 즐겁고 경쾌한 곡은 별로 없고 장송곡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저런 찬송가를 굳이 장례식장에서만 불러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3. 여담

- 성경에 주석 성경이 있다면 찬송가에는 해설 찬송가가 있다. 원래 영어가사라든가 이 곡이 만들어진 계기와 배경과 사연, 작사자와 작곡자에 대한 신상 정보 같은 것들을 알면 그 곡에 대한 애착이 더 생길 수 있다.
물론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검색으로 저런 것들을 대번에 다 찾아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 요즘 사람들은 아예 19~20세기 클래식 찬송가가 아니면 마커스니 어쩌구 하는 2010년대 이후 CCM이다.
그 사이에 낑겨 있는 1980~90년대 초창기 CCM/복음성가는 차차 잊혀지고 못 들어 본 세대가 늘어나는 것 같다. =_=;;

- 성경에 따르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라", "하나님 사랑" 그 다음에 "이웃 사랑"이다. 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 자선을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 발에다가 향유를 끼얹어 버린 것은 허비 낭비가 절대로 아니었다. 정반대.. 주님이 귀하게 받으시는 경배로 인정됐다~!!

-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스도와 아그립바(행 26:24,28)의 반응은.. 오늘날에도 복음을 거부하는 불신자들의 전형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정말 동일한 패턴이다.

- 성경에 기록된 기도들 예시만 갖고도 설교나 강해를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다니엘서 9장이나 사도행전 4장은 고난이 깃든 가운데 정말 기도를 예쁘게 잘한 것이다. 왕상 8 솔로몬의 기도도 이런 범주에 들까?
그에 비해 삼손이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기도는.. 그냥 안습하고 처절한 기도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13 08:35 2024/09/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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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동차 글이 부쩍 늘었군. 이런 거 한데 정리하는 게 재미있다. 한번 꽂혔을 때 몽땅 다 정리하고 글을 마무리 지으련다. =_=;;;

1. 시동

자동차 엔진은 타이어 구동축은 물론이고, 발전기나 에어컨 공기 압축기, 파워 핸들과 브레이크(!!!), 냉각수 펌프 등 동력을 필요로 하는 여러 쇳덩어리 payload들이 한데 연결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돌리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강한 토크가 필요하며, 동력 공급이 끊기면 관성이고 뭐고 없이 금세 멈춰 서 버린다. 자동차 엔진 크랭크축은 선풍기 날개 회전축 같은 물건이 아니다.

자동차는 시동을 걸려면 처음에 그 무거운 크랭크축을 외부에서 돌려 줘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4행정을 반복하면서 그 시동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일정 속도 이상 '빠르게' 돌기도 해야 한다.
그러니 차 시동을 걸 때는 순간적으로 꽤 많은 힘이 필요하며, 배터리의 경우 꽤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크랭크를 수동으로 죽어라고 돌려서 시동을 걸던 100년 전 자동차나 옛날 경운기를 생각해 보시라.

옛날에 배터리가 방전된 수동 변속기 차량을 밀어서 시동 걸 때도.. 잘못해서 박았다가는 큰일 날 정도로, 세우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빠르게 밀어야 했다. 최소한 사람이 다리로 달리는 것과 비슷한 속도이다. 주차된 차를 겨우 밀어서 옮기는 정도하고는 급이 다르다.

2. 엔진 과열

인간이 발명한 동력 기계 중에 자동차 내연기관은 엄청난 괴력을 내서 수 톤에 달하는 차량을 앞으로 굴려 준다.
한편, 에어컨 실외기는 공기를 압축해서 냉매가 빼앗은 실내의 열을 밖으로 내보내 준다.
다들 물리학적으로 '열기관'이다 보니, 열을 수반하고 열을 취급한다.

40도에 가까운 한여름 땡볕에 이런 기계들을 빡세게 굴리다 보면.. 곧 과열되고 퍼지지 않을지 우려될 때가 있다.
하지만 얘들은 처음부터 인간보다 훨씬 더 뜨거운 곳, 더운 곳에서 동작하게 만들어진 물건이다.
지금이 기계 품질이 들쭉날쭉하던 쌍팔년도 시절도 아닌데, 통상적인 폭염? 40~50도쯤은 기계 동작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자동차 엔진의 냉각수는 애초부터 적정 온도가 무려 85도에서 100도대이다. 사람이 일사병 걸렸을 때 냉찜질용으로 쓰는 냉수가 전혀 아니다.
컵라면을 끓일 수 있고 사람 피부에 닿으면 바로 화상을 입을 정도의 물이 엔진을 식히는 데 쓰인다. 이게 단백질 생체와 금속 기계의 차이이다.

엔진오일이나 냉각수가 갓 시동 건 직후의 너무 차가운 상태이면 오히려 그게 엔진에 안 좋다.
130~140도는 돼서 냉각수가 펄펄 끓고 증기가 나올 정도가 돼야 엔진 과열 위험 징조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냉각수가 새거나 냉각 계통이 통째로 고장 났을 때나 발생한다. 그러면 뭐 한여름이 아니라 한겨울이라도 차 엔진이 과열되고 퍼질 수 있다.
단순 폭염 속에서 통상적인 주행만으로는 절대로 저렇게 과열되지 않는다. 한여름에는 엔진보다는 타이어나 브레이크의 과열을 더 신경 써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주행풍을 받을 수 없는 정지 상태에서 엔진 공회전을 몇 시간씩 시키면 역시 엔진이 과열될 수 있다. 풀악셀만 차에 무리를 주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수랭식이지만, 그 냉각수를 식힐 때는 주행풍(공랭)에도 어느 정도 의존하기 때문이다. 내연기관 자동차에 라디에이터 그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즉, 자동차를 원래 쓰라는 용도대로만 잘 쓰면 과열 걱정 안 해도 된다.

자동차 계기판의 냉각수 온도계는 온도를 곧이곧대로 표시하는 게 아니다. 어지간해서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게 만들어져 있다. 진짜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운전자의 주의를 끌지 말라고 말이다.
(사실, 연료계나 속도계도 이런 식의 보정이 살짝 들어가 있다. 자동차 계기판에서 언제나 현재 상황을 100% 있는 그대로 표시하는 유일한 계기는 엔진 회전수 타코미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음으로 에어컨 실외기도.. 땡볕에서 더 더운 공기를 내보내느라 고생 많아 보이지만, 어설프게 식혀 주려 애쓸 필요 없다. 바람이 잘 빠져나가게 주변에 통풍만 신경 써 주면 된다.
실외기 주변이 꽉꽉 막혀 있으면 그거야말로 사람이 배설 배변을 제대로 못 해서 몸이 붓고 탈나는 것과 같은 심각한 상황을 야기한다.

그리고 특히..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바람? 폐열을 이용해서 뭐 딴 기계를 돌리고 무슨 활용을 하겠다느니 그런 헛짓이나 절대 하지 말고, 그런 데(사업 아이템????)에 속지 마시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짓일 뿐만 아니라, 그거 갖고 뭔가 유의미한 동력이 나올 정도이면 에어컨 실외기의 동작이 심각한 지장을 받는 상태일 것이다!!

3. 과부하

인간이 발명한 모든 교통수단들은 0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비해, 100에서 2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길다.
가속이 더 안 되는 이유는 일단은 공기 저항이 급격하게 너무 커지기 때문이고, 그리고 엔진도 점점 힘이 부치면서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엔진의 배기량은 제한돼 있는데 거기에다 연료나 공기만 무식하게 퍼 넣는다고 해서 그에 상응하는 출력이 나오는 게 아니다. 엔진 부품이 못 버텨서 퍼지고 터질 가능성이 높아지며, 애초에 연소가 제대로 안 되고 과열도 되는 등 온갖 부작용이 터진다.

내연기관들은 일정 회전수 이후부터는 토크가 떨어진다. 그리고 회전수가 더 올라가면 토크의 감소폭이 더 커지고, 이제는 토크에다가 회전수를 곱한 출력조차도 오히려 더 떨어지게 된다.
자동차 타코미터를 보면 최대 출력을 찍고 역으로 출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회전수부터가 레드존으로 지정돼 있다. 휘발유 승용차는 보통 6000rpm 이후부터이다.

4. 바퀴의 차이

철도 차량의 쇠바퀴는 고무 타이어와 달리, 공기압을 관리하는 게 없다.
안 그래도 쇠와 쇠 끼리는 마찰이 작은데, 굴러가면서 바퀴 내부의 마찰로 인한 운동 에너지 손실도 없다. 바퀴의 부피나 형체가 달라지는 게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도 차량은 평지에서 한번 가속되고 나면 아주 길게 오랫동안 타력(관성) 주행이 가능하다. 자동차보다 더 적은 엔진 출력으로도 그 무거운 객차와 화차를 줄줄이 꿰어서 견인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그 대신 철도는 오르막 경사에 자동차보다 훨씬 더 취약하고, 길 상태에도 더 민감하다. 레일 표면이 자동차 도로 정도로 울퉁불퉁 까끌까끌하면 뭐.. 바퀴가 못 견디고 작살이 날 것이다.
그런데 도시철도 중에는 고무 타이어로 레일 위를 달리는 철도 차량도 있다. 얘는 연비가 쇠바퀴 정도로 좋지는 못하지만 승차감이 좀 더 좋고 접지력도 더 좋아서 더 높은 경사도 오를 수 있다.

아무쪼록 덜컹덜컹 이음매 없는 레일과, 켜질 때 깜빡거리지 않는 형광등은 둘 다 2000년대 이후 비슷한 시기에 대세가 된 것 같다.

5. 서스펜션

도로건 심지어 철길이건 교통수단의 바퀴가 굴러가는 길들은.. 모든 구간이 한 치의 요철이나 기복이 없이 매끄럽고 반들반들 평평한 이상적인 평면이 아니다.
그러니 비가 잔뜩 내리기만 해도 빗물이 고이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생긴다. 제아무리 쇠로 된 레일이라 해도, 제아무리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됐다고 해도 예외가 없다.

시속 100 이상의 고속 주행 때는 아주 미세한 요철이라도 차체를 큰 충격과 함께 들썩거리게 만든다. 탑승자에게는 당연히 엄청난 불쾌감을 야기한다.
레일의 경우, 매일 연마를 하지 않으면 그 다음날에 열차의 승차감이 바로 차이가 날 정도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육상 교통수단에는 바퀴로부터 전해진 충격을 흡수하고 완화하는 서스펜션, 쇼바=_=라는 현가장치가 있다. 이건 자동차뿐만 아니라 철도 차량, 심지어 마차나 수레에도 있고 그 느린 자전거에도 어떤 형태로든 있다.
이게 없으면 차량은 조금만 빨리 달리다가 조금 요철을 만나면 탑승자가 들썩 떠 버리고.. 과속방지턱을 조금 빠르게 넘었다가는 앞바퀴가 통째로 들려 올라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체에서 서스펜션의 중요성은 생각보다 크다.

서스펜션은 그 특성상 탄성이니 스프링이니 하는 장치와 접점이 있다. 다만, 소형 승용차의 서스펜션과 대형 트럭· 버스의 서스펜션은 방식이 다르다.
둘은 엔진도 다르고(휘발유 / 디젤), 브레이크도 다르고(브레이크액 / 에어, 디스크 / 드럼), 그것처럼 서스펜션의 종류도 다른 셈이다. 다만, 대형차에 적용되는 서스펜션은 저렇게 부품이 빠지고 부러지는 것에 더 취약한 것 같다.

쌍팔년도 시절 옛날 차들은 2000년대 이후 요즘 자동차에 비해 유리의 썬팅이 더 연해서 차량 내부가 더 잘 보이고.. 그리고 또 서스펜션도 더 물렁물렁 들썩들썩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라면 스프의 맛이 미묘하게 바뀌었다는 식의 얘기 같은데, 이런 것들도 옛날 차와 요즘 차가 마냥 같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물렁물렁할 때와 딱딱할 때의 장단점이 있다고 들었는데 난 자세히는 잘 모르겠다.

6. 원격운전

컴퓨터에서 완전 자동 번역과는 별개로, 단순히 '컴퓨터 보조 번역 CAT' 기술이란 게 있다. 실제 번역은 사람이 하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들이 방대한 텍스트를 나눠서 번역할 때 각종 번역 용어들이나 번역 문체가 일관되게 유지되게 체크 정도는 컴터가 해 준다.
그것처럼 자동차도 완전 자율주행 이전에 크루즈 컨트롤이나 차로 유지, 정체 구간에서의 가다 서기 반복, 아니면 주차 같은 일부 덜 위험한 노가다성 운전 정도만 사람을 보조하는 기술이 개발돼 있다.

그런데 원격운전..?? 이건 지향하는 바가 자율주행과는 좀 차이가 있지만 뭔가 그럴싸해 보인다.
전투기도 무인 원격조종을 하는 세상인데 자동차 원격운전이야 당연히 하위호환으로 가능할 듯하다.

운전자가 현장까지 굳이 가지 않고도 오피스에서 남의 차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자동차(신차/렌터카) 탁송이라든가, 대리운전 쪽은 혁신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운전자 인증, 보안이나 신뢰성 문제 같은 것만 해결되면 말이다.

컴터에서 '원격 데스크톱 접속 허용' 옵션을 켜듯이.. 차에도 그런 걸 켠다. 자동차가 일종의 서버처럼 되는 거다.
인증된 사용자 "xxxx가 님하의 자동차를 운전하고자 합니다. 허용하시겠습니까?" 이거 동의해 주면 끝.
대리 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고, 대리 기사도 힘들게 발품 팔 필요 없다.

아니면 자가용이 아니라 정규 노선만 다니는 대중교통· 영업용 차량 한정으로만 원격운전을 한다면? 그건 뭐 배터리 전기차가 아니라 가공전차선 트롤리버스나 다름없는 운용이니 더 쉽게 정착 가능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10 08:35 2024/09/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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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태 이상

자동차는 오랫동안 정비를 받지 않으면 주행 중에 여러 형태로 외형적인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

  • 방향지시등 램프가 일부 고장 나면 릴레이들에 걸리는 전기 저항이 줄면서 깜빡거리는 주기가 몹시 짧아진다. 일부 버스나 트럭이 그런 상태가 된 것을 본인은 몇 번 본 적이 있다.
  • 급브레이크가 아닌데 제동 중에 하이톤의 ‘끼익~’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건 브레이크 패드가 오늘 내일 하는 상태라는 뜻이다. 저런 소리가 안 나야 정상이다.
  • 엔진 공회전 중에 ‘두두두두.. 드드드드~’ 소리가 깊고 강렬하게 들리는 것은 노킹 현상이며 이건 심각한 문제이다. 조속히 엔진 정비를 받아야 한다.
  • 엔진 작동 중에 주기적으로 하이톤의 ‘휙휙휙.. 끌끌끌..’ 소리가 들리는 것은 팬 벨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면 바퀴 말고도 엔진의 동력에 의지해서 동작하는 발전기, 에어컨 공기 압축기, 냉각 라디에이터 등의 동작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본인이 지난 10여 년 동안 내 차를 기준으로 겪었던 상태 이상과 조치 내역은 다음과 같다.

(1) 언제부턴가 시동이 되게 힘겹게 끼룩~끼룩끼룩 간신히 걸렸음. 그로부터 며칠 뒤, 아예 시동 안 걸림.
==> 배터리 교환. 3~4년 정도 썼는데, 긴급출동 기사의 말에 의하면 전압이 이미 위험 수준으로 팍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2) 핸들을 놓고 가만히 주행하고 있으면 핸들이 좌우로 덜덜 떨렸음. 차가 대놓고 삐딱하게 치우쳐서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 타이어 교환. =_=;;;
저 증상만을 해결하는 게 목적이었으면 휠 얼라인먼트 정도만 해도 충분했을 듯하다. 하지만 그 당시 차 구매 이래로 타이어를 한 번도 교환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가게 아저씨의 말대로 좀 호구짓에 응해 줬다. 어쨌든, 타이어를 다 교환했더니 문제도 해결됐다.

(3) 처음 출발하면서 기어가 차차 고단으로 올라갈 때 꿀럭꿀럭 변속 충격
==> 큰맘 먹고 변속기 오일을 최초로 교환하고 나니 증상이 싹 없어졌다.
참고로 엔진 오일을 교환해도 처음에 잠깐 동안은 이런 현상이 없어졌다. 하지만 곧 재발함.

(4) 시동이 걸린 직후에 엔진 회전수가 불안정하고 부들부들 떨림. 조금 지나면 안정화됨
==> 점화 플러그를 교체하니 문제 해결.

(5) 날씨 더울 때 차 시동 건 직후에 에어컨이 찬바람이 너무 안 나옴. 한참 주행을 많이 해야 나옴
==> 찬바람이 전혀 안 나오는 건 아니니 냉매 쪽 문제는 아니고.. 그냥 압축기의 노후 고장 문제였다. 이것도 차를 구매하고 나서 처음으로 전면 교체를 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다만, 본인은 직접 몰았거나 탑승했던 자동차에서 엔진 과열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겪거나 목격한 적이 없다.

2. 배터리 방전

개인적으로는 자동차 빳데리의 방전도 화상처럼 경미한 거, 중대한 거 구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 빳데리의 출력 부족 때문에 스타터 모터가 시동 유지 속도를 만족할 만치 돌지 못하는 건 1도. (끼룩끼룩끼룩끼룩..)
  • 출력이 더 약해져서 스타터 모터가 아예 돌지 못하고 까탁까탁 더 거칠고 기분 나쁜 소리만 내는 건 2도..
  • 아예 전기가 완전히 나가서 차내의 모든 전기 공급이 끊기고 차의 이모빌라이저도 동작하지 않고, start로 돌려도 아무 반응이 없는 건 3도.

본인은 내 차에서 저 세 현상을 모두 겪어 봤다. ㄲㄲㄲㄲㄲ

그리고, 모든 화학 배터리들은 실제 사용 여부와 별개로 저온에 취약하다. 전기차는 -10도 이하의 혹한에서 과연 잘 켜진다는 보장이 있을까?
마치 수도관이 혹한 속에서 동파되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 평소에 수돗물을 약하게 틀어 놓듯, 배터리가 혹한 속에서 퍼지는 걸 막기 위해 평소에 전기를 써서 열선 같은 걸로 배터리를 보호해야 하지 싶다.

3. 제동 이상

(1) 브레이크 계통이 너무 열받으면 베이퍼 락(vapor lock) 또는 페이드(fade)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전자는 브레이크액이 과열된 나머지 기화해 버려서 사람이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게 브레이크로 전해지지 않는 현상이다. 마치 브레이크가 기계적으로 망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페달이 쑤욱 깊게 밟히는데.. 제동이 발생하지를 않는 거다.

대형 버스나 트럭은 브레이크액이 아니라 압축 공기를 매체로 사용하기 때문에 베이퍼 락 현상으로부터 자유롭다. 그 대신 브레이크 페달을 너무 자주 밟아서 압축 공기의 소모량이 충전량을 상회하게 되면 언젠가 제동력이 고갈되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차량들은 계기판에 브레이크의 압축 공기 게이지가 반드시 존재한다. 이게 엔진 냉각수 온도계에 맞먹는 매우 크리티컬한 정보이다.

(2) 페이드 현상은 그냥 브레이크 패드 등의 제반 부품들이 달궈져서 마찰이 작아지고 제동력이 감소하는 현상이다.
이건 디스크 브레이크건 드럼 브레이크건, 액압식이건 압축 공기이건 보편적으로 발생 가능한 현상이다. 압축 공기의 고갈이나 베이퍼 락 같은 더 심각한 현상의 전조 증상으로 먼저 발생하는 편이다.

4. 주행 이상

여기서 말하는 주행 이상이라는 건 엔진이나 전동기의 기계적인 고장과는 전혀 무관한 별개의 얘기이다. 그냥 차가 주행하는 것만으로 핸들과 브레이크로 통제가 안 되어 위험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빙판에서는 차가 미끄러지기 쉽고, 블랙아이스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아주 위험하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위험 요인이 더 있다.

(1) 비행기는 활주로를 고속으로 질주할 때 양력을 받아서 하늘로 뜨라고 옆구리에 날개가 달려 있다. 그러나 자동차, 특히 스포츠카 같은 건 정반대.. 시속 200~300의 고속으로 달리더라도 양력이 절대로 생기지 말라고 뒷쪽에 '스포일러'라는 공기 흐름 제어 장치가 달려 있다. 자동차가 떠 버리면 조향력과 접지력을 상실해서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 핸들 조작 중에 차량의 뒤쪽이 접지력을 상실해서 좌우로 요동치는 것.. 일명 fish tail (피시테일) 현상도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도로의 상태와 무관하게 발생할 수 있다.
사태를 극복하려고 핸들을 좌우로 요리조리 꺾다 보면 진동이 상쇄되는 게 아니라 더 커지고, 결국은 차가 전복돼 버린다.
상황에 따라서는 브레이크를 밟을 게 아니라 오히려 가속을 해서 뒤쪽에다가 무게를 실어 줘야 하기도 한다.

피시테일의 철도 버전은 바로 사행동(snake)이다. 그 무거운 철도 차량이 고속 주행 중에 좌우로 구불구불 요동치면 선로나 대차가 손상을 입을 수 있으며, 심하면 탈선 사고까지 날 수 있다.
자동차도 단독으로 달릴 때보다 캠핑카나 트레일러 같은 걸 끌고 다닐 때 피시테일 현상에 더 취약해진다.

(3) 흔히 빗길 운전이 위험하다고 다들 그런다.
도로에 비가 많이 내려서 물이 고이면 시야가 흐려지며, 특히 밤에는 차선이 잘 안 보여서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얼음도 아니고 그냥 물이 특별히 길의 마찰을 줄이고 길을 더 미끄럽게 만드는 게 있을까?? 비가 내린다고 딱히 스노 타이어나 체인을 장착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물이 고인 딱딱한 도로 위를 차가 쌩~ 달리면 그 물 위로 차가 얇게나마 떠 버릴 수 있다. 일명 수막 현상. 앞서 말한 공기 양력이나 빙판과는 다른 별개의 현상이다.
글쎄, 물이 살짝 고인 밥상 위에서 가끔씩 밥그릇이 정지 마찰이 없어진 채 쓰윽 움직이는 것도 수막 현상의 일종인 건지? 부력이 어떻게 작용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5. 급발진

개인적으로 자동차 급발진의 존재 가능성은 UFO의 존재 여부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
가능성이 0은 물론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UFO 신고가 99.99%는 전부 착각이나 불빛 오인 신고인 것처럼.. 자동차 급발진 주장의 신빙성도 거의 그런 급인 것 같다. 인간이 악셀과 브레이크를 저렇게 헷갈릴 수 있구나..!

전국민이 주머니에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오늘날이.. 198~90년대 가정마다 필름 카메라 한 대씩 겨우 들고 다니던 시절보다도 UFO 주장 사진이 더 없다니 매우 신기한 노릇이다. 초능력이나 외계인 같은 게 유행이 한물 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처럼 요즘은 차의 전자 장비들이 운전자의 성별도 아니고 나이를 너무 가리면서 편파적으로 맛이 가는 것 같다. 내가 현실을 알고 나니까 옛날처럼 마냥 대기업 악덕기업(?) 욕만 할 수가 없다.

나는 정말 만에 하나 차가 폭주하면서 브레이크만으로 통제가 도저히 안 된다면 시동 강제로 끄기, 옆을 긁으면서(가드레일, 담벼락 등) 강제로 세우기, 앞차 들이받기 등 파괴적인 방법을 동원할 것이고..
그것마저도 도저히 시전할 수 없으면 최후에 최후의 마지막 극단적인 수단으로 핸들을 확 돌려서 내 차를 강제로 전복시키는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다.

아무도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극약 처방이지만.. 차라리 저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바퀴를 지면에서 떼어내는 거니까. 차가 데굴데굴 구르느라 안의 탑승자가 경상을 입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에어백과 벨트의 도움으로 대미지를 줄일 수 있는 사항이다.
최소한 어설프게 요리조리 피하다가 시속 150으로 인도로 돌진해 버린다든가, 산길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것보다는 전복 자폭이 더 나을 거라고 본다.

수동 변속기 시절에는 운전자가 실수로 시동 꺼뜨리는 일이 잦았는데 요즘은 차가 정반대로 시동이 안 꺼지고 브레이크도 안 밟히고 엔진이 폭주한다고 그런다. 참 격세지감이다.

요즘 고령 운전자에게 면허 반납을 장려한다고 하는데, "페달 블랙박스 의무 장착"을 조건으로 내걸고 허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실수로 사고 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거짓 급발진 호소는 못 하게 말이다.
25살 이하 젊은 애들은 보험료가 너무 비싸서 차를 못 모는데,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노인들 대상으로도 자동차 보험료가 지금보다 크게 오를 것 같다.

지난번에 서울 시청 부근에서 큰 사고를 친 그 아저씨는 정말로 통제 불가능한 급발진이었다 하더라도 대처를 너무 못 했다. 오죽했으면 나도 "에라이 너 죽고 나 죽자!!" 흥분해서 인도로 일부러 돌진한 부부싸움설을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게 아니면 도저히 설명이 안 되니까.
아무리 고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사람이 9명이나 죽은 건 사고를 너무 크게 쳤다. 하물며 급발진 주장조차 거짓이었음이 밝혀졌으니.. 이건 몇 년 감방에 가는 건 감내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07 08:35 2024/09/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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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관련 개드립들

1. 세상 학문과의 관계 #1

- 성경 수비학의 관점에서는 3이나.. 특히 7이 완전한 수라고 간주된다.
그러나 수학에서 말하는 perfect number 완전수는 6, 28 같은 수이다. (자신을 제외한 약수들의 합이 자신과 같은 수)

- 성경에서 말하는 tree of life는 에덴 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 그야말로 환상의 아이템이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tree of life는 생물들의 진화 계통을 나타낸 트리 네트워크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세상 역사에서 말하는 그리스 아테네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수학· 기하학이 발달하고 헬라 문화가 태동하고 민주주의가 발생했던 곳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리스(헬라)나 알렉산드리아의 평판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이다.

2. 세상 학문과의 관계 #2

계 7:1 땅의 네 모퉁이를 보고는 “성경에 따르면 지구는 평평하다”라고 어거지 부리는 건..
대하 4:2 같은 구절을 근거로 “성경에 따르면 원주율은 3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아주 비슷해 보인다. =_=
(거대한 원형 놋쇠 대야--솔로몬의 바다--가 지름은 10큐빗인데 둘레가 30큐빗이라고 나와 있음)

나는 성경에 수학· 과학적으로 고증오류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전혀 아니다.
성경은 수학· 과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이 아니며, 과학 저널 논문 문체가 아니라는 거.
오히려 수학· 과학의 영역 밖의 초월적인 주제를.. 문과 이꽈 불문하고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용어와 문체로 다뤘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과학과 접점이 있는 주제를 언급한다면 그건 절대로 오류가 없이 맞다는 거. (예: 흐르는 물에다 손 씻으라는 권면 하나만으로도 엄청 시대를 앞서갔었음)

이렇게만 알면 된다.

3. 난폭운전

오~~ 성경에도 난폭운전이란 게 있구나!! 완전 마음에 든다. ^^

"저 사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병거를 모는 폼이 님시의 아들 예후 같습니다. 그 친구는 평소에 병거를 미친 듯이 격렬 난폭하게 몰잖아요." -- 왕하 9:20

심지어 영어로는 furiously이다...!!!
분노의 질주 fast and furious 할 때의 그 단어이다. 내 차에다 인쇄해서 붙여 놓을까 보다.
주변 옆 차로는 씽씽 잘 가는데 내 차로만 못 가고 멈춰 있는 걸 차마 눈 뜨고 못 봐 주는 것.
바로 이것이 모든 과속 난폭운전의 기본 발상이다.

4. 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왓~~ 문구가 대박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도대체 어디서 만들었냐??
이제 전도서 3장을 읽다 보면 이태리타올이 생각날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5. 색깔

사용자 삽입 이미지

blue, purple, scarlet.
어쩌다 보니 집에 진열돼 있는 수건들의 색깔 순서가 출애굽기 성막을 떠올리게 한다..!!
성경 덕후는 별의 별 현상이나 패턴을 보고도 성경과 연관시킬 수 있다. 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4/09/05 08:35 2024/09/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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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터널은 자동차가 다니는 곳이고 지하주차장은 차를 세워 두는 곳이다.
터널은 산을 꼬불꼬불 힘들게 넘을 필요 없이 두 지점을 아주 편리하게 연결해 준다. 그리고 지하주차장은 비좁은 도시에서 주차 공간을 확보하고 땅을 효율적으로 쓰게 해 준다.

그러니 둘 다 유용하기는 하지만.. 지형적인 특성상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는 단점도 있다.
뭐, 교량도 화재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거기는 공기라도 탁 트여서 유독가스 질식 우려는 덜하다. 사람이 길 밖을 벗어나기가 여의찮은 게 문제일 뿐..

(1) 좀 오래된 일이지만 지난 2013년 1월, 용인 기흥구에서는 어떤 20대 정신이상자가 아파트 지하주차장(지하2층)에서 종이와 플라스틱을 태우는 불장난을 하다가 거기 차들 39대를 깡그리 태우는 초대형 깨스를 쳤었다.
당사자는 심신미약 감형을 받았을지 모르겠지만 뒷감당과 손해 배상은 누가 어떻게 했으려나 모르겠다.

(2) 2021년 8월, 기억하시는가? 천안에서는 출장 스팀 세차 차량의 LPG 가스통에서 가스가 새어 나오고 폭발하는 바람에.. 지하주차장에 세워졌던 차량 수백 대가 불타고 그 지하주차장 전체가 쑥밭이 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이거 원인은..? 세차 기사가 설마 담뱃불까지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사자의 과실 때문으로 여겨진다.

(?) 그나저나 2010년대 말에는 BMW 520d 모델에서 화재가 유난히 잦아서 주차장에서 이 차를 거부하거나 최소한 지하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얘는 지하에서 초대형 화재 한 건보다는 여기저기서 자잘한 화재를 여럿 일으켰다.

(3) 그리고 최근인 8월경엔 인천 청라의 어느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충전도 하고 있지 않았던 벤츠 전기차가 지 혼자 배터리가 연기와 함께 폭발하면서 불이 났다. 차량 70여 대가 같이 불탔고 그냥 초토화가 됐다.
글쎄, 불이 발생한 것 자체는 어쩔 수 없지만, 스프링클러가 동작하지 않아서 화재가 주변으로 더 크게 번지고 피해가 너무 커졌다는 변명도 있다.

실화, 가스 폭발, 배터리 폭발.. 가지가지 나오네. 게다가 외부 요인인 것도 있고, 차에서 자체적으로 불이 난 것도 있다.
군대에서 탄약고에 불이 나면 유폭이 발생해서 정말 큰일 나는데, 지하주차장도 전부 기름이나 배터리가 탑재된 자동차들로 가득하니 넓은 의미에서는 위험한 탄약고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니 이런 곳은 건축법이나 소방법 상으로 소방 설비를 갖춰야 한다는 조건이 지상 평지보다 더 빡세게 붙는다. 앞으로 전기차가 늘어나면 그 조건이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물 다음으로 자동차를 논하자면..
요즘 천하의 독일차도 품질이 예전 같지 않아서 논란이 많다. 보다시피 기름차와 전기차에서 골고루 사고를 쳤다. 하긴, 자동차뿐만 아니라 보잉 사의 여객기도 단순 정비불량이 아닌 결함 사고가 속출해서 체면을 구겼는데 말이다.
이런 사고는 아마 인건비 아끼고 제조 원가 줄이려고 예전에 FM대로 정규직 쓰면서 하던 검사를 생략하거나 비전문 비정규직한테 얼렁뚱땅 때워서 발생한 게 아닌가 싶다. 비행기건 자동차건 업종 불문하고 말이다.

끝으로, 문득 드는 생각인데.. 차가 불에 홀랑 타고 나면 유리창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없어져 있다. 이건 녹아서 없어진 건지, 깨져서 없어진 건지.. 무슨 작용이 먼저 발생하는지 궁금하다. =_=;;

2.
저 청라 아파트 화재 때문에 요즘 전기차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안 좋아졌다.
본인은 몇몇 로또 급의 극단적인 사고 몇 건에 혹해서 전기차포비아를 조장하거나 동조할 생각은 없다. 모든 전기차들이 일각에서 오바하고 떠드는 것처럼 그 정도로 허술한 시한폭탄 위험물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차를 무서워서 못 탈 정도이면 비행기도 추락할까 봐 무서워서 못 탈 것이다. 뭐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인은 그렇다고 해서 무슨 "내연기관 기름차도 화재 나는 건 마찬가지다, 비율상으로는 기름차가 오히려 화재가 더 잦았다"는 식의 원천봉쇄 물타기 반박에도 내 소신상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기름차가 더 잦았다고 하는 그 화재 건수 통계에는.. 그냥 엔진룸에서 연기 풀풀 나고 차량용 소화기를 투입해서 진화에 성공한 자잘한 화재들까지 다 포함돼 있지 않을까?
전기차가 그렇게 불이 붙었으면 그렇게 끌 수 있지 않았을 것이다. 화재의 양뿐만 아니라 질을 같이 비교해야 된다.
기름차가 불이 나면 저렇게 무슨 특수 질식포를 씌우고 물을 수만 리터를 쳐 붓고.. 그렇게 해야 되나? 아니잖아.

그러니.. 저런 전기차포비아가 아주 터무니없이 생겨난 미개한 편견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사진 찍히면 내 혼이 빠져나갈까 봐 무서워했던 그런 부류가 아니다.
업계에서 이에 대해 해명하고 보상이나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뭐,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전기차를 말살하려는 기름차 업계 정유 업계의 음모 따위는 100년 전에도 없었으며 지금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서 전기차를 무작정 옹호하는 논리는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고농축 배터리는 인간이 아직 모든 면모를 100% 다 통제하지 못하는 물질인 것 같다.
지난 2011년 7월엔 리튬이온 배터리를 싣고 가던 아시아나 항공 화물기가 화재에 휩쓸려 추락한 적이 있었다.
2016년, 갤럭시 노트 7이 배터리 불량과 폭발 문제 때문에 엄청난 흑역사로 전락했던 바 있다. 그리고 지난 6월에 화성시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끔찍한 화재도 생각해 보자.
겨우 스마트폰 배터리가 그 정도인데, 같은 리튬이온 기반이면서 용량이 훨씬 더 큰 전기차 배터리는 얼마나 더 위험하겠는가?

과거엔 인류가 백린 성냥이나 니트로글리세린 폭약 관련 사고들 때문에 고생했는데, 21세기의 인류는 배터리 때문에 비슷한 고역을 겪는 것 같다.
사고가 났을 때(= 배터리가 물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때) 무슨 비행기마냥 불이 잘 나고, 게다가 불이 금세 꺼지지도 않고 몇 시간째 활활 탄다니.. 유증기가 없다는 것만 빼면 휘발유보다 더 위험한 건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다 벤츠니 BMW의 보유국인 독일도 말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자동차 생산국이기는 하지만, 걔들은 기본적으로 내연기관이 전문이고 원조이다. 전기 모터나 배터리 쪽에 독자적인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그런 쪽은 우리나라 현기차 같은 업체들과도 거의 같은 선상에서 처음부터 다시 경쟁해야 하지 않나 싶다.

전기차에 옹호적인 분들은 일부 극단적인 사례만 갖고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고, 통계의 오류에 속지 말고 언론의 편파보도에 현혹되지 말라고 항변한다.
나는 그런 개방적인 마인드를 딴 분야에도 적용해서 고속도로 터널에서 차로 변경과 추월을 좀 허용했으면 좋겠다.

요즘은 3~4차로 이상 터널도 많고 터널 안도 길이 엄청 넓고 곧고 조명도 잘 돼 있다. 전혀 위험하지 않다. 게다가 엄청 긴 터널도 많다.
1차로에서 저속으로 답답하게 다니는 몰상식한 차들도 얼마나 많은데 구시대적이고 억압적인 규제를 좀 완화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터널 부근에서 쓸데없는 유령 정체를 예방하는 방법이나 좀 AI 기술 동원해서라도 좀 개발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02 19:35 2024/09/0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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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세기 중후반 기름차의 기술 트렌드

(1) 연비
1970년대 말엔 오일쇼크 때문에 고배기량 차량 만드는 게 좀 터부시됐었다. 그래서 그라나다 같은 고급차도 고작 2000cc였던 것이다.
현대 자동차는 그라나다 이후로 10여 년이 지난 1989년에야 그랜저의 최상위 3000cc 모델을 내놓으면서 V6 엔진을 다시 만들게 됐다. 4단이 아닌 5단 수동 변속기는 그랜저 기본 모델이 처음으로 실현했고 말이다.

(2) 환경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자동차계의 기술 트렌드가 환경을 중시하여 삼원 촉매와 무연휘발유로 갔던 듯하다. 그리고 이거 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기계식 카뷰레터가 퇴출되고 전자 제어 연료 분사, MPI 같은 게 등장한다.. 이때는 엔진에 컴퓨터 전자회로가 얹혔다는 것만으로도 CF에다 대놓고 자랑을 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자동차 말고 비행기나 선박 같은 타 교통수단들은 사람이 없는 곳을 주로 다니는 관계로 환경 규제가 자동차보다는 덜 빡세게 적용된다.
어선용 엔진에 무슨 유로6 규제 따위는 없다. 거기는 검은 매연 쩌는 저질 중유가 쓰이기도 한다.
자동차에서는 진작 퇴출된 유연 휘발유가 항공 연료로는 2020년대까지 현역이었다고 들었다.

(3) 성능
그 뒤 1990년대 초쯤에 DOHC와 터보차저 국내 양산차에 소개되고 도입됐다. 이를 계기로 동 배기량에서 자동차의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 2000cc가 채 안 되는 승용차의 최대 출력이 100마력을 넘어가고, 끽해야 100~200마력 남짓하던 중· 소형 디젤차의 출력이 200~300마력을 찍게 됐다.

이렇듯, 요즘 자동차는 30년, 40년 전 자동차보다 동 배기량 대비 출력이 더 좋고 연비도 더 좋고, 그러면서 해로운 배기가스는 덜 뿜는다. 성능이 정말 좋아졌다.
그 대신 내부 구조가 훨씬 더 복잡해지고 컴퓨터 전자 제어의 비중이 더 커지고 또.. 연료의 품질에 훨씬 더 민감해졌다. 침수에 더 취약해진 것도 덤..

옛날 엔진 같았으면 정제가 덜 된 저질 연료를 넣어서 돌리면 꿀럭꿀럭 매연 나오고 엔진음과 출력이 좀 안 좋은 걸로 끝나겠지만, 지금 엔진은 그렇지 않다. 그랬다간 진짜 탈 나고 비가역적으로 망가진다. 특히 배기가스 정화 계통이 망가지면 당장 굴러가고 운행이 가능하더라도 언젠가 결국은 자동차 검사에서 걸린다.

2. 성능 향상

요즘 차들이 성능이 정말 좋아졌다고 느끼는 게..
디젤이 아닌 휘발유 차가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130을 밟고 있는데 엔진 회전수가 그냥 2000rpm 초반에서 그럭저럭이다.
시내버스가 출발 가속하는데 무슨 승용차를 탄 것처럼 뒤로 쏠리는 걸 경험한다.

이렇게 엔진 출력이 올라가니, 그 출력을 더 정교하게 제어하라고 변속기도 단수가 올라갔다.
자고로 승용차의 변속기는 수동 5단 아니면 자동 4단이 정석이 아닌가 싶었으나.. 요즘은 경차가 아닌 이상 기본 6단에서 시작하고 8단 이상도 흔하다. 물론 그 다양한 단수는 수동이 아니라 자동 변속기로 구현한 거다.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1900년대 초 구한말에 돌아다녔던 순종 어차는 캐딜락 리무진이었다. 무려 5000cc가 넘는 배기량의 8기통짜리 엔진 기반이었는데 최대 출력이 꼴랑 32마력 남짓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320마력이 아니다.

어차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현대에서 면허 생산했던 포드 그라나다를 생각해 보자. 얘는 나름 그랜저의 전신으로 여겨지는 엄청난 고성능 호화 고급차였다. 그야말로 부의 상징 그 자체였고 오늘날 제네시스나 EQ900 이상의 위상이었다.

하지만 얘는 변속기는 4단 수동이었고, 엔진은 2000cc 배기량에 최대 출력 102마력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실린더가 V형 6기통이었다.
요즘 같으면 겨우 2000cc 덩치에다가 쓸데없이 복잡하게 6기통을 넣지는 않을 텐데 그때는 그랬다.

실린더 수를 늘려서 자잘한 폭발을 여러 실린더에다가 분담시키면.. 당장 엔진 동작이 부드러워지고 진동이 줄어들기는 한다. 즉, 고급차의 덕목인 '좋은 승차감'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면 차량 성능에 비해서 엔진이 너무 복잡해지고 비싸지고, 한 실린더 당 토크가 너무 약해지는 부작용도 있었다. 수동 운전 실수로 시동 꺼뜨리기도 더 쉬웠을 듯..

3. 에어컨

자동차의 에어컨은 승용차용이 약 4~5마력 정도 엔진 출력을 잡아먹고, 대형 버스용은 그 10배인 40~50마력의 출력을 쓴다고 한다. 그럼 1인 공간당 1마력이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는 것 같다.
옛날에 가정용 세탁기의 모터가 3/4 ~ 1마력짜리라고 얘기를 들었는데.. 공기를 압축해서 냉매를 액화시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쌍팔년도 이전에 무려 6~7000cc짜리 디젤 엔진으로 꼴랑 160마력 남짓한 출력밖에 안 나오던 시절에는 버스에 에어컨을 장착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계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차량 성능에 끼치는 부담이 너무 크니까.. 에어컨 컴프레셔 전용 엔진이나 발전기가 필요할 정도였다.
그 반면, 트럭은 운전자· 탑승자의 공간이 아주 작으니 에어컨은 승용차와 비슷한 사이즈만 있으면 되겠다. 물론 냉동 탑차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겠지만. ㄲㄲㄲㄲ

4. 비행기와의 접점

하긴 옛날에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비행기도 말이다.
골동품 여객기인 보잉 707은 좌석 수가 겨우 100여 개 중반. 콩코드보다 약간 더 큰 수준의 협동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얘는 엔진이 무려 4개나 달린 4발기였다. 마치 2000cc V6 자동차 엔진 같은 느낌이다.

747은 1970년대 기술로 사람을 400명씩이나 태우는 초대형이니 4발기였고, 콩코드는 마하 2로 날기라도 하니까 덩치 작은 4발기였던 반면.. 707은.. 영화 벤허가 만들어졌던 시절의 기술의 한계였다. ㅎㅎ
그래도 그때는 707만으로도 정말 획기적이었고 보잉을 여객기 명가로 등극시켜 준 명품이었다. 뭔가 보잉 사의 Windows 3.0 같은 작품이었다.

요즘은 3발기도 유행이 지났고, 엔진 하나가 성능이 워낙 좋아졌기 때문에 어지간한 비행기들은 다 깔끔하게 2발기가 국룰이다. 경비행기 정도나 단발..
그러고 보니 경비행기는 엔진이 2개가 아니라 날개가 두 겹으로 깔린 복엽기가 있구낭..

5. 전기차와의 접점

요즘은 기름차보다도 전기차의 성능이 참 경이롭기 그지없다. 뭐 뻑하면 300~400마력이고 토크는 40~50kgf를 찍는다. 제로백은 그냥 5초대다.
슈퍼카나 기함급 고급차가 아니라 어지간한 서민 양산형 차량이 저런 성능을 내는 건 기름차로는 오늘날의 기술로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전기차는 배터리 때문에 비슷한 체급의 기름차보다 수백 kg 이상 더 무겁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저런 성능이면 그 무게를 상쇄할 수 있다.

하긴, 자동차뿐만 아니라 철도 차량도 전철화 덕분에 알음알음 성능이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는 전후대칭 동력분산식 전동차가 여객열차의 주류가 될 것이고, 일반열차도 무슨 지하철처럼 급격하게 가감속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디젤 대신 전기 기관차가 도입된 것만으로도 같은 구간의 열차 소요 시간이 더 단축됐고, 지연 만회도 더 잘 하게 됐다.

허나, 자동차는 전기차가 성능이 그렇게 좋으면 뭘 하나. 정작 서울-부산 고속버스나 40톤짜리 트레일러, 각종 건설기계나 군용차, VIP 의전차가 전기차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난 들어 보지 못했다.
배터리 전기차가 대형화되지 못하는 건 과거에 크고 무겁던 브라운관 TV가 30인치대 이상으로 도저히 대형화를 못 했던 것과 비슷하게 개인적으로 느껴진다.

철도 차량은 위의 전차선 덕분에 배터리 걱정을 할 필요 없어서 좋다. 비접촉 무선 집전이 가능하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31 08:35 2024/08/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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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남녀 질서

* 이런 고리타분하고 기초적인 주제에 대해서 지난 10여 년 동안 내가 이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없었던가 보다. 지금 생각날 때 써서 올린다~!! ^^

...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 (고전 14:34)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딤전 2:12)

이거는 다른 가장들(기혼 남자)까지 한데 모여 있는 교회 내부 집회에서 그 회중을 대표하고 인도하는 활동이 여성에게 일단 불허라는 뜻이다. 설교는 말할 것도 없고 대표기도 같은 것도 말이다. (딤전 2:8)

그러나 여자는 성인 남자가 아니라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건 당연히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주일학교 교사..!!
애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가 찬 미혼 자매들에게 훈수 놓는 것도 할 수 있다. 여자는 일체의 권위를 절대 행세하지 못하고 닥치고 입 다물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글쎄, 음대 나온 자매가 성가대에서 성인 남자들까지 가르치는 거는? 조금 수위가 높아지지만 그것까지는 괜찮다고 본다.
성가대 연습은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게 아니고, 찬양 중에도 지휘자가 혼자 드러나고 주목받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예 불신자 남성을 초청해서 지휘할 바에야 믿는 자매가 훨씬 낫다.

그리고 이것도 내 뇌피셜이다만.. 남자고 여자고 성인 청년이지만 다들 미혼인 파라처치/선교단체의 예배라면 찬양인도나 대표기도 정도는 자매도 못 하란 법 없다고 본다.
어차피 다들 미혼이고 인원부터가 성경이 상정하는 일반적인 정규분포 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애매한 상태이다. 뭐 그런 식이면 요즘처럼 이렇게 결혼을 안 하거나 너무 늦게 하는 풍조도 총체적으로 다 비정상이긴 하지만..;;

성경에서 인간의 위계질서를 논하면서 남자를 여자보다 더 우선시하는 건 기혼이 전제됐을 때의 얘기이다.
남자여서 예우받는 게 아니라 가장이어서 예우받는 거다. 그 가장 역할을 남자가 맡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남자가 예우받는 듯이 보인다. 내가 알기로 논리가 그렇다.

끝으로..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복음 전하는 것에는 당연히 남녀노소 구분이니 위계질서니 없다! 누구나 해야 한다.

나는 세상 법에서 이거랑 비슷한 법리가 적용되는 게 요거라고 생각한다.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12조)
우리나라의 법은 사적제재를 절대 금지하고 정의 실현은 오로지 경찰과 사법에다가만 위임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장 음주운전 차량을 세우고 차키 뺏고 운전자를 팔 꺾어서 제압하는 것 정도는 사법 수사권이 없는 그 누구에게라도 허용해 준다.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용해 준다. 당연히 진짜 경찰이 올 때까지 일시적으로만 말이다.

  • 당장 사람을 해치려 하는 중범죄 현행범은 그 누구라도 제압이 허용되듯이, (그 뒤 신속히 경찰에게 인계)
  • 의사나 정식 구급대원이 환자를 완전히 인계하기 전까지는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라도 CPR을 잠시라도 중단하지 말아야 하듯이,

여자라도 교회 강단에서 설교를 안 할 뿐이지, 세상을 향한 복음 선포는 저것과 동급으로 시급하게 해야 한다.
이거는 "여자는 잠잠하라"가 적용되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애초에 교회 안이 전혀 아닌걸..

개인적으로 여자 목사는 바람직하지 않고 교리적으로 잘못됐다는 소신이다. 물론 그 여성도 신학 공부 많이 했고 성경 많이 알고 어지간한 남성들보다 훨씬 더 똑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녀는 강단에 서는 목회 말고 다른 방식으로 주의 일을 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허나, 이와 별개로.. 자기는 남자로서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다하지도 않는 주제에 다른 바람직한 자매를 보고 "어디 여자 주제에 나댄다" 이런 미친 소리를 함부로 하는 것 역시 본인은 완전 극혐한다.

※ 여담

(1)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와 더불어 성경이 남녀 차별적이라고 비판(?)받게 만드는 양대 구절은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이다. 이거는 교회에서 잠잠 버전보다도 더 쉽게 논파할 수 있다.
성경에는 그 구절 바로 다음엔 "남편은 자기 아내를 목숨 바쳐 사랑해 줘라~ 모질게 대하지 마라"도 있는데?
남자 쪽 조건은 싹 무시하면서 여자 쪽 조건만 들이대는 건 그 사람의 논리가 잘못된 거다. 성경은 결코 편파적이지 않다. 가정에서 역할의 차이는 우열 차이 내지 계급 차이가 아니다.

(2)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뵈베를 신약 교회 최초의 '여자 집사'로 만들고 싶어서 저 사람이 deacon이었다고, 헬라어 원어로는 집사라는 뜻도 된다는 얘기가 종종 나돈다. 심지어 요즘 성경들은 번역 자체가 그렇게 되는 편이다.
남자 집사는 스테판이고 여자 집사는 뵈베인 거냐? 뭐, 성경 번역에 대한 최종 권위가 있는 사람에게는 이건 그다지 영양가 있는 낭설이 아니다. 뵈베는 지역 교회를 섬기는 주님의 종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3) 바울 서신서에 나오는 "형제들아"가 요즘 성경에서는 "형제 자매 여러분"으로 바뀌는 추세이다. 우리말 성경은 무려 30여 년 전의 표준새번역에서 이런 양성평등 시도가 행해졌다.
저 brethren 형제는 마치 '청년'이나 영어 man처럼 기본적으로 남자사람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여자까지 포함하는 그런 사람 집단을 말한다. 말을 꼭 그렇게 바꿀 필요가 있는지?

성경도 필요할 때는 일부러 남자와 여자를 콕콕 찝어서 저격하기도 했다. 약 4:4 "너희 간음남과 간음녀들아" 말이다. 시쳇말 좀 쓰자면 "이 간음하는 연놈들아" 같은 뉘앙스다.
그런데 여기서는 킹 외의 변개된 역본들은 남자를 빼고 간음녀만 들어있다! 아니면 성중립 차원에서 "간음하는 사람들아"가 고작이다. 마치 요한복음 8장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 이야기에서 남자는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8 19:35 2024/08/2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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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은 참 공교롭게도 국내의 여러 킹 제임스 진영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찬송가를 제각각 편찬해 냈던 해였다.

(1) 영광을 주께 2판 (초판은 2002년쯤에) -- 말씀 보존 학회
(2) 마제스티 찬송가 -- 사랑 침례교회
(3) 복음 찬송가 2판 (초판은 2009년쯤에) -- 타 독립 침례교회 진영에서. 2022년인가 23년쯤엔 3판도 나왔음.

이렇게 찬송가를 따로 만드는 이유는.. 기존 통일찬송가/새찬송가 가사가 교리적으로 만족스럽지 않거나 심지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려고, 주요 신학 용어 구분을 더 엄밀히 하려고, (영 vs 혼, 천국 vs 하나님 왕국 등등) 성경 구절 인용 가사를 자기네 역본에 더 맞추려고~~ 등의 명분 때문이다.

'교리적으로 만족스럽지 않거나 심지어 잘못된 부분'이 뭔지를 물으신다면..
구원의 상실 암시라든가 단순 신세 한탄(...), 직통계시 은사주의라든가 후천년주의 종말론 뉘앙스가 느껴지는 것 말이다.
당연히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라든가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이런 가사는 교리적으로 문제될 게 단 1도 없다. 하지만 찬송가에 그렇게 명확한 가사만 있는 건 아니어서 문제다.

그리고 이런 독립 침례교 쪽 찬송가는 성탄절을 안 지킨다는 특성상, '탄생' 카테고리의 곡이 아주 적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교리적으로 별 영양가가 없으니 저 찬송가들엔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고..
기껏해야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 찬송이 울리던 그 날' 정도만 살아남았다. 그나마도 예배 때 불릴 일은 없다시피하다.

마제스티는 기억이 안 난다만, (1)은 '침례교 찬송가'가 베이스이고, (3)은 기존 통일찬송가(후대에 개정된 새찬송가가 아님)를 베이스로 삼았다. 무엇을 베이스로 삼느냐에 따라 '참 즐거운 노래를'의 조가 Eb 장조 또는 F장조로 달라지고, '그 참혹한 십자가에'가 G장초 또는 Ab 장조로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퀄리티는 (3) 복음찬송가가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찬송가뿐만 아니라 20세기 중후반의 복음성가 내지 올드 스타일 CCM까지 다 수록해서 곡이 제일 많다. 나머지 두 찬송가는 4~500곡 수준인 반면, 얘만 1200곡에 달한다. 그리고 그리고 거의 모든 악보에 반주 코드가 꼼꼼히 적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공식 홈페이지가 있어서 악보 조회와 가사 검색이 가능하고, 주요 교회들로부터 수집한 음원까지 제공된다.

왜, 기존 통일찬송가 / 새찬송가만 해도 생존해 있는 편찬위원의 창작곡이 몇 곡 수록돼서 호불호가 갈리곤 한다.
그것처럼 킹 진영 찬송가들도 각 진영별로 자기 진영 목사가 작사· 작곡한 창작곡이 수록된 경우가 있는데..
이런 쪽의 저변도 (3)이 가장 넓다. 유 진선, 구 정민, 임 동선, 박 노찬(대체로 번역)..

(1)은 초판에서는 김 기준, 2판에서는 조 동화(작사만)를 볼 수 있다. 조 동화는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시로 세상에서도 유명한 그 시인· 교사 겸 목사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현재는 저 두 분이 모두 말보회를 떠나 있다는 거. 미래에 영광을 주께 3판이 나온다면 거기서는 조 동화 작사 찬송가까지도 아마 없어져 있을 것이다. 저 동네는 일을 처리하는 게 대체로 저런 식이어서.. -_-;;

(2) 마제스티 찬송가는 자기 진영 창작곡이 수록된 건 딱히 없는 걸로 나는 알고 있다. 그 교회 덩치와 인재풀이면 가까운 미래의 2판, 3판에서는 자체 창작곡이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단, (2)에는.. '킹 제임스 바이블 쏭'이라는 노래가 끝에 번역 수록돼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내게 읽어 주신 책~~" 이렇게 시작하는 가사 말이다.

참고로, 본인의 여친의 동성 절친..이 저 마제스티 찬송가의 교열에 참여했었다. 음악 계열 전공자인 관계로.. 그래서 머리말/감사의 글에 이름이 실려 있다. ㅎㅎ

만약 우리나라 킹 제임스 진영이 서로 에큐메니컬 운동(!!!!)을 한다면.. 이렇게 창작곡 찬송가 교류부터 하는 게 제일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한킹 쓰는 교회에서 상대방 구 정민, 유 진선 곡을 부른다거나, 흠정역 쓰던 교회에서 김 기준· 조 동화 곡을 부른다거나. 교리나 번역 때문에 싸울 일 없고 그것도 음악을 매체로 교류하니까 제일 거부감 없지 않겠는가.

아 물론 이마저도 당장 실현 가능성은 없다.. ^^
시간과 여건, 재정이 된다면 아마 표준역 쓰는 진영에서도 자체 찬송가를 만들 판이고, 말보회에서 기록말살된 목사님들도 자체적으로 찬송가를 만들려 한다. 아주 그냥 춘추전국시대가 따로 없다. ㅠㅠㅠ

* 여담: 찬송가 오마주를 넣은 CCM

한때 우리나라 CCM계에 송 명희와 최 덕신 콤비가 있었고,
19세기 말 미국에 패니 크로스비와 윌리엄 도언 콤비가 있었던 것처럼..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말에는 미국에 Nancy Price와 Don Besig이라는 CCM 작사 작곡자 남녀 콤비가 있었다.

이쪽은 작곡 스타일이 뭔가 진취적이고 웅장하고 감동적이다. 마지막 절에서는 조가 반음 올라가기도 한다.
이분들의 아주 대표적인 작품이 뭐냐 하면 “여기에 모인 우리 -- 이 믿음 더욱 굳세라”이다. 더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따끈한 1990년도 곡이지만 워낙 고퀄이니 개신교 새찬송가에 수록도 됐다. (620장)

저 콤비의 작품 중에 “주님께 감사 기도 드릴 때 / We are yours, Lord”가 있다.
국내에 많이 알려진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것도 곡과 가사가 아주 훌륭하다.
언제적 작품인지는 인터넷을 도저히 뒤져도 안 나오는데.. 최소한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형제
When we pray, we will pray with thankful hearts.
When we sing, we will sing with joyful voices.
When we serve, we will serve with willing hands.
For we are Yours, Lord. For we are Yours, Lord.

자매
When we speak, we will speak with loving care.
When we act, we will act with firm conviction
When we give, we will give with boundless joy
For we are Yours, Lord. For we are Yours, Lord. (☞ 음원 링크)


형제 파트는 경배의 태도이고 자매 파트는 행실의 태도인 걸 주목해 보라.
그런데 이렇게 한 파트가 끝나고 나서는 갑자기 분위기가 싹 조용하게 바뀌고 심지어 반주도 잠시 꺼지면서 아카펠라가 나온다. 저 영상에서 1분 45초 이후 지점부터이다.
Within this calm and peaceful place, near to Your heart, O Lord...

근데 얘는.. 알고 보니 Near to the heart of God이라는 1901년인지 1903년도 클래식 찬송가의 오마주이더라~! (☞ 음원 링크)
There is a place of comfort sweet, near to the heart of God
우리나라 개신교 찬송가에는 딱히 소개되지 않은 것 같다. 작사 작곡자는 Cleland B. McAfee라는 사람인데.. 나로서는 일단은 듣보잡(ㅠㅠㅠ)이다.;;

이게 참 신기한 게..
내가 이전에 다녔던 교회의 찬송가(복음찬송가 2판)에서는 We are yours, Lord만 수록돼 있고, 지금 다니는 교회의 찬송가(영광을 주께 1판)에는 Near to the heart of God만 있다.

처음 보는 찬송가 책의 악보를 읽고 있었는데.. 어 이거 낯설지 않고 어디서 봤던 멜로디이다.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전자가 중간에 후자를 오마주해서 넣었다는 걸 알게 됐다. 참 신기하다~! 예전에는 그게 그런 관계인 줄 알지 못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6 08:35 2024/08/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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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성경 번역 이슈

1. '-시니라'의 시제

한국어 성경은 개역성경의 선례 덕분에 '-느니라, -도다, -소서' 같은 고어체가 여전히 현역이다.
그런데 창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시제가 현재일까, 과거일까?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는 현대어로 바꾸면 "창조하신다"이다. 명백한 현재 시제이다.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는 현대어로 바꾸면 "창조하셨다".. 과거이다.
그 반면, '하시니라'는 그냥 '창조하시다'와 대응한다. 얘는 형태소 차원에서 시제 정보가 없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 어디 제목이나 선언문처럼 말이다.

'하시니라'는 용언의 기본형(으뜸꼴) '하다'에다가 그대로 높임 선어말어미 '시'와 고어체 어말어미 '니라'가 붙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쓰면 사람들이 보통, 사실상, 일반적으로는 과거 시제로 인지하는 편이다. 그래서 "창조하시니라"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받아들여져 왔던 것이다.

개역개정판 말고, 옛날 개역성경은 유독 사복음서에만 '-시다' 종결어미가 안긴 문장(인용)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쓰인 흔적이 있다.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요 8:1),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막 15:37), "... 저희를 떠나가시다" (마 16:4)
이것들이 개역개정판에서는 다 '--시니라'로 고쳐졌다. 이것들 다 의미 문맥으로 봐도 과거이고, 영어/원어로도 당연히 다 과거 시제이다.
그러므로 "창조하시니라"도 과거 시제 의미라고 봐야 마땅할 것이다.

"하시니라"라고만 썼다고 부정확하거나 틀린 번역이라고 매도하는 건..
마치 개역성경이나 일부 옛날 찬송가들이 '예수' 뒤에다 님짜 안 붙였다고 번역자들이 싸가지없는 호로자식이었다고 비난하는 것과 비슷한 급의 무리수일 것이다.
영킹은 하나님/예수 가리키는 대명사에 대문자 표기도 하지 않았다. 그건 그냥 옛날 성경과 요즘 성경의 스펠링 관행의 차이일 뿐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영어 번역투의 영향을 왕창 받아 왔다. 그래서 한국어로 쓰는 문장에도 단 복수를 더 엄격히 따지고, 대명사에 그 그녀를 따지기 시작했다. green과 blue를 구분하지 않던 기존 '푸르다'의 의미에도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신호등 파란불 → 녹색불 같은..)

그런 트렌드를 감안하자면 앞으로 번역되는 성경이라면 "하시니라" 대신 "하셨느니라"를 채택하는 게 자연스러운 변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현대어로 문장을 만들 때 뜬금없이 "창조하시다!!" 이러지는 않을 테니, 고어체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 개역성경은 창 1:1, 요 1:1 모두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시니라'이다.
  • 한킹은 처음엔 개역성경과 동일하다가 언제부턴가 둘 다 '셨느니라'로 바뀌었다.
  • 흠정역은 언제부턴가 요 1:1만 '셨느니라'로 바뀌었다. 아마 번역자의 신념 때문에 창1:1의 시제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둘 중 하나만 고를 거면 차라리 요 1:1 '하나님이시니라'가 시제를 훨씬 덜 타는 선언이지 않은가. 이걸 놔두는 게 더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 내 생각은 그렇다.
  • 표준역은 저 두 구절뿐만 아니라 모든 본문에서 선언형 '시니라'를 명백한 과거 시제 '셨느니라'로 바꾼 최초의 고어체 역본이다.

2. 무엇을/어떻게

의문사 무엇(what)과 어떻게(how)는 지칭하는 영역이 언어 품사 차원에서 다르다. "이건 뭘 표현한 거야?" /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 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어떡하다'라는 굉장히 미묘 므흣한 단어가 있다. 그래서 같은 의문이지만 영어로는 what으로 시작하는 반면, 우리말로는 how에 가까운 뉘앙스로 표현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때가 발생한다.

그래서 성경에서 유명한 행 16:31의 바로 앞 절.. 30절 감옥 간수의 질문을 보자.
개역, 표준, 한킹 같은 우리말 성경들은 모두 "어떡해야 구원받을 수 있죠?"라고 번역되었다.
그러나 한킹 이후에 등장한 킹 계열 역본.. 흠정역 내지 표준역만이 "무엇을 해야 구원받을 수 있죠?"라고 what을 직역했다. 흥미롭지 않은가?

문제나 위기가 생기고 난감한 상황이 됐을 때 한국어 화자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은 "이를 어쩌면 좋지? 어떡해야 하지?"이다. "뭘 해야 하지"가 아니다. 예전에 월급값 못 한 여경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오또캐스트라' 드립을 생각해 보자.
"뭘 해야 하지"는 그건 자기 신변과 무관한 업무를 인계받으면서 "이제 내가 뭘 하면 되지?"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죠?" 아주 객관적으로나 할 만한 말인 거다.

영어는 명사 지향적이고 체언을 꾸미는 관형어가 발달해 있다. 그러나 우리말은 동사 지향적이고 용언을 꾸미는 부사어가 발달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있다"라고 하지 않고 "사람이 많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정서가 반영되어 영어로는 what(무엇을 명사)으로 표현하는 것을 우리말로는 how(어떻게 동작)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오죽했으면 방문 용건을 묻는 질문조차 "어떻게 오셨습니까?"("무슨 일로"가 아니라)라고 묻는 경우가 있고, 그걸 마 동석이 어느 영화에서 "봉고차 타고. 내비 찍고 왔어"라고 동문서답 개드립을 치지 않았던가.

이게 한국어다. 이것 말고도 영어로는 come인데 우리말로는 정황상 '가다'라고 번역해야 할 때가 있고, 부정의문문의 대답도 대놓고 yes/no의 번역이 갈리곤 한다. ㄲㄲㄲㄲ

3. 챔피언

성경에 나오는 블레셋(필리스틴) 장수 ‘골리앗’은 성경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정말 유명하다. 스타의 테란 메카닉 유닛의 이름으로도 쓰였을 정도이다.
하지만 사무엘상 17장을 읽어보면 성경 기자, 아니 하나님은 골리앗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걸 극도로 꺼리고 있다. 거의 다 ‘그 블레셋 사람’, ‘그 블레셋 사람’ 일색이다. 이 점을 한번 생각해 보자.

이건 의도적인 서사이다.
성경의 진술 방식에서 이름 언급이 매우 중요하다는 건 누가복음 “부자(익명)와 나사로”, 룻기 “보아스와 아무개(익명..)”, 그리고 다니엘서 풀무불 씬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친구 이름들의 등장 빈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곳곳에 미주알고주알 명단들이 나오는 거다. 하다못해 로마서 16장 안부 인사 대상자 명단처럼 말이다.

그 대신, 성경은 골리앗이.. 그냥 평범한 파이터, 글래디에이터, 워리어 따위가 아니라 ‘챔피언’이었다고 언급한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champion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이 삼상 17이다. 우리말로는 대체로 ‘투사’라고 번역됐다.

오늘날이야 챔피언은 무슨 개인 단위 게임이나 스포츠의 전국 단위 우승자, 1등 타이틀 보유자..라는 뜻이 강하다. 바둑 챔피언, 20xx년도 탁구 챔피언.
그래서 “세상에서 너무 챔피언이 되려 애쓸 필요 없다. 성경에서 챔피언은 부정적인 인물인 골리앗에게나 쓰였다” 이렇게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무슨 뜻인지는 이해하겠다만 그건 “성경에서 그림(pictures)이 민 33:52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으니 각종 영화 산업들도 영적으로 별로 안 좋은 것들이다~ 영화사들도 다 OOO pictures이잖아?” 와 비슷한 급으로 아주 간접적이고 영적인 적용이라 하겠다.

챔피언은 원래는 자기 고용주나 VIP를 대신/대표해서 전투나 결투에 나가서 싸우는 직업 싸움꾼..이란 뜻에서 출발했다. 성경의 용례도 1차적으로는 이거지 싶다.
골리앗 저 시절에 “블레셋 대왕배 특전사 격투기 대회 우승 타이틀”이라든가.. 무슨 태평양 전쟁 일본군마냥 100인 참수 시합 같은 게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무언무언가를 지키고 수호하는 사람한테도 챔피언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 그 대상이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친환경 전기차를 운전하는 당신은 환경 챔피언입니다” 이렇게 써도 된다는 것이다. (전기차가 진짜로 완벽하게 친환경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기아 니로 CF에 나오는 환경전투사 같은..;;
글쎄, 싸이의 노래 가사처럼 음악에 미치면서 인생을 즐기는 건 무슨 챔피언인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만 말이다.

물론, 지키고 싸우는 게 직업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일반인들보다 더 힘 좋고 체격 좋고 잘 싸울 것이다. 골리앗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고. 그래서 우승자라는 의미가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직업이 챔피언인 사람은 지위 내지 실력도 챔피언일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말보회 한킹은 챔피언을 그냥 투사가 아니라 ‘최고 투사’라고 번역했더라. 저런 번역은 한킹이 유일하다. 원래 의미에다가 나중 의미까지 저렇게 넣고 싶었던가 보다. 한킹은 전반적인 번역 스타일이 영킹 직역뿐만 아니라 ‘나중 의미’도 더 살리는 쪽이다 보니.. 일면 수긍이 간다.
또한, testament를 그냥 언약이라고만 옮기기는 아까워서 흠정역이 ‘상속 언약’이라고 번역한 것과 비슷한 워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킹은 testament는 그렇게 번역하지 않음)

4. 은과 돈과 재물

행 8:20 말이다.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네 돈과 더불어 망하라. 이는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 (행 8:20)
여기서 ‘네 돈’ 부분을 ‘돈’ 대신 ‘은’이라고 번역한 역본이 생각보다 여럿 있다. 당장 개역성경도 그렇고, NASV나 NRSV도 그렇다.

궁금해서 잠시 조사를 해 보니, 이건 원문 변개 이슈는 아니다. 변개된 계보의 성서 중에도 ‘돈’인 역본 또한 많기 때문이다.
같은 헬라어가 문맥에 따라서 은도 되고 돈도 되는 것 같다. 즉, 이건 번역에서의 바리에이션이다.
베드로는 금과 은이 아니라 유독 은과 금이라는 말을 썼는데, (행 3:6, 벧전 1:18) 이때의 은과 저기서의 돈이 같은 단어이다.

우리 한자어에서는 현금, 등록금, 계약금 등.. 금을 돈과 비슷한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금에 앞서 은이 먼저 화폐로 널리 통용됐다.
오죽했으면 돈을 보관하는 기관의 이름도 ‘은행’이지 않은가? 그리고 '은전 한 닢'이라는 유명한 수필도 있다. ㄲㄲㄲ

성경에 등장하는 화폐들도 거의 다 은화이다.
주님의 몸값부터 시작해서 요셉의 몸값, 사도행전 19장에서 불태운 주술 서적의 가격.. 은이다.
서양의 로마 제국뿐만 아니라 동양의 중국도 이런 은본위제 국가로 유명했으며, 아편 전쟁 당시에도 은이 거래됐었다.

‘네 돈’ 말고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의 ‘돈’은 앞의 돈/은과는 다른 헬라어이다. 용어 몇 개를 찾아보니 이건 보편적인 ‘부, 재물’과 비슷한 맥락으로서 돈을 의미하는 것 같다.

베드로는 사도행전과 베드로전서에서 하나님의 선물은 한낱 은이나 금과 견줄 바가 아니라는 요지의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아무쪼록, 우리 같은 헬알못(?) 일반인은 은이니 돈이니 재물이니 이런 게 알쏭달쏭하면 우리의 모국어, 아니면 최소한 영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최종 권위인 킹 제임스 성경이 규정해 준 원어의 뜻을 따르면 될 것이다.

하긴,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의 시편 8편에서 “인간을 천사보다 약간 낮게 하시고”에 '천사'가 히브리어로 그냥 엘로힘.. 하나님/신들과 같은 단어라고 한다. 돈/은과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같은 단어가 하나님, 신, 천사 모두 가능하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_=;; 하지만 이건 문맥상 하나님일 리가 없고, 신약 히브리서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도 헬라어로 천사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들었다. 저기서의 의미는 당연히 천사가 돼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여러 주제의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제 글을 맺고자 한다.
성경 읽을 때는 여건이 허락한다면 다양한 번역본을 참고하면서 다양한 의미와 다양한 관점을 학술적으로 섭렵해서 나쁠 건 없다.
그러나 그런 면모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닥치고 익숙한 단일 모국어 역본만 철썩같이 반복해서 읽으면서 골수에 새겨서 "암송"하고, 일상생활에서 곧장 그 말씀이 떠오르게 하는 거.

이 둘에 대한 균형을 맞춰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으면 전자보다는 후자를 더 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진리는 기본적으로 형태가 단순하다. 성경의 하나님은 헛똑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적사기 말장난 기만을 싫어한다.
이솝 우화던가? 당장 고양이가 쫓아오는데, 똑똑한 쥐는 탈출하는 방법 100가지 중에서 뭐가 지금 가장 효율적일지 짱구 굴리면서 고민만 하다가 고양이에게 잡아먹혔다.
그러나 닥치고 달리기인지 개헤엄인지 방법을 하나밖에 모르던 평범한(?) 쥐는 자기가 아는 방법 하나만 X나 무식하게 밀어붙여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아는 건 많은데 지혜가 없고 분별력이 없고, 어느 게 나에게 당장 필요한 진리인지를 모르는 건 영적으로 바람직하게 성장한 상태가 아니다.
전자가 오히려 혼동을 야기하면서 후자의 활동에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으니까 절대적으로 옳은 건 없다~~ 세상에 100%라는 건 없다" 이건 유한한 자원에서 최대의 가성비를 찾는 공학 같은 세상 학문에서나 통용되는 특징이다.
그 반면, 성경을 대하는 태도는 "나의 최종 권위는 이건데 그래도 추가로 참고적으로 요렇게도 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저렇게도 생각하긴 했다" 이렇게 중심 절대값부터 잡고 나서 부가설명 액세서리를 참고하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이다. 교리에 대한 문자적 해석부터 한 다음에 영적 교훈을 넓고 다양하게 적용하듯이 말이다.

성경 말씀이나 찬송가 가사 같은 건 책을 보고 있지 않아도, 폰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아도 일상생활 중에 튀어나오고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
찬송가라고 해서 맨날 군가 아니면 중세 장송곡 같은 식상한 멜로디여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거 뭐 악보를 읽기도 어려울 정도로 정도로 박자가 너무 복잡한 2000년대 이후 CCM은..;; 과연 어렵고 힘들 때나 성령 충만할 때 누구나 쉽게 떠올려서 그대로 부를 수 있을까? 세월을 안 타고 모든 성도들이 부르는 불후의 명곡이 될 수 있을까?

그것처럼 그 좋은 영어 성경도 말이다. 영어 성경에 Believe in the Lord Jesus Christ, Rejoice in the Lord 같은 쉬운 문구만 있는 게 아니다. 성막이나 성전 설명을 영킹으로 바로 읽고 알아듣고 머리에 외울 수 있겠는가?
영어 영어 하다가 자기한테 본질적인 걸 놓치지도 말아야 하리라 생각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3 08:35 2024/08/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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